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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 . . . 137회 일치
         |혐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뇌물수수·직권용 권리행사방해·강요·기밀누설 등<br>----<br>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뇌물수수·국고손실)<br>----<br>공직선거법 위반(공천개입)
         재임 직후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라는 위기를 맞으며 국정을 본 박근혜는 임기 중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창조경제]]를 위시한 추진한 정책 다수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더러, 미숙한 국정운영과 불통 논란 등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민간인의 국정 개입 사실이 낱낱이 폭로되면서 2016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발의<ref name="impeachment" />되어 12월 9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주영재·허설|제목=[속보]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34·반대 56·무효 7·기권 2|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2091610001|뉴스=[[경향신문]]|날짜=2016.12.09 16:10:00}}</ref>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에서 전시(戰時) 대구 주재 [[육군본부]] 작전‧교육국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현재 이에는 돈부리집이 있는 상가가 위치해 있다.<ref name="kys">[[강용석의 고소한 19]] 1화</ref> 어머니 [[육영수]]에게는 첫 소생이었으나 아버지 박정희는 이혼 경력과 전처소생의 장녀 [[박재옥]]이 있었으므로 박정희에게는 차녀가 된다. 형제로는 이복언니 박재옥이 있고 동복동생인 여동생 [[박근령]]과 동생 [[박지만]]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는 [[1917년]]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에서 소작농 [[박성빈]]과 부인 [[백의]]의 5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구미공립보통학교(현재의 [[구미초등학교]]), 대구사범학교(현재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거쳐 [[만주군관학교]] 예과와 [[일본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만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중위 때 해방을 맞아서 귀국, 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의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 제2기로 임관하여 재직 중이였다.
         박정희는 소령이던 1949년, [[여순 사건]]에 따른 숙군 여파로 육군 [[특무대]](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의 가혹한 고문끝에 [[조선로동당]] 가입 혐의로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파면되어 육군 정보국에서 직제에도 없는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인해 가까스로 복직하고 대구사범학교 후배이자 부하 장교인 송재천(육영수의 이재종오빠)의 소개로 만난 육영수와의 재혼에 따른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박근혜가 태어난 무렵이다.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가자 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라도 광주시, 서울특별시에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961년 5월 15일 오후 10시 경, 거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던 육군 제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에게 부인 육영수가 "근혜 숙제 좀 봐주세요."라며 가족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면담을 에둘러 요구하였다. 이에 박 소장은 잠시 방에 들러 숙제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근혜와 곁에서 잠든 장모 [[이경령]]과 3녀 근영, 장 지만을 훑어본 뒤에 집을 나선다. 이 때 "무슨 숙제입니까?"라는 거사 동지 [[장태화]]의 물음에 박정희는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라고 답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버지의 기척은 알았으나 자신이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후술하였다.
         {{인용문|"그날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저를 한번 보고 나가신 것은 기억나는데요. 무슨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에 아 있지 않아요. 어머니께서는 집안을 정리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날은 집안이 평소와 다르게 긴장되어 있었으나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하니 어머니께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때 [[전두환]]에게서 아버지 박정희가 긴 통치 자금 6억 원을 수령하였는데 이 사실은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0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 박근혜의 여동생과 동생인 [[박서영]]과 [[박지만]]은 최태민이 언니인 박근혜를 속이고 있으니 구하여 달라며,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에게 A4용지 12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단독 입수]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6709|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7-08-06}}</ref>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1994년]] [[정수장학회]] 등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하며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일에 전념하다가 [[1998년]]에 [[이회창]]의 정계 입문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영대학교]] 재단 운영 과정에서 비판이 있었고 후일 그가 [[새누리당|한나라당]] 대표나 [[2007년]] 유력 대선 주자로 나올 때마다 비판이 제기되었다.
         박근혜는 [[1997년]] [[12월 2일]] 사촌 오빠 [[박재홍 (1941년)|박재홍]]의 소개로 [[한나라당]]의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이회창]]과 만났다. 이후 [[1997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제15대 대통령 선거]] 이회창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이회창의 권유로 [[1998년]] [[4월 2일]] 한나라당의 후보로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과 미혼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등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출신 성분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 및 영, 어머니인 [[육영수]]의 고향인 충청 지역의 지지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2004년부터 한나라당의 위기와 재도약을 이끈 박근혜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예비후보 중 하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당권과 대권의 분리 방침에 따라 2007년 대선을 1년 긴 [[2006년]] [[6월 16일]]에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였다. 박근혜의 가장 큰 상대는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으며, 그 과정에서 [[청계천]] 복원, 버스 노선 개편 등으로 인기를 끈 [[이명박]]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부패 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2008년]] [[3월 12일]]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역 의원 50% 물갈이에 합의했다는 설에 대하여 "어마어마한 음모"라며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박근혜는 "오늘 아침 기사를 보고 기가 막히기도 하면서 하다하다 이런 술수까지 난무하는구나라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며 "이 쪽(친박계)에 다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라고 흥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이 우리 핵심 누구와 이야기를 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끝까지 밝혀 내겠다"며 "이방호 사무총장이 친박계 핵심 인사가 누군지 못밝힌다면 영권 물갈이를 50% 한다고 해 놓고 우리한테 다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1999130& 박근혜 "이방호 50% 물갈이 합의설 밝혀야"]</ref>
         박근혜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 의견을 내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친이계와 친박계의 계파 갈등이 더 확산되었다. 2009년 여론조사 결과 텃밭인 영 지역, 중장년층, 보수층의 박근혜 지지 비중이 1 ~ 2% 낮아지고 진보층, 충청 지역, 기타 연령대의 지지 비중은 1 ~ 2% 높아진 걸 볼 수 있는데 이 까닭은 여권 주류가 마음먹고 세종시를 지원해 경상북도의 혁신도시가 기업을 유치하지 못하게 된다는 불안감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시]] 논란 이후, 지지율이 다시 회복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0911/e2009111317515896380.htm |제목=親朴 일부의원들 박근혜에 반기? |확인날짜=2009-12-07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928164146/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0911/e2009111317515896380.htm |보존날짜=2013-09-28 |깨진링크=예 }}</ref>
         박근혜는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었고, 이재오, 이방호는 낙선하였으며,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 전국구 8석이라는 예상 외의 높은 지지율을 달성하였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총 12명이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박근혜는 꾸준히 친박연대 및 무소속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을 요구하였다. 친박 측과 앙금이 아있던 [[강재섭]] 대표의 임기가 종료되고 [[박희태]] 전 의원이 대표로 부임한 뒤 마침내 친박무소속연대 소속 의원과 친박연대의 지역구 의원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여 한나라당 내 친박의원 의석수는 6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의원 5명은 당명 개정, 독자 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양정례]], [[서청원]], [[김노식]]은 당선무효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북 관계 경색이 지속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박근혜는 '대북 특사론'의 유력한 인물로 꼽혔다.
         국회의원 재직 중 대선 경선을 맞이하게 된 박근혜는 대선 경선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경제 민주화'의 입안자인 전 [[민주정의당]] 헌법개정위원 [[김종인]]을 임명하는 등 [[사회양극화]] 문제 해소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628031405843] 김봉기 기자, '경제 민주화' 원조 김종인… 내달 출범 박근혜 캠프 맡는다, 조선일보, 2012.6.28.</ref> 박근혜는 재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경제력 용을 바로잡는 데 방점을 뒀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긍정적 역할은 인정하자는 쪽이었다.<ref>[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820160408085] 이제훈, 재벌이 싫어하는 헌법 조항, 한겨레21,2012.8.20.</ref> [[사회양극화]] 해소가 목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세수확보가 중요한데 박근혜 의원은 2012년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법인세는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야기했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6%(지방세 포함)보다 낮은 편이다. 일본과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각각 39.5%, 39.2%에 이른다.<ref name="hani.co.kr">[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42826.html] 류이근, 성연철 기자, 박근혜 "법인세 인하"…친박서도 "경제민주화와 모순", 한겨레신문, 2012.7.17.</ref> 현재 법인세는 내국세 총액 가운데 부가가치세(33.0%) 다음으로 높은 비중(28.6%)을 차지한다.<ref name="hani.co.kr"/>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법인세를 낮추겠다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에서 ‘박근혜식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대안을 내놔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ref name="hani.co.kr"/> '법인세 인하와 경제민주화 간의 모순성' 및 '법인세 감소분에 따른 대체 세수 확보' 등의 논란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박근혜 후보는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 유세를 함으로써 고비를 맞았지만, 지지층 및 여론의 굳건한 지지를 받으며 대선 기간 중 시행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으로 1위를 기록하였다. 한편 대통령 선거 후반에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2012년 12월 11일 [[국가정보원]] 소속 심리정보국 공무원들이 국가정보원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에 게시글을 겨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어서 해당 활동에 참여한 국가정보원 직원중 1명을 지목했다. 그러나 해당 직원은 오피스텔에서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고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으나, 국가정보원 요원은 전화를 통해 자신이 항상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과 관련한 어떤 글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ref>조혜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422919 국정원 직원 "문재인 후보 비방 댓글 단 적 없다"], 노컷뉴스, 2012년 12월 12일</ref>
         2013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f name="ReferenceB">{{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제목 = 北 "북 불가침 합의 폐기"‥'전면전 준비' 언급|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13-03-08|확인날짜 = 2013-04-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311025446/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보존날짜 = 2013-03-11|깨진링크 = 예}}</ref> 북한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북 직통전화 단절을 선언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하여 공개적인 적대행위의 의사를 밝히며 위협하였다.<ref name="ReferenceB"/> 이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ReferenceB"/> 국방부 또한 북한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ref name="ReferenceB"/>
         박근혜는 취임사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공식 언급<ref>[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966 [박근혜 정부 출범_취임사로 본 국정운영] 경제부흥ㆍ국민행복ㆍ문화융성…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ref>한 이래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간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북 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며,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ref>[http://www.korea.kr/celebrity/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757873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구축]</ref> 가 대표적인 통일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 김영철(배우) . . . . 79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1953년 출생]][[분류:고양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데뷔]]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 아내 이문희[* 미스롯데 출신이자 TBC 공채 20기 연기자이다. 김영철은 공채 18기. 3년간의 연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2 ||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태종(조선)|이방원]], [[공주의 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태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태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자]], [[공주의 자]], [[적도의 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자]] 출연. 그 중 [[위기의 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반기, 2012년 상반기, 2012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언론통폐합]] 이후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80년대 TV 문학관에서 거의 주인공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선우휘]] 원작의 단독 강화에서는 대사 없는 시체로 나온 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이병주 원작의 변명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프랑스]] 지식인[* 원작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던 블로크 교수의 총살 에피소드이다. 김영철은 여기서 1인 2역으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탁인수와 프랑스 교수 블로크를 모두 맡았다], [[심훈]] 원작의 [[상록수(소설)|상록수]] 주인공,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공 등이다. 체육인 출신이었던 덕에 젊은 시절에는 몸도 좋았던지라 KBS 특집극에서 [[손기정]]을 맡은 적도 있다.[* KBS 1TV에서 82년 1월에 5부작으로 방영했던 '맨발의 영광'이란 미니시리즈이다. 2013년에 작고한 [[강태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 손기정의 빛에 가려진 또 한 명의 [[마라톤]] 영웅인 승룡 선수 역을 했다.] 대하드라마 [[토지(소설)|토지]]에서 김환 역을 하기도 했다.
         [[주현]]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양동근]]의 출세작인 1992년작 KBS 드라마 [[형]]에서 고생 끝에 출세한후 냉혹한 인간으로 변신하는 동생 역할을 맡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아출신인데 막노동꾼으로 동생을 공부시키는데 전력한 형의 밑에서 현실을 비관해서 운동권에 투신해서 감옥에 갔다온 후, 냉혹한 사업가로 변신해서 가족도 떠나가는 역할이었다.[* 자신의 형을 거둬 먹여준 은인에게 부동산 사기를 치기 까지 했다.]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서 형을 생각하면서 [[하모니카]]를 부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아 있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편은 어떠십니까'에서 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1990년대는 개인사업 등의 사정으로 활동이 약간 줄어들어 TV에서는 [[아침 드라마]] 전문 불륜 배우[* 이 기믹으로 MBC의 2002년작 [[월화 드라마]] [[위기의 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도로 소비된 시절이다. KBS 일일드라마 히트작인 [[정 때문에]]의 역이 대표적인 이 시절 김영철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 역도 중간에 하차하는 역이라 큰 인상은 주지못했다.
         <태조 왕건>의 궁예는 원래 일찍 하차할 캐릭터였는데, 예상을 초월하여 궁예 역할이 시청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게 되는 바람에 120부까지 출연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은 총 200부작인데 절반 넘게 궁예가 주인공 왕건보다 더 주인공다웠고, 궁예가 죽으면서 1기가 끝나고, 견훤이 죽으면서 2기가 끝났다. [[진 주인공]] 맞다. 결국은 연기대상까지 차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개소문(드라마)|6년 뒤]]에 [[수양제|한 번 더]] [[김갑수|재현된다.]][* 다음 해에는 주인공인 왕건 역의 [[최수종]]이 연기대상을 받았다. 한 드라마가 2년 연속 연기대상을 수상한 사례는 1987년부터 1989년에 방영한 [[토지(소설)|토지]]([[임동진]]-[[반효정]])와 태조 왕건 둘뿐이다.] 김영철은 장기간 한쪽 눈으로 연기한 탓에 시력에 이상이 와서 드라마가 끝나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력을 회복한 상태. 덧붙여서 궁예 역을 할때 실제로 삭발을 하여 연기에 임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스님들이 분장과 가발을 한 것과 달리 한눈에 봐도 진짜로 머리를 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승려시절, [[종간]]과 같이 있을 때.]. 어느 사극에서나 나오듯, 궁예 역할 역시 고증문제에 대한 지적 같은 논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김영철의 절등한 연기력에 그런 지적들은 힘을 못 쓰고 묻혀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드라마 1기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를 부리거나 똘기어린 감정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들에서 김영철은 특히나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였기에 시청자들 뇌리에 깊이 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가령 술취한 궁예가 사람을 쳐죽이는 장면에선 취중에 혀가 꼬이는 것에서부터, 술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것까지 진짜 술취한 것처럼 재현하였다.
         '[[옴 마니 반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태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태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당시 1999년~2000년대 초반에 [[개그콘서트]]로 큰 인기를 얻은 동명이인 [[김영철(개그맨)|개그맨 "김영철"]]의 활약으로 중견 배우 "김영철"로서의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점점 잃어가던 시기였는데, [[태조 왕건]]으로 대부분 중년배우에게 큰 관심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김영철이 누구냐?"고 물으면 "궁예!"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태조 왕건' 이후 어떤 새로운 사극이 나와서 다른 배우가 궁예 역할을 한다해도 김영철만큼 할 수 없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궁예 = 김영철"이라는 확고한 공식을 만든 그야말로 사극계의 [[레전설]].
         다만 배우 본인은 이렇게 강렬했던 궁예와 김두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태조 왕건의 후반부때 휴식을 취하다가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위기의 자]]에 출연한적도 있고... 연기자는 어찌되었든 평생 연기를 해야하니까 이미지가 한쪽으로 고착되는 것은 사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SdOXX3gMU|뉴스 인터뷰 영상 링크]]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궁예 이미지로 굳어지는게 다소 안타깝다는 뉘앙스로 직접 이야기한다.
         대중 전체에게 장기간 공개되는 대하 TV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라는 부분 때문에 궁예나 김두한처럼 대중 전체적으로 엄청난 임팩트를 준 작품은 아니지만, 분명 레전드로 은 역할은 또 있는데, 바로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의 조폭 두목 회장님 역할이다. [[이병헌]] 역할 한명의 감정변화에 집중되는 영화인데다가 [[황정민]]이나 [[김뢰하]]처럼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까지 개성이 매우 강한 조연으로 나온 영화임에도 결국 사람들 뇌리에 가장 많이 은 연기는 김영철의 연기였다. 김영철만의 보스 감성에다가 중년의 나이에 어린 여자([[신민아]])를 사랑하는 자의 쑥스러움에, 다른 자를 견제하는 수컷 그 자체로서의 성적 수치심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내어 '역시 연기는 김영철' 소리를 들었던 작품.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병헌과 단둘이 서서, "너, 정말 이럴거냐?", "너 그 애 때문이냐?" 라고 했던 대사는 명장면으로 았고 김영철 특유의 포스가 워낙 임팩트가 강해서 10여년 뒤에도 수많은 개그나 코믹 재연 프로그램에 패러디되었다. 개그콘서트에서는 아예 장기간 정식 패러디 코너가 있었다.[* 물론 개그맨 [[김준호(개그맨)|김준호]]가 보스로서 김영철 말투만 흉내낼뿐, 내용은 전혀 관계없고 부하들(주로 [[유상무]])에게 당하기만 하는 보스 역할.]
         KBS 드라마 [[공주의 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시절.
         2011년 여름에 방영한 KBS [[수목 드라마]] [[공주의 자]]에서는 수양대군 역을 맡아 [[충공깽]]급 연기를 선보였다.[* 다만 연령 고증은 조금 아쉬운데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당시에 36세이고 사망 당시에 52세였는데 김영철은 이 당시 이미 6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물론 연기력이 두말할 나위 없이 뛰어났기에 이 문제가 상쇄되기는 하지만.] 미화없는 실제 세조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연기를 펼쳐, 2017년까지 제작된 영화 및 드라마 등 세조관련 모든 영상매체에서 '''역사상 최고의 세조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정적에 대한 처단에 망설이는 모습이 없고, 왕좌를 갖기 위해 또한 지키기 위해 냉혹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가히 괴물같은 연기를 선보였다. 궁예나 이방원 역과는 묘하게 다른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인생배역이다.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그래서인지 궁예와 김두한을 실시간으로 겪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김영철' 하면 공주의자 에서의 수양대군 역할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김영철 기사의 댓글을 보면 궁예와 김두한 얘기가 더 많긴 하지만 공의 수양대군 역할이 뇌리에 는다는 의견이 은근히 있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작품마다 명대사가 하나씩 있었던 김영철이지만 공주의 자에서는 기억에 을 명대사가 나오진 않았다는 점 정도.
         김영철이 연기한 극 중 수양대군 캐릭터에 대해서는 [[공주의 자]] 문서와 [[공주의 자/등장인물#s-2]] 문서 참조.
         2012년 [[KBS 2TV]]의 [[수목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자]]에서 대기업 사장 서정규 역으로 25살 차이나는 여성([[박시연]])과 결혼하려고 하며 [[공주의 자|전생에도]] [[문채원|딸이었던 딸]]과 대립한다. --그런데 그 [[김서라|딸의 친엄마]]도 [[공주의 자|전생에]] 아내.--[* 극 중 김서라가 맡은 엄마 역할은 3회에서 회상 장면으로 잠깐 나온 것이다. 원래 나오는 역할이 아닌데 이경희 작가가 대본을 쓰다보니 어머니 역할이 한 컷 나오게 되었고 전작의 재미도 살릴겸 카메오 격으로 김서라를 출연시킨 것이다. 공주의 자와 착한 자 모두 KBS 수목드라마이기도 했기에...] 다만 이 작품에서는 서정규 역할이 조기퇴장하면서 큰 활약은 없었다.
  • 창원시 . . . . 78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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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clude(틀:경상도의 기초자치단체)]
         ||<-2><bgcolor=#00BFFF> {{{#FFFFFF '''창원시청 소재지'''}}} || [[경상도]] [[창원시|의창구]] [[중앙대로(창원)|중앙대로]] 151[br](舊 용호동 1번지) ||
         ||<-2><bgcolor=#00BFFF> {{{#FFFFFF '''지역'''}}} || [[부울경]]([[동권]]) ||
         ||<-2><bgcolor=#00BFFF> {{{#FFFFFF '''광역시도'''}}} || [[경상도]] ||
         {{{#FFFFFF '''민주'''}}}}}}]] ④ 택욱 ||
         창원시청 전경. 통합 전 창원시청을 그대로 임시 사용하고 있다. 주소는 [[경상도]] [[창원시|의창구]] [[중앙대로(창원)|중앙대로]] 151(舊 용호동 1번지).
         [[파일:2018경창원슬로건.png]]
         [[경상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의 중심지'''로 [[경상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상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인센티브를 거론하며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을 유도하였으며, 당연히 그전부터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많은 소위 마창진([[마산]], [[창원시/통합 이전|창원]], [[진해]])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3개 시는 지난한 정치적 협상 및 행정적 조율을 거쳐 드디어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게 되었으며,[* "경상도의 창원시, 마산시 및 진해시를 각각 폐지한다."(경상도 창원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경상도에 창원시를 다음과 같이 설치한다."(같은 조 제2항. 제1항에 따라 폐지되는 창원시 일원, 마산시 일원 및 진해시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창원시 설치)] 이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수립 이후 첫 번째 사례가 되겠다. 이 과정에서 [[함안군]]도 포함될 뻔했으나 제외되었다.[* 마산과 함안이 밀었던 모델은 함안+마산+창원 이였고 창원이 밀었던 모델이 마산 + 창원+ 진해 였다. 마산은 이 3도시가 통합되면 마산은 발전동력이 다해 쇠퇴하던 도시가 다시 도시중심부가 되어 새로운 발전동력을 얻을수 있었고 함안은 새로이 공장이 들어서는 발전가능성이 높은 도시였으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탓에 과감한 투자를 할수 없으므로 많은 재정을 유치할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창원시는 아직도 북면의 개발등 개발지역이 아있고 함안과의 연동으로는 별 메리트를 찾을수 없었던 터라 함안과 마산을 제외하고 신항이 들어서던 진해와 합쳐서 항만도시로의 발전을 추구하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도시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이니 '진창마'니 '창마진', ‘가야’, ‘산해원’, ‘경’ 등 여러 안이 나왔는데, 결국에는 그냥 '창원'이 되었다. 통합시청사 역시 기존 창원시청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새 시청사 소재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미루고 있어 결정이 안 나고 있다. 한때 창원 39사단 부지로 결정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로 유포해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시청소재지를 놓고 대립이 일어난 끝에 창원시 의회에서 '''그냥 원상태로 되돌아가자'''라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355831|결의안을 통과시켜서]] 파문이 일었다. 2011년 11월 4일 창원시 의회 임시회에서 이 결의안이 통과돼버린 것. 결의안을 제시한 의원은, "지역 이기주의가 극심한 몇몇 의원 때문에 통합의 정신이 흔들린다"라고 했다.
         19대 총선 때는 시청사 소재지를 두고 후보들 간에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다. 옛 창원 지역에서는 현 청사 리모델링을, 옛 마산 지역에서는 마산으로의 이전을 주장하고, 옛 진해 지역의 야권, 무소속 후보들은 진해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해구에서 막판에 간신히 야권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꽤 큰 차이로 여당 후보에게 패한 것을 볼 때, 다시 나누어지는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통합의 후유증이 상당히 아 있음을 보여준다.
         통합을 한다고 지역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서울이나 부산, 대구, 인천처럼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성장한 대도시들이 도시 안에서 옛 지역명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의 서면은 본래 동래군 서면, 대구의 칠곡은 본래 칠곡군에 속했던 지역. 그 외 구명은 대체로 과거의 지역명을 따르는 편. 다만, 고만고만한 동네를 서서히 흡수한 게 아니라 어느정도 규모를 갖춘 지역을 단번에 통합한지라 서로간의 갈등이 아직 아 있는 편. 비슷한 사례로는 [[삼여 통합]]으로 탄생한 [[여수시]],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통합한 [[사천시]] ~~칠천포~~가 있다.
         반면 뚜렷한 지역성과는 반대로, '''각 지역간을 오가는 교류는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져왔다.''' 마산, 창원, 진해의 3개 도시가 '마창진'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동일한 생활권으로 인식되어 온 주된 이유. 이들 3개 지역에 [[시내버스]]가 통합 운행을 시작한 건 '''[[1977년]]'''의 일이었고([[창원시내버스협의회|마창시내버스협의회]]의 출범과 함께), 창원의 대규모 계획도시가 1970년대부터 조성에 들어갔음에도 마산의 창동, 오동동 상권이 1990년대까지 살아을 수 있었던 이유도 창원공단에서 근무하던 직장인이 퇴근 후 마산으로 넘어와 주류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번호를 누르면 칼같이 시외전화 요금을 받던 시절[* 서울-성/안양/구리/의정부/고양, 창원-진해도 당연히 시외요금이었다. 시내요금권역은 서울-과천·광명, 인천-부천, 대구-경산, 대전-두계(계룡) 등 정말 몇 안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정책적 위성도시였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 논란'''도 있었을 정도로 시외전화라는 것에 민감하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자.]에도 마산/창원은 0551로 동일하였고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했다.[* 이 당시 시외전화라 그러면 10원짜리가 쭉쭉 떨어져 100원짜리를 2개는 준비해야 제대로 통화를 했던 시절이다. 시내요금은 20~50원으로 3분간 통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상동(창원 성산)|상동]]의 상권 개발 이후로는 오히려 마산 지역 사람들이 공단에서 퇴근하고 근처 상동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마산으로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했다. 역사적으로도 창원과 마산은 1300년대에 의창현[* 현 창원시 의창구]와 회원현[* 현 마산시 회원구]이 합쳐서 만들어진 창원도호부가 그 시작이 된 도시로 왜정시절 일제의 필요에 의해 마산이 새로이 탄생한 이전까지는 같은 도시였다.
         여튼 현재 창원의 경제적 규모는 광역시급이며, 통합시 출범을 토대로 광역시 승격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창원시가 경상도에서 빠져나간다면 경제적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경은 창원이 독립하고자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상 수원과 더불어 광역시 승격은 매우 힘들다. 다만 통합으로 인한 혜택을 몇 가지 받기는 했지만 역시나 시 규모에 걸맞는 권한을 못 가졌다는 문제가 있으므로 비슷한 처지인 [[수원시|수원]], [[성시|성]], [[고양시|고양]] 등과 더불어 새로운 자치단체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 듯. 최근 여러번의 선거를 거치며 광역시로 승격하자는 슬로건과 플래카드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긴 한데, 이미 언급했듯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창원광역시]] 참고.
         [[경상도]]의 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부산)|강서구]]와 [[김해시]],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밀양시]]와 [[창녕군]][* 정확하게는 창녕군 이지역(=지읍/영산면)으로 이뤄진 창녕 부권], 서쪽으로는 [[함안군]], [[진주시]], [[고성군(경상도)|고성군]], 쪽으로는 [[거제시]]에 접한다. 시의 중앙에는 마산만이, 쪽에는 진해만이 있다.
         부지방이라 평야를 연상하기 쉽지만 부산처럼 의외로 산이 많다. [[창원시/통합전|구 창원]] 시가지는 정병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팔용산, 천주산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며, 마산회원구 북쪽에는 무학산도 있다.봉림동에서 흘러나오는 창원천과 성주동에서 흘러나오는 천이 합류하여 마산만으로 흘러나간다.
         [[마산]] 및 [[진해]]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마산은 무학산을 등에 지고 마산만을 맞대고 있으며, 진해는 장복산을 등에 지고 진해만을 맞댄 형태. 특히 마산같은 경우 좀 평평하다 싶은 지역은 죄다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생긴 매립지들.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일제강점기]]부터 실시되고 있으며 '''[[2013년]]''' 현재도 해양신도시 사업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지형 때문에 [[2003년]] 태풍 [[매미]]가 들이닥쳤을 때 마산 일대가 모조리 물바다가 되어버린 적도 있다. ~~혹자는 지하 5층의 대우백화점이 없었다면 물탱크 역할을 할 구심점이 없어져 피해가 더 커졌을 거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낙동강]]에 접한 [[의창구]]의 동읍과 대산면 지역이 꽤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논농사가 흥해서 농사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것이 주 저수지. 하지만 근래엔 논농사 보다는 지역 특산물로 떠오른 [[단감]]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주 저수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나 철새의 낙원으로 재탄생했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74회 일치
         서민 아파트의 주거 환경은 시간이 지에 따라 감소할 것이며, 보수 공사를 해야 주거 수준이 초기 상태로 복구될 것입니다.||
          * 고졸 성 4명을 성직자로 고용 가능
          * 대졸 성 2명을 의사로 고용 가능
          * 대졸 성 4명을 주교로 고용 가능
          * 대졸 성 4명을 의사로 고용 가능
          * 아울렛: 쇼핑몰의 온 천지가 구두입니다. 말그대로 여자들의 낙원이죠. 그러나 성들에게는 지옥과도 다름 없을 겁니다. 서비스 질은 20 상승하겠지만, 운영 비용은 배가 됩니다.
          * 대졸 성 5명을 은행원으로 고용 가능
          * 고졸 성 5명을 세관원으로 고용 가능
          * 대졸 성 5명을 증권 거래인으로 고용 가능
          * 대졸 성 2명을 교수로 고용 가능
          * 대졸 성 3명을 의사로 고용 가능
         ||굶주린 성을 카바레로 만족시켜봅시다. 이국적 미를 겸비한 여성들은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특히나 병사들이 이 시설을 좋아하더군요. 지금 무슨 상상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저 안에선 상상하시는 그런 야한 일은 안 일어난답니다.||
          * 스트립쇼: 안과 의사들이 직접 어떤 곳을 보더라도 눈이 덜 아프드록 설계했습니다. 성만이 공연장을 방문하게 되지만, 수익은 2배가 됩니다.
          * 고졸 성 4명을 딜러로 고용 가능
          * 무학력자 성 3명을 종업원으로 고용 가능
          * 고졸 성 6명을 운동 선수로 고용 가능
          * 무학력자 성 4명을 종업원으로 고용 가능
          * 트로피코 전통 미술: "소녀와 라마"("2명의 소녀와 한 마리의 라마"와는 다른 작품입니다.)와 "파파야를 먹는 자"와 같이 트로피코의 명화들을 전시합니다. 트로피코의 미술품이 매각되면 부수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고졸 성 5명을 경찰관으로 고용 가능
          * 고졸 성 2명을 경찰로 고용 가능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68회 일치
         [[성 FC]]
         [[전 드래곤즈]]
         || 2 || 2016.03.12 || 성 FC vs 수원 삼성 || 2 : 0 ||
         || 4 || 2016.03.13 || 전 드래곤즈 vs 수원 FC || 0 : 0 ||
         || 7 || 2016.03.19 || 수원 FC vs 성 FC || 1 : 1 ||
         || 12 || 2016.03.20 || 수원 삼성 vs 전 드래곤즈 || 2 : 2 ||
         || 14 || 2016.04.02 || 성 FC vs 포항 스틸러스 || 1 : 0 ||
         || 18 || 2016.04.03 || 울산 현대 vs 전 드래곤즈 || 2 : 1 ||
         || 21 || 2016.04.09 || 인천 Utd vs 성 FC || 2 : 3 ||
         || 22 || 2016.04.10 || 전 드래곤즈 vs FC 서울 || 1 : 2 ||
         || 26 || 2016.04.13 || 성 FC vs 전 드래곤즈 || 0 : 0 ||
         || 32 || 2016.04.16 || 전북 현대 vs 성 FC || 3 : 2 ||
         || 35 || 2016.04.17 || 전 드래곤즈 vs 광주 FC || 1 : 2 ||
         || 37 || 2016.04.23 || 제주 Utd vs 성 FC || 2 : 2 ||
         || 42 || 2016.04.24 || 포항 스틸러스 vs 전 드래곤즈 || 0 : 1 ||
         || 47 || 2016.05.01 || 전 드래곤즈 vs 상주 상무 || 3 : 4 ||
         || 48 || 2016.05.01 || 성 FC vs 광주 FC || 2 : 0 ||
         || 49 || 2016.05.05 || 울산 현대 vs 성 FC || 0 : 3 ||
         || 50 || 2016.05.05 || 인천 Utd vs 전 드래곤즈 || 0 : 0 ||
         || 58 || 2016.05.14 || 성 FC vs FC 서울 || 2 : 3 ||
  • 희빈 장씨 . . . . 62회 일치
         |자녀 = 2<br />[[조선 경종|경종]], 성수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은 [[사역원]] 봉사를 재직하였지만 일찍 은퇴하고 집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음률을 즐기다가 장씨가 막 11세가 된 1669년 1월 12일에 사망했다. 그녀보다 19세 연상인 이복 오빠 장희식은 18세의 나이로 1657년 식년시 역과에 장원을 하여 사역원 직장(종7품)이 되었지만 곧 사망하였다. 장희식의 아내 이씨는 절충장군 이천연의 딸이다. 할아버지 장응인은 《통문관지》에 행적이 기록된 [[조선 선조|선조]] 때의 명역관으로, 생전 최고 관직이 정3품 [[첨지중추부사]](무관직)에 이르렀고, 전쟁 중에 무관으로 참전한 바 있으며 시재(詩才)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선(善)을 가훈으로 삼아 이 단어를 쓴 종이를 항상 품에 넣고 다녔다고 전한다. 할머니 포 박씨는 산학 별제 박심의 딸이다. 외할아버지 윤성립(尹誠立, 1689년 정경으로 추증)은 일본어 전공의 사역원 첨정(종4품)<ref group="주">사역원 역관의 품작은 정3품 정(正) 1명으로 시작하여 아래로는 종3품 부정(副正) 1명, 종4품 첨정(僉正) 1명으로 내려간다.</ref> 이었으며, 1653년에도 생존했던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아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같은 해,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에 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숙종실록이나 인현왕후전 등에는 숙종을 모시기에 장씨의 출신이 천하고 성품이 극악한 이유로 쫓아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경신환국]] 당시 [[장현 (조선)|장현]] 일가가 [[복평군]] 형제와 절친한 사이이니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해 몰락시킨 장본인이 바로 [[명성왕후]] 김씨의 사촌 오라비 [[김석주]]였던 것으로 비추어 장씨의 보복을 견제한 탓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출궁된 직후인 [[1681년]] 1월 3일에 계비 간택령이 내려졌고, 3월에 [[조선 숙종|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대비 김씨]]와 [[송시열]]의 추천으로 민씨([[인현왕후]])가 간택되어 [[1681년]] 5월 14일 [[조선 숙종|숙종]]과 민씨가 가례를 올렸는데 본래 [[명성왕후|대비 김씨]]의 친정 가문과 원한이 있던 [[송시열]]과 [[민유중]]<ref group="주">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김우명]]은 당파로선 엄연한 서인이었지만 [[조선 현종|현종]]의 척신으로서 예송논쟁 당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판하고 [[인]]의 손을 들어주어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민유중]]은 과거 [[김우명]]의 형인 [[김좌명]]과 심하게 다투어 벼슬을 버리고 지방에 은거하였던 경력이 있다.</ref> 의 혈육인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계비가 된 것은 [[경신환국]] 당시 [[서인]]과 손을 잡았던 명성왕후의 정치적 계약임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인경왕후]]의 죽음 직후 계비로 내정된 민씨를 위해 장씨를 [[조선 숙종|숙종]]의 곁에서 치운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ref group="주">본래 정처의 3년상이 마치기 전에 재혼하는 것은 경국대전과 의례의 조항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이는 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 숙종|숙종]]이 [[인경왕후]] 김씨의 사후 3년상은 고사하고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인현왕후]] 민씨와 재혼을 한 것은 조선 왕실 역사 상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논란이 있어야 할 [[인현왕후]] 민씨와의 재혼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서인은 [[인현왕후]] 민씨의 사후 3년상이 마쳐지기 전에 [[조선 숙종|숙종]]이 계비 간택령을 내리라는 명을 내리자 반대를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권, 28년(1702 임오 / 청 강희(康熙) 41년) 8월 27일(병오) 2번째기사</ref>
         측실이지만 이미 출가를 한 지 4년이나 지난 그녀가 정명공주의 잔치에 노래를 부른 것은 그녀의 명성이나 주인이었던 [[숭선군]]의 주선 때문이었을 것이다.</ref> 을 취객의 희롱에서 도망치게 하였다고 호된 매질을 가한 바 있는데, 좌의정이 포도부장에게 직접 벌을 내린 것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엄연한 무관의 아내를 희롱한 취객에게 죄를 묻지 않고 그녀를 도망치게 한 편에게 벌을 내린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정이야 어찌됐던 [[민정중]]이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매질을 한 것은 사실이니 [[인현왕후]]로선 장씨의 입궁이 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는 궁녀 장씨의 교만함을 훈계하겠다며 아랫사람에게 장씨를 매질토록 시키기도 하였다.<ref group="주">인현왕후전에는 [[인현왕후]]가 장씨를 교화하기 위해 직접 회초리질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f>
         숙종은 [[인현왕후]]와 [[영빈 김씨|김씨]]에게서 장씨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궁전과 후궁의 처소가 있는 [[창덕궁]]이 아닌 [[창경궁]]에 비밀리에 인부를 불러 장씨의 처소를 새로 건축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숙종이 직접 장씨를 종4품 숙원으로 봉해 정식 후궁으로 만듦<ref group="주">승은궁녀에게 첩지를 내리는 것은 내명부 수장인 중전의 고유권한이었다.</ref> 으로서 인현왕후의 처지를 위해 장씨의 출궁을 종용하던 서인은 더이상 숙종에게 장씨를 출궁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장씨를 숙원으로 봉하며 하사하기로 한 노비 100명과 전답은 흉년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하도록 하였다.<ref group="주">[[조선 숙종|숙종]]이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최초로 관직을 내린 것은 원자 명호를 취소할 것을 주장한 [[송시열]]의 상소로 인해 [[인]]이 정계로 돌아온 후이며, 승진이 아닌 부서 이동에 불과했던 것으로 미루어 장씨가 후궁이 되고도 친정이 혜택을 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숙종 15년 2월 11일 (기유) 원본333책/탈초본17책 (5/26)』</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상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상]]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상]]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상]]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상]]의 아들이 [[홍치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상]]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1688년]] 소의(昭儀 ; 내명부 정2품)로 승격한 장씨는<ref group="주">승정원일기 기록상 1688년 3월까지 장씨의 품작은 숙원이었다. 시기 상 숙원 장씨가 소의로 진봉된 것은 회임을 한 이유임을 알 수 있다.</ref> 같은 해 10월 28일, 드디어 왕실이 그토록 고대하던 [[조선 숙종|숙종]]의 장‘균’(昀)<ref group="주">실록에선 윤으로 읽기도 하고, 균으로 읽기도 한다. 균이라 번역된 기록에도 한자는 윤(昀)으로 쓰여있다. 숙종의 세 아들(昀, 昑, 昍)은 모두 '日'자를 부수로 썼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왕들의 이름은 현재의 독음과 다르게 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고종 대에 편찬된 《열성어휘(列聖御諱)》에 경종의 휘는 "균'으로 읽는다[音勻]"고 명시되어 있다.</ref> 을 낳았고 이 왕자가 후에 조선 왕조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서인의 반응은 싸늘하여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상(喪) 중임을 앞세워 숙종의 득에 축하연은커녕 하례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 또한, 다음 달인 11월 12일에는 숙종에게서 입궁하여 장씨의 산후조리를 도우라는 어명을 받고 입궁하는 장씨의 생모 윤씨를 지평 [[이익수]]가 명을 내려 사헌부 관원들이 그녀를 가마에서 강제로 끌어내리고 그녀의 하인들을 눈 앞에서 매를 때리고 체포하였다.
         [[1689년]] 1월 11일, [[조선 숙종|숙종]]은 아들 윤에게 원자(元子: 왕의 큰아들)<ref group="주">원자는 공식적인 왕의 장자(=장)로서, 조선은 장자상속을 원칙으로 했다. 이에 후궁 소생이라 할 지라도 원자로 정해지면 왕비가 뒤이어 낳은 왕자는 엄연한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차자가 되어 왕위 계승에서 뒤로 밀려난다.</ref> 명호를 내릴 뜻을 알린다. [[조선 경종|왕자 윤]]이 후궁 소생이라는 사실에 방심<ref group="주">숙종 시대까지 조선 왕실 역사에 후궁 소생이 원자가 된 경우는 없었다. [[조선 중종|중종]]의 아들 [[복성군]]은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6살 연하인 [[조선 인종|인종]]이 원자가 되었고, [[조선 선조|선조]]의 장자 [[임해군]]은 평생 원자는커녕 세자도 되지 못했다.
         숙종 15년(1689) 2월 1일에 [[인현왕후]]의 외가 친척이기도 한 [[송시열]]이 이미 종묘에 고한 원자 정호를 철회하라는 비판상소를 올리자 [[조선 숙종|숙종]]은 진노하여 [[송시열]]을 치죄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서인]]으로 이루어진 [[승정원]]에서 명을 받들지 않았다.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김만중]]의 치죄를 명할 당시와 흡사한 배경<ref group="주">[[김만중]]을 추포하여 문초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승정원에서 항명하여 전지를 봉입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은 입직한 승지에게 전지를 쓰라고 명하였지만 붓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되었으며 사관 [[송상기]]는 붓을 빌려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거부했다.</ref><ref>숙종실록 13년(1687 정묘 / 청 강희(康熙) 26년) 9월 11일(병술) 3번째기사</ref> 이었기에 [[조선 숙종|숙종]]은 분개하여 삼사와 [[승정원]], [[사간원]] 등 왕의 최측근 요직에 있던 서인을 파직하고 경신환국 때 실권하여 은신 중이었던 [[인]]을 조정으로 불러 교체해버린다. 동시에 [[조선 숙종|숙종]]은 2월 2일 장씨의 선조 3대를 정승으로 추증(追贈)했다.<ref group="주">추증은 위로 올라갈수록 한 등급씩 감하는 것이 관례여서 장씨의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張炯)에게 영의정을 증직하면, 조부에게는 종1품 찬성(贊成)을 증직해야 했다. 숙종은 “사체(事體)가 다름이 있으니, 모두 의정(議政)을 증직하라”고 명해 [[장형 (조선)|장형]]은 영의정, 장수(張壽)는 좌의정, 장응인(張應仁)은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3대가 모두 정승에 증직된 드문 경우였다.</ref> 다음 달 3월엔 그녀의 외조부인 일본어 역관 윤성립을 2품 정경으로 추증하고, 외삼촌인 윤정석에게 사포별제<ref group="주">품계로는 6품에 이르나 녹봉이 없는 무록관이다.</ref> 직을 내려 장씨가 더이상 비천한 역관에 불가한 가문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서인]]이 차지하고 있던 삼사(三事: 삼정승)와 승정원, 사간원의 중앙 최고 요직이 경신년에 조정에서 밀려나 은신 중이었던 [[인]]으로 교체되자 조정으로 돌아온 [[이현기]](李玄紀)·[[치훈]](南致薰)·[[윤빈]](尹彬) 등은 먼저 원자 윤의 탄생과 [[조선 숙종|숙종]]의 원자가 정해진 것에 대해 경하와 찬사를 올려 [[서인]]과는 극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경신년에 [[인]]에게 대역죄를 씌워 [[경신환국]]을 일으켰던 [[서인]]을 향한 정치 보복의 시작이었다. [[송시열]]에게 유배령을 내리고 [[김수항]] 및 일부 [[서인]]을 조정에서 내쳐버리긴 했지만 분노가 가시지 않았던 [[조선 숙종|숙종]]은 [[인]]의 부추김으로 [[송시열]]을 최고 유배지인 제주로 유배할 것을 명하고 [[김수항]] 등에게도 진도 유배령을 내렸다. [[민암]]을 위시한 [[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6판서·참판·참의 등 인 경재(卿宰) 수십인과 사헌부·사간원이 합계(合啓)하여 과거의 환국([[경신환국]])을 위해 역모를 날조하여 무고한 인 영수 [[허적]]과 [[윤휴]] 들을 살해하였고 과격한 처벌로 죄없는 [[인]] 인사를 학살한 [[김석주]]와 [[김익훈]]의 죄를 묻게 하였으며 이들을 옹호하였던 [[송시열]]과 [[인]] 옥사의 위관으로서 [[인]] 재상 [[오시수]] 등을 죽게한 [[김수항]]의 가중처벌을 맹렬히 주장하였다.
         다음날 23일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생일이었는데 [[조선 숙종|숙종]]이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의 국상기간 등을 이유로 탄일 하례 의식을 생략하라는 어명을 내렸지만 국모의 당연한 권한이라는 이유로 어명이 무시되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하례가 올려졌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이 분노하여 [[인현왕후|중전]] 민씨와 크게 다투고, 조정 대신들에게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교사스럽고 간특한 부인'''으로 칭하며 평소의 언동<ref group="주">시부모([[조선 현종|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계시를 빙자하여 희빈 장씨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팔자라고 거짓을 고한 것, 원자가 탄생하자 노여워하며 주가(主家: 공주의 시가.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를 의미)와 급격히 친밀해지고 [[홍치상]]의 무죄방면을 종용한 것, 궁인들의 당파를 나눠 핍박한 것, 폐출되는 [[귀인 김씨]]에게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가마를 타지 말고 걸어서 빨리 궁에서 나가라고 재촉한 것 등</ref> 을 비난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국모로서 군림할 자격이 없으니 고사를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다. 이는 민씨를 폐서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에 [[서인]] 대신 뿐만 아니라 [[인]]조차 당황하여 [[권대운]] [[목래선]] [[김덕원]] [[민암]] 등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 올려진 '''탄일 문안은 신자(臣子)들의 상례'''이니 [[인현왕후|중전]] 민씨에게는 죄가 없음을 주장하며 강력히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변호하였고, [[권대운]]은 고사를 찾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명에 불복하며 사직을 청하였다. 이러한 조정 안팎의 반발에 대해 [[조선 숙종|숙종]]은 [[서인]]은 처벌하고 [[인]]은 용서하는 차별을 보임과 동시에, 24일에는 [[인현왕후|중전]] 민씨가 [[조선 숙종|숙종]]과 크게 말다툼을 하면서 그녀 자신의 입으로 '진실로 나의 죄이다. 어찌할 것인가? 폐출시키려거든 폐출시키라.'는 과격한 언사들을 입에 담았던 사실을 폭로했다.
         25일 밤, [[오두인]] [[박태보]] 등 [[서인]] 86인이 상소를 올려 전날 국모의 위엄을 훼손한 [[조선 숙종|숙종]]의 발언을 맹렬히 비판하며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명예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인]]의 강경한 반발에 주춤하던 [[조선 숙종|숙종]]은 이 상소에 극노하여 [[오두인]] [[박태보]] 등 86인을 친국하였고,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친오빠 [[민진원]] 형제에게도 국문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서인]]이 대거 연루되기에 이르자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적극 변호해왔던 [[인]]은 정치보복을 위해 입장을 바꾸어 [[인현왕후|중전]] 민씨를 옹호한 상소의 내용을 적극 비판하며 [[서인]]에게 극형을 내릴 것을 종용한다. 이에 [[서인]]이 정계에서 완전히 축출되고 [[인]]이 정계를 독점하게 되는 [[기사환국]]이 발발했다.
         5월 2일, [[조선 숙종|숙종]]은 당시 사대부 여성으로선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던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언사를 낱낱이 폭로하여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 후 폐서인하여 강제로 출궁시켰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중전 민씨]]의 폐출은 폐비 윤씨와 비교할 바가 아니며 그녀의 인성이 여후<ref group="주">한고조([[유방]])의 아내 [[여태후]]를 의미한다. 여태후는 중국 3대 악녀(여태후, 측천무후, 서태후)로 꼽히는데, 투기와 잔혹성은 여태후가 단연 으뜸이다. 여태후는 편 한고조가 사망하자 그녀의 정적이었던 척부인의 혀와 팔다리를 자르고 인간돼지라고 명명하여 변소에 장식하였으며 척부인의 소생을 살해하였다.</ref> 와 흡사하다고 비교하였다. [[인현왕후]] 민씨에게 물어진 죄는 죽은 시부모의 계시를 빙자하여 왕에게 거짓을 고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를 말한다</ref>, 왕의 육체를 조롱한 죄<ref group="주">(장씨의) 팔자(八字)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주상이 노고(勞苦)하셔도 공이 없을 것'''의 부분을 말한다.</ref>, 투기로 내전(內殿)의 일을 조정으로 확대시켜 국정을 어지럽힌 죄<ref group="주">서인이 장씨를 출궁시키도록 종용한 것과 옥교 사건,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삼은 것에 대한 서인의 반대를 의미한다.</ref>, 내전에서 궁인의 당파를 나누어 붕당을 일으킨 죄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인현왕후|폐서인]] 민씨의 겨진 물건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명하였으며 그녀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장복은 대내에서 공개적으로 태우도록 했다.<ref group="주">이후 노론은 숙종이 옳은 주장을 한 [[송시열]]을 처벌하고 정권을 갈아치운 목적이 왕비 민씨를 내쫓고 후궁 장씨를 왕비로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왕비 민씨의 폐출은 장씨의 모략이었다고 기록한다.</ref>
         1693년 2월, 중전 장씨의 머리 부위<ref group="주">승정원일기 본문에는 뇌후(䐉後)로 기록되어 있다.</ref> 의 절환(癤患: 부스럼증)과 창증(瘡症: 종기)이 감소하였다는 기록과 의녀의 시침 기록이 승정원일기 중에 다수 존재하며, 숙환(=오랜 병, 고질병)으로 담화(痰火)<ref group="주">효종의 비(妃) [[인선왕후]]가 담화로 사망했다.</ref> 가 있어(宿患痰火之症) 1694년, 후궁으로 강봉되기 직전까지 치료법에 대한 논의와 뜸을 받은 기록이 존재한다.<ref group="주">왕후와 세자빈의 중병은 국사(國事)로 간주되어 조정에서 논의되기에 기록으로 지만 후궁의 병은 논의되지 않는다. 따라서 장씨의 병이 후궁으로 강봉된 후에도 지속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1701년 무고의 옥으로 궁녀들이 국문을 받을 당시에 장씨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언급이 있다.</ref>
         [[1694년]](숙종 20)에 서인의 [[김춘택]](金春澤)·[[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의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고발되었다. 이때에 인의 영수이자 당시 우상(右相)으로 있던 [[민암]](閔黯) 등이 이 기회에 반대당 서인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김춘택 등 수십 명을 하옥하고 범위를 넓히어 일대 옥사를 일으켰다.
         이때 숙종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옥을 다스리던 민암을 파직하고 사사하였으며, [[권대운]]·[[목내선]]·[[김덕원]] 등을 유배하고 소론(少論) [[구만]](南九萬)·[[박세채]](朴世采)·[[윤지완]](尹趾完) 등을 등용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시켰는데, 이를 불러 [[갑술환국]]이라 한다. [[민진원]]은 그의 저서인 《단암만록》에 숙빈 최씨가 봉보부인을 통해 [[김춘택]]과 전략을 나누어 거사를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조선 숙종|숙종]]의 복위 명령에 병조판서 [[서문중]]은 이조참판 [[박태상]] 등과 함께 사람을 모아 ‘9년·6년과, 아들이 있고 아들이 없는 것은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현왕후]]가 비록 희빈 장씨보다 더 오래 왕비로 있었으나 왕세자의 생모인 희빈 장씨가 더 귀하다는 뜻이다. 정원(政院)은 조정백관과 신중히 공론을 한 후에 결정지어질 때까지 명을 받들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표명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6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4월 13일(경진) 2번째기사</ref> [[인현왕후]]의 복위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노론]]과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소론]]의 격렬한 언쟁이 오가던 가운데<ref>《숙종실록》에는 누락된 내용으로 《승정원일기》 4월 12일 ~ 4월 16일까지의 기사에 수록되어 있다.</ref> 4월 16일에 이르러 우의정 [[윤지완]], 공조판서 [[신익상]], 한성부우윤 [[임상원]], 병조참의 [[이유]] 등의 [[소론]]의 대표 인물들이 단체로 사직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는데<ref>《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16일 (계미) 원본356책/탈초본18책</ref> [[조선 숙종|숙종]]이 갑술환국을 일으키며 중앙을 [[소론]] 중심으로 채웠던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이 사건은 엿새 후인 4월 17일, 영의정이자 소론 영수였던 [[구만]]이 '이미 복위하라는 왕명은 내려졌고, 자식이 어미(國母: [[인현왕후]])의 죄를 논하며 도로 쫓아내라 마라 의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소론]]을 중재하여 결국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ref>『숙종 20년 4월 17일 1번째 기사』</ref> 이 사건을 계기로 [[소론]]은 희빈 장씨를, [[노론]]은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는데 [[소론]] 영수인 [[구만]]은 중립을 지켰다.
         이에 숙종은 먼저 태자방의 가족들을 궁으로 데려와 증언을 받아낸 후<ref group="주">이들은 형신이 시작되자 마자 동일한 증언을 하였으며 그 직후 방송되었다.</ref> 이 증언을 바탕으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첩 숙정과 선당과 동궁전의 궁인(宮人)·죽은 태자방의 뒤를 이어 굿을 했던 무녀(巫女) 오례를 압송해 수일에 걸쳐 압슬형 등 최고 고문형을 가하며 범죄를 인정하는 자백을 받아낸다. 생존한 죄인은 군기시에서 처형되었다.<ref>[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4022&cat_code=0605&start_year=2009&start_month=05&end_year=2010&end_month=08&press_no=&page=6 왕권 강화, 임금에겐 달고 백성에겐 쓴 열매]</ref> 이 사건을 무고의 옥(巫蠱-獄, 여기서 무고란 무술 (巫術)이나 방술 따위로 을 저주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이라 한다.
  • 정칠성 . . . . 54회 일치
         유년 시절에 기녀가 되어 “금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였고, 후일 필명이자 아호로 사용하였다. 기생학교에서 수료한 후 한권번의 기생으로 있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계기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고, [[여성주의]]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4년]] [[허정숙]](許貞淑),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여성들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창립하였고, [[일본]] 유학 중 1925년 도쿄에서 여자유학생단체인 삼월회를 조직했다.
         해방 후 조선부녀총동맹을 결성해 부위원장이 되고, [[조선공산당]]과 [[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 [[1948년]] [[4월]]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북협상]]에 참가한 뒤, 그해 [[8월]] 미군정의 좌익 탄압을 피해 해주 조선인민대표자 대회차 월북했다가 내려오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48년]] [[8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48년]] [[10월]]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 1955년 민주여맹 부위원장, 1956년 4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57년]] [[8월]]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58년]] 국내파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을 제거할 때 숙청되었다.
         |제목=<nowiki>[역사속의 영사람들 .37]</nowiki> 민족을 지켜낸 여성들(김락·자현·정칠성)
         |출판사=영일보
         그녀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곱 살에 기녀가 되어 각종 기예를 익혔고, [[경성부]] 한권번(漢南券番) 소속 기녀가 되었다. 한권번에서 '''금죽'''(錦竹)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기생학교]]에서 기예를 배운 뒤 한권번에서 기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기량이 뛰어나 [[기녀]]로서는 특별히 [[일본]]으로 유학, [[일본]]의 [[동경여자기예학교]](東京女子技藝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춤과 무용 수업을 빠지다가 선생에게 혼나기가 일수였다 한다. 시를 잘 지었고,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그림도 잘 그렸으며, [[바둑]]과 [[장기]]를 잘 두었다고 한다. 기예로는 중잡가, 가야금산조, 병창, 입창, 좌창, 정재 12종무 등의 실력에도 탁월하였다.
         }}</ref> [[민족 대표 33인]]은 요리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였고 일부 기생들도 동참했다. 한편 이씨 성을 가진 성과의 사이에서 일찍이 아들 이동수(李東樹)를 낳았지만 결별하고, [[고려공청회]] 책임비서인 [[신철]](辛鐵)과도 동거하기도 했다.
         [[1923년]]말부터 [[허정숙]], [[정종명]](鄭鍾鳴), 오수덕(吳壽德) 등과 함께 여자도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가부장제]]의 억압과 성들의 억압,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여성사회운동단체를 조직하려고 여학생과 부인 중에서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 신분과 배경을 보지 않고 사람을 사귀던 [[허정숙]]과는 특별히 친하게 지냈으며, 이후 정칠성은 [[허정숙]]과 함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사상을 조선에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1925년]] [[11월]] [[일본]] 정부에서 가상의 적을 대비하여 각급 중고등학교에 군사훈련 및 각종 군사교육을 실시하자, 정칠성은 군사교육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11월 7일]] [[홋카이도]]의 소준고등학교 강당에서 일본내 시민단체, 여성단체, 사회주의 운동단체 및 조선인 유학생단체, 삼월회, 일월회(성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군사교육 반대 집회]]에 그는 [[삼월회]]의 대표 자격으로 박경희(朴慶姫)와 함께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본]]경찰 2백 명이 급히 투입되어 진압하자, 바로 피신하였다.
         [[1926년]] [[1월]] [[삼월회]] 간부 자격으로 《조선일보》에 '신여성이란 무엇?'이라는 칼럼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칠성은 강렬한 자립정신, 강력한 계급의식을 지닌 여자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여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여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자와 가정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경제력을 얻으려면 여자 역시 취직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1926년]]에는 조선여성친목회에 가입하였다. [[1926년]] [[3월]] 동경예기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그는 여성의 자유를 넘어서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가정과 결혼에서 독립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해방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등이 여성 해방을 외치지 못하고 여성의 자유, 녀 평등만을 외친다는 점을 두고 상당히 소극적이라며 비판했다. 단순한 자유를 넘어서 성과 가정,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한 여성의 권리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동아일보]]와 매일신문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 [[대구]], [[부산]], [[전주]] 등지의 전국으로 순회강연을 다니며 여자의 자유 연애와 여자의 자, 가정으로부터의 독립, 자립을 역설하였다. [[1927년]] [[6월 6일]]에는 [[평양여성동우회]] 주최로 [[평양]]부내 평양천도교당에서 열린 평양여우강연회와 여성문제대강연회(女性問題大講演會)의 연사로 참여하였다. 여성문제대강연회의 연사로 연설을 끝마친 뒤 평양경찰이 난입해 강연을 중단시켰다. 이후에도 그는 각지로 돌아다니며 가사노동 등으로부터의 여성의 해방을 주장하였고, 경찰의 감시망에 오르게 되었다.
         [[9월]]에는 경상북도 출신으로 구성된 영친목회(嶺南親睦會)가 구성되자 정칠성은 지방열과 지방 감정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하여 반대하였다. [[9월 11일]] 정칠성은 이원혁(李源赫) 등 74명과 공동 명의로 지역 친목회 조직 반대에 서명하였다. [[9월 14일]] [[동아일보]]사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사장의 초빙으로 [[동아일보]] 주최 동복편물강습대회의 강사로 참여하였다.
         [[10월 6일]] [[박원희]]와 함께 [[근우회]] 조사위원 겸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경성]]에서 [[함흥]]으로 파견되었다. 바로 [[근우회]] 함흥지회를 개설하고, 함경도지역 조사 후 [[10월 6일]] [[함흥]] 오로리의 오로여자상조회(五老女子相助會)에서의 강연을 계획하였으나 함흥경찰에 의해 체포, 강연회 자체가 무산되고 되돌아왔다. 정칠성과 박원희가 경성으로 되돌아간 뒤 [[함흥여자청년회]]와 함흥기독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조선일보]] 후원 하에 부인문제대강연회가 열리자 연사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방해로 집회가 무산되자 오히려 사회단체의 집회를 방해한다 하여 지식인층의 반발을 불러오게 됐다. [[10월 16일]] 근우회 집행위원으로 대구에 다녀온 뒤 다시 함흥으로 가서 근우회 함경도 지부 조직에 착수하였다.
         여자직업사의 수자수 교사와 근우회 각 지회설치 활동을 하면서도 동아일보, 삼천리지 등에 칼럼과 논설을 발표하였다. [[1928년]] [[5월 20일]]에는 황주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황해도 황주지회가 주최한 '사회문제대강연회'에 연사로 참여, '여성운동과 신간회'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강연 주제 중 그는 '우리 조선여자들은 자들의 완롱물이요, 자의 위안물이며, 자들의 일개의 생식기계에 지나지 않는 노예였다.'는 내용이 문제시되어 임석경찰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
         [[1928년]] [[9월]] 신병 요양차 울산으로 내려가 요양하였다. [[9월 5일]] 요양차 울산 체류 중 경울산청년회와 동아일보 울산지국 후원하 울산예배당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 '여자의 불평과 자의 각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사랑과 섹스가 무관하다는 관점은 [[1920년]]대 [[1930년]]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칠성은 사랑과 성이 무관하다는 콜론타이의 이론을 수용, [[조선]]에 소개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사랑과 섹스는 무관하며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성리학]]자들과 성 문필가들로부터 음란하다는 비난과 반발을 초래하였다.
         또한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의 해방과 [[붉은 사랑]]의 여주인공<ref name="seoji193"/> 왓시릿샤(바실리샤)의 해방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칠성은 '노라는 '[[개인주의]]적인 자각'으로서 개성에 눈을 떠 편의 집을 뛰쳐나갔지만 거리에서 얼어 죽은 '공상적 여성'인 반면, 바실리사는 노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해방되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진 여성이라 대답한다.<ref name="seoji194">서지영, 《역사에 사랑을 묻다》 (도서출판 이숲, 2011) 194페이지</ref> 이렇게 당시 사회주의 조선 신여성들에게 콜론타이는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성적, 경제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상징으로 수용되었다.<ref name="seoji194"/>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수용, 조선에 소개시킨 여성운동가로는 정칠성 외에도 [[허정숙]], [[정종명]] 등이 있었다.
         [[5월]] 근우회 각 지역순회강연 대표자를 전국에 파견할 때 근우회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경의선 라인 담당을 맡아 순회강연에 나섰다. [[5월 8일]] 그의 강연지는 장단, 개성, 사리원, 해주, 재령, 연백, 평양, 진포, 정주, 의주, 신의주로 정해지고, [[5월 12일]] 경성에서 열차를 타고 황해도, 평안도를 다녔다.
         5월 22일 평양 백선행기념관에서, 5월 25일에는 진포에서 에버트 청년회관에서 '근우회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6월 1일]] 근우회 경성지회 상무위원을 겸하였고, 의주에 도착하여 의주공회당에서 강연하였다. 이후 신의주 강연을 거쳐 [[6월 14일]] 인천 내리에서 조선여성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순회강연을 마쳤다. [[6월 18일]]에는 개성 고려청년회관에서 개최된 근우회개성지회 대회 행사에 사회자로 참석하였다.
  • 울진군 . . . . 53회 일치
         ||<bgcolor=#04B431> {{{#FFFFFF '''1'''}}} ||<bgcolor=#CEF6CE> 용대 ([[무소속|{{{#808080 '''무소속'''}}}]]) ||
         ||<bgcolor=#F0F8FF> ▲ 망양정 (근면 망양정로 1016) ||
         || 1. 서면(西面)[br]2. 원북면(遠北面)[br]3. 근북면(近北面)[br]4. 상군면(上郡面)[br]5. 하군면(下郡面)[br]6. 근면(近南面)[br]7. 원면(遠南面) || 1. 원북면(遠北面)[br]2. 근북면(近北面)[br]3. 원서면(遠西面)[br]4. 근서면(近西面)[br]5. 북하리면(北下里面)[br]6. 상리면(上里面)[br]7. 하리면(南下里面)[br]8. 면(南面) ||
         || 1. 서면(西面)[br]2. 북면(北面)[* 옛 울진군 원북면][br]3. 삼화면(三和面)[* 옛 울진군 근북면 + 상군면 + 하군면][br]4. 근면(近南面)[br]5. 원면(遠南面)[br]6. 평해면(平海面)[* 옛 평해군 원북면 + 근북면][br]7. 온정면(溫井面)[* 옛 평해군 원서면 + 근서면][br]8. 월송면(月松面)[* 옛 평해군 상리면 + 북하리면 + 하리면 + 면] ||
         || 1. 금강송면(金剛松面)[* 옛 서면][br]2. 북면(北面)[br]3. 죽변면(竹邊面)[* 구한말 울진군 근북면과 일치][br]4. 울진읍(蔚珍邑)[* 옛 삼화면][br]5. 근면(近南面)[br]6. 매화면(梅花面)[* 옛 원면][br]7. 기성면(箕城面)[* 옛 평해면][br]8. 온정면(溫井面)[br]9. 평해읍(平海邑)[* 옛 월송면][br]10. 후포면(厚浦面)[* 구한말 평해군 면과 일치] ||
         1979년 울진면이 울진읍으로, 1980년 평해면이 평해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울진읍 죽변출장소와 평해읍 후포출장소가 각각 죽변면, 후포면으로 승격되었다. 2015년 서면이 금강송면으로, 원면이 매화면으로 개칭었다.
         현재 [[삼척시]]와 [[포항시]]를 연결하는 [[철도]] [[동해선]]이 공사 중에 있다. 2020년 예정대로 완공되면 지금보다 교통편은 훨씬 나아질 듯 하다. [[분천역]]과 [[울진역]]을 잇는 [[울진-분천선]]도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이며 개통시 봉화-춘양-분천-울진-평해-영덕으로 직결 운행하기 위해 울진역은 읍내보다 조금 쪽에 건설한다.
         울진의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소이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워낙에 교통이 불편한데다 그나마 근처에 대도시(울산,부산,광주)가 있는 다른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근처에 도시다운 도시도 없다. 인구 15만 이상 도시를 기준으로 삼으면 강릉이 북쪽으로 110km, 안동이 서쪽으로 117km, 포항이 쪽으로 120km 떨어져 있다. 대신 근처에 큰 도시가 없다는 건 만약 방사능이 유출될 시에 위험지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니 국가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좋은 거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근무 지원자가 적어서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10년 이상 한울원전에서 계속 근무할 것을 전제로 하는 특별채용도 실시하고 있다.
          북면에 위치한 온천관광지. 한국 온천 중에서 유일하게 자연용출되는 온천이다. 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노천탕도 운영했을 정도. 관광지 개발은 1980년대로 좀 늦은 편인데, 온천 위치가 산골짜기라서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 이 때문에 용출되는 곳에는 개발을 못하고, 용출지에서 4 km 떨어진 지금의 위치에 관광지를 개발하고 파이프로 온천수를 끌어오고 있다. 규모는 제법 큰 편이며, 자체운영호텔과 스파월드라는 이름의 온천수 수영장이 온천탕과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노천탕도 있다!-- 온천탕은 ,녀 대온천탕과 가족온천탕이 있다.
          근면 구산리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 천연기념물 1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이는 약 870 m. 내부는 12개의 광장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중 관람이 가능한 부분은 10광장까지이다. 11, 12 광장은 동굴 보호 문제로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동굴 앞에 왕피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왕피천 물이 성류굴로 흘러들어온다. 이 때문에 물에 잠겨있는 지역이 많고, 이런 곳은 탐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계속 새로운 지역이 발견되고 있다. 2007년만 해도 5광장과 12광장쪽에 물에 잠겨있는 부분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관동팔경]] 중 제 1경. 가장 쪽에 있다. 동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산 위의 정자로, 주변에 소나무가 많다. 풍경 이외에는 볼 거리가 없지만 울진읍에 가까워 접근하기도 쉽고 각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 잠시 들르기 좋은 곳이다. 정자 자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헐어버린 뒤 터만 아 있다가 1960년대에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지은 것을 다시 철거, 1980년에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 격암 [[사고]] 유적지
          최근에 개발된 관광지. 조선 시대의 기인인 격암 사고의 생가를 유적지로 개발한 곳이다. 성류굴에서 왕피천을 따라 약 2 km 상류에 위치해 있다.
          근면 산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이 곳 역시 관동팔경 중에 하나이다. 참고로 이 곳은 정철의 [[관동별곡]]의 종지부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실상 잡는곳은 둘다 크게 차이가 없으나 과거 울진이 교통이 너무 안좋아서 잡은 대게들을 대부분 영덕에서 출하를 했다. 이때문에 영덕대게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교통도 괜찮아져서 울진 대게 홍보도 만만치 않게 하는중이다. [[SBS]]의 목요일 심야 예능프로인 [[자기야 - 백년손님]]의 재현과 그의 장인부부의 활약으로 울진 대게의 홍보를 제대로 해서 요즈음 들어서 [[영덕군]] 부럽지 않게 효과를 보고있다고 한다.
         지역 전체를 둘러봐도 영화관이 한군데도 없어서 과거엔 결혼 예식장에서 영화를 개봉하곤 했으나 --읍내리에 있던 울진소극장은 사라졌더라--현재는 군에서 청소년 수련관, 울진문화예술회관, 울진부도서관,한울 원전 원자력 홍보관에서 개봉일이 좀 지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주다가 최근부터 1000원에 관람료를 받고 상영해주고 있다.
         경북 북부 [[동방언]]과 [[영동 방언]]은 [[방언연속체|행정구역을 따라 칼로 무자르듯 딱 나눠지지 않으며]], 행정구역의 변화(울진의 경북 편입)에 따라, 방언의 분포가 변화하지 않았다. 영동과 경기/영서, 경상과 충청/전라 처럼 산맥을 경계로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는 방언도 있으나, 영동(+강원 부?) 방언과 [[동 방언]]은 그렇지 않다. 울진과 영동 지방 사이에는 뚜렷한 산맥이 없기는 하지만, 경북 내륙과 강원 부는 백두대간으로 나뉘는데도 그러하다.
         경북 북부 지역에도 영동 방언 스런 "~아이래요.", "~아니드래요." 라는 표현이 존재하는데, 재미있게도, 억양은 전형적인 [[동 방언]] or 동 + 영동 ([[동 방언]] 억양이 좀 더 주된 양상) 이다. 이렇게, 경북 북부 지역 (예천, 영주, 안동북부, 봉화)에서도 [[동 방언]]과 영동/강원 방언의 점이적 특징이 일부 보인다.
         울진에서는 [[동 방언]]과 영동(강원?) 방언의 점이적 특징이 좀 더 뚜렷하다고 생각되는데, [[동 방언]]의 특징이 더 강하다. (억양이나, 단어 적인 면에서 그러하다.)
         언어학적으로도 삼척과 울진은 [[동 방언]]과 [[강원도 방언]]의 전이(transition) 지역으로 여겨지는데, (반대로 삼척은 경상도 방언스러운 면이 있는 영동 방언 지역이다.) 울진과 삼척 부까지는 [[동 방언]]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51회 일치
         || '''출신지''' || [[전라도]] [[구례군]][* [[http://www.jnilbo.com/read.php3?aid=1475161200507205353|기사 참조.]] [[전라도]] [[구례군]]에서 출생하였으나, 부모님 두 분이 [[전라도]] [[구례군|구례]] 출신이라 본인의 고향이 [[구례군|구례]] 출신으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다. 다만 현재는 부모님도 [[안산시]]에 거주 중. 비시즌 때 본인의 [[대한민국]] 거주지는 [[수원시]]다.] ||
         ||<:> '''별명''' || 김연, 우리누나, --우리 이모--, 배구여제, 연콩[* 터키에서 활동할 당시 '연경'의 현지 발음이다.] ||
         || Wang Li[br](톈진 브리지스톤) || → || '''김연경''' [br]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천안 흥국생명]])''' || → || [[김선영(배구선수)|김선영]] [br]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성 하이패스]]) ||
         이상형은 조인성으로 키가 크고, 잘생긴 자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26/0200000000AKR20160826115500033.HTML|좋아한다.]] --싫어할 여자가 있을까?--
         이렇게 프로 입문 전부터 배구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그래서 김연경을 잡기 위해 2005년 원년 V-리그 당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가 꼴찌 쟁탈전을 벌이는 [[병림픽]]을 또 한 번 저질렀는데,[* 2005년 드래프트 이전에도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의 1순위 잡기 병림픽은 배구 팬들에게 유명하다. 2003년에 [[김민지(배구선수)|김민지]], 2004년에 [[나혜원]]과 [[황연주]]가 이 병림픽 대상 선수.] 결국 흥국생명이 ~~져주기를 했다~~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에게 패해 리그 꼴찌로 마감하였고, 2005-06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을 지명하였다. 이후 2005-06 시즌에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꼴찌에서 정규 리그, 챔피언 결정전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린다. 반대로 꼴찌를 하고 물러난 [[박삼용]] 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 감독(현 상무 감독)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뼈 있는 말~~이라 쓰고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개소리]]~~[* 인삼공사 감독 시절 보면 답이 나온다. 주전들이 모두 은퇴하자 갑작스레 구단에서 사퇴하여 이후 인삼공사 망가뜨린 주범이다.]을 긴다. "'''훌륭한 선수만 필요하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굳이 필요할까'''?"
         2016-17 시즌 정규리그에서는 바키프방크에 이어 2위를 차지해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다. 준결승에서 골든 세트에 듀스까지 간 끝에 엑자시바시를 꺾고 먼저 결승전에 진출했고, 은 한 자리에 [[갈라타사라이]]가 올라오면서 무려 리그 결승전이 [[이스탄불 더비]]로 치러졌다. 과연 1경기부터 응원열기가 과열되다 못해 2경기에서 경기 중 관중이 총을 쏘는 대형 사고가 터져 결국 2층 관중 전체가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 외에도 양 팀 감독이 경기 중 서로 말싸움을 벌인다던가 하는 등 살벌한 더비전 끝에 페네르바체가 3연전 모두 3-0으로 셧아웃시키면서 우승을 달성했다!
         선수의 '자유 이적의 권리'와 구단의 '선수 운영의 권리'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2년이 넘게 벌어진 사건. 사건 당사자간 원만하게 해결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는 사건이었다.
         은 것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표면상~~ '대승적인 차원' 에서 배려해주는 것 뿐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보였다. FIVB 월드 그랑프리 이전에 결정짓겠다던 이적 문제가 [[2012 런던 올림픽|올림픽]]을 지나 9월 초가 되도록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김연경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대한배구협회]]의 [[높으신 분]]의 말씀 한마디이면 해결될 문제이긴 하나 사실 진짜 일해야 할 곳은 계약기간과 신분부터 확실히 해줘야 할 [[한국배구연맹]](KOVO)고 [[대한배구협회]]는 이적동의서 쓰는 것이 할 일. 따라서 이 일이 [[대한배구협회]]로 가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리고 그 높으신 분은 김연경 이적 파동 발생 때 대통령 해보고 싶으시다고 나대셔서...~~[*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으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경선후보로 나선 바 있다.]
         그러나 당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FA 규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연경 사태' 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아있으나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과물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 사이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마침 흥국생명이 [[임의탈퇴]] 공시를 한 즈음,팀 내부의 고민이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류현진]]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포스팅을 허락해 준 [[한화 이글스]]와 비교되어 더욱 까였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행보야말로 전형적인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도 못 가지게 하겠다 혹은 망가뜨려버리겠다' 라는 전근대적인 쓰레기 마인드라 할 수 있겠다.
         이후 긴급 기자회견이 기자회견이 아닌 김연경 측의 일방적인 발표였고 에이전트가 기자들의 질문을 전면 차단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연경은 7월 24일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http://www.youtube.com/watch?v=6rryyZA0-GI|자세히 밝혔다.]] 한편, 협회와의 대화를 하러 변호사와 에이전트와 대동했으나, 협회에서는 이 조력자 둘을 빼고 김연경과 직접 대화를 했으며, 협회 관계자가 김연경에게 폭언을 했다는 후문을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기기도 했다.
         === 녀 배구 샐러리 캡 반발 ===
         2018년 3월 11일 본인 SNS를 통해 샐러리캡 논란에 불을 지폈다. 김연경은 "여자부와 자부 샐러리캡이 너무 차이가 난다. 좋아지는 게 아닌 점점 뒤쳐지고 있다. 이런 제도라면 나는 한국서 못 뛰고 해외에서 은퇴해야 할 것 같다."라고 샐러리캡 ‘성차별론’을 제기하면서 그 논란이 더욱 커졌다.
         다음 시즌 녀부 샐러리캡 차이는 11억 원이다. 최근 상승중인 여자배구 인기만 보면 이를 여자배구에 대한 차별로 볼 수 있다. 샐러리캡은 그러나 외견상 액수만 갖고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여자부와 자부의 시장가치, 티켓파워, 그리고 프로배구 출범시 태생적 차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 프로구단은 한 시즌 동안 정규리그 36경기를 치른다. 여자팀은 이보다 6경기가 적은 30경기를 소화한다. ~~여자배구 구단을 새로 만드는 것을 반대해서 그렇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즌을 더 많이 뛰어야 하는 것을 기준으로 연봉 책정에 반영됐다. A구단 관계자는 "자부가 팀 당 경기 수도 많기 때문에 당연히 연봉도 더 높게 책정해야 된다."라면서 "게다가 자 선수들은 군 입대를 해야 되는 선수들까지 고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샐러리캡이 여자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자부 신인의 경우는 대부분 대학을 마치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많다. 평균 나이도 여자부에 비해서 높고 대학 시절의 경력을 무시하지 못한다."라고 전했다. A구단 관계자는 또 녀간 연봉 격차가 시장 가치가 오랫동안 쌓여 반영된 결과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여자부가 최근 상승세에 있고, 좋은 분위기인 것은 맞지만 한 두해만으로 녀부가 엇비슷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대표팀을 떠나서 프로만 보면 자부가 쌓아온 것이 더 많다. 여자부는 더 쌓아가야하는 단계로 본다."라고 대답했다.
         자부와 여자부 시작이 달랐던 점도 샐러리캡에 영향을 주었다. B구단 관계자는 "프로배구 원년, 자부는 샐러리캡을 10억 3,500만 원으로 시작한 반면 여자부는 6억 원 수준으로 출발했다"면서 "이는 당시 자부와 여자부 리그 규모를 고려한 책정이었다. 이후 꾸준히 샐러리캡은 증가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국내 프로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배구 역시 구단 입장에서는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구단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은 입장수익과 중계권 정도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약한 실정이다. [[성차별]]에 나오듯이 녀스포츠 리그에서 여성 선수 수익이 적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호하다.
         입장수익으로 가장 인기가 좋다는 여자구단인 김천 한국도로공사다. 경기별 평균 3,300여 명(3월 10일 기준) 수준으로 자부 1위 현대캐피탈(올 시즌 경기당 평균 3,400여 명)과 엇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로공사 올 시즌 입장수익은 경기당 평균 800만 원 내외다. 유료 관중이 평균 30%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경기당 3,300만 원 가량 수익을 올렸다. 단순히 자부와 여자부 차이로 보긴 어렵지만 여자부 1위 팀 수준이 이와 같다는 사실은 분명 주목할 대목이다. 한 시즌 티켓 수입을 모두 합쳐도 팀내 최고연봉 선수에게 줄 돈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 한명회 . . . . 51회 일치
         전설에 의하면 그가 태어날 때 배에는 태성과 두성 모양([[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영흥]]이라는 [[국호]]와 [[조선]]이란 국호 중 국호를 낙점받아왔다. [[한상질]]은 처음 [[경주 이씨]] [[문하시중]]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 [[이성림]](李成林)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딸만 1명 두고 요절하였으므로, 청풍송씨(淸風宋氏) 송신의의 딸과 결혼하여 1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이 곧 한명회의 아버지 [[한기]]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10개월도 안되어 태어나 병으로 위기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았다. 몸 전체가 완전치 못하고 병약하여 온 집안이 거두려 하지 않으니 한 늙은 여종이 그를 거두어 솜털 속에 싸서 정성껏 보살폈는데, 점점 자라서 몇 달 만에 웃고 안아 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가 태어날 때 배 위에 검은색 별 모양 점이 있었다고 한다.<ref name="hwan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42700&cloc=rss%7Cnews%7Csociety 한명회, 황보인 사위 될 뻔했다?] 중앙일보 2009년 6월 10일자 </ref> 이후 그의 몸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었다는 소문의 근원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 명진과 함께 고아가 된다. [[한학]]을 수학하였지만, 불행한 가계와 빈한함, 작은 체구로 주변의 멸시와 놀림을 받으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민첩하였는데, 그의 종조 할아버지 [[한상덕 (조선)|한상덕]](韓尙德)은 그를 가리켜 집안의 천리마가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개성]]에 유람차 놀러 갔을 때 [[영통사]](靈通寺)의 한 노승이 그를 보고 " 그대의 두상에 광채가 있으니 필연코 귀할 징조라" 하였다. 당시 그는 이 노승의 예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두 종조부가 별세하자 [[중추원|중추원사]](中樞院使) [[민대생]](閔大生)이 그를 거두어 사위로 삼았다. 부인 황려부부인에게서는 1 4녀가 태어났는데, 이 중 셋째 딸이 [[조선 예종|예종]]비 [[장순왕후]]와 넷째 딸이 [[조선 성종|성종]]비 [[공혜왕후]]이다.
         [[권람]]의 진언을 받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그를 불러들였고, 한명회는 강력한 왕권을 주장하였다. 한명회의 진언을 들은 [[조선 세조|수양대군]]은 '어찌 진즉 만나지 못했을까? 지금 주상께서는 비록 유충(幼沖)하지만 곁에서 잘 보필하면 수성(守成)은 할 수는 있는데, 대신들이 간교하여 [[안평 대군]] 이용(李瑢)에게 포섭되어 선조(先朝)의 충자(冲子)를 부탁하신 뜻을 저버리니 조종(祖宗)의 선령(先靈)이 장차 어디에 의탁하시겠는가?'하고, 말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자, 한명회는 이에 감격하여 [[쿠데타|반정]](反正)의 책략을 김없이 말하였다.
         셋째 딸을 [[조선 세조|세조]]의 차 [[조선 예종|해양대군]]에게 출가시켰으나, 셋째 딸은 아들 인성대군을 낳고는 산욕으로 요절한다. 외손자 [[인성대군]] 마저 요절하면서 한명회는 [[조선 예종|해양대군]]과는 다소 껄끄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 [[조선 예종|해양대군]]이 곧 [[조선 예종|예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한명회는 활쏘기에도 능했고 문예보다는 병법과 병권에 재능을 보였다. 오지였던 북방으로 파견을 나가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었고 북방의 야인들을 토벌한 뒤에는 경계를 견고하게 하는데 다른 공적을 쌓았다. 이 일로 한명회에 대한 세조의 또다른 신임을 얻게 되어 1461년 특명으로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다시 [[보국숭록대부]]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임명되고 [[판병조사]](判兵曹事)와 [[병조판서]], [[판의금부사]]를 겸임했다가 [[1462년]](세조 7년) 여름 [[대광 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우의정]]이 되었으며, 황해, 평안, 함길, 강원 4도 체찰사를 겸하였다. [[1463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순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권람<ref>권람은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이기도 하다.</ref>, 신숙주(申叔舟) 등과 인척관계를 맺고 세조 치정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인척 관계에 의한 요직 장악이라는 크나큰 인사 폐단을 낳아 조선왕조의 기강을 흐트러놓는 원인이 되었다.
         ==== 이의 옥사 ====
         {{참고|이의 옥사}}
         그해 [[이]](南怡)가 쓴 시구가 문제가 되어 [[이의 옥|모역사건]]으로 몰리자 [[유자광]]의 고변을 듣고, [[신숙주]], [[유자광]] 등과 함께 [[이]], [[강순]] 등의 사형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이]] 등이 처형된 후 [[유자광]], [[신숙주]] 등과 [[이]], [[강순]]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추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推忠保社炳기難翊載功臣) 1등관의 호를 받고는 [[1469년]](예종 1년)에 다시 [[의정부]][[영의정]]이 되었으나 곧 사직했다.
         [[1475년]](성종 5년)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혁파하자는 건의가 올라와 성종이 회의를 소집하자, 모두가 혁파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를 듣고 급히 돌아와 이를 강력 반대하였다.
         {{인용문2|[[평안도]]를 [[평안도|도]]와 [[평안북도|북도]]로 나누어 [[평안도|도]](南道) [[병마절도사]]를 둔 것은 [[평안북도|북도]](北道)를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시애의 난]]을 당하여 도가 있어 그래도 북도와 지원, 연결하여 안팎으로 협공(挾攻)하였다면 그 조무래기같은 놈은 주머니 속에서 물건 뒤지듯 하였을 것입니다. 어찌 이빨 사이에 끼이게 하였겠습니까마는, 이러한 기회를 놓쳐서 적의 세력이 팽창하게 하였으니 심히 통분한 일입니다. [[조선 세조|세조]]께서 도 병영을 신설하신 본의를 신같은 천견(淺見)과 소지(小智)로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마는, 혁파하려는 논의를 신은 옳다고 여기지 못하겠습니다.}}
         조정에서 [[평안도]] 병영을 폐지하려는 의견이 강해지자 그는 직접 나서서 이를 강하게 반대하여 무산시켰다.
         그는 자연을 벗삼겠다 하였으나 시중의 학자들은 권력과 벗삼았다며 조소하였다. [[한강]] 쪽에 지은 그의 정자와 별장은 화려하기로도 이름높았다.
         [[1487년]](성종 17년) 그가 병석에 눕게 되자 [[조선 성종|성종]]은 특별히 [[내의]]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고 날마다 내관과 신하들을 보내 문병하게 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자 [[승지]]를 보내어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임종 직전 긴 유언에서 그는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나중에는 게으른 것이 사람의 상정이니 원컨대 나중을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라 하였다. 그해 [[음력 11월 14일]] 갑자기 사망하였다. 당시 향년 73세였다.
         그는 관향인 [[충청북도]] [[청주]]에 안장되기를 희망하여 처음에는 [[1476년]](성종 6년) [[1월]] [[청원군]] 장명리(長命里)에 안장되었으나 곧 [[충청도]] [[천안군]](현 충청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로 이장되었다.
         [[조선 세조|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1488년(성종 19년) 충청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산에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졌다.<ref>1994년 11월 4일 충청도문화재자료 제332호로 지정되었다.</ref> 그 뒤 [[폐비 윤씨]] 폐출 사건을 막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하여 [[조선 연산군|연산군]] 대에 와서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정창손]] 등과 함께 12간의 한사람으로 지목되어, 관작을 [[추탈]]당하고 그 [[시체]]가 [[무덤]]에서 꺼내져 [[부관참시]](剖棺斬屍)되어 시체는 토막내어졌으며 목을 잘라 한양 네거리에 걸렸다. 그의 [[부관참시]]를 하던 날, 갑자기 날이 흐려지고 비가 왔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자 병사들이 그의 [[부관참시]] 집행을 주저했다 한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반정]] 이후 신원되어 복관되고, [[1507년]](중종 1년) [[10월]] 예관을 보내 재장사한 뒤 [[조선 세조|세조]]의 묘정에 다시 배향하였다. [[충청도]] [[천안군]]의 충성사(忠誠祠) 등에 [[제향]]되었다.
         ** 제수: 안동 권씨. 문경공 권제(文景公 權踶)의 딸. 길창부원군 [[권람]]의 동생. 슬하 1 1녀.
  • 소지섭 . . . . 50회 일치
         | [[자 셋 여자 셋]]
         | 두자쇼
         | 성정장
         | [[영비비안]]
         | 성정장
         | 자 신인상
         | 특별기획부문 자 연기상
         | 자 최우수연기상
         | 자 우수연기상
         |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우주연상'''
         | 신인우상
         | 우주연상
         | 영화부문 자 신인연기상
         | 신인우상
         | 신인우상
         | 신인우상
         | '''최우수 자 연기상'''
         | 자 최우수연기상
         |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김보름 . . . . 49회 일치
         보름달이 뜬 날 태어나서 이름이 '보름'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1">{{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10117.010260730400001|제목=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 정화여고 김보름|성=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2003년 8월 2일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7회 대구시장기빙상대회 여초등 5-6학년부 1000m에서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의 김보름은 1위로 결승라인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030804.00000009.000180|제목=계성초등 종합 우승, 대구시장기 빙상대회|성=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3}}</ref>
         2007년 1월 4일 춘천의암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제22회 회장배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중학부 1500m 준결승 2조에서 김보름(성화중 2학년)은 2분27초20으로 5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01&detailClassCd=04&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000m 준결승 2조에서는 김보름이 5분38초25로 6위에 그쳐 결승전 진출에 실패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2&toCd=207001&detailClassCd=05&rhCd=5&page=17&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4%80%EA%B2%B0%EC%8A%B9&kindCd=07&kindNm=%EC%97%AC%EC%9E%90%EC%A4%91%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0년 12월 2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녀 종합빙상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17-덕정고)이 4분21초18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고 김보름(17)이 4분22초30을 기록 뒤를 이어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201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tnsport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제목=[빙상] 이승훈, 빙상선수권대회 5000m 우승...아시안게임 출전권 획득 - STN|언어=ko|확인날짜=2017-03-05}}</ref>
         2011년 1월 14일 막을 내린 2011 전국녀 주니어빙상선수권대회 1500m와 3000m에서 김보름은 각각 2분3초93과 4분21초30의 대회신기록을 찍으며 1위를 차지했고, 최종순위에서도 167.430포인트로 대회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상을 밟았다.<ref name=":1" />
         2011년 11월 18일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2011-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38로 2위를 차지했다. 19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4위를 차지했다.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5초79로 4위를 차지했다. 2011년 11월 2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3초61로 20위를 차지했다. 26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58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7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한국체대)이 7분26초85의 기록으로 첫 동메달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33550|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날짜=2011-11-28|뉴스=SBS NEWS|언어=ko|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2월 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26초10으로 12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노선영(한국체대)-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18의 기록으로 캐나다(3분00초01)와 러시아(3분02초38)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월드컵 시리즈 팀 추월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f name=":17">{{웹 인용|url=http://m.yeongnam.com/jsp/view.jsp?depth1=3&depth2=4&nkey=20111206.010260719320001|제목=한국 빙속 팀추월 사상 첫 메달|성=영일보|확인날짜=2017-03-06}}</ref> 2012년 2월 12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끝난 월드컵 5차 대회 팀추월 경기에서 이주연(25)과 노선영(23), 김보름(18)이 출전하여 3분05초65의 기록으로 폴란드(3분05초57)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3000m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5초66의 기록으로 16위에 머물렀다.<ref name=":2">{{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EC%B0%A8%EB%8C%80%ED%9A%8C-%ED%8C%80-%EC%B6%94%EC%9B%94-%EB%82%A8%EB%85%80-%E9%8A%80-%E9%8A%85|제목=빙속 월드컵 5차대회, 팀 추월 녀 銀, 銅|날짜=2012-02-1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24로 10위를 기록했다. 디비전B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과 노선영(한체대)이 각각 1위(2분01초53)와 3위(2분01초82)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000m-13%EC%9C%84-%EA%B9%80%EB%B3%B4%EB%A6%84-%EC%97%AC%EC%9E%90%EB%B6%80-1500m-10%EC%9C%84|제목=이승훈 '빙속월드컵' 5000m 13위... 김보름 여자부 1500m 10위|날짜=2012-02-12|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3월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1500m에서 김보름은 1분59초52로 12위를 차지하며 73점 22위로 시즌을 마쳤다. 11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53초69로 7위를 차지하며 110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이주연, 노선영이 3분03초29로 은메달을 차지하며 320점 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2011년 제66회 전국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2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2년 2월 16일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대학부 3000m 결승에서 김보름(19)은 4분18초11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17일 열린 1500m에서도 2분05초로 우승한 김보름은 대구-경북 동계체전 선수 중 유일한 2관왕 타이틀을 획득했다.<ref name=":5">{{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218.010200737070001|제목=대구경북 유일한 2관왕 ‘빙속 스타’ 김보름 “소치올림픽 금메달도 꿈만은 아닐 것”|성=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8}}</ref>
         2012년 3월 3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이 1위, 김보름이 2위를 차지했다.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위, 박도영이 4위, 예원이 33위를 차지했다. 1000m에서는 김보름이 6위, 김현영이 7위, 박도영이 10위, 임정수가 27위를 차지했다. 종합에서는 김보름이 3위, 박도영이 5위, 임정수가 14위를 차지했다. 4일 열린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은 박도영(한국체대), 임정수(청학고)와 팀을 이뤄 출전하여 3분07초36의 기록으로 일본(3분13초67)과 러시아(3분14초41)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7">{{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8A%A4%ED%94%BC%EB%93%9C-%EB%B0%95%EB%8F%84%EC%98%81-%EC%A3%BC%EB%8B%88%EC%96%B4-%EC%84%B8%EA%B3%84%EC%84%A0%EC%88%98%EA%B6%8C-2%EA%B4%80%EC%99%95-%EC%B0%A8%EC%A7%80|제목=스피드 박도영, 주니어 세계선수권 2관왕 차지|날짜=2012-03-05|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12월 22, 23일 이틀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과 박도영이 각각 170.241점과 174.147점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30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4분16초19의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 중간합계 선두에 올랐다. 23일 1500m와 5000m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2일 열린 500m에서 지은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 1위에 오르며 대회신기록으로 우승을 확정지어서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중국 창춘에서 펼쳐지는 2013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8B%A4%EC%8B%9C-%EB%B3%B4%EB%8A%94-%EB%B0%B4%EC%BF%A0%EB%B2%84%EC%8A%A4%ED%83%80-vs-%EB%AF%B8%EB%A6%AC-%EB%B3%B4%EB%8A%94-%EC%86%8C%EC%B9%98%EC%8A%A4%ED%83%80|제목=다시 보는 밴쿠버스타 vs 미리 보는 소치스타!|날짜=2012-12-24|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월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3회 회장배 전국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3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37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팀추월에서는 박도영, 김보름, 임정수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1초86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8&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김보름은 2013년 1월 21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3 전국녀 종별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33으로 3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1&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2일 열린 1000m에서 1분20초38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1500m에서 2분00초9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에서 4분18초0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4&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제94회 전국동계체전에서 김보름은 3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2연속 2관왕을 달성했다.<ref name=":15">{{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303.010270813440001|제목=동계체전 대구 대표로 출전한 올림피언 김보름|성=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3년 10월 2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8회 전국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20)은 4분18초89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박도영(20-한국체대)이 4분21초30으로 2위에, 노선영(24-강원도청)이 4분21초37로 3위에 등극했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23_0012457099&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5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44의 대회신기록으로 노선영(강원도청-2분02초77)을 제치고 우승했다. 5000m에서도 김보름은 이주연이 2008년 긴 기존 대회기록(7분46초20)에 7초가량 앞선 7분39초14로 우승, 3광왕의 영예를 안았다. 여자 1500m 및 3000m에서는 팀추월 우선선발 대상자인 김보름과 노선영, 박도영(한국체대) 외에 양신영(전북도청), 전예진(한국체대)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0/25/20131025004859.html|제목=[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성=세계일보|날짜=2013-10-25|뉴스=[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김보름은 2013년 12월 23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8회 전국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77로 2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1&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000m에서 4분18초76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4&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4일 열린 1500m에서 2분03초54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3&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5000m에서 7분26초06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5&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50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1월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4회 회장배 전국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1초01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6&detailClassCd=03&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19초94로 2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6&detailClassCd=02&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3월 8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고빙상인추모 전국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3초05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02&detailClassCd=03&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9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4분21초75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02&detailClassCd=04&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2014년 3월 13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전국녀 대학대항스피드스케이팅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24초88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26&detailClassCd=04&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14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49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26&detailClassCd=03&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 하정우(영화감독) . . . . 49회 일치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5>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대한민국]]의 [[배우]], [[영화 감독]]. 본명은 김성훈으로, 중견배우로 유명한 [[김용건]]의 장이다.
         중학교([[전라북도]] [[임실군]]에 소재한 [[예원예술대학교]] 출신)때 전교 선도부장을 맡으며 학교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더욱 멋진 것은 하정우는 자 후배들에게도 흔히들 선배가 잡는 허세나 똥군기를 하나도 안 잡고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학생으로 기억된다는 것. 그래서 동문들 사이에서는 하정우의 성공을 두고, "성훈이 형이 잘 되어서 정말 좋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시절 성적이 안 나오자 담임이 '[[김용건|너희 아버지]]가 [[패드립|그러니 니가 그 모양이지 않느냐]]' [* 당시 [[김용건]]은 에로 영화에도 간간히 출였했었고,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빨간 양말을 신고 다니며 춤을 가르치는 [[제비족]]으로 출연 중이었다.] 라는 식으로 혼을 내 충격을 먹고 성적을 올려 모범생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가 암울한 인물이기도 하다. 20살에서 21살로 넘어가던 시점에 부모님이 이혼했는데, 어릴 적 부터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가 홀로 기르다시피 했고, 결국 어머니가 젓갈사업이 망한 것을 계기로 아예 이혼을 해버리게 된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 부도가 났고 전 재산을 압류당한 후,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은 재산인 차 1대를 가지고 '''7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일만 해서 빚을 갚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추후 연기 과외를 상당히 많이 해서 입시연기과외 세계에서 유명인사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하정우라는 예명을 썼다고 한다.[* 배우를 비롯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흔한 일이다. 하정우만 하더라도 부친과 같이 전원일기에 출연하여 형제로 설정되고 동시에 모교 교수인 [[유인촌]]의 아들 유대식도 같은 이유로 윤호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가정 배경을 숨겼고, [[스티븐 킹]]의 아들 조지프 킹도 조 힐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정우라는 예명은 원래 배우 [[김성수(배우)|김성수]]가 가수인 쿨의 김성수와 동명이인인 것 때문에 쓰려고 준비하다가[* 이 부분은 김성수가 해피투게더에서 직접 얘기한 적도 있고, 하정우가 무릎팍도사와 힐링캠프에서도 직접 얘기한 적 있다.] 예명을 쓰지 않게 되어 얻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아버지 김용건과 함께 여러 예명을 연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하정우라는 예명을 듣고 괜찮다고 생각하여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 처음에 김용건이 추천해 줬던 예명은 성만 바꾼 '금성훈'. --[[금성무|이 분?]]-- [[2005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조연으로 출연할 당시에도 중견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지만, 아주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2008년]] 《[[추격자]]》로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널리 부각된다.
         [[2006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김기덕 스타일이 대중에게는 크게 먹히는 스타일이 아니라 호연을 보여 줬다는 본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김기덕과는 《[[숨]]》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같은 해의 영화 《구미호 가족》에서는 구미호 4가족의 똘끼 넘치는 장으로 출연했지만 나머지 셋보다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2007년]]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Never Forever)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영화의 작품성과 하정우의 내면 연기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연이어 개봉한 영화 《[[비스티 보이즈(한국 영화)|비스티 보이즈]]》에서 주연을 맡아 찌질한 [[호스트]]를 연기한 것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추격자》의 촬영기간이 길어지면서 3주 정도 《비스티 보이즈》와 촬영기간이 겹쳤다고 한다). 그 후 개봉한 영화 《[[멋진 하루]]》에서는 넉살 좋고 낙천적인 백수 조병운 역을 맡아 발랄함과 능글맞은 특유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하정우의 영화 《멋진 하루》를 가장 좋아한다며 이윤기 감독과 하정우가 만든 조병운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성 캐릭터인 것 같다고 칭찬했다.
         [[2011년]] 연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2011년]] [[5월]]에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년도 수상자로서 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와서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되면 국토대장정을 떠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황해(영화)|황해]]> 하정우.'''' 라고 발표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진짜로 갔다.'''[* 이 당시 그와 함께 시상자로 참가했던 [[하지원]]은 그 이후로 공약에 대해서 묻지 않는단다. ~~하정우처럼 했다 또 그러면?? 그 땐 하지원도 가야지.~~]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국토대장정 하는 소재로 --반쯤 다큐인 영화-- '577 프로젝트'가 [[2012년]] [[8월 30일]]에 개봉했다. 제목이 지어진 배경은 이 프로젝트를 --작당-- 계획한 장소가 압구정의 '577술집'[* [[영화]]에서도 회의 장소로 나온다. 하정우의 단골집이기도 하다.]이기 때문.--577km 아니었어?--
         그러나 대장정 중 [[http://www.dogdrip.net/54866093|장난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린 일]]이 발생!? 걷는 거는 뺀질뺀질 걷고 낙오자로 지목받던 한성천의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하정우의 주도 아래 몰래카메라로 매우 무거운 돌가방을 들게 하여 걷게 하였는데.... '''그만 [[무릎]]이 나가버렸다.''' 무직이라 평소엔 뺀질뺀질거려도 이번 [[행군]]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아 새로운 [[힘]]을 얻으려고 사실 가슴 깊은 곳엔 누구보다 각오도 달랐던 한성천이었던지라, 그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도 말을 잇지 못했고, 기어가면서까지 가겠다고 하는 모습에서 전부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제작진의 설득 아래 행군을 중단하게 됐다면서 목발 짚고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는데....--과연?--
         연기공부가 안 풀릴 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아무 생각없이 사온 스케치북에 끄적거리던 게 포텐폭발. 처음에는 유명인이 그림을 발표한 점에 대해 '유명세로 뭣도 아닌 게 그림 그리는 척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곧 그림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인정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술잡지나 미술평론가들의 칼럼에서 익명으로든 실명으로든 까이고 있다. [[조영]]의 그림이 [[피카소]]의 표절인 것처럼, 하정우의 그림도 외국의 [[장 미쉘 바스키아|어느 작가]]를 베낀 정도에 불과하다고....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하정우를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이라는 헛된 자신감으로 현대미술가 행세에 나선 (망신스러운) 사례"라고 깠었는데,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이다. 그리고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저 글이 개소리임을 증명하는 실존 인물]]도 있다.]국내 H·art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뉴욕, 홍콩 등지에서도 전시를 했다. 다만 직업 화가들도 꿈꾸기 힘든 개인 작품전을 하며 유명한 전시관을 대관 받은 것은 여타 전시전을 했던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창작품의 작품성보다는 본인의 연예계적 인지도가 관여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 [[LG 트윈스|LG]] 팬이어서 [[두산 베어스|두산]]을 싫어한다는 루머가 있다. 러브픽션 시사회 당시 두산 팬이 "두산 경기에 시구하러 오세요"라고 했는데 하정우가 "죄송합니다, 저는 '''서울 팀'''만 시구할 겁니다." 라고 디스했다 [[카더라]]. 이유인 즉슨 두산과 LG의 오랜 연고지 다툼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 [[MBC 청룡|MBC]]가 서울, 두산(당시 [[OB 베어스|OB]])이 대전을 연고지로 했었는데, 두산은 3년 뒤 서울 이전을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터라 1985년부터 연고지를 공유했었다.[* 프로야구 출범 준비 시점 이전에 이미 [[문화방송|MBC]]는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1981년 6월 자체 프로야구단 창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프로야구 창립 계획 준비시점에 MBC가 전북 연고 기업 1안으로 선정되고 두산은 구단주의 연고지가 전북인데도 2안으로 밀려 경 연고지를 부여받는다. 이에 두산이 강력하게 반발하여 3년 뒤 [[연고지 이전]]을 약소하는 조건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하게 된 것. [[http://blog.naver.com/soonil39/|출처 : '홍순일(서울신문 주간스포츠 기자, 주간야구 창간편집장)의 야구이야기/프로야구 탄생비화']]] 비록 1990년 MBC가 [[LG그룹|럭키금성그룹]]에 구단을 매각했으나, LG 팬들은 원년부터 전북 연고였으므로 진짜 서울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두산 베어스도 원래는 서울로 팀을 하겠다 하고 안 된다니까 3년 뒤에 하겠다라고 했으니까, 실제로는 전북 연고지가 맞다. 어디까지나 진정한 주인이라는 거지 그렇다고 두산 보고 나가라고 하는 LG 팬들이 말하듯이 두산이 진짜 서울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는 것.]실제로 청룡의 역사를 계승한 팀이 맞고. 하지만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OB 베어스]]의 외야수 [[김우열]] 역을 맡은 적이 있다(...) --LG 팬의 [[흑역사]]-- 그래서 그런지 출연 내내 못마땅힌 얼굴을 하고 있다.
          * 아가씨에서의 출연으로 하정우는 본의 아니게 대물과 소물, 바람둥이와 발기부전인 배역을 모두를 해본 전대미문의 성문제 전문 배우가 되었다.
          * 출중한 연기력과 주연작으로만 1억 관객을 돌파했을 정도로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한데 비해 의외로 상과 크게 인연이 없다. 물론 [[백상예술대상]]에서 우주연상에 해당하는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을 3회나 수상했지만, 아직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상 외에 수상한 적이 없다.
          * 동생 차현우는 1997년 '예스 브라운'이라는 성 듀오에서 래퍼로 데뷔해 활동한 적 있다. [[https://youtu.be/omRKIR99cCk|#당시 활동영상]] 하정우에겐 연예계 선배인셈이다. 이후 배우로 전향해 연극 무대와 영화 '이웃사람' 등에 출연했다. 2014년에는 배우 [[황보라]]와 연애가 알려졌고, 현재 결혼은 앞두고 있는 깊은 관계라고 한다.
         결국 [[http://cfile1.uf.tistory.com/media/163190474F3807C11812C9|이런 플레이어]]까지 나오고 말았다. --밤에는 보지 말자-- 오죽하면 개그맨 [[희석]]이 [[http://sports.donga.com/3/all/20120219/44169072/3|이를 따라했을까]]
         || 2010 || [[황해(영화)|황해]] || 주연 || [[김구]] || 2,260,512 || 실패 ||
         || [[울학교 이티]] || 단역 || 훈 의사 || || ||
         ||<|3> 2007 || 숨 || 주연 || 편 || 12,293 || ||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단역 || 맞선 || || ||
         ||<|2> 2005 || SBS || [[프라하의 연인]] || 조연 || 안동 ||
  • 서울특별시/인물 . . . . 48회 일치
         * [[JIN]] - 강
         * [[JOO]] - 강
         * [[개코(다이나믹 듀오)|개코]] - 강
         * [[곽빈]] - 강
         * [[곽진영(배우)|곽진영]] - 강
         * [[권현빈]] - 강
         * [[강기영(배우)|강기영]] - 강
         * [[강태오(배우)|강태오]] - 강
         * [[김서영(성우)|김서영]] - 강
         * [[김성희(1989)|김성희]] - 강
         * [[김소혜(1999)|김소혜]] - 강
         * [[김승회]] - 강
         * [[김용준(가수)|김용준]] - 강
         * [[김채원(IZ*ONE)|김채원]] - 강
         * [[송학]] - 마포구
         * [[경호]] - 서초구
         * [[경(배우)|경]] - 송파구
         * [[다원(우주소녀)|다원]] - 강
         * [[동현(보이프렌드)|동현]] - 강
         * [[디애나]] - 강
  • 세정(구구단) . . . . 46회 일치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 8인조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이다. [[2016년]] [[프로듀스 101]]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최종 순위 2위를 기록한 출전자로, 녀노소 다양한 팬층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I.O.I]]로 정식 데뷔하기도 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출연자 중 상위권에 속하는 비주얼에 [[아이돌]] 가수로서의 춤과 노래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또 털털하고 밝은 성격에 강한 멘탈과 무대 장악력까지 갖추어 [[프로듀스 101]] 방송 초반부터 국민 프로듀서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2017년]] 1월 [[I.O.I|]]로써의 마지막 활동인 [[타임슬립 - I.O.I]]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고 현재는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명실공히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에이스[* [[어서옵SHOW]], 붐샤카라카, 걸그룹대첩 - 가문의 영광,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해피투게더 예능행, 1 대 100, [[배틀 트립]](옹동투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말하는대로, 한끼줍쇼, 겟잇뷰티, SNL, 런닝맨, 꽃놀이패, 정글의 법칙, 주먹 쥐고 뱃고동, [[학교 2017]]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방송활동과 각종 CF 출연을 보면, 그냥 에이스가 아니라 '[[강병철|세정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 / [[최동원|네 알았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급의 특급 에이스임을 알 수 있다. [[프로듀스 101]] 당시 춤과 노래가 부족했던 [[김소혜(1999)|김소혜]]를 가르쳐주고 처음으로 나선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촬영에서는 [[H.U.B]]에서 혼자 참석한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를 챙겨 주는가 하면 [[한끼줍쇼]] 첫 게스트로 출연해서 [[강호동]]과 [[이경규]]로부터 고정을 하자는 극찬까지 들었으며, 건장한 자 연예인들도 힘들어 하는 [[주먹쥐고 뱃고동]] 촬영을 임자도 편에 이어 여수편까지, 그것도 상상 이상의 갖은 노역을 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훈훈한 멘트까지 덧붙이며 [[김병만]]에게 인정받는 모습에서 인성과 근성, 체력과 실력이 동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히 걸그룹 에이스계의 [[최동원]]. 게다가 후술하는 근육 덕분인지 첫 출전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육상에서 메달권까지 근접했다!]로 각종 방송에 출연 중이다.
         [[2012년]] [[SBS]] [[K팝 스타 시즌2]]에 참가했다.[* [[악동뮤지션]], [[신지훈]], [[방예담]], [[다원(우주소녀)|다원]], [[이천원]], [[전민주]]가 나선 그 시즌이다.] 본선 2라운드 랭킹 오디션에서 개성 보컬조로 참가해서 [[YG엔터테인먼트|YG]]가 [[와일드카드(스포츠)|와일드카드]]로 보류한 후, 본선 3라운드 캐스팅 오디션에서 듀엣 부문에서 [[YG엔터테인먼트|YG]] 캐스팅 조로 나와 캐스팅을 그대로 유지해 합격했으나 [[걸그룹]] 부분 중 [[YG엔터테인먼트|YG]] 캐스팅 조에서 탈락했다. [[https://youtu.be/Iy6kYAPTddg|관련 영상]]
         이벤트는 총 1시간 가량 진행되었고, 행사장을 떠나고 10분 후 다시 돌아와 아 있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되게 열일했다고 한다. 말 걸기 미안할 정도로 ~~[* 실제 현장 실황을 찍은 영상을 보면 커피 만드는 멤버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커피를 만들고 있고, 나눠주는 멤버는 밖에서 번호표 받고 커피 주고 악수하고 사진 찍어 주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에 리액션해 주는 등 정신없이 각자 할 일들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SK텔레콤의 CF 연결의 힘 캠페인 [토닥토닥 라이브 X I.O.I] 네이버TV [[https://tv.naver.com/v/851393|영상]]에서 (16/05/29기준)조회수 200만을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imsejeong&no=232460&page=1&search_pos=-235517&s_type=search_all&s_keyword=200%EB%A7%8C|돌파]]했으며 2016년 4월 27일에 올라온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7월 11일에 다시 100위권 안쪽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팬들은 토닥 좀비라고-- 이 영상이 업로드 됐을 당시 부끄러워하며 커튼 뒤로 숨는 장면은 뭇 성 팬들의 심장을 움켜쥐게하며 늦잠을 절대 못 자게 했다고 --[[카더라]]--. 팬들이 뽑은 영상 중 손가락 안에 꼽는다. 또 생일을 맞이하여 팬들의 총공세로 [* 무한 [[스트리밍|스밍]]] 8월 27일 무한도전을 꺾고 TOP2까지 치고 올라왔고 8월 28일 생일 당일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1위를 했다.
         [[타임슬립 - I.O.I|마지막 콘서트]] 날, "이제 내일이면 I.O.I가 없어요." 라고 하면서 오열했고 멤버와 팬, 부모님께 감사의 소감을 전하며 말을 마무리했고,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1월 23일 그녀가 사랑하던 I.O.I 활동이 마무리됐다. 이 때 그녀는 "I.O.I 사랑해"라는 말을 기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I.O.I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질문을 받았을 당시 끝이 정해진 그룹이라 적당한 선의 애정만 주었다고 하지만 내면을 보고 자신이 멤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고 해체에 대한 아쉬움과 더 애정을 쏟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연습실에서 혼자 운 적도 있다고.[* 실제로 노래를 부르던 중 멤버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울거나 우린 좀 더 았다고 떼를 쓰는 등, 초창기 때보다 멤버들에게 무한애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인다.][* 참고로 김세정은 돌아갈 그룹이 있었다. 그런데도 5년 뒤 재결성 무대 및 재결성에 대한 의지가 엄청나다.] 이는 한창 I.O.I로 활동할 시간에 소속사 때문에 구구단 활동을 병행해야 했기에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악플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리고 2번째 생방 분량인 본방 3회차부터 본 방송 내에서의 분량도 매우 늘어났다.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세정을 챙겨주는 부분이나 퀴즈 등의 진행과 같이 제작진도 적극적으로 세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이 날 각 호스트별 방송 중에 참여했다가 시간 종료를 매우 적절하게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등 활약이 많아졌다. 특히 이 날은 같은 [[I.O.I|아이오아이]] 멤버인 [[소미|전소미]]의 출연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여서 1~2화 대비 더욱 방송에 활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박수홍]]과 함께한 웨딩편에서는 [[어서옵SHOW]]에서 레전드로 은 '''등근육'''을 보였다. 11회부터는 방송 초반부터 3MC와 같이 진행하고 [[김준현]]과의 먹방 검증에서도 먹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 등 [[어서옵SHOW]]에서 아예 MC로서의 지분을 톡톡히 했다. [[어서옵SHOW]]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어서옵SHOW]]가 종영된 후에도 타 예능 출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처음 목표는 3단계 통과였다고 하며, 상금을 받으면 어디에 쓰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구구단 정산과 집 구입에 보태겠다고 답했다. 오디션을 준비하던 시간을 설명하며 한 장르당 30곡씩 준비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꽃길을 부르다가 장윤정의 짠짜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기교를 선보였으며 본격적으로 노래를 준비한 뒤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러가던 중 장소를 착각해서 젤리피쉬 오디션을 봤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더 큰 회사의 오디션을 보러갈 생각도 한때 했었으나 좋은 선배가수들이 있다는 점과 '용의 꼬리가 될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의 얘기에 영향을 받아 현재 기획사에 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 [[I.O.I]] 활동 종료를 앞두고 녹화가 있었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2017 설날 아육대]]에 출전하며 2017년 1월 30일 방영된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은 세정과 [[하나(구구단)|하나]]가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아육대]] 육상 60m에 출전했는데 [[어서옵SHOW]] 웨딩편에서 레전드로 은 '''등근육'''을 눈여겨본 캐스터 [[정은지]]가 세정이 육상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고 언급했고, [[정은지]]의 예상대로 보란 듯이 예선에서 중간에 삐끗한 [[TWICE|트와이스]]의 [[채영(TWICE)|채영]]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채영(TWICE)|채영]]마저 [[펠레의 저주|윤여춘의 저주]]에 걸려들게 만들었다.[* 이 날 [[와일드카드(스포츠)|와일드카드]]를 받은 출전자는 [[베리굿]]의 [[서율(베리굿)|서율]](10.25)뿐이다. 여자부가 5개 조로 경기했기 때문.] 결승전에서 [[비니(오마이걸)|비니]]보다 단 0.03초 늦은 기록으로 4위에 그쳐 아깝게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첫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메달을 놓쳤지만, 첫 출전에 강한 인상을 겼다. 결승전 기록은 [[구구단(아이돌)|그룹명]]이 딱 연상되는 '''9.90'''.[* 예선 통과 때 기록은 10.02였다. 결선 때 기록이 더 좋았지만, [[루이(H.U.B)|상대들이]] [[유주(여자친구)|너무]] [[비니(오마이걸)|강해서]]...] 이 날 [[I.O.I]]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연정(우주소녀)|유연정]]도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세정과 달리 [[연정(우주소녀)|연정]]은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리듬체조]] 동메달 이후 울고 있는 [[성소]]를 위로해 주는 장면만 나갔다.] 뒷이야기지만, 이 날 [[유주(여자친구)|유주]]를 무너뜨리며 강한 인상을 긴 [[루이(H.U.B)|와타나베 루이]]는 세정이 말동무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루이(H.U.B)|루이]]가 혼자 팀을 대표하여 나서다 보니, 세정이 [[루이(H.U.B)|루이]]에게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이랑 이야기하고 같이 있자고 했다고 한다.[[차오루]]의 [[리듬체조]]([[클럽|곤봉]]) 때는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2017년 1월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수마트라 섬|수마트라]]편에 출연하는 것으로 확정됐으며,[[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464699|##]] 2017년 3월 17일 부터 4월 21일까지 방영된 [[SBS]] 예능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수마트라 섬]]편에 출연했다.[* 3월 10일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뉴스 특보 관계로 결방되어 한 주 밀린 3월 17일에 방영.] '재난의 땅에서 생존하라'는 주제로 생존을 시작했다. 방송 시작부터 뛰어난 체력과 적극성을 보이며 생존에 임했다. 생존 중에도 [[구구단(아이돌)|구구단]] [[Act.2 Narcissus|미니 2집]] 컴백 활동에 대비해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게 연습을 해야 한다'며 꾸준히 안무 연습을 해 책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다 사냥을 위해 근거리의 섬으로 헤엄쳐 이동, 수중 사냥 등의 뛰어난 수영 실력 --[[타임슬립 - I.O.I|I.O.I콘서트]] 준비 기간 동안 배웠다고 하기 놀라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또 첫 낚시에서 연이어 물고기를 낚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자신의 민낯에 막장이라는 자평을 하기도 하며, 자몽 cf를 아재 버전으로 해달라는 요청에 특유의 아재 매력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생존 마지막 날 동료들의 캐리커처를 선물했으며, 정글 생존 기간 동안 느꼈던 점에 대한 자작 시를 읊어 훈훈함을 자아내며 생존을 마무리했다. 후에 '좋은 가족이 생긴 것 같아 정말 든든했다'라며 '선배님, 작가님, 피디님 모두 잘 챙겨주셨다.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정글에 갈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방송을 지켜보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는 소감을 겼다.
          * 2017년 4월 7일 [[tvN]] [[시간을 달리는 자]]에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인 [[나영(구구단)|나영]], [[미나(구구단)|미나]], [[조혜연(2000)|혜연]]과 함께 출연했다.
          * 2017년 5월 20일에 방영된 [[채널A]] [[사심충만 오!쾌]]의 차회 예고편을 통해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인 [[미나(구구단)|강미나]]와 출연을 밝혔다. 5월 28일 방영. [[행주산성]]을 방문하여 [[행주 대첩]] 및 [[권율]] 장군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진행된 투호, 줄넘기, 이어달리기 3종목으로 진행된 단합대회를 실시했다.
          * 7월 8일 방송 뒷부분부터 7월 22일까지 방영된 여수편에서는 같은 색깔의 의자에 앉은 [[김병만]]과 2인 1조가 되었다. 오후 5시까지 낭만포차에 해산물을 납품하는 미션-- 생선 구이용 생선 100마리, 모둠 해산물 5망, 갯장어 10마리-- 미션에 앞서 여수 3경을 즐기라는 제작진의 말에 팀명 정하기 등 --(병)만세(정) 팀-- 유독 여행에 들떠하며 신난 모습을 보였는데 자연 경관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후 조업배를 선택하는 미션에서 이들이 선택한 어선은 모둠 해산물을 잡는 잠수기 어선이었다. 수중 조업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잠시, 김병만과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촬영 간 김병만은 세정에 대해 멘탈도 강하고 운동신경도 있고 모든 일을 쉽게 터득 하는 것이 전천후 같다는 평가를 기기도 했다. 18킬로에 달하는 납 착용과 뒤엉킨 호스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불구 침착함을 유지했고, 이에 김병만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웬만하면 진짜 인정 안 하는데... 너는 인정해 진짜!-- 5망을 채워오지 못해 미션은 실패했고, 조업 후 크루즈에 탑승해 미션 성공팀의 식사를 바라봐야만 했다. 과일 깎기 대회에서 [[경수진]]에게 패해 김병만, [[이상민(룰라)|이상민]]과 함께 갈치잡이 조업에 가게 되었다. 처음해보는 낚시에 기대를 품었는데, 갈치의 모습을 보며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Act.1 The Little Mermaid|데뷔 활동 당시]]의 의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낚시에 난항을 겪던 와중 차차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여 선장에게 '자도 하기 힘든 건데, 기가 막히다. 선수가 다 됐다.', 이상민에게 '머리가 좋다, 스마트하다', 병만에게 '요령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터득한다. 유연성이 대단한 친구.'라는 칭찬을 들었다. 갈치 100마리 잡기 미션에 성공한데 이어 추가로 81마리의 갈치를 획득했다. 조업 후 먹은 갈치회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갓 110킬로 뽑아 오기 미션인 '지인 전화 스피드 퀴즈'에서 같은 [[I.O.I]] 멤버였던 [[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과 퀴즈를 진행했지만 결국 육중완, 김병만과 함께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갓'세정의 '갓'수확-- 지친 조업 끝에 얻은 재료들로 만든 밥상에 감탄하기도 했다. 역대 게스트 중 가장 많은 조업에 참여했다는 말에 '모든 경험이 즐거웠다. 지금 나에겐 재밌을지라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겐 엄청난 일이겠다. 힘든 일을 마치고 먹는 밥상에 힘이 난다.' 라며 소감을 기며 방송이 마무리되었다.
          * 2017년 6월 28일에는 [[미미(구구단)|미미]]와 [[https://www.youtube.com/watch?v=DMWkwQ6xk2U|[어반로드] 세정&미미 ①편]]에 출연했다. [[현대 i30|최고급 해치백]]을 타고[* 협찬 차량인 만큼 차량에 대해 종종 언급되었다.] 버킷리스트 항목을 작성한 후에 --무작정 가기 (단 살아있기)-- 홍대에 방문해 인력거 타기, 인형 뽑기, 벽화거리 방문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6월 30일에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f4YhLDyEp38|②편]]에서 연동에 방문하여 쿠킹 클래스 시간을 가졌고, 태국 요리를 배워 둘 간의 요리 대결을 펼쳐 세정의 승리로 미미가 벌칙을 수행했다. 승패와 상관없이 결과를 예측했던 시민들과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했다. 7월 5일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6xjuXiHZyN8|③편]]에서 구구단 멤버들에게 선물을 사주기로 해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팔찌를 제작했다. 한강 시민 공원 여의도 지구에 방문해 미미를 위해 자신의 노래인 '꽃길'을 불러주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구구단의 꽃길도 기원했다. 모든 버킷리스트를 완료한 뒤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 2017년 7월 17일부터 9월 5일까지 드라마 [[학교 2017]]에 주연을 맡았다. [[학교 2017]]에서 최초로 정극 연기에 도전했는데, [[마음의 소리(시트콤)|마음의 소리]]에 특별출연을 한 것을 제외하면 전술했듯이 아이돌이라는 선입견과 첫 주연에 첫 정극 연기라는 불안한 대중의 우려와 달리 무난히 연기를 해냈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꿈꾸는 것에 대한 기쁨과 관계에 대한 행복을 [[라은호|은호]]로 다시 깨달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라는 종영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4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968203|기사]]를 통해 10월 27일에 개최되는 '제1회 더 서울어워즈'에 [[소녀시대]] [[윤아(소녀시대)|임윤아]]와 함께 여자 인기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밝혔다. 시상식 자리에 윤아와 함께 올라, 불법 다운로드와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를 학교 2017에서 했던 애교에 녹여서 보여주기도 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송강호]]는 덤. 그리고 연이어서 12월 31일 '2017 [[KBS 연기대상]]'에서 걸그룹 출신 연기자 [[류화영]]과 함께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수상을 받게 도와준 이들의 이름을 다 언급할 수 있도록 이름을 적어온 종이를 꺼내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모든 제작진과 스태프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누군가의 창작물에 있어서 누가 되지 않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소감과 함께 [[구구단(아이돌)|구구단]] 멤버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베스트 커플상 후보에도 올랐었으나, [[쌈, 마이웨이]], [[김과장]] 등 인기 드라마 속 커플들이 수상했다. 참고로 [[현태운]] 역의 [[김정현(1990)|김정현]]을 비롯한 다른 학교 2017 출연진들은 이날 연기대상 시상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상식이 끝난 뒤 학교 2017 박진석 PD와 김정현, 김세정이 따로 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날에 같은 아이오아이인 [[김소혜(1999)|김소혜]]도 참석해서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17년 10월 31일 [[http://pop.heraldcorp.com/view.php?ud=201710311359242137311_1|기사]]를 통해 [[SBS]] [[판타스틱 듀오 시즌2|판타스틱 듀오]] '라스트 티켓특집'에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에일리]]의 듀엣 파트너인 '김제 양궁 낭자'로 지원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에일리의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김주(Apink)|김주]], [[박재정(가수)|박재정]]과의 3대 1대결에서 '밸런스를 맞춰주는데 힘이 되었다, 떨림과 설렘이 감정으로 표현이 되어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평을 받았고, 이에 최종 파트너로 선택되어 에일리와 [[에일리/음반 목록|If you]] 무대를 선보였다. 방송 내내 유독 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같이 무대에 설 일이 자주 있지도 않을뿐더러,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다'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프로그램 종료 무렵에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2017년 11월 17일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711170100160400011531&servicedate=20171117|기사]]를 통해 [[SBS]] [[런닝맨 ]] '상속녀가 돌아왔다 레이스' 특집에 출연을 밝혔다. 11월 19일 방영. 방송 중 망설임 없이 한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 적극적인 [[Act.3 Chococo Factory|신곡]] 홍보에 'PR 로봇'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살아은 최고 순위 커플이 상속자 후보가 되어 판정대 위로 올라가거나, 막내딸과 함께 올라가면 막내딸이 승리하는 최종 레이스 '서열 정리 이름표 뜯기'에서는 막내딸이었던 [[고성희]], [[송지효]]와 함께 우승했다.
          * 2017년 12월 13일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79854|기사]]를 통해 [[SBS]] 신년 특집 파일럿 예능 '스타 강제후기 리뷰쇼 박스라이프'에 게스트로 참여했으며, [[이상민(룰라)|이상민]], [[김생민]]과 함께 리뷰에 나섰다고 밝혔다. 1월 10일, 11일 방영분 중 11일 방영분만 출연해 이상민과 김생민이 진행한 싱글 하우스 리뷰에 예비 싱글족으로 동참했는데, '넓은 집이 아니어도 방이 많은 집이 좋다'는 취향을 밝혀 이상민과 김생민을 당황하게 했다. --큰일 났네. 아직 현실을 모르시네.-- 수월한 리뷰 진행을 위해 체크리스트를 알아 와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 이상민과 김생민의 미소를 자아냈다. 한강뷰의 16평대의 건물 시세와, 산 루프탑 복층 집 시세에 놀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산 루프탑 하우스에 방문하던 중 만두를 먹자고 부탁해 김생민의 지갑을 열게 하기도 했다. --요즘 수입이 괜찮아.-- 세정은 '여자들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경사로는 힘들지만 산타워를 보니 피로가 풀렸다'며, 산 루프탑 하우스를 선택했다.
          * 2017년 12월 30일 '2017 [[S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챌린지상'을 수상했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정글의 법칙]]'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며, '[[K팝 스타 시즌2|K팝 스타]]'로 시작해 이런 자리에 설수 있게 되어 감사드린다. 밝은 기운 드리겠다'라는 소감을 겼다. 수상 후 [[전현무]], [[김준현]], [[딘딘]]과 함께 [[판타스틱 듀오 시즌2|판타스틱 듀오]] 팀으로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를 선보였다. 고음 파트를 맡으며 노래를 살리는(?) 역할을 했다.
  • 문무왕 . . . . 45회 일치
         2년([[662년]]) 봄 정월에 당은 문무왕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상주국(上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 [[신라]]왕으로 책봉했다. 2월에는 [[탐라국]] 임금 도동음률(徒冬音律)이 항복해 와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2"/> 이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주둔하고 [[고구려]]를 치는 당군의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식량을 보내고 옷을 보내고 하느라 창고에 쌓아둔 양식은 고갈되고, 농사 때를 망쳐 백성들이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반대로 [[웅진도독부]]에 있는 당군의 군량 창고에는 쌀이 아돌다 못해 썩어나고 있었고 [[웅진도독부]]에서는 그 뒤로도 수시로 [[신라]]에 군량을 요구하였다. 3월에 내린 대사면령은 이러한 가운데서 오는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된다.{{출처|날짜=2018-06-27}} 7월 왕은 왕제(王弟) [[김인문|인문]](仁門)을 사신으로 당에 보내는 한편, [[웅진도독부]]의 당군은 지라성(支羅城)과 윤성(尹城), 대산(大山)과 사정(沙井)의 [[백제]] 목책을 깨뜨리고 [[신라]]군과 합세해 진현성(眞峴城)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신라]]의 군량수송로를 열었다. 8월<ref group="주">《[[동사강목]]》에는 7월로 표기됨</ref>에는 [[김흠순|흠순]] 등 19장군을 시켜 내사지성(內斯只城)의 [[백제]] 부흥군을 깨뜨렸고, 대당(大幢) 총관(摠管) 진주(眞珠)와 천주(南川州) 총관 진흠(眞欽)이 병을 핑계로 한가로이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죄를 물어 처형하고 그 일족까지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62"/>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산신성|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백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반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6년([[666년]]) 4월에는 대신 김천존의 아들인 [[나마 (관직)|나마]] 한림과 김유신의 아들인 나마 [[김삼광|삼광]](三光)을 모두 당에 들어가 숙위하게 하였으며, 고구려를 없애고자 당에 군사를 요청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12월에부터 당은 [[이세적|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사열소상백(司列少常伯) 안륙현(安陸縣) 사람인 학처준(郝處俊)을 부장으로 삼아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는데,<ref name="삼국사기-666"/> 이때 고구려는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죽음에 이어 그의 아들들 사이에 형제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마침내 연개소문의 장 [[연생|생]]이 아우 [[연건|건]]과 [[연산|산]]에게 쫓겨 [[국내성]] 등의 성을 거느리고 당에 항복해버리면서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ref name="고구려-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이 와중에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정토]]가 24명의 부하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항복해오자, 정토와 그의 부하들에게 옷과 양식, 집을 주어 서울 및 주·부에 안주시키고, 온전한 여덟 성에는 군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ref name="삼국사기-666"/>
         8년([[668년]]) 2월 [[이세적|이적]] 등이 이끄는 당군이 고구려의 [[부여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연건|건]]이 5만의 군사로 그 땅을 수복하려 애썼지만 설하수(薛賀水)에서 3만 명이 죽는 대패를 당하고 퇴각했다.<ref name="고구려-668">《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668)</ref> 3월에 신라는 북방의 요충지였던 비열홀(比列忽, 비열성)에 주를 설치하고 파진찬 용문(龍文)을 총관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8">《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668)</ref> [[6월 12일]]에{{refn|group=주|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유인궤가 신라군과 함께 평양으로 간 것이 5월이라고 기록돼 있다.<ref name="삼국사기-671"/>}} 당의 우상(右相)<ref group="주">정확한 관직명은 요동도안무부대사(遼東道安撫副大使) 요동행군부대총관(遼東行軍副大摠管) 겸 웅진도안무대사(熊津道安撫大使) 행군총관(行軍摠管) 우상(右相) 검교태자좌중호(檢校太子左中護) 상주국(上柱國) 낙성현개국(樂城縣開國男)이다.</ref> 유인궤가 당 고종의 칙명을 받들고 신라의 숙위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자 왕은 [[각간]] 인문을 보내 성대한 예식으로 맞이하게 했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에 유인궤는 약속을 마치고 신라의 선발군을 이끌고 고구려 땅인 천강(泉岡)으로 향하고, 문무왕 역시 [[6월 21일]]에 한성주에서 후발부대를 사열했다. 이때 신라군의 주요 장수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ref name="삼국사기-668"/>
         이때 대당대총관으로 임명된 대각간 김유신은 풍병(風病) 때문에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고 수도 서라벌에 았고,<ref name="김유신-하">《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ref> 일찍이 백제를 치는데 선두로 나섰던 여러 장수들이 모두 지도부의 요직을 맡아 고구려 공격에 나서게 되었다. 임명된 관직으로 추정한 진격루트는 한성주(한산주)와 비열주(비열홀주) 그리고 하서주(하슬라주) 세 곳으로, 수도 서라벌에서 조직된 군사들은 닷새 후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출처|날짜=2018-06-28}} [[6월 22일]]에 유인원이 신라의 귀간(貴干) 미힐(未肹)을 보내어 고구려의 대곡성(大谷城)과 한성(漢城) 등 2군 12성이 항복해왔음을 알렸고, 신라군 장수인 인문·천존·도유 등은 일선주 등 일곱 군과 한성주의 병마를 이끌고 당의 군영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6월 27일]]에는 드디어 문무왕 자신이 서라벌을 출발했고, 이틀 뒤에는 여러 도의 총관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당군 총사령관 이적을 만난 신라의 김인문은 고구려의 평양 북쪽 20리 되는 지점인 영류산(嬰留山) 아래까지 진군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8"/>
         [[7월 16일]]에 한성에 도착한 왕은 여러 총관들에게 당군과 회합할 것을 명했다. 한편 비열성주행군총관 김문영 등은 사천(蛇川)의 벌판에서<ref name="삼국사기-668"/> 고구려의 [[태대막리지]] 건이 거느리고 온 군사와 충돌했는데, 함께 있던 당의 번병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와중에 김문영의 신라군은 앞으로 나서서 고구려군과 맞서 크게 이겼고, 신라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 난 다음에야 당병은 겨우 고구려군과 싸웠다고 한다.{{출처|날짜=2018-06-27}} 이 사천에서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대당소감(大幢小監) 본득(本得)은 훗날 문무왕에 의해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은상으로 받았고, 전사한 한산주소감(漢山州小監) 김상경(金相京)도 그와 준하는 상이 내려졌다. 다만 아술(牙述)의 사찬 구율(求律)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을 건너가서 적과 싸워 크게 이겼음에도, 군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위험한 곳에 들어갔다 하여 포상에서는 제외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9월 21일]]에 신라군은 당군과 합류해 평양을 에워쌌다. 고구려의 보장왕은 먼저 [[연산]](淵男産) 등 98명의 수령(首領)을 이끌고 백기를 들고 항복했고,<ref name="고구려-668"/> 신라군의 대당총관 김인문이 보장왕을 이적 앞에 데려가 꿇어앉히고 그 죄를 세었다.{{출처|날짜=2018-06-27}} [[건]]은 성문을 닫고 항거하면서, 병력을 내보내 싸웠으나 모두 패하였다. [[9월 26일]] 승려 신성(信誠)이 성문을 여니 신라의 5백 기병을 필두로 한 군사들이 평양으로 들어가 평양을 함락시켰다.<ref name="고구려-668"/><ref name="삼국사기-671">《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1년(671)</ref> 이때 평양성 함락전에서의 신라군의 활약은 기록에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평양을 함락하고 한 달이 지난 뒤에 문무왕이 한주에서 행한 논공행상 과정이 아있다. 평양성 외곽에서는 흑악령(黑嶽令) 선극(宣極)이 평양성 대문에서의 싸움에 세운 공으로 일길찬의 관등과 조(租) 1천 섬을 받았고, 군사(軍師)인 한산(南漢山)의 북거(北渠)는 평양성 북문에서 전공을 세워 술간(述干) 관등과 벼 1천 섬, 부양(斧壤)의 구기(仇杞)는 평양 쪽 다리 위에서 높은 공을 세워 마찬가지로 술간 관등과 벼 700섬을 받았다. 평양성 내부에서는 임시[假] 군사(軍師)인 비열홀의 세활(世活)이 평양의 소성(小城)에서 전공을 세워 고간(高干) 관등과 벼 500섬을 받았고, 서당당주(誓幢幢主) 김둔산(金遁山)은 평양 군영에서의 전공이 으뜸이라 하여 사찬 관등과 조 700섬을 받았으며, 한산주 소감 박경한(朴京漢)은 평양성 안에서 고구려의 군주(軍主) [[술탈]](述脫)을 죽인 공으로 일길찬 관등과 조 1천 섬을 받았다.<ref name="삼국사기-668"/>
         평양이 함락된 뒤 이적은 보장왕과 왕자 복(福男)·덕(德男) 그리고 대신 등 20여만 명을 이끌고 돌아갔고,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助州)가 이적을 따라 인태·의복·수세·천광·흥원 등과 함께 당으로 들어갔다.<ref name="삼국사기-668"/> 문무왕은 한성을 출발해 평양으로 가던 중, 힐차양(肹次壤)에 이르러 당의 여러 장수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한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8"/> 신라 측은 긴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에게 약속된 은택을 얻을 것이고 공을 세운 장군들도 포상을 받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당나라에 들어갔지만, 당의 총사령관 이적은 “지금 신라는 아무도 공이 없다”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고, 이적의 태도가 신라 군영에 전해지면서 신라군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로서는 그들의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당군을 도와 주변의 적들을 쓰러뜨렸는데, 막상 신라에게 돌아온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당은 백제와 고구려에 이어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한주(南漢州)로 돌아온 문무왕은 [[10월 22일]]에 논공행상을 벌여 서라벌에 아있던 김유신에게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의 직위와 식읍 500호, 궤장을 하사하고 그의 모든 보좌관들에게도 각각 위계 한 등급씩을 올려 주었다.<ref name="김유신-하"/> 또한 인문을 대각간, 다른 이찬과 장군들을 모두 각간으로 삼고 소판 이하에게는 모두 관위 1등급씩 더해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8"/> [[10월 25일]]에 왕은 욕돌역(褥突驛)에 이르러 국원사신(國原仕臣) 용장(龍長) 대아찬에게 사적으로 대접받았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천 명을 포로로 거느리고 [[11월 5일]]에 서라벌로 들어온 왕은 다음날 문무 관료들과 함께 선조묘에 전쟁이 끝났음을 고하고, [[11월 18일]]에는 전사자들의 신분에 맞춰 부의(賻儀)를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68"/>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15년([[675년]]) 봄 정월에 구리로 각 관청 및 주·군의 인장(印章)을 만들어 지급했다.<ref name="삼국사기-675">《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5년(675)</ref> 2월에 당의 장수 유인궤가 칠중성(七重城)에서 우리 군사를 깨뜨린 뒤 돌아가고, 이근행이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임명되었다. 문무왕은 다시 당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며 유감을 표명했고, 당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서 깎아 없앴던 문무왕의 관작을 회복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75"/> 이때에는 대부분의 백제령이 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고구려 쪽 경계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주와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에 문무왕은 당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 아홉 부대의 병사를 내보내 막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5"/> 과연 가을 9월, 당은 설인귀를 대장으로 하는 군사를 신라에 보내 천성(泉城)을 치게 했는데, 이때 당에 숙위하고 있던 풍훈(風訓)<ref group="주">앞서 문무왕에 의해 처형당한 김진주(金眞珠)의 아들이다.</ref>이 향도(鄕導)로서 당을 도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그러나 신라의 장군 문훈(文訓) 등의 선전으로 당병 1,400명을 죽이고 그 병선 40척을 빼앗았으며,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치면서 내버리고 간 전마 1천 필까지 신라의 손에 들어왔다.<ref name="삼국사기-675"/> [[9월 29일]]에는 이근행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매초성(買肖城)에 진을 쳤다. 신라군이 이를 공격하자 당군은 말 30,380필과 무수한 병기를 겨 놓고 도망갔다.<ref name="삼국사기-675"/>{{refn|group=주|다만 이러한 전쟁 와중에도 신라는 당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고 있었다.<ref name="삼국사기-675"/>}} 나아가 안북하(安北河)를 따라 관(關)과 성을 설치하고 또 철관성(鐵關城)을 쌓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해에 신라와 당이 벌인 크고 작은 싸움이 18번인데, 모두 신라가 이겨서 당병 6,047명을 죽이고 말 200필을 얻었다고 한다.<ref group="주">하지만 아달성(阿達城)이나 적목성(赤木城)에서는 성을 침공한 말갈병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약탈당했으며, 아달성주 소나(素那)나 적목현령 탈기(脫起)가 이때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석현성(石峴城)이 당병에게 함락되었을 때는 현령 선백(仙伯)과 실모(悉毛) 등이 전사했고, 칠중성은 당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을 때 간신히 함락은 면했지만 소수(小守) 유동(儒冬)이 전사하는 등, 신라측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에도 당은 다시 도림성(道臨城)을 함락시켰다.</ref>
         {{Cquote|과인은 나라의 운(運)이 어지럽고 전란의 시기를 맞이하여, 서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능히 영토를 안정시켰고 배반하는 자들을 치고 협조하는 자들을 불러 마침내 멀고 가까운 곳을 평안하게 하였다. 위로는 조상들의 기신 염려를 위로하였고 아래로는 부자(父子)의 오랜 원한을 갚았으며, 살아은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두루 상을 주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벼슬에 통하게 하였다.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살게 하였다. 세금을 가볍게 하고 요역을 줄여주니,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이 풍족하며 민간은 안정되고 나라 안에 걱정이 없게 되었다. 곳간에는 언덕과 산처럼 쌓였고 감옥에는 풀이 무성하게 되니, 혼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관리와 백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스스로 여러 어려운 고생을 무릅쓰다가 마침내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렸고, 정치와 교화에 근심하고 힘쓰느라고 다시 심한 병이 되었다. 운명은 가고 이름만 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갑자기 긴 밤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는가? 태자는 일찍이 밝은 덕을 쌓았고 오랫동안 태자의 자리에 있어서, 위로는 여러 재상에서부터 아래로는 뭇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도리를 어기지 말고, 살아 있는 임금을 섬기는 예의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워서는 안되므로, 태자는 곧 관 앞에서 왕위를 잇도록 하라. 또한 산과 골짜기는 변하여 바뀌고 사람의 세대도 바뀌어 옮겨가니, 오(吳)나라 왕의 북산(北山) 무덤에서 어찌 금으로 만든 물오리의 고운 빛깔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위(魏)나라 임금의 서릉(西陵) 망루는 단지 동작(銅雀)이라는 이름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난날 모든 일을 처리하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면, 나무꾼과 목동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우와 토끼는 그 옆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면 서책(書冊)에 꾸짖음만 길 뿐이요, 헛되이 사람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넋을 구원하는 것이 못된다. 가만히 생각하면 슬프고 애통함이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것은 즐겨 행할 바가 아니다. 죽고 나서 10일 뒤에 곧 고문(庫門) 바깥의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정해진 규정이 있으니, 장례를 치르는 제도를 힘써 검소하고 간략하게 하라. 변경의 성·진(城鎭)을 지키는 일과 주현(州縣)의 세금 징수는 긴요한 것이 아니면 마땅히 모두 헤아려 폐지하고,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다시 고치도록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할 것이며, 주관하는 자는 시행하도록 하라.|《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21년(681)}}
         ** 여동생 : [[고타소랑|고타소]](古陀炤, ?~[[642년]]) - [[보라궁주]]의 소생으로 [[대야성]] 성주 [[김품석]](金品釋, ? ~[[642년]])에게 하가(下嫁), [[윤충]]에 의해 편과 같이 사망함.
         ** 동생 : [[김인문]] (金仁門, [[629년]]~[[694년]]) - [[신라]] 대장군, [[삼국통일]]의 주역
         ** 동생 : [[김문왕]] (金文王, ?~[[665년]]) -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선조.
         ** 동생 : [[김노차]](金老且)
         ** 동생 : [[김지경]](金智鏡)
         ** 동생 : [[김개원]](金愷元)
         ** 동생 : [[선원전군]](仙元殿君)
  • 김희철(1983) . . . . 42회 일치
         팀 내에선 이특과 함께 맏형을 맡고 있다. 이 정도로 서로간의 캐릭터가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들 두명이서 맏형을 맡은 그룹도 참 드물지 않을까(...) 아이돌 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예쁘장한 미모를 가진 대표 [[미소년]] 비주얼의 아이돌. [[여장]] 사진이 진짜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쁜 자 연예인으로 정말 유명하다. [* 이 분야의 후임으론 같은 소속사 후배 출신의 [[태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느낌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태민은 희철과 닮은 꼴이다. 덕분에 10년마다 나오는 얼굴이란 짤방도 있다.]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튀어 보이는 예쁜 얼굴과, 그와 정 반대로 솔직하고 할 말 다하는 성격과 자유분방하고 아이돌계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성있는 ~~돌+I~~ 캐릭터 덕에 대중에게나 팬덤에게나 더 쉽게 각인이 되었다. 특히 이런 캐릭터가 소속 연예인 관리에 엄격하다고 알려졌던 [[SM엔터테인먼트|SM]] 출신에서 나왔다는 것에 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활동 초기부터 인지도로 최상을 찍은 멤버 가운데 하나였으며 예능 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멤버들 중 하나가 되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안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룹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쉬워보이는 성격과 캐릭터덕에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의외로 희철은 사생활 관리도 매우 철저하고 '''사건 사고가 전무하다.''' 음주운전이라던가 팬들을 속상하게 할만한 열애설이 거의 없었단 게 그 증거. 최근 [[강인]], [[성민]] 등의 멤버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지만 희철은 슈주 멤버들 중에선 의외로 모범적인 태도를 가진 멤버 축에 속한다. 그외에,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멤버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고, 멤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많이 올려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탈퇴한 중국 멤버 한경과 친하게 지내서 미니홈피에도 글을 자주 올리곤 했는데 한경이 탈퇴하자 충격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최근 한경이 매니저없이 한국 여행을 와서 희철과 찍었단 사진을 게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교류는 이어가고 있는 듯.] 또한 스스로 '''꽃은 꽃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팬들을 자신의 꽃잎이라고 부르는등 자기 사람, 자기 팬은 확실히 챙기고 아이돌로서의 태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교통사고로 부상 당했을 당시 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자기 빼고 활동하라며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다리 부상때문에 팀에 차질을 주고 짐이되는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방송에서 이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자신은 다리가 아파 활동을 덜 하는 만큼 예능에서 슈퍼주니어를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중성 있는 꽃미 비주얼에,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적인 캐릭터라는 특이한 조합 외에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와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기에 인기를 끄는 것.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세계 단위 개인 팬덤[* '꽃잎'이라고 한다. 영어권 팬덤은 'Petal', 중화권 팬덤은 '花瓣', 일본 팬덤은 '花びら'라고 한다. 모두 꽃잎이라는 뜻이다.]을 거느리는 이유가 있다. 팬들을 내새끼들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기도. 활동도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아서 사실상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한 슈퍼주니어를 알리며 잊히지 않게 하는 멤버.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잦은 해외스케줄로 얻은 감기증상이 슈퍼주니어의 해외 콘서트 투어인 슈퍼쇼7 미 투어중에 심각하게 악화되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이마에 고름이 차고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완치될 때까지 장거리 비행 금지를 병원에서 처방받았다고 웨이보 라이브 방송에서 밝혔다.
          * 꽃미 연쇄 테러 사건 - 김희철 역 (2007)
          * E채널 "내 딸의 자들2" (2017.10.14~2018.01.06)
          * JTBC "이론상 완벽한 자" (2017.11.10~)
          * E채널 "내 딸의 자들3" (2018.04.15~)
          * SBS "일요일이 좋다 X-맨" (2005, 2006, 2007)[[https://youtu.be/c42WykQW3Tk|2005년 당시 활약상]]~~떡잎부터 다르다..~~
          * tvN "[[SNL 코리아]]"[* 희철은 스케줄상 3분 시리즈만 출연했다. 그러나 역대급 18금 연기와 신들린 애드립으로 짧고 굵은 레전드 영상을 기고 갔다는 평이다. 참고로 네이버 TV 35위 진입으로 역주행해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날 방송된 SNL 코리아 영상들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와 조횟수, 좋아요 수를 기록했다.] (2017)
          * 2007년 Mnet 20's Choice : 꽃미 부분 수상 [[http://www.mnet.com/tv/vod/vod_view.asp?clip_id=69012&tabMenu=vod&order=1&view=2&pNum=5|#]]
          * 2011년 MBC 방송연예대상 : 쇼 버라이어티 부분 자 신인상 [[http://www.imbc.com/broad/tv/ent/event/2011entertain/awards/index.html|#]]
         기본적으로 의리 있는 성격이라 친해지면 오래 간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방송, 드라마, 라디오등에 출연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분을 쌓아 나갔고 본인의 의리 있는 성격이 겹쳐져 2018년 현재 어마무지한 인맥 라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실상 웬만한 메이저 아이돌들은 김희철과 친분이 있으며, 예능에 자주 출연하다보니 예능 MC들과, 데뷔 초 시트콤 출연 경력 등으로 배우들과도 친분이 있는 등, 연예계 다방면으로 인맥을 자랑한다. 가장 자주 만난다는 인맥그룹은 AB형 혈액형을 가진 자연예인들의 모임인 쪼코볼[* '''쪼'''금 싸이'''코''' 같지만 '''볼'''수록 매력있는 자들.]로 [[장근석]], [[이홍기(가수)|이홍기]], [[조성모]], [[미쓰라 진]], 낯선, [[쌈디]], 김정모 등이 멤버이다.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BoA]]와도 친분이 두텁다. 게임 전문 아프리카 BJ나 소속사 대표들도 알 정도로 연예계나 비연예계 전방으로 엄청난 친목을 자랑한다. 근데 오히려 슈주 멤버들과 덜 친하다고 절친 노트에 나오기도 했다(...) 슈주에선 [[최시원]]과 [[동해]]와 가장 친하다. [[이특]]과는 성격이 정반대라 자주 싸우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관계를 '''친하지 않은데 안 친하지도 않은 사이(....)''' 라고 표현하기도. [[한경]] 과도 절친한 사이여서 한경이 탈퇴한 이후 우울증에 걸려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미니홈피에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탈퇴 이후에도 만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방신기]]에서는 [[유노윤호]]와 친분이 있으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로 활동하는 멤버 [[김재중]]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연]]과 김기복 매라고 불릴 정도로 친하며, 그 외 [[소녀시대]] 멤버들과도 친하다. 전 멤버였던 [[제시카(가수)|제시카]]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현재는 서로 언급이 없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4가지쇼]] 김희철 편에서 소녀시대가 출연했을 때는 김희철에 대해 '싹바가지', '미친사람', '정신나감' 등이라고 표현하며 가식없이 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밖에도 소속사 후배 그룹인 [[EXO]], [[레드벨벳]], [[NCT]]와 허물 없이 지낼 정도로 잘 챙겨주며[* [[NCT]] 멤버 [[태용]]에게 게임용 컴퓨터를 사줄 정도로 허물없이 잘 챙겨준다], [[카라(아이돌)|카라]]의 [[구하라]]와 [[EXID]]의 [[하니(EXID)|하니]],[* 팬들은 이 두 사람을 희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사실 희매는 시리즈가 있는데, 1기는 김희철과 그의 누나 김희진을 합쳐 희매, 2기는 데뷔 초 박희본과의 라디오 케미를 합쳐 희매, 3기가 바로 EXID와 하니와의 케미인 희매다.] [[윤보라]]와도 친하다. 또한 [[김신영]], [[AOA(아이돌)|AOA]] 멤버인 [[지민(AOA)|지민]] , [[설현]] 셋과 자주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일명 '신김치파'. 2018년 6월 2일자 아는 형님 방영분에 따르면 희철이 하도 모임 참여를 안 해서 탈퇴 직전이라고 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 1화 참조.
         데뷔 초에는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배우들과도 인맥을 쌓았는데 대표적으로 [[김명민]]과 [[여운계]]. 특히 여운계가 별세했을 때 김희철이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또한 예능 멤버인 만큼 [[신동엽]], [[유재석]], [[정선희]] 등과도 친분이 있어서 [[정선희]]의 편 [[안재환]]이 사망했을 때 2번씩 조문을 온 적도 있다. [[신정환]]과도 친하다. 신정환과 첫 방송을 같이 한 인연 때문에 친분을 유지했고 2018년 신정환이 복귀 방송으로 [[아는 형님]]에 출연하자 필리핀 뎅귀 드립으로 철저히 농락했다(...)
         2014년 초부터는 [[홍진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홍진호의 라디오 출연 중 전화를 걸어서 반말을 까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물론 방송용으로 만들어낸 친분이 아니라 이전부터 같이 밥도 먹고 하던 사이였던 듯. 사실 홍진호와 김희철이 같은 동네의 주민이라는 것이 [[나 혼자 산다]]에서 홍진호가 게스트로 출연한 화에서 밝혀졌다. 또한 [[이두희]]와도 친분이 있는 듯. 인스타그램에는 홍진호 이두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여자한테 인기 없는 게임만 하는 오타쿠 셋이 모여'라는 멘트를 기기도. 근데, 홍진호는 라디오에서 [[태연]]을 소개 받기 위해서 김희철을 더 만난다고 폭로했다.[* 물론 진심은 아닌 것이, 김희철은 과거 서로의 만 주선을 해달라는 사람과의 인연은 바로 끊는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래서 [[박초아]]의 열애설 당시, 열애설 상대를 희철이 중개해줬다는 추측성 기사 내용에 심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이 시기,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의 재혼 드립이 언급 됐을 때, "그럼 그 소개는 내가 해주는 거네? 이런 젠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 기사 때문에 분노한 거다(...)]
         또 2017년 인생술집에서 MC를 맡으면서 [[궁민]]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우주대스타의 인맥이 추가되었다고 기사에 뜨기도 했다.
         미소년 이미지의 대표 주자답게 [[여장]]이 잘 어울린다. [[2009년]] [[11월]]부터 [[12월]]까지 열린 슈퍼주니어의 두번째 투어 [[SUPER SHOW 2]]에서는 아예 여장을 하고 나온 부분도 있어, 뭇 여성들과 일부 성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010년 연예가 중계 '[[김생민]]의 베스트' 에서 여자보다 예쁜 자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1년 6월 11일 'SMTOWN LIVE WORLD TOUR in PARIS' 공연에서 레이디희희로 또 한 번 분장했다. 여장자 기믹을 국제적으로도 밀 생각? 이제는 본인도 적당히 즐기는 듯하다.
         웹툰 [[아이돌 연구소]]에 단독으로 출연하는 우주대스타 특집 1편에서 밝힌 바로는, 수술 직전까지도 농담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농담을 기억 못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으며,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수술 끝에 겨우 생명을 건졌으나, 다리를 절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점점 다리가 안 좋아지고 있어요. 어쩌면 다음 활동부터는 춤을 못 출지도 모르겠어요."라고 언급했다.[* '제 슬픔은 저만 알면 되는거니까.', '저 빼고 활동하라고 했어요. 팀에 피해주기 싫었거든요.', '저보다 아픈 분들도 훨씬 더 많을 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단 얘기 하면 안될 거 같았어요.' 라며 부상 와중에도 자신보다 을 더욱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 울릉군 . . . . 42회 일치
         ||<bgcolor=#01A9DB> {{{#FFFFFF '''도의원'''}}} ||<bgcolor=#CEECF5> 진복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 ||
         ||<bgcolor=#01A9DB> {{{#FFFFFF '''국회의원'''}}} [br] [[포항시 구·울릉군|{{{#FFFFFF {{{-1 (구·'''울릉군''')}}}}}}]] ||<bgcolor=#CEECF5> [[박명재]] ([[자유한국당|{{{#C9151E '''자유한국당'''}}}]])[br]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경상북도]]의 군.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이자 경북 유일의 섬으로만 이뤄진 지자체다. 심지어 멀리 [[동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오히려 강원도에 가까워 보이지만,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곳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이다(130.3km). 다만 울진은 1962년에 [[경상북도]]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고 울릉도 자체도 1906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06년 13도 분도 후에 뜬금없이 '''[[경상도]]'''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에서야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구(포항)|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상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상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뭍과 떨어진 지역이지만 의외로 [[청동기]]시대 유적이 확인될 정도로 사람이 산 역사가 깊다. 나리분지의 나리마을에는 청동기시대(BC 1000~300년)와 철기시대 전기(BC 300~1년) 고인돌 형태의 흔적(지석묘, 무문토기,갈돌, 갈판)이 아있다.
         [[조선]] 시대 때 [[왜구]]가 많이 습격하자 조정에선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을 하기도 했지만 [[안용복]]의 활약으로 1696년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막부는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했다([[http://anyongbok.kr/ahn/ahn_01.php|안용복 재단]] 참조). 그 후 19세기 고종 시절에 울릉도를 개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전, 경 지역 도서민을 이주시켜 다시 유인도가 되었다.
         광복과 함께 [[38선]] 이지역이 되면서 한령이 되었다. [[6.25 전쟁]], 북 분단에 이르는 격변기에는 매우 드물게 참화를 비껴갔다. 옛부터 주변에서 별로 간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 지냈기 때문에 이념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육지와 워낙 거리가 멀리 떨어진지라 6.25 전쟁조차도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다.[* 어떤 위키러가 들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물자를 실은 배가 들어오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육지에서 전쟁이 났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넓이가 지나치게 넓어 사람도 많이 몰린 [[제주특별자치도]], 한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백령도]], [[연평도]]의 안습한 역사와 비교해보자(…). 마찬가지로 육지와 꽤 멀리 떨어진 가거도도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그러므로 종속국의 역사와 행보가 떨어진 섬이라는 점에서는 [[대만]], [[오키나와]]와도 비슷하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부와 충청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울릉군 육지 치안은 울릉경찰서가 관장하고 있으며 소방서는 없지만 포항 구를 관할하는 포항부소방서[* 포항시청에서 관할하는 게 아니고 경상북도청의 경북소방본부에서 예산이 내려오는 형태이다.] 휘하의 울릉119안전센터가 사실상 울릉도 소방을 책임지고 있다. 보건소의 경우 울릉보건의료원이 관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일제강점기]] 때 도동이 일본인 마을로 통했다면 저동은 조선인 마을로 통했다는 점. 실제로 도동에는 아직도 일본식 건축물이 약간 아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으로 울릉도를 방문했을때[* 이후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였다.], 묵고 갔다던 당시 울릉군수 관사도 일본식 건물이다.
         그밖에 사동이나 양, 현포, 태하, 천부 등의 조그만 마을들이 있다. 사동은 신항만이 들어선다고. 사동 옆에 울릉도민들의 숙원이라고 하는 [[울릉공항]] 건설이 계획되어 있다. 대부분이 가파른 산인 울릉도에는 1,500m 이상의 활주로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없지만 바다에 두꺼운 [[방파제]]를 만들어 이 곳을 활주로로 쓰자는 안이다. 울릉도에 공항이 생기면 [[서울특별시]]나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같이 먼 거리에 사는 관광객들이 1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긴 하다. 현재는 버스+배로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7시간 가량 걸린다. 허나, 깊은 동해 위에 활주로를 세운다는 건 돈이 많이 들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울릉도에서 기항이 가능한 일수가 적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 {{{#C9151E '''포항 구·울릉'''[* 지역구 국회의원 : [[박명재]]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 ||<:>21.88%||<:><bgcolor=#C9151E>{{{#FFFFFF 46.80%}}}||<:>16.20%||<:>9.12%||<:>5.44%||<:>{{{#696969 ▼24.92}}}||<:> 73.09 ||
         [[자유한국당]]의 텃밭[* 사실 강원도도 군인 인구가 많고, 높은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그들과 접하기 쉬운 환경특성상 ~~안보팔이가 잘 먹혀서~~ 준텃밭에 해당한다. 다만, 도지사나 교육감 등 도 단위 선거에서는 영서와 영동간 갈등, 강릉,춘천,원주의 자존심싸움 등으로 변수가 만들어진다.]인 [[경북]] 및 다수의 영지역의 특성상 이 곳에서도 예외없이 자유한국당의 텃밭에 포함되어 있다. 경북 본토도 그렇지만 이 지역도 경북 지역에 속하는 영향 때문에 국회의원 출신정당이 대부분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선거구가 [[포항]] 구와 묶여서 포항 , 울릉 선거구에 속하기 때문에 포항 구 지역과 함께 자유한국당의 밭으로 불리고 있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유세도 못 한다~~
         |||| 영일군-울릉군 ||<-6> 포항시 구-울릉군 ||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약한 제주도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해안, 섬 지역은 선교사의 포교가 용이한 관계로 기독교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 곳 역시 [[불교]]가 초강세인 영권에 있음에도 유일하게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곳이기도 하다. [[포항시|포항]]이나 [[거제시|거제]] 역시 영권에서는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편이지만, 울릉군의 개신교 강세를 따라잡을 수준이 안된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주민의 47%가 [[개신교]] 신자로, 33%인 [[불교]] 신자 비율을 상회한다. 물론 영도 대도시는 [[천주교]] 및 [[개신교]] 교세가 꽤 큰 편이라 이상할 건 없다. 당장 [[부산광역시]]에는 초대형 교회도 여럿 있고 [[대구광역시]]를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는 무려 대교구([[천주교 대구대교구]])이며 [[부산]]에서 WCC총회도 열린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제주도처럼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흔히 제주도처럼 울릉도만의 독자적인 사투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울릉도는 조선시대 공도 정책으로 사람들을 육지로 이주시켜 오랜 세월 무인도에 가까웠고, 오늘날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 [[고종황제]] 시대 이후 이주민들이라 조상 대대로 울릉도에서 살아온 건 아니라서 울릉도만의 사투리는 없다. 다만 이주민들 대부분이 경북출신 특히 [[경주시]], 영일([[포항시]]) 출신이 많아서 경북 사투리가 많이 아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도동과 저동을 잇는 해안 산책길이며, 사동 방향으로도 일부 이어져 있다.(이쪽은 2011년 8월 현재 수리중) ''''산책길' 치고는 상당히 험악한 길'''인데, 바로 옆에 강한 파도가 산책길을 강습하고, 많은 다리들은 투명다리[* 길가 하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쇠살 뚜껑을 얹어놓았다! 물론 난간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만.]라서 밑에 시퍼런 바다가 보이고, 중간에 60m 가량의 나선형 계단도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동굴]]도 있고, 등대도 있고, 기기괴계한 암석 및 절벽들과, 바로 옆에는 아름답고 어떨 때는 두려움도 느낄 수 있는 거친 바다도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관광코스라고 한다. 늦은 걸음으로 90분 가량 걸린다고. 참고로 위의 사진에서 마을이 살짝 보이는데 그 마을이 바로 저동. 2015년 9월 현재 행등대~저동 구간은 태풍 고니가 박살내서 지날 수 없다. 저동까지 가고 싶은 관광객은 저동 옛길이라는 험한 산길로 가야한다.
          * 옛 일본인 가옥(이영관가옥)-등록문화재 235호. 도동항 골목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 벌목업자가 지은 집이라고 하고, 입구에서는 까페라떼(...)와 쿠키 등을 판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건축양식([[일본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을 바로 구경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으니, 배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 지 않았다면 살짝 들러볼 법하다.
          * 울릉자생식물원-사동항 주변에 위치한,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모아놓은 식물원으로 무료입장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사동항으로 출입하는데 배 시간이 많이 아있으면 잠깐 들를 만한 곳이다.
          * [[우데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서만 보이는 가옥 형태로, 마치 유목민의 천막집처럼 가옥 사방에 짚을 엮은 거적으로 된 벽을 둘러친다. [[바다]] 한복판에 있어 [[겨울]]에 [[눈(날씨)|눈]]이 엄청나게 내리는(강수량의 2/5가 눈이다!) 울릉도 환경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울릉도에서도 과거의 유산이 되어 이 형태가 딱 2채만 문화재로 아있다.
  • 정웅인 . . . . 42회 일치
          | 형제자매 = 동생 (1978년생)
         [[대구광역시]] [[달서구|경상북도 달서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출생이며 [[부산광역시|부산]]과 [[전라도]] [[담양군|전라도 고흥군]]과 [[담양군|전라도 담양군]]에서 성장하였고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4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1년 후 1995년 [[영화]] 《[[리허설 (영화)|리허설]]》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영화 배우|영화배우]]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96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1년 후 1997년 [[서울방송|SBS 서울방송]]《천일야화》의 단역 출연으로 정식 [[배우|연기자]] 데뷔하였다.
         정웅인은 1971년 1월 20일에 [[대구광역시]] [[달서구|경상북도 달서구]]에서 1 1녀 중 장으로 출생하였다. 재학 시절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가 연기를 접한<ref>{{뉴스 인용
         유웅인은 [[2005년 3월]] 대학 동기 결혼식에 참석해 현재의 아내이자 12살 연하의 당시 대학생이던 이지인씨와 첫 만을 가졌고,<ref>{{뉴스 인용
         |제목= '힐링캠프' 유웅인, 12살 연하 아내와의 운명적인 첫 만은? |url=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80572497 |출판사=한국경제|날짜= 2014-08-05 }}</ref><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아내 “편 첫인상? 비호감이었다… 은근슬쩍 번호 따가” |url=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arcid=0008565006&code=41181711&cp=nv |출판사=국민일보|날짜= 2014-08-05 }}</ref><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아내 이지인, "자랑스럽다"던 편 말과는 달리 '경북대 퀸카' 미모 |url= http://stari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164406606184368 |출판사=이데일리|날짜= 2014-08-05 }}</ref> 연인관계로 발전하여 1년간의 열애 끝에 [[2006년]] [[6월 3일]] 결혼식을 올렸다.<ref>{{뉴스 인용
         |align="center"| 《[[세자 2009]]》
         |align="center"| 마수 역
         |align="center"| 맞선
         |align="center"| 《[[잘못된 만]]》
         |align="center"| 눈길
         |align="center"| 단 1 역
         |align="center"|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외 대구, 부산, <br >화성, 수원, 안산, 성, 이천, 안양, 제주, 동해 공연
         * 2009년 9월 3일 [[KBS2]] 《해피투게더 시즌3 - 113회》 ... 세자 스페셜
         * 2009년 1월 12일 [[MBC]] 《신년특집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 의리녀 스페셜
         |제목= 유웅인 딸 정세윤의 다른 '끼', 해지스키즈 뮤즈 발탁 |url= http://kizmom.hankyung.com/kids/apps/news.sub_view?popup=0&nid=01&c1=01&c2=01&c3=00&nkey=201407301514111 |출판사=키즈맘|날짜= 2014-07-30 }}</ref>
         | 자 신인상
         | 특별기획부문 자 조연상
         | 자 조연상
  • 킹덤/526화 . . . . 42회 일치
          * [[왕분]]은 [[마자]]를 상대로도 놀라운 기량을 펼치며 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그의 창술은 이미 위화룡 [[자백(킹덤)|자백]]에 필적, 그 이상의 경지.
          * 마자는 퇴각할 시점이 다가오는 데다 왕분의 창술까지 놀라운 수준이라 내심 당황하나 아직 제대로 철추를 먹여주지 못했다며 굴하지 않고 맞선다.
          * 마자가 불시에 창을 내던져 왕분의 헛점을 유도고 맨손으로 그를 낚아채 말에서 떨어뜨리며 육박전으로 유도한다. 이 변칙적인 공격으로 마자가 우세해진다.
          * 그러나 곧바로 나타난 [[아광]]에 의해 왕분과의 승부는 중단, 마자는 그의 기습을 받았으면서도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친다.
          * 아광은 마자가 도망도 치지 못할 거라 하나 전황이 급변, 마자군의 2진이 합류하고 [[악영]]군이 전열을 정비하며 상황이 크게 변한다.
          * [[왕분]]의 창이 뱀의 혀처럼 유연하게 날아들었다. [[마자]]는 변화무쌍하게 닥쳐오는 왕분의 창을 가까스로 막았다. 한 번 공격을 허용하자 왕분의 공세는 파도처럼 밀려들어서 마자가 공격할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화려한 창솜씨에 적과 아군 구분 없이 시선을 빼앗긴다.
          * 마침내 왕분이 크게 지르자 마자의 거구가 휘청이며 크게 물러난다. 진군 진영을 무인지경으로 휘저어왔던 마자의 무예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 설마했던 마자의 고전. 그의 부하들이 호들갑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자는 곧 자세를 고쳐잡으며 부하들의 수선을 물리쳤다. 여전한 자신이 엿보였다. 아직 자신은 한 방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로써도 한 가지는 인정했다. 이 창잡이, 왕분 같은 자는 처음이다. 보고로 들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 무예는 더욱 놀랄만했다. 마자가 그저 창을 들어오기만 해도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든 속사가 날아들었다. 왕분은 마자가 간격을 잡지 못하게 철통같이 견제하고 있었다. 이것도 조금 더 겨루다 보면 눈에 익을 것이고, 그럼 어떻게든 해볼 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시간. 부하가 시간이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있는 곳은 적진 한 복판. 오래 시간을 끌 수록 불리해지는게 당연하다. 부하들이 잇따라 철수를 진언했다. 그렇다면 마자가 여기서 승부를 접고 돌아갈 것인가?
          >이놈에게는 아직 이 마자의
          마자가 노성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왕분이 한 수 빠른 견제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우가 달랐다. 마자는 자신의 창을 왕분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 왕분이 그정도로 당황할 장수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창을 쳐내는 순간, 마자가 그때를 노렸다. 그의 손이 왕분의 팔을 낚아챘다. 예상 밖의 실책. 반양이 경악하고 왕분 또한 당황한 기색이다.
          * 마자는 왕분을 붙잡은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 육중한 무게에 왕분이 말에서 끌어내려졌다. 마자는 왕분의 몸 위로 덮치며 떨어지는 힘을 실어 머리를 내리쳤다. 간발의 차. 왕분이 고개를 뺐다. 그러나 창을 놓친 데다 마자의 밑에 깔렸다.
          * 왕분도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땅바닥을 때린 마자의 팔을 휘감아 부러뜨리려 했지만 마자가 금새 뿌리쳤다. 멀찍이 밀쳐진 왕분. 마자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도 대응한데다 자신의 주먹까지 피한 것에 감탄한다.
          왕분이 자세를 고쳐 일어났다. 하지만 마자에겐 다시 창이 주어졌다. 그의 부하가 눈치 빠르게 창을 던져준 것이다. 그러나 마자의 창이 향한 곳은 왕분 쪽이 아니다. 자신의 배후, 육박해 오는 [[아광]]을 향해서였다.
          * 소수 기마를 이끌고 마자를 요격하러 왔던 아광이었다. 짧은 순간 두 장군의 눈빛이 부딪힌다. 창도 부딪힌다. 힘과 힘의 격돌. 말에 탄 아광의 창에도 마자는 밀려나지 않았다. 마자를 스쳐가는 아광. 짧은 교전이었지만 마자의 창에, 그 손에 짜릿한 손맛이 아있다.
          마자의 그 말을 듣는 아광의 손아귀 또한 쩌릿한 감각이 아있었다.
          * 마자의 부하들이 서둘러 그를 둘러쌌다. 이젠 정말 물러나야 할 시간이다. 마자 또한 강자 둘을 상대로 데려온 병력이 너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퇴각할 기색을 보이자 아광은 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거 같냐고 쏘아붙였다. 그 동안 왕분은 반양의 도움으로 다시 말에 올랐다.
          아광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마자는 이 상황을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데서 자신의 목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받아쳤다. 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왕분은 곧 아군의 후방을 들이치는 조군의 대병력을 발견했다. 마자는 사전에 군을 두 갈래로 나눴다. 자신과 함께 아광군의 측면을 요격한 1진과 아광군 2진을 견제하러 보낸 2진. 그 2진이 지금 돌아오고 있었다.
          * 여전히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전장을 관망하던 [[조아룡]]은 그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자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아광과 왕분에게 "지나치게 뭉쳤다"고 훈수하며 조군에 장수가 자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조군이 다시 힘을 받고 있었다. 마자를 잡자고 아광과 왕분이라는 두 지휘관이 모두 집중된 게 틈이 됐다. 시간을 번 [[악영]]이 성공적으로 자군을 수습, 다시 대형을 갖춰 아광군에 들이쳤다. 그런데 정작 아광은 일선에 있지 않았으니 힘의 균형이 맞을 리 없었다. 전열이 위태로운 와중에 뒤에서는 마자 2진까지 몰려오는 상황. 위기는 진군 쪽이었다.
  • 이정재(영화배우) . . . . 40회 일치
         ||<-5><#002266><:> {{{#white '''우주연상'''}}} ||
         ||<:><#4C4C4C>'''{{{#FFFFFF 성별}}}'''||[[성]] ||
         1999년 제1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우주연상, 1999년 [[청룡영화상]] 우주연상, 2006년 제29회 황금촬영상 연기대상, 2013년 제34회 청룡영화상 우조연상, 2014년 제5회 올해의 영화상 우조연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으며,[* 자세한 것은 수상 경력 항목 참고.] 2007년 3월 [[국가정보원]] 명예요원,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장동건]]과 더불어 유이하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 전에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청춘스타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백재희'역을 맡아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폭풍 스타가 되었다. 사실 당시의 이정재는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시망]]인지라 그냥 말을 안 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 뒤에서 묵묵히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모습이 더 멋졌던 것. 주인공인 [[최민수]]나 [[박상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힐링캠프]]에서 언급하길 당시 극성 팬들은 집까지 찾아오고 사인회를 하면 그 일대가 완전히 마비되었다고 한다.] 전국 검도장이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보고 온 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 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의 이상형 1위가 되었고 방영이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도 각종 매체에서의 보디가드 역은 백재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후1994년 12월 23일에 [[입대]]하여 52사단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6년 6월에 제대했으며, 개그맨 [[유재석]]과 군대 동기다. 유재석이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으며 힐링캠프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했다.[[https://youtu.be/W31NK0EW17s|#]] 입대 이후에는 군대에서도 여러 국방홍보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외에도 배창호 감독의 《젊은 자》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거의 [[대한민국]] 최초로 자의 '[[몸짱]]'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상반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난 영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게 젊은 여성 팬들에 의해 감상/보관용으로 뜯겨나가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녀]]》에서도 재현되는 그 근육.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절친 [[정우성]]과 연예계 입문 테크가 같다.] 그리고 그 후 93년에 출연한 롯데 [[크런키]] 초콜릿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4MKFjzJ2Q|나만의음악]]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릿 광고 덕분이라고. 사실 같은 해에 롯데 초콜릿 다른 제품인 [[가나초콜릿]] 광고도 찍었지만 크런키 쪽이 더 인상에 강하게 은편. [[https://www.youtube.com/watch?v=trE8bqdhYfA|가나 초콜릿 광고]]
         이러면서 《젊은 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상).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비판받았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이른바 '마지막 방위' 세대다. 같은 날 방위병으로 입대한 다른 동기로 좌회전의 리더였던 [[김진(배우)|김진]](복무를 마친 후 연기자로 전향), [[투투(가수)|투투]]의 멤버였던 유현재 등이 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배우이길 떠나 자신이 영화를 찍어보려고도 해보고 나름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상당히 진지하다고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다소 평이 엇갈린다. 몇몇 영화에선 굉장한 열연을 해보이긴 하지만 일상적인 연기를 맡기면 어색한 티가 많이 난다는 편.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데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래의 다른 연기자들([[장동건]], [[정우성]])에 비해 다양한 역을 소화하기에 보다 적합한 비주얼이고 그래서 하나의 색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색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에도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되지 않고 야망을 가진 청춘, 고뇌하는 형사, 야비한 도둑, 성적 판타지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 언더커버 경찰, 속물 주인집 자, 두 얼굴의 독립군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그 자신도 '캐릭터 수집'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이 메리트라면 메리트. 사실 《[[하녀]]》 이전에는 조금 주춤한 것 아니냐는 평이 대세였으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더 다양해진 영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분출하는 연기보다는 안으로 흡수하는 연기를 더 잘 한다.
         진짜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90년대 말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를 찍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여태까지 맡았던 캐릭터들과 많이 다른 쌈마이 역할이었고 영화 자체도 다소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이후 정우성과는 평생을 같이 하는 친구사이가 된다. 이 영화로 1999년 [[청룡영화제]] 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 [[한석규]], [[박중훈]], [[최민수]]와 함께 쟁쟁한 배우들. 이 때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청룡영화상 한정이고, 전체 영화상을 따지만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우주연상을 수상한 [[홍경인]]이 최연소 수상자이며, 이 기록은 안깨지는 중.]
         우습게도 청룡영화상의 저주인양 거의 10년간 암흑기가 지속된다. 물론 이영애랑 작품했던 선물도 잘되고[* 무려 [[김태희]]가 이영애의 아역으로 나온 영화다] 태양은 없다의 홍기역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 브라더스]]는 [[이범수]]와 함께하면서 잘된작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둘다 아주 크게 대박난 작품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 동안에도 활동을 활발히 했다. 물론 90년대 중후반에 비해서 줄어들긴 했지만 꽤나 많은 일을 했는데 청룡영화상을 받은 해에 개봉했던 [[이재수의 난]]은 배우들 모두가 고생은 고생대로 했음에도 흥행 참패. 당대의 여배우였던 [[심은하]]의 은퇴작 인터뷰도 망했다. 장진영과 함께한 오버더레인보우, 이미연과 함께한 [[흑수선]], 곽경택 감독이 천만을 노리고 [[장동건]], 이정재를 캐스팅해 만들었던 [[태풍]]은 대대적인 홍보 및 밀어주기까지 했으나 500만에 그쳤다. 문제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한 작품이라 500만도 적자였다는 것. 이 후 [[에어시티]]로 복귀하면서 드라마에서라도 재기를 꿈꿨으나 [[최지우]]-[[이진욱]]만 연결해주고 끝났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감독이 각잡고 만든 [[트리플]]에 출연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망했다. 1999년 청룡영화상 우주연사의 이정재는 흥행부도수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는 거의 퇴물급의 배우가 되어갔다.
         배우 본인은 이 역할을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등을 시청하면서 극중 '[[이리]]'의 상이라 표현되는 [[수양대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정재에게 [[관상(영화)|관상]] 시나리오가 온 것은 2012년 여름에 부산에서 [[신세계(영화)|신세계]]를 촬영할 때였는데, 그 때 감독이 직접 찾아와 대본을 전했다고. 처음에는 더 센 이미지의 자 배우가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하녀]]의 고훈 캐릭터에서 배어나온 기품과 카리스마를 원한다는 감독의 설득에 결국 역을 맡게 된다. 결과는 대박. 배우 본인의 아버지까지 네가 무슨 [[수양대군]] 이미지를 갖고 있냐면서 말렸다는데, 결국엔 역사상 최고로 섹시한 [[수양대군]]이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연기력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 2013년 9월 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정재를 위한 특별전이 열렸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은 여러번 있었지만 4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배우를 대상으로 한 특별전은 이정재가 처음. 주제는 '''"영원한 젊은 자 이정재"'''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두 번의 팬미팅을 가진 적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팬미팅 류의 행사를 한 적이 없다.] 행사의 공식명은 GV, 즉 관객들과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심도 깊은 자리였으나, 곧 400여명이 함께한 팬미팅으로 변질 되었다. 약 한시간 반 동안 팬들과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노래도 부르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즉석에서 걸어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걸어도 주는 등 팬미팅을 방불케 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정재]]가 직접 준비한 클레이 비누를 일일이 팬들에게 선물해 주면서 포옹을 해 준 것''' 준비한 선물보다 사람들 수가 더 많아서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에게 포옹을 해주었으니,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꿈 같은 1시간 반이었다. 관객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다 보니 400여명과 포옹이 끝난 후 이정재의 수트 상의 한쪽 부분이 온갖 화장품으로 범벅이 되어 하얗게 색이 변해 있었다. 여담으로 당시 [[신세계(영화)|신세계]]와 [[관상(영화)|관상]] 개봉으로 이정재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라 표 구하는 게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전날부터 밤샌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새벽 5시에 나온 사람들도 10등안에 들지 못했을 정도. 12시에 온 사람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 측도 이런 진풍경은 처음이라며 매우 놀라워 했다. 항간에 들리는 바로는 옆건물인 CJ E&M 사옥의 (엠카 보러 온) 줄보다 길었다고 하니... 본격 40대 아이돌 탄생.
          * 말끔하고 잘생긴 외모로 연기력에 종종 오해를 받는 배우 중 하나다. 범죄자나 사기꾼, 사채업자, 배신자역할의 연기에서 쿨한 외모와 달리 진가를 보이는 배우로 그가 이런 역할만 맡았다 하면 최소 중박은 치거나 상을 탔다. 그가 처음으로 사채업자 연기를 했던 [[태양은 없다]]에서 그는 생애 최초 최연소 우주연상을 탄다. 오 브라더스에서도 사채업자를 맡아서 당시 명절 특수를 타긴했지만 중박을 쳤고, 도둑들에선 도둑놈역할로 천만배우까지 되었다.
         2번 적발됐다. 첫 번째 음주운전은 1999년 9월 13일, 자신의 [[자동차]]인 [[BMW]]를 혈중 알코올 농도 0.222%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당시 23살 여성(회사원) 송모씨가 타고 있는 [[마티즈]] 옆 부분을 들이 박은 것이다. 당시 동료배우 정모씨와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었고, 이씨는 사고 직후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운전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출동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정재는 경찰에서 "내가 운전하지 않고 매니저가 대신했다"라고 혐의 사실을 부인을 했었다. ~~[[강정호|17년 뒤 똑같은 수법을 쓴 메이저리거가 등장하는데...]]~~ 경찰서에서는 시인하였다고 한다. 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구속 입건 및 면허 취소가 되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400209122009&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9-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4301&publishType=00010#|기사]] 그리고 첫 번째 음주 운전 사고가 난 3년 뒤 또 한 번 2002년 7월 22일 [[강구]] 청담동 청담초등학교앞에서 음주단속 중인 경찰에게 적발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47301|기사]]
         ||1994||젊은 자||주연||72,347명|| ||
         ||1994||KBS||자는 외로워||주연||재정||
         ||2015||제24회 부일영화상 우주연상||암살||
         ||2014||제5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자 조연상||관상||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38회 일치
         맥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환청과 자신이 모나와 사랑을 나누는 환각에 시달리며 수술실에 도착한다. 수술실에는 한 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이를 본 맥스는 베레타를 뽑아들고 자를 조사하지만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때, 무장한 성 하나가 맥스는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말을 하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온다. 맥스는 그와 싸움을 벌여 쏴 죽인다.
         맥스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곳에는 [[짐 브라부라]]가 있었다. 브라부라는 맥스가 한 여성을 죽였다며 따지기 시작하지만, 무장한 자들의 공격에 쓰러지고 만다. 무장한 자는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도망치려고 하는 맥스에게 기관단총을 퍼붓지만, 근처에 있던 가스통 하나에 불을 붙이는 결과만을 낳게 된다.
          * 수술실 밖을 나가서 보이는 대기실 TV에서 드라마인 "주소지 불명"을 방영 중이다. 애인을 죽인연쇄살인범인 '존 미라"를 쫓는 자의 이야기인데, 방영되는 분량에서는 정신병원에 끌려간 주인공이 의사들에게 애인을 살해한 정신병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
         계단 끝의 문 너머에는 검시실이 있었다. 모나 색스가 나타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블라디미르 렘]]이 그의 애인에게 긴 메시지였다. 순간 사이렌이 울린다. 윈터슨과 모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 A동 305호의 할머니는 맥스를 보고 산탄총이 하나 으니 줄 수 있다고 한다. 할머니한테 상호작용키로 말을 걸면 집 안의 옷장을 열어주신다. 옷장 안에는 산탄총 한 정과 산탄총 탄약 한 상자가 들어있다.
          * A동에서 B동으로 건너가던 도중 들리는 집 TV에서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천한 신분의 여자와 귀족 자의 러브스토리인데, 여자는 자와 같이 있는걸 들키면 자의 평판이 떨어질거라 생각해 자를 뿌리치고 도망친다.
         맥스는 문이 열리지 않아 화재가 발생한 3층 복도에 갇힌 자를 발견한다. 맥스의 도움으로 구출된 그 자는 노숙자였다. 그는 맥스를 보자 자신도 한때 경찰이었지만 아내가 떠난 후 술독에 빠져 해임되었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맥스는 노숙자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간다.
         맥스는 형사로써의 일 보다도 모나가 신경 쓰였다. 맥스는 모나가 경찰서에 기고 간 전화번호[* 모나의 말에 따르면 추적하면 홍콩으로 나온게 했다고.]로 전화를 한다. 그녀는 맥스에게 자신의 은신처 주소를 알려주고는 찾아오게 한다.
          * 모나의 방 TV에서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자 주인공 "발렌타인"의 형인 "잭"이 나타나 발렌타인과 대화를 나눈다. 발렌타인과 만나는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는 잭이 발렌타인을 위협하자 발렌타인을 그 자리를 떠버린다.
         맥스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소부들을 해치우고 그 건넛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도 이미 청소부들의 습격을 받은 뒤였다. 맥스는 모나의 지령대로 발코니로 나와 차양을 타고 밑집 발코니(28층)로 옮겨간다. 그 집도 청소부의 습격을 받은 집이었다. 그 집에서 증거인멸 작업을 하던 청소부들을 모두 해치운 맥스는 한 자가 집에서 도망치려다가 청소부들에게 죽는 광경을 보게된다. 맥스는 그 자가 살던 집을 통해 28층에서 27층으로 내려간다.
         취조실에서는 윈터슨이 모나를 포함한 용의자들을 세워놓고 목격자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목격자는 회색 점프슈트 입은 자들에 대해 물어보지만 윈터슨은 그건 보기에 없다며 묵살. 자는 모나를 현장에서 봤다고 말한다. 윈터슨은 맥스에게 자신은 맥스를 도우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는 말을 기며 가버린다. 맥스가 서류 작업을 기다리던 목격자에게 다른거 본 적 있냐고 물어보자, 목격자는 현장이 회색 점프슈트를 입은 청소부들로 가득했는데 청소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며, 점프슈트 입은 자들과 여자가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증언을 한다.
         맥스는 지하층 유치장에 갇힌 모나를 찾아간다. 모나는 여기 갇혀있다간 죽을거라며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지만 맥스는 유치장 속이 더 안전할 것이라며 거부한다. 그러자 모나는 [[알프레드 우든]]에게 전화하면 다 알려줄 거라고 말한다. 맥스는 유치장 밖으로 나가 우든에게 전화를 건다. 우든이 부재중이자 말할 게 있다며 메시지를 긴다.
          * 2층에 있는 rec room(recreation room, 오락실) TV에서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주인공 발렌타인의 형 잭이 발렌타인을 비천한 신분의 여주인공과 만나는 걸 막지 못했다고 어머니께 보고한다. 어머니는 잭에게 여주인공의 집을 습격해 그녀를 죽이라고 지시한다.
          * 취조실에서 나와 윈터슨과 대화한 후 경찰 테이블을 살펴보면 발키리에 중독된 상태에서 자신의 아내와 불륜관계의 우편배달부를 총으로 쏘고 그 중 하나는 전기톱으로 토막내 욕조에 담아둔 혐의로 구속된 자가 있다. 자기가 너무 알았기에 그들이 날 제거하려고 모함한거다, 그들이 날 죽이려고 했기에 정당방위였다, 이 일 뒤에는 뭔가 커다란게 있다라고 횡설수설.
          * 1층으로 내려가면 일도 안하고 하루종일 딕 저스티스 비디오 게임만 하는 자친구를 신고하러 온 여자가 있다. 빡친 여자가 TV를 창문 밖으로 내던지니 여자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나 뭐라나. 이 신고를 접수한 경찰에게 말을 걸면 "들었어? 총이 사람을 죽이는게 아냐. 비디오 게임이 사람을 죽이는거지. 맙소사, 여기가 뉴욕이야,"라는 말을 한다.
         건물을 올라가던 맥스는 청소부들이 아닌 검은 복장의 자들과 싸우게 된다. 맥스는 바닥에 너질러진 청소회사 제복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이들은 더이상 위장할 필요가 없어진 청소부들이었다.
         경비실에 도착한 맥스는 병원 CCTV를 확인한다. 다행히 [[짐 브라부라]]는 살아아 수술을 받고 있었다. 맥스는 브라부라가 "죽기에는 너무 완고하다"[* Too Stubborn to Die]고 평한 후, 자신은 청소부들을 피해 도망쳐야겠다고 한다.
          * 엘리베이터 근처에 있는 TV에서 "로드 앤 레이디스"가 방영되고 있다.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주인공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신의 형과 결투를 벌인다. 여주인공의 애원에도 계속되던 결투는 결국 주인공이 자신의 형을 찔러 죽이며 끝난다.
         전화 메시지를 통해 겨진 윈터슨의 말은 맥스의 죄책감을 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심화시킬 뿐이었다. 맥스는 블라드를 만나기 위해 [[비니 고그니티]]의 집으로 향했다.
          * 지하주차장의 TV에서는 "로드 앤 레이디즈"가 방영되고 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주인공에게 독을 탄 와인을 먹여 죽이려고 하지만 주인공이 대신 마시고 쓰러진다. 주인공이 쓰러지며 화재가 발생하자 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도망가게 한 후 자신의 어머니를 붙잡아 함께 죽는다.
  • 이민호(1987) . . . . 38회 일치
         [[꽃보다 자(KBS)|꽃보다 자 한국판 드라마]]에서 [[F4]] 중 구준표를 맡아 일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대한민국]]의 [[배우]]. 2009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주목받는 자배우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로 신세대 한류 스타들 중 가장 주목받는 배우들 중 하나다.
         반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영]]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영]],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영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영]]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반올림(드라마)|반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영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영]]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영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중 KBS의 [[꽃보다 자(KBS)|꽃보다 자의 한국판]]에서 주인공 구준표역할에 발탁. 특유의 소라빵 머리와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시청률 대박을 치게되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떠오르는 청춘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이때의 인기는 상당해서 대부분의 예능, 코미디 프로에서 특유의 소라빵머리를 하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한명씩은 꼭 있었다. 아시아 3국의 꽃보다자 캐스팅중에서 일본인들이 꼽은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드라마로 이민호는 5년간의 무명 세월을 마감하고 톱스타가 된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렇게 대박을 치고 얼마간의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0년에 3월 31일 MBC에서 방영한 '''개인의 취향'''에서 '''게이는 아닌데 게이로 오해받고 마침 게이로 오해한 여자의 집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상당히 중요한 집이라 어쩔수 없이 게이취급 받으면서 그 집에 들어가게 되는 자(...)'''역을 맡아서 [[손예진]]과 좋은 호흡을 보였다.
         특히 [[필리핀]]에서 이민호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마어마한 스타라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팬미팅할 때 [[비욘세]]나 [[머라이어 캐리]]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려든다고 할 정도.[* [[필리핀]]에서 디바형 [[미국]] 가수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유튜브만 검색 해 봐도 녀노소 디바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상이 수두룩하다. 즉 이민호의 인기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는 소리.]
         그 후 [[송지나]] 작가의 [[신의(드라마)|신의]]에 출연하여 깊은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 연기로 신의있는 젊은 [[최영]]의 모습을 표현해 2012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자 최우수 연기상, 10대 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만 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점점 캐릭터와 밀착되는 모습을 보였고 [[송지나]] 작가도 이민호는 [[최영]] 그 자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http://view.heraldcorp.com/view.php?ud=20121021000320|기사]].]
         2013년에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김은숙]]의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에서 주인공 [[김탄]]역을 맡아 최고 시청률 25.6%를 찍으며 연말 수목극 1위를 유지하며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기존의 까칠한 [[김은숙]]표 로코 주들과 달리 다정하며 직진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담담하게 연기해 냈다.[*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96854|연애의 발견 정현정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이민호의 연기를 칭찬했다]].] 2013 SBS 연기대상에서 중편드라마 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베스트드레서상, 10대 스타상, 시청자 인기상, 베스트커플상의 다섯 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상속자들]]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민호를 일약 최고의 한류스타로 도약시켰다. 2014년 1월 외국인은 출연이 힘들다는 [[중국]] CCTV의 춘완에 한국인 최초로 출연하여 이민호가 출연한 순간 최고시청률을 기록하였고 7억명의 시청자들이 보았다고 한다.
         2015년 초에 개봉한 [[강1970]]의 [[김종대#s-2]] 역할로 영화 첫 주연작품을 찍었다. 이민호의 새로운 연기 변신에 호평을 받았고 눈빛 연기, 액션 연기 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청불임에도 불구하고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총 관객수 220만 명으로 막을 내리는 걸로 스크린 데뷔식을 치렀다. [[강1970]]으로 2015년 52회 [[대종상영화제]] 자신인상 수상, 19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프로듀서초이스상을 수상하였다.
         2016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허준재, 김담령 1인2역을 연기하였고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를 넘나들며 섬세하며 차별화된 연기로 역시 이민호라는 찬사를 받았고 대만, 중국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영화 및 드라마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이트인 HanCinema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 배우 1위에 선정됐다.
         [[정일우]]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일우는 거침없이하이킥에 캐스팅되고 이민호는 다른데로 캐스팅된 것이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1983784|#]] 둘이 바다로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정일우]]는 재활 치료를 연기하면서 어떻게든 하이킥에 출연했지만 이민호는 혼수 상태까지 가서 7개월 간 입원했을 정도로 크게 다친 바람에 오른쪽 허벅지와 무릎에 철심을 박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거기다가 이 사건의 계기로 하이킥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출연이 무산되었다. 이 사고로 둘 다 [[병역판정검사|신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둘 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에서 사격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전증이 있다. 이 또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를 찍을 때 또 한 번 교통사고를 당했다. [[강1970]] 촬영 당시 한쪽 다리만으로 발차기 액션 씬을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축구광이고 축구를 잘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민호에게 인생작이라 할 수 있는 꽃보다 자에서도 축구하는 씬이 있었다. 그리고 왼발잡이다.
         || 2015년 || [[강1970]] || 김종대 || ||
         || 2009년 || KBS2 || [[꽃보다 자(KBS)|꽃보다 자]] || 구준표 || ||
         ||<|3> 2009년 || 제45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자 신인연기상 ||<|3> 꽃보다 자 ||
         ||<|2> [[KBS 연기대상]] || 자 신인상 ||
         || 2010년 || [[MBC 연기대상]] || 자 우수연기상 || 개인의 취향 ||
         ||<|5> 2011년 ||<|2> 제4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자 최우수상 ||<|5> 시티헌터 ||
         ||<|3> [[SBS 연기대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6> 2012년 ||<|2> SBS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 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4> 신의 ||
         ||<|2> 제1회 드라마피버 어워즈 || 우주연상 ||
  • 김재규 . . . . 37회 일치
         고향은 경북 선산군이다. 현대의 행정구역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이문리에는 김재규의 생가가 아직도 아 있다. 김재규의 아버지는 정미소를 운영했다. 당시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건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김재규도 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영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우려해서 [[육군참모총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장관에는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 앉혔고, 정말 유능하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육군 장군은 [[사단장]], [[군단장]] 수준에서 전역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김종오]], [[박병권]], [[민기식]], [[김용배]], [[김계원]], [[이세호]], [[임충식]] 등은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들이 아니다. 다만, 12.12 군사반란 때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보여준 추태가 워낙 커서 앞의 인물들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김재규도 이런 케이스로, 월전의 영웅인 [[채명신]] 장군 또한 [[대장(계급)|대장]]을 못 달고 중장에서 전역해야 했다. 이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 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에 제8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5.16 군사정변]] 당시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총무과장([[준장]])으로 있었는데 다른 국방부 장성들과 마찬가지로 쿠데타에는 가담하지 않았고 혁명군사령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조사에도 불구하고 부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석방되었고, 석방 후 현역 장군으로서 호비료 사장에 파견 임명되었다.[* 이 당시 국군 장성들이 하던 비리들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김재규가 비리가 없었다는 것은 그가 참군인이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를 통해 [[최태민]]의 조사를 지시했고, [[10.26 사태]]가 발생하기 3일 전 [[최태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었다. 이 보고서엔 최태민과 [[박근혜]] 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최태민의 문란하고 부적절한 사생활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보고서를 처음 입수한 언론에서 공개한 시점이 2012년 말, 즉 [[18대 대통령 선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직전]]이였기 때문에 당시엔 [[찌라시]] 취급을 받으며 묻혀졌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이 늘어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즉, [[10.26 사태]]를 결심한 동기 중 하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 [[박근혜]]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겼다. 김재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가 지속될 경우 벌어질 잠재적 위험성을 알고 이를 [[/항소이유 보충서|항소이유보충서]]로 기며 최후의 순간까지 경고 했지만, 그의 우려와 경고는 37년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26일날 최씨 일가도 같이 쏴버렸어야 했다.--
          * 실제로 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 내의 시민들이 대거 경찰서로 끌려가거나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또 [[김영삼]] 당시 [[신민당(1967년)|신민당]]총재 외에도 [[김대중]], [[이철승]] 등 호인사가 신민당에 있었고 [[여촌야도]] 현상이 강하여 수도권 민심이 야당에 있었으므로 단순히 부마에만 그치지 않고 '''호, 수도권까지 퍼져 전국적으로 경찰,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규모 충돌'''이 생겨 엄청난 희생자가 났을 것이다.
         2015년 박권흠 전 의원이 김영삼과 김재규가 단 둘이 나눈 대화 내용을 한 언론매체에 공개하였는데, 당시 현직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을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큰 인상을 기고 있다. 1979년 김영삼은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정희 정권과 공화당은 김영삼의 발언을 '사대주의적 망언'으로 규정하고 국회의원직 제명을 시도한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양 측을 중재하고자 김영삼에게 만을 요청하여 실제로 만이 이루어지는데, 박권흠 전 의원이 공개한 둘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http://m.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76|#]]
         최후의 진술을 통해 [[박정희]] 정권동안 나라에는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고, 당시까지 정부나 대통령이 순리대로 선출된 적이 없음을 지적하며, 자신이 앞장서서 순리대로 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어 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최규하]] 대통령에게 자유민주주의가 문 앞에 왔으니, 받아들이기를 간청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한다고 말하였다. 또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20~25년 앞당겨놨다는 자부을 가지며 간다는 말을 기면서 그 자유민주주의의 만발을 보지못하고 가는게 아쉽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을 따라준 부하에 대해 그들은 좋은사람이고 자신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며 선처를 바라면서 극형만은 면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8:6으로 내란목적 살인죄가 적용되 사형판결을 받는다. [[http://glaw.scourt.go.kr/wsjo/panre/sjo100.do?contId=2173227&q=80%EB%8F%84306&nq=&w=yegu§ion=yegu_tot&subw=&subsection=&subId=&csq=&groups=&category=&outmax=1&msort=&onlycount=&sp=&d1=&d2=&d3=&d4=&d5=&pg=0&p1=&p2=01&p3=&p4=&p5=&p6=&p7=&p8=&p9=&p10=&p11=&p12=&sysCd=&tabGbnCd=&saNo=&joNo=&lawNm=&hanjaYn=N&userSrchHistNo=&poption=&srch=&range=&daewbyn=N&smpryn=N&tabId=|80도306]][* 민문기, 양병호, 임항준, 김윤행, 정태원, 서윤홍 이렇게 6명은 그냥 살인이라고 소수의견을 냈다.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정태원 대법관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고초를 겪다가 사표를 써야했다. 특히 양병호 대법관은 서빙고문실로 끌려가 고문까지 받았다. 그 당시 법원행정처장 서일교가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장이 사표를 수리해 주셔야만 양병호가 풀려날 수 있다면서 친필 사표를 내밀었고 결국 사표를 수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한 시간 정도만에 양병호 판사가 대법원장실에 나타났고 양병호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면서 커피를 마셨지만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슴과 와이셔츠를 적시는데도 그것을 모른 채, 정신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점이 풀려있었다고...] 사형 판결을 받은 김재규는 1980년 5월 24일에 [[교수형]]으로 숨진다. 사형집행일 김재규는 아침을 먹지 않고 냉수마찰을 한 뒤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길을 나섰는데, 이는 이승에 기고 갈 마지막 흔적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였다고 한다.[[http://www2.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810/nd98100020.html|#]] 당시 교도관의 증언에 의하면 김재규는 사형집행 직전까지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으며 "길 말이 있으면 하라"는 참관 검사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때가 향년 54세. [[http://blog.naver.com/aa6753/220795466265|사형 집행 장면]] 그 비극은 김재규의 은 가족들에게도 이어져, 부인 김영희와 동생 김항규는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고 재산까지 빼앗기는 비극을 당했으며 '3족을 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변인들 역시 갖은 고초에 시달려야 했다.
         김재규는 죽기전 아내 김영희씨에게 자신의 은 재산으로 부하 가족들을 돌봐달라고 당부하였고, 김영희씨는 김재규의 유언에 따라 부하 가족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덕분에 김재규의 부하 자녀들은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7347|#]]
         그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의 삼성공원묘지에 있다. 묘비에는 '의사 김재규 장군 추모비(義士 金載圭 將軍 追慕碑)'라고 적혀 있었다. 당초 그는 유언으로 묘비에 '의사 김재규 장군 묘'를 쓰라고 했지만 신군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89년에 1월에야 광주/전 송죽회가 세웠다. 그러나 수십년 전에 박정희 지지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의사' 와 '장군' 이라는 글씨를 훼손시켰고, 추모비를 굴러 떨어뜨려 금이 가게 만들었다.
         이 추모비는 아직까지도 금이 가고 글자가 훼손된 모습 그대로 아있는데, 추모비를 새로 세우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재규의 유족과 송죽회가 현 상태 그대로 두겠다고 밝혀 그대로 아있다고 한다. 추모비가 훼손되고 금이 가 있는 모습도 역사의 기록이라는 판단에서라고.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7404|#]]
         그러다 2010년대 들어 [[박근혜정부]]가 집권한 이후 김재규 재평가론은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하는데, [[박근혜]]의 실책에 대한 반발, 조롱으로 "의사 김재규"라는 유머 컨텐츠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김재규 드립을 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어디까지나 드립이었고, 그가 진짜 의사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헌데 이러한 유머 소재로써의 흥행을 통해 대중들에게 언급되는 일이 많아지며 김재규 본인과 당시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된 것은 어찌보면 행운이었다. 김재규가 인지도를 얻으면서 그가 살아생전 긴 글과 행적들 역시 진지하게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 이로 인해 김재규는 평소에도 민주주의와 민주개혁세력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이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왔다는 사실, [[부마민주항쟁]] 당시 학살극이 벌어질 뻔한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김재규 지인들이 밝힌 미담 등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지한 재평가"에 대한 정보들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최소한 2015년 전후부턴 이런 평가가 인터넷상에선 베플 등으로 진지하게 퍼져가던 시기. 덕분인지 10.26에 대한 평가 자체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데, 이전까진 박정희 사망일이라는 것이 좀 더 부각되었다면, 이때쯤부턴 김재규 의거일을 기념하는 분위기가 SNS 등을 중심으로 더 활발해진다.
         >한 교수는 “그래도 [[박정희]]가 [[박근혜]]보다는 낫다”는 취지의 말을 겼다. 그는 “박정희에게는 그래도 충신들이 있었다. 김재규 중정부장이나 박승규 민정수석처럼 자신의 직을 걸고 [[최태민]] 보고서를 올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김정렴 비서실장도 다른 비서관들에게 최태민과 어울리지 말라고 지시할 정도로 유신정권의 핵심 참모들은 분별력과 상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드러난 바로 볼 때 박근혜 정권의 참모 중에 [[최순실]] 문제에 대해 올바른 소리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아니냐”며 씁쓸해했다.
         박흥주 전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의 말에 따르면, 김재규는 인망이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중앙정보부장에 부임하고 난 뒤 [[산(서울)|산]]의 고문실을 없애고 강압수사 금지 조치를 시행하였으며, 비대해진 기구를 축소하거나 해외정보업무 중심으로 중정을 개편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장 판공비 8억원을 내놓아 직원들의 퇴직기금을 마련해주었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10.26 사건]] 당시의 8억원이면 정말 큰 돈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044385|오마이뉴스]]
         김재규는 10.26사건 이전인 1979년 봄부터 '자유 민주주의', '위대의', '민주민권자유평등' 등의 휘호 6점을 겼다고 한다.
         박정희의 전화를 받을 때 일어서서 차렷자세로 받았고, 다른 사람한테 박정희를 지칭할 때는 항상 존칭을 썼다고 한다.[* 심지어 [[10.26 사건]]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항상 "대통령 각하"라고 존칭을 쓰면서 말한다. 또 궁정동에 대한 이야기는 심지어 재판정에서 박선호의 증언을 제지하면서까지 막았다. 당시 [[박정희]]조차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생아 문제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자의 허리 아래는 거론하지 말라"[* 이는 [[이토 히로부미]]도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이토는 생전에 매우 문란한 인물이었다.]고 일축할 정도로 당시 시대에 자의 성생활 문제를 언급하는게 금기시되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은 여생을 박정희 무덤에 묘막을 짓고 시묘하며 보내겠다고 말하기도 하였으며,[* 또 다른 증언으론 박정희를 죽이고 자신도 박정희 무덤에 가서 자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이 말을 했던 시점은 10.26이 벌어지기 전이기에, 최종적으론 시묘살이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최후진술에서 박정희와는 친형제간도 그럴수 없을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15997&viewType=pc|#]] 실제로 김수환 추기경 역시 김재규가 자신의 입으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고 회고했다.[[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190618&path=200404|#]] 그러나 김재규는 10.26 이전에 수차례나 박정희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고, 김재규의 수사를 총 지휘한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도 회고록에서 김재규의 언동에서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나 충성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10.26 직후 김재규를 목격한 국무위원들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고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는 증언 등 위의 언급을 반박할 행적들이 많이 존재한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70404.99002001133|#]]
         김진우 전 판사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지방법원장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김재규는 부산에서 기관장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군인들이 절대로 국민들에게 총을 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도 군인들에게 잘 협조하도록 당부하여 무고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힘쓰기도 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김재규는 "이런 상황에서는 '[[10.26 사건|제3의 길]]'밖에는 없다"는 말을 긴다. 부산지방법원장은 김재규가 말하는 제3의 길이 무엇인가 의아해 했지만 [[10.26 사건]]이 터진 뒤에야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되었다고 한다.
  • 이효상 . . . . 37회 일치
         | 소속 = 前 [[영대학교]] 초빙교수
         | 자녀 = 슬하 3
         [[1945년]] [[경상북도]] 학무국장에 취임, 1952년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 문리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투신하였으나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사퇴하였다. 그 뒤 [[영학원]](嶺南學園)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 [[영대]]재단이사장
         * 영대재단이사장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ref name="김충식">[[김충식 (1954년)|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산의 부장들 1 (1992, 동아일보사)</ref>{{Rp|305}}<ref name="이상우">[[이상우]], 박 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1986, 동아일보사)</ref>{{Rp|343}}<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제목=[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확인날짜=2010년 1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824010951/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보존날짜=2009년 8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 장 [[이문호]] (전 경북대 철학과 교수)
         * 차 [[이문희]] ([[로마 가톨릭]] [[대주교]], 전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 삼 [[이문조]] (전 [[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코오롱 [[이동찬]] 명예회장의 사위)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제6대 총선]]||[[대구 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시 구)]]||6대||[[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막대|갈|5|1|4|3}} 51.43%||23,513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제7대 총선]]||[[대구 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시 구)]]||7대||[[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막대|갈|5|5|9|2}} 55.92%||34,84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제8대 총선]]||[[대구 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시 구)]]||8대||[[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막대|갈|4|2|8|6}} 42.86%||34,740표||2위||낙선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제9대 총선]]||[[대구 동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시 동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9대||[[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막대|갈|4|3|0|8}} 43.08%||76,245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제10대 총선]]||[[대구 동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시 동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10대||[[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막대|갈|2|7|4|8}} 27.48%||79,299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구 국회의원 당선]]
         |직책 = 국회의원([[대구 구의 국회의원|대구 구]])
         |직책 = 국회의원([[대구 구의 국회의원|대구 구]])
         |전임자 = (동구)[[김정두 (1918년)|김정두]]<br />(구)[[신진욱]]
         |직책 = 국회의원([[대구 동구의 국회의원|대구 동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
         |후임자 = (동구·북구)[[김용태 (1936년)|김용태]]·[[목요상]]<br />(구·수성구)[[이치호]]·[[신진수 (1938년)|신진수]]
         |직책 = 국회의원([[대구 동구의 국회의원|대구 동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
  • 현이와 덕이 . . . . 37회 일치
         '''현이와 덕이'''는 1975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2인조 [[싱어송라이터]] [[매]][[듀엣]]/[[배우]]이다.<ref>{{웹 인용 |url = http://music.naver.com/artist/home.nhn?artistId=9526|제목 = 네이버 뮤직|저자 = |날짜 = |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70~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솔로로도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90년 매 모두 [[요절]]하게 된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1975년 [[미8군부대]]에서 데뷔한 [[장현 (1955년)|장현]](1956~1990)과 [[장덕]](1961~1990)은 이듬해인 1976년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고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 두엣 현이와 덕이 순진한 아이 취입|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80523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8-05-23&officeId=00032&pageNo=8&printNo=10044&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날짜 = 1978년 5월 23일}}</ref> 이들은 《선생님 안녕》, 《우리들의 고교시대》, 《내마음 나도몰라》, 《꿈초올 둘이서》등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였다.(이들 매는 10여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여 하이틴스타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장덕]]은 작사,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활발히 연예활동을 하고 있던 이들 매는 1989년 [[장덕]] 솔로 정규6집 발표 후 [[장현]]이 설암판정을 받게 되자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된다.
         * 2018년 4월3일 <북합동공연(평양)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버지]] 장규상씨와 [[서양 화가]]였던 [[어머니]] 이숙희씨 사이에서 1 1녀 중 막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충무로]]4가에서 1961년 4월 21일 태어났다.<ref>{{웹 인용|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맏이 [[장현]]은 [[바이올린]]을, 둘째인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절부터 자라났다.
         1971년 '중요한 건 마음뿐이고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는 동양 사상 뿐철학에 심취한 아버지를 따라 장현 · 장덕 매는 [[도봉산]]의 사찰 비슷한 청기와집에서 1년 간 살게 된다. 그 곳은 외부와 통제된 곳이라 두 매는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 장덕은 5살 위인 오빠 [[장현]]에게 처음으로 기타를 배우게 된다.
         1972년 장덕은 오빠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기슭의 작은 집으로 이사 나오게 된다. 하지만 오빠는 의 집 가정교사로 일하러 나가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어디론가 나가 늦은 밤 술을 마시고 돌아와 장덕은 빈 집에서 홀로 겨진 고독과 싸우며 외롭게 생활했다. 그리고 새 엄마가 들어오자 다르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장덕은 음독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1974년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한 장덕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왜 들처럼 행복하게 살수 없는가?'라는 생각에 우울해 하다가 그 해 가을 메모도 기지 않고 무작정 친구집인 대구로 내려가 10일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장덕은 이내 수면제 10알을 먹고 음독 자살을 기도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장덕의 어머니는 장덕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시 인기를 끌던 미국의 매듀엣 [[카펜터스]]처럼 맏이 장현과 함께 매 듀엣을 결성시켜 준다.
         1975년 4월 만 14세(중학교 2학년)가 된 장덕은 오빠 [[장현]]과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To Be A Child Again>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To Be A Child Again>는 장덕 작곡의 첫 발표곡으로 영어가사는 [[미8군]] 관계자이자 [[드래곤 래츠]]를 초청한 엘 클리나드가 붙인 것이다([[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 또한 엘 클리나드가 붙였다.). 장현 · 장덕 매는 이 공연을 통해 출연료도 제대로 받았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의 쇼 매니저로부터 [[드래곤 래츠]]의 노래와 미모에 반했다는 찬사를 들으며 엘 클리나드를 통해 출연계약까지 정식으로 요청받는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장현 · 장덕 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 되었고 1개월 뒤(5월) TBC TV의 청소년과 젋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매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장덕은 [[작사]] · [[작곡]]에 능한 [[천재]][[소녀]]로 평가 받게 된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1976년) 장덕은 어머니에게 [[안양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처음엔 1년을 더 다녀야 된다며 말렸지만 하도 졸라대서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찾아갔고 다행히도 현이와 덕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라서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입학을 허락받는다. 그 해 4월 장현 · 장덕 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반]] 《[[친구야 친구]]》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해 11월 개봉된 [[김응천]] [[감독]], [[임예진]] · [[이덕화]] · [[전영록]] [[주연]]의 [[영화]] [푸른교실]에서 현이와 덕이는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된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된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기고 한국으로 귀국해 한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ref>[http://www.mbn.co.kr/pages/vod/programContents.php?progCode=613&menuCode=3439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MBN 2014년 7월 11일 방송 참조"</ref> 그리고 한달 뒤(11월)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이라는 금액에 전속계약을 맺고(그녀는 오랫동안 공백을 가진 스타였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았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날 찾지 말아요>가 발표한 지 6달 만에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집계 한 달(1984년 5월)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까지 오른다. 많은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장덕으로서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당시 방송을 꺼려한 탓인 지는 몰라도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가수 부문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사이(1984년 2월) 장덕은 새 음반을 내는 자매듀엣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하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 그리고 장덕에 의해 각각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도 리메이크 하여 자신들의 새 음반에 수록한다.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1985년 6월 [[장현]] · 장덕 매는 7년만에 재결합,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며 타이틀곡 <너너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비롯 <이젠 안녕>, <그대의 투정>, <해바라기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의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가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었고 장덕에게 막힌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이 앨범에서는 장현 또한 작사/작곡에 많은 참여를 하였다. 현이와 덕이의 정규 1집 《순진한 아이》에서는 모든 곡들을 장덕이 작사/작곡했지만 이 앨범에서는 B면 3번 트랙 <그댄 없지만>과 그들의 정규 1집 《순진한 아이》에 실린 버전들의 재편곡 버전인 B면 4번 트랙 <소녀와 가로등>, B면 5번 트랙 <순진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을 [[장현]] · 장덕 매가 함께 만들었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시 성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2018년 4월3일 <북합동공연(평양) – 봄이 온다 中> 최진희 – [[뒤늦은 후회]] ([[현이와덕이]], [[작사]]/[[작곡]] : [[장현]]/[[장덕]])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북한 최고지도자) 요청곡
  • 황정민(남자배우) . . . . 37회 일치
         ||<#002266><-5><:> {{{#white '''우주연상'''}}} ||
         ||<width=30%><#E0FFFF><:> ''' 제25회 [br] ([[2004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26회 [br] ([[2005년]]) ''' ||<#E0FFFF><:> {{{+1 → }}} ||<width=30%><#E0FFFF><:> ''' 제27회 ''' [* 하나의 작품을 한 두 배우가 공동수상을 한 유일한 경우. [[박중훈|두]] [[안성기|사람]]은 1994년 대종상에서도 투캅스로 함께 우주연상을 받은 적이 있다.] [br] ''' ([[2006년]]) ''' ||
         ||<#EDD200><-5><:> {{{#white '''우주연상'''}}} ||
         ||<#6495ed> {{{#white '''출생'''}}} ||[[1970년]] [[9월 1일]]([age(1970-09-01)]세), [[전라도]] [[장흥군]] ||
         >'''솔직히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나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 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라이트)는 저한테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2005년 청룡영화제 우주연상 수상소감 中. 흔히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문은 저게 맞다. 그 때 후보가 '''[[박해일]](연애의 목적)''', '''[[류승범]](주먹이 운다)''', '''[[이병헌]](달콤한 인생)''', '''[[조승우]](말아톤)''']
         [[대한민국]]의 [[배우]]. 1970년 9월 1일 [[전라도]] [[장흥군]](현 [[전라도]] [[고흥군]]) 출생.
         [[전도연]]과 함께한 《[[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으로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제]]에서 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때 수상 소감 발표였던 이른바 '밥상론'은 이후 수많은 곳에서 회자되는 명대사. 한편 수상 소감으로 전도연에게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2015년에도 가장 호흡이 좋았고 기억에 으며 또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여배우로 전도연을 꼽았다.]라고 말해서 아내에게 혼났다고. 아내에게는 황정민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운명보다 기적이 더 좋다고--
         영화 배우로서는 주로 《너는 내 운명》의 자 주인공과 같은 순박한 청년 역을 맡아 왔으나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두목, 《[[사생결단#s-3|사생결단]]》에서 건들거리는 형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사생결단》 이후부턴 몇몇 영화에서 흥행 부진을 맛보았으나 《[[부당거래]]》, 《[[댄싱퀸(영화)|댄싱퀸]]》, 《[[신세계(영화)|신세계]]》 등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키워가더니,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베테랑(영화)|베테랑]]》 두 편 모두 천만 명 돌파라는 연타석 홈런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충무로 에이스로 탈바꿈하였다. 게다가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에서 750만 명 정도를 추가로 끌어모아 2015년 한해만 해도 3천만 관객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천만배우라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자기에게는 의미없고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평소에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씨네21 인터뷰- ] 연타석 홈런을 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고보는 황정민'''이라는 뜻으로 '''믿보황'''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샘컴퍼니]]라는 연예 기획사 사장이다. 연예인 육성, 뮤지컬 제작 등을 다 도맡아 하는 듯. 소속 연예인은 [[평양성(영화)|평양성]]에서 [[연개소문]]의 막내아들로 나왔으며 [[미생(드라마)|미생]]의 장백기역인 [[강하늘]], 영화 [[파수꾼(영화)|파수꾼]]에 희준으로 나오는 [[박정민(배우)|박정민]][* 뿐만아니라 [[댄싱퀸(영화)|댄싱퀸]], 들개에서도 나왔다.], [[양꼬치엔 칭따오]]의 [[정상훈]], 백주희, 최우리, [[한재영(배우)|한재영]][* [[강1970]]를 보고 황정민이 직접 캐스팅했다고 한다.]이 있다.
          * ~~상당한 의리이다~~ [[김제동]]은 신년특집 MBC스페셜에 출연해 “황정민, [[박건형]]과 소주를 먹게 됐다. 옆 테이블에 술이 많이 취하신 분이 시비를 걸었다. ‘연예인 별 거 아니네. 못생겼네’라고 하자 누구를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황정민이 벌떡 일어나 ‘우리 제동이 욕하지 말라’고 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 2013년 11월 22일 [[청룡영화제]]에서 《[[신세계(영화)|신세계]]》로 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5년 《[[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 이후로 8년 만의 수상이다. ~~그리고 [[이정재]]에게 "[[정청|땡땡 브라더!]]" 드립을 날렸다.~~
         ||<:>2014||<:>[[자가 사랑할 때(영화)|자가 사랑할 때]]||한태일||주연||197만명||성공||
         ||2006||<:> 양유업 맛있는 우유 GT|| ||<:>[[https://youtu.be/VfPpgFlSu2c|#]] [[https://youtu.be/LSNOpKyVX78|#]] ||
         ||<|5> 2002년 || 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신인우상 || 로드 무비 ||
         ||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신인우상 || 로드 무비 ||
         || 제1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우조연상 || [[와이키키 브라더스]] ||
         || 제23회 [[청룡영화상]] || 신인우상 || 로드 무비 ||
         ||<|6> 2005년 ||<|2>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우조연상 ||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
         || '''우주연상''' || [[너는 내 운명(영화)|너는 내 운명]] ||
         || 제42회 [[대종상]] || 우조연상 ||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 ||
  • 전태일 . . . . 36회 일치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산동 (대구)|산동]]<br>(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산동 (대구)|산동]])
         사건 당시 그는 친구 김개(가명)에게 자기 몸에 성냥 불을 그어 달라고 했고<ref>김정환, 《역사의 희망과 희망의 역사: 근・현대편》 (푸른숲, 1998) 272페이지</ref>, 익명의 친구는 그의 몸에 불을 붙였다. 온 몸에 불이 붙은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을 뛰었지만 그는 방치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주사]] 비용이 필요하여 근로감독관의 보증이 필요하다 했지만, 근로감독관은 보증을 거부했고, 다시 옮겨진 성모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3~4시간 방치하였다.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산동의 가난한 노동자인 전상수와 그의 부인 [[이소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가내수공업도 했으나 거듭 실패했다.<ref name="ganaess">[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419.html 전태일의 시간·공간·생각] 한겨레 21 2010.11.05 제834호</ref> 그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1954년]] [[서울]] [[대문국민학교]](대문초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 중에도 고등학교 복학을 꿈꿨고, [[1967년]] [[2월 20일]] 자신의 바지와 하숙방에 있던 곤로를 팔아 연합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권을 1백50원에 산다. 수중에 은 15원으로 10원짜리 노트를 산 뒤 전화비 5원을 주머니에 겨두고 3일간 금식하였다. 당시 한 쪽지에 그는 "내일부터 23일까지 금식이다. 설마 3일 금식에야 죽지 않겠지. 정신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오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년 3월에는 꼭 대학입시를 보자. 앞으로 3백76일 았구나.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하면 내년에는 대학입시를 볼 수 있겠지."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1969년]] [[6월]]부터 재단사 친구들, 근처 공장의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바보회]]의 회원을 모집하였다. 그는 바보회의 취지에 대해 지금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당하고 살지만 우리도 깨우쳐서 바보로 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그의 권고를 기피하였지만, 그가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을 변호하여 해고를 막거나 재입사 시키면서 그의 [[바보회]]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인용문2|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야수와 같은 북괴는 평화 속에 잠긴 녁 땅을 피로 물드렸다.<ref>전태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983) 127쪽</ref>}}
         이에 따라 전태일은 삼동회 회원들을 이끌고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라고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경찰의 방해로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시위가 무산된 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평화시장 골목 근처에 있다가 오후 1시 30분경, 시장 골목에서 몸에 [[석유]]와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를 켠 뒤,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왔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시장 앞길을 뛰어다녔다. 이때 전태일의 친구였던 이름 미상의 자가 그에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조영래]]는 [[1983년]]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며 이 성의 이름을 김개이라는 가명을 붙였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성에게 김개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 민종덕이라는 설도 있다. 그에 의하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가명인 전태일의 벗의 이름 '김개(가명)'은 민종덕의 창작물이라고 본다. 그는 전태일을 자신의 고향, 고부에서 출정한 동학 전봉준에 비견하였고 비슷한 위용을 떨쳤던 김개을 전태일 친구의 가명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7042 전태일·조영래와 함께한 휴가] 오마이뉴스 2007.08.08</ref>'는 것이다.
         그러나 전태일의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방치당하고 있었다. [[조영래]]에 의하면 "쓰러진 전태일의 몸 위로 불길은 약 3분 가량 타고 있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여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 내었다.<ref name="chock283"/>" 한다. 그는 온 몸에 불이 붙은채 평화시장 앞을 달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대한민국 정부|정부]]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마지막 말을 기고 쓰러졌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친구가 뛰어와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재킷|잠바]]를 벗어서 불길을 덮었다.<ref name="chock283"/>" 한다.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기고<ref>〈이소선:아,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여성사 1》 163~4p, 여성신문사, 2000</ref> 쓰러졌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치료를 받은 전태일은 온몸이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앞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의사에게 갔다. 1만 5천 원짜리 주사 두 대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ref name="chock289">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때 평화시장 담당 [[서울시청]]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전태일을 따라 병원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가 무엇 때문에 보증을 서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오후 4시경 그는 그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다시 후송되었지만, [[11월 13일]]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그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날 저녁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11월 13일]]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는 그날 오후 10시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경기도]] [[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산)에 안장되었다.
         {{인용문|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ref>금력(金力)을 뜻함.</ref>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대문초등학교]]
         [[1970년]] 당시 전태일은 봉제 노동자들의 월급 액수를 설문 조사하여 기록으로 겼다. [[1970년]]도 당시 전태일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체로 시다가 월 1천8백 원에서 3천 원, 미싱사가 7천원에서 2만 5천원, 미싱보조는 3천원에서 1만 5천원, 그리고 재단사가 1만 5천원에서 3만원까지 받고 있었다.
         전태일이 불을 붙일 당시 다른 사람이 그의 몸에 불을 붙였으나 불을 붙인 이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권]][[변호사]] [[조영래]]에 의하면 전태일에게 불을 붙인 제3의 인물이 있었다 한다.<ref name="chock282">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2페이지</ref> 《[[전태일 평전]]》을 처음 집필한 [[조영래]]는 전태일의 몸에 불을 붙였다는 그의 친구의 이름을 알지 못하여 김개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ref name="chock282"/> [[1970년]] [[11월 13일]] 시위가 무산당하자, 그날 오후 그는 아무 말 없이 김개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눈짓을 하여 그를 사람이 좀 덜 다니는 옆 골목으로 끌고 갔다. 전태일은 "아무래도 누구 한 사람 죽어야 될 모양이다."라고 말하며 김개에게 성냥불을 켜서 자신의 몸에 갖다 대어 달라고 부탁했다.<ref name="chock282"/> [[조영래]]에 의하면 '그 전날 저녁에 김개은 전태일이 내일 "누구 한 사람 죽는 것처럼 쇼를 한판 벌려서 저놈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하자"라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ref name="chock282"/>' 한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에 후송되었으나, 그는 3~4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그는 치료다운 치료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응급실 한 구석에 방치되었다.<ref>대구사학회 편, 《영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 (푸른역사, 2005) 430페이지</ref> 그는 병원 도착 직전까지 사망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전태일은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후송되었다가 다시 서울 성모병원으로 후송된 뒤에도 3~4시간 정도 방치되었다고 한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의사는 전태일에게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3~4시간 가량 그를 진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성이 다른 이모와 외삼촌이 있는데, 이는 그의 외할아버지 이성조는 어머니 [[이소선]]이 4살 때 사망, 외할머니는 정씨 자와 재혼하였다.
         ** 동생 전태삼
         성서학자 정승우에게 "전태일이 없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은 수십 년 뒤에나 존중받았을 것"<ref>《인류의 영원한 고전-신약성서》/정승우 지음/아이세움</ref>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의 노동 인권과 [[민주주의]]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노동계에서는 전태일을 부를 때 흔히 '[[열사]]'나 '동지'<ref>동지 호칭은 아직 통용되는 건 아니지만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은 유언처럼 긴 말에서 열사 호칭을 극구 사양하고, 언제나 함께하는 노동자라면서 '동지'로 불러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었다.:오도엽,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후마니타스, 287쪽. 예:“전태일'동지'가 그처럼 장렬하게 죽었고, 그에 뒤이어 우리 모두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무수한 투쟁을 전개했으며”-[[장기표]]의 글에서</ref> 호칭을 붙인다.
         '''태일에 대해''': "태일이는 사람을 참 좋아했어. 같은 노동자를 너무도 사랑했다고. 그러니 열사나 투사보다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와 함께하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달라고 전해줘. 태일이는 날 참 좋아했어. 아직도 이 옷을 못 버리고 겨울이 오면 꼭 챙겨입는데, 태일이가 공장에서 은 천으로 엄마 준다고 손수 만들어 준 내의야. 누가 새옷 입으라고 사줘도 안입고 난 이것만 입어…그런 태일이 아니냐"
         [[분류:1948년 태어]][[분류:1970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반공주의자]][[분류:전태일]][[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분신 자살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전효성 . . . . 36회 일치
         ||<#00CED1> '''{{{#000000 출생}}}''' ||<(> [[1989년]] [[10월 13일]] ([age(1989-10-13)]세)[br] [[전라도]]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
         ||<#00CED1> '''{{{#000000 팬 페이지}}}''' ||<(> [[http://cafe.daum.net/JunHyoSung|슈퍼스타]][* 전효성이 배틀신화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만들어진 카페로 나름 유서가 깊다. 데뷔 전 학창시절에 쓴 글들까지도 아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으며 [[2015년]] 7월 9일에 10주년을 맞이했다!!] ||
         2013년 1월 19일, 소속사에서 전효성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브라운 아이드 걸스)|손가인]]에 이어서 속옷 브랜드인 '예스(YES)'의 모델로 활동한다고 발표했다. 1년 계약이라고 한다.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90721|기사]] 넷에서의 여론은 녀불문하고 꽤 호의적인 편이다. 발표 소식이 기사화 되기 전부터 사진 한장이 떠돌고 있었고 합성이냐 아니냐 말이 많았지만 결국 사실로 밝혀졌고 며칠 뒤 해당 속옷이 품절되어 다시 기사화 되었다. '''이로써 완판녀 등극!!!'''
         2014년 2월 1일에 방영한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고난이도의 스턴트 치어리딩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사람을 공중으로 던지는 바스켓이라는 동작은 6개월 이상 하지 않으면 던져주지 않는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들 방과후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안전장치와 녀 비율이 적합할 경우 바스켓은 시작한지 2, 3주만 되어도 할 수 있다. 물론 정석대로 안전하고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아니다.][[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2130936551910|기사]]
         5월 28일 [[주간 아이돌]] 148회에 금주의 아이돌로 시크릿 멤버들 중 처음으로 단독 출연하였다.[* 이것으로 주간 아이돌에 무려 8번이나 출연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Lk2bK1WivkI|주아돌에서 역대급으로 을 랜덤플레이 댄스를 선보였다.]][* 역대 주간아이돌에 나온 아이돌 중 랜덤플레이 댄스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버텼다고 한다.]
         2014년 8월 23일 [[SNL 코리아]]에 시크릿 멤버들과 호스트로 출연였는데 가슴이 푹 파인 메이드복을 입고 나왔다!!! 이날 초사이트는 광분의 도가니.
         2016년 2월 23일 성 뷰티브렌드 스웨거의 모델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pulTmEVOFc|전효성 스웨거 왁스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IdkKPtt_cAg|TV용 15초 광고]]
         5월 22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였다. 성 출연자들이 많았던 탓에 좋은 성적이 예상되었고 전후반 통합 2위를 거두었다.
         前 [[오소녀]] 멤버 [[G.NA]]와 함께 [* 2015년 6월 24일에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말하길 무대 끝나고 내려오는데 자 가수들이 갑자기 아는 척을(...) 했다고 한다.] ~~첫번째 사진에서 [[크러쉬]]의 시선이...~~ ~~[[맨체스터 더비]]~~
         사실 그 동안 공중파에서는 의상에 대한 단속 때문인지 위쪽을 꽁꽁 싸매고 나와서 아쉬워하는 성들이 꽤 많았었는데 이것으로 여러 성들의 소원이 성취되었다. ~~소리질러!!!~~ 그런데 사실은 코디의 실수때문에 만들어진 의상이라고 한다.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03327894718715010|인터뷰 참고]] ~~코디느님 찬양!!!~~
         첫번째 활동이 생각 이상으로 성공하였고 그로 인해 기대를 불러모았으며 랩과 가사에도 참여하며 야심찬 포부를 담은 활동이었지만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음악적으로의 분야를 더 넓히는 데는 실패한 활동으로 고 말았다.
         망한 이유는 전효성의 매력이 섹시인데 전혀 살리지 못하고, 나를 찾아달라는 컨셉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 아닐지. 여자 팬덤은 당연히 반응하지 않고.. 자 팬덤 또한 굳이 찾아 보지 않아서 수요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3번째 방송은 추석을 맞이해서 특별이 9월 26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http://www.vlive.tv/video/2071/JunHyoSeongs-TGIF3추석특집-불토|#]] 3번째 방송에서는 명절 때 은 음식들을 재활용 하는 방법과[* 전효성 본인이 은 음식들을 재활용하여 김밥을 만들었으며 B.A.P 힘찬이 시식요원으로 특별출연.] 팬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모습을 선보였다.
         10월 23일에는 가을을 맞아 팬카페에서 팬들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였고 시를 쓴 팬들을 추첨하여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막판에 정하나가 목소리로 특별출연 하였다.[[http://www.vlive.tv/video/2649/JunHyoSeongs-TGIF7시창작대회|#]] [* 전효성의 V 앱 방송을 보다가 재미로 채팅창에 댓글을 긴것을 전효성이 보고 정하나와 전화연결을 하여 전효성으로 삼행시를 지었으며 다음주에 자신의 애완견인 "아요"와 "뽀요"를 대리고 같이 출연하는게 얼떨결에(...) 확정.]
         여자 [[아이돌]]에겐 보기 드문 '''선홍빛 [[잇몸]]'''을 선보이는데다 각종 방송 활동에서 ~~하라는 예능은 안하고~~내숭 없이 잘 웃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현재까지 성팬들이 꽤 많다. 그래서 [[박명수]], [[신봉선]]과 함께 [[http://www.artsnews.co.kr/news/105890|연예계 3대 잇몸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한국방송공사|KBS]] [[백점만점(예능)|백점만점]]에서 본인이 매력 포인트라며 어필한 그 잇몸 때문에 CF 감독한테 까였고(...) 결국에는 꼴등으로 뽑히고 말았다. [[안습]]. 근데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고정멤버가 된 듯하다. 이제까지 팀내에서 예능을 담당한 선화 빼고는 시크릿 멤버 중 처음으로 예능프로 고정을 획득한 것이다. 오오.~~다만 예능감은 미달수준~~ ~~그래서 별명이 다큐효성(...)~~] 사실 이 잇몸으로 주목받는 것이 유명해지고 나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어릴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인지가 많이 되어 있었던 특징이었는데, 이미 [[오소녀]] 시절에도 팀 내에서 별명이 '잇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2013년 MBC 파일럿 프로그램 화수분에서 [[원더걸스]] [[유빈]]을 대신해서 출연한 [[김신영]]이 전효성에게 잇몸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여담으로 [[http://www.tagstory.com/video/100646262|무대 직전에 확인하는 부위가 잇몸(...)이라고 한다.]][* 여가수들이 웃을때 립스틱이 앞니에 묻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은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2012년에 20대 성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 중 [[아이유]]를 누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역시 군통령~~
         <Magic> 활동 당시 금발로 염색하며 강렬한 인상을 겼다.
         <Madonna> 활동 즈음 해서 머리를 애쉬블론드에 라이트바이올렛을 섞어 염색했는데 성팬들에겐 그 색만으로도 눈에 띈다는 평을, 여성팬들에겐 머리색을 따라하고 싶다는 평을 들으면서 꽤 많은 주목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래봤자 저 머리 하는 데 들어가는 돈만 '''40만 원.'''--
         2011년 8월 25일경 자신의 미투데이에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10826083809313&ts=212519|"제 자친구 어때요?" 라는 말과 함께 긴 사진]]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으나 그냥 같은 [[힘찬|소속사 후배가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소속사 동생이라고 밝힌건 씹히고(...) 차친구라는 말만 부각돼서 그렇지...~~
         다이어트로 인해 [[가슴]]이 작아져 많은 사람들이 살빨이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kind=search&ask_time=&search_table_name=&table=humorbest&no=463310&page=1&keyfield=subject&keyword=%C8%BF%BC%BA&mn=&nk=%B3%EB%BD%C3%C6%C8&ouscrap_keyword=&ouscrap_no=&s_no=463310&member_kind=|빈유모에]]-- 단, 여자들의 가슴이 자들 생각과는 달리 은근히 사이즈가 유동적인 데다가, 수술하지 않았다면 옷이나 컨디션 등에 따라서도 차이가 꽤 나 보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 2012년 4월의 사진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절대 절벽은 아니다. [[http://news.nate.com/view/20120512n08848&mid=e0403&cid=350114|5월 12일 드림콘서트에서 보여준 사진으로 보면 여전히 훌륭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도 계속 사진마다 모습이 달라보이는 걸로 보아, 자들이 잘 모르는 [[브래지어]]의 힘이 작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자]] [[위키러]]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브래지어가 가진 무기는 '''[[패드]]만이 아니다.''' 푸시업을 어느 정도 해 주느냐, 혹은 어떤 옷에 맞추느냐 등 활용 폭에 따라서 절벽이 글래머로, 글래머가 슬렌더로 변신하는 마법을 부리는 게 여자 속옷이다. 특히 드림콘서트 당시 사진에서 나온 사이즈는 단순히 패드만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아닌지라, 옷발과 컨디션발이 상당히 심하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슴에 약간 여유를 두고, 즉 푸시업이 좀 덜한 브라를 착용하거나 폭에 여유가 있는 누브라, 혹은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어께걸이 등의 지지가 없어져서 유방이 약간 처지는데, 보형물을 넣은 게 아니라면 이때 가슴골이 퍼져서 볼륨이 줄어들어 보인다. [[박로미]]가 가슴이 작아보이게 한 방법이 바로 이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전효성은 다이어트 등으로 인해 몸매가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섹시컨셉으로 활동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숱하게 겪는 [[가슴성형]]에 대한 의혹만큼은 확실하게 없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뭘 집어넣은 거라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왔다갔다 할 수가 없으니...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35회 일치
         1754년, 데스몬드 마일즈의 조상인 헤이덤 켄웨이는 코벤트 가든 왕립 극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상관인 레지널드 버치의 명령을 받은 헤이덤은 오페라를 보고있던 자를 암살하고 그의 목에 걸려있던 유물을 가지고 극장에서 빠져나간다.
         1754년, 보스턴 항구에 발을 디딘 헤이덤을 "찰스 리"라는 자가 맞이한다. 이들은 잡화점에서 검(일반 검)과 권총(플린트락 권총)을 사고 그린 드래곤 여관으로 향한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사우스게이트 요새에서 빠져나가는 원주민들이 빠져나간다. 헤이덤은 원주민들 사이에 있던 그 여인과 윙크를 교환한다. 그러고는 이제 뭘 해야하냐고 묻는 찰스 리에게 기다리는 것 만이 았다고 대답한다.
          * 변경 지역을 배경으로 한 첫 임무. 임무를 받고 나면 맵에 표시가 안 되어서 당황할 수 있는데, 보스턴 최단이나 최북단의 성문으로 빠져나오면 변경 지역으로 간다.
          * 이걸 막으려면 어떤 자에게서 추가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 컴퍼스 같이 생긴 문양을 쫓아라.
         군인들을 따돌린 코너. 그런 코너에게 한 자가 코너를 알아보고 다가온다. [[새뮤얼 애덤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는 아킬레스가 코너를 보스턴에서 빼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애덤스는 사이러스라는 자에게 뇌물을 줘 범인이 원주민이 아닌(원래 아니지만) 중년 성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후, 포스터를 찍어내는걸 멈추게 하기 위해 코너를 데리고 인쇄소로 가려한다. 이들은 길을 막고 검문중인 군인들을 피해 [[프리메이슨]]이 파두었던 땅굴로 들어간다.
         이때, 고프리라는 자가 창문을 두들기며 도움을 청한다. 코너가 고프리를 따라 강으로 가 보니, 테리라는 자가 강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코너는 테리가 폭포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구해낸다.
         농지로 돌아온 두 사람은 나무다리를 한 자가 아퀼라 앞에서 떠드는걸 목격한다. 이 사람은 키드 선장[* 전설적인 해적. 엄청난 양의 보물을 숨겨두었다는 소문이 있다.]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떠드는 사람으로 폴크너는 그의 말을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아무도 해치지 않아서 냅두는 것일 뿐.
         여관 밖으로 나간 코너는 상자를 들고 가던 자와 부딪힌다. 자가 운반하던 물건은 밀수된 차였다. 코너는 존슨의 부하들이 배달하던 차를 파괴한 후 부두로 가 쌓여있던 차 상자 역시 파괴한다.
         코너는 구 부 예배당(Old South Meeting House) 앞에서 샤페우, 몰리뉴와 만난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몰리뉴에게 코너가 대체 무슨 신호냐고 물은 순간. 애덤스가 "이 모임으로는 더이상 나라를 구할 수 없소"라고 선언하며 예배당에서 나와버린다. 코너가 끌려다니기 싫다며 뭘 할건지 물어보자 애덤스는 나다니엘 브래들리의 집에서 사람을 모은 후 그리핀 부두로 가서 배에 있는 차를 모두 내다버릴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이것은 잉글랜드에 메세지를 보내는 동시에 존슨의 재정에 손상을 줘 코너의 마을을 지키는 일이라며, 코너한테 선두에 서보라고 권유한다.
         결국 모든 차를 내다버린 애국자들은 환호한다. 코너는 배에서 내리며 자신을 지켜보는 핏케언, 존슨, 찰스 리를 목격한다. 이때 샤페우가 코너 몫으로 겨둔 차 상자 하나를 건내주고, 코너는 템플기사단이 보는 앞에서 차 상자를 떨어뜨린다. 그 광경을 본 템플기사단원들은 이를 갈면서 가버린다.
         코너가 리비어의 집에 찾아갔을 때, 리비어는 다른 두 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리비어는 윌리엄 도스와 로버트 뉴먼을 소개하고는 현재 상황을 설명해준다.
         이후 리비어와-- 아직 도착하지도 못한-- 도스는 콩코드로 가 소식을 전하고 코너는 애국자들인 존 파커와 렉싱턴에 아 시간을 벌도록 한다.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파커가 이끄는 애국자들 민병대가 핏케언이 이끄는 영국군과 대치한다. 서로는 기싸움을 벌이지만, 어디선가 총소리가 나자 대부분의 민병대원들이 뒤돌아서 도망쳐버린다. 파커는 그나마 은 민병대원들로 영국군을 막아보려 하는 한편, 코너에게 콩코드의 민병대를 지휘하는 제임스 바렛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한다.
         >핏케언: 이제 우리는 하늘의 성에서 영생을 누려야겠어. 검은 자답게 다루지만, 입은 애같이 말해.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거야….
         1776년, 지하실에서 코너와 아킬레스는 암살단으로써의 일에 논쟁을 벌인다. 코너가 아킬레스의 말을 받아치며 1층으로 올라왔더니 한 자가 아킬레스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킬레스는 그 자, 벤자민 톨마지를 소개하며 그의 아버지가 암살단원이므로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한다.
         코너와 톨마지는 뉴욕 외곽에서 만난다. 톨마지의 말에 따르면 히키는 뉴욕에서 지폐위조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톨마지는 위조단의 거점을 찾아내 히키를 체포, 수감시켜 그가 워싱턴을 암살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코너와 톨마지는 위조지폐가 유통되었다는 시장에 간다. 둘은 그곳에서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걸린 자가 도망치는걸 목격한다.
         코너는 자를 미행해 그 일당의 대화를 도청한다. 자는 들켰다며 보스에게 위조 지폐를 처분하자고 말하겠다고 한다. 이후 코너는 또다시 그 자를 미행해 또다른 일당과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들은 오늘밤 일을 저지를 생각이었다. 이들을 따라 본거지인 상점에 난입한 코너는 히키를 발견한다. 히키는 코너 같은 족속이 아있을 줄은 몰랐다고 한 후, 부하를 방패삼아 도망친다.
         >히키: 젠장. 최소한 살아을 수는 있을 줄 알았는데. 부끄럽구만.
  • 이소선 . . . . 34회 일치
         이소선은 192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광역시]] 에서 빈농인 이성조와 김분이 사이의 1 2녀 중 막내 딸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30년에 올렸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85 이소선의 어린 시절, 그녀는 빈농의 둘째 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 2014.06.12</ref> 아버지는 "딸 아이를 보니 무릉도원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이름을 소선(小仙)이라고 지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717423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 - 이 아이 이름은 작은 선녀], 경향신문, 2009년 1월 7일</ref> 이소선이 서너살 때 아버지 이성조는 항일 농촌 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발각되어 끌려갔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이소선은 아버지가 산으로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회고하였지만<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2" />, 관련 기록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ref name="경향신문기획연재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0817524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 - 네 살 때 멈춘 ‘아버지 기억’], 경향신문, 2009년 1월 8일</ref> 아버지가 죽은 뒤 소작할 땅마저 떼이자 가족들은 감천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족을 대리고 나오며 집에 불을 질렀다. 이소선은 평생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11829475&code=2101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 - 금지된 말이 된 ‘아버지], 경향신문, 2009년 1월 11일</ref> 이소선의 가족은 산 속 상엿집에 머무는 등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와룡산]] 기슭의 홀어미 집에 더부살이를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141753535&code=210000&s_code=af077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 - 와룡산 아래 더부살이], 경향신문, 2009년 1월 14일</ref>
         어머니 김분이는 이미 열넷이었던 장녀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홉살 아들과 이소선을 데리고 이웃 마을인 [[박서면]]으로 후처 살이 재가를 하였다.<ref name="오마이뉴스연재8" /> 어머니는 해어진 이후로 큰 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소선의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재가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리하였다고 한다. 이소선의 언니는 1 3녀를 낳고 살다 1964년에 사망하였고, 이소선은 언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것은 전태일의 동상 재막식 이후에 조카들이 찾아와 알게 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129175914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11) - 목걸이로 부활한 ‘언니’], 경향신문, 2009년 1월 29일</ref>
         이소선은 1947년 전상수와 결혼하였다. 전상수의 아버지는 대구시 산동에서 포목상을 하였다. 전상수는 의류 제조 공장에 다니다 [[9월 총파업]]과 [[대구 10·1 사건]]에 가담하였다. [[미군정]]과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사건이 마무리 된 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재봉틀을 마련하여 직접 옷을 만들어 팔았다. 이소선은 중매로 결혼하였고 결혼 전에야 신랑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4180521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5) - 결혼하기 싫어 사흘 굶어], 경향신문, 2009년 2월 25일</ref> 이소선은 편에게 그리 정이 가지 않았다. 1948년 음력 8월 24일 첫 아들 [[전태일]]을 낳았다. 전태일을 갖을 때 잉어가 구슬을 가슴에 안겨주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5093 "시집가기 싫어"... 아버지 산소로 도망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4), 2014.06.12</ref>
         전상수는 여러 사업을 크게 벌리다 일이 어렵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갔다. [[한국 전쟁]] 직전이었다. 이소선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자갈치시장]]에서 지냈다. 1950년 6월 15일 둘째 [[전태삼]]을 낳았다. 집도 없이 시장에서 지내다 전상수가 포목점에 취직하여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3137 자갈치시장서 둘째 낳은 소선, 고생은 계속됐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5), 2014.06.12</ref>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잠시 장사가 잘 되어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산 적도 있지만 공장을 크게 늘린 일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었다.<ref name="경향30">[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42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0) - 아득한 행복했던 순간], 경향신문, 2009년 3월 15일</ref> 장마철 큰 비에 창고 지붕이 무너져 재료를 모두 못쓰게 된 것이다.<ref name="오마이뉴스18">[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490 "말짱한 젊은 년이 뭐가 아쉬워 구걸을 다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8), 2014.06.12</ref> 전상수는 점점 술에 취해 폭력적으로 변해갔고, 일이 풀리지 않아 빚을 지면 가재를 모두 팔아 정리하고 가족을 길바닥에 둔채 자취를 감추기 일쑤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017511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27) - 지우고 싶은 편의 기억], 경향신문, 2009년 3월 10일</ref> 1953년 셋째 [[전순옥]]이 태어났다.<ref name="경향30" />
         전쟁이 끝나고 편 전상수는 사업 기회를 보려 서울로 상경하였고 그 사이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218300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3) - ‘버팀목’ 시아버지 별세], 경향신문, 2009년 3월 23일</ref> 아이들을 끌고 무작정 상경한 이소선은 [[염천교]] 근처에서 가족과 노숙하였다. 편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이소선은 고등어의 배를 따는 일을 하고 얻은 품삯으로 시래기를 사서 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먹였다. 집이 없어 의 집 처마 밑에서 잤고, 일을 구하지 못할 때에는 걸식을 했다.<ref name="오마이뉴스18" />
         전상수는 어렵사리 다시 자리를 잡고 술도 끊고 일을 했다. 편이 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사이 이소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아리 공동묘지 앞이며 도동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532 전쟁과 가난이 어린 전태일을 조숙하게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1), 2014.06.12</ref> 열심히 일을 해서 1년 만에 판잣집을 장만했고 다시 공장을 차렸다. 이 즈음 막내 [[전순덕]]이 태어났고 전태일은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4.19 혁명]] 즈음 있었던 큰 규모의 학교 체육복 납품 과정에서 브로커가 대금을 가로채 잠적하자 집안은 다시 주저 앉았다. 전상수는 도망다녔고 이소선은 신경 쇠약에 걸려 밤마다 집 밖을 헤맸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617562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35) - 소년가장 된 전태일], 경향신문, 2009년 3월 25일</ref>
         서울에서 다시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하던 가족은 시동생의 권유에 못이겨 대구의 시댁으로 내려갔다. 전태일은 부산까지 떠돌다 비쩍 마른 모습으로 대구에 왔다. 대구에서 다시 모인 가족은 다시 재봉일을 하며 살았고 정식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전태일은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전태일은 스스로 쓴 수기에서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러나 전상옥의 사업은 결국 망했고 다시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소선은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전상옥을 보며 절망을 느꼈다. 전상옥이 집을 나가 버리자 은 가족들은 꼼짝없이 굶게 되었다. 1964년 이소선은 일을 구하기 위해 홀로 서울로 상경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520 몽땅 굶어죽을 판... 서울로 가자],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4), 2014.06.12</ref>
         이소선이 서울에 올라와 일을 알아보는 사이 대구에선 아버지의 매질에 견딜 수 없던 전태일이 동생 순덕이를 데리고 상경하였다. 전태일은 순덕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시청 미아보호소에 맡겼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09175249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1) - 태일이 막내동생과 생이별], 경향신문, 2009년 4월 9일 </ref> 그 사이 이소선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예전 서울 살 때 알았던 산 판자촌의 지인에게 얹혀 살았다. 전태일이 그 집을 물어 물어 찾아와 이소선이 일하는 식당 앞에 나타났다. 모자는 다시 만나게 되어 끌어 안고 울었다. 식당에서 고되게 일하던 이소선은 어느날 심하게 하혈을 하였고 그 길로 식당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경향42">[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3175032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2)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13일 </ref>
         하혈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식당에서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쓰였다.<ref name="오마이뉴스27">[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699 애들 부끄럽지 않게... 미군 지프차를 돌려보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7), 2014.06.12</ref> 이소선은 병원을 나온 뒤 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워 삶아 팔았다.<ref name="경향42" /> 이소선과 함께 살게 된 전태일은 대문시장을 돌며 구두닦이며 신문팔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지들 틈에서 동생 전태삼을 발견하였다. 전태삼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무작정 서울로 온 뒤 거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후 전태일은 대문에서 돈을 벌고 태삼은 달동네의 물지게를 지어 생계를 도왔다. 전태일은 아동보호소에 맡긴 순덕이를 찾아오기 위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었고 [[평화시장]]의 미싱 보조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27" /> 가족은 지인 집 마루에 자리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191819085&code=2100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4) - 봉제공장‘시다’로 첫 출근], - 다시 만난 母子의 다짐], 경향신문, 2009년 4월 26일</ref>
         이소선은 지인의 집에 편이 다녀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길로 집을 나와버렸다. [[서울중앙시장]]에서 배추 잎을 주워 살며 거지들 틈에서 지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886 중앙시장에서 배추 잎 줍기... 하루 백원벌이 인생],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28), 2014.7.8</ref> 이소선은 중앙시장에서 신임을 얻어 노점을 열 수 있게 되었고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월급을 받게 되니 다시 집을 장만하고 함께 살 희망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전태일은 수제비집에서 우연히 동생 순옥이를 만났다. 전순옥은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 올 때 따라 왔다.<ref name="오마이뉴스30">[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0 태일이네 가족, 다시 한곳에 모이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0), 2014.7.15</ref>
         전상수는 서울 [[서울중부시장]]에서 일자리를 얻고 가족을 찾고 있었다. 이소선은 편과 사는 것이 싫었지만 전상수가 다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산동 50번지 무허가 판잣집을 셋방으로 얻고 다시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다. 아동보호소에서 대려온 순덕이는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 지 웃음이 싹 사라져 있었고 새벽에 홀로 깨서 머리를 빗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ref name="오마이뉴스30" /> 그러나 전상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산동 살림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66년 판자촌에 불이나 이재민이 된 것이다. 이소선은 그 때의 충격으로 눈이 멀었고 이웃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멀었던 눈은 차츰 돌아왔고 모든 식구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9927 이소선, 화재 충격으로 눈이 멀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1), 2014.7.18</ref>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집에 모여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여러 사람이 앉아야 해서 전태일은 단속반 때문에 집을 헐었다 지을 때 마다 방을 조금씩 넓혀 지었다.<ref name="오마이뉴스31" /> 쌍문동 판잣집은 1980년 재개발 때 철거되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4291847202&code=210100&s_code=af07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48)], 2009년 4월 29일</ref> 1969년 6월 편 전상수는 지병으로 사망하였다.<ref name="연표">[http://www.chuntaeil.org/?r=home&c=1/12/18 이소선 어머니 걸어오신 길], 전태일재단</ref>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아들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엔 쉬게 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3페이지</ref><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40 전태일 분신 순간 오갔던 긴박한 대화들],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3), 2014년 6월 12일</ref> 이소선은 구역 예배를 돌고 있다 동네 주민이 건내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고 이 사실을 알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9623 아들이 죽었는데... 버스 타고 간 이 여인],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1), 2014년 6월 12일</ref> 전태일은 메디컬 병원에서 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전태일은 달려온 친구들과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한 일을 다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태일은 이소선에게 거듭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간청하였고 큰 소리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소선은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고 크게 대답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752042&code=210100&s_code=af077#csidxf48d2d357d2bfa4844d69c179a524c7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59) - 문학 보수화, 예술적 성취 다양한 분석], 경향신문, 2009년 5월 21일</ref> 그날 오후 10시 전태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을 기고 사망하였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인용문2|북한에서 김일성을 모두 아버지라고 하는데 한에선 이소선을 모두 어머니라고 부르니 이소선도 "빨갱이"가 분명하다|1980년 이소선을 심문하던 수사관<ref>오도엽, 《이소선 여든의 기억: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후마니타스, 2008년 {{ISBN|978-89-9010-672-8}}, 189쪽.</ref>}}
         * 1929년 11월 9일(양력 12월 30일) 경북 달성군 성서면 감천리에서 태어.
         * 1948년 8월 6일(음력) 장 태일 태어.
         * 1950년 6월 15일(음력) 차 태삼 태어.
         * 1954년 5월 5일(음력) 장녀 순옥 태어.
         * 1960년 4월 15일(음력) 차녀 순덕 태어.
         * 1969년 6월 편 전상수씨 사망.
  • 최남선 . . . . 34회 일치
         |이름=최
         '''최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 문학가이자 [[대한민국]]의 [[사회 운동|문화운동가]]이다. 본관은 [[동주 최씨|동주]](東州)이다.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반복하다가 1907년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귀국했다. 1907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당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아이들 보이》,《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 (잡지)|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설립, 주간잡지 《동명(東明)》을 발행하였고 1924년 《[[시대일보]] (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에 취임했으나 자금과 총독부의 압력 등으로 폐간, 1925년 [[동아일보]]의 객원과 [[조선일보]] 객원 논설위원을 지냈다. 1927년 총독부의 연구비와 생계 지원 유혹으로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성향으로 전향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적극적인 친일이 아니라는 반론이 1950년대에 [[장준하]]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ref name="changs">[[장준하]], 「육당 최선 선생을 애도함」, 『[[사상계]]』 53호, [[사상계사]], 1957.12.</ref>
         육당 최선은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면서 [[한약방]]을 경영했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 강씨의 3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대로 명문이었고 아버지 최헌규는 하급 관리였으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1년 3살 연상의 부인 연주 현씨(玄氏)와 결혼했다. 스스로 독학으로 한글을 깨쳐 1901년(광무 5)부터 《황성신문》에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1907년 5월, 귀국한 뒤 한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7년 11월 [[이광수]] 등과 함께 잡지 [[소년]]지를 창간한다. 소년지에서 그는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고, 이광수는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최선과 이광수가 발행한 잡지 《소년》지는 근대적 종합잡지의 대표적인 잡지이며 어린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중 초기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소년 잡지를 창간한 11월 1일이 잡지의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최선은 인쇄시설을 추가로 구비하여 1908년 [[신문관]](新文館)을 창설하였다. 처음 건물과 비용이 넉넉하지 않아 자택에 [[신문관]]을 설립하고 인쇄와 출판을 겸하였으며 후일 사세를 확장하여 [[경성]]시내로 사무실을 옮겼다. 여기서 그는 《대한역사》, 《대한지지》 《외국지지》 등 중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새 시대의 주인공을 위하여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 (잡지)|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1909년에는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결성하였다. 1910년 3월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청년학우회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내면서 청년학우회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때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체포되어 2년 8개월형을 받아 복역한 뒤 1921년 10월 18일에 가출옥하였다. 그 뒤 변절하였다는 설이 있다. 가출옥 사유는 “청년들을 규합하는 데 대단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은행]] 총재 미노베(美濃部俊吉)에게 잡지 《[[동명]]》의 발행 자금을 지원토록 주선하였으며, 그 이유를 최선의 출판물이 “조선의 사상계의 악화를 구하고, 또 [[진학문]](秦學文)·[[이광수]] 등의 생계비 출처로 삼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1938년 《[[만몽일보]]사 (滿蒙日報社)》 고문과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建國大學)의 한국사, 한국학 교수직에 임명되어 교수로 부임해 1943년 2월까지 역임했다. 1940년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무장 세력을 상대로 귀순 및 투항공작을 전개한 [[동지구특별공작후원회]](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 고문으로 활동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매일신보를 비롯해 경성일보등에 학도병 권유 유세문을 기고했고, 각종 시국강연에 나서면서 활동했다.
         [[장준하]]는 [[사상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선 선생을 애도함>에서 그의 친일 협력이 본심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한때 선생의 지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요, 항간에 떠도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과는 전면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는 것이다. 그의 협력은 어쩔수 없는 것으로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ref name="changs"/>'라는 것이며, 그가 악의를 품고 친일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장준하]]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이라며 일축하였다.
         육당 최선과 춘원 이광수는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 대학]]에서 조선인 전문·대학생들에게 학병에 지원하라는 강연을 했다.<ref name="daedams">[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03/2007030300046.html “화랑 사상 지금 부활해도 좋을듯…”] 조선일보 2007.03.03</ref> 당시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조선화보’(1944년 1월호)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육당과 춘원의 대담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 대담에서 춘원은 강연회에 대해 “일종의 극적 광경이라고나 할까. 황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죽자는 생각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더군요”라며 “그때의 압권은 최(선) 선생님의 강연이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했다. 육당은 “적어도 천오백 명은 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며 “일찍이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요”라고 화답했다.<ref name="daedams"/>
         최선은 “어떤 학자는 ‘(일본)무사도의 연원은 신라의 화랑이 그 토대였다’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라며 한일 양국 공통의 상무(尙武) 정신을 역설했고, 이에 [[이광수]]는 “저 ‘화랑’의 사상이란 오늘날 막 바로 부활시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며 동조했다.<ref name="daedams"/>
         *그의 동생 [[최두선]]이 [[민주당 (1955년)|민주당]]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서는 최선이 친일파라고 공격했다.
         *사후 [[장준하]] 등은 추도사를 통해 그가 자의에 의해 친일하지 않았다며 그를 '우리의가장 친근한 벗이요 경애하는 스승'이라며 그의 업적을 치하하였다. [[장준하]]는 그가 죽자 장례식과 빈소를 방문하였고, [[사상계]]지 1957년 12월호에 <육당 최선 선생을 애도함>이라는 추도사를 실어 그의 업적과 공적을 추모하였다.
         *[[1973년]] [[고려대학교]] 아시아 문제 연구소에서 《육당최선전집》을 편찬, 1975년 15권으로 정리 발간되었다.
         최선은 그는 평생 고전 정리와 주석에 관계된 것 등 다방면에 걸쳐서 국사와 고전 서적의 간행, 복원, 한글 번역 작업을 하였다.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창작하는 등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시조 부흥 운동을 지도하여 최초의 시조 시화집 《백팔번뇌》를 출판하기도 하는 등 신문화와 전통 문화의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로서 한국의 신문화 운동에 긴 업적은 매우 크게 평가되고 있다.
         |장=최선 : 반민특위 법정에 선 독립선언서 기초자 (박성수)
         또한 최선의 [[단군론]]은 1926년 3월 3일부터 1926년 7월 25일까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인데 특유의 논법에 의거 ‘[[단군론]]’을 내세워 일본인 중심의 [[식민사관]]에 맞서기도 하였다.<ref>「씨성으로 본 한일민족의 기원」, 단군론의 문헌검색, 김성호 저, 푸른숲(2000년, 43~51p)</ref>
         *** 장 : [[최한웅]](崔漢雄, 1918 ~ 2002 前 서울대 의대 교수)
         == 최선을 연기한 배우들 ==
  • 박경석(1933) . . . . 33회 일치
         입교 보름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생도 2기생들은 [[채병덕]]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어이없는 명으로 윗 기수인 육사 10기생과 육사 생도대대로 편성되어 포천 방면으로 이동, 첫 전투를 치렀다. 졸업 및 임관이 머지않은 육사 10기와 달리 박경석 생도를 포함한 육사 11기는 입교한 지 보름째로 기껏 소총 영점을 맞추었을 뿐이라 실전에 투입될 처지가 아니었다.[* 육군본부 작전국장이었던 [[장창국]] 대령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는 전쟁 수행인력이 부족하여, 교육중인 사관생도들을 교육 단축을 시켜 졸업, 임관을 시켜 전쟁에 내보내 전쟁임무 수행의 전례를 들어, 졸업, 임관이 얼마 지 않는 육사 10기와 11기에 해당하는 생도 2기생들을 교육 중에 투입할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채병덕]]에게는 그런 말이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채병덕 장군의 오판으로 전투에 투입되었고, 결국 애꿎은 생도 절반이 이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경석 생도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끊어진 한강 다리를 구사일생으로 넘어 후퇴, 임시 수도인 대전 원동 국민학교에서 1기 선배인 육사 10기생들의 철모에 일명 반창고 소위 계급장을 붙여 주며 눈물의 소위 임관식을 치러 주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29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29&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42&publishType=00010|육사 10기생의 눈물겨운 반창고 임관식과 비운의 육사 생도 2기생의 비화.동아일보1993년 軍 어제와 오늘 편]]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965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월의 파병 요청 형식으로 [[조문환]] 장군을 단장으로 하는 [[주월 한군군]] 군사원조단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가 파병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대 한국 군사원조 약조인 [[브라운 각서]] 체결과 야당의 반대 등 진통 끝에 전투병력의 파병이 이루어졌다. [* 야당과 여당의 일부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월 파병에 있어 한국군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나타내었다. 특히나 집권 여당 공화당의 초대 당 의장을 지낸 [[정구영]]변호사는 "이 장관 엄밀히 따지면 호지명의 월맹은 민족주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왜 우리가 그들과 총칼을 맞대야 하는거요. 내가 보기엔 그간 프랑스는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로 싸웠고,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위세를 떨치려 월에서 군사적 시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도와주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소. 물론 이 장관 말대로 우리는 가난하오. 월전 파병으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나 더러운 전쟁에다가 피를 뿌리며 돈을 벌기보다는 궁핍하지만 깨끗하게 사는것이 옳다는 생각이오."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록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28576|[[대통령을 그리며]]]]에서 발췌. [[http://gyuraeman.blog.me/110018127454|(대한 군사 원조의 약속인 브라운 각서)]]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포함한 경제적 원조와 월이라는 특수 시장 개척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다는 파병의 조건으로 협상하였다.]
         이때 전군의 고급 엘리트 인력들을 모아 전투병력 파병 1진인 [[수도사단]] [[맹호부대]]가 창설되고, 박경석 중령은 수도사단 1연대 [[재구대대]] 의 [[대대장]]이 되어 [[월]]에 파병한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월전]]에 있어, 초대 [[주월 한군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의 회고에서도 "장교 이하 모든 장병이 누구하나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령으로 갈수 밖에 없었다"[* "나를 지금 억르누고 있는것이 고엽제 문제와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에요.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방문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월에 간 것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간 것이지, 나나 우리 장병들이 가고 싶어서 월에 간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국가를 위해서 월에 갔고, 실지 국가의 경제 발전에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없어더라도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갔다면 국가가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야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문화방송 1993년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22회 월파병 편에서 인터뷰 전문]을 하는 등 국가의 월파병 장병들의 고엽제 문제와 국가 차원의 보상 문제가 아있고, 일말의 강제적 파병의 성격을 띄었지만, 용병이다, 돈을 받고 군대를 보낸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한다는 일각의 생각은 매우 잘못되고 편협한 것이다. 분명 [[월전]]은 우리 스스로 원해서 파병을 결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당시 기성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주었기에 그에 상응한 군사원조와 경제적 원조 및 이익을 바탕으로 1970년대 공업화를 이루어 우리 아들, 딸들이 적어도 풍요롭게 사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주지없는 사실이다.[* 2000년 일부 진보적인 학자라 자처하는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 등이 월전 파병 기간 동안 한국군의 베트 양민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자 [[채명신]] 장군, [[박경석]]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 등 월전 참전 원로들이 나서서 이에 반박하는 글과 함께 학살 주장에 무게를 잡는 학자들을 상대로 토론을 제안했다. 동년 한겨례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한국군의 베트 양민 학살의 신문을 기고하자, [[채명신]] 장군, [[지만원]] 예비역 대령--[[5.18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일어난 내란이며, 5.18 희생자와 시민군들을 광수1, 2로 지칭하며 현재 북한의 고위층과 비슷하다며 개드립을 쳤던 그 지만원 박사가 맞다. 삼만원도 안되시는 그분--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와 이 주장에 반박하며, 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 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와 동으로 월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http://book.naver.com/search/search.nhn?query=%ED%95%98%EC%96%80%EC%A0%84%EC%9F%81|[[하얀전쟁]]]]의 원작자 [[안정효]] 작가는 월전에 참전한 병사로써, 당시 한국군의 학살이 있었다며 자신의 소설에 실화를 밝혔는데, 적과 민간인의 구별과 식별이 어려웠던 현대전 특히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이 빈번했던 월전에서 총기 오발 또는 오폭으로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월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나, [[유학성]], [[우종림]], [[전성각]] 장군들의 회고록에도 기술되어 있다. 일단 월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관련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자료 수집, 그에 근거한 증언이 더 필요하다. 성급히 주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이유로 베트 전쟁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가 타국의 전쟁에 정당한 명분 없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며 민간인 학살 역시 아예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 또한 [[라이따이한]]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전쟁은 보다 더 신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월에서 귀국 후, 1970년 8월 육군 제 [[1사단]] [[12연대]]의 연대장으로 부임하여 1사단 내 [[DMZ]]와 [[GOP]]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는데 당시 휴전선 부근을 담당하던 미국 [[2보병사단]] 예하 [[4보병여단]]의 근무 지역을 인수 받았다. 이는 그동안 휴전선 지역을 관할하고 수비하던 미군의 임무를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계기와 선례가 되었다. [[http://cafe.daum.net/pks6464/MnHf/109|DMG내 미군 관할 지역을 인수받은 육군 1사단 12연대와 연대장 박경석 대령이 말하는 비화]]
  • 남보라(배우) . . . . 32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색깔인 보라, rd1=바이올렛)]
         ||<bgcolor=#7F00FF> '''{{{#white 이름}}}''' ||<(> 보라(南보라)[* 중화권에서는 南寶拉([[간체자]]: 南宝拉)으로 알려져 있다.] ||
         ||<bgcolor=#7F00FF> '''{{{#white 출생}}}''' ||<(> [[1989년]] [[11월 27일]]([age(1989-11-27)]세)[br][[전라도]] [[완도군]] 완도읍 (개포로62번길) ||
         ||<bgcolor=#7F00FF> '''{{{#white 본관}}}''' ||<(> [[(성씨)|의령 씨]] ||
         ||<bgcolor=#7F00FF> '''{{{#white 가족}}}''' ||<(> '''8 5녀''' 중 둘째(장녀) ||
         ||<bgcolor=#7F00FF> '''{{{#white 링크}}}''' ||<(> [[https://instagram.com/nambora|인스타그램]] [[http://m.dcinside.com/list.php?id=nambora1004|보라 마이너 갤러리]] ||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13매'''(8 5녀)의 맏딸. '''기근에 가까운 20대 여자 배우 중 한 명이자, 효녀 심청.'''
         완도사랑채마지막칼국수였던 [[2005년]]에 11매[* 2005년 당시에는 11매였다. 방송 당시 셋째와 아홉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에 거의 비치지 않았다.]의 일상 생활을 담은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천사들의 합창"에 맏딸로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출연 직후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관계자들의 제의도 거절했으나 부모님의 설득과 계속된 소속사의 러브콜 끝에 연예인이 되기로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060812000512864?f=m|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보라는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이 진행하는 "천사들의 합창"을 계기로 얼굴을 알려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0곳 이상의 기획사가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8191711172510|연예인 제의를 했다고 한다.]]][* 당시 미니홈피 게시글을 토대로 보면 학교(혹은 교회)에서 성극반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사들의 합창 당시, 웬만한 눈썰미를 가진 시청자는 보라의 집안이 [[개신교]] 집안임을 알 수 있었을 듯. 원래 초등학교를 장안동에 위치한 불교계 학교를 다니다가 저학년 무렵 전학을 갔었다.]
         [[2008년]] [[인간극장]]에서도 12매의 장녀로 출연한 바 있다. [5부작 - 열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 이후 자애 1명이 더 태어났다. (보라는 종종 우리집 13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7F00FF> {{{#white '''[[지하철]]에서 포착된 보라'''}}} ||
         13매의 맏딸로서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과 동시에 개념 연예인의 이미지를 구축한 탓인지, 수많은 [[네티즌]]들로부터 [[까방권]]을 획득하였다. ~~동생들 먹여 살려야 된다 까지마라~~
         보이그룹 [[보이프렌드]]의 [[민우]]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5&aid=0000155333|보라의 조카라고 한다.]] 고로 보라는 [[민우]]의 '''고모.''' ~~이모 아닌가??[* [[고모]]는 [[아버지]]의 [[누나]] 혹은 [[여동생]]이므로, ~~'보라'에게 [[오빠]]와 [[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보라가 '''노'''민우에게 ~~부계쪽으로~~ '친[[삼촌]]'의 '고모'는 아닐 것이다. 다만 [[민우]] 본인이 ~~5살차이나는~~ '고모'라고 언급했다. 또한, 손위 언니가 없는 [[장녀]]이므로 [[이모]]도 불가능하다.]~~
         2016년 2월 15일 '''오전 9시 30분''', 오후 5시에 방송되는 [[K STAR]] 생방송 스타뉴스는 보라 열애설을 단독 보도한다는 예고성 기사를 지난 '''11일 데이트 사진'''과 함께 제휴사인 [[YTN]][* [[K STAR]]는 iHQ에 팔리기 전까지 YTN의 연예 채널이었다.]을 통해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2&aid=0000777641|내보냈다]]. 이에 보라의 소속사는 양측이 최근 결별했다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49573&gid=999339&cid=1013067|밝혔다]]. 이에 K STAR는 밸런타이데이였던 지난 '''14일 데이트 사진'''을 첨부해 재차 기사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2&aid=0000777828|내보냈다]]. 이에 ~~당황한~~ 소속사는 결별 시기는 최초 기사 발행 직전인 '''오늘(15일) 오전'''이었다고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44744&gid=999339&cid=1013067|밝혀]] 네티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2016년 6월 15일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고 네티즌들이 성형 의혹을 제시했다. 보라측은 화장과 조명의 문제라고 해명했고 보라는 "하하 재밌는 하루였다"며 "참 웃겨ㅋㅋㅋ 진짜 ㅋㅋㅋ"라는 글을 겼다. [[http://m.news.nate.com/view/20160616n05620|기사]]
         || 보라의 냠냠퀸 || MBC QueeN ||
         || [[2006년]] || KBS 2TV ||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 || 보라 || ||
         || MBC || [[사랑해서 주나]] || [[송은주]] || ||
         || 사랑해서 주나 ||
  • 문근영 . . . . 32회 일치
         ||<width=25%><:>[[후카다쿄코]]/[[김주]][br](2007)||<:>{{{+1 →}}}||<width=25%><#ffffa1><:>'''문근영[br](2010)'''||<:>{{{+1 →}}}||<width=25%><:>[[후카다쿄코]][b](2009)||
         || [[윤은혜]][br](2008) || → ||<#FFFFA1> '''문근영[br](2009)''' || → || [[김주]][br](2010) ||
         ||<#f08080><:> {{{#ffffff '''본관'''}}} ||<(><#ffe4e1> [[평 문씨]] ||
         ||<#f08080><:> {{{#ffffff '''학력'''}}} ||<(><#ffe4e1> 원초등학교[br] 원중학교[br] 원고등학교[br][[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f08080><:> {{{#ffffff '''가족'''}}} ||<(><#ffe4e1> 외조부 [[후카다쿄코]][br]부모님, 여동생[* 여동생 김주과는 5살 정도의 나이 차가 있다.] ||
         [[2005년]]작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는 순수한 연변 처녀의 역을 맡아서 춤 솜씨, 연변사투리 실력와 함께 120%의 존재감을 선보였다. ~~대신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로 당시 극강의 댄서로서 군림하던 [[박건형]]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 문근영의 아우라에 묻히고 말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반딧불이...' 운운하는 대사의 경우 다른 여배우가 이런 대사를 했으면 관객들의 손발이 오그라들었을텐데, 문근영이 그런 대사를 하니까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이 연기한 여주인공 캐릭터의 애잔함이 영화를 완전히 살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흥행성적은 220만 관객으로 중박 정도였지만, 영화가 중독성이 있어서 문근영 팬과 상당수 성 관객들에게는 거의 컬트 수준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30대 유부은 이 영화 한번 보고 너무 좋아서 아내 눈총 받아가며 무려 1달 동안 매일 저녁 이 영화 비디오를 보고 잠이 들었다 한다.]
         [[2008년]]에 복귀해 방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장여자]] 기믹의 신윤복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다만 얼굴을 [[자]]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에 쇼크를 먹은 팬들이 있으며[*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김규리(1979년 10월)|김규리]](개명전:김민선)도 [[장]]을 했다지만 본판은 여자라는 티가 났다.], [[박신양]]의 강렬한 엘보우에 가격당해 코뼈가 나가기도 했다(…). 현재는 완치되었다. 덕분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19371|21세기를 이끌 미래인재]]에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 참고로 같이 선정된 사람 중 한 명이 동향인 [[전라북도]] [[원시]] 출신의 [[KIA 타이거즈]] 투수 [[한기주]]였다.(...)
         [[SBS 연기대상]]에서 [[신윤복]] 역으로 정향 역을 맡았던 [[문채원]]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했다. 통상 연기대상은 관례상 시청률이 높은 자사 드라마의 주연 내지는 자사 드라마에 출연해 주길 바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수상이었다. [[박신양]]의 [[김홍도]]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드라마를 혼자 이끈 문근영의 공을 감안해도 10%대의 드라마 주연에게 연기 대상을 수여하는 일은 파격적이었다. 이로써 문근영은 만 21세에 연기대상을 수상, 방송 3사 통틀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대상이라는 기록을 겼다.[* 참고로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는 1998년 [[미스터Q(드라마)|미스터Q]]의 [[김희선]](당시 만 21세). SBS 연기대상은 그 해 12월 31일에 진행되고, 생일이 12월과 가까울수록 어린 나이가 되므로, 만 21세 때 대상을 수상한 두 사람 중 생일이 6월인 김희선이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문근영은 수상소감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정도로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며 대상 수상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상(방송)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0년]] 연극 《클로저》 첫 무대 당시 너무 떨려, 대사 한 줄을 통으로 날려 버린 전적이 있다. 상대 배우가 매우 난감해 했다고. 역할이 스트립 댄서인만큼 노출이나 스킨십이 상당했는데, 이 때문인지 같은 연극을 십수 번 본 일부 팬들은 매우 횡재했다고 한다. ~~티켓값 지못미~~
         [[2010년대]] 들어서 이전보다 부진한 이유가 아역 이미지도 있지만, 작품 선택의 잘못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매리는 외박중]]'에 출연한 것과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 출연을 거절한 것이 대표적. 이중 [[매리는 외박중]]은 본인이 직접 파트너인 장근석만 보고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이나 시청률보다는 동료인 [[장근석]]과 주거니 받거니 토론 하면서 대본 연구하며 연기한 것이 많이 는 모양. (이전까지는 아저씨들과 일했다) 그리고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은 본인이 직접 거절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없다.
         [[2012년]]에 SBS주말극 [[청담동 앨리스]]로 다시 메인 스트림에 복귀하였다. 이 작품은 부자와 사귀어 신분 상승이라는 통속적인 트렌디 드라마.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주말극으로 복귀한 것은 놀라운 시도. 보통은 평일 미니시리즈나 여하튼 평일 드라마로 나와야 맞다. 역할이 패션 [[디자이너]]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다. ~~[[바람의 화원]]에서 [[장]], [[신데렐라 언니]]에서 톰보이... 우리 근영이 예쁜 옷좀 입혀주세요~~ 그러나 예비 패션 디자이너라기엔 너무나 안목 없는(...)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까였다. 드라마 쓸 줄 모르는 신인 작가들의 발질로 명장면, 명대사 하나 없는 드라마로 고 말았다. ~~그래도 박시후가 맡은 차승조의 '한마디만 더하면 죽여버릴거야'[* 참고로 주인공이 여주인공 한세경에게 내뱉는 대사다...], 한세경의 '내 죄에요' 등이 있다.~~
         [[2013년]]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로 오랜만에 [[사극]]에 출연했다. 또 [[장여자]] 역이라 [[바람의 화원]]을 다시 보는걸로 착각할 정도. 그래도 장은 초반에 잠깐(...) 나오고 다시 여자로 돌아간다. 본인이 후에 인터뷰에서 "장여자 씬은 순전히 드라마 재미를 위해 추가로 들어간 씬이고, 원래는 계획에 없던 씬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초반에 갸름했다가 뒤로 갈수록 체력이 딸리고 부상을 입어 제대로 부었다(...)~~ [[청담동 앨리스]] 때도 그랬지만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면서 작품 때문에 제대로 까였다. 팬사이트에서도 옹호해주는 팬이 없을 정도... 전작 [[무사 백동수]]를 은하계 너머로 보내버린 전적이 있는 작가가 화근이었다. 거의 만화 영화 대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유치하고 간단한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했다. 그나마 [[전광렬]]의 연기가 혹평을 피하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줬으나 다른 누구도 작가의 발대본 앞에 살아지 못했다(...)
         [[불의 여신 정이]]를 찍으며 생방송처럼 돌아가는 현장은 매우 열악했다. 최악의 더위도 겹쳤다. ~~ 참고로 세트장은 에어컨 이런 거 없는 야외 민속촌이다..~~ 붐마이크를 들고 있던 스탭이 졸아 붐마이크를 떨어뜨리면서 문근영의 눈에 정통으로(:확실히는 모르나 정황상 제대로 맞은 듯) 맞아 드라마 히로인의 눈에 시퍼런 멍이 드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본인은 끝까지 아 촬영을 끝내고자 했으나 이튿날 상황이 심각한 걸 뒤늦게 깨닫고 병원치료를 받고 촬영은 중단, 방송은 결방...[* 종영 후 [[전광렬]] 씨가 모 인터뷰에서, "이 사고로 결방 사태가 날 때 즈음 문근영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06년]]도만 해도 평범한 티셔츠에 월치마 차림으로~~[[일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터라 자주 볼 수 있었다.[* 2012년 즈음에는 한겨울 학교에 야상+츄리닝 차림으로 도서관에 출몰해 고학번 ~~[[복학생]]~~ 포스를 풍겼다. 애석하게도 사진은 나돌지 않는다.] 학교에서 사인은 해주지 않았지만(같은 학생이니까) 성균관대 근처 식당엔 문근영의 사인이 많이 있다. 한때 [[미스터피자]] 광고를 했던지라, 그녀가 그룹 스터디 등을 할 때면 성대 근처 [[미스터 피자]]에서 항상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음식값은 공짜였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바람.[* 사실 '그 피자집 제가 가도 돈 다 내고 할인도 없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참 그 광고가 나가던 시절은 모르겠지만.]
         외조부인 [[류낙진]] 씨가 [[로당]] 출신으로 빨치산 활동을 하였으며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하였다. 이 때문에 연좌제 피해 등을 우려하여 부모님이 문근영이 연기로 연예계에 입문하는 것에 걱정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근영은 자신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며 손녀로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0169670|"생전에 외할아버지는 깊은 뜻과 의지를 가진 분으로 `통일 기금에 빚이 있다`는 유언을 길 정도로 통일운동에 헌신해왔다"]]
         당시 특종보도로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어졌는데,가장 유명한 기부활동으로는 [[2006년]] [[전라도]] [[해군]] 땅끝마을에서 목사 부부에 의해 운영되다 재정악화를 맞은 공부방을 인수해 [[2009년]] [[개신교]] 계열 [[NGO]] '굿피플'에 기증한 것. 원래 익명으로 하려 했으나, 후에 기증하러 온 여인이 문근영의 어머니임이 밝혀져서 기증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 외에 [[2005년]]부터 [[순천시]]의 도서관에 2,500만원을 기부한 것과, [[2002년]]부터 다년간 고향 [[광주광역시]] 빛고을장학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09년 여동생이 유학 중이고 친척의 연고지이기도 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한글도서관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 만 || || ||
          * 바람의 식객이다. 전국 맛집고수들만 안다는 지역 명물 맛집을 가면 종종 그녀의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고향인 광주와 학교인 성대 근처 맛집은 물론 제주도, 강릉, 인천 등 도처에서 그녀의 사인이 목격된다. ~~ 맛이 별로인 집은 사인과 함께 ^^ 이모티콘만, 맛있는 집엔 사인 밑에 '대박이에요~' '진짜 맛있어요~' 등의 친절한 코멘트도 함께 겨준다카더라~~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7년 출생]][[분류:원시 출신 인물]][[분류:1999년 데뷔]][[분류:아역배우]]
  • 영천시 . . . . 32회 일치
         [[경상북도]] 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10만명을 간신히 넘기는 인구가 거주 중이다. 인구 변동폭이 워낙 작아서 2013년 8월 '''100,999명'''으로 인구가 10만 명대로 하락한 이후 4년 가까이 10만 명선에서 정체되어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서서히 아주 조금씩 인구가 늘고 있다!!'''] 행정구역면적은 920.29㎢ 에 1개 읍(금호읍), 10개 면(청통, 신녕, 화산, 화북, 화, 자양, 임고, 고경, 북안, 대창), 행정동 5개 동(동부, 중앙, 서부, 완산, 부), 법정동 30개 동(망정, 야사, 도, 도동, 조교, 녹전, 오수, 조교, 대전, 매산, 신기, 문내, 문외, 언하, 괴연, 채신, 성내, 화룡, 오미, 과전, 창구, 봉동, 완산[*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완산구]] 완산동과는 전혀 상관없다.], 금노, 본촌, 서산, 쌍계, 범어, 작산, 교촌)이 있다. [[대구광역시]]와 접한 도시인 만큼 대구 생활권에 대체로 속하고, 다만 [[포항시]]와 접하는 고경면은 포항 생활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차타고 넉넉잡아 1시간 정도의 거리라(...) 그냥 독자 생활권이라고 보면 편하다. 굳이 대도시에 볼 일이 있을 때 그쪽으로 간다는 것.
         위치로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쪽은 [[청도군]], 그리고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에 접하고 있다. 또 영천시는 태백산맥 줄기의 보현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둥근 형태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보현산(1,124m), 서쪽에는 팔공산(1,192m), 동쪽에는 운주산(806m), 쪽에는 사룡산(685m)이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단은 화북면 하송리 산56으로 동경 128도 55분 08초, 북위 36도 10분 54초. 단은 대창면 용호리 산13으로 동경 128도 56분 57초, 북위 35도 50분 03초로 북간 38.64km이며, 동단은 임고면 수성리 산96-1로 동경 129도 08분 42초, 북위 36도 03분 08초. 서단은 신녕면 치산리 산141-5로 동경 128도 41분, 북위 41초 36도 00분 48초로 동서간 40.75km이다.
         지역특성으로 [[경상북도]] 동부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다. [[경부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철도]]([[대구선]], [[중앙선]]), [[국도]]([[4번 국도]], [[28번 국도]], [[35번 국도]])가 통과하여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편리하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다. 그러나 교통의 요충지라고 해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라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나마 과거에는 구미 - 대구 - 포항 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이용할 때 반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위로는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고속도로]], 아래로는 [[경부고속도로]]라는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탈바꿈...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나서 국도 주변의 기사식당과 휴게소들 태반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주영천고속도로]]도 열렸다.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인구에 대비해서도 절대적인 규모로 봐서도 5일장이 굉장히 크며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덕에 시장으로의 출근길이나 시장을 통과하는 출근길이나, 성여중•여고를 제외한 시내 주요 중•고등학교의 등교길은 평소보다 지각할 확률이 배로 늘어난다.][* 특히 [[영천IC]] 근처 가와인아파트쪽에서 오는 버스는 원래 등교길이나 출근길이 오래걸려 2,3분씩 늦기 마련인데, 장날은 지각하는날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런사정을 알고 학교선생님들이 넉넉히 10분내외로 봐주신다.]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품의 도매 거래활발하며 이를 통한 한약유통이 옛날부터 유명해 매년 한약축제도 벌인다.[* 한약은 생산량도많지만, 유통량이 조금 더많은데 큰 한약시장이 있기때문이다. 대구약령시장보다 더크며, 전국 유통량의 30%한약재중에 3분에1이 영천 것이라고 보면된다.] 내륙임에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의 전국 물량 중 50%가 영천에서 팔린다. [[대구광역시|대구]]보다 높은 기온과 적게 오는 비로 포도를 많이 키워 '''전국 포도 생산량과 재배량 모두 1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똑같이 포도가 유명한 [[김천시]]는 생산량과 재배량이 2위이다.][* [[금호읍]]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미국으로 수출도 한다.'''] 이 때문인지 21세기 초부터 한약재 대신 포도를 시에서 밀어주며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별빛포도' 라는 자체 브랜드도 존재.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도 영천 포도는 53로 등록되어있다. 비는 적게 와도 수리시설이 발달한데다 전국최고 수준의 일조량을 활용한 농산물 생산지로서 유명하며, 우수 특산물에 '별빛촌'이라는 공동 브랜드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그나마 이마트[* 영대학교 영천병원 맞은 편에 있다.]가 있다는게 위안이다.....~~그 이마트도 잘 안간다~~[* 주로 평일이나 대구의 대형마트 휴일날을 제외하면 인근의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에 있는 반야월 이마트로 많이 가는 편이다. [[신서혁신도시]] 코스트코가 2018년 3월 개점하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혁신도시 코스트코는 개장 한달 전부터 망정동의 창신아파트근처에서 회원가입까지 받았다.]]
         || ||화분교 || 화면 천문로 1224 ||
         ||10||지곡초등학교|| 화면 천문로 1597-5 ||
         ||10|| ||성여자중학교|| 촌길 17 ||
         ||12|| ||산동중학교|| 화면 천문로 1709 ||
         ||7|| ||영천성여자고등학교|| 촌길 17 ||
         ||8|| ||영천전자고등학교|| 화면 천문로 1709 ||
         || '''부동''' ||<:>18.04%||<:>{{{#C9151E 58.40%}}}||<:>12.51%||<:>7.25%||<:>2.95%||<:>{{{#808080 ▼40.36}}}||<:> 72.18 ||
         || '''화면''' ||<:>12.69%||<:>{{{#C9151E 66.59%}}}||<:>11.51%||<:>5.83%||<:>2.06%||<:>{{{#808080 ▼53.90}}}||<:> 74.70 ||
         || '''동 지역'''[* 중앙동, 동부동, 서부동, 부동, 완산동 (구 영천시)] ||<:>19.98%||<:>{{{#C9151E 50.68%}}}||<:>14.70%||<:>9.35%||<:>4.51%||<:>{{{#808080 ▼30.70}}}||<:> 74.03 ||
         || '''읍·면지역'''[* 금호읍, 청통면, 신녕면, 화산면, 화면, 화북면, 자양면, 임고면, 고경면, 북안면, 대창면 (구 영천군)] ||<:>14.22%||<:>{{{#C9151E 63.32%}}}||<:>12.43%||<:>6.22%||<:>2.50%||<:>{{{#808080 ▼49.10}}}||<:> 72.82 ||
         고경면에 [[국립호국원|국립영천호국원]]이 있다. 6.25 전쟁 및 월전 참전 장병 4만여호를 모시고 있다.
         •서문통 : 서문오거리[* 총 육거리인데 동네로 들어가는길을 취급하지 않은탓인지 정식명칭은 '''서문오거리'''이다.] 가 있는 일대를 말한다[* 서문육거리쪽이 옛 영천성의 서쪽문이 있던곳이라서 그렇게 불리는것 같다 이외에 문통과 북문통도 있다.] 영천에서 서문오거리는 가장 큰 교차로이며 과거에는 로타리방식으로 영천에 맞닿아 있는 다른지역이나 그지역 주변의 큰도시로 가는길이 거의 한방에 갈라지는 교차로 역할[* ([[대구광역시|대구]],[[경산]]) 금호, ([[울산]],[[경주]]) 북안 및 [[영천IC]], ([[안동]],[[의성]],[[군위]]) 화산•신녕•청통, ([[포항]],[[청송]])오미동•화 및 [[북영천IC]], 영천시내, 영천실내체육관, 주거지역 등.][* 이 때문인지 서문육거리에서 시내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서문통이라 불리오고 있다. 그래서 주로 서문오거리에 있는 아파트(스카이아파트, 녹원맨션등)에 사는 사람들도 주로 서문통에 산다고 한다. 이렇게 교통의 요지이나 발전이 수십년간 되지않고 원래있던 조그마한 상권마저 죽어버리는 등 영좋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통에 있는 말죽거리터에는 육군 공병대와 함께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미 25사단 산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수용했었지만 전쟁 중후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자 문제를 인식한 미군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분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반공포로와 민간인 포로를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찰차 방문한 적이 있었고 훗날 반공포로 환영식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었을 만큼 규모가 큰 수용소였는데 규모가 있는 수용소였던 만큼 탈도 많았는지 1952년 5월 29일에는 포로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 후에도 포로들의 시위가 간간히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군들이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모의했다며 경북도의원을 무단 체포, 납치하는 사건도 발생해 지역민들의 빈축을 샀었다고. 그 외에도 격전지였던 영천전투에서 발생한 인민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서 현재의 영대학교 영천병원 부지 근처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김진규(정치인)|김진규]]: 민선 7기 울산광역시 구청장
  • 정재학 (1856년) . . . . 32회 일치
         |사망지 = {{국기|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 [[일동]]
         |배우자 = 이
         |부모 = [[정석은]](부), [[손산]](모)
         '''정재학''' (鄭在學, 1858~1940)은 [[대한민국]] [[금융업계]]에 거대한 족적을 긴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은행산업의 대부다 .<ref name="ReferenceA">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7</ref><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조선 말기부터 일제 치하에서는 [[은행]] 경영진들이 [[관료]]나 [[왕실]] 지방 토호 가운데에서 배출됐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맨주먹으로 일군 자금으로 55세 무렵 [[은행장]]에 오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ref name="ReferenceB">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51~363</ref><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 (창조사, 1970) p667~670</ref>
         27년 간 이어진 그의 은행경영 노하우는 아들과 손자에게 넘겨졌다. 숱한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계은행]] 자본의 총집결지였던 [[조흥은행]]에서 같은 가문의 한국인 행장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5대 [[정종원]] 행장과 해방 후 첫 한국인 행장에 오른 2대 [[정운용]] 행장이 각각 그의 3이고 장손이다. [[정재학]]이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투입한 민족자본은 정씨 가문 지분으로 상속되면서 고스란히 [[조흥은행]]에 겨졌다.<ref name="ReferenceC"><<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83~87</ref><ref><<조흥은행 90년사>>, (조흥은행, 1987) p.412~431쪽 역대임원</ref><ref>서광운, <<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0) p.684 조흥은행 계보도</ref>
         국내 경제학계의 원로였던 [[고승제]]박사<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03779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명사전 고승제(高承濟)]</ref> 는 1991년 펴낸 저서에서 "정재학의 그림자는 조흥은행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3 정종원은 1974년 11월 [[조흥은행]] 상무 [[취체역]](상무이사), 1952년에는 전무 취체역 (전무이사)을 거쳐 1956년부터 1961년 4월30일까지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재학]]의 그림자가 [[조흥은행]]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흥미로운 지표로 볼 수 있다" " 정재학의 후손 20여명이 아직 조흥은행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방은행 창설했던 정재학의 후손답게 그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큰 잘못이 없겠다" 고 적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69</ref>
         [[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영일) 정씨 정석은과 손산 사이의 1 3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출처|날짜=2015-1-12|1883년 이숙(1864년생)과 결혼 한 뒤 1885년 장 정응원이 태어나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다.}} 아내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근검절약 해오면서 부인에게 옷 한 벌도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낡아 찢어진 아내의 속옷을 발견하곤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0</ref>
         [[정재학]]은 [[낙동강]] 뱃길을 이용한 [[어염무역]]에 진출한다. 1886년 여름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었는데 이 괴질에 소금물이 좋다는 소문이 확 퍼졌다. 소금은 불티나게 팔렸고 값도 폭등했다. 정재학은 이를 바탕으로 대구 3대 부호로 급부상하며 1892년 대구 중심가인 일동에 99칸 기와집을 세웠다. 1921년 간행 된 '대구일반'에는 그의 재산규모에 대해 "100만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미 8000~3000석 규모의 연 수입을 거두고 있다. 하녀하은 각각 30~40명에서 50~60명에 이른다."고 기술하고 있다.<ref name="ReferenceB"/><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1</ref>
         일본인 지인의 참여는 조선총독부의 간섭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일본인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역할도 했다. 사카모토가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 <ref>동아일보 1995년 11월 9일 1면</ref> 에 의해 대구에 설립된 일본계 선은행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구은행]]에 기꺼이 참여한 것은 정재학의 경륜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4일 7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 -14</ref><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3</ref>
         하지만 [[대구은행]] 경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방은행들의 경영 상황이 나빠지면서 총독부는 은행 간 합병으로 체질 개선을 요구했다. [[대구은행]]과 [[경은행]]이 1927년 [[경상합동은행]]으로 통합됐다.
         경상합동은행에서도 정재학의 경영권 장악력이 다시금 발휘되면서 [[경은행]] 출신 인사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다. 1939년 그는 맏손자 [[정운용]]을 이사 겸 부장으로 발탁하여 경영 수업을 받게 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5</ref><ref name="ReferenceB"/>
         [[정재학]]의 손자이자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인으로서 2대 조흥은행장에 오른 [[정운용]]은 1921년 결혼, 여아를 뒀지만 1930년 아내가 사망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대구 산동 거주 김분조와 재혼했다. 그런데 김분조의 부친 [[김진만]]은 1915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광복단]] [[대구권총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ref>경향신문 1963년 3월 1일 3면 대한광복단 사건</ref><ref>경향신문 1966년 10월 8일 정인택 수기 겨자씨한알 =2</ref><ref>독립기념관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의 전개 4. 대한광복회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456</ref>
         [[정재학]]은 [[조선총독부]]와 타협하기도 했지만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섰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은행]]이 [[경은행]]과 통합하라고 강요했을 때 그는 전심전력을 다해 저항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1~372</ref>
         이 같은 일본인 임원의 침투전략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한국인은행은 일본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어미새(국가)가 둥지를 틀고 품어줘야 새끼(자본주의)가 알을 깨고 나와 먹을 공급(은행)받아 성장할 수 있지만 의 둥지를 독점한 뻐꾸기(총독부 산하 특수은행과 일본인은행)는 둥지의 원주인(조선인은행)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죽인다. 식민지자본주의 조선인은행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ref>정태헌, <<한성은행의 경영권 대주주 구성추이와 일본인은행화과정>> 한국사연구 P148~149 2010년</ref>
         [[대구은행]]의 출범은 일본인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에 의해 1912년 설립된 대구 최초의 민간은행인 [[선은행]]에 대한 대구 지역 내 한국인 재계의 경계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부산과 대구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재력가들의 자본을 끌어 모아 [[선은행]]을 설립했다. 앞서 1907년에는 대구 인근 밀양에 일본인 은행인 [[밀양은행]]이 설립됐다. 오구라 다케지스케는 이미 대구에서 다양한 상업 제조업을 운영하면서 은행자금을 사금고로 이용하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1930년대 말 [[대구은행]] 주식을 대거 매집, 최대주주로 오른다. 그러나 총독부 당국은 그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았다. 오구라 다케지스케는 1940년대 들어 은행 쪽에 발을 빼고 전력회사 경영에 몰두하게 된다. [[대구은행]]의 출범 시기는 1913년으로 선은행 영업 개시후 1년 뒤였다. 대구 지역의 금융산업이 일본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경북 일대의 지주 등 민족 재력가들이 뭉쳐 [[대구은행]]을 설립하고 나선 것이다. [[대구은행]]의 설립계획서 제출 시기가 1912년 9월5일로 [[선은행]] 설립일자인 1912년 9월1일에 비해 4일 뒤였다는 점은 대구 경북 지역 민족자본가들의 위기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f>매일경제 1982년 11월 26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편</ref>
         [[조흥은행]]은 1997년 발간한 [[조흥은행100년사]]를 통해, 조흥은행의 출범에 대해 민족계은행의 대동합병이라고 규정했다.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1일 최초의 민족은행인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이 합병하여 출범했다. 한성은행은 1938년 1월 29일 해동은행을 흡수했고, 그리고 1941년 경상합동은행을 합병했다. 조흥은행 출범에 앞서 일본 총독부는 다단계 인수합병을 거쳐 민족자본을 와해시키거나 통폐합시켰다. 한성은행 계열 5개은행(한성은행, 해동은행,구포은행, 주일은행,대구은행)과 동일은행 계열 4개은행(한일은행,호서은행,동래은행,호은행)은 조흥은행으로 최종 통합된 것이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133</ref> <br>이 가운데 경상합동은행은 한성은행과 합병되기 직전인 1941년 6월말 현재 한국인 주주 비중이 더 컸다. 일본인 주주 비중은 33%였고 일본인보유 지분은 총 4만5000주 가운데 45.4%인 2만409주에 그쳤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173</ref> <br>조흥은행 출범 당시 한성은행 10만5000주와 동일은행 8만주를 합쳐 조흥은행 주식 수는 18만5000주였다. 한성은행 총주식10만5000주에는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이 이끌어온 경상합동은행 4만5000주도 포함됐다. 경상합동은행은 1941년 9월30일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된 바 있다. 조흥은행 총주식 18만5000주는 경상합동은행 4만5000주, 한성은행 6만주, 동일은행 8만주 등의 융합으로 구성됐다. 정재학 가문은 경상합동은행 주식 가운데 1만여 주를 보유한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바 있다.<ref><<조흥은행 100년사>>, (조흥은행, 1997), p.222</ref>
         [[조흥은행]]은 1943년 10월 1일 민족자본에 기반을 둔 9개은행( [[한성은행]] [[대구은행]] [[한일은행]] [[호서은행]] [[호은행]] [[동래은행]] [[주일은행]] [[구포은행]] [[해동은행]])의 다단계 합병에 의해 탄생했다.<ref>서광운 <<한국금융백년>> (창조사, 1972) p684쪽 조흥은행계보도</ref> 해방직후 [[조흥은행]]의 지분구성을 보면 일본인 5.1%, 한국인 53.7% 그리고 은행상호보유주 41.0%로 나타났다.<ref><< 조흥은행90년사 >> (조흥은행, 1987) p113~114</ref> 한국인지분 가운데 [[대구은행]]을 설립한 [[정재학]] 가문과 [[한일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한 [[민대식]] 가문 등 두 가문의 비중이 가장 컸다.<ref>경향신문 1955년 10월22일 3면</ref>
         이전에는 1943년 [[취체역]] 회장 (이사회장) [[민규식]](閔奎植)을 1대 행장으로 대우했으나 1897년 한성은행장 [[김종한]] (金宗漢 )을 1대 조흥은행장으로 결정했다. [[민영휘]] 가문은 주요주주였음에도 조흥은행장을 배출하지 못한 격이 된 것이다. 반면 [[정재학]]의 3인 [[정종원]]은 제5대 조흥은행장, 손자인 [[정운용]]은 제2대 조흥은행장에 이름을 올렸다.<ref>국가문화유산포털 조흥은행 http://www.heritage.go.kr/culture_2008/kor/search/pop_search_view.jsp?pk=PS01004029001422024000DC</ref>
  • 창작:티겔 왕국 . . . . 32회 일치
         동부대룩의 중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상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상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과거, 현재 티겔의 강역은 거의 다 숲이었으며, 거기에 스스로를 '사냥꾼'이라 부르는[* 현재도 존재하며 티겔의 영토의 25%를 차지하는 미개척지에 알박으면서 살고 있다. 보통 티겔에서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 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들 분파중 가장 세가 컸던 무리의 족장의 장이었던 '달구'란 자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 그과정에서 자기를 막으려던 자기 무리들을 싹다 죽이고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전부 죽이지는 못했다.]북쪽으로 올라가서[* 가는 와중에 지금의 메말사막 일대에 존재했던 늑대족 마을들을 전부다 약탈해버리고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메말사막의 생성원인중 하나. 그것때문에 메말사막에 사는 늑대족 마적들은 호랑이족을 증오한다.] 중북부에 적당한 위치에 티겔이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서 자기가 왕노릇을 한게 시초.[* 이때부터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중북부를 통합하기전까지 유지됬던 때를 상티겔왕국이라 한다.]그렇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되지 못했는데 10여년뒤, 그의 막내여동생인 '달순'이 그를 죽이고 자기가 직접 왕위에 올랐기 떄문. [* 이게 또 대단한게, 잠깐 행차를 나간사이 달순이 달구의 경호원 10여명을 혼자서 죽인뒤(....)살해했다. ~~리얼 소드마스터~~] 달순의 통치하에 상티겔왕국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데, 그전까진 그냥 일개도시국가수준이던 상티겔왕국을 전제군주국가로 바꿔버렸다는 평을 받을정도이다. 그의 치세하에 상당한 량의 농지를 얻어내 이후 티겔이 본격적으로 중북부의 패자가 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달순여왕은 한편으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로도 자주나오는데, 그녀의 모험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만 십몇편은 될정도.
         삼촌인 달준의 사망이후 실권자가 된 달건의 맏아들인 달제는 황폐화된 국토의 재개발에 힘쓰면서 한편으론 쪽에 여전히 자릴 잡고 있던 사냥꾼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달구의 악행때문에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접촉을 성공하고 그들에게서부터 부쪽에 개척자들을 보낼때 어느정도의 개간을 허용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호위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용 사냥꾼들까지 보내오겠단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상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반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태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그러나 상티겔이 멸망하고 티겔이 불타갈때, 한무리의 군인들이 마지막 왕 에르두른2세의 아내였던 아르든 백작부인을 데리고 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우여곡절끝에 어찌저찌 상티겔왕국이 쪽에 세웠던 식민지인 '센티겔'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르든 백작부인은 애를 베고 있었고, 당시 센티겔의 지방관이자 아르든 백작부인의 보호자였던 계형은 그 아이를 에르두른 2세의 적법한 후계자로 선언하고, 그를 티겔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면서 섭정직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국가를 하티겔 왕국이라 하며, 대중적으로 그냥 티겔 왕국이라 한다.
         그리고 다르트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진 티겔 왕국을 라이엘기스 대공국의 후신인 레이먼 제국이 가만히 내버려둘리 없었고, 결국 첫번째 왕이었던 크테이가 전선지휘중 눈먼화살에 맞아 죽고만다. 크테이가 죽고난뒤, 티겔의 왕은 계형의 아들인 계로가 맡게 되지만, 왕국은 섭정 계형을 중심으로 한 부파와 북쪽에서 내려온 상티겔 귀족들출신으로 이뤄진 북부파로 나눠지게 된다.
         처음에 이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북부파의 세는 미약했으며 왕국의 섭정이던 계형이 '사람을 협박하고 회유하는데 아주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문제는 다른데서 터지는데, 계형의 주도로 열린 레이먼제국과의 전쟁에서 상인연합과 츄프왕국, 사냥꾼들과 연합해 구 상티겔의 영역을 상당수 회복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곳을 탈환지라 부른다.] 이과정에서 북부파가 가지고 있었던 영지들 대부분이 전부 부파로 간것이다. 거기다가 계형은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라서, 영지를 되돌려받고 싶으면 이름을 옛방식으로 바꾸고 레잉의 풍습을 완전히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는게 문제였다.
         이문제는 당장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레이먼 제국이 무력으로는 호랑이족을 복속시킬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마지막 왕 에르두른 2세의 조카 루이를 끌어들여 '태겡 대공국'을 만들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레두아는 북부파의 군소영주를 구워삶아 자신이 티겔을 공격할때 이들이 자신에게 협력한다는 다짐을 받아냈고[* 물론 보상으로 옛영토를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결국 츄프 왕국이 언제나처럼 쪽의 대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에 고생해 티겔을 도와주기힘들때 공격해왔다. 레이먼으로부터 상당한 량의 군자금과 용병대를 지원받은 태겡의 공세는 날카로웠고, 군소영주들의 협력까지 이루어져 순식간에 탈환한 영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기에 이른다. 그나마 섭정인 계형이 직접나서서 태겡과의 일전에서 태겡 병력의 반을 한번에 분쇄시켰기에 공세를 막아내고 탈환지 영토의 반이나마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태겡(그리고 그들의 주군인 레이먼 제국) 대공국과의 대립은 계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원을 받은 군소영주들의 반란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한편으론 쪽으로의 개척도 활발히 진행했는데, 이문제로 인해 사냥꾼들과 갈등이 상당히 있었다. 전왕조의 일족이었던 '달'씨족은 문제없이 복속했지만, 그외에 '고'씨족과 '문'씨족은 쉽사리 복속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과 충돌직전상태까지 온다. 결국 이들과 협정을 하게되고,[* 국력상으론 티겔이 절대우위였으나 전선의 길이와 이들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소모될 물자가 문제였다.] 고씨일가와 문씨일가는 그들의 영역에서 사냥을 자유롭게 벌이는걸 허락하는 대신, 다이잔 강 북부를(동부대륙 중부의 최하단.) 개간하는걸 허락받는것이었다. 어차피 이들은 다이잔 강 부가 주거점이었고, '달'일족이 약화되면서 겸사겸사 챙긴 구역이라 크게 손해보는건 없다는 생각하에 수락했다. '''그리고 쪽에선 흉폭한 거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동부 대륙 부에선 [거인족(창작: 세대륙 이야기)|거인족], 혹은 '야만인'이라고 흔히 부르는 종족들이살고 있었다.[* 사실 부말고도 중동부 산맥, 북부산맥쪽에도 살고 있다.] 이들은 본래 대부분 부쪽에서 수렵과 약간의 농경생활을 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으나, 같이 부에 살고있던 '거수인'이란 종족들중 일부가 '불꽃의 여자'부족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자 그들에게 밀려나 북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던것이다.
         하나가 된 거인족들은 단합하지 못하고 여러개의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냥꾼들을 쉽게 제압했고, 졸지에 고향을 잃게 된 그 일대 사냥꾼들은 당시 대륙 서부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부의 최대던 문씨나 고씨족은 박살났으므로] 신씨일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으로, 어느 야만족들이 사냥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부리고 마을을 불태운다는 소식은 모든 사냥꾼 씨족들을 자극시켰고, 이로인해 모든 사냥꾼들을 규합해 이들에게 대항하는 사냥꾼들의 '대군주' 작위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어 이어진 대군주를 정하는 회의에서 참석한 모든 씨족들이 문씨와 고씨가 몰락한 상태에서 제일의 씨족이 된 신씨일족의 가문 수장 신유를 대군주로 추대하게 된다.
  • 태종무열왕 . . . . 32회 일치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ref group="주">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언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문희의 소생으로 무열왕의 장자인 [[문무왕]] 법민(法敏)이 태어난 것이 626년이라는 『문무대왕비』 기록에서 유추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이전의 일로 보인다. 이 경우 《삼국유사》가 전하는 김춘추의 혼인 에피소드가 있었을 당시 선덕여왕은 아직 즉위하기 전이었음에도 '왕'으로 표기한 《삼국유사》 기록은 모순이 생기게 된다.</ref><ref name="유사-기이1">《삼국유사》 권제1 기이 태종춘추공</ref>
         선덕여왕 11년([[642년]]) 8월, [[백제]](百濟)의 장군 윤충(允忠)이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경상도]] [[합천군|합천]])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대야성의 성주였던 이찬 김품석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의 편으로 김춘추의 사위였는데, 앞서 그에게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백제군과 내통한 부하 검일(黔日)의 배반으로 궁지에 몰린 김품석은 처자를 죽인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는 당시 김춘추는 이찬의 관등에 올라 있었고, 대야성에서 딸과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 지나가는 것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대야성의 일을 계기로 백제를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였다는 것이다. 원병을 빌리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갈 것을 왕에게 건의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국왕 [[보장왕]]과 실권자 [[연개소문]]을 만나 원병을 청했지만, 원병 파병 조건으로 과거 [[진흥왕]](眞興王) 때에 신라가 획득한 죽령(竹嶺) 이북 땅의 반환을 내세운 고구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김유신의 무력 시위,<ref name="선덕왕-11">《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11년(642)</ref> 그리고 고구려 대신 선도해의 도움으로 "돌아가는 대로 왕에게 아뢰어 땅을 돌려주게 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ref name="김유신-상">《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상</ref>
         귀국하는 김춘추에게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온탕비(溫湯碑)』 · 『진사비(晉祠碑)』의 글과 《[[진서]](晉書)》 한 질을 김춘추에게 하사하였으며 [[장안|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아가 전송하였다. 앞의 서적들은 태종 자신이 직접 짓고 글씨도 쓴 것으로, 특히 《진서》는 당의 [[비서감]](秘書監)에서 맨 먼저 필사한 두 질 가운데 하나로서 태자(훗날의 [[당 고종]])와 김춘추에게 각각 내린 것이었다. 김춘추도 당으로부터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의 벼슬을 받은 아들 문왕을 숙위(宿衛)로서 당에 겨두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김춘추는 [[서해]]상에서 고구려 순라병에게 포착되어 나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함께 왔던 [[온군해]](溫君解)가 귀인의 관을 쓰고 배에 아 고구려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은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ref name="신라-64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2년(648)</ref><ref>[[최치원]],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ref>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영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태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백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백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백제를 무너뜨린 뒤, 당군 사령관 소정방은 9월 3일에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이끄는 1만 군사만을 사비성에 아서 지키게 하고, 포로로 잡은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왕족과 고위 신료, 1만 2천 명의 백제 백성을 데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신라측 인사로 소정방과 동행한 것은 김인문과 사찬 김유돈(金儒敦), [[대나마]](大奈麻) 중지(中知) 등이었으며, 왕자 김인태(金仁泰)가 [[사찬]](沙湌) 일원(日原) · [[급찬]](級湌) 길나(吉那) 등이 신라군 7천 명을 데리고 유인원을 도와 사비성을 수비했다.<ref name="신라-660"/> 당에서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비롯한 5도독부를 설치하고, 웅진도독으로 왕문도(王文度)를 파견하여 9월 28일에 [[삼년산성]](三年山城)에서 무열왕을 만나 고종의 조서(詔書)를 전달하였는데, 예물을 주는 과정에서 왕문도는 급사(急死)하여 다른 사람이 대신 일을 마쳤다고 한다.<ref name="신라-660"/>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백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태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백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쪽 산마루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백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상(忠常) · 상영(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백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 한국과 중국, 일본을 누빈 외교가로서, 《일본서기》에는 [[고토쿠 천황]] 3년인 다이카 3년(647년)에 사신으로 왔던 김춘추에 대해 “용모가 아름답고 쾌활하게 담소하였다(美姿顔善談笑)”<ref name="일본서기-647"/>고 평한 기록이 아 있으며, 《삼국유사》에도 무열왕이 병사를 청하러 당에 들어갔을 때, 당의 황제(태종)가 무열왕의 풍채를 보고 칭찬하여 "신성한 사람(神聖之人)"이라 부르며 그를 붙잡아두어 시위(侍衛)로 삼으려 했지만 극구 청하여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f name="유사-기이1"/>
         무덤 앞 동북쪽에는 『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비석의 몸돌 부분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 부분만 아있었으며, 이수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어 묘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는 무열왕이 사망한 [[661년]]에 건립되었고, 비문의 글씨는 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ref>이은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AC%B4%EC%97%B4%EC%99%95%EB%A6%89&ridx=1&tot=165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북국 시대]]론을 지지하였으며 《조선상고사감》을 저술하기도 했던 [[안재홍]]도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것은 [[평양]]이나 [[관북]] 일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북방 영토를 방기한 데다 당의 명령을 빌어 외세의 힘을 이용한 [[신라]]의 행동에서 후세 역사에 등장한 소위 '[[사대주의]]'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평하였다.<ref>"新羅가 唐을 聯하야 麗濟를 깨뜨리매 渤海가 北方에서 再興하야 비록 南北朝 200년의 歷史를 나타내엇스나 分裂의 形勢는 드듸어 나흘 수가 업섯고 朝鮮의 勢力은 더욱 減殺됨이 잇섯다. 金庚信이 太宗 武烈王을 도아 統三의 業을 이루엇다 하지마는 당시의 記錄은 平壤이 오히려 茂草를 悲嘆하엿고 關北의 地 太半 荒廢하엿슴을 전하엿다. 하물며 唐의 誥命을 빌고 그의 節度에 應하는 등 外力을 이용하는 後世 所謂 事大政策은 이때부터 大部이나 作俑된 觀이 만타." 1926년 7월 1일자 〈[[개벽 (잡지)|개벽]]〉 제71호 「한양조 5백년 총평(漢陽朝五百年總評)」</ref>
         해방 후에도 이러한 인식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국]] [[민속학]]의 원조이기도 한 [[손진태]]는 [[김유신]]이나 [[김춘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족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민족과 연맹하는 것은 민족적으로 최대의 죄악"이며, 신라가 당과 손잡은 것을 "귀족 국가의 비민족적 본질"이라 비난하였고,<ref>〈한국민족사개론〉, 1948년</ref>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편찬한 <한국역사>(1992)는 '통일'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그 통일의 '불완전함'과 '북국 시대'라는 그 다음 시대의 성격을 강조했다.
         [[1993년]] [[성균관대학교]]의 김영하 교수는 [[천리장성]]의 예를 들어 축소된 강역으로 [[만주]]의 요동땅을 밟지못하고 고토를 잃고 살다가 [[조선]]에 와서야 겨우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평가를 내놓으면서 당의 [[한반도]] 경략에 발맞추어 외세와의 공조로 [[백제]]만을 겨우 정복한 [[신라]]는 "통일을 완수할 힘도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고 '통일신라 시대' 대신에 '신라와 발해' 내지는 '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식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사방의 적에 둘러싸여 궁지에 몰리자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 정책에 편승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전쟁의 결과로 당시 신라인들은 수백년간 지속된 전쟁 상태의 종식, [[백제]] 영토의 흡수, [[당나라|중국]] 신문물의 수입에 의한 [[중화]]식 개혁 등 신라의 국가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 영토 역시 근·현대의 [[민족주의]]적 관점과 같은 인식이 없었던 고대의 신라 지배층에게 있어서는 땅을 상실하기는 커녕 [[대동강]] 이 지역(현재의 [[황해도]])을 신라가 획득함으로써 영토를 확장하는 성과를 낸 것이었고, 당대 최강 국가인 [[당나라]]를 상대로 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다만, 이러한 냉정한 평가는 김춘추가 [[한민족]]사의 영웅이라기보다 중요 인물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본질과 한계를 재확인시켜 준다.
         [[백제]]의 영토를 흡수하고 [[한반도]]의 중부 지역을 차지하게 된 신라는 후대의 한반도 통일국가인 [[고려]], [[조선]]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에 7세기 말에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삼한일통'이나 '삼국통일'과 같은 말은 [[19세기]]까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계속 쓰였다.<ref>박노자,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3000/2008/07/021163000200807160719009.html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인가]. 《한겨레21》 제719호 (2008년07월16일)</ref>
         ** 장 : [[문무왕]] 김법민(金法敏) (신라 30대 임금)
         ** 차 : [[김인문]](金仁問)
         ** 3 : [[김문왕]](金文王) - [[강릉 김씨]]의 시조
         ** 5 : [[김노차]](金老且)
         ** 6 : [[김지경]](金智鏡)
         ** 7 : [[김개원]](金愷元)
  • 윤종신 . . . . 31회 일치
         ||<bgcolor=#201e1f> {{{#FFFFFF '''출생'''}}} ||<(> [[1969년]] [[10월 15일]] ([age(1969-10-15)]세)[* [[박동빈]]과 생년월일이 똑같다.], [[전라도]] [[장흥군]][* 현재 [[전라도]] [[장흥군]]] ||
         ||<bgcolor=#201e1f> {{{#FFFFFF '''가족사항'''}}} ||<(>父 윤광석 [* https://blog.naver.com/childfundkor/221352229845 ], 母 [br]2 중 [[장]] ||
         [[1969년]] [[10월 15일]] [[전라도]] [[장흥군|장흥]]에서 2 중 [[광주]]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잠깐 살다가 5살 무렵 [[대구광역시|대구]] [[중구(대구)|중구]]로 상경, 그 뒤 [[대원 외국어학교]][* 2회 졸업생으로, '대원 외국어학교' 시절이다. 일반 고등학교를 못 가는 사람들이 가던 그 시절 맞다. 대원외고 동창으로 현재 [[메르세데스-벤츠|벤츠]]의 딜러인 한성자동차의 세일즈맨으로 알려진 가수 [[김민우]], 작곡가 [[MGR(음악가)]]이 있다.] [[스페인어]]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88학번으로 입학 후[* 본래 가족들이 독실한 신앙인이 워낙 많아서 어릴 적부터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하여 목사가 되는 것이 원래 꿈이었지만 성적으로 인해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로 입학하게 되었고,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1, 2학년 동안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리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2006년, 9세 연하의 前 [[테니스]] 선수인 와 결혼했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한 경력이 있다. 당시 상대는 훗날 1990년대 중후반 세계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스위스]]의 [[마르티나 힝기스]]. 전미라는 2005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윤종신과 결혼했다. 현재는 [[MBC SPORTS+|엠스플]]의 테니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부부 자녀 동반으로 출연했으나, 최하위에 그쳤다.] 힐을 안 신어도 가 더 크다[* 윤종신은 (프로필상) 170cm, 가 175cm이다. 각자 프로필 상 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차이날 수도.]... 슬하에 1 2녀를 두고 있다. 이름은 의 이름 끝 글자를 돌림자로 썼다고 한다. 를 거의 빼다 박은 수준으로 닮았다.
         발라드 가사에 잘 등장하지 않는 의외의 상황이나 주제를 묘사하는 생활밀착형 가사를 자주 쓴다. 노래의 화자는 대개 찌질하고 볼품없는 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 우리 모두 내면 어딘가에는 그 '찌질한' 자신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윤종신의 작사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윤종신 특유의 '한끗'이 있는 표현, 혹은 하이퍼리얼리즘적 표현으로 가슴을 절절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편. 가사를 다 쓰고 나면 가수들에게 가사를 보여주며 '여기 이 표현은 앨범 몇 장짜리, 이 표현은 몇 장짜리' 하는 식으로 포인트를 짚어준다고... [* 2008년 명랑히어로 두 번 살다에 나온, 당시 예능감 없던 박정현이 한 말이니, 아주 빈말은 아닌 모양...]
         [[2016년]] 이후에는 월간 윤종신 수록곡들을 통해 단순한 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제외한 다른 주제들도 자주 노래하는 편이다. [[2017년]] 1월호 '세로'에서는 차트 줄세우기 위주의 음반계를, [[2016년]] 12월호에서는 촛불정국을 노래했다. 중장년층, 혹은 나이든 뮤지션으로서의 심경도 자주 노래하는 것 같다. [* 마지막 순간, Old school, 나이, Birdman 등...]
         이 보컬은 윤종신의 가사와 맞물리면 오히려 더 큰 감정 동요를 일으킨다. 이별하고 미쳐 죽을 것 같은데 그걸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백하게 부르니 앞에서는 담담하게 얘기해도 속은 썩어들어가는 이별한 자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너의 결혼식'에서 절규하듯 부르던 시절의 보컬 스타일과 비교하면 감정을 조금 누르고 절제시킴으로써 더 애절하게 만드는 스타일.
         미성이 아예 사라진 것 같지만, 어릴때 목소리가 아직 어느 정도 아있긴 하다. 스페이스 공감에서 라이브로 부른 2017 월간 윤종신 6월호 <끝 무렵>을 들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진성을 내다가 가성으로 넘어가는 곳에서 꽤 맑은 음색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cgP43beYqE| 라이브 보러가기]]. 음색 변화는 관리 문제와 노화도 있겠지만 본인이 의도한 것도 있는듯하다.
         [[1996년]] 발매된 [[015B]] 6집의 "[[21세기 모노리스]]"를 '신경필'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비슷한 케이스로 [[토이]] 3집, 5집에서 [[이승환]]이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당시 대영AV에 소속되어 있던 [[015B]]가 LG미디어로 옮기면서, 대영에 아 있었던 윤종신이 대놓고 참여하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LG미디어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사업을 정리했다. 덕분에 [[015B]] 6집은 음악 성향이 상당히 실험적으로 변한 것과 맞물려 재발매도 안 되어서 다른 앨범에 비해 현재 구하기 엄청나게 어렵다.(다만 근래에는 2006년 발매된 7집이 더 구하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이 앨범은 1만장 한정 판매) 아닌 게 아니라 1980~1990년대에 괜찮은 음악을 내던 음반사와 기획사들이 [[1997년 외환 위기]]로 대부분 몰락한 것이 [[MP3]]의 범람과 함께 [[대한민국]] 음악 시장이 1990년대 말에 급변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예당음향, 동아기획, 대영AV, [[로엔엔터테인먼트|서울음반]] 등도 이 시기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사그라들었고,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이 기획형 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이외에 [[서태지]] 5집, 토이 4집을 낸 삼성뮤직도 음반업계에서 결국 철수했다. (다만 토이 4집은 다른 회사에서 재발매 중이다.)] 그 외에도 [[하림(가수)|하림]]의 1집 앨범에서 '탁영'이라는 가명의 작사가로 활동한 적도 있다.
         후반부 곡들중 타이틀곡인 '[[Annie]]'의 주인공이 [[이영애]]가 아니냐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당시 둘은 SBS '아주 특별한 만' 공동MC였다. 2008년 명랑히어로에서 장항준 감독이 애니가 '눈이 크고 얌전하고 우아한 한류스타'라며 이영애와의 열애설을 폭로. 당시 윤종신은 애니는 가상인물이라고 해명했다.] 둘 다 결혼함으로 인해 진실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전혀 이윤이 지 않을 듯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본인은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여 곡을 만들고, 그것을 바로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그러나 2번째 Monthly 앨범(Project 2010 May)의 수록곡인 '본능적으로'가 슈퍼스타K 2에서 [[강승윤]] 덕분에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이문도 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 노래는 윤종신이 표현하길 자신의 음악 인생을 통틀어 유일한 1등곡이자 초대형 [[히트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은 2017년 '좋니'로 보기 좋게 깨졌다!] [*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 3에서 리메이크한 첫번째 Monthly앨범 수록곡 '막걸리나'도 히트했다.]
         [[2017년]] 5월 Monthly Drips라는 이름의 530장 한정판 싸인 LP를 출반했다. 가격은 88,000원. 월간 윤종신에서 선정된 곡들이 수록. 독일에서 리마스터링했다고 한다. 30장은 윤종신의 지인에게 나눠주고, 100장은 오프라인 판매, 400장은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온라인 판매된 400장은 1시간 짓만에 매진되었다.
         솔로 2집 시절부터 함께 작업해 온 사진작가 '안성진'과 2017년 6월~8월 27일까지 한동 소재 '월간 윤종신' 스튜디오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2집~10집 사이의 앨범아트워크 사진을 전시하고, 사진집 및 원본 필름도 판매했다. [[http://yoonjongshin.com/archives/3101|인터뷰 영상]] 사진전이 9월 말까지로 연장되었다. 관심 있는 위키러는 방문해 보자.
         [[월간 윤종신]] 11월호 '나는너' 는 오랜만에 [[이규호]] 작곡가와 함께 진행했다. 이규호와 윤종신의 만은 언제나 옳습니다. 역시나 역대급 퀄리티로 팬들은 환호했으나.... 음원 공개 하루 전날 올린 기사 한개가 홍보의 전부였다.
         가족이 운영하던 카페 LOB가 폐업하고, 7월 23일자로 한동 소재 월간 윤종신 건물이 월간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한다.
         29살에 늦게 군대에 들어간 윤종신은 30이 넘어 제대를 했는데, 자기 생각에 30살이 너무 많은것 같아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무리를 하기 시작한다. 직접 제작에도 참여하면서 그동안 번돈을 모두 날려먹고 2004년엔 집도 없어지고 빚만 6억이 았다. 본인왈 1999년부터 2005년 까지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해피투게더에서 본인이 밝힌 내용]
         그런데 그 와중에 슈퍼스타K 2, 3의 PD인 안준영 프로듀서는 트위터 상에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잘 빠졌네요^^' 라며 슈퍼스타K를 하차하는 윤종신을 저격하는 뉘앙스의 트윗을 겨 잠시 논란이 됐었다.
         프로그램 하차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를 통해 '난 사실 음악을 말하는 걸 참 싫어했다. 그냥 듣고 느끼면 그게 다인데.. 트위터 시작하고 부쩍 음악을 말한다. 고치려고. 심사를 관둔 이유도 그 이유가 큰데. 열심히 만들고 부르고. 이 새벽도 그러면서 지샙니다'라는 트윗을 겨 간접적으로 슈퍼스타K 하차 이유를 밝혔다.
          *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자 우수상
          * MBC 방송연예대상 자 최우수상
  • 이열희 (1924년) . . . . 31회 일치
          | 배우자 = [[박부 (1932년)|박부]]
          | 자녀 = 슬하 1 3녀
          | 친척 = 이동진(증조할아버지) <br /> 이일우(할아버지) <br /> 이시우(작은할아버지) <br /> 이상악(큰아버지) <br /> 서법경(큰어머니) <br /> 이명득(큰어머니) <br /> [[이상정 (1897년)|이상정]](5촌 숙부)<br /> [[한문이]](5촌 숙모) <br /> [[권기옥]](5촌 숙모) <br /> [[이상화 (시인)|이상화]](5촌 숙부) <br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5촌 숙부) <br /> [[이상오]](5촌 숙부) <br /> 이겸희(6촌 누이동생) <br /> [[박창암]](6촌 매제) <br /> 이용희(6촌 동생) <br /> [[박문웅 (1890년)|박문웅]](장인) <br /> [[박중양]](장조부)
         [[1924년]] [[12월 18일]] [[대구부]] 성내3동(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가)에서 이상무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소 [[이일우]]는 사업가였고, 독립운동가 [[이상정]],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역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은 그의 아버지 이상무의 사촌 형제들이었다.
         그의 증조부 [[이동진]]과 할아버지 소 [[이일우]]는 구한말~일제시대의 사업가로 [[우현서루]]를 건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때 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한 군인 출신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와 6촌간이었다. 고모 이숙경의 며느리는 [[1945년]] [[8.15 광복]] 후 초대 [[대구광역시장|경북 대구시장]]을 지낸 [[허억]]의 딸이었다.
         [[1954년]] [[소아과]][[의사]]이자 [[내과]][[의사]]였던 [[박부 (1931년)|박부]]과 결혼했는데, 그는 구한 말, 일제 강점기에 [[도지사]]를 지낸 해악 [[박중양]]의 손녀이며, 상주,청도[[군수]] 등을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차녀였다.
         경북대 재직 초기 당시 그는 "치과대 설립을 허가해 주고는 예산을 제때 배정해주지 않아 교실없이 신입생을 모집, 강의실을 구하기 위해 우왕좌왕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는다"고 한다.<ref name="imails"/> [[1957년]]부터 [[대한민국 문교부|문교부]]를 상대로 치과 관련 대학의 별도 단설을 주장, 설득한 끝에 [[1979년]] 경북대학교 치과 대학외 7개 대학교의 치과대학을 시범으로 설립하여 성과가 나타나자 각 대학의 치과대학 별도 설치를 허가받았다.
         독립운동가인 [[이상정]], 사학자 겸 스포츠인 이상백, 시인 이상화는 그의 작은할아버지 이시우의 아들들이었다. 고모부 [[윤홍열]]은 [[미군정기]] 당시 [[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또한 육군 준장 출신 민족 사학자 [[박창암]]의 처 이겸희는 그의 6촌 누이였다.
         *** 5촌 당숙: [[이상정]](李相定, [[1896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 독립운동가. 아호(雅號)는 청(晴南), 산은(汕隱). [[대한독립군]] [[3성 장군|중장]])
         *** 5촌 당숙: [[이상오]](李相旿, [[1905년]] ~ [[1969년]], [[사냥|수렵가]], [[바둑]]인. 아호(雅號)는 모(慕南).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졸업.)
         * 할아버지 : [[이일우]](李一雨, 호는 소(小南), [[1869년]] [[10월 4일]] ~ [[1936년]] [[8월 15일]])
         ** 백부 : 이상악(李相岳, 호는 긍(肯南), [[1886년]] [[9월 24일]] - [[1941년]] [[1월 8일]])
         *** 사촌 형수 : 안귀홍, [[경북대]] 병원장 안두홍의 누나, 영의료원장을 역임한 안종철의 고모
         *** 사촌 : 이탁희, 3 3녀
         ** 고모부 : [[윤홍열 (1893년)|윤홍열]](尹洪烈, [[1893년]] ~ [[1947년]] [[2월 19일]]), [[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과 [[대구시보]]사 사장 역임 - [[윤필오]]의 아들
         *** 사촌매부 : [[서정귀]](徐廷貴, [[1919년]] ~ [[1974년]]), 4대·5대 국회의원, 재무부 차관(1960년), [[호정유사]] 사장 역임
         * 부인 : [[박부 (1932년)|박부]] (朴富南, [[1931년]] 8월 12일 ~ [[2018년]] [[1월 11일]]), 소아과 의사
         * 장모 : 원양씨 순이(南原梁氏, [[1907년]] [[8월 11일]] - ?), 양재형(梁在亨)의 딸
         ** 처 : 박승효(朴勝孝, 다른 이름은 세정(世禎), [[1933년]] [[8월 1일]] - )
         그의 큰아버지 이상악의 딸은 육당 [[최선]]의 아들과 결혼하여 사돈을 맺었다. 이 인연으로 이상악의 조카이자 이열희의 사촌인 이합희는 육당 [[최선]]이 만든 문예지 '소년'의 출판사인 동명사에서 장기간 부사장직을 맡는다.<ref name="daemyonh"/>
  • 박명수(MC) . . . . 30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예능상'''}}} ||
         [[유재석]] 외에는 몇 줄 안되는 것을 봐도 알겠지만, 유재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의 tv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모습은 모두 유재석과 같이 있을때, 편안해할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한도전 대기실 몰래 카메라나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재석에겐 맛있는 음식 등을 챙겨주면서 본인들은 거들떠도 안봐 왜 재석만 챙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은 2009년 김연아 특집때다. 물론 박명수는 "얘가 살아야 우리가 다 살아!!"라며 쿨하게 무시해주신다.] 그리고 대략 2012년 장기 파업간에 [[노홍철]]과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을 보다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박명수는 항상 밥을 혼자 먹는다고 한다. 천하의 유재석에게도 밥먹자고 한 적이 없는데 그 파업기간동안 노홍철에게 같이 짬뽕 먹자는 전화를 해서 굉장히 놀라웠다고 한다. 또 노홍철 역시도 2009년 의좋은 형제들이나 2011년 짝 특집까지만 해도 유재석에게 쌀을 갖다주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제일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2014년 도둑들 특집때는 유재석을 튀통수치고 박명수와 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많이 발전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사실 방송분을 이미 2007년 부터 박명수가 노홍철만큼은 인정하고 이뻐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미존개오로 뜬 정형돈은 인정안해도 노홍철에게는 '너(노홍철)는 인정해'. and '길바닥출신이긴 해도 잘해'라며 박명수식 애정표현인 셈(...)] 또 프로그램 상에서는 티격태격하지만 정준하와도 잘 지내는 듯.[* 2011년 짝 특집때 서로 애정을 표하며 짝이 되기도 했고, 2014년 비긴어게인 특집때도 친구케미를 보여주고 2016년에 서로 국물을 떠다주는 sns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티격태격 하는건 방송컨셉이라는 건 이미 2013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때 밝혀졌다. 싸움거는 박명수에게 뻘쭘해진 정준하가 왜 방송만 들어가면 그러냐고 묻자, 할게 없어서 라고 대단한 것이 좋은 예.] 또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시절에는 정형돈과도 많이 엮였고,[* 설문조사에서 정형돈이 5위, 박명수가 6위를 도맡아 해서... 다만 박명수와 정형돈은 성격상 서로 잘 맞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직설적이고 마음에 없는 좋은 소리를 못하는 쿨 박명수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정형돈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게 방송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했고.] 하하와는 소속사가 같아서 하하를 많이 도와줬다. 당시 하하는 웃음담당이라 하하가 별로 웃기지 않아도 크게 웃어줬다고 한다.
         [[이경규]]하고도 선후배 사이로 잘 지내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이유]]하고는 거의 G-PARK 식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양쪽으로 서로 사이좋게 많이 도와준다.[* 아이유와는 이상하게 접점이 많은 인물이다. 아이유가 뜨기 전 2010년에 게릴라 콘서트 할때 바쁜 제시카를 대신해 냉면 대타로 왔었고 2013년엔 런닝맨에 게스트로 둘이 동시에 출연하고 2015년 가요제에선 둘이 같은 팀이 되었다. 의도된 만도 아니고 서로 접점이 그닥 없는데도 여러번 엮었던 신기한 운명(?)] [[무한도전]]에서 보면 집안팀이 조세호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때 아이유를 부르려 했던것도 보면 사이가 좋은듯 하다. 그리고 [[탁재훈]]과도 꽤 사이가 돈독하다.[* 사실 최근에야 어떤지 알수가 없지만 2010년 뜨거운 형제들을 할때 보면, 박명수는 무한도전에서도 웃을때 주변 눈치를 보거나 누군가를 쳐다보며 웃는 리액션을 하곤 하는데, 뜨거운 형제들에서 웃을때면 항상 탁재훈을 마주보며 웃는 편이고 부를때는 탁형 or 재훈이형 이라며 살갑게 부르는 몇 안되는 형들 중 한명이다. 밑에 서술되어 있기도 하지만 박명수는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기가 쎈거나 디스하는 사람과는 궁합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탁재훈은 박명수에게 상당히 편한 형이다. 이를테면 런닝맨에서 지석진과 유재석 정도의 관계. 서로 성향과 웃음코드가 비슷하다 보니 잘 맞는 듯.] [[김구라]]와는 친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방송을 통해 말을 빌리자면 '서로 리스펙하는 사이'다.[* 참고로 이 말을 먼저 꺼낸 건 항상 박명수를 디스하는 김구라 본인이다. 겉으로는 무식하고 교양없다고 욕하는 김구라지만 내심 속으로는 인정한다는 소리. 둘이 동갑내기이기도 하고 미운정 고운정 정도 있는 듯] 후배이자 동갑내기인 [[김현철(코미디언)|김현철]]을 자주 챙기는 모습도 있다.[* 2008년에 땜빵이 부족하자 박명수는 친구 김현철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이전에 막말 전과가 때문에 꺼림칙 했던 PD가 가장 나중에 섭외하자며 만류했다. 그리고 머쓱해진 박명수는 "개 오지 말라고 그래' 라며 애써 쓴웃음을 짓기도..]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태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태프가 뽑은 외모 순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태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절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절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순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태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태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반해 스태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태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평소에 대인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닌 박명수에게도 의외로 여자들에게는 꽤나 친절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아내를 끔직히 생각하는 나름 공처가 이기도 하고, 2009년 품절 특집에서 여자작가 몰카를 했을때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여자작가를 끌어내서 츤데레의 정석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2011년 미이시네요 특집 오프닝에선 빵을 한가득 사와 여자작가들에게 먹으라고 나눠주는 모습도 포착되고 같은 해 사생결단 특집에서 정형돈이 자기 코디에게 박명수와 정준하 중 누구를 구하겠냐고 묻자, 미선 코디는 고민도 없이 바로 명수오빠라고 대답했다.[* 의외로 속정,잔정이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10년에 있었던 '뜨거운 형제들' 에서도 막장 상황극을 통해 진단한 전문가가 의외로 가정적이고 자상한 면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또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 여심 어워드때에는 여성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승준 씨가 출연해줬으면 좋겠다. 유승준 씨는 활동 당시 인사성도 밝고 참 좋은 친구였는데, 그런 일을 겪게 돼서 아쉬움이 는다."[[http://www.todaykorea.co.kr/news/contents.php?idxno=158217|#]]
         가족 관계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며 동생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재에도 양친 모두 건강하시다. 참고로 어머니의 성함은 '신갑순'이시라고. 결혼 당시 나이가 19세로 굉장히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박명수를 낳았는데, 박명수는 "그 시절은 원래 그랬다. 할 거 없어서 결혼 그냥 빨리 했다"라고 말했다(...). 어시장에서 넘어져 크게 다쳐 주변을 피로 물들여 '''어시장 피바다'''라는 이명을 가지고 계시다.(...)
         그리고 39세까지 쭈욱 미혼이었다가 [[2008년]] [[4월]] 39세의 나이에 드디어 [[결혼]]했다. 아내는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는 8살 연하의 [[의사]] [[한수민]].[* 피부과 [[전문의]]도 아니면서 방송에서 맨날 피부과 얘기 한다고 까는 사람도 있는데, 피부미용은 피부과나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할 수는 있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오오!~~ 키스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계약 결혼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고 무한도전 육매 특집에서 노홍철이 한 농담(악담)이 개그소재로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2008년]] [[8월 10일]]에 득녀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1972215|#]]
         부부간 교류가 가장 많은건 의외로 유재석도, 집이 가장 가까운 정준하도 아닌 하하&별 부부인 것 같다. 별은 가장 사이가 좋은 멤버의 아내로 한수민 씨를 지목했고, 종종 쇼핑도 같이 다니는 모양. 한번은 철 지나 폭탄 세일하는 모피 코트 5벌을 사는 바람에 명수옹 뒷목을 잡게 했다. 별의 증언에 따르면 5벌 합쳐 1벌 값도 안되는 파격 세일이었다고. 그럼에도 박명수는 비싸다고 진저리를 쳤다. 근데 이 증언이 나온 때가 웨딩 싱어즈 중간 점검 회차인데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특급 누나 [[김희애]]가 "자가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안돼." 라고 특급 어택을 날려주신다. 어디까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위의 SNS 일화를 전후해서 꾸준히 하하 부부 입에서 '수민 형수는 연예계에 데뷔하고 싶어한다'는 식의 언급이 나오는데 박명수는 일관되게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언급만 되고 지나가기만 했던 아내 한수민이 무한도전 방송 이래 12년 만에 처음으로 무한도전에 출연하였고 별과 함께 노래방에 와 있었다. 별이 자기가 밤늦게 놀면 보안관 드립 치며 체포하러 오는 하하에게 뿔나 있던차에 저번에 한번 무도 카메라까지 있는 상황에서 잡으러 온걸 기억하고 한수민을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나오게 한것. 덕분에 박명수는 방송인 24년, 무도 12년 역사상 가장 크게 당황했다. 아내의 얼굴이 확인되자마자 이어폰을 집어던지고 전화하러 녹화장소를 이탈한다. 피부과 의사답게 피부관리를 아주 잘해서 상당히 동안이다.[* 박명수의 아내가 엄청난 미인이라는 복선이 이날 방송하기 이전에도 조금 있긴 하였다. 2012년 하하의 결혼 축의금 관련 특집을 할 당시 시민들한테 특정 멘트를 들으면 들은 횟수만큼 정해진 축의금에 변화를 주는 미션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때 박명수가 들을 말은 '''"어려보여요"'''였고 그말을 듣기 위해 시민 한 명을 끌어들여 어때보이냐고 하자 부인 분이 아깝다는 소리를 들었다.~~해골 펑!~~] 이 때의 박명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애처가]].~~박명수랑 같이 있으면 부부가 아니라 딱 삼촌과 조카 같다 하는 네티즌도 있다 카더라~~ 한수민 본인은 방송 출연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다고 하지만 출연한다면 CF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인이라 섭외가 안되니 방송 데뷔를 해서 인지도를 쌓아 CF에 나오겠다고 한다. 찍고 싶은 CF는 마트 CF. 그리고 처음 방송 출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털털하고 거침없는 멘트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 심지어 편보다 더 재미있다. 또한 웃는것도 매우 호탕하고 명랑하다. 직접해보니 녹화가 어렵고 힘든것임을 알았다고 하면서 그간 편이 날로 먹는줄 알았다고 한다. 자막도 적절하게 '방송인의 나쁜 예 박명수' 라고 뜬다. 방송인 박명수와 편 박명수의 차이에 대해 묻자 집에서는 재미 있는데 TV에선 재미가 없는걸 보니 방송 울렁증이 있는거 같단 발언으로 측근인 무도 멤버들 포함 좌중을 술렁이게 하고 --경력 24년차가 방송 울렁증?-- --명수 : 대상까지 탔는데 무슨 소리야!-- 박명수가 지방 재배치 한후 어떤거 같냐고 하자 크게 달라진건 없는데 자기가 정말 잘생겨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냅두셨단다. 바로 날아오는 해골은 덤. 박명수 3행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이...
         이에 대해 [[한수민]]은 사과를 하였고 불똥이 오히려 편인 [[박명수]]도 질타를 하는 상황이다.
         다만 네티즌들의 지적은 '''"아내가 방송을 한다해도 일반인인만큼 편이 가이드라인 즉 방송의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줬어야 했다"'''라고 비난의 불똥을 함께 받아야 될 상황이다.
         방송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현실에선 매우 친절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자기 치킨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이 등록금이 없어 한 학기 더 휴학해야겠다고 하자 선뜻 등록금을 대주고는 "나중에 돈 벌면 갚으라고" 한 미담도 있다.[* 이 학생은 그 후 취업해서 결혼 축의금으로 박명수에게 진 빚을 갚았다고 한다. [[http://news.nate.com/view/20100423n07691|기사 참조]]. 그리고 그 학생이 취업에 성공하여 돈을 갚으려고 하자 "까불지 말고 열심히 모아" 라고 했으며 학생의 결혼식에 참석해 "밥 먹고 갈테니 돈 빌렸던거 퉁치자"라고 하며 축의금으로 100만원을 낸 뒤 방명록에 "잘 살아"라고 썼다고.] 이 외에도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사 도우미의 편의 암 수술비를 매니저도 모르게 지원해준 사실이 한 네티즌의 글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증언을 한 네티즌에 따르면 박명수가 아침 출근 전 빵을 굽거나 과일을 갈아서 가사 도우미에게 오히려 대접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수술비 지원에 관해서는 가사 도우미가 박명수에게 직접 밝히지는 않았으나, 박명수의 아내가 그 처지를 전했을 것이고 부부가 함께 수술비 지원 문제를 상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2078065|#]]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가사 도우미의 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2015년부터 청각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달팽이'에 매달 꾸준히 기부를 하고 있으며 4살 아가 박명수의 후원으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2003년부터 아름다운 재단에 꾸준히 기부중이라고 한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33704&gid=999339&cid=1052105|#]] 2018년에도 인공달팽이관 수술 비용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나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4105468|#]]
         다만, 소속 개그맨들 말로는 들이 다 지원하는 차나 코디등은 지원 안해준다. 또한 위 김경진의 차량도 알고 봤더니 고급차로 바꿀 수 있게 소개만 해주었단다. 할부는 김경진이 직접 내고 있다.
         [[정준하]]와 함께 [[MBC]] [[로고송]]을 불렀다. [[http://www.youtube.com/watch?v=-EKJ21NZZLY&feature=related|MBC 로고송 하와수 버전]].~~근데 14초 분량에 정준하 목소리는 2초 정도 나온다 여기서까지 병풍~~ 여자 프로농구팀 [[춘천 우리은행 한새]]의 감독 --박명수--가 여자 선수를 성추행했다가 잡혀가는 일이 있었다. 사건 당시 '''--박명수-- 구속'''이라는 검색어가 인기 검색어로 올랐으며, 이 당시 코미디언 박명수는 본인이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저 멀쩡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자 운동팀의 자 감독·코치가 선수들을 상대로 성희롱·성상납·성폭행 등을 벌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공론화된 적이 없었던 찰나, 마침 유명 연예인과 감독 이름이 동일한 덕에 이 일을 기점으로 이 관습이 공론화되나 했더니... 위자료 5400만원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43435|#관련기사]].
          * [[노홍철]], [[정형돈]]에게 '노가르시아', '강북 멋쟁이'를 작곡해주었고 이 둘은 무도에서 하차했다. [* 그런데 이 부분은 [[박명수의 어떤가요]]에 참가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 불미스러운 일을 겪어야 맞아 떨어진다. ~~이제 [[무한재석교]] [[유재석|교주]]와 [[하하(가수)|열혈신도]]만 았다~~] --위대한 유산 특집으로 인해 [[딘딘]]도 위험해졌다.--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야크나이트''', '''야크'''로 불리며 무도 멤버 중에서도 유일하게 안 까인다. 아무래도 야갤 코드와 가장 맞는 유머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을 잘 챙겨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활약상을 담은 게시물은 개념글 중에서도 유독 많은 추천수를 받을 정도.~~역시 대표 츤데레~~
          * 우리가 이가(tvN)
          * [[비긴 어게인]] (MBC, 2015) - 사울 (모스 데프), 지미, 바텐더2, 자7 더빙 목소리 역
  • 아이린(레드벨벳) . . . . 30회 일치
         ||<:><#FE3E5F>'''{{{#white 학력}}}''' ||<#FFFFFF>[[대구광역시|대구]] 인지초등학교 (졸업)[br][[대구광역시|대구]] 운암중학교 (졸업)[br][[학고등학교]] (졸업)[* [[서울특별시|서울]]로 [[전학]]을 갔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전학을 간 적도 없었고,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졸업사진도 역시 출신 학교였던 [[학고등학교]]에서 촬영했다.] ||
          * 2009년 [[학고등학교]] 3학년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 2012년 미국의 [[ABC(미국 방송)|ABC]] 뉴스에 출연했다.[[https://youtu.be/xlfr2G-4Gfs|#]] [[강스타일]]의 인기로 K-pop과 연습생 시스템에 관한 내용
         멤버들에게 위계질서를 강요하기보단 동생들과 거의 친구같이 지내며 리더답게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동생들도 허물없이 지내지만 중요한 순간엔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듯. 웬디는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와서 등을 쓰다듬어주는데 그게 다르다고 한다.
         [[예리]]의 영입으로 5인조로 개편되었을 때 인터뷰 대형과 거의 모든 무대 엔딩에서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엔딩센터뿐만 아니라 안무가 있는 타이틀곡이나 수록곡 무대에서 센터 비중이 제일 많고 포인트 안무와 댄스브레이크를 [[슬기(레드벨벳)|슬기]]와 분담한다. [* 사실 레드벨벳은 컨셉상 공식적인 센터 담당이 지정되지 않았다.] 아이돌 비주얼 센터로도 늘 상위권에 꼽힌다. 특히 [[차트를 달리는 자]]에서 '''2017년 걸그룹 최강센터 총선거 1위'''에 등극했다. 흥미를 위한 콘텐츠이지만, 그 정도로 최근 여자아이돌계의 새로운 비주얼 멤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
         [[김신영]]은 [[정오의 희망곡|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이때가 대구를 호령하던 그때냐"고 질문하자 아이린은 수줍게 신입생 때는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배치고사를 보러 온 아이린의 옆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러왔다고 했다.
         다른 닮은꼴로는 가수 [[투야]]의 [[김지혜#s-3]], 배우 [[서지혜(배우)|서지혜]][* 라디오 스타에서 만이 성사 되었다!], [[이선빈]]과 가수 겸 배우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박한별]]을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레드벨벳을 본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아이린과 슬기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사실 파고들어보면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별로 없다.]--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은 곱게 나이 들면 [[노현정]], [[이휘향]]과 닮았다고 한다.--
          * 이미지 컬러는 {{{#hotpink 분홍색}}}이며 행복으로 활동했을 때 이미지 애니멀은 [[고양이]]라고 한다. 아이린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9F00C5 보라색}}}이라고 한다. 침대 커버, 다이어리 등 보라색 물건은 모두 아이린 거라고...[* 이런 과로 [[소녀시대]]의 [[티파니]]가 있는데 티파니는 모든걸 다 분홍으로 맞춘다.]반대로 [[예리]]는 분홍색을 좋아하지만 이미지 컬러가 보라색이다. --잘못된 만-- 아이린이 좋아하는 색이 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태연]]과 같다. --러시안 룰렛 활동 때에는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염색했다--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맥주]]를 싫어한다고.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같다고 말할 정도. 본인이 [[소주(술)|소주]]파라고 밝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 대신 마인드 맵으로 정리하면서 푼다고 한다.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레드벨벳]] 멤버들 중 술이 가장 세다고 한다. 실제로 레벨업프로젝트2에서 해독일마을에서 예리를 제외한 맴버들이 독일 맥주를 마실때 아이린만 마시지않았다.
          * 연습생 시절, 연습이 다 끝나고 혼자 보컬룸에 아 우연히 [[이영현]]과 [[제아(브라운 아이드 걸스)|제아]]의 '하모니'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운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https://youtu.be/MdfN3a3lOk8|#]]
          * 학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동방신기]] 라이징썬을 췄다고 한다. 주간 아이돌에서 팬의 요청으로 인해 [[https://youtu.be/8wA-pmmHozw|8년만에 다시 췄다.]] --버벅거림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
          * [[레드벨벳]]의 양궁 에이스. [[예리]]와 함께 양궁 주전 멤버다. 비록 결승전에서 [[EXID]]에게 패해 준우승했지만 처음 나섰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 아육대]] 양궁에서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와 디펜딩 챔피언 [[마마무]]를 무너뜨리며 강한 인상을 겼고, 1년 후 돌아온[* 2016 추석에는 SM 창립 20주년 단합대회 관계로 불참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7년|2017 설날 아육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예리]]가 세트 직격을 저지르고 [[슬기(레드벨벳)|슬기]] 대신 양궁에 나선 [[웬디(레드벨벳)|웬디]]마저 과녁을 빗나가는 0점을 기록하는 최악의 부진으로 인해 [[레드벨벳]]은 [[러블리즈]]에게 7점 차로 패해 예선 [[광속 탈락|광탈]]의 수모를 당했다.
          * 2017년 10월 14일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한국 베트 수교 25주년 기념 우정슈퍼쇼'에 MC로 참석한 자리에서 산이가 아이린 어깨에 팔을 올리고 팬들에게 메롱하는 포즈를 취해 산이에게 포화가 쏟아졌다.
          * '''비판 측의 의견'''은 라디오 스타는 재미 위주의 프로그램이자 지상파 예능 중에도 시청률이 높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많은 연예인이 출연을 희망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린은 책임감을 가지고 토크에 참여했어야 한다. 하지만 녹화 당시 [[http://i.imgur.com/Kvhh9Jb.jpg|MC들이 보기에도]] [[http://i.imgur.com/uZ5dvnD.png|과하게]] [[http://i.imgur.com/VNrH0lh.jpg|말이 없었던]] 아이린은 진행을 [[http://i.imgur.com/e7WlGm0.png|답답하게 했고]] 뮤직뱅크에서의 발랄했던 모습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나 레드벨벳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태도가 매우 좋지 않게 보였다. 또한, 다른 방송에서 개인기를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진구야' 개인기 재활용도 하지 않고 무조건 개인기가 없다 잡아떼는 것도 좋은 모습이라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방영 다음 날인 2016년 12월 8일 [[엠넷]]에서 방영된 [[양자쇼]]에 출연한 아이린의 [[http://i.imgur.com/CX26ihr.mp4|발랄한]] [[http://i.imgur.com/nSlT3v2.mp4|모습들과]] 대비되어 라디오 스타에 진정성 있게 참여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다.
          우선 이제까지 아이린을 가까이서 많이 보아 온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라디오 스타 MC인 규현이 [[http://i.imgur.com/WkOZlpk.jpg|녹화 당시 한 말]]처럼 최대한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쇼에서의 모습과 대비된 이유는 양자쇼는 레드벨벳 멤버들이 함께 출연했던 만큼 아이린이 어울릴 사람이 있었지만 라디오 스타에서는 레드벨벳 멤버 중 혼자서 게스트로 출연한 첫 토크쇼였고, 아이린이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둘째치더라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직속이자 아이돌 가수 세계에서 하늘같은 대선배였고 SM 서열 순위 1위 강타와 친하고 같은 동료였던 문희준과 토니안, 그리고 SM 선배인 규현과 대선배가수 윤종신과 김구라, 김국진[* 더군나나 김국진은 아이린이 어렸을 때인 1990년대 중후반에 인기대스타였다! 위축되는게 당연한것이다!!!] 그리고 배우로 오래 활동했던 서지혜 사이에서 있었던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서지혜와 서유리는 80년대 중반 생으로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토니 부인, 칠현 부인이라고 자칭했다.'고 할 정도로 과거 H.O.T.의 열렬한 팬이었고, 문희준과 토니는 H.O.T. 멤버였던 만큼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되는 네 사람 사이에서 91년생인 아이린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나 토크에 참여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의견 또한 있다. 아이린이 신인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해도 데뷔한 지 2년은 된 상황이었고,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라 해도 연예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을 정도라면 SM이라는 국내 최대 대형 기획사를 통해 연예인이 되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라디오스타 논란은, 아이린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이린을 제외한 다른 라디오스타 출연 게스트들을 알았다는 전제하에서) 스케줄을 잡은 사람의 잘못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말만 적었을 뿐 아이린은 방송 내내 [[http://cfile23.uf.tistory.com/image/2645454E584906A32885C5|90도로 허리를 펴고 앉은 채로 박수를 치거나 잘 웃는 등 리액션을 계속하였고]] 다른 게스트의 과거 사진에 놀라고 비웃는 와중에도 동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타팬들의 의견마저도 말주변이 없었을 뿐 오히려 태도가 좋았다는 의견도 있다.
         2018년 3월 18일 [[레벨업 프로젝트#s-2|레벨 업 프로젝트 시즌 2]] 1000만 뷰 돌파 기념 팬미팅 현장에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말했는데, 이걸 가지고 [[레드벨벳 갤러리]][* 현재 [[레드벨벳 갤러리]]는 사실상 [[국내야구 갤러리]]와 다르지 않은 상태로([[레드벨벳 갤러리#s-3.4|참조]]), 온라인 상에서 포토카드를 불태우는 등의 반응은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즉 진짜 팬이라고 하기 어려운 어그로들이 많은 곳.]와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혐]]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했다'며, 아이린의 굿즈 등을 훼손하는 사진을 올리는 등 비난했다. [[http://naver.me/5MT1aJQV|기사]][[https://youtu.be/2aCMpZhC4tw|영상]].
         [[레드벨벳 갤러리]], [[일베저장소]], [[국내야구 갤러리]]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해서 딱히 별일은 없었다. 분노를 하거나 특정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혐오발언]]을 사용하며 "자들이 분노했다''라는 식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팬덤 내에서도 큰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읽을 수도 있지 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해당 발언(레벨업프로젝트2 생방송 팬미팅)이 나올 때, 아이린은 책 제목을 말할 때도 "그... 82년생... 그거 읽었고..."라며 제목을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했다. 읽었다는 다른 책들도 대다수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책들로, 제목을 기억하지 못했던 주황색 표지의 책도 시/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인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이란 책이다. 사실상 아이린의 취미가 독서이고 과거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인터넷 상의 녀갈등과는 별개로 그저 휴가를 가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읽었고, '그중에 우연히' 82년생 김지영이 포함된 것이었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을 구실로 연예인을 비난하는 것은 그냥 생트집일 뿐이다.
         ==== 일부 서브컬처 성팬들의 전횡 ====
  • 원빈(배우) . . . . 30회 일치
         ||<#EDD200><-5><:> {{{#white '''우주연상'''}}} ||
         ||<:><#4C4C4C>'''{{{#FFFFFF 가족}}}'''||[[아버지]] 김석산, [[어머니]] 이월순[* 한때 우리아들 ~~ 인데 그쪽 아들은 뭐해라고 하면 김석산, 이월순: ''원빈"이라는 드립이 흥하곤 했다.][br]2 3녀 중 다섯째[br]배우자 [[이나영]], 슬하 1 ||
         '''대한민국 대표 미 배우[*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2010년 영화 [[아저씨]]로 이후 작품활동 없는 휴식기간동안 40여편 이상의 광고를 찍었으나 정작 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지나치게 긴 휴식기간으로 전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CF만 매진하고 있어서 안 좋은 의미로 'CF 스타, 광고 모델, CG 배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화 아저씨에 함께 출연했던 [[김새론]]은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이미 원빈의 작품 수와 엇비슷해졌을 정도이다. 꼬마 아역배우였던 김새론이 훌쩍 커서 차세대 여배우로 주목받는 언론기사를 보면 얼마나 원빈의 휴식 기간이 긴지 느낄 수 있다.]'''
         사슴같은 눈망울에 [[여성]]들의 [[마더(영화)|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가냘픈 분위기]],[* 데뷔초에는 확실히 이런 분위기였으나 후에는 성적인 모습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그리고 미묘하게 반항적인 태도 등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타일로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 변화에 따라 '마초' 와 '꽃미'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레벨에 이르러서 은근히 영화마다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2015년 5월 30일, 같은 소속사 배우 [[이나영]]과 결혼하였고 이후 2015년 12월 19일, 결혼을 한 지 약 6개월 20일(204일) 만에 득했다.[* 결혼 당시 혼전 임신이 아니라고 부정한 적이 있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태어난 김도진[* 어릴 때 동네에서 부르던 별명이 "김방석"일 뿐 본명은 김도진이 맞다.]은 2 3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여량초등학교, 여량중학교,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사촌]]이 있는 [[서울특별시]]로 상경한다.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지 가출을 하다가 걸려 집으로 끌려가기도 했는데 원빈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부모가 말하길 '''"연예인 되기가 쉬운 줄 아냐? [[강릉시]]내만 나가도 너보다 잘생긴 사람 널렸다.''' '''연예인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니 얼굴에 연예인은 무슨... 헛된 꿈 꾸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혀."'''라고 했다 카더라.[* 인터뷰에서는 지금도 원빈의 부모님은 여전히 산골에서 생활하며 아직도 원빈을 철부지 막내아들로 생각할 뿐, 유명한 인기 스타라는 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미... 아니 CG의 도시 갓릉--
         [[1997년]]의 [[KBS]]의 TV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자주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여주인공 [[김희선]]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며, 몽상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약간 4차원스러운 청년역할이었다. 그래서 스토커라는 단어도 안 쓰이던 시절인데도 자기 주위를 자주 맴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가족과 지인에게 상담도 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짝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몽상적인 대답만 한다. 직업도 대략 시인 비스무레한 사람인 듯이 말하는데 드라마 내용 자체에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그냥 시를 좋아하는 청년인지 진짜 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여주인공은 그가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자(주인공)가 있다고 설득한 뒤 안심하며 좋게 마무리된다. 사실상 나쁘게 보면 스토커 같은 역할이라 원빈의 외모나 현재 이미지와 그렇게 많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워낙 심하게 잘생긴 외모라 역할 자체의 부정적 측면이 안 보일만큼 미화되어 보이기도 했고 아직도 그가 프로포즈에서 멋진 역할로 나왔다고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 당시 자주인공이자 김희선의 상대역이었던 배우는 [[류시원]].]으로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레디, 고!'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1999년]] [[광끼]], [[2000년]] [[꼭지]],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를 찍은 뒤 드디어 [[가을동화]]를 통해 슈퍼스타가 된다. 2002년에는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다. 프렌즈에는 [[일본]] 여배우 [[후카다 쿄코]]가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대신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 횟수는 적으나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엔 영화 [[아저씨(영화)|아저씨]]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했으며 그와 덩달아 모든 여성 관객의 친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중간에 '''상의를 탈의하고''' 삭발하는 장면에서는 매 상영 때마다 객석이 술렁거리거나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여성 관객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원빈 보러 갑니다'''라는 농담이 '''진리로 들린다'''.
         2010년 10월 제47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생애 최초 우주연상을 탔다.
          * [[네이트]]에서도 인기가 많다. 네이트 판에 경우 댓글로 자주 볼 수 있는 게 바로 원빈이다. [[http://pann.nate.com/talk/310773324|오죽하면 이런 판에도 원빈으로 댓글 달면 바로 베플이 된다]]. 한 마디로 자 연예인에 관련된 [[판]]에서 원빈 그림만 끼워 넣으면 무조건 베플이 된다는 소리. --이거 다 옛날얘기다--네이트 판의 80%는 그가 접수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의외로 원빈은 쑥맥이라고 한다.
          * 본인은 인터뷰에서 '대단한 게임 마니아는 아니다' 라고 언급했으나, 실제론 '''대단한 게임 매니아가 맞다'''는 이야기가 자주 떠돈다. 특히 그가 [[프로 에볼루션 사커|위닝일레븐]] 최고수라는 것은 팬미팅 등을 통해서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연예계 게임 고수를 자처하는 창희가 [[강동원(배우)|강동원]]을 상대로 위닝을 다섯 판 했는데 전패했다고 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207037|#]] 그런데 그 강동원이 하는 말이 '자신도 빈이 형에게는 한 판도 못 이긴다' 는 것. [[변우민]] 역시 원빈을 상대로 완패했을 뿐더러 개발자와의 게임 대결에서도 원빈이 승리했다고 한다. [[http://star.mt.co.kr/stview.php?no=2011092102240452778&type=3|#]] 또한 강동원과 함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등도 즐긴다고... 주종은 [[프로토스]]. [[http://m.news.nate.com/view/20100721n08128|#]] ~~진짜 끼리끼리 만나는구나... 후~~ [* 다만 그둘의 친분이 과장이 되었다고 했다 친한건 맞았으나 현재는 연락을 잘 안한다고 한다.]~~아재게임 디아블로3도~~
          * 그리고 이나영이 아이를 가졌다는 기사도 나왔다.[[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50803126500005&input=1195p|#]] 2015년 12월, 득 소식이 알려졌다. --밸붕 유전자를 두개나 물려받았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게 아닐까--
          * 2000년 한국베스트드레서상 시상식 자탤런트부분 수상
          *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 신인연기상 《가을동화》
          * 2004년 제27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자신인상 《태극기 휘날리며》
          * 2010년 제47회 [[대종상]] 우주연상 《아저씨》
          * 2010년 제47회 대종상 GS칼텍스 자인기상 《아저씨》
          * 2010년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우주연상 《아저씨》
          * 2010년 제6회 대한민국대학영화제 우주연상 《아저씨》
  • 킹덤/525화 . . . . 30회 일치
         [[킹덤]] 제 525화. '''마자의 기개'''
          * 왕분은 아광군의 측면을 파고들던 [[마자]]군의 우측을 찔러들어갔고 교전은 [[관상]]에게 맡긴 채 자신은 적장을 직접 처단하러 나선다.
          * 왕분의 호위를 맡고 있던 [[영강]]은 불길한 예감에 호위를 더욱 두텁게 하는데, 때를 같이 해 마자가 역으로 왕분의 목을 노리고 나타난다.
          * 마자는 괴력을 발휘해 전방을 호위하던 장수들과 영강까지 단칼에 두동강내고 진심으로 육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진나라의 무도함을 꾸짖는다.
          * 그러나 영강의 죽음을 목격하고 격앙된 왕분은 마자와 말 섞기를 거부하고 그의 꾸짖음도 "중화통일이 역사적 필연"이란 말로 일축한다.
          * 왕분은 진왕의 검을 자처하며 마자와 일전에 나선다.
          * [[악영]]의 조군 1진을 성공적으로 붕괴시키고 있던 [[아광]]군은 [[마자]]군에게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위기에 처한다. 마자가 선두를 이끌고 아광에게 쇄도하자 전방의 악영군과 교전에 힘쓰고 있던 아광으로선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때 대기를 지시했던 [[왕분]]의 옥봉대가 전장에 난입해 마자군을 요격하면서 전황은 다시 바뀐다.
          악영의 부하들은 지시를 어긴 옥봉대가 못 마땅한 듯 했지만 아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부하 장교에게 군을 이끌게 하고 자신은 백 여기를 이끌고 적장 마자에게 향했다. 옥봉대와 합류해 적장을 직접 처리할 작정이었다.
          * 아광군을 한 번의 돌격으로 막아세웠던 마자는 자신도 같은 처지에 처했다. 그들이 아광군을 한참 몰아세우던 사이 옥봉대가 우측을 깊게 찔러 들어오자 부대가 앞뒤로 분단되고 마자도 고립됐다. 이윽고 이쪽을 노리고 달려오는 적 기병대의 선두가 보였다. 깃발의 숫자를 보면 적장. 상황이 숨가쁘게 변하고 있었고 결코 유리하지 않았으나 마자는 어찌된 일인지 미소를 머금었다.
          후위에 있는 병사들은 마자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왕분이 펼치는 창술 앞에 부질없이 목숨을 잃었다. 옥봉대의 공격이 쐐기처럼 박히고 상황이 난전으로 전환됐다. 왕분은 현장을 [[관상]]에게 맡겼다. 이대로 적의 후위가 올라오는걸 막고 적장의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그동안 자신은 직접 적장의 목을 취할 것이다. 관상은 이 같은 지시에 별 반대 없이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영강]]에게 부탁에 왕분의 호위를 맡겼다. 늘 한 마디씩 토를 달던 관상이었다. 아무 반대도 없어 미심쩍기도 했으나 왕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 [[반양]]과 함께 출발했다.
          * 그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이상한건 [[흑금]]도 마찬가지였다. 싸우던 그가 다가와 "별 일이다"고 말을 걸었다. 관상은 자기가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건 아니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아광이 내린 대기명령을 대놓고 위반하지 않았나? 깐깐한 관상이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흑금이 그렇게 말하자 관상이 "고립유군으로서 틀린건 아니다"고 대답했다. 마자의 돌격은 아광군의 큰 위기였는데, 옥봉대가 끼어들면서 그 고비를 넘겼고 오히려 적장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대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진군 우익의 싸움은 초반부터 크게 우세해지는 격. 지시야 어떻든 전술적으로 틀린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흑금은 새삼 왕분의 전술안이 보다 날카로워진다 감탄했다. 관상도 그게 틀림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흑금이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에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떨떠름하게 "맞아"라고 대답하는데.
          * 그리고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불길한 예감은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왕분이 노리고 있던 적장 마자, 그가 코 앞에 나타났다. 마치 옥봉대를 통채로 썰어버릴 기세로 칼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 마자가 휘두르는 한 칼이 전방의 병사들을 반으로 갈랐다. 영강은 철구를 들어 재빠르게 막았지만 힘에서 밀려났다. 영강은 무기가 부러졌지만 낙마했을 뿐 경상에 그쳤다. 옥봉대 병사들의 떨어져 나간 몸뚱이가 흩날렸고 돌격은 저지됐다. 병사들이 왕분을 지키려고 모여드는 동안 왕분은 죽은 부하들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마침내 왕분과 마주한 조군 우익 삼장 중 하나 마자. 열세에 처한 장수라고 볼 수 없는 기백이 흘러넘쳤다. 마치 이쪽을 몰아붙이고 있었던 양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마자. 여전히 적진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진군 병사들은 [[몽무]] 장군에 비견되는 체구에 압도되고 있었다. 반양은 그가 삼장 중 하나면서도 직접 왕분을 치러 왔다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 새파란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마자의 낯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짜 아수라장 속에선 번드르한 말따윈 의미가 없는 법. 그는 곧 "진짜 아수라장"을 소개한다. 그것은 조나라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이야기. 대 흉노족 최전선인 "안문"의 이야기다. 나라 안팎으로 명성을 떨치던 장수들이 차례로 파견되었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해 시체가 되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반양도 접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기마민족 흉노와 전쟁으로 대륙 중앙의 난전은 비할 것도 없는 "사지"였다. 반양은 마자가 그 안문에서 온 장수라고 짐작했다.
          마자가 말을 이었다. 지금껏 이 천하에서 가장 미운 것은 북부를 짓밟고 있는 흉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에 [[이목(킹덤)|이목]]을 따라 진의 수도 함양에 갔던 이후로 생각이 변했다. 진왕 [[진시황(킹덤)|정]]은 진심으로 이 나라를, 중화 전토를 진군의 발로 짓밟을 생각이다. 그에 비하면 흉노는 고작 북부를 어지럽히고 있을 뿐. 그런 아수라장을 대륙 전체에 펼치려는 진왕이야 말로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중의 짐승이다. 그리고 진군은 그 짐승이 휘두르는 무도한 칼날.
          마자는 그렇게 진군 전원을, 진나라를 흉노만도 못하다 꾸짖으며 자신이 처단하겠다 말하려 했다. 왕분의 창이 날아들지 않았다면 그 말을 마쳤을 것이다.
          * 마자가 왕분의 창을 쳐냈다. 진군을 두렵게 했던 마자의 호통이 그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겐 마자가 배움이 부족한 노인네로 보였다.
          >의 왕을 비웃기 전에 조금은 역사를 공부해라 조장아.
          주나라의 천하가 펼쳐진지 500여 년. 한때 백에 이르렀던 나라들이 도태와 규합을 거듭해 지금은 고작 일곱이 았다. "일대국". 분명 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왕이 품은 꿈은 곧 역사가 바라는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조군이 반발했다. 왕분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 그런 말뿐인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김승대 . . . . 29회 일치
         ||<#ed0000> '''{{{#ffff00 출신학교}}}''' || 포철동초 - [[포항제철중학교|포철중]]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포철공고]][* 2013년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포철공고]]의 마이스터고 전환으로 현재는 [[포항제철고등학교|포철고]]에서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 [[영대학교|영대]] ||
         >'''[[김병수]]가 긴 포항의 마지막 유산'''
         포항 출신으로 [[이동국]], [[신화용]], [[박원재]], [[우찬양]]과 함께 포철동초 - 포철중 - 포철(공)고 - 포항 스틸러스 까지 모두 거친 '''포항 역사상 단 다섯 명 뿐인 [[로컬 보이]]'''다.[* 탄탄한 유스를 자랑하는 포항이지만 의외로 로컬 보이는 극소수인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중에서, 중학교에서 잘하는 선수를 포철고에서 중간 스카웃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김병수 1호기~ ~[[이명주]]는 대구, ~~김병수 3호기~~ [[손준호]]는 영덕 출신이다.][* 이동국도 성 가기 전까진 포항 성골이다. 김승대가 포항시 송도동의 자라면, 이동국은 포항시 죽도동의 자다. --죽도시장에서 짧은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 송도동-- ] 2011년 포항에 우선지명을 받아 영대에서 뛰다가 2013년에 정식계약을 맺고 포항에 입단했다.
          * 2011년 3월 12일, 영대학교 소속으로 양주시민축구단전에서 FA컵 데뷔전을 치뤘고, FA컵 첫 도움도 기록하였다.
          * 2013년 7월 10일, 성전에서 프로 선수로는 첫 FA컵 경기를 치뤘다.
          * 2018년 3월 11일, 전전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통산 98경기 [[20-20 클럽#s-2|24득점 20도움]]을 달성했다.
         || 2010 || 영대학교 || - || - || - || - || - || - || - || - ||
         || 2011 || 영대학교 || - || - || - || 2 || - || 1 || - || - ||
         || 2012 || 영대학교 || - || - || - || - || - || - || - || - ||
         ||<#00703c> '''{{{#eee156 2014.04.09}}}'''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경}}}''' ||<#00703c> '''{{{#eee156 2득점}}}''' [* 프로 데뷔 후 첫 멀티 득점] ||
         ||<#00703c> '''{{{#eee156 2014.05.10}}}'''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 ||<#00703c> '''{{{#eee156 득점}}}''' ||
         ||<#00703c> '''{{{#eee156 2015.04.15}}}'''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 ||<#00703c> '''{{{#eee156 득점}}}''' ||
         ||<#00703c> '''{{{#eee156 2018.3.11}}}''' ||<#00703c> '''{{{#eee156 포항}}}''' ||<#00703c> '''{{{#eee156 전}}}''' ||<#00703c> '''{{{#eee156 도움}}}'''[*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8번째 [[20-20 클럽#s-2|20-20 클럽]] 달성자] ||
         ||<#00703c> '''{{{#eee156 2011.03.12}}}''' ||<#00703c> '''{{{#eee156 영대}}}''' ||<#00703c> '''{{{#eee156 양주시민축구단}}}''' ||<#00703c> '''{{{#eee156 도움}}}''' [* FA컵 첫 도움] ||
         상위 스플릿 시작과 동시에 황진성의 이탈로 포항팬들은 "우리 리그 망함"하고 좌절했지만, 황진성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꾸면서 [[대한축구협회 FA컵]] 2013 결승에선 전북을 상대로 선취골을 넣고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은 리그 경기에서도 맹활약하며 2013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25라운드 전전에서 경합 도중 발을 높게 든 것이 김영욱의 무릎을 가격하면서 시즌 첫 퇴장을 당하였다. 퇴장 과정에서 "[[VAR]] 이런 거 왜 해?"라며 거칠게 항의하면서 욕설까지 내뱉은게 확인되면서 추가로 5경기 출장정지에 범칙금 500만 원의 징계까지 당했다. [[http://sports.news.nate.com/view/20170811n16405?mid=s0301|관련기사]] 결국 오자마자 팀 전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포항 역시 2년 연속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나마 징계가 풀리고 나서는 바로 골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전성기 시절의 폼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2년 계약이기 때문에 2017 시즌 후 심동운의 입대가 결정되고 양동현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에서 2018 시즌에는 포항 공격진의 한 축을 확실히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복귀골을 터뜨린 김승대는 10월 28일 대구전 홈경기에서 룰리냐의 만회골을 돕는 도움을 기록하였고, 11월 18일 광주전 원정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2골 1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징계를 받았던 것이 아쉬우나 김승대의 클래스는 살아있음을 확인한 반 년이었고 손준호와의 호흡이 잘 맞음을 과시해 내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손준호가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면서 김병수의 제자들 중에서 홀로 게 되었다. ~~준호야 가지마~~
         개막전에서 대구 FC를 상대로 특유의 라인 깨기를 보여주며 득점에 성공했고, 이후 2라운드 전전에서는 도움을 기록했다. 손준호가 이적하고 전방에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중미 자원이 부족해지자 지난 시즌과 달리 2선보다 밑으로 조금 내려와서 패스 공급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본인 인터뷰에서도 득점보다는 도움에 치중하며 팀 플레이에 맞출 것이라고 역할 변화를 시사했다.
         2014년 9월 14일 아시안 게임 자 축구 조별리그 A조 첫 경기 [[말레이시아]]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3:0 승리에 기여했다.
         9월 17일 아시안 게임 자 축구 조별리그 A조 두 번째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1:0 승리에 기여, 은 경기에 상관없이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 인천광역시/인물 . . . . 29회 일치
         * [[김춘]] - 강화군
         * [[김일]] - 계양구
         * [[김유정(배우)|김유정]] - 동구
         * [[김장훈(가수)|김장훈]] - 동구
         * [[김정은(배우)|김정은]] - 동구
         * [[디액션]] - 동구
         * [[박진만]] - 동구
         * [[박춘]] - 중구(인천)
         * [[박선호(배우)|박선호]] - 동구
         * [[선우은숙]] - 동구
         * [[옹성우]] - 동구
         * [[위재영]] - 동구
         * [[윤채경]] - 동구
         * [[의웅]] - 동구
         * [[이근호]] - 동구
         * [[이상순]] - 동구
         * [[이수경]] - 동구
         * [[이수빈(뮤지컬 배우)|이수빈]] - 동구
         * [[이수영(연예인)|이수영]] - 동구
         * [[정인호]] - 동구
  • 조성모(가수) . . . . 29회 일치
         || '''가족''' ||<(> 3 2녀 중 [[3|막내]][* 큰형은 성이 [[주(성씨)|주씨]]로 [[이부형제]]이다.], 아내 구민지, 아들 조봉연 ||
         원래는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GO003&qid=0DyDI&q=%C8%FC%C7%D5%B4%ED%BD%BA%B1%D7%B7%EC+%BB%E7%C3%B5%BB%E7&srchid=NKS0DyDI|'''사천사''']]라는 혼성(3, 여1) 힙합댄스그룹의 멤버였으나 공중파 방송 데뷔를 앞두고 해체돼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며[* 그런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181004 해피투게더) 그 당시는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트레이너도 존재하지 않아, 댄서였던 다른 멤버에게 춤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춤이 늘지 않자 일 년 반만에 팀에서 방출 되었다고. 팀은 조성모가 나간 이후 공중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부족한 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는 댄스의 피가 끓고 있다고 꾸준히 힘주어 말한다. 이날, 사천사라는 팀명은 본인이 지었다고 덧붙였으며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사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뒤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던 [[김광수(음반기획자)]] 대표[* 그러나 그 시절의 김광수 대표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성모를 만나 제작자로 정점을 찍었다. [[티아라]]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밝힌 바로는, 자신들 앞에서 '성모가 보고싶다'며 울었다고 한다. 티아라 자신들은 무서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김광수 대표는 자신의 호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에 의해 발탁되어 솔로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 2009년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자신의 대표 발라드들로만 구성된 '''10분짜리 메들리를 라이브로 완창'''하는 영상이다. 본인의 콘서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청객들이 '''자연스레 [[제창]]하도록 만드는 위엄'''을 선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히트곡만으로 방송 무대에서 10분간 메들리를 완창하고 방청객들도 자연스레 제창할 수 있게 만드는 자 발라드 가수가 한국에서 손꼽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맨 위의 소개글에서 조성모에게 '발라드 황태자의 마지막 계보'라는 수식어를 괜히 붙인게 아니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뮤직비디오 역사에도 큰 족적을 긴 가수'''
          - [[http://youtu.be/C9CMZ35vTYs|아시나요 (3집)]][* 영화 '플래툰'의 촬영지인 [[필리핀]] [[마닐라]] 올로케로 촬영되었으며 2000년 당시 총 제작비로 15억원이 들어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사상 전무후무한 대작 스케일을 내뿜는다. 스토리 내용은 주인공 조성모가 월전쟁에 파병되어 베트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함께 죽는 슬픈 결말로 구성된다. 극중 파병 부대로 마크까지 등장하는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베트콩에게 전멸당하는 전투장면 및 얼차려 등의 병영생활 등이 나오는 장면들과 관련하여 거센 항의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한편 [[천국의 눈물|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oB4oCDXFXhE|수정판]][*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항의로 인해 부대마크를 모자이크 처리 및 전반부 국군이 베트콩에 전멸하는 전투장면을 삭제하고 후반부 전투에서도 주인공 조성모가 베트콩 수장을 죽이는 장면을 추가 삽입하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 [[신민아]][* 1999년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였고, '아시나요'는 그녀가 출연한 두 번째 뮤직비디오 작품이자 실질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조성모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베트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전투를 떠나는 부대원의 지리정보를 주기위해 겁도 없이 총도 안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결국 베트공의 총에 맞아 죽는다.], [[허준호]][* 주인공 조성모가 소속된 월파병 부대의 [[말년병장]] 쯤으로 추정된다. 방탄모도 안쓰고 지멋대로 두건을 하고 다니는 등 군기가 제대로 빠져있는데, 중간에 민간인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베트공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되고, 베트공 대장의 살해 협박에 아군의 부대 위치를 알려주는 병크를 저지르고 결국 살해 당한다.], [[정준호]][* 조성모가 있는 파병부대의 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구해낸 현지 월 주민인 신민아가 현지 지리에 밝은 것을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전투에서 숲속에 [[네이팜탄]]을 뿌리며 불을 지르다가 베트공의 습격에 폭사당한다.], [[신지수]][* 극중에서 신민아의 여동생으로 연기한다.], ~~[[오상훈]]~~[* To Heaven에 출연했던 악역 전문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국군과 대치하는 베트콩의 대머리 수장 역할로 거의 주연급 악역으로 출연한다.], ~~[[김대진]]~~[* '여름아 부탁해'를 부른 그룹 인디고의 멤버 맞다. 그 이전에는 지오에서 활동했다. 조연급 배우로 활동중이며,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동료 병사로 출연하는데, 극중에서 전투중에 아역배우였던 신지수를 비롯한 월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다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한나나]]~~[*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약혼자로 나왔던 그 배우 맞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장교로 간간히 등장한다.]
          - [[http://youtu.be/6xEsEArWAa0|다짐 (3집)]] : [[강동원(배우)|강동원]][* 홍수현이 바람피며 만나는 새 자친구 역할로 잠깐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무명이어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강동원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재조명 받게 된 케이스다.], [[홍수현]], ~~[[김대진]]~~[*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다짐' 뮤직비디오에서는 홍수현의 자친구로 홍수현이 바람피는 것에 충격을 받고 싸우다 홍수현한테 차이는 역할로 나름 열심히 연기했다.]
         3집 타이틀곡인 아시나요는 [[베트 전쟁]]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가 파월 상이용사 출신들과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트으로 파병된 조성모의 부대가 9사단의 부대표지(부대마크)을 단 장면이 그대로 노출 된 것이었는데, 하필 이 부대가 [[베트콩]]에게 전멸된다는 내용이었기에 백마부대와 해당 부대 출신 참전용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항의의 주요 원인이었다.[* 부수적으로 극중 허준호가 방탄모를 안쓰고 두건 착용을 하거나, 파병된 신병들을 길들이기 형식으로 얼차려 주는 모습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했었다. 심지어 백마부대 측에서 GM기획 측으로 공문까지도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을 공식 항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송기]]를 타고 파병되는 장면 역시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당시 국군 파월 병력은 [[대한민국 해군]] [[LST]]나 임차한 민간 수송선 등 해상운송수단으로 파병되었지 수송기를 타고 오지 않았다.]
         GM 기획측은 픽션이 가미된 예술작품으로 봐줄 것을 요구했고, 이들의 항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의견을 수용하여 뮤직비디오를 재편집 할 때 조성모가 베트콩의 수장을 사살하는 장면을 집어넣고 문제가 됐던 백마부대 표지를 CG처리로 깔끔하게 삭제한 다음,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에 참전 전우회의 명예는 아있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 뮤직 비디오를 평화의 전사들에게 헌정한다"는 자막을 추가를 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마부대와 월전참전전우회는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판매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주 이유는 이 비디오가 월전에서 백마부대가 거둔 혁혁한 전과를 호도했고, 월참전용사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조성모의 손을 들어줬는데, ~~고증도 틀린~~ 전투복에 부착된 백마부대의 표지를 지워내는 등 명예훼손의 염려가 있는 부분을 배제하려 한 노력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뮤비는 결국 공중파에서 내려야 했고 양수리에서 급히 찍은 뮤비로 대체되었다.
         [[히든 싱어]] 2부 3회인 조성모편에서는 2라운드에서 총 100표 중 81표를 얻어 '''원조가수 최초로 바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모창가수들은 조성모 전성기 시절을 토대로 모창을 했지만, 조성모는 전성기 때의 혹사로 성대 결절을 겪게 되어 창법이 변하게 되어버린 것. 조성모의 앨범들을 시간순대로 들어보면 이미 4집때부터 조금씩 허스키한 톤으로 살짝 변했고 창법도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다만 4집때 까지는 그 전까지의 여리여리한 미성이 거의 그대로 아있고 조성모 특유의 창법이 거의 그대로 구사 됐었다. 그 후 공백 후 5집때부터는 톤도 많이 허스키하게 변했고 창법도 시원하게 질러 부르는 창법으로 많이 변해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성모 전성기 시절의 목소리는 1-3집까지의 특유의 미성과 실크위를 거닐듯 부드럽게 밀어부르는 창법. 그래서 패널들이 전성기 시절의 조성모 목소리만 기억했기 때문에 그를 찍어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한 최대의 흑역사는 [[초록매실]] 광고이다. 이 광고 때문에 조성모는 성들을 중심으로 한 안티들로부터 '''조매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번은 조성모가 간 영화관에서 이 광고가 지나가자 관객들이 일제히 "야! 저건 아니잖아!"하고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사실 조성모 본인도 이 CF를 엄청나게 찍기 싫었지만 그 당시에 '''빚이 넘쳐나는 등 집안 경제상황이 너무 어려워'''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던 상황이었기에 궁여지책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심지어 '''원래 끝은 저게 아니다!''' 마지막 대사를 하고 풉하고 웃는 장면이 있었으나 정작 광고에서는 그 부분을 뚝 잘라버렸다고(...).~~ 그게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흑역사로 등극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후 2006년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CF에 출연한 [[이준기]]가 '석류청년'으로 화제를 끌며 조매실의 후예로 등극한다.[* 조성모가 이준기의 석류청년 CF를 보고 "저 친구도 집이 어려웠나 보구나"라는 생각에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했다. 당시 이준기의 석류청년 CF에서는 배우 [[송하윤]]과 [[카라(아이돌)|카라]]의 [[박규리]]도 같이 있었다.] [[히든 싱어]]에서 밝힌 후일담으로 이 광고를 찍고 ~~친구들에게 욕먹고~~ 잃어버린(?) 성다운 이미지를 되찾고자 부른 노래가 3집에 있던 댄스곡 [[다짐]]이라고 한다. 조성모 개인한테는 정말 숨기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광고 자체는 사람들의 뇌리 안에 제대로 각인되었고, 그 덕도 있는지 매실음료가 출시되고 저 광고도 나온 그 해 매실음료가 '''[[코카콜라]]'''를 매출에서 '''이겼다'''고 한다.[* 무릎팍 도사 조성모 편 출처]
         2010년에 공채 탤런트 출신 구민지와 결혼하여 유부이 되었다. ~~아아 들린다 여심이 단체로 쪼개지는 소리가~~ 다만 결혼 전에 아내와 관련된 좋지 않은 루머가 돌아 둘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조성모가 직접 나서 결혼식 당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울먹거리며 아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었다. 눈시울까지 붉힌 그의 진심이 전달된 덕인지 이후로는 여론도 안정을 찾아 별다른 소음이 일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상당히 애처가이다. 부인 얘기만 나와도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함박웃음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결혼 이후, 설거지 탓에 주부습진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이를 들은 다른 성 출연자들의 어색한 반응에, 설거지는 당연히 자가 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대응한 바 있다. [* ~~물론 그것 역시도 그 자리 성 출연자들에게 공감을 사지는 못하였다. 그의 말에 네?? 하고 멍하니 쳐다만 볼 뿐..~~] 결혼 4년만에 임신 소식이 전해졌고, 2015년 10월 득하여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2018년 8월 26일,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영분에 아들 조봉연 군이 잠깐 등장하였는데 조성모를 쏙 빼닮은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배우 [[봉태규]]의 아들인 봉시하 군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분류:한국 가수]][[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1977년 출생]][[분류:1998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하리수 . . . . 2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성시]] [[분당구]]
         하리수는 [[1975년]] [[2월 17일]] 대한민국 [[경기도]] [[성시]] [[분당구]]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매들 가운데 한 명이다.<ref name="Eve from Adam">Li Ee Kee, "Eve from Adam", ''The Star Online'', September 19, 2005. A copy of this article can be read at [http://groups.yahoo.com/group/TNUKdigest/message/17335 TNUKdigest].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본명은 이경엽으로 후에 [[2002년]] [[12월]] [[성별정정]] 후에 경은으로 개명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구청 공무원이었고, 어머니가 파출부 등 온갖 궂은 일 하며 집안을 꾸려나갔다.<ref name="heimagge">[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0017450 서른잔치 시작 ‘이브가 된 아담’ 하리수] 서울신문 2004.10.19</ref> 그는 어릴 때부터 단 한번도 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여자 아이들 속에 파묻혀 놀았다. 고무줄 놀이하는 친구도 대부분 여자였다.<ref name="heimagge"/>
         비록 자의 신체로 태어났지만 하리수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여자라고 생각하였고<ref name="Eve from Adam" />, 또한 여성스럽게 성장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ref name="Eve from Adam" /><ref name="Adam to Eve">Gina Choon, [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Adam to Eve"] {{웨이백|url=http://www.pathfinder.com/asiaweek/magazine/YourSpace/0,8782,173902,00.html |date=20071017204309 }}, ''Asiaweek.com'', September 14, 2001.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하리수의 여성스런 성격을 걱정한 어머니는 그를 [[웅변]]학원에 보낸다.<ref name="ungg">[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0&aid=0000101920 '화려한 시절' 태조 왕건' 外] 동아일보 2001.12.07</ref> 그곳에서 하리수는 자신의 여성스러움까지도 이해해주는 자친구를 만나 함께 웅변대회 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ref name="ungg"/>
         청소년기 무렵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목욕탕]]을 운영하였다. 한 번은 목욕탕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자신이 여자가 된 것을 모르고 탕의 수건 회수를 시켰다고 한다.<ref name="sosososo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25319 <클릭뉴스> 하리수 탕]</ref> 어쩔 수 없이 탕에 들어간 하리수씨는 아수라장이 된 탕에서 수건을 모두 거둬서 유유히 빠져 나왔다 한다.<ref name="sosososo1"/> [[1991년]] 중학교 3 학년 재학 중 MBC 드라마 단역 배우로 데뷔하였다. 이후 몇 편의 드라마에 단역 배우로 출연하였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832 하리수 첫사랑 고백 자살시도에 성전환 수술 결심은 고 2때… '기구한 인생'] 경인일보 2012.05.15</ref> 그는 "첫사랑 상대는 탤런트 [[이창훈 (배우)|이창훈]]을 닮은 외모로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학생이었다"며 "첫사랑 이후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하리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교제했던 자친구로 인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151446181110 하리수 "중학교 시절, 첫사랑때문에 자살시도"] 마이데일리 2012.05.15</ref> 이후 자로 살아보기 위해 평소 그녀를 동경하던 부근 학교 여학생을 사귀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53478 하리수, “자로 살기위해 여학생과 사귄적 있다”] 마이데일리 2006.07.11</ref> 하리수는 또 “두번째 사랑을 사귀던 자친구로부터 "[[미스젠더링|넌 어차피 자잖아]]"라며 결별을 통보받고 성전환수술을 결심하게 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59418 하리수, 성전환에서 결혼까지] 스타뉴스 2007년 02월 21일자</ref>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전환 수술을 결심했다 한다.<ref name="heimagge"/>
         [[2001년 3월]]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였으며 같은해 1집 '템테이션'을 발표하고 가수가 되었다. 이후 영화배우, 방송 출연 등을 하였다. .<ref name="Transsexual entertainer testing the boundaries of South Koreans' Confucian ideals" /><ref name="Harisu Superstar">Markus Augustus, "Harisu Superstar", ''Giant Robot'', issue #28 p.56-59.</ref> 한편 “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삶 자체의 엄청난 변화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한 언론사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름의 ‘상품가치’를 설파하였다. 그는“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자신의 상품가치를 뽐내는 건”이라 했다.<ref name="repircj">[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65613 “성전환 상업적 이용 심하지않나” “내 상품가치 뽐내는게 어때서요?”] 국민일보 2001.07.18</ref> 기자는 또 그에게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수술후유증이라도 나타나면 몸이 상할텐데…”.그녀에 대한 관심이 최근 폭발하면서 화장품 CF,드라마,영화 출연에 이어 음반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황.“걱정은 고맙지만 모든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피곤을 몰라요”라고 답했다.<ref name="repircj"/>
         [[2002년]]에는 성별 정정 및 개명을 신청하였다. [[2002년]] [[12월]], [[인천지방법원]]이 하리수가 신청한 호적정정 및 개명신청에 대해 호적상 '(男)'에서 '여(女)'로 정정하고, 이름도 '이경엽'에서 '이경은'으로 개명하는 것을 허가하면서 법적으로도 완전히 여자가 됐다. 당시 [[인천지방법원]]은 하리수가 [[성염색체]]상으로는 자지만, 군 입대를 위해 받은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6급 병역면제)을 받는 등 신체적으로 여성으로 보는 게 타당하며, 이미 여자로 연예활동을 해온만큼 그를 자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사유를 밝혔다.
         [[2003년]]에는 [[중화민국]] [[중국 텔레비전 사업|CTV]] 채널의 드라마 《하이 내사랑》 에도 출연하였다. 한편 그는 데뷔 초반부터 꾸준한 안티팬을 유지하고 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264372 연예인, 이럴 때 악플 양산한다!] 조이뉴스 2007.05.30</ref> [[2004년]] [[7월 2일]]에는 2년간 [[성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ref>[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0407/sp2004070213570332380.htm 하리수는 고향 성시 홍보대사] 스포츠한국 2004.07.02</ref> 이후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의 방송에 출연하여 활동하였고, [[2006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 [[2001년]] 《[[신영일 하리수의 행복녀]]》 KBS 제2라디오
         * [[2006년]] 《하리수의 자친구를 소개합니다》 KMTV
         [[2007년]] [[2월 28일]] 오전 9시 30분부터 MBC TV를 통해 방송된 ‘이재용, 임예진의 기분좋은 날’에 출연해 “사람들이 둘이 만나는 것을 몰랐을때 미키정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더니 사람들이 ‘리수형이네’, ‘이 사람하고 놀지마’ 같은 댓글을 겨 가슴이 아팠다”며 네티즌들의 악플로 인해 겪었던 마음 고생을 방송에 털어놓기도 했다.<ref name="akple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80557 하리수, "'리수형, '아저씨' 악플에 전화해 항의"] 마이데일리 2007.02.28</ref> 그러나 악플에 대해 그는 당사자에게 직접 항의하는 등 의연하게 대처하였다.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328500010 하리수 “고위층·돈많은 자들이 전화걸어…”] 서울신문 2013.03.27
         * [https://web.archive.org/web/20131212014423/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417902.htm?ArticleV=old 하리수, 중국 성 성전환 수술 도와] 스포츠서울 2007.04.10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육우당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성전환자 배우]][[분류:성소수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장안대학교 동문]][[분류:성시 출신]][[분류:트랜스젠더 음악가]]
  • 서강준 . . . . 28회 일치
         서강준(본명 이승환)은 1993년 10월 12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에서 1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누나와는 연년생이다.<ref name="tvreport" /> 그는 학창시절까지 계속 에서 성장하였고, 2학년 때 [[말레이시아]]에서 1년 7개월 동안 유학하다가 1학년때 귀국했다.<ref name="10아시아"/> 이후 재학 시절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쇼에 서보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때 2011 F/W 서울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를 끝으로 2~3년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0308310735776&type=1&outlink=1|제목='발견!' 서강준, 국민 연하의 가능성(인터뷰)|저자=김현록|날짜=2014-05-05|출판사=머니투데이|확인날짜=2014-05-17}}</ref><ref name="네이버">{{뉴스 인용|제목 ='보그'가 선정한 2014년의 프레시맨-2 - INTERVIEW|url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8&contents_id=51180|출판사=[[네이버]] 매거진캐스트|저자=[[보그]]|날짜 = 2014-03-01|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또한 그 당시에 바빠도 밤마다 영화는 한 두 편은 꼭 챙겨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겨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머니투데이"/>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새로 접하는 연기의 매커니즘이 신기했고,<ref name="네이버"/> 무엇보다 새로 창조해나간다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
         서강준은 2013년 서프라이즈 멤버들과 웹 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정식 데뷔하였고, 이후 [[SBS]]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에서 은한결([[김소현]] 분)의 밴드부 선배 최수혁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당초 다른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수상한 가정부》 오디션을 권유 받게 되었고 얼떨결에 합격했다고 한다.<ref name="enews24">{{뉴스 인용|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00988|제목=[인터뷰] 서강준, "대형신인이요? 천천히 가고 싶어요"|저자=안소현|날짜=2013-12-09|출판사=enews24|확인날짜=2014-05-17}}</ref> 그러다가 [[MBC]] 단막극 《[[드라마 페스티벌|드라마 페스티벌 - 하늘재 살인사건]]》을 연출한 최준배 감독이 서강준이 출연한《수상한 가정부》를 보고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문소리]]의 상대역인 윤하 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enews24"/> 2014년 초, 서강준은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에서 여주인공 나애라([[이민정]] 분)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연하 국승현 역을 연기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에서 자신인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그는 2014년 5월 4일부터 2015년 4월 14일까지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 [[룸메이트 (텔레비전 프로그램)|룸메이트]]》에 고정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서강준, ‘룸메이트’ 멤버들과 쫑파티 인증샷…“자주 봐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47007|출판사 =OSEN |저자 =정소영|날짜 = 2015-04-21|확인날짜 =2017-09-07}}</ref> [[삼성그룹]]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최고의 미래]]》에 이어,<ref>{{뉴스 인용|제목=‘최고의 미래’ 서강준 “민아 첫인상, 신기했다…동갑이라 빨리 친해져”|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336999|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2014-10-27|확인날짜 =2017-09-07}}</ref> [[KBS2]]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했다. 이후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2014년 영화)|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연달아 출연하며 차근 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갔다.
         2015년 서강준은 [[MBC]] 대하 드라마 《[[화정 (드라마)|화정]]》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소신과 명석함을 지닌 꽃도령 홍주원 역을 맡아 6개월여동안 최종회까지 대장정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2016년에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드라마)|치즈 인 더 트랩]]》에서 ‘츤데레’ 매력 백인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노 천재로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백인호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 물오른 4년차 '치인트'로 폭발|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123528|출판사=한국일보|저자=황지영|날짜=2016-01-20|확인날짜 =2017-09-07}}</ref> 그는 실제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예능, 해외 팬미팅 등에서도 간간히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치인트’ 서강준, 여심저격 피아노 신 진실 밝혀…“그 정도 실력 안돼”|url=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E2MDEyODEwMzQyMzEzNjY3MC5odG0=&ref=m.search.naver.co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수민|날짜=2016-01-28|확인날짜 =2017-09-07}}</ref> 2016년 11월, 서강준은 대한민국 차세대 스타와 그를 둘러싼 연예계 일상을 그린 100% 사전제작으로 제작 된 [[tvN]] 드라마 《[[안투라지 (2016년 드라마)|안투라지]]》에서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장 핫한 배우 차영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으로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미드 리메이크' <안투라지>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36516|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윤현|날짜 = 2016-12-26|확인날짜 =2017-09-07}}</ref>
         | 보미의 워너비 여상
         | 신III /
         | 364회, 꽃미 종합선물세트 편
         | 230회, 꽃미 탐구 생활 편
         | 성정장
         | 성 정장
         | 자 신인연기상
         | 자 신인상
         | 예능부문 자 신인상
         | 자 신인연기상
         | 자 우수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자 신인상
         | 드라마 자부문 Made in tvN
         | 자 인기상
         | 자우수상
         | 중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KBS 연기대상 자 우수연기}}
  • 진구 . . . . 28회 일치
         | 자녀 = 슬하 2 (장 진원)
         | 박정
         | 자 특집·단막극상
         | 우조연상
         | 신인우상
         | 영화부문 자 신인연기상
         | 신인우상
         | 특별기획부문 자 조연상
         | 우조연상
         | 영화부문 자 우수상
         | 우조연상
         | 우조연상
         | 최고의 자조연배우상
         | 우주연상
         | 우조연상
         | 자 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대종상 우조연}}
         {{청룡영화상 우조연}}
         {{황금촬영상 신인우}}
  • 몽키 D. 루피 . . . . 27회 일치
         ||<:>해적단 가족 포지션||<:>사||
         || 한국판 || [[정미숙]](KBS), [이보희](대원) || [[강수진(자 성우)|강수진]] ||
         '''~~초반엔 천재속성도 있었지만..~~뇌는 슬라임 급이지만 개념은 작중 최고인 자기 해적단 최고의 근육머리 바보(...)겸 개그캐''' 이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다, 특히 머리 쓰는 일을 잘 못한다. 독불장군 기질이 심해서,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어가는 경우도 많다.정신력과 의지력은 초인적인 수준이며(쉽게 말하자면 그냥 멘탈이 강하다) 동료애도 강하다. 다른 사람의 동료애에도 공감하고(그래서 아론의 동료를 방패로 썼나?)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하며, 반대로 동료를 속이는 것을 혐오한다. 동료들이 루피를 따르는 이유 또한 루피가 매사에 솔직하고, [니코 로빈|동료의 ][바로크 워크스|과거가 어떠하든] [프랑키|그런건]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프랑키|조선공]이나 [니코 로빈|고고학자]는 첫 만 당시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일단 동료로 받아들이고 난 뒤로는 그런 과거는 일절 따지지 않고 대우해준다.--좋게 말하면 쿨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지만 루피 성격으로 봐선 멍청한 게 더 잘 어울린다.--물론 이건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샹크스와 빨간 머리 해적단의 영향을 받은 건지 수직적인 관계보다 허물없이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리더로서는 솔직히 부족한 점이 보인다. 일류 인재 스카우터 수준으로 동료들은 잘 모았고, 위급할 때는 전투력도 높지만 이성적인 리더로 보기가 조금 그렇다. 감성적인 리더로 봐야 하나. 물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분명 있다. 때문에 루피가 일행의 구심점은 충분히 되지만 무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벌이는 일에 자기 옆에 모인 동료들을 한 방에 친구따라 강 가게 한다던가(...). 뭐 애초에 루피가 자신은 검술도 항해술도 요리도 거짓말도 못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에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동료들을 자기 목숨 만큼이나 소중히 여기고 또 그만큼 믿고 있다. 동료들도 그런 루피의 기대치에 맞춰 죽어라고 자신을 강화해 가며 루피를 쫓아가고 있다.[* 1부에서 '--3d--2y'의 암호를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모습이나(특히 '''자신의 최대의 적수인 미호크에게 가르침을 구하던 조로.''') 2부 펑크 해저드에서의 우솝의 대사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자가 위에 군림 하는 타입이 아닌 옆에서 같이 부대끼면서 서로의 단점을 서로의 장점으로 보완해 나가는 타입의 리더쉽이라고 이해해 주면 될듯.--물론 동료들이 그덕에 피X 싸는 고생을 수시로 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자의 로망]]에 약하다. 합체, 광선빔, 브레스, 7단 변신 등등을 보면 눈을 빛내며 심하면 울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소년들의 로망으로 통하는 장수풍뎅이도 굉장히 좋아해서, 자야에서는 사우스 버드를 잡느라 한창 바쁜 와중에 쵸파와 같이 곤충을 잡고 있었다(...)[* 사족으로 이 장면에서는 '''그 루피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희귀한 장면이 나온다(!!!)'''--그 설명도 엉망인건 넘어가자.--]
         앞서 말한 그 특유의 무모함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루피의 감은 그만큼 잘 맞는다'''. 분명히 루피가 무모해서 온갖 사선을 넘으면서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모두 살아은 것은 루피의 감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패기 설정이 두드러진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연결된 떡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mr.3 전때 같은 것만 봐도 작가가 구상정도는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독자들도 있다.]
         요하자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볼사리노|아무리 똥줄을 타고 역량을 한계까지 뽑아내도 도무지 못 이기겠다 싶은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을 감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즉시 도망치거나 심지어는 '''동료들과 흩어져서 도망칠 줄도 안다'''[* 앞서 말한 골드 로저나, 로저의 아들의 경우. 자기만 고 동료들을 보내는 경우라면 몰라도 뿔뿔히 흩어져서 생존률을 나눠가지자는 식의 냉정한 선택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가프의 로저에 대한 평가나 그 아들의 행적에서 미루어 생각해보면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수준.]는 것이다. 신중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의외로 물러설 때를 알 정도의 상황판단능력과 융통성은 있다.
         아론 파크를 공격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나미(원피스)|나미]]에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뒤 아론 파크로 가는 장면이 있다. 또한 드럼 섬에서는 [[상디]]와 함께 나미를 데리고 의사를 찾기 위해 드럼 록키를 올라가던 중, 라판이 일으킨 눈사태에 의해 상디가 눈 속에 파묻히자 나미에게 잠시 밀짚모자를 맡기고 상디를 찾기 위해 눈으로 뛰어든다. SBS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이므로, 이걸 에게 맡긴다는 건 '''너는 내 동료이며,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루피가 처음으로 동료에게 밀짚모자를 씌어준 것도 나미가 처음이다. 아론 파크편에서 나미가 더 서글프게 눈물을 흘렀던 것은 그런 루피의 뜻을 알아차렸기 때문.
         한편, [[실버즈 레일리]]의 회상 장면에서 [[골 D. 로저]]와의 첫 만이 나오는데, 당시 로저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또, 샹크스가 루피에게 모자를 맡길 때 '이 모자는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내 보물이다.'라고 말하였다. 게다가 레일리가 루피를 보며 '그 모자에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므로, '''[[http://mypi.ruliweb.daum.net/mypi.htm?id=ky352729&num=12504&cut=1 루피의 밀짚모자는 본래 로저의 것이었다]]'''는 얘기가 된다.~~모자 하나를 몇십년동안 쓰고있는거냐~~~~최강 내구도 밀짚모자~~
         모두가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고, 일단 루피부터가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타입인 만큼 안 친한 멤버가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해적단 내에서는 [[우솝]]과 가장 친한 편이다. 우솝이 좀 심한 겁쟁이에 평범한 인체스펙과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루피는 무모한 성격과 악마의 열매로 인한 특이체질과 엄청난 힘 정도만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정신세계와 개그코드는 그야말로 [[소울메이트]]급으로 죽이 잘맞는다. [[자의 로망]]을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둘다 [[빨간 머리 해적단]]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알다시피 [[샹크스(원피스)|샹크스]]는 루피의 '''인생 나침반''' 같은 존재이고, 동료인 [[야솝]]은 우솝의 '''아버지'''이다.] 그와 연령까지 똑같다. 이래저래 닮은 구석이 참 많은 콤비. 그래서인지 우솝이 루피의 바보짓에 태클을 많이 거는 만큼 루피의 장난에 가장 많이 받아주고 같이 행동하는 것도 우솝이다. 해적단에 별일 없으면 항상 루피 옆에는 우솝이 붙어 있다. [[토니토니 쵸파|쵸파]]가 합류한 이후로는 이 셋이 늘상 붙어다닌다. 일명 '''막내라인.''' 그렇기에 이 둘이 다투는 모습은 [[워터 세븐]]에서 [[고잉 메리호]]를 놓고 싸운 것이 유일했을 정도로,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장 친했던 멤버와의 처절한 결투를 비극적으로 그려내었다. 물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프랑키|새로운 동료]]와 [[사우전드 써니 호|새로운 배]]가 생겼고, 배에 대한 트러블로 잠시 해적단을 이탈했던 우솝도 다시 돌아왔지만. 추가로 우솝이 루피에게 해적단에 멋대로 나간 점을 사과하고, 자신을 다시 넣어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런 우솝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눈물콧물범벅이 된 루피의 모습은 참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솝의 재합류 이후로는 역시나 쵸파랑 항상 셋이서 붙어다닌다.
         동인 쪽에서는 원작에서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하렘]]마스터 기믹으로 나오고 있다. [[주인공 보정|루피와 인연이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커플링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사실 동인계 쪽에서는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루피와 인연이 있는 '''성'''들과도 커플링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니(…) 마성의 페로몬에 더해 만인의 연인에 가까운 기믹이 있다고 보면 된다.
         본인 무력부터가 루피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거물들을, 루피 쪽에서 도와줄 때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루피라는 인물 자체에게 반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징베, 이반코브, '''행콕'''등이 그러한 케이스로[* 행콕의 경우는 함깨 활동한 기간이 짧았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다른 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샤본디 제도에서의 행적 자체가 행콕이 본인 트라우마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영웅담으로 들릴 만한 행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필연적이었다. ~~이후는 전부 콩깍지지만~~], 세 명 모두 2년 전 시점에서 명백하게 루피를 뛰어넘는 강자들이었으며[* 이 부분은 루피가 이미 칠무해를 둘셋 꺾은 적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렸다고 동급의 강함이라 볼 수는 없다. 이반코브가 Mr.3의 보조 없이 마젤란과 정면에서 한참을 대치 후 살아돌아왔다는 점이나, 행콕이 파시피스타를 대략학살했다는 점(다만 이때 파시피스타는 행콕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공격 자체를 안했다. 로봇이니 행콕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반격했을리가 없고), 징베의 수중 전투력 등에서 가늠하자면 강함 자체만 두고 볼 때 당시 루피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다. 아니, 징베의 육상전투력만 봐고 루피보다 우위이다. 징베는 육상에서 에이스와 싸워 무승부를 이뤘으며, 이때 루피는 에이스보다 약했다. ] 루피가 그들의 은인이라 잘라 말하기도 힘들지만, 결국 전원이 반쯤 목숨을 내놓고 루피를 위해 싸운다.
         특이 케이스로, 만났을 때는 웬만한 양민들보다도 더 약해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았지만 어느새 육식 몇 개를 익혀오더니 대령이라면서 준장님쯤 되셨나 싶은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코비나, 명백하게 적대관계이지만 내심 루피를 마음에 들어하는 스모커 등이 있다. 루피라는 인간 자체는 마음에 들어하지만 위치상 적대관계이며, 특히 스모커는, 루피가 도와주는데도 그대로 돌려주어서 은원관계를 안 긴다. 오로지 해군으로써 쫓고 있기 떄문에 코비보다 훨씬 살벌한 관계. ~~참고로 코비는 뒤에서부터 거리를 좁혀오고 있지만 스모커는 처음엔 앞이었는데 이젠 뒤쳐지고 있다.~~
         어느 쪽에도 속하기 힘든 인물들로 흰 수염 해적단의 잔당들이 있다. 일단 정상결전에서 함께 싸운 일이 있고, 루피가 에이스의 동생인 데다가 흰수염 본인에게도 인정을 받은 바가 있어, 관계 자체는 루피에게 굉장히 우호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 세력 자체는 샹크스 해적단이나 레일리나 동급일 정도로 전설적인 존재들이지만 정작 그 중심이 정상결전에서 목숨을 잃어서, 지금은 상당히 격하된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상결전에서 주력으로써 해군의 중대장들과 정면으로 싸운 인물들인 만큼 현재의 밀짚모자 일당들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이 워낙 안습이다보니 루피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기 힘들다.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순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순순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순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식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그래도 아무리 산 속에서 살았다곤 하지만 산적들도 신문은 읽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내용들을 가르쳐 줄 때 보이는 반응을 보면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본인이 알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질 않는다. 보통 동경하는 [[샹크스(원피스)|해적]]이 생기면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처럼 그 [[몽키 D. 루피|해적]]의 정보를 신문에서 찾는 게 정상이다. 샤키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는 점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정보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매스컴 자체에 관심이 없는 듯.[* 아닌게 아니라 현상금이 올라가면 단순히 올라갔다고 좋아라 하지만, 매스컴에서 자기를 두고 떠드는 소리소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기 기사에도 관심이 없는데 기사에 관심이 있을까(…)] 그나마 이 해적단 내에서 나미나 로빈 정도가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고 있어 중요한 정보는 귀에 들어오는 편이다. 그런데 나머지 멤버들은 흥미있는 정보다 싶으면 들여다 보기라도 하는데 루피는 웬만해서는 그냥 말로 듣고 놀란다. ~~가만, 얘 진짜 글 읽을 줄 아는거 맞나?~~
          * 오마츠리 작 - 극장판 6기 한정.[* 극장판 5기에서는 루피가 쓰러뜨린 적이 없기 때문.] 꽃~~이라 쓰고 괴물이라 읽는다~~을 폭파시키고 주먹 한 방으로 K.O.[* 이 인물이 루피를 가장 참혹하게 만들었는데, 다른 적들이 루피를 바를 때, 빈사 혹은 사망 직전까지 몰고가나 [[주인공 보정]] 및 막강해진 기술로 본인 스스로 이겨버리는게 대부분이나, 이 인물은 화살로 바위에 두 팔 두 다리를 모두 고정시켜놓고 거대 꽃~~괴물~~이 거대 뿌리를 통해 하나하나 동료를 섭취하는(!!!) 모습을 보게 했으며 루피가 목을 통해~~화살따위는 입으로 씹고~~ 마지막 은 조로를 구하려 했으나 결국 구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고 주변의 조연이 화살 빼주고(확실한지 [[확인바람]]) 거대뿌리를 공격하나 그게다 화살로 바뀌어 등에 고슴도치처럼 박히고 다른 조연이 화살로 거대 꽃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펀치하나 날려 동료를 구해주는 그런 전개라서 제일 참혹하다.~~보는게 이해가 쉽다.~~]
          * '''[[쿠잔]]''' - 롱링롱랜드에서 루피를 포함하여 상디, 조로, 로빈까지 얼렸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고 넘어갔다. 해군 대신 크로커다일을 잡아서 살아았다.
          * [[오마츠리 작]] - 극장판 6기 한정. '''지금까지 나왔던 극장판 전부를 통틀어서''' 오마츠리 작 만큼 루피를 처참하게 만든 인물은 없었다. 동료들 전부 잃고 온 몸에 화살이 박힌 채로 오마츠리 작에게 동료들을 돌려달라며 덤비는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개인 능력은 루피보다 한참 아래지만 루피를 핀치상태로 몰고 간 계획성이나 루피만큼 동료애가 강했으나 그 성질이 삐뚤어져 있었던 만큼 극장판 6기 분위기를 여느 다른 극장판과 달리 어둡게 몰고 가는데에 한 몫했다. 여담으로 오마츠리 작의 [[성우]]는 공교롭게도 후에 싸울 [[최종보스]] 후보 중 하나인 [[마샬 D. 티치]]를 연기한 '''[오오츠카 아키오]'''다. 한국판은 로브 루치를 연기한 [[현경수]].
          * [[겟코 모리아]] - 첫 만 때 루피를 속여서 포박하기는 했으나, 그림자를 뺏는 게 목적이었기에 죽이지는 않았다. 만약 죽이려고 맘먹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던 상황. 그리고 최종전에서도 1분만 더 버텼다면 루피 일행은 전멸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27회 일치
         집이 털리는 줄도 몰랐던 고프리와 테리는 코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다. 이후 두 사람은 네놈이 집에 아있어야 했네, 네놈 혼자 있는건 무사할 줄 아냐하며 다투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코너는 무장한 자들이 수레를 불태우고 한 자를 묶어 강제 번지점프를 시키는 광경을 보게된다. 이후 무장한 자들을 해치우고 매달린 자를 구해준 코너는 무장한 자들이 그 자를 노린 강도들이었고, 해당 자가 빈털터리라는걸 알게 되자 그의 도구와 장비를 불태우고 그를 밧줄에 매달아 절벽에서 던져버렸다는걸 알게 된다.
         그는 국왕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공소를 잃고 보스턴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코너는 숙련된 장인이 필요했다며 그 자를 대번포트 농지에 정착시킨다.
         몬머스를 지나가던 코너는 한 녀가 왕당파 병사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병사들은 코너에게 신경 끄라고 하다가, 코너가 무시하지 않자 공격한다.
         병사들을 모두 쓰러뜨린 코너는 녀에게 무슨 일인지 묻는다. 왕당파는 워렌과 프루던스에게 전재산을 내놓으라고 했고, 워렌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왕당파는 가축들을 죽이고, 땅을 황폐화 시킨 다음 부부를 끌고 나왔다. 프루던스는 코너에게 고마워하지만, 가진 게 없기에 아무 보답도 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러자 코너는 대번포트 농지를 소개해주며 농장 재건을 돕겠다고 한다.
         코너는 보스턴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자가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는걸 본다. 코너는 자를 도와 병사들을 쓰러뜨린다.
         프랑스어를 쓰는 자, 노리스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병사들이 자기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퀘벡에서 온 프랑스계 사람이었던 것. 광부일을 하기 위해 보스턴에 왔지만 억양 때문에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노리스. 코너는 대본포트 농지에 있는 광산을 소개해준다.
         존스타운을 지나던 코너는 영국군이 한 자를 붙잡고 그를 탈영병이라며 목매다려는걸 목격한다. 코너는 이 현장에 난입, 영국군 병사들을 해치운다. 마지막으로 자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던 병사까지 처리한 후, 코너는 자의 묶인 손을 풀어주며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뉴욕에 있는 가게에서 망치 대가리와 손잡이를 사고 나오던 코너는 병사들이 빅 데이브에 대해 얘기하는걸 듣는다. 대번포트 농지로 돌아간 코너는 빅 데이브에게 도구를 전해주며 영국군이 그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빅 데이브는 그럴 줄 알았다며, 언젠가는 영국군을 상대해야겠다는 말을 긴다.
         뉴욕 거리를 지나가던 코너는 한 소녀가 도움을 청하는걸 발견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코너가 소녀를 따라가보니, 그녀의 어머니가 편인 퀸센트에게 구타당하고 있었다.
         코너가 퀸센트를 두들겨 패 내쫓자, 여성은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할 수 있었으며, 퀸센트가 돌아오면 더 심하게 구타할 거라고 한다. 코너가 그런 자 곁에 있는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이 일군 집과 직장을 버리고 떠나는 것보다 그자의 술주정이 낫다고 한다.
         코너는 그 자가 없으면서, 일하고 살 수 있는 곳을 제안한다. 그녀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하지만, 코너의 말에 대번포트 농지로 가보기로 한다.
         코너가 마일즈 엔드에 들렀을 때, 한 자가 찾아와 숙식을 부탁한다. 그가 런던에서 건너온[* 영국 출신이라는 말에 고프리가 비웃지만 그는 자신이 왕당파가 아님을 밝힌다.] 성직자라는 걸 알게 된 주민들은 지금까지 마을에 성직자가 없었던걸 떠올리며 그를 받아 들인다.
         >코너, 네가 이걸 읽고 있다면 내가 바라던대로 작별인사 할 순간을 찾지 못한걸거다. 이 땅과 자원 모두를 너에게 긴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티모시 신부는 아킬레스의 추도사를 한다. 추도사가 끝난 후, 티모시 신부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의 관에 꽃을 바친 후 돌아간다. 모두가 돌아간 후, 홀로 은 코너는 그의 관에 깃털을 바치며 자랑스럽게 해주겠다고 맹세한다.
         랜돌프를 공격하던 영국 선박들을 격침시킨 아퀼라는 다시 랜돌프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랜돌프는 영국 프리깃 두척을 기고는 도망쳐 버렸다. 아퀼라는 프리깃 두척을 처리한 후, 폭풍우를 피해 마서스비니어드 섬으로 향한다.
         >비들: 고통. 난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반대자들을 제거하고 애국자들에게 힘을 주었지. 내가 제독의 자리에 올랐으면 어째서. 이 혁명은 사람이 필요했고 내가 거기 알맞는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알맞는 사람. 내가 아니었으면 대륙 해군은 땟목 한줌으로 았을거다. 네놈의 선견지명에도 불구하고, 너희 암살단이 진실을 가리는군.
         === 부 보스턴: Martial Law ===
  • 정인숙 (1945년) . . . . 27회 일치
         정인숙은 [[1945년]] [[2월 13일]] [[대구직할시|대구]] 산동에서 후일 해방 뒤 대구직할시 부시장을 지낸 [[정도환]]과 부인 전덕조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도환은 자수성가형 인물로, 행정공무원으로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정권에서 대구부시장까지 올라갔다. 아들만 넷을 둔 정도환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그의 형제는 7매로 위로 오빠 다섯 명과, 쌍둥이 자매가 1명 있었다. 쌍둥이 딸이 태어나자 정도환은‘금이야 옥이야’길렀는데 이름도 금지(金枝)와 옥지(玉枝)로 했다. 두 쌍둥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였으나 옥지는 생후 1년 반 만에 병사하고, 살아은 금지가 후일의 정인숙이다.
         정인숙은 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출처|날짜=2014-3-2|자존심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에게는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 하나를 따로 두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정도환은 본래 자식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정인숙의 오빠들 중에는 자신들에게는 차비도 짜게 줄 만큼 인색하면서 딸 하나 둔 것을 버릇없이 길렀다며 불평불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터울 차이가 났던 두 오빠는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였으나, 정인숙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가정 환경이 넉넉했던 정인숙은 개인교사를 둘만큼 유복하게 자랐다. 예쁘고 천성이 명랑했던 그녀는 붙임성이 좋아 녀 친구가 많았고, 학업은 중간 정도였지만 [[영어]] 실력은 빼어났다고 한다.<ref name="hp103">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3페이지</ref>
         정인숙은 대구 S여중에 진학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가정형편이 넉넉했다. 그러나 S여중 3학년에 올라갔을 때 [[4·19 혁명]]이 발생했고,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아버지 정도환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아버지 정도환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대구 산동 집을 팔고 삼덕동으로 이사하는 등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정인숙의 성격도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인숙은 장사공과의 동거 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밀요정을 경영하던 마담 김씨를 만난다. 그리고 김마담의 소개로 패션모델로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김마담이 경영하는 서울 한동 고급 요정에 접대부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겼다.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얼마 뒤 선운각의 인기 있는 1급 접대부가 되었다.
         고급 요정에 종사하며 큰 돈을 거머쥐면서 씀씀이도 늘어났는데, 선운각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대한민국 정치계 인물인 모 씨다. 모씨와 계속 만나다가 그를 통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도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그녀는 저명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한다. 그 뒤 또다른 정부 고위 인사 모씨를 만났고, 그와는 관계는 석 달 짓 계속된다. 그러다가 당시 그녀의 미모를 접한 정부의 각료 모 씨가 정부인사 모 씨와 한달간 그녀를 서로 차지하려고 갈등하였고, 그 뒤 정인숙은 선운각을 그만두고 비밀요정으로 옮긴다.
         그 뒤 그는 다른 요정에도 출입하는 등 여러 요정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주 무대는 처음 들어갔던 곳이고, 마담 김씨가 경영해 오던 한동의 고급 요정이다. 정인숙은 2류급 여배우와 가수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마담 집 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접대부로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인기를 끌면서 그는 반드시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 회고에 의하면 당시 불려가는 여배우와 가수를 포함한 접대부 중 그의 미모가 1위였다 한다.
         [[1980년]]대에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인사는 "정인숙을 편력한 이들은 박정희, [[박종규]], [[정일권]] 씨 등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ref>김충식, 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1</ref> 그 밖에 [[이후락]] 등과도 관계를 갖기도 했다.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당시 그를 목격한 연예기자 정홍택의 회고에 의하면 '그 날도 나는 산 중턱에 있는 타워호텔 18층 나이트클럽에 갔다. 밤 8시 반쯤 되었을까? 나는 만나기로 한 일행보다 먼저 도착했고 클럽 안에서는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젊은 여자 한 분이 카운터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술집에서 카운터 앉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여인과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가까이 보니 아주 미인이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얀 것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내가 카운터에 앉자 그 여인은 나한테 술을 한잔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이런 경우 술을 권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 쪽이 아닌가? 나는 솔직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쑥스러웠다. 내 느낌으로는 그녀에게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인데다가 우울한 분위기였다. 더욱 더 나를 묘하게 만든 일은 그녀가 밴드에게 연주해 달라고 주문한 노래 때문이었다. 그 노래는 ‘릴리스 미(Release Me)’였다. 이것은 영국의 엥겔버트 험퍼딩크라는 가수가 부른 곡이고 그 당시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하고 있었다. “나를 좀 놔 주세요. 떠나갈 수 있게 놔 주세요.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나한테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답니다. 당신의 입술은 차갑지만 그이의 입술은 따뜻합니다.” 이런 가사 내용이다.<ref name="han01"/>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은 물론 평소 거느리는 주변 사람들의 여자문제에도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직원을 시켜 정적이었던 [[김대중]], [[김영삼]] 등의 사생활을 캐서 보고서로 제출하자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 그러나 자신과도 술자리 또는 잠자리를 같이 한 정인숙이 정일권과 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두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사건 직후 “정 전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위의 건의에 “자가 여자 만나는 것은 예사”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후문이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민당]]의 정치 공세는 계속되었다. 정일권은 박정희를 찾아가 무릎까지 꿇었다고 했고, 바로 해임을 시키면 세간의 루머만 커질 것을 우려한 박정희는 정일권을 불러 자진 사퇴를 권고한 뒤, 정종욱이 구속된 이후 잠잠해질 무렵 정일권을 해임하고 바로 미국으로 내보냈다. 정인숙 문제로 박정희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한 정일권은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70년 [[5월 12일]] 열린 첫 본회의에서 법무장관 이호는 정인숙 사건을 자세하고 비중 있게 취급해 보고를 했다. 국회 속기록에 겨진 기록을 보면 정인숙 관련 기록이 4쪽인 것에 비해 와우아파트와 관련된 기록은 3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호 장관이 이렇게 자세하게 정인숙 사건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룬 것은, 정인숙 사건을 자신의 발언 선에서 마무리 짓자는 일종의 호소였다.<ref name="kim99"/> 정인숙 사건을 야당이 더 이상 키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인용문|어제 이호 법무가 올라 오길래 무슨 법무 행정의 주요 문젠가 했더니 느닷없이 웬 강변3로 여자 살인 사건이란 말야(웃음소리). 대통령이 여자 살인 사건을 갖고서 모처럼 안 하던 결심을 해 갖고서 전 각료들을 국회에 내보내 자진 보고케 하라고(웃음소리). 질문이나 하면 그때 가서 거짓말을 하든지 말든지(웃음소리). 무슨 놈의 오빠가 여동생의 난륜(亂倫)을 분개해 가지고 권총을 쏘았다고.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 문제를 참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보고하느냔 말야(웃음). 미인사건이라니까 여러분은 흥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친절은 없어도 좋지 않느냐 이거요. 국회의원의 질문이 나올 텐데 대통령 지시로 나온 분께서 하필 그 정인숙이라는 괴미인 살인 사건을 장시간 보고하니까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이겁니다.<ref>김충식, 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9~200</ref>}}
         대사(大蛇), 큰 뱀으로 불렸던 유진산은 권모술수와 밀실정치에 뛰어났다. 당시 [[김계원]]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은 유진산과 일부 야당 인사들에게 접근해 정인숙 사건을 쟁점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진산은 이를 쟁점화했고 뒤이어 다른 야당인사들도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정인숙 사건을 쟁점화시켰다.<ref>김충식, 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6~197</ref>
         사망 사건 당시 경찰 발표에 의하면 “정인숙이 요정에 나가면서 많은 자와 사귀었고, 심지어 아들까지 낳아 기르는 등 사생활이 좋지 않아 운전을 하던 오빠(정종욱씨)가 권총으로 살해했다.<ref name="han01"/>” 이것이 사건의 개요였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은 오빠인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해 누이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동생의 문란한 행실을 보다 못한 오빠 정종욱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ref name="jon01">[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070585&ctg=-1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 의혹 ‘누가 정인숙을 죽였나?’] 중앙일보 2010년 03월 20일자</ref> 사건에 대한 의혹은 지난 40년간 계속됐다. 당시 사건 수사가 정인숙 여인 주변에 대해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빠의 범행동기가 석연치 않았으며 중요한 범행현장인 사고차량은 사건발생 몇시간만에 다른 곳으로 치워버렸다. 무엇보다 범행도구인 권총조차 발견하지 못했다.<ref name="jon01"/>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은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고 난 뒤 "동생과 관계했던 고위층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는 아버지(정도환)의 회유로 거짓 자백을 했을 뿐, 집앞에 있던 괴한들이 동생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숱한 의문점 때문에 정인숙 사건은 단순 살인사건이라는 수사기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권력기관에 의한 살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아있다.<ref name="jon01"/> [[2010년]] 2월 [[중앙일보]] 측에서 어렵게 만난 오빠 정종욱은 "억울해서가 아니라면 수감생활까지 다 마치고 나와 '내가 쏘지 않았다'고 얘기하겠냐"며 그의 결백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장했다. 7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이제 시간이 얼마 지 않았다"며 "마지막으로 재심청구를 통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ref name="jon01"/>
         정성일의 친아버지 논란 역시 [[정일권]]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 전 의원은 “우리 친인척 중의 한 분이 정 전 총리 부인과 이웃에 살며 둘도 없는 친구였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정 전 총리 부인이 친구에게 자기 집 편을 가리키며 ‘어디서 아들 하나를 만들었다’고 한숨짓고는 했다고 한다. 실제 4대 독자였던 정 전 총리에게는 딸만 셋뿐이었기에 생전에 그 모친의 아들 독촉이 아주 성화였다고 한다”고 전했다.<ref name="ilyo01"/>
  • 천호진 . . . . 27회 일치
         | 자녀 = 슬하 1 1녀
         [[1983년]] [[문화방송|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ref name="imbc">{{뉴스 인용|제목=<올드스타 다이어리> 배우 천호진|url=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7224|출판사=imbc 연예|날짜=2010-01-25}}</ref> [[1986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1 1녀를 두고 있다.
         | [[오픈드라마 과 여]] - 아름다운 나의 아줌마
         | [[고개숙인 자]]
         | 황놀부 차 황대철 역
         | [[만 (1988년 드라마)|만]]
         | 우기 사장
         | TV부문 자 신인연기상
         | 우조연상
         | 우조연상
         | 자 조연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자 특별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자 최우수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특별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자 최우수연기상
         |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KBS 연기대상 자 우수연기}}
  • 청도군 . . . . 27회 일치
         [[경상북도]]의 최단에 있는 군이다. 인구는 약 4만 3천명 정도. 인접한 자치단체로는 [[경상북도]] [[경산시]], [[경주시]], [[영천시]], [[대구광역시]] [[달성군]][* 정확한 위치는 [[가창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도]] [[밀양시]], [[창녕군]] 등이 있다.
         1906년(광무 10) 대구군 각북면, 현내면, 각이동면, 각초면을 편입하였다. 1912년에는 외서면(지금의 [[밀양시]] 청도면[* 실제로 밀양시 청도면과 청도군은 한자가 같은데(淸道), 외서면의 밀양군 편입 당시 원래 소속 고을인 '청도'를 따 면명을 개칭한 것.])이 밀양군으로 편입되고, 밀양군에 속했던 사지동(지금의 청도읍 사촌리)이 편입되었다. 1916년 군청이 화양면에서 대성면으로 이전하고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는 청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4년에는 청도읍 유호출장소, 화양면 성현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9년 군청을 청도읍에서 화양면 범곡리로 이전하면서 화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북과 동서의 교통 인프라가 크게 차이나는 기이한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분지 지형이긴 하지만 동서쪽으로 지형이 북 지형보다 험한 편이다. 북으로는 [[경부선]], [[대구부산고속도로]], [[25번 국도]]가 [[밀양시]]ㆍ[[경산시]]로 향하지만 동서로는 [[20번 국도]]가 [[경주시]]ㆍ[[창녕군]](그것도 2차로로 좁은 데다 선형도 좋지 않다)으로 향하며 [[30번 지방도]]가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팔조령 터널을 넘어간다.], 902번 지방도가 각북면에서 [[가창면]] 정대리[* 그것도 구배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헐티재를 넘어가야 한다.]로 향한다. [[창녕군]]으로 가려면 그나마 낫지만, [[달성군]]([[현풍면]] 방면)으로 가려면 [[창녕군]] 성산면을 거쳐 [[유가면]]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풍각면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좁고 구불구불한 비티재를 넘어 고암면 방리에서 1034번 지방도를 타고 성산면을 거쳐 등지교차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이래저래 골 때린다. 더 난감한 것은 청도에서 [[달성군]]([[현풍시외버스터미널]])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전무하다. 청도군 또한 산이 만만찮게 많은 고장이니 결과적으로 이런 식이긴 하지만 수요에서부터 벌써 넘사벽이다. 게다가 청도군은 동서로 긴 지형이고 산서(풍각, 각북, 각)과 산동(매전, 운문, 금천)으로 나뉘는데 중심지인 청도읍과 화양읍이 산서와 한 분지에 속하고 산동과는 산이 가로막은 형세라 같은 행정구역이면서도 산동으로의 교통연결은 사실상 2차선 [[20번 국도]] 뿐이다. 그마저도 선형이 좋지 않아 돌아서 가는 편. 언제부턴가 4차선+선형개선 공사중이다.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사실 오래된 걸로 치면 [[경상도]] [[진주시]]에서 하는 진주전국민속투우대회가 오래되긴 했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는 하나 정확한 시기는 불명), 청도소싸움대회가 여러가지 부대행사(로데오,콘서트,루미나리에 등)를 준비하면서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라 진주시에서도 바짝 긴장한 듯.
         --[[경상도]]답게-- [[경상도 사투리]]. 단, 지리상으로는 [[경상북도]]에 속해 있으나 경북의 최단에 위치한데다 [[경상도]]와 접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경북 방언에 비교해 볼 때 억양과 강세가 그것보다 좀 더 뒤에 있는 편이다. 경 방언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북 방언을 구사한다. 쉽게 비유해서 [[안동시]]에 사는 사람이 이 곳 청도군에 놀러왔을 때 꼭 [[부울경|부산/울산/경]] 지역에 온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카더라]] 식. 그렇다고 해서 부산/울산/경 지역 사람들이 듣고 경권 억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억양만 들어도 경상도 사람들은 경북/경권인 거 [[악센트]]를 들어보면 딱 알 수가 있다. 2의 E승, 2의 2승, E의 E승, E의 2승의 위엄.(...) 엄밀히는 [[대구광역시]]와 더 가까운 형태의 방언이지만, 저런 [[이유]]로 딱히 다른 경북 지역만큼 경 방언과의 차이를 느껴 어색해하지는 않는 면이 있다. 물론 방언 특징상 사람마다 편차는 큰 편.
         ||5||<:>성현초등학교||<:>화양읍 성현로 473-11 ||
         ||6||<:>각초등학교||<:>각면 각로 59 ||
         ||8||<:>덕산초등학교||<:>각북면 덕길 11-7 ||
         || ||2||<:>풍각중학교각북분교장 ||<:>각북면 산길 26||
         || '''각면''' ||<:>15.49%||<:>{{{#C9151E 65.11%}}}||<:>{{{#696969 9.22%}}}||<:>{{{#696969 5.02%}}}||<:>2.89%||<:>{{{#808080 ▼49.62}}}||<:> '''79.87''' ||
         || '''면 지역'''[* 각면, 풍각면, 각북면, 이서면, 운문면, 금천면, 매전면] ||<:>14.00%||<:>{{{#C9151E 65.65%}}}||<:>10.90%||<:>5.61%||<:>2.16%||<:>{{{#808080 ▼51.65}}}||<:> 75.07 ||
          * [[임병헌]] : 전 대구 구청장(3선)[* [[풍각면]] 출신]
  • 김윤아(1974) . . . . 26회 일치
         ||<#CF89D7> {{{#ffffff '''가족'''}}} ||<#FFFFFF><(> 편 [[김형규]][* 편 김형규(1976년생)가 2살 연하이다.] , 아들 김민재, 동생 김윤일 ||
         ||<#CF89D7> {{{#ffffff '''데뷔'''}}} ||<#FFFFFF><(> [[그룹]] [[1997년]] 영화 '꽃을 든 자' OST <Hey Hey Hey>[br][[솔로]]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 OST <[[봄날은 간다(영화)|봄날은 간다]]> ||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 본래는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아동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한다.]에 입학한 93년 '풀카운트'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밴드활동을 시작하는데, 당시 풀카운트에서 드러머로 활동하던 구태훈과 처음 알게 된다. 이후 여러 밴드들을 거치다가 96년 김진만을 알게되고 97년 이선규와 김진만과 '미운오리'를 결성, 홍대 인근에서 활동한다. 이후 무대 디자인 일을 하고 있던 구태훈이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하면서 최종 4인의 '미운오리'가 결성된다. 97년 4월 홍대클럽 "블루데빌"에서 공연하던 중 영화 관계자에 발탁되어 <꽃을 든 자> OST 'Hey Hey Hey'로 데뷔했다. 자우림이라는 이름은 이때 지은 것. 별 생각 없이 지은 '미운오리'라는 이름이 막상 CD 자켓에 넣으려니 부끄러워서 하룻밤을 새서 지었다고.
         '''특히 안정적인 중저음역대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실력을 지녔다.''' 데뷔 초기인 1~2집 때는 3옥타브 도(C5) 이하의 곡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이 시기 자우림 노래들은 음역대가 조금 높은 자들도 키 전환 없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다.] 3옥타브 도(C5)가 있어도 한두 번 찍고 내려오는 수준. 워낙 이 시절에는 목에 힘을 빡 주고 [[벨팅]]으로 질러대는 스타일의 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파애', '일탈' 등.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노래는 목을 매우 상하게 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이렇게 질러대는 창법을 고수하다가 목이 완전히 가버리는 가수들이 꽤 많다. [[벨팅]]항목 참조.] 이후 3집 때부터는 전면적으로 목을 상하게 하지 않는 창법, 정확히는 [[두성]] 중심의 창법으로 전환했다. 90년대에 블루 데빌스 등 홍대 클럽에서 연주하던 미운오리(자우림의 이전 이름)의 팬들은 1집때보다 훨씬 더 목을 긁어대는 김윤아를 기억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아쉽지만, 그 창법을 계속 고수했으면 지금까지 노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곡 제공과 더불어 피처링 역시 정말 드문데, [[김수철(가수)|김수철]], [[이적(가수)|이적]], 백현진, 킹조의 앨범에 각각 한 곡씩 피처링을 한 적이 있다. 김수철과 이적이야 말할 것도 없는 대가들인데 킹조는 누군가 하면 김윤아의 편인 김형규가 결성했던 힙합 그룹이다(…). --[[한조(오버워치)|THE KING☆HANZO]]가 아니다-- 나가수에서 '사랑 밖엔 난 몰라'의 듀엣무대를 함께 한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 앨범의 '어른용 사탕'이라는 곡에서도 피처링을 했다. 그런데 2012년, '''굉장히 놀랍게도''' [[G.DRAGON]]의 2번째 솔로 앨범에서 'Missing You' 라는 곡에 피처링을 했다. 그리고 'Missing You' 는 타이틀곡인 'Crayon' 을 팀킬해버렸다. 9월 4째주 [[뮤직뱅크]] [[케이 차트]]에서 Crayon은 9위에 Missing You는 2위에 랭크된다. 참고로 1위는 [[싸이|월드 스타]]의 [[강스타일]].
         엄한 아버지께 답답할 정도로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명절에 굴전을 부치다가 실수로 태워먹어 아버지께 뺨을 맞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매를 굵기별로 목공소에 가서 맞추고, 대학 시절에도 통금이 8시였다고.] 지금도 '''예의범절을 매우 중요시하며,'''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어린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한다. 또 파격적인 가사들과는 달리, 규칙적인 바른생활을 한다고 한다. 2011년 라디오에서 '일탈'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일탈을 싫어하고, 내가 한 일탈은 기껏해야 대학생 때 자친구와 헤어지고 [[삭발]]한 정도"라고….~~응??~~[* 출처는 [[2011년]] [[9월 16일]] [[붐(연예인)|붐]]의 영스트리트.]
         2009년에도 방송에서 '하하하쏭'으로 [[아이돌]]을 모아놓고 보컬 강습(?)을 한 경력이 있다. [[http://youtu.be/2r55SFgzjNI|링크]] 참고로, 이 영상의 제목은 '''자우림 레전설 (부제: 김윤아의 아이돌 학살사건)'''(...)이다. 자들이야 키가 안 맞아서 그렇다고 실드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안습]]은 빅뱅의 승리~~ 여자 가수들은 [[지못미]].[* 사실, 자우림의 노래는 원래 다른 가수들이 커버하기가 힘든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윤아가 강습하는 와중에 혼자 살아은 [[케이윌]]과 김경록...--
         동생 김윤일도 잠시 가수 활동을 했었다. 1998년 O.N.SCHOOL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빅뱅'이라는 노래가 그런대로 알려졌을 뿐 더 이상의 활동은 이어가지 못했지만 2001년 김윤아 1집 수록곡 'Blue Christmas (Korean version)'에서 김윤아와 듀엣을 하기도 하였고 2011년 자우림이 나는 가수다에서 경연을 할 때 '재즈 카페'나 '아브라카다브라'등의 무대에서 피처링을 하였다. 지금도 여러 자우림 무대에서 코러스와 기타를 맡아 도와주고 있는 중. --동생도 잘생겼다--
         김윤아는 [[만화잡지]] [[르네상스]]-댕기 세대이자 [[PC통신]] 초기 세대로 덕력에 있어서 선배뻘이 된다. '자우림으로 데뷔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만화' 라는 발언도 한 적이 있다. 2011년에 있었던 자우림 비밀결사모임[* 8집 팬 이벤트로, 발매 당시 정식 CD앨범의 가사집에 있는 힌트를 가지고 공식홈에 접속하면 고난이도의 퀴즈가 나왔다. 앨범 가사집을 이용하여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으며 기간 내 다섯 관문의 퀴즈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비밀결사단 가면파티의 초대권과 함께 비밀결사단 인증서 및 특별제작된 굿즈로 붉은 수건(일반 제작 굿즈는 검은 수건)이 지급되었다.]에서는 메이드 복장을 입고 나타나 [[모리 카오루]]의 [[엠마]]를 언급하며 메이드 덕후 인증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오덕들에 대한 김윤아의 충고는 '결혼하면 오덕질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미리 하세요'(...)[* 하지만 본인은 바로 밑에 서술되어있듯 덕후 편이랑 여전히 덕질중이다(…). 17년초 냉부 출연시 집안 가득 쌓인 만화책장을 공개.]
         대학생 때 나우누리 만화동호회에서 활동을 했던건 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방송에서 김윤아의 집을 촬영가면 방에 들어가면 언제나 편 김형규와 그녀의 덕질의 산물이 카메라를 한가득...
         사실 편인 김형규도 [[덕질]]로 만난 사이다. 김윤아는 [[뉴타입(잡지)]] 한국판 창간부터 만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다가 일신상의 이유로 그만 두게 되면서 그 지면을 김형규가 이어받아 연재하게 되었는데 칼럼의 전임자와 후임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 소장한 만화를 보면서 덕력에 감탄하고 교류하다가 그게 데이트가 되고 결혼까지......[[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0&aid=0000000805|#]] 김형규 씨도 만만치 않은 오덕후인데, [[치과대학]] 본고사 때 문제 중 하나를 [[슈퍼닥터 K]]에서 본 내용 때문에 풀 수 있었고, 면접 때 교수가 문제를 어떻게 풀수 있었는지 질문하자 책 제목을 언급했다고 한다. [[http://acomics.co.kr/archives/16578|#]]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편 김형규가 출연하면서 김윤아의 취향도 함께 공개되었는데 음악, 요리 관련 만화와 작가로는 [[권교정]]을 좋아한다고 한다. 김윤아의 만화책장에 꽂혀있는 만화책 중에는 [[요츠바랑]], [[베르세르크]], [[유시진]]의 '온' 등이 있었다. 방송에서 말하기로는 자기보다 만화책을 많이 가진 사람은 김형규가 처음이었다고. 김윤아가 소장한 만화책은 1,500권 정도라고 한다. 자신은 실용주의라서 볼 책만 사고 보지 않는 책은 집안에 두지 않으며, 거기다가 더럽기까지 하면 더더욱 두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김형규가 박스에 모아둔 상태가 좋지 않은 책들은 조만간 숙청하겠다고...
         인디씬 태생이었던 자우림이 이름을 얻기 시작하자 (2000년대 이후) '자우림은 김윤아 밴드일 뿐'이며 '상업적이다', '김윤아는 성형한 주제에 [[페미니스트]]인 척 한다'는 식의 비난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네티즌들에게 화가 난 김윤아가 2005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박글을 올린 적이 있다.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어 원글은 사라졌지만 관련기사가 아 있다.[* 글 제목은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2&aid=0000005069|자우림 김윤아, 자신 둘러싼 근거없는 이야기 반박글 올려]]
         이 때까지도 안티는 "인디출신" 자우림과 김윤아의 오버그라운드에서의 성공을 못마땅해하거나, 김윤아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식의 성 안티가 많았으나, 2006년 김형규와의 결혼 이후 여성 안티도 급증하게 된다.
         실제로 2011년 MBC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가수 [[이하늘]]은 김윤아에게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 아닌가요?" 라고 대놓고 [[디스]]를 걸기도 했다. 실제로 김윤아는 한국식 [[힙스터]]같이 적절히 쿨하며 주류를 쫓지 않는 독특한 자기 세계관과 문화취향을 갖으려는 삶의 스타일의 이미지로 본인을 설정하고 싶어하는 메인스트림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본인만의 야인성(?)을 갖고 살아온 이하늘에게는 고깝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방송인 [[김나영]]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김윤아가 한 "저도 비주류고, 제 편도 비주류다." 라는 말에 대해 "편 잘 만나셨잖아요. 편은 [[치과의사]]인데 주류 아닌가요?" 라고 2번씩이나 소리를 지르며 억지를 부렸고 김윤아는 굉장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취향 얘기였는데 김나영과 이하늘이 열폭~~
         O'live Get It Beauty(2010년)에 출연해 "부정교합이라 조금만 피곤하면 하품하다가도 턱이 빠지고, 앞니로 국수를 끊는 것도 어렵지만, 소리를 내는 것이 직업이라 소리의 변형이 올까봐 치료하지 않는다"고 답한 바 있었다. ~~편이 치과 의사인데~~
         김윤아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네티즌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김윤아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바로 김윤아 담배 사건이다. 이에 분개한 김윤아의 편 김형규는 한 네티즌이 주요 포털(네*트) 뉴스란 댓글에 올린 '김윤아가 카페에서 어린 아들을 앉혀놓고 흡연을 했다' 라는 내용의 글을 문제 삼아 이러한 글을 올린 ~~잠재적 살인자인 악플러~~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2&aid=0002070367|#]] [[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00618191113212?f=m|##]]
         김윤아의 편 김형규가 '김윤아가 자녀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악플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김윤아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김윤아가 자녀 앞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사실인 양 매도하는 네티즌[[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pop&no=736820|#]]과 허위 사실을 유포한 악플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김윤아의 편 김형규를 비꼬는 네티즌[[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ndaynight&no=828807|##]]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둘 다 모두 디씨발이라는 것은 함정~~
  • 박진성(시인) . . . . 26회 일치
         [[대한민국]]의 [[시인(문학)|시인]]. [[1978년]] [[3월 7일]] [[충청도]] 연기군 [* 現 [[세종특별자치시]].] 출생.[* 자신이 [[웃긴대학]]에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wait&number=5251606|올린]]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wait&number=5208768|올린 글들]]에 따르면 현재 거주지는 [[대전광역시]]로 추정된다.]
         [[1978년]] [[충청도]] 연기군 에서 태어나 [[한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 [[트페미]]들이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의 피해자가 성이라서 수사 진행 속도가 빠르다며 여혐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웃긴대학에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769815|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까지 조작으로 세뇌시킨 페미니스트들의 횡포가 무섭다]]는 글을 올렸다.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http://www.hankookilbo.com/v/0564032fc2164032b7c5c3af3f668c50|이 기사]]([[https://archive.is/uTwCo|@]])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상의 규모 정도만이 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9895731627474944|#]]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06&aid=0000092780|#]]
         3월 26일에 2016년 10월 당시 출판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한 글과 2016년 10월 이후에 대해 쓴 글을 엮은 [[https://www.tumblbug.com/poetone78|산문집 '이후의 삶'을 출간하기 위한 펀딩]]을 시작했는데, 4월 1일에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0338430587449344|후원금이 목표치를 초과]][* 게다가 트페미들의 조롱과 달리, 후원자들의 성비는 '''여성이 6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487622431653888|#]] 즉 후원자들은 박진성 시인을 헐뜯는 세력과 달리 성별이라는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녀 모두가 후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했다. 4월 15일,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496403689406464|출간비를 제외한 은 후원금은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소송을 돕는 작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펀딩은 5월 4일까지 진행되었고 책은 24일에 나왔다. 그리고 일반 서점에선 31일부터 판매 중이다.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https://twitter.com/Bookistak/status/965482632808026112|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 이 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https://blog.naver.com/poetone/221212096465|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페미니즘은 지능의 문제|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와 [[내로불]] 그 자체인 상황.
          * 2017년 12월 2일, 오전 1시 29분 '''자살을 암시하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36633260062285824|트윗]]을 작성하여 우려가 이어졌다. 오전 1시 31분에 박진성 시인의 블로그에 '굿바이'라는 한 마디를 기고, 이후 블로그 갱신은 멈춘다. [[http://blog.naver.com/poetone/221153390296|해당 블로그 링크]] 이후 약을 먹고 쓰러진 박진성 시인을 박 시인의 어머니가 발견하여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가 14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는 내용을 박진성 시인의 아버지라고 밝힌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다. [[https://twitter.com/home_awaytwo/status/936878516280311809|해당 트위터 내용]] [[http://www.huffingtonpost.kr/2017/12/03/story_n_18712984.html|해당 기사 자료]]
          그리고 자살 시도 관련으로 박진성 시인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긴다. [[https://twitter.com/home_awaytwo/status/936879181043941377|해당 트위터 인물 정보]]
          * 2017년 12월 7일, 오전 00시 47분에 의식을 회복하고 블로그에 첫 글을 긴다. 그 이후에는 언론들에게서 받은 심적 피해가 심대했는 듯,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를 고발하는 글 등 언론들의 무고 관련 보도 태도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들을 기기 시작한다. 또한 블로그의 내용을 보면 박시인의 아버지 분도 거기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듯하다. [[https://blog.naver.com/poetone/221157223698|해당 게시글 링크]]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9276420290576384|#]][[http://archive.is/meecs|@]][*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s-6|재기]]라는 [[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이 [[전우용#s-4.3|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https://twitter.com/psychokinesis23/status/772794350883315713|#옹호증거1]][[http://archive.is/gGvKe|@1]][[https://twitter.com/histopian/status/772787036306546688|#옹호증거2]][[http://archive.is/QG3O0|@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사이코패스|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소시오패스|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https://twitter.com/No_JS_OK|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지랄 옆차기 하네|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2월 19~20일에 그는 이 상황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트위터리안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대다수는 그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 거였지만, 비난하는 게 아닌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에게 트위터를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멘션을 보낸 트위터리안도 있다. 당시 위에서 설명한 무혐의 처분 결정을 탁수정이 공개하고 박진성 시인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탓에, 트위터 내에서 이 설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마녀사냥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65692582637453312|자신의 손목에 아 있는 흉터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박진성 시인이 카톡 대화 전문 공개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탁수정]]이 이에 대해 자살 시도까지 비꼬는 투로 그러면 병원 영수증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공격하자 2월 28일엔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했다(저 공격을 하기 전에 탁수정과 탁수정을 지지하는 측이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개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굳이 공개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최후의 카드였던 셈.). 이후 그녀는 자신은 떳떳하니까 전문 공개하려면 하라고는 했으나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11일에는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3915291196342273|다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으로 [[리스트컷 증후군]]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 이 일 때문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신이 진행 중인 싸움이 전부 중지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며칠 뒤에 [[당뇨병]] 악화라는 다른 이유로 한동안 입원했었다.[* 탁수정이 또 영수증을 요구할까봐 미리 공개했다. [[https://twitter.com/poetone78/status/985796927143927808|#]]]
          * 2018년 7월 13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28887|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21개월 동안 '[[혐]]주의자'들에게 공격당했음을 밝히며,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당한 성폭력 무고 및 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초기라서 개인적으로 하는 정도지만 뜻이 있는 변호사와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연대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 2018년 2월에 2016년 10월 이후로 트위터 내에서 본인에 대해 조롱한 트윗을 모은 책 '혐오의 시대'(가제)라는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치욕스러운 건 활자로 책으로 겨서 후대로 만방으로 기록해두는 것. 그러니까 네가 사라지고 없어져도 너의 더러운 말들은 영원히 살도록 그렇게 영원을 살아서 누군가 너를 기억할 때 너의 더러운 말들이 너의 얼굴이 되도록 해주는 것. 그게 진짜 치욕인 것."이라고도 말했다. 3월 28일엔 트위터의 조리돌림에 대해 분석한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을 말하는 듯.
         >도저히 어떻게 안 되겠는지 K교수는 고En 시인에게 “이만 일어나시죠, 자리가 별로 안 좋네요”하고는 둘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은 여성 두 명과 처참한 심정을 나눴습니다. 고En 시인의 성기를 봤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요?
          * 故 [[성재기]]를 비상식적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성재기는 [[성재기/평가|'박근혜 지지=성연대지지'라며 박근혜 지지철회자들에게 "병신"이라며 "조금만 좋으면 학학대고 조금만 싫으면 획 바뀌는 인스턴트인생들,너희들이 하찮다.굿이나보고 떡이나 처먹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를 밀어줬고 박근혜 측도 "준비된 여성대통령" 슬로건을 사용했는데도 그는 계속 '박근혜 지지=성연대 지지'라고 주장해서 제대로 된 성인권단체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아래는 박진성 시인의 평가다.
          >'''성재기 류의 비상식적이고 몰시대적이고 희화화된 단체 말고''' '성의 인권'을 대변해줄 기관이나 시민 연대 같은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단지 성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량한 성들을 지키고 싶은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 [[반려동물]]로 개 사랑이를 키우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2018년 1월 [[백내장]]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737097|#]] 박진성 시인은 사랑이의 죽음을 알린 뒤 힘든 시간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는 마지막 편지를 겼다.
  • 이순재(1935년 10월) . . . . 26회 일치
         [[분류:1935년 출생]][[분류:한국 배우]][[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전주시 출신 인물]][[분류:1956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width=30%> (첫 시상식) || →||<width=30%><#FFFFA1> '''이순재'''[br]김성원[br][[여운계]][br]김희준[br][[사미자]][br]'''(1970)''' || → ||<width=30%> 김순철[* 1971년에는 대상이 없이 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br](1971) ||
         ||<-5><#00a495> '''{{{#FFFF00 {{{+1 [[동양방송|{{{#FFFF00 TBC}}}]] [[연기대상|{{{#FFFF00 연기대상}}}]] 자주연상}}}}}}'''[*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자·여자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 ||
         ||<-5><#c0c000><table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878787> '''{{{#EEE156 신체}}}''' ||<(> 165cm[* 작지 않냐 싶은데 저 당시 한국자의 평균키는 160대 중후반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68kg, A형 ||
         ||<#878787> '''{{{#EEE156 가족}}}''' ||<(> 배우자 최희정, 슬하 2 1녀 ||
         [[전라북도]] [[전주시]][* 그 유명한 [[김종서]]의 [[6진 개척]]에 나오는 6곳 중 하나.] 출생,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출생지는 전주이지만, 4살 때([[1938년]])에 조부모님이 계신([[전라북도|전북]])로 왔고, 해방 후 부모님도 전북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등록금]]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전주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0년]], [[6.25 전쟁|6월 25일]] 동생[* 이명재(1994년 사망). 동생의 아내 이름은 중견 탤런트 [[정혜선(배우)|정혜선]]과 동명이인이다.] [[수영복]]을 사러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73|#]]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1927년 생)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자신이 유일하게 형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자들]], [[허준]], [[상도(드라마)|상도]], [[야인시대]], [[거침없이 하이킥]], [[이산(드라마)|이산]], [[베토벤 바이러스(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 보통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시켜봐도 10에 9는 제대로 발음 못한다. 아나운서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ㅙ, ㅚ 는 커녕 장모음 단모음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이킥 이후 원로 연기자로서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그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가 잦다. 특히 못마땅해 하는게 젊은 배우들이 대본은 안보고 딴짓한다든가 합 안맞춰보고 혼자 밴에 틀어박혀 있는 것. 에게 훈련을 강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매일 발성연습을 몇시간씩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일단 이게 기초작업이고 연기로 가면 시간이 더 왕창 들어간다. 본인은 오랜 연기 인생의 비결로 암기력, 금주, 연구를 꼽았다. 특히 술에 대해서는 당시 깡소주(강소주)를 마시던 배우들은 지금 대부분 연기에서 은퇴했다고 금주를 강조했다.
         이순재는 젊은 시절에 주연급 톱스타는 아니었다.[* 이순재 본인이 직접 자신이 항상 첫번째는 아니고 신성일처럼 스케줄이 넘치는 스타의 대타였다고 밝혔다.] 이순재는 활동 초창기부터 자기보다 유명한 배우를 많이 만났다. 60년대 시점에서는 신성일, 신영균, 궁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수많은 흥행작을 낼 때, 이순재는 이들 영화에서 고작해봐야 조연으로 나오는 정도였다. 70년대 시점에서도 한진희, 노주현, 박근형, 임채무처럼 당시에도 쟁쟁한 후배가 많았다.
         그렇다고 이순재가 무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TBC]] 드라마 우주연상도 2회 이상 받았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한 배우이며, 당시에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히려 위에서 거론된 대기만성형의 대표주자는 [[백윤식]]이다. 그도 한창 젊은 시절인 70-80년대에는 비중없는 조단역에만 머물렀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 드라마 [[서울의 달]]로 주목을 받고 2000년대 들어서 영화판에서 굵직하게 활약하여 노년에 들어 입지를 굳힌 케이스다.] 한 마디로 [[이순재]]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으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구도자의 길을 걸은 덕택에 자기보다 인기 있던 스타가 모두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MBC에서 최민수의 노인폭행 누명을 다룬 특집 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제작진은 연예인들을 둘러싼 각종 악성루머들을 조명하며 한번도 구설수에 없는 이순재를 찾아가 비결을 물었다. 이순재가 말한 비결은 무조건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라는 것이었다.]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순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 ]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자신의 긴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는 배역으로 [[1982년]] KBS[[사극]] <풍운>에서 맡았던 [[흥선 대원군]]역을 꼽았다. 또한 다시 한번 더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윤보선]] 대통령 역을 자주 맡았다.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 4번.
         그리고 [[대한민국]] 괴수물 <[[용가리#s-1|대괴수 용가리]]>([[심형래]] 괴작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솟아난 원조)에서 자 주인공을 맡았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여러 나라에 각 나라의 더빙판이 수출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것은 [[대한민국]]에는 손상된 판본뿐이고, 오히려 [[미국]] 더빙판이 더 온전하다는 것. 2013년 7월 21일 EBS에서 HD 리마스터링된 [[미국]] 더빙판을 방영했다.]
         [[꽃보다 할배]]에선 유럽을 누비는 와중에 다른 시사상식을 뽐냈고 [[라디오 스타]]에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진행자와 게스트들 할것 없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여담이지만 이순재의 출생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 댁의 편은 어떠십니까(1993, SBS)/천태성
          * [[목욕탕집 자들]](1995, KBS)/김복동
          * [[공주의 자]](2011, KBS)/김종서[* 파천무 이후 21년만에 다시 맡은 김종서 역할. 본인도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최근 2012년 공주의 자 일본진출에 따른 현지 매거진에 의하면 김종서에 대해 많은 자료를 접하고 연구하여 연기에 임했다 한다. 김종서는 공교롭게도 이순재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 [[아전자]]
          * 1972 부일영화상 우주연상
  • 김국진(MC) . . . . 25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코미디연기상'''}}} ||
         || '''가족''' ||<(> 3형제 중 [[막내]][br]배우자 [[강수지]][br]의붓딸 황비비아나[* 강수지가 전 편과 결혼했을 때 얻은 딸이다. 김국진 본인에게는 친자녀가 없었다.] ||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강원도]] [[인제군]] 에서 출생했다. 데뷔는 1991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개그맨 7기.[* 물론 이쪽은 제명당하기는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명이인 성우 [[김국진(성우)|김국진]]과 같은 기수며 거기에 그 동명이인의 성우도 동향 출신이다.] 1990년대 초반 방송가를 떠들썩하게 한 일명 '감자골 사태' 이후에는 제명당한 상태.[* 이 항목 2번 문단에 자세하게 설명되있지만 결국엔 코미디계 선배들과 윗분들의 괘씸죄라는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항이기 때문에 근래에는 그런거 없이 코미디계 후배들도 꼬박꼬박 선배 대접을 잘 해준다. 당시 동참하진 않았지만 감자골을 제외한 [[유재석]], [[희석]]을 비롯한 동기들이 평소 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살벌한 그 코미디계에서도 똥군기 없이 성격좋기로 유명한 감자골 멤버들이였기 때문에 그런걸지도. ]
         [[2007년]] [[황금어장#s-2|황금어장]] [[무릎팍도사]]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이후 슬럼프를 탈출했으며, 그 이후 [[자의 자격]]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도 시작하면서 제3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당시 김국진의 인기를 한 줄로 줄인 말이 바로 '''대한민국 방송계를 움직이는 네 인물 중 한 명'''.(KBS 사장, MBC 사장, SBS 사장, 그리고 '''김국진''') [* 실제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의하면 모 방송국 PD들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밤샘을 할 정도였다고한다.] 2014년 방영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4년 하반기#s-24|라디오 스타 내가 제일 잘나가 특집]]에서 일본계인 [[강(가수)|강]]이 김국진이 뭐하는 사람인지(...) 묻자 [[김구라]]가 '''한국의 [[시무라 켄]]'''이라 소개했다. ~~그리고 본인을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로 소개했다~~ 실제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한일 양국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국민적 코미디언들이었고 화려한 전성기가 끝나고 적지않은 시간동안 몰락해 있었다는 점과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 상당히 흡사하다. 다만 시무라 켄은 1970년대 후반~80년대에 활약한 정통 코미디언인 [[이주일]], [[심형래]]의 위치와 더 가깝고 김국진은 버라이어티 예능인에 가까웠다. --여기서 [[이경규]]는???-- --당시 이경규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다.--
         1990년대 가요계 끝판왕 [[서태지]]와 한국 영화계 원조 흥행보증수표 [[한석규]], 당시 트렌디 드라마를 휩쓰며 최진실의 뒤를 이어 TV 드라마계의 아이콘이었던 [[김희선#s-1|김희선]] 등, 다른 연예인들이 각 부문에서 10~20%대 지지율을 보였던 반면, 김국진은 개그맨 부문에서 '''55%'''라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인기를 구가했다. 게임잡지 V챔프[* [[대원씨아이]]에서 펴내던 [[V점프]]의 한국어판. 말이 한국어판이지 사실상 로컬라이징이다.]에서는 '김국진이 돈 벌려고 마음 제대로 먹고 뛰었다면 지금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대기업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말을 겼다.
         사족으로, 그는 <반달곰 내 사랑>에 앞서 2000년 초 방영될 뻔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신화]]를 통해 연속극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 당시 또다른 자 주인공 역에는 [[김승우]], 여주인공은 [[이승연]]이 낙점되었으나 이승연은 당시 출연 중이었던 KBS 2TV 주말극 사랑하세요? 스케줄과 겹쳐 캐스팅 제의를 포기하였고 제작진은 영화 [[거짓말(영화)|거짓말]]로 스타덤에 오른 모델 출신 [[김태연(배우)|김태연]]을 대타로 올리는 한편 2000년 하반기로 첫 방송일을 미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작진이 김국진과 갈등을 빚어 편성이 무산되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김국진 자리에는 KBS 슈퍼탤런트 출신 [[김태우(배우)|김태우]], 김승우 자리에는 박정철, 김태연 자리에는 [[김지수(배우)|김지수]]가 대신 캐스팅되었고 방영일도 2001년 하반기로 변경되었다.
         아무튼, 최전성기이던 [[1999년]]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휴식기를 가지기 직전, [[에디 머피]] 주연의 영화 [[닥터 두리틀]]에서 에디 머피를 연기하며 성우로도 활약을 잠깐 했는데 평은 극악이었다. 결국 나중에 MBC에서 더빙 방영할때 에디 머피 전문 성우인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재더빙을 맡았다.] 이후 김국진은 휴식 기간 중 접한 [[골프]]에 빠져서 [[프로]]골퍼에 도전했지만[* 1990년대에도 골프를 취미로 했었다는 말을 [[박수홍]]이 라스에서 언급하긴 했었다.]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막대한 돈을 잃었다.[* 그나마 골퍼로서 입지가 안정된 후에는 [[http://youtu.be/e2CLgocjSco|집중력 향상 드링크제 광고]]를 찍기는 했다.] 사실 턱걸이로 계속 프로 골퍼 시험에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이었으면 될 성적인데 올해는 합격이 어려운 성적이었다던지... 이후 [[2000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배우)|이윤성]]과 2002년 10월 17일 결혼했다.[* 여담으로 이 시트콤에 [[이선균]]이 이윤성의 동생으로 분했다.] . 이윤성과 김국진은 [[2003년]] [[7월]]부터 돌연 별거를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15일]]에 이혼했고 이윤성 측에 막대한 위자료까지 지불하게 된다.[* 이윤성의 외도설이 있지만, 사실이라면 과연 김국진이 위자료를 지불했을까? 아마 결혼 후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는 등의 사연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으나, 이혼 후 김국진은 가급적 그 당시 일을 언급하기 꺼리고 조용히 혼자 외롭게 산다는 이미지면(물론 가끔씩 개그소재로 쓰긴 한다), 이윤성은 기다렸다는듯이 재혼한데다가(더구나 편 홍모 의사 또한 이혼 경력이 있는 돌싱이었다) 방송에서 잊을만하면 김국진과 결혼 생활고,이혼 경력을 끄집어낸 것을 보면 여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이 때 시도한 골프의류 사업과 주식투자 모두 망했다. 또한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돈을 내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절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등에도 출연했다. 이와 동시에 [[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결국 2016년 8월 3일 [[http://m.news.nate.com/view/20160804n07681?list=edit&cate=ent|강수지와의 연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정정보도에 의하면 결혼은 아직이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연애''' 중이라고 한다. 김국진의 인생사를 아는 사람들과 그동안 라스에서 반품 기믹으로 본인도 은근히 씁쓸해하는 모습에 마음 아파했던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중이며 두 사람의 행복을 응원하는 중. 이후 라스에서 연애 발표까지 했다. 이후에도 대놓고 닭살 커플 티를 내고 있는데 자기들이 더 난리치며 좋아라 하는 [[조규현]], [[윤종신]]과 달리 김국진이 이런 행동을 할때마다 못마땅해하는 [[김구라]]가 포인트. 이후 강수지와 함께 라스 출연하기도 했는데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강수지와 연애를 시작한후 평소엔 과묵하던 김국진이 말도 많아지고 연애 조언도 척척 할 정도로 밝아졌다고 한다.
         2016년 3월 22일 [[tvN]]에서 첫 방송을 한 [[집밥 백선생]] 시즌2에 출연하게 되었다. 요리실력은 그냥 없다고 보는게 맞을 정도(...). 팔순인 김국진의 어머니가 '내가 너 이렇게 밥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지 않았다.' 라는 얘기를 한게 출연 계기라고 한다.[* [[집밥 백선생]] 시즌2 첫 방송에서 김국진이 말하기를 김국진의 어머니가 얼마전 큰 수술을 하셔서 언제나 차려주시던 밥이 없었고 미안하다라는 메모가 겨져있었다고...] 방송에선 백주부가 가르쳐주는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구라]]같이 영문과 출신인데도 불구, 정작 [[영어]]에는 능통하지가 않다. 전성기에는 김국진에게 영어를 잘 한다고 얘기하면 김국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로 어설픈 짧은 영어 몇 마디를 하는 것도 하나의 준비된 개그였다. 데뷔 시절 감자골 4인방(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으로 인기를 얻은 몇년 뒤 김용만과 함께 [[미국]] 어학 연수를 갔건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지진]]을 겪었을 뿐[* 그래도 [[자의 자격]]에서 [[영어마을]]로 가는 에피소드에서 [[김성민(1973)|김성민]], [[이정진]], [[이윤석]] 등과 함께 그럭저럭 준수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당시에 밥과 고추장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정도로 궁핍했는데, [[1994 FIFA 월드컵 미국]] 때 [[미국]]을 찾은 [[고정운]], [[황선홍]] 등이 놀러와서 넌지시 용돈을 줬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김국진, [[박수홍]] 등과 함께 감자골 4인방이면서 연예계에서 세 손가락에 들만큼 그와 가장 친한 [[연예인]]들이던 [[김용만]]은 김국진과 젊었을 때 같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김국진의 사주가 "평생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나갈 지 모를 사주"라고 했다는 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국진이 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본인이 돈을 빌렸던 것도 잘 잊었다는 점. 더 웃긴 일화는 감자골의 또다른 멤버였던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이 신인 시절 이를 알고 역이용해 김국진에게 "아 형, 저번에 빌려준 거 왜 안 갚아?"라고 하면서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3번이나 받아봤다는 것이다. 김국진은 깜빡 속은 나머지 아무렇지도 않게 "어 잊어버렸구나. 미안."이라고 하면서 김수용이 말할 때마다 계속 그 돈을 줬다고 한다. 물론 큰 돈이 아니었으니까 쉽게 속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으나 정말 돈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김국진급의 억대 수입/지출을 내는 사람이면 개인 [[대한민국 공인회계사]]가 필요하다.) 다만 이런 성향이 어차피 번 돈이 많아서 돈 쓰는데 무신경한게 아니냐고 오해 할 수도 있는데 김용만이 김국진의 모친께 들은 바에 따르면 ' 등록금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선뜻 돈을 주면서 정작 자신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었다'라는 일화가 있는걸로 봐선 부의 유무와 상관없는 원래의 성격인 듯하다. 어려운 시기에 [[결혼]]했던 김수용에게 ~~비록 빌려 주지도 않은 돈을 여러 번 받아가긴 했지만~~ [[하이난]]으로 [[신혼여행]] 다녀올 경비를 대줬다는 미담은 [[덤]].
         몸은 마른 편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좋고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인 듯 하다. 격 절대권력 편에서 [[윤형빈]]과 [[레슬링]]을 했는데, 윤형빈은 프로필상 181cm에 75kg, 김국진은 171cm에 58kg으로 20kg 가까이 차이가 에도 허리힘으로 윤형빈을 번쩍 들어 내동댕이쳤다. ~~김국진 > 윤형빈 > 타카야.~~ --대선배라 봐줬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냐?--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반말]]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이경규]]가 사석에서 유독 어려워 하는 [[후배]]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경규가 [[회식]]을 한다고 모두 가자고 할 때 후배 중에 유일하게 거절하고 집에 가도 이경규가 한 마디도 못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서 자의 자격 관련 이야기를 할 때, 김국진의 실수로 당시 공황장애 증상이 심했던 이경규가 멘탈이 나가자 '형 정말 이런 말 하기 죽도록 싫은데..... 미안해'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2010년 자의자격에서 만난 유기견 덕구를 반려견으로 키우고 있다. 2017년 불타는 청춘에도 등장했는데 김국진을 껌딱지처럼 붙어서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수지는 그 모습에 질투했다 카더라--
          * 1997 [[백상예술대상]] 자코미디언 연기상
          * 1998 제25회 한국방송대상 자코미디언상
          * 2001 [[MBC 연기대상]] 특별상 자 연기자 부문
  • 심현섭(코미디언) . . . . 25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코미디연기상'''}}} ||
         || [[희석]][br](1999) || → ||<#FFFFA1> '''심현섭[br](2000)''' || → || [[김용만]][br](2001) ||
         || '''출생''' ||<(> [[1970년]] [[5월 6일]] ([age(1970-05-06)]세), [[경기도]] [[성시|수정구]] ||
         || '''가족''' ||<(> [[아버지]]: [[심상우]], 2 3녀 중 [[차|다섯째]] ||
         SBS <러브 투나잇> [[MC]] 자리를 맡으면서 MC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며 해당 프로그램으로 SBS 복귀를 했다 심현섭 뿐 아니라 또다른 보조 진행자 [[박성호(1973)|박성호]] [[황승환]] [[이태식]] [[김숙]]은 메인 MC [[이홍렬]]과 같은 기획사(스타밸리) 소속이었다. '김혜수 플러스유' 이후 이어진 SBS의 수요일 심야 시간대 징크스를 만회하기 위해 예전 [[이홍렬쇼]] 1기로 인기를 누린 이홍렬을 메인 진행자로 내세웠으며 당초 30~40대 부부들이 편안하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플쇼를 표방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가 출연하여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퀴즈로 풀어보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소개하는 등의 코너를 주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자 퀴즈 코너는 사라졌으며 건강체조도 야한 옷차림의 슈퍼모델들과 성 개그맨들이 짝지어 머리로 박을 깨고 퀴즈를 맞히는 것으로 바뀌어 연예인 학대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보조 진행자였던 심현섭, 황승환, 박성호 이태식 김숙이 아이디어 고갈 등의 이유로 하차한 뒤 2003년 1월 15일부터 이홍렬 단독 진행으로 변경되었으나 표절 논란을 빚게 되자 11회(2003년 2월 5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의 코미디는 빠른 말빨과 애드립, 성대모사를 위주로 한 휘발성 강한 웃음에 포인트를 두는 편인데, 개그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성대모사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었고, 아이디어 위주의 코미디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그만의 경쟁력의 사라진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적절한 시기에 MC로 전향하거나 트렌드에 맞춘 재치를 보여주었다면 살아을 수 있었을 테지만, KBS를 나간 이후로는 감을 갈고닦을 방송사 무대 자체가 줄어들면서 모두 다 실패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행을 선택, [[채널A]]의 [[개그시대]]에 출연했으며 해당 프로의 다른 OB 3인방인 [[최양락]]이나 [[희석]]에 비해 비중이 매우 적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외에 채널A의 뉴스 및 시사프로그램에 수차례 패널로 출연하며 주요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심지어 그저 선배일 뿐 공개코미디 시절 [[인기]] 커리어로는 심현섭에게 상대가 안 되는 김경민한테 '얘네(김수용, 심현섭)들은 나한테 (개그로) 상대가 안 된다. 김수용은 말은 하는데 옹알이처럼 하고, 심현섭은 [[보원]] 선생님 시절 개그를 하고, 개인기라고 하면서 공룡 흉내내기나 하는 애다'라는 말까지 듣는 굴욕까지 당했다.
         전 광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호전기 사장, 전매일신문 사장, 광주일보 회장이자 [[대한민국 국회의원|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던 [[심상우]]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심상우가 떠나기 전 아들에게 당시 돈으로는 상당한 2천 원을 용돈으로 줬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 되어버렸고, 심현섭은 지금도 그걸 간직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돈가치로 따지면 9만 원~10만 원 정도이다.] [* 훗날 테러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었는데,[[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10271525151001|평소 밝고 활달했었던 아버지가 테러 당일에는 표정이 어두웠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그것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항목에 실린 참석자들의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래서 한때 잘 나가던 부잣집 도련님(할아버지부터가 호전기공업[* 1945년 창립 이래 심씨 가문이 소유했으나, 1970년 큰아버지 심상하 회장 사후 부인 진봉자의 전횡으로 회사가 어려워져 1976년에 봉 김중(1917~1987) 전일보 회장 등 호 연고 기업가 6명에게 팔렸으나, 경영권 분쟁 발생 후 1978년에 김중이 단독으로 인수해 1982년부터 '로케트전기'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에너자이저 등 해외 건전지들에 밀려 1998년부터 '로케트' 브랜드를 질레트에 팔고 하청업체로 전락하여 2015년에 회사가 정리되었다. 반면 같은 '로케트' 브랜드를 쓰는 자동차 배터리 부문은 1978년에 세방기업 매각 후 '세방전지'로 분리되어 현재 잔존중이다.] 창업주 심만택이었다.)이었다가 아버지 타계 이후로 상경하여 많은 고초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1976년에 숙모 진봉자 여사의 전횡과 사촌 심홍근 사장의 운영미숙 등으로 호전기를 팔았으며, 1980년 11월에 [[언론통폐합]]으로 전매일을 잃게 된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s-1|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개콘을 떠날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절더러 '오만하다', '인기 얻었다고 떠나냐?'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상태라면 '개콘'에 아있는 게 결례다.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가느니 쉬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개콘' 생기고 나서 처음 주는 코미디대상인데…. (상을 받지 못해)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섭섭함이 맞아 떨어진 거라고 봐 달라."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후에 밝혔지만 이에는 사실 심현섭 개인의 분노보다 소속사의 결정이 더 컸다고 한다. 1주일 만에 웃찾사로 옮긴 것은 그런 [[이유]]라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815|#]]
         [[2018년]] 3월, 그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디시인사이드]] 예능 프로그램 갤러리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L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가을, 심현섭과 소개팅을 했고, 첫 만에 간 영화관에서 계속 허벅지를 주무르는 심현섭에게 불쾌감을 표현했으나 그는 L씨를 차에 태운 후 CCTV가 없는 장소를 찾아갔고, L씨가 차에서 내리려 하자 문을 잠그고, 자신을 애무할 것을 요구했고 "만지기 싫으면 이것만 봐달라"며 바지를 벗고 자위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99831|JTBC]]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70년 출생]][[분류:성시 출신 인물]][[분류:1994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우현(배우) . . . . 25회 일치
         그러다가 2003년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황산벌(영화)|황산벌]]에도 출연한다. 2004년 [[시실리 2km]]의 해주로 강한 인상을 기며, 일반인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관심도 받게 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ChRUT0rck9A|니가 94야 그럼?]] 흥행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제일 늙은 막내 조폭'이라는 역할 설정의 매력으로 영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도 그 장면이 나오는 등, 출연자 중 우현만큼은 대중에게 얼굴을 꽤 알린다.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드라마에도 데뷔하였으며, 그 뒤로 감초 역할로 활약했다. 특유의 [[노안]]과 작은 키 덕에 전형적인 동네 촌놈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최근에는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 악역으로도 연기폭을 넓혔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 [[이방지(뿌리깊은 나무)|이방지]] 역을 맡아 강채윤의 스승이자 노회한 무공의 고수 역할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기기도 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 젊은 [[이방지(육룡이 나르샤)|이방지]] 역을 맡은 [[변요한]]과 비교하면 외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현재 [[성노을]] 역을 맡았는데 매우 충격적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물론 외모가 다소 비슷하고 노을이의 말투나 행동을 연구했는지 유사하게 연기해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제작진들이 너무 무리수를 뒀다", "다 된 밥에 재(우현) 뿌리기냐", "너무 어색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이런 이유로 우현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영화 '니 말을 믿으라는 거야' 라는 작품에서 성인용품 인형을 사용하는 장면 이후로 최대 [[흑역사]]로 을 것 같다. 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 부분을 언급하였다.
         여담이지만 각본가 중 김석윤 PD, 이규 작가와 인연이 깊다. 사실 데뷔작인 [[올드미스 다이어리]]도 이 두 사람의 작품이니..
         그 외에도 [[TV 동물농장]]과 [[1 대 100]][* 2013년 10월 22일, 2016년 4월 19일]이라든가 [[히든싱어]]-진편(장모님과 동반출연), [[퀴즈쇼 사총사]], [[해피투게더]], [[라디오스타]][* 2012년 9월 19일, 2016년 3월 9일]에도 출연했다.
         또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참가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등장만으로도 많은 참가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엄청난 [[노안]]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봉주]] 등장 전까지 많은 참가자들이 못생긴 순위 1위로 찍었으며[* [[이천수]]는 우현을 '''레전드급이라고 평했다'''.] 이봉주가 등장하기만을 고대했다. 시즌1의 [[고창석]][* 배우, 노안, 참가자들의 경의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과 유사한 역할일 듯. 등장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결국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의 최고의 매력으로 뽑혔다.[* 정작 우현과 절친한 사이인 우상호 의원은 그가 못친소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외였다고 한다. 그는 한번도 우현이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 [[내 아이디는 강미인]](2018, JTBC)
          * [[왕의 자]](2005)- 홍 내관 역
          * [[가족의 탄생]](2006) - 플랫폼 자 역
          * 애정결핍이 두 자에게 미치는 영향 (2006) - 슈퍼 역 [* 참고로 아내 역을 맡은 사람은 [[황석정]]이다.]
          * 헤드 (2011) - 박씨 역[* 여담이지만 감독 조운은 우현의 처이다. 또한 아내와 동반출연인데 드디어 부부로 나왔다.]
          * 아빠가 돌아왔다 (2016) - 강 역
          * [[히든싱어]](jtbc) - 진편
         평생 가난은 몰랐고, 술집을 운영할 때도 연극을 할 때도 사실 치명적 경제 사정이나 배고픔의 경험은 없었다고 한다. 후일 [[안내상]]은 우현을 가리켜 '최고의 반전'이라고 표현하였다.
         아내는 배우 [[조련(배우)|조련]]으로, 편과 다르게 상당한 미인이다.[* 아들 준서도 ~~다행히도~~ 엄마를 닮아 상당히 훈이다.] 또한 배우로서는 아내가 훨씬 선배다. 첫 만은 연극 제작자와[* 사실은 당시 우현도 배우가 아닐 뿐 연극 제작자로 참여했었다.] 배우의 관계로 만났고, 우현이 연극 연기를 시작한 뒤 본격 대쉬,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데 친구 [[안내상]]이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오히려 안내상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련이가 너무 예쁘니까 안 될 것 같았다. 네가 어디다가 들이대느냐. 들이댈 곳에 들이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우현이 장기간 아내에게 호감을 표시하였으나 아내가 알면서 적잖이 모른 척하거나 거부했고, 그걸 그전부터 조련과도 친분이 꽤 있던 안내상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내상과 조련 두 사람이 같이 부부 역할로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당시 조련이 상당히 미인이라서, 주변 자 배우들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안내상은 우현이 상처만 크게 받고 끝날까 걱정되어, 어떻게든 일찍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적으로 말했던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편 우현이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내가 더 좋아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렇게 다정다감하거나 로맨틱하지 않지만, 아들과의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을 만큼 바른생활 사나이다. 실수해도 타박하거나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술버릇도 없어서 좋다."고 한다.
          * 엄청난 마성의 매력 소유자다. 본인 말로는 "처음 볼 때는 엄청 싫어하다가, 몇 번 보고 나면 재미있고 유쾌한 매력에 점차 빠져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내도 이런 매력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까 두려워한다고 한다. 실제로도 배우 [[조민희]]나 박정 딸 [[박시은(2001)|박시은]]도 잠시 동안에 빠졌었다. 그래서 못친소에 나온 것이 싫었다고.[* 못친소에서 밝히길 아들 준서도 처음엔 엄청 싫어했지만 5살 즈음에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우현의 아들은 못친소 특집에 우현이 나간다고 하자, "아빠가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고 우현이 왜냐고 반발하자, "아빠가 잘생긴 걸로 1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걸(못생긴거)로라도 꼭 1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인의 증언과 본인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사실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모습의 마성이라기보다, 실제로 인성이 훌륭하고 부드러우며 심지도 곧은데다가 포용력과 배려심이 깊어서, 많은 사람들이 유형을 가리지 않고 쉽게 편안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즉 [[진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으로 청춘을 던진 것만 봐도 정신이 올바른 것이 보인다. 본인도 삶의 목표가 '지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온다고 하면 기분 좋아지고 환영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단지 본인의 외모와 작품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 표독스럽거나 독특한 성격의 느낌을 준 적이 많아, 사적으로 보면 그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마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친소에서도 결국 그 대인친화적인 인성으로 우승을 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노홍철]]이 1등을 했던 못친소 1과 다르게 우현이 나온 못친소 2는 '못생겼지만 매력 있는 자' 컨셉으로 출연자들이 정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을 뽑았던 사실상의 인기투표였다.]
          * 2017년 한 때 인피니트를 구글에 검색하면 [[인피니트]]의 [[우현]]의 프로필 사진에 나온적이 있다.
          *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못친소2]]에서 셀프카메라에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송일국]]의 차 민국이와 상당히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오죽하면 "민국이가 후에 우현이 되는 게 아니냐"며 드립이 성행하는 중. 또한 아들의 아기 적 사진을 공개했는데, 상당히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사실 <유자식 상팔자>에서도 공개된 내용인데, 당시 우준서는 사진을 공개한 내내 상당히 좌절했고, 본인은 조기관리에 들어가겠다고 당돌하게 발언하였다. 이때 밝혀진 것인데, 아기일 적의 엄마와도 닮았다고 한다.]
  • 윤주상 . . . . 25회 일치
         * [[1995년]] 《[[자는 괴로워 (1995년 영화)|자는 괴로워]]》 ... 윤주상 역
         * [[2005년]] 《[[왕의 자]]》 ... 성희안 역
         * [[1997년]] [[문화방송|MBC]] 일일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전원주]]의 연하 편이며 [[김진 (배우)|김진]]의 아버지인 김주상 역으로 비고정 출연
         * [[2009년]] [[TvN]] 주간시트콤 《[[세 자 2009|세 자]]》 ... (카메오)
         * [[2014년]] [[tvN]] 금토드라마 《[[응급녀]]》 ... 신부 역
         * [[2015년]] [[MBC 드라마넷]] 금토드라마 《[[나의 유감스러운 자친구]]》 ... 윤 회장 역
         * [[2017년]] [[KBS2]] 일일연속극 《[[내 자의 비밀]]》 ... 강준채 역
         * [[KBS1]] 《[[다큐공감]] 151회 : 무인도에서 7일 사수도 해해녀》 (2016년) 내레이션
         * [[KBS1]] 《[[다큐공감]] 183회 : 최단 모슬포 방어 사냥꾼》 (2017년) 내레이션
         * [[1985년]] 제21회 [[동아연극상]] 자연기상 《진짜 서부극》
         * [[1987년]] 극평가그룹상 자연기상
         * [[1987년]] 제23회 [[동아연극상]] 우주연상
         * [[1991년]] 제15회 서울연극제 우주연상
         * [[1995년]] 연극의 해 최우수우주연상
         * [[1998년]] 서울국제연극제 우주연상
         * [[2009년]] [[KBS 연기대상]] 자조연상 《솔약국집 아들들》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자 성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1970년 데뷔]][[분류:양평군 출신]][[분류:파평 윤씨]][[분류:서라벌예술대학 동문]]
  • 은지원 . . . . 25회 일치
         ||<#000000> '''{{{#FFFFFF 가족}}}''' ||<(> 아버지 은희만([[1929년|1929년생]])[* 2018년 9월 5일 별세][br]어머니 김성아([[1954년|1954년생]])[* 본명은 '김금자'며 과거 은지원 팬들의 현수막에도 '은지원 나랑 결혼하자! 김금자 씨 허락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었다.][br]3 2녀 중 [[3|다섯째]][* 부모님이 재혼. 아버지 쪽으로 그렇다. 어머니 쪽으로는 [[무녀독]]이다.][br]진외당고모 '''[[박근혜]]'''[* 이 글을 보고 있는 본인이 생각하는 그 박근혜가 맞다. 은지원의 진외종조부가 [[박정희]]이고 박근혜가 그 딸이니 고모가 된다.] ||
         ||<#000000> '''{{{#FFFFFF 별명}}}''' ||<(> G, '''G1'''[* 실제로 자신의 모든 솔로 앨범표지에 Eun G1이라는 예명을 쓴다. --무한도전에서는 [[김재덕]]에게 [[장수원|장로봇]]이 형은 덕2로 하자...--], =G1, '''은초딩''', '''은각하'''[* 데뷔 초에 멤버들끼리 놀리듯이 붙여졌다. 그러나 시작과 달리 외모와 분위기 탓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여담으로 [[은초딩]]과 [[은각하]]를 쳐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 절대자, 은간지,[br]은까리, 은리더[* 방송 자막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은대장, 은리다,[br] 지니어스원, 은둘리, 여의도돌싱[* 신서유기 시즌1에서 이승기가 붙여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여의도 이혼이 있다.], [[외계인]][* 1박 2일에서 은지원이 외계인에게 관심을 너무 가진 것이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다. 공주편에서 은지원이 공상과학 이야기 중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데 "형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없다고 생각해? 사람 몸속에 아무 흔적없이 마이크로 칩을 넣는데?"라고 발언 한 것. 이후 은지원이 강호동의 엉덩이를 나무로 때리고 이후 [[박찬호]]가 은지원보고 외계인 아니냐며 의심을 한 것이다. 이후 팜스테이 편에 등장하는 일심동체 게임에서 김C가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문제에서 은지원을 적은 것. 이후 전국일주에서 UFO 관련해서도 빨리 사진 지우라는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br]거칠이, 극한직업 젝키리더(...)[* 옛날부터 멤버들과 예능 나오면 마음 졸이며 수습하고 관리하기 바빴다. 최근 나온 방송들을 보면 멤버들이 산만한 편...],[br]젝키 유일 일반인[* 밖에선 미친자, 도른자, 돌아이, 외계인 취급받지만 젝키에선 가장 평범한 일반인 포지션이다. 그 정도로 동생들--특히 이재진--이 다르다(...).], 섭섭이(...)[* [[1박 2일]]에서 얻게 됐다. 후에 --[[MC몽]]--이 섭섭이 라인에 합류하면서 은지원은 일섭이, --MC몽--은 이섭이로 불리게 됐다.], 미친者(...)[* 신서유기에서 얻게된 별명이다.], 구美[* [[안재현|이 사람]]이 합류하자마자 그에 못지않은 미친者의 면모를 보여서 신美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자동적으로 은지원은 기존의 미친者를 뜻해서 옛날을 뜻하는 한자 舊(옛 구)를 넣은 셈.], 찌오니[* 본인의 이름을 모에화하여 팬들이 부르는 별명, 본인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 은먹금[* 본인의 칭찬이 나오면 황급히 화제를 전환하거나 아예 외면해서 붙은 별명. 방송생활 20여 년간 본인 칭찬을 한 적이 한 손에 꼽는다(...).], 은요물[* 촉이 좋아서 미션의 흐름을 한번에 이해하고 진행해나가 신서유기 제작진들이 붙여준 별명], 은왜은[* 연예인 중에서 유일한 [[은(성씨)|은씨]]와 흔하지만 세련된 '지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팬들이 은지원은 이름도 잘생겼다며 '은지원은 왜 이름도 은지원인가'를 줄여서 만든 별명.] ||
         대표적인 장기 현역 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반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순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그랬기에 '천하장사'나 '공조7' 혹은 '인간의 조건', '옆집의 ceo'등 수많은 리얼예능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았고, 장수하는 예능인으로 방송계에서 꾸준히 살아았다. 해당 예능 프로그램들은 장수하지 못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안에서의 분량을 찾아보면 감초역할로 순간적인 리얼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예능센스가 다른 출연진에 비해 돋보인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이 단지 출연진 한, 두명이 웃긴다고 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작진이나 연출 방향, 편집 스타일, 프로그램 의도, 미션이나 주어진 상황과 게임, 출연진간의 케미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하장사'나 '공조7'은 출연진들이 센스가 넘쳤고, 케미도 좋았으나 다수의 시청자들이 제작진들의 프로그램 방향이나, 의도 또는 연출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받은 바 있다.] 1박 2일 이후 신서유기를 제외하고 특히 히트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 또한 복불복 운과 같이 운이 없는 축에 속하는 편.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에서 젝스키스 멤버들과 조우, 재결합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평소 자주 보여주는 초딩스럽거나 떼쓰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예전의 '은각하'라는 별명에 걸맞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부산 친구에게 스포일러를 터뜨렸다는 이재진의 양심고백에 고개를 내젓거나 연습 중에도 각을 맞추라고 계속 지적하고 갑작스럽게 휴게소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막내인 장수원부터 다른 멤버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어쩌면 좋냐고 쩔쩔 매는데 바로 공연을 시작하자 해서 상황을 타개하거나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하는 [[고지용]]에게 먼저 다가가서 포옹을 하고 고지용을 대신해서 팬들에게 컴백소감을 말하며 도와주는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철없는 초딩 이미지로만 각인되다 보니 은각하 이미지가 다소 생소했던 시청자들에게 매우 신선한 인상을 겼다.
         아버지 은희만의 3 2녀 중 [[3|막내]]이자, 어머니 김성아의 [[무녀독]] 외동아들로 출생했다. 아버지 은희만은 전처 사이에 4매를 두었고 두번째 부인인 어머니를 만나 그를 출생했다고. 일단 어머니를 굉장히 많이 닮았는데, 특히 T존과 턱선은 거의 빼다박은 수준이다. 어머니인 김금자(김성아)는 쌍둥이 자매인 김경아와 함께 '릴리 시스터즈'로 가수 활동을 한 적 있다. 그야말로 [[모전자전]]. 특유의 분위기와 어두운 피부는 아버지 은희만을 닮았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진외당고모[* 陳外堂姑母, 아버지의 외사촌 누나 또는 여동생. 자신과는 5촌.]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2011년 박근혜의 트위터에 "조카 지원이와 함께..." 라고 올라온 사진이다. 쉽게 말하면 은지원은 [[박정희]]의 누나의 손자이다. 박정희의 큰누나인 박귀희는 박정희가 태어났을 당시 은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장을 임신한 상태였고 은지원의 아버지 은희만은 박귀희의 둘째 아들이다.[* 다른 기사에는 장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기사에는 셋째 아들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즉, 은지원 아버지의 외삼촌이 바로 박정희. 이 때문에 '''연예계를 대표하는 금수저'''로 항상 언급된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결국 [[박근혜|고모]]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탄핵 인용]]'''이 되면서 '''흑역사 중의 흑역사'''가 됐다.
         2010년 초반부에 언급한 대로 [[이동국]]의 처형과 결혼하게 되어서 품절이 되었었다. --하와이에서 만나 젝키때도 문답 등에 꾸준히 언급해왔던 첫사랑과의 결혼!-- 즉 [[이동국]]과는 동서 관계. ~~그래서 [[이승기]]와 [[김종민]]이 그렇게 가까워졌나 보다~~ 결혼 이후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도 그야말로 애들이 좋아하는 구성으로 꽉 찬 반찬들이 공개될 정도인 걸 보면 집안에서도 여전히 초딩인 듯.
         그러나 2년 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이동국]]과는 이 되었다.[* 은지원은 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동안 [[카더라]]로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2016년 [[신서유기|신서유기 2]]에서 본인 입으로 '''"저는...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었습니다. 근데 아직도! 게임을 처자빠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삭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악행을 고백해야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다. 즉, 오답을 내려 하더라도 자신의 악행은 고백해야 한다는 것. 이에 [[나영석|나PD]]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포복절도했고, [[이수근]]은 '''"그냥 사오정을 하든 손오공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며 병뚜껑을 집어던졌다.]라고 발언했으나, 장소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한 말이다. 게다가 은지원의 전부인이 뉴스킨 이라는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많이 탕진하는 이중고도 겪게 된다. 결국 은지원 본인은 가정에 소홀했고 부인 역시 다단계로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점을 보면[* 물론 좋은 뜻으로 은지원에게 잘해줄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 서로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 이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부부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원 본인은 부인의 행적보다도 자신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에 대해서 자책감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절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태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반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죽이 맞거나, 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반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2003년 당시 은지원은 신촌에 실내 포장마차 점을 개업했다. 보통 개업을 하면 여기저기 동료 연예인들을 불러 포장마차를 꽉 채워야 홍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은지원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탓에 동료 연예인들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다른 곳에서 전해 듣고 달려왔다. 그 중 [[이효리]]가 새벽에 제발로 찾아왔는데, 은지원은 이효리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으니 가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종업원들이 "들은 이효리 못 불러서 안달인데 그냥 보내면 어떡하냐"며 은지원을 혼냈다고 한다. "자리는 여분의 탁자로 만들면 된다"며 흥분하는 종업원들의 말에 은지원은 '왜 난리지'하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눈만 껌벅거렸다고 한다.[[http://news.joins.com/article/1804295|기사]][* 2003년 당시 이효리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엄청 대접해서 가게를 홍보하려 했을 것이다. 젝키 핑클의 대성기획 시절부터 친했으니 저랬을 수도 있겠다.]
          * 데뷔 당시 고지용이 '''[[학원별곡|폼생폼사]]'''로 활동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나, 은지원이 이 곡으로 무대에 오르자고 밀어붙여 수록곡으로 묻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외 3.5집을 준비할 당시 [[이호연]] 사장은 은지원의 똥고집에 머리를 썩히다 은지원의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는 말에 결국 두손두발 다 들었고, 그렇게 "[[커플(노래)|커플]]"이 3.5집 타이틀곡이 되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은지원의 선견지명-- --괜히 착한 독재라 불리는 게 아니다-- [[커플(노래)|커플]]은 사장이 반대했던 탓에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소문이 있다.[* 참고로 [[커플(노래)|커플]]의 작곡가 마경식은, 노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슬래쉬메탈 그룹 아발란쉬의 보컬이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zSq38-Zn1RA|가창력이 엄청나다.]] [[http://img.maniadb.com/images/artist_t/260/106/106553-k.jpg|커플을 작곡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 만약 그 카더라 통신이 사실이더라도,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소속사와 이호연 사장을 비난하기는 힘들 것이다. 마경식은 작곡가로서 그때까지 제대로 된 히트곡이 없었다.[[http://www.ikaraoke.kr/isong/search_musictitle.asp?sch_sel=5&sch_txt=%B8%B6%B0%E6%BD%C4&c_ctry=|#]] 게다가 기존에 해오던 음악과 정반대 느낌의 곡을 작곡해왔다. 우려가 클 수 밖에 없었다. 반면 3.5집의 '너를 보내며'를 작곡한 김석찬은, 얼마 전에 [[핑클]]의 [[내 자친구에게]]로 초대박을 쳤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너를 보내며' 노래 자체도 충분히 타이틀곡으로 지정할만한 퀄리티다.[[https://youtu.be/mEGviByCMnc|#]] 회사 측에서는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하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면 은지원의 선구안이 뛰어났던 것이다. 젝키의 대부분 뮤비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커플(노래)|커플]] 뮤직비디오는 사무실 문짝을 로케로 촬영하는 등 유독 저퀄리티다. 선술한 바와 같이 [[커플(노래)|커플]]을 타이틀곡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두고 사장과 담판을 지은 것이 맞다면, 뮤비 퀄리티가 유독 그런 것이 이해가 간다.
          * 팬에 대한 사랑이 다른데, 역조공을 하기도 한다. 역조공 물품 중 [[원피스(만화)|원피스]] [[피규어]]도 있었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25회 일치
         ||<#eeeeee><:> '''학력''' || [[경고등학교 야구부|경중등학교]]-[[서울대학교]] ||
         [[경고등학교 야구부|경중등학교]] 청룡기 2연패, [[황금사자기]] 3연패의 주역이자 부산야구가 배출한 원조 슈퍼스타. 고교야구 통산 전적 32승 1패.
         1929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장인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1944년에 경중학교에 입학해 [[유도(스포츠)|유도]]부에 입부해 유도를 배우던 그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경중학교에 야구부가 생기자 야구부에 입부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중 야구부후원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이었고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야구 하나만 보고 성장할수 있었다.
         처음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고 그의 첫 고교무대 데뷔전이었던 1946년 제1회 [[청룡기|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왼손잡이 유격수로 출전해 허종만, 정상교, 조성일, 박정표, 송주창등과 함께 팀의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7년, 故 고광적 당시 경중 감독은 당시 선발이었던 장갑영 대신 그를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경중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팀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그의 활약으로 경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경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상대는 [[김양중(야구)|김양중]]이 이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서중]]. 광주서중은 전라도 지역의 최고의 팀으로 불리긴했지만[* 이때 [[군산상고 야구부]]는 창단되기 전이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만들어 진것은 1968년이다.] 전국대회 수준에서는 미치지 못한 수준의 야구팀이었고 에이스 김양중의 분투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중학]]과 대전사범중을 상대로 힘든 승부끝에 결승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중학교의 우승을 점쳤고 경중학교 측에서도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이미 이긴것이나 다름 없다며 전날 미리 축하연을 펼쳤다. 반면 광주서중은 이기든 지든 김양중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결의했다.
         8회말까지 장태영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고등학교 야구부|경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상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그리고 대망의 11회말. 장태영이 대회 첫 볼넷을 내주며 광주서중의 선두타자 김용욱을 출루시킨후 문택영이 초구 번트를 댔는데 이것이 전진수비를 하던 경중 유격수 키를 넘기는 행운의 안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1루주자였던 김용욱은 3루까지 내달렸고 경중의 좌익수였던 이상제가 이를 잡기위해 3루 송구를 했는데 이것이 '''3루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악송구'''가 되어 버린것이다.~~[[망했어요]]~~
         어이없는 실책들로 결국 장태영이 이끄는 경고는 통한의 패배를 안게 된다. 이후 장태영은 1974년에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사실, 그 누구도 경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평범한 에러로 우리는 3연패를 저지당하고 통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라며 회상하기도 했다.
         경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 정용화 . . . . 25회 일치
         '''정용화'''([[1989년]] [[6월 22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FNC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성 4인조 [[음악 그룹|밴드]] [[씨엔블루]]의 리더이며 메인보컬, 랩, 기타, 건반을 맡고 있다.
         정용화는 1989년 6월 22일 2 중 막내로 태어났다.<ref name="mynameis">{{뉴스 인용|제목=정용화│My name is…|url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873|출판사 = 텐아시아|저자 = 최지은|날짜 = 2009-12-01|확인날짜 = 2014-04-05}}</ref> 제주를 다녔으며, 자신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ref name="mynameis"/> 데뷔 전 스키장 [[얼짱]]으로 인터넷 상에서 유명하였다.
         [[2009년]] [[8월 19일]] [[Now or Never (씨엔블루의 음반)|Now or Never]]을 발매하고 일본에서 인디즈활동을 시작하였다. [[2009년]] [[10월 7일]] [[SBS 드라마 스페셜]] 《[[미이시네요]]》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하였고, 당시 '수건,' '밀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ref name="milk">[http://artsnews.mk.co.kr/news/43637 '미' 정용화, 수건에서 이번엔 밀크?], 《아츠뉴스》, 2009년 10월 15일 작성.</ref>
         * [[2010년]] [[1월 14일]] 락밴드 씨엔블루(CNBLUE)의 리더로 팀 안에서 보컬과 기타와 랩을 맡아, [[bluetory]]<ref name="album1">[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A31&newsid=01315286592871176&DCD=A10102 씨엔블루, '씨엔블루토리'서 1집 전곡 첫 라이브 연주]{{깨진 링크|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3DEA31%26newsid%3D01315286592871176%26DCD%3DA10102 }}《이데일리스타in》, 2010년 2월 16일 작성.</ref> 음반 발매와 함께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수건 효과에 힘입어 첫 방송후 각종 차트를 올킬하였으며,<ref name="all">[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17/6857237.htm “블루돌풍” CNBLUE, 첫 방송후 각종 차트 ‘올킬’]《재경일보》2010.01.17 작성.</ref> 한국 가요계에서 신인이 데뷔 후 14일만에 1위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ref name="chleks">[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129/7708991.htm 씨엔블루, 최단기간 1위 기록 세우며 정상 등극! ]《재경일보》2010.01.29 작성.</ref> 이는 지상파 데뷔 최단 기간 1위 기록이었지만 위너 이후에 기록이 깨졌다.* [[2010년]] [[5월 19일]], 씨엔블루는 두 번째 미니 앨범 《[[Bluelove]]》를 발매하였다.<ref>{{뉴스 인용
         * [[2012년]] [[8월 28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린 일본 후지TV 여름 야외공연 '메자마시 라이브'에 참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일본 메자마시 라이브 성황…'타임 이즈 오버' 최초 공개' |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830.990011130485442|출판사 = 영일보|날짜 = [[2012년]] [[8월 30일]]}}</ref>
         |"나란 자" 작사 및 작곡 및 편곡
         |[[SBS]] 《[[미이시네요]]》 OST
         | [[미이시네요]]
         | 강신우<ref>{{뉴스 인용|제목= <미이시네요> 정용화, 女心 사로잡은 '훈'으로 등극해 '눈길'|url= http://sisa.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6211420&contain=&keyword=|출판사= 맥스무비|날짜= 2009-10-22}}{{깨진 링크|url=http://sisa.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6211420&contain=&keyword= }}</ref>
         | 이신<ref>{{뉴스 인용|제목 = '넌 내게 반했어' 정용화, 밀크→까칠 180도 변신|url =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5/23/2011052300760.html|출판사 = 더스타》|날짜 = 2011-05-23|확인날짜 = 2011-06-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0527074646/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5/23/2011052300760.html|보존날짜 = 2011-05-27|깨진링크 = 예}}</ref>
         |제목 = '미' 정용화·박신혜, SBS가요대전 MC 발탁
         * [[2010년]]~[[2011년]] 의류 - 더슈트하우스 (캠브리지코오롱 성의류 [[브랜드]])
         | rowspan="2"| 《[[미이시네요]]》
         | 자 인기상
         [[분류:씨엔블루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2009년 데뷔]][[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사이버대학교 동문]][[분류: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형돈 . . . . 25회 일치
         정형돈은 평소 음식을 좋아하는 점에 착안해 도니도니돈까스사업을 비롯해 2012년에는 도니버거를 강역점에 첫 오픈했다.
         * [[MBC 에브리원|MBC Every1]] 《[[지금은 꽃미 시대]]》
         * [[tvN]] 《[[시간을 달리는 자]]》
         * [[MTV]] 《Live Wow Special with IUFC - 아공 월드컵 승리 기원 콘서트 (6월 17일) : MC》
         * [[SBS]] 《배기완 최영아 조형기의 좋은아침 3740회 (10월 17일) : 인터뷰》<ref>{{뉴스 인용|제목=정형돈 졸업사진 '이목구비 또렷한 날씬한 훈'|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8&aid=0002634347|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유재은 기자|날짜=2011-10-17}}</ref>
         * 2010년 3월 16일 [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170336 《우정의 무대》] - Macho Museum : [[데프콘 (가수)|데프콘]] (Feat - MC빡돈, 변기수, 창희)
         * 2010년 [https://web.archive.org/web/20160304211719/http://pann.nate.com/video/219374617 《우정의 무대》] - Macho Museum: [[데프콘 (가수)|데프콘]] (Feat. MC빡돈, 변기수, 창희)
         * 2010년 [http://www.style.co.kr/shop/subscribe/detail/view.asp?go_code=12010001128&mn_st=4 《보그 7월호》]- 보그와 무한도전의 만 : 달력 화보 촬영 후기
         * 2008년 친환경 홍보대사 (친환경 상품진흥원)<ref>{{뉴스 인용|제목=희석·김수로·김성은·정형돈·오은영, 친환경 홍보대사로 위촉|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43&aid=0001938490|출판사=쿠키뉴스|저자=탁현하 기자|날짜=2008-01-31}}</ref>
         * 식기세척기 탐구생활 신혼부부 설거지편 - 편탐구
         * [https://web.archive.org/web/20141210094642/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10&clipid=28887548 포인트카드 탐구생활 - 자편]
         * 9편 - 성잡화 Grand Open
         * 2012년 7월 - [http://www.wingspoon.com/spotDetail.nhn?cityId=3339&townId=3340&spotId=548380 강역 본점]
         * 제5회 에이 어워즈(A-Awards) '''이노베이션''' 부문 ([[무한도전]] 팀과 공동 수상)<ref>{{뉴스 인용|제목=장혁-유아인-'무한도전', 2010 최고의 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532635|출판사=조이뉴스24|저자=이미영 기자|날짜=2010-11-30}}</ref>
         * [[MBC 방송연예대상]] '''자 최우수상'''
         | 이전명 = [[고명환]] (자)<br />[[김미연 (희극인)|김미연]] (여자)
         | 현재명 = 정형돈 (자)
         | 다음명 = [[전환규]]{{·}} [[김완기 (희극인)|김완기]] (자)<br />[[박해미]]{{·}} [[김세아 (희극인)|김세아]] (여자)
         | 이전명 = [[김구라]] (자)<br />[[현영]] (여자)
         | 현재명 = 정형돈 (자)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24회 일치
         ||<:> [[강주현]], [[김성령]], [[김정애]], [[김혜리(배우)|김혜리]], [[박수현]], [[양현정]] ||<:> '''[[고현정]], [[궁옥]], [[박은경]], [[오현경(여배우)|오현경]], [[이재경]], [[장경숙]], [[채경진]]''' ||<:> [[김태화]], [[김현숙]], [[서정민]], [[양정아]], [[윤제선]], [[이승은]], [[이종희]] ||
         ||<width=25%><:>[[김명민]], [[송승헌]][br](2008)||<:>{{{+1 →}}}||<width=25%><#ffffa1><:>'''고현정[br](2009)'''||<:>{{{+1 →}}}||<width=25%><:>[[김주]], [[한효주]][br](2010)||
         ||<#9A7CA7> {{{#FFFFFF '''출생'''}}} ||<(> [[1971년]] [[3월 2일]] ([age(1971-03-02)]세)[br][[전라도]] [[화순군]] ||
         ||<#9A7CA7> {{{#FFFFFF '''가족'''}}} ||<(> 배우자 [[성혼]] (1995.5 - 2003.11)[br]동생 고병철, 아들 성해찬, 아들[[성문준]] 딸 성해인 ||
         1 1녀를 두고 잘 사는 듯 했으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4222|2003년 11월 19일 이혼]]하였다. [[이혼]]시 엄청난 루머가 쏟아졌다. 주로 "따돌린다"는 루머.[* 가족들끼리 고현정을 [[왕따]]시키기 위해 영어로만 대화했다가 고현정이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어를 배우자 프랑스어로만 대화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무릎팍도사]]에서 그런 유치한 짓 하실 분들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는데 뉘앙스가 묘하다. 단, 재벌일가 중에서 [[조현아|이런]] [[김동선|사례]]가 쏟아지는만큼 '''루머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다른 것은 고현정과 [[정용진]]이 여행 중 만나게 되어 연애 결혼을 했지만 정용진의 어머니인 [[신세계(기업)|신세계그룹]] [[이명희(기업인)|이명희]] 회장이 결사 반대를 했고[* 참고로 한국의 재벌가는 거의 유럽의 왕족과 같은 분위기를 지녔고([[현대그룹]] 집안 분위기는 명문 양반가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한다)학벌이나 집안은 거의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곳이다(어느 정도냐고? [[아이비 리그]] 대학 졸업이면 일단 합격선으로 들어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캠브리지 대학교]]나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라면 더더욱 환영, 참고로 [[정용진]]이 [[브라운 대학교]] 출신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적인 이목을 한몸에 받는 인기 연예인과 자신의 자녀를 혼인시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다. 결혼은 현실이란 것을 강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이 재벌가의 혼인이다.] 훗날 온갖 스캔들을[* 1억 5천만원짜리 다이아 반지, [[포르쉐 카이엔]] 도난 신고사건 등.] 유발하여 불리한 조건(친자 포기)으로 이혼을 유도하려고 했다는 루머 등.
         2011년 MBC 드라마 [[로열패밀리(2011)|로열패밀리]]가 이 루머를 많이 참고했다는 소문이 있다. ~~의 불행은 나의 각본?~~ [[임성한]]의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에선 대놓고 이 루머를 각본화했다.
         그간의 인터뷰들이나 수상소감, 방송에서의 말들을 보면 굉장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이혼 후로 한 번도 못 봤다고 했으니...그러나 지난 해 디어마이프렌즈 종영 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최근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재벌이든 뭐든 이혼을 했더라도 자녀와 어머니를 못 만나게 하는 건 불법이다. 고현정이 굳이 제 자식을 보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당연히 만나고 살아야 하는 게 정상. 그간 만나지 못했던건 양육권을 가진 쪽에서 만을 막았다기 보다 자녀들의 해외 유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낸 탓이 큰듯. 인터넷에서 간간히 아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딸 정해인 씨는 고현정을 많이 닮았다. 고현정의 어린시절이라고 해도 납득할정도다. [* 아들 정해찬 씨는 [[정용진|아버지]]를 닮았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366&aid=0000411603|2018년 최근 모습]] ] 폐쇄 전의 인스타그램 내용 등을 보면 모친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제작진 전원에게 천만원 상당의 [[닌텐도 DS]][* 고현정은 [[닌텐도 DS]]의 리듬게임 타이틀 '리듬세상'([[리듬천국골드]]의 한국어판)의 광고에 출연하였다.]를 쏘거나,[* 사실 연예인이 스탭들에게 자기가 모델인 제품을 쏘는 것은 기사화로 인한 일종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라서 본인 부담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악조건하에서도 8회 분량(출연료 총 2억 상당)에 대해 개런티 없는 연장에 동의하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야외촬영으로 극도로 열악했던 선덕여왕 배우 스태프의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등, [[대인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의 비효율적 촬영시스템은 유명해서, 박홍균 감독은 28회 일식신 촬영 중 비담 역을 맡은 [[김길]]이 탈진할 정도로 다시 찍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무술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촬영 중 무술감독 중 한명이 [[보조출연자]]들을 마구 굴려대자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감행) 이걸 목격한 고현정이 조목조목 따졌다고. 이 무술감독은 공동연출 김근홍 감독으로부터도 '''"무술감독님, 필름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거 영화 촬영용 필름이라서 한장 한장이 비싼 겁니다."'''라고 디스를 당했다.] 50회의 마지막 촬영장면에서는 스태프 전원이 ~~어째 어감은 묘하다만~~ '고미실 사망 축하연'을 벌여 주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06889|#]]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으로 2009년 MBC 연기대상을 수상하였고, 드라마가 끝난 다음 해에도 2010년 [[백상예술대상]], 2010년 [[한국방송공사]] 탤런트상, 2010년 서울드라마어워즈 한류스타상 등을 석권하여, 완벽한 일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다른 드라마에서 주인공 또는 조연이 '미실'을 흉내내는 장면이 나오거나 성격을 묘사하면서 언급된 작품이 공중파만 무려 3개로[* '[[역전의 여왕]]' '[[최고의 사랑]]' '[[마이 프린세스]]'.], 드라마 작가들에게도 어지간히 강한 인상을 겼던 것 같다. ~~[[육룡이 나르샤]]는 작가가 같으니까 제외;; ~~
         2019년 [[동네변호사 조들호(드라마)|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시즌 2에 출연하는 것이 확정. 아무래도 전술한 리턴에서 일어난 논란의 여파가 아있다 보니 출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이 사건의 여파로 [[네이트판]]에 고현정이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신분으로 강의를 했을때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현재는 삭제되었다.] 그 글에 따르면 고현정은 교수 시절 지각을 상습적으로 했으며, 밥먹듯이 학생들을 노래방으로 데려가 술을 마셔서 즐기고 여학생과 학생간의 똑같은 성적이라도 학점을 차별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글에서 가장 고현정이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것은 매 수업시간마다 그것도 환기가 안되는 지하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는 중에 매 강의마다 10회 정도 [[흡연]]을 했다는 것인데, 이에 한 학부모가 이 문제에 대해 대학에 항의전화를 했으나 오히려 과 대표가 고현정 교수의 흡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넘어가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뒤에도 계속된 학부모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종강 때까지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당시 이 글을 올렸던 당사자가 몰래 찍었던 사진이다. [[파일:교수의 자격.png|width=65%]] ] 그리하여 '''교육자로서 결격사유'''인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 주연 출신이어서, 정확하고 약간 빠른 발음을 구사한다. 연기력은 엄마의 바다나 두려움없는 사랑이 인기였던 모래시계 이전에도 주연을 맡을 만하다는 평이었는데,(우는 장면에서 근성의 노메이크업으로 펑펑 울거나) 모래시계 때 레전설 소리를 들었다.~~그리고 총알은퇴. 관광지 [[정동진역]]을 기고.~~ [* 김종학 감독은 연기력이 아까워 결혼을 말렸다고 이후에 인터뷰한 바 있다.] 김종학 감독은 20대 초반의 고현정을 두고 한 줄의 대사로도 파급력을 갖는 배우라고 이야기했으며 복귀 후의 고현정은 봄날의 실어증 여주인공, 여우야 뭐하니의 음란 잡지 기자, 히트의 강력반 형사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를 펼쳤다. 트레이드마크인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디테일한 연기[* '무언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미덕(단순히 매력이 아닌)을 지니고서도 나쁜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미실을 얼굴의 오른쪽과 왼쪽, 입과 눈과 눈썹이 다 따로따로 움직이며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로 강렬하게 소화해낸 고현정은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이자 일등공신이다.' -이영미(문화 평론가). 시사IN 기사 중] 는 선덕여왕 때 처음 화제가 되었다. 비결에 대해, '사극이라 몸이 안움직이니 얼굴이라도 움직여야 시청자들을 잡겠다 싶어서...'라고 코멘트. 같이 촬영했던 [[이순재]]도 인상적이었다고 코멘트를 겼다.[* [[이순재]]는 헐리우드로 지금 당장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김명민]], [[김희애]], 고현정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주인공에 비해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어느 팬의 편집 결과에 의하면 62부작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나온 시간은 1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그해 실시된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3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051965|#]] 차기작으로 선택한 드라마 대물은 방영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 감독이 바뀌는 등 내부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고 드라마 내용은 산으로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현정의 연기는 호연이었다는 반응과 함께 2년 연속 올해를 빛낸 탤런트 1위를 차지하였다.[* 이 때 2위와의 격차가 무려 23%였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156691|#]]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 면에서는 고현정 필모그래피에서 최하를 기록했지만 무표정에서 종종 보여지는 미세한 표정 연기(일명 나노 연기)는 미실을 능가했다는 반응도 얻어 원작과 다른 마여진을 만들어냈다며 호평을 받았다.
          *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작품에서 함께 연기한 자배우들과의 친분으로 유명하며,([[조인성]], [[천정명]], [[하정우]], [[김길]] 등) 4명 중 3명이 촬영 후 군대에 갔다는 점에서 '고현정 징크스'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하정우]]는 연기자 데뷔 전에 [[강성범]]과 함께 군 복무를 마쳤으니까 제외. ~~이런 행운아~~]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흥행과 함께 열린 2017년 5월 기준 고현정의 유일한 팬미팅에서 사회를 본 [[MC몽]]은…
          * 소위 '고현정의 자' 버프 [* 고현정은 드라마 이름을 얻지만(드라마 종영 후 '고현정의 ㅇㅇ'로 기억됨) 드라마의 주는 인기를 얻어가기 때문에 서로 윈윈한다는 의미. [[히트(2007)|히트]] 이후 인지도를 크게 높인 하정우가 대표적.]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바, 이 버프가 걸린 [[권상우|누군가]]가 대물을 본 엠드갤의 가련한 드덕들을 시험에 빠뜨리고 있다. [* 사실, 이 경우는 비호감 배우가 호감 캐릭터를 잘 연기해낼 때의 드덕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 [[윤여정]] '선생님', [[이미숙]] 선배님과는 오래된 친분. 결혼 후 힘들었던 시기 미용실에서 마주친 [[이미숙]]은 "얘, 할말은 하고 살지? 기죽지 말고 살어." 라는 돌직구를 꽂아넣고 사라지셨다고. [[윤여정]] 선생님은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이 이혼 후 고충을 털어놓자 한 마디를 기셨다. '내때는 예수재림이었다' 고. [* 영화 대사 중: "나 때는 내 [[이혼]]이 거의 주홍글씨였어. 이혼한 여자가 TV에 나오면 국민 정서에 안 좋대나 뭐래나. 그래서 방송 관계자들이 방송도 안 나오는 게 좋겠다고 하던 시대야, 얘." 윤여정의 결혼과 이혼(연예계 최초 공식이혼)은 당시 고현정 이상의 센세이션과 루머를 일으켰다. 몇십년 뒤 요즘도 아침방송 및 종편에서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 즉 내때는 더했다는 뜻.] 영화 [[여배우들]]이나 무릎팍 도사 [[윤여정]] 편, 고쇼 [[윤여정]] [[최화정]] 출연분에서도 윤 선생님의 포스와 굽신거리는 고현정을 확인할 수 있다.
          * [[조인성]]은 봄날의 종영 당시 고현정을 '[[고해성사]]를 받아 주는 [[수녀]]님 같은 분'[* 참고로 [[수녀]]는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 [[미사]]와 [[7성사|성사]] 집전은 [[사제]]서품을 받은 성직자만이 가능하며, [[가톨릭]]에서 성직자(교황>추기경>주교>신부>부제)는 [[자]]만 될 수 있다. 수녀는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이다. 수도자 중에서도 사제서품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 성 수도자인 수사만 가능하다(수도사제, 성직수사, 수사신부 등으로 불린다).]이라고 했고, 지금은 각종 매체에 고현정을 스승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연기에 대한 평도 듣고 있다고. 싸이더스를 떠나 고현정의 1인소속사로 들어가는 등, 사제관계는 계속되는 모양이다. 참고로 [[지진희]]의 평은 "한마디로 대장부죠"[* 여담으로 지진희는 봄날 이전에 찍었던 [[대장금]] 종영 후 [[이영애]]에 대해 '60부작을 찍었는데 이렇게 안 친해진 상대 배우는 처음'이라고 고백(…)]
          * 선덕여왕 후 [[YB]]의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나와 멀쩡한 드레스 차려입고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열창하며 힘껏 망가지고 갔다. 팬카페에 긴 글로 보면 평소에도 [[오아시스(밴드)|오아시스]]나 [[U2]]를 듣는다는 것 같고, <2시의 데이트>에 나와서 [[자우림]]의 20세기 소년소녀를 추천하고 갔는데, 무릎팍에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T.O.P|탑]]과 [[샤이니]]를 매의 눈으로 찍어내질 않나, 고쇼 빅뱅편은 화기애애하질 않나… 그러나 '[[보그]]'에 실린 인터뷰에 의하면 클래식(듣던 게 '펠리시테 로트'의 아리아.)을 자주 듣는데 뭐 좋아하세요 질문받으면 가식떤다는 소리 들을까봐 어디가서 말은 못한다고.
          * [[여왕의 교실(MBC)|여왕의 교실]] 출연 당시에는 아역배우들에게 꽤 애틋함을 느꼈던 모양. 우연히도 극중 주인공인 아이들이 고현정의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대다. 아이들에게 감독님만 빼고 다같이 놀러와도 좋다고했다고. ~~대신 음식은 시켜 먹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아역들 역시 종영 후 처음보다 훨씬 친근감을 느낀다는 인터뷰를 겼다.
          * 장:[[성해찬]]
          * 차:[[성문준]]
  • 김갑수(배우) . . . . 24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 [[분류:1957년 출생]] [[분류:고창군 출신 인물]][[분류:1977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EDD200><-5><:> {{{#white '''우주연상'''}}}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TV 최초 출연작은 유인촌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장미희 TV 복귀작으로 유명한 "역사는 흐른다"였다. 장미희를 사모하고 나중에는 독립투사로 변하는 천민 석하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겼고 이후에도 특집극 찬란한 여명에서 개화승 이동인 연기,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시인 [[이상(작가)|이상]] 연기등으로 인상을 준 후 대표적인 출세작으로 2001년 방영한 [[태조 왕건]]. [[궁예]]의 냉정한 책사 [[종간]]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후의 연기도 훌륭하나, 종간 역만큼은 김갑수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2003년]]에 [[장화, 홍련]]에서 [[염정아]]의 편이자 [[임수정]], [[문근영]]의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7년후 [[신데렐라 언니]]에서도 문근영의 아버지로 출연. 이와 비슷하게 [[2006년]]에 드라마 [[연애시대]]에 [[손예진]]의 아버지로 출연했는데 2012년 제작중인 영화 [[공범(영화)|공범]]에서도 손예진의 아버지로 나온다. 근데 둘 다 사이가 별로. 특히 공범에서는 손예진이 아버지를 납치범이라고 의심하는 설정.
          * [[바이크]] 매니아라고 한다. 바이크를 타면서 찍은 사진 밑에 '라이딩 중 애마와 잠깐 한컷 ㅎㅎㅎㅎ'라는 코멘트를 기기도[* 사실 소문난 바이크 매니아이다.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10411000163|이 기사]]를봐도 알겠지만 직접 중고 바이크 거래에 나설 정도이며 바이크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은 듯하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0245|힛갤 간 구매자의 글]]]
         || [[잠복근무(한국 영화)|잠복근무]] || 차영재[* 승희([[상미]]분) 아버지] || 특별출연 || ||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자]] || 이신모 || 조연 || ||
         || MBC || 주부 김광자의 제3활동[* 일요 드라마 극장(단막극)] || 최병구[* 김광자 편. ~~진급을 못 한~~ 파출소 부소장.] || 출연 || ||
         || 2014년 || 채널A || 자, 혼자 죽다 [* 2014.09.10 단편. 서울 지역에 안치된 무연고 사망자들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다룬 프로그램.] ||
         || 1990년 ||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자 신인연기상 || 역사는 흐른다 ||
         ||<|2> 1991년 || 서울연극제 ||<|2> 자연기상 ||<|2> 길 떠나는 가족 ||
         ||<|3> 1994년 || 서울연극제 || 자연기상 || 아, 이상 ||
         || 춘사대상영화제 || 새얼굴 자연기상 ||<|4>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
         || [[청룡영화상]] || 우조연상 ||
         ||<|2> 1995년 ||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자최우수연기상 ||
         || [[대종상]] || 우주연상 ||
         || 2001년 || [[KBS 연기대상]] || 자 우수연기상 || [[태조 왕건]] ||
         ||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우조연상 || [[장화, 홍련]] ||
         || 2005년 ||<|2> [[SBS 연기대상]] || 자 조연상 || [[토지#s-7.3]] ||
  • 김형준(배우,가수) . . . . 24회 일치
         [[분류:SS501(아이돌)]] [[분류:한국 배우]] [[분류:뮤지컬 배우]] [[분류:1987년 출생]] [[분류:중구(대구) 출신 인물]] [[분류:아이돌 막내]][[분류:2005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00BFFF> '''가족''' ||부모님, 동생 [[알렌기범]][* 3살 터울인데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2017년 4월 6일 ~ 2018년 12월 29일[* 원래 2019년 1월 5일 전역 예정이었다. 그러나 군 복무 기간 단축 시행으로 인하여 7일이 줄었다. [[https://youtu.be/-i5oWnF_f30|경기부경찰청 페이스북 라이브 2018년 8월 6일 방송]]에서 본인의 소감을 들을 수 있다. 01:14:27부터. ~~너↗어무 좋아요 진짜아!~~])||
          * 데뷔 초에 팬들이 생일파티를 해줬는데 펑펑 울었다. 할머니가 오셔서 달래 주셨는데 거기서 할모니라는 전설의 영상을 겼다.
          * 성격이 순진해서 의 말에 잘 넘어 가는 편이다. 멤버들이랑 마트에 물건을 사려가면 옆에서 은근슬쩍 이것 맛있데 몸에 좋데 란 말에 무조건 그냥 장바구니에 막 담는다.
          * 2월 3일 허영생과 함께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다. 귀여운 고양이 머리띠를 쓰고 허영생과 함께 [[핑클]]의 '내 자 친구에게'를 반주도 없이 생라이브를 불렀다.
          * 2월 4일 뮤직뱅크 400일날 [[하하(가수)|하하]], [[이루(가수)|이루]], [[브라이언(플라이 투 더 스카이)|브라이언]]과 함께 [[핑클]]의 '내 자 친구에게를 불렀다. [[https://vimeo.com/27080184|#]]
          * 3월 22일 SS501 전원과 함께 스타 골든벨에 출연했다. 멤버 네명 모두한테 거울을 달고사는 자 돈 안 쓰는 자 1위에 뽑혔다.
          * 3월 6일 허영생, 김규종과 함께 [[웃찾사]]에 출연했다. [[꽃보다 자(2009년 드라마)|꽃보다 자]]의 패러디를 했는데 김형준은 허영생과 함께 배우 [[박영규(배우)|박영규]]의 ‘장모님 왜 그러세요?’라는 멘트로 성대모사로 관객들을 폭소케 했다.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았다.
         || 2009년 || KBS2 || [[꽃보다 자(2009년 드라마)|꽃보다 자]][* 허영생, 김형준이랑 게스트로 출연해 U R Man을 불렀다.] ||
          * [[이준(배우)|이준]] 주연의 영화 [[배우는 배우다]]에 신인 공명으로 특별 출연했다. SS501 멤버들중 제일먼저 스크린을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rowbgcolor=#ffffff><:>2013년 ||<:>[[배우는 배우다]] ||<:>신인 공명 || 특별 출연 ||
          * 2014년에는 동생 [[알렌기범]]과 함께 뮤지컬 카페인 재연에서 함께 공연을 했다.
          * 2014년 4월 25일 한동 블루 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팬미팅을 개최했다.
          * 2015년 4월 25일 서울 한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팬미팅을 개최했다.
          * 2015년 8월 8일 미 칠레에서 FNL 마지막 월드투어 공연을 마무리 했다.
          * 2017년 3월 11일, 12일 반디앤루니스 신세계 강점 이벤트 존, 영풍문고 종각종로본점 지하 2층 이벤트존에서 세번째 미니앨범 AM to PM 5-11-3 발매기념 팬사인회를 개최했다. 이번 팬사인회는 4월 6일 군입대 전 마지막 팬사인회으로서 국내팬은 물론 수많은 해외 팬들도 찾아와 글로버한 인기를 실감케 했다. 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악수를 나누는 등 팬 서비스를 선사해 팬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 2016년 12월 28일에 발표되는 [[경기부지방경찰청]] 홍보단으로 지원 했는데 의무 경찰로 합격해서 내년 2017년 4월 6일에 입대할 예정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8912163|#]]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032101&gid=999339&cid=1052891|#]]
          * 경기부지방경찰청 의무경찰 특기병에 합격해 2017년 4월 6일 충 논산의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604342|#]] 군 입대와 동시에 세번째 미니앨범 리패키지 [[AM to PM 7-5-11-3]]를 발매했다.
  • 마니교 . . . . 24회 일치
         마니교는 지배적 지위를 획득한 적은 드물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하여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로 지중해 연안 일대, 동쪽으로는 이란 고원에서 이를 넘어 중국까지 퍼진 광범위한 범위를 자랑했다.
         가장 나쁜 것은 번식으로서, 번식 행위는 영혼의 감옥인 육체를 재생산 하기 위하여 악마가 만든 최악의 함정으로 여겨졌다. 성욕을 끊어서 자손을 기지 않는 것이 인류의 의무라고 보았다.
         마니는 216년 4월 14일, 메소포타미아 부의 마르딘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티크는 파르티아의 귀족이며, 어머니 마르얌은 파르티아의 왕족 캄사라간 가문의 출신이었다. 파티크는 마니가 태어나기 직전에 에르사카이 교단에 입신하는데, 이 교단은 [[유대교]] 계통의 신흥 종교로서, 신약 성서나 정통 기독교 사상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율법]]에 집중하는 금욕적인 교단이었다. 에르사카이 교단은 여성은 입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파티크는 임신한 마르얌을 버려두고 떠났다가 마니가 3,4세가 되자 아들만 데리고 교단으로 다시 돌아갔다.--뭐냐--
         페르시아 제국과 동방에서는 마르 안모와 가브리야브가 활동했다. 가브리야브는 사푸르 1세의 장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국왕으로 있던 아르메니아 왕국으로 포교했다. 가브리야브는 기독교인은 고칠 수 없었던 국왕의 딸을 치유하여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또 치유의 기적으로 그루지야 왕도 개종시켰다고 한다.
         마르 안모는 파르티아 귀족 출신으로서, 마니의 친척으로 파르티아의 왕족인 아르다반과 함께 중앙 아시아의 파르티아계 귀족들을 포교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 안모는 파르티아어로 많은 저술을 겼으며, 동방 마니교에서는 파르티아어가 교회어가 된다. 마르 안모는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파르티아어 저작 『항담』 을 저술하고, 찬송가를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노래하게 했다. 그는 중국에서 미말(未末)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중앙아시아는 마니교 최대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시리아계 캐러밴을 거쳐서 소그드 족 상인이나 파르티아 귀족에게 주로 퍼지게 된다.
         272년, 마니의 포교를 용인하던 사푸르 1세가 사망, 마니와 인연이 있던 아르메니아 왕 오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가 페르시아 왕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사푸르 1세의 차, 바흐람 1세가 즉위하였다. 이와 함께 우르즈마흐드 아르다후시르 때부터 조로아스터교의 대신관 킬데르가 대두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조로아스터교 국교화 정책이 더욱 강경하게 밀어붙여졌다. 마니는 궁정의사에서 해임되어 메소포타미아 부의 종속국 코라살의 시의로 좌천되는데, 몇몇 문헌에서는 황제의 여동생의 치료를 실패한 것을 질책받았다는 언급이 있어 이 역시 신망을 잃은 원인으로 추측된다.
         마니는 옥중에서도 포교를 멈추지 않았는데, 중앙아시아에서 찾아온 제자 마르 앙모에게 봉서를 맡기고 떠나도록 했다. 그리고 감금된 지 26일째의 277년 2월, 사망하게 된다. 옥중에서 사망했다고도 하고, 처형당했다고도 한다. 사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참수되어 성문에 노출되었다거나, 야수에게 먹이로 줬다거나, 두동강이로 잘려서 두 개의 문에 못박혔다거나 --고어-- 가죽을 벗겨서 지을 채운 뒤 책형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웃즈라는 제자가 긴 중세 페르시아어 단편 자료에서는, 주 마니는 육체라는 옷을 벗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다고 한다.
         >스티키아누스라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그는 창녀를 아내로 삼고 있던 타락한 자였다. 그는 이집트와 장사를 하다가 이집트에서 마술 지식을 얻었다. 그 제자 테레빈토스는 스티키아누스가 얻은 마술 지식을 책으로 정리하였고, 이것이 마니교의 교의서이다. 테레빈토스는 바빌로니아로 떠나서 마술을 보여서 사람들을 현혹하다가 천벌을 받아 죽게 된다. 이 마술서를 하숙집의 여주인이 가져가서, 노예 소년 크루비키오스에게 가르쳐주며 길렀다. 여주인이 죽자 크루비키오스는 마니로 이름을 바꿔서 페르시아 왕을 찾아가게 된다.
         크테시폰의 마니교 본부는 마니 사후 곧바로 분열에 빠진다. 마니가 후계자를 미리 지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싱과 가브리야브가 서로 후계자를 다투게 된다. 5년 간의 대립 끝에 시싱이 후계자가 되어 데인 서랄(최고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286년, 취임 후 시싱은 사프르에게 호출되어 3명의 장로와 함께 처형당하고 만다. 결국 페르시아 제국에서 탄압받은 마니교도는 [[로마 제국]]이나 주변국으로 탈출한다. 로마 제국에서는 마니교도가 급격하게 숫자를 불리게 되고, 일부는 메소포타미아 부의 아랍계 속국왕 암르 이븐 아디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이 무렵 조로아스터교 대신관 킬데일은 유태교, 불교, 힌두교, 만다교, 기독교, 무토타크교, 잔드교를 이단으로 보고 이들이 제국에서 구축되었다는 비문을 겼다.
         하지만 권력 측에 선 신관단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 마니교는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게 된다. 마니교는 경전을 확립하고 있었으며, 질서정련한 교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도나 배화의례, 구전전승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페르시아의 민족종교로서의 경향이 강한 탓에, 마니교처럼 복잡한 교리와 신화에서 지적인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고 제국의 여러 속민들에게 어필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압바스 왕조의 3대 칼리프 알 마흐디가 마니교 탄압 명령을 내린다. 마니교도는 이원론, 의식적 간통, 불륜, 음주, 색, 우상숭배의 죄로 탄압당하게 된다. 연행된 사람들은 '''마니의 초상화에 침을 뱉고, [[새]]를 먹도로 강요'''당하고, 하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박해 시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마니교 인물로는 아브 이사 알 왈라크가 있다. 그는 마니교, 혹은 시아파로 여겨지는데 제자 이븐 아크 라원디에 따르면 마니교도 였다고 한다. 이원론 종교에 대해서 다룬 『이원론요강』, 마니교 신화를 해석한 『동방의 이방인』 등의 저술을 겼다. 아브 이사 알 왈라크의 저작은 마니교의 복잡한 신화 체계를 억제하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디자인된 새로운 형태의 마니교였다. 그러나 자신의 저술에서 이슬람과 무함마드를 비방한 것이 문제가 되어, 이슬람 철학자들로부터 강력하게 논리적 공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10세기 초, 압바스 왕조 18대 칼리프 알 무크타디르 치세에서 다시 마니교에 대한 탄압이 강렬하게 벌어졌다.
         이븐 알 나딤에 따르면 10세기 중반 시점까지는 바그다디에 300명의 마니교도가 있었다고 하지만, 988년에는 5명 까지 격감하였다. 살아은 마니교도는 메소포타미아의 본산을 방폐하고, 중앙아시아로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이미 중앙아시아에도 마니교가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마니교도가 안주할 땅은 없었다.
         송나라 시기, 중국 동부 복건성, 절강성에서 믿어진다. 이들은 당나라 때 마니교도들이 탄압을 피해 강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측되며, 명말의 하교원(何喬遠)이 적은 지방사 서적에 따르면, 회창의 폐불 때 마니교 승려 호록법사(呼禄法師)가 복주(복건성)에 피하여 북산의 아래에 묻혔다고 하므로 이러한 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명교는 이전의 마니교와는 달리 지배층을 포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층농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밀결사]]의 경향이 강해졌다.
         송 육유(陸游)의 문집 『이문집(渭南文集)』에 따르면, 강의 농민 반란은 명교가 핵심이 되었다. 명교 등의 반체제 종교는 「끽채사마(喫菜事魔)」나「사마식채(事魔食菜)」라고 불리웠다.
         명교의 신은 명사(明使)라고 불리며, 육불(肉佛), 골불(骨佛), 혈불(血佛) 같은 칭호가 있었다. 이문집에서는 한나라의 [[장각]], 진나라(晋)의 손은(孫恩), 송나라의 방납(方臘) 같은 무리를 명교의 동료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마술을 부려 꼭두각시를 싸우게 하고, 여자들은 요괴 같은 얼굴 화장을 하고 병사들과 맞섯다고 한다.
         1263년 송의 황진(黃震)은 『숭수궁기(崇寿宮記)』를 저술하는데, 이는 도교사원 숭수궁을 중건할 때 일을 적은 것으로서, 이 기록에 따르면 숭수궁은 사실 위장한 마니교 사원이었다. 원나라 때는 당국이 무관심하여[* 몽골인들은 '텡그리 신앙'(하늘 숭배)과 유사한 개념만 들어있으면 어떤 종교이건 딱히 제재하지 않았다.] 4개의 마니교 사원이 추가로 건축된 것을 알 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따르면 복주에 들렸던 마르코폴로는 유래를 알 수 없는 종교를 만났는데, 이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경전과 시편, 그림을 가지고 있지만 교설을 듣지 못해 교의를 모르게 되었고, 그러나 성자를 모시는 가르침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이들을 원나라 궁정에 데려가 예배를 공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허가를 얻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이들을 경교 신도(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로 보았지만, 마니교 신도였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다만 이들이 마니교도가 확실한지는 알 수 없고, 마르코 폴로의 기록 역시 실증성이 명확하지 않다.
         명나라 시기에 명교는 오히려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는 왕조의 국명과 같은 명(明)을 사용하는 탓에 불경죄로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 시대에는 어느 정도 명교의 가르침은 기록으로 게 된다. 명 말의 기록에는 마니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정확하게 기록되었는데, 하교원(何喬遠)의 기록에 따르면 208년 3월 12일 발제(抜帝, 파티크)의 처 만염(満艶, 마르얌)이 청정한 채로 가슴으로 낳은 것이 마니(摩尼)이며, 마니는 대식(大食,아라비아), 불림(佛林, 로마), 토화라(吐火羅, 이란 동부), 파사(波斯)에서 선교하여, 266년에 파사에서 사망했다. 저서는 7권이며, 가르침은 대모도(大慕闍)에게 맡겨졌다고 기록되었다. 모도란 모자크로 마니교에서 제2의 위계에 해당한다.
         > 지금 이렇게 3개의 신상과 16자의 진언만으로 우리들에게 겨졌다.
  • 유지태 . . . . 24회 일치
         * [[2009년]] 《[[초대 (영화)|초대]]》 - 자 역
         * [[2005년]] 《[[극일기]]》 - 김민재 역
         * [[2003년]] 《[[여자는 자의 미래다]]》 - 이문호 역
         |1998||MBC||[[수줍은 연인]]||정||
         |1999||MBC||[[자셋 여자셋]]||지태||
         | 모델센터 자 신인모델상
         | 신인우상
         | 신인우상
         | 신인우상
         | 우주연상
         | 우주연상
         | 신인우상
         | 우조연상
         | 중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자 최우수연기상
         {{춘사영화상 신인우}}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우}}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강릉 유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
  • 장남교 . . . . 24회 일치
         장교란, 장을 특별시 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비꼬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이든 "장이니까 ~해야 한다.", "장의 아내니까 ~해야 한다."고 부모나 친척, 주변에서 자식 측에게 강요하는 것을 '장교'라고 부른다.
         주로 장에게는 가문을 이어갈 것, 며느리 측에게는 친정보다 시댁을 중시할 것, 시부모를 봉양할 것, 아들을 낳을 것 등을 요구한다.
         또한 장이 아닌 자식들(동생들, 딸들)을 무시하거나 차별 대우하는 풍조도 장교로 본다.
         장 중시는 구시대의 관습으로, 기본적으로 메이지 시대의 가독상속 제도의 흔적이다.
         즉, 이 시기의 법률에서는 호주의 동의 없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을 인정받지 못해서 사랑의 도피를 하거나 동반 자살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또한 호주는 거소에 대한 지정을 따르지 않은 가족에 대해서 제적할 수 있었다. 설사 그 거소가 자시키로우라고 해도(…). 당시부터 사회적으로 호주의 권리를 용하는 가장이 적지 않아, 호주의 권리가 용되므로 제한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호주는 가족 구성원에 대해서 상당히 강력한 통솔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호주의 권리와 가문의 재산을 가독(家督)이라고 불렀는데 가독의 승계권은 장이 최우선 되었다.
         메이지 유신 시기였던 1871년 제정된 호적법에서, 장은 가독(家督, 호주의 권리와 가문의 재산)을 승계할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법정추정가독상속인의 조건은 일단 호주의 가족으로 직계비속이다. 먼 사람 보다 가까운 사람, 여자보다 자, 사생아보다 적자, 연소자보다 연장자를 우선하는 규정이 있어 결국 장이 가장 우선시 된다. 또 여성 적출자보다 인지된 성 비적출자가 우선된다.
         이 시기 가독이 상속되면 장(상속자)은 새로운 호주가 되고,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이 재편되며, 가문의 전 재산과 조상을 모실 권리를 얻도록 되어 있었다.
         또 호주의 사망 만이 아니라, 성의 경우 60세, 여성의 경우 자신이 바라는 언제든지 호주가 '은거'를 결정하고 상속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사망, 은거 이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거나, 호주가 국적을 상실하는 상황에도 가독승계가 발생한다.
         여기서 '장'이 중시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설사 정처가 아무리 편과 오랫동안 함께 부부생활을 하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다고 해도 낳은 자식들이 전부 딸이라면, 편이 첩이나 애인이 사귀다가 사생아라고 해도 아들을 낳아버리면, 사생아는 '비적출자 장'으로서 가독상속을 받을 최우선 권리를 얻게 된다.
         정처 입장에서는 가독상속을 최우선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지고 호주 사망시에 가독을 확실하게 상속해줄 '적출자 장'이 없으면 한 순간에 거의 인생 게임오버(…)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호주 사망시에 비적출자이 나타나면 한 순간에 모든 가산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호주의 각종 처분권까지 비적출자에게 가게 되므로 매우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한없이 높아진다.
  • 주상욱 . . . . 24회 일치
         주상욱은 1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2014년 [[tvN]] 《[[로맨스가 필요해 3]]》 - 신주연의 과거 두번째 자친구 역
         * 2012년 《[[간기]]》 - 한길로 역
         * 2012년 [[KBS 2TV|KBS2]] 《[[자의 자격]]》 - 고정출연
         * 2013년 [[KBS 2TV|KBS2]] 《[[해피투게더 (텔레비전 프로그램)|해피투게더 시즌 3]]》 (드라마 굿닥터 훈 특집) - 게스트
         |자조연상
         |쇼오락 자 신인상
         |[[자의 자격]]
         |특별기획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중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중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특별기획부문 자 우수연기상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버라이어티부문 자 우수상
         {{KBS 연기대상 자 우수연기상}}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1998년 데뷔]][[분류:해피선데이]][[분류:KBS 연기대상 자 우수연기상 수상자]]
  • 김상중(배우) . . . . 23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1965년 출생]][[분류:완주군 출신 인물]][[분류:1990년 데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 [[연극]] '아이 러브 빵'으로 데뷔했다. <돈아 돈아 돈아>, <세 자매> 등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94년 특채로 MBC에 발탁, 드라마 <님이여>에 출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겼으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한 광복 5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백범 [[김구]]에서 '''청년 [[김구]] 역'''으로 출연하였다.[* 중노년 김구 역할은 배우 조상건으로 교체되었으며 최후의 암살 순간까지 맡았다. 후에 그는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독립군 역으로 나왔는데 동료들(김인권, 이범수, 정준호)과 식사하는중 그 식당에 김구가 있다는걸 유일하게 눈치채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배우개그일지도...]
         일반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급 연기자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1996년]] KBS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자들]]에서 고고한 독신주의자였던 목욕탕집 맏딸 김윤경([[배종옥]] 분)을 능글능글함으로 쥐락펴락하면서 마침내 결혼에까지 골인하는 노총각 강호준 역할을 맡으면서부터이다. 그 후 SBS 드라마 홍길동에서 주인공 김석훈과 대립하는 이업 역, 경찰특공대에서의 대장 역, 제국의 아침의 광종 역, 추적자의 강동윤 역, 개과천선의 차영우 대표변호사 역 등 중량감 있으면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냉철한 역할로 이름을 알렸다. 특유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위 작품들을 거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데, 이때부터 쌓인 내공을 [[나쁜 녀석들(OCN)|나쁜 녀석들]]에서 제대로 폭발시킨다...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로 악역을 맡았을 경우 특유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 추적자에서 손현주와 대립하는 강동윤 역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 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찌질하고''' 코믹한 연기도 잘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투사부일체]]에서 오상중역으로 대표적인 찌질+코믹연기를 보여줬고[* 지금도 인터넷에 하하와 호흡했던 연기장면이 잘 알려졌는데 정말 찌질하게(...) 나온다.[[티비플|--미안해요 보스..--]]] 드라마 [[내 자의 여자]] 에서의 홍준표 역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찌질한 모습을 보여 많은 욕을 먹었다. 김희애와 동급에서 연기하는 본인의 커리어 정점을 장식한 작품인데, 여기서 희대의 표정연기는 유명한 대사인 "감자 좀 쪄줄래?"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인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짧은 특별출연에 불과했으나 홍준표를 생각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 아줌마들에게 강한 인상을 겼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능력있는 차도이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한 삼촌역을 맡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잘 안어울릴것 같지만 의외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홍상수의 작업방식이나 영화 등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깔 겸 캐스팅에 응했다고한다. 하지만 함께해보니 배우들이 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의외로 잘 어울렸다.'''[* 사실 이런 반응은 홍상수 영화 캐스팅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고현정이라든지 김승우 이기우 등등 의외로 좀 있다. 이중 고현정과 이기우는 몇 편을 더 주조연으로 홍상수와 작품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다져진 배우의 힘일 듯. 보통 나오는 기존의 자상에 비해 좀 더 점잖고 젠틀하게 나왔긴 했는데 홍상수 영화 분위기 상... 영화 북촌방향 후반부 리얼했던 취한 연기[* 참고로 이런 장면을 찍을 때 홍상수는 배우들에게 진짜 술을 먹인다. 술에만 한정이 아니라 자다깬 장면이있을 시 진짜로 배우들을 좀 재우기도 하고 심지어 배우가 몸이 좀 안좋다 하자 한의원 신을 넣어 치료와 촬영을 동시에 하는 감독(...)]나 우리선희에서 제자와 만나는 교수의 모습은 브라운관에서만 김상중을 봐온 일부 팬들에게 신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김상중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는 [[정신지체]] 연기도 잘 어울리기도 했다. 1997년 [[신현준(배우)|신현준]], [[심혜진]]과 출연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서 여인숙을 소유한 정신지체 형 '기태'역할을 소화하여 그 해 청룡영화제 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아쉽게도 [[넘버 3]]에 출연한 [[송강호]]가 수상하긴 했지만 만약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수상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 정장과 매우 잘 어울리는 자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회차마다 선보인 다양한 수트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2015년]] [[8월 31일]] 자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서는 수트핏을 위해 식단까지 조절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수트]]를 매우 좋아한다.
          * [[최민수]]가 인정한 착한 자. [[무릎팍도사]]에 김상중의 [[친구]]이기도 한 [[조재현]]이 출연했을 때 [[최민수]]와 만났던 이야기를 했는데 김상중이 착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최민수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최민수가 "재현아, 상중이 아냐? 저번에 상중이 만났는데 상중이가 착하더라"라고 해서 조재현이 "네 형, 상중이 착해요."라고 했는데 최민수가 계속 '상중이 착해'라는 언급을 반복해서 짜증났다고 한다. '이 형 왜 자꾸 내앞에서 상중이 얘기만 하시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예능이나 광고에 출연은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종종 예능에 출연해서 활약을 하곤 한다. 생각보다 예능감도 괜찮은 편이라서 워낙 날카로운 차도 이미지가 강한 그가 예능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갭모에|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최근 EXID의 위아래를 BGM으로한 야쿠르트 CF를 찍었다. 그의 댄스 실력도 같이 확인할수 있다.[* 이 광고속 위아래 BGM이 워낙 귀에 확 꽂히다보니 제품보단 위아래와 김상중의 춤 밖엔 기억에 안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롯데리아]]의 [[모짜렐라 인 더 버거]] 광고를 찍었다. 컨셉은 역시 그것이 알고싶다.
          * [[목욕탕집 자들]](KBS2, 1995~96) - 강호준
          * 살다 보니(KBS1, 1998) - 풍
          * [[내 자의 여자]](SBS, 2007) - 홍준표
          * 2007년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자 연기상 《내 자의 여자》
          * 2007년 제1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최우수연기자상 《내 자의 여자》
          * 2012년 SBS 연기대상 특별기획부문 자 우수연기상 《추적자 더 체이서》
          * 2012년 제5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자 최우수상 《추적자 더 체이서》
          * 2013년 [[MBC 연기대상]] 자 황금연기상 《황금 무지개》
          * 2014년 MBC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개과천선》
          * 2015년 제4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장편드라마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징비록》
  • 성훈(배우) . . . . 23회 일치
         연예계 데뷔 전에는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으로 그만두고 [* 《[[우리동네 예체능]]》에서의 활약상을 보면 실력이 후덜덜한 편이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과 붙어서도 이기고, 은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현역 선수랑 거의 대등한 성적을 내는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 수준(...) 실제로도 현역 시절 대회에서 매우 좋은 기록을 세우는 등 촉망받는 선수였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부상으로 인해 전신마취만 6번, 수술만 약 10번 가까이 했고, 결국 기록이 떨어져 은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체능에서 거의 날아다니고 있어 영 설득력이(...) 워낙 예체능에서 보여준 활약이 인상 깊었던지라, 각종 커뮤니티에선 사람 맞냐는 반응이 많다. ~~수중로보트~~ 최근 인터뷰에 의하면, 허리 통증 때문에 예체능에서 제대로 기량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기량을 못 낸 거라니 그럼 전성기땐 어땠단거냐...~~ ~~인간의 신체능력을 뛰어넘은 듯~~] [* MBC [[나 혼자 산다]]에서 28세까지 실업팀 소속으로 수영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2018년 10월 5일 방영분).]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의 자주인공 아다모 역으로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처음으로''' 본 오디션에서 합격한 거라 본인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임수향]]이나 한혜린 등은 연기 경험이 어느 정도 있던 신인이었지만, 본인은 연기경력이 하나도 없는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마스크나 신체조건이 상당히 우월한 편이라, 붙을 만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첫 작품을 끝낸 뒤 조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 작품인 《[[신의(드라마)|신의]]》에서는 주인공 일행의 적인 천음자로 출연했다. 다음 작품인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에서는 드라마 중반부에 투입이 됐는데, 여주인공을 두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서브주의 위치였지만, 마지막엔 주인공을 밀어내고 진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배우 본인이 연기한 작품들에서 거의 다 주연을 맡았다. [* 이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연기력과는 별개로 성훈은 하는 작품마다 배역 운이 좋은 편이다. 대체로 주연이거나 주연이 아닌 작품도 최소 비중 높은 조연을 많이 맡았다. 참고로 촬영 예정이자 데뷔 후 첫 영화에서도 주연으로 캐스팅. 거기다 맡은 캐릭터 운도 좋은 편인데 드라마 내의 등장인물들 전원이 산으로 간 케이스라도 성훈이 맡은 캐릭터만 정상적인 경우가 제법 있다. 심지어 [[가족의 탄생(드라마)|주인공이 아니었는데도 나중에 주인공이 되어버린 작품]]까지 있다. 출연작품의 폭도 상당히 넓은 편으로 장르 안가리고 이곳저곳 많이 나온다. 임성한 드라마 출신의 배우들 대부분이 막장 드라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걸 감안하면 상당히 돋보이는 행보이다.]
         [[2017년]] [[7월 7일]] 방영분 [[나 혼자 산다]] 무지개 라이브에 출연했다. 자취 생활은 말 그대로...[[건어물녀|건어물]]. 하는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오덕 기질이 보이는데, 인터뷰 영상을 보면 [[토니토니 쵸파]] 일러스트와 퍼즐, 케로로봇 프라모델, [[진격의 거인]] 일러스트, [[로이 머스탱]] 피규어 등이 내비쳤다. 나 혼자 산다 인터뷰에서 본인은 관심도 없었는데 팬미팅때 원피스라는 애니가 좋다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후 팬들이 퍼즐, 장난감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즉 본인이 산게 아니라 팬의 선물인 것. ~~방송 보신 분들은 앞으로 [[콘푸로스트|호랑이 기운 씨리얼]]을 보내줄듯~~ 이후로도 해당 방송에 수 차례 출연하였으며 그 때마다 그의 굉장한 먹성이 화제가 된다. 선수 출신답게 압도적인 기세로 엄청난 양을 단 시간 내 먹어치우기 때문. 다른 고정 멤버들에 비하여 출연 빈도가 높지 않음에도 화제성이 높은 것은 모두 이 때문. 덕분에 함께 출연한 양치승 트레이너까지 세간의 관심을 사고있다.
          *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 : [[한지훈(가족의 탄생)|한지훈]] 역. 작품에서 주가 뒤바뀐 보기 드문 사례이자, 《[[신들의 만찬]]》 시즌 2(…)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네티즌 반응은 원래 주인 [[이규한]]보단 캐릭터에 있어서나 배우에 있어서나 서브주인 한지훈 역을 맡은 성훈 쪽이 압승이었다는 평. 연기력이야 주인 이규한이 훨씬 호평을 받았지만 비쥬얼이나 옷걸이나 외적인 조건에 있어선 성훈이 더 대중의 반응이 좋았다.~~결국 연기력보단 얼굴이란 얘기~~ 성훈이 수영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입고 나오는 의상마다 웬만한 모델급으로 소화해 성훈이 극 중 입은 수트들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가 성훈의 팬이었는지~~ 캐릭터로 봐도 강윤재보단 한지훈 쪽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결국 한지훈이 히로인과 연결되며 《가족의 탄생》 최대 수혜자 겸 진 주인공은 성훈이 되었다(...)
          * 6인실 : 김민수 역. 안전보건공단에서 제작한 드라마로, 6인실 병실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안전의식 고취와 산재사고의 위험성을 그려냈다. 연기력 논란 등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라 배우 본인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고 이때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 가장 기억에 는 캐릭터로 김민수를 꼽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 애정이 많은 듯 하다.
          * 고결한 그대 : 이강훈 역. [[네이버 웹소설]]의 인기작들 중 하나인 《고결한 그대》가 원작이다. 일명 패왕색기 이강훈 역할과 무시무시한 싱크로를 보였는데, 정말 이강훈이 웹소설 밖으로 걸어 나온 수준(…) [[http://m.blog.naver.com/godinmedia/220391621546|직접 보자]] 어지간해서 좋은 소리 못 듣는 만화&소설 원작 드라마 캐스팅 평에서 성훈의 캐스팅은 호불호가 나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이강훈 실사판을 보는 것 같다고. 덕분에 '''웹찢'''('''웹'''소설 '''찢'''고 나온 ''''''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인터뷰에서 원작 팬들께 죄송하다고 하는데... ~~너무 겸손한 듯. 외모는 싱크로 100%이지만, 본인의 성격은 이강훈과 괴리가~~
          * [[아이가 다섯]] : 김상민 역. 극 중에서 프로 골퍼로 나오는데 데뷔 이래 재벌 역만 하다가 예체능 출연 이후 죄다 운동선수 역할만 맡고 있다. ~~정작 전직이었던 수영선수 역은 아직까진 없다.~~ 이 드라마에서 신기생뎐 때 여주인 [[임수향]]과 다시 같은 드라마를 찍게 되었지만 그녀와 엮이는 건 별로 없고,(일단 아주 안엮이는건 아니지만, 스토리상 이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커플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연태 역을 맡고 있는 [[신혜선]]과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 드라마의 메인 커플인 [[안재욱]]-[[소유진]]보다도 반응이 좋다. 신혜선과 어색하지만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인생 배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오로지 연태만 바라보는 직진 상민과 눈치가 없어 얼떨결에 단호박녀가 된 연태의 케미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임수향과는 시숙-제수의 관계가 되었다(...)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 [[tvN]] || 《[[내 귀에 캔디]]》[* 시즌 1. 9회 10회. 2016년 10월 20일, 27일 방송. 태평양급 어깨를 자랑하며 수영을 하는 성미를 한껏 뽐내다가도 캔디와의 통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 같은 모습들은 성훈의 재발견이었다는 반응. 특히 그는 캔디 ‘분홍’을 위해 연을 날려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세심한 사랑꾼의 면모도 보였다. 캔디 '분홍'([[허영지]])이 과거 일반인 첫사랑이 '분홍'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고 하자 성훈은 바로 분노하기도 했다(...) ~~역쉬 사랑꾼, 금사빠(헉)~~] ||
         || [[SBS]] ||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편. 2017년 05월 19일~2017년 06월 09일방송. 섭씨 11도 정도 차가운 물 속을 병만 족장을 업고 건너고 집을 짓기 위해 톱질을 하는 등 촬영 내내 상자다운 면모를 보였다는 후문. ] ||
         || [[MBC]] || 《[[나 혼자 산다]]》 || 무지개 라이브[* 212회 2017년07월07일방송. 신한류스타의 이중생활, 똥밍아웃, 시리얼먹방, [[건어물녀|건어물]], 백수삼촌 등극, 인어왕자, [[올드보이(2003)|올드보이]]->만찢, 조각몸매 등.. 성훈의 재발견.~~다이어트 위해 수영장에서 50m를 잠영으로(엄청난 폐활량)~~시청률 두자리수 ~~2부 수도권기준10.1%~~달성... 214회 여름 나래 학교1편~~정모~~ 2017년07월21일방송. 성미~~어깨 깡패, 비율 깡패~~ 풀장착하고 웨이크 보드를 탔다.~~멋짐 풀풀~~ 다른 출연자들에게 원포인트 레슨~~[[이시언]]웨이크 보드 타기 성공..~~을 했고 장비 셋팅도 도와줬다.~~웨이크 보드 강사를 해도 될듯.~~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3%...215회 여름 나래 학교2편 2017년07월28일방송. 1시간씩 전복을 꼼꼼히 씻는가 하면 산낙지를 ~~성난~~팔근육으로 다져 낙지 탕탕이를 만들었다. 식사후 [[박나래]]팀과 [[한혜진(모델)|한혜진]]팀으로 나누어 퀴즈를 푸는데 성훈이 '나 학교 안 다녔어'라고해 미취학 성훈이 됐다.~~헉~~ 벌칙으로 폐교 화장실에서 인증샷을 찍는데 그와중에 얼짱각도 맞춰 꽃미모 셀카를 찍고 나와 등뒤에서 느껴진 인기척때문에 주저앉아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5얼 등극. 헉~~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0.2%... 217회 2017년08월11일방송. 실내서핑장을 찾은 성훈은 두번째 시도만에 중심잡는데 성공..이후 만화방에가서 짜장라면, 김치볶음밥, 라면, 스*마요볶음밥, 핫도그, 미숫가루를 먹다가 관장님께 들켜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 2부 수도권기준 11.9% 전국기준11.0%] ||
          * 배우 자체가 진지한 분위기의 정극이나 사극보다는 밝고 가벼운 로코나 일상물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평이 많다. 특이하게도 이는 역대 임성한이 발탁한 자배우들과는 확연한 차이점.[* [[김성민(1973)|김성민]], [[이태곤]], [[오창석(배우)|오창석]], [[서하준(배우)|서하준]], [[강은탁]] 등 성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정극을 위주로 활동하는 중. 이는 신기생뎐에서 상대역이었던 임수향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마찬가지로 임 작가가 발탁한 여배우들도 임수향을 제외하고 [[이다해]], [[윤정희]], [[전소민]], [[박하나]] 등등이 주로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활동한다.~~2017년 4월부터 [[전소민]]이 [[런닝맨]]에 고정이 되면서 임 작가가 발탁한 배우들중 다른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성훈과 임수향이 예외적인 케이스. 거기다 위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임성한이 발탁한 자배우들이 이후 좀처럼 막장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성훈만 예외적으로 정극, 사극, 느와르, 로코, 소설 원작 작품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광명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
  • 원우(가수) . . . . 23회 일치
         ||<#f5f5f5> '''가족''' ||[[부모님]], [[동생]]^^(1998년생)^^ ||
         ||<#f5f5f5> '''별명''' ||워누, 저너누[* 본명 "전원우"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 데뷔 전 17'S 다이어리에서 [[우지(세븐틴)|우지]]가 "저너누!"라고 표기한 적 있다.], 늘보[* 하단 [[원우#s-2.2|성격]]문단 참조. 성씨와 붙여 전늘보라고 부른다.], 여우[* 닮았다.], 전소녀, 전발라드[* [[세븐틴(아이돌)/힙합팀|힙합팀]] 소속 래퍼라는 본인의 포지션과는 다르게 평소 추천하고,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곡들은 모두 [[발라드]]라 붙은 별명. 줄여서 "전발라"라고도 한다.], 전원우 복덩어리[* 하단 [[원우#s-2.3|말장난]] 문단 참조.], 서가대 환청[* 데뷔 초 [[서울가요대상]]에서 [[장재인]]의 <환청>무대에 랩 피쳐링으로 올라간 적이 있는데,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저 잘생긴 사람을 호칭하고 싶은데 이름을 몰라 대신 붙여진 별명.], 불이나[* 데뷔곡 '아낀다' 중 원우의 파트 "나 지금 너 땜에 불이 나"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계기는 바로 앞의 환청과 같다.], 권원우[* 평소 티격태격하는 사이인 [[호시(세븐틴)|호시]]와 서로의 흉내를 자주 낸다.] ||
         182cm라는 장신에 팔, 다리가 상당히 길고 일자 쇄골이 도드라진 어깨가 넓은 체형이다. 원체 입이 짧은 탓에 극도로 마른 몸매까지 타고났는데, ~~[[도겸(세븐틴)|도겸]] : 앙상하다 앙상해...!~~ 본인이 직접 말하길 가족들이 모두 키가 크기 때문에 자신도 잠을 잘 잤으면 키가 더 컸을 것이라며, 지하 연습실~~메로나 감옥~~에서 오랜 기간 밤새 연습하느라 키가 여기서 멈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동생은 모델 지망생이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에서 가장 장신인 멤버는 아니지만 이 체형 때문에 팬들에게 모델적인 비주얼로 주목받고 있던 멤버 중 한 명이었는데, 그러던 [[2016년]] [[2월 6일]] 성 매거진 <[[GQ]] KOREA>와 단독 화보를 성사하며 이 피지컬이 빛을 발하게 된다.
         실존 인물 중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주지훈]], [[이준기]], [[송재림]], [[진이한]] 등은 대부분 [[모델]] 출신 혹은 경험이 있는 [[배우]]들인데,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우]] 역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소속사]]의 지원으로 데뷔 전부터 연기 수업을 받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의미한 부분이다. [[2016년]] <스타쇼360>에선 시민들을 상대로 여러 설문 조사했는데, 그중 "연기돌로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라는 주제에 [[원우]]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타이틀 곡]]에서는 3분 짓의 곡을 13명의 멤버들이 나눠 불러야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짧은 마디를 배정받을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초 음악 방송 시청자들에게 데뷔 곡 '아낀다'에서 "불이나 ,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 곡]] '만세'에서 "홍일점 "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탁월한 비주얼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연말 시상식 [[KBS]] [[서울가요대상]]에서도 [[킬미힐미]]의 OST를 부른 [[장재인]]의 "환청" 무대에 피처링 역할로 올라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서가대 환청"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획득한다.
         [[원우]]의 말장난 중 팬들에게 대표작 취급을 받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히 언급되는 것이 있는데, 때는 [[2016년]] 초 어느 날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 방송 중에 일어났다. [[에스쿱스]]가 "전복"으로 2행시를 시도하며 "전"에 전원우!를 외치자 뒤에 있던 [[원우]]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https://youtu.be/cMUVRqNqYQ0|"복덩어리이이잌!!!!!!!"]]를 외치며 2행시를 가로 채 "'''전'''원우 '''복'''덩어리"로 완성한 것. 이 2행시는 섬 생활을 모두 끝내고 난 후 인터뷰에서 [[호시(세븐틴)|호시]]가 가장 기억에 는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으며, ~~[[승관]] : 저는 솔직히 별로.. / [[호시(세븐틴)|호시]] : 야 완전 핵이었어 그거..~~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겨 곧바로 [[원우]]의 별명이 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방송 내용 중 여서도에서 첫날밤을 지낸 뒤 [[에스쿱스]]가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기상!!"을 외치며 멤버들을 깨우자 [[https://youtu.be/GWN7r-1tKv4|"우리 지금 기상이야? 기상청 들어가 봐. 기상 예보를 보면서 기상청에서 기상하게"]]라고 중얼거린 장면도 유명하다.
          * [[2016년]] [[2월 6일]] 성 매거진 <[[GQ]] KOREA> 3월호 단독 화보 - [[http://www.gqkorea.co.kr/2016/02/23/몸과-몸-세븐틴-원우/|#몸과 몸, 세븐틴 원우]][* 다양한 직업군의 시리즈 화보 가운데 "아이돌 대표'''로 단독 촬영.]
          [[원우]]가 경기안산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 친구들과 여미르 축제에 참가해 [[비]]의 '레이니즘'을 췄던 것이 영상으로 아 데뷔 후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영상 속 [[원우]]의 어마어마한 춤 실력(...)과 ~~[[우지(세븐틴)|우지]] : 정말 머신처럼...~~ 이를 능가하는 편집 방식[* 이 편집은 팔룡중 기술가정 선생님이 직접 하셨다고 한다.....]이 합쳐져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극강의 민망함을 자랑하는 이 영상은 [[2015년]] 10월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데뷔 한 직후 음악 방송 [[THE SHOW|더쇼]]로 인해 처음 전파를 탔으며 이후 각종 방송에서 잊혀질만하면 개그 기믹으로 다시금 등장해 뗄래야 뗄 수 없는 [[원우]]의 한 부분이 되었다....[[https://youtu.be/9W3yi0YGUEQ|#리허설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Y4NjIlZchY|#본무대]]
          * 창원 마산에서 음악 학원을 다니며 [[https://youtu.be/dxZmBhaC9Dw|기타를 배웠을 때의 영상]]이 아직도 아있다.
          * 점프력이 다르다. 177cm의 [[호시(세븐틴)|호시]]를 도움닫기 없이 그냥 뛰어넘거나 책상도 손으로 집지 않고 뛰어넘어 곧바로 다음 안무 동작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이는 아무래도 몸이 가볍기 때문인 듯 하다. 데뷔 전 [[세븐틴TV]]에서는 10명도 넘는 멤버들 가운데 멀리뛰기로 여러 차례 1등을 했던 전적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https://youtu.be/QoCypgmIvxQ|영상]] 참조.
          * [[2016년]] <스타쇼360>에 출연해 즉석에서 [[https://youtu.be/0HUrGgW8020?t=12s|나쁜 자 연기]]를 한 적있다. 데뷔 전 연기 수업을 괜히 받은 게 아님을 증명하듯 막힘없는 대사처리로 당시 자리해 있던 멤버들과 MC가 모두 감탄했으며 ~~[[승관]] : 야 이 나쁜놈아아아악!!!1~~ 연기 호흡을 맞추던 [[I.O.I]]멤버 [[소혜]]도 잠시동안 몰입해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지었다. 이후 [[2018년]] [[주간아이돌]]에서도 [[https://youtu.be/GXgGsySxZ1E|얼굴 하나로 단어를 표현]]해 탁월한 표정 연기를 멤버들과 MC에게 인정받았다.
          * 상당한 자기애에 비해 셀카를 굉장히 못 찍는다. [[2015년]] 데뷔 직후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공식 [[트위터]] 계정에 [[https://twitter.com/pledis_17/status/604851065066905600|"셀카 찍는 법 좀 알려주세요ㅜ"]]라는 내용으로 사진 한 장이 올라왔는데, 이 사진 외에는 모든 사진들이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못을 자랑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셀카를 찍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길 "화면에 얼굴만 나오면 그냥 그대로 찍는다."라고 한다. 최근 동갑내기이자 팀 내에서 셀카를 잘 찍기로 유명한 [[준(세븐틴)|준]]에게 셀카 강습을 받았다. [[준(세븐틴)|준]]은 [[원우]]가 셀카를 찍을 때 얼굴이 화면 밖으로 탈출하려고 한다며 무척 답답해했다.
          * 해산물을 못 먹는다. --[[호시(세븐틴)|호시]]: 걔는 해물을 못 먹어요. 그래서 새우깡도 안 먹는 애예요.-- 알레르기는 아닌데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심하게 느껴져 꺼려하는듯. [[세븐틴TV]]에서 이와 관련해 [[호시(세븐틴)|호시]]가 에피소드를 밝힌 적 있는데, 함께 식사를 하려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숯불구이집을 보고 "[[원우]]야, 저기 숯불구이집 있다."라고 제안했더니 [[원우]]가 [[https://youtu.be/oKyl9VbIPYY?t=7m32s|"저기 앞에 글씨 안 보이냐? 생태 동태 숯불구이 집이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생선초밥을 먹어야 하는 게임에서는 [[에스쿱스]]가 대신 [[원우]] 몫까지 먹어주기도 했으며 [[2016년]] [[12월 29일]] [[양자쇼]]에선 연어회를 먹어야 했을 때는 연어를 빼고 밥만 먹기도 했다.멤버들과 타꼬야끼를 먹었을때도 문어를 빼고 먹었다고한다.
          * 이 때문에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에서 여서도에 갇힌 [[원우]]는 밭을 일구며 "텃밭 요정"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해 주목을 받았다. 해산물을 전혀 먹지 못해 ~~살아기 위해서인지 구운 생선은 조금이나마 먹는 모습을 보였다~~ [[원우]] 나름대로 살아고자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해 먹으려고 했는데, 텃밭 요정이 정작 채소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얘가 시금치인가?-- 하루는 [[승관]]을 비롯한 멤버들이 화분에 매달린 귤을 따 먹고 싶다며 탐을 내자 [[https://youtu.be/ukPeD8qPzZw|"어떻게 그렇게 작은 애를 먹냐"]] 하고 면박을 주더니, 이 귤을 사수하기 위해 멤버들을 향한 경고 표시로 조그만 모종삽을 텃밭에 폭 박아 두기도 했다. ~~밭에 못 들어오게 경고를 해놔야겟서~~
          * 연습생 시절 야채 과자를 밥 대신 먹었을 정도로 좋아했으나 지금은 끊었다고 한다. --[[승관]]은 박수까지 쳤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담긴 [[호시(세븐틴)|호시]]의 일기가 아직 [[https://www.facebook.com/notes/seventeen/17s-diary-%EC%88%9C%EC%98%81-20130715-%EC%95%BC%EC%B1%84%EA%B3%BC%EC%9E%90-%EB%8C%80%EC%8B%A0-%EC%83%88%EC%9A%B0%EA%B3%BC%EC%9E%90%EB%8A%94-%EC%96%B4%EB%95%8C/198383483657793/|세븐틴 공식 페이스북]]에 아있다.
  • 이경실 . . . . 23회 일치
         ||<#595959><:> {{{#FFFFFF ''' 가족 ''' }}} ||<(> 편 최명호, 언니 이경옥 1962년생. 강구의회 기초의원으로 2012년 서울특별시 강구 의회 부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딸 손수아[* 2016 슈퍼모델 선발대회 본선에 진출하였다.], 아들 손보승[* [[MBC]] 주말 드라마였던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에 출연함 ] ||
         [[문화방송|MBC]] 1기 공채 코미디언. [[1966년]] [[2월 10일]]생으로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87년 제 1회 MBC TV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원래 코미디언이 될 생각은 없었고 배우를 지망했는데, 4학년 2학기 등록금이 필요하던 차에 열린 개그 콘테스트의 대상 상금이 100만원이란 얘길 듣고 응시한다. 하지만 상금이 70만원인 금상을 타게 되고, 불로소득세 33%를 떼고 지인들에게 수상 턱을 내고나니 는 돈이 없어서 그대로 MBC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시트콤]] 전성기의 서막을 열었던 인기 시트콤 [[자셋 여자셋]]에서는 [[노처녀]] 여교수 역할을 맡아 연기력도 보여주었다.
         [[이성미]], [[박미선]], [[조영]] 등과 가깝다. 거센 성격으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꺼리거나 두려워한다. 무서운 [[군기반장]]으로 유명한데다 선배인 이성미조차도 예전에는 이경실을 피했다가 [[이홍렬]]의 중재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역시 군기반장인데다 선배인 [[이경규]]조차도 유독 그녀에겐 한 수 접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이경실보다 연상에 [[선배]]들이다. [[박명수]] 역시 그녀를 두려워한다. 박명수는 자신보다 선배인 사람들 앞에서는 특유의 사나운 캐릭터를 못 살려서 얼어붙는다. [[http://youtu.be/GNautvauUcA?t=4m52s|요즘은 호통 컨셉 믿고 떨면서도 들이댈 때도 있다]]. 예전에 이경실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박명수는 웬만해서는 이경실과 방송을 잘 안 하려고 한다. [[세바퀴]]에서 상황극도 해봤지만, 박명수가 시작부터 굳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동갑이지만 5년 후배인 [[지석진]]도 이경실을 굉장히 어려워 한다.[* 사실상 자들은 [[군대]] 문제 때문에라도 동갑내기 여자들보다 [[기수]]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김구라]]조차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거의 최초로 기를 못 편 게스트다.[* 다만, 일상생활까지 포함하면 이순재의 큰아들에게도 독설하다 맞을 뻔했다고 한다.]
         전 편과 슬하에 1 1녀를 두었으나,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전 편 손모씨에게 [[2003년]]도에 야구 방망이로 복부를 마구 난타당해 이경실은 입원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병문안을 갔는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니?"라고 했다. 다행히 김지선은 --애를 쑴풍쑴풍 낳으며-- 잘 살고 있지만... 前 편과 함께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지기도 했었던 터라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이경실을 브라운관에서 못 본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경실에게 의사를 사칭한 다음 몰래 접근하여 인터뷰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취재윤리를 무시한 행동에 문제의 신문사의 주주였던 모 조간신문에서 이를 비판하는 만평을 보냈을정도. 다만,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고, 사업가--단란주점 사장--인 최모씨와 재혼하여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으나... 후술할 내용 중 [[JTBC]] '[[유자식 상팔자]]' 등에 자녀들과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편이 주말마다 점심을 해준다는 등(!) 과거의 시끄러운 사건과는 별개로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었다...
         === 이경실 편 성추행 혐의 ===
         2015년 8월경 현 편이 지인의 아내를 차 안에서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처음엔 그저 개그우먼의 편으로만 알려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편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이경실도 나서서 '편의 결백을 믿는다,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편인 최씨는 1차 공판에서 혐의를 완전히 인정했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에선 '범죄 사실을 인정한 게 아니라 만취사실 만을 인정한 것'이라고 교묘한 거짓말로 언플을 했지만... 그리고 2차 공판에서도 공소사실을 고스란히 [[http://news.joins.com/article/19270472|인정했다]].
         검찰이 편 최 모씨에게 '''신상정보공개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와 동시에 도주의 우려로 인해 법정구속이 결정됐다. 하지만 이경실 편과 검찰측 모두 지난 5일 1심 선고에 불복해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또한 국선 변호사까지 선임하였다고 전해진다.
         === 편에게 성추행 당한 피해자 명예훼손 벌금 ===
         2017년 5월 보도에 따르면, 방송인 이경실은 페이스북에 편이 성추행한 성범죄 피해자를 비방한 글을 작성해서 고소당해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http://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001&aid=0009261738|기사]]
          * [[자셋 여자셋]]
  • 정종원 . . . . 23회 일치
         |출생지 = {{국기나라|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일동]]
         |자녀 = [[정운철]] (장) <br /> [[정운익]] (차)
         |주요경력 = [[조흥은행]] 5대 행장 <br /> 평안도 성천[[군수]] <br /> 평안도 순천 [[군수]]
         '''정종원''' (1896년 5월 22일 ~ 1977년 3월12일)은 [[조흥은행]] 5대 행장이다. 동아일보 창간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대한아이스하키협회 4대 회장도 역임했다. 1960년 불교단체인 [[법시사]]를 창립한뒤 1990년까지 발행된 불교 전문 잡지 [[법시]]의 초대 발행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북도에서 공직생활을 거쳐 평안도에서 군수를 역임했다. 그의 부친은 [[정재학]] 대구은행 - 경상합동은행 행장으로 일제하 27년간 행장 직을 유지했다. 또한 그의 조카인 [[정운용]]은 해방 후 첫 조흥은행 행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정종원은 잠시 부친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관직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19년간 경상도 일대와 평안도에서 경찰 요직을 거쳤다. 이어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평안도에서 성천군수, 순천군수를 역임하고 해방을 맞이했다.
         정종원은 구한말 경기여고와 서울 사범대 출신의 교사였던 부인 신양정(신양숙)과 슬하에 2 4녀를 뒀다. 두 사람 다 재혼이고 전 배우자들과의 사이에 자식들이 있다. 신양정은 정종원 사후 [[법시사]] 이사장과 법시 발행인을 역임했다.<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33</ref> 장 [[정운철]]은 하와이 최연소 부영사와 일본 고베 총영사를 역임했다. 정운철은 두산그룹 [[박용성]]과 동서 지간이다. 정운철과 박용성의 장인은 삼성물산 대표를 역임한 [[김선필]]이다.
         == 북이산가족 위기 ==
         1945년 815해방 당시 정종원은 평안도 순천군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러나 좌익세력은 그를 처단하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홀몸으로 밤을 틈타 구사일생으로 월했다. 그러나 부인과 2 4녀가 겨졌다.
         이로써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서 27년갖 은행장을 역임한 정재학은 3 정종원, 장손 정운용을 조흥은행장으로 배출하게 됐다. 3대에 걸쳐 은행장을 낸 사례는 [[정재학]] 가문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대구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대한 정씨 가문의 지분은 조흥은행 출범 당시 조흥은행 주식으로 변경됐다. 정종원과 정운용은 조흥은행 대주주로 게 됐다.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과 [[정운용]](맏손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 씨 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상합동은행]](전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 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봉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 씨 가문은 [[민덕기]](조선맥주)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 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 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 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가게 됐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 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한 바 있다.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
         이병철은 정재학의 3이자 조흥은행장인 정종원과 다각도로 교류하고 있었고 언론을 통해 정씨 가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ref>동아일보 1957년 6월20일 1면 이병철씨 조은주 양도 거부</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21일 3면 은행주 불하 경위와 금후 문제점</ref> 이병철은 1956~1957년 진행된 은행 [[귀속주]] 불하과정에서 민 씨가문과 정씨가문 간 지분경쟁에서 정씨측에 힘을 실어줬다.
         [[분류:1896년 태어]][[분류:1977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니혼 대학 동문]]
  • 조진호 (축구인) . . . . 23회 일치
         |사망지=[[대한민국]] [[경상도]]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상무]] (군복무)<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br />[[성 FC|성 일화 천마]]
         |감독 클럽 =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대행)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코치) <br /> [[전 드래곤즈]] (코치) <br /> [[대전 시티즌]] (수석 코치) <br /> [[대전 시티즌]] (대행) <br /> [[대전 시티즌]] <br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br>[[부산 아이파크]]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 대한화제컵 포항과의 A조 2차전서 멀티골, 연장전 골든골을 기록하며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으며,5월 5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전 드래곤즈]]와의 대회 결승전서 연장 전반 4분 [[전경준]]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해 골을 기록하며 부천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2001년]] [[성 FC|성 일화]]로 이적했지만, 2년간 27경기 2골 1어시스트에 그쳤으며,우측 무릎 전방 십자인대 부상 재발로 [[2002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 시절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11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정협]]을 비롯한 공격 자원을 앞세워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FA컵 2016|FA컵]]에서는 [[FC 서울]]과 [[전 드래곤즈]] 등의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진출하였지만, [[10월 8일]] 리그 1위 [[경 FC]]전에서 패하면서 사실상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조진호 감독 사망 이후 [[K리그]]에 소속된 각 구단들 또한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메세지를 올렸으며, 특히 [[경 FC]]는 추모에 더해 '그동안 멋진 경쟁에 감사했다'는 메세지를 추가로 겼다.
         {{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73년 태어]][[분류:2017년 죽음]][[분류:함안 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성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감독]][[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감독]][[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감독]][[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코칭스태프]][[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코칭스태프]][[분류: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코칭스태프]]
  • 추미애 . . . . 23회 일치
         ||<#1870B9> '''{{{#FFFFFF 가족}}}''' ||<(> [[배우자]] 서성환, [[자녀]] 1 2녀 ||
         1958년 [[경상북도]] [[달성군]](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다. 대구산초등학교, 구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서 변호사는 호 출신인데, 당시만 해도 영과 호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때라 영의 집에서 호 사위를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이에 추미애의 집안에서는 결혼을 반대하였지만, 추미애는 이를 무릅쓰고 결혼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33635|#]] 이러한 까닭에 언론에서는 추미애를 가리켜, 그리고 추미애 스스로도 '[[대구시|대구]]의 딸, [[전라도|호]]의 며느리'라고 부른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추미애를 정계에 영입한 이후 "호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60827036600001&did=1195m|#]]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9&aid=0003792967|#]] 슬하에는 3명[* 1 2녀]의 자녀가 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다. 판사 시절 추미애는 ‘까칠한 여성 판사’로 통했다고 한다. 당시는 [[군사정권|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수사 당국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영장을 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하기 일쑤였다.
          * [[1971년]] 대구산초등학교 졸업
          * [[1974년]] 구여자중학교[* 현 구중학교] 졸업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편인 서성환 씨는 아내와는 달리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법무법인을 설립해서 본업인 변호사 업무를 행하며 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하게 활동하고 있다. 아내인 추미애에 대한 기본적인 외조나 선거 캠프 등에서 실무 작업으로 참여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외 행사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대한민국 불교계의 대원로였던 [[성철]] 스님과 대면한 적이 있다. 그것도 2번씩이나. 이게 대단한 이유가 뭔가 하면 [[성철]] 스님은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고 시켰는데, 추미애는 실제로 3,000배를 했기 때문. 참고로 [[박정희]]도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 성철 스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성철 스님이 같은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만을 포기했었다.
          * 2017년 [[더불어민주당]]의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는 [[아재개그|줌마개그]]를 선보였다. 호권 경선 대회 때 개표 발표를 맡았던 [[홍재형]]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은 후보의 이름이나 총 득표율을 잘못 말하는 실수를 여러번 하였다. 이에 이름이 잘못 불리워진 후보 측에서 반발이 생기자 이후 충청권 경선 대회 때 자신의 말 실수를 공식 사과했다. 이후 추미애는 홍재형 위원장의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말하며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애미가 되겠지요?"라는 농담을 했다(...).
          * 2018년 3월,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당시 한창이던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미투 운동]]에 대해 "대한민국 성들 중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거다."고 말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3132439|#]] 이에 대해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된 성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도, 대한민국의 성들을 싸잡아 엮어버린 부적절한 발언이란 비판을 받았다.
  • 김석훈(탤런트) . . . . 22회 일치
         ||<bgcolor=#3B485A> {{{#FFFFFF '''가족'''}}} ||<(> [[무녀독]] ||
         ||<bgcolor=#3B485A> {{{#FFFFFF '''학력'''}}} ||<(> [[금리토종순대국]] ||
         원래 [[금리토종순대국]](구 가평예전)에 들어가 연극영화를 전공했었다. 본인의 회고에서 금리토종순대국는 실전 연기와 실기를 충실히 단련해 지속적으로 익히는 점에서 최고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머물지 않고 연기내면의 깊이와 표현력을 높이는 한 방식인 이론 탐구도 갈구해 [[금리토종순대국]]에 입학한다. 입학 후 연기이론에 정통해 진 것 외에도 철학과 심리 등 인문계통 학문을 여럿 접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했다. 거기다 학문소양도 차근차근히 다져, 자신의 연기로도 폭 넓게 반영 하고 배울 수 있어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배우에게는 인간에 대한 관심 및 인간심리, 각종 군상들을 다각도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다지는 일이 필수다. 이런 사안을 본인이 이미 그 중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본격적인 영상영역활동 중 하나인 TV출연은 정세호PD와 국립극단에서의 강력한 권고로 출연을 하게 되었다. 국립극단에서는 극단의 인지도 향상과 활력을 위해, 방송국에서는 드라마에서의 국면 전환과 참신한 인재발굴을 위한다는 점이 서로 맞아들어간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명의 극단배우에서 데뷔작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한순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홍길동이다. 소재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드라마다. 거기에 무명은 둘째치고 TV 경력이 없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셈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당시 신인이었던 김석훈이 맡았던 첫 작품임이었지만, 캐릭터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다. SBS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에 신선한 배우를 캐스팅한 사례가 또 있었으니 바로 [[임꺽정]].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32세 [[정흥채]]는 브라운관 데뷔작을 타이틀롤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 [[김희선]] 주연 드라마 [[토마토(드라마)|토마토]]에서 김희선 상대역인 자 주연배우가 되었으니... 그리고 둘 다 최고의 시청률(50%를 넘겼다!)을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한다.'''단 1년 만에.''' 엄청난 향상이다. 김희선이나 김석훈이나 당시 비주얼 면에서도 최고를 달렸던 시기.[* 지금도 두 배우는 비주얼이 변함없이 최고다.]
         말끔한 이목구비의 젠틀한 [[미]]에 속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이다. [[일본]]의 약간 여리여리한 이미지의 자배우들과 닮아보이지만, 여림에만 갇힌 것이 아닌 이지적인 특유의 외유내강이다. 이미지는 선하면서도 강단성이 동시에 있고 연기에서도 관련배역을 맡았을 때 온유함과 강인함이 함께 배어난다.
         성마티니공연도 관객들에게 매끄럽고 풍성한 진행이라 호평을 받고 있다.
         [[금리토종순대국]]에서 연기 강의도 하는데, 제자인 [[임수향]]은 김석훈의 강의가 기억에 는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로 데뷔하고 활동하는 데 있어 부딪히는 각종 난관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해주고 조언을 아낌없이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제자인 [[진세연]]도 같은 언급을 하였다.
         || 2001년 || SBS || 단막극 과 여 - 가위손 || 기석 ||
         || 2005년 || MBC || 비밀녀 || 김준우 ||
          * 성 마티네 콘서트 (클래식 공연)
          * 1999년 SBS 《토요스타클럽 - 과여》
          * [[1998년]] [[SBS 연기대상]] 자신인상 《홍길동》
          * [[1999년]]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자 우수연기상 《토마토》
          * [[2004년]] [[MBC 연기대상]] 자 우수연기상 《한강수타령》
          * [[2009년]]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천추태후》
          * [[2011년]]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반짝반짝 빛나는》
          * [[2013년]] [[KBS 연기대상]] 일일극부문 자 우수연기상 《루비반지》
         [[분류:한국 배우]][[분류:1972년 출생]][[분류:가평군 출신 인물]][[분류:1996년 데뷔]]
  • 김숙자 (1389년) . . . . 22회 일치
         [[1414년]](태종 14) 봄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417년]](태종 17) 봄 중성균시(中成均試)에 일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그 해의 회시(會試)에는 낙방하였다.<ref>佔畢齋集彝尊錄 佔畢齋集彝尊錄 (上) 子通訓大夫前善山都護府使宗直撰, 先公紀年第二</ref> [[1419년]](세종 1) [[안동]][[향시]](安東鄕試)에 제2등으로 합격하여 [[한양]]으로 상경, [[1419년]](세종 1) [[과거 제도|식년 문과]]에 병과 1등으로 급제하였다. [[장사랑]] 권지[[성균관]]학유에 임명되거 고향으로 돌아왔다. [[1421년]] 봄 학유에 다시 임명되고 이듬해 [[1월]] [[한양]]으로 올라가 관직을 시작하였고, 사관(史官)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처인 한씨와 이혼하였다.<ref name="ginyon"/> 전처 한씨의 자매의 편 김주(金宙)는 의술 재주가 있었는데, 김주는 성주목사 이상선(李相善)에게 그가 [[과거 제도|과거]]에 합격한 후 아내를 출처했다고 고하였고, 이는 그대로 [[예문관]]에 보고되었다.<ref name="ginyon"/>
         [[1440년]](세종 22) [[선교랑]], 1441년(세종 23) [[1월]] 김해교수관 노호(盧浩)와 보직상환 변경되어 [[김해]]로 내려갔다. 이듬해 2월 부령(南部令)이 되었다가 특별히 동반직을 받아 승의교위(承義校尉)에 제수되고,중군섭부사직 겸 성균관주부(中軍攝副司直兼成均注簿),학교수관(南學校授官)이 되었다가 그해 11월 승훈랑(承訓郞)이 되어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나갔다. [[1445년]] [[2월]] 승의랑이 되었다가, 지방의 수령들의 직급을 1계급씩 강하한다는 명에 따라 강임되었다. [[1447년]](세종 29) 10월 다시 승의랑으로 환급되고, 11월에 [[성균관]]주부 겸 학교수관, [[1448년]] [[7월]] [[교서관]]교리가 되었다가 한달만에 전제경차관(田制敬差官)에 임명되어 [[전라도]] [[원]], [[옥과]], [[장흥]], [[순천]], [[장흥]] 등을 순시하고 그해 [[10월]]에 봉훈랑으로 승진한 뒤, 12월에 도성으로 되돌아왔다.<ref name="ginyon"/> [[1450년]](문종 즉위) [[8월 13일]] 지풍기군사(知豊基郡事)로 발령, 부임하였다.
         효성이 지극해 『소학』의 법도를 따라서 어버이를 모셨다. 그리고 을 가르치기를 권태롭게 여기지 않아, 친상(親喪) 중에 여막 곁에 서재를 만들어 조석을 올린 뒤에 가르치기까지 해, 학업을 받는 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646년]](인조 24) 선산의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되었고, [[1786년]](정조 10) 김광형(金光泂)을 소두로 하는 [[경상]], [[충청]], 원춘(原春), [[경기도]] 등 4도 유생의 사액 하사 건의로 이듬해 사액이 내려졌다. [[1905년]](광무 8) 설립된 거창 상의 일원정 (一源亭)에는 아들 [[김종직]] 및 스승 [[길재]], [[정몽주]], 기타 [[김굉필]], [[정여창]] 등과 같이 배향되었다.
         == 영사림의 발흥 ==
         김숙자는 스승 길재의 가르침에 확신했고, 그걸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종직]]은 아버지 김숙자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지켰다. 어릴 때부터 책 목록을 정해 놓고, 그 순서대로 읽는 습관을 따랐다고 한다. ‘소학’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실천 강조 학풍은 김숙자-[[김종직]]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 사림 사이에 일반적인 것이 될 정도로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뒤에 영사림파의 큰 학자로 드러난 [[김굉필]]은 스스로 ‘소학동자’라고 지칭하면서 30세까지 ‘소학’에만 천착했을 정도였다. [[길재]]에서 김숙자를 거쳐 [[김종직]]에 이르는 [[정주학]](程朱學)의 학통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길재]]는 많은 제자를 길러 냈는데, 가장 먼저 입지를 세운 이가 김숙자였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속속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세조 때부터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 등 여러 신진 사류가 과거 급제 등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른바 ‘영사림파 ’의 등장이었다. 이후에 [[이중환]]이 ‘[[택리지]]’를 통해 “조선 인재의 반은 영에서 나왔고, 영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김숙자 이후에 ‘영사림파 ’의 발흥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628.010110742170001 영사림의 기반을 구축한 김숙자(金叔滋)] 영일보(2013.06.28) 기사 참조</ref>
         **** 전처 : 한변(韓變)의 딸(21녀)
         ***** 장 : 김종보(金宗輔)(만산현감)
         **** 후처 : 박홍신의 딸 (3 3녀)
         ***** 삼 : 김종석(金宗碩)
         ***** 사(四男):김종유(金宗裕)
         ***** 오(五男): [[김종직]](金宗直)점필재
         [[분류:1389년 태어]][[분류:1456년 죽음]][[분류:고려 사람]][[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
  • 남성진 . . . . 22회 일치
         |이름 = 일우
         |본명 = 철우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양주시]]
         |부모 = [[일우]](부), [[김지영 (1974년)]](모)
         |자녀 = 경목(아들)
         |친척 = [[김태한 (뮤지컬 배우)|김태한]](처)
         '''성진'''(南誠軫, [[본명]]: 지헌, [[1969년]] [[12월 31일]] ~ )은 [[한국]]의 자 [[배우]]이다.
         * 아버지 : [[일우]]
         *** 아들 : 경목
         * 1995년~2002년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 김영
         * 1997년 [[MBC]] 미니시리즈 《[[영웅신화]]》 ... 호진 역
         * 2015년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 (드라마)|징비록]]》 ... [[이덕형 (1561년)|이덕형]]<ref>[http://m.news.nate.com/view/20150105n04221 성진, '정도전' 이어 '징비록' 이덕형 캐스팅]</ref> 역
         * 2017년 [[E채널]] 《별거가 별거냐 시즌 1》, 《별거가 별거냐 시즌 2》 [[성진/김용림]] 출연
         * 2008년 [[SBS]] 러브FM 《김지영, 성진의 좋아좋아》 - 진행
         [[분류:영양 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양주시 출신]][[분류:1930년 태어]]
  • 백일섭 . . . . 22회 일치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로 초청받은 연예인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백일섭이 극 중에서 취중에 독특하게 부르는 옛 노래〈홍도야 우지마라〉가 다시 인기를 끈 일이 유명하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11010100691636&type=1 박원숙 정혜선 백일섭, 맛깔스런 연기에 "역시!"]《머니투데이 스타》</ref> 가수 [[조영]]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1969년]] [[MBC]] 일일연속극 《[[개구리 편]]》
         * [[1994년]] [[KBS2]] 주말연속극 《[[자는 외로워]]》 ... 강달호 역
         * [[1995년]] [[KBS2]] 주간연속극 《[[간 큰 자]]》
         * [[1998년]] ~ [[2000년]] [[MBC]] 주간연속극 《[[육매]]》 ... 함북쌀상회 주인 원영달 역
         * [[2013년]] [[SBS]] 주말 특별기획 《[[결혼의 여신]]》 ... 송길 역
         * [[1980년]] 《[[자 가정부]]》
         * [[1984년]] 《[[내가 마지막 본 흥]]》 ... 덕수 역
         * [[2005년]] 《[[B형 자친구]]》 ... 영빈 부 역
         * [[2007년]] 《[[만의 광장]]》 ... 영탄 부 역(특별출연)
         * [[2017년]] [[KBS2]] 《[[살림하는 자들]]》
         2021년예능프로 살림하는녀들 시즌1 백 며느리 경하 출연
         * [[1975년]]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1996년]]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연기상
         | 제목 =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상》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연기}}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우주연}}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6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창극 배우]][[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슈가(방탄소년단) . . . . 22회 일치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상반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상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동생들이 잘못을 하면 잔소리와 훈육은 본인의 몫이라고. --[[진(방탄소년단)|맏내]]는... 다들 아시잖아요-- 멤버들 또한 실제 성격도 무뚝뚝하고 쿨한 데다 제법 무심한 편이라고 증언했다. 실제 지금까지의 성장 환경 자체도 자들 사이에서만 커 왔기에 자를 잘 다룬다.
         가끔 매우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 보인다. --정말 소시민 같다-- <[[O!RUL8,2?]]>에 수록된 If I Ruled The World 슈가 파트가 대표적인 예. --세계가 자기 건데도 참... 소박하다 이 자-- '주식과 도박 그딴 건 안 하고파' 라는 가사처럼 작은 내기 --도박--도 꺼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BON VOYAGE2 5회에서 멤버들의 내기 경기가 끝난 후 슈가가 한 말은 "여러분들 현실에 만족하세요! 여러분들 한방은 없습니다! 제 인생의 지론이에요!"
         무뚝뚝하고 에게 관심 없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뒤에서 챙겨주는 다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다 자신의 하수로 부릴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의외로 집안 막내다운 귀여운 모습을 보인다던가, 무기력하고 세상만사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멤버들끼리의 자체 콘텐츠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예능에서 짓궂은 말이 나오면 능글맞게 상황을 피해가는 등, 오디오 지분률이 가장 높은 멤버이기도 하다. --멤버 피셜 말 많은 할배-- 때문에 팬들에게 슈가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 --굳이 정의하자면 예민하고 나른하며 만사 귀찮아하지만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고양이 정도--
         BON VOYAGE season 1에서 베르겐 숙소에서 홀로 아 작업하던 것이 바로 이 곡이다.
         슈가는 해당 곡으로 인해 가수 [[SURAN|수란]]과 인연이 되어, 훗날 수란에게 오늘 취하면이란 곡을 선물하였고, 이 곡은 슈가와 수란에게 중요한 커리어로 게 된다. 후일 수란 역시 이 곡에 대해 '정말 아름다운 곡'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http://www.vlive.tv/video/18452|#]]
         4주년 페스타에서 [[진(방탄소년단)|진]]과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의 피처링 버전이 공개되었다.[[https://soundcloud.com/bangtan/sofarawayfesta|#]] 피처링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약간 달라졌다. 슈가는 오히려 이 버전의 분위기가 원래 의도했던 곡 스타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밝혔다. [[http://btsblog.ibighit.com/m/365|슈가가 직접 긴 코멘트]]
          *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 [[RM]]과 다른 연습생들 두 명이 아디다스 삼선 트레이닝복 각각 색, 초록색, 검은색을 입고 있던 탓에 '나도 저걸 사야 되는구나' 싶어서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샀다고 한다.
          * 2 중 막내이기에 집안에서는 애교 많은 딸래미 노릇을 했다고 한다. 또한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슈가에게 애칭으로 송월[* 아버님께서 부르시던 애칭으로 소나무 송에 달 월 자를 써서 풍류를 즐기라는 뜻으로 붙여 주셨다고 한다.]이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송월아" 하고 부르면 "응?" 하고 뒤돌아 본다고.
          * 은연중에 [[동 방언|경상도 사투리]]를 쓰기도 하는데, 데뷔 초에 비해 갈수록 [[사투리]]가 줄어들고 있다. 본인은 이제 사투리가 어색하다고 자주 언급. 연습생 시절에는 표준어를 익히기 위해 뉴스 대본을 따라 읽었다고 한다. 요즘도 멤버들과 대화할 때 흥분하면 사투리가 조금씩 나오긴 한다.
          * 2015년 기준, 밝은 머리색으로 컨셉을 잡은 것 같다. I NEED U 활동 때는 멤버들에겐 상한 딸기색이라 놀림받는 [*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나온 드립. [[https://youtu.be/PeDYlxJ11MM|링크]]] 연분홍색, 쩔어 활동 때는 금발, 그리고 [[10월 26일]] 기준으로 다시 연분홍색으로 염색했지만 일주일 만에 색이 다 빠졌다. [[화양연화 pt.2]] 컨셉 트레일러에서는 연한 연두색이 되었다. 연두색으로 머리를 하고 V앱 생방송에서 머리색도 네이버의 아들이라는 드립을 쳤다. 이렇듯 하도 탈색을 많이 한 나머지 팬들 사이에선 헤어 에센스를 선물해야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두피가 너무 아파 자신에게 탈모가 생기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한다. 2016년 4월에는 은발과 회색의 어딘가 즈음의 색깔로 컴백했다. 이에 화양연화 시리즈 활동 때는 앨범색과 머리색을 [[http://mblogthumb3.phinf.naver.net/20160322_90/okku0331_1458599396122c6SsD_JPEG/Fandom_14585693641861440083797.jpg?type=w420@2x|일부러 맞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모 인터뷰 포함 각종 방송에서 슈가 본인이 직접 아니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화양연화 pt.1]] 때는 노린 게 맞다고. 그리고 8월 16일 공개된 Agust D 뮤직비디오에서는 금발이 되었다. 팬들은 환호하면서도 머리카락이 가루가 되겠다며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2016년 [[WINGS|정규 2집]] 컴백 때 검은 머리로 돌아왔다.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본인도 뿌리염색을 계속 하지 않아도 된다며 만족해하는 인터뷰를 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DDeMRWF1k|#]]
          * [[화양연화 pt.2]] 콘서트(첫콘) 중 상자 무대에서 가사 실수를 했다. 내용은 "나같은 잘 '''만나면''' 후회하게 될 걸".[* 원래 가사는 '놓치면'.] --철벽-- 상당히 태연하게 뱉은 후 본인의 실수임을 눈치채고 웃는 모습이 포착됐다. [[https://m.youtube.com/watch?list=RD-1Wrp0Pcn74¶ms=OALAAQE%253D&v=-1Wrp0Pcn74|사실 이날 이 무대는 총체적 난국이었다고 한다.]]
          * 애창곡은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방탄밤을 비롯한 여러 영상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음이 올라가면 힘들어하는 듯. 그리고 [[https://youtu.be/yh9L9skRGqs|피아노를 칠 줄 안다!]] 매우 짧은 영상이지만 연주한 곡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흑건]]. 원래 미디과를 준비하던 터라 화성학 쪽도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음대 교수인 친척분이 페이스북을 통해 화성학이나 컴퓨터 음악장비, 프로그램에 관한 지식이 대학 교수인 자기 수준이었다고 인증했다.] 그리고 [[가요대제전]] 무대에서에서 짧게나마 [[https://youtu.be/ZKibO8tZyZw|'I NEED U']]를 연주했다. 본 무대에선 핸드 싱크를 했지만 [[https://twitter.com/BTS_twt/status/682607618355941377|트위터에 본인이 직접 연주한 버전을 공개했다]]. 그리고 스타쇼 360에 나온 ‘꽃미 방탄고등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나와 피아노를 쳤다. [[https://youtu.be/DhZuscK4FkM|영상]] [[방탄소년단]]이 광고 모델인 [[푸마(브랜드)|푸마]] 광고 영상에서도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피아노 칠 때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또한 BTS COMEBACKSHOW에서 즉석 연주를 보였다.
          * 2015년 12월 27일, [[일본]] [[고베]] 콘서트 시작 전 슈가와 [[뷔]]가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이로 인해 27일과 28일 예정되어 있던 일본 콘서트가 취소되고 2016년 3월로 미뤄졌다. 29일부터는 예정대로 스케줄을 소화했는데, 슈가는 이미 2013년에 [[충수염]]으로 인해 연말 가요제에 불참한 적이 있어서 스케줄을 빠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회사 측에 강력하게 밝힌 듯하다. 그리고 2016년 1월 초에 멤버 모두가 휴가를 받았을 때, 혼자 '''고베에 다녀왔다'''. 고베 콘서트 때의 일이 꽤 큰 죄책감으로 았던 듯. 다녀와서는 [[http://mblogthumb2.phinf.naver.net/20160808_117/dbswls231_1470634104836QpQ3I_JPEG/%C0%B1%B1%E2%B0%ED%BA%A3%C6%AE%C0%AD.jpg?type=w800|트위터에 장문의 글]]을 겼는데, 외국 팬들이 번역기를 쓸 것을 배려해 간단하고 짤막한 문체로 쓰여진 것이 눈에 띈다.
          라는 명언을 겼다(...)
          * 2016년 12월 20일, 숙소에서 방문턱에 걸려 넘어지며 귀를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무리한 운동을 삼가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모든 연말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고 덕분에 2016년 연말을 휴식을 취하며 보낸 듯하다. 당시에 긴 흔적들을 보면, 연말 무대를 생방송으로 챙겨보며 트위터에 멤버들 엽사를 찍어 올리거나,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등 나름 즐거워보인다.[[https://youtu.be/d4nyXF7zs4s|#]]
          * 쌈을 싸먹는 방식이 귀엽다. [[http://www.vlive.tv/video/5999?channelCode=FE619|6분 18초부터]] 상자 활동 당시, 방탄밤에서도 똑같이 쌈 싸먹는 법을 알려준 적도 있다.
          * 양날개를 담당하는 [[진(방탄소년단)|멤버]][[RM|들]]이 슈가가 본인들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슈가도 사실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다, 슈가는 거품이다[* 줄여서 슈블. 발음 주의. 콘서트에서 [[RM]]이 직접 지어 주었다.]를 외칠 때마다 자신은 그래도 들의 시선을 받을 정도로 못하지는 않는다며 진심으로 울컥하는 모습을 보인다.
          * 요리를 잘한다. Run BTS! ep.20에서 슈가를 주축으로 팀이 꾸려지기도 했으며 꽤나 까다로운 요리인 해물찜을 성공적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Run BTS! ep.36에서는 돈가스 김치 나베[* 정작 본인은 돈가스 김치 나베라는 요리를 살다살다 처음 들어 봤다고 한다.]를 맡아 요리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RM]]에 의하면 연동 나베집의 맛이 났다고.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22회 일치
         전투가 끝난 후, 소련군 전사자의 시신들을 확인하던 오를로프스키와 레베데예프에게 말라셴코가 찾아온다. 오를로프스키는 조카인 말라셴코의 활약을 칭찬하고 말라셴코는 머지않아 전 유럽의 사회주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말라셴코를 부대로 돌려보낸 후,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 같은이가 더 있었더라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에 오를로프스키는 전쟁이 빨리 끝나길 빈다는 말을 긴다.
         이제 안전하게 다리를 설치할 수 있다고 판단한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에게 서쪽에서 오는 미군의 반격을 막으라고 지시하고는 로마노프에게 무너진 다리를 확보하고 방어선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곧 미군이 무너진 다리를 탈환하기 위해 대공세를 벌일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 로마노프 중대는 초소를 설치하고 다리를 수리한다.
         버려진 가게에 앉아 있던 배넌 대위는 어머니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배넌의 [[의붓아버지]]인 얼이었다. [[베트 전쟁]] 참전자였던 얼은 [[시애틀]]을 지키지 못한 배넌을 친아버지가 봤다면 통곡했을거라면서 욕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시애틀 근교 고속도로 전투 이후, 소여 대대는 쪽으로 이동해 파인밸리라는 해안 마을에 도착한다. 원래 계획은 그곳에서 윌킨스 대령이 이끄는 오리건 주방위군 대대와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련군 공수부대가 파인밸리에 강하해 마을을 점거하고 있었다. 소여 대대의 장병들은 2~3일 동안 피곤한 몸을 움직여가며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현재 상황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중앙과 북쪽이 무너지자 파인밸리를 점거하고 있던 소련군들은 쪽의 TV 방송국으로 후퇴하고는 자신들과 미군 사이에 포격을 가한다. 소여는 파커에게 포격을 피해 숲으로 우회해서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고는 소련군 보병과의 전투에서 쩔쩔매는 배넌을 "유럽 전선에 있었을 때는 좀 더 활기차지 않았나"고 하며 디스한다. 그 동안 파커는 방송국의 소련군들을 처리한다. 방송국 전투를 마지막으로 마을을 점거한 소련군 공수부대가 완전히 와해된다.
         소여는 또다시 휘하 중대장들을 마을회관 앞 광장에 불러 브리핑을 시작한다. 소련군 증원군은 고속도로를 따라 쪽으로 질주하고 있으며, 약 한시간 내에 파인밸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소여는 배넌에게 북동쪽의 주유소를 사수하도록 하고 웹에게는 동쪽 진입로를 사수하도록 지시한다. 마지막으로 파커에게는 북쪽 슈퍼마켓에 방어선을 피라고 명령한다. 이후 소이어 대대는 제1차 방어선을 그럭저럭 유지하지만, 소련군 포병대가 슈퍼마켓에 포격을 가해 파커의 중대를 후퇴시키고 웹의 중대가 피해를 감당하지 못해 후퇴하며 제2차 방어선을 치게된다.
         파커의 새로운 임무는 웹이 담당하던 동쪽 진입로를 수비하는 것이었다. 소여는 윌킨스 대대뿐만 아니라 미 해군 소속 전함인 USS 미주리도 파인밸리로 오고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피해를 감당하지 못한 배넌이 멋대로 마을 광장으로 후퇴한다. 그러자 나머지 소여 대대도 마을 광장으로 후퇴해 최종 방어선을 피게된다. 그럼에도 윌킨스 대대는 소련군 정찰대의 매복으로 인해 빠르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USS 미주리가 파인밸리 해안에 도착해 포격 지원을 시작하고, 윌킨스 대대가 쪽에서 진입을 시작한다는 무전이 날아들어온다. 소여는 늦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를 반가워한다. 파커는 전방관측수 역할을 맡아 USS 미주리에게 포격 좌표를 전송한다. 마침내 소련군이 후퇴하기 시작하고 윌킨스 대대가 파인밸리로 진입한다.
          파커가 담당하고 있는 동쪽 진입로 근처 숲에 소련군 자주박격포들이 방열 중이다. 자주박격포들을 처리하는 임무.
         소여 대대는 포트 텔러 근처 마을인 캐스케이드폴스에서 윌킨스 대대와 합류한다. 캐스케이드폴스의 주민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상태였기에 소여 대대는 그곳에서 소련군을 상대하기로 한다. 윌킨스 대대는 캐스케이드폴스 쪽 진입로에서 소련군을 막도록 한다. 소여 대대가 상대해야 할 소련군은 압도적인 수였지만 후퇴할 수는 없었다. 캐스케이드폴스가 뚫리면 포트 텔러까지 잃게 되고, 그러면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양쪽의 다리를 공격하던 소련군 부대가 후퇴하기 시작한다. 소여는 이를 쪽에서 공격해오기 위해 재집결 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배넌과 웹의 부대를 마을 중심으로 빼낸 다음 두 다리를 폭파시킨다. 파커에게는 유일하게 은 북쪽의 다리를 소련군 전위대와 정찰대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맡긴다.
         배넌과 웹은 마을 쪽에서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낸다. 하지만 계속해서 충원되는 소련군 대부대를 막을수는 없었다. 결국 둘은 자신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큰 소련군 부대를 발견한다. 이 보고를 들은 소여는 둘에게 파커가 있는 북쪽 다리까지 후퇴하라고 지시하고는 마을 중앙으로 몰려드는 소련군 부대를 B-52 폭격기를 동원해 잿더미로 만든다. B-52의 융단폭격에 소련군이 주춤하는 사이, 소여 대대는 마을 중앙을 다시 탈환한다.
         소여 대대가 마을 중앙에 알박기를 하고 버티는 동안, 소여는 나쁜 소식을 전해온다. 소련군 기갑대대 3부대가 캐스케이드폴스로 막 투입되고 있었다. 이는 소여 대대가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후퇴해서 모든걸 잃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넌에게 소여는 전술 핵폭탄을 투하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핵폭발에 휩쓸리지 않도록 북쪽 다리 너머 고등학교로 후퇴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배넌이 모든 부대가 후퇴하면 소련군이 알아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부하들과 상의가 끝났으니 자신의 중대가 미끼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다. 소여는 자신은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결국 배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파커의 중대와 웹의 중대가 후퇴한 후, 마을 중앙에 겨진 배넌의 부대가 자신들의 좌표를 보낸다. 파커는 배넌이 보낸 좌표로 전술 핵미사일을 유도한다.
         소여는 배넌의 전차 중대가 쪽의 소련군을 막도록 하고, 파커의 NATO 중대가 등대 근처에 위치한 소련군 화력기지를 섬멸하도록 한다. 타국인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이니 잘 하라는 주의는 덤. 사바티에 역시 겁쟁이는 겁쟁이의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 말을 잘 새겨두라고 말한다.
         몇번의 전투 후에 연합군은 프랑스 소련군 사령부의 위치를 알아냈다. 소여 대위는 소련군 사령부를 괴멸시키기 위해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진격해 들어갔다. 성공한다면 프랑스 소련군을 와해시킬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그대로 포위당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대대원들은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배넌 대위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시작되기 전 브리핑 시간. 소여는 소련군 사령부가 있는 강 너머에 몇차례 포격을 가한 후, 전위대를 투입할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 사바티에는 한시라도 빨리 소련군을 자국 국토에서 몰아내고 싶다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소여는 오늘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소여는 파커 소위의 중대에게 전위대를 맡기고, 배넌 대위의 전차 중대는 만일을 위해 겨둔다. 이 말을 들은 배넌은 자신의 중대가 선봉이 되어야 하면서 불만을 표한다. "우리 중대가 전투를 놓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라는 배넌의 말을 들은 소여는 이곳에서 영광과 명예같은 것을 찾고있냐며 배넌을 윽박지른 후 그의 중대로 보내버린다. 얼마 되지 않아 강 건너에 연합군의 포격이 가해지기 시작하고, 소여는 나머지 지휘관들도 각자의 부대로 보내 전투를 준비하게 한다.
         소여의 목표는 본격적인 NATO 공세가 시작되기 전 시가지에 있는 소련군 사령부를 괴멸시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었다. 먼저 소여는 파커에게 마을로 향하는 두 다리를 확보하라 지시한 다음 배넌에게 한개 소대는 파커가 확보한 다리들을 방어하게 하고 나머지 부대는 쪽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사바티에를 보호하도록 한다. 배넌은 파커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싶다며 투덜거리지만 소여는 시가지에서 전차는 무용지물이라며 거부한다. 마지막으로 사바티에는 소련군 사령부 근처의 교회는 12세기에 지어진 유적이니 주의하라고 한다.
         다리를 확보하고 난 후, 소여는 파커에게 마을 내의 소련군 수비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사바티에와 배넌은 대화를 쪽에서 작전을 수행한다. 사바티에가 자신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되고있는지 의심을 표하자, 배넌은 겁에 질려 있으면 조국을 지킬 수 없다며 그를 도발한다.
          쪽 숲 너머 공터에 있는 소련군 박격포 부대를 전멸시키는 임무.
  • 이신학 . . . . 22회 일치
         | 직책 = [[대구광역시]] [[구 (대구광역시)|구청장]]
         '''이신학'''(李新學, [[1944년]] [[9월 25일]] ~ ,[[대구광역시|대구]] [[달성군|달성]])은 전직 지방자치공무원이면서 전직 기업인이자, 전직 대구광역시 구청장이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한이다.
         * 대구 부경찰서 보안지도위원회 회장(1993년 1월)
         * 구의회 미군기지 이전 대책위원회 간사(1995년 7월)
         * 구자율방범연합회 회장
         * 자유총연맹 구지부 운영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구 부회장
         * 대구광역시 구의회 의원(1995년 7월)
         * 대구광역시 구의회 재정심의위원회 위원(1996년 1월)
         * 대구광역시 구의회 결산검사 대표위원(1996년 8월)
         * 바르게살기운동 구협의회 회장(2000년 1월)
         * 제 21대 대구광역시 구청장(2002.07~2006.06,[[한나라당]])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제3회 지방 선거]]||[[구 (대구광역시)|대구 구청장]]||21대 (민선 3기)||[[한나라당]]||{{막대|한|8|1|8|0}} 80.80%||38,825표||1위||[[파일:대구당선.png|25px|구청장 당선]]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제4회 지방 선거]]||[[구 (대구광역시)|대구 구청장]]||22대 (민선 4기)||[[무소속]]||{{막대|무|1|8|3|0}} 18.30%||12,652표||2위||낙선
         |직책 = [[구 (대구광역시)|대구광역시 구청장]](민선)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요원 . . . . 2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성시]]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자의 향기 (영화)|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6년 [[JTBC]] 드라마 《[[욱씨정기]]》에 출연하여 물오른 연기로 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극찬을 받았다. 2016년 11월 [[MBC]] 《[[불야성 (드라마)|불야성]]》에서 이요원이 연기하는 서이경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 거대한 야망을 품은 황금의 여왕이자, 탐욕은 죄가 없다고 믿는 냉정과 열정의 화신이다. 여리한 외모와는 달리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얼음여왕. 말 한마디에 거액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평온한 말투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철의 여인이다. 디즈니 배급 영화 《그래,가족》는 2017년 2월 15일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핏줄이고 뭐고 모른 척 살아오던 삼매에게 예상치 못한 막내동생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치열한 가족의 탄생기를 그린 코미디 가족영화에서 잘난 체해도 결국 흙수저인 둘째 오수경 기자 역할을 연기했다.
         2017년 [[tvN]] 《[[부암동 복수자들]]》에서 가진 것은 돈 밖에 없는 재벌가의 딸이자 배신감을 안긴 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자클럽’의 결성을 주도하는 김정혜 역을 맡아 제옷입은 듯 실감나는 연기와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인생작,인생캐릭터를 만났다는 호평속에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3년]] [[1월 10일]] 24세의 나이에 당시 오빠 [[박규수]]이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요원의 훈 편 새삼 화제, 누군지 봤더니… |url= http://www.sportsseoul.com/?c=v&m=n&i=166890 |출판사= 스포츠서울 |날짜= 2015-01-21 }}</ref> 같은해 [[12월]] 첫째 딸 박애린을 출산하였고,<ref>{{뉴스 인용 |제목=편과 유학길 이요원 딸 출산 |url=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12606&ctg= |출판사= 일간스포츠 |날짜= 2003-12-23 }}</ref> 10년만에 [[2014년 5월]] 둘째 딸을 출산, [[2015년 5월]] 셋째 아들을 출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이요원 득, 두 딸 이어 세 아이 엄마 됐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213&aid=0000690821 |출판사= 네이버 |날짜= 2015-05-19 }}</ref><ref>{{뉴스 인용 |제목=[단독]이요원 득…세아이 엄마됐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331611 |출판사= 네이버 |날짜= 2015-05-19 }}</ref>
         | 《[[자 셋 여자 셋]]》
         | 《[[욱씨정기]]》
         | 《[[자의 향기 (영화)|자의 향기]]》
         * [[양유업]] 프렌치카페 커피
         * [[오리온]] 핫브레이크 (With [[창희]])
         * [[광토건]] 하우스토리
         | 베스트 커플상 (with [[김길]])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98년 데뷔]][[분류:성시 출신]][[분류:전주 이씨]][[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그리메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자]][[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디렉터스 컷 시상식 수상자]]
  • 츠츠모타세 . . . . 22회 일치
         이 단어는 "[[부부]]나 내연 관계에 있는 녀가 공모하여, 자가 '아내' 혹은 '정부'에게 다른 자를 유혹하게 하여, [[간통]]을 저지르고, 그것을 명목으로 하여 그 자에게 돈을 뜯어내게 하는 [[사기]] 행위"를 뜻한다.
         무로마치 시대의 츠츠모타세(筒持たせ)에서, 츠츠(筒)는 [[통]]이라는 뜻인데, 성기나 여성기를 뜻하는 은어라는 설도 있으나, 본래는 도박 용어로서 [[주사위]] 도박에 사용되는 통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츠츠모타세(筒持たせ) 역시 도박 용어로서, "속임수를 숨긴, 세공을 가한 통을 쓴다"는 의미였다고 여겨진다.
         「미인국(美人局)」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쓰여진 『무림구사(武林旧事)』라는 책에 수록된 나오는 범죄 행위의 일종이다. 무림구사에서는 "[[창녀]]가 자와 짜고 [[소년]]이나 [[청년]]을 유혹하고, 나중에 자가 그 창녀를 자신의 [[아내]]나 [[첩]]이라고 속여서 돈을 뜯어낸다."는 의미였다.
         1768년에 간행된 소화본(笑話本)[* 소화(笑話)는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요즘으로 말하자면 유머 이야기 책이다.] 「카루구치하루노야마(軽口はるの山)」[* 카루구치는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의 제4권에 「츠츠모타세(筒もたせ)」라는 농담이 있다. 이는 짧은 이야기로서, 돈이 쪼들리는 자가 친구들에게 잘 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츠츠모타세를 해보라는 말을 듣고, 아내를 설득하여 근처에 사는 젊은이를 유혹하게 하여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 「간통 봤다(間男見つけた)」고 외치며 벽장에서 뒤쳐나오려고 했으나, 그만 [[말실수]]를 하여 「츠츠모타세, 봤다(筒もたせ、見つけた)」고 소리쳐버렸다는 농담이다.
         에도 시대의 라쿠고 코마쵸우의 내용은 이러하다. 가난하고 빚이 많은 쵸하치(長八)라는 자는 빚쟁이 타케하치(丈八)를 상대로 츠츠모타세를 걸려고 한다. 과거 쵸하치의 아내 오코마(お駒)는 타케하치와 사귀었으나, 쵸하치가 빼앗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쵸하치는 타케하치가 아직 자신의 아내에게 미련이 있다고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은 예정되로 되었으나, 쵸하치가 집을 뛰쳐나와서 안심하고 술을 마시고 잠들어 있는 동안, 타케하치는 자신과 함께 살면 [[기모노]]도 사주고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 말을 듣고 가난한 데다가 자신을 사기에 끌어들이는 쵸하치에게 질려버린 오코마는 저런 편과 살면 평생 고생을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 타케하치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별 편지를 쓰고 떠나버린다.
         다음날 아침, 쵸하치는 [[부엌칼]]을 들고 집에 뛰어들지만 이미 때는 늦어 오코마는 타케하치와 함께 가재도구를 챙겨서 떠나버렸다. 쵸하치는 텅 빈 집에서 오코마가 자신을 비웃고 욕하는 이별 편지를 긴 것을 발견하고, 분노하여 부엌칼을 휘두르며 뛰쳐나왔으나, [[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아호오(바보) 아호오(바보)」하고 울어대며 끝난다.
         [[원조교제]], [[아저씨 사냥]]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미성년자 여성을 18세 이상으로 속여서 만을 가지게 하는 등 츠츠모타세에 이용하고, 피해자에게 "원조교제로 [[경찰]]에 신고한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부인]]에게 알려 [[가정]]을 파괴하고,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준다." 등의 [[협박]]을 가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이 법률을 위반한 범죄자이기 때문에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성이 개입하지 않고, 여성 자신이 [[1인 2역]]을 하여, 성 자신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고 인터넷 연락으로만 위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므로,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과 만나거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만나서 성관계를 맺고자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전하는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빨리 만나서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데, 돈을 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성도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 여성은 돈을 받는 쪽이며,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성도 적지 않으므로 외모가 그리 좋지 않은 여자도 돈을 쓰면서 까지 성과 성관계를 가지려 할 가능성은 낮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경계심이 강하고 방범 의식이 높기 때문에, 처음 보는 대다가 친하지 않은 자를 집에 불러들이지 않는다. "호텔비가 아깝다."같은 말을 하면서 집에 불러들일 경우, 그 집에서는 편이나 친을 자칭하는 성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 경순왕 . . . . 21회 일치
         |매장지 =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현 연천군 장면)
         |자녀 = 슬하 8 3녀 <br/> (장 [[마의태자|태자]])<br />(차 [[김덕지|김황(굉,나주김씨)]])
         경순왕 영정 (경도 유형문화재 제474호)
         또 [[고려 태조|태조 왕건]]은 장녀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하였는데, 경순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의 나라에 와서 살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 신란공주(神鸞公主)라 하고, 시호는 효목(孝穆)이라 했다. 아홉째 딸인 '부인 왕씨'(夫人 王氏)도 아내로 삼게 하였다.
         [[978년]](고려 경종 3) 경순(敬順)이라 시호를 올리고, 왕으로 예우하여 능을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현 연천군 장면) 쪽 고랑포 8리 계좌 언덕에 장사 지냈다.<ref name="dk01"/>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을 다른 [[신라]]의 왕릉이 있는 [[경주]]로 운구하려 하였으나, [[고려]] 왕실에서 왕의 영구는 도성 밖 100리를 넘을 수 없다고 하며 반대함으로써 [[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현재의 묘자리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의 묘소는 [[임진왜란]] 이후 실전되었다가 [[1747년]](영조 23) 다시 되찾아 정비하였다.<ref name="dk01"/> 경북 경주 황동의 숭혜전, 하동 청암면의 경천묘 등에 제향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746년]](영조 22) 10월 14일 [[경기도]](京畿道) 장단(長湍. 현 연천군 장면)에서 경순왕의 지석(誌石) 및 신도비(神道碑)가 나왔음을 아뢰는 동지(同知) 김응호(金應豪)의 상소가 있고, 그 후속 조치로 [[1747년]] 4월 20일 경순왕의 묘를 수치(修治)하고 묘비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1748년]](영조 24) 1월 29일에 고려 왕릉의 예에 준하여 경순왕릉에도 수총군(守塚軍) 5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현재의 경순왕릉 모습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ref name="dk01"/>
         경순왕릉비는 [[1748년]](영조 24) [[연천 경순왕릉|경순왕릉]] 있근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 마을 민가에서 후손 [[경주 김씨]] 김빈(金礗)과 김굉(金硡) 등이 발견한 것으로, 비문 내용은 10여자 정도 아 있는데 자연풍화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다.<ref name="dk01"/> 이후 한국전쟁 당시 경순왕릉에서 300m 떨어진 고랑포리 시가 지역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73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이전되었다가, [[1987년]] 경순왕릉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크기는 높이 132cm, 너비 65cm, 두께 16cm 이며, 상태는 1면만 겨우 아 10여개의 문자만 판독되고, 내용은 거의 알 수 없다.<ref name="dk01"/>
         *** 1: 김은열(金殷說), 고려조 경주군(慶州君), [[경주 김씨|경주김씨 은열공파]] 시조<ref>부왕 경순왕의 식읍(食邑)을 습봉함 </ref>
         *** 2: 김석(金錫), 고려조 의성군(義城君), [[의성 김씨]] 시조<ref>일부 문헌에 경순왕 제4자 또는 제5자로 기록됨</ref>
         *** 3: 김건(金鍵), 고려조 강릉군(江陵君), [[강릉 김씨|(후)강릉김씨]] 시조<ref>후손이 홍주 김씨를 이루고 있다.</ref>
         *** 4: 김선(金鐥), 고려조 언양군(彦陽君), [[언양 김씨]] 시조
         *** 5: 김추(金錘), 고려조 일선군(一善君), [[선산 김씨]] 시조
         [[대한제국]] 시절 그려져 [[경상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산 107-1 경천묘에 봉안중인 '경순왕 어진'은 [[2008년]] 경도 유형문화재 제474호로 지정되었다.<ref>[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829 경천묘 ‘경순왕 어진’- 경도유형문화재 지정] 경매일 2008년 12월 08일</ref>
  • 유니콘남 . . . . 21회 일치
         유니콘계
         == 유니콘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자 ==
         유니콘계 자란, 고학력, 고수익, 높은 사회적 신분, 잘생긴 얼굴, 좋은 성격과 신사적인 태도를 모두 갖춘 '''완벽한 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 반면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자이기 때문에, 오직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만이 만날 수 있다.
         '초식계 자' 이후로 잡지 업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계 자' 가운데 하나이다.
         || 1위 : 유니콘 계 자(ユニコーン系男子) ||
         || 진정한 뉴타입계 자(ニュータイプ系男子) ||
         || 2위:리디 계 자(リディ系男子) ||
         헌데 이 방송에 소개된 유니콘 계 자는 그냥 아무리봐도 '''건담 유니콘의 패러디'''로 보인다. 뉴타입이라느니, 리디라느니(…)
         왜일까 한국에서는 '''처녀가 아닌 여자를 증오하여, 사귀던 여자가 처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공격적으로 나오는 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또한 때때로 이러한 자가 늘어나서 일본이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다는 설명도 추가되었다.
         이 설명은 다음 2채널 스레드를 참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유니콘 계 자와 비처녀 증오를 묶는 소스가 일본 인터넷에서는 이것 밖에 없기 때문.
         【비보】 처녀 밖에 허용하지 않는 「유니콘 계 자(ユニコーン系男子)」 텔레비젼에서 소개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스레드는 레스수 253개 로 끊긴데다가, 대부분 별 내용도 없는 처녀드립 수준의 기입이고, 정작 방송 내용과 관련된 기입은 전혀 없다. 이 스레드 만으로는 유니콘 계 자가 처녀만 허용하는 처녀 광신자를 뜻한다는 증명을 하기 어렵다.
         이 스레드 도중에 붙여진 이 그림이 유니콘 계 자의 설명으로 자주 이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잘 보면 그냥 '''유니콘'''에 대한 설명이지 '''유니콘계 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 그림 주변의 기사가 짤려 있고 출처도 명확하지 않아서 잘 알 수 없지만, 유니콘 계 자의 의미를 증명하는 그림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뜻으로 쓰이는 사례가 인터넷 상에서 더 나온다고 해도, 이 말이 처음 나왔다는 2014년 여름에서 2015년에 이르기까지 잡지나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사이트에서 정리된 기사에서 소개하는 '유니콘계 자'의 의미는 '처녀 광신자'가 아니라 '유니콘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자'라는 뜻이다.
  • 유동근(배우) . . . . 21회 일치
          [[분류:1980년 데뷔]] [[분류:한국 배우]] [[분류:1956년 출생]]
         ||<-5><table 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연기력은 한국 배우 중에서도 순위권이고, [[김명민]]을 제치고 '한국의 멜 깁슨'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자. [[사극]] 연기(성우로 비유하면 [[이정구]], [[신성호(성우)|신성호]]를 연상시키는 배역), '아내'에서의 기억을 잃은 순박한 이중 결혼한 편 역 등을 보면 정말로 연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있으며 미중년이 뭔지 보여준다.
         '''[[용의 눈물]]에서 연기한 [[태종(조선)|태종]]'''은 그야말로 압권. 이때 보여준 연기는 대중에게 길이길이 았으며, 나중에 처음으로 연기대상까지 얻는다. 용의 눈물에서는 명장면이 많았지만, 거기서도 '용의 춤[* 노쇠한 아버지 이성계를 즐겁게 하기위해 스스로 용포를 휘날리며 춤을 추던 씬.]' 부분이 압권이다. 하긴 이 장면은 유동근, 故[[김무생]], [[최명길(배우)|최명길]] 모두가 폭발한 씬이어서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특히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이 맡은 태종은 '''한국 사극 역사상 최고의 연기이자 최고의 캐릭터로 뽑힌다.''' 이때 유동근의 나이 한국 나이로 이제 막 40이 넘은 나이, 배우로서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인 나이에 '''한국 사극 역사에 나아가 연기 역사에 길이 을 연기'''를 한 것이다. 당연히 연기대상은 Get Ya. 참고로 90년도에 출연한 사극 "파천무" 에서도 카리스마있는 수양대군(후에 세조)으로 분해 당해년도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키도.
         이외에도 세간에 '''아내가 미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바로 탤런트 [[김을동]]이다.[* 원래는 방송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말이었는데 여러 번 스포츠신문 연예란이나 예능 등에서 가볍게 언급되다 보니 어느 새 일반 대중들도 이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연예인 중에서는 [[희석]]이 '자신의 이상형은 전인화'라며 이를 이용한 드립을 방송에서 많이 치고 다녔다.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한동안...] 대표작으로는 '[[여인천하]]'를 들 수 있으며('''나 거성의 안주인이야'''라는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여기서 [[문정왕후]] 역으로 출연했다.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 500년'의 '인현왕후'에서 [[장희빈]] 역으로 출연했다.
         유동근은 '용의 눈물'로 KBS 연기대상을, [[전인화]]는 '여인천하'로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편은 왕으로, 아내는 왕비로 대상 차지한 부부.''' 그것도 '''[[태종(조선)|태종]]'''과 '''[[문정왕후]]'''라는, '''[[조선]] 역사상 최강의 권력을 누린 왕과 왕비''' 역할이다.
         [[놀러와]]에 나와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쌈박하다'라는 발언을 즐겨하며 약한 자 기믹을 잘 소화해냈다. [[유재석]]이 방송이 끝나갈쯤에 "제가 아는 왕은 한 명 사라졌지만 옆집 동근이 형을 알게 되었네요"라고 발언. [[공처가|실제 생활에서도 아내에게 쥐어 잡혀 산다고 한다.]] 아내가 한번 째려 보면 바로 알아서 긴다고... 다들 알겠지만 아내가 [[신득예|해더신]]이다. 한번은 밤 늦게 술에 취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전인화에게 음식 준비를 포함한 손님 접대를 시키며 허세를 부렸고 그 다음날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도망가듯이 집 밖으로 나갔다고 하며 같은 실수를 할까봐 한달동안 술은 입에도 못 댔다고 한다.
         반대로 아내 전인화는 유동근이 장난으로 자신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정 내에서도 질서와 권위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주변인들을 집에 데리고 와 손님 접대를 시키는 건 '자는 그런 허세 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며 잘 받아주는 편이라고. 평소 가사 분담은 거의 안 하는데 어느 날은 장난삼아 '라면 좀 끓여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끓여주었고 맛도 훌륭했으나 생색이 쩔어줬다고 한다.
         정도전이 종방한 후 정말 짧은 휴식기를 가지고 바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출연하였었다. 바로 전작에서 박력 넘치는 무골 이성계를 연기했던 것과 정 반대로 여기서는 나이들어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자식 걱정에 마음을 쏟는 순박한 아버지 [[차순봉]] 역할로 나와서 정도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보면 엄청난 괴리감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유동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과 그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그야말로 1년 내내 KBS 드라마의 주역으로 미칠듯한 활약을 했고 그 열연의 결과로 2014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 3번째 대상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상을 수상한 당시 나이 만 58세로 [[김혜자]]의 뒤를 잇는 최고령 연기대상 수상자로 자 배우 중에선 두번째로 최고령 수상자.[* 2014년 수상 당시에는 자배우 중 최고령 수상자였으나, 2017년에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열연한 [[김영철(배우)|김영철]]의 대상 수상으로 그 기록이 깨졌다.(수상 당시 만 64세.)]
         || 1994년 || [[SBS 연기대상]] || 우수연기상 || 이 자가 사는 법 ||
         || 1996년 || 그리메상 || '''최우수 자연기상''' ||<|2> [[애인(드라마)|애인]] ||
         ||<|2> 1997년 ||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3> 1998년 ||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2년 연속수상.] ||
         || 한국방송대상 || 자 탤런트상 ||
         || 2000년 ||<|2>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의 속도 모르고 ||
         ||<|3> 2002년 ||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배우자인 [[김을동]]가 [[여인천하]]로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면서 부부가 같은 해에 동반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
         || [[청룡영화상]] || 우조연상 || [[가문의 영광(영화)|가문의 영광]] ||
         || 2007년 ||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現 코리아드라마어워즈. 매년 [[진주시|경 진주시]]에서 개최된다.] || '''대상''' ||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 ||
  • 유해진(배우) . . . . 21회 일치
         || '''출생''' ||<(> [[1970년]] [[1월 4일]] ([age(1970-01-04)]세), [[전라도]] [[강진군]] ||
         || '''가족''' ||<(> 4 2녀 중 막내, 조카 [[최현준(야구선수)|최현준]][*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선수이다.] ||
         전술한 작품들 중 《극비수사》가 286만이고, 《그놈이다》와 《이장과 군수》가 고작 100만을 넘겼을 뿐, 나머지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못 올렸고(특히 《죽이고 싶은》은 10만대), 결국 2010년작 《[[부당거래]]》에선 다시 조연으로 출연했다(...). 거기다 2012년 자 주인공으로 열연한 《미쓰고》도 61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왕의 자]]》의 육갑이 역으로 2006년 [[대종상 영화제]] 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타짜(영화)|타짜]]》에서 보여준 '''"곽철용 저 새끼는 아주 그 유명한 그...뭐...아주 뭐라 그럴까 아주 유명한...어...씨...씹새끼?"'''라는 대사가 유명하다.
         2014년 개봉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 철봉역으로 출연하여 영화를 [[하드캐리]]한 공으로 2014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라이터를 켜라]]||침착||470,557||실패||
         ||[[왕의 자]]||육갑||12,302,831||성공||
         ||국경의 쪽||선호의 매부||252,457||실패||
          * 2006 제43회 [[대종상]] 우조연상
          * 2010 제8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우조연상
          * 2010 제31회 [[청룡영화상]] 우조연상
          * 2014 제1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우조연상
          * 2014 제51회 [[대종상]] 우조연상
          * 2015 제6회 [[올해의 영화상]] 우조연상
          * 2015 제16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우주연상
          * 2015 제35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최우수 우조연상
          * 2015 제5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자 조연상
          * 2017 제12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우주연상
          * 2017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우조연상
         [[분류:한국 배우]][[분류:강진군 출신 인물]][[분류:1970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
  • 하쿠다 켄 . . . . 21회 일치
         '''하쿠다 켄'''({{llang|ja|白田 健}}, はくだ けん, [[1951년]] ~ )은 [[대한민국]] 출생의 [[일본]] 기업인으로서, 비디오 예술가 [[백준]]의 큰조카이자 현재 [[백준]]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켄 백 하쿠타'''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백준]]의 큰형이자 당시 [[대한민국]] 최대의 섬유 기업 태창방직(방림방적의 전신)의 회장이었던 백일의 장으로 '''백건'''(白健)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그는 [[1960년]]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일가족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태창방직이 [[대한민국]] 정부에 몰수당하게 되자 부모와 일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 귀화하여 이 때 이름을 일본식으로 하쿠다 켄(白田健)으로 개명하고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숙부인 [[백준]]의 도움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여 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고 장난감 판매, [[텔레비전]] 프로덕션 등의 사업을 하던 그는 [[1990년대]] 이후 숙부 [[백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숙부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2006년]] 백준이 타계한 후 그는 [[미국]] [[뉴욕]]의 백준 스튜디오와 백준의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물려받아, 현재 뉴욕 백준 스튜디오의 이사이자 백준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작품 관리와 기념사업 등을 책임지고 있다.
         [[2006년]] [[백준]]의 사후 추모행사 및 [[백준아트센터]] 건립 문제와 관련하여 하쿠다는 [[경기문화재단]] 및 [[대한민국]] 미술계 인사들과 큰 갈등을 겪은 바 있다. [[2008년]] 경기문화재단과 하쿠다의 합의가 극적으로 이루어져 동년 [[4월 30일]] 백준아트센터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하였다.
         * [[백준]]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9218.html ‘백준’ 유분 들고 온 ‘일본 국적 한국인’ 조카 켄 백 하쿠타], 《[[한겨레]]》 2006년 3월 16일자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248457 기자수첩 : 편히 눈감기 어려운 백준], 《[[연합뉴스]]》 2006년 3월 19일자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79539 백준 대리인측 "정부 기념사업 협의없이 진행"], 《[[경인일보]]》 2011년 5월 4일자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1972277 백준 아트센터 2월 완공...저작권 상속자 하쿠다씨 방문] , 《[[뉴시스]]》, 2008년 2월 22일자
         [[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
  • 한규복 (1881년) . . . . 21회 일치
         [[1899년]](광무 2년) 관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 [[동경전문학교]]와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서 수학하다가 [[1903년]] 귀국, 대한제국 관료로 임용되어 [[탁지부]] [[주사]], [[군부]]와 [[탁지부]]의 [[번역관]] 등을 거쳐 탁지부 [[서기관]], [[주임관]]을 역임했다.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합방]] 이후에는 [[조선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토지조사국]] 감사담당관, [[1913년]] [[진주군|진주]][[군수]], 이후 [[동래군|동래]][[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충청도청]] [[참여관]], [[1924년]] [[경상북도청]] [[참여관]], [[1926년]] [[충청북도]][[도지사]], [[황해도]][[도지사]] 등을 역임했다. [[193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고 이듬해 재선된 뒤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1910년]] [[10월 6일]] [[한일 합병 조약]] 체결 이후 다시 조선총독부 [[고등관]] 7등에 임용,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1臨時土地調査局) 감사관(監査官)에 임명되었다. 이후 임시토지조사국 측량과장과 정리과장을 거쳐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감사담당관이 되었다. [[1913년]] [[1월]] 총독부 군수가 되어 [[경상도]] [[진주군|진주]][[군수]] [[고등관]]6등(晉州郡守 高等官6等)이 되고, [[경상도]][[참여관]]을 겸직하였다. [[1914년]]부터 [[1915년]]까지 [[경상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을 역임했다. 그밖에 [[농업]] 단체인 [[조선농회]] 경상도지회에 상의원으로 가입하였다. [[1916년]]과 [[1917년]] [[경상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에 재위촉되었다.
         [[1917년]] [[경상도지방토지조사위원회]] 조사위원이 되고, [[1917년]] 진주군수 재직 중 [[고등관]] 5등(高等官5等)으로 승진했다. [[1918년]] [[7월 1일]] [[동래군|동래]][[군수]] 고등관 5등(東萊郡守 高等官5等)으로 발령받았다. [[1921년]] [[2월 12일]]에는 [[충청도]] 참여관(慶尙北道參與官) 고등관 4등(高等官4等)으로 승진하였다. [[7월 22일]] 다시 [[충청도]] [[참여관]]으로 임명되었다. [[1922년]] [[5월 30일]]에는 [[만주]]로 출장갔다가 [[10월]]에는 [[동양협회]] 시찰단의 한 사람이 되어 [[일본]]을 시찰하고 [[1923년]]초 되돌아왔다. [[1923년]] [[11월]] [[충청도]] [[참여관]]으로 재직 중 [[충청도음악협회]]회장에 선출되었다. [[1924년]] [[2월 11일]]에 [[경상북도]] 참여관으로 옮겼다. [[12월]] [[경상북도]] 참여관 재직 중 [[고등관]] 3등(高等官3等)으로 승진하였다.
         [[1933년]] [[7월 21일]]에는 중추원 시정조사위원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0월 21일]]에는 소작농심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4년]]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지구위원장(京城府敎化團體聯合會 西部敎化地區委員長)이 되었다. [[1934년]] [[7월 14일]] [[금융]]단체의 연합회인 [[금융조합연합회]] 창립에 참여, 자문상담역<ref>"금조연합회, 자문기관 설치", 조선중앙일보 1934년 07월 22일자 4면</ref>에 위촉되었다. [[7월 21일]] [[금융조합연합회]] [[경기도]]지역 참여에 임명되었다. [[1934년]] 여름 홍수로 [[조선]] 삼 지방에 수해가 심해지자, 그해 [[8월 30일]] [[조선총독부]]에서 [[치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때 그는 민간측 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1937년]] [[1월]] [[방송선전협의회]](放送宣傳協議會) 위원으로 위촉되어 수양강좌·부인강좌·상식강좌의 강사로 출연하였고, [[7월]] [[중추원]] 주최 행사에 참여하였다. 동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들의 소득을 조사할 목적으로 국민소득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 한규복은 국민소득조사위원회 경성지역 관내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8월 3일]]부터는 [[10월]]까지 총독부 학무국에서 지나사변 이후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고자 순회시국강연위원회를 조직할 때 연사가 되어 [[서울]]과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8월 16일]]에는 [[경상도]] [[함양군]]에서 시국강연을 하였다. [[9월 10일]]에는 용인공보교 대강당에서 [[용인군]] 지역 시국강연회를 주최하였다.
         [[1938년]] [[조선간이생명보험사업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에 위촉되었다. [[1938년]] [[3월 3일]] [[성고등보통학교]] 재단인 [[원석학원]] 재단 이사가 되었다. [[5월]] 재무간담회(財務懇談會) 회장에 선임되었다. [[5월 17일]] 체포된 법학자 [[정광현]]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여 석방시켰다.<ref name="yunchi381">윤치호, 《윤치호 일기 1916-1943》 (김상태 역, 역사비평사, 2001) 381페이지</ref> [[서대문경찰서]] 서장을 만나 '나를 봐서라도 [[정광현]]에게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5월 17일]] 오전 9시 30분, 서장은 한규복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였다.<ref name="yunchi381"/>
         {{인용문2|자수 편지<br /><br />천운(天運)이 순환하사 우리 [[대한민국]]이 탄생되니 산천(山川)과 초목이 다시 금빛이 나고 잃었던 자유가 우리 몸에 다시 오니 일반의 환희는 무엇으로 형용하리요. 하물며 일제시대에 허다의 압제를 견디면서 관리생활을 계속한 본인으로서는 더욱더욱 감개무량이외다. 본인은 대한제국시대에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조도전 대학早에서 정치경제과를 졸업한 고로 행정관으로 출세하여 민중지도에 노력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관계(官界)에 투신하여 도지부 서기관으로 재임한 채로 병합을 당하여 임시토지조사국 감사관에 임명되었을 때 본인은 자신처리에 대하여 재삼 고려한 결과 나의 지력과 성력의 한도대로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하다는 견해로 관리생활을 계속하여 [[도지사]]를 역임하고 正4位 勳3등까지 되었으니 가위 고급관리의 지위까지 점진하였다고 하겠으며 30여 년간 관리생활을 하는 중에 민중의 계발을 여하(如何)한 정도로 하였느냐 하면 구체적으로 진술할 재료는 제공치 못하나 다만 양심적으로 민중을 지도하고 또한 민중의 의지를 대표하여 항거할 점은 어디까지든지 항론도 사양치 아니 하였으며 평범한 정치로 민중에 임하고 공정렴근(公正廉謹)으로서 관계일생(官界一生)의 목표로 삼은 것은 천인(天人)이 공인(共認)하는바 옵니다. 그러하니 민중에 대하여 행복이 되고 이익이 된 점을 일일이 수거치는 못하고 다만 장구한 세월의 관리생활을 하였다는 것밖에 지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변명하오리까. 금일에 지하여는 전일의 양심적으로 민중을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보도, 노력한 점은 무형(無形)으로 돌아가고 다만 관계생활(官界生活)을 하여 일제에 아부한 자로 추인되어 이 점이 기탄불기(慨歎不已)할 뿐더러 관리생활로 일생을 보낸 것이 참회되는 바이며 근신(勤愼)할 뿐이 옵니다. 오직 현명한 당국의 선악을 분별하사 관대한 처분만 바라옵고 감히 소회(所懷)의 일단을 진백(陳白)하나이다.<br><Br>단기 4282년 8월 12일<br />위 인 한규복<br><br>반민행위특별조사위원회 귀중|[[1949년]] [[8월 12일]] 자수 직전에 [[반민특위]]에 보낸 편지}}
         ** 장 : [[한용성]](韓鏞成, [[1925년]] [[1월 13일]] - ?), [[공군]][[소령]]
         ** 차 : 한용관(韓鏞官, [[1937년]] [[4월 1일]] - ), [[부이사관]] 퇴직, [[근정포장]] 수상
         ** 삼 : 한용주(韓鏞柱, [[1941년]] [[8월 11일]] - )
         ** 오 : 한용완(韓鏞完, [[1948년]] [[8월 16일]] - ),대통령표창수상
         ** 사 : 한용석(韓鏞晳, [[1943년]] [[7월 27일]] - )
         [[분류:1881년 태어]][[분류:1967년 죽음]][[분류:조선의 화가]][[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조선의 번역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정치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철학자]][[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사상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청주 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
  • 한진희(1949) . . . . 21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부안군 출신 인물]][[분류:1949년 출생]][[분류:1969년 데뷔]]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 문서는 한국 배우에 대해 서술합니다. 동명이인 한진희, rd1=한진희(동명이인))]
         ||<-5><tablewidth=100%><#00a495><tablebordercolor=#00a495><tablealign=center> '''{{{#FFFF00 {{{+1 [[동양방송|{{{#FFFF00 TBC}}}]] [[연기대상|{{{#FFFF00 연기대상}}}]] 최우수 자연기상}}}}}}'''[*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최우수 자·여자연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 ||
         ||<-5><tablewidth=100%><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동양방송|TBC]] 연기대상을 1975년, 1976년 2회 연속 수상한 1970년대 [[동양방송|TBC]]의 간판 배우이고 [[주말 드라마]] [[애정의 조건]]으로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자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미지나 무거운 톤의 목소리 덕에 [[높으신 분들]](회장이나 사장)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덕에 [[노주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미으로 불리며 드라마 자 주인공역을 독차지했었다.[* 노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한진희씨, 임채무씨가 나오기 전까지 (미 자 주인공 역할은) 나뿐이었다. 내가 군대갔다오니까 한진희 나오고 조금 있다가 임채무 나오더라"하며 직접 한진희를 언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노주현이 두 사람보다 형이고 선배이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둘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임채무]]도 70년대 후반부터 합류해서 이 두 사람의 영역을 나름 가져갔다. 정 말하자면 드라마 자 주인공으로 3대 트로이카 정도 된다.][* 1990년대부턴 [[개그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노주현과 한진희가 함께 1980년대 초에 양복 모델을 한 적도 있다. <안녕 자두야> 대한전선 사건편에서 컬러 티비로 티비를 보면 티비가 더 재밌지 않겠냐는 자두의 질문에 자두 엄마 이난향이 "그래~저번에 혜리네 집에 가서 <결혼 행진곡>을 봤는데, 한진희가 더 잘생겨보이더라ㅋ"라고 답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http://bbs1.telzone.daum.net/gaia/do/board/photo/read?articleId=573735&bbsId=A000010|#]]
         [[여명의 눈동자]]의 원작자로 알려진 소설가 김성종의 [[제5열]]을 MBC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었을 때 킬러 역을 맡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는 이영하. 이때만해도 [[이영하]], 한진희, 노주현 같은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서 멋진 주인공 역을 맡을 때였다. 이후 [[박상원]], [[최재성(배우)|최재성]], [[최민수]], [[손지창]], [[이병헌]], [[배용준]], [[안재욱]] 등이 안방극장의 자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된다.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왕꽃 선녀님]], [[보석비빔밥]], [[압구정 백야]] [[김순옥]]작가의 [[왔다! 장보리]], [[그래도 좋아]] [[문영]]작가의 [[조강지처 클럽]] 이것으로 [[막장 드라마]]계의 [[임성한|빅]][[김순옥|3]][[문영|에]] 작품에 모두 출연하기도 하였다. [[임성한]] 작가의 [[막장 드라마]] 중 [[왕꽃 선녀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두 개의 작품에서 모두 여주인공의 친부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드라마들에서 여주인공의 친모는 모두 [[김혜선(배우)|김혜선]]이 연기하였다.
         [[리멤버 - 아들의 전쟁]]에서는 [[일호]]라는 [[범죄자]] 블랙기업인을, [[문화방송|옆 동네]]의 내일도 승리에서는 천사 그 자체인 자상한 아버지 [[서동천]] 회장님을 연기하는데 이중인격이 아닐까 할 정도로 완전 두 캐릭터가 성격이 반대이다. 분명 동일인물이 연기를 하는데도 소름끼칠 정도로 [[서동천|절대 선]]과 [[일호|절대 악]]으로 분리되어 있다. [[일호]]가 한 짓을 [[서동천]] 회장님이 알면 참 볼만해질 것이다. 또한 [[일호]]가 한 짓을, [[금 나와라, 뚝딱!]]의 [[박순상]]이나, [[왔다 장보리]]의 [[이동후]]가 봐도 볼 만해지실 것이다. 참고로 한진희보다 선배급 탤런트인 [[이정길]]도 2015년 즈음에 동시 방영된 내일도 승리의 전작인 이브의 사랑에서는 [[일호]]처럼 악하게 생긴 악덕 블랙기업인 [[구인수(이브의 사랑)|구인수]] 회장을, 9월 쯤 방영된 [[내 딸 금사월]]에서는 [[서동천]] 회장처럼 인자하게 생기시고, 자상하고, 도덕관이 투철하고 투명한 생각을 가진 [[신지상]] 회장님을 연기한 적이 있다.
          * [[리멤버 - 아들의 전쟁]](SBS, 2015~2016) - --하이드-- [[일호]] 역
          * [[청담동 앨리스]](SBS, 2012~2013) - [[차일]] 역
  • 현진건 . . . . 21회 일치
         | 친척 = 재종조부 현학표(玄學杓)<ref>현학표는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할아버지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현학표의 조카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재종조부가 된다.</ref> <br /> 6촌 형 현홍건(玄鴻健) <br /> 6촌 형 현석건(玄奭健) <br /> 6촌 형 [[현정건]](玄鼎健)<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형제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형이 된다.</ref> <br /> 6촌 누나 [[현송자]](玄松子)<ref>[[현영운]](현진건의 5촌 숙부)과 그의 2번째 아내 [[배정자]] 사이에서 출생한 딸이다.</ref> <br />6촌 자형 [[이철 (1903년)|이철]](李哲)<ref>[[현송자]]의 2번째 편이다.</ref> <br /> 6촌 아우 현성건(玄盛健) <ref>현성건 또한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이복 동생에 해당하지만, 현진건이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6촌 아우가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운(玄轍運) <br /> 5촌 숙부 [[현영운]](玄暎運)<br /> 5촌 숙부 현양운(玄暘運) <br /> 5촌 숙부 현붕운(玄鵬運)<ref>이들은 혈연적으로는 현진건의 친숙부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조카 현진건이 이들의 사촌 형제인 5촌 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법적으로는 현진건의 5촌 당숙이 된다.</ref> <br /> 5촌 숙부 [[현철 (1891년)|현철]](玄哲)<ref>본명은 현희운(玄僖運).</ref> <br /> 5촌 숙모 [[배정자]](裵貞子)<ref>[[현영운]]의 2번째 아내이다.</ref> <br /> 장인 이길우(李吉雨) <br /> 사돈 [[박종화]](朴鍾和)<br />사돈 [[윤치호]](尹致昊)<ref>친형이자 호적상 6촌 형인 현정건의 처당숙</ref><br />사돈 [[윤치영]](尹致瑛)<ref>삼촌이자 호적상 5촌 숙부인 현영운의 사위 윤치오의 동생</ref><br />사돈 [[윤보선]](尹潽善)
         본관은 [[연주 현씨]](延州 玄氏)이고 호는 '''빙허'''(憑虛)이다.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 20편의 단편소설과 7편의 중·장편소설을 겼다.
         [[1922년]] 9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ref>1년에 걸치는 「조선일보」 근무에 대해서 현진건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초기 「조선일보」가 보여준 노골적인 친일신문 표방 태도, 친일 색채가 농후한 발행 주체들이나 수시로 뒤바뀌는 발행인으로 인해 현진건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곤란했던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친일 분위기에 대해 현진건의 문우였던 박종화는 "월 이상재 선생 사장과 신석우 부사장, 민세 안재홍 편집국장 등이 취임하기 전의 초기 「조선일보」에는 양심있는 사람으로는 오래 거접(居接)할 것이 아니었다"(박종화, 「빙허 현진건 군(君)」, 『신천지』 1954.10. p.139~140)고 하였으며,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에는 「조선일보」를 빗대어 아예 "썩은내, 더러운내, 곰팡내, 음탕한내가 감도는 분위기", "도야지(돼지) 우리"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35~13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최선]](崔南善)이 만든 동명사(東明社)에 들어간다. 그 다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창간 당시부터 민족적 색채가 농후했고, 역사지향적 성격을 추구하며 「조선통속역사강화」(최선 저) · 「조선과거의 혁명운동」(문일평 저) 등 유독 국학(國學) 관련 논문이 자주 연재되었던 「동명」에서의 경험은 훗날 「고도순례 경주」, 「단군성적 순례」 등의 민족의식이 농후한 작품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그리고 11월 13일에 그의 첫 창작집 『타락자』가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간된다.
         [[1923년]] 2월부터 10월까지 현진건은 『개벽』에 중편 「지새는 안개」를 발표하고, 9월에는 그의 동인지 『백조』에 단편 「할머니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지새는 안개」는 당시의 문인 [[염상섭]](廉想攝)이 "살아있는 춘화도"라 평하고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세련된 묘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최선이 주재한 동인지 『동명(東明)』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번안소설 「나들이」를 기고하는 한편으로 1924년 3월 31일에 창간된 「시대일보」(동명사의 후신)에 입사하였다(이때 그의 부인은 병치레로 대구의 친정으로 가 있었고 현진건만 홀로 서울에 아 있었다<ref>「文壇風聞」 1923년 1월 1일자 『개벽』 제31호.</ref>). [[1924년]] 1월에는 단편 「까막잡기」를 『개벽』 , 2월에 「그립은 흘긴 눈」을 잡지 『폐허이후』에서 발표하고, 이어 다시 6월에 단편 「[[운수 좋은 날]]」을 『개벽』에 발표한다. 또한 4월 2일부터 5일까지 「시대일보」 지면에 소설 「발(簾)」을 연재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1930년]] 2월과 12월에는 장편 「웃는 포사」를 『신소설』과 『해방』에 연재하다 4회만에 중단하고, [[1931년]] 10월에 단편 「서투른 도적」을 『삼천리』에, 11월에는 『신동아』에 「연애의 청산」을 발표하였다. [[1932년]] 7월 8일부터 23일까지 단군(檀君)의 전승이 아있는 [[안주군|안주]](安州), [[묘향산]](妙香山), 평양, [[황해도]](黃海島), [[강화도]](江華島) 등지를 답사하고 그 기행문 「단군 성적(聖跡) 순례」를 7월 29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11.9). 그러나 이 해, 3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6월 10일에 출소한 형 현정건은 현진건이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소설 「적도(赤道)」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열흘 뒤인 12월 30일에 옥살이의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고, 이듬해 형수(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도 자결하는 등 현진건에게 개인사적 비극이 잇따랐다(「적도」는 [[1934년]] 6월 17일에 완결되었다).
         숙부 '''[[현영운|영운]](映運)'''은 아내 [[배정자|분]](粉男)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것을 계기로 크게 출세하여, 장관급인 대한 제국 군령부 참장, 주일특명전권공사, 원수부 검사총장, 참모부 제1국장, 농상공부 협판 등의 고위직을 거친 구한말의 전형적인 친일관료였다. 이러한 그의 벼락출세가 영운의 형제들의 관직 진출에 음으로 양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친 '''경운'''은 지위가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고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보사장을 거쳐 [[1895년]] 대구부 전보사의 주사로 취임하기도 했다.<ref>당시 전보사는 농상공부대신의 관리를 받으며 전보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였으며, 1등사와 2등사로 구분되었다. 한성(서울)과 인천, 원산, 부산, 의주, 경성, 함흥, 회령이 1등사에 속했고 대구는 2등사였다. 통신원 국장이란 직책은 수준은 미비할 망정 국가의 전신, 전화, 전기는 물론 우편과 운송 분야와 관련한 시설과 제도를 관리하는 자리였기에 아무나 역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3~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숙부 '''철운'''은 안동관찰부 주사 겸 용궁군수를 지냈다. 숙부 '''양운'''은 관립영어학교 출신으로 궁내부 예식원주사에 태복시 기사 등을 지내고 [[원산]]과 [[동래]]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으며 [[대한체육회]] 창설 멤버로 알려져 있다. 숙부 '''붕운'''은 태복시 주사를 지냈다.
         두 살 연상의 아내 이순득에게서 얻은 두 딸 경숙(卿淑)과 애경(愛卿)은 각각 어린 나이에 죽고, 셋째 딸 화수(和壽)는 그의 문우 박종화의 장 돈수(敦洙)에게 시집가서 1 4녀를 낳았다.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박동건은 바로 화수의 아들이다.
         * 부부생활과 관련해서는, 지인 대부분이 "아내만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사실 그 시절에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하며 따로 살림을 차리기까지 하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었으며, [[김동인]]처럼 아예 자기 아내를 버리고 평양에서 서울로 거처까지 옮겨서 기생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기만은 "자기보다 두 살 더 먹은 아내를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을 뿐이요, 다른 여자하고는 깊은 관계를 맺은 일은 없었다"고 했으며, 방인근은 "요릿집에서 술자리를 같이 할 때, 기생이 옆에 와서 지근덕거리면 미에다가 신문기자라면 기생들이 홀딱 반해서 덤벼드는 시절이니 그러면 빙허는 좋아하는 체 대꾸를 하면서도 쌀쌀하게 범접치 못할 기상으로 난잡하게 굴지 않는다"고 회고하고 있다. 현진건의 아내 이순득도, 편이 아침에 새로 입고 나간 황라 두루마기와 비단 마고자가 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들어와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f>문인들의 이러한 '딴집 살림'은 전통적인 현모양처 교육을 받은 소위 '구여성'과의 조혼을 괴로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데서 온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48~53.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 처가가 경주에서 알아주는 부호였지만 정작 본인은 집이 가난했기에 처가에서 보내주는 것으로 생계를 잇곤 했으며, 처갓집에 간 아내가 구박을 받고 처댁이 부자 행세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주인공이 분노한다는 「빈처」는 바로 그의 아내를 모티브로 쓴 것이라고 한다. 이후로도 글을 쓰는 중간중간에 멈추고 아내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ref name="cho"/>
         * 유일하게 살아은 외동딸 현화수를 귀여워 한 반면 엄하게 교육시켜, 딸에게 극장 출입도 엄금했을 뿐 아니라 어려운 살림을 돕겠다며 취직하는 딸을 한사코 반대하였고, 가졌던 많은 장서들도 딸에게는 소설 한 권 읽지 못하게 했을 정도라고 한다.(장서들은 모두 고려대학교에 기증되었다)<ref name="cho"/>
         생가는 주소만 아있을 뿐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인왕산]] 밑의 부암동 자택은 종로구에서 공용주차장을 짓기 위해 2003년에 헐어버려서 지금은 터와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이 아 있다. 당시 그 생가의 철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행정당국은 '민간인 소유자와 부지 매입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0618342324420.htm#none 편집국에서-사라지는 문학의 고향, 한국일보 2007년 11월 6일자 기사]</ref> 2012년 10월 4일에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유언에 따라<ref name="cho"/> 화장되고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장리에 매장됐었으나 그 후 서울 개발관계로 묘소가 사라져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
         [[분류:1900년 태어]][[분류:1943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흥친왕 . . . . 21회 일치
         |매장지 = [[경기도]] [[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흥친왕 이재면은 [[1845년]] [[8월 22일]]([[음력 7월 20일]]) [[한성부]] 사동(寺洞) 사저에서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장으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이었다가 뒤에 재면으로 고쳤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이희공실록]]에 의하면 그가 태어나자마자 지어진 이름은 재록이었다 한다. [[조선]] [[조선 헌종|헌종]]과 [[조선 철종|철종]]이 연이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이재면 역시 유력 왕위계승권자로 지목되었으나, [[조선 철종|철종]]이 사망할 무렵 그는 성인이었기에 왕위계승권 서열에서 밀리게 되었다.
         이는 [[조선 철종|철종]] 사망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였던 [[대한제국 고종|이명복]]([[흥선대원군]]의 차)이 성인인 흥친왕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계략과 [[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묵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일부를 포섭할 때, [[김병학]](金炳鶴)의 딸, 혹은 [[김병문 (조선후기)|김병문]]의 딸 중에서 둘째 아들인 [[대한제국 고종|명복]]의 배필로 맞이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것 역시 재면 보다는 명복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한때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큰아버지 [[흥완군]] 이정응의 양자로 보내지는 것이 고려되기도 했다. 그의 흥완군 양자 지정 논란은 [[1864년]] 고종에 의해 취소되어 최종 종결되었다.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풍산 홍씨 홍병주(洪秉周)의 딸과 결혼하여 [[이준용]], [[이문용]] 형제와 2녀를 얻었으나 일찍 죽고 뒤에 38년 연하인 참봉 이인구(李麟九)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밖에 1명의 첩에게서 서녀 1명을 보았다. 달리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뜻을 거슬리지 않았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그런 그보다 영특하고 야심만만한 손자 [[영선군]] [[이준용]]을 더욱 총애한다. 그는 여러번 [[과거 시험]]을 준비하였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낙방하였다.
         철종 치세기간 중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아들 이재면의 관직을 청탁하기도 했다. [[윤효정]]은 [[흥선군]]이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그의 과거 합격 청탁을 했다 한다. [[흥선군]]은 일부러 김병기를 찾아가 아들 [[이재면]]의 [[문과]] 합격을 청탁했는데, [[김병기 (1818년)|김병기]]는 마음 속으로는 몰지각함과 비열함을 비웃으며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다.<ref name="riss167">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167페이지</ref> 흥선군은 똑같이 김병기의 외조카 병철에게도 똑같이 아들의 등과 합격을 청탁하니, 병철은 몹시 분개했다. 왕실의 금지옥엽인데, 이렇게 초라해진 형편으로 아들의 등과를 청탁하니 이렇게 어리석을 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었다.<ref name="riss167"/> 그런데 [[박제형]]의 [[근세조선정감]]에는 흥선군을 대놓고 멸시하던 인물의 한 사람으로 병철을 지목했다.
         1866년 도승지, [[1867년]]에는 직제학이 됐다가 그해 3월 가선대부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로 승진하였고, 바로 [[이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동지경연사, 종정경에 제수되었고, 의정부 당상을 역임하였다. 그 뒤 [[병조]][[판서]], 금위대장,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1873년]] 종정경(宗正卿)이 되었으나 [[1874년]] [[11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에 의해 섭정직에서 강제 축출당한 뒤에도 그는 유유하고 고분고분한 성격 덕에 계속 관직에 아 있을수 있었다. 동생이 국왕이었고 아버지는 섭정인데도 자신에게는 낮은 직위가 부여되었던 것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이때문에 그는 한때 [[명성황후]] 측에 가담하기도 했다. 외가인 민씨 척족에게 아부한 것 역시 관직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1902년]] [[일본]]에 망명중인 장 [[이준용]]으로부터 생활비 지원요청을 받자 그는 임정규를 통해 충분하지 못한 액수의 생활비를 지원하였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1p</ref> [[1907년]]까지 이재면은 별다른 관직도 직업도 없이 생계가 곤란하였다. 하지만 이준용은 망명지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아버지 이재면을 내심 원망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재면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여 왕족으로 예우함과 동시에 그를 회유하려 하였다. 1907년 그는 동생 고종으로부터 대훈이화장(大勳李花章), 서성장(瑞星章)을 받았고, [[1907년]] [[11월 27일]] [[대한제국]] [[육군]] 부장(副將)에 임명됐다. 이어 일본에 보내는 특별보빙사절단에 임명되고, 아들 [[이준용]]은 육군 참장에 임명되어 수행원이 되었다. 그해 11월 보빙사절단 과 수행원 [[이준용]], [[이달용]] 등을 대동하고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그러나 당시 이미 정1품 [[상보국숭록대부]]의 지위에 있던 아들 [[이준용]]은 그의 작위와는 상관없이 [[작]]의 지위를 받았다. 한일 합방 직후 막대한 양의 합방 공채금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에 별도로 협력하거나 가까이 하지는 않았다.
         처음 그의 시신은 [[경기도]] [[김포군]] [[고란대면]](古蘭臺面) 풍곡리 야산 좌곤(坐坤)에 안장되었다가, [[1921년]] [[9월 1일]] [[양주군]] [[화도면]] 창현리(후일의 양주시 화도읍 창현리)로 이장되었다. 이때 처음 [[광주군]] [[세촌면]] 수곡리 계좌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양주군]] [[회암면]] [[회암리]](후일의 회천읍 회암리)에 안장되었던 부인 풍산홍씨 역시 이장되어 합장되었다. 그의 묘소 북서편, [[이우 (1912년)|이우]]의 묘소 우측 언덕에 후일 [[흥선대원군]] 내외의 묘소가 이장, 조성되었다.
         이재면의 거처는 운현궁의 영로당이었다. 그가 거처하던 [[운현궁]]의 영로당은 [[1917년]] 그의 아들 [[영선군]] [[이준용]]이 오랜 병치레 끝에 사망하자, 이준용의 계실 광산 김씨가 그의 주치의에게 사례로 주었다 한다. 이 주치의는 김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김영무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아버지이다. 두 번째 부인 여주이씨는 29세에 편을 잃고 종친회의 도움으로 혼자 살아가다 [[1978년]] [[1월 8일]]에 운현궁에서 사망했다.
         [[1920년]] [[양주군]] [[화도면]] 창현리(현, [[양주시]] [[화도읍]] 창현리)로 이장되었다. 신도비는 [[1919년]] [[5월]] 세워졌다. 초창기에는 이희공전화 신도비명이라고 세웠지만<ref>초기의 탁본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f>, 훗날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고 [[1948년]] 신도비를 다시 세울 때는 흥친왕신도비로 제목 3글자가 바뀌어져서 세워졌다.
         * 할아버지 : [[연군]]([[1788년]] ~ [[1836년]])
         ** 장 : [[영선군]] [[이준용]](永宣君 李埈鎔, [[1870년]] ~ [[1917년]])
         ** 며느리 : 군부인 증 흥친왕비 양홍씨, 판서(判書) 양인(南陽人) [[홍종석]](洪鍾奭)의 딸.
         *** 양손자 : [[이우]]([[1912년]] ~ [[1945년]]), 조카 [[의친왕]]의 차
         ** 2 : [[이문용 (왕족)|이문용]](李𪣢鎔, [[1882년]] ~ [[1901년]])
         한때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그를 추대하고 섭정이 될 계획을 세웠지만,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호인적인 성격만큼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뒤에 아들 [[이준용|영선군 준]]이 동생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대안자로 지목되면서 [[이준용]]과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사이에서 방관자로 았다.
         [[분류:1845년 태어]][[분류:191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외교관|이희]]
  • 김희애 . . . . 20회 일치
         이후 "산 너머 저쪽", 비운의 연기자 [[변영훈]]과 함께한 "분노의 왕국", [[최수종]]과 매로 나온 "[[아들과 딸]]"의 후이 역, 최진실과 투톱을 맡아 신들린 연기를 보인 "폭풍의 계절", 다시 한 번 황인뢰 PD와 함께 한 "연애의 기초" 같은 드라마로 최고의 연기력이라 인정받는 한편 [[최진실]], [[채시라]]와 함께 1990년대 TV 트로이카를 형성하는 여배우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1996년 [[이찬진]]과 [[형부]]한 후 슬하에 1998년과 2000년에 기현, 기훈 두 조카를두고있다. 결혼 후 공백기를 가지며 [[수원과학대학교]]에서 연기 강의를 하고 육아에 힘쓰다가 2003년 "[[아내(드라마)|아내]]"를 통해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1999년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둘째의 임신으로 도중 하차하였는데 이에 앞서 MBC 세 번째 자, KBS 2TV 진달래꽃 필때까지 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2003년 [[SBS]]에서 '''[[완전한 사랑]]''', 2007년 '''[[내 자의 여자]]'''를 통해 미시들의 우상으로 등극한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완전한 사랑]]''', '''[[부모님 전상서]]''', '''[[내 자의 여자]]''' 세 편 연속으로 주인공으로 출연해 "김수현 사단"의 멤버라는 인식이 있지만, 언급된 세 작품 이외에는 출연한 적이 없다.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본좌 연기자들 중 한 명으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잘하는 후배로 김희애를 언급했었고[* [[이순재]]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헐리우드 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후배 연기자로 [[자]]는 [[김명민]], [[여자]]는 김희애를 꼽았다.] "완전한 사랑"같은 경우에는 그 절절한 연기로 대본 리딩 때 김수현 작가를 비롯해 중견 연기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일이 많았다고.--하지만 [[올인(드라마)|올인]] [[이병헌]]의 포스에 밀려 연기대상에는 실패했다는 것[* 이때문에 김수현 작가가 대놓고 SBS 시상식을 쓰레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많은 후배 여배우들(특히 1970-1980년대생)들이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편은 한글과컴퓨터 창업자로 유명한 [[이찬진]] 씨이다.[[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358786|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도 모른다고 한다.]] 김희애의 형부가 이찬진의 서울대 선배였는데, 형부의 주선으로 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편의 사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모양. ~~[[성철|편은 편이오, 사업은 사업이로다]]~~
         [[꽃보다 누나]] 촬영 당시에 여행 짐 관련해서 잠깐 집이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편이 무슨 일을 하는진 몰라도 편의 취미는 확실히 알고 있긴 한듯. 왜냐면, '''집에 있는 가재도구 안에 [[아이맥]]과 [[아이패드]]가''' 있었기 때문. 설마 가족 전체가 [[앱등이]]일리가...
         국민 MC인 [[유재석]]과는 사이로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그 덕택에 [[무한도전 웨딩 싱어즈]] 특집도 같이하게 되었다[* 유재석이 2002년 봄 개편부터 공동 사회자로 합류한 SBS <토요일이 온다> 메인 MC였던 개그우먼 [[김미화]]는 김희애의 초등학교-중학교 선배다].
          * [[아들과 딸]](1992, MBC)/이후
          * 까레이스키(1994, MBC)/성
          * [[내 자의 여자]](2007, SBS)/이화영
         || 1991년 || '''대상''' || 산너머 쪽 ||
         ||<|2> 2007년 || 제1회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 現 코리아드라마어워즈] || '''연기대상''' ||<|2> [[내 자의 여자]] ||
  • 남경민(배우) . . . . 20회 일치
          | 이름 = 경민
          | 본명 = 하나
          | 부모 = [[윤다훈]](부), 은정(계모)
          | 친척 = 상흥(조부) <br/> 김은식(조모)
          | 형제자매 = 하영(이복 누이동생)
          | 웹사이트 = {{트위터|cutty871027}} <br/>[https://twitter.com/Vitamin871027 연기자 경민 공식 트위터]<br/>[https://www.facebook.com/cutty1027 연기자 경민 페이스북] <br/> [https://www.instagram.com/cutty1027/ 연기자 경민 인스타그램]
         '''경민'''(南慶敏, {{본명|하나}}, [[1987년]] [[10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한때 [[데뷔]] 초기에 '''서지은'''(徐志恩)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배우 [[윤다훈]](본명 광우)의 슬하 2녀 중 장녀이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0110&yy=2012 윤다훈 딸 공개 "미모의 여배우 경민"] [[매일경제]] 2012년 5월 4일</ref><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4/2012050401145.html 조선일보 보도 자료 리스트]</ref>
         신장은 166cm이고 체중은 48kg인 그녀는 2009년 6월, '''서지은'''이라는 [[예명]]으로써 [[모델 (직업)|패션 모델]] 첫 [[데뷔]]를 하였고, 2010년 2월에는 [[모바일 게임]] 《[[리듬스타 2|리듬 스타 2]]》의 [[사운드트랙|OST]]에 수록된 [[강철 (1972년)|Rion Project]]의 《Shiny day》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였다. 이 해(2010년) 3월 [[KBS 2TV|KBS]] [[텔레비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출연하였고, 2011년 4월 '''경민'''이라는 예명으로 연기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영화]], [[연극]], [[뮤지컬]] 등에 출연하였다.
         * 《[[신데렐라 언니]]》([[KBS 2TV|KBS2]], 2010년) ... 허이 역
         * 《[[학교 2013]]》([[KBS 2TV|KBS2]], 2012년 ~ 2013년) ... 경민 역
         * 2017년 《[[아리랑 TV]]와 함께하는 [[한국관광공사]]의 한국절경》([[아리랑 TV]]) ... ([[더 이스트라이트|이스트 라이트]] & [[모모랜드|모모 랜드]] & [[엘리스 (음악 그룹)|엘리스]] with [[경민 (배우)|경민]] & [[안다빈]] & [[최다니엘]] & [[김소혜 (1992년)|김소혜]] & [[박종찬 (배우)|박종찬]] & [[이랑 (배우)|이랑]] & [[신세휘]] & [[이지훈 (1979년)|이지훈]] & [[신수지]] & [[박세영 (배우)|박세영]] & [[김예린 (미스코리아)|김예린]] & [[정다빈 (2000년)|정다빈]] & [[이수민 (2001년)|이수민]] & [[이상벽]] & [[이문세]] & [[박상원]] & [[박상면 (배우)|박상면]] & [[노희지]] & [[박중훈]] & [[이진우 (배우)|이진우]] & [[최현석]] & [[이원일]])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ppn&query=%EB%82%A8%EA%B2%BD%EB%AF%BC&os=181931&ie=utf8&key=PeopleService 네이버 데이터 - 경민]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537637 Daum 데이터 사전 - 경민]
         [[분류:1987년 태어]][[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사생아]][[분류:목동중학교 동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비디오 자키]][[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로베르 기스카르 . . . . 20회 일치
         이탈리아를 정복한 노르만 군주이자, 아풀리아,칼리브리아,시칠리아의 공작. 칭호인 '기스카르'는 프랑스어로 '재빠른, 꾀보, 족제비, 여우'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는 노르망디의 소귀족인 오트빌가의 탕크레드의 12아들중 6째로 그가 후처 프레센다 사이에 낳은 6아들중에서는 첫째다. 당시 할일없고 영지를 상속받을 가망도 없는 노르만 귀족들이 으레 그랬듯이 '용병'으로 복무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내에서 '용병'이란 '용병대'가 아니라 영지를 봉급으로 외부의 기사들을 복무시켜 비잔티움 편제로 훈련시키는걸 말한다.] 그리고 그곳의 노르만 용병들이 그의 셋째 형인 '강철팔'기욤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킬때, 기스카르는 형을 따라 종군하면서 비잔티움에 맞써 싸운다.
         === 족제비, 이탈리아를 정복하다. ===
         한편, 멜피 공의회 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더더욱 치고 올라, 그해 겨울이 끝나기전 레조를 제외한 칼리브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타란토와 브란덴시에 있던 비잔티움 요새들도 모두 박살냈다. 이후 동생인 로제르와 함께 레조까지 힘락한 기스카르는 콘스탄티노스 10세가 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보낸 군대까지 격파하면서 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우세를 확실히 한다. 이후 그는 1061년에 로제르와 함께 메시나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1071년에는 바리를 함락하면서 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듬해 초에는 팔레르모를 함락하면서 시칠리아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1075년에 살레르노 공국을 정복하면서 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그의 야심은 이탈리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건 동방제국의 제위를 차지 하는것이었다.
         사실, 기스카르와 비잔티움은 이미 그가 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기전에 군사동맹의 체결이 논의 된적이 있었다. 1073년에 미하일 7세는 기스카르에게 군사동맹과 함께 로베르의 딸중 가장 아름다운 딸과 황실에서 태어난 황제의 동생[* '제국의 조각상'이라 불릴정도로 아름다운 자였다고 한다.]을 제안한다. 기스카르가 별다른 답을 보이지 않자 미하일은 거기서 더 강화한 제안을 하는데, 미하일의 아들 콘스탄티노스와 기스카르의 딸과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그에게 비잔티움의 훈장 44개를 가족 친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매년 금 2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기스카르에게 이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문이 비잔티움의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상당한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제위계승에 끼어들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훈장을 받는건 미하일에게 뇌물을 받는 꼴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감수못할 위험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신부감이 젖먹이 약혼자가 결혼할 나이로 자라기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떠난 신부감은 곧 그리스식으로 세례를 받은뒤 헬레나로 개명했고, 정교회에 소속되게 되었다.] 그러나 1078년에 니케포로스 보타네이아테스에 의해 미카일 7세가 폐위되고 그가 니케포로스 3세로 즉위하자, 헬레나가 황후가 될 일은 막혀버렸다. 퇴위된 미카일은 수도원에서 은거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0세를 닮아 학자기질이 다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생활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며느리가 될뻔했던 기스카르의 딸에게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을 삶이었을것이다. 이는 기스카르에게 좋은 개전 명분이 되었다. 마침 이탈리아에 반란이 일어나 원정이 지체 되었지만, 1080년 여름에는 전쟁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 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빠져 아나톨리아를 잃는등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었기에, 개전이 늦어지는건 그에게 큰 상황이 없었다.
         이후 기스카르는 그해 12월에 콘스탄티노플에 대사로 퐁투아즈 백작 라뒬프를 보냈는데, 표면적으로 그가 온 이유는 니케포로스 3세에게 헬레나에게 만족스러운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기위해서였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수도에 있던 노르만 용병들의 세력을 결집시켜 원정에 끌어들이는것과, 당시 내무대신이자 실세로 떠오르던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예상치못하게 알렉시오스가 니케포로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해 알렉시오스 1세로 즉위해버렸고, 노르만족들을 결집시킬 역할을 했어야될 라뒬프 백작은 오히려 알렉시오스에게 감화되어서 그와 우호관계를 구축하자는 기스카르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답을 해버린다(....) 라뒬프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스카르는 라뒬프를 ~~갈군~~호되게 질책한 뒤, 브란디쉬와 오트란토에 이미 모여있던 그의 원정군들을 아드리아해 너머 비잔티움령에 보내려 했다.[* 이미 아드리아해 너머에는 그의 장 [[보에몽 1세|보에몽]]이 이끄는 선봉대가 상륙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스카르가 돌아가고 은 군대를 맡게 된 보에몽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형이자 당시 세바스토크라토르라는 관직에 있던 이사키오스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과거 교회의 금과 은을 녹여 전쟁포로들을 되찾아온 전통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재산을 모두 몰수한다고 선언해 겨우 전쟁자금을 구할 수 있었지만, 보에몽은 야니나와 아르타에서 알렉시오스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그리스일대를 장악하고 테살로니카로 진군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렉시오스는 어찌저찌 라리사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 보에몽의 군대에 항복한 노르만 병사들에게 더많은 봉급을 주고 용병으로 재고용해주겠다고 보에몽의 진지에 소문을 퍼뜨리게까지 했다. 결국 연패를 거듭한 보에몽은 그리스에서 쫓겨난다.
         한편 기스카르는 즉각 이탈리아로 돌아와 1083년 한여름 안에 아벨라르와 그의 형제인 에르망의 난을 진압하고, 산탄젤로성에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교황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군대를 모집했고, 이듬해 초여름에 로마로 향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4세는 기스카르와 직접 싸움을 걸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로마성문으로 들이닥치기 사흘전에 군대의 대부분을 거느리고 롬바르디아로 숨어버린것이다. 한편, 기스카르는 5월 27일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조용히 도시의 북쪽으로 돌아가,섀벽에 공격을 개시했고, 순식간에 돌격대의 선봉이 플라미니우스 성문을 뜷고 도시로 진입했다. 로마 시민들은 노르만군에게게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마르티우스 광장 전역이 불타는 지역으로 변했다. 이후 노르만 병사들은 로마를 약탈하고, 말그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격분한 로마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 군중들이 기스카르를 포위해 그대로 끔살시킬뻔하기까지 했다(...) ~~아깝게도~~ 그에게는 다행히도 그의 차인 로제르 보르사가 병력 1천명을 이끌고 그를 구원해 겨우 목숨을 건진 기스카르는 노르만군들에게 도시를 모조리 불태우라고 명령한뒤, 교황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돌아가 비잔티움에 대한 후속 원정을 준비한다.[* 참고로 이때 기스카르의 나이는 예순 여덟이었다!! 그것도 서양식이니 한국식이면 칠순(....) 대단한 집념이라 할 수 밖에 없다.]
         1084년 가을에 그는 보에몽과 로제르 보르사, 기, 이렇게 삼형제가 이끄는 병력들과 함께 150척의 새함대를 꾸리고 비잔티움을 다시 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스카르는 불운을 겪는다. 부르린토에서는 날씨때문에 두 달이나 함대의 발이 묶였고, 가까스로 코르푸 해협을 건너고 난뒤에는 함대가 베네치아 해군의 습격을 받아 두번이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그상황에서도 기스카르는 베네치아 해군이 연락선을 그들의 본거지인 베네치아 섬에 보내자마자 은 함대로 기습을 가해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겨울에 그들은 그 어떤 적보다 가장 무서운 적들을 만나야 했다. 바로 역병이었다.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이병에 의해 노르만군들 상당수가 쓰러지고 만것이다. 그의 장인 보에몽도 병에 걸려 바리로 이송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기스카르는 아직도 자신만만했다. 초여름이 되자 그는 다시 병력을 이동시키기로 결정했고, 차인 로제르에게 선발대를 맡겨 케팔로니아를 점령하도록 한뒤, 몇주뒤에는 그도 거기서 아들과 합류하러 출발했다. 그러나 쪽으로 항해중 그는 그역시 해당 역병에 걸린걸 느꼈다. 함대가 섬의 북단에 있는 아테르 곶에 닿았을 무렵 그의 병세는 더더욱 심해졌고, 그의 배는 황급히 피스카르도만에 정박했다. 그리고 1085년 7월 17일에 거기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끝마친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가지 불행이 있었는데, 항해를 할때마다 폭풍이나 기타 연유로 제대로 함대를 유지시키기 힘들었으며, 후계권 문제로 그가 죽은 이후 이탈리아가 개판이 되버린것이다.(...) 최종적으로 이후 이탈리아는 그의 자손이 아닌, 그의 동생인 로제르의 아들인 시칠리아 공작 로제르가 시칠리아 왕 루지에로[* 로제르의 이탈리아식 인명]로 즉위하면서 통일되게 된다.
  • 오지호(배우) . . . . 20회 일치
         || '''출생''' ||<(> [[1976년]] [[4월 14일]] ([age(1976-04-14)]세), [[전라도]] [[목포시]] ||
         || '''가족''' ||<(> 2 1녀 중 [[장|둘째]][* 누나 1명과 동생 1명으로 장이다.][br]배우자 은보아, 슬하 1 1녀(딸 오서흔[* 2015년 12월 30일 출생], 아들[* 태명 지동, 2018년 8월 18일 출생]) ||
         || '''수상''' ||<(> [[2010년]] K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br]자 우수연기상 ||
         대한민국의 [[배우]]. 소속사는 엠엑스 엔터테인먼트. [[1976년]] [[4월 14일]] [[전라도]] [[목포시]] 출생.
         잘생겼지만 연기 못하는 배우 중에서도 무명급인지라 활동 지속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캐스팅[* 작가가 완강히 반대했으나 감독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촬영 직전에서야 겨우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된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어 연말 시상식에서 자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로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코믹한 역할을 상당히 많이 맡게 된다. 특징적으로는 원톱 여배우와의 호흡이 상당히 좋은 편으로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내조의 여왕, [[직장의 신]] 등 히트한 드라마 상당수가 그런 작품이 많다. ~~본격 원톱여주드라마 받침 주역 전문~~ 얼빵하거나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 본인은 코믹한 연기보단 진지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하다. 결혼 한 2014년 이후로 코믹한 역할로 출연한 작품이 거의 없다.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성격 등 인간성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듯.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텐프로]]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전 여자친구가 [[자살]]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오지호가 무명이던 시절 만나 그를 뒷바라지해주었으나 막상 오지호는 유명세를 얻고 난 뒤 그녀와 헤어졌고(다만 오지호의 말에 의하면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 뒤 그녀는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게다가 오지호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문상을 오지 않았는데, 고인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고인이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오빠에게 알려주라'는 문자를 겼고, 이에 따라 오지호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한다(아마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으며 이 이후 방송활동도 비교적 뜸해진 편.
          * 2004년 수목 드라마 [[두번째 프러포즈]](KBS) - 경수 役
         || 2004년 || [[KBS 연기대상]][* 드라마에서 불렀던 [[김종국]]의 한 자를 다시 부르는 특별무대를 가지기도 하였다.] || 자 조연상 || [[두번째 프러포즈]] ||
         ||<|3> 2006년 ||<|3> [[MBC 연기대상]] || 자 우수상 ||<|3> [[환상의 커플(2006)|환상의 커플]] ||
         || 자 인기상 ||
         || 2010년 || KBS 연기대상 || 중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추노(드라마)|추노]] ||
         ||<|3> 2013년 ||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3> [[직장의 신]] ||
         ||<|2> KBS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
         [[분류:목포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이금서 . . . . 20회 일치
         |자녀= 이윤홍(1), 이윤장(2), 이윤원(3)
         |친척= [[신라]] [[경순왕]](장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장모, 고려 태조 장녀), 대안군 [[김은열]](처, 신라 경순왕 4)
         '''이금서'''(李金書)는 [[고려]]초 문신으로, 호는 계(南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다<ref>[[경주 이씨|경주이씨]](慶州李氏)는 [[신라]](新羅) 개국원훈(開國元勳)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중시조는 [[효공왕]](孝恭王)때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이다</ref>. 경주 이씨(慶州李氏) 중시조 신라 말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의 손자이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사위이다.
         [[경주 이씨]] 대종보에 따르면 이금서의 아들은 1 이윤홍(李潤弘), 2 이윤원(李潤遠), 3<ref>[[평창 이씨]] 본원 선계록에 의하면 "금서공은 신라 [[경순왕]] 김부의 셋째 딸 '신란궁부인'을 맞아 부마가 되어 두 아들을 두셨다. 장자는 휘 윤홍이니 [[경주 이씨]]의 선조가 되시고, 둘째 아들은 휘 윤장이니 [[평창 이씨]]의 시조이시다."라고 하여 이윤장을 2으로 기록하고 있다.</ref> 이윤장(李潤張)이며, 이윤원은 [[가평 이씨]](加平李氏)로 이윤장은 [[평창 이씨]](平昌李氏)로 분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평창 이씨]]는 [[경주 이씨]] 분적종이 아니라고 밝혀져 분적종에서 제외되었고, [[가평 이씨]](加平李氏)는 중국에서 유래되어 본래부터 분적종이 아니다. [[평창 이씨]] 내부적으로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를 근거로 이광(李匡)을 이윤장(李潤張)의 8세 손으로 보아 이윤장(李潤張)을 시조로 보는 분파와 이광(李匡)을 시조로 보는 분파의 대립이 있었으나,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가 위작으로 밝혀져 이광(李匡)을 시조로 확정하고 이윤장과의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3<ref>[[평창 이씨]] 측 기록에 의하면 2. 현재는 이윤장과의 관련성 자체를 부인하는 듯하다.</ref> 이윤장은 고려의 대사마 대장군으로 후백제 견훤을 토평하고 개국공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경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윤장의 생모는 신란궁 부인 김씨가 될 수 없다.
         1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지냈다는 기록은 [[경순왕]] 3녀 김씨의 연대와 맞지 않을 뿐더러 [[이색]]이 [[이제현]]의 묘지명에서 이금서와 [[경순왕]] 3녀 김씨 사이에 이윤홍을 낳았다는 기록과도 모순이 발생한다.
         대학자인 [[이색]]의 인품과 그가 지은 [[이제현]]의 묘지명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기록 연대가 뒤처지고 위조나 오기가 발생하기 쉬운 족보상의 기록보다는 [[이색]]이 찬한 [[이제현]] 묘지명의 신빙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모순점들을 생각해볼 때, [[경순왕]] 3녀 김씨의 높은 신분을 고려하여 그 소생인 이윤홍을 이복형들인 이윤장, 이윤원에 앞서 1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신라말' 병정을 역임했다는 부분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고려초'의 오기로 보인다.
         == 가계<ref>이금현의 가계는 [[경주 이씨]] 족보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2과 3의 순서 및 실존에 대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다.</ref> ==
         **** 1 : 이윤홍(李潤弘)
         **** 2 : 이윤원(李潤遠)<ref>[[가평 이씨]]의 시조라고 하나, [[가평 이씨]] 족보상 그 시조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져, [[가평 이씨]]는 [[경주 이씨]]의 분적종에서 제외되었다.</ref>
         **** 3 : 이윤장(李潤張)<ref>[[평창 이씨]] 족보에 따르면 이금현의 아들은 2명으로 이윤장은 그 중 2으로서 시조 [[이광]]의 7대조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이 있는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를 근거로 그 시조를 이윤장으로 하는 족보가 간행되기도 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조선 숙종|숙종]]대의 족보가 위작으로 밝혀져, [[평창 이씨]] 측에서는 그 시조를 [[이광]]으로 확정하였고, 이윤장과의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평창 이씨]]는 [[경주 이씨]]의 분적종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윤장을 [[평창 이씨]]의 시조로 주장하는 견해도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ref>
  • 김광석 . . . . 1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서울특별시|서울시]] 창동 (서울) (대문시장4길) <br/>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창동 (서울) (대문시장4길))
         | 배우자 = 서해순<ref>본명은 서순애. 1965년 9월 14일생. With33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광석이 생존했던 그 해 나이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서해순과 처이 2002년에 세웠다고. 김광석 4집 리마스터링 앨범과 김광석:다시 앨범이 여기에서 나왔다.</ref>
         | 학력 = 서울대문시장
         1964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경기도 서울시]] 창동 (서울) (대문시장4길) 서울대문시장 에서 3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현재는 [[연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부인 [[서해순]]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가족 및 지인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광석의 자살설에 대해 가족들은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김광석의 누나들은 "광석이는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만큼 불효는 없다'라고 항상 말했다.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가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역시 "활발하고 마음이 약한 아이다. 자살할 아이가 아니다. 착하고 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들의 자살을 믿지 못했다.<ref>{{뉴스 인용|제목=故 김광석 타살의혹 재점화… 가족들 입 모아 “자살 아니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269614|출판사=한국일보|저자=최인경 기자|날짜=2012-06-19|확인날짜=2013-12-29}}</ref> 또, 김광석과 음악 동호회 활동을 했던 한 지인은 "돌아가시기 한 6개월 전쯤부터는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다"며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개인적으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점들이 지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밝혀져 김광석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것인지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혼자 은 밤
         # 이름없는 들풀로 피어/김영
         # 혼자 은 밤 /더 클래식
         # 혼자 은 밤 Instrumental
         ** 겨진 노래
         [[분류:김광석]][[분류:1964년 태어]][[분류:199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음악가]]
         [[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하모니카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통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의문사한 사람]]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19회 일치
          * K3리그팀: 양평FC, FC 의정부, 부여FC, 전 영광FC, 고양시민축구단
          * 대학팀: 서울숭실대, 강원한라대, 서울연세대, 강원상지대, 대전한대, 충북건국대, 충북청주대,
          * 대학팀: 경북영대, 경기용인대, 경기성균관대, 인천인천대, 충북건국대, 강원한라대, 강원상지대, 충단국대, 서울연세대, 대전한대, 서울고려대, 경기경희대()
          * 대학팀: 충단국대, 충북건국대, 경기성균관대, 경북영
         || 58 || 2016년 05월 11일 || [[성FC]] || : || 경북영대 || 1:0 ||
         || 63 || 2016년 05월 11일 || [[상주 상무]] || : || 충단국대 || 1:2 ||
         || 66 || 2016년 05월 11일 || [[전 드래곤즈]] || : || [[강원 FC]] || 4:0 ||
          * 대학팀: 경기성균관대, 충단국대
          * K리그 클래식팀: 전, 전북, 성, 광주, FC서울, 수원 삼성, 울산
         대략적인 평가는 늘 그래왔듯이 이변이 속출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K리그 클래식 팀 중에 절반에 가까운 5개팀이 탈락하였으며, 총 16경기 중에 하위리그팀이 상위리그팀을 잡아먹은 경기가 4경기가 나옴에 따라 하극상 비율이 25%나 되었기 때문. 다만, 대진운 때문에 내셔널리그팀은 본선에 진출한 5개 팀들 중 리그 1위인 용인시청만 살아게 된 반면에 K3리그팀인 경주시민축구단은 같은 K3리그팀인 포천시민구단을 이기고 올라오는 등 선전을 보였다.
         || 69 || 2016년 06월 22일 || [[전 드래곤즈]] || : || 용인시청 || 0:0 ||
         || 70 || 2016년 06월 22일 || 충단국대 || : || [[전북 현대]] || 0:0 ||
         || 75 || 2016년 06월 22일 || [[성 FC]] || : || 경기성균관대 || 0:0 ||
  • 문희(배우) . . . . 19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장강재]], [[자식|슬하]] 2 1녀 ||
         || [[윤정희(1944)|윤정희]] || [[문희]] || [[정임]] ||
         || [[원미경]] || [[이미숙]] || [[정애리(배우)|정애리]][*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를 참고바람.] ||
         대한민국의 [[배우]]. [[윤정희]], [[정임]]과 함께 1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서 영화에서 수많은 활약을 보여 줬다.
         [[1965년]]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영화 흑맥으로 데뷔했다. 유명 여배우 [[엄앵란]]이 흑맥의 촬영 현장에서 문희를 보았다고 하는데, 같이 촬영하던 자배우들이 문희의 눈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66년 [[초우]], 1967년 [[원점]]을 찍으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그렇지만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데뷔 초부터 화려하게 성공한 거랑 비교하면 문희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정임]]은 [[유정]]으로 데뷔작부터 대박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했지만, 문희는 이들에 비해 데뷔작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8년 여름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이들에게도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흥행작을 내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당시 서울 시내 한개 영화관에서 37만 관객을 동원하여 이전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윤정희도 정임도 못했던 기록 갱신에 성공한다.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맡았는데, 이러한 비련의 여성 이미지는 문희의 상징이 되었다. 이 때 문희에게 붙은 수식어가 '''눈물의 여왕'''.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성공으로 정임과 윤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 여배우가 되었다.
         이후 전성기 시절에는 [[윤정희(1944)|윤정희]]와 치열한 경쟁을 했는데 문희가 미워도 다시 한번을 낼 때쯤, 윤정희는 [[내시]]를 흥행시키며 만만치 않은 기세를 보여줬다. 윤정희는 선역에서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역을 소화했고, 정임은 발랄한 배역을 맡았다. 그러나 문희는 주로 눈물연기를 중심으로 한 선역을 맡았다. 그러나 윤정희가 연기력을 중심으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문희는 외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런 점 때문에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후 이외의 흥행작으로는 내 몫까지 살아 주, 파도, [[벽속의 여자]], 형, 결혼 교실, 춘향전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에서 5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매 중에서 형제들은 모두 자형제여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1965년 [[영화]] <흑맥>에 출연 본격적인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한 결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또한 [[윤정희(1944)|윤정희]], [[정임]]과 함께 1960년대~70년대 여자 영화 배우 트로이카의 한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다가 1971년 갑자기 [[한국일보]] 부사장 장강재와 [[결혼]]해 영화 출연이 뜸해졌다. 다른 원로 여배우들이 결혼후 각종 구설수에 오르던 것과 달리 화목하고 잡음없는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993년 편이 간암으로 사망하면서 사별하였다. 현재는 백상재단 이사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 1969년 《[[ 몰래 흘린 눈물]]》
         * 1969년 《[[차라리 이라면]]》
         * 1970년 《[[대여]]》
         * 1971년 《[[기러기 매]]》
         * 1971년 《[[지금은 이지만]]》
  • 장세용 . . . . 19회 일치
         ||<:>제18·19·20대[br][[유진]]||<:>→||<:>'''제21대[br][[장세용]]'''||<:>→||<:>현직||
         ||<bgcolor=#1870B9> '''{{{#FFFFFF 학력}}}''' ||<(> 대구상업고등학교 {{{-1 ([[졸업]])}}}[br][[영대학교]] {{{-1 (사학 / [[학사]])}}}[br][[경북대학교]] {{{-1 (사학 / [[석사]])}}}[br][[영대학교]] {{{-1 (사학[* 서양사 프랑스사 전공] / [[박사]])}}} ||
         1953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인동초등학교, 인동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영대학교]] [[사학과]]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를 졸업하였다.
         상술하였듯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개]]가 보수 정당 후보로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실제로 [[김관용]], 전임 시장이었던 [[유진]]이 모두 내리 3선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공단으로 인해 청년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세가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유진|그 전 시장]]의 여러 구설수와, [[구미시]]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경제 문제, 즉 [[삼성]], [[LG]]공장의 이탈로 인해 지역 경제가 치명타를 맞는 동안 1,000억 원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곤 하던 [[박정희]] 기념 사업을 강행한데 대한 불만이 폭증하였고, 무엇보다 [[바른미래당]] 후보(7.5% 득표)와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뛰쳐나온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9.5% 득표)들이 '''총합 17%'''나 득표하면서 --[[홍준표|모 대표]]의 [[트롤링]]으로-- '''보수 표가 세 갈래로 분열'''되는 역대급 행운과 함께[* 단, 바른미래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득표율이 무조건 보수 성향 지지자가 던졌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진보 성향의 지지자나 부동층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너무 노답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장세용 시장의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주기 싫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았거나 사실상 무효표로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물론 진짜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 시절부터 응원한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찍어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젊은 구미 시민들이 바꿔야 된다는 공감대가 함께 형성되면서 결국 민주당 소속으로 구미시장에 당선 된 첫 번째 인물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실제로 장세용 시장이 당선된 직후 [[유진]] 문서는 구미시민의 분노로 점철되어 가고 있다고(...) --돌이켜 보면 유진이 어떻게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기념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그 자체로는 인정한다”라고 발언하고 또한 전임 시장인 [[유진]]이 '박정희 타운'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붇고도 내리 3선을 그것도 모두 과반 득표에 성공해서 당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임 [[구미시]] 시장인 [[유진]] 문서에는 유진에 대해서 대부분 구미 시민들이 악평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엄연히 유진은 구미에서 '''내리 3선을 과반 득표로 모두 당선'''된 인물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4~6회 지선 광역비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표가 76.5%, 48.7%, 71.5%로, 이 표가 유진 전 시장표(75.9%, 53.1%, 52.6%)로 이어졌다.(단, 6회는 새누리당 표가 분열되었다.) 그래서 3선.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50.4%로 하락했고, 2018년 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41.3%로 더불어민주당 43.3%에 졌고, 이에따라 시장직도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게 되었다. 만약, 1:1로 대결하였더라면 기초의회 비례득표를 기준으로 계산하였을 때, 진보vs보수 구도에서는 48.2%vs51.8%로 보수측이 승, 반자유한국당vs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구도였다면 57.5%vs47.5%로 반자유한국당측이 승리하였을 것이다. 바른미래당 지지층이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진보(더불어민주당+정의당)가 48.2%로, 보수(자유한국당+대한애국당, 42.5%)보다 좀 더 유리했을 것이다.] 여전히 구미시에서 [[박정희]]의 존재감과 위치란 [[목포시]]에서의 [[김대중]] 이상의 위치이고 또한 '[[박정희]] 기념사업' 축소에 대한 보수파들의 반발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과연 '[[박정희]] 기념사업'들을 어디까지 축소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나마 시의회의장 · 부의장의 지역구가 더민주 접전, 강세인 지역[* 시의회의장 선거구는 마 선거구(인동동, 진미동)로, 여기서 장세용 시장은 여기서 49.84%의 득표율을 올렸다. 부의장 선거구는 가 선거구(선주원동, 도량동)로, 여기서는 38.96%로, 이양호 후보(39.80%)와 0.84%p로 접전을 벌였다. 광역의회 비례 득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47.47%, 39.74%로, 자유한국당과 각각 +15.25%p, -0.26%p의 격차를 보였다.]이라 이론상으로는 주민소환제로 날릴 순(...)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의원직을 상실하면 자유한국당이 절반, 두 명 모두 상실시 자유한국당 과반이 무너진다. 게다가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사업 축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밝혀, 이 문제로 한동안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은 [[21대 총선|2020년]]을 기대해보자--
         9월 20일,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가 새마을운동 테마파크를 경상북도에서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220851&part_idx=274#09HT|“경북, 새마을테마파크 직접 운영”]]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425991|879억 애물단지 ‘새마을공원’ 운영비, 결국 경북도가 부담]] 이로써 연간 20~30억원의 운영비 부담은 덜었지만 역사자료관 명칭 변경에서 보수측은 박정희 지우기라면서 반발하고 있다. ~~[[유진|지난 시장]]이 저러다가 이번 지선에서 뒤집혔는데, 국회의원도 [[더불어민주당|파랗게]] 뒤집고 싶을 듯, 이 동네에서 [[정의당|노란색]]이나 [[바른미래당|민트색]]은 안 뽑힐 듯 하니~~[* 구미 갑은 원도심(원평, 도량, 형곡)vs공단+신시가지(공단/비산+선주원/오태 등) 싸움이고, 구미을은 읍면vs동지역+공단(인동/진미/양포/산동)의 싸움인데(갑을 모두 앞쪽이 보수 우세 뒤쪽이 진보 우세), 구미 갑은 양쪽 인구 수는 비슷하지만, 자유한국당vs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범보수vs범진보로 본다면, 선주원동, 비산동, 상모사곡동이 경합으로 넘어간다. 구미을은 동지역+산동면이 읍면 지역 인구의 1.5배 정도 되지만, 범진보가 8~22%p 우세를 보이는 동지역+공단과 달리 읍면지역은 범보수가 19~'''66'''%p 우세를 보여 읍면지역이 투표율이 더 높은 것과 함께 구미을 선거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영대]] 재직 시절 육영재단 반대 투쟁을 했다가 외압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의 아픔을 [[박정희]]의 성지인 [[구미시]]에서 당선되면서 위로 받았다.
  • 추봉 (배우) . . . . 19회 일치
         | 자녀 = 슬하 3
         [[1922년]] [[경성부]]에서 3매 중 차으로 태어났다(편집위원회). 이승학(李升學)의 문하에서 5년간 음악을 배웠으며, 1940년부터 극단 성군(星群)에서 활동했다. 영화데뷔는 1952년 손전 감독의 《공포의 밤》에 배우 양일민의 추천으로 출연하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조,단역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한겨레신문).
         * 1968년 《
         * 1968년 《정임 여군에 가다》
         * 1969년 《편》
         * 1969년 《자와 기생》
         * 1969년 《차라리 이라면》
         * 1971년 《두 자》
         * 1971년 《매는 단둘이다》
         * 1980년 《매일 죽는 자》
         * 1983년 《내가 마지막 본 흥》 - 술집 주인 역
         * 1995년 《[[자는 괴로워 (1995년 영화)|자는 괴로워]]》
         * 1999년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 특별연기상()
         [[분류:192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1952년 데뷔]]
  • 킹덤/524화 . . . . 19회 일치
          * [[조아룡]]과 [[마자]]가 후배뻘인 악영에게 제 1군을 양보한건 그를 통해 적의 역량을 가늠하고 다음 수를 펼치기 위해서.
          * 어느 정도 정보가 수집되자 마자가 움직인다. 그는 변경 출신에 딱히 애국심이 두텁지도 않았으나 진나라가 진심으로 조나라를 멸하려들자 극도로 분노했다.
          * 마자는 최전선에서 적을 유린하는 무인일 뿐만 아니라 부대를 둘로 나눠 악영의 1진과 2진을 동시에 타격하는 전술안도 지닌 명장.
          * 마자가 아광군의 좌측을, 악영이 정면을 압박하자 아광군도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하는데, 어느 소규모 기마대가 나타나 아광군에 조력한다.
          * 악영에게 1군을 양보한 [[조아룡]]과 [[마자]]. 둘은 한참 싸움이 격해지는 벌판을 응시했다. 마자가 문득 조아룡에게 물었다. 어째서 악영에게 제 1군을 양보했는가? 조아룡이 답하길 악영과 그 군은 강하며 그런 군이 적들과 먼저 부딪힌다면 적의 역량이 완연히 들어나기 때문이라 답했다. 그러자 마자도 같은 생각을 했다 털어놓는다. 이렇게 악영을 통해 살펴보니 적들의 총 수는 약 2만. 그 힘도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다. 두 장군은 모두 여기에 동의했다.
          * 이제 마자가 부관 [[월보]]를 데리고 제 2군을 맡아 돌진한다. 조아룡이 조금 빠르지 않냐고 묻는다. 마자는 자신이 가슴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본디 북방에서 나고자란 그는 딱히 애국심이란 걸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 그 조차 진나라의 이번 침공을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놈들은 진심으로 조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은 계속 이 마자의 분뇌의 철퇴를 먹여주고 싶었지.
          * 조군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아광군이 난데없이 측면을 요격당했다. 선두는 마자. 그의 창이 번뜩일 때마다 주인 잃은 목이 나뒹굴었다. 오직 정면의 적에 집중하던 아광군이 순식간에 위기에 처한다.
          * 아광은 자신의 군단을 둘로 나눠 악영과 직접 격돌한 1진, 후방에서 대기하는 2진으로 구성해두었다. 1진이 난입한 마자 군에 측면을 유린 당하자 2진의 제 1대, 2대가 원군을 급파한다. 그런데 그 2진도 좌측에서 습격을 받았다. 마자는 아광의 부대 구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도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악영을 구하러 가는 주공에 3천, 그리고 제 2진을 저지하러 가는 조공을 7천으로 배정했다. 주공의 목적은 악영군과 합류해 아광 1진을 정면과 좌측에서 압박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조공은 제 2진에서 조력하러 오는 병력을 저지하는 것.
          조아룡은 적진을 난도질하는 마자의 무용과, 적의 배치를 이용해 절묘한 병력 분산을 펼친 전술안을 한눈에 바라보며 과연 그 [[이목(킹덤)|이목]]이 부장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무력은 [[개자방]]과 [[염파]]에 비견된다 알려져 있으니, 마자야 말로 왕전과 이목의 지략전에서 승패를 좌우할 인물일지 모른다.
          * 적을 몰아붙이는데 골몰하고 있던 아광군은 측면을 내주면서 급격히 약화되고 있엇다. 1진은 이미 악영군과 한참 교전 중이라 측면을 강화하러 보낼 병력이 없었고 2진도 마자가 세운 벽에 걸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싸움은 순식간에 난전 양상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때 1진과 2진 사이를 소속 불명의 기마대가 가로질러갔다. 양군 모두 전투의 도중인데도 저 기마대가 어디서 온 건지, 누구의 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 이 정체불명의 기마대는 마자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 기마대는 곧 말머리를 돌려 마자가 있는 주공 3천을 향해 돌진해왔다. 분명 진군의 별동대다. 주공의 중심을 쳐서 전위를 고립시키려는 계산이다. 마자는 [[친비]]를 시켜 우측에 나타난 새로운 적을 방어하도록했다. 친비는 기마대를 이끌로 적이 접근하기를 기다려 요격을 가한다. 그러나 적의 선두가 눈부신 창술을 펼쳐 친비와 그 부하들을 일소한다. 이들은 왕분과 옥봉대였다. 그렇게 얌전히 있으라고 일렀건만 결국 멋대로 전장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관상이 나중에 아광에게 한 소리 듣겠다 투덜대지만 왕분은 "시끄러" 한 마디로 대꾸했다.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18회 일치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역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날 새벽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을 이용하던 23세 여성이 34세 성 피의자 김모씨에 의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자친구에 의해 발견되어 오전 1시 25분 경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같은 날 오전 10시 김모씨는 긴급 체포되었으며 자백을 받아냈다.
         사건 자체의 성격보다는 지금껏 인터넷 등 한정된 공간의 논란이었던 녀 갈등이 사회적으로 분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이전부터 사건을 여험범죄로 규정하고 있었으며 강역 포스트잇 추모를 기획하고 각종 추모 행사 및 여성혐오 중단 촉구를 위한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추모행사를 주도한 것만이 아니라 이것을 자신들의 혐활동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였으며 한국사회를 여혐사회로 단정하고 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는데 총력을 다했다.
         여초사이트가 주도한 만큼 이 사건은 웹상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데 주로 SNS를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처음에는 시민사회 전반의 애도가 모였으나 워마드를 비롯한 여초사이트의 공세가 강화되고 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한국사회를 답이 없는 여혐사회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났다. 워마드를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을 모두 "여혐"과 "반성을 모르는 성"으로 규정, 철저히 비하하면서 이 사건은 여혐 대 혐의 구도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때 정도를 지켜야할 언론에서는 사건을 원색적이고 편파적으로 다루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특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에서는 워마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 극도의 페미나치스러운 기사를 쏟아내어 진보 진영 안에서도 성토를 당했다. 일부 유명인들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워마드에 편승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히 진보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은 한국 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x잡고 반성이나 해라"는 폭언을 늘어놓고 욕을 먹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가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특히 피해자의 오빠는 여혐논란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유가족의 목소리 조차 "한국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하로 일관하였다.
         당초 여초사이트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것은 메갈리아였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여러 사건을 거치며 세력이 위축되자 거기서 한 번 더 분화되어 나온 것이 워마드였다. 워마드는 여성판 일베, 혹은 소라넷으로 불리울 정도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주장을 펼치는 세력이었는데 강역 살인사건 논란과 함께 주목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발언과 미러링이라는 핑계 조차 내다 던진 노골적인 성혐오 때문에 "성을 강간하자"라는 일베스러운 논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기사화되기도 하는 등, 여초사이트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워마드는 메갈리아가 SNS와 홈페이지에서 활동하던 것을 넘어 오프라인 시위와 추모행사를 주도하며 훨씬 행동력 있는 조직으로 부각되었고 이에 대항해 일베 등의 초 사이트에서도 강역 추모현장에서 행패를 부리고 추모 포스트잇을 훼손하는 등 민폐에 민폐로 대항하는 행동을 보였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일반시민 사회에서는 이러한 혐 대 여혐 논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 성별과 무관하게 해당 사건을 추모하고 취약해진 치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 고세원 . . . . 18회 일치
         고세원은 [[뮤지컬]]《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뮤지컬]]에서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의사《닥터리》와 멀티맨으로 출연하는 고세원은 그동안 뮤지컬《벽을 뚫는 자》,《아이러브 유》,《김종욱 찾기》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TV쪽에서는 10년 여 간《[[막돼먹은 영애씨]]》의 김혁규(빡규)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일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역할로 자주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고세원은 [[박찬호]] 군대 조교를 했었다고 박찬호와의 인연을 들려줬다. [[1999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충 공주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했고 그때 [[박찬호]]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후 [[1999년]] [[10월]] 이곳에 입소해 4주간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라면 끓일 뜨거운 물로 라면을 포기하고 [[박찬호]]의 허리 찜질을 해 줬다는 얘기도 들려줬다.<ref>{{뉴스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904|제목=탤런트 고세원 "박찬호 軍조교가 바로 나"|성=|이름=|날짜=2007-10-30|출판사=경인일보|확인날짜=2010-04-20}}</ref>
         * [[2018년]] [[MBC]] 월화드라마 《[[검법녀]]》 ... 강용 역
         * [[2007년]] 《벽을 뚫는 자》 ... 공무원 B씨 역
         * [[2009년]] 《[[김종욱 찾기]]》 ... 자 역
         * [[2009년]] 《신상 뮤지컬 콘서트》 ... 완벽한 재벌
         * [[2009년]] 《[[아이 러브 유]]》 ... 자1 역
         * [[2008년]] [[엠넷]] 《다섯 자와 아기천사》
         | 장편드라마부문 자 특별연기상
         | 연속극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제목=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상》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연기}}
         [[분류:1977년 태어]][[분류:1997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
  • 김민희(1982) . . . . 18회 일치
         ||<#0f0f3e><:>'''{{{#white 가족}}}'''||<(><#ffffff> 1 2녀 중 막내 ||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타마코]], 나의 [[숙희|숙희]].”'''
         그 뒤로 [[2012년]] 《[[화차(영화)|화차]]》, [[2013년]] 《연애의 온도》, [[2014년]] 《[[우는 자]]》,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6년]] 《[[아가씨(영화)|아가씨]]》 등을 통해 좋은 연기[* 데뷔 때와 비교하면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자연스러워지고 섬세한 표현력이 증가하였다.][* 《서프라이즈》와 《[[아가씨(영화)|아가씨]]》의 편집 감독이 같은 사람인데, "그 때의 김민희와 지금의 김민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극찬했다.]를 선보이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흥행에 있어서도 안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며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
         2016년 영화 《[[아가씨(영화)|아가씨]]》를 통해 영화감독들이 선정하는 제16회 디렉터스컷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여 감독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6년 11월 25일 모든 한국 영화인들의 로망인 제3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같은회차 청룡영화상의 우주연상은 배우 [[이병헌]]이 수상했다. 비록 녀주연상을 받은 두 배우가 사생활 논란이 있었지만 연기력으로는 충분히 받을만 했다는 평가다.
         || [[SBS]] || 줄리엣의 자 || 소찬비 ||
         || 2001년 || SBS || 짧은 만 긴 이별 || 혜림 ||
         || 2014년 || [[우는 자]] || 주연 || 모경 ||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례와 같이, 감독과 여배우 사이에 빚어지는 스캔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것이라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너그럽게 보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지만, 애초에 결혼한 기혼 혹은 기혼녀가 가정을 깨고 다른 누구와 [[간통]]을 저지르는 사건은 여론이 너그럽게 반응해주지 않는다.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긴 했다만 김민희와 홍상수 역시 간통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과거 [[설경구]]-[[송윤아]] 커플의 경우처럼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배우의 팬사이트라 할 수 있는 김민희 갤러리 역시 일시적으로 서포트 활동을 중단했으며 루머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팬질을 접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인 판국이다. 거기다 이 경우에는, (일단 홍상수 부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김민희가 부인에게 [[아침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녀]]나 할법한 '''"그러게 편 관리 잘 하지 그랬어요."'''라는 망언까지 했다는 루머까지 나온 판이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33&aid=0000017690|기사]]
         [[2016년]] [[7월 17일]], 6월에 출국한 지 약 1개월 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시아나 항공기로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고, 마중 나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 자와 함께 공항을 떠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 보도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김민희와 [[홍상수]] 측의 해명에서 나온,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겨 별거 중인 유부을 미혼의 젊은 여배우가 챙겨준다는 상황 자체가, 당사자인 배우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인식으로도 상당히 의심스러워 보이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사건 초기에 기레기들의 악의적인 과장된 보도가 쏟아졌는데, 이것에 대해서 결국 홍상수와 김민희가 그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간통 논란이 기정사실화된 것에 일조했다.
         만약 김민희와의 불륜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이혼을 원하는 것이며, 부인이 이혼 사유를 불륜이라고 추측하는 상황이라면, 본인들의 커리어나 이미지는 물론 이혼 소송에도 지극히 불리한 불륜 혐의부터 벗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불륜녀라고 지목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긴 시간 내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기다 침묵을 고수하여 팬들조차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 나타났고, 잠수를 탄 기간 동안 둘이서 영화 촬영을 준비해왔다고 하면 이를 좋게 받아줄 사람은 거의 없다.
         이에 관련하여 [[탈덕|마음이 떠난 팬들은 다 떠나고]] 은 팬들은 초연한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홍상수 감독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팬으로써 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지지인지는 둘째로 치고 [[베를린 영화제]]가 둘의 도덕성을 별개로 예술성만 평가한 것처럼[* 서양 특히나 유럽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적인 행보는 둘째로 치고 김민희라는 영화배우에 대한 팬심을 유지하기로 한 듯 보인다. 그래서 그 규모는 많이 줄었으나 아있는 인원끼리 리뷰북을 제작하는 등 조공을 바친 모습을 보였다.
         || 2000년 || [[SBS 연기대상]] || 여자 신인상 || 줄리엣의 자 ||
  • 김종훈 (1952년) . . . . 18회 일치
         |지역구 = 前 [[서울 강구의 국회의원|서울 강구 을]]
         * 2012년 5월 ~ 2016년 5월 :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강을)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영세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대한민국 19대 총선|제19대 총선]]||[[서울 강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서울 강구 을)]]||19대||[[새누리당]]||{{막대|새|5|9|4|7}} 59.47%||73,34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서울 강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20대 총선|제20대 총선]]||[[서울 강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서울 강구 을)]]||20대||[[새누리당]]||{{막대|새|4|4|4}} 44.4%||41,757표||2위||낙선
         |전임자 = (강구 갑)[[이종구 (1950년)|이종구]]<br />(강구 을)[[공성진]]
         |후임자 = (강구 갑)[[이종구 (1950년)|이종구]]<br />(강구 을)[[전현희]]<br />(강구 병)[[이은재]]
         |직책 = [[서울 강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서울 강구 을)]]
         |같은 지역구 의원 = (강구 갑)[[심윤조]]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통상교섭본부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
  • 박두을 . . . . 18회 일치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자녀 = 슬하 3 5녀
         박두을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편 [[이병철]]의 일생이 자서전과 소설, 추모집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하긴 그 옛날 내조하는 아내의 전통적인 삶이란 게 이렇게 철저히 그림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병철]]조차 286쪽에 달하는 자서전에서 박두을에 대한 언급을 단 몇 문장으로 줄였다.
         {{인용문|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 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박두을에 대한 기록은 장 [[이맹희]]가 쓴 책이 비교적 자세하다. [[삼성그룹]] 후계 자리를 동생 [[이건희]]에게 내준 비운의 황태자로 알려진 그는 [[1993년]] '묻어둔 이야기'라는 회고록에 어머니 박두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박두을은 편 [[이병철]]이 대학 재학 중인 [[1929년]]에 장녀 [[이인희|인희]]를 낳은 데 이어 3 5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호암자전에서 [[이병철]]은 자신의 자녀 수를 4 6녀라고 적시했다. 이 중 자신과 박두을과의 사이에서 3 5녀를 두었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 1녀를 두었다.
         [[의령군|의령]]의 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자식 놓고 어려움 없이 지내던 박두을에게 시련이 닥쳤다. 편이 대학을 자퇴하더니 무위도식하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편의 대학 자퇴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말 심한 각기병에 걸린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휴학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학업을 단념하고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귀향했다.
         {{인용문|'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 가느냐에 있다.'(호암 평전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 장 : [[이맹희]] (1931 ~ 2015)
         *** 자부 : 손복 (1933 ~ )
         *** 차 : [[이창희 (1933년)|이창희]] (1933 ~ 1991)
         *** 3 : [[이건희]] (1942 ~ )
         [[분류:1907년 태어]][[분류:2000년 죽음]][[분류:이병철]][[분류:삼성가]][[분류:순천 박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부산광역시/인물 . . . . 18회 일치
         * [[권진아]] - 구(부산)
         * [[김주혁(배우)|김주혁]] - 구(부산)
         * [[김무성]] - 구(부산)
         * [[김뢰하]] - 구(부산)
         * [[김태한(배우)|김태한]] - 중구(부산) 포동1가 (태종로) [[부산 롯데마트 광복점]]
         * [[김혜리(배우)|김혜리]] - 중구(부산) 포동5가 (자갈치해안로) [[부산자갈치시장]]
         * [[렌(뉴이스트)|렌]] - 구(부산)
         * [[마해영]] - 구(부산)
         * [[박계원]] - 구(부산)
         * [[박정태]] - 구(부산)
         * [[박현승]] - 구(부산)
         * [[배정]] - 금정구
         * [[신민재(1991)|신민재]] - 구(부산)
         * [[아린(오마이걸)|아린]] - 구(부산)
         * [[올라이즈 밴드]] - 구(부산)
         * [[유재명]] - 구(부산)
         * [[윤세아]] - 구(부산)
         * [[지한솔]] - 구(부산)
  • 영주시 . . . . 18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인구는 2016년에 들어 10만 9천여 명으로 계속 인구가 줄고 있다.[* 1995년경에는 인구가 약 15만명이었다. 이때부터 따져도 매년 거의 2천명 꼴로 인구가 줄어든 셈. 그런데 2018년 현재 약 16만인 안동시 인구도 그 당시에는 거의 20만명에 달했다. ~~그때가 좋았지~~] 시의 동부에 [[봉화군]], 부에 [[안동시]], 서부에 [[예천군]]이 있으며 북부는 죽령을 경계로 [[충청북도]] [[단양군]], 마구령을 경계로 [[강원도]] [[영월군]]과 맞닿아 있다.[* 영월군으로는 육로로 직결이 안 되어있어서 단양군 영춘면을 통과해야 한다.]
         1980년 영주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어, 은 영주군 지역이 영풍군(榮豊郡, '영'주와 '풍'기에서 한 글자씩 따서 새로 지었다)[* [[영풍그룹]]과는 관계 없다.]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북부로 [[소백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부는 평탄한 침식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시 부에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흐른다.
         또 부석사 앞으로는 영주 부의 넓은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어 낮은 산들이 겹겹이 겹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 과거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극장 2개, 소극장 4개가 있었으나 90년대 말에 소극장 3개로 줄더니, 2018년 현재는 소극장 1개 밖에 안아있다. 마지막으로 은 '예당 시네마'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데, 상가빌딩 2층을 쓰는지라 관이 1개밖에 없고 그 크기도 작다. ~~하지만 의자는 [[CGV]]에서 뜯어온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안동으로 이동하여 [[메가박스]]나 [[CGV]]를 이용한다. ~~심지어 문경시에도 메가박스가 있는데!~~
         [[동방언]] 중에서도 안동, 봉화,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 방언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나마 평야가 많은 안동, 예천 등과 달리 산악에 걸터앉은 지형인지라 영주-봉화 사투리는 안동과도 미묘하게 다르다. 때문에 경상북도에서도 사투리가 조금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 지역에서는 사투리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가장 먼 부산보다 그나마 수도권과 가까운 영주의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강원도 부지방과 충청북도 동부([[제천시]], [[단양군]]) 이들 지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있기 때문. [[부산]]을 비롯한 경 해안가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하면서 어설프다고 놀리기도 한다. 가끔 수도권 사람들이 사투리 별로 안 쓴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은 영주 사투리의 예문이다.
         > 아래께(=며칠 전에) 한데서(=바깥에서) 다릐가(=다른 이가) 마케(=전부/죄다. 사실 이건 강원도 사투리 '마카'의 변형이다) 시스맘(=각자/제각기) 선낱씩(=하나 둘/적은 수/조금씩) 주께는데(=지껄이는데) 메란도 없었(=매우 많다/정신 없다/난장판이다)니더(=경북 북부지방 종결어미. [[동방언]] 문서에서 유홍준이 능교형과 니껴형으로 구분한 문단 참조할 것).
         추가로 영 방언에서 의문형으로 쓰이는 "가" 대신(예시: 쟈가 장동거이가?) "라"를 쓰는 경우가 많다.(예시: 쟈 장동거이라?)
          * [[경상북도]]에서는 [[경주시]] 다음으로 [[양반]]이 많았던 곳으로, ~~[[안동시]]는?~~ 전국에서는 경주, 목천[* 현재의 [[충청도]] [[천안시]] [[동구]] 목천읍 및 그 주변.] 다음의 3번째 순위였다.
          * [[PC방]] 가격이 비싼 편이다. 대부분 1시간에 1,200원이고 5,000원에 4시간 30분, 10,000원에 9시간 30분이다. 과거 영주시에 사람이 많을 때는 PC방이 상당히 많이 있었으며 1,000원 미만의 피씨방 또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많은 PC방이 문을 닫게 되었고, 은 PC방들 중 일부는 24시간 운영을 위해 가격을 평균보다 비싸게 받게 된다. 일례로 꽃동산 회전교차로쪽 PC방을 가보면 가격이 저렴한 대신 새벽시간 때가 되면 문을 닫으며 1,200원 이상을 받는 곳은 24시간 영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기에는 더 싼 곳이 있지만 가는데 교통비가 더 든다는 게 함정~~ ~~그런데 풍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동양대, 경북항공고 주변 PC방은 회원가입해도 5천원 5시간이다~~ 여담으로 시내의 PC방 2곳은 업주가 부부라 가보면 모니터도 똑같고 의자, 탁자, 본체 등도 같다고 한다.
          * [[흑역사]]로 은 [[폐건물]]이 있는데 2008년에 부분개장한 판타시온 리조트이다. 나머지 시설을 다 건설하기도 전에 부도가 났으며, 2011년 다시 개방됐을 찰나에 얼마 못가 또 다시 문 닫히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도 방치된 상태다.
          * [[상미]] : [[배우]]. 박 의장녀이다
  • 유민상(개그맨) . . . . 18회 일치
         || '''가족''' ||<(> 부모님, 동생^^(1981년생)^^ ||
         심지어 팬클럽은 전비모(전국 비만인 모임). 가입조건은 자 100kg 이상, 여자 80kg 이상이다.
         [[민상토론 2]]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요즘 정치가 너무 웃기기 때문에 코미디가 재미없는거다?"]]'''라는 --명--대사를 겼다.
          * 2013년 9월 24일 311회 [[1대 100]] 때 [[1대 100/1인 우승자 #S-5.1|2,3단계에서 찬스를 소진하면서 위기를 맞은 뒤 7단계에서 최후의 2인과 접전을 벌였으며 최종 결과는 여기 참고.]][* 3단계에서는 장효인에게 2인의 답 도움을 받고 통과했다.] 이 때 후배 [[장효인]]이 유민상이 짝사랑하는 개그우먼 후배 S양이 '''[[박소영(개그우먼)|박소영]]'''이라고 폭로했지만, 실제로는 [[유장프]]에서 90년생 미녀개그우먼 '''홍예슬'''로 밝혀졌다.[* 2015년 12월 22일 홍예슬이 현장토크쇼 TAXI에서 당시를 회상하길, '영화볼래?'란 문자가 먼저 왔단다. 부담스러웠지만 대선배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어 동기와 함께 나갔더니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나랑 사귈래 총맞을래'라길래 쏘라고 했단다. '선배님 저는 성시경같은 자 좋아해요'라고 그랬더니 무려 성발라의 노래를 부르며 대시. 곧 '성시경이 싫어졌어요'라고 철벽을 치는 안타까운 결말.....숨기고 싶은 과거도 활자화되기 때문에 공인은 이래서 힘들다.]
          * 504회부터 506회까지 1대 100 객원 MC를 맡았다.[* 504회 뒷부분은 파업으로 대리 진행한 한상권 아나운서의 녹화분이 방영되었다.] 방송에는 '지적인 자 유민상' 컨셉으로...
         트위치 방송 도중 '여성 스트리머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타 스트리머들을 평가하는 방송을 진행하여 논란이 있었다. [[https://clips.twitch.tv/HeartlessLightDadEleGiggle|클립1]], [[https://clips.twitch.tv/FaithfulHeadstrongOctopusShazBotstix|클립2]] 방송 진행 방식이나 여자 스트리머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후 '성 스트리머 분석'이라는 제목으로도 진행을 하였는데 스트리머 [[홍방장]], [[쉐리(인터넷 방송인)|쉐리]]의 방송은 피해가면서 "이 분들은 이런 장난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했다.
         8월에는 스트리머 [[풍월량]]의 배틀그라운드 상자깡 방송을 장시간 도방[* 도둑방송 또는 도용방송이라는 뜻으로 아프리카 TV에도 있는 용어. 의 허가 없이 자기의 라이브 방송에 의 라이브 방송이나 다시 보기 화면을 띄우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트위치나 BJ의 방송 자체가 고유의 컨텐츠(저작권)이기 때문.]하는 일이 있었다. 트위치에서 허가 없는 도방은 금지[* 대표적인 사례가 하스스톤 카드공개 도방 사건이다. 블리자드의 카드공개 방송을 도방하던 다수의 하스스톤 스트리머들이 단체로 2일 정지 처분을 받았다. 블리자드의 카드공개 방송은 블리자드에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영상 도네이션 중 저작권 보호 요청 영상을 틀면 정지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트위치에서는 단시간 도방이 이미 문제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 영상 도네이션 등으로 '''허가 받지 않은 타 스트리머의 트위치 클립'''이나 '''유튜브 편집본을 송출'''하는 행위는 다시 보기 화면의 일부(도방)일뿐더러 엄연한 저작권 위반 행위이기 때문이다. ~~트수의 암살 시도~~]되어 있다는 시청자의 지적에 "그런말 할거면 팔로우나 누르고 가라"는 식으로 다시 한번 트위치 스트리머와 시청자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트게더에 이를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자 이를 비꼬는 듯한 댓글을 달아 다시 논란을 가중시켰다.
          * 2013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자 우수상을 수상했다.--본인은 최우수상 수상 소감을 준비해 왔다고 한 건 안 자랑--[* 소감을 읽을 때 --다분히 의도적으로-- 상 이름을 언급할 때면 매번 '최우수상'이라고 말한 뒤 바로 '아니, 우수상'이라고 정정하거나 '대상 바로 밑에'라고 했다가 '아니 대상 바로 밑에 밑에'로 정정하는 등 깨알같은 재미를 주었다. 여담으로 그토록 바라던 최우수상은 캐릭터적 라이벌(?)인 [[김준현]]이 수상했는데, 동료들이 김준현에게 꽃다발을 건네러 단상에 나올 때 같이 나와서 '''트로피를 바꾸자고''' 딜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 2014년 2월 3일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해 ''''단 한번도 팬레터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진짜라면 진기록이긴 하다.[* [[아빠와 아들]] 코너에 같이 출연한 김수영이 트위터에서 '아빠와 아들' 명의로 된 어린아이의 팬레터를 인증한 적은 있다.[[https://twitter.com/GAG615/status/248497118560534528|*]]][* 이는 2014년 6월 6일 불양방송에서 불양 집 벽에 걸린 팬아트를 보며 다시 한번 언급했다. 이것을 보아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팬 선물 등을 받은 적이 없는 듯... [[후새드]] ] 2014년 7월 28일에 다시 한 번 출연했으며 동생([[1981년]]생)과 15년 동안 한 마디도 안 했다고. 동생은 --형과 달리-- 미이다.
          * 2015년과 2016년에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자 최우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참고로 2년 연속 최우수상은 꽤나 드문 기록 중 하나며 2년 연속 대상은 의외로 많지만. 그리고 2016 연예대상에서 스케치북을 이용해 개그맨 후배들 시상때 코멘트를 날려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었다.[* 송영길 우수상 시상에서 "제가 키운앱니다." 홍현호의 신인상 경우에는 "송필근 아님"등등] 그리고 최우수상을 타면서 말한 수상소감이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마음을 들게 했다. ~~맛있는 녀석들 이후로 부쩍 훈훈해진 이십끼형~~
          * [[햄최몇]]이란 질문에 5개라고 대답했다. 실제로는 더 많이 먹을 수 있는데 햄버거가게에서 들이 쳐다보는 것이 민망해서 5개까지밖에 못먹어 봤다고 한다. [[솔의 눈]]은 못먹는다고 한다. 치킨 4마리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4양념, 4후라이드같이 단일 메뉴가 아니라 양념+후라이드+치즈+…처럼 다양한 조합이면 쉽게 가능하다고 한다.
          * 2016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 최우수상[* [[http://anitown.net/humor/1360369|#]] 당시 여기서 주차비 문제를 제기했고 현재는 해결된 상태]
          * 2015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 최우수상
          * 2013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 우수상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2005년 데뷔]][[분류:1979년 출생]][[분류:동두천시 출신 인물]][[분류:트위치 스트리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이광수(배우) . . . . 18회 일치
         ||<#ACF3FF> '''{{{#000000 출생}}}''' ||<#ffffff><(> [[1985년]] [[7월 14일]] ([age(1985-07-14)]세), [[경기도]] [[양주시]] ||
         [[양주시]] 출신으로 190cm의 큰 키와 큰 코를 가진 개성 넘치는 모델이자 배우이다.
         초창기 때는 해괴한 바가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이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절과 런닝맨 초창기에는 외모가 눈에 띄지도 않고 런닝맨 멤버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라서, 20대 초반 화보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런닝맨 중반부 이후로는 수염도 밀고 머리도 다듬다 보니 꽤 훈화됐다. 다만 망가지기도 많이 망가질 뿐더러, 멤버들이 친구 송중기와 자꾸 비교하다보니 못난이 캐릭터가 지속되는 현상이 나온다. [[2007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KT의 'SHOW' CF(공대 아름이 편)였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모기춤도 이때 생겼다. 당시 수염 때문인지 [[노안]]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 살 많은 [[누나]]인 [[유인나]]보다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수염]]을 제거했고 수염이 없는 현재는 [[동안]]까진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젊어 보인다. 허나 여전히 노안 캐릭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룡]]이나 [[에브라]], [[김상중]] 등 런닝맨에 출연할 당시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염을 밀 때였다.]
         상대를 괴롭히는 쪽이든, 본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든 예능인으로써 이런 쪽으로 망가지는 것에 거부감 없이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라 런닝맨을 보면 유재석이 이광수를 매우 아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특히나 2018년 쇠퇴기에 이른 무한도전은 여러모로 원초적인 웃음에 대한 슬럼프가 온 와중에 또 다른 주력 방송인 런닝맨에서는 이런 인재가 있으니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이 괴롭힌다-- 런닝맨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방송 전체적인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웃음이 다 이광수를 통해서 나오고 멤버들도 대부분 다 이광수를 공격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게스트들까지도...특히나 비슷한 캐릭터인 전소민이 투입된 이후로는 '광돌매' 관계가 구축되며 서로간 시너지가 창출됐다.
         중국과 동아시아 쪽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 홍콩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네슬레]] 홍콩의 인기 상품인 렁떵리[* [[광동어]] 한자로는 '능득리'라고 쓴다.][[프루팁스]] 신년 광고에도 나오기도 했다. 자국 연예인만 광고에 출연 하던 브랜드에 첫 해외 연예인 모델로 발탁. [[https://www.youtube.com/watch?v=lT7iHP9Imvw|2015년 버전]] [[https://youtu.be/2IJN2ECrLCk|2016년 버전]]
         || 2011~12년 || [[채널A]] || [[총각네 야채가게(드라마)|총각네 야채가게]] || 유봉 || 조연 ||
         || 2012년 || [[KBS]]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자]] || [[박재길]][* 사실상 실제 이광수와 싱크로율 백프로이다. 왜 그런지는 항목 참조.] || 조연 ||
         || 2017년 || KBS || [[최고의 한방]] || 우승의 친 || 특별출연 ||
         || [[간기]] || 주연 || 기풍 ||
          *[[KBS]] [[개그콘서트]] - [[생활의 발견(개그 콘서트)|생활의 발견]]에서 [[신보라]] 자친구로 출연[* 출연당시 국민의 방송 [[http://entertain.naver.com/comment/list?oid=112&aid=0002383413|1박2일]]이라고 말하는 용감함을 보여주었다.]
         ||<|4> 2014년 ||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자 우수상 ||<|2> 괜찮아, 사랑이야 ||
         || [[SBS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 부분 자특별연기상 || 괜찮아, 사랑이야 ||
          * [[구리시|구리]]에서 학교를 다녔고, [[양주시/행정#s-1.5|도농동]]의 양주에서 자취하고 있었으나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 있는 한 아파트로 이사갔었다. 이광수 본인 말에 따르면 이사 온 2년 동안 런닝맨 촬영을 여섯번이나 했었는데 실제로 동네 주민들의 [[유재석]] 목격담도 많이 들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또 다시 방이 4개인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 190cm라는 한국에서는 극히 드물 정도로 큰 키로 각광받는다.[* 어디까지나 한국 한정이다. 서양에서는 190cm가 넘는 연예인들이 꽤 많다.물론 서양기준으로도 장신배우는 맞다.서양이라고 해서 190cm이 보통키는 아니니까..] 큰 키로 인해서 웬만큼 큰 사람도 옆에 서게 되면 아담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아버지 키가 179cm, 어머니가 165cm, 여동생이 163cm이다. 부모님의 연령으로 봤을 때 상당히 큰 수준이다.[* 참고로 1960~70년대 자 평균 신장은 170cm 미만, 여자 평균 신장은 160cm 미만이였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30000000775/3/70030000000775/20150813/73020872/1|#]]]
         [[분류:한국 성 모델]][[분류:한국 배우]][[분류:1985년 출생]][[분류:양주시 출신 인물]][[분류:모델 출신 배우]][[분류:2008년 데뷔]]
  • 임수정(탤런트) . . . . 18회 일치
         || '''가족''' ||<(> 부모님, 동생 ||
         2005년 많은 인기를 얻은 그녀는 영화 《새드무비》에 출연했으나, 영화가 높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 최고의 주가였던 임수정을 포함 [[정우성]], [[신민아]], [[염정아]], [[차태현]], [[손태영]], [[이기우(배우)|이기우]], [[여진구]]가 나오는데 흥행하지 못한 게 신기할 뿐;; 정우성이 2000년대 중반 놈놈놈을 제외하고 '새드무비’ ‘데이지’ ‘[[중천(영화)|중천]]’ ‘호우시절’ ‘검우강호’ ‘아테나: 전쟁의 여신’까지 모조리 망해가던 침체기였고 임수정도 거품이라는 말이 생기던 시점에서 차기작을 흥행필패로 여겨져서 여배우건 배우건 기피하던 동물영화로 선택했다. 영화 《각설탕》 이 그것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는 동시기에 개봉한 《[[괴물(영화)|괴물]]》 강세 속에서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이 작품의 후속작은 [[김태희]]가 출연하여 16만 관객으로 폭망~~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반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태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태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2012년 5월 17일에 개봉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것]]》에 여주인공인 '정인' 역을 연기했다.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인 결혼 후 [[권태기]]를 코믹하게 잘 풀어낸 영화. 같이 연기한 [[이선균]], [[류승룡]]과의 호흡이 돋보이며 특히 [[류승룡]]의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 그리고 여기서 수위가 매우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흡연은 물론 집에서 '''[[티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다거나, 편 [[이선균]]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진다든가 --YEAAAAAAAAH!--, [[검열삭제]] 직전까지 간다거나 --[[이선균]] 이 나쁜 놈--...
         당대 최고의 인기시리즈이던 [[학교 4|학교]]에 신인으로 주인공 자리를 잡으며 화려한 데뷔를 한다. 그런데[[http://sports.chosun.com/news/entertainment/20011105/1be16005.htm|#]] 이 사건으로 제작진의 미움을 사서 단역으로 강등되고 단독에피소드나 진행되던 스토리도 모두 ~~임~~수정된다. 초반의 도도하고 까칠하던 [[아야나미 레이]]같은 분위기의 배역은 이유리에 흡수되고, 스토리텔링의 핵심인 수다부분에서는 뒤통수만 나오던가 아예 안나온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는 이유리, 공유로 게된다.
          * [[맥심(커피)|맥심]] : [[정우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하여 찍은 광고. 광고 음악은 [[이문세]]의 옛사랑. 뱀발로 성팬들은 [[맥심(잡지)|그 맥심]]인줄 알고 설렜다고.(...)
         그녀가 운이 좋은건지 파트너가 운이 좋은건지 자 파트너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공유(배우)|공유]](학교4,김종욱 찾기), [[주진모(1974)|주진모]](카페라떼 cf), [[안성기]](피아노 치는 대통령), [[김래원]](...ing), [[소지섭]]([[미안하다 사랑한다]]), [[정우성]](새드무비,맥심 cf), [[비(연예인)|정지훈]](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황정민]](행복), [[강동원(배우)|강동원]], [[김윤석]](둘 다 전우치), [[현빈]](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심지어 잘생긴 [[말(동물)|말]][* 영화 《각설탕》에 나온 말 천둥을 이른다. 이 말은 2007년에 산통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은 암컷.]까지도.(...)
         영화에 주로 나오고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에는 출연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 끌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과 중학생, 초등학생은 잘 모른다. 그 한가지 예로 2008년 3월 사인회 도중 한 초등학생이 "임수정은 필요없고 소시짱 [[태연]]짱"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07년과 2008년의 공백기간에 지친 자팬들 중에는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녀시대]]로 갈아탄 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 때 갈아탄 팬 중에 한 팬이 [[소녀시대 팬레터 사건|부적절한 일]]을 겪었다는 것.(...)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따라서 한류스타로 보기는 어렵다. 역시나 드라마 출연이 많지 않은것이 원인인듯. 하지만 [[중국인]]들이 비교적 좋아하는듯 하다.[[http://sp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302166589594128|#]] [* 또한 개소문 사이트에 똑같은 드레스를 입은 중화권 연예인과의 비교기사에 올라온 중국 누리꾼들의 댓글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알려지면서 중동권과 [[터키]], 미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일본]]에도 [[블로그]]를 운영하는 열성팬이 있었는데 2007년 그녀의 생일 이후로는 활동을 안하고 있다.
         가족관계는 부모와 한명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었는데, 빼어나고(秀) 밝게(晶) 되란 뜻이다.
         >오디션을 좋아한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이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오디션우먼이라는 별명에 대해 묻자)
         >무척 슬픈 영화지만 관객들에게 펑펑 우는 영화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울음으로 토해내고 나면 영화를 보던 순간의 감정을 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이 찡한 상태에서 극장을 나서면 계속 여운이 아 사랑에 대해 오래도록 되새기게 될 것 같다.(...ing에 대해서)
         >영화속 배우의 인상이 확 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작품 속에 녹아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나는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에요. 그 안에는 이기적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겠죠. 팬들을 위해 나를 어디까지 보여주는 것이 적정선일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물론 배우는 연기로 말해야죠.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것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인 것 같아요. 팬들이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밖에서 나를 보고싶어하는 마음, 그건 '우리가 널 사랑해주는데 이정도도 못해줘?' 라는 식의 요구가 아니거든요. 좋아하니까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고, 알고 싶은거죠. 그 마음을 아니까 다른 사람들이 쇼프로그램에도 나가고 팬미팅도 하는 걸 거에요. 그런데 역시나 이런 면에서도 내가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다 이해하면서도 '그런것까지 보여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게 연기 외에 다른 모습들을 보여줄 능력이 있다면 아마 나도 들처럼 할 거에요. 팬미팅도 하고 셀프 카메라도 찍고... 근데 내 능력이 그게 안 돼요. 재밌는 얘기도 못하고, 쇼프로그램 분위기도 잘 맞추지 못하고. 그러니까 그나마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연기로 그들에게 보답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게 나를 합리화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 오디션 때 임수정은 다른 또래 연기자들과 달리 말의 깊이가 느껴졌다. 다른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말이 붕붕 떠다니는 듯했는데, 수정이랑 말할 때는 말이 착 달라 붙는 것 같았다. 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폐쇄적인 부분이 있었다. 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사회성도 없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사려깊게 생각하고. 이미지로는 그 또래 다른 연기자들이 발랄하고 가볍고 거침없고, 여성이기보다 중성적으로 다가왔는데 수정이는 고전적인 의미의 여성스러움과 차가움을 주는 것 같았다.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차가운 카리스마랄까, 그리고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느낌도 각별했고. 또 입술이 도톰하면서도 약간 위로 올라간 게 외형적으로도 매력적이었다. 막 물에서 건져내 씻은 복숭아 같은 상쾌함이랄까.
         > 지난해 임수정은 ‘장화,홍련’ ‘…ing’ 등 두 편의 영화로 스크린 무대에 강인한 인상을 겼다. 지난해 말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다시피한 이유도 그녀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이다. ‘2004년 모든 상을 휩쓸 것 같다’(오정완) 등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높다. ‘연기를 잘하는,진중한 배우’(오승욱) ‘가능성이 열려 있는 스펙트럼이 기대되는 배우’(송해성) 등 그녀에 대한 평가는 가능성에 집중돼 있다. 아직 차기작을 고르지 않은 임수정. 50인 가운데 무려 13명이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참고적으로 이 때 뽑힌 배우는 윤진서, 강혜정 등)
          * 궁설민 박사([[성형외과]] 전문의)
  • 진격의 거인/97화 . . . . 18회 일치
          * 그 병사는 기억 상실을 핑계로 대고 수용구에 아 있었지만, 사실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껄끄러워 그렇게 속이고 있던 것. 팔코는 그 사실을 숨겨 주기로 한다.
          * 병사는 팔코의 고민은 눈치채고 "이 내몬 지옥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지옥의 모습은 다르다"며 그건 "계속 나아가야지만 알 수 있다"고 조언하는데.
          * 애니 레온하트는 어떤 자를 추적 중이었다. 타깃은 검은 코트의 자. [[케니 아커만]]이었다. 병단에 들어간 뒤에도 그녀의 본래 업무는 바뀌지 않았다. 평범한 소녀로 꾸민 채 숙소를 벗어난 그녀는 케니의 뒤를 미행했다. 그는 애니가 조사한 왕정의 하수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뭔가가 달랐다. 직감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캐면 진짜 "벽의 왕"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 가능성에 걸고 자를 뒤쫓고 있었다. 어느덧 자의 행로는 평범한 소녀가 어울리지 않는 곳으로 접어들었다. 뒷골목. 하지만 애니는 멈추지 않았다. 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았다. 애니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어깨를 붙잡을 때까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자 보는 눈 좀 있네.
          회심의 돌려차기는 자의 관자노리를 정확히 노렸다. 애니가 아는 한 그런 일격이 빗아갈 일은 드물었다. 그게 하필 미행이 실패하고 뒤를 잡힌 순간에 일어날 가능성은 더더욱. 케니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고 발차기는 벽에 박히며 벽돌을 박살냈다. 케니로선 그녀가 늘어놓은 드라마보다 이 발차기 쪽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케니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진 순간 애니는 몸을 날렸다. 지나온 골목을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케니가 뒤쫓아오며 "벌써 아빠가 싫어지는 시기냐고"고 도발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애니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도 모퉁이를 돌았다. 그 다음, 아무도 없었다. 케니는 뚜껑이 열린 배수구를 발견했지만 그의 몸집으로는 통과할 수 없었다. 그가 혀를 찼다.
          그 검은 코트 자는 실력자였다. 잡힐 뻔 한데다 이미 얼굴이 들켰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중앙헌병에 들어가는 것도 죽으러 들어가는 셈이다. 애니는 한계를 선언했다. 이제 여기서 모은 정보를 가지고 마레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때로부터 약 5년. 이정도 정보라면 당국도 납득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라이너의 생각은 달랐다.
          * 라이너는 그 모든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나 입체기동장치 훈련만큼 기억에 는건 없었다. 엘런은 입체기동장치를 장비하게 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애를 먹었다. 착지에 실패한 엘런이 나뭇잎처럼 굴러다녔다. 뒤따라 착지하던 라이너가 그를 쫓아가 너무 무리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 과장도 없는 경고였다. 엘런바닥에 뒹구는 채로 라이너에게 말했다.
          >거인을 한 마리도 김 없이 구축한다며?
          * 레벨리오의 마레군 본부 앞에는 헤로스 상이란 동상이 있었다. 거인을 쓰러뜨린 마레인 영웅의 동상이다. 한 자가 일가를 이끌고 그 동상 곁을 지나왔다. 그 뒤로 본부는 습격을 당한 것처럼 술렁거렸다. 때마침 전사대 대장 [[테오 마가트]]가 복귀했다. 부관이 요인의 방문 소식을 전했다. "전추의 거인". 타이버 일가의 방문이었다.
          마가트는 곧바로 응접실로 호출됐다. 응접실 바깥 복도는 병사들이 진치고 있었다. 낯선 군복. 마레의 병사가 아니다. 타이버 가의 근위병들. 부관이 그 사실을 귀띔해줬다. 응접실 안에서 맞이하는 것도 타이버의 근위병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병사가 문을 열어줬다. 마치 의 집에 온 기분이다. 그 다음 마가트를 호출한 사람이 나타났다. 타이버가의 현당주 [[빌리 타이버]]였다. 장발을 뒤로 쓸어넘긴 젊은 자였다. 그는 갑작스런 방문에 양해를 구하며 악수를 청했다. 마카트는 공손한 태도로 관등성명을 댔다. 빌리의 태도는 격의가 없는데다 이 방문만큼이나 난데없었다.
          무슨 장난일까? 마가타는 사무적인 선에서 답했다.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고. 이 정체불명의 방문 목적 자체도. 빌리는 그 대답을 마음에 들어했다. 전추의 거인이 누구에게 계승됐는가는 마레에서도 극히 일부만 아는 기밀이었다. 빌리는 마가트의 대답을 "사려 깊다"고 평했다. 하지만 마가트는 사려 깊은 데서 끝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에서 말했다. "극히 일부"에는 이 본부의 최고책임자도 포함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책임자는 갑작스런 상부의 명령으로 오늘 아침 출타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매우 드문 일이다. 마가트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최고책임자가 없기 때문인데, 그런 날 타이버가의 당주가 일족을 이끌고 본부를 당분하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과연 이상의 사건들은 모두 무관계한 것인가? 마가트가 그렇게 물었다.
          반명 마레인인 마가트는 신랄한 감상을 겼다.
  • 효령대군 . . . . 18회 일치
         |자녀 = 슬하 7 3녀
         그는 일찍부터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과 혼인하여 6 1녀를 낳았으며, 서자녀로 1 1녀를 두었다. 불교를 좋아하여 승도를 모아 불경을 강의하였다.
         슬하에 7을 두었으며 [[1459년]](세조 4) 정월,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을 병사한 아우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켜 대를 이어 제사를 봉향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장 : [[의성군 (왕족)|의성군 채]](誼城君 李寀), (1411년 ~ 1493년)
         *** 차 : [[서원군 (왕족)|서원군 친]](瑞原君), (1413년 ~ 1475년)
         *** 3 : [[보성군 (1416년)|보성군 갑]]<ref>귀족집안 사대부들의 이름자는 시류에 따라 조자(造字:글자를 만듦)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음이 정확하지 않지만 '갓머리 부 밑에 합(合)자'로 갑으로 부른다.[http://www.hyor.or.kr/sub7/03/CH7301W.asp?link=c 효령대군 파종회 청권사] 에서 확인된 이름이다.</ref>(寶城君), (1416년 ~ 1499년)
         *** 4 : [[낙안군 (왕족)|낙안군 밀]](樂安君), (1417년 ~ 1474년)
         *** 5 : [[영천군(1422년)|영천군 정]](永川君), (1422년 ~ ?)
         *** 6 : [[원천군 (1423년)|원천군 의]](原川君), (1423년 ~ 1476년) - 조선 제3대 임금 [[조선 태종|태종]]의 4 [[성녕대군]]에게 출계
         *** 7 : [[안강도정|안강도정 낭]](安康都正), (1430년 ~ ?)
         * 처조카 : 영양위 [[정종 (영양위)|정종]] - 종손녀인 경혜공주의
         *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배우: 강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관악산]] 연주봉 쪽 기슭에는 연주암(戀主庵)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 위에 [[연주대]](戀主帶: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쪽 과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연주암이 있다.
         * [[곤]]
         [[분류:1396년 태어]][[분류:1486년 죽음]][[분류:사상가]][[분류:조선의 왕자]][[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학자]][[분류:조선의 승려]][[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한국의 불교사]][[분류:유교 이탈자|이보]][[분류:조선의 불교 신자]][[분류:조선 세종]][[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 태종]][[분류:전주 이씨]]
  • 김지석(배우) . . . . 17회 일치
         [include(틀:뇌섹시대 문제적 자)]
         ||<#595959><:> {{{#FFFFFF '''출생'''}}} ||<(> [[1981년]] [[4월 21일]] ([age(1981-04-21)]세), [[경상북도]] [[김천시]] 백옥동 (영대로) ||
         1981년생 자 배우. 본명은 김보석(金寶石).
         KBS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의 자 주인공 강백호 역과 [[추노(드라마)|추노]]의 [[왕손이]]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2010년~2012년 사이에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이동경로에 따라 자식을 낳으셨는데, 세 아들의 이름을 각각의 출생지를 따서 김[[북경]] - 김장충[* 이전 버전에서는 중국 [[장춘]]을 말하는건데 자막이 잘못 나온것 같다고 했는데, 라스에서 장충동에서 태어나서 김장충이라고 말했다.] - 김[[온양]]으로 지으셨다고. 심지어 김보석의 형은 신사동에서 태어나서 김신사[* 현재 이름은 김반석. 문제적 자에 출연했을 당시 공개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도 김반석으로 나와있다. '신사'라는 이름은 아주 어렸을때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촌은 [[런던]]에서 태어나서 김런던.~~런던에 사는 런던 킴~~ 김지석도 형과 같은 신사동에서 출생했는데 [[부활절]]에 태어나서 김부활로 하려다가 ~~빨리 발음하면 뭔가 [[부랄|문제가 될게 틀림없는 이름이다]]~~ 형의 새 이름과 맞춰 김보석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작명은 할아버지의 센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러모로 대담한 집안이다.
         상기했듯이 형이 한 명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수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김지석이 출연하는 [[문제적 자]]에 나와서 밝혔고 그 출연료는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도 지원을 했었고 실제 입학시험에서는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합격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이해 못해서 케임브리지에 상당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는데 옥스퍼드에 입학해서 공부를 해보고 왜 거기서 떨어졌는지 깨달핬다고 한다.[* 그냥 수학 테크닉만 좋은 학생의 한계를 느꼈다는듯이 이야기를 했다.]
         ||<|2> 2004년 ||<|2> MBC ||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 조미령의 동생 || ||
         || KBS1 || '''[[미우나 고우나]]''' || '''강백호''' || [* 자 주인공 역할이었다. 드라마 시간대가 그렇듯 중장년층에게 많이 어필했을듯.] ||
         || [[혼술녀]] || 이진상 || ||
         || tvN || [[내성적인 보스]] || 당유희의 편 ||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 엘리베이터 || 특별출연 ||
          * 2015년 [[뇌섹시대 문제적 자]]
         || 2007년 || [[KBS 연기대상]] || 자 신인상 || 미우나 고우나 ||
         || 제37회 황금촬영상 || 신인우상 ||
         ||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자 최우수상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
         || [[MBC 연기대상]] || 월화극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20세기 소년 소녀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1년 출생]][[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2004년 데뷔]]
  • 신혜성 . . . . 17회 일치
         Lyrics by 미현, 황성제(BJJ MUSIC) Composed & Arranged by 황성제(BJJ MUSIC)<br /><br />
         15. 그대죠 (Duet.LYn) (그 자 그 여자 이야기-2008)<br />
         16. 메아리 (그 자 그 여자 이야기-2008)<br />
         10. 안녕 그리고 안녕 (Feat. Eric, 규리)<br />
         :그 자 이야기
         01. 그 자 이야기 (He Said...)<br />
         안녕 그리고 안녕(Feat. Eric, 규리)|
         01. 안녕 그리고 안녕(Feat. Eric, 규리 )<br />
         :은 사람(Duet With 신혜성)
         :그 자 그 여자 이야기
         02. 그 자 이야기(He Said...)<br />
         05. 내 자<br />
         :결혼 못하는 자 O.S.T
         :공주의 자 O.S.T
         * 성정장 의류브랜드 로이젠 모델(신화)
         [[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천안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안석환 . . . . 17회 일치
         * 1997년 [[MBC]] 일일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2005년 [[KBS1]] 일일연속극 《[[별난여자 별난자]]》 ... 이병두 역
         * 2006년 [[MBC]] 월화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스페셜]]》 ... 선글
         * 2009년 [[KBS2]] 월화미니시리즈 《[[꽃보다 자 (대한민국의 드라마)|꽃보다 자]]》 ... 잔디의 부, 금일봉 역
         * 2016년 [[SBS]] 드라마 스페셜 《[[딴따라]]》 ... 김성
         * 2018년 [[MBC]] 월화드라마 《[[검법녀]]》 ... 노한신 역
         * 2019년 [[MBC]] 월화드라마 《[[검법녀 2]]》 ... 노한신 역
         * 1998년 《[[실락원 (1998년 영화)|실락원]]》 ... 은교의 편 역
         * 1997년 자충동
         * 1997년 [[한국연극협회]] 최우수자연기자상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연정훈 . . . . 17회 일치
         |자녀 = 1 1녀
         * 2016년 [[JTBC]] 《[[욱씨정기]]》 ... 이지상 역
         | 자 신인상
         | TV부문 자 신인연기상
         | 자 우수상
         | 특별기획부문 자 우수연기상
         | 연속극부문 자 우수연기상
         | 최우수 자연기자상
         | 중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연속극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제목=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상》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연기}}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동차 경주 선수]][[분류:광명시 출신]][[분류:곡산 연씨]][[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그리메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동문]]
  • 울산광역시/인물 . . . . 17회 일치
         * [[권재관]] - 구(울산)
         * [[박영록(배우)|박영록]] - 구(울산)
         * [[서인국]] - 구(울산)
         * [[심완구]] - 구(울산)
         * [[아인(모모랜드)|아인]] - 구(울산)
         * [[안세현(수영선수)|안세현]] - 구(울산)
         * [[오범석]] - 구(울산)
         * [[오상진]] - 구(울산)
         * [[윤학길]] - 구(울산)
         * [[이기현]] - 구(울산)
         * [[이완(배우)|이완]] - 구(울산)
         * [[오현경(1936)|오현경]] - 구(울산)
         * [[전원책]] - 구(울산)
         * [[정주현(야구선수)|정주현]] - 구(울산)
         * [[장기용(모델배우)|장기용]] - 구(울산)
         * [[정희태(배우)|정희태]] - 구(울산)
         * [[현우(배우)|현우]] - 구(울산)
  • 유인촌 . . . . 17회 일치
         ||<table width=100%><-5><#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 가족 ||4 3녀 중 [[3|넷째]][* 형은 MBC 드라마 PD 출신이자 극단 '유씨어터' 대표를 지낸 유길촌 감독이고 막내동생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인 유경촌 주교다.], 아들 윤호[* 본명은 유대식. [[영국]]왕립연극학교(RADA)에 한국인 배우 최초로 [[http://mstoo.asiae.co.kr/view.htm?no=2017062814232586773|최종합격]]했다고 한다.] ||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 이전까지 자신이 태어난 곳은 서울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고향이 바뀐 이유는 가카 내각에서 호 인사 홀대 소리가 나와서.... 유인촌의 부모가 [[한국전쟁]] 때 전주로 피란을 가 유인촌을 낳았다고 한다...]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까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의 교수 역임[*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예술대학에 교수연구실이 있었다. TV에서의 인자하고 덕이 풍부한 [[이미지]]와는 달리 강의 때는 여러모로 과격(?)했다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하고 2012년 2월 20일부터 잠깐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2014년 배우로 복귀했다. 자신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발탁했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이 퇴임한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이명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이 연기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아주 잘 나온다. 유인촌의 연기변신을 보려면 필히 봐야 할 작품. 이 연산군 배역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백년]]>[* 사실 조선왕조 5백년에서는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를 했다. [[최수종]]만 해도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故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순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2014년 초, 홀스또메르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으며 변함없는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특히 201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메인 무대에 복귀했는데, 이때 아들인 연극배우 윤호[* 이름은 당연히 [[예명]]이고, [[본명]]은 유대식이다. 유인촌의 아들이란 [[금수저]] 대우 받고 싶지 않다고 [[유학]]갔다 들어오면서 아예 성까지 바꾼 후 데뷔해서 수년째 극단 여행자 소속으로 활동중인 연극배우인데, 워낙 숨기다 보니 윤호가 유인촌 아들인 걸 연극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연출자가 윤호를 한참 설득하고 나서야 이 연극에 부자가 같이 출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부자관계가 연극계에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극단에서도 대부분이 그때 다들 처음 알았다고 한다.]와 페리클래스 역을 나눠 출연하여[* 아들은 젊은 페리클레스, 아버지는 해설자+나이든 후의 페리클레스.]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동생은 [[성직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다. 2013년부터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근거리에 모시는 요직인 보좌주교를 담당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막 신부가 됐을 적에, 배우 유인촌의 동생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m.pbc.co.kr/paper/view.php?cid=490221&path=201312|기사]]. 형제의 정치적 성향은 다른데, 유인촌이 보수정권 하에서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보수성향이고, 동생 유경촌 주교는 카톨릭 내에서 진보적인 인사로 사회교리를 전공하였고, [[신부(종교)|신부]] 시절에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 전공 교수를 역임했다. 유인촌 본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개신교]]([[장로회]])를 잠시 믿었다가 이후에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 후인 2015년 11월 22일에 논현2동 [[성당]]에서 동생인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로부터 [[견진성사|견진]]을 받았다. [[http://rose6217.blog.me/220557780401|같이 견진 받은 사람의 대모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박인환]]과 [[이형석]]과 더불어서 견진을 받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완전한 [[개종]]보다는 개신교 신자인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잠시 붙어다니다가,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 [[홍대거리/클럽|홍대 클럽]]의 은인(?)이다. [[카우치]] 사건이 터졌을 때 보수층 사이에서 홍대 클럽 폐쇄 여론이 대두되었다. 당시에는 연극배우였고, 대학가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편이었던 터라 직접 서울시장 [[이명박]]을 데리고 클럽 드럭에 방문하여 록 공연을 함께 관람하며 클럽 문화를 변호했다. 이 덕분에 클럽을 쓸어버리려던 [[이명박]]은 생각을 돌렸고, 보수언론도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의 행보가 어쨌든 현재 인디씬이 살아는 데 나름 큰 공헌을 했다.
         [[이명박]] 정권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국정감사 도중, 야당 측의 [[이종걸]] 의원의 질의에 기분이 단단히 상했는지 '''"[[사진]] 찍지마! [[씨발|X발]] 찍지마!"'''라고 [[기자(직업)|기자]]들을 향해 [[반말]]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이종걸 의원의 질의부터가 굉장히 무례했다. 'MB 정권의 휘하, 졸개' 운운한 것도 모자라서 그래 '사기극', '삼켜먹어버렸다.' 등의 과격한 [[단어]]들을 대놓고 내뱉었으며, 심지어는 [[호칭]]도 안 쓰고 그냥 '이명박의~'라고 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욕설, 특히 기자들에게까지 [[막말]]을 했다는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고, [[인터넷]]에서는 이종걸의 발언은 묻혀지고 이 욕설만 고 말았다.국감이라는게 그런것이다. 질문자인 국회의원은 무슨 개같은 질문을 하든 묻히고, 발끈한 정부만 는게 국감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질문들을 개같이 한다. 유인촌입장에선 억울할법도. 연기하는 배우라서 오히려 카메라를 신경쓰지 못했나 싶을 정도. 아이돌 출신이면 카메라 신경썼을텐데..
         그리고 차관들이 말리고 회의장을 나가면서 또 '''"XX, 성질이 뻗쳐가지고 정말... [[씨발|X발]]!"'''이라고 욕설을 했다.[* 일부 방송사에서는 삐~ 처리를 하거나 아예 [[소리]]를 안 내보냈다. 다만, 그냥 그대로 내보낸 방송사도 있었다.] 당연히 유인촌 장관은 [[구설수]]에 오르면서 푸짐하게 욕을 먹었고, 더불어서 유인촌을 데려온 [[MB]]도 싸잡혀서 [[세트]]로 욕을 무진장 먹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유머와 합성물의 소재가 되면서 [[흑역사]]로 고 말았다.
          * [[조선왕조 오백년]] [[한산성]] - [[인조]]
         [[분류:한국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1951년 출생]] [[분류:완주군 출신 인물]] [[분류:1971년 데뷔]]
  • 윤상현(배우) . . . . 17회 일치
         ||<bgcolor=#DCE4E9> '''가족''' ||<(> 1 2녀 중 [[고명아들|둘째]][br]아내 [[메이비(가수)|메이비]], 딸 윤나겸, 윤나온 ||
         한국의 성 배우. 본래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최종학력 고졸이다, 과거 허위사실 기재로 학력논란이 있었다(...)] 분식집, 옷장사 등의 다른 일을 하며[* 그 때까지만 해도 판촉활동으로 최고가 되고 싶단 바램을 피력한 바 있었다.] 살던 중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로 연예기획사에 픽업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수가 될 예정이었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으며, 실제로 4인조 성그룹의 멤버가 되기도 했으나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드라마 작가와 감독들에게 캐스팅이 들어왔고 배우로 전향하게 되었다.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내조의 여왕]] 이후 첫주연작을 맡으며 기대를 모으며 동시간대 1위로 막을 내렸지만 내조의 여왕만큼 국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일본, 쿠바, 미 쪽에서 반응이 터졌다.
         MBC 신작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에 [[최지우]]와 함께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당시 동시에 방송되던 [[공주의 자]]와 [[보스를 지켜라]]에 밀려서 10%대 시청률로 종영했다.
         [[갑동이]]에 출연[* 너목들 감독이 형사시절 차변의 모습에 반해 윤상현을 캐스팅하기 위해 영화촬영장까지 찾아갔다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성적인 형사 이미지로 변신에 선공하여 극전체를 이끌며 연기 호평을 받았다.
         [[욱씨정기]]에 출연하여 찌질하고 소심한 정기역을 열연하였다.
          * 처음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겨울새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중견배우 [[박원숙]]을 연기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다.[* 참고로 [[백년의 유산]]에서 극중 박원숙의 아들로 비슷한 --찌질한 마마보이-- 배역을 맡았던 배우 [[최원영]]도 윤상현과 비슷한 이유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박원숙을 기억에 는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2> 2016년 || [[JTBC]] || [[욱씨정기]] || 정기 || ||
         || 2006년 || 썬데이서울 || 데이트 || 우정출연 ||
         || KBS2 || [[김승우의 승승장구]] || 몰래온 손님[* 첫회에 게스트로 출연한 ~~진짜 내조의 여왕이신~~ [[김주]]와의 인연으로 깜짝 등장하였다.] ||
         || SBS || [[힐링캠프(SBS)|힐링캠프]] || 게스트[* 연예계 독거 특집. 하지만 여기서 윤상현은 메이비와의 결혼을 발표했고, 함께 출연했--다가 뒷목 잡았--던 [[주상욱]], [[김광규(배우)|김광규]] 중에 현재 한 분만 아직까지(...)] ||
         || [[MBC FM4U]] ||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 ||<|3> 게스트[* 《욱씨정기》 종영 직후, 싱글 앨범 'Yoon Sang Hyun Ballad' 홍보차 방송 3사 라디오를 일주일 안에 한바퀴씩 다 돌았다.] ||
         || [[MBC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 부문 자 최우수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1973년 출생]][[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2005년 데뷔]]
  • 이민우(배우) . . . . 17회 일치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연기력으로 청소년 배역을 독차지했다. 당시 KBS 연기대상 자아역상은 장장 7~8년 동안 이민우와 다른 배우들의 경합이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아역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인 만 18세가 되던 해 --그러니까 그 연산군으로--에도 아역상을 받았다!
         한 마디로 [[사극]]으로는 만렙을 찍은 [[정태우]], [[안재모]]보다 먼저 만렙을 찍어놓은 30대 배우이며 [[2011년]] 8월에 방송한 [[공주의 자]]~~극중 주인공이 바뀐 듯한 포스~~에서 그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대신 아쉬운 대로 [[메리대구 공방전]], [[열아홉 순정]], [[살맛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등에서 30대 초반 직장인 역할, 다소 찌질하고 철없는 편 역할, 강력반에서 형사들을 괴롭히는 지독한 범죄자 악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조용히 연기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연기도 잘 소화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연기에서는 도가 텄다고 할 지경.[* 특히나 [[살맛납니다]]에서의 그 찌질하면서 사악한 김기욱 역은 장인식(임채무 분)과 더불어 극을 지탱하는 2대 악역으로 꼽혔을 정도..]
         본인은 사극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하지만[* 하지만 사극을 아예 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며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도 배역에 대한 흥미를 따라간다고 한다.] 2011년 또 사극 [[공주의 자]]에 출연하게 되면서 이제 사극이 아닌 현대극에서의 이민우는 기약이 없게 되었다. 그의 예전 사극연기를 보지 못했던 10대~20대 초반에게는 사극에서의 이민우가 깊이 각인되었고, 30대 이상에게는 이민우의 기존 사극 이미지가 더욱 단단히 굳어지게 되었기 때문. [[거열형]]씬도 허리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찍었다고 한다.
         이제 갓 40대에 접어들었으니 아직 젊은 나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연기력은 본좌 그 자체로 그냥 연기를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시청자가 볼 때 이민우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배역과 혼연일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래의 배우 중에서는 연기력이 가장 최상위권에 있다. 최신작인 [[공주의 자]]에서의 연기가 그 훌륭한 예이다. 자기관리도 굉장히 엄격하여 대본 암기와 연기 구상은 물론, 쉬는 날도 체력관리와 연기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대본 암기에는 도가 틀 정도다. 연기를 할 때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의 대사까지 다 외우도록 배워왔다고.
         아역으로 데뷔하여 20대 초반까지 괜찮은 연기 커리어를 쌓았지만, 그 이후 비주얼이 어중간한 탓에 주연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다행히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공주의 자]]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어필할 기회를 알렸고, 비주얼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30대 후반 이후로 가면 오히려 연기자로 대성하고 명성을 떨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 [[RNA(동음이의어)#s-3|RNA]] || 우석 || ||
         ||<|2> 2002년 || SBS || 오매 || 김창민 || ||
         ||<|2> 2007년 ||<|3> MBC || [[베스트극장]] - 동쪽마녀의 첫 번째 자 || 영우 || 2월 10일 방송 ||
         || [[공주의 자]] || '''[[공주의 자/등장인물#s-1.5|정종]]''' || ||
         || 2016년~2017년 || KBS2 || [[저 하늘에 태양이]] || [[정호]] || ||
          * 1995년 SBS 《TV 과 여》 ... MC
          * 1995년 제3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신인연기상 《춘향전》
          * 2011년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with [[홍수현]]) 《공주의 자》
         [[분류:한국 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군포시 출신 인물]][[분류:1981년 데뷔]][[분류:아역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
  • 이상백 (1904년) . . . . 17회 일치
         | 친척 = 이동진(할아버지) <br /> 이일우(큰아버지) <br /> [[이상정 (1897년)|이상정]](형) <br /> 한문이(형수) <br /> [[권기옥]](형수) <br /> [[이상화 (시인)|이상화]](형) <br /> [[이상오]](아우) <br />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조카) <br /> [[최선]](사돈) <br /> [[박중양]](사돈)
         상백 형제의 할아버지 이동진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대구]]에 신식 학교인 우현서루를 열어 학생들에게 [[한학]]을 가르쳤고, 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교사를 초빙, 수학, 역사, 국어, 영어, 일본어 등 신식 학문을 가르쳤다. 할아버지 이동진의 뒤를 이어 큰아버지 이일우가 우현학교의 일을 맡아보았다.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구의 명문가로 성장했는데, [[2000년]]대 초반 그의 큰아버지 이일우의 자손들은 대학 학장 3명, 교수 10명, 의사 30명, 장군 2명, 언론·출판분야 11명을 배출하였다.<ref name="daemyonh">[http://www.lifemaeil.com/news_view.php?print_no=1540&seq=5570 특집- 상화의 큰 집 사람들] 주간매일 2002년 11월 27일자</ref> 또한 사촌 [[이상악]]은 작가이자 그의 친구인 육당 [[최선]]과 사돈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 중에는 '박작대기' [[박중양]] 집안과도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ref name="daemyonh"/>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고 큰아버지 이일우에 의해 양육되었다.
         [[1946년]]에는 조선체육회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1948년]] [[10월]] 잡지 학풍(學風)이 창간되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ref>정진숙, 《출판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2007) 180페이지</ref> [[1948년]] 단독 정부 수립론과 북협상론이 대두되었을 때 그는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였다. 대한체육회 설립 이후 [[1951년]]에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아시아경기연맹 집행위원을 거쳐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문교부]] 대학교수자격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3·1 문화상]] 심의위원 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그는 국내 명승고적지와 세계 5대양 6대주를 수없이 돌아다닌 여행가였으며, 기행문 등을 기기도 했다.
         장례식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한국사회학회, 진단학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관한 연합장으로 주관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현 [[대구광역시]] 구 화원동)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사후 1년 뒤인 [[1967년]] 그의 1주기에 세워졌는데, 묘비문은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글씨는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 당조카며느리 : 안귀홍, [[경북대]] 병원장 안두홍의 누나, 영의료원장을 역임한 안종철의 고모
         **** 5촌 조카 : 이탁희, 3 3녀
         *** 사촌 매부 : [[윤홍열 (1893년)|윤홍열]](尹洪烈, [[1893년]] ~ [[1947년]] [[2월 19일]]), [[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과 [[대구시보]]사 사장 역임 - [[윤필오]]의 아들
         **** 당조카사위 : [[서정귀]](徐廷貴, [[1919년]] ~ [[1974년]]), 4대·5대 국회의원, 재무부 차관(1960년), [[호정유사]] 사장 역임
         **** 당조카며느리 : 박부([[1932년]] ~ )
         ** 형: [[이상정]](李相定, [[1897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 독립운동가. 아호(雅號)는 청(晴南), 산은(汕隱). [[대한독립군]] [[3성 장군|중장]])
         ** 아우: 이상오(李相旿, [[1905년]] ~ [[1969년]], [[사냥|수렵가]], [[바둑]]인. 아호(雅號)는 모(慕南).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졸업.)
         * 사돈 : [[최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
         * [[교학교]]
         * [[최선]]
         [[분류:1904년 태어]][[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역사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농구 선수]][[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수필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건국동맹]][[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
  • 이시영(배우) . . . . 17회 일치
         || '''가족''' ||<(> 1 1녀 중 [[외동딸|둘째]][br]배우자 [[타카하타 유우타]], 슬하 1 ||
         [[KBS 2TV]] 드라마 [[꽃보다 자(KBS)|꽃보다 자]]에서 오민지 (산죠 사쿠라코)역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사실 그전에 [[송일국]] 주연의 [[바람의 나라(드라마)|바람의 나라]]에서 왕자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 시녀 역으로 등장한다.[* 그 왕자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자, 한동안 실의에 빠지다가 무휼의 죽마고우이자 최측근인 마리와 연인이 되었지만, 마리마저 부여에 붙잡혀 화형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결국 물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쌍한 인물.] 그전의 배역은 [[추가 바람]]
         [[네이버]] 뉴스 댓글 등의 포탈 댓글란에서는 전진 [[빠]]순 파워가 더해져 자신의 취미를 강요하는 안 좋은 아내의 표본이라며 대차게 까이고 있지만 [[루리웹]] [[프라모델]] 게시판이나 [[이글루스]] 등에서는 상대인 전진이 아내 취미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자기 소원을 강요하며 주도권이나 잡으려하는 못된 편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
         그러나 2010년 맨즈헬스 인터뷰에 따르면 프라모델 수집은 상당히 오래된 취미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프라모델 모두 본인 소장품인 듯 하며[* 30여 개 이상 모았단다.], 배우 데뷔 초에 일거리가 없어 취미 삼아 시작했다고 한다. 홍석천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베어브릭이 장식된 걸 보고는 반가웠다고. 일반적인 [[서브컬쳐]]의 매니아들처럼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프라모델을 접한 게 아니라, 프라모델을 먼저 접한 케이스. 때문에 우결의 경우 이시영의 취미를 오타쿠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제작진측의 캐릭터 만들기였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거지 서브컬쳐를 즐기는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인데 프라모델을 다루는게 오타쿠가 아니냐고 하면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 일반 밀리터리물이나 자동차 프라모델러에서 건프라로 넘어온 사람들이 특히 자신은 '''건프라는 좋아하지만 오타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는 거나 이 만든 완성품을 모으는 게 아니고 만드는 과정도 즐기는 쪽이다. 일본에서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좋아하면 훌륭한 오타쿠이기 때문이다. 단지, '서브컬쳐 -> 피규어' 순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피규어 모으기가 취미"라고 하면 이쪽인 경우도 적지만 있다.[* YG의 [[양현석]]이나 MBK의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 드림팩토리의 [[이승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아톰인형 매니아로 알려진 [[조민기]]도 아톰의 스토리 자체를 파고들기 보다는 '아톰 인형(피규어)'에 꽂혀사는 경우이다. 베어브릭 같은 류의 캐쥬얼한 피규어쪽으로 빠지자면 그 수는 더 많다. [[이승연]]도 편의 취미를 따라 베어브릭을 모으고 빅뱅의 [[탑]] 역시 베어브릭 수집매니아. [[원피스(만화)]]같은 경우에도 피규어 퀄리티가 좋은 편이라 만화책은 제대로 안 읽고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건담과 일반 인형 매니아를 동일시 하면 곤란하다. 여자아이들의 인형 취미와 건프라가 똑같겠는가? 어찌 부정해도 건프라를 좋아하는 이상 일단 오타쿠라 봐야 할 점은 사실이겠다.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3/read/31977670|여기서도 그렇지만]] 건프라를 좋아하면 충분히 오타쿠로 여겨진다.]
         2013년에 출연한 자사용설명서나 더 웹툰: 예고살인이 생각보다 평이 호조여서 작품 선택 안목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단, 자사용설명서의 흥행은 지못미...
         2016년 8월,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고 있는 중, 권투했던 기초체력으로 같이 입소한 자동료들을 제치고 지구력 1위를 과시하는 중이다. ~~[[박찬호]]를 제쳐버리는 체력.~~ [[http://tvcast.naver.com/v/1079529|영상1]], [[http://tvcast.naver.com/v/1079521|영상2]]
         2018년 1월 7일 득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671631|관련기사]]
         자동차 운전면허증 취득 이력에 대해 참 화려했으니 들은 1종보통 또는 2종 보통만 취득하는데, 본인은 2종 소형에 1종 대형과 특수 트레일러까지 취득했다.--이러다 특수 래커까지 따면 유명인중에 차량운전 마스터할 수 있으니까 능력자로 등극되는거다.--
         2013년 5월 31일 새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51kg급으로 체급을 올리고서 7kg 증량을 했다고 밝혔다. 과장이 없다면 48kg급에선 딱히 감량 없이 출전했으나, 51kg급에서 살아기 위해 [[체중 감량]]을 염두에 둔 증량일 듯하다.
         || 2010년 || 내 자의 순이 || 조연 || 특별출연 ||
         ||<|2> 2013년 || [[자사용설명서]] || 최보나 || ||
         ||<|3> 2009년 ||<|2> KBS || [[꽃보다 자(KBS)|꽃보다 자]] || 오민지 ||
  • 조응천 . . . . 17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70000B 대한민국}}}{{{#70000B 국회의원}}}{{{#70000B 경기}}} {{{#70000B 양주시 갑}}} ||
         || '''가족''' ||<(> 배우자, 슬하 2 ||
         || '''지역구''' ||<(> [[경기도|경기]] [[양주시 갑]]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전직 자영업자. 그리고 '''[[문재인]]의 자 2호'''[* 자 1호는 [[김병기(정치인)|김병기]] 의원이라고 한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자신이 친문 인사임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물론 말로만~~ "나는 친문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 사퇴 후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병기와 조응천 두 사람을 본인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으며, [[박근혜정부]]에서 핍박 받은 두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직접 트위터에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 다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훗날 요긴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김병기(정치인)|우병기]] [[조응천|좌응천]]~~ ~~최초의 셔터맨 출신 국회의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경기도]] [[양주시]] 갑 지역이다.
         해임된 후, [[양복]]을 입고 근무하는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억울한 해임과 기소에 홧병이 나서 본인과 부인 모두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가슴이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양주시]]까지 자주 다녔다"고, 출마한 후에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가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응천을 국기문란사범으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종편에 의한 후속보도까지 이어졌을 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인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나와서는 그때 썰을 푸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Wq4Bmffjg|정청래 : 근데 본인은 지금 행복하잖아 / 조응천 : 땡큐.]]라고 큐트하게 받아쳐 주신다. ~~막 특검 왔다갔다 거리고~~ 정청래는 옆에서 "진짜 큰일 날 뻔했어~엉, 안 짤렸음 어떡할 뻔했어~엉", 김어준은 "그렇겠지, 청문회 나가서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거 하고 계셨겠죠."라면서 깐족깐족대는데...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다.] ~~[[자덕|자전거 덕후]] 입장에서는 주말 소풍 수준인데...~~ 다시는 공직이나 법조인 생활을 하기 싫은 생각에 [[마포구]]에 '''[[http://dmaps.kr/23r6b|별주부짱]]'''이라는 해물 요리 전문점을 개업하였다.
         이때 자리에 함께 있던 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주 입고 다니는, 땡처리로 구입한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몇 천 원짜리 회색 후리스 스웨터를 '편을 잘 부탁한다는 뜻의 징표'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는 그 후리스를 자주 입고 다니며 커플룩을 인증하기도.[* 해당 후리스는 [[문재인]], 조응천 지지자들에게 있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후리스를 사서 단체로 입고 별주부짱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긴 사람들도 있었다.] 참고로 부인은 편이 정계 입문한다고 하자 "미친놈", "이혼하자" 등 격한 언사를 퍼부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눈빛에 감전되더니, "쓸 만한 놈이니 잘 써달라"고 하면서 정계입문을 허락했다고(...)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인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는 [[양주시]]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였던 데다가 지역구 관리를 상당히 갈고닦았던 반면, 조응천 후보는 [[양주시]]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249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꺾고 신승했다.[* 조응천이 [[수동면]]과 [[화도읍]]에서 심장수에 밀렸지만 젊은 층 인구가 많이사는 [[호평동]]과 [[평내동]]에서 심장수를 앞섰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는 최소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출연해 밝힌 에피소드에 따르면, 본인 선거 캠프의 보좌관이 떨어진 거 같다고 보고해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있다가 마지막 투표함이 더 았으니 기다려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응천 당시 후보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 투표함에서 결과가 뒤집어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뒤집은 그 투표함은 주소지는 [[양주시]]로 되어 있지만 타지에서 생활하는 관외 유권자들의 표를 모아놓은 사전 투표함이었다고 한다. 조응천 후보가 본인이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 [[새누리당]]의 심장수 후보는 [[설레발|자기가 이긴 줄 알고 미리 당선증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고(...). ~~[[안습]]~~[* 여담으로 심장수는 8년 전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며 출구조사에서는 앞섰지만 개표 결과 당시 현역 의원인 최재성 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더욱이 심장수는 조응천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선배이기도 했기에 더욱 패배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의 보좌진들을 의원실 보좌관으로 채용했는데, 그중에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과 연관된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조응천 의원이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국정원]]의 [[국정원 댓글 사건|범죄]]를 수사하다 피해를 봤던 인물이라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에 수사 총책을 맡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던 발언이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다스 뵈이다]]에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과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오히려 증인 보호 차원에서 이들을 채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 갑) || [[더불어민주당]] || '''32,785 (40.07%)''' || '''당선 (1위)''' || ||
  • 현주엽 . . . . 17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농구]]}}
         [[1975년]] [[7월 27일]]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의류제조업을 하는 아버지 현진구(玄晉具)와 前 국가대표 농구 선수인 어머니 홍성화(洪性華) 사이에서 슬하 3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그의 위로는 세 살 위의 두 쌍둥이 형이 있다. 그의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延州)이고 [[종교]]는 [[불교]]이며 신장은 195cm이고, 체중은 120kg이다.
         그는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학사]] 및 [[고려대학교|동 대학원]] [[석사]] [[졸업]]하였다. [[1998년]]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나이츠]]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어 프로농구에 데뷔하였다. 그의 현역 [[대한민국 프로 농구|프로 농]][[농구|구 선수 시절]] [[닉네임]]은 '''매직히포''', '''포인트포워드'''이며 역대 대한민국 프로 농구 선수 중에는 가장 NBA급에 근접했던 선수였다. [[2002년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결승전에서 4쿼터 4초를 기고 돌파 및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서(이른바 까마귀 작전)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으며, 연장전에서 6득점을 기록하여 [[대한민국]]을 [[1982년 아시안 게임|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데 기여하였다.
         현주엽이 대학진학후 첫 출전한 대회인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대는 연대를 맞아 28점차로 대패하게 된다. 이 경기후 고대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라와 다시 연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고, 다시 최종결승전에서 고대는 연대에 시종일관 리드를 당했으나 시합종료 1분을 기고 고대 양희승이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동점상황에서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기고 회심의 레이업을 시도하였고 연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고대의 우승을 이끌었다.<ref>경향신문 1994년 4월3일 “안암골 호랑이 "大(대)역전쇼””</ref> 대학무대 첫 대회에서 세간의 기대만큼의 활약을 벌이지 못한 현주엽은 대회 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모든면에서 선배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고교농구와 대학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느꼈다고 대답했다.<ref>스포츠서울 1994년 4월 2일 [http://kids.olivercho.com/SportsLeisure/148 “현주엽,고려 우승의 "일등공신",인터뷰”]</ref> 그러나 이 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의 팀내 입지를 탄탄히 다지게 되고, 고대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신기성이라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무대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현주엽은 상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순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2009년 6월 24일, 현주엽은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그 다음날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장에는 무릎수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들어섰다. 선수생활중 가장 기억에 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를 꼽았고 아쉬운 것으로는 우승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소감으로는 팬들에게 농구를 좀 잘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2015년]] [[채널A]] 《[[개밥 주는 자]]》
         {{1994년 아시안 게임 농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6년 하계 올림픽 농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98년 아시안 게임 농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2년 아시안 게임 농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 SK 나이츠 선수]][[분류:부산 KT 소닉붐 선수]][[분류:창원 LG 세이커스 선수]][[분류: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농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농구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농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자]][[분류:연주 현씨]][[분류:서울도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17회 일치
         || [[신비주의 아기천사]] || → || '''[[팥의 전사 호빵왕자]]''' || → || [[물찬 강제비]] ||
         ||<#878787> '''{{{#EEE156 출생}}}''' ||<(> [[1982년]] [[1월 17일]] ([age(1982-01-17)]세), [[전라북도]] [[원시]] ||
         ''' 2000년대 정상급 R&B 자 보컬.'''[* 물론 2018년 현재에도 상당한 수준이다.]
         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현직업학교[* 현재는 아현산업정보학교로 [[개명]]했다. 특히 [[실용음악과]]가 매우 [[인지도]]가 높고 학생들의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비스트(아이돌)|비스트]]의 [[이기광]], [[양요섭]], [[K팝 스타]]의 백지웅, [[K팝 스타 시즌3]]의 [[영주]], 허니핑거식스의 황예린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많다.]라는 위탁고등학교 실용음악과를 다녔다.[* 직업학교라서 본교인 광문고등학교는 일주일에 한번 가는 식으로 가끔씩 방문하고, 나머지 일수에 아현직업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거다. 사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인문계고]]의 직업반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이 된다.] [[휘성]], [[박효신]], [[UV]]의 [[뮤지]][* 그런데 서로 같은 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잘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등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휘성은 당시 A4라는 그룹으로 이미 가수 활동을 하는 중이었고, 박효신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하던 터라 어린 마음에 '나보다 잘하나'하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엔 과와 반이 달라서 그리 친하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데뷔 후에 방송에서 자주 만나며 친해졌다고. 휘성의 말에 따르면 당시 환희는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잘생긴데다 노래와 춤이 기가 막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학교에서는 보여주질 않아 더 전설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현재의 터프하고 성적인 이미지에 비해서는 말이 없고 조용한 ~~자발적 아싸~~ 모범생 타입이었다고.
         3집부터는 얇게 내던 목소리를 버리고[* 3집의 경우 창법 변화 과도기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부 노래는 아직 얇은 목소리가 확연히 아있는 걸 느낄 수가 있다. 그 예로, sea of love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반해 rain에서 환희의 목소리는 조금 얇은 편이다.] 4집 즈음부터 [[소몰이창법]]을 구사했다. 훗날 회상하길 Missing You 당시엔 [[소]]를 한 2만마리 정도 몰았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8&aid=0000354994|#]] 기본적으로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흉성을 가미하여 매우 깊이있는 중저음을 가진 보컬이 되었다. 음역폭이 매우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기교와 애드립은 수준급. 이 때문인지 [[김구라]]의 [[가요광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바이브레이션]]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라디오 쿨FM 4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였다. 그 외 수상자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14154|기사]]에서 확인]
         6집 발매 전에는 성대결절이 찾아와서 앨범 발매를 연기했다.[* 그 때 '자답게'란 곡이 뒤늦게 들어와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성대결절에서 회복된 후 '자답게'를 녹음하여 타이틀곡으로 발표. 결과적으로 대박났다.] 7집부터는 전에 비해 창법이 좀 더 편하고 가벼워졌다. 그러나 후에 첫 미니앨범 활동중에 성대결절도 아닌 성대마비 때문에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며 당시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굵직하게 내던 창법에서 현재 바뀐 노래 부르는 방식에 걸쳐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면 여린 가성에 약하다는 부분이다. 완전 하이 노트로 올려버리는 센 소리의 가성은 정말 잘 구사하는 반면, 진성-가성을 오갈 때 한번씩 나오는 여린 가성의 경우 진성에 비해 음의 질이나 양 자체가 따라가질 못한다. 센 가성의 대표적인 예로는 자답게 라이브 클라이막스 애드리브 부분을 들어보면 되고, 여린 가성의 경우는 내 사람 라이브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신인 시절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영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반 광탈.
         [[화요비]]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촬영했었다. [[화요비]]에게 지어준 별명은 다름아닌 개똥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쁜 자 기믹이었으나 ~~네티즌들이 무서웠는지~~ 점점 온순해졌다. 당시 "싸가지 없다"라거나 "차갑다"라는 식의 여론이 상당한 스트레스였는지 이후에 방송에서 예능이라 그런 점이 과장됐을 뿐, 실제로 무뚝뚝하긴 하지만 나쁜 자는 아니라며 자주 억울함을 호소한다. ~~게다가 후반에 나쁜자 기믹을 좀 죽였더니 이번엔 전보다 재미없다며 난리~~ 결국 금방 하차했다. 가장 빨리 하차한 커플 중 하나. 현재도 [[화요비]]와는 음악적 동료이자 좋은 친구 사이를 유지 중이다. 화요비의 [[화요비/음반 목록|앨범]] 인터뷰 당시, 앨범 공개전에 미리 노래도 들려줘서 환희의 조언도 받고, 다시 우결을 해도 환희와 다시 하고 싶다는 등을 언급했었다.
         워낙에 상자 이미지라 예전 소속사였던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 사이에선 매니저 차 안타고 늘 바이크 타고 출근하더라는 둥 회사 주변 주민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처리했다는 둥 일명 '환희 선배님 전설'이라는게 도시전설처럼 떠돌았다고 [[슈퍼주니어]]가 방송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7집 활동 당시 성형사실을 스스로 고백했다. 사실 6집이나 앨범을 내고 성형 전 얼굴이 이미 다 알려진 마당에 수술을 감행한거라 더 화제가 됐다. 근데 성형한 자 연예인들 중에 손꼽힐만큼 잘나온 케이스(...)라 하길 잘했다는 사람도 많다. 물론 어떤 것이든 예전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 예전의 수수한(?) 외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분류:1982년 출생]][[분류:플라이 투 더 스카이]][[분류:199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원시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도영(1996) . . . . 16회 일치
         ||<#FF0133><:>'''{{{#white 별명}}}'''||<(> 도코몽[* 도영+코코몽.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도영이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닮았다는 말이 있어서], 토끼왕자, 도깽, 당근총각[* [[토끼]]를 닮아서 지어진 별명. 당근가게 망한 애라는 별명도 있다.], 또잉[* ‘도영’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따오윈’인 것을 모른 채 자신을 ‘또잉’이라고 소개해서 지어진 별명.], 우동[* “우리 동영이”의 줄임말. 비슷한 경우로, [[재현(NCT)|재현]]은 “우리 재현이” 즉 ‘우재’라는 별명이 있다.], 토평고 6대천왕[* 아이비클럽 일일카페에서 본인피셜 학교축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멤버들피셜 멤버들앞에선 1대천왕이라고 한다고..형은 잘생긴 외모덕에 토평고4대천왕 출신.--], 미코[* 미성의 코러스. 뮤비뱅크에서 자신의 키워드로 써서], 도룡[* 도영+공룡. 언뜻 공룡도 닮아서], 왕증이[* 왕 큰데 앙증 맞아서(...) 그런데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아하는 별명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왕증이라고 대답했다.], 팩폭[* 팬들과 밀당하는 밀당. ~~요정이라는 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 삼청이[* 청순 청아 청초(...)], 직진[* 형인 공명과 똑같이 직진으로 '우리 결혼했어요' TV프로그램에서 형의 가상 와이프에게 직진질문을 한 것을 보여주었다.], 도영글래스[* 유리잔같이 소중히 다뤄야하는 존재로 가장 잘 삐지는 멤버이다. 태용의 전화에 그렇게 저장 되어있다.], 도영왕댜님[* 도영 자신이 정한 별명이다.], 도영임굼님[* SM 할로윈때 임금님 코스프레를 했는데 NCT 나잇나잇에서 임금님보단 유니크하게 임굼님이라고 도영이 바꾸었다.] ||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성 그룹 [[NCT]]와 서브그룹 [[NCT U]]의 멤버이며 [[NCT 127]]에 합류했다.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배우 [[공명(배우)|공명]]의 동생이다.
          * 입 주변에 상처가 하나 있다. 고화질 사진을 보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흉터인데 이는 어릴 적에 난 상처로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만한 정도였다고. 그런데 너무 어린 시절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 어머니가 약을 발라주셔도 귀찮다고 닦아버려서 아직도 상처가 아있는 것.
          * 도영의 형은 성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공명(배우)|공명]]이다. 형인 공명과는 사이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서로 싸운 일도 별로 없고 부모님이 모두 집안에서 막내였던터라 막내인 도영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위기여서 형도 도영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리를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차에 치이자마자 바로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3달 넘게 휠체어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형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형이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앨범이 나오거나 도영이 방송에 나오면 종종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레귤러 활동 당시 첫방 날에 공명이 직접 찾아와서 인증샷을 기기도 하였다.
          * 고등학교 시절 교내 반별 팝송 합창대회에서 [[레이디가가]]의 poker face를 [[https://www.youtube.com/watch?v=xMWPmz5ROIY|불렀다.]] 도영은 지휘자와 인트로부분 독창을 맡아 성공적으로 발표하였고, 해당 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다. 1위가 발표된 뒤 도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디오에서 밝힌 [[https://www.youtube.com/watch?v=JqQp9a3ED1A|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당시 도영의 반에 예체능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모두 '이거는 진짜 우리가 무조건 1등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 공연이 레전드로 아서 학교 측으로부터 졸업식 날 공연으로 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 시점엔 이미 도영이 자퇴한 이후여서 친구들도 거절했다고 한다.
          * 의외로 초콜릿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디스패치에서 공개된 할로윈 간식 언박싱 영상에서 멤버들이 호박맛 킷캣을 추천하자 "난 초콜릿(절레절레)" 하면서 사양하였다. 멤버들이 계속 맛있다고 하자 한 입 맛보았지만 더 준다는 재현의 제안은 사양하였다. 그런데 초콜릿 드링크나 초코맛 아이스크림은 좋아한다고 여러번 언급했으며 루키즈 백문백답에서도 화이트초코를 좋아한다고 해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미스테리인 상태. 후에 팬싸인회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단 건 좋아하지만 초콜릿은 입에 끈적하게 는 이물감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 쟈니, 재현과 함께 대식가인 멤버 중 한 명이다. 쟈니의 표현으로는 We eat a lot 클럽. 단체 식사에서 많이 먹는 테이블의 고정 멤버가 이 셋이고 여기에 가끔 해찬이가 끼기도 한다고.[* 최근에는 [[루카스(NCT)|루카스]]가 대식가 1위로 올라선 것 같다.] 음식 종류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음식이든 그냥 많이 먹는 타입이라고 한다.[* 다음 날 땀 흘릴 일이 많다 싶으면 그 전날 엄청 많이 먹어둔다고.] 많이 먹고 운동도 안 좋아하고 취미는 침대에 누워있기인데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미스테리. 그런데 사실 모태 마름이 아니라 SM에 입사하고 나서 견과류만 먹으며 독하게 살을 뺀 것이라고 한다. 재현은 이를 보고 목표한 것은 반드시 이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태용이 본 도영의 첫인상:땅콩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를 추천하거나 월쌈에는 땅콩소스지라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실제로 땅콩을 좋아하는 것도 맞는 듯하다.]
          * NCT 127에는 컴퓨터 게임을 즐겨 하는 멤버들이 많아 게임을 '팀워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도영은 컴퓨터 게임을 별로 하지 않는 멤버 중 한 명이다. 터치 활동 당시 127이 출연한 엔나나 다물다궁 코너에서 게임 멤버들이 따로 단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운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We go up 활동 기점으로 마크마저 게임을 시작해서 이젠 정말 非게임 멤버가 얼마 지 않았다.-- 언제 한번 멤버들과 오버워치를 한 적이 있는데 파라를 픽하고 걸어다녔다고(ㅋㅋ) 다만 본인은 날았다고 변명했다. 날고 싶어서 파라만 하는 거라고. --영호:날'기만' 했어 해찬:날면 못맞춰-- 태용의 말에 따르면 그래도 오리사는 나쁘지 않았다고(...) --도영:오리사 나랑 너무 잘 어울리는거 아니야?ㅋㅋ--
          * 2018 평창 SM 워크샵에서 직원과 함께하는 듀엣가요제 코너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탔다. 곡명은 [[이지훈(가수)|이지훈]]&[[신혜성]]의 인형.[* 후에 듀엣이 가능한 버전으로 에브리싱에 영상이 올라왔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NCT 전 멤버가 일어나서 환호하는 것을 무대 위에서 보고는 월드컵인 줄 알았다고 한다. 상금은 직원분의 몫과 합쳐서 1000만원이었는데 NCT 18인이 지금까지 전원 모여서 회식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상금으로 회식을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결국 2018년 7월 NCT가 [[엘리트(교복 브랜드)|엘리트]] 교복 모델이 되어 촬영을 위해 18명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그 날 저녁 회식을 쐈다고. --윈윈:멋있어요 도영형 역시 본부장ㅎㅎ-- [* 엔나나에서 밝혀진 바로는 테이블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3~4인분 정도는 먹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루카스로 지성의 증언에 의하면 약 10인분 정도 먹은 것 같다고.] 또 동 워크샵에서 EDM 파티도 즐기고 온 것 같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하는 사람인데 조명이 반짝반짝하고 음악이 울려서 그 순간 음악에 취해 처음으로 신을 느꼈다고 밝혔다.
          * DJ인 쟈니와 재현을 제외하고 엔나나와 가장 인연이 깊은 멤버이다. 엔나나가 시작할 당시부터 프로그램, 코너 제목에 의견을 내기도 했고[* 도영이 추천한 이름은 엔시티의 파자마 파티(...)] 종종 댓글을 기기도 한다. ID는 kdyoo123. 멤버들 중 최다 출연에 이어 재현이 정글의 법칙 촬영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태용과 번갈아가며 스페셜 DJ까지 맡은 이후 결국 고정 게스트가 되었다. 코너 제목은 Do! Digest. Do는 도영의 '도'와 영어 '두'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줄여서 도다제. 도영이 출연하는 엔나나를 '도나나', 도다제가 방송되는 토요일을 '도요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다 출연 게스트인만큼 제작진과도 친분이 쌓여 생일 때 케이크와 선물을 받거나 PD님께 음료를 얻어먹거나 하기도.
          * 공식 트위터에 글을 길 때 @.@ 표정을 자주 사용한다. 이름을 따로 쓰지 않아도 이모티콘만 보고 누가 쓴 글인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
  • 라미란 . . . . 16회 일치
         || '''가족''' ||<(> 편 김진구, 슬하 1 ||
         [[대한민국]]의 배우. 연극과 출신으로, 30세라는 늦은 나이에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오수희 역으로 데뷔하였다. 첫 영화 출연 작품에서부터 교도소에서 강렬한 장면을 연기해 인상을 겼다. 특색 있는 얼굴로 주로 조연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작품에 출연하였다. 연기력은 인정받았으나 인지도는 크지 않았다. 2013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2에 출연하게 되면서 시간또라이 라과장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2014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레전드 출연자로 고 있고, 그 계기로 일밤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편에 출연하게 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17국내 빅5 투자 배급사가 선정한 충무로 티켓파워 순위에서 [[오달수]]와 함께 최고점, 최다 득표율을 받으며 만장일치로 녀 조연부문 공동1위를 차지했다.
         || [[쪽으로 튀어]] || 연금관리공단 직원(특별출연) || - ||
         || [[KBS]] || [[드라마 스페셜]] - 예쁘다, 오만복! || 미순 ||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27496|에릭, 라미란 기습키스에 울상 “진짜 닿았어”]]
         2014년 8월 7일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 [[에릭]]에게 돌발적으로 실제로 입을 맞추는 성추행을 저질러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연인 사이에 휴지로 얼굴을 가리고 깜짝 키스를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패널들이 서로 이를 시연하였는데, 다른 출연자와 달리 라미란은 '로맨틱한 키스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며 휴지를 찢고 직접 입술을 접촉해 버렸다. 성적인 의식이 얼마나 낮은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이는 범죄이다.
         이것은 역으로 중년의 성 연예인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어린 연예인에게 저질렀으면 활동 자체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심각한 성적 추행이었다.
         당시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여론이 없지 않았고 여러 개그 우먼들의 몰상식한 성희롱([[라미란]], [[이국주]], [[안영미]] 등)이 문제 제기되고 있긴 했지만 개그우먼 [[이세영(코미디언)|이세영]] 사건을 기점으로 공론화되기 이전이었으므로 에릭은 그저 쓴 웃음을 지은 채 넘어가야 했다.
         [[http://mstoo.asiae.co.kr/view.htm?no=2016093000275118874|라미란 "안 좋은 버릇? 자 주무르며 이야기한다"]]
         2016년 9월 29일 KBS 2TV 해피투게더에 출연, 자 연예인들을 주무르며 말하는 버릇이 있음을 본인이 스스로 밝혔다. [[이동건]] 역시 라미란이 자신의 재킷 속에 손을 넣은 적이 있음을 폭로하였다.
          * 개념있는 언행을 보여 좋은 이미지의 연예인이기도 한데, 진짜사나이에 나와선 녀를 포함한 역대급 엘리트의 모습[*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입대를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물론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당시 교육을 맡은 교관은 훈련을 마친 라미란이 다른 교육생들은 해냈다는 것이 그저 감동적이었다 말할 때 '''전시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지체해선 안 되겠다'''란 소감을 말해 벌써 군인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칭찬하기도... ~~체력 제외~~ 사격을 포함한 모든 훈련부터 군 생활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을 보여 찬사를 받았고 본인의 편이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뛴다 해서 전혀 창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해 신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편인 김진구는 가수 [[신성우]]의 매니저 출신이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16회 일치
         --머리카락치워--[[바솔로뮤 쿠마]]때문에 [[샤본디 제도]]에서 [[아마존 릴리|여인섬]]에 떨어진다. 자를 배척하는 섬에서 쫓기다가, 심지어 칠무해인 [[보아 행콕]]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아 그야말로 죽을 위기. 보통 자였다면 이 시점에서 돌이 되었겠지만 루피에게는 애초부터 사심 자체가 없기 때문에 돌이 되지 않았다.[http://web2.ruliweb.daum.net/ruliboard/read.htm?main=hb&table=cmu_yu03&left=j&db=2&num=53797 #] 결국 콜로세움에서 결투를 벌였다. 무장색 패기를 전혀 쓰지도 않고, 본인 특유의 뛰어난 완력만으로 엄청난 공격을 가한다. 게다가 패왕색 패기의 자질까지 보여 줘 모두가 놀랐다. 거기다 비록 싸우는 중이면서도 고르곤 자매가 숨기고 싶은 부분을 감싸주는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본 행콕은 루피를 용서한다.
         루피는 이에 특례로서 후한 대접과 함께 샤본디 제도까지 갈 배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 파티에서 섬의 여자들 사이에 "자는 피부를 잡아 당기면 늘어난다."라는 이상한 상식이 자리잡게 된다.(...)--특정 부위는 늘어날 지도...?--[* SBS에 의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잔치 직후 신문에서 자기 형인 [[포트거스 D. 에이스]]를 처형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도우려고 행콕에게 [[임펠 다운]]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괜찮았는데...정말 허리케인 같은 사랑의 열병으로 [[보아 행콕]]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이후 금의 섬 [[아마존 릴리]]에 떨어진 루피는 형 [[포트거스 D. 에이스|에이스]]가 임펠 다운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보아 행콕]]의 도움으로 임펠 다운에 잠입한다. 그리고 에이스가 갇혀있는 LEVEL 6로 가던 중 LEVEL 1에서 [[버기(원피스)|버기]], LEVEL 2에서 [[Mr.3]], LEVEL 3에서 [[Mr.2 봉쿠레]]와 합류해 임펠 다운을 휘젓는다. 그러다 LEVEL 4에서 만난 임펠 다운의 형무소장인 [[마젤란(원피스)|마젤란]]의 [[독독 열매]]의 능력 앞에 패배, 맹독에 중독된 채 LEVEL 5로 이송되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LEVEL 3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한냐발]]을 때려 눕히지만 끝까지 버티고 계속 일어나는 한냐발에게 발이 묶인다. 그러다 [[마샬 D. 티치|검은 수염]]의 뒷치기에 한냐발이 당해 쓰러지게 되고, 루피는 자신이 [[자야]]에서 만난 자가 바로 검은 수염이란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루피는 검은 수염에게 싸움을 걸지만 [[징베]]의 설득으로 일시 휴전 상태에 들어간다. 임펠 다운을 벗어나기 직전, 마젤란에게 쫓겨 수세에 몰리고 Mr.2 봉쿠레의 희생으로 정의의 문을 넘어 임펠 다운을 탈출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정상결전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심지어는 뭐가 해적왕이냐고 스스로를 부정했다.''' 사실 에이스랑 동료들을 못 지키고, 봉쿠레를 자신 때문에 또 한 번 희생시켰다. 심지어 에이스는 마린포드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친할아버지인 가프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고, 언제나 자신만만한 루피가 정말 처절하게 절망했다. 이런 사실은 샤본디에서 동료를 모두 잃은 일이 첫 번째 좌절이다. 다만 샤본디에서 동료들과 흩어지고, 잠시도 못 쉬고 정상결전까지 겪었다. 결국 좌절을 곱씹을 겨를도 없지만, 이때는 모두가 살아았으니까 본인이 겪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는 에이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끔 하고 몸을 해치는 일을 말리려는 징베와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실 징베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속이 상할 만한 상황이다. 흰수염 본인과 에이스 외에도 흰수염 해적단의 수많은 해적들이 루피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정작 그 본인은 상처가 벌어지는데도 날뛰어 대서 혼자 개죽음을 겪으려 하는 상황이니 징베까지 덩달아 격동해서 루피를 죽이려고 까지 했었다.] 불안정한 상태였다. 징베가 '''"잃은 것만 보지말고 아 있는 것도 봐라! 너에게 아직 아 있는 것도 있지 않느냐!"'''고 일갈하자 울며 날뛰던 루피도 '''[[밀짚모자 일당|사랑스런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자기 해적단'을 아있는 것 한 가지로 세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일일히 하나씩 꼽아가며 세고는 아 있는 것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모습이 참으로 루피다운 모습.
         그리고 마린 포드에서 일을 마치고 쿠쟈 해적단 배를 타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 상처가 았는지, 누워있다. 행콕이 명령한 것 때문에/ 루피가 얌전히 있도록 쿠쟈해적단 여인들이 누워있는 루피를 뻔히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실버즈 레일리와 같이 동물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한 섬[* 이 당시의 루피보다 더욱 강한 생물들이 어림잡아 500구 이상이나 살고 있는 섬.]에서 2년간 수행에 들어가기로 하고 그 섬에 가장 안전한 곳에 동료들의 비브르 카드를 꽂아 놓은 밀짚모자를 걸어놓으면서 수행에 들어간다. 여담으로 극장판 10기 특전인 0권에서 "이번 모험이 루피의 17세 마지막 모험이다."라는 발언도 있었고 4주 휴재를 선언하면서 2년후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반면 어인은 수중에서는 오히려 이동범위에 있어 부자유가 없어지고 속도와 힘도 더 붙고 기술폭까지 늘어나 전체적인 컨디션이 대폭 상승한다. 이건 '''ES를 과다복용한 호디를 기준으로 해도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지 않고서야''' 이기기 힘든 게임이다. 그런데 루피는 이걸 이긴다음에 체력이 아서 노아를 때려부순다. 사실 따지면 따질수록 이 상황에서 못 이긴 호디가 보스로써 수준미달 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이후 선수관람석에서 베라미의 B블록의 경기를 잠시 동행하게 된 캐번디시와 지켜보는 도중 콜로세움에 참가한 [[돈 칭자오]]가 나타나 '''"[[몽키 D. 가프|가프]]는 잘 계시는가? 루피 아우"''' 하고 물어보자 생각없이 바로 아저씨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아냐고 대답하는 바람에 또다시 정체를 발각당한다. 그리고는 옆에서 이를 들은 캐번디시가 루피가 맞냐며 추궁하자 당황하며 루피가 아니고 루시라며 발뺌하고,[* 이 와중에도 돈 칭자오의 계속되는 도발에 꼬박꼬박 반응하며 자기가 루피인 것을 계속 [[인증]]한다.~~역시 바보~~ 캐번디시도 그렇고 칭자오도 그렇고 애먼 데다 원한을 품은 인물들 때문에 보통 보케 담당인 루피가 츳코미를 해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캐번디시 曰 "의 인기나 뺏질 않나 귀신의 손자로 태어나질 않나… 순 원망만 사는 쓰레기 자식." 이에 루피 曰 '''"그거 다 내 알바 아니라니까?"'''] 돈 칭자오는 가프에게 수없이 살해당할 뻔 했다며 루피의 할아버지인 '''악마 가프'''[* 돈 칭자오가 활동하던 당시의 해적들에게 있어 가프는 악마로 통했다고 한다.]에게의 빚을 손자에게 갚겠다며 루피?를 공격하고, 이에 루피는 전력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흥분한 돈 칭자오는 계속 루피를 공격하려 하나 주변의 만류로 일단 와해된다. 이후 '''경기고 뭐고 일단 밀짚모자를 잡겠다는 캐번디시를 피해''' 관람석 외벽에 매달려 [[바르톨로메오(원피스)|바르톨로메오]]와 싸우던 [[베라미]]를 응원하지만, 결국 베라미는 엘리자벨로 2세의 왕의 펀치에 휘말려 탈락한다.
         3층에서 해골 장난감을 상대하겠다는 캐번디시를 기고 바르톨로메오의 도움을 받아 4층으로 가는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4층에서 디아만테를 맞서는 퀴로스가 이 녀석은 자신이 맡을테니 도플라밍고한테 가라고 하자 로의 수갑을 풀어주고 로와 함께 왕궁으로 이동한다. 왕궁 정원에서 슈거가 접근하자 별 경계심 없이 대해 장난감 능력에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우솝이 먼 발치에서 얼굴탄으로 슈거를 저격해 처리. 마침내 왕궁 최상부에 있는 도플라밍고와 맞서게 된다.
  • 박상면(배우) . . . . 16회 일치
         1993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한 그는, 1997년 영화 [[넘버 3]]에서 [[재떨이]] 역을 맡으며 충무로계에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9년 MBC 드라마 [[왕초]]에서 하마 역을 맡으며 드라마 쪽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00년에는 [[드라마]] 나쁜 친구들을 비롯해 ~~[[미생(선덕여왕)|미생]]~~[[정웅인]], [[윤다훈]] 등과 같이 MBC 시트콤 [[세 친구]]에서 공동 주연까지 따냈고, 2001년에는 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주인공 [[신은경(배우)|신은경]]의 편 역으로 주연급 배역을 맡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각종 [[드라마]] 및 [[영화]]에서 조연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주유소 습격사건|주유소 습격사건 2]]에서 집단탈옥하는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나온 적이 있으며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주인공 김탁구를 여러모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연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킹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코믹한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당시 [[별명]]이 '몹쓸 상면'이었다.] 이 사람도 진지한 역할을 맡을 때에는 정말 한 없이 진지해진다. 특히 [[소방관]]의 활약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베테랑 소방관을 맡아 열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의 카리스마와 간지를 선보였다(물론 마지막 장면에 한정).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리프트 카에 태워 대피시키려는데 자리가 모자라자(그것도 불길이 코 앞에 닥쳐와서 리프트 카에 타지 않으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조용히 건물에 아 담배를 물고 닥쳐오는 불길을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또한 [[서울1945]]에서 박창주라는 [[악역]] 군인을 맡아 열연해 [[K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에서도 코믹이 아닌 진지한 연기를 맡아 호평 받았다.
         복면가왕 74차 경연에서 [[집 있는 자 슈퍼리치 소라게]]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2015년 || 늙은 자전거 || 복 || ||
         || 바람 피기 좋은날 || 이슬 편 || 우정출연 ||
         || 2003년 || 은장도 || 옆방 자 || 특별출연 ||
         || [[우리 집에 사는 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자]] || 배병우 || ||
         || 아내스캔들 - 바람이 분다 || 편 || ||
         || tvN || [[일년에 열두자]] || 동건 || ||
         || 2009년 || tvN || [[세 자]] || 박상면 || ||
         || [[자셋 여자셋]] || || 단역 ||
         || 2010년 || 제18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탤런트자상 || ||
         || 2006년 || [[KBS 연기대상]] || 자 조연상 || 서울 1945 ||
         [[분류:한국 배우]][[분류:1968년 출생]][[분류:완주군 출신 인물]][[분류:1993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박승임 . . . . 16회 일치
         '''박승임'''(朴承任, [[1517년]] ~ [[1586년]])은 [[조선]] [[조선 명종|명종]], [[선조]] 때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반 박씨|반]],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皐)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이자 수제자였다.
         권신들의 발호에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진력하다가 [[윤원형]] 등이 물러난 뒤에 관직에 나갔다. 또한 이황의 학풍을 후학에게 전달하는데 힘을 기울여 퇴계 학파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인]]과 일부 [[북인]]에 가담하였다.
         1558년(명종 13) 풍기 군수에 제수된 박승임은 기쁜 마음으로 풍기에 부임하여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경감해 주어 민생을 안정시키고, [[소수서원]]에 자주 들러 유생들과 강학하며 회헌(晦軒) [[안향]]의 영정을 새로 제작하는 등 치적을 기고 5년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쓰며 취향정(翠香亭)과 동리서재(東里書齋)·소고대(嘯皐臺) 등을 짓고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만년에 장 박어와 셋째 아들 박조를 잃었다. 1585년(선조 18)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한 뒤 1586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70세였다. 사후 경상도 영주의 [[구강서원]], 영주 향현사(鄕賢祠) 등에 배향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대체로 [[동인 (정치)|동인]]에 속했으며, 북 분당 이후에도 [[인]]과 [[북인]] 일부는 그의 학맥을 계승한 문하생들이었다.
         박승임은 7형제 가운데 6이었는데, 맏형 박승문은 훈도(訓導)를 지냈고, 둘째형 박승건은 생원(生員)이었다. 셋째형 인암(忍菴) 박승간은 1600년(선조 33) 박승임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과 예문관, 사간원 등 주요 관직에 올랐다. 넷째형 박승준은 진사(進士)를 지냈다. 또한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었던 야천(冶川) 박소(朴紹)는 박승임의 6촌 형이었다.
         ****** 장 : 박어(朴漁)
         ****** 차 : 박록(朴漉),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 삼 박조(朴澡) - 진사였는데, 박승임보다 1년 앞서 세상을 떠났다.
         ****** 장녀 : 반박씨
         퇴계의 제자였던 그는 임흘(任屹), 권문해(權文海), [[김개국]], [[김륵]], [[이여빈]],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김중청(金中淸) 등의 제자를 배출하여 이황학파의 학맥을 이어갔으며, 일부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동인-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하기도 했다.<ref>그의 문하생들은 대부분 북인 이이첨, 정인홍의 인목대비 폐모론, 영창대군 사사론에 반발하여 인으로 들어갔다.</ref>
         [[분류:1517년 태어]][[분류:158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사상가]][[분류:조선의 유학자]]
         [[분류:조선의 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상북도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반 박씨]]
  • 박지일(배우) . . . . 16회 일치
         * [[2006년]] [[KBS 월화드라마]] 《[[굿바이 솔로]]》 - 오영숙 편 역
         * [[2012년]] [[tvN 수목드라마]] 《[[일년에 열두자]]》 - 찬성 역
         * [[2014년]] [[tvN 금토드라마]] 《[[응급녀]]》 - 윤성길 역
         * [[2015년]] [[MBC 월화특별기획]] 《[[화정 (드라마)|화정]]》 - [[김제 (1562년)|김제]] 역
         * [[2016년]] [[SBS 드라마 스페셜]] 《[[푸른 바다의 전설]]》 - 부장 역
         * [[2018년]] [[MBC 월화드라마]] 《[[검법녀]]》 - 표유성 역
         * 2002년 《[[자 태어나다]]》, 《[[취화선]]》
         * 2017년 《[[보통사람]]》, 《[[한산성 (영화)|한산성]]》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양평군 출신 인물]][[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박휘순 . . . . 16회 일치
         [[경기도]] [[수원시|수원]] [[영통구|영통]] 에서 태어나 [[동보건대학]] 컴퓨터응용학과 전문학사 졸업 이후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편입학하여 학사 졸업하였고 [[2001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2002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이어 같은 해 [[2002년]] [[코미디TV]]에서 방송된 [[김용만 (1967년)|김용만]]이 진행한 '공포의 타이틀 매치'라는 프로그램에 질러맨으로 방송에 데뷔 이후, [[2005년]] [[KBS]] 20기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
         * [[동보건대학교|동보건대학]] 컴퓨터응용학과
         ** 《꽃보다 자》
         ** 《가족같은》 이현정의 편 역
         *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저를 뽑아주시면 전 영광입니다! 굴비세트 <참가자>
         * 《그 자의 책 198쪽》
         * 《[[강엄마 따라잡기]]》
         * [[2005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 신인상
         | 제목 =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신인상》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 희극인]][[분류:동보건대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수원시 출신]][[분류:1977년 태어]][[분류:200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상주 박씨]]
  • 원피스/850화 . . . . 16회 일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돌아온 이유를 묻는 [[타마고 작]]에게 루피가 이 세계의 여명을 이끌 자들이기 때문이라 말하며 베어버린다.
          >난!! 이런데서 죽을 자가 아니야!!
          * 안뜰. [[타마고 작]]은 [[페드로(원피스)|페드로]]를 직접 상대하고 있다. 둘의 일기토를 부하들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페드로는 격전 중에 과거를 떠올린다. 그때 타마고 작이 "이번엔 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빅맘은 제포에게 직접 "룰렛"을 돌리게 한다. 룰렛은 야속하게도 "수명 100년 분"이란 끔찍한 결과가 나왔고 제포는 그 자리에서 30년 치의 생명을 빼앗기고 죽고 만다. 빅맘은 은 70년치를 페드로에게 받아내려고 했었다.
          * 둘의 격전은 타마고 작의 우위로 흘러간다. 그는 긴 다리를 휘두르며 싸우는데 리치가 긴데다 방전타이즈를 입어서 페드로의 일렉트로가 먹히지 않았다.
          과거의 대결은 페드로의 승리였다. 페드로는 타마고 작에게 깨끗하게 승리, 왼쪽 눈을 빼앗았다. 페콤즈는 페드로를 처형하려는 빅맘 앞에 나서서 자신의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호소한다. 그 울음에 빅맘도 마음을 돌려 70년치에서 조금 깎아주는데, 그래도 타마고 작의 눈을 빼앗은 녀석이니 60년은 받아가야겠다고 못박는다.
          * 타마고 작의 "레그 베네딕트"가 페드로의 안면에 작렬한다. 타마고 작은 친구와 50년치 삶을 빼앗은 악몽의 섬으로 돌아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페드로는 루피 일행은 고향 "조우"의 은인이며 그들이 이 세계에 "여명"을 가져올 자들이라 말한다.
          페드로는 그들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으나, 자신의 "묫자리"는 여기가 아니며 그들이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시 일어선 페드로는 놀라운 속공으로 타마고 작의 몸을 양단한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푸딩의 돌변. 상디가 엿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푸딩은 자신이 빅맘의 "금지옥엽"이며 특히 "연기력"을 아껴준다고 떠들어댄다. 빅맘은 지겨울 정도로 그녀를 돌봐주고 있고 그녀의 부탁으로 자를 속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밀집모자 일행도 속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본성은 "가족들" 밖에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간부들 중에서도 그녀의 본성을 아는건 일부인 듯하다.
         이번화에서 페드로와 타마고 작의 정확한 현상금이 공개됐다. 페드로는 3억 8700베리. 타마고작은 4억 2900만 베리. 타마고 작은 정확한 직함도 공개. "빅맘 해적단 '''나이트''' 전투원".
         타마고 작은 정말로 달걀인지 페드로가 베자 안에서 날계란이 흘러나온다.
  • 육성재 . . . . 16회 일치
         ||<#42B4E6> '''신체''' ||<(> 179cm[* 프로필상 키는 180. 집사부일체에서 밝힌 키는 179cm이다.], 68kg, [[A형]], 발사이즈 280mm[* 꽃미 브로맨스(with 영민,광민) 3화 참조.] ||
         ||<#42B4E6> '''학력''' ||<(> [[구리시|구리]] 서원초등학교 (졸업)[br][[구리시|구리]] [[서원중학교]] (졸업)[br][[창현고등학교]][* 육성재 본인은 창현고에 끝까지 아있고 싶었다. 하지만 연습생 생활을 하며 염색이나 파마 등을 해야 했는데 당시 창현고가 자는 스포츠머리, 여자는 귀밑 3cm로 교칙이 빡세기로 유명했던 학교라 '연습생이라서' 의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쿨하게 '머리 그따구로 할거면 전학가' (...) 라고 하시고 전학을 적극 추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한림예고로 전학갔다.] (전학) →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실용무용과 (졸업)[br][[동신대학교]] 실용음악학과[* 대입을 미뤄 21살에 2015학번으로 입학했다. [[서은광]]과 같은 동신대학교 실용음악과다.][* [[http://m.blog.naver.com/iluvbtob/220131626595|출처]]] ||
         2015년 복면가왕에서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로 나와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후아유 - 학교 2015]]에 ~~서브주~~ 공태광 역할로 나와 대중에게 확실하게 육성재와 BTOB를 각인시켰다. 실제로 후아유가 종영하고 연말에 발매된 BTOB의 <집으로 가는 길>과 이듬해 연초에 발매된 <봄날의 기억>이 케이블과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며 BTOB가 뒤늦게나마 빛을 보았다.
         같은 해 드라마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서 자주인공 우~~리성~~재 역을 맡았으며 선배 배우들도 인정할 만큼의 연기를 선보여 2015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
         2015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3차 경연에 나와서 [[마스카라 번진 야옹이]]와 [[도와줘요 실버맨]]을 이겼으며 [[딸랑딸랑 종달새]]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구라]]는 그가 출연하기 전부터 자 아이돌 같은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수시로 언급했었다.
         복면가왕에서도 1라운드 당시에는 '그 자 그 여자'에서 짙은 감성의 고음으로 방청객과 패널들을 놀라게 했다면, 2라운드에서는 감미로운 중저음으로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해 다시 한 번 이들을 놀라게 했었다.
         || 'A CUBE' FOR SEASON # BLUE Season 2 || 사진 || With [[김주(에이핑크)|김주]] ||
          * [[BTOB|비투비]] 멤버들은 다그렇지만 [[Apink|에이핑크]]와도 친하다. 에이핑크의 소속사가 비투비 소속사에서 파생되어서 그런지 연습생 시절부터 친하게지냈고, 동갑내기인 [[김주(Apink)|김주]]와 가장 친하다.에이핑크 막내인 [[오하영]]과도 친하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서 노는 모습도 많이 포착되었다.~~
         2015년 7월 15일 [[뉴질랜드]]로 [[조인성]]과 광고를 찍으러 갔다. 그 날 밤 심심해서인지 트위터에 젤리를 먹고 이빨 닦은 다음 콜라를 마시고 자기 손발 영상을 찍어 올리며 똘끼를 맘껏 발산했다. ~~이 영상에서 육성재는 감동적인 명언을 겼는데 '멜로디 최고, 다짐, 평화, 사랑, 내 전부'가 바로 그것~~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추석 아육대]] 자 양궁 단체전에서는 [[레골라스]]를 패러디한 육골라스(…) 분장을 하고 나왔으나, 개그만 일삼다가 [[몬스타엑스]]에게 18점 차로 KO패를 당해 광탈했다. 첫번째 사수로 나온 [[서은광|광피트]]가 부진한 상태에서 3번째 사수로 나오자마자 3점과 5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연발했고, 마지막 슈팅 후 오버하는 포즈를 취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쏜 [[I.M|아이엠]]이 카메라 엑스텐을 기록한 후 육성재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는 것. [[서은광]]이 마지막 사수로 나왔을 때 [[레골라스]] 가발을 벗어던지고 말았다. 결국 [[서은광]]과 육성재의 어이없는 실수로 [[BTOB|비투비]]는 양궁 예선에서 [[광속 탈락|광탈]]했다.
         ||<|4> 2015년 ||<|2> [[MBC 방송연예대상]] || 버라이어티부문 자 신인상 ||<|2> [[우리 결혼했어요]] ||
         ||<|2>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자 신인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BTOB]][[분류:구리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95년 출생]][[분류:아이돌 막내]][[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은혼/636화 . . . . 16회 일치
          * 노사는 신체를 자유자재로 신축하며 [[가구라]], [[카무이(은혼)|카무이]] 매를 농락한다.
          * 강적을 맞이한 매의 꿈의 협력... 은 개뿔. 노사는 재쳐놓고 둘이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한다.
          * 오히려 노사가 매 싸운데 휘말려 두들겨 맞는 모양세가 되고 매는 노사의 금구슬을 가지고 테니스를 치기에 이른다.
          * 사정이 이렇게 됐는데도 이 바보매는 노사는 재쳐놓고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고 있다. 실수인데 이렇게까지 하냐는 가구라와 발목이나 잡는다고 디스하는 카무이. 서로 "죽거나 물러나라"며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는다. 부관인 아부토만 속이 터지는 상황. 이 한심한 작태에 그렇게 혈통드립을 쳤던 노사 조차도 "너무 오래된 혈통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노사가 엄마 패드립을 치는 마당에도 바보매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노사가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데도 매는 오로지 상대를 디스하고 공격을 가하는데 정신이 팔렸다. 카무이가 "네 안에 흐르는 [[우미보즈(은혼)|대머리]]의 피 때문에 발목을 잡는 것"이라 디스하자 가구라는 "너도 장래에 대머리 확정"이라 뼈아픈 지적을 가한다.
          오가는 매의 주먹 사이에 끼어있는 노사. 불쌍하지만 신체 일부만 거대화, 축소화를 오가며 여유롭게 공격을 피한다. 노사가 그 점을 과시하려 하지만, 애초에 이 공격들은 노사가 아니라 매들끼리 주고 받는 공격. 아부토가 "너넨 애초에 딴델 노리고 있다"고 일갈을 가하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 노사의 공격에 밀려나면서 매싸움도 잠시 소강되는가 했다. 카무이가 가구라에게 "너는 적의 움직임을 잘 못 보는 것 같다"며 조언을 하는 척한다. 가구라가 눈으로만 움직임을 쫓는데, 야토는 본래 야토의 피로써 적을 쫓는다. 오랜 새월 축적된 경험, 종 그 자체에 새겨진 전쟁의 기억이야 말로 야토가 적을 보는 방법. 이미 많은 적과 싸워온 가구라라면 그게 가능할 거라며 격려한다.
          하지만 그냥 매싸움의 연장만은 아니었다. 가구라가 밀쳐지면서 카무이 혼자 공격을 받는다. 노사는 정신이 딴데 팔렸다면 잡념을 털어주겠다며 오른팔을 부풀려 주먹을 날린다. 이게 카무이가 노린 바였다. 카무이는 적이 큰 공격을 하도록 유도하고 기공이 오른팔에 집중된 동안 무방비해진 다른 곳을 공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 아무리 노사라도 기공없는 금구슬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데다 가구라는 "발이 미끄러졌다!"며 또다시 카무이를 노리고있다. 카무이도 이제는 불의의 일격은 카운트하지 않는다는 규칙에 동의했다. 그래서 박힌 자리에서 빠져나오면서 우연히 위에 있던 금구슬을 박치기해 여동생 쪽으로 날려버려도 불의의 일격, 이라는 논리로 대응한다. 괜한 매싸움에 끼어 금구슬이 박살나고 있는 노사.
          * 한도 없이 이어지는 매 싸움은 이제 노사의 금구슬을 가지고 치는 테니스가 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 알을 두들겨 맞아서 머리가 이상해진 건지, 노사는 이 모든 것이 매가 짠 고도의 책략이며 기공을 금구슬에 집중시키게 해서 허점을 노리려는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지나치게 방어에 의존한 금구슬의 비대화 때문에 기동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다. 가구라는 그의 절대방어를 가볍게 걷어차 건물 밖으로 날려보낸다. 자유낙하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금구슬. 매는 긴 싸움 끝에 마지막으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다시 없을 매의 합동공격에 처참하게 떨어지는 금구슬.
  • 이연희(배우) . . . . 16회 일치
         ||<bgcolor=#b88568> {{{#FFFFFF '''출생'''}}} ||<(> [[1988년]] [[2월 26일]][* [[음력]] [[1988년]] [[1월 9일]]이라고 트위터에서 인증해주었다.[[https://twitter.com/yeonhee__b/status/571300905292664832|참조]]] ([age(1988-02-26)]세), [[전라도]] [[해군]] ||
         ||<bgcolor=#b88568> {{{#FFFFFF '''가족'''}}} ||<(> 1 3녀 중 셋째[* 여담이지만 장손 집안이라고 한다.] ||
         [[대한민국]]의 여배우.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전라도 해군 출생이다. 하지만, 성장한 곳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이다. 2001년 일종의 캐스팅 오디션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입상하면서 SM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처음으로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고아라]]에 이어서 [[SM엔터테인먼트|SM]]이 연기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 초창기에 내세운 연기자다.
         ('''이연희의 발연기를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표적인 대사이자 장면.'''2008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에서 송승헌과 이연희의 첫 만 때 이연희가 한 명대사...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대사는 나오지도 않았다. 아마도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의 대사를 패러디 한 것[*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아무도 내가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이다.]으로 보이며, 워낙에 이 장면이 뜬금없이 전개되는 부분인지라 놀리려고 밈을 만든 것이다.[[https://youtu.be/s82BYYwxk20?t=344|#]][[https://youtu.be/s82BYYwxk20|#]])
         물론 인신공격이나 모독성 발언들은 문제가 되고도 겠지만, 연기력에 대해 지적(비판)하고 충고하는 글들마저 모두 악플로 치부하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늬앙스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해서 까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너는 내 운명(드라마)|발연기로 경쟁하던]](...) [[박재정]]이 [[https://www.google.co.kr/amp/news.kbs.co.kr/amp/view.do%3Fncd%3D2919210|"하하, 발연기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발한테 너무 미안하죠."]]라며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모습과 대비되며 더 까였다. 더구나 박재정은 그 당시 OCN [[신의 퀴즈]]에 출연해 해당 회차에서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해서 그와 비교해서 발전할 기미가 안 보인다고 또 까였다.
         2011년에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런데 애초에 감독과 작가가 이름난 사람들도 아니고 최강창민이나 이연희가 무슨 [[송강호]], [[전도연]]급도 아니고 소재 자체도 어디서 본 거 같은 소재인지라 [[공중파]] 3사 어느곳에서도 편성을 받지 못했다. SM이 강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가요계에서 강하다는 거지 드라마 쪽에선 힘을 못 쓴다. SM 출신 아이돌 배우들이 나온 드라마들은 작품성이나 흥행 결과나 시원찮아서 드라마 덕후들에게도 기피대상.
         그런데 2015년 MBC 사극 [[화정]]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ta7-CAXSUY|다시 뒤떨어진 연기력을 선보인다.]] 화정에서의 억지스러운 표정 연기 때문에 '''[[이연걸]]'''을 닮았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심지어 이연걸 드립은 초 사이트들에서 나왔던 것이라서 여자들이 질투심에 몰아간다는 식([[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의 변명도 불가하다...] 상술했듯 연기력이 잘 나아지나 싶더니 도리어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서 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비판을 받았다. 이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2년 가까이 공백기간을 가졌다.
         이연희는 가수도 아닌데다 앨범을 낸 적이 없는 전업 배우이면서도 노래하는 영상이 이렇게 많은 것도 정말 이례적이다. 그래서, 이연희의 노래를 들어보면 청아한 목소리에 놀라게 된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고,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솔로 가수로 데뷔를 했거나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를 했다면 어땠을지 여운이 는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정말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윤아 급의 외모와 노래 실력을 더 갈고 닦는다면 태연 급의 능력을 갖춘 인재로 전후후무한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았을지도 모르고, 명반도 여러 장을 겼을지도 모를텐데라는 아쉬움이 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키가 크고 마른 체구 때문에 [[운동치]]일 것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운동 신경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학교 동창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어지간한 자아이들보다 [[축구]]를 잘 했다고 하며, 고1 때는 반에서 체육부장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분류:한국 여배우]][[분류: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분류:1988년 출생]][[분류:해군 출신 인물]][[분류:2001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이종혁 (배우) . . . . 16회 일치
          | 자녀 = 이탁수 (장), 이준수 (차)
         199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한 그는 이후 1998년 영화 《[[쉬리 (영화)|쉬리]]》로 데뷔하였고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름이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종혁, '엄마의 공책: 기억의 레시피'로 스크린 복귀|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64179|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날짜 = 2016년 11월 8일|확인날짜 = }}</ref> [[2002년]] [[6월 4일]] 최은애와 결혼식을 올려 장 이탁수([[2003년]] 출생), 차 이준수([[2007년]] 출생) 두 아들을 두었다. 2013년 MBC 예능프로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국민 아빠'로 불리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엄마의 공책'..이종혁, 철부지 아들로 변신 |url = http://entertain.naver.com/movie/now/read?oid=109&aid=0003723802|출판사 = OSEN |저자 = |날짜 = 2018년 2월 22일|확인날짜 = }}</ref>
         * [[2013년]] [[tvN]] 월화드라마 《[[이웃집 꽃미]]》 - 홍대 도인 역 (특별출연)
         * [[2018년]] [[MBN]] 수요드라마 《[[연동 539]]》 ... 상봉태 역
         * [[2012년]] ~ [[2013년]] 《[[벽을 뚫는 자 (뮤지컬)|벽을 뚫는 자]]》 - 듀티율 역
         * [[2012년]] [[MBC]] 《[[해피투게더 (텔레비전 프로그램)|해피투게더]]》 - 274회 벽을 뚫는 자 팀
         * [[2012년]] [[MBC]] 《[[라디오스타]]》 - 311회 벽을 뚫는 자 특집
         * [[2010년]] [[KBS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자 우수연기상 《[[결혼해주세요]]》,《[[추노]]》
         * [[2012년]] [[SBS 연기대상]] 주말연속극 부문 자 특별연기상 《[[신사의 품격]]》
         [[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분류: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동문]][[분류:동도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1974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
  • 정겨운 . . . . 16회 일치
         * [[2006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그 자의 질투》 ... 킹카 고등학생 이준기 역
         * [[2009년]] [[KBS2]] 납량특집드라마 《[[전설의 고향 (드라마)|전설의 고향]]》〈죽도의 한〉 ... 상헌 역
         * [[2013년]] [[SBS]] 주말극장 《[[원더풀 마마]]》 ... 장훈
         * [[2014년]] [[TV조선]] 아내 본능탐구 드라마 《아내스캔들 - 바람이 분다》 ... 바람
         | 자 3
         | 자 신인상
         | 연속극부문 자 연기상
         | 특별기획부문 자 우수연기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자 우수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
  • 조재윤 . . . . 16회 일치
         * 2015년 [[KBS2]] 《[[블러드 (드라마)|블러드]]》 - 우일
         * 2015년 [[tvN]] 《[[식샤를 합시다 2]]》 - 김미란 편 역
         * 2010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그대를 사랑합니다]]》 ... 군봉 차
         * 2010년 《[[불량녀]]》
         * 2015년 《벽을 뚫는 자》 - 듀블, 변호사, 형무소장, 경찰 역
         | 미니시리즈부문 자 특별연기상
         | 자 우수연기상
         | 자 조연상
         | 자 조연상
         | 자 조연상
         [[분류:1974년 태어]][[분류:군포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
  • 최성국 (축구선수) . . . . 16회 일치
         | 클럽 =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 호랑이]] <br /> → [[가시와 레이솔]] (임대) <br /> [[성 FC|성 일화 천마]] <br /> → [[광주 상무 불사조]] (군 복무) <br /> [[수원 삼성 블루윙즈]]
         {{메달 스포츠|자 [[축구]]}}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컵 2006|K-리그 컵]]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 '컵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08년]] [[12월 22일]] [[광주 상무 축구단|광주 상무]]에 입대하였고,<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최원권, 상무 입대 확정…22명 선발자 발표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0091454§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0}} }}</ref> 등번호 10번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광주 상무 내년시즌 배번 확정... 최성국 10번, 김용대 1번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1211190355§ion_code=10&key=%C3%D6%BC%BA%B1%B9&field=gisa_title&search_key=y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8-12-11}} }}</ref> 그는 제대 후 [[성 일화 천마]]로 복귀하여 [[K리그 2010|2010 시즌]] 4경기를 소화하였다.
         영구 제명을 당한 이 후, [[2012년]] [[6월 26일]] [[성시]] [[분당구]]의 한 [[병원]]에 사무직으로 취직하였고 지금은 그만둔 상태이다.
         2014년 현재 최성국은 어느 한 사회인 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7월 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성이 6년만에 기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mk.co.kr/newsRead.php?no=537548&year=2016|제목=축구선수 최성국·김동현 협박했던 30대 성 6년만에 기소|확인날짜=2016-08-08}}</ref> 그와 동시에 2016년 7월 징계가 끝나는것과 관련하여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연맹은 아직 영구제명에 대해 경감의사가 없는것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75935|제목=복귀 타진 최성국…축구계 "현실성 없는 일"|확인날짜=2016-08-08}}</ref>
         ==== {{국기그림|대한민국}} [[성 일화 천마]] ====
         {{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성 FC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FK 라보트니치키의 축구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7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하춘화 . . . . 16회 일치
         ||<:>[[진]][br][[김상희]][br]마음이 고와야지[br]참사랑[br](1971)|| → ||<#FFFFA1><:>[[나훈아]][br]'''하춘화'''[br]고향역[br]'''물새 한 마리'''[br]'''(1972)'''|| → ||<:>[[진]][br]하춘화[br]그대여 변치마오[br]영암 아리랑[br](1973)||
         ||<:>[[나훈아]][br]하춘화[br]고향역[br]물새 한 마리[br](1972)|| → ||<#FFFFA1><:>[[진]][br]'''하춘화'''[br]그대여 변치마오[br]'''영암 아리랑[br](1973)'''|| → ||<:>[[김세환]][br]하춘화[br]옛 친구[br]난생 처음[br](1974)||
         ||<:>[[진]][br]하춘화[br]그대여 변치마오[br]영암 아리랑[br](1973)|| → ||<#FFFFA1><:>[[김세환]][br]'''하춘화'''[br]옛 친구[br]'''난생 처음'''[br](1974)||→ ||<:>김세환[br]이수미[br]사랑하는 마음[br]내 곁에 있어주[br](1975)||
         ||<width=30%><:>[[진]][br]그대여 변치마오[br](1973) || → ||<width=30%><#FFFFA1><:>'''하춘화[br]난생 처음[br](1974)'''|| → ||<width=30%><:>[[송창식(가수)|송창식]][br]왜 불러[br](1975)||
         || 출생 ||[[1955년]] [[6월 28일]] ([age(1955-06-28)]세) [[전라도]] [[영암군]] [br] 게자리/양띠||
         || 학력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br] [[경대학교|경대학교 병설 산업 전문대학]] 가정과 (졸업)[br][[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가정학과 (학사)[br][[동국대학교|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사)[br][[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
         대한민국의 원로급 가수이다. [[1955년]] [[6월 28일]]생. 하춘화가 대단한 이유는 데뷔년도가 6살 때인 [[1961년]] 인지라, [[2015년]] 기준으로 '''나이는 환갑인데 가수 경력은 55년차'''라는 점이다. 참고로 하춘화가 데뷔한 해는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그 해이다. 처음 데뷔했을 때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엘자 렁히니나 [[다코타 패닝]] 저리가라 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엘자 렁히니와의 차이점은 어른이 되어서 인기가 죽어버린 엘자 렁히니와는 달리 하춘화는 늙어도 인기가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자 가수로서 레전드가 [[조용필]]이라면 여자 가수로서 레전드는 하춘화였던 것이다.
         그 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할 때 하춘화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이 때 이주일이 하춘화를 구출하여 병원까지 업고 뛰어가서 무사할 수 있었다. 오히려 하춘화를 구한 이주일이 두개골이 함몰되는 전치 4개월의 중상을 입었다고[* 2002년 이주일 장례식 때 조시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너무 가슴에 사무친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이 때의 충격 탓인지 하춘화는 그로부터 2년 후인 [[1979년]]에 돌연 학업 및 결혼준비를 이유로 [[경대학교]]에 입학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1981년]]에 다시 가수로 복귀해서 '우리 사랑 가슴으로', '연인의 부르스' 등의 노래를 히트시켰으며 [[1983년]]에는 자신이 아끼는 무대의상 150벌을 후배 가수들에게 나눠줬다. [[1985년]]에는 북 예술인 교환공연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각각 최고의 가수들을 상대방에게 파견하여 공연을 하기로 했는데 이 때 하춘화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 자격으로 평양에 가서 3박 4일 동안 공연을 했다.
         [[1989년]]에는 '날 버린 자'[* 개그맨 [[김영철(개그맨)|김영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모창하던 그 노래이다.]가 국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다시 각광받기 시작하고 [[1991년]]에 총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하였고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었다. 이후 하춘화는 [[2002년]]에 댄스 리듬의 트로트'연하의 자'를 부르면서 자신만의 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로서 하춘화는 춤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증명했다. 학업을 위해 잠시 은퇴하기도 했으나 [[2007년]]에 다시 복귀하여 현재는 '나이야 가라'라는 노래로 왕성하게 활동 중.
          * 날 버린 자 (1989)
          * 연하의 자 (2002)
          * 의 속도 모르면서 (2003)
  • 하현우 . . . . 16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학력}}}''' ||<(>[[안산고등학교]][br][[배재대학교]](중퇴)[* 미대를 다니다가 음악을 하기 위해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8225|중퇴]]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설이 있다. 2016년 전국투어 콘서트 대전공연에서 배재대학교를 다녔다고 밝혔다. 참고로 하현우는 다른 록커들과 비교할 때 음악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미술 역시 매우 늦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이후에 미술에 흥미가 생겨 미술학원을 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카스텐 심야식당에서 나온 바로는 CC클럽 회장이었는데, 고3 때 정신 차리고 학교에서는 자고 은 시간에 새벽까지 학원에서 그림만 그렸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 떠나가자 하현우는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고 본격적인 자아성찰에 들어간다. 마침 다니던 미술 학원의 선생님이 그에게 "넌 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던지고, 그 말에 반한 하현우는 몰입할 대상을 찾다가 노래를 선택한다. 이 후 일주일에 4번 정도 서너 시간씩 노래방을 다니며 피를 토하면서 노래 연습을 하고,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해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 [[https://youtu.be/uWuOcpy2M2g|하현우가 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서 부른 'She's gone']].]을 부르게 된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 떠나갔었던 여자 친구가 ''현우야~'' 하며 --뻔뻔스럽게도--찾아왔는데. 하현우는 쿨하게 무시했다고 밝혔으며, '''이것이 자기 인생의 첫 승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 여자 친구 분은 지금에는 자기 인생의 최고의 실수일거다.--] 처음으로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역시 사람은 미친 듯이 뭔가 하나를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라고 느낀 그는 본격적으로 노래에 몰두하지만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음악하는 것을 반대하셨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하현우가 대학교 앞의 길을 걸어가는데 슈퍼 앞에서 지저분한 행색으로 [[거북알]]을 빨아먹던 한 자[* 이 사람이 현재 [[국카스텐]]의 드럼을 맡고 있는 이정길. 첫 만 당시 너무 너저분한 행색으로 인해 거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금도 하현우는 콘서트나 인터뷰에서 틈만 나면 이정길에게 거지 같다, 더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가 자신에게 다가와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돼요"라며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하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다닌 하현우의 차림새만 보고 던진 말이었다고. 그러나 막상 오디션에 데리고 가 마이크를 쥐어주고 실력을 확인했을 땐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 그럴 만도 한 게 길 가다가 주운 돌멩이가 알고 봤더니 다이아몬드였던 격이니...] 그렇게 대학 스쿨 밴드 오디션을 거쳐 보컬로 들어가면서 드디어 하현우의 정식 음악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국내 로커들이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 스쿨밴드를 하면서 음악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앞서 미술계에 입문한 것과 같이 상대적으로 늦은 시작이다.
         밴드 보컬이 된 대학 1학년 시절엔 공연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의 경직된 선후배 관계와 술 문화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 위해 드러머였던 이정길과 의논 후 함께 자퇴서를 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휴학을 했어도 됐지만 일부러 여지를 기고 싶지 않아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에 [[수상한 가수]]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여지 없이 잘라낸 거라고 밝혔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고, 음악 활동 외에도 생계 및 음악 활동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의 일도 하였는데, 하현우는 우스갯소리로 "안산 YMCA 건물은 제가 지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건설 현장에서 작업 도중에 감전 사고로 기절한 일화는 당시 서울 생활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음악을 접고 미술 공부 경험을 살려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꾼다.
         허나 은 하현우, 이정길, 전규호는 밴드의 꿈을 놓지 못 했고 세 사람은 밴드명을 'the c.o.m(the compass of music)'으로 바꾸고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여성 멤버를 더해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운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음악 학원에서 합주하고,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현장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 무렵 '나침반'을 비롯한 자작곡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가사를 쓰게 되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됐다고 한다. 허나 이후로도 사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2004년 쌈지 락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뽑혀 참가했던 것을 끝으로 the c.o.m마저 해산. 하현우는 군대[* 군대에서도 하현우는 부모님께 "제대 후에도 정신 안 차리고 계속 음악할 거니까 마음 다잡고 계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로, 이정길은 산업체로, 전규호는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가게 된다.
          * 같이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했던 가수이자 실용음악 분야에서 본좌로 손꼽히는 보컬인 [[김연우(가수)|김연우]]는 [[두시탈출 컬투쇼]] 2014년 6월 5일자 방송에서 '우리나라 자 가수 중에 고음을 가장 잘 부르는 가수'로 망설임 없이 하현우를 꼽기도 했으며[* 2014년 6월 5일자분 39분 15초 쯤에 [[정찬우]]가 [[김연우(가수)|김연우]]에게 "[[김연우(가수)|김연우]]씨도 옥타브 상당히 높잖아요. 우리나라 자 가수 중에 최고 아니세요?"라고 묻자, "아니에요. 국카스텐 하현우씨가... '''그 분은 이상한 성대를 갖고 계시더라구요.'''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을 그냥 편하게 불러요. 'Lady~' 거기가 G거든요? 한 (3옥타브) 솔 정도는 너무 편하게 부르세요"라고 대답했다.], [[박명수의 라디오쇼]] 2016년 8월 7일 방송에서는 음역대로서는 국내 가수 중 최고이고 진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인 [[가온다|하이 C]]까지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 하현우의 보컬을 논할 때 잘 회자되지 않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하현우의 음색은 상당히 특별한 축에 속한다. 말할 때의 목소리는 의외로 낮고 부드러운 편인 반면 노래할 때의 기본적인 음색은 중성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높고 맑은 것이 특징. 낮고 굵직한 성적인 목소리, 소년 같은 맑은 미성 등 다양한 음색을 자유자재로 오가기 때문에 표현의 폭이 아주 넓다. 대표적인 예로 [[복면가왕]]에서 부른 '[[FANTASTIC BABY]]'를 들어보면 이 노래를 한 사람이 불렀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느낌과 음색을 순식간에 넘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래 시작 부분의 굵은 저음과 노래 끝부분의 아이 같은 목소리만 비교해 봐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한 곡 안에서 음색을 다양하게 바꾸면서도 발성이 유지된다는 것 또한 엄청난 부분. 저음부의 [[흉성(발성)|흉성]], 고음역의 [[두성]], 거친 [[샤우팅]]까지 소화하면서 자신만의 소년 같은 미성을 유지하는 보컬은 그리 많지 않으며, 더불어 자신의 기본 색깔과 정반대의 성질인 탁성까지도 훌륭하게 소화한다.
          *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본격적으로 노래에 빠지게 된 계기가 좀 웃픈데,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여자친구와 관련되어 있다. 여자친구가 인천 자와 바람이 났을 때 자기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친구를 뺏겼을까 싶어 곰곰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넌 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선, 매일 노래방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목에 피가 터지도록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해피투게더 3 방송에서 노래 연습을 하다 목에서 피가 3번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함부로 따라하면 절대 안 된다. 잘못하다간 평생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 고음을 내고 싶으면 보컬학원에 가서 보컬 트레이닝 받는 것을 추천한다.]
          *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하현우는 아기때부터 울음소리가 달랐다고 한다. 보통 아기들이 우에엥 정도라면 하현우는 끄아아아아악! 이정도. 그로 인해 부모님이 고생하셨다고 한다.
         >현우: 어쩔 수 없으니까요. 음악은 제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소통이자 무기에요. 이 무기가 없이 살아간다고 상상하면 두렵고 겁이 나요. 음악 없이 사는 건 자신이 없어요. 제 인생은 이미 음악에 깊이 빠져 들었어요. 세상과 대화할 수 있고, 세상에서 살아을 수 있는 것이 음악이에요.
         [[분류:국카스텐]][[분류:한국 가수]] [[분류: 싱어송라이터]][[분류:1981년 출생]][[분류:밴드 보컬]][[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2008년 데뷔]][[분류:장수군 출신 인물]]
  • 헌경왕후 . . . . 16회 일치
         |자녀 = 2 2녀<br/>[[의소세자]]<br/>[[조선 정조|정조]]<br/>[[청연공주]]<br/>[[청선공주]]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바로 영조의 특명으로 아버지 [[홍봉한]]은 그에게 《소학(小學)》, 《내훈(內訓)》, 《어제훈서(御製訓書)》를 가르쳤다 한다. 영조 20년인 [[1744년]](영조 20년)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어, 사도세자와 가례를 올리고 낳은 아들로는 [[의소세손]]과 [[조선 정조|정조]]가 있다. 영조는 첫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이 태어나자 기대가 달랐으나 의소세손은 곧 요절했다. 그러나 2년 만에 둘째 아들 세손 이산이 태어났다.
         [[1762년]](영조 38년) [[5월 22일]] [[나경언]]이란 자가 사도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변하자, 영조는 친히 국문을 하였다. 나경언은 액정별감 나상언의 형으로 사람됨이 불량하고 을 잘 속였다. 가산이 탕진되어 자립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세자를 제거할 계책을 내어 형조에 글을 올렸다.<ref>{{웹 인용|url=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ua_13805022_002&grp=&aid=&sid=247168&pos=0|제목=영조실록 99권 38년(1762년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5월 22일(을묘) 2번째 기사|확인날짜= |저자= 영조실록|날짜 =|출판사=조선왕조실록|원본일자 = 1762-5-22|인용=}}</ref>
         능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隆陵)으로 편인 장조와 함께 묻혀 있으며 인근에는 아들 정조와 며느리인 [[효의왕후]]의 능인 [[융건릉|건릉]](健陵)도 위치하여 있다.
         ****** 동생 : 지돈녕 홍낙신(知敦寧 洪樂信, 1739~1796)
         ****** 동생 : 지돈녕 홍낙임(知敦寧 洪樂任, 1741~1801)
         ****** 동생 : 동돈녕 익정공 홍낙륜(同敦寧 翼靖公 洪樂倫, 1750.11~1813)
         ****** 동생 : 홍낙좌(洪樂左)
         ****** 동생 : 홍낙우(洪樂佑)
         ****** 동생 : 홍낙동(洪樂侗)
         ****** 동생 : 홍낙이(洪樂儞)
         ***** '''편''' : 추존 [[조선 장조|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 사도세자, 1735~1762)
         ****** 장 : [[의소세자|의소태자]](懿昭太子, 의소세손, 1750~1752)
         ****** 차 : 제22대 [[조선 정조|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분류:1735년 태어]][[분류:1816년 죽음]][[분류:조선의 추존왕후]][[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 정조]][[분류:운현궁]][[분류:풍산 홍씨]][[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국의 자서전 작가]][[분류:18세기 한국 사람]][[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조선 장조]]
  • 공명(배우) . . . . 15회 일치
         ||<#f9ffff> {{{#6482b9 '''가족'''}}} ||<(> [[부모님]], [[동생]] [[NCT]] [[도영(1996)|도영]][*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멤버.] ||
         [[대한민국]]의 [[배우]]. 5인조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로, 아이돌 그룹 [[NCT]]([[NCT U]]·[[NCT 127]]) 소속 [[도영]]의 형이기도 하다.
         웹드라마 방과후 복불복1에서는 같은 소속사 배우 [[김소은]]과 썸을 타는 풋풋한 학생을 연기했다. 그런데 시즌2에서는 노골적으로 귀여운 캐릭터로 노선을 바꿨는지 인형을 들고 다니며 사탕을 빨고 다닌다. The icon 섶티비에 나온 모습을 보면 애교가 많은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ZiwWZn-EZFs|영상]] ~~"질문 좀 그만해~"가 킬링파트~~
         2016년 tvN 월화 드라마 [[혼술녀]]에서 [[서브 주]] 진공명 역을 맡아 직진연하[* 직진연하 수식어는 [[혼술녀]] 이후 출연 한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이어진다.], 멍뭉[[http://www.visualdive.com/2016/10/%eb%b0%95%eb%b3%b4%ea%b2%80-%ea%b3%b5%eb%aa%85-%ec%84%9c%ec%9d%b8%ea%b5%ad%ea%b9%8c%ec%a7%80-%ec%93%b0%eb%8b%a4%eb%93%ac%ec%96%b4%ec%a3%bc%ea%b3%a0-%ec%8b%b6%ec%9d%80-%eb%a9%8d%eb%ad%89%eb%af%b8/|#]] ~~공명뭉이, 공뭉이라고도 불린다~~ 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2018년 11월 8일 [[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1069421|교통사고를 당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동료배우 [[강지환]]의 도움으로 강세브란스병원으로 이동했으며, 다행히 경미한 부상이라 촬영에는 금방 복귀한다고.
         || tvN || [[혼술녀]] || 주연 || 진공명 ||
         || JTBC || [[행복의 진수]] || 주연 || 궁진수 ||
          * [[https://www.youtube.com/watch?v=_yCFnIm-dDI|CF - 오미 오미녀 # 프리런칭 편]] [[https://www.youtube.com/watch?v=GJAbtF57-K8|# 이 맛에 빵 터지다 편]] [[https://www.youtube.com/watch?v=xpK37syQ5_c|# 이 맛이 실화냐 편]] (with [[정혜성]])
          * [[https://www.youtube.com/watch?v=rRguYFhrNEk|CF - 메디힐 # 새근새근 편]] [[https://www.youtube.com/watch?v=rImnOCIG6o0|# 푸석푸석 편]] [[https://www.youtube.com/watch?v=TpPHRiVvLPU|# 쓰담쓰담 편]] [[https://www.youtube.com/watch?v=bSTrRtVrQg4|# 우아 편]] [[https://www.youtube.com/watch?v=MpSsp77MCK0|# 내눈엔 너만보여 편]] [[https://www.youtube.com/watch?v=w6gJysNM93s|# 가을인가봐 공원 편]] [[https://www.youtube.com/watch?v=xz9QBEP4hvc|# 그 계절은 길어 공방 편]] [[https://www.youtube.com/watch?v=rd6dUbxv_A4|# 찬바람 나빠요 자집 편]] [[https://www.youtube.com/watch?v=LUxZqh7hOPU|# 세번만에 편]] [[https://www.youtube.com/watch?v=B3Me8fbnsrs|# 촉촉촉 편]] (with [[지우(배우)|지우]])
         [[분류:한국 배우]][[분류:1994년 출생]][[분류:구리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데뷔]]
  • 김민기(가수) . . . . 15회 일치
         [[분류:싱어송라이터]][[분류:한국 가수]][[분류:1951년 출생]][[분류:신안군 출신 인물]][[분류:1971년 데뷔]]
         ||<#9FC93C> {{{#white '''출생'''}}} ||<#FFFFFF> [[1951년]] [[3월 31일]] ([age(1951-03-31)]세) [br] [[전라도]] [[신안군|신안]] ||
         ||<#9FC93C> {{{#white '''가족'''}}} ||<#FFFFFF> 배우자 이미영, 슬하 2 ||
         [[전라도]] [[신안군|신안]] 태생으로, 10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6.25 전쟁]] 중 북으로 퇴각하던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해 산파였던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고 한다. 휴전 후 가족들과 [[대구광역시|대구]]로 이주했고, 흑산초등학교와 자은중학교, 도초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1985년에 뮤지컬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던 이미영과 결혼했고, 1987년에는 [[6월 항쟁]]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열풍이 불자 6년 전 [[충청도]] [[보령시]]의 [[탄광]]에서 잠시 광부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살려 탄광촌 아이들을 다룬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건재하던 공윤위의 꼬장 때문에 여러 대목의 가사를 고쳐서 출반해야 했다. 공윤위와의 마찰은 같은 해 12월에 노래일기 '엄마, 우리 엄마'와 훗날 록 오페라로 리메이크하게 되는 노래극 '개똥이'의 노래를 모은 음반을 낼 때도 똑같이 벌어졌다.
         1991년에는 [[독일]]의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 각본/비르거 하이만 작곡의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s-2|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담당했는데, 이 뮤지컬은 같은 해 김민기 자신이 사비를 들여 [[대학로(서울)|대학로]]에 개관한 학전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해 2008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상설 공연되었다. 심지어 2001년에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순회 공연도 진행했고, 이 공로로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그러던 그가 정말 오랜만에[* 그의 삶을 다룬 책 <김민기>(김창 저/한울)에 음악평론가 강헌과의 인터뷰가 실려있지만 일간지와는 최초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은 [[한겨레]]와의 [[http://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85444.html|인터뷰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86352.html|두번째]]
         [[윤이상]], [[백준]]과 더불어 국내의 3번째 [[괴테 메달]] 수상자이다. 수상 작품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음악평론가 강헌의 주선으로 조용필과 방배동 근처에서 만나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조용필이 노래방 기기로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한다. 당시 만에 대해 강헌이 과장된 어법으로 흥미진진하게 얘기한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gLSFPYObTs|'김민기와 조용필의 만' - 강헌]] 조용필이 아무래도 김민기보다 늦은 시기에 활동한데다가 주요 음반이 현대가요이기 때문에 김민기보다 젊을 것 같지만, 알고보면 김민기가 조용필보다 1년 후배이다.(...)
          * [[조영]]
         조영과는 젊었을 때부터 친한 사이로 술을 같이 자주 마셨다고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070310/8416298/1|관련기사]]
         조영과 쎄시봉 멤버들이 김민기의 환갑잔치를 해주었다고 하며, 이와 관련해 조영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때 전화연결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10224073513324?f=m|관련기사]]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10224072710697?f=m|관련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310011335&code=910000|관련기사]]
  • 김지훈(배우) . . . . 15회 일치
         || '''가족''' ||<(> 2 1녀 중 막내 ||
         ||<|2> [[2013년]] || tvN || [[이웃집 꽃미]] || 오진락 || ||
         || [[2016년]] || [[우리 집에 사는 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자]] || 조동진 || ||
         ||<|2> [[2017년]] || KBS || 그녀를 찾아줘 || 김정 || ||
         ||<|2> MBC || [[도둑놈, 도둑님]] || 장민재/한준희 || 아역 [[다름]] ||
         || SBS || [[썸썸녀]] || 출연자 ||
         || 2018년 || tvN || [[뇌섹시대 - 문제적 자]] || 게스트 ||
         ||<|2> 2007년 ||<|2> [[KBS 연기대상]] || 자 신인상 ||<|2> 며느리 전성시대 ||
         || 2013년 || [[SBS 연기대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결혼의 여신 ||
         ||<|3> 2014년 ||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3> 왔다! 장보리 ||
         || 제22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 드라마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 [[MBC 연기대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가 맡은 배역들을 가만히 보면, [[현종]]으로 맡았던 사극에 같이 출현한 이덕화처럼 후대에 연결되는 상황이다. 아닌게 아니라 강감찬의 후손인 민희빈 강씨와 소헌세자의 후손인 [[밀풍군]]을 보위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가담한 [[이인좌]]와 당장 다음해에 [[조선X파일 기찰비록]]에서 스승의 억울한 죽음에 의해 속하게 된 기찰비록에서 후에 능양군이 보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게 된 주역을 맡았다. 인조반정은 안 나왔지만, 광해군에 대한 반감과 예언 및 함경도 실태를 합친다면 반정 참여라는 생각을 갖기 충분하다.
         [[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한국 배우]][[분류:1981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2002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김진(배우) . . . . 15회 일치
         [[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에서 [[이제니]]와 엮이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나오다가 크게 인기를 끌게 되어 일약 주연급으로 발탁되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투입한 지나가던 단역이었는데 우연히 인기를 얻은 것은 절대 아니고 피디가 처음부터 레귤러 혹은 준레귤러로 생각해두고 투입했었다. 다만, 안녕맨으로 등장해서 반응이 좋으면 고정을 시킬려고 했던 거였다고. 초반에는 큰 반응이 없어서 레귤러까지 생각했던 배역을 아예 없애려고 했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PC통신 MBC게시판이 뒤집어 질 정도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무사히 레귤러로 안착했다. 당시엔 이제니와 마주치면 항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어서 별명은 안녕맨. 레귤러로 합류하고 나선, 워낙 피부가 하얘서 당시 별명은 '[[밀가루]]'.
         당시 한국에선 보기 드문 형태의 [[미]]으로 상당히 큰키에 엄청 호리호리한데다 하얗고 중성적인 미소년 타입(동인녀들의 손에 걸리면 '수'가 될듯한)으로 순정만화에나 어울릴 듯한 외모로 90년대 후반에 인기를 끌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워낙 외모가 개성이 강해 역할이 한정된데다 특별히 연기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던지라 자셋 여자셋 이후로 눈에 띌만한 연기 커리어는 쌓지 못하고 이후 방송인으로 사실상 전향하여 예능에서 활동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예능에서 꽤나 자주 볼 수 있었으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초기 MC를 맡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 인물의 근황이 꽤나 충격으로 다가올 듯.
         * [[1997년]] [[MBC]] 청춘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김진([[이제니]]의 자 친구이며 [[윤주상|김주상]]·[[전원주]] 부부의 아들이자 [[안재환 (배우)|안재환]]의 이종사촌 형) 역
         * [[2017년]] [[TV조선]] 《[[애정통일! 북녀]]》
         [[분류:한국 배우]][[분류:안산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태어]][[분류:199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개신교도 이탈자]]
  • 맥스 페인/줄거리 . . . . 15회 일치
         현재의 [[뉴욕]]. 경찰 병력이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건물로 몰려드는 가운데, 에이저 코퍼레이션 건물 꼭대기에 한 자가 저격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맥스는 권총을 뽑아들고 2층으로 향한다. 2층에서는 미셸의 비명소리와 아기가 우는 소리,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맥스는 아기방에서 튀어나온 자들을 쏴죽이고는 아기방으로 들어갔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맥스는 미셸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침실로 달려갔지만 모든게 늦은 후였다. 맥스는 미셸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한다.
         맥스는 보일러실에서 의자에 묶인채로 죽은 자와 그 옆에 버려진 피묻은 야구방망이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가 실린 신문지가 놓여져 있었다.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정문은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해 루피노의 본거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마피아들을 해치우며 루피노의 사무실로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앙 홀에 있는 공중전화서 [[알프레드 우든]]이라는 자의 전화를 받게 된다. 우든은 맥스에게 경찰들이 오고 있고, 맥스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말만 기고 끊어버린다. 그로부터 몇분 뒤, [[짐 브라부라]] 반장이 이끄는 경찰들이 루피노의 본거지를 포위하고 SWAT을 진입시킨다. 맥스는 SWAT과 벽 하나를 놓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가지만 결국 경찰을 피해 2층으로 올라가는데 성공한다.
         맥스는 피니토 형제가 운영하던 호텔의 보일러룸에 있었다. 앞에는 피가 묻은 방망이를 든 자 하나가 서 있었다.
         자는 자신을 "방망이" 프랭키 나이아가라라고 소개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맥스는 잘 울어서 나이아가라냐고 프랭키를 도발해보지만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맥스를 두들겨 팬 프랭키는 잠시 바에 가서 시원한거나 마신후 시작하자며 맥스를 기고 가버린다. 프랭키가 가자 맥스는 의자를 부숴 포박에서 풀려난다. 그러고는 프랭키가 놓고간 야구방망이를 집어든다. 맥스는 무기를 찾아내 다시 무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 프랭키에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하수구에 버려져 있는 것도 목격한다.
         이때, 정장을 차려입고 콜트 코만도를 든 자 세명이 방에 들어온다. 이들을 본 펀치넬로는 자기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외치며 도망가려하지만 자들의 총에 맞아 죽게된다. 자들은 맥스마저 죽이려고 하지만, 맥스는 역으로 자들을 죽이고 방에서 빠져나온다.
         엘레베이터가 내려간 곳은 기계장치가 즐비한 지하 시설, 딥 식스였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자 두 명, 그리고 용병 한명이 있었다. 용병은 자신들이 맥스를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장을 입은 자들은 용병을 쏴죽이고는 장치를 조작해 자폭 절차를 발동시킨다.
         이후 맥스는 혼이 고용한 용병들과 혼의 부하들을 물리치고 아스가르드 빌딩에서 탈출한다. 이제 맥스는 니콜 혼의 이름을 알았다. 이제 잃을게 없는 자는 꿈꿔왔던 복수를 하려한다.
  • 박상돈(정치인) . . . . 15회 일치
         1949년 [[충청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서 태어났다. 연기소정초등학교, 천안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송영무]] 국방부장관과는 동창생이다. 송영무는 해군사관학교를 재수로 들어갔다.], [[육군사관학교]] 제28기[* 동기생으로 [[김관진(군인)|김관진]], [[김병관(군인)|김병관]], [[박흥렬]]이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유신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지방행정국 지방기획과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충청도 [[아산시|아산]][[군수]], 대천시장, [[서산시]]장, 충청[[도청(행정)|도청]] 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청도 [[천안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함석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청[[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2008년)|민주당]] [[안희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또 다른 천안시의 국회의원인 [[양승조]] 의원과 함께 국무총리실 관리관 출신의 [[구본영]]을 열린우리당으로 영입하는데 큰 업적을 세운 인물이다. 현재 자신은 [[자유한국당]]에 있지만, 은 두 사람은 각각 충도지사 후보를 노리고 있고, [[천안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어쩌면 천안시를 민주당의 텃밭으로 만들려는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육사2기수 절친후배인 [[구본영]] 현직시장과 대결하게 되었다. --[[구본영]]의 선거책자 뒷면에는 ''[[문재인]] [[양승조]] 구본영 VS [[홍준표]] [[이인제]] 박상돈' 이라고 적혀있다(...)--
         선거기간 중에 재보궐 발생비용을 부담하라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충지사에 출마한 양승조를 공격했다가, 그럼 8년 전 재보궐비용부터 물어내라는 반박에 데꿀멍했다.(...) 8년 전에는 역으로 자신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충지사에 출마했던 터라. 사실 이건 양승조를 공격하기보단 시장 경쟁자인 구본영을 공격하려는 의도였는데, 구본영이 비리혐의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 낙마할 경우 천안시장 재보궐을 치룬다!로 연결하려 했던 것.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 천안 을) || '''[[열린우리당]]''' || '''41,615 (45.51%)''' || '''당선 (1위)''' || 2008년 탈당[br][[자유선진당]] 입당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충 천안 을) || '''[[자유선진당]]''' || '''36,949 (42.80%)''' || '''당선 (1위)''' || 2010.5.4 사퇴[br](충지사 출마)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도지사) || [[자유선진당]] || 347,265 (34.94%) || 낙선 (2위) ||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 천안 을) || [[자유선진당]] || 18,075 (18.06%) || 낙선 (3위) ||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 천안시장) || [[자유한국당]] || 92,119 (35.31%) || 낙선 (2위) || ||
  • 박정민(배우) . . . . 15회 일치
         충주에서 태어났지만 성시 분당구로 이사가 성장하였다.
         [[파수꾼(영화)|파수꾼]], [[전설의 주먹]], [[감기(영화)|감기]], [[사춘기 메들리(드라마)|사춘기 메들리]], [[너희들은 포위됐다]], [[일리있는 사랑]], [[들개]] 등에 출연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단역으로 [[성보라]]와 헤어진 자친구 박종훈 역으로 출연했다. 10분 짓 되는 시간의 단역이었지만, 본인이 바람을 피웠으면서 오히려 [[성보라]]에게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고 궤변을 하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야말로 쌍욕이 나올 정도의 엄청난 연기력과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6년 제37회 [[청룡영화상]]에서 [[동주(영화)|동주]]로 신인우상을 수상하였다. 수상소감으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017년에도 춘사영화상에서 [[동주(영화)|동주]]로 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응답하라 1988]] || 특별출연 || 보라 전 친 박종훈 ||
         || 2014년 || G코드의 탈출 || 자 ||
         || 2018년 || [[SBS]] || [[런닝맨]][* 2018년 4월 22일 방영분에서 [[양세찬]]과 [[이광수(배우)|이광수]]의 섭외로 등장. 성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장까지 직접 오는 비범함을 보여줬지만 그 후 분량은.... 이후 2018년 8월 5일 방영분에서 목소리만 등장. [[이광수(배우)|이광수]]와 [[전소민]]이 [[응답하라 1988|제목이 '8'이 들어간 작품]]을 찍은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또 다 편집할거잖아요 또....'''라는 말로 이광수와 전소민을 격침시켰다(...) ~~저 안나갈거에요~~] ||
         || 2017년 || 제22회 춘사영화상 || 우조연상 ||<|6> 동주 ||
         ||<|5> 2016년 || 제36회 황금촬영상 || 신인우상 ||
         || 제52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자 신인연기상 ||
         || 2016년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상 || 신인우상 ||
         || 제16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 올해의 자 신인연기자상 ||
         || 제 37회 [[청룡영화상]] || 신인우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이다.]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7년 출생]][[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
  • 백남순 (1929년) . . . . 15회 일치
         |별명= [[백준 (1929년)|백준]]
         '''백순'''(白南淳, [[1929년]] [[3월 13일]] ~ [[2007년]] [[1월 3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정치가]]로 [[조선로동당]]원이다.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순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과 [[1991년]]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부의장을, [[1992년]]에 [[북회담|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으며, [[199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부|외무상]]으로 취임했다.<ref name="autogenerated1" />
         [[2006년]]의 [[동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상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상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김영]]
         |전임자= [[김영]]
         <!--측의 기록-->
         [[분류:1929년 태어]][[분류:2007년 죽음]][[분류:청도 백씨]][[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장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사회주의자]][[분류:공산주의자]][[분류:수원시 출신]][[분류:김일성종합대학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폴란드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분류:월북자]][[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손지현(배우) . . . . 15회 일치
         ||<#7C43B1><:>{{{#FFFFFF '''본명'''}}}||지현 (南智賢)||
         ||<#7C43B1><:>{{{#FFFFFF '''출생'''}}}||[[1990년]] [[1월 9일]], [[경기도]] [[성시]]||
         ||<#7C43B1><:>{{{#FFFFFF '''가족'''}}}||부모님, 동생 (2001년생)||
         ||<#7C43B1><:>{{{#FFFFFF '''별명'''}}}||리더, 여신, [[아바타|바타]], 배우, 슴지현[* Huh 활동 당시의 의상 + [[허가윤]]과의 슴부먼트 플짤이 널리퍼졌으나 정작 얼굴이 짤린 불상사(?)가..], MC준녀||
         무용과 출신답게 엄청난 유연성을 자랑한다.[* 아이러니하게 팀내 가장 딱딱한 인물은 막내 [[권소현]].] 포미닛 내에서 여성스러움과 비주얼을 담당했다. 현아 보러 갔는데 지현 밖에 안 보이더라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뛰어난 비주얼에 넘치는 여성미, 거기에 천사표 마음씨까지 갖고 있었지만 끼 없는 아이돌의 대명사였다.
         2017년 12월 어머니의 성인 손씨를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87740|손지현이라는 예명을 쓰기로 했다.]] 법적으로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지(개명) 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성도 바꾸려면 바꿀 수 있는데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본명은 지현, 활동명을 손지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며 본인도 [[대군 - 사랑을 그리다|대군]] 종영 후 인터뷰에서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805140943490310|모친의 성씨를 갖고 와서 예명으로 쓰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성씨를 바꿔서 예명을 쓰는 케이스는 아니지만, 배우 [[조진웅]]은 아버지의 성함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다.] 걸그룹 활동과 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시절과 달리, 전업 배우의 길을 걷는데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3&aid=0002014258|예전에 관련 기사가 나온 것도 있고 그런지]] 5세 아래의 동명이인인 [[지현]]의 존재가 활동명을 바꾼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5세 아래의 동명이인 배우 [[지현]]과는 똑같은 [[인천광역시]] 출신이다.
          * <Huh>로 컴백 후 뮤직비디오 및 결정적이었던 2010년 5월 28일자 뮤직뱅크 영상을 통해 [[허가윤]]을 능가하는 [[거유|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뭇 성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크릿(아이돌)|다른 그룹]]의 [[전효성|에이스]]도 능가한다고 한다.
          *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꽃다발(MBC)|꽃다발]]에서 아무거나 열심히 하는 이미지에 현아 [[버프]]가 더해져 '''현아가 조종하는 바타'''로 등극. 하여튼 분량은 좀 따냈다. 하지만 여전히 포미닛 내 비중은 안습. 그러나 [[JYP엔터테인먼트|JYP]] 오디션 영상이 인터넷에 나돌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 EXID의 정화가 쓰리텐 + 카메라 명중을 했을 때 상대 사수였다. 당연히 데꿀멍. 그리고 그 다음 아육대에서는 혜린이 지현 옆에서 카메라 명중을 시키며 또 데꿀멍. 결국 포미닛의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 양궁 왕좌는 EXID에 의해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6년|2016 설날]]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분류:포미닛]] [[분류:성시 출신 인물]] [[분류:1990년 출생]] [[분류:아이돌 리더]] [[분류:2009년 데뷔]]
  • 신화용 . . . . 15회 일치
         ||<width=30%><:> [[황지수]][br]([[포항 스틸러스]]) ||<:> → ||<width=30%><:><#ffffa1> '''신화용'''[br]'''([[포항 스틸러스]])'''||<:> → ||<width=30%><:>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br]([[성 FC]])||
         2008년 정성룡이 성으로 갔지만 같은 해 김지혁이 이적해오면서 리그 경기 대부분을 김지혁에게 내줬지만 ACL에서만큼은 6경기 전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다가. 2009년 초부터 김지혁을 밀어내고 신화용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K리그]]는 물론[[AFC 챔피언스 리그]] 에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포항 팬 한정으로 골머리를 앓던 수비[* 이 때 포항의 주력 수비수가 [[황재원]], 김형일. 타 팀 팬들은 군침 흘리며 탐을 냈지만 매주 포항의 경기를 지켜보는 포항 팬들은 가끔씩 벌이는 정줄 놓는 수비에 그냥 뒷목만 잡았다.]문제를 혼자서 다 커버했다. 2009년 포항은 플레이오프에서 성에게 패배하여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이러한 선방쇼 덕에 신화용은 다른 쟁쟁한 골키퍼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시즌 베스트 11에 뽑힌다.'''[* 당시 경쟁자들이 모두 실점률 1점대를 찍을 때 홀로 0점대(0.95) 실점률을 기록했다.]
         김지혁이 상무 입대를 하고 상주에서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영구제명 상황까지 가게된 현재 부동의 주전 골키퍼. 다만, 2010 시즌에는 실점이 꽤 많은 편이고 팀 성적도 좋지않아 여전히 좋은 평가를 못받았다. [* 실제로 2009 플레이오프 성전에서는 몰리나에게 통한의 프리킥골을 내주며 팀이 결승 진출 실패.]~~[[호세 마누엘 레이나|레이나]]?~~
         그리고 이어진 활약상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상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상[*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상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영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상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영진들 보고 있나?~~ ~~경영정상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15시즌이 끝나고 다른 한국 골키퍼들이 연달아 J리그로 떠나자, 해마다 포항 팬들에게 주목 받던 '''신화용의 거취문제가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전 드래곤즈와 [[김병지]]의 결별, 성 FC의 [[박준혁(축구선수)|박준혁]]의 현역 입대, 부산 아이파크의 강등으로 클래식 팀들의 구애를 받게 된 [[이범영]]까지 골키퍼 연쇄이동이 점쳐지는 가운데 '''언급된 모든 키퍼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신화용이 재정감축위기에 빠진 포항을 떠날까 포항팬들이 걱정했으나...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8월 25일 K리그1 26라운드 경전에서 네게바의 패널티킥을 막아내고 그 뒤로도 좋은 선방을 펼치면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오랜만에 본인의 노련함이 빛났던 경기.
         본인이 뛰어난 실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대 키퍼들 때문에 국대 자리에 못 올리는 것처럼, 포항의 서브 키퍼들도 전부 연령별 대표팀이라던가 한 실력들 하는 후배들임에도(...) 신화용의 벽에 막혀서 전부 빛을 못 보고 있는데 본인은 오히려 이에 대해 미안해하기보다 '''"나는 후배들이라고 긴장을 푼 적이 한 번도 없다. 후배들이 잘해서 넘어야 한다."'''한다고 단칼에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용 본인이 [[김병지]], [[정성룡]] 밑에서 구르고 구르며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후배들에게도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데 포항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손꼽히는 [[김로만]]에 대한 평가도 신화용의 반응은 귀여운 후배가 아닌 10년 아래의 신인 선수임에도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포지션의 경쟁자"''''라고 칭할 정도. 그러다 보니 신화용에 막혀 이미 팀을 떠난 황교충, 김다솔을 비롯하여, 이준희는 결국 경 FC로 2016 시즌 임대를 가서 주전 자리를 먹고 있고, 포항에 은 [[김진영]], [[강현무]], [[김로만]]은 말 그대로 속이 타들어가다 신화용이 2017 시즌 이적함으로서 겨우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사실 포항의 키퍼 라인은 지금까지 무혈입성한 선수가 거의 없다. 유일한 예외가 김병지뿐인데 포항 이적 당시 김병지는 이미 국대 주전이었기 때문에 무혈입성이 가능했던 거지 당장 그 후임이었던 정성룡도 신화용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으며 신화용도 정성룡이 떠난 뒤에 김지혁과 로테이션을 돌며 주전 경쟁을 해야했다. 어떻게 보면 신화용은 포항의 팀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그런 이유에서인지 포항은 김병지 이후 정성룡, 신화용, 강현무를 거치는 동안 주전 백업 가리지 않고 골키퍼로 문제를 겪은 적이 없을 정도로 K리그 최고의 골리진을 유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수비~~] ~~그리고 그 자리를 무혈입성(...)한 것은 [[노동건]]...~~ --노동건이 결장한 사이 [[강현무]]가 인생경기를 펼치며 신화용의 장기집권이 얼마나 어마무시했는지 증명했다.--
  • 안내상 . . . . 15회 일치
         * 2000년 《[[우산 (영화)|우산]]》 ... 편 역
         * 2009년 [[KBS2]] 미니시리즈 《[[자이야기 (드라마)|자이야기]]》 ... 김욱 역
         * 2011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특별기획 《[[폼나게 살거야]]》 ... 선글라스 역 (특별출연)
         * 2012년 [[KBS2]]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복마전》 ... 임영
         * 2013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주말극장 《[[원더풀 마마]]》 ... 장기
         * 2019년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 누님의 편 역(특별출연)
         * [[MBC 연기대상]] 자 황금연기상
         * [[MBC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자 황금연기상
         * [[SBS 연기대상]] 일일&주말 드라마 부문 자 우수연기상
         [[분류:1964년 태어]][[분류:순흥 안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199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 에릭 (가수) . . . . 15회 일치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영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 《[[MBC 연기대상]]》 자 신인상
         * 제4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 신인연기상
         *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상
         *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자 연기상
         * 《[[KBS 연기대상]]》미니시리즈부문 자 우수연기상
         | 제목 =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상》
         {{MBC 연기대상 자 최우수연기}}
         {{KBS 연기대상 자 우수연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 신인연기}}
         [[분류:신화의 일원]][[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연정(우주소녀) . . . . 15회 일치
         ||<#FFA38B><:> '''{{{#white 출생}}}''' ||<(> [[1999년]] [[8월 3일]] ([age(1999-08-03)]세), [[전라도]] [[장성군]] ||
         ||<#FFA38B><:> '''{{{#white 학력}}}''' ||<(> 진원초등학교 (졸업)[br]장성중학교 (전) (졸업)[br]장성고등학교 실용음악과 (전) (졸업)[br][[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뮤지컬전공 (재학) ||
         ||<#FFA38B><:> '''{{{#white 가족}}}''' ||<(> 부모님[* 2018년 3월 11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에서 밝혀진 사실이 부모님이 대학가요제 출신이다.--어쩐지--], 동생 ||
         중2때 제21회 전라도 청소년 종합 예술제에서 대중가요 개인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참가곡은 나비의 <길에서>. 22회에도 참가했다. 참가곡은 JOO의 <나쁜자>.
         이후, 중3때 JYP 연습생 공채 11기 오디션에 지원했다. 지원 곡은 JOO의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60337687&rtes=y|나쁜자]].
          * [[https://www.youtube.com/watch?v=OPDOCW1iytc|<나쁜자(JOO)>]] - JYP 11기 공채 오디션 지원[* 참고로 이 기수에서 최종 입상한 이 중 한명이 에이프릴의 나은이다.]
         2016년 10월 5일 한화 이글스 대 kt wiz의 전에서 애국가를 제창해[[https://www.youtube.com/watch?v=Fb3chqGK97I|#]] 시구를 선보인 성소와 함께 경기의 시작을 장식했다.
         2016년 SBS 가요대전에서는 모모랜드, 구구단, DIA, CLC, 라붐과 함께 49명이서 콜라보 무대를 선보였다. 본인들의 노래 <비밀이야>를 부를 때는 팀의 대표로서 센터에 섰다. 이 때 미모가 폭발한 레전드 짤이 나왔는데, 엠팍같은 초 사이트에서도 '''너무 예뻐져서 당황하는''' 진귀한 반응이 나왔다.[[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p=1&b=bullpen2&id=6876015&select=title&query=&user=&reply=|#]]
         || [[2018년]] [[5월 30일]] || [[파일:유연정 너의 이름은 ost.jpg |width=100]] || [[훈정음]] OST Part.2 || 너의 이름을... || ||
          * [[I.O.I]] 내에서 다른 멤버들도 서로간에 그렇듯 두루두루 사이가 좋은데, 그 중에서도 [[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과는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 부둥부둥해주는 톰과 제리 케미를 자랑한다. 뮤비뱅크 스타더스트에선 매력 탐구를 위한 뽑기에서 유연정이 혼자 꽝을 뽑아 매력 발산을 못하고 후에 한 장이 자, [[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이 나서서 유연정에게 주면 안되겠느냐고 하는 등 동갑끼리 서로 잘 챙겨 주는 듯. 그런데 은 한 장이 룸메이트의 비밀을 밝히는 거라 같은 숙소에서 지내지 않는 유연정에겐 또 꽝이나 다름없었다. --연정이 지못미-- --프로꽝꽝러--
          * 다른 I.O.I 출신 멤버들이 현재 소속 그룹에서 거의 [[소녀가장]] 포지션에 있는 데 비해,[* 쉬운 예로 구구단의 김세정, 프리스틴의 주결경/임나영, 위키미키의 최유정/[[김도연(위키미키)|김도연]] 그리고 다이아에서 정채연.] 연정은 초 사이트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에이스 [[성소]]와 입담 좋은 [[보나]]의 존재로 [[소녀가장]] 포지션까지는 아니다.
          * 유독 [[소녀시대]]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와 인연이 깊다. 데뷔 전 [[프로듀스 101]] 때 이 곡을 부르고 뜬 것부터 시작해서 데뷔 후에 I.O.I 멤버들이랑도 부르고 이 곡으로 2016 KBS 가요대축제 때 [[I.O.I]], [[레드벨벳]], [[TWICE|트와이스]],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합동무대를 했으며, 2018 DMC페스티벌에서는 [[우주소녀]] 멤버들과 같이 불렀다.[* 파트가 없었던 가요대축제 때를 빼고 시간 순으로 보면 점차 실력이 늘어을 알 수있다.]--부를 때 마다 기분이 묘할거 같다-- 게다가 유연정 본인은 SM에서 [[연습생]]으로 있었고.
  • 예천군 . . . . 15회 일치
         [[경상북도]] 북서부에 있는 군. 인구는 5만여 명. 동쪽 [[안동시]], 북동쪽 [[영주시]], 서쪽 [[문경시]],서쪽 [[상주시]], 동쪽 [[의성군]], 북쪽 [[충청북도]] [[단양군]]이 있다.
         [[아선호사상]]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80년 이래 전국에서 아 출생성비로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고(...).
         예천은 북쪽은 백두대간(소백산맥), 쪽은 낙동강 본류에 접하며, 군 가운데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른다. 풍양면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에 위치해있는 면이다. 큰 강인 낙동강이나 내성천 주변에는 정작 제대로된 평야가 없고[* 풍양의 낙동강 연안에는 평야가 좀 있고, 예천읍 고평에는 내성천 옆에 큰 들이 위치한다.], 내성천의 지류인 한천의 하류(예천읍 일원)에 비교적 너른 평야가 있다. 대략, 북쪽일원 (효자, 은풍)이 산악지형, 중앙(예천읍, 유천, 개포, 용궁, 호명)이 평지 혹은 구릉성 지형, 동부(감천, 보문)와 부(지보)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다. 용문은 중앙(예천읍)에서 북쪽(효자, 은풍)이나 서북쪽(문경 동로면)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데, 중앙은 평지이고, 외곽이 산지인 전형적 분지 지형을 이룬다. 풍양은 예천군에서 유일하게 낙동강 이에 위치한 면으로서, 북쪽과 쪽은 산지이고, 중간이 평야이다.
         ||3||예천부초등학교|| 예천읍 부초등길 17 ||
         예천은 [[활]]의 고장으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예천군의 [[양궁]]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참조. [[http://www.ycinews.co.kr/ArticleView.asp?intNum=47617&ASection=001002|링크]]. 예천 출신의 양궁 국가대표 [[김진호(양궁)|김진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 대회에서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1983년 ·여 2개의 양궁팀을 창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1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예천양궁선수단을 거쳤고, [[황숙주]], [[김수녕]], [[장용호]], [[양승현]], [[김성]], [[한희정]] 등 1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 각종 국제 및 국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300여회의 입상과 각종 훈·포장을 수상했다고 한다. [[http://ycg.kr/open.content/ko/organization/archery/stadium/|출처]].
         김진호 선수를 기리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도 있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전용경기장으로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양궁경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곳으로 전지훈련을 오기도 한다. 이곳에서 국내, 국제 경기가 열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양궁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한다. 2015년 예천은 대통령기 전국 녀 양궁대회를 비롯해 14개 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 [[최석준]] : 가수. 대표곡은 꽃을 든 자.
  • 윤덕주 (농구인) . . . . 15회 일치
         '''윤덕주'''(尹德珠, [[1921년]] [[6월 23일]] - [[2005년]] [[7월 8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이자, 대한체육협회 부회장,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구한말의 계몽 운동가 [[윤필오]]의 손녀이자, [[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 [[윤홍열]]의 딸이다. 4,5대 국회의원과 재무부 차관, [[호정유]]사장을 지낸 [[서정귀]]의 부인이다.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 독립운동가 [[이상정]], 체육인 겸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은 친정어머니 이숙경의 사촌 동생들이었다. 치과의사 겸 치의학자 [[이열희 (1924년)|이열희]]는 외사촌 동생이었다. 대구 출신.<ref name="dibigo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30703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동아일보 2005.07.09</ref>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3층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6시에 거행되었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507/h2005070818102324180.htm 윤덕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 별세]</ref> 2005. 7. 12(화) 오전 6시 대한농구협회장(장례위원장, 이종걸)으로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경상도]] [[통영시]] [[산양면]] 연화리 선영에 안장되었다.<ref>[http://www.jumpball.co.kr/cont/cont_view.php?cont_cd=02&cont_seq=2785 한국농구 대모 윤덕주 명예회장 별세]</ref>
         * [[도그룹]] 회장
         ** 동생 : 윤봉기
         ** 동생 : 윤병기, [[6.25 전쟁]] 때 실종
         ** 동생 : 윤준기
         * 편 : [[서정귀]](徐廷貴, [[1919년]] ~ [[1974년]]), 4대·5대 국회의원, 재무부 차관(1960년), [[호정유사]] 사장 역임
         *** 외당숙 : [[이상정]](李相定, [[1897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 독립운동가. 아호(雅號)는 청(晴南), 산은(汕隱). [[대한독립군]] [[3성 장군|중장]])
         *** 외당숙 : 이상오(李相旿, [[1905년]] ~ [[1969년]], [[사냥|수렵가]], [[바둑]]인. 아호(雅號)는 모(慕南).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우현고등보통학교 및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졸업.)
         * 사돈 : [[최선]](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
         * [[최선]]
         [[분류:1921년 태어]][[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FIBA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은혼/642화 . . . . 15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 충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불과 5분여를 겨놓은 상황.
          * 헨페이타가 마침내 적의 방어선을 돌파해 목표에 도달하나 공격수단을 잃어 한 가지 선택 밖에는 지 않는다.
          * 은 시간은 불과 1분. 신스케의 미래를 보고 싶었던 헨페이타와 반사이, 둘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으며 자폭을 감행한다.
          * 무수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은 순조롭게 계속되어 어느덧 충전율 85%. 완충까지 5분 짓이 았다. [[엔죠]] 황자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날 거라 확신했다. 그들의 전쟁도 천도중의 시대도, 그리고 지구도. 그러나 마지막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에너지 공급 시스템이 누군가에게 해킹 당했다. 이제 엔죠 황자 측에서 충전을 조종할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살아을 겁니다. 친구와 함께.
          * 히노카구츠치 발사까지 앞으로 3분. 엔죠 황자는 단신으로 일대의 병력을 묶어두고 있는 반사이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을 태세라는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서툰 넘겨짚기였다. 반사이의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중추 시스템을 향해 한걸음 씩 옮기고 있었고 그때마다 그를 막으려는 병력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이제 벽 하나가 았다. 마지막으로 은 적은 셋. 그의 의지가 이겼다.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 은 셋을 처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고지에 도달했다.
          살인귀 [[오카다 니조]]. 홍앵을 다뤘던, 신스케의 빛에 이끌렸던 자.
          당황한 부하가 소리쳤다. 헨페이타는 이 배로는 적의 전선을 넘은 걸로 한계였던 거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끝인가? 부하들은 아직 한 가지 공격수단이 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저, 저 자... 이미...
          반사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시체에 현을 걸었다. 자기 자신의 시체에까지. 그는 마치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연출해서 적들의 이목을 끌어왔던 것이다. 해방군은 감탄과 함께 대체 이 자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무서운 상황이 떠올랐다. 중추 시스템을 수비하던 병력 대부분이 이쪽에 몰려있었다. 반사이가 노린 것은 이것. 병력이 빠져서 수비가 약해진 틈에 동료들을 투입 시킬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헨페이타도 마지막 기폭장치를 작동시켰다. 자신들의 목숨이라는 폭탄을 점화했다. 신스케의 맹우였던 두 자는 마지막으로 기는 말도 한결 같이 닮았다.
  • 이경영(1960) . . . . 15회 일치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배우]][[분류:KBS 출연금지 연예인]][[분류:1960년 출생]][[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성매매]]
         ||<table width=100%><-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영화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 '''학력''' ||<(> [[충주고등학교]][br][[충대학교]] 경영학과 중퇴[br][[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
         대한민국 국적의 배우. [[196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충대학교]] 경영학과 중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데뷔 이후 줄곧 '충대 의대 중퇴'의 학력으로 알려져 있어서 나름 고학력 엘리트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신정아]]의 [[학력위조]] 사건 후에 의대가 아닌 상대 중퇴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본인은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꿈이 의사였다'고 한 것이 '의대 출신'으로 기사화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이경영이 잘나갔다는 증거로, 당시 잘 나가던 아나운서 [[유정현(방송인)|유정현]][* 후에 프리랜서 생활 후 국회의원도 했었다.]과 모델출신 유명방송인 [[이소라(모델)|이소라]]가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를 진행하던 당시 레전드로 았던 유명한 방송사고 2개가 있다. 바로 '야이 X박 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당시 절친이던 이경영과 [[김민종]]이 [[강도]] 역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왔을 때 유정현이 자꾸 김민종에게 영화 속 거친 연기를 한번 해 달라고 하자 김민종이 실제 쌍욕이 들어간 강도 역할 대사를 질러버려 화제가 되었던 방송사고.]와 '연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주말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후속작인 로맨스.'[* 당시 이경영과 이영애가 출연하던 SBS 드라마 《로맨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가 유정현이 드라마 소개하는 멘트를 '연기리에 방영'으로 하는 바람에 이소라가 웃음이 터져 멈추지 못했던 방송사고였다.] '''모두 이경영이 주연을 한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기 위해 직접 출연'''했을 때 벌어졌던 사건이다.
         2001년에 [[이요원]]과 같이 출연한 드라마 《푸른 안개》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아가씨와 플라토닉 러브를 나누는 유부 역을 맡아서 화제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했나 싶었으나[* 이 작품은 2001년 12월 열린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삼각관계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집필자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99년 12월 개최) 드라마 부문 수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고 결국 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으로 낙착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철원성주 역으로 나온 [[송영창]]은 이경영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물의(둘 다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를 일으켜서 KBS 출연금지 명단에 올라 있으며 이경영이 출연한 드라마인 <푸른 안개> <은실이>는 이경영 신상 문제(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탓인지 3사에서 틀지 못한다.]...
         설령 '법정공방 끝에 무혐의 처분 받았다'는 표현을 '법정공방 끝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의미로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는다. 이 사건 형사재판 판결은 2002년에 확정되었다.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을 열어 새로운 판결을 받아내려면 [[재심]]을 청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재심청구는 극히 예외적인 사유[*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극히 예외적 사유에 한함]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 한편 이 사건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었음을 감안할 때, 만약 이경영이 재심을 청구하였고, 청구가 받아들여져 재심 재판이 열렸으며, 그리하여 결국 2004년에 무죄판결을 받아냈다면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제 OO 재판부(재판장 아무개 부장판사)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배우 이경영씨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등의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의 보도[* 가령 이경영 사건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220298|1심 형사재판 판결 보도]] 같은 수준의 구체적 보도.]가 있었을 텐데, 2004년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런 구체적인 보도는 단 한 줄도 없다. 오히려 2004년에는 L양과 L양의 부모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이경영이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민사재판 판결에 대한 보도가 있었을 뿐이다.
         오랜 자숙 기간을 거쳐 [[2011년]] 이후 영화 등장이 늘었다. 여자문제로 출연금지당했으나 영화로 재기한 선배 [[송영창]]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셈. 《[[부러진 화살]]》에서 악역으로 판사역을 맡았고, 2012년엔 같은 감독의 《[[영동1985]]》에서 [[이근안]]을 모티브로 한 고문경찰 이두한을 연기했다. 같은 시즌에 함께 개봉한 《[[26년(영화)|26년]]》, 《[[베를린(영화)|베를린]]》에도 모두 출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일본 영화인 《외사경찰》(外事警察 その男に騙されるな)에서 까메오이면서 악역인 북한군 장교로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사망~~[* 악역, 최종보스 역도 많이 맡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죽는다. 당당 [[사망전대]].] 혹은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맡아 이경영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013년에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다. 그 이후에도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도 화이의 친아버지인 임형택으로 출연하면서 악역이 아닌 무고하고 불쌍한 피해자도 연기했다. 이렇듯 자신만이 가진 유니크함으로 여러 영화에 캐스팅되며 (비록 공중파는 못 나오지만)완벽히 재기한 상태.
         그 외에도 이경영의 마지막 지상파 드라마 출연작인 KBS 2TV 푸른 안개에서 연출자-조연출자로 만났던 표민수 진형욱 곽정환 PD의 연출작('고독' '풀하우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인순이는 예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커피하우스' '넌 내게 반했어'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이상 표민수) '꽃피는 봄이 오면' '착한여자 백일홍' '수상한 삼형제' '당신 뿐이야' '왕가네 식구들' '당신만이 내 사랑' '내 자의 비밀'(이상 진형욱) '한성별곡' '추노' '도망자 플랜B'(이상 곽정환) 등등)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결국 좌절됐다.
         ||1993||그여자, 그자||주연|| 217,605 ||
         ||2012||[[영동1985]]||이두한|| 332,643 ||
  • 인교진 . . . . 15회 일치
         |출생지 = {{KOR}} [[충청도]]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現 {{KOR}}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기업인 인치완<ref>[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152260&year=2013 인교진 아버지, 연 매출 200억 원대 CEO…‘반전 집안’ 눈길↑], 매일경제 2013년 2월 28일자</ref>의 2 중 첫째로 태어났다.
         * 2001년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가을에 만난 자]]》
         * 2011년 [[문화방송|MBC]] 수목드라마 《[[최고의 사랑]]》 ... 한미나의 편 역
         * 2013년 [[KBS2]] 월화드라마 《[[굿 닥터 (2013년 드라마)|굿 닥터]]》 ... 이수진의 편 역
         * 2014년 [[MBC]] 수목드라마 《[[앙큼한 돌싱녀]]》 ... 자 1호 역
         * 2016년 [[KBS2]] 월화드라마 《[[우리집에 사는 자]]》 ... 응급실 의사 역
         | 연속극부문 베스트 자 조연상
         | 자 조연상
         | 자 조연상
         | 자 조연상
         [[분류:1980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교동 인씨]][[분류:키이스트 소속]]
  • 전지수 . . . . 15회 일치
         * [[2007년]] 제 22회 회장배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대학부 500m, 1000m 1위
         * [[2012년]] 제 26회 전국녀 학생종별종합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1000m 2위, 1500m 1위, 3000m(S.F) 3위
         * [[2012년]] 제 29회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000m 3위
         * [[2012년]] 제 28회 회장배 전국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500m 4위
         * [[2013년]] 제 27회 전국녀 종별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 1500m 5위,500m 2위
         * [[2013년]] 제 28회 전국녀 종합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겸 2013/2014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 여자부 500m 2위
         * [[2013년]] 제 30회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500m 3위
         * [[2013년]] 제 29회 회장배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500m 1위
         * [[2014년]] 제 29회 전국녀 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겸 2014/2015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 2차 대회 여자 500m 2위, 1000m 4위, 3000m(S.F) 7위
         * [[2015년]] 제 32회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 [[2015년]] 제 31회 회장배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대회 여자 일반부 500m 2위
         * [[2017년]] 제 31회 전국녀 종별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000m 3위
         * [[2017년]] 제 34회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여자 일반부 500m 1위, 1000m 1위
         * [[2017년]] 제 33회 회장배 전국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여자 일반부 500m 3위, 1000m 3위, 3000m 계주 1위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덕화중학교 동문]][[분류:대구파동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진격의 거인/87화 . . . . 15회 일치
          * 그리샤 예거는 그 아들 지크 예거 또한 어린날의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길을 걸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왕가의 피도 엘디아 복권파의 이상도 아들에겐 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지크는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킨 양친을 버리고 자신과 조부모의 안녕을 선택했다. 그리샤와 다이나 프리츠가 치안당국에 잡혀가는 동안 지크는 냉정한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 당국에 잡혀간 그리샤에겐 혹독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치안당국은 그에게 올빼미의 정체를 캐지만 그는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걸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당국의 고문기술자들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끈질기게 심문을 반복한다. 이미 그리샤의 은 손가락은 세 개 뿐이다. 그리샤가 아는건 전부 말했다고 애원하는데도 관리들은 또 하나 손가락을 자른다.
          * 그때 고문실에 낯익은 자가 들어온다. 그는 그리샤의 여동생을 죽이는데 일조한 자, "클루거"였다. 하지만 그리샤는 낯이 익다고 생각했을 뿐,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기억을 뒤져보는 사이 클루거는 관리들에게 상황을 보고받는다.
          지크의 밀고도 엘디아 복권파의, 올빼미의 계획은 전모가 드러났다. 올빼미가 치안당국 내부에 밀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마레의 전사에 스파이를 넣어 시조 거인을 탈취하는 작전까지도. 게다가 시조 거인 탈환 후 "동쪽의 마레 적대국"에 거인의 힘을 대가로 망명하는 계획까지 들통나고 만다. 은건 올빼미의 정체지만 이것만은 전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소란을 듣고 뚱뚱한 자가 다가온다. 그는 대뜸 "너는 자유"라며 그라이스를 벽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리샤는 깜짝 놀라지만 클루거가 밑은 모래언덕이라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말대로 그라이스는 금방 일어서는데 떨어뜨린 자가 "북쪽으로 달려라! 운이 좋다면 벽에 도달할 것"이라 소리친다. 그라이스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말만 듣고 뛰기 시작한다.
          하급자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뚱뚱한 자, 글로스 상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글로스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한다. 저렇게 "미끼"를 던져둬야 거인들이 금방 사라져서 일하기 편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옆에 있는 클루거에게도 아는 척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그리샤는 모든 것을 떠올린다. 뚱뚱한 자는 여동생을 데리고 사라졌던 그 자. 모든 일의 원흉인 그자였다.
          * 일제히 거인으로 변한다. 인간의 자아는 지 않은 이들은 본능에 따라 그라이스를 감지하고 잡아먹으려고 쫓아간다. 그리샤는 그라이스를 못 알아보는 거냐고 절규하지만 그들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글로스는 그리샤가 시끄러우니 얼른 거인화시키라고 서두른다. 하지만 클루거는 심문하고 싶은게 아있다며 시간을 끈다. 그 사이 새로운 처형대상이 끌려온다. 그리샤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아내인 다이나 프리츠였다. 하지만 그는 다이나가 왕가의 핏줄이란 것을 실토했다. 프리츠 왕가의 혈통은 마레 측에서도 중요한 인물일 것이므로, 그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도 보통의 죄수로 취급됐다.
          * 아버지의 기억. 다이나가 변한 직후 글로스는 그리샤를 조롱한다. 다이나의 거인이 보통 거인들처럼 그라이스를 쫓아가 버리자 "사실은 저 자에게 마음이 있었다"고 빈정거린다. 분노한 그리샤는 닥치라고 욕하며 15년 전 여동생을 죽인게 바로 너라고 폭로한다. 하지만 글로스는 혀를 찰 뿐 동요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마지막 죄수를 인계 받아 자신이 처리할 테니 부하들은 배로 돌아가라 지시한다. 부하들은 관련되는걸 꺼리며 그 지시에 따른다. 이미 글로스의 "취미생활"은 유명한 듯한데 지금도 글로스가 "취미생활"을 할 생각이라고 여긴다. 부하들도 그리샤의 폭로를 들었는데 "아무리 엘디아인이라도 어린 소녀까지 손을 대다니"라고 진저리를 치지만 특별히 다른 반응은 없다.
          || 엘디아 인을 이 세계에서 한 마리도 기지 않고 구축한다.
         마레 동쪽의 "적대국"이 언급되었는데, 이쪽도 거인의 힘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걸로 추정된다. 마레가 군사력을 원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적대국의 존재 때문. 그 외에도 다양한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엘디아 복권파는 시조 거인의 힘을 앞세워 망명한다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정말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글로스는 전인류가 엘디아인을 증오하고 박멸하려 한다고 주장하는데 과장이 섞였더라도 보통 인간의 나라인 이상 엘디아인에 대해서는 비슷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또 시조 거인의 힘이라는 매력적인 힘을 손에 넣는데, 그 주도권을 여전히 엘디아 복권파 손에 겨놓을지도 의문. 결국 그 적대국에서도 엘디아 복권파의 미래는 밝지 않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15회 일치
          * 거인의 힘을 다루는 [[엘런 크루거]]는 마레의 병사들을 하나도 김 없이 처리한다.
          * 이 기억에 따르면 옐런에게 은 시간은 8년, 아르민은 13년. [[미카사 아커만]]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 크루거는 모든걸 그리샤에게 맡기려 하지만 좌절에 빠진 그리샤는 자신에겐 "증오"가 아니라 "죄"만 았다며 거절한다.
          >얼마 후 당국의 모든 병사는 즙을 짜고 은 과일처럼 변했으며 바다에 뿌려졌다.
          * [[그리샤 예거]]의 수기는 이와 같이 적으며 "바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을 향해, 그는 "지표의 7할을 점한 광대한 소금물"이라고 무기질적으로 적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선 거인으로 변한 올빼미, 크루거가 마지막 은 마레의 병사를 살해하고 바다에 던지고 있다. 그리샤는 마레당국이 끌고 온 모든 것들, 그리고 마레인 자신들이 모조리 바다에 삼켜지는 것을 경이에 차서 바라본다. 짙은 색을 내기 시작한 석양이 거인의 등 뒤에 걸려있었다.
          * 작업을 마친 크루거는 몹시 지키고 몸에서 증기가 오르는 상태로 벽 위로 돌아온다. 그의 눈 주위에는 거인화 흔적이 뚜렷하게 아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코피를 흘린다. 그는 코피를 막으며 그리샤의 포박을 풀어준다.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샤는 불안과 초조함,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 그의 담담한 말을 듣던 그리샤는 자신은 글러먹은 아버지, 글러먹은 편, 글러먹은 자였다고 한탄한다.
          그리샤는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크루거의 목으로 손을 올린다. 하지만 움켜쥘 손가락도 없다. 손에 감긴 붕대가 피로 물든다. 크루거는 손이 아플 테니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그리샤는 "배려 고맙다. 의 손가락을 싹뚝 자르는건 별 감흥도 없는 녀석일 것 같은데!" 라며 비꼰다. 그는 그가 더 빨리 거인으로 변했더라면 모두 거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체 뭘 위해서, 엘디아 복권파는 뭘 위해서 거인이 된 거냐고 따진다. 그런데 크루거가 털썩 주저 앉는다. 안색도 좋지 않고 숨도 가쁘다. 크루거는 왜 그러냐고 묻는 그리샤에게 "수천명이나 되는 유미르의 백성의 손가락을 자르고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거인으로 만들어왔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전부 "엘디아를 위해서"라고 믿는다.
          13년이란 시조 유미르가 힘에 눈뜨고 죽을 때까지의 기간에 해당하며 시조 유미르를 뛰어넘는 힘은 가질 수 없고 때가 되면 모든 거인화 능력자는 몸이 쇠약해지며 "그릇"으로서 역할을 마친다. 이 사실에 따르면 막 거인화한 아르민은 13년, 옐런에게 은 시간은 8년이다. 두 소년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
          * 하지만 옆방에서 듣고 있는 [[미카사 아커만]]은 좀 더 감정적이다. 그녀는 8년 았다는 옐런의 계산을 부정하며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엘런과 아르민은 복잡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옐런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그리샤는 모래언덕을 바라본다. 그곳엔 거인에게 잡아먹힌 글로스가, 아니 글로스였던 잔해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분명 여동생을 개먹이로 준 자에겐 더할나위 없는 보복이다. 평생 그 복수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그리샤에겐 최고의 순간이 아닌가?
          * 생각에 잠겨있던 크루거는 그리샤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뜻밖에도 "똑똑한 자"였다고 평한다. 어린 그리샤의 눈엔 비굴과 굴종의 표상으로 비췄던 아버지가, 크루거에겐 어떻게든 은 가족을 지키려고 필사적이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가 어떻게든 잘못된 길을 고르지 않게 하려고 했던 아들은, 거기서 아무 것도 못 배웠을 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을 지옥길의 길동무로 삼고 말았지만.
          >내게 겨진 건... 죄... 뿐이야.
  • 페어리 테일/545화 . . . . 15회 일치
          * [[안나 하트필리아]]는 사명을 마친 뒤에는 현대에 아 작은 마을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 그리고 기적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메이비스 버밀리온]]과 [[제레프 드래그닐]]과 닮은 녀의 만을 목격하기도 한다.
          * 루시는 전쟁 이후 틈틈히 글을 계속 썼다. 그렇게 해서 적은 "이리스의 모험"은 썩 많이 팔린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꿈 중에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안나 하트필리아]]도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와주었다. 그녀는 아직 현대에 아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중. 지금도 종종 루시는 만나러 가곤 하며 오늘도 선조이자 선배 작가로서 조언을 해주었다.
          그레이는 자기가 원조 노출광인 주제에 쥬비아가 벗어대자 질색하며 바깥으로 끌고 나간다. "무슨 생각이냐"고 따지는데 사실 모든 길드원이 그레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문득 그레이의 시선이 쥬비아의 허리 쯤에 은 흉터에 닿는다. 그 전쟁의 흉터가. 서로 자신을 찌러서 생겼던 상처. 그레이가 웬디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레이도 자기가 찌른 자국이 그대로다. 쥬비아가 그걸 말하자 어쩐지 당황하며 "자와 여자의 몸은 다르다"고 허둥댄다.
          * 파티가 무르익었다. 나츠와 루시는 지나가는 인파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여기 있을 수 없는 사람의 모습. 초대 마스터 [[메이비스 버밀리온]]의 모습. 해피와 샤를, 마카로프와 엘자도 눈치를 챘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그녀가 손수건을 떨어뜨리자 옆에 있던 자가 주워주는데, 그 자의 얼굴은... 역시 여기에 있을 수 없는 사람, [[제레프 드래그닐]]이었다.
          이제 페어리 테일의 길드원들이 모두 그 쪽을 바라보고 있다. 누구도 그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그 녀는 이런 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들의 대화를 이어간다. 메이비스를 닮은 그 여성은 출판사 직원이었고 제레프를 닮은 자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둘다 루시의 팬이라서 사인을 받고자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성이 깜빡하게 손수건 뿐이 아니다. 왠지 신발도 잊어버려서 맨발이다. 자가 웃기 시작하자 여성도 따라 웃었다. 한참 웃은 둘은 통성명을 했다.
          자를 따라서 여성도 이름을 밝혔다.
          녀는 함께 걸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누구도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루시는 그저 모든게 행복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으로 그 장면을 기억하고자 했다.
          파티는 계속되었다. 슬슬 술이 오른 길드원들이 난장판을 벌이기 시작하고 [[로메오 콘볼트]]는 [[아스카 코넬]]이란 나란히 앉아 "저런 어른들 만은 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마카오 콘볼트]]는 또 "내년부터는 일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지켜질지 어떨지 알 수 없다. [[알작 코넬]]과 [[비스카 무란]]은 여전히 사이 좋은 부부. 안경을 끼기 시작한 [[리더스 조나]]가 그들의 인물화를 그려주고 있다. [[키나나]]는 [[럭키 올리에타]]에게 자친구가 생겼다고 알리는데, 이름이 에릭이라는 걸 보면 코브라를 말하는게 틀림없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였다. 나츠가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부터. 하루지온의 만에서부터, 럴러바이, 가루나섬 사건, 낙원의 탑, 배틀 오브 페어리 테일의 혈투, 대 오라시온 세이스전, 이세계인 에도라스, 천랑섬, 대마투연무를 거쳐 타르타로스와 싸우고 마침내 알바레스 제국과 전쟁 통에 자신의 정체와 형 제레프 드래그닐과의 악연을 끊어내기 까지. 그리고 마룡 [[아크놀로기아]]를 쓰러뜨리고 마침내 돌아온 그.
  • 표창원 . . . . 15회 일치
         ||<:>'''본적'''||<(>[[평안도]] [[순천시(평안도)|순천]] ||
         ||<:>'''가족'''||<(>2 중 [[차]][* 그의 친형은 표창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표창원이 그의 부인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계기도 친형과 관계가 있는데, 형수가 자신의 지인이었던 현재의 부인을 소개해 줘서 연애를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
         1966년 [[경상북도]] [[포항시]] 동빈동에서 [[평안도]] 출신 실향민 아버지를 둔 실향민 2세로 태어났다.
         이때 표창원 옆에서 바라본 당시 대한민국 경찰 수사라는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치밀한 범인의 완전범죄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범인이 피고 버린 담배부터 해서 증거가 차고 넘쳤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수사 수준이 영...(..)] 결국 사건이 미제로 게되자 패배감을 느꼈고, 당시 대한민국에는 전문적으로 학문을 배울때가 마땅치 않아 유학을 선택했다. 이후 1993년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엑서터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서 경찰학을 수학해 1997년까지 사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땄다. 범죄학이 아니다! 애초 엑서터 대학에는 경찰 및 범죄관련 석박사 과정이 없고 학사만 있다.[* 2015년 기준 [[http://www.exeter.ac.uk/undergraduate/degrees/sociology/criminologybsc/|학부과정]]은 개설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여전히 사회학만 [[http://www.exeter.ac.uk/postgraduate/research-degrees/sociology/mphil-phd_sociology/|개설되어 있다.]]] 다만 박사의 학위논문의 주제는 확실히 경찰과 관련이 있다.
         정계 입문 이후 여러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민주당 변호인을 활약했다. 특히 2015년 12월 30일 '[[문재인]] 대표가 [[일본]]이 숨긴 금괴 1,000톤을 갖고 있다'는 루머를 맹신했던 어느 60대 성이 문 대표의 [[사상구]] 사무실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을 두고 [[MBN]]의 [[김형오(1972)|김형오]] 앵커가 '문재인 대표에게 잘못이 있는 것 아니냐'며 [[답정너]]식으로 질문을 하자 "그럼 2006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피습을 당한 건 (그 피습범이 정신병자였기 때문이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가요?"라는 반문~~이건 몰랐지?~~으로 앵커를 [[역관광]]시켜--사실 [[마마무|음오아예]]를 부르게 한 거라더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지지층에게 강한 인상을 겼다.([[http://tvcast.naver.com/v/676104|네이버]] [[http://tvpot.daum.net/v/73446472|다음]] [[http://www.gomtv.com/view.gom?contentsid=14150137|곰TV]])[* 보도 자막이 포함된 인터뷰 전체 영상은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114977|MBN 홈페이지]]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7&aid=0000871698|네이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1231111239813|다음]], [[http://news.nate.com/view/20151230n53189|네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2016년 2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용인시]]에 신설된 [[용인시 정]] 선거구[* 구성동, 청덕동, 마북동, 동백동, 보정동, 죽전1동, 죽전2동]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경찰대학]]이 있던 지역이었고,[* 그가 공천을 받기 직전인 2016년 2월에 경찰대가 충 아산시로 이전해갔다.] 그가 원래 거주하던 지역이다.[* 선거 기간 중 지역구 내에서 [[어린이집]] 차량사고가 났는데, 이때 자기 딸들도 그 어린이집을 다녔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전부터 살던 곳이 맞는 듯 하다.] 그리고 [[2016년]] [[3월 7일]] 당에서 표 전 교수를 [[전략공천]]하기로 확정 발표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3&aid=0007080865|#]]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다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수사의 90%이상은 경찰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검사 한 명 당 하루에 11.4건의 사건을 배당받고 있는데, '''잔업해서 12시간 근무를 해도 거의 한시간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야 한다(...)''' 사실상 수사의 주체는 경찰이고 경찰이 수사한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검사가 영장 집행시에만 지휘하는게 일반적이다. 즉 사실 이미 경찰이 수사 개시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은 2011년 때 법안 개정을 통해 이미 법률적으로 명문화되어 있다.], 증거를 모아서, 용의자를 잡아서, 검사한테 주면 검사가 이를 확인한 뒤 "OK" 외치고 끝나는 상황인데, 이것을 검사가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즉 경찰에게 유리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수사/기소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경찰은 수사에, 검사는 기소와 공소유지에 전념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수사지휘권이 없어도 검찰의 기소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보완수사를 요청하거나 경찰의 수사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도 일선 경찰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장 청구권이 없으면 수사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점에서[* 강제수사의 핵심은 영장이다. [[영장주의]]참조.] 검사의 권한은 해당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막강하다.[* 실제로 표 의원보좌관의 SNS를 보면 해당 개정 내용을 접한 일선 경찰들이 표 의원의 보좌관(보좌관도 경찰출신이다.)에게 연락해서 "영장청구권를 왜 검찰에 겼냐."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8년에 있을 제7회 지방선거 때 같이 치뤄질 개헌 안을 살펴보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폐지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있으므로 경찰에게도 영장청구권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개헌이 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할 시 검사는 법리적인 내용만 검토하게 하거나 혹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을 특별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해 이들에게 영장청구권을 허용하게끔 하는 방안, 검사에 의해 영장이 반려되었을 때 법원에 항고를 할 수 있는 항고권 부여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표창원 의원의 경우 발의한 법안과의 균형을 고려해 경찰의 항고권 보유에 찬성하고 있다. 이에 관해 2018년 6월 21일 KBS 라디오에 전화로 출연해 다시 한 번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다. 현재는 경할은 수사는 하지만 종결권이 없다. 이는 한 번 한 수사 결과를 검찰이 받아서 다시 검토하는 두 번 일이 되므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피해자/피의자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종결까지 할수 있게 될 경우에는 이를 해소할수 있으며, 문제가 없으면 바로 기소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나 보완을 지시할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경찰 내에서 종결권이 있다면, 경찰이 껄끄러운 사건을 묻어버리면 어쩌냐" 하는 반론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 의원은 "검찰에서 묻어버리면 이미 대민 창구인 경찰의 손을 떠난 후라 사람들이 알수 없지만, 경찰에서 그러면 사건 관련된 사람들이 언론과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고, 수사 지휘권이 있는 검찰도 알게 되므로 경찰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 문제적 자 19회([[tvN]])
          * 1 1녀를 두고 있으며, 2017년 현재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학교 축구부 소속이다.
         >'매스미디아가 보여주는 범죄'에 대한 오랜 관심과 우려는 흥미거리만을 �는 매스미디아의 '선택적 특성'과 이러한 보도가 사회의 범죄문제에 끼칠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그간의 숱한 미디아 프로그램 분석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미디아에 나타난 범죄가 특정한 범죄 - 강력사건 -에 편중되어 있으며 범죄문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비판적 범죄학자들은 매스미디아가 범죄문제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으로 규정지으며 사회일반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오히려 사회의 범죄문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매체上의 폭력'은 오랫동안 학계와 일반대중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엽기적인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거나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1980년대 이후에는 '미디아 폭력'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84년 BBC 방송국이 경찰의 도움을 얻어 미해결된 강력사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며 목격자나 제보자를 찾는 'Crimewatch UK'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성과를 거두자 기타 민방들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의 原型은 1960년대에 시작된 독일 ZDF 방송국의 "미해결사건 XTZ..."이며 영국 BBC에서 도입한 이후 미국, 네덜란드, 핀란드, 러시아, 한국 등 세계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대한 대중적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정과 내용, 사회적 파급효과 등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까지 미미한 실정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경찰이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들에 범죄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찰관 및 경찰장비를 제공해 준다.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이 프로그램들은 사건해결의 유용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홍보매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재구성' 프로의 범람에 대해 "의 불행을 보고 즐기는 일종의 '관음증'을 조장하며 독거노인, 여성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일반대중의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시청률 올리기에만 치중하는게 아니냐"는 방송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그간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방송사들은 이에 대해 "범죄퇴치에 협력한다는 공익에 이바지할 뿐"이란 논리로 대응해 왔다.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의 신고가 주요범죄를 해결했다는 주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집행의 대명사인 경찰의 걍력한 지지가 이러한 '공익논리'를 받쳐주는 주요요소이다. 본 논문은 영국전역에 산재한 28개 지방경찰청, 내무성 경찰국, BBC Crimewatch UK 제작팀, 민간기구인 Crimestoppers Trust 등 30여 관련기관을 방문, 60여명에 이르는 관계자와의 심도깊은 면담 및 관련자료 분석결과와 13편의 Crimewatch 프로그램 분석 결과를 종합분석하여 '범죄 재구성'프로그램인 Crimewatch UK를 통해서 본 영국경찰의 매스미디아관련 정책과 실행, BBC방송국의 다큐멘타리 제작 지침과 실태상의 불일치를 비판적으로 조명해 보았다.
  • 허근욱 . . . . 15회 일치
         아버지 허헌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변호사로 활동했고,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서던 중 [[신간회]], [[근우회]]에서 활동하던 [[황해도]] [[신천]] 출신 유덕희를 만나 그를 낳았다. 그 뒤 [[허헌]]의 본부인 정긍자가 사망하자 허헌은 유덕희와 재혼하였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으로 진학했다. 해방 후에도 계속 가족과 함께 [[경성]]에서 체류하다가 [[1948년]] [[4월]] [[이화여대]] 영문학과 재학 중 [[로당]] 당수이자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허헌]],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따라 월북하였으며 [[평양러시아어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뒤 아버지 [[허헌]]은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의장이었고, 언니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보건성부상, 사법상, 최고재판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다.
         그러나 북한 생활을 숨막혀했던 그는 [[1950년]] 편 박노문 등과 함께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과 자유를 찾아 다시 월한다. 그 해 [[6월]] [[한국 전쟁]] 중에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만났지만 이내 그는 편과 아들을 데리고 [[1·4 후퇴]] 때 으로 내려갔다. 이후 호적 없이 가명으로 살기도 했다.<ref>한겨레신문 1991년 6월 27일자 10면, 생활문화면</ref> 한때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기간중 편 박노문 등과 함께 북한의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 수감되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 [[허헌]]과 이복 언니 [[허정숙]]이 북한의 고위층이라는 이유로 혐의가 없었는데도 여러 번 의심을 받기도 했다.
         [[1984년]] KBS 방송국 집필담당 전문위원이 되었으며, 그밖에도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협회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9년]] KBS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1992년]] [[4월]] [[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자 13면, 생활문화면</ref>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서정범]] 등과 함께 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끝나지 않은 겨울》 (영, 1982)
         그의 작품 중에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문학 작품들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자신의 출신과 관련된 한 쪽에서의 모종의 제약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데올로기나 분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는 평도 있다. 또한 일찍이 이념과 삶의 진정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버지 및 가족과 결별하고 월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누구보다 분단과 가족공동체의 회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있다는 작품평도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명시적이지 않지만 때때로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과 때로는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허근욱의 초기작품의 하나이자 대표작인 자전적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 등에서는 과 북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수난을 겪어야 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세상에 대한 분노, [[6.25 전쟁]]이 막 끝난 직후 다시는 보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이념, 이데올로기를 빌미로 한 폭력성에 대한 거부감 등이 담겨 있어 이 작가의 작품 경향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평도 있다.
         * [[1992년]] [[4월]] [[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
         * 허근욱, 《끝나지 않은 겨울》 (영, 1982)
         [[분류:1930년 태어]][[분류:2017년 죽음]][[분류:양천 허씨]][[분류:일제 강점기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허정숙]][[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고소영 . . . . 14회 일치
         ||<width=30%><#FFFFA1><:> ''' 제1회 [br] ([[소이]]) ''' ||<#FFFFA1><:> {{{은주}}} ||<width=30%><#FFFFA1><:> ''' 제2회 [br] ([[제바]]) ''' ||<#FFFFA1><:> {{{이은혜 }}} ||<width=30%><#FFFFA1><:> ''' 제3회 [br] ([[김미진]]) ''' ||
         ||<:> [[소라]][br]([[정주희]]) ||<:> {{{윤체리 }}} ||<:> '''[[유다솜]][br]([[ 고소영 (모델) ]])''' ||<:> {{{소희 }}} ||<:> [[반하니]][br]([[천세라]]) ||
         가족관계는 11녀 중 둘째로 2살 위의 [[오빠]]를 두고 있다. 이후 고소영은 미 배우 [[장동건]]과 결혼하여 마찬가지로 1 1녀의 자녀를 두게 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빠]]-[[여동생]] 매라는 점도 같다.
         1993년 [[엄마의 바다]]에서 톡톡튀는 매력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1997년 '''영화 [[비트(한국 영화)|비트]]에서 여자주인공 '로미'역을 맡아 당대 성들의 이상형이 되었으며''' 이 영화는 개봉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인 현재까지도 고소영의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다. 이런 과정 등을 거쳐 199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했으나 2000년대 들어 광고 모델로만 활약하고 그 외의 연기활동이 거의 없어 지명도가 떨어지던 중 2010년 5월 2일 [[장동건]]과 결혼,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장동건-고소영 결혼설이 뜨자 장동건은 알고 고소영은 몰랐던 장동건의 10대 팬들에게 [[듣보잡]] 취급 당하기도 했는데 이에 앞서 [[임창정]]과의 열애설이 있었으며 결국 1998년 MBC [[추억]]을 끝으로 드라마 출연이 한동안 뜸했었다.][* 오히려 중년층 이상에서 장동건에게 잘 어울리는 상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90년대에는 정말로 지금의 장동건에 전혀 꿀리지 않는, 인기의 정점에 있었기 때문. 어쩐지 결혼 후에 편과 인기, 인지도가 역전 되어버린 [[쿠도 시즈카]]나 [[빅토리아 베컴]]이 연상되는 면도 있다.] 이 때문에 여자 [[연정훈]]이 되는가 싶었지만 고소영 역시 내로라하는 최고의 미녀스타였기 때문에 여자들의 주적 취급은 받지 않았다.
         [[김태희]]와 함께 CF 아니면 내세울 것이 없는 배우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결혼 이후에 이미지가 바뀌어서 [[김주]], [[이영애]] 등 다른 여배우들이 독점하고 있던 주부 대상 광고 모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다시금 왕성한 활동 중이다.
         2017년 2월 KBS 드라마 [[완벽한 아내]]를 통해 10년만에 복귀했으며, 주인공 심재복 역을 맡았다. 첫 회 방영 후 크게 성장한 연기력으로 역대급 호평을 받는 중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 도중 점점 막장으로 치닫더니...결국 드라마는 망했어요...가 되고 말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은희 역의 [[조여정]]의 연기력이 크게 돋보이긴 했지만 고소영의 연기 역시 ~~의외로~~ 괜찮았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하여는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드라마의 인기는 저 멀리... 편인 [[장동건]]이 간만에 복귀한 [[신사의 품격]]과는 정반대로 가버린셈. [* 신사의 품격 내에서 장동건은 연기도, 드라마 인기도 모두 잡았지만, 고소영은 완벽한 아내 내에서 연기력은 나름 인정받았을지라도 인기는 잡지 못했다.]
          * 2015년 9월부터 [[J TRUST]]의 모델이 되어 TV 광고에 출연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떴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277&aid=0003578730|#]]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배우가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논란이 일었으며 이런 논란에 대해 '''그저 이미지 광고에 출연하는 것 뿐'''이란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해명하는 바람에 팬들의 비판이 더욱 들끓었다. 연예계 관계자 중 한명도 고소영 본인뿐만 아니라 편인 장동건 또한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반응과 함께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는 평이 나왔다. 더구나 [[상호저축은행|저축은행]] 항목에도 나와있는 광고 규제책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광고로 출연한 탓에 그 또한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중이다. 고소영은 사건이 생긴 지 '''2일 뒤에 사과하였고 광고 계약도 취소'''하였다. 여러모로 한국에서의 대부업체의 이미지를 알 수 있는 대목.
          * 편은 장동건, 절친은 [[정우성]], [[이정재]] 등이다. ~~ㅎㄷㄷ~~ 대표작 '비트'를 함께 찍었던 정우성과는 [[구미호]]라는 영화에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으며 정우성의 말에 따르면 데뷔 전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9&aid=0002345735|관련기사]]
          * 톱스타 미미녀배우끼리의 결혼과 도도한 미녀 페이스가 [[비비안 리]]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비비안 리가 연기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등장인물 스칼렛 오하라의 스타일을 그대로 연출한 컨셉의 화보도 찍은 적 있다.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1998) - 현주/유하린
  • 김기수(코미디언) . . . . 14회 일치
         || 출생 ||[[1975년]] [[7월 28일]] [[전라도]] [[목포시]] ||
         || 가족 ||1 1녀 중 [[외동아들|둘째]] ||
          * 여초 커뮤니티 등의 반응이 좋지않다. 여성들의 기준에는 김기수의 화장 실력이 초보 수준으로 서툴고 어설프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 여성 뷰티 크리에이터만 아니더라도 맨즈 뷰티를 주제로 하는 성 뷰티 크리에이터와의 비교를 해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김기수한테만 어울리지, 자 누구에게나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데일리 메이크업이나 피부 관리 위주도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이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지 '성'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이 분야의 유명세를 얻고 있으며 전문가인 척 하고 있어서 비호감으로 전락했다. 또한 자신의 화장 방식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비꼬며 좋지 못한 리액션을 보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 유튜브 미미채널과의 합방에서 밝히길, 어렸을 때 부터 코스메틱 덕후였으나, 주변의 오해들 때문에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댄서킴 할 때도 이미 집에 화장품이 많았으나 오해가 더 커지는 게 싫어서 밝히지 못하다가 한참뒤에야 뷰티 유튜브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q1Voh45qbH8|미미채널]][* 자들도 미용에 관심을 가지고 성용 비비크림까지 나오는 지금까지 자가 화장품을 좋아한다던지 화장을 한다던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편인데 지금보다 훨씬 이전인 댄서킴 활동 당시에는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는다.]
          * 롤 모델은 뷰티 유튜버 쟈니 시오스라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9173864|링크]] 메이크업 스타일이 성스러운 섹시함을 잃지 않는 젠더리스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장은 여성미를 추구하는 것이란 세간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길을 추구하는 듯하다.
          * 맥(MAC) 잡지 아시아권 단독 성모델이 되었다.[[http://img.theqoo.net/img/YOIJc.jpg]]
          * 2010년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012110100086170005422&servicedate=20101210|자 작곡가 L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피소되었지만 약 2년 간의 법적 공방 끝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177058|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 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 때문에 불거진 성 정체성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172585|기사]]
          >김기수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요즘 저를 자냐, 여자냐로 규정짓는 분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며 "2000년대에 '유니섹스'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냐"고 말했다.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목포시 출신 인물]][[분류:유튜버]][[분류:1975년 출생]][[분류:2001년 데뷔]]
  • 김태우(god) . . . . 14회 일치
         ||<rowbgcolor=#C0C0C0> [[궁인]] || → || '''김태우''' || → || [[김태우(유젝보이)]] ||
         ||<#878787> '''{{{#EEE156 가족}}}''' ||<(> 1 1녀 중 막내, 아내([[김애리]]), 슬하 0 0녀[* 딸 [[김소율]] ,[[김지율]], 아들 [[김해율]].] ||
         god 당시 혼자만 소속사가 달랐다. 나머지 멤버들은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김태우만이 홀로 [[JYP]], 즉 박진영과 계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박진영이 싸이더스에 김태우를 '임대'해 주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god 해체는 [[윤계상]]의 탈퇴만이 이유가 아니라, 김태우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기존 회사에 느냐 박진영과 계약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던 중에 발생하게 됐다. [[윤계상]]의 탈퇴는 이 우왕좌왕한 계약 시기에 염증을 느낀 결과였던 것.]
         2013년 이후 세븐과 상추의 사건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의 특혜 논란이 거세어지면서 [[이정(가수)|이정]], [[김흥국]], [[진]] 같은 다른 비 연예병과 현역 복무자(그것도 해병대)들과 함께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제대로 늘어나는 호재(?)를 맞이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꼼수 안 부리고 제대로 현역 복무는 마쳤으니... --하지만 1년 뒤 그는 [[MC몽|어느 모 발치가수]]를 옹호했다가 [[까임방지권]]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카더라]]--[* 실제로 [[MC몽]]이 가요계에 다시 본격적으로 돌아오자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김태우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하(가수)|하하]], [[조현영]], [[백지영]], [[손담비]] 등이 옹호했는데, 그 중에서 [[MC몽]]의 절친인 [[하하(가수)|하하]]가 욕을 가장 많이 먹었다면 가장 어이 없는 사람이 김태우이다. 현역으로 복무했던 사람이 병역기피자, 즉 범죄자를 옹호하고 있으니...]
         한편,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진짜 사나이(일밤)|진짜 사나이]]가 [[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 [[대한민국 육군/수색대|수색대]]에서 촬영할 당시 예비 군복을 입고 위문공연을 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씨스타]]'''에게 장병들의 관심이 완전히 넘어가면서 공연은 대실패(?). 김태우 본인도 "군대에 자 가수 따위가 누가 온다고 한들 좋아하겠어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 맴버들을 비롯한 후배 수색대원들에게[* 사실상 진사 전용 생활관 멤버들.] [[PX]]에서 한턱 쐈는데 마음껏 사랬더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닥닥 긁어서 무려 19만원(!!!!)이 나오는 참사(?)가 발생 했다. 이걸 일반적인 편의점의 판매 가격으로 변환하면 대략 30만원 정도 나온 셈이다.[* PX는 [[부가가치세]], 주류세 등의 세금이 안 붙어서 저렴하다. 무엇을 사먹느냐에 다르지만 보통 둘이서 만원만 써도 배가 터지게 먹고도 는다. 아니, 3봉지에 5000원하는 고향만두를 사면 3명이 먹어도 배부르다. 거기다가 이천원짜리 음료수로 나눠먹으면 7000원으로 3명이 만두와 음료수를 배불리 먹는 [[예수]]에 버금가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런 PX에서 19만원이면...] 자막으로 "PX를 샀냐..."라고 나올 정도다. PX 근무병 왈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병이던 김형근 군에게 군대에 대한 조언도 해준다.
         2011년 3월 29일 정규 2집 앨범 'T-School'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메아리'.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2009년에 발매했던 '사랑비'보다는 뭔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비'의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기대치가 높았던 데다 이 시기 [[8eight|이현]], [[휘성]], [[케이윌]] 등의 자 솔로 가수들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탓에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저 세 가수의 경우는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들과 비교할 때 부족해 보일 뿐, 타이틀곡 자체는 음원 사이트에서 [[씨엔블루]]나 [[걸스데이]], [[포미닛]] 등 아이돌들 사이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꽤나 선전했다. 또 앨범의 수록곡 'Brothers&me'는 [[박진영]]과 [[비(연예인)|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타이틀곡 '메아리'의 뮤직비디오에서 김태우의 1인 2역 연기를 볼 수 있다... ~~곰 두 마리가 한 집에 있어!~~
         그러다 보니 제대 당시에도 여기저기 예능 프로에서 러브콜을 보냈고, 얼굴도 여기저기 내밀었는데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KBS2 [[청춘불패 시즌1|청춘불패]]. 당시 잘 나가는 여자 아이돌 7명과 함께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공동 MC가 [[노주현]], [[희석]]이었던 터라 사실상 청일점이었는데, 금방 제대해서 군인 냄새가 풀풀 나는 거한에게 아이돌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한 발상이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
         청춘불패 출연으로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추진력을 얻은 건지]] SBS 2011년 설 특집 프로그램이었던 <스타맞선-유쾌한 스캔들>에서는 [[아이유]]와 러브라인을 만들었다...이와 같은 일 때문에 자들에게 ''''해방 이래 [[연정훈]] 이후 제일 나쁜 놈''''이라며 지탄의 대상이 된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아는 듯, [[상상플러스]]에서 청춘불패 출연 이후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옛날옛적 god 시절 그 레드썬 교수의 전생 체험에서 밝혀졌던 전생이 '[[관우]]'. 다만 최근에 [[삼국지]]를 읽어서 최면이 잘못 들어갔다는 분위기이긴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식이 뚜렷한 편은 아닌데다 이와 관련된 흑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푸는 실력은 좋은 편이다. 194회 전반전에 참가했을 때는 6단계까지 생존했으며 두번째 도전인 287회 후반전 방송분에선 [[1대 100/최고 단계 문제 #s-4.4|정규 최종 단계(당시 11단계)에서 6명과 대결을 펼쳤다.]](두 대결 모두 각각 8, 12단계에서 은 100인 전멸)
          * 2015년 9월 2일,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5&aid=0000356888|득했다]].
         [[분류:god]][[분류:한국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프로듀서]][[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81년 출생]][[분류:아이돌 막내]][[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99년 데뷔]][[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김효원 . . . . 14회 일치
         '''김효원'''(金孝元, [[1542년]] ~ [[1590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퇴계 이황|이황]]과 [[명 조식|조식]]의 문인이다.<ref name=autogenerated2>[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611/wk2006111416012337070.htm 주간한국 : [종가기행 24] 善山金氏 省庵 金孝元 - 부친 여윈 뒤 家勢 기울어 "가문의 전통 범절 잘 몰라요"<!-- 봇이 붙인 제목 -->] </ref> 본관은 [[선산 김씨|선산(善山, 일선)]]으로, 자는 인백(仁伯)이고 호는 성암(省庵)이다.
         [[이황|퇴계 이황]]과 [[조식 (1501년)|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소장파 관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심의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다음해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천거되자 외척임을 들어 적극 반대하여 사림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갈라지게 하였다. 노수신과 이이의 조정책으로 외직으로 전출된 후 10년 간 한직(閒職)을 전전했다.
         김효원은 [[1542년]]에 태어났다. 증조부는 상원서 직장 수현(秀賢)이며, 할아버지는 전생서 직장 덕유(德裕)이다. 아버지는 영유 [[현령]](永柔 縣令) 홍우(弘遇)이며,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 [[해평 윤씨]]이다. 아래로는 동생 [[김이원]] 등이 있었다. 일찍이 [[한성]]에 올라와 한성부 부 건천동(乾川洞)에서 살았는데 이때 [[류성룡]] 등을 만나 알게 되었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과거 제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양주타임즈, 2007.01.26자] </ref>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와 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황]]의 제자들 중의 한사람이며 [[김종직]]의 학통으로, 명 [[조식]]의 문하에도 찾아가서 배웠다. 스승 중 한사람인 조식이 죽었을 때는 "방향 모르는 날 가르쳐주셨고(誘掖回迷走)/ 날 채워서 옳은 사람 되게 했다네(充盈見實歸)/ 인문이 이제는 끝나고 말았구나(人文今已矣)/ 이제 우리 도를 누구에게 의지할꼬(五道竟何依)?"라는 만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학문상으로는 [[김종직]]-[[이황]]의 학맥과 [[조식]]의 학맥을 두루 계승하였다.
         그의 친구 중 [[조선 명종|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尹元衡)의 사위로, 장인 [[윤원형]]의 집에 처가살이하던 [[이조민]](李肇敏)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일찍이 [[윤원형]]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의 다른 친구들은 [[이조민]]을 멀리할 것을 권고했으나 그는 [[이조민]]의 사람됨됨이를 보고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인순왕후]]의 친정 동생으로 역시 왕실의 인척이던 [[심의겸]]이 집안 어른들과 함께 [[윤원형]]의 집에 출입하다가 그를 보게 된다.
         이후 그는 이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심의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 뒤 김효원의 후임으로 [[이조]]에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전랑 후보로 천거되자, 그는 [[심충겸]]이 [[조선 명종|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인 척신이라는 이유로 극력 반대하였으며 이조전랑직이 외척집안의 물건이냐며 [[심의겸]]과 [[심충겸]]을 공격하였다.
         그의 딸 중에 한명은 [[허균]]의 후처가 되었고, [[허균]]의 형인 [[허봉]]의 딸은 그의 아들 김극건의 부인이 된다. [[동인]]이 [[인]]과 [[북인]]으로 분당될 때 그의 동생 [[김이원]] 등은 [[북인]]에 가담했고, 동생 [[김이원]], 증손 [[김세렴]] 등은 모두 [[북인]]의 당원이었다.
         **** 장 : 김극건(金克健)
         * [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양주타임즈, 2007.01.26자]
         [[분류:1542년 태어]][[분류:1590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철학자]]
  • 남유진 . . . . 14회 일치
         ||<:>제15·16·17대[br][[김관용]]||<:>→||<:>'''제18·19·20대[br][[유진]]'''||<:>→||<:>제21대[br][[장세용]]||
         || '''이름''' ||<(> 유진(南洧鎭) ||
         '''[[박정희]] 향수에 젖어 정작 공공화장실에 휴지 하나도 예산 부족으로 못 내놓게 만든 원흉''' --[[니콜라스 마두로|니콜라스 유진]]----구미는 구미다 망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1997년 외환위기|IMF]]와 비견되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또 3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대통령이 대통령인지라]]. 결국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 시민단체인 구미참여연대에서 만든 성시와 비교카드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민심 이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0856|*]]
         극렬 [[친박]] 성향의 정치인 중 하나로, '''[[박정희]] [[반인반신]] 발언의 당사자'''라고 하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구미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시 예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그게 논란이 됐다.[* 유진 재임기간 중 구미시 1년 예산은 1조 가량 되는데 매년 수백억을 박정희 관련해서 낭비했고 임기 말에는 1400억짜리 박정희 타운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도 참석해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의 인용([[파면]]) 판결에는 존중한다고 하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15500010|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신격화 논란]] [[http://www.idaegu.com/?c=4&uid=357752|유진 구미시장, 기초 지자체장 중 첫 탄핵반대 집회 참석 논란]]
         [[http://www.nocutnews.co.kr/news/4814611|유진 구미시장 "박정희는 반신반인, 우표 무산 자괴감"]] [[http://v.media.daum.net/v/20170712093952584|유진 구미시장 '박정희 우표' 발행 촉구 1인 시위]]
         유진 전 시장이 구미시 예산을 얼마나 형편없이 책정했냐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는 무려 1,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그냥 일시불로 결제했으면서, [[http://v.media.daum.net/v/20161114175605934|*]]
         이렇게 유진 전 시장이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찬양에 정신이 팔린 동안 [[구미시]]에 있던 공장들은 줄줄이 도산했으며, 크나큰 오판으로 인한 잘못된 정책 수립으로 주택을 과잉 공급하여 집값이 3년간 무려 30%나 폭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마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우상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던 [[북한|한반도의 윗 동네]]랑 다를 게 뭔가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시장뿐만 아니라 제반 정치 환경까지 새로 바뀌었다. 경북 도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비해 앞섰으며, 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천한 모든 후보가 1위 혹은 2위로 모두 당선되었다. 유진 시장의 아스트랄한 실정에 지친 구미 시민들이 시장과 시의회를 통째를 바꾸게 된, 즉 위 아 더 월드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남치근 . . . . 14회 일치
         흔히 '포도대장 치근'으로 유명하다.
         포도대장으로서 치근은 한 차례 임꺽정에게 크게 얻어맞았는데, 명종 15년 좌포도대장으로 있던 치근은, 서울에 기습공격해온 임꺽정 패거리의 공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서울 내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며, 포도부장이 활을 맞고 사망하는 참패를 겪었다. 임꺽정은 유유히 달아났으며, 치근은 임꺽정의 처 3명을 체포하였으며 임꺽정 일당을 계속 추적하려 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는다. 이에 명종은 치근을 파면하지는 않고 체직(벼슬을 깍는 것)하는 처분을 내렸다.(우포도대장 이몽린은 이 때 와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참조 : 조선의 포도대장]
         하지만 치근은 좌절하지 않고, 임꺽정의 부하 [[서림]]이 한양 대문 근처에 숨어사는 것을 적발하여 체포한다. 치근은 서림을 심문하여 임꺽정의 부하들이 한양을 다시 기습하여 임꺽정의 처를 구하려 했다는 계획도 밝혀낸다. 이 공적으로 치근은 임꺽정을 토벌하기 위한 삼도토포사에 임명되었다.
         토포사가 된 치근은 임꺽정의 책사로 활약하던 서림을 회유하여, 임꺽정의 본거지 등의 정보를 입수하고 황해도를 집중공격하러 나선다. 임꺽정 일당이 장악하고 있는 황해도에서 치근은 잔혹한 명령을 내렸는데, 많은 아전과 양민이 임꺽정과 협력하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도적을 숨기는 자, 도적에게 관군의 상황을 알리는 자, 도적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 심지어 '''도적을 보고도 관군에게 알리지 않은 자''' 까지 도적과 한패로 보고 처단하겠다는 엄명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하여, 임꺽정 일당에 협력하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면서 임꺽정을 포위한다. 임꺽정이 구월산으로 도주하자 포위망은 더욱 좁혀들어갔으며, [[서림]]을 이용하여 임꺽정 일당을 회유하고 참수하였다. 결국 임꺽정은 치근에게 체포되어 처형된다.[* 백과사전 등에서는 임꺽정이 체포되어 효수당했다고 소개되지만, 실록에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고, 다만 "도적의 괴수를 처단했다"는 짤막한 기사만 있다.]
          * 그의 5대조 후예 구만의 약천집에 치근의 묘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 박경림(MC) . . . . 14회 일치
         그녀의 등장과 스타로 가던 과정은 사실상 한국 예능계를 넘어 연예계 전체의 흐름을 바꾼 파격적인 일이었고, 그녀는 그야말로 21세기 연예오락 프로그램계의 혁명같은 존재였다. 당시까지 개그우먼이 아니면서 미모가 뛰어나지 않은 여자연예인이 연예오락 방송계의 스타로 부상한 경우는 사실상 없었는데, 박경림을 통해 그런 트렌드가 생성되었으며, 사실 극형식이 아닌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에서 별명을 통한 캐릭터를 만든다는 개념도 박경림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MBC에서 가장 잘나가던 주말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던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서 당시 가수 뿐만 아니라 예능으로서도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스티브 유]]와 진행자 [[유재석]] 등이 박경림에게 '복태'라는 자아이 기믹을 만들어[* 유재석이 '내가 알던 우리동네 자아이 복태 닮았다'로 시작한 뒤, 스티브 유가 매회 자꾸 '복태야'라고 부르면서 다른 출연자들도 그렇게 부르는 등 유행이 되었다.] 그걸로 웃음을 주던 것이 시초다.
         특히 패자부활전에서 그녀의 사친을 고르는 문제에서 박수홍, 조인성, 정우성이 나올 때 박경림은 박수홍과 조인성을 선택한 100인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정우성을 선택한 결과 탈락자 48명 중 단 4명만 부활시킬 정도로 선방했다.(10단계에서 은 100인 전멸, 적립금 527만원)
          * 박수홍이랑 너무 친해서 저 둘 사귀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스캔들도 났었지만 자신이 진행하는 2005년에 KBS <좋은사람 소개시켜줘> 맞선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금의 편과 결혼을 했다. 그도 그럴듯이 현재 KBS예능 CP인 당시 한경천PD도 출연자와 결혼을 했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전성기 시절의 위업을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20대 여성이 연예대상 최연소 수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20대 연예대상은 최초이자 최후이고, 여자 연예대상은 이효리의 공동대상을 빼면 단독수상으론 박경림이 유일. 다만 과거 연예대상이아닌 방송대상 코미디 부분이나 코미디대상에선 여성으로는 김미화와 이경실, 20대로는 이경실, 서경석, 박준형이 수상을 한 적은 있었다. 다만 최연소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경림의 수상 당시 나이는 만22세. 지금 잘 나가는 여자MC들 전부를 합쳐도 박경림 인기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로[* 시상식 수상자로 나와 꺅꺅 소리지르는 소녀팬들을 몰고다닐 정도였으니..그것도 여자 예능인이..더 웃긴 건 그 소녀팬들한테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센스까지..] 2000년대 초반 당시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그녀 이후 당시 그녀의 예능계 포스에 조금이라도 비교할만큼 잘 나가 봤던 연예인은 그나마 [[이효리]] 한명뿐이다.[* 배우와 예능 MC를 병행하며 박경림보다 더 오래 예능계 몸담은 [[김원희]]도 있지만, 그녀는 미모의 여배우치고 코믹연기가 능해 이미지가 재미있고, 자MC와 호흡맞추며 하는 진행을 잘하여 롱런한게 훌륭한 것이지 박경림처럼 3년 정도 장기간 예능계 여성 원탑이었던 적은 없었고, 잘 나갈때의 이효리조차 [[신동엽(코미디언)|신동엽]], [[유재석]]이라는 대스타 MC의 받쳐주기 후광으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예능만으로는 2000~2002년 박경림이라는 여성 예능인의 파괴적 인기점유율에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박경림은 박수홍 같은 자MC들과 출연하더라도 그녀가 웃음과 진행을 이끌어가는 메인이었지 자MC의 보조만으로 끝났던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당시 잘나가던 자 MC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또한 다른 여자연예인들은 다른 분야 활동에서의 인기가 예능에도 미쳤던 영향이 있지만 박경림은 자신이 혼자 진행하는 인기프로그램까지 있었을만큼, 예능만으로 절대적 블루칩이 되었던 인물이다.]
          * 2002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다만 진지하게 한다기보단 예능 프로그램에서 프로젝트성으로 '''"박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박고테'''로 앨범 발매. 요즘 [[무한도전]]에서 하는 각종 앨범 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기예능에서 노래와 앨범 만드는 전과정을 노출시켜줬기 때문에, 꽤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주병 컨셉으로 해서 만들어진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특유의 안무와 박수홍의 손발이 오그라지는 랩(...)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에는 싱글의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11곡으로 풀앨범을 제작했다. 당시 박경림의 장점인 인맥이 도움이 되어 타이틀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주영훈]]이 만들었고 [[김장훈]], [[윤종신]], [[이수영(가수)|이수영]], [[이기찬]], [[유리상자]], [[유희열]], [[김동규#s-1]] 등이 참여했다. ~~라인업 ㅎㄷㄷ~~ 박매의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지만 인기가 생각보다 많아 CD로도 발매되었다.[* 앨범은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나중에 유학 이후 국내 복귀 다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망했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목표 판매량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백만장이었으니까...] 당시 대단한 인기로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유학시절 찍은 사진 중에 [[마이크 무시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다 [[카더라]]. 유학 당시에 [[서재응]], [[김병현]]과의 인맥을 쌓았다. 하지만 두 선수가 그녀와의 만 이후 부진을 겪자 당시 야구 이야기만 하던 시절의 [[야갤]]에서는 이를 '박경림의 저주'(...)라고 부른다.
          * 2014년 3월 14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 민방위 훈련으로 인해 [[두시의 데이트]]가 14시 20분에 시작하자 오프닝에서 "민방위 훈련 때문에 늦어진 20분은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느냐"라는 발언을 해 뭇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오프닝 멘트 후 청취자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청취자와 20분 늦게 만나는 마음이 아쉬워서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까 하다가 많은 분을 속상하게 한 것 같다. 오프닝에서 표현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나 지금도 희생하고 있으신 분들을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 해 드린 것 같아 생방송 중 사과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진심을 다해 사과의 말씀 드리겠다” 며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된 경솔했던 발언에 대해 즉시 방송에서 사과했다.[* 아버지 역시 상이군경임을 밝혀 불손한 의도의 발언이 아니었단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 위원회는 해당프로그램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2695&yy=2014#axzz3Ba6cD9TR|기사]] 게다가 하필이면 "성만 병역 합헌"문제로 넷상에서 군대관련 문제가 좀 예민할 때라...--안 될지도--
  • 박노식(1971) . . . . 14회 일치
         || '''출생''' || [[1971년]] [[5월 18일]], [[전라도]] [[강진군]] ||
         || '''가족''' || 아내, 슬하 1 ||
         [[박준규(배우)]]의 [[박노식|아버지]]와 혼동하지 말 것. 이분은 1971년 5월 18일 [[전라도]] [[강진군]]에서 출생한 다른 배우이다.
         1994년 사랑의 묵시록을 통해 영화에 데뷔하였으나 주로 연극판을 전전했고 진짜 영화배우로 유명해지고 소속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용의자 백광호로 출연하면서다. 감독까지 감탄한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겼는데, 당시 코미디언들도 수도없이 패러디[* 개그맨 [[김시덕]]이 개그콘서트 코너에서 많이 했는데, 그 코너에서 [[송강호]] 역할이었던 인물이 [[정형돈]]. --물론 정형돈은 송강호 스타일과 별로 비슷하지 않았다--]했었고 다른 연예인들도 성대모사를 하곤 했었다.
         || [[한산성(영화)|한산성]] || 군사 1 || ||
         || [[쩨쩨한 로맨스]] || 실직 || ||
         ||<|10> 2016년 || KBS2 || [[우리 집에 사는 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자]] || || ||
         ||<|2> 2011년 || tvN || [[꽃미 라면가게]] || || ||
         || OCN || [[신의 퀴즈]] || 두 얼굴의 자 || ||
         ||<|3> 2009년 || tvN || 세 자 || || 특별출연 ||
         || 2003년 || 제11회 춘사영화제 || 우조연상 || 살인의 추억 ||
         [[분류:한국 배우]][[분류:1971년 출생]][[분류:강진군 출신 인물]][[분류:1994년 데뷔]]
  • 배영수 . . . . 14회 일치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동열|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 이 주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박철순]]도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약쟁이들이 즐겨찾는 계열은 아니나 소염효과가 강력해서 치료목적으로 자주 이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염증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면서 가라앉는게 아니라 부상이 그대로 은채로 염증만 가라앉기 때문에 선수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 때문에 현재는 금지되어있다.]'''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시즌 말미인 9월부터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1414827|팔꿈치 통증이 심각해]]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 조차 불분명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팔꿈치와 삼성의 통합우승을 맞바꾼 셈... 이 때 당시의 희생으로 영구 까방권을 획득해 이후 몇 년씩 부진해도 대다수의 삼팬들은 그를 욕하지 않았다. --물론 2009시즌 부진 때 멋도모르는 뉴비들은 패왕이라고 씹어댔다.--
         수술 소식을 들은 [[박찬호]]는 배영수에게 "(재활기간)2년 생각해라"라는 말을 겼다고 한다. 게다가 배영수는 선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 예정보다 2달 가량 늦게 [[http://foto.sportschosun.com/news/ntype2_o.htm?ut=1&name=/news/sports/200701/20070129/71912005.htm|수술]]했다. ~~하지만 [[선동열|당시 감독]]은 박찬호의 말을 무시하고 말았는데...~~
         선발진 복귀 이 후 4선발 정도의 역할로써 다소 퐁당퐁당하는 피칭을 보여주다가, 7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타자)|김상수]]가 5회에만 악송구와 쉬운 땅볼타구를 잡지 못하는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yujwfjfTcX4|'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3실점(1자책)의 투구를 보이며 시즌 5승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두산전 투구보다 훨씬 양호한 내용을 보여주었기에 은 시즌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서로에게 상처만 기다.'''
         준수한 5선발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 [[FA 제도|FA]] 협상장에서 삼성으로부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40018|최초 2년, 최종 2+2년을 제시받고 우선협상이 결렬됐다.]] 무옵션에 바로 가치를 보장받은 동갑 윤성환이나 백업인 '''[[조동찬]]보다도 못한''' 대우에 실망하고 "기회를 원한다."라는 말을 기고 FA시장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던 팬들은 지역 신문에 배영수를 위한 광고를 걸기도 했다.
         3월 16일 KT wiz전에 선발등판하여 4이닝 2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였다. 1회는 무사히 넘겼지만, 2회 연속 볼넷 후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고 연속 폭투로 1실점하였다. 3회에도 2루타 허용 후 폭투로 1사 3루가 되었고, 유격수 앞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와 1실점 하였다. 4회는 삼자범퇴 처리하고 송은범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아쉬운 실점 과정 탓에 감독이 송은범과 함께 실망스러웠다는 평을 겼다.
         4월 14일, 열흘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선발로 등판,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4사사구 4K 1실점을 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1, 2회 때 두 번 연속으로 만루를 만드는 등 볼넷과 안타를 발하며 59구 가까이 던져 5이닝은 커녕 3이닝을 채울 수 있는가 의문인 상황이었지만, 거짓말처럼 3회부터 달라진 피칭으로 나머지 3⅔이닝을 48구만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올 시즌 [[한화 이글스]] 토종 선발 첫 승을 거두었다. 이날 하필이면 직전 시즌 벤치클리어링의 기억이 있고 통산 124승[* 배영수의 삼성 시절 승수와 타이 기록]을 노리던 윤성환이 선발이었던지라 친정팀에 더 쓴 패배를 안겼다.
         2017년 4월 27일 롯데전 [[https://youtu.be/d4GnOa4lvvg?t=1m35s|일정하지 않은 키킹 동작]]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잠시 멈췄다가 던지는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던진다. 명백히 다른 시간차로 던지는 동작은 부정투구이며 부정 투구를 떠나 타자를 농락하는 것에다 명백한 룰 위반이다. [[https://youtu.be/OcQCi86XpFI|SBS 주간야구]]에서도 이 점을 언급했다. 이 사건을 두고 몇몇 소수의 악질팬들이 아니라고 반박~~난리부르스~~하지만 이는 더욱 더 배영수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소수 악질 빠들이 해커를 예시로 반박하지만 해커는 꾸준히 같은 패턴으로 던지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영수 역시 본인이 사과했지만 이는 배영수 커리어에 두고두고 을 흑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0km 짜리 직구를 던졌다고 한다.~~
         배영수 본인은 매우 당혹스러워 하며 부정투구를 하지 않았고, 허벅지 유니폼에 문지른 기억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패널들 모두 영상이 증거로 아있고, 고의성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를 두는 행동을 한 배영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며 규정상 명백한 부정투구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작 유니폼에 공을 문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부정투구에 관한 룰이 생긴 이상 행위의 의도나 경중을 떠나서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이야기.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대호|이 선수]]를 1군에 처음으로 등록한다.[* 그리고 호세는 그해 KBO 역사에 을 성적을 올리고도 '폭행사건으로 깎인 이미지'+'투표단의 용병 차별'로 여러모로 본인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타자들에게 밀려서 MVP와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공교롭게도 [[이승엽|두]] [[양준혁|선수]] 모두 배영수와 같은 삼성 소속이었다.(다만 양준혁은 2001 시즌 LG에서 뛰다가 골든글러브 수상즈음 삼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 [[정수근]]과 묘하게 외모가 닮았다. 그 덕분에 예전에 부산 원정을 갔을때 부산 사람들에게 [[정수근]]으로 오해받아 싸인요청까지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정수근]]으로 오해받은 덕택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게 되어서 좋았다고. 그 때문에 한때 붙었던 별명이 '''배수근''' ~~그런데 정수근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정수근은 [[동 방언|사투리]]를 안 쓰잖아~~ 그 외에도 가수 [[은지원]]과 닮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과 [[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배영수가 이적 후 대구야구장에 처음으로 왔을 땐 그래도 삼성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기기도 했으며, [[라팍]]에서 열렸던 2017년 올스타전 때에는 3루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승엽한테 2루타를 맞아주었~~다. 또한 2017년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는 이승엽/다른 삼성 출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 삼갤에서도 동정여론이 생겼다. 오히려 올스타전 때에는 팬들이 [[최형우|누구]]와는 다르게 성대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금지어 자리도 '''[[최형우|지역차별 운운하며 팬들을 엿먹이고 떠난 후 입은 입대로 털면서 사진찍을 때 코빼기도 안 비치셨던 모 선수]]'''에게 옮겨간 상태.
  • 승리(빅뱅) . . . . 14회 일치
         제일 어려서 그런지 매사에 의욕적으로, 자기가 한 건 터트리려 드는 방송 욕심이 강해 보인다. 가끔 빵빵 터지는 것도 있지만 아쉬운 개그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진행 실력도 괜찮은 수준이다. 일본의 여러 프로그램의 메인 MC[* VI. from BIGBANG, 자의 요리, 사키가케 등]를 맡기도 했다. 시크하고 카리스마 있어보이지만 브레이크가 풀리면 '''아무말 대잔치'''를 펼치는 빅뱅 형들을 특유의 진행 실력으로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하지만 예능과 방송의 가벼운 이미지에 감춰져 있다. 또한 자신보다 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것이 배어있다. 방송에서 타 멤버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나쁘게 하거나 비하하여 웃기게 해도 재미있으면 된다 라는 태도를 취한다. 부상당한 것을 웃으며 언급해도[* 110404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옆에서 웃고 넘기는 등 대인배. 멤버들도 승리가 회식 자리에서도 항상 본인보다 을 챙긴다고 언급했고[* 주간아이돌 289회] 재미있는 자리가 생기면 형들에게 연락해 같이 즐길려 한다 말했다. 방송에서도 을 험담하거나 뒷담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 중 제일 큰 규모의 사업은 '''아오리의 행방불명(아오리 라멘)''' 사업이다. 사람들에게는 승리 라멘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6년 12월 16일, 서울 강구 청담동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승승장구하며 국내 체인점도 많이 늘어났으며 일본, 한국, 중국, 동아까지 사업 규모를 넓혀가서 1년만에 30호점을 달성했다. 다만 기본 1만원 이상의 가격이 타 국내 라멘집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비싸다는 평. 또한, DJ 레이블 '''Natural high records의 사장'''으로, 현재 레이블을 [[양현석]]이 인수를 하면서 현재 YG엔터테인먼트 레이블 사장직이기도 하다.
         사업가적인 면모는 [[나 혼자 산다]] 출연분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데, 한국어를 비롯해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강대로 한복판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등, 가수가 아닌 사업가로서의 승리를 보여줬다. 또한 [[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상민과 일본 여행을 할때도 드러나는데 정말 철저하고 독하게 준비하는 면을 보여서 홍진경과 함께 연예인이 자기 이름 걸고 사업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걸 보여주는 좋은 예시.
         승리는 음반발매 후 [[멜론]]차트에서 실시간 진입순위 13위를 달성하였다. 아이튠즈에서는 앨범차트 기준으로 아르메니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마카오, 말레이시아, 멕시코, 페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등 15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중국차트에서는 발매 당일 주간 1위를 차지 하는 글로벌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또 보이그룹 개인 브랜드평판 2위에 올랐다
          * 일본 요리 프로그램 '자의 요리' 진행
          * 2009 제3회 더 뮤지컬 어워드 우인기상
          * (옛)승리 코디는 승리 사이즈, 키 등 모두 모르는 태도로 일관했다. --스토롱베이비 무대를 보자 저게 사이즈를 알면 입힐 옷이냐-- 승리가 한번은 "누나, 저도 지용이형처럼 멋있는 옷 입혀주시면 안돼요?" 라고 했으나 코디님께서 웃으시며 "야 사람이 멋있어야 뭘입어도 멋있는 거야" 라고 하셨고 승리는 그런 코디에게 "자신에게 멋진 조언을 해주셨다" 며 넘어갔다. 또한 평소 얘, 쟤, 걔 등으로 부르거나, 다른 맴버가 입고 은 옷을 주거나, 다른멤버와 비교하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었다. 그 외에도 판타스틱 베이비는 쎈 컨셉의 노래기 때문에 쎈 이미지가 필요하다며 머리를 밀것을 강요했다. 승리는 머리를 밀고난 뒤 많이 속상해하고 죽을 것 같았다며 울었다고 했으나 이젠 진짜 괜찮다고 한 일이 있었다. [[안습]]
          * 승리 인터뷰 中: 멤버들은 왜 그렇게 승리 예기를 그렇게 많이 할까요? 저도 솔직히 멤버들 얘기하고 그러면 밤새울수 있어요. 근데 전 안해요. 저는 저를 깎아내리면서 뭔가를 얘기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제 이미지상 제가 을 깎아내리며서 얘기하면 "승리가 뒷담화 하네, 승리는 뒷담화를 좋아하는 애구나" 이렇게 되더라고요. 반면 멤버들이 저를 얘기했을 때는 "아, 승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게 달라요. 멤버들은 제 얘기를 해도 되고...
          * 대성: 7장인가, 거기에 저하고 승리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옥상에 올라가선 진지하게 우리를 돌아보며 화이팅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사실 제 경험과 무관하진 않죠. 저도 비주얼이 안된다, 실력이 모자란다 이런 얘기 많이 들으면서도 힘들게 연습하고 몰래 아픔 같은 걸 겪기도 했거든요.
          * 일본어 실력이 상당하다. 개요에 서술되어 있듯 사키가케, 자의 요리 등의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기도 했으며(AKB48 멤버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보면 일본인으로 착각할 수준. 한 재일 교포에 따르면 승리는 일본 표준어 뿐만 아니라 사투리[* 일본의 간사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칸사이벤]])다.]도 어색함 없이 잘 해, 정말 원어민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오버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해서 듣기 민망하다는 반응도 있다. 승리의 일본 방송을 끝까지 볼 수 있는 팬은 없다 카더라.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지 15년 MAMA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총 4개국어로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 4개국어 수상 소감은 16년 [[골든디스크 시상식|골든디스크]] 등 각종 시상식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골든디스크 시상식의 경우 분명 한국에서 상을 받으면서도 '''한국에 계신 [[VIP(빅뱅)|VIP]] 여러분''' 이라고 --해 팬들을 [[안습]]하게-- 했다. --얼마나 한국에 안 왔으면-- --한국에 계신 VIP가 습관이 되었을까-- 그리고 데뷔 10주년 '''국내''' 콘서트에서는 가득 찬 팬들을 향해 VIP '''재팬''' 이라고 말했다. 팬들이 '아아~ 승리야~' 라는 식으로 야유하자, ' '''VIP 제 팬''' 이라고요!' 라고 이야기 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속이 상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와중에 환호하며 소리지른 섬녀...~~ 그러나 빅뱅 내에서 승리가 가장 팬 서비스가 좋고 한국 팬을 가장 아끼기에 최근 일본 스케쥴을 많이 돌며 습관처럼 입에 붙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유행어와 신조어에 민감한 승리가 오죽 해외 스케쥴을 많이 뛰었으면 '히트다 히트'를 모를까...
  • 오창경 . . . . 14회 일치
         * 《이사》 (2014년) - 편 역
         * 《[[숫호구]]》 (2014년) - 커플
         * 《[[쪽으로 튀어]]》 (2013년) - 파출소 경찰 1 역
         * 《[[이웃집 자 (2010년 영화)|이웃집 자]]》 (2010년) - 이 과장 역
         * 《[[날아라 펭귄]]》 (2009년) - 지나던 차량
         * 《[[나의 친구, 그의 아내]]》 (2008년) - 이웃
         * 《[[열혈아 (2006년 영화)|열혈아]]》 (2006년) - 우체국 직원 역
         * 《[[간 큰 가족]]》 (2005년) - 분식점
         [[분류:1975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윤채경(가수) . . . . 14회 일치
         ||<bgcolor=#FF69B4><:>'''{{{#ffffff 출생}}}''' ||<(> [[1996년]] [[7월 7일]] ([age(1996-07-07)]세), [[경기도]] [[성시]][* 일단은 출생지가 서울특별시 출생이다. 그 이후에 [[경기도]] [[성시]]로 이사를 가서 성장하였다. 본인 또한 인천보단 성을 출신지로 생각하고 있다.] ||
         '''[[I.B.I]]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멤버'''[* 실제로 [[I.B.I]] 멤버들을 보면, 하나같이 눈물날 정도로 안 끝나는 불운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해인(1994)|이해인]]은 새로운 소속사를 찾았으나 공황장애 때문에 스스로 나와야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마지막 걸그룹 도전이라고 했던 [[아이돌학교]]에 도전했으나 끝내 최종 문턱에서 탈락한 후 서바이벌 은퇴를 선언하고 근황이 묘연하다. [[한혜리]]의 경우 [[스타제국]] 자체가 이미 망해 가고 있는 기획사인 데다가 [[올망졸망]] 데뷔가 무산되어 2017년 7월 25일 스타제국과 결별한 후 재기를 노리며 [[믹스나인]]에 출전했지만, [[빅뱅(아이돌)|빅뱅]] [[승리(빅뱅)|승리]]에게 큰 혹평만 받고 [[광탈]]의 수모를 당함과 동시에 실력 문제가 제대로 까발려지면서 [[프로듀스 48]]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사실상 끝났다. [[이수현(1996년 9월)|이수현]]은 소속사가 공중분해되어 예정되었던 걸그룹 데뷔가 무산됐고, 더군다나 [[펜타곤(아이돌)|펜타곤]] [[홍석|양홍석]]과의 열애설 해프닝까지 불거지면서 본인의 이미지도 급추락한 후 역시 근황이 묘연하다. [[김소희(1995)|김소희]]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긴 했으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여성 솔로 가수가 성공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고, 더불어 동 시기에 '''[[레드벨벳|너무]] [[EXID|강한]] [[TWICE|상대]]'''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주 깔끔하게 [[버로우]]. --차라리 [[THE iDOLM@STER.KR|아이돌마스터]] [[리얼걸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실제로 김소희 외에 [[프로듀스 101]] 출전자들 중 [[김주나]], [[황인선]], [[강시라]]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뚜렷하게 족적을 기지 못하고 있으며, [[NCT]] / [[세븐틴(아이돌)|세븐틴]] / [[마마무]] / [[에이핑크]] / [[레드벨벳]] /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 [[오마이걸]]과 엠카 및 쇼챔에서 맞짱뜬 '''[[청하(가수)|청하]]'''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단, 절대적으로 보면 [[I.B.I]]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멤버가 채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I.B.I 출신 중 상대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아진 멤버라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려서 [[김소희(1995)|김소희]]라는 의견도 많다. 윤채경의 경우 퓨리티 - 카프 등을 이어오면서 얻어온 인지도 및 팬층이 적지 않게 있고 나름 중요성을 인정해 DSP에서도 계약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이나 I.B.I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데뷔했거나, 예능출연 등 방송인으로 나갔을, 즉 지금만은 못해도 나름 연예인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소희의 경우 프듀 출연이 아니였다면 영원히 일반인으로 았을(즉 대중들이 전혀 몰랐을) 확률이 높다. 잘해 봐야 타인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던가 타인의 뮤비에 단역으로 나오던가.]
         2016년 4월 4일 저녁, DSP에서 4월 5일에 [[허영지]], [[조시윤]]과 함께 네이버 [[V LIVE]]을 진행한다는 [[https://twitter.com/official_DSP/status/716923020594380801|트윗 공지가 올라왔다]]. 윤채경의 얼굴이 밝은 것으로 보아 [[프로듀스 101]]에서 탈락한 이후 마음을 많이 다스린 모양. 일단 아무런 소식이 없던 중에 [[DSP미디어]]가 깜짝 이벤트를 열어주어 윤채경의 팬들은 신나서 [[DSP미디어]]를 찬양하였다. [[http://vlive.tv/video/7091|♥영지가 생생하게 전하는 ★시윤x채경★의 모든 것]] ~~어서와. [[에이젝스|자들]]이 [[PICK ME]] 춤 추는것은 처음보지?~~[* 에이젝스 멤버들이 [[PICK ME]] 댄스 도중 난입하여 같이했다. ~~[[DSP미디어]]가 갑자기 신경 쓰네?~~] [[V LIVE]] 방송 중 즉흥적으로 하트 150만개 공약 '''홍대에서 [[PICK ME]] 댄스'''가 성사되었다. --영지의 빅픽처, 설계갑, 찬양해 갓영지-- 하트 수는 방송 종료 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4월 7일자로 누적 200만을 돌파했다.
          C.I.V.A 첫 번째 행사곡 녹음을 진행하다 김소희와 함께 귀신몰카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러나 펑펑 울었던 김소희와 달리 윤채경은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이현우와 이지혜가 LTE에 방문하여 이상민과 C.I.V.A 멤버들을 만난다. 가수는 예능을 나가면 안된다는 이상민 대표의 말에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백미. 이상민과 진영이 연기 트레이닝을 하면서 드라마 《차칸자》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2017년 6월 5일 XTM <잡합다식한 자들의 히든카드 M16>에 출연했다.
          * 항상 같은 검은 체크 방만 입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각각 다 다른 방이라고 대답했다. (2016년 4월 8일 V앱)
          * 가장 기억에 았던 무대는 --모두가 예상했듯이-- '다시 만난 세계'. (160420 온스타일 기부티크 E05)
          * [[이민호(1987)|이민호]]의 열렬한 팬으로 연예인 중에 이상형을 물어보면 항상 이민호라고 대답한다. [[꽃보다 자(KBS)|꽃보다 자]] 때부터 이상형이 바뀐 적이 없다고.
         [[분류:퓨리티]][[분류:C.I.V.A]][[분류:I.B.I]][[분류:APRIL]][[분류:1996년 출생]][[분류:성시 출신 인물]][[분류:프로듀스 101/참가자]][[분류:아이돌 리더]]
  • 이갑성 . . . . 14회 일치
         그의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고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아호는 연당(硏堂).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1년]] [[신간회 사건]]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 시|상하이]]로 망명,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다. [[1940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하다가 [[윤치호]]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다. [[1945년]] 독립촉성국민회의 조직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고 [[1947년]]에는 [[조선 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으며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50년]] [[제2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뒤 [[1952년]] [[이승만]]의 친위조직이 된 [[대한인 국민회]] 회장을 지냈고, 그해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에 입당, [[1952년]] [[10월]] [[한국 전쟁]] 중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임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역임했다. [[1953년]] 자유당의 최고위원, 정무부장을 역임하였다. 4.19 혁명 후 야인으로 생활하다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발기위원이 되었다. [[1965년]] [[광복회]] 회장을 지냈다.
         [[경성부]]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대문교회]] [[함태영]] [[전도사]]를 만나 [[함태영]] [[전도사]]의 집에서 하숙하면서 [[그리스도 신문]]을 배달하였다. 그뒤 신문을 보던 한 선교사의 추천으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를 만나 [[1906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3·1 운동]]이 일어날 때는 병원 제약부 담당으로 재직 중 [[민족대표 33인]]에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원로격인 33인과 학생들과의 매개 역할을 맡아 학생 시위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0일]] 밤 [[서울]] [[대문로]]5가의 함태영 집에서 [[함태영]], [[현순]](玄楯), [[안세환]], 오상근(吳尙根) 등과 만나, 3월 1일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2월 22일]] 학생들이 따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이를 중지하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여 성사시켰다. [[2월 27일]] [[박희도 (1889년)|박희도]], [[함태영]](咸臺永), [[김창준]](金昌俊), [[신석구]](申錫九), [[오화영]](吳華英), 이인한(李寅煥), 최성모(崔聖模), 이필주(李弼柱), 박동완(朴東完) 등과 함께 이필주의 집에 모여, [[함태영]]이 [[최선]](崔南善)이 기초한 여러 가지 문서의 초안을 [[천도교]]계 인사 [[최린]](崔隣)으로부터 받아와, 그 취지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2월 28일]]에는 목사 [[김창준 (1890년)|김창준]]에게 [[함태영]]이 인쇄한 독립선언서 900매 중 약 600매를 받은 뒤 이를 다시 인쇄하고, 그날 5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설(李容卨)에게 교부하여 인쇄하게 한 뒤 학생들에게 돌리게 하였다. [[3월 1일]] 아침 일찍 이갑성은 독립선언서를 수천 장 인쇄하여 400여매를 병원 사무실에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이용상]](李容祥)에게 주어, 그중 200매는 대구의 목사 [[이만집]](李萬集)에게 보내고 나머지 200매를 [[마산]]의 독립운동 동조자 임학찬(任學瓚)에게 보내도록 한다. 또한 학생 [[김병수]](金屏沫)에게는 [[전라북도]] [[옥구군]]에 있는 [[박연세]](朴淵世) 등에게 보내기 위해 200매를 주었으며, [[충청도]] [[천안]]에서 올라온 [[임영신]]에게도 일부 배포하고, [[경성부]] 강기덕(姜基德)에게 천500매를 주어 배포케 한다. [[2월 28일]] 밤 [[경성부]] 재동(齋洞)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모인 손병희 등의 민족대표들은, 당초에 독립선언 장소로 결정했던 [[파고다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다시 그 장소를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으로 정하였다.
         }}</ref> 하지만 밀정 혐의의 특성상 세월이 흐른 뒤 근거를 찾기 힘들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가 되어 버린데다,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의혹만 았을 뿐 명확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1947년]] [[10월]] [[미군정]]이 설치한 [[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에 출마하여 당선, 그해 [[12월]]부터 [[조선과도입법위원회]] 의원을 지냈다.
         이때 [[김규식]](金奎植) 등의 좌우합작에 협력하던 중 그뒤 단정 수립론과 북협상론이 나오자 [[이승만]]의 단정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48년]] [[3월]] [[미 군정]]청 군정장관 딘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임명되었다. [[1948년]] [[5월]]에는 [[이승만]]의 친위조직화된 [[대한인국민회]] 소속으로 대구에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를 지도, 운영하였다.
         [[서울]] [[대문교회]](南大門敎會)에 오래 다녔으며 대문교회의 장로로 장립되었다.
         * 송헌, 한국현대정치사 1(성문각, 1980)
         |전임자 = (대구부 갑)[[최윤동]]<br/>(대구부 을)[[서상일]]<br/>(대구부 병)[[백채]]
         [[분류:1889년 태어]][[분류:1981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국의 약학자]][[분류:한국의 약사]][[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종교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의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약사]][[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민족대표 33인]][[분류:대한민국 임시 정부]][[분류:한국의 군정기]]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4회 일치
         |청소년 클럽= [[포항제철중학교]] <br/>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br/> [[영대학교]]
         [[포항 스틸러스]]의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쳐, [[2009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우선 지명 받은 뒤 [[영대학교]]에 진학하였고, [[2012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8일]] [[성 FC|성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후로도 [[6월 27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전과 [[7월 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에서 1도움씩을 기록했고 팀의 [[FA컵 2012]] 우승에도 일조했지만 7월 1일 이후로 공격 포인트가 없어 "출장 수로만 신인왕 후보"이라는 비아냥을 받다가 10월 28일 [[경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골을 기록했고 신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 MVP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 11월 1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전 1골, 11월 25일 [[경 FC|경]]전 1골 1도움, 11월 29일 [[FC 서울|서울]]전 2도움, 12월 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수원]]전 1골을 터뜨리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많은 5골 6도움 11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이명주는 [[12월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광주 FC]]의 [[이한샘]], [[전 드래곤즈]]의 [[박선용]]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치고 [[K리그 영플레이어상|신인 선수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대상) ‘신인왕’ 이명주 “포항의 축구스타일, 나랑 잘 맞았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45236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2-12-03}} }}</ref>
         [[K리그 클래식 2014|2014 시즌]] 2라운드 [[부산 아이파크|부산]]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였으며, 이부터 12라운드 [[전 드래곤즈|전]]과의 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할 때까지 총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5골 9도움)를 기록하며 리그 신기록의 위업을 달성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1골 2도움' 포항, 전 3-1 꺾고 선두 질주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776580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4-05-10}} }}</ref>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문식(배우) . . . . 14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양주시]] ||
          * [[자이야기]]
          * [[연동 539]] - 조단 역
          * [[훈정음]] - 유승렬 역
          * [[간첩 리철진]] (1999년)[* 양주 출신 택시 강도 역으로 나왔었다.]
          * 집 나온 자들 (2010년)
         ||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우조연상 || [[범죄의 재구성]] ||
         ||<|2> 2008년 || [[SBS 연기대상]] || 드라마스페셜부문 자 조연상 ||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 ||
         || [[MBC 연예대상]] || 코미디 시트콤부문 자 최우수상 || [[그 분이 오신다]] ||
         || 2011년 || 제33회 황금촬영상 || 우인기상 || [[평양성(영화)|평양성]] ||
         || 2013년 || 제8회 서울드라마어워즈 || 자연기자상 || 상권이 ||
         || 2015년 || [[MBC 연기대상]] || 연속극부문 베스트 자 조연상 || [[엄마(드라마)|엄마]] ||
         [[분류:양주시 출신 인물]][[분류:1995년 데뷔]][[분류:한국 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이준(배우) . . . . 14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과거에 동명의 예명을 사용한 1984년생 자배우, rd1=이인(배우))]
         [[무한도전]]에서는 조정 특집 당시 제 8, 9, 10의 멤버를 뽑는 자리에 박명수의 전화를 받고는 '''뭐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무한도전이라는 말에 덥석 낚여서''' 참여하게 되었다. 제 8의 멤버로 낙점된 진운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게스트들에 비해서는 확실한 인상을 겼다. 역시나 멀쩡해보이는 비주얼과, 완주 할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는 달리 10분도 못 버티는 조루 체력으로 선방.
         그리고 런닝맨 연출진들의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해 7월 22일자 [[런닝맨]]에서는 그룹 멤버들을 빼고 단독 출연했다! 여기서도 이동 중에 혹시 스파이가 아니냐는 아이돌팀 멤버들의 의심에 '''"내가 그럴 급이 아냐!"'''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어머니 나이를 왜 공개하냐는 정용화의 핀잔에 '''"우리엄마 나이 내가 공개하는데 왜?"'''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다. 중간 미션인 뜀틀 배구대에서는 쓸데없이 높게 뛰는 퍼포먼스를 발하다가 자신에게 날아온 배구공을 제대로 토스하지 못해 팀을 패배하게 만들었다(마침 그게 런닝맨팀의 매치포인트 경기였다). 최후의 추격전에서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를 피해 달아나다 [[김종국/런닝맨|호랑이]]를 맞닥뜨려서 또 다시 '''"오와아아아아악!"'''이라는 비명을 기고 횡사.[* 뒤에서 추격해오던 하하까지 기겁했다.] [[단말마]]가 무엇인지 시범을 보이면서 본의 아니게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짠돌이 기질이 있어서 에어로빅복 26 만원에 정색했지만 리지에 의해 카드결제하면서 동료들에게 이만큼 써본적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번 만에는 직접 손편지를 쓸 정도였지만 리지가 고마워하며 칭찬해 주어서 이준의 기를 살려주었다.
         2015년 2월 23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SBS]] [[월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드라마)|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인상]] 역으로 출연 중. 여기에서는 제대로 된 찌질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2016년 3월 방영한 [[OCN]]의 오리지널 시리즈 [[뱀파이어 탐정]]에서 주인공 윤산 역을 맡았다. 같이 출연한 배우[* 오정세, 이세영]들과 잘 어울렸으나 예상보다 기억에 을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얘기할 때 오빠가 얘기하잖아~ 혹은 오빠가~하는 말버릇이 있다. ~~근데 대화상대는 자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마치 [[싸이월드]]처럼 사용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퍼가실땐 퍼가요 물결 하트를 기라고 한다~~ 일단 프로필부터가 사이좋은 사람들 이준월드...
         || 2015년 || [[손님]] || 수 || ||
         ||<|4> 2011년 ||<|2> [[SBS]] || [[샐러리맨 초한지]] || 백여치 자친구 || 특별출연 ||
         || 제8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자 우수연기상 ||<|2> 풍문으로 들었소 ||
         || 제4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엠블랙]][[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1988년 출생]][[분류:북구(대구) 출신 인물]][[분류:2009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이지아(배우) . . . . 14회 일치
         || '''가족''' ||<(> 조부: [[김순흥]][br]형제자매: 1 3녀 중 [[3녀|셋째]][* 동생은 본인과 성이 같으며, 위로 두 언니는 성이 다르다고 한다. 즉 [[이부형제]].][br]前 배우자: [[서태지]](1997년 ~ 2006년)[[http://www.youtube.com/watch?v=opEBfpCcdtM|#]] ||
         스캔들 5개월 후 [[2011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나도 꽃]]의 여주인공 순경 차봉선 역을 맡았다. 아래 후술된 스캔들의 여파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빨리 현장에 복귀한 셈이다. 이때까지 드라마에서 이지아와 함께 출연한 배우는 배용준-김명민-김혜수-정우성으로 죄다 연기대상 수상자이고 정우성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미 배우로 이름을 알렸었다. [* 다만 정우성과 출연할 당시엔 드라마의 메인 히로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역은 [[윤시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쟁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임팩트가 워낙 독보적이라서 예상보다 그렇게 화제를 모으진 못했다. 배우의 연기나 드라마 자체는 그럭저럭 입소문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으나 [[영광의 재인]]과 [[뿌리깊은 나무]]와의 경쟁에서 시청률 참패를 당하면서 조기 종영되었다.
         2011년 12월 19일 이지아의 집안이 육영사업을 하던 재력가이며 '''덕망 있는 명문가'''라는 [[언플]] 기사가 떴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은 이지아의 조부가 재력은 물론 다른 인품의 소유자였고 자손인 이지아 부친에 이어 이지아 역시 유복하고 뼈대 있는 가정환경 속에서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인터뷰했다.
         물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게 이지아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친일파를 덕망 있는 가문이니 할아버지가 부자였기에 이지아도 해외에 유학가고 풍족하게 살았다는 등의 자랑 언플질을 한 것은 쉴드 불가능이라 그야말로 가루가 되듯이 까였다. ~~[[서태지|전 편]]은 심지어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명문가랍시고 언플한 가문이 수탈의 주범인 친일파임이 밝혀지고 나서 비수로 돌아왔기 때문에 욕을 먹은 것으로 애초에 이지아측과 기획사가 신비주의를 타파하겠답시고 가문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며 명문가라고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도 몰랐을 일을 자기들이 나서서 시원하게 까발린 셈이다. ~~사진 자작극에 이어 또다시 병크 적립~~ 이지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혼 사건이 모두 종결된 지금은 서태지와의 일보다는 이 친일 논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이지아는 사과를 한 상태이긴 하다.
         생각해 볼 것은 '''대한민국은 헌법상 [[연좌제]]가 없는 국가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직접적으로 옹호한적이 없거나 조상이 친일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부와 권력을 부당하게 물려받고 국가에 반환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공격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덕망 있는 명문가, 다른 인품의 소유자는 옹호 아닌가......?~~
         2011년 3월 20일 마침내 열애설이 공식 인정되면서 [[정우성]]을 자친구로 둔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결혼까지 가면 레알 승리 입증. [[장동건]]을 잃은 데 이어 여성들은 뒷목잡고 쓰러졌다.
         2011년에 했던 소송은 이혼소송이 아닌 위자료 및 재산 분할소송으로 이지아는 국내법에 따라 2009년 이혼 성립을 주장, 서태지는 미국법에 따라 2006년 이혼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지아측 발표에 따르면, 이지아가 만 15세 때(1993년) 팬과 스타의 만으로 서태지와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태지가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에서 서태지를 만나 친언니의 증인참석으로 결혼에 골인한다. 어쨌든 그녀와 연관성이 짙은 자만 해도 [[서태지|한국 굴지의 대중 뮤지션]], [[배용준|전설적인 한류 탤런트이자 사업가]], [[정우성|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 배우]]이다.
         비판하는 여론의 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정우성을 속인 것은 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하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 자신을 굳이 이혼녀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만, 전 편과의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애를 한 것은 경솔하다는 주장. 덕분에 애꿎은 정우성만 졸지에 서태지와 이지아 사이에 끼인 꼴이 되어서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또 다른 것은 서태지에게 건 거액의 소송을 이유로 자를 등쳐먹으려는 [[악녀]]라고 하는 것이다.
         SBS [[힐링캠프]] (2014.8.11) ~~ 여기서 '''[[서태지|전 편]]'''을 디스 했다.~~ 출연 전부터 광복절 앞두고 친일파 후손을 부르다니 제정신이냐며 힐링캠프의 섭외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반대로 이지아의 팬들은 방송 전부터 문제없다고 주장하며 포털 사이트를 옹호 댓글로 도배했다. 방송 후 댓글란에선 같은 여자로서 동정한다는 등 주로 여성층이 이지아의 불운한 결혼생활을 동정한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네이트, 다음 등 댓글란만 보면 매력적이라며 감탄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대다수 초 성향 커뮤니티들과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선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더 많았다. [* 일부 여초 커뮤니티에서 비판적인 것은 할아버지의 실체를 알린 글이 석연찮은 이유로 삭제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 이현우 (가수) . . . . 14회 일치
         | 가족 = 자녀는 슬하 2 <br/> 형제자매 관계는 2 2녀 중 차 <br /> 친척 관계는 5촌 당숙 [[이경영 (1960년)|이경영]](영화배우)
         * 2005년 《[[B형 자친구]]》 - 소개 역(우정출연)
         * 《[[이야기쇼 만]]》[[MBC]]
         * 2001년 《위기의 자》ost -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분류:196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장재인 . . . . 14회 일치
         || '''출생''' ||<(> [[1991년]] [[6월 6일]] ([age(1991-06-06)]세), [[전라도]] [[강진군]] [* [[http://m.ebn.co.kr/news/view/767918/?pcv=0|장재인 "술 잘 먹고 홍어삼합 좋아한다"…송대관 '깜놀']]][* 선배 [[싱어송라이터]]인 故[[유재하]], [[손동운]]과 생일이 같다.] ||
         || '''가족''' ||<(> 1 1녀 중 막내 ||
         심성은 착하기 이전에 여려서, 본선무대에서 친한 친구들이 탈락할 때마다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과, 중학교 때 같은 자를 친구랑 같이 좋아하게 됐는데, 친구가 좋아하니까 안 좋아하는척 했다는 등... 여러모로 여리면서도 약간은 바보같은(?) 성격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선 본인은 절대로 여리고 우울한 성격이 아니라고 밝혔다. 꽤나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고. --근데 띠방한 건 부정하지 않았다.--]
         성 팬들 못지않게 여성 팬들도 꽤나 있어서 팬들의 성비는 어느 정도는 맞는 듯. 그리고 팬들의 연령대가 다양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삼촌 팬이 많다--
         그룹미션에서는 '''원더걸스의 2 different tears'''를 불렀다. 장재인과 홍화가 합격했는데, 전체적으로 다들 아쉬운 모습을 보인 상태에서의 합격이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합격한 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합격 후 나와서 서글프게 울었다.
         라이벌미션에서는 장재인이 들고온 서인영의 신데렐라로 미션곡을 결정했다. (김지수는 --발치몽--의 i love oh thank you를 들고 왔는데, 랩 파트 편곡의 어려움을 감안, 결국 장재인이 들고온 신데렐라로 정해졌다.) 그런데.. 둘 다 이 노래를 잘 몰랐다는 게 문제(....). 결국 들 다 연습 다해갈 때 코드 따고, 편곡하는 데 시간을 대부분 써서 연습을 제일 늦게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걱정을 했었는데...
         첫 사전투표 결과, 장재인이 2위 김지수하고도 많은 표차로 첫 사전투표 1위를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생방미션인 ''' '리메이크 미션' '''에선 '''진의 님과함께'''를 색다르게 소화하여 93(승), 98(엄), 97(윤)의 점수를 받고 '''첫 슈퍼세이브'''의 영광을 안았다. 윤종신의 '좋은 가수가 될 것 같습니다'라는 발언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방송이 끝난 후, 윤건이 '귀인 장재인, 넌 소름이였어.'라고 트위터에 쓴 글도 화제를 낳았다. 장재인 내정설이 슬슬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 공중파 첫 데뷔, 세 번의 만 (2011.1.22) ==
         다른 슈스케 출신 가수들이 공중파 음방으로 첫 데뷔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근데 허각은 뉴스로 첫 데뷔를 하긴 했다..] '다큐멘터리로 첫 데뷔'라는 특이한 케이스여서 더 주목받았다. 출연 다큐는 새로 시작한지 얼마 안된 KBS 다큐 '[[세 번의 만]]'.[* 세 번의 만은 말 그대로 대상과 세 번 만난다(...). 세 번 만을 거듭하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가는 심플하면서도 촬영대상에게 모든 게 집중되는 다큐 형식. 첫 회는 영화인 김수로가, 그 다음은 레슬러 김훈이 촬영대상이었다. 장재인은 '세 번의 만'의 '세 번째' 타자인 셈.]
          04. 그댄 너무 알기 쉬운 자야
  • 청송군 . . . . 14회 일치
         '''삼'''자현 ''''''쪽의 현동면, 안덕면, 현서면의 세개 면을 묶어 삼지역이라고도 하는데, 여기는 청송읍을 가려고해도 삼자현이라는 고개를 넘어야 하고, 포항, 안동, 의성, 영천 모두 고개를 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 대신에 35번 국도 버프로 안동과 영천방면으로는 각각 마사터널, 노귀재터널이 완공되어 있고, 삼자현 고개에는 터널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농어촌버스]]는 [[청송버스]]에서 운행한다. 하지만 진보-청송이나 청송-주왕산 같은 몇몇노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오지(지리)|오지]][[노선]]... 특히나 현서면, 안덕면, ~~현동면~~[* 2017년 개편으로 현동에서는 청송읍으로 가는 농어촌버스가 생겼다. 1일 2회 운행(..)]의 삼지역에서는 농어촌버스로 청송읍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여기서 청송읍에 가려면 청송-대구 [[아성고속|시외]][[천마고속|버스]]를 타야한다. 그런데 현서면에는 [[의성여객|의성군 농어촌버스]]와 [[안동 버스 28|안동시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의성군과 안동시로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지역 사람들은 청송읍보다는 영천, 의성, 안동, 포항 멀리는 [[대구광역시]]로 많이 나간다.
         [[농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고추]]가 있다. 실제로 [[청양고추]]가 [[충청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의 '[[청]]', [[영양군]]의 '[[양]]'을 따서 이름지었다는 [[가설]]이 있다. [[청양고추]] 문서 참고. 그 외에도 [[담배(식물)|담배]]와 [[파프리카]], [[야콘]]등이 있다.
         ||6||부초등학교|| 부면 부로 509||
         ||5|| ||구천중학교|| 부면 부로 523 ||
         ||6|| || 청송자동차정보고등학교[* 자동차계열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 부면 대전로 66 ||
         || '''부면''' ||<:>14.63%||<:>{{{#C9151E 63.12%}}}||<:>13.12%||<:>5.17%||<:>2.61%||<:>{{{#808080 ▼48.49}}}||<:> '''77.35''' ||
         || '''면 지역'''[* 부동면, 부면, 현동면, 현서면, 안덕면, 파천면, 진보면] ||<:>15.05%||<:>{{{#C9151E 63.60%}}}||<:>12.30%||<:>5.10%||<:>2.55%||<:>{{{#808080 ▼48.55}}}||<:> 75.19 ||
          * 관 (1913~1990): 화가
  • 최문식 . . . . 14회 일치
         |클럽=[[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 / 포항 스틸러스]]<br />→ [[국군체육부대|상무]] (군복무)<br />[[전 드래곤즈]]<br />[[오이타 트리니타]]<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감독 클럽=[[포항제철중학교]] <br />[[포항 스틸러스]] (2군 감독)<br /> [[전 드래곤즈]] (수석 코치)<br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br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수석 코치)<br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수석 코치)<br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감독대행) <br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수석 코치)<br /> [[대전 시티즌]]<br />[[옌볜 푸더]] (수석 코치)
         동대부고를 졸업한뒤 대학진학 대신 [[1989년]] [[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 고졸신인 최문식은 [[포항 스틸야드]] 개장 경기에서 첫골을 기록하였고, [[1989년]] [[성 FC|일화]]와의 경기서 경기 종료 10초전 극적인 오버헤드킥 동점골을 기록한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군대를 갔다온 2년을 제외하고 [[1998년]]까지 포항에서 뛰었음은 물론이고 기술력 있는 축구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위주의 축구와 정확한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포항의 공격진을 책임졌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 FIFA 월드컵|1994년 미국 월드컵]]과 [[1994년 아시안 게임|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였고, 월드컵 출전 직후 합류한 첫경시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포항의 [[아디다스컵]] 우승을 이끌었다.
         [[1999년]] [[전 드래곤즈]]로 이적한 최문식은 [[광양 축구 전용구장]] 개장 경기서도 첫골을 기록하며 포항에 이어 전에서도 홈구장 개장 경기 첫골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2000시즌까지 2년 동안 65경기에 나서 11골, 8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으며,그 중 40경기을 90분 풀타임으로 뛰었다.
         2000 시즌까지 전에서 뛰며 제 몫을 해냈던 최문식은 2001년 일본진출을 모색했으며,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로 전격이적하였다.
         [[2011년]] 한 해동안 [[전 드래곤즈]]의 수석 코치를 역임한 뒤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며, [[2012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8강에 [[우즈베키스탄]]에 패해 대회 우승이 좌절되었다. 대회 직후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에 부임해 이광종을 보좌하여 [[2012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한국의 12번째 우승과 더불어,[[2013년 FIFA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하였으며, [[2013년 FIFA U-20 월드컵]] 8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다.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국기그림|대한민국}} [[전 드래곤즈]]
         {{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상무 축구단 (실업)의 축구 선수]][[분류:전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감독]][[분류: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코칭스태프]][[분류:K리그2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전 드래곤즈의 코칭스태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킹덤/523화 . . . . 14회 일치
          * 하지만 몽념은 이 제안을 "웃기지도 않는다"며 일축하는데, 그건 자기보다 "그럴 바엔 먼저 넣어야 할 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 몽념이 염두했던 자, [[왕분]]은 진군 우익에 배치되어 조군 좌익 [[조아룡]], [[마자]], [[악영]]의 3만 병력과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 조군 좌익은 선봉을 맡는 문제로 장수들 간에 작은 신경전이 벌어진다. 악영은 안면이 없는 조아룡, 마자를 신용하지 못한다.
          * 그러나 마자는 [[이목(킹덤)|이목]]의 부관을 맡은 검증된 인물이었으며 조아룡은 전 삼대천 [[인상여]]의 측근이었던 인물로 역시 대단한 인물.
          >날 넣을 바에야 그 전에 먼저 넣어야 할 자가 있지 않습니까? 왕전 장군!
          * 몽념이 염두했던 자, 왕전의 아들인 [[왕분]]. 그는 [[아광]]과 함께 진의 우익에 배치되었다. 총 2만 5천 병력. 언덕 위에서 교전이 벌어질 벌판을 바라보는 왕분. 지평선 너머로 다가오는 조군 좌익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보였다.
          * 조군의 좌익은 총 3만 병력에 보기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맹장 셋이 배치되었다. 우측부터 [[조아룡]], [[마자]], [[악영]]이 그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셋을 한 군으로 편성한 [[이목(킹덤)|이목]]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역시나 시작부터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봉을 누가 맡는지 문제를 놓고 악영이 먼저 나서며 다른 두 장수를 무시했다. 마자는 자기가 말을 꺼냈는데 냉큼 악영이 받아먹으려 들자 그를 "창쟁이"라 부르며 뭐하는 짓이냐 따졌다. 악영이 차가운 태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둘에게 이 전장의 첫 칼날을 맡길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조아룡이 중재했다. 우선 악영이 마자를 잘 모른다고 했으나 그럴 리는 없다. 마자는 대단한 체격의 거한이면서 그 이목의 부관을 맡을 만큼 검증된 인물. 악영이 그 개인과 친분이 없을 지라도 그를 "보통내기"로 여기고 있을 리 없다고 지적한다. 악영도 그 지적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이번엔 조아룡을 두고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냐고 험한 소릴 입에 올린다. 조아룡은 쓴웃음을 짓고 말이 심하다고 할 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선전하지 않았다.
          * 그에 대해서는 마자가 입을 열었다. 조아룡은 전 삼대천인 [[인상여]] 장군의 측근. 중앙군의 [[요운]]과 더불어 오랜 세월 왕도권의 질서를 지켜온 숨은 강자였다. 마자의 입에서 인상여의 이름이 나오자 악영도 그를 달리본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조아룡은 전 삼대천 [[염파(킹덤)|염파]]의 사천왕 [[윤호(킹덤)|윤호]], [[개자방]]과 동렬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굳이 여기서 서열과 실적을 논한다면 악영은 이들 틈에 낄만한 인물이 못 됐던 것이다.
          >저것이 아버지 왕전에게 가장 큰 신뢰를 받는 자, 제 1무장 아광입니다!
  • 한무숙 . . . . 14회 일치
         | 학력 = [[경여자고등학교|경상도 부산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 자녀 = 슬하 2 2녀 <br /> 장녀 김영기(金榮起) <br /> 장 김호기(金虎起) <br /> 차녀 김현기(金賢起) <br /> 차 김용기(金龍起)
         장편 작품으로는 [[한국방송]] 대하드라마로 각색되어 유명해진 《역사는 흐른다》 외에 《빛의 계단》, 《석류나무집 이야기》, 《만》 등이 있다. [[정약용]]의 삶을 주제로 한 《만》에서 보듯 한국 고유의 전통과 여인의 한에 대한 관심이 특징으로, 동양적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필집으로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이 외로운 만의 축복》, 《내 마음에 뜬 달》 등이 있다.
         사후에 편 김진흥(金振興)이 [[종로구|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고택을 개조하여 한무숙문학관으로 개관했다.<ref>{{뉴스 인용
         * 편: 김진흥(金振興, [[1916년]] [[6월 26일]] ~ [[2003년]])
         ** 슬하 2 2녀
         ** 장: 김호기(金虎起, [[1942년]] [[8월 20일]] ~ )
         [[분류:1918년 태어]][[분류:199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극작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삽화가]][[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경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한성식 . . . . 14회 일치
         * [[1996년]] 《[[고스트 맘마]]》 ... 직원 1 역
         * [[1998년]] 《[[자이야기 (영화)|자이야기]]》 ... 취객 역
         * [[1999년]] 《[[주유소 습격 사건]]》 ... 누비라
         * [[2003년]] 《[[북녀 (2003년 영화)|북녀]]》 ... 사회자 역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명희 . . . . 14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선]]과 [[정인보]], 최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으로, 아버지 홍범식은 대한제국의 관료로 [[경술국치]]에 치욕을 느껴 자결하였다. 설에 따르면 장 홍명희를 앉혀 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일본에 있는 대성중학을 다니다가 한일합방이란 비보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그밖에도 [[신간회]] 운동을 주도했고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대일보 사장, 오산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위당 [[정인보]]와는 사돈 지간으로, 홍명희의 며느리가 정인보의 딸인 정경완 씨이다. 정경완 씨는 해방 뒤 홍명희의 뒤를 따라 북한에 았고, 평양에 거주하고 있다.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했고 여운형 암살 후 지도자가 되기도 했으나 환경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실패했다. 결국 이후 월북했다. 월북 계기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김구]]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았다. 그의 월북 동기에는 '친일파들과 결탁하여 단독정부 수립운동을 강행추진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견해가 있다. ~~근데 [[김일성]] 정권도 핵심 실무인력에서는 친일 청산 안했잖아?~~
         한에서는 [[김일성]]과 친했던 점, 북한에서 죽을 때까지 잘 대우받은 점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1990년대 중순부터에서야 서서히 알려졌는데, 그의 이름을 재발굴하려던 국내 학자들도 홍명희와 더불어 [[이태준(소설가)|이태준]]이라든지 여러 월북 작가와 더불어 꽤 여러가지 골치아픈 문제를 겪은 바 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한용운]]과도 사이가 돈독하여 이광수, 최린, 최선 등의 창씨개명 소식을 듣자 한용운을 찾아가 "여보게, 만해. 이런 개같은 놈들을 봤는가?"하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한용운은 "이보게, 벽초. 그놈들은 개같은 놈들이 아닐세."라고 대답했고 무슨 소리냐고 따져묻는 홍명희에게 "개는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니 '''저놈들은 개만도 못한 놈들이 아닌가? 개가 자네 말을 들었으면 무척이나 섭섭해했을 걸세."'''라고 했다. 이에 벽초도 수긍하고 '''개에게''' 사과를 읊조렸다고.
         한용운이 홍명희보다 9살이나 많음에도 저렇게 서로 격의없는 것이 좀 의아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1, 2년 차이로도 형동생이 나뉘지만 당시에는 위아래로 10년 정도는 그냥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 年長以倍(연장이배) 則父事之(즉부사지) - 나이가 배나 더 많은 사람에게는 아버지 섬기듯 하고, 十年以長(십년이장) 則兄事之(즉형사지) - 십년이 더 많으면 형님 섬기듯 하며, 五年以長(오년이장) 則肩隨之(즉견수지) - 오년이 더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조금 뒤서서 따라간다. 群居五人(군거오인) 則長者必異席(즉장자필이석) - 다섯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하는 것이다. - 예기]그런데 홍명희의 장 홍기문은 아버지와 열다섯 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자기 친구가 알고보니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행사 때 아버지 친구이자 자기 친구인 사람이 오면 대하기가 꽤 곤란했다고.
  • 5분의 3 조항 . . . . 13회 일치
         하원의원 및 직접세의 배분에 사용되는 인구 계산에 있어, '자유민의 총수'에 '자유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숫자를 5분의 3만큼 더하여 계산한다는 규정이다. 여기서 자유민이 아닌 다른 사람이란 바로 부에서 노예제 하에 있던 [[흑인]] [[노예]]를 뜻한다.
         이는 부 측에서, 흑인 노예를 인구에 합산하여 자기 주(州)의 인구를 늘려 잡아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의회 의석을 주 마다 분배하는데, 노예 인구가 많은 부에서는 자유민 만을 인구수에 넣으면 부의 정치적 세력이 약체화 하기 때문이다.
         북전쟁 시기에 이 조항은 "미국 헌법이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는가?"하는 의혹과 논쟁을 낳게 된다.
         이 조항은 중대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 평소 부 사회에서는 흑인 노예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경우에는 흑인 노예를 '재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여기에서는 예외로 (5분의 3이긴 하지만) 인간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항에서는 흑인들의 머릿수를 부 주의 인구수로 합산함으로서 부 측이 명백하게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부의 백인들이 자신들이 노예로 부리는 흑인들의 투표권을 강탈해와서 자기들이 '대리투표'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부주에서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까지 노예화'''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북전쟁 이전까지 부는 이 조항에서 공공연하게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었으며, 북전쟁 이후로도 흑인 인구는 인구수에는 포함되었지만 [[쿠 클럭스 클랜]] 등의 투표방해 때문에 흑인들은 제대로 투표를 하지 못했으므로 민권운동으로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가 신장될 때까지 흑인들은 정치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었던 셈이다.
  • 김우중 . . . . 13회 일치
         |자녀 = 슬하 3 0녀<ref>장 김선재, 차 김선협, 3 김선용</ref>
         *** 장 : 김선재(金善宰, 1967년 ~ 1990년 11월 21일)
         *** 차 : 김선협(金善協)
         *** 삼 : 김선용(金善勇)
         광산김씨 김우중은 [[1936년]] [[12월 19일]]에 [[대구광역시|대구]]에서 김용하와 전인항 사이의 6매 중 4으로 태어났다.
         [[1960년]] 25세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한성실업]]에서 근무하다가, [[1967년]] 32세에 [[서울특별시|서울]]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설립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여 [[1970년대]] 초반부터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설하며 [[1974년]]에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며 신흥 재벌이 되었다. [[1981년]]에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1982년]] [[1월]]에는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4위에 올랐다.
         [[1989년]]에 펴낸 자서전인《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2년]] 제14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출마하려 했으나 [[김영삼]]의 압박으로 불발되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선포하였고 또한 김우중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1990년]] 장 선재를 잃고,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위기를 잘 넘기며 [[대우그룹]]을 [[1998년]]에 재계 2위로 이끌며 성장시켰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 구제금융]]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지만 [[일본]] 노무라 증권이 [[1998년]] [[10월 25일]]에 발표한 '[[대우인터내셔널|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 1장으로 사실상 [[대우그룹]]이 위기를 맞게 된다. 후에 계열사를 41개에서 4개업종 10개 회사로 구조조정 단행과 [[삼성그룹]]과의 빅딜도 추진하나 둘다 실패했다. [[1999년]] [[8월 26일]] 이미 구조조정으로 회사 41개중 16개가 매각되었고 은 25개 회사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였다. 당시 부채는 500억 달러였다. 당시 [[대우그룹]]은 금융부문을 중점으로두고 사업확장을 하여 내부적으로 부채가 많았다. 사실상의 그룹 해체였다. [[1999년]] [[11월 1일]] 김우중은 13명의 [[대우그룹]] 사장단들과 함께 경영포기 및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청|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주장과, 반대로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대우그룹]]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정치적으로 탄압했다는 설과 단순한 [[구조조정]] 실패라는 의혹이 있다.
         [[분류:193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우그룹]][[분류: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훈자]]
  • 대구광역시/인물 . . . . 13회 일치
         * [[김도균]] - 구(대구)
         * [[강문영]] - 구(대구)
         * [[박서준]] - 구(대구)
         * [[양준혁]] - 구(대구)
         * [[오대석]] - 구(대구)
         * [[안석환]] - 구(대구)
         * [[엄정화]] - 구(대구)
         * [[장희진]] - 구(대구)
         * [[정겨운]] - 구(대구)
         * [[정승호(1956년 12월)|정승호]] - 구(대구)
         * [[차오루]] - 구(대구)
         * [[하재숙]] - 구(대구)
         * [[한가인]] - 구(대구)
  • 변요한 . . . . 13회 일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종종 사진을 업로드한다. 주로 동료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화보사진, 촬영현장 등을 올리는데, ~~친짤용으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 특별출연 || 광은회 미행 ||
         ||<|3> [[2014년]] || [[우는 자]] || 조연 || 송준기 ||
         ||<|9> [[2012년]] || 범죄소년 || 단역 || 도너츠 손님 ||
         || 어떤 저녁★☆ || 주연 || 자 ||
         || [[2017년]] || 제37회 황금촬영상 || 자 베스트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 [[2016년]] || 제7회 [[올해의 영화상]] || 신인우상 || [[소셜포비아]] ||
         ||<|4> [[2015년]] ||<|2> [[SBS 연기대상]] || 장편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2> [[육룡이 나르샤]] ||
         || 제4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 신인우상 || [[미생(드라마)|미생]] ||
         || 제24회 부일영화상 || 신인자연기상 ||<|2> [[소셜포비아]] ||
          * 넷상에서는 일명 '변요한 패밀리'~~[[AKB48|BYH48]]~~로 불리는 연예계 친목 모임이 핫하다. 주로 독립영화나 대학 동기 등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같이 노래방에 가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등 ~~아주 건전하게~~ 친분있는 인사끼리 어울리는 듯하다. 이 무리들이 변요한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친짤들과~~ [[류준열]]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확 뜨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류준열]], [[지수(배우)|지수]], [[이동휘(배우)|이동휘]], [[김희찬(배우)|김희찬]], [[수호(EXO)|수호]], 이현욱, 권시현, 이기혁, 차영, 김동환 ~~일명 연예계의 어벤져스~~ 등 연극, 단편영화, 독립영화에서 보이는 다수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변요한 패밀리'라고 부르는 것은 변요한이 가장 먼저 떠서이기도 하고 사진 등이 가장 많이 올라오기 때문인 듯 하다. 영화 '글로리데이'와 관련한 연예가중계 인터뷰에서 류준열은 BYH48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변요한의 집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답변을 했다.[* 사실 이 별명은 자신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장난스럽게 부른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의 기원(...)은 앞서 서술한 이유가 더 신빙성 있다. 물론 여러모로 변요한의 인맥과 관련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류준열이 언급한 이유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변요한 패밀리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한 명씩 뜨고 있어 다음 차례는 누구일지 네티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있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86년 출생]][[분류:진안군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
  • 성시경 . . . . 13회 일치
         성시경은 [[1979년]] [[4월 17일]]에 [[대한민국]]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1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홍콩]]에서 산 적도 있었고, [[미국]]의 유명한 [[연예인]]인 [[머라이어 캐리]]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별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대입 입시생 시절이던 1999년 4월에 MBC 문화방송 시트콤 《[[자 셋 여자 셋]]》에서 엑스트라 단역급으로 첫 출연한 적이 있고 이듬해 [[2000년]] [[2000년 9월|9월]]에 열린 제1회 드림뮤직 신인가수 선발대회 "뜨악 페스티벌" 인터넷 오디션 "발악"을 통해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첫 번째 싱글은 2000년 [[2000년 11월|11월]]에 발매된 "내게 오는 길"이었다. [[2001년]] [[2001년 4월|4월]]에는 데뷔 앨범인 "처음처럼"이 발매되었고, 신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7개의 정규 앨범, 3개의 리메이크 및 스페셜 앨범, 1개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최근 [[일본]]에서 [[정규앨범]][[DRAMA]]발매 전 일본 4개도시 투어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현재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ref>{{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stview.php?no=2018030715133349170&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제목=성시경, NHK 한국어 강좌 프로 출연 "일본어도 능통"|출판사=스타뉴스|날짜=2018-03-07}}</ref><ref>{{뉴스 인용|url=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40901032939179001|제목=성시경 ‘일본 본격 진출’ 7개 도시 투어|출판사=문화일보|날짜=2018-04-09}}</ref>
         성시경은 데뷔 이후, 오랜 기간동안 감성적인 [[발라드 (대중 음악)|발라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8년]] [[6월 28일]]에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마지막 콘서트 이후, [[7월 1일]] 현역으로 [[강원도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102 보충대에 입대하였고, [[제1야전군 (대한민국)|제1야전군사령부]] 군악대 군악병으로 복무한 뒤 [[2010년]] [[5월 17일]]에 제대하였다. 제대 후, 매년 축가콘서트와 연말콘서트를 진행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연말콘서트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MBC FM4U]]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의 [[디스크 자키|DJ]]를 거쳐서, 현재 [[KBS2]] 《[[배틀 트립]]》, [[tvN]] 《[[모두의 연애]]》, [[OLIVE]], [[tvN]] 《달팽이호텔》 등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청춘시트콤 《[[자 셋 여자 셋]]》
         |도도혜의 편 내연 役(카메오)
         |《내게은 48:시간》
         |《[[구내식당 - 의 회사 유랑기|구내식당-의 회사 유랑기]]》
         |토크쇼 자우수상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일본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순창군 출신]][[분류:토이]][[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1박 2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음악가]]
  • 영덕군 . . . . 13회 일치
         ||<bgcolor=#CEF6F5> {{{#045FB4 ▲ '''장사해수욕장 (정면 장사리, 부흥리)'''}}} ||
         조선시대 때만 해도 영덕은 영덕군의 쪽 지역이었고, 북쪽은 '''영해(寧海)'''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서로 다른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때인 1914년 영덕과 영해를 합쳐서 현재의 영덕군이 되었고, 지역의 중심이 영덕읍 쪽으로 옮겨가면서 상대적으로 북쪽 영해 지역의 발전이 더디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영해면이 영덕군 북부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동해선]]([[동해중부선]]) 계획이 있었고 노반까지 아있을 정도였으나 해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70년이 넘는 세월을 걸려서 [[동해선]]이 개통되어 영덕군 동부를 북으로 관통한다. [[KTX]]가 정차하는 [[포항역]]을 출발해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에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영해역]]을 지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역]]까지의 공사가 진행중인데 영덕역 북쪽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부터 영덕을 지나 [[강릉시]]까지 동해선 철도가 쭉 이어질 예정이다. 쪽으로도 [[모량역]]부터 [[신경주역]]을 지나 [[태화강역]]까지 이어져서 최종적으로는 동해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부전역(동해선)|부전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량중이다. 2018년 2월 기준으로는 중간 일부 구간들이 미완성이다. 동해선 외에 김천에서 의성을 거쳐 영덕을 이어주는 [[경북내륙선]]이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 이다.
         [[국도]]는 포항과 울진을 연결하며 북으로 관통하는 [[7번 국도]]와 서쪽으로 진보, 안동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횡단도로인 [[34번 국도]]가 있다.
         해수욕장은 고래불, 장사, 대진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물도 깨끗한 편. 특히 고래불과 대진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길이가 무려 5 km에 달한다. 이 모래사장의 쪽 끝이 대진, 북쪽 끝이 고래불이다. 중간 부분은 영덕군과 경상북도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원이나 공무원들을 위한 하계휴양소가 위치하고 있다.
         ||4|| 정초등학교 || 정면 진불길 15-6 ||
         ||3|| ||정중학교||정면 진불길 11-27||
         || '''정면''' ||<:>{{{#696969 9.03%}}}||<:>{{{#C9151E 70.20%}}}||<:>11.87%||<:>4.92%||<:>2.71%||<:>{{{#808080 ▼61.17}}}||<:> 72.87 ||
         || '''면 지역'''[* 강구면, 정면, 달산면, 지품면, 축산면, 영해면, 병곡면, 창수면] ||<:>11.70%||<:>{{{#C9151E 68.64%}}}||<:>11.81%||<:>4.59%||<:>2.17%||<:>{{{#808080 ▼56.94}}}||<:> 72.20 ||
  • 이인 . . . . 13회 일치
         |사망지= {{국기나라|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구]] 논현동 산28의 22번지에서 16시 15분, 숙환으로 별세
         |자녀= 슬하 6 2녀 <br/> 장 이옥(李鈺)
         이인은 [[189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영(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 이관준은 영의 명망가이자 [[성리학]]자였고, 삼촌 [[이시영 (1882년)|이시영]]은 독립운동가로 순국하였다. 아버지 이종영은 [[대한제국]] 당시 애국 계몽운동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대한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계몽운동가였다.
         * 지역적으로 한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것은 법의 평등원칙에 어긋난다.
         유언에 따라 재산은 한글학회에 기증되었고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경기도]] [[화성지|화성군]] 양면 북양리 산51번지에 안장되었고 2011년 대전현충원(독립지사 제4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저서로는 〈법률과 경제〉·〈법률과 여성〉·〈애산여적 愛山餘滴〉·〈반세기의 증언〉 등이 있다.
         ** 장 : 이옥(李鈺)
         ** 차 : 이춘
         ** 삼 : 이영(李英)
         ** 사 : 이정
         ** 오 : 이강
         ** 육 : 이균
         [[분류:1896년 태어]][[분류:197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유학자]][[분류:유교 신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대학 교수]][[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국민당 (1948년) 당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이승만| ]][[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현우(배우) . . . . 13회 일치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역 등장을 기점으로 [[유승호]]를 잇는 국민 동생의 자리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김유신을 맡으면서 귀여움과 훈훈함을 동시에 안겨주어 2~30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나이에 비해 똑부러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성인 역인 [[엄태웅]]으로 교체되면서 유신랑의 인기는 급강하하고 만다. 물론 엄태웅의 어색한 사극 연기도 한 몫 했다. 그를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누나팬들이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하차한 후에는 [[막장 드라마]] [[밥줘]]에서 차화진의 아들 토미 역을 맡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시작한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에서 [[홍찬두]] 역을 맡아 유승호와 함께 국민 동생 투톱이 나란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주인공 계백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브레인(드라마)|브레인]]에서 소년가장 박동화 역으로 나왔다.
         2012년 3월 방영된 드라마 [[적도의 자]]에서 다시 한 번 [[엄태웅]]의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나 캐릭터와의 싱크, 발성의 한계 및 대사조절에서 아역 연기를 벗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어 드덕들 사이에 연기에 대한 논란을 안겨주었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때와는 달리 이제 얼른 아역 분량이 끝나고 [[엄태웅]]이 나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사실 적도의 자에서의 김선우는 그동안 이현우가 해왔던 역할과는 좀 많이 다른 성격이긴 했다.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아역으로 나왔던 [[임시완]]의 연기가 예상외로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2012년 8월 방영되는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드라마)|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차은결[* 일본 원작 [[아름다운 그대에게 미 파라다이스]]에서 [[이쿠타 토마]] 역.]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이로서 일본 드라마 원작 드라마에서 두번째 출연을 달성.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4년 2월 9일까지 [[아이유]], [[황광희]]와 함께 [[SBS 인기가요]]의 진행자를 맡았다.
          * 2015년 하반기 즈음해서는 [[박보검]]이 이현우 닮은꼴로 나왔다. 93년생 동갑내기고 실제로도 친한 편이라고. 둘 다 상냥한 소년미가 특징인 외모지만, 박보검이 이현우에 비해 선이 날카롭고 성적인 편인 반면, 이현우는 좀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외모이다.
         || [[비열한 거리]] || 김민호 || [[궁민]] 아역 ||
         ||<|2> 2012년 || [[적도의 자]] || [[김선우(적도의 자)|김선우]] || [[엄태웅]] 아역 ||
         ||<|2> 2017년 || 중국 드래곤TV || 가장 아름다운 첫 만 || 가오숭 || 주연 • 중국드라마 ||
         || 우리도 들처럼 ||
         || 2016년 || 제49회 휴스톤영화제 || 우조연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1993년 출생]][[분류:안양시 출신 인물]][[분류:2004년 데뷔]][[분류:아역배우]]
  • 임채무 . . . . 13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함평군 출신 인물]][[분류:1949년 출생]][[분류:1973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출생 ||[[1949년]] [[9월 2일]], [[전라도]] [[함평군]] 손불면 (손불중앙길) ||
         원래는 해병대 제대 후[* 기수는 228기였다.] 70년대 중반 데뷔하여 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주로 MBC)에서 선 굵은 배역을 자주 맡은 연기파 배우로 중장년층에게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반까지 TV 드라마계의 자배우 투톱이던 [[노주현]][* 60년대 후반까지는 미 주인공 역할은 노주현 원탑이었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갔다 올때쯤 한진희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 임채무까지 등장하며 원톱의 자리는 내려놓게 된다.], [[한진희]]의 미역할 주인공 독점을 사실상 임채무가 막은 셈일 정도였고, 본인만의 자리를 차지하며 영역을 늘렸었다.[* 물론 그들보다 선배였던 노주현은 "아무리 한진희, 임채무 걔네가 잘 나갔어도 나한테는 안 됐지"라고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적도 있으나, 그도 사실 그들의 커리어를 인정해온 편이다.] 맡은 역할 이미지가 젠틀맨 이미지로 겹치면서도 각자 조금은 다른데, 노주현은 잘생기고 부드러워보이는 신사지만 때로 터프하고 호쾌한 이미지, 한진희는 큰키의 훤칠하고 부드러운 멋쟁이 꽃미 이미지, 임채무는 중후하고 우수에 찬 성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셋 다 외모도 시대상과 어울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애정 연기와 잘 어울려, 여성 시청자에게 엄청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미녀스타들이나 인기 배우들과 연기했으나, 그들보다 임채무의 인기가 더 많았다. 꽃미과는 아니지만 멜로 드라마에서의 중후한 표정 및 목소리 연기,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에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폭넓은 여성시청자의 인기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80년대의 레전드급 임팩트 배우 중 하나'''.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는 드라마쪽은 노-한-임 트로이카 주시대라 봐도 될 정도.[* 물론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던 노주현, 한진희에 비하면 당대에도 커리어가 살짝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당대 다른 자배우들은 압도할만한 인기와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채시라와 멜로 연기를 한 작품도 있다. 당시 가십지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써낸 기사도 있을정도. 입술에 테이프를 붙이고 찍었다고..최근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듯. ~~그래야 놀이공원 빚을 갚지요~~
         [[전라도]] [[함평군]] 손불면에 (손불중앙길)는 손불중앙교회를 운영 중이나 빚이 수백억 원이다.~~[[채무|이름]]이 씨가 되다~~ 두리랜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대인배]].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고 하는데 수년간 계속 적자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으며, 연기 스케줄이 없을때면 항상 두리랜드에서 놀이기구 방송을 하거나,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는 일을 지속한다고 한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4&aid=0000092844|관련기사]] ] 놀이기구 임대업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1심은 원고패소, 2심은 원고의 항소 기각으로 끝났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180824090104518|관련기사]]]
         || 2017 || 광주 문장례식장 || 광주 문장례식장 || ||
  • 장헌식 . . . . 13회 일치
         1895년 일본 관비 유학생에 선발되어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하며 [[게이오 의숙]]의 보통과와 고등과 과정, 도쿄 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서 수학했으며, 일본 사법성과 요코하마항 지방재판소의 사무견습, 대장성의 사무견습으로 재직했다. 귀국 후 궁내부 주사로 임용되어 학부에서 근무하다가 한성부윤을 역임했다. [[1910년]] [[10월]]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총독부 고등관에 임용되어 평안도 참여관, [[1917년]]에 [[충청북도]] 장관(도지사)으로 승진한 뒤 충청북도 도장관, 조선총독부 사무관, 총독부 관방실 계원, 1924년 전라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1869년]] [[음력 9월 21일]] [[용인군]] [[현내면]](縣內面)에서 성급(成汲)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한문(漢文)을 수학하다가 18세 되던 해 경성으로 올라와 한성부 중서(中署) 수진방 전동(壽進坊 磚洞) 13통 11호로 주소를 옮겼다. 1935년 무렵 [[평안도]] [[평양부]]로 이사했다가 다시 [[경성부]] 가회동(嘉會洞) 4번지로 주소를 옮기고, 정착하였다.
         [[1910년]] [[10월 2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평안도]] 초대 참여관 고등관 3등(平安南道 參與官 高等官三等)에 임명하였고, 1910년 12월 27일 종5위(從五位)로 승급한 뒤 1912년 8월 1일 일한병합기념장, 1915년 11월 10일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을 수여받았다. 1916년 3월 31일 정5위(正五位)로 승급하였다. 이후 훈3등(勳三等), [[1917년]] [[6월 12일]]에 [[충청북도]] 장관(도지사) 고등관 2등(忠淸北道 長官 高等官二等)으로 승진한 뒤 도장관이 도지사로 관직 명칭이 바뀌자 그대로 [[충청북도지사]]로 유임되었다. [[1920년]] [[7월 31일]] 훈2등(勳二等)에 올라 서보장(瑞寳章)을 하사받고 [[1920년]] [[9월 27일]] 고등관 1등(高等官一等)에 올랐다. [[1920년]] [[6월 24일]] 청주청년회 발족에 참여하였다.
         [[1921년]] [[2월 12일]] [[조선총독부]] 사무관(朝鮮總督府 事務官)이 되고, 3월 10일 종4위(從四位)로 승급하였다. [[1921년]] [[3월 18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실(總督官房室) 행정관이 되었다. 1921년 3월 20일 칙임사무관(勅任事務官) 민정시찰관에 임명되어 4월 7일부터 6월 19일 [[평안도]], [[평안북도]] 일대를 민정시찰하였고, [[10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는 민정시찰관으로 [[함경도]]와 [[함경북도]]를 민정시찰을 다녀왔다. 이때 그는 관용 차량이 주어졌지만 거부하고 열차와 대중교통으로 시찰을 다녔다. [[1922년]] [[2월 15일]]에는 [[전라도]]를 [[3월 5일]]부터는 [[전라북도]]를, [[7월]]에는 [[강원도]]를 시찰다닌 뒤 [[7월 22일]] 귀환하였다. [[9월 4일]]에는 [[황해도]] 수해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1924년]] [[12월 1일]]에는 [[전라도]] 지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퇴근 후에는 보통의 농군들과 같이 식수(植樹)와 분재 가꾸기 자신의 토지에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하였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고 노동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설립된 친일 자본가 단체인 [[동민회]]에 가담했으며, 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또다른 친일 단체 [[대화동맹]] 결성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있다.<ref>일제 말기 총독부 학무국과 밀착하여~ : 반민특위 조병상 공판조서 (제1회) 중 조병상의 수기 (1949).</ref> [[1924년]] [[12월 1일]] [[전라도지사]]로 부임하였다. 전 지사직에서 물러난 1926년부터 1945년까지 중추원 칙임참의를 7회에 걸쳐 중임하였다.<ref name="실록친일파" />
         |직책 = [[전라도|전라도 지사]]
         [[분류:1869년 태어]][[분류:1950년 죽음]][[분류:조선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동 장씨]]
  • 추자현 . . . . 13회 일치
         | 자녀 = 1
         * [[1998년]] [[MBC]] 일일시트콤 《[[자셋 여자셋]]》
         * [[2000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죽기 위해 사는 자》 ... 수정 역
         * [[2001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과여|오픈드라마 과 여]] - 매일 벗는 자》 ... 은경 역
         * [[2001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과여|오픈드라마 과 여]] - 산타 아빠》 ... 민숙 역
         * [[2002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과여|오픈드라마 과 여]]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제비》 ... 미란 역
         * 《수수적인 秀秀的男人》 (2014, 중국) ... 엽수수 역
         * 《교기공영웅전 南侨机工英雄传》 (2014, 중국) ... 욱란정/욱설청 역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인지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1996년 데뷔]][[분류:추계 추씨]]
  • 풍운 . . . . 13회 일치
         천황은 절무신이 쓰러지자 풍운과 무명을 배신하고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 천황도 사실 중원을 침공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천황 휘하의 무사들이 중원을 공격해오고, 중원의 용맥을 수호하는 황제(黃帝)의 등뼈를 가져오려 한다. 한편 과거에 실종되었던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단랑의 아버지 림검수 단수는 이 비밀을 알고서 황제의 등뼈를 지키고 있었다. 섭풍은 천황에게 [[세뇌]] 당하여 황제의 등뼈를 빼앗아서 달아나게 되는데.
         3부에서도 살아으며, 무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회공을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는 것에 좌절감을 느껴 아무한테나 회공 아냐고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면 처죽이는 살인귀 일광(一狂)이 되었다. 그러다가 [[역풍]]이 잘 구슬려서, 역풍의 스승이 된다.
         회공과의 만을 계기로 자신은 개가 아닌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자각하게 되고, 회공에게 자질이 있다고 전수받은 검법을 기초로 하여 무공을 익혔으며, 어떤 방파를 습격하여 장문인을 쓰러뜨리고 지배하는데 성공하여 '독일문'의 장문인이 된다.--그렇게 간단히 장문인이 될 수 있냐-- 하지만 무공은 익혔지만 인성은 오히려 나빠져서 사람을 마구 죽이는 잔혹한 성품이 되었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이마에 개 구(狗)자를 새겨서 괴롭힌다.
         결국 악행을 하지 말라고 회공에게 제지를 당하며, 그에게 패배하고 다시 대결하여 이길 때가지 독일문을 시켜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지킨다. 만화 시점에서는 회공과의 재대결에서 다시 패배, 회공을 꺽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독일문을 버리고 회공을 따라서 떠난다. 회공에게 일단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성품 자체는 매우 포악하지만, 자신을 '개'가 아닌 '인간'으로서 처음으로 대우해준 회공에게 깊은 은혜를 느끼고 있어 의리를 지키는 의리.
         고아가 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과거 스토리는 노신의 어떤 단편소설을 모티브로 한 것 같다. 통수가 너무 잦아서 통운(…)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풍운에서 보기 드물게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의리이다.
         섭풍의 아버지 섭인왕과 좋은 싸움 친구(…)였던 림검수 단수의 아들. 나이는 섭풍보다 조금 어리다. 섭풍과 함께 섭인왕,단수가 실종된 뒤에 천하회에 거두어졌지만, 이름이 풍운이 아니라서 그런지 웅패는 단랑을 자신의 직전 제자로 들이지 않고 그냥 일반 제자로 만들었으며, 단랑은 열등감에 점점 삐뚤어지게 된다. 결국 천하회를 배신하고 무쌍성 일당과 협력하게 되며, 본래 친구였던 섭풍과 길이 갈려서 대립하는 입장이 된다.
         사실 강호에 나오던 시점에서 이미 수명이 거의 지 않은 상태였다. 천하회에 나타나서 무쌍검을 꽂아놓고 선전포고를 하고 떠나는데, 이후에 자신이 평생동안 검술에만 몰두했으나 사실 이룬 것이 거의 없다고 자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웅패를 쓰러뜨리고자 하지만, 수명이 3일 밖에 지 않은 몸이었기 때문.
         무쌍성의 성주. 웅패와 회동하면서 협력하나 싶더니 몇컷 뒤에 목만 기고 죽어있다(…). 살해한 것은 바로 섭풍으로서, 웅패의 짐작으로는 섭풍보다 몇배는 더 강한 독고일방이 섭풍의 저력을 당해내지 못한 것에 웅패는 놀라워했다. 독고일방이 살해당하자 무쌍성은 망해버렸으나, 독고명 등이 무쌍성의 재기를 노리고 활동하게 된다. 또 웅패는 이 때문에 검성의 도전을 받게 된다. 무쌍성과 대립하면서 검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웅패의 모습을 보면, 원래 무쌍성 자체가 검성빽(…)이 컷던 것 같다.
         독고일방의 아들. 주요인물은 미이 많은 이 만화에서 어쩐지 금방 죽을법한 평균 이하의 외모를 가지고 등장(…). 하지만 항룡신퇴 같은 강력한 무공도 보여주고, 의외로 질기게 다양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초반부 만악의 근원(…).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예언자로서, 웅패에게 풍운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그로 인해서 잃을 것이라는 예언을 겼다. 웅패는 이 때문에 당초 자신의 심복으로서 아끼던 보경운과 섭풍을 제거하는데 편집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그 때문에 도리어 풍운에게 패배하여 천하를 잃고 만다. 니보살 자신도 천기를 많이 누설한 탓에 하늘에서 내린 독에 중독이 되고, 가족을 모두 잃었으며, 최후에는 예언을 누설할 것을 염려한 웅패에게 손녀와 함께 살해당하고 만다.
         그 실체는 검법인지 무공인지도 불확실한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자면 '''시간을 멈추고''' 자기 혼자만이 움직이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적에게 일격을 날리는 검법이다.--[[더 월드]]-- 단순히 혈도를 찌르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지를 검기로 억압'해서 시간이 멈춘 상태로 다가가면서 걸리는건 전부다 죽음을 맞게 하는 무차별 살상기술이다. 시간을 멈추는 공격이므로 당연히 검입삼은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듯. 엄청난 사기성에 웅패도 죽음을 각오했으나, 검성이 웅패도 같이 하늘로 데려가기 직전에 보경운이 검성의 시체에 발길질을 날려서 계단에서 날려버린 탓에(…) 검입삼이 깨지고 검성의 영혼이 그대로 승천하면서 웅패는 살아는다.(다만 검성의 영혼이 찌른 손가락에 심한 내상을 입었다.)
          * 커플박살주의 : 연인도 제대로 살아는 경우가 드물다. 잘 풀렸다 싶어도 지금 안 죽었다 싶으면 나중에 재등장 해서 죽는다. 주로 여자 쪽. 보통 커플지옥이니 커플 브레이커니 해도 한 번 위기를 거치면서 재성립된 커플은 왠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다른 나라의 창작물과 비교하면 엄청난 이질감과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 --사실 독고몽이 섭풍을 포기하고 이 만화에서 퇴장한 이유는 죽기 싫어서였다.--
  • 피수영 . . . . 13회 일치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 전쟁]]
         | 자녀 = 피윤범(장), 피윤성(차)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베트 전쟁]]에 1년간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피수영은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대한민국의 신생아 치료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수영은 인터뷰를 통해 "미국을 떠나 10년 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에 갔는데 어떤 자가 오더니 ‘당신 피 박사 아니냐’고 그래서 ‘날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아이를 불러와서 ‘당신이 살려준 애다’하였다. 그때 의사 하길 잘 했다, 보람이 있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아버지 [[피천득]](皮千得)과 어머니 임진호(林珍鎬) 사이에서 2 1녀 중 차으로 태어났다.
         * [[피천득]](皮千得)의 1965년 수필 〈피가지변(皮哥之辯)〉에서 "… 피(皮)씨의 직업은 대개가 의원이요, 그 중에는 시의(侍醫, 임금·왕족의 진료를 맡은 의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 의학을 공부하는 우리 아이는 옥관자는 못달더라도 우간다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올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수필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당시 23세로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피천득]]의 차 피수영이다.
         * 피수영 교수는 미국에서 신생아과 전임의(醫)로 자리잡은 38살이 돼서야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두 아들을 얻었다. 장 피윤범·차 피윤성이다. 맏아들 피윤범은 [[뉴욕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영화를 공부하였고, 차 피윤성은 [[미국]] 명문인 [[코넬 대학교]] 법대를 다녔다.
         [[분류:1943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순천향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울산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홍경인 . . . . 13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 1990년대 충무로 최고의 유망주에 아역배우계에서 레전드로 회자되는 배우며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연소 우주연상 수상자다.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영화상 '''역대 최연소 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으며 1995년 '이천 춘사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수상. 당시 겨우 '''만 19세'''.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록은 계속 보유 중이다.
         1996년 [[시트콤]] [[자셋 여자셋]]에서 크게 활약을 보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철없는 캐릭터인 '날파리'[* 대부분 철없는 캐릭터로 연기하지만 마지막회의 진지한 씬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한다.]로 유명해지는 동시에 바로 슬럼프를 겪게된다. 단신인데다가 [[동안]]인지라 개그역할을 맡아서[* 긴 바바리 코트를 입었는데 너무 길어서 코드 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어 낙엽을 쓸며 노래부르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크게 히트했으나 그 이후로 원래의 연기력에 맞는 역할을 얻지 못하는 비운을 산다. 괴리가 너무 컸던것. 1999년에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앨범 《후애(後愛)》을 발표하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사실 가창력은 꽤 좋은 편이다. 자셋 여자셋에서도 노래를 하는 씬이 몇 번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이미지라서 묻혔다...게다가 90년대 후반에는 비주얼과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비디오형 가수들의 범람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심지어 음향장비가 좋지 못해서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발라드 가수들까지 종종 방송에서 립싱크를 시키는 시절이고, 라이브를 하는 가수를 신기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즉, 젊은 가수들의 절대다수에게 가창력보다는 외모와 춤실력이 강조되던 시절. 오죽하면 가수는 커녕 일반인치고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닌 [[최창민]]같은 가수들이 '''솔로가수'''로 나왔을까... 이 상황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하려면 가창력이 신승훈이나 김건모같이 본좌급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성이 윤종신처럼 탁월해야했는데, 그냥 평범하게 노래잘하고 외모는 떨어지던 홍경인이 발붙힐 자리는 없었다.]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백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백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선덕여왕(드라마)|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광개토태왕(드라마)|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
         좋은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시트콤에서 얻은 이미지 때문에 몇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 16살 때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냥 그 나이에 맞는 연기 그런게 아니라 엄석대 역이었으니. 19살 때 [[전태일]] 역으로 분신자살까지 소화하며 명 연기를 펼치다가 자셋 여자셋 이후로는 주연을 못하게 된다.] 그래도 군전역 후에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하며 다시 재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본좌급의 연기력을 갖고도 지나치게 작은 키 때문에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하진 못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인 [[송승헌]], [[소지섭]] 등이 아이돌 스타로서도 대성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소지섭]]은 아직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4> [[1996년]] ||<|3> MBC || [[자셋 여자셋]] || 홍경인 || ||
         || 2002년 || 자 태어나다 || 만구 ||
         ||<|3> 1995년 || 제6회 춘사대상영화제 || '''우주연상'''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분류:한국 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아역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
  • 홍서범 . . . . 13회 일치
         |가족 = 2 4녀 중 둘째(차)<br/>슬하1녀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 4녀 중 차으로 태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영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영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그 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라디오 DJ로 복귀하면서 wbs 라디오 홍서범의 wbs 가요 TOP 10 DJ와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wbs 라디오 홍서범의 노래 하나 추억 둘 DJ를 진행하였다. [[2006년]]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다재다능한 예능 감각으로 인하여 종합예술인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탤런트 [[강길]]하고 중학교 동창이다.
         * [[2015년]] [[채널A]] 《[[아내가 뿔났다|아내가 뿔났다-편밥상]]》
         * [[2018년]] [[E채널]] 《[[내 딸의 자들 : 아빠가 보고 있다]]》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양 홍씨 (당홍)]]
  • 홍인한 . . . . 13회 일치
         |사망지= [[조선]] [[전라도]] [[완도군]] [[고금도]]
         과거 급제 후 청요직을 거쳐 1757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했으며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성대중]]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승지, 사간, 대사헌, 호조와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이조, 병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774년 의정부우의정, 1775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55년 헌납을 거쳐 당상관으로 특진하여 [[1757년]] [[전라]]감사로 부임했다.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대중]]이 이를 듣고 청성잡기에 기술하였다.
         {{인용문2|홍인한이 감사(監司)로 있을 때 언제나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끝날 즈음이 되면 기생의 잘못을 트집 잡아 곤장을 쳐서 피를 본 뒤에야 통쾌해하였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할 때면 뜰 한쪽에 반드시 형구를 마련해 놓고 기다렸으니, 이는 석수(石邃)가 미녀들을 치장하여 잔치를 즐기고는 결국 삶아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대체로 여자에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자에게 재주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하늘이 쓸데없이 그들을 낸 것이 아닌데 포악하게 대한다면 어찌 천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을 무시하면서 잘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유독 기생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일부러 곤장을 쳐서 통쾌해하는 것은 시랑보다 더 포악한짓이니, 그가 역적으로 몰려서 패망한 것은 당연하다.}}
         그 후 승지, 한성부우윤, 대사헌 등을 지내고, 1762년 호안집사(湖南安集使)로 순무하고 돌아왔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자헌대부로 승진,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774년]] [[의정부]][[우의정]]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한편으로 권력용을 하고는 자기쪽 무리들과 야합하여 말을 퍼뜨리기를, "홍씨(洪氏)를 공격하면 이는 동궁(東宮)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다." 하면서 그것을 구실로 온 세상의 입을 막으며 위협을 가했다고도 한다.
         **** 장 : 홍낙원(洪樂源)
         **** 차 : 홍낙술(洪樂述)
         **** 삼 : 홍낙진(洪樂進)
         **** 사 : 홍낙손(洪樂遜)
         **** 오 : 홍낙준(洪樂浚)
         * [[1988년]] [[MBC]] 《[[한중록 (드라마)|한중록]]》 배우 : [[박광]]
         [[분류:1722년 태어]][[분류:177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가족 살해자]][[분류:사형된 사람]][[분류:독살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분류:노론]]
  • 홍학표(배우) . . . . 13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 1961년 출생]][[분류:연천군 출신 인물]][[분류:1987년 데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연극]]이라는걸 구경하고 내리 두번을 연속적으로 본뒤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결정한다. 의대 지망생이었던 그의 돌발적인 궤도수정을 사춘기의 방황쯤으로 돌리기엔 너무 심각했다. 그는 교과서 대신 연극대본을 밤새워 읽으며 연극에 푹 빠져버린 그는 여드레간의 가출끝에 부모의 허락을 받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 81학번으로 입학한 홍학표는 연기라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내달리기 시작한다. 때론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고, [[제1보병사단]] 문선대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에는 '''전진 부대가 낳은 미 사회자 홍학표'''로 군부대를 누비기도 했다. 소형영화에 심취해 연출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홍학표는 제대하고 취업이 막막해지면서 KBS 코미디 프로그램 대본도 써보기도 했고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대학교 3학년 때인 1987년 MBC TV '베스트셀러 극장' FD로 일하기도 했는데, 이 때 PD의 눈에 띄어 '''MBC 특채 탤런트가 되는 행운'''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1987년 MBC 드라마 '푸른교실'에서 주요인물 배역으로 첫 모습을 보인 홍학표는, 이듬해인 1988년 MBC 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서 신예 탤런트 [[채시라]]와 호흡을 맞추는 자 주인공[* 극중 CF모델 채시라를 흠모한 나머지 그녀가 나오는 CF를 제작하는 광고회사에 취직하는 어리숙하고 선한 이미지의 자 주인공이다. 그의 대학동기인 탤런트 [[이효정(배우)|이효정]]은 홍학표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채시라를 [[스토킹]]하는 괴한으로 나와 후반부에 홍학표와 격투씬도 벌인다. [[지못미]]]으로 정식 데뷔하였다. --깨알같은 [[이홍렬]]과 [[윤석화]] ㅋㅋ-- 이후 신인배우임에도 베스트극장 차기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까지도 주인공 역할을 거푸 따내는 행운을 얻었고, 그때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를 펼쳐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부풀려 놓았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2개의 시즌을 걸치며 방영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은 그에게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다. 당시 서른을 넘기는 나이였지만 유난히 어려보이는 얼굴에다 '''풋풋한 개성과 선량한 이미지로 어필'''하며 [[최진실]]과 함께 시즌1[* '우리들의 천국'은 공식적으로는 시즌제작품이 아니지만 편의적으로 시즌1과 시즌2로 나눌때 홍학표가 주연을 맡았던 시즌1은 단순히 대학생들의 삶과 연애를 다룬 내용이라기보다는 어머니,아버지,대학생 큰형(홍학표),쌍둥이 고교생 형제로 된 다섯 가족의 삶을 다룬 홈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다. 각각의 가족들도 비중이 있어 어떤 회에서는 홍학표 관련 내용은 별로 없이 쌍둥이의 학교 생활,아버지의 직장생활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었던 경우도 있다.홍학표가 중심이 된 대학생활과 연애가 아무래도 중심이긴 했고,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생들의 연애 드라마로 완전히 변화한다. 시즌2부터 등장한 배우들이 [[박철]],[[음정희]],[[염정아]],[[김명수(배우)|김명수]]등. 홍학표가 빠지고 실질적인 시즌2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청춘연애물이자 대학생 로망스 겸 젊은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이 뭐길래'에서의 막내 아들 역할을 비롯 이전작들을 통해 청순스타로 각광받던 [[김찬우]]가 주인공이었고,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재수까지 하여 같은 대학에 입학한 절친으로 [[장동건]]이 나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된 [[박철]]은 훗날 안좋은 이미지가 된데다 최근의 살집있고 우스꽝스러운 아저씨 이미지가 전혀 아닌 당시 특A급 꽃미스타였다. 여자배우로는 장동건의 파트너로 [[이승연]]이 나왔고 이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배출한 스타가 [[전도연]]이다 .]에서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추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다. 큰 키도 아니고, 확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닌 그가 청춘스타로 등극한 것은 사실 한국 연예계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005년에 화제의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연기자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치드라마에 출연하며 '''군사정부의 실세인 [[장세동]]을 열연'''하였다. 실제 [[장세동]] 배역은 카리스마와 충절로 대변되는 캐릭터라 캐스팅 과정에서 연기자들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홍학표는 실제 장세동 배역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극중에서 실제인물과 외모면에서 싱크로율이 높아 최종 낙점'''되었다고 한다.[* 외모뿐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비슷하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lpSgQ_nrVM|이쯤되면 도플갱어급인듯]]] 캐스팅되고나서 실존인물인 [[장세동]] 측근으로부터 만의 요청을 받아 배우로서 자료수집이 될 것 같아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장세동과의 술자리 대화 내용이야 뭐 자기 좀 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이후 5년 만인 2010년에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 출연하기도 했다. 홍학표는 이 드라마에서 재경([[오영실]] 분)의 편인 공병구 역을 맡았다. 장인의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공병구는 순하고 착해서 재경에게 꽉 잡혀 사는 그야말로 [[공처가]] 편이다.
         돈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배역을 하는 건 싫어할 정도로 홍학표는 배우로서 자존심이 세다. 덕분에 다작을 하지 않아서 '''몇년에 한 번씩 드라마에 출연해 강한 인상을 기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하지만 가족들이 있으니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배우가 아닌 사업으로 부족한 벌이를 하려고 시도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업가로서의 운은 배우처럼 순탄치만은 않았다.
         * 1994년 : SBS 수목드라마《[[이 자가 사는 법]]》- 한세현 역
         * 1999년 : MBC 주말연속극 《[[의 속도 모르고]]》- 전도 역
  • 김대환 (법조인) . . . . 12회 일치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성폭행한 자를 보복 상해한 피고인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면서 집행유예와 치료감호를 선고한 원심대로 선고하자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와 전여성회 등이 재판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재판장실을 점거 농성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경찰에 강제연행됐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100209215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12-2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685&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91년 12월 21일</ref>
         [[광주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1년 12월 20일에 자신을 성폭행한 자를 살해하여 1심에서 징역2년6월 집행유예3년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김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ref>경향신문 1991년 12월 21일자</ref>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2년 10월 2일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을 비방하는 흑색 선전물을 살포하다 1심에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를 선고받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소속 한기용(37세) 사무관과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박재규(29세) 김일환(32세) 전우경(27세) 등 4명에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대공 수사관으로 이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성실히 일해온 모범 공무원인데다 유죄판결로 공무원 자격 박탈되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원심대로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2년 10월 2일자</ref> 1993년 2월 26일 [[5공화국]] 비리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은 전 치안본부 정보1과 분실장 서정희(48세 당시 청와대 정부수석 비서관실 파견)에 대해 혐의사실 중에 일부만 유죄를 인정하여 선고유예 판결했으며<ref>동아일보 1993년 2월 26일자</ref>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은폐, 조작하여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65세)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1심대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3년 2월 27일자</ref> 4월 2일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치안본부장 강민창(60세)에 대해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하면서 직권용에 대해 "부검의가 직책상 피고인의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판결했다.<ref>한겨레 1993년 4월 3일자</ref> 8월 23일에 [[김근태]]에 대한 고문한 혐의로 법원에서 재정신청을 인용하여 공판에 회부된 치안본부 대공수사국 소속 김수현 경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불법체포,감금, 형법 독직 폭행죄를 적용해 징역3년 자격정지2년, 그외 백은 경정과 김영두, 최상 경위에 대해 징역2년~1년6월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82400289101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8-24&officeId=00028&pageNo=1&printNo=1655&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3년 8월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1월 21일에 [[민전 사건]]으로
         자격정지3년을 선고하면서 박일룡 전 안기부 1차장에게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자격정지2년, 임광수 전 101실장과 임경묵 전 102실장 등 전직 안기부 간부 4명에게 징역8월~1년6월 집행유예2~4년 자격정지1~2년을 선고하면서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X파일 시리즈를 게재한 격주간지 인사이더월드 발행인 손충무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1월 23일자</ref> 4월 26일에 대통령과 함께 찍은 것처럼 합성한 사진을 선거공보에 실은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벌금150만원을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4월 27일자</ref> 5월 20일에 [[자민련]] 후보가 시장 후보를 결정하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추천을 받았다며 선거운동을 했던 경기 안성시장 [[한영식]]에게 원심대로 징역8월 집행유예2년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99년 5월 21일자</ref> 8월 31일에 성시 지하상가 개발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오성수]] 전 성시장에 대해 징역5년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벌금100만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ref>한겨레 1999년 9월 1일자</ref>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194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병기(배우) . . . . 12회 일치
         ||가족||<(> [[배우자]], 슬하 1 3녀 ||
         1977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 자연기상 ||
         * [[1991년]] [[MBC]] 주말연속극 《[[고개숙인 자]]》 ... 덕근 역
         * [[1992년]] [[KBS2]] 미니시리즈 《[[위기의 자 (1992년 드라마)|위기의 자]]》
         * [[2003년]] [[MBC]] 미니시리즈 《[[자의 향기 (드라마)|자의 향기]]》 ... 정태환 역
         * [[2008년]] [[KBS1]] 농촌드라마 《[[산 너머 촌에는]]》 ... 기업가 역(우정출연)
         * [[2009년]] [[KBS2]] 미니시리즈 《[[결혼 못하는 자 (KBS)|결혼 못하는 자]]》 ... 장봉수 역
         * [[1977년]] [[KBS 연기대상]] 자 최우수 연기상
         [[분류:1948년 출생]][[분류:1969년 데뷔]][[분류:한국 배우]][[분류:양주시 출신 인물]]
  • 김윤환 . . . . 12회 일치
         || '''약력''' || [[조선일보]] 기자[br][[영일보]] 기자[br][[대구일보]] 기자[br][[문화공보부]] [[차관]][br]제13대 [[대통령비서실장]][br]제1정무장관[* 1988년, 1990년, 1994~1995년 무려 3번이나 제1정무장관직을 역임하였다.][br][[민주정의당]] 원내총무[br][[민주자유당]] 대표 ||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언론사인 [[영일보]]와 [[대구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입사해 일본특파원 및 편집국장 대리를 거쳤다. 이 시절에 오랫동안 주일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일본]]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금권 정치, 계파-계보 정치, 막후 정치를 보고 배운다. 중간에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성주군]]-[[칠곡군]]-[[구미시|선산군]]-[[군위군]] 선거구에 출마([[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신현확]] 후보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978년 [[유신정우회]]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이렇게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김윤환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내 자신이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음을 깨닫고 [[이회창]]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면서 다시 '킹 메이커'로서의 위세를 떨쳤다. 당내 민정계와 영세력을 대거 규합해 이회창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김윤환은 3회 연속으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지만, 정작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의 이탈을 막지 못하면서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이때부터 김윤환의 정치적 생명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신이 밀었던 이회창 총재에게조차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리면서 [[토사구팽|팽]]당해 공천을 못받고 한나라당에서 쫓겨난다.[* 이 당시 이회창의 참모가 [[윤여준]]이었는데, 그간 총선의 화두는 공천이었음을 상기시키며, 김윤환을 위시한 민정계, 구시대 인물들을 쳐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회창은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윤여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윤여준의 전략대로 중진급 현역 의원과 정계 거물 수십여명을 날리고 정치 신인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운 개혁 공천은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상을 뒤엎고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순(1928)|조순]], [[이수성(정치인)|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3김 정치 + 이회창에게서 팽당한 정계의 옛 거물들을 끌어모아 [[민주국민당(2000년)]]을 차렸다. 재야의 장기표나 심지어 신군부 출신 [[허화평]]도 있었다! 이렇게 거물과 명망가만으로는 상당히 그럴싸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체성이 불문명한 정당으론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양당 구도에 밀려 지역구에선 [[춘천시]]의 [[한승수]] 前 경제부총리, 전국구에선 후보 1번이던 [[강숙자]] 등 총 2명 당선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본인 역시 자기 지역구인 구미시에서 한나라당 [[김성조]] 후보를 상대로 10% 차의 패배를 당했다.(41.7%:32.1%)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이 밀어 주는 영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상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절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절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대화와 협력을 명분으로 실제론 막후 밀실에서 정치자금과 권력을 배경으로 야합하는 [[일본]]식 정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노무현이 실제 "호이 밀어주는 영 대통령"으로서[* 개혁 성향의 영후보를 세워서 영표를 잠식하고 수도권의 개혁 성향 야당표를 결집시켜야 한나라당의 호 포위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천하삼분지계]]가 [[제갈량]]만의 독창적 사고가 아니라 당시 주요 책사들의 공통적 인식이었던 것처럼 '호이 밀어주는 영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로 여겨지던 내용이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2~3%에 불과할 때도 일단 민주당 후보 경선만 통과한다면 대선 승리 가능성으론 가장 높을 것이란 평가가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선 지배적이었다.] 당선된 것이나, 홀로 여러 계파를 다룬 점 등 정치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시절 김윤환이 속해 있던 민주정의당에 맞서 싸웠던 [[김근태]]는 국회의원이 되어 김윤환을 만난 다음 "그래도 김 선배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장내에서 민주주의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했고, 언론계 인사들 역시 "허주는 순리를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는 평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보면 친화력만큼은 역대 정치인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힐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에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회창이 사과의 뜻을 표했으나 공식적 화해 없이 세상을 떴다.
  • 김재박 . . . . 12회 일치
         || '''학력''' || 대구초-경북중[* 현 경운중]-[[대광고등학교 야구부|대광고]]-[[영대학교|영대]] ||
         쌓이고 쌓여서 2015년 6월 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릴 경기를 비가 그쳤음에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l&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414294&date=20150605&page=1|우천 취소를 때려버려]]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84855&cpage=&mbsW=search&select=sct&opt=1&keyword=%C0%E7%B9%DA|SBS 스포츠]]에서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98498&cpage=&mbsW=&select=&opt=&keyword=|우천취소 메뉴얼]]까지 제안해가며 김재박을 깠다. 2015시즌 후반부 월요일 경기 및 더블헤더 임시 도입에 이 사람의 우천취소 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영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았다. ~~사실 이 발언은 [[선동열]]을 겨냥한 것에 가깝다. 2013년에 와선 재평가받고 있는 김재박의 드립이다.~~ ~~우승 못하고 [[556]]만든 [[김성근|이 사람]]은 뭐여~~ ~~자아비판에 가장 가깝다. FA 영입만 없다 뿐이지 강탈급 현금 트레이드들로 모았던 막강한 초기전력을 생각하면...~~
          * 또한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강귀태|기록 브레이커]]?~~ 과거 현대시절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 자이언츠|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말이 많긴 했지만 [[홈런]]도 그럭저럭 나오고 일부 팬들은 만족한 모양이긴 한데, 여튼 2009년 시즌 결과를 놓고 보자면 재박산성이 설치된 경기에서의 LG 트윈스의 각종 공격 수치가 2배 가량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상대팀들의 공격력은 3배 정도 상승했다는 게 문제...''' 원정팀에 유리한 홈 어드밴티지였다는 비참한 결과를 낳은 희대의 쓰레기 전략으로 고 말았다. 뭐, 거기엔 상대적으로 빈약한 LG투수진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 2012년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감독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현장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구장]]과 한화 2군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김재박으로 결정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한화 프런트는 김재박을 감독 단수 후보로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감중이던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경영 총괄하던 장이 무조건 최고를 데려오라면서 김재박 대신 [[김응용]]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퍼졌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김응룡]]을, [[넥센 히어로즈]]는 [[염경엽]]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지었다.
          * 2013년 [[kt 위즈]] 창설로 또다시 감독 후보로 올랐으나, 이번에도 패하여 [[조범현]]이 그 자리를 가져갔다. 이후 사상 최악의 추락을 경험한 기아의 선동열, SK의 이만수 감독이 흔들리면서 기회를 찾는 듯 했지만 두 팀 모두 일단 감독의 임기를 지켜주기로 결정. 당분간 야인으로 게 되었다. 다만, 2014 시즌이 끝난 후에는 감독 임기가 만료되는 팀이 3팀에다 도중하차 가능성이 있는 팀도 2팀이나 있어서 다시 얘기가 나오는 중. 그러나 기아는 일단 선동열의 임기를 2년 연장했다는 발표를 하고, SK는 [[김용희]]를, 한화는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는 발표가 나면서 야인 생활은 연장될 전망이다. 그리고 기아는 선동열이 팬들의 여론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하면서 또 얘기가 나왔으나 [[김기태(1969)|김기태]]가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나면서 무산.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5&no=8203959&page=1|창단 팀과의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대광고등학교 야구부, 영대학교 야구부, 한국화장품 야구단 모두 창단된 팀이었고, [[MBC 청룡]]도 후반기 13경기 뿐이지만, 프로야구 원년에 경기에 활약했다. 그리고 감독도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태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 2003년 8월 15일 삼성전, [[박종호]]가 홈런, '''3루타''', 2루타를 기록해 [[사이클링 히트]]를 눈 앞에 뒀는데, 4번째 타석에서 '''번트 지시, 유격수 땅볼'''로 물러. ~~야 아까 위에서 이대진 삼진기록때는 번트로 유격수 땅볼이 나올일 없대며~~ 결국 대기록 달성 실패. 이건 사실로 보인다. [[http://news.joins.com/article/2984741|박종호-박용택 ‘아! 사이클링 히트’]]
          * 2000년 시즌 후반 [[박종호]]의 타격 1위를 굳히기 위해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5경기에서 박종호를 출전 제외했으며, 10월 12일 SK전에서 타율 2리 차이로 근소하게 추격하고 있던 [[틸슨 브리또]]에게 고의적인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시켰다. 결국 열받은 브리또는 "더러워서 타격왕 안 해먹는다" 라며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한 경기만을 겨두고 다음날 출국해버린다.
  • 김진우(WINNER) . . . . 12회 일치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출생}}}''' ||<(> [[1991년]] [[9월 26일]] ([age(1991-09-26)]세), [[전라도]] [[신안군]] [* [[OUR TWENTY FOR]] 컴백 기념 V앱에서 본인이 언급한바 [[전라도]] [[신안군]]에서 출생했으며 기억도 안날 정도로 어린시절에 임자도로 이사간 후 7살때 [[전라도]] [[목포시]]로 이사갔다고 한다.] ||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미이다. 오빠생각에서 팔굽혀펴기를 할 때 코 (실리콘) 를 조심하라는 말에 몇번 웃어 넘기다 결국 "자연산이에요!"라고 화를 냈다. 사실 졸업사진 등 과거사진만 봐도 자연미임을 쉽게 알아 챌 수 있다.
         [[태현]]이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미 팀 내 준수한 보컬이 두 명이나 존재하기에 사실 보컬의 비중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현이 팀을 탈퇴한 이후 강승윤을 보좌할 보컬로서 김진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고, 따라서 [[FATE NUMBER FOR]] 활동을 위해 보컬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한다.
          * 맘이 여린 탓에 맏형답지 않게 눈물을 자주 흘리는 가녀린 성격.[* 눈물은 잘 흘리지만 의외로 강단 있는 성격이다. 2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연습생을 시작한 것과 가끔 보이는 마이페이스 적인 모습들로 보아 외유내강형인듯.] [[JYP]] 연습생[* 당시 데뷔를 앞둔 [[GOT7]]의 멤버 몇 명과 [[DAY6]] 멤버들]과의 대결 때 가사 실수를 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상당히 노력파이기도 한데, 위너 티비에서 [[강승윤]]은 김진우에 대해 "잠이 없는 노력의 천재"라고 평했다. 들 잘 시간에 연습을 한다는 의도. 많이 자면 4시간이라고. 연습생 기간에는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밥 대신 커피를 텀블러에 들고 다니며 마셨다 여담이지만 [[iKON|형제그룹]]의 [[김진환(iKON)|맏형]]도 눈물이 많다 그나마 TV방송에선 이런 모습은 적은편이다.
          * [[전라도]] [[신안군]] 천사의 섬 임자도 출신이다.[* 시골 출신답게 좋은 구름 나쁜 구름을 구분할 줄 알며, 어르신 용어를 쓸 때가 있다. 장롱을 농장으로 발음한다던가..] 왕자님처럼 자랐을 것 같다는 얼굴과 다르게, 섬소년으로 순박하게 자란 탓인지 [[천연]] 속성을 가지고 있다.[* 김구워더도 이런 성격에서 나온 것. 송민호의 진우형은 그냥 말하는데 빵빵 터져요도 같은 맥락][*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할 줄 안다. 잘생긴 얼굴에 사투리는 일종의 갭모에?] 말할 때 자세히 들어보면 [[전라도 사투리]]가 들린다! 상당히 귀엽다.
          * 설날 V앱 '위너 김진우 떡국 먹고 +1살'에서 본인피셜 본인 기억에 는 [[한복]]을 입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 아직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데 칠레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이유는 칠레가 일자로 긴 나라이기때문에 쭉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싶기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일자 나라이기때문에 도로도 일자라고 생각한 듯한데, 라디오스타 MC들에게 나라가 일자라고 도로가 쭉 일자로 뻗어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아 그래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칠레 5번 도로가 북쪽에서부터 쪽까지 뻗어있긴하다.] ~~그저 김모지리..~~
          * 라디오스타에서 MC들이 공백기에 할 일이 없으면 작곡을 해보라고 권했는데 본인은 작곡에는 재능이 없다며 셀프디스를 했다. 하지만 EVERYDAY 활동 때 인터뷰를 보면 작사 작곡을 열심히 하여 꽤 좋은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이돌 최초 멤버 전원이 전곡을 작사작곡할 앨범의 탄생이 얼마 지 않았다--
  • 김혜은(탤런트) . . . . 12회 일치
         ||<bgcolor=#405366> {{{#FFFFFF '''출생'''}}} ||<(> [[1973년]] [[3월 1일]]([age(1973-03-01)]세), [[전라도]] [[여수시]] ||
         ||<bgcolor=#405366> {{{#FFFFFF '''가족'''}}} ||<(> 동생 김지호^^(1976년생)^^, 배우자 김인수, 딸 김가은 ||
         [[기상캐스터]] 출신의 배우. [[전라도|전]]에서 태어나 여수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1997년 [[MBC]]에 지원했다가 2명만 뽑는 [[아나운서]] 시험에서 [[김주하]], [[방현주]]에 이어 3등을 하는 바람에 [[청주문화방송|청주MBC]]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서울]]로 올라와 기상캐스터와 [[뉴스데스크]] 메인 기상 캐스터로 활약했으며, 2004년 8년 간의 기상캐스터 생활을 정리하고 퇴사했다.
         여담으로 나름 [[신데렐라]] 인생을 살았다. 성악을 접고 방황하던 시절 [[의사]]인 편을 만나 결혼했지만, 이 때부터 시가의 눈치를 보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필 이 때 [[유산]]해 버린 지라 바닥까지 갈 뻔했다. 물론 이후 연기자로서 재기하고, 딸 가은 양을 출산하며 극복해 냈다.
         드라마에서는 [[김인영(각본가)|김인영]] 작가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다. (ex. 결혼하고 싶은 여자, 태양의 여자, 적도의 자, 착하지 않은 여자들) --본격 여자 시리즈 전문배우--
         ||<|3> 2012년 || KBS2 || [[적도의 자]] || 박윤주 || ||
         || [[너도 인간이니?]] || 호연 || ||
         || 2018~2019년 || tvN || [[자친구(드라마)|자친구]] || 김선주 || ||
         || 2014년 || [[자가 사랑할 때(영화)|자가 사랑할 때]] || 미영 || ||
  • 남명렬 . . . . 12회 일치
         | 이름 = 명렬
         | 출생일 = {{출생일과 만나이|1959|5|14}}<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B%82%A8%EB%AA%85%EB%A0%A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16595 명렬-네이버인물정보]</ref>
         '''명렬'''(南明烈, [[1959년]] [[5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movie.daum.net/movieperson/Biography.do?personId=7248&anchor=filmography 명렬-다음인물정보]</ref>
         * 《[[인형사]]》 (2004년) - 중년
         * [[2013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 |SBS]] 드라마 스페셜 《[[주군의 태양]]》 - 집을 안팔겠다는 자 역
         *1986년 충청도연극제 연기상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양평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경기대학교 동문]]
  • 남윤정(탤런트) . . . . 12회 일치
         |이름 = 윤정 <br /> 南允貞
         |자녀 = 1 1녀
         '''윤정'''(南允貞, [[1954년]] [[5월 4일]] ~ [[2012년]] [[8월 1일]])은 [[대한민국]]의 [[영화 배우|영화배우]] 겸 탤런트, 연극배우이다.
         * [[1996년]] [[KBS2]] 청소년드라마 《[[스타트 (드라마)|스타트]]》 ... 정영의 모 기자 역
         * [[2000년]] [[SBS]] 미니시리즈 《[[줄리엣의 자]]》
         * [[2002년]] [[MBC]] 미니시리즈 《[[위기의 자]]》 ... 나미 모 역
         * [[2003년]] [[SBS]] 아침드라마 《[[당신 곁으로]]》 ... 씨 역
         * [[2007년]] [[SBS]] 미니시리즈 《[[강엄마 따라잡기]]》 ... 장영자 역
         * [[2007년]] [[KBS]] 전원드라마 《[[산 너머 촌에는]]》
         * [[2011년]] [[MBC]] 아침드라마 《[[위험한 여자]]》 ... 지숙 역
         [[분류:1954년 태어]][[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자살한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고양시 출신 인물]]
  • 남일해 . . . . 12회 일치
         | 이름 = 일해
         | 출생지 =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산동 (대구)|산동]]
         '''일해'''({{본명|'''정태호'''}}, [[1938년]] [[11월]]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63년]]||빨간구두 아가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9&aid=0003004171], 매일경제신문, 2013년 7월 26일, 빨간색을 양지로 끄집어낸 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 [패션찬가 ③]</ref>
         |[[1990년 5월]]||일해 히트모음||
         |[[2002년 2월]]||일해 골든앨범||
         |[[2006년]] [[11월 24일]]||일해 골든||
         |[[2013년]] [[5월 1일]]||일해 골든베스트 (참 좋다)||
         |[[2013년]] [[8월 5일]]||일해 (청계천의 밤 / 가버린 사랑)||
         [[분류:1938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
  • 남창희(연예인) . . . . 12회 일치
         ||<#878787> '''{{{#EEE156 이름}}}''' ||<(> 창희 ||
         ||<#878787> '''{{{#EEE156 본관}}}''' ||<(> [[(성씨)|의령 씨]][* 23세손 'O熙'항렬로 11살 연상의 개그맨 [[희석]]의 증조할아버지뻘이다...] ||
         [[대한민국]]의 방송인. 비공채 출신 개그맨. 전북 진안고 3학년 재학 당시 [[기쁜 우리 토요일]]의 학생이 선생님이 되고 스타들이 학생이 되어 수업을 받는 코너 '스타스쿨' 에 출연하면서 방송에 데뷔하였다. 학생답지 않은 노련한 화술로 단번에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고 재출연 요청까지 빗발쳐서 한번 더 출연했을 정도. 어찌보면 제대로 연예인길을 걷고 있는 지금보다 이때가 더 떴었다(...)[* 진안고 연극부 출신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창희가 방송에 데뷔한 시점과 비슷한 때 데뷔한 고교생 스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판유걸]]'''이다. 두 사람 다 1982년생 동갑내기이지만 판유걸은 1999년에 데뷔했고 창희는 2000년에 데뷔했다. [[안습]]한 것은 판유걸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창희가 뜨고 창희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판유걸이 뜬다는 점. 다만 데뷔 당시 더 뜬 사람은 판유걸이었고 대중은 창희를 판유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유재석]]이 국민MC가 되기전부터 심복으로 활동하며 [[유라인]]에 근속한 초창기 멤버 중 한명이다.
         MBC 예능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 작명 가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이름을 '유신'으로 바꿀 뻔했다.
          * [[자 태어나다]] - 양아치3 役
         [[분류:진안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1982년 출생]][[분류:2000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마재윤 . . . . 12회 일치
         [[김구현 (프로게이머)|김구현]]과는 0:3 무승으로 열세였다. 첫만은 [[곰TV MSL 시즌4]] 32강 C조 패자전이었는데, 여기서 패하며 2연패로 탈락해버렸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3라운드 STX전 3세트에서 패했고, 팀도 올킬패를 당했다. 이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STX전 4세트에서 또다시 패하였다.
         [[도재욱]]을 상대로 마재윤은 상대전적 0:3 무승으로 열세. 첫만은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4경기였는데, 여기서 패했다. 이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2라운드 SKT전 4세트에서도 패했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3라운드 SKT전 3세트에서도 패했다.
         [[송병구]]와의 첫만은 비공식전인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예선 D조 결승으로 이때 1:2로 패배, [[WCG 2005]] 1차예선 9조 4강에서도 0:2 셧아웃, 이어 공식전에서의 첫만은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플레이오프 삼성전자전 7세트였는데 여기선 송병구에게 패했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삼성전자전 5세트에선 승리했다. 이어 이듬해 [[곰TV MSL 시즌2]] 16강 D조 경기에서 다시 만났는데,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올스타전 열정팀전 7세트에서 다시 마재윤 승리, [[곰TV MSL 시즌3]] 16강 D조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두 번째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끝내 마재윤이 2:1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여름 비공식전인 2008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1:2 패배, 그해 겨울 역시 비공식전인 [[IEF 2008]] 8강 A조에서는 0:3 셧아웃 패배, 역시 비공식전인 올스타 종족 최강전 프로토스전 6세트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5:2로 우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2:8로 더 강세.
         [[윤용태]]와의 첫만은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한빛전 2세트였는데, 여기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한빛전 5세트에서 또다시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WCG 2007]] 최종 대표선발전 3, 4위전에서 2:0 셧아웃시키며 본선에 진출했고, [[곰TV MSL 시즌3]] 8강 B조 경기에서 3:1로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2라운드 한빛전 1세트에선 패배하였다. 다시 비공식전인 [[WCG 2008]] 대표선발전 24강에서 1:2 패배 탈락,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2]] 32강에서 1:2 탈락,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5:2,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9:6으로 우세.
         [[이제동]]과의 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3:3 무승부, 비공식전까지 따지면 4:5 약간 열세. 첫만은 비공식전이었던 스타리그 24강 진출전 예선 M조 결승으로 이제동이 2:1 승리, 공식전에서의 첫 만은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으로 이때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16강 패자전 1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르까프전 2세트에서 패하면서 2전전승이 끊겼다. 이어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1경기에서도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3라운드 위너스리그 결승전 화승전 3세트까지 패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화승전 2세트에서 승리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끊었다.
         테란전의 최종병기 [[이영호 (1992년)|이영호]]에게는 매우 약했다. 첫만은 [[다음 스타리그 2007]] 16강 A조 3경기로 여기선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2007 2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에서는 이영호에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패했으며, [[에버 스타리그 2007]] 16강 D조 5경기에서도 패하면서 이영호전 3연패를 했다. 하지만 16강 D조 재경기 3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하면서 이영호전 3연패를 끊었다. 이어 비공식전인 [[XNOTE-인텔센트리노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16강 A조 1경기에서는 다시 이영호에 패배, 3월 열린 올스타 스킨스 매치 이영호전에서는 3:0이었다가 내리 4개의 세트를 내주며 리버스 스윕 3:4 대역전패, [[TG삼보-인텔 클래식 시즌1]] 특별전 4강 B조에서 0:2 완패, 다시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올스타전 열정팀전 3세트에서는 마재윤 승리,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KT전 3세트에서 패배, 2라운드 KT전 2세트에서도 패했다.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2:5로 열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12이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과의 첫만인 MBC Movies배 팀리그 KTF전 3경기에서는 강민이 승리, 구룡쟁배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 F조 4경기에서도 강민이 승리했다. 그러나 [[CYON MSL 2005]] 16강 1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 비공식전인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구투어 결승에서는 1:2 패배 준우승,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그해 8월 [[WEF 2006]] 4강에서 마재윤이 2:0 승리,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2]] 4강 B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 또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8강 B조 2경기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KTF전 2세트에서는 강민에 패했다. 비공식전인 2007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4강 8강에서 2:1 승리, 다음날 최종 결승전에서 2:0 승리, 2년 뒤 7월, [[헤리티지]] 10강 B조 5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하였다.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8:5, 비공식전까지 포함하여 18:8로 마재윤이 강세.
         [[안상원]]과는 비공식전에서 먼저 만났었는데, 다음 다이렉트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0:2 완패, 2006 2차 듀얼토너먼트 1조 결승에서 1:2 패배, 공식전에서의 만들인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온게임넷전 4세트에서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곰TV MSL 시즌2]] 32강 B조 최종전에서도 안상원에 승리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며, 14차 MSL 서바이버 토너먼트 L조 최종전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하며 MSL 진출에 성공했다. 공식전만으로는 0:3 열세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4:4 동률이다.
         [[임요환]]과의 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1:1이나,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6:1 더 강세다. 2004년 4차 마이너리그 E조 1경기 승리, 2006년 10월에 열린 제1회 슈퍼파이트 e스포츠에서 3:0으로 승리하였고, 여담으로 이때 임요환은 공군 입대까지 엿새 은 때였다. 이어 2007년 어린이날엔 역시 비공식전인 도너스캠프 드림매치에서 2:0 승리, 그러나 나흘뒤 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공군전 1세트에서는 처음으로 임요환에 패했으며, 이로써 비공식전까지를 포함한 상대전적 전승 기록이 끊겼다. 이 기록 역시 KeSPA에는 삭제되어서 없다.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아프리카TV BJ]][[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CJ 엔투스의 선수]]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12회 일치
          오래전 발생한 범지구적 대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환경재앙. 오프닝의 나레이션에 의하면 "지축이 뒤틀리고 대부분의 대륙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이 작품이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몇십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지각변동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어서 극 마지막에는 인더스트리아가 있는 지역이 모두 수몰되고, 작은 섬이던 홀로은 섬이 융기하여 [[대륙|커다란 땅덩어리]]가 된다.
          주로 플라스틱 수집 및 다른 곳과의 교역용으로 사용되었으나, 다이스 선장 측이 인더스트리아와 결별한 후에는 침몰당하기도 하는 등의 고난을 겪는다. 최종적으로는 코난 일행이 홀로 은 섬으로 이주할 때 이민선으로 사용된다.
          * 겨진 섬 (残され島[* のこされ島라는 표기도 있다.])[* 더빙판에서는 '홀로 은 섬'으로 의역되었다.]
          대참사 당시 지구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우주선이 불시착하여 우주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곳으로 여기서 코난이 태어났으며 코난의 부모를 비롯한 코난의 할아버지 동료들이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1화 시점에서는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 두 사람만이 거주하고 있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코난과 코난의 할아버지는 자신들만 살아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고 코난의 할아버지가 라나를 잡으러 온 몬스리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군인 2명에게 저항하다가 죽은 뒤, 코난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겨진 섬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대륙이 되면서 코난이 살던 집은 산 정상에 위치하게 되었는 데 대륙이 된 홀로 은 섬(겨진 섬)에 다이스, 몬스리, 류케를 비롯한 인더스트리아 피난민과 테라를 비롯한 하이하버의 일부 주민이 코난 일행과 함께 이주하게 된다. 홀로 은 섬(겨진 섬)은 작 중에서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지역이다.
          배를 타고 겨진 섬을 떠난 코난이 거칠고 험악한 바다를 넘어서 도착한 섬. 이곳에서 [[포비(미래소년 코난)|포비(지무시)]]를 만나게 된다. 포비 외에도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다들 늙고 연약한 사람들 뿐이다.[* 포비의 말에 의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다들 바라쿠다 호에 실려갔다고.] 오래되서 무너진 집들이 있는 지역, [[플라스틱]] 채굴장 등의 장소가 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 박신혜 . . . . 12회 일치
         2003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를 통해 데뷔하였고, 같은 해 방영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을 연기했다. 드라마 《[[천국의 나무]]》, 《[[미이시네요]]》, 《[[이웃집 꽃미]]》, 《[[상속자들]]》, 《[[피노키오 (드라마)|피노키오]]》,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와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7번방의 선물]]》, 《[[상의원]]》 , 《[[침묵]]》, 《[[형]]》 등에 출연하였다.
         박신혜는 [[1990년]] [[2월 18일]] [[대구광역시]]에서 1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재학 시절 연예계 데뷔를 하면서 [[부산광역시]]로 이주하여 줄곧 그 곳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승환 (가수)|이승환]]의 팬이었던 공부방 선생님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배우 오디션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신혜의 사진을 드림팩토리에 보내게 되었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035593|title='The Inheritors' Park Shin Hye, a very good example of growing up of child actress|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 그 후 이승환이 대표로 있는 드림팩토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연기, 노래, 댄스 트레이닝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m.star.naver.com/ssinz/news/end?id=2102028|title=[STARCAST] Park Shin Hye’s Life Graph "I hope to be someone who grows 1cm every year"|publisher=Naver|accessdate=2013-09-15}}</ref><ref>{{웹 인용|author=March 9, 2014 |url=http://www.soompi.com/2014/03/09/park-shin-hye-named-as-the-new-nations-little-sister/ |title=Park Shin Hye Named as the New "Nation’s Little Sister" |publisher=Soompi |date=2014-03-09 |accessdate=2016-12-29}}</ref>
         === 2009-2015: ''미이시네요''와 ''상속자들'', 한류 스타로 발돋음 ===
         박신혜는 2009년, 드라마 《[[미이시네요]]》로 이후 1년 반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극중 속세와 차단된 수녀원을 나와 쌍둥이 오빠 고미을 대신해 비밀과 가십, 계산과 계약으로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살아 나가는 고미녀 역을 연기하며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맞이했고, 일본 및 중화권에서도 인지도를 높히며 한류 퀸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058 |title=‘미이시네요’가 ‘아이리스’에 기죽지 않는 이유 |출판사=일간스포츠 |저자= 정지원|날짜=2009-10-30 |확인날짜=2016-12-29}}</ref><ref>{{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jang-geun-seok-you-re-beautiful-beats-winter-sonata-33223.html |title=Jang Geun-seok "You're Beautiful" beats "Winter Sonata" @ HanCinema :: The Korean Movie and Drama Database |publisher=Hancinema.net |date=2011-09-14 |accessdate=2016-12-29}}</ref> 나중에 박신혜는 인터뷰에서 “성인이 돼 처음 한 작품으로, 아역이 아닌 ‘박신혜’라는 한 여배우의 시작을 알리게 해준 작품”이라고 ‘미이시네요’에 대해 말했다.<ref name="mbn" /> 이듬 해, 2010년 박신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연애 조작 요원 오민영 역을 맡아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과 공연하며 영화는 26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대만 드라마 《선풍관가 旋風管家》에서 샤오즈 역을 맡아 출연하였고, 2011년 방영되었다.
         박신혜는 2011년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상큼한 여대생 이규원 역을 연기해, [[정용화]]와 다시 공연했다. 예술대학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겠다는 취지로 시작 됐지만 연이은 시청률 부진으로 15회로 조기 종영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시청률 부진 속 <넌 내게 반했어>, 15회로 종영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8457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미나 |날짜 = 201-08-09 |확인날짜 =2013-09-01 }}</ref><ref>https://www.soompi.com/2010/09/01/george-hu-is-park-shin-hyes-combat-butler/</ref> 이듬 해, 2012년에는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에서 본인이 귀신이란 걸 자주 망각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생기 넘치는 귀신 연화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아 [[KBS 연기대상]] 단막극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3년 초 개봉 되어 역대 여덟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 성인 예승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english.yonhapnews.co.kr/culturesports/2013/03/15/27/0701000000AEN20130315007900315F.HTML|work=[[연합뉴스]]|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315000902|work=The Korea Herald|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last=Ji|first=Yong-jin|title=MIRACLE IN CELL NO. 7 Passes MASQUERADE to Become 3rd Most Successful Korean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2324|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013-03-20|date=19 March 2013}}</ref> 같은 해 1월 첫방영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웃집 꽃미]]》에서 사람 만나길 두려워 하는 히키코모리 고독미 역을 연기했고, 제 나이와 성격에 어울리는 밝고 씩씩한 여대생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f name="mbn" /><ref>{{웹 인용|url=http://www.soompi.com/2012/10/31/park-shin-hye-and-yoon-shi-yoon-to-star-in-new-drama-flower-boy-next-door/|title=Park Shin Hye and Yoon Shi Yoon to Star in New Drama "Flower Boy Next Door"|date=June 26, 2012|accessdate=February 7, 2012|publisher=soompi}}</ref> 박신혜는 코오롱스포츠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된 '웨이 투 네이처 필름 프로젝트 단편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가위바위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356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17년, [[정지우 (영화 감독)|정지우]] 감독의 영화 《[[침묵 (2017년 영화)|침묵]]》에서 변호사 최희정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자 ‘임태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ref>{{뉴스 인용 |제목 =최민식x박신혜x류준열 '침묵' 11월 개봉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88848|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7-09-20 |확인날짜 =2017-09-20 }}</ref> 2017년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신혜는 2017년 6월부터는 지난 2013년 첫 투어 이후 4년만에 2017 아시아투어의 첫 스타트 무대를 홍콩에서 성황리에 마쳤으며, 이번 아시아투어는 올 해로 네 번째로 투어 수익금 전액은 기아대책에 기부되었다. 이외에도 대만,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태국에서도 열릴 예정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아시아투어 첫 무대 성료…"MC 없이 단독진행"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105412|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정유나 |날짜 = 2017-06-12 |확인날짜 =2017-09-12 }}</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한류여제’ 파워 과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76478|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이정연 |날짜 = 2017-07-04 |확인날짜 =2017-09-12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밀양 박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박주영 . . . . 12회 일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카디프 대첩|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주영/국가대표 경력#s-3.2|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2008년 11월 19일||<:> [[리야드]]||[[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width=30]] [[사우디 아라비아]]||<:> 2-0||<:> 2010 FIFA 월드컵 아공 예선||
         ||<:> 2009년 6월 6일||<:> [[두바이]]||[[파일:아랍 에미리트 국기.png|width=30]] [[UAE]]||<:> 2–0||<:> 2010 FIFA 월드컵 아공 예선||
         ||<:> 2010년 6월 23일||<:> [[더반]]||[[파일:나이지리아 국기.png|width=30]] [[나이지리아]]||<:> 2–2||<:> 2010 FIFA 월드컵 아공||
          * 무슈 팍 : 만약 그가 모나코인이라면 마땅히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성 호칭인 무슈를 활용하였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썬더 : 아공 월드컵 때의 아디다스 광고문구 '모든 팀에는 썬더가 필요하다'에서 유래. [[https://youtu.be/mm4UdKrcoKE|#]] --물론 비꼬는 의미이다.박썬더 벤치썬더 등으로 응용된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A매치 전대륙 상대 득점자이다. 득점 순서대로 보면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아시아), 2006년 1월 21일 그리스(유럽), 2006년 3월 1일 앙골라(아프리카),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미), 2009년 9월 5일 호주(오세아니아),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북중미) 순이다. 다만 호주의 경우 OFC 소속이 아닌 AFC 소속일 때 기록한 득점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2018년 현재까지 이 기록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만 보유하고 있다.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김진규(축구인)|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백성현 . . . . 12회 일치
         | 오선
         | [[오매]]
         | [[자의 향기 (영화)|자의 향기]]
         | 신인 자연기상
         | 자 신인상
         | 우주연상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수원 백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싸이더스HQ 소속]]
  • 블랙 클로버/104화 . . . . 12회 일치
          * 푸른 들장미 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는 추근대던 버밀튼 작을 반죽음 시킨다.
          * 야미는 강한 여자는 좋아하지만 "가끔은 한테 의지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를 해방시키는데, 그때 야미에게 반하게 된다.
          * 추근거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죄로 초죽음이 된 버밀튼 작.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푸른 들장미단의 단장 [[샬롯 로즈레이]]였다. 샬롯은 가문으로도 개인의 역량으로도 버밀튼 작을 한참 능가하는 알파걸이었고 그녀 자신도 그걸 무기 삼아 신랄한 독설로 멘탈을 부숴뜨린다. 육체와 멘탈 양면에서 죽기 직전에 놓인 버밀튼 작.
          * 아스타를 적당히 던져좋은 솔은 원래 목적대로 자신이 구해온 드레스를 샬롯에게 입힌다. 샬롯은 자한테는 과격하지만 여자끼리는 약한지 순순히 그 옷을 갈아입어준다. 솔과 아스타를 비롯해 구경꾼들이 그녀의 드레스 차림을 칭송한다.
          * 하지만 괴팍하게도 "자들 구경거리가 아니다", "언니의 아름다움을 즐겨도 되는건 푸른 들장미단 뿐"이라며 아스타를 포함한 구경꾼들에게 엄포를 놓는다.
          솔은 자기네 단장의 실태에 대해선 잘 모르므로 야미를 "누추하고 쉰내나는 자 중 No.1"이라 질시하며 샬롯 근처에도 못가게 한다.
          그때 주변에선 클로버 왕국의 특산물 클로버 맥주가 한창 판촉 중이다. 바네사는 야미에게 "술 잘 마시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떡밥을 던진다. 야미느 별 생각없이 "그렇긴 하다"고 답하는데, 바네사는 이걸 기회로 샬롯에게 "술 마시기 대결"을 걸어온다. 샬롯은 공적발표 시간이 얼마 지 않았다며 승부를 피하려 하는데 뇌가 근육인 솔이 "언니가 질리 없다!"며 멋대로 승부를 받아들인다.
          * 결국 저주에 굴복한 샬롯은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생각만 있을 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났던게 당시의 야미였다. 야미는 재앙이 닥치는 판에 엉뚱하게도 "너 때문에 수프 파스타"를 엎질렀다고 투덜거린다. 당시 샬롯은 야미를 상당히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을 구하러 온 걸 보고도 "이딴 자에게 추한 꼴을 보였다"며 굴욕적으로 여긴다. 야미는 임무에서는 언제나 자기가 먼저라며 날뛰던 그녀가 꼴 좋게 됐다며 신랄한 소릴 한다. 하지만 단지 그런 말만 한건 아니다.
          무슨 운명이었는지, 저주를 푸는 열쇠는 "자에게 마음을 뺏긴다"였다. 온 마음을 집어삼킬 기세로 뻗어나가던 장미덩쿨이 서서히 바스라들었다. 지금도 샬롯은 하필 저렇게 야만스럽게 열불터지는 자에게 반했는지 알 수 없다.
  • 성현아 . . . . 12회 일치
         | 자녀 = 1
         | 배우자 = 최정우 ([[2007년]] ~ [[2010년]]<ref>편 이혼 후 [[2017년]] 자살로 추정하였다.</ref>)
         [[2002년]]에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되었고,<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87524_13454.html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성현아 마약복용 구속] (2002년 3월 7일, MBC 뉴스데스크)</ref> 2003년에 [[나체|누드]] 화보를 발표한 후 2004년 영화 《[[여자는 자의 미래다]]》에 출연해 [[칸 영화제]]에 진출해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6년]] SBS [[어느날 갑자기 (2006년 드라마)|어느날 갑자기]]로 정극 복귀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MD포토] 성현아, '4년만의 TV복귀 떨려요' |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0038591| 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곽경훈| 쪽= | 날짜= 2006-02-21| 확인날짜= 2018-09-25}}</ref>
         2010년에 여섯 살 연상의 사업가와 재혼하여 아들을 [[출산]]했다. 그러나 재혼한 편의 사업이 순탄치 않아 별거에 들어갔고, 이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2013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으나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인정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MBC로부터 출연금지를 받아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언론에 부담느꼈나? 성현아 끝내 제작발표회 불참| url=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276165| 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강은영| 쪽= | 날짜= 2018-02-06| 확인날짜= 2018-09-25}}</ref>
         * [[1996년]] [[SBS]] 드라마스페셜 《[[자대탐험]]》 ... 유맹희 역
         * [[1997년]] [[SBS]] 단막극 《[[SBS 70분드라마]] - 가방을 든 자》
         * [[1998년]] [[MBC]] 일일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2001년]] [[SBS]] 단막극 《[[SBS 오픈드라마 과여]] - 나는 Mr. 하이디와 결혼했다》 ... 영혜 역
         * [[2010년]] [[MBC]] 주말 특별기획 《[[욕망의 불꽃]]》 ... 애리 역
         * [[2004년]] 《[[여자는 자의 미래다]]》 ... 박선화 역
         * [[1994년]] [[미스코리아 광주-전]] 진(眞)
         | 제목 = [[미스코리아 광주-전]] 진(眞)
  • 손지창 . . . . 12회 일치
         | 자녀 = 슬하 2 (장 손성민(Scott son), 차 손경민)
         [[1998년]]에는 드라마 《[[일요일은 참으세요]]》에서 공연한 배우 [[오연수]]와 결혼하여 현재 슬하에 2을 두었으며, [[2004년]] 드라마 《[[영웅시대 (2004년 드라마)|영웅시대]]》를 끝으로 배우활동은 접고, 기업 홍보 대행 사업을 하는 등 사업가로 활동을 넓혔다.
         * 2003년 KBS 《[[장미 울타리]]》 ... 건우 역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 신인연기}}
         [[분류:손지창]][[분류:1970년 태어]][[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오카마 . . . . 12회 일치
         성 동성애자, 여장 자 등을 뜻하는 속어이다.
         의미의 범주가 넓어서 「(여성적인)성동성애자」,「여자같은 말을 쓰는 사람」,「여장 취미를 가진 사람」,「접객업이나 예능업 등의 쇼에서 여장을 하고 연기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개념이 혼동되고 있다.
          * 에도 시대에 오카마는 항문을 의미하는 속어였다. 이것이 변하여 항문성교를 하는 여장 창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 에도시대에 창을 의미하는 「카게마(陰間, かげま)」와 연관이 있다는 설.
          * 가부키(歌舞伎)의 여자 역할을 하는 자 배우 「오야마(女形,おやま)」와 연관이 있다는 설.
         1950년대~1960년대에는 여장 창에 대한 멸칭으로 주로 쓰였으며, 1970년대에는 자학적인 용법으로 오카마를 쓰는 표현이 정착되었다. 1980년대에는 부터는 여장자나 동성애자 이외에도 여성적인 성을 뜻하는 멸칭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자는 자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깊어져, 조금만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도 오카마 같다는 멸칭을 다른 학생이나 여학생, 심지어 어머니로부터 듣고 고통을 받는 사례도 나타났다고 한다.
  • 은혼/637화 . . . . 12회 일치
          * [[가구라]]&[[카무이(은혼)|카무이]] 매의 협공으로 노사의 승부욕도 금구슬도 꺾이고 만다.
          * 강적을 물리쳤지만 바보매는 아직도 매싸움 모드. 그때 [[사카타 긴토키]]와 [[진선조]] 일행이 도착한다.
          * 우츠로는 지금껏 많은 별들의 용맥를 조종해 테러를 일으켰는데 왜 지구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여러분을 위해 겨둔"것이라 밝히며 용맥을 폭주시킨다.
          * 특수한 기공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사. 그에겐 "진짜 야토의 피"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우미보즈(은혼)|우미보즈]]와 [[쿄우카]]의 자식 [[가구라]]와 [[카무이(은혼)|카무이]]가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쓰러진 채로 자신의 혈통을 가지고도 저 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매의 눈에는 자신 따위는 들지도 못했으며 눈 앞의 적이 아닌, 더 먼 곳의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전사로서의 수명도 자로서의 수명도 끝장이 나고 만다. 마지막까지 꽂꽂해던 그의 금수슬이 수그러들면서 영영 ED의 길로 접어들어 버린다. 부하들은 그의 금구슬을 보고 전장의 전설이 단지 애송이들의 손에 끝장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구라만이 이 중에선 유일하게 확인 방식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비교적 온유한 경고가 나오자 [[아부토]]를 비롯한 7사단은 "독감이라도 걸렸냐"고 놀린다. 하지만 카무이는 딱히 바뀐 건 없고 그저 송사리들에겐 볼 일이 없으니 얼른 보스랑 싸우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가 가구라가 "송사리 좀 늘어도 상관없다"며 적의를 드러낸다. 카무이 또한 "네가 보스인 줄 아나 본데 정리해버리고 싶은 송사리일 뿐"이라며 매싸움 2라운드를 속행하려 든다.
          그때, 익숙한 목검이 매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 그런데 플래그를 한두 군데 뿌린게 아니다 보니 이것도 경쟁률이 높다. [[진선조]]도 도착. [[오키타 소고]] 또한 플래그를 꽂았다. 자기도 한 마디 들은 기억이 있어 이것만은 긴토키에게 양보할 수 없다고 나서는데. 인기가 폭발하는 카무이. 긴토키가 플래그를 너무 뿌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며 이래서야 보스 한 명하고 해피앤드를 맞을 수 없다 디스한다. 오키타도 거들면서 "너같은 마나카 한테 어울리는건 동서북 히로인들한테 꼬치가 되는 아수라장 앤딩 뿐"이라며 킨타마100% 드립을 친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설마 지 목소리도 마나카인 주제에 마나카 꼬치 드립을 칠 줄은 몰랐다고 코멘트.[* 오키타와 딸기100%의 주인공 마나타는 모두 성우가 스즈무라 켄이치]
          >동서북 사방이 적. 그건 나한테는 해패앤드야.
          * 일행이 갑자기 나타난 나락에 당황할 틈도 없이 그 배후의 인물 또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렇게 꼭꼭 숨어있던 [[우츠로(은혼)|우츠로]]가 말이다. 그는 카무이가, 아부토가 말한대로 이제 해방군은 해결사 일행을 끝장낼 여력이 지 않았다고 말한다.
          >겨뒀던 겁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 이기택 . . . . 12회 일치
         ||<#6e7edd> '''출생지''' ||<#c5cae8>[[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지행면[* 현 포항시 [[구(포항)|구]] 장기면] ||
         1937년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구(포항)|구]] 장기면)에서 태어났다.
         1980년 [[5.17 내란]]으로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이 규제되었다가 1984년 해금되면서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동래구 지역구에는 이미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한 자신의 비서 출신 [[박관용]]이 있었다. 이에 지역구를 [[해운대구]]-[[구(부산)|구]]로 옮기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산 해운대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 [[서석재]]의 뒤를 이어 통일민주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당시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을 때 위원장을 맡아 원만한 청문회 진행으로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겼다.[* [[노무현]]이 5공비리 청문회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조연으로 활약(?)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해운대구로 출마할까 말까 오랜시간 고민하다가 못 이기는 척(?) 전국구 상위순번을 배정받아 당선되었다. 반면에 [[노무현]]과 [[김정길(1945)|김정길]]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부산에 출마해서 [[지역감정]]의 역풍 속에서도 처절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패배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겼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노무현은 4번, 김정길은 총 7번을 떨어졌으나, 김정길은 장관이 되었고 노무현은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초재선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지역감정과 맞서면서 죽을둥 살둥 싸우는데, 정작 격전지에 출마해서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당대표는 유유자적 전국구 상위 순번으로 편하게 금뱃지를 달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즉 지역구 당선가능성을 보고 간을 보다가 지역감정으로 안 될 거 같으니 전국구로 도망간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실제 당대표이자 영권에서 가장 정치경력도 길고 지명도가 높은 이기택이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면서 민주당의 영권 선거전략이 제대로 꼬인 건 사실이다. 결국 노무현, 김정길과 몇몇 정치지망생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모조리 낙선하였다. ~~뭘하던 당시 부산에서 김영삼을 넘기는 힘들었겠지만...~~]
         슬하에 3녀 1을 두었다. 딸의 이름은 이우인 지인 세인 씨이고, 아들은 승호씨이다.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해운대) || '''[[신한민주당]]''' || '''159,127 (43.00%)''' || '''당선 (1위)''' || ||
  • 이병욱(스트리머) . . . . 12회 일치
         ||<bgcolor=#A50000> {{{#EEE156 학력}}} || 형곡초등학교 졸업[* 2018년 8월 30일 고향집 소개 영상에서 나옴.(중학교, 고등학교도 역시)][br]형중학교 졸업[br]경북과학기술고등학교 졸업[* 모교에서 급식먹기 영상에서 나옴.][* 이병욱이 재학했을 때는 '아포공업고등학교'였으며 졸업한 해에 교명 변경.] [br] 구미대학교 중퇴 ||
         예전엔 마른 체격이었는데 체중이 불었는지 통통한 체격이되었다. [[2014년]]도에 [[아프리카TV]]에서 명불허전와꾸로 활동했었던 인물.[* 명불허전와꾸를 검색하면 이 문서로 넘어온다.] [[구(범죄자)|구]]에게 사기[* 구에게 핸드폰 명의를 빌려줬다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를 당한 피해자였다.
         구로 인해 피해를 본 일들과 자신의 명품 옷을 헐값에 팔아넘긴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에게 30만원만 받고 퉁친 일화가 있었으며 예전에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트위치로 이적한 지금은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https://youtu.be/A58ak7t1ssM|독한 자의 담배 말보로레드 리뷰]]||
         ||[[https://youtu.be/p0ibaMkBhIc|구랑 신태일이 피는 담배 마일드세븐(메비우스) 리뷰]]||
         ||[[https://youtu.be/cNX326Je5YM|흡연 15년차 담배를 하루에 2갑 피는 구의 "돌아가신 아버지 사연이 있는..." 에쎄 스페셜 골드 솔직 후기]]||
         그 악명높은 '''느금마엔터 민폐 [[신태일(유튜버)|4]][[김윤태|대]][[푸워|천]][[구(범죄자)|왕]]'''에 임팩트가 가려저서 그렇지, 사실상 현재 느금마엔터테인먼트에서 '''이미지가 상당히 나쁜 편에 속한다.''' 트위치에서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보면 '''[[유신(스트리머)|유신]]과 투탑'''이었다.
         [[갓건배]] 문서 참조. 이 때문에 신고당할 여지를 기게 되었다. 참고로 타 스트리머와 분쟁이나 비하가 있을 시 경고 처리를 받는다.
          * 그의 방송을 한번쯤 본 적이 있었다면 알겠지만 상당히 마초적인 기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느금마 엔터 패밀리들과 스카이프 통화를 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날거냐 자로 태어날거냐는 주제가 나왔었는데 이병욱만 다시 태어나도 자로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재밌는건 이때 [[로봉순]]도 있었는데 로봉순은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겠다고 했다.
  • 이유리(배우) . . . . 12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가족}}}'''||<(> 부모님, 1 3녀 중 막내[br]배우자 조계현[* [[KIA 타이거즈]] [[단장]] [[조계현]]과는 [[동명이인]]일 뿐이며, [[교회]] [[목사]]이다.] ||
         2010년 SBS 아침드라마 《당돌한 여자》 타이틀롤 '지순영'역을 맡아 기존의 지고지순한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쾌활한 역으로 또 한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어린 나이에 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줌마가 여러 어려움과 역경을 거쳐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고 사랑도 잡는다는 전형적인 아침 드라마 공식을 따른 드라마. 이유리는 극 중 톡톡튀고 당찬 연기로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드라마는 아침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키며 괜찮은 성적으로 마무리됐다.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반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데뷔 후 개신교에 귀의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인터넷에서 간증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9월 6일]] [[띠동갑]] [[연상]]의 당시 [[전도사]]였던 조계현씨와 결혼했다.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군소 교단 소속 [[목사]]이다. 편이 없었다면 연예계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편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아침마다 편에게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기도 한다고. 목회자의 사모는 삶의 운신에 제약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 편이 연예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한다.
  • 이정훈(배우) . . . . 12회 일치
         호(號)는 표산(杓山), 산(山南)이며 신장은 183cm이고 체중은 73kg이며 [[경기도]] [[김포시|김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1981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특채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연극배우]] 데뷔하였으며 1년 후 [[1983년]]에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17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 [[2010년]] [[KBS1]] 드라마 《[[산 너머 촌에는]]》
         * [[2012년]] [[KBS1]] 드라마 《[[산 너머 촌에는 2|산 너머 촌에는 시즌 2]]》 ... 면사무소 주사 이동수 역
         * [[1989년]] 《[[포기와 베스]]》 ... 포기 역(자 주인공)
         * [https://web.archive.org/web/20151121221641/http://people.mygo.co.kr/people.php?cmd=view&pp_no=6540 마이고 인물정보 - 성 영화배우 겸 연기자 이정훈]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광주 이씨]][[분류:김포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교수]][[분류: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수]]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12회 일치
         2001년 6월 8일, 오사카 교육대학부속 이케다 초등학교(大阪教育大学附属池田小学校)에 37세 성 타쿠마 마모루(宅間守)가 난입하고 칼을 휘둘러, 아동 8명이 사망하고 [[교사]]를 포함한 1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사건 전날 밤, 타쿠마 마모루는 전화번호안내로 알아낸 이케다 초등학교의 전화번호를 네비게이션에 셋트하였으며, 8일 아침에 이케다 시내의 칼가게에서 부엌칼을 2개 구입하고, 이케다 초등학교에 간다. 쪽정문이 닫혀 있엇기 때문에 계속 나아가서, 자동차 전용 게이트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왔다. 동쪽 문 앞에 정차된 차에서는 나중에 [[아이스픽]] 2개, 녹슨 식칼이나 손도끼도 발견되었다.
         >[사무실] 현관 홀 [1-][1-서][1-동][2-][2-서][2-동] 계단
         범인은 [[부엌칼]]을 가지고 2학년 쪽반(2年南組)에 들어가서, 여자아이 5명을 말 없이 찔러죽이고, 테라스를 통하여 서쪽반(西組)에서 어린이들을 습격, 다음에는 복도로 동쪽반(東組)에 들어가서 4명을 습격했다. 동쪽반에서 밖으로 나와서 태클을 걸어온 교사(1학년 쪽반 담임)의 가슴을 찔러서 중상을 입혔다. 교사는 "도망쳐라!"고 소리쳤으며,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뜰 쪽으로 달아났다. 자는 도망치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발길을 돌려서 1학년 쪽반 칠판 옆에 있는 4명의 아이들을 찔렀다. 그리고 겨우 부교장, 그리고 밖에서 엇갈렸던 2학년 쪽반 담임이 달려와서 붙잡혔다.
         단 5분~10분 정도 사이의 짧은 시간에, 타쿠마 마모루는 8명의 아이들을 살해하고, 13명의 아이와 2명의 교사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피해자는 처음 들어간 2학년 쪽반에서 5명, 그 옆의 2학년 서쪽반에서 2명 사망 6명 부상, 2학년 동쪽반에서 4명 부상, 붙잡힌 1학년 쪽반에서는 1명 사망 3명 부상이다.
         사형수는 대부분의 경우 구치소에서 [[다비]]를 하고 유골이 전달되지만, 타쿠마의 시신은 유족의 희망에 따라서 시신 상태로 넘겨졌다. 교도관은 시신과 대면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내가 말했다고 전해주세요."라는 유언을 아내에게 겼다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를 하지 않았다.
  • 전소민(배우) . . . . 12회 일치
         ||<#FFB1BC> '''{{{#white 출생}}}''' ||<#ffffff><(> [[1986년]] [[4월 7일]] ([age(1986-04-07)]세), [[경기도]] [[양주시]] 퇴계원면 (퇴계원로) ||
         ||<#FFB1BC> '''{{{#white 가족}}}''' ||<#ffffff><(> [[부모님]], [[동생]] 전욱민[* [[런닝맨]] 360회 방영분에서 밝혀졌다. 현재 직업은 스포츠 트레이너.] ||
         ||<#FFB1BC> '''{{{#white 학력}}}''' ||<#ffffff><(> [[양주올터쭈꾸미 본점]] ||
         2013년 [[MBC 연기대상]]에서 [[백진희]]와 함께 여자신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황마마]]역의 [[오창석(배우)|오창석]]도 자신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수상소감에 [[임성한]] 작가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 2007년 || KBS || [[산 너머 촌에는(드라마)|산 너머 촌에는1]] || || ||
         ||<|2> 2008년 || KBS || [[아빠 셋 엄마 하나]] || 종희 || ||
         || TV 문학관 - 광염소나타 || 정연 || ||
         ||<|2> 2016년 || tvN || [[혼술녀]] || 진정석의 소개팅녀 || 특별출연 ||
          * 많이 감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추억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릴 때 작성했던 일기류나 친구와 교환했던 편지, 부모님께 드린 편지는 기본이고, 대학 입시 시기에 만든 은행잎 책갈피[* 우연히 코트 모자에 들어온 은행잎이라고 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우연히 딱 잡으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때문이라고]나 친과 헤어진 후 눈물을 닦은 커피숍 휴지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2015년 초 [[윤현민]]과 공개연애를 하다 2016년에 헤어졌는데, 이 때의 경험때문인지 [[https://mnews.joins.com/article/22469099|공개연애는 하지 않을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덤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한 경험은 세번이라고 한다. 2017년에 런닝맨 고정으로 첫 합류한 방송에서 직접 밝힌 적 있으며, 2018년 위험한 파트너 특집 때도 “20대 때 세명이랑 결혼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중 두명은 눈물의 커피숍 휴지인 J와 윤현민인가....~~그리고 세번 다 차였다고 한다. 그 중 한번은 상대가 바람피는 걸 눈치채고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라며 차인건 두번이라고 주장했는데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글쎄...]][* 우습게도 바로 직전에 거의 동일한 경험담을 털어놓은 광수에게 그건 차인거라며 돌직구를 날려놓고 자긴 다르다고 주장하다 뜬금없이 그 전친에게 “너, 나한테 연락하지마!”라며 영상편지를 시전하기도]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6년 출생]][[분류:양주시 출신 인물]][[분류:2004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조원진 . . . . 12회 일치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br][[영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
         || '''가족''' ||배우자 성희숙, 슬하 11녀||
         [[1959년]] [[1월 7일]] [[대구광역시|대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종로초등학교, [[협성중학교]], [[인창고등학교(서울)]][* [[청구고등학교]]에서 전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영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분석학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2008년에 열린 제18대 총선 당시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 소속으로 [[달서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유재한을 꺾고 당선된 후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사실 달서구 지역은 그가 두 번 출마했던 북구도 아니었고, 정치 경력도 상대인 유재한이 주택금융공사 사장 출신인 반면에 두 차례의 국회의원 출마와 중국에서의 소규모 기업 경영이 경력의 전부였다. 더군다나 친박연대에서 해당 지역에 송영선 출마를 검토하는 바람에[* 송영선은 비례대표로 옮겨가 당선되었고, 이후 양주시 갑으로 옮겨서 현직 당협위원장인 심장수의 지역구를 빼앗아 논란이 있었다. 알다시피 송영선은 이후 비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실제 출마 여부도 선거 등록 당일에서야 결정되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도 이 당시 선거에서 불었던 친박 바람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3선 의원이 되는 동안 내내 쭉 [[친박]]계 세력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1955)|최경환]], [[윤상현(정치인)|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유기준(1959)|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http://h21.hani.co.kr/arti/politics/42751.html|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박사모]], [[영]] 표심을 긁어모아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 했으나... 초유의 5자구도에서 유의미한 득표 실패'''
         [[2017년]] [[4월 8일]] 탄핵반대 집회에서 [[자유한국당]]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753080|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바로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조원진의 대선출마에 대한 여론은 꽤 싸늘하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2519|심지어 극우 신문인 뉴스타운마저 조원진의 대선출마를 대차게 까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뉴스타운은 대선후보로 [[재준]]을 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난할 수밖에 없다.] 그의 대선출마로 인해 보수진영은 또 한 번의 분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버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보다 더 극우인 [[새누리당(2017년)|새누리당]]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국정원장인 [[재준]] 역시 출마함에 따라 보수표도 성향에 따라 강성친박 표인 조원진과 재준, 온건친박 표인 홍준표, 비박 또는 반박의 중도보수 표인 유승민과 이재오 이렇게 다섯 갈래로 갈려져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개표 결과, 42,949표(0.13%)를 획득해 낙선이 확정되었다. 당초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유권자들의 대거 지지를 기대했으나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대부분의 탄핵 반대자들이 좀 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에게 투표했으며 보수후보의 재집권이 어려워지자 [[박사모]] 등 극렬 새누리 지지자들도 일부 이탈하여 홍준표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무소속으로 나와서 지원이 불리하면서도 7위를 기록한 정치신인 김민찬(...)에게도 밀릴 뻔했다.(당장 울산과 경, 호, 충, 충북, 제주, 세종에서 밀렸다.) 최종 순위는 6위]
  • 최정호 (성우) . . . . 12회 일치
         '''최정호'''([[1973년]] [[11월 13일]] ~ )는 [[한국]]의 자 [[성우]]다. [[2000년]] [[KBS]]에 입사했으며 현재는 [[KBS]] 28기다. [[한국방송 성우극회]] 소속
         *[[쁘띠쁘띠 뮤즈]]([[KBS]]) - 미스터리 / 조만금 / 우주
         *[[택틱스]]([[애니맥스]]) - 마을자1
         *[[명탐정 코난]]([[애니맥스]]) - 주
         *[[스타체이서]]([[KBS]]) - 자2
         *[[자의 세계]]([[KBS]])
         * 2002.05.12 하성란 <파리> (자)
         * 2002.09.15 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자> (장 폴)
         * 2002.05.05 영자야! 영자야! (자)
         * 2001.04.09 ~ 2001.06.30 <드래곤 라자> (자2)
         [[분류:대한민국의 자 성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2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0년 데뷔]]
  • 함인섭 . . . . 12회 일치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강원도 ()|강원도]] [[춘천시]] 효자3동 17-1 [[춘천의료원]] 병실에서 만성 폐렴으로 병사
         |친인척 = [[함태영]](친조부) <br/> [[함병춘]](이복 숙부) <br/> [[함재봉]](사촌 동생) <br/> [[함재학]](사촌 동생)
         |자녀 = 함양호(장) <br/> 함춘호(차) <br/> 함선호(장녀) <br/> 함연호(차녀)
         '''함인섭'''(咸仁燮, [[1907년]] [[5월 3일]] ~ [[1986년]] [[9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이며, 초대 강원대학교 학장, 제6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강릉(江陵), 호(號)는 산(山南)이다. 그는 [[춘천농업대학]]([[강원대학교]]의 전신)의 설립에 참여, 개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과 2대, 4~5대 학장, 강원대학교 농과대학원장, 강원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제3대 부통령 송암 [[함태영]]의 손자이며, 26년 연하인 [[함병춘]]은 그의 배다른 이복 삼촌이었다.
         [[1907년]](광무 10년) [[5월 3일]] [[충청도]] [[천안군]]에서 함병석과 진주 강씨 강리백가(姜利百加)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재인이었으나 뒤에 인섭으로 고쳤다. 함병석은 [[대한제국]]시대의 법관이자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로교]] [[목사]]로 활동했던 [[함태영]]의 본처 밀양 손씨 소생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하였다. 형제로는 동생 함의섭이 있었다.
         함인섭이 태어날 당시 할아버지 [[함태영]]은 [[대한제국]]의 판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함태영이 본처 밀양손씨와의 사이에서 장 함병석을 1889년에 얻었고, 함병석은 다시 1년 연하인 강성흠(姜星欽)의 딸 진주강씨와 결혼하여 그를 얻었다. 친할아버지인 [[함태영]]과는 나이 차이가 34살 밖에 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대인 [[제1공화국]]에 사회활동을 하였다.
         천안 출신인 그는 경성으로 올라와 [[1923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중동고보 재학 중인 1924년 3월 26일 유기환(柳基桓)의 딸 유순희(柳順嬉)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6매를 두고 [[1949년]] 사별하였다. [[1927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중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농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0년]] [[3월]] [[동경농업대학]] 예과를 수료하고 동경농대 본과 농학부에 입학, [[1933년]] [[3월 24일]] [[동경농업대학]] 농학부를 졸업하였다.
         장례식은 [[강원대학교]]장으로 거행되었고 상주는 차 함춘호 였으며, 묘소는 [[춘천시]] 공원묘지에 있다.
         [[분류:1907년 태어]][[분류:1986년 죽음]][[분류:폐렴으로 죽은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당]][[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장관]]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11회 일치
         2014 K리그 클래식 11위였던 경과 동시즌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최종승자인 광주가 만나 승격이냐 잔류냐를 두고 [[홈 & 어웨이]]로 경기를 치뤘다.
         || 홈/원정 || [[광주 FC]] || vs || [[경FC]] ||
         두 팀은 광주의 강등 이후 2시즌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했으나 상대전적을 생각해보면 2011시즌부터 2012시즌까지 4경기 모두 경이 승리했었다. 이런 측면에서 광주가 불리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 경은 당시 2연패로 리그를 마쳤던 반면, 광주는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2014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달리고 있었기에 분위기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 홈/원정 || [[경FC]] || vs || [[광주 FC]] ||
         || 득점선수 || 송수영(65) || || 김호(70) ||
         || MOM ||<-3><:>김호||
         경은 지난 원정에서 원정에서 한골을 넣긴 했지만 2골차 패배를 했기 때문에 최소한 2:0 이상으로 승리해야지만 잔류를 할 수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아깝게 골을 놓쳤던 송수영이 65분경에 골을 터뜨리면서 1골만 따라가면 바로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실점이후 5분만에 김호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잔류의 꿈이 멀어지게 되었다.
         동점골로 추격 의지를 꺾은 김호이 MOM에 오르면서 광주는 2012시즌에 강등된지 3시즌만에 클래식으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경은 2015시즌부터 챌린지에 머물게 된다.
  • 권혁 . . . . 11회 일치
         '''불꽃 자'''
         삼성의 쌍권총, 그리고 2015 시즌 한화의 불꽃자. 몇 년간 삼성의 철벽 불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실력이 하락해 이제 잊혀가는 선수가 되는 듯 했으나, 한화로의 이적 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주목받던 시절은 있었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 했던 선수에서 2015 시즌의 [[투혼|긍정적]]으로도 [[살려조|부정적]]으로도 주인공이 된 선수.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야구부]]의 [[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37776|#]]
         더군다나 2015년 삼성의 계투진에서 [[임창용]], [[안지만]], [[심창민]]을 빼면 제대로 된 투수가 없었기에 아쉬울 따름이다.[* 2016년 8월 현재 이 셋 중 임창용은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논란|도박 사건]]에 연루된 뒤 방출되어 [[KIA 타이거즈|고향팀]]으로 이적하였고, 안지만 역시 도박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불법 도박 싸이트 개설 혐의로 계약해지당하며 셋 중에 심창민만 삼성에 아있게 되었다.]
         이로써 한화는 20인 명단에서 빠져 [[KT 위즈]]로 이적한 [[윤근영]]이라는 좌완 불펜의 누수를 그 이상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로 대체하였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등번호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화 관련 커뮤니티에선 [[한화 이글스|주황색]] [[잉어킹]]이 [[삼성 라이온즈|푸른색]] [[갸라도스]]로 진화했다(...)는 식의 [[http://gall.dcinside.com/hanwhaeagles/5325218|드립]]이 인기를 끌었다.] 좌완 불펜이 부족한 한화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이며, 출장 기회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좌완 투수 조련에 매우 능하며 권혁과 같은 와일드 씽 유형의 불펜자원을 정말 잘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만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수 본인도 계약을 체결하며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고 싶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오랜 감독 생활 중 처음으로 외부 FA 선수를 선물받은[* FA제도가 시행된 후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구단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외부 FA를 잡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준혁]](LG), [[이진영]](SK) 등 내부 FA를 타팀에 내주는 등 김성근 감독에게 FA는 연이 없었다.] 김성근 감독의 기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권혁/2015년|2015년 시즌 : 불꽃자]] ====
         7월 23일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4-3으로 앞선 7회말에 등판하였으나, [[윤규진]]이 겨놓은 승계주자를 실점시키며 비야누에바의 승리를 날려먹는 '''블론세이브'''를 범했고 팀이 8회초에 역전을 시켜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김재환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8회 2아웃 상황에서 [[정우람]]에게 바통을 넘겼다. 이날 기록은 1이닝 1실점.
         이 혹사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이유 중 하나는 현 KBO 리그의 투수 혹사 기준이 [[김성근#s-9.2|김성근 감독의 투수기용 방식]]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즉 '''[[김성근]]처럼 하지 않으면 투수 혹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예를 단번에 보여주고 있는것이 15~17 [[김진성]] 김진성은 권혁보다도 더 많은 이닝[* 특히 16~17년도 연속 80이닝 이상 소화 단,권혁은 2년동안 200이닝 이상 소화했고 김진성은 3년 동안 200이닝을 넘게 소화했고 권혁이 올해 30이닝 짓만 소화 했음에도 김진성하고 1.1 이닝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을 소화 했음에도 혹사로 감독이 많이 주목받지는 않는다.
          * [[안지만|힙합보이]]나 [[정현욱|국민노예]]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별명이 오랫동안 없었다. 데뷔 때는 겉으로 보면 한 성깔 할 것 같은 외모,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 큰 키와 덩치까지 겹쳐셔 별명이 '''강백호'''였으나 금방 묻혔고(...), 오히려 다른 권씨 성을 가진 선수인 [[권오준]]과 함께 엮여서 '쌍권총'이라고 불리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허구연|허구라]]가 발음하는 '''궈넥'''이 별명으로 쓰였을 정도. 그러던 와중 2012 시즌에 [[채태인|채르노빌]], [[최형우|최형우라늄]], [[차우찬|차르 봄바]]와 함께 하는 '''원자력 라인'''에서 [[핵]]을 맡았다.[* 사실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삼성의 사실상 유일한 좌완 필승조라는 점에서 권혁을 '불펜의 핵'으로 자주 일컬었기 때문. ~~하지만 팬들에겐 그런 거 없고 핵폭발~~] 팀을 옮긴 첫해인 2015년, [[윤규진]]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필요한 순간마다 삼진을 잡아내며 '''불꽃자''', 그 인기가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대전 구장]] 내 아이돌급이란 의미인 '''대전 아이돌'''이란 별명이 추가되었다.
          * [[마해영]]이 방송에서 권혁이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뒤로 구속이 150 km/h가 넘었다면서, 한 번 더 빠지면 160 km/h가 넘을 거라고 농담했는데 방송에서 왜 그런 걸 말했냐고 싫어한 걸 보면 [[트라우마]]가 있는듯하다. 숨길 것도 없지만 공중파에서 대놓고 자랑할 것도 아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 죽을 뻔한 일을 이 방송에서 농담 삼아 얘기하는 걸 누가 좋아할까. [br][br][[파일:external/fimg.pann.com/download.jsp?FileID=14630778&filename=f4.jpg]]
          * 2015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을 떠나지 않고 대전에 아서 재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전의 영웅"이 등장하였다며 깜짝 스타가 되기도 하였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3193473|"대전의 영웅" 권혁, 예비군 훈련장 스타 된 사연]]. 그런데 한화로 이적하기 전에는 그동안 해외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있었기에 그동안 밀린 예비군 훈련을 몇 년치를 몰아서 하다보니 거의 2주 가까이 훈련장에 모습을 나타내서 나중엔 다들 군대에서 사는줄 알았다고.
  • 김원주(가수) . . . . 11회 일치
         [[분류:한국 가수]][[분류:정읍시 출신 인물]][[분류:1987년 출생]][[분류:200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학력''' ||<(> 동신초등학교[br]정읍중학교[br][[호고등학교]][br][[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휴학)[* 데뷔전 음악공연동아리인 꼬망스에 가입했던적도 있다.] ||
         [[2011년]] 하반기 포맨 신용재와 MIII의 노래인 '그자 그여자'의 MV에 출연해 [[달샤벳]]의 [[지율]]과 함께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다.데뷔 전 댄서 출신이어서 그런지 춤을 잘춘다.[* 지금도 단독 콘서트에서 솔로무대를 할때 가끔 춤을 보여주는데, 당시 댄서로 활동하던 댄스팀 이름은 레볼루션이었다고 한다.]
         [[내향적|내성적]]이고 소심하다고 한다. 친해지면 좋은 성격이고 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한다. 말 수도 별로 없어서 콘서트나 방송에서도 말이 별로 없고 가끔 --필요할 때만-- 말한다.
         늘 하던 익숙한 일을 잘 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며 들 눈을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회사에 요청을 계속 했다는 걸로 보면 자신이 원하는 건 하고 싶다는 의욕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 김원주는 이 뮤지컬에서 주인공인 '온조'역할을 뮤지컬배우인 유상화와 함께 맡았는데 다른 주인공인 '수'도 걸그룹 퀸비즈의 멤버 이루미와 뮤지컬배우 박혜미가 나왔다. 온조와 수 역할을 맡는 두 사람이 동시에 나오지는 않는데 역할은 번갈아서 했다.방청객들의 후기에 따르면 원주온조의 연기는 감정이 잘 전달되었지만 오글거렸다고 한다. 팬들이 선물을 보냈는데 [[https://twitter.com/musical_onjo/status/521269461290983424?s=09|인증샷]]을 겼다.
          * 중-[[고]]-[[공대]] 테크를 탔다. 거기다 공대 학과 중 가장 여성 비율이 낮다는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 [[허세]]를 제일 싫어한다고 한다. 허세과 허세녀는 꼴불견이라고.
          * 그 자 그 여자
          * 1998 [* 타이틀곡인 '지우고싶다' 에서 주로 열연했다.]
  • 김정우(1990) . . . . 11회 일치
         [include(틀:녀공학 멤버)]
         || '''데뷔''' ||<(> 2010년 9월 30일 [[녀공학(아이돌)|녀공학]] 디지털 싱글 'Too Late' ||
         [[녀공학(아이돌)|녀공학]], [[SPEED(보이그룹)|SPEED]]의 전 멤버.
         그러나 알고보면 녀공학의 자 메인 보컬. 데뷔 초에는 일부러 적은 파트를 맡았다가 --짬밥을 먹어가면서-- 활동을 오래할수록 파트를 늘려가면서 차차 뛰어난 가창실력을 드러내려는 케이스로 보인다. [[f(x)]]의 [[루나(f(x))|루나]]나 [[레인보우(아이돌)|레인보우]]의 [[지숙]]이 그 예. --그런데 그룹자체가 이래서...-- 현재로서는 노래실력을 라디오에서 가끔 솔로곡을 부르는 것으로밖에 들을 수 없다.
          * 녀공학이 해체하게 된 원인을 소개하는 영상에 댓글을 겼다. 영상의 내용이 좋지 않은 내용임에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중국에서 모델활동을 하고 유튜버를 준비하고 있다는 근황을 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f6SyeyMQp_k|#1]]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녀공학(아이돌), version=465)]
  • 김준현(코미디언) . . . . 11회 일치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0c000><#c0c000><tablewidth=1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예능상'''}}} ||
         [[2012년]] [[4월 29일]] [[네가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20대까지만 해도 날씬한 체형이었다고 한다.[* [[백종원의 3대 천왕]] - '전'편에서 김준현의 과거 사진들이 나왔다. 참고로 날씬했을 땐 체격좋은 훈이였다.] [[http://dryicess.tistory.com/129|링크]] 그러던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만|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김준현은 중학교 재학시절까지 검도선수 출신으로 군에서 제대 할 때 까지만 해도 많이 먹는 대신 활동량도 많아서 살이 찌지 않았는데 운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먹는 양은 그대로고 활동량은 없어졌기 때문에 쪘다고 한다. 이 내용은 맛있는 녀석들 포장마차 특집에서 나온 것이며 김준현의 말을 빌리자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이미 예정된 비만이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유민상이 툭하면 먹는데 끌고 다녀서 신참이다보니 따라다니며 먹어재껴서 그꼴이 났다고 네가지에서 그러던데 그게 개그용 멘션인지 진짜인지는 미지수.
          * [[2012년]] [[파일럿(방송)|파일럿]]으로 편성된 [[리얼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에 멤버로 출연. [[프라모델]] 덕후임을 인증했다. 2012년 [[9월 10일]]부터 [[2014년]] [[3월 31일]]까지는 [[위기탈출 넘버원]]에 고정 MC로 다른 고정 MC들과 함께 진행중이었으며, [[2013년]]부터 정규 편성된 인간의 조건의 정규 편성의 한 편에선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음식물 쓰레기를 거의 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 2013년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자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 이어 연속 수상.
          * 런던올림픽 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진혁과 비슷한 외모로 화제가 됐다.
          * 나중에 [[김준호(개그맨)|김준호]]가 진실을 밝혔는데 사실 스케쥴 문제는 없었고, 1박 2일 연출진은 출연자에게 사전 섭외 통보 없이 녹화 첫날에 한명씩 찾아가 합류시키는 기획을 짰으며 소속사 [[코코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김준호에게 먼저 언질을 주었다. 하지만 김준현의 섬세한 성격을 알고 있던 김준호는 아마 그렇게 하면 김준현은 출연을 거부할 수도 있을거라고 이야기했고, 결국 연출진과의 협의 끝에 김준현에게 먼저 1박 2일 섭외 사실을 알렸으나 예상대로 김준현은 부담감에 출연을 고사했다고 한다. 녹화일이 얼마 지 않아 결국 대타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김준호가 출연하게 된 것. 그래도 [[2016년]] 늦여름에는 [[박보검]]과 함께 게스트로 나온 적도 있었다.
          * 2014년 12월을 끝으로 끝난 [[큰 세계]]를 마지막으로 개콘을 떠난 김준현은[* 다만 그 코너(큰 세계)를 끝으로 바로 떠나지는 않았었다. 한달 뒤(2015년 1월)에 [[유민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에서 유민상을 돕기 위해 잠시 나왔다. --하지만 유민상의 (김준현과) 닮았다는 말 때문에 (김준현이) 개[[빡]]쳐서 빡친 표정으로 나가 버리면서 끝에 안 좋게 끝난 게 좀 그렇긴 했지만...-- --게다가 [[사족]]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유장프는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소득도 기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2015년]]이 가히 [[본인]]의 전성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수의 프로그램들에 출연하고 있다. [[SNL 코리아]], [[맛있는 녀석들]] 외에도 2015년 8월, 9월에만 비법, 3대천왕, 내 나이가 어때서 등 세 프로그램의 [[MC]]로 나설 정도. 반면 그가 떠난 개콘은 여러 논란들과 함께 [[시청률]] 두 자리가 무너지며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돌아와요 김준현씨!--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백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순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반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다만 근육량에 있어서 이전에도 뒷태가 유민상 등 다른 비만 개그맨들과는 달리 역삼각형 체형에 승모근 등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복부보다 가슴쪽이 더 튀어나온듯한 모습들이 인간의 조건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상의 탈의에서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체형은 백두급 씨름선수, [[스트롱맨]] 등에서 흔히 볼수 있으며, 실제로 김준현의 경우 [[강호동]] 등과 더불어 연예계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으니 관리를 잘한다면 괜찮아 질수 있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확실하며, [[보디빌딩]]식의 트레이닝보다는 [[파워 리프팅]]식의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의 자격]] 철인 3종 특집에서 [[송일국]]과의 무릎씨름 대결에서 평소 연예계에서 스포츠 매니아로 유명한 [[송일국]]을 가볍게 발라버리기도 했다. 애초에 엘리트 체육인 출신인 사람과 스포츠 애호가인 일반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체급이 다르잖아 체급이..----물론 김두한하고 싸우면 승부는 알 수 없다...--
          * [[이휘재]]의 [[차|둘째아들]]인 이서준이 김준현과 쏙 빼닮았다. --이서준현.-- 더불어 전 [[거북이(가수)|거북이]]의 리더 고 [[터틀맨]]과도 닮았다.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2007년 데뷔]][[분류:춘천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0년 출생]][[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김태룡(정치인) . . . . 11회 일치
         1934년 [[충청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 [[충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충대학교 법학 [[강사]]를 역임하였다.
         1963년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당, [[민중당(1965년)|민중당]] 등의 야당에 몸담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충청도 대전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김용태(1926)|김용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도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용태 후보와 [[민주통일당]] [[박병배]][* 재검표로 당선 확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구속되었다. 1977년 [[이철승]] 대표최고위원의 온건노선에 반발하여 신민당야당성회복투쟁위원회 공동의장 겸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도]]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강창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1월 [[홍사덕]]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4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고 통일민주당에서도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도 대전시 [[서구(대전)|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박충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참여하였다.
         ||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도 대전시) || [[신민당(1967년)|신민당]] || - || 낙선 || ||
         ||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도 대전시) || [[신민당(1967년)|신민당]] || - || 낙선 || ||
         ||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도]]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 [[신한민주당]] || - || '''당선'''[* [[민주정의당]] [[강창희]] 후보와 동반 당선] || ||
         ||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청도 대전시 [[서구(대전)|서구]]) || [[통일민주당]] || - || 낙선 || ||
  • 김태희 . . . . 11회 일치
         198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북 구미 으로 이사 하였다. 김태희 본인의 가족으로는 부모와 언니 김희원, 편 [[이완 (1984년)|이완]]이 있다. 연예인 [[비 (가수)|비]]와 동료.<ref name="씨네21">{{웹 인용 |제목=천천히 밝게 빛나는 별, <중천>의 김태희|url=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3569|출판사=[[씨네 21]]|저자=이혜정|날짜=2006-12-22|확인날짜=2014-02-25}}</ref> 6학년에는 언니를 대신해 교복 모델로 활동했다.<ref name="씨네21"/> 졸업하고,<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중학내내 전과목 100점…공주대접도 당연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3771618|출판사=뉴시스|저자=김지은|날짜=2011-03-30|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재학 시절 학원 홍보 전단지 모델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경북 구미 에서 김태희 모르면 간첩? 학창시절 인기-성적표 공개!|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91530327|출판사=[[한국경제]]|저자=김명신|날짜=2009-09-15|확인날짜=2014-02-25}}</ref>
         그러던 중 2003년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SBS 드라마]] 《[[스크린 (드라마)|스크린]]》에 출연했는데, 연기력으로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ref name="MBC"/> 같은 해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에 수진 역할로 출연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1&oid=014&aid=0000092055|제목=권선징악 주제 현대판 흥부놀부전, SBS새 일일 드라마 ‘흥부네 박터졌네’|웹사이트=[[파이낸셜뉴스]]|저자=정명진|날짜=2003-10-23 |확인날짜=2014-02-25}}</ref> 이후 출연한 [[SBS 수목미니시리즈|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처음으로 악역인 한유리 역할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8.4%, 최고 시청률 43.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11031246131001|제목=‘천국의계단’ 권상우 “아베마리아 음악 나오면 달려야 할 것 같다”|뉴스=뉴스엔|저자=박영주|날짜=2010-11-03 |확인날짜=2014-02-25}}</ref>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ref name="MBC"/>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했다.<ref name="SBS연기대상">{{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0017311|제목=이병헌, SBS '연기대상 수상'|출판사=뉴시스|저자=민성진|날짜=2004-01-01 |확인날짜=2014-02-25}}</ref> 하지만 일부는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연기력 비판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드디어 연기인생 한판승 거두나?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1141557551110&ext=na|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배국|날짜=2011-01-14 |확인날짜=2012-03-08}}</ref>
         김태희는 2004년, [[KBS 2TV|KBS2]] 《[[구미호 외전]]》에 이어 [[SBS 월화드라마|SBS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에서 하버드 의대생 이수인 역할로 출연했다.<ref name="김태은">{{뉴스 인용 |제목=작품속 김태희, 이렇게 바뀌었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61711531396823&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태은|날짜=2007-06-19|확인날짜=2014-03-05}}</ref> 그녀는 이 두 작품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연기상,<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04931 |제목=김태희-이완 매, 최초로 신인연기상 동시수상 |날짜= 2004-12-31 |출판사= 스타뉴스 |확인날짜= 2010-10-02 }}</ref>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과 네티즌최고인기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1978489 |제목=김태희의 하루’ 네티즌들 관심 가득 “뭘해도 예뻐요” |날짜= 2008-06-20 |출판사= 한국경제 |확인날짜= 2010-10-02 }}</ref>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방영된 SBS 퓨전사극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태희는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장옥정]] 역할을 연기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진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과 함께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 [[한국사|역사]] 왜곡 등으로 문제를 지적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장옥정' 독기만 품은 김태희, '착한' 장희빈은 어디갔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39334|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최두선 |날짜 = 2013-05-28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김태희 "연기력 혹평에 자존심 상처··독하게 해보겠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007259|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최준용 |날짜 = 2017-05-24 |확인날짜 =2017-09-09 }}</ref><ref>{{뉴스 인용 |제목 =종영 '장옥정', 무엇을 기고 무엇을 잃었나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7910 |출판사 =오마이뉴스 |자지 =김성규 |날짜=2013-06-26 |확인날짜 =2017-09-09 }}</ref>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김태희는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난 적은 거의 없고,<ref>{{뉴스 인용 |제목=장동건·김태희, 스타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419696|출판사=[[SBS 뉴스]]|날짜=2008-05-22|확인날짜=2013-09-12}}</ref> 지금까지 연애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연애경험 고백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104030858401119|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이은지|날짜=2011-04-03|확인날짜=2013-09-12}}</ref> 2003년 인터뷰에서 [[천주교]] 신자여서 보수적이라며 [[혼전 성관계]]와 [[낙태]]는 절대 안된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가 생각하는 ‘낙태’와 ‘혼전순결’은…|url=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3371|출판사= 뉴데일리|날짜=2012-12-28|확인날짜=2013-09-12}}</ref>
         2012년 12월 31일 [[디스패치 (대한민국)|디스패치]]는 [[이병헌]]과 [[이민정]]의 열애설을 터뜨림과 동시에 "디스패치가 새해 첫 커플의 사랑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겼고, 2013년 1월 1일 [[이완(1984년)ㅣ이완]]와 김태희가 데이트하는 현장 사진을 올리면서 [[열애설]]을 제기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태희-이완 열애설 보도한 ′디스패치′ 덩달아 주목|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101000202|출판사=뉴스핌|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203201303/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101000202#|보존날짜=2013-12-03|깨진링크=예}}</ref> 같은 날 오후 소속사 [[루아엔터테인먼트]]는 아직 만난지 1개월 밖에 안되었고, 알아가는 단계라며 교제설을 인정했다.<ref>{{웹 인용 |제목=김태희, "이완와 만난지 한달…알아가는 단계" 열애 공식 인정
         |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92306|출판사= enews24|저자=전수미|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ref> 2017년 1월 17일, 이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올려 "이제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훌륭한 [[편]]이자 [[자]]가 되려 한다. 그녀는 제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나 변치 않고 늘 제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다"에 이어 "이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커져 결실을 맺게 됐다"며 "결혼식과 시간은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결혼 소식을 알렸다. 두 사람은 2011년 한 소셜커머스 광고에 함께 출연하며 친분을 쌓았고, 2012년 가을부터 교제를 시작했고 2013년 1월 1일 열애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둘은 결별설 한번 없이 [[잉꼬]] 커플로 주목 받아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김태희, 교제 5년만에 결혼…빅스타 부부 탄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8965318|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은정|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 손편지로 직접 결혼 발표 "김태희, 최고의 선물"[공식입장 전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039239|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이유나|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KBS 연기대상 여자 우수연기상 수상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1회 일치
          * 수사가 진전되어 마침내 결행일. 나이트아이가 시에핫사이카이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자를 특정하면서 작전이 결정된다.
          미도리야는 일단은 "에리쨩 보호에 전력으로 임해야 한다"는 각오로 여러가지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아슬아슬한 상태인 거라고 자평했다. 그도 그럴게 고민하는 기색을 도저히 숨기지 못하고 에게 보여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지금도 학생 식당에서 밥을 앞에 두고 멍하니 있다가 [[토도로키 쇼토]]가 "안 먹냐"고 지적했다.
          * 나이트아이는 그 자가 완구를 사는 순간을 포착했다. 자의 말을 들은 점원이 "프리유어말인가요?"라고 대답하자 자가 말했다.
          "프리유어 시리즈"는 여아들에게 인기있는 시리즈물이다. 몇 년째 시리즈가 지속 중이고 자가 말하는 것은 몇 년 전의 시리즈였다. 점원이 최근작 "맹렬 프리큐어 10"을 소개하자 자는 성가셔하며 "그거라도 달라"고 말한다. 그 대화를 놓치지 않은 나이트아이는 아무 것도 모른 척하며 친절을 배푼다.
          그는 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맹렬 프리유어 10"의 완구를 권한다. 자가 띠꺼워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자연스럽게 "저도 좋아한다"라며 "그런 취미"를 가진 척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그가 이 완구를 누구에게 전할지 미래를 "예지"했다. 그가 권한 완구는 그대로 에리쨩에게 전해졌다.
          * 그가 공언했듯 "확신을 얻었을 때 확인용"으로 사용한 예지. 이번엔 유효하게 작용했다. 이후 그 자가 집에 있는 시간은 [[버블걸]]과 [[센티피드]]가 확보.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그랜토리노]]는 영장도 발부됐음을 알린다.
          >밀리오, 비춰라. 너는 그럴 수 있는 자다.
  • 남명학파 . . . . 11회 일치
         명 조식을 시초로 하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를 나눌때 그 오른쪽(서부)에 속하는 학파이다. 영학파중 하나로 분류되며, 조선의 붕당에서 대북이라는 세력의 주축을 형성했다.[* 엄밀히 말해서 대북=명학파는 조금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아주 틀렸다 볼 수는 없지만, 이이첨등 애초에 명학파도 아니면서 대북인 경우도 있고, 곽재우등 명학파이면서 대북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이도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이들이 긴 저서는 거의 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이들의 시초인 조식의 사상을 그의 애제자인 정인홍이 정리한 명집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그들은 마음을 기본적으로 하나의 지켜야될 '성'으로 보았고, 이것을 공성하려하는 잡념이나 악심들을 막는걸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학문적 특징때문에, 이들은 군사학 역시 해박하게 공부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시기 이들은 의병장으로써 크게 활약했다.
         붕당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처음에는 퇴계등 기타 영학파와 함께 [[동인]]을 형성했으며, 이후 정철의 처리문제로 인해 류성룡등 퇴계파와 갈라져 북인을 형성하다. 이후 유영경등 일부 소북인사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결국 대북으로 완전히 갈라진다. 선조 말기 이들은 후계로 [[광해군]]을 지지했고, 광해군의 가장큰 지지세력으로 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광해군 즉위뒤 유영경등의 탁소북이 제거되고 난뒤, 그들은 청소북과 함께 광해군 시기 정국을 장악했으며, 광해군 중기때엔 아예 국정의 중심을 대북이 잡기까지 한다. 아예 광해군 말기때는 그가 대북을 견제하기 위해 서인의 세를 키운 행적까지 보일 정도였다. [* 그 보답은 인조반정으로 돌아오지만....]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쫓겨난뒤, 은 대북들은 정인홍등 중심인물들이 모두 참수당하는 등 철저하게 서인들에게 숙청되었고, 그결과 정국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11회 일치
         그는 유약한 미카엘을 교모히 충동해 바르다스가 그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거라고 이간질했으며, 그에게 바르다스를 제거하는게 그가 살아을 길이라고 부추겼다. 음모는 바르다스가 크레타에 원정을 갈 준비를 할때 준비되었던걸로 보이는데, 바실레이오스에게는 아쉽게도 그의 암살음모가 바르다스의 첩보망에 걸려버렸다. 그러자 바르다스는 원정을 취소하고 수도로 가서 미카엘에게 따졌으며, 결국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성모 마리아 칼코프라테이아 성당에서 바르다스에게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공식 선언서에 서명하게 된다.[* 바실레이오스는 글을 몰라서 서명란에 십자가만 그리게 된다.] 이후 바르다스는 크레타 원정전 막사에서 황제에게 작전을 의논하던중 바실레이오스에게 죽는다.[* 죽기전에 미리 칼을 뽑았으나 바실레이오스가 그냥 맨손으로 쳐서 쓰러뜨렸다고(...)] 해당 행위는 미카엘도 어느정도 관여를 했던게 확실한듯 한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인 포티우스에게 바르다스가 반역죄로 즉결 처분되었다고 암살이 실시된 후 바로 알린것으로 알 수 있다.이후 포티우스의 조언에 따라 수도로 미카엘과 바실레이오스는 돌아갔고, 이후 성령강림절에 바실레이오스는 공동황제로 임명된다.
         단독 황위에 오른 바실레이오스는 적극적으로 제국의 고토를 되찾으려 했는데, 그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장악을 위해서는 교황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걸 위해서 그는 우선 서방과 사이가 좋지못했던 포티우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해임하고, 그의 정적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새로운 대주교로 임명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열며, 포티우스를 해임했다는 소식을 교황에게 전하는데, 당시 교황이던 히드리아누스 2세는 황제의 해당 행위를 회개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포티우스 분열]]을 일으켜 동방과 서방교회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든 포티우스를 처벌하게 만들기 위해 사절을 보낸다.
         그러나 황제는 제국의 서방 속주를 탈환하기 위해 해당 행위를 한거지 회개할 생각은 딱히 없었기에, 교황의 사절이 보낸 요구[* 공의회의 교황의 사절 주도]를 무시하고, 포티우스를 파문시키는데 그치게 한다. 그런데, 공의회가 끝나기 직전인 870년 2월에, 불가리아 왕인 보리스 1세가 사절을 보낸다. 당시 그는 포티우스 분열때 자신을 무시한 포티우스에 대항해 가톨릭을 불가리아에 퍼뜨리고 있었는데, 이게 그리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총대주교구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총대주교를 누구 휘하에 두느냐가 문제였다. 교황휘하인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휘하인가? 그리고 바실레이오스는 불가리아에 자기 세력을 키울 기회를 놓칠 위인이 아니었고, 즉각 당시 회의장에 있었던 안티오크와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대표를 불러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는 누구 휘하에 두어야 되는지를 물었다. 이들의 답은 뻔했고, 교황청에서 온 사절들이 항의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되어서 불가리아는 정교회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현재까지 정교회국가로 아있다. [* 어찌보면, 이때의 공의회가 한나라의 종교를 결정한셈.]
         같은해 2월, 제국은 프랑크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그는 2년전에 사라센이 장악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바리를 공격했는데,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자 바실레이오스는 그에게 해군함대를 보내 지원해주겠다고 하면서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와 딸 헤르밍가르데의 결혼도 제의한다. 루트비히는 우호적인 답신을 보냈고, 869년에 니케타스 제독을 지휘관으로 한 제국의 함대가 바리를 향해 출항한다. 그러나 니케타스는 프랑크군이 군기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고 경멸을 감추지 못했고, 루트비히에게 '프랑크 왕'이라고 한단계 낮춰부르기까지 했다. 결국 두사람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니케타스는 함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사절을 보낸것이다. 자칫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루트비히가 베네벤토를 공격하다가 그곳 공작의 포로가 되어 베네벤토를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복음서에 맹세를 한 굴욕을 당해 어느정도 조용해졌다.
         이후 루트비히가 브레시아에서 후사를 기지 못하고 죽어 해당문제는 끝이 났으며, 이후 제국은 서진과 동진을 꾸준히 시도해서 아나톨리아에 진출한 바울파를 쳐부수고 그들의 지도자인 크리소케이루스를 살해했으며, 유프라테스 연안을 거의다 수복하고 달마티아를 수복했으며, 이탈리아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크레타 수복은 실패하고 시라쿠사가 함락되면서 시칠리아섬을 완전히 사라센에게 내주었지만, 이로써 서방과 교황이 제국의 우월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그의 레온에 대한 혐오는 그의 장인 콘스탄티노스가 갑자기 요절하면서 더더욱 심해지는데, 아마도 이는 자신이 암살했던 미카엘의 아들이 자신의 후사를 잇는다는 두려움과, 자신이 그 누구보다 아꼈고 자신보다 더 위대한 황제가 될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콘스탄티노스의 사망으로 인한 우울증때문이었을것이다. 특히나, 한번은 레온은 황제에 의해 구금되어 눈을 뽑힐뻔하기까지 한다.[* 직전에 황제가 왜인지는 몰라도 마음을 바꾸어 그런일은 겪지 않았지만.] 거기다가, 레온이 명예를 회복하자 거리에서 시민들에게서 받은 갈채는 그를 더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서 은건 사냥뿐이었다. 그의 죽음도 사냥사고라고 사서에 알려져있는데, 문제는 해당 사고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이해하기어렵다. 그의 죽음에 대해 설명한 사서에 따르면, 그는 수행원들이 '지쳐서'그를 따라가지 못할때 혼자 숲 깊숙한 곳에서 사냥중이었으며, 그러던중 한 사슴을 만난다. 황제가 그 사슴을 잡으려 할때, 그 사슴이 황제에게 돌진해 뿔로 그의 허리띠를 걷어 그를 안장에서 내쳤다. 그리고 그사슴은 장장 25km를 황제를 건채로 다니다가(...) 황제를 찾은 경호병이 허리띠를 잘라버리고 수행원들이 모여들자 도망쳐버렸다.
         아르메니아인 촌뜨기에서, 황제가 된 자수성가의 대표적 인물.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장점은, 그자신의 강인하고 튼튼한 육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과감한 결단력과,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회유하는 능력에 있을것이다. 그러한 능력덕에 이탈리아를 탈환하고 아나톨리아에서 제국의 우위를 얻어낼 수 있던 것일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썬 낙제점중에 낙제점이었는데, 차 레온이야 그의 아들이 아니란 의혹이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에우도키아의 탯줄에서 난(자신의 아들이 확실한) 두아들들까지 미워하고 싫어했고, 오로지 전처인 마리아 사이에서 난 콘스탄티노스만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후 레온 다음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데르의 막장짓은 어찌보면 어릴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게 컸을것이다.
  • 박용우(배우) . . . . 11회 일치
         || '''출생''' ||<(> [[1971년]] [[3월 16일]] ([age(1971-03-16)]세), [[전라도]] [[해군]] ||
         || '''수상''' ||<(> [[2005년]] 제13회 이천 춘사 나운규영화예술제 자조연상 ||
         [[대한민국]]의 탤런트이자 영화 [[배우]]로 해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1994년]] [[문화방송|MBC]] 공채 탤런트 24기로 데뷔했다. 1995년 MBC 인기 드라마 [[아파트]]에서 [[최진실]]을 쫓아다니던 호민 역,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서 고부갈등에 끼인 편 역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핸섬한 외모로 데뷔 당시 포스트 [[차인표]]로 주목받고 영화 쉬리의 [[낙하산]] 역으로 출연해[* 이때 이 배역으로 박용우와 캐스팅경쟁을 벌이던 배우는 [[이범수]], [[강성진]], [[공형진]]이었고, 최종적으로 [[공형진]]과 경합 끝에 이 배역을 따냈다고 한다.(공교롭게도 모두 [[중앙대학교|중앙대]] 선후배 사이였다.)] 관심을 모으기도 했으나, 이후 [[조재현]], [[김명민]] 등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 [[스턴트맨]]이 제작 중단되는 등 잠시 힘든 시기를 거쳤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KBS 대하드라마|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경대승]] 역을 맡아 호평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더욱이 이 캐스팅은 초기 미스캐스팅이라는 여론[* 심지어 그 친하다는 정우성까지 '''형이 장군이라곸ㅋㅋㅋㅋㅋ'''이라며 --비--웃었다 한다.]을 불식시킬 만큼 호연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명성을 가져다 준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극에서의 호연으로 [[무명]] 시절을 벗게 된 [[케이스]]로는 [[김명민]]이 맡았던 [[이순신]] 역,[* 박용우와 김명민은 2002년 '스턴트맨' 이란 영화의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촬영까지 진행했었다. 그러나 김명민의 부상과, 치료 후에도 흥행 전망에 비관적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포기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침체기를 겪은 두 배우가 나란히 대하사극 주인공들로 인상 깊은 연기로 재기했다.] [[김길]]이 맡았던 [[비담]] 역 등이 있겠다.
         2년 후인 [[2005년]]에는 영화 [[혈의 누(영화)|혈의 누]]에 [[악역]]으로 출연, 주인공 [[차승원]]마저 능가하는 악마적 연기를 선보여 대대적으로 재조명된다. 그 다음 해인 [[2006년]] [[최강희(배우)|최강희]]와 함께 주연한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혈의 누와는 대비되는 소심하고 코믹한 자 주인공으로도 어필했다.
          * 베스트극장 <내 자친구는 아메리칸 스타일> (MBC, 1997)
         || 2005년 || 제13회 춘사영화상 || 우조연상 || 혈의 누 ||
         [[분류:한국 배우]][[분류:1971년 출생]][[분류:해군 출신 인물]][[분류:1994년 데뷔]]
  • 박희부 . . . . 11회 일치
         1938년 [[충청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서 태어났다. [[천안중학교]], [[경기공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4.19 혁명]], [[6.3 항쟁]]에 참여하며 구속되기도 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도 연기군-[[대덕구|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천영성]] 후보와 [[민주한국당]] [[유한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충청도 연기군-대덕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이인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합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충청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에서 원내부총무를 임명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후보로 충청도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정치인)|정진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후보 [[경선]]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충 대덕/금산/연기) || [[신한민주당]] || 24,419 (17.45%) || 낙선 (3위) ||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 대덕/연기) || [[통일민주당]] || 17,894 (20.46%) || 낙선 (2위) ||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충 연기) || '''[[통일국민당]]''' || '''22,305 (49.13%)''' || '''당선 (1위)''' || 1992년 탈당[br][[민주자유당]] 입당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충 연기) || [[신한국당]] || 11,989 (29.77%) || 낙선 (2위) ||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충 공주/연기) ||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 3,739 (3.72%) || 낙선 (6위) ||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 공주/연기) || [[새천년민주당]] || 7,797 (8.93%) || 낙선 (3위) || ||
  • 블랙 클로버/111화 . . . . 11회 일치
          * 샬롯은 탕 쪽에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 상태로 어슬렁거리는걸 상상하고 모에사 당한다.
          그런데 한 군데서 온수가 샘솟더니 곧 거대한 천연 온천욕장이 생긴다. [[솔 마론]]은 "[[샬롯 로즈레이|언니]]의 알몸을 더러운 자들에게 보일 순 없다"는 일념으로 기력을 짜내 흙마법으로 온천욕장을 가로지르는 칸막이를 생성한다. 이후 전원 온천 입장.
          * 샬롯이 메레오레오나에게 잡힌 사이 마론은 [[노엘 실버]]의 머리를 감겨주며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노엘의 근성을 높이 사면서 푸른 들장미단으로 이적하기를 권하는데 푸른 들장미단은 성비가 좀 비정상이라 대부분 여성 단원이고 자는 극소수. 대체로 비실거리는 놈들이라 잡일꾼이다. 마론은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도 끌어들여 잡일꾼으로 써먹으려고 했는데 생각외로 강해졌다고 아쉬워한다. 노엘은 자기는 검은 폭우단이라고 사양하지만 그래도 자들이 잡일꾼이란 말에 "나쁘지 않겠다"고 솔깃해한다.
          * 한편 메레오레오나의 술권유를 어떻게든 뿌리친 샤론은 문득 칸막이 너머를 상상하는데, 거기서 [[야미 스케히로]]가 알몸으로 어슬렁거릴 생각을 하자 열이 올라서 그대로 리타이어. 마론이 식혀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한다. 탕에는 메레오레오나와 노엘만 는데, 메레오레오나 측이 노엘에게 할 말이 있었다. 그녀는 넌지시 "점점 더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말을 건다. 마치 그녀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 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상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태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순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식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야미는 무슨 생각인지 성진 전원을 선동해 여탕 엿보기를 감행하려 한다. 물론 구성원으로 보면 들키면 죽음 뿐. 결말이 정해져 있는데도 야미의 입장은 한결 같다.
          >자로 태어났으면 해야지. 목숨을 걸고서라도.
          되먹지 않은 소리였지만 레오폴트를 포함한 홍련의 사자단원들은 "자란 그런 것인가"는 깨달음을 얻는다. 야미는 결정타를 넣을 생각으로 유노에게도 보고싶지 않냐고 호응을 유도한다. 그런데 유노는 됐다고 거절, 분노한 야미가 아이언크로로 머리를 조인다. 유노는 끝까지 "나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고 캐릭터성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나 야미가 봐주지 않는다. 아스타가 "유노는 정말로 보고 싶지 않은 거다"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자랑만 목욕해서 그렇다"는 오해를 살법한 발언으로 변호 아닌 변호를 시도한다.
          * 젊은 애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만족해하는 야미. 왠일인지 조용히 있는 아스타에게도 "따라갔다 오라"며 껄껄 웃는다. 언제나 야미에게 선동 당했던 아스타. 그런데 이번에는 "나는 시스터를 소중한 사람으로 정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는 선비스러운 일갈과 함께 거절한다. 마치 찬물을 뿌린 것 같이 된 탕. 이상한 열기를 식혀버린 탓인지 결국 파국은 없이 온천합숙이 종료된다.
  • 송정현 . . . . 11회 일치
         |클럽=[[전 드래곤즈]]<br />[[대구 FC]]<br />[[전 드래곤즈]]<br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br />[[전 드래곤즈]]
         [[1999년]] [[경북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그 해 발목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받다가 [[2000년]] 복귀하였다. 하지만 [[2001년]] 다리 부상을 입어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고, 이후 1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 [[2003년]] 당시 신생 팀이자 연고 팀인 [[대구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2006년]] 친정 팀 [[전 드래곤즈]]로 복귀하여,<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157 송정현, 진순진 영입]</ref>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였고,<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061203000144&cid=0101110300000&dataid=200612031710000231 전, 9년 만에 FA컵 품었다…송정현·김태수 연속골]</ref> [[2007년]] [[포항 스틸러스]]와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12021657372235 '혼자 2골' 송정현, FA컵 2연패 가능케 한 전의 영웅 ]</ref>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FA]]로 풀린 송정현은 [[울산 현대 호랑이]]로 이적하였으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221500532234 울산, FA 송정현 긴급 수혈…전반기 단발 계약]</ref>
         * [[1999년]] ~ [[2002년]] {{국기그림|대한민국}} [[전 드래곤즈]]
         * [[2006년]] ~ [[2008년]] {{국기그림|대한민국}} [[전 드래곤즈]]
         * [[2009년]] ~ [[2011년]] {{국기그림|대한민국}} [[전 드래곤즈]]
         ==== {{국기그림|대한민국}} [[전 드래곤즈]] ====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경북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안재욱(배우,가수) . . . . 11회 일치
         이후 MBC에서 [[짝]], 전쟁과 사랑, 자반고등어 등의 드라마를 찍으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나가다,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서 그의 [[포텐]]을 터뜨리며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안재욱은 당대의 최고배우 중 한 명인 '''故''' [[최진실]]과 호흡을 맞추며 가수 강민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역할 덕분에 실제 가수로 데뷔까지 하게 된다. 더불어 맥가이버 머리까지 하면서, 젊은 성들한테는 뒷머리 기르기가 유행이기도 했다. --실사판 [[야가미 이오리]]--
         1997년 1집 Forever를 발매한 그는 탤런트 겸 가수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으며, 2000년대 초엔 [[중국]], [[대만]]에서 <[[별은 내 가슴에]]>가 방영되면서 중화권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우즈베키스탄과 중미에서도 수출된 덕택에 거기서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생겼다. 사실 상 1세대 한류스타 중 한 명이 된 시기에 안재욱은 중국을 무대로 배우보단 가수로서 활동에 더욱 집중했다.
         2004년 [[문화방송|MBC]] 천생연분에서 능청스러운 연하 김석구 역할을 맡아 상대작이 천국의 계단이었음에도 불구,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그해 [[KBS 2TV]] 오 필승 봉순영에 출연해 그해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게된다.
         || 신 귀공자 || 장수진의 맞선 || 우정출연 ||
         || 찜 || 준혁/윤채영 || [* 1인 2역. 한국 영화에서 정말로 드문...여장자물 영화다! 안재욱이 여장을 해서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정말 예쁘게 나왔다!][* 이 영화로 안재욱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
          * 1996년 제3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신인연기상 《전쟁과 사랑》
          * 1998년 제19회 [[청룡영화상]] 신인우상 《찜》
          * 2004년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 시상식 최우수자연기상 《오필승 봉순영》
          * 2016년 제5회 아시아태평양 스타 어워즈 장편드라마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아이가 다섯》
          * 2016년 K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 부문 자 우수연기상 《아이가 다섯》
         [[분류:동명이인/ㅇ]][[분류:한국 배우]][[분류:1971년 출생]][[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1994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오세창 . . . . 11회 일치
         위창 오세창은 [[1864년]](고종 1년) [[8월 6일]] [[한성부]] 출생으로, 중국어 [[역관]](譯官)이자 구한말의 선각자로 잘 알려진 [[오경석]]의 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 아버지 역매(亦梅) [[오경석]]은 역관으로 [[숭록대부]](崇祿大夫, 종일품)까지 올랐으며, 구한 말의 개화당의 이론적 지주이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역관]] 가문으로, 대대로 외국어를 익혀 개화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중인 집안에서 자란 데다 개화파의 거두인 스승 [[유홍기]]의 영향까지 받아 자연스럽게 개화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인용문2|청년시대의 제우(諸友)<br><br>먼저 청년시대의 나의 동무들을 말하면... 그때 동경에 망명하였든 인물들은 [[박영효]], [[조희연]](군부대신 다니든 분), [[장박]](대신 지난이), [[유길준]](수상 지낸 이), [[권영진]](나의 중씨로 [[경무사]]), 유세(내무차관 다니든 이), [[김옥균]], 그러고 우리 동렬로는 [[조희문]], [[이범래]], [[우범선]], [[이두황]], 유혁로, 신응희, 정난교, [[윤효정]], 오세창 또 우리보담 조금 늦어 들어온 소장파에 이신(李申), [[유동렬]], [[권석하]], [[이동휘]] 등 제인물이 있었다. 이 가운데는 1,2차 대면에 끈친 이도 있었지만은 대개는 여러 번 만났고 일도 도모하여 본 분들로 비교적 사람됨을 알 수 있었다.<ref>서정민, 《이동휘와 기독교》 (연세대학교출판부, 2007) 161페이지</ref>}}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작]] 작위와 은사금이 내려졌지만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안중식]]의 동양화 〈탑원도소회지도〉([[1912년]])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오세창의 정원 누각에 천도교 문명파 인사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1919년]] [[2월 10일]] [[최린]], [[최선]] 등이 협의하고, [[최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그는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내용을 검토하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 [[2월 25일]] 오세창은 [[손병희]], 권동진과 함께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조선 고종|고종]] 국장에 참배할 목적으로 상경한 [[천도교]]도 박준승(朴準承), 홍기조(洪基兆), 홍병기(洪秉箕), 김완규(金完圭) 등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알리고 이들을 설득하여 찬동을 얻었다. 이때 오세창은 그는 [[천도교]] 월보과장 옥파 [[이종일]](李鍾一)을 설득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1919년]] [[2월 27일]] 오세창은 [[천도교]] 지도자들을 설득, 그들과 함께 [[경성부]] 재동(齋洞)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최종 확인하고 찬동, 민족대표자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 날인한다. 이어 그는 [[최선]]의 독립선언서 용지 보급과 인쇄 등을 지원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오세창은 [[경성부]] 인사동의 [[태화관]](泰華館) 요리집에 [[손병희]], [[최선]] 등 민족대표자들과 함께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데 함께 서고, 대한독립 만세삼창을 외쳤다. 바로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경성]]경시청 총감부에 구금되었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46년 2월 [[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일명 민주의원) 의원, [[서울신문]] 명예사장 등을 지냈다. [[1946년]] [[6월 15일]] 오후 5시 40분 [[서울역]]에 마중나가 [[서울역]]에 도착한 삼의사 유골을 영접하였다. 이어 태고사(太古寺)에 마련된 빈소에 참석하였다. 이후 북협상과 단정수립론이 갈렸을 때는 입장표명을 하지 않다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에 참석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하지 않은 독립운동의 원로였기에, 광복후 고령에도 불구하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위원, [[조선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일명 민주의원) 의원, [[서울신문]] 명예사장 등에 위촉되었다.
         [[분류:1864년 태어]][[분류:1953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역관]][[분류:급진개화파]][[분류:한국의 기자]] <!-- 조선의 기자-->[[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분류:대한제국의 작가]][[분류:대한제국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
  • 원피스/846화 . . . . 11회 일치
          * 타마고 작은 스무디 등을 포네그리프를 수집한 방에 불러놓고 경비에 협조를 부탁한다
          * 스무디가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하자 타마고 작은 5년 전 밍크족이 이 방에 침입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 범인은 페드로. 페콥스의 간청에 의해 겨우 목숨만 부지해 달아났다. 타마고 작은 페드로가 포네그리프를 노리고 있다고 보고 경비를 강화하는 것.
          * "서사" 샬롯 몬도르는 별명대로 책을 무기로 쓴다. 책들이 허공을 날아디는데 그걸 밟고 돌아다닌다. 자는 루피가 삼장성 중 하나인 크래커와 하룻밤 내내 싸웠는데 선전하고 있다고 감탄한다. 실제로 결코 약하지 않다고 평가한 체스병들이 무수히 널부러져 있다. 모두 루피가 쓰러뜨린 것. 하지만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 덕에 상황은 좋지 않다.
          * 킹밤은 기어이 두 동강 나고 나미는 아망도에게 몸수색을 당한다. 아망도는 나미의 앞섬에서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찾아낸다. 가렛은 체스병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과 유혹의 숲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 이것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냐고 묻는다. 빅맘의 군사들은 그게 로라를 죽이고 빼앗은 거라고 여긴다. 여기서 로라는 가출소녀 취급.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의식은 있는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유언은 긴게 없냐고 묻는다. 나미는 친구라서 받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 홀케이크성 안의 "보물전"에선 타마고 작이 간부들을 모아놓고 있다. 그는 이 방에 모아놓은 "포네그리프"가 무엇인지 일장설명을 늘어놓는다. 전세계에 있는 30개의 돌비석의 문헌. 그 중에서 "정보"를 가진 것은 고작 9개. 세간에서 말하는 "리오 포네그리프"다. 그것들을 최후의 섬 "라프텔"에 인도했을 때 돌은 세상의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프텔에 가는 정보를 적은 문헌이 4개의 "로드 포네그리프". 얼마 전 징베가 하나를 진상하면서 현재 빅맘 해적단이 소장하고 있는 건 "포네그리프" 2개와 "로드 포네그리프" 하나. 총 세개다.
          * 이런 설명을 하는 동안 샬롯 가의 14녀이자 스위트 3장성 중 하나, "주스 대신" 샬롯 스무디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녀 하나를 잡아서 "쥐어짜고" 있다. 문자 그대로 걸레짜듯이 짜는데 놀랍게도 시녀는 "주스"를 흘리며 미라처럼 쪼그라든다. 현상금은 9억 3200만 베리. 스무디는 상당한 거체의 여성으로 등에 커다란 칼을 차고 있다. 시녀를 짜낸 "주스"를 잔에 담으며 "포네그리프가 중요한건 알겠지만 왜 이곳 경비를 강화해야 하냐"고 묻는다. 타마고 작이 이들을 소집한건 보물전의 경비 강화 때문인 모양이다.
          타마고 작은 5년 전 밍크족이 이 보물전에 침입하는 불상사가 있었다고 말한다. 포네그리프를 노렸던 도둑은 당시 페콤즈의 탄원을 받아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달아났다. 범인은 페드로. 그가 다시 이 곳에 나타났다. 타마고 작은 로드 포네그리프는 해적왕이 되는 길이며 빅맘을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물건이라며 이번엔 절대로 같은 불상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 이상의 대화를 누군가 엿듣고 있다. 영혼이 된 브룩. 보물전 옆에 있는 주류저장소에 페드로와 브룩의 본체가 있다. 브룩은 영혼상태로 돌아와 들었던 얘기를 전부 전달한다. 페드로는 하필 이런 시점에 경비가 강화되었다며 밤에도 틈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의 존재가 타마고 작에게 알려진 시점에서 이미 희망은 사라졌던 것이다. 그는 루피 쪽이 난항을 겪고 있으니 그들만이라도 임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하는데.
          * 듣고 있던 브룩은 지난번 페드로가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 로드 포네그리프는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던 말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며 하물며 정면에서 부딪히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 만약 지금 시기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페드로는 들키면 그들은 죽음 목숨이라 말한다. 브룩은 다시 타마고 작의 목표를 알겠냐고 하는데, 페드로는 자신이라고 말한다.
  • 유키히라 소마 . . . . 11회 일치
         '유키히라'를 경영하며 쌓아온 실력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왔던 것 덕분에 고급스럽지 않은 식재료들을 이용하여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것이 특기이며, 다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위기를 해쳐나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점심 피크 타임 등으로 몸에 익은 초고속 접대 및 요리, 멀티 태스킹 역시 장기. 합숙에선 무려 후라이팬을 8개를 한꺼번에 돌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다만 이따금 만드는 신작요리는 [[괴식]]의 영역이며 그걸 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현재 목표는 두 가지로 하나는 물론 아버지 조이치로를 뛰어넘는 것, 또 하나는 토오츠키의 정점인 '''토오츠키 십걸 제1석'''에 올라 학생 시절의 아버지도 보지 못했던 정상의 경치를 보는 것.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때다 싶을때는 과감하게 질러주기도 하는 점,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결하면서 강인해진 멘탈 덕분에 요즘 소년만화 주인공답지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다른 만화 주인공들이 속터지는 행보 때문에 암유발 주인공이라 불린다면 유키히라 소마는 항암제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
         시험이 끝나고, 쿄쿠세이 기숙사로 향하며, 기숙사 입사 테스트때해 은 재료를 사용한 고등어 버그 정식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합격하여 소마는 303호실을 배정받는다. 이때 목욕을 하기 위해 탕으로 갔다가 메구미와 서로 알몸을 보여주었다(…). 목욕 후 [[잇시키 사토시]]와 만나며 환영회에 초대받는다. 처음에는 괴짜들인 쿄쿠세이 기숙사 맴버에 당황하지만 얼마 안 가 익숙해져서는 같이 괴짜 짓을 한다(…).[* 요리를 선보인다면서 실패작 요리를 건네주었다.]
         식극의 주제는 당일 시노미야의 과제에서 은 야채류를 이용한 요리.
         그러나 도지마는 메구미가 메인으로 요리할 것을 요구한다.[* 원래 식극은 1대1이지만 이번은 소마와 메구미 페어 vs 시노미야의 형태였다.] 소마는 반발하지만 도지마는 '유키히라.. 네 요리로 이겨서 타도코로가 살아았다고 치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의 뒤나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결국 다른 과제에서 떨어져 버리겠지. 그때도 네녀석이나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건가? 토오츠키에선 자신의 가치는 그 팔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돼. 타도로코가 토오츠키에 아야 하는 인재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람들을 끌어모아 나오는 족족 가져가게 하자는 전략으로 무려 8개의 가스렌지를 돌려가며 요리를 초고속으로 만드는 쇼맨십을 발휘, 아슬아슬하게 200그릇 달성에 성공. 이로서 합숙에서 살아는다.
         6화에서 등장. 기숙사 입소 테스트를 통과하기위해 은 재료로 만든 것으로 만들어낸 음식. 고등어 통조림을 이용해 햄버그를 만들었고, 마침 가지고 있던 마른 오징어로 육수를 내 계란국을 만들었다. 이 요리의 영향인지 기숙사 사감인 다이미도 후미오는 잠시 회춘(정신적으로)하여 소마를 덮칠 뻔 했다. 당연히 음식은 합격으로 소마는 303호실을 배정받는다.
         > "이 감칠맛은… 레드와인? 스테이크를 굽고 난 프라이팬에 레드와인을 넣고 은 육즙을 졸여서 그 국물로 양파를 볶았어─."
         === 2권 특별 부록 유키히라표 은 재료를 쓴 고등어 버그 정식 응용 레시피 ===
  • 윤흔 . . . . 11회 일치
         당색은 [[서인]](西人)으로, [[광해군]] 때 [[승정원]][[우승지]] 등을 지냈으나 한때 첩의 동생이 칠서지변의 서양갑이라서 [[계축옥사]]로 파직되었다가, [[1623년]](광해군 15년) [[인조반정]] 뒤에 관작이 복구되어 [[예조]][[참판]]·[[중추부]][[지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에는 [[조선 인조|인조]]를 [[공주시|공주]]까지 호종하였고, 왕을 공주로 호종한 공으로 가의대부에 오르고 예조참판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는 [[후금]]과의 협상을 강력 반대하였다. 그 뒤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는 [[1632년]] [[인목대비]]와 [[1635년]] [[인열왕후]]의 [[국상]] 장례를 주관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도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1636년]](인조 14년) [[정묘호란]] 때에도 [[한산성]]으로 [[조선 인조|인조]]를 수행, [[김상헌]]과 함께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사후 [[병자]], [[정묘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증직|증]] [[의정부]][[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윤웅렬]](尹雄烈), [[윤영렬]](尹英烈) 형제는 그의 7대손, [[윤치호]]는 그의 8대손이다. [[이이]]·[[성혼]]·[[정철]]의 문인이다.
         첫 부인은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장인 [[월산대군]]의 손자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일찍 상처하고, 뒤에 스승 [[이이]], [[성혼]]과 동문수학한 [[신응시]]의 딸 영산신씨(靈山申氏)와 재혼하였다. 그러나 재취 부인 영산신씨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처 전주이씨에게서 1 1녀를 두니 아들 윤취지(尹就之)와 유시경(柳時慶)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또한 첩실에서 1 1녀를 두었으니, 서자 윤태지(尹泰之)는 관상감 직장(觀象監直長)을 지냈고, 서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유지만(柳之蔓)과 결혼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칠서의 변]]이 일어났을 때 첩의 동생인 서매제 [[서양갑]](徐羊甲)에게 연루되어 파직당하였다. 옥사가 확대되어 [[계축옥사]]가 되어 심문받았으나 그는 특별한 혐의점이 없어서 처벌받지는 않았다. 그 뒤 6년간 칩거하였다.
         [[1636년]](인조 13년) [[병자호란]] 때에는 왕을 [[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당시 그는 [[김상헌]] 등과 함께 [[청나라]]와의 강화를 강력히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637년]](인조 15) [[정축하성]] 후 관직을 사퇴하고 칩거했으나 거듭된 출사 요청으로 [[한성]]에 되돌아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특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해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다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 장 : [[윤취지]](尹就之), 부사직과 연안부사를 거쳐 가의대부를 지냈다.
         ***** 서증손 : 4 2녀
         * 장인 : [[양원도정]](陽原都正) 이혜(李譓, 1538 ~ 1591), [[의경세자]]의 장 [[월산대군]]의 증손
         [[분류:1564년 태어]][[분류:1638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시인]][[분류:조선의 수필가]][[분류:조선의 작가]]
  • 은혼/613화 . . . . 11회 일치
         [[은혼]] 613훈. '''자는 길지도 두껍지도 않고 단단하게 살아간다'''
          * 그의 별에는 "치당네쿠스코", 줄여서 "칭코"라는 기관의 크기가 성의 가치가 되는 사회. 그에겐 유능하지만 칭코가 작은 형이 있었다.
          * 충격적이게도 엄청난 꽃미으로 살고 있던 하타 황태자는 왕위를 빌미로 일어난 정쟁에 휘말며 형과 헤어지고 만다.
          * 지금도 하타 황태자를 따라다니는 영감, 그의 이름은 네스로 젊은 시절 하타 황태자를 옹립하려는 파벌의 리더였다. 이 무렵은 제법 이지적인 이미지였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주책맞은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네스의 파벌은 오우고쿠왕이 하루라도 더 옥좌에 있길 바란다면서도 하타 황태자가 온갖 생물을 애호하는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점이 자신들을 이끌어준다며 은근히 하타 황태자를 앞세운다. 지금은 그 모양 그 꼴이지만 놀랍게도 이 시절의 하타 황태자는 꽃미에 탈모도 없었다. 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세월--
          * 반대 파벌은 하타 황태자의 형 바루카스 황태자를 옹립하려 한다. 그들의 대표인 단이란 신하가 네스의 발언을 비웃으며 "그런건 왕에 어울리는 소질이 아니다."라고 디스한다. 군략도 정치도 능한데다 장이기까지 한 바루카스야 말로 후계자에 적합하다고 강변한다. 그 말대로지만 정작 오우고쿠왕은 바루카스에게 승계한다고 명언하지 않았다. 단은 이 점을 따지는데 네스가 그를 비웃는다. 바루카스의 재능이야 네스도 인정하는 바지만, 그에겐 단 한 가지 결점이 있다.
          * 그렇다. 오우고쿠 행성은 수컷의 상징인 이마의 외설물... 아니 "치당네쿠스코"란 기관, 줄여서 "칭코"의 크기야 말로 자의 가치이자 인격의 척도로 통했던 것이다. 다른게 다 별로여도 칭코만 크면 굉장한 사람이고 하다못해 택시라도 칭코가 큰 쪽이 잘 잡는다. 단도 작은 편이지만 황태자인 바루카스야 말로 정말 눈물나게 작은 칭코의 소유자였다. 이 점이 후계자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단은 문화를 무시할 수가 없으니 그 자체에는 반박을 못하지만 칭코가 큰 것만으론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안보론으로 맞선다. 그러나 그 자신이 열폭해서인지 "칭코따위가 다 뭐냐"고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네스는 "지금 폐하도 칭코 큰 것만으로 왕위에 오르셨는데 무시하냐"고 따진다.--예송논쟁이네-- 네스는 은근슬쩍 "칭코 큰거 빼면 물만 는 양반"이란 폭언도 끼워넣는데 단은 어떻게든 반박하기 위해 달리 좋은 점을 찾아내려 하지만 택시를 잘 잡는거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네스는 그 조차도 칭코가 큰 덕이라며 논쟁의 승기를 잡아간다.
          * 문제의 두 황태자는 선왕의 묘 앞에 모인다. 아버지의 유언을 곱씹으며 바루카스는 자신의 형이며 모든 것을 갖췄던 자, 드라고니아 황태자를 떠올린다. 결국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그를 잊지 못했던 것이라고. 그는 일찍이 구룡공자라 불린 호걸로 5세에 그 칭코가 마치 용의 수염처럼 길었고 재능은 용의 뿔처럼 하늘을 찔렀던 천재였다. 회상에 나오는 것도 일단은 5세 버전인데 칭코만 큰게 아니라 여러가지가 다 크다.
          그런데 단은 곧바로 이들을 죽이지 않는다. 그는 하타 황태자에게 한 가지 물어볼게 있다며 바루카스도 추방하고 나라도 엉망으로 만든 주제에 어째서 "아직도 황태자로 아있는지", 왜 왕위를 잇지 않고 있는지 말하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있는거 없는거 다 불어버릴 법도 한데 왠지 하타 황태자는 무겁게 침묵한다.
          >단, 물러서라. 그 자를, 우리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만화의 대표 마다오 중 하나였던 하타 황태자의 충격적인 과거. 거의 이 만화 최고 수준의 꽃미이었는데 세월은 이길 수 없는지 지금은 그만과 탈모로 고통 받고 있다. 게다가 동물을 사랑했던 모습이 지금은 노답 민폐 애견인같은 꼬라지로...
  • 은혼/643화 . . . . 11회 일치
          * [[키지마 마타코]]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통로를 한 없이 달렸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통로였다. 하지만 마타코는 그런 의문을 접어둔 채 달렸다. 그저 쫓아갔다. [[다카스기 신스케]]라는 자를.
          * 거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역시 신스케를 쫓는 자가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는 생사를 넘은 책략으로 추격대의 발을 묶었다. 적들은 불사신 같은 저력에 경이를 표했다. 그러나 반사이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감췄던 최후의 수가 드러나자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반사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치있는 자를 쫓고 있다고 믿었다.
          * 여기에 또 한 명, 신스케를 쫓는 자가 있었다. [[다케치 헨페이타]]는 부하들과 함께 파도를 방불케하는 적의 탄막을 넘었다. 모든 것은 히노카구츠치를 멈추기 위해. 그러기 위한 15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그들에게 은 수단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헨페이타도 부하들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도 오래 전부터 한 사람을 쫓고 있었다. 이제와서 뒤쳐질 수는 없었다.
          멀다면 먼 거리에 있던 두 자. 끝까지 신스케를 따랐던 그들의 마지막 말은 한결 같았다.
          * 제어 시스템을 호위하던 병력들은 난데없는 폭발이 일어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제 3게이트였다. 방금 전 단 한 명의 적을 막으려고 부대 하나가 간 방향이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로 부대는 전멸, 게이트마저 파괴됐다. 은 부대들은 신속하게 화제를 진압하고 방어를 강화했다. 동시에 제어 시스템에 방어인력을 충원했다. 총알 하나라도 잘못 맞았다간 이 배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증원병력이 막 도착했을 때였다. 신스케와 마타코가 제 3 게이트와 제어 시스템으로 양단된 병력 위로 뛰어내렸다.
          * [[사카모토 다츠마]]. 이 자가 돌아왔다. 이번엔 실없는 농담도 웃음기도 없다. 그가 이번에 엔죠 황자에게 가져온 것은 뜨거운 탄환이었다.
          >희망을 기고 사라진 이들의 영혼도
          >희망을 받아서 살아은 이들의 영혼도
          >여기에 있다! 누구 한 명 겨두지 않겠다!
  • 은혼/646화 . . . . 11회 일치
          * 죽음을 불사하고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로 돌격했던 [[다케치 헨페이타]]. 그러나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살아고 말았다. 내친 김에 아메노토리후네의 내부에 내려선 다케치와 부하들 앞에 바라지도 않았던 배웅자가 있었다. 전 하루사메 삼흉성 [[사루가쿠]]. 부하들과 함께 건재한 모습이었다. 넉살좋게 다케치 일행의 특공이 실패했으니 수훈은 자신들 몫이라고 말하며 나타났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바토우]]의 목숨을 앗아간 그 폭발. 사루가쿠는 가까스로 폭발을 피했다. 살아은 그는 그대로 숨어있기 보단 작전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다케치 측의 통신을 엿들었다. 히노카구츠치의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 파괴. 다케치의 예상과 달리 그건 폭발 한두 번으로 어쩔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루가쿠 부대가 내부에서 그 장비를 한 발 먼저 파괴했고 그래서 다케치 일행의 특공은 불발로 끝날 수 있었다.
          * 어떻게 보면 그저 동맹일 뿐인 사루가쿠가 이렇게까지 헌신한 건 이상한 일이다. 그건 어떤 약속 때문이었다. 바토우. 죽어간 해적들. 그들은 죽더라도 누가 뼈라도 주워줄 이도 없는 인생들이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는다면, 살아은 쪽이 그 뼈 위에 적들의 두개골을 장식해 주기로. 그게 해적의 긍지였다. 사루가쿠가 여기에 있는건 그 긍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 통로 저편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그 정체는 통신기를 통해 [[한카이]]가 알렸다. 히노카구츠치의 파괴. 드디어 이루어졌다. 하지만 희소식 만은 아니다. 히노카구츠치 파괴는 완전하지 못했고 적의 다음 행동은 계속된다. 다케치의 책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필요할 때 할 일을 하는 자다. 그는 선내에 은 잔존병력을 최대한 긁어 모으게 했다. 적은 틀림없이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격돌시키고 자신들은 탈출하려 할 것. 그렇다면 결전의 장소는 이미 정해진 셈이다. 그는 사루가쿠에게 그 장소로 모두를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우리들의 은 힘을 하나로 모아서
          * 쉬운 말이라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려운 법. 다케치의 말은 구상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하고 무너져 가는 해방군 모선의 잔해 속에서 생존한 병력을 모으고 다시 싸우게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한카이도 그것을 지적했다. 병력이 얼마나 았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싸울 기력이 있을지.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폭발에 삼켜지는 통로를 뚫고.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곧 두 갈래로 나눠 각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그 자는 반드시 살아있을 겁니다.
          다케치와 사루가쿠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성과를 올렸다. 사루가쿠가 파괴된 중추 시스템의 하부에서 잔해에 걸린 그 자를 발견할 무렵, 다케치도 막 추락하려던 [[키지마 마타코]]를 구출했다. 다케치가 그녀를 옮기는 동안 사루가쿠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웅을 데리고.
          사루가쿠는 자신이 선두에 세운 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 서있는 것만으로 동료들의 기색이 바뀌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적들의 기색까지도. 이 피투성이 사내가 휘두르는 칼끝에 따라서 전장이 바뀌고 있었다. 아군 부대다 적들 위로 쏟아져내렸다. 통로를 통해 도크에 도착한 가츠라와 다츠마의 병력들도 일제히 진격했다. 사루가쿠 자신도 그 뜻모를 열기에 휩쓸려 적들을 찍어내렸다.
          * 녀석들은 정작 자기 등 뒤는 챙기지 못했다. 다츠마와 가츠라가 다카스기의 후방을 청소했다. 마침내 나란히 선 세 사람. 피투성이의 세 자. 엔쇼와 격전을 치른 다츠마와 가츠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다카스기의 상태도 심각했다. 그는 멀쩡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발아래로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엔쇼의 라이트 세이버는 막 회복됐다. 일시적인 출력 저하가 반복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걸 점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가 라이트 세이버를 광탄의 형태로 바꾸자 부하들이 후방에 늘어서 원호사격 진형을 취했다. 엔쇼가 광탄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일렬로 늘어선 해방군이 일제 사격을 취한다.
  • 의성군 . . . . 11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군. 2018년 6월 기준 인구는 약 5만 3천여명이다. 북쪽에 안동시, 동쪽에 청송군과 영천시, 쪽에 군위군, 서쪽에 구미시와 상주시가 위치해있다. 의성군의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흐르며, 낙동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인 위천이 의성 군내를 관통하며, 경작지가 넓고 평야지대가 비교적 많다. 때문에 농업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1970년대 중반에만 하더라도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제법 큰 군이었으나 이후 농촌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리즈 시절]]보다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 [[5번 국도]]가 군의 북을 관통한다. 영천, 군위를 거쳐 예천, 영주로 연결되는 [[28번 국도]]와 [[59번 국도]]도 있다. [[25번 국도]]는 단밀면을 잠깐 지나친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안계면에서 별도로 [[동서울터미널]]행 시외버스가 있다. 다만 원주 방면에서 의성으로 갈 때는 [[의성IC]]가 아닌 [[안동IC]]를 이용한다. [[의성IC]]가 의성군 쪽의 봉양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당진영덕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서의성IC]], [[북의성IC]]가 신설되어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이전에는 북 교통은 괜찮았지만 동서는 산길과 좁은도로가 많아 상대적으로 불편함이 컸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영미]], [[김선영(컬링)|김선영]],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 2 || 의성부초등학교 || 의성읍 문소1길 24 ||
         ||<|2> [[정창화(정치인)|정창화]]/3선[br][[민주정의당]] ||<|2> 김동권/초선[br][[민주자유당]] || --[[김화]]/초선--[* 97.12.26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자유민주연합-- ||<|2> 정창화/5선 [br] 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 [br] 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 [br] 무소속 ||<|2> 김재원/재선 [br] 새누리당 || --[[김종태(1949)|김종태]]/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br]--새누리당-- ||
          * [[김정(터보)|김정]] : 연예인, 댄스그룹 [[터보(그룹)|터보]]의 원년멤버
  • 이재황(배우) . . . . 11회 일치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 [[문화방송|MBC]] || [[자 셋 여자 셋]] || 왕우[* 자세한 역할 정보는 [[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C%9E%90_%EC%85%8B_%EC%97%AC%EC%9E%90_%EC%85%8B#%EA%B7%B8_%EC%99%B8_%EC%9D%B8%EB%AC%BC|자셋 여자셋 위키백과]] 참고] || 특별 출연 ||
         || [[2001년]] || [[SBS]] || [[오픈드라마 과 여]] 천하무적 파트너 || 강지훈 || 41회 ||
         || [[SBS]] || [[오픈드라마 과 여]] 녹번동 삼형제 || 김민철 || 60회 ||
         || [[SBS]] || 오매 || 한우식 || ||
         || 12월 20일 || [[KBS 2TV]] || [[해피선데이]] [[자의 자격]] || 게스트 || 264회 ||
          * 2012년엔 기자들의 실수로 과거 시트콤 출연작인 《점프》의 캡쳐사진이 [[http://sports.donga.com/3/all/20120106/43142247/2|한채영의 편으로 오인된 흑역사가 있다.]] --지못미--.
          * [[노주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오매》,《그 여름의 태풍》],[[박정수(배우)|박정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다이아몬드의 눈물》,《내 손을 잡아》],[[양금석]][* 《오매》,《다이아몬드의 눈물》,《이브의 사랑》],[[금보라]][* 《아내의 유혹》,《내 손을 잡아》,《이브의 사랑》] 배우들과는 각각 세 작품씩 호흡을 맞췄고, [[채림]][* 《카이스트》, 《지금은 연애중》],[[김민정(1982)|김민정]][* 《카이스트 시즌2》,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홍수현]][* 《카이스트 시즌2》,《천사의 유혹》], [[권오중]][*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녹번동 삼형제》],[[최윤영(1975)|최윤영]][*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연애중》],[[정찬]][* 《그 여름의 태풍》,《웃어요 엄마》],[[윤해영]][* 《다이아몬드의 눈물》,《너라서 좋아》],이선진[*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김형범(배우)|김형범]][* 《다이아몬드의 눈물》,《돌아와요 순애씨》], [[정애리(배우)|정애리]][* 《아내의 유혹》,《역류》], [[오영실]][* 《아내의 유혹》,《공주가 돌아왔다》], [[김용건]][* 《아내의 유혹》,《웃어요 엄마》], [[진태현]][* 《천사의 유혹》,《내 손을 잡아》], [[배그린]][* 《웃어요 엄마》,《내 손을 잡아》],[[안석환]][* 《너라서 좋아》,《내 손을 잡아》], 임도윤[* 《이브의 사랑》,《역류》]등 배우들과는 각각 두 작품씩 호흡을 맞췄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1999년 데뷔]][[분류:고창군 출신 인물]]
  • 이지은(2000) . . . . 11회 일치
         ||<:><#fcb4bd>'''{{{#white 별명}}}'''||<#ffffff>여장부[* 고등래퍼 출연 당시, 자출연진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모로 당차게 리딩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듀서들이 감탄하곤했다.], 안소희 닮은꼴[* 고등래퍼 선공개 영상에서 안소희 닮은 꼴로 소개가 되었으며, 좌우로 긴눈과 전체적인 얼굴형태가 닮았다는 평가], 코지은[* 코가 꽤 오똑하고 이쁜편이라 힙갤에서 불리는 편], 찐[* 학교친구들이 부르는 애칭이라 한다], 햄[* 햄토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나온 별명], 자영업자[* 믹스나인 방송내에서 콩알만한 분량으로 알아서 여자 직캠조회수 3,4위를 먹은 김시현, 이지은을 통칭하는 별명. ]||
         충청북도 충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댄스 스튜디오에서 랩와 춤을 연습하며 꿈을 키워온 듯하다. 수댄스 대표의 상당한 애제자인 듯하며, 대표 인스타에는 이지은에 대한 애정어린 포스트가 상당하다. 현재 아 있는 상당수의 자료들이 수댄스에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예지(피에스타)]]의 곡인 미친개 커버([[https://www.youtube.com/watch?v=o95OUDg2sOw|유튜브]])를 올리기도 했다.
         믹스나인 5회의 최고의 수혜자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그에 걸맞는 분량을 몰빵받았다. 5화는 순위발표식과 포지션 배틀의 준비와 경연의 절반을 보여준 에피였다. 포지션 배틀은 댄스, 보컬, 랩 곡 하나를 선택해, 녀간 배틀을 붙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랩퍼인 이지은은 랩을 선택했고, 노래는 [[치타(가수)|치타]]의 My number.
         자 연습생에게 랩이 가장 인기가 있었지만[* 본헤이터 곡에 15명이 몰려, 즉흥 싸이퍼로 8명을 떨궜다고 함.] 반대로, 여자 연습생에게는 랩이 가장 인기 없었던 듯하다..
         ==== 9화(자 포메이션 배틀이므로 통편집) ====
         이번 화는 여자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조 순위와 자 연습생 포메이션 배틀 경연으로 구성된 화였다.
         음원미션 준비와 3차 순발식이 방송이 되었다. 같은 조에서 살아은 게 이지은 혼자였다. 최종 순위는 여자 24위.
         아있는 27명의 여자 연습생이 3곡을 선택해 경연을 하는 화였다. 기존의 팀 베네핏이 아닌, 각 팀별 1~3위에게 1만점, 5천점, 3천점을 주는 룰로 팀원 구성에 대한 이슈가 많았었다.
         이 밤이 지나면이 상당히 랩파트가 핵심인 관계로 아있었던 유일한 랩재원인 신류진이 전부 하게 됐는데 로우톤인 보이스와 안 어울렸다는 평. 이지은이 간 Dangerous girl의 경우 랩파트가 있지만 핵심파트가 아니었고... 이미 랩재원인 정사라와 루이가 있었으며, 방출되어 가게된 멤버 3명 모두 랩파트였다... 쥐꼬리 만한 랩 파트를 5명이 나눠하게 된다.
         자신이 이지은의 질투로 친구 관계를 맺기 힘들었고 이지은의 전 친과 친구, 그리고 이지은이 자신의 집에 술을 들고와 진창 취하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성폭행을 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 원피스를 아주 좋아하는 동생이 있는 듯하다.
  • 정몽근 . . . . 11회 일치
         |자녀 = 2
         |친척 = 8 3녀 중 3
         **** 장 : [[정지선]] (1972 ~ )
         **** 차 : 정교선 (1974 ~)
         *** 동생 : [[정몽우]] (1945 ~ 1990)
         *** 동생 : [[정몽헌]] (1948 ~ 2003)
         *** 동생 : [[정몽준]] (1951 ~ )
         *** 동생 : [[정몽윤]] (1955 ~ )
         *** 동생 : [[정몽일]] (1959 ~ )
         [[분류:194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현대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정주영]][[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현대백화점그룹]]
  • 지증왕 . . . . 11회 일치
         '''지증왕'''(智證王, [[437년]]~[[514년]], <small>재위:</small> [[500년]]~[[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ref>그러나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는 지증왕의 장 법흥왕의 때까지도 비공식적으로나마 잔존하여 사용되었다. 이는 울진 봉평신라비와 울산천전리각석에 기록되어 있다.</ref>
         [[마립간]]의 칭호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임금이다.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지대로, 지도로, 혹은 지철로라고 한다. [[내물 마립간]]의 증손자이며 [[소지 마립간]]의 재종 아우이다. 부인은 [[연제부인]](延帝夫人) 박씨이며, [[소지 마립간]]이 아들이 없이 죽어 64세에 왕위를 이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奈勿王之曾孫 習寶葛文王之子 炤知王之再從弟也 母金氏鳥生夫人 訥祇王之女 妃朴氏延帝夫人 登欣伊湌女 王體鴻大 膽力過人 前王薨 無子 故繼位 時年六十四歲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ref>[[514년]] 죽은 뒤 [[시호]]를 지증이라 하였는데, 이때 이후로 신라의 시호법이 시작되었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五年 ... 王薨 諡曰智證 新羅諡法 始於此 (15년(514) ...왕이 죽었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쓰는 법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ref> 지증왕은 [[사탁부]](沙啄部) 출신으로 왕위에 올랐다.
         국보 제264호로 지정된 [[영일냉수리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에 의하면 그를 지도로갈문왕(至都盧葛文王)이라 불렀다. 그는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갈문왕]]에 제수되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 배경은 그의 장 원종(元宗, 뒤에 [[법흥왕]]으로 즉위)이 [[소지 마립간]]의 사위인 점이 작용했다. 서자 산종만이 있었던 소지 마립간은 사위인 [[법흥왕|원종]]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사촌들을 제치고, 6촌이자 사돈인 그를 왕위 계승자로 내정했던 것이다. [[소지 마립간]]의 서자인 산종은 후일 [[진평왕]]의 왕비 [[마야부인 (신라)|마야부인]]의 할아버지이며 [[복승 갈문왕]]의 아버지가 된다.
         [[502년]] [[순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 장 : [[법흥왕]](法興王, ? ~540 재위:514~540)
         *** 차 : [[입종 갈문왕]](立宗 葛文王)
         *** 삼 : [[김진종|진종전군]](眞宗殿君)
         *** 사 : [[경주 김씨]]
         [[경주|경주 지역 전설]]과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의 [[성기]]는 커서 그 길이가 1자 5촌(약 45 cm) 정도가 되었다고 하며, 궁녀나 왕족, 귀족의 딸 중 적당한 여인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신하들이 왕비가 될 여성을 찾으러 다니던 중 [[경주]] [[산 (경주)|산]]의 연못에 큰 똥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큰 똥의 주인이 여성이라면 왕을 감당할 것이라 보고 수소문한 끝에 이찬 [[박등혼]]의 딸이라 하였다. 이에 신하들이 등혼의 딸을 간택하여 왕비로 들이니 그가 왕비인 연제부인이라는 것이다.
         [[분류:신라의 왕|지증 마립간]][[분류:437년 태어|지증 마립간]][[분류:514년 죽음|지증 마립간]][[분류:신라의 군인|지증 마립간]][[분류:마립간]][[분류:한국의 전설]][[분류:불교도 군주|김지대로]][[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지증왕| ]]
  • 진격의 거인/95화 . . . . 11회 일치
          * 작전 개시 전 카퍼레이드 중 라이너는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성을 발견하고 쫓아가 확인한다.
          들이 느낄 정도라면 친척인 라이너도 모를 리 없었다. 라이너는 걸어가면서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가비가 의외의 말로 받아친다.
          포르코는 아직까지도 왜 자신이 탈락했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브리핑 이후 그는 라이너를 몰아붙이며 왜 자신이 떨어지고 라이너가 선택됐냐고 따졌다. 애초에 라이너가 마음대로 한 것도 아니지만, 라이너는 자신을 무시했던 포르코가 이렇게 시비를 걸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그는 조소와 함께 "사실 꼴찌는 너였다. 그뿐 아니냐"고 빈정거리며 그를 "포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격분한 포르코가 달려들려는걸 형 마르셀이 말린다. 아무리 그래도 "군의 결정에 거스르는 거냐"는 말에는 어쩔 수 없었다. 형의 설득에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는 포르코. 그런데 마르셀이 묘한 말을 긴다.
          * 작전이 발표되자 전 국민적인 성원이 뒤따랐다. 작전에 참가하는 네 사람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카퍼레이드까지 벌이며 최고의 환희를 맛본다. 언제나 심드렁한 애니는 여전히 관심없어 했지만. 라이너는 거리를 가득채운 시민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고 감격한다. 그런데, 그는 퍼레이드에서 등 돌리는 어떤 자를 발견한다. 낯설지 않다, 감이 왔다.
          라이너가 그 자를 따라갔다. 그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대머리인 자. 하지만 라이너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아버지를 불렀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기 전 군의 시설에서 일했다. 거기서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순간, 처음보는 얼굴임에도 직감했다. 자신과 닮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자는 놀라움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라이너는 더욱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달랐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그래도 그는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완장을 보였다. 마레의 전사, 명예마레인의 완장을. 그와 어머니가 성취한 신분이다. 이제 신고만 하면 수용구 바깥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사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가 바라기만 한다면...
          * "낙원"에 도착하자 네 사람만 겨졌다. 마가트는 "낙원이 경계선"에 이들을 내려주고 일몰 후 북쪽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이후는 작전대로. 마레 군은 보름날 정박하러 올 테니 그 일정에 맞춰 작전을 진행하란 지시를 겼다. 이걸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 했던 그가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는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성공을 빌어주긴 했다.
          * 마르셀은 왜 라이너를 구했을까?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동료애? 그를 유언을 기지 못했다. 했다면 네 번째 사과를 했을까? 라이너가 알 수 있었던 건 그를 밀쳐내는 마르셀, 머리가 사탕처럼 깨물리는 모습 뿐. 그를 대신해서.
          * 아버지는 없다. 선택받은 전사도 없다. 이제는 동료도 없어졌다. 라이너는 왜 여기 있을까? 자신은 뭘까? 알 수 없는 일들. 라이너는 달아났다. 누구보다 빠르게. 거인화 능력 같은건 적어도 그때는 생각나지 않았다. 마르셀도 그랬을 것이고 나머지 두 명도 그랬겠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은 거짓말쟁이였다. 그가 알던 모두가 거짓말쟁이였다. 그도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이제 그에게 은 한 가지. 거짓말이 될지도 모르는, 이미 거짓말인지도 모르는 한 가지 생각.
  • 진격의 거인/96화 . . . . 11회 일치
          이곳도 언제든 거인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애니가 걷기 시작했다.베르톨토도 일어나 애니를 따랐다. 라이너는 아직 나무 아래 있었다. 현실은 그를 따라올 뿐만 아니라 추월해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쌍한 [[카리나 브라운]]. 그녀는 자신을 져버린 자들을 너무 믿었다. 라이너가 임무를 완수할 거라고, 편은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거라고 믿었다. 절대로 보답 받을리 없는 믿음.
          * 무너지는 초대형의 몸에서 빠나온 베르톨트는 무지성 거인과 눈이 마주치고 기겁했다. 죽는다, 그렇게 느낄 때쯤 그 거인은 베르톨트를 그대로 지나쳐 열려진 틈으로 향했다. 베르톨트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핸다. 모든 거인이 동일하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그 거인은 [[디아나 프리츠]]였다. 오래 전에 [[그리샤 예거|편]]과 한 약속을 지키러 가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렵게 살아은 세 친구의 결속으로 보였을 것이다. 의미는 조금 달랐지만 세 사람의 새로운 결속이 맺어진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좌측으로 세 자리 옆. 진짜 고아가 된 세 아이는 결속 같은걸 맺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 뒤까지 미처 몰랐던 두 번째 마주침.
          * 라이너 일행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구제 조치를 받았다. 난민들은 공동농장으로 보내졌다. 라이너 일행은 어떤 노인과 함께였다. 그 노인은 곧잘 자기 고향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가 살던 마을은 윌 마리아 동쪽 산의 정말 작은 마을. 지도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산간마을이었기에 벽이 파괴되고 재앙이 내려와도 거기까지 알리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여느 때와 달리 가축들이 날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땅울림이 계쇡되던 아침. 무심코 창문을 열었을 때, 사람을 앞지른 그 녀석들이 모든 상황을 명료하게 알렸다. 거인들. 노인이 기억하는건 거기서 말을 타고 도망쳤다는 것 뿐이었다. 거기에 딱 라이너 또래의 아이들 셋이 아 있었다는 건 나중에 생각났다. 어쩌면 라이너 일행이 그 일의 죄책감을 자극하는지도 몰랐다.
          * 2년의 세월이 바람 같이 흘러가는 동안 알아낸 건 별로 없었다. 섬에 오기 전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라이너와 베르톨트가 개간 작업이 한창일 때 애니가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 숲이었던 땅은 급하게 벌목되고 밑둥만 은 나무들이 잔뜩 있었다. 그걸 뿌리채 들어내는건 젊고 힘있는 라이너와 베르톨트의 몫이었다. 둘이 작업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막 생겨난 밭에서 일하고 있었고, 애니가 접근해서 "진짜 일"얘기를 시작해도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베르톨트는 현 프리츠 왕가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어쨌든 진짜 왕가와 교류하고 있을 테니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방법. 애니는 고용인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나 자신이 그 집안의 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베르톨트가 정색하며 그런건 안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애니도 처음부터 그런 방법이 통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조사로는 현 프리츠 왕가와 위정자들은 "더럽혀진 피"를 기피했다. 자신들이 유미르의 백성들이 아니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는 만큼, 섣부르게 엘디아인과 피를 섞어 그 권리를 잃는 걸 두려워했다. 벽이 파괴된 이후에는 아예 엘디아인은 고용인으로도 두지 않는 등 경계를 강화했다. 결국 사용인이든 유혹이든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 게다가 애니는 자신에겐 그렇게 유혹할 매력도 없다고 자조했다. 베르톨트가 그렇지 않다고 정색했으나 그 의미까지는 파악하지 못했고.
          해결책은 라이너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2년 동안 몰라보게 든든한 자가 되어있었다. 마르셀 같이. 몸은 다부져졌고 징징거리지도 않았으며 항상 냉정했다. 베르톨트와 애니가 별 건설성 없는 이야기나 주고 받는 동안 어느 새 해답을 찾아냈다.
          >우리에게 은 시간은 10년...
          라이너는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윌 마리아를 파괴했지만 진짜 왕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버 가"에서 나온 정보가 정확하다면 벽의 왕은 "부전의 맹세"에 묶여 있다. 애니가 맞장구치며 "그러니 바로 결판을 내자"고 말했다. 라이너도 무슨 말인지 안다. 윌 로제와 윌 시나까지 전부 파괴하는 것. 그래서 벽의 왕을 끌어내자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애초에 틀렸다. 그런 식으로 시조의 거인을 끌어낸다면 전혀 승산이 없다. 그 시조의 거인이 한 번 소리치는 걸로 모든 것이 뒤집힐 것이다. 거인을 조종하는 힘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그 분노의 반격은 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우리에게 간섭하면 벽에 숨은 몇 천만의 거인이 지상을 전부 평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프리츠 왕이 대륙에 긴 마지막 메시지.
  • 차선우 . . . . 11회 일치
         ||<:> '''가족''' ||<(> 여동생 [[차윤지]][* 2017년 "[[차윤지|아이]]"라는 이름으로 [[W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에서 데뷔하게 되었지만 2018년 10월 5일 WM과의 전속계약을 종료하게 되면서 매가 모두 WM을 떠나게 되었다.] ||
         ||<:> '''신체''' ||<(> 175cm, [[B형]][* 팀내 유일무이], 발사이즈 255mm[* 자치고 작은 발 사이즈. 그래도 발도 손처럼 예쁜 편이다. ~~하지만 무시할수없는 발냄새~~ ~~발에 땀이 많아 슬픈 바로~~], [br] 악력 - 40.6kg, 허리사이즈 31인치 ||
         <[[문화방송|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1년|추석특집 제3회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자 100m 은메달''' 수상했다. 이 기회로 [[B1A4]]는 몰라도 바로는 아는 사람이 늘었다. 본인은 한우를 사주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열심히 뛰었다고.
         <[[문화방송|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2012년|설날특집 제4회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 대회]]>에서 [[김동준(제국의아이들)|김동준]]을 제치고 '''자 100M 금메달 수상!'''
         <MBC 런던 올림픽 기념 아이돌 스타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조권]]을 제치고 '''자 100M 은메달 수상!'''을 하였다.
         [[정글의 법칙]] with 프렌즈 특집에 고정 출연해 [[팔라우]]로 떠났다. 주제가 친구와 함께 떠나는 [[야! 신난다~|신나는]] 정글 탐험이기에 [[손호준]]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때때로 안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촬영 내내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기도. ~~[[BL|여자들의 반응]]에 [[게이|자들은 기겁]]을 했다~~
         ||<:> 드라마 ||<:> [[tvN]] ||<:> [[응답하라 1994]] ||<:> 빙그레 (김동준) 역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뜰 연예인은 뜬다]]''' [* '빙그레' 역할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연기도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평이였고, 다만 극중 충청도 사투리는 어색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아무리 봐도 호평을 주긴 힘들었고 여러 명장면일 수 있던 장면들이 있었으나 잘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 또한 강하다. ~~그래서인지 극중 후반부로 갈수록 사투리 없이 표준어를 쓰며 연기를 하였다.~~ 바로의 말로 중반부터는 빙그레의 고향인 충북 괴산면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드라마도 상당한 수작이였으니 귀중한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응답하라 1994]] 항목 참조.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B1A4의 대중성을 높였다. 하지만 광고는 못찍었다. 대신 응사 덕을 톡톡히 봐서 정규 2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담이지만 B1A4 멤버들이 자신의 연기를 신경 써주기보다는 편 찾기에 혈안이 되있어서 씁쓸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
          출연 영역이나 배역이 매우 독특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케이블 드라마와 지상파 드라마는 물론 단편영화, 웹무비, 웹드라마, 장애 인식 개선 드라마 등에서 연기했으며 여지껏 맡은 배역으로는 순수한 '''의대생''', '''지적장애인'''[* 그것도 두 차례나 맡았다.], '''싸이코패스''', '''시각장애인'''[* 정확히는 시각장애인인 척 하고 살아가는 자] 등 다양하다.[* 축구 마니아, 연예인, 일진짱, 조금 어눌한 친구 같은건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게 되었다... ]
         [[씨스타]]의 [[다솜(배우)|다솜]]과 제목 그대로 썸 타는 녀 연기로 호흡을 맞추었다.
          * 데뷔 1년차 될 때쯤에 [[B1A4|비포]]가 예능감 없다는 소리에도 그나마 [[산들]]과 티격태격대며 엽기적인 표정을 지으며 광산같은 엽사를 기던 멤버가 바로 얘. 그런데 2014년부터 급격히 성격이 바뀐것같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탓인지. 성숙해졌달까, 옛날 리얼리티에서 ~~다람쥐공주 춤을 추는~~ 까부는 행동은 요즘 자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주먹을 부르는 애교와 외계어와 조증을 가지게 됐다~~ 그래도 별명이 나대미, 차나댐인 만큼 요즘도 주목 받을땐 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래도 원래 바로는 학생 차선우 시절에는 조용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였다고 했으니. ~~멤버들이 말한 A형의 B형화 B형의 A형화가 괜히 한 말은 아닌 것같다(...)~~
         [[분류:B1A4]][[분류:한국 배우]][[분류:1992년 출생]][[분류:시흥시 출신 인물]][[분류:아이돌 래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천해성 . . . . 11회 일치
         1986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정책기획과장과 회담기획부장, 교수부장, 인도협력국장, 대변인, 북회담본부장, 정책실장 등 통일부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통일부로 돌아와서는 회담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2007년 10·4 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수의 북회담에 깊숙이 관여했다.
         2009년 통일부 대변인을 지내고, 2014년 북회담본부장을 역임하였다.
         2016년 7월 행시 후배인 김형석 차관이 부임하자 퇴임한 뒤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인 [[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 [[대한민국 통일부|통일부]] 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 부장
         * 북회담본부 본부장
         * 제5대 [[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
         * 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의제분과장
         * 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양 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
  • 최두선 . . . . 11회 일치
         |거주지 = {{KOR}} [[서울특별시]] <br/> {{국기|일제 강점기}} [[철원군 ()|강원도 철원]](前) <br/> {{국기|일제 강점기}} [[창원시|경상도 창원]](前)
         |친인척= [[최선]](형)
         본관은 [[동주 최씨|동주]]. 호(號)는 각천(覺泉)이다.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제8대 [[대한민국의 총리|국무총리]]를 지냈으며 [[유엔]]총회 한국대표,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육당 최선]]의 동생이다.
         그 뒤 형 [[최선]] 등이 일제 강점기 후반 친일행위를 했다고 비판, 매도되었으나 다행히도 그는 형 [[최선]]에게 연좌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에 대한 부당한 비판을 우려한 [[김성수 (1891년)|김성수]],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등이 그를 각별히 신경쓰고 배려하였다.
         [[197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같은 해 적십자사 총재로서 이산가족 상봉을 건의하여 성사시켰고, 북측의 적십자사를 설득하여 [[1972년]]의 북적십자회담을 이끌어 냈다.
         * [[최선]]
         [[분류:1894년 태어]][[분류:1974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최재성(배우) . . . . 11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878787> '''{{{#EEE156 학력}}}''' ||<(> 전주초등학교 (졸업)[br]전주중학교 (졸업)[br]전주고등학교 (졸업)[br][[강대학교]] 졸업[br][[가천대학교/글로벌캠퍼스|가천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
         ||<#878787> '''{{{#EEE156 가족}}}''' ||<(> 3 1녀 중 차. 배우자 황세옥[* [[1994년]]에 데뷔해서 "결론" 이란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신세대 가수였다. 이후, 2집 "알라딘의 램프", 3집 "너만의 이유" 를 내며 가수 활동을 이어가다 [[1997년]] 최재성과 결혼했다.] 6촌 동생 [[최진실]], [[최진영]] ||
         최재성의 아버지는 최상현(KBS 드라마 연출가)이고, [[최진실]], [[최진영]] 매가 6촌 동생들이다. 혈통이 혈통인지라 최재성, [[최진실]], [[최진영]] 모두 미미녀들이다. [[최진실]]과 [[최진영]] 매는 부모가 [[이혼]]한 뒤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나, 같은 직업에 종사한 덕에 최재성과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사단"과 [[최진실]]의 어머니, [[최진영]] 이외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슬퍼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최재성과 [[최진실]]이 [[1994년]]에 방송된 [[드라마]]에서 극중 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20500209121002&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4-02-05&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421&publishType=00010|#]] [[여담]]으로 어린 시절에는 [[최진실]]과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었다. 자라면서 외모의 차이가 생긴 것.
         참고로 연예계에서 몇 안되는 전주고등학교 출신 인물이다. 다녔던 강사회복지대(현 [[강대학교]])는 전혀 이름이 없다가 최재성 덕에 유명해져서, 교정에 최재성 동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거 없다]].
          * [[1996년]] MBC 대하드라마 《[[미망#s-3|미망]]》 ... 태
         [[분류:한국 배우]][[분류:전주시 출신 인물]][[분류:1964년 출생]][[분류:1983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최태원 (야구인) . . . . 11회 일치
         [[서울미성초등학교|서울미성초]], [[성중학교|성중]]을 거쳐 그는 [[성고등학교 (서울)|성고]]-[[경희대학교|경희대]] 체육대학 시절 내내 국가대표 [[2루수]]로 활동하며 연고 팀 [[OB 베어스]]의 1차 지명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었다. 하지만 [[OB 베어스]]는 [[건국대학교|건국대]] 출신의 [[내야수]] [[추성건]]을 지명했고, 그는 당시 꼴찌 팀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로 밀렸다.
         * 서울 [[성중학교 (서울)|성중학교]]
         * 서울 [[성고등학교 (서울)|성고등학교]]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
  • 폐비 윤씨 . . . . 11회 일치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날짜=2009-03-14|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고령 신씨(申氏)의 딸로 [[조선]]의 제9대 임금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자 둘째부인으로 투기와 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위되었다.
         [[1473년]]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되어 사사되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조선 성종|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조선 연산군|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조선 성종|성종]]과의 슬하에 세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장은 이효신(李孝信), 차은 조선 10대 왕 [[조선 연산군|연산군]]이고 셋째 아들은 조졸하였다. [[신숙주]]는 윤씨의 외당숙이며, [[조선 명종|명종]] 때의 권신 [[이량 (조선)|이량]]은 윤씨의 오빠 [[윤구 (조선 전기)|윤구]]의 손녀사위이다.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여자 관계가 복잡한 편인 성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조선 성종|성종]]이 자신의 처소인 [[교태전]]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는데, 편과 말싸움 중 편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이 있고, 다른 설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왕실의 사후 예우를 본다면 왕실의 눈밖에 나 폐위된 것이 유력하다.
         결국 윤씨는 [[1482년]] [[8월 29일]]([[음력 8월 16일]]) [[사약]]을 받아 사사되고 말았다. 윤씨의 나이 28살이었으며, 윤씨는 죽기 전 자신의 피가 묻은 금삼을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거든 이를 전달해 달라"는 유언을 기고 죽었다.
         ** '''편''' : 제9대 [[조선 성종|성종]](成宗, 1457~1495, 재위 1469~1495)
         [[분류:1455년 태어]][[분류:148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비]][[분류:폐위된 왕·황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도 출신]][[분류:사사된 사람]][[분류:무오사화 관련자]][[분류:함안 윤씨]][[분류:조선 성종]][[분류:조선 덕종]][[분류:15세기 한국 사람]]
  • 하동부대부인 . . . . 11회 일치
         하동부대부인은 영의정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증손녀이며, 판중추부사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정세호]]의 딸로 1522년(중종 17) [[9월 23일(음력 9월 4일)]]에 태어났다. [[조선 중종|중종]]의 서자<ref>창빈 안씨 소생으로 중종의 서9</ref> [[덕흥대원군|덕흥군]]과 가례를 올리고 하동군부인(河東郡夫人)으로 제수되었다. 자녀로는 3 1녀를 두었고, [[1567년]](명종 22) [[6월 24일(음력 5월 18일)]] 향년 46세 일기로 별세하니 [[왕비]] 부모를 장사지내는 예로 장사지냈으며, 같은 해 [[8월 9일]] 신주를 대원군 옆 이실(異室)에 모셨다.
         *** 동생 : 정홍수(鄭弘壽)
         *** '''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1530~1559)
         **** 장 : [[하원군]] 정(河原君 鋥, 1545~1597)
         **** 며느리 : 영의정 [[강녕군]] [[홍섬]](江寧君 洪暹, 1504~1585)의 딸 [[양군부인]] 양 홍씨(南陽郡夫人 南陽 洪氏, 1544~1569)
         **** 차 : 효정공 [[하릉군]] 인(孝貞公 河陵君 鏻, 1546~1592)
         **** 삼 : 제14대 [[조선 선조|선조대왕]](宣祖大王, 1552~1608, 재위 1567~1608)
         * 원찰 [[흥국사 (양주시)|흥국사]]
         [[분류:1522년 태어]][[분류:1567년 죽음]][[분류:부대부인]][[분류:도정궁 주인]][[분류:운현궁]][[분류:덕흥대원군파]][[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 선조]]
  • 한확 . . . . 11회 일치
         [[명나라]] [[영락제]]의 후궁 [[여비 한씨]], [[선덕제|선종]]의 후궁 공신부인은 그의 넷째, 다섯째 누이이다. 검소하고 청렴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과 함께 [[조선 세조|세조]]의 즉위를 도왔고, [[1418년]]의 [[세종]]의 책봉 고명과 [[1455년]] [[조선 세조|세조]]의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는 누이들이 황제의 후궁인 점을 활용하여,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둘째 딸은 [[조선 세종|세종]]의 서자 [[계양군 (왕족)|계양군 증]]에게 출가하였고, 여섯째 딸은 [[조선 세조|세조]]의 장 [[조선 덕종|의경세자]]의 비 [[인수대비]]로서 [[조선 세종|세종]], [[조선 세조|세조]] 2대에 걸쳐 사돈이 되었다. [[한명회]]의 일족이다.
         [[1438년]](세종 21년) 중추원사가 되었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겼는데 [[수문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탄핵을 받고 파면당했다.<ref>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0월 19일(경오) 1번째기사 "성문 출입에 문제가 있던 한확·연경·이연기·계영을 벌주다"</ref> 그해 복직하여 정헌대부 중추원사를 거쳐, 1439년 판한성부사, 경기도관찰사, 판병조사,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경기도감사로 나갔다가 복귀, 1440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병조 판서, 판병조사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때 그는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함길도]]로 부임해갔다. [[1442년]](세종 25년) 동지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한확은 세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었다. 그는 그의 누나가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이 되면서 명나라 황실의 벼슬을 받고 외교채널이 된다.<ref name="ky">[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702 <nowiki>[</nowiki>王을 만나다·16<nowiki>]</nowiki>서오릉-경릉 ( 추존 덕종·소혜왕후) : 존여비 '女訓'과 상반된 '여성상위능'] 경인일보 2010.01.14</ref> 그리고 누이동생 또한 명나라 선종(宣宗)의 후궁으로 간택돼 더욱 외교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사실 한확의 두 누이이자 인수대비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가슴 아픈 사연을 지녔다. 한확은 계유정난 때 세조를 도와 정난공신 1등에도 올랐는데 세조의 왕위 찬탈을 승인하지 않던 명나라에 들어가 단종이 왕위를 물려준 양위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한확은 골치 아픈 외교 문제를 해결하였다.<ref name="ky"/>
         사후 시신은 국내로 운구되어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광주군]] [[초부면]](현, [[경기도]] [[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69-5) 동두미진 상조곡산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소가 [[왕릉]]과 비슷한 크기라 하여 후일 능내, 능내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묘비명은 사가 서거정이 묘지명을 지었다. 한편 그의 부인의 묘소는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에 소재해 있다.
         은현면에 있는 그의 부인 양홍씨의 신도비는 [[임사홍]]이 지었다.
         * 부인 : 양부부인 홍씨 - [[양 홍씨]] [[이조판서]], [[대제학]] 문양공 홍여방(洪汝方)의 딸 - 3 6녀
         *** 며느리 : [[죽산 안씨]] - 안맹담(安孟聃)<ref>세종의 부마, 정의공주의 편</ref>의 딸<ref>《국역 국조인물고》 권1 상신(相臣) 한확의 비명(碑銘)</ref>
         * 《[[왕과 비]]》 ([[KBS 1TV]], [[1998년]]~[[2000년]] 배우:[[일우]])
         [[분류:1400년 태어]][[분류:145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왕족]]
  • 혜은이 . . . . 11회 일치
          | 가족 = 슬하 1 1녀 <br /> 아버지 김성택(변사 출신) <br /> 사촌 동생 [[김승미]](가수) <br /> 사촌 제부 [[김윤호 (가수)|김윤호]](가수)
         | '''내 자'''
         편은 배우인 [[김동현 (1950년)|김동현]]이다. 독서에 취미가 있고 재즈댄스에 특기가 있으며 사촌 동생은 [[음악 그룹]] "[[서울 패밀리]]"의 보컬리스트 [[김승미]]이고 사촌 제부([[김승미]]의 편) 또한 음악 그룹 "[[서울 패밀리]]"의 보컬리스트 [[김윤호 (가수)|김윤호]]이다.
         데뷔 앨범과 연달아 발표한 2개의 앨범이 히트를 기록했지만 아직 혜은이는 원래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아버지가 보증을 서주셨다가 잘못돼서 길에 쫓겨나서 이에 대한 방책으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449&aid=0000124480 혜은이 "편 김동현 200억대 빚 갚아…당시 헤어진 딸 데려올 수 없어 눈물”] 채널A. 2017년 02월 24일</ref>
         [[1978년]] 태평양가요제 입상 후 배우 [[김자옥]]과 함께 동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이다. [[1970년대]] 젊음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얻었고, <제3한강교>(동명 영화 OST(1986)|[[길옥윤]])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최초의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녔으며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창조한 스타이다.
         2015년 2월 23일 [[TV 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혜은이는 편 [[김동현 (1950년)|김동현]]의 빚보증과 사업 실패로 재산을 탕진하여 200억이 넘었던 빚을 독한 마음으로 10년 동안 빚을 갚았고, 전 편 사이의 딸을 데려올 수 없었다고 밝혔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3045117 혜은이 “편 김동현 빚 200억, 죽으려고 도망가기도”] 동아일보. 2017년 02월 24일</ref>
         * 1990년 07월 19집 《내 자》 《잃어버린 추억》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홍은희(배우) . . . . 11회 일치
         ||<#C69770> {{{#FFFFFF '''가족'''}}} ||<(><#FBFAFB> 편 [[강호순|강호순]], 자녀 슬하 2[* 장 강동우 (2003년 출생), 차 강민재 (2009년 출생)] ||
         [[대한민국]]의 여배우.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출신으로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MBC 베스트극장에서 [[강호순]]과 함께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무려 11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였다. 결혼식을 [[3.1절]]에 하여 식장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편 강호순은 만세삼창을 하였으며, [[신혼여행]]도 [[상해임시정부]]로 갔다고 한다. 결혼 후 한동안 [[육아]]에 힘쓰며 연예계에서 물러나 있다가 복귀하여 드라마, 예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9살에 부모님이 이혼하여 24살에 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방학 때만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었는데 그 기간이 1년에 10-20일 정도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19살 때 대학 등록금을 아버지께 요구하였는데 아버지께서 이를 들어 주시지 않아 마음이 닫히게 되었고 사이도 멀어졌다. 결혼식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고, 결혼 후 5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아버지가 계신 정읍 내장산을 지나가다가 편 [[강호순]]의 권유로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만나게 되었다.
          * 외국 클럽서 봤다는 목격담이 많다. 한국서는 편 탓에 클럽에 잘 가지 못하고 해외 나가서 풀고 온다고 한다. 한번은 소속사 창립 10주년 파티를 클럽에서 크게 했었는데 스피커가 나를 부르는거 같았다고 했다. 스피커 앞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는데 이를 편이 목격하였고 매니저를 시켜 홍은희를 데려오라고 말하였으나 편이 보고 있다는걸 눈치채지 못한 홍은희는 편의 매니저에게 "나 못봤다고 해"라는 말하였지만 결국 편에게 잡혀 들어갔다.
  • 2013 K리그 심판매수 . . . . 10회 일치
         2013시즌 K리그에서 벌어진 심판매수 사건으로 이 사실이 대중에 밝혀진 건 2015년 9월 21일에 벌어진 안종복 전 [[경 FC]] 사장이 한강에 투신하면서부터였다.
         2013시즌은 K리그에서 승강제가 도입된지 두번째 시즌이었고, 경 FC는 강등될 가능성이 아주 유력했던 팀 중 하나였다. 당시 경의 사장이었던 안종복은 팀의 강등을 모면하고자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저지르고야 마는데, 바로 심판매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http://sports.news.naver.com/k_league/news/read.nhn?oid=015&aid=0003436896|외국인 선수의 몸값과 관련한 횡령혐의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차후 발표결과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41&aid=0002495741|심판매수]]로 알려져 K리그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웃긴 사실은 매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은 강등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는 동년 11월에 검찰이 공식으로 발표함으로써 경은 매수구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연맹은 2016시즌에 들어가기 앞서 경 FC에게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21&aid=0001794783|승점 -10점과 벌금 7000만원을 부과]]함으로써 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연맹차원의 제재까지 가해지게 되었다. 당시 경팬들은 말도못할 [[멘붕]]을 겪음은 물론이고, 구단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정도. 그리고 이 사건은 잊혀지나 했는데...
         이 사실을 접한 전북팬들은 2015년 경팬들이 겪었던 멘붕을 그대로 겪게 되었으며, K리그 팬들은 약팀이었던 경부터 강팀인 전북에 이르기까지 심판 매수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전북의 스카우터 C모씨는 직위로만 보면 일개 직원처럼 보여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611035|전북의 발표처럼 개인의 잘못으로만 비춰질 수 있으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고 있는 저 C모씨는 전북 프론트 유일 15년 경력 최고참으로 전북 내부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경과 마찬가지로 전북도 고위급 인사가 저지른 범죄인데다가 전북 역시 "단순한 도의적 책임"만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강지섭 . . . . 10회 일치
         * [[2012년]] [[KBS2]] 수목드라마 《[[적도의 자]]》 ... 신준호 역
         * [[2016년]]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 ... 준혁 역
         * [[2015년]] : [[TV조선]] 《[[애정통일 북녀|애정통일 북녀 시즌 2]]》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부천시 출신]]
  • 강타 . . . . 10회 일치
         * 2016년 [[채널A]] 《[[개밥 주는 자]]》 (특별출연)
         * 2017년 [[채널A]] 《[[개밥 주는 자|개밥 주는 자 시즌 2]]》
         * 2007년 [[중국]] [[CCTV]] 드라마 《재여모2》
         * 2005년 제3회 동경폭음악방 최고 해외아티스트상
         * 2001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자 솔로 부문 수상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 자 가수상}}
         [[분류:강타]][[분류:H.O.T.의 일원]][[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순흥 안씨]][[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김경식 (희극인) . . . . 10회 일치
          | 자녀 = 슬하 2 (장 김민우)
         * MBC 《[[자 셋 여자 셋]]》
         [[분류:대한민국의 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김경준(축구선수) . . . . 10회 일치
         || 출신학교 || 반야월초등학교(2006~2008) [br] 백암중학교 (2009~2011) [br] [[신갈고등학교]](2012~2014) [br] [[영대학교]] (2015~2016) ||
         [[박주영]]이 졸업한 반야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백암중학교를 거쳐서, 축구 명문 [[신갈고등학교]]를 거쳐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영대로 진학했다.
         반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처음 진학한 학교는 백암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입학 후 1년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용인축구센터를 떠나기 싫었던 김경준은 신갈고등학교로 전학갔다. 김상진 감독 덕분에 일찍 적응했다고 한다. 신갈고 시절에는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4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신갈고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라고 불리었다. 3경기 7골을 득점하는 등 엄청난 골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고교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였다. 결국 9경기 연속 골 기록을 세웠고, 14골을 넣었다. 이 때,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김경준을 보고 갔었고, 결국 김경준은 영대로 진학하게 된다.
         영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2학년이 되면서, 김경준은 달라졌다. 김경준을 앞세운 영대는 대학 리그를 호령했다. 2016년에는 추계 1,2 학년 대학대회를 우승했으며, U리그 권역에선 다시 우승했다. 전국체전 우승과 작년 준우승한 전국추계대학연맹전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6년 추계 1,2 학년 대회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대학 리그를 2년동안 평정하다시피 했다.
         신갈고 수아레즈라고 불릴만큼 골 결정력이 우수하다. 개인기도 좋은 편으로 대학 시절에 상대 수비수를 개인기로 따돌리고 골을 기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득점에 있어서도 꾸준함을 과시한다. 신갈고 9경기 연속골 기록이 이를 증명하며, 영대에선 U리그 권역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기록했었다.
  • 김동욱(배우) . . . . 10회 일치
         ||<bgcolor=#6482b9> '''{{{#white 가족}}}''' ||<(> 부모님, 11녀 중 장[* 여동생하고 10년째 같이 산다고 한다.] ||
         흔히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퀴어영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퀴어영화는 보통 중단편이거나 장편이라도 아주 저예산으로 독립영화인 경우가 많으므로 유명한 배우보다는 신인들을 캐스팅하며, 당연하지만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비주얼이 출중해야 하고, 또 (소위 '게이 감성'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보통 퀴어영화에 출연하는 신인 자배우는 비주얼과 연기력이 둘다 받쳐줘야 한다. 한편 배우들 입장에서도 퀴어영화라 하면 소위 매니아층이 탄탄하기 때문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인 순흔을 통해 데뷔하였다. 그 후 후회하지 않아, TV영화인 램프의 요정 등에 출연하다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진하림 역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2> 2005년 || [[사과(영화)|사과]] || 젊은 자 || ||
         ||<|2> 2011년 || [[MBC]] || [[자를 믿었네]] || 문현수 || ||
         || [[2015년]] [[8월 27일]] || KBS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 게스트 || EP412 흥흥녀 특집 ||
         || 2010년 || [[윤하]] || 내 자친구를 부탁해 ||
         ||<|2> 2018년 || 제23회 춘사영화제 || 우조연상 ||<|2> 신과함께-죄와 벌 ||
         || 제38회 황금촬영상 || 최우수 우조연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2004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안성시 출신 인물]]
  • 김미숙(1959) . . . . 10회 일치
         || '''가족''' ||<(> 1 4녀 중 [[장녀]], 편, 슬하 1 1녀 ||
         이 때부터 주목할 것이 김미숙이 구축한 독특한 악역의 이미지이다. <[[로비스트]]>의 마담채, <[[황금의 제국]]>의 [[한정희]], <[[여왕의 꽃]]>의 [[마희라]], <[[부탁해요, 엄마]]>의 황영선 및 <[[옥중화]]>의 [[문정왕후]]까지 악역을 맡은 횟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워낙 임팩트가 커서 기억에 강하게 는 편. 보통의 악역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과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우아한 나쁜 X'''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캐릭터가 가진 양면성이 드러나는 악역이지만 끝내 이해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본래 김미숙의 자연스러운 연기 스타일에 역할에 대한 영리한 해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셈. ~~예쁘고 우아하고 무서워요~~[* 부탁해요 엄마의 황영선 역할은 그렇게 악역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렇다. 대부분 시어머니들이 솔직히 아들을 더 아끼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차라리 악역이라면 이형규 역할을 맡은 오민석이 더 잘 어울린다.]
          * 연하들과 연기를 많이 했다. [[장동건]], 故 [[안재환]], --안 그래 보이지만-- [[최재성(배우)|최재성]], [[손창민]] 등 많은 연하들과의 연기가 많았던 편. 특히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현진(배우)|이현진]]과는 26살 차이로, 이현진의 실제 어머니와 동갑(...)임에도 꽤 괜찮은 케미를 보여줬다. 후에 두 배우는 황금의 제국에서 모자 연기를 해서 다른 의미의 케미를 보여준다. ~~몰입이 안 된다고 거...~~ 그리고 2016년작인 [[우리 집에 사는 자(드라마)|우리 집에 사는 자]]에서는 28살 연하인 아들 뻘인 [[김영광]]과 혼인신고 후 사망하는 설정이 나온다. 이쯤 되면 연하 킬러라고 해도 될 듯. 참고로 김미숙의 '''실제 편도 5살 연하'''.
          * [[2017년]] [[문화방송|MBC]] 《[[밥상 차리는 자]]》... 홍영혜 역
  • 김영환(1955) . . . . 10회 일치
         결국 '''4.8%'''라는 선거비용 보전도 못 받는 초라한 득표율로 [[이재명]] 지사와 [[경필]] 전 지사에 이은 3위로 패배하였다. 공약보다는 이재명을 어떻게든 까내리는 네거티브 위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경필의 지지율이 조금 더 올라가면서 [[죽 쒀서 개 준 꼴]]이나 다름없어진 셈.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437&aid=0000013956|처사촌동생, 즉 손아래 사촌 처라고 한다.]] 아내의 이종사촌이다.
  • 김주승 . . . . 10회 일치
          * 출생지 [[전라도]] [[장성군|장성]]
          * 학력 장성고등학교 (전) → [[국민대학교]]
         [[대한민국]]의 [[배우]]. 1980년에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하였으며, 그 이후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가 되었다. [[1990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5공비리]]의 큰 손 [[장영자]]의 [[사위]]가 되면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2007년]] 초에 [[이혼]]하면서 그 이후로는 장영자와는 이 되었다. [[딸]]이 한명 있었으며, 딸은 전 부인이 데려갔다. 그리고 동년 [[여름]], 지병이던 [[췌장암]]이 악화되면서 결국 [[사망]]하였다.
          * [[1986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 [[한산성#s-2.7|한산성]]》 ... 한윤 역
          * [[1993년]] [[MBC]] 미니시리즈 《[[여자의 자]]》 ... 한영민 역
          * [[2001년]] [[SBS]] 오픈드라마 과 여 제11회 《내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 [[2001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행복한 자》
         [[분류:한국 배우]][[분류:1961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분류:장성군 출신 인물]][[분류:1980년 데뷔]]
  • 김진환(iKON) . . . . 10회 일치
         ||<:><#FF4646> '''{{{#FFFFFF 특기}}}'''||<(> 외국어[* [[문제적자]]에서 어머님이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이라 외국어를 어릴 때부터 많이 접했다고.], 트럼펫, 수영 등 ||
         iKON의 '''맏형'''으로 연습생과 데뷔 초 때 멤버들에게 보컬과 춤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생활면에서 멤버들을 모으는 엄마 역할을 한다고 데뷔 초 때 멤버들이 자주 언급했다. 특히 [[BOBBY]]는 진환을 정신적 지주라 칭하며 진환이 자신이 한국에 게 된 이유라고 자주 언급했다.[* 이는 최근 Star Road에서도 언급했다.] WIN에서 [[송윤형]]네 고기집에 갔을 때 윤형이 진환에게 쓰는 편지를 읽다가 울기도 하고. 마지막에 합류한 정찬우 역시 힘든 일이 있으면 진환에게 상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는 멤버들이 모두 성장해서 더 이상 팀에 엄마 역할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본인이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멤버들이 믿고 따르며 팀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멤버들의 정신적 지주인 것은 확실하다. 방송 후에 이런 말은 하지 말라는 식으로 멤버들에게 조언도 많이 하는 듯 하다. 무대도 어떤 식으로 하라고 디렉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 요정 스펙에 상자스러운 면이 있다. 그럴 때는 거난하다, 거난영, 김거난이라고도 불린다.[* 김진환의 폴라로이드에 '얼굴이 너무 하얀 지난형'이라고 쓴 비아이의 글씨가 다소 자유분방하여 '거난영'으로 읽힌 것이 유래.]
          * 치명적인 한 방(?)을 많이 날린다. 뿌랄친구,상냥하게 말해 이건 부탁이야 ,한 명 빠진다고 한 명만 지 않아 다 모가지야, 부숴버릴거야, 아츄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니 얼굴을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아니지이 너만 못생긴 거지[*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에 나간 바비가 아이콘이 못생긴 이미지가 될까봐 걱정하자] 등...
          * 2014년 가을까지 관람차를 타 본 적이 없었다. 믹스앤매치 오사카 자유시간 편에서 [[구준회]]와 함께 탔던 것이 난생 처음이라고. ~~탄 후에 감상평은 " 경치는 좋으나 자 둘이서는 타긴 좀.. "~~
          *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친누나가 자아이돌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라고. ~~ 잘 키운 동생 하나 열 아이돌 안 부럽다 ~~ ~~ 진환의 누나는 신화창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본인은 누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원타임(대니), 세븐, 빅뱅 등 YG 아이돌을 선망하였다고 언급하였다.
          * 장지난, 차지난이라는 말장난(발음이 동음)과 '곤니치와와'라는 인사에 빠져 있다. 일본어로 지난(ジナン)의 뜻이 차(次男)이나 정작 본인은 팀의 맏형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일본 팬들은 진환을 표기할 때 次男이라고 쓰기도.
  • 노형욱(배우) . . . . 10회 일치
         | 데뷔 = [[1998년]] [[MBC]] 드라마 "육매"
         | [[자 셋 여자 셋]]
         | [[육매]]
         | 의 속도 모르고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양시 출신 인물]][[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
  • 니엘(가수) . . . . 10회 일치
         ||<#ad84db> {{{#white '''가족'''}}} ||[[부모님]], 3 중 차[* 집안이 개신교인지라 형의 이름은 안다윗이다. 허나 동생은 개신교와는 상관없이 안보성이라고.] ||
         5인조 성그룹 [[틴탑]]의 멤버로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특색있는 목소리와 힘 있는 보컬이 특징이다. 팀 내 기럭지 담당이다
         팬들에게 흑역사 혹은 금지짤로 았다.(...)
         사실 TV로만 보면 그다지 잘생긴 외모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물을 본 사람들은 오히려 입술은 별로 두껍지 않고 눈이 예뻐서 시선이 많이 간다고들 한다. 키도 크고 체격이 있어서 실물은 상당히 자답다고 한다.
         NATURAL BORN TEENTOP에서 [[https://youtu.be/sJ5KdBRpxYI|그 전화 받지마]]를 공개했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바람둥이 자친구에게 미련을 못 버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슴아파하며 제발 그 자 전화 받지말아라, 안 받아도 뻔하다며 속타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답게 붙잡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모습까지도 잘 표현해 냈다.
         2016년 1월에 발매한 RED POINT앨범에서도 [[https://youtu.be/j6B3ytjaySA|Liar]]를 싣는 등 활발한 작곡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떠나가는 여자를 잡지 못하고 아파하는 자의 모습을 감성적 가사와 뒤에 깔리는 기타선율로 잘 표현해 냈다는 호평을 듣고있다.
  • 박수영(연극배우) . . . . 10회 일치
         |출생지 = [[전라도]] [[장성군]]
         *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2015년) - 의뢰
         * 《[[변호인 (영화)|변호인]]》 (2013년) - 엄태
         * 《[[함부로 애틋하게]]》 (KBS2, 2016년) - 궁 대표 역
         * [[2006년]] 연극협회 2006자연기상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장성군 출신 인물]]
  • 박영진(코미디언) . . . . 10회 일치
         주로 신랄한 [[독설]] 개그를 담당하고 있으며, 주요 히트친 대사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와 '그건 니 생각이고~' 등이었고 [[두분토론]]에 나와서 히트친 대사로는 '뭐? XX? X~X? 어디 건방지게...', '소~는 누가 키워 소는~?', '자의 XX을(를) 매도하지 마!'가 있다.[* 두분토론 이전까지는 그 컨셉으로는 광고에 나오지 못했다. 상대를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었다고...]
         [[두분토론]]에서 '하당' 의 대표로 나왔는데 역시나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역할이다. 여기 나와서는 '''구한말 어르신들이나 간간히 하실 말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욕을 엄청 먹었는데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이라고 했던 것이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계속 쓰게 되어 대박 유행어가 되고 이미지도 바뀌게 되었다. 역시 인생 한방.
         2010년 12월 25일,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09년에도 수상이 유력했으나 --[[뿌레땅뿌르국]]을 봤을 때 무언가 이해가 되었다면 기분탓이겠지-- 본인이 개그콘서트에서 신나게 갈구던 [[허경환]]과 그 전해 [[황현희]]에 밀려 우수상을 놓쳤던 [[윤형빈]]이 상을 차지하여 1년을 더 기다린 끝의 결실. 확실히 [[두분토론]]의 화력이 강했다.
         개그를 할 때의 목소리와 원래 목소리의 갭이 크다(...). 그리고 [[안경]] 벗으면 의외로 [[훈]]인 편. 다만, 다른 [[꽃미]] 개그맨들이 많아서인지 그다지 주목은 못 받았다(...).
         2012년 1월, 영 지역 600개 농가들과 협약을 맺고 [[소고기]] [[쇼핑몰]] (주)우하하하를 열었다. [[http://www.uhahaha.com/|#]] 2014년 말부터 접속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망한 듯(...). --2018년 1월 14일 현재 이상한 페이지가 뜬다.-- --알고 보니 생명보험 사이트였다 [[카더라]].--
         최종시험까지 "둘이서 하는 개그" 를 짜놨는데 최종시험에 혼자서 게 되자 박영진은 박성광이 자기랑 같이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개그맨 시험에서 '준비물' 로 사람을 데려가도 된다.]. 그런데 박성광은 '''자기가 떨어지자 잠적'''했다(...) 그래서 박영진은 삐져서 하루만에 코너를 만들어서 시험을 봐버렸고 당연히 떨어졌다.
          * [[두분토론]] - 하당 박영진
          * [[미래에서 온 자]]
         [[분류:1981년 출생]][[분류:2007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대 100 역대 1인]]
  • 서림 . . . . 10회 일치
         서림의 생애는 임꺽정과 관련된 기록에서 중요하지만 단편적으로 등장한다. 명종 15년(1560년) 11월 24일 기사에서 서림의 체포 소식이 등장하는데, 그는 엄가이(嚴加伊)라는 가명으로 숭례문(대문) 밖에서 거주하다가 관군에 체포당하여, 심문을 당하고 임꺽정 일당의 계획을 누설하게 된다.
         명종 17년 1월 기사에서 율이(栗伊)라는 도적이 서림이 다시 임꺽정과 연락하였다고 하여, 명종은 서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신들과 논의하게 된다. 대신들은 대체로 서림이 도적으로서 흉악한 자이지만, 체포된 뒤로는 임꺽정 일당을 잡는데 협력을 많이 했고 정보를 제공한 공로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서림을 잡지 않았다면 '가짜 임꺽정'에 몇번이나 속아넘어갔을 것이다.]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서림을 포도청에 소속하여 투포사 [[치근]]의 감시 하에 있도록 하였다.
         국조보감에서는 실록의 기록과는 약간 다른데, 서림은 숭례문에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임꺽정 일당이 [[구월산]]에서 포위되자 관군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산을 내려와서 투항한다. 그리고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치근에게 고해바친다. 여기에서는 서림을 '모주(謀主)'라고 하여, 그가 임꺽정의 모사꾼임을 언급하고 있다.
         기재잡기에서 실록과는 달리 국조보감의 기록을 따라서, 관군이 구월산을 포위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하산하여 관군에 투항하여 [[치근]]에게 임꺽정 일당의 정보를 알렸다고 한다. 서림의 투항으로 임꺽정 일당은 은신처가 발각되어 토벌당하게 된다. 또 임꺽정을 마지막까지 따르던 5~7명 역시 서림이 유인하였고, 관군에게 체포되어 모두 참살된다.
          * 서림산 서림장군 전설 : 충 천안에 서림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서림장군'이라는 장군이 있었다는 곳이라 한다. 이를 서림의 이름과 연관하여 보기도 하는데, 단순히 이름의 일치에 불과한 전설이라 그리 확실한 건 아니다.[[http://www.oneclick.or.kr/bbs/boardView.do?id=81&bIdx=60757&page=1&menuId=134&bc=0 (참조)]]
          * 다른 설화에서는 임꺽정의 살아은 부하들이 그에게 복수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녀서 결국 거짓으로 자신의 장례식을 치렀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 실록과 국조보감에서 서림의 체포/투항 시기나 정황이 다르다.(대문 밖/구월산) 실록에서는 서림이 도적과 다시 연락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한 번 체포된 뒤에 치근에게 포섭되어 한동안 [[이중스파이]]로서 활동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대문 밖에서 체포되어 치근의 관리하에 있다가, 구월산으로 돌아가서 정보를 다시 빼내고 재투항 했다고 상상할 수 있을지도.
  • 서신애 . . . . 10회 일치
         ||<#E2A6B4> {{{#ffffff '''가족'''}}} ||<(> 부모님, 11녀 중 장녀 ||
         [[1998년]] [[10월 20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1 1녀 중 장녀로 태어났고, 태백중학교를 졸업했다. [[2004년]]에 [[서울우유]] 광고에 출연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문화방송|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5월 29일 방영분에서 [[복면자객]]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1라운드 상대인 [[외줄타기 인생 왕의 자]]와 같이 어쿠스틱 콜라보의 '그대와 나 설레임'을 불렀다. 그 뒤 [[여전사 캣츠걸|가왕 출신]]의 뮤지컬 곡인 <살다보면>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그녀는 이 출연으로 복면가왕에서 가장 짧은 가명의 참가자 6인 중 1인(4글자), 당시로는 최연소 참가자의 기록(17세 222일)을 보유했으며 그 뒤 전체 최연소는 73차 경연에 나온 [[한 뚝배기 하실래예 로버트 할리퀸]]이다.[* 81차 경연 기준으로 최고령 참가자는 [[얼굴되지 노래되지 꽃돼지]]며, 여성 최고령 참가자는 [[문어...지지 않아요... 점쟁이 문어]]다.]
         || [[2011년]] [[12월 16일]]~[[2011년]] [[12월 25일]] || 동탄복합문화센터 반석아트홀 || 악역배우 달구 || 지원 || 연극 ||
          * [[Apink|에이핑크]]와 인연이 있다. [[박초롱]]의 경우 2013년쯤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봉사를 같이 다녀왔고, [[김주(Apink)|김주]][* 첨언하자면 [[김주(Apink)|김주]] 역시 아역배우 출신이다. 연예계에 있어서도 서신애의 3년 선배며, 2001년 [[LG전자]] CF로 데뷔했다.]의 경우는 [[성균관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재미있는 게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상대 역할로 나왔던 [[진지희]]는 [[걸스데이]]와 인연이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드림티가 탈예당했지만) 한때 같은 웰메이드예당 소속이었고, [[혜리]]의 경우 [[진지희]]와 함께 선암여고 탐정단에 출연했다.]
          다만 [[초]]와 [[여초]] 커뮤니티 모두 공통되게 [[무리수]]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드레스 자체도 전혀 안 어울렸고 몸매나 비주얼 자체도 글래머러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애기가 어른 옷을 입고 나온 것같다는 반응이 많다. 2018년 2월 28일에 방송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스]]에서 밝히기를, 본인은 이게 예뻐 보여서 선택했다고...
  • 식극의 소마/219화 . . . . 10회 일치
         [[식극의 소마]] 219화. '''학생 1'''
          * 쿠가는 츠카사가 "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인간"이라 비난하는데 모든 것은 1학년 당시 츠카사와 했던 식극에서 시작한다.
          *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쿠가는 지금까지도 원한을 품고 "나는 지나가던 학생 1"같은게 아니라며 설욕을 바라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생소한 재료. [[요시노 유키]]와 [[사카키 료코]]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유키는 "맛있는 차로 대결"인 거냐고 의문을 표하는데 료코는 "찻잎의 맛이나 향을 살리는 요리"를 하라는 걸거라 추측한다. 메구미는 하다못해 이 대결이 [[잇시키 사토시]]나 [[키노쿠니 네네]]가 낀 대결에서 나왔다면 일식 요리사인 만큼 어떤 요리를 할지 이미지가 나왔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토 이쿠미]]도 같은 의견이다. 사천 요리 전공인 쿠가, 프랑스 요리 전공인 츠카사와 너무 동떨어진 주제다. 그 증거로 츠카사는 주제가 정해지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자신의 장르를 못 살리는 주제라면 은건 2시간 뿐인 제한시간 동안 고민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게 관건이다.
          >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으면서!
          * 2학년 선배가 츠카사에게 "하급생과 식극한 일"에 대해서 말을 꺼낸다. 쿠가의 일이었다. 이 또한 "상급생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쭐거리는 쿠가. 실제 그 선배의 생각이 어쨌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츠카사에게 쿠가에 대해 물은건 사실이다. 그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쿠가가의 장이랑 식극했냐고 묻는데. 그의 대답은 쿠가에게 씻을 수 없는 흉터를 겼다.
          >그 날의 승부 같은 건 이미 아무런 인상도 아있지 않아.
          >그 자는... 나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어.
          >잘 들어 츠카씨. 난 학생 1 같은게 아냐.
  • 신성우(가수) . . . . 10회 일치
         || '''형제자매''' ||<(> 1 1녀 중 첫째 ||
         미소년 → 미 → 미중년 테그의 올바른 예시이다. 조각같은 외모, 키,기럭지, 허스키한 목소리[* 신성우 본인 말에 의하면, 원래는 미성의 고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나 로커의 보이스를 만들기 위해 [[담배]]를 많이 피워 [[골초]]가 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면서 만든 목소리라고 한다.], 초콜릿 복근의 탄탄한 몸매.[* 라커 활동시엔 그런 몸매는 아니었고, 나중에 단련한 것이다.] 실로 곱게 늙는다는 말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중년|꽃중년]].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다만 하나 부족한 게 하나 있다면 유명세. 요즘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는 '[[크크섬의 비밀]]'에서 나온 신과장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상 [[진 주인공]]인데다가 연기도 괜찮았고 김선경과 로맨스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았다. [[김광규(배우)|김광규]]와 함께 최고의 인기 캐릭터.]
         데뷔 시절에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이덕진]]과 함께 '''원조 테리우스''' 논쟁을 벌일 정도로 꽃미 가수였다. 당시의 인기는 대단한 편이여서 지금의 [[윤도현 밴드]] 이상 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데뷔 때부터 그가 하는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가 먼저 주목받았는데, 동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소비(?)되었던 이덕진과 비교해 본다면, 이덕진은 들국화 최성원의 기획하에 그냥 곡 하나로만 주목받았던[* 사실 음악 빼고 외모 덕을 본 건 이 사람이 더 하다면 더 했다.] 것에 비해 신성우의 경우 꾸준히 자신 앨범에서록 음악의 작사, 작곡을 해 왔던 사람이다. 즉, 신성우는 외모 때문에 그 음악성이 역차별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주로 연기자로 활약하고 있으며, 대표작은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드라마 [[첫사랑]] [[위기의 자]]가 있다.
         먼저 가수 활동 시기였던 1992년에 [[대마초]]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있다. 1988년도에 잠시 손을 댔다가 바로 끊었지만, 뒤늦게 과거 일로 발목이 잡혔던 것. 정상이 참작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방송 규제는 받지 않았지만 흑역사로 아 있다.
         [[채시라]]와의 연애와 파혼 과정도 시끄러웠다. 미미녀 커플로 화제를 모았으며, 두 사람이 한참 연애중이던 시절에는 커플 수영복 잡지 화보까지 찍을만큼 떠들썩하게 연애했다. 그러나 [[1997년]] 파혼하면서 당시 언론들이 일주일이 넘게 어지간히 저 얘기만 떠들어댄 탓에, 사람들이 지긋지긋해 제일 듣기싫어한 뉴스였을 정도로. 공개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무난하게 결혼하나 싶더니 결혼 후 분가, 연예활동 및 재산 관리를 둘러싼 집안 갈등으로 인해 파혼을 선언했다.
         신성우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넓은 노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2집의 "<구식 사랑(열번째 자)>", 4집의 "<자유하는 삶을 위해>" 라는 곡과 5집의 "<내 맘대로>" 가 있다. <자유하는 삶을 위해>와 <내 맘대로> 두곡은 실제로 들어보고 피아노로 쳐보면 3옥타브 미 수준으로 음역대이며 또한 <구식 사랑>은 2옥타브 시를 자랑한다. 무겁고 탁한 바리톤의 목소리인 신성우의 보컬로 과연 저 음역대까지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상당히 시원한 고음을 자랑하는 곡들이다.
          * 1997년 [[채시라]]와의 파혼 이후 오랫동안 스캔들 없이 솔로로 지냈는데, 2016년 16세 연하의 플로리스트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했다. 2018년에는 [[득]]했다. 아들과의 나이차가 50살에 달한다.
         [[분류:한국 가수]][[분류:한국 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68년 출생]][[분류:1992년 데뷔]][[분류:정읍시 출신 인물]]
  • 안숙선 . . . . 10회 일치
         전북 [[원시|원]] 출신. 9살때 이모인 강순영의 주선으로 주광덕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10대 때는 외당숙인 강도근에게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토막소리들을 두루 배웠다. 이후 20대에는 상경하여 만정 [[김소희 (국악인)|김소희]](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하였으며, 31세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양암 정광수(수궁가), 춘전 성우향(심청가), 박봉술(적벽가), 운초 [[오정숙]](흥보가) 등에게 사사하였다.
         * 現 원춘향제 제전위원장.
         * 1981 동아 12개국 순회 공연.
         *2007 북정상회담 문화예술부분 특별수행원/만찬공연.
         * [[1986년]] 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통령상 수상
         * [[2003년]] 원시민 문화장 수훈
         * [[2015년]] [[삼성생명공익재단]] 2015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학술.예술분야에 뚜렷한 업적을 긴 여성에게 수여되는 상)수상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원시 출신 인물]][[분류:판소리 명창]][[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온주완 . . . . 10회 일치
         || '''출생''' ||<(> [[1983년]] [[12월 11일]]([age(1983-12-11)]세), [[전라도]] [[순천시]] ||
         || 2012년 || [[tvN]] || [[일년에 열두자]] || 차진오 || ||
         || 2017년~2018년 || [[MBC]] || [[밥상 차리는 자]] || 정태양 || ||
         ||<|2> 2005년 || 자니까 아시잖아요? || 종업원 || ||
         || 2018년 || 제11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자 우수연기상 || 밥상 차리는 자 ||
         || 2016년 || [[SBS 연기대상]] || 로맨틱 코미디부문 자 특별연기상 || 미녀 공심이 ||
         || 2007년 || 제30회 황금촬영상 || 신인우상 ||<|2> 피터팬의 공식 ||
         || 2006년 || 제27회 더반국제영화제 || '''우주연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2002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운제부인 . . . . 10회 일치
         '''운제부인'''(雲帝夫人,雲梯夫人, 생몰년 미상) 혹은 '''아루부인'''(阿婁夫人)은 [[신라]] [[해 차차웅]]의 정비(正妃)이며, 사후 신격화되어 운제산신으로 존숭되었다. [[합천 이씨]] 족보에서 발견되어 [[경주 이씨]] 족보에 참고용으로 실린 '35대 실전세계'에 의하면, 운제부인은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의 손자인 계림후(鷄林侯) 이타(李它)의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적 고증의 어려움과 용어의 모순 등을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자료이다.
         운제부인은 [[신라]]의 2대 군주 [[해 차차웅]]의 부인으로 아루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왕과의 사이에서 [[유리 이사금]]과 [[아효부인]]을 낳았다. 사후에는 신격화되어 무속 신앙의 주신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제산]] 또는 [[선도산]]에 산다 해서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로 불리며, [[고려|고려시대]] 영일현(지금의 [[포항시]])의 서쪽에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가 있는데 가뭄 때에 여기에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하였다. 운제산은 현재 [[포항시]] 구 오천읍과 대송면 사이에 있다.
         * 편: [[해 차차웅]](南解次次雄)
         ** 장: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 차: 박나로(朴奈老)
         ** 3: 박환(朴桓)
         * [[해 차차웅]]
  • 원피스/834화 . . . . 10회 일치
          * 브룩과 페드로는 스위트 시티를 염탐하고 다니는데, 우연히 드레스 가게에 있는 푸딩과 타마고 작을 발견한다.
          * 타마고 작의 대화에서 밀집모자 일당의 빅맘 측에 노출되어 있는걸 알게 되는데
          * 둘은 우연히 타마고 작의 모습을 발견한다.
          * 푸딩은 잠깐이라도 좋으니 나가게 해달라고 하는데 타마고 작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 잠시 병정들이 찾아와 타마고 작과 따로 이야기하고 브룩과 페드로가 엿듣는다.
          * 그런데 타마고 작은 페드로의 전단에 올라있는 "표범 밍크족"이란 표현을 두고 "그는 재규어 밍크족인 페드로"라고 정정해준다.
          * 사실 타마고 작은 페드로의 옛 콤비. 병정들에게 페콤즈를 찾으라고 지시하고 혼자 차를 마신다.
          * 페드로에 대해 "같이 마마에게 잘 말해주려고 했는데 손이 많이 가는 자"라고 하는데...
          * 그는 총을 겨누며 길 말은 없냐고 묻는다.
          * 서쪽 해안의 밤.
  • 원피스/867화 . . . . 10회 일치
          * 카르멜은 링링을 막기 위해 거인족 여인에게 셈라를 준비해줄 수 없냐고 묻는다. 마침 동지제 당일에 먹을 양을 겨놓은게 있었다. 셈라가 준비되는 동안 거인족 청년들은 어떻게든 링링을 막고 카르멜은 마을에 번진 불을 끄겠다고 한다. 카르멜이 "게브아"라고 중얼거리자 손에서 희미한 영체가 빠져나온다. 이어서 "츠타크"라 외치자 손 안에 있던 영체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러자 불꽃들이 마치 악마의 얼굴과 같은 형상으로 뭉친다.
          그것은 야를에게도 뜻밖의 결론이었다. 야를이 고민하는 사이, 한때 링링의 친구이기도 했던 [[하이루딘]]은 "왜 링링을 죽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친다. 그 또한 링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야를은 자비심이 생긴 건지, 카르멜을 결단을 봐서인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칼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링링이 정신을 차리는데, 폭주했을 때의 일을 기억 못할 뿐더러 요를의 죽음을 슬퍼하는 등, 의 일처럼 행동해서 더욱 거인족들의 분노를 산다.
          카르멜이 누군가와 접촉했다. 수상한 가면을 쓴 자였다. 그는 설마 양의 집이 엘바프를 떠날지는 몰랐다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그 아이"를 버릴 수 없었던 거냐고 묻는다. 카르멜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에 대한 자의 대답도 수상하다.
          자가 앓는 소릴 하자 카르멜은 "내지 못할리 없다"고 꼬집었다. 해병이라면 대장, 혹은 원수까지 될 수 있고 CP 요원으로 쓴다면 [[천룡인]]들을 지키는 최고의 방패가 될 거라고.
          지금은 "역대 최상품"인 샬롯 링링의 몸값을 흥정하는 자리였다. 카르멜은 이 거래를 자신이 손을 씻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 성모를 연기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녀는 "은퇴작"에 걸맞는 대가를 톡톡히 챙기려 했고, 그동안의 기여도를 운운하며 압박하는 카르멜에게 결국 자가 지고 만다.
          카르멜은 사라졌다. 양의 집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은퇴작인 링링을 기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링링이 먹다 긴 탁자와, 잔해들 뿐. 카르멜의 옷자락만 잔해들 사이에 섞여 겨져 있다. 어리둥절한 링링은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간건가 싶어 양의 집으로 가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그들은 사라져버렸다. 링링이 모르는 사이에. 크로캉붓슈를 신나게 먹어치우던 그 순간에.
          >나 혼자 겨두지 마.
  • 유지인(1956) . . . . 10회 일치
         || [[윤정희(1944)|윤정희]] || [[문희]] || [[정임]] ||
         || [[원미경]] || [[이미숙]] || [[정애리(배우)|정애리]][*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배우)|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배우)|이보희]]를 참고바람.] ||
         [[1956년]]생.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절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아있지 않다.]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997년]] [[MBC]] 청춘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2013년]] [[MBC]] 주말연속극 《[[사랑해서 주나]]》 ... 이혜신 역
         * [[1979년]] 《[[내가 버린 자]]》 ... 명숙 역
         * [[1980년]] 《[[매일 죽는 자]]》
  • 유한식 . . . . 10회 일치
         ||<table bordercolor=#00A664><-5><:>{{{#005BAB ''' 대한민국 '''}}} {{{#005BAB ''' 충청도 '''}}} {{{#005BAB ''' 연기군수 '''}}} ||
         ||<:> 제35대 [br] 최준섭 [br] ,,,(권한대행 박영수),,, [br] ,,,(권한대행 궁주),,, ||<:> → ||<:> 제36대~37대 [br] '''유한식'''[br] ,,,(권한대행 윤호익),,, ||<:> → ||<:> 연기군 소멸 [br],,,(세종특별자치시 출범),,,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출생지 ''' }}} ||<(> [[충청도]] 연기군 [* 현 [[세종특별자치시]]]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가족 ''' }}} ||<(> 배우자 박재옥, 슬하 1 1녀 ||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경력 ''' }}} ||<(> [[한국농어촌공사]] 감사[br][[새누리당]] 세종시당 위원장[br]제1대 [[세종특별자치시장]][br]제35~36대 [[연기군]]수[br]연기군청 농업기술센터 소장[br][[충청도]]청 농촌진흥원 사회지도과장[br][[농촌진흥청]] 농촌지도관[br]농촌진흥청 기술공보담당관 ||
         [[1949년]] [[6월 20일]] 생 ([age(1949-06-20)]세), [[충청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출생하였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비오이다. 농어촌 관련 공무원으로 활동하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중심당]] 소속으로 도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2006년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4회 지방 선거]] [BR]충도의원(연기군 제2선거구) || [[국민중심당]] || 6,048표 (31.41%) || 낙선(2위) || ||
         || 2007년 || [[2007년 재보궐선거 #s-3|12·19 재보궐선거]][BR]충 연기군수 34대 (민선 4기) || 무소속 || 4,695표 (11.3%) || 낙선(3위) || ||
         || 2008년 || '''[[2008년 재보궐선거 #s-3.1.1|10·29 재보궐선거]] [BR]충 연기군수 35대 (민선 4기)''' || [[자유선진당]] || '''14,444표 (51.94%)''' || '''당선(1위)''' || '''초선''' ||
         || 2010년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5회 지방 선거]] [BR]충 연기군수 36대 (민선 5기)''' || 자유선진당 || '''19,542표 (52.96%)''' || '''당선(1위)''' || '''재선''' ||
  • 이보희(배우) . . . . 10회 일치
         || 출생 ||[[1959년]] [[5월 25일]] ([age(1959-05-25)]세) ([[전라도]] [[완도군]])||
         || 가족관계 |내연[[승리]]|[br]아들 함원준[br] ||
         || [[윤정희]] || [[문희]] || [[정임]] ||
         || [[원미경]] || [[이미숙]] || [[이보희]][* 최근에는 [[정애리(배우)|정애리]] 대신 [[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다.] ||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이혼 사유는 전 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현 편과 만난 계기는 동료 영화배우 [[나영희]][* 1982년에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8년에 '[[매춘(영화)|매춘]]'으로 흥행하였다. 그리고 편이 [[치과의사]]라고 한다.]가 소개해준 것이라고 한다. 이보희는 동료 여배우들과 골프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골프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고.
         '달려라 울엄마' 촬영 시절에 촬영에 여유가 생기자 당시 신혼여행으로 현 편과 [[파타야]]에 갔다고 한다.
         ||1994년 || 49일의 자 || 하영 역 || || ||
  • 이석훈 . . . . 10회 일치
         ||<#0D3EA3> {{{#ffffff '''가족'''}}} ||<(><rowbgcolor=#ffffff> 아내, 슬하 1 ||
         위와 같이 빼어난 외모와 --교회오빠, 안경버프--중저음의 목소리와 올바른 발성[* [[김연우(가수)|김연우]]의 제자. 김연우 본인은 가르친 가수가 상당히 많지만 방송마다 언급하는 제자는 몇 안된다. 이석훈은 매번 언급하는편. 그만큼 애착이 많은듯. 이석훈이 R&B 틱한 창법으로 노래를 하자 혼쭐을 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다. 언급하는 멤버들을 보면 인기보단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는걸 알 수 있다.]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노래하는 고수.[* 중저음의 목소리지만 발성법이 훌륭해 고음도 무리없이 내지른다. ] SG워너비에서도 들어오자마자 김진호와 동급에 심지어 일부 곡에서는 김진호 이상으로 파트를 얻을 정도. 거의 원맨 느낌이라, 아니나다를까 솔로 앨범도 상당히 많이내서 활동하는 중이다.
         2014년 10월 21일 전역했다. 이석훈 측 관계자는 “자라면 당연한 의무인 군생활인데 연예인이란 이유로 전역하는 날 특별히 축하 받는 걸 이석훈이 원치 않는다”며 “여느 병사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전역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따로 전역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344937|링크]]
         결혼식 날짜는 2016년 1월 17일로 결정되었다. 이 사실을 직접 팬카페에 손편지로 겼다.~~글씨체가 둥글둥글하다. 귀...귀엽다!~~
         SG워너비 멤버 중 가장 먼저 유부 대열에 합류.
         || [[2011년]] [[7월 23일]] || 자 보컬리스트 특집 || 봄날은 간다 (원곡자: 백설희) || 1번 || 1승 ||
         자 보컬리스트 특집에 2번 참여했으며, 1승 했다. 이 때 타 자가수들 평이 '첫 무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거임?' 이후 2011년 11월 말부터 불후의 명곡 2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다.[* [[최백호]] 편에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는데... 예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적이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을 때와 편곡의 방향이 아주 묘하게 비슷하다. 착각이거나 혹은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의 차이 때문일 수도...][* 참고로 이 「낭만에 대하여」 무대는 이석훈 불후의 명곡 무대 탑 중 하나다.] 여러 번 참여했으나 번번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의 특징상 풍부한 중저음보단 높고, 개성있고, 자극적인 무대를 선호하기 때문인듯 하다.
         정체를 밝혔을 때 결승전에서 불렀던 노래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으며 오늘 참가가 좋은 추억으로 을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분류:SG워너비]][[분류:한국 가수]][[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84년 출생]][[분류:2008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
  • 이종남(배우) . . . . 10회 일치
         | 이름 = 이종
         '''이종''' ([[1963년]] [[4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탤런트]]이다.
         * [[1984년]] [[KBS2]] 일일연속극 《[[금의 집]]》
         * [[1992년]] [[KBS2]] 미니시리즈 《[[위기의 자 (1992년 드라마)|위기의 자]]》
         * [[1996년]] [[KBS2]] 주말연속극 《[[목욕탕집 자들]]》 ... 몽룡 형수 역
         * [[2008년]] [[SBS]] 《[[가문의 영광]]》교수역
         * [[양유업]] - 점프
         * [http://movie.daum.net/person/main?personId=131310 이종 Daum 영화]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데뷔]][[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제군 출신 인물]]
  • 이휘향 . . . . 10회 일치
         * 1996년 [[SBS]] 아침연속극 《[[만 (SBS 드라마)|만]]》 ... 유강애 역
         * 2011년 [[MBC]] 일일연속극 《[[자를 믿었네]]》
         * 2017년 [[KBS2]] 일일드라마 《[[내 자의 비밀]]》 ... 위선애 역
         * 《과 북 DMZ》
         * 1989년 영나이론([[영비비안]]) 유라인프러스브라
         * 1993년 [[양알로에]] 알로봉
         | [[내 자의 비밀]]
         [[분류:198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정찬성 . . . . 10회 일치
         ||<#000002> '''{{{#white 가족관계}}}''' || 부인 외 1 2녀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3065656|스포츠조선]][[https://www.instagram.com/p/Bl4yGGeAOCh/?taken-by=koreanzombiemma|셋째(아들)]] ||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식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반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태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조지 루프 전 이전의 정찬성은 그 '''센스'''의 위치를 본능이 대신하고 있었다면, 조지 루프 전 이후의 정찬성은 명백히 센스를 중심으로 자신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합한 해법을 그때마다 내놓고 있다. 정찬성의 센스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떤 방법을 썼을 때 상대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 지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또는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지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 이 뛰어나다. 이는 타격에서도 그래플링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트위스터라는 MMA 역사상 나온 적 없는 서브미션을 활용해서 상대를 끝낼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한 점, 포이리에 전에서 테이크 다운을 당하고 이를 순간적으로 스윕한 것, 알도에게 플라잉 니킥이 실패한 후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테이크 다운을 건 것, 버뮤데즈에게 타격으로 밀리다가 레프트 타이밍에 어퍼컷을 정확하게 넣은 것 등 이라면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기회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포착해 이기거나 불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게 뛰어나다. '''다만 그 중에서도 서브미션, 특히 주짓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UFN 24 이후 해설자인 [[조 로건]]이 이 서브미션을 보고 트위스터로 유명한 주짓떼로 '에디 브라보'가 기뻐할 거라 이야기 했는데, 정말로 기뻐해 주셨다. 친히 '코리안 좀비' 티셔츠를 입고 유튜브에 10 여분 가까이 되는 트위스터에 대한 교육용 비디오를 올렸다. MMA형 트위스터, 레슬링형, 주짓수 공방용, 스웨덴 스타일 등 온갖 화려한 트위스터를 다 올려 놨다. 정찬성 보라고 올린 것은 아니지만 에디 브라보가 내놓은 컴비네이션들을 보면 트위스터가 백을 잡은 상황에서 MMA의 새로운 공격 방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충격적인 기술이었으나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 트위스터를 잡으려면 하프로 내려와야 하는데 기껏 백을 잡아놓고 하프를 타는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다. 00년대 이후로는 점점 섭밋보다도 파운딩이 대세이기도 하고. 에디 브라보의 동영상 역시 MMA 형 트위스터의 경우 트위스터로 기술을 완성시키기 보다 트위스터를 밟아가는 와중 늑골 파운딩이나 안면 파운딩으로 이어지는 컴비네이션을 설명해 준다. 정찬성의 경우처럼 시간이 얼마 지 않은 경우에는 백을 잡은 상황에서 RNC와의 한방 이지선다를 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브라보는 트위스터 동영상 말미에 정찬성 보고 '친구들 데리고 술이나 한잔 하자' 라고 발언했다.
         [[조르주 생 피에르#s-3.1.3|조상필의 도복논란]]에 직접 조상필 페이스북에 글을 겼다. 다음 이종격투기 카페 회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에 직접 나타나 '페이스북에 그대로 올릴게요^^'라는 글을 기고 바로 실행, 결국 해당업체와 조상필이 사과문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 [[강구]]에 코리안좀비MMA 체육관을 만드는 등 [[코리안탑팀]]과는 사이가 멀어진 것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는데 버뮤데즈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코리안탑팀에 감사를 표했고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주윤발 . . . . 10회 일치
         대구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대구광역시]] 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그 후 1965년(10세 시절)까지 홍콩 라마 섬 도서촌에서 성장하였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이다. 그는 [[홍콩 영화 금상장|홍콩 금상장영화제]]의 우주연상과 [[금마장|중화민국 타이완 금마장 영화상]]의 우주연상을 받았다.
         {{홍콩 영화 금상장 최우수 우주연상}}
         {{금마장 최우수 우주연상}}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콩의 자 영화 배우]][[분류:홍콩의 자 연극 배우]][[분류:홍콩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홍콩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홍콩의 자 가수]][[분류:홍콩의 작사가]][[분류:홍콩의 불교 신자]][[분류:중국의 반공주의자]][[분류:싱가포르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계 영국인]][[분류:하카계 홍콩인]][[분류:1972년 데뷔]][[분류:홍콩의 억만장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진격의 거인/86화 . . . . 10회 일치
          * 프리츠 왕가는 "파라디섬"이란 곳으로 피신해 "삼중의 벽"을 쌓고 숨어살고 대륙에 겨진 엘디아인은 마레에 정복 당해 핍박받는 삶을 산다.
          * 녀노소를 할 거 없이 팔에 하얀 완장을 차고 다니는데, 이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비행선이 지나간다.
          * 호리호리한 자가 수용구에 있는 아이들인걸 알아보고 외출허가증을 요구한다. 하지만 무단으로 이탈한 그리샤에게 그런게 있을리 없었다.
          * 그러나 대륙엔 도망치지 못한 엘디아인이 아있었고 마레에 정복당한다. 이들이 현재의 엘디아인들에 해당한다.
          * 그리샤는 그 자가 거짓말을 했고 분명 뭔가 한게 틀림없다고 말하지만 이야기가 마레 당국 귀에 들어갈 것을 우려한 아버지는 거칠게 그리샤를 비난한다.
          * 젊은 자가 진찰을 받으러 오는데, 그는 어깨에 십자 흉터를 보여준다.
          * 프리츠 왕가는 파라디섬으로 탈출했지만 일부 왕족은 본가와 갈라져 대륙에 았다.
          * 공식적으론 다이나 한 사람만 은 걸로 되어 있지만 수용구에 잠복한 채 왕가의 비밀을 지키며 엘디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 시대는 계속 바뀌고 기술은 더욱 발전한다. "사진"이 보편화될 무렵 예거 일가도 가족사진을 찍는데, 이것이 그리샤의 책에 겨진 "사진".
         그리샤 예거가 어째서 시조 거인 능력을 훔쳤는지도 설명이 되는데, 마레 측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레이스 왕가의 계승자들은 벽 바깥으로 진출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순응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마레 측에서 접촉하면 쉽게 능력을 내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빼앗은 능력을 왜 엘런에게 계승시킨 건지, 스스로 복수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는 새로운 의문으로 는다.
  • 최성원 (배우) . . . . 10회 일치
         * [[2018년]]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미인 (드라마)|내 아이디는 강미인]]》 ... 송정호 역
         * [[2010년]] [[KBS]] 《[[자의 자격#합창단|자의 자격 - 합창단]]》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
  • 최재웅 (배우) . . . . 10회 일치
         |성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후 Who?<ref>[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monowing&artSeqNo=868823 강렬한 배우 '최재웅'과의 소탈한 만]</ref><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8/01/11/20080111000588.html 정통 미스테리로의 초대, 뮤지컬 '후 Who']</ref><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8021311262806588 창작 뮤지컬의 의미 있는 도전에 박수를! 미스터리 뮤지컬 <후.. WHO?>]</ref>
         |샤인<ref>[http://www.nocutnews.co.kr/news/363854 최재웅 '인간극장에는 없는 멀티맨으로 코믹과 감동 선사']</ref><ref>[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27/2007112700098.html 내 안에 ...'녀노소'가 다 있어요]</ref>
         |안경, 대생, 단속반 등
         * 《[[왕가네 식구들]]》 (KBS2, 2013년) - 호형 역
         * [[2010년]] 제18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신인우상
         * [[2009년]] 제2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우}}
         {{춘사영화상 신인우}}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종원(국회의원) . . . . 10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배우자 - 정영애, 딸 - 최나래, 최미 ||
         ||<#878787> '''{{{#EEE156 수상}}}''' ||<(> 1983년 동아 연극상 자 주연상 ||
         [[강원도]] [[태백시]]에서 8매 중 막내로 태어나 태백공업고등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함태탄광에서 탄 분석 기사로 일했다. 1974년 서울연극학교(현 [[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정영애와 결혼했다. 서울예술대학교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졸업. 1986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 졸업. 1998년 고려대학교 산업정책대학원 졸업. 경운대학교 학사라고도 한다.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학창시절 하위권 성적이 공개되었는데 공부 안하고 놀기 좋아했던것을 인정하며 웃어 넘겼다.
         수상경력은 1995년 〈[[영원한 제국]]〉으로 대종상 영화제 우조연상 수상 밖에 없지만,[* 정조의 정적인 노론의 수장 심환지역을 맡았는데 당시 쉰도 안된 나이로 칠순 가까운 노인 심환지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게다가 그릇된 노론사관이 짙은 영화임에도 수구세력이 아닌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나온 극중 심환지의 모습이 시너지를 이루었다.] 1993년 영화 [[투캅스]]의 악당 보스 역을 비롯하여, 사실 수많은 영화에 비중있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했다. 단 한컷만 잡혀도 강렬한 마스크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잊을수 없는 인상을 겼던 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신스틸러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의 활약 이후 [[이문식]], [[이원종(1966)|이원종]], [[유해진]], [[성지루]], [[김응수]] 등의 굵직한 조연급 배우들이 줄지어 그의 뒤를 이어 한국영화계의 신스틸러 소리를 듣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과 가까운데 국회의원 경력도 있다. [[2010년 재보궐선거|2010년 7.28 재보궐선거]] 강원도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선거구 민주당 후보로 나서 55.01%(35271표)의 득표율을 기록, 44.98%(28841표)의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를 제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2008년)|민주당]], [[민주통합당]])을 역임하였다.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을 맡았던 [[유인촌]]과 마찰을 빚고 대립을 세우곤 했다.[* [[애초에]] 국회 입성을 앞두고 유인촌 장관과 마주치는걸 엄청나게 별렀는데 '''"유인촌 장관은 나랑 만나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라는 막말을 겼을 정도(...) 실제로 당선 후 두 달 짓 지난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예상대로 거하게 몰아붙였다.] 다만 [[19대 총선]]엔 출마하지 않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사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주변에서 '''다친다'''고 말렸으며 본인도 발을 빼려 했지만 이미 다 알려졌던지라 '''이민 갈 각오를 하고''' 김대중 캠프에 합류했는데 실제로 연예계 섭외가 싹 다 끊겼다고. (...) 하지만 김대중이 극적으로 당선된 다음날부터 섭외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당대 최고의 [[시트콤]]이었던 [[MBC]] [[자셋 여자셋]]에 까메오로 출연한게 바로 이 무렵.
          * [[육매]]([[문화방송|MBC]], 1998): 곰보아저씨 역
         [[분류:한국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50년 출생]][[분류:태백시 출신 인물]]
  • 허남성 . . . . 10회 일치
         |이름 = 허
         |직업 = [[배우]] & [[연극 배우]]<ref>[https://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D%97%88%EB%82%A8%EC%84%B1&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90002 허성-네이버인물정보]</ref>
         '''허성'''([[1975년]] [[7월 8일]]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543329 허성-다음인물정보]</ref>
         * 《[[저스트 프렌즈]]》 (2012년) - 은지 자친구 역
         * [http://guide.gomtv.com/celebrity/people.gom?manid=47821 허성 - 곰가이드]
         * [http://people.hanple.com/people.php?cmd=view&pp_no=46820 허성 프로필]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
  • 허안나 . . . . 10회 일치
         | 종교 = [[천주교]]([[영세명]] : 안나)<ref>[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87568&path=201707 복음의 가치에 재미까지 더한 ‘ 신부가 간다’ 시즌 2 가톨릭평화방송 TV 촬영 현장,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사목 소개]</ref>
         |배우자=1살 연상의 자친구(2019년 1월 결혼 예정)}}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상》,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상 2010년코미디부분우수상,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상'''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반인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개그콘서트 나혼자자다 (2014.08.17~2014.12.28)
         * [[가톨릭평화방송|cpbc]] TV 《리얼사목버라이어티-신부가 간다 시즌2》
         * 문제적자 2016.12.25
         * 문제작자 2017.01.01
         * 20121021 개그더코미디쇼 IN 성
         * 그냥 편한 형이라 생각해! (나 혼자 자다)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84년 태어]][[분류:200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
  • 황병기 . . . . 10회 일치
         |가족 = 황태문(부)<br>황혜경(장녀) <br /> [[황준묵]](장) <br /> 황수경(차녀) <br /> 황원묵(차) <br /> [[한석명]](장인) <br /> 장숙명(장모) <br /> [[한복 (1914년)|한복]](손윗처) <br /> [[한무숙]](처형) <br /> 김진흥(윗동서)
         가야금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51년 부산 피난시절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경기고등학교 시절에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명인인 김영윤, 김윤덕, 심상건을 사사하였다. 당시 서울대 법대 학생이며 학생으로는 특별하게 대학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1959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1963년까지 서울대학교 음대 국악과에서 가야금을 가르쳤다. 2000년 2월에는 [[단국대학교]]에서 명예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배출한 제자로 동국대학교 교수 윤소희, 단국대학교 교수 서원숙, 숙명여대 교수 김일륜, 이화여대 교수 곽은아, 서울대학교 교수 이지영, 서울대학교 강사 지애리,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이정자, 이화여대 강사 조윤정, 정순희, 대구예술대학 강사 이미경, 숙명여대 강사 이영신, 수원여대 강사 박지영 등이 있다. 이화여대 재직시 개인적으로 지도한 제자로는 준인간문화재 양승희, 이화여대 교수 문재숙, 서원대학교 교수 박현숙, 추계예술대학 교수 이효분, 전대학교 교수 성애순 등이 있다.
         1963년에는 Alan Hovhaness 작곡 「가야금과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제16번」을 산 KBS홀에서 호바네스의 지휘 아래 KBS교향악단과 함께 초연을 했다.
         * 슬하 2 2녀를 두었다. 장은 세계적 수학자인 [[황준묵]]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좌교수이고, 차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물리학자 황원묵이다.
         [[분류:1936년 태어]][[분류:우주 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재동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예술원 회원]][[분류:단국대학교 명예박사학위 동문]][[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18년 죽음]]
  • 황치열 . . . . 10회 일치
         * 2010년 성 듀오 가수 '한국'과 함께 《[http://www.melon.com/artist/song.htm?artistId=471643 웬즈데이(Wednesday]》라는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여 잠시 활동하였고, [[박경림]]의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에 수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함.
         * 2013년 우여곡절 끝에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8년 만에 해지하고, 2014년 '치열Ten2'라는 이름으로 싱글곡 '경상도 자'를 발매하며 특유의 위트가 담긴 뮤직비디오를 자체 제작하여 발표.
         * 2015년 명실상부한 대세으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성미 넘치는 춤, 구수한 경상도 억양을 담은 사투리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종횡무진 출연 중이며, 2015년 9월 KBS [[위기탈출 넘버원]]의 인턴 MC로도 자리매김 함. 그 외 각종 음악 행사에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가수로써도 인지도를 높이며 활약 중임.
         * 2017년 5월 14일, 5월 21일 문화 방송 [[문화방송|M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11회 ~ 112회에 '짐승 강백호'로 참가, 1라운드부터 2라운드, 3라운드까지 [[정혜성]], [[Y2K (음악 그룹)|고재근]], [[이예준 (가수)|이예준]] 등을 상대로 이김. 56대 복면가왕 선발전까지 진출하였으나 '노래 9단 흥부자댁'([[소향]])에게 석패.
         * 2014년 12월 10일 디지털 싱글 [http://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2294549 《치열Ten2 - 경상도 자》]
         * 2015년 8월 1일 -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성 보컬리스트 특집) - 〈슬픈 언약식〉
         * [[2017년 ]] [[MBC]] [[복면가왕]] 짐승 강백호 (참가자)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6년 데뷔]][[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너의 목소리가 보여 참가자]]
  • 김정태(영화배우) . . . . 9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로 [[1973년]] [[1월 17일]]생. 본명은 [[김태욱]]으로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을 통해 [[충무로(은어)|충무로]]에 데뷔하여 [[2001년]]작 영화 [[친구]]까지 본명으로 활동했다가, 영화 [[친구]]로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선배 연예인인 가수 [[김태욱]][* 최근에는 연예인보다 사업가로 유명하며 배우 [[채시라]]의 편이다.]을 의식했는지, [[2003년]] [[정우성]]과 출연한 "[[똥개]]"부터 지금의 예명인 김정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은 인상으로 실제 조폭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의 다른 포스를 가진 탓에, 초창기 배역의 거의 80% 정도는 조직폭력배이거나 그거와 연관된 직업군이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특히 조폭 연기를 했던 [[친구(영화)|친구]], [[해바라기]], [[똥개]]등의 작품에서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조폭전문배우, 조폭 연기의 스페셜리스트 소리도 자주 들었다.
         || 2012 || [[간기]] || ||
         || 2012 || [[자사용설명서]] || 우성철 ||
         || 2010 || [[SBS]] || [[나쁜 자]] || 장감독 ||
         || 2016 || KBS2 || [[오 마이 비너스]] || 최철 ||
         || 2016~2017 || KBS2 || 살림 시즌1 || ||
          * 과거 경기 연천 [[정관신도시]]에 살았으며 정관의 많은 상가들에서 그의 사인을 볼 수 있다. 현재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사는 걸로 보여진다.(살림 시즌1 참고)
         [[분류:한국 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연천군 출신 인물]][[분류:1999년 데뷔]][[분류:1973년 출생]][[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김준 (배우) . . . . 9회 일치
         '''김준'''({{본명|김형준}}, [[1984년]] [[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이다. 2007년 [[티맥스 (음악 그룹)|티맥스]]의 래퍼로 데뷔했으며, 2009년 드라마 《[[꽃보다 자 (대한민국 드라마)|꽃보다 자]]》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 [[꽃보다 자 (대한민국 드라마)|꽃보다 자]]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김지수(배우) . . . . 9회 일치
         [[2000년]] [[7월 30일]] 혈중알코올농도 0.175% 만취된 상태로 자신의 [[토요타 아발론]] 승용차를 몰고 강구 학동교차로에서 인도로 돌진해 경계석을 들이받았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심지어 '''무면허''' 상태였다고 한다. 불구속 입건되었고, '''342만원 벌금형'''에 처해졌다.
         [[2010년]] [[10월 5일]] 음주운전 상태에서 '''뺑소니''' 사고를 냈다. 강구 청담동에서 택시를 들이받고 도주했고 다음날 오후 경찰에 출두해 혐의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벌금 1,000만원''' 납부 명령을 받았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168546|#]] --평범한(?) 음주운전은 안한다-- --강구 전문음주운전러--
         게다가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 촬영 중 눈 주위가 파랗게 멍이 들어서 나타나 특수제작팀이 동원되어 그녀의 눈의 멍을 지워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자고 나오다가 넘어져서 그랬다는데, 보통 그런 경우에 눈 주위에 멍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눈 주위에 멍이 드는 이유는 맞아서인데(...)] 프로 배우답지 못한 김지수의 태도도 문제였지만, 보통 이런 거 잘 기사화 안 되는데 그 당시 근초고왕 팀의 분위기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비단 김지수뿐만 아니라 [[감우성]] 또한 스태프들과의 폭행시비로 구설수에 올랐었고, [[서인석]]이 대리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석 입건되는 등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근초고왕(드라마)|근초고왕]]》은 이래저래 김지수의 [[흑역사]]로 을 듯(...)
          * 2012년 3월 페이스북을 통하여 '''16살 연하'''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공개 연애가 부담스러워 2013년 결국 결별했다고 한다.
         ||<|3> [[2005년]] || 여자, 정혜 || 정혜[* 전 편 역으로 [[박성웅]]이 특별출연하였다.] || ||
         || 2015년 || [[강1970]] || 민성희 || 특별출연 ||
         || 2006년 || [[바이브]] || 그 자 그 여자 ||
         || 2006년 || Mnet KM 뮤직 페스티벌 || 뮤직비디오 여우연기상 || 그 자 그 여자 ||
  • 김혜옥 . . . . 9회 일치
         대학 진학후, 내성적인 성격탓에 연기가 아니라 분장이나 디자인쪽으로 바꾸라는 핀잔도 들었지만 오기가 생겨 욕을 먹으면서도 죽기살기로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연극무대에서 2년 짓을 보낸 후, 생계를 위해 TV쪽으로 노선을 바꿔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들어갔다. MBC 수사극 《[[수사반장]]》의 범인 역이나 조연으로 전전하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의 서울댁으로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ref name="월간조선"/>
         * [[1997년]] [[MBC]] 일일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홍경인의 고모이며 홍희라의 동복 여동생 홍군주 역
         * [[2005년]] [[KBS1]] 일일연속극 《[[별난여자 별난자]]》 ... 최유정 역
         * [[2010년]] [[SBS]] 드라마 스페셜 《[[나쁜 자 (드라마)|나쁜 자]]》 ... 신 여사 역
         * [[2015년]] [[KBS2]] 금토드라마 《[[프로듀사]]》 ... 이후
         * [[2016년]] 《[[과 여 (2016년 영화)|과 여]]》 ... 문주 모 역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김효기 . . . . 9회 일치
          * 상위 문서: [[경 FC]], [[축구 관련 인물]]
         [include(틀:경 FC/간략)]
         ||||<:><#ff1924> '''{{{#ffffff 경 FC No. 20}}}''' ||
         || '''소속 클럽''' || [[울산 현대]] (2010~2015) [br]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2011) (임대) [br] [[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 (2012) (임대) [br] [[화성 FC]] (2013~2014) (공익 근무) [br] [[FC 안양]] (2015) (임대) [br]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br] [[FC 안양]] (2016~2017) [br] [[경 FC]] (2018~ ) ||
         [[경 FC]] 소속의 한국의 [[축구선수]].
         === [[경 FC]] ===
         2018년 과거 화성 시절 은사였던 김종부 감독의 부름을 받고 [[경 FC]]로 이적하며 1부 리그 무대에 복귀하게 되었다.
         3월 17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전 드래곤즈]]와의 K리그1 3라운드 경기에서 전반 추가시간에 [[김신]]이 오른쪽에서 패스를 찔러 주자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시즌 첫 골을 기록했으며, 4월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1 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팀이 0-2로 지고 있던 후반 16분 중앙 미드필더 [[하성민]]을 대신해 그라운드에 투입되어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하면서 처진 공격수까지 두 역할을 소화하였으며, 특히 후반 28분 쿠니모토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가로지르기를 받아 그림같은 오른발 오버헤드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분류:1986년 출생]] [[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 [[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 [[분류:화성 FC/은퇴, 이적]] [[분류:FC 안양/은퇴, 이적]] [[분류:경 FC/현역]] [[분류:울산 현대미포조선 돌고래/은퇴, 이적]]
  • 나가 . . . . 9회 일치
         이들은 22세가 되는해에 '심장적출'이란 의식을 가지는데, 일종의 성인식으로, 심장을 말그대로 '빼서' 심장탑에 보관하는 식이다. 이상태의 나가는 사실상 불사로, 목이 잘려도 어느정도의 시간과 영양공급만 있으면 목이 다시 붙는듯. 심장을 뽑지 않은 나가는 '비에나가'라 부르는데, 이들은 말그대로 '가짜 나가'취급을 받는다. 만약 어쩌다 사정이 생겨 심장을 뽑지 못했을경우엔, 여성은 그 다음해에 심장적출이 벌어지는때까지 가문에서 보호해주지만, 성은 무조건 끔살이라는듯(....)
         철저한 모계사회이며, 자 나가는 성인이 되기전엔 그의 가문에 머물며 성장하며, 성인이 되고 난뒤에는 가문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도시를 방문해 가임기의 여성 나가들이 있는 가문에 씨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외에 미성년 자 나가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경호역할로 외출한 자 나가가 다른 가문으로 내빼는경우도 서술하고 있다(...)] 일부 성 나가들은 '수호자'라 불리며 여신의 '신랑'이 되는데, 원시종교에서 여사제들이 순결을 지키는것과 비슷하게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심장을 적출하는 역할을 한다. 사제로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기에 어지간한 여자 나가들도 이들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모계 사회라 그런건지, 성 나가는 상당히 여성적인걸로 묘사되는데, 작중에서 성 나가가 자신의 허물을 벗는 모습을 에게 보여주는것에 수치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성행위에서 있어도 성이 여성에 비해서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9화 . . . . 9회 일치
          * 자방은 각기 개성이 넘치는데 사토 리키도는 방은 평범하지만 제과 취미 덕에 엄청난 호평을 받는다.
          * 여자방으로 넘어가는데 여자들도 사정은 자 방과 별반 다르지 않다.
          * 그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흑막은 미네타 미노루. 왠지 자존심 상해있는 성진을 대변하는 척 민의를 핑계로 여자방을 들쑤실 작정이다.
          * 은 인원 중 바쿠고는 잔다고 해서 제외. 키리시마부터 방을 공개한다.
          * 딱 격투기에 빠진 고생 분위기.
          * 키리시마는 애초에 여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공언하고 실제로 "친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인테리어 2위"를 거머쥔다.
          * 성진의 방은 감상 끝. 여성진은 사토의 케이크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 일부 성진은 "여자답지 않다"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데 가볍게 응징 당한다.
  • 날조트랩 -NTR- . . . . 9회 일치
         소꿉친구 관계에 있는 여고생 오카자키 유마(岡崎由真)와 미즈시나 호타루(水科蛍)가, 서로 자친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계가 깊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중1때 [[농구부]]에 들어갔다. 이 때 호타루가 자 선배의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자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타케다와는 농구 연습을 함께 하며 친해졌다.
         어릴 때 자들에게 자주 울려졌다. 과거부터 유마 이외의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아서 주변에서는 고립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유마가 농구부에 들어가면서 함께 보내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자, 빈정거리는 듯이 3학년 선배 자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사귀게 된 적이 있다. 중1때 자친구를 만들었고, 이후로도 자주 자친구를 갈아치워서 주변에서는 [[빗치]]로 여겨지고 있다.
         오카자키 유마의 자친구. 유마와 사귀면서 진도를 나가려고 하지만, 호타루와 유마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잘 풀리지 않는다. 1학년 때는 호타루와 같은 반이었다.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호타루를 걱정하기도 한다.
         미즈시나 호타루의 자친구. 얼굴도 미, 머리도 좋다. 타케다와는 사이가 좋다. 유마에 대한 호타루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마가 호타루와 이상한 짓을 하게 되면서 타케다를 은근히 배신하게 되자 유마에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남봉진 . . . . 9회 일치
         '''봉진'''(南鳳振, [[1921년]] ~ 2008년<ref>{{뉴스 인용|제목=[부음] 봉진씨(전 경기도지사) 별세|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8&no=173109|날짜=2008-03-27|뉴스=매일경제}}</ref>)은 [[대한민국]]의 제12대 [[경기도지사]]이다. 본관은 [[영양 씨|영양]].
         *아들 : 순철 (시그마지오 대표)
         *아들 : 순호 (연세대 의대 교수)
         *아들 : 순성 (이제이텍 대표)
         *딸 : 은숙 (한림대 의대 교수)
         [[분류:1921년 태어]][[분류:2008년 죽음]][[분류:영양 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
  • 박남현 . . . . 9회 일치
          | 이름 = 박
          | 본명 = 박
         '''박현'''([[1966년]]~)은 [[대한민국]]의 [[배우]] 겸 [[무예|무술감독]]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B%B0%95%EB%82%A8%ED%98%8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5489 박현-네이버인물정보]</ref>
         * {{KMDb 사람|00009515|박현}}
         * [https://web.archive.org/web/20160315150908/http://people.mygo.co.kr/people.php?cmd=view&pp_no=763 박현 프로필]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포항시 출신]]
  • 박칠용 . . . . 9회 일치
          | 자녀 = 슬하 2
         * [[1969년]] 충청도 연기 [[세종고등학교 (세종)|조치원고등학교]] 졸업
         * [[1995년]] [[SBS]] 《[[장희빈 (1995년 드라마)|장희빈]]》 ... [[용익]] 역
         * [[1998년]] [[MBC]] 《[[육매]]》
         * [[2010년]] [[KBS1]] 《[[산 너머 촌에는]]》
         * [[2013년]] [[KBS1]] 《[[산 너머 촌에는 2]]》
         [[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69년 데뷔]][[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조치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성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동문]]
  • 서태화 . . . . 9회 일치
         * 2010년 《[[이웃집 자 (2010년 영화)|이웃집 자]]》 ... 민석 역
         * 2010년 《[[불량녀]]》 ... 점술가 역(우정출연)
         [[분류:196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포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맨해튼 음악학교 동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유튜버]][[분류:대한민국의 요리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 신혼부부 함정구멍추락 사망사고 . . . . 9회 일치
         2011년, 일본에서 있었던, 편의 생일을 축하해주려던 아내의 장난이 그만 부부가 모두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진 비극적인 사고.
         부부는 4월에 결혼하였고, 편 유우키의 생일이 9월 1일이라 리사는 편에게 깜짝쇼를 해주고 싶었다.
         2011년 8월 27일, 편과 결혼한 리사는 9월 1일에 생일을 맞이하는 편을 축하해주려고 깜짝쇼를 생각했다. 사건 당일 낮 리사는 친구 5,6명에게 부탁하여 함께 모래 사장에서 5~6시간에 걸쳐서 구멍을 팟다.
         구멍을 판 다음 리사는 일단 귀가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편 유우키를 해변으로 데려갔다. 오후 10시 쯤 집에서 약 9킬로미터 떨어진 현장에 도착. 두 사람은 조금 걸어가다가 10시 30분 쯤 낮에 파둔 구멍에 빠지고 말았다.
         본래는 편 유우키만 떨어뜨리려는 계획이었으나,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불빛에만 의존해서 걸어가던 상황이라 리사도 함께 빠져버렸다. 이 해변은 과거에는 해수욕장이 있었으나, 현재 영업을 하지 않아 야간에는 어두운 곳이었다.
         판결에서는 발안자였던 아내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고 인정하고, 아내의 부모가 1030만엔을 지불하며, 나머지 3100만엔은 부모와 친구 6인이 연대하여 지불하게 했다. 다만 친구들도 구두 변론에서 부부가 장난을 치다가 함께 떨어졌다는 증언을 하여, 편도 구멍의 존재를 인식하고 스스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편의 과실도 40%로 인정했다.
  • 우라센케 . . . . 9회 일치
          * 장 소우세츠(宗拙) : 장인데 경력을 알 수 없다. 의절당했다는 설이 있으며, 카가 번 마에다 가문(加賀藩前田家)에 임관했다는 설도 있다.
          * 차 이치오우 소우슈(一翁宗守) : 칠기 가문에 [[양자]]로 나갔다가 돌아왔다.「무사시노코지 센캐(武者小路千家)」를 일으켰다.
          * 삼 코우신 소우사(江岑宗左) : 정식으로 소우탄의 뒤를 이어 「오모테센케(表千家)」를 일으켰다. 키슈 도쿠가와 가문(紀州徳川家)의 다두(茶頭)로 임관했다.
          * 사 센소우 소우시츠(仙叟宗室) : 카가 번 마에다 가문에 임관했다가, 이후에 「우라센케(裏千家)」를 계승했다.
         삼천가가 나누어진 연유는, 소우탄이 은거를 결정하면서 그가 거주하던 후신안(不審庵)을 삼 소우사가 이어받았으며 소우사의 후손은 오모테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소우탄은 후신안의 뒷편에 콘니치안(今日庵)을 지어서 살게 되었는데, 이것을 함께 거주하던 사 소우시츠가 상속받아 소우시츠의 후손은 우라센케로 불리게 된다. 오모테는 앞, 우라는 뒤라는 뜻으로, 콘니치안이 후신안의 뒷편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앞집 센가", "뒷집 센가". 그리고 차 소유슈는 나중에 돌아와 이보다 좀 더 쪽에 있는 무사시노코지라는 거리에 칸큐안(官休庵)을 지어 다도에 전념하게 된다. 그래서 무사시노코지센케로 불리게 되었다.
  • 유승민(정치인) . . . . 9회 일치
         1958년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삼덕동)에서 아버지 [[유수호(정치인)|유수호]]와 어머니 강옥성 사이의 2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덕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유시민]]이 나온 중학교다. 즉 유승민이 유시민의 중학교 2년 선배. 심지어 대학도 서울대 경제학과로 과까지 같은 직속 선후배다. 얼핏 학연과 지연(대구)으로 얽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무관하고 정치인생이 정반대. 또한 유시민의 유는 柳라 혈연은 확실히 없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상을 대선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였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한 보상 법률안을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발의 했으며, 입대한 병사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던 국방부에서 사관생도들에게는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심지어는 축구화 테니스화까지 지급한 행태를 보고 국방부 종합감사를 실시하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종합성적 1등의 여생도가 불이익을 받아 생도로 바뀐 사태를 따져서 결국 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이에 야당 국방위 간사였던 안규백 의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잘 도출하시는 분이고, 의 억울함을 못보는 정의로운 분'''이라 유승민 국방위원장을 칭찬한 바 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절 소장파 정치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권영진(정치인)|권영진]], [[경필]], [[원희룡]] 등이 각각 대구시장,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로 가게 되면서 중앙정치로 멀어짐과 때를 같이하여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상징성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내 주류에게 밉보인 탓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 논란을 겪으면서 본인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비대위 결정으로 세간의 예상보다 빠르게 [[새누리당]]으로 복당함으로써 여러 언론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차기 대권 주자]]로써 이름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 [[경필]]을 누르고 19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 2016년 9월 12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1주일 미루어졌다. 그리고 1주일 뒤인 2016년 9월 19일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2017년 2월 16일 뉴스룸 2부 대선 예비주자 검증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경]] [[합천군]]에서 진도 2.9의 [[지진]]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1964)|이재명]] 성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전원책의 맹공을 뚫고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내에서 [[친박]]과 복당파([[친무]], [[친이]])간의 갈등이 다시 심화되면서 대부분 [[친박]] 인사들은 복당파인 [[김무성]]과 [[친무]], [[친이]]를 비난하면서 유승민 본인과 [[친유]]가 소신있다고 재평가를 받고있다.[* 원래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쪼개지기전까지는 [[친박]] 인사들이 [[김무성]]과 [[유승민]] 둘다 "배신자"라고 맹비난을 했지만 [[김무성]]과 [[친무|김무성의 일행들]]이 다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한 반면 [[유승민]]과 [[친유|유승민의 일행들]]은 [[바른정당]]에 으면서 [[국민의당|다른 정당]]과 통합하여 [[바른미래당|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나가는 등 친박계 의원들이 [[친무|복당파]]들을 맹비난하면서 [[유승민]]의 행보를 재평가를 하고있다.]
  • 윤균상(1987) . . . . 9회 일치
         || '''가족''' ||<(> 부모님, 동생 ||
         피노키오 종영 직후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겼다. 롤모델은 [[박해일]]을 비롯한 훌륭한 선배님들이라 언급했고,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과 자들의 진한 우정을 다룬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다 전했다.
         다음 카페에 리시안셔스라는 팬카페가 있는데, 리시안셔스가 어떤 꽃들과도 잘 어울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윤균상을 닮아 팬들이 붙여 준 이름이다. ~~케미균~~ 윤균상은 꽃 이름인 것에 착안해 카페는 꽃밭이라고, 팬들은 꽃님이라고 부른다. 팬 사랑이 다른것으로 알려진 그의 SNS를 보면 팬들과 소통을 활발히 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동료 연예인들이나 스태프들과 다른 친화력을 자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꽤나 애교가 많은 성격인 것 같다.
         다른 동물 사랑을 보이기도 하는데 쿵이, 몽이, 또미(고양이) 라는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과거 양이라는 강아지도 키웠으나 현재는 친가에서 부모님과 동생이 키우는 중이다.[* 쿵이와 몽이는 삼시세끼 어촌편3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너구리처럼 굵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특징. 어촌편 촬영 당시 쿵이는 꼬리에 자꾸 변이 묻어서(...) 끝부분을 제외하곤 꼬리의 털을 전부 밀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둘은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의 마스코트로 한번 더 출연하게 되는데 그사이 쿵이는 꼬리털이 풍성해진 대신 장모종이라 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의 털을 밀어 왔다. 헌데 촬영 중 더운 날씨 때문인지 몽이가 개구호흡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고, 이로 인해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균상이 인스타그램으로 확고한 입장표명을 하면서 사그라 들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를 정주행 했으면 알겠지만, 균상이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고, 감독판에서 공개된 윤균상의 집만 봐도 쿵이와 몽이, 또미는 말그대로 호의호식(...)을 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도 '''두 대나''' 구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신경을 쓰는 윤균상에게 몽이의 일은 오히려 실례가 되는 비난이었다.] ~~[[똠양꿍]]~~ 최근 솜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분양 받았다고 한다.
         ||<|2> SBS || [[당신이 잠든 사이에]] || 커플녀 || 특별출연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7년 출생]][[분류:전주시 출신 인물]][[분류:2012년 데뷔]]
  • 윤다훈 . . . . 9회 일치
         ||<#40E0D0> '''{{{#ffffff 본명}}}''' ||<(> 광우(南光祐) ||
         ||<#40E0D0> '''{{{#ffffff 출생}}}''' ||<(> [[1964년]] [[12월 30일]], [[전라도]] [[장성군]] ||
         ||<#40E0D0> '''{{{#ffffff 본관}}}''' ||<(> [[(성씨)|의령 씨]][* 25세손 '우(祐)'자 항렬] ||
         ||<#40E0D0> '''{{{#ffffff 가족}}}''' ||<(> 2 1녀 중 장, 슬하 딸 2명[* 장녀가 배우 [[경민]]이다] ||
          * 1999년 KBS 신 TV문학관 - 아우와의 만
         [[분류:한국 배우]][[분류:1964년 출생]][[분류:장성군 출신 인물]]
  • 윤태진(아나운서) . . . . 9회 일치
         [[2010년]] [[원춘향제#s-2.3|미스 춘향]] 선발 대회에서 선이 된 뒤 진([[효영]])과 함께 [[아침마당]]에 출연했었는데 [[이금희(방송인)|이금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했다고. '아나운서는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단다. 계약직이긴 해도 단 5개월만에 공채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당시 부모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서 무용을 포기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던 차에 이금희에게 권유를 받으며 방송이라는 새로운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붙으니까 좋아했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계속 무용을 할 걸하는 미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안 경제 상황의 변화가 없었다면 계속 무용을 하고 성공해서 나중에 교수까지 되는 걸 목표로 노력했을 거라고.]
          * 서빙알바하던 시절 소개팅하던 녀 손님이 있었는데,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자가 계산을 하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스춘향의 위엄--
          * 성잡지 [[맥심(잡지)|맥심]] 2014년 5월호 표지모델이 되었다.[* 다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여파로 발행이 보류되었다가 4월 30일에 배포되었다. [[http://www.maximkorea.net/board/board_view.php?board_uid=102&code=bbs_notice|#]]]
          * KBS joy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에 재연 배우로 6회, 11회 2번 참여했다. 6회에서는 권태기인 자친구를 잡기 위해 다이어트와 성형을 감행하고 자친구를 사로잡는데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태기에 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나왔으며, 11회에서는 자친구에게 차였다가 자친구가 집안 사정으로 매달리자 다시 만날까 고민하는 학교 선생님 역할로 나왔다.
          * 2018년 6월 18일 부터 강경찰서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경찰춘-- [[https://www.instagram.com/p/BkKgG9GBCko/?utm_source=ig_web_button_share_sheet|인스타그램]] [[http://blog.naver.com/polinlove2/221306978271|블로그]]
  • 은혼/629화 . . . . 9회 일치
          * 불빛 하나 없는 에도성. [[소요 공주]] 등 에도성에 은 인물들은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의 보호를 받고 있다. 마츠다이라는 에도성을 중심으로 일대에 숨어있는 해방군의 잔존 병력을 감시한다. 그는 이 조용한 밤이 싫다. 낮에 열 때문에 이성을 놨던 적들도 이쯤되면 슬슬 머리가 식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들은 움직이지 못하는게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숨죽이며 무언가가 오길 기다린다. 그런 동향으로 볼 때, 지구가 얻은 보너스 스테이지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마츠다이라는 생각한다. 그러니 에도성에 있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쉴 수 있을 때 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공주의 씁쓸한 되새김. 노부메는 공주를, 그들 매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것은 자신들 히토츠바시파라고 털어놓는다. [[도쿠가와 시게시게]]의 실각과 암살, 그 배후엔 견회조가 연루돼 있다. 노부메는 자신들이 한 짓이 없었더라면 시게시게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은 그녀 앞에 있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말한다.
          공주는 그런 고백에 질책도 무엇도 하지 않는다. 단지 오늘밤은 정말로 편히 잠들 수 있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노부메가 그녀를 여러번 경호하고 구해주었던 것만을 기억한다. 그녀의 마음 속의 노부메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매를 몇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다.
          신파치는 그래도 겐가이 영감이라면 뭔가 단서를 기지 않았겠냐고 하는데, 오키타도 같은 생각이다. 오키타는 곧 길가에 널부러진 응가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응가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금씩 이어져 있다. 오키타는 이게 겐가이가 아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헨젤과 그레텔 적인 그런 방식을 취한 거라고 판단한다. 오키타는 이걸 따라가면 겐가이 영감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만 히지카타는 정말 자신있으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어보라고 자꾸 김전일 네타에 집착한다.
          * 사라져 버린 실마리. 하지만 히지카타가 새로운 단서를 포착한다. 길에 혈흔이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겐가이가 긴 표식은 이쪽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당한 양의 피가 계속 흘러나온 걸 볼때 이미 위험한 상황, 어쩌면 늦었을지 모른다. 히지카타가 그렇게 추리하자 아까 헨젤과 그레텔 때문에 빈정이 상했는지 오키타가 "곱창의 이름을 거는 겁니까"라고 물고 늘어진다. 히지카타도 할아버지 이름을 걸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는다.
          [[핫토리 젠조]]는 이 상황을 너무 마셔서 사마귀가 터진 걸로 수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게다가 왠지 동료들이 반드시 와줄거라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치질용 좌약을 내미는 시점에서 믿었던 동료들은 아있지 않다.
          * 사냥에 성공한 야토족은 사냥감을 자기들 두목에게 내보이고 있다. 원상 황자는 야토 용병부대의 수장을 "손노사"라는 칭호로 부른다. 손노사가 통신으로 겐가이의 포획을 알리자 다키니와 신라, 3대 용병부족을 전부 모았는데 결국 살아은게 야토 뿐이라며 씁쓸해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자. 겐가이 영감이다.
          영상으로 아직도 멀쩡한 겐가이 영감을 보자, 원상은 위협인지 혹은 농담인지 "팔과 머리 말곤 필요없는데 너무 많이 아있다"고 내뱉는다. 일단 손노사는 고문이 통할 상대인지 아닌지는 자기가 알아서 판단한다고 대꾸한다.
  • 은혼/648화 . . . . 9회 일치
          * 신스케가 쓰러지면서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였다. 마타코의 오열과 함께 전장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돌아왔다. 군홧발소리가 두 자의 주위를 애워쌌다. 양측의 병사들이 적의 대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다시 시간은 얼어붙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대치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그만두자고 할 때까지는. [[도쿠가와 노부노부]]가 그 말을 꺼냈다.
          * 권유처럼 들리는 노부노부의 말에 수긍하는 이는 없었지만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대의를 짊어지고 사람들을 이끌어온 자들, 다츠마와 가츠라가 그랬고 신스케가 그랬다. 신스케는 지금껏 밟아온 시체를 생각했다. [[카와카미 반사이]]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 시체들이 발 밑에 있는데 참으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직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그때 엔쇼가 한 말은 신스케의 심정을 대변했을지도 모른다.
          엔쇼는 의식이 아있었다. 그는 몸의 고통따윈 잊은 것처럼 노부노부의 권유를 조소했다. 거기에 반박하는데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오래 전에 한 번 떠올린 말이었고, 이미 한 번 했던 말이었다. 이젠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했던 말.
          머지 않아 형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어떤 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직 형수였던 시절엔 편을 초연하게 배웅하는 법을 몰랐다. 형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을 하러 가는게 아니며 영웅 초연의 황자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엔쇼는 형의 곁에 있었다. 아무 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한 형의 함선이 기습을 당하고 동생에게 구원을 요청할 때조차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형을 내버려둔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슬픔을 가장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형이 누워있는 관 앞에서 형수를 위로한 일이었다.
          >저 자가 멈추라고 한다면야 멈춰야만 하잖아.
          >저런 자를 쇼군이라고 추켜세울 셈은 아니다만
          그 다음 노부노부는 누구든 도울 수 있는 자라면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돕도록 하고 해방군 모선의 추락을 최대한 저지하도록 지시했다. 엔쇼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노부노부를 바라봤고 자신이 싸웠던 영웅들을 바라봤으며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같은 눈이었다. 그의 아내를 닮은 눈.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눈. 엔쇼는 그런 눈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같은 눈을 한 자들에게 이길 가능성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인정했다.
          >저 자들과 함께였다면 다른 미래가 열렸을지도 모르겠군
          * 총알은 자작의 후두부를 관통해 이마를 뚫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총알이 심장과 우측 복부를 꿰뚫었다. 즉사. 총을 쏜 사람은 엔쇼의 충직한 부하였다. 일선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동포들을 희생해온 자였다. 그 병사는 엔쇼가 말한 "웃기는 얘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이상정 (1897년) . . . . 9회 일치
          | 사망지 = [[대한민국|미 군정 조선 과도정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에서 뇌일혈로 사망
          | 별명 = 호(號)는 청(晴南)· 산은(汕隱)<br/>일명(一名)은 '''이연호'''(李然晧)
          | 자녀 = 슬하 4 1녀
          | 친척 = 이동진(조부) <br/> 이일우(백부) <br/> 백자화(백모) <br/> 한정원(장인) <br/> 박학(장모) <br/> 권문각(장인) <br/> 장문명(장모) <br/> [[이상화 (시인)|이상화]](아우) <br /> 서온순(제수) <br/> 이용희(조카) <br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아우) <br/> 이학희(조카) <br/> [[이상오]](아우) <br/> 이겸희(조카딸) <br/> [[박창암]](조카사위) <br/> 이준희(조카) <br/> 이상악(사촌 형) <br/> 이상무(사촌 동생) <br/> [[이열희 (1924년)|이열희]](5촌 종조카) <br /> [[박부 (1932년)|박부]](5촌 종질부)
         '''이상정'''(李相定, [[1897년]] [[6월 10일]] ~ [[1947년]] [[10월 27일]])은 [[일제 강점기|일제 강점기 조선]]의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 겸 [[군인]]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고 아호(雅號)는 청(晴南), 산은(汕隱)이며 일명(一名)은 '''이연호'''(李然晧)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이다.
         [[분류:1897년 태어]][[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승엽 . . . . 9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ref>[[문화일보]] - 2009년 9월 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91701032230073002 "이의수의 마흔 이후 자의 생존법 - 실패는 성공을 잉태한다"]</ref><ref>[[동아일보]] - 2010년 8월 기사 [http://news.donga.com/3/all/20100820/30624874/1 "투수 → 타자 변신 성공시대… 타자 → 투수는 왜 잘 안 될까"]</ref>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 (야구인)|박승호]]로부터 1년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을 보여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ref>[[마이 데일리]] - 2010년 8월 기사 [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이대호·이승엽·추신수, ‘잘 던져야 잘 친다’… 투수 출신들 맹활약"] {{웨이백|url=http://www1.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08101138562229# |date=20140814152842 }}</ref>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ref>엑스포츠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추신수와 부산고의 황금 시대를 이끈 한화의 김백만"]{{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613 }}</ref>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 자이언츠|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 (야구인)|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ref>스포츠 춘추 - 2009년 12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38 "양준혁이 말하는 ‘선구안 향상법’"]</ref>
         방출 후 [[2010년]] [[12월 2일]] 1년간 1억 5,000만엔에 옵션이 포함된 연봉을 계약했다. 이 때 투수 [[박찬호]]와 같은 팀이 됐다. 이로써 [[2005년]] 이후 6년만에 다시 [[퍼시픽 리그]]로 돌아와 등번호도 3번으로 정해졌다. 그는 연봉을 대폭 낮추는 등의 백의종군 모습을 보였지만 시즌 전 반발력이 적은 공인구로 교체해 찾아온 극심한 투고타저의 영향을 받아 2할대 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겼다. 하지만 팀의 꼴찌가 확정된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시즌 총 15홈런을 쳐 퍼시픽 리그 홈런 순위 8위에 오르는 기대 이상의 모습도 보여줬으나 타율은 리그 전체 최하위였다. 규정 타석 미달로 인해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2011년]] [[10월 21일]] 기자 회견을 열어 8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영구 귀국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내 복귀' 이승엽, 日서 기자회견 '굿바이, 오릭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출판사=스포츠서울|날짜=2011-10-21|확인날짜=2012-11-26|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7070317/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79943.htm#|보존날짜=2013-10-07|깨진링크=예}}</ref>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18871 이승엽, 와이프에게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자인가 보다] - 스포츠조선</ref> [[2011년]] [[12월 5일]] 연봉 8억원, 플러스 옵션 3억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복귀했다.
         * : [[이춘광]] (1943년생. [[전라도]] [[강진군]] 출신<ref>[http://www.dailyj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55 승엽 선수 아버지 이춘광씨, 고향 강진 방문], 데일리안광주전라, 2013년 3월 2일</ref>)
         * : [[김미자]] (1949~2007. [[전라도]] [[해군]] 출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471912 <프로야구> 승엽을 만든 숨은 주역], 연합뉴스, 2003년 10월 2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0280455 승엽 모친 ] - 뉴시스</ref>)
         * 한국스포츠연맹 선정 올해의 자프로선수상 (1999년)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오릭스 버펄로스 선수]][[분류: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분류: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0타점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분류:한국 프로 야구 400홈런 클럽]][[분류:한국시리즈 MVP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MVP 수상자]][[분류:KBO 장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출루율상 수상자]][[분류:KBO 득점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타점상 수상자]][[분류:KBO 홈런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광주 이씨]][[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지현(1983) . . . . 9회 일치
         || '''형제자매''' ||<(> 1 1녀 중 둘째 ||
         || '''자녀''' ||<(> 1 1녀[* 첫째 2013년생(딸), 둘째 2015년생(아들).] ||
         초기에는 [[박정아]]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데뷔는 이지현이 [[박정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는데[* [[1998년]]. 데뷔할 때 이지현은 중학생이었다. [[쥬얼리]] 데뷔는 [[2001년]].] 나이 순으로 [[박정아]]가 [[리더]]가 되어 버렸기 때문.~~내가 더 고참이야!!~~ 그러나 이후 1집에서 2집으로 사이의 [[쥬얼리]] 암흑기에 [[박정아]]가 홀로 [[박정아#s-2.1.1|동아시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인정하게 됐다고.
         [[쥬얼리]] 활동 시절에는 멤버 중에 가장 집안이 더럽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한 후 집의 독특한 규칙을 털어놨는데 편과 화장실을 따로 쓴다고 한다. 본인은 깔끔 떠는 성격인데, 변기만큼은 너무나도 예민하면서 변기를 공유하는 것을 안 좋아한다. 그래서 신랑과는 따로 쓴다고 1대100에서 밝혔다.
         나중에 자신이 올린 [[셀카]]가 [[리즈 시절]]에 비하면 지나치게 [[노안]]이 되어 [[성형]]을 과하게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2011년에 쥬얼리 후배들과 찍은 사진에서도 여파가 아 있는지 [[노안]]으로 보인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보형물 이식을 했다가 제거했다는데, 그 부작용+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한 주름살의 결과물인 듯.
         2015년 들어 택시, 안녕하세요, 1대100(1인), SNL 코리아(특별출연), 런닝맨, 동상이몽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예능 활동도 다시 활발해졌다. 또한 캐릭터가 '''편 때문에 속 썩는 아줌마'''(...)로 등장한 적도 있는데 이게 빈말이 아니었다. 사업가인 편이 하도 술을 좋아해서 매일 늦게 들어온다고... 런닝맨 X맨 특집에서는 [[당연하지]] 게임에서 [[김종국]]이 안부삼아 던진 '너 결혼했더라?' 한 마디에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2016년 6월 10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821557|수원지방법원 관계자]]는 "이지현이 최근 이혼 조정 중이다. 이지현 측이 먼저 신청했다"라고 밝혔다. 결국 2016년 8월 25일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449032|합의 이혼했다]]. 양육권은 이지현이 갖고 간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일부 [[찌라시]]에서는 이지현의 아이들을 ''''두 매'가 아닌 '두 딸'로 잘못 기재''' 했다 [[카더라]].
          * [[MBC]] [[코미디 하우스]]의 [[꽃보다 자]] 코너에서 여주인공 산차이역을 맞은 적이 있다. 대략 [[2003년]]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출연 기간을 아는 [[위키러]]가 [[추가 바람]].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9회 일치
          소녀는 "나자"라는 이름을 밝힌다. 고서는 아직 주저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 "고서"를 밝힌다. 나자는 귀여운 얼굴이면서 이름은 늠름하다고 칭찬한 뒤 여자인지 자인지 묻는다. 처음엔 달아나려고만 했던 고서도 이런 질문을 주고받는 동안 도망치지 않게 됐다. 나자가 다가오자 자신은 자라고 밝히는 고서. 나자는 "그 애"의 말과 똑같다고 역시나라고 한다. 그런데 고서는 [[멜리오다스]]처럼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찔러보더니 "가슴이 부드러운건 여자"라고 드립을 치다 뺨을 얻어맞는다.
          바트라는 진작부터 이 지하 공간에 대해 누나와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늘은 누나가 약속을 깨고 혼자 지하공간을 탐색하러 간 날이다. 나자는 거기에 대해선 간단히 사과한 뒤 "네 꿈 대로 지하에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기한 자애"와 만났다고 하는데 바트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 혼자 겨진 고서는 자신이 있는 "공동"을 살펴본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그에겐 리오네스도 다나폴도 모르는 이름이다. 그가 있는 곳은 거목과 바위가 뒤섞여 만들어진 이상한 공간이었다. 고서가 쓰러진 거목을 조사해 보니 적어도 3000년 전에 무너진 것이었다. 탐색을 마친 그가 결론에 다다른다.
          고서는 생전의 진짜 고서가 긴 "유언", 그리고 "선물"을 떠올린다. 고서의 이름을 되뇌이던 인형 고서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화제는 다시 선물로 돌아간다. 나자는 그녀가 즐겨 읽는 "멜도르" 이야기 시리즈를 가져왔다. 나자는 자기가 몸이 약해서 이런 모험이야기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멜도르는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주인공 멜도르가 그녀의 이상형인 모양이다. 고서는 책은 커녕 "이야기"라는 것도 잘 몰라서 나자가 "글을 모르면 대신 읽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녀가 잠시 말하는 동안 고서는 엄청난 속도로 독서를 마친다. 나자는 당연히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짜였다. 고서는 멜도르가 공주를 데리고 사신의 추격을 피하는 4장의 내용이 재밌었다고 정확한 소감을 밝히기까지 한다. 나자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아있었다.
          * 어느날 고서는 바트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고서는 감사받을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고 답하지만 바트라는 그의 존재로 인해 누나가 밝아졌다고 말한다. 고서는 말이 나온 김에 그의 "예지"능력에 대해 묻는다. 고서도 바트라가 그와 나자의 만을 예견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바트라는 때때로 예지몽을 꾸는데 그게 무서울 정도로 잘 맞아 떨어진다고 말한다.
          * 얼마 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은 사랑을 나누며 보낸다. 나자는 고서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가 "진짜 고서"의 꿈만이 아니라, 자신의 꿈도 이루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자는 고맙다는 말을 긴 채 잠들듯이 세상을 뜬다.
  • 장세현 (배우) . . . . 9회 일치
         | [[꽃보다 자 (2009년 드라마)|꽃보다 자]]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백석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2007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
  • 전인범 . . . . 9회 일치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 1녀 중 장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7년 2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문재인을 지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혔다.<ref name="b"/> 왜 문재인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문재인이) 저를 한번 보자고 그래서 궁금해서 만났다. 그 전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만나보니까 좋은 분이고, 지적이더라. 공부하는 분이고. 근데 그날 제가 기분 나쁜 소리도 많이 했다. (- 안보관을 지적했나) 음…. 하여튼 그 기분 나쁜 소리를 다 받아주더라.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설득하는 건 둘째고, 일단 잘 들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인범 중장의 전역식 때 전역사를 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책임자인 정호용을 고마운 선배로 언급한 것에 관해서는 “저는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잘못된 부분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분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아랫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한 거지, 5·18과 관련해 그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5·18에 대해서는 “일선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호 분하고 이야기를 하며 ‘저는 언젠가 광주 5·18묘역에 그때 죽은 군인들이 같이 묻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무도 모르잖나.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당시 군의 잘못이지 하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 특전사가 살인마처럼 비춰지는 건 바뀌었으면 한다. 하여튼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감옥에도 가고 그런 것 아닌가. 정호용은 그런 책임이 있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건 그분이 인간적으로 부하를 대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본받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그의 5·18에 대한 견해에 우파 언론인임에도 5·18을 반공적 민주화 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조갑제]]는 “여러 번의 국가적 수사와 조사에서 광주 사태 초기엔 상급 지휘부의 발포 명령 자체가 없었으며 현장 상황이 워낙 급하여 자위적 차원의 대응발포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물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전인범의 발언을 옹호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5656 제목으로 드러나는 동아일보의 末期 증세], 《뉴데일리》, 2017년 2월 10일</ref>
         * 2010. 2. [[경대학교|경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 손위처 : 심규형 (沈揆亨, 1942년 ~ 1992년, [[:en:Northrop F-5|F-5]] 조종사·[[대한민국 공군|공군]] [[대령]])
         [[분류:1958년 태어]][[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리라초등학교 동문]][[분류:대경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합동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
  • 정운용 . . . . 9회 일치
         |출생지 = {{국기나라|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 [[일동]]
         |친척 = '''[[정재학]]'''(할아버지) <br /> '''이숙'''(할머니) <br /> '''[[정종원]]'''(삼촌) <br /> '''[[정운철]]'''(사촌) <br /> '''[[정운익]]'''(사촌) <br /> '''[[정은정]]'''(조카)
         정운용은 대구 부호이자 민족자본은행의 개척자인 [[정재학]]의 장손으로 태어났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ref> 그의 모친 김인아는 정운용이 중학생이었던 1918년 타계했고 부친인 정응원마저 1933년 서거한 뒤 정재학 조부 밑에서 자랐다. 정재학은 3인 [[정종원]]과 장손인 정운용을 각별히 여겨 니혼대학 법학과, 메이지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보낸 뒤 3에게는 관료로 활동하도록 했고 맏손자에게는 은행경영 노하우를 전수했다.<ref>고승제, <<한국금융사연구>> (일조각, 1970) p.210~226</ref><ref>윤재실, <<팔도명인전>>, ( 진명사, 1979) p.211</ref>
         정운용은 조부인 [[정재학]] 대구은행장, 경상합동은행장 그리고 삼촌인 [[정종원]] 조흥은행장과 더불어 3대에 걸친 정씨 가문 은행장 배출이란 진기록을 겼다. 정씨 가문의 3명 행장 재임기간을 합치면 34년에 이른다.
         대구은행 설립자 정재학의 후손인 [[정종원]](3)과 정운용(장손)은 1957년 무렵 조흥은행의 주도권을 두고 동일은행계의 대주주였던 조선황실 외척인 민씨가문과 맞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흥은행은 일제 말 동일은행과 경상합동은행을 흡수한 한성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은행이다. 따라서 양대 대주주인 [[경상합동은행]] - [[대구은행]])계 정씨 집안과 동일은행계 민씨 집안 가운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정재학의 3 정종원이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던 1957년 3월말 실시 된 [[귀속주]]입찰에서 민씨 가문은 [[민덕기]]를 중심으로 계성(주), 휘문재단, 영보합명회사 및 민병도 당시 조흥은행 전무 등의 지분을 합쳐, 7만8000 주를 확보하며 4만6000 주에 그친 정종원, 정운용 가문을 압도했다. 그러나 민씨 가문의 주력 기업이었던 조선맥주의 경영악화로 인해 민씨가문은 조흥은행 주식을 팔아 긴급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민씨 가문은 1957년 하반기부터 1958년 상반기까지 조흥은행 주식을 대거 처분한다.<ref>동아일보 1957년 7월 20일 3면</ref> 조흥은행에서 소수주주로 전락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 조선맥주은 주세체납 등으로 은행관리로 넘어갔다.<ref>매일경제 1968년 7월 2일 7면 빚만 늘어가는 조선맥주</ref>
         앞서 민씨 가문은 일제 강점기 당시 조흥은행 대표취체역(대표이사)으로 [[민규식]]을 배출했다. 그러나 일본인 행장이 따로 있었고 실권은 없는 자리였다. 이어 해방 후 초대 한국인 조흥은행장은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이 맡았고 정재학의 3인 정종원이 5대 행장을 역임했다.<ref name="ReferenceA"/>
         [[분류:1904년 태어]][[분류:196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
  • 주현미 . . . . 9회 일치
         [[분류:원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여가수]][[분류:1961년 출생]][[분류:중화민국계 한국인]][[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분류:1985년 데뷔]]
         [[화교]] 3세[* 주현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에 한국으로 이민와서 자랐으므로 사실상 2세인 것이나 다름없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180412 주현미편에서 주현미의 친할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친할머니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할머니는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한 조선인 1세(그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인 맞음)인 것으로 추정한다. 주현미의 [[할머니|친할머니]]와 [[어머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현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 집안에서부터 이미 한국 문화 방식으로 자랐다고 한다. 따라서 오히려 주현미와 형제들은 처음 화교 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출신으로, [[전라북도]] [[원시|원]] 에서 4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하여 자란 [[중국인]][* [[중국]] [[산동성]] 모평현에서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지만, 당시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의 [[정치]] 및 군사적 상황에 의하여 [[대만]] [[국적]]이 되었다.] [[한의사]]였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참고로 주현미의 친할머니 역시 [[한국인]]이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따라서 주현미는 굳이 혈통을 따지자면 중국 [[쿼터]](1/4) [[혼혈]]인 셈이다. 대만 국적이었으나 결혼 후 편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현미의 동생들은 아직 [[중화민국]] 국적이라 한다.[* 한국화교는 [[타이완 섬]]과는 거리가 먼 [[산둥 성]] 출신들이며 단지 국적을 부여한 나라가 [[중화민국]]이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좀 꼬인 건 국부천대 때문. 물론 현재 화인들의 대부분이 귀화를 택하면서 중화민국 국적자는 줄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으로 소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 좀 비슷한 케이스인 외성인 출신 대만가수 [[등려군]]도 테레사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다. 등려군 역시 산둥 출신.~~틀린 정보이다 등려군 자신은 타이완 태생 부친은 하북성 모친이 산둥성 출신이다~~]
         편은 한국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상을 수상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참고로 [[경상도]] [[진주시]]의 시외버스 업체인 [[부산교통]]의 안내방송에 주현미 노래의 일부분이 BGM으로 나온다고 한다.[* 주로 "어제같은 이별"과 "비 내리는 영동교"가 주로 나온다.] 이외에도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같이 짜라자짜로 활동했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9회 일치
          제안을 받은 원수는 잠시 계산을 하더니 지크의 "임기"가 1년도 채 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지크는 그 점도 자신의 근거로 삼는다. 지크의 바로 뒤에 입석한 "콜트". 그는 짐승 거인 계승 확정자지만 지크는 일부러 그를 깎아내린다. 콜트가 자신의 힘을 전부 이어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이다. 원수는 그런 지크의 본심을 꿰뚫어 봤다.
          >은 1년, 목숨을 다 해 4년 전의 설욕을 하고 싶다는 건가?
          그에겐 지크를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지크는 이번에도 "과대평가"라며 웃어 넘긴다. 마가트는 거기서 좀 더 파고들어 "작전을 1년 만에 성공시킬 수 있다던데"하고 따진다. 지크는 그건 그저 자기 "임기"가 1년 았다는 말이었다고 둘러댄다.
          라이너는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인상을 찡그린다. 갤리어드는 형의 기억은 찾지 못했지만 "유미르라 불렸던 여자", 라이너와 함께 돌아온 유미르에 대해서는 알게 됐다. 그는 그녀의 기억을 이어받고 "거창한 이름이 붙은 불쌍한 여자"였다고 동정한다. 게다가 그가 턱의 힘을 돌려받게 된 것도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적어도 갤리어드는 그녀에겐 원한이 없었다. 라이너도 그 점에 동의한다. 갤리어드는 "넌 그 섬에서 뭘했냐? 의 도움만 받았다"고 책망한다. 라이너는 조용히 그것도 맞는 말이라고 대답한다.
          >그건 뭐냐? 꽤 믿음직한 자인 척하던데.
          그녀는 "차력의 거인". 거인일 때의 모습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흑발의 여성이다. 체구는 오히려 보통보다 작다. 그녀는 목발을 짚고 있는데 인간으로 돌아온게 두 달만이라 그 동안 2족 보행하는걸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녀가 걷는게 불편한건 분명하다. 그녀는 라이너의 맞은 편 침대에 앉는다. 그리고 가비 일행이 라이너를 쭉 걱정하고 있었다며, 일어날 수 있게 됐으면 얼굴을 보여주라고 권한다. 라이너가 그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간다. 둘만 게 되자 피크는 피곤하다며 벌렁 눕는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다. 갤리어드가 문득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고 하는데, 피크는 "전장에선 언제나 같이 있었지 않냐"며 무슨 소리냐고 핀잔한다. 갤리어드는 그 말에 대신에 "피곤하다"고 했던 말에 붙여 "한동안은 쉴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피크는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일행은 인근에서 포로들이 배로 옮겨지는 장면을 본다. 하나같이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몰골이다. 모두 "무구의 거인"을 상대하고 살아은 포로들로 본국에 돌아가서는 거인병기의 공포와 비인도성을 설파하고 다닐 것이다. 그건 엘디아인에 대한 여론을 더 악화시킬 것이며 전세계에서 유미르의 백성들을 죽여버리자고 떠들 것이다. 우도는 분한 듯이 물건을 걷어찬다. 그때 누군가가 우도의 행동을 나무라며 그런데 화풀이하지 말라고 한다. 라이너였다. 침울해졌던 소년 소녀들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지며 그에게 뛰어간다. 라이너는 그들의 무사를 확인하며 한 사람씩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가비가 특히 라이너를 좋아하는데, 파르코는 대조적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쓰다듬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일행이 저기에 동참하는건 아니다. 적어도 라이너와 파르코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라이너는 저 광란을 보면서 "엄청 떠받들어준다"고 중얼거린다. 옆의 파르코는 형에게 술을 먹인데다 가비도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성격이라 그렇다고 대꾸한다. 라이너는 그런거야 어쨌든 "다음 갑옷의 계승자"는 가비가 될 거 같다는 말을 꺼낸다. 라이너가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파르코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시무룩하게 동의하며 "당신의 은 임기가 2년이니까"라고 대답한다.
          라이너의 시선이, 뒤따라 파르코의 시선이 가비에게 향한다. 동지들의 환호를 받으며 최고조에 달한 그녀. 파르코가 이를 악문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에서 벗어난 결연한 자의 얼굴로 바뀐다.
  • 최은석 (배우) . . . . 9회 일치
         * [[1999년]] 《[[아가씨와 건달들]]》 ... 베니 사우드스트릿 역(자 조연)
         * 《[[공주의 자]]》 (2011년, KBS2) - 한성부 부장 역
         * 《[[인생은 아름다워 (2010년 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2010년, SBS) - 조식의 약혼자 역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9회 일치
         [[시코쿠]] 쪽에 있는 토사를 본거지로 한 가문. 난이도 쉬움. 튜토리얼은 초소카베 가문으로 진행된다. 토사의 원래 주인이던 이치조 가문을 반쯤 쫓아낸 상태이기에 이치조 가문의 반란군이 존재한 상태로 시작된다. 동쪽에 있는 미요시 가문과 무역 중이며 북쪽에 있는 코노 가문과 전쟁 중.
         [[큐슈]] 서쪽에 있는 사츠마를 본거지로 둔 가문. 난이도 쉬움. 북쪽에 있는 사가라 가문과 무역 중이며 동쪽에 있는 이토 가문과 전쟁 중이다.
         일본의 명문 가문 중 하나였던 미나모토 가문에 뿌리를 둔 가문. 미나모토 가문 만큼은 아니었지만 시마즈 가문 또한 이름있는 가문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센고쿠 시대에서 살아아 임진왜란에도 참전하고, 메이지 유신이 벌어지기 전까지 본거지인 사츠마를 지배했다. 그러니까 사무라이의 몰락에 나오는 사츠마의 번주들이 얘네 후손들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상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영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영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현대의 나고야 근처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어려움. 본거지 오와리. 동쪽에 있는 도쿠가와 가문, 그 동쪽에 있는 이마가와 가문, 오다 가문의 북쪽에 있는 사이토 가문과 죄다 전쟁중이다. 오다 모리타카의 반란군도 있다. 서쪽에 있는 기타바타케 가문과는 무역 관계. 주변 가문에게 존경받지 못해 외교에 패널티가 있다.
         아시가루 전체에 보너스가 붙는 가문. 아시가루의 가장 큰 약점인 유리멘탈마저 오다 가문에는 통하지 않는다. 들이 사무라이 슬금슬금 들고 나오는 순간에도 오다 가문은 아시가루에 장군만 붙여서 굴려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유지비 개꿀.
         오다 가문으로 플레이를 시작하면 세 가문에게 다구리부터 당하고 시작한다. 있는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 다구리에서 살아는게 최우선 목표다. 인공지능이 잡으면 빠르게 도쿠가와 가문을 멸망시킨 다음 자신도 멸망당한다.
         혼슈 최북단에 위치한 가문. 난이도 보통. 본거지는 겁나 넓은 이와테. 서쪽에 있는 모가미 가문과 전쟁 중이며 쪽에 있는 하타케야마 가문과 무역 관계. 다테 타네무네가 이끄는 반란군이 있다.
          혼슈의 시나노 부를 거점으로 차지하고 있는 가문. 게임 시작시 다이묘는 키소 요시야스.
  • 트로피코 4 . . . . 9회 일치
         >Tropico 4는 Facebook과 트위터 기능을 내장해 새로운 단계의 소셜 네트워크를 선보입니다. 게임 내에서 즉시 트위터에 글을 기고, 임무 및 도전 과제 완수 내역을 바로 알리십시오. 번성하는 섬의 풍경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여러분만의 꿈의 도시를 Tropico 4의 Facebook 페이지에 올릴 수도 있으며, 온라인 순위표를 통해 독재자 순위를 겨룰 수도 있습니다.
          * 녀 각하를 위한 멕시코 모자 추가
          * 녀 각하를 위한 기술공 모자 추가
          * 성 각하를 위한 시장 의상과 링컨 모자 추가
          * 성 각하를 위한 자경단 의상과 모자 추가
          * 성 각하를 위한 돌팔이 의사 의상과 해골 마스크 모자 추가
          * 성 각하를 위한 당 지도자 의상과 우샨카 모자 추가
          * 성 각하를 위한 화학물질 방호복 의상 추가
          * 세계 멸망에서 살아는 "폭탄을 사랑하게 된 이유" 미션 추가
  • 현아 . . . . 9회 일치
         [[현아]]는 1992년 6월 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아]]의 아빠는 예전에 연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현아]]에게 "아빠 대신 네가 해보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에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일곱 살때 엑스트라로 활동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웹 인용|저자=ARENA|제목=현아의 시간 - GUILTY PLEASURE|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36&contents_id=65194|출판사=네이버 매거진|날짜=2014-08-01|확인날짜=2015-06-16}}</ref> 초등학교 1, 2학년때 대학로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고, 이를 계기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네이버매거진"/> [[현아]]는 춤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댄스 학원을 다녔다.<ref name="rta" /> 같은 시기 TV로 [[싸이]]의 〈새〉 안무인 새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ref>{{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현아 싸이 언급 "초등학교 3학년 때 싸이의 '새춤'보고 꿈을 키웠다"|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30531.990010724435354|출판사=영일보|날짜=2013-05-31|확인날짜=2014-04-24}}</ref> [[동명여자중학교]] 시절 [[현아]]는 춤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었다.<ref name="rta">{{뉴스 인용|저자=홍은미 기자|제목='강심장' 김현아, 머리에 X만 찼냐→춤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춤사랑 공개'|url=http://www.tvdaily.co.kr/read.php3?aid=128268894982923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날짜=2010-08-25|확인날짜=2010-11-21}}</ref>
         이후 [[현아]]는 [[JYP 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원더걸스]]의 두 번째 멤버로 합류했고 그룹에서 랩퍼를 맡았다. 2007년 2월 [[원더걸스]]의 데뷔 싱글 〈[[The Wonder Begins]]〉를 발매했고, 타이틀 곡은 〈Irony〉였다. 파워풀한 랩과 춤으로 "야생마"라는 별명도 얻었다.<ref name="as">{{뉴스 인용|저자=안우 기자|제목=‘원더걸스’ 김현아, 건강상의 이유로 팀 탈퇴|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7301751501137&ext=na|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7-30|확인날짜=2008-12-31}}</ref> 2007년 5월 24일에는 [[안소희|소희]], [[브라이언]]과 함께 《[[쇼! 음악중심]]》 MC로 발탁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소희·현아 ‘쇼!음악중심’ 새MC|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5242109433&sec_id=540101&pt=nv|출판사=스포츠경향|저자=조상인|날짜=2007-05-24|확인날짜=2014-06-29}}</ref> 하지만 MC에서 하차하고 나서 7월 [[원더걸스]]의 광고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탈퇴설이 돌았다. 이에 대해 소속사측은 "멤버 교체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문제가 있다"며 요양이라고 말했다.<ref name="세계일보">{{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멤버교체 위기 -­ 현아 이탈하나|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7/31/20070731002528.html|출판사=세계일보|저자=이혜린|날짜=2007-07-31|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원더걸스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현아, 건강상 이유로 팀 탈퇴|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73016565270766&type=1&outlink=1l|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날짜=2007-07-30|확인날짜=2014-06-29}}</ref> 실제로 [[현아]]는 [[만성장염]]을 앓고 있었고 세 번이나 탈진으로 쓰러지는 등 부모님의 반발을 샀다.<ref name="세계일보"/>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2011년 12월에 [[현아]]는 같은 소속사의 가수이자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멤버 [[장현승]]과 함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 (음악 그룹)|트러블 메이커]]를 결성했다.<ref>{{뉴스 인용|제목='뮤직뱅크' 장현승-김현아 '트러블메이커' 컴백 예고|확인날짜=2011-11-26|url=http://reviewstar.hankooki.com/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013323|출판사=리뷰스타|저자=김혜정|날짜=2011-11-25}}</ref> 트러블 메이커는 12월 1일 첫 미니 앨범 《[[Trouble Maker (EP)|Trouble Maker]]》를 발매했고, 동명의 타이틀곡 〈Trouble Maker〉로 활동을 시작했다. 〈Trouble Maker〉는 좋은 반응을 얻으며 [[K-Pop 빌보드 핫 100]] 최고 2위까지 올라갔고,<ref>{{웹 인용|제목=BILLBOARD K-POP HOT100 12월 3주차|출판사=[[빌보드]]|url=http://www.billboard.co.kr/v1/chart.php?t=3&query=&pubdate=2011-12-14|확인날짜=2011-12-12}}</ref> [[가온 디지털 차트]]에서는 1위를 했다.<ref>{{웹 인용|제목= 2011년 12월 다섯째주 디지털 종합차트|출판사=가온 차트|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total/list.gaon |확인날짜=2011-12-12}}</ref> 그러나, 〈Bubble Pop!〉과 똑같이 공연 중 안무 선정성 문제가 일어나 결국 안무를 수정했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11120913181888325&type=1&outlink=1</ref> 2012년 3월 현아는 [[스파이시칼라]]와 손을잡고 현아 위드 스파이시칼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50년대 낙관주의와 60년대 레트로 빈티지 무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자신의 이름 내건 브랜드 론칭|확인날짜=2012-03-15|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203141127323&mode=sub_view|출판사=bntnews|저자=이형준|날짜=2012-03-14}}</ref> 2012년 여름에는 [[싸이]]의 노래 〈[[강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 강스타일, 유재석 노홍철 김현아 ‘3인 3색 댄스 화제|url=http://www.interview365.com/news/27962|출판사=인터뷰365|저자=장민혜|날짜=2012-07-13|확인날짜=2012-08-07}}</ref> 2012년 8월 15일에는 〈강스타일〉을 여자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싸이·김현아, '오빤딱내스타일' 뮤비공개..섹시·상큼↑|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081512060525950&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길혜성|날짜=2012-08-15|확인날짜=2012-08-05}}</ref> 〈오빤 딱 내 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투브]] 조회수 1억 건을 넘기며 [[소녀시대]]의 〈[[Gee (노래)|Gee]]〉를 제치고 〈강스타일〉에 이어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이 본 동영상 한국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오빤 딱 내 스타일' 1억뷰 돌파..싸이 효과!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2102111121506368&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윤성열|날짜=2012-10-21|확인날짜=2012-10-21}}</ref> 2012년 10월 21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MELTI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Ice Cream〉은 [[가온 디지털 차트]] 1위에 올랐고, [[코리아 K-Pop 핫 100]]에서는 최고 6위에 올랐다. 2012년 12월 29일 SBS 《[[SBS 가요대전|가요대전]]》을 앞두고 현아는 [[효린]], [[전효성]], [[니콜 (1991년)|니콜]], [[나나 (가수)|나나]]와 함께 대즐링 레드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27일 [[용감한 형제]]와 똘아이박이 작곡한 〈이사람〉을 발매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효린]]·[[전효성]]·[[니콜 (1991년)|니콜]]·[[나나 (가수)|나나]], SBS '가요대전'서 대즐링 레드 결성|url=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12280748241118|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최두선|날짜=2012-12-28|확인날짜=2014-01-08}}</ref>
         |rowspan="1"|여자 가수상<ref>{{뉴스 인용|url=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4120319035311723|제목='2014 MAMA' 태양-아이유, ·녀 솔로상|출판사=스포츠투데이|저자=서현진|날짜=2014-12-03|확인날짜=2014-12-05}}</ref>
         [[분류:현아]][[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원더걸스의 일원]][[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아이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인왕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중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홍기(영부인) . . . . 9회 일치
         할아버지가 한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웃어른으로부터 한문을 배우며 교양을 쌓았으나 정규 교육기관에는 다니지 않았다. 다만 편인 최규하 전대통령이 주일대표부에 근무하던 8년간 일본어를 공부해 능숙하게 구사하였다고 하며, 주말레이시아 대사 부인으로 있을때 영어를 익혔다고 한다.
         [[성균관]] 박사인 [[최규하]]의 할아버지인 최재민씨와 한학자인 홍기여사의 할아버지간 교류가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의 중매로 19살 되던 1935년에 연하의 최규하와 결혼하였다. 이후 편 최규하가 도쿄고등사범학교와 만주 [[대동학원]]에 유학하던 시절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고 시가(媤家)인 [[강원도]] [[원주시]]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생활했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풍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화로 최규하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향후 영부인 활동 구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기여사가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보다 못한 청와대 관계자가 화제를 전환시켜 여사께서 청와대 김장을 직접 모두 담갔다고 소개하자, 그제서야 본인도 '김장 30포기를 직접 담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기자들도 화제를 돌려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TV나 보지요'라고 답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부인치고 너무 생각 없어 보일 수 있으나, 바로 앞 뒤 영부인이 좋든 나쁘든 워낙 말이 많았던지라, 상대적으로 (공무원 아내다운) 홍기 여사의 소박하고 다소곳하며 서민적인 분위기가 당시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인상을 겼다.
         실제 홍기 여사는 청와대 시절 양로원과 보육원 지원에만 앞장섰을 뿐 대외활동을 삼갔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조용한 평소 이미지와 달리 편 최규하에게 짜증을 내는 등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으며 한복 저고리로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사저인 서교동 집은 홍기 여사가 “살 만하면 그만”이라며 못 고치게 해 루한 편이라고 한다. 실제 홍 여사가 사망할 당시 홍 여사가 10년 이상 사용하던 그릇장, [[외교관]] 시절 사용하던 유리잔들, 생전에 사용하던 돌절구와 오이지 누르는 돌, 연탄보일러, 빨래 물을 긷는 펌프가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슬하에 2 1녀를 두었다.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았으며 2004년 사망하여 고향에 안장되었다가, 2006년 편인 [[최규하]]가 사망하자 편과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 합장되었다.[* 편과 더불어 21세기에 사망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부부가 되었다. 후임대통령들의 영부인들은 2018년 현재 모두 생존.]
  • 홍세화 . . . . 9회 일치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79년]] [[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 ([[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의 전신)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1947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서울특별자유시]](現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ref>1948년 이후 서울특별시로 명칭이 바뀐다.</ref>[[충청도]] [[아산군]] [[염치읍|염치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이후 [[서울창경초등학교|창경국민학교]],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1977년]]부터 '민주투위' 조직과, '민전' 조직에 가담하였고, 이후 무역회사에 입사,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건너갔다.
         {{참고|민전 사건}}
         그 해 [[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망명자로 인정받았고, [[19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망명생활을 하며 집필, 기고활동에 종사하였다. [[1995년]] 자서적 고백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발간하고, [[1997년]] 《[[르 몽드]]》에 실린 기사 묶음인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를 번역하여 출간했으며, [[1999년]] 문화비평 에세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북을 가른다]]》를 펴냈다.
         *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북을 가른다]]》
         * [[민전 사건]]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
  • 홍진기 . . . . 9회 일치
         | 배우자 = [[김윤]]
         '''홍진기'''(洪璡基, [[1917년]] [[3월 13일]] ~ [[1986년]] [[7월 13일]])는 [[대한민국]]의 관료이자 언론인이다. 아호는 '''유민'''(維民)<ref>{{한국민족문화대백과|E0064442}}</ref> 배우자는 [[김윤]](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딸)이다. 당시 천재라 불리었으며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이 일본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선인 차별정책에 의해 그의 꿈인 교수가 될 수 없게되었고 이후 법을 공부하여 전주에서 판사를 역임하였다.
         | 배우자 || [[김윤]] || [[1924년]] [[6월 25일]] || [[2013년]] [[6월 5일]] || [[원불교]] 원정사
         | 장 || [[홍석현]] || [[1949년]] [[10월 20일]] || || [[중앙일보]] 회장
         | 차 || [[홍석조]] || [[1953년]] [[1월 8일]] || || [[BGF리테일|보광훼미리마트]] 장, 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3 || [[홍석준]] || [[1954년]] [[9월 17일]] || || [[삼성SDI]] 부사장
         | 4 || [[홍석규]] || [[1956년]] [[1월 15일]] || || [[보광]] 대표이사
         [[분류:혁명재판 기결수]][[분류:1917년 태어]][[분류:1986년 죽음]][[분류:한국의 일제 부역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무학초등학교 동문]][[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이승만]][[분류:양 홍씨 (당홍)]]
  • 황상경 . . . . 9회 일치
         * [[2018년]] 《[[챔피언 (2018년 영화)|챔피언]]》 - 부산커플 역 (우정출연)
         * [[2017년]] 《[[루시드 드림 (영화)|루시드 드림]]》 - 기자 역
         * [[2009년]] 《[[나는 곤경에 처했다!]]》 - 연인
         * [[2008년]] 《[[초감각 커플]]》 - 공연 티격태격 커플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Crusader Kings 2/종교 . . . . 8회 일치
          * 성은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3명의 첩을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3명의 첩을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3명의 첩을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3명의 첩을 둘 수 있음
          * 성은 최대 3명의 첩을 둘 수 있음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8회 일치
         K리그는 2011시즌까지 상당한 잡음이 일어왔었는데, 그 잡음 중 하나가 바로 관중 수 집계에 관한 문제였다. 당시 K리그에서 성적은 좋지만 인기가 정말 없기로 유명했던 구단으로 성 일화 천마를 꼽을 수 있었는데, 이 성의 홈 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수용 가능 인원은 2만여명이 넘지만,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러 들어온 관중은 2000여명이 채 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헌데 경기장 전광판에서는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 수를 발표하는 걸 보면 4,000 ~ 5,000명을 발표하는데... 이건 경기장에 최소한 20~25%는 채워져야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방문한 팬들조차 갸웃거릴 정도였다.[* 가령 2010시즌 경과의 홈 경기에서 당시 발표로는 50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결코 그 정도로는 아니었다.]
         이게 성만의 문제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성이 성적과 흥행이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곡선을 그려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많아 그렇지 다른 구단들도 경우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나 실 집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을 예시로 든 것 뿐이지만, 이는 서울이나 수원, 전북과 같은 당시 강호들도 껴안고 있는 문제였다. 자체적으로 실 관중 집계를 한다고 했으나, 엄밀성을 따졌을 때 정확한 집계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도 없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 구단들이 집계하여 통보한 결과를 바탕으로 K리그 관중 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와 같이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76&aid=0002051148|"허수가 많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일부 구단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였다.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실 집계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링크한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실 검표를 한다고 했으나 모든 경기를 실 집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실 집계에 대한 시행기준도 구단마다 제각각이라 통일성조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잘못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지극히 높고, 또 이런 자료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니 구단의 어떠한 활동이나 연맹의 정책이 제대로 나타나고 있을 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지표인 "관중 수"에 대한 신뢰성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이는 K리그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며, 그간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구단들과 연맹이 대처해 왔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례로 게 되었다.
         특히 무료티켓을 어느 정도 뿌렸는지 팬들이 어림으로나마 짐작이 가능할 수 있었기에 팬들이 구단에게 공평함과 내실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로 자리매김했다. 2016시즌 기준, 수원 삼성의 경우는 무료티켓을 거의 발행하고 있지 않아 실제 관객수 당 지불비용이 가장 높은 "객단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는 오히려 평균관중이 줄었음에도 입장 수익이 올라가는 대표적인 신기한 사례로 을 수 있었다.[* 무료티켓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연맹의 요청으로 군경활동의 사기진작 차원에서 구단은 무료티켓을 발행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각 연고지에서 지원하는 유소년 클럽의 경험 향상차원에서도 매 경기마다 무료티켓을 일정 이상 발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거의 각 구단마다 경기당 최소한 수백장 정도 무료티켓을 발행할 수 밖에 없다. 팬들도 이런 구단의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큰 문제 없이 수긍하고 가는 편이다.]
  • 경기도 . . . . 8회 일치
         [[2017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경기도의 각 시와 인구와 면적은 다음과 같다. 인구는 12,783,741명이고 여비율은 1.01로 전반적인 [[성비|초]] 지역이다. 시군별로는 [[포천시]] (1.11)와 [[연천군]] (1.11)가 가장 높고, [[시흥시]] (1.10), [[화성시]] (1.07),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06), [[오산시]] (1.06), [[안산시]] (1.05), [[안성시]] (1.05), [[가평군]] (1.05), [[이천시]] (1.04), [[안성시]] (1.04), [[양주시]] (1.03), [[파주시]] (1.03), [[양평군]] (1.02), [[여주시]] (1.02), [[수원시]] (1.01), [[하시]] (1.01), [[김포시]] (1.01), [[양주시]] (1.00), [[부천시]] (1.00), [[의왕시]] (1.00), [[구리시]] (0.99), [[군포시]] (0.99), [[동두천시]] (0.99), [[안양시]] (0.99), [[용인시]] (0.99), [[광명시]] (0.98), [[성시]] (0.98), [[고양시]] (0.97), [[의정부시]] (0.97), [[과천시]] (0.95) 순으로 높다.
         [[성시]]''' || 전체 || 城南市 || 396,541 || 973,199 || 2.45 || 141.68
         [[양주시]]''' || 南楊州市 || 253,369 || 664,044 || 2.62 || 458.05
         [[하시]]''' || 河南市 || 88,810 || 221,688 || 2.50 || 93.04
  • 곽성문 . . . . 8회 일치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제17대 총선]]||[[대구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중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17대||[[한나라당]]||{{막대|한|6|3|0}} 63.0%||78,22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대구 중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제18대 총선]]||[[대구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중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18대||[[자유선진당]]||{{막대|선진|1|7|3}} 17.3%||11,430표||3위||낙선
         |전임자 = [[백승홍]](대구 중구)<br/>[[현승일]](대구 구)
         |직책 = [[대구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대구 중구]]·[[대구 구의 국회의원|구)]]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선진통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권희동 . . . . 8회 일치
         || '''학력''' || 경주동천초 - 경주중 - [[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 - [[경대학교|경대]] ||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신생 팀 [[NC 다이노스]]에 9라운드 전체 86순위로 입단하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00&article_id=0000000013|2012년 인터뷰]]][* 여기에 썰이 하나 있는데 권희동이 그날 당시 지명이 안 될 줄 알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는데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다시 잤다는(.....)썰이 있다.] NC에서 2군 시절 모교인 경대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박으뜸|찍은 선수 2명 중 하나]]이다. 사실 권희동의 경우 스카우터 사이에선 타격은 좋으나 수비력은 물음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공포의 1할 타자, SK만 만나면 수비요정~~
         그 외에도 군 문제 또한 과제로 았는데, 인천 아시안게임을 노리기에는 아직 보여준 게 적은데다 이재학과 나성범이 팀내에서 1차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에 국대 승선보다는 상무or경찰청 입대를 노리는 것이 수월할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7월 15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BO 퓨처스 올스타전|퓨처스 올스타전]]에서 솔로 홈런과 2루타를 쳐내며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또한 7회 수비에서는 멋진 다이빙 캐치도 선보였다. 올스타전 MVP까지 노려볼 만 했으나 [[신성현]]의 무려 5타점을 쓸어담는 활약으로 수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날 기준 복귀까지 68일 은 시점에서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는 충분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수비는 코너 외야수로서는 좋은 편. [[경대학교|경대]] 시절 외야 수비 능력은 낮다고 평가받았었지만 프로에 와서는 집중력이 있고 실책이 적어 오히려 수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의 호수비가 아주 인상적이다. 코너 외야수뿐만 아니라 [[중견수]]로도 상당히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정말 급할 때는 [[포수]]도 가능하다. 주력/송구 능력은 보통.
          * 경대 야구부의 김용위 감독은 권희동이 대학 시절에 선수와 목회자의 길에서 방황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저 야구를 하기 싫은 마음에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http://www.ncdinos.com/ncboard/storyview?seq=2346&board_id=story|자랐다고 한다.]]
  • 길용우 . . . . 8회 일치
         ||출생||<(> [[1955년]] [[11월 4일]] [[전라도]] [[영암군]] ||
         ||수상||<(> 2011년 MBC 드라마대상 연속극부문 자 황금연기상 ||
         [[반짝반짝 빛나는]]의 황봉 역처럼 망가지는 역보다는 주로 점잖은 중년 신사 역으로 훨씬 더 많이 출연하였다.
         이에 길성진은 "손님 또는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일반 대중에 공개된 옥상에 자발적으로 올라가 음식물을 취식한 것이지, 옥상에서 영업한 사실이 없다"며 소송을 냈다. 또 구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용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 판결 조사 결과 "당시 건물 옥상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비치됐고 조명도 설치됐으며 옥상에 가기 위해선 해당 맥줏집 내부를 통과해야만 한다"며 "단속을 전후해 건물 옥상에서 나오는 음악·이야기 소리로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된 점을 들어 불법 영업을 옥상에서 했다는 증거가 된다라고 짚었다.
         결국, 2017년 11월. 법원에게 과징금은 정당하며 "구청의 처분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이웃에 대한 피해 방지 등의 공익이 길씨 등이 입게 될 불이익보다 가볍다고 할 수는 없다"며 "구청이 재량권을 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 [[넝쿨째 굴러온 당신]] - 방귀의 양부 역
          * [[반짝반짝 빛나는(드라마)|반짝반짝 빛나는]] - 황봉 역
         [[분류:한국 배우]][[분류:영암군 출신 인물]]
  • 김상조 . . . . 8회 일치
         6월 4일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전성인 교수가 언론과 야당의 의혹공세를 반박하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97|김상조를 위한 변명]]이라는 지지글을 발표했다. 이후 전 교수의 주도로 선, 후배, 동료 경제학자 및 사회 각계 각층의 498명이 김상조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7664.html|#]] [[주진형]]의 말에 의하면 하루 짓한 기간 동안 500명 가까이 함께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전 교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보다못해 지지 선언까지 내는 것 자체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 두 번째 사례인 1999년 2월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아파트를 거쳐 2002년 강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로 주소지를 변경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 예일대 연수를 가면서 2004년 8월부터 다시 7개월간 목동 현대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겼다. 이어 귀국한 2005년 2월 은마아파트로 주소지를 다시 변경했다. 중3 아들이 고교 진학을 앞둔 시기였다. 김 후보자 측은 “후보자가 해외연수 중 전세로 살던 은마아파트를 비워두고 우편물 등을 받아두기 위해 목동의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해 주소지만 잠시 옮겨놓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5년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안식년을 마치고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처가 대장암 2기 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면서 “그때 수술한 병원이 강의 모 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은마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603004011|관련기사]] 이에 청문위원들은 해당 건에 대해 머쓱해 했다고 한다.
         현재 김상조 후보자 측에서는 지원자가 1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채용되었다고 해명하였다.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19766|#]] 이코노미 뉴스에서는 당시 조 씨의 이력서를 공개하였는데, 주장대로 토익 점수가 1점 미달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외 능력에서는 TESOL과 TEFL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였으며, 해외 거주 기간이 2년이 넘는다. 때문에 옹호하는 네티즌 측에서는 당연히 다른 후보가 있으면 모르되, 이 정도 자격증 및 경험 보유자는 학원을 가도 3천 이상의 연봉을 받는 수준이며, 사실상 취업 비리가 아니라 하향 지원 내지는 재능 기부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학교 입장에서도 학기 시작 전에 강사를 구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아내는 자기 입으로 자기 재벌 저격수의 별명을 가진 편 이름을 들에게 제대로 말하고 다니지 못한다면서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국제노동기구에서 근무하는 이상헌 박사가 이와 관련해 용어상의 혼선이라는 글을 겼다 [[https://www.facebook.com/sangheon.lee.549/posts/1697202560293089?pnref=story|링크]]
         2000년 8월, 과거 자신이 연구자로 참여하였던 정부 용역 보고서를 그대로 베껴 논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627448#homec|관련기사]] 표절이라 하면 의 것을 베끼는 것만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것을 베껴도 표절이다. 그리고 상당 부분 페이지가 그대로 옮겨졌다면, 현재 내용상으로는 표절로 볼 수 있는 것이 맞는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한 유일한 주체다. 그 힘을 오용하는 삼성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다.[* [[최순실 특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이재용·박상진·최지성·장충기·황성수|공판]]에서 이 말을 인용했다.]
  • 김성곤 . . . . 8회 일치
         ||<#796E65> {{{#white 가족}}} ||부친 김광도[br] 모친 김봉옥[br] [[배우자]] [[류원정|성곡 류원정]][br] 슬하 4 2녀||
         박정희의 친위대를 자처하면서 3선개헌에 회의적이던 김종필계와 대다수 공화당 인사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3선 개헌]]을 성사시켰다.[* 3선개헌이 처음 불거졌을때 김종필을 선두로 해서 대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장기집권한 이승만의 최후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9년부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회유, 협박해서 결국 모두 찬성으로 돌려놨다. 당내에 막강한 독자계보를 가지고 있던 김종필을 압박하는데 선봉에 선게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억]], [[길재호]] 4인방][* 한때 60명이 넘던 공화당내 개헌반대파 국회의원은 결국 3명 [[정구영]], [[예춘호]], [[이만섭]]만이 았고, 결국 정구영-강제 정계은퇴, 예춘호-제명, 이만섭-낙선으로 모두 숙청되었다. 예춘호는 야당으로 넘어가서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만섭은 야인으로 지내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전두환]]의 집권 이후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총재로 재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백억]], [[길재호]]와 함께 소위 4인체제로 박정희를 대리해서 공화당을 관리하였다. 특히 [[재벌]]에게 해외차관과 정부발주공사의 10%를 무조건 자신을 통해서 상납하게 하면서 ~~[[뇌물]]의 제도화~~ 정권의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재벌,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그가 [[쌍용그룹]] 회장(재벌총수), 동양통신 사장(언론인)이면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정치인)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한 나머지 1971년 민주공화당의 김진만, 백억, 길재호 등과 함께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킨 '''[[10.2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박정희 분노를 산 김성곤 회장은 [[길재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랑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범죄)|고문]]을 당하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당시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이 뽑힐 정도로 수모를 당했고, 심지어 시중에는 개처럼 두들겨 맞아서 생으로 변을 지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오죽했으면 신민당에서 문제삼으며 정권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살해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3선 개헌 이후에 소위 4인체제의 힘이 커지자 기회만 보고 있던 박정희가 항명파동을 계기로 싸그리 숙청해버린 것이다. 집권당 국회의원도 박정희한테 반대하면 잡혀가서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본 이후에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과 정권내에는 박정희한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고 완벽한 1인 독주체제가 된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종신집권 의욕을 보인 [[10월 유신]] 때는 집권세력 내에선 전혀 반대가 없었다.
         유족으로는 장 [[김석원(기업인)|김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차 김석준(쌍용건설 사장), 삼 김석동(전 쌍용증권 사장)이 있다.
  • 김승목 . . . . 8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가(佳南)이다. 2015년 [[췌장암]]으로 별세한 1945년생 영화배우 [[진도희]]의 사촌 오빠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부산직할시 [[서구(부산)|서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영삼과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박찬종]]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였다. 1974년 [[정일형]] 등이 화요회라는 계보를 창설하자 화요회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직할시 [[구(부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이기택]] 후보와 민주정의당 [[유흥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1978 ||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구(부산)|구]]) || || || '''당선'''[* 민주공화당 [[김재홍(1932)|김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 || ||
         || 1981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해운대구]]-구) || [[민주한국당]] || || '''당선'''[* [[민주정의당]] [[이흥수(1928)|이흥수]] 후보와 동반 당선] || ||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직할시 [[해운대구]]-구) || [[민주한국당]] || || 낙선 ||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8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은 사람을 감자라고 자기최면을 걸지 않으면 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
          * [[미도리야 이즈쿠]]는 세 명이 참가했던 웅영고 중계를 본적이 있지만 딱히 인상적인 기록을 기질 않았다.
          * [[아이자와 쇼타]]는 그가 명실상부한 "넘버1에 가까운 자"이라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단 몇 초만에 A반 인원 대부분이 K.O당한다.
          *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얼굴을 알아본다. 어제 쓰레기장에서도 나타났지만, 무엇보다 이전 웅영제 때 그가 참가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당시 Tv 중계로 보고 있었는데 성적이 대단한건 아니었지만 "묘한 임팩트"를 긴 인물이었다. 그 옆에 있는 두 사람도 그때 보긴 했지만, 당시엔 특별히 높은 기록을 기진 않았다. 그런 그들이 올해에는 빅3. 미도리야는 이들이 어떤 개성을 구사할지 궁금해졌다.
          * 이대로는 강연이고 뭐고 진행이 안 된다. 아이자와가 짜증을 내자 마지막으로 아있는, 미도리야와 만났던 선배가 "안심해주세요"라고 나선다. 그런데 그는 앞뒤없이 "전도!"라고 외치며 학생들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취한다. 너무 뜬금없어서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있자 "다난"이라고 해야지 않냐며 웃어넘긴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 뿐이라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가장 No.1에 가까운 자야.
          그가 A반 태반을 제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5초 짓. 여유롭게 벗겨진 바지를 입는 시간까지 포함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8회 일치
          * 둘에겐 철포옥을 공략할 공격수단이 전무, 왜소한 자의 말대로 "창과 방패 대 방패와 방패"의 이상한 대결이 되고 말았다.
          * 사무소 책임자인 패트껌 역시 이들의 걱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확실히 타마키는 네거티브를 입에 달고사는 지라 후배들의 걱정을 사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런 거야 어쨌든 "동료를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패트껌이 "등을 맡겼으면 믿고 맡겨두는게 자!"라고 일갈하자 키리시마가 바로 태세전환한다. "선배라면 괜찮아!"라고. 미도리야는 참 잘 휩쓸리는 사람이라 평한다.
          마침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의혹을 표시한다. 이 지하시설과 융합된 자, [[이리나카]]가 왜 잠자코 있을까?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벽이 꿈틀거리지 않는 걸 보면 융합된 상태도 아니다. 아이자와는 이 점을 들어서 "지하 전체와 융합하거나 컨트롤이 가능한건 아니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렇다면 지금은 위에 은 타마키나 경찰의 동향을 보러갔을 지도 모른다. 녀석은 지하에 "들어가서" 조작하는 타입이고 완전히 동화하는게 아닐 것이다. 벽면 내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자기 눈과 귀로 "보거나 듣거나"해야 한다는 얘기. 따라서 이쪽을 방해하러 온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본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벽에 귀나 눈이 있는게 보일 것이다.
          * 패트껌의 반격은 투명한 장막을 뚫지 못한다. 한 명 더. 덩치가 작은 사내가 무투파 뒤에서 나타난다. 이건 그의 개성으로 보인다. 왜소한 자가 한 눈에 패트껌과 키리시마의 개성을 꿰뚫어 보고 둘다 "방어를 잘하는 개성"이라 평한다. 그러면서 옆의 사내, "랏파"에게 "아쉽게 됐다"고 말한다.
          배리어를 펼쳤던 자는 자신들을 "창과 방패"에 비유하고 반대로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방패와 방패"에 빗댄다. 랏슈는 그래서는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곤란한다고 빈정댄다. 배리어를 친 자가 반쯤 동의했다.
          * 유감스럽지만 자의 지적이 맞았다. 키리시마는 몸에도 상처가 컸지만 멘탈도 가루가 됐다. 경화가 깨졌다, 다 받아내지 못했다. [[바쿠고 카츠키]]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건 더럽게 강하다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히어로가 생각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오사카에서 활약했을 땐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건 과거의 기억. 좌절했던 기억이다.
          이번에도 패트껌이 눈치가 빨랐다. 그가 "마음이 꺾이는게 진짜 지는 것"이라 호통쳤다. 오사카에서 말했던 대로 "빌런 퇴치는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인데 이쪽이 먼저 꺾여서 어쩌자는 거냐고 야단혔다. 자가 다시 배리어를 친다. 그러면서 "저쪽은 아직 이길 생각"이라 말하자 랏파가 참 갸륵하게 여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8회 일치
          * 그때 무슨 우연인지 루밀리오의 망토가 날아다니다 낙석에 휘감겨 스쳐 지나간다. 오버홀은 단지 기분 나빠하고 마는데, 에리가 문득 망토를 붙잡는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오버홀은 에리의 뿔에서 기이한 빛이 나는 순간 섬뜩한 기분과 함께 에리에 내력에 대해서 떠올랐다. 에리는 두목의 딸이 낳은 딸. 즉 두목의 손녀였다. 두목의 딸은 "편이 저주받은 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딸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 어느날 편이 에리를 만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는 것. 조사 결과 에리는 양측 가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돌연변이. 저주도 뭣도 아닌, 아주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에리는 너무 어렸던 관계로 자신의 개성을 자각하지도 컨트롤하지도 못했다. 두목은 "접촉한 상대가 소멸했다"는 점이 오버홀의 개성과 닮았다고 여겨 에리를 보살피고 그 개성의 실체에 대해 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그게 오버홀의 "사업"의 시작이었다. 조사에 착수한 오버홀은 곧 해답을 찾아냈다. 에리의 개성은 "되감는 것". 두목은 오버홀과 에리의 개성이 닮았다고 했지만, 오버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두려워하게 된다.
          * 에리의 되감는 개성은 오버홀과 [[네모토 신]]의 융합을 "되감아" 분리시킨다. 에리는 지금껏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오버홀에게 실험실의 쥐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딱 한 번 스스로 탈출을 도모했지만 실패. 절대 도망칠 수 없다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저주받은 것이 숙명이라 여기고 살았다. [[토오가타 밀리오]]와 나이트아이, 그리고 미도리야가 그걸 바꿨다. 오버홀이 죽어도 에리를 놓아주지 않듯 이들도 죽어도 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그녀는 전에 없던 마음을 각성했다. "을 돕고 싶다"는 마음. 에리는 손에 잡은 망토를 미도리야를 향해 뻗었다. 원래 닿지 않았을 미도리야의 도약은 그 망토를 잡음으로써 목표에 정확히 닿았다.
          류큐팀이 천장을 부수고 떨어져서 잠시 당황하지만 곧 나이트아이의 구조를 부탁하고 에리를 확보하기 위해 몸을 날린다. 하지만 오버홀의 방해로 저지. 오버홀이 뚫린 천장으로 달아나려 하자 따라잡기 위해 점프하지만 닿지 못한다. 하지만 히어로들의 분투를 보면서 "을 돕고 싶은 마음"에 각성한 에리가 오버홀의 융합을 풀고 루밀리온의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자신에게 닿도록 돕는다.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상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원래 두목에게서 에리의 보호와 개성규명을 부탁 받았는데 배신하고 그 능력을 악용해 지금의 사업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무자비한 학대와 인권유린은 덤. 자신을 믿고 에리를 부탁한 두목을 배신하기도 했다. 조직을 두목의 뜻과 다르게 이끌기도 했으니 두 번 통수를 친 셈. 미도리야에게서 선수쳐서 에리를 다시 빼앗지만 에리가 루밀리온의 망토로 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뜨면서 개성이 발동, 네모토 신을 흡수했던 상태를 되감아 다시 분리시켜 버린다.
  • 도지한 . . . . 8회 일치
         | 형제자매 = 1 1녀 중 장
         | 영화부문 자 신인연기상
         | 영화부문 자 인기상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평군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로힝야 . . . . 8회 일치
         로힝야는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에 80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에는 2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로힝야의 언어는 방글라데시 부지방의 [[방언]]과 유사하다. [[미안먀]]에서는 [[불교]]가 다수 [[종교]]를 차지하고 있으나, 로힝야는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범은 로힝야나 방글라데시인을 상대로 1인당 90~370달러의 적은 돈을 받고 밀입국선에 태워준 다음, 배가 타이에 상륙하면 본색을 드러내서 타이-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타이 부의 밀림 캠프에 가둬버리고, 가족에게 연락하여 몸값을 1인당 200달러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난민들은 몸값을 낼 때까지 밀림 캠프에 감금당하는데, 병사하거나 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타이 경찰이 움직여서 인신매매 조직을 단속했는데, 2015년 5월 1일, 타이 경찰은 말레이시아 국경에 가까운 타이 부 송클라 지역의 밀림에서 인신매매 캠프에 억류되어 있다 숨진 로힝야의 시신 26구를 발견, 그리고 며칠 뒤 해골 몇 개를 더 발견했다. 타이 경찰의 추적에 따르면 인신매매 조직은 타이 부 지역의 유력자들과 유착되어 있으며, 타이 언론에서는 군 장성이 연류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5월 24일에 말레이시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타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 북부에서도 로힝야 감금 캠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하라카 알-야킨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 등장하는 지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의 로힝야족 이주자 집단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주한 '아타 울라'라고 분석되었다. 이 단체는 로힝야 성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활약시켜 게릴라전 경험을 쌓게 했고, 이렇게 20여명 내외의 '교관'이 2년 이상 수백 명에게 무기 사용법과 사제폭탄 제조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족 성 자포르 알람이 자신, 부인과 함께 난민선에 탓던 아들 모함메드 소하옛이 보트가 침몰하면서 사망했다며, 지인이 찍어준 아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CNN 에서는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전 세계에 시리아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3세 소년 아일란 쿠르디와 비슷하다며, '제2의 쿠르디'라는 표제를 달았다.
          *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지만, 아직 군부 세력이 강하게 아 있다. 로힝야 탄압은 반 수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군부와 그에 유사한 성향을 가진 극렬 버마 민족주의자, 종교인이 함께 움직이고 있어 수치가 억제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 마기/333화 . . . . 8회 일치
          * 하지만 이 방식은 게이트에서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이 필요해, 결국 현재 인원으로 한 사람이 아야 한다.
          * 누구도 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에 다섯 번째 동료를 영입하기로 하는데 [[연백룡]]은 처음엔 누나 [[연백영]]을 추천하나 아직도 깨어나지 않아 보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게이트를 열어서 성궁에 가는 방식은 누군가 게이트로 계속 마고이를 공급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넷 중 하나는 여기에 아야 한다는 것. 불편함 침묵이 찾아오고 알라딘은 얼렁뚱땅 쥬다르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성궁에서 날뛰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며 절대로 지 않겠다고 한다. 마고이를 보내는 역할은 금속기 사용자도 가능하기 때문에 연백룡이나 알리바바에게 시키려고 해보는데, 이들 역시 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국 왕의 그릇 둘과 마기 둘이 답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만 낭비한다.
          * 한편 혼자 아있는 알리바바는 전세계가 신드바드의 수중에 떨어진 지금, 같이 싸울 동료가 아있다면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섯 번째 동료를 기대한다. 그때 쥬다르가 먼저 동료를 데리고 온다. 거만한 목소리로 "힘을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어떤 자. 그를 본 알리바바는 경악한다.
  • 보에몽 1세 . . . . 8회 일치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중심이 된 영주 가운데 1인으로, [[십자군 국가]] 가운데 주요한 세력이 된 [[안티오크 공국]]의 초대 공작. [[노르만]] 종족으로서 [[비잔티움 제국]]령이던 이탈리아를 침략해 아풀리아 공국을 세웠던 [[로베르 기스카르]]의 장이자, 안티오크, 타란토의 공작. 그가 가진 영지에서 따온 칭호인, '''타란토의 보에몽'''(Bohémond de Tarente)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로베르의 장으로, 그의 전처 알베리다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는 1081년에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면서 그를 데려가고, 그의 영지인 아풀리아를 동생인 루지에로에게 상속하는 대신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하면 그곳의 영지를 상속해주겠다고 한다. 이후 보에몽은 아버지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러간사이 분열된 군대를 이끌고 계속 제국과 맞서지만, 테살로니카에 라리사란 곳에서 알렉시오스 1세에게 격퇴당하고 쫓겨난다.
         이후 보에몽은 기스카르가 죽고 잠시 이탈리아에 혼란이 일어난 틈을 타, 타랑토의 공작이 되고 아말피 시를 공략했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 왕에게로 가 그에게 군사적 지원을 얻어낸 뒤, 이탈리아 영주들에게 황제가 십자군을 배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게 해 그곳의 영주들이 자신을 돕게 공작을 한뒤, 부 이탈리아에서 디라키움에 상륙해, 그곳을 통해 콘스탄티노플로 가려고 시도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로베르 기스카르가 비잔티움 침공을 시도할때 거친 경로와 흡사, 아니 똑같다. ~~그리고 둘다 털렸다.~~]
         그러자 알렉시오스 1세는 그에 대응해 이탈리아에 자신은 십자군을 배반한적이 없다면서 보에몽의 공작을 최대한 무마한 후, 베네치아 공화국을 끌어들여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자유무역을 미끼로 보에몽의 보급선들을 공격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의 아버지만큼 교활하고 위험한' 보에몽의 군대와 직접맞붙는걸 피하면서 최대한 농성을 하는 전략으로 나섰고, 보급이 차단되면서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보에몽군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간다.
  • 붐(연예인) . . . . 8회 일치
         ||<#EEE156> '''{{{#878787 가족}}}''' ||<(> 1 1녀 중 첫째 ||
         [[이경규]]의 [[규라인]]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붐 자신도 성 아이돌 그룹 멤버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강심장]]에서 '붐아카데미'라는 자신만의 라인을 구축했다. [[슈퍼주니어]]의 [[이특(슈퍼주니어)|이특]], [[은혁]], [[신동(슈퍼주니어)|신동]] 등이 대표적.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과 같이 많은 수의 방송들을 진행한 인연으로 이특과 예능 듀오로 알려져 있다. 입대 후에는 수제자 이특에게 '특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물려주었다. 다만, 일부 [[슈퍼주니어]] 팬들은 괜히 엮여서 이미지만 조지게 만든 놈이라며 붐을 굉장히 혐오한다. --물론 슈주 [[안티]]들은 이특이 친 사고는 생각도 안 한다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E.L.F.]]들은 붐을 정말로 극도로 [[증오]]한다는 거다.--
         아래에 언급된 일들이 생긴 뒤엔 상황이 달라졌지만 전역 후 첫 출연 당시엔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아니, 전역하기 전부터 ~~이제 와서 보면 쓸데없이~~ 그의 전역일 카운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예능 입지를 확실히 정착시킨 상태에서 자리를 비워서 입대 후 그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군에서 예능 아이템을 400개 이상 생각해 왔다.'로 개념 있는 군인 이미지까지 구축했다. 군대 다녀오더니 성스러워졌고 멋져진 거 같다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참고로, 자기가 직접 이야기 하기전에 한 연예계 관련 기자가 냄새를 맡고 취재를 시작했으나 ''' 전진이 "다 지난 일이고 좋은 동생이니까 그냥 덮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기자 [[본인]]도 당사자가 저러니 취재할 수가 없었다고...[* 다만, 정황상 전진이 진짜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이후 논란이 일어나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일로 [[문희준]] 뺨칠 정도로 붐의 안티가 대거 생성되었다.[* 근데 문희준과는 본질이 틀린 것이, [[본인]]의 경솔한 행동도 있지만 당시 "들이 까니까 나도 깐다"는 식으로 이유없이 까이기도 했다. 또한 문희준은 붐처럼 명백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적도 없다. 게다가 문희준은 무엇보다도 [[군대]]에 갔다 온 이후로는 호감이 되었다. --근데 문희준도 [[결혼]] 과정에서 까발려진 일부 것들 때문에 또다시 엄청난 [[안티]]가...--] 신화창조들 중에서도 [[코스프레]]하는 붐을 본 사람이 있던 것이다. 물론 전진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문제 자체야 없었지만, 정작 모르는 사람들은...
         TV조선 [[애정통일 북녀]] 시즌2 출연이 확정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힙합 댄서]][[분류:1982년 출생]][[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영월군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레카]]
  • 상디 . . . . 8회 일치
         || 해적단 가족 포지션 ||<:> 차(불량) ||
         노스 블루 출신인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상디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작중에서 해상 레스토랑 동료들이 '붉은 눈을 한 사나이가 왔었다. 와인을 들고' 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로시난테는 붉은 눈에 와인을 들고 다닌다. 또한 로시난테는 천룡인으로 현상금이 1억 7700만베리가 된 상디가 생포 한정인 이유도 설명이 된다는 설이다. 동료 요리사에게 [[오올 블루]]의 전설을 듣고 [[위대한 항로]]에서 오올 블루를 찾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10살 무렵, 여객선이 붉은 다리 [[제프(원피스)|제프]]가 이끄는 해적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바다에 빠졌으나 제프가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일단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때 풍랑으로 제프의 배도, 상디가 있던 여객선도 침몰하고 외딴 바위섬에 표류했는데, 겨우 건진 몇 일 분의 식량을 상디에게 전부 내주고 제프 본인은 '''자신의 다리를 먹어가며'''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후에 식량이 모두 떨어진 상디가 제프의 식량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가 사실을 알게되고 둘이 나란히 굶어 죽을 뻔한 상태로 빗물만 마셔 수 십 일을 버티다가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서 간신히 구조.[* 애니메이션에서는 물에 빠진 상디를 구하려다 다리를 잃었다는 내용으로 변경. 애니메이션은 전 연령층이 다 보기 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먹는다는 내용이 수위가 너무 높아 수정되었다.]그런데 이 동안 무려 25일간은 한 끼를 먹었다고 쳐도 나머지 '''55일간'''을 굶었는데 '333 법칙'을 따르면 비가 3일에 한 번씩 오고 3주에 한 끼씩 먹는다면 살아을 수 있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인간의 생활은 아니다. 하여튼 이 때의 경험으로 상디는 굶주린 인간을 그냥 두고 보지 못 하는 성향도 생겼으며, 동시에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에게는 극도로 분노하며 철저하게 응징하는 성향도 생겼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모노스케가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며 요리를 내팽개치려 했다가 상디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여자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대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때리진 못할 테고 그냥 죽일 듯한 기세로 화내지않을까~~
         밀짚모자 해적단 자 멤버들 중에서는 그나마 패션 감각이 좋은 듯하며 멤버들 중에서도 옷이 조금씩 자주 바뀐다.
          * 헷지 - 극장판 3기 한정. 헷지의 자칭 '세계 최고의 매력' 언급에서부터 갈등 시작, 나중에 쵸파를 구하고자 대결을 신청했고 헷지의 독성 검에 고전하지만 4번 정도 걷어차니까 그냥 끝. 이어서 '네녀석의 검은 [[롤로노아 조로|그 녀석]]의 검의 발톱의 때일 뿐이다.'라고 언급.
          * 그로키 몬스터즈 (햄버그 & 피클스 & 빅빵) - 폭시의 부하들이다. 그로키 링에서 맞붙어서 본인이 볼 보이를 맡는다.[* 물론 조로가 시켰고 처음에는 반발하다 나미가 어울린다고 하니까 바로 수긍.] 그로키 몬스터즈의 '무기 사용 금지' 규칙 위반 작렬에 그로기 상태에 몰리다 조로와 10초(...)간 연합해서 먼저 햄버그를 삼등급 불고기 & 야채모듬 슈트로 날려서 빅빵의 무기에 정면으로 깔리게 하고 이어서 조로를 방해하는 피클스를 심판과 함께 날려버린다.[* 이유는 심판의 편파 판정 때문에 상디가 심판을 패고 옐로 카드를 받았기 때문.] 마지막으로 빅빵만 자 조로와 함께 공군 파워 슈트를 사용, 마무리를 조로에게 맡겼다.
         > 여긴 전장이지. 요리가 맛있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식재료가 떨어지는게 가장 곤란하잖아. 일만 베리든 백만 베리든 식재료를 조금이라도 낭비해서는 안돼. 어떤 식재료든 통째로 사랑을 쏟아 붇는 것이 요리사의 가짐이다. 숙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처럼. 어느 영감의 가르침이지.[* 나바론 요새에서 취사병들과 100인분 요리대결에서 사용하고 은 재료들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고 한 말.]
         > ''' 여자의 거짓말은 용서해야 자다.'''[* 로빈이 배신 선언을 한 직후 의기소침해진 쵸파에게 한 말.]
          * 공식 가족 포지션은 차이지만 하는 행동이 '''엄마같다'''는 평이 많다. 일단 동료들의 모든 식사를 책임져주고 있으며 평소에는 [[츳코미]]를 걸거나 잔소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상냥하게 챙겨주는 면도 있기 때문. 팬들에게는 가끔 お母サンジ[* 어머니라는 뜻의 お母さん과 상디의 이름인 サンジ를 합친 말장난]라고 불리기도 한다.
  • 서영춘(코미디언) . . . . 8회 일치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28년 출생]][[분류:1961년 데뷔]][[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1986년 사망]]
         || '''가족''' ||<(> 11매(7 4녀)중 다섯째[br]자녀: 첫째 서현선, 둘째 [[서동균]] ||
         서영춘은 바보 연기에 특화된 [[배삼룡]], 노래와 신체 조건을 이용한 개그가 장기였던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미 역을 자주 담당했고 선역과 정극 연기도 능했던 [[구봉서]]와 달리 강한 개성으로 어필하였다. 특히 얼굴 표정 연기에 능하였고 연기도 두루 잘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예외로 미국 물(미군 8군 무대)을 먹은 [[곽규석]]이 미국식 스탠딩 개그와 성대모사, [[보원]] [[백봉]]은 성대모사를 장기로 한 쪽이다.
         슬랩스틱과 간신 수염 분장, 표정 연기를 장기로 해서 그렇지, 분장하지 않은 모습은 키도 큰 편에 얼굴이 희고 훤한 미형이었다. 서영춘 사후 개그계의 미 미녀로 꼽히던 아들 서동균과 딸 서현선을 보면 피는 못 속인다는 것을 알수 있다.
  • 손광업 . . . . 8회 일치
         * 《[[연애의 맛]]》 (2015년) - 2단3단
         * 《한산성》 (2009년) - 김상헌 역
         * 《실연녀》 (2007년) - 이재수 역
         [[분류:1970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손예진 . . . . 8회 일치
         손예진의 다음 작품으로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외출 (영화)|외출]]》(2005)로 두 편의 영화 모두 [[일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으며,<ref>{{웹 인용|title=The Best Selling Films of 2004|url=http://www.koreanfilm.org/kfilm04.html|work=Koreanfilm.org|accessdate=2013-08-08}}</ref><ref>{{웹 인용|title=A Moment to Remember breaks Japanese record|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326|work=Korean Film Council|date=14 December 2005}}</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to Star Alongside Bae Yong-joon in New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163|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4 December 2004}}</ref>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국내에서도 25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각각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본에서 개봉 된 역대 [[대한민국]] 영화중에서 흥행 기록 1, 2위를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예진, ‘日 2005 외국영화 흥행 톱10’서 2관왕|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32332|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5-12-16}}</ref><ref>{{웹 인용|title=Films Starring Sohn Ye-jin Attract 10 Mil. Viewers in Korea, Japan|url=http://english.kbs.co.kr/hallyu/entertainment_news_view.html?No=147|work=KBS Global|date=28 December 2005}}</ref> 특히 《외출》에서 손예진은 20대 중반 주부이면서 편과 불륜 관계였던 여자의 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자 서영의 감정을 잔잔하면서 깊이 있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알고, 이 영화로 제5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은 최고의 선수, 작업계의 고수 한지원 역을 맡아 이 작품에서 과감한 섹시 댄스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고, 234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오싹한 연애> 손예진, <작업의 정석> 뛰어넘을까?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9139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하성태 |날짜 = 2011-12-17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6년 노자와 히사시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수영강사 유은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대본 보고 이런 게 사랑이라 생각했죠"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40659|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백나리 |날짜 = 2006-03-09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드라마는 ‘이혼후 다시 시작하는 연애’라는 참신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으며, 20대 여배우가 선뜻 마음먹기 힘든 이혼녀를 연기, 더 이상 예쁜 얼굴만 무기가 되는 여배우가 아님을 인정 받았고, 이혼 했지만 묘하게 아있는 미련, 헤어진 뒤 비로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고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4241121121116|제목=손예진, "'연애시대'통해 현실적사랑 생각하게됐다" |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4-24|확인날짜 =2017-09-09}}</ref> [[SBS 연기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7042514301218841&type=1&outlink=1|제목='연애시대' 손예진, 백상 TV부문 최우수여자연기상 |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7-04-25|확인날짜 =2017-09-09}}</ref> 2007년 손예진은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주인공 여우비의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성인 목소리 나올까봐 걱정했죠"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10455|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홍성록|날짜 = 2006-12-22|확인날짜 =2017-09-09}}</ref>
         2008년, 손예진은 TV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드라마)|스포트라이트]]》로 2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8/05/201_24097.html "Spotlight Shows Lives of Reporters"]. ''The Korea Times''. 13 May 2008.</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as a Criminal Kingpin|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741|work=Korean Film Council|date=26 July 2007}}</ref> 같은 해 영화 《[[무방비도시 (2008년 영화)|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 백장미 역을 연기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섹시함 유지, 가장 힘들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88606|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김경민 |날짜 = 2008-01-04 |확인날짜 =2017-09-16 }}</ref><ref>{{웹 인용|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02223903/http://twitchfilm.com/2006/09/alone-in-love-review.html|title=Alone in Love Review|성=|이름=|date=1 September 2006|work=Twitch Film|출판사=|확인날짜=2018-04-12}}</ref><ref>{{웹 인용|title=Actress Son Ye-jin's Movie Picks|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317340286147|work=10Asia|date=23 December 2011}}</ref> 박현욱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조건으로 달고 결혼한 후에도 다른 자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주인아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SON Ye-jin puts a new spin on marriage|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914|work=Korean Film Council|date=11 February 2008}}</ref> 그녀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2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1210837541003|제목=눈물의 손예진 유일무이 3관왕 석권 기염, 청룡 여우주연상-인기스타상-베스트커플상 |출판사=뉴스엔|날짜=2008-11-21}}</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제목=손예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12-11|확인날짜=2014-0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24030924/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보존날짜=2008-12-24|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411169|제목=김윤석.손예진, 영화학도가 뽑은 최고 배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8-12-15}}</ref><ref>{{뉴스 인용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22720042800689&type=1&outlink=1|제목=손예진, '아내가 결혼했다'로 여우주연상 3연패 |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09-02-27}}</ref> 2009년,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백야행 (영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유미호 역을 연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차기작 ‘백야행’서 고수와 멜로호흡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6689|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안우 |날짜 = 2008-12-15 |확인날짜 =2017-09-16 }}</ref><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9/11/141_53971.html "Son Ye-jin, Ko Soo to Bring Mystery Romance"]. ''The Korea Times''. 21 October 21 2009.</ref>
         2017년 5월, 손예진은 스릴러 영화 《[[협상 (영화)|협상]]》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서울지방 경찰청 위기협상팀의 유능한 협상가가 상사를 납치한 인질범과 대치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위기협상팀 경위 하채윤 역을 연기한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타와치]덕혜옹주→경찰, 제복 입은 손예진에 거는 기대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6231109536710|출판사 =뉴스엔 |저자 =배효주 |날짜 = 2017-06-23 |확인날짜 =2017-09-16 }}</ref>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동명의 영화]]를 기반으로 한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8년 영화)|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캐스팅 되었다. 영화는 1년 후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기 힘든 약속을 기고 세상을 떠난 아내가 기억을 잃은 채 편과 아들 앞에 다시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2018년 개봉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취중토크③] 손예진 "치열했던 20대 보다 30대가 더 좋아요"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출판사 =일간스포츠 |저자 =김연지 |날짜 =2017-06-16 |확인날짜 =2017-09-16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170917033455/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682769# |보존날짜 =2017-09-17 |깨진링크 =예 }}</ref>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김포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올해의 영화상 수상자]][[분류: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부일영화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신인여우상 수상자]][[분류: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
  • 송남헌 . . . . 8회 일치
         '''송헌'''(宋南憲, [[1914년]] [[4월 11일]]~[[2001년]] [[2월 20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인, 통일운동가, 근현대사 연구가이다.
         광복 후 해방정국에는 [[한국민주당]]에 입당했다가 [[1946년]]부터 [[미군정]] 입법의원인 [[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직에 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 비서장을 지내고 우파를 대표하는 김규식, 좌파를 대표하는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우파 진영 위원회의 비서로 지냈다.
         이후 [[민중동맹]]의 창당과 [[1946년]] [[12월]] [[민족자주연맹]]의 창당에 참여하였다. [[1948년]] [[김구]],[[김규식]]등의 발의로 [[북협상]]이 시작되자 [[김규식]]을 수행하여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참가하고 돌아왔다.
         이후에 송헌은 근현대사 연구가로 일생을 보낸다. [[2001년]] 2월 20일에 사망했다.
         * <송헌 회고록: 김규식과 함께 한 길,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048989 원로정치인 송헌옹 별세]
         *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1022070403 독립운동가 송헌씨 별세] 조선일보 2001.02.20
         [[분류:1914년 태어]][[분류:200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식극의 소마/225화 . . . . 8회 일치
          * 한치의 어긋도 없이 진행되는 조리. 사이토는 참치 부위마다 다른 조리를 시도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거기에 지지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 시간은 10분 은 가운데, 미마사카는 트레이스를 마치고 "어레인지" 작업에 돌입, 사이토에게 없는 공정을 더하며 승부수를 띄운다.
          정작 사이토는 미마사카를 "정말이지 재미있는 자"로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애도 "이사나키리"을 뽑아 은 참치 해체를 단숨에 마친다. 그러고는 칼을 잘 닦아낸 뒤에, 놀랍게도 미마사카에게 건네준다. 이걸로 은 해체를 마치라는 소리였다. [[타쿠미 알디니]]는 처음에는 무슨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다.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대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에 불과했다. 미마사카가 설령 같은 수준의 기술을 구사해도 도구에서 수준 차이가 난다면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사도"에 어긋난다는게 사이토의 생각이었다. 린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메기시마도 "귀찮은 버릇"이 나왔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사이토는 진지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온갖 만사에 무사도를 들이대며 별 것도 아닌데서 무사도를 발견하고 집착하는 성미.
          * 이사나키리를 쥔 미마사카는 사이토가 그랬든 한 번의 기합으로 은 참치해체를 단숨에 끝마친다. 사이토는 거기에 만족스러워하며 진짜 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마사카도 지지않고 그 태도에 대항한다. 둘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됐건 간에, 지금 둘은 깨끗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반역자들은 저 미마사카가 군소리없이 사이토의 권유를 받은 것에 놀란다. 그도 자기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렬한 요리사가 아닌가? 하지만 타쿠미는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쿠가 테루노리]]처럼 체면 따위는 내던져놓은 것이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필사의 노력. 그 말대로 사이토의 조리 순간마다 미마사카의 눈이 빛을 내뿜었다. 끊임없는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
          * 둘의 조리는 완벽하게 똑같았다. 붉은 살을 간장, 미림, 레드와인을 섞은 양념에 재우고 볼살 부분은 한쪽 면만 버터향을 입혀가며 굽는다. 사이토는 부위마다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고 있었고 미마사카는 한치의 어긋도 없이 그걸 따라갔다. 이번엔 사이토가 짚을 준비한다. 처음엔 장식에 쓰려는 줄 알았으나, 그 정체는 볏짚구이. 참치살을 짚불에 올려 호쾌하게 구웠다.
          * 사이토가 내놓은 요리. "참치 십관 홍옥알 스시". 화과자를 연상케하는 작고 정교하고 화려한 초밥이다. 이전에 [[나키리 아리스]]가 만든 "테마리즈시"보다도 작다. 보는 이들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입을 모으는 작품. 한편 아직 조리를 마치지 않은 미마사카는 사이토의 공정에 없는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재료를 볼에 담아서 꺼내는데. 소마는 그것이 뭔지 직감했다. 이것이 승부의 향방을 판가름할지도 모른다. 이제 은 조리 시간은 10분. 2라운드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 신귀식 . . . . 8회 일치
         * 《[[가슴 달린 자]]》
         * [[1997년]] [[KBS 2TV|KBS2]] 《[[완벽한 자를 만나는 방법]]》
         * [[1999년]] [[문화방송|MBC]] 《[[자 셋 여자 셋|시트콤 자 셋 여자 셋]]》 ... 문화대학교 중국어학과 신귀식 교수 역으로 단역
         * [[2003년]] [[서울방송|SBS]] 《[[왕의 여자]]》... [[김제 (1562년)|김제]] 역
         * [[2007년]] [[서울방송|SBS]] 《[[강엄마 따라잡기]]》 ... 이사장 역
         [[분류:1941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196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고령 신씨]][[분류:구리시 출신]]
  • 신기준 . . . . 8회 일치
         |출생일 = {{출생일과 만나이|2001|7|27}} [[전라도]] [[담양군]] <ref>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857178 신기준-다음인물정보]</ref>
         * 《[[한산성 (영화)|한산성]]》 (2017년) - [[소현세자]] 역
         [[분류:200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담양군 출신 인물]]
  • 신민아 . . . . 8회 일치
         한 때 CF쪽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유독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지,--드라마라고 아닌건 아닌데..-- 아니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낮은건지 출연한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말아먹었다'''. 그 덕분에 ''''한국 영화사 최고의 [[핵잠수함]]'''', ''''[[충무로]]의 흥행 [[부도]] [[수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의외로 이름난 드라마작가나 유명 [[영화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CF나 영화에 캐스팅되고 있어서 '[[스폰서]]가 빵빵하다',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라는 의견도 다수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공히 '히트작이 없음'에도, 'CF에 있어서는 가히 도배'를 하고 있는건 미스테리다. 흥행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이 [[봉태규]] 항목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배우로 봉태규보다 ~~새로 떠오르는 국밥배우~~ ~~흥행전선 먹구름~~[[김강우]]와 더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다만 김강우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살아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 네임드급 미배우들과 자주 엮이다 보니 그만큼 조명을 못 받는다는 소리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과 잠시 떨어져 연기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각본의 작품에 출연하여 연기력에서 인지도를 쌓아야 하는 게 우선인 듯 싶다.
         ||2001||[[화산고]]||주연||유채이 役||김태균||170만 명[* 공식기록 58만 명은 서울관객수이다. ] ||실패[* 사실 실패라고 보기 묘한게 국내에서 10억 정도 적자가 발생한건 맞지만, 수출로 메꾸고 오히려 더 아서 2005년 속편 기획에 돌입했다가 회사 합병 등의 사정으로 엎어졌다. ] ||
         [[마왕(드라마)|마왕]]의 경우도 [[엄태웅]]을 엄포스로 만들었던 부활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작품. [[부활(드라마)|부활]]이 나름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드라마 막판에는 어느 정도 시청률이 올라기에 이 작품 또한 이죽사처럼 엄청난 기대를 가졌던 작품이다. 부활의 엄태웅마저 다시 합치고 또 궁을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주지훈]]까지 합류한 이 작품. 역시 망했다. 완전 폭망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드라마 크게 뜨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신민아의 연기력이다. 사실 연기력이 다른 주 두 명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연기력은 드라마의 몰입도 자체를 떨어뜨렸고 이상하게도 부활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성이 더해져 역시 조용히 종영했다.
         그리고 시작 전 엄청난 기대를 받았고 그나마 나름 TV커리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으나 그 초반의 압도적인 기대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이 드라마 압도적인 기대를 모은 것은 작가가 홍자매인 점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바로 바로 상대역이 무려 [[이승기]]. [[소문난 칠공주]]로 연기 데뷔하고 [[한효주|동생으로 유명한 그분]]과 함께 한 찬란한 유산이 기대 이상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고 [[1박2일]] 시즌1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강심장]]으로 인기를 끌던 그야말로 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TV를 종횡무진하던 그와 함께 하여 정말 이번에는 안망할 줄 알았다. 사실 2010년 위 이승기라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하는 족족 앨범 드라마 예능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16회 중 20%를 넘거나 근접한 것은 막판 4회 뿐이고 거의 나머지 기간동안은 10%초반을 찍었다. 결국 평균 시청률은 15%(TNms기준)였다. AGB 기준으로는 12.6%이다. 시청률 20%는 거의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자매]]와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2014년도와는 거리가 한참 있는 2010년도에 작품을 했음에도 이거밖에 못 거둔거면 사실 망했다고 보는게 맞다. 홍자매의 전작인 [[미이시네요]]도 사실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이는 홍자매 또한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그닥 높지 않은 시청률을 생각했다고 밝혔으나[* 방송사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중요하지만 매번 대박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일선에서 뛰는 모PD의 블로그-[[일지매]]PD-에 따르면 심지어 엄청난 대작이 상대방에서 나올 경우 일부러 시간 떼우기로 폭망할 작품을 넣는 경우까지도 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무조건 편성을 안하진 않는다. 쓸만한 작품이 없어서 방송은 계속 해야 되는 거니까.. --그러니 푸쉬받고 세 번이나 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니깐--] [[쾌도 홍길동]]과 더불어 홍자매가 이건 뜰 거라고 생각했던 작품인데도 안됐다. --물론 쾌도 홍길동도 20%은 못넘겼지-- 물론 동시 방영하던 타방송사 작품이 [[제빵왕 김탁구]]였긴 했으나 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것저것 변명대면 는 게 없다. 홍자매 또한 [[미이시네요]]로 할 거 다 해보고 여기서는 다시 뜰 줄 알았으나 그냥저냥 했던 홍자매는 바로 이후 작품인 [[최고의 사랑]]이 AGB 기준 20%를 넘기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마이더스의 손, 이승기는 이후 [[더킹 투하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다. 영화계를 떠나서 드라마만 봐도 이정도면 흥행 블랙홀이다.
  • 신현탁(영화배우) . . . . 8회 일치
         * 2012년 《[[간기]]》- 아들뻘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평산 신씨]][[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안기효 . . . . 8회 일치
         쇼맨쉽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자다운? 외모와 과격한 승리 세리머니로 인상이 깊다. 날아차기, 엄지손가락으로 목긋기, 유리창 두들기기 등의 역동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며 많은 환호를 받은 선수였다.
         또한 [[이영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식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절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상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 피씨방의 마에스트로 [[김기(프로게이머)|김기]], [[주영달]]
         그 후 경기에는 거의 못나오고 있지만 공군 선수들의 승리 후 인터뷰에서 안기효를 틈틈이 언급하는 것을 보면 역시 거의 코치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 공군엔 코치가 [[김기(프로게이머)|두 명이나]] 있는 것이다?~~ 공군의 상승세가 엔트리, 전술효과에 힘입은 것을 보면 일단 플레잉코치로서의 역할은 잘 수행하고 있던 듯.
         여담으로 '''프로리그 16연패'''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 중. 2위는 [[박정석]], [[송병구]]의 13연패. 송병구가 연패 기록을 갱신하나 했는데 13연패를 끊었고 이후 프로리그가 사라지면서 유일한 기록으로 게 되었다.
         2012년 9월 4일 안준호로 개명했다. 팬 카페에서 자신의 팬들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는 등 이전 게이머 시절 인연을 맺은 팬들과는 꾸준히 연을 이어갈 생각인 듯 하다. 한편 페이스북에는 '''그동안 프로게이머 안기효로 살았던 과거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나는 이제 안준호다. 가슴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열심히 살며 찾아다녀보겠다. 마음속으로 작은 응원 보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사는 안준호가 되겠다'''란 글을 기면서 새로운 길을 갈 것임을 천명했다.
         2014년 10월에는 아프리카 스타판에 불을 지폈다. [[박지호]]와의 스폰 매치중 박지호의 방플을 의심하며 그를 세차게 디스했다. ~~현재는 화해~~ 그런 어그로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뒤 주로 WWE 레슬러를 흉내내는 리액션과 심심하면 블랙리스트를 거는 컨텐츠로 별풍을 팔고있다. 방송중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는데 꽤 잘하는 편이다. 임창정스러운 감성에 연규성과 비슷한 창법, 목소리를 구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SbUITb5-M|슬픈 혼잣말]] [[https://www.youtube.com/watch?v=o049dPIyACM|또 다시 사랑]] 등등 임창정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RzK0KUku0|내가 저지른 사랑]]. 노래를 부를 땐 방금 실연을 당한듯한 리얼한 표정을 보여주며 임창정 특유의 창법을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한다. 철구같은 억지 뇌성이 아니라[* 말이 좋아 뇌성이지 완전 목을 긁어내는 발성이라 성대가 아나질 않는다. 철구는 성대 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프로 가수들도 샤우팅을 자제하는 이유가 구사하기도 어렵지만 목을 긁어내지 않으면서 발성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음과 정확한 샤우팅을 구사했다. 다만 콧소리가 상당히 들어간걸로 보아 발성을 따로 배우진 않은듯 하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면성이라는 새로운 창법을 창조해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 염재욱 . . . . 8회 일치
         * [[2003년]] [[MBC]] 수목드라마 《[[자의 향기 (드라마)|자의 향기]]》
         * [[2004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다리위의 녀》
         * [[2005년]] [[MBC]] 월화드라마 《[[비밀녀]]》
         * 중근 홍보광고촬영-안중근 기념관 상영(산)-안중근역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오승훈 (축구선수) . . . . 8회 일치
         |청소년 클럽=[[호대학교]]
         2015년 3월 7일 2015 시즌 대전의 첫 경기였던 [[부산 아이파크]]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자신의 K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나, 1골을 실점하며 1:0 패하였으며 이어진 [[광주 FC]]와의 홈 개막전에도 선발출전하였으나 2골을 내주며 패배하였다. 이후에도 3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전 5:0 패, 4월 4일 [[성 FC]]전 4:1패로 두 경기 동안 총 9골을 실점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이어진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서는 [[박주원 (축구 선수)|박주원]]에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박주원에게 잠시 주전을 내주었으나, 시즌 중 후반 [[전북 현대 모터스]], [[전 드래곤즈]]와의 두 경기서 박주원이 7골을 실점하는 부진하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새로 부임한 [[최문식]] 감독의 신임을 받아 9월 13일 [[전 드래곤즈]]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하며 다시 주전으로 거듭났고, 10월 18일 [[전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무실점으로 선전하며 대전에 2015 시즌 홈 첫승을 이끌었다. [[부산 아이파크]]와의 곧이은 홈경기서도 선전하며 대전의 2:1 승리이자 시즌 첫 연승을 이끌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였고, 2015 시즌을 끝으로 대전 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그 후, 2017 시즌 중 전역하여 은 기간동안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가 2018년 1월 8일 [[울산 현대]]에 입단하였다.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도쿠시마 보르티스의 축구 선수]][[분류:교토 상가 FC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호대학교 동문]][[분류:축구 골키퍼]][[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오오모노노누시노카미 . . . . 8회 일치
         우에츠미미노미코토(陶津耳命)의 딸 이쿠타마요리히메(活玉依姫,活玉依毘売)에게, 밤이 되면 훌륭한 성이 찾아와서 이쿠타마요리히메는 임신을 한다.
         그 부모는 수상하게 여겨서 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하였다. 잠자리 앞에 붉은 흙을 뿌리고, 실타레에 감은 삼실을 바늘에 꿰어, 딸에게 주고 이를 자의 옷자락에 꿰어두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보니 삼실은 문열쇠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실타레는 3바퀴만 아 있었다. 더듬어가서 찾아보니 미와산(三輪山)의 오오모노누시노카미(大物主神)의 사당이었다. 이로서 뱃 속의 아이가 산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삼실이 세 바퀴 아 있어 이 땅을 미와(三輪)라고 이름붙였다. 딸의 자손인 오오타타네코(意富多多泥古), 오오모노누시노카미를 모시는, 오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제주가 되었다.
         이 황녀는 오오모노노누시와 결혼하였는데, 오오모노노누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황녀는 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오오모노노누시는 작은 뱀의 모습이 되어 화장품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걸 보고 황녀는 크게 놀랐다.
         이에 오오모노노누시는 매우 분노하여, 자의 모습이 되어 모로야마(御諸山=미와산)으로 올라가버린다. 황녀는 몹시 후회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하필이면 그 곳에 젖가락이 있어서 거기에 음부를 찔려서 죽어버렸다.
         오오모노노누시는 히메가 측간에 들어갔을 떄, 붉은 화살(丹塗矢)로 모습을 감춰서 측간의 옆으로 들어가, 히메를 찔렀다. 놀란 히메가 그 화살을 가지고 돌아가서, 바닥에 두자, 화살은 단정한 자로 변하여, 결국 두 사람은 맺어졌다.
  • 오중기 . . . . 8회 일치
         || '''최종 학력''' || [[영대학교]] [[철학]] 학사 ||
         || '''약력''' ||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특별보좌관[br]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br]영대학교 총동문회 이사[br][[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br][[청와대]] 선임행정관 ||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으로 [[대동고등학교(경북)|대동고등학교]], [[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생으로 [age(1967-07-23)]세의 젊은 나이가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동안 경북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뢰를 쌓아 2017년에는 대구경북 당직자 중에서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경상북도]] [[포항시]]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에서 과일,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자매는 24녀의 육매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 둘만 대학의 진학하고 누나들과 여동생은 일찍이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도 중학생 때부터 집안일을 돕기위해 과일배달 리어카를 끌면서 죽도시장에서 '''오씨 아들'''로 통했으며 지금도 상인들이 반겨준다고 한다.
         [[영대학교]] 철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인생 망친다'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자발적으로 데모에 참석하곤 했다. 그러던 중 집회 현장에서 본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 책자를 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 철학과 학생회장, 문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구경북지역대장까지 맡았다. 결국 탄압이 심하던 당시,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를 받고 7개월 가량 도망다녔으나 붙잡혀 구속되었다.--잡히지 않기 위해 여장까지 했다고 한다.-- 몇달 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3년에 특별복권되었으나 전과가 았다.
         차후 총선이나 지선때 TK지역 공천을 계속 고집한다는 전제하에 그 지역에서 당선이 된다면, 머지 않아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이분은 [[친박]]이라는 아킬레스건때문에 [[이정현 장 지진다|막말까지 해서]] 문제였지 비례대표에 한번 공천한걸 제외하면 호지역만을 고집하며 끝내 당선까지 했던 사람이다.], [[김부겸]], [[오거돈]], [[송철호]], [[장세용]] 등에 이어 험지에서 당선된 [[인간승리]]의 아이콘이 될 것이다.
  • 오현근 . . . . 8회 일치
         성고 졸업 당시 [[두산 베어스]]에 2차 7라운드로 지명되었으나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지명권이 소멸되었다.
         * [[성중학교 (서울)|성중학교]]
         * [[성고등학교 (서울)|성고등학교]]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서울언북초등학교 동문]][[분류:성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원피스/861화 . . . . 8회 일치
          * 비트는 게스트들도 그렇지만 빅맘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라 놀란다. 우측 상단은 장 "캔디 대신" [[샬롯 페로스페로]], 좌측 상단은 장녀 "후르츠 대신" [[샬롯 콩포트]], 우측 하단은 차 "장성" [[샬롯 카타쿠리]], 하단 가운데 14녀 "장성" [[샬롯 스무디]], 좌측 하단 3 [[샬롯 다이후쿠]]와 4 [[샬롯 오븐]]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결집했다. 비트는 자기도 모르게 "동료일 때는 든든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고 말하는데, 그 "적"이란 표현을 대문이 놓치지 않고 듣는다.
          주위의 게스트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 할머니의 사진을 자기 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칭찬한다. 어떤 자가 "마더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자 빅맘은 거기에 맞장구치며 "마더는 세상의 빛"이라고 극찬한다.
          * 그런데 다과회에 처음 참가한 게스트가 경솔한 짓을 저지른다. 빅맘에게 "마더 카르멜이 당신과 어떤 관계냐"고 묻고 만 것이다. 빅맘은 대번에 얼굴색을 바꾸며 그 자에게 패왕색 패기를 쏘아보낸다.
          * 예식까지 30분이 았지만 벳지가 확인해 보니 "미끼"들은 전혀 준비가 안 됐다. 시저처럼 [[몽키 D.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은 벳지의 몸 속에 숨어 있다. 벳지가 들여다 보니 [[징베]]를 제외하곤 곯아 떨어진 상태. 벳지가 준비는 어쨌냐고 호통을 친다. 징베는 상륙 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냅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10분 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고 장담한다. 벳지는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지 "걸림돌이 되면 바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징베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이른다.
          * 이윽고 빵빠레가 울리며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된다. 사회자의 선언에 따라 프로메테우스가 신랑신부를 태운 거대한 찻잔을 이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사회자는 이걸로 제르마와 빅맘 해적단이라는 악의 양가가 이어져 "세계에 악의 꽃이 미친듯이 피어나게 하리라"고 선언한다.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갈채와 환호가 어지럽게 폭발한다. 저지는 자신의 야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며 웃고, 빅맘은 몰래 그런 저지를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본다.
  • 원피스/875화 . . . . 8회 일치
          * [[브룩]]과 [[쵸파]]는 [[몽키 D. 루피]] 일행과 달리 잠수정을 이용해 써니호에 접근 중. 그런데 가던 도중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 인어를 발견한다.
          * 써니호가 있는 서쪽 해안에서 관측될 만큼 거대한 번개가 빅맘과 추격대 위로 떨어지고 루피 일행도 무사히 벗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운행 중 바깥을 살피던 쵸파가 "인어"를 발견했다고 알렸다. 브룩의 불쾌한 기분을 달래줄 좋은 소식이었으나, 그 인어는 자. 브룩의 관심이 빠르게 식었다. 쵸파는 그를 좀 더 관찰했는데 잘 보니 낚시 같은 걸 하는 것 같았다. 물 속에서 낚시라? 어쨌든 브룩은 눈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써니호가 가까웠다.
          * 써니호가 정박한 서쪽 해안. 마지막 관문인 유혹의 숲. 루피 일행은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지만 빅맘 [[샬롯 링링]]의 추격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이미 그들의 탈것(?)이었던 킹 밤이 당했다. 먹부림에 눈이 뒤집힌 빅맘은 유혹의 숲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 없이 무차별 파괴행위를 거듭하며 루피 일행을 압박했다. 루피가 이 먹부림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자 [[징베]]가 답을 줬다. 그는 그게 일종의 지병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먹고 싶은 걸 실컷 먹기 전까진 모든 걸 파괴하는 병. 원인은 "웨딩 케이크"일 것이다. [[나미(원피스)|나미]]가 새삼 "케이크를 부순 루피 탓이다"고 원망했지만 루피는 그 덕에 작전이 잘 풀리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데다, 실은 자신은 케이크를 맛 봤다. 도망치는 중인데도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흔치 않을 거라고 감상까지 겼다. 정작 그토록 원하던 빅맘은 입에 대보지도 못했건만. [[상디]]가 작정 와중에도 먹은 거냐고 한심하다는 듯이 질책하자 [[캐럿(원피스)|캐럿]]도 "사실 나도 먹었다"며 슬쩍 고백했다. 아무튼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뒤에는 미쳐버린 빅맘. 앞에는 방해꾼인 유혹의 숲인 호미즈들. 써니호는 멀지 않은 위치였지만 제때 이 숲을 돌파할 수 있을지, 제대로된 방향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유혹의 숲을 쪼개버린 무서운 벼락. 써니호가 있는 서쪽 해안에 후폭풍이 몰려올 정도였다. 써니호를 점거한 [[샬롯 페로스페로]]와 [[샬롯 카타쿠리]]에게도 당연히 보였다. 페로스페로는 빅맘이 제우스를 써서 루피 일행을 끝장낸 거라고 단정했다. 곧 빅맘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추측도 함께였다. 그러나 정작 미래를 보는 사나이 카타쿠리 쪽은 말이 없었다.
          * 해안의 맞은 편, 섬의 정반대편에서 [[샬롯 푸딩]]과 [[샬롯 시폰]] 자매가 마법의 양탄자로 날아오고 있었다. 상공에서 유혹의 숲을 발견한 둘은 제우스가 날뛰는 모습을 보고 과연 루피 일행이 무사할지 장담하지 못했다. 푸딩이 시폰에게 자신이 억지를 부렸다고 사과했다. 시폰이 푸딩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시폰은 괜찮다며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건 오랜만이라고 대답했다. 편 [[카포네 갱 벳지]]는 마지막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시폰은 친자매인 로라를 져버릴 수 없었고, 그들의 은인도 져버릴 수 없었다. 벳지는 위험하고 걱정된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이긴건 그녀였다.
          시폰의 말에 벳지는 반박하지 못했다. 여자의 의리. 그리고 사람의 의리. 의리를 지킨다는건 이런게 아니냐고 윙크를 보내는 아내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아내의 결의는 진짜였고 갓난 아들조차 떼어놓고 갈 정도로 단호했다. 그녀는 아들을 부탁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푸딩과 함께 반대편, 서쪽 해안을 향해 날아갔다.
  • 유태웅(탤런트) . . . . 8회 일치
         || [[1999년]] || [[SBS]] || 맛을 보여 드립니다 || 진 || 조연 ||
         || [[2005년]] || [[KBS1]] || [[불멸의 이순신]] || [[이영]] || ||
         || [[2009년]] || [[KBS2]] || [[결혼 못하는 자#s-2|결혼 못하는 자]] || 문석환 || ||
         || [[2005년]] || [[B형 자친구]] || 경준 || ||
         || [[2017년]] || [[마차 타고 고래고래]] || 모터사이클 || 우정출연 ||
         ||<bgcolor=#FFFFF0> [[2013년]] ||<bgcolor=#FFFFF0> [[MBC]] ||<bgcolor=#FFFFF0>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 339회 ||<bgcolor=#FFFFF0> ||<bgcolor=#FFFFF0> [* '전설의 주먹'이라는 제목으로 [[박현]], [[홍기훈]]과 함께 출연했으며, 연예계에서 싸움 잘하는걸로 알려진 게스트로 나왔다.] ||
         [[분류:한국 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72년 출생]][[분류:1994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윤보라 . . . . 8회 일치
         ||<#B26724> {{{#ffffff '''출생'''}}} ||<(> [[1989년]] [[12월 30일]][* 2017년 후크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이후 변경되었다. [[씨스타]] 활동 당시에는 공식 프로필 생년월일이 [[1990년]] 1월 30일이었기에 변경됐을 당시 팬들에게 혼란을 주었지만, 소속사 측에서는 주민등록상 생일하고 실제 생일이 달라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age(1989-12-30)]세), [[경기도]] [[성시]][* 한때 전 진도로 알려졌으나 정확히는 엄마의 고향이다.] ||
         2011년 8월 12일 [[KBS 2TV]] [[뮤직뱅크]] 촬영 중 사고로 화상을 입어서 이후로는 다리에 넓은 반창고를 붙이고 활동하고 있다. 그 뒤로도 잘 보면 다리에 화상 흉터가 약간 아 있다.
         [[청춘불패/시즌 2]]에 고정 출연했다. 하지만 방송 11주 중 3회 결방.(...)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결방킥]]을 잇는 결방불패.-- 또한 [[문화방송|MBC]]의 프로야구 프로그램 <야구 읽어주는 자>의 MC로도 활약했었다.
         2015년 10월 12일, 19일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다. 첫회부터 시청한 팬이라고 하였고, 실제로 [[정형돈]]의 진행 패턴인 어떻습니까아~ 등을 꿰고 있었고, 셰프들의 칼질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됨에 감탄하는 등의 모습으로 애청자임을 인증. [[이현이]]에 못지 않은 [[http://tvcast.naver.com/v/564263/list/51807|야한 탄성의 리액션]]을 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보라가 맛있게 시식을 할 때 [[하니(EXID)|하니]]는 너무도 먹고싶은 마음에 [[유체이탈]](...).~~
         2010년 8월 28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나눔콘서트 도중 보라가 야외공연 무대 위에 아 있던 빗물에 미끄러져 앞으로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는데, 그 사고를 담은 영상이 [[독일]]과 [[미국]]에서 해외 토픽으로 소개되어 화제가 됐다. ~~월드스타!~~ 이 사건 이후 보라는 한동안 손가락에 캐스트를 하고 음악방송과 예능에 출연했다. 심지어 그 손을 하고 몸을 쓰는 예능도 했다.
         ||<|2> [[2011년]] || [[MBC]] || 야구 읽어주는 자 ||<|2> 출연 ||<|2> ||
         [[분류:씨스타]][[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성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89년 출생]][[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은혼/589화 . . . . 8회 일치
         [[은혼]] 589훈. '''매'''
         사투를 거듭한
          * 매 모두 엉망인 채로 쓰러져 있지만 결국 다시 일어나는데
          * 정신을 되찾은 카무이는 "매 싸운 정도는 내 손으로 하게 놔둬"라며 걷기 시작한다.
          *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자"가, "겁쟁이란 것을 인정 못하고 싸움이란 도주로를 걸어왔던 자"가,
          * 매는 다시 마주선다.
          * 제목의 "매"도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됨을 의미하는 것.
  • 은혼/595화 . . . . 8회 일치
          * 오보로는 비록 쇼요는 자기 자신에게 패했으나 제자를 겼으니 그 제자들은 반드시 우츠로를 쓰러뜨리란 말을 유언처럼 긴다.
          * 그는 최후의 순간에 실은 쇼요의 제자들처럼 되고 싶었다는 말을 기고 숨을 거둔다. 다카스기는 그의 시체를 거둔다.
          * 긴토키와 자신이 쇼요를 몰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가하나 가츠라는 쇼요는 사전에 이런 상황을 위해 그라는 희망을 겼다고 말한다.
          * 다츠마는 쇼요가 긴 너희에 의해 자신들과 같은 동료가 생겼다고 말한다. 일행은 우츠로 타도를 다짐한다.
          * 만약 되돌릴 수 있었다면 "너희가 되고 싶었다"는 말을 유언처럼 기며 숨을 거둔다.
          * 가츠라는 긴토키의 말을 받으며 쇼요는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알았고 그때를 대비해 희망을 겼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 자신은 코우카에게 쫓겨났고, 비록 자식들에게 꿀밤을 먹일 팔도 없어졌지만 아직 할 일이 았다며 "이런 팔이라도 꽃다발을 따올 수는 있다"며 준비해온 꽃을 꺼낸다.
  • 은혼/622화 . . . . 8회 일치
          >자가 자라고 자칭하는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
          지로쵸는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해서야 자는 커녕 얼간이라 불리는데, 이 마을의 여자들은 특히 강해서 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마을 자들은 언제까지나 얼간이라고 놀림받아 버리지.
          >죽을 때까지 자라는 이름을 부르짖을 뿐이다.
          가구라는 그 꼬라지를 보고 "딸래미 엉덩이에 깔렸다"고 디스한다. 지로쵸는 잠깐 정색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피라코가 "이젠 지로총"이란 애칭이로 부르라고 하자 "그 얘긴 들 앞에서 하지 마라"고 발끈하자 또 피라코가 울먹거린다. 이번에도 1초도 못 버티고 달래지 못해 안절부절한다. 완전 주책없는 [[딸바보]]로 전락. 게다가 딸을 "피로링"이란 애칭으로 부르고 자빠졌다.
          지로쵸는 잘 버티고, 잘 싸우고, 잘 살아아주었다며 긴토키에게 감사를 전한다.
  • 이성민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서 [[영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영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직구 스피드가 147 km/h에 이르고 변화구 제구도 수준급이어서 스카우트 사이에서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 이전 부터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2012년]] [[8월 20일]]에 열린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윤형배 (1994년)|윤형배]]와 함께 특별 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208/h20120820204711111960.htm "4할 승률 위하여" 발톱 드러낸 NC] - 한국일보</ref> [[2012년]] [[12월 5일]]에 열린 2012 [[야구인의 밤]]에서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9144 '야구인의 밤' 영대 이성민, 우수 선수상 수상 ] - 스타N뉴스</ref> [[대한민국의 대학 야구 대회|대학리그]] 4년 동안 17승 15패, 252 1/3이닝, 222탈삼진, 89볼넷,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였다.
         * 대구도초등학교
         * [[영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영대학교 동문]]
  • 이성희(배구감독) . . . . 8회 일치
         ||<width=30%><:> [[박삼용]] [BR] (2007~2012) ||<:> {{{+1 →}}} ||<width=30%><#f00c12><:> '''{{{#ffffff 이성희}}}'''[BR]'''{{{#ffffff (2012~2016)}}}''' ||<:> {{{+1 →}}} ||<width=30%><:> [[서원]] [BR] (2016~ ) ||
         의림공고와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를 거쳤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시절에는 절친인 [[서원]], 한 해 후배인 [[박삼용]], [[어창선]]과 함께 활약하면서 실업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는데 일조했다. [[서울시립대학교|서울시립대]] 졸업 후에는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에 입단하여 활약하였으며, 고려증권의 황혼기를 장식했다. 현역 시절엔 세터였고 생김새와 포지션만 보면 착각하기 쉽지만...
         고려증권의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느 명선수 출신 감독들이 다 그랬듯이-- 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평가를 겼다. 그래도 GS칼텍스 시절에는 2007-08 시즌에 [[우승]]도 하는 등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기도 했었지만, 인삼공사에서는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할]]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인삼공사의 고질병인 [[몰빵배구]]와 얇은 국내 선수층을 개선시키지 못하면서 부임한 시즌 대대로 최하위만 밥먹듯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4년 동안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아 '''철밥통''', '''[[돌아이|돌성희]]''' 등의 온갖 모욕적인 [[별명]]들로 인삼공사 팬들에게 상당히 까이고 있다.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결국 [[2016년]] [[4월 5일]] 자로 계약이 만료된 후, [[서원]]에게 인삼공사의 감독직을 넘겼다. 팬들은 이성희에 대해 두 번 다시 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삼공사가 재계약하지 않고 이성희를 내친 것에 대해 통쾌해하는 중. --헤일리! 이제 다시 와! 너 툭하면 맨날 갈구던 감독이 드디어 나갔어!!-- --그런데 서원은 이성희와 [[서울시립대학교]] 동기이자 [[절친]]이라는 게 [[함정]].--
         절친이자 후임으로 들어온 [[서원]] 감독이 [[한수지]]를 센터로 이동시키는 극약처방 등을 한 끝에 매우 성공적으로 팀을 일으켜 세우면서, KGC 관련 기사가 뜰 때마다 심심찮게 까이고 있다. 그리고 [[서원]]이 3년만에 인삼공사를 봄배구에 진출시키면서 더 까였다.
  • 이장희 (시인) . . . . 8회 일치
          | 친척 = 이복 동생 10명 <br/> 이복 누이동생 8명
         [[1900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아버지 [[이병학 (1866년)|이병학]]의 11 8녀 중 장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구의 부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 (1866년)|이병학]]이며, 어머니는 박금련이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계모 밑에서 크며 아버지와 불화했다. 아버지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5 6녀를 두었고,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외에 측실도 1명을 거느렸다. 이장희 자결 당시 형제는 모두 10 8녀로 매우 복잡한 가계였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교우관계는 [[양주동]], 유엽, 김영진, [[오상순]], 백기만, [[이상화 (시인)|이상화]], [[현진건]]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부친이 중추원 참의로서 일본인들과의 교제가 빈번하여 아들 이장희 시인에게 중간 통역을 맡기려 했으나, 이장희 시인은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고, 총독부 관리로 취직하라는 지시도 거역하여 부친은 이장희 시인을 버린 자식으로 아주 단념하였다 한다. 그래서 극도로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ref>장백일, 〈고월 이장희시 연구〉, 《국어국문학》84권, 국어국문학회, 1980, 79~82쪽</ref>
         * [[대구종로초등학교|경상북도 대구 대보통학교]] 수료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분류:1900년 태어]][[분류:192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자살한 작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음독 자살한 사람]][[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
  • 이재룡(1964) . . . . 8회 일치
         ||<:><#4C4C4C>'''{{{#FFFFFF 출생지}}}'''||<(> [[대한민국]] [[전라도]] [[담양군]] 월산면 ||
         ||<:><#4C4C4C>'''{{{#FFFFFF 성별}}}'''||<(> [[성]] ||
         || 2017년 || MBC || [[밥상 차리는 자]] || 케빈 밀러 || ||
         ||<|4> 1999년 || KBS || 만 || 최연택 || ||
         ||<|2> MBC || 의 속도 모르고 || 최대한 ||
         ||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 경상도 마산 경찰 || ||
         || 1988년 || MBC || [[전원일기]] || 서울 모 포장마차 커플 자 손님 || ||
         [[분류:한국 배우]][[분류:교수]][[분류:담양군 출신 인물]][[분류: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분류:1964년 출생]][[분류:1986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이종화 (1949년) . . . . 8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시]] 봉덕동<br />(현.[[대구광역시]] [[구 (대구광역시)|구]] 봉덕동)
         |성별 =
         '''이종화'''(李宗和, [[1949년]] [[7월 16일]]~ , [[대구]] [[구 (대구광역시)|구]] 봉덕동)은 [[대한민국]]의 전직 공무원으로,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청장을 역임했다.
         * 1949. 07. 16 : [[경상북도]] [[대구시]] 봉덕동(현.[[대구광역시]] [[구 (대구광역시)|구]] 봉덕동) 출생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내성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오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이주승(영화배우) . . . . 8회 일치
         ||<#20B2AA> {{{#ffffff '''가족'''}}} ||<(> 부모님, 2 1녀 중 둘째 ||
          * '셔츠 입는 법을 모르는 이주승'으로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꽤나 돌아다녔다. [* 썸썸녀라는 웹드라마에서 나왔다. 여기서의 배역은 동정 [[오타쿠]](...)]
         || 웹드라마 || 썸썸녀[* [[http://tvpot.daum.net/mypot/Top.do?ownerid=qGQpAAM9X3E0|여기]]에서 시청 가능.] || 자4호 || 조연 ||
         ||<|3> 2013년 || MBC || [[자가 사랑할 때(드라마)|자가 사랑할 때]] || [[한태상]] || [[송승헌]] 아역 ||
         ||<|2> 2014년 || 제23회 부일영화상 || 신인자연기상 || 셔틀콕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9년 출생]][[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
  • 이철희(1964) . . . . 8회 일치
         1964년, 포항에서 3 2녀 중 [[3|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사실 썰전을 하면서도 그 이외의 언론 인터뷰, 방송 인터뷰에서 "서로 성향이 달라 오히려 방송을 할 때의 상호 대화패턴의 호흡은 맞지만, 일상생활의 호흡은 맞지 않는다.", "방송을 1년 넘게 같이 했으면 친해질 만도 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와 나는 그렇지 않고, 주기적으로 사적인 만과 친분을 가지는 사이가 아니다. 여전히 그에게 거리감이 있다.", "살아온 길,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더불어민주당 입당 당시 비노계의 수장으로 불리던 [[김한길(정치인)|김한길]] 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한 경력이나 같은 친노 인사인데도 [[18대 대선]] 때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잔뜩 날을 세웠던 [[김두관]] 전 경지사 등의 인물을 밀어준 발언들 때문에 처음 입당 당시에도 '비노'가 아니냐는 시선 속에서 입당을 했다.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http://gosunggo.com/693|박영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5001.html|'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영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 유시민 작가는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을 하긴 하였으나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인지라 더민주 내부 상황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의문스럽고 또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확실한 상황 증거는 내놓은 게 없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당 발언의 사실성을 떠나서 민주당을 떠난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인사가 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영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 [[맥심(잡지)|맥심]] 2016년 2월호에 (뒤)표지모델로 나왔다. [[http://i63.tinypic.com/2evdy07.png|사진 참조]] 그 후 맥심 2016년 2월호가 완판되는 영광을 누렸는데, 이건 이철희 사진이 멋있게 잘 나와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순전히 [[시노자키 아이|(앞)표지모델로 나온 사람]]덕분이었다는 게 정설이다.[[http://i67.tinypic.com/24yp6qg.jpg|사진 참조]] ~~의문의 완판~~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8회 일치
          >너야 말로 은 심장을 파괴 당하면 끝이잖아.
          >여자의 몸을 뒤적이다니, 음흉한 자.
          * 엘레인이 서둘러 다가오려 했지만 반이 막았다. 그가 당한 이 독, 보통 독이 아니다. 데들리 포이즌은 메라스큐라의 소화액이다. 무시무시한 강산인데다 피어오르는 증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반의 불사신 육체도 이 독 앞에서는 무력했다. 독액이 그의 몸을 녹였고 증기가 아서 재생하는 것 보다 빠르게 그의 몸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엘레인은 그가 한 줌의 핏덩이와 해골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때 그녀를 대신해 엘리자베스가 나섰다. 그녀는 독기가 자욱한 반의 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갔다. 메라스큐라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기가 그녀에겐 통하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반을 향해 손을 뻗고 여신족의 힘을 발휘했다. 그건 마법이나 주술이라기 보단, 마치 명령. 언령이라고 부를 만했다.
          언령에 따라 메라스큐라가 자랑하던 맹독이 순식간이 정화되어 간다. 뼈 조차 지 않고 사라져 가던 반이 빠르게 회복했다. 메라스큐라가 엘리자베스를 "더러운 여신족"이라 욕했지만 그녀에게 신경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디안느는 벌레를 잡는 것처럼 가볍게 메라스큐라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상상을 초월한 충격에 메라스큐라는 어이가 없었다. 멍청하게 비틀거리는 메라스큐라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기데온을 휘둘러 골프공처럼 처날렸다. 이 두 공격으로 메라스큐라는 이미 피투성이. 자랑하던 독니가 하나도 지 않았다. 분명 메라스큐라에겐 거인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지만 디안느는 그것 조차 아득히 초월했다. 마치 거인왕 [[드롤]]을 연상시키는 힘. 메라스큐라는 경악과 함께 날아갔다.
          * 놀랄 일은 아직도 한참 았다. 이번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분풀이 차례였다. 그 몸이 바닥에 채닿기도 전에 무수하게 분열된 영창이 벌떼처럼 덮쳤다. "버블비". [[그로키시니아]]에 필적하는 신수의 힘이었다. 긴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더로 잘게 저며진 메라스큐라는 맥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 메라스큐라가 우왕좌왕하는건 고서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녀에 머리에 올라타고 장기를 발휘했다. "브레이커 오프". 이제 10초 동안 메라스큐라의 신경이 완전히 차단됐다. 그정도면 충분하고 는 시간이다.
          * 저쪽의 승부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이쪽의 상황은 그보다 심각했다. 퍼펙트 큐브에 갇힌 두 자의 신경전이 불꽃 튀었다. 마신왕의 힘을 끌어낸 멜리오다스를 눈 앞에 두고도 에스카노르는 "재미있는 변화"라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의 단장과 명백히 다른 모습. 그것만은 에스카노르도 인정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 말이 이해가 되느냐고 묻자, 평소와 다른 단장이 위협적으로 대꾸했다.
  • 임효준 . . . . 8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쇼트트랙]]}}
         {{금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자 1500m|1500m]]}}
         {{동메달|[[2018년 동계 올림픽|2018 평창]]|[[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자 500m|500m]]}}
         '''임효준'''([[1996년]] [[5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이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자 1500m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첫 금메달로서 더욱더 의미가 크다. 임효준은 순발력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이 장점으로, 전성기 시절 ‘제2의 [[안현수]]’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ref name="대구일보"/>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자 1500m|쇼트트랙 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올림픽 쇼트트랙 자 1500m 금메달리스트}}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오륜중학교 동문]][[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장문규 . . . . 8회 일치
         * 《[[제보자 (영화)|제보자]]》 (2014년) - 대합실 자 2 역
         * 《[[그놈이다]]》 (2015년) - 신발주인
         [[분류:1974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
  • 장수원 . . . . 8회 일치
         [[장수원]]은 1997년 4월 15일 댄스 그룹인 [[젝스키스]]의 멤버로 데뷔하였으며, [[젝스키스]]가 해체하던 2000년까지 인기를 얻었다. 1998년에는 [[젝스키스]] 주연인 영화 《[[세븐틴]]》을 찍었다. 해체 후 [[은지원]]과 [[강성훈]], [[이재진 (1979년)|이재진]]이 솔로로 데뷔하고, 은 멤버 김재덕과 함께 [[제이워크|J-walk]]를 결성하여 2002년 1집을 발표하였다. [[제이워크]]에서는 [[강성훈]]과 [[고지용]]의 보컬로 인해 가려져 있던 그의 보컬이 인기를 끌었다. [[2004년]]에는 [[클릭비|Click-B]]의 멤버들과 프로젝트그룹 [[JNC]] 활동을 했다. 2009년 12월 30일에 군대 현역으로 육군 군악대에 입대하여, 2011년 10월 20일 만기 전역하였다.
         * 2015년 -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 고교시절 미팅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천시 출신]][[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젝스키스의 일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장우석 . . . . 8회 일치
         *[[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95학번)
         [[1977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음력 [[1976년]] 11월 20일) [[영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경북산업정보전문학교 웹멀티미디어과정 3기를 수료했다.
         [[2004년]] 대구 평화영화제를 시작으로 대구 5.18영화제, 앞산달빛 마을영화제, [[영대학교]] 북한영화제 등 여러 지역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지냈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0515.010350815480001 장우석 독립영화 감독·물레책방 대표, 10월항쟁·위안부 할머니 관련 다큐 제작], 《영일보》, 2015.5.15.</ref>
         [[2003년]] 《OST-BOX》에 <영화 《[[하얀 비요일]]》 OST 리뷰>를, [[2006년]] 《[[녹색평론]]》 87호(2006년 3~4월)에 <4.3 항쟁, 변방, 끝나지 않은 세월><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5922 김경률 감독 추모전 대구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2006.3.24.</ref>을 각각 기고한 이후 《[[오마이뉴스]]》, 《[[대구신문]]》, 《이삭》 등 여러 매체에 지역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으며,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영일보]]》에 [[영화]]칼럼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영잡감)><ref>[http://www.yeongnam.com/ynsearch/search.jsp?searchWord=장우석의+전영잡감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영잡감)> 연재 읽기], 《영일보》, 2014.3.14~현재.</ref>을 연재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영진고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효신초등학교 동문]]
  • 정난정 . . . . 8회 일치
         [[한성부]]에서 [[초계 정씨]]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윤겸]]과 차실(次室) 씨(南氏)의 2 3녀 중에서 막내 딸로 태어났다. 모친은 본래는 상민이 아니었으나 난신에 연좌된 부녀로서 노비가 되었고, [[정윤겸]]의 집에 분배되었다. 그는 정윤겸과 노비가 된 반가 여성 사이에서 서녀(庶女)의 신분으로 태어났다.<ref>그러나 그 모친의 성명은 전하지 않는다.</ref> 그리고 정난정은 어릴 때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정난정은 윤원형과의 슬하에 4 2녀를 겼는데, 정난정이 정실부인이 됨에 따라 그 자녀들도 적자가 되었다. 양반가에서는 그녀의 권세에 힘입으려고 사돈이 되자 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많은 재산을 모으며 부귀를 누렸고 문정왕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성리학자인 사대부들은 정난정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여 그 후원자인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 (조선)|보우]]는 제주도로 귀양을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에도 사림의 계속적인 탄핵으로 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다.
         * 어머니: 씨 (정윤겸의 첩)
         ** 편: [[윤원형]]
         그는 자신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측근인 점을 이용,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서자 서녀도 능력이 되는 인물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편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ref name="yunnaev"/> 이는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ref name="yunnaev"/>
  • 정링컨 . . . . 8회 일치
         * [[QTV (방송)|QTV]] 《죽 쑤는 여자 죽지 않는 자》
         * [[주니엘]](JUNIEL) 미니3집앨범 '귀여운자' M/V (2013)
         [[분류:2007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램버트, 링컨]][[분류:21세기 터키 사람|람베르트, 파울]][[분류:미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어린이 배우]][[분류:한양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침례교도]][[분류:미국계 터키인]][[분류:한국계 터키인]][[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터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브루나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정문성 . . . . 8회 일치
         * [[2018년]] [[SBS]] 《[[훈정음]]》 - 육룡 역
         * [[2018년]] [[JTBC]] 《[[라이프 (2018년 드라마)|라이프]]》 - 조형 역
         * 《[[쪽으로 튀어]]》 (2013년) - 공안2 김원석 역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순천향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진헌식 . . . . 8회 일치
         [include(틀:충청도지사)]
         1902년 [[충청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양정고등학교(서울)|양정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충청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무소속 이긍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12월부터 1952년 8월까지 관선 [[충청도지사]]를 지냈다. 충청도지사 임기 중이던 1952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충대학교]] [[총장]] [[서리]]를 [[충대학교/역사|겸직하였다]]. 이어서 1952년 8월부터 1953년 5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가 [[곡물]] 관리상의 문제로 경질되고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 창작:왕국 . . . . 8회 일치
         북부 언더월드 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국가. 북부의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띄고있으며, 쪽으로 내려갈수록 사막의 비율이 높아진다. 현재 왕국은 "사막에 대한 전쟁"을 선포, 반세기에 걸쳐 농경지를 넓히는 작업을 하고있다.
         대부분의 도시는 북쪽 해안에 몰려있으며, 쪽의 사막 지역은 비교적 인구수가 적다. 쪽과 북쪽은 다른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기후, 주요 산업, 인종, 치안, 인프라 수준 등이 다르다.
         부에서는 가끔씩 모래폭풍이 불어 재산 및 인명 피해를 입히기도한다. 이를 예측하기 위해 "폭풍 감시원"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모래폭풍을 관측해 방향, 규모, 속도 등등을 무전으로 보고하는 직업이다. 정부는 이들을 영웅으로 선전하지만, 실제 대우는 좋지 못한 편이다.
         여러가지 지하자원이 부의 사막지대에 매장되어 있다. 이를 채굴하는 광산과 이를 가공하는 공장,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주거시설들로 이루어진 도시가 사막 군데군데 위치해있다.
         쪽에 있는 사발타와 친하긴 하지만 사발타는 시대를 역행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국가니 제외.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18세 이상의 녀가 징집된다. 군복무 기간은 3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면 군복무에서 면제된다.
  • 최병철 . . . . 8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펜싱]]}}
         {{동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자 플뢰레 개인전|플뢰레 개인전]]}}
         '''최병철'''(崔炳哲, [[1981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이다. [[2012년 하계 올림픽]] 자 [[플뢰레]] 종목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올림픽에 출전한 자 펜싱선수로는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김영호 (펜싱 선수)|김영호]]에 이어 12년만에 메달을 건 선수가 되었다. 재치있는 입담과 특이한 경기운영방식으로 인하여 '''괴짜검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f>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8&idxno=616081 기상천외한 공격펜싱 '최병철', 괴짜검객 등극] 《이투데이》, 2012년 8월 2일</ref>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방송공사|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2016년]] [[8월 10일]]에 있었던 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박상영]]이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자,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라는 어록을 기기도 하였다.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 최원홍 . . . . 8회 일치
         * 2018년 [[MBC]] 《[[검법녀]]》 - 박준하 역
         * 2007년 《[[그레꼬로망 러브]]》 - 자아이 역
         [[분류:200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어린이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최항석 . . . . 8회 일치
         * 《육매》
         * 《[[자 셋 여자 셋|시트콤 자 셋 여자 셋]]》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최효진 (축구선수) . . . . 8회 일치
         |현 소속팀= [[전 드래곤즈]]
         |클럽= [[인천 유나이티드]] <br />[[포항 스틸러스]]<br />[[FC 서울]]<br />→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 (군 복무)<br />[[전 드래곤즈]]
         '''최효진''' (崔孝鎭, [[1983년]] [[8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다. 현재 [[K리그 클래식]] [[전 드래곤즈]]에서 뛰고 있다.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전 드래곤즈]]로 이적하였다.
         * [[2015년]] ~ {{국기그림|대한민국}} [[전 드래곤즈]]
         {{전 드래곤즈 선수 명단}}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
         [[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전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중동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8회 일치
         오른쪽 위에 위치한 해골 모양 게이지는 시간이 지에 따라 차오른다. 해골 모양 게이지가 다 찼을때, 플레이어는 죽음의 감각을 발동할 수 있다.
         총을 뽑는데 성공했다면 상대를 쏘아 승리하는 일이 았다. 이때, 몸을 좌우로 움직여 상대의 총알을 피할 수 있다. 상대는 피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심하자.
          자칭 사일러스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자. 그의 이야기를 술 한잔 얻어마시려는 수작으로 생각한다.
          실존 인물. 본명은 제시 우드손 제임스. 열차 강도를 전문으로 하는 전설적인 무법자. [[북전쟁]] 당시에는 군의 게릴라로 참전했었다.
          실존 인물. 본명은 알렉산더 프랭클린 제임스. 제시 제임스의 형으로 [[북전쟁]] 당시 제시 제임스와 함께 싸웠다.
          실존 인물. 제임스 형제와 함께 [[북전쟁]]에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도 여왕"이라고 불렸던 벨 스타의 첫 편이기도 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8회 일치
          * 척후활동 -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자는 오직 죽음으로만 이끌 뿐이다."
          * 병참술 - "배도 고프고 맨발 상태라면 어떤 자도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게이샤는 숙련된 연주자이자 무희이기도 하며, 또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접대 및 정신적인 고양을 위해 자신들의 기예를 이용합니다. 이들의 재능은 군사적인 일에도 도움될 수 있습니다: 일부 자들은 약하며, 쉽게 이성을 잃기도 합니다. 또 다른 자들은 여자에 빠져 배반하기도 합니다.
          * 가희(Siren) - "일부 자들은 아름다운 눈의 깊은 웅덩이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 사업가(Entrepreneur) - "아름다움은 계약 뒤에 는 법이다."
         >유신지사는 오직 한 가지에만 헌신하는 "이상주의 자"입니다. 그 한가지란 바로 덴노의 신성한 권위를 복권하는 것입니다. 덴노의 지지자인 이들은 경쟁 세력의 불안을 고조시키면서 충신을 결집하고 고무시킵니다. 하나만 바라보는 외골수이자 위험한 자인 이들은 가고자 하는 길에 방해물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지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 피우진 . . . . 8회 일치
         1956년 8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직업군인의 딸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위로 언니 2명, 아래로 여동생 1명과 동생 1명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도 [[체육교육과]]로 진학했다. [[청주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야간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당시는 돈이나 뒷배경으로 교직을 얻는 교사들이 많았으나, 피우진의 아버지는 그런 일을 단호하게 반대하여, 피우진은 일반 중고등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군]] [[사관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직업군인]]을 결심했다고 한다.
         매우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피우진과 같이 군 생활을 한 장병들은 모두 그녀를 '''"매우 훌륭하고 인성도 상당히 좋은 참 군인"'''이라며 칭송했을 정도. 그런데 피우진이 군 생활을 할 당시 [[소령]]이었는데, 하필 자신은 [[소대장]]이 되었다.[* 보통 [[소대장]]은 [[소위]]~[[중위]]가 배치된다.] 게다가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 [[대위]]였는데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나마 해당 군 대위가 개념이 있어서, 자기보다 직급은 낮아도 계급이 높기 때문에 피우진을 존중해주고 서로 상호존대를 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넘어가기는 했다만.
         2017년에 [[양승숙]] 준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을 지지하였고,[* [[여군]]들은 보통 진보적인 친 [[더불어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반대로 [[군]]들은 보통 보수적인 친 [[자유한국당]] 성향이 강하다. (다만 군의 경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민주당 성향이 강한 경우도 있는데, 보통 장병 복지 및 처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민주당 쪽으로 지지하게 된다. [[백군기]] (예)대장이 그 예시.) 하필 피우진이 [[여군]] 인권 이슈를 내놓을 수 있던 자리에서 [[문재인/2017년#s-4.1|동성애자 난입]]이 일어나, 피우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실패하는 씁쓸한 일화가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가보훈처]] 처장에 임명되었다. 그 이전까지 전임 국가보훈처장은 모두 예비역 중장이었지만 [[문재인]]이 주요직위자의 문민화를 위해 여군 출신의 피우진을 이 자리에 보직시켰다.
         이를 통해 피우진이 얼마나 대쪽 같은 인물인지를 깨닫게 되었기에 더 이상 비슷한 성격의 요구가 하달되는 일은 없게 되었으나, 높으신 분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피우진은 결국 중령에서 군 생활을 접게 된다. ~~안 돼~~ 한때는 이것이 루머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실제 실탄 지급을 한 것에 대해 징계를 받은 기록이 아 있다고 한다. ~~오호라, 그럼 기록에 은 그 사람이 관련자로구나!~~이때가 1988년 무렵이고, 피우진은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1987년 6월부터 89년 4월까지가 [[정호근(군인)|정호근]](後 합참의장 역임)이 1군사령관이고 다음이 [[이진삼]]이다. 또한 88년 7월 소령으로 진급했기 때문에, 88년 대위 시절 사령관은 [[정호근(군인)|정호근]]으로 추측된다.
         [[여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여성의 병 복무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군 간부직을 늘려달라는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하여 "군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내가 겪은 '자들로만 이뤄진 징집 군대'로선 여군 간부는 자리가 비좁다. 여군 간부직을 늘리자면 여군이 더 필요한데, 여자는 죄다 간부직만 차지할 것이냐."고 한 바 있다. 위 일화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현 국군 안에서 여군들이 마주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들에 대해서 직접 겪고 싸워본 사람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발언. 다만 일반 여군들이 병 복무 시 마주하게 되는 부당처우 및 성차별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이 같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모범 군인으로서 소령까지 진급했음에도 번번이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피우진 본인의 일화만 생각해봐도...)
  • 한창수 . . . . 8회 일치
         외교 관계 쪽 관직을 맡으며 [[일본]]에 드나들면서 친일 세력과 가까워진 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 일제의 신임을 받아 [[대한제국 고종|고종]]과 [[대한제국 순종|순종]] 등 왕실을 전담하는 [[이왕직 장관]]도 역임했다.
         ** 양조부 : 한직교(韓直敎), 한원리의 장
         ** 친조부 : 한필교(韓弼敎), 한원리의 삼
         **** 본처 : 양 홍씨, 홍종서의 딸
         ***** 장 : [[한상억 (1898년)|한상억]](韓相億)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 작위를 물려받은 아들 [[한상기 (조선귀족)|한상기]], 서자 [[한상억 (1898년)|한상억]]과 함께 선정되었다. [[2009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분류:1862년 태어]][[분류:1933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작]]
  • 함신영 . . . . 8회 일치
         *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2014년) - 귀원편 역
         * 《[[MBC 베스트극장]] - [[아빠 애인의 자친구]]》 (MBC, 1999년)
         * 《[[자 셋 여자 셋]]》 (MBC, 1998년)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허준호(배우) . . . . 8회 일치
         청소년 시절에 방황이 길었다고 한다. 처음에 서울예대 무용과로 들어갔는데 입학해서도 겉도는 허준호에게서 그래도 소질을 꿰뚫어본 교수가 "너를 괜히 붙여준줄 아느냐?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거라" 라고 말을 겼는데 알고보니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이었다고. 무용과를 졸업하고 나서 뮤지컬을 하고 싶어 서울예대 연극과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 1997년 《꽃을 든 자》... 상범 역
          * 2001년 ~~KBS2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건 맞지만,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는 [[이미연(배우)|이미연]]의 당시 소속사인 GM기획이 음반 제작을 주도하면서 드라마 제작진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실제 뮤직비디오 속 배우와 드라마 속 배우들이 몇몇 배역의 경우 다르다. 대표적으로 뮤직비디오의 사실상 자주인공이었던 [[정준호]]도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 1995년 제16회 [[청룡영화상]] 우조연상
          * 2000년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우주연상
          * 2003년 [[SBS 연기대상]] 자조연상
          * 2004년 제41회 [[대종상영화제]] 우조연상
         [[분류:한국 배우]][[분류:1964년 출생]][[분류:1986년 데뷔]][[분류:전주시 출신 인물]]
  • 헌터X헌터/369화 . . . . 8회 일치
          * 제 1왕자 벤자민과 2왕자 카밀라는 이미 넨능력자가 충분히 있을 걸로 추측되며 제 3왕자 장레이는 이미 커넥션을 만들어 논외, 자연 체리드니히가 는다.
          13왕자 마라얌 측에선 "베레리인터"라는 헌터 협회 출신 경호병과 세반치 왕비 소속 "바리겐"을 보냈다. 베레리인터는큰 키에 코가 큰 자. 당연히 넨능력자였지만 "제대로 가르치는지 확인"을 위해서 파견됐다. 베레리인터는 개인적으로 세반치 왕비를 좋아하는지 "꼼꼼히 확인해라"고 당부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귀엽다"고 히죽거리고 있다. 바리겐은 땅딸한 키에 몸집이 옆으로 불어난 자다. 넨능력 습득을 명령 받았고 그걸 큰 기회로 여기고 있다. "웰게"라는 경호병을 라이벌시하는 듯 한데, 그를 재치고 선발된게 꽤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 제 9왕자 할겐부르그는 사설병 둘을 보냈다. "세쥬르"라는 안경잽이 자와 검은 머리의 "유히라이"라는 자. 할겐부르그는 계승전에서 빠지기로 했지만 자신을 비롯해 소속병 전원의 손등에 "깃털문양"이 나타나자 예사일로 느끼지 않았다. 분명 "넨수"가 관련되었다, 그렇게 직감했다. 그 정보를 유포한 와블 왕자측과 접촉해 이 깃털문양의 실체를 밝히는게 목표. 그걸 위해서라면 이쪽의 정보를 전부 공개하는 것도 상관없다. 세쥬르는 알아볼 필요도 없이 할겐부르그의 넨수일 거라고 짐작한다. 유히라이도 동감한다. 이 문양은 왕자가 말하는 "각오의 각인" 그 자체다.
          제 7왕자 루즈루스도 사레사레와 마찬가지로 두아즐 왕비 소속병 대장 "사토비"를 보냈다.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중년. 그는 이 수업을 정찰 임무로 이해하고 있다. 다른 진영 경호원들의 동향을 살피면서 교섭도 할 수 있는 기회. 그렇게만 보면 너무 좋은 조건이지만, 단 한 사람의 경호원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그는 크라피카를 위험인물로 간주했다.
          * 5왕자 츠베파는 철저하게 실리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접촉시켰던 사설병 대장 "마올"을 다시 파견하고 "롱기"라는 머리가 긴 자를 딸려보냈다. 그 역시 츠베파의 사설병. 그들의 목표는 "크라피카의 두뇌". 그를 동료로 확보하는 것이다. 와블 왕자까지 포함해도 좋으니 꼭 동료가 될 수있도록 설득하라는게 진짜 목표였다. 넨 습득은 오히려 구실. 마올은 다른 진영 경호병의 눈을 의식해 은밀하게 처리하려면 편지를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롱기도 같은 생각이다. 부호를 쓰거나 동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노출된 우려가 컸다.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몹시 음험해 보이는 자였다. 일단은 텐후토리처럼 정찰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다. 설마 와블 측에서 먼저 초대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좋은 기회다. 적의 넨능력을 파악할 수단은 많다. 외견, 수업방식,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계통이나 능력 자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건 휴리코프만의 기술이었다. 넨능력이 아닌, 경험에 의한 노하우. 어찌보면 이거야 말로 그의 생명선이었으며, 그런만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수였다. 가령 능력자와 비능력자는 안구의 움직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옆에서 안구를 봤을 때 그 주변의 흔들림을 보는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구분법이었다. 지금도 그는 1014호실 거실에 모인 안구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 현정건 . . . . 8회 일치
         [[1926년]] 10월 10일에 중국사정연구회(中國事情硏究會)를 조직하여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1월에 상하이에서 의열단 창립 9주년을 맞아 재중 조선인들에게 격문을 발표하며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1927년]] 4월 10일 홍진(洪鎭)ㆍ홍규(洪南杓) 두 사람의 명의로 발표된 전민족적독립당결성선언문(全民族的獨立黨結成宣言文)에 따라 11일에 삼일당에서 약 40명이 모여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 창립총회를 열고,
         「동아일보」 [[1933년]] 1월 1일 기사에는 1월 3일 오후 1시에 현정건의 발인이 이루어질 것이고 영결식이 가회동 177번지의 자택에서, 묘소는 동소문 밖의 미아리에 마련되었다고 적고 있다. 현정건의 부인 윤덕경(尹德卿)은 편이 죽은 뒤 이레, 달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조금 밝은 모습을 보이는 듯 싶더니, 끝내 2월 10일에 "(편이 없이) 아무래도 살 수가 없다", "죽은 몸이라도 형님(현정건)과 한 자리에서 썩고 싶으니 (편 옆에) 같이 묻어달라"는 요지의 유서를 시동생 현진건에게 기고 현정건의 영전 앞에서 음독자살하였다.<ref>「玄鼎健氏未亡人 尹德卿女史殉從」 『중앙일보』 1933년 2월 12일자. 「結緣卄年에 同居는 半世」 『동아일보』 1933년 2월 12일자. 유서의 전문도 함께 실려 있다.</ref> 편이 죽은지 41일만의 일이었다. 다른 자식은 없었다.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작품을 긴 소설가 현진건의 형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부인 윤덕경과의 사이에서 자식은 없었고,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이자 연인으로 계옥(桂玉, 현규옥)이 있었다.
         [[분류:1887년 태어]][[분류:1932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고문 피해자]][[분류:유교 이탈자]][[분류:자유 연애]][[분류:사회주의자]]
  • 홍순언 (1530년) . . . . 8회 일치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양군|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 (명나라)|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의 가계는 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이다.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다. 출신지는 한성부라는 설과 [[경기도]] [[광주군]]이라는 설이 있다. 1899년에 편찬된 [[경기도]] [[광주군]]의 향토지인 광주군지 인물편에 그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할아버지 홍경창(洪慶昌)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안동부사(安東府使)등을 역임했고, 큰아버지 홍신(洪愼)은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 양주목사(楊州牧使), 형조참의(刑曹參議), 공조참의(工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1539년]](중종 34년)에는 [[명나라]]에 진하사(進賀使)로 다녀오기도 했다. 아버지 홍겸은 [[1531년]] 역과에 급제하여 [[명나라]]에 두 번 역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가 들어간 방의 기녀는 용모가 준수하였으나 소복으로 슬픈 모습이었다. 홍순언이 기녀에게 사연을 물은 즉 소녀의 성은 류씨로, [[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이다. 그러나 아버지 류모가 공금횡령 혐의로 누명을 쓰고 옥사하고 모친마저 죽게 되자 부모의 장례를 치를 사람과 비용이 없었고,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방으로 팔려왔다는 것이다. 또한 이왕 첫 정을 바칠 바에는 용렬한 사내에게 정을 주느니 통이 큰 사내에게 정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 양홍씨세보
         [[분류:조선의 공신]][[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양 홍씨 (당홍)]][[분류:병사한 사람]]
  • 홍정욱 . . . . 8회 일치
          | 자녀 = 슬하 1 2녀
          | 부모 = [[궁원|궁 원]](부), 양춘자(모)
         2008년 4월 9일 노원구 병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시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의 후보였던 [[노회찬]]을 누르고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이며 국회 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정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9월 24일 [[한나라당]] 국제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2010년 8월 17일에 [[한나라당]] 2030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외에 [[한나라당]]에서 천안함대책위 위원, 북핵도발대책특위 위원, 서울시당공천심사위 위원, 지방선거기획위 위원, 2010 지방선거 중앙선대위 스마트유세지원부단장, 2010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선대위 O2유세지원단장,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홍정욱은 영화배우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궁원]]과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양춘자 사이 1 2녀 중 외아들이다. 누나인 홍성아는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계열사인 헤럴드아카데미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생인 홍나리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최초의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 선발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홍정욱은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던 [http://www.jungheesohn.com/ 손정희](1974년~)와 결혼해 1 2녀를 두고 있다. 장인인 손명원은 [[현대미포조선]], [[쌍용자동차]] 사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으로 정치인 [[정몽준]]의 손윗 동서이다. 처의 증조부는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제2대 의장을 역임한 [[손정도]] 목사이고, 처의 친할아버지는 [[대한민국 해군]] 창군 주역이자 전 국방부 장관인 [[손원일]] 제독이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김동조]] 前 외무부 장관이다.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성공회대학교 교수]][[분류:서울압구정초등학교 동문]][[분류:압구정중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홍준표]][[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홍진경 . . . . 8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양주시]]
         | 형제자매 = 동생 1명
         [[경기도]] [[양주시]] 에서 1 1녀 중 장녀로 태어난 홍진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3년 제2회 [[서울방송|SBS]] 슈퍼 모델 선발 대회에서 《베스트 포즈상》을 받고 연예계에 데뷔하였다.<ref>최지윤.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692771&year=2011 이소라·홍진경·송선미…잘 나가는 슈퍼모델 출신 ★들]. 매일경제. 2011년 10월 26일.</ref>
         * [[MBC]] 《[[자 셋 여자 셋]]》
         * 홍진경은 [[2012년]] 10월 13일에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제38회 꿈자람 체육대회 개최에 따른 종사자 및 후원자 표창 수여식에서 후원자 자격으로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여 받았는데, 서울시 소속 38개 [[보육원]]들이 다함께 모여 체육대회를 여는 날로, 후원자 10팀과 종사자 15팀을 위한 표창장 수여식도 함께 열린 가운데, 홍진경은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단체 중 하나인 [[강보육원]]의 추천으로 표창장을 받았다.<ref name="이지"/>
         [[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3년 데뷔]][[분류:양주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식품업자]][[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코드 - 비밀의 방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황광희 . . . . 8회 일치
         '''황광희'''(黃光熙<ref>[http://weibo.com/princekwanghee 황광희 웨이보]</ref>, [[1988년]] [[8월 2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이다. 2010년 9인조 성 그룹 [[ZE:A]] ([[제국의 아이들]]) 로 데뷔 하였다.
         스타제국 연습생 시절인 [[2009년]]에 [[Mnet]]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피스 리얼리티 - 제국의 아이들》과 《제국의 아이들 리턴즈》에 출연하여 이동식 무대 차량인 윙카로 전국을 순회하는 게릴라 공연을 펼쳤고,<ref>{{뉴스 인용|제목=연예계 뒷얘기 ‘제국의 아이들’… 100% ‘리얼’ 가능할까?|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089654|저자=김보람|출판사=매일경제|날짜=2009-04-06|확인날짜=2012-08-25}}</ref><ref>{{뉴스 인용|제목=제국의 아이들, 거리공연으로 호된 데뷔 준비중|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2000932|저자=이수현|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9-10-01|확인날짜=2012-08-25}}</ref> [[2010년]] [[1월 15일]]에 9인조 [[대한민국]]의 성 그룹 [[ZE:A]]의 멤버로 데뷔하였다.
         | 클럽성 역
         | 쇼/버라이어티 부문 자신인상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
         [[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한국어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201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황연석 . . . . 8회 일치
         |클럽=[[성 FC|성 일화]]<br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br />[[대구 FC]]<br />[[고양 국민은행 축구단|고양 국민은행]]<br />[[서울 유나이티드]]
         |감독 클럽=[[청구고등학교]] (코치)<br />[[해성중학교]]<br />[[용중학교]]<br>[[신갈고등학교]] (코치)<br>[[대전 시티즌]] (2군 코치)
         [[1995년]] [[성 FC|일화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 시즌 30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쳐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노상래]]에 밀려 신인왕에 선정되지는 못하였다. 일화 축구단이 [[천안시]]를 거쳐 [[성시]]에 둥지를 튼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며 [[K리그 2004|2004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때까지 팀에 4회의 리그 우승을 안겨주었다.
         [[청구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해성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재 [[용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성 FC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
  • 강영식 . . . . 7회 일치
         || '''등장곡''' || [[진]] - 둥지 ||
         '''[[김응용]]의 자'''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여담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첫 KS 우승이자, 드라마틱했던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의 승리 투수가 바로 강영식이다. 삼성에서 나름 의미있는 기록을 긴 투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과 동시에 부상으로(왼 어깨 건초염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추가바람) 2군에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동안 짐은 고스란히 [[이명우]]가 떠안아야 했다. 다행히도 8월 중순 2군 경기에 등판해서 멀쩡히 던지는 모습이 포착, 다음 텀에 올라오지 않을까 하던 팬들의 예상대로 돌아와서는 안정적인 피칭을 보였다.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후반기로 갈수록 투구 내용이 좋아졌다(…).
         2017년 11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당했다. 이로써 해태 출신 현역 투수는 [[임창용]]만 았다
         거기에 더해서 2012시즌 도중 어느 [[2NE1]]갤러가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 올스타 투표 인증을 하러 왔다가 기고 간 "강억삼씨는 왜 억삼인가요? '''억'''수로못하'''삼'''의 줄임말인가요?"라는 글이 재발견되어 빵 터진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갤러들에 의해 '억수로못하삼'이라고 불렸다(…).
  • 강중인 . . . . 7회 일치
         [[미군정]] 하의 [[서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좌익]] 운동에 뛰어들었다. 좌익 법조인 모임인 [[법학자동맹]]과 [[조선로동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강중인이 로당에 가입하게 된 동기는 후에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ref> {{뉴스 인용
         {{인용문|일정(日政) 당시에는 내가 내 한 몸을 구하기에 여력이 없었습니다. 8·15 해방을 맞이하자 피고는 이때야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닙니다. 내가 어찌하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을까 함이었습니다. 해외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투쟁하던 위대한 애국자들이 해방된 조국을 찾아 들어옴을 볼 때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후 피고는 로당에 가입을 작정하였던 것이며, 법맹에도 초창기부터 가입하였습니다.}}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토지문제연구위원에 임명되었고, 미군정 과도정부의 사법부 총무국장도 지냈다. 같은 해 7월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발생하여 로당과 미군정이 정면 충돌을 일으켰을 때 위폐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로당은 곧 불법화되었고, 강중인은 [[1949년]]에 발생한 법조프락치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항소 중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
         [[분류:1908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조선로동당]][[분류:월북자]]
  • 고경표(배우) . . . . 7회 일치
         || '''가족''' ||<(> 부모님, 1 1녀 중 둘째 ||
         [[박유천]]과 관련된 논란에서는 2014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 우상을 수상하였던 박유천을 두고, 비공개 계정에서 친구와의 대화했던 것이 논란이 되었다. 당시 후보로는 <화이; 괴물을 삼킨아이>의 [[여진구]], <족구왕>의 [[안재홍]], <신의 한수>의 [[최진혁]], <변호인>의 [[임시완]], <해무>의 박유천이 있었으며, 박유천이 수상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제에 대한 비난과 함께 수상한 박유천에 대한 언행을 한 것은 잘못한 점이 분명히 있으나, 이를 두고 고경표는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전 인터뷰에서 아이돌 출신인 임시완에 대해 존경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딱히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던간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면, 아이돌의 연기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확대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박유천/사건사고|엄청난 사건사고]]로 큰 논란에 휩싸인 [[박유천]]을 옹호중인 [[심영섭]]이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hm2b&page=2&sn1=&divpage=44&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78586|믹키유천의 오랜 팬이자 본 신인 우상의 심사위원중 한명이이었다는것이 밝혀져]] 본 발언이 '''재평가를 받고있다.'''
         || 2013년 || [[tvN]] || [[이웃집 꽃미]] || 유동훈 || 조연 ||
         ||<|4> 2013년 || the story of MAN & WOMAN[* [[류덕환]]이 감독한 단편영화.] || 자 ||
         || 2013년 || || [[이웃집 꽃미]] OST Special || 너 땜에 잠이 깨 ([[김슬기]], Feat. 고경표) ||
         [[분류:한국 배우]] [[분류:1990년 출생]] [[분류:순창군 출신 인물]] [[분류:2010년 데뷔]]
  • 곽월 . . . . 7회 일치
         그 뒤 청송(靑松)부사로 나갔다가 [[1581년]] [[제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고, [[1585년]] [[원]][[부사]]로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86년]]에 향년 68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정암선생유고(定庵先生逸稿)가 있다. 사후 계서원에 배향되었다.
         ***** 장 : 곽재희(郭再禧)
         ***** 차 : 곽재록(郭再錄)
         ***** 삼 : [[곽재우]](郭再祐, [[1552년]] [[8월 28일]] ~ [[1617년]] [[4월 10일]])
         ***** 사 : 곽재지(郭再祉)
         ***** 오 : 곽재기(郭再祺)
  • 권은희 (1959년) . . . . 7회 일치
         '''권은희'''(權恩嬉, [[대구광역시|대구]], [[1959년]] [[5월 24일]] ~ )는 [[대한민국]]의 컴퓨터공학자이다. 정계에 진출하여 [[2012년]]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대구에서 당선되어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목록|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20대 총선에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컷오프 되었으며,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ref>[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320_0013969591&cID=10301&pID=10300 與권은희 무소속 출마…유승민계 두 번째 탈당] 뉴시스, 2016년 3월 20일</ref>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서 6.85%를 얻어 4위 안에 들지 못했으나, 여성 몫으로 최고위원이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917155|제목=바른미래당, 전당대회…손학규 신임 대표 선출|성=정민|날짜=2018-09-02|뉴스=SBS NEWS}}</ref>
         * 도초등학교 졸업
         * 구여자중학교 졸업
         * 2018년 1월 ~ 2018년 6월 : 바른미래당 경기도 성시 분당구을 공동지역위원장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원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정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분류:안동 권씨]]
  • 김남조 . . . . 7회 일치
         | 이름 = 김
         '''김조'''(金南祚, [[1927년]] [[9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그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 후쿠오카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1944년 돌아와 경성여자전문학교(이화전문)에 입학하였다.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마산고등학교와 여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거쳐 1954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ref>이은영,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9 예술가 위한 공간 ‘예술의 기쁨’ 개관하는 원로시인 김조], 서울문화투데이</ref>
         * 《김조 시집》
         {{위키자료집|글쓴이:김조|김조}}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2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시인]]
  • 김수진(배우) . . . . 7회 일치
         | 출생일 = {{출생일|1975|6|28}} [[전라도]] [[목포시]]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구]]에서 [[자살]]
         * 5살 때까지 독일에서 살다가 이후 [[전라도]] [[목포시]]의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 [[도시녀]] (1996년, [[SBS]])
         2013년 3월 29일 오후 9시쯤 강구 논현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추정했다.
         참고로 29일은 [[도시녀]]에 함께 출연한 故[[최진영]]의 3주기가 되는날이었기에 많은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향년 39세였다.
         [[분류:1975년 태어]][[분류:1994년 데뷔]][[분류:2013년 죽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사생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자살한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목 매달아 자살한 사람]][[분류:독일계 한국인]][[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목포시 출신 인물]]
  • 김승관 . . . . 7회 일치
         ||<-5> '''1996년~1997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타격왕''' ||
         ||<-5> '''1996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타점왕''' ||
         ||<-5> '''1999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홈런왕''' ||
         ||<-5> '''2002년~2003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타점왕''' ||
         ||<-5> '''2003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홈런왕''' ||
         ||<-5> '''2005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홈런왕''' ||
         ||<-5> '''2007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홈런왕''' ||
  • 김홍미 . . . . 7회 일치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바로 대과를 보지 않고,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으며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이후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근무하였으며 형제가 옥당에 근무하여 사대부들의 부러움을 샀다. [[정여립의 난]] 관련자로 누명을 쓰고 [[기축옥사]] 때 불이익을 받았다. 당색으로는 [[동인]]이었다가, 뒤에 동인이 인과 북인으로 갈라질 때 [[인]]이 되었다. 명 [[조식]](曺植),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문인이며, [[류성룡]]의 조카사위이고 [[류운룡]]의 사위이다.
         그는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잘 외웠다 한다. 어려서 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서애 [[류성룡]]의 문하에 가서 수학하였다. 나중에는 류성룡의 형인 운룡(雲龍)의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다.
         관례(冠禮)를 치르기 이전에 그는 향시(鄕試)에 응시하였는데, 향시의 응제 "사마온공(司馬溫公) 염중론(念中論)"으로 향시에서 장원하였다. 그 문장이 정미롭고 아름다웠으므로 합격자 발표 후에는 그의 글을 돌려가면서 암송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한다. 명 [[조식]]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제문을 지었다. 그는 향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바로 대과를 응시하지 않고 사마시에 응시한다. [[1579년]](선조 12) [[과거 제도|식년진사시]]에 제2등으로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상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상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상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7회 일치
          * A반은 11명이 통과되고 9명이 은 가운데 야오요로즈 모모는 이이다 텐야를 걱정한다.
          * 현재 A반은 11명이 통과하고 9명이 은 상황. 은 자리는 18개 뿐이다.
          * 아오야마는 이제 살아기도 힘겹다고 말하는데 이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버리지 않는다.
          * 옆에 있던 이레이저 해드, 아이자와 쇼타는 속으로 은 통과자 수를 셈하고 있다.
          * 대기실의 A반 학생들도 이젠 9자리 밖에 지 않았다며 전원은 무리였나 하고 낙심한다.
          * 아오야마는 이이다가 말한 "꿈의 형태"라는 단어를 되새기다가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왜 나는 들과 달라"라고 물었던 일을 떠올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7회 일치
          * 그는 키리시마를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투혼을 높이 사 "그 자"로 정정하며 특히 그와 다시 싸우고 싶으니 어서 그를 치료하라고 제안한다.
          >그 꼬맹... 자를 치료해라.
          바보취급하는 건가? 패트껌은 함정이라 단정한다. 그러나 랏파는 자기가 그런걸 설치할 법한 자냐고 반문한다. 확실히 그럴 만한 두뇌는 아니다.
          그런 생각이 랏파에게도 있느냐는 별개 문제. 랏파는 그를 가볍게 즈려밟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역시 텐가이가 회복한 여력은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가벼운 한 발로 의식이 다시 날아갔다. 랏파가 배리어를 칠 여력도 없는 주제라고 빈정댔다. 하지만 그도 말할 처지가 아니다. 여기저기 뼈가 부러져 도저히 싸울 상태가 아니다. 패트껌은 그 묘한 대화를 보고 있다가 대체 뭘하고 싶은 거냐고 물었다. 정말로 함정이 아닌 건가? 랏파의 답은 이번에도 단순했다.
          그런 키리시마가 지금은 "제대로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은 자"라고 인정하는 적이 생겼다. 키리시마는 과거의 자신에게 자랑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인정 받았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에게. 그리고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적]]에게. 사나이였다.
          >그야 [[오버홀|오바호]]는 내가 유일하게 패배한 자라서다.
          랏파는 텐가이의 만류도 아랑곳 없이 아는 사실을 하나도 김 없이 털어놨다. 그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들은 바로는 "뭔가"를 대량으로 뿌릴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자금 문제가 해결되면 "실행의 날"은 금방, 그런 이야기였다. "소재"는 확보하고 있으니까. "에리쨩.
  • 남기애 . . . . 7회 일치
         | 이름 = 기애
         '''기애'''(南基愛,[[1961년]] [[9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홍희
         | 수목드라마 《[[자친구 (드라마)|자친구]]》
         |《기도하는 자》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양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넷카마 . . . . 7회 일치
         자인데 인터넷에서 여자인척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자가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한 판타지를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에 성이 많고 여자가 적은경우 많이 일어난다. 여성적인 말투로 조금 더 좋은 아이템이나 쩔을 받기 위해서 주로 여자인척 한다.
         또는 여자인데도 인터넷 상에서 성별을 밝히지 않은 채 성적인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카마를 적극적으로 성임을 어필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이런 경우는 적은 편이다. 여자인 걸 밝히면 달라붙는 사람이 많아서 그쪽이 편하다는 게 주 이유로 한다. 참고로 여자가 자인척 하는 건 넷나베라고 부른다.
         인터넷에서 여자인 척 하는 자를 뜻하는 말이다.
  • 류원기 . . . . 7회 일치
         여대생 청부살인사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된 윤길자의 편으로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돕기 위해 검사와 의사에게 뇌물을 수수하는 등 담합 및 횡령 등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ref>{{뉴스 인용|저자=유호윤|제목=‘여대생 청부살해범’ 편에 징역 4년 6개월 구형|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2783485|날짜=2014-01-04|확인날짜=2016-02-11|뉴스=KBS}}</ref> 1심 재판부에서 횡령 형의만 적용받아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ref>{{뉴스 인용|저자=서재근|제목=法, '여대생 청부살해' 영제분 회장 징역 2년 실형 선고(1보)|url=http://news.tf.co.kr/read/economy/1312481.htm|날짜=2014-02-07|확인날짜=2016-02-11|뉴스=더팩트}}</ref> 2014년 2월 바로 상고했다.<ref>{{뉴스 인용|저자=나혜윤|제목=‘여대생 청부살인’ 주치의·편 모두 항소 네티즌 “뻔뻔의 극치.. 무기징역도 아까워”|url=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2|날짜=2014-02-11|확인날짜=2016-02-11|뉴스=go발뉴스}}</ref> 구치소에 수감된 채 2심 재판을 받던 중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선고 공판에 출석했으며,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여대생 청부살해’ 편 영제분 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주치의는 벌금형|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0/2014103002297.html|날짜=2014-10-30|확인날짜=2016-02-11|뉴스=조선일보}}</ref>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마기/341화 . . . . 7회 일치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의지로 살아야 하는가? 을 따라야 하는가?
          신드바드의 말대로 알라딘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그는 그것을 매그노슈타트에서 배웠다. [[마타르 모가메트]] 학장은 절대적으로 옳은 인간은 있을 수 없다며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더라도 모든 걸 맡기면 안 된다는 교훈을 겼다. 신드바드는 매그노슈타트 사건을 회상하며 잠시 그리움을 느끼지만 곧 안색을 바꿔 "정작 너는 에게 내맡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 마기로서 사는 알라딘의 삶은 자신의 의지하고는 무관하다. 그건 솔로몬 왕, 그리고 [[우고(마기)|우고]]가 정한 일이다. 알라딘이 지키고자 하는 세상도 결국 솔로몬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매달리는 것, 결국 의 삶과 의 의지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의지"로 살라고 말하는 알라딘은 철저하게 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신드바드가 는 소리마법으로 그 사실을 신랄하게 전달한다. 알라딘은 소리마법에, 신드바드의 허를 찌르는 지적에 찍어눌러진다.
          >알라딘 만이 사람을 진화시킨다고 했지?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7회 일치
         범인 미즈우치 타카시는 신장 183센티미터, 체중 89킬로그램의 훤칠한 체격에 샤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성이었다. 미즈우치는 학생 시절부터 [[검도]]를 단련하여 [[검도]] 5단의 유단자였으며, 고교 졸업 후 2006년 4월에 경찰에 채용되었다. 근무 태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즈우치 타카시는 외모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농락하는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관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은 매우 불성실한 자로서, 2014년 8월 아내와 입적하기 전후의 기간에 피해자 시라타 히카루 이외에 센다이에서 3명, 오사카에서 3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라타 히카루는 졸업 전 2월 지인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봄부터 오사카에 간다. 자친구가 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전 10시 55분, 독신자 아파트의 작은 욕조에 엎드린 채로 떠있는 시라타 히카루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겨울 코트에 바지차림으로, 양말도 신고 있어 밖에 나가려는 복장이었다. 시신의 목에 졸린 흔적이 아 있어 사인이 대략 판명되었다.
         아파트의 방범용 CCTV를 조사한 결과, 오전 7시 45분 쯤 얼굴을 숨기듯이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한 자가 아파트를 방문하여 엘리베이터에 탑승, 오전 8시 45분 쯤 비상계단으로 아파트로 내려와서 아파트 입구를 지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겉옷은 밝은 갈색 점퍼로 바뀌었지만, 1시간 전의 자와 비슷하여 동일 인물로 추정되었다.
         몸집이 크고 젊은 자라는 점에서 미즈우치 타카시와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미즈우치 타카시가 범행 시간대에 어딘가에 외출을 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결국 단순 용의자에서 중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된 미즈우치 타카시는 25일 진술을 뒤집어 "내가 했습니다. 벨트로 목을 졸라죽였습니다."라고 밝혔다.
  • 박상원(배우) . . . . 7회 일치
         ||<#5F9EA0> '''{{{#ffffff 학력}}}''' ||<(> [[수창초등학교]] (72년 졸)[br][[인천중학교]] (75년 졸)[br][[동산고등학교(인천)|동산고등학교]] (78년 졸)[br] [[서울예술대학교]] (80년 졸)[br] [[한국방송통신대학교]] (99년 졸)(편입)[br] [[세종사이버대학교]] (2007년 졸)(편입)[br][[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
         ||<#5F9EA0> '''{{{#ffffff 가족}}}''' ||<(> 슬하 1 1녀 박지윤^^(1997년생)^^[* 현재 tvN 예능 '둥지탈출'에서 아버지인 [[박상원]]과 출연중이다.] ||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첫사랑(KBS)|첫사랑]] 등 굵직한 작품을 맡으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를 내세워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당시 가장 결혼하고 싶은 자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 2001년 가을에 만난 자 (MBC)
          * 뮤지컬 2006년 벽을 뚫는
         [[분류:동명이인/ㅂ]][[분류:한국 배우]][[분류:1959년 출생]][[분류:1979년 데뷔]][[분류:중구(대구) 출신 인물]]
  • 박창달 . . . . 7회 일치
         || '''거주지''' ||[[대구광역시]] [[구(대구)|구]] ||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학사[br][[영대학교]] 행정학 석사||
         [[대한민국]]의 [[정치인]]. [[포항시]] 출신. [[계성고등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26번으로 출마하였지만 너무 순번이 뒤쪽에 있어서 당연히 낙선...했는데 임기 다 끝나가는 2000년 3월에 현역 [[윤원중]] 전국구 의원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승계, 3달짜리 국회의원직을 수행했다. 물론 15대 국회 막바지여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문제는 16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이 '''2004년 5월'''에 사퇴하여 '''임기가 1달도 안되는 의원'''이 탄생하여 다시 문제제기되었고, 이후 잔여임기가 얼마 안은 비례대표 의원이 자격을 상실 혹은 사퇴할 경우에는 승계하지 않도록 법이 바뀐다.] 대신 16대 총선에서 안정권인 15번을 받고 당선되었다.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 || 무소속 || 11,256 (10.93%) || 낙선 (3위) || ||
  • 백정현 . . . . 7회 일치
         || [[박세웅(1996)|박세웅]](2006) || → ||<#c0c0c0> '''백정현(2007~2008)''' || → || [[김효]](2009~2012) ||
         별명으로는 '백작가'[* [[작가(야구)|마운드 위에서 작품활동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 사진의 퀄리티가 사진작가급이라는 것에서 유래. --[[랜디 존슨]]?-- '이야깃거리' 항목 참조. ],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만 잘하는 것에서 따온 '오키나와 에이스', '오키나와 커쇼', 이름에서 따온 '백정', 그리고 못할 때는 '[[백린탄]]'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팀내 별명은 '말순이'인데, 과거 드라마 [[육매]]에서 말순이 역할을 맡은 송은혜와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다. 2017년 지금은 삼성 선발진에서 에이스나 다름 없는 활약을 하며 '백쇼'(백정현+커쇼)라는 별명이 거의 정착된 상태.
         2010 시즌 5월에는 [[김현수(1988)|김현수]]와 빈볼 때문에 벤치클리어링 일어날 뻔했다. 2010 시즌에는 [[김효]], [[임진우]]와 함께 1군 불펜 추격조에 속해 있는데, 불펜이 약한 팀에서는 충분히 필승조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앞의 두 선수와는 달리 '''[[조원수박차]]'''의 재림을 노리는 듯한 플레이를 펼쳐주며 삼팬들에게 집중적으로 까였다.
         오키나와에서의 연습경기에서 잘 던지더니 한국에 돌아와서 치른 시범경기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맞아 나가면서 4경기에 등판해 1홀드 ERA 11.25를 기록했다. 일단은 개막전 엔트리에는 포함됐지만 올해도 그냥 오키나와 에이스로 지 않을 지 걱정되는 부분.
         5월 1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인 김기태의 책임주자를 아무렇지 않게 잔루로 기는 결정적인 활약을 보이며 '''2승'''을 거둔다.
         3월 23일 금요일에 영대 상대로 선발로 나와 5이닝 0실점으로 잘 던졌다.
         팬 서비스도 좋은 편으로, 인스타그램에 긴 팬의 질문에 [[http://m.dcinside.com/view.php?id=samsunglions_new&no=187308&page=1&serVal=%EC%9D%B8%EC%8A%A4%ED%83%80&s_type=all&ser_pos=-191803|DM으로 답변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http://m.dcinside.com/view.php?id=samsunglions_new&no=211018&page=1&serVal=%EB%B0%B1%EC%9E%91%EA%B0%80&s_type=all&ser_pos=-211792|셀카]]는 잘 못 찍으시는 것 같다(...) --풍경만 취급--
  • 봉준호 . . . . 7회 일치
         영화 《[[마더 (2009년 영화)|마더]]》가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비평가 협회에서 받은 외국어 영화상만 무려 7개로 보스톤평론가협회, 동부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혜자]]는 헐리우드 톱배우들을 제치고 LA 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2011년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 봉준호의 외조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 (1909년)|박태원]]으로서, [[한국전쟁]] 당시 장녀를 데리고 [[월북]]했고, 봉준호의 어머니를 포함한 그 외 2 2녀는 서울에서 자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1951696 '천변풍경'의 구보 박태원, 청계천변서 다시 만나다] 프레시안. 2009년 06월 15일</ref> 2006년 6월 제14차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이들 모녀가 재회화여 화제가 되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1988703 호랑이가 고양이 낳으랴..3대 이은 예술명문가] 스타뉴스. 2009년 06월 30일</ref>
         | style="text-align:left;"| [[극일기]]
         | {{small|*}} 《극일기》|| ||2005년||(각본)
         | {{small|*}} 《불 좀 주소》||단편영화||2009년||기타
         * [[2011년]] 미국 동부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잠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음 봉씨]]
  • 서유정(배우) . . . . 7회 일치
          * 2001년 [[KBS1]] 일일 연속극 우리가 인가요
          * 2001년 SBS 단막극 오픈 드라마 과 여- 그녀와 헤어지기 몇 시간 전
          * 2002년 SBS 단막극 오픈 드라마 과 여 - 우연
          * 2003년 SBS 단막극 오픈 드라마 과 여 - 벽장 속의
          * 2004년 SBS 단막극 오픈 드라마 과 여 - 해피 에로 허니문
          * 2008년 죽이고 싶은
  • 서훈 (1942년) . . . . 7회 일치
         경북대학교 법대 재학시 총학생 회장으로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고 ROTC 대위로 전역한 이후 신민당 시절 김영삼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대구에서 신민당,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번번히 낙선하였다. 영지역 재야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 가난한 지역학생들을 위해 팔공 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랬동안 운영하였다. 1990년에 김영삼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을때 이를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하고 오랜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결별하게 된다.
         가족으로는 처 김리례와의 사이에 2 1녀(첫째 서정진, 둘째 서정현, 세째 서정봉)를 두었다.
         [[분류:194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영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신수항 (배우) . . . . 7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
  • 양키 . . . . 7회 일치
         처음에는 뉴잉글랜드 주민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영국군이 식민지군을 뜻하는 말로 썻다. [[북전쟁]] 시기에는 부 측에서 북부 측을 양키라고 부르며 경멸하였다.
         간사이에서는 1980년대 전반기에 이미 '양키'라고 부르는 사례가 나타났는데, 당시 오사카 구(南区)(현재의 츄오구(中央区))에는 아메리카 마을(アメリカ村)이라는 지역이 있어서, 이 지역에서 화려한 알로하 셔츠나 폭넓은 바지들을 즐겨 입는 불량소년이 나타나 이들이 ‘양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무렵에 같은 구(南区)의 유로파 마을(ヨーロッパ村)이라 불리는 곳에서는 약간 다른 패션을 가진 「유로피(ヨーロピィ)」라는 집단이 나타났지만 양키 족의 융성으로 동화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북부 미국인을 뜻하는 양키(Yankee)와의 관계는 애매하지만, 당시 미국인=화려하다 는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1983년 7월 21일 발매된 카몬 타츠오(嘉門達夫)의 양키 오빠의 노래(ヤンキーの兄ちゃんのうた)는 ‘나쁜 자’를 뜻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전후하여 전국에 양키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퍼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1980년대 당시의 양키 패션은 특이한 패션 센스가 유행하였다. 양키 자는 앞머리를 크게 부풀리고 파마를 한 [[리젠트 헤어]]를 하고, 학생복을 입지만 '도캉'이나 '본탄'이라 부르는 폭이 넓게 개조한 바지를 입는다. 화려한 셔츠나 샌들을 입기도 했다. 양키 여자는 1970년대 ‘스케반’이라 불리던 시대의 연장으로서, 교복 사복을 불문하고 꽉 죄이는 롱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이 시대의 스타일을 가리켜서 “클래식 양키”라고 부른다. 만화 등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고전적인 양키 불량배를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1990년대에 이미 보기 드물게 된 스타일로서, 불량 청소년들의 패션은 1990년대에는 컬러갱 스타일, 2000년대에는 힙합 패션 등으로 바뀌어 가게 된다. 다만 일부 지방도시에는 아직도 이런 스타일이 아 있다는 괴담(?)도 있다.
  • 영양군 . . . . 7회 일치
         [[경상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쪽은 [[청송군]], 동쪽은 [[영덕|영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상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영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상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영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현재의 군역이 대강 갖추어진 1914년 당시 영양군의 인구는 37,400명으로 지금의 두 배(...)였다.[[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999&tblId=CS010001942&conn_path=I2|#]] 이후 1979년 영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인구 70,791명을 기록했다. 당시 기준으로 웬만한 군은 10만~20만 사이의 인구를 찍고 있어서 애초에 7만 겨우 짓했던 영양군의 인구는 상당히 적은 축에 속했다. 물론 그땐 아무리 적다 해도 적어도 [[가평군]] 같은 곳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75년 당시 7만 명) 지금은 그 가평군 인구조차 영양의 3배이다. 그리고 영양군은 안 그래도 적었던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2017년 기준 17,000명 대로 떨어졌다. ~~[[유바리]]?~~
         해발 고도가 대부분 200m 이상이고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제대로 된 평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고봉은 일월산(日月山, 해발 1219m)이다. 여름은 한여름에도 해가 떨어지면 쌀쌀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편이다. 이로 인해 영양고추의 맛이 좋다고... 겨울은 [[봉화군|윗동네]]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 곳도 여타 부지방에 비해 매우 추워 겨울 기온이 -10°C 이하로 심심치 않게 떨어진다. 많이 추울 때는 영하 25도 안팎까지도 떨어진다. 또한 눈도 제법 많이 내리는 편이며 지형적인 영향으로 수비면 동부 일대에는 상당히 많은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고추'''가 유명하고, 군 슬로건도 '''HOT(맵다)'''을 사용하고 있다. 과장 좀 보태서 영양군민들이 고추한테 엎드려 절해야 할 정도다. 미 원산인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자생한 품종인 '''수비초'''가 난 곳이 영양군이다. [[청양고추]]의 '청양'의 어원이 [[충청도]] [[청양]]군이 아닌, [[청송]]군+영양군이라는 설이 있다. [[청양고추]] 항목 참고.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영양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다. 영월, 영광, 괴산, 청양과 함께 고춧가루가 등록되어 있는데, 앞의 4군은 [[고추]]도 등록되어 있다.
          * [[자현]] - 독립운동가. 자현 지사 생가 복원중.
  • 오시만 . . . . 7회 일치
         [[1680년]](숙종 6년) 이조좌랑을 거쳐 [[경신대출척]]으로 파면되었다가 [[1689년]] [[승지]]에 오르고 [[기사환국]]으로 인이 중용되면서 1690년 대사헌에 올랐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으로 유배되었다. [[서인]] 인사 일부와도 인척관계였으나 [[허새의 옥사]]를 전후하여 원수가 되었다. 본관은 [[동복 오씨|동복]]이며, 자는 영석(永錫), 호는 춘헌(春軒)이다.
         그의 집안은 당색으로는 [[인]]의 당원이었으나, 그의 부인은 [[서인]] [[한준겸]]의 4대손이었고, 그의 숙부이자 양아버지인 [[오정위]]는 자신의 서녀를 [[서인]] 당원인 [[김환]]의 첩으로 출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경신환국]] 이후 [[허새의 옥사]]로 [[서인]]과는 원수가 된다.
         1666년(현종 7) [[순천시 (전라도)|순천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었으며 그 뒤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음서 제도|음보]]로 관직에 올라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통덕랑으로 재직 중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과 지평을 지내고, [[1679년]] 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통훈대부]]로 승진하여 행[[홍문관]]수찬(修撰), 교리, 헌납 등을 역임하였으며 1680년 이조좌랑이 되었다가 [[경신대출척]]으포 파면되었다.
         [[1689년]] [[승지]]에 머물렀다. 그해 [[기사환국]]으로 인이 복귀하자 [[1691년]]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부당하다 하여 다시 승지로 전임되었다. [[1692년]] [[좌승지]]가 되었다가 우부승지 이현조가 오정위를 공격하자 피혐으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숙종이 반려시켰다.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인]]이 실각되자, 바로 삭탈관직되고 유배당하였다. 지조가 깨끗하고 겸허 담백하였으나 [[1694년]] 당화(黨禍)(갑술환국)를 입어 [[전라북도]] [[전주시|전주]], [[전라도]] [[무안군|무안]] 등지로 10여년간 유배살이를 하였다.
         [[분류:1647년 태어]][[분류:1700년 죽음]][[분류:음서]][[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과거 급제자]][[분류:동복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병사한 사람]]
  • 요시다 세이지 . . . . 7회 일치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부터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전, 경, 제주 등에서 끌고간 한국인 징용자의 숫자는 종군위안부 1000명을 포함하여 6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의 저술에서는 "종군위안부 징용은 한 마디로 노예사냥이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여자들을 후려갈겨 트럭에 강제로 태우고, 울며 매달리는 젖먹이를 억지로 떼어냈던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되어 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 5월에 서부군의 동원명령으로 제주도에 갔으며, 그 명령서의 내용이 아내의 일기에 아 있다고 저술했다. 하지만 요시다의 장은 어머니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요시다 증언의 영향은 한정적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증거는 요시다 증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요시다 증언을 참조하지 않았으며, 이는 1991년 1월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내부 문서를 아사히 신문이 공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1991년 8월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첫 공개 증언을 하면서, 한국은 물론 동아에서도 피해자 증언이 잇따르게 되었다.
         요시다 세이지의 장(2016년 당시 66세)는 일본 월간지 '신쵸 45' 9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소녀상을 크레인으로 철거하고 싶다."는 발언까지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저지른 위안부 강제연행 날조에 대해, 요시다 가문의 장으로서, 일본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가능하다면, 전세계에 있는 소녀상을 크레인으로 철거해버리고 싶습니다.(중략) 나 자신도 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는 한 번도 제주도에 간 적이 없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아버지는 제주도 지도를 보면서, '나의 전쟁범죄' 원고를 썼다"고 주장했다.
  • 원피스/853화 . . . . 7회 일치
          * [[타마고 작]]은 "달걀달걀 열매" 능력자. 알에서 병아리, 닭으로 진화해가는 열매다.
          *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작을 벨 수록 점점 강해지며 작위도 점점 올라간다 올라간다.
          * 3층의 안뜰에서는 [[타마고 작]]과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결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타마고 작은 지난 번 참격에 당하고도 죽지 않았을 뿐더러 모습이 바뀌어 병아리같은 모습이다. 사실 그건 타마고 작이 가진 열매의 능력이었다.
          * 쓰러진 병아리 자작은 잘려진 몸통 속에서 달걀 같은 내용물이 흘러나오더니 그게 닭의 형태로 변해간다. 이것이 바로 "닭 백작". 이 상태가 "진정한 기사"라 불릴 정도로 전투력이 올라간다. 하지만 마지막 변신이라 그런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데 페드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다. 변신이 끝나기 전에 타마고 작의 숨통을 끊으려 하자 부하들이 저지하려 한다.
          그건 [[빈스모크 레이쥬]]. 상디는 의무실을 떠났지만 그녀는 아직 여기에 아 있었다. 레이쥬가 루피를 불러들이고 방문을 잠그자 루피를 추적하는 병사들이 문 앞을 지나간다. 일단 루피를 숨겨준 셈이지만 상디를 빨리 찾아야 하는 루피는 성가셔 한다. 하지만 그녀가 상디의 누나라는 건 기억하고 있다.
  • 원피스/864화 . . . . 7회 일치
          * [[샬롯 푸딩]]은 [[상디]]를 여러번 쏘면서 "항상 이런 식으로 들을 속여왔다"고 외치는데 상디가 "자기 자신도 말이야?"라고 지적하자 크게 동요한다.
          * 샬롯가의 3 [[샬롯 다이후쿠]]가 푸딩을 쓸데없다고 까면서 난입.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 인간.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요정"이 나와 상디와 대치.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는 샬롯가 4 [[샬롯 오븐]]과 대결. 오븐은 열열 열매를 먹은 고온 인간으로 고온을 발산하는 전투법 때문에 페드로가 불리해진다.
          * 샬롯가의 3 [[샬롯 다이후쿠]]는 "쓸모 없는 동생"을 더이상 못 보겠는지 푸딩이 휩쓸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공격을 가한다. 그는 "따끈따끈 열매"를 먹은 "램프인간"이다. 밸트를 문지르자 램프의 마인이 나타나 싸운다. 그가 개입하자 푸딩은 자신이 할 테니 기다리라고 하지만 다이후쿠는 푸딩을 쓸모없다고 매도하며 이미 기회는 지나갔고 그녀에겐 무리라면서 내동댕이쳐버린다.
          방금 페드로를 공격한 자는 샬롯가의 4 "노릇노릇 대신" [[샬롯 오븐]]. "열열 열매"를 먹은 "고열 인간"이다. 자기 몸에 닿는 것을 가열하는 능력. 접근전을 벌이는 페드로와 상성이 좋지 않다. 페드로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지만, 저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페드로가 [[페콤즈]]의 형이며 과거 빅맘에게 눈과 수명을 잃었던 자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 페드로가 얼마 지 않은 수명으로 여기에 왔다는건, 각오를 했다는 얘길 거라며 그를 불태워 죽여주겠다 엄포를 놓는다.
  • 윤정희(1944) . . . . 7회 일치
         || [[윤정희(1944)|윤정희]] || [[문희]] || [[정임]] ||
         || [[원미경]] || [[이미숙]] || [[정애리(배우)|정애리]][*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배우)|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배우)|이보희]]를 참고바람.] ||
         1967년, 영화 "[[청춘극장(1967)]]"의 오유경 역할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금 이 영화는 원본이 소실되었으나 중국어 더빙이 아 있다.] 이후 [[정임]]·[[문희]]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다. 청춘극장은 1967년 팔도극장 다음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8년]]에는 [[내시]], [[천하장사 임꺽정]], [[일본인]] 등으로, 1969년에는 [[독짓는 늙은이]], [[팔도 사나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는 일부분일 뿐 흥행한 영화는 이보다 많다.
         사실 그녀는 단순하게 인기가 많은 데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배역폭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사에 굵직한 기여를 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r333&logNo=120061757343&isFromSearchAddView=true|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당시 여배우의 맡는 통상적인 역할은 어머니상이나 요부상에 그쳤는데, 윤정희의 경우에는 이 두 역은 물론이고,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했다고. 단순히 트로이카들과 비교해도 이 차이가 두드러지는데, 하이틴 스타와 같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역을 연기한 [[정임]], 우수에 빠진 눈매로 비련의 여인을 연기했던 [[문희]]에 비해 폭넓은 역을 맡았다. 또 그녀의 이미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적인 세련미이다.
         그러나 [[문희]]가 [[미워도 다시한번]]의 흥행 이후 1969년에는 [[벽속의 여자]], [[꼬마신랑]] 등을 대거 흥행시키며 1970년대부터 윤정희를 능가하여 조금 위축된 감을 보여줬지만 1971년 문희, 정임이 은퇴한 반면 윤정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에는 윤정희를 탐낸 [[박정희]] 대통령의 바람기 덕에 [[육영수]] 여사가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찌됐든 부부금슬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1977년에는 야행이 그 해 흥행영화 5위권 안에 들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가 크게 성장했는데 윤정희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1981년]], [[자유부인 '81]]이 그 해 흥행 1위 영화가 되면서 [[정임]], [[문희]]가 이미 이룬 영화 1위 흥행 여배우 자리에 늘그막에 올랐다. [[1987년]]에는 [[위기의 여자]]로 흥행을 했다.
  • 은혼/626화 . . . . 7회 일치
          그 말을 겼던 신의 뿔이 지금, 하필이면 지구 침공 작전 중 오우가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오우가이의 철괴가 헤도로를 내려치며 커다란 굉음과 흙먼지가 휘날린다. 지금껏 무수한 병력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던 철괴. 하지만 헤도로는 머리를 정통으로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선다. 그리고 흙먼지가 걷히는 순간. 오우가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휘두르던 철괴에 오른손만 겨둔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헤도로의 "꿀밤" 한 방이 그를 팔 한짝만 겨놓고 날려버린 것이다. 오우가이는 고층빌딩 위로 날아가 박혔고 아있던 마지막 뿔까지 부러지고 만다.
          헤도로의 머리 위에 겨졌던 철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린다.
          * 게츠노 아나운서의 오빠 [[게츠노 세이메이]]와 전편 [[시리노 도만]]도 건물 옥상에서 준비를 마쳤다. 둘은 서로 사기꾼이라고 디스하면서도 이 사기꾼들의 힘이라도 보탤 때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리고 함께 거대한 규모의 환혹의 술을 실행하는데.
          * 숫적 우위는 변함없는 해방군 쪽에는 아직도 싸우고자 하는 자들이 아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곧 지구측에서 엄청난 수의 원군이 도착하는 걸 보고 마지막 저항의사를 꺾고 만다. 이것들은 모두 환혹의 술이 보여주는 환상이지만 그걸 알리 없는 해방군은 최후의 보루였던 숫적 열세까지 뒤집혔다고 보고 완전히 와해, 병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은혼/630화 . . . . 7회 일치
          * 엔죠 황자는 파괴병기 "히노카구츠나"로 지구를 날려버릴 작정이며 발사엔 6시간 짓 밖에 지 않았다.
          * 소요공주와 그 오빠 [[도쿠가와 시게시게]]에게 죄의식을 가진 노분노부는 죽기를 각오하고 마지막 작전에 임하며 소요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당부를 긴다.
          >'''싸우는 것만이... 아있기 때문이다.'''
          엔죠가 팬던트를 닫는 순간 숨겨져 있던 화기가 불을 뿜는다. 사령실의 각 벽면마다 설치된 비상장치였다. 반란을 도모했던 자들은 방아쇠에 손도 대지 못한 채 쓰러진다. 엔죠는 죽어버린 반역자와 살아은 방관자들, 그리고 화면 속의 겐가이 영감에게 말한다. 증오와 슬픔을 치유할 길도 없어진 자신들은 전쟁이란 불길로 그걸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증오도 슬픔도 전부 타서 재만 을 때까지. 그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후회따위 조금도 지 않을 때까지
  • 은혼/632화 . . . . 7회 일치
          * 어느 달 밝은 밤. 한 소녀가 [[다카스기 신스케]]에게 거둬주길 청하고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키지마 마타코]]. 신스케의 이력과 그가 세상을 부수려함을 알고 자신도 동행시켜 달라고 청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양이지사였으나 막부에 탄압 당해 사망, 어머니는 죄인의 부인이란 오명 속에서 박해를 받다 사망했다. 이제 그녀에게 은 것은 아버지의 유품인 한 정의 리볼버. 이것으로 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털어놓는다.
          마타코는 이때의 신스케가 나라가 아닌 자기 자신을 부수는, 그런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이들의 첫 만의 기억.
          [[엔죠]] 황자는 스크린을 통해 그를 보고 있다. 엔죠는 그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당돌한 눈을 가졌다고 느낀다. 이 자는 누구인가? 엔죠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신스케는 눈 앞의 해방군 병력을 향해 걸어간다.
          * 마타코를 구한 반사이와 신스케는 사이좋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아무래도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거 보다 복잡했나 보다. 마타코는 신스케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 그가 마타코와 접촉했던 걸 목격한 정부의 개, 다케치 헨페이타에 의해 꾸며진 함정이었다. 반사이는 벽을 사이에 두고 신스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신스케가 부추기긴 반사이가 부추긴게 아니었냐고 대꾸하자 그는 단지 살아있는 전설이 어떤 자인지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본 자는 이랬다.
          신스케도 어떤 인물을 직접 보고 싶었던건 같다. 사무라이를 버린 나라는 자기 쪽에서 버린다고 하던 자. 이곳에 수감된 양이지사들을 홀로 구하겠다고 획책하던 허풍선. 그도 결국 여자애 하나 구하자고 감옥에 갇혔으니, 바보이긴 똑같다. 하지만 신스케는 그래서 어울려준 보람이 있다고 말하는데.
          * 이같은 옥중대담은 헨페이타가 모두 헨페이타가 듣고 있었다. 그는 관군 내에서도 상당한 지위를 가진 자였다. 신스케를 함정에 빠뜨린 그가 이제 저 두 위험분자의 대화를 어떻게 취급할까? 그는 조용히 감옥을 나선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길로 접어 들었을 때, 자객을 맞이한다. 마타코였다. 마타코는 신스케가 구해준 뒤 줄곧 근처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녀는 칼을 들이대며 신스케를 해방시키라고 요구한다.
  • 은혼/645화 . . . . 7회 일치
          그 불꽃이 아있는 이상 아무 것도 변한건 없다. 단지 그 불꽃을 직접, 지구에 박아주면 그만이다. 그는 아메노토리후네를 지구에 낙하시켜 히노카구츠치를 발사한 것과 같은 결말을 만들려 한다.
          * 그의 말은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자작 제독과 [[도쿠가와 노부노부]]에게도 들렸다. 자작은 호적수이자 동지였던 엔쇼의 타락을 더는 참지 못한다. 그는 엔쇼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일갈한다. 그의 고집대로 싸움을 계속하고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나면 대체 무엇이 느냐고. 엔쇼는 땅에 떨어져 있던 팬던트, 아내의 유품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 엔쇼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통제실을 빠져나간다. 이미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준비는 끝났다. 그는 자작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입장은 밝혔다. 그리고 겨질 양이지사들에겐 선심도 썼다.
          * 폭발을 기고 떠나가는 그의 등 뒤를 가츠라와 다츠마가 노린다.
          >꼴사납게도 살아아 버렸습니다.
          외부 에너지 주입 장치를 향해 돌격했던 헨페이타의 소형정. 소형정이 목표를 들이받은 순간, 헨페이타의 예상은 빗나갔다. 원인은 모선의 외벽이 생각보다 날림이었거나, 소형정이 너무 튼튼했기 때문이다. 장치를 박살낸 소형정은 계속 돌진해서 외벽을 뚫고 내부까지 진입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헨페이타와 부하들은 자신들도 뻘쭘해하며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가운데 자신들만큼 뻘쭘하게 살아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삼흉성의 생존자 [[사루가쿠]]. [[바토우]]와 함께 폭발에 휩쓸려 죽은 줄 알았던 그들은 무사히 몸을 피해있었다.
          * 악운이 잘도 따른 사루가쿠는 내친 김에 한 사람을 더 구조했다. 큰 사고를 친 것 치고는 꽤 팔팔해서 이 자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신스케였다. 많은 시체를 밟고 올라온 자가 마침내 엔쇼에게까지 도달했다.
  • 이미연 (배우) . . . . 7회 일치
         | 가족 = 1 3녀 중 넷째
         이미연은 1971년 9월 23일 [[대구광역시]]에서 1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다. 그녀의 대학 동기로는 배우 [[고현정]], [[김정난]] 등이 있다.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영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백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반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 [[여자, 자]] - 그게 아니고
         || [[세 자 세 여자]]
         * [[1994년]] [[SBS]] 《투맨쇼,두자와 만납시다》
         [[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 이씨]]
  • 이선희 . . . . 7회 일치
         2005년 이선희가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대표곡 <인연>은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왕의 자]]》의 OST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장미>와 <왜?> 등은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18년 4월 1일 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북 평화협력 기원 측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무대에 올랐다. 부른곡은<J에게,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조용필·이선희 등 4월 평양 공연 |url=http://www.yonhapmidas.com/article/180403173727_417430 |날짜=2018-04-03 |확인날짜=2018-08-10 |뉴스=연합마이더스}}</ref>
         * 2005년 영화 《[[왕의 자]]》
         * [[1984년]] [[삼양식품]] 포장마차 (성 그룹 [[송골매 (밴드)|송골매]]와 함께 출연)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이철우(1955) . . . . 7회 일치
         ||<height=40><bgcolor=#C9151E> {{{#FFFFFF ''' 가족 ''' }}} ||<(> {{{-1 배우자}}}, {{{-1 장}}} ||
         1955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 곡송국민학교, 대구 [[영중학교(대구)|영중학교]], [[김천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상주 화령중학교, 의성 신평중학교와 단밀중학교 수학 [[교사]]를 역임하였다가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공채에 합격하여 정보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5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이의근]] 도지사와 [[김관용]] 도지사 밑에서 경상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표율인 83.5%로 당선됐다. 국회직으로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테러방지법]]을 대표발의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경상북도당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회지방살리기포럼]]을 창립해 지방살리기 전도사로 나섰다. 전라도와 경상북도 국회의원의 모임인 동서화합포럼 창립을 주도하고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생가를 함께 방문해 동서화합 및 국민대통합 행보로 언론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 7월 1일 영천호국원을 찾아 충혼탑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동권에 약속했던 제2청사 건립을 위해 포항 환동해안본부를 제2청사로 승격시키는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공약 이행을 하려고하자 안동을 비롯한 북부권의 반대가 심해 난항을 겪고 있다.
         2018년 8월 12일 상대 후보였던 오중기를 만나서 인사했다는 트워터글을 겼다 뒤에 있던 사람이 송영길인거 보니 당대표 경선이 한창인 민주당 경북도당을 방문했는 것 같다.
         2018년 9월 10일 두번째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에서 4위[* 1위 김영록 전지사, 2위 원희룡 제주지사, 3위 권영진 대구시장]를 차지하며 포스트 [[김관용]] 체제의 틀을 닦아나가고 있다.[[http://news1.kr/articles/?3422005|#]]
  • 이현보 . . . . 7회 일치
         **** 장 : 이석량(李碩樑)
         **** 차 : 이문량(李文樑)
         **** 삼 : 이희량(李希樑)
         **** 사 : 이중량(李仲樑)
         **** 오 : 이계량(李季樑)
         **** 육 : 이숙량(李叔樑)
         [[분류:1467년 태어]][[분류:155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시인]][[분류:영천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저술가]]
  • 장호 (1920년) . . . . 7회 일치
         당시 [[경성부]]였던 현재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났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장으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공산주의|공산주의사상]]을 공부하면서 [[1935년]]에 집을 나왔다. 이때부터 토목 노동자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제 강점기]]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4
         10년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5년]]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군정기]]가 시작되자 미군정을 반대하여 곧바로 [[삼팔선]] 이북으로 월북했다. 특수 교육받고 [[강원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조선로동당]]이 불법화하자 입산하여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평양]]에 정착하고 《[[로동신문]]》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1958년]]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파되었다. 파 후 체포되었으나 전향하지 않고 비전향 장기수가 되어 [[대구교도소]]를 위시한 여러 교도소에서 약 30여 년간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91년]]에 30년 이상 수감된 70세 이상 고령자로 분류되어 석방되었다.
         |제목=앵글에 담긴 비전향장기수들의 녘 생활 - <nowiki>[민중의소리-언론재단 특별기획 ⑥]</nowiki> 장기수의 삶을 기록한 사진가 신동필
         [[2000년]] [[6·15 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비전향 장기수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될 수 있게 되었다. 장호에게는 부유하게 사는 여동생이 있는 등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달리 생계 걱정이 없는 유복한 환경이었으나 스스로 송환을 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약혼녀가 혼인하지 않고 장호를 기다리면서 생존해 있어 다시 만났고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분류:192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언론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작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라남도 . . . . 7회 일치
         | 이름 = 전라
         [[순천시 (전라도)|순천시]]''' || 順天市 || 107,282 || 281,297 || 907.45
         [[해군]]''' || 海南郡 || 35,309 || 76,395 || 1,013.8
         [[영광군 (전라도)|영광군]]''' || 靈光郡 || 26,004 || 56,338 || 475.04
         전라도 || 全羅南道 || 830,361 || 1,906,074 || 12,256.6
         [[분류:전라도 출신|전 출신 인물]][[분류:1896년 설치]]
  • 전성우 (배우) . . . . 7회 일치
         * 《내게만 보이는 자》 (2017년) - 영재 역
         [[분류:198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다정 . . . . 7회 일치
         [[부산외국어고등학교|부산외고]] 재학 중 한국의 입시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고교 졸업 후 2011년 귀국하였다. 2011년 9월경 블로그에 올린 그림, 레시피가 [[네이버]] [[웹툰]] 관계자의 눈에 띄어, 같은 해 네이버에 웹툰 《[[역전! 야매요리]]》를 연재하며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닭떡된 닭튀김? 괜찮아요 ‘야매요리’니까!|url = http://news.donga.com/3/all/20120802/48267162/1|출판사 = 동아일보|저자 = 신나리|쪽 = |날짜 = 2012-08-02|확인날짜 = 2012-10-27}}</ref> 가족관계로는 부모님과 정다정보다 5살 어린 동생이 있다.
         한편, 정다정은 [[10월 13일]] 자신의 웹툰 《[[역전! 야매요리]]》에서 ‘되는데요’라는 이광낙의 유행어를 사용했다. 이에 이광낙은 행사전 그림을 그려달라는 자신의 요청 [[전자 우편|메일]]을 무시했다고 정다정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고,<ref name=xports>{{뉴스 인용 |제목 = 군용텐트 이광낙-웹툰작가 정다정 '신경전 벌여'|url =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264187|출판사 = 엑스포츠뉴스|저자 = 온라인뉴스팀|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8}}</ref> 그녀의 [[트위터]]에 “T24 행사 전 도움의 손길은 뿌리치고 이제 와서 되는데요? 어찌됐든 재미있는 웹툰 야매요리”라고 글을 겼다. 정다정은 “벌레님. 행사 전 메일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까 답장 메일로 설명 드렸지만요”라고 답하였고, “그런 요청을 받았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려 드렸을 거고 일정이 바빴다면 죄송하다는 답장을 꼭 보냈겠죠. 확인되지도 않은 얘기를 트위터에 올린 건 좀 너무하신 것 같아요. 여하튼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ref name=chosun>{{뉴스 인용 |제목 = '역전! 야매요리' 정다정, '24인용 군용텐트 혼자 치기' 이광낙|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4/2012101400580.html|출판사 = 조선닷컴|저자 = |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야매요리’ 정다정 VS ‘벌레’ 이광낙, 왜 설전 벌어졌나?|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6530140&cp=nv|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쿠키뉴스팀|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
         하지만 이후 한 누리꾼이 긴 “야매요리 만화는 몇 번 봤는데 작가 사진은 이번 일로 처음 봤다. 예쁘다. 내 눈이 낮은 건가”라는 글에 이광낙이 “네, 눈 낮으심”이라고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답글을 달면서 재차 문제가 되었고, 정다정은 트위터에 “사람 외모 갖고 까는 게 제일 졸렬한 거다”라고 글을 겼다. 결국 이광낙은 “정작가님, 비하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용히 살겠습니다”라는 글을 기고 SLR클럽과 트위터에서 탈퇴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정다정 이광낙 유행어 설전…외모비하 논란으로 번져 파국|url = http://boo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014050013|출판사 = 서울신문 Boom|저자 =Boom뉴스팀 |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정다정 이광낙 설전, 외모비하 발언까지 '술렁'|url = http://stylem.mt.co.kr/styview.php?no=2012101414111102232&type=1|출판사 = 머니투데이 스타일M|저자 = 마아라|쪽 = |날짜 = 2012-10-14|확인날짜 = 2012-10-27}}</ref>
         2012년 10월 18일 만화가 [[미티]]는 [[네이버]]의 [[응용 소프트웨어|앱]] 홍보용 릴레이 웹툰 ‘앱피소드(Appisode)’에 정다정의 웹툰 《[[역전! 야매요리]]》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정다정의 분신인 ‘야매 토끼’를 등장시켰다. 미티의 이 웹툰에서 야매 토끼는 “이 자 갖고 싶다”라는 대사와 함께 다리를 벌린 채 점액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를 누리꾼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해석해 성희롱 논란이 일어났다.하지만 미티작가는 그런 의도로 그린것이 아니라며 그날 바로 문제의 장면을 수정하여 다시 올렸다.<ref>{{뉴스 인용 |제목 = 네이버 웹툰 작가 저질 '성희롱' 만화 올려|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8/2012101802044.html|출판사 = 조선닷컴|저자 = |쪽 = |날짜 = 2012-10-18|확인날짜 = 2012-10-27}}</ref><ref>{{뉴스 인용 |제목 =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정다정-미티 성희롱 논란|url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6555961&cp=nv|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쿠키뉴스팀|쪽 = |날짜 = 2012-10-23|확인날짜 = 2012-10-27}}</ref>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웹툰 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명훈 (지휘자) . . . . 7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모 - 이원숙(李元淑) [[1918년]] [[북한]] [[함경도]] [[원산]] 출생. 2011.05.15. 별세(향년 93세)
         [[북한]] [[함경도]] [[원산]]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루시여고]], [[대한민국]] [[배화여고]],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후 한 때 [[동덕여고]] 교사, [[이화여대]] 가정과 강사로 일했다. [[일본]]에서 [[유학 (교육)|유학]]하다 정준채 씨를 만나 [[결혼]]. [[1962년]] [[미국]]으로 이주해 한식당을 운영. [[1968년]] [[한국]]으로 돌아와 구미물산주식회사, 주식회사 원 등을 운영. [[1986년]]엔 [[미국]] 밸리포지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 미들타운에 한인교회를 개척하였고 [[1988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에서 목사로 활동.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산타 체칠리아 음악원]][[분류:줄리아드 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분류: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수훈자]]
  • 정영기(배우) . . . . 7회 일치
          * 2002년 《날씨와 생활》 ...미씨 역
          * 2009년 《[[마더(영화)|마더]]》 ...고생 깡마 역
          * 2012년 《[[U.F.O.]]》 ...김광
          * 2012년 《[[회사원(영화)|회사원]]》 ...보슬친구, 대 역
          * 2013년 《[[쪽으로 튀어]]》 ...카페시삽 역
          * 2014년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복권
         [[분류:한국 배우]][[분류:1981년 출생]][[분류:2000년 데뷔]][[분류:춘천시 출신 인물]]
  • 정진(1976) . . . . 7회 일치
         * 《[[만의 광장]]》 (2007년) - 마 대위 역
         * 《[[공주의 자]]》 (KBS2, 2011년) - 칠갑 역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중앙대학교 동문]]
         [[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정환덕 . . . . 7회 일치
         '''정환덕'''(鄭煥悳, [[1857년]] ~ [[1944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작가이자 [[대한제국]]의 문신, 작가으로 본관은 연일, 휘는 환덕(煥悳), 호는 퇴산(退山)이다. 시종원 부경으로 궁궐에서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궁 안에서 듣고 본 온갖 일들을 저술하여 "[[가록]](南柯錄, 가몽)"이라는 책에 겨 놓았다.
         정환덕은 궁궐에서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궁 안에서 듣고 본 온갖 일들을 “[[가록]](南柯錄, 가몽)”이라는 책에 겨 놓았다.
         [[분류:1857년 태어]][[분류:19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학자]][[분류:대한제국의 정치인]]
  • 진격의 거인/94화 . . . . 7회 일치
          * 상봉을 마친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파르코도 그 행렬에 끼어있었지만 길 가장자리에 또다른 행렬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엘디아인 부상병들이었다. 코스로라는 병사가 인솔 중이었다. 이들은 전방에서 오랫동안 참호를 파온 병사들이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 심적외상까지 발생했다. 이들은 가족도 돌아갈 곳도 없는 부류여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들의 상태는 한 눈에 봐도 폐인이다. 코스로가 "콰앙!"하고 폭발음을 모사하자 곧바로 패닉상태에 빠진다. 코스로는 그걸 보고 껄껄 웃는다. 파르코는 가족들이 형을 부축해서 먼저 가도록 하고 자신은 아서 부상병들을 부축한다. 그는 다리 잃은 부상병의 완장을 바르게 채워주면서 꼭 괜찮아질 거라고, 당신은 이제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한다.
          [[사샤 브라우스]]의 일이었다. 교관이 무슨 짓이냐고 물었을 때 조차 "맛있어 보여서 훔쳤다"고 대답하던 그녀. 이런 악당인데다 상황이 위험하다가 판단되자 교관을 매수하려고 감자의 반을 제시했다. 하지만 거기서 내민 양은 절반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다. 정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야비함. 이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에 가더니 뭘 싸러 갔는지 잊어버려서 그냥 돌아오는 얼간이, [[코니 스프링거]]도 있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 것도 신경 안 쓰는 불성실한 [[장 키르슈타인]]. 반대로 을 끔찍하게 챙겼던 [[마르코 보트]]. 그리고...
          가족사로 흐르기 시작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마레인과 엘디아인의 혼혈은 법으로 금하고 있다. 카리나는 이런 비밀을 왜 아들에게 말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걸 비밀이라고 가르치는 걸까? 그녀에게 엘디아인이 왕가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마레인 편에게 버림받은 것은 모두 한 가지였다. 마레인으로 태어났더라면, 그 말이 어머니의 눈물을 타고 떨어질 때 아들은 독한 결심을 했다. 라이너는 마레의 전사가 되기로 했다.
          당시 마레는 쪽 지방에서 일으킨 전쟁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전임자"들의 임기 종료가 겹친다. 마레는 이 시점을 계기로 군을 재편하고 거기에 "마레의 전사"를 추가할 것이다. 그 말은 이런 뜻이었다.
          그건 베르톨트가 모를 얘기였고 라이너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베르톨트는 동기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위로해줬다. 포르코가 악담을 쏳아놓긴 했지만, 계승권을 주는 건 마레군이다. 라이너는 포르코 말대로 동기 중 자신이 제일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베르톨트는 "충섬심도 중요한 요소"라며 격려했다. 그리고 마침 자리에 아있던 애니에게도 동의를 구했는데, 그녀는 묘한 짓을 하느라 지금까지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다. 벌레같은 것을 자근자근 밟아 죽이고 있었는데 형체가 지 않을 때까지 발을 비비고 있었다.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방금 전까지 하던 대화도 잊고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던 중에 베르톨트가 아까 하던 대화를 이었다. 뭐가 됐든 라이너에겐 목표가 있는데, 계승권을 얻으면 그에게 은 인생은 고작 13년이다. 그게 괜찮은 건지? 라이너는 그 말을 생각할 가치도 없는 걸로 취급했다.
  • 창작:좀비탈출/0 . . . . 7회 일치
         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성이다. 수수하지만 이럭저럭 흠은 없는 외향에 체형도 그리 둔하진 않다. 전문적인 운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체력관리 차원에서 가벼운 조깅 정도는 꾸준히 했다. 게임, 영화나 만화를 잡식으로 좋아했고 어딜 가나 있을 법한 자 대학생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Tv는 잘 안 보지만 걸그룹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마지막까지 Tv로 보고 있던게 [[트와이스]]와 [[AOA]]였다.
         이 글을 시작한 것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유언이라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자세히 기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적는 일은 의외로 힘들다. 나만의 특성을 적자고 할 수록 그런 요소는 한없이 희석되고 누구나 그럴 법한, 흔하디 흔한 얘기만 떠오른다. 저런 문장 어디에 '''내'''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마지막이 될,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긴다. 여기는 우리집이다. 우리집은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단독주택이다. '''그 사태'''가 일어났을 때, 나는 마침 방학이라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지방 출장을 떠난 상태였으며,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그게 어떤 부분을 자극한 건지, 어머니는 결연한 태도로 혼자 사는 외할머니를 데려오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났다.
         이후로 그 소리가 사라진 적은 없다. 우리집의 튼튼한 담벼락이 무색하게 녀석들은 열려진 대문으로 들어와서 산책했다. 방송이 끊어졌지만 우리 동네도 '''위험구역'''에 들어갔다는걸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이 반도 어딘가에 위험구역이 아닌 곳이 아있을 때 얘기겠지만.
         집 안에 아 있는 것을 모두 뒤져서, 어떻게 제법 많은 식량과 물자를 모았다. 이 정도라면 얼마 동안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안에 든, 혹은 여기를 뛰쳐나가든.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7회 일치
         공포중추가 마비된 걸 느낀다. 느낀다고 표현하는건 마치 다른 사람이 정신을 놓은 걸 보고 있을 때랑 비슷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내 발로 내 몸을 옮기고 있는데 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처럼 동떨어진 기분이다. 어떻게 이런 기분이 들 수 있지?
         예상했듯이 집안의 구조는 우리 집과 별 차이가 없다. 좁은 현관은 거실 겸 응접실로 이어지고 그 뒤에 주방이 있다. 거실과 구분되는 벽 같은 건 없으므로 한 눈에 주방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나는 토트넘이 꽤 이른 시기에 당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집 안에서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실 쪽이 어수선하게 떨어진 물건들이 많은 데 비해 주방 쪽은 깨끗하다. 사용감을 느낄 만한 흔적이 없다. 그야 녀석들은 주방을 쓸 줄 모를 테니까. 반대로 토트넘이 오래 버텼다면 주방에 흔적이 많이 았을 것이다.
         토트넘 본인이든, 아니면 다른 방문객이든 누군가 거실을 드나든 흔적은 있다. 먼저 보이는건 담배다. 적어도 생존자가 기진 않았으리라. 담배갑 째로 버려져 있는데 통채로 물어뜯어놨다. 잇자국이 선명한 걸 보니 치아 관리를 잘했나 보군.
         하반신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몸체에서 떨어진지 오래됐을 것이다. 허리 아래 거의 전부가 여기에 있으니 기고 간 쪽도 움직이고 있으리라 보긴 어려울 것이다. 기어다니는 정도는 하겠지만, 녀석들 신체가 그리 튼튼하진 않으니까. 손이 닳아 없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이야기를 한 편 짜맞췄다. 어떤 자가 정체불명의 병에 걸린 아내를 헌신적으로 간호했다는 얘기다. 너무 헌신적이었는지 침대를 떠나지도 못하게 묶어놨을 정도였다. 아직도 이 넝마같은 침대에는 '''가죽끈'''이 달려있다. 참 솜씨 좋게 붙여놨군. 그러던 끝에 결국 아내는 간호가 지겨웠는지 침대에서 빠져나왔고, 전쟁 같은 부부싸움을 치렀다. 장롱은 그 과정에서 넘어졌을 것이다. 아내는 거기에 깔렸고 살아편은 뭘로 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내의 허리를…… 이하 자체검열.
  • 최민호(유도선수) . . . . 7회 일치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상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반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유도 국가대표 자부 코치를 맡아 김원진, [[안바울]] 등의 선수들을 지도했다.
         90kg급인 [[송대]] 선수가 데드리프트 250kg을 할때, 60kg으로 자기 몸무게의 '''3.8배'''나 되는 230kg을 드는 진짜 '''죽음'''의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동급 체급에 비해 힘 자체가 매우 엄청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저체급에서 기술유도를 하는 말도 안되는 한판승의 사나이로 유명했다.
          * 유도선수치고는 다소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163cm인 [[단신|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보니, [[인터넷]]에서는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14121592|'''3개월 복싱 배운 185cm 내 자친구가 최민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한 [[여자]]의 [[짤방]]이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국대를 어떻게 이기냐~~ 그러나, 어떤 무술이든 해당 무술을 좀 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진짜 최소 한도로 잡으면 1년, 적어도 3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복싱]]을 3개월 배웠다는 거로는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애초에]] [[국가대표]]와 일반 사회체육인은 체력차가 크다. 특히 유도는 [[레슬링]]과 [[올림픽]] 그래플링계를 양분하는 무술 중 하나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도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고, 최민호는 그런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인데다가 상술했듯이 동 체급 내에서도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획득한 '''세계 챔피언'''이다.
          * 그리고 최민호는 [[관광|재밌는 구경]]을 시켜 주겠다며 그들을 초대했다. ~~[[친]] 입장에선 이게 웬 날벼락?~~
  • 최성관 (1925년) . . . . 7회 일치
         [[1925년]] [[9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국학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선화 공주》를 감독하였다. 감독활동은 1959년 《의 속도 모르고》, 1962년 <태양(太陽)을 등진 사람들>로 이어졌다. 김근자, 박귀희 주연의 <선화공주>는 흑백영화로 일관되다시피한 당시에 16미리이기는 했으나 모처럼 천연색 필름으로 촬영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홍성기 감독이 <여성의 일기>(1949)로 색채 화면을 선보인 이후 두 번째의 시도였다. 그는 배우로도 활동했다. [[1999년]] [[7월 19일]] 별세하였다.
         * 월에서 돌아온 김상사 (1971년)
         * 새터의 북소리 (1972년)
         * 내가 버린 자 (1979년)
         * 마지막 자의 모습 (1990년) - 김사장
         * 의 속도 모르고 (1959년)
         [[분류:1925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편집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1999년 죽음]][[분류:국학대학 동문]]
  • 최성민(1995) . . . . 7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1995년 출생]][[분류:2010년 데뷔]][[분류:양구군 출신 인물]]
         [include(틀:녀공학 멤버)]
         ||<#BB9E8B> '''{{{#fff 데뷔}}}''' ||<(> 2010년 9월 30일 [[녀공학(아이돌)|녀공학]] 디지털 싱글 'Too Late' ||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녀공학(아이돌)|녀공학]], [[SPEED(보이그룹)|스피드]] 전 멤버.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으나 바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에서 쭉 자랐다. 그 후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가 2년 정도 살던 와중에 서울에 있는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을 하면서 [[경기도]] [[성시]] [[분당구]]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 당시 합격한 회사는 현재의 [[MBK엔터테인먼트]]이다.
  • 코난(미래소년 코난) . . . . 7회 일치
         [[미래소년 코난]]의 주인공. 성우는 [[오하라 노리코]]. 국내 더빙은 KBS는 손정아, MBC는 박영.
         대변동 후, 겨진 섬(残され島)[* 한국판에서는 '홀로 은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12살 소년. 문명이 멸망할 때에 추락한 로켓의 탑승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쟁과 대변동 끝에 멸망 직전까지 몰린 지구를 보아온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또한 풍성한 자연 속에서 자란 덕분에 살아기 위한 여러가지 지혜와 놀라운 강함,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해변에 떠밀려온 소녀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와의 만을 계기로, 바깥 세상을 알게 된 코난은 모험을 떠나게 되며, 도중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그의 존재로 인해 주변인물들도 성장. 모험을 끝낸 후, 고향인 겨진 섬으로 돌아가는데 그 동안 섬은 신대륙이 되어 있었다.[* 극중에서 언급되어온 지각변동의 영향이었다.] 이 신대륙에 라나와 같이 정착할 듯.
         원작소설인 겨진 자들에선 설정이 달라서 처음 나올때 10대 후반이었다가 섬에서 표류하면서 20대 청년으로 자라났다. 물론 원작에서도 무인도에서 홀로 먹고 살며 지내서 매우 튼튼해 강인한 점이 돋보인다. 다만 발가락 힘은 없다. 코난 특유의 발가락 힘은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것이다.
  • 페어리 테일/536화 . . . . 7회 일치
          * 크리스티나호가 추락하고 [[안나 하트필리아]]는 탑승했던 인원을 바다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배에 아 [[아크놀로기아]]에게 격돌시키려 한다.
          *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 유일하게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아 힘을 보탠다.
          * 이치야는 마지막 힘으로 [[제라르 페르난데스]]를 구출하고 "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긴 채 아크놀로기아와 충돌한다.
          * 둘의 힘을 더해서 크리스티나호는 다시 날아올랐다. 웬디와 블루 페가서스의 길드원들이 그들을 불러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치야는 얼마 지 않은 화기를 총동원해 아크놀로기아의, 제랄을 붙잡은 팔에 쏟아붙는다. 타격은 되지 않았지만 제랄을 쥐고 있던 손이 풀린다. 이치야가 제랄에게 말했다.
          * 시간의 틈새를 둘러싼 공방도 종결을 맞이했다. 눈 부신 빛이 지나가고 나자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지 않았다. 엘자는 제랄을 구했고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웬디도, 블루 페가서스의 모든 사람도. 마룡도, 배도, 이치야와 안나도 없어진 하늘. 히비키가 모두 시간의 틈새로 사라졌다고 중얼거린다. 제니가 믿기지 않아서인지 슬퍼서인지 모를 복잡한 눈물과 함께 말했다.
          * 오른팔이 타들어갈 정도로 힘을 냈던 나츠는 가까스로 제레프를 쓰러뜨렸지만 서있는 정도 밖에는 은 힘이 없었다. 쓰러진 제레프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런 건 처음이라고 중얼거린다. 이게 혹시 자신의 죽음일까? 그러나 곧 "그럴리 없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분명 머지않아 회복할 것이다.
          * 다시 단 둘이 게 된 메이비스와 제레프.
  • 하이큐!! . . . . 7회 일치
         본작의 원안이 되는 최초 단편에 그 흔적이 아 있는데, 여기서는 세터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사실상 주인공이었으며 비중도 [[히나타 쇼요]] 보다 더 컸다. 후에 연재된 두번째 단편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정식 연재분과 가장 흡사해졌고 둘의 비중도 뒤바뀌었다(...). 그리고 정식 연재에 와서는 지금처럼 되었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종종 점프계열 행사가 열릴 때 공식 트위터로 하이큐 부스에서 키요코 코스프레를 한 성이 찍혀있는데, 하이큐 편집 담당자 혼다[* 本田佑行. 2010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은혼 담당을 했었다. 은혼 애니화 재기로 4기 1화 방영 이후 하이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비화를 밝히기도.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85738044281491456 이런 심한 얘기를 점프에 올린 사람이 누구?! 나인가?!]]다.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46458211255992320 점프페스타 2015]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반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식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하일권 . . . . 7회 일치
         === 3단합체김창 ===
         {{본문|3단합체김창}}
         2008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의 하일권의 첫 작품이지만, 사실 졸업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 호구가 어느 날 인간의 기본적인 인격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로봇 시보레의 짝궁이 되어 펼쳐지는 만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목에 대해 궁금해 하였으나, 제목 3단합체김창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후기에 밝혔다. 2009년 <3단합체 김창>의 판권이 영국 제작사 페브러리 필름즈에 팔리게 되었다.
         2009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3단합체 김창>을 연재하기 전에 기획하였던 수영만화를 조금 수정, 각색하여 준비하였다. 중학교 때 1등과 반장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배수구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수영복을 달라고 하여 변태로 오인받게 된다. 결국 배수구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배수구는 수영복사진을 찍다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만다. 수구부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담임선생님은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눈 감아주는 대신 여장을 하고 수구부에 들어오라고 배수구에게 제안한다. 결국 배수구는 김소녀라는 가상의 이름을 가진 소녀로 수구부에 들게 되고, 수구부에 들어오면서 자기와 같은 갈등과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면서 그 갈등을 견디어 나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WATERCUB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2010년 연재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윤아이, 오직 성공하는 삶을 위해 악착같이 1등을 유지하는 소년 나일등,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로 고 싶어하는 철없는 마술사의 마술 같은 성장 스토리를 담은 만화이다.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웹툰 작가]][[분류:동성고등학교 동문]][[분류:세종대학교 동문]]
  • 한가인 . . . . 7회 일치
         한가인은 2002년 [[아시아나항공]] 광고 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애정의 조건]]》, 《[[신입사원 (드라마)|신입사원]]》, 《[[나쁜 자 (드라마)|나쁜 자]]》,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건축학개론]]》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였다. 2018년 4월 드라마 《[[미스트리스 (2018년 드라마)|미스트리스]]》로 지난 2012년 《[[해를 품은 달 (드라마)|해를 품은 달]]》 출연 이후 6년 만에 컴백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6년 만에 드라마 복귀 "'미스트리스' 출연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33729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정하은 |날짜 = 2018-01-05 |확인날짜 =2018-04-17 }}</ref>
         | [[나쁜 자 (드라마)|나쁜 자]]
         | 꽃을든자 컬러로션
         | 꽃을든자 크리닉HN칼라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
  • 한수연(배우) . . . . 7회 일치
         ||<#ff748c> '''출생''' || [[1983년]] [[4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월성로) [* 성우 [[도형]]과 생일이 같다. [[도형]] 성우는 음력 [[3월 12일]]] ||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드라마)|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야망에 가득찬 악역 중전 김씨를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겼다. 2016년 11월 3일자 KBS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14일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된 tvN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자]]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외증조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라고 밝혔다.[* [[문제적 자]]에서 김순오라고 밝혔다.][[http://www.nocutnews.co.kr/news/4681861#csidx7e5eabd14e99dc0bb1abe81b7d22670|기사]]
         || 2017 || MBC || [[훈장 오순]] || 황세희 || ||
          * [[훈장 오순]]이 [[4월 24일|한수연의 생일]]에 첫방송했다.
  • 한주완 . . . . 7회 일치
         | 수상 = 2013년 KBS 연기대상 자 신인연기상
         * [[2013년]] [[KBS2]] 주말연속극 《[[왕가네 식구들]]》 ... 최상
         * [[2017년]] [[OCN (방송)|OCN]] 월화드라마 《[[멜로홀릭]]》 ... 김선호 / 책방 자 역
         * 2013년 [[KBS 연기대상]] 자 신인상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 한씨]]
  • 한호문 . . . . 7회 일치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1598년]](선조 31년) 선전관(宣傳官)<ref>황여일 (黃汝一), 《해월집 권9》, 사신일기, 1598년 무술 11월 13일 갑오(甲午) </ref>, [[1599년]](선조 32년) 하양 현감(河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ref>선조실록 113권, 1599년(선조 32년, 명 만력 27년) 5월 3일 경술 6번째기사, "조정·조희보·변이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1602년]] [[9월 14일]] 군기판관(軍器判官)을 거쳐<ref>竹溪日記卷之六, 九月初十日戊辰</ref>, [[12월 16일]] 영흥판관으로 나갔다.<ref>竹溪日記卷之六, 十二月十六日</ref> [[1603년]](선조 36년) [[11월 29일]] 서산(瑞山)으로 부임하였고<ref>조익(趙翊), 《가휴선생문집권 10》, 공산일기(公山日記), 계묘 1603년 11월 29일자</ref>, 그가 서산군수로 부임한 내용은 서산군읍지(충청도)(瑞山郡邑誌(忠淸南道))의 선생안에도 수록되었다. [[1607년]] [[9월 4일]] 도총경력에 임명되었다.<ref>竹溪日記卷之十, 九月初四日</ref> [[1615년]](광해군 7년) [[화기도감]]에 낭청으로 참여한 공로로, 그해 [[12월 29일]] 화기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을 시상할 때 승급되었다.<ref> 광해군일기 98권, 1615년(광해군 7년, 명 만력 43년) 12월 29일 신미 3번째기사 1615년 명 만력(萬曆) 43년 화기 도감 도제조·제조 유근 등에게 포상하다</ref>
         [[1623년]](인조 1년) [[9월 19일]]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부임하였다가 '경원부사(慶源府使)에 제수되었을 때는 부모의 나이가 70세임을 들어 상소하여 사직하더니, 본직에 제수되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부임하였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19일(병오)자 4번째기사, "사천 현감 이장형을 사판에서 삭제할 것 등을 청하는 사간원의 계"</ref> 그러나 그해 [[9월 20일]] 죄인 명단에서 특별히 정계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년 계해(1623) 9월 20일(정미)자 6번째기사, "사간원이 아뢴 한호문 등의 일은 정계하였다"</ref> 명단에서 정계된 사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1626년]] [[4월 13일]] 겸[[내금위]]장(兼內禁衛將)<ref>승정원일기 인조 4년 병인(1626) 4월 13일(을유)자 29번째기사, "병조가 이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ref> [[1627년]] [[1월]] [[정묘호란]] 당시 [[소현세자]]를 배종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1월 24일(임진)자 7번째기사, "세자 배종인의 명단"</ref> 그해 [[4월 5일]] 상현궁(上弦弓) 1장(張)을 사급(賜給)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5년 정묘(1627) 4월 5일(신축)자 2번째기사, "영부사 이원익 등에게 시상하라는 전교"</ref>
         [[1633년]] [[9월]]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서원군(西原君)으로 호송관(護送官)에 임명되어 사신을 접대하였다. [[10월 4일]] [[명나라]] 사신을 [[모화관]]에서 접대한 것을 보고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1년 계유(1633) 10월 4일(계해)자 12번째기사, "모화관에서 금차에게 연향을 베푼 결과를 보고하는 호송관인 서원군 한호문 등의 계"</ref>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당시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으로 인조 등을 수행하여 [[한산성]]으로 들어갔다. [[1637년]] [[1월]] [[인조]]의 [[정축하성]] 직후 작성된 호종록에 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2월, "일기청 관원"</ref>
         [[1637년]]에는 도정(都正)으로 그 해에 열리는 무과 정시(武科 庭試)에 좌참찬(左參贊) 이덕형(李德泂), 지사(知事) 변흡(邊潝), 동지(同知) 한명욱(韓明勖) 등과 함께 무과 정시(武科 庭試)의 명관(命官)으로 선발되었다. [[10월 13일]] 그 해의 무과 정시 합격자가 5천 수백명이라서, 본업무와 함께 합격자를 정하느라 보고가 40일이 지체된 것을 대죄하였으나 인조가 이를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13일(정미)자 16번째기사, "출방할 때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잘못이 있으므로 대죄한다는 무과 정시 명관인 좌참찬 이덕형 등의 계"</ref> 이후 부총관(副摠管)으로 전직되었다. [[10월 21일]] 전시의 시관으로 논박을 나갔는데, 즉시 왔어야 하는데 궐문이 닫힌뒤 천천히 왔다 하여 추고를 청하는 승지 김휼의 계에 의해, 추고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0월 21일(을묘)자 18번째기사, "전시의 시관인 부총관 한호문을 추고할 것을 청하는 김휼의 계</ref> 그해 [[12월]] [[도총부]] 부총관과 [[훈련원]]도정으로서 [[예조]]의 인사 포폄을 마감하는 좌기(坐起)에 참석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12월 14일(무신)자 2번째기사, "부호관 한호문이 예조의 포폄 좌기에 나아가므로 표신을 내줄 것을 청하는 도총부의 계"</ref> [[12월 16일]] 이를 두고 [[사헌부]]에서 그가 위인이 용렬하다며 반대했지만, [[인조]]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무마시켰다.<ref>승정원일기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6일(갑진)자 6번째기사, "사헌부의 계에 대해, 정시웅은 체차하고 엄종은 추고하라는 비답"</ref>
         * 부인 : 양홍씨(南陽洪氏, ? ~ ?년 5월 2일), 부사 홍여성(洪汝誠) 의 딸
         묘소 인근에는 [[한확]]의 부인 양부부인 홍씨 묘소가 조성된 이래<ref>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8986 </ref>, 그의 일가의 묘역과 양주시정수장, [[서정대학]] 등이 소재해 있다.
         한편 한확의 묘는 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 69-5 (능내리 단산로 551)에 있다.<ref>[https://news.joins.com/article/21752574 ]</ref>
  • 홍지호 . . . . 7회 일치
          | 자녀 = 슬하 1 3녀 <br/> (女 홍주현, 女 홍세라, 子 홍진원, 女 홍세빈)
         본관은 [[양 홍씨|양]](南陽)이고 [[서울특별시|서울]] 출생이며 [[경기도]] [[여주시|여주]]와 [[김포시|경기도 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서울 홍지호 치과의원(舊 서울 홍지호·이신정 치과의원) 원장을 지내고 있다.
         * 형: 홍성호<ref>홍성호(洪聖鎬) 의학박사의 [[본관|본관(관향)]]은 [[양 홍씨|양(南陽)]]이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학위를 거쳐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의학석사·의학박사 학위하였고 한때 [[영화 배우|영화여배우]] [[이미숙]]과 결혼하였다가 이혼하였으며 이후 전진숙이라는 일반 여성과 재혼한 그는 한때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겸임교수]] 겸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전임강사]]를 역임 이후 현재 경기도 용인 홍성호 성형외과 원장을 지내고 있다.</ref> (洪聖鎬, 1947년 ~ ) - [[성형외과]] [[의사]] 및 의학박사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자유 연애]][[분류:양 홍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황찬호 . . . . 7회 일치
         * 《[[그자 오수]]》 (OCN, 2018년) - 포장마차 건달 역
         * 《[[연동 539]]》 (MBN, 2018년) – 박천웅 형사 역
         [[분류:1986년 태어]][[분류:2018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6회 일치
          [[폴란드 침공]]을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 1939년 9월 1일 시작해 1939년 10월 30일 끝난다. 플레이 가능 국가는 독일, 소련, 슬로바키아 VS 폴란드 구도. 게임이 끝날 시 폴란드의 승리 점수가 1이라도 아 있으면 폴란드가 승리하지만, 하나도 지 않았을 경우에는 나머지 국가들이 승리한다.
          수장은 영국. 이외에 주요 회원국으로는 프랑스가 있다. 초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두 국가의 따까리들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며 미국의 참전, 영국의 중미 국가 포섭 등으로 상당히 많은 회원국을 확보하게 된다.
         징병제/모병제 구분 없이 "Enact Partial Mobilization"(부분 동원령 시행) 디시전을 발동시키면 이 상태가 된다. 20세에서 50세까지의 성을 징집한다. 이 단계부터 생산된 유닛에게 숙련도 보너스가 붙지 않는다.
         동원령 8단계. 18세에서 55세까지의 성을 징집한다.
          중국 부를 지배하는 중화민국의 괴뢰국. 1936년 말에 이벤트로 해안지방을 뜯기고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중화민국에게 먹힌다.
  • Victoria II . . . . 6회 일치
         이외에는 그냥 "문명국"으로 표시된다. 보통 이 정도로 밀려난 문명국들은 다른 국가의 영향권에 들어가 보호를 받거나 동맹으로 자신들의 적을 견제해야 살아을 수 있다.
          * A House Divided : 첫번째 확장팩 DLC. 제목은 [[북전쟁]]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의 발언인 "분열된 집안은 살아을 수 없다,"에서 따왔다.
          * German Unit Pack : 프로이센, 독일 제국, 북독일 연방, 독일 연방의 유닛 스프라이트를 고증에 따른 군복으로 바꿔주는 DLC.
          * American Civil War Spritepack : "북전쟁 시기" 미합중국과 아메리카 연합국의 보병, 특수병, 기병, 포병, 공병, 근위대의 스프라이트를 고증에 따른 군복으로 바꿔주는 DLC. A House Divided DLC를 추가로 요구한다.
          * Songs of the Civil War : 북전쟁 시기 만들어진 유명 음악 4개[* Battle Hymn of the Republic, Johnny Comes Marching Home, Marching Through Georgia, Oh I'm a Good ol' Rebel]를 OST에 추가해주는 DLC.
  • 강동우 . . . . 6회 일치
         이미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 팬들에게 [[강기웅]], [[박충식]]과 함께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가슴에 는 선수다.[*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까였던 적도 있다.] 강동우와 관련된 신문기사의 리플을 보면 '''[[한화 이글스|한화]] 팬들보다 삼성 팬들의 응원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는 간간히 '은퇴식만큼은 삼성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미 [[마해영]]의 사례도 있고.
         [[조범현]]의 양아들이라는 욕을 대차게 먹으면서도 시즌 초반 잠깐 동안은 꾸준히 기용되었지만 타율 1할대를 기록하였고, 부상당한 시즌을 제외하고는 커리어 로우 기록을 기며 줄곧 2군 신세를 졌다.(...)
         5월 말 1군에 복귀하여 타선에 나름대로 힘을 보탰으나 14경기에서 30타수 6안타에 그쳤고, 팀의 리빌딩 방침과 맞물려 다시 2군으로 향했다. 다행히 [[퓨처스리그]]에서는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후로 전혀 1군에 올릴 기미가 안 보인다. 그토록 대타를 발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강동우의 복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일각에선 '(감독의 권위를 위한) 베테랑 죽이기'로 의심할 정도.
         결국 [[한화 이글스]] 이적 이후 최악의 성적을 겼다. 26경기 52타수 11안타 타율 .212를 기록.
         은퇴를 선언한 후 [[두산 베어스/2군|두산의 2군]] 타격코치로 영입되어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163134|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14년]] 4월에 결혼하여 뒤늦게 품절이 되었다.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 강진(가수) . . . . 6회 일치
         사실은 [[1986년]]에 발표한 "이별의 신호등"으로 데뷔해 활동을 시작한 중견 트로트 [[가수]]로, 본격적으로 뜨게 되는 시기는 [[1994년]]이다. 이 때 발표한 "자는 영웅과 삼각관계"(김병걸 작사, 이호섭 작곡)가 히트하여 강진은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유명 가수가 된다. 삼각관계는 이후도 강진이 직접 부르는 곡이다.
         참고로, [[주말 드라마]] [[원더풀 마마]]에서 [[박보검]]이 [[노래방]]에서 강진의 "연하의 자"를 불렀다. ~~나는 나는 연하의 자!~~
         2012년 4월 경, [[1박 2일]] 강진편[* 행정구역.] 마을잔치 때 [[강진군]]에서 강진이 땡벌을 불렀다(...). 참고로 강진의 [[본명]]은 [[강옥원]]이며, 실제 출생지는 [[전라도]] [[영암군]]이다. ~~근데 영암에서 강진이 워낙 가까우니 뭐...~~
         부인은 1970~1980년대의 인기 그룹 "희자매" 출신의 김효선이며, [[편]]의 [[매니저]]를 도맡아했다고 한다.
         [[분류:한국 가수]][[분류:영암군 출신 인물]][[분류:1955년 출생]][[분류:1986년 데뷔]]
  • 강흠덕 . . . . 6회 일치
         |소속 구단 = 성 블루팬더스
         * [[성 블루팬더스]] 트레이닝 코치 (2017년 ~ 현재)
         '''강흠덕'''(姜欽悳<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58년]] [[8월 15일]] ~ )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포수]]이자, 현 [[경기도 챌린지 리그]] [[성 블루팬더스]]의 트레니닝 코치이다.
         2011년부터 [[두산 베어스]] 2군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17년부터 [[성 블루팬더스]]의 트레니닝 코치로 활동했다.
         {{성 블루팬더스 명단}}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괴산명덕초등학교 동문]][[분류:괴산중학교 동문]][[분류:괴산고등학교 동문]]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0화 . . . . 6회 일치
          * 타이헤이의 조언과 우마루의 도움으로 함께 귀가하며 오해를 풀어가는 모토바 매.
          * 여전히 5m 가량은 거리가 있는 모토바 매.
          * 봄바는 푸념하듯 "매끼리 같이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알겠다"고 말하는데, 키리에는 그런게 아니라고 부정한다.
          * 오해가 풀린 매는 훈훈하게 함께 귀가한다.
          * 모토바 매도 비현실 매의 영역으로...
  • 곽결호 . . . . 6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미 군정 조선 과도정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참전 = [[베트 전쟁]]
         * 1974년 : [[영대학교]] 토목공학과 학사
         [[분류:194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구승빈 . . . . 6회 일치
         || 출신지 || [[전라도]] [[장흥군]] ||
         그러나 2015 롤드컵서 오리진, KT, TSM에게 내리 털리면서 고통받는중... 해탈했는지 마타가 "한국인 최초 롤드컵 2회 광탈 ㅅㅅ." 이라는 페북글의 댓글과 롤갤에 "그냥 내가 ㅂㅅ이여서 그럼ㅋㅋㅋ"의 뉘앙스의 글을 기면서 성장멘탈룬 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마타의 Goondae Gaming의 새로운 봇듀오가 될거라는 드립은 덤.~~--한 시즌마다 멘탈 + 1--
          * 2013년 10월 30일 프로게이머 정기소양교육에서, 격투기 해설자인 김훈에게 "다시 태어나면 잘생길 것이다"라는 발언을 해[[http://esports.dailygame.co.kr/view.php?ud=2013103017235703189|김훈을 강단아래로 소환하는데 성공했다.]] ~~소환 성공하고 좋아 죽는 임프~~ [[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136491&db=issue|들어올 때는 맘대로 였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응징 당하면서 좋아 죽는 임프~~
          * 한국 팀으로의 복귀예정은 아예 없고, 은 프로게이머 생활은 모두 중국에서 보낼 것이라고 한다. 돈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자신의 성향 상 한국에 머무르게 되면 팀과 팀원들에게 피해를 줄 여지가 있고, 자신에 성향에 중국이 더 맞는 듯 하다고 한다. 자신의 약한 멘탈에 대한 자각이 있는 듯. 그냥 돈 문제가 큰것 같다. [[http://imgur.com/CjrABFL.jpg|한국에서 프로 왜함?ㅋㅋ]] ~~임프가 중국에서 얼마받는지 대략적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전에 롤갤에 돈이 최고다 라는 식의 뉘앙스의 글을 쓴적 있다. 10억보다는 적게 받네 근데 저긴 세후로 받잖아? 아마 안될꺼야 ~~
          * 2015년 9월 5일 새벽, OGN 플러스에서 생중계 되는 클템의 만년다이아 시즌 2 생방송에서 채팅방에서 나온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욕설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존X 저런 새끼들은 고소하고 싶네 X발X끼들" 이라는 욕설을 뱉어버렸다. 그 이전에도 인벤 커뮤니티에 대해 장난식으로 X벤이라고 언급하는 등 발언 수위가 줄타기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이였지만 클템과 권이슬이 계속해서 수습하고 좋게 덮어주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듯 했으나 자신의 가족을 언급하는 무례한 행동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 보인다. 이후 1부가 종료되기까지 클템과 권이슬은 사건을 수습하느라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고, 임프는 계속해서 클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자신은 에게 이렇게 피해를 주는게 너무 싫은데 멘탈 컨트롤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함께 출연했던 [[조세형(프로게이머)|마타]]와 [[이다윤|스피릿]]은 임프의 멘탈 붕괴를 억제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특히 마타는 장난식이였지만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는 질문에 임프랑 여기 나오기 전까지가 제일 행복했다고 언급하는 등 임프의 언행에 굉장히 신경쓰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 권해효 . . . . 6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조윤희[* 같은 연극 배우출신. 2017년 [[홍상수]]의 영화 [[그 후]]에서 권해효가 맡은 캐릭터의 아내로 출연한다.], 슬하 1 1녀 ||
          * 1998 [[자셋 여자셋]]
          * 아버지는 퇴역군인이셨고 3매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권해효는 대학 재학시절 반드시 장학금을 받아야했다고 한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한채 공부에만 전념했고 이것이 부채의식으로 아 현재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농성 지원, 위안부 일인 시위, 안티 조선 운동 등 여러 방면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2015년 12월 28일의 위안부 협상 국면에서는 아베에게 경고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기도. 또한 [[이승만]]의 어두운 일면을 김없이 들춘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65년 출생]][[분류:1990년 데뷔]][[분류:무주군 출신 인물]]
  • 김도균 . . . . 6회 일치
         [[분류:한국 가수]][[분류:기타리스트]][[분류:1964년 출생]][[분류: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6년 데뷔]][[분류:불타는 청춘의 역대 출연자]]
         || '''출생지''' ||<(> [[대구광역시]] [[구(대구)|구]] ||
         [[1964년]] [[5월 11일]] [[대구광역시]] [[구(대구)|구]]출생.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밴드)|백두산]]의 [[기타리스트]]이다.
  • 김동한 (1919년) . . . . 6회 일치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베트 전쟁]]
         [[1951년]]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해군|해군]] 군종 장교로 [[대한민국 해군|해군]] [[대위]] 임관하여 이후 [[한국 전쟁]]과 [[베트 전쟁]]에 [[군종장교|군종사관]] [[사제]]로 참전하였으며 [[군종사제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1970년]] [[대한민국 해군|해군]] [[중령]] 예편하였다.
         그 뒤 김동한 가롤로 사제는 [[1949년]] [[6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창원시|경상도 창원]]에서 사목하다가 [[1951년]]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첫 [[군종장교|군종사관]](군종 신부)로 [[대한민국 해군|해군]] [[대위]] 임관하였다.<ref name="가톨1">[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한국교회사 인물 80) (하)]{{깨진 링크|url=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36413 }} 가톨릭뉴스</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528492 김동환 신부와 함께하는 故 김수환 추기경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53년 4월 진해 및 인근 본당들과 함께 ‘군민 합동 성체대회’ 개최했으며 이 대회는 진해 지역의 천주교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ref name="가톨1"/> 그 이후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계산성당]] 등에서 사목하였다.
         [[1978년]] ‘한국 가톨릭 결핵 시설 연합회’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되어 결핵환자 요양원을 맡았다.<ref name="가톨1"/><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738&yy=2009 영권 대표 인터넷 신문 "매일신문"<!-- 봇이 붙인 제목 -->]</ref> [[1983년]] [[9월 28일]] 선종하였다.
         [[분류:1919년 태어]][[분류:198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령]][[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함세웅]][[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구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
  • 김민서(배우) . . . . 6회 일치
         중학교 3학년 때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오랜 공백기를 가진 후 [[2008년]]부터 연기자로 전업했다. 드라마에서는 주로 악역으로 출연했지만, 사실 악역이라기보다 [[짝사랑]] 전문(?) 배우다. '[[동안미녀]]'에서의 디자인 실장, '[[해를 품은 달(드라마)|해를 품은 달]]'의 중전 [[윤보경]], [[성균관 스캔들]]의 기녀 [[초선]], '[[7급 공무원(드라마)|7급 공무원]]'의 요원 [[신선미]] 등 대부분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성에 대한 짝사랑을 하다 맺어지지 못하는 캐릭터다. 주인공과 연적 관계라서 관계도상 악역.
         [[아임 쏘리 강구]]의 종영과 함께 [[FNC엔터테인먼트|FNC]]에서 FA로 풀리자마자 절친인 [[최강희(배우)|최강희]]를 따라 [[2017년]] 6월 30일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2018년 5월 17일에 결혼했다. 편이 일하는 [[미국]]에서 당분간 있을 거라고 한다.
          * SBS [[나쁜자(드라마)|나쁜 자]] - 여기서는 선한 역.
          * SBS [[아임 쏘리 강구]] 정모아 역
  • 김범룡 . . . . 6회 일치
         | 가족 = 슬하 2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데뷔]][[분류:과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
  • 김병옥(배우) . . . . 6회 일치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마다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 원로 배우 [[박근형]]과 많이 닮았다. --어디가?-- 얼핏 보면 ~~BJ 우마이~~ [[마츠시게 유타카]]나, 코미디언 [[송준근]]도 닮기도 했다. [[박문성]]이 이 분을 많이 닮았다. 예능 아는형님에서 [[희철|김희철]]이 닮은꼴을 자청하며 성대모사를 하는데 원래 꽃미류라서 그리 닮지는 않았다. 그리고 [[김영환(1955)|김영환]] 前 장관과도 닮은 편.
         ||<|5> 2013년 || [[자가 사랑할 때(영화)|자가 사랑할 때]] || 목사 || ||
         || MBC || [[죽어야 사는 자]] || 한소장 || ||
         [[맥심(잡지)|맥심]] 2015년 9월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는데, 악역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느와르]] 컨셉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실제 범죄를 연상[* 일반적인 느와르 느낌보다는 그냥 강력범죄 설정에 가까운 화보들이었다. 자끼리 총격전을 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조폭 설정으로 스타일링한 김병옥이 납치한 여성을 트렁크에 실어서 차로 옮겨 땅에 묻는 설정의 사진이었다. 실제로 잡지사 여직원이 피해자(?) 역할까지 했다. --[[취향|여긴 왜 자꾸 자기네 여직원들을 시켜]]--]시켜서 혐오감과 공포감을 일으킨다고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것이 배우 본인의 잘못은 아닌지라, 어쩌다 논란에 끼여 버린 피해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60년 출생]][[분류:부천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김세윤 (1999년) . . . . 6회 일치
         |청소년 클럽=[[무산중학교]]<br />[[충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충기계공업고등학교]] ([[대전 시티즌]])
         [[무산중학교]]를 거쳐 2015년 [[대전 시티즌]]의 유스 산하 학교인 [[충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충기계공업고등학교]]인 김세윤은 2016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카타르 3개국 친선대회에 출전, 카타르와 말리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4개국 친선대회에 대표팀에도 승선해 세르비아전에 출전했다.
         [[분류:199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충기계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무산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수용(코미디언) . . . . 6회 일치
         [[분류:양구군 출신 인물]][[분류:1966년 출생]][[분류:1991년 데뷔]][[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가족''' ||1 1녀 중 둘째, 부인과 슬하 1녀||
         그런데, 캐피털 쪽도 아주 막장이었는데 8억이나 되는 돈을 본인 확인과 부동산 가치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담보대출을 해준 것이다. 알고 봤더니 이쪽도 캐피털사 지점장이 선배와 한패라서 대놓고 사기 대출을 눈감아줬다고 한다. 결국 캐피털사와는 그쪽 과실도 있고하여 추심은 안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후 경매를 통해 빌라를 매입한 다음 정산해보니 대출이자 + 부동산 관련 세금까지 해서 총 3억 7천의 빚이 았다고 한다.
         2016년에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했는데, 과거 [[미]] [[개그맨]]으로까지 불렸었는데[* [[파일:감자골_리즈시절.png]][br]미으로 유명하던 시기의 외모는 지금으로서는 연상도 되지 않는 수준.] 근 몇 년새 살이 부쩍 불어서 [[유재석]]에게 자기관리 부족이라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실제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2012년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해서도 현재는 꽤나 살이 찐 상태. 몸무게가 세 자리 가까이 육박한다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있는데 방송보다 글로 더 웃긴다는 평을 받고 있을 정도로 본인이 웃기거나 동료 개그맨들의 인스타그램에 웃긴 댓글을 많이 긴다.
  • 김재엽 . . . . 6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유도]]}}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74년 대구 [[산초등학교]] 4학년때 유도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대구중앙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대회를 20여차례 석권하였다. 특히 계성고 3학년이던 1982년에는 10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983년 [[계명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였으며, 1982년 6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올림픽 유도 자 엑스트라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자 유도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 김중혁 . . . . 6회 일치
         ~~악마? 마? 마왕? 마귀? 마초? 마법사?~~ 극중 허은실이 마이라고 칭하니 마이라고 하자(...)
         사실 그동안 자신도 법칙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몰랐었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도록 닥치고(...)살아왔던 것.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사회생활 정도는 해왔던 걸 ~~그냥 고 공대 군대를 가면 된다~~[* 안타깝게도 전부 공학을 갔다(...) 다만 직장은 확실히 고려해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근만 하는 부서를 근무하고 있는 것도 웬만하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서인 듯.] 보면 히키코모리가 따로 없는 삶을 살던 박미정보다 훨씬 강인한 인물이다. 통계학과에 온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동진은 자신이 사라지면 중혁이 반드시 조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개설하여 비밀글들을 숨겨두었고 예상대로 중혁은 동진의 블로그속 마녀의 법칙을 찾아낸다. [* 이때 아이디는 중혁의 주민등록번호였으며 비밀번호는 'Shine on you'였다.]동진의 조사가 유독 오래 걸린 이유가 미정을 조사함과 동시에 대학시절부터 중혁에 관해서도 눈치채고 같이 역학조사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혁과 관계된 여성 리스트가 나오는데 수십명~~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부럽다'''. 게다가 다 녀공학이야~~가까이 중혁을 좋아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글은 이 글을 볼 중혁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중혁아. 네가 사랑해야 돼.''' 라는 말, 즉 해결책을 써준 동진에 대한 크나큰 고마움을 느낀다.
  • 김처선 . . . . 6회 일치
         [[세종대왕|세종]]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왕을 섬겼으며 최고위 내시인 판내시부사 겸 상선을 역임한 인물.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1914년 전의현이 [[연기군]]으로 편입되어 전의면이 되었다.] 사람이다.
         어쨌든 그의 최후는 '''진정한 [[왕의 자]]'''로서 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충신]]답다 할 수 있어서 중종 반정 직후부터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240년 뒤 영조에 이르러 그의 고향에 공적을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영화]] [[왕의 자]]에서는 [[장항선(배우)|장항선]] 씨가 연기하였으며, 연산군을 진정으로 아껴주는 몇 되지 않는 충실한 심복으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장생과 [[공길]] 일당이 왕에게 풍자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자 왕을 정신 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들을 궁중에 스카웃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되려 연산군의 광기만을 돋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 역사에서처럼 [[연산군]]에게 직언했으나 분노를 사서 쫓겨났으며, 후반부에 반정 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거절했고 [[반정]]이 일어나기 직전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 이때 연산군은 처선이 어디 있냐며 술마시고 꼬장을 부리고 있다가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BS]] [[사극]]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선 연산군의 광기어린 행보를 다룬 1화 광풍에 등장한다. 월산 대군의 처 박씨와 강제로 동침한 연산군을 보고 연산군을 악행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하늘이 두렵지 않냐며 직언 하다 가슴에 화살을 맞는다. 칼을 빼든 연산군이 자 구실 못하는 놈이 입만 살았다며 분노하자 소인 자 구실 못하는거 생각말고 임금 구실이나 잘하라고 맞받아치고 칼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네이버 웹소설]] [[전하와 나]]의 주인공 이의윤의 충신의 모티브다. 본명은 서현우로, 할머니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별궁을 털려다 체포되었으나 황태자였던 의윤의 도움으로 석방. 이일로 의윤이 황제의 눈밖에 나서 죽음을 당할뻔하자 그에게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로 충신의 대명사 김처선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의윤의 동생 선혜 공주와 이어져 처 - 매부가 되었고, 의윤이 황제가 된 후에는 [[부마]] 겸 의윤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6회 일치
          * 우측이 여자동, 좌측이 자동인데 1층은 공동 구역이며 식탕, 욕탕, 세탁 등을 처리한다.
          * 가차없이 공개되는 학생들의 방.
          * 코우다는 애완동물인 토끼를 풀어놓은게 여학생들에게 대호평. 다른 학생들의 시기를 산다.
          * 대회가 대충 끝나가는 와중에 학생 측에서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 미네타는 "자만 공개하는건 이상하다"면서 여자방도 공개하기를 요구한다.
          * 사실 학생들은 대체로 별 관심이 없다.
  • 다멘즈 . . . . 6회 일치
         몹쓸 자(ダメな男)라는 뜻. 몹쓸(ダメ)+자들(Mens)라는 뜻이다.
         다멘즈란 몹쓸 자들, 다멘즈 워커란 자를 보는 눈이 나쁜 탓에 그런 자들만 만나서 고생을 하는 여자들을 뜻한다. 다멘즈로 정의되는 요인은 주로 바람을 피우거나, 돈 씀씀이가 헤프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이다.
         2000년에서 2013년 까지 연재된 『다멘즈 워커(だめんず・うぉ〜か〜)』라는 만화가 어원. 주로 몹쓸 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여자들의 체험담을 소개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드라마화도 되었다. 이 만화의 제목은 카도가와 서점에서 발매하는 잡지 『Men's Walker』를 패러디 한 것이기도 하다.
  • 도균 . . . . 6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동군연합 . . . . 6회 일치
          * 부부동군연합 : 각자 통치권을 가진 군주와 여군주가 혼인함으로서, 부부가 동군연합을 이루는 경우이다.
         본래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에서 건너온 가문인 카페가문의 분가인 보르고냐가문의 분가인~~뭐저리 복잡해~~ 아비스가문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포르투갈의 왕인 세바스치앙이 북아프리카로 원정을 나가다가 모로코 술탄국에게 대패하고 본인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해버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왕위 자체는 그의 종조부인 엔리케 추기경이 환속하면서 상속받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66세인데다가 자식도 없어서 후사를 길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그가 2년 뒤인 1580년에 죽으면서 문제가 터졌다. 당시 왕위 주장자는 총 세명이었는데, 브라간자 공작 주앙 1세와 결혼한 카타리나 공주와, 주앙 3세의 손자인 안토니오 대주교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있었는데,[* 3명 모두 조부가 포르투갈 왕 마누일 1세였다.(펠리페는 외손자)] 결국 펠리페 2세와 협업한 알바 대공 페르난도가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펠리페가 다른 주장자들을 물리치고 포르투갈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후 영국과 협업한 포르투갈 토착 귀족들이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해 해체된다. [* 단, 세우타는 스페인이 가졌다.]
         당시 폴란드의 왕가였던 앙쥬왕가가 계가 단절되면서 당시 폴란드 왕의 딸이 리투아니아의 대공에게 시집가면서 생긴 연합. 쭉유지되다가 이후 폴란드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삼분할되면서 '''멸망'''~~딴애들은 전부 해체나 상실인데 얘만 멸망이다. 안습~~
         본래 튜튼기사단이란 신정국가가 지배하던 프로이센 지방은 [* 정확히는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교도때문에 통치를 못할 수준이 되자 튜튼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이후 튜튼기사단의 단장 알브레이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선언하고 세속화되어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계가 단절되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던 브란덴부르크와 동군연합이 된 것이다. 이게 왜 추가될 사례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텐데, 쉽게 말해 '''독일제국의 전신이다.''' 이로써 단순 발트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삼키며 본격적으로 열강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바이에른 선제후국을 지배하고 있던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가가 단절되면서 팔츠계 비텔스바흐가가 계승되면서 나타난 동군연합. 이후 독일을 장악하려고 오스트리아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바이에른 계승전쟁이 대번 터졌다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오스트리아군이 박살나면서(...) 이 지방은 비텔스바흐가가 장악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바이에른 왕국으로 통합된다.
         프랑스 전역을 거의 장악하던 아퀴텐의 여공인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왕의 헨리2세와 혼인하면서 결성된 동군연합. 이로 인해 당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령에서는 명목상 프랑스 왕의 봉신이면서 정작 프랑스 왕보다 더 쎈 기묘한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이 플랜태저넷 왕조 - 일명 '앙주 제국'의 정체성은 단지 '잉글랜드 영토'라는 식으로 국한하기는 좀 복잡했다.
  • 류효영 . . . . 6회 일치
         류효영은 [[2010년 4월]] 제80회 [[전국춘향선발대회]]에 참가해 춘향 진을 수상했으며 이후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동생 [[류화영]] [[유밴드]]과 출연하였고, 이로 인해 김광수 사장의 눈에 띄여 [[류화영]] [[유밴드]]과 함께 코어콘텐츠미디어(현 [[MBK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0년]] [[KBS2]] 드라마 《[[정글피쉬 2]]》에 출연하였고, [[2010년|같은 해]] 혼성 아이돌 그룹 [[녀공학 (음악 그룹)|녀공학]]에서 한빛효영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했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녀공학 (음악 그룹)|녀공학]]의 여성 유닛 그룹인 [[파이브돌스]]의 멤버로 활동했다. [[파이브돌스]]로 활동하던 [[2011년]]에는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파이브돌스]] 맴버들과 함께 출연하였고, [[2012년]] [[KBS2]] 드라마 《[[학교 2013]]》에 이강주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으며, [[2015년]]에 [[파이브돌스]]가 해체된 이후부터는 현재 소속사인 비에이엠컴퍼니와 전속계약해 배우로 전향하였다.
         * 2010년 6월 원시 홍보대사
         [[분류:201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문화 류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유밴드 출신]][[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란성 쌍둥이 배우]]
  • 만남계 사이트 . . . . 6회 일치
         흔히 만계(出会い系)로 줄여서 표현한다. 일본어로 만(出会い, 데아이)는 기본적으로 만난다는 뜻이 있지만, 녀의 만이라는 의미도 있다. 만계 사이트는 인터넷에서 교제 상대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상대를 소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이트이다.
          * 상대가 [[유부]], [[유부녀]]라서 [[불륜]]의 온상이 되기도.
  • 문문 . . . . 6회 일치
         [[샤이니]] [[종현]]이 사망한 다음날(자신의 신곡 발매일)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겨 논란이 일었다. 자의식 과잉이라는 비난부터, 고인을 신곡홍보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일자 이내 글을 삭제했다.
         '''그의 은 음악인생을 작살 낸 사건.'''
         디스패치 취재 결과 지난 2016년 8월 몰카 촬영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확인되었다. 강의 한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을 몰래 촬영하다 적발 되었으며, 혐의를 일부 인정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하우스오브뮤직과의 전속 계약 당시 이 사실을 숨기고 계약을 맺었으며, 소속사는 2018년 5월 24일 문문과의 전속 계약을 해지했음을 밝혔다. [[https://www.dispatch.co.kr/1314350|기사]]
         다만 놀랍게도 사건이 알려진 후에도 차트에 비행운 등 그의 곡들이 꽤 오래 아 있었다. 또한 TJ노래방 차트에는 2018년 10월에도 그의 곡들이 아있다.
         '[[비행운(노래)|비행운]]'의 경우 [[아이유]]가 매체를 통해 소개하며 [[역주행#s-2.5|역주행]]하게 되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529505|기사]]에 따르면 [[아이유]]가 들른 [[레스토랑]]에서 어느 [[웨이터]]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어봐 달라는 [[메모]]를 겨 들어 보았는데 그 [[웨이터]]가 바로 문문이었다고 한다.
  • 문희옥 . . . . 6회 일치
         ||가족||[[편]] 김홍선, [[아들]] 김동건||
         1969년 7월 27일, [[강원도]] [[태백시]]에서 2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학업을 위해 상경하였고, [[강원도]] [[태백시]]에서 위치한 [[태백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재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인 1986년 당시 학교 장기자랑에서 가수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불렀는데 이 때 친구들의 반응이 좋자 문희옥은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된다. 꿈을 가지게 된 이후 둘째 언니의 주선으로 작곡가 안치행 씨를 만나게 된다.[* 안치행 씨는 [[최헌]]의 <오동잎>, 주현미의 <눈물의 부르스>를 작곡한 유명 작곡가이다.] 그 뒤 안 씨의 소속사 안타 프로덕션에서 1년 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1987년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사투리를 소재로 창작곡을 모은 <8도 사투리 메들리>를 발표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메들리 음반은 발표되자 마자 360만 장이 팔리게 된다 ~~지금으로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주최로 학교 강당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것 만큼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하이틴 스타가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좀 매치가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지금도 그렇지만 별로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문제는 당시 시대상으로 사투리는 공중파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1987년 그 해에 <빈손>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빈 손 가사도 왠지 그 노래를 부른 10대 여학생과는 맞지 않았다~~ 1988년 문희옥은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하였고, 꾸준히 더 많이 음반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슬로우 템포의 <가는 님 가는 정>을 발표하고 1989년 원래 가수 정재은이 1984년 발표한 <사랑의 거리>를 2집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가수로서 상위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오사카 교민 위문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1990년 <강 멋쟁이>가 히트하여 문희옥이 최상의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가수 현철과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를 발표하였다. "잘했군 잘했어는 아는 사람은 아시는 바와 같이 원래 하춘화 - 고봉산의 노래다. 그리고 여러 메들리를 발표하면서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 [[문희옥]]의 정통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화병이 한 때 심각했었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살고, 심지어 큰언니의 암투병과 동생의 군복무 중 사망으로 더 화병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심각해지자 노래 부르는 것도 기술과 요령으로 간신히 버텼고 당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한다. 2011년 오페라스타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화병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또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차츰 화병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고, 종교 활동과 해외봉사 활동을 통해 화병을 더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화병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 1990년 강 멋쟁이
          * 2006년 사랑이 아 있을 때
  • 배천석 . . . . 6회 일치
         |클럽 =[[포항 스틸러스]]<br />→ [[비셀 고베]] (임대)<br />[[부산 아이파크]]<br />[[전 드래곤즈]]<br /> [[이천 시민축구단]]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2014년 12월 18일, [[부산 아이파크]]로의 이적이 발표되었다. 2016년 [[전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포항제철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백상원 . . . . 6회 일치
         * [[2010년]] 부리그 타격왕
         [[단국대학교]] 졸업 후 [[2010년]]에 4라운드(전체 28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2010년]] 퓨처스 리그 개막 때부터 4월 말까지 56타수 3안타로 매우 부진해 그 해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력한 끝에 부 리그 [[수위 타자]]가 되었다.
         시즌 후 곧바로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여<ref>조이 뉴스 24 - 2010년 10월 26일 기사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523983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퓨처스 부 리그 수위 타자 백상원, 삼성 내야의 미래"]</ref> 복무를 마치고 [[2012년]]에 제대했다.
         * [[대구도초등학교]]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브이원 . . . . 6회 일치
         [[2006년]] 군 입대를 선언했다.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재입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강현수는 서울 광화문의 병역특례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경영난에 부딪힌 회사가 그를 퇴사조치 했다. 다른 병역특례업체를 찾아보던 중, 때마침 연예인 병역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강현수도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회사가 어려워 임금을 받지 못했던 것인데, 상황이 꼬이다보니 ‘무임금을 조건으로 취업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고 재 입대까지 통보 받게 됐다는 강현수의 주장이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270147792&cp=nv|제목=‘하고 싶다’ 강현수 “상미와 연기 하고파”|성=|이름=최은화 기자|날짜=2010-04-01|출판사=쿠키뉴스 국민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22화 . . . . 6회 일치
          * [[노엘 실버]]는 솔리드를 격파한데다 아직도 여력을 기고 있어 자신감이 충만, [[엔 링가드]]는 버섯이 해제되자 비실거리는 본래 성격으로 돌아온다.
          * 상대는 [[네르슈 버밀리온]],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의 C팀. 잭스는 왕족이 상대로 나오자 몰래 승부욕을 드러낸다.
          * 유노는 이 혈통 고귀한 패배자들에게 신랄한 독설을 겼다.
          * [[마법제]] 율리우스는 다양한 마법의 각축전을 보며 대만족했다. 더 만족스러운건 아직도 2회전이 아있다는 것.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2회전 시작을 선언하려 했으나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실행요원들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시합 스테이지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중앙의 폐허 지역에서 융기가 시작되더니 어느새 상당한 높이의 언덕 지형이 새로 생겼다. 양팀 크리스탈의 위치는 평원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거리가 줄었고 전체적으로 스테이지가 좁아졌다. 이같은 변화는 다양한 지형에서 싸우는 편이 모든 역량을 살펴볼 수 있다는 마법제의 방침 탓이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2회전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클로버 국왕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좀 더 짐을 즐겁게"해라는 기분 나쁜 말이나 궁시렁대고 있었다. 아스타는 스테이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지만 [[잭스 류그너]]가 작은 동요를 보이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 2회전 1시합. 아스타, [[미모사 버밀리온]], 잭스의 B팀과 [[네르슈 버밀리온]], [[매그너 스윙]], [[솔 마론]]의 C팀의 격돌이다. 1회전에서 단연 돋보였던 네르슈의 기세가 한도 끝도 없이 오르고 있었다. 무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했다. 뒤따르는 매그너와 솔은 이젠 체념한 분위기. 그는 덤으로 오물의 말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스타의 말로. 각오하라는 엄포에 아스타는 자기는 꽤 끈덕질거라고 응수했다. 미모사는 아스타의 역성을 들면서 못난 오래비야 말로 각오해야 할 거라고 대꾸했다. 파탄난 매 관계에 비하면 아스타와 매그너의 선후배 관계는 훈훈한 축이었다. 매그너가 서로 봐주기 없기를 선언하자 아스타가 기꺼이 그러겠노라 답했다.
          * 아스타가 반마법 모드를 풀었을 땐 대부분의 벚꽃 마법이 지워진 뒤였다. 그리고 잭스의 함정마법도 하나도 지 않았다. 그의 두꺼운 마스크로도 더이상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숨길 생각도 없어보였다.
  • 서도영 . . . . 6회 일치
         |2013||JTBC||[[가시꽃]]||박준||
         |2018||SBS||[[강 스캔들]]||홍세현||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
  • 소진은 . . . . 6회 일치
         [[1934년]] [[11월 27일]] [[평안도]] 경찰부 보안과장으로 이동한 뒤부터 도순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 순사부장 시험위원으로 활동했고, 1935년 8월 23일 평안도 농촌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35년]] 10월에는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과 은배를 받았으며, [[1936년]] 10월 16일 조선총독부 경무국 통역관으로 임명되었다. 1936년 10월 21일에는 평안도 보안과장, 도순사부장 시험위원, 도순사징계위원회 예비위원, 농촌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5 3녀의 자녀 중 3이 대한민국 외무공무원이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낸 [[소상영 (1922년)|소상영]]이다.
         [[분류:1892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소씨]]
  • 손석우(작곡가) . . . . 6회 일치
         | 출생지 = {{국기|일제 강점기}} [[전라도]] [[장흥군|장흥]] <br/> (現 {{국기|대한민국}} [[전라도]] [[장흥군|장흥]])
         손석우는 1920년 [[전라도]] [[장흥군|장흥]]에서 태어났다. [[목상고등학교|전라도 목포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목포 호은행에서 근무하다가, 1941년에 작곡가 [[김해송]](金海松)의 소개로 조선연예주식회사에 입사해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다. 이후 1957년에는 영화 《청실홍실》로 [[영화 음악]]감독 데뷔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2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흥군 출신 인물]][[분류:194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음악 작곡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목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손전 . . . . 6회 일치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자]] [[배우]], [[제작자]], [[영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 《[[내가 마지막 본 흥]]》
         [[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 배우]][[분류:1932년 데뷔]][[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10년 태어]][[분류:1999년 죽음]][[분류:밀양 손씨]][[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
  • 송금식 . . . . 6회 일치
         * 1993년 《[[북두의권 (실사한국판)|북두의권]]》 ... 두수조권 명인 레이 역
         * 2000년 SBS 《[[줄리엣의 자]]》 ... 마석철 사장 역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안산시 출신]][[분류:198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
  • 송병구 . . . . 6회 일치
         | 특기 = 모든 유닛 컨트롤이 뛰어
         둘의 첫 만은 2007년 5월 14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이지만, 실질적인 라이벌 관계는 두 번째로 만난 [[곰TV MSL 시즌2]] 결승전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까지 동일한 종족 간의 결승은 왠만해선 흥행이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두 선수는 5경기까지 가는 모든 경기를 명승부로 만들며 우승자 [[김택용]]도, 준우승자 송병구도 박수를 받는다. 이후 두 선수 모두 전성기를 이루면서 역대 [[스타크래프트]] 리그 판도에 전혀 없던 [[프로토스]]의 전성기를 만들고, [[김택용]]과 송병구의 '택뱅시대'를 만들게 된다.
         * 2008년 8월 12일 경 STX컵 마스터즈 2008 준플레이오프 SKT vs 삼성전자 1세트 김택용 승
         상대전적은 4:4로 홍진호와 서로 동률이다. 홍진호가 프로게이머 은퇴를 선언함으로 전적은 동률로 게 되었다.
         * 2010년 8월 2일 경 STX컵 마스터즈 2010 8-9위전 3세트 손찬웅 승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송재호(배우) . . . . 6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화천군 출신 인물]][[분류:1937년 출생]][[분류:1959년 데뷔]]
         ||<-5><tablebordercolor=#c0c000><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4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 송영춘은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현재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재직중이다.
          * 국경의
          *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 - 송경만[* 실제 이름은 "기형철"이며, 파간첩의 총책으로 나온다. [[드보크]] 정리작업을 하다 발각되어 안기부에 끌려가 취조당했고, 극중에서 이중간첩이던 한석규가 무자비하게 고문하기도 한다. 극중 결국 벽에 박힌 대못을 들이받고 혼수상태에 빠진 후, 숨을 거운다.]
  • 신지애 . . . . 6회 일치
         ||<#050099> {{{#FFFFFF 출생}}} ||<#ffffff> [[1988년]] [[4월 28일]], [[전라도]] [[영광군]] ||
         2011년에는 계속 첫 승을 올리는데 실패하며 준우승 또는 3위에 그치고 있다. 그 사이에 경쟁자인 [[청야니]]는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4승을 쓸어담으며 독주하고 있어서 많은 골프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는 상황. 사실 맹장 수술, 허리 부상, 손 부상이 잇따라 겹치고, 아래 서술할 자친구 문제까지 겹치면서 슬럼프가 왔다.[* 엄밀히 따지면 너무 혹사당했다. 미국만 플레이하기에도 체력적으로 벅찬 LPGA 생활인데 거기에 한국 및 일본 무대까지 초청 받아 활약했으니 젊은 나이라고 해도 몸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한쪽 방향으로 운동하는 골프라는 종목의 특성상 스윙을 지탱하기 쉽지 않았을 터.]
         본인은 "너무 기뻐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호주를 꽤나 좋아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하게 되어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겼다.
          * 개인사는 평탄하지 못한 편이다. [[전라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한빛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원자력발전소 진입로에 신지애의 출생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던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나, 청소년기에 어머니가 뺑소니 차에 치여 숨지는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때 받은 어머니의 보험금을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가족이 아닌 그녀만을 위해 썼고, 그녀는 아버지의 뒷바라지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신지애의 아버지는 후에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15층짜리 아파트를 1층부터 1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훈련을 시켰는데, 이 때 훈련을 너무 혹독하게 시켜서 키가 크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프다" 라고 밝힐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동생들을 끔찍히 아끼고 잘 챙긴다. 신지애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지애도 자신이 번 돈을 가족들을 위해 쓰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라고 밝힐 정도. 신지애의 동생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 때 신지애는 서울대 앞에 카페를 차려서 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 자친구가 있었으나 2010년 중 헤어진 모양이다. 전 자친구는 역도 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그녀는 처음으로 만사 작파하고 한국에 돌아가려 했다고 한다.
  •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 . . . 6회 일치
         2015 K리그 클래식 12라운드 성 vs 광주의 경기[* 경기번호는 클래식 2015-99]에서 어이없는 심판의 판정 번복이 일어나면서 나오게 되었다. 그때 관중석에서 일갈이 나오는 것이 방송을 타버렸으니, 바로 이 '''"심판 토토하지 말라고"'''. 이 발언은 당시 공중파 방송인 KBS1에서 중계한 경기중에 여과없이 나온 발언이었기에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고, 해당 경기와 관련이 있던 성과 광주의 팬들 뿐만 아니라 심판의 오심에 관련하여 데인 기억이 많은 K리그 전체 팬들에게 호응을 얻어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처음 판정은 공이 터치라인 아웃 상황이었을 때, 주심은 성의 스로인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부심의 판정을 보고 광주의 스로인으로 번복한 것. 문제는 번복해서 잘못을 바로잡았으면 모를까 번복한게 오심이 되었고, 한 성팬[* 음성이 켜져있는 중계카메라는 중앙쪽 중계본부석과 1층 및 2층 서포터석에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 쪽으로 예상된다.]의 비난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발언 이후 9월에 지난 2013시즌에 경FC에서 심판을 매수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발언이 '''근거없는 비난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2013 K리그 심판매수]] 항목으로.--축구장에 나타난 [[예언자]]--
  • 애니 일본어 . . . . 6회 일치
         자가 여자 캐릭터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반대로 여자가 자 캐릭터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하는 경우도 제법 흔하다.
          * 배틀물 캐의 경우, 역시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거친 말투를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배틀물에서 대화 상대방은 대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이거나, 배틀물 캐 자신이 폭력에 가까운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을 강조하므로 이러한 말투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말투를 함부로 사용하면 매우 무례하게 보인다. 고 [[은혼]]의 작가 소라치 선생이 단행본에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당하는 작품의 캐릭터가 여캐인가 캐인가도 중요하고, 작품의 배경이나 이런것도 가능한 현대와 현실에 가까운것을 추천한다.
         일본어 같은 경우 자와 여자가 쓰는단어나 어투가 꽤 나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 양시칠리아 왕국 . . . . 6회 일치
         19세기에 [[이탈리아 반도]] 부에 위치한 [[부르봉 왕조]]의 [[왕국]].
         양시칠리아 왕국은 부 이탈리아 지방(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섬 지방(시칠리아 왕국)을 겸하였다는 칭호이다. 빈 회의 이후에 성립된 부르봉 왕조의 양 시칠리아 왕국은 공식적으로 1816년에서 1860년 까지 유지된 것으로 본다.
         붉은 셔츠 부대는 시칠리아에서 이탈리아에 상륙, 나폴리 왕국군과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여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북쪽에서 사르데냐 왕국군이 하해오자 결국 나폴리 왕국 마저 항복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은 붕괴하고 만다. 두 지역은 신생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현재의 이탈리아 부와 시칠리아 섬을 차지하였다.
         구시대적 체계를 유지한 양시칠리아 왕국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낙후되었는데, 사실 북부의 사르데냐-피에몬타 왕국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부에 대한 병합을 망설일 정도였다(…).
  • 영창대군 . . . . 6회 일치
         외할아버지는 연흥 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金悌男)이다.
         조령(鳥嶺) 길목에서 도적이 행상인을 죽이고 은자(銀子) 수백 냥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수괴인 서얼(庶孽) 박응서(朴應犀) 등이 체포되었다. 박응서는 자신들이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자금을 모아 무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하려 했다고 자백하였으며, 이 사건에 연흥부원군 김제과 영창대군 이의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다.
         결국 광해군 5년(1613 계축 / 명 만력(萬曆) 41년) 5월 4일(신유)에 영창대군의 외조부인 연흥부원군 김제이 파직, 6월 1일(무자)에 사사되었다. 영창대군 역시 5월 21일(무인)에 봉작이 박탈되었고, 7월 27일에 영창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율에는 경중이 있습니다. 지금 이이첨의 심복들을 모두 죄주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정항(鄭沆)과 이정표(李廷彪)를 죄주도록 청한 것은, 진실로 왕자 두 분의 죽음이야말로 천하에 다시 없이 원통하고 동시에 당시 핍살(逼殺)했던 흔적이 사람의 기억에 생생하게 아 있어 당사자가 이미 죽었다고 해서 그냥 덮어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들건대 ‘살아 있는 자는 가볍게 처리하고 죽은 자에게는 가혹하게 대한다.’는 하교가 있으셨습니다. 신들이 일을 논하면서 잘못한 죄를 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신들의 직을 파척하소서.”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복위한 지 이틀만인 3월 15일에 임해군(臨海君), 연흥 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金悌男), 능창군(綾昌君) 이전(李佺)과 함께 복권되었고, 3월 17일에는 예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if 시나리오로, 만일 영창대군이 인조반정이 성공할 때까지 살아 았다고 해도 역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창대군은 '선조의 적장자'이며, '왕실의 큰어른인 인목대비의 아들'이다. 이러한 영창대군의 지위는 고작 '선조의 서자 정원군의 손자 능양군'에 불과한 인조보다 훨씬 정통성이 강하다.
  • 예종 . . . . 6회 일치
         세조의 차. 부친의 찬탈과 형 의경세자의 죽음으로 다소 뜻하지 않게 왕위에 오른 인물.
         그의 치세에는 세조의 쿠데타에 동참해 권신이 된 구공신 세력들과,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세조가 말년에 총애한 신공신파의 대립이 첨예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젊은 나이에 크게 출세했고 혈기도 왕성했던 [[이]]가 제일 위협적이었는데, 이에 예종은 처음엔 이의 벼슬을 깎아 견제했고 이가 이에 불만을 품어 구공신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정황이 포착되자 이를 역모 혐의로 처단하고 이어서 유자광을 제외한 신공신 세력을 일소하기에 이른다.
         세조가 싸지른 똥(권신들이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이를 견제할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개인의 카리스마로만 억누른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그로 인해 심신을 혹사한 끝에 요절한 왕. 그가 죽은 뒤 왕위는 정희왕후(세조의 비)와 소혜왕후(훗날의 인수대비)의 뜻에 따라 형의 차인 잘산군(또는 자을산군)이 이으니, 그가 바로 성종이다.
  • 오승근 (가수) . . . . 6회 일치
         | 거주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전라도]] [[고흥군]]
         | 가족 = 장녀 오지연, 장 오영환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순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순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 슬하에 장녀 오지연, 장 오영환이 있다.
         [[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오철환 . . . . 6회 일치
         * 영대학교 경영학 (77학번 학사)
         * [[1988년]] 영양 씨와 결혼
         * 장 ([[1989년]]생)
         * 차 ([[1992년]]생)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우찬양 . . . . 6회 일치
         ||<#ed0000> '''{{{#ffff00 출신학교}}}''' || 포철동초 - [[포항제철중학교|포철중]] - [[포항제철고등학교|포철고]] - [[영대학교|영대]] ||
         ||<#00703c> '''{{{#eee156 2015.11.20}}}''' ||<#00703c> '''{{{#eee156 베트 U-21 친선대회}}}''' ||<#00703c> '''{{{#eee156 홍안지아라이 0 : 1 대한민국}}}''' ||<#00703c> '''{{{#eee156 -}}}''' ||
         ||<#00703c> '''{{{#eee156 2015.11.27}}}''' ||<#00703c> '''{{{#eee156 베트 U-21 친선대회}}}''' ||<#00703c> '''{{{#eee156 대한민국 3 : 0 싱가포르}}}''' ||<#00703c> '''{{{#eee156 -}}}''' ||
         ||<#00703c> '''{{{#eee156 2015.11.29}}}''' ||<#00703c> '''{{{#eee156 베트 U-21 친선대회}}}''' ||<#00703c> '''{{{#eee156 홍안지아라이 2 : 0 대한민국}}}''' ||<#00703c> '''{{{#eee156 -}}}''' ||
          * 친형이 아이돌그룹 [[대국아]]의 멤버 [[현민]]이다.
  • 원피스/828화 . . . . 6회 일치
          * 빅맘은 무려 39명의 딸과 46명의 아들, 그리고 43명의 편이 있다. 모두 합해서 129명의 가족.
          * 그녀는 이 루트로 항해해 내일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서쪽 해안"에서 만나자고 한다. 자신이 직접 상디를 데려오기로 한다.
          * 일행은 식량을 챙겨서 써니호로 돌아오는데, 페콤즈는 보이지 않고 그가 긴 걸로 추정되는 메시지만 발견한다.
          * 그는 "(전투가)4시간이나 걸렸다"면서 동생(상디)의 결혼식에 가야 한다며 자를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 국왕으로 보이는 자는 "악마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을 빌렸다"고 중얼거리며 병사들과 백성들은 제르마의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 페콤즈가 납치당한 것,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은 것, 그리고 빅맘이 이미 밀집모자 일행의 상륙을 알고 있는 건 모두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 원피스/839화 . . . . 6회 일치
          * "았다 니디. 전부 먹어라."
          * 니디는 그제서야 자기 식사예절을 지적하는걸 깨닫고 "길 거다"고 말한다.
          * "레이디의 얼굴에 상처를 길 셈이냐"
          * 상디는 음식에 경의를 표하지 않는 멍청이도, 여자에게 손대는 자도, 부하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왕족의 오만도 모두 자기 사상에 반한다고 일갈한다.
          * 저지는 상디의 그릇됨에 "박차"가 가해졌다며, "이 자"의 악영향이냐고 묻는다.
          * 타마고 작을 통해 상디를 얌전하게 만들 열쇠로 수갑과 제프의 정보를 넘긴 것이다.
  • 유병수 . . . . 6회 일치
         |청소년 클럽 = [[둔촌중학교]] <br /> [[언고등학교]] <br /> [[홍익대학교]]
         유병수는 대구신암초등학교를 다니며 축구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대구 청구중학교에 입학한 후 서울 수서중학교로 전학해 매경기 1골이상을 득점하여 활약을 했고, 서울 [[언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백록기 전국고교 축구대회 득점상과 추계 한국고교축구연맹전 득점상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홍익대로 입학을 결정한 그는 전국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도움상을 받으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 FC|경]]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절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절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상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6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하키]]}}
         {{금메달|[[1986년 아시안 게임|1986 서울]]|[[하키|자 하키]]}}
         '''유승진'''(柳承辰, Yu Seung-Jin, [[1969년]][[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자 [[필드하키]] 선수이자 현 지도자이며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상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하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하키 감독]][[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윤선우 . . . . 6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도]] [[나주시]] 금
         [[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나주시 출신]][[분류:2003년 데뷔]]
  • 윤휘 . . . . 6회 일치
         '''윤휘'''(尹暉, [[1571년]] - [[1644년]])는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조선 인조]]를 한산성까지 호종, [[조선 인조]]를 도와 적진인 [[청나라]] 진영을 왕래, 교섭하며 설득과 화의를 추진하였고,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과거 급제 후 삼사의 요직을 거쳐 1613년(광해군 5) 계축화옥에 관련, 삭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18년 동지겸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이 [[명나라]]에 구원군을 보낼 때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론을 지지했다가 [[인조반정]] 직후 파면되었다. [[1626년]] 복관되고, 성주목사, 청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어가를 [[한산성]]까지 호종하였고, 주화론에 참여하여 [[조선]]측 대표로 [[청나라]]군과의 사이를 오가며 타협을 주관,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뒤 도승지가 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다.
         [[1613년]](광해군 5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직 중 지역 유림들의 [[조목]]의 [[월천서원]] 배향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하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형 [[윤흔]]의 첩 서씨의 동생 서양갑과 관련, 연좌되어 벼슬에서 쫓겨났고, [[서양갑]]에게 군관 직위와 월급을 준 일이 문제되어 양사의 공격을 당하다가 뒤에 다시 기용되었고, [[인목대비]] 폐모론 때는 불참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조선 인조|인조]]를 [[한산성]]에 호종하고, 주전론과 주화론이 나뉠 때는 주화론에 동조하였다.
         이후 [[조선]] 조정의 특명전권대사로 [[청나라]]군과 [[한산성]]을 오가면서 화의 교섭을 노력, [[청나라]]군사들을 설득시키고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후 [[도승지]]에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고, 사신으로 [[청나라]]와 [[명나라]]를 여러 번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의 [[조선]]의 정벌 여론을 무마시키기도 했다. [[1638년]]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를 거쳐 [[조선 인조|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책봉[[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가서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귀국 도중 [[담배]](南草)를 [[가마]]속에 숨겨갖고 왔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사신직에서 파직당했다.
         [[분류:1571년 태어]][[분류:154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외교관]][[분류:서예가]][[분류:조선 광해군]][[분류:조선 인조]][[분류:병자호란 관련자]][[분류:정묘호란 관련자]][[분류:해평 윤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
  • 은혼/616화 . . . . 6회 일치
          타에는 자신이 척후를 맡고 동료들을 먼저 피신시키려 하는데 료우는 타에와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자 주민이 그녀의 팔을 이끌며 데려가려고 실갱이가 벌어지는데, 그때 쿵소리와 함께 료우의 팔을 잡았던 손만 덩그라니 는다. 무자비한 다키니의 공격. 그들이 벌써 옥상까지 추격해온 것이다.
          긴토키는 자기가 은 쪽을 맡을 테니 사이고더러 어느 쪽을 택할지 고르라고 말한다. 사이고가 정말 그래도 좋겠냐고 하자, 긴토키는 댁이나 자기나 양이전쟁에서 "백훈의 사이고", "백야차"라고 부르던 처지가 이 마을에 물들어 하얗지 않게 되지 않았냐고 말한다.
          >어느 쪽도 아니고 다같이 살아는 기적을 고르겠어.
          * 사이고의 의지와 달리 스마이루 일행은 생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타에가 척후를 맡아 뒤를 방비하며 피신 중. 그러나 적은 생각지도 못하게 정면에서 덮쳤다. 앞서 가던 자 주민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면서 진로가 막힌다. 설상가상 뒤에서 추격하던 다키니들도 목전까지 도달.
          * 타에는 위기 중에도 침착하게 탈출루트를 확보한다. 창문을 깨고 쓰레기가 쌓인 더미 위로 동료들이 먼저 탈출하게 한다. 자신은 끝가지 자 하나코까지 안전히 피신시키고 자신도 따라가려 할 때, 다키니의 무자비한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붙든다.
  • 은혼/620화 . . . . 6회 일치
          >요시와라에서는 너무 빠른 자도 너무 느린 자도 미움 받는다고.
          * 츠쿠요는 긴토키가 빈정거린 말을 맞아치며 "네 말대로 지구 여자의 평판을 낮추러 왔다"고 쏘아붙인다. 옆에 있던 [[야규 큐베]]는 자신이나 츠쿠요처럼 "여자"를 버리고 사는 여자들이 지구 여자들의 위신을 짊어지게 됐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긴토키를 짓밟던 [[가구라]]는 자기가 있으면 그정도 하향은 커버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긴토키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무라 타에]]는 자들도 도망가는 사지에 모이는건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여자를 버렸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
          츠쿠요는 백화 부대의 대장이란 책무를 져버릴 생각도 못하고 있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이미 할 만큼 했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도 좋다고 설득한다. [[세이타]] 또한 갑옷을 걸치고 백화 부대원들과 함께 나타나 자신들이 요시와라를 꼭 지킬 테니 츠쿠요는 바람대로 하라고 거든다. 둘의 설득으로 마음이 움직인 츠쿠요는 자신을 따르는 백화 부대원들을 이끌로 가부키쵸로 향한다. 히노와는 세이타에게 "이렇게까지 거창한 핑계를 대주지 않으면 반한 자를 만나러 가지도 못한다"고 농담한다.
         >여자가 자를 만나러 갈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잖아.
          하지만 큐베는 "누군가 옆에 있고 싶다, 그런 이유로 우린 여기에 모인 것"이라고 문제될게 없다고 한다. 여기에서 싸우는 자와 여자 모두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있으며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세계를 구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들은 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걸로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대한 적과 맞서는 여자들과 그리고 츠쿠요를 보고 큐베는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것도 나쁘지 않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이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도.
  • 은혼/640화 . . . . 6회 일치
          * [[엔죠]] 황자는 모선과 아군을 희생시켜가며 히노카구츠치의 충전을 속행, 이제 완충까지 은 시간은 불과 15분에 불과하다.
          * 해방군 모선이 붕괴하고 있다. 히노카구츠치 발사와 컨트롤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면 전부 폐기 당했다. 외벽부터 우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다케치 헨페이타]]와 그의 부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카이]]는 방금 전의 조치로 완충까지 고작 15분이 았다 계산한다. 그게 이 세계에 은 수명. 헨페이타는 한카이에게 방법을 강구해달라 요청하지만 그로써도 역부족. 유일한 가능성은 외부와 연계해 에너지 회로를 파괴하는 것. 그러나 이것도 시간끌기에 지나지 않아 15분 정도 뒤에는 끝이다.
          * 신스케는 이때 무전을 보낸다. 이미 자신들은 낙오됐고 본대와 합류도 바랄 수 없으니 이대로 히노카구츠치 제어 중추로 돌입하겠다는 전달이다. 그걸 위해서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헨페이타는 대답 대신에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전한다. [[사루가쿠]]와 [[바토우]]가 당했고 [[가츠라 고타로]], [[사카모토 다츠마]] 부대와도 통신이 두절됐다. 아군 함대는 적 함대의 총공세를 막아내느라 여력이 없으며 원군도 더는 바랄 수 없다. 신스케가 돌입을 강행한다면 현재 가진 병력만으로 해야 한다. 헨페이타는 그럴 병력이 아 있느냐고, 현재 병력이 얼마냐고 묻는다. 신스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전원 아있다.
          * 이또한 오래된 이야기다. 그가 아직 막부에 몸 담았던 시절이다. 동료들과 막부의 적을 급습했으나 단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해 모두 죽었다. 마지막으로 은 헨페이타. 적의 칼끝이 미간을 겨눈다. 헨페이타는 검에 손도 대지 않은 채였고, 적은 그점을 궁금해한다. 헨페이타가 원래 자신이 잡아야 했던 자, 신스케를 향해 "하늘과 땅이 뒤집혀도 내가 신스케를 쓰러뜨릴 수 없는걸 알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신스케는 이미 죽은 녀석들 보단 말이 통한다면서, 질 걸 알아서 그렇다면 여기엔 왜 왔냐고 물었다. 헨페이타는 그 이상도 알았다. 동료들은 사람을 심판할 권리를 잃었고 오히려 직권의 이름으로 백성을 괴롭힌 저들은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이용 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도 죽이라고 청했다.
  • 이강덕 . . . . 6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경상북도 영일군[* 현 [[경상북도]] [[포항시]] [[구(포항)|구]]의 장기면 산서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1962년 [[경상북도]] 영일군 지행면(현 [[포항시]] [[구(포항)|구]] 장기면)에서 태어났다. 포항산서초등학교, 포항장기중학교, 대구[[달성고등학교]], [[경찰대학]] 1기,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공안행정학 [[석사]], [[동국대학교]] 법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경찰대학 졸업 이후 [[대한민국 경찰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포항부경찰서장, 구미경찰서장, 서울대문[[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대통령실]] 치안비서관, 부산[[지방경찰청장]], 경기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등을 지냈다.
  • 이경영(1958) . . . . 6회 일치
          * KBS [[자는 외로워]] - [[최수지]] 애인 역 (1994년)
          * MBC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 영식 싱가포르 대사관 부이사관 역 (2005년)
          * SBS 금요드라마 "다이아몬드의 눈물" - [[김혜선(김혜선)|김혜선]] 편 진광호 역 (2005년)
          * MBC [[무신(드라마)|무신]] - [[최우]](정보석)의 처 정안 역 (2012년)
         [[분류:1958년 출생]][[분류:한국 배우]][[분류:한국 성 성우]][[분류:1982년 데뷔]][[분류:1983년 데뷔]][[분류:충주시 출신 인물]]
  • 이보림 . . . . 6회 일치
         [[충청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세종시]]) 조치원읍 출신으로,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5867|2012년 연기군이 세종시로 출범하기 직전에 열린 ‘복사꽃 아가씨 선발 충대회’에서 진으로 선발된 적이 있다]]. 2014년에는 제23회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여담으로 [[프로듀스 101]] 시즌1에 출전한 [[성혜민]]도 여기에 출전하여 투어 2000상을 받았다. 즉, 대회 동기인 셈.]에 참가, 본선에 진출해 MTP MALL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미스코리아 충북]]'에 참가하여 이즈치과상을 수상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5~6회|6회]] 참가자들과의 첫 만에서는 대부분 현역 아이돌들인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배우/[[모델]] 출신인지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잠깐 사이에 [[의진(소나무)|의진]]과 친해졌는지 의진이 [[멜로디데이]]와 [[DIA(아이돌)|다이아]] 연합에 들어갈 때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빨강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7~28회|파이널]]의 [[킬링파트]]를 위한 안무 오디션 시작 전에는 항상 지적만 해왔던 김화영이 이보림에게 '여기까지 살아았는데 솔직한 말로 너무 잘해 줬다'고 이야기했다. 안무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김화영이 '이제 [[의진(소나무)|의진]]이 없어도 돼?'라고 물었고 이보림은 '서서히 독립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의진도 '좋아, 얼른 가!'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이 예고 없이 보여준 가족들의 영상에서는 따로 이보림의 가족 영상은 방송에 안 나왔지만, 합숙소를 찾아와 준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왔다. 마지막을 앞두고 참가자들에게 기는 말에서는 '같이 하는 협동심을 너무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 경연에서는 'You&I'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긴 했는데 맡은 파트가 적어서 무대에서 모습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녀 합동곡인 'PRESENT'에서는 엔딩 파트를 맡았다. 최종 유닛 발표식에서는 17위를 기록하면서 데뷔조 합류에는 실패했지만, [[연습생]] 경력도 없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닌 비 가수 출신 참가자가 그 많은 전현직 걸그룹 멤버 및 연습생 및 솔로 가수들과의 경쟁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온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 이시영 (1882년) . . . . 6회 일치
         '''이시영'''(李始榮, [[1882년]] [[1월 10일]] ~ [[1919년]] [[7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본관은 [[경주시|경주]](慶州). 본명은 이중현(李仲賢), 호는 우재(又齋). 친족 관계에 있는 동명이인인 [[이시영 (1868년)|이시영]](李始榮, 성재 이시영)과의 구별을 위해 '우재 이시영'으로도 부른다. [[성리학]]자 이관준의 차으로 [[대한민국]]의 제1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법무부 장관]] [[이인]](李仁)의 숙부이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의 나라를 삼키려는 일본을 무찌르겠다는 결연한 각오 아래 [[중국]]으로 망명, 독립 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는 [[베이징]], [[만주]]일대 그리고 국내의 각지를 그야말로 날개달린 호랑이처럼 다녔다. 괄괄한 성격의 그는 실력투쟁만이 독립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윤상태]](尹相泰), [[서상호]](徐相鎬), [[정운일]](鄭雲馹) 등과 [[애국단]]이란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애국단을 조직한 그들은 우선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모라는 당시 대구부호의 지원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서부자는 이름난 구두쇠인데다 민족의식이 없어 말로 해서는 응하지 않을 것 같았고 더욱 서는 우재의 사돈(族兄의 妻家)이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1914년]] 다시 출국하여 [[북경]]으로 가 그곳에서 항일운동에 이바지했다. 그가 그때 쓴 일기(손자 이용(李鏞), 원화여고 교장 역임)를 보면 [[백채]](白南採)와 함께 활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
         [[백채]] 외에도 [[김좌진]](金佐鎭), [[김동삼]](金東三) 등과도 많은 일을 했다. [[1918년]] 귀국했고 [[1919년]] [[2월]], [[지청천]](池靑天), [[한용운]](韓龍雲) 등과 함께 [[영]][[유림]]대표 2백여 명을 [[경성부|경성]]으로 보냈다. 그때 유림측에서 그에게 민족대표로 서명해 달라고 하자 '내 목적은 오직 왜놈과 싸우는 것'이라며 과격한 활동 노선을 밝혔다. 그 후 임시정부에서 재무부장서리를 맡아 달라는 것도 거절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분류:1882년 태어]][[분류:1919년 죽음]][[분류:옥사한 사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영아(배우) . . . . 6회 일치
         || '''가족''' ||<(> 1 1녀 중 첫째 ||
         또한 베트이라는 연관 검색어도 뜨는 것이 특이하다. 2007년 [[SBS]] 주말드라마 [[황금신부]]에서 [[베트]] 신부 역으로 주연을 맡아 유명해지면서 생긴 일. 베트 신부 역을 실감나게 해서 당시 실제 베트 사람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도 이영아를 치면 자동적으로 베트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 이재용(배우) . . . . 6회 일치
         [[배우]] [[유호정]]의 편인 배우 [[이재룡]]이나[* 그런데 이쪽은 [[본관]], [[한자]], [[항렬]]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 이재룡이 한살 동생.]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과 헷갈리지 말자.
          * 또 재미난 사실 하나는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나 태양의 후예, 영화 강철비 등 여러 작품에서 악질 북한 정치가로 여러번 출연했으며 작중 모두 한에서 사살되거나 체포되는 등의 최후를 정말 많이 맞는다.
         || 2016~17년 || KBS || [[저 하늘에 태양이]] || 태준 || ||
         ||<|5> 2015년 ||<|2> KBS || [[드라마 스페셜]] - 알젠타를 찾아서 || 기석 || ||
         || [[적도의 자]] || [[최광춘]] || ||
         [[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춘천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배우]][[분류:1963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이재학 . . . . 6회 일치
         ||||||||||||<:> 2012년 [[KBO 퓨처스리그]] 부리그 다승왕 ||
         [[스프링캠프]] 때 [[김경문]] 감독이 눈도장을 찍어 기대되는 신인으로 주목받았지만, 경험 부족과 긴장으로 인해 제구가 흔들리며 사사구를 많이 발했다. 그래도 2010년 6월 15일 잠실 [[LG 트윈스|LG]]전에서 4번째 투수로 나와 2⅓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데뷔전 이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2012년 퓨처스리그 4월 경기에 3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선배이기도 한 [[김상엽]] 투수코치에게[[http://osen.mt.co.kr/article/G1109390480|커터를 전수받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2년 2군에서 15승 2패로 부리그 다승왕을 수상했고, 방어율 1.55, 탈삼진 100개로 북부 통틀어서 퓨처스 리그를 씹어먹었다. 팀이 막 창단한 시기라서 투수 뎁스가 얇고 보직이 확실하지 않던 상황이기에 1군에서도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선발진에 충분히 들어갈 거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아쉬움만 았던 [[KBO 준플레이오프/2014년| 첫 포스트시즌 무대]]'''
         허나 [[최일언]] 투수 코치는 다른 지적을 했는데, 투피치보단 몸의 중심 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트볼]]의 구위도 저하되고 [[체인지업]]의 떨어지는 각도도 무뎌졌다는 게 부진의 원인이라 했다.[[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77&aid=0000083591&redirect=false|#]] 의미심장한 말도 겼는데 ''''이재학은 직구 없으면 안되는 선수''''. 즉, 어정쩡하게 새로운 구종을 쓴답시고 밸런스 무너질 바에는 확실한 투피치가 더 낫다는 것. 이 인터뷰가 나온 2017 시즌 후반기부터 이재학이 연일 호투를 하고 그동안의 부진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하던 [[엔갤]]에서도 이 인터뷰 하나로 투피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일언|일언갑]]이 그렇다 하면 그런거다~~
  • 이황근 . . . . 6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도]] [[신안군]]
         | 자녀 = 7매 중 장
         [[전라도]] [[신안군]] 에서 태어났으며, 7매중 장으로 태어났다. [[1980년]]대에 《'''돌아온 용쟁호투'''》, 1987년에 《'''우뢰매'''》 등으로 배우로 활약을 펼쳤다.
         [[분류:1980년 데뷔]][[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신안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이훈(배우) . . . . 6회 일치
         || '''가족''' ||<(> 슬하 2 ||
         원래도 마초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트러블이 잦았는데 대표적인 일이 바로 서경석과의 악연. [[서경석]]이 군 복무를 할 당시 그의 맞고참이었다. 실제로 서경석이 자신의 군 생활을 엮어 집필한 책인 '서경석의 병영일기'의 내용을 보면 이훈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보다 연예계 후배이고 나이도 어린데 너무나 막 대하는 것에 상당한 앙금이 았던 듯. 책에서는 아니지만 서경석이 전입한 날에 이훈이 재떨이를 던진 사건은 방송계에서 꽤 유명한 일화며 [[http://k.daum.net/qna/view.html?qid=3GaDe|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러브라이버]]에게 표적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니시키노 마키]]로 유명해진 가수 겸 성우 [[Pile]]이 찍은 저축은행 광고 자 모델이 그이기 때문. 그리고 동시에... Pile은 완전히 묻혔고, 이제는 [[이훈]]만이 단독으로 모델을 하고 있다.
         [[1대 100]] 267회 전반전에서 1인으로 참여했으며 5단계까지 생존했다.(7단계에서 은 100인 전멸) 그 뒤 405회에서 1인으로 다시 참가했을 때 상금을 받으면 빚을 갚는데 쓰겠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마지막 9단계에서 최후의 1인과 접전을 펼친 [[1대 100/1대 1 문제 #S-6.1|결과는 여기 참고.]]
          * [[내 자의 여자]] - 이동하
         [[분류:한국 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73년 출생]][[분류:1994년 데뷔]][[분류:광주시 출신 인물]]
  • 일장청 호삼랑 . . . . 6회 일치
         양산박과의 대결에서 축가장과 호씨 가문이 몰살당한 뒤, 키가 작은데다 [[추]]에 [[여색]]을 밝히는 왜각호 왕영과 결혼하게 된다(…). 하필 왕영과 결혼하게 된 이유는 [[송강]]이 이전에 왕영이 노리던 여자가 죽었을 때, 나중에 좋은 여자를 소개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복선을 여기서 회수했기 때문.
          * 미, 미녀를 뜻한다는 설. 수호전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송상36인찬]](宋江三十六人賛)」에서 [[연청]]을 묘사할 때, '일장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연청 역시 수호전 굴지의 미이므로 미을 뜻하는 것일 거라는 주장이다.
         [[송]] 시대 '일장청'이라는 별명을 가진 도적 출신의 여장군이 있어, 그녀가 호삼랑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장청의 편은 왕왜호(王矮虎)라는 이름으로서, 왕영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임백천 . . . . 6회 일치
         || '''출생''' ||<(> [[1958년]] [[5월 30일]] ([age(1958-05-30)]세), [[전라도|전]] [[순천시|순천]] ||
         [[1958년]] [[5월 30일]], [[전라도]] [[순천시|순천]]에서 3형제 중 [[차]]으로 태어났다. [[순천시|순천]] 소재의 [[초등학교]]를 입학했으나, [[서울특별시|서울]]로 상경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해 [[1978년]] 고영선과 함께 참가한 [[MBC 대학가요제|대학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고 곧바로 [[가수]]로 데뷔했으나, 가수 활동보다 [[MC]]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 말에 [[TBC 젊은이의 가요제|해변가요제]] 출신의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더블 DJ/MC로 방송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게 MC로 진출한 계기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가수]][[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1958년 출생]][[분류:1978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장가용 . . . . 6회 일치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 전쟁]]
         [[외과|외과 의사]] [[장기려]](張起呂) [[의학박사]]의 둘째아들로 [[일제 강점기]] [[경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안북도]] [[룡천군|용천]]에서 성장하였다. [[한국 전쟁]] 때 아버지 [[장기려]]를 따라 하하였고 그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군의무관]] [[소령]]으로 예편하였고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장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그는 부인 윤순자 여사와의 사이에 슬하 1 1녀를 두었는데, 장 장여구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육군]] [[군의관]] [[대위]]도 조부 [[장기려]]와 부친 장가용의 뒤를 이어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분류:1935년 태어]][[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안동 장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제주대학교 교수]][[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장기오 (공무원) . . . . 6회 일치
          | 자녀 = 슬하 2 1녀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 전쟁]]
         * [[충대학교|충대학교 행정대학원 지방행정과정 수료]]
         [[분류:193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분류:인동 장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나회]][[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
  • 장성원 (배우) . . . . 6회 일치
         | 《[[왕이 된 자]]》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편 그리고 태권소녀]]》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경상북도 출신]][[분류:1995년 데뷔]]
  • 장소팔 . . . . 6회 일치
         * 임종 직전 아들에게 "내가 왜 죽는지 아느냐? 심심해서 죽는다"라는 말을 긴 것으로 유명하다.
         [[분류:1923년 태어]][[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4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장순왕후 . . . . 6회 일치
         1460년 세자빈(世子嬪)으로 간택되어 당시 세자였던 [[조선 예종|예종]]과 가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었으니 이때 나이가 16살이었다. 정숙한 성품에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조선 세조|세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책봉 이듬해인 [[1461년]] [[음력 11월 30일]], 왕실의 적통인 원손(예종의 장인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같은 해 [[음력 12월 5일]] 녹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산후병으로 향년 17세로 요절했다.
         야사에서는 장순왕후와 그의 동생 [[공혜왕후]], 형부 [[조선 덕종|덕종]](의경세자), 편 [[조선 예종|예종]]과 아들 [[인성대군]] 등 [[조선 세조|세조]]의 자손들이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이 [[조선 단종|단종]]을 억울하게 죽인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 언니 : 고령부원군 [[신숙주]](高靈府院君 申叔舟, 1417~1475)의 장 신주(申澍)와 혼인
         ***** 동생 : 낭성군 양호공 [[한보 (1447년|한보]](琅城君 襄胡公 韓堡, 1447~1522)
         ** '''편''' : 제8대 [[조선 예종|예종]] (睿宗大王, 1450~1469)
         [[분류:1445년 태어]][[분류:1461년 죽음]][[분류:조선의 추존왕후]][[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한명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조선 예종]]
  • 장준휘 . . . . 6회 일치
         * 《백천》 (2017년) - 메리야스
         * 화요비 - 자는 모른다
         [[분류:1975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형필 . . . . 6회 일치
         | 자녀 = 전성우(장), 전영우(차)
         [[1906년]] [[서울특별시|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2년]] [[서울특별시|서울]] [[관훈동]]의 한서림(고서, 고서화를 취급하던 서점)을 인수하고, 우리민족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문화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과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 1906년 7월 2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가 112번지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와 밀양 박씨 사이의 차으로 출생, 본관은 정선
         * 지식채널e - 바보같은 자, EBS
         [[분류:1906년 태어]][[분류:196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문화유산]][[분류:박물관학]][[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간송미술관]]
  • 절연금 . . . . 6회 일치
         테기레(手切れ,てぎれ)란, 지금까지의 관계, 교섭을 끊는다는 뜻이다. 특히 녀 간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한다. ‘절연’으로 번역한다.
         테기레킨(手切れ金,てぎれきん)은 지금까지의 관계, 교섭, 특히 녀관계를 끊어달라고 요청하면서 돈을 주는 관습이다.
         법률적으로 녀관계에서 「혼인」,「내연」,「혼약」 이외의 애정 관계에서는 위자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절연금은 이외의 녀관계(주로 불륜)에서 당사자 간의 동의 하에 인연을 끊기로 서약하고 주고 받는 돈이다. 절연금 양도 자체는 자유계약에 따라서 법률적으로 보호된다.
         이 때, 합의가 서면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사안으로 절연금 청구를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합의 내용을 각서나 서약서 등의 문서로 겨놓는 것이 추천된다.
          * 드라마 같은 데서 [[시어머니]]가 아들의 앞길을 막는 도둑 고양이 같은 년(…)에게 먹고 떨어지라면서 던지는 돈봉투나, 불륜이 불륜녀에게 연을 끊자면서 주는 돈봉투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 정광운 . . . . 6회 일치
         * 영중학교
         * [[성고등학교 (서울)|성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영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
  • 정몽헌 . . . . 6회 일치
         |자녀 = 슬하 1 2녀
         |친척 = 8 3녀 중 5
         [[2003년]] [[8월 4일]], 서울시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유서를 기고 투신자살했으나 타살 의혹이 있다.<ref>{{뉴스 인용
         **** 장 : 정영선 (1985 ~ )
         [[분류:1948년 태어]][[분류:2003년 죽음]][[분류:하동 정씨]][[분류:현대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살한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투신자살한 사람]]
  • 정충원 . . . . 6회 일치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정재학 (1856년)|정재학]]의 셋째 아들이며 [[경상북도]] [[대구부]](현재의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1918년]] [[일본]] [[니혼 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경상북도 경무과 경시(1922년), 경상북도 경무과 경부(1923년 ~ 1928년), 경상북도 고등경찰과 경부(1928년), 경상북도 위생과 경부(1929년), 경상북도 포항경찰서 경부(1930년 ~ 1936년), 경상도 순사교습소 경시(1937년)를 역임했으며 [[1937년]] [[8월 6일]]부터 [[1941년]] [[3월 31일]]까지 평안도 보안과 경시로 근무했다.
         평안도 보안과 경시로 재직 중이던 1937년에 발발한 [[중일 전쟁]] 당시 공습에 대비한 방공 사무를 수행하는 한편 군용 자동차를 징발하고 운전수를 징집하여 [[관동군]]의 군사 작전에 협조했다. 또한 시국 범죄 위반 단속 차원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검거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공로 을(功勞 乙)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1년 3월 31일 평안도 성천군수, [[1943년]] [[3월 29일]] 평안도 순천군수로 각각 임명되었고 [[1942년]] [[4월 8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광복 이후인 [[1947년]] [[조흥은행]] 취체역을 역임했으며 [[1956년]] 10월부터 [[1961년]] 4월까지 조흥은행 은행장, [[1958년]] [[금융통화위원회]] 정위원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경찰 부문과 관료 부문,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분류:1896년 태어]][[분류:197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정씨]]
  • 지석진 . . . . 6회 일치
         2000년에 스타일리스트 출신 류수정씨와 결혼하였다. 원래 [[정선희]]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빠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유재석이 소개해줬다고 한다. 첫만 당시 소개팅을 주선한 유재석이 집에 데려다 주는 순간까지 동석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지석진을 첫만에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한 류수정씨가 유재석에게 계속 있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석진 역시 류수정씨가 자신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유재석에게 중개를 부탁한 끝에 연애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모양. 결혼식 사회까지 유재석이 봤으니 결혼의 시작과 끝을 유재석이 다 챙겨준 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유재석은 지석진이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류수정씨 개인과도 꽤 친한 모양. 방송에서 지석진과 대화 중에 "형수 저번에~" "형수 요새~"하는 식의 말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지석진은 후에 "그 때 왜 그랬냐"는 식으로 유재석을 맹폭하는 컨셉을 세우기도 했다.
         [[유재석]]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김용만]], [[박수홍]],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등까지 포함해서 조동아리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주둥아리'라는 발음과 유사성을 노린 것에, '저녁에 만나서 아침까지 떠들어서' 라고. 그렇게 오래 모이는 것치고는 다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모임이다.([[유재석]]은 애초에 술을 마시지 못하고, [[김용만]]도 주량이 얼마 안 된다. [[김용만]] 왈, "나도 이젠 맥주 500 정도는 마실 수 있어요.") 어디까지나 수다를 위한 모임으로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밀크쉐이크 한 잔으로 5시간은 기본이라는 듯. [[김원희]]가 예전 놀러와에서 밝히기를 호기심에 한번 참석했다가 자들 넷이 밤새도록 술도 안 마시고 떠드는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는 모양.
         [[지상렬]], [[지진희]] 등과 함께 ~~[[심은하]]의 [[편|그 분]]~~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과 친한 사이이다. 지상욱 의원에 따르면 '''지4'''라고(...)
          * 2007 KBS 연예대상 쇼.오락 부문 자 우수상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66년 출생]][[분류:정선군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진격의 거인/98화 . . . . 6회 일치
          * 파르코는 자신을 "크루거"라 밝힌 자와 매일 만나고 있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길 일을 말하며 "크루거의 덕"이라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몇 번이나 편지 배달을 부탁한 자신이 감사할 일이라고 사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야구공과 글러브를 받았는데, 자신도 그걸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보고 파르코는 자리를 뜨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군의 진료의로 일하는 "예거"씨였다. 크루거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본다. 노인이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크루거가 허락하고 둘은 통성명을 한다. 크루거는 "크루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댄다. 노인은 크루거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나, 파르코가 자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화 상대를 찾아온 거란 말과는 달리, 파르코의 상세한 내력에 대해서 읊기 시작한다. 파르코의 숙부가 엘디아 복권파 조직의 간부였다 숙청 당한 것, 연좌를 당하고 살아은 가족들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콜트가 마레의 전사가 된 걸로 겨우 그라이스가에도 안정이 왔다는 설명 뒤에 아마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을 만나기 껄끄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의는 이랬다.
          * 축제의 클라이막스인 빌리의 연설 시간. 전사대도 자리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는데 파르코는 "아는 사람"을 만났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다. 돌아온 파르코는 라이너에게 잠깐 어딜 가자고 하는데 지크고 개막까지 시간이 았다며 허락해준다. 파르코는 라이너를 외딴 지하실로 안내한다. 대체 뭐냐고 묻는 라이너에게 파르코가 "가보면 안다"고 대답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르는 라이너. 그리고 지하실 문을 연 라이너 앞에 나타난 것은, 4년 만에 만나는 104기 동기. 파르코가 "크루거"라 알고 있는 자. [[엘런 예거]]였다.
          마레군의 참모들에게 팔라디섬의 공략루트에 대해 섬의 쪽과 북쪽 모두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참모들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며 평가절하하고 마레의 전사들에게 의견을 물은 일 자체를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잠시 뒤 파르코가 처음으로 가비를 이기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축제 준비 현장에 나타나서 무대 건설 상황 등을 체크. 이때 마가트가 나타나 무대는 순조롭냐고 묻자 순조롭고 "나에게 연출가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가트와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며 그가 군의 개혁 방안을 보고하자 만족하며 원수로 승격시킨다. 하지만 마가트가 "이 나라는 당신의 것"이라 말하는데에는 난색을 표한다. 의외로 그는 나라는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 마레인과 엘디아인 모두의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단지 조타수인데 그것도 우연히 그 역할을 계승하게 된 자라며 부담감을 피로한다. 은연중에 "선대 중 누구도 이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는데 타이버가에는 아직도 비밀이 많은 듯.
  • 진창현(음악인) . . . . 6회 일치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아서 계속 육체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이후 [[요코하마]]로 옮겨가 [[인력거]]를 몰면서 학비를 모아 [[메이지 대학]]의 영문과 야간학부에 입학했다. 여기서 영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당시 조선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 때문에 일본에서는 교사로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 혼자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막노동과 바이올린 제작으로 소일하다가 [[1961년]]에 일본인 여성 나미코와 결혼해 2 1녀를 두었고, 장 진창호와 차 진창룡은 각각 현악기 제작자와 현악기용 현 제작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자서전에 의하면 바이올린 제작을 위한 연장들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게를 보고 있던 나미코를 처음 만났다고 하며,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처음에는 결혼 승낙을 받기 어려웠지만 예전에 근무했던 건설 회사 사장이 장인에게 사위의 인품을 칭찬해 주면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미코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식으로 이이(李南伊)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바이올린 도색에 필요한 염료를 구하기 위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오징어]] 먹물이나 [[지렁이]]까지 쓰는 등 온갖 실험을 했다. 심지어 집에서 [[알코올]]로 염료를 추출하고 [[니스]]에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니스가 폭발하면서 [[화상(질병)|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와 [[적군파]]를 비롯한 극좌 세력의 무장 투쟁이 강성하던 시기여서 [[의사]]가 그 쪽 사람이 사제 폭발물을 제조하다가 사고를 친 것으로 여기고는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차성훈 . . . . 6회 일치
         * 《[[Mr. 로빈 꼬시기]]》 (2006년) - 직원 4 역
         * 《[[광식이 동생 광태]]》 (2005년) - 까페 종업원 역
         [[분류:197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창작:좀비도시 . . . . 6회 일치
          * 생존자 지원을 위한 운동 그룹 : 아직 도시에 아 있는 생존자들을 어떻게든 지원하는 그룹이다. 주로 고립형 생존자들과 연결이 많다. 소수의 민간용 드론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립형 생존자들에게 생존 물자를 전달했다.
         생존자들이 도시에 아 있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 고립형 : 이들은 구조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 불가피하게 고립되어 아 있다. 가능하다면 탈출하고 싶어하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이다.
          * 절망형 : 이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 있다. 사태의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이며,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 탐색자 : 이들은 좀비도시에 아 있는, 어떤 이유로 들어갔다는 사람을 구출하거나 탐색하러 도시에 들어왔다. 생존자들의 친지이거나, 혹은 어떤 의뢰를 받은 사람일수도 있다.
          * 약탈자 : 이들은 자신의 몸놀림과 행운에 자만하고 있거나,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고 여긴다. 외부 세계에서는 도둑이었으며, 도시에 아 있는 '쓸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가서 한 몫 챙기는 것이 꿈이다.
  • 초식계남자 . . . . 6회 일치
         통칭 초식계, 혹은 초식.
         연애에 있어서 수동적, 물욕이나 출세욕이 적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자. 그 소극적인 모습을 [[초식동물]]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반댓말은 육식계(肉食系). 일본에서 버블 붕괴 이후 장기불황으로, 소비욕구가 얕고 이성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세대가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원인의 한가지로는 환경 교육이나 젠더 교육의 영향도 있다고 여겨진다.
         2006년 니케이 비지니스 온라인(日経ビジネスONLINE)에서 「초식자(草食男子)」라는 표현이 등장했으며, 2008년에는 여성잡지 등에서 초식계자의 공략법(草食系男子の攻略法)같은 기사를 내놓고, 일반 매스컴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 [[트러블 다크니스]] : [[모모 베리아 데빌룩]]이 [[유우키 리토]]를 초식에 비유하면서, 육식으로 만들겠다고 '하렘계획'을 세운다.
  • 최공웅 . . . . 6회 일치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3부 재판부 판사로 재직하던 1971년 7월 27일 밤에 같은 재판부 구성원인 이범렬 부장판사와 동부서기 이영과 함께 "1심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이 선고된 제주 김녕중학교 교장 이방택의 [[국가보안법]], [[반공법]]위반 피고사건의 항소심 증인 심문을 위해 제주도에 갈 때 피고인의 하경철 변호사로부터 왕복 항공료 3만3천원과 향응 비용 등 9만7천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법조 사상 최초로 현직 판사로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80009920300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1-07-28&officeId=00009&pageNo=3&printNo=1657&publishType=00020 매일경제 1971년 7월 28일자]</ref> 이후 해당 피고인의 재판은 원심이 파기되어 징역1년6월 자격정지1년6월이 선고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72900209207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7-29&officeId=00020&pageNo=7&printNo=15326&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71년 7월 29일자]</ref> 관행으로 이루어진 변호사의 경비 부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1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newspim.com/news/view/20170721000060]</ref>
         * 2005년 ~ 2008년: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 회장, 일본 데쯔까야마대학 외부평가 위원, 북상사중재위원회 위원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8부에서 배석판사로 재직하던 1969년 11월 3일에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법학 박사인 박노수(37세) 피고인과 전 국회의원 [[김규]](40세), 사진업을 하는 임문준(30세)에게 [[국가보안법]], [[반공법]], [[형법]] 간첩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형이 구형된 여관업을 하는 김희병(48세)에게 무기징역, 박노수의 처인 전명희(28세) 등 14명에게 징역7년~징역1년과 같은 형량의 자격정지를 병과하면서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91103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9-11-03&officeId=00020&pageNo=1&printNo=14790&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69년 11월 3일자]</ref>
         * 대구지방법원 민사합의4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1월 29일에 [[영대학교]]를 상대로 불합격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1.5cm 짧다는 이유만으로 커트라인보다 24점이나 더 받은 학생을 불합격한 것은 공정성과 합리성에 어긋난다"며 "1980년도 약학 대학 신입생 선발 불합격 처분은 무효"라고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1290032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1-29&officeId=00032&pageNo=7&printNo=10871&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1년 1월 29일자]</ref>
         * 대구고등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5년 5월 18일에 내연의 편을 살해하여 1심에서 징역12년이 선고된 신압찻집 여주인에 대해 "범인으로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정황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5년 5월 18일자</ref>
         [[분류:194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최란(배우) . . . . 6회 일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 감독을 하던 이충희 전 감독에 대해 공홈에서 당시 오리온스의 엄청난 부진에 악플러들이 많았는데 며칠만에 최란에게 전원 고소당해서 처벌받은 실사례도 있었다. [[원주 DB 프로미]]의 전신인 원주 동부 프로미 공홈에서도 실명임에도 성적 부진에 성난 팬들이 이충희에 대한 악플을 기다가 고소당한 사람들이 나왔고 이후 농구팬들은 최란이라면 벌벌 떨 수준이 되었다.(...)
          *깍두기 (송수 역)
          *자 셋 여자 셋 (철수모 역)
          *[[미이시네요]] (최미자 역)
          *아들찾아 삼만리 (현숙 역)
          *여선생 VS 여제자 (고미 어머니 역)
  • 최은희 . . . . 6회 일치
         || '''가족''' ||[[배우자]] 故 [[신상옥]], 자녀 1 1녀[* 둘 다 편 신상옥家 친척조카를 [[입양]]했다.]||
         1943년 극단 <아랑>의 연구생이 된 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데뷔, 연기력과 미모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다. 이 때 촬영기사 김학성과 만나서 동거했다.[* 최은희가 언니처럼 잘 따르던 선배의 동생이었다. 나이차이가 열 살 이상 났고, 김학성 슬하엔 자녀도 있었다. 다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결별. 이 때 최은희는 서울에 있다가''' [[심영(배우)|심영]]'''[* 우리가 아는 그 ~~[[내가 고자라니|고자]]~~심영이 맞다. ]에게 '''1차로 납치된다'''.--[[내가 고자라니|내가 납치범이라니]]-- 하지만 [[청천강]] 인근에서 탈출했는데, 이 때 '[[북한군]]에게 [[윤간]]당했다.'라는 괴소문이 돌게 된다. 문제는 이후 국군을 따라 위문공연을 하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진짜로 [[한국군]]에 의해서 [[성폭행]] 당했다는 것이다. 윤간은 아니지만 머리에 총을 겨누고 성폭행했다니 빼도박도 못한다. 이는 최은희 본인의 증언에 의한 것이다.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시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시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시절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겼다.
         [[마릴린 먼로]]가 주한미군 위문 공연으로 내한했을 당시, 같이 동행했으며 사진도 아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동갑이다.
         2018년 4월 16일에 향년 91세로 사망했다. [[사족]]이지만 사망 전 1년동안은 계속 투병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뒤늦게야 전해졌다. 슬하에 친자녀는 없지만 입양한 자녀 2명(1 1녀)이 있다.
  • 최준석 . . . . 6회 일치
         || '''학력''' || 대구칠성초 - 포항제철중 - [[포항제철고]] - 영사이버대[* 당시 세민디지털대.] ||
         2010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수상 소감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린다."''' 라고 감동스러운 코멘트를 겼다.
         군 문제가 아 있었지만 아래에서도 언급할 무릎 수술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문제는 수비위치인데, 1루에 붙박이로 들어가려고 해도 [[김진욱(야구)|수비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감독 특성상]] [[오재원]]이나 김현수에게 밀리며, 지명타자 자리에는 [[홍성흔]]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라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태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 [[강민호]]와 포철공고 선후배 사이인데[* 3년 차이라서 같이 뛴 적은 없었지만.], [[강민호]]는 고등학교 시절 최준석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100m를 11초에 끊는 호타준족의 [[포수]]였었으니깐.[* 덤으로 이 시절에는 굉장한 훈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은 '''[[http://cfile225.uf.daum.net/image/121511404DB12A142256FF|장돈건]]''']
          * 원래는 대구 출신이며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하나뿐인 동생과 함께 소년가장이 되면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께선 2005년에 돌아가셨다고. 절친인 [[이대호]]와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231910|성장 과정이 상당히 유사하다.]]
  • 최지우(영화배우) . . . . 6회 일치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반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2003년 출연한 <[[천국의 계단(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도 여주인공 한정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때부터 혀 짧은 발음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계모와 의붓 여동생[* 이 역을 바로 [[김태희]]가 맡았다. 김태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자 주인공들([[권상우]], [[신현준(배우)|신현준]] 役)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 참고로 상대역인 권상우도 [[혀]]짧은 발음이 문제였는지라, '''권땅우&퇴디우'''로 불리기도 했다.(...)
         2007년 4년 만에 <에어시티>로 컴백하였으나, 이 드라마는 처참히 실패하였고 커리어 우먼 역으로 출연하였던 최지우에게는 '연기가 발전이 없다',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전친 [[이진욱]]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흥행수표'라는 것과 별개로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우선, 저 4개 드라마가 모두 멜로물인 데다가 여주인공 역할도 다 똑같다. '''자 주인공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착한 히로인'''. 연기변신을 꾀했던 다른 작품들은 모두 다 망했다. 게다가 부정확한 발음과 매일같이 똑같은 표정 또한 그녀를 저평가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 함께 출연한 자 배우들 ===
         의외로 [[이병헌]]과도 작품활동을 많이 했다.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 최지우의 '실땅님'이 이병헌이었고,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주인공이 이병헌이었다.
  • 최진희(가수) . . . . 6회 일치
         || '''출생지''' ||[[전라도]] [[신안군]][br](현 [[전라도]] [[신안군]]) ||
         [[북한]]에서도 인기가 높은 가수인데, [[김정일]]이 최진희의 팬이었고 사랑의 미로, 뒤늦은 후회 등은 북한에서도 애창곡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북한]]에서 여러 번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고. 2018년 4월 [[북평화 협력기원 측예술단 평양공연|평양 공연]]에도 갔다.
         이 곡은 1980년대 대방송용으로 북한이 개사해서 틀던 곡이 대중들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원본이 중국을 통해 들어오면서 지금은 북한의 녀노소가 부르는 곡이 되었다. [[김정일]]이 즐겨 부르던 곡이기도 했다고.
  • 최혁 (1992년 3월) . . . . 6회 일치
         * 《[[권법형사: 차이나타운]]》 (2015년) - 학생들 역
         * 《[[내성적인 보스]]》 (tvN, 2017년) - 화장실 자 3 역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호중 . . . . 6회 일치
         '''최호중'''(崔浩中<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4250009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4-25&officeId=00009&pageNo=2&printNo=5582&publishType=00020 經濟에 밝은 직업外交官 崔浩中] - 매일경제, 1984년 4월 25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0500329204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2-05&officeId=00032&pageNo=4&printNo=13292&publishType=00020 崔浩中 외무장관 外務部서 잔뼈굵은 正統派] - 경향신문, 1988년 12월 5일</ref>, [[1930년]] [[9월 22일]] ~ [[2015년]] [[2월 19일]])은 [[대한민국]]의 전 외무공무원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 [[북방 정책|북방외교]]의 한 주역이자 [[북 기본합의서]] 채택 시에도 역할을 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주 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상공부 차관을 지낸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 1992년 6월 부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한소 수교의 발판 마련과 역사적인 북합의서 채택이 공직 생활 중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분류:1930년 태어]][[분류:2015년 죽음]][[분류:벨기에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말레이시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최씨]]
  • 최희암 . . . . 6회 일치
          | 주요 작품 = 수필 <br/> 《아내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자》
         이후 [[현대건설]]에 취업하여 [[이라크]]에서 근무하였고, 귀국 후 [[현대건설]]에서 퇴사하여 에서 체육 교사로 임용되었으나 곧 사임하였고 [[1986년]]부터 [[연세대학교]] 자 농구단 감독을 맡으며 지도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선수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분업화하고, 외곽슈터 중심의 농구를 통해 연세대학교를 강호로 만들었다. 실업팀과 대학팀을 망라한 [[농구대잔치]]에서 세 차례 우승했고, 특히 [[1993년]]-[[1994년]] 농구 시즌 우승은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우승 기록으로 아 있다.
         * 《아내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자》(1997년 1월 20일)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최씨]][[분류:무주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농구 선수]][[분류:연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동문]][[분류:아메리칸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농구 해설가]][[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츠라츠라 와라지 . . . . 6회 일치
         고쿠다카[* 石高. 전근대 일본에서 사용한 토지 생산성 수치로, 성인 성 1명이 1년 먹을 쌀을 생산하는 토지가 1고쿠다카.] 31만 5천석의 거대 다이묘로 막부의 긴축정책에 비판적인 인물이어서 막부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인물 '쿠마다 하루타카'가 에도로 참근교대를 떠났다. 가신들은 행렬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지만 하루타카는 가는 곳마다 세간의 눈을 신경쓰지 않는 대범한 행동을 거듭하고, 한편 그의 흠집을 찾아내기 위해 막부에서 밀정을 보내 행렬에 잠입시키는데...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할 때 영주와 장이 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차 '쿠마다 테루타카'가 가문을 이었고, 이에야스는 화친 후 쿠마다를 묶어놓기 위해 히데요시를 움직여 테루타카를 억지로 이혼시키고 도쿠가와 가문의 여식과 결혼시켰다. 이 때의 원한이 대를 이어 내려왔고, 이 때문인지 후임 영주 쿠마다 타카토시(테루타카와 전처의 소생)가 석연찮게 급사하고 그 아들 미츠타카는 2차례에 걸쳐 전봉당해 오카야마 지방에 자리잡게 되었다.
          * 쿠마다 이즈미 : 수행 가로. 하루타카의 가신으로 쿠마다 종가인 '아마키 쿠마다 가'(이에야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의 가문)의 자손. 기본적으로 학식이 깊고 영민하지만 17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로 불과 4개월 전에 가로가 되어 미숙한 면이 있으며 쿠마다 종가의 긍지와 체면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가문의 기풍 때문에 매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꽃꽂이가 취미.
          * 쿠마다 치카라 : 전 수석 가로로 이즈미에게 가독을 넘기고 은퇴했다. 쿠마다 종가의 긍지나 체면을 강하게 의식해서 이즈미에게도 항상 그것을 주지시키는 완고한 인물[* 쿠마다 종가의 사람들은 역대로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고 하는데, 일례로 초대 가로의 경우에는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한 가신에게 원한을 사 강을 건너던 중 살해당했다고 한다. (초대 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야스와 싸우다 전사한 장의 자손으로 추정되는데, 숙부인 테루타카에게 가독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모난 성격이 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로, 이 때문에 나가토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 쿠마다 나리타카 : 하루타카의 장으로 아명은 신쥬로. 학문적 소양이 깊고 근면한 성격.
  • 키프 . . . . 6회 일치
         키프 군이란 여러 자와 사귈 정도로 인기있는 여성의 관점에서, 진심을 내고 있는 성 이외에 연인 미만의 교제를 하고 있는 자를 뜻하는 말이다. 국내속어로 하자면 어장관리의 물고기. 자친구 예비군 같은 취급.
          * 앗시 군 : 자가용으로 바래주는 자를 뜻한다. 어원은 이동수단으로서 자동차를 다리(아시)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 멧시 군 : 식사를 사주는 자. 어원은 식사를 밥(메시)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 킹덤/515화 . . . . 6회 일치
          * 지금껏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지시만 내렸던 왕전이지만, 이번엔 그가 그리는 전략을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여전히 어떤 목적 때문에 소도시들을 공략하는지 밝히진 않았으나 [[이목(킹덤)|이목]]의 움직임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 그가 왕도권으로 돌아와 통제력을 갖추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왕전이 보기에 이목이 함단까지 돌아오는데 하루, 그가 왕도권 군단의 통제권을 인수하는데 하루,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업에 도착하기까지를 하루로 잡아서 총 3일의 시간이 있는 걸로 계산했다. 왕전은 이제부터 군을 셋으로 나누기로 한다. 왕전 자신의 본대와 [[환의(킹덤)|환의]]군, [[비신대]]와 [[낙화대]], [[옥봉대]]를 합친 연합군의 세 갈래로 나눠 업 주위에 은 일곱 성을 한 꺼번에 공략한다는 것이다. 작전 내용은 같다. 점령지의 식량을 빼앗고 백성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그들이 갈 곳은 "동쪽"이다.
          * 그때 열미로부터 급보가 날아온다. 열미는 진군의 깃발만 올려뒀을 뿐 병력은 기지 않은 상태였다. 태향산맥을 타고 내려온 조군 5만은 열미로 무혈입성, 진군의 퇴로를 틀어막았다.
          뻔한 전개였지만 막상 현실로 일어나자 이신과 장수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정말로 군단의 활로는 "동쪽" 밖에 지 않았다. 동쪽. 그러고 보니 방금 왕전도 동쪽을 언급했다. 그곳에 뭐가 있는 걸까? 왕전은 거기까진 말하지 않은 채 양단화군에 전령을 보내 본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라 지시한다. 그리고 이미 설명한 대로 다음 성을 함락하기 위해 군단을 움직인다.
          * 왕전이 구상한 진군로는 크게 세 개. 현재 "정성"에서 군은 세 갈래로 나눠 출발해 왕전의 본대는 적성, 평성을 함락시키며 동쪽으로 진군. 환의군은 그 아래 신성, 석성, 허성을 거쳐 역시 동쪽으로 진군. 비신대, 옥봉대, 낙화대의 연합군은 크게 몰아 최단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동쪽으로 진군.
          * 왕전의 지시대로 산단성까지 도착한 오천인장들. 이신은 일단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지만 아직도 분통이 터진다. 그는 성벽 위에서 떠나가는 백성들을 보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체 뭘하고 있는지 숨김없이 토로한다. 거기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것은, 장수들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외]]는 들보다 조금 먼저, 왕전이 그린 그림을 눈치챈다.
          * 그러는 사이 동쪽으로 향하는 피난민 행렬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불어난다. 이 대행렬이 왕도권 쪽에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이목이 왕도 함단에 진입한다.
  • 타이라노 마사카도 . . . . 6회 일치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할아버지 타이라노 타카모치(平高望)는 간무 덴노(桓武天皇)의 손자로서, [[신적강하]]하여 카즈사 국(上総国)[* 지금의 치바현 중부]을 다스리는 쿠니시(国司)였다. 그는 카즈사 국에서 임기를 마친 뒤에도 교토에 귀환하지 않고, 아들들과 토착하여 히타치(常陸), 카즈사(上総), 시모우사(下総)에서 개간을 거듭하여 방대한 장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방대한 장원은 자식들에게 상속되었는데, 장 쿠니카(国香)는 히타치(常陸), 차 요시카네(良兼)는 카즈사(上総), 삼 요시마사(良将)는 시모우사(下総)의 영지를 나눠받게 된다.
         마사카도는 삼 요시마사의 아들로서, 소년 시절에는 교토에서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 [[후지와라 요시후사]]의 손자)를 가신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요시마사가 사망하자 시모우사로 귀환하였는데, 귀향한 마사카도는 쿠니카와 요시카네가 요시마사가 긴 장원을 마음대로 분배해서 나눠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니카의 동생 타이라노 요시마사(平良正)는 마사카도를 토벌하려 했으나 마사카도에게 격파당하여 패배, 타카모치의 차 타이라노 요시카네가 마사카도를 공격했으나 역시 마사카도에게 패배한다. 요시카네 토벌은 조정에서 허가를 얻었으며, 934년에 요시카네는 결국 병사하고 만다.
  • 하이큐/246화 . . . . 6회 일치
          * 봄고 1일차. 살아는데 성공한 [[카라스노 고교]]는 역시 1회전을 돌파한 [[네코마 고교]]와 조우, 악담 섞인 격려를 나누고 헤어진다.
          * 마침 나타난 카노카의 지인 성 때문에 김칫국을 마셨다고 착각, 현실을 외면하며 민박집에 틀어박힌다.
          * [[쿠로오 테츠로]]와 [[사와무라 다이치]]가 "내일도 열심히 살아아 봐라"는 말을 주고 받으며 양팀이 헤어진다. 하지만 농담처럼 이런 말을 주고 받았을 뿐, 돌아선 주장들은 웃음기가 사라진다. "내일도 살아는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 민박집에 도착해 보니 옆의 호화호텔로 여자 대회의 우승후보인 "여왕" 니야마 고교가 귀가 중이다. 여자부와 자부의 차이는 있어도 저쪽은 우승 후보. 번쩍거리는 호텔로 들어가는 데서 격차를 느끼고 만다. 그러고 보니 카라스노도 여자부 쪽은 인터하이에서 우승한 시드교. 문자 그대로 "여왕" 같은 그녀들이다.
          * 그렇게 민박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소녀가 [[타나카 류노스케]]를 불러세운다. [[하이큐/231화|오전에]] 만났던 타나카의 지인 [[아마나이 카노카]]였다. 팀에서 잠깐 빠져나와서 타나카를 보러온 것이다. 오전에도 좀 어색해했던 타나카는 얼어서 딱딱하게 대답한다. 그녀는 카라스노의 승리를 축하하고 "열심히 해"라는 격려를 긴채 돌아간다. 그런데 얼굴이 새빨개진게 분위기가 요상하다.
  • 하준영 . . . . 6회 일치
         [[성고등학교]] 시절 1학년 때부터 팀의 주축 투수를 맡아 활약했고, 2학년과 3학년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고교 좌완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다.
         * [[성중학교]]
         * [[성고등학교]]
         [[분류:199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이수초등학교 동문]][[분류:성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고등학교 (서울) 동문]]
  • 한교원 . . . . 6회 일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축구명문 축에 드는 [[조선대학교]]의 스카웃망에 잡히기는 했으나, 조선대에서도 우선순위로 선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대 축구부 쿼터가 꽉 차는 바람에 조선대 입학이 무산되었고 [[조선이공대학]]으로 입학하게 된다. 조선대와 조선이공대는 같은 재단 소속. 이를테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입단했는데 팀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위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임대 간 [[김일]]과 비슷한 케이스. 갓 창단한 조선이공대 축구부에서 한교원은 [[메시]]놀이를 시작한다. 2010년 [[U리그]]에서 한교원이 찍은 스탯은 20경기 출전 18골 (...)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지명된다. 조선이공대가 배출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K리거이다.
         데뷔시즌인 11시즌에는 주로 최전방에서 뛰었지만 12시즌부터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 이후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근성]] 넘치는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시즌에는 다소 투박하지만 수비수를 제껴내는 드리블과 중앙 침투로 인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인천의 돌풍에 [[이석현(축구선수)|이석현]], [[김일]]과 함께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좌측은 [[준재]]와 [[이천수]]가 돌아가면서 출전했고, 최전방의 [[디오고 아코스타]]는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때때로 아쉬움을 겨 [[설기현]]과 로테이션 체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한교원만큼은 붙박이 우측 윙어로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 활약 덕분에 영플레이어 상을 받을 만한 후보로도 점쳐졌지만, 최종 수상자는 [[고무열]].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의 윙덕후로 불리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서상민의 뒤를 이어 7번을 달면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인천 팬들은 전년도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이적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일]]과 한교원을 동시에 전북에 넘겨 허탈한 감정을 갖기도 했다. 1년 후에는 [[문상윤]]마저 전북으로 넘어갔지만, 그 뒤에는 전북으로 이적하는 인천 선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김인성]], [[박세직(축구선수)|박세직]] 등이 반대로 인천으로 넘어갔다.
         특유의 근성 넘치는 돌파와, 돌파 이후 이어지는 위협적인 크로스가 전북의 팀 색깔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다. 또한 공격수로서 공격포인트도 착실히 올리며 닥공축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중. 20라운드 성과의 대결에서는 1골 1어시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부상으로 결장한 이동국의 빈 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11월 9일자, 리그 10골 3어시 기록 중. 본래 이동국의 백업 선수인 [[카이오]]보다 더 많이 넣었다.
  • 한국진 . . . . 6회 일치
         * 《[[돌연변이 (영화)|돌연변이]]》 (2015년) - 화장실
         * 《[[서부전선 (영화)|서부전선]]》 - 복소대원 2 역
         * 《[[스톤 (2014년 영화)|스톤]]》 (2014년) - 포기각서채무
         * 《[[꼭두각시 (영화)|꼭두각시]]》 (2013년) - 자 대학생 역
         * 《[[쪽으로 튀어]]》 (2013년) - 기자 2 역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
  • 한말숙 . . . . 6회 일치
         |자녀 = 2 2녀 <br /> 황혜경(장녀) <br /> [[황준묵]](장) <br /> 황수경(차녀) <br /> 황원묵(차)
         **** 편: [[황병기]]
         ***** 장: [[황준묵]]
         [[분류:1931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청주 한씨]][[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한성호 . . . . 6회 일치
         |자녀 = 슬하1
         - 자신의 회사(구 F&C뮤직)에 소속되어 있는 FT아일랜드(이홍기), 씨엔블루(정용화)가 출연하고 있는 SBS 《[[미이시네요]]》 7회에서 까메오로 출연했다. 유일하게 버즈에 이어서 아이돌밴드를 만든 FT아일랜드, 씨엔블루를 무서운 신인으로 만들어 각종 1위, 상위권 차트를 휩쓸었다.
         ** [[2009년]] [[SBS TV|SBS]] [[SBS 수목미니시리즈|드라마]] 《[[미이시네요]]》 깜짝 출연(7회)
         * 드라마 OST - [[온에어 (드라마)|온에어]], [[미이시네요]], [[넌 내게 반했어]] 등이 있다.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한충 (조선) . . . . 6회 일치
         [[1513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 · 이조정랑(吏曹正郞) · 응교(應敎)를 하였다. [[1518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가게 된 [[곤]]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함께 동행했으나, 곤과 의견 대립을 하게 되었다.
         [[1519년]] 전한(典翰)이 되었으며, 이후 직제학(直提學) · 동부승지(同副承旨) ·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하지만 그 뒤 곤에 의해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전임되었으며, [[1520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이에 휘말려 [[거제도]]로 유배당했다. [[1521년]] [[신사무옥]] 때 곤의 흉계도 인해 [[의금부]]에 투옥되었으며, [[조선 중종|중종]]에 의해 풀려나게 되었으나, 곤의 자객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분류:1486년 태어]][[분류:152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암살된 사람]]
  • 헤소린 가스 . . . . 6회 일치
         여기서 진구가 헤소린 가스를 용하는 것을 보고 퉁퉁이와 비실이는 헤소린 스탠드를 강탈해간다. 진구는 가스의 영향 때문에 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진구는 이렇게 좋은 가스는 모두가 나눠야 한다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가스를 주입해주고, 이걸 본 퉁퉁이와 비실이는 가스 스탠드를 가져다가 유료로 제공한다.
         사실 이 단편이 발표된 1979년은 일본에서 [[각성제]](히로뽕)이 용되어, 제2차 각성제 용기라 불리던 시기이다.[* 제1차 각성제 용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물자로 은 히로뽕이 용되던 시기.]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현석문 . . . . 6회 일치
         |사망지 = [[서울]] [[새터]]
         [[1839년]]에 [[기해박해]]가 시작될 때에, 현석문은 [[관아]]에 [[자수]]하기를 원했지만, [[선교사]]들이 그를 말렸고 살아아서 교우들을 돌보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누이가 순교한 후에 《[[조선]] [[천주교]] [[순교자]] 열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기해박해]]가 끝나자, 그것의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상하이]]까지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살아은 [[최희원]]과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의 [[복사 (기독교)|복사]] [[최형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손자 [[이재의 토마스]] 등의 협조를 받아 [[순교]] 자료를 모아서 확인 및 보충 정리하여 3년 만에 단편의 《[[기해일기]]》를 완성하였고 교우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는 빈번히 [[베이징]]으로 전령을 보내 [[선교사]]들과 연락하였다. [[1845년]] 그는 [[부제 (기독교)|부제]] [[김대건]]과 함께 작은 나무배를 타고 [[상하이]]로 가는 험란한 항해에 동참하였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를 맞아들였다. 현석문은 [[한양]]으로 돌아온 뒤, 위험을 무릅쓰고 김대건 [[사제|신부]]의 집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였다. [[1846년]]에는 [[병오박해]]가 일어났다. 현석문은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새로운 집을 구입하여 교회의 모든 재산을 그곳으로 옮겼으며, 김 신부의 처소에 아 있던 여성 교우들을 새 집으로 피신시켰다.
         현석문은 [[1846년]] [[9월 19일]]에 [[한양]]의 [[새터]]에서 [[참수형]]을 받았고 [[군문효수]]되었다. [[김 카타리나]]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평온하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그가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52세였다.
         [[분류:1797년 태어]][[분류:1846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조선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홍나영 . . . . 6회 일치
         '''홍나영'''([[1991년]] [[9월 14일]]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며 2011년 KBS 공채 26기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대표작으로는 KBS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과 〈자가 필요없는 이유〉 등이 있다.
         **〈자가 필요없는 이유〉
         * 언니, 나 자친구 좀 소개시켜줘(자가 필요없는 이유)
         * 언니, 나 그냥 혼자살래~!(자가 필요없는 이유)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황석하 . . . . 6회 일치
         * 《[[성난 화가]]》 (2015년) - KCIS
         [[분류:197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K리그 . . . . 5회 일치
         초기에는 급하게 시작한 감이 있어 첫 수퍼리그가 끝난 이후에도 수퍼리그를 주도했던 국민은행이 빠지고, 또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할렐루야가 불참했던데다가 지역연고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없이 발족했기 때문에 유럽과 미에서 볼 수 있었던 리그운영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좀 멀었다.
         시작은 5개 팀이었지만 어쨌거나 참가팀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며, 1994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조직되고나서부터 KFA가 운영하던 때보다 좀 더 세심하게 "프로"리그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상당한 잡음이 생기긴 했으나 본격적인 지역연고정착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월드컵 유치와 관련하여 축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한다. 또한 대우 로얄스와 성 일화,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이 ACL의 전신인 아시아 클럽 챔피언쉽(ACC)를 돌아가며 제패하는 등, 아시아 최상위 리그임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 [[경 FC]]
          * [[성 FC]]
          * [[전 드래곤즈]]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 . . . . 5회 일치
         || 득점선수 || || || 김호(53) ||
         || MOM ||<-3><:>김호||
         광주는 강원에 밀려 4위였지만 2014시즌에 한정해서 기록을 고려해 보면 두 팀의 상대전적은 강원 기준으로 1승 1무 2패로 다소 광주가 앞서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된다고 생각하면 강원은 1무를 1승으로 충분히 여길 수 있었으므로 두 팀의 경기력은 팽팽하다고 봐도 될 정도. 하지만 끝내 "호의 아들" 김호이 후반 8분(53분)에 임선영의 어시스트로 골을 넣으면서 광주가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자격을 받게 되었다.
         || 득점선수 || || || 파비오(60, 66)[[BR]]김호(61) ||
  • 거미(가수) . . . . 5회 일치
         ||<bgcolor=#874D0D> {{{#FFFFFF '''출생'''}}} ||[[1981년]] [[4월 8일]] ([age(1981-04-08)]세), [[전라도]] [[완도군]] ||
         ||<bgcolor=#874D0D> {{{#FFFFFF '''가족'''}}} ||어머니 [[장숙정]], 1 1녀 중 막내, 배우자 [[조정석]]||
         [[여자 가수]]. [[본명]]은 [[박지연]]이며 [[전라도]] [[완도군]] 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서울]]로 이주했으며 [[동덕여자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했다.
          * [[김흥국]]이 한 말실수의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하나. 한 [[라디오]]에서 김흥국은 거미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를 '''친구의 '[[스푸너리즘|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로 잘못 소개해버렸다.[* 당시 김흥국은 해피투게더에서 출연해서 해명을 했는데, 작가가 제대로 써준건 맞지만 거미가 가수의 이름일줄은 몰라서 '친구'가 불렀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거미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잖아?"라고.. 사실.. 듣고 보면 일리는 있다.] 이에 영향받아 가수 이름과 곡 이름을 [[러시아식 유머]]처럼 도치하는 파생 개그가 꽤 생겼었다. 예를 들어 [[임재범|고해범]] - 임재, [[이은미|애인]] - 은미있어요, [[휘성|결혼]] - 휘성까지 생각했어, [[버즈(한국 밴드)|자]] - [[자를 몰라|버즈를 몰라]] 등.[* 또한 이는 [[개그콘서트]] 코너 [[1대1]]에서 [[이세진]]이 응용해먹는다.]
  • 경주시 . . . . 5회 일치
         경주는 태백산맥 또는 백두대간의 인근 도시로 경상북도 동쪽 끝에 위치한다
         양면 || 陽南面 || 84.95 || 3,285 || 6,904
         내면 || 內南面 || 122.03 || 2,521 || 5,205
         황동 || 皇南洞 || 22.16 || 3,407 || 6,690
         경주의 명물 황
  • 고유민 . . . . 5회 일치
         초등학교 6학년때 부터 [[배구]]를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위기가 많았지만[*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227|프로입단 당시의 지역신문 기사]]] 복지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배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2013년 [[대구여자고등학교]]의 주 공격수였으며 [[이고은]]과 콤비를 이루어 주요 대회인 2013년 [[기독교방송|CBS]]배 전국녀 중고배구대회 여고부에서 우승했다. 이때 선수는 겨우 10명 이었고 악조건 속에서의 우승이었다.
         교체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30일 시즌 두번째 경기에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황연주]]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지자 교체로 3,4,5세트를 뛰고 4득점을 하면서 64.29%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풀세트 승리에 기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의 전위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되거나 [[황연주]]가 부진할때 간간히 교체되어 나왔다. 다만 전자의 역할은 선배 [[한유미]]가 주로 맡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코칭스테프가 황연주를 교체하는 것에 별로 마뜩치 않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때에도 코트에 황연주를 겨놓을때가 많았다. --차라리 폴리를 뺀다는 마음가짐--] 출장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것보다는 보통 지는 경기에 교체출장하는데 리시브 범실, 공격범실로 감독 화돋구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19경기, 39세트 출장 13득점 공격성공률 28.26% 리시브 성공률 22.5%을 기록했다. 좋게말하면 작년과 비슷한 기록을 냈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 [[고예림|전 시즌 신인왕]]은 폭망했고 나머지들도 그닥이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또 방송에서 과감히 선배들의 외모를 상중하로 등급 먹이고,[* 그래서 가장 유명한 별명인 '라마'를 만든 조예진에게는 자신보다 얼굴 수준이 떨어진다고 굴욕을 안겼다.] '교정 3년만 하면 된다.' 말도 안되는 아이유 흉내, 수지 흉내까지 내면서 방송 지분을 많이 차지 했다. 그 덕분에 당해 현대건설 숙소탐방편은 레전드 편으로 역사에 길이 았다.[* 방송 컨셉이 섞여 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그냥 조용조용한 20대 여자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낯을 꽤 가린다.]
         이듬해 동일한 방송에서 보고 싶은 사람으로 자 친구를 보고 싶다고 깜짝 발언을 했지만, 진행자가 '태어는 났는지 살아는 있는지 궁금한 거죠?'라고 쿠사리를 먹였다.
  • 고주원(배우) . . . . 5회 일치
          * [[별난여자 별난자]] - 장석현 역
          * [[마담앙트완]] - 고혜림의 전편 역
         || 2005년 || [[KBS 연기대상]] || 자 신인연기상 || [[별난여자 별난자]] ||
         [[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81년 출생]][[분류:한국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2003년 데뷔]]
  • 곽희성 . . . . 5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2012년 데뷔]][[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권오현(배우) . . . . 5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어린이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1976년 데뷔]][[분류:안동 권씨]][[분류:평창군 출신 인물]]
  • 김륵 . . . . 5회 일치
         1594년(선조 27)에는 사헌부 대사헌·이조 참판·홍문관 부제학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1595년(선조 28) 부체찰사(副體察使)에 올라 수원·전주·원·거창·진주·대구·창녕 등지를 순시하며 군졸들을 위무하고 전황을 살폈다. 이때 [[한산도]]와 [[거제도]]에 파견되어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의 활약상을 조사, 조정에 보고하고 이들의 전공을 위무하였다. 이후 진주에 가서 이순신을 만나 찾아가 대책과 전략을 상의하고 숨져간 병사들의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나 그의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는 [[북인]]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인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조식 (1501년)|조식]]이 제외된 것에 불만을 품고 그의 이황, 이언적 문묘 종사를 반대했는데, [[북인]]과 [[인]]간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자신의 생모 [[공빈 김씨]]를 왕후로 추존하려 하였으나, 그는 생모를 왕비로 [[추증]]하려는 [[광해군]]의 뜻을 비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받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좌천되었다.
         ** 장 : 김기선(金幾善), 찰방
         ** 차 : 김지선(金止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분류:1540년 태어]][[분류:1616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임진왜란 관련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예안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영천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조선의 화가]]
  • 김민수 (1991년) . . . . 5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영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 이글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 [[영대학교]]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성민 (1991년) . . . . 5회 일치
         '''김성민'''([[1991년]] [[2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자]] [[배우]]이다.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
  • 김성훈(배우) . . . . 5회 일치
         * 《작업의 정석》 (2012년) - 멀티
         [[분류:1981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숭실 . . . . 5회 일치
         * 2001 제47회 전국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복식 2위
         * 2001 제55회 전국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단식 3위
         * 2002 제48회 전국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단식 3위
         * 2003 제49회 전국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복식 3위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탁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
  • 김시진 . . . . 5회 일치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겼다. 은퇴 후 [[태평양 돌핀스]]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시즌 후 [[김재박]]의 후임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9년]]부터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감독직을 맡아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았으나 2014년 10월 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ref name="ohmynews">[[오마이뉴스]] - 2008년 4월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2861 "최동원 · 선동렬에 가려진 위대한 투수"]</ref>
         | 저자 = 이종
         }}</ref> 순수신인 최초 2완봉승 도달 투수가 됐고 결국 그 해 5완봉승으로 마감했는데(당시 전구단 상대 완봉승) 이 기록은 아직까지 순수신인 최다 완봉승 기록으로 아 있다. 프로 데뷔 이후 5년 만에 [[KBO 리그]]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을 올렸다. [[1985년]] 25승(21선발승으로 최다 선발승이었는데 전년도(15선발승)에 이어 2년 연속 최다 선발승 1위)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으로 소속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끄는 등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111승을 올렸다.<ref name="ohmynews" />
         }}</ref>으로 아 있다.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키움 히어로즈 감독]][[분류:현대 유니콘스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감독]][[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KBO 승리상 수상자]][[분류:KBO 승률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포항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태연(배우) . . . . 5회 일치
         || '''출생''' ||[[1976년]] [[1월 3일]], [[전라도]] [[보성군]] ||
         || '''가족''' ||1 2녀 중 장녀 ||
          * [[자가 사랑할 때(SBS 드라마)|자가 사랑할 때]] - 이진
          * 자의 향기 - 정민숙
  • 김형철 (가수) . . . . 5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식]][[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김형태(정치인) . . . . 5회 일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구(포항)|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이상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원|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회 홍보분과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허나 선거 기간부터 과거 [[제수]]씨 [[성폭행]] 미수 의혹으로 곤욕을 치뤘다. 이후 조카에게 사과하는 녹취록이 유포되어서 큰 망신을 당했다. 동생의 아내와 외도를 한 [[라이언 긱스]]를 빗대 '포항긱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하여 당선 직후 출당되어 [[무소속]]으로 지내다가 [[공직선거법]]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169&yy=2013|위반]]으로 2013년 7월 의원직이 상실되었다.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울릉) || 무소속 || 7,437 (6.27%) || 낙선 (3위) ||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울릉) || ~~'''[[새누리당]]'''~~ || ~~'''45,775 (41.24%)'''~~ || ~~'''당선 (1위)'''~~ || [* 2012.4.18 제명 조치, 2013.7.25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5회 일치
          *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자 구출대상인 에리는 시에핫사이카이의 어느 어두운 방에 갇혀 있다. 일견 보통 어린이의 방이지만 어둡고 답답한 공간이다. 에리는 침대에 틀어박혀 있는데 침대 주위에는 완전히 새것인 장난감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널려 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연다. [[오버홀]]이 지명한 새 "돌보미"다. 다소 뺀질거리는 인상의 자가 들어서자 에리는 경계하는 듯이 몸을 일으킨다. 자는 그저 잘 있나 보러 왔다고 말하지만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손도 대지 않은 장난감들을 보며 "조금은 마음을 열어도 좋지 않냐"고 하지만, 에리의 겁먹은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겁이 나는건 자도 마찬가지다.
          지시대로, 그는 에리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려고 하지만 고개를 움츠리며 피한다. 어려운 일이다. 자는 방을 나서면서 애초에 애들 심리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건 기껏해야 [[프리큐어]]다.
          * 다시 혼자가 된 에리는 방금 전 자의 손과 "그때 그 손"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는 인간 중에 그렇게 대해줬던 사람은 없었다. 미도리야의 손. 에리는 그게 다정한 손이었다고 느낀다. 바로 그 시각 손의 주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는건 모르고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61화 . . . . 5회 일치
          * 병원으로 후송된 히어로들은 중상자가 많지만 대부분 생명에 지장은 없다. 미도리야는 오른팔에 설명하기 어려운 흉터가 았지만 기능에 이상은 없다. 에리는 고열이 내리지 않은 채로 격리된 상태. [[아이자와 쇼타]]는 "되돌리는" 개성의 특성상 이렇게 하는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이 개성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동하며 훈련도 제어도 어려운 특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에리의 개성에는 의존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데, 그건 [[서 나이트아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 마침 [[올마이트]]도 도착해 있는데, 나이트아이의 상태가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나이트아이는 상태가 너무 나빠 리버커리걸의 치료도 먹히지 않는다. 나이트아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병상에서 올마이트와 재회, 올마이트가 "네게 끔찍한 짓을 했다"고 사과하자 그저 올마이트가 행복해지길 바랐고 그가 저항하기로 결심한 거라면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올마이트는 그도 저항하라며,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나이트아이는 에게 폐를 끼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며 그동안 올마이트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오늘 미래를 바꾸는걸 보여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미래를 바라는 힘이 "에너지"의 형태로 모여서 미도리야에게 전해진 결과라고 추측한다. 원 포 올 100%가 해방된건 그 덕. 그렇게 미래가 바뀌는 걸 봤으니 만족하지만, 한 가지 미련이 아 있다고 하는데.
          * 그때 [[토오가타 밀리오]]가 간호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병실로 들어선다. 밀리오는 자신도 중상인 것도 잊고 나이트아이에게 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나이트아이는 그저 "그릇"으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밀리오가 자신을 믿고 존경해주면서 차츰 자신의 긍지로 변해갔다며 유언을 긴다.
          활기와 유머가 없는 사회엔 "밝은 미래"가 오지 않는단 말을 유언으로 기고, 제자와 스승의 곁에서 나이트아이는 영면에 든다.
  • 노재헌 . . . . 5회 일치
         |자녀 = 슬하 2 1녀
         |기타 이력 = [[민주자유당]] 상임위원 <br/> [[민주자유당]]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 <br /> <br /> [[수원대학교]] 외래교수 <br /> [[강대학교]] 외부강사
         *2000년 강대학교 법학과 외부강사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태우 가]][[분류:교하 노씨]]
  • 도모세 . . . . 5회 일치
         * 《내 친구의 편》 (2016년)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태어]]
  • 마기/343화 . . . . 5회 일치
          *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는 자신이 루프로부터 살아은 것이야 말로 "솔로몬 왕의 의지"라고 설명한다.
          알라딘이 설마 알마트란과 솔로몬을 부정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신드바드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알라딘은 그 존재 자체가 알마트란의 상징 같은 것 아니냐고 반박하려 하지만 알라딘은 단호하게 상관없다고 말한다. 신드바드는 알라딘으 망설임을 버렸다는걸 깨닫는다. 이제 그들에겐 싸움이 았을 뿐이다.
          * 알리바바에게 말을 건 고마는 옆에서 시끄럽다고 투덜댄 자들의 일행이었다. 셋은 나란히 앉아서 제각이 알리바바에게 말을 걸었다. 눈을 가린 자는 그가 누구냐고 묻고 안경을 쓴 자는 "넌 이미 죽었다"고 단정해준다. 알리바바는 곧 이들이 알라딘이 보여줬던 알마트란의 기억에서 등장하던 인물이란 것을 깨닫는다. 이들이 셋타와 와히드, 그리고 테스였다.
  • 모레아 전제국 . . . . 5회 일치
         현재의 그리스 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역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국이다. 이 지역은 본래 전통적으로 비잔티움의 유럽 방면 영토였으나, 통치력이 잘 미치지 않아 독립성향이 강했고 [[제4차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이 지역에 세워진 '아카이아 공국'의 영향으로 비잔티움의 봉신국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성장으로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 북부가 오스만의 지배 하에 넘어가면서 수도 콘스탄티노플과의 육상교통이 단절되어 '위요지'가 되었다. 하지만 위요지라고는 해도 모레아는 영토, 인구 면에서 도시국가 수준으로 전락한 콘스탄티노플보다 훨씬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제국의 핵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지닌 정치적, 종교적 상징성 탓에 모레아 전제국은 어쩐지 무시당한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제국의 영토가 사실상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수준이라고 아예 무시(…)하고 설명하거나, '모레아도 공격받았다. 모레아도 망했다.'는 식으로 고작 한 줄 짓 언급되는 등.
         요하네스 6 세 칸타코제노스가 둘째 아들 마누엘 칸타코제노스를 모레아의 전제공으로 임명하면서 '모레아 전제군주국'이 시작되었다. 이 때 요하네스 6세의 다른 친족들도 전제공 등의 칭호를 받아 각지로 부임했으나, 대부분 일시적으로 그쳤고 장기적으로 살아은 것은 모레아 뿐이었다.
         이러한 모레아의 국력을 바탕으로 콘스탄티누스 전제공은 [[헝가리]] 중심의 [[십자군]]에 호응하여 출병, 오스만에 복속되어 있던 아테네 공국을 복속시켜 아티카를 지배 하에 넣고, 테살리아 부까지 세력을 확대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444년 바르나 전투에서 십자군이 패퇴하자 다시 반도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1446년 11월에는 오스만의 강렬한 반격을 받게 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모레아는 유일한 비잔티움 제국의 잔존 영토로 게 된다. 그러나 두 전제공의 대립, 영토 내 토착민과 알바니아 인 등의 대립, [[베제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의 간섭으로 위태롭게 된다. 1453년 가을에는 알바니아 인이 반란을 일으키고, 1458년에는 오스만 군이 침공을 벌였다. 심지어 토마스가 부하 유력자들에게 떠밀려서 드미트리를 공격하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두 전제공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참사가 발생한다.
  • 무라하치부 . . . . 5회 일치
         이 긴 문단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라하치부의 배경이 되는 향촌자치는 언듯 생각하듯이 아름답고 목가적인 것만은 아니며, 농촌 사회 지배층이 주도하는 ‘작은 사회’ 지배에 수반되는 무라의 폭력적인 처벌이 함께 뒤따랐다는 것이다. 무라하치부는 이러한 ‘처벌’의 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이 처벌 방식이 다른 것들과는 달리 비교적 오래 게 된 것은 추방, 신체형, 재산몰수, 사형 등의 다른 처벌과는 달리 근대 형법 제도에 크게 배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7월 21일에 야마구치 현 슈우난 시 미타케(山口県周南市金峰)에서 발생한 사건. 63세 성이 가옥 1채를 방화하고 5명의 노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가해자인 성은 본래 이 지역 출신으로 농림업을 하던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상경하여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귀향하고 부모님을 개호하였으나, 가나가와 현에서는 미장이로 일하면서 귀향한 뒤에도 기술을 살려 집을 건축하고 현지 TV쇼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별한 뒤에 지역 주민들과 문제가 잇따르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무라하치부를 당한 것이 자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존재한다.
         30가구의 모둔 주민에게 인사와 선물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다. 거주자는 현역 시절은 기업의 부장급이었던 사람들 뿐으로, 을 얕잡아보는 시선이 배어 있다. 시골에서 이런 괴롭힘을 받게 되다니.
  • 문지애 . . . . 5회 일치
          | 거주지 = [[부산광역시]] <br/> [[연제구]] <br/> [[경상도]] [[함양군]]
         * [[JTBC]] 《[[99인의 여자를 만족 시키는 자|99인의 여자를 만족시키는 자]]》 (2014)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평 문씨]][[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상명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임실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유튜버]]
  • 문호근 . . . . 5회 일치
         [[경상북도]] [[김천시|김천]] 출생이며 본관은 [[평 문씨|평]](南平)이다.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장이자 [[영화배우]] [[문성근]]의 형이다.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분류:1946년 태어]][[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1967년 데뷔]][[분류:오페라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
         [[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평 문씨]][[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뮌헨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문익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5회 일치
          인더스트리아의 지도층인 [[과학자]]들. 이름이 확인된 사람들은 모우(モウ), 케이(ケイ), 에이(エイ), 준(ジュン). 이중 모우는 위원회에서도 중심 인물이다. 안경을 착용한 순으로 검은 안경을 착용한 자가 에이. 정책 등에서 중요 사항을 결정하며 레프카와는 그다지 맞지 않는 인물들이며 라나에 대한 것은 중립적이다. 일단 레프카는 주요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인물들이라 놔두고는 있으나 결국 레프카의 횡포를 저지하지는 못하는 무력한 자들이다. 최후에는 라오 박사와 인사를 끝내고, 지각 변동 탓에 무너지는 인더스트리아에 는다.
          몬스리의 부하. 하이하버의 해일 이후 그곳에 는다.
          몬스리의 부하. 비행정인 팔코의 파일럿. 하이하버의 해일 이후 그곳에 는다.
          메이잘의 편이자 라나의 삼촌. 31세. 진료소 운영.
          하이하버 쪽의 황무지에 거주하는 젊은이. 나이는 18세. 단체생활을 하나 오로 패거리들과는 다르다.
  • 박경호 (1949년) . . . . 5회 일치
         * 1965.03 ~ 1968.02:한정보고등학교
         * 영대학교(학사)
         * 영대학교 경영대학원(수료)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동진 (1922년) . . . . 5회 일치
         1951년 외무부에 들어와, 의전국장, 주 영국 참사관, 외무부차관, 주 월 대사, 주 브라질 대사(1962년 10월~1968 2월)<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2100329201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21&officeId=00032&pageNo=1&printNo=5173&publishType=00020 브라질 大使에 朴東鎭氏] 《경향신문》1962년 8월 21일, 1면. <!--“最高會議 第63次 常任委員會는 21日 越南共和國駐箚大使 朴東鎭氏를 「브라질」合衆國特命全權大使로,...”--></ref><ref>{{서적 인용 |저자 = 외교통상부 |제목 = 한국 외교 60년 |url = 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장 = 부록 |확인날짜 = 2015년 2월 21일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60303211841/http://www.mofat.go.kr/state/publication/history60/20100201/11369_file_2009%20dip60_appendix.pdf |보존날짜 = 2016년 3월 3일 |깨진링크 = 예 }}</ref>{{Rp|496}}, 페루 겸임대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404290020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4-04-29&officeId=00020&pageNo=1&printNo=13079&publishType=00020 朴東鎭브라질大使 駐『페루』大使兼任]〉 《동아일보》(1964년 4월 29일) 1면 <!--“政府는 駐「브라질」大使朴東鎭씨를 駐「페루」大使도 겸임토록 28일하오 國務會議에서 議決했다.”--></ref>, 주 제네바 대사, 주 유엔 대사,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외무부 장관, 국회의원(11대.12대), [[대한민국 통일부|국토통일원]] 장관을 역임했다. 외무부장관으로서, 1976년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3190032920101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3-19&officeId=00032&pageNo=1&printNo=9377&publishType=00020 |제목= 貿易強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출판사 = 경향신문 | 날짜 = 1976-03-19 |인용문=<!--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상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 }}</ref> 1988년 4월 22일 한국 정부는 박동진을 주미대사에 임명하였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2200209201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4-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477&publishType=00020| 제목 = 駐美大使 朴東鎭씨| 날짜 = 1988-04-22| 출판사 = 동아일보}}</ref> 박동진은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었으나, 주미대사로 부임함에 따라 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민정당 전국구 예비후보 11번인 김종열이 5월 13일자로 의원직을 승계하였다.
         |직책 = 초대 [[한-베트 관계#대사관 및 대사|주 월 대사]]
         [[분류:1922년 태어]][[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박석민 . . . . 5회 일치
         여담으로 7월 4일 대구 홈경기에서 [[이범석(야구선수)|이범석]]이 9회 2사까지 안타를 한 개도 허용하지 않은 가운데 인생주루를 선보이며 3루쪽 내야안타를 때려서 노히트노런을 저지한 경험이 있다. 당시 3루수는 [[김주형]].[* [[2017년 한국시리즈|그리고 9년 후]], 김주형은 생애 첫 출전한 한국시리즈에서 또다시 답이 없는 뇌수비로 KIA 팬들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다행히 [[양현종]]의 투혼으로 후속 타자들을 범타로 돌려세워 [[903 대첩|한국시리즈 역사에 길이 을 대참사]]는 면했다.]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격전지인 3루수 부문에서 [[최정]]과 2년 연속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수비율과 홈런 등에서 앞서고 [[20-20]]을 달성한 최정에게 아쉽게 밀렸다.~~사실 최정도 박석민 이상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기에 받을 만했다.~~ 아무튼 최정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3루수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그리고 떠오르는 신흥 자석~~ 이를 위로라도 하듯(?)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는데 수상소감에서 '제가 받을 자격이 있나 잘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역시나 개그 본능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는 눈야구를 기반으로 한 OPS형 타자이다. 2009년이후 갑자기 OPS 1.0을 기록하며 타격에 소질을 보였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으며, 풀 시즌을 소화했을 때 20홈런 이상은 보장되는 장타력을 지니고 있다. 컨택 또한 뛰어나 통산 타출장 3-4-5의 아름다운 비율 스텟을 자랑한다.[[WAR]]도 거의 KBO 탑급이여서 공헌도가 가장 높다. 다만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비롯해 잔부상이 많기 때문인지 컨디션의 기복이 있고, 이로 인해 누적에서는 비율에 비해 아쉬운 기록을 기고 있다. 방망이를 돌리고 몸을 터는 등 유독 요란한 [[루틴]]동작 역시 몸의 고질적인 부상들 때문에 통증을 털어내는 과정일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편. 그럼에도 매시즌 3-4-5를 찍을 정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 외에 특이한 타격폼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도 얼핏보기엔 기괴한 폼이지만 오히려 타격의 정석을 충실히 지킨다며 이종열이 극찬한 바가 있다.
          * 퇘가놈, [[정현욱|박그분]] : 주장인데도 팀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유. 박석민이 당연히 을 것이라고 생각한 삼팬들이 많았으나 FA이적으로 차세대 [[이호준|엔전드]]의 길을 걷자 바로 금지어로 등극했으며 박석민 팬은 [[노리타(야구)|퇘리타]]로 격하되었다. ~~두산팬 : [[홍성흔|우리가 한 번 당한 적이 있어서]]...~~ 더불어 브콜돼 이놈 대구로 오기만 해 봐라고 잔뜩 벼르는 중. 하지만 예상이 무색하게 첫 대구 원정에서 삼성팬들이 기립박수로 반겼다.[* 물론 여전히 온라인 반응은 안 좋은편. 일부는 박수친 팬들을 비난했는데, 이유는 우리 팀 투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 다만 이 경기에서 1회 말이 끝났을 때 삼성은 '''7대1'''로 이기고 있었다! 직관 간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난 경기인데 예전에 삼성에서 뛰던 선수가 왔으니 반갑다고 박수나 쳐 준 것. 박석민이 이 경기에서 솔로홈런을 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거 한 방에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점수차였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홈런을 맞았음에도 기분 좋게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이날 삼성 선발이었던 [[윤성환]]은 상대 타자가 자팀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두 번이나(한 번은 자신의 피홈런으로!) 받는 것을 마운드에서 지켜봐야 했다.] 꽤나 오랜 시간 이후 당시 삼성 스포츠단의 지원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정유라]] 지원으로 인한 지원금 축소 의혹으로 계약금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과 친정 팀에 대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 것으로 인해 재평가되고 있다. 혹자는 괜히 오버해서 안먹어도 될 욕을 먹었다고도 하는 편.
         크보 공인 [[자석|지철]]인 [[최정]]에게 은근히 묻혀서 그렇지 박석민도 그에 못지 않게 [[몸에 맞는 공]]이 많은 편이다.~~펑퍼짐한 몸매 때문에 딱 맞기 좋은 체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리수 몸에 맞는 공을 꾸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마침내 ~~사구왕~~ 최정을 넘어 '''27개 몸에 맞는공(!)'''으로 신흥 사구왕에 등극했다!!! ~~이로써 23홈런 27사사구로 나름 [[20-20 클럽]] 가입?~~[* 사구왕 최정도 4년 연속 20사구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만 이정도로 독보적으로 몸에 맞지는 않았다.]
  • 박인태 . . . . 5회 일치
         * 2013년 제11회 FIBA U19 세계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2012년 제22회 FIBA 아시아 U-18 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 2012년 제2회 FIBA U17 세계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2011년 제2회 FIBA 아시아 U-16 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박진주 . . . . 5회 일치
         | 박
         | 《[[나의 유감스러운 자친구]]》
         | 《[[자친구 (드라마)|자친구]]》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학기 . . . . 5회 일치
         박학기는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2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렸을 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로 이사하여 학창시절을 보냈다. 1983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나오고 1988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3집에서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라는 곡으로 정식 가수 데뷔하였다. 이듬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로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를 주최하고 있다.
         * 6집 《겨진 너의 노래》[1998.10]
         [[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198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골든디스크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밀양 박씨]]
  • 박화요비 . . . . 5회 일치
         2013년 10월 31일, 성 솔로 가수 '신재'의 타이틀곡 '이 노래 듣고 니가 돌아왔으면'에 작사, 작곡, 코러스까지 참여하여 작곡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술할 '가창력 논란'과 더불어 예능 출연, 스타 화보 촬영은 '알앤비 디바'로서의 화요비의 이미지를 바꾸게 한 요인이 되었다며 아직까지 걱정을 하는 팬이 아있는 편이다. 정작 본인은 예능 출연이든 화보 촬영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에, 팬으로서 그녀의 다짐과 사상을 믿어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겼었다.
         이전의 예능 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자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 셈. 이후 [[언터쳐블(가수)|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 EP앨범 '반쪽' 활동 당시 [[카라(아이돌)|카라]]의 [[한승연]], [[다비치]]의 [[강민경]]과 함께 [[핑클]]의 '내 자친구에게'를 커버한 적이 있다. [[흠좀무]]. 포지션은 [[옥주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조합일 수 있는데, 그 당시 화요비는 20대였고 한승연과 강민경이 지금과 같은 위상이 아니었고, 당시 화요비는 우결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었으니, 그 중에 나름대로 가장 핫한 스타였다...]
  • 백낙청 . . . . 5회 일치
         친가는 [[평안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백붕제|'''백붕제''']]는 친일관료로 6.25 때 납북되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유학을 떠나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 장 :
         *** 차 :
         [[분류:193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브라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수원 백씨]]
  • 백승민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 [[대구도초등학교]]
         * [[영대학교]]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변정수(배우) . . . . 5회 일치
         || '''가족 관계''' ||<(> 여동생 [[변정민]], 편 유용운, 딸 유채원, 유정원 ||
         같은 대학의 복학생이었던 현재의 편과 연애결혼했으며, 꽤 일찍 결혼한 편이다.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결혼 후 결혼 사실을 업계에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촬영날에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을 스태프에게 들켜서 결혼 사실을 그냥 공개해 버렸다. 결혼 후에는 [[경기도]] [[광명시]] 오포읍 신현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부터 활동해 온 모델 출신으로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하며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연기력이 출중해서 현재는 드라마 연기자로 안착한 듯. 1~2년에 한 작품 정도 꼬박꼬박 출연한다. 목소리가 굉장히 허스키한데, 큰 키와 모델다운 날카로운 외모 등이 시너지를 일으켜 주로 맡는 역할은 서브여주, 악녀나 최종보스 계열. 다만 자 주인공의 주책바가지 누나 역에도 특화되어 있다. [[전설의 마녀]]의 경우 두 가지를 조합한 듯한 푼수 악녀 역할로 인기를 얻었다.
         배구선수 [[김연경]]이 데뷔 초창기에는 변정수 닮은꼴로 알려졌다. ~~김연경 = 변정수 = [[이상은(가수)|이상은]]~~[* 세 사람 모두 [[장신]]이다. 그런데 워낙 김연경이 사벽급 장신이라....]
          * MBC [[위기의 자]](2002) - 윤나미
  • 블랙 클로버/103화 . . . . 5회 일치
          * 거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일행과 동떨어진 아스타. 투덜거리며 돌아오는데 야외 테이블 근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테이블에 대단한 미인이 홀로 있었기 때문이다. 자들이 그녀를 힐끔거리며 말을 걸어볼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둔감한 아스타도 대단한 미인이라고 생각하며 [[핀랄 룰러케이트]]의 취향이라고 중얼거린다.
          미인이 혼자 있으면 불청객이 찾아오는 법. 버밀튼 가문의 바르만 작이란 자가 나타나 수작을 건다. 취한채로 나타난 바르만 작은 제멋대로 "오늘밤 상대는 그대로 정했다며" 미인에게 추근거린다. 미인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꽂꽂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무시에 더 흥분한 바르만 작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팔을 잡아챈다.
          * 아스타는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막 뛰어나가려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가시덩쿨이 바르만 작과 수하들을 휘감아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 빗치 . . . . 5회 일치
         페미니즘 문화에서는 bitch를 재정의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서는 bitch라고 불리는 여성은 성에게 순종적이지 않으며 그 때문에 성에게 반발을 사지만, 그러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으로 정의한다.
          * 성욕이 강하다. 여러 자와 육체 관계를 가진다.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 쾌락과 금전을 요구하고 자와 육체관계를 가진다. 혹은 그런 분위기가 있다.
         일부에서는 그냥 ‘처녀가 아니다’, ‘자에게 약간 어필을 한다’는 것 만으로 빗치라고 부르는 극단적인 경우도 보인다.
  • 샬롯 링링 . . . . 5회 일치
         분노한 샬롯을 달래기 위해 [[타마고 작]] 이 제안한 거래도 거절하고[* [[유스타스 키드]]가 빅 맘 해적단의 산하 해적선 2척을 박살내 버리는 바람에 손해가 막대하여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루피 일행이 가진 보물을 전부 넘겨주는 대신에 사탕 공급은 2주 기다리자고 한 것. 허나 '''"원하는걸 타협하는 해적이 어딨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파파구는 빅 맘이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으나 딱히 나쁘지않은 거래를 거절한 건 상대방의 뜻대로 되는 거래를 샬롯 링링이 싫어하기 때문인 듯.] 결국 수틀린 [[몽키 D 루피]]에게 어인섬의 지배권을 놓고 도전을 받았다.[* 루피 曰 '''"너는 이 섬을 지배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원문은「危なっかしい」단순히 위험하다는 뜻 보다는 위태스럽다거나 아슬아슬하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로, 단순히 샬롯 링링이 위험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너같이 기분따라 섬 하나 작살낸다 만다 하는 인간한테 맡겨두자니 안심이 안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의외로 부하들과의 관계가 훈훈하다. [[타마고 작]], [[페콤즈]], 그리고 [[보빈]]이 샬롯을 부를 때 '''"마마"'''라고 부르는 걸 보면... [[흰 수염 해적단]]이 [[흰 수염]]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른다면 이쪽은 샬롯이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느낌?[* 물론 빅 맘의 분노를 두려워하며 타마고 작과 페콤즈가 서로 빅 맘이 건 전보벌레를 받는 걸 미루어 볼 때 흰 수염처럼 친숙하다고 보긴 힘들다.]
         여담이지만 [[스릴러 바크]]편에서 등장했던 [로라(원피스)|로라]의 어머니라는 추측이 있다. 입모양이라든가 사이즈를 볼 때 그럴 듯 하긴 하다. 거기다가 로라라고 하는 이름은 영어로 샬롯의 애칭이다. 무언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진짜 로라의 엄마라고 해도 어인섬에서 빅 맘의 성질을 이미 하도 긁어놓아 버린지라... 정말로 로라와 무슨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한바탕 하고 난 다음에야 언급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빅맘 曰 : 로라의 친구? 그렇다면 싸울 이유가 없지! 오늘은 잔치다! 이런 전개는 없다.~~ 로라나 그 부하들이 페콤즈, 타마고 작, 보빈처럼 마마(ママ)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로라가 빅 맘의 친딸이라는 뜻이 아니라 과거 빅 맘 해적단의 일원이었을 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근데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닮았다.~~ ~~아빠는 도대체 누구냐 그럼~~
         그리고 730화에서 [wiki:"망했어요" '''드레스로자에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루피 해적단 멘붕~~ ~~칠무해에 해군 대장에 사황이라니~~[* 배가 거의 웬만한 해왕류 만한 크기로 아일랜드 고래의 1/2~ 1/3 정도의 엄청난 크기이다. 게다가 배의 선수상이 말을 하고 있다. 위의 생명 부여 능력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 게다가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써니 호에 아있던 사람은 상디(부상 입은 상태), 나미[* 로라의 비브르 카드를 가지고 있다.위의 로라의 엄마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 부분]쵸파, 브룩, 모모노스케, 그리고 인질인 시저 뿐. 일당의 총 전력 중 절반 이상을 섬에다 두고 와 버린 최악의 상황인 판이다.
  • 송하윤 . . . . 5회 일치
         ||<#CC9966> {{{#ffffff '''출생'''}}} ||<(> [[1986년]] [[12월 2일]] ([age(1986-12-02)]세), [[경상도]] [[해군]] 칠성면 (칠성로) ||
         || [[2006년]] || [[MBC]] || [[베스트극장]] - 그 자의 질투 || 사라 || ||
         || [[2010년]] || [[팀]] || 자답지 못한 말 ||
         [[분류:해군 출신]]
  • 송호창 (1967년) . . . . 5회 일치
         * [[2013년]] 《[[경주 (영화)|경주]]》 ... 술상 일행1 역
         * [[2015년]] 《[[과 여 (2016년 영화)|과 여]]》 ... 부산 브랜치 회의 참석자 역
         * [[2016년]] 《[[춘몽 (2016년 영화)|춘몽]]》 ... 동물원 자 역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7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친문]][[분류:문재인]][[분류:박원순]][[분류:안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196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산 송씨]]
  • 수애 . . . . 5회 일치
         영화에서는 2004년 영화 《[[가족 (2004년 영화)|가족]]》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였고, 2008년 영화 《[[님은 먼 곳에 (영화)|님은 먼 곳에]]》에서 [[베트 전쟁]]에 파병 간 편([[엄태웅]] 분)을 찾으러 간 순이 역을 연기하여 대종상, 영평상, 부일영화상, 황금촬영상 여우주연상을, 2010년 작품 [[심야의 FM]]으로 청룡영화상, 대한민국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우리집에 사는 자]]》
         | 《[[우리집에 사는 자]]》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자]]
  • 식극의 소마/211화 . . . . 5회 일치
          * 흑발여성은 일등 집행관이자 삼인 중 리더 "안", 백인 성은 이등 집행관 "샤름", 흑인 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
          * 이부사키는 그들이 틀림없이 WGO 집행관이라고 단언한다. WGO란 "월드 그루메 오가니제이션"의 약자. 세계의 모든 맛집에 별 세개로 평가를 기며 1년에 한 번 이 결과를 모아서 책으로 엮는다. 이들에게 별 하나라도 받는 것은 요리사로서 대단한 영광이며 반대로 별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아무리 장사가 잘 되던 가게라도 망하고 없어진다. 요리사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조직이 이들 WGO인 것이다.
          우측의 여성이 일등 집행관 "안". 일행의 리더다. 가운데의 백인 성이 이등 집행관 "샤름". 좌측의 흑인 성은 이등 집행관 "이스트와르"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5회 일치
          * [[나키리 아리스]]는 이제서야 "뭔지 알겠다"고 하는데 막상 이야기를 꺼내보니 "외견에서 소바란 느낌이 안 든다"같은 한 박자 늦은 감상이다. 어쨋든 동료들의 주된 의견은 철냄비로 볶아버린 소바엔 메밀 특유의 풍미가 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그런데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는 조금 의견이 다른 것 같다. 동료들과 다른 표정으로 소마의 시식을 지켜본다. 그리고 [[잇시키 사토시]] 또한 소마에게 "그게 네 대답이구나"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한다. 소마도 알아들은 건지 "네. 잘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옆에서 보는 네네는 뜻모를 대화다.
          * 자신의 상식을 뒤집은 평이 나오자 네네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소마의 조리대에서 답을 찾아나선다. 그녀는 곧 은 소바를 살펴보고 소마가 "3번 가루"로 소바를 만들었음을 간파한다. 아리나처럼 일식 문외한들은 잘 모르는 표현. 안이 부연설명에 들어간다.
          소바가루는 메밀을 갈 때 어느 부위를 쓰냐에 따라 1번부터 3번까지 번호로 구분한다. 밀가루가 밀의 종류나 가는 방식에 따라 소맥분이나 강력분 등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1번 가루는 메밀을 갈 때 가장 처음 나오는 가루다. 배젖 중심 부분에 해당하며 이것으로 만든 소바는 목넘김이 좋고 기품있는 풍미를 낸다. 2번은 메밀을 좀 더 갈아서 배젖의 주변 부분인 배아부까지 쓴 것. 향기와 식감의 밸런스가 좋다는 평가다. 3번은 2번까지 갈아내고 은 외피 부분을 갈아 쓰는 것인데, 목넘김은 거칠지만 굉장히 풍미가 강렬한 가루가 나온다.
          네네의 소바는 당연히 1번을 써서 만든 것으로 기적적으로 가벼운 식감과 목넘김을 자랑했다. 만약 소마가 같은 1번 가루를 썼다면 그가 선택한 조리법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3번 가루를 활용, 애초부터 향이 강하다는 이점을 살려서 강한 불에 구워도 향이 날아가지 않고 적절히 았다.
          소마는 어려서부터 컵라면 종류를 좋아했다. 그 자체로 기능성을 가진데다 여러가지 맛과 소재의 바리에이션도 탁월한 요리였다. 소마는 이걸 다른 요리에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으로 기성 컵라면이나 컵 야키소바를 다양하게 어레인지하는 시도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컵 야키소바의 구성은 면, 기름, 조미료 혹은 양념이다. 소마에게 인상을 겼던 컵 야키소바 중에는 면 자체에 소스를 가미해서 맛을 강하게 한 것도 있었고, 기름을 별첨해서 구운 풍미를 내는 종류도 있었다. 또 소마는 나름대로 조리법을 바꾼다고 컵야키소바를 진짜로 구워보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그냥 야키소바"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참고가 됐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5회 일치
          * 심사위원들은 미마사카가 동료를 돕느라 자신의 조리에 소홀했을까 우려하는데 그의 상대 [[사이토 소메이]]는 을 거들면서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쿠가는 그것도 착착 준비하고 있었다. 그 검은 액체는 "필살 소스"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재료였다. 그 정체는 "훈제 간장". 발사믹 식초를 푹 졸여 맛과 향을 응축하고 흑초, 설탕, 분쇄한 녹차를 넣고 훈제 간장을 넣어 마무리. 훈제 얘기가 나오니 [[이부사키 슌]]도 말이 많아진다. 이부사키가 보니 미마사카가 줄곧 준비하고 있던건 바로 이 훈제 간장. 조리대에 철냄비와 훈제용 도구가 그대로 아 있다. 간장은 본래 부드러운 향을 내는 칩으로 훈연하면 부드러운 풍미를 강화할 수 있다. 물론 뒷맛에 는 여운도 한층 강화. 여기서부터는 향기의 스페셜리스트 [[하야마 아키라]]의 차례다. 그는 고기 뿐만 아니라 소스에도 훈제 향을 더해 먹었을 때 향기의 중층감을 극대화하는 것을 노린 조리법이라고 설명한다.
          >정말이지 불행한 자다. 하지만 자비는 멋모르는 행동.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순간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상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 십자군 전쟁 . . . . 5회 일치
         [[비잔티움 제국]]이 당시 [[룸 술탄국]]이 점유하고 있던 [[아나톨리아]]를 되찾기 위해 [[교황청]]에게 이탈리아의 노르만 용병대를 끌어들여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교황청의 영향력 증대를 위해서 서유럽 영주들을 성지탈환이라는 명분으로 끌어들인 데서 시작된 전쟁.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상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노르만인들의 침략을 격퇴한 알렉시오스는 칼끝을 아나톨리아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룸 술탄국으로 돌렸고, 아나톨리아 서부해안가 일대를 되찾는등 어느정도 성과를 낸다. 한편으론, 룸술탄국의 완전한 축출을 위해 교황에게 이탈리아의 노르만인 용병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 아게만 . . . . 5회 일치
         [[일본]] 연예계에서 사용하는 [[은어]]로, '사귀는 [[자]]의 운을 올려주는(혹은 출세를 돕는) 여자'라는 뜻. 반대로 자의 운을 깎아먹는다고 생각되는 여자는 '사게만'(さげまん)이라고 한다.
         세간에선 주로 "자의 고민이나 부담감을 덜어주고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여자"라는 이미지로 인식한다.
         성의 경우에는 '아게친'(あげちん), 또는 '사게친'(さげちん)이라고 부른다.
         1990년에 개봉한 동명의 일본 영화가 존재한다. 여주인공인 게이샤 '나요코'를 중심으로 그녀와 관계한 성들의 출세와 몰락을 그린 내용.
  • 안효민 . . . . 5회 일치
         * [[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은밀한 밤의 오피스 ([[BOOKCUBE|북큐브]]) - 도일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성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
  • 애로우 . . . . 5회 일치
         초기에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복수자에 가까운 인물상을 보이지만, 점차 자신만의 정의감을 찾아가게 된다. 로럴, 사라, 팰리시티 등 연애전선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전처럼 난봉꾼은 아니지만 약간 썸만 타다보면 뿅뿅씬이 나와주는(…) 매력.
         올리버의 여동생. 올리버와 아버지가 실종된 뒤, 미성년이면서도 음주와 마약에 빠져서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으며 올리버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사고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나이트 클럽 경영을 시작하고, 점차 철들고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사실 올리버와는 씨다른 매로서 그 아버지는 무려 말콤 멀린(…). 3시즌에서 말콤에게 단련을 받게 되며, 올리버의 정체를 알게 되고, 팀에 들어오게 된다.
         티아 퀸의 자친구. 이러니 저러니 해서 올리버와 팀을 이루게 된다. 과묵한 편이며,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다. 티아의 잠자리 반응을 보면 정력도 출중한듯(…). 올리버와 같은 디자인에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악당들에게 플래시와 혼동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3시즌에서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 올리버를 대신해서 자신이 애로우라고 하면서 자수, 구치소에 갇혔다가 디글이 동료 인맥을 이용해서 죽음을 가장하여 빼낸다. 이로서 '애로우'는 사망한 것이 되고, 다음 시즌부터 올리버는 그린 애로우로서 활동하게 된다.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2시즌 최종보스. 과거 리안유에서 올리버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호주군 특수부대 대원, 그러나 리안유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올리버를 증오하게 되었으며, 구일본군이 개발한 슈퍼솔저 제조약물(…) '미라쿠루'를 맞아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미라쿠루를 용하여 대량의 용병들을 만들어 스타 시티를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 양시영 (1944년) . . . . 5회 일치
         * [[1970년]] [[영대학교]] 토목공학 학사
         * [[1982년]] [[영대학교|영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5회 일치
         그로부터 15년 후, 오시아 연방 샌드 섬 공군기지. 종군 기자 알베르 쥬넷은 훈련 교관의 기체에 동승해 조종사 훈련생들이 훈련받는걸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동쪽에서 국적 불명의 전투기가 습격. 쥬넷을 포함해 단 세명의 생존자만을 겨버린다.
          TAC 네임 하트브레이크 원. 계급은 대위로 샌드 섬 비행대의 훈련 교관이다. 국적불명기와의 전투에서 살아은 유일한 훈련 교관. 유크토바니아에 애인이 있다.
          TAC 네임 엣지. 국적불명기와의 습격에서 살아은 유일한 훈련생. 쥬넷은 그녀의 비행 실력에 감탄하지만 바틀렛은 그렇게 날다간 죽는다며 못마땅해한다.
          * 회색 자들(Grey Men)
          벨카 전쟁에서 승리한 오시아가 벨카로부터 뜯어낸 지역. 현지인들은 이 지역을 "벨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오영실 . . . . 5회 일치
         || '''가족''' ||<(> 석진 ||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오영실이 7살 때 [[베트 전쟁/한국군|베트 전쟁]]에서 전사하셨다.
          * [[자가 사랑할 때(드라마)]] - 최선애 역
  • 오은석 . . . . 5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펜싱]] [[사브르 (펜싱)|사브르]]}}
         {{금메달|[[2012년 하계 올림픽|2012 런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자 사브르 단체전|단체 사브르]]}}
         {{올림픽 펜싱 자 단체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펜싱 선수]][[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오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원피스/842화 . . . . 5회 일치
          * 루피의 위장은 한계에 당했고 큰소리 친것과 달리 슬슬 포기하려고 하지만 나미는 "루피야 말로 해적왕이 될 자"라며 식욕에도 끝이 없다고 부추긴다.
          * 크래커가 나미를 원망하는데 나미는 해적끼리 싸우는 판에 "약점이 들켰다고 의 병사를 탓하지 마라"라고 반박한다.
          * 나미는 "네가 사황의 간부 나부랭이라도 루피는 해적왕이 될 자이며 식욕도 무한대!" 라고 소리치며 또 비를 만들어 뿌린다.
          * 제프는 "자는 여자를 때려선 안 돼!"라고 일갈하며 이것은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내려오던 원칙이라 말한다.
         상디가 지금껏 기사도를 준수한건 다른 누구도 아닌 "제프"를 위한 것. 제프가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의리--
  • 원피스/847화 . . . . 5회 일치
          * 한편 [[상디]]는 그저 일행이 무사하기만을 빌고 [[페드로]]와 [[브룩]]은 [[타마고 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 [[몽키 D. 루피]]와 [[나미]]는 몬도르의 책 속에 갇혀 있다. 이곳은 "죄수 도서실". 몬도르의 능력을 이용한 감옥이다. 컬랙션용과 달리 책의 페이지는 감옥처럼 되어 있고 그 안에 루피와 나미가 잡혀있다. 그들을 잡아온 빅맘의 군단이 페이지를 넘겨 샬롯가 장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루피와 나미를 보여준다. 나미는 비교적 기운이 넘쳐서 물엿비에 젖어서 끈적거리니 샤워실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페로스페로는 나미가 마음에 들었는지 추파를 던진다.
          그때 빅맘의 전보벌레가 도착한다. 빅맘이 전보벌레를 통해 인사하자 조용하던 루피가 격분한다. 빅맘은 기개가 제법 았다고 웃으며 일당이 전부 오지 않았길래 어인섬에서 한 약속을 잊은 줄 알았다고 빈정댄다. 루피는 언젠가는 날려주겠다며, 오늘은 단지 상디를 데리러 왔을 뿐이라 대꾸한다.
          * 한편 성안에선 침입자를 발견하고 소란이 일어난다. 경비병들이 "호랑이" 밍크족을 발견했다며 타마고 작에게 보고한다. 타마고 작은 "재규어"라고 정정해주며 예상대로 페드로가 왔다고 경계한다.
  • 원피스/863화 . . . . 5회 일치
          * 징베가 빅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서인데, "해적왕이 될 자의 선원이 '''사황따위'''에게 떨리가 있냐"고 호기롭게 외친다.
          * 곧이어 나미, 캐럿, 쵸파도 회장으로 돌입. 시저는 그대로 아있는데 나미는 그에게 "뒷정리를 부탁해 인간쓰레기"라며 빈정 상하는 소릴 한다. 캐럿이 그 말을 듣고 그렇게 글러먹은 사람이냐고 놀라자 쵸파가 나미에게 맞장구치며 "저 자식은 최악"이라고 매도한다. 시저는 딱히 반박할 기회도 없이 그저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나미 일행도 미러 월드 바깥으로 나간다.
          * 루피는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도 용케 진짜 목적인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든 액자를 발견하고 노린다. 작전이 잘 굴러가자 벳지는 부하 괴총 비트와 고티에게 KX런처의 준비를 지시한다. 이미 둘은 준비를 마치고 언제든 뛰어나갈 태세다. 나미, 쵸파, 캐럿은 아직 케이크 내부에 아서 루피가 목표를 달성하면 3초 안에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미래의 "해적왕"의 동료가 된다는 말을 입에 올린 자가
         어린이날 특집 페이지는 루피가 투구를[* 일본의 어린이날은 자 어린이에게 투구를 씌워주는 풍습이 있다.] 쓰고서 "밀집모자 루피가 아니라 투구 루피라고 바꿀까?"라는 드립을 친다. 나미와 [[니코 로빈]]은 부르기 싫고 벌레같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데, 투구벌레를 좋아하는 루피랑 쵸파, [[우솝]]은 "그건 멋있으니 그만두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 유하나(1986) . . . . 5회 일치
         || '''가족''' || 배우자 대구지하철참사범 [[김대한]], 슬하 1(김도헌) 3녀(김선정) (박은형) (박은경) (박은혜) ||
         한국의 [[배우]] 겸 [[방송인]].데뷔 하기전 전라도의 장흥군에 살면서 교방 초등학교 6학년 까지 다니다가 연예인 데뷔를 목적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상경 하였다. 데뷔는 일찍 한 편이지만 당시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9년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오은지 역을 맡으면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쌓았다. 그 외 [[아시아나항공]]의 제7대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훗날 [[김대한]]-유하나 커플이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해당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두 사람이 만난 계기가 이용규가 모델로 서 있던 유하나의 포스터를 발견하고 연락처를 알게 될 때부터였다고 한다. 해당 방송에서 유하나는 [[펄녀]]가 다리를 놨다는 설을 부인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알리게 된 계기는 따로 있으니, 바로 대구지하철참사범 [[김대한]]와의 [[결혼]].
         결혼 이후 가끔씩 이용규의 출전경기에 직관을 와서 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22일에는 경기 중계 카메라에 관중석에서의 모습이 잡혀서 주목을 받았는데, 연기자 출신답게(...) 이용규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른 표정 변화 때문에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2863433|#]]
         [[그실일|'''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2013년 11월 17일 이용규는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근데 한화 이글스는 수도권이 아니잖아-- 문젠 이 과정에서 과도한 언플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적이 결정된 후 이용규의 행보에 실망한 일부 팬들이 유하나의 블로그에 댓글로 불만을 토로해 잠시 블로그를 닫기도 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당시 댓글에 인신공격이나 욕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아기사진에도 욕설을 달았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와전된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용규와 관련해서 응원과 섭섭하단 글이 주였다. 이후 블로그를 닫은 것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공간에 편과 관련된 글이 더 많이 올라온 탓에 부담을 느껴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 전까지는 유하나가 팬들과 함께 단관을 추진하는 등 팬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2015년 7월 30일, 아들 딸과 함께 야구장에 갔다가 편 이용규의 사구 이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논란이 되었다.[[http://cfile1.uf.tistory.com/image/216B1C4F55BD6A6414B9FF|#]] [[박정수(투수)|상대 선수]]가 [[빈볼|고의적으로 사구를 던졌다]]는 뉘앙스가 문제가 되었고, 해당 글은 삭제되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공개된 곳에 ~~저격~~글을 올린 것은 경솔했다.'는 반응.
  • 윤철형 . . . . 5회 일치
         || '''가족''' ||[[부인]]과 슬하 1 1녀||
          * 2003년 : [[KBS 드라마 스페셜|드라마시티]] - 순결한 그녀 ... 박식 역(KBS2)
          * 2003년 : [[태양의 쪽]] ... 차승욱 역(SBS)
          * 2018년 : [[부잣집 아들]] ... 수환 역(MBC)
         [[분류:한국 배우]][[분류:정읍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출생]][[분류:1981년 데뷔]]
  • 은혼/631화 . . . . 5회 일치
          * 통신의 부활로 성사된 [[히라가 겐가이]]와 [[엔죠 황자]]의 기묘한 대담. 이들의 만은 주선한 셈이 된 야토족 용병부대의 통솔자 "노사"란 인물은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해가 뜰 때까지 나노머신 바이러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지구를 통채로 지운다. 이것은 겐가이 영감한테만이 아닌, 지상병력 전체에 대한 협박이기도 했다. 그는 곧 최대한 무전을 돌려 지상군 잔존세력에게 엔죠 황자의 의사를 전달한다.
          * 폐허가 된 에도. 그리고 어딘가에서, 모든 것을 야기한 자는 만족스럽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모든 것의 원흉, [[우츠로(은혼)|우츠로]].
          * 해방군 모선 내부에서 교전 중인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 그의 옆을 [[자작 제독]]과 [[무츠(은혼)|무츠]]가 지킨다. 일단은 쾌진격이나 엔죠 황자에겐 기껏 은 수단이 저따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웃음의 대상이다.
          그는 세계를 맡기기에 합당한 놈인지는 몰라도, 자기들보다 더 포기를 모르는 녀석이 아있다고 말한다.
          >아직 아 있는건 확실해.
  • 은혼/638화 . . . . 5회 일치
          * 우츠로가 당긴 방아쇠로 지구는 1초 뒤라도 사라질 판, [[사카타 긴토키]]는 "우주가 사라져도 잇자국이 을 만큼" 물어 뜯을 각오로 우츠로에게 달려든다.
          >당신들이 사라졌다는 증거따윈 무엇 하나 지 않을 테니까요.
          * 그리고 폭발을 뚫고 달려오는 [[사카타 긴토키]]. 증거따윈 지 않는다, 긴토키는 그따위 말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또렷하게 겨주마 우츠로.
          >우주가 사라져도 잇자국이 을 정도로!
  • 이경희 (1880년) . . . . 5회 일치
         [[1946년]] [[1월]] 다시 [[대구광역시장|대구부윤]]에 유임되었다. 그러나 [[미 군정]]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정책에 환멸을 느껴 [[1946년]] [[9월 4일]] 부지사, 대구부윤, 군정청 민정관 사직서를 제출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46년 [[9월 5일]] [[독립촉성중앙회]] 경북지부의 후신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상북도]]지부 위원장에 피선되고, [[대종교]] 사도본사 선범에 선임되고,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는 [[1949년]] [[7월 1일]] [[선경제신문사]] 제4대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 [[1947년]] 선경제신문사 대표이사
         * 처 : [[조훈]]([[1886년]] [[10월 29일]] - [[1938년]] [[1월 22일]])
         [[분류:1880년 태어]][[분류:1949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교육인]] <!-- 교육자 -->[[분류: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분류:신민회]]
  • 이계순 (1927년) . . . . 5회 일치
         '''이계순'''(李季順, [[1927년]] [[3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교육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1953년]] [[경중학교]] 영어교사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교수와 명예교수, 정무제2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정무제2장관 재직 중 ‘국·공립 연수기관에 여성관련 교과목’을 개설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를 다녔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421094 일본인들이 부러워한 조선인 석주명] 국민일보 2009.09.14</ref> 귀국 후 [[1953년]] [[부산]] [[경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다. 이후 부산연세실업학교 교수 등을 거쳐 [[1964년]] [[서울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과 교수가 되었다. [[1977년]]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 회장이 되어 여성단체 활동에 뛰어들었고 교수직과 병행하였다. [[1985년]]부터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을 맡았다. 1990년 3월부터 [[1991년]] [[12월]]까지 정무제2장관을 지냈다.
         * 편 : 조관현(曺觀鉉, 오양인터내셔날 회장)
         ** 2 1녀
         [[분류:192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여성주의자]][[분류: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정무제2장관]][[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기광 (법조인) . . . . 5회 일치
         |학력 = [[영대학교]] 법학 학사
         1955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와 [[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1986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에 임용되어 1987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1990년 [[대구지방법원]] 1996년 [[대구고등법원]] 199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1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08년 [[대구고등법원]]을 거쳐 2011년까지 재판장을 하였으며 2012년에는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되어 2015년 2월까지 보임하였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수석부장판사에 임명된 2012년 2월에 경상북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으며 2015년에는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1년동안 재판장을 하였다. 2016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2년동안 제18대 [[울산지방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제20대 울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였다. 울산지방법원장을 끝으로 30년이 넘는 공직자 생활을 마치면서 퇴임식에서 "아내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저를 뒷바라지하면서 삼매를 훌륭히 키워 준 제 아내, 무등 한 번 태워 주지 못했고, 손잡고 봄길 한 번 함께 걸어 보지못했다."며 아쉬워했다.<ref>로이슈 2018년 2월 12일자</ref>
         [[분류:1955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이시형 (1934년) . . . . 5회 일치
          | 별명 = 호(號)는 산(山南)
          | 자녀 = 슬하 1 1녀
         * 동정신과병원 의사
         *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는다(스테디셀러)
         [[분류:193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이현 (1983년) . . . . 5회 일치
         '''이현'''(李賢, [[1983년]] [[11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자]] [[가수]]이다.
         [[분류: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홍렬(코미디언) . . . . 5회 일치
         ||<#595959><:> {{{#FFFFFF ''' 가족 관계 ''' }}} ||<(> 1 2녀 중 둘째 ||
          * 이외 음악활동의 경우 '초콜렛'이라는 녀혼성 듀오에 거의 모든 곡을 제공한적도 있으나 그룹이 망해서 자선음반보다 더 잊혀졌다. [* [[작곡가]]가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검증 필요.]
          *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소사(小事)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로도 유명하다. 그냥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식으로 쓰는게 아니라 날짜를 정확히 쓰고 중요한 사건을 간단히 소회하는 형식으로 기록해 뒀다. 인터넷 초창기 이홍렬이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이러한 내용들이 겨져 있었다. 또한 이홍렬의 두 아들이 태어난 날에 신문 1면을 스크랩 해 놓은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화천군 출신 인물]][[분류:1954년 출생]][[분류:1979년 데뷔]][[분류:1대 100 역대 1인]]
  • 이효정(남배우) . . . . 5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1961년 출생]][[분류:1981년 데뷔]][[분류:곡성군 출신 인물]]
         || '''출생''' ||<(> [[1961년]] [[1월 7일]] ([age(1961-01-07)]세) [[전라도]] [[곡성군]] ||
          *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김익렬]] 역)[* 제주도 [[4.3사건]] 당시에 좌우파의 극단적인 갈등속에서 제주도 양민들을 지키려고 한 제주도 9연대장인 김익렬 중령의 역할을 인상깊게 소화하였다.주인공인 장하림(박상원)과 더불어 갈대밭을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명장면으로 아 있다.]
          * 2002년 SBS 오
          * 2011년 KBS [[공주의 자]] (신숙주 역)
  • 일곱개의 대죄/191화 . . . . 5회 일치
          * 하우저는 유언을 긴다고 중얼거리는데 멀린은 어떤 주문을 외워서 손가락으로 하우저의 이마를 툭 친다.
          * 그 앞에서 살생하는 자는 은 시간을 모두 빼앗기는 계금이다.
          * 그레이로드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김없이 실험관으로 빨려들어간다.
          * 여기에 각성이 유력한 아서왕, 요정왕으로서 강해진 여지가 은 할리퀸, 역시 자신의 정체를 깨달아야 하는 고우서 등 성기사 측에 강한 카드가 너무 많이 아있다.
  • 일곱개의 대죄/222화 . . . . 5회 일치
          *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에게 걸린 [[젤드리스]]의 저주를 풀기 위해 그 마력과 접촉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놀랍게도 그 마력을 통해 저주를 건 당사자와 연결된다. 젤드리스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는 듯 한데. 그는 엘리자베스를 자신을 형 [[멜리오다스]]를 괴롭히는 "저주받은 여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 뿐. 젤드리스는 "저주는 진짜였다"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얽혀있는 진실을 폭로한다. 성전 시대로부터 3천년 간, 엘리자베스가 몇 번이나 전생을 되풀이하며 멜리오다스와 이별과 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 이제 대죄는 온전한 성기사로서 임전태세를 갖췄다. 오랜만에 갑옷차림으로 모인 그들. 멜리오다스가 단장으로써 대원들을 소집해 작전 개요를 설명한다. 그들의 목적은 전날 설명한 대로 십계에 점령 당한 카멜롯의 해방과 인질 구출. 하지만 일이 쉽지 않을 거라며 멀린에게 부가설명을 부탁한다. 멀린은 카멜롯에 특수한 보호수단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한다. 직경 백 마일에 달하는 차원의 뒤틀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텔레포트도 앱솔루트 캔슬도 불가능해 접근이 몹시 어렵다. 반은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냐고 묻는데 당연한 말이다. 멀린은 리오네스 왕국으로부터 동으로 250마일 지점에 차원의 뒤틀림을 유발하는 발현지점이라 특정했다. 디안느와 할리퀸은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할리퀸은 막연히 이스탈보다 쪽이라는 것 정도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 멜리오다스가 그곳이 "성새도시 코란도"라고 알려준다. 몇 백년 전 대학살이 일어나 멸망한 폐도시다. 에스카노르가 "대학살"이란 말만 듣고 무서워 벌벌 떤다.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는 코란도 자체 보다는 "동쪽"이란 단어에 반응을 보인다. 그는 그 방향이라면 "거기"도 통과할 거라면서 조금 옆길로 샐 순 없겠냐고 건의한다. 어차피 하루이틀 거리도 아니니까.
          * 간만에 친구 곁을 떠난 헬브람은 그 여동생 엘레인의 집에 와있다. 엘레인은 오빠의 친구가 방문하자 별 일이라며 오빠를 부탁하지 않았냐 질책한다. 헬브람은 가끔씩은 괜찮지 않나며 그 말을 흘렸다. 그리고 엘레인에게 일곱 개의 대죄를 떠나보내도 괜찮냐고 화제를 바꿨다. 엘레인은 어차피 자신에게 은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헬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게 그 증거다. 지금 엘레인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 달리 말하면 그 어느 것도 아닌 존재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5회 일치
          * 마력이 담긴 작은 침이 하급 마신의 머리에 박혔다. 마신이 온순한 강아지처럼 그 말에 따랐다. 페리오는 자신을 받아든 자가 누군지 알았다. "아만드". 진짜 이름은 고서. 갑옷을 입고 돌아온 그가 하급 마신에게 다시 명령했다.
          하급 마신이 고서에게 뻗으려던 주먹이 모조리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마신은 페리오에게 한 것 이상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자신에게 퍼부었다. 쓰러지기 전까지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기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경악과 두려움 속에 지켜보는 사람들. 그러나 페리오의 친구인 메라는 이변을 일으킨 저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방금 전 고서의 명령을 받았던 하급 마신은 반쯘 죽은 채로 도망치고 있었다. 명령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녀석이다. 마신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중얼거리며 꼴사납게 기어다녔다. 그러다 덩치 큰 자와 부딪히는데 그는 마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마신이 다가온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그렇게해서 고서의 볼 일이 끝났다. 이제 진짜 목적지로 향할 시간이다. 페리오와 친구들은 고서가 떠나갈 때까지 한참이나 따라와 마중했다. 그들은 멀어지는 돼지의 모자정을 향해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었다. 고서는 옥상에서 그들의 배웅인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 어린 친구와 나눈 문답을 곱씹었다. 코서가 "친구에게 이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없는, 목숨이 걸린 고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페리오는 그 질문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적당한 대답을 해주었다.
  • 일곱개의 대죄/227화 . . . . 5회 일치
          * 간단하게 전세가 역전되자 메라스큐라는 하나 은 해골병이 원념을 집중시켜 최강의 해골병으로 만들려 하나 멜리오다스의 힘을 견디지 못해 폭발한다.
          * 마을 한 복판에 거대한 꽃이 피어났다. 꽃은 덩쿨을 뻗어 땅위를 활보하는 해골들을 하늘로 내던졌다. 잔 영창 샤스티폴의 제 4형태 "선 플라워". 할리퀸의 성장에 따라 그 힘과 규모도 무지막지해졌다. 그 크기는 이전과 비교를 거부했고 하늘로 쏘아대는 화력은 강화된 해골병이 잔해 조차 기지 못할 정도였다.
          다시 전세역전. 하지만 메라스큐라도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아직 해골병도, 수단도 아있다. 일곱 개의 대죄는 마지막 은 해골병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해골병이 강력한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굉장한 힘의 집적. 부서진 해골들의 원념이 살아은 해골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것이 메라스큐라의 회심의 카드. 부의 에너지를 하나로 응축한 최강의 사령이라면 과연 일곱 개의 대죄라도 무사할 수 있을까? 그녀는 멜리오다스의 안색이 좋지 않다며 빈정거렸다.
  • 임대윤 . . . . 5회 일치
         |학력 = [[영대학교]] 법학 학사<br/>[[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석사
         * 1977 ~ 1984 [[영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법학사)
         * 1984 ~ 1987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졸업, 외교학석사 (학위논문명 - 국제정치의 개입주의에 관한 일연구 : 미국의 베트전쟁 개입정책을 중심으로)
         [[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임혁주 . . . . 5회 일치
         | 형제자매 = 누이동생 3명, 동생 1명
         [[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5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
  • 장남석 . . . . 5회 일치
         |이름=장
         '''장석'''([[1983년]] [[4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타고난 골 감각을 보여주며, '장석'이라는 이름이 '[[수학의 정석]]'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득점의 정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8년]], [[이근호 (1985년)|이근호]], [[에니우 올리베이라 주니오르|에닝요]]와 함께 대구의 공격 축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4월 6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선 40초만에 골을 넣어 2008 시즌 최단시간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구FC 장석 '40초 번개골' 올시즌 최단시간 골|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4061658272233|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윤신욱|날짜=2008-04-06}}</ref>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장발 (화가) . . . . 5회 일치
          | 별칭 = [[아명|초명]](初名)은 '''장지완'''('''張志完''') <br/> [[호 (이름)|아호]](雅號)는 우석(雨石)·우당(宇堂)·누수(樓樹, <small>루수</small>)·산(山南) <br/> [[영어|영문]] 이름은 '''토머스 챙'''('''Thomas Chang''')
          | 자녀 = 슬하 7 1녀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분류:1901년 태어]][[분류:200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
  • 장서희(1972) . . . . 5회 일치
         바로 2002년 여름에 방영되기로 예정된 《[[인어 아가씨]]》의 '''주인공'''으로 추천되었던 것이다. 《[[온달왕자들]]》에서 [[임성한]] 작가가 장서희가 마음에 들어 차기작 주연을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 후반에 타임워프가 나오니 여배우들은 그 때에 맞춰 헤어 스타일을 바꾸라는 [[임성한]] 작가의 요구에 장서희가 유일하게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를 서브도 아닌 주인공으로 쓰는 것을 MBC에서 찬성할 리가 없었고, 결국 MBC와 임성한의 신경전 끝에 '''“장서희 아니면 드라마를 갈아엎겠다”'''고 임성한이 엄포를 하고 나서야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MBC 고위층들은 첫방 전까지 《인어 아가씨》를 냉대했고, 자 주인공도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아 신인을 찾아야 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작품운을 [[인어 아가씨|양대]] [[아내의 유혹|대표작]]에 몰빵했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으나, 최근 《[[언니는 살아있다!]]》가 여러가지 의미로 대박이 나서 작품운이 쇠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SBS]] [[주말 드라마]] 중 전작 《[[우리 갑순이]]》와 더불어, '''근 5년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SBS에겐 가뭄의 단비같은 작품인 셈. --참고로 전작의 [[문영|작가님]]도 [[막장 드라마]]론 한 끗 날리신 분이다(...)--]~~근데 이것도 막장 드라마~~
          * 막장 드라마 3대장 중 임성한, 김순옥 작가와 이미 작업했으므로, [[문영]] 작가와 작업한다면 '''막장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장서희와 문영의 만은 드라마 커뮤니티에서 종종 등장하는 떡밥이다. 만약 그 합작품이 복수극이라면?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된다면? --진정한 그랜드슬램(...)--.
  • 장우혁 . . . . 5회 일치
         장우혁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그룹 [[H.O.T.]]의 맴버로써 활동하다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2005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댄스계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춤꾼으로 각광받던 그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탈피, 강한 자로의 변신을 꾀한 솔로 1집 《No More Drama》은 '''''지지 않는 태양''''', '''''Flip Reverse''''', '''''Red Sun'''''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홀로서기라는 평가를 얻어냈다.2018년 2월 15일 hot완전체가 재결합을 했다.
         * [[2016년]] [[tvN]] 월화드라마 《[[혼술녀]]》
         [[분류:H.O.T.의 일원]][[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태어]][[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자 래퍼]][[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5회 일치
         1994년 은행원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이혼]]하였고, 그 후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15살 연상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상훈과 [[재혼]]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2976972 미스코리아 장윤정 15년만 영화 '트릭' 으로복귀] 세계일보. 2015년 12월 17일</ref> 장윤정은 2016년 9월 27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는 편이 미국에 가자고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살다보니까 10년 정도 거주를 하게 됐다"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이 자가 언제까지 나한테 못되게 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으로 오기로 결혼을 했다”라며 무뚝뚝한 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891291 미스코리아 장윤정 “15살 연상 편 김상훈, 나한테 무심해 매력 느꼈다”] 서울경제. 2016년 09월 28일</ref>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7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진]][[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
  • 재호 (배우) . . . . 5회 일치
         《매일개서모도흔우상》에서는 다큐멘터리 촬영 차 중국에 왔다가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의 인기 배우 역할을 맡았고, 직접 중국어 연기까지 소화하며 현지 스태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인간대포》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을 매력적인 자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군’ 재호, 대륙이 먼저 알아본 라이징★|url=http://sports.donga.com/3/all/20180329/89357445/1|날짜=2018-03-29|뉴스=스포츠동아}}</ref>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
  • 전장운 . . . . 5회 일치
         [[1839년]]에 그는 [[체포]]되었지만, 그의 신앙의 깊이가 충분히 깊지 않았기 때문에, 극심한 [[고문]]과 [[박해]]는 그를 배교케 만들었고, 그는 [[석방]]되었다. [[1839년]]의 [[기해박해]] 이후에, 그는 어머니의 격려로 자신의 배교를 뉘우쳤지만, [[고해성사|고해]]를 받아줄 [[사제]]는 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전장운은 속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845년]]에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으로 귀국하자, 종삼은 [[고해성사]]를 받았고 동료 교우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는 매우 충실한 [[천주교]]신자로 살았다.
         새로이 [[박해]]가 시작되자, [[인쇄소]]의 주인 [[임치화]]는 도피하였지만, 전장운은 그곳에 아서 [[목판 인쇄|목판]]들을 지키려 하였다. 그는 "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이 [[목판 인쇄|목판]]들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도망치기를 재촉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1866년]] [[3월 1일]]에 포졸들이 그 [[인쇄소]]를 급습하여, 전장운은 [[체포]]되었고, [[목판 인쇄|목판]]들은 몰수되었다. 그는 극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예수]]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그는 [[포도청]]에서 1회의 [[심문]]을 받은 후, [[의금부]]에서 9회의 [[심문]]과 2회의 형문을 받고 [[장형]] 32 대를 맞았고, [[1866년]]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어, [[3월 9일]] [[사형]]을 선고받아 그날에 [[서소문]] 밖에서 [[최형]]과 함께 [[참수]]되었다. 그는 사형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목]]을 자르는 [[망나니]]가 과거에 자신과 면식이 있는 전(前) 천주교우였음을 알아보았다. [[망나니]]는 전장운의 [[목]]을 자르기를 주저했는데, 종삼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왕|임금님]]을 따르십시오. 저는 [[하느님]]을 따르겠습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전장운은 [[참수]]되었고, 사흘 후에 [[장례]]가 치루어졌다. 그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순교]]했들 때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분류:1811년 태어]][[분류:1866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전혜빈 . . . . 5회 일치
         || '''학력''' ||<(> [[고창초등학교]][br][[고창고등학교]] 연극영화학[br][[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 ||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순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 [[결혼 못하는 자]] || 화란 || ||
         || [[마녀유희]] || 승미 || ||
          *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in 극 (2018~ ,[[SBS]])
  • 정규수(배우) . . . . 5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도]] [[무안군]]
         * [[2010년]] [[SBS]] 드라마스페셜 《[[검사 프린세스]]》 ... 신정
         * [[1994년]] 《[[49일의 자]]》
         * [[2010년]] 《[[퀴즈왕]]》 ... 자 역
         [[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197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무안군 출신 인물]]
  • 정기성 . . . . 5회 일치
         * [[1997년]] MBC 신인탤런트 선발대회 자대상
         [[분류:197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명재 . . . . 5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희극인]][[분류:1979년 데뷔]][[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동고등학교 동문]]
  • 정명환 . . . . 5회 일치
         * 1995년 SBS 《[[코리아게이트 (드라마)|코리아게이트]]》 ... 효주 역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1980년 데뷔]][[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정미남 . . . . 5회 일치
         | 이름 = 정미
         '''정미'''([[1974년]] [[1월 22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2005년 《부라보 김순봉》(단편) ... 버스 안 자 역
         * 2011년 《[[오싹한 연애]]》 ... 맞선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
  • 정재용(1973) . . . . 5회 일치
         || '''가족''' ||<(> [[어머니]][* [[아버지]]는 14년간 [[중풍]]으로 인해 오랜 투병생활을 해오다가 향년 86세인 [[2012년]]에 세상을 떠났다.], 1 1녀 중 막내 ||
         [[대한민국]] [[강원도]] [[속초시]] 에서 1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 나이가 47세, [[어머니]] 나이가 38세로 [[늦둥이]]였다.[* 당시로선 굉장히 늦은 나이다.] 한동안 [[나이트클럽]]에서 [[DJ]]로 활동하다가 [[1995년]], [[DJ DOC]]의 새 멤버로 합류했다.
         [[분류:힙합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한국 배우]][[분류:한국 가수]][[분류:1973년 출생]][[분류:1995년 데뷔]][[분류:속초시 출신 인물]][[분류:1대 100 역대 1인]]
  • 정정아 . . . . 5회 일치
         |형제자매= 언니 1명, 동생 2명
         * 2017년 [[웹드라마]] <[[달빛녀]]> - 토스트 이모 역
         * 2007년~2012년 [[KBS]] <[[산너머 촌에는]]> - 우정미 역
         * 2013년 <미운 자> - 과학교사이자 아내 역
         [[분류:197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세종대학교 대학원 동문]]
  • 정진(1941) . . . . 5회 일치
         [[분류:1941년 태어]][[분류:201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정치공학 . . . . 5회 일치
          * 정치학의 분야로서 정치공학은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제정 또는 제도도입 등에 공학이론을 접목시킨 것이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상천 영대학교 총장)]]
         이에 대해서는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던 주관중(朱冠中) 교수가 1960년대 후반 '정치공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냈는데, 이 책이 청와대에서 모두 회수하고 박정희 정권은 주관중 교수를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그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공학적 수완'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31758521&code=990326#csidxb914cb4e3f87ea0a4d75944b31219dc (참조)]]
         정치공학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여, 공학전공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상천 영대학교 총장)]][[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2114015&code=990304&med_id=khan&rccode=lvRc (홍영진 동명대 교수·전기공학과)]]
          * 특히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하여, [[영]], [[호]], [[충청도]]의 표를 이리저리 떼었다가 붙였다 하면서 세력 재편을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정치공학으로 여겨진다.
  • 조긍하 . . . . 5회 일치
          | 자녀 = 슬하 5 3녀 <br /> 장 조동완(1945년 출생) <br /> 차 [[조동진]]([[싱어송라이터]]) <br /> 4 [[조동익]]([[베이스 기타|베이시스트]] 겸 [[작곡가]]) <br> 3녀 [[조동희 (가수)|조동희]]([[싱어송라이터]])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1942년 데뷔]][[분류:투자가]][[분류:자유 연애]][[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구니타치 음악대학 동문]][[분류:1919년 태어]][[분류:1982년 죽음]][[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풍양 조씨]]
  • 조안(배우) . . . . 5회 일치
         ||<#996699> {{{#ffffff '''가족'''}}} ||<(> 부모님, 11녀 중 첫째 ||
         || [[OCN]] || 특수사건전담반 TEN2 || 예리 || ||
         ||<|2> [[2011년]] || [[OCN]] || [[특수사건전담반 TEN]] || 예리 || ||
         || [[2014년]] [[8월 11일]]~[[2014년]] [[9월 15일]] || [[MBC]] || 여행녀 || 출연자 || ||
         배우 [[박용우]], [[오만석]]과의 스캔들로 더 유명한 여배우이다. 예전에 11살 연상인 연기자 박용우와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박용우의 친구이자 연극배우인 오만석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사귀게 되었다. 초반엔 열애설 이후 부인하더니 [[http://v.media.daum.net/v/20100717010704467|동반 일본여행]]이 들키자 결국 [[http://v.media.daum.net/v/20100717192305019|인정했다]]. 누가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모양. 아직 박용우와 조안이 연인 사이였을 때 박용우가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여자친구와 드라마에 출연해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예인으로 절친한 친구였던 오만석을 뽑은 적이 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런데 오만석과도 결국 헤어졌다.[[http://v.media.daum.net/v/20120103110514616|기사]] --[[김건모]]가 부릅니다. [[잘못된 만]]--
  • 진격의 거인/89화 . . . . 5회 일치
          그녀는 본래 고아였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길거리의 거렁뱅이였는데 어느날 어떤 자가 그녀를 데려간다. 그는 어떤 교단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듯하며 그녀에게 "유미르"라는 이름을 주고 "시조 유미르"라고 숭배하도록 했다. 유미르는 처음에는 그저 먹을 것과 잠자리가 있기 때문에 그를 따랐지만 자신이 연기를 하는 것으로 모두가 행복해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조 유미르를 열심히 연기했다.
          그러나 파국은 오래가지 않아 찾아왔다. 유미르를 숭배하던 이들은 엘디아 복권파에 속한 종파였던 듯 하다. 그들은 마레 당국에 검거되었으며 그녀에게 "유미르" 역할을 맡겼던 자는 그녀에게 속았다며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악마로 몰린 상황에서도 유미르는 자신이 연기를 계속해야지만 모두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유미르"를 자칭했지만, 결국 누구도 살아을 수 없었다.
          * 리바이가 엘런 일행을 데려온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절을 지켜서 고개를 숙이지만 크리스타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의전은 필요없다며 평소처럼 대한다. 크리스타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며, 그저 자신을 편히 앉아 쪽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엘런 일행은 그녀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크리스타는 생각한 것보다 이들이 그모습 그대로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걸 엘런 일행은 말하지 못한다.
          >군사전용으로 길 것인가
  • 차영철 . . . . 5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국제식 사격|사격]]}}
         그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 사령부|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 출전한 전력이 있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 자 소구경 복사(현재는 자 50 미터 복사) 종목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이래 처음으로 사격부문의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자 사격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0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아시안 게임 사격 메달리스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사격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5회 일치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진실과 마주하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좀비가 득실거리는 서울시 한 복판에 겨진 생존자다. 이 이상…… 우울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토트넘이 죽기 전에, 아니 녀석이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다이너스티의 키는 구하지 못했고 나는 지쳐가고 있으며 은혜로운 햇볕이 얼마나 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햇볕. 해가 넘어가고 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녀석들이 벽 하나 사이로 득실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체험하게 되겠지. 그러고 싶지 않다.
         병이 나는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예상을 따라가는 일이 얼마나 되던가? 그 예상이란건 해열제나 소화제로 처리되는 병에 대한 것이고 이토록 격렬한 발열과 의식의 끈이 끊기는 상황을 상정한게 아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손발이 의 것 같고 신체 어느 것 하나 맘대로 움직이는게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우연히 그게 전멸한 도시 한 복판에서다. 이런 기막힌 상황이 있나!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우선은 뭔가 먹어야한다. 다행히 어제 먹고 은 죽이 있다. 상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주방으로 기어갔다. 아마 식탁위에 그대로 뒀을 것이다. 힘을 내서 다가가 보자…… 좋아. 그릇이 보이는 것 같아.
         토트넘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부인도. 십중팔구 그들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돌아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그게 어쨌다는 걸까? 그들은 이미 죽었다. 다시 죽은 것이다. 설사 내가 녀석들이 되고 나서도, 인사라도 주고 받을 대상은 아있지 않잖아…….
  • 채형석 . . . . 5회 일치
         |자녀 = 1 2녀
         1960년 서울에서 애경그룹 창업주 [[채몽인]](蔡夢印)과 [[장영신]]의 장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제주판관을 역임한 [[채구석]](蔡龜錫)이다.
         **** 장녀 : 채문선 - 미국 맨해튼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애경산업에서 근무했다.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장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전무와 2013년 결혼했다.
         **** 장 : 채정균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평강 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보스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최동수 (야구인) . . . . 5회 일치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영]]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 [[강중학교 (서울)|강중학교]]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강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최석민 . . . . 5회 일치
         | 작위 = [[조선귀족|작]]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작 작위와 포상금 형식의 [[은사공채]](恩賜公債) 2만 5천원을 받았다. 조선귀족 중 작 작위는 본래 전직 관료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칙임관 1등 이상의 현직에 재직 중인 것을 기준으로 이 작위를 수작했다. 최석민의 작위는 양자 [[최정원 (조선귀족)|최정원]]이 습작했다. [[1911년]] [[8월 29일]]에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매일신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분류:1858년 태어]][[분류:191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조선작]][[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최씨]]
  • 최윤철 . . . . 5회 일치
         * 강초등학교
         * 강중학교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강초등학교 동문]][[분류:강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군산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송원대학교 동문]]
  • 최정원(1981년 4월) . . . . 5회 일치
         || '''가족''' ||<(> 1 3녀 중 장녀^^(동생 최정민)^^ ||
         ||<|2> 2007년 || [[이장과 군수]] || 옥 || ||
         참고로 동생 최정민은 푸드스타일리스트로 방송에 출연하였다.[* 대표적으로 죽 쑤는 여자 죽지 않는 자에 출연하였다.] 또한 외모가 언니랑 상당히 닮았고 자매지간이 상당히 사이가 좋다. 또한 언니랑 함께 여행 프로인 Real Mate에 동반 출연하였다.
         [[최정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동명이인]]이 꽤 많다. 공통된 점은 모두 [[현재]]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 중 그룹 [[UN(가수)|UN]] 출신의 [[최정원(자배우)|최정원]]과는 이름뿐만 아니라 [[1981년]] 생으로 [[나이]]도 같고 [[생일]]도 비슷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 [[그녀의 신화]]에 출연할 당시 여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주인공으로 같이 호흡을 맞춘 상대가 그룹 UN의 다른 멤버인 [[김정훈]]이라는 것이며 [[마녀의 성]]에서도 잠깐이지만 김정훈과 같이 출연했단 거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5회 일치
         오스만에 대한 반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1451년 무라트 2세가 죽고 새로이 술탄으로 오른 이는 메흐메트 2세였다. 사실, 그는 1444년에 이미 즉위한바가 있으나 동쪽에서 카라만이 반란을 일으키고, 발칸에선 비잔티움의 사주를 받은 무라트의 동생 오르한이 폭동을 일으키고, 헝가리가 십자군을 선포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자 재상 할랄 파샤의 주도로 무라트 2세가 복위돼 퇴위되버린(..) 굴욕을 간직한 이였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유럽군주들은 그를 애송이취급하면서 무시해버렸고, 이때문에 오스만이 실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때도 느릿느릿 관망만 하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실제론 자기들 이권다툼이나 나라 내실다지기가 더중요했던게 크다. 바로옆에서 초거대세력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하던 제국을 무시한 이탈리아 중견국들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나 그는 로저 크롤리의 표현대로 '동방의 알렉산드로스'를 노린 이였고, 이는 말년의 나폴리 침공에서도 잘 드러나는 일면이다. 아무튼, 그의 두번째 즉위당시 아무도 그의 야망을 모르거나 무시했고, 이는 유럽군주들의 가장 큰 실수로 는다.
         사절의 요구를 들은 메흐메트는 생각해보겠다며 차갑게 대꾸한 이후, 보소포로스 해협의 가장 협소한 지역에 요새를 짓기 시작한다. 이소식을 들은 황제는 경악하면서 사절을 보내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려하지만, 술탄은 그들을 쫓아내는것으로 대답을 해줬다. 황제는 그 대응으로 도시내의 튀르크인들을 투옥하는걸로 맞대응했으나, 별 소용없는 행위였고, 결국 모두 풀어주었다. 그렇게 당대에 '보코하즈 케센', 그리고 현재는 '루멜리 히사르'라고 불리는 요새가 완공되었고, 이로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모든 함선들은 요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곳을 통해 무역을 하는 이탈리아 상업국가들에게 큰 위협을 줬는데, 단적인 예로 베네치아인 안토니오 리초가 이끄는 함선이 요새의 검문요구를 무시했다가 포격을 받고 침몰했고, 살아은 선원과 선장모두 사형을 당했다. [* 선장은 특별히 말뚝형에 처해졌다.] 더더욱 급해진 황제는 교회통합을 요청하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건 겨우 200명정도의 병력뿐이었다.[* 별 수 없는게, 당시 교황령의 군사력은 제국보다 별볼일 없었다.(....) 차라리 모레아 전제국이 훨씬 더 국력이 탄탄했을거다.] 하기야 소피야 성당에선 교회통합을 선언하는 미사가 열렸지만, 해당 미사는 황제와 그 일부 측근들, 일부 통합파 사제들과 교황청에서 온 주교들 일부만 왔을뿐이었다.
         그외에 도시안에도 예비대를 겨놨는데, 육지성벽 근처 루카스 노티라스 대공이 지휘하는 부대하나와 니케포로스 팔레올로고스가 지휘하는 중앙 산등성이 위에 자리한 부대가 그것이다.
         이에 맞서 튀르크군은 자가노스 파샤[* 그리스인 배교자로, 대표적인 주전파였다.]를 지휘관으로 한 부대를 금각만 근처에 배치했고, 보소포로스 해협건너 언덕에 병력을 산개시켜 페라의 제노바인들이 도시를 돕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성벽 맞은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금각만에서 언덕위에 카리시오스 문까지는 카라쟈 파샤를 지휘관으로 한 유럽 정규군들이 배치되었다. 이들은 중포도 상당수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포들은 블라케르나에 성벽에서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이어지는 귀퉁이 공격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리쿠스 계곡 쪽 경사면에서 마르마라 해안까지는 이샤크 파샤의 지휘하에 아나톨리아 정규군이 저라접었는데, 그는 황제의 신임을 받지못했기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그리스인 배교자 마무드 파샤가 지휘를 맡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앙겔로스가 출신이었다.] 술탄은 메소테이키온 성벽 맞은편 리쿠스 계곡에 자리잡았는데, 그의 앞에는 그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부대와 헝가리인 대포 기술자 우르반의 대포들이 있었다.[* 이 우르반이란 자는 본래 황제에게 고용된 자였는데, 황제가 그의 신작품들을 만들어줄 자금이 충분치 않다는걸 알자, 몰래 도시를 빠져나와 술탄에게 간 자였다.]
  • 킹덤/502화 . . . . 5회 일치
          *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 [[마자]]는 오르도의 진로를 확인하는데 오르도는 무슨 일인지 쪽의 중도시 "청가"를 향해 진군 중이라 한다. 이목과 마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부하들은 어리둥절한다. 이목은 청가엔 "사마상"이 있다며 반색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도 사마상의 이름도 잘 모른다. 한 사람이 "청가성 성주로 병이 있어서 은둔하고 있다. 죽었다는 소문도 있다"며 말하는데 이목은 그건 전부 거짓말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건강하며 그저 중앙에서 오는 명령을 무시하기 위해 그런 명분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자는 충격적인 말도 더한다.
          이때 이목 진영에는 낭보다 도착한다. 그 사마상이 마침내 청가에서 5천의 병력을 거병해 오르도를 요격하러 나선 것이다. 그 말만 듣고도 마자는 다 된 일이라며 "오르도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고 비꼰다. 이목은 그만큼 단정하진 않지만 호첩에게 보낼 이동 명령을 거둬들이고 기존 동쪽 방어선의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 사마상이 오르도를 막는다면 조박이 동군을 이끌어 연군을 밀어낼 거라 본다.
  • 킹덤/531화 . . . . 5회 일치
          * 목을 찔린 마광이 말 위에서 거꾸러졌다. 일이 무사히 끝나자 [[카이네]]가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달아날 일만 았다. 마광군은 최후미가 겨우 이변을 눈치채기 시작했으며 명확히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도 못했다. 탈출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마광에게 이변이 일어난다면 이목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마광이 쓰러지지 않았다. 초인적인 의지였다. 목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본 카이네의 안도감은 금방 위기감으로 바뀌었다.
          [[마자]]는 금모가 성을 낼 정도로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하지만 그는 금모에게 "그런 별동대가 아니다"며 면박을 주었다.
          마자는 그것을 "필살"이라 표현했다. 어느 시점부터 흉노는 이목이란 이름을 듣기만 해도 오줌을 지리더라고, 그렇게 증언했다. 이렇듯 마자는 절대적인 자신을 보였지만 카이네는 여전히 반대였다. 몇 번을 해봤든 큰 위험을 떠안는 것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자의 말이 맞았다. 이목은 안심하지 못하는 카이네의 의중을 정확히 읽었다. 그녀에게 상대가 "그런 수"를 쓴다는걸 모르는 이상 반드시 성공할 거라 장담했다.
  • 토리코/383화 . . . . 5회 일치
          * 그는 다시 일어서며 "어떤 자에게 감사를 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덕분에 찾아헤매던 "재료와 맛"에 도달했다고 한다.
          * 그리고 그 자는 언제나 과 나눌 줄 아는 자인데 바로 스타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그와 "나눠가진" 자라고 말한다.
          * 그 자는 바로 스타준의 동생 토리코.
          * 그말을 듣고 토리코가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데, 치치는 자신들은 어차피 식욕이며 언젠가 누군가의 식욕으로 부활할 거라는 말을 기고 뒤를 부탁한다.
  • 토리코/396화 . . . . 5회 일치
          * 우주는 흑(아버지), 백(어머니), 적(장), 녹(차), 청(막내)의 다섯가지 우주가 있으며 각각의 세포 색을 가지고 있다.
          * 이런 소식을 들은 토리코는 자기 내면에 은 두 악마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이 여러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선 "가장 끝의 땅"이라는, 미식의 원류와도 같은 곳을 알려준다. 미식의 신이라 부를 민족이 살던 곳으로 이곳에서 식욕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구루메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킨데 139억년 전의 "구르메 빅뱅"이다.
          이 가족들의 색이 각 우주의 색이 된 것으로 아버지가 흑, 어머니가 백, 장이 적, 차이 녹, 막내가 청색이다. 코마츠는 아카시아의 가족들가 닮았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아버지인 아카시아의 구르메 세포의 악마 네오는 "검정" 세포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플로제는 "백색"이었을 거라고 추론. 그런 코마츠의 말을 듣자 토리코도 그럼 이치류 회장은 적색이고 지로는 녹색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로에게 구르메 세포의 악마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추측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의 손자인 텟페이의 머리는 녹색인데, 그게 격세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미도라가 청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듯하다고 말하고 참고로 자신의 세 번째 악마는 백색이라고 첨언한다.
  • 페어리 테일/527화 . . . . 5회 일치
          * 오거스트의 의식은 몸이 재로 변하고 나서도 아 있었다. 그는 마지막 의식을 모아 유언을 전한다.
          페어리 테일의 길드원 대부분은 마을 방 쪽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적들도 얼마 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고 루시 일행과 접촉한 것은 어떤 물건 때문이었다. 그녀가 제레프에게 도망칠 때 가까스로 손에 넣은 물건이었다.
          >네가 가족이 없다면... 아주 조금 아있던 인연도 여기까지네.
          * 제레프는 나츠의 손을 뿌리치며 "조금이라도 그런게 아있었던 거냐"며 의외라고 빈정거린다. 이제 끝이 나가왔다. 나츠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대답한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5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회생한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또 살아아 버렸다 한탄한다.
          * [[제레프 드래그닐]]의 야망을 둘러싼 알바레스 제국과 피오레 왕국의 전쟁은 끝났다. 제레프가 [[메이비스 버밀리온]]와 함께 사라진 자리에는 그의 팬던트만 아있다.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와 [[안나 하트필리아]]의 희생으로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쳤다. 그러나 마룡을 시간의 틈새로 밀어넣기 위해 두 사람도 함께 휘말리고 말았다. 살아은 블루 페가수스의 길드원들과 [[엘자 스칼렛]], [[제라르 페르난데스]], [[웬디 마벨]]. 그들은 바다를 건너 작은 바위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마룡과 싸우며 만신창이가 됐던 제랄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엘자의 무릎에 누운 채로 또 살아았다고 한탄조로 말한다.
          >너한텐 아직 할 일이 아있으니까.
  • 피서영 . . . . 5회 일치
         '''피서영'''(皮瑞英, 1946년 ~ )은 [[보스턴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낸 수필가 [[피천득]](皮千得)이고, 편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이며, 아들은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이다.
         편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는 또한 매우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다. 양자장론에서 고전적인 대칭성이 양자효과에 의해서 깨진다는 소위 Adler-Bell-Jackiw anomaly를 최초로 발견한 학자이며, 고온에서 대칭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결과를 최초로 계산해 낸 학자이기도 하다.(finite temperature field theory)
         피서영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막내 딸로 수필 '서영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필 '서영이'에는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겼다.
         피서영의 편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이고, 아들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Stefan Pi Jackiw)이다.<ref>[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407215 스테판 피 재키브 "난 아이돌 아닌 바이올리니스트"], 《매일경제》, 2011년 6월 27일</ref><ref>[http://news.donga.com/3/all/20080522/8580956/1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축복이었습니다], 《동아일보》, 2008년 5월 22일</ref>
         [[분류:194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보스턴 대학교 교수]][[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동문]][[분류:홍천 피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석 . . . . 5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
  • 하재숙 . . . . 5회 일치
         [[분류:한국 여배우]][[분류:1979년 출생]][[분류:구(대구)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 '''출생''' ||[[1979년]] [[1월 7일]], [[대구광역시]] [[구(대구)|구]]||
         || '''가족''' ||1 2녀 중 차녀, 편||
  • 하태웅(가수) . . . . 5회 일치
         | 가족 = 3중 차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부안고등학교 동문]][[분류:원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부안군 출신 인물]]
  • 한병주 . . . . 5회 일치
          | 자녀 = 슬하 5 3녀
         '''한병주'''(韓秉柱, [[1879년]] ~ [[1950년]] [[7월 26일]])는 [[대한민국]]의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淸州). 호(號)는 산(山南).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심각한 긴장감이 도사리던 [[시흥시|경기도 시흥]]을 떠나 피난하면서 [[수원시|경기도 수원]]에 간이 거주하던 중 끝내 경기도 수원에서 부인(夫人)과 장(長男) 내외 일가, 차(次男) 내외 일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72세로 병사하였다.
         [[분류:1879년 태어]][[분류:1950년 죽음]][[분류:청주 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김구]][[분류:의친왕]][[분류:유교 신자]][[분류:한용운]][[분류:김좌진]][[분류:이범석 (1900년)]][[분류:한국독립당]][[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한석명 . . . . 5회 일치
         이때 여러 경찰서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한 것을 계기로,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얼마 뒤에는 경찰관으로 전직하였다. [[경상도]] [[창녕군]]과 [[부산부]] 등지를 거쳐 경 도경찰의 고등과 형사로 재직했다. [[1925년]]에는 경시로 승진하여 정치범이나 사상범을 다루는 직책인 경상도 보안과장에 임명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의 경시 부문과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경찰,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에는 장 [[한복 (1914년)|한복]]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분류:1890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20세기 한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통역관]][[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신자]][[분류:청주 한씨]]
  • 한성우 . . . . 5회 일치
         '''한성우'''([[1992년]] [[11월 19일]] - )는 [[대한민국]]의 [[발레]] [[무용수]]이다. 한국인 성 최초로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입상하였다.
         한성우는 동생(한진우)이 운동 삼아 발레를 배우게 되자, 곧 자신도 배우기를 희망하면서 발레를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발레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여 이듬해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드나들며 발레의 기초를 배웠다. 선화예술중학교 입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입학하였고, [[선화예술고등학교]]를 2년간 다니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 입학하였다.<ref>{{뉴스 인용
         * 2011년 제11회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자 솔로부문 금상
         * 2008년 아프리카 공화국 국제 발레콩쿠르 주니어부문 우승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발레 무용수]][[분류:선화예술중학교 동문]][[분류:선화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헤이즈 (가수) . . . . 5회 일치
         학과 내에서 1등을 하면 서울로의 상경을 허락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과 수석을 하게 된 그는<ref>{{뉴스 인용|제목=‘여자 도끼’ 헤이즈, 친오빠 재조명...“세상에서 제일 친한 자”|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65032&page=1|날짜=2017-06-27|뉴스=MBN 뉴스}}</ref> 대구에서 상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음원깡패★헤이즈, 하루에 알바 3건+종이가방 스타일링...털털4차원 인성甲|url=http://star.mk.co.kr/v2/view.php?sc=40900002&cm=%EC%97%B0%EC%98%88%20%EC%A2%85%ED%95%A9&year=2017&no=428641&relatedcode=|날짜=2017-06-27|뉴스=스타투데이}}</ref>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는 한 번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ref>{{뉴스 인용|제목='최파타' 챈슬러X헤이즈가 밝힌 음악열정·공개연애(종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6599|날짜=2016-11-29|뉴스=JTBC}}</ref> [[언프리티 랩스타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ref name="s" /> [[크루셜스타]]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헤이즈는 라디오방송에서 크루셜스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고 아직 잊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디오쇼' 헤이즈 전 친 언급, '이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91114132351596|날짜=2016-09-11|뉴스=아시아경제}}</ref> 헤이즈가 겪었던 이별의 경험은 그녀가 미니 앨범 《/// (너 먹구름 비)》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 2015년 1월 16일 - 《내 자친구가 고맙대》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CJ ENM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무학초등학교 (경) 동문]][[분류:마산제일여자중학교 동문]]
  • 홍광호 . . . . 5회 일치
         * 2015년 영국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어워즈(Whats On Stage Awards) – 뮤지컬 부문 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 in a Musical)
         * 2014년 영국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BWW UK Awards) – 새로운 프러덕션 뮤지컬 조연 자배우(Best Featured Actor in a New Production of a Musical)
         * 2018년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우주연상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계원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성유 . . . . 5회 일치
         '''홍성유'''(洪性裕, [[1928년]] [[10월 4일]] ~ [[2002년]] [[11월 24일]])는 [[대한민국]]의 [[소설|소설가]]이다. 본관은 [[양 홍씨|양]](南陽)이며, 호(號)는 백파(伯坡)이다.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분류:1928년 태어]][[분류:200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
         [[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한국독립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정일권]][[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양 홍씨 (당홍)]]
  • 황두진 . . . . 5회 일치
         * 2015 WON & WON 63.5(서울 강구 논현동)<ref>{{웹 인용|url=https://www.youtube.com/watch?v=Xy-8E2bHXqQ|제목=Doojin Hwang Architectsː Won & Won 63.5 Building|저자1=정다운|저자2=김종신|날짜=|웹사이트=|출판사=}}</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8949486 |뉴스=중앙일보|제목=강대로에 쌓은 벽돌 30만장, 유리 건물 사이에 느낌표를 찍다|저자=송정 기자|날짜=2015-10-28|출판사=|확인날짜=}}</ref>
         * 2008-2009 한강교량 보행자시설 (잠실대교, 한대교, 동작대교)<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00210/26065472/1 |뉴스=동아일보|제목=[나의 건축을 말한다]황두진의 '한강다리 카페들'|저자=손택균 기자|날짜=2010-02-10|출판사=|확인날짜=}}</ref>
         2018-현재 한국건축가협회 북교류위원장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
  • 황준국 . . . . 5회 일치
         |전임자 = [[임성 (외교관)|임성]]
         |전임자 = [[임성 (외교관)|임성]]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4회 일치
          * 발동 조건: "자르 국민투표" 디시전 발동 후 최소 180일이 지, 국가원수가 아돌프 히틀러, 평화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으로부터 최소 90일이 지,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금 1,000
          * 발동 조건: "제1차 뉴딜" 디시전 발동으로부터 최소 180일이 지, 국가 원수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금 1,000
          * 일본이 괴뢰국으로 베트국을 소유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4회 일치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상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영역을 먹든, 신롬 영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다만 위치상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반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확장방향은 우선은 노보고로드 정복미션을 얻어내서 노보고로드를 치고, 그 이후에 폴-리투 동군연합이 뜨면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후에 폴란드랑 사이가 안좋은 국가랑 동맹을 해둔뒤 폴란드를 치는것. [*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경우엔 리투아니아를 패면 된다.] [* 다만 중간중간 틈틈히 골든 호드(킵차크 칸국)과 카잔등을 패면서 진역시 해두어야 한다.] 이 경우엔 오스트리아랑 헝가리, 오스만정도가 물망에 오른다. 그이후 확장방향으론 스웨덴을 쳐서 북유럽쪽으로 확장하거나, 폴란드에게서 단치히등 프로이센지방을 뜯어내 발트해노드를 장악하는 방향, 그리고 오스만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뺏어 진짜 [[제3의 로마]]가 되는 방향(...)등이 있다.
         폴란드의 문제점은 외교다. 북쪽의 튜튼 기사단은 역사적 라이벌 보정이 있고 쪽의 오스만도 자주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하며 헝가리 역시 폴란드를 싫어하는 경우가 잦다. 동쪽의 모스크바 역시 폴란드의 숙명의 라이벌. 그러므로 확장방향을 잘잡아야 되는데, 우선은 보헤미아와 헝가리중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하지 않은 국가들중 하나와 동맹하고 빠른 속도로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 이벤트를 띄운뒤 튜튼 기사단을 공격하자. 꾸물대다 튜튼 기사단이 보헤미아와 헝가리중 하나랑 만이라도 동맹하면 이기기 힘들다.[* 전에는 튜튼 기사단이 보헤미아와 헝가리 둘다 동맹해두지 않는 이상은 폴-리투 성립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었지만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부턴 그게 매우 힘들다.] 그 이후론 최대한 빠르게 모스크바를 패가며 동진하자. 조금이라도 꾸물대다간 국가이념으로 물량+50퍼로 미친듯한 물량을 보여주는 모스크바를 보게 될것이다(...) 모스크바를 패가며 루스문화권지방을 평정했으면 유럽에서 적수는 없을것이다. 폴란드도 우주에 갈 수 있다는걸 보여주자.
  • 강기웅 . . . . 4회 일치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 [[영대학교]]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
         [[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강상재 . . . . 4회 일치
         * 2013년 제11회 FIBA U19 세계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 2012년 제22회 FIBA 아시아 U-18 자농구선수권대회 청소년대표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곡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농구 선수]][[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강세정 . . . . 4회 일치
         | 형제자매 = 1 1녀 중 막내
         |2017||KBS2||[[내 자의 비밀]]||기서라, 진여림||<ref>이 작품때부터 본명인 강세정으로 활동하고 있다.</ref>
         * 2004년 [[김현정 (가수)|김현정]] - B형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강재형 (아나운서) . . . . 4회 일치
         |자녀 = 슬하 1 1녀
         * [[2008년]] 《[[울학교 이티]]》 - 화제집중 자 아나운서 출연
         * [[2011년]] [[9월 30일]] : 《F1의 모든 것》, 《최고 속도에 도전하는 인간과 머신의 만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2년 태어]][[분류:1987년 데뷔]][[분류:영동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4화 . . . . 4회 일치
          * 타이헤이의 생일을 맞아 데이트를 하러 나온 도마
          * 우마루는 열심히 애교를 떨어 보는데 오히려 타이헤이는 떨떠름한 반응이다.--친매면 당연하지--
          * 즐겁게 하루를 만끽하는 도마
          * 타이헤이가 우마루의 애교에 정색하는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친매가 맞는 듯하다.--본격 내여귀 디스--
  • 계력 . . . . 4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태어나자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 태백(太伯)과 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 고수희 . . . . 4회 일치
         * [[2008년]] : 《[[그 자의 책 198쪽]]》 - 팽교수 역
         * [[2017년]] : [[채널A]] 《[[개밥 주는 자|개밥 주는 자 시즌 2]]》 - 특별출연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진대학교 동문]]
  • 광주 FC . . . . 4회 일치
          1. [[전 드래곤즈]]와 전라도청의 양해를 얻어 광주를 공동연고지로 하고, 경기장 사용권을 주는 방안
         일단 종합운동장으로 활용하는 건, 사용처를 바꾸기 위해 또 추가로 목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안건은 사실상 폐기가 되고, 프로축구단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가장 유력했던 방법은 경기장을 짓기 위해 당시 금호건설을 포함한 지역기업에 축구단 창단을 종용하는 일이었으나 이 역시 1년 운영비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게 되어 전 드래곤즈를 광주에 공동연고지로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까지도 최종적으로 좌절된다.
         광주는 지금까지 플레이오프나 상위스플릿, FA컵 결승 등, 상위권 성적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 전통적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팀이며 아예 2012시즌에는 K리그 참가 2년차에 강등이라는 불명예딱지도 붙었을 정도. 제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딱 하나 주목할 만한 성적을 보자면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2014시즌|초대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4시즌|두번째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드라마를 씀으로써 시민구단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2015시즌에는 승격하자마자 강등당했던 2014시즌의 상주 상무와는 달리, 승격팀이 강등당하지 않는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줌으로써 챌린지에 있는 팀들도 충분히 클래식에서 살아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권민중 . . . . 4회 일치
         || '''학력''' || [[한강초등학교]][br][[충주북여자중학교]][br][[충주예성여자고등학교]][br][[청주대학교]] 무용학과 ||
         ||<|4> 1999년 || [[MBC]] [[베스트극장]] - 아빠 애인의 자친구 || || ||
         ||<|3> 2001년 || MBC || [[가을에 만난 자]] || 미나 || ||
          * [[2001년]] [[SBS]] 희석의 색다른 밤
  • 권재진 . . . . 4회 일치
         * [[1983년]]~[[1986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지청 검사
         * [[2003년]]~[[2004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지청 지청장
         |전임자 = [[이귀]]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안동 권씨]][[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LS그룹]]
  • 김기섭 (1939년) . . . . 4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아산업]]에서 근무하다가 삼성계열사로 이직, [[신라호텔]]과 삼성전관 등에서 이사, 상무, 전무 등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김영삼]] [[민주자유당]]의 총재특보로 발탁되었으며, 대선 당시 총재특보와 이미지메이킹 등을 담당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후 [[안기부]]의 기조실장과 운영차장을 역임했다.
         * 주식회사 [[아산업]] 공장장
         * 1 1녀
         [[분류:193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영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영삼]][[분류:김영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상엽 (야구인) . . . . 4회 일치
         * [[영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2년 ~ 2010년)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영대학교]] [[권영호]] 감독의 제안으로 [[영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투수]]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77 오릭스 김상엽 코치 “박찬호야말로 진정한 위너다”] - 이영미 칼럼</ref>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김상훈 (1963년) . . . . 4회 일치
         |학력 = [[영대학교]] 법학 학사<br />[[오리건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90년 : [[영대학교]] 법학과 졸업
         [[분류:1963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선영(1976) . . . . 4회 일치
          * [[미쓰백]] (2018) - 장후
          * [[욱씨정기]] (2016, JTBC) - 한영미
          * 연극열전3 - 경 창녕군 길곡면 (2010)
          * 편인 이승원은 영화감독이다.
  • 김승환(배우) . . . . 4회 일치
         ||<bgcolor=#BFFF00> '''출신지''' || [[경기도]] [[양주시]] ||
         ||<|2> [[2004년]] || EBS 어린이드라마 [[네 손톱 끝에 빛이 아 있어]] || 어른 주민 ||
         [[분류:한국 배우]][[분류:양주시 출신 인물]][[분류:1964년 출생]][[분류:1985년 데뷔]]
  • 김양 (1953년) . . . . 4회 일치
          | 친인척 = [[백범 김구|김구]](친조부) <br/> [[임학준|임학규]](외조부) <br/> [[김진 (1949년)|김진]](형) <br/> 김휘(동생) <br/> 김미(누이동생) <br/> 김윤(동생)
         ** 동생: 김휘(金揮, [[1955년]] ~ , 나라기획 이사장 역임)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동 김씨 (구)]][[분류:김구 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장]][[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문국현]][[분류:창조한국당]][[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국방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김정난 . . . . 4회 일치
         || '''가족''' ||<(> 1 1녀 중 [[장녀]] ||
         || 2008년 || 잘못된 만 || 호철의 아내 || ||
         || 2007년 || tvN || 인어 이야기 || 수현 || ||
         || 1997년 || MBC || 산 || 희 || ||
  • 김진향 . . . . 4회 일치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고,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의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된 연구분야로는 북한 체제, 북관계, 평화통일 등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가 [[세종연구소]]에 들어가 객원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제32대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정치인)|이종석]]을 만났다.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원회에서 [[국가 안전 보장 회의]](NSC) 설계 작업을 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에서 NSC 한반도 평화체계담당관으로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북 평화체계를 다루다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더 폭넓게 북관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여러 번 교섭과 협상을 했다. 학자 입장에서 북한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성공업지구]] 근무를 자원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에서 근무했다. 이 때 개성에서 발생하는 신청·세무·회계·세금·임금협상 등 북한과의 모든 협상을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북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경험을 했다.<ref>원희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32094 (원희복의 인물탐구)카이스트 김진향 교수…종북을 각오하고 ‘북한’을 말하다]. 주간경향. 2016년 1월 16일.</ref>
         [[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노무현 정부]][[분류:북한학자]]
  • 김찬돈 . . . . 4회 일치
         1959년에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능인고등학교]]와 [[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여 판사에 임용되었다. 1990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2000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2004년 2월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대구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장을 하다가 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분류:능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영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창숙(배우) . . . . 4회 일치
         || '''출생''' ||[[1949년]] 1월 15일([[전라도]] [[완도군]])||
         || '''가족''' ||슬하 2||
          * [[산 너머 촌에는(드라마)|산 너머 촌에는 2]](2012~, [[KBS 2TV]]) - 이순덕 역
  • 김취경전 . . . . 4회 일치
         삼국시대 고구려 평안도 숙천(肅川)에 김형국(金亨國)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김형국은 늦은 나이에 [[단군]](檀君)으로부터 점지를 받아, 아들 취경(就景)과 딸 선애(仙愛)를 얻게 된다. 부인 양씨는 취경, 선애 매를 낳고 취경이 6살 되던 해 병사하였는데, 김형국은 안씨(安氏)를 후처로 들인다.
         [[계모]] 안씨(安氏)는 매를 사랑하다가 자신의 아이 설애(雪愛)를 낳고 나자 시기하고 모함을 한다. 결국 취경은 집에서 쫓겨나고, 선애는 안씨에게 반대하는 이복동생 설애[* 보통 계모 소설에서 계모 자식은 계모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취경전에서는 계모에게 반대하는 역할로 나온다.]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방황하던 취경은 어느 수수께끼의 백발노인의 인도를 받아, [[흉가]]에 갔는데 그곳에서 괴물을 물리치고 미인 목소저를 구해준다. 목소저는 백제국 태부상서의 딸이었다. 취경은 목소저에게 의지하여 병서와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한편 집을 나온 선애와 설애는 [[장]]을 하고 다니다가 함흥부의 소년 양화춘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오빠 취경을 찾아다니다 취경과 재회한다.
         김형국 일가에서는 선애의 시비 채향이 선애가 야반도주하자 안씨를 무서워하여, 어사 서윤택(徐潤擇)에게 집안의 흉사를 고발한다. 서윤택은 김형국과 안씨를 국문하고 취경 매를 모함한 윤도익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윤도익은 흉계를 꾸며 서윤택은 반대당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과 유배를 당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이 진실을 간파하여 서윤택은 복직되었다.
  • 김현정 (1979년) . . . . 4회 일치
         2009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마치고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상담 교육을 받은 후 화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14년 6월에는 첫 개인전인 <묘사와 연기>가 열렸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965311 화폭으로 옮긴 심리 치유…배우겸 화가 김현정 개인전],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작성.</ref>, 2014년 11월 9일 부터 11월 19일까지 [[백준]], [[이왈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하나에서 셋으로:한국 예술가 3인전>에 작품전을 열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18578 ‘동양화로 그린 장서희는?’ 화가 김현정, 中진르미술관 초청], 뉴데일리, 2014년 10월 7일 작성.</ref>
         * 2000년 《[[해변으로 가다]]》 경 역 쿠엔필름 (김인수 감독)
         :참여작가 :고 [[백준]] 작가·[[이왈종]]·김현정 작가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배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김천시 출신]]
  • 김형기 (법조인) . . . . 4회 일치
         |자녀 = 11녀
         *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1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2월 4일에 문공부 종무과장으로 있으면서 해외여행의 편의, 불교계 분규 수습에 있어 선처 등을 조건으로 불교계 관계자로부터 200여만원을 받아 구속된 한영수에게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해 징역1년6월 집행유예3년 추징금 217만원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1년 2월 5일자</ref> 4월 11일에 1965년 8월 파된 삼촌에게 포섭되어 입북하여 노동당에 입당하고 파돼종로구청 세무과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기밀 수집 등으로 간첩활동을 했던 정춘상에게 사형을 선고했다.<ref>동아일보 1981년 4월 11일자</ref>
         [[분류:1937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형인(코미디언) . . . . 4회 일치
         김형인은 [[대한민국]]의 [[개그맨]]이다. [[SBS]] [[공채]] 7기며, [[1981년]] [[2월 12일]],[* 헌데, [[네이버]]에는 [[1979년]] [[12월 12일]] 생으로 나온다. 1980년 생인 모 위키러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 1년 선배였다니, 1979년생이 맞을지도...]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이다. 2 2녀 중 [[차|막내]]. [[종교]]는 [[개신교]]이다.
         그 후에는 '''지친다 지쳐'''에서 서성금의 동생 역할, 즉 김준호의 처 역할로 등장. 여기서 장동민은 '''S 회사'''에서 쫓겨난 거 아니냐고 인신공격을 하자 발끈하는 자학개그를 펼친다. 그 다음에 등장했을 때는 자기가 모시는 사장님이라면서 '''윤택을 KBS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모셔왔다.''' ~~아이고~~ 하지만 다단계 일당이었고 김형인과 윤택 둘 다 도망~~쳐서 웃찾사로 복귀~~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81년 출생]][[분류:2003년 데뷔]][[분류:부안군 출신 인물]]
  • 김형일(배우) . . . . 4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 [[분류:성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출생]][[분류:1987년 데뷔]][[분류:1989년 데뷔]]
         본관은 [[김녕 김씨]], 생년월일은 1960년 12월 28일 [[경기도]] [[성시|분당구]] 출신이다. '''장군 [[전문배우]]의 대표 주자.''' 묵직한 목소리, 183cm인 키, 다부진 체격, 외모마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군에 특화되었다.
         특이하게도 같은 시대를 다룬 드라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와 [[왕과 비]]에서 두 번 다 [[홍윤성]] 역을 맡았다. 한명회에서는 의리 있고 호쾌한 쾌 역할이었으나, 왕과비에서는 반대로 의리라고는 쥐뿔도 없이 박쥐처럼 이리저리 권세에 붙는 찌질이로(특히 세조 말 ~ 성종 초 부분에서) 표현되었다.
  • 김혜선(배우) . . . . 4회 일치
         ||<#595959><:> {{{#FFFFFF ''' 가족 ''' }}} ||<(> 슬하 1 최원석^^(1997년생)^^[* 현재 tvN 예능 [[둥지탈출]]에 출연중이다.],1녀 ||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2017년 12월 발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랐는데, 사기당한 편의 빚을 갚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3&aid=0003337011|#]]
          * 2017년 [[MBC]] [[훈장 오순]]
  • 김호근 . . . . 4회 일치
         |학력= [[영대학교]] 경제학 학사
         * [[영대학교]] 경제학 학사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김효진 (배우) . . . . 4회 일치
         2011년 12월에는 8살 연상의 배우 [[유지태]]와 5년여의 열애 끝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2014년 7월 5일, 첫 아이인 아들 유수인을 출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효진 유지태 부부 5일 득 "가슴 벅차다"|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906672|출판사 =뉴스1 |저자 =권수빈 |날짜 = 2014-07-05 |확인날짜 =2017-09-29 }}</ref>
         * [[2001년]] [[SBS]] 오픈드라마 《[[과 여-왜 자는 어린 여자에게 집착하는가?]]》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4회 일치
          * 그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분명 나이트아이가 추적중일 요주의인물, "핫사이카이"의 "치사키"라는 자, [[오버홀]]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에리"에 대해서는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그녀의 부상에 대해서는 "한창 놀 나이라 자주 다친다"며 사람 좋게 웃기까지 하는데. 그와 대조적으로 미도리야는 경악한 표정을 감추질 못한다.
          웃음기가 사라진 오버홀은 "자신의 평범을 의 가정에 강요하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밀리오는 의도와 다른 미도리야의 행동에 곤란해한다. 이대로 경계심을 늘리면 더욱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나이트아이의 수사에 지장이 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무난하게 넘기는 쪽"이 더 의심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너무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다.
          *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은 오버홀의 한숨과 함께 종료된다. 그는 자기가 졌다는 듯이 "히어로는 정말 의 사정에 민감하다"고 물러난다.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보는 눈을 피하고 싶으니 이쪽으로 와달라며 골목으로 들어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밀리오도 그냥 가는건 포기한다. 그는 미도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자신이 대처하겠다고 신호한다. 어차피 이제와서 에리를 놓고 갈 수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미도리야는 에리를 안은 채 오버홀을 따라 들어간다.
          * 에리는 그토록 놓지 않았던 미도리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그녀는 막 화가 풀린 꼬마처럼 금방 아버지, 오버홀 옆으로 달려간다. 미도리야가 당황하는 사이 오버홀은 평범한 부녀처럼 "이제 고집 부리는 건 끝났냐"고 말을 건다. 에리가 끄덕이자 오버홀은 "폐를 끼쳤다"는 말을 긴 채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진다. 미도리야는 말없이 사라지는 에리를 따라 쫓아갈 것 같지만, 밀리오가 말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4회 일치
          * 그 자가 같은 학교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는데, 학생들이 겁먹고 아무 말도 못하자 자가 점점 화를 내기 시작한다.
          * 그리고 낮에 봤던 일이 반복된다. 아시도 미나가 달려왔다. 거인 앞에 당당히 끼어들어 스프링거의 사무소는 요 앞 모퉁이를 돌아 왼쪽으로 2km를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제야 거인이 화를 거두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향하면서 묘한 말을 겼다.
          >의 위기에 뛰쳐나가지도 않아.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5화 . . . . 4회 일치
          * 쿠로노의 개성은 "크로노스타시스". 앞머리를 시계바늘처럼 늘여서 공격하는 능력인데 여기에 당한 대상은 움직임이 둔화된다. 공격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정지된 상태여야 한다는 패널티가 존재. 여기에 당한 아이자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달팽이 같은 움직임 밖에는 취할 수 없다. 그를 포획한 쿠로노는 그 몸을 제압한 채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리는 사실 "두목"의 딸이며 오버홀은 목적을 위해 뭐든 쓸 수 있는 자라고 말한다.
          오버홀은 에리를 더욱 압박해 결국 돌아가겠다고 말하게 만든다. 에리가 자신이 돌아갈 테니 모두를 원래대로 만들어달라고 매달리자 오버홀은 다시 미도리야를 압박한다. 에리는 자기 때문에 이 상처받기 보단 자신이 아픈 쪽이 편하다는걸 알고 있고 루밀리온이 분투했을 때 품은 작은 희망이 미도리야와 나이트아이의 등장으로 무너졌다며, 정말 잔혹한 짓을 하는건 히어로들이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에리는 미도리야의 도움을 바라고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 의식이 아있던 나이트아이는 정말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가 본 예지에는 자신과 미도리야가 죽고 오버홀이 도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도리야는 나이트아이가 "원 포 올은 밀리오에게 줘야했다"고 말한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를 멈추진 못했다. 미도리야는 설령 "쓸데없는 참견"일 지라도 누구도 죽게하지 않고 에리를 구하겠다고 선언하며 다시 일어섰다. 바로 그때,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슈와 싸우던 [[류큐(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류큐]] 팀이 적과 함께 천장을 부수며 도착한다.
          에리를 데리고 피신 중이었지만 몸은 걸레짝이 된 데다 긴장도 풀리고 결정적으로 지난 회에 스승 나이트아이가 당하는 걸 본 뒤로 멘탈이 나가버린다. 꼼짝도 못하게 되자 에리만이라도 어딘가에 숨어있으라고 설득하지만 에리는 오버홀의 협박을 듣고 탈출의지를 접는다. 에리를 말려보려고 한 것같지만 그럴만한 힘조차 지 않은 것 같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3화 . . . . 4회 일치
          * 프로히어로도 6명 중 [[와일드 와일드 푸시 캣츠|한 명이 크게 다치고 한 명]]이 대량의 혈흔을 기고 실종
          * 현장에 겨진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빌런]]은 모두 체포되었다
          * 한편 [[츠카우치 나오마사]]는 수사상황을 전하는데 [[다비]]로 추정되는 자가 출입한 건물을 확인했다. 츠카우치는 극비사항이라며 토벌 작전에 힘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올마이트는 기꺼이 협력한다고 한다.
          * [[이이다 텐야]]는 "그건 프로 히어로가 맡을 일"이라며 말리지만 키리시마는 "이대로 있으면 자도 히어로도 아니게 된다"며 "아직 손이 닿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남능미 . . . . 4회 일치
         이름 능미
         출생지 [[전라북도]] [[군산시]][*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모]]가 있는 [[전라도]] [[순천시]]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후 쭉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자녀 슬하 1 1녀
          * [[내가 버린 자]]
  • 남동훈 . . . . 4회 일치
         | 이름 = 동훈
         '''동훈'''(1984년 5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근대5종]] 선수이다.
         * {{웹 인용|url=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B%82%A8%EB%8F%99%ED%9B%88&os=219717|제목=동훈|출판사=네이버 인물검색}}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근대5종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근대5종 참가 선수]]
  • 남효온 . . . . 4회 일치
         [[조선]] 초기의 학자. 재야 [[사림]] 학자의 일원으로서, [[생육신]]의 일원이다.[* 단, 생육신은 사육신과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류한 점이 있는 개념으로, 당대에 세조의 집권에 반대한 이들은 생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몇 명 더 존재했으며, 특히 효온은 다른 생육신들에 비해 한두 세대 이후의 인물로 시대 차이가 매우 커서 논란이 있다. (당대에는 '권절'과 같은 인물들의 인지도가 더 컸다.)]
         효온의 여러 저술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이 돋보이는 것은 역시 육신전이다. 육신전은 사실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는 차이가 있으며, 여러가지 오류가 존재한다. 또한 효온의 연령이나 행적으로 보아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림파 내부에서 전해지던 단종복위운동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기는데 의의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 노예 . . . . 4회 일치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권리와 자유를 빼앗기고 의 소유물로써 부려지는 사람들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노예는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의 소유물로 취급되며, 주인을 위해서 강제노동을 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19세기 경에 미국이 노예제를 폐지하려고 하자, 노예를 부리던 부 주의 대다수가 "우리의 권리와 이권을 빼앗으려고 한다 빼애액!"을 외치며 미국에서 탈퇴해버렸다. 미국은 [[북전쟁|이 반란군들을 철저히 짓밟은 후]]에야 다시 미국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다.
  • 니세코이/229화 . . . . 4회 일치
          * 유이는 임신중. 마리카는 이치죠보다 좋은 자를 만나겠다며 맞선을 보고 다닌다. 상대는 치바현의 Y씨?
          * 유이는 따로 결혼해서 임신한 상태. 편은 나오지 않는다.
          * 마리카는 맞선 보고 다니는데 여념이 없다. 여전히 혼다가 옆에 있다. 이치죠보다 좋은 자를 만나는게 목표. 좀처럼 괜찮은 상대가 없는 듯.
          * 유이는 유일하게 결혼을 한 걸로 보이지만 정작 편도 나오지 않고 왠지 임신한 채로 등장. 유이팬들 중에선 충격이란 얘기도 나온다.
  • 니쿠쟈가 . . . . 4회 일치
         일본에서는 "어머니의 맛"으로 불리며, 친숙한 가정 요리로 취급된다. 2015년 20대~30대 성 직장인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0%의 성이 지금도 먹고 싶은 "어머니의 맛"이라는 키워드에 니쿠쟈가를 대답했다.
         마이즈루 시는 1901년, 도고 헤이이치로가 처음으로 사령장관으로서 마이즈루 진수부(舞鶴鎮守府)에 부임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마이즈루 해상자위대총감부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니쿠자가 레시피로 알려져 있는 1938년 출판된 『해군주방관교과서(海軍厨業管理教科書)』가 아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1995년 마이즈루 시는 「니쿠쟈가 발상지(肉じゃが発祥の地)」를 선언했다. 그리고 매년 마이즈루 니쿠쟈가 축제(まいづる肉じゃがまつり)를 열고 있다.
         Japn Business Press - 심을 사로잡는, 나의 특기요리는 니쿠쟈가
  • 도예종 . . . . 4회 일치
         * 대구대학 경제학과(현 [[영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 [[영일보]] 영천지사장
         [[분류:1924년 태어]][[분류:1975년 죽음]][[분류:인혁당 사건]][[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
  • 디도(성우) . . . . 4회 일치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대원 재더빙판에서 [[치바 마모루|턱시도 가면]] 역을 맡게 되었다. 사실상 첫 주역 데뷔작이지만 '''평가가 좋지 않았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더 정진하겠다는 ~~[[대인배]]~~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하지만 [[하트 캐치 프리큐어!]]에서 [[최종보스]]인 [[듄(하트 캐치 프리큐어!)|듄]]을 연기할 때 캐릭터성을 잘 살리지 못한 반면 쿠루미 류노스케([[쿠루미 에리카]] 아빠), [[묘도인 사츠키]]([[묘도인 이츠키]] 오빠)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감안하면 과묵한 캐릭터와는 다소 상성이 안 맞는 듯.[* 반대로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의 [[제라싯트]]나 [[가면라이더 W]]의 [[마쿠라 슌]] 같은 [[개그 캐릭터]]에는 강점이 있다는 평. 목소리 특색은 부드러운 미톤인데, 디도 본인이 워낙 밝고 개성있는 역에서 강점을 보이니 진지한 캐릭터보다는 밝은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듯 하다.] 하지만 3기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S]]에서는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여전히 원판 성우인 [[후루야 토오루]]에 비하면 아쉽다, [[김일(성우)|김일]]이 더 낫다,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는 등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 걸 보면 아직은 진지한 배역보다 밝고 가벼운 배역을 더 잘 소화하는 듯. 그리고 의외로 발성이 좋아 [[잔크로우|열혈 캐릭터]]도 잘 소화하는 걸 보면 과거의 [[최재호(성우)|최재호]]와는 반대로 소리지르는 연기엔 강하나 진지하고 과묵한 배역엔 약한 것 같다.]
         다만 턱시도 가면은 본인이 노력해서 매 시리즈마다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현재는 어느 정도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 톤이 내향적인 캐릭터마냥 다소 힘이 빠지고 여려지는 문제점은 끝까지 개선되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이지현(성우)|이지현]]의 완전히 안정된 [[츠키노 우사기|세일러문]] 연기에 비하면 호평이 덜하다. 이지현의 경우 밝은 소녀 캐릭터에 특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완전히 안정된 세일러문 연기는 [[최덕희|추억 보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혼연일체 수준이었다.]과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트 캐치 프리큐어!]]의 [[묘도인 사츠키]][* 이 쪽은 병약 속성이라서 여린 톤의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보면 차분한 캐릭터 중에서도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보다는 여리고 내향적인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사실 이는 디도 본인이 진지한 캐릭터에 완전히 적합한 성우가 되었다기보다 비록 디도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레온(턱시도 가면)의 캐릭터성이 상대적으로 디도가 맡기에 적합하게 바뀌어간 게 크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1기|1기]]의 레온은 쿨시크한 성격과 장난기가 공존하는 캐릭터였는데 디도는 비슷한 시기에 맡은 듄 또한 혹평을 들은 것처럼 쿨시크한 캐릭터에서 좋은 평을 들은 적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1기에서 디도의 레온 연기는 장난기만 살아있고 쿨시크함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느낌이라서 대차게 까였다. 그러다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2기]]를 기점으로 점차 레온의 성격이 부드럽게 바뀌어가고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3기]] 이후로는 개그로 망가지는 일도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디도가 소화하기에 편한 캐릭터성이 되었던 것. 부드럽고 온화하거나 소심한 캐릭터 내지는 밝고 활발한 개그캐릭터에 특화된 디도의 입장에선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한 캐릭터성도 어디까지나 1기 때에 비해 그럴 뿐이지 기본적으로 레온은 시종일관 온화한 캐릭터도, 시종일관 코믹스러운 캐릭터도 아니고 1기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아있는지라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가 KBS판 성우인 [[김일(성우)|김일]]처럼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 톤이 되어야 하는데 다소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된 건 아쉬운 부분. 김일이 1기에서의 쿨시크한 레온과 2, 3기 이후로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하는 레온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더해진다.] 그 이후로 비슷한 캐릭터는 [[키즈 CSI 과학수사대]]의 [[키즈 CSI 과학수사대/등장인물#s-3.1|고진]]을 한번 더 맡았는데 1기 때의 레온 연기에 비하면 평가는 나았지만[* 하지만 디도가 진지한 배역을 맡을 때마다 나오는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어느 정도 아있어서 그렇게까지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레온과 고진 이후로는 진지한 배역에 많이 캐스팅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후에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맡은 [[이고르(가면라이더 고스트)|이고르]]의 경우 처음에는 나름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28화를 기점으로 점차 개그형 악역으로 변해갔으니[* 애초에 이고르를 연기한 배우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도 중후한 카리스마 악역보다는 가볍고 얍삽한 3류 악역에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특촬물을 포함한 외화 더빙의 특성상 담당 배우의 외모까지 고려한 캐스팅을 해야 했으니 가벼운 인상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에 맞춰 가벼운 배역에 특화된 디도가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까지도 더빙 업계에서는 그를 진지한 배역에 그다지 적합한 성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분류:한국 성 성우]][[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1986년 출생]][[분류:2010년 데뷔]]
  • 라늬 . . . . 4회 일치
         [*[2015년]] ; KBSJoy (최강녀)
         *[[2012]] ;[[디데이 ]]숨소리조차(자편)
         * [[2012년]] [[디데이]] - 숨소리 조차 (자편)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4회 일치
         2010년 10월 첫 솔로앨범 《이별 뭐 별거야》를 발표하였다. 인디 밴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22&aid=0002197578 '홍대여신' 레이디제인, 솔로 데뷔 선언], 《세계일보》, 2010년 10월 27일</ref> 2011년 11월 미니앨범 《Jane, another Jane》을 발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복고풍의 경쾌한 댄스 곡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 前 자친구인 [[사이먼 도미닉]]과 ‘여섯시 반’을 발매했으며, 이어 8월에 [[닥터심슨]]과 ‘Clinic 12.5%’를 합작, 발매하였다. 2013년 1월 9일 ‘Hello’의 발매에 이어 2월 15일 [[원써겐]]과 ‘New Story Part 5’의 발매, 9월 5일에는 싱글 음원 ‘일기 (Diary)’를 발매하였다.
         * [[패션N|FashionN]] 《자처방전 사심연구소》
         * [[JTBC]] 《이론상 완벽한 자》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로어셰크 . . . . 4회 일치
         왓치맨 1권 후반부에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붙잡힌다. 이후 [[싱싱 교도소]]에 수감. 본명은 월터 조셉 코백스(Walter Joseph Kovacs). 작중 중간중간에 "THE END IS NIGH"[* 종말이 머지 않았다.]라고 써진 팻말을 들고 나타나던 붉은머리 자다.
         아버지 없이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그는 10살 때 자신에게 패드립을 친 소년의 눈을 실명시켰다. 이 일로 집안이 경찰 조사를 받으며 보호소행. 어머니에게 쌓인게 많은지라 6년 후 어머니가 끔찍하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잘됐군요,"라는 말 만을 겼다. 반면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코미디언을 죽인걸 주도 한 사람이 오지만디아스라는걸 알게 된 후, 로어셰크는 2대 나이트 아울과 함께 오지만디아스가 있는 극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을 막지 못한다. 이후 다른 히어로들이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으로 인해 나타난 세계 평화를 보고 이를 폭로하기를 거부하자 절대 타협할 수 없다며 폭로하기 위해 극을 떠나려고 하지만 닥터 맨해튼의 손에 죽는다.
  • 마누엘 고도이 . . . . 4회 일치
         1767년, 스페인 서부 바다호스(Badajoz)에서 출생. 1784년에 근위대 장교가 되었다. 평범한 하급 귀족이었으나 [[카를로스 4세]]의 [[왕비]]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마리아 루이사]]에게 총애를 받아, 왕비의 [[애인]]이 되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마리아 루이사의 총애를 받게 된 마누엘 고도이는 하급 귀족으로스는 이례적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1792년에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고작 25세의 젊은 나이의 청년이 스페인의 실권자가 된 것이다.
         이후에는 유럽대륙의 패권을 잡아가는 프랑스 제국에 접근하였고, 스페인 해외 식민지를 노리는 영국과 대립하게 된다. 1801년에는 프랑스와 동맹하여 영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805년에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패하고 스페인 함대는 전멸하고 만다. 이로서 스페인은 18세기에 걸쳐서 건설한 함대를 모두 잃어버리고, 중미 교역 항로를 영국에게 빼앗겨서 제해권을 상실한다.
         1807년에 고도이는 [[포르투갈]] 정복을 노리는 나폴레옹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 나폴레옹이 점령한 포르투갈 부 알가르브(Algarve) 지역의 영유를 인정받았는데, 고도이는 황태자 페르난도(후의 [[페르난도 7세]])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황태자가 즉위하면 파면될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파면 이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알가르브를 영유하는 대신 스페인에 프랑스 군의 침공을 허용하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결국 1808년 3월, 마드리드 부 아랑후에즈(Aranjuez) 일어나 [[카를로스 4세]]는 실각하고 황태자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 고도이 역시 재상 자리에서 해임되고 알가르브 영위 역시 인정받지 못해 프랑스의 [[마르세유]]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고도이와 맺은 퐁텐블로 조약이 파기된 것을 명분으로 침공해오게 된다.
  • 마더콘 . . . . 4회 일치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과도하게 강한 것을 나타낸다. 젊은 자가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1992년 TBS에서 방송한 드라마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의 등장인물 카츠라다 후유히코(桂田 冬彦, 연기자는 사노 시로우佐野史郎)가 세간이 기피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마더콘 자를 묘사했다. 이 드라마 때문에 21세기 까지 "후유히코 씨"라는 은어가 마더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다.
         일본에서는 한국 자는 마더콘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진 모양이다.[참조]
         『계속 당신을 좋아했다(ずっとあなたが好きだった)』라는 드라마는 29세 여성 니시다 미와(西田美和, 연기자는 카쿠 치카코賀来千香子)가 도쿄 대학교 출신 엘리트 은행원 카츠라다 후유히코와 맞선 결혼을 하지만, 같은 시기에 옛 자친구인 오오이와(大岩)와 재회하여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그다지 마더콘 설정이 아니었으며, 1화에서는 그리 기분 나쁘지 않고 지적이고 상냥한 좋은 사람으로 감기에 걸린 미와를 배려하여 샐러드와 죽을 만들어주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 마철준 . . . . 4회 일치
         [include(틀:성 FC/간략)]
         ||||<:><#000000> '''{{{#ccb366 성 FC 코치}}}''' ||
         || 지도자 || [[광주 FC]] 플레잉 코치 (2013~2015) [br] [[광주 FC]] 코치 (2016~2017) [br] [[성 FC]] 코치 (2018~) ||
         결국 2013 시즌부터 [[K리그 챌린지]] 소속 팀인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466585|광주 FC에 입단하였다.]] 오랜 선수 경험과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거라 판단한 구단의 판단으로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2014년까지 준주전급 선수로 수비 지역에서 알짜 활약을 보였다. 2015년에는 본격적으로 선수로 출전보다는 코치 업무에 집중하였으며, 하위 스플릿 마지막 경기 [[대전 시티즌]]과의 홈 경기에서 [[기일]] 감독의 배려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36&aid=0000019339|시즌 마지막 경기를 교체 출전으로 뛰고 최종적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만쥬 무섭다 . . . . 4회 일치
         마을의 젊은이들이 서로 무서워하는게 무엇인가 이야기 했다. 귀신, 뱀, 거미 같은 것이 나오는 가운데, 어떤 자가 [[만쥬]]가 무섭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그 자를 놀려주려고 만쥬를 가져다 준다. 그러자 자는 "아이고 무섭다. 이렇게 무서운건 얼른 먹어버려야지."하면서 만쥬를 먹어버린다.
         젊은이들이 화가 나서 "네가 정말로 무서워하는건 뭐냐?"라고 추궁하자, 자는 "지금은 따듯한 차가 무섭군"이라고 대답한다.
  • 민룡 . . . . 4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쇼트트랙]]}}
         '''민룡'''([[1982년]] [[7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자 [[쇼트트랙]] 선수이다.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 자 종합 금메달리스트}}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
  • 민효린 . . . . 4회 일치
         | 미리
         | 자도… 어쩔 수 없다
         | 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6년 데뷔]][[분류:대구동부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녹주 . . . . 4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던 바탕소리 녹음을 많이 겼다. [[1963년]] 기독교방송에서 춘향가를 녹음하고, [[1972년]] 자택에서 기록보존용으로 심청가를 녹음하였다 흥보가는 총 4차례나 전판을 녹음하였는데 이 가운데 [[1967년]] 녹음(고수 : 정권진)과 [[1973년]] 녹음(고수 : 김동준)은 음반화 되었다. 전자는 [[지구레코드]]에서 출반되었으며, 이후 CD로도 복각되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문화재보호협회 소장 녹음으로 여러차례 음반으로 제작되었으나 CD로는 제작되지 않아 지금은 듣기 어렵다. 그 외에 출반되지 않은 녹음으로는 [[1976년]] 문예진흥원 판소리 조사 사업당시에 녹음한 것(고수 미상)과 녹음시기 미상의 기독교 방송 소장의 녹음(고수 : 정철호)이 있다.
         이처럼 판소리, 그 가운데에도 흥보가 전승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자 당대의 슈퍼스타였는데 일반 대중들에게는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스토킹 상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시대가 시대였고 김유정이 훗날 소설가로 유명해지는 바람에 한동안 짝사랑으로 포장되었으나, 사실 김유정의 행동거지는 악질 스토커의 그것이었다. 김유정은 박녹주가 자신의 마음을 안 받아준단 이유로 그녀에게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박녹주가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납치하려고도 들었다.[* 심지어 명목상이지만 박녹주는 그때 유부녀였다.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저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박녹주는 김유정이라면 질색을 했다. 특히 김유정 때문에 박녹주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한 행동은 사랑을 핑계로 극심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그래도 결국 김유정에게 동정심이 없진 않았는지 김유정의 친구인 안회이 김유정이 죽고 난 뒤 오히려 자신더러 김유정을 죽인 살인자라며 매도하는 안회에게 그때 손 한번 잡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거라고 동정했다고 한다. 스토커에 시달리다 못해 그의 친구마저 되려 자신을 매도하려 했음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어찌보면 정말 대인배다.
  • 박부남 (1931년) . . . . 4회 일치
         '''박부'''(朴富南, [[1931년]] ?월 ?일 ~ [[2018년]] [[1월 11일]])은 [[대한민국]]의 [[소아과|소아]][[내과]] [[의사]], 대학 교수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구한 말의 관료 [[박중양]]의 손녀이며, [[청도군|청도]], [[상주군|상주]], [[청송군|청송]][[군수]]를 지낸 [[박문웅 (1890년)|박문웅]]의 딸이다. [[대구광역시]] [[북구 (대구광역시)|북구]] [[침산동]] 출신.
         * 어머니 : 원양씨(南原梁氏, [[1907년]] [[8월 11일]] - ?), 양재형(梁在亨)의 딸
         * 편 : [[이열희 (1924년)|이열희]](李烈熙, [[1924년]] [[12월 18일]] - [[2012년]] [[8월 9일]]), [[치과]]의사
         [[분류:1931년 태어]][[분류:201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내과 의사]][[분류:소아청소년과 의사‎]][[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중양]]
  • 박종준 . . . . 4회 일치
         1964년 [[충청도]] [[공주시|공주군]] (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서 태어났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봉황중학교,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경찰대학]] 행정학과,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학사]]과정을 졸업하였다.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평창군|평창]][[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 [[마포구|마포]]경찰서장, 충[[지방경찰청]] [[지방경찰청장|청장]],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도 공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수현(정치인)|박수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13년 6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차장을 역임하였다.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충 공주) || [[새누리당]] || 23,919 (43.68%) || 낙선 (2위) || ||
  • 박태호 (야구인) . . . . 4회 일치
         은퇴 이후 모교인 [[대구고등학교]] 감독과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을 거쳐 현재 [[영대학교]] 감독을 맡고 있다.
         * [[영대학교]]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박홍우 . . . . 4회 일치
         대전고등법원으로 재직하던 2015년 2월 대전고등법원 제3행정부 재판장으로서 행정본안재판의 일부를 직접 맡았으며 가장 기억에 는 사건으로 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시절인 1995년 시위 진압과정에서 최루탄에 도망가다가 넘어져 질식사 사망한 성균관대 학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망인의 위자료를 5000만원 인정한 것과 2004년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사건에서 1심에서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한 것을 들었다.<ref>[http://www.joongdo.co.kr/main/view.php?key=201509100056]</ref>
         * [[1989년]] ~ [[1991년]] 서울지방법원 부지원 판사
         * [[1985년]] ~ [[1989년]] 수원지방법원 성지원 판사
         [[분류:1952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배성룡 . . . . 4회 일치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분류:1896년 태어]][[분류:1964년 죽음]][[분류:청도군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베이식 (가수) . . . . 4회 일치
         | 거주지 = [[경기도]] [[성시]] [[분당구]]
         | 가족 = 슬하 1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이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힙합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지기 펠라즈 음악가]][[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
         [[분류:자 래퍼]][[분류:Show Me The Money 참가자]][[분류: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승자]]
  • 북유럽 신화 . . . . 4회 일치
         일반적으로는 가장 체계적으로 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의 [[에다]], [[사가]] 등의 문헌을 바탕으로 신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 시대에 게르만 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와 함께 언급이 등장하며, 단편적인 기록이나 유럽의 민속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 민족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게르만 전통 종교가 [[악마]] 숭배 등으로 몰려서 박해를 받자 점차 사라지게 된다.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뒤에는 언어, 문화적으로 흔적만 았다.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근대 [[민족주의]]가 발흥하자, [[독일]], [[스웨덴]] 등의 게르만 계열 민족 국가에서는 민족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서 북유럽 신화를 다시 연구하게 되었다.
         북유럽신화는 크게 창세신화와 라그나로크로 대표되는 종말신화로 나누어진다. 창세신화와 라그나로크를 사이에 두고 신들이 벌였던 여러가지 행적이 일화적으로 신화로 아 있다. 또 여러 인간 영웅들의 사적들도 신화로서 아 있다.
  • 블리치/692화 . . . . 4회 일치
          * 제라드는 초거대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힘을 잃고 뼈만 긴채 쓰러진다.
          * 아있던 뿔의 밑둥이 바스러져 떨어진다.
          * 제라드의 힘이 빨려나간 듯 사라지고 거대한 뼈마디만 아버린다.
          * 그걸 보고 유하바하는 "아직도 발버둥치는 놈들이 있나"고 하며 쫓아오고 싶다면 이 문을 겨둘테니 따라와보라고 한다.
  • 서상일 . . . . 4회 일치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상을 갖게 되었는데 협상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영수 신익희와 신파의 영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상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부 갑: [[최윤동]]<br /> 대구부 병: [[백채]]
         [[분류:1885년 태어]][[분류:1962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조선의 사회 운동가]]
  • 서정윤 . . . . 4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성범죄자]][[분류:대한민국의 교사]]
  • 서정환 . . . . 4회 일치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전임자 = [[유호]]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서지석(배우) . . . . 4회 일치
         은근히 여자들한테 인기있는 캐릭터. 자들한테는 농구잘하는 형 이미지.
          * [[사랑해서 주나]] (2013) - [[은하림]] 역
          * 《그 여자 그 자의 속사정》
         [[분류:한국 배우]][[분류:1981년 출생]][[분류:안성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대 100 역대 1인]]
  • 서지훈 (1997년) . . . . 4회 일치
         | 연작 · 단막극상
         [[분류:199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
  • 세이와 겐지 . . . . 4회 일치
         미츠나가의 삼, 라이코우의 동생은 미나모토노 요리노부(源頼信)이다. 이 사람은 카와치 국(河内国, 현재의 오사카 동부)을 본거지로 삼았다 하여 카와치 겐지(河内源氏)로 불리게 된다. 요리노부의 적통이 미나모토노 요시요시(源頼義), 그 장은 전설적인 무사로 하치만 타로(八幡太郎)라는 별명을 가진 [[미나모토노 요시이에]](源義家)이다.
         요시이에의 아들 요시쿠니(義国)의 차 미나모토노 요시야스(源義康)/아시카가 요시야스(足利 義康)는 아시카가 씨의 시조로서 요시이에의 손자이며, 그 후손이 무로마치 막부의 개창자인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이다.
         요시쿠니의 장 요시시게(義重)/닛타 요시시게(新田 義重)는 닛타 씨의 시조이다.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닛타 씨의 분가의 후예를 자칭하였다.
  • 손병조 . . . . 4회 일치
         * 영대학교 학사
         * 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가인 . . . . 4회 일치
         | 출생지 = [[전라도]] [[진도군]]
         * 2009년 제1회 광양 해성 전국 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상도출신 인물]][[분류:2012년 데뷔]][[분류:광주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송지효 . . . . 4회 일치
         | 《[[응급녀]]》
         * [[삼성전자]] 'THIS IS LIVING' : 베트
         | Korean Updates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커플상 {{small|(with [[최진혁]])}} || rowspan=4|[[응급녀]] || {{won}}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01년 데뷔]][[분류:영양 천씨]]
  • 스이츠 . . . . 4회 일치
         >캐치해오는 자는 멋지지만 뭔가 얄팍해서 싫다. 좀 더 등신대의 나를 보아줬으면 한다.
         >힐끔 하고 캐치하는 자의 얼굴을 본다.
         > ・・・아니야・・・지금까지의 자와는 뭔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스피리츄얼한 감각이 나의 몸을
         >자는 호스트였다. 따라오라고 해서 레이프 당했다. 「꺄악- 그만해!」드러그를 맞았다.
  • 식극의 소마/205화 . . . . 4회 일치
          * 얼마 뒤 반역자 일행은 은 시험과정을 마치고 결전의 땅, 레분토 섬에 도착한다.
          >진급 시험에 살아으라며 모두를 처음에 이끌어준건 너.
          * 그로부터 몇 년 뒤. 토오츠키 리조트에서 근무하던 비서가 뜬금없이 "웬 자가 도지마 씨를 찾는다"며 전화를 연결한다. 영문도 모른 채 전화를 받는 도지마. 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소식이 두절됐던 죠이치로였다.
          그리곤 다른 말은 없이 정말로 끊어버렸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언급했던 "주소도 뭣도 안 기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전화"였다. 도지마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투덜대면서도, "행복하게 요리하고 있다"는 말을 곱씹으며 오랫동안 짓눌렀던 짐에서 해방된다.
  • 식극의 소마/217화 . . . . 4회 일치
          * 연대식극 1라운드도 한 대결만 은 상황. 2승을 확정지은 [[유키히라 소마]]와 반역자들은 득의양양한데 [[카와시마 우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 [[유키히라 소마]]와 [[잇시키 사토시]]의 연승으로 1라운드는 어느새 반역자 팀의 2승. 이미 대단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알몸 변태의 삶을 살던 잇시키가 멀쩡한 얼굴로 승리를 거두자 불신으로 가득했던 후배들도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부사키 슌]]은 이 만든 식재를 멋대로 썼다 지면 어쩔 생각이었냐고 심드렁하게 묻지만 잇시키가 "너희 식재료를 쓰는 이상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하자 쑥스러워한다.
          * 십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에 가까운데 [[시라츠 쥬리오]]는 너무 심하게 압살 당한 탓인지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다. [[코바야시 린도]]는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뒷 일은 나에게 맡겨라"고 소란을 피운다. 정작 쥬리오는 잇시키만 찾으며 "너무나 멋지다"는 말만 하고 듣질 않는다. [[츠카사 에이시]]는 누가 봐도 맛이간 시라츠의 상태를 보고도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는 핀트가 빗나간 평을 긴다. 옆의 [[사이토 소메이]]는 "잇시키의 강렬함이 작렬"한 대결이었다 총평한다. 특히 그의 "후배들을 위해 싸운다"는 대의에 감동한 듯 하다. [[에이잔 에츠야]]가 "그런게 아니라 대세에 거스르는 자신에 취한 것"이라 혹평하는데 사이토는 딱히 반박하진 않지만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강한 각오"를 느꼈다고 덧붙인다. 같은 2학년이 3학년 사이토에게 이정도까지 평가를 받자 에이잔은 물론 그에게 패한 [[키노쿠니 네네]]도 할 말이 없어진다.
          * 반역자들로선 꿈도 꾸지 않았던 반전. 1st BOUT 반역자팀의 전승 선언이 울려퍼진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키리 아자미]]는 순식간에 불리한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보람이 없다"는 허세를 작렬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역자와 센트럴 측. 사이토가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현재 은 인원은 반역자 8에 십걸 5.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3라운드에서 십걸의 전멸이다. 괜한 호들갑이나 떨던 린도지만 "그건 곤란하다"며 조금은 진지하게 듣는다.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네네에게 "너무 책임감 느끼지 마라"며 위로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알 수도 없게 격려한다.
  • 식극의 소마/227화 . . . . 4회 일치
          * 초반에 [[쿠가 테루노리]]의 탕수육을 아리송해 했던 [[안(식극의 소마)|안]]은 막상 맛을 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술에 더 취했다"는 정체불명의 평을 긴다.
          * 쿠가는 자기 자신의 틀을 깨는 것만이 [[츠카사 에이시]]에게 설욕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껏 숨겨운 기량을 김없이 발휘해 츠카사의 인정을 받아내는데.
          맛의 일제사격에 지격 당한 샤름과 이스트와르. 심사위원들이 쓰러지는 걸 보면서 반역자들이 환호를 질렀다. 샤름은 모든 초밥이 맛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는 "정수리살 스시"를 꼽았다. 짚과 목초로 향을 입힌 참치 정수리살. 본래 참치에서도 가장 희소성 높은 특수 부위다. 깊으로 구운 덕에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순수한 기름의 향기만이 아서 날뛰고 있다. 이 평을 들은 [[하야마 아키라]]는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그만큼 완벽했다고 평하고 승부의 향방은 어레인지를 가한 마지막 초밥, "군함말이"에 있다고 단언했다. [[나키리 아리스]]도 의견을 같이하며 과연 어떤 맛으로 완성시켰을지 주목했다.
          군함말이를 집어든 샤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함말이에 올라간 네기토로는, 사실 머렝이었던 것이다. 맛을 본 샤름은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발견했다. 훈제 간장이었다. 단지 쿠가에게 조력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게 아니었다. 최후의 어레인지를 위한 회심의 카드. 미마사카가 내놓은 어레인지 초밥은 "메추리살 노른자와 훈제 간장을 섞은 나카오치 군함말이"였다. 나카오치란 참치의 양쪽 살을 발라내고 은 등뼈 부분의 살을 의미한다. 훈제 간장이 첨가된 밥과 김이 나카오치의 기름기와 만나 절묘한 향을 내고 그 위에 올려진 머렝, 메추리알 노른자, 파가 네기토로를 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연출한다. 샤름은 이것을 "궁극의 네키토로 메추라기밥 군함"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호평. [[카와시마 우라라]]가 이를 갈면서 분해했지만 그녀 또한 미마사카의 초밥을 맛 봤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 식극의 소마/228화 . . . . 4회 일치
          * 양측 인원 모두 5명씩 은 채로 연대식극 1일차 종료. 그런데 소마는 아예 미리 대전자를 확정해 놓는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는데.
          만일 먼저 대전자가 강적의 전력을 충분히 소진시켰다면 바톤을 이어받는 대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통상적으론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것도 연대식극의 전술. 패배는 사실이지만 무의미하진 않았다. 오히려 큰 희망을 겼고 그걸 은 사람들이 확실히 이어받게 될 것이다.
          소마의 말에 타쿠미와 [[타도코로 메구미]]가 동의했다. 반역자팀의 3rd Bout 출전자는 이 셋으로 확정. 1학년 삼총사가 나간다. 잘 부탁한다고 외치는 소마. 이걸로 양측 모두 5명의 선수를 긴 채, 연대식극 제 1일차가 종료됐다. 그런데 소마는 또다른 제안을 했다.
  • 신동미 . . . . 4회 일치
         동료 배우 허규와 [[뮤지컬]]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하여 2014년 12월 결혼했다. 허규는 노래 《''''사랑과 우정 사이''''》로 잘 알려진 음악그룹 피노키오 3집 [[보컬]]로 데뷔했으며, 뮤지컬 배우로 활동중이다.<ref>{{뉴스 인용 | 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828889 | 제목=[TV까기]‘불후의 명곡’ 신동미♥허규, 이 부부가 사랑하는 법 | 저자=허초현 | 뉴스=뉴스1 | 날짜=2016-01-10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808144521/http://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1828889 | 보존날짜=2016-08-08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뉴스 인용 | url=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1/dh20160118212244139020.htm | 제목=신동미의 꽃미 가수 편 알고보니 "이 사람이었다고?" 충격 | 저자=이슈팀 | 뉴스=데일리한국 | 출판사=한국일보 | 날짜=2016-01-18 | 확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808144558/http://daily.hankooki.com/lpage/entv/201601/dh20160118212244139020.htm | 보존날짜=2016-08-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 2017년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 조석경 전 편의 약혼녀 역
         [[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
  • 신웅 . . . . 4회 일치
         | 출생지 ={{KOR}}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계5길)
         | 출판사 = 영일보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칠곡군 출신]][[분류:1985년 데뷔]]
  • 신혜진 . . . . 4회 일치
         ||<#FFF57C> {{{#000000 '''가족'''}}} ||<(> [[부모님]], [[동생]] ||
         [[1995년]] [[1월 22일]], 1 1녀 중 첫째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부터 연예인을 꿈꾸고 있었다. 빠른 1995년생으로 1994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지금 [[미라클]] 여러분도 저와 같이 많이 속상하실 걸 알기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오마이걸]] 멤버로 활동하면서 [[미라클]]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평생 그 때 그 자리에서 잊지 못한 소중한 [[추억]], [[기억]]으로 을 것 같습니다. [[미라클]] 여러분께도 [[오마이걸]]의 둘째, [[CCTV]], [[러블리]] [[보컬]] [[진이]]는 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기억]]으로 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도전에도 여러분의 [[응원]]을 떠올리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4회 일치
         과거 기계에 파괴된 행성 뮤라토(ミュラト)의 자손을 이끄는 노사(老師) 쿠푸가 지무사의 앞에 나타난다. 노사 쿠푸는 뮤라토의 피가 아요도야 왕가에 흐르고 있으며, 가장 진한 피를 지무사가 가지고 있다고 알려준다. 지무사는 자로서 자라 도적으로 활동하는 쌍둥이 여동생 아푸루(アフル)와 만나게 되며, 기계와 인간의 전쟁에 휘말려 들게 된다.
         지무사의 쌍둥이 여동생. 녹색 머리. 지무사와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쌍둥이는 불길하게 여겨져서 버려지고, 창녀 코리노(コリノ)가 데려다가 기르게 된다. 자로서 길러졌으며 도중까지는 도적으로서 지무사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지무사와의 혈연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전반에는 전형적인 기계와의 전쟁, 초능력 구세주 전설로 흘러가다가, 후반에는 매 간의 금단의 사랑에 집중하는 스토리가 되서 약간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 일단 명목상 녀 쌍둥이 간의 애정이지만, 아푸루가 거의 작중 내내 미소년으로 묘사되고 있어 거의 BL 작품 분위기(…)이다.--생각해보니까 애초에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 안병근 . . . . 4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유도]]}}
         {{올림픽 유도 자 라이트급 금메달리스트}}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안종범 . . . . 4회 일치
         2016년 11월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안종범을 직권용, 강요,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ref>{{보고서 인용|저자=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pdfdownload.jsp?attach_no=175537|제목=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수사결과발표|출판사=검찰 특별수사본부|날짜=2016년 11월 20일}}</ref>
         박근혜 대통령 등과 공모해 삼성 등 15개 전경련 회원사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직권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조력한 혐의로 2018년 2월 13일 1심에서 징역 6년, 벌금 1억원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국정농단 연루' 안종범, 1심에서 징역 6년·벌금 1억원|url=http://news.joins.com/article/22369620|날짜=2018-02-13|출판사=중앙일보}}</ref> 이후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는 징역 5년, 벌금 6000만원을 선고받아, 징역 1년, 벌금 4000만원이 줄어들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24/2018082401286.html|제목=[속보] 국정농단 2심 최순실 징역 20년, 안종범 5년…崔 벌금 늘고, 安은 감형|성=|이름=|날짜=2018-08-24|뉴스=|출판사=}}</ref>
         2018년 3월 29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6부는 안종범을 직권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안종범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재직 당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를 위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대통령 조사’ 안건 부결 기획안 마련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ref>{{보고서 인용|저자=공보담당관 차장검사 문찬석|url=http://www.spo.go.kr/_custom/spo/_common/board/download.jsp?attach_no=193667|제목=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 사건 수사결과|출판사=서울동부지방검찰청|날짜=2018년 3월 29일}}</ref>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야리만 . . . . 4회 일치
         불특정 다수의 성과 적극적으로 성행위를 가지는 여성을 뜻하는 은어. 야리만녀(ヤリマン女)라고도 한다.
         성을 뜻하는 파생어로 야리친(ヤリチン)이 있다. 이쪽은 성기를 뜻하는 친포(チンポ)나 친친(ちんちん), 오친친(おちんちん) 등의 결합으로 보인다.
         대단히 심한 말이므로 함부로 에게 사용하면 모욕죄나 명예훼손도 될 수 있다.
  • 양윤재 . . . . 4회 일치
         | 그림설명 = [[commons:2004년 11월 서울특별시 강구 강소방서 준공식|2004년 11월 강소방서 준공식]]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부시장]][[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어쌔신 크리드 III/부가요소 . . . . 4회 일치
         Peg Leg's Trinket. 맵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 이것을 모아서 대본포트 농지에 있는 나무다리에게 넘겨주면 키드 선장이 긴 보물의 단서를 받을 수 있다.
         가끔씩 사냥감의 흔적이 나오는데, 이를 조사하면 지도에 해당 흔적을 긴 사냥감의 위치가 표시된다.
          * 인디펜던스 요새 - 보스턴 부 서쪽에 위치함
          * 보스턴 부: 징집 - 클리퍼 윌킨슨
  • 연규진 . . . . 4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1945년 출생]][[분류:평창군 출신 인물]][[분류:1969년 데뷔]]
         || '''수상''' ||2010년 제1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br][[성시]]가 선정한 모범 연예인상[br]1989년 [[KBS 연기대상]] 연기상||
          * 2010년 [[KBS1]] [[산 너머 촌에는(드라마)|산 너머 촌에는]] - 최한필
  • 오국영 . . . . 4회 일치
         출신지는 [[경상북도]]이다. 경성학당을 졸업하고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일제 강점기 초기에 [[조선총독부]] 관리로 근무했다. [[함경도]] 내무부에서 근무하던 중 [[1910년대]] 후반에 총독부 군수로 발탁되었다. [[이원군]] 군수로 수년 동안 재직했다가 병으로 퇴관했다. 이때 정8위에 서위되어 있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도 경상북도자동차협회 이사를 지내고 [[선전기주식회사]] 감사역으로 재직했다. [[1954년]]까지 선전기 감사로 현직에 있었다.
         [[분류:1889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오대석 . . . . 4회 일치
         || '''출신지''' || [[대구광역시]] [[구(대구)|구]] ||
         || '''학력''' || 도초 - 경구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한양대학교|한양대]] ||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60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오지훈 (1973년) . . . . 4회 일치
         '''오지훈'''([[1973년]] [[4월 7일]] ~ )은 [[대한민국]]의 [[자|성]] [[가수]], [[작사가]], [[작곡가]], [[편곡|편곡가]], [[음반]]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이다.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199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서운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우의형 . . . . 4회 일치
         |자녀 = 1 1녀
         |경력 = 청주지방법원장<br/>인천지방법원장<br/>[[영대학교]] 재단 이사장
         1948년 태어난 우의형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서울가정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서울고등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를 하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조사심의관으로 지냈으며 2003년에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장, [[청주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2005년에 변호사 우의형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2009년 7월 22일에 제17대 영대 재단 이사장,<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7375.html]</ref> 2011년 11월 10일에 주식회사 화진 사외이사에 선임되었다.<ref>[http://news.mt.co.kr/mtview.php?no=2011111017081381674&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ref>
         [[분류:1948년 태어]][[분류:단양 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우천석 . . . . 4회 일치
         '''우천석'''(禹天錫)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단양 우씨|단양]](丹陽)이다. 우중대(禹仲大)의 3이고, [[우탁]](禹倬)의 숙부이며, [[우인열]](禹仁烈)과 [[우현보]](禹玄寶)의 증조이다.
         [[1268년]](원종 9)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로서 낭장(郞將) 박신보(朴臣甫)와 함께 원의 사신인 왕국창(王國昌)·유걸(劉傑) 등을 따라 흑산도(黑山島)의 바닷길을 살폈는데, 이는 송(南宋)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원의 조처였다.
         ***** 장 - 우팽(禹伻) :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 [[우인열]](禹仁烈, [[1337년]] ~ [[1403년]])의 조부
         ***** 차 - 우칭(禹偁) : 좌대언(左代言), [[우현보]](禹玄寶, [[1333년]] ~ [[1400년]])의 조부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4회 일치
          클라우스가 골목 쓰레기더미에서 찾은 이후 보살피는 자. 큰 덩치에 걸맞는 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 연령이 어리다. 폭력을 싫어한다.
          크라이슬라우 서클의 단원. 잉글랜드 출신으로 런던 동부에서 빵집을 운영했었다. 빵집이 폭격당한 다음주 영국군에게 징집되었다. 영국이 항복한 후 런던에 돌아와보니 아내는 죽어있었다.
          적을 은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단검. Knife Throwing 퍽이 있으면 는 단검을 던질수도 있다. 나무상자를 부수는데도 사용된다.
          적 5명을 은밀하게 처형하면 해금. 아도는 단검을 던질 수 있게 된다.
  • 원피스/832화 . . . . 4회 일치
          * 구성원 대부분은 자이자 병사이며 고도로 단련된 전사들.
          * 제르마66의 국민 대부분은 자이며 곧 병사. 하루도 빠짐 없이 훈련을 거듭한다.
          * 상디는 이런 "재수없는 장식"이라고 말하며 마구 까는데 레이쥬는 오히려 "아버지의 꿈은 다시 노스 블루를 제압하는 것이고 자가 힘과 명성을 추구하는게 뭐가 어떻냐"고 대답한다.
          * 그러자 저지가 "밖으로 나와라. 자는 주먹으로 말하는 법."이라 말하는데.
  • 원피스/848화 . . . . 4회 일치
          * 브룩은 보물전 안에 은 체스병들을 연주와 노래로 순식간에 제압한다.
          * 문제의 침입자는 홀케이크 성 내를 들쑤시고 다닌다. 침입자의 정체는 [[페드로]]. 페드로는 전광석화 같은 쾌감으로 체스병들을 유린하며 거침없이 날뛴다. 성 안의 병력들이 페드로를 쫓아 집중된다. 페드로는 검술과 폭탄으로 몰려드는 병력을 전멸시킨다. 보물전 앞에서 시작했던 추격은 안바움 3층 안뜰 부근까지 이어진다. [[타마고 작]]은 보고를 들으며 직접 페드로를 추격하고 있다. 그는 그대로 가든까지 페드로를 몰아넣을 생각이다.
          * 그때 [[샬롯 스무디]]가 연락한다. 그녀는 타마고 작의 예상대로라면 페드로 쪽은 미끼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진짜는 바로 보물전. 또다른 침입자가 보물전 내부로 진입,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다고 알린다. 비록 보물전이 뚫렸지만 그곳의 출입구는 하나. 거기만 잘 지키면 된다고 문제없다고 본다. 그리고 거기 있을 침입자는 분명 "뼈"일 거라며, 빅맘이 좋아할 만한 소재니까 생포해달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모두 타마고 작의 손바닥 위.
  • 원피스/849화 . . . . 4회 일치
          * 안뜰까지 몰린 [[페드로(원피스)|페드로]]. [[타마고 작]]은 그가 5년 전 잡혔을 땐 빅맘에게 수명 50년 치를 빼앗겼다고 하는데.
          * 병력을 끌고 다니던 페드로는 마침내 안뜰까지 쫓겨온다. 그를 추격한 [[타마고 작]]이 기다리고 있다. 타마고 작이 밝힌 그의 전 직함은 "녹스 해적단 선장 캡틴 페드로". 그는 비록 적이라도 페드로를 "너른 자"라 인정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오랜만에 숙적을 마주하니 "왼쪽 눈의 상처"가 쑤신다고 말하는데. 그는 빅맘에게 사로잡혔던 "5년 전"엔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페드로가 어째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냐고 묻는다. 하긴, 그는 이미 "제대로 살아있을 수도" 없는 몸이다. 5년 전 그날 페드로는 50년 치 수명을 바치는 대가로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는 타마고 작. 그는 왼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
  • 원피스/858화 . . . . 4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의 총 요리장 미식기사 [[슈트로이젠]]은 기묘한 노래를 부르며 다과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과회까지 은 시간은 약 4시간.
          * 타도 빅맘을 목표로 겨우 동맹이 성립하고 루피는 벳지에게 어떤 계획이 있는지 묻는다. 벳지는 "완벽한 계획"이 있다고 하는데. 이때 은 시간은 3시간 20분.
          * 미러월드의 징베는 [[쵸파]] 일행과 함께 먼저 벳지의 아지트에 가있겠다고 말했다. 뒤따라 도착한 [[몽키 D. 루피]]와 [[상디]]. 그들이 파이어 탱크 아지트의 정문에 도착했을 땐 다과회 개최까지 4시간 15분이 은 시점이었다. 루피는 벳지가 어떤 녀석이냐고 묻는데 상디는 "마피아 보스 같은 녀석"이라고 짧지만 정확하게 대답한다.
          시저는 얼른 해치우고 이 관계를 끝내자고 말한다. 이때 개막까지 은 시간 3시간 20분.
  • 원피스/860화 . . . . 4회 일치
          * [[카포네 갱 벳지]]는 이 작전에서 가장 성가신 자로 카타쿠리를 지목. 견문색 패기가 너무 뛰어나 미래까지 볼 수 있다는 인물이다.
          * 벳지는 그가 쓰러지자 누가 쏜 거냐고 버럭한다. 설사 초대장은 없어도 어쨌든 중요인물임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정문 위에서 어떤 자가 지그라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대신해준다.
          벳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 3장성 [[샬롯 카타쿠리]]. 샬롯가의 차이자 현상금 10억 5700만 베리가 걸린 괴물. 그는 지그라가 빅맘에게 복수하러 온 "미래"를 보고 그를 쐈다.
          * 드디어 초대장을 가진 진짜 게스트들이 도착한다. 벳지는 정문을 개방하고 손님들을 안으로 안내한다. 역시 3장성 중 하나인 [[샬롯 스무디]]는 게스트들에게 손수 짠 쥬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녀의 능력 때문인지 하나같이 기이하고 희귀한 것들만 쥬스로 만든다. "마우리 화산의 용암", "자 100명을 찌른 미녀", "괴상한 목소리로 우는 기린" 같은 것들이다. 게스트들이 기린을 청하자 스무디는 바로 기린을 짜내서 주스를 만들어준다.
  • 원피스/873화 . . . . 4회 일치
          * [[타마고 작]]은 [[카포네 갱 벳지]]의 배신에 분개하고 [[페콤즈]]는 어떻게든 성으로 복귀, 태양 해적단의 이탈을 전했다.
          [[샬롯 몬도르]]에게 사실을 전해들은 [[타마고 작]]이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벳지의 실력만 보고 좋게 평가하고 있었으나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샬롯가의 장녀 [[샬롯 콩포트]]도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결국 어떻게 말을 맞춰봐도 성을 붕괴시킨 폭발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잘 생각해 보면 반역자들 짓은 아니다. 자기들도 성내에 있었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동반자살 밖에 안 된다. [[샬롯 오븐]]은 그렇게 판단한다. 여전히 옥갑의 진실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 하지만 풀린 수수깨끼도 있다. 왜 다과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성 안의 간부들은 까맣게 몰랐을까? 그건 벳지의 공작이었다. 성내로 연결되는 연락라인이 전부 불통 상태였던 것. 마침 짚이는 것도 하나 더 있다. 다과회 개시 직전 동쪽 해안을 점거 중이던 태양 해적단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 소식은 [[페콤즈]]가 직접 전했다. 용캐 성으로 돌아온 페콤즈가 그들이 자기만 해안에 겨놓고 짐까지 빼앗아 가버렸다고 성을 냈다. 이야기를 맞춰보니 그건 [[징베]]가 안전하게 빅맘 산하를 떠나 밀집모자 일행과 합류하기 위한 조치였다. 빅맘의 분노가 어인섬과 태양 해적단에 미칠 걸 우려한 징베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려고 한 짓이다. 그래서 한 번은 탈퇴를 취소했다가 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다시 탈퇴를 확정한 것이다.
          >녀석들은 지금 바로 서 해안을 향해서 도망치고 있어!
  • 원피스/877화 . . . . 4회 일치
          * [[브룩]]과 [[쵸파]]의 선전도 거기까지였다. 적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소용없었다. [[샬롯 브륄레]]가 미러월드에서 보내오는 병력은 끝이 없었다. 거울에 있는 나미의 방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모두 브룩과 쵸파를 노리고 오는 적들이었다. 먼저 제압된 건 쵸파였다. 브룩도 얼마 시간을 두지 않고 잡혔다. 적의 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샬롯 페로스페로]]의 사탕 공격이 결정적이었다. 쵸파는 벌써 몸의 대부분이 사탕으로 코팅 당했다. 사탕 코팅에 당한 이상 변신도 무리였다. 브룩은 아직 팔다리 뿐이지만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페로스페로는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비웃었다. 정말 자기들로부터 배를 탈환할 줄 알았냐면서. 그는 겁에 질린 쵸파를 잔인하게 조롱했다. 이미 한 번 기회를 줬지만 그들이 차버렸으니, 전부 "캔디 인간"으로 만들어서 핥아먹어주겠다고 말했다. 사탕 코팅은 이제 쵸파의 얼굴까지 도달했다. 쵸파가 사탕에 익사당할 것 같았다. 완전한 "캔디 인간"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은 단 3분. 마침내 쵸파의 머리 끝까지 사탕에 쌓이며 머리 위엔 은 시간을 나타내는 사탕 타이머까지 생겼다.
          * [[페드로(원피스)|페드로]]도 선상을 점거한 페로스페로와 카타쿠리를 보고 "귀찮은 녀석들이 앞질렀다"고 불평했다. 이제 선상에 은 빅맘 해적단은 카타쿠리와 페로스페로 단 둘. 페로스페로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일행에게 잘도 도망쳤다고, "감동 받은" 데 대한 선물을 날렸다. "캔디 메이든". 캔디로 된 아이언 메이든. [[캐롯(원피스)|캐롯]]은 그게 사탕 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벽일리 없었다. 캔디 메이든의 날카로운 이빨이 일행을 덮쳤다. [[징베]] 조차 여기선 우회하자고 했지만 루피는 강행돌파를 고집했다. 루피의 전력을 다한 "고무고무 레드호크"가 불길을 일으키며 캔디 메이든을 꿰뚫었다. 관통력에 불까지 붙은 레드호크는 페로스페로에겐 천적 같은 기술이었다. 당황하는 페로스페로.
          * 카타쿠리가 루피를 상대하는 동안, 페로스페로는 구태여 배에 오르는 일행을 요격하지 않았다. 대신 전보벌레를 들었다. 반대편에선 [[샬롯 몬도르]]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군함으로 해안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루피 일행이 아직도 살아았다는걸 안 몬도르는 지체없이 지시를 이행했다. 곧 그의 명령만 기다리던 빅맘의 해상병력들이 움직일 것이다. 밀집모자 일당은 이 배와 함께 해안에서 수장될 것이고.
          * 페드로였다. 페로스페로의 움직임을 예측한 그가 해안가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페로스페로의 등을 노리는 페드로. 그러나 역시 페로스페로는 만만치 않았다. 그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며 넘어뜨렸다. 페로스페로는 페드로를 짓밟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신은 현상금 7억짜리 자라고. 그런 자신이 너따위에게 당하겠냐고. 페드로가 그때 코트 자락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안에 폭탄이 없었다면 말이다.
  • 원한해결사무소/4화 . . . . 4회 일치
         제4화 잃을 게 없는
         원한해결사는 정보원에게 원한대상 '마사토 이치로'의 정보를 찾는다. 하지만 가족[* 부모는 이혼하고 5년 이상 행방불명]도 직업도 없고 빚도 지고 있는, '잃을 게 없는 자'이므로 사회적으로 말살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상대였다.
         원한해결사는 [[만계 사이트]]를 이용하다는 척 하면서 마사토 이치로에게 접근한다. 마침 돈이 궁하던 그는 쉽게 접근했다가 약을 먹고 기절한다. 깨어난 마사토는 야쿠자 사무실[* 유한회사 '이타우에 무역坂上貿易'이라고 써있다.]에 버려져 있었다.
         집에 간 마사토는 협박용 비디오와 주소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경악한 마사토는 바로 도망치려 하지만 야쿠자들에게 다시 붙잡힌다. 야쿠자는 자신을 죽일 거냐는 마사토에게, 자신의 거래처 '스네이크 헤드'에게 팔아넘겨 색가들의 파트너로 만들 것이라고 말해준다. '잃을 게 없는 인간'이므로 반대로 '증발해도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는 인간'이므로 팔아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 원한해결사무소/6화 . . . . 4회 일치
         의뢰인은 신혼 새댁 여성 마츠자와. 의뢰 대상은 맨션 관리조합의 '부이사'라는 아줌마. 결혼과 동시에 맨션을 사서 살기 시작한 마츠자와는 지어진지 6년이 된 맨션을, 리폼을 끝내고 2,200만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옆집 아줌마는 6년 전에 새로 지은 맨션을 6천만에 구입했기 때문에, 40이 되서 겨우 가지게 된 '내 집'을 땅값 하락 때문에 젊은 것들이 쉽게 삿다고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주택융자를 메꿀 수 있었다.]
         그래서 부이사 아줌마는 시댁에게 못살게 굴었는데, 쓰레기를 뒤져서 '콘돔'을 발견하더니 얼굴에 집어던지거나, 우편함에다가 [[개똥]]을 대량으로 집어넣거나, 편 앞에서 "갈색머리 자와 놀고 있었다."면서 있지도 않은 불륜 모함을 하는 등. 치사하게 굴었다.
         원한해결사는 100만으로 의뢰를 받겠다고 하지만, 30만 정도 밖에 낼 수 없다고 해서 그걸로 의뢰를 받는다. 단, 일의 내용도 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3일이 지난 뒤, 우편함의 우편물이 모두 없어지고 새댁의 우편물만 아 있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아줌마는 새댁을 우편물 도둑으로 몰고가고, 게다가 새댁의 집 열쇠나 차 열쇠가 모두 접착제로 붙여져 있었다. 새댁은 거의 미칠 지경.
  • 윤용현(1969) . . . . 4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
         || '''출생''' ||[[1969년]] [[5월 3일]], [[전라도]] [[강진군]]||
         || '''가족''' ||부인과 슬하 1 1녀||
         1999년 드라마 [[왕초]]에서 깡패 "도끼"로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4~5회 정도만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왕초에게 맞는 연기를 하는 도중 후배들 앞에서 맞는 연기를 하기 민망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맞을때마다 "이거 맞아서 그런 거 아니여, 미끄러진 거여"라고 충청도 사투리로 애드립을 쳤는데 이게 시청자들과 제작진에게 어필이 되었는지 고정 캐릭터로 게 되었다.
  • 은혼/576화 . . . . 4회 일치
         * 우미보즈는 태연히 받아내며 "에게 물건을 던지면 못 쓴다"고 타이르는 투로 대꾸한다. 이번엔 카무이가 시시의 칼로 내리치는데 이것도 "에게 뾰족한 것을 가리키는게 아니다"면서 어린애 타이르는 투로 받아친다.
         * 카무이는 오로지 아버지를 목표로 살아왔다고 독백하면서 우미보즈가 다시 한 번 짐승으로 돌아와 자 대 자로 겨룰 수 있기를 바란다
  • 은혼/621화 . . . . 4회 일치
          * 이런 개판의 와중에 마조돼지로 전락했던 [[코제니가타 헤이지]]까지 멀쩡한 척 안경을 쓰고 나타나 "자들은 모두 가랑이에 바이러스 포를 가지고 있는 박사들"이라고 개드립을 친다. 그는 자신을 데려가 이종교배 실험을 시켜달라는, 취지가 장난 아니게 빗나간 요구를 해댄다. 하지만 왠지 쿄시로가 "당신들이 가면 지구인의 이미지만 나빠지니 내가 가서 천 명을 꼬셔오겠다"는 드립을 치면서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다.
          >할배만 겨두고 나머지만 죽으면 된다.
          * 다른 인질들도 건물 아래로 떨궈진다. 소타츠는 "앞으로 아이들의 엄마가 될 여자들"이란 말을 비웃으며 "앞으로"가 어디있냐고 비꼰다. 망해가는 별에는 여자도 자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미래가 없는 자들과 거래할 생각이 없었으며 그들의 "거래처"는 해방군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옥상 위에 모인 주민들을 몰살하기 위해 달려드는데. 오토세 여사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소타츠의 칼을 무심히 쳐다보며 말한다.
          * 그대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던 타에와 해결사 일행, 스마일의 아가씨들도 모두 무사하다. 그들은 건물 사이에 쳐진 그물에 걸려서 무사할 수 있었다. 양 건물 안에서 그물을 잡아 당기고 있는 자들. 그 사이에서 [[도로미즈 피라코|익숙한 목소리의 소녀]]가 나타난다.
  • 은혼/623화 . . . . 4회 일치
          * [[오토세]] 여사는 그들의 싸움을 보며 자신과 지로쵸, 그리고 편 [[테라다 타츠고로]]의 젊은 날을 회상한다.
          >자는 입보다 주먹으로 얘기하는게 빠르다는 걸
          >여주인이 반한 자를 날려버린 자도... 들어가게 해주겠나?
  • 은혼/625화 . . . . 4회 일치
          * 그 패배를 안긴 자는 "우리들이 꺾어온 생명이 어떤 꽃을 피울지 궁금해졌다"는 말을 기고 일족을 떠난다.
          * 다키니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전쟁만을 위해 살아가던 그들이 "전설도 아무 것도 없는 생물"들에게 당할 수 있는지 이치를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신의 뿔이 기고 간 말, "우리들이 꺾어버린 생명 또한 무언가를 위해서 꽃 핀 생명"이란 말이 떠오른다. 싸우기 위해 태어나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이 공포를 자아내고 승리를 취하는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그들은, 어째서 자신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가?
          * 그때 입구를 휘저어 놓으며 나타나는 긴토키와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 이들이 마을에 진입했던 전위 부대를 뒤흔들며 쫓아내는 모습에 사이고와 대치하던 해방군 본대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들은 각기 3대 용병 부족으로 유명한 다키니와 신라 부대. 이들이 정신없이 후퇴하는 모습은 해방군에 파문을 일으킨다. 긴토키의 말처럼 "공포는 전염"되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서문에서 빈보쿠사이가, 문에서 지로쵸가 날뛰며 적들을 밀어내기 시작하자 동요는 더욱 커진다.
          빈보쿠사이도 비슷한 의견이다. 자신 같은 역전의 늙은이도 불알이 쪼그라 들 것 같은 도박. 원래 세계를 구하는 바보같은 일은 삐끗하면 진자 세계를 파멸시킬 진짜 멍청이들한테는 버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만은 그 멍청이들, 긴토키 일행에게 걸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 은혼/635화 . . . . 4회 일치
          카무이의 옆에서 다시금 싸울 자세를 잡는 가구라. 카무이는 가구라가 방해만 안 되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만 무사하면 너 따윈 언제든지 해치울 수 있다는 말을 매가 똑같이 주고 받는다.
          * 매 간의 대화에 끼어드는 노사. 노사는 야토와 야토가 싸우게 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제 은 시간은 얼마 없다. 겐가이가 쓸모없어진 이상 타계책은 하나. 새벽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노사는 이제 야토가 적으로 나타났으니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다고 말한다. 아부토는 "우리가 없다면 손쉬웠다는 얘기냐"고 받아치는데, 노사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그렇지 않냐"며 7사단은 별도 멸망시키는 최강 부대라더니, 그것도 전대 [[야왕 호우센]] 시절 얘기에 지나지 않는 거냐고 빈정거린다. 그러면서 자기한테는 "나보다 젊은 세대는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고 호우센 조차 "애송이"라고 부른다. 그는 호우센의 강함을 인정하긴 하지만, 자기가 태어났을 땐 그정도의 강자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고 말한다. 야토는 모성 황안에 있을 때는 분명 최강이었으나, 그 별을 떠나면서 점차 피는 옅어졌고 힘은 약해졌다. 그래서 노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세대의 야토는 "부정한 피가 섞인" 세대에 불과하며 야토로 취급할 수도 없는 결격품이다.
          * 카무이의 힘은 오히려 노사를 밀어낼 정도였다. 그때, 노사의 후방에서 또 한 명의 쿄쿠카의 자식, 가구라가 날아든다. 아까까지 티격거리던 매는 이 순간 의견 일치를 본다.
  • 은혼/641화 . . . . 4회 일치
          * 히노카구츠치의 제어 중추로 향하던 신스케 일행은 발걸음이 늦춰졌다. 교신 중이던 헨페이타가 의미심장한 말을 기고 통신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그를 불러봐도 대답은 없다. 좋지 않은 예감. 그때 그들의 앞을 기관총 사격이 막는다. 황급히 샛길로 피하는 일행. 제어 중추가 코 앞이었다. 생존자를 쥐어짠 호위병력이 복도를 빼곡히 매우고 있었다. [[키지마 마타코]]는 이쪽도 더는 한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다. 방어가 두터울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저 병력들을 다 처리하려면 15분이 아니라 15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단 제어 장치까지 도달하면 희망이 있다. 그 내부에서는 적의 공격도 기세를 죽을 것이다. 축적된 에너지를 유폭시키고 싶지 않다면.
          * 폭연이 길을 매우고 해방군은 거기다 소총을 연사하며 돌진한다. 소수의 적을 고립, 격멸시키고자 펼친 전술이었겠지만 적의 여력을 오판했다. 연기 속에서 걸어나온 한 자가 묘한 기술을 쓴다. 샤미센, 어느 틈에 적진 가운데로 침투한 반사이의 샤미센 현이 그들을 휘감았다. 이제 그가 다루는 악기일 뿐이다.
          반사이는 총상을 입은 복부를 숨겼다. 적의 2파가 몰려오고 있었다. 바주카를 장비한 병력이었다. 적이 막 신스케를 노리려 할 때 반사이는 과감하게 칼을 던져 적의 병기를 유폭 시켰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이 복도를 붕괴시켰다. 벽과 천장이 무너지면서 적 병력과 신스케가 양단됐다. 그리고 반사이는 적들과 함께 았다.
          반사이의 모습이 무너진 잔해 뒤로 사라졌다. 이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반사이가 무전으로 마지막 말을 겼다. 그는 수비가 엄중하다면 차라리 적을 이쪽으로 집중시킬 테니 신스케와 마타코가 선행하라고 말한다. 물론 신스케가 납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사이는 자신도 곧 뒤따라가겠다는 말로 그를 설득했다. 비록 복부의 총상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지만.
  • 은혼/644화 . . . . 4회 일치
          *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는 통제실을 제압하고 은 적 병력에 최후통첩을 날리며 항복을 종용한다.
          * 고백에 가까운 짧은 연설은 설득력이 있었고 해방군의 얼마 지 않은 저항의지를 분쇄했다. 전쟁을 끝낼 만한 고백. 엔쇼 황자가 눈을 뜨지 않았다면 그럴 뻔 했다. 해방군 생존자들이 총구를 내렸을 때 엔쇼 왕자가 입을 열었다. 다츠마가 안겨준 총알은 너무 정확하게 맞았다. 엔쇼가 언제나 품고 있던 팬던트. 심장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두었던 아내의 얼굴이 총알을 대신 맞았다. 엔쇼는 어쩌면 이 자리의 누구보다 다츠마의, 양이지사들의 심정을 공감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기꺼이 "나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토로한다.
          무츠는 아직 은 의식을 모아 다츠마를 칼날의 진행 방향에서 밀쳐냈다. 칼날은 무츠를 관통해 천장까지 찔러들어갔다.
          * 엔쇼의 공격이 끝과 동시에 가츠라와 [[엘리자베스(은혼)|엘리자베스]]... 아니 구룡공자 드라고니아가 뛰어들었다. 엔쇼는 라이트 세이버를 두 자루로 나눠서 대응했다. 2 대 1의 상황도 그를 위축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츠라, 드라고니아의 파상공세를 가볍게 막고 역으로 두 사람을 수세로 몰아붙였다. 그는 양이지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 은혼/647화 . . . . 4회 일치
          * 마타코의 원호사격이 만든 작은 간격. 때를 놓치지 않고 신스케의 검이 엔쇼의 은 한 팔을 베어놓는다.
          그는 시체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다른 폐품들처럼 시설물 잔해에 간신히 걸려있던 그를 찾았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가 흘린 피만 봐도 상황은 일목요연했다. 그게 문제였다. 무전으로 화상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으로 보면 자명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헨페이타가 절망하지 않을 형태로. 그게 어려웠다. 그때 신스케가 손을 들어 어려움을 끝내준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그가 통신으로 유언을 기지 않은 것도.
          >나나 네가 살아은 걸 보니 나쁜 놈일 수록 오래 산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군.
          >그놈들이 믿고 있는 다카스기 신스케로 계속 아 있어야 해
  • 의상 (신라) . . . . 4회 일치
         | 제자 ={{개행 금지 시작}}[[오진 (북국 시대)|오진]](悟眞){{.w}}[[지통]](智通){{.w}}[[표훈]](表訓){{.w}}[[진정 (승려)|진정]](眞定){{.w}}[[진장 (승려)|진장]](眞藏){{.w}}[[도융 (승려)|도융]](道融){{.w}}[[양원 (승려)|양원]](良圓){{.w}}[[상원 (승려)|상원]](相源){{.w}}[[능인 (승려)|능인]](能仁){{.w}}[[의적 (승려)|의적]](義寂) 등{{개행 금지 끝}}
         그 후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혼란을 피하여 [[661년]]([[문무왕]] 1년)에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타고 건너가 [[중난산 산|종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지엄]](至嚴: [[중국의 불교|중국]] [[화엄종]]의 시조)의 문하에 [[법장 (당나라)|현수]](賢首: 법장)와 같이 [[화엄]]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ref name="글로벌-의상"/> [[법장 (당나라)|현수]]는 [[지엄]]의 뒤를 이어 중국 [[화엄종]]의 제3조가 되고, 의상은 귀국 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당나라]]에 체류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여성 중 그를 사모하는 선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상의 귀국 소식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상이 [[영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와서 집단으로 들고 일어서자 어느 날 사람 수백 명의 머리를 덮고도 을 크기의 바위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하였고, 의상은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분류:625년 태어]][[분류:702년 죽음]][[분류:7세기 철학자]][[분류:입당승]][[분류:신라의 왕족]][[분류:신라의 작가]][[분류:불교 철학자]][[분류:무속의 신]][[분류:경주 김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덕건 . . . . 4회 일치
         |성별 =
         처음 <[[유머 일번지]]>, <[[전국노래자랑]]>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드라마 <[[애정의 조건 (1987년 드라마)|애정의 조건]]>,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달빛가족]]>, <[[서울 뚝배기]]>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3년 [[KBS 드라마게임|드라마 게임]] <쌀>로 입봉하여 이후 <[[아름다운 유혹]]>, <[[별난여자 별난자]]>, <[[미우나 고우나]]>, <[[바람 불어 좋은 날 (드라마)|바람 불어 좋은 날]]>, <[[사랑은 노래를 타고]]> 등 일일극 연출을 맡아 성공시키며 KBS 일일극의 상징인 감독으로 각인됐다.
         |2005||KBS1||[[별난여자 별난자]]||연출||
         | 출판사 = 영일보
  • 이상오 . . . . 4회 일치
          | 필명 = [[호 (이름)|호(號)]]는 모(慕南)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慶州)이며 호(號)는 모(慕南)이다.
         [[사냥|수렵]]과 [[야생동물|들짐승]]에 관한 저술서도 다수 겼으며 [[사격]]과 [[바둑]]에도 유단자였다.
         [[분류:1905년 태어]][[분류:196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
  • 이원재(축구선수) . . . . 4회 일치
         || 소속팀 || [[포항 스틸러스]](2005~2007) [br] [[전북 현대]](2008) [br] [[울산 현대]](2009~2010) [br] [[포항 스틸러스]](2010~2014) [br] [[아산 무궁화|안산 경찰청]] (2013~2014, 군복무) [br] [[대구 FC]] (2015) [br] [[경 FC]] (2016) [br] 마나마 FC (2017~ ) ||
         ||||||||||||<#ff1924><:> '''{{{#ffffff 경 FC 역대 주장}}}''' ||
         포철공고 출신으로 2005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포항에서는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2008년 [[전북 현대]]로 이적하였다. 전북에서도 4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9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다. 2009년 울산에서 17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자리를 획득하는 듯 했으나 2010년에 1경기도 출장못했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다. 포항에서도 출장기회는 적었고, 2013년 [[경찰 축구단]]에 입대하였다. 2013년 경찰에서 28경기에 출장하였고, 2014년에는 11경기에 출장하였다. 2015년 1월 7일 [[대구 FC]]로 이적하였다. 2016년 [[경 FC]]로 이적하였다. 2017년 바레인 리그 소속의 마나마 FC로 이적하였다.
         [[분류:1986년 출생]] [[분류:경 FC/은퇴, 이적]] [[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 [[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 [[분류:대구 FC/은퇴, 이적]] [[분류:경찰 축구단/전역]]
  • 이은수(육군) . . . . 4회 일치
         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매(2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 여군 최초의 [[장성급 장교|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 출신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여군 [[장군]], [[제독]]은 간호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총 9명(전원 육군)이다.] 법무 병과장인 [[육군본부]] 법무실장에 올랐다.[*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 법무장교 출신 군무원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가족관계로는 편과 딸 하나가 있었으나 편은 07년에 지병(암)으로 사망하였고, 부친도 이 장군의 전역 3개월 전에 별세하였다.[* 이은수 장군은 자신의 장군 취임식 때 연평도사건으로 인하여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부친을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의 전역식 때는 부친을 꼭 모시고자 마음먹었으나 전역 3개월을 앞두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모친의 병간호로 무리했는지 사망했다.]
  • 이인영(정치인) . . . . 4회 일치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통령선거 직선제 쟁취를 위한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 [[노태우]]의 항복선언을 받아내자,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 중심으로 [[전대협]]을 결성하여, 1987년 7월 대전 충대에서 출범식을 거행하였다.
         제20대 국회 후반기 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 민족화해와 번영을 위한 북평화통일 특별위원회 위원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773775.html|북한 간의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률안]]
  • 이재율 (1993년) . . . . 4회 일치
         [[2016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손시헌]]의 안타 후 대주자로 교체되면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이 도루는 2016년의 팀 내 첫 도루였다.<ref>{{뉴스 인용 |저자= 권태영|제목= NC 구창모·박준영·이재율 성공적인 데뷔전|url=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76362 |뉴스= 경신문|출판사= |위치= |날짜= 2016-04-02|확인날짜= 2016-04-09}}</ref>
         * [[영대학교]]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이정무 . . . . 4회 일치
         1941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선산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1978년부터 [[대구백화점]]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에 경상북도 군위군-선산군-칠곡군-성주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다가 [[신현확]]에 밀려 탈락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년 후배인 [[박철언]]이 조직한 월계수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9년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구광역시]] [[구(대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에 임명되었다. [[DJP연합]]에 따른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 [[연정|공동정부]]의 몫으로 1998년 3월부터 1999년 5월까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 이준승 . . . . 4회 일치
         '''이준승'''(1934년 ~ 2012년 1월 15일)은 전두환 대통령에 의하여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부인 권영렬과 사이에 41녀의 자녀가 있다.
         1934년에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이듬해 졸업한 이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61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처음으로 검사를 시작하였다. 이후 1963년 [[청주지방검찰청]]과 1966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1969년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파견되었다가 1971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검찰에 복귀하였다. 이후 1973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지청 1977년 [[서울지방검찰청]] 1978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였으며 1978년에 차장검사로 승진하여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되어 1979년에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전보되어 차장검사로 재직하였다.
         *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86년 11월 24일에 성전기 주식회사 대표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학력을 속여 취업을 했더라도 신뢰관계나 기업질서유지에 영향을 주지않고 특별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직일 경우 이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위장취업을 이유로 노조간부 등에 대해 해고를 하는 것에 제동을 건 최초의 판결이다.<ref>동아일보1986년 11월 25일</ref>
         [[분류:1934년 태어]][[분류:2012년 죽음]][[분류:안동시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현욱(배우) . . . . 4회 일치
         |출생지 = [[전라도]] [[영광군]]
         |학력 = 전영광고등학교 (졸업)
         * 전영광고등학교 (졸업)
         [[분류:1985년 태어]][[분류:201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영광군 출신 인물]]
  • 이희근 (1929년) . . . . 4회 일치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한국 전쟁]], [[베트 전쟁]]
          | 서훈 내역 = 대한민국 공비토벌기장 <br/> 대한민국 6.25종군기장 <br/> 대한민국 대통령수장 <br/> 대한민국 무성을지무공훈장 <br/> UN종군기장 <br > 대한민국 5등 근무공로훈장 <br/> 대한민국 3등 보국훈장 <br/> 베트 2등 공군근무훈장 <br/> 대한민국 대통령 공로표창장 <br > 대한민국 보국훈장 국선장 <br/> 스페인 공군 대백십자훈장 <br/> 대한민국 충무무공훈장 <br/> 대한민국 보국훈장 통일장
         [[분류:192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일곱개의 대죄/203화 . . . . 4회 일치
          * [[디안느]], 지금의 [[드롤]]은 거인족 녀의 수행에 어울려주고 있다.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덤비지만 디안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둘의 체술공격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가볍게 반격하자 둘이 나가떨어진다. 이번엔 대지를 조종하는 술법으로 도전하는데 이또한 디안느의 실력에는 따를 수도 없다. 디안느가 대지를 움직이자 두 거인족의 술법을 집어삼키고 간단히 승리를 거둔다.
          거인족 녀는 패배를 인정하고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 싸우는 중엔 드롤 본인처럼 진중한 태도였는데 싸움이 끝나자 디안느 본래의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거인족들도 그런 모습에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모습니다.
          * 디안느는 [[할리퀸(일곱 개의 대죄)|킹]]에게 승리를 자랑하듯 어떻게 봤냐고 의견을 구한다. 킹은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실은 방금 전에 본 뤼드셀이란 자를 의식하고 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 마력은 십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숲 깊숙한 곳에서도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 기색은 뤼드셀과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킹은 이런 의문점에 대해 디안느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지만 디안느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짧은 시간만에 이곳 생활에 적응한 건지 거인족들을 따라다니며 "한 번 더 승부하자"고 조르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킹의 표정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게라이드는 오빠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여기는데 킹은 얼버무리기 바쁘다. 킹은 생각해 보니 그녀가 초대 요정왕 때부터 섬겨왔단 얘기를 해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설마 자신과 [[엘레인]]처럼 매 관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모습과 분위기는 그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현대의 게라이드는 속이 검고 요정왕의 안위만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205화 . . . . 4회 일치
          이 긴장감 없는 녀석들이 사대천사 [[사리엘]]과 [[타르미엘]]. 사리엘은 작은 소년의 모습이고 타르미엘은 세 개의 머리가 달린 거구의 성이다. 타르미엘은 말끝을 묘하게 늘이는 존댓말 말투를 쓰는데 이번 내기는 없던 걸로 하고 "이 자리의 십계 전원을 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새로운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사리엘은 받아들이며 "5분"만에 끝내겠다고 선언한다. 타르미엘은 "10초"로 하겠다고 하는데.
          * 사리엘과 타르미엘은 걸러든 마신족을 일소했다고 자신한다. 타르미엘은 5초 만에 전멸시켰으니 자기 승리라고 하는데, 갈란과 메라스큐라는 건재하다. 메라스큐라는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됐는지 갑자기 잡아 끈 갈란한테 무슨 짓이냐고 따지고 있다. 사리엘은 저 "두 마리"가 았으니 타르미엘의 승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 콤보를 계속 쌓으며 54콤보까지 얻어맞은 타르미엘은 이미 형채도 제대로 지 않았다. 그런데 한 순간에 모습을 회복하더니 데리엘에게 언제까지 할 거냐고 말까지 건다.
          네로바스타는 떠나는 뤼드셀에게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완수하겠다고 답한다. 뤼드셀이 떠나자 그녀는 뤼드셀의 무운을 빌며 몸을 돌리는데, 갑자기 뤼드셀이 다시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다. 네로바스타는 좀 필요이상으로 놀라면서 "뭐가 더 았냐"고 묻는다. 뤼드셀은 만일을 위해 미리 원군을 불러 대기시키라고 지시하려고 왔던 것이다. 아무리 사대천사라도 십계를 상대라면 힘들기 때문이다.
  • 장원준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메달 나라|{{국기나라|대한민국}}}}{{메달 스포츠|자 [[야구]]}}
         * [[영사이버대학교]]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수영초등학교 (부산) 동문]][[분류:대동중학교 (부산) 동문]][[분류:부산고등학교 동문]][[분류:영사이버대학교 동문]]
  • 장은숙 (가수) . . . . 4회 일치
         * 《떠나는 자》([[1985년]])
         * 《우연한 만 (めぐりあい)》([[2006년]])
         * [[2011년]] [[경상도]] [[산청군]] 홍보대사, 서울관광대사
         [[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197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엔카 가수]]
  • 장의수 . . . . 4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준영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클럽=[[대전 시티즌]]<br>[[성 FC]]<br>→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임대)
         [[2018년]] [[안상현]]과 트레이드되어 [[성 FC]]로 이적하였으나, 이적 동시에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경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임대되었다.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성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대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축구 수비수]]
  • 장진 (영화감독) . . . . 4회 일치
         | 자녀 = 슬하2
         '''장진'''(張鎭, [[1971년]] [[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 제작자이다. 영화배우 [[정재영]]과 절친한 사이이며, 정재영이 죽으면 자기도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다른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프로듀서]][[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장평도정 . . . . 4회 일치
         '''장평도정'''(長平都正, ? - ?)은 [[조선]]시대 전기의 왕족이다. 조선 [[조선 태종|태종]]의 손자이자 [[양녕대군]]의 다섯 번째 서자이며, 이름은 이흔(李訢)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15대조로, 이승만은 그의 장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의 1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이순신 (1554년)|무의공 이순신]]은 그의 6대손이다.
         [[파평 윤씨]]와 [[진주 강씨]] [[강위]](姜偉)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파평 윤씨는 딸 둘을 두었고, 진주 강씨에게는 3녀를 두었다. 서자로 부림령(富林令) 이순(李順) · 우성령(牛城令) 이석(李碩) 등의 2이 있다. 부림령의 시호는 정숙공(靖肅公)이며, [[원주 변씨]] 변처관(邉處寬)의 딸과 혼인하여 수주정(樹州正) 이윤인(李允仁)<ref>이윤인은 이승만의 13대조 할아버지이다.</ref> · 유제도정(楡梯都正) 이윤의(李允義) · 덕풍부령(德豊副令) 이윤례(李允禮) 등의 3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rfo.co.kr/html/pachong_view.php?No=39&mode3=history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봇이 따온 제목 -->]</ref>
         우성령 이석은 [[안동 권씨]] 종손(從孫)의 딸과 혼인하여 덕창부령(德昌副令) 이자인(李自仁) · 시천부령(矢川副令) 이자의(李自義) · 해평부령(海平副令) 이자례(李自禮) · 화성부령(化城副令) 이자지(李自智) · 가조부령(加祚副令) 이자신(李自信)의 5을 두었다.<ref name=autogenerated1 />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장평도정의 손자 수주정 이윤인의 13대손이다.
  • 전락원 . . . . 4회 일치
         '''전락원'''(田樂園, [[1927년]] [[5월 16일]] ~ [[2004년]] [[11월 3일]])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겸 교육가, 관광업자이다. '카지노의 대부'라는 별칭도 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1451.html ‘카지노 대부’ 전락원씨 유족, 증여 · 상속세 430억원 신고 : 경제일반 : 경제 : 뉴스 : 한겨레<!-- 봇이 따온 제목 -->]</ref>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아들이며, 수필가 [[전숙희]]의 동생이었다. [[파라다이스그룹|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주이며, 카지노업과 교육 사업을 하였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우경(宇耕)이며 [[서울특별시]] 출신. 종교는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이다.<ref>[http://news.joins.com/article/2028144 '파라디이스 그룹 창업주' 전락원 회장 별세], [[중앙일보]], 2004년 11월 3일.</ref>
         1927년 5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鍾路區) 계동에서 장로교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田周富) 와 계성옥(桂成玉)의 2 5녀 중 넷째이자, 수필가 [[전숙희]](田叔禧) 의 동생이었다. 아버지 전주부는 생애중 14곳의 개척 교회를 설립한 목회자이자 기독교 운동가였다.
         [[분류:1927년 태어]][[분류:200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 사람]][[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병사한 사람]][[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학 설립자]][[분류:담양 전씨]]
  • 전민제 . . . . 4회 일치
          | 자녀 = 슬하 1 3녀
         신장은 175cm이고 체중은 75kg인 그는 [[1950년]] [[8월 1일]]에 여성 영어영문학자 [[나영균]]과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슬하 1 3녀를 두었다.
         * 1983년 동아태평양지역공학단체연합(FEISEAP) 부총재(1985년 퇴임)
         [[분류:192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화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구 전씨]][[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프랑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
  • 전숙희 . . . . 4회 일치
         '''전숙희'''(田淑禧, [[1919년]] [[3월 15일]] ~ [[2010년]] [[8월 1일]])는 일제 강점기와 군정기, [[대한민국]]의 작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담양 전씨|담양]], 호는 벽강(璧江), 목사 [[전주부 (목회자)|전주부]]의 딸이며 기업인 [[전락원]]의 누나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함경도]] 협곡에서 출생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동생인 고(故)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함께 1993년 [[계원예술고등학교]],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등 계원학원을 설립했다. 1997년에는 한국 문학 유산의 보존을 목적으로 한국 최초의 현대문학 자료관인 동서문학관(현 한국현대문학관)을 개관했다. 2010년 8월 1일 오전 8시 경기도 성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585279 원로 수필가 전숙희씨 별세 (연합뉴스 2010년8월1일자)]</ref>
         ** 동생 : [[전락원]](1927 - 2004)
         [[분류:1919년 태어]][[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한국의 군정기]]
  • 전희숙 . . . . 4회 일치
         [[2009년]]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 부문에서 결승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아이다 샤나예바]]에게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 />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여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현희]]를 이긴 뒤 결승에서 중국의 리후이린마저 15-6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한겨레2014" /><ref name="연합뉴스2014" />
         <ref name="한겨레2014">{{뉴스 인용 | url=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656187.htm | 제목=현희 넘어선 전희숙…펜싱 4종목 모두 금 찔렀다 | 저자=이재만 | 위치=고양 | 뉴스=한겨레 | 날짜=2014-09-21 | 학인날짜=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0119034345/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656187.html | 보존날짜=2016-01-19 | 확인날짜=2016-01-18 | 깨진링크=아니오 }}</ref>
         <ref name="연합뉴스2014">{{웹 인용 | 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7141644 | 제목=-아시안게임-<펜싱> 단체전 여자 플뢰레·자 사브르 '금'(종합) | 저자=김지헌 | 위치=고양 | 뉴스=연합뉴스 | 날짜=2014-09-24 | 확인날짜=2016-11-08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08141040/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7141644 | 보존날짜=2016-11-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 절대가련 칠드런/468화 . . . . 4회 일치
          * 미나모토는 결단을 내려 칠드런 3인과 비행이 가능한 후지우라 요우, [[마츠카제 코우이치]]에 효부를 딸려 탈출시키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는다.
          요우는 마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지만 유리의 힙노 효과로 일시적으로 네트워크에서 차단됐을 뿐이다. 실제로는 블랙 팬텀의 세뇌가 너무 강해서 백신이 접종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체를 탄소 결정으로 피막을 씌워 주사를 막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요우는 그래도 함께 도주하자고 하지만 마기가 거절한다. 도중에 세뇌가 다시 걸리면 다 같이 위험해지기 때문. 대신 마기는 자신이 아 시간을 벌겠다고 한다. 요우는 그러다 죽을 거라고 하지만 마기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세뇌 당했을 때 그는 무엇이 이상한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굴욕적인 일이고 소령이 같은 일을 당하는 것 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츠카제는 지휘관인 미나모토가 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발한다. 차라리 자신이 아서 폼을 좀 잡게 해달라고 드립을 친다. 카오루가 심쿵할지도 모른다고. 정작 카오루는 관심이 없다.
  • 정기고 . . . . 4회 일치
         '''정기고'''(Junggigo, {{본명|'''고정기'''}}, [[1980년]] [[9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큐빅 (Cubic)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정기고는 2002년 [[넋업샨]]의 제의로 [[아이에프]]의 "Respect You (Urban Night Mix)"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ref name="interview">[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994151.htm 피처링으로 경력 다진 정기고 "이제 제 이름 알려야죠"], 《스포츠서울》, 2011년 12월 18일</ref> 그 후에도 [[데프콘]], [[재지 아이비]] 등 여러 힙합 뮤지션의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하며 명성을 쌓아가던 정기고는 2005년 재지 아이비와 2인조 힙합 그룹인 서울스타 (Seoulstar)를 결성하고 1장의 싱글을 발매했으나 그 후에 서울스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2006년 [[더 콰이엇]]의 "그 자 그 여자"에 참여하며 정기고 (Junggigo)라는 예명을 큐빅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ref name="interview"/> 정기고는 그 후에도 [[이루펀트]], [[에픽하이]], [[매드 클라운]], [[도끼 (가수)|도끼]] 등과 작업을 지속하며 보컬 피쳐링 아티스트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200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싱글 "Byebyebye"를 발표했고, 2012년까지 총 5장의 싱글 음반을 발매했다. 2011년에 발매한 "Waterfalls"는 영화 《[[오싹한 연애]]》의 공식 티져 영상에 삽입되어 화제를 모았다.<ref>[http://www.newstown.co.kr/?m=newstown&bid=bd&cat=bdj&uid=108452 정기고, 영화 오싹한 연애 OST 'WATERFALLS' 발매], 《서울타운》, 2011년 12월 2일</ref> 2013년 12월에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47433 "정기고, 매드클라운 이어 씨스타와 한솥밥 “숨은 보석”" 《스포츠월드》, 2013년 12월 4일]</ref> 그 후 2014년 2월 7일, [[씨스타]]의 [[소유 (가수)|소유]]와 "썸"이라는 곡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썸"은 공개 즉시 8대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2016년 - ''소소하게 조금씩'' (KBS 우리집에 사는 자 OST)
         [[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
         [[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BC 쇼! 음악중심 1위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음악가]][[분류:영등포고등학교 동문]][[분류:200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스타쉽 엑스 소속]]
  • 정기선 . . . . 4회 일치
          | 형제 = 동생 1명, 누이동생 2명
         [[1982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사장의 장으로 태어났다. [[대일외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ROTC로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에는 언론사([[동아일보]])에서 근무하다 아버지의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 대학교]]대학원에서 MBA수업을 받았으며 잠시 컨설팅그룹에서 일한 뒤 다시 귀국하였다. [[2013년]]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으로 재입사 후 [[2014년]] 상무 및 [[2016년]] 전무,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 동생 : 정
         [[분류:1982년 태어]][[분류:하동 정씨]][[분류:정주영]][[분류:현대가]][[분류:현대 그룹]][[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
  • 정대선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클럽=[[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br />[[경 FC]]<br />[[FC 안양]]<br />[[화성 FC]]
         [[K리그 2011|2011 시즌]] 중반 [[경 FC]]로 이적하였다.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경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안양의 축구 선수]][[분류:화성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정범균 . . . . 4회 일치
         | 자녀 = 슬하1
         **〈추〉진행자 역
         **〈자뉴스〉MC 역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정승환(가수) . . . . 4회 일치
         [[분류:한국 가수]][[분류:1996년 출생]][[분류:정선군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본선 2라운드인 '랭킹오디션'에서 김조한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를 놀라운 가창력과 감정으로 열창했다. 심사평으로 유희열은 "가요로, 특히 자 참가자가 심사위원 셋의 마음을 뺏어간 건 정승환이 처음이다. 바로 음반을 내도 된다"고 극찬했다. 이어 "내가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발라드 자 가수 특집을 하면 정승환을 가장 마지막에 넣어서 스페셜 무대를 꾸미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3주에 걸쳐 음원차트 1위를 했는데, 이는 오디션계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사랑에 빠지고 싶다' 네이버TV의 조회수도 680만을 돌파했는데 이는 2014년 전체동영상 조회수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아직도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으며 역대 조회수 순위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 유희열이 7집 <Da Capo>를 발표했었는데 '사랑에 빠지고 싶다'에 자신의 앨범이 음원차트에서 밀렸다. --그 사실에 박장대소하는 박진영--] 한편 작곡가 윤일상 역시 정승환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선물을 전하는 등 고마움을 표했다.
         1월 11일 방송된 팀미션 서바이벌 매치로 '마시멜로' 박혜수, 소현과 대결을 펼쳤다. 팀명은 '올드보이'로, 앤의 '아프고 아픈 이름' 을 선곡하였다. 이 라운드에서 그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결국 음이탈까지 내고 만다. 혹평을 받은 와중, 정승환은 합격했지만, 같은 팀이자 최고 연장자 김동우는 팀 미션에서 탈락하게 됐다. 이에 정승환은 미안한 마음에 폭풍눈물을 흘려 눈길을 끌었다.
  • 정욱(1973) . . . . 4회 일치
         * 1996년 《[[자대탐험]]》 (SBS)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가평군 출신 인물]]
  • 정은표 . . . . 4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66년 출생]][[분류:곡성군 출신 인물]][[분류:1990년 데뷔]]
         || '''출신지''' ||<(> [[전라도]] [[곡성군]] ||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자]] - 정 소장 역
          * [[강엄마 따라잡기]] - 이태구 역
  • 정종철 . . . . 4회 일치
         | 종교 = [[개신교]]([[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ref>[[강연 100]](2013.8.11)방송분에서 어릴적꿈이 목사였다고 언급을 한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의 저서에도 나타나 있다.</ref><ref>[https://news.v.daum.net/v/20061031154809467?f=o 개그맨 정종철씨 간증,"볼품없는 저도 웃기는 능력 있잖아요"], 국민일보</ref>
         * [[2007년]] 제43회 백상예술대상 자예능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자예능}}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동양미래대학교 동문]][[분류:개그야]][[분류:하땅사]]
  • 정주관백 . . . . 4회 일치
         정주관백이란, 집 안에서 위세를 부리는 편을 뜻하는 말이다. 집 안에서는 그 권력이 관백이라도 된 것 같다고 하여 쓰는 말.
         정주(亭主)란, 한 집안의 주인. 여관, 찻집, 가게 등의 주인을 뜻하며, 집 안에서는 편을 뜻한다.
         전국정주관백협회(全国亭主関白協会)라는 단체가 있다. 편이 폭군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아니며, 정주관백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자는 단체이다.(http://www.zenteikyou.com/zwhat.html)
         이 단체가 새롭게 해석한 정주관백의 정의는 이러하다. 사실 관백은 조정에서 두번째 지위이며 덴노를 보좌하는 지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집 안에서 덴노란 곧 아내이다. 그리고 정주는 차를 내오는 사람을 뜻하므로, ‘정주관백’이란 사실 아내를 보좌하고 떠받들어 주는 편을 뜻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오해하여 집안의 폭군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 정홍준 . . . . 4회 일치
         '''정홍준'''(鄭弘俊, [[1983년]] [[5월 25일]]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영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6년]] 2승 1패 평균자책 2.92로 나름 준수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8년]]에 다시 1군에 올라와 등판했으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2010년]]에 방출됐다.
         * [[영대학교]]
         [[분류:KT 위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조동혁(배우) . . . . 4회 일치
         배구선수 [[한송이(배구)|한송이]]와 열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동혁도 키가 182cm로 한국 성인성 평균보다 큰편인데, 한송이는 조동혁보다 큰 186cm이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564618|기사]]
          * 얼굴 없는 미녀(2004) - 희선의 자, 파란머리
          * [[애인(2005년 영화)|애인]](2005) -
         [[분류:한국 배우]][[분류:1977년 출생]][[분류:1998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분류:광명시 출신 인물]]
  • 진격의 거인/85화 . . . . 4회 일치
          * 그러나 아르민에겐 "에겐 없는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말을 잇는다.
          * 어머니 카를라 예거는 벽 너머로 가고 싶어하는 아들을 걱정하며 편에게 말려달라고 했었지만, 그는 "인간의 탐구심은 억누를 수 없다"는 말을 한다.
          * 병단의 수뇌들은 엘빈이 긴 "어떤 의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 현재 공개된 내용은 단지 사진 한 장일 뿐이고, 아직도 책은 세 권이나 아있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4회 일치
          * 거인의 자유낙하는 마레의 전사의 약 6할을 소모시킨다. 그렇지만 거인이 약 4할만 살아아도 충분하다. 요새는 반파되었고 기능을 잃었다. 살아은 거인들은 운 좋게 폭격을 피한 병사들, 생존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다. 요새의 병사들은 참담한 얼굴로 다가오는 거인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폭격으로 죽는 것이 운 좋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마레 지상군은 멀찍히 떨어진 참호에서 그 괴상한 종전파티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거인들이 음식을 주워먹는 것처럼 적 병사들을 잡아먹는다. 파르코의 아이러니를 비웃던 장교가 좌우의 엘디아인들을 향해 인상깊은 감상평을 긴다.
          그때 갤리어드가 후방에서 이들을 덮친다. 갤리어드는 뛰어난 도약력으로 벽 위의 야전포를 습격, 사격을 저지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력이 집중되기 전에 급히 이탈한다. 라이너에겐 충분히 시간이 벌렸다. 그는 급수탑을 뜯어내서 벽 위를 향해 휘두른다. 그때까지 아있던 야전포들이 깨끗하게 쓸려나간다.
  • 차수연 . . . . 4회 일치
         ||<#D7D8CA> '''{{{#584A41 가족}}}''' ||<(> [[추가 바람]][* 2012년 [[iHQ|싸이더스 HQ]] 소속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던 前 판타지오 대표인 나병준과 결혼했으나, 2016년에 이혼했다. 부모님 관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동생이 한명 있다고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1665|밝혔다.]]] ||
         || [[간기]] || 혜영 || ||
          * 본인의 출연작 중 가장 기억에 는 작품으로는 2008년에 출연한 [[그들이 사는 세상]]을 꼽았다. 원래는 다른 배역을 할 계획으로 미팅에 나갔는데, 표민수 PD가 극중 주인공인 정지오([[현빈]] 분)의 옛 여자친구인 연희 역할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배역을 바꾸었다고 한다.
  • 차희식 . . . . 4회 일치
         |자녀 = 5 1녀
         화성지역의 3·1운동은 어느 지역보다도 격렬했다. 우정면을 비롯한 장안면, 향면, 팔탄면에서의 만세시위는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고 이에 일제는 대대적인 검거를 벌이는 한편 계획적인 보복만행을 자행하여 4월 15일 제암리에서 23명, 고주리에서 6명을 학살하였다.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5 1녀를 두었다.
         [[분류:1870년 태어]][[분류:1939년 죽음]][[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안 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창작:좀비탈출/5-1-1-1 . . . . 4회 일치
         "난 지쳤다고. 굶은 데다가 생각지도 못한 액션 스턴트를 했고 장의사 노릇까지 했어. 저기로 넘어갔다간 돌아올 힘도 안 을 걸? 그리고 이젠 빌어먹을 무기도 없다고."
         나는 치워버린 장독을 다시 담벼락에 대면서 부러진 골프채가 정말 다시 쓸 수 있을 물건인지 자문했다. 그리고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면서 그럼 저게 필요한지를 자문했다. 모르겠다. 정신나간 소리지만 버리긴 아깝다. 솔직히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첫 실적을 올린 무기였다. 계속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군인은 처음 쏴본 탄피를 평생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 군인은 2차대전에서 살아았고 베트에도 갔지만 역시 살아았고 훈장을 받았다. 그 사람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군.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4회 일치
         아줌마는 그렇게 기억에 는 타입이 아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아줌마니까. 내가 어디에서 살든 어떤 거리를 걷든 한 명 정도를 보일 정도로 흔한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도 냉동실에서 보기에되면 꽤나 인상적이군.
         냉기는 없었다. 식재료를 담은 봉지가 녹아서 흐물흐물해졌다. 문이 열리면서 몇 가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철퍽하는 소리가 듣기에도 부패의 느낌이 났다. 다만 아줌마의 상태는 상체만 은 걸 빼면 양호했다. 그야 부패의 기미를 완전히 숨길 수는 없지만 매일 햇볕에 노출되었던 토트넘에 비하면야. 잘 됐군요 아줌마. 처음으로 아저씨보다 동안이란 말을 듣게 됐어요. 냉동실에서 들은 거긴 하지만.
         왜 바로 머리를 내려치지 않았냐는 의문이 지만…… 그거야 '''자기 마누라잖아.''' 아줌마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머리를 날려야 끝난다는 걸 알리는 없었겠지. 그리고 다 끝낸 다음에…… 머리가 없는 시신을 수습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서 생각해낸 절충안이 허리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척추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게 절단되는 충격은 당연히 뇌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고, 원하는 결과로 이어졌겠지.
         아줌마가 다시 목을 물어 뜯는다. 날카로운 통증이 퍼져나가다가 아득해진다. 이미 늦었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토트넘하고 다를바 없는 처지군. 죽은 주제에…… 편의 복수를 달성하다니……. 진짜 대단한…… 아줌마야…….
  • 최단비 . . . . 4회 일치
         |자녀 = 슬하 1
         * 《님과 사이 1》([[매일방송|MBN]], 2012년 ~ 2013년)
         * 《님과 사이 2》(MBN, 2013년 ~ 2014년)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은광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바른미래당 당원]]
  • 최동 . . . . 4회 일치
         본관은 [[해주 최씨|해주]]이며 [[한성부]] 출신이다. [[전라도]] [[순천시 (전라도)|순천군]] 군수를 지낸 아버지 [[최정익]]을 따라 [[순천]]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최동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교분이 있던 [[개화파]]의 [[박영효]], [[서재필]], 계몽운동 계열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성장해서는 [[최선]], [[정인보]], [[이광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특히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에 크게 영향 받아 본업인 의학 연구 외에 역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분류:1896년 태어]][[분류:197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만린 . . . . 4회 일치
          | 별칭 = 호(號)는 석(錫南)
         ** 배우자 : [[김소원 (배우)|김소원]]([[1935년]]) - [[성우]] 겸 [[배우|연기자]], 슬하 1 1녀
         *** 자부 : 박희교([[1964년]]), 슬하 1 1녀
         [[분류:193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영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세창 . . . . 4회 일치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 전쟁]]
         * [[박현]] - ([[코리아게이트 (드라마)|코리아게이트]], [[1995년]]) [[SBS]] 드라마
         [[분류:193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최승자 . . . . 4회 일치
         1952년 충청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자를 소개받았으므로.
         피곤한 기린이 아빠의 겨드랑이에선 지금 몰래 일 센티미터의 날개가 돋고.....
         몇 년 전, 제기동 거리엔 건조한 먼지들만 횡행했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나 잠들어 있거나 취해 있거나 아니면 시궁창에 빠진 헤진 신발짝처럼 더러운 물결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제대하여 복학한 늙은 학생들은 아무 여자하고나 장가가 버리고 사학년 계집아이들은 아무 자하고나 약혼해 버리고 착한 아이들은 알맞는 향기를 내뿜으며 시들어 갔다.
  • 최웅 . . . . 4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분류:대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
  • 최재환(배우) . . . . 4회 일치
         || 내 생애 최악의 자 || 일웅 || ||
         || [[2012년]] || 저스트 프렌즈 || 준호 || ||
         || [[2017년]] || [[성판17: 자들의 17가지 성적 판타지]] || 기하 || ||
         [[분류:한국 배우]][[분류:1983년 출생]][[분류:고창군 출신 인물]]
  • 최창홍 . . . . 4회 일치
         [[1941년]] [[1월 24일]] [[경상도]] 이사관 겸 [[경상도청]] [[내무부]] 학무과장으로 임명된 뒤부터 [[경상도]] 내무부 전무과장(1941년 8월 18일 임명), 도청 전매국 제조과장(1943년 9월 30일 임명)을 역임했고 [[1943년]] [[12월 1일]] [[조선총독부]] 서기관 겸 재무국 전매사업과장, [[1944년]] [[11월 22일]] 재무국 연초과장으로 임명되었다. [[1944년]] [[조선중앙정보위원회]] 간사, [[조선총독부]] 학도동원본부 참사, 조선총독부 근로동원본부 참사, 조선총독부 농업계획위원회 간사, [[조선철도간선긴급증강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는 동안 [[일본]]의 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했다.
         [[분류:1903년 태어]][[분류:1951년 죽음]][[분류:대한제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사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희준 (가수) . . . . 4회 일치
         [[분류:1936년 태어]][[분류:2018년 죽음]][[분류:삭녕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
         [[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195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추일승 . . . . 4회 일치
         |전임자 = [[김기 (농구인)|김기]]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농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자 농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추계 추씨]]
  • 캡틴 코만도 . . . . 4회 일치
          캡콤의 격투 게임인 마블 VS 캡콤 시리즈에서도 등장. 동료 코만도들도 기술에서 등장한다. 또한 코X캡콤에서도 등장.
          어디까지나 설정 상의 이야기이나 파이널 파이트에서 등장한 가이의 후손. 즉, 무신류 닌자다. 그래서인지 코 크로스 캡콤에서 가이과 팀을 이루기도 한다.
          미라 모습의 사나이. 두 자루의 나이프를 쓴다. 본 게임의 최고급 캐릭터. 기본 공격력은 약하나 긴 리치와 빠른 공속 덕에 안정감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메가크래시도 다른데 다른 캐릭터들이 시전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달리 쓰면서 이동이 가능하다.
          * 특이하게도 캐릭터들이 지닌 특수기나 무장에 의해 기괴한 사망 모션이 나온다. 캡틴 코만도의 캡틴 파이어에 맞아서 에너지를 전부 잃어버린 적은 불에 타서 재가 되고(...), 닌자도를 쓰는 쇼우의 공격은 적을 절단낸다.(...) 제네티의 경우 상대를 부패(?)시켜 해골만 긴다.(...) 이러한 모션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서도 나오며 자유로운 것은 적측 여전투원인 캐롤과 브렌다 정도.
  • 킹덤/519화 . . . . 4회 일치
          * 한단과 업의 사이에는 묘한 땅이 있다. 한단에서 서쪽으로 50리, 업에서 북쪽으로 75리인 위치다. 그곳은 광대한 평야가 펼쳐져 있는가 하면 진군에 방해가 되는 혼잡한 산림도 뒤섞여 있다. 이름이 매우 묘했는데, 과거 큰 전쟁이 있던 건지, 혹은 이제부터 일어날 전쟁을 염두한 건지 "주해평야"라는 흉흉한 이름이다. 여기서 하하는 조군과 북상하는 진군이 격돌한다.
          * 이목은 북에서, 왕전은 에서. 평야를 가로질러 서로를 노려보는 듯한 두 장군들. 이들의 싸움은 벌써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환의는 "글쎄다"란 한 마디만 기고 어쨋든 지금은 뇌토쪽으로 향한다. 이옥에겐 이탈해서 원군에 대비하라고 지시한다.
          * 이렇게 해서 두 진영의 포진이 완성된다. 조군부터 보면 총 전력 12만을 2:1:1 비율로 비교적 균일하게 나눴다. 중앙에 6만, 양익에 3만씩. 장교 또한 중앙의 이목 본진에 카이네, 부저, 금모, [[요운]]으로 다섯. 우익에 마정, 기수로 둘. 좌익에 [[조아룡]], [[마자]], [[악영]]으로 셋. 비교적 고르게 분배했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4회 일치
         === 김정 영입 시도 ===
         2017년 [[김정 암살 사건]] 이후, 탈북자 망명정부 설립운동 측이 '김정'과 접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정은 망명정부 수반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자신이 망명정부 수반이 되는 것 역시 3대 세습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김평일'과도 접촉했다는 설[[http://ifreenk.com/87121 (참조)]]이 나오면서, 망명정부가 김씨 일가를 '구심점'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 토리코/395화 . . . . 4회 일치
          * 여섯 번째 "샐러드" 에어. 야채의 왕 오존초 위에 올려져 제공됐다. 요식계의 인물들은 에어에 특히 감격하며 먹는데 코마츠는 개인적으론 처음 콤비 결성을 했던 오존초 쪽이 기억에 아있다. 그때 토리코가 콤비를 짜자고 하던 말을 떠올리며 거의 통곡하는 코마츠.
          * 토리코는 빌리언 버드의 알을 이치류를 향해 건배한다. 빌리언 버드는 바로 이치류가 겨준 식재였다. 이치류가 만족스럽게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그 인물이 나타난다. 미도라의 식혼. 이치류와 토리코가 먼저 알아차리고 코마츠도 그가 나타난걸 알고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목석같이 딱딱하던 미도라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리넘친다. 미도라도,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젊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수백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가족은 다시 한 식탁에 모였다. 토리코와 코마츠, 그리고 살아은 세츠노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사천왕 중 코코와 제브라는 아직도 풀코스를 완성 못했는데 별다른 언급이 없다. 사실 은 떡밥이 너무 많아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신기할게 없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4회 일치
         >현명한 자는 자신이 관리하는 말에 귀를 귀울인다.
         >어떤 자는 칼날을 포함한 많은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갈매기 무리의 울음소리 저편에 저 파도가 자의 용기를 시험한다.
         >다른 생애에서는 어떤 자라도 해적이 될 수 있다.
  • 트로피코 4/인물 . . . . 4회 일치
         Antonio Lopez. 실크햇을 쓰고 연미복을 입은 자.
         Comrade Vasquez. [[체 게바라]]같은 모습을 한 자.
         El Diablo. 스킨헤드 자. 자신을 "나"가 아니라 "엘 디아블로"라고 칭한다.
         Marco Moreno. [[체 게바라]]처럼 생긴 자. 바스퀘즈 동무와 달리 장발이다. 미국에서도 수배중이 반란군의 수장으로 이상주의자, 몽상가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4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편이자 [[엘자 스칼렛]]의 아버지는 옆나라의 장군이었다. 아직 용왕제가 시작되기도 전, 인간끼리 전쟁하던 시절에 한 정략결혼이었다. 용왕제 시절에는 함께 전장에 서기도 하고 함께 현룡 베르세리온의 최후를 지켜보기도 했던 사람이다.
          치열했던 용왕제는 [[아크놀로기아]]의 등장으로 승패도 없이 허무하게 종결, 엄청난 인명피해와 세계적인 트라우마만을 겼다.
          사실 그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걸 아는 듯 하지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장군은 칼을 꺼내더니 직접 배를 갈라 확인해보겠다며 달려든다. 그때 아이린의 배에 상처가 게 되는데.
         아이린의 편으로는 여러 사람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엑스트라로 낙찰. 그래도 한 나라의 장군이고 멸룡마도사인 아이린을 제압할 수 있는 정도였으면 제법 강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용화가 됐다고 아이린을 헌신짝처럼 버린데다 학대하기까지 했으니 이 세계관 최악의 쓰레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아이린의 흑화는 이 인간 때문에 시작된 거고 그 아이린이 현재 작중 벌이고 있는 악행을 생각하면 거의 원흉급.
  • 페어리 테일/530화 . . . . 4회 일치
          문에서 나온 여성은 루시와 레이라의 먼 선조 [[안나 하트필리아]]. 그녀는 레이라에게 지금의 연도를 확인한다. 지금이 400년 뒤라는 걸 알고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자신과 함께 와야 했던 다섯 명의 멸룡마도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안나가 당황하며 자신과 함께 다섯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냐고 묻는데, 레이라 대신 토마가 대답한다. 아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열자마자 다섯 개의 빛이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고. 토마가 천장에 은 흔적을 보여주자 안나는 할 말을 잊는다.
          이것은 레이라의 할머니, 혹은 그 이전부터 집안에 전해지던 책에 씌여진 구절이다. 안나는 그게 자신이 쓴 책이라고 밝힌다. 토마 왕은 이해가 안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안나의 시간 대에서 이클립스를 개발했을 때, 해당 시간 대에서 누군가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는게 밝혀진다. 안나는 이 문제를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했는데, 바로 자신의 자손들에게 비술과 함께 기록을 겨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클립스의 문을 열어라"고 전승시킨 것이다. 비록 그 전승의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만은 제대로 전해져서, 레이라 대에 이르러 마침내 이클립스가 열리고 두 시대가 연결됐다. 토마 왕은 "그렇다면 당신은 400년 전 사람이냐"고 경악한다.
          안나는 그렇다해도 마력이 충분한 시대였기 때문에 문이 열린 거라며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너무 고생시켰다고 위로한다. 안나는 바깥으로 펼쳐진 피오레 왕국을 내려다보며 400년 뒤에도 인류와 문명이 아있는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해졌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오자마자 멸룡마도사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곧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고친 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한다.
          안나는 레이라에게 작별을 고한 뒤 멸룡마도사들을 찾아 떠난다. 훗날 모든 것을 밝힐 수 있을 때까지 이 사건은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를 긴다. 레이라는 토마왕에게 이클립스를 파괴해달라고 부탁하나, 결국 이 부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페어리 테일/540화 . . . . 4회 일치
          * [[아크놀로기아]]는 지상에 은 멸룡마도사를 시간의 틈새로 불러들여 완전한 멸룡을 이루려 한다.
          * [[나츠 드래그닐]]이 불려온 이질적인 공간.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흉흉한 기운의 자. 나츠가 [[아크놀로기아]]와 대면했다. 나츠는 곧 그 자가 풍기는 기운으로 그의 실체가 마룡 아크놀로기아라는 걸 간파한다.
          * 조화란 어떤 마도사들의 마력을 시간의 틈새에 순환시켜 자신의 마력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쓰일 마력은 바로 멸룡마도사들의 마력. 웬디를 데려간 것도 그 목적이다. 분명 지상에 은 멸룡마도사는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갔을 것이다. 안나의 예측이 맞아서 이미 나츠를 제외한 말룡마도사들은 모두 구속된 상태. 나츠도 시간 문제였다. [[제라르 페르난데스]]는 그 정신나간 상황에 경악하고 엘자는 그들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고 안나에게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안나도 그런 방법은 알지 못했다.
  • 하수빈 . . . . 4회 일치
         • 예민, Tommy Page, 심상원, 김형석 등의 뮤지션이 참여된 하수빈의 데뷰 앨범으로, 데뷰곡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예민의 발라드곡〈더 이상 내게 아픔을 기지마〉, 스위트 팝 댄스곡〈NoNoNoNoNo〉, Tommy Page의 곡 〈I'm Falling In Love〉이다. I'm Falling In Love은 하수빈이 17세에 미국 POP Singersongwriter 토미페이지 Tommy Page로부터 아시아 스타 첫 예로 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Lisa:리사> 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특히 발라드〈너는 나의 사랑의 이름〉은 하수빈이 17세에 만든 자작곡으로 정규앨범에 실은 첫 타이틀이다.
         1. 더 이상 내게 아픔을 기지마
         무인(無人) 의 산책 만 그리고 10년간의 이별 I really appreciate your love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진양 하씨]]
  • 하이큐/225화 . . . . 4회 일치
          * 자신은 의 마음도 잘 모르고 말주변도 없지만 최고의 세터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카게야마 토비오.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의 마음은 모르는게 당연하고 이해하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플레이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 사와무라는 "타나카의 체력도 았으니 이 상황에서 가능한걸 이것저것 실험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 카게야마가 받아들이고 "공을 줄여가면서 상황을 본다"고 하는데 타나카는 여기에 발끈해서 "그런 얘긴 모르게 해라"라고 일갈한다.
  • 하이큐/248화 . . . . 4회 일치
          * 1회전부터 감초처럼 등장하던 바보커플이 2회전 관람 일정을 짜고 있다. 자 쪽은 배구 지식이 상당한지 녀 강호팀에 대해서 자세히 안다. 그들은 이나리자키 고교의 미야 형제를 보려고 대진표를 확인하는데 상대팀이 [[카라스노 고교]]인걸 발견한다. 그들은 꽤 인상깊은 팀이었는데 탈락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나리자키는 그만큼 강호로 작년 봄고와 인터하이에선 각각 3위를, 이번 인터하이에선 또다른 강호 "키류"를 누르고 2위를 기록했다. 결승에서도 패하긴 했으나 그 왕자 "이타치야마"에게 한 세트를 뺏어왔을 정도로 상승세. 지금 가장 주목 받는 팀이다. 여자 쪽은 개인적으로 미야형제팬인지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자 자 쪽이 인상을 구긴다.
          카노카는 그렇게 단순한 말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했다. 그녀는 타나카를 겨두고 팀으로 달려간다. 타나카는 "잘하게 됐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확실히 그녀는 최근 신문 1면에 실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 하이큐/261화 . . . . 4회 일치
          * 노헤비 학원의 [[다이쇼 스구루]]는 여자친구 미카에게 해설자 모드. 참고로 방금 전 상황에서 공이 네트에 세워진 안테나 "안쪽"으로 지나갔었다면 이나리자키의 득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이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카게야마가 필사적으로 뛰었던 것. 미카도 이제 감을 잡으면서 "배구는 입체적"이라는 인상적인 평을 긴다.
          * 24 대 24. [[야치 히토카]]가 스코어 보드 옆에서 결국 이런 상황이 왔다고 부르르 떤다. 우카이 코치도 바라지 않던 상황이다. 여기서 끊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과연 어떨지? 서브 위치에 아츠무가 들어서고 만다. 관중석의 바보 커플은 또 티격태격한다. 여자 쪽이 "아츠무군"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나타내자 자 쪽이 "아츠무랑 친하냐"고 빈정거려서 치고받는다. 이러다 헤어지는거 아닌가?
          * 여지없이 공은 타나카에게... 하지만 타나카에게 간 공을 타나카만 받으란 법이 어딨는가? 아츠무가 손맛 좋게 날린 공은 그 옆의 니시노야가 리시브한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다. 미끼 역할. 들이 알아주지야 않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순간 타나카는 오늘 자기 플레이가 너무 꼴사납지 않은가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그럴 뻔했다. 그는 곧 주먹을 불끈쥐며 누구보다 환호했다.
          다시 1점 았다. 히토카는 그저 그 1점이 떨어지길 기도하다시피 바란다.
  • 하이큐/264화 . . . . 4회 일치
          * 하루 전. 봄고 1일차를 마친 [[카라스노 고교]]의 숙소에선 타나카의 소꿉친구인 [[아마나이 카노카]]가 화제에 올랐다. 2학년 [[엔노시타 치카라]], [[나리타 카즈히토]], [[키노시타 히사시]]는 "그린 라이트"라며 이대로 타나카에게 여친이 생기겠다고 수다를 떨었다. 정작 당사자인 타나카는 왜 그렇게 되냐며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겐 덤비지 말아야 하냐"고 항변한다. 자신에겐 [[시미즈 키요코]]라는 반한 상대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하나같이 회의적이다. 그보단 애초에 타나카가 진심으로 키요코를 좋아하는 건지도 처음 알았다는 반응. 타나카는 카노카가 그린라이트라고 갑자기 그쪽으로 갈아타냐는 말이냐고 따진다. 그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동기들의 여론은 대체로 그런 편. 나리타는 "고백 받고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인다. 잠자코 있던 [[니시노야 유]] 조차 "차려진 밥상을 안 먹으면 자도 아니다"고 드립을 치며 타나카를 압박한다. 타나카로서도 그걸 모르는건 아니었다. 그도 착하고 예쁜 누님들이 놀자고 하면 얼씨구나 따라나서겠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다르다, 그렇게 절규했다.
          좋게 말하면 순정이지만 엔노시타가 보기에는 그저 요령부득에 개그소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키요코 선배를 좋아하는게 맞다면 "좋아한단 오오라"를 좀 자제하는게 어떻냐고 충고한다. 타나카는 "사귀어달라", "결혼해달라"는 말을 인사 대신으로 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칼 같이 거절 당하는게 언제나 패턴.
          * 타나카의 1학년 시절엔 한 가지 더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2학년들은 생긴 걸로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보나 강렬한 타나카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특히 키노시타는 "눈도 마주치면 안 되겠다"고 여길 정도로 겁을 먹었다. 타나카는 입부하자마자 에게 얕보이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그런 행색을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먹혀들고 있었다. 키요코와 만나기 전까진.
          훗날까지 "초면 프로포즈 사건"이라 회자되는 이 사건. 동기들은 세삼 그때를 떠올리며 "원래 저런 녀석"이라 납득하게 되었다. 타나카는 내일 시합을 앞둔 긴장감을 핑계대고 자리를 뜬다. 은 동기들은 혹시 저러다 스토커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지만 키요코가 정말로 거절하면 그렇게까진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타나카를 바보취급하는 분위기였지만 엔노시타가 좋은 얘길 해준다. 늘상 바보같아 보여도 언제나 한결 같은건 대단한 일이라면서.
  • 하이큐/265화 . . . . 4회 일치
          * 봄고 1일 차의 밤은 살아은 모든 팀에게 주어졌다. 당연히 [[네코마 고교]]에게도 싱숭생숭한 밤이 왔다. 3학년 [[쿠로오 테츠로]], [[카이 노부유키]], [[야쿠 모리스케]]는 숙소 로비의 쇼파를 차지하고 시시덕 거렸다. 그들에게도 첫 전국대회였다. 인터하이와는 또다르게 들뜨는 밤이었다. 야쿠가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칸센을 타고 싶다면서. 카이는 은퇴하고 나면 올해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야큐가 나갈 수는 있겠냐고 반쯤 빈정대자 쿠로오가 후배들을 좀 믿으라고 면박했다. 마침 그 후배가 근처에 있었다. 카이가 자판기에 들른 [[코즈메 켄마]]를 발견했다. 음료를 뽑으려는데 다른 학교 학생 둘이 그 앞에서 잡담 중이었다. 숫기가 없는 코즈메는 비켜달라고도 못하고 뒤에서 머뭇대고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 쪽에서 먼저 그를 발견, "자시키와라시"인 줄 알고 자리를 양보해준다.
          >나도 한테 신경 쓸 줄은 안다고.
          쿠로오는 야쿠가 정서란 말을 알기는 할지 궁금했다. 야쿠가 현재 최대로 신경 쓰는건 팀의 승리도 보람찬 플레이도 아니라 은 봄고 4일차 동안 자신이 가장 튀어야 한다는 쇼맨십이었다. 여기에선 쿠로오도 지지 않았다. 자기는 벌써 여자 아나운서하고 인터뷰할 구상까지 해놨다고 대항했다. 이렇게 둘이서 투닥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아까 자판기를 선점하고 있던 타학교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을 사과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사람은 카이 뿐이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네코마의 봄고 1일차가 끝난다.
          * 봄고 자 2회전 C코트 경기. 도쿄 출신 네코마 고교 대 이시카와 출신 사루카와 공업 고교. 스코어는 15 대 13으로 네코마의 무난한 리드. 하지만 사루카와의 공격이 제법 매섭다. 4번의 스파이크. 코즈메와 쿠로오가 블록을 뛰었다. 하지만 4번은 꽤 절묘한 솜씨로 블록을 피해 우중간을 파고 든다.
  • 하이큐/266화 . . . . 4회 일치
          그런 말이 끌어내는 반응은 반쯤은 뜨악함, 반쯤은 황당함.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아서 야마모토가 훈련에 매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걸 알지도 못하고, 안다해도 이해할 수 없는 코즈메로서는 언제나 근성을 외치며 웨이트를 하고 있는 야마모토가 우주인처럼 보였다.
          그런 노력이 실적으로 나오느냐 하면, 또다른 문제였다. 코즈메가 일찌감치 에이스 세터로 낙점된 데 비하면 야마모토는 낙제점이었다. 1학년들이 첫 실전에 나선 네코마 대 마루구치 연습시합. 코즈메는 안정적이고 치기 쉬운 세트를 올린다고 호평을 받으며 팀 승리에 조력했다. 반면 야마모토는 네트아웃을 발한 데다 플레이 중 우측의 쿠로오와 부딪히기까지 하는 등 최악이었다. 쿠로오는 "첫 시합이란 그런 것"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야마모토의 조바심까지 지워주진 못했다.
          * 그날 저녁. 체육관 정리 중. 코즈메는 쿠로오, 야마모토와 비품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쿠로오가 교사의 호출로 불려가면서 둘만 게 된다. 코즈메가 문득 쿠로오의 조언을 떠올렸다. "조금은 협력할 생각도 해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오늘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언에 따라보기로 했다. 용구실을 나서던 코즈메가 야마모토에게 말을 걸었다. 어깨에서 힘을 조금 빼면 좋지 않겠냐고. 그게 상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일 거라곤 생각지 못한 채.
          >체력이 1는 것도 아니고!
  • 한동근 . . . . 4회 일치
         * 2016년 《[[MBC 방송연예대상]]》 뮤직토크쇼부문 자 신인상<ref>{{뉴스 인용 |저자=류재용 |제목=한동근, 2016 MBC 방송연예대상 뮤직토크쇼부문 자 신인상 주인공으로 선정 |url=http://www.acrofan.com/ko-kr/detail.php?number=27608&thread=BD03 |뉴스=acrofan |출판사= |위치= |날짜=2016-12-30 |확인날짜= }}</ref>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참가자]][[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
  • 한비야 . . . . 4회 일치
         2001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 한국에서 9년간 일하였다. 2000년 대 초반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일하다 2012년부터는 ‘인도적 지원 전문가(Humanitarian Assistant Specialist)’로 일하게 되었다. 2011년부터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수단,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2권 ** 중앙아메리카, 아메리카, 알래스카
         ** 3권 ** 인도차이나 반도, 아시아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터프츠 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숭의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여행가]][[분류:유타 대학교 동문]]
  • 한선교 . . . . 4회 일치
         * [[자유한국당]] 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벌금 100만원 - 2002년 8월 9일 선고<ref>{{보고서 인용|저자=이옥·김도연|url=http://www.cubs.or.kr/new/lib/down.asp?gubun=util_bbs3&files=20160415PPPPPPPPP25237%2Epdf|제목=4·13 총선국회의원 당선자 전과현황|출판사=바른사회시민회의|날짜=2016년 4월}}</ref>
         |전임자 = (용인시 갑)[[궁석]]<br />(용인시 을)[[김윤식 (1947년)|김윤식]]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동성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청주 한씨]][[분류:친박]][[분류:농구 행정가]]
  • 한용덕 . . . . 4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2012년]] [[8월 28일]] [[한대화]]가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경질되자, 감독 대행으로 보직 변경되어 은 시즌을 치르고 시즌 후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한화 구단에서는 [[류현진]]의 해외 진출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을 것을 제의하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이후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마친 후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로 복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95143 한용덕 코치, 프런트 변신 "한화맨으로 죽겠다"] - OSEN</ref>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대전천동초등학교 동문]][[분류:충중학교 동문]][[분류:북일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한인수(탤런트) . . . . 4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1947년 출생]][[분류:1972년 데뷔]][[분류:시흥시 출신 인물]]
          * [[서궁]] - [[김제]]
          * [[파일럿(드라마)]] - 용수 기장
          * [[조선왕조 오백년]] 인현왕후 - [[구만]]
  • 한재석(1973) . . . . 4회 일치
         [[분류:동명이인/ㅎ]][[분류:한국 배우]][[분류:동해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1994년 데뷔]]
         1996년 SBS 미니시리즈 《도시녀》 ... 이해성
         1998년 《연풍연가》 ... 연예인 커플 역(우정출연)
         2011년 《로맨틱 헤븐》 ... 스토커 역(우정출연)
  • 한재석(1991) . . . . 4회 일치
         [[SNL 코리아]] 시즌 5부터 합류한 성 크루이다. [[본인]]의 [[인터뷰]]를 통한 바로는 SNL 코리아에서 맡는 포지션은 "어린 성인". [[나이]] 순으로 따지면 [[막내]]였다가 시즌6에 '''[[1994년]] 생 [[고원희]]'''가 합류하면서 막내를 벗어났으나 휴식기에 고원희가 하차하면서 다시 막내가 되었다가 시즌7에 '''1995년생 [[김혜준]]'''이 합류하면서 다시 막내를 벗어났다. 초기에는 친 역, 부하 역 등으로 나왔지만 화를 거듭하면서 망가지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대표적으로 뷰티박스.~~
         [[분류:한국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성 방송인]][[분류:1991년 출생]][[분류:2014년 데뷔]][[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해원군 . . . . 4회 일치
          | 자녀 = 슬하 4 3녀 <br /> 3 [[화춘군|화춘군 이정]](花春君 李瀞)
         [[인성군 이공]]의 3(三男)으로 출생한 그는 일찍이 [[1619년]] '''해원정'''(海原正)에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李貴)의 핍박 섞인 모함으로 인하여 모반역모 혐의를 받자 [[1628년]]을 기하여 형 해평군 · 해안군, 아우 [[해양군]] 등과 아울러 역신의 후손이라 하여 [[제주도|전라도 제주]]에 유배되었다가 뒤 [[1635년]] [[제주도|전라도 제주]]에서 [[울진군|경상도 울진]]으로 이배되었고 2년 후 [[1637년]] 석방되었다.
         [[분류:1614년 태어]][[분류:1662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왕족]][[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의 시인]][[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화가]][[분류:조선의 서예가]][[분류:운현궁]][[분류:전주 이씨]][[분류:조선의 저술가]]
  • 허위 . . . . 4회 일치
         ||<#ffd700> 가족 ||허윤(조부) 허조(부) [br] 허훈(백형) 허신(중형) 허겸(계형) [br]허학(장) 허영(차) 허준(삼) 허국(사) ||
  • 허종 (1939년) . . . . 4회 일치
         '''허종'''(許鐘, [[1939년]] [[4월 29일]]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 공무원, 정치인이다. 본명은 허종욱(許鐘旭)이다. 독립운동가 겸 변호사, 정치인 [[허헌]]의 아들이며, 독립운동가 겸 여성 해방 운동가 [[허정숙]]의 이복 동생이고, 소설가 겸 작가 [[허근욱]]의 동생, 소설가 [[박노문]]의 처이다.
         * [[북 협상]]
         [[분류:193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분류:허정숙]][[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허준 (1981년) . . . . 4회 일치
         창단 멤버로 입단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2014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ref>[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31357 NC, 창단 첫 주장 허준·품절 정성기 등 6명 방출] - 경신문</ref> 이후 [[마산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 [[2013년]] [[12월 8일]] [[경상도]]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신부 백수진과 1년 열애 끝에 결혼하였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1281067.htm NC 포수 허준, 8일 창원서 결혼 ] - 스포츠서울</ref>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미양초등학교 동문]][[분류:청량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현덕 . . . . 4회 일치
         [[1932년]] 《[[동아일보]]》에 동화 〈고무신〉을 발표한 뒤, [[김유정 (소설가)|김유정]], [[김기림]], [[이석훈 (1908년)|이석훈]], [[박태원 (1909년)|박태원]], [[안회]], [[이상 (작가)|이상]] 등과 교유하는 습작 기간을 거쳐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생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했다. 처녀작인〈생이〉의 화자는 ‘노마’라는 소년이며, 노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소년조선일보]]》와 어린이 잡지 《[[소년 (잡지)|소년]]》에 꾸준히 발표하는 등 아동 문학에 관심이 컸다. 이후 〈경칩〉(1938년), 〈두꺼비가 먹은 돈〉(1938년), 〈골목〉(1939년), 〈잣을 까는 집〉(1939년), 〈녹성좌〉(1939년), 〈군맹〉(1940년)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데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의 어렵던 시절이라 더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 후 월북을 한 이후에는 [[1961년]]까지 〈싸우는 부두〉 등의 단편소설을 자작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경향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참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사회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데뷔 시기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해체 이후이므로 카프에 직접 가담한 적은 없으나, 카프의 이념적 성향과 대체로 방향이 일치하는 작품을 썼다.
         [[분류:1909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
  • 현민 . . . . 4회 일치
         [include(틀:대국아 멤버)]
         ||'''소속'''||[[대국아]]||
         한국의 5인조 아이돌 그룹 [[대국아]]의 멤버이자 리드보컬이다.
         [[분류:대국아]][[분류:1991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현재덕 . . . . 4회 일치
         [[안회]]이 친구인 [[김유정 (소설가)|김유정]]에 대해 적은 글에는 김유정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날 때 현덕, 현재덕 형제와 함께 세 사람이 배웅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임화]]가 [[서정주]]에게 보낸 편지에 현덕, 현재덕의 작가 형제가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이웃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 언급<ref>{{뉴스 인용
         광복 후 좌익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동맹]]의 아동미술분과와 [[동지사아동원]]에 가담했다. 동지사아동원에서는 필명이 박두루미인 [[박인범 (작가)|박인범]]과 함께 어린이들 대상의 구연 동화 활동을 했다. [[한국 전쟁]] 기간 중 현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월북했으며, 서울에는 부인과 딸을 겨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아동문학가로 일했다는 사실만 단편적으로 전해졌을 뿐, 활동상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친일 잡지 《[[신시대]]》에 삽화를 기고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한 기록이 아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분류:1912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삽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동화작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삽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화작가]][[분류:아동미술가]][[분류:박헌영]][[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분류:월북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현재원 . . . . 4회 일치
          | 자녀 = 슬하 2
         * 1996년 《[[강구|강]]의 X-세대》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주 현씨]][[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연극 감독]][[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뮤지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
  • 홍이주 . . . . 4회 일치
         *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2015년) - 막장 부인 역
         * 《[[이웃집 자 (2010년 영화)|이웃집 자]]》 (2010년) - 미스 김 역
         [[분류:1988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홍정우 . . . . 4회 일치
         * [[강중학교 (서울)|강중학교]]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강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홍지운 . . . . 4회 일치
         [[경대학교]] 진학 후 어깨 부상으로 1년 동안 재활했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해 4학년 때에는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641 핫코너를 책임질 핫한 신인, 홍지운] - NC 다이노스</ref> 대학 4년간 6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8, 출루율 0.398, 장타율 0.410, 205타수 59안타, 2홈런, 29타점, 32볼넷, 53삼진을 기록하였다.
         * [[경대학교]]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대학교 동문]]
  • 홍헌표 . . . . 4회 일치
         * [[평안도]] [[강서군]] 군수
         * 평안도 이사관
         [[분류:1907년 태어]][[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양 홍씨 (당홍)]]
  • 황보관 . . . . 4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축구]]}}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영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상도]] [[통영시]]에서 열린 [[통영컵]]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영컵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컵]]에서 우승하자, 우승컵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영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황제성(코미디언) . . . . 4회 일치
         || 출생 ||<(> [[1982년]] [[9월 25일]], [[전라도]] [[순천시]] ||
         [[1982년]] [[9월 25일]]생 전라도 순천 출신 [[대한민국]]의 [[개그맨]]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했고, 군복무는 [[제7보병사단]]에서 했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 2008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자신인상
         [[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82년 출생]][[분류:2007년 데뷔]][[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4회 일치
         피해자와 범인은 특별히 관련성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피해자가 스토커 상담 등을 했던 적은 없고, 같은 예비교의 동급생 이상으로는 볼 수 없는 관계였던 것으로 같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학생의 발언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잘 모르지만 예비교에서는 평범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고, 데이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평소 폭력적이거나 흉폭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한다.
         범행 현장은 2월 27일 오후 9시, 후쿠오카 시 니시구의 JR 메이노하마(姪浜) 역에서 북쪽으로 800킬로미터 떨어진 주택가이다. 목격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귀가 도중에 뒷쪽에서 습격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비명이 들렸고, 범인이 피해자에게 올라타서 습격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성들이 범인을 쫓아갔으나 범인은 도주하였다.
         범인 소년은 사립 자 기숙사에 입주하여, 방향이 키타카와의 집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에 미리 [[흉기]]를 준비하여 계획적으로 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의 아버지 키타카와 요우지(洋二)는 2월 29일, 후쿠오카 현경을 통하여 "가족에게 보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매우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코멘트를 했다. 딸에 대하여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하고 참을성 많은 딸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솔선하여 공부나 스포츠에 다른 노력가였습니다. 고집도 부리지 않고 부모와 형제를 소중하게 하는 상냥한 딸이었습니다."라고 자필로 코멘트 하였다.
  • 2016년 남양주 폭발사고 . . . . 3회 일치
         2016년 6월 1일, 7시 27분 경 양주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사고 현장은 서울 [[당고개역]]과 양주 진접을 잇는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연장 공사구간에 해당한다. 정확한 위치는 양주시 진접선 금곡리 일대 진접선 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현장으로서, 금곡리 주곡2교 아래의 개착 구간에서 지하철이 통가하는 구간의 교각을 보강하는 구조물을 설치하던 작업을 하는 건설 현장이었다. 이 건설 과정에서 철근조립 공사를 하던 도중에 벌어졌다.
  • 3월의 라이온/126화 . . . . 3회 일치
          * 팔다 은 음식들을 서둘러 챙기야 하는데 테이블이 무너지면서 음식이 쏟아질 뻔 한다.
          * 아카리가 얼른 잡으려다가 같이 넘어질 뻔 하는데, 두 자가 동시에 아카리를 잡는다.
          * 묘한 분위기의 두 자.
  • 강대식 . . . . 3회 일치
         ||<bgcolor=#00B4B4> '''{{{#FFFFFF 최종 학력}}}''' ||<(>[[영대학교]] 경영학 박사 ||
         1959년 [[경상북도]] [[경산시|경산군]] 안심면(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송정초등학교, [[안심중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강원 FC . . . . 3회 일치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민들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창단한 [[대구 FC]]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전부터 몇번 창단 준비를 했었는데[* 2005년도에 잠깐 논의는 있었으나 실제 참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01&aid=0001156686|참고기사]] 딱히 성과가 나지 않았으나 대구에 이어서 인천, 경이 차례대로 창단과정을 거듭함은 물론이고, 컨소시엄의 붕괴로 팀이 해체할 뻔한 대전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장면까지 본 강원도는 '''"오려는 축구단이 없으면 시민구단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강정길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개밥 . . . . 3회 일치
         과거 농촌에서는 사람이 먹고 은 음식 찌꺼기를 개에게 먹으라고 줬으며, 현대에도 특별히 개를 신경써서 기르지 않는 경우에는 먹고 은걸 대충 섞어서 개한테 먹으라고 준다. 음식 찌꺼기이므로 영양분은 있지만, 은 잔반을 마구 섞어버렸으니 사람이 먹기에는 겉모습이 이상하고 맛도 좋지 않아서 "개밥"이라고 하면 이러한 음식을 뜻하게 됐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6화 . . . . 3회 일치
         * 봄바는 여전히 UMR가 자라고 생각하는대다 실핀의 친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 우마루는 UMR변장이 자 같아 보이는지 신경쓰지만, 그냥 봄바의 안면인식 장애같다.
  • 건즈 고어 앤 카놀리 . . . . 3회 일치
         1920년대 금주법 시대, 갱단의 행동대장격 인물이던 비니 카놀리는 갱단 보스인 벨루치오에게서 지령을 받는다. 떠그타운으로 가서 "파리" 프랭키라는 자를 데려오라는 것. 떠그타운은 세인트 패트릭 데이 이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동이 일어나 완전히 무법지대가 된 곳이었다. 카놀리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일은 일이기에 SS. 럭키라는 이름의 배에 타고 떠그타운으로 향한다.
         카놀리가 도개교를 내리자, 비니는 더이상 카놀리는 필요 없고, 벨루치오한테 일 잘해줬다고 전해주겠다며 자기 혼자 다리를 건너가버린다. 이에 카놀리는 성을 내지만 군대가 다리를 폭파하며 그대로 다리에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카놀리는 살아아 하수구로 도망친다. 하수구에는 돌연변이 쥐들이 살고 있었다. 카놀리는 이들을 처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수구의 끝은 정체 모를 연구소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있던 연구원이 온갖 함정을 작동시키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카놀리는 그를 붙잡아 이야기를 듣는다.
         카놀리가 벨루치오 빌딩 옥상에 도착했을 때는 독가스가 건물 높이까지 퍼진 상태였다. 비행선에 벨루치오의 돈을 전부 싣고 떠날 준비를 하는 프랭키를 목격한 카놀리는 벨루치오의 행방을 묻는다. 프랭키가 벨루치오를 죽였다는걸 깨달은 카놀리는 프랭키를 욕한다. 프랭키는 목격자를 기지 않겠다며 카놀리에게 덤벼들지만 오히려 자신이 밀리자 비행선에 올라 타 카놀리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카놀리 역시 비행선에 올라 타서 프랭키를 두들겨 패고는 비행선 밖으로 던져버리려고 한다. 프랭키는 자기만이 비행선을 조종할 수 있다며 목숨을 구걸하지만 카놀리는 설명서를 읽어봤다며 프랭키를 비행선에서 내던져버린다. 이후 카놀리는 비행선을 몰고 떠그타운을 빠져나간다. 프랭키가 빼돌릴려고 했던 벨루치오의 돈과 함께.
  • 경대수 . . . . 3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출생지}}}''' ||<(> [[충청도]] [[괴산군]] ||
         ||<bgcolor=#C9151E> '''{{{#FFFFFF 가족관계}}}''' ||<(> 배우자 안승화, 슬하 1 1녀 ||
         [[이낙연]]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낙연 아들 군면제 관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장이 미공개 질병으로 군을 면제 받았음이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이후 본인의 아들이 [[간질]]로 군면제를 받고 간질에 대한 사회적 편견때문에 병명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네티즌들은 알리기 힘든 질병임은 이해하지만 정작 비슷한 처지의 이낙연의 아들에 대해선 왜 그런 태도를 보였냐며 질책했다.
  • 경산시 . . . . 3회 일치
         산면 (경산시)''' ||南山面 || 1,759 || 3,904 || 38.17
         천면''' ||南川面 || 1,468 || 3,486 || 70.53
         부동 (경산시)''' ||南部洞 || 6,396 || 17,679 || 3.74
  • 고산케 . . . . 3회 일치
          *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尾張) : 다른 이름은 비슈가(尾州家). 시조는 제9 도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 오와리번을 영지로 [[나고야]]을 거성으로 삼았다.
          * 키이 도쿠가와 가문(紀伊) : 다른 이름은 키슈가(紀州家). 시조는 제10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頼宣). [[와카야마]]번을 영지로 삼고 와카야마성을 거성으로 했다.
          * 미토 도쿠가와 가문(水戸) : 미토가. 시조는 제11 도쿠가와 요리후사(徳川頼房). 히타치 국 미토를 거점으로 삼았다.
  • 고성국 . . . . 3회 일치
         * 《한국정당정치론》(공저), 나, 1995 {{ISBN|8930034063}}
         * 《대통령이 못된 자》, 정은문고, 2012 {{ISBN|9788996575870}}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구성 . . . . 3회 일치
         결혼이나 입양 같은 일로 소속된 가(家)가 변경 되기 이전의 성씨를 가리킨다. 일본의 민법은 편 또는 아내 중 하나의 성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성씨를 구성이라고 한다. 반대로 편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경우도 성씨가 바뀐다. 대체로 편의 성으로 하는 경우가 90%.
  • 구자욱 . . . . 3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2014년]]에는 1루수로 주로 나오면서 우익수와 지명타자로도 나왔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요청이 온 것은 아니고, 본인이 3루를 부담스러워 하기에 코칭스태프에서 편하게 타격할 수 있는 코너나 지타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고 3루수 연습도 했다. 포지션은 주로 1루수, 3루수, 좌익수이다. 0.357의 타율로 부리그 타율 1위를 했다.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구자춘 . . . . 3회 일치
         1974년 9월 2일부터 1978년 12월 21일까지 제16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였다. 원래는 영등포-왕십리로 계획되어 있던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거대 순환선으로 만든 사람이다. 특히 2호선 계획 당시 지도에 줄 그어서 30분만에 만들었다는 레전설이 나름 유명. 웃긴건 그렇게 날림처럼 노선이 정해졌음에도 정작 공사할 때 [[영등포역]] 경유 예정 구간이 [[신도림역]] 경유로 바뀐 것, 딱 한 곳만을 제외하면 딱히 난공사라 할만한 구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구자춘 시장이 포병 출신이어서 지도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런 레전설 일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근데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다만 이는 좋게 봐줘도 2호선 한 노선 한정이고, 바로 다음 노선인 3호선부터 서울 지하철 노선의 선형은 '''온갖 병크'''가 터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서울/강|강]]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이외에도 [[강8학군|서울특별시 강북 지역의 명문고 이전]],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립[* 다만 본인이 기안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고속터미널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지하철 3호선|3호선]]을 무리해서 끌어오느라 3호선의 선형에 '''지랄맞은 ㄷ자 드리프트'''가 생기는 원흉이 된다.], 금화터널 건설 과정에서의 [[독립문]] 이전, [[한양도성]] 일부 복원, 도심부 주차장 확충--당시 도시계획국장 [[손정목]]의 말을 안 듣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을 듯...-- 등을 추진하였다. 이런 그의 별명은 대표적으로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01100209202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0-11&officeId=00020&pageNo=2&printNo=17237&publishType=00020|황야의 무법자]]'''였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별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7111900329206004&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7-11-19&officeId=00032&pageNo=6&printNo=9891&publishType=00020|붙었다]].~~관료계의 [[김태균(1982)|김별명]] [[박용택|별명택]]~~
  • 궁가 . . . . 3회 일치
         일본의 궁가인 미야케는, 역사적으로 다소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게 된다. 본래 고대에 천황가의 방계후손은 [[신적강하]]라는 절차를 거쳐서 성씨를 받고 천황가에서 이탈하여 신하의 가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후대에는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천황가의 일원으로 으면서, 천황가의 분가를 창설하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는데 이를 미야케라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천황가의 분가로서 미야케는, 천황가의 본류 혈통이 단절되면 양자로 입적하는 형식으로 천황가를 계승,유지하는데 공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의 미야케는 [[메이지 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천황가의 정통과 너무 멀어진 가문은 궁가의 자격을 잃고 정리하게 되었다. 현재는 소수의 가문만 아 있으며, 그나마 모두 천황가와 마찬가지로 성 적손이 부족하여 단절될 위기에 있다.
  • 권민경 . . . . 3회 일치
          | 자녀 = 1 2녀(막내아들 조상우)
         미스코리아 대구 입상 후 모델 활동을 잠시 한 이후 그녀는 1990년 대구 출신의 변호사 조재원과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1 2녀(1991년생 장녀, 1993년생 차녀, 1998년생 막내아들)를 두었고 자녀들 중 막내아들 조상우({{출생일과 만나이|1998|5|23}} [[대구광역시|대구]] 출생) 君은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한림예고]] 출신인데 지난 2015년 TvN TV 프로그램 《[[고교10대천왕]]》에 10대천왕 패널 주인공 중 일원으로 출연한 전력이 있다.
         [[분류:196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86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명여자중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권수현(배우) . . . . 3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 . . . . 3회 일치
          CJ의 매.
          로스 산토스에서 활동하는 [[히스패닉]] 갱단의 두목. 켄들의 자친구다.
         개발 당시에는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는 [[미니게임]]이 존재했다. 출시 버전에는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없게 했으나, 데이터는 [[더미 데이터]]로 아 있었기에 모더들이 이를 복원한 "핫 커피 모드"라는걸 만들어버렸다. 이 사건은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왔다.
  • 길은혜 . . . . 3회 일치
         * [[2013년]] [[KBS2]] 수목드라마 《[[예쁜 자 (드라마)|예쁜 자]]》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해평 길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김경태 (배우) . . . . 3회 일치
         * 《[[강 1970]]》 (2015년) - 짬뽕국물 지주 역
         * 《[[Mr. 아이돌]]》 (2011년) - 종탁바 취객
         [[분류:197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대휘 . . . . 3회 일치
         |자녀 = 2
         1985년에 서울형사지방법원, 1987년에 [[춘천지방법원]], 1989년에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1990년 서울고등법원으로 전보되어 판사로 재직하였다.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재직할 때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을 겸직하다가 1994년에 부장판사에 승진하여 [[제주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하다가 1997년 [[인천지방법원]], 1998년 서울지방법원 부지원, 1999년 서울지방법원, 2001년 부산고등법원, 2003년 서울고등법원으로 전보되어 부장판사를 하였다.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예안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동호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
  • 김만제 . . . . 3회 일치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이 때문에 역시 서강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던 전임 [[덕우]], 후임 [[이승윤(정치인)|이승윤]] 경제 부총리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종인]] 등과 더불어 서강 학파의 대표 주자로 알려져 있다.]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82년까지 재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가안전기획부]]의 흑색선전 공작에 대한 역풍으로 [[민주당(1991년)|민주당]]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포스코|포항종합제철]] [[회장]]을 역임하였다. 이는 역대 포스코 회장 중 유일한 외부인사 영입 사례이다.[[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72|#]]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강구]] 을) || [[민주자유당]] || - || 낙선 || ||
  • 김명신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대구도초등학교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
  • 김민교 (가수)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1967년 태어]][[분류:198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민수 (1983년) . . . . 3회 일치
         | 일일극부문 자 우수연기상
         | 일일&주말드라마부문 자 우수연기상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보미(1958) . . . . 3회 일치
         김보미(1958년 7월 29일~) [[전라북도]] [[원시]] 출생을 대한민국의 중년 여배우이다. 1977년 TBC 17기 공채 탤런트으로 데뷔하였다.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1977년 데뷔]][[분류:원시 출신 인물]]
  • 김성겸(탤런트) . . . . 3회 일치
         2000년대 초반 어린이 시청자들에겐 [[매직키드 마수리]]의 [[마파람]]으로도 기억이 을 것이다.
          * [[신라의 달밤#s-1|신라의 달밤]] - 황길
         [[분류:김제시 출신 인물]][[분류:1941년 출생]][[분류:1965년 데뷔]][[분류:한국 배우]]
  • 김성현 (1989년) . . . . 3회 일치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어째 이상하게도 컴투스 프로 야구 2011에서는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데도 본명으로 존재하는 이 선수가 아직도 아있다.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김소혜(1992) . . . . 3회 일치
         김소혜는 수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표현하였다. 은빈과의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은빈을 지긋이 바라보는 부분, 은빈이 아파서 보건실에서 쉬고 있을 때 같이 있으면서 머리를 쓰담쓰담하는 부분에서 설렘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아웃팅으로 수연과 은빈은 이별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은빈은 들의 시선이 걱정이 되어 이별을 고하고, 수연은 우리 두 사람만 있으면 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며 싸우게 된다. 수연은 은빈이 떠나갈까 두려운 마음에 눈물이 담긴 키스를 함으로써 수연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였다. 은빈만큼만 지켜주기 위해 수연은 학교를 떠나게 되는데, 슬프지만 애써 담담한 감정을 담아내었다.
         || 2009년 || tvN || 세 자 ||
  • 김옥이 . . . . 3회 일치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 전쟁]]
         [[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일중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군 장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대한민국 육군 대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친이]][[분류:친박]]
  • 김윤동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도초등학교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안동 김씨 (신)]][[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준희 (1960년)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김창규 (작가) . . . . 3회 일치
         {{출처|날짜=2012-04-03|[[1975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해 구금, 구속, 연행 등의 고난을 겪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때 입은 부상으로 한쪽 청각을 상실하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출처|날짜=2012-04-03|1981년에는 납치되어 대전 안기부, 경찰서 보안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1987년 [[6월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구속당하기도 했다.}} {{출처|날짜=2012-04-03|[[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감시대상 1호임을 알게 되었다.}} 2008년에는 ‘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 = <nowiki>각계 650명, 북관계 정상화 촉구 시국선언 발표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태어]][[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분단시대 동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김태훈 (1987년)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김필곤 . . . . 3회 일치
         *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7월 29일에 [[대구 지하철 화재]] 현장을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 윤진태에게 징역 3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98906]</ref>11월 28일에 [[한총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계명대]] 총학생회장에 대해 "11기 [[한총련]]은 10기 한총련의 기본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측본부의 집행부를 장악해 [[범청학련]]의 기본 대오로 활동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11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11기 한총련이 범청학련을 통해 북한의 대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의 사실상 지휘·조정을 받아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을 수용하고 있고, 북한 쪽과 빈번하게 불법 접촉 및 서신교환을 하면서 하달받은 투쟁지침에 따라 11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의 사업계획을 수립·시행했다"며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2년6월 자격정지1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36082]</ref> 2004년 2월 6일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하 직원 2명으로부터 "당선되면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원, 아들 축의금으로 1000만원을 받은 [[박진규]] 영천시장에 대해 "시장에 당선된 후에 받은 1천만원은 대가성이 인정된다"면서도 2000만원에 대해서는 "범죄 입증이 어렵다"고 하면서 수뢰액이 1천만원이상 5천만원 미만 일 때는 5년이상 징역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징역2년6월 집행유예4년 추징금1000만원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026584]</ref>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하은(1984) . . . . 3회 일치
         | 출생지 = [[전라도]] [[무안군]] 무안읍
         * [[2005년]] [[KBS1]] 《[[별난여자 별난자]]》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4년 태어]][[분류:199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무안군 출신 인물]]
  • 김현민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대구도초등학교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
  • 김현성(가수) . . . . 3회 일치
         1978년 1월 10일 ([age(1978-01-10)]세).[[전라도]] [[진도군]] 6집까지 발표하면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가수]].
         제물포고등학교40회 졸업생이다.[* [[김광진(가수)]]은 27회, [[지상렬]], [[김구라]], [[염경환]]은 33회다.]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 2학년 재학 중이던 1997년 제18회 [[강변가요제]]에서 '스톱'을 불러 금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그후 [[김형석]]에게 스카우트 되면서 소원, 이해할께, heaven 등의 히트곡을 겼으나 [[성대결절]]로 인해 한동안 음악활동을 하지 못했다. 블로그의 글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야기한 것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연예계를 은퇴했으며 이후 여행 및 저술 활동등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참고로 [[2015년]] 기준 미혼이라고...
         [[분류:한국 가수]][[분류:1978년 출생]][[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진도군 출신 인물]]
  • 김형종(배우) . . . . 3회 일치
         * 《[[자가 사랑할 때 (2004년 드라마)|자가 사랑할 때]]》 (SBS, 2004년) - 동식 역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 인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0화 . . . . 3회 일치
          * 올마이트는 다소 선문답 같은 조언을 기지만 그래도 미도리야에겐 실마리가 된다.
          * 따라서 이날부터 10일 은 여름방학은 개성을 기르면서 필살기를 짜내는 초 압축 커리큘럼.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3회 일치
          현재 엔데버는 오히려 "히어로 약체화의 상징"이다. 하는 일도 너무 지나친 부분이 있고 지지층도 2~40대 성으로 편중되어 있다. 미야기 캐스터는 이렇게 된 마당에 그저 보호만 받기 보단 히어로를 북돋아 약점을 보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 그런 모습들을 관찰하던 아저씨는, 자기가 찾고 있는 유형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때 전화가 온다. "기란"이란 자의 전화다. 아저씨는 잘 지냈냐고 인사한다. 기란도 오랜만이냐며 그쪽은 어떻냐고 묻는데, 아저씨는 "나는 내가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고 뜻모를 소릴한다.
          이마의 상처는 그때 생겼다. 그의 분신은 어느 정도 데미지를 받아야 없어졌기 때문에 쉽게 없앨 수도 없었다. 이윽고 분신들은 그를 사로잡고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은 9일간이나 계속됐다. 종국엔 서로 죽인 끝에 모두 사라졌다. 그는 살아았지만 자신이 진짜 나인지 어떤지 알 수 없게 됐다. 그게 그가 보인 증상의 정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2화 . . . . 3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122. '''만의 계절'''
          * 조회가 끝나고 3학년부터 교실로 돌아가는 길. 한 여학생이 앞에 있는 학생에게 "어제 싸운 1학년들"에 대해서 말을 건다. 그런데 아주 무례하게 머리를 툭툭 건드리는데, 정작 학생은 별다른 대꾸도 없이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듯 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3회 일치
          * [[토도로키 쇼토]]는 "No.1에 가장 가까운 자" [[토오가타 밀리오]]의 위력에 경악한다. 그런데 경쟁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 순수하게 놀라워하는 모습이라 옆에 있던 [[아이자와 쇼타]]가 이상하게 여긴다. 아이자와가 "너도 No.1에 관심있는거 아니었냐"고 묻는데 토도로키는 "전 아직 임시면허가 없습니다"라고 태평한 대답을 한다. 아이자와는 토도로키가 둥글어졌다고 생각한다.
          * 어쨌든 밀리오는 원거리 타입 개성보유자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근접전 개성 보유자들만 겨놓고 있다.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가 뭘한건지, 어떤 개성을 가진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 이들의 생각대로 처음엔 밀리오도 개성을 활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금방 들보다 뒤쳐졌으며 옷 조차 제대로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능력으로 "위"를 노리려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성의 약점을 끊임없는 연구와 "예측"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그 예측이 가능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보다 대련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직업체험에서는 말하자면 "손님"으로서 견학하는 것 뿐이지만, 인턴에 참가하면 한 사람의 "사이드킥"으로서 "프로"로 취급된다. 그건 엄청난 공포와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지만, 반대로 학교에선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3회 일치
          >상대는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은 폭력배들이다.
          * 같은 시각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 표면적으로는 호화로운 저택이다. 그 안의 어느 방. 노쇄한 자가 중환자 같은 행색으로 누워있다. 그 곁에는 [[오버홀]]이 서있었다. 그는 자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3회 일치
          패트껌의 판단대로 타마키는 망설임이 사라졌고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리나카의 의태능력이 별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윗층에 은 경찰을 우선한다고 추정, 동시에 여러 무리를 상대할 수 없다는건 미궁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낸다. 그렇다면 이녀석들만 손쓰면 된다. 타마키는 문어다리로 적들을 꽁꽁 묶어놓은 채로 잠재워버리려 한다. 하지만 적들도 필사적인 이상 그렇게 쉽게 풀릴 수는 없다. 세츠노가 문어다리로 변형시킨 타마키의 주먹을 안면으로 들이받는다. 무슨 짓일까?
          * 구속이 풀린 호죠가 육탄돌격을 감행한다. 타마키는 대합조개 껍질을 생성해 막으려 한다. 그런데 어느 틈에 그것이 사라진다. 세츠노의 개성 "절도". 이 가진 물건을 자기 손으로 순간이동시키는 묘한 개성이다. 타마키가 생성한 껍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취급된 것이다. 다시 생성할 틈도 없이 호죠가 엄습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일까? 세츠노는 본래 자신들이 인생을 버린 종자들이라 말한다. 오히려 히어로에게 구해졌을 땐 살아은 것에 절망했던 패배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재활용"해준 것이 오버홀, 시에핫사이카이의 차기 두목 치사키다. 호죠가 그런 사실을 밝히며 묵직한 주먹을 날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1화 . . . . 3회 일치
          * 그대로 넋 놓고 쓰러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타베가 문어다리를 밑동만 기고 먹어치웠다. 놀라운 속도다. 여기서 타마키는 생각을 바꾼다. 그렇게 먹고 싶다면 놔두기로. 문어의 타액엔 신경독이 있다. 신경독이 듬뿍들어간 문어다리를 먹인다면... 타마키는 문어다리에 신경독을 재현하고 물어뜯기를 기다렸다. 먹으면 그대로 끝. 하지만 이마저 실패. 또 세츠노다. 문어다리가 작아진 만큼 그가 "절도"하기엔 충분한 사이즈였다. 작전은 실패하고 호죠가 거대하게 경화시킨 팔로 타마키를 벽에 처박는다.
          * 이제 전세가 뒤집혔다. 타마키를 몰아넣은 철포옥 핫사이슈. 붙잡힌 마당이지만 타마키도 "물 흐르는 듯한 연계"였다며 그들의 전술을 인정한다. 호죠는 이를 "쓰레기 나름의 굳건한 유대"라고 말한다. 타마키는 설사 자신에게 이겨도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고 경고한다. 설사 [[오버홀]] 치사키가 도주해도 겨진 그들은 구속될게 뻔하다.
          >가치를 준 자를 위해서 방해꾼은 죽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3회 일치
          아이자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미도리야에게 록록의 지혈과 주변의 경계를 먼저 부탁했다. 특히 토가가 긴 나이프는 필히 회수해야 했다. 행동으로 보아 피를 취해서 사용하는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다. 날붙이를 방치하면 아픈 꼴을 당하겠지. 아이자와는 자신의 안일함을 통감했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의 다툼". 그 단편적인 정보를 너무 믿었다. [[시가라키 토무라]]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그 성격으로 누구 밑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다퉜다면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안일함. 그 결과가 이 상황이다.
          * 트와이스는 랏파가 눈 앞에서 쓰러지는 걸 보았지만 다음 순간 랏파가 자신을 지나쳐 뒤쪽 벽에 처박히고 있었다힌 이유는 이해하지 못했다. 랏파를 거기까지 밀어낸 "무언가"는 눈으로 볼 수도 없었다. 트와이스는 그것이 허공에 긴 궤적을 쫓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경찰관 하나가 트와이스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했다.
          * 나이트아이는 유머감각을 중시하는 자였고 전투 중이라도 특유의 조금 빗나간 유머감각을 자제하지 않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3회 일치
          * [[빌런 연합]]은 [[마그네]]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자력"을 발동, 자기를 기준으로 일정 범위 안의 성에겐 S극을, 여자에겐 N극을 부여해 자석처럼 붙이거나 반발시키는 개성이다.
          * 빌런 연합도 몇 명 지 않았고 바쿠고를 빼앗겨서 상황은 단숨에 역전, 올 포 원은 "당했다"고 인정한다.
          * 올 포 원이 여력을 기고 있는 듯 한데, 올마이트는 한계에 달해 버렸다.
  • 노경주 . . . . 3회 일치
         * [[MBC 베스트셀러극장]] 촌자 (1987년, [[문화방송|MBC]])
         * [[자는 외로워]] (1994년, [[KBS2]])
         [[분류:1965년 태어]][[분류:1984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부천시 출신]]
  • 대전광역시 . . . . 3회 일치
         대전 충청도청 구 본관
         충대학교
         [[분류:대전광역시 출신|대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대한민국의 옛 임시 수도]][[분류:1995년 설치]][[분류:충청도]]
  • 동왕부 . . . . 3회 일치
         [[서왕모]]와 대응하는 신으로서, 서쪽의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에 대응하여 동쪽의 봉래산에 사는 신이다. 자 신선들의 우두머리로서, 서왕모와 부부로 여겨진다. 동방의 수호신이다.
         [[한나라]] 시기에 양(陽)의 부분이 동왕부로 분리되었으며, 동왕부가 성신으로 묘사되면서 서왕모는 이에 대응하여 아름다운 미녀로 여겨지게 된다.
  • 라나(미래소년 코난) . . . . 3회 일치
         '겨진 섬'에 떠밀려온 12살 소녀.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과 그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바닷새인 티키(제비갈매기로 추정)와 교감하는 등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고 태양 에너지의 권위자인 [[브라이아크 라오|라오 박사]]의 손녀여서 박사를 이용하려는 인더스트리아 때문에 여러번 힘은 일을 겪지만 ~~초인~~미래소년 코난의 도움과 본인의 강인함으로 이겨낸다.
         모험을 끝낸 후, 코난과 같이 신대륙이 된 겨진 섬에 정착하게 되는 듯 하다.
         원작에서의 설정이 애니에서도 그대로 은 경우로 원작 소설에서도 텔레파시 초능력을 가지고 있고 할아버지인 로아 박사(원작 소설에선 라오 박사가 아닌 로아 박사)와 텔레파시 대화가 가능하다.
  • 로라 로라 . . . . 3회 일치
         지구의 에이스였기에 당연히 지구인이라 여겨졌지만, 사실은 달에서 진행하고 있던 귀환계획 당시 파견되었던 문레이스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고 나서 그녀는 지구와 달 모두에게 백안시 당하는데, 지구인-문레이스 양측에게 배신감을 주기 충분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행동원칙은 "지구와 달이 싸우지 않는" 미래를 도출하기 위해 지구인을 위해 싸우는 것 뿐이었다. 또한 이미 그녀에게 콩깍지가 겹겹히 씌인 구엔은 배신감은 고사하고 어찌되든 '''"로라와 함께있다"'''는 사실에 만족함은 물론이고 에이스 파일럿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현실적 상황과 맞물려 그녀는 구엔의 지지하에 밀리샤에 게 된다.
         안 까이는 경우는 별로 주목을 못 받아야 가능한 경우인데... 대표적으로 [기동전사 Z 건담]의 [화 유이리] 정도만큼 존재감이 희미하거나 [기동전사 건담: 제08 소대]의 [아이나 사하린]처럼 주인공(편)을 쉴드삼아 성녀로 등극해야지만 가능한 경우다. 이는 건담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성장드라마가 진행됨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성숙해지면서 미성숙 단계의 병크가 부각되거나 '''작품이 끝날때까지 정신적 성장이 안 되는''' 경우에 팬들에게 까이는 요소가 되는데, 토미노 작품에서도 로라 로라의 존재는 특이하게도 등장 시점부터 '''성숙한 단계'''였다.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3회 일치
          * 슈라투 : 사이파카르의 가신 중 유일한(?) 성. 특기는 문서 위조 및 날조. 제국이 천하를 평정한 후의 평화로운 세상에 지루해한다.
          * 제피 : 소피의 동생으로 여장자. 그 존재 때문에 사이파카르는 실은 색 취향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귀여워서 다른 여자들에게 성희롱당하기도 했다. ~~외모와 달리,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지녔다.~~ 누나를 매우 잘 따르는 시스콘.
  • 류한수 . . . . 3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레슬링]]}}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류현경 . . . . 3회 일치
         * 《[[자사용설명서]]》(2013) - 주민 역
         * 《[[기도하는 자]]》(2018)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안성시 출신]][[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3회 일치
          Address Unknown. 90년대 방영했다는 설정의 극중극. 존이라는 자가 느와르욕(Noir York)라는 도시에서 연쇄살인범 존 미라(John Mirra)를 쫓는 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라를 쫓던 존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지만 의사와 환자들을 드릴로 죽이고 도망친다. 그제서야 존은 자신이 존 미라였다는걸 깨닫는다는 그런 내용. 이걸 배경으로 한 테마파크도 있었던 것 같지만 원작 드라마가 방영 중단 먹으며 망한 듯. 솔직히 테마파크 겁나 기분 나빠서 방영 중단 안 되었어도 망했을 것 같다.
          Lords and Ladies. 귀족 자 발렌타인과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의 러브스토리. 당연히 발렌타인의 집안에서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발렌타인의 형인 잭이 여자를 모욕하자 발렌타인은 잭에게 결투를 벌여 죽여버린다. 그러자 발렌타인의 어머니가 여자에게 독이 든 와인을 먹여 죽이려 하지만 그 와인은 발렌타인이 대신 먹고 죽어버린다. 이때, 그들의 저택에 불이 나고 발렌타인은 여자를 도망치게 한 다음 마지막 힘을 다해 어머니를 붙잡고 타죽는다. 여자는 도망쳐 발렌타인과의 관계로 생긴 아이에게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기른다.
  • 모리시오 . . . . 3회 일치
         방위를 따져서 두기도 한다. 이 경우는 동서북이나, 동서로 두는 경우가 있다.
         좀 더 복잡하게 따지는 경우도 있는데, 동북에서 서로 이어지는 귀문 라인을 두는게 좋다는 주장이다.
         그 외에 연예운, 사업운, 재물운 등에 관련되어 각각의 방법으로 행운을 올려준다는 다양한 배치법이 잡다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런 잡다한 배치법은 모리시오를 담는 접시의 색이나 무늬, 재질까지 따지는 경우도 있고, 그 용도도 사랑을 성취하는 것에서 편과 헤어지는 것 까지 아무튼 여러가지가 있다.
  • 모죠 . . . . 3회 일치
         자의 경우는 모오토코(喪男)라고 부른다.
         성과 사귄 경험이 전혀 없다
         성에게 고백받은 적이 없다
  • 무협/용어 . . . . 3회 일치
          * [[중국어]]의 영향 : 무협 장르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때때로 중국어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불필요한 중국어 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초창기 무협 번역에서는 '장풍'을 '손바람'으로 번역하는 등, 고유어 번역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협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고유어 번역은 오히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무협 번역에서 전문적인 작가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화교]] 등 아마추어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출판사가 영세화 되면서 번역의 품질이 나빠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어의 영향이 과도하게 들어간 일종의 '중국어 번역체'가 발되게 되었고, 이를 무협 장르의 독자나 후발 작가들이 학습하면서 중국어 번역체의 영향을 받은 장르 고유의 문체가 형성되었다.
          * 음양인(陰陽人) : '녀 양성을 모두 가진 자'라는 의미. 중국어에서는 속칭으로 쓰이는 말이며, 보다 일반적인 호칭은 쌍성인(雙性人)이다.
  • 바키도/107화 . . . . 3회 일치
          * 피클과 충돌했던 충격이 벽에 고스란히 아있다.
          * 무사시는 그 힘이 야생마도 뛰어넘는다고 하면서도 "진검으로 베었으면 이럴 힘이 았겠느냐"고 도발한다.
          * 무사시는 진짜 진검을 들 요량인지 도쿠가와에게 "내 검은 겨져 있냐"고 묻는데
  • 박경석 (1960년)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영대학교]] 재학중이던 [[1980년]]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입대, [[대한민국 해병대 수색대|수색대]]로 복무하였고 복무 당시에도 스킨스쿠버, 수영, 낙하산을 매우 즐겼다고 한다.<ref name=park>[http://na-dle.hani.co.kr/arti/issue/501.html 니들의 잣대로 구별짓지 마라 - 손아람이 본 박경석], 《[[한겨레]]》, 2013년 11월 4일</ref> 전역 후 대학교 행글라이더 동호회에 들어가 활동 중이던 [[1983년]] 8월,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를 타던 중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ref name=park /><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992 하루 '5억원짜리' 삶, 이 사람 부럽다], 《[[오마이뉴스]]》, 2014년 4월 6일</ref>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지체 장애인]][[분류:밀양 박씨]]
  • 박광정 . . . . 3회 일치
          * 1998년 [[자 이야기#s-3|자 이야기]]
         [[분류:한국 배우]][[분류:1962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양양군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
  • 박근영 (야구인) . . . . 3회 일치
         * [[경대학교]]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박기환(정치인) . . . . 3회 일치
         1948년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영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구(포항)|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상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박노식(1930)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본관 [[밀양시|밀양]](密陽).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이냐시오이다. 1930년, [[전라도]] [[여수시]] 에서 태어났으며[* 그런데 정작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시]] 출신인 [[해태(응답하라 1994)|해태]]가 여수 아줌마와 고향 대결을 할 때 박노식을 순천 사람이라고 내세운다. --해태 [[의문의 1패]].--], [[전대학교 여수캠퍼스|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학교[* 1946년 11월에 설립되었다가 1962년 2월에 폐교되었는데, 뒤이어 순천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고 1967년에 지금의 순천공업고등학교로 재개편되었다.] 체육과를 졸업했다. 1950년에 지금의 여수 소라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종군했다.
         [[분류:한국 배우]][[분류:여수시 출신 인물]][[분류:1930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
  • 박상철(가수) . . . . 3회 일치
         [[분류:1969년 출생]][[분류:삼척시 출신 인물]][[분류:전직 배우]][[분류:한국 가수]]
          * 무조건(2005) : 사원급 [[직장인]]들이 [[회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 개사해서 부른다. ~~부장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2008년에 1박2일 시즌1 경 [[거창]]편에서 1박2일팀이 전국 노래자랑 출전곡으로 이 곡을 불렀다. [[일본]]의 탤런트 카와사키 마요가 이 곡을 2015년에 [[리메이크]]했다.
          * 항구의 자(2015): 곡 자체는 [[2015년]]에 만들어졌으나, 정식 음원은 [[2016년]] 7월에 발매되었다.
  • 박성우 (정치인) . . . . 3회 일치
         |같은 지역구 의원 = (상주군 을)[[백식 (1901년)|백식]]
         [[분류:1914년 태어]][[분류:1954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박성원 (소설가) . . . . 3회 일치
         1994년 [[문학과 사회]]에 단편 "유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계명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박윤경(가수) . . . . 3회 일치
         박윤경은 [[1970년]] [[8월 28일]]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당시 모친 [[심영진]]과 친분이 두터웠던 작곡가 [[임종수]]와의 만으로 4년간 연습생으로 지내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1989년]], 제10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입상하고 그 다음해 [[1990년]]에 제4회 MBC 신인가요제에 출전하여 가창상과 대상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1991년]]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 [[1996년]] [[인수]]가요제 모범 가수상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분류:군산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청주대학교 동문]][[분류: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동문]]
  • 박정철(배우) . . . . 3회 일치
         ||<#58ACFA> {{{#white '''가족'''}}} ||2 중 둘째[br]부인, 슬하 1녀 ||
          * 1999년 [[MBC]] 의 속도 모르고 - 나대로
         [[분류:한국 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안산시 출신 인물]]
  • 박주아(1942년) . . . . 3회 일치
         | 사망지 = [[인천광역시]] [[동구]]
         * [[문화방송|MBC]] 《[[자를 믿었네]]》 ([[2011년]])
         [[분류:194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11년 죽음]][[분류:1962년 데뷔]][[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박현진 (음악가) . . . . 3회 일치
         '''박현진'''([[2005년]] [[5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자 가수이자 래퍼이다. 2016년 《[[K팝스타 6]]》에 참가하였으며, [[김종섭]]과 함께 보이프렌드라는 이름으로 듀오를 결성하여 우승하였다.
         [[분류:200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래퍼]][[분류:K팝 스타 참가자]][[분류: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현철 . . . . 3회 일치
         |소속팀 = [[대국아]]
         *[https://web.archive.org/web/20140102010518/http://www.the-boss.co.kr/ 대국아 홈페이지]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0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배상면 . . . . 3회 일치
         * [[배중호]](장): [[국순당]] 운영
         * [[배영호]](차): [[배상면주가]] 창업
         [[분류:1924년 태어]][[분류:201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달성 배씨]]
  • 배장원 . . . . 3회 일치
         * 대구도초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백남억 . . . . 3회 일치
         1939년 조선총독부 철도국(鐵道國)에 근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46년 대구대학교(청구대학교와 통합된 현 [[영대학교]]) 법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14년 동안 법학교수로 활동하며 [[형법]] 과목을 담당하였고,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항명파동으로 박정희의 분노를 사면서 자연스레 4인체제는 무너졌고, 백억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쫓겨나지는 않았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김천시-금릉군-[[상주시|상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윤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박정수(정치인)|박정수]] 후보와 정휘동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001년 1월 15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백종현(白種玹) 국민대 경상대학장 등 3 1녀가 있다.
  • 백대현 . . . . 3회 일치
         |바둑리그 = [[영일보]]
         1994년 입단하였으며, 2010년 7월에 8단으로 승단하였다. 현재 [[한국바둑리그]] [[영일보]] 소속의 선수이다.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보쿠걸/104화 . . . . 3회 일치
         미즈키는 자로 돌아갈 결심을 했지만...
          * 미즈키는 자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면서도 하염없이 운다.
          * 타케루는 먼저 귀가하고 겨진 미즈키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 . . 3회 일치
         [[분류:양주시 출신 인물]]
         [[분류:성시 출신 인물]]
         [[분류:하시 출신 인물]]
  • 블랙 클로버/102화 . . . . 3회 일치
          * 언제나 사람을 개처럼 굴리는 [[야미 스케히로]]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아있었는지 막 부상에서 완쾌한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에겐 당분간 임무를 맡지 말라고 휴식을 명령한다. 하지만 임무가 없으면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아스타에겐 오히려 고역이었다. 임무를 빼면 자신에게 뭐가 냐는 아스타에게 야미는 근육이 는다고 냉정히 말한다. [[핀랄 룰러케이트]]가 시간 때우기 적당한게 있다고 말하려는데, 마침 아스타의 치료법을 찾아 던전으로 떠났던 [[매그너 스윙]]과 [[락 볼티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스타는 고마웠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 블랙 클로버/118화 . . . . 3회 일치
          자기만의 세계에서 깨어난 릴의 눈 앞에, 상처투성이의 발터가 있었다. 릴이 무아지경으로 그려대던 그림들은 하나하나가 무서운 파괴를 일으켰다. 발터는 아랑곳 없이 그의 방을 찾아왔다. 마법에 맞아 온몸에 성한 데가 없고 이마에 깊은 상처가 생겨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집사로서 도련님에게 따끔하게 가르쳐 줄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 받으면 아프다는 것. 지금 릴이 맞은 뺨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다치는걸 두려워한다. 정체모를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것에 다가가고 싶지 않아 한다. 같은 짓을 반복한다면 누구도 영영 그에게 다가오지도 이해하지도 않는다. 정말로 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그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도 모처럼 그린 그림을 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아닌가? 발터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단지 릴이 을 이해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3회 일치
          * 금발의 여성은 벗고 있던 성을 두들겨 패고 "제발 알몸이 되는 습관 좀 고쳐라"라고 갈군다.
          * 성의 이름은 판젤 크루거. 흔히 젤이라 부른다. 다이아몬드 왕국에선 지휘관이었다.
          * 그런데 바네사는 "그딴 자"(야미 스케히로)에게 홀려 이용만 당했다고 분노한다.
  • 블랙 클로버/96화 . . . . 3회 일치
          * 라드로스는 최후의 마력을 쥐어짜내 탈출을 시도한다. 간발의 차이로 아스타의 검을 피해 몸을 빼냈는데 여전히 검이 어깨에 박힌 채라 움직임이 불편하다. 그는 은 마력을 강화마법으로 돌려서 검을 어거지로 뽑아낸다. 은 마력은 고작 마력탄 한두 발을 쏘는게 전부지만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파나를 향해 곧장 날아간다.
          * 하지만 파나는 기억도 애매할 뿐더러 라드로스에게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라드로스는 빈사의 마르스를 공격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사실 그에겐 마르스를 죽일 정도의 힘은 이미 지 않았지만, 마르스가 공격 당하는 모습을 보자 파나는 잠재된 샐러맨더의 힘이 분출된다.
  • 블랙 클로버/99화 . . . . 3회 일치
          * 어느날 소란과 함께 그녀의 운명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밖이 시끄럽다 싶더니 누군가 새장이 설치된 방과 새장을 뚫고 떨어진다. 그건 젊은 날의 [[야미 스케히로]]였다. 황당하게도 "[[무사수행]]"이란 명목으로 마녀왕에게 도전하러 왔다 막 패배한 참이다. 야미는 왜 자라는 것만으로 쫓겨나야 하냐고 투덜댄 뒤 여왕을 "히스테릭한 할망구"라고 욕한다.
          * 바네사는 생전 처음 보는 자인 것과 그리고 여왕과 싸우고도 무사하다는 것 모두에 놀란다. 그녀가 허둥대는 것과 달리 야미는 태연하게 이런데서 뭘하는 거냐고 물어온다. 바네사는 그저 여왕에게 갇혀있는 신세고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야미는 자신이 뚫고 들어온 구멍을 가리키며 이제 나갈 수 있다고 다행이라고 말해댄다. 하지만 바네사는 자신은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침울하게 대답한다.
          * 그녀의 그리모어에 새로운 마법이 씌어지고 붉은 실이 뿜어져 나온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힘이 깨어을 느낀다. 이윽고 붉은 실은 그녀의 머리 위에, 또렷한 형체로 나타난다. 붉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 블리치/694화 . . . . 3회 일치
          * 그것은 "아우스발렌"의 희생자들이 긴 것. 아우스발렌에 걸린 퀸시는 심장에 "은의 혈전"이 생겨 죽는데 이 화살은 그 혈전을 모아 만든 것이다.
          * 부축해주는 렌지에게 오히려 그의 상처를 걱정하며 "거기 아있어도 됐었는데"라고 말하는데 돌아오는건 주먹세례
          * 그래서 "네가 나아가지 못하게 됐을 때는 내가 업어서라도 가겠다"고 정했다며 두 번 다시 으라는 말따위 하지 말라고 한다.
  • 상주시 . . . . 3회 일치
         외면''' || 外南面 || 33.22 || 871 || 1,821
         화면 (상주시)|''' || 化南面 || 54.39 || 490 || 843
         원동''' || 南院洞 || 27.83 || 5,223 || 12,492
  • 서든어택 2/무기 . . . . 3회 일치
         ||1962년에 처음 등장한 미국 최초의 본격적인 돌격소총이다.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컨셉으로는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돌격소총이었으며, 베트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된 후 높은 성과를 올려 이후 서방 세계 돌격소총의 기본 컨셉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자동소총들에 비해 반자동 및 점사 반동 제어가 쉬운 편이지만, 연발에서의 제어는 어렵다.||
         ||돌격소총으로, 지금까지 2억 정 이상이 생산,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개량형이 등장했음에도 아직 생산이 유지되고 있을 만큼 세계 역사에 길이 을 명총이자 서방의 M16과 영원한 라이벌에 속한다. 한발 한발의 위력은 대구경인 만큼 M16에 비해 크게 우세하지만, 그만큼 반동 역시 심하다는 결점이 있다.
         ||M4A1 소총은 베트전 때부터 제기된 M16의 카빈(단축형 소총) 소요를 맞추기 위해 등장한 M4 소총의 개량형으로, 총열을 굵게 만들어 연사 능력을 높힌 총이다. 1997년에 제식 채용되어 장갑차량 승무원과 기계화보병, 특수부대 중심으로 보급이 시작되었으며, 2001년 대테러 전쟁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전군에 지급하기 시작, 이제는 미군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릴 정도로 모든 병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 서영무 . . . . 3회 일치
         당시에는 전·후기 리그로 연간 리그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전기리그는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후기리그는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우승하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은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2번째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겼으나 이후 내리 게임을 내주면서 4승 1무 1패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3년]]에는 조감독으로 영입된 [[재일 한국인]] 출신 [[이충]]과의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생일을 일 주일 지난 그 해 [[5월 25일]]에 감독직에서 전격 사임하고 팀을 떠났다.
         |후임자 = [[이충]]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태어]][[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서정돈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를 졸업, 196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석사, 197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학교와 [[충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했고, 1976년 ~ 199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94년 ~ 199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학장을 역임했다. 1997년 3월 ~ 2003년 2월에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을 맡았고, 2003년 2월에는 성균관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2011년 1월까지 역임했다.
         * 1975년 6월 ~ 1980년 3월 : 서울대학교, 충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분류:194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총장]][[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
  • 서호진 . . . . 3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쇼트트랙}}
         서호진이 참가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2006년 동계 올림픽|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자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안현수]]의 역주에 힘입어 우승하였고 이 계주에 같이 참여해 금메달을 획득하게된 서호진은 군면제 혜택을 받았다.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신목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서효림 . . . . 3회 일치
         | [[밥상 차리는 자]]
         | [[밥상 차리는 자]]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07년 데뷔]][[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서귀포시 출신]]
  • 솔비 . . . . 3회 일치
         사회적 공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 경기도 한 보육원에 재능기부와 선행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16년엔 '파인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음원 'Find'를 발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펼쳤다. 같은 해 12월엔 '손모아 장갑'을 발표하며 청각·언어 장애인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상처와 동정의 시선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17년엔 '다문화 아동 돕기 후원의 밤'에 참석해 특별 공연과 함께 5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사회적인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솔비는 2014년부터 꾸준히 세월호 추모 그림을 그리며 다른 애도를 표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 1월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호모커뮤니쿠스, 빅 픽처를 그리다'에 강연자로 출연해 "스토킹 처벌은 벌금 10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솔비가 제안한 해당 법안은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에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으로 확정, '스토킹 처벌법'(가칭)이 제정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076873|제목=스토킹 뿌리뽑는다…벌금 10만원→최장 징역 5년 추진|성=김계연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10일|뉴스=|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530678|제목=강연자로 나선 솔비 “스토킹 벌금 불과 10만원” 지적…피해자 입장 법안 제정 당부|성=이유진 기자|이름=|날짜=2018년 1월 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또한 솔비는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를 발표하며 통해 계급사회를 비판기도 했다. 2018년 6월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859&cid=40942&categoryId=32774 뮤코다당증] 난치병 환우회에도 참석, 가족들에게 응원을 복돋아주기도 했다.
         * [[2014년]] 2014 사회공헌 대상에서 '재능기부 대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솔비, 역시 돌직구 "연예인이 동네북은 아니잖아요" |url =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742912 |출판사 = 헤럴드POP |저자 = 안우 기자 |날짜 = 2015-11-11 |확인날짜 = 2015-12-09}}</ref>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군포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타이푼의 일원]][[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0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안동 권씨]][[분류:X맨]]
  • 송상진 . . . . 3회 일치
         * 대구사범, 대구대학(현.영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분류:1930년 태어]][[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
  • 송원근(배우) . . . . 3회 일치
         이후 MBC 예능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7차 경연에서 [[오필승 코리아]]라는 닉네임으로 참가해서 2라운드까지 갔다.[* 참고로 2라운드에서 9표 차로 가면을 벗었으며 일반인 기준으로는 2표 앞섰다.] 과거의 가수 활동에 많은 상처를 받아 다시 무대에 서기가 두려웠는데, 복면덕분에 무대에서 노래부르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공교롭게도 메인 악역을 맡은 [[최필립]] 역시 [[한 꼬마 인디언 보이]]라는 이름으로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결국 [[나홍주|주인공]]과 [[차선우(내일도 승리)|최종보스]]만 복면가왕에 출연했구만--
         [[분류:한국 배우]][[분류:한국 가수]][[분류:1982년 출생]][[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2000년 데뷔]][[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송종호 (1956년) . . . . 3회 일치
         * 1982년 : [[영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중소기업청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
  • 송주훈 . . . . 3회 일치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축구/자축구/조별리그 C조, D조#.s-2.2.4|2016 리우 올림픽 축구 조별 예선 독일전]]에서 [[황희찬]]이 선제골을 넣은 후, 부상으로 불참한 송주훈의 4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어올리며 기뻐하는 [[골 세레머니]]를 펼쳤다. 송주훈도 이 골 세레머니를 보면서 매우 뭉클했다고.
  • 슈퍼걸(드라마)/1시즌 8화 . . . . 3회 일치
         캣 그랜트는 이메일이 해킹당해서 많은 사생활이 폭로된다. 카라와 윈, 제임스는 그 대응에 분주한다. 아스트라의 부하이자 편인 라오는 카라에 대하여 아스트라에게 경고를 날린다.
         윈은 메일에서 그랜트가 매달 돈을 보내고 있는 아담 포스터라는 성이 있다고 알려준다. 카라가 물어보자 아담 포스터는 그랜트의 장으로 숨겨진 아들이었다. 그랜트는 아담을 걱정하여 캣코에서 물러나려고 결심한다.
  • 스카이 김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 2004년까지 대구중구청 양궁팀에서 활약. 2년여에 걸친 호주양궁협회의 설득 끝에 2005년 1월 호주로 건너갔고, 2006년 6월 호주 국적을 취득함. 그는 국적을 바꾼 이유에 대해 "올림픽 출전이 소원이지만 국내에선 전망이 없었다"고 설명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2220964 연합뉴스, <올림픽> 호주양궁 김하늘, "2012년엔 내가 금메달"]</ref> 2007년 8월 프레올림픽에서 양궁 개인전 금메달.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오스트레일리아의 자 양궁 선수]][[분류:한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분류:오스트레일리아의 올림픽 양궁 참가 선수]]
  • 스캘러왜그 . . . . 3회 일치
         미국사에서는 [[북전쟁]] 직후 나타난 부 출신 [[공화당]]원을 뜻하기도 한다. 당시 [[민주당]]이 강세였던 부에서 배신자 취급을 당했다고.
  • 스틸오션/일본 . . . . 3회 일치
         >해대3형(海大三形, Kaidai IIIa) 잠수함은 1922년 당시 워싱턴 해군 조약 하에서 진행되던 8-8 함대 계획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번호는 S26였다. 해대2형(海大二形, Kaidai II)에 기반을 둔 이 함급은 더 깊은 잠수한계와 추가적인 그물 절단기를 가지고 있었다. 해대3형은 제18전대와 제19전대 소속으로 자바해 전역에 배치되어 일곱척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모든 해대3형이 전쟁에서 살아았다.
         >갑형구축함(甲形驅逐艦,, Destroyer Type-A)라고도 불리는 카게로급 구축함은 마루3 계획 하에 건조되었다. 전황이 바뀌면서 주포탑이 제거되고 대공 무장이 증설되었다. 카게로급의 전시 생존률은 낮았다. 초도함 카게로는 1943년 쿨라 만에서 어뢰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유키카제는 16번의 전투에서 살아아 "불침함"이라고 불렸다.
         >순수히 일본제국해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함급이다. 그 당시 제일 큰 구경이었던 410mm 주포를 장비한 나가토급 두척은 미국의 콜로라도급 세척, 영국의 넬슨급 두척과 함께 "빅 7"이라고 불렸다. 1930년대 전면적인 현대화 개수를 거쳤다. 야마토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나가토급은 연합함대 기함을 맡았다. 나가토급 두 척은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다. 1943년 6월, 하시라지마에 정박해있던 무츠가 후방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나가토는 전쟁에서 살아았지만 미육군에게 나포되어 교차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의 표적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3회 일치
          * 시험관은 성공적으로 반역자팀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데 시험종료 30분을 기고 소마 일행이 돌아온다.
          * 소마, 쿠로키바, 아리스가 주축이 되어 은 30분 동안 신속하게 조리해서 연어 유안야키로 합격을 거머쥔다.
          * 종료까지 30분 밖에 지 않자 시험관은 반역자 떨구기가 성공했다고 희희낙락하다.
  • 식극의 소마/176화 . . . . 3회 일치
          * 최종적으로 은 것은 소마, 타도코로, 타쿠미.
          * 그런데 이미 앞팀들이 면까지도 싹싹 쓸어가서 은 재료가 없다. 밀가루 종류나 조금 아있는 수준.
  • 식극의 소마/192화 . . . . 3회 일치
          * 어쨌든 친구들 대부분이 탈락의 고배를 마신 상황. 고작 소마일행 넷만 아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없다.
          소마는 하야마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던 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하야마는 대답이 없는데 그때 센트럴의 하수인인 "아이다 션"이란 자가 자신이 설명하겠다며 등장한다.
          * 에리나는 아무튼 두 명은 살아았다고 안도하는데 눈치 빠른 타쿠미는 "두 명은"이란 말을 듣고 무슨 얘기냐고 묻는다. 결국 에리나가 상황을 설명한다. 다른 루트의 반역자들은 전멸. 타쿠미는 이런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며 분노를 터뜨린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3회 일치
          * 황당하기까지한 유키히라 소마의 제안. 소마는 하야마 아키라가 퇴학됐으니 은 십걸 자리는 9. 나키리 에리나가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앞으로 네 자리만 차지하면 십걸의 과반 이상을 점거하는 거라고 설명한다. 살아은 자신들이 말이다.
          * 소마는 "나카무라 선배"[* 아자미의 원래 성]라 부르며 "내가 여기 살아 은 시점에서 선배가 옳다는건 증명이 안 된 것"이라 도발한다. 헬기에 오르던 아자미가 멈칫한다. 소마는 자기네를 없애고 싶은 거면 회장마다 돌아보는 수고하지 말고 "우리 군대랑 댁네 군대로 십걸 자리를 걸고 전면대결하자"고 제안한다.
  • 식극의 소마/206화 . . . . 3회 일치
          * 아리스는 침울한 일행을 꾸짖으며 소마를 응원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패배한 자신들이 살아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며 울상이다. 특히 히사코는 에리나님을 뵐 면목이 없다, 는 말을 하며 절망한다. 그런 상태로도 아리스가 "비서코는 언제나 훌쩍거린다"고 까자 "비서코라고 하지 마라"고 태클건다.
          * 원래 이들은 패배한 시점에서 강제송환이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 자신이 고집을 부려서 훗카이도에 는데 성공했다. 에리나 일행에게 연대식극의 정보를 입수한 후로는 다른 루트로 그들을 따라서 북상 이 특설무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리스는 당당하게 결전의 장소로 가자고 일행을 다독인다.
          아리스는 다른 일행들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지만 살아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소마일행만 짊어지게 만든 것을 미안해 한다. 소마는 그런 우울한 소리를 왜 하냐며 자신에겐 십걸을 쓰러뜨리고 정점을 따내는 것으로 머리가 가득하니 딱히 아리스 일행이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리스는 그 말을 듣고 나름대로 납득한다.
  • 식극의 소마/222화 . . . . 3회 일치
          * 아사히카와 시내. 이곳에 메기시마가 머물고 있는 라면가게가 있다. 소마와 메구미가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몰려 식당 입구까지 미어터졌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친 그 사람들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토오츠키 학원 교복. 이게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다. 곧 두 자가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며 "적이 보낸 놈들"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메구미. 소마가 그녀 앞으로 나서서 대처한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란 누구인가?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라면장인들이 도련님이라 부르며 우러러 보는 자, 홋카이도 라면 장인들의 요청을 받고 한 걸음에 날아온 메기시마 토스케였다. 그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일단 자신의 독자적인 인맥으로 유통루트를 다시 뚫고 가게를 지키는데 최대한 협조하기로 약조한다. 장인들이 그것만으로도 마치 만사가 해결된 것처럼 기뻐한다. 무리도 아닌 것이, 메기시마는 이미 라면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하고 인망이 두터웠다. 일찍이 자신의 "라면도"를 갈고 닦기 위해, 홀몸으로 호장마차만 달랑 끌고 전국을 누볐던 메기시마. 그러던 과정에서 여러 라면 가게를 접했고 그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라면 장인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그들 사이에서 "도련님"이나 "두목"으로 불리며, 어느 새 라면계의 젊은 왕으로 우뚝 서 있었다.
  • 식극의 소마/235화 . . . . 3회 일치
          * 그렇게 해서 심사에 오른 에이잔의 로스트 비프는 대호평. 이스트와르는 "역사에 을 맛"이란 전에 없는 극찬을 겼고 안은 "이렇게까지 아티초크를 들이부운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마음에 들어한다. [[유키히라 소마]]도 안의 배려로 맛을 보는데 크림소스의 감칠맛이 아티초크의 쓴맛과 어울려 강렬한 인상을 기고 로스트비프의 농후한 맛을 잘 감싸고 있다. 육즙이 아주 묵직한 인상을 주면서도 한도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이 질리지 않는 맛. 고기요리임에도 채소 특유의 쓴맛과 감칠맛이 돋보이는 요리다. 안은 이것도 에이잔의 실력이며 아티초크를 넣음으로써 요리에 쓸데없는 단맛을 없앤 덕이라고 설명한다.
  • 신은정 . . . . 3회 일치
         | 자녀 = 슬하 1 (아들 박상우)
         * [[1999년]] [[SBS]] 일요드라마 《[[카이스트 (드라마)|카이스트]]》 ... 신희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신종령 . . . . 3회 일치
         :〈애정
         * 자, 이제 다들 협조 좀 해주셔야 겠습니다.(애정)
         [[분류:개그콘서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1982년 태어]]
  • 아데랑스 . . . . 3회 일치
         [[일본]]의 종합모발기업. 1968년 설립, 2007년 무렵 13개국 2백 50여 곳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규모 종합모발기업이다. 가발 상품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에서도 다각도로 탈모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성용 브랜드 아데랑스 이외에, 여성용 맞춤가발 레디스 아데랑스, 여성용 레디메이드 가발 브랜드 폰티누(FONTAINE), 해외에서 모발이식클리닉을 전문으로 하는 보즈레(BOSLEY), 해외용 판매 브랜드 헤어클럽(HAIRCLUB)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2009년 5월, 아데랑스에 투자했던 미국계 투자회사 스틸 파트너스는 사외이사로서 오오츠키 타다오(大槻忠男)를 진출시켰다. 그는 일본 펩시콜라 등에서 활동한 전문경영인이다. 그리고 오오츠키 타다오는 2009년 10월 CEO로서 사장 취임, 다양한 새로운 경영 방침을 발표했다. 2010년 10월에는 사명을 "유니헤어(ユニヘアー)"로 변경, 아데랑스는 성용 브랜드로 기고, 가발 이외에 증모, 육모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https://facta.co.jp/article/201109066.html (참조)]]
  • 아마쿠사 키리시탄 진중기 . . . . 3회 일치
         쿠치노츠무라 마을(口之津村)에 살던 만화가 야마다 우에몬사쿠(山田右衛門作)가 그렸다. 그는 아마쿠사에 와있던 이탈리아 출신 신부에게 서양화를 그리는 법을 배웠으며, 시진중기는 일본인이 그렸음에도 서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야마다 우에몬사쿠는 호소카와 번에 체포되어, 에도로 보내져서 심문을 받은 다음, 나가사키로 와서 생애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그는 내부에서 시마바라의 난을 관찰하여 편지를 보냈으며, 난이 종결된 뒤에는 『야마다 우에몬사쿠 구서(山田右衛門作口書)』를 겨 시마바라의 난을 진술하여 겼다.
  • 아이네이아스 . . . . 3회 일치
         아이네이아스와 같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비정하는 신화는 그리스 계 식민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디오메데스]]는 다우니아의 왕 다우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그 땅을 이어받아 브린디시 등의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하며[* 디오메데스는 똑같이 이탈리아에 표류한 아이네이아스와 대적하던 에트루리아의 투르누스에게 동맹을 요구받지만, 디오메데스는 아이네이아스 개인에게는 원한이 없다는 이유 혹은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려워 거절하였다고 한다.], 크레타의 지배자였던 이드메니우스 역시 크레타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부로 도망쳤고, 살라미스 섬의 테우크로스는 키프로스로 떠나[* 테우크로스는 살라미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가족이었지만, 아이아스의 자살을 말리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아스의 아버지 테라몬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살라미스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었던 필로크테이스 역시 이탈리아 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든 에페이오스 역시 이탈리아 부의 메타폰시온 시를 건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이탈리아 그리스 계 도시에서 있었던 유행에 로마 역시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야규 슈메 . . . . 3회 일치
         야규 가문의 가전 기록인 『옥영습유(玉栄拾遺)』에 따르면, 「전하기를 슈메라는 자 조선국의 종자라 한다(伝に曰く、主馬者朝鮮国の種也)」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 다른 기록(야규번구기柳生藩旧記, 수은초袖隠抄 등)에 따르면 「어떤 곳에서 말하길 슈메는 타국인으로 문벌(씨氏)도 모르는 자(然る所主馬は他国人にて氏も不知者)」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어떤 사정[*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柳生新二郎厳勝)의 적 야규 구사부로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에 갔다가 울산에서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으로 [[일본]]으로 가게 된 인물이거나, 그 자손으로 추측된다.
         아무튼 슈메 본인은 아내와 결혼하여 야규 가문의 가신으로서 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규 가의 보리사인 방덕사(芳徳寺)에 그의 무덤이 야규 일족과 나란히 겨졌다고 한다.
          * 적 야규 하치로우자에몬(八郎左衛門)은 야마자키 이에하루(山崎甲斐守), 치쿠고 국 쿠루메 마을(筑後久留米)의 아리마 가문(有馬家)을 모셨다.
  • 야규 신지로 요시카츠 . . . . 3회 일치
         [[야규 무네토시]]((柳生 宗厳 石舟斎)의 아들. [[야규 무네노리]]의 형. 세키슈사이의 적이지만, 젊은 시절 전장에 나갔다가 총상을 입어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생애 불구의 몸이 된다.
         * [[야기현]] : [[야규 슈메]] 의 장이다
         * [[야기훈]] : [[야규 슈메]] 의 차이다
  • 양예나 . . . . 3회 일치
         ||<bgcolor=#FF69B4><:>'''{{{#ffffff 가족}}}''' ||<(>[[부모님]], [[언니]], [[동생]] ||
         [[레이첼(APRIL)|레이첼]]이 발레를 전공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춤선을 가진 반면, 예나는 박자감이 두드러지는 칼박스타일로 춤을 추며 주특기가 자&여자아이돌 [[댄스 커버]]이다. 또 에이프릴 안무담당이기도 하다.
          * 2015년 11월 22일 [[KBS 2TV]] <[[출발 드림팀|출발 드림팀 시즌2]]>에 출연했다. 좋은 기량을 보여주며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05762|탈진 증상으로 기권하여]] 아쉬움을 겼다. [br]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3회 일치
         2012년 12월 21일에 일어날 세계 멸망까지 얼마 지 않은 상황. 정확히는 게임이 시작할 때 날짜가 10월 31일이다.
          한때 암살단의 멘토였던 노인. 템플기사단이 식민지 암살단을 풍비박산내면서 혼자 게 되었다. 암살단이 되기 위해 찾아온 라둔하게둔을 내쫓으나, 라둔하게둔이 계속 찾아오고 아킬레스의 집을 습격한 강도에 대항해 대등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까지 보이자 그를 훈련시키고 암살단에 입단시킨다.
          버지니아 출신 사냥꾼 겸 측량사. 보스턴에서 영국군의 악행을 보고는 애국자를 지지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전부 왕당파 지지자라고. 보스턴 부에서 강제 징집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면 영입된다.
  • 여정남 . . . . 3회 일치
         '''여정'''(呂正男, [[1944년]] [[5월 7일]] ~ [[1975년]] [[4월 9일]])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다. 유신정권 시기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민청학련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이다.
         * [[1945년]] [[5월 7일]] [[대구 중구]] 전동(현 [[일동]]) 출생.
         [[분류:1945년 태어]][[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오경태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졸업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심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 오병희 . . . . 3회 일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강센터 원장,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료부원장 등 병원 경영과 관련된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포커스] 신임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박수 받는 이유|URL = http://jhealthmedia.joins.com/news/articleView.html?idxno=9886|출판사 = 중앙일보|날짜 = 2013-06-10}}</ref>
         *2003년 ~ 2007년 : 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시스템 강센터 원장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해주 오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
  • 오싱 . . . . 3회 일치
         작중에서 오싱의 인생이 참으로 파란만장한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일꾼으로 쌀도매상에 팔려가거나, 어른이 되어 상경한 다음 미용사가 되었다가 옷장사를 하는 편과 만나고 상업재능을 그럭저럭 잘 살게 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쑥밭이 되서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시골로 내려나 시집살이를 하는데 학대 당한 탓에 자기 아이는 사산되고 시누이가 낳은 아이의 젖을 물리게 되거나, 2차대전으로 편과 장을 잃고 생선 장사를 시작하여 자기 가게를 일으켜 세우지만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면서 반발하거나 등등.
  • 오정태 (희극배우) . . . . 3회 일치
         * 《[[멈출 수 없어]]》 (MBC) - 맞선
         *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자신인상
         [[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1976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개그야]][[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하땅사]]
  • 오정환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서울 강초등학교
         [[분류:199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강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해주 오씨]]
  • 오준영 (1955년) . . . . 3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명지대학교 동문]]
  • 오타쿠 서클의 공주 . . . . 3회 일치
         주로 [[오타쿠]] 성향의 사람이 많고 성비가 [[초]] 상태인 문화계 서클에 희소하게 끼어든 [[여성]]을 뜻한다.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여성이 적고, 이런 써클의 성 회원은 여성에게 면역이 없어서 "공주님 취급"을 받는다고 이렇게 불린다.
          * 코미케에서 성들의 중심에 서있는 여성 코스 플레이어
  • 외척 . . . . 3회 일치
         외척 세력으로 [[안동 김씨]][* 정확히는 '장동 김씨'로 재분류되는 한양 장동 일대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 일문으로, 실제 안동 등 영에 거주하던 안동 김씨는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며, 당색에 있어서도 장동 김씨는 노론 계열이었던 데 비해 안동 김씨는 인 색채가 짙었다.],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이 유명하다.
         결국 후한은 붕괴하여 멸망하고, 중국은 삼국시대와 5호 16국, 북조시대로 이어지는 막장에 빠진다.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 운명의 붉은 실 . . . . 3회 일치
         일반적으로 중국 고전인 『태평광기(太平広記)』 159권, 『속유괴록(続幽怪録)』에서 인용된 「정혼점(定婚店)」이라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붉은 끈으로 녀를 묶어서 맺어주는 신비한 신령인 월하노인(月下老人)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흰색 - 녀를 넘어 깨끗한 관계 사이에 맺어지는 것.
         장미색 - 놀이 상대인 녀 사이에 맺어지는 것.
  • 울산광역시 . . . . 3회 일치
         [[구 (울산광역시)|구]]''' || 南區 || 72.70|| 134,148 || 335,674
         울산 구 장생포에 위치한 장생포 고래박물관
  • 원피스/830화 . . . . 3회 일치
          * 몇 시간 전. 징베는 전 태양해적단 전원을 모아놓고 "루피는 세계를 바꿀 자"라고 웅변한다.
          * 부선장이었던 "알라딘"을 비롯해, 모든 단원이 그렇게 하라고 응원해주며 "선장(징베)은 늘 을 위해서만 살았다. 지금부터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라"는 격려를 듣는다.
          * 몬도르는 움직이는 초콜릿처럼 생긴 부하에게 "알겠지? 단 1초도 기지 않고다"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모스카토를 옮기게 한다.
  • 원피스/835화 . . . . 3회 일치
          * 그리고 자신은 원래 빅맘의 "전 편"이고 두 딸 로라와 쉬퐁을 낳은 이후 버려졌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 그는 바로 빅맘의 "전 편". 하지만 두 딸을 낳은 이후로 버려졌다고 한다.
          * 그를 들어올린 자는 비스킷 대신 "샬롯 크래커". 빅맘의 10이다.
  • 원피스/836화 . . . . 3회 일치
          * 크래커는 정보를 발설하던 우누를 "입이 싼 자"라며 처형하려 든다.
          * 우누는 자신은 그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 아니냐며 애원하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빅맘의 말을 인용하며 "전편 43명은 피가 이어지지 않은 타인"이라 말한다.
          * 버려진 편은 파운드 말고도 여럿 있는 모양이다.
  • 원피스/841화 . . . . 3회 일치
          * 저지는 평범한 애송이가 살아을 만큼 바다는 연약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상디는 말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 "내가 네 아비라는 사실은 절대 들 앞에서 밝히지 말아다오.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오점이다."
          * 레이쥬만은 초인이되 감정이 아있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불명.
  • 원피스/854화 . . . . 3회 일치
          회의실에서는 침입자들에 대해서 최종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페콤즈]]의 인도로 밀집모자 일당이 토트랜드에 도착한 시점부터 브룩이 잡히고 페드로가 [[타마고 작]] 앞에서 자폭하기까지. 브룩이 빅맘에게 잡힌거 말고는 사실과 다른 정보가 유포돼 있다. 쵸파와 캐럿은 브륄레가 잡은 걸로 되어 있는데, 이후에 역으로 당해서 잡혀 있는건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타마고 작은 의외로 무사히 회의에 참석 중. "백작"으로 파워업해서 완전히 닭의 모습이 되었다. 페드로가 "자폭"했다고 확인해주지만, 사실 그가 도망친 것은 그도 알지 못했다.
          총 여섯 명의 침입자 중 둘이 는다. 루피와 나미. 그런데 이들은 분명 죄수도서실에 잡혀 있어야 할 텐데 이들도 탈출했다는 소식이 도착해 있다. [[샬롯 몬도르]]는 경비를 서고 있었던 [[샬롯 오페라]]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크게 반발하며 "사실 무근인 헛소문"이라 일축한다. 지하엔 아무도 오지 않았으며 빅맘의 명령대로 [[샬롯 로라]]의 위치를 캐내기 위해 고문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태워죽여버렸다는 얘기다. 오페라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간 빅맘에게 모든 수명을 뺏길 거라고 두려워해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몬도르는 미심쩍어하지만 형인 오페라를 대놓고 의심할 수는 없어 넘어간다.
  • 원피스/859화 . . . . 3회 일치
          * 루피는 사진을 찢는 것만으로 그런 소동이 일어난다면 그 틈에 상디의 가족 빈스모크 일가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벳지는 무슨 의 일처럼 말하냐고 타박하며 루피 일행에겐 다른 일거리가 있다고 한다. 벳지는 사진을 찢고 빅맘이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약 3초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한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분노한 빅맘과 부하들을 막아내야 한다. 솔직히 그들을 상대로 3초나 버티는 건 기적같은 일.
          * 그리고 신부 푸딩의 방. 신부화장을 마치고 드레스까지 착용한 푸딩은 뜻밖에 우울한 모습이다. 니트로와 라뱐이 그녀에게 "메리지 블루"냐며 가볍게 놀린다. 푸딩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고 투정한다. 상디를 죽인 뒤 피가 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만은 착한 아이로 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 --VX-- KX런처라는 독가스를 사용한다는 암살계획이 마치 [[김정 암살사건]]을 연상케 한다.
  • 원피스/865화 . . . . 3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의 뒷처릴 마친 [[시저 크라운]]은 [[샬롯 브륄레]]를 데리고 거울 밖, 다과회장 정문 앞으로 나온다. 이제 작전이 성공하면 탈출용 거울로 일행을 탈출시키는 것만 았다. 시저는 심장을 되찾고 "연합군"에 복수할 꿈에 부풀어 반드시 이 임무를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루피를 저지하러 가는 카타쿠리는 빈스모크 일가를 포위한 형 [[샬롯 페로스페로]]에게 빨리 그들을 처치하라고 당부한다. 페로스페로는 "알고 있다"고 대답하나 "미래를 보는 자는 참 바쁘다"고 빈정거릴 뿐 곧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잡은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게 더 즐거운가 보다. [[빈스모크 저지]]가 하다못해 레이드 슈트라도 있었더라면, 하고 통탄한다. 페로스페로는 "어린 아들 결혼식에 무기 같은걸 가져오는 거냐"고 또다시 빈정댄다.
          >일족의 피에... 아직 "양심"이 아 있었으니까.
  • 원피스/866화 . . . . 3회 일치
          여기서도 링링의 괴력은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카르멜은 링링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길렀다. 링링은 항상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경솔함과 괴력 때문에 사고를 일으켰다. 거인족 아이 에일리에게 모기가 붙어서 잡아주려가 골절을 시키기도 했고, 수장족 아이는 관절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뽑아주려 들거나, 어인족 아이인걸 모르고 지느러미가 붙은걸 제거해주려고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카르멜은 꾸짖고 타일러 가르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는 링링이 나쁜 뜻이 없고 을 배려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 설득했다.
          * 그렇게 해서 10개월이 지났다. 도리와 브로기가 결투를 시작한지는 40년. 당시에도 거병해적단 출신자들이 마을에 아 있었는데, 이들은 기어이 결투가 40년을 채웠다고 혀를 찼고 앞으로 10년 만 더 기다려 봐서 계속 이 모양이면 마중을 나가봐야겠다고 하고 있었다.
          이제 링링은 양의 집 아이로 녹아들어 있었고 거인족 소녀 게르즈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링링에게 거인족 아저씨가 "너네 준비는 잘 돼가냐"고 묻는데, 거인족 마을에서 지내는 "동지제"라는 축제 얘기였다. 아이들의 태어과 성장을 태양에 감사하는 축제인데 축제 당일까지 12일 간 금식을 하는게 특징이었다. 그 해에는 거인족의 왕자 "로키"가 태어났고, 마을에서도 로드와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동지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한 셈.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식탐이 강한 링링이 질색을 하지만 게르즈는 "끝나면 즐거운 축제"라며 달랜다.
  • 원피스/874화 . . . . 3회 일치
          * 빅맘 해적단은 [[샬롯 브륄레]]에게 미러 월드에 1만 병력을 대기시켜 어디든 급습할 수 있게 하고 각 섬에서 차출된 해상병력으로 서쪽 해안도 봉쇄한다.
          밀집모자 추격을 맡은 [[샬롯 브륄레]]는 미러 월드로 1만의 병력을 이동시켰다. 이제 거울이 설치된 곳이라면 어디든 기습할 수 있다. 거울 밖의 몬도르에게 그런 내용을 전하자 적당한 때를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이어서 몬도르는 해방병력도 점검한다. 토트랜드의 초콜릿섬, 치즈섬, 너트섬에서 출동한 군함들로 서쪽 해안을 봉쇄했다. 써니호의 출항을 허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들은 포위망의 제 1관문일 뿐. 그 뒤에는 플레버섬과 리큐르 섬에서 출동한 "타르트 쉽"이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항구에서 대기하면서 정찰용인 "영역 해우"를 풀어서 감시망을 조였다.
          그리고 문제의 서쪽 해안. 사실 써니호는 진작부터 [[샬롯 카타쿠리]]가 점거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배를 손에 넣고 만약을 위한 "매복"을 하는 중이었다. 써니호 내부에서, 부하가 그에게 왜 이런 매복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미 빅맘이 직접 추격하고 있으니 그들이 이곳에 도착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카타쿠리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래도 매복을 풀지 않았다. 부하가 까닭을 묻자, 그는 지극히 애매한 답변만 했다.
  • 원한해결사무소/1화 . . . . 3회 일치
         후쿠자와는 분노하여 당장 죽이라고 원한을 드러내지만, 원한해결사는 증거를 겨서는 안된다고 화를 내고 제지, 도리어 섣부른 행동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후쿠자와를 위협한다.
         사실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한 것은 형사의 아내였다. 형사는 경찰관이면서도 집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최악의 자로서, 도박을 좋아하고 생활비를 안 주고 애들 교육비에도 손을 대는 등. 죽어 마땅한 자였기 때문에 5천만엔을 주고 원한해결사에게 살해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리고 1억엔의 보상보험을 들어놨기 때문에 이미 보상은 받았다.
  • 원한해결사무소/2화 . . . . 3회 일치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된 것을 보고 분개한 딸의 부모가 원한해결사에게 5천만엔으로 '살해'를 의뢰한다. 매스컴의 취재에 쫓기던 아지야마에게, '원한해결사'와 '킬러'를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전화가 걸려오고, 이웃집에 이사왔다는 미노리카와라는 뚱뚱한 자가 인사를 온다.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미노리카와는 자신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부채 5억엔을 떠앉고 있어 이달 안으로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와 집을 잃고 식구들이 자살해야 할 판이라며, 자신도 '누군가를 죽여서 보험금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기겁한 아지야마는 문을 닫아걸고 미노리카와에게 킬러냐며 화를 낸다. 미노리카와는 '사고는 조심하라'는 말을 기고, 아지야마는 식은땀을 흘린다.
         그리고 어제는 목욕탕, 오늘은 자동차라면서, 마치 죽은 3명의 아내들 같다고 아지야마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에는 '투신자살'을 언급. 미노리카와의 위협에 완전히 패닉에 빠진 아지야마는 다가오는 미노리카와를 복도 쪽으로 밀치는데, 미노리카와는 그 순간 복도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신은 '죽어주는 역할'이라는 말을 기고 떨어져 사망한다.
  • 월하노인 . . . . 3회 일치
         두릉(杜陵)에 위고(韋固)가 살았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빨리 아내를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러 갈래로 구혼을 해봤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정관(貞観, 당태종 때의 연호) 2년, 청하로 여행을 떠났을 때, 송성(宋城)의 쪽에 있는 점(店,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먼저와 있던 손님에게 청하사마(清河司馬) 반방(潘昉)의 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점의 서쪽에 있는 용흥사(龍興寺)의 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위고는 그것을 간절하게 기다리며, 밤에 외출을 나갔다. 달이 밝을 때였다.
         몇년이 지나, 위고가 그 일을 묻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첩은 군수(郡守)의 조카이며, 딸이 아닙니다. 일찍이 아버지는 송성(宋城)의 현령이었습니다. 첩은 강보(襁褓,포대기)에 있었던 때였는데, 어머니와 오빠가 차례로 죽어, 혼자서 송성의 쪽의 저택에서 지내게 됐으므로, 유모 진씨(陳氏)와 함께 살았습니다. 점(店)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야채를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진씨는 어리고 불쌍하다고,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세살 때, 안겨서 시장에 갔는데, 미치광이가 나타나 찔러서, 칼 흉터가 아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꽃장식으로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칠년이 지나, 숙부가 노룡(盧龍)님의 보좌관직을 얻게 되어, 마침내 유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로서 당신에게 시집을 간 것입니다."
  • 유다인 . . . . 3회 일치
         ||<|2> [[2008년]] || [[그 자의 책 198쪽]] || 담 소녀 || ||
         || [[2011년]] || [[KBS2]] || [[드라마 스페셜]] - 기쁜 우리 젊은 날 || 순 || ||
          * 배우 [[유연석]]과는 인연이 많다. 영화 '혜화, 동'에서도 각각 녀 주인공으로 분하여 호평받았던 경험이 있고, '맛있는 인생'에도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에서도 친한 연예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 유열 (가수) . . . . 3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뮤지컬 감독]][[분류:1986년 데뷔]][[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음악가]]
  • 유재호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대구도초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강릉 유씨]]
  • 육미당기 . . . . 3회 일치
         신라국 태자 김소선(金簫仙)은 부왕의 병을 고치려고 해의 [[보타산]](普陀山)으로 가서 [[죽순]]을 구해 오다가, 이복형 세징(世徵)에게 습격당해 죽순을 빼앗기고 [[실명]]하여 섬에 떠내려간다.
         한편 소선과 약혼했던 백소저는 장을 하여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하고 한림학사가 된다. [[토번]]이 침략해오자 소선은 초유사가 되어 적진에 갔다가 감금되고 만다. 백소저는 원수가 되어 출정하여 토번을 물리치고 소선을 구출한다. 백소저는 개선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당나라 황제는 백소저를 금성공주로 책봉하고 소선이 제2부인으로 삼도록 한다.--백소저에게 별로 이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기분탓일까.--
          * 백소저는 옥루몽의 강홍처럼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무력만렙 최강 히로인(…)의 계보를 이어가는 캐릭터로서, 줄거리에서 보다시피 김소선은 별 활약상이 없고 백소저가 다 때려부수고 다닌다.--다시는 유구국을 무시하지마라--
  • 윤인조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도]] [[광양시]]
         * [[2009년]] [[SBS]] 드라마 스페셜 《[[미이시네요]]》 - 수녀 역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광양시 출신]]
  • 윤주희(배우) . . . . 3회 일치
         또한, [[목요일의 아이]]가 엎어지고 난 뒤 공식데뷔 이전까지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들 중에 발견된 작품이 두 작품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수현(작가)|김수현]]작가의 [[내 자의 여자]] 7화에서 [[이훈]]의 상대역으로 약10초간 등장. 또다른 하나는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극 후반부에 간호사 역할로 등장했다 납치되어 살해당하는데 당시에 얼짱 간호사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대중들에게 어필을 하고, 사랑을 받게된데는 [[2010년]] [[추노(드라마)|추노]]에 작은 주모로 출연한 것과 그로 인해 [[신의 퀴즈]]에 캐스팅되었던 것이 가장 컸다. [[2010년]] [[강경희]]역으로 녀노소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2014년]] [[SBS]] [[일일 드라마]]인 [[달려라 장미]]의 강민주란 악역으로 더욱 더 인지도를 넓혔다.
         || [[내 자의 여자]] || 술집여자 || 단역 ||
  • 윤지숙(배우) . . . . 3회 일치
         * [[2000년]] [[KBS1]] TV소설 《[[민들레 (드라마)|민들레]]》 ... 송정
         * [[2014년]] [[KBS1]] 전원드라마 《[[산 너머 촌에는 2]]》 ... 김미영 역
         [[분류:1973년 태어]][[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
  • 윤진영(코미디언)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출신 [[배우]]. [[1982년]] [[11월 30일]] [[전라도]] [[함평군]] 출생을 했다.
         박승대 사건 이후 예전 같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3일 입대했다.[* 같은 날, 오랜 단짝인 김필수도 입대했다. 하지만 동반 입대는 아니었다. 김필수는 강원도에, 윤진영은 경기도에 입대했기 때문.]8사단 수색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야 무릎 상태가 심각해서 공익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현역 복무를 선택했다는 게 알려진다. 연예병사로서 군 복무를 끝마쳤는데, 선임으로는 [[강타]]가 있었다고 한다. 전역하니 웃찾사가 사라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다가 TVN [[코미디빅리그]]가 신설되자 김필수, [[조우용]], [[박충수]]와 함께 '''따지'''으로 방송계에 복귀한다.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다가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윤진영(푸른거탑)|고정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배우 활동 중이다.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함평군 출신 인물]]
  • 은혼/585화 . . . . 3회 일치
          * 카무이는 설사 "그런 것(바보오빠)이 자기 안에 아있다해도 지구의 바보오빠(긴토키)와 함께 오늘 죽을 것"이라 말한다.
          * 우미보즈는 "저자(긴토키)는 뭐냐"고 중얼거리고, 그걸 들은 신파치는 "카무이와 같다"고 답한다.
          * "멋대로 의 안에 들어온 녀석들"이 다시 한 번 "이름"을 부여해주었다.
  • 은혼/605화 . . . . 3회 일치
          * 그러나 원상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적은 아직 아 있다. 모든 것을 불태워라"는 지시를 내린다.
          * 핫토리는 소요가 에도에 겠다는 뜻을 굳히자 자리를 뜬다.
          * 공주에겐 "당신도 마음대로 해라. 공주로서가 아니라 그 녀석의 동생으로서"라는 말을 긴다.
  • 은혼/614화 . . . . 3회 일치
         [[은혼]] 614훈. '''차은 잊혀지기 마련'''
          하타 황태자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네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저거야 말로 용처럼 거대한 칭코. 틀림없이 오우고쿠 왕가의 장이자 정통한 계승자. '''구룡공자 드라고니아'''.
          바루카스의 감동적인 연설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그쪽에도 황태자가 있냐고 묻는 바루카스의 목소리는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가 완전히 혼자 떠들고 있는 사이 이쪽에선 오우고쿠별 역사에 을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설의 황자의 귀환이.
  • 은혼/617화 . . . . 3회 일치
          * 큐베는 스마일 아가씨들과 타에를 데리고 다키니의 추격에서 도망친다. 타에는 큐베에게 반드시 와줄 거라 믿었다고 말한다. 큐베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며 한때는 그저 타에를 데리고 지구를 떠날 생각까지 했지만 "너만이 아니라 너의 미소도 다른 모두도 데려갈 수 있는 강한 자, 상냥한 여자가 되자고" 다짐했고 고백한다.
          하지만 규모야 어쨌든 면면은 문제가 상당히 많은데 구체적으로 야규 사천왕이 가장 문제다. [[토죠 아유무]]는 여전히 큐베를 도촬하는데 여념이 없고 [[미나미토 스이]]는 계속 여자타령에 [[키타오오지 이츠키]]는 전신 성기 드립으로 응수한다. 그나마 [[니시노 츠카무]]는 평범하게 열심히 싸우며 "승패야 어떻듯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게 중요"하다고 바른 말을 한다. 그는 긴토키 일행이 야규 일가에 처들어왔던 일을 회상하며 그때 이후로 가장 즐거운 싸움이라 말한다.
          * 한편에서는 야규 일가의 도움을 받아 스마일 아가씨들이 지하통로로 탈출하고 있다. 타에는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아 경계하는데 료우는 "안전한 곳으로 탈출해라"는 사무라이의 말에 "지금 지구에 안전한 곳이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한다. 전방을 지켜보고 있는 타에는 이렇게 답한다.
  • 은혼/634화 . . . . 3회 일치
          노사가 관찰한 겐가이는 고문이 통하지 않는 자. 그건 그가 죽기보다 지는걸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걸 것이다. 그걸 이용했을 뿐이다. 이젠 겐가이라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폭발은 현장에 있던 야토족 부대를 집어삼킨다. 하지만 겐가이는 아니었다. 가구라가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폭발 속에서 겐가이 영감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겐가이는 구했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정도 대폭발로도 야토족 부대를 일소하지는 못했다. 폭발 속에서 살아은 야토족들이 추적해온다. 가구라가 그들을 의식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역시 건재한 노사가 가구라의 정면에서 나타나 공격을 가한다. 가구라가 쓰러지면서 겐가이도 멀리 밀려나간다.
          * 이어서 달려들던 병사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진다. 그의 등장으로 야토족 부대의 움직임이 멈춘다. 가구라를 구한 자는 이렇게 말하며 후드를 벗는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3회 일치
         '''이광훈'''([[1993년]] [[11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현재 [[K3리그]] [[청주 시티 FC]] 소속이다. 동생은 현재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고 있는 [[이광혁]]이다.
         [[K리그 클래식 2013|K리그]]에서는 4월 13일 6라운드 [[경 FC]]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K리그 클래식 2014|2014 시즌]]에는 차츰 출전을 늘려가는 듯 보였으나,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8월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대전 임대' 이광훈,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어야죠" |url=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1/sp2015010809201993650.htm |출판사=스포츠한국|date={{날짜한글화|2015-01-08}} }}</ref>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강릉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이규한(배우) . . . . 3회 일치
         ||<#1B5695> {{{#ffffff '''출생'''}}} ||<(> [[1980년]] [[8월 4일]] ([age(1980-08-04)]세) [[전라도]] [[완도군]] ||
          * [[부잣집 아들]] - 태일
         [[분류:1980년 출생]][[분류:한국 배우]][[분류:1998년 데뷔]][[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역대 출연자]][[분류:완도군 출신 인물]]
  • 이병후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1957년 [[영대학교]]를 졸업하고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8년 12월 17일 대구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야간에만 개표를 했던 대구병구 올빼미 개표사건, 팔공산에서 생포한 대 간첩사건 등에서 배석판사로 심리하는 등<ref>동아일보 1959년 4월 4일자</ref><ref>동아일보 1958년 12월 17일자</ref>1961년 8월 27일 대구지방법원<ref>동아일보 1961년 8월 27일자 1964년 5월 19일자</ref> 1966년 11월 15일 대구고등법원 196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69년 3월 31일 서울고등법원 1969년 10월 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장 1971년 4월 1일 부산민사지방법원 1973년 3월 27일 서울민사지방법원 서울형사지방법원, 성동지원장, 1974년 성북지원장을 거쳐 1976년 12월 29일 서울고등법원<ref>동아일보 1976년 12월 30일자</ref> 1977년 11월 5일 서울고등법원<ref>매일경제 1977년 11월5일자</ref> 1980년 영등포지원장 1981년 4월 20일 수원지방법원장<ref>매일경제 1981년 4월 21일자</ref> 1982년 3월 12일 대전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2년 3월12일자</ref> 1983년 8월 12일 인천지방법원장<ref>경향신문 1983년 8월 12일자</ref><ref>동아일보 1986년 4월 3일자 매일경제 1966년 11월 16일자 경향신문 1969년 3월 31일자 동아일보 1969년10월7일자 매일경제 1971년 3월 26일자 경향신문 1973년 3월 27일자</ref>을 거쳐 1986년 4월 16일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7년 대법원이 상고허가 신청사건의 처리를 전담하는 상고허가신청부를 신설하면서 [[정기승]] [[황선당]]과 함께 전담 판사로 구성되었으며<ref>매일경제 1987년 1월 5일자</ref> 1987년 5월 18일에 대법원장 추천으로 [[헌법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ref>동아일보 1987년 5월 16일자 매일경제1986년4월3일자</ref>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사강 . . . . 3회 일치
         * 2013년 [[에릭]] - 천국의 문
         * 2014년 에릭 - 우우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상민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도초등학교]](수성리틀)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이승현(농구선수) . . . . 3회 일치
         > '''"제 별명이 두목 [[고려대학교|호랑이]]인데, 앞으로 KBL의 두목이 되어 보겠습니다."''' - 2014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오리온에 지명된 직후[* 여담으로 2년뒤 드래프트에서 같은 학교 후배가 "KBL의 두목 호랑이를 잡으러 가겠습니다."란 말을 겼다.]
         자신이 소속했던 초(대구 칠곡초), 중(서울 용산중), 고(서울 용산고), 대(고려대), 프로(고양 오리온)팀 모두를 우승시켰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KBL총재배 초등부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중학교에선 춘계연맹전, 협회장기, 전국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오랜시간 무관에 그치던 용산고를 우승시켰다.[* 이승현은 꽤 어린 나이부터 용산고 OB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용산고 출신인 양동근이 "넌 여기 와도 돼. 우승시켰으니까" 라고 이승현에게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재학 중 단 한번도 지지않았으며, 김종규/두경민/김민구가 버티던 경희대를 꺾고 MBC배와 대학농구리그를 모두 제패해버렸다. 특히 4학년에 재학중이던 2014년 가을 MBC배 대학농구 결승전에선 종료 1분도 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점 3점슛을 작렬시키고, 종료 1초를 기고 역전 2점슛을 성공시키는 원맨쇼까지 보여줬다.
  • 이시종 . . . . 3회 일치
         |자녀 = 2 1녀
         * [[충청도청]] 기획관리실장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의 이씨]][[분류:충주시 출신]][[분류:충주중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친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
  • 이억년 . . . . 3회 일치
         '''이억년'''(李億年, ? - ?)은 고려시대 후기의 문신, 유학자이다. 자는 인여(仁汝), 호는 요산재(樂山齋)이고 본관은 성주이다. [[이조년]]의 형이자 [[이승경]]의 삼촌이고, [[이인임]], [[이인복]], [[이인민]], [[이인립]]의 종조부이며 [[이숭인]]의 종고조부이다. [[경상북도]] 출신. 1285년(충렬왕11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벼슬을 거쳐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부임했다. 개성부 유수를 지내면서 많은 치적을 겼는데 당시 원나라가 국정에 간섭, 관여하자 원나라의 개입을 항의하는 시 '천재홍진몽외사(千載紅塵夢外事) 청산하처독엄비(靑山何處獨掩扉)'라는 시를 기고 치사(致仕), 경상도 함양군 위성(渭城) 엄천리嚴川里)로 들어가 서당인 도정정사(道正精舍)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공맹의 도를 강론하였다. 사후 성주의 안산서원, 금릉의 상친사에 제향되었다.
  • 이원석(1981년) . . . . 3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연극 배우]][[분류:동구(인천) 출신 인물]]
  • 이장훈(배우) . . . . 3회 일치
         * [[KBS]] 목욕탕집 자들 -KBS-
         * KBS 《목욕탕집 자들 주제가》
         [[분류:197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이주현(배우) . . . . 3회 일치
          * [[결혼의 여신]] - 상훈
          * [[내 인생의 콩깍지]] - [[은영의 친]]
         [[분류:한국 배우]][[분류:1976년 출생]][[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96년 데뷔]]
  • 이주호 (1961년) . . . . 3회 일치
         |후임 = [[서수]] (교육부 장관)
         |후임자 = [[서수]]<br/>(교육부 장관)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중환(법조인) . . . . 3회 일치
          *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지청 검사
          * 2003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지청 형사4부 부장검사
         ||<#ddd><-2>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이화여대 입시부정 및 특혜]] || [[김장자]] · __[[최경희]]__ · __[[김경숙(1955)|김경숙]]__[br][[궁곤]] · [[이인화|류철균]] · [[이인성(교수)|이인성]] ||<#ddd>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br]블랙리스트]] || __[[김기춘]]__ · __[[조윤선]]__ · [[김희범]] · [[김소영(정치인)|김소영]][br][[정관주]] · [[신동철]] · [[모철민]] · [[송광용]] ||
  • 이하율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길)
         | 연속극부문 자 우수연기상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2011년 데뷔]][[분류:화순군 출신 인물]]
  • 이호재(연극배우) . . . . 3회 일치
          * 1997년 《아버지》 ... 박사 역
          * 2008년 《사랑과 전쟁 : 열두 번째 자》
         [[분류:한국 배우]][[분류:1941년 출생]][[분류:장흥군 출신 인물]][[분류:1963년 데뷔]]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3회 일치
          * 십계 [[고서]]는 [[네로바스타]]를 세뇌, 자신을 [[뤼드셀]]이라 믿게 만든다. 고서는 네로바스타가 그를 안내하면서 뤼드셀에 대해 말하도록 조작한다. 그녀는 뤼드셀이 마력, 지력, 매력 면에서 최고의 사대천사라고 추앙한다. 뤼드셀은 스티그마가 성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족도 친구도 버렸다고 하는데. 고서는 그 말을 듣고 "그런 자라면 나도 안다"고 말한다.
          * 데리엘은 사리엘을 공격한다. 하지만 사리엘이 두르고 있는 미지의 장막에 가로막혀 데리엘의 몸이 갈려나간다. 그럼에도 데리엘은 뜯어져 나간 팔을 그대로 내지른다. 상완의 일부 뼈밖에 지 않은 왼팔이 기어이 장벽을 뚫고 사리엘에게 최초의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한다.
          * 그때 갈란의 몸을 빛줄기가 관통한다. 갈란이 저항하기도 전에 빛줄기는 두 번 세 번 공격을 거듭해 갈란을 쓰러뜨린다. 마침내 사대천사 최강자 뤼드셀이 전장에 도착. 어느새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린 상태다. 그는 갈란을 비웃듯 만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한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3회 일치
          * 이래저래 빈정 상한 호크가 "돼지에 치어 죽어라!"고 욕한다. 반이 오늘 저녁 연회 때 최고의 잔반을 먹게 해주겠다고 달래자 "반만 용서한다"는 걸로 완화된다. 반과 멜리오다스에겐 호크의 분노 같은것 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안방을 차지하는 거였다. 치고 받으며 스위트룸으로 달려가는 두 자. 거의 동시에 방문을 열어재낀다. 서로 "우리방"이라며 자신과 연인의 침실로 삼으려고 성화인데 일단 승기를 잡은건 반. 사이즈의 차이로 딱 한 발 먼저 방에 밀어넣었다. 멜리오다스는 "개축비를 낸게 누군거 같냐"고 떡밥을 던지는데 반은 [[바트라 리오네스]] 국왕이 낸걸 뻔히 알았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멜리오다스가 동전 던지기로 승부를 내자고 하는데.
          * 반과 재회한 이후로 엘레인은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겐 "생각을 닫아도 안절부절하는 기분은 다 전해졌다"고 핀잔하고 디안느에겐 "[[킹(일곱 개의 대죄)|오빠]] 생각 뿐이라 금방 들켰다"고 핀잔한다. 물론 그 이상으로 연인 생각만하는건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지만. 인사를 마친 엘레인은 "정말 오빠로 괜찮겠냐"고 디안느를 걱정한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할리퀸은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랑 자의 대화를 한다며 술집으로 향했다 한다. 오늘밤 연회가 있는데 낮부터 술집이라니. 엘레인은 역시 오빠로 괜찮은지 고심해본다.
          이렇게 해서 술집의 평화는 상처를 긴 채 돌아왔다. 사실 옆 테이블에서 [[그리아몰]]과 [[하우저(일곱 개의 대죄)|하우저]]가 마시던 중이었는데 무섭기도 하고 "시끄러운 손님들"취급을 받는 그들이 창피하기도 해서 모른척해버렸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3회 일치
          * 엘리자베스가 조심스럽게 오늘의 진짜 용건을 꺼낸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라트라스]]가 드루이드의 주술로 보여준 16년 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때가 엘리자베스와 멜리오다스의 첫 만. 그런데 무슨 우연인지 그의 연인이었던 [[리즈(일곱 개의 대죄)|리즈]]가 죽은 것도 16년 전이다. 그녀는 [[케인(일곱 개의 대죄)|케인]]이 알려준 사실이라며 리즈의 본명이 엘리자베스인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멜리오다스는 그저 아이러니인 것처럼 웃어넘긴다.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자. 엘리자베스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십계의 [[젤드리스]]. 분명 멜리오다스를 죽이는데 일조했던 자. 자신의 마력에 개입하는 존재를 느끼고 나타난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손님이라 부르더니 정말로 반갑다는 양 "오랜만이다"라고 인사한다. 엘리자베스는 십계가 나타난 것도 그랬지만 그가 구면인 것처럼 구는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반응을 보더니 젤드리스가 "소문은 사실이었다"며 불쌍한 여자라고 빈정거린다. 무엇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스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달라 소리치자 젤드리스의 태도가 험상궂게 바뀐다. 그리고 그의 발설하는 엘리자베스의 비밀.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3회 일치
          * 한편 혼자 겨진 멜리오다스는 쌓이고 쌓인 분노가 마신왕의 힘을 끌어내 암담의 고치를 찢고 바깥으로 나오니, 보통 상태가 아니게 된다.
          * [[디안느]]에게 씌워진 주박을 벗겨낸 [[엘리자베스 리오네스]]. 이제 여신족의 힘에 완전히 각성했다. 그녀의 등장에 가장 경악한 것은 [[메라스큐라]]. 일곱 개의 대죄 일행이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즐기며 승리를 확신했으나 엘리자베스의 등장으로 일거에 상황이 뒤집혔다. 그녀가 당혹해 해서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그녀의 "암담의 고치"에 갖혀 있던 [[멜리오다스]]가 엘리자베스가 눈을 뜬 거냐고 묻는다. 메라스큐라는 그 말을 들은 척도 없이 어차피 엘리자베스는 이제 3일 후에 죽겠지만 자신이 직접 죽여주는 것도 좋겠다며 전장에 나서려 한다. 멜리오다스는 자신을 당장 꺼내주는게 좋을 거라고 다시금 경고하나 그녀는 무시한 채 암담의 고치를 나선다. 혼자 겨진 멜리오다스는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격렬한 분노를 쌓아가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살날이 얼마 지 않은 그녀. 그 결의를 실행해 보일 기회는 지금 밖에 없었다. 그러한 절실함을 안고 날아가는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임은정(법조인) . . . . 3회 일치
         [[1974년]] 7월 14일 생으로, [[경상북도]] 영일군(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 [[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2001년]] 제30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검찰생활을 시작하였다.
         2007년 3월 광주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일명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공판검사를 맡았다. 이때 임 검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다음과 같은 일기를 겼다:
         2015년 이후부터는 의정부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2월 3일 검사로서의 직무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의심받아 심층적격심사[* 2004년 법무부는 7년마다 한 번씩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검사'를 골라내겠다며 적격심사제도를 도입했다. 적격심사 대상은 검찰 내 특정 기수 전체이며, 법무부는 이 가운데 심층심사를 할 사람을 걸러내 특정사무감사를 진행한 다음 적격심사위원회를 연다. 여기서 최종 탈락한 인물은 강제로 퇴직당한다. [[검찰청법]] 제39조 참조.]를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 상부가 '[[보복|찍어내기]]'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격분하였다. 무죄 구형 후 법무부의 한 간부가 ‘임은정이 적격심사 얼마 았냐’고 묻더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적격심사를 계기로 자르려는구나’ 싶었다고. 자신이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전 실제로 ‘(검찰 상부에서) 자르기로 했으니 마음의 준비 해야 할 것 같다’는 동료의 귀띔을 들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때는 돌아버리겠더라. 누가 볼까 싶어 집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닫고 주저앉아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까지 나와 연락하길 주저한다고 느껴질 때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 장기범(배우) . . . . 3회 일치
         * 《네 손톱 끝에 빛이 아 있어》 (EBS, 2004년)
         * 《[[내 자의 여자]]》 (SBS, 2007년) - 허준구 역
         [[분류:한국 배우]] [[분류:1990년 출생]] [[분류:아역배우]] [[분류:2002년 데뷔]] [[분류:부천시 출신 인물]]
  • 장석조 (판사) . . . . 3회 일치
         |전임 = [[박형]]
         *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9월 28일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제기한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강세무서장 등 15개 관서장이 고지한 각 증여세 139억원의 부과를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판결했다.<ref>[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4/09/20140926234304.html]</ref> 12월에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6곳이 서울 동대문구와 성동구를 상대로 낸 영업시간제한 등 처분 취소소송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뚜렷하지 않고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고 하면서 원고 승소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1심 판결을 인정하여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ref>[http://www.ajunews.com/view/20151119130813012]</ref>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장수영 (방송인) . . . . 3회 일치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br/> [[대한민국]] [[경기도]] [[성시]] [[분당구]]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기상 캐스터|기상캐스터]] 입사하였고 [[1996년]] 음악평론가 겸 영화평론가 [[이무영 (영화 감독)|이무영]](훗날에는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더 큰 활약)과 결혼하여 [[경기도]] [[성시]] [[분당구]]의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으며 이후 [[1998년]]에 MBC 문화방송 기상 캐스터 직위를 퇴사하였고 이듬해 [[1999년]] [[수필|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분류:1971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경인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
  • 장우수 . . . . 3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뮤지컬 배우]][[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장종덕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장항준 . . . . 3회 일치
         * 2012년 《[[간기]]》- 중국집 주인 역
         * 2008년 《[[죽이고 싶은 자]]》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장혁진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 [[성중학교]]
         [[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성중학교 (서울) 동문]]
  • 장현수 (영화감독) . . . . 3회 일치
         | [[자의 향기 (영화)|자의 향기]]
         [[분류:1959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
  • 전관 . . . . 3회 일치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베트 전쟁]]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선 전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장]][[분류:대한민국의 베트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전성군 (1488년) . . . . 3회 일치
         [[1488년]](성종 19) [[7월 21일]] 사후 [[여양군]]에 추증된 여양정 이자겸(呂陽正 李子謙)과 훈도(訓導) 김기(金耆)의 딸 광산김씨<ref>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의 아들로 태어났다. [[효령대군]] 보의 차 [[보성군]] 이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율원군]] 이종(栗元君 李終)이다. 그의 생일은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정사룡]](鄭士龍)이 쓴 그의 묘비문에 그의 생일이 [[7월 21일]]이라고 언급되면서 알려졌다.<ref name="heomyong">정사룡, 호음잡고 제7권, "李龍岡墓碣銘 幷序"</ref> 조부 [[율원군]]은 적개공신이었다.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영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분류:1488년 태어]][[분류:1543년 죽음]][[분류:음서]][[분류:조선의 왕족]][[분류:조선의 문신]][[분류:전주 이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중종]][[분류:조선 명종]]
  • 전재용 . . . . 3회 일치
         [[2012년]] 전직 대통령이 묻어둔 비자금의 일부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골프장 회원권 142개(약 355억원)가 매물로 나왔다. 매물로 나온 회원권 142개의 소유자는 에스더블유디씨라는 법인인데, 이 업체 임원으로 전두환의 차인 전재용, 전재용의 부인 박상아, 전두환의 처 이창석, 이창석의 부인 홍정녀 등 4명이 있다. 전두환 일가가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한 경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322266 골프장 회원권이 전두환 비자금?] 동아일보 2012년 3월 23일</ref>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의 장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분류:완산 전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조세 범죄 기결수]]
  • 전종화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
  • 전태규 . . . . 3회 일치
         | 좌우명 = 내가 편하면 이 힘들다
         *[[2009년]] [[8월]] 경-STX컵 마스터즈 2009 3위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
  • 절대가련 칠드런/454화 . . . . 3회 일치
          * 인적이 드문 항구에서 대결하게 되는 매.
          * 효부가 조금 우세한 듯 한데 왠지 후지코도 히든 카드를 기고 있는 듯 한데?
          * 그는 너무 손쉽게 잡혀주면 의심을 살 테니 비장의 수를 겨둔 채로 한계까지 몰아붙이겠다고 생각한다.
  • 정광조 (1883년) . . . . 3회 일치
         천도교 신파가 대세론이라는 타협적인 노선을 내세워 설립한 [[시중회]]에 가입하면서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일제에 적극 협조한 행적이 있다. [[1939년]]에는 [[이용구]]의 장 [[이석규]]가 '일한합병 공로자 감사 위령제'라는 행사를 열었을 때 참석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
         천도교단은 정광조와 [[김병제 (1894년)|김병제]] 등 천도교 지도자들의 친일 논란에 대해, "일제의 총체적 강압 강요" 하에서 "교단이 해체나 와해되지 않고 교단을 유지 보존시켜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아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므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f>{{웹 인용
         [[분류:1883년 태어]][[분류:1953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교역자]][[분류:대한민국의 천도교 교역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몽원 . . . . 3회 일치
         |성별 =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의 동생이자 한라그룹 명예회장을 지낸 정인영의 2이다. 고려대학교 상대를 졸업하고 19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았다. 1985년 만도기계 전무, 1989년 같은 회사 사장, 1992년 한라그룹 부회장을 거친 후 1997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동 정씨]][[분류:현대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동문]]
  • 정성왕후 . . . . 3회 일치
         [[1757년]], 66살의 나이로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을 아버지인 [[조선 숙종|숙종]]의 명릉(明陵) 근처에 만들고 훗날 자신이 정성왕후의 옆에 묻히기 위해 옆자리를 비워놓았다. 그러나 [[1776년]], 영조가 승하한 뒤 손자인 [[조선 정조|정조]]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영조)|정순왕후]]를 의식하여 현재의 [[동구릉]] 위치에 영조와 정순왕후의 무덤인 [[원릉]]을 조성하였고 결국 정성왕후는 옆자리가 비워진채 홍릉에 홀로 겨지게 되었다.
         *** '''편''' : 제21대 [[조선 영조|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
         [[분류:1692년 태어]][[분류:1757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세자빈]][[분류:조선의 왕비]][[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 영조]][[분류:조선 정조]][[분류:서재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구 서씨]][[분류:조선 진종]]
  • 정성현 (배구선수) . . . . 3회 일치
         '''정성현'''([[1991년]] [[5월 18일]] ~ )은 [[대한민국]]의 자 배구 선수이며,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선수이다. 2013-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 입단하였다.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배구 선수]][[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성지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성지고등학교 (부산)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정승화(육군) . . . . 3회 일치
         이후 한산성에서 형기를 채우다가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여 조용히 지내다가 세간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그것이 87년 대선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직선제로 치러지게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야당의 [[김영삼]]-[[김대중]]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거기다가 재야 진보진영에서 [[백기완]]까지 출마하면서 야당표의 분산으로 노태우 당선(당시 김영삼과 김대중 등 두명이 하나로 단일화됬어도 노태우가 대선에 당선될일은 없었을것이라고 한다. 노태우는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무혈입성)이 유력하였다. 정승화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김영삼]]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 10.26 당시 자신을 몰라보는 육군본부의 초병에게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그 초병이 대답하기를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요?"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는 대통령 저격이라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으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 참석할 때 정승화 대장은 군복이 아닌 사복, 즉 [[정장]] 차림이었고, 자신의 관용차가 아닌 [[김재규]]의 차를 타고 온 상황이었다. 육본의 초병도 "한밤중에 갑자기 민간차량을 타고 나타난 사복 차림의 장년 성"이 설마 육군참모총장이라곤 생각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다른 장교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알아보고 무사통과시켰다고.
          * 가족으로은 아내인 신유경 씨와 3 1녀가 있다. 자녀 중 셋째인 정이열 씨는 아버지처럼 육군사관학교(육사 38기)를 나와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대령으로 예편 및 전역했다.
  • 정재안 . . . . 3회 일치
         |성별 =
         *2012.11 ~ 2014.06 자원재활용연대 경기도지부 양주시지회 사무장
         [[분류:196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성공회대학교 동문]]
  • 정재호 (1964년) . . . . 3회 일치
         |자녀 = 1 1녀
         * 2015.12 ~ [[더불어민주당]] 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달성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
  • 젖은 낙엽 . . . . 3회 일치
         누레오치바는 본래 '젖은 낙엽'이란 뜻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로 정년 퇴직 후의 편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일본에서 정년 퇴직 후의 편을 젖은 낙엽이라고 부르는데, 일에만 몰두하던 편이 정년 퇴직 후에는 집에서 방해물 밖에 되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젖은 낙엽 이외에 '대형 쓰레기' 같은 표현도 있었으나, 쓰레기에 비하면 다소 나은 표현이므로 선호되었다. 왜 젖은 낙엽이냐 하면, 아내가 나가려고 하면 "나도 따라간다."면서 따라오고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그것이 젖은 낙엽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 조선 . . . . 3회 일치
          * 조선 : 북한에서 [[한]]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기에 한에서는 쓸 일이 없다.
  • 진격의 거인/90화 . . . . 3회 일치
          * 아르민은 여전히 자신이 엘빈 대신 살아은 것에 죄의식을 가지고 이으며 [[엘런 예거]]는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또다시 기억의 혼선이 일어나며 주저한다.
          히치는 눈동자에서 불똥이 튄다. 하지만 히치는 그걸 숨기고 고맙다는 말을 기고 자리를 뜬다. 히치가 사라지고 나서 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말을 했는지 프록을 질책한다.
          * [[엘런 예거]]와 [[미카사 아커만]]은 프록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엘런이 대체 아르민의 뭘 아냐고 묻자 프록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대답한다. 비록 자기 소꿉친구도 아니고 친한 사이도 아니라 그 개인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르민이 왜 살아았는지는 안다는 것이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3회 일치
          * 그녀는 자신이 엘디아인의 운명을 짊어지고 "그 섬의 악마들"을 몰살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선량한 엘디아인만 길 것이며 수용구의 엘디아인들을 해방하겠다고 결의한다.
          잔인한 이야기였지만 지휘관으로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콜트는 미련이 는다. 마가트는 그런 콜트에게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이어받는 자'''라면, 위에 서는 자로서 각오를 다지라고 핀잔을 준다. 콜트는 이 작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상황은 고스란히 전사후보생들에게도 보여진다.
          가비는 작전성공의 쾌감 때문인지 폭소를 터뜨리며 마구 달린다. 하지만 적의 기관총 진지는 완전히 무너진게 아니었다. 살아은 소총수가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한다. 미처 참호에 다다르지 못한 가비는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참호 연장에 실패한, 유탄이 떨어져 깊게 패인 자리를 향해 무작정 달리지만 총알을 피할 것 같지 않다. 지켜보고 있던 파르코가 뛰쳐나간다. 콜트가 말려볼 틈도 없었다. 그는 가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 진시몬 . . . . 3회 일치
         ||<:>'''가족'''||<:>슬하 2||
          * 자이니까 (2004)
         [[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출생]][[분류:한국 가수]][[분류:1989년 데뷔]]
  • 차광렬 . . . . 3회 일치
         *1984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부원장, 강 차병원 산부인과 의사, 강 차병원 부원장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연안 차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산부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차오루 . . . . 3회 일치
         | 《[[개밥 주는 자|개밥 주는 자 시즌 2]]》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pop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가수]][[분류:중국의 여자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중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먀오족 사람]][[분류:카카오엠 소속]][[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분류:중국의 아이돌]]
  • 차용학 . . . . 3회 일치
         * 《[[오픈드라마 과 여]]》 (SBS, 2001년) - 매니저 역
         * 《너와 함께라면》 (2011년) - 자친구의 아들 역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차정아 . . . . 3회 일치
         * [[2015년]] - [[XTM]] 《자들의 동영상 랭크쇼 M16》
         * [[2015년]] - 홈스토리 《내 자의 목공 the 톱》
         [[분류:199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명지전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착각남 . . . . 3회 일치
         착각(勘違い男), 칸스케(勘助)
         ‘착각’을 뜻하는 칸치가이(勘違い)와 과거에 성명으로 자주 쓰던 ~스케(助)를 합쳐서 ‘착각하는 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1501년-1561년) 등 실제로 과거에 쓰이던 인명이기도 하다.
  • 창작:맹수인 . . . . 3회 일치
         맹수인은 동부대륙 북부~중부까지 넓은 영역을 지배하는, 사실상 동부대륙 거의 전체를 지배하는 종족이다.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3회 일치
         이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사는 곳''' [* 다만, 단순 인간형 종족이라면 다른 대륙에서도 살고 있다.] 안덴산맥을 통해 부와 북부가 구별되며, 부 해안가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다. 큰섬들은 대강 하와이 정도의 크기이지만, 예외는 있다. 보통 섬에서는 거상들이 근처 영주와 협업해 그들만의 공화국들을 세우는 편이 흔하다.
         살고있는 종족들마저 '''마계'''라 표현할정도로 생태계가 그리 좋지는 못한곳. 그나마 농사짓기좋은곳이 부에 몰려있긴 한데, 여기도 내륙쪽은 '판'이라 불리는 유목민족들이 여행자들을 약탈하러 돌아다니는 곳이라 여러모로 흉흉하다. 농사지으면 작물에선 왠지 모르지만 매운맛이 미친듯이 나며, 길가다가 목이 말라 근처 오아시스에 물을 마셨더만 송곳니가 자라나고 흉포해지는(...) 요상한 대륙이다. 그것때문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거의다 전투민족or매드 사이언티스트(...)
  • 채동욱 . . . . 3회 일치
         * 2006년 :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고발사건과 관련해 당시 사장이던 허태학씨 등을 기소했고 상국 대우건설 사장 로비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 등도 지휘.)
         * 4월 16일 : 서울중앙지검장 독대보고제 21년만에 폐지<ref>[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4/h2013041621120521950.htm 채동욱 검찰총장 "중앙지검장 독대 보고 폐지 검찰개혁 5월 말까지 완결"] 《한국일보》 2013년 4월 16일 상욱 기자</ref>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찰총장]][[분류:서울세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평강 채씨]]
  • 채수빈 . . . . 3회 일치
         | 주워온 고양이
         | 주워 온 고양이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안양시 출신]]
  • 챈슬러 (음악가) . . . . 3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브랜뉴 뮤직 음악가]][[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
  • 최계훈 . . . . 3회 일치
         * [[인천중학교]]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분류:청보 핀토스 선수]][[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인천중학교 동문]][[분류:인천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광식 . . . . 3회 일치
         2011년 [[대한민국의 문화재청장|문화재청장]]을 역임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30/2011083002044.html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조선일보》2011년 8월 30일</ref><ref>[http://media.paran.com/news/view.kth?dirnews=3065334&year=2011 최광식 후보자, "영·소망교회 출신 아니다"]《머니투데이》2011년 9월 15일</ref>
         |전임자 = [[김홍]]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문화재청장]][[분류: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위]][[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최덕희 . . . . 3회 일치
         * [[란마 1/2]] - '''궁 란마(사오토메 란마)'''(여)(VIDEO판)
         * [[그 자! 그 여자!|비밀일기]] ([[KBS]]) - '''윤선'''(<small>미야자와 유키노</small>)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데뷔]]
  • 최석기 . . . . 3회 일치
         '''최석기'''(崔錫基, [[1986년]] [[12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자 [[배구]] 선수이다. 현재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소속의 선수이다.
         최석기는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개인기록상 주요 부문인 블로킹 부문에서 5위 안에 들면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의 [[세터 (배구)|세터]] [[황동일]]과 함께 신인왕 후보로 오를 만큼 활약을 펼쳤으나<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ports/volleyball/2009/0317/20090317101030400000000_6732676814.html 지금은'석기시대' KEPCO45 최석기 신인상 맹추격] 《스포츠서울》2009년 3월 17일 12:23, 2009년 3월 19일 1:42 확인</ref> 전 경기를 소화한 황동일에 밀려 신인상 수상에 실패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ketball/Article.asp?aid=20090416004415&subctg1=05&subctg2=00 프로배구 정규리그 MVP 박철우?데라크루즈, 공격녀 최후의 승자] 《스포츠월드》 2009년 4월 16일 22:53, 2009년 4월 19일 23:01 확인</ref> 하지만 그는 팀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NH농협 2008~2009 V-리그 올스타전]]에는 [[한국 배구 연맹]]의 추천으로 [[수원 KEPCO 45]]의 유일한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였다.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선수]][[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전중앙중학교 동문]][[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대전중앙고등학교 동문]]
  • 최성조 . . . . 3회 일치
         |가족사항 =22녀중막내
         [[분류:1979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성준 (법조인) . . . . 3회 일치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반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순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2008년 10월 17일에 혜진·예슬양과 정모 여인을 살해한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살인 등으로 기소된 정모(39)씨에게 "극악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라고 하면서 사형을 선고하고<ref>[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43118&kind=AA03]</ref> 12월 19일에는 한총련 의장을 북한에 보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측본부 의장 윤기진씨(33)에게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57년 태어]][[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최성환 . . . . 3회 일치
         |클럽=[[대구 FC]]<br> [[수원 삼성 블루윙즈]]<br>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br> [[광주 FC]]<br> [[경 FC]]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전주대학교 동문]][[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
         [[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FC의 축구 선수]][[분류:경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수범 . . . . 3회 일치
         * [[1월 3일]] 태어. (이는 그레고리력으로 평년, 윤년 상관없이 3번째 날이다.)
         * [[2008년]] 경-STX컵 마스터즈 2008 4위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감독]][[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
  • 최윤동 . . . . 3회 일치
         * 중국 운 육군사관학교 졸업
         |같은 지역구 의원 = (대구시 을)[[서상일]]<br />(대구시 병)[[백채]]
         [[분류:1897년 태어]][[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은주(배우) . . . . 3회 일치
         출생 [[1979년]] [[2월 22일]] [[전라도]] [[구례군]]
         가족 1 1녀 중 첫째
          * [[2006년]] [[KBS1]] TV소설 순옥이 - 기순 역
  • 최재만 . . . . 3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
  • 최태수(가수) . . . . 3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광명시 출신 인물]]
  • 최홍만 . . . . 3회 일치
         하여간 그 특유의 상품성 덕택에 프로씨름 데뷔조차 하지 않았던 [[대학교]] 시절부터 [[텔레비전]] 등에 나오며 엔터테이너성을 쌓았다. 218㎝에 165㎏이라는 엄청난 체구에 [[파란색]], [[노란색]]으로 눈에 띄게 [[머리]]를 [[염색]]하여 처음 본 사람도 인상에 는 외모였고, 씨름에서 이기고 나면 세레모니로 춤을 춰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좀 더 먼저 활동한 [[김영현]]이 이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영현과 비슷한 체격이면서 구분하기 위해 앞에 '테크노'를 붙인 것이다.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가던 씨름에 대한 관심을 간간히 지켜가는 역할을 해냈다. 처음 시작이 이런 것을 보면 본래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이때쯤 입식 무대를 떠나 본격적으로 종합 무대로 전환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출전한 것이 MMA 역사에 길이 을 막장 매치인 DREEM 2009 페더급 그랑프리 속칭 '슈퍼 헐크 토너먼트'였다.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 충완 . . . . 3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백석예술대학 동문]]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3회 일치
         레이지(?)모드가 있다. 플레이어의 체력이 얼마 지 않아 체력바가 번쩍번쩍할때는 대부분의 공격이 강해진다. 다이너마이트로 한번에 폭살시키기 힘든 덩치들이 우수수 산화하며 UZI의 데미지가 M16급으로 강해진다. 체력아이템을 먹으면 얼마 안가 사라진다(바로 사라지는건 아니다)
         참고로 [[투니버스]] 개국 초기에 '캐딜락을 탄 전사'라는 작명으로 애니판을 방영해주기도 했다.여주인공 한나역의 [[서혜정]]씨 목소리를 기억할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인공 잭 역에 [[최원형]],잭,한나와 대립하는 공룡 밀렵꾼 우두머리 역에 [[장광]]이 맡는 등 나름 초호화 성우진이었다.]
         이후 연구실이 무너지자 주인공 일행은 수류탄으로 비상구를 부수고 도망간다. 통로를 따라 뛰어가던 도중 한나가 갑자기 쓰러지고, 잭이 그녀를 구하느라 뒤에 자 무스타파와 메스만 탈출하게 된다. 그 둘은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연구실은 이미 폭파된 뒤였고, 그들은 쓸쓸히 스테이지3의 데스 밸리를 걸어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리고...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3회 일치
          * 토니에게는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폰을 하나 기지만...
          * 토니에게 은 것은 자신과 불구가 된 워머신, 비전 뿐.
          * 토니에겐 거의 아무 것도 아있지 않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줄거리 . . . . 3회 일치
         1910년, [[캔자스]] 주 애블린에 말을 탄 노인 한명이 찾아온다. 불스 헤드(Bull's Head)라는 주점 안으로 들어선 노인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일러스 그리브스라고 소개한다. 이에 젊은 자가 현상금 사냥꾼인 사일러스 그리브스 맞냐고 물어보자 사일러스는 자신이 현상금 사냥꾼 일을 했던 적이 있다며 인정한다.
         사일러스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지만, 흥분한 젊은이는 사일러스에게 맥주를 한 잔 사주며 현상금 사냥꾼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일러스 그리브스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싸구려 소설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일러스는 젊은 자 "드와이트", 그곳에 있는 유일한 여자 "몰리", 냉소적인 자 "잭", 할아버지 "스티브", 주점 점장 "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 크리스토퍼 라킨 . . . . 3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코네티컷주 출신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한국계 미국인]]
  • 킹덤/499화 . . . . 3회 일치
          * [[하료초]]는 쪽에서 징집된 [[벽(킹덤)|벽]]과 재회한다. 간만에 인사를 나눈 둘은 이번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료초는 그 규모가 20만에 이르며 근 10년 동안 합종군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벽은 그것 보다 이질적인 세 군단이 혼성된 점에 대해 더 놀라워한다. 하료초는 육장 시대에 가끔 있었다고 얘기할 뿐 특별한 감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뇌부와 가까운 벽은 좀 더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본영 상층부의 긴장된 분위기를 언급하며 "이 조 서부공략전은 훨씬 큰 전투가 된다"고 추측한다.
          하료초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창평군 조차 왕전의 인간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에겐 "그 불안을 채우고 을 만한 힘"이 있기에 기용되었다고 밝힌다.
          * 창평군의 말로 호양은 왕전을 평하길 "군략의 재능만으로 육장의 자리를 꿰찮 인재". 호양처럼 과거의 인물에게 그정도 평을 들었을 정도라면, 거기서 성장한 지금의 왕전은 어떤 인물일 것인가? 벽은 그렇게 말하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때 벽도 자신의 부대에서 호출이 오면서 둘은 헤어진다. 벽은 헤어지기 전 신에게도 조심하라 전해달라는 말을 기고 하료초도 뭔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 킹덤/500화 . . . . 3회 일치
          * 이 소식은 곧바로 [[이목(킹덤)|이목]]에게 전달된다. 소식을 들은 이목은 큰 의심은 하지 않지만 뭔가 의혹이 은 듯 하다.
          이목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조치라고 평한다. 부저는 그 의 일 말하는 듯한 태도에 "적을 칭찬하고 있을 때냐"고 지적한다. 특히 부저는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이 개입한 것을 의식하고 있다. [[순수수]]는 이목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태도로 "반대로 이긴다면 큰 타격을 주는 셈"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아직 [[진시황(킹덤)|정]], 이신과 셋이 도움을 청하러 왔을 때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지금 이신과 하료초는 "커졌다"고 말하는데. 하료초도 새삼 추억에 잠기다가 "사실 그때 [[벽(킹덤)|벽]]도 있었다"며 정정해주지만 양단화는 벽의 존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료초는 그때는 지금같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지만 양단화는 그때 이미 정이 중원의 패자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한다. 그때 그의 눈빛이 달랐기 때문인데.
  • 킹덤/510화 . . . . 3회 일치
          * [[송좌]] 백인장이 창대로 간두의 머리통을 치며 나타난다. [[숭원]] 보병장, [[미평]] 십장 등 고참들이 신병들을 위무하러 왔다. 송좌는 간두가 날뛰는걸 진정시키고 첫 출진에서 살아은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라고 타이른다.
          [[이신(킹덤)|이신]]은 원래 삼천장 이상 급에게만 나가는 술을 따로 빼돌려 신병들에게 하사했다. 송좌는 이 사실을 알려주며 손수 술을 따라준다. 간두는 좋은 술이 있어도 이 첫 출진에서 죽고 다친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마실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송좌는 그럴 수록 마시면서 "나는 살아았다"고 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건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첫 출진 날 밤의 술이다. 무슨 맛인지 확실히 봐두라는 말에 신병들은 하나 둘 술잔을 집어든다.
          신병들은 상식을 초월하는 대활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송좌도 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싸우면 그 이상으로 대단한 일 투성이다. 송좌와 숭원은 그보다 열 살은 많아 평소엔 신을 꼬마 취급하지만, 그래도 전장에선 그 누구보다 멋진 자가 신이라며 추켜세운다.
  • 킹덤/511화 . . . . 3회 일치
          * 이런 사정을 모르는 성에서는 혼란에 빠져있다. 특히 왕전의 본진은 특별한 전언도 없이 총대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왕전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보고를 하러 왔던 [[하료초]]가 무슨 전언이라도 긴게 없냐고 묻자 왕전의 부하는 왕전 본인이 긴건 없지만 함께 사라진 1대 대장 [[아광]]의 전언은 있다고 한다. "전군 열미에서 3일 대기". 너무 단순하고 급박한 전세에 맞지도 않게 미적거리는 지시다.
          몽념이 그 이야기를 받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왕전이 없는 지금 이야기하는건 부적절하지만, 진군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예정보다 많은 병력을 열미에 긴 채로 왕도권에 진입하는 방법이다. 약하더라도 성은 성이니 충분한 병력이 있다면 수비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만큼 왕도권 진입에는 병력 수가 적어지고 그 병력만 가지고 업을 공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합종군 같은건 필요도 없었을 테니 사실상 불가능한 걸로 봐야한다.
  • 킹덤/528화 . . . . 3회 일치
          농담 같은 진담. 그 뿐인가? 결국 순수수의 말은 "살려주는 대가로 싸워라"고 엄포를 넣는 거나 다름 없었다. 진군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심지어 견융왕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달린 사람이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조군들 사이에서 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제 그들은 총대장의 시체를 수습할 방법이나 찾아야 했다. 자신들이 살아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잠시 뒤 그들은 자신들도 살아고 총대장의 시체를 처리할 방법도 필요가 없어졌다.
          뜻밖의 수락. 무엇이 견융왕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크게 만족해했다. 곧 부하들을 시켜 성 안의 병사들까지 모조리 데려와 "축제"를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단 하나, 진군의 격멸만이 은 순수수는 견융왕에게 상대를 얕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적의 정체가 서쪽 산민족을 통일한 자라고 알려주려 했는데, 견융왕은 그의 정보가 필요치 않았다.
  • 킹덤/534화 . . . . 3회 일치
          * 기수는 진군 좌측이 무섭게 치고나오는 순간 몽념의 속셈을 직감한다. 그 생각대로 진군의 좌측이 살아아 싸움이 내일로 이어진다면 조군으로선 큰 피해다. 한시라도 승부를 내고 업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선 [[이목(킹덤)|이목]]이 위험을 무릎쓴 의미도 없어지므로 기수는 서둘러 중앙군을 움직여 낙화대를 요격하러 나선다.
          >네 생각보다 마광군이 더 았다.
          몽념 옆에 아서 그가 마광군을 인계하고 대응책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빠른 시점에서 그의 구상을 간파해 몽념이 감탄하기도 했으나 그녀 자신은 간단히 마광군을 인수하고 이런 전략을 펼치는 그에게 경악한다. 새삼스럽게 스승 창평군이 "재능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극찬했던 일을 떠올리며 몽념을 빤히 쳐다보다 "그만 봐라"고 몽념이 한소리한다.
  • 태미 . . . . 3회 일치
         | 출생지 ={{KOR}} [[경기도]] [[양주시]]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양주시 출신]][[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태영호 . . . . 3회 일치
         외교부에 따르면 태영호의 탈북 요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 공사의 자녀 중 북한이나 영국 현지에 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8월 20일, 북한에서는 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가 고의적비밀누설죄, 국가재산횡령범죄, 미성년성교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하며 태영호를 비난했다.[[http://www.focus.kr/view.php?key=2016082000192002762 (포커스뉴스)]]
         태영호 영사의 둘째 아들은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팬으로, 누적시간이 368시간에 달하였다. 차이 쓴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 사실 북한을 까는 [[밈]]의 일종이다.].
  • 태종학 . . . . 3회 일치
         |자녀 = 슬하 2 2녀
         [[분류:1922년 태어]][[분류:1997년 죽음]][[분류:영순 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구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태학 . . . . 3회 일치
         중국, 한국, 베트 등의 왕조국가에서 설치하던 고등교육기관.
         === 베트 ===
         베트에서도 태학-국자감을 두었다.
  • 토리코/359화 . . . . 3회 일치
          * 이치류는 왕의 자질을 가진 숙주로 아카시아, 지로와 비교해서도 최고의 식욕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돈 슬라임은 그 자질을 개발하라고 끊임없이 권하지만 항상 소박하고 들이 잘 찾지 않는 식재만을 먹으며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이는 그가 진귀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기 보다는 '''과 나누고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식재를 되살리는 일이야 말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동생이나 아카시아를 먼저 챙기고 자신은 소박한 식재를 먹어온 것이다
          *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돈 슬라임은 끝없이 이치류에게 보다 좋은 것을 먹고 강해지라고 권하지만 '''이치류는 항상 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검소한 콩 같은 것이나 먹는다. IGO를 세우고 세계의 일인자가 되었지만,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 식탁에서 똑같은 것을 먹고 약자도 강자도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거야 말로 자신의 "욕망"이라고 하는데, '''어느덧 돈 슬라임도 이치류가 먹는 검소한 음식들이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 토리코/387화 . . . . 3회 일치
          * 스타준은 시간이 얼마 안 았다며 이야기를 서두른다.
          * 아카시아는 자신이 원한 아이는 "요리사"였는데, 이제 스타준이 죽었으니 "미식가"만 았다고 빈정거린다.
          * 스타준은 거기에 감사를 표하며 "잘 있어라 내 동생이여"라는 말을 유언으로 긴다.
  • 토리코/388화 . . . . 3회 일치
          * 풀코스에서 고기요리인 네오만 았다. 토리코는 아카시아 안에 있는 네오가 살아있음을 암시한다.
          * 토리코는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며 은 것은 아카시아 안에 있는 "고기요리" 뿐이라며, 네오에게 모습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 팔왕은 이대로 리타이어하고 용왕과 낭왕만 은 줄 알았는데 GOD 효과로 원왕이 부활하고 경왕, 마왕이 부활 중.
  • 토리코/393화 . . . . 3회 일치
          * 지구가 붕괴하지 않는다는건 새로운 식재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주적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풀코스도 생성되지 않는다. 토리코는 그렇다고 지구를 붕괴하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말하는데, 듣고 있던 아카시아가 지구의 맛은 여기까지지만 지구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의 맛이 아있다고 말한다. 바로 네오 안에. 네오 안에는 그동안 먹어온 음식들이 고스란히 아 있는 것이다. 페어는 그거야 말로 해결책이라고 하고 토리코 안의 청귀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고 환호한다.
         지로를 죽였어야 했는지도 의문으로 는데 물론 지로는 아카시아를 영구적으로 노킹하려고 했으니 경계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과연 이치류도 따라준 계획을 지로라도 이해하지 못했을까? 계획을 오로지 이치류에게만 전한 것도 부자연스럽다.
  • 토탈워: 쇼군 2/요원 . . . . 3회 일치
          * 완고한 무사(Die-hard Fighter) - "주저하지 않는 자가 자신의 영혼까지 이기는 법이다."
          * 공성 전문가(Siege Expert) - "어떠한 성벽도 이 자의 분노 앞에선 견뎌낼 수 없다."
          * 고무(Inspiring) - "한 자는 2개의 일본 짚신이 필요하다. 바로 신앙과 이성이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3회 일치
          * 근접 방어(Melee Defense): 근접전에서 얼마나 잘 살아는지 결정하는 능력치.
          * 갑옷(Armour): 공격에서 얼마나 잘 살아는지 결정하는 능력치. 근접 방어와는 달리 원거리 공격도 적용된다.
         활을 든 아시가루. 적들에게 화살비를 내려줄 수 있지만 근접 유닛이 달라붙으면 지원 병력이 올때까지 살아기만을 바래야 한다.
  • 페어리 테일/511화 . . . . 3회 일치
          * 그 말이 계기가 돼서 스팅과 렉터가 정신을 차린다. 렉터도 식욕을 참으며 스팅에게 희생하겠다고 하자 스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제외한 동료들을 기절시킨다. 이걸로 서로 해치지는 못하게 됐지만 은 스팅은 극심한 공복감에 체력저하까지 겹쳐서 힘이 지 않는다.
          * 그때 유키노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로그 체니가 나타난다. 미네르바의 테리터리. 드디어 세이버투스의 쌍룡이 모였지만 로그도 싸우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 그는 미네르바의 배달이라며 "나를 먹어라"라고 말한다. 로그는 은 마력을 그림자로 바꿔서 방출한다. 스팅은 처음엔 어떻게 다른 속성을 먹냐고 거부하지만 이런 상황이라 "먹을 수밖에 없다"며 무작정 그림자를 흡입한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3회 일치
          * 웬디는 아이린 본체에 아있던 마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공격을 가하고 분리 인챈트로 자신의 몸을 되돌려 받는다.
          >그 몸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맞닿은 기억이 아있어요.
          * 강렬한 빛과 함께, 아이린의 발악도 보람없이 웬디의 분리 인챈트는 정상적으로 그들의 몸을 되돌렸다. 하지만 웬디는 아이린이 긴 상처 때문에 돌아오자 마자 뒤를 부탁하고 쓰러진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3회 일치
          * [[제이콥 레시오]]는 [[미라젠 스트라우스]]에게 격파, [[아질 라무르]]는 [[엘프만 스트라우스]], [[리사나 스트라우스]] 매에게 격파.
          * [[아질 라무르]]는 [[엘프먼 스트라우스]], [[리사나 스트라우스]] 매에게 패배. 둘의 콤비네이션에 패배한 듯하다. 아질은 아직도 계속 싸우려 하지만 그때 아질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더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린다. 할아버지는 "이 전쟁에선 소중한걸 너무 많이 잃었다"고 말하는데 엘프먼은 이 전쟁만 그런게 아니라 전쟁은 항상 그래왔다고 대꾸한다. 리사나는 그들이 항상 이기는 전쟁만 했기 때문에 그 점을 늦게 깨달은 것이며, 그동안 제국에게 졌던 나라들은 얼마나 많은 걸 잃었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 오거스트는 이제 스프리건도 자신 밖에 지 않앗다고 중얼거리며 적과 함께 매그놀리아 일대를 섬멸할 마법을 준비한다. 그가 마법을 시전하자 대기와 대지가 함께 진동한다.
  • 페어리 테일/533화 . . . . 3회 일치
          * 제레프는 나츠가 의식이 끊기기 전 [[마카로프 드레아]]의 죽음을 전하고 "천국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말을 긴 채 네오 이클립스를 작동시키려 떠난다.
          * 한 자리에 모인 길드원들은 각기 정보를 공유한다. [[아크놀로기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누군가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 호를 쫓아가는 걸 봤다고 말한다.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은 그들이 미끼가 되어 준거라 생각한다. [[엘프런 스트라우스]]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길다트는 여기에도 없는 인원에 대해 묻는다. [[나츠 드래그닐]],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록버스터]], [[엘자 스칼렛]], [[웬디 마벨]], [[해피(페어리 테일)|해피]]까지 총 6명. 이들의 행방은 찾고 있지만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은 인원들은 저 여섯 명이 무사히 있기를 기도한다.
          나츠는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그의 죽음에 눈물을 보인다. 제레프는 그를 겨 둔 채로 작별을 고한다.
  • 페어리 테일/541화 . . . . 3회 일치
          * 매그놀리아에는 페어리 테일을 중심으로 생존한 전력들이 속속 집결한다. [[엘자 스칼렛]]에게 지금 상황이 전모를 들은 [[마카로프 드레아]]는 병력을 모아놓고 절망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체가 지상에서 날뛰고 있고, 대항할 수단인 멸룡마도사들은 모두 시간의 틈새로 끌려가 버렸다고. 그들에게 은 방법은 없다.
          루시의 작전에선 그 잠깐이 필요하다. 그녀가 진짜로 노리는건 어떤 마법을 명중시키는 것이다. 아크놀로기아에게 통할지도 모르는 마법. 그녀는 곧 레비와 [[프리드 저스틴]]을 데리고 길드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은 사람들은 할지온으로 이동할 팀과 아크놀로기아를 할지온으로 유인할 팀으로 나눈다. 그런데 할지온에 모일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페어리 테일 멤버여야 한다. 그래야만 아크놀로기아가 유일하게 부수지 못했던 그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다. 천랑섬에서 페어리 테일 일행을 구했던 "페어리 스피어"를 말이다.
          * [[미네르바 올랜드]]와 세이버투스, 오라시온 세이스의 멤버들은 아크놀로기아를 할지온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매그놀리아에 아있다. 문제는 정말 저 무시무시한 존재를 유인해가는게 가능하냐는 건데. [[유키노 아그리아]]는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 페어리 테일/542화 . . . . 3회 일치
          * 스팅과 로그도 같은 의견이었다. 마룡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동료들을 볼 낯이 없다, 그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쓰러질 순 없다. 세이버투스 길드원들은 오라시온 세이스의 바톤을 받아서 같은 방식으로 하루지온까지 마룡을 유도했다. 이제 얼마 지 않았다. 은 거리는 프록시와 렉터의 도움을 받은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하늘을 날아서 단숨에 끌어들인다.
          * 미네르바와 유키노가 안전하게 하루지온에 안착한다. 엘자가 그녀들을 반긴다. 둘은 아크놀로기아가 마력을 쫓는 습성이 있다고 알리곤 힘이 다해 쓰러진다. 엘자는 뒤는 자신들에게 맡기라며 둘을 피신시키는데. 그때 아크놀로기아가 또다시 이터널 플레어를 준비한다. 길다트의 경고로 모두가 몸을 납짝하게 업드리지만, 아크놀로기아가 노리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이터널 플레어가 항만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항구에 있던 배라는 배는 전부 파괴되어 한 척도 지 않는다.
  • 페어리 테일/543화 . . . . 3회 일치
          >이 세상에 드래곤은 한 마리도 겨둬선 안 된다.
          아크놀로기아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고 나츠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걸 재미있는 농담 취급한다. 아크놀로기아가 는 이상 용이 한 마리 는 셈이다. 어쨌든 그도 멸룡마도사이자 드래곤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긴 건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 마룡이 입을 다문다. 나츠는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팩트를 던진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것. 모든 멸룡마도사들, 아크놀로기아 조차도 그저 드래곤의 힘을 받은 인간일 뿐이지 "자만"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진짜 드래곤"들은 강하고 품위있으며 "상냥하다"고 말한다. 시종 여유로운 웃음을 띄었던 아크놀로기아가 이를 간다. "드래곤은 상냥하다"는 말이 그의 성질을 긁었다. 그가 아는 드래곤은 모든 걸 빼앗는 존재다. 그의 가족을 먹어치웠고 마을을 불 살랐고, 어린 소녀까지 잔인하게 죽였다. 그게 아크놀로기아가 멸룡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 포항시 . . . . 3회 일치
         === [[구 (포항시)|구]] ===
         구 계''' || || 393.02 || 246,637 || 101,853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3회 일치
         소위 '나쁜 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취향. 하지만 하이브리스토필리아로 진단될 정도의 나쁜 자는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정말로 도저히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악질 흉악 범죄자일수록 하이브리스토필리아가 성행한다.
          * 일반적으로는 전혀 인기가 없었고 여성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성이라도,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이 사실이 보도되면 엄청난 팬레터를 받는 기묘한 일도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옥중결혼]]을 올리고, 배우자가 임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하이큐!!/등장인물 . . . . 3회 일치
         자 배구부와 다른 체육관을 사용한다. 제 1체육관을 농구부와 코트를 반으로 나누어 쓰고 있는 중.
          예정표를 건내주러 사와무라를 찾아왔을 때 첫 등장. 인터하이 여자 배구 대회에서 1회전 탈락했다. 자 배구부의 주장 사와무라와 자주 대화한다. 은근히 사와무라를 신경쓰여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150화에서 제대로 플래그를 꽂았다. 시라토리자와와의 결승전을 앞둔 다이치에게 찾아가 결승 힘내라며 잔뜩 빨개진 얼굴로 오마모리(부적)을 전해주었다.
          츠키시마의 형이자 카라스노 고교 졸업생. 츠키시마가 부활동에 청춘을 거는 사람들을 껄끄러워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자세한 것은 [츠키시마 케이] 항목 참조. 현재는 센다이 시에서 근무하며 사회인 팀에 소속되어 있다. 11권 이후부터는 츠키시마와의 관계가 많이 회복되어 예전만큼 형제관계가 쌀쌀맞지는 않은 모양이다. 150화에서 시라토리자와와의 결승전을 치루게 된 카라스노를 응원하러 동생 몰래(...) 경기장에 찾아왔다. 동생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변장까지 해가며 경기장에 일부러 올 만큼 동생을 몰래 굉장히 아끼고 있다.
  • 하이큐/210화 . . . . 3회 일치
          *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이 히나타를 겨놓은걸 가지고 화제로 삼는다.
          * 그냥 돌려보내면 될 일인데 굳이 긴데다 사실 작은 선수에겐 관심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
          *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는데, 훈련에 앞서 전일본 자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는 "일본, 높이와 파워에 무너지다는 말은 옛날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 하이큐/230화 . . . . 3회 일치
          * 여성 멤버 끼리 목욕 중인 시미즈 키요코와 야치 히토카. 히토카는 둘만 있으면 긴장돼서 아무 이야기나 꺼내보는데 시미즈가 항상 검정 스타킹을 신는것에 대해 묻는다. 사실 그건 다리에 은 흉터를 가리기 위한 것. 육상을 했던 시미즈는 주종목이 허들이었는데 심하게 넘어지면서 다리에 흉터가 아버린다.
          히토카는 "훈장"이라며 멋지다고 말해버리는데 곧 쓸데없는 말이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시미즈는 기쁜 말이라며 웃어넘긴다. 시미즈는 중학교 땐 사교적이지 못해 딱히 친한 후배도 없었고 카라스노에 들어온 이후에도 매니저가 안 생겨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건 히토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도 "얼마 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 하이큐/232화 . . . . 3회 일치
          [[야마구치 타다시]]가 그때 짐을 맡고 있었는데 [[나리타 카즈히토]]에게 기면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런 것 같다. 야마구치가 죄송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히나타도 야마구치 탓이 아니라며 시끄럽게 군다. [[타케다 잇테츠]] 고문이 서둘러 역의 분실물 센터로 연락한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사러 가야한다. 그때 [[카게야마 토비오]가 폰은 어디에 뒀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니 그 가방 안에 있었던 것. 서둘러 전화를 해보니 가방을 바꿔간 사람이 받는다. 어린애로 착각해서 바꿔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서 어쩐지 안심이 들었다. "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게 아니다"라는 안도감. 그런 불안과 초조함이 "의 일"이라는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선수들의 노력과 좌절을 보면서 "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 하이큐/263화 . . . . 3회 일치
          * 좋은 유명세는 아니지만, 관중석에서 "빡빡머리"라는 이름으로 타나카가 자주 오르내렸다. 바보 커플 중 자 쪽은 결정적으로 컨디션이 망가지기 전에 타나카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가차없는 말 같지만 여자 쪽은 더 했다. 이미 망했으니 당장 빼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잔인한 것에 가까운데다 현 상황에서는 교체도 어렵다.
          *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벤치는 타나카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멘탈을 믿었다. [[키노시타 히사시]]가 맨 처음 "타나카니까 괜찮다"고 입을 열었다. [[엔노시타 치카라]]도 같은 의견이었다. 시합에서 언제나 튼튼한 타나카. 팀이 어떤 상태이든 팀에 아주었던 건 타나카 뿐이다. 적어도 2학년 중에선. 3학년 [[아즈마네 아사히]] 조차 한 번은 팀을 등진 적이 있고, [[니시노야 유]]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팀을 떠나있었다. 도중에 열정이 식었던 엔노시타나 키노시타, [[나리타 카즈히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도 어찌보면 타나카였다.
          풀리는 날인가 보다. 후위의 니시노야, 사와무라가 미처 닿지 않는다. 그걸 걷어내는건 전위의 [[카게야마 토비오]]. 몸을 뒤로 젖히며 극적으로 받아낸다. 바보 커플은 열세인 시점에 잘도 이런 서브를 쳤다고 말한다. 플레이마다 심장을 졸이는 [[야치 히토카]]가 한숨을 쉰다. 하지만 안도하기엔 멀었다. 세터가 퍼스트 터치를 했으니 다음 수는 뻔하다. 공이 츠키시마에게. 츠키시마가 어디로 보낼까? 답은 뻔하다. 은 전위는 타나카 뿐.
  • 한가빈 . . . . 3회 일치
         |출생지 = [[전라도]] [[장성군]]
         * 2017년 MBC [[밥상 차리는 자]] OST Part 1 “[[인생연습]]”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201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유한대학교 동문]]
  • 한기웅 . . . . 3회 일치
         * 《[[밥상 차리는 자]]》 (2017년, MBC) - 희철 역
         [[분류:1987년 태어]][[분류:2013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일란성 쌍둥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
  • 한복 (1914년) . . . . 3회 일치
         [[1939년]] [[12월 4일]] 부산지방법원 예비판사, [[1940년]] [[5월 31일]]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각각 임명되었으며 [[1942년]] [[3월 25일]]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었다. [[1944년]] [[8월 17일]]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까지 평안도 이사관 겸 평안도 산업부 산업과장을 역임하면서 고등관 5등에 서위되었고 이러한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사법 부문,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분류:1914년 태어]][[분류:199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한승원 (만화가) . . . . 3회 일치
         '''한승원'''(1958년 6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만화가다.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편은 만화가 [[김동화 (만화가)|김동화]]이다. 김동화와 함께 작업하다가 1981년 〈다섯 번째 계절〉로 데뷔하였다.
         | 《노랑방 여자와 파란방 자》 || || 1996년 대원 전2권 ||
         [[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승조 . . . . 3회 일치
         * 《북한의 인성 사상교육:아산재단연구총서 제42집》 (1998)
         * 한승조 외, 북한의 인성 사상교육(아산재단연구총서 제42집) (집문당, 1998)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0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친일파]][[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학자]][[분류:청주 한씨]]
  • 한승혁 (1993년) . . . . 3회 일치
         * [[강중학교]]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강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덕수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한영이 . . . . 3회 일치
         한영이는 이른 나이에 한 [[양반]] 집안의 권 [[진사]]라는 성의 후처로 들어갔다. 권 진사는 중년에 들어 [[천주교]]에 입교 하였는데, [[임종]] 직전에 비상 [[세례]]를 받았고, 부인에게 입교하여 영원히 신자로서 살라는 [[유언]]을 겼다. 한영이는 딸과 함께 입교하였고, 매우 가난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며 독실한 삶을 살았다.
         [[분류:1784년 태어]][[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한요한 . . . . 3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2014년 데뷔]][[분류:자 래퍼]][[분류:호원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한지우(배우) . . . . 3회 일치
         ||<#3D414D> {{{#ffffff '''가족'''}}} ||<(> 동생[* 2017년에 대학을 졸업한 동생이 있다.], 편 ||
  • 한현민(코미디언) . . . . 3회 일치
         [[1981년]] [[11월 10일]], [[전라도]] [[보성군]] 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이 지금 [[현재]] 벌교초등학교 근처에서 [[아이비클럽|교복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기글스가 사실상 해체[* 조영빈이 MBC 개그야로 이적했다.]한 이후에는 [[강성범]]을 쫓아다니는 형사 역할로 등장해서 '''"장 아니고 막낼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상황인즉 강성범이 한현민에게 장난치냐고 묻자 내뱉은 말. 해당 코너에서 한현민은 말을 엉뚱하게 듣고는 언어유희하면서 화를 내는 캐릭터였다. 예로 들면 강성범이 '''"뭔 소릴 하고 자빠졌어?"'''라고 묻자 한현민이 '''"문소리가 집뜰이를 해?"'''라고 응답.]
         [[분류:보성군 출신 인물]][[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81년 출생]]
  • 함중아 . . . . 3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식]][[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함화진 . . . . 3회 일치
         일제 패망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이왕직아악부가 사라지고 함화진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이 결성되었다. 대한국악원은 아악 전통을 고수하던 구 이왕직아악부와는 달리 창악, 기악, 창극, 무용, 농악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음악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 대한국악원이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계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참여파를 형성하면서, 이 단체를 이끈 함화진은 [[로당]] 불법화와 [[좌익]] 세력 색출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려 피검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아악개요》(1915), 《조선악기편》(1933), 《이조악제원류》(1933), 《증보가곡원류》(1938), 《조선음악통론》(1948) 등이 있어 국악 연구에 자주 인용된다. 유고로 《국악50년 회고록》을 겼다.
         [[분류:1884년 태어]][[분류:1948년 죽음]][[분류:양근 함씨]][[분류:일제 강점기의 국악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
  • 허민호 . . . . 3회 일치
         '''허민호''' (1990년 3월 1일 ~ )는 [[대한민국]]의 [[트라이애슬론]] 선수이다. 그는 [[2012년 하계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자 개인 종합에서 활약했다.<ref>{{웹 인용|제목=허민호 올림픽 성적|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he/heo-min-ho-1.html|확인날짜=2012년 8월 7일|work=sports-reference.com|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1217065439/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he/heo-min-ho-1.html|보존날짜=2012년 12월 17일}}</ref>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트라이애슬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트라이애슬론 참가 선수]]
  • 현동완 . . . . 3회 일치
         서울 출신. 1917년 조선중앙[[YMCA]] 학관을 졸업했고, 1918년부터 YMCA 간사가 되어 소년부와 체육부 간사, YMCA 연맹 주임간사, 영창학교(英彰․Y학관) 교장, 그리고 서울 YMCA 총무를 지내는 등 거의 전 생애를 YMCA와 더불어 산 YMCA맨이다. [[1920년]] [[3월 30일]] 현동완은 농구 선수 겸 감독원으로서 반하트와 함께 일본 도쿄 원정을 떠났다. YMCA 농구팀은 최초의 해외 원정 경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겼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YMCA가 폐쇄 상태에 있었던 시기나 8.15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으로 인한 회관 상실, 부산 피난과 환도 이후의 혼란기에 YMCA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와 부녀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주력했다. [[1952년]]에는 삼동부녀회관(三同婦女會館)을 설립하여 전쟁 미망인과 윤락 여성을 구호하였고 [[1953년]]에는 100만평이 넘는 [[난지도]]를 사들여 '보이즈 타운'이라고 불린 [[삼동소년촌]](三同少年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가 양육하였다. 소년들이 시장(市長)을 뽑고 자체 은행권을 발행하는 등 유토피아적인 소년 자치도시였다. 난지도의 소년들은 1969년 물난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YMCA 사업의 하나로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보건사회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YMCA 총무이자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쟁고아 구호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3년]] [[10월 25일]] 삼동소년촌에서 고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일제강점기 YMCA 산악회원을 이끌고 백두산 정상에 등정했다. 1949 ~ 1954년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했다. [[브라질]], [[멕시코]] 등 미 각국을 순방하면서 이민 사업을 추진했다.
         [[분류:1899년 태어]][[분류:1963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현제명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음악가, 성악가(테너), 작곡가. 1902년 12월 8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산동(現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산동) 출신.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아호는 현석(玄石)이다. 그리고, [[친일반민족행위자]]다.
         대구 대국민학교와 [[계성고등학교|계성학교]]를 다녔고, 대구에 있는 제일교회에 들어가 교회 성가대에 입대하여 음악단원이 되었다. 이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음악 교육을 받았고 1923년에 졸업한 후 [[전라북도]] [[전주시|전주]]에서 신흥학교의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 홍가람 . . . . 3회 일치
         ** 〈불편한 복씨〉 의사 역
         * 2013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자 우수상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개그야]][[분류:하땅사]][[분류:개그공화국]][[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홍금주 . . . . 3회 일치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태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분류:1804년 태어]][[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홍예서 . . . . 3회 일치
         * 《[[우리집에 사는 자]]》 (2016년, KBS2)
         * 《[[응급녀]]》 (2014년, tvN) - 윤성자 역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예슬 . . . . 3회 일치
         2017년 3월 25일 8살 연상 회사원 성과 결혼하였다.<ref>물론 개그콘서트 동료 개그맨 송왕호도 같은 날에 결혼한다.</ref> 같은 해 12월 8일에 아들을 출산하였다.
         **〈자가 필요없는 이유〉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0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인덕대학 동문]][[분류:연서중학교 동문]][[분류:선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3회 일치
          * 카나가와 현 : 여자 화장실에 하나코 씨, 자 화장실에 요스케 씨가 있으며, 부르고 나서 3초 이내에 도망가지 않으면 살해당한다.
          * 효고 현 : 여자 화장실 1번째 칸에 하나코 씨의 아버지--아버지 왜--, 2번째 칸에는 어머니, 3번째 칸에는 하나코 씨, 4번째 칸에는 여동생, 5번째 칸에는 동생이 있으며, 자 화장실 2번째 칸에는 할아버지가 있고--할아버지만 왜--, 이 유령들에게 말을 걸면 "우리 하나코에게 무슨 용무냐?"라고 말한다.--친절함--
  • 황동주(배우) . . . . 3회 일치
         [[대한민국]]의 ~~찌질 전문~~ [[배우]]. [[본명]]은 황광현.
          * 2012년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 - 가짜 귀이 역(특별출연)
         [[분류:한국 배우]] [[분류:1974년 출생]] [[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 [[분류:1996년 데뷔]] [[분류:가평군 출신 인물]]
  • 황성관 . . . . 3회 일치
         * [[영대학교]]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분류:영대학교 동문]]
  • 황종률 (정치인) . . . . 3회 일치
         |저자=창룡
         |후임자 = [[덕우]]
         [[분류:1909년 태어]][[분류:1972년 죽음]][[분류:만주국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재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충청북도지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규슈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평해 황씨]]
  • 후카다 쿄코 . . . . 3회 일치
         동명이인[[김주 (배우)|주]]
         배우자를모르는상태에서 아기를출산했다 딸 [[김주]]가태어났다
  • 3월의 라이온/125화 . . . . 2회 일치
          * 스미스는 이 대국이 "이상하게 인상에 는 승부 100선"에 들어가고 는다고 평한다.
  • 3월의 라이온/128화 . . . . 2회 일치
          * 여름축제 때 시마다가 아카리를 잡아주다 손자국을 낸게 아직도 아있는데, 그 얘기로 가게는 화기애애해진다.
          * 언제나 을 위해 뛰어다니고 땀에 흠뻑 젖어서 생글 생글 웃던 그녀와 가게에 있는 그녀는 너무 다르다.
  • Crusader Kings 2 . . . . 2회 일치
         비잔티움쪽은 안습하기 짝이 없는데, 우선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5세가 성상파괴주의자이어서[* 게임 시스템상 성상파괴주의는 정교회의 이단으로 취급된다] 종교권위가 개판이라 반란이 넘쳐나고, 불가리아와 아바스가 영토를 노리고 침공해오는 경우도 잦아 살아기 힘들다. ~~몇안되는 비잔티움의 양심 시나리오~~
          * 음모력: 음습한 짓거리에 관한 능력치. 이 능력치가 높으면 암살 시도에서 살아을 확률이 증가한다. 20을 넘어가면 중세의 [[피델 카스트로]]가 될 수 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2회 일치
          * Kijiro Nambu(부 키지로)
          * Nambu Arms Manufacturing Company(부 무기제조회사)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2회 일치
         난이도는 상당히 쉽다. 실제역사대로라면 조선이 만주를 먹는 즉시 명나라에서 견제가 들어오겠지만 이게임에서는 그런게 없다보니(...) 초반애 훈춘(hunchun)이나 헤투 알라(Hetu Ala)정복 미션을 받고 만주를 먹고난뒤, 지린에 클레임을 걸고 먹어둬서 지린노드를 장악하면 된다. 다만, 예전에는 조선과 명에 역사적 친구 보정이 있어서 명과 동맹을 걸고 편하게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을 집어삼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보정이 삭제되어 명과의 관계도를 미리미리 올려둬서 침공의 가능성을 줄여둬야 할것이다. 결국 조선의 난이도는 명이 얼마나 빨리 갈라지느냐에 있다. 명이 초반에 천명이 터져서 조각조각 갈라진다면 게임은 굉장히 쉬워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고달픈 난이도가 될것이다.
  • JOY축제 . . . . 2회 일치
         2003년 5월 18일, JOY 라는 여성은 편 HIDE와 동생 부부와 함께 [[술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이 때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갔으며, 아이들은 술집 안을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그걸 가게의 어떤 사람이 "부모의 훈육이 나쁘다."고 발언하고, 딸이 그 사실을 JOY와 HIDE 부부에게 말하자 분노한 HIDE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점원들을 추궁하고, 색출해내서 점원에게 [[폭력]]을 휘두른 다음 가게 점장에게도 소리를 쳤다…라는 내용의 일기를 올렸다.
         그리고 JOY가 자신의 일기에 [[자전거]]를 탄 소년과 [[교통사고]]를 냈으나 오히려 자신보다 소년이 나쁘다고 주장하거나, 편의 회사에 이름만으로 임원으로 올라가서 [[전업주부]]이지만 월급을 받는 상태이거나, 전업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보육원]]에 아이를 집어넣는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2회 일치
         [[오프사이드]]를 제외하고도 양 팀 합계 반칙이 43개나 나올만큼 승강이 갖는 '''생존'''이란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경기 중 하나로 게 되었다.
         2014 시즌 승강 PO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기록을 기게 되었는데,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 MC메타 . . . . 2회 일치
         MC메타는 [[대한민국]]의 [[힙합]] MC이며, 현재 [[가리온(가수)|가리온]]에 속해있다. 2012년 4월 유부 대열에 합류했다.
         고등학교는 녀공학을 나왔는데, 별로 인기 없던 친구가 소풍때 기타를 치니까 여자애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Rock음악을 했다고 한다. 힙합은 방송 [[AFKN]]에서 처음 접했다고..
  • MoniWikiOptions . . . . 2회 일치
          * 간단한 referer_log 기기 여부 결정. 옵션값을 1로 변경하면 ./data/cache/referer에 기록이 는다.
  • That 70's show . . . . 2회 일치
         중간 시즌 쯤에서 재키와 사귀게 됐으나, 재키가 시카고로 떠나고 켈소와 얽히는 일이 생기면서 깨지고 만다. 하이드는 한동안 라스베가스에서 방황하다가 돌아오는데, 라스베가스의 스트리퍼 사만다가 하이드와 결혼했다면서 쫓아오면서 재키와 완전히 깨진다(…). 게다가 사만다는 나중 시즌에서 다른 자하고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는 것이 드러나서 또 헤어지게 되고, 8시즌에는 특별히 커플 라인이 없다.
         리사 로빈 켈리는 알콜중독 등 사생활 문제로 5시즌에서 하차. 6시즌 부터는 배우가 크리스티나 무어로 바뀌면서 뭔가 위화감 넘치게 된다. 8시즌에서는 [[캐나다]]로 갔다는 언급만 기고 그나마 나오지도 않는다.
  • USS 뷰캐넌 . . . . 2회 일치
         미국 메인 주에 위치한 배스 철공소(Bath Iron Works)에서 건조. 1919년 1월 20일,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찰스타운 해군기지에서 취역하였다. 함명의 유래는 미 해군 제독 프랭클린 뷰캐넌(Franklin Buchanan)으로,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가했으며, [[북전쟁]]에서 부 소속으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 Victoria II/디시전 . . . . 2회 일치
          * '''Ahmedabad(아마다바드), Bombay(봄베이), Chittagong(치타공), Coimbatore(코임바토르), Delhi(델리), Lahore(라호르), Vizagapatnam(비자가파트)''' 프로빈스를 소유
         ==== The South German Confederation(독일연방) ====
  • 강예빈 . . . . 2회 일치
         * 《절대자》 (2011년, XTM)
         [[분류:200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주시 출신]][[분류:강씨]]
  • 강은탁 . . . . 2회 일치
         rkddmsx[[분류:한국 배우]][[분류:1982년 출생]][[분류:횡성군 출신 인물]][[분류:2001년 데뷔]]
         || '''출생''' ||[[1982년]] [[8월 16일]] ([age(1982-08-16)]세),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수로)||
  • 거타지 . . . . 2회 일치
         [[진성 여왕]] 때 왕자인 [[양패]]가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성 여왕은 백제의 해적을 염려하여 활 잘 쏘는 사람 50명을 함께 보냈는데, 거타지도 그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배가 한 섬에 이르렀을 때 풍랑을 만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 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사람 1명을 섬에 겨두고 가면 풍랑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이에 거타지가 혼자 아 있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자기 아들을 죽인 중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거타지가 중을 처치하자, 노인은 자기 딸과 결혼해 주기를 바랐다. 노인은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었다. 거타지는 당으로 가서 양패 일행을 만나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품고 온 꽃을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고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1화 . . . . 2회 일치
          * 봄바는 UMR 상태의 우마루를 자애인줄 안다--가지가지한다--
          * 자로 착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초기에 비하면 우마루의 가슴이 줄어들고 있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6화 . . . . 2회 일치
          * 실핀은 어렸을 적 폭우가 쏟아지던 날 어머니가 늦게 와서 유치원에 혼자 아있던 적이 있다.
          * 실핀은 비가 오면 어렸을 적 비오는 날 혼자 유치원에 아 있던 일이 생각난다고 고백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7화 . . . . 2회 일치
          * 키리에는 예전에는 사이좋은 매였지만 자라면서 사이가 틀어졌다고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 개중 평범한 매 에피소드.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8화 . . . . 2회 일치
          * 또 도마 매 집에 늘어져 있는 히카리.
          * 히카리는 "오빠는 무엇이든 언니를 능가한다"며 칭찬하는데 타이헤이는 겸양하며 "그때 카나우는 열심히 만들었고 그래서 기억에 았을 것"이라고 두둔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7화 . . . . 2회 일치
          * 이상한 자 말고 도마 타이헤이 같이 건실한 자가 있는 대학을 추천해 달라고 말한다.
  • 건포인트 . . . . 2회 일치
          루크 파이어암즈의 분석가. 루크의 의뢰에 따라 델가도 살인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전부 지우면 연락해온다. 루크의 편인 잭슨이 델가도 살인 현장에서 그녀를 보았다고 증언하며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거기 없었다는 증거를 대려고 해도 누가 현장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워버려서 증거도 없는 상황. 콘웨이에게 잭슨의 사무실로 잠입해 단서를 찾아낼 것을 의뢰한다.
          루크의 편. 따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델가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 중 하나. 살인 현장에서 콜린스를 봤다고 말해 그녀가 유력 용의자가 되게 만들었다.
  • 경관 . . . . 2회 일치
         진서 선제기에서 사마의가 [[공손연]]을 물리치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 나이 15세 이상의 자 7천명을 [[학살]]하여 경관에 묻었다고 한다.
         진서 선제기에서 사마의가 [[공손연]]을 물리치고 경관을 만들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때 나이 15세 이상의 자 7천명을 [[학살]]하여 경관에 묻었다고 한다.
  • 고다이고 덴노 . . . . 2회 일치
         여러 차례 음모를 저지른 끝에 한 때 폐위되었으나, 유배되었던 낙도에서 탈출하고 전국의 [[사무라이]]들을 선동하는데 성공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덴노가 직접 지배하는 [[겐무 신정]]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본인도 귀족들도 무능하였기 때문에 정치가 완전히 개판으로 돌아갔고 보다못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막부]]를 다시 열어서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었고 본인은 다시 폐위된다. 하지만 또 탈출했으며 나라를 말아먹은 주제에 끝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일본 조|조]] 정권을 세워서 끈질기게 발악하며 국가를 혼란에 몰아넣었다.
  • 고아성 . . . . 2회 일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선녀 홍보모델 위촉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고원희 . . . . 2회 일치
         * 2012년 [[니모 (가수)|니모]] - 그런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11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제주 고씨]]
  • 고준희 . . . . 2회 일치
         | 《[[일년에 열두자]]》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1년 데뷔]][[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곤조야키 . . . . 2회 일치
         주로 불량배들이 자신의 근성(인내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벌인 행위이다. 주로 선배가 후배의 손목이나 손등에 담배불을 꺼서 후배의 근성과 충성을 얻는 행위였다. 동료의식을 높이고, 집단에 귀속의식을 높이는 목적으로 행해진다. 곤죠야키를 하면 화상 흉터가 눈에 뛰게 게 되는데, 불량배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흉터는 하나의 훈장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 트위터에서 실수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성기에 해버렸다(…)는 사람이 있다.[[https://togetter.com/li/979577 (참조)]]
  • 구미시 . . . . 2회 일치
         대동여지도의 선산부·인동현 지역. 서측(좌)으로 지금의 김천시의 일부인 개령현이 보이며, 쪽으로 금오산성을 나타내는 금오(金烏)라는 글자가 보인다. 선산부 옆으로 노란 점이 바로 역참 구미(龜尾)를 말한다.
         선주원동''' || 善州元南洞 || 28.12 || 32,108
  • 권성욱 . . . . 2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1998년]] [[2월]] [[부산광역시]]와 [[경상도]]의 지역방송국인 PSB 부산방송(현재 [[KNN]])으로 입사하여 아나운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주로 프로야구 중계를 많이 담당하였다. [[2001년]]부터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로 소속을 옮겨 [[2013년]]까지 [[KBO 리그]], [[KBL 리그]] 농구 중계를 담당하였다.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때는 일부 필드경기 및 시상식 장내해설을 맡은 바 있다. [[2014년]]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는데, 2015년 5월 2일과 10월 21일 2경기 마이크를 잡았으며, 2016년 4월 1일,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0년 태어]][[분류:KNN의 아나운서]][[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
  • 권영해 (1888년) . . . . 2회 일치
         '''권영해'''(權永海, [[1888년]] [[8월 12일]] ~ [[1949년]] [[6월 23일]])는 [[대한민국]]의 [[한국의 독립 운동|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號)는 산(山南)이다.
         [[분류:1888년 태어]][[분류:1949년 죽음]][[분류:안동 권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한국독립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금잔디 . . . . 2회 일치
         == [[꽃보다 자(2009년 드라마)|꽃보다 자]]의 등장인물 ==
  • 기간트 . . . . 2회 일치
         원래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에서 플라잉 머신이 추락하면서 죽은 줄 알았던 레프카는 살아은 상태였다. 이들은 기간트의 격납고에 숨어있었다가 [[삼각탑]]의 주조종실을 기습해서 기간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지하 격납고의 문을 열고 기간트를 출격시킨다. 이때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작중 등장한 다른 비행체는 물론 어떠한 무기와 견주어도 대단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작중 시대에서는 정상적인 교전에서 대등하다고 볼 존재가 없으며,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한 존재다. 그렇기에 레프카는 기간트를 부활시켜 세상을 지배하는데 쓰려 했다. 그러나 이런 기간트조차도 코난과 그의 친구들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최후에는 코난이 탑승하게 된 탈출용 부분 외에는 바다에 추락한 후 대폭발한다. 이 과정에서 레프카와 심복들은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걸 봐도 이들이 도저히 살아을 수 없었다. 불타던 기간트가 바다로 추락할 당시 엄청난 파도와 그 압력을 봐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거니와 그 거리에서 떨어진 충격을 봐도. 게다가 마지막에 바다로 추락하며 기간트가 터진 위력은 거의 핵폭발급이었다.
  • 기은세 . . . . 2회 일치
         | 배우자 = 12세 연상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석대학교 동문]]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그 뒤 타 부대로 옮겨 져서 은 군생활을 했었다가 2013년 10월 23일 제대했다.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분류:프라임 (e스포츠)의 선수]][[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김규철(배우) . . . . 2회 일치
          * 2009년 KBS 연기대상 특집 문학관 자 단막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60년 출생]][[분류:영월군 출신 인물]]
  • 김민아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2010년]] : [[MBC]] 《[[야구 읽어주는 자]]》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아나운서]]
  • 김병준 (희극인) . . . . 2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2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대학교 동문]]
  • 김봉근(배우) . . . . 2회 일치
         * 《[[목욕탕집 자들]]》([[KBS]])
         [[분류:한국 배우]][[분류:김포시 출신 인물]]
  • 김상희 (1951년) . . . . 2회 일치
         |후임자 = [[이귀]]<br>(직무대리)
         [[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석형 (역사학자) . . . . 2회 일치
         김석형은 1963년에 발표한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라는 논문과 이 논문을 보완하여 1966년에 발표한 《초기조일관계사》라는 저서에서 칠지도가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바쳤다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오히려 백제 왕이 일본 천황에게 하사했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의 삼국분국설은 현재 많은 부분이 수정되거나 파기되었지만, 백제 왕이 칠지도를 하사한 것이라는 학설은 북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당시 유물의 상감 기법 등으로 제작 연대가 6세기로 추정되며 가지가 실제로는 7개가 아닌 6개라는 등 칠지도를 《[[일본서기]]》의 내용에 맞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분류:1915년 태어]][[분류:199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수]][[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
  • 김성곤 (1913년) . . . . 2회 일치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백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분류:1913년 태어]][[분류:1975년 죽음]][[분류:김해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7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8대 국회의원]]
  • 김성조 . . . . 2회 일치
         || '''학력''' || [[영대학교]] 화학공학 학사[br][[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br][[금오공과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1958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대륜고등학교]], [[영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동양전자화학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 김성주 (기업인) . . . . 2회 일치
         김성주는 MCM을 글로벌하게 키워냈으며 직설적이고 튀는 발언을 많이 하는 캐릭터로도 알려져 있다. 2014년 제주 BPW(Business & Professional Women) Congress에서 '글로벌 여성 지도자 상' 수상 당시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더이상 권리가 아닌 의무"라며 "세월호 사태도 기득권 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며 여성들은 더이상 이런 사태를 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장관의 1/3은 여성으로 채워져야만 한다"고 말하는 등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 김성주(축구선수) . . . . 2회 일치
         5월 10일 [[경 FC]]와의 리그 원정경기에서 93분 타라바이와 교체되며 투입되지만 공 한번 못잡아보고 경기가 종료.. 팀은 3:2 역전승을 거두고 2연승에 성공했다.
         7월 12일 [[경 FC]]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전반 초반 선취골을 넣었으나 곧바로 동점골을 실점한 이후 양팀 키퍼들의 동반 선방쇼로 서로 수많은 찬스들을 놓치면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김영광(축구선수)|김영광]]이 MOM 선정. 10승 5무 5패, 리그 3위 유지.
  • 김수학 (법조인) . . . . 2회 일치
         |자녀 = 11녀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우동 . . . . 2회 일치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후기 대구은행(현 [[DGB금융지주]] 산하 [[대구은행]]과는 별개)에 근무하였다. 대구은행이 경은행(역시 [[BNK금융지주]] 산하 현 [[경은행]]과는 별개)과 합병하여 1928년 경상합동은행이 되자 계속 경상합동은행에 근무하였다.
  • 김운용 . . . . 2회 일치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분류:1931년 태어]][[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김유미(1979) . . . . 2회 일치
         || '''가족''' ||<(> 2 1녀 중 막내[br]배우자 [[승리(빅뱅)]], 슬하 1녀 ||
         || 2006 || SBS || 독신천하 || 정완 ||
  • 김정재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자이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직 포항시장 출신인 친여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경북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심지어 20대 총선 기준 영권의 유일한 여성 국회의원이다.] 같은 해 5월 8일 [[김명연]]([[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갑)과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에 임명되었다.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 하에서도 유임되었다.
  • 김정혁 . . . . 2회 일치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식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감독님 한번 좀 써 봅시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2011 시즌에 최종적으로 2군 부리그 타율 1위('''0.418'''), 최다 안타 1위(102개), 최다 3루타 1위(6개), 타점 3위(57타점), 득점 3위(58득점) 등을 기록했다. 또한 71경기에 출장했는데 멀티 히트를 친 경기가 무려 30경기.
  • 김주환(탤런트) . . . . 2회 일치
         단역 - 낚시터
         단역 - 차력 혐오 녀 2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김민철]] 또한 강력한 수비력으로 '김민철벽'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의 명경기를 보이며 조형근과 김준영에 이은 얼마 안은 운영형 저그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웅진 스타즈의 선수]]
  • 김지혜(1980) . . . . 2회 일치
         * 1998 [[자 셋 여자 셋]]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아이돌 가수]][[분류:199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양평군 출신 인물]][[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양수초등학교 동문]][[분류:양수중학교 동문]][[분류:양서고등학교 동문]]
  • 김천시 . . . . 2회 일치
         면 (김천시)''' || 南面 || 1,718 || 3,516 || 70.58
         평화산동''' || 平和南山洞 || 4,528 || 9,117 || 2.27
  • 김청(1962년 6월) . . . . 2회 일치
         ||<#878787> '''{{{#EEE156 가족}}}''' ||<(> [[무독녀]], [[어머니]] 김도이 ||
          * [[애인있어요(드라마)|애인있어요]] - 김규
  • 김희정 (펜싱선수) . . . . 2회 일치
         | 소속팀 = 금산군청<br/>충계룡출장소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혜여자중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목원대학교 동문]]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2회 일치
         독일군 장성들은 마음껏 자신들의 지휘관으로서 전문적 식견, 군사 기술을 칭송하고, 독일군 장병의 용기와 인내심을 강조했다. 모든 전쟁 범죄의 책임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돌렸고, 독일 국방군은 "'''어쩔 수 없이''' 나치스에 용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범죄를 반대하고 억제했다'''."는 자기 변호를 '역사 기록'으로 만들어냈다.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영향은 [[소련군]]에 대한 폄하로도 나타난다. 독일군 장성들은 패전 이후에도 슬라브인을 멸시하는 인종주의를 버리지 못하여,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단지 물량을 바탕으로 한 막무가내 [[우랴돌격]]에만 의존한 군대였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같은 관점을 전쟁사 계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소련군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점이 오랫동안 독소전쟁 역사에서 뿌리깊게 게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 측 역시 실증이 될만한 자료 공개를 하지 않고 [[프로파간다]]에만 집중하여 냉전이 끝날 때까지는 이런 관점이 오랫동안 바로잡히지 못하였다.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황산탈륨]]을 [[쥬스]]에 넣어서 동급생 학생을 살해하려 했다. 이 학생은 거의 실명에 이를 뻔 했으나 원인 불명의 건강 이상으로 처리되었다. 교내에서는 범행을 의심하는 소문이 퍼졌고, 병원에서도 학교 측에 특수한 약물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통보했으나, 학교에서는 입시철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요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안이하게 처리하였다.
  • 나다카 타츠오 . . . . 2회 일치
         [[일본]]의 [[연예인]]. 성. [[모델]] 출신의 배우. 생년월일 1951년 2월 9일. A형. 쿄토 출신. [[왼손잡이]].
         아내와는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소개해줘서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게 자 친구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설득하여 맺어지게 되었다. 아내와 생일이 같으며, 생일에 청혼을 했다. 아내는 결혼 초기에는 요리가 서툴렀지만 점차 향상되었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2화 . . . . 2회 일치
          * 바위를 떨어뜨렸던 바쿠고는 올마이트를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조심해라"는 말을 기고 돌아선다.
          * 작년 추천 입시에서 톱의 성적으로 거두고도 입학을 사퇴했던 뜻모를 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2회 일치
          * 학생 쪽은 사람을 점토처럼 뭉개놓은 것이나 등 뒤에서 나타난 손가락을 보면 점토 따위를 생성하는 특기가 아닌가 추측된다.
          * 학생은 모자를 쓰는게 자기들의 의무라고 말하는데, 정작 여학생은 모자는 커녕 전신 탈의로 시험장을 활보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0화 . . . . 2회 일치
          * 바쿠고는 자신도 올마이트처럼 강해지고 싶었지만 약했기 때문에 그를 그런 모습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올마이트는 자신은 어차피 얼마 지 않았고 그 일이 없었어도 이렇게 됐을 거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다시 한 번 바쿠고는 강하다고 말하며 단지 자신이 그 강함에 매달려서 부담을 준거라고 말한다.
          * 올마이트는 긴 히어로 생활 끝에 정립한 자신의 지론을 밝힌다. 히어로는 바쿠고처럼 승리를 열망하는 마음과 미도리야처럼 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 모두가 필요하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결여된다면 자신의 정의를 관철할 수 없다.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마음을 두려워한 바쿠고의 속내와 바쿠고를 동경했던 미도리야의 속내가 드러난 지금이라면 각자 깨달았을 거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2회 일치
          [[토가 히미코]]는 극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Mr. 컴프레스]]는 "넌 중졸이라 모른다"고 은근히 디스하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원래 야쿠자들은 뒷세계를 기반으로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지만 "히어로"들이 보편화되고 특히 [[올마이트]]가 나타나면서 철저하게 분쇄되었다. 지금은 잔존세력만 은 정도인데, 그 조차도 "예비 빌런"으로 취급돼서 경찰과 히어로들의 감시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오버홀은 이런 설명도 틀린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오버홀과 부하들은 그 판단이 현명하다고 칭찬하며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시가라키 앞으로 명함을 한 장 기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2회 일치
          >'''자답지 않아!'''
          >강한 자가... 되고 싶었어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2회 일치
          >나는 경화의 자!
          * 잠시 뒤. 패트껌과 키리시마는 큰 길로 돌아와 [[아마지키 타마키]]와 합류한다. 패트껌은 경찰과 협력해 약물사범들만 집던 경험도 있어서 금방 종류를 구분한다. 개성을 파워업시키는 약물. 일본에선 금지된 종류로 효과가 짧은 걸 보면 아시아산이다. 미제는 좀 더 길어서 1, 2시간은 간다고. 곧 경찰 측에서 타마키를 저격한 총에 대한 분석 결과도 가져온다. 총은 빌런이 칼날로 조각내 버렸고 총알은 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총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경찰은 좀 더 조사해 보겠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5화 . . . . 2회 일치
          * 아직 해야 할 일이 아있었다. 그는 어제 괴한을 만났던 여학생들을 찾아나섰다. 그녀들을 찾아낸 키리시마는 "그때 둘을 보고도 쫄아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아무 것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사과했다. 허리가 90도로 꺾어지는 정중한 사과였다. 사실 사과를 받는 쪽에서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두 여학생은 괜찮다고, 보통 무서운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입할 수 있는 미나가 굉장한 경우다. 마침 미나도 그 옆에 있었다. 그녀도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였지만 묘한 인상을 주는 키리시마를 눈여겨 보았다.
          키리시마는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듣고 "그래서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미나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며 느닷없이 난타한다. 딱히 아픈 건 아니지만 당황하는 키리시마. 미나가 하고 싶은 말은 "어두운 얼굴인 채론 결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키리시마 안에서 그때 일이 극복되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안 그러면 고교데뷔이라 소문내고 다닐 거라면서. 키리시마는 감사와 미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미안"이라 대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2회 일치
          미도리야는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올마이트]]의 전언을 전한다. 꼭 살겠다고, 나이트아이를 볼 낯이 없다는 말을. 미도리야는 꼭 셋이서 만나자며 힘내라고 격려한다. 나이트아이는 실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긴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 11명은 구속, 전원 중상이라 타코다나의 빌런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호송 차량은 이들과 이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 문제의 탄환들과 아직 보고에 없는 캡슐을 전부 싣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렇게 작전은 끝나는 듯 했지만, 한 가지 사건이 아있었다. [[빌런 연합]]과 [[시가라키 토무라]]. 그가 호송차량을 급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2화 . . . . 2회 일치
          * 전이되기 직전 바쿠고는 미도리야에게 "오지마라"는 말을 기고 사라진다.
          * 불을 사용하는 것, 토도로키를 알고 있고 떡밥맛 나는 멘트를 기고 퇴각하는걸 보면 토도로키의 아치에너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3화 . . . . 2회 일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No. 93. '''타다 은 원 포 올'''
          * 지금 있는건 타다 은 잔해 같은 것. 그래서 쓸 수록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2회 일치
          * 간부는 연합은 실패할 때마다 세력을 늘리고 있다며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게 세력 확대의 여지를 길 수 있는지 의문시한다.
          * 그랜토리노는 그녀의 가족사를 간략하게 이야기하는데, 그녀의 편은 살해당했다 한다.
  • 남상태 . . . . 2회 일치
         '''상태'''([[1950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 ~ )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네드 켈리 . . . . 2회 일치
         1855년, 빅토리아 주 베버리지에서 [[아일랜드]] 출신 부부의 장으로 태어났다. 10대 중후반 때부터 중국인을 습격하거나 산적의 공범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지만, 두 경우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네드 켈리는 제릴더리(Jerilderie)의 은행을 털며 편지 하나를 겼다. "제릴더리 편지[* Jerilderie Letter]"라고 불리는 이 편지는 1870년부터의 켈리 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당시 호주의 경찰이 부패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 편지는 경매에 나와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 사들였다. [[http://search.slv.vic.gov.au/primo_library/libweb/action/dlDisplay.do?vid=MAIN&search_scope=default_scope&docId=SLV_VOYAGER1636991&fn=permalink|전자책으로도 보게 해 주는 것 같으니 관심 있으면 클릭.]] 오른쪽의 View Online을 누르면 된다. 흘려쓴 영문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노영하 . . . . 2회 일치
         * 부인 임명자 씨와 2을 둠.
         [[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1951년 태어]][[분류:교하 노씨]][[분류:중동중학교 동문]][[분류:대동세무고등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한국방송공사]]
  • 노재우 . . . . 2회 일치
         *** 장 : 노호준 (盧昊埈, 1962년 ~ )
         *** 차 : 노성준 (盧星埈, 1964년 ~ )
  • 노현정 . . . . 2회 일치
         '''노현정'''(盧賢貞,<ref>{{저널 인용 |저자= 李根美|날짜= 2006-02|제목= [화제의 인물] 20, 30代 성들의 우상 盧賢貞 KBS 아나운서|url=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602100048|저널= 월간조선|출판사= 월간조선사|권= 311|호= |issn= 1228-2197|확인날짜= 2016-02-08}}</ref> [[1979년]] [[1월 14일]] ~ )은 [[KBS]]의 전 아나운서이다.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니세코이/216화 . . . . 2회 일치
          * 정작 그 그림책은 지금 오노데라에게 있고, 오노데라의 어머니는 "그림책은 에게 받은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치토게가 오노데레에게 줬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 그것은 바로 그때 그 만이 있었던 장소. "텐쿠 고원"이다.
  • 니세코이/223화 . . . . 2회 일치
          * 클로드는 츠구미의 마음을 알고 있다며 아가씨에게 임무 이상의 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런 자에게 빼앗겨도 괜찮은 거냐고 말하기 시작한다.
          * 솔직히 클로드가 츠구미가 자인줄 안다는 떡밥이 아직도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아무래도 좋잖아 그딴거--
  • 니세코이/226화 . . . . 2회 일치
          * 고맙다는 말을 기고 달려가는 이치죠.
          * 마치 조강지처 버리는 불륜처럼 만들어놨다.
  • 니세코이/228화 . . . . 2회 일치
          * 은 네 사람의 일상은 빠르게 흘러간다.
         탈락한 히로인들의 사후관리가 영 좋지 않았고 특히 마리카 팬들은 두 번 세 번 대못질을 당하고 오노데라도 만만치 않은 상황. 전반적으로 혹평이 줄을 잇고 있다. 완결이 1화 은 상황에서 이 모양이라면...
  • 단신부임 . . . . 2회 일치
         가족이 있는 노동자(주로 유부)가 기업의 전근 명령을 받고, 본인 혼자만 임지에 부임하는 취업, 생활 형태이다. 가족이 모두 이동하지 않는 이유로는 아이의 생활(주로 교육)과 주택 보유 등 경제적 문제, 가족의 질병, 출산 같은 이유가 있다.
         단신부임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경제적, 정신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별거 수당이나 귀가 교통비 같은 경제적 원조를 해주는 회사도 있다. 1984년에 단신 부임으로 겨진 처자가 가족동반자살한 사건이 있었으며, 1985년에는 구 국철 간부가 종교적 이유로 단신 부임 명령을 거부하고 퇴직하는 사건이 있어, 단신부임의 문제점이 일본 사회에서 널리 주목받았다.
  • 대구광역시 . . . . 2회 일치
         [[구 (대구광역시)|구]]''' || 南區 || 73,476 || 153,963 || 17.44
  • 대한민국 망명정부 서사모아 설치계획 . . . . 2회 일치
         [[6.25 전쟁]] 때,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서사모아]]에 설치한다는 계획. 당시 사모아는 [[뉴질랜드]]의 신탁통치 하에 있었다.
         한 정부와 60만 혹은 32만 8천명의 주민을 서사모아로 이주시켜서 새로운 한국(New Korea)를 건국한다는 계획이다.
  • 도노 . . . . 2회 일치
         도노라는 말은 아내가 편을 부르는 말이나, 여성어로 성을 높여 부르는 말로도 쓰였다.
  • 디펜더 2 . . . . 2회 일치
         스테이지 모드(단일)와 대결 모드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대결 모드가 플레이어가 사망할때까지 끝나지 않는 무한 전투다. 상대방은 랜덤으로 매치되며 1:1이다. 오래 살아는 쪽이 이기는데, 상대방이 죽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진 않으며 자신이 사망할때까지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다. 우측 상단의 화면으로 상대방의 현황을 볼 수 있으며 몬스터의 출현패턴은 양쪽 다 동일하다. 승리시 살아은 시간에 비례하는 골드와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며 패배해도 경험치나 골드는 받을 수 있지만(죽인 몬스터 수당 1씩 받는다.) 보석은 받지 못하므로 주의.
  • 딴따라 . . . . 2회 일치
         과거 유교적 관습이 아있던 시대에는 연예인이 그리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음악을 팔고 웃음을 파는 직업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수들의 이야기를 보면 노래를 연습하고 있으니 "너 딴따라 될거야?"라면서 부모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20세기 후반 까지도 연예인에게 [[저작권]], [[초상권]] 등의 권리가 제대로 존중되지 않았고 연예계는 [[조폭]]이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벌고 [[가혹행위]]에 시달리는 등 [[3D]] 업중에 가까웠다. 결국 연예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플 수 박에 없었고, 그래서 이런 인식이 부모님 세대에게 뿌리깊이 아 있었다고 보면 된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2회 일치
         인간을 초월한 마력을 가졌으나 인간들의 탄압으로 인해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숲 속으로 내몰리며 쇠퇴의 길을 걷던 마녀들. 그녀들의 본거지 한가운데에 이세계의 자가 떨어져내린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이 호색한(...)은 마녀들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마녀와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데...
          * 유우키 유우미 하인드라 : 하인드라 일족의 일원으로, 주변 사람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안 좋은 과거 때문에 인간(특히 성)을 혐오한다. 주인공에게도 처음엔 죽이겠다고 날뛰다가 해리건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츤데레]] 포지션이 되어가고 있다(...). 바람을 이용한 마법이 특기로, 널빤지를 이용해 날아오르거나 또는 바람칼날로 공격하는 등의 기술을 구사한다.
  • 레스터 길리스 . . . . 2회 일치
         1931년 시카고에서 은행 강도를 벌였다가 체포된 길리스는 졸리엣(Joliet)에 있는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벌였던 또 다른 은행강도의 재판을 받으러 잠시 이송되었는데, 돌아오던 중 탈출해 캘리포니아 주 소살리토(Sausalito)로 도망친다. 그곳으로 도망친 길리스는 존 폴 체이스(John Paul Chase)라는 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지역 갱단원으로 밀주 운반을 돕고 있었다. 길리스는 체이스와 함께 밀주 운반차의 호위를 하게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1934년, 길리스는 아내인 헬렌 길리스(Helen Gillis), 그리고 그의 친구 체이스와 함께 시카고로 가서 딜린저 갱에 들어가 강도짓을 벌인다. 그러다가 4월 말 리틀 보헤미아 산장이라는 곳에서 아내, 다른 갱단원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산장 주인의 신고를 받은 FBI가 들이닥쳤고, 딜린저 갱은 헬레스를 포함한 여자들을 겨두고 탈출한다. 이 과정에서 길리스는 W. 카터 바움(W. Carter Baum) 특별 수사관을 살해한다. 이후로도 길리스를 포함한 딜린저 갱은 활동을 계속한다.
  • 로미오 메일 . . . . 2회 일치
         2채널 용어. 가정, 생활판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자의 경우는 로미오 메일, 여자의 경우는 쥴리엣 메일이라고 부른다. 줄여서 로미 메일, 쥬리 메일.
         이혼, 이별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애인, 편, 아내(「전」도 포함)가 보내 오는 메일을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스스로에게 도취하여, 마치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허세와 도취가 강하게 들어간 문장을 올리고 비웃으면서 노는 것이 이 보고 스레드의 취지로 보인다.
  • 로버트 켈리 . . . . 2회 일치
         2017년 초, [[반기문]] 사무총장의 귀국과 대통령 후보 논란에 대하여, "그는 구식 관료이며 그 점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그를 선택할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반기문을 변화를 가져올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매우 '대가 약한 사람'(milquetoast)", "올해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한 '격동의 해'(big year)"라는 언급을 월스트리트 저널에 겼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2/0200000000AKR20170112199600009.HTML (참조)]]
         2012년에 아내와 함께 한국 투표소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트윗을 올린 적이 있으며, 투표가 아주 빠르고 신속하여 미국과는 참 다르다는 감상을 겼다.[[https://twitter.com/Robert_E_Kelly/status/281231957965279232 (참조)]]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 [[2011년]] [[XTM]] 자공감 랭크쇼 M16 진행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마기/303화 . . . . 2회 일치
          * 첫째는 들만큼 벌지 못하고 무너져 사라지거나, 다른 상회에 흡수 당하면서 살아거나
  • 마기/320화 . . . . 2회 일치
          * 홀로은 신드바드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 그러면서 "내 주인이 이렇게 약해빠진 자라니"하고 한탄한다.
  • 마기/323화 . . . . 2회 일치
          * 이것이 자기 꿈의 결말임을 깨달은 신드바드는 마지막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루프로 돌아가고 육신은 재만 는다.
          * 신드바드는 뼈만 기고 타버린다.
  • 마기/331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모르지아나는 "루프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을 위해 행동하는 알리바바 성격상 그 길을 택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알라딘은 자신도 생각해볼 테니 황으로 돌아가 [[모르지아나(마기)|모르지아나]]와 이야기 해두라고 한다. 후회가 지 않도록.
  • 마기/334화 . . . . 2회 일치
          * 그래도 자초지종을 들은 알라딘은 네르바가 매그노슈타트 사건 때도 얼굴을 비춘 일을 기억해준다. 알리바바는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왜 인상이 안 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린다. 쥬다르는 그게 다 네르바가 약해서 그렇다며 아직도 전신마장을 못하는 신세임을 까발린다. 그래도 알라딘이 게이트를 지키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하자 네르바는 다시 기세등등해져서 큰소리쳐댄다. 하지만 일행 중 누구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 알리바바는 백룡과, 그리고 모두와 만났던 일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지나간다. 백룡과 만나고 죽기 살기로 싸우기까지. 신드바드나 [[연홍염]] 형제들을 비롯한 모든 인연과 만나고 대립하고 화해하기를 거듭한 인연들. 그 결과 곁에 은 소중한 사람들.
  • 마기/335화 . . . . 2회 일치
          >괜찮아. 아직 싸울 시간은 겨놨어.
          * 그들 앞에는 7개의 던전만 아 있다. 쥬다르는 신드바드가 한 말을 툴툴거리며 비꼰다. 결국 그가 한 말은 "막을 테면 막아봐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열받아서 한 대 패주고 싶다고 하자 다른 일행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슬쩍 끼어들어서 "그말대로"라며 임금이란 족속들은 어느 시대에나 길이 나쁘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 마기/337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 [[알리바바 사르쟈]], [[연백룡]]은 제 1던전을 떠나 [[아르바(마기)|아르바]]를 따라 2던전으로 향한다. 알라딘은 [[쥬다르]]혼자 겨두는걸 마음에 걸려하지만 백룡은 오히려 그런걸 기분 나빠할 거라며 쥬다르에게 맡기자고 한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유년시절의 쥬다르는 "다른 인생이 살고 싶다, 다른 마기가 부럽다"고 괴로워하던 기억과 함께 서서히 부서져 사라진다. 쥬다르는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 과거를 보며 "너도 네 삶을 만끽해라"고 신드바드에게 충고를 긴다.
  • 마기/340화 . . . . 2회 일치
          *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물음. [[연백룡]]은 동료를 믿어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건 신드바드에겐 만족할 만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는 곧 "책임 포기"라고 반박한다. 왕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해 을 이끌어주는 사람인데 그 자신의 정의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라면 다른 이들이 믿고 따라오지 못한다.
          * 앞장서 던전에 들어온 알리바바는 이번에도 기이한 던전 속의 풍경을 목격한다. 이곳은 결혼식장 같은 분위기의 던전. 재단 앞에 한 쌍의 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17세의 신드바드와 그의 반려였던 [[세렌디네 파르테비아]]다.
  • 마치콘 . . . . 2회 일치
         마치콘(街コン)이란 콘파에서 이름을 따온 이벤트로서, 지역 진흥과 만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마치콘의 형식은 동성 2인 이상 1조가 되어, 개최 지역의 정해진 음식점을 순회하는 것이다. 각 점포에서 팔찌 등의 참가증을 제시하면, 이벤트 시간 이내에 동일한 가격으로 식사와 음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가자는 100명 이상, 3000명 가량이 되는 경우도 있다.
         "콘파(コンパ)"란, 주로 학생이나 젊은이가 벌이는 회식 모임을 뜻한다. 독일어 Kompanie , 영어 company , 프랑스어 compagnie 등에서 유래하는데, 메이지 시대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술이나 음식을 모아서 사먹으면서 환담을 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컴퍼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이후 세대의 대학에 계승되면서 "콤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치콘은 여기에 거리를 뜻하는 '마치'를 붙여서 대학이나 학생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의 만의 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현대의 뉴욕, 경찰이 모여드는 마천루 꼭대기에서 저격소총을 든 자가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Nicole Horne. 이 작품의 최종보스. 에이저 코퍼레이션의 회장으로 미군이 진행하던 계획인 "발할라 계획"의 주요 인물이었다. 발할라 계획이 취소된 후에도 발키리를 계속해 만들었다. 펀치넬로 저택에서 탈출하던 맥스를 붙잡아 발키리를 주입해 기절시키고 저택에 불을 지른게 첫 등장. 하지만 맥스는 살아아 에이저 코퍼레이션 건물을 습격하였고, 니콜 혼은 헬기를 타고 도망치려 했지만 맥스가 무너뜨린 첨탑에 의해 헬기가 폭발, 사망한다.
  • 메디나 . . . . 2회 일치
         2016년 7월 4일 저녁(한국 시간 5일 새벽) 한 성이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 [[모스크]] 부근에서 자폭하여, 보안요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우디에서는 같은 날 동부 카디프, 서부 제다 항구도시의 미국 총영사관 부근에서도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이는 이슬람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가 [[라마단]] 기간 동안에 테러를 무슬림들에게 호소한 것에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예언자 사원을 향하던 성을 수상하게 여긴 치안 당국자가 제지를 했는데 몸에 두르고 있던 폭발물을 터트려서 테러를 일으켰다고 한다.[[http://www.47news.jp/korean/international_diplomacy/2016/07/141460.html (참조)]]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2회 일치
          풀네임은 타미클 로빙 3세. 일본 홋카이도 출신으로 정부군 대위이다. 아버지는 우수한 군인이었으며, 타마 또한 중학교 졸업 즉시 군대에 들어갔다. 20대에 대통령을 구했으며, 군대에서 사귄 친구인 마르코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았다. 메탈슬러그 이후 은퇴해 바이크샵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상부의 요청으로 연기되었다.
          풀네임은 피올리나 제르미.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정부군 상사이다. 장이 군인이 되는게 전통이었던 제르미 가문의 외동딸로, 어머니가 피오를 낳고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기에 군인이 되었다. 부모님에게 사랑받으며 지냈기에 점잖은 성격. 대학에서 척추 지압법, 침술, 뜸질을 공부받았으며 스포츠 닥터가 되는게 꿈이다.
  • 멸문지화 . . . . 2회 일치
         대부분의 사회에서 가문은 계위주였기 때문에 멸문지화라고 해도 여성은 살아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다만 권력 다툼이나 침략 등으로 멸문지화를 겪은 경우에는 가문의 여성들도 처지가 비참해지는 경우가 많다.
  • 명예백인 . . . . 2회 일치
         [[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색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이 백인 국가에 뒤지지 않게 성장하자, 국책상의 이유로 이들 국적의 아시아인에게 백인과 같은 대우를 주고 '명예백인'으로 취급하였다.
          *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여성을 '명예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줄여서 '[[명예]]'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 모리오리 족 . . . . 2회 일치
         채텀 제도는 작고 외딴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뉴질랜드와도 거리가 멀어 외부와의 교류가 어려웠다. 모리오리 족은 [[전쟁]]을 포기하고 공존을 선택했으며, 인구 조절을 위하여 자 신생아를 [[거세]]하는 방법을 썻다. 이로서 인구 과잉을 줄이고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었다.
         >마오리 족은 우리를 양 떼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겁에 질려 적을 피하기 위해 숲으로 도망치거나 땅을 파고 숨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우리는 곧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자는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 모리오리 족 생존자
  • 몬스리 . . . . 2회 일치
         첫등장 시기에는 악역이었다. [[라나(미래소년 코난)|라나]]를 잡아가기 위해 홀로 은 섬으로 왔으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코난의 할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코난(미래소년 코난)|코난]]이 라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면서 충돌하게 된다. 이 시기 몬스리에게 코난은 적이었고, 코난에게도 아주 고의는 아니었으나 뭐가 됐건 할아버지의 목숨을 빼았은 원수다보니 처음에는 원한도 있었던 듯 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몇번이고 인더스트리아에게 물러서지 않으면서 라나를 구해내는 그 모습에 경탄을 느끼나 자기 일은 계속 이행했다. 그러던 중, 하이하버에서 일에 마음이 흐들리게 되었다.
         회상이 끝나고, 이때의 모습은 그전까지의 냉혹함과 다른 모습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던 코난이 모습을 보이는데 이때 서로 잠시 침묵하다 코난에게 라나를 구했는지 묻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도 봐주지는 않겠다며 권총을 빼들며, 코난은 도주. 그녀의 총알은 한 발도 명중하지 못했지만 이후 나타난 부하들이 코난을 추적하려 하자 소용없다는 말을 기고 그냥 가버리는 것을 보면 일부러 코난을 놔준 듯도 하다. 그후 하이하버에 들이닥친 해일 탓에 잡히게 되는데 코난에게 라오 박사 구출에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진심어린 부탁에 당황한다.
  • 문숙(배우) . . . . 2회 일치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3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시험에 교복 차림으로 참가하여 최종 선발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은 너무 어려서 특채라면 몰라도 공채는 뽑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곧바로 엑스트라부터 시작하여 1년 뒤 영화 '태양 닮은 소녀'로 정식 데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외모로 각종 방송과 CF를 섭렵하며 충무로의 샛별이 되었다. 그리고 태양 닮은 소녀의 캐스팅 자리에서 만난 故 [[이만희(영화 감독)|이만희]]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시작하게 된다.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 여배우가 23살 연상의 애딸린 이혼과 연애한다는 사실은 당시 매우 화제가 되었다. 이만희의 딸인 [[이혜영(1962)|이혜영]]과도 당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그러던 1975년. [[삼포 가는 길]]의 마무리 작업 중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홀로 겨진 그녀는 몇년 뒤 미국으로 떠난다.
  • 문옥주 . . . . 2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만주와 동아시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하였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저축한 돈의 반환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위안부 피해자 故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091600073.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1996년 10월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日軍위안부 문옥주할머니 숨져|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184&yy=1996|출판사=매일신문|날짜=1996년 10월 26일|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분류:1924년 태어]][[분류:199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일본군 위안부]]
  • 문호월 . . . . 2회 일치
         |출판사=영일보
         [[분류:1905년 태어]][[분류:194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192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미래소년 코난 . . . . 2회 일치
         서기 2008년 7월, [[핵무기]] 이상의 힘을 지닌 초자력무기가 이용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해 문명은 멸망하고, 대부분의 대륙이 가라앉았다. 세월이 흐른 이후, 코난은 겨진 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코난은 라나라는 소녀와 만나게 된다. 라나는 뛰어난 과학자인 라오 박사의 손녀였으며, 박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라나를 쫓는 자들의 습격이 계기가 되어 코난의 할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라나는 끌려가버린다. 코난은 라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데….
         원작이 있다. 알렉산더 케이의 SF소설인 <The Incredible Tide>. 이 소설은 이후 일본에 '겨진 자들'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고 한다.
  • 바나나 공화국 . . . . 2회 일치
         중미의 소국 가운데 [[바나나]] 등 1차 산업 제품을 대국(주로 [[미국]])에 수출하여 경제가 성립되고 있는 국가를 뜻한다.
         20세기 초, 중미 각국에 미국 자본에 의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으며, 이들 국가의 재정은 미국의 대규모 농업 기업이 좌지우지 하게 되며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나나 수출을 위하여 [[농장]] 만이 아니라 [[철도]], [[항구]] 까지 미국 기업의 자본으로 개발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국가들에서는 다른 산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 자본에 정권이 종속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유나이티드 플루츠(United Fruit) 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2회 일치
         이하와 같은 면에서 바르나바 복음서는 중세에 어떤 유럽 출신의 작가가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지리나 기후 등이 팔레스타인 보다는 오히려 부 유럽과 비슷하다.
  • 바키도/135화 . . . . 2회 일치
          * 트럼프는 단 한 명의 자와 미국이 불가침 조약을 채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지 않는다.
          * 트럼프는 태세전환이 빠른 자다. 바지에 지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만약"의 경우를 위해 달달 외운 선언문을 열정적으로 낭독해간다.
  • 박기혁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상규(가수) . . . . 2회 일치
         [[1942년]] [[7월 20일]] [[전라도]] [[진도군]] ~ [[2013년]] [[4월 1일]]
         [[분류:한국 가수]][[분류:1942년 출생]][[분류:1963년 데뷔]][[분류:2013년 사망]][[분류:병사한 인물]][[분류:진도군 출신 인물]]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
  • 박정수(배우) . . . . 2회 일치
         || '''출생''' ||<(> [[1953년]] [[7월 11일]][* 음력 6월 1일.] ([age(1953-07-11)]세) [[전라도]] [[곡성군]] ||
          * [[데릴편 오작두]] - 박정옥
  • 박정수(정치인) . . . . 2회 일치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천시-금릉군-상주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백억]] 후보를 누르는 한편 무소속 [[정휘동]]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참고로 부인 [[이범준(동명이인)|이범준]]은 1973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 되어 편 박정수보다 일찍 정계에 입문하였다. 1979년 6월 [[이후락]],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윤재명]], [[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영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태]] 등과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 박정호 . . . . 2회 일치
         |성별 =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준규(1925) . . . . 2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송산(松山)이다. 본관 [[순천 박씨|순천]]. [[백억]]씨가 그의 자형이고 [[삼성그룹]]창업주 [[이병철]]회장의 처조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의 직계후손이다.
         15대 국회 임기가 끝과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2014년]] [[5월 3일]] [[http://dkbnews.donga.com/3/all/20140503/63238866/2|세상을 떠났다.]]
  • 박진석 (가수) . . . . 2회 일치
         |유형 = 성, 솔로
         자라 울지 못했다 정규 앨범
  • 박철우(배구) . . . . 2회 일치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2010 시즌 중이었던 2010년 1월 30일에 LIG와의 천안 홈 경기에서 무려 '''50득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는 2014년 현재도 국내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아있다. --문제는 이 날 경기가 5세트 도중 방송이 끝났다는 안습함이 ㅠㅠ--
  • 박태준 (작곡가) . . . . 2회 일치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이며 호(號)는 귀봉(龜峯)· 산(山南)· 계산(桂山)이고, 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개신교(예장통합)]]이다.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등학교 (대구)|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이후 미국 [[터스컬럼 대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을 나왔다. 귀국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거쳐 [[연세대학교]] 종교 음악과를 창설하였으며, 많은 작곡을 하여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술원 음악공로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64년 연세대학교 음대 학장을 지냈다. 작품으로 〈오빠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등 150여 곡이 있고, 동요곡집으로 〈중 중 때때중〉, 가곡집으로 〈박태준 가곡집〉 등이 있다.
         [[분류:1900년 태어]][[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박하나(배우) . . . . 2회 일치
         ||<#83C4C7> {{{#ffffff '''가족'''}}} ||<(> [[부모님]], [[오빠]], [[동생]] ||
         ||<|2> 2012년 || tvN || [[일년에 열두자]] || || 단역 ||
  • 박홍 (신부) . . . . 2회 일치
         * [[노기]]
         [[분류:194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반공주의자]][[분류:서강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예수회]]
  • 박희광 . . . . 2회 일치
         || 가족 ||<(> 아버지 박윤하, 부인 유문기, 장 박근용, 차 [[박정용]], 박정희, 박선용, 박수용 ||
  • 방실이 . . . . 2회 일치
          *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인 [[1982년]]에 미8군 부대에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 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방실이와 두 여자》, 《글래머걸스》 등 여러 그룹을 결성하여 화려한 율동과 특유의 시원스런 가창력을 무기로 무명시절을 극복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한 시기는 1986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하면서부터이다. 당시 리더였던 방실이는 1집 트로트곡《첫차》를 발표하고 공식적인 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다. 타이틀곡 〈첫차〉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로, 이 노래를 계기로 데뷔 초부터 성팬들을 사로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상급 가수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2년 뒤 발표한 3집 〈청춘열차〉도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 몇 년 뒤 같은 팀원이던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 때문에 활동을 중단하자 서울 시스터즈는 공식 해체되었고 방실이는 데뷔 4년만인 1990년에 솔로로 전향하였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방실이의 솔로 데뷔곡이자 방실이의 1집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탱고〉는 탱고리듬으로 된 가요였다는 점과 그룹 활동 때 갈고 닦은 그녀의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낯선 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한 넋두리를 부질없는 세상사에 연관지어 관조하듯 표현해 특히 중장년층과 기성세대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92년, 2집 앨범 〈여자의 마음〉도 유행하여 다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가요계를 뜨겁게 달궜던 방실이는 1994년에 사업가인 김연국과 결혼하고 한동안 잠정 은퇴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소속사 때문에 강제로 했다고 한다. 당시의 편은 [[일본인]]이었다고...] 그러던 1997년, 선행 연예인으로 문화체육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 있다.
  • 배소연 . . . . 2회 일치
         | 출생지 ={{KOR}} [[전라도]] [[구례군]]
         * [[1995년]] 전∙광주 주부가요제 금상 수상
  • 배슬기(배우) . . . . 2회 일치
         [[2014년]], 중국에서 제작한 [[젓가락형제]]의 '[[작은 사과]]'라는 뮤비에 주인공 여성 댄서로 등장했다. 헌데 이 동영상이 중국에서 10억 뷰를 돌파하며 중국의 [[강스타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대히트를 치며 중국에서 한류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 해당 뮤직비디오 감독은 [[조성모]]의 '[[아시나요]]', [[김범수]]의 '[[보고싶다]]'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김세훈]] 감독이다. 뮤비속의 병원은 인천백병원이며, 뮤비속의 배경은 대부분 한국이라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5&aid=0000131710|#]]
         안철수 후보 사퇴를 통한 후보 단일화 과정을 '''종북자 무리들'''의 짓으로 규정했다. 즉, 야권 후보로 출마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지지자들을 [[종북]]으로 폄훼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일었고, 비판이 계속 되자 해명글을 겼다.
  • 백기만 . . . . 2회 일치
          | 자녀 = 백용주(장)
         [[분류:1902년 태어]][[분류:196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
  • 백운산 물고기 . . . . 2회 일치
         본래는 열대어지만, 관상어로 유통되는 종은 오래 전에 채집되어 양식된 종으로서, 수온 변화나 오염에 강한 변이를 거쳤기 때문에 [[겨울]]에도 기온 10도 정도 온도의 실내라면 버틸 수 있어 사육이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베트에서 채집된 종류는 변이가 없는 열대어라서 쉽게 얼어죽는다.
         가장 잘 알려진 종류는 [[중국]] [[백운산]]이 원산지인 백운산 미락어(白雲山 米諾魚,Tanichthys albonubes)이며, [[베트]]에 서식하는 Tanichthys micagemmae, Tanichthys thacbaensis 2가지 종류가 있다.
  • 벌교 백여우 . . . . 2회 일치
         1960년대 전 보성군에 있는 벌교국민학교에서 퍼진 괴담.
         경향신문 1963년 7월 5일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어린이 벌" 제6호에 수록된 것을 인용한 것이다.
  • 베이지 . . . . 2회 일치
         ||<#F5F5DC> '''출생''' || [[1986년]] [[10월 11일]], [[전라도]] [[진도군]] ||
          * [[SBS]] [[더 뮤지컬]] (내 자는)
  •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 . . . . 2회 일치
         [[아사히 신문]]의 기자가 이메일로 블로그 소유자와 연락한 바에 따르면, 블로그 소유자는 [[도쿄]]에 거주하는 30대 초반 여성이라고 자칭했으며, 편과 1세가 되는 자아이와 3인 가족이서 생활하고 있고, 사무직 정규직으로 4월에 복직할 예정이었으나 보육소에 아이를 넣을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하였다.
  • 보쿠걸 . . . . 2회 일치
         여자아이 같은 외모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 미즈키는 자 중의 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 보쿠걸/100화 . . . . 2회 일치
          * 미즈키는 당연히 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실행하지 못한다.
          * 자로 돌아간다는 말과는 달리 '''미즈키의 가슴은 계속 커지고 있다.'''--입으론 싫다고 해도 몸은 정직하군요--
  • 보쿠걸/105화 . . . . 2회 일치
          * 사과하는 미즈키에게 후지와라는 그럴 필요 없다며 "자든 여자든 미즈키를 좋아한다"고 다독인다.
          * 미즈키는 학생 교복을 입은 채로 로키 앞에 서는데...
  • 보쿠걸/97화 . . . . 2회 일치
          * 미즈키는 타케루를 만나서 처음으로 "자는 멋있다"고 생각하고 자답게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다
  • 부산광역시 . . . . 2회 일치
         [[구 (부산광역시)|구]]''' || 南區 || 114,720 || 290,163 || 26.62
  • 북한의 역사왜곡 . . . . 2회 일치
         이러한 주장은 한과 외국의 일반적인 역사적, 고고학적 견해와는 배치된다.
         >- 이에 따라 대 살육작전을 현지에서 조종 지휘할 데 대한 임무를 받은 조선 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위컴)은 의로운 항쟁자들을 ‘버릇없는 망나니’, 지어는 ‘들쥐’로 모독하면서 ‘공수특전대’ 5개 여단과 보병사단, 기갑부대, 항공대를 비롯한 7만 여명의 방대한 무력과 장갑차, 중포, 군용직승기와 지어는 항공모함전단까지 광주의 평화적 주민들을 살육하는데 투입하도록 명령했다.
  • 분류:경상남도 출신 인물 . . . . 2회 일치
         [[분류:고성군(경상도) 출신 인물]]
         [[분류:해군 출신 인물]]
  • 브리프 팬티 . . . . 2회 일치
         성용 속옷의 일종. 의류 용어에서, 가랑이 아래가 생략된 짧은 것을 브리프라고 하며, 특히 성용으로 가랑이 아래 쪽이 없는 간단한 타입을 브리프스(briefs)라고 한다.
  • 블랙 클로버/108화 . . . . 2회 일치
          * 새 단장의 매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단원들 꼬라지를 보니 푸에고레온이 어지간히 무능한 단장이었고 이런 녀석들을 겨놓고 드러누웠으니 단장 실격이라고 무자비하게 비난한다. 게다가 그를 지칭하는 단어도 "멍청한 자식, 바보" 따위니 그를 믿고 따르던 단원들과 특히 동생인 레오폴트는 참기 어려웠다. 결국 레오폴트가 제일 먼저 인내심이 바닥난다.
          * 결국 다른 단장들은 씁쓸하게 돌아가고 야미만 들을 실컷 놀려먹었다. 야미는 혼자서 급상승 기념주를 마셔야겠다고 히죽거리는데 바라지 않던 불청객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다. 막 아스타와 유노를 포획한 레오나가 야미한테까지 온 것이다. 야미는 그녀와도 구면이어서 "누님레온"이라 부르는데, 레오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야미는 붙잡힌 아스타를 보고 낄낄거리는데 곧 같은 신세가 된다. 레오나가 "공적 발표에 지각은 커녕 아예 결석을 했으니 기합을 넣어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도 온천합숙에 강제합류시킨다. 야미는 "이제 나는 단장이다. 부끄러우니 그만둬라"고 저항해보지만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하는 말로 보면 이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 블랙 클로버/110화 . . . . 2회 일치
          * "돌아가도 좋다"는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의 포기선언.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의 활약도 반마법의 검에 의존한 "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린다. 여기에 자극 받은 아스타는 거의 포기할 뻔 했던 마음을 다잡고 "절대로 정상에 오르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다음. 큰소릴 친 건 좋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근성만으로 올라갈 수 없는건 자명. 아스타는 [[라드로스]]와 싸울 때 발동했던 반마법 상태말고는 수단이 안 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끌어내지?
          * 혼자 은 아스타는 어떻게든 반마법 상태를 끌어내려고 궁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는 단지 "죽기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힘을 끌어낸 거였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그럼 마그마에 무작정 뛰어들어보면 어떨까?"같은 말도 안 되는 발상도 나왔다. 하긴 그는 샐러맨더의 폭탄 속에도 뛰어든 적이 있으니 마그마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 블랙 클로버/120화 . . . . 2회 일치
          * 유노는 자군에서 가장 기동력있는 자신이 이탈해 적의 크리스탈을 기습하려 하나 노엘의 강력한 희망으로 자신이 고 노엘을 돌격시킨다.
          * 유노는 아서 크리스탈을 수비하는데 가운데 알렉드라 또한 상대하려 한다. 이런 태도가 알렉드라의 심기를 거스르고 마는데.
  • 블랙 클로버/121화 . . . . 2회 일치
          * 전장에 아있는 지도 몰랐던 [[엔 링가드]]는 균마법으로 버섯을 조종하는 묘한 마도사. 그러나 의외의 수완을 발휘하며 [[노엘 실버]]의 진로를 돕는다.
          * 버섯의 멀리 떨어져 있는 본체. 버섯과 달리 빈궁한 얼굴의 링가드는 의외로 달변가였다. 그는 시합 전 솔리드가 한 발언을 놓고 "오라비가 할 소리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 또한 동생이 녀 합쳐 열이나 있다. 자신이 싸우는 것도 동생들을 위해서. 그는 형이란 약한 동생들을 지키기 위한 존재라고 역설했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2회 일치
          매그너가 그의 훌륭한 헛스윙을 비웃었다. 이것이 매그너의 새로운 마법 "궁극소멸마구". 문자 그대로 사라지는 마구다. 아무리 아스타라도 눈 앞에서 사라지는 공격은 어쩔 수 없다. 아스타는 새삼 선배의 실력에 놀랐다. 놀란 것은 클로버 국왕과 [[마법제]]도 마찬가지. 국왕이 하층민 주제에 자신을 놀라게 했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달리 마법제는 "외견과 다르게 손재주가 있다"는 디테일한 평까지 겼다.
          네르슈가 그 시절의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 그를 호되게 깨웠다. 마론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따귀를 때려서 그를 겨우 깨웠다. 잭스가 미리 발동한 함정의 두 번째 말썽. 네르슈에게 접근하는 팀원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론은 골렘으로 단마의 검을 치웠다. 정신을 차린 네르슈는 자기 아름다운 얼굴을 때린 것부터 따졌으나 사실 그 전부터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계속 하층민에서 당한 탓에 노이로제 상태인 그는 마론에게도 하층민 아니냐고 물었다. 마론은 평민이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마법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분 차이를 넘어서 싸우라고. 그도 구태여 자를 구해주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언니를 위해서, [[샬롯 로즈레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마론은 샬롯이야 말로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이며 네르슈에겐 그런 존재가 없냐고 물었다.
  • 블랙 클로버/126화 . . . . 2회 일치
          랜길스는 당연히 자기 약혼녀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이미 형에게 뒤처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보드가의 차기 당주는 당연히 자신이고 저 여자도 내 약혼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네스가 싫었다. 재미없어 보이는 여자, 그게 다였다. 피네스와 만을 운명적이라 여긴건 핀랄 쪽이었다.
          * 시합장에서 사라진 셋케는 지옥보다 조금 못한 곳에 떨어졌다. 검은 폭우의 아지트. 구체적으로는 그곳의 자화장실. 단장 [[야미 스케히로]]가 이용 중인 화장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받은 야미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2회 일치
          * 잭스의 본명은 "조라 이데아레"였다. 어린 시절의 조라는 내성적일 뿐 평범한 하층민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 "자라 이데아레"는 아들에게 장난치는걸 좋아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봉사정신이 있어서 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마법기사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 시절엔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사례가 없었고 입단 시험에서 몇 번이나 탈락하는 고배를 마신다. 아버지는 포기를 모르는 도전 끝에 "하층민 최초의 마법기사"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소속은 자줏빛 범고래단. 아버지의 그러한 정신은 어린 조라의 자랑이었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조라 이데아레의 아버지. 이름은 "자라 이데아레". 사용하는 마법은 조라와 비슷한 함정계통이었던 걸로 보인다. 이걸로 곧잘 아들에게 장난을 걸곤 했는데 기본적으론 상냥하고 명랑한 아버지였던 듯. 마법기사를 나라를 지키는 영웅들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도 마법기사를 목표로 노력했다. 입단에 여러번 탈락했으나 결국 성공, 마법기사가 되어 전장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전사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귀족인 동료들이 그를 아니꼽게 여겨 살해한 것이었다. 자라는 을 돕는걸 중요하게 여겨 전장에서도 민간인을 구조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이게 귀족들 성미를 자극했던 듯. 애초에 하층민이 마법기사가 된 것 자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다.
  • 블랙 클로버/56화 . . . . 2회 일치
         * 한편 마법제는 따로 누군가를 기는데, 그건 [[야미 스케히로]]와 [[아스타]]였다.
         * 푸에고레온을 공격한 것도 이 힘을 얻기 위해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백야의 마안은 은 세 개의 마석을 노리고 또 음모를 꾸밀 것이다.
  • 블랙 클로버/85화 . . . . 2회 일치
          * 부관격으로 보이는 변태 같은 마도사가 있는데, 이 녀석은 파마의 힘과 미모를 칭송하며 "한 번 상대하고 싶다"고 섹드립이나 날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마녀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쓰겠다며 부하들을 출동시킨다. 부하들은 포박 계통의 마법으로 마녀들을 잡아간다. 어린 마녀 하나가 적에게 잡히는데 아스타가 바네사 에노테이커, 핀랄 룰러케이트, 노엘 실버와 함께 현장에 도착, 마녀를 포박한 마법을 베어버리며 구출한다. 하지만 마녀의 숲의 마녀들을 자를 싫어해서 구해준 아스타를 할퀴고 달아나 버린다. 바네사 에노테이커는 원래 그런 나라라며 대신 사과한다.
          * 노엘은 파나가 지른 불을 마법으로 끄고 바네사는 자기 고향을 망가뜨리는 다이아몬드 왕국에 적의를 드러낸다. 부관은 여러 마녀를 포획해서 성희롱을 발하고 있는데 나름 페미니스트인 핀랄이 분노한다. 아스타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날려달라고 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다시 회수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스타는 걱정말고 해달라고 하는데 바네사는 그의 실력을 믿고 날려보낸다.
  • 블랙 클로버/90화 . . . . 2회 일치
          * 젤은 그들의 힘은 올바른 곳에 쓰여져야 했다고 말하지만 라드로스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한 번도 을 지키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힘의 "올바른 사용처"는 "전투에 잘 활용해 나라에 인정을 받는 것" 그러기 위해 팔휘장까지 올라온 것인데 왜 선생님은 입바른 소리나 하고 있냐고 말한다. 그는 젤이 그저 파벌 싸움에서 진 뒤에 망명이나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얼빠진 인간이라 매도한다.
          >내 편을 얼간이라 부르지 마
  • 사키모리 . . . . 2회 일치
         만엽집(万葉集)에는 이들이 읊은 노래가 아 있는데, 아득히 먼 큐슈로 가서 죽을 지도 모르지만 집에 겨놓은 아내를 잊을 수 없다는 서정적인 내용이다.
  • 삼고 . . . . 2회 일치
         버블경제 시대에 유행했던 말. 자친구로 바라는 성의 조건으로서, 고학력, 고수익, 고신장을 뜻한다.
  • 서거정 . . . . 2회 일치
         여섯 왕을 섬겨 45년간 조정에 봉사하였고, 시문을 비롯한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으며, 시화(詩話)의 백미인《[[동문선]](同文選)》과 설화집인 《[[필원잡기]](同文選)》 등을 겨 [[신라]] 이래 조선 초에 이르는 시문과 산문 문학을 집성했다.
         [[분류:1420년 태어]][[분류:1488년 죽음]][[분류:대구 서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장원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학자]][[분류:김시습]]
  • 서상기 (1946년) . . . . 2회 일치
         |자녀 = 슬하 1 1녀
         [[분류:194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호서대학교 교수]][[분류:웨인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드렉셀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달성 서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이]][[분류:친박]]
  • 서수민 . . . . 2회 일치
         많은 사람들에게는 [[개그 콘서트]]의 PD를 맡았던 당시 과도한 정치 개그, 여성 편향 개그[* 이를테면 여성 편향의 로맨스물과 꽃미 게스트 출연 등. [[용감한 녀석들]]도 여성 편향적인 노래가 많으며([[용감한 녀석들/노래 가사]] 문서 참조.), [[애정]]에서도 무조건 여자한테 유리하게 이끌어졌다. 헌데 정작 여성 측도 '재미없다'는 평이 다수.] 및 [[노잼]]화의 최대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리고 어느샌가 게스트를 섭외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일명 '[[게스트]] 콘서트' 혹은 '[[로맨스]] 콘서트' 등으로 변질된 책임을 묻는다.
  • 서윤아(배우) . . . . 2회 일치
         |2003||[[스캔들: 조선녀상열지사]]||정금이||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6년 태어]][[분류:2001년 데뷔]][[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태백시 출신 인물]]
  • 성재(가수) . . . . 2회 일치
         '''성재'''([[1980년]] [[1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하드코어 밴드 [[비셔스글레어|비셔스글레어(Vicious Glare)]]와 언리시드앵거의 가수, 기타리스트이다. 본명은 '''박해진'''이며,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출신이다. 2008년 부터 ankind-Design'이라는 자신의 개인 디자인 브랜드를 운영, 음악 레코딩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하드코어 메탈 전문 레이블 [[GMC 레코드]]의 [[웹마스터]] /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다가 2014년 중순부터 레이블을 인수 받아서 CEO가 되어 운영중이다. 1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Straight_edge Straight Edge]라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구리시 출신 인물]]
  • 소격서 . . . . 2회 일치
         * 삼청전(三淸殿) : 옥황상제(玉皇上帝), 태상노군(太上老君), 보화천존(普化天尊), 재동제군(梓潼帝君) 등 10여 위를 제사하였다. 자의 화상으로 모셨다.
         [[고려]] 시절에 복원궁(福源宮), 소격전(昭格殿) 등의 도교 관청이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1392년 11월에 복원궁 등을 없애고 소격전만 게 된다. 한양 천도 이후 1396년에 종로구 삼청동에 소격전이 건립된다. 1466년(세조12년)에는 소격서로 개칭된다.
  • 소벌도리 . . . . 2회 일치
         장 대벌리(大伐利)의 후손들은 최씨 성을 사용하였고 다른 후손들은 원래의 성인 소씨(蘇) 성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67037.html 경주 내면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한겨레신문 2006년 10월 24일자
  • 송아영 . . . . 2회 일치
         1963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에서 태어났다. 세종교동초등학교, 세종[[조치원여자중학교]], 대전[[충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이명박 정부]] 때 자유선진당에서 충청도당 여성위원장, 뉴 선진비전 여성위원회 대표 등을 지내며 정치에 입문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비례대표제|비례대표]]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제5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선진당의 후신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될 때 합류하였고 새누리당 세종특별자치시당 대변인을 지냈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3화 . . . . 2회 일치
         뉴스를 보고 카라는 리액트론을 찾으려고 한다. 알렉스의 도움으로 리액트론을 추적하는데, 리액트론과 같은 토륨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추적하여 찾아낸 곳은 베이커라인 원자력 발전소였다. 그리고 리액트론의 정체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기술자 벤 크롤로서, 방사능 누출에서 살아았으나 슈퍼맨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라는 알렉스와 제임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깨어난다. 몇 시간이나 기절을 했으며 슈퍼맨은 화산폭발로 태평양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구출된 맥스웰 로드는 슈퍼걸은 언급하지 않고 슈퍼맨이 자신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5화 . . . . 2회 일치
         캣 그랜트는 레슬리를 불러서 슈퍼걸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라고 경고한다. 사람들은 레슬리의 독설적인 이야기보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방송을 부정한다. 레슬리는 계약기간이 아 있다고 반발하지만, 그랜트는 레슬리의 방송을 취소하고 교통방송 리포터로 보내버린다.
         병원에서 나온 레슬리는 자신의 몸에 전기가 튀고 뭔가 변화했다는 것을 느낀다. 레슬리에게 헌팅이 접근하다가 감전당하여 쓰러진다. --그저 헌팅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라이브와이어가 된 레슬리는 전기로 몸을 변화하여 가로등 속으로 사라진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2회 일치
         격투 게임의 대표적인 [[게임]]이며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와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인지도도 달랐는데 격투가의 전형인 류는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유명세에 어울리게 이후의 격투 게임 중에는 당장 아류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스파와 비슷한 게임들도 많이 나왔으며 캐릭터도 스파 시리즈와 비슷하거나 그러한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들도 많았다. 그만큼 이 게임 시리즈의 존재감은 보통이 아니다.
          * 철권 X 스트리트 파이터[* 코 개발]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2회 일치
          반정부적인 성항을 가진 작가와 그 아내. 집에 쳐들어온 알렉스 일당에게 편이 구타당해 쓰러지고 아내는 윤간당한다. 이로인해 아내는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편은 보호자가 필요한 몸이 되었다.
  • 식극의 소마/161화 . . . . 2회 일치
         * 수업은 원래 정해진 레시피를 조리하는 것과 재료만을 두고 자유롭게 조리하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후자를 폐지하고 전자만 긴다
         * 에이시는 그런 소마를 "쓸모 있는 자"라 말하며 자신의 심복이 되라고 권유한다. 즉 "센트럴에 들어와라"라고 권하는 것.
  • 식극의 소마/178화 . . . . 2회 일치
          * 에리나, 타도코로, 이쿠미, 이사미 알디니 4명이 는다.
          * 타도코로와 둘만 은 에리나. 우연히 에리나가 푹 빠졌던 만화가 타도코로의 것이라는걸 알게 된다.
  • 식극의 소마/185화 . . . . 2회 일치
          * 타도코로 메구미와 알디니 타쿠미는 소마측의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데, 린도가 나타나 자신이 두 사람의 시험 상대라며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 그런데 린도가 나타나 걱정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 식극의 소마/196화 . . . . 2회 일치
          * [[도지마 긴]]은 죠이치로에게 묘한 버릇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죠이치로는 당시 중1이던 [[시오미 준]] 등 후배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괴식요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시오미는 질색하지만 결국 선배의 권력을 요하는 죠이치로에게 잡혀 시식의 고통을 맛본다. 그런데 어떤 여학생들은 그 해괴한 맛에 중독돼서 자청해서 먹으러 오는 등 기묘한 흐름이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상적이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마침내 모두 쓰러지고 사와츠바시만 은 상황. 죠이치로가 상대해줄테니 올라오라고 하지만 그는 겁을 먹고 나서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고 죠이치로는 아주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다.
  • 식극의 소마/198화 . . . . 2회 일치
          * 그는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가을선발대회 때의 대결을 회상하며 즐거웠다고 말한다. 어쩐지 여기 오고 싶었는데 요즘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The BULE를 떠올리며 "거기서도 결과를 내야 하는데"라고 마음에 걸려한다. 그는 "내일" 있을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조리대 앞에 서있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잠도 들 수 없었다. 그저 조리대 앞에 서서 "다음 도착점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만 아 있었다. 가혹한 폭풍을 헤치고 걷는 죠이치로. 그의 마음 속에서 그 몸은 다리가 부러지고 등불도 꺼뜨린 채 홀로 절망적으로 거대한 폭풍 앞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 얼마 후 죠이치로는 기숙사를 떠난다. 그는 쾌활한 얼굴로 아자미와 도지마에게 인사를 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두 사람, 특히 아자미는 어더운 얼굴로 죠이치로를 배웅한다. 이때 떠나가던 모습이 그들이 학창 시절에 본 죠이치로의 마지막 모습이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2회 일치
          * 시라츠 가문은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 자리를 맡아온 명가. 특히 이탈리아에선 장어를 크리스마스 특식으로 먹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같은시 이탈리아 계통인 [[타쿠미 알디니]]는 이 대결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다. 일본인들의 편견과는 달리 장어는 서양에서도 고급 식재이다. [[쿠로키바 료]]가 선발시합에서 선보였던 "장어 마틀로트"도 대표적인 이탈리아의 장어요리. 특히 부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장어를 먹는다. 그정도로 보편적으로 알려진 식재. 따라서 이탈리아 요리 전문인 쥬리오도 나름대로 자신있는 분야일 거라고 추측한다.
  • 식극의 소마/212화 . . . . 2회 일치
          * 이어서 벚꽃 새우 카키아게. 안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식감에 감탄한다. 부드러운 소바의 식감과 대조적인 아삭아삭한 식감. 이렇게 번걸아 가며 먹으니 깊은 여운이 는다.
          이번엔 진정하고 차분히 맛을 음미하려는 두 심사의원. 그런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 젓가락씩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빈 그릇만 았다.
  • 식극의 소마/216화 . . . . 2회 일치
          쥬리오는 뒤늦게 "이런 자였다"고 통탄한다. 주방에서 놀이를 하는 것 같은 태도의 자. 그런데 지켜보고 있는 [[나키리 에리나]]의 의견은 좀 다르다. 그녀는 언젠가 그가 참가한 식극에서 심사의원이 내린 평을 인용한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2회 일치
          * 숙소에 아있던 [[쿠가 테루노리]]와 [[키노쿠니 네네]]가 로비에서 마주친다. 약간 껄끄러워하다가 쿠가가 입을 열고 네네는 쿠가에게 대회장에 안 가냐고 묻는다. 쿠가는 자기가 할 일은 다 했고 지금은 "뒷일은 젊은 애들끼리"라고 말하는데 네네는 그 말투가 중매쟁이 아줌마 같다고 생각한다. 쿠가가 그러는 네네야 말로 왜 호텔에 있냐고 멘탈이 두부라서 그러냐고 쏘아붙이고 네네는 "[[미마사카 스바루]]랑 같이 덤벼놓고 진 쪽이 더 불쌍"하다며 디스를 주고 받는다. 쿠가는 으르렁거리다 상대가 [[유키히라 소마]]였던걸 후회하라며 그가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1학년이라고 추켜세운다. 네네는 의외로 그 말에 수긍하고 소마의 강함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패배 이후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면서 정말 소마는 보통 1학년인 거냐고 반문하는데, 진지한 네네와 달리 쿠가는 "이 땋은 머리가 뭔 소리야" 정도로 성가셔하고 있다.
          * 그 후 타쿠미는 보란 듯이 그 기술을 훔쳐냈다. 이 식극회장에서 그 기술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타쿠미가 눈부신 속도로 생강 바늘썰기를 시연하자 언제나 반역자를 야유하던 관중석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심사의원 안은 "어메이징"이란 표현으로 아름답고 섬세하고 대단하다는 극찬을 겼다. 대호평의 바늘썰기 이후 타쿠미가 착수한 것은 밀가루 반죽. 피자 도우를 만드는 공정이었다. 시구레니를 토핑으로 쓴 피자가 타쿠미의 계획. 이 역시 기대가 동료들과 심사의원으로부터 기대가 된다고 격찬을 맏는데, 왠지 동생 이사미만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 신적강하 . . . . 2회 일치
         현재의 규범에서는 여성 황족이 결혼하는 경우, 편의 성을 받으면서 신적강하를 하게 되어 있다.
         결국 재정난에 시달리던 [[숭정제]]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역졸을 대대적으로 정리해고했다가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이 반란군으로 변질되어 [[이자성의 난]]을 일으켜서 멸망했다. 물론 그 많은 명나라 황족들은 명나라가 멸망하는 와중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명]] 정권에서도 유력 황족들이 서로 싸움질이나 할 뿐, 제대로 협력해서 가문을 일으켜보려는 사례는 찾을 수가 없다.--역졸이 아니라 황족을 해고했어야지.-- 그들의 조상 [[주원장]]이 가난하고 빈곤한 떠돌이의 신분이었음에도 가문의 도움 따윈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헝그리 정신'의 차이처럼 보일 정도.
  • 실업팀 . . . . 2회 일치
         이러한 역사가 흔적으로 은 유명한 사례로,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날 FC]]가 있다. 아스날은 영국 육군 조병창의 실업팀에서 유래하였으며, [[클럽팀]]으로 전환한 뒤에도 아스날(조병창)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그냥 경영진이 해당 스포츠를 좋아해서 실업팀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농담인 것 같지만 진짜다.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의 경우 원래 럭비를 좋아해서 럭비 실업팀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축구팀 성은 아예 일화가 운영하던 시절, 일화가 창단한 이유중 하나가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취미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팀도 취미로 운영할 수 있는데 실업팀 쯤이야(...)]
  • 심양홍 . . . . 2회 일치
         ||가족||슬하 1 1녀||
         [[분류:정선군 출신 인물]][[분류:1944년 출생]][[분류:1981년 데뷔]][[분류:한국 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
  • 아이유 . . . . 2회 일치
         ! scope="row" | [[예쁜 자 (드라마)|예쁜 자]]
  • 악당 . . . . 2회 일치
          주제파악을 못하는 유형. 본인이나 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악당의 약점은 모조리 사라질 것이기에, 소악당이든 초악당이든 오만한 구석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이 매우 적을 경우 '방심'이라고 하지 오만하다고 하진 않으니 참고.
          무언가를 굉장히 원하는 유형. 위험보다 물질이 목적이기 때문에 '광기' 유형과 달리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 설령 몸을 사리지 않는다고 해도 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많다.
  • 안영준 . . . . 2회 일치
         2017년 11월 5일 오리온전에 데뷔전을 치뤘으며 7분여 정도 소화하면서 6득점 2리바운드로 출전시간 대비 상당히 준수한 기록을 겼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안지만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암살교실/번외편 2화 . . . . 2회 일치
         * 호타루는 나기사와 닮은 "초등학생"인데, 사실은 여학생이 아니라 "학생"하고 닮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 아즈키씨의 죽은 편은 빚이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고리를 붙여서 천만엔이 넘는 금액을 갚아야 한다.
  • 야설록 . . . . 2회 일치
         * [[1993년]] 《벌》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만화 스토리 작가]][[분류:무협 작가]][[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양일환 . . . . 2회 일치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원 양씨 (梁)]]
  • 양진성(배우) . . . . 2회 일치
         ||<#FFCC33> {{{#ffffff '''출생'''}}} ||<(> [[1988년]] [[6월 27일]] ([age(1988-06-27)]세), [[전라도]] [[담양군]] ||
         || [[2015년]] || [[MBC 드라마넷]] || [[나의 유감스러운 자친구]] || 유지나 || 주연 ||
  • 양희승 (작가) . . . . 2회 일치
         * [[1996]] [[MBC]] 시트콤 《[[자 셋 여자 셋]]》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여태조 . . . . 2회 일치
         명나라가 베트을 점령하면서 제4차 북속시기가 시작되자 세력을 모아서 산기의를 일으키고 명의 식민지배에 저항하였다. 처음에는 병력의 질과 수적 열세로 명나라군에게 패배를 거듭했다.
  • 영국 요리 . . . . 2회 일치
         영국 요리의 전통은 고대 브리튼의 켈트족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브리튼의 켈트족은 매 계절 마다 요리 축제를 벌이면서 요리 기량을 닦아서 겨루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데, 오늘날 이 요리 축제는 [[스톤헨지]]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브리튼을 침공한 고대 로마 제국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영국 요리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겼으며, 자신이 먹어본 어떤 요리보다 맛있는 요리라고 [[갈리아 전쟁기]]에서 한껏 추켜세웠다.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의 식민지는 [[인도]], [[홍콩]]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를 통하여 중국 요리와 인도 요리의 비법이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인들은 요리에서는 전 세계 어떤 문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어, 집요하게 인도 요리와 중국 요리의 장점을 영국 요리에 받아들여 영국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켰다. 현재 [[만한전석]]은 영국에만 아 있다.
  • 오니요메 . . . . 2회 일치
         잔혹하고 무자비한 [[며느리]]라는 뜻. [[편]]이나 [[시어머니]], [[시누이]] 등에게 횡포를 휘두르는 아내를 뜻한다. 편이 아내에게 놀리는 듯이 말하는 경우도 있다.
  • 오방낭 . . . . 2회 일치
         오방낭은 오방색, 청(靑:동), 백(白:서), 적(赤:), 흑(黑:북)의 4가지 색을 동서북 방위에 맞추고, 중앙에는 황색을 배치한다. 만들어진 주머니에는 콩이나 부적을 넣는다.
  • 오소영 (조각가) . . . . 2회 일치
         1982년 조각가 첫 등단을 하였다. 1985년 영화배우 [[안성기]]와 결혼하여 그와의 사이에 2을 두었다.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타씨]][[분류:살인 조각가]][[분류:1982년 데뷔]][[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오유나 . . . . 2회 일치
         * [[2001년]] [[KBS1]] 일일연속극 《[[우리가 인가요]]》 ... 박윤미 역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오재희 . . . . 2회 일치
         |자녀 = 2 1녀
         [[분류:193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공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파키스탄 주재 대한민국 대사]]
  • 오정근 (1929년) . . . . 2회 일치
         |자녀 = 슬하 3 1녀
         [[분류:1929년 태어]][[분류:198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수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장]][[분류:국민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
  • 오준 . . . . 2회 일치
         아버지는 독립 유공자로서 외교부의 창설 멤버인 [[오우홍]] 미국 초대영사이며, 어머니는 건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한 [[진인숙]] 여사다.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시|개성]]이고 장인도 함경도에서 월한 실향민이라 평소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저자=정희순|제목=오준 유엔대사 특별 인터뷰|날짜=2015년 2월|출판사=우먼센스|url=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89&contents_id=82676}}</ref>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런던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교수]][[분류:싱가포르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CJ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오지철 . . . . 2회 일치
         * 2009.07 : 전발전정책자문위운회 문화관광정책고문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함양 오씨]]
  • 왝더독/줄거리 . . . . 2회 일치
         영화의 시작은 선거 홍보 영상으로 시작된다. 승마장에서 자 두 명이 다음에는 대화하다가 "달리는 중에는 말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다.그러고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을 주장하는 문구가 나오는 영상. 이 영상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나올 때마다 등장인물들에게 구리다고 까인다.
         대통령 선거 2주일 전 밤, 콘래드 브린(로버트 드 니로)이라는 자가 [[백악관]]에 찾아온다. 백악관을 방문했던 "반딧불 소녀단"의 단원 중 하나가 대통령과 단 둘이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이후 그 소녀는 대통령이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브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것. 그는 시간을 끌기 위해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대통령이 희귀병에 걸린걸로 위장해 귀국을 지연시킨다.
  • 요괴:냉장고 . . . . 2회 일치
         얘기를 좀 바꿔야겠는데, 나는 첫친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겼어요. 이거 우리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엠바고에요 엠바고. 내가 그렇게 빠른 것도 아니었어요. 친이래 봐야 둘이서 자전거타고 공원까지 갔다 돌아오는 사이 정도였죠.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니까 만든 거지 그 이상 관심은 없었어요. 오히려 진지하게 나온건 그쪽이었죠. 점심시간에 부르더니 그러더군요. "오늘 우리 집에 엄마아빠 없어"라고요.
  • 요괴:선풍기 . . . . 2회 일치
         그래요 자포자기였던 거죠. 별짓을 다 해봤으니까 이짓도 못할건 없겠다, 차라리 이쪽이 "재미"는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왜 일부러 폐가 같은데 뒤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종종 민원이 들어가서 잡으러 갈 때가 있죠. 의 사유지를 멋대로 들쑤시면서 심령어쩌구 저쩌구하는 또라이들. 어쩌다 보니 나도 그 짝이 됐네요.
         감식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찝찝했어요. 현장은 내집보다 자주 들락거리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먹고 자는건 아니니까요. 화장실에서 밥먹고 식당에서 세수하는건 어색하잖아요. 현장은 아직도 우리가 그어 놓은 표시가 아있었어요. 며칠 내로 치워줘야겠지만 그때까진 살인현장이라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죠.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그저 사무적으로 바라봤던 그 공간이 거슬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랄까, 그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느낌... 비유가 이상했군요. 그건 일종의 냄새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자 있는데 내가 뛰지 않은 방귀를 맡는 기분. 이것도 이상한 비유군요. 어쨌든 그랬어요. 이상한 긴장감 속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죠.
  • 원피스/822화 . . . . 2회 일치
         * 모모노스케는 조우에 고자 한다. "즈니샤의 의지"와 다시 한 번 대화해보고 싶다는데.
         * 이누아라시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은 조우에 는다.
  • 원피스/824화 . . . . 2회 일치
          * 며칠 후, 빅맘 해적선에 있는 상디는 빅맘의 부하 타마도 작의 회유를 듣는다.
         - 상디. 타마고 작의 회유를 거절하며... 근데 이렇게 멋진 대사를 해놓고 샬롯 푸딩의 사진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좋아한다.
  • 원피스/831화 . . . . 2회 일치
          * 밀집모자 일행은 홀 케이크 아일랜드 서쪽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다.
          * 마침 근처에도 또 상디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지만 상디는 이번에도 의 일처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반응도 없다.
  • 원피스/840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재능은 이미 부여했으니 단련만이 았다며 힘겨운 훈련을 시작한다.
          * 조사결과 다른 형제들은 계획대로 초인이 맞으며 신체능력은 이미 성인성에 필적하는 수준. "외골격"도 형성되고 있다.
  • 원피스/843화 . . . . 2회 일치
          * 생크림 대신 "샬롯 오페라". 샬롯가 5.
          * 치즈 대신 "샬롯 몬도르". 샬롯가 19.
  • 원피스/844화 . . . . 2회 일치
          * 나미는 상디의 따귀를 때리며 작별인사와 "쓸데없는 짓"에 대한 사과를 긴다.
          * 나미는 어느새 상디에게 다가와 돌아서는 그를 불러세운다. 그리고 상디의 뺨을 때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긴다. 욘디는 나미를 매서운 여자라 부르며 눈을 떼지 못하고 빈스모크 저지는 "겨우 쓸데없는 인연을 정리했다"고 빈정거린다.
  • 원피스/845화 . . . . 2회 일치
          * 레이쥬는 그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이 아니라 가죽같은 마스크로 덮어 씌워놨던 것이다. 그 밑에는 얻어맞아 퉁퉁 부운 얼굴이 그대로 나타난다. 상디는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어도 이꼴이고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는다. 푸딩은 그의 처참한 몰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상디는 이 결혼식을 피하려 하면 자신도 밀집모자 일행도 끝장이고 그의 "대은인"인 제프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 대신 루피 일행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여기에 은 것이다.
         상디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상대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성격 상 진담으로 보인다. 푸딩은 결과적으론 상디의 저항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일을 하게 됐는데 일각에선 푸딩이 처음부터 빅맘의 편이었고 상디를 회유하려고 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푸딩은 타마고 작의 눈을 피해 정말로 상디를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구태여 그런 복잡한 연극을 할 이유도 없었다.
  • 원피스/851화 . . . . 2회 일치
          >거기다 저희 선장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자!
         상디는 과거가 밝혀졌을 때 이미 불쌍함의 정점을 찍은 듯 했지만, 이번 화에서 간단하게 갱신했다.--원피스 최고의 안습--
  • 원피스/852화 . . . . 2회 일치
          * 홀 케이크 성의 의료실에서는 의사가 [[빈스모크 레이쥬]]를 치료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개조인간이라 괴물같은 자연치유력으로 벌써 상처가 아물고 있다. 의사는 안정을 취하면 내일 "다과회"에도 참석할 수 있겠다며 안심한다. 의사는 이 방은 경비에도 맡기고 자신은 4층의 또다른 의료실로 발길을 옮긴다. 경비가 혼자 자 바깥에선 수상한 그림자가 접근하는데. 얼마 후 레이쥬가 병상에서 눈을 뜬다.
          >내게도 "정"은 아있지만...
  • 원피스/871화 . . . . 2회 일치
          * 이치디는 여전히 아서 카타쿠리를 상대하고 시저는 겨우 빠져나오나 싶었는데 이번엔 시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앞길을 막는다.
          >불과 66일의 꿈의 흔적에 겨진, 고향의 땅도 밟지 못할 망령들에게 마주할 얼굴조차 없다!
  • 원피스/872화 . . . . 2회 일치
          * 그렇게해서 현재. 다과회와 암금왕 루 펠드와 스튜시 등이 얽혀서 복잡한 경로로 개봉된 옥갑은 재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밑으로 떨어진 옥갑이 깨지면서 기폭장치가 작동, 홀 케이크 성 절반을 날리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홀 케이크 아일랜드 바깥에서 관측될 정도의 대폭발. 성 안은 난데없는 폭발음과 성 일부의 소실, 이어지는 기울음으로 아비규환이다. [[타마고 작]]이 상황을 종합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라 버렸다.
          * 루피가 이제 탈출할 일만 은 거냐고 묻는다. 벳지는 처음부터 그랬는데, 시작부분이 너무 난관이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제 서두르는게 좋을 거라고 충고한다. 추격대는 금방 올 거고 배에 도착하더라도 토트랜드의 영해에서 빠져나가려면 하루는 걸릴 거다.
  • 원피스/882화 . . . . 2회 일치
          * 홀케이크 아일랜드의 스위트 시티에선 [[페드로(원피스)|페드로]]의 전사 소식이 알려진다. 의제인 [[페콤즈]]가 오열하고 숙적이었던 [[타마고 작]]도 애석해하는 동시에, 그렇게까지 해서 살리려던 밀집모자 일당에게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며 크게 경계한다. [[샬롯 몬도르]]는 단지 여러 우연이 겹쳐 일이 커졌을 뿐이라 단정하나 타마고 작은 "밀집모자가 온 뒤로는 예상 밖의 사고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며 만에 하나라도 빅맘의 명성에 흠집이 갈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원한해결사무소/5화 . . . . 2회 일치
         수치심을 견디다 못한 히토미는 자살. 토사쿠라 마나부를 죽여달라는 유서와 3백만엔을 긴다. 이것을 히토미의 오빠가 '정보원'을 통하여 원한해결사에게 의뢰하게 된다. 원한해결사는 살해 의뢰비로서는 싸다고 하지만 정보원이 자신의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하여 결국 의뢰를 받아들인다.
         토사쿠라는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돈을 뜯기고 차인 경험이 있어, 자를 제물로 매춘을 하는 놈들은 누구든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토사쿠라는 갑자기 경찰에게 가택수색을 받는데, 집에서는 속옷이 가득 든 상자가 발견되어 속옷도둑으로 체포되고 만다. 하루 뒤 토사쿠라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지만, 곧바로 매스컴의 집중공격을 받게 된다. 그의 과거나 원조 OL 버스터즈에서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했던 것이 모두 폭로당한다.
  • 원한해결사무소/7화 . . . . 2회 일치
         원한해결사는 키지마에게 키시베 요시에의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방법으로 사고로 위장할 것인지 내일 새벽 4시까지 생각해오라고 하고 떠난다. 그런데 키지마는 가게가 끝나자 칼을 들고 들어가서 요시에를 죽이려고 한다. 요시에는 자에게 받은 돈은 돌려줬고, 사채도 대신 갚았다고 말도 안된다고 하지만, 키지마는 요시에를 강간 살해한다.
         그런데 그 때 가게에 나타난 야쿠자 자가 그 광경을 보고 '내 여자에게 무슨 짓을 했냐.'면서 달려든다. 키지마는 칼로 야쿠자의 가슴을 찌르지만, 야쿠자가 총을 꺼내 쏴서 중상을 입는다.
  • 유미(가수) . . . . 2회 일치
         || '''가족''' ||1 1녀 중 둘째 ||
          * 2008년 3집 Melody & Memory (타이틀곡 : 여자라서 하지 못한말)[* 01.한 자 한 여자, 02.여자라서 하지 못한 말, 03.모른 척 할까요, 04.You & Me Music(Feat.장근), 05.살아간다, 06.Knock, 07.Please Me, 08.여자이니까, 09.참..., 10.Highway, 11.새.]
  • 유승옥 . . . . 2회 일치
         굵은 허벅지가 개인적인 콤플렉스여서 허벅지 살을 줄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다 결국 지방흡입까지 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부작용 때문에 고생만 하고 허벅지에 상처가 았다고. 후에 운동으로 지금의 몸매를 완성했다고 한다. 워낙 몸에 지방이 많은 타입이라 운동을 조금만 쉬면 바로 육덕이 된다고 스스로 말했다.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 윤찬수 . . . . 2회 일치
         '''윤찬수'''는 [[KBO 리그]] 전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2009년]] 4분기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원 소속팀인 [[LG 트윈스]]로 복귀하였고 [[2011년]] 가을 방출되었다. [[2012년]] [[5월 26일]] 새벽 [[국군체육부대]] 소속 시절 친분을 쌓은 승부조작의 장본인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함께 [[서울특별시|서울]] [[강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부녀자를 납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윤찬수는 공범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2013년]] [[1월 17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같은 날 김동현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45507 `특수강도' 前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 법정구속]</ref>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은혼/582화 . . . . 2회 일치
         * 가족을 버리고도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에겐 "그 자"를 넘어서는 것 밖에 지 않았다며, 그러니 지나가게 해달라며 가구라에게 일격을 날린다.
  • 은혼/583화 . . . . 2회 일치
          * 그 오른팔은 "어긋난 아들"을 쥐어패려고 겨둔게 아니었냐며, 왜 그런데 누워있냐고 원망하듯 말한다.
         * 우츠로의 불사신 능력은 코우카와 차이가 있다는 의견과, 결국 본체가 죽고 가까스로 피한 오른팔이 살아은 거니 결국 같을 거라는 의견이 충돌 중.
  • 은혼/590화 . . . . 2회 일치
          * 귀병대는 이 지시를 의아해하는데, 오보로는 양이지사가 살아은게 예상 외였을 뿐 우츠로의 목적 자체는 이루어졌다고 대답한다.
          * 그러자 오보로는 "땅을 기는 벌레가 가끔씩 날개를 얻어 하늘에도 닿을 수 있는 날개짓을 보여줄 때도 있다"며 "같은 자"에게서 날개를 받은 "자신"은 알 수 있다.
  • 은혼/598화 . . . . 2회 일치
          * 영감은 오토세 아줌마에게 "너희 집이 무너졌는데 그 표정은 뭐냐"고 받아치는데, 오토세 아줌마는 "내 편도 저런 얼굴(긴토키)이 아니다"고 받는다.
          * 그녀의 편이나, 영감의 아들이나 살아있었다면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 은혼/600화 . . . . 2회 일치
          * 주작이 그것이 이 모함으로 발사되는 거냐고 묻자 노부노부는 "나는 그저 아무리 엉덩이를 닦아도 씻을 수 없는 오명을 후세에 기게 된다"고 말한다.
          * 자신만은 현장에 아 노부노부를 독대한다.
  • 은혼/607화 . . . . 2회 일치
          * 시무라 신파치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베트에 다녀온 꼬라지가 됐냐고 따진다.
          * 같은 시각 지상에서도 어떤 자가 이들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는데.
  • 은혼/610화 . . . . 2회 일치
          * 중추회로 안의 킨토키는 벌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기계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자에게 죽음보다 괴로운 선택을 하게 해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꽁무니는 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히라가 겐카이가 만든 기계들이니까'''. 그는 타마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왔냐고 말을 건다. 타마 또한 벌의 영향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들이 사력을 다하는 사이 해결사 일행도 가부키쵸의 동료들도 반격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 임무를 마친 타마. 기계가 사멸한 에도로 걸어나온다. 타마는 작별인사 같은건 필요없다는 독백을 되풀이한다. 그녀는 과거 긴토키가 사줬던 나사, 비녀처럼 꽂고 다녔던 나사를 뽑는다. 나사를 든 손으로 눈물같은 기름이 흘러내린다. 단지 하나의 정교한 기계, 나사에 불과했던 그녀에게 많고 많은 쓸데없는 데이터를 가득 채워준, 기름 범벅의 나사로 만들어준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말만을 기고 겐카이의 품 속에서 기능이 정지된다. 사부로들도, 킨토키도 모두 기능이 정지했다. 아직도 달리고 있는 긴토키는 타마의 기능정지를 느끼기라도 한듯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 은혼/618화 . . . . 2회 일치
          * 오우가이는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도 있는걸 보고 전장은 여자나 애들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전쟁은 자들이 목숨과 명예를 건 신성한 의식인데 이를 더럽혔다는 것이다. 큐베는 싸움을 모르는건 네놈들이라며 그 말을 칼같이 반박한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구분없이 잿더미에 집어던졌다. 이제와서 갓난애나 여자들의 목을 벨 각오도 없이 전장에 서있냐면서 이들은 이미 걸만한 명예도 없고 그 목숨도 얕보던 여자한테 빼앗길 거라고 선언한다.
  • 은혼/624화 . . . . 2회 일치
          * [[오토세]] 여사는 피신하던 것도 있고, 건물 난간 위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거기엔 죽었던 편 타츠고로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는 전화에 불타는 속에서 무엇을 보는 것인지 작은 미소를 짓고 담배 연기만 기고 사라져 버린다. 오토세 여사는 그제서야 함께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 은혼/628화 . . . . 2회 일치
          * 히지카타는 정전이란 말에 "내가 찾는게 그거"라고 말한다. 오키타는 "그거할 상대"라고 알아듣지만. 그가 말한건 정전을 넘어 에도의 모든 기계를 멈춘 자 [[히라가 겐가이]]였다. 겐가이포 덕에 그나마 해방군을 막아낸 거지만, 이대로는 그들도 우주와 단절된 상태로 아무 연락도 취할 수 없다. 우주로 나간 [[가츠라 고타로]] 일행과 교신하려면 무슨 수를 써야할 텐데, 그러자면 겐가이의 협조가 필연적이다.
          * 긴토키가 하늘이 무너져도 깨지 않을 작정으로 술을 병나발 불고 헤드폰에 오키타의 수면안대까지 장착하고 꿀잠의 세계로 출발한다. 그때 방 옆을 지나가던 츠쿠요는 긴토키가 내버린 술병을 밟고 뒤로 넘어진다. 그런데 이때 병에 아있던 술이 그녀의 입 안으로 튀겼다.
  • 은혼/639화 . . . . 2회 일치
          *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모선에 돌입. 데이터로 은 [[한카이]] 또한 해킹에 동원되는데, 사실 이전에 시도했던 해킹도 한카이의 카피였다.
          * 잡무를 떠받은 바토우가 투덜대면서도 일처리를 시작한다. 그의 부하가 해방군 모선의 네트워크에 컴퓨터를 연결한다. 그 컴퓨터에 있는 것은 데이터만 은 상태의 [[한카이]]. 증원군의 임무란 한카이의 능력으로 히노카구츠치를 해킹하는 것이다. 한카이는 부팅되자 마자 자신의 육신을 빼앗은 지구인을 위해 일하라는 거냐며 기막혀한다. 통신으로 연결된 헨페이타는 바로 그런 이야기라며 기공도사라 불린 그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말한다. 게다가 이미 별을 부술 만한 에너지가 모인 상태니, 외부에서 두들기는건 너무 위험한 일. 한카이라면 최적의 인물이다.
  • 이경석 (배구인)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자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 감독]][[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배구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
  • 이관섭 (1961년) . . . . 2회 일치
         |성별 =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근택(1865) . . . . 2회 일치
         이듬해 돌아와 한성 판윤·의정부 찬정 등을 거쳐 1905년 법부 대신과 군부 대신을 역임하였는데 [[이완용]]이 주도한 을사 조약 체결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서 을사오적이 되었다. --결국 [[을사조약|다른]] [[일제강점기|방]][[경술국치|식]]으로 정부를 [[망국|전]][[전복(동음이의어) #s-2|복]]시켰다.-- --그 [[전복]] 아니다.-- 그 이후로 [[조선]] 민중들과 의사의 표적이 되어서 습격을 받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살아았고 이후로는 [[일본군]]을 호위 대동하여 출퇴근을 하였다.
         도땅 절룩절룩 떠돌다가
  • 이기백(군인) . . . . 2회 일치
         [[1931년]] [[충청도]] 연기군(現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전두환]], [[노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
         [[1983년]] [[6월]] [[김윤호]]의 뒤를 이어 [[합동참모의장]]이 되었다. 합동참모의장으로 있던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버마(現 [[미얀마]])에 갔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부상을 당하였으나, 다행히 그가 입고 있던 [[장교]] [[정복]]과 정복에 달린 [[훈장(상훈)|훈장]]이 [[방탄복]] 역할을 하여 살아았다. 그리고 수행했던 [[전속부관]] [[전인범]] [[중위]]에 의해 구조되었다. 귀국 후 그 정복을 육군사관학교에 기증하여 육군사관학교 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이기열(배우) . . . . 2회 일치
         | 출생지 = [[전라도]] [[목포시]]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1955년 태어]][[분류:198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목포시 출신 인물]]
  • 이득윤 . . . . 2회 일치
         '''이득윤'''(李得胤, [[1553년]] ~ [[1630년]])은 [[조선]] 중기(선조-광해군)의 정치가·학자·음악 이론가이다. 자는 극흠(克欽), 호는 서계(西溪),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다. 고려 말 문신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1588년]](선조 21년) 진사가 된 뒤, 참봉, 형조좌랑, 괴산(槐山)군수를 지냈다. 서기(徐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역학 (철학)|역학]](易學)에 뛰어났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1620년]](광해군 12년)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를 엮어서 세상에 내놓아 [[거문고]]의 법도(法道)를 바로 전하게 하였다. 음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여러 금보 및 그 저자와 [[거문고]] 대가에 대하여 다룬 것을 보면, 그가 음악에 조예가 깊고 상당히 박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저서로 〈서계집(西溪集)〉이 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米院面) 가양리(佳陽里) 인경산(引頸山) 아래에 있다.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과 [[청안군|청안]](淸安)의 [[구계서원]](龜溪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분류:1553년 태어]][[분류:1630년 죽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음악가]][[분류:조선의 학자]][[분류:경주 이씨]]
  • 이득을 준 배신자를 처단하기 . . . . 2회 일치
          * 《[[원조비사]]》에 따르면, [[케레이트]] [[부족]]의 [[옹 칸]]이 패망하고, 옹 칸의 아들 셍굼이 도주하고 있을 때, 궁지에 몰린 셍굼의 부하 코코추(Kokochu)는 셍굼이 타는 말의 발목을 부러뜨려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아내도 겨둔 채 도망쳐 칭기즈칸 진영에 항복하였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주군을 배신하여 황야에 버리고, 아내를 버리고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친 놈이라, 주군에 의리가 없고 아내에게 정분도 없으니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비난하며 코코추를 [[참수]]하게 했다.
          * 《[[삼국지연의]]》에서 [[마등]]과 공모하여 [[조조]]를 제거하려 한 [[황규]](黃奎)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황규의 [[처]]인 묘택(苗澤)이 황규의 첩 이춘향(李春香)과 [[간통]]을 하면서 이춘향을 통하여 황규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알고, [[조조]]에게 밀고하여 황규의 일족은 도륙당하게 된다. 그리고 묘택은 조조에게 이춘향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조조는 여자 때문에 매형의 집안을 파멸로 몰아넣었다고 비난하며 묘택을 처형한다.
  • 이만섭 . . . . 2회 일치
         |자녀 = 슬하 1 2녀
         [[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최규하 정부]][[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분류:김영삼 정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대중 정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한국국민당 (1981년) 당원]][[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국민신당]][[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윤치영]][[분류:김종필]][[분류:동아일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1932년 태어]][[분류:2015년 죽음]][[분류:합천 이씨]]
  • 이미라 . . . . 2회 일치
         * [[성해방 대작전]] (1996년)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민호(1969) . . . . 2회 일치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영대학교|영대]] ||
  • 이상무(만화가) . . . . 2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상무는 데뷔작이 고교생이 주인공인 청춘 개그물이었고 스포츠 만화나 가족 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인 취향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현해탄 너머]]에서 동시대 만화가들처럼 단순히 일본인들의 재일교포 차별만 넣는 대신 두 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2세대 교포의 모습도 다루었다. 독고 탁이 투수로 나오는 한국인 시리즈가 그 극이라 할수 있다. [[비둘기 합창]]에서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자친구에게 버림 받는 여자를 그렸는가 하면, [[달려라 꼴찌]]에서 일본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한국의 흑인 혼혈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묘사하였다. 밝은 그림에 비해서는 주제가 무거운 편.
  • 이선미 (소설가) . . . . 2회 일치
         * 은주 기자,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2007/09/20/200709200500000/200709200500000_1.html <nowiki>[‘커피프린스 1호점’이 궁금하다 | 작가 인터뷰]</nowiki> - 방송계에 로맨스 바람 몰고 온 작가 이선미] 《여성동아》 (2007년 9월호)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선아 . . . . 2회 일치
         * [[2014년]] [[드라마]] 《[[응급녀]]》 - 허영지 역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전의 이씨]]
  • 이애란(가수) . . . . 2회 일치
         || '''출생''' ||<(> [[1963년]] [[3월 25일]] [[강원도]] [[홍천군]][* 현재 거주지는 [[경기도]] [[하시]]이다.] ||
         북한이 벌인 [[4차 핵실험]]에 대한 보복으로 재개한 [[대북방송]]에 [[백세인생]]이 포함되었다. 노래와 함께 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북한보다 약 10~15년 정도 길다는 내용의 해설을 담는다(...)
  • 이영은(1982) . . . . 2회 일치
         ||<:> 가족 ||<(> 1 1녀 중 둘째[br]슬하 1녀 ||
         특이하게도 연예계 엄친아, 뇌섹으로 통하는 송중기(산부인과). 이상윤(미우나 고우나). 하석진(원스어폰어타임 인 생초리)과 상대역으로 호흡을 다 맞춰본 유일한 여배우다.
  • 이웃집 잔디는 푸르게 보인다 . . . . 2회 일치
         영문 경구. 의 물건이 자신의 것보다 언제나 더 좋아 보인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한국 속담으로는 "의 떡이 더 커보인다,"가 있다.
  • 이윤열 . . . . 2회 일치
         2015년 11월 9일 일반인 여성과 교제의 끝에 혼인의 길을 맺었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측은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스타크래프트 II: 공허의 유산]] 출시행사에서 결혼식을 가지게 되어 전세계로 생중계 되어 많은 팬들이 축하를 겼다.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KT 롤스터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Old Generations의 선수]][[분류:SK 게이밍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골든마우스 수상자]][[분류:MSL 우승자]][[분류:MSL 금배지 수상자]][[분류:로열로더]][[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구미시 출신]][[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이종훈(코미디언) . . . . 2회 일치
         * 이런다! 자들은 이런다! (교무회의)
         [[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82년 출생]][[분류:2005년 데뷔]][[분류:김포시 출신 인물]]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2회 일치
         1933년 [[충청도]] 연기군 (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났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도 연기군-대덕군-[[금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1967년)|신민당]] [[유한열]]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였다.
  • 이진만 (1675년) . . . . 2회 일치
         과거 공부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으로 소일하며 창설재 권두경(蒼雪齋 權斗經), 눌은 이광정(訥隱 李光庭) 등과 주로 교류하였다. 이후 그는 [[사서육경]]이나 경전 중에 [[주자]]의 주자어류(朱子語類), 성리대전(性理大全), 당육지(唐陸贄)의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 가공언(賈公彦)의 주례주소(周禮註疏),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의 책을 골라 모아서 한 권으로 편집하여 《대성집설 (大成集說)》이라 이름하고 늘 즐겨 읽었다. 이후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시문이나 기행문 등을 겼다.
         [[분류:1675년 태어]][[분류:1752년 죽음]][[분류:조선의 성리학자]][[분류:조선의 작가]][[분류:조선의 시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채영(fromis_9) . . . . 2회 일치
         ||<bgcolor=#BBB3D8> '''{{{#white 학력}}}''' ||<(><bgcolor=#ffffff> 흥해산초등학교 (전학) → 포항양덕초등학교 (졸업)[* 6학년 때 전학왔다.][br]포항장흥중학교 (전학) → 장원중학교 (졸업) [br][[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연예과 (재학) ||
          * 그룹 내에서 제일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아이돌학교 내에서 팔씨름을 걸었을 때도 3판 다 이겼고, [[송하영|하영]]이 육성회원 과제로 닭싸움을 걸었는데, 하필 '''마지막 상대가 이채영'''이라서 패한 기록이 있다. 또한 [[fromis_의 방]] 3화에서는 사과를 '''맨 손으로 쪼갰다.'''] 근데 이런 이미지와 반대로 겁이 가장 많다.[* [[fromis_의 방]] 3화에서 공중 로프 코스에서 자신이 고소공포증이 있는걸 처음 깨닫고 코스 하나 겨우 넘어왔지만 결국 다음 코스에서 못 하겠다면서 ~~눈물 싹 빼고~~ 포기하고 말았다. 내려와서도 그 여운이 아있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이 심한 듯.] 여기서 나온 별명이 겁'''챙'''이.
  • 이케멘 . . . . 2회 일치
         미이라는 뜻. 보통 "꽃미", "얼짱"으로 번역된다.
  • 이하윤(배우) . . . . 2회 일치
         |2011||KBS2||[[공주의 자]]||소앵 역||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가평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이혜숙(영화배우) . . . . 2회 일치
         ||<#87CEFA> '''{{{#ffffff 가족}}}''' ||<(> 배우자 한기은, 딸 한서원 (2 2녀 중 셋째) ||
          * [[드림 하이]] - 송
  • 인비저블 우먼 . . . . 2회 일치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2회 일치
          * 잠시 뒤. 두 사람은 요정왕의 숲의 높은 나무에 걸터앉아 리오네스 왕국과 멜리오다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안느가 리오네스 왕국에 은 이들을 걱정하자 할리퀸은 멜리오다스 사후 브리타니아에 만연한 마신족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면서 아마 리오네스도 예외는 없을 거라고 말하는데. 디안느는 아직도 기억을 찾진 못했지만 멜리오다스는 착한 사람이었다며 그렇게 죽어선 안 됐다고 씁쓸해한다. 할리퀸은 여전히 그에 대해 의문이 은 것 같지만 역시 살아있었으면 했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99화 . . . . 2회 일치
         둘이 정말로 십계를 배신한게 맞다면 현재 은 십계는 리타이어가 확인되지 않은 몬스피드, 데리엘, 에스타롯사, 젤드리스 4인이다. 문제는 죄다 심각하게 관광탄 상태라 제대로 전투가 가능한 상태일지 미지수. 이렇게 되면 십계 중 유효한 전력이 한 명도 지 않는 웃기는 상황이 된다.
  • 일곱개의 대죄/211화 . . . . 2회 일치
          그녀는 문 안에 있는 사람의 정체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곳을 향해, 고서를 향해 대답하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자가 나타난다. 그는 인질탈환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조금 조작을 가해놨다며 사과한다. 하지만 그건 전부 자신이 "자유"로워 지기 위한 일이었다고 한다.
          인형의 얼굴로 작별인사를 기는 고서.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2회 일치
          * [[반(일곱 개의 대죄)|반]]은 엘레인의 은 시간이 얼마 지 않은걸 직감하고 다음 임무에서 빼달라고 요청한다.
  • 일곱개의 대죄/224화 . . . . 2회 일치
          * [[엘리자베스 리오네스]]가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뒤, [[멜리오다스]]는 그녀가 4일 뒤면 죽을 거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에게 얽힌 3천 년의 진실이 공개된다. 이야기는 다시 성전시대로 거슬러 간다. 두 사람은 각각의 종족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이면서 여신족과 손잡고 동족을 학살한 죄. 엘리자베스는 여신족이면서도 마신족 성과 사랑하고 적인 십계를 구한 죄. 이 죄로 인해 둘은 어떤 벌을 받게 된다.
          눈물과 함께 두 번째로 엘리자베스를 매장한 멜리오다스. 또다시 길을 떠난다. 저주를 풀기 위한 정처없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유언처럼 긴 말들이 진실임을 입증하듯, 그는 세 번째 엘리자베스와 재회한다.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2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의 힘을 끌어냈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고 분노가 담긴 공격은 코란도의 입구 부근의 지형이 바뀔 만한 위력이었다. 어마어마한 파편이 발생해 사방으로 떨어지는데, 일부는 유성처럼 카멜롯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서둘러 처리해야겠다고 하지만 멀린은 문제 없다고 한다. 파편은 일정한 지점에서 사라져 버린다. 수면에 떨어진 돌이 파문을 긴 것처럼, 허공에 크고 작은 원이 생겨난다. 이것이 차원의 뒤틀림이다. 멀린은 이것이 카멜롯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막는 성가신 "벽"이라 말한다. 그리고 멜리오다스의 돌발행동이 결과적으론 차원의 뒤틀림의 위치와 강도를 확인한 셈이 됐다고 덧붙인다.
          * [[디안느]]가 어쩌면 좋겠냐고 묻자 [[고서(일곱 개의 대죄)|고서]]가 마력감지로 적이 멀리까지 가지 못했고 코란도 중심부에서 마력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때 [[헬브람]]이 할리퀸에게 주위를 보라고 귀띔한다. 근처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체, 다 썩어서 백골만 은 시체가 가득했다. [[에스카노르]]와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가 놀라 자빠진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일어난 대학살의 희생장일지 모른다. 고서가 조용히 수를 헤아려 보니 족히 천에 이르렀다.
  • 임기영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임성은(가수) . . . . 2회 일치
         ||<#eee> '''가족 관계''' || 1 1녀 중 장녀 ||
         1집 활동 이후에는 솔로 데뷔를 위해 탈퇴했으며 박성현이 메인보컬로 합류해서 성 3인, 여성 2인의 혼성그룹이 되었다. 그녀가 나간 이후에도 영턱스클럽은 2집에서 "질투", "타인"등을 계속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다만 그녀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약간의 힘을 잃은 것은 사실.
  • 임윤선(법조인) . . . . 2회 일치
         2013년 12월 7일부터 방영된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 출연해서 5회까지 살아 았고 2015년 6월 27일부터 방영되었던 <[[더 지니어스:그랜드 파이널]]>에 출연하여 4회까지 살아 았다. 자세한 내용은 [[임윤선/더 지니어스]] 문서 참조.
  • 임인배 . . . . 2회 일치
         195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김천고등학교]], [[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1995년 현직 검찰 수사관 신분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12800329116014&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5-01-28&officeId=00032&pageNo=16&printNo=15325&publishType=00010|"조국을 기고 님은 가셨습니다"라는 소설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따서 덕천장학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 임현성 . . . . 2회 일치
          * 2007년 만의 광장
         [[분류:한국 배우]][[분류:1979년 출생]][[분류:부안군 출신 인물]]
  • 임현식(배우) . . . . 2회 일치
         ||<-5><tablebordercolor=#c0c000><tablewidth=100%><table align=center><#c0c000> {{{+1 '''[[백상예술대상|[[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width=100]]]] TV부문 자 최우수연기상'''}}} ||
         [[분류:한국 배우]][[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45년 출생]][[분류:순창군 출신 인물]]
  • 장범준 . . . . 2회 일치
         [[분류:버스커 버스커]][[분류:1989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장씨]]
  • 장슬기 (희극인) . . . . 2회 일치
         ** 해석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극동정보대학 동문]][[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투나잇]]
  • 장연주 . . . . 2회 일치
         * [[백일째 만]] (Single) (2008.06.17)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여자대학 동문]][[분류:서문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분류:1978년 태어]]
  • 장영 (조선) . . . . 2회 일치
         저서로는 시문집인 《소매당유집(訴梅堂遺集)》이 아 있다.
         [[분류:1622년 태어]][[분류:170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장우람 (가수) . . . . 2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유환 . . . . 2회 일치
         ** 〈자 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2013년 데뷔]][[분류:장씨]][[분류:개그투나잇]][[분류:개그콘서트]]
  • 장윤진 . . . . 2회 일치
         |가족 = 사촌동생[[장성원 (배우)]]
         [[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85년 태어]][[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
  • 장익 (1933년) . . . . 2회 일치
         * [[노기]]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주교]][[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장면]][[분류:함세웅]][[분류:천주교 춘천교구장]][[분류:인동 장씨]]
  • 장정희(배우) . . . . 2회 일치
          * [[2007년]] [[SBS]] [[강엄마 따라잡기]]
          * [[2009년]] [[KBS]] [[결혼 못하는 자]]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프로게이머였던 [[장진]]과는 쌍둥이 형제이다.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이스트로의 선수]]
  • 장혁주 . . . . 2회 일치
         일본 문단에서 활동하던 장혁주는 [[1933년]] 장편 《무지개》로 한국 문단에도 선을 보였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무지개》도 초기의 사실주의적 작풍이 살아 있는 작품이나, 이후 녀간의 복잡하게 얽힌 애정 관계가 묘사된 《삼곡선(三曲線)》(1934~1935) 등 점차 통속적인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무렵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분류:1905년 태어]][[분류:199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재일 한국인]]
  • 쟈니즈 . . . . 2회 일치
         [[일본]]의 연예 기획사. [[SMAP]], [[아라시]] 등 유명한 그룹이 소속되어 있다. 주로 성 꽃미 연예인들로 유명.
  • 전라북도/인물 . . . . 2회 일치
         군산시 - [[강근호]] [[강봉균]] [[능미]] [[박윤경(가수)|박윤경]] [[박화요비]] [[이정재(배우)|이정재]]
         원시 - [[강광배]] [[김보미(탤런트 겸 배우)|김보미]] [[문근영]] [[주현미]]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
  • 전상우 (1953년) . . . . 2회 일치
         * 2004년 : [[충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특허청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
  • 전수지 . . . . 2회 일치
         * 《[[쪽으로 튀어]]》 (2013년) - 오 선생 역
         [[분류:198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전수희 . . . . 2회 일치
         **해석녀 (2015.07.12 ~ 2015.08.23)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우석대학교 동문]][[분류:2011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
  • 전예용 . . . . 2회 일치
         |제목=<nowiki>[6·25 58주년 특집] 사학자 이현희 교수가 겪은 전란 속 서울 - 눈 부릅뜬 시체더미, 녀 포로 나체 연행… 30년보다 긴 3개월</nowiki>
         [[분류:1910년 태어]][[분류:1994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부흥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건설부 장관]][[분류:서울특별시 부시장]][[분류:한국은행 총재]][[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분류:규슈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이승만]][[분류:박정희]][[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정선 전씨]]
  • 전재국 . . . . 2회 일치
         |자녀 = 슬하 1 1녀
         [[분류:1959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삼육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전두환 가]][[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문]][[분류:완산 전씨]]
  • 전정희 (배우) . . . . 2회 일치
         *2014~ [[서울부지방법원]] 조정위원장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2회 일치
          * 모미지가 가자마자 마기에게 "미로 항로 조정, 그곳 조직에 화물을 판매, 감시위성 대책과 GPS 정보 체크, 선명 변경 등등"을 해두라며 결국 다 떠넘긴다.
          * 효부는 모미지가 긴 메시지는 다 어기게 된 셈. "싸우지 마"라는 것까지 다 어겼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2회 일치
          * 상황이 정리된 이후 나오미는 미나모토와 사카키를 데리고 도쿄로 향한다. 떠나기 전 타니자키를 때려눕히고 아있는 더 하운드에게 "주기적으로 두들겨패서 혼수상태로 만들어라"는 지시를 긴다.
  • 절대가련 칠드런/473화 . . . . 2회 일치
          * 파티는 데미지고 별게 아니라며 재구성으로 간단히 회복한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성진은 적인 나오미까지 회복시키면서 자들은 방치, [[부녀자]] 정신을 어필한다.
          * 아오이는 단숨에 부스트해서 전부 되찾자고 제안한다. 유리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마츠카제는 다섯 명이나 되는 특무 에스퍼 상대로 현실성 없는 작전이라며 만류한다. 게다가 헬기 부대까지 고려하면 부스트는 비장의 수로 겨놓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자 시호가 주축이 돼서 "그걸 어떻게든 하는게 지휘관"이라며 아오이와 유리까지 가세해서 "되는 작전을 짜내라"고 스킨십 공격으로 농락한다. 마츠카제는 갈 수록 M에 개화하는지 "좀 더 부탁받고 싶어진다!"며 곤란해한다.
  • 정다혜(1987) . . . . 2회 일치
         * 2012년 [[tvN]] 수목드라마 《[[인현왕후의 자]]》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속초시 출신 인물]]
  • 정만조 . . . . 2회 일치
         정만조는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개화 사상을 익힌 앞서가는 지식인이었다. 당시 세도 세력인 [[여흥 민씨]] 일파와는 대립하다가 정치적인 사건에 말려들어 [[전라도]] [[진도 (진도군)|진도]]로 유배되었다. 10년이 넘는 유배 생활 끝에 [[1907년]] [[대한제국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에야 사면을 받아 다시 관계로 복귀하였으며, 이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이익에 따라 활동하는 친일 학자가 되었다.
         [[분류:1858년 태어]][[분류:1939년 죽음]][[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개화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상헌 . . . . 2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농구 선수]][[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살인자]][[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
  • 정서임 . . . . 2회 일치
         * 1987년《이마음 별이 되어》오아시스사,지명길작사,김균작곡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선 (화가) . . . . 2회 일치
         20세에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중국]] [[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
         [[분류:정선| ]][[분류:1676년 태어]][[분류:1759년 죽음]][[분류:조선의 화가]][[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서예가]][[분류:조선의 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광주 정씨]][[분류:18세기 화가]]
  • 정성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서울효제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
  • 정세진 . . . . 2회 일치
         |2017||KBS1||[[KBS 스페셜]] 오래된 기억, 6.15 북정상회담 ||내레이션||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정소담 . . . . 2회 일치
         #[https://brunch.co.kr/@sodamjjj/13 <맥심칼럼> 나쁜자론, 그 오류가 쓰인 전말]
         [[분류:1989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칼럼니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승우 (1973년) . . . . 2회 일치
         * 《[[내 자의 비밀]]》 (KBS2, 2017년)
         [[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
  • 정승우 (골프선수) . . . . 2회 일치
         부인 탤런트 왕빛나는 집안이 유독 골프와 인연이 깊어 가족으로 왕빛나의 동생 [[왕윤나]]와 편 프로골퍼 김대섭가 있다. <ref name="골프"/> 2018년4월19일에 골퍼 정승우와 배우 왕빛나가 11년만에 이혼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골프 선수]][[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7년 데뷔]][[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인선(탤런트) . . . . 2회 일치
         || [[EBS]] || 네 손톱 끝에 빛이 아 있어 || 리슬기 || ||
         || [[MBC]] || [[위기의 자]] || 이여름 || ||
  • 정재민(2001) . . . . 2회 일치
         '''정재민'''([[2001년]] [[5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아티스트]]이다. 추가로 엄청난 존멋이며주량이 소주13병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ref>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A0%95%EC%9E%AC%EB%AF%B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727094 정재민-네이버인물정보]</ref>
         [[분류:200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정채진 . . . . 2회 일치
         * 1974 ~ 1976 : 충북도·전도 부지사
         [[분류:1932년 태어]][[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산림청장]][[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흥채(배우) . . . . 2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
         || '''출신지''' ||[[전라도]] [[영암군]]||
  • 제2편성제도 . . . . 2회 일치
         전시 상황에서 사단장은 완편 사단을 거느리고, 2명의 부사단장 가운데 1명만 데리고 전선으로 이동한다. 하부에서도 이는 반복되어, 평시에 부사단장, 부참모장, 부연대장, 부대대장을 수행하던 사람이 각 1명씩 게 된다. 이들은 동원명령을 받고 입소하는 예비군으로 새로운 사단을 편성한다. 새로운 사단에는 기존 사단이 무장을 교체하면서 겨두었던 구식 무기들을 지급한다.
  • 존 딜린저 . . . . 2회 일치
         결혼까지 했음에도 딜린저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자와 함께 무어스빌의 식료품에서 강도짓을 벌인다. 그리고 빠르게 체포ㅋ. 싱글턴은 법정에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해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딜린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죄를 고백했다가 징역 2~14년+징역 10~20년[* 미국은 범죄를 여러개 저지르면 형량이 따로 붙는다.]이라는 선고를 받고 큰집에 처박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해리 피어폰트(Harry Pierpont)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7월 21일, 안나 세이지(Anna Sage)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경찰에게 연락해온다. 그녀의 정체는 인디애나 주 게리에서 포주일을 하던 아나 쿰파나슈(Ana Cumpănaș)였다. 이민 귀화국에서는 이 루마니아 출신 포주를 국외추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쿰파나슈는 보상금을 주고 미국에 게 해준다면 존 딜린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연락한 것이었다. FBI는 보상금은 약속할 수 있지만 국외추방에 관한건 노동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쿰파나슈는 이를 받아들였다.
  • 주다영 . . . . 2회 일치
         | 형제자매 = 동생 2명
         [[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주상철 . . . . 2회 일치
         || '''가족''' ||배우자, 슬하 2||
         [[분류:문화방송 성 아나운서]]
  • 주아브 . . . . 2회 일치
         이들은 미국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북전쟁]] 중 북 양쪽의 몇몇 의용군 부대가 주아브라고 자칭하거나 주아브식 복장을 입었다.
  • 진격의 거인/81화 . . . . 2회 일치
          * 인간체는 은 거인들에게 리바이를 공격하라고 지시하고 도주한다.
          * 놀랍게도 돌격한 조사병단 중 한 사람이 살아아 생존자를 찾고 있다.
  • 진격의 거인/83화 . . . . 2회 일치
          * 리바이가 추적해오자 베르톨트를 포기하고 도주. 엘런에게 "언젠가 구해주겠다"는 말을 긴다.
          * 퇴각하기 전 베르톨트에겐 "너는 여기까지"라며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엘런에겐 "언젠가 구해주겠다"는 말을 긴다.
  • 차민수 . . . . 2회 일치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미국의 포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미국의 미술가]][[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미국의 불교 신자]][[분류:더 지니어스 참가자]]
  • 차승재 . . . . 2회 일치
         *2006년 제43회 《[[대종상]]》최우수 작품상 - [[왕의 자]]
         [[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창작:바벨 코스트 . . . . 2회 일치
         ==== 북전쟁 ====
         북전쟁을 기점으로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바벨 코스트로 유입되며 성장세가 커졌다. 개중에는 아메리카 연합국 지역에 살던 일부 백인들이 신분을 속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 이로 인한 분쟁이나 갈등은 원한 관계로 인한 것 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Babel이라는 이름을 Barbell로 바꾸게 되었다.
  • 창작:좀비탈출/4-1-2-1 . . . . 2회 일치
         그렇게 바라본 뒷마당은 터무니없이 낯설다. 한 번도 올라본 적 없는 산을 본 기분이다. 집안에서 독을 상상할 때만 해도 조감도라도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생생했는데, 여기에 오니 의 집을 털러 간 초보 도둑처럼 깜깜하다.
         토트넘이 나를 봤다. 눈깔이 아 있다면 봤을 거다. 어쨌든 녀석은 나에게 똑바로 다가오고 있다. 담장을 넘는게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만 죽어라 차대더니 죽어서도 하체는 튼튼한가 보다. 보통의 놈들에 비해서 빠르고 정확한 걸음을 하고 있으니까. 그 썩어 문드러진 면상만 아니었다면 프로 입단이라도 권해야겠어.
  • 창작:좀비탈출/5-1-2 . . . . 2회 일치
         머릿 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녀석들의 개인차. 하체가 발달한 녀석이 있으니 다른 것이 발달하거나 썩지 않은 녀석도 있을 법하다. 그래 예를 들자면…… '''후각이 멀쩡한 녀석.''' 이제 토트넘은 시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썩은내 스팟'''으로 활약하겠지. 녀석들 중에 후각이 은 녀석이 있다면? 녀석들의 뇌는 냄새의 호불호를 분별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자극이 있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것이고 그게 녀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면…….
         어제 은 죽으로 아침인지 야식인지 모를 끼니를 때웠다. 졸음이 몰려왔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항상 같은 침대였는데 오늘만큼은 깃털처럼 부드럽다. 20시간이 조금 못 되는 인간적인 생활의 여파인지 피로와 공복감 밑에 숨어있던 다른 욕구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 미학적 욕구나 지식욕처럼 점잖은 거면 좋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고 살아가는 실감이 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아니 '''어차피 혼자 있는데''' 눈치 볼게 뭐가 있어? 나는 졸음을 잠깐 미뤄뒀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2 . . . . 2회 일치
         나는 녀석을 오래 관찰하진 않았다. 그야 이 꼴이 되면 사람이든 녀석들이든 끝장이니까. 어쩌면 이게 녀석들에게 은 유일한 '''인간성'''일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모가지는 조심해야 하다니. 갑자기 사방이 텅 빈 느낌이 들면서 녀석의 썩은내가 훅하고 올라왔다. 이게 긴장이 풀린 효과인지 아니면 코가 삐뚫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한 번 더 죽어버린 녀석은 강렬한 악취로 존재를 과시했다. 아니면 그 체액이 묻어서 더 역겹게 풍겨오는지도 모르겠다. 코를 틀어쥐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양손이 지저분하다.
         다시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위험이 사라진 앞마당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일상감이 넘쳤다. 한쪽에 줄지어 둔 작은 화분이 그대로 있다. 모종은 시들어 버렸지만, 저것만 봐서는 집주인이 게으르다는 생각만 들 것이다. 텅비어 있는 차고도 주인이 마트라도 가서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현관문이 열리고 의 집 마당에서 무슨 짓이냐고 외치는 토트넘네 아줌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2회 일치
         학교에는 수십명 가량의 학생만 겨졌는데, 이 지경이 되서도 야간자율학습에 보내는 부모를 둔 녀석들인 만큼 다들 조금 무기력한 데가 있어서 다음날 대낮이 되도록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걸 깨닫고 하나 둘 무단으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들도 물론 돌아오지 않았다. 얘들도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런 공부벌레들이 이런 좀비가 우글거리는 거리를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고, 돌아갔다고 해도 집은 이미 안전한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아 있던 녀석들 가운데 반 이상이 조용히 학교를 나가기를 선택한 다음,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소식도 없자 나머지 녀석들도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 채상병 . . . . 2회 일치
         [[2009년]] 시즌에 접어들어서는 [[최승환]], [[용덕한]] 등의 팀 내 다른 [[포수]]들의 경쟁에 밀려 1군 경기보다는 2군 경기에서의 출전이 잦아지게 되었고 1군에는 몇 경기에만 나와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는 등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5231651142222&ext=na 두산 채상병-SK 채병용, 부상으로 1군 엔트리 말소] - 마이데일리</ref> 때마침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 [[현재윤]] 등이 잇따라 부상을 입으면서 아 있는 포수는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신고선수 출신 [[이지영 (야구 선수)|이지영]]뿐이라 [[포수]] 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에 놓이자, [[2009년]] [[7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인 [[지승민]]을 상대로 한 1: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907160125 두산, 삼성 좌완 지승민 영입] 《Osen》, 2009년 7월 16일 작성</ref> 하지만 [[2010년]]에는 [[진갑용]]과 [[현재윤]]의 회복, 그리고 [[이정식 (야구 선수)|이정식]]이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2군으로 밀렸다. [[2011년]]에 포수들이 대거 부상을 입어 주전 자리에 다시 앉게 되어 감각을 찾았고,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았다.그러나 2012년 이후 부터 경쟁에서 밀리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4 시즌 후 구단과의 합의 끝에 은퇴를 결정하였고, 배터리 코치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효제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평강 채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채현국 . . . . 2회 일치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상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ref>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112191904563 </ref>
         [[분류:193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학교법인인]][[분류: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챠라남 . . . . 2회 일치
         챠라오(チャラ男)란, '챠라챠라한 자'를 가리키는 뜻이다.
         흔히 챠라이라 불리는 외모는, 선탠을 하거나 태닝을 해서 햇볕에 그을린 피부, 갈색이나 금발로 염색한 머리, 헌팅이나 소개팅 같은 곳에 자주 나간다는 이미지가 있다. 귀걸이나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많이 쓰고 다니고, 이 점 때문에 '챠라챠라 하다'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 최동익 . . . . 2회 일치
         |성별 =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의 정치인]][[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시각 장애 정치인]][[분류:경주 최씨]][[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
  • 최민창 . . . . 2회 일치
         * 강초등학교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
  • 최민환 . . . . 2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은일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7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FT아일랜드의 일원]]
  • 최서일 . . . . 2회 일치
         190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ref>통천최씨 족보에는 전라도 완도군 약산면 관산리에서 출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 [[도쿄 대학|동경제국대]] 수산대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이후 [[조선총독부]] 산업기사를 지냈다. 해방 이후 (주)조선수산개발 사장으로 사업을 펼치다 공직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상공부|상공부]] 수산국장과 초대 해무국장을 지냈다. [[1960년]] 해무청 청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완도군]]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제 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민주공화당 중앙상임위원을 지냈다. 1970년에 사망하였고, 묘는 양주군 모란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분류:1906년 태어]][[분류:1970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통천 최씨]]
  • 최승욱 . . . . 2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자 농구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
  • 최연제 . . . . 2회 일치
         [[1992년]] 1집 《소중한 기억》으로 데뷔하였다.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 너를 잊을 수 없어 등의 히트곡을 겼다. 배우 [[선우]]의 장녀이다. 2001년 정규 4집을 끝으로 미국에서 침구사로 활동중이다.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2년 데뷔]][[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영이 (종교인) . . . . 2회 일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영이는 편과 함께 피신했지만, [[6월]]에 그녀의 친정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체포될 때,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감옥은 혼탁한 공기에 어둡고 음식도 부족했으므로, 유아가 지내기에는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또한 그녀는 아들 때문에 확고한 신앙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염려하였으므로, 최영이는 아들을 밖의 한 친척에게 맡겼다.
         [[분류:1818년 태어]][[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최원권 . . . . 2회 일치
         {{200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자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
  • 최원제 . . . . 2회 일치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7년 8월에 열린 제 61회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소속된 [[장충고등학교]]의 우승과 함께 MVP가 되었다.<ref>《SPORTS 2.0》"아직은 1군에 는 게 목표지만", 2008,3,31, 류한준</ref>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원태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분류:199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인헌초등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2회 일치
          * 前 [[KBS]] [[아나운서]] [[황수경(방송인)|황수경]]의 [[편]]으로 더 유명하다. 2013년, 이들 부부의 ‘파경설’이 악성루머로 떠돌자 최 전 차장 부부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한 종합일간지 기자가 루머 유포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http://koridol.tistory.com/6471|#]]
         서울부지검 검사 2004.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2회 일치
         '''최윤정'''(1974년~)은 [[미누파탈]]의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1974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97년]] [[MBC]] 2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하여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사랑과 성공, 진실, 마지막 전쟁, 가을에 만난 자, 베스트 극장, 인어아가씨, 앞집여자 등에 출연하였다. 또한 [[영화]] [[선생 김봉두]]에도 출연하였고, LG텔레콤, [[P&G]], PCCW, 여성가족부 등의 [[CF]] 모델로도 활동하였다. [[2013년]] [[최정아]]와 함께 20~30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미누파탈]]을 설립하였다.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
  • 최재우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프리스타일 스키]]}}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2014년 동계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프리스타일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유현초등학교 동문]][[분류:청담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최재원(배우) . . . . 2회 일치
         [[1969년]] [[12월 15일]], [[전라도]] [[순천시]]에서 출생. [[종교]]는 [[가톨릭|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요셉이다.
         [[분류:한국 배우]][[분류:1969년 출생]][[분류:순천시 출신 인물]]
  • 최재희 . . . . 2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
  • 최정원(남자배우) . . . . 2회 일치
         1999년 고3 시절 성 5인조 그룹 브론즈의 리드보컬로 데뷔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년 후인 2000년 [[김정훈(UN)|김정훈]]과 UN이라는 그룹으로 다시 데뷔하게 된다. --결국 성공하여-- 총 6장의 앨범을 냈으며, 해체 이후 2008년에 'Sunshine On Summer Time' 싱글을 냈다.
         [[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81년 출생]][[분류:한국 배우]][[분류:1999년 데뷔]][[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시리즈 역대 출연자]][[분류:태백시 출신 인물]]
  • 최제훈 . . . . 2회 일치
         * 《퀴르발 작의 성》([[문학과지성사]], 2010)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7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 최창흡 . . . . 2회 일치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최창현 요한]]의 이복 동생이며 [[1839년]]의 [[기해박해]]로 인해 [[1840년]]에 순교한 [[성녀]] [[손소벽 막달레나]]의 편이며, 같은 해에 순교한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의 아버지이다.
         [[분류:1786년 태어]][[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최채흥 . . . . 2회 일치
         ||<:> '''별명''' || 국민처[* 10월 3일[* 대구 KIA전. 삼성이 20-5로 승리한 경기]에 경기장을 방문한 여동생 덕에 붙은 별명] ||
         [[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875443|매 포토타임]]
  • 최충연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야구]]}}
         [[분류:199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최태영 . . . . 2회 일치
         학술활동에도 열의를 보여 [[1954년]]부터는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7년]]부터 [[1972년]]까지는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술로 국내 최초로 상법과 관련된 《현행 어음·수표법》을 집필하였고, 다양한 저술을 겼다. [[1977년]]에 출간한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은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분류:1900년 태어]][[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법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백세인]][[분류:상법학자]][[분류:부산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최훈재 . . . . 2회 일치
         은퇴 후 [[두산 베어스]]에서 2군 타격코치로 활동하다가 [[2010년]] 시즌 후 재계약 실패로 물러났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9&aid=0002196308 두산, 지승민·이원희·박종섭 방출] - 노컷뉴스</ref> 그 후 휴식기를 갖다가 [[2011년]]에 창단을 결정한 [[NC 다이노스]]에 합류했다.<ref>[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02&c2=02&c3=00&nkey=201111021617111&mode=sub_view 한문연-최훈재 코치, NC 다이노스 합류] - 한국경제</ref> 이후 잔류군을 맡다가 [[2014년 NC 다이노스 시즌|2014년]]부터 2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ref>[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373 NC 다이노스 내년 코치진큰 변화 없을 듯] - 경도민일보</ref>
         [[분류:196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영일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중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강릉 최씨]][[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추경호 . . . . 2회 일치
         * 2018년 10월 ~ 2019년 6월: 20대 국회 후반기 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간사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츠키시마 케이 . . . . 2회 일치
         독설가에 냉소적이며 을 비꼬는 데에 꽤나 거리낌이 없는 성격이다. 또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경기에는 매우 냉정하게 임하고 블로킹 실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약하다.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 [[wiki:"히나타 쇼요" 히나타]]의 입부 경기 때 상대팀이었다. 저 둘이 입부 경기를 위해 한창 연습하고 있을 때 나타나, 히나타를 '초등학생', 카게야마를 '제왕'이라 부르며 조롱했다. 이후 [wiki:"야마구치 타다시" 야마구치]와의 대화에서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쓸데없이 열 내는 녀석들'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싫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종 카게야마를 '제왕' 혹은 '엘리트'로, 본인을 포함한 평범한 배구부 부원들을 '서민'으로 칭하곤 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연습이나 시합 중 카게야마와 자주 부딪치지만 그때마다 [[wiki:"사와무라 다이치"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말린다.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카라스노 고교 . . . . 2회 일치
         시합 때 입는 유니폼은 오렌지색과 색을 배색한 디자인으로 무난하다는 평. 그런데 연습할 때 입는 배구부 트레이닝복이 상하의 모두 칙칙하다 못해 시꺼먼 '''검정색'''이다.[* 사족으로 카라스노 고교의 학교 체육복은 팥색.] 여기에 학교의 상징동물인 [[까마귀]]와 [[타나카 류노스케|얼굴만으로]] [[카게야마 토비오|사람을]] [[아즈마네 아사히|쫄게 하는]] 선수들이 더해지면서, 이미지만으로는 매우 살벌한 학교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대회장에서 '날지 못하는 까마귀' 운운했다가는 높은 확률로, 이들이 전원 [[죽은 눈]]을 한 채 호러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중학시절 베스트 리베로 상을 받은 [[니시노야 유]]와 키타가와 제1중 출신의 천재 세터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는 것만으로, 전력상 무시 못 할 팀이다. 실제로 덕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학교의 리베로와 세터가 너무 [[사기캐]]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 과장이 아닌 게 니시노야는 키 빼고[* 아무리 포지션이 리베로라 하더라도 [[니시노야 유|니시노야]]의 경우에는 '''너무 작다'''. 프로필 신장은 160cm 근방이지만 이 키가 세운 머리(10cm)까지 포함한 거다. 아무리 만화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신장으로 배구를 한다는 건 [[흠좀무]]다. 아직 고2니까 더 클 가능성도 있지만.] [[먼치킨]]이며,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냥 [[스탯]]부터가 깡패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천재]]상으로 카게야마를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탯을 몰빵해놓은데다[* 현재까지 등장한 캐릭터들 중 능력치 총점에서 카게야마를 앞선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후쿠로다니 학원]]의 보쿠토 마저도! 때문에 독자들은 [[시라토리자와 학원]]의 우시와카의 프로필이 어서 공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중 활약(문제의 토스들)만 따져도 얘만한 먼치킨이 없다.
  • 카스미가세키 . . . . 2회 일치
         도쿄도 치요다구(東京都千代田区)의 사쿠라다몬(桜田門) 부 일대를 뜻한다.
         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많은 관청이 있다. 외무성을 뜻하는 속칭으로도 쓰인다. 한국으로 치면 "산"이 [[국정원]]을 뜻하는 것처럼 지명이 특정 기구를 가리키는 은어가 세간에 자리잡은 사례로 볼 수 있다.
  • 카케오치 . . . . 2회 일치
         어디론가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는 것. 특히 서로 사랑하지만 신분이나 주변 조건 때문에 결혼이 어려운 녀가 도망쳐서 함께 사는 것을 카케오치라고 부른다. '사랑의 도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실종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지만 (주로 신분 격차나 차별 등으로) 결혼이 허락되지 않은 녀가 눈이 은밀하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 칼렉시트 . . . . 2회 일치
         과거 [[북전쟁]]에서 미국은 무력으로 연방을 탈퇴하려는 부 주들의 연합을 저자한 바 있다.
  • 코미디언(왓치맨) . . . . 2회 일치
         16세였던 1939년부터 뛴 고참 히어로. 초능력은 없지만 뛰어난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과 [[베트 전쟁]]에 참전했으며, 1977년 비정부 히어로의 활동을 금지하는 킨 법령이 발효된 이후에도 미국 정부를 위해 히어로 활동을 하였다.
         인성이 쓰레기다. 1940년의 미닛멘 회의 이후 실크 스펙터를 [[강간]]하려하다가 후디드 저스티스에게 저지되었다. 이 일로 미닛멘에서 추방되었으나 그후로도 자신이 임신한 현지처를 버리려다가 공격당하자[* 깨진 병으로 얼굴을 그어버렸다. 이로인해 코미디언의 오른쪽 입가에는 웃는 것 같은 흉터가 았다.] 그녀를 쏴죽이는 등 개망나니 짓을 벌여왔다.
  • 콩고(소설) . . . . 2회 일치
         어찌됐든 앞서게 된 일행은 잃어버린 도시 진즈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진즈의 원주민들이 경비를 위해서 겨놓은 회색 고릴라 집단이 살고 있었고, 곧이어 회색고릴라 무리의 집요한 공격에 노출된다. 첫교전에선 전기철조망과 자동사격기관포로 막아내지만 탄약이 절반이상 소모된데다 고릴라들의 전기철조망에 한번 당하자 나무 막대로 철조망을 젖혀놓고 들어와 대원 하나 살해할 정도로 높은 지능과 무서운 집념을 보인다. 이후로 영장류가 물을 싫어하는 특성을 사용해[* 에이미도 앞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급류를 타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야하자 피터에게 똥 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강물을 끌어들인 도랑도 파고 보유량이 넉넉한 최루탄으로 밀어내는 등 선전을 펼치고 고릴라 무리를 선제 공격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방법도 찾지만 고릴라 수가 너무 많이 총으로 무장했어도 십여명 수준으로는 대책이 없었고 퇴로도 다 매복한 상태라 오도 가도 못하며 탐험대는 희생을 내며 궁지에 몰린다. 결국 마지막 전투에서 탄약도 떨어지고 비까지 내려 최루탄도 무력화되고 도랑은 고릴라가 나무를 걸쳐 통과해버리면서 몰살될 위기에 처하는데 에이미의 도움으로 엘리엇은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여 그들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먼로의 오른팔격인 현지인 청년. 꽤 유머러스하고 성격에 붙임성도 좋다. 다른 대원들은 마구 죽어나가는 와중에 본인은 끝까지 살아는데 성공. 다만 이런 식의 탐사는 해본 적이 없는지 피터와 카렌을 보고 학자로 위장한 밀수업자로 생각했다. 본인은 먼로가 무기밀매 아니면 이렇게 나설 일이 없다고 믿는 듯.
  • 콩고릴라 . . . . 2회 일치
         황금 고릴라의 몸에서 뛰어난 신체능력, 힐링팩터를 발휘한다. 이전에는 마법 반지를 문질러서 황금 고릴라와 정신을 교대하는 방식이라 이 당시에는 몸을 교대하면 원래 몸에는 고릴라의 정신이 들어갔다. 이후 그의 인간 몸은 사망했으며 그는 고릴라의 몸에 게 되었다.
         아프리카계 히어로 [[프리덤 비스트]][* [[브와나 비스트]]의 후계자.]와 친구.
  • 크림 전쟁 . . . . 2회 일치
         [[러시아]]는 전부터 부동항을 얻기 위해 진해왔다. 그리고 그쪽 [[오스만 제국]]이 있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정교회 신자들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오스만은 이를 부정하였다.
         영국의 나이팅게일이 이 전쟁에서 최초로 근대적인 간호 체계를 세우고 실행하여 후세에까지 이름을 기게 되었다. (그러나 후세의 연구에 의해 그녀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면모 등도 같이 재평가받게 되었다.)
  • 키드르 . . . . 2회 일치
         키드르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녹색(al-akhḍar)과 비슷하여, 녹색 옷을 입은 자로 여겨진다. 이슬람 미술에서 키드르는 녹색 옷을 입은 젊은 자로서, 길고 하얀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 그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모세보다 먼저 존재했던 예언자임에도 여전히 살아 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 키라키라 네임 . . . . 2회 일치
          * 성 이름을 여자아이에게, 여성 이름을 자아이에게 붙인 경우
  • 킹덤/501화 . . . . 2회 일치
          진군의 진짜 목적을 어렴풋이 감지한 순수수. 그는 이목에게 급보를 보내고 자신은 십화에 아 계속 첩보를 수집한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며 만에 하나라도 추측이 사실이라면 진군에 크게 뒤쳐지게 된다.
          * "동쪽의 그 자", 연나라의 [[오르도]]가 돌아왔다. 연합종군 이후 한직으로 밀려난 줄 알았던 그가 진-조의 대립국면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며 대군을 몰고 온 것이다. 물론 조나라가 진군에 대비해 서쪽에 병력을 집중하면 자연 동쪽은 허술해질 거란 계산도 깔려 있었다.
  • 킹덤/508화 . . . . 2회 일치
          >그러니까 이 난전에선 살아는 것만 생각해라.
          >살아거든 다음에 조금 칭찬해주마.
  • 킹덤/514화 . . . . 2회 일치
          * 오다성에 입성한 [[환의(킹덤)|환의]]병사들은 민가를 털어서 병량을 끌어모은다. 약탈행위를 질색하는 이신이 제지하려 하지만 [[몽념]]은 이번만큼은 저들의 "코"가 도움이 됐다며 이신을 자제시킨다. [[마론(킹덤)|마론]]은 환의에게 순조롭게 식량징발이 끝났다고 보고한다. 이제 이걸로 오다에 은 식량은 없다.
          * 왕전은 곧 오다성의 녀노소를 모두 불러 모은다. 그는 환의 등을 데리고 백성들 앞에 직접 선다. 백성들은 환의를 알아보고 모아서 몰살시킬 셈인가 싶어 불안에 떤다. 그런데 왕전이 시작한 이야기는 뜻밖의 것이다.
  • 킹덤/516화 . . . . 2회 일치
          * 이목의 도착 소식을 접한 [[호주(킹덤)|호주]]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진작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목은 그동안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에 감사를 표하는데 호주에겐 그보다 다급한 용건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알현 뒤엔 그를 찾아가려 했던 이목이었다. 호주는 지금 왕도권에서 속속 들어오는 최신첩보를 정리해왔다. 진군은 병력을 세 가래로 나눠 왕도권의 소도시 아홉을 정복하고 업으로 향하고 있다. [[공손룡]] 장군의 9만 병력은 [[양단화]]군의 산민족 5만과 대치하느라 발이 묶인 상황. 그런데 그 전선이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왕도권 부로 방출된 난민 무리는 북쪽으로 가지 못하고 쫓기듯 동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난민, 그 말이 호주의 입에서 나오자 이목의 안색이 변한다. 이목이 거기에 대해 자세히 묻고 호주는 그런걸 묻는 의도를 의아해하면서도 "진군이 정복한 성의 백성들을 성 바깥으로 쫓고 다른 성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왕도권 부에는 산더미 같은 난민 무리가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단 말인가? 이목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한다.
  • 킹덤/522화 . . . . 2회 일치
          * 그의 입에서 "파상공세"란 말이 나올 줄은 왕전도 마광도 몰랐다. 그런 언질을 내린 적이 없고 달리 암시한 사실도 없었다. 그렇다면 몽념은 자군의 배치만을 가지고 왕전의 전략을 간파했다는 말이 됐다. 마광이 위협하듯이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지만 몽념은 그저 미소 지을 뿐. 그리곤 "최고의 형태"를 만들고 기다릴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만 긴다. 그리고 꾸물대면 자기들이 "주역" 자리를 뺏어갈지 모른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러나 두 장군 중 그걸 농담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부관들은 여기서는 물러나서 재정비를 할 때라고 진언하나 단칼에 거절한다. 물러난다면 적은 그만큼 철저하게 뒤따라올 것이다. 기수는 이 자리에서 결사항전할 것을 지시하며 적이 소수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달하게 한다. 적이 부대를 나눠 파상공세를 취하고 있으니 실제로는 5천 씩 4파로 나눈 총 2만 병력. 기수군이 총 3만이니 병력면에서 압도하고 는다는 논리였다. 계산 자체는 맞았다. 부관들 눈빛에 희망이 돌아온다.
  • 타오팡파 . . . . 2회 일치
         2ch의 몇몇 판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마더콘]]이 쓰는 말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타오팡파'라는 말을 쓰면서 자가 목욕을 하고 나오자 마자 여자가 타월, 팬츠, 파자마를 준비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 등장한 사연에서, 자기 신변에 대한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 탁석산 . . . . 2회 일치
         * 《철학 읽어주는 자》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탁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
  • 탐라국 여왕 . . . . 2회 일치
         충 홍성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탐라국 여왕은 탐라국에서 최영 장군과 싸운다. 탐라국 여왕은 중국 여자로 키가 팔 척이며, 힘이 장사이며, [[탱자]]나무 숲을 성처럼 두른 탱자성에 살고 있었다. 최영 장군이 탐라국을 정벌하러 왔을 때, 과연 탱자나무 숲이 성과 같아서 공격할 수 없었다.
         충 홍성 전설과는 달리 부산 영도 아씨당 전설에서는 여왕이 죽지 않고 최영에게 항복하였으며, 탐라국에서 머물 때 최영의 [[첩]]이 되었다. 그런데 최영은 신돈의 음해에 빠져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여왕은 영도로 최영을 찾아갔으나 최영이 영도로 갔다는 것은 풍문에 불과하여 만나지 못했다.
  • 테미야게 . . . . 2회 일치
         --[[손]]선물-- . 의 집을 방문할 때 가져가는 간단한 [[선물]].
         테미야게는 의 집을 방문할 때, 인사치례용으로 가져가는 간단한 [[선물]]을 뜻하는 말이다.
  • 토리코/362화 . . . . 2회 일치
          * 미도라는 납치했던 요리사를 모두 풀어주었지만 '''오오타케는 "미도라에게서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일념'''으로 아직도 아 그를 기다리고 있다.
          * 써니는 어스를 풀코스에 넣어서 완성했고 코코와 제브라는 메인 요리 하나씩만 겨놓았다.
  • 토리코/371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은 것은 공허. 바로 그때 내면의 괴물(네오)이 말을 걸었다.
          * 아카시아가 네놈은 대체 뭐냐고 하자, 코코가 끼어들어 "이 자는 토리코"이고 "그리고 우리는 사천왕. 당신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 토리코/373화 . . . . 2회 일치
          * 그는 자신에겐 "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것과 이상한 용기가 솟아난다는 것을 말하고 GOD를 요리하겠다고 나선다.
          * 하지만 토리코는 코마츠와 함께 얻은 식재를 풀코스에 넣을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네오는 어떻게 봐도 그렇지가 않다.--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 토리코--
  • 토리코/391화 . . . . 2회 일치
          * 아카시아는 스카이디어의 백채널과 데로우스의 이차원 레이저, 기네스의 기네스 서치와 페어, 사천왕들과 은 팔왕들의 분노의 집중공격에 당한다.
          *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토리코는 아카시아의 몸에서 점점 더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다며 "한 고비 았다"고 강조한다.
  • 토탈워: 쇼군 2 . . . . 2회 일치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는 사기이다. 사기는 공격을 받거나, 아군이 패주하거나, 장군이 전사하면 감소한다. 사기가 0이 된 부대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전장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그걸 본 아군 부대는 또 사기가 떨어진다.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다보면 더이상 싸울 부대가 아있지 않게 된다.
         농성을 벌여 점령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오래 걸린다. 그냥 버티면 된다. 일정 시간 이상 버티면 굶주림에 지친 수비군이 항복한다. 하지만 보통 1~2턴 기고 들판으로 나와 최후의 저항을 벌이는 일이 많다.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2회 일치
         >바다는 자에 의해 더 잔인해지는 애인 같은 존재이다.
         >한 손을 펼쳐 환영을 나타내고 있으나 은 한 손은 주먹으로 꽉 쥐고 있다.
  • 톰 최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자 영화 배우]][[분류:미국의 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디모인 출신]]
  • 퇴계 이황 . . . . 2회 일치
         [[화담 서경덕]] 학파와 대립하였는데, 서경덕의 제자 언경(南彦經)이 무의(無意)와 무욕(無欲)으로 담일청명(湛一淸明)에 이르고자 하였을 때, 이를 불교식 수행법이라고 비판하였다.[* 퇴계전서 중 ‘시보에 답하다’] 올바른 [[정좌관심|정좌(靜坐)]]는 신비주의적으로 정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갖추는데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퇴계전서 중 ‘김돈서에 답하다’, 퇴계전서 중 ‘이굉중에 답하다’]
  • 특이한 세금 . . . . 2회 일치
          * 수염세 : 1705년, [[러시아]]의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가 제정했다. 이는 당시 러시아 자들이 [[수염]]을 길게 기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럽 문화를 동경하여 이를 러시아에 도입하고자 했던 표트르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관습을 없애려고 수염에 세금을 메겼던 것이다.
          * 가발에 뿌리는 파우더세 : 1795년 도입. [[가발]]에 뿌리는 파우더에 과세가 이루어졌다. 이 당시까지 서양에서는 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매우 위엄있는 가발(…)을 쓰는 것이 관례였으며 가발에는 파우더를 뿌려서 향이나 장식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세금을 물리게 되면서 가발의 이용률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 티나 (1980년) . . . . 2회 일치
         | 가족 = 1 1녀 중 둘째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페어리 테일/480화 . . . . 2회 일치
         attachment:부피오레.jpg attachment:부피오레2.jpg
  • 페어리 테일/495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나타난 페어리 테일 최강의 자 길다트.
          * 갓세레나가 아크놀로기아 인간체 모드에서 떡발렸는데, 길다트는 과거 아크놀로기아 상대로 패하긴 했어도 살아았다. 전적 상으론 길다트가 유리?
  • 페어리 테일/505화 . . . . 2회 일치
          * 그러나 메이비스 버밀리온은 페어리 로가 생명을 갉아먹는 마법임을 밝히며 이만한 대군을 상대로 사용하면 살아을 수 없다고 말린다.
          * 마카로프는 유언을 기기 시자갛낟.
  • 페어리 테일/507화 . . . . 2회 일치
         엘자는 오랜만에 설움이 복받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엘자 역시 마카로프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마카로프가 장렬히 전사, 그러고도 아직도 많은 적들이 아있다. 그런데 동생이란 것들이 뜬금없이 죽어라 치고 받고 싸우니 울고 싶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누나 말 좀 들어라--
  • 페어리 테일/510화 . . . . 2회 일치
          제레프의 모습이 여기 나타난 이유는 나츠의 목숨이 얼마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죽기 전에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러 온 것이다. 그는 X777년이나 이그닐과 만나기 훨씬 전의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 그러나 어떤 드래곤이 마을을 습격하면서 평화를 깨진다. 나츠와 부모님은 그때 죽었고 홀로 살아은 제레프는 방황 끝에 나츠를 END로서 되살리게 된다. 제레프는 이 부분은 전에 얘기한 거라며 적당히 넘어간다.
  • 페어리 테일/525화 . . . . 2회 일치
          * 루시는 "나츠의 운명"이란 말이 신경쓰인다. 그레이는 여기 있어도 나츠의 방해만 될 뿐이라며 메이비스의 말에 따른다. 해피도 그레이를 따라가지만 루시는 나츠가 마음에 걸려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그레이의 말처럼 여기 있다고 어쩔 수도 없는 일. 루시는 나츠에게 지지말라고 응원을 기고 둘을 따라간다.
          >동생의 주박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 페어리 테일/531화 . . . . 2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시간의 틈새가 가깝다는 소식을 전한다. 히비키, 이브, 렌, 제니는 조종에 총력을 다한다. 자신들도 시간의 틈새와 접촉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끝장이다. 시간의 틈새는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안나가 지정해준 좌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며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히비키의 계산에 따라서 시간의 틈새 쪽으로 계속해서 전진한다. 아크놀로기아가 턱 밑까지 따라붙고 시간의 틈새가 바로 직전에 나타난 상황. 크리스티나호는 불과 몇 m를 겨두고 선체를 급격히 비틀어 시간의 틈새를 피한다.
          나츠의 얼굴에 뚜렷한 용화의 징후가 보인다. 드래곤 포스. 나츠가 겨둔 비장의 수였다.
  • 페어리 테일/534화 . . . . 2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은 드래곤 포스까지 해방하며 덤볐지만 백마도사 제레프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메이비스 버밀리온]]도 페어리 하트를 빼앗긴 채 빈사. 제레프를 저지할 수단은 하나도 지 않았다. 제레프는 지금 이 세계는 곧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고 독백한다.
          * 네오 이클립스가 된 페어리 테일의 문은 제레프가 다가가자 눈부시게 빛난다. 그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며 이 세계에, 피범벅 위에 쓰러진 동생에게 "고마워 이 세계"라는 작별을 긴다. 그런데.
  • 페어리 테일/537화 . . . . 2회 일치
          * [[나츠 드래그닐]]이 자리를 떠나고 단 둘이 은 [[메이비스 버밀리온]]과 [[제레프 드래그닐]]
          * 무적인 것 같았던 백마도사 [[제레프 드래그닐]]은 동생 [[나츠 드래그닐]]의 불꽃에 패해 쓰러졌다. 나츠는 친구들을 찾아 길드를 나서고 정신을 되찾은 [[메이비스 버밀리온]]에게 제레프의 뒤처리를 맡긴다. 페어리 테일 길드에 단 둘이 은 옛 인연. 제레프는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며 나츠의 강함에 감탄하나 마무리가 무르다며 이래서는 몇 분 이내로 원상복구될 거라고 조소한다.
  • 페어리 테일/539화 . . . . 2회 일치
          * 그는 또한 "완전한 멸룡"을 이루겠다며 [[웬디 마벨]], [[렉서스 드레아]], [[가젤 레드폭스]] 등 아있던 멸룡마도사들을 어디론가 불러들인다.
          * 시간의 마력이 더해진 아크놀로기아의 힘은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키고 을 만했다. 무서운 위력이 실린 마법의 빛이 바다를 가로질러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 난사는 끝날 줄 모른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2회 일치
          수백년에 걸쳐 용왕으로 군림하고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아크놀로기아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가 긴 유언은 나츠가 쓴웃음일 짓게 했다.
          모든게 끝났다. 은 일은 하나였다. 나츠가 말했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2회 일치
         >오후 10시 45분, 그린 다리 - 행 차선
          공범이 대형 교통사고를 내 운반차의 경로를 바꿨다. 운반차가 페이데이 갱의 위치를 지나기까지 얼마 지 않았으므로 건물 사이를 잇는 다리로 가자.
  • 표민수 . . . . 2회 일치
         * [[1996년]] [[KBS2]] 《드라마게임 - 깊은 바다》 (극본 : [[문영]]) # 첫 연출작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신창 표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2회 일치
         2013년에는 [[MBC]]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박명수]]와 호흡을 맞춘 바 있었으나 [[카로 에메랄드]]의 곡들을 짜깁기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고 표절 작곡가라는 불명예를 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96&aid=0000138610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에 원곡자 화났다…"신용을 지켜라" 트위터에 경고", 스포츠월드, 2013-11-07]</ref> 설상가상으로 [[박지윤 (가수)|박지윤]]의 〈미스터리〉도 표절로 확인되면서 프라이머리와 아메바컬쳐는 이미지 면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2년 뒤인 [[2015년]]에는 록 밴드 [[혁오]]의 오혁과 공동 작업한 싱글 앨범인 ''LUCKY YOU''를 발표하였고,<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24748 “프라이머리, 오늘(24일) 컴백…싱글앨범 '럭키 유' 발매”, OSEN, 2015년 3월 24일.]</ref>이어 곧바로 또 다른 미니음반인 ''2-1''과 ''2-2'',''2-3''을 발표하였으며,<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86316 “프라이머리, 9일 새 싱글 ‘2-1’ 공개..BSK(a.k.a. 김범수), 개코 참여”, 텐아시아, 2015년 4월 9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99663 “프라이머리, 5일 정오 새 싱글 '2-2' 공개..빈지노와 꿀조합”, 텐아시아, 2015년 6월 5일.]</ref><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20270 “프라이머리, 새 앨범 오늘(24일) 공개..초아·팔로알토·아이언 참여”, OSEN, 2015년 7월 24일.]</ref>8월에는 3년만에 정규 앨범 ''2''를 발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8&aid=0002442842 “프라이머리, 3년만 정규 앨범 '2(이)' 12일 발매”, 스타뉴스, 2015년 8월 3일.]</ref>
         [[분류:1983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힙합 DJ]][[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아메바 컬쳐 음악가]][[분류:빅딜 레코드 음악가]][[분류:표절 논란 인물]]
  • 하성란 . . . . 2회 일치
         *《사씨정기》(창작과비평사,2006)
         [[분류:196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오영수문학상 수상자]]
  • 하이큐/219화 . . . . 2회 일치
          * 전일본 유스 종료. 강화합숙에서 큰 성과를 거둔 히나타와 달리 카게야마는 다소의 의문점을 기고 돌아온다.
          * 미야기현 강화 합숙을 맡았던 와시죠 감독은 히나타를 두고 "체격 대신 주어진 것은 높이에 대한 굶주림"이란 뼈있는 말을 긴다.
  • 하이큐/224화 . . . . 2회 일치
          * 카게야마는 지금까지 너무 "에게 맞춰주는 플레이"를 위주로 해왔다는 것. 지금의 부담도 "내가 맞춰주는데 성과를 왜 내지 못하냐"는 것이다.
          * 2세트에 들어선 카게야마는 전처럼 에게 전적으로 맞추는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 하이큐/226화 . . . . 2회 일치
          * 오히려 다테가 노리는건 히나타가 지치는 것이고 그때 셧다운을 걸어 카라스노가 승리할 여지를 기지 않는것. 이것이 다테의 초이상적인 스토리다.
          * 히나타는 꾹꾹 참으며 "선택지" 중 하나로 아있는 길을 택한다.
  • 하이큐/255화 . . . . 2회 일치
          * 경기를 보러 왔던 전일본 자 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카게야마 외에도 괴짜 속공을 올려줄 사람이 있다"는게 히나타에게 나쁠거 없다고 본다.
          * 그리고 이번 경기는 전일본 자 대표팀의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도 관람 중이다. [[하이큐/210화|카게야마의 전일본 유스 합숙]]에서도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동행한 코치가 카라스노의 10번, 히나타를 거명하며 "키는 작지만 득점율이 높다."고 평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필살기가 카피 당해서 풀이 죽은거 같다고 말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는 별다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카게야마하고만 선수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괴짜 속공을 아츠무도 올릴 수 있다는게 증명됨으로써, 반대로 말하면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도 그 속공이 가능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 하주석 . . . . 2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강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하현정 . . . . 2회 일치
         | 다음명 = [[공평희]], 미연, [[이세미나]], 김수정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한다민 . . . . 2회 일치
         | 자녀 = 슬하 2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한상훈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2010 시즌 후 소집 해제로 팀에 복귀하였고, [[2011년]] 131경기에 나와 398타수 107안타 타율 2할6푼9리 3홈런 39타점 49득점 16도루로 공격력이 향상되었다. [[안치홍]]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골든 글러브 [[2루수]] 후보에도 올랐다. 시즌 후 [[신경현]]을 이어 주장이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9265 첫 골든 글러브 후보 된 한상훈의 다른 각오] 《OSEN》</ref>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하여 4년 총액 13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 옵션 2억 원)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9141 한화, 내부 FA 3인방 전원 재계약 '이대수 4년 20억'] - OSEN</ref> 시즌 후 [[강동우 (1974년)|강동우]]가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입대하기 전 자신이 썼던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2015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한화에서 방출되었다.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
  • 한승엽 (1985년) . . . . 2회 일치
         '''한승엽'''([[1985년]] [[3월 23일]] ~ )은 [[한국]]의 자 [[스타크래프트]] 전 [[프로게이머]] 출신 게임 해설자다. Yooi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종족은 스타크래프트 [[테란]]이다.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게임 해설자]][[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웅진 스타즈의 선수]]
  • 한윤성 . . . . 2회 일치
         [[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연천군 출신]]
  • 한준희 . . . . 2회 일치
         * [[KBS 2TV]] : [[자의 자격]]
         [[분류:1970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분류:현대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한혜숙(배우) . . . . 2회 일치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연기로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했던 [[구미호(전설의 고향)|구미호]]에서의 구미호 역할이 있다. 전설의 고향 제 1호 구미호였는데 당시의 흑백화면과 함께 약간 독한 인상을 보여주는 한혜숙의 표정 연기가 어우려져 [[내 다리 내놔]]와 함께 진짜 [[레전설]]급 트라우마를 겨주었다. 당시 전설의 고향 애청자들 중에는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한혜숙이 구미호로 변신하는 마지막 장면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당시 초딩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 수준으로 무서운 인상이 아 있었다고.
  • 함신익 . . . . 2회 일치
         |성별 =
         [[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라이스 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교수]]
  • 함영준 . . . . 2회 일치
         '''함영준'''(咸泳俊, [[1959년]] ~ )은 [[오뚜기]]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오뚜기]] 창업자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장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함영준 오뚜기 회장, 2세 경영체계 시동 |url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188603|출판사 = 한국경제 |저자 = |날짜 = 2010-04-14}}</ref>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강릉 함씨]][[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해양군 . . . . 2회 일치
          | 자녀 = 슬하 1 3녀(모두 요절) <br /> 양자 [[이인 (종실)|이인]](李仁)
         [[분류:1620년 태어]][[분류:168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족]][[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전주 이씨]][[분류:운현궁]][[분류:조선 광해군]][[분류:조선 인조]][[분류:조선 효종]][[분류:조선 현종]][[분류:조선 숙종]]
  • 허가윤 . . . . 2회 일치
         * 2010년 [[써니사이드]] 《나쁜자 착한여자》 (피처링)
         [[분류:포미닛의 일원]][[분류:2009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K-pop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허미영 . . . . 2회 일치
         '''허미영'''(許美英, [[1982년]] [[2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개그우먼]]이다. [[2015년]] [[2월]] 편 국회의원 보좌관 박모씨와 결혼했다.
         [[분류:개그콘서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허진(법조인)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금릉군(현 [[김천시]]) 출생이다. 김천시 개령면에 위치한 허진의 생가는 지역의 명물이었던 대저택으로 현재는 집터만 아 있다.<ref>{{뉴스 인용
         [[분류:1894년 태어]][[분류:김해 허씨]][[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현경련 . . . . 2회 일치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사제|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한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자|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선교사]]들이 방문한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분류:1794년 태어]][[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분류:연주 현씨]]
  • 현소환 . . . . 2회 일치
         [[연합통신]] 사장 재직 당시 [[YTN]] 설립에 관여했지만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 [[김현철 (1959년)|김현철]]씨가 YTN 초대 사장에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을 앉히기 위해 현소환 당시 연합통신 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분류:1937년 태어]][[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현재현 . . . . 2회 일치
         * '''부모''' 부 현인섭 모 기진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연주 현씨]]
  • 홍국영 . . . . 2회 일치
         원빈 사망 당일 정조는 자신의 서제 은언군 아들 완풍군을 원빈의 수원관으로 삼았다. 후일 홍국영이 이 완풍군을 "내 조카"라고 부르며 그를 통해 대계를 저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아 있으나, 기록에 일관성이 없어 완전히 신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 완풍군(完豊君) 준(濬)은 홍국영의 몰락 후, 상계군(常溪君) 담(湛)으로 개명(改名) 개봉(改封)되며 왕실 세력들의 견제를 받았으며, 결국 5년 후인 정조10년([[1786년]])에 생을 마감했다.
         [[분류:1748년 태어]][[분류:178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왕족]][[분류:한국의 섭정]][[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유교 신자]][[분류:과거 급제자]][[분류:풍산 홍씨]][[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정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노론]]
  • 홍병선 . . . . 2회 일치
         [[분류:1888년 태어]][[분류:196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도시샤 대학 동문]][[분류:양 홍씨 (당홍)]]
  • 홍상수 . . . . 2회 일치
         * 2004년 - 《[[여자는 자의 미래다]]》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승규 . . . . 2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홍양호 (1955년) . . . . 2회 일치
         * 통일부 북정상회담사무국 상근회담대표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예은 . . . . 2회 일치
         * [[2017년]] 《[[심장박동조작극]]》 ... 자승빈 역
         [[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화정고등학교 동문]][[분류:동덕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2004년 데뷔]]
  • 홍은철 . . . . 2회 일치
         |자녀= 슬하 1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1985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동문]]
  • 홍인영 . . . . 2회 일치
         ||<#FF0000><:> {{{#FFFFFF '''출생''' }}} ||<:>[[1985년]] [[10월 27일]], [[전라도]] [[영암군]] ||
         ||<#FF0000><:> {{{#FFFFF '''가족''' }}} ||<:>부모님, 11녀 중 차녀[br]배우자 [[전승빈]] ||
  • 홍주찬 . . . . 2회 일치
         [[분류:1999년 태어]][[분류:201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골든차일드의 일원]][[분류:서울증산초등학교 동문]][[분류:숭실중학교 동문]][[분류:리라아트고등학교 동문]][[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백석예술대학교 동문]][[분류: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홍해성 . . . . 2회 일치
         [[1930년]]에 귀국하여 [[윤백]], [[박승희 (1901년)|박승희]], [[김을한]] 등이 동인으로 포함된 극단 경성소극장을 창립했으나, 재정 문제 때문에 무산되어 이번에는 최승일, [[홍노작]], [[박희수]] 등과 함께 신흥극장을 창립했다. 신흥극장의 창립작은 경향파적인 작품인 《목단등기》였는데, 이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고 신흥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홍해성의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분류:1894년 태어]][[분류:195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홍화리 . . . . 2회 일치
         | 형제자매 = 홍화철(동생)
         [[분류:200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
  • 화석연료 . . . . 2회 일치
         [[화석]]+[[연료]]. 우리가 사용하는 연료 가운데서, [[생물]]이 활동하고 긴 화석으로 여겨지는 연료들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가 있다.
          * 탄소균형 문제 : 화석연료의 용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자연적으로 축적하는 탄소화합물의 양보다 배출하는 탄소화합물의 양이 훨씬 많아져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쉽게 말해 '지구온난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 화완옹주 . . . . 2회 일치
         [[1749년]](영조 25) [[7월 6일]] [[소론]]의 거두 [[정휘량]]의 조카이자 이조 판서와 [[의정부]][[우의정]]을 지낸 [[정우량]](鄭羽良)의 아들 [[정치달]]과 혼인하였다. 정우량은 [[우의정]]까지 지냈고,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정치달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다. 편을 일찍 여의자 시댁 일가의 아들인 [[정후겸]]을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다.
         [[분류:1737년 태어]][[분류:1808년 죽음]][[분류:조선의 옹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가족 살해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영조]][[분류:조선 정조]]
  • 황대봉 . . . . 2회 일치
         1930년 [[경상북도]] 영일군 창주면 대보리(현 [[포항시]] [[구(포항)|구]] 호미곶면 대보리)에서 태어났다. 동지상업고등학교(현 [[동지고등학교]])[* [[이상은]](다스 회장), [[이상득]](前 13~18대 국회의원), [[이명박]](前 대통령) 삼 형제의 모교로 유명하다.],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을 졸업하였다.
  • 황덕균 . . . . 2회 일치
         [[서울 해치]]의 해산 이후 트라이아웃을 통해 [[NC 다이노스]]에 이적했고, [[2013년]] [[9월 5일]]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왔다. [[9월 8일]] [[SK 와이번스|SK]]전을 통해 데뷔 11년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1피안타 2볼넷으로 2실점(비자책)한 후 [[정진 (야구 선수)|정진]]과 교체되어 마운드를 내려갔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410&article_id=0000098580 NC 황덕균, 11년 만에 밟은 1군 마운드] - MK 스포츠</ref>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시즌 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현역 연장을 선언하여 방출되었다.<ref>[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063 NC, 황덕균·한윤기·박정훈·김동건 방출] - 경도민일보</ref>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도신초등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 해치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KT 위즈 선수]]
  • 황병승 . . . . 2회 일치
         * 《여장자 시코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개정판 [[문학과지성사]], 2012)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박인환문학상 수상자]][[분류:미당문학상 수상자]][[분류:21세기 시인]]
  • 황병하 . . . . 2회 일치
         1962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우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 합격하여 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판사에 임용되어 서울지방법원 부지원, 서울민사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인천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였다. 대법원 재판연구원,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지원장을 거쳐 2004년 2월 정기인사에서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2016년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였으나 [[대구지방법원]]과 [[서울행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평생 법관제에 따라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되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하고 있다.<ref>[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130901&part_idx=335]</ref>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장수 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우신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황정오 . . . . 2회 일치
         {{메달 스포츠|자 [[유도]]}}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황정혜 . . . . 2회 일치
         *[[동보건대학교]] 식품영양과 졸업
         [[분류:1993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보건대학교 동문]][[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황효진(기업인) . . . . 2회 일치
         [[아프리카TV]]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방송했던 게임 BJ이며 [[BJ]] 소닉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설립한 신발 브랜드 [[스베누]]의 대표이기도 했다. 1988년 5월 31일생이며, 강원도 [[삼척시]] 출신이다. 아이디는 sonic_be. 현재는 glow`hyojin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소닉이란 닉네임의 유래는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소닉 더 헤지혹]].[*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어릴 때 [[메가드라이브|슈퍼겜보이]]로 [[소닉 더 헤지혹 3|소닉 3]][[소닉 & 너클즈| & 너클즈]]를 플레이한 것이 추억에 아 닉네임을 소닉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닉 스타리그]]의 로고와 본인의 오너캐에도 소닉이 자주 출연한다.]
         [[아오오니/패러디 게임목록]]의 [[동인 게임]] 양띵오니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아오오니]]들의 주인으로 나오는 [[양띵]]에게서 살아아야한다. 양띵은 그게 걸맞는 [[패기]]로 황효진을 --정의의 이름으로-- 죽이려한다. 물론 이 게임은 양띵은 물론이고 황효진도 보면 나무위키에 항의할정도로 인정한 게임이 아닌지라 나무위키에서도 작성이 제한되었다.[* 황효진과 양지영이 항의하며 나무위키를 공격하면 일이 커지기 때문에 작성금지 되었다.]
  • 황희두 . . . . 2회 일치
         * [[2016년]] 농산어촌홍보개발원 강구 한류스타 홍보대사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창원 황씨]][[분류:MBC게임 히어로의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H&P Global Company]][[분류:희여골]][[분류:대한북레터협회 상임부회장]][[분류:청년문화포럼 회장]][[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Team SCV Life의 선수]]
  • 후지와라 섭관가 . . . . 2회 일치
         레이제이 덴노의 5명의 동생들 가운데 가장 평판이 높았던 것은 2 타메히라 친왕(為平親王)이다. 하지만 타메히라 친왕의 어머니는 후지와라 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지와라 씨의 영향으로 3 모리히라 친왕(守平親王)이 황태자로 선택된다. 모리히라 친왕은 제64대 엔유 덴노(円融天皇)로 즉위한다.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1회 일치
         K리그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두환 시절의 3S정책과 맞닿아 있던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나,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스포츠 지원정책의 기치는 '''"(저 북괴놈들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국제적인 스포츠 업적을 거두어 세계만방에 걸친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국제 스포츠계에서 업적을 쌓는다는 명분이 대한축구협회 시절에 세운 기치이며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설립된 지금도 그 흔적이 아 있다.[* 한국프로축구협회 정관: 제1조 목적, 이 법인은 한국프로축구의 수준향상과 저변확대는 물론 국제교류 등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 전한 여가 선용을 도모하고, 스포츠 활성화와 지역사회를 비롯한 '''국가 발전 및 국제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3월의 라이온/120화 . . . . 1회 일치
          * 거의 에피소드와 무관할 거 같았던 카와모토 자매는 아버지의 일과 겹쳐서 생각해볼 거리를 겨주었다.
  • 3월의 라이온/127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오늘 아카리를 만나지 않으면 후회할 거는 예감에 그는 방을 뛰쳐나왔다. 이제 들어가는 일만 았는데.
  • 3월의 라이온/129화 . . . . 1회 일치
          하야시다는 그 부분에서 자로서의 격이 너무 다름을 절감한다.
  • A-10 선더볼트 . . . . 1회 일치
         근접항공지원용으로 설계되었기에 저공에서의 기동성과 생존성에 중점을 두었다. 생존성에 경우 콕핏 전방향에 3.8cm짜리 [[티타늄]] 장갑판을 둘렀을 정도. 이 티타늄 장갑은 흔히 "욕조"("bathtub")라고 표현된다. 미 공군의 주장에 따르면 23mm 포탄에 직격당해도 살아을 수 있다고.
  • AC-130 . . . . 1회 일치
         [[베트 전쟁]]에 처음 투입되었으며 이후 미군이 참가한 여러 전쟁이나 분쟁에 동원되었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유닛 . . . . 1회 일치
          * Naval Combat Patrol(해양 초계): 목표 광역에서 초계 활동을 벌이며 조우한 적 함대를 공격한다. DHR에서는 해양 봉쇄도 광역을 커버칠 수 있는데 이게 왜 아있을까.
  • Europa Universalis 4/동구권 . . . . 1회 일치
         Eastern. 보통 동유럽에 속하는 국가들 [* 단, 비잔티움 제국같이 현재는 유럽으로 분류하는 국가들도 포함되어 있다.]이 속하는 국가들이 소속되어 있다. 테크는 서구권에 비해 125% 더 들며 이 수치는 아나톨리아권과 같이 서구권다음으로 가장 빠른 수치.
  • Europa Universalis 4/서구권 . . . . 1회 일치
         - 테크가 빠르다. 이것덕분에 테크를 올리면서 겸사겸사 이념을 열 포인트가 꽤 아돈다.
  • JK . . . . 1회 일치
         자고교생(男子高校生)의 경우도 비슷하게 약칭으로 쓸 수 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엄밀히 말하자면 대다수의 팀들에게 있어 일과도 같지만, K리그 팬들에게 있어서는 '''내년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경기'''다. 각종 대회의 우승은 가시권에서 멀어지면 그대로 대다수의 팀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 되지만 이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그 결과에 따라 내년에 함께할 팀이 정해지며, '''승격팀에게는 팀의 부흥'''을 가져다 주고 신흥 강호가 될 가능성을 선사하지만, 패자팀에게는 '''끊임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 K리그 챌린지 . . . . 1회 일치
         또한 2014시즌부터는 정규시즌이 끝나면 챌린지 우승팀은 K리그 클래식에 자동으로 진출하고, 2위에서 4위팀은 챌린지 플레이오프를 거쳐 클래식 11위팀과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체제가 정립된다. 이 신설규정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대전이 클래식으로 승격되었으며, 챌린지 4위였던 광주가 챌린지 플레이오프 승자 자격으로 당시 클래식 11위팀인 경과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이김으로써 승격을 이루게 된다.
  •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2015시즌도 리그 3위였던 [[수원 FC]]가 챌린지 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가 되어 2016시즌에 클래식에 안착하는 등, 2위팀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하는 안습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2015시즌 2위였던 대구는 마지막 한 경기를 놓치면서 상주 상무에게 1위자리를 놓치며 2위로 내려왔는데 대구는 수원에게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자동승격권을 놓친것과 더불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자격마저 놓치는 등 2위 징크스를 K리그 팬들에게 널리 알리는 안타까운 사례로 게 되었다.
  • NTX . . . . 1회 일치
          * 위키 : 창작 위키. 내부에는 엔하위키라는 명칭이 조금씩 아 있지만, 정식은 아니다. 사이트 리뉴얼과 함께 사라졌다. 현재는 임시로 NTX 위키에 세들어있다. 그런데 과거 설정 위키의 데이터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 Q.E.D. 증명종료 . . . . 1회 일치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상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기는 해결도 상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 QTE . . . . 1회 일치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는 메인 스토리 중간중간에 QTE가 들어있다. 실패할 경우 위험한 경우에서 살아을 수 있게 해주는 "죽음의 감각"을 강제로 발동시킨다.
  • This is the Police . . . . 1회 일치
         플레이어는 갑작스럽게 사임을 통보받은 경찰청장 잭 보이드로써 게임을 진행한다. 게임의 목표는 보이드가 경찰청장에서 물러나게 되는 180번째 날까지 50만 달러를 모으는 동시에 별다른 문제 없이 살아는 것이다.
  • USS 피닉스 (CL-46) . . . . 1회 일치
         취역 이후 시운전 삼아 중미 순회공연을 돈 후 1939년 1월에 필라델피아에 도착, 이후 서해안의 진주만에 배치된다.
  • Victoria II/POP . . . . 1회 일치
         모든 욕구를 충족한 POP는 문제를 일으키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아나는 돈을 모으거나, 예금하거나, 국립 은행에 투자한다. 이런 이들 중 의식도가 높은 POP는 좀 더 상위 등급의 POP로 승진하기까지 한다. 반면 오랜 기간 불만족한 POP들은 (실업자일 경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다른 주나 국가로 이주하거나 직업을 바꾸게 된다.
  • Y2K 버그 . . . . 1회 일치
         [[http://news.joins.com/article/15344931|중앙일보 - 지난 신문 보기-1999년 12월 31일 7면 - 'Y2K 종말론'과 꽃미 밴드]]
  • 가석방 . . . . 1회 일치
         가석방은 형기가 종료되어 풀려나는 석방과는 다르다. 가석방 일에서 형기종료일까지 기간 동안은 관할경찰서나 보호관찰소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된다. 가석방자는 이 떄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은 취소, 혹은 실효된다.--[[한군두|한감두]]-- 물론 은 형기를 채워야 하며 당연히 저지른 범죄는 가석방 중에 저지른 것이므로 매우 질이 좋지 않게 본다.
  • 강구열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MBC게임 히어로의 선수]]
  • 강연재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신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안철수]][[분류:홍준표]][[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
  • 강우영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분류:2011년 죽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강화종실 . . . . 1회 일치
         [[정조]] 시기에 권세가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였는데, 그녀를 원빈이라 하였다. 1980년 원빈이 사망하자, 홍국영은 은언군의 장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서 장차 정조의 왕위를 이어받게 하려 했으나, 1786년(정조 10년) 담은 모반죄로 유폐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은언군은 강화도에 유배된다.
  • 건담 동물원 . . . . 1회 일치
         [[반다이 코]]에서 나오는 『건담 익스트림 버서스(機動戦士ガンダムエクストリームバーサス)』의 플레이어를 나쁘게 말하는 말.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5화 . . . . 1회 일치
         * 매의 유대를 목격한 히카리는 씁쓸하게 귀가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1회 일치
          * 그래서 에비나는 매끼리 외출해서 놀고 오는걸 권하는데, 우마루는 "에비나쨩도 오빠에게 좋아하는걸 하면 되겠다"라고 말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5화 . . . . 1회 일치
          * 실핀이 초 브라콘이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실 모토베 매 이상으로 어색한 사이였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1회 일치
          * 둘만 덩그런히 은 카나우와 타이헤이.
  • 게스퍼 . . . . 1회 일치
          * 산책 중에 개에게 "귀여워~"하고 달려가는 젊은 여자에게 "옆의 자친구에게, 동물을 좋아한다고 어필하는 것인가."
  • 고대 그리스 . . . . 1회 일치
         고대 그리스 문명은 철학, 정치, 과학, 미술 등에 많은 업적을 겼으며, 현대 서구 문명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구인들의 고대 그리스에 대한 존경심은 뿌리깊은 것이다. 또한 불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는 동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 고도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제주 고씨]]
  • 고독의 요새 . . . . 1회 일치
         현대의 슈퍼맨 이슈에서는 고독의 요새라는 이름에 맞춰서 마지막으로 은 크립톤 문명의 잔재라는 설정을 애호하는데, 요새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슈퍼맨이 가장 중요한 컨셉인 '이방인'이라는 것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 고인범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1959년 출생]][[분류:1979년 데뷔]]
  • 공산당 지도 원리 . . . . 1회 일치
         현재에도 북한, 베트, 쿠바, 라오스 등의 헌법에는 공산당의 지도 원리가 명시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는 헌법에는 '노농연맹'으로 되어 있어, 공산당이 아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가 지도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공산당이 지도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마찬가지이다.
  • 공주님 안기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는 이 자세로 안는 쪽이 안기는 쪽을 완전히 품 안에 끌어앉는 형태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인간의 신체비례상 이 자세로 상대를 품 안에 완전히 끌어 안는 구도가 되려면, 안는 쪽과 안기는 쪽의 신체 크기가 거의 어른과 어린아이 만큼 차이가 있어야 한다. 비슷한 나이 대의 녀처럼 신장차가 크게 없이 골격 크기가 비슷하고, 신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라면 완전히 품 속에 끌어안는 모습은 성립하기 어렵다. 다리나 어깨 등, 상체 일부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은 안는 쪽의 품 밖으로 이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자세로는 안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정을 얻을 수 없어, 안기는 쪽에서도 목이나 어깨 등을 안아서 단단히 붙어주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정 상태가 되지 않는다.
  • 광해군 . . . . 1회 일치
         묘지는 양주시에 있다.[http://www.nyj.go.kr/culture/cultural/01_01_02_06.jsp 참조]
  • 구광본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구명환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분류:구씨]][[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구본욱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구본홍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194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
  • 구천서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
  • 권영준 (1952년)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권영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안동 권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권혁 (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갱 전쟁 한번 뛰면 엄청난 총알을 얻을 수 있다. 아, 물론 네가 살아아야 얻는거다.
  • 금조(나인뮤지스) . . . . 1회 일치
         ||<#732788> {{{#FFFFFF '''가족'''}}} ||<(> 1 1녀 중 [[장녀|둘째]] ||
  • 금춘수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3년 태어]][[분류:안동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안동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긴나라 . . . . 1회 일치
         왕자 수다나는 이 나라에 초대를 받아 가는데, 제물로 잡혀온 마노하라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수다나는 이웃 나라의 왕에게 불법을 설교하여, 마노하라를 죽이지 말고 살려서 구출하고 자신의 왕궁에 데려온다. 둘은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히스티나푸라 왕국의 사제는 수다나 왕자가 왕이 되면 자신이 사제로서 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계략을 꾸민다. 사제는 왕에게 왕자를 위험한 변방으로 보내서 반란을 진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간언하여, 수다나 왕자는 변방으로 떠나게 되는데 [[야차]]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 길은정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종교]]는 [[불교]]이다. 1984년 가수로 데뷔하고 얼마 안 되어 [[뽀뽀뽀]] 제2대 뽀미 언니가 되어 [[인기]]를 끌었다. 가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뽀뽀뽀에서 하차하였으나 92년 EBS의 프로그램 '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맡으며 어린이 프로그램에 복귀하였다.[* [[암]] 판정을 받은 뒤 방송에서 하차한 이후로는 [[여운계]]가 진행을 맡았다. 여운계도 4년후 신장암으로 사망.] 이후 가수활동과 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병행하다가 직장암 선고를 받은 뒤 [[은퇴]]하였다. 암이 완치된 뒤 다시 방송에 복귀하였으며 당시 <찬찬찬>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가수 [[편승엽]]과 [[결혼]]하나 곧 파경을 맞는다. 2002년 결혼생활에 대해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전편으로부터 고소당해 2004년 유죄 판결을 받고 같은해 직장암이 재발하여 이듬해 초 숨을 거둔다. 사망 전날까지 [[원음방송]]에서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안타까움을 샀다. 전재산을 원음방송에 기증하였다. 2002년 각막기증신청을 했지만 암세포가 너무 퍼졌다는 판단으로 실제 기증되지는 못하였다.
  • 김가은(1989년 5월) . . . . 1회 일치
         || '''출생''' || [[1989년]] [[5월 30일]], [[전라도]] [[순천시]] 삼산동 ||
  • 김가을 (수영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수영 선수]][[분류:자유형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
  • 김강근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주성중학교 동문]]
  • 김건우 (1990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김경식 (1960년)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근백(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2000년]] 상반기부터 활동을 시작해 [[2002년]] 상반기, [[CJ 엔투스|GO]]에 합류하였다. [[미]] 군단으로 유명한 GO의 선수답게 준수한 외모로 인기가 있었다.
  • 김근석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청보 핀토스 선수]][[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김기창 (법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시카고 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표현의 자유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
  • 김대륙 . . . . 1회 일치
         백업으로 간간히 나오고는 있다. 주로 3루나 유격쪽으로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신본기]]가 초반 타격 부진이 심각할 때 잠깐 주전으로 나왔지만 타격을 그 신본기보다 못해서 영원히 백업으로 아있다. 향후 타격 발전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까지 1군에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 김대진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덕현 (변호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도연(배우) . . . . 1회 일치
          * 1985년 MBC 자의 계절
  • 김동재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문순 (언론인)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김문오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김문집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일본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일본인]]
  • 김민수 (1992년)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청원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청원중학교 동문]][[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민제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화승 OZ의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
  • 김민좌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태백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
  • 김민희(1972) . . . . 1회 일치
         이 인기를 모아서 [[캐럴]] 송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응답하라 1988/삽입곡|크리스마스 폴카]]가 BGM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게 되어서 그랬는지 성인 연기자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간간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나 출연하는 편이며, [[살림 9단의 만물상]] 같은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푼수 스타일의 [[아줌마]]로도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03년~2004년 MBC 사극 [[대장금]]에 내의녀 비선역으로 출연하였다. 장금이 의녀로 입궁했을때 내의녀로 들어왔지만, 8년후에 어의녀로 승진하였다.
  • 김병윤 . . . . 1회 일치
         경기도 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청학고등학교]]의 역사과목 선생님이다.
  • 김병준(육상)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자 [[육상]] 선수이다.
  • 김보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김부식 . . . . 1회 일치
         [[분류:김부식| ]][[분류:1075년 태어]][[분류:1151년 죽음]][[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고려의 불교 신자]][[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작가]]
  • 김상훈 (1990년)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김상희 (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4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주 최씨]]
  • 김새해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2009년 데뷔]]
  • 김석원 (금융인)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 김선재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2015년 데뷔]]
  • 김성민 (1994년)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T 위즈 선수]]
  • 김소희 (2000년) . . . . 1회 일치
         [[분류:200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해설자]][[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
  • 김수자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행위 예술가]][[분류:설치미술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김연수(작가) . . . . 1회 일치
          *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잘 나가는 영화 감독 역할. [[홍상수]] 감독을 예술가로서 존경한다고 밝힌바 있다. 정작 주변에서는 [[홍상수]]감독 영화에 나오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왜 나갔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 김영한 (1900년) . . . . 1회 일치
         [[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1900년 태어]][[분류:1980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안동 김씨 (신)]][[분류:노태우 가]]
  • 김용국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김용준 (1904년) . . . . 1회 일치
         [[분류:1904년 태어]][[분류:196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술 평론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우식 (1886년) . . . . 1회 일치
         [[분류:1886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흥 김씨]]
  • 김유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
  • 김일엽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김재권 (철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재홍 (1958년)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정수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
  • 김정행 . . . . 1회 일치
         ||<#131230> '''{{{#white 학력}}}''' || [[대건고등학교(대구)|대건고등학교]][br]대한유도학교 유도학[br][[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육행정학 석사[br][[경기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명예박사[br][[니혼대학|니혼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의학 박사[br]중국문화대학교 대학원 이학 명예박사[br]대만국립대학교 대학원 이학 명예박사[br]호사범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명예박사[br]레츠카프트체육대학 대학원 체육학 명예박사 ||
  • 김정호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
  • 김종호(1935) . . . . 1회 일치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김완태(정치인)|김완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경질되었다.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세력, 학생운동권에 대한 강경대응을 지시해서 [[박종철]] 사건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으론 김종호 장관이 '‘대통령 임기가 1년밖에 안 았다. 정치일정이 있으니까 3월 개학 때까지 모든 사건을 끝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 경찰들은 장관이 제시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개학전까지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무리한 강압수사(=[[고문(범죄)|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 김지훈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김지훈 감독 영화|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진선(군인) . . . . 1회 일치
         [[베트 전쟁]]에 참전했으며, [[노태우]]계 군인을 지칭하는 9.9 인맥의 (노태우가 사령관이었던 9공수여단, 9사단에서 노태우의 참모나 휘하 부대장을 한 인사들) 핵심이었다. [[제7보병사단]] [[사단장]] 등을 지냈다. 준장 때, [[국군체육부대]] 초대 부대장을 역임했다.
  • 김초향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1900년 태어]][[분류:1983년 죽음]][[분류:판소리 명창]][[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태한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태어]][[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김형렬 (1959년)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깨진 남비에 떼운 뚜껑 . . . . 1회 일치
         본래 '비'는 일본어 '나베'가 변한 말로, 그 후 1980년대에 표준어 규정이 바뀌어 지금은 '냄비'라고 부르게 된다.
  • 나비야 꽃이야 . . . . 1회 일치
         나비나 꽃처럼 아름답고 귀여운 것이라는 뜻에서 지극히 귀여워하는 모습을 뜻하게 되었다. 특히 여자아이에게 스는 말이다. 자아이에게도 쓰지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1회 일치
          * 이 단계에서 이미 시험의 내용은 정해져 있었는데, 개개인의 뛰어보다는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시험 내용이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2화 . . . . 1회 일치
          * 요아라시의 말대로 그는 아예 을 보고 있지 않았던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1회 일치
          * 그 순간을 노리고 미도리야 이즈쿠가 달려온다. 미도리야는 부하들을 쓰러뜨리며 선전. 피난 작업을 마친 오지로 마사라오도 가세한다. 이미 구조현장에선 조치가 거의 끝나가고 있고 HUC의 수는 약 세 명 정도 은 상황. 2회전도 막바지에 들어가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불합격자들을 계속 겨둔 이유도 설명되는데, 이들은 이대로 탈락하고 끝나는게 아니다. 불합격자들은 3개월 동안 특별강습을 거쳐 재시험이 준비되어 있다. 장래에 "질 높은" 히어로가 더 많이 필요한 현실에서 1차 시험을 클리어한 100명을 최대한 활용하는게 이들의 목적. 탈락자들도 채점 결과 싹수가 없는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준비를 시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는 4월 시험이 재도전의 기회. 바쿠고, 토도로키, 요아라시 3인은 당연히 도전할 거라고 벼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6화 . . . . 1회 일치
          * 대화가 한창이지만 형무소 측에선 3분 았다고 통보한다. 올 포 원은 정말로 즐거운 듯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올마이트의 은퇴로 세상이 동요하고 있을 거라며 세상의 동향을 묻는다. 그는 세상과 교류가 단절돼 있고 이 순간 조차 올마이트에게 바깥 일에 대해선 함구하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올 포 원은 바깥의 사정을 매우 정확하게 추정하고 있다. 올마이트의 은퇴가 야기한 혼란들. [[엔데버]]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지만 세상은 불안해지기만 하고 억지력이 사라진 그늘 속의 인생들이 할거한다. 시가라키는 잠시 동안 잠복할 것이며 대두하는 세력들을 파악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빌런들 간의 경쟁, 대립도 심화.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는 무개성이었던 미도리야가 갑자기 웅영고에 입학하고 개성이 발현된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한다. 게다가 그 미도리야는 "에게 물려받았다", "언젠가는 내 힘으로 만들어서 내 힘으로 너를 뛰어넘겠다"같은 뜻모를 말을 했었다. 그러고도 미도리야는 계속 활약해서 위로 올라갔다. 기어코 바쿠고를 앞질러 임시면허까지 손에넣기에 이르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1화 . . . . 1회 일치
          * [[신소 히토시]]는 조금 자다워진 모습으로 재등장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회 일치
          * 웅영에서 전차로 약 한 시간. 이곳에 서 나이트아이의 사무소가 있다. 밀리오의 안내로 도착한 미도리야는 바짝 긴장해있다. 밀리오는 긴장하는건 좋지 않다며 나이트아이에 대해서 "아주 엄한 사람"이라 경고한다. 물론 히어로 덕후인 미도리야가 모를 리 없다. 그는 자타에 모두 엄하며 "스토익"한 일 처리로 유명하다. 미도리야에겐 매우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소름이 돋은 걸로 기억에 아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1회 일치
          * 이마에 뿔이 있는 소녀. 소녀는 미도리야와 부딪히고 넘어진다. 미도리야는 아무 생각없이 쓰러진 소녀를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소녀는 이상할 정도로 울상을 짓고 있다. 난처해진 미도리야 앞으로, 소녀의 뒤로 한 자가 나타난다. 그는 히어로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소녀에게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회 일치
          속사포같이 설교하고 둘을 사무실로 돌려보내는 나이트아이. 버블걸만 데리고 다시금 첩보활동에 복귀한다. 쏟아지는 비와 함께 큰 응어리만 기고 미도리야의 첫 인턴활동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 올마이트는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미도리야를 후계자로 정했을 때 당연하겠지만 [[서 나이트아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무개성의 중학생이 그 주인공이라고 하자 나이트아이가 크게 반발했다. 그런 아이가 뭘할 수 있냐는 나이트아이에게, 올마이트는 미도리야의 "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마음 만으론 구할 수 없고 달리 적합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을거 아니냐고 정론을 펼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1회 일치
          * 시라가키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 여기있는 놈들은 죄다 쓰레기 야쿠자에 일회용 고기방패다. 이런 족속들은 빌런연합의 여장자, [[마그네]]와 목숨의 가치가 같을리가 없다. 게다가 이쪽은 팔도 한 짝 빚지고 있다. [[Mr. 컴프레스]]의 팔 말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는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 연합군. 그러나 [[이리나카]]가 판 함정에 빠져 [[아이자와 쇼타]]가 고립될 뻔한 걸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지키고 대신 희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 앞에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랏파"와 "텐가이". 랏파는 저돌적인 격투가로 개성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큰 덩치와 파워, 강력한 펀치연타가 특기다. 텐가이는 차분해 보이는 자인데 굉장한 강력한 배리어를 치는 개성.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1회 일치
          * 아이러니하지만 록록의 불평은 이리나카의 입장에도 적용됐다. 그도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었다. 진작부터 압살 작전을 쓰지 않은건 그만큼 방대한 체력을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숙련된 히어로 집단. 만일 압박한 보람도 없이, 일행이 더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길을 양보해준 거나 다름없다. 본래 이리나카는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본부장의 지위를 얻은 것도 그 성격 덕이다. 그런 그가 압살작전처럼 불확실한 패를 사용하는 건 상당히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가 복용하는 "강화약"의 약효가 얼마 지 않았다. 그런데다 히어로 연합군은 지연은 될 지언정 착실하게 진격하고 있다. 더이상 보내서는 안 된다, 실패할 수는 없다는 초조함이 그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회 일치
          * 처음으로 "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깨달은 "에리". 에리의 도움으로 마침내 [[미도리야 이즈쿠]]는 에리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접촉하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관통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인지할 틈도 없이 [[오버홀]] 치사키가 다시 한 번 흉수를 뻗쳐온다. 미도리야는 아직 공중이라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그 순간 [[토오가타 밀리오]]가 물었던 "어떤 히어로가 되고 싶냐"던 물음이 떠오르고 "반드시 이기고 반드시 구하는 히어로"라는 대답이 떠올랐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한편 집결 장소로 모이는 빌런 일행들. [[토가 히미코|토가]]는 "신경 쓰이는 자애가 생겼다"며 수선 피우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는 시가라키를 공격하며 그의 연설을 "한 마디로 괴롭히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얘기라며 일축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1회 일치
          * 현장에 은 미도리야 일행이 올 포 원을 상대하는 전개일 듯 싶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6화 . . . . 1회 일치
          * 다음 행선지는 미도리야인데, 올마이트는 방문할 가정이 많이 았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미도리야네로 향한다.
  • 나이츠 오브 더 라운드 . . . . 1회 일치
         아이템 중에서 커다란 아이템은 공격하면 쪼개진다. 이럴 경우 그냥 하나 습득하는 것보다 쪼개서 습득하는 것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이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금화상자는 3개이거나 확률에 따라 4개에서 6개까지 쪼개지기도 하고, 큰 과일 바구니는 과일 하나만 기도 한다.]
  • 나체의 마하 . . . . 1회 일치
          * '''[[음모]]를 그렸다'''. 중세의 윤리관으로 체모 등은 성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보아 금기시 되었고, 여성의 음모는 나체라고 해도 순수한 미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그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체의 마하에서 음모를 그린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례였다.
  • 나폴레옹 빠 . . . . 1회 일치
         나폴레옹은 일개 장교의 몸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단신으로 제국을 건설하여, 유럽에 많은 업적을 겼다. 이러한 업적에 고무되어 나폴레옹을 추종하고, 그 정치적 행동을 따라하려 하는 인물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 낚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 . . . . 1회 일치
         교제 전에는 상대에게 진지하게 접근해왔는데, 정작 교제를 시작한 뒤에는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왠지 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 남지현 . . . . 1회 일치
         지현 탤런트, 영화배우
  • 네마와시 . . . . 1회 일치
          * [[나무]] 같은 것을 옮겨심기 전에, 1,2년 전에 뿌리를 중심부분을 겨놓고 썰어내서 잔뿌리가 나오는걸 촉진하는 원예 활동. 본래의 뿌리를 쳐내는 것에서 의미가 파생된 것으로, 어떤 일의 사전작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 노 오디너리 패밀리 . . . . 1회 일치
          파웰 가족의 가장. [[대머리]]에 뚱뚱한 인캐이며 미묘하게 고개숙인 가장이다. 직업은 [[경찰]]에서 일하는 몽타쥬 작성관이며, 신체능력이 강화되는 능력을 얻었다.
  • 노행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관련신화가 북유럽 신화인데, 이 북유럽 신화에 속한 카드 중에서 프레이&프레아 매카드는 발키리가 쓸 때 가히 사기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적어도 프레이&프레아만 있어도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정령속성이 부족할 이유가 없으며 토르와 같이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카드도 존재하기 때문.
  • 니세코이/217화 . . . . 1회 일치
          * 그러더니 오노데라에게 연락하고 이어서 극까지 치토게를 찾으러 간 츠구미에게 연락한다.
  • 니세코이/219화 . . . . 1회 일치
          * 이치죠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자고 정신적으로 강하다며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 니세코이/220화 . . . . 1회 일치
          * 저택의 2층에서 치토게와 놀며 그림책을 받은 것도 기억해내는데, 그곳 벽장에는 그때 그 그림책의 마지막 장이 아 있었다.
  • 니세코이/221화 . . . . 1회 일치
          * 둘이 은 오노데라와 이치죠는 맹세를 나누고 치토게는 그것을 보며 돌아간다.
  • 니세코이/224화 . . . . 1회 일치
          * 혼자 은 마리카는 씁쓸하게 독백한다.
  • 다메다시 . . . . 1회 일치
         다메(ダメ)란 "안돼"라는 의미로, 다시(出し)는 뭔가를 내민다는 뜻이다. 안된다는 말을 자꾸 내민다는 의미이므로, 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단점을 지적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 단두대 . . . . 1회 일치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참수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고, 또한 단두대에 의한 처형도 사라져 현재 세계에서 아있는 실물 길로틴은 단 2대 뿐이다.
  • 단축 도메인 . . . . 1회 일치
         http://me2.do/ - [[네이버]] 운영, 원래 [[미투데이]]를 위해 제작되었으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본섭(미투데이)가 폐쇄되면서 단축도메인만 달랑 았다.
  • 담철곤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켄트외국인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오리온그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중국계 한국인]]
  • 대전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정(1942)]] - 대덕구
  • 대한민국 . . . . 1회 일치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국가. [[한반도]]의 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대한민국 FA컵 . . . . 1회 일치
         과거 포항이 더블을 달성했을 때는 3.5장이 아니라 4장을 부여하였기에 '''어차피 똑같은 1장'''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FA컵 우승팀이 들어가야 할 F조의 자리를 당시 리그 4위였던 서울에게 바로 넘겨줬기 때문에 서울이 F조 자리로 갔었다. 그리고 0.5장이란 개념이 없던 미비했던 동아시아 조추첨의 경우는 각 국가별로 조별단계에서 겹치지 않도록 국가별 조추첨을 통해 조편성이 이루어졌기에 한때는 리그 2위였던 성이 E조에 들어가고 우승팀인 전북이 F조 들어가는 등의 상황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동아시아 조편성에 0.5장이라는 특수성이 과거에 비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편성이 난감해질 우려가 생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복잡한 구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K리그 뿐만이 아니라 똑같이 3.5장을 부여받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도 비슷한 논리로 조편성을 위한 티켓부여가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 데드맨 . . . . 1회 일치
         본명은 보스턴 브랜드(Boston Brand). 본래 [[서커스]]의 곡예사였으나 [[공중그네]] 공연 도중 저격당해 죽었다. 하지만 [[유령]]으로 은 상태.
  • 데모데모닷데 . . . . 1회 일치
         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인기 없는 「그치만그치만그래도(でもでもだって)」쨩의 생태
  • 도광록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도나우 강 . . . . 1회 일치
         [[독일]] 부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지방에서 발원,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를 거쳐서, [[흑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약 18개국을 지난다.
  • 동북중고등학교 . . . . 1회 일치
         서울시 강동구 둔촌 1동에 위치한 사립 자 중고등학교이다.
  • 둠 패트롤 . . . . 1회 일치
          * '[[프로페서X|휠체어를 탄 지적인 자]]'에게 지도를 받는다.
  • 듄 2 . . . . 1회 일치
         유닛 가운데 보병(Soldier)는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경보병(Light Infantry)로 생산할 수 있다. 보병은 1명 씩, 경보병은 3명 한 세트로 나온다. 경보병은 재미있는게 공격을 받아 죽으면 1명만 는데 이 경우 유닛명이 솔져(병사)로 바뀐다(?!).
  • 드래곤볼 . . . . 1회 일치
         나메크 별에서 전투력 이상 반응이 나타나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프리더가 드디어 죽었다."고 발언을 하는데, 그 발언을 하자마자 광선 총에 무수히 맞아서 시체도 안 기고 소멸한다. 숙청을 한 것은 또 큐이와 같은 디자인의 캐릭터(망토 장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이 캐릭터가 "우리가 우주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건 프리더 님 덕분, 언젠가는 우리 종족을 부흥시켜 주신다고 약속했다. 프리더 님이야 말로 전 우주의 구세주다!"라면서 열렬한 프리더 빠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초사이어인 오공의 전투력을 계측한 순간 계측기가 폭발하여 기지채로 전멸.
  • 떠있는 섬 . . . . 1회 일치
          * 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섬]]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 . . . . 1회 일치
         생물이 먹은 음식물에서 영양분을 뽑아내고 은 찌꺼기.
  • 뜨거운 것이 좋아 . . . . 1회 일치
          재벌. 다프네와 사랑에 빠지지만 다프네가 여장자라는건 모른다.
  • 라오우 . . . . 1회 일치
         실제 키는 2미터 짓인 듯 하지만 가끔 거의 4,5미터에서 10미터 이상은 되보이는 [[거인]]으로 그려지기도. 주먹 하나가 사람보다 더 크게 그려질 때도 있다.
  • 라이징 스톰 . . . . 1회 일치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의 외전격 존재였으나 [[라이징 스톰 2: 베트]]이 나오며 별개의 시리즈가 되었다.
  • 랑그릿사 . . . . 1회 일치
         랑그릿사의 실패는 사실상 메사이어의 운명과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리즈의 종언과 함께 메사이어도 천천히 사라지면서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만 게 된 회사가 되었다.
  • 램즈혼 달팽이 . . . . 1회 일치
         램즈혼 달팽이는 비교적 강인하여 수생동물들 가운데서는 사육하기 좋은 종류에 속한다. 다른 [[물고기]] 등과도 공존하기가 쉽고, 램즈혼 달팽이는 수조의 [[이끼]]나 물고기가 먹고 긴 먹이 찌꺼기 등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수조 환경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 레이프 . . . . 1회 일치
         14세기에는 뭔가를 약탈, 강탈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15세기에는 주로 여성을 성적인 목적으로 유괴한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지금과 비슷하게 강간이라는 의미가 나타나게 되었다. 다만 이때는 자가 여자에게 하는 것만 '레이프'라고 불렸다. 현대는 모든 형태의 강제적 성행위가 레이프로 정의되었다.
  • 레킹 크루 . . . . 1회 일치
          [[천재]] [[과학자]]. 현역 시절 당시에는 [[브루스 배너]]([[헐크]])도 만들지 못한 소형 감마 폭탄을 발명한 [[천재]] [[물리학자]]였다. 감마방사선 분야에서의 뛰어 덕분에 '검은 브루스 배너'라고도 불릴 정도. 그러나 리치먼드 기업에 의해 모든 발명품과 연구 자료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겼고, 기업에 항의했으나 쫓겨났다. 그 뒤에 폭탄을 훔치려 했으나 실패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시기에 레커와 만나서 캠프, 칼루스키와 함께 탈옥했으며 이후 레커의 마법의 쇠 지렛대에 의해 초인이 되었다.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슈퍼맨의 주적 답게 슈퍼맨 등장 매체에도 매우 자주 등장.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나 슈퍼맨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슈퍼맨의 빌런은 렉스 루터라는 점에서 그 존재감이 다르다. 슈퍼맨 자체가 오랜 역사의 캐릭터이기에 무수한 슈퍼 빌런 중에서도 상당한 역사를 지닌 캐릭터.
  • 류영수 . . . . 1회 일치
         [[분류:194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고흥 류씨]]
  • 류원정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류종원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리라컴퓨터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류중일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 류씨]][[분류:영덕군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LG 트윈스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 리그컵(K리그) . . . . 1회 일치
         흥행은 엄청난 대참패라서 2016년에 리뉴얼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혁에서도 이 대회는 전혀 이야기가 없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도 '''"1992년, 정규리그 이외 최초로 별도 컵대회인 아디다스 “컵” 신설"'''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당시 대회는 그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대회였다.] 연맹에서 K리그의 역사를 논할 때 프로-세미프로로 합동 운영했던 수퍼리그를 K리그의 일부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http://www.kleague.com/kr/sub.asp?avan=1001124800|리뉴얼 이전 자료]에는 아있다.]
  • 리얼리즘 FPS . . . . 1회 일치
          * 라이징 스톰 2: 베트
  • 리얼충 . . . . 1회 일치
         리얼에 충실하다는 뜻은, 녀관계나 친구 등 인간관게 측면에서 충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 마~앙 . . . . 1회 일치
         이 치~잉은 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앙(웃음) . . . . 1회 일치
         이 치~잉은 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마기]] 제 294번째 밤. '''은 재원'''
  • 마기/296화 . . . . 1회 일치
          * 바르카크는 알리바바에서 "당신은 바르다르의 왕자"라며 아줄 것을 권한다
  • 마기/299화 . . . . 1회 일치
          * 금속기가 아있는 곳이 있다는건 앞으로 주요 떡밥이 될 듯
  • 마기/302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에게 오해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는데, 신드바드는 "나한테 의 나라 일에 간섭말라고 해놓고 무슨 말이냐"며 거절한다.
  • 마기/306화 . . . . 1회 일치
          * 백영, 혹은 백룡매의 어머니 "연옥염"의 자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 마기/308화 . . . . 1회 일치
          * 한편 암흑대륙의 북단 대협곡 암.
  • 마기/310화 . . . . 1회 일치
          * 암흑대륙에서 2년 짓 지내면서 알라딘 일행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 마기/314화 . . . . 1회 일치
          * 파나리스 여자는 자신에게 두 번, 죽는 거보다 슬픈 경험을 시킨 자를 용서하지 않을 거 같다고 하는데.
  • 마기/315화 . . . . 1회 일치
          * 연백룡은 쥬다르를 찾기 위해 홍옥에게 소식을 전해달라는 말을 기고 출발한다.
  • 마기/317화 . . . . 1회 일치
          * 신드리아 상회와 FANFAN상회 간 회담을 위한 방문. 하지만 과거의 앙금이 아있는 연홍옥은 하황문에게 회담을 맡긴 채 빠져나가려 한다.
  • 마기/325화 . . . . 1회 일치
          * 우고의 주위를 신드바드의 일곱 진이 둘러싼다. 후르후르, 베파르, 바레포르, 바알, 포칼로르, 크로세르, 제파르. 본래 진들은 금속기의 주인이 죽으면 성궁을 거쳐 다시 던전으로 돌아가 새로운 왕을 기다린다. 그러나 일곱 진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들은 솔로몬이 택한 자유로운 운명을 "무책임한 것"으로 비난하며 신드바드의 절대적인 지도자 이론에 찬동한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지도자로는 신드바드 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우고는 뒤늦게 이들의 배신을 깨닫는다. 그들이 솔로몬을 비난하고 비하할 수록 본래 왕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고 들의 권유로 그 자리에 올랐던 솔로몬이 왜 모욕 당해야 하냐며 억울해서 눈물을 흘린다.
  • 마기/327화 . . . . 1회 일치
          * 시시껄렁한 논쟁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알라딘은 "가치관의 골을 메꿔가는게 녀의 사귐"이라고 최대한 진지하게 조언한다. 그 조차도 지금의 알리바바에겐 잘난척하는 얼굴로 보인다. 알라딘은 모르지아나를 좋아하지 않느냐,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묻는데 알리바바는 별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좋다고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는다. 알라딘은 어른스러운 태도로 그쯤하면 됐으니 가서 모르지아나에게 사과하라고 권하는데 알리바바는 자기는 잘못한거 없고 사과는 여자가 해야 한다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 결국 글러먹은 태도에 폭발하는 알라딘.
  • 마기/329화 . . . . 1회 일치
          그는 자신이 성궁에서 본 것을 말한다. 이 세상엔 여러 개의 세상과 제각각의 신이 있다. 우고는 그 순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을 손에 넣으며 그걸 사용하면 알라딘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간단하다. 그런 그가 일 일라의 힘을 빼앗고 배제하는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의 손"으로 일 일라와 알 사멘을 없애고자 했다. 그건 바로 그 자신이 "욕망"이 없기 때문. 그런 존재는 단지 주어진 역할에 묶여 있을 뿐, 단지 이 부여한 대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 "신드바드"는 다르다.
  • 마기/332화 . . . . 1회 일치
          > 얘기하는게 아니잖아? 너도 이 세상의 일원이야!
  • 마기/342화 . . . . 1회 일치
          * [[알라딘(마기)|알라딘]]은 부조리한 세상이기 때문에 더욱 과 맞부딪히며 조금씩 변화하며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 마기/344화 . . . . 1회 일치
          * 셋타는 테스와 놀아주면서도 설명을 계속한다. 다윗은 말하자면 사이코패스. 살육도 그에겐 수단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이곳에 있는 그의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면전에서 "너희는 포석"이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에겐 동료도 가족도 의미가 없다. 그러니 현세로 돌아간 다윗이 성궁에 가기 위해 또 한 번 세상을 "포석"으로 삼을 건 말할 것도 없다. 알리바바가 그럴 수는 없다며 막으러 가겠다고 하지만 와히드가 비웃음조로 손사레를 친다. 차원의 벽은 넘을 수 없다면서. 셋타는 어차피 알리바바도 머지않아 과거의 기억과 무한한 시간만 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거라 예견한다. 방법이 없다는 말에 알리바바는 크게 낙담한다.
  • 마기/346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그게 지금의 "운명"이라 말하며 둘이 싸워서 살아는 쪽이 "운명"일 거라고 말한다.
  • 마루코메 . . . . 1회 일치
         일명 '마루코메쿤'(マルコメ君)이라 부르며, '''동자승처럼 머리를 완전히 민 자아이'''를 뜻한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1회 일치
         1792년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마누엘 고도이가 실정을 거듭하였으며 [[절대주의]]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1808년 3월, 마드리드 부 아랑후에즈(Aranjuez)에서 카를로스 4세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이 계기로 카를로스 4세가 퇴위하고 황태자 페르난도가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면서 고도이는 해임,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역시 추방되어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침략을 받고 점령당하게 된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1회 일치
         스타팅 1성 캐릭을 받아 팀을 편성 -> 초보자도 환영하는 길드(얼라이언스)에 가입 -> PvE시나리오 진행 -> 시나리오 보상으로 주는 2성캐릭을 수집하여 2성캐릭으로 서서히 팀 교체. 이 과정에서 얻는 히어로 포인트는 모두 창고를 키우는데 사용한다. -> 적당히 2성캐릭 만렙(94렙)을 한두개 만들었으면 슬슬 PvP나 이벤트를 참여한다. 2성캐릭은 꽤 안정적으로 얻을수 있으며 3성캐릭도 간간이 얻을수 있다. -> 인벤이 모자라면 사용하지 않는 1/2성 캐릭은 정리하나, 데드풀 일퀘를 위해 2성 1팀, 1성 1캐릭은 기도록 하자. 소과금을 한다면 이 시기에 창고를 팍 늘려놓으면 좋다. ->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3성/4성 캐릭을 모은다.
  • 마이클 페이 . . . . 1회 일치
         [[싱가포르]]에서 [[태형]]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인]] [[성]].
  • 마치킨 . . . . 1회 일치
         2007년 대금업법이 개정되면서, 이자 제한법의 상한 금리 이하로만 대출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많은 업체가 경영난에 빠지거나 폐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는 합법적인 업체에 국한되었으며 불법적으로 과도한 이자를 물리던 업체는 살아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불법사채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 마터니티 포토 . . . . 1회 일치
          * 안정성과 배가 부풀어오른 모습을 확실하게 기고자 하여, 추천하는 시기는 임신 28주에서 36주 정도.
  • 망나니 장군 . . . . 1회 일치
         [[에도 막부]]의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정체를 숨기고, 하타모토의 삼 토쿠다 신노스케(徳田新之助)라는 이름으로 마을로 내려와 소방대 메구미(め組)의 식객으로서 읍민과 교류를 하며, 세상에 만연하는 악을 베어서 처단한다는 [[권선징악]] 작품이다.
  • 메두사 헤드 . . . . 1회 일치
         그 모습은 마치 머리만 은 [[메두사]]. 오묘하게 상하로 움직이는 궤도로 느릿느릿 좌우로 날아다닌다. 접촉하면 대미지를 입고 [[석화]]를 당한다. 언듯보면 날으는 해파리나 문어처럼 보인다.
  • 못난 나를 사랑해주세요 . . . . 1회 일치
         미치코의 첫 애인. [[간사이벤]]을 사용하며 연하.
  • 문석희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문연주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미저리 . . . . 1회 일치
         미저리가 죽는 결말을 본 애니는 광분한다. 그녀는 폴의 눈 앞에서 신작 원고를 불살라버리고는 미저리를 살려서 새로운 소설인 "미저리의 귀환"을 쓰자고 협박한다. 폴은 살아기 위해 애니의 검수 아래 "미저리의 귀환"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 미하 . . . . 1회 일치
         유행에 쉽게 빠지고 열중하기 쉬운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교양이 낮고, 수준 낮은 것에 금방 빠져서 그러한 취미나 유행에 열중하는 모습을 경멸하는 뜻에서 쓰인다. 성에게도 쓰이는 경우가 있으며 의미는 비슷하다.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1회 일치
         15년 전 아버지는 여자와 나가고, 그 어머니도 재혼하여 집을 떠났다. 세 자매를 키워준 할머니도 돌아가셔서, 장녀 사치, 차녀 욧쨩, 삼녀 치카는 넓고 오래된 [[카마쿠라]]의 집에 겨져 있다.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장례식에 나간 그녀들은 다른 여동생 스즈와 만나게 된다.
  • 바키도/123화 . . . . 1회 일치
          * 무사시는 그런 모습들이 과연 "야성"스럽다고 감탄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평을 긴다.
  • 바키도/127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모토베는 칼만 돌려주고 칼집이 았다며 이런건 무기도 안 된다며 역시 무사시에게 던진다.
  • 바키도/129화 . . . . 1회 일치
          * 현대의 무사도는 오로지 "살아기 위해" 진화했다고 말하는 모토베.
  • 바키도/140화 . . . . 1회 일치
          * 전광석화 같은 솜씨로 총을 든 경관을 가장 먼저 무력화시키고 밀려드는 병력도 하나둘 박살. 현장엔 오오츠카 헤이베만 는다.
  • 박고은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2006년 데뷔]][[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순창군 출신]]
  • 박성배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뉴질랜드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박성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월배초등학교 동문]] [[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박소희 (만화가)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공주대학교 동문]]
  • 박수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대학교 동문]][[분류:김해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승욱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박승효 . . . . 1회 일치
         ** 2 1녀
  • 박연우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박옥수 . . . . 1회 일치
         기쁜소식강교회[* [[경부고속도로]]에서 [[서울특별시]]로 올라올 때 보이는 그 [[교회]]이다. 참고로, 이 교회 건물은 불법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내에 건축제한이 있는데, 그걸 상큼하게 씹어먹은 것. 서초구청에서 강제 집행을 하려고 했었으나, 교인들이 죄다 나와서 막았다고...] 담임[[목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외 기성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적도 없고, 한국에 구원파 [[신앙]]을 들여왔다고 불리는 미국인 [[선교사]] 딕 욕에게 안수를 받았다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 선교사가 공식 선교사거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도 아닌 등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세한 것은 [[구원파]] 참조. 게다가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목사안수 논란 문단을 볼 것.] 물론 어디까지나 [[신흥종교]]인 만큼 해당 교단 내에서 쓰는 직급으로 볼 수는 있다.
  • 박은수 (1956년)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면천 박씨]][[분류:지체 장애인]]
  • 박재현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박정근 (법조인)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
  • 박제균 (1887년) . . . . 1회 일치
         [[분류:1887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종윤 (1993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박종호 (1964년)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고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준홍 . . . . 1회 일치
         1947년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상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상희는 딸만 다섯을 두고 아이를 아내 뱃속에 겨두고 대구 10.1 사건 당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망했었다가 아들이 태어나면서 대를 잇게되었다.
  • 박지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진수(1985) . . . . 1회 일치
         적도의
  • 박진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박현정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화랑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 . . . 1회 일치
         물론, 하이힐이나 밀폐형 부츠등을 쉬지도 않고 장시간동안 신는다면 비단 발의 피부질병문제가 아니라 근육과 골격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녀노소 모두 바람직한 생활 습관으로 소중한 발을 잘 지키도록 하자. 발이 건강하다면 그 사람의 건강도 보장된다.
  • 방우정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배대윤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진보중학교 동문]][[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배영호 . . . . 1회 일치
         [[분류:1915년 태어]][[분류:1983년 죽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성주 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법원행정처장]][[분류:대한민국의 국회사무총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 배재준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배씨]]
  • 배지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피츠버그 파이리츠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
  • 배트맨 . . . . 1회 일치
         [[로빈]]이라는 사이드킥이 있는데, 1920년대부터 꾸준히 동성애 관계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갑부가 어린 자애랑 사는게 뭐가 어때서.
  • 백결 선생 . . . . 1회 일치
         [[분류:414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5세기 한국 사람]][[분류:신라의 작가]][[분류:신라의 음악가]][[분류:신라의 시인]][[분류:신라의 문신]]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사실 무난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2위 후보자였던 수정 후보가[* 그것도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창당한 원외 진보정당인 [[민중연합당]]의 후보였다.] 38.1%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미시에서도 친박이라는 브랜드가 그리 잘 먹히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장세용|이변이 일어났다]].
  • 백이소 . . . . 1회 일치
         [[분류:1557년 태어]][[분류:1597년 죽음]][[분류:조선의 무신]][[분류:의병]][[분류:의병장]][[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 의병장]][[분류:정유재란 참전 중 사망자]][[분류:임진왜란 관련자]][[분류:정유재란 관련자]][[분류:16세기 한국 사람]].[[분류:백씨]][[분류:청도 백씨]][[분류:문천회맹]][[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 백진희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
  • 백춘희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덕대학 동문]]
  • 버리는 대사 . . . . 1회 일치
          * 가장 흔히 쓰이는 상황은, 헤어지거나 하는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날 때 대답을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뱉고 가는 말을 뜻한다. 이 경우는 악의적으로 경멸이나 협박 같은 말을 기고 떠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기억해둬라!" 같은 말이 있다.
  • 변현제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보루토/1화 . . . . 1회 일치
          * 그때 과학닌자도구반의 카타스케라는 자가 들어오는데, 그는 중닌시험에 인술을 발사하는 새로운 닌자도구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 보루토/4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분명히 보루토의 부정을 목격한 나루토. 히나타만 편의 마음을 눈치챈다.
  • 보루토/7화 . . . . 1회 일치
          둘만 은 부자. 나루토는 어렵게 미안했다는 말을 한다. 보루토는 "지금까지 했던대로 해면 됐다니깐"이라며 털고 일어난다.
  • 보쿠걸/102화 . . . . 1회 일치
          * 잠시 후 후지와라는 "이대로 미즈키가 여자애로 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돌직구를 날린다.
  • 보쿠걸/103화 . . . . 1회 일치
         * 타케루는 "에게 받은 초콜렛"이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데 거기에 빈정 상한 미즈키는 "나중에 너보다 키도 커지고 너보다 예쁜 아내를 얻을 거다"라고 대꾸한다
  • 보쿠걸/106화 . . . . 1회 일치
          * 원래 언제든 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걸 타케루 때문에 포기했으니 "책임져줘야 한다"고 말한다.
  • 보쿠걸/95화 . . . . 1회 일치
         혼자 은 로키에게 토르가 나타난다.
  • 보쿠걸/96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타케루가 사진을 찍어간다고 하자 기뻐하다가 에게 줄 사진이란걸 알고 실망한다
  • 보쿠걸/98화 . . . . 1회 일치
          * 로키는 모래시계를 주면서 "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다이쥬 고교의 거대한 거울 앞에 서서 자와 여자, 어느 쪽으로 살지 보이면 그대로 고정될 것"이라 한다.
  • 보타니 만의 짐 존스 . . . . 1회 일치
         Jim Jones at Botany Bay. [[호주]]의 [[민요]]. 죄를 지어 호주로 끌려온[* 과거 영국은 호주를 유형지로 사용했다.] "짐 존스"라는 자가 사슬을 끊고 탈출해 [[잭 도나휴]]의 부시레인저[* 1번 주석과 같은 일로 호주에 끌려온 죄수들이 탈주, 산적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시레인저(Bushranger)라고 불렸다.] 무리에 들어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 부릿코 . . . . 1회 일치
         자 앞에서 내숭을 떨면서 인기를 모으려는 여성을 뜻한다.
  • 분류:강진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거제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거창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계룡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 분류:곡성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공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 분류:광주광역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구(광주) 출신 인물]]
  • 분류:구례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금산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 분류:김해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남해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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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구(대구)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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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구(부산)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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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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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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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예산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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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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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구(울산)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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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동구 출신 인물]]
  • 분류:일본 여배우 . . . . 1회 일치
         *[[김주]]
  • 분류:장성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장흥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전라남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해군 출신 인물]]
  • 분류:전라북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원시 출신 인물]]
  • 분류:진도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진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창녕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창원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청양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 분류:태안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 분류:통영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함안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상도 출신 인물]]
  • 분류:함평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해남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분류:홍성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충청도 출신 인물]]
  • 분류:화순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전라도 출신 인물]]
  • 브레이니악 . . . . 1회 일치
         역사가 오래된 캐릭터이다보니 시기에 따라, 매체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초기에는 콜루 행성의 [[외계인]]이었다가 이후 설정이 변경되어 콜루 행성의 [[컴퓨터]]가 만든 기계인간이 되었다. 정신 능력을 지닌 [[천재]] [[과학자]] 브릴 독스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 이후 크라이시스라는 대형 이벤트를 거치면서 재설정되었는데 이 설정에서 브릴 독스는 콜루 행성 정복을 이루려다 행성을 다스리는 대형 컴퓨터에게 반역죄로 죽었으나 정신은 살아으 새로운 몸을 얻어 브레이니악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 브로포스 . . . . 1회 일치
         브로들을 조종해 체크포인트를 통과하고, 보스를 때려잡아서 지역을 해방시킨다. 만약 조종하고 있던 브로가 죽으면 다른 브로로 교체된다. 은 목숨이 없다면 임무 실패.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그럼에도 맥스는 살아아 모나와 함께 쫓아온다. 블라드는 모나가 본색을 드러내고 둘이 서로를 죽일걸 기대했지만 일이 예상되로 되지 않자 모나를 쏴죽인다. 그러고는 자신을 목졸라 죽이려고 하는 우든을 쏴죽인후, 마지막으로 달려드는 맥스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폭탄 스위치를 눌러 지하로 떨어진다. 블라드는 맥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도망친다.
  • 블랙 클로버/100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몇 초 전으로 되돌아간다. 마녀왕이 봤던 장면은 환상처럼 사라져버린다. 아스타는 노엘을 찌르지 않았다. 얼마 지 않은 의식으로 마녀왕의 조종에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마녀왕이 [[핀랄 룰러케이트]]를 공격하게 하지만 마찬가지 결과였다. 마녀왕은 한 번 그가 죽임 당하는걸 보지만 그 현실은 금방 사라지고 공격이 실패한 장면으로 대체된다.
  • 블랙 클로버/101화 . . . . 1회 일치
          * 사건 종결 후 마르스와 라드로스는 다시 다이아몬드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마르스는 여왕에게서 조종마법인 "괴뢰의 혈조"의 효과를 내는 약을 받았다. 마르스는 이걸 장생의 약이라고 속여서 왕에게 먹일 생각이다. 왕을 조종해서라도 다이아몬드 왕국을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바꿔보려는 것이다. 라드로스는 여전히 정점을 노리겠다고 말하지만, 이전처럼 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킬 생각은 사라졌다. 인격개조가 사라져서 그런지 인간성이 되살아난 것 같다. 그는 마르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쪽이 정점을 노리기 더 좋을 거라고 말하는데 내심 다시 젤과 만났을 땐 그에게 인정받을 만한 인물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 블랙 클로버/106화 . . . . 1회 일치
          * 분위기가 무르익자 은 실적 순위도 발표된다. 3위는 [[노젤 실버]]의 은익의 참수리. 별은 95개. 4위는 [[샬롯 로즈레이]]의 푸른 들장미. 별 83개. 작년보다 한 계단 순위가 올라갔지만 단장이 술에 꼴아서 현장에 없다. 5위는 새로운 여성단장이 취임한 홍련의 사자단. 별 76개. 6위 [[잭 더 리퍼(블랙 클로버)|잭 더 리퍼]]의 취록의 당랑. 별 69개. 작년과 같은 순위이며 잭은 [[야미 스케히로]]의 검은 폭우만 순위가 올랐다고 분통해한다. 7위 [[도로시 앤즈워스]]의 산호의 공작. 별 67개. 8위는 역시 새 단장이 취임한 [[자줏빛 범고래]]. 별 51개. 최하위는 [[릴 부아모르티에]]의 물빛의 환록. 별은 49개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회 일치
          국왕은 당당한 걸음 걸이에 한 눈에 봐도 을 내려다 보는 눈빛을 가진... 뭔가 모자라게 생긴 아저씨다. 별 건 없는데 오만한 낯짝이 기분 나쁜 아저씨다. 그의 이름은 "A 킬러 클로버 13세". 명실상부한 클로버 왕국의 국왕이 맞지만 어딘지 격이 떨어지고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마법제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가 곁에 서있는 것도 불편해 한다. 하긴 키 차이가 머리 하나 정도로 나니 더욱 그럴 것이다.
  • 블랙 클로버/112화 . . . . 1회 일치
          * [[노엘 실버]]도 물론 참가. 하지만 시끄럽게 구는 단원들이 부끄럽다며 좀 떨어진 위치에 있다. 그런데 그 근처에는 자신의 오빠, 은익의 참수리의 [[솔리드 실버]]가 있었다. 노엘을 혹독하게 대했던 매 중 하나. 노엘이 그를 발견하고 겁을 먹지만 곧 떨쳐낸다. 유트림 화산에서 [[메레오레오나 버밀리온]]이 "그러니 뛰어넘어라"고 했던 격려를 상기한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은 이미 각오를 다졌기 때문이다.
  • 블랙 클로버/128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아스타는 절대로 번복하지 않았다. 그는 랸길스가 키텐에서 주민들을 스스럼없이 공격했던 걸 보았고 핀랄이 언제나 을 위해서 마법을 써왔던 것도 알았다. 랜길스는 그게 어쨌냐고 비웃으며 핀랄은 "단지 그것 밖에 못하는 것"이라고 비하했다. "마지막까지 이겨낸 자는 뭘하든 올바르다"고 강변한다.
  • 블랙 클로버/50화 . . . . 1회 일치
          * 바르토스는 리타이어, 리히트는 여력은 아 있지만 야미를 상대로는 불리하다.
  • 블랙 클로버/51화 . . . . 1회 일치
          * 정작 고슈는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차차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기는데.
  • 블랙 클로버/53화 . . . . 1회 일치
          * 이제 잔당을 처리하는 것만 았다고 여기고 있는데.
  • 블랙 클로버/58화 . . . . 1회 일치
          *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카호노는 "신전 안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긴다.
  • 블랙 클로버/60화 . . . . 1회 일치
          * 전멸 당하거나 제한 시간 동안 많은 인원을 기는 쪽이 승리.
  • 블랙 클로버/61화 . . . . 1회 일치
          * 야미가 신나서 떠들어대는데 대사제는 "은 마도사들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블랙 클로버/62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카호노는 "너는 이미 마력을 컨트롤하게 됐다"면서 맞추지 못하는 것은 컨트롤 문제가 아니라 "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 블랙 클로버/64화 . . . . 1회 일치
          * 매그너의 협공으로 일시적이나마 베토의 공격이 멈추는데, 락도 그걸 보고 매그너와 첫만을 생각한다.
  • 블랙 클로버/65화 . . . . 1회 일치
         [[블랙 클로버]] 페이지 65. '''포기할 줄 모르는 자'''
  • 블랙 클로버/67화 . . . . 1회 일치
          * 해신 떨구기는 해신에게 바치기 위해 이들 매가 어려서부터 연마한 것이다.
  • 블랙 클로버/70화 . . . . 1회 일치
          * 핀랄 룰러케이트는 원래 명문 보드가의 장. 그의 집안은 공격적인 공간 마법을 쓰는 걸로 유명했는데, 다툼과 폭력이 싫은 그는 그런 가풍을 좋아하지 않는다.
  • 블랙 클로버/75화 . . . . 1회 일치
          * 팔휘장 중 한 명, 선두의 깐깐해 보이는 자가 반격을 가한다.
  • 블랙 클로버/76화 . . . . 1회 일치
          * 한방 먹은 팔휘장 브로코스는 여력이 아있다.
  • 블랙 클로버/77화 . . . . 1회 일치
          * 오히려 이걸 기다렸다는 듯 "둘이 았으니 얘기 좀 하자"고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 블랙 클로버/80화 . . . . 1회 일치
          * 오벤도 다른 물마법 사용자와 비슷한 회복마법을 사용하는데 스케일이 다르다. 방에 해파리 같은 형채가 가득찰 정도.
  • 블랙 클로버/83화 . . . . 1회 일치
          * 망토가 두 개 밖에 없는 탓에 자 팀, 여자 팀으로 나뉘어 딱 달라붙어 망토를 감는다.
  • 블랙 클로버/86화 . . . . 1회 일치
          * 증오의 파나가 다루는 불의 정령 샐러맨더의 힘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샐러맨더의 갈퀴손이 지나간 자리는 울창했던 숲도 건물도 아나지 않는다. 정령에 대해 잘하는 바네사 에노테이커도 그 위력에는 경악한다. 원래 샐러맨더는 4대 정령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고 일국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 블랙 클로버/89화 . . . . 1회 일치
          마리엘라는 적의 지휘관에게 사실 자신은 다이아몬드 왕국의 암살부대에 있었으며, 지금 이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고 밝힌다. 마리엘라는 한때 자신의 삶을 위해 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와서 무엇을 하든 그 죄는 씻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이아몬드의 횡포를 막는 것, 그게 자신의 속죄라고 생각한다. 다이아몬드의 지휘관은 그녀를 배반자라 욕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 블랙 클로버/91화 . . . . 1회 일치
          * 파나는 아있는 마력을 끌어올린다. [[핀랄 룰러케이트]]는 아직도 저만한 힘이 있다며 경악하고 아스타는 마지막 설득까지 실패하자 실망한다. 바로 그 모습을 젤 일행이 발견한다. 이들은 아스타만이 아니라 정령마법 구사자가 있는걸 보고 곧바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린다. 마침 라드로스도 그들을 턱 밑까지 추격한 상태.
  • 블랙 클로버/93화 . . . . 1회 일치
          * 마르스도 불길에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 아스타는 너야말로 괜찮냐고 묻고 마르스는 "파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스타는 던전에선 살인인형 같았던 그가 이토록 뜨거운 마음을 가졌는지 몰랐다며 단련된 마법 능력과 을 지키려는 마음을 갖춘 지금의 마르스는 도저히 부술 수 없다고 감탄한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1회 일치
          * 라드로스는 아스타의 동료애를 비웃으며 은 "이용"해야 하는 존재라 주장하지만 아스타가 반마법의 검을 투척하는 변칙 공격을 하자 어이없이 당한다.
  • 블리치/697화 . . . . 1회 일치
          * 이사네가 4번대 대장으로 취임. 동생이 부대장으로 온다. 리사는 8번대 대장이 된 듯.
  • 블리치/698화 . . . . 1회 일치
          * 유하바하가 힘을 겨두고 있었다는건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블라드가 진정한 흑막이라는걸 알아낸 맥스가 블라드를 뒤쫓았을 때 재등장. 이미 블라드의 계략에 속아 폭탄이 설치된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인형탈을 쓰고 있었다. 걸을 때 마다 뾱뾱소리가 나는게 매력 포인트지만 벗으면 터진다고. 맥스에게 러시아 갱단의 습격으로부터 살아게 해준다면 블라드를 잡는걸 도와주겠다고 애원해 맥스의 호위를 받으며 밴을 타고 도망친다. 맥스는 [[모나 색스]]가 폭탄을 해체할 수 있을거라며 모나가 숨어 사는 폐 놀이공원으로 차를 몬다.
  • 비지란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Illegals - . . . . 1회 일치
          거구의 성. 이름에 어울리게 두 손에 넉클을 끼고 있다. 통상적인 히어로와 달리 면허 없이 활동하는 무면허 히어로이나 실력은 확실해서 [[아이자와 쇼타]]와 싸울 정도다. 한편 아이자와와 싸우면서 '''무개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개성을 폭주시키는 약물을 쫓고 있다.
  • 빅 사이언스 액션 . . . . 1회 일치
          정신 능력, 에너지, 방어력 등. 거구의 성 모습이자 실제로는 젊은 여성이다. JLA #26 (February 1, 1999)에 첫등장.
  • 빅터 차 . . . . 1회 일치
         그의 부인은 군인,정치인 김식의 딸이다. 김식은 전 강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며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동기이다. 군에서 소장으로 전역했으며, 11대, 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됐다. 13대에서는 낙선했고, 14대에서는 [[민주자유당]], 15대에서는 [[신한국당]]에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http://ko.pokr.kr/person/1933151 (참조)]] 13대에서 낙선한 이후로 농림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 빈병 . . . . 1회 일치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생략'되는 물건. 그래픽 상으로 병에 담겨 있는 [[포션]] 같은 것도 먹으면 병채로 소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히 일부의 게임에서만 빈병이 게 된다.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사갈 . . . . 1회 일치
         뱀(蛇,사)와 전갈(蝎,갈)을 함께 뜻하는 말. 을 해치거나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비유해서 부르기도 한다.
  • 사택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과거의 회계 제도에서는 구입시에 토지, 건물의 가격이 그대로 장부에 아 있어 사택은 보유하면 그대로 '자산'으로 처리되었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직접 보유하는 사택이 많았다.
  • 사혈 . . . . 1회 일치
         사실 무려 20세기 초 까지도 사혈은 상당히 흔히 있는 치료법이었다.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우는데 공헌한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가 “사혈은 폐렴 치료에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 사용을 적게 했다.”는 기술을 겼을 정도.
  • 살바도르 달리 . . . . 1회 일치
         달리는 부인 갈라가 죽고 7년 뒤에 사망했는데, 자식이 없어서 달리의 작품들은 스페인 정부에 유산으로 겨졌다. 달리의 시신은 피게레스에 있는 극장의 지하실에 묻혔다.
  • 삼감의 난 . . . . 1회 일치
         삼감의 난이 진압된 뒤, 주공단은 상나라 세력을 분할하게 된다. 상나라의 제사는 주왕의 동생 미자계(微子啓)가 이어받게 되며, 그는 [[송나라]](宋)에 봉해진다.
  • 샘 윗위키 . . . . 1회 일치
         고등학생 때 중고차 가게에서 차를 하나 샀는데 그게 하필 [[오토봇]]인 [[범블비]]였다. 그 이후 [[고등학생]] 때 한번, [[대학생]] 때 한번, [[사회인]] 때 한번씩 죽을 위기를 겪고도 살아는다. 이후 배우인 샤이아 라보프가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에 하차하며 등장하지 않게된다.
  • 생리적으로 무리 . . . . 1회 일치
         사용하는 대상은 높은 확률로 성.
  • 서귀포시 . . . . 1회 일치
         원읍''' ||南元邑||19,890 ||188.51
  • 서동민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달성 서씨]]
  • 서명선 . . . . 1회 일치
         [[분류:1728년 태어]][[분류:1791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대구 서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영의정]][[분류:조선의 시인]]
  • 서영종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서용주 . . . . 1회 일치
         8월 23일에 [[김선빈]]과 [[최희섭]]이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윤완주]]와 함께 1군에 콜업,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80944|기사]] 그리고 8월 25일 목동 넥센전에서 9회초 [[이용규]]의 대주자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박기]]의 적시타로 2루까지 진루하였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는 실패하였다.
  • 서정제 . . . . 1회 일치
         [[분류:194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서태식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8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서현진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미스 월드 참가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석경 . . . . 1회 일치
         [[후한]] 희평 4년(서기 175년)에 새겨진 희평석경(熹平石経)이 최초로 여겨진다. [[위나라]] 정시 연간(서기 240-249년)에는 삼체석경(三体石経)이 세워졌다. 희평석경과 삼체석경은 [[서진]]이 멸망한 [[영가의 난]]에 파괴되었으며, 탁본만이 아 있었다. 청말에서 중화민국 시기에 일부 석경 비석에 대해서 발굴이 이루어졌다.
  • 성세현 . . . . 1회 일치
         [include(틀:평창올림픽 대한민국 자 컬링 국가대표)]
  • 성역 도시 . . . . 1회 일치
         본래 미국의 교회에서 1980년대 내전을 피하여 미국으로 피난 왔던 중미 불법체류자들을 추방 위기에서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 세조 . . . . 1회 일치
         [[세종]]의 차. 보통 대군 시절의 명칭인 '수양대군'으로도 많이 불린다. 소싯적부터 야심이 많았던 듯 부왕인 세종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자주 보였다고 전한다. 형 [[문종]]이 즉위한 뒤에는 야심을 숨기고 서거할 때까지 문종을 써킹해 가며 비위 맞추기에 바빴다.
  • 세종특별자치시 . . . . 1회 일치
         금면 (세종)''' || 錦南面 || 78.7 || 9,138 || 4,565
  • 소냐(가수) . . . . 1회 일치
         3라운드에서는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를 선곡해 [[상자 터프가이]]를 이긴 뒤, [[네가 가라 하와이]]를 꺾고 새 가왕이 되었다.
  • 소명(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197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전실업전문대학 동문]]
  • 소학 . . . . 1회 일치
         [[송]]의 [[주희]]가 아동을 대상으로 하여 만든 수신서(修身書). 1187년에 간행되었다.
  • 손담비 . . . . 1회 일치
         [[분류:손담비]][[분류:1983년 태어]][[분류:밀양 손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손지민 . . . . 1회 일치
         * [[2010년]] : [[한국방송공사|KBS]] 영권 아나운서 ([[KBS 부산방송총국]], [[KBS 대구방송총국]] 지역근무)
  • 손철주 (1954년) . . . . 1회 일치
         *《사람 보는 눈》(현암사, 2013) : [[조선일보]]에 2012년 3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연재한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ref>{{뉴스 인용|성1=유석재|제목=옛그림 읽는 자, 주인공의 마음까지 '스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2/2013112204401.html|날짜=2013-11-23|확인날짜=2017-12-15|뉴스=조선일보}}</ref>
  • 손치은 . . . . 1회 일치
         [[분류:1892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손형준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송종익 . . . . 1회 일치
         [[분류:1887년 태어]][[분류:195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야로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진현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은진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송창현 . . . . 1회 일치
          * 2013 시즌 신인이기는 하나 [[오선진]]과 동갑이다. 송창현이 1년 유급을 했기 때문.[* 고등학교는 정상적으로 마친 것을 보면 중학교 때 포항에서 성으로 전학하는 과정에서 유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화팬들 사이에서는 데뷔 시즌에 제대로 활약 못하면 군대부터 보내야 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 숙년이혼 . . . . 1회 일치
         숙년이혼이란 결혼하고 20년 이상,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하고 나서 이혼하는 경우를 뜻한다. 비슷한 단어로 정년이혼(定年離婚)이 있는데, 이는 편의 정년퇴직 시기에 이혼하는 것을 뜻한다.
  • 슈퍼걸(드라마) . . . . 1회 일치
         인간형 적. 인간하고 비슷하지만 두개골에 이상한 돌기가 있다.--아무리 봐도 [[클링온]] 짝퉁-- 별로 도마뱀 같지는 않은데 왠지 도마뱀으로 언급된다. 2500도 가량의 열을 내뿜는 [[도끼]]를 무기로 사용하며 이걸로 슈퍼걸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이 녀석이 살던 행성은 성우월주의적인 사회였던듯.
  • 슈퍼걸(드라마)/1시즌 10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맥스웰 로드는 아있던 CCTV정보에서 어떤 존재가 있다는걸 알게 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카라는 열차에서 에단을 설득한다. 에단은 이 모든게 딸을 위한 것이라고 하며 카라의 설득을 듣지 않고, 다른 자들이 있다는걸 암시한다. 그리고 폭탄을 작동시키고 30초 았다고 말한다. 카라는 에단이 탄 열차칸을 분리시키고 열차를 정지시키며, 에단의 열차칸은 혼자 날려가서 폭발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윈은 카라와 알렉스에게 자신이 조사한 것을 알려준다.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미로 어떤 외계인을 잡으러 갔었고, 거기서 행크와 댄버스 박사는 실종되었다.
  • 슈퍼머슬봄버 . . . . 1회 일치
         게임자체는 망하기는 했지만, 세계관은 그대로 아있어서 [[파이널 파이트]]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연결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가 [[해거]]와 [[버디]], [[휴고]])
  • 슈퍼히어로 . . . . 1회 일치
         슈퍼히어로들의 복장은 [[스판덱스]]가 많은데 이는 [[히어로]]들의 강인한 신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그런지 슈퍼히어로들은 대개 미미녀에 [[몸짱]]이다.
  • 스위스 방공호 . . . . 1회 일치
         방공호의 수용규모는 스위스 전 인구의 114%에 해당한다.--너무 많이 건설해서 14%나 는다.-- 방공호 내부에서는 약 1년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을 상정하고 있는 듯.
  • 스키야키 . . . . 1회 일치
         스키야키라는 이름은 [[에도 시대]] 부터 보인다. 에도 시대의 문헌에서 스키야키는 [[쟁기]]에 구워서 먹는 언급이 있어, 쟁기(스키)에 고기를 놓고 구워먹기(야키)를 했던 것이 스키야키의 어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도 시대에는 쇠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오리고기]], [[멧돼지고기]], [[사슴고기]] 등을 사용했으며 현재 간사이 스키야키에 그 흔적이 아 있다.
  • 스틸오션/독일 . . . . 1회 일치
         >7형(Type VII)의 기본 시험형이었던 7A형(Type VIIA)은 독일 해군의 공격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형에 기술적 기반을 둔 VIIA형 유보트는 1933년 설계되었다. 7형은 뛰어난 성능과 빠른 잠항 속도를 자랑했다. 모두 합쳐 11대의 7A형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이중에는 대서양 해전의 첫 희생양인 여객선 아테나(Athena)를 격침시킨 U-30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32는 배수량 42,348톤 정기선 엠프리스 오브 브리튼(Empress of Britain)을 격침시켰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손실된 7A형 잠수함은 U-29와 U-30 단 두척이었다. 살아은 7A형 잠수함은 모두 자침되었다.
  • 스틸오션/사령관 . . . . 1회 일치
         == 뛰어 ==
  • 스틸오션/영국 . . . . 1회 일치
         >왕립해군은 1916년 부터 1917년 까지 55척의 R-클래스 구축함을 건조했다. 이 숫자에는 이중 굴뚝을 장비한 개량형도 포함되어있었다. R-클래스 구축함은 초기 M-클래스 구축함의 개량형이었다. 두척을 제외한 대다수의 R-클래스 구축함이 1930년대 퇴역하였다. 레이디언트(Radiant)는 왕립태국해군에 넘겨져 1957년까지 현역이었으며, 스케이트(Skate)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기뢰부설함으로 개장되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살아았다. 스케이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호위선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1939년 공화국이 패배하자, 당시 대통령 마누엘 아사냐, 총리 후안 네그린 등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프랑스]]로 피신했고, 많은 공화파 망명자도 프랑스, 멕시코 등 같은 스페인 계열 중미 국가로 피신하였다.
  • 식극의 소마/154화 . . . . 1회 일치
          * 쿠스노키 렌타로는 자신은 "선택받은 요리인"이라 자부하는데 타쿠미는 "왜 에게 선택받는데 집착하냐"며 비웃는다
  • 식극의 소마/158화 . . . . 1회 일치
          * 쿠스노키는 스팀 컨베이션 오븐을 사용할 때 연어를 랩으로 감싸 올리브 오일 위에 띄워서 수분이 전혀 증발하지 않고 촉촉하게 아있도록 조리했다.
  • 식극의 소마/162화 . . . . 1회 일치
         * 에리나는 히사코와 대화하며 "잔당 사냥에서 살아는 연구회가 또 나올지도 모른다. 센트럴이 절대적인건 아니다."라고 말해 히사코를 놀라게 한다.
  • 식극의 소마/167화 . . . . 1회 일치
          * 그렇게 되면 기숙사 인원은 모두 흩어지고 결국 에리나만 을 거라고 한다.
  • 식극의 소마/168화 . . . . 1회 일치
         [[식극의 소마]] 168화. '''만의 날'''
  • 식극의 소마/172화 . . . . 1회 일치
          * 원래는 쪽 끝에서 시작해 회차를 거치며 홋카이도를 종단하게 된다. 최종 도착지는 최북단인 "낙도"
  • 식극의 소마/177화 . . . . 1회 일치
          * 엔도 감독관은 허세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지만 각 시험장 마다 반역자들이 아 면을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 식극의 소마/180화 . . . . 1회 일치
          * 타도코고로와 알디니도 린도가 따로 설명해준다며 끌고 가버리고 소마는 혼자 는다.
  • 식극의 소마/183화 . . . . 1회 일치
          * 그래도 사냥꾼은 소마라면 괜찮을 거라며 연습용 고기가 부족하면 연락하라는 말을 긴다.
  • 식극의 소마/184화 . . . . 1회 일치
          * 하야마는 뜻밖의 제안에 놀라고 아자미는 "십걸 자리를 건 배틀로얄이 있으니 자네의 참가를 기대한다"는 말을 기고 자리를 뜬다.
  • 식극의 소마/186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흘려듣는 것처럼 굴면서도 "마무리 지어야할 녀석이 있으니 반드시 살아겠다"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회 일치
          * 소마의 말에 작게, 에게 보이지 않게 미소짓는 하야마.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회 일치
          * 하야마 아키라의 승리로 끝날 듯할 식극이 "소스"라는 변수가 아있었다.
  • 식극의 소마/190화 . . . . 1회 일치
          * 거기까지 들은 소우에는 그거야말로 "맛에 대한 탐구심과 집념"이라 말하며 "요리사의 얼굴을 보았다"는 극찬을 긴다. 하지만 하야마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고 멘치까스가 자신의 프라이드 베어에 필적한다는 평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지마 긴은 그런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분명 하야마는 완벽한 맛을 추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요리인지도 모르는 채가 아니냐고 꼬집는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1회 일치
          >설령 두 번째라도 상관없으니 계속해서 이 자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싶다.
  • 식극의 소마/202화 . . . . 1회 일치
          * 홍백전의 대결이 드디어 종료. 센자에몬은 양측의 요리를 제출받는다. 곡절이 있었지만 양측 모두 훌륭하게 아쉬 파르망티에를 완성. 이제 승패만이 아있다.
  • 식극의 소마/204화 . . . . 1회 일치
          * 최종시험인 6차 시험이 결행되는건 한 달 뒤. 레분 섬 단에 특설회장을 설치하고 연대식극을 거행한다. 현재 진급시험을 받고 있는 학생들도 최종적으로는 여기에서 식극을 관전하게 된다.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결국 반역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거리로 삼겠다는 악의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회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쪽이 십걸 자리를 전부 가져가는 심플한 결론. 그리고 대전에 참가할 인원은 딱히 규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자미 측에서 먼저 [[사이바 죠이치로]]의 1대50 연대식극을 예로 들며 제안한다. 정말로 쿄쿠세이측에 가세하려는 인물이 있다면 얼마든지 데려와도 좋다는 호기.
  • 식극의 소마/207화 . . . . 1회 일치
          * 각 대결은 메뉴가 적혀진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다. [[유키히라 소마]]는 첫 대결의 메뉴선택을 상대인 [[키노쿠니 네네]]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정한 승부를 원한다며 소마 쪽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녀는 속임수를 싫어하는 성격으로 같은 십걸인 에이잔도 부정한 짓을 저지른 녀석이라며 경멸한다. 관중석에서 반역자를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것도 "더러운 야유는 싫다"고 차갑게 노려보는데 어쩐지 관중석의 학생들은 그 차가운 시선이 더 좋다며 심쿵한다. 그리고 쿠가는 왠지 구경하는 주제에 "저 땋은 머리는 언제나 날이 서 있고 오늘은 아마도 생리"일 거라고 도발해댄다.
  • 식극의 소마/208화 . . . . 1회 일치
          키노쿠니는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였다. 일식의 명가 키노쿠니 가문에선 일본 문화에 정통한 후계자를 원했고 그녀는 네 살때부터 일본 무용을 시작으로 전통 문화를 익히는데 매진했다. 보통 아이들처럼 놀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는데, 그녀가 자유롭게 뛰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식극의 소마/210화 . . . . 1회 일치
          네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잇시키의 습성. 그건 무엇을 하든 그녀가 이룬 경지를 쉽게 따라잡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여력을 기고 있다. 그것이야 말로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제 참을 수가 없으니 자신들 91기생 중에 누가 최강의 요리사인지 자신의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며 투지를 드러낸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회 일치
          * 마침내 침묵을 깨고 심사의원 [[안(식극의 소마)|안]]이 입을 연다. 그녀가 지명한 건 네네. 그녀에게 "일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운을 띄우는데, 정작 무슨 말인지 기억이 안 나는지 산더미 같은 책 뭉치를 한참 뒤적거린다. 분명 "우리 단체의 경전"이라더니 알고보니 그냥 사전도 끼어있었다. 아무튼 사전에서 "말보단 증거"란 속담을 찾아낸 안. 그녀는 아직 추가분 소바가 아있을 테니 요리를 직접 먹어보라 권한다. 네네는 이제와서 소마의 소바따윌 먹을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나, 안이 말한건 소마의 소바가 아니었다.
  • 식극의 소마/218화 . . . . 1회 일치
          * 린도가 대결 상대를 정하자고 한다. 먼저 응하는 것은 미마사카. 처음부터 사이토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트레이스하고 있는 상태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나는 사이토 소메이"라고 소개하며 그의 입버릇을 따라하는데. 사이토는 그런 부분을 재미있다고 평하며 승부에 응한다. 메기시마는 린도 쪽으로 도전. 은 것은 자연히 쿠가와 츠카사. 쿠가가 바라마지 않던 매치가 성립했다. 관중들은 8석 대 1석이라며 무모한 대결이라고 혹평하지만 어쨌든 소마는 쿠가의 선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공이 울리는 2라운드.
  • 식극의 소마/223화 . . . . 1회 일치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그가 쓰는 다기도 눈여겨 본다. 우선 찻주전자는 물맛을 부드럽게 하는 부칠기. 이걸로 끓인 물을 다기에 옮겨 적절한 온도로 식히고 부드럽게 찻잎을 뜸들여 맛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낸다. 결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솜씨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회 일치
          * 아직 심사가 시작된 것 조차 아니건만 반역자 팀은 벌써 축제 분위기. 미마사카의 트레이스가 성공적인건 사실이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도 아있다. 물론 그것은 미마사카가 어레인지한 마지막 한 조각의 초밥에 달렸다. [[나키리 에리나]]와 소마는 친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말없이 승부를 주시한다. 소마는 항상하던 대로 까불거릴 만도 하건만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는데.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회 일치
          타쿠미가 갸웃거리자 그녀는 "방금 전 붙인 별명"이라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녀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소녀. 파티쉐인 것도 "모든 음식 중 가장 귀여운 건 과자니까"라는 이유. 그렇게 귀여운걸 좋아하기 때문에 을 부를 때도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게 그녀의 취향이었다. 내친 김에 그녀는 반역자가 보이는 족족 별명을 붙였다. 이사미는 이사먕, 이쿠미는 왠지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니쿠미"를 한 번 더 변명해서 "니쿠먕".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게 "먀" 돌림이었다. 가장 귀엽다고. 이 자리엔 었지만 [[쿠가 테루노리]]도 별명이 있다. "테루냥". 쿠가처럼 나행이 들어간 이름도 좋다. "냥"도 먕 못지 않게 좋아하니까.
  • 식극의 소마/230화 . . . . 1회 일치
          타쿠미와 소마도 그녀에게 질 수 없었다. 그녀와 같은 "각오"를 다지며 각자의 대결주제를 뽑았다. 제 1카드 대결은 "버터". 제 2카드는 "소고기". 이제 대결만이 아 있다.
  • 식극의 소마/234화 . . . . 1회 일치
          에이잔이 타쿠미를 도발하기 위해 마구 띄워주고 있다. 타쿠미가 미마사카 스바루에게 패배한 것도 상대가 소마였으면 이겼을 거라고 본의 아니게 고평가를 발했다. 타쿠미 본인이 크게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소마는 조금 신경 썼던 듯 하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1회 일치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지라 과거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여러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그 중에서는 [[천상병]]이나 [[김관식]], [[조태일]], [[민병산]], [[황석영]] 등이 있다. 특히 천상병이나 김관식 등은 서로 ~~육두문자~~구수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으며 세 사람이 하나같이 알아주는 주당들이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기기도 하였다.
  • 신동일 (언어학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신동주(야구) . . . . 1회 일치
         현역 시절 당대 최고의 좌완투수였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에게 무척 강한 모습을 보였고 불꽃 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고 찬스에 무척 강했다. 또한 타격 시에 배팅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타격을 하기로 유명했다.
  • 신동호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평산 신씨]]
  • 신선미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신성왕후 . . . . 1회 일치
         *** '''편''' : 제1대 [[고려 태조|태조]] 신성대왕(太祖 神聖大王, 877~943 재위: 918~943)
  • 신영식(만화가) . . . . 1회 일치
         [[1949년]] [[2월 11일]]에 [[충청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고등학교[* 현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다 중퇴한 뒤 1971년 소년한국일보에 <승리의 그날>을 시작으로 만화계에 데뷔한 뒤 주로 반공, 전쟁 등을 소재로 한 극화만화를 그려오다 1980년에 소년동아일보(현 어린이동아)를 통해 4쪽짜리 만화 <돌배군>을 장기간 연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 신쥬 . . . . 1회 일치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행위로, 녀가 동반자살하는 것을 이른다.
  • 신지훈(배우)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모델]][[분류:중구(대전) 출신 인물]]
  • 신형철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조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신호권총 . . . . 1회 일치
         [http://www.usatoday.com/story/news/nation/2014/01/15/teen-charged-fatal-fire-three-children-killed/4488059/|2014년 미국에서 18세 성이 신호권총으로 불을 질러 아이 세명을 죽이고 아이 한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다.]
  • 쌍둥이 . . . . 1회 일치
         서브컬쳐에서는 대개 일란성 쌍둥이나 혹은 녀 쌍둥이 쪽을 주로 다루며, 쌍둥이만의 독특한 기믹(교감능력 등)을 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담으로, 쌍둥이라는 이유로 캐릭터 디자인을 합법적으로 돌려가며 써먹을 수 있다.~~
  • 아기발도 우투리 관련설 . . . . 1회 일치
         [[고려]] 말기에 한반도 부를 침공하였던 [[왜구]]의 장군 [[아기발도]]가 대표적인 아기장수 설화의 하나인 [[아기장수 우투리]]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전에는 [[인터넷]] 상에서 간간히 주장되던 이야기였으나, 2016년 1월에 이를 다룬 논문이 나온 바 있다.
  • 아라포 . . . . 1회 일치
         2007년 무렵 이 세대의 특징으로서 녀고용균등법 하에서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어, 커리어 우먼이나 여성 벤처 기업을 경영하기도 하고, 결혼과 직업 선택이 이전보다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여성이 많다고 여겨진다.
  • 아저씨 사냥 . . . . 1회 일치
         복수의 불량 청년, 청소년 집단이 중년 성을 공격, 금품을 강탈하는 행위를 뜻한다. [[노상강도]]의 일종이다.
  • 아카짱가에리 . . . . 1회 일치
          * 여동생, 동생이 태어나서 언니오빠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된다.
  • 아키즈키 리츠코 . . . . 1회 일치
          * 대부분의 2차 창작에서 상식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디어리 스타즈의 세계관을 적용하면 리츠코는 사촌 동생을 여장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버린 코토리도 소름끼쳐할 변태다. 디어리 스타즈가 상당히 흑역사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쪽도 존재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대부분의 세계관에서 변하지 않게 된다. 765프로덕션에서 숨은 최강 변태.
  • 악마의 대변인 . . . . 1회 일치
         본래 가톨릭 교회에서 시복/시성 절차에 있어 대상의 결점을 김없이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Promotor Fidei 지위를 뜻했다. 정식 명칭은 아니며, 속칭이다.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1회 일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현직 시장인 [[김문원]] 시장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함으로써 보수 표가 분산되어서 당선될 수 있었으며, [[한나라당]] 김성 후보가 [[경민대학교]] 교수여서 경민학원의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신흥학원의 [[강성종]] 간 대리전이라는 분석이 있다.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한편 둘이 은 살생님과 아즈사씨는 이야기를 나눈다.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아즈사씨는 마침내 고백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에게 겨진 시간은 길어야 3년.
  • 애로우버스 . . . . 1회 일치
          * [[DC's Legends of Tomorrow]] - 타임마스터 립 헌터를 중심으로 하여, 아톰, 파이어스톰, 화이트 카나리, 호크걸, 호크맨 등 애로우와 플래시에서 출연하던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애로우와 플래시에서 는 애들을 모아놓은 잡탕 드라마.--
  • 애처 도시락 . . . . 1회 일치
         [[일본어]]. 사랑하는 아내(愛妻)가 만들어준 도시락(弁当). 묘하게 애정의 상징/기혼의 스테이터스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1회 일치
         [[에도 막부]]의 관료, 정치가, 검술가. 야규 무네토시 세키슈사이(柳生宗厳 石舟斎)의 손자이며,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장. 야규 가문의 적자이다. 아명은 시치로우(七郎).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를 모셧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1회 일치
          애국자의 반역에 맞서 영국을 지지하는 식민지인들. 숀 헤이스팅스에 따르면 식민지인 다섯명 중 하나는 열성 왕당파였다고 한다.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며 점점 세력권이 좁아지다가 메인 스토리 완결 후 사라진다.[* 실제 역사에서 미국 독립 이후 왕당파는 아직 영국령으로 아 있던 [[캐나다]]로 도주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1회 일치
          보스턴 부의 상자에서 설계도 획득 가능. 빅 데이브 레벨3 부터 제작 가능. 특수 철괴+은광석.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회 일치
          일명 "원탁". 양 세력의 공군이 서로 격돌하는 공역으로 수많은 전투기들이 뒤엉켜 싸우는 곳이다. 래리 폴크 왈, "살아는게 유일한 규칙인 곳".
  • 여자력 . . . . 1회 일치
         이런 것은 여캐가 주인공을 가볍게 집어던지거나, 대전 액션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상대(주로 자)를 마구 쓰러뜨리거나, 육탄전이나 심리전에서 여캐의 용의주도함이 나타나는 장면에 다는 코멘트이다.
  • 연경흠 . . . . 1회 일치
          당시 한화 외야엔 [[조원우|조로켓]], [[제이 데이비스|연이 형]], [[고동진(야구선수)|고봉사]]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김인식]]감독의 꾸준한 신뢰로 많은 타석을 부여 받았다.
  • 연분홍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연설환희불교 . . . . 1회 일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마후라불(摩睺羅佛)이라 자칭한 번승(番僧)이라는 자가 시작하였다고 한다. 번승은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그 피를 불상의 입술에 발라 환희불(歡喜佛)이라 칭하고, 녀가 벌거벗은 채로 서로 끌어안고 음란한 짓을 하는 불상을 만들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그 뼈를 가지고 수주(數珠,염주)와 음기(飮器,음란한 그릇)을 만들었으며, 술과 고기를 먹고 음탕한 짓을 하여 해를 끼쳤다.([[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0&gunchaId=av008&muncheId=01&finId=001 (참조)]])
  • 연초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예재형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6년 데뷔]][[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의흥 예씨]][[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분류:코미디에 빠지다]]
  • 오경훈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
  • 오기노 쿄우사쿠 . . . . 1회 일치
         1882년 3월 25일, [[아이치현]] 출생. 본래 성씨는 나카무라(中村). 아버지는 나카무라 히코사쿠(中村彦作)이며 차으로 태어났다.
  • 오다 노부나가 . . . . 1회 일치
         사실상 일본을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 극적인 모습이나, 인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아 있어 현대까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창작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인물이다. 창작물에서도 이미지가 극적이라 무슨 마왕 같은 걸로 나오는 빈도가 매우 높다.
  • 오마모리 . . . . 1회 일치
          * 센본바리(千人針) : 천에다가 천 명의 여성이 한 땀씩 수를 놓아서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출정하는 성에게 주기 위하여 많이 유행하였다.
  • 오석락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독교인]][[분류:김천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2014년 죽음]]
  • 오석산 . . . . 1회 일치
         [[조위]] 말기에 유행하여 [[서진]] 시기에서 위진북조 시대에 크게 유행한 '''[[마약]]'''.
  • 오세정 (교수)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노무현]][[분류:문재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바른미래당 당원]][[분류:안철수]][[분류:박지원 (1942년)]][[분류:이회창]]
  • 오스소와케 . . . . 1회 일치
         대량으로 얻게 된 물건, 우연히 얻게 된 물건, 다른 사람에게 받은 선물을 이나 이웃에게 나눠주는 것을 뜻한다. 혹은 그렇게 나눠준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 오승근 (1908년) . . . . 1회 일치
         [[분류:1908년 태어]][[분류:200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고등문관시험 합격자]]
  • 오승원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0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오승희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도쿄도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여자 가수]][[분류:일본의 가수]][[분류:일본의 아이돌]][[분류:1997년 데뷔]][[분류: 충쿠 소속]][[분류:모닝구 무스메의 일원]]
  • 오영식 (1967년) . . . . 1회 일치
         [[분류:196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울전곡초등학교 동문]][[분류:휘경중학교 동문]][[분류:양정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나주 오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
  • 오예설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오오반후루마이 . . . . 1회 일치
          * 위에서 따와서, 금품 같은 것을 아끼지 않고 에게 잘 쓰는 것. [[통큰]] 행동을 뜻한다.
  • 오원 (조선) . . . . 1회 일치
         [[분류:1700년 태어]][[분류:17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해주 오씨]][[분류:과거 급제자]][[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저술가]][[분류:장원 급제자]]
  • 오이다시베야 . . . . 1회 일치
          * [[후지코 A. 후지오]]의 단편만화에서 '영업부'에서 '자료실'이라 불리는 한직으로 쫓겨난 자의 고뇌가 묘사되어 있다.
  • 오정희 (소설가)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이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라벌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오영수문학상 수상자]]
  • 오충훈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SK텔레콤 T1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 오태곤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서울쌍문초등학교 동문]][[분류:신월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해주 오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오태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도곡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오태영 (1948년)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오태훈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오토메 . . . . 1회 일치
         오토메의 '오토'는 자를 뜻하는 오토코(おとこ)와 같아서, 젊고 활기차다는 뜻의 동사였다. 메(め)는 여자라는 뜻이다.
  • 오토코노코 . . . . 1회 일치
         '''여자 그려놓고 자라고 우기기'''를 뜻하는 말이다.
  • 와가마마 . . . . 1회 일치
          * 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며 제멋대로 군다.
  • 왓치맨 . . . . 1회 일치
         1985년 10월 12일, 에드워드 블레이크라는 자가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져져 사망한다.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히어로로 활동해오던 사람이었다. 히어로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을 죽인 자를 찾기위해 과거에 활동하던 히어로와 빌런을 찾아다닌다.
  • 외도 . . . . 1회 일치
          * (한국어) 불륜. 편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하고 성관계를 맺는 것. 여담으로 일본인들에게 '불륜은 외도 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외도라고 할 정도로 사악하게 느껴지는 행위까지는 아닌 모양이다(…).[[http://ayiva.sakura.ne.jp/doc/gedou/dic/ptalk-korean.html (참조)]]
  • 요괴:니코니코니 . . . . 1회 일치
         일설에는 아이돌을 꿈꾸던 여고생의 원령이 변화하여 요괴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살던 맨션은 오랫동안 요괴의 저주를 받아 빈집으로 겨져 있다가 현재 철거되었다고도. 진상은 불명.
  • 요괴:트위터 . . . . 1회 일치
         트위터라는 이 요조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이를 흉내내어 여러 곳에 퍼트린다. 이 새는 의 말을 몰래 듣고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는데, 그 말이 평범한 것이면 상관없으나, 문제가 있는 말이면 큰 낭패를 겪게 된다. 트위터가 곁에 있는걸 깜빡하거나 모르고 혼잣말로 실언을 하여, 크나큰 낭패를 겪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트위터를 불행을 퍼트리는 흉조라고 부르며 두려워 한다.
  • 우동균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
  • 우메즈 카즈오 . . . . 1회 일치
         기괴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기는 인상적인 작풍이 특징. 특히 등장인물이 공포스러울 때를 묘사하는 특이한 표정으로 지금도 네타 거리가 된다.
  • 우물가 회의 . . . . 1회 일치
         비슷한 시기에 관청이나 회사에서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회의가 정착되기 시작하여, 자들이 여자들의 수다를 회의에 빗대어 조롱하는 말로서 우물가 회의라는 말이 나타났다.
  • 우치데노코즈치 . . . . 1회 일치
         옛날 옛날 어느 곳에 가난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 할아버지는 장작을 팔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팔다 은 장작을 [[용궁]]에 보내는 선물이라며 다리에서 "용녀님에게 선물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강에다가 떠내려 보냈다.[* 이는 일본의 옜날 풍속이다.] 그런데 어느날 한 사람이 나타나서 용궁에서는 장작이 부족[* 용궁인데 장작이 부족할까(…). 바다 속이니 부족할 수도 있겠다.]한데 매일 장작을 선물로 줘서 용녀님이 고맙다고 하여, 뭐든지 나오는 요술 망치를 선물로 주었다. 할아버지는 우선 [[짚신]]을 하나 꺼내서 집으로 돌아가고, 좋은 손도끼가 갖고 싶어서 손도끼를 달라고 했더니 황금 손도끼를 얻었다.
  • 원 포 올 . . . . 1회 일치
         개성을 양도하는 방식이 매우 깨는데 이전 사용자의 신체 일부(정확히는 DNA)를 먹어야 한다. 계승에서 이즈쿠가 받은 건 올마이트의 머리카락 한 올. 그러나 이즈쿠가 본 역대 원 포 올 계승자들로 추정되는 자들의 모습 등 '먹는다'는 방법은 일종의 페이크일 가능성도 있다. 개성의 양도할 때는 작가가 비밀이 아있는 분위기를 그려두었다. --DNA흡수로 해결되면 여친이랑 [[검열삭제]]나 [[뽀뽀뽀]]]만 해도 즉시 양도된다!! 이러면 말이안돼...혹은 고자로 살거나?--... 본인이 원해야지만 넘겨줄수있다고나왔다...
  • 원더우먼 . . . . 1회 일치
         완벼한 인물. 아마존이 보통 사람은 상대도 안되는 괴력을 지닌데다 원더우먼은 이들 중에서도 엄청난 강자다. 어쩌면 슈퍼맨보다 강력할 수도 있으며 슈퍼맨과 달리 약점도 없다. 전투실력도 달인.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이템을 장비. 유명한 진실의 올가미는 접촉한 자가 진실만 말하게 만들며 슈퍼맨도 끊지 못할 정도로 튼튼한 무기다. 외모까지 완벽해서 자 동료들에게 사랑받는다. 정말 완벽한 인물.
  • 원피스/817화 . . . . 1회 일치
         || 자라면 다들 닌자를 좋아한다고.
  • 원피스/818화 . . . . 1회 일치
         * 비록 어떤 내용을 긴 건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그 문자를 읽는 방법은 전해지고 있었다
  • 원피스/819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다음에 싸울 때는 다를 것이며 아직 밍크족에겐 '''"비장의 수"'''가 아있다고 한다.
  • 원피스/823화 . . . . 1회 일치
          * 페드로는 돌려보내겠다고 벼르지만 캐롯은 꼭 한 번 바다로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며 사정사정하며 는다.
  • 원피스/825화 . . . . 1회 일치
          * 쵸파가 상디가 긴 도감을 보고 독이 있다는걸 알아내지만 성질 급한 루피는 먼저 처묵했다가 빈사에 빠진다.
  • 원피스/826화 . . . . 1회 일치
          * 일행은 욘디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을 돕는 취미는 없다"며 거절당한다.
  • 원피스/829화 . . . . 1회 일치
          * 샬롯가의 16이자 "젤라또 대신" 샬롯 모스카토가 빅맘을 막아보려고 한다.
  • 원피스/833화 . . . . 1회 일치
          * 제르마1, 2와 욘디, 상디는 모두 네 쌍둥이. 상디는 삼이다.
  • 원피스/855화 . . . . 1회 일치
          브륄레는 자기들의 포네그리프를 훔쳤다는 말을 듣고 경악. 밀집모자 일행은 브룩을 껴안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브룩은 분위기를 타고 나미에게 팬티를 보여달라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는다. 쵸파는 이제 목적 중 하나는 달성됐고, 상디를 구하는 것만 았다고 하는데.
  • 원피스/856화 . . . . 1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의 자들은 빅맘이 제공한 술집 여자들과 함께 술판을 벌이고 있다. 여자들은 벌써 술에 취해 쓰러졌고 [[빈스모크 욘디]]가 그걸 빈정거린다. 욘디는 이런 여자들 보다는 "상디의 동료 여자", 나미를 내놓으라며 웃는다. [[빈스모크 이치디]]와 [[빈스모크 니디]]도 맞장구를 치며 그런 여자를 좋아한다며 내일 나미를 넘겨달라고 교섭해 보겠다고 시시덕거린다.
  • 원피스/862화 . . . . 1회 일치
          푸딩이 제 3의 눈을 가리게 된 이유는 빅맘 때문이었다. 어머니인 그녀 조차도 푸딩의 눈을 기분나빠 해서 이마로 가리라고 성화를 부렸다. 물론 다른 형제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빅맘의 딸인데도 또래 사이에선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눈을 놀리고 혐오했다. 그게 지금의 푸딩을 만들었다. 처음 사람을 찌른 것도 자신의 눈을 가지고 괴롭히던 자애였다. 잠자코 비웃음 당하느니 전부 없애버리는 걸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혐오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자신은 괴물이라고 독백한다.
  • 원피스/868화 . . . . 1회 일치
          * 또 한 사람은 그 섬에서 살던 요리사였다. 은퇴한 해적이었던 [[슈트로이젠]]. [[샬롯 푸딩]]의 [[원피스/858화|웨딩케이크]]를 만든 그 요리장이다. 그도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그걸 "재미있는 사건"으로 여기며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쿡쿡 열매"의 능력자. 이 세상 만물을 모두 식재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난 능력자였다. 그는 나무토막을 생햄으로 만들어 먹으며 이 재미있는 사건을 일으킨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굶어 죽겠지. 슈트로이젠은 그 힘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친 엘바프 전사와는 달리 링링에게 다가갔다. "꿈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 그에게 링링은 경계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슈트로이젠은 "너의 마더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겠다"는 말로 구슬렸고 이 만이 훗날 빅맘 해적단의 토대가 되었다.
  • 원피스/870화 . . . . 1회 일치
          * 빅맘 [[샬롯 링링]]이 눈을 뜨고 무서운 보복이 이어진다. "빅파더"로 변한 [[카포네 갱 벳지]]가 그 공격을 막아내다 사경을 헤맨다. 빅맘의 딸이자 벳지의 아내인 [[샬롯 쉬폰]]이 성의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그녀는 자기와 손주의 얼굴을 봐서 편을 용서해달라 애원한다. 너무 섣부른 짓이었다. 평소에도 [[샬롯 로라]]를 연상시킨다고 학대를 일삼던 빅맘이다. 쉬폰의 얼굴을 보다 더욱 화를 터뜨린다. 얼굴을 보였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녀도 암살 공범이란 이유로 공격이 거세진다.
  • 원피스/879화 . . . . 1회 일치
          쇼콜라 타운으로 이동하는 중에 아버지 "파운드"를 지나쳐가지만 눈치채지 못한다. 상디에게 원래 [[샬롯 로라]]가 쵸콜릿 대신이었고 푸딩이 후임이었으나 그녀의 의사로 공석으로 겨뒀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정신병에 가까워지는 동생의 츤데레 활동을 타이르지만 별 소용은 없는 듯 하다.
  • 원피스/884화 . . . . 1회 일치
          * 시폰과 [[샬롯 푸딩]], [[상디]]는 바깥 사정을 모르는 채로 작업에 열중. 한편 시폰과 푸딩이 상디와 함께있다는걸 모르는 [[샬롯 브륄레]]는 전보벌레로 밀집모자 일당이 곧 카카오섬으로 간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9시간 뒤, 심야 1시에 그들과 그들을 추격하는 [[샬롯 페로스페로]]와 빅맘 [[샬롯 링링]]이 도착할 예정이다. 루피도 그때까지 카카오섬에 가겠다 했지만 카타쿠리에게 패할 테니 어림도 없다고 너스레떠는 브륄레. 살아은 밀집모자 일당도 추격대가 처리할 거라 안심시키며 꼭 마마를 안심시킬 웨딩 케이크를 완성해달라 당부한다.
  • 원피스/886화 . . . . 1회 일치
          * 다시 일어선 오븐은 곧바로 일행을 추격해 재료를 옮기던 마차에 올라탄다. 시폰을 다시 사로잡았을 때, 마침 전보벌레가 울리는데 파이어탱크 해적단의 [[카포네 갱 벳지]]가 카카오섬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벳지는 결국 카카오섬으로 시폰을 마중하러 온 것. 오븐은 곧바로 벳지의 배에 연락해서 시폰을 인질로 잡고 카카오섬 항구에 정박할 것을 명령한다. 시폰은 자기 때문에 "진짜 가족"을 희생시킬 수 없고 꼭 살아아 언젠가 복수해달라고 외치지만 벳지는 끝내 상륙을 받아들인다.
  • 원한해결사무소/3화 . . . . 1회 일치
         마츠지리 신지는 개발부의 여직원 우메모토 사유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애인으로 삼으려고 하여 개인적으로 전화번호까지 전해주고 있었다. 도청으로 정보를 획득한 원한해결사는, 사장이 거주하는 맨션 바깥에서 전화박사를 뜯어 사장 방의 회선을 훔쳐내 우메모토 사유리에게 집요하게 자 신음소리를 흉내내어 장난전화를 건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춘추시대 위(衛) 나라의 군주. [[학]](鶴) 애호가로서, 학을 총애하여 학에게 관직을 주는 등 기행을 벌였다. 정치가 혼란된 결과 나라가 쇠퇴하여, 적(狄) 족의 공격을 받고 위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적족과의 싸움에 나서 전장에서 살해되었으며, 시체가 갈갈히 찢겨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하고 '간(肝)'[* 고대의 간은 간장, 심장 등을 가리킨다.]만이 았다고 한다.
  • 윌밍턴 . . . . 1회 일치
         [[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항구였다. 이 도시가 함락되며 아메리카 연합국은 외부와 단절되게 된다.
  • 유목민 . . . . 1회 일치
         유목민들은 스스로 긴 기록이 거의 없어, 주로 농경민족의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목민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유목민 도미노 현상으로 유목민의 공격을 받는 것이 주로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접촉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목민이 정주생활을 시작한다면 조금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 유승민(배우) . . . . 1회 일치
         [[내 사랑 싸가지]] 단역 - 연인 2004년
  • 유재한 (1955년)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유지연(탤런트)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정읍시 출신 인물]]
  • 윤덕홍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부총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대학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동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윤문영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윤석용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한의사]][[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구종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지체 장애인]]
  • 윤식 . . . . 1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파평 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하와이 대학교 동문]][[분류:베일러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
  • 윤진솔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윤진식(국회의원)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다. 이는 2010년에 제대로 참패한 새누리당의 전략적 선택이었는데, 2010년 당시 [[정우택]] 후보는 나름 중진이고 거물임에도 인구가 적은 진천이 출신지여서 '''충주 출신의 이시종'''에게 그야말로 처참히 발렸다. 이때 정우택은 이시종에게 36,267표차로 졌는데 청주권(구 청주시, 청원군)에서 29,606표차, 이시종의 텃밭 '''충주에서 23,963표차'''로 패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같은 충주 출신인 윤진식으로 맞불을 놓은 것.(사실 다른 경선 후보들이 모두 중도하차하면서 후보가 윤진식 혼자밖에 지 않았던 탓도 있다)
  • 윤진이 . . . . 1회 일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윤철종 . . . . 1회 일치
          - '''여자가 자집에서 양말을 갈아신을 일이 뭐가 있나?'''
  • 은혼/577화 . . . . 1회 일치
         attachment:매싸움.png
  • 은혼/579화 . . . . 1회 일치
         * 우미보즈는 자신의 이름 칸코우를 밝히며 "다음에 행성의 주인이 허락한다면 네 이름을 들으러 오겠다"며 돌아선다. 코우카는 고작 그런 소리나 하려고 삼일이나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원래 의 집에 가면 문을 두드리고 이름을 밝히는게 예의였다. 소란을 피워 미안하고 네 가족(오로치)에게도 전해 주라"며 돌아선다.
  • 은혼/580화 . . . . 1회 일치
         * 또 카무이를 괴롭히려는 동네 양아치를 가구라가 막아서는데, 어렸던 가구라는 양아치들의 공격에 크게 다친다. 그때 그 지역에 볼 일이 있어 지나가던 하루사메의 일원이 매를 구해준다. 이것이 젊은 시절의 아부토.
  • 은혼/581화 . . . . 1회 일치
         attachment:은것.png
  • 은혼/586화 . . . . 1회 일치
          * 우미보즈(바다돌이)는 카무이가 "자신의 약함을 거부하고 최강을 찾아 헤매던 자"이고 긴토키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자기 안에서 강함을 찾아다닌 자"라 평한다.
  • 은혼/588화 . . . . 1회 일치
          * 가구라는 카무이가 아무 것도 빼앗게 두지 않을 거고 아무 것도 잃게 내버려 두지도 않겠다며, "내가, 해결사가 네 안에 아있는 최후의 이름을, 바보오빠를 지킨다!"라고 외친다.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쇼우가쿠는 "해적의 긍지도 갖지 않은 그런 자에겐 버릴만한 충성심 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 은혼/593화 . . . . 1회 일치
          * 현재의 우츠로는 기존의 모든 우츠로의 인격을 베어버리고 은 마지막 인격이란 의미였다.
  • 은혼/596화 . . . . 1회 일치
          * 그 돈과 함께 한 장의 편지를 기는데.
  • 은혼/602화 . . . . 1회 일치
          * 원상은 그런 건 약해 빠진 너네 나라의 얘기라며, 자신의 나라에선 전장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자 따윈 아내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돌려보내진다고 말한다.
  • 은혼/603화 . . . . 1회 일치
          * 에도에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이 아있는데, 장군의 여동생인 자신이 도피할 수는 없다는 것. 소요는 에도에서 그들과 함께 싸우려 한다.
  • 은혼/606화 . . . . 1회 일치
          * 왠지 모자이크도 벗고 있다.--정장추저--
  • 은혼/609화 . . . . 1회 일치
          ||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 은 걸까. 무엇을 위해 기계를 만든 걸까.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워낙에 대군이라 그정도만 가지고는 완전히 저지하는건 기대할 수 없다. 결국은 요격을 뿌리치고 가부키쵸를 격파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주민들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적이 오니와반슈의 공격을 막아내서 서서히 진격, 가부키쵸의 목전까지 도착했다. 쪽 제 3문에서 신호가 오자 가부키쵸 측은 투석기를 동원해 요격을 개시, 가부키쵸 공방전이 개막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첫 공격의 희생자는...
  • 은혼/627화 . . . . 1회 일치
          * 늦은 시각까지 가부키쵸를 둘러보는 신파치와 가구라는 역시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직감한다. 해방군은 물리쳤지만 가부키쵸 측의 피해가 예상보다 컸다. 신파치는 이만한 사람들이 이만큼 함께 싸워준 걸 기적이라 말하며 비단 가부키쵸 주민들만이 아니라 에도에 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컷마다 [[게도마루]]가 [[판데모니엄]]을 배급하고 나눠먹으며 알짱거린다.
  • 은혼/633화 . . . . 1회 일치
          >[[우츠로(은혼)|그 자]]를 쓰러뜨린다.
  • 은혼/654화 . . . . 1회 일치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반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다.
  • 의심암귀 . . . . 1회 일치
         『열자 설부(列子・説符)』에서 어떤 자가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그는 이웃집의 아들을 의심하였다. 그러자 그 아들이 하는 행동이 모두 수상하게 보였다. 그런데 어느날 계곡에서 자신의 도끼를 찾자, 수상하게 보이던 것이 모두 평범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를 주석하여 "의심, 암귀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의심암귀"라는 사자성어 같은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
  • 의천도룡기(영화) . . . . 1회 일치
         원작에서도 찌질캐였지만, 영화에서는 더욱 형편없는 찌질캐로 전락. 주지약과 공모하여 장무기를 속여넘기겨 놀리고, 제자들을 시켜서 구타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장무기가 절벽에 떨어졌는데도 사고로 죽었다고 둘러댄다. 조민, 현명이로와 협력하여 장삼봉을 암습했다가 실패하고, 현명이로가 장무기에게 패해서 조민이 물러간 뒤에는 무당산에 겨진다. 장무기가 죽이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빈다. 장무기는 송원교 사숙이 대를 이어야 한다며 무공만 폐하고 목숨은 살려주는데, 송청서는 "고맙다 무기야 고맙다"하면서 비굴하게 웃으면서 거듭해서 절을 해대는 비참하고 찌질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원작과는 달리 죽지 않지만 그 대신에 찌질도가 미친듯이 늘어났다.
  • 이강돈 . . . . 1회 일치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상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 이강철 (1947년)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광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이국철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이규환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1904년 태어]][[분류:198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감독]][[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이동춘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199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 중 사망한 권투 선수]]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 이동흡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고성 이씨]]
  • 이명규(국회의원) . . . . 1회 일치
         1956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어릴 때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자랐다. 대구수창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고등학교]], [[영대학교]] 법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분류: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의 축구 선수]][[분류:WK리그의 축구 선수]]
  • 이방원 . . . . 1회 일치
         [[이성계]]의 5. 이성계 일파를 숙청하려던 정몽주를 참살하는 등 조선 개국에도 일조했으나, 이성계가 이복동생인 막내 방석을 세자로 세우려 하자 다른 동복형제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방석과 방번,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뒷배였던 정도전 등을 참살하여 실권을 장악한다(1차 왕자의 난). 그 후 조사의의 난이나 2차 왕자의 난 등의 도전을 제압한 뒤 정종에게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 이별대행업체 . . . . 1회 일치
         [[이혼]]이나 [[이별]]을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공작을 꾸며서 '처리'하는 업체를 뜻한다. 주로 [[탐정]]사무소가 병행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 이별만이 아니라 재회나 복연, 만 역시 공작을 대행하기도 한다.
  • 이병규 (1983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2013년 2월에는 [[국회의장]] 직무대리로 본회의를 진행하던 도중 [[동 방언]] 특유의 발음으로 본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덕분에 그 동안 치열하게 치고 받던 여야가 모처럼 [[위 아 더 월드]]를 이루기도. 사실 맨 처음에 쌀 소득을 '''살 소득'''으로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병석 부의장은 [[엄근진]] 모드를 유지했지만 주변에서 웃기 시작하자 '''정작 본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심지어 소 싸움을 '''소 사움'''으로 읽고 나서 본인이 빵 터지는가 하면 아예 '''"난 죽을 때까지 그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라고 [[자폭]]하는건 덤. ~~자세히 들어보면 웃음을 참느라 그런건지 발음을 '''발은'''에 가깝게 발음한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상훈 (1987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
  • 이선민 (1988년)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구미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숭실대학교 동문]]
  • 이설주 . . . . 1회 일치
         [[분류:1908년 태어]][[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성구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공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민주자유당의 정치인]][[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영천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이수민(야구선수) . . . . 1회 일치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1회 일치
          * 보조개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여담으로, 성팬들이 사진빨이 안받는다며 아쉬워(?)한다.
  • 이승경 (1290년) . . . . 1회 일치
         [[분류:1290년 태어]][[분류:1360년 죽음]][[분류:고려의 문신]][[분류:고려의 무신]][[분류:원나라]][[분류:과거 급제자]][[분류:이인임]][[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성주 이씨]]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반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김제시 출신 인물]]
  • 이안 (시인)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7년 태어]][[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시인]]
  • 이영 (1492년) . . . . 1회 일치
         [[분류:1492년 태어]][[분류:1593년 죽음]][[분류:조선의 유학자]][[분류:은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영 (1494년) . . . . 1회 일치
         [[분류:1494년 태어]][[분류:조선의 무신]][[분류:1563년 죽음]][[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육군 군인]][[분류:병마절도사]][[분류:병사한 사람]][[분류:영천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장군]]
  • 이영세 (1947년)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영수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광산 이씨]]
  • 이영욱 (1980년)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이영훈 (경제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5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
  • 이영희 (1936년) . . . . 1회 일치
         [[분류:1936년 태어]][[분류:2018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신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이예린 (1974년)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1994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원형(1951) . . . . 1회 일치
         1951년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계명문화대학교]] 관광영어통역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이인성 (화가) . . . . 1회 일치
         [[분류:1912년 태어]][[분류:1950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사고사한 사람]]
  • 이장경 . . . . 1회 일치
         사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선석산(禪石山)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선석산에 [[조선 세조]]의 태를 묻게 되자 [[세종대왕]]이 특명을 내려 길지를 택해 하사하여 성주의 서쪽 서오치(西梧峙)의 쪽으로 이장되었다.
  • 이장섭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문재인]][[분류:노무현]][[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제천고등학교 동문]][[분류:충북대학교 동문]][[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
  • 이장영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재성(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0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삼척시 출신 인물]]
  • 이전환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 차장]][[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정우 (1950년)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정호 (1982년)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
  • 이정훈 (1963년)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이제석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분류:광고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협성중학교 동문]]
  • 이종근(1923) . . . . 1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주공화당 부총재, 대한민국 국회 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이종배(국회의원) . . . . 1회 일치
         ||<bgcolor=#C9151E> '''{{{#FFFFFF 가족관계}}}''' ||<(> 배우자 박종숙, 슬하 2 ||
  • 이종원 (1953년) . . . . 1회 일치
         [[분류:일본의 정치학자]][[분류:일본의 역사가]][[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대학 교수]][[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국제 기독교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교수]][[분류:도호쿠 대학 교수]][[분류:릿쿄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종희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이지우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이지찬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이진주 (1678년) . . . . 1회 일치
         [[분류:1678년 태어]][[분류:1737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조선의 작가]][[분류:과거 급제자]][[분류:우계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창동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9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문화관광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 이챠이챠 . . . . 1회 일치
         녀가 서로 희롱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뜻한다. 는실난실, 농탕 등으로 번역.
  • 이판석 . . . . 1회 일치
         1934년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석우동(現 칠곡군 가산면 석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대구대학교 상학과(현 [[영대학교]] 경영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이평 (1572년) . . . . 1회 일치
         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석마을 후곡 자좌(子坐)에 있고, 그의 부인 파평윤씨는 영주 옥산에 묘가 있다.
  • 이하영(강사) . . . . 1회 일치
         기혼이며, 편의 직업은 변호사라고 한다.
  • 이한응 (1849년) . . . . 1회 일치
         [[1870년]](고종 7년) 봄 무과(武科)에 급제, 영의정 [[김병학]](金炳學)의 건의로 특별히 가설 내승(內乘)에 임명되었다.<ref name="dager1">고종실록 7권, 1870년(고종 7년, 개국 479년) 5월 20일 을유 1번째기사, 조선 개국(開國) 479년 문희묘, 의소묘, 육상궁, 연호궁, 선희궁에 전배하다</ref> [[김병학]]은 '(故) 충장공(忠壯公) 이복(李福男)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절개와 의리에 대해서는 열성조(列聖朝)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보답하는 은전(恩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봉사손(奉祀孫)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마땅히 조정에서 뜻을 보여주는 거조(擧措)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종전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선전관(宣傳官)과 내승(內乘) 중에 가설(加設)하여 단부(單付)한 전례(前例)가 이미 많았다'며 그에게도 선전관이나 내승을 가설하여 임명해줄 것을 청하였다.<ref name="dager1"/>
  • 이헌일 . . . . 1회 일치
         [[분류:1917년 태어]][[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이스트로의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CJ 엔투스의 선수]][[분류:Team SCV Life의 선수]][[분류:이블 지니어스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이홍열 (바둑기사)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 이효린 . . . . 1회 일치
         [[분류:1540년 태어]][[분류:1622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조선 의병장]][[분류:임진왜란]][[분류:우계 이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 이희성 (1988년)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인천광역시 . . . . 1회 일치
         [[동구]]''' || 南洞區 || 548,168 || 219,235 || 57.1
  • 일곱개의 대죄/173화 . . . . 1회 일치
          * 고우서는 적의 적은 아군이라며 격없이 말하는데 킹은 아직 앙금이 았는지 "아직 널 용서한게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 일곱개의 대죄/175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드래퓌스도 헨드릭슨도 인생이 망가지진 않았을 텐데... 넌 죄많은 자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 일곱개의 대죄/178화 . . . . 1회 일치
          * 카멜롯 서쪽에서는 아서가 저항군을 이끌고 교전 중이다.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1회 일치
          * 백몽의 숲 동쪽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성기사를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 일곱개의 대죄/183화 . . . . 1회 일치
          * 그때 십계 중 한 명이 "내 앞에서 누구라도 증오를 품은 자는 을 상처 입힐 수 없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87화 . . . . 1회 일치
          * 그러자 졸렬하게 교섭을 시도하다 데리엘에게 단 한 방으로 사망, 형체도 기지 않고 사라진다.
  • 일곱개의 대죄/188화 . . . . 1회 일치
          * 그 자는 엘리자베스에게 기다리게 해버렸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193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혼자은 핸드릭슨은 위기에 처하는데 그때 나타난 그리아몰의 모습을 보고 프라우드린이 틈을 보인다.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1회 일치
          * "흔적도 기지 않고 너를 이 세상에서 지워줄게."
  • 일곱개의 대죄/200화 . . . . 1회 일치
          * 이건 매우 위험한 일이 되겠지만 선택은 전적으로 두 사람의 몫으로 긴다.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1회 일치
          * 그것을 가로 막으며 나타난 [[멜리오다스]]. 카르마디오스는 그의 등장에 동요하는데 멜리오다스는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과 함게 풀카운터로 이블 브레스를 날려보낸다. 때를 맞춰 킹이 영창 10형태 "에메랄드 옥토"로, 디안느가 "기가 크래쉬"로 협공을 펼쳐 카르마디오스를 쓰러뜨린다. 카르마디오스는 쓰러지면서도 어째서 멜리오다스가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그를 공격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쓰러지지만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반드시 동포들을..."이란 의미심장한 말을 기는데.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 뤼드셀은 명백히 열세에 처했지만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있다. 십계들처럼 비장의 수를 겨놓은 것일까?
  • 일곱개의 대죄/208화 . . . . 1회 일치
          * [[디안느]]와 [[킹(일곱개의 대죄)|할리퀸]]은 상공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눈이 휘둥그래 진다.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가 대치하고 있는 괴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멜리오다스]]가 십계가 계약을 통해 변신한 모습, "인듀라"라고 가르쳐준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파괴를 되풀이하는 존재. 디안느는 이대로는 브라타니아가 멸망할 거라고 걱정한다. 멜리오다스는 저들을 막기 위해선 저들의 은 심장을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09화 . . . . 1회 일치
          * 엄청난 피해를 기고 치뤄진 격전이 막을 내린다. [[몬스피트]]와 [[데리엘]]은 본래의 인간형상으로 돌아와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다. 혼신을 다한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엘리자베스]]는 너무 지쳐서 두 십계의 상태도 확인하지 못한다. [[멜리오다스]]가 대신 그 둘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전하며 감사를 표한다. 엘리자베스는 긴장이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대로 실신, 멜리오다스가 보호한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1회 일치
          * 할리퀸이 디안느에게 서둘러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거절하며 할리퀸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자신은 고서와 좀 더 대화해 봐야겠다면서. 그녀가 보기에 고서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고서, 인형 쪽도 포함해서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도 하다. 디안느가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자 할리퀸도 더는 권하지 않는다. 그는 디안느에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기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향한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1회 일치
          할리퀸이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적들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정에 의해서 타락하고 악에 몸담았다. 그리고 반. 비록 자신에겐 쓰레기같은 자로 보이지만 여동생 [[엘레인]]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그로키시니아와 같았던 부분은 바로 거기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고서가 싸울 필요는 없었다. [[디안느]]가 대지를 변화시키며 젤드리스를 위협한다. 그가 잠시 물러서자 디안느는 두 고서를 도주 시킨다. 십계 고서는 너무 위험하고 상대가 노리는건 자신이라고 거절하지만 디안느는 현재 자신은 거인왕이니 위험할 것이 없고 고서는 성전을 멈춰야 하니 어서 가라고 재촉한다. 결국 고서는 그녀의 뜻에 따라 그 자리를 피한다. 인형 고서는 십계 고서를 따라가면서 "다시 만나자 디안느"란 인사를 긴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와 반은 같은 방향을 수색했다. 반은 가던 중 과일장수의 사과를 하나 슬쩍하며 단장에게 "고서가 인형이란걸 알았냐"고 묻는다. 물론 멜리오다스는 알고 있었고 진짜 십계 고서와도 아는 사이였다. 십계 고서는 마신왕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 실력으로 "무욕"의 계금을 받고 십계로 발탁됐다. 무욕의 계금은 욕심을 품는 자의 기억이나 감정을 빼앗는다. 이걸 부여해준 마신왕도 예외는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서는 자신의 분신인 인형 고서를 만들었다. 그 용모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쏙 빼닮게 만들었지만... 정욕을 품는 일이 없어야 했기에 자로 만든 것이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1회 일치
          디안느의 호된 목소리는 더 많은 기억을, 추억을 일깨웠다. 그가 거부했던 기억 속에는 상냥했던 나쟈와의 즐거운 생활이 고스란히 아있었다.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기억들, 그리고 더욱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소중한 사람. 바로 그의 아버지.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회 일치
          * 에스카노르는 멀린에게 자작시를 들려주려고 기회를 보지만 멀린은 "취한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려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고 멜리오다스에 필적하는 주당이라 그걸로 취할리가 없다. 그런 점을 들어 반이 농담조로 트집을 잡는데 멀린은 "술만 들어가면 트집을 잡는다"고 꽤 날 선 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연회가 못마땅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직 십계를 다 토벌한 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 은 십계는 "경신"의 [[젤드리스]]. 카멜롯을 비롯한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한 얘기다.
  • 일곱개의 대죄/228화 . . . . 1회 일치
          * 헬브람이 원념에게 영혼을 바치는 것으로 죄를 갚자 디안느 안의 원념들이 상당수 사라졌지만 여전히 몇몇 강한 원념이 아 디안느를 괴롭혔다.
  • 임진숙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
  • 임현준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임효성 . . . . 1회 일치
         이 --벤치워머-- 농구선수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선수가 조명을 받은 이유는 '''바로 [[S.E.S]] 멤버였던 [[유진(배우)]]의 자친구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 자시키로우 . . . . 1회 일치
         문학,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오래된 주택에 아 있던 자시키로우 등이 소재가 되는 일이 흔히 있다. 성적인 풍습과 결합하여 소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테츠카 오사무의 『아야코(奇子)』가 대표적인 것이다.
  • 장강명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SF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SF 팬]]
  • 장계현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장다경 (영화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장대환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흥덕 장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매경 미디어 그룹]][[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로체스터 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김대중 정부]][[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장덕균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작가]]
  • 장도 (1876년) . . . . 1회 일치
         [[분류:1876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교육인]][[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대한제국의 법조인]] <!-- 1908년 변호사 -->[[분류:대한제국의 학자]]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분류:대한제국의 저술가]] <!-- 형법학자 : 1906년 《형법론총칙》 -->
  • 장동국 (1972년 9월)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2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장두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1953년 태어]][[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미화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1993년 데뷔]][[분류:관동대학교 동문]][[분류:숭덕여자고등학교 동문]]
  • 장민호 (1962년)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간첩 사건]][[분류:대한민국의 학생 운동]][[분류:반전 운동]][[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 수상자]]
  • 장민호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장씨]]
  • 장선이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2005년 데뷔]]
  • 장성집 . . . . 1회 일치
         [[분류:1786년 태어]][[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장성환 . . . . 1회 일치
         [[분류:1920년 태어]][[분류:201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태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교통부 장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조선경비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기후 대학 동문]][[분류:도야마 대학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국방연구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장]][[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공군무관]]
  • 장솜이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장신애 (연극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아프리카TV BJ]]
  • 장용석 . . . . 1회 일치
         [[분류:196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행정학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
  • 장운호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장윤성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
  • 장은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전자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보이스 코리아 참가자]][[분류:추계예술대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장재훈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신흥중학교 (인천) 동문]][[분류:인천서흥초등학교 동문]][[분류:유신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장지영 . . . . 1회 일치
         [[분류:1889년 태어]][[분류:197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한글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동 장씨]][[분류:조선어학회 사건]]
  • 장진용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질롱 코리아 선수]][[분류:서울가동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장철 (1967년) . . . . 1회 일치
         [[분류:196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장후영 . . . . 1회 일치
         [[분류:1909년 태어]][[분류:198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장희진 (1944년)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계성여자고등학교 동문]]
  • 재신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경협 . . . . 1회 일치
         [[분류:1790년 태어]][[분류:183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전광우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위원회 위원장]][[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인디애나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전국 BASARA(애니메이션) . . . . 1회 일치
          축제를 좋아하는 자. 원숭이인 유메키치를 데리고 다닌다. 오다 노부나가를 막기 위해 여러 무장들을 방문한다.
  • 전근표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화곡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전기밥솥 . . . . 1회 일치
         [[http://daily.hankooki.com/lpage/society/201512/dh20151202152923137780.htm|2004년 경상도 창원에서 전기밥솥이 폭발한 사례가 있다.]]
  • 전덕기 . . . . 1회 일치
         [[분류:1875년 태어]][[분류:1914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목회자]][[분류:고문 피해자]][[분류:감리교신학대학교 동문]][[분류:범죄 피해자]][[분류:한국의 기독교운동가]][[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이회영]][[분류:신민회]]
  • 전라북도 . . . . 1회 일치
         [[원시]]''' || 南原市 || 31,452 || 85,994 || 752.63
  • 전명운 . . . . 1회 일치
         [[분류:1884년 태어]][[분류:1947년 죽음]][[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사람]][[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담양 전씨]][[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한국의 암살자]][[분류:국민주의 암살자]][[분류:미국에 거주한 한국인]]
  • 전민희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판타지 작가]][[분류:휘경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9년 데뷔]][[분류:인터넷 작가]]
  • 전병조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전상렬 . . . . 1회 일치
         [[분류:197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전성인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동문]]
  • 전순옥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의 정치인]][[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
  • 전용덕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촬영 감독]][[분류: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사람]][[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인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히어로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
  • 전일수 . . . . 1회 일치
         [[분류:196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경성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심판]]
  • 전자레인지 . . . . 1회 일치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467572|의 집 고양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도망간 사례]]
  • 전종환 . . . . 1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전진영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YTN의 아나운서]]
  • 전형도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사당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전혜진(1970) . . . . 1회 일치
         ||<|2> [[1994년]] || SBS || 세 자 세 여자 || ||
  • 전호영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정선 전씨]]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1회 일치
          * 마기가 들 앞에선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필살기를 공개했다. 확실히 탄소섬유로 만든 드릴은 강력하겠지만 꼬라지가 저래서야...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회 일치
          * 타니자키는 드디어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 나오미는 "그래도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라 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신선한 위치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인사이동을 권유하는데
  • 절대가련 칠드런/443화 . . . . 1회 일치
          * 사고 예보까지 12분 밖에 지 않은 상황.
  • 절대가련 칠드런/448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효부는 "말할 처지냐"면서 "분수에 맞지도 않은 조직을 짊어져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며 역공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0화 . . . . 1회 일치
          * 마기에게 은 한 대를 격추시켜 보라고 하는데, 마기는 그런 걸 어떻게 하냐고 기겁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그것도 얼마 안 았다며 곧 그들 앞에 나타날 거라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1회 일치
          * 마기와 후지코의 악연의 시작. 따지고 보면 마기는 후지코와 엮일 때마다 굴욕을 당하거나 험한 꼴을 당했다. 다행히 첫만에선 한방 먹여줬던 걸로 밝혀졌다.
  • 절대가련 칠드런/456화 . . . . 1회 일치
          * 그러는 사이 마기일행은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효부는 헤어지기 전 "네 덕에 내게 집이라 부를 곳이 아있다"고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바로 마기 덕에 안심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반대로 마기가 방황하는 순간이 되면 언제든 "시로"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그 자신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며.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1회 일치
         마기의 발언으로 보아 길리엄은 기존 에스퍼를 제거하고 새로운 클론 에스퍼만을 기는게 현재 목표인 듯하다.
  • 절대가련 칠드런/458화 . . . . 1회 일치
          사카키 슈지는 미나모토와 타니자키 이치로가 외부에서 탈출 계획을 실행하는 사이 관측소에 아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그가 우회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동안 미나모토와 타니자키가 인근 도시에 잠입해 두 번째 작전으로 넘어가는 계획인데.
  • 절대가련 칠드런/460화 . . . . 1회 일치
          그 정체는 바로 단행본 35권에서 등장한 적 있는 "츠보미 후지코의 유언". 후지코가 잠들기 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겨놨던 사념체였다. 이제는 "과거의 후지코"라고 지칭해야 하겠다. 과거의 후지코는 현재의 후지코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사과하고 자신은 시호의 능력에 기반해서만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점을 시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시호는 과거의 후지코가 없었다면 자기들만으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2화 . . . . 1회 일치
          * 한편 미나모토의 은신처에서 멀지 않은 곳. 뭔가 익숙한 목욕탕이 보인다. 역시 익숙한 주인이 카운터를 보고 있는데 수상한 자가 목욕탕에 들어간다.
  • 절대가련 칠드런/464화 . . . . 1회 일치
          * 이제 후지코와 대결만 았는데 [[효부 쿄스케]]는 승부를 서두르며 자신이 신호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은 절대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9화 . . . . 1회 일치
          길리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효부의 분노를 맛보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무언가"가 아있는걸 발견하고 미심쩍어한다. 요우가 마기에게 공격당한 것이 바로 그때이고, 효부는 요우를 구할 겸 자신의 심장을 파괴해 링크를 끊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정작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들이 글러먹었다. 효부와 츠보미는 피차 사념체만 은 주제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바보라고 매도하더니 한쪽은 누나한테 대든다, 한쪽은 누나의 잔해인 주제에 말이 많다고 초딩같은 디스를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신경전은 분신체서 선배인 우츠미에게 제지당한다.
  • 정건용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경호(1972)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1972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
  • 정구양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강정보대학 동문]][[분류:2010년 데뷔]][[분류:개그공화국]]
  • 정근모 . . . . 1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분류:대한민국의 과학기술처 장관]][[분류:한국과학기술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래희망연대]][[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명지대학교]][[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부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다혜(1985) . . . . 1회 일치
          * [[버즈(한국 밴드)|버즈]] - [[자를 몰라]], [[My Love (And)]](2006)
  • 정다흰 . . . . 1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양천중학교 동문]][[분류:서울등원초등학교 동문]]
  • 정대석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단국대학교 동문]]
  • 정대선 (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정주영]][[분류:하동 정씨]][[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정동기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위]][[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전주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원광대학교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동 정씨]]
  • 정동현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2013년 데뷔]]
  • 정동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백운초등학교 동문]][[분류:덕수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
  • 정득만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태어]][[분류:1994년 죽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
  • 정력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인간의 기력이나 활동력 전반을 이르는 말이지만, 실생활에서는 성의 성적 능력을 이르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거기 당신, 당신, 당신 말이지!!~~
  • 정몽규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현대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용산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옥스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HDC그룹]][[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
  • 정민아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정병오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필(筆)동인]][[분류:영랑문학상 수상자]]
  • 정병희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
  • 정복수 . . . . 1회 일치
         [[분류:1920년 태어]][[분류:1962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권투 선수]]
  • 정상교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정상희(정치인) . . . . 1회 일치
         정상희의 차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삼성그룹 초대회장 [[이병철]]의 4녀 [[이명희(기업인)|이명희]]와 결혼 했다. 이병철과 사돈관계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시아버지 그리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의 할아버지다.
  • 정성곤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
  • 정성주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정세협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정소희(1969)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군포시 출신 인물]]
  • 정수성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성동초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초당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히어로즈 선수]]
  • 정수아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정승빈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2014년 데뷔]][[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개그콘서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충암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청구초등학교 동문]]
  • 정영삼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대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정의동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정재호 (1930년) . . . . 1회 일치
         [[분류:193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정정용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주중학교 동문]][[분류:청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일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 FC의 코칭스태프]][[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정진욱(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한국 성 코미디언]][[분류:1983년 출생]]
  • 정창영 (공무원)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감사원 사무총장]][[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정혜선(배우) . . . . 1회 일치
          * [[밥상 차리는 자]] : 34회에서 이루리 [[고모]] 역으로 특별출연하였다.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배트 공산군 장군. 스모 장군(General Sumo)이라고도 한다.
  • 조길형(1962) . . . . 1회 일치
         경찰대학 졸업 후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충[[지방경찰청]]장, 강원[[지방경찰청장]], [[중앙경찰학교]] [[교장]], 안전행정부(현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 조소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태어]][[분류:2006년 죽음]][[분류:간암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조재윤 (체조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체조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1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조청희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조씨]]
  • 조현근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
  • 조훈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존 헨리 . . . . 1회 일치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는 연구가 있다. 이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중년 이후에 그 간 무리한 탓에 건강이 손상되어 고통을 받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서, 80년대, 셔먼 제임스라는 청년 연구가가 소작농 출신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의 사례를 기초로 하여 “존 헨리 척도”를 제안했다. 이는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는 등의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느냐 하는 것으로 측정된다.([[http://newspeppermint.com/2017/01/31/john-henryism/ 참조]])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는 흑인 성에게 많이 나타나던 현상인데, 기계와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이야기 속의 존 헨리처럼 존 헨리이즘은 현실과 싸우다가 스스로 피폐해진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 존오그로츠 . . . . 1회 일치
         영국 본토 최북단으로 알려져있다. [[http://m.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585432.html#cb|던넷헤드가 영국 최북단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존오그로츠가 더 유명하다. 존오그로츠에서 영국 최단이라는 랜즈엔드까지 이어진 조글이라는 길을 완주하는 챌린지도 존재한다.
  • 주나라 . . . . 1회 일치
         약 기원전 1100년 전후,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이 패망하고, 서백(西伯) 희창(姬昌)의 차 무왕(武王) 희발(姬發)은 호경(鎬京)을 도읍으로 하여 왕으로 즉위한다.
  • 주서은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주영(가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출생]][[분류:한국 가수]][[분류:2010년 데뷔]][[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
  • 주장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7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주주장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언론인]][[분류:미국의 기자]][[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에미상 수상자]][[분류:유대계 미국인]]
  • 지구공동설 . . . . 1회 일치
         [[지구]] 내부에 거대한 빈공간(공동)이 있다는 전설. 음모론과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지구공동설에서 공동의 입구는 [[극]]이나 [[북극]]으로 본다. 본래는 [[지하세계]]에 대한 가설이 확장된 것이다.
  • 지박령 . . . . 1회 일치
          * 특정한 장소에 애착을 가진 영혼. 그 장소는 영혼이 생전에 중요한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영혼은 자신의 의사로 이 장소에서 떠나려 하지 않고 아 있다.
  • 지수원 . . . . 1회 일치
          * 1996년 KBS2 오늘은 동풍
  • 지훈(TRCNG) . . . . 1회 일치
          * 쇼콘에서 마지막 곡을 부른 뒤 브금이 흐르면서 꽃가루가 내렸던 장면이 기억에 았다고 한다. '다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 진격의 거인/84화 . . . . 1회 일치
          * 최후에 살아은 것은 아르민. 사실 엘빈의 지휘관 캐릭터는 대신할 자가 있지만 아르민은 대신할 자가 없다는 점에서 생존이 유력했다.
  • 진도희(1971) . . . . 1회 일치
         1971년 [[전라도]] [[강진군]] 출생.
  • 진선유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여양 진씨]][[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진유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
  • 진종채 . . . . 1회 일치
         1925년 [[경상북도|경북]] [[포항시|포항]]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한 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8기로 졸업했다.[* 진종채를 군내 요직에 중용했던 [[박정희]]도 대구사범과 육사를 함께 졸업했다.] [[김종필]], [[김형욱]] 등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동기다. [[서종철]], [[노재현]], [[윤필용]] 등과 함께 [[전두환]] 등 [[하나회]]의 주요 후원자로 꼽힌다.[* 윤필용 사건으로 중간에 숙청된 윤필용과 달리 진종채, 서종철, 노재현은 [[10.26 사건]] 때까지 군에 영향력을 행사, 영 군벌 3인방으로 불렸다.]
  • 차금봉 . . . . 1회 일치
         [[분류:1898년 태어]][[분류:1929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고문 피해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자]][[분류:일제 강점기의 공산주의자]][[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조선공산당의 정치인]]
  • 차동엽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위]][[분류: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유한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빈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안 차씨]]
  • 차명진 . . . . 1회 일치
         [[분류:민중당의 정치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연안 차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친이]][[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
  • 차선화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차일목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연안 차씨]]
  • 차재욱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연안 차씨]][[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착각 영국인 기사도 사건 . . . . 1회 일치
         이 사건의 피고인은 재일영국인으로, 밤중에 귀가를 하다가 거리에서 음주를 한 여성 A와 피해자인 성 B와 마주쳤다. 이 때 B는 A를 달래려고 하고 있었는데, A는 창고의 철제 셔터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여성 A는 피고인을 보고 '''"헬프 미!"'''라고 소리쳤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여성의 도움 요청을 받고 피고인은 B가 A를 폭행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여성을 돕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 창작:말퓨스 스토리 . . . . 1회 일치
         츠키노 타카노부 : 현 츠키노 가문 당주 대행이자, 츠키노 아스카의 동생, 강직한 성격과 올곧은 언행으로 불안한 가문을 위태롭지 않게 하는 대들보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 창작:좀비탈출/0-1 . . . . 1회 일치
         나는 마지막으로 다이제스트 아홉 쪽과 1리터 짜리 끓인 물 한 병이 았음을 확인했다.
  • 창작:좀비탈출/0-1-2 . . . . 1회 일치
         나는 다이제스트를 반쪽씩 나눠 가며 먹고 있다. 기로 한 이상은 졸라 맬 수 있는데까지 졸라 매야지.
  • 창작:좀비탈출/1 . . . . 1회 일치
         메모지에 간단히 부모님 앞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기고 거실에 놔뒀다. 과연 저것을 누가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창작:좀비탈출/4-0 . . . . 1회 일치
         뭐, 그나마도 쏟아낼게 아있을 때의 얘기겠지만……
  • 창작:좀비탈출/4-1 . . . . 1회 일치
         내가 이렇게 결심할 수 있는 것은 작년 겨울에 뒷마당에 '''그걸''' 묻었기 때문이다. 항아리 말이다. 그렇다. 우리 집은 아직도 된장이니 고추장이니 김치 같은 것을 담가먹는 구식 집안이다. 서울에도 이런 집이 아있다는게 놀랍지 않은가? 그걸 묻겠다고 콘크리트 바닥을 깨부술 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미친 짓이 날 살릴지도 모른다. 하! 하! 감사합니다 아버지.
  • 창작:좀비탈출/5-1-1 . . . . 1회 일치
         토트넘을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 생전의 모습이 많이 아있었다. 접점이라곤 밥맛 떨어지는 일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고 나서 만난 최초의 '''지인'''이었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였어도 조금은, 쥐꼬리만큼은 반가운 기분이 생길법 하지 않은가?
  • 창작:좀비탈출/기록 . . . . 1회 일치
          * 아있는 감각은 개체마다 차이가 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1회 일치
         가장 먼저 떠오른건 '''빗물탱크'''였다. 와트니처럼 나도 물은 충분히 있지만 사정이 좀 다르다. 아직은 수도가 끊기지 않았지만 공급이 얼마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도 외에 식수를 찾아야 하고 제일 먼저 생각난게 빗물이다. 그건 옥상의 물탱크를 쓰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정수 문제나 물탱크의 물을 수도로 연결하는 문제가 아있지만 일단 그건 미뤄두자.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회 일치
         이제 마지막 고민이 아 있다. 애당초 집 밖에서 활동하는건 상정한 바였다. 문제는 지금이 적절한 때이냐는 것. 이미 각오한 바지만 그렇다고 개죽음할 생각은 없다. 거실에서 보이는 앞마당은 고요하고 새로 만든 방치복은 그럴듯해 보인다. 지금이야 말로 적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의 한편에선 보이지 않는 뒷마당과 그 너머 토트넘의 집안 풍경이 그려진다. 담장을 막 넘는 녀석들과 토트넘의 다시 한 번 죽은 시체를 목도하는 11명의 조기 축구 회원들. 죽어서도 함께하는 그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 . . . . 1회 일치
         출발 전 마지막으로 물자를 체크했다. 가방에 티셔츠와 아령으로 만든 철퇴. 산지 1년 쯤 된 티셔츠와 바지, 아디다스에서 구입한 운동화, 연식이 20년이 좀 넘은 한국자 하나. 그리고 정오의 햇볕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좋아 완벽하군.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1회 일치
         녀석은 물기 보다는 잡아뜯는 타입이었다. 양손 합쳐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안 은 손이 내 목을 조르려 든다. 나는 바닥에 둔 아령을 집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쓰러지며 녀석의 손목을 잡앗다. 썩은 돼지고기같은 질척한 감촉이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쓰러진 내 위로 썩어가는 얼굴이 덮친다. 녀석은 확실히 공부를 잘 했을 것이다. 손에 맥아리가 없는걸 보니 연필보다 무거운걸 들고 다녔을 법하지 않다. 그래서 그럴까? 녀석의 팔꿈치가 기묘하게 비틀어지며 퍼석 끊어져 버린다. 녀석이 쓰러지면서 허연 이빨이 내 목덜미로 떨어진다.
  • 창작:치킨교 . . . . 1회 일치
         그러나 "가장 우월한 형태의 치느님"이란 구호가 기존 후라이드 교도들과의 분쟁을 낳게 만들었다는 점은 이 종파의 가장 큰 역사의 오점으로 았다. 어쨌든 이런 분쟁이 있었음에도 후라이드 치킨교황은 양념 치킨교 역시 하나의 "치킨교"임을 천명하였고, 이 발표에 양념 치킨교도 후라이드 치킨교를 "역사상의 원점"임을 인정하면서 가장 큰 분란은 종점을 찍게 된다.
  • 채기영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봉천초등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
  • 채동선 . . . . 1회 일치
         채동선은 1901년 [[대한제국]]령 전라도 보성군 벌교에서 출생하였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채동선은 일제강점기 시절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유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유복하고 편안하였던 그의 인생은 그가 고등학생이 된 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채동선은 서울로 올라가 현재는 [[경기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경성제1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3.1운동]]이 발생함에 따라 채동선은 만세 운동을 매우 열렬하게 하였고, 이러한 그의 행적은 일본경찰의 감시라는 낙인을 주었다. 3.1절 이후 일본에 회의감을 느끼며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이후 서양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채동선은 베를린 음악대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계속하였다.
  • 채상현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채영인 . . . . 1회 일치
         || 가족 ||편, 딸 ||
  • 채우성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채윤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채이식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 채씨]][[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런던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
  • 채호기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시작품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전대학교 동문]][[분류:인천 채씨]][[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천보영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천세라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천안함 침몰사건 . . . . 1회 일치
         함은혁 하사, 공창표 중사는 패배하고 살아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에 대하여 은밀한 '따돌림'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 천운영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영양 천씨]][[분류:신동엽문학상 수상자]]
  • 천장호 . . . . 1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광운대학교 교수]][[분류:광운대학교 총장]][[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광운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스티븐스 공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영양 천씨]]
  • 천제훈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목포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경훈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서울내발산초등학교 동문]]
  • 최고은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태어]][[분류:201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극작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최광수 (공무원) . . . . 1회 일치
         [[분류:193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창신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주 최씨]]
  • 최규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고려대학교 동문]]
  • 최기영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3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소주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개그투나잇]][[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최길성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배재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최다빈 . . . . 1회 일치
         [[분류:200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방배초등학교 동문]][[분류:강일중학교 동문]][[분류:수리고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피겨스케이팅 메달리스트]]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1956년 3월 10일, [[경상북도]] [[김천시]] 에서 태어났다. 김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영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했다. 고려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낸 경력이 있다.
  • 최동석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최동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인헌초등학교 동문]][[분류:선린중학교 동문]][[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
  • 최동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1890년 태어]][[분류:1927년 죽음]][[분류:고려혁명당]][[분류:경주 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두호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분류:라이트급 종합격투기 선수]][[분류:페더급 종합격투기 선수]]
  • 최별이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최병일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8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
  • 최상열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최선 (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박근혜]][[분류:이명박]][[분류:문재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인]][[분류:노회찬]][[분류:심상정]][[분류:김규항]][[분류:진중권]][[분류:통합민주당 (2016년)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선영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코미디빅리그]]
  • 최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역삼초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
  • 최성원(가수)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가수]][[분류:1954년 출생]][[분류:1979년 데뷔]][[분류:부천시 출신 인물]]
  • 최성재(배우) . . . . 1회 일치
         [[분류:한국 배우]] [[분류:1984년 출생]] [[분류:안성시 출신 인물]]
  • 최수진 (무용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최수진 (성우) . . . . 1회 일치
         * [[MBC 스페셜]] 734회 : 농부의 탄생 - 열혈 한정착기 ([[MBC]]) - 내레이션
  • 최승민 (1991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
  • 최승민 (1996년)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대치중학교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최승환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배재중학교 동문]][[분류:배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최아라 (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
  • 최연오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영미 (시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최영철 (기자)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
  • 최우석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이수중학교 동문]][[분류:199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서울중대초등학교 동문]][[분류:장충고등학교 동문]][[분류:이수중학교 동문]]
  • 최우석 (화가) . . . . 1회 일치
         [[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1899년 태어]][[분류:1965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우제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운정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LPGA 투어 골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골프 선수]][[분류:세화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유정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최윤 (소설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번역가]][[분류:서강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195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용지초등학교 동문]][[분류:목일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최인영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강릉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석촌초등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최재연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예일여자중학교 동문]][[분류: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재혁 (음악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인디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
  • 최재호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4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최지해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2002년 데뷔]][[분류:OBS경인TV의 아나운서]][[분류:대원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
  • 최진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
  • 최학봉 . . . . 1회 일치
         [[분류:조선의 음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국악인]][[분류:1856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최호중 (배우)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휘영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경성고등학교 동문]]
  • 최희령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3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
  • 최희서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
  • 추성건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카치구미 . . . . 1회 일치
         패전 이후, 1946년 1월 일본은 새 화폐로 전환했으나, 브라질 국내에는 아직 구 일본 화폐가 아 있었다. 일본 구화폐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외환으로 환전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겼다는 소문을 퍼트려서 귀국하려는 일본인들에게 구 일본화폐를 파는 사기였다. 귀국하려는 일본인의 땅, 집, 가축, 그리고 브라질 화폐를 '''이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구 일본 화폐로 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휴지]](…)와 전재산을 바꿔버리고 전 재산을 잃고 자살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 카타와 . . . . 1회 일치
         연원은 겐지모노가타리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는 두 바퀴 중에 하나만 은 것이라는 뜻이다.
  • 칼 루이스 . . . . 1회 일치
         [[미국]] 의 유상선수.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빠른 자의 대표자. 육상 선수로서 칼 루이스의 명성은 21세기 초의 [[우사인 볼트]]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회 일치
         2016년 5월에 세라즈는 미스라탄 부대를 중심으로 반-IS 센터를 트리폴리에 창설하였으며, 5월 중순에 미스라탄 부대는 하프타르가 이끄는 리비아 국군과 시르테 부 질라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1회 일치
         하지만 로마노프는 다른 생각을 품고있었다. 대서양에서 소련군 함선이 질주하는게 목격되었으며, 미국이 소련에 심어둔 첩보원들은 실종되거나 KGB 요원들과 함께 일하는게 목격되었다. 미국은 로마노프 근처에서 보이던 유리라는 자가 미국의 첩보망을 와해시킨 장본인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소련군 . . . . 1회 일치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트럭. 적에게 돌진해 자폭한다. 죽을때도 폭발하니 주의. 폭발한 자리에 방사능을 긴다.
  • 코난 월드 . . . . 1회 일치
          * 모 자 가라데 선수는 총기를 가진 야쿠자 100명과 싸워서 승리하였다.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1회 일치
         이탈리아 항복 다음날, [[일본군]]은 아퀼라 III의 승무원들을 포로수용소에 던져넣고 아퀼라 III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아퀼라 III를 UIT-24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협조적인 이탈리아 승무원을 태운 UIT-24는 보르도로 돌아오기 위한 항해를 떠났으나 중간에 연료 보급을 해줄 [[유조선]]이 영국군 구축함에 잡혀 자침당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이후 동아와 일본 본토를 왕복하며 보급 임무를 수행한다.
  • 코토부키 퇴사 . . . . 1회 일치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결혼퇴직이라는 말이 있으나,일본과는 달리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써 받아들여진다. 아예 "결혼하면 정당한 권고해직사유"가 될 수 있는 결혼퇴직제가 존재하는 회사도 때때로 언론에 보도될 정도. 당연히 이는 녀고용평등법에 따라 명백한 불법이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 . 1회 일치
          트레이아크 제작. 전작인 월드 앳 워에서 이어지는 작품이다. [[베트 전쟁]] 시기 미국의 비밀 작전을 다루고 있다.
  • 쿠와바라 쿠와바라 . . . . 1회 일치
          * 이즈미 국(和泉国)[* 지금의 [[오사카]] 부]에 [[뇌신]]이 우물에 떨어졌을 때, 뚜껑을 덮어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 뇌신이 자신은 뽕나무를 싫어하여
  • 크리스마스 . . . . 1회 일치
         [[산타클로스]]라는 자가 순록들이 모는 썰매를 타고 다니며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소문이 있다.
  • 크립토나이트 . . . . 1회 일치
         여기 있는 목록들은 모두 리부트 전의 내용으로 지금은 리부트로 중구난방인 크립토나이트들은 없어지고 '''그린 크립토나이트'''만 았다.
  • 키이치 보우겐 . . . . 1회 일치
         분노한 키이치 보우겐은 여동생의 편 단카이(湛海)를 보내서 요시츠네를 추격하게 하지만, 육도삼략의 무공을 습득한 요시츠네는 단카이를 죽이고 만다. 요시츠네에게 배반당한 보우겐의 막내딸은 실의에 빠져서 슬퍼하다 죽게 되고, 키이치 보우겐은 비탄에 빠졌다.
  • 킹 오브 드래곤즈 . . . . 1회 일치
         다른 판타지 소재 게임에서 엘프가 여성,금발,긴머리 속성으로 주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이쪽은 정말로 대부분의 액션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 엘프다. 그래서 당시 국딩들은 이 게임의 엘프를 일명 [[로빈훗]]이라고 부르곤 했다. (녹색과 황색의 복장 컬러링부터 시작해서 활만을 쏘기 때문에...)
  • 킹덤/503화 . . . . 1회 일치
          * 이들의 진로는 다소 쪽으로 치우져 있다. 중도시 "조사"를 피하기 위한 진로다. 진로에서 최대한 장애물을 배제하고 교전을 피한체 도착하려는 의도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우측에 황하를 끼고 돈다. 황하를 처음 본 병사들은 "거대한 호수"라고 생각한다. 황하가 보인다는건 곧 "열미"에 도착한다는 이야기. 드디어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시점이 온 것이다.
  • 킹덤/506화 . . . . 1회 일치
          * 열미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산민족과 내리찍으려는 열미군이 뒤엉켜 아비규환. 사다리 밑으로 쌓이는 시체를 보며 비신대의 신참들이 몸을 떤다. 이제 문이 열리면 돌입할 테니 그들의 차례가 얼마 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투 미경험자인 탓에 어떤 자들은 부담감을 못 이기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그때 [[강외]]가 이들을 진정시키며 긴장을 풀라 한다. 어차피 한동안 성벽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면서.
  • 킹덤/509화 . . . . 1회 일치
          * 열미로부터 반나절 거리인 적마 언덕엔 [[공손룡]] 장군이 조군을 이끌고 행군 중이다. 진격 중에 열미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도착한다. 조군은 단 하루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술렁대지만, 곧바로 들이쳐서 탈환하면 그만이라고 사기를 끌어올린다. 이들 계산으론 그렇게 무리한 일정으로 공성을 했다는건 현재 온전한 병력이 지 않았을 것이고, 이때를 노린다면 손쉽게 탈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그들은 "성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 초의 재상 [[와린]]은 [[이원]]과 함께 그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바뮤와 옥죽이란 자 하인에게 팔을 주무르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착한 소식을 허투루 들은게 아닌지 "진이 진심으로 조를 치려 한다"며 진지하게 의견을 밝힌다.
  • 킹덤/517화 . . . . 1회 일치
          * 은 것은 알여. 알여는 왕전 자신이 직접 대처할 것이다. 이신, 몽념, [[왕분]]대의 병력을 이끌고 말이다. 왕전군 7만에 비신대 총 8천, 낙화대 5천, 옥봉대 5천을 더한 총 8만 8천의 병력이다.
  • 킹덤/520화 . . . . 1회 일치
          * 진군의 포진은 조군 진영에서도 많은 추측을 낳았다. 우선 중앙의 포진. 비신대를 뒤로 빼서 앞뒤로 긴 배치는 중앙의 전체 병력수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약 5만 이상이라는 애매한 수치가 보고됐다. 그리고 역시나 이해불가한 좌측. [[몽념(킹덤)|몽념]]의 낙화대 5천이 있을 뿐이다. 장교들은 잘못된 보고가 아닌지 거듭 확인한다. [[요운]]은 별다른 의심없이 첩보를 믿는다. 그러면서 왕전이 신중한 자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담하다고 평한다. 이목도 같은 의견이다. 지금 왕전은 명백히 수작을 부리고 있다. 왕전의 의도는 이렇다. 전쟁에서 각자 싸우기 쉬운 국면을 고르는게 필연. 좌익에 고작 5천을 뒀다는건 도발에 가깝다. 즉 "우익으로 여길 치면 된다"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 따라서 이목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 도발에 응해 조군 우익 [[기수]]의 3만 병력으로 진 좌익을 칠 것인가, 아니면 뻔한 함정을 피해서 다른 곳부터 시작할 것인가.
  • 킹덤/521화 . . . . 1회 일치
          * 몽념은 조군이 새로운 기마대를 보냈고 그 대장이 유독 덩치가 크다는 보고를 듣자 마정임을 직감한다. 다시 반전해서 병력을 뺀다. 그걸 보고 마정은 더욱 도발 당해 추격의 고삐를 조인다. 기수는 몽념이 분명 흑양전의 정보를 가졌을 거라 보고 어떻게든 마정을 불러들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의 짐작이 맞았다. 몽념은 흑양전에서 얻은 귀중한 정보를 살려서 기수나 마정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특히나 마정은 요주의 인물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기수의 두 팔 중 하나. [[유동]]이 죽은 지금은 기수에게 은 유일한 측근이고 그가 죽는다면 기수의 힘은 절반 이하가 될게 자명하다. 따라서 이건 더할나위 없는 기회. 몽념은 여기서 마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 마음먹는다.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주해평원에서 [[이목(킹덤)|이목]]와 [[왕전(킹덤)|왕전]]이 총력전을 펼쳐지는 동안 [[양단화]]군은 [[공손룡]]군이 이끄는 요양군을 상대로 연합군의 명운을 가를 싸움을 시작했다. 본래 양단화군의 임무는 본대가 업성 공략에 나서는 동안 공손룡군의 발을 묶는 것. 그러나 전장의 판도가 뒤바뀌면서 양단화군 의 승패가 곧 전쟁의 승패가 될 수도 있었다. 주해평원으로부터 서쪽. 약 300리 거리의 싸움이었다.
  • 킹덤/530화 . . . . 1회 일치
          부장들이 다시금 마정에게 원군을 청하자고 고하고 있을 때, 마침내 비신대의 선두가 시야에 들어왔다. 신이 기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부장들이 기수를 둘러싸고 수비병을 동원하러 할 때 반대쪽에서 낙화대가 3진을 돌파하고 여기까지 육박한다는 보고가 왔다. 두 부대는 마치 경쟁하듯 기수를 향해 몰려왔다. 이렇게 되자 부장들의 의견이 둘로 갈랐다. 당장 본진을 버리고 물러나가는 쪽과 버텨야 한다는 쪽. 후자는 여기서 본진만 빠져나간다면 마정군은 홀로 아 괴멸할 것이므로 도망칠 거라면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전자는 그럴 겨를이 없고 우물쭈물하다간 같이 격멸될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쪽이든 기수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고 그의 결단은 한결같았다.
  • 타루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전자 음악가]][[분류:한양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타마노코시 . . . . 1회 일치
          * [[성]]이 결혼을 하여 이 같이 이득을 얻는 것을 갸쿠타마(逆玉,역옥)라고 한다.
  • 타코나구리 . . . . 1회 일치
         직역하면 문어(タコ, 타코)를 때린다(殴り,나구리)는 뜻이 되는데, 물건이 형태가 지 않을 정도로 마구 때린다는 의미이다.
  • 탁민제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과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탁씨]][[분류:항공우주공학자]]
  • 탁준석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한성대학교 동문]][[분류:풍생고등학교 동문]][[분류:광명중학교 동문]][[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코레일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태의경 . . . . 1회 일치
         [[분류:196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진선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서울여의도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텐프레 . . . . 1회 일치
          * 애니나 만화에서 상투적인 전개를 뜻한다. 예를 들면 "평범한 자 앞에 어느날 미소녀가 찾아온다."라든가 [[아침 드라마]]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보여줄 때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이!"등이 포함된다.[* 특히 도둑고양이 표현은 일본에서 주로 쓰인다.]
  • 토리코/357화 . . . . 1회 일치
          * 니트로는 이용한 네오를 버렸는데, 네오는 살아아서 계속 강해짐
  • 토리코/361화 . . . . 1회 일치
          * 토리코가 식사를 마치려 할 때 코마츠가 "은 것이 있다"며 통조림을 꺼내는데, 전에 8대륙을 통과할 때 얻었던 '''황금색 통조림'''(금관두)이다.
  • 토리코/366화 . . . . 1회 일치
          * 이렇게 일방적으로 싸우던 지로는 마지막으로 은 블루 니트로를 공격하려다 '''"너 어딜 보냐"'''며 잠시 방심한다.
  • 토리코/374화 . . . . 1회 일치
          * 아카시아가 손을 펼친 것 뿐인데 지면에 커다란 자국이 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
  • 토리코/376화 . . . . 1회 일치
          * 기네스는 네오에게 아 있는 냄새로 지로가 상대한 최후의 적이었음을 간파한다.
  • 토리코/378화 . . . . 1회 일치
          * 브란치가 "죽지 마라"고 말하는데, 아이마루는 죽으러 가는게 아니라 "먹으러 간다"며 살아 아 다시 한 번 같이 밥을 먹자고 말한다.
  • 토리코/385화 . . . . 1회 일치
          * 플로제와 최초의 만, 그것이 그의 "전채"
  • 토리코/386화 . . . . 1회 일치
          * 토리코 대신 먹혀버리는 스타준. 그대로 가슴 위쪽만 긴 채로 동강난다.
  • 토리코/389화 . . . . 1회 일치
          * 과 나누고 함께하는 식재야 말로 자신만의 풀코스일 수 있는 것.
  • 토리코/390화 . . . . 1회 일치
         미도라는 이번 화에서 은 오른손까지 먹히면서 양손이 모두 먹힌 상태.
  • 토리코/392화 . . . . 1회 일치
          * 토리코는 이미 "저것"에 아카시아의 자아는 아있지 않을 거라 추측한다.
  • 토시코 막스 . . . . 1회 일치
         1936년 태생, 1971년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 1976년 영국 귀족 블로톤 작 마이클 막스(Baron Marks of Broughton)와 결혼하여 블로톤 백작 부인 마크스 토시코(Honourable Toshiko Marks, Baroness Marks of Broughton)가 되었다.
  • 판타스틱 포 . . . . 1회 일치
         당시 리는 코믹스 업계가 너무 갑갑하다고 느낀 나머지 전직을 생각하던 중이었고, 결국 이 작품 하나만 마무리짓고 마블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리는 [[잭 커비]]와 함께 머리를 짜낸 끝에,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4명의 평범한 인간들이 우연히 [[초능력]]을 얻은 뒤 한 팀을 이루어 적과 싸운다'는 취지의 신작을 창안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전의 코믹스에서 활약하던 히어로들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약점투성이라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그 뒤 《판타스틱 포》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시리즈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마블 코믹스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스탠 리가 그 뒤로도 이 업계에 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캐릭터들을 배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단순 마블 코믹스뿐 아니라 다른 코믹스에서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 페어리 테일/483화 . . . . 1회 일치
          * 오거스트는 "최강의 자"고, 또 하나 "최강의 여자도 있는 것.
  • 페어리 테일/484화 . . . . 1회 일치
          * 옛날 검은 천녀와 하얀 천녀와 자를 놓고 다퉜다는 이야기. 결국 하얀 천녀가 승리하여 영원히 눈이 내리는 땅이 되었다 한다.
  • 페어리 테일/485화 . . . . 1회 일치
          * 전향하기 이전 얘기지만 사실 가질도 레디 맥거딘을 매달아 놓고 능욕한 전적이 있으니 얘기할 처지는 아니다.--노답 vs 노답--
  • 페어리 테일/490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제이라는 "이건 이별이 아니야"라는 말을 긴채 사라지는데...
  • 페어리 테일/493화 . . . . 1회 일치
          * 브랜디쉬는 미라젠을 살려준걸 보면 일말의 미련이 아 있는 듯.
  • 페어리 테일/498화 . . . . 1회 일치
          * 쥬비아는 죽어도 그레이를 상처 입힐 수는 없다며 의식이 아있을 때 자결하려 한다.
  • 페어리 테일/503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루시는 멀쩡하게 정신이 든다. 피도 의 것.
  • 페어리 테일/504화 . . . . 1회 일치
          * 원래는 중상이지만 브랜디쉬가 마법으로 상처를 줄였다. 하지만 데미지는 아 있기 때문에 더이상 전투는 불가능.
  • 페어리 테일/508화 . . . . 1회 일치
          * 어떤 자가 태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 그는 "답례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고개를 못 들겠다"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바로 라케이드 드래그닐. 유키노는 그가 스프리건 12의 일원임을 알아보지만 어딘지 다른 12와 다른 신성함이 느껴진다. 그는 전장에 있는 적 전원을 상대로 어떤 마법을 발동하는데, "하얀 혼은 자유로운 하늘로"라고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 페어리 테일/512화 . . . . 1회 일치
          * 그때 제레프가 나타난다. 그도 안나의 모습을 보며 "너의 동료와 닮았지?"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제레프 또한 안나와 인연이 있던 걸로 보인다. 그는 안나가 을 잘 돌보던 다정한 여성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러면서 이제 나츠의 죽음이 가까웠고, "마지막 대답"도 코 앞에 있다 말한다.
  • 페어리 테일/514화 . . . . 1회 일치
         아이린의 편, 즉 엘자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었는데 이 설은 아크놀로기아가 아이린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고 아이린도 아크놀로기아를 초면인 것처럼 대한 것 때문에 이견이 있다.
  • 페어리 테일/520화 . . . . 1회 일치
          * 나츠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인간"으로 겠다는 의지를 정하자 두 싹은 자연히 소멸하고 나츠는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 페어리 테일/522화 . . . . 1회 일치
          >나는 몇 번이고 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해왔어.
  • 페어리 테일/523화 . . . . 1회 일치
          * 심상세계를 거친 나츠는 더이상 아무런 망설임도 고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해피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야 나츠니까"라며 그가 살아을 거라 믿는다. 루시도 아무 말 없이 그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기로 한다.
  • 페어리 테일/524화 . . . . 1회 일치
          * 카나는 오거스트의 말에 크게 반발한다. 아무리 정의를 주창해도 그들이 하는 짓은 침략과 정복. 그 결과는 이 전장에 고스란히 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결국은 마스터 [[마카로프 드레아]]까지 잃고 말았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선천적으로 마력을 가진 아이는 살아았다. 그는 프레히트를 원망하진 않았다. 자신의 부모에 대한 것도 마력을 통해 기억을 되살려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연고가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삶은 힘들었다. 식사는 민가에서 도둑질을 해서 해결했고 무엇을 하든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아버지, 제레프였다. 숲을 방황하던 아이는 우연히 제레프와 마주치고 그가 누군지 깨닫는다.
  • 페어리 테일/529화 . . . . 1회 일치
          >나츠도 평범한 자애인데... 왜...
  • 페어리 테일/532화 . . . . 1회 일치
          페어리 하트가 빠져나가면서 메이비스는 기력과 의식을 잃어간다. 그녀는 실낯같은 의식을 붙잡고 제레프를 만류하는데 사용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만난" 이 세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애원하지만 제레프는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페어리 하트를 적출하며 방출되던 빛이 사라진다. 제레프는 정신을 잃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이걸로 이 세계에 은 미련은 전부 정리했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35화 . . . . 1회 일치
          제랄은 얼마 지 않은 마력을 쥐어짜냈다. 다시 마룡이 밀리기 시작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블라드 . . . . 1회 일치
         >캘리포니아 부 대부분을 파괴한 지진이 발생한 직후, 고속도로에 버려진 두대의 운송 트럭이 수송품을 도난당했다. 해당 트럭들은 코왈스키 & 허치라는 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구간 운송 회사의 소유였다. 해당 회사는 러시아인 사업가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지만, 수사를 진행하기 전에 회사 사무실이 전소되었으며 모든 기록은 파괴되었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우리가 부패한 세무서 직원 에이드리언 스터를 체포하려고 했을 때, 페이데이 갱이 나타나 요원들에게 발포하였다. 요원들은 스터가 숨은 리무진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져 길 건너 폐건물에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SWAT을 호출해 빌딩을 습격하게 했지만, 페이데이 갱은 목표를 이룰 때 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 요원들이 빌딩을 겨우 확보했을 때, 스터는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서버는 사라졌으며, 방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에는 2천 5백만에 달하는 거금이 추적할 수 없는 계좌로 보내졌다는 내용이 겨져있었다.
  • 페이데이 갱 . . . . 1회 일치
          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링컨 연구소]]와 [[MI5]]에서 일한 적이 있다. 페이데이 갱에게 몇번 엿을 먹은 [[PMC]] 머키워터에 고용되어 크라임넷에 침투했다. 하지만 크라임넷에 붙는게 더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머키워터를 배신하고 크라임넷에 붙었다.
  • 편의치적 . . . . 1회 일치
         [[내륙국]]인 [[몽골]], [[볼리비아]], [[몰도바]]가 편의치적을 받고 있어, 내륙국임에도 상당량의 선적을 얻고 있다. [[북한]]도 편의치적을 받고 있는데, 한 국적(!) 오너가 가지고 있는 선박이 1척 있다.[[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kn.html#Trans (참조-운송(Transportation)->상선(Merchant marine)->외국인 소유(foreign-owned))]]
  • 편혜영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7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분류:이효석문학상 수상자]][[분류:이상문학상 수상자]][[분류:동인문학상 수상자]][[분류:절강 편씨]][[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
  • 포리(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숲에 살고 있던 엘프종족 포리는 어느 날 어떤 자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먼 포리는 그에게 자신의 『노래』가 담긴 수정을 넘겨주게 되고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하게 된다. 하지만 엘프의 계율은 엘프와 인간과의 사랑을 용납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수옥(水獄)에 갖혀 "달이 세번 뜰때까지" 가둬지는 벌을 받게 된다.
  • 표양문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태어]][[분류:196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이승만]][[분류:자유당]][[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신창 표씨]]
  • 표현명 . . . . 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신창 표씨]]
  • 표희선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7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신창 표씨]]
  • 퓨어킴 . . . . 1회 일치
         ||'''출생'''||[[1986년]] [[3월 3일]]([age(1986-03-03)]세), ([[전라도]] [[신안군]])||
  • 프로 스포츠 . . . . 1회 일치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 프릭쇼 . . . . 1회 일치
         * [[사우스 파크]] - [[버터스]]가 [[에릭 카트맨]]의 음모로 '[[턱]]에 볼알이 달린 자'가 되어서 '나폴레오'이라는 이름으로 프릭쇼에 끼어들게 된다.
  • 핀 팡 품 . . . . 1회 일치
         [[아이언맨]], [[토르]]와 싸웠으며 [[헐크]]와도 극에서 싸웠다. 그리고 아이언맨의 아치 에너미인 [[만다린]]과 연관성이 있다.
  • 핑커톤 . . . . 1회 일치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 하규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2012년 데뷔]][[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하시다 스가코 . . . . 1회 일치
         [[분류:192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영화 각본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일본의 텔레비전 각본가]][[분류:기쿠치 간상 수상자]][[분류:일본여자대학 동문]][[분류:사카이시 (오사카부) 출신]]
  • 하시영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하야시 선생님 . . . . 1회 일치
         [[http://storyis.blogspot.jp/2014/03/2ch_6362.html 설마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이 「동생」이란, 당신의 상상(想像) 속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하야시 선생님을 대표하는 문구. 너무 임팩트가 커서 다양한 꾸준글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 하이큐/208화 . . . . 1회 일치
          * 야마구치는 "우시와카랑 같다"고 놀라워하고 츠키시마는 "우시와카는 최종적으로 은 거고 카게야마도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며 냉정한 소릴한다.
  • 하이큐/228화 . . . . 1회 일치
          * 마지막까지 공을 떨구지 않고 연습을 마친 히나타. 나츠는 "오빠는 공하고 친해졌다"고 말한다. 나츠는 예전부터 오빠가 연습하는걸 봐왔지만 그때는 "공이랑 모르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하는데, 그 말대로 히나타의 손도 공도 무수한 훈련의 흔적이 아있다.
  • 하이큐/229화 . . . . 1회 일치
          * 신사를 나서면서, "원래 신사참배할 때는 소원이 아니라 감사를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즈마네는 자기는 그걸 몰라서 시합 결과에 옆집 개의 건강가지 빌어버렸다고 "신령님이 뻔뻔하다고 생각하겠다"고 한탄한다. 이런 실없는 얘기나 하던 중에 시미즈가 "신령님한테 빈다고 시합에서 이기는게 아니다"는 독설을 날린다. 일순 굳어버린 자들. 스가는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 하이큐/240화 . . . . 1회 일치
          * [[히메카와 아오이]]의 천장 서브는 단 1점이지만 [[카라스노 고교]]가 주도하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본인도 긴장을 완전히 떨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한때 이름을 날려도 올해는 1회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게 전국대회, 그래서 그해 누가 이름을 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대로 히메카와는 정말로 의외의 선수인 셈이다.
  • 하이큐/243화 . . . . 1회 일치
          * 분전했으나 패배한 츠바키하라 고교는 아쉬움을 기고 봄고대회를 마무리한다.
  • 하이큐/247화 . . . . 1회 일치
          * 지난 10월. [[카라스노 고교]]가 봄고 미야기현 대표로 결정된 직후의 일이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간만에 본가에서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카이 코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쓰레기장 결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웃는다. 그 말을 들은 잇케 감독은 자신이 배구부를 맡고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을 회상한다. 잇케 감독은 그때 자신을 "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 시절의 그는 선수에게 "나랑 똑같은 것" 내지는 "내가 하려다 못했던 것들"만을 시키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하이큐/250화 . . . . 1회 일치
          * 모두를 놀라게 한 속공. 그런데 카게야마는 나름 아찔한 경험이었다. 히나타가 친 페이크에 같이 넘어가서 잘못 올릴 뻔 했기 때문. 그런데 히나타도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진 마찬가지다. 정면의 "무서운 얼굴", 오미미를 피하려다 엉겁결에 그런 플레이가 나왔기 때문. 이러한 사실을 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조용히 묻힌다.
  • 하이큐/252화 . . . . 1회 일치
          다른 팀의 응원단들도 카라스노의 태고팀에 시선을 뺏긴다. 바보커플도 그랬는데 여자쪽은 취주악이 좀 더 좋다고 하지만 자 쪽은 "그래도 전통"이라며 카라스노 쪽에 점수를 더 준다. 히나타와 [[니시노야 유]]는 태고팀을 보며 "멋짐사(死)"라는 괴이한 사인으로 죽을 것 같다고 심장을 움켜쥔다. 사전에 사에코와 태고팀이 올 걸 알았던 [[우카이 케이신]] 코치와 [[타케다 잇테츠]] 고문은 "다행히 늦지 않았다"며 한시름 놓는다.
  • 하이큐/253화 . . . . 1회 일치
          생각이 복잡한건 코트 바깥의 세터도 그랬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아카아시 케이지]]가 그랬다. 옆의 [[보쿠토 코타로]]는 완전히 히나타한테 올리는 건 줄 알았다며 카게야마를 칭찬하지만, 아카아시는 차라리 소름이 돋았다. 단순한 미끼를 던져 봐야 이나리자키의 블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방금 전 세트업은 퍼스트 터치가 코트 중앙으로 올라가서 각도상으로 보면 완전히 히나타한테 가는 흐름이었다. 그걸 교묘하게 라이트로 보낸게 성공의 이유. 이는 카게야마가 시야가 넓기만 한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은 요소는...
  • 하이큐/254화 . . . . 1회 일치
          * [[마지로 알렝]]은 "쌍둥이라 나올 수 있는 신뢰감"이라며 둘을 부러워하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오사무는 시큰둥하다. 애초에 그는 오사무를 딱히 신뢰하지도 어떻지도 않았다. 아츠무는 옛날부터 오사무의 말이라면 지지리도 안 들었다. 깨워달라고 하면 "니가 안 일어났다"며 먼저 가버리기 일수였고 빌려간 옷은 돌려주는 법이 없으며 의 간식을 처먹으면서 태연하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치는, 아주 좋지 않은 형제였다.
  • 하이큐/256화 . . . . 1회 일치
          우선 방금 전 플레이를 되짚어 보자. 아츠무의 서브가 네트에 걸린 데서부터 시작. 이때 [[사와무라 다이치]]가 네트 근처에서 리시브하느라 공이 네트를 넘겨서 [[이나리자키 고교]] 진영으로 넘어온다. 이나리자키도 네트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공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공격에 들어갈 타이밍이 흔들린다.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 츠키시마는 상대편이 좌익에서 공을 받았으므로 레프트의 공격루트는 사전에 배제했다. 따라서 "우익에서 괴짜 속공이 온다"는 예상이 가능했다. 다이쇼는 그걸 알더라도 그 속공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로봇같다는 평을 긴다.
  • 하이큐/257화 . . . . 1회 일치
          * 코치의 걱정은 사실화되었다. 키노시타의 두 번째 서브. 공은 다시 아츠무에게. 여봐란 듯 다시 괴짜 속공을 건다. 이번엔 방금 활약이 무색하게 득점을 허용하는 히나타. 아츠무의 득점으로 19 대 18로 다시 이나리자키가 앞서 간다. 그리고 키노시타의 기용도 종료. 키노시타는 벤치로 돌아가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나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았다. 리시버가 언더로 받게 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두 번째 서브는 조금 더 모서리를 노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과 별개로 그의 투쟁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성과. 그 점은 [[스가와라 코시]]가 본인 보다 먼저 눈치챈다.
  • 하이큐/259화 . . . . 1회 일치
          * [[타나카 사에코]]가 타이밍 좋게 분위기를 띄운다. [[카라스노 고교]]의 기세가 더할나위 없이 높아진다. 일반 관중들 속에서도 카라스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바보 커플 중 자 쪽은 진지하게 역전 가능성을 점친다. 반면 여자 쪽은 "미야 형제를 질투해 적을 응원하는거 아니냐"며 시들한 반응이다.
  • 하이큐/260화 . . . . 1회 일치
          * 묵은 채증을 날려버리는 서브 에이스. 벤치의 선수들이 들썩거린다. 그 중에서도 같은 포지션의 [[키노시타 히사시]]는 감격하는 수준이다. 진짜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한편으론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에게 투지가 쌓여가고 있다.
  • 하이큐/262화 . . . . 1회 일치
          그런 타나카가 보기에도 카라스노의 경기성적은 좋지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빴다. 인근 학교와 연습시합에서도 번번히 패했다. 3학년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은퇴했다. 겨진 입장이 된 타나카는 "수수한 건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이 시기 카라스노는 전용 체육관은 커녕 체육관을 쓰게나 해주면 감사해야 하는 처지였다. 타나카는 이런 대우에 반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주장을 물려받은 사와무라는 "작년보단 낫다"거나 "밖에서도 할 수 있는게 있다"면서 말을 돌렸다. 타나카에겐 "느슨"하게 보였다.
  • 하이큐/268화 . . . . 1회 일치
          * 스코어 28 대 28. 2세트가 끝날 줄 모르고 길어졌다. 사루카와의 계획은 풀세트 채우는 것까지도 염두한 것이지만 이미 양측의 체력소모가 격심하다. 특히 코즈메가 그랬다. 코즈메는 2세트를 쉬어두지 않은 걸 후회했다. 3세트에서 전력을 다하겠다 했으면 됐을 텐데. 이젠 중력도 짜증난다. 중력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공이 떨어지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에 몰두하고 쿠로오에게 집중하라고 지적을 당했다. 쿠로오는 소꿉친구가 한계에 도달한 걸 눈치챘다. 집중력만큼은 들보다 빼어난 코즈메가, 집중력이 끊기고 있다면 정말로 한계였다.
  • 하이큐/272화 . . . . 1회 일치
          * 비록 자신이 코트에 있는건 10초, 혹은 20초 짓이겠지만 단 5초라도 이나리자키를 열받게 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런 각오로 스가와라의 1회차 서브. 역시 아슬아슬한 코스로 오지로를 노렸다. 네트에 가깝게 떨어지는 공. 오지로가 달려와서 받는다. 타이밍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리시브하는 오지로. 리시브는 성공했지만 일어서는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공은 [[미야 아츠무]]에게. 아츠무는 [[미야 오사무]]에게 세트업. 우측의 스파이크를 히나타가 블록. 손에 받고 뒤로 튕겨나온 공을 스가와라가 잡아낸다. 공은 산 채로 카라스노 진영으로. [[아즈마네 아사히]]가 이어서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돌린다. 카게야마는 우측 네트 앞에서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오지로 쪽으로 밀어넣는다. 오지로는 이것도 받아내긴 했지만 역시 성가셔하는 느낌. 공은 이나리자키 좌측에서 높이 뜬다. 오지로가 신경질적으로 "레프트"라고 외치자 아츠무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세트업이 조금 낮다. 그대로 오지로 뛰어올라 스파이크, 하지만 낮은 만큼 블록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손에 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아웃. 오지로나 아츠무에겐 가슴이 철렁한 플레이였다. 스코어는 20 대 9. 스가와라와 츠키시마가 다시 교대한다.
  • 하지영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하지호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잠원초등학교 동문]]
  • 하카마 . . . . 1회 일치
         기혼이나 미혼, 녀를 가리지 않고 착용할 수 있다. 일종의 정장, 예복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 한국영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카타르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쇼난 벨마레의 축구 선수]][[분류:가시와 레이솔의 축구 선수]][[분류:카타르 SC의 축구 선수]][[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2014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알가라파 S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J2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카타르 스타스 리그의 축구 선수]]
  • 한규식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장안초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문]][[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한길로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한덕수 (1907년)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태어]][[분류:2001년 죽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분류:재일 한국인]][[분류:최고인민회의 의장]][[분류:조선로동당]][[분류:최고인민회의 대의원]][[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 한동욱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한만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6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한명진 (1426년) . . . . 1회 일치
         [[분류:1426년 태어]][[분류:1454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조선의 정치인]][[분류:한명회]][[분류:정난공신]][[분류:조선의 군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청주 한씨]]
  • 한병준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한보배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한상권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5년 데뷔]][[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청주 한씨]]
  • 한상대 (검사)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검찰총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보성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
  • 한상원 . . . . 1회 일치
         [[분류:한상원|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재즈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7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펑크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펑크 록 음악가]][[분류:버클리 음악 대학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서진 (1989년)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한송이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한송이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그리피스 대학교 동문]]
  • 한수진 (1969년) . . . . 1회 일치
         [[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보성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199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
  • 한승주 (공무원) . . . . 1회 일치
         [[분류:194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김영삼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욱일대수장 수훈자]]
  • 한승택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잠전초등학교 동문]][[분류:잠신중학교 동문]][[분류:덕수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 한용덕 (시인)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한성대학교 동문]][[분류:성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용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1931년 태어]][[분류:2014년 죽음]][[분류:동요 작곡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한운사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이 영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 한유주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동대전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한이서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
  • 한재권 (응원단장) . . . . 1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두산 베어스]][[분류:양정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지유 (모델) . . . . 1회 일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한지은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한지호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안동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징 . . . . 1회 일치
         [[분류:1886년 태어]][[분류:1944년 죽음]][[분류:한국의 옥사한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언어학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채이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한태균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광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한필수 . . . . 1회 일치
         [[분류:1900년 태어]][[분류:1986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한혁수 . . . . 1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한현규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기도 부지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시러큐스 대학교 동문]]
  • 한현준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한혜령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하키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
  • 함가연 . . . . 1회 일치
         [[분류:댄스스포츠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함기호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함두영 . . . . 1회 일치
         [[분류:1904년 태어]][[분류:1979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함석원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 함씨]]
  • 함준호 (교수)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양근 함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상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연세대학교 교수]]
  • 핫라인 마이애미/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쥐 가면을 쓴 자. 자켓의 집에 들어와 매춘부를 쏴죽이고 집에 돌아온 자켓 또한 쏴버린다.
  • 해수투명도 . . . . 1회 일치
          * 해 : 15~30m
  • 해쉬스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일리네어 레코즈]][[분류:199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김포제일고등학교 동문]]
  • 허규옥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김해 허씨]]
  • 허만하 . . . . 1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195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용래 문학상 수상자]]
  • 허민행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0년 태어]][[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성수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허범산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동명초등학교 동문]][[분류:재현중학교 동문]][[분류:재현고등학교 동문]][[분류:우석대학교 동문]]
  • 허범욱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애니메이션 감독]]
  • 허용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선린인터넷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허용석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관세청장]][[분류:덕수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밴더빌트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양 허씨]]
  • 허윤희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허일상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허씨]]
  • 허준영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허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경찰대학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경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홍준표]][[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허지애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허협 . . . . 1회 일치
         [[분류:1796년 태어]][[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허화평 . . . . 1회 일치
         하지만 암호지령이 급증한 게 사실이라 해도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당연히 북한 간첩을 통해 한 상황을 체크해 볼 것이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북한 개입이 사실이라면 왜 본인이 재판받을 때는 말하지 않다 2012년에서야 말한 것인가라는 점에서 그 회고의 신빙성은 없다.
  • 헥사밀리온 . . . . 1회 일치
         헥사밀리온이 마지막으로 활약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11세]](당시는 왕자)가 지금의 그리스 부 펠로포넨소스 반도에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령 [[모레아 전제국]]을 지배하던 시기에, 모레아 반도의 방어를 위하여 헥사밀리온을 대규모로 수복하였던 것이다.
  • 현재윤 . . . . 1회 일치
         [[분류:197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서울수유초등학교 동문]][[분류:신일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연주 현씨]]
  • 호소키 카즈코 . . . . 1회 일치
         편과 함께 한국에서 자선활동함.
  • 호시즈나 . . . . 1회 일치
         태평양 지역의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별]] 모양의 [[모래]]. 사실 모래가 아니라, 유공충(有孔虫)이라는 원생동물의 골격이 [[파도]]에 밀려와서 [[퇴적]]된 것이다. 크기는 1밀리미터 미만으로 아주 작지만 자세히 보면 별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호준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한영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196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홍명찬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서울응암초등학교 동문]][[분류:홍은중학교 동문]][[분류:한서고등학교 동문]]
  • 홍병주 . . . . 1회 일치
         [[분류:1798년 태어]][[분류:1840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홍석형 . . . . 1회 일치
         [[분류:193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분류:홍명희]]
  • 홍소희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안성시 출신]]
  • 홍승목 . . . . 1회 일치
         [[분류:1847년 태어]][[분류:1925년 죽음]][[분류:조선의 문신]][[분류:과거 급제자]][[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풍산 홍씨]]
  • 홍아름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 홍연아 . . . . 1회 일치
         [[분류:197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통합진보당 당원]][[분류:민중연합당]][[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홍영현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
  • 홍유경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분류:2011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가수]][[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에이핑크]][[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정호 (핸드볼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핸드볼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인천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인천구월초등학교 동문]][[분류:상인천여자중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홍종호 (1963년)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
  • 홍준표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도호쿠 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
  • 홍준표 (마술사)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마술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명석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 홍준호 (1971년)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영천고등학교 동문]][[분류:총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정의당 (대한민국)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홍창선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홍현희 . . . . 1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1년 데뷔]][[분류: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동문]]
  • 홍혜경 . . . . 1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성악가]][[분류:대한민국의 오페라 가수]][[분류:소프라노]][[분류:줄리아드 학교 동문]]
  • 황가히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
  • 황경태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황교충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김해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강원 FC의 축구 선수]][[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문일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두성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현대 유니콘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서울길동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황리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황문수 (장기 기사)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분류:장기 기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보예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황석두 . . . . 1회 일치
         [[분류:1813년 태어]][[분류:1866년 죽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참수된 사람]][[분류: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분류:19세기 기독교 성인]]
  • 황선필(1939년) . . . . 1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 황선희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프레인TPC 소속]][[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황세하 . . . . 1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코레일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문일고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축구 골키퍼]]
  • 황수범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황씨]][[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배명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
  • 황수현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둔촌초등학교 동문]][[분류:자양중학교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연대 . . . . 1회 일치
         [[분류:193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진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
  • 황옥 (1885년) . . . . 1회 일치
         [[분류:1885년 태어]][[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의열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납북자]][[분류:이중간첩]]
  • 황용식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타이베이 주재 대한민국 대표]][[분류:튀니지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터프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창원 황씨]]
  • 황은진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분류:199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195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
  • 황의종 . . . . 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충청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국악사양성소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
  • 황인숙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1958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황재규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청원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황씨]]
  • 황정립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황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서울학동초등학교 동문]][[분류:경원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배명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파주 챌린저스 선수]]
  • 황정미 . . . . 1회 일치
         [[분류:1977년 태어]][[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경상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
  • 황지웅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안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
  • 황진하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2011년 데뷔]][[분류:1986년 태어]][[분류:살아있는 사람]]
  • 회맹 . . . . 1회 일치
         춘추시대의 회맹은 제나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682년 가을, 송나라의 권신 궁장만南宮長萬이 송 민공緡公을 시해, 대부 구목仇牧과 태자 화독華督을 살해했다. 기원전 681년 3월, 제 환공은 주 왕실의 허가를 얻어 북행北杏(지금의 산동성 동아현)에서 제후들을 모았으며, 송나라를 구원하기로 결정한다. 이 때 모인 제후들 가운데서는 송 환공이 '공작'으로 가장 작위가 높았으나, 제 환공이 '후작'이었음에도 가장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제 환공이 맹주가 되었다.
  • 후리소데 . . . . 1회 일치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의 일종. [[소매]]를 길게 만든 기모노이다. 고대에는 [[관례]]를 치르기 이전의 녀가 모두 입었으며, 현대에는 주로 미혼여성의 정장으로 사용된다. [[성인식]], [[결혼식]] 등에서 입는다.
  • 휴먼 토치 . . . . 1회 일치
         570호부터 정신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장면들이 잦아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아져 팬들의 불안을 야기했으며 결국 587호에서 백스터 빌딩 안에 [[네거티브 존]]이 어나이얼레이션으로부터 강제로 열려지자 [[인간]]으로 돌아온 [[씽(마블 코믹스)|씽]]과 백스터 빌딩에 거주하는 학생들과 식객 그리고 [[프랭클린 리처즈]]와 [[발레리아 리처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네거티브 존에 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 만화 특성상 결국 언젠가 다시 부활하겠지만.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경기가 시작되고,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경기에 대한 집념과 미숙한 세터가 토스미스한 공을 쳐낼 정도의 뛰어난 반사신경에 감탄한다. 하지만 히나타 외엔 누구도 의욕도 실력도 없었던 유키가오카 중은 불과 31분만에 세트포인트 2-0로 키타가와 제1중학교에 참패. 이 때 카게야마는 중학교 3년 동안 무얼 했냐며 히나타를 질책한다.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설욕을 다짐하며 은 중학교 시간을 여자 배구부, 동네 아줌마 배구팀과 훈련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욕을 다짐하며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라스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러나 배구부가 있는 제2 체육관에 있던 건 바로 원수 카게야마였다.
  • 히노쿠니 . . . . 1회 일치
         히노쿠니는 '불의 나라'라는 뜻으로서, 현재 쿠마모토 현 일대 큐슈 부의 이름이다.
  • 히모 . . . . 1회 일치
         [[일본어]]에서 히모는 일반적으로는 '끈'이라는 뜻이다. 녀관계에서 속칭으로 쓰일 때는, 여성을 일하게 하고 자신은 그녀가 주는 돈으로 놀고 먹는 [[정부]]를 뜻한다.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으면 히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농담이나 놀림삼아 불릴 수는 있지만.
  • 히토쯔마 . . . . 1회 일치
         (人,히토)의 아내(妻,쯔마)라는 뜻이다. [[유부녀]]와는 조금 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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