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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목차

1. 소개
2. 생애
3. 활동
3.1. 외교관
3.2. 탈북
4. 가족사
5. 평가
6. 여담
7. 참조
8. 분류

1. 소개

북한외교관.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공사로 활동했으며, 2016년 8월 탈북했다. 탈출 과정에서 '태용호'라는 가명을 썼다.


2. 생애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3. 활동

3.1. 외교관

주로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 서유럽에서 활동하며 북한의 입장을 대표했다. 김정일의 덴마크어 전담통역 후보인 '1호 양성 통역'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을 했으며, 1993년 부터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직을 맡았다.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자, 스웨덴으로 옮겨졌으며, EU 담당 과장으로 승진했다.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EU 인권대회 당시 북한 대표단장을 맡았다.

2000년 12월에 영국과 북한이 수교를 맺고, 2003년 4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정식 개설되자, 1등 서기관 신분으로 런던에 파견되었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 대사의 뒤를 잇는 2인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김정철을 수행하는 모습(출처)

2015년에는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시중 동행하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20년간 중요 외교관으로 지내던 태영호는, 2016년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된다. 태영호는 2016년 여름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태영호와 친분이 있었던 BBC의 스티브 에번스 한반도 특파원은, 개인적으로 태영호와 만나면서 직전까지 탈북을 하려는 어떤 눈치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관으로서 태영호는 런던의 극좌단체 행사에 참가하여 북한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언론이 북한에 대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영호는 영국 내의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스티브 에번스 특파원의 발언에 따르면 태영호는 영국의 중산층과 같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3.2. 탈북

2016년 8월 17일, 갑자기 영국에서 고위급 북한 외교관이 탈북했다는 소식이 퍼졌으며 곧 그가 태영호 영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가족과 함께 탈북한 태영호는 한국 망명행을 택했는데, 1997년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 장승길이 망명한 이래 최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이었다.

태영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상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태영호의 탈북 요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그리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 공사의 자녀 중 북한이나 영국 현지에 남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8월 20일,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가 고의적비밀누설죄, 국가재산횡령범죄, 미성년성교범죄를 저질렀다고 발표하며 태영호를 비난했다.(포커스뉴스)


4. 가족사

태영호의 아버지 태병렬은 김일성과 함께 활동한 항일 빨치산 1세대로서, 빨치산 시기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했다. 1913년 생 태병렬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서 1997년에 사망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태영호는 북한에서 중시하는 출신성분이 매우 좋은 인물로서, 이 때문에 북한의 외교관은 통상 3년간 근무하지만 주영 북한 대사관에서 10년 동안 근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태영호의 형 태형철 역시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이다.물론 태영호가 탈북한 이상 형 역시...

태영호의 부인 오혜선(50세) 역시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며,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984년 사망)의 친척이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오혜선 역시 대외무역, 외자유치, 경제특구 업무를 담당하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했으며, 홍콩에서 근무하다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호의 큰 아들은 26세로 영국에 거주하며 현지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작은 아들은 2016년 망명 당시 19세로, 영국 가디언 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학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며, 명문대학 임페리얼 칼리지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름은 'Kum Tae'. 둘째 아들에게는 영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갑자기 페이스북에서 소식이 끊겨서 다들 걱정했는데 망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모두 안심했다고.너 숙청당한줄 알았어

태영호 영사의 둘째 아들은 FPS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팬으로, 누적시간이 368시간에 달하였다. 차남이 쓴 게임 아이디는 '북한이 최고의 코리아'(North Korea is Best Korea)[1].



5. 평가


6. 여담


이 인물의 탈북 이후로 김정은이 고사총(보통 12.7mm나 20mm 기관총을 2연장 ~ 4연장으로 엮어 쓰는 대공포)으로 관련자 및 책임자들을 처형했다는 소문(확인 불가)과 함께 탈북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북한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연합뉴스 단독 기사
북한-중국 경계에서 영업하는 북한쪽 식당의 경우 한국인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중·고교 수학여행시 종종 여행경로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국정원에서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고 그러지만 북한이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어 아예 수학여행도 취소될 가능성이 생겼다. 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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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북한을 까는 의 일종이다.


8.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