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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궁원(배우)
         {{{#FFFFFF ''' 남궁원의 주요 수상 이력 ''' }}} }}} ||||
         ||<:> [[황해#s-3|황해]][br](평양폭격대) ||<:> {{{+1 → }}} ||<:> '''남궁원[br](다정다한)''' ||<:> {{{+1 → }}} ||<:> [[박근형]][br](이중섭) ||
         ||<:> [[이대근]][br](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1 → }}} ||<:> '''남궁원[br](피막)''' ||<:> {{{+1 → }}} ||<:> [[안성기]][br](철인들) ||
         || [[허장강]][br](1972) || → ||<#FFFFA1> '''남궁원[br](1973)''' || → || [[하명중]][br](1974) ||
         || 이름 || 남궁원(南宮遠) ||
         하지만 남궁원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대한민국]] 영화계가 정말 돈이 없던 시절이라, 남궁원처럼 품위있는 외모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미남 배우에게 어울리는 영화가 별로 없었기에 캐스팅 운은 별로 없었던 편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협객영화, 건달영화가 유행하긴 했으니 남궁원처럼 귀족적 외모의 배우에겐 어울리지 않는 영화였고, 문예영화라 불리우던 조선시대나 일제시대 배경의 농촌극에서는 더욱 자기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가 [[머슴]]역을 한번도 못 해본 것이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이니... 당시 [[007 시리즈]]를 흉내낸 스파이영화가 잠깐 제작되기도 해서 그가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충무로의 주류영화는 아니었다. 또한 지금처럼 피지컬이 긴 여배우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180에 달하는 남궁원의 키에 맞는 상대 여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는 그런 그를 보고 안타까워서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아깝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라고 할 정도.
         다만 말년에 아들 관련한 일로 인해서 구설수에 오른적도 있다. 범법 행위는 아니고 '족벌 운영'처럼 홍정욱이 설립한 회사에 아버지인 남궁원을 이사로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여담으로 아들보다 키가 크고(남궁원 180cm, 홍정욱 177cm), 풍체도 듬직하고 남자다워서 홍정욱은 아버지에게 키 때문에 [[열폭]]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14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는 [[민도희]]와 함께 레드카펫에 올랐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13&aid=0000514776|#]]
         1934년생으로 나이가 이미 팔순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동연배인 [[이순재]]와 함께 절대 [[동안]](...)이다!. 2015년에 [[https://youtu.be/DHqgY3x_cqc|YTN 초대석]]에 나와 방송 인터뷰를 하였을 때는 꼿꼿한 수트 차림에 60대 정도 밖에 보여지지 않는 초절정 [[미노년]] 간지를 내뿜는다. 중후한 중저음이 매력포인트인지라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서 "안녕하세요. 남궁원입니다"라고 운을 띄면 들리는 환호성은 여전한 인기를 실감할 정도.
         신인시절에 유명배우 [[도금봉]]과 동거 관계였다. 당시 남궁원은 4살 연하의 신인배우였고, 도금봉은 이미 스타였던데다 전 남편과 사이에 두 아이도 있는 상태여서 그 당시 사회적 관점으로는 꽤나 입방아에 오를만한 스캔들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92500209205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2-09-25&officeId=00020&pageNo=5&printNo=12585&publishType=00020|#결별 당시 기사]]
          [[도금봉]]과 [[최무룡]],[[김승호]],[[황해]],[[주선태]]와 '''[[남궁원]]'''이 출연하는 영화. 시기가 제1공화국 시기인지라 내용은 이승만 찬양 영화이다. 참고로 이승만은 훗날 만들어진 [[http://www.kmdb.or.kr/VOD/_sub/vod_basic.asp?nation=K&p_dataid=00622&mul_id=784&file_id=6569|아아 백범김구선생]](1960년작)에서는 180도 다르게 나온다.
          [[http://www.kmdb.or.kr/VOD/_sub/vod_basic.asp?nation=K&p_dataid=01851&mul_id=1028&file_id=7944|황순원의 소설]]이 원작.배경을 일제시대로 각색해서, 주인공 당손이 장성하여 징용에 갔다와서 회상하는 걸로 시작한다. 영화에서 남궁원은 당손의 친모인 옥수의 옛 애인인 석현으로 등장한다.
          이기선, 남궁원 주연. 작가 [[김수현(작가)|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중반 쯤 정원에서 이기선 배우가 남궁원 배우에게 사고이후 여자를 안을 수가 없다고 듣자 이기선의 '''' 어머, 그러면 아저씨가 [[병신]]이란 말이에요?''''라는 대사가 일품이다(...).[* 35분 쯤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유혹|고쳐주겠다고]] 말하자 [[쿨]]하게 한마디를 한다. '''[[응 아니야|단추 잠가.]] 시내까지 바래다 줄 테니까.''' --작가 스타일이 딱 나온다--
  • 신성일
         | [[최은희 (배우)|최은희]], [[김진규 (배우)|김진규]], [[남궁원]]
         | [[신영균 (배우)|신영균]], [[최은희 (배우)|최은희]], [[남궁원]]
         | [[엄앵란]], [[박노식]], [[남궁원]]
         | [[김지미]], [[남궁원]]
         | [[김승호]], [[남궁원]], [[남정임]]
         | [[김지미]], [[남궁원]], [[이순재]]
         | [[윤정희 (1944년)|윤정희]], [[남궁원]], [[박노식]]
         | [[남궁원]], [[최남현]], [[황정순]]
         | [[윤정희 (1944년)|윤정희]], [[남궁원]]
         | [[문희 (배우)|문희]], [[남궁원]]
         | [[윤정희 (1944년)|윤정희]], [[남궁원]], [[김희갑]]
         | [[문정숙]], [[남궁원]], [[윤일봉]]
         | [[윤정희 (1944년)|윤정희]], [[남궁원]], [[한은진]]
         | [[김지미]], [[남궁원]], [[최남현]]
         | [[고은아 (1946년)|고은아]], [[남궁원]]
         | [[남궁원]], [[전계현]]
         | [[신영균]], [[윤정희 (1944년)|윤정희]], [[남궁원]]
         | [[남궁원]], [[나오미]]
         | [[남궁원]], [[윤정희 (1944년)|윤정희]]
         | [[남궁원]], [[박지영]]
  • 엄앵란
         * 1999년 [[종근당그룹|한독]] 류마스탑 (Feat. [[남궁원]])
         * 1999년 [[종근당그룹|한독]] 류마스탑 (Feat. [[남궁원]])
  • 욕망 (1975년 영화)
         * [[남궁원]]
  • 이재명 (영화인)
         [[아세아영화사]] 대표 등을 지내며 영화제작자로 196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배우 [[남궁원]]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친구 아버지였던 이재명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가 영화계에 데뷔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② - 한국의 ‘그레고리 펙’ 남궁원
  • 현이와 덕이
         1984년 10월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장덕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를 비롯 <사랑의 꿈>, <사랑과 인생>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조용한 편이었다. 이에 장덕은 솔로 활동에의 어려움을 느끼고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된다. 어린 시절 뭣 모르고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그 때와 한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가 성인이 되어 복귀, 겪게 되는 지금의 연예계는 너무도 달랐다. 혼자 라는 점,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현이와 거룩한 성의 리더이자 보컬로서 활동하고 있던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된다. 장덕의 볼 위에 장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덕은 오빠가 너무 고마웠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오빠에게 차마 부탁도 못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 홍정욱
          | 부모 = [[남궁원|남궁 원]](부), 양춘자(모)
         홍정욱은 영화배우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남궁원]]과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 스튜어디스 출신의 양춘자 사이 1남 2녀 중 외아들이다. 누나인 홍성아는 미국 [[바너드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계열사인 헤럴드아카데미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생인 홍나리는 독일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최초의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 선발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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