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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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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숙 (1945년) . . . . 14회 일치
         가정 환경이 넉넉했던 정인숙은 개인교사를 둘만큼 유복하게 자랐다. 예쁘고 천성이 명랑했던 그녀는 붙임성이 좋아 남녀 친구가 많았고, 학업은 중간 정도였지만 [[영어]] 실력은 빼어났다고 한다.<ref name="hp103">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3페이지</ref>
         한동안 선운각의 얼굴마담으로 주가를 높이던 정인숙은 [[1968년]] [[6월]] 아들 성일을 낳았다. 그리고 이 해에 그녀는 해외로 나가기 위해 갑자기 수속을 밟았다.<ref name="hp104">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4페이지</ref> 사후 시신 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녀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유흥업소에서는 보통 접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인숙은 아기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유력 인사였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신원조회는 당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의 비서<ref name="hp104"/> 실장인 [[문학림]]이 맡았고, 고위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회수여권은 정일권의 비서관 [[신성재]]가 주선하였다.<ref name="hp105">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5페이지</ref> 여권 발급 날짜는 [[1968년]] [[12월 30일]]이고, 이후 정인숙은 [[1969년]] [[3월]] 큰오빠를 만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10월]]에는 [[워싱턴 D.C.]] 한인회장 [[노진환]]의 안내로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다가 [[1970년]] 1월 21일 귀국했다.<ref name="hp105"/>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그렇게 모두가 밉지는 않았을 걸 /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ref name="ilsa01"/><ref name="ReferenceA">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98페이지</ref>}}
         정성일은 정인숙의 사망 이후 외가에서 살다가 고등학생 때인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0년]]에 귀국했다.<ref name="hp107">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7페이지</ref> 정인숙을 죽이고 희생양으로 오빠 정종욱을 내세워 이 사건의 수사를 졸속으로 처리하게 한 배경, 배후는 오리무중이다.
         사건의 파장은 국회에까지 올라갔다. 겉으로는 범인을 잡아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이 사건의 파장은 국회에까지 이르렀다. [[1970년]] [[5월]] 열린 임시국회는 정인숙 사건과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으로 소란스러웠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대정부 발언을 통해 [[정인숙 사건]]과 관련된 의혹을 밝히라고 촉구했다.<ref name="kim9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99페이지</ref> 그 첫 출발은 [[법무장관]]이던 [[이호]]가 정인숙 사건을 자진해서 보고한 국정보고에서 시작되었다.<ref name="kim99"/>
         유진산 당수를 시작으로 [[조윤형]], [[김상현]] 등의 야당 의원들은 정인숙 사건과 관련된 소문을 전달하고 그 의혹을 추궁했다. 조윤형 의원은 [[5월 15일]] 정일권과 정인숙의 관계에 대한 소문을 본회의장에서 공개했고,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정인숙 수사에서 불거진 의혹을 밝히라고 요구했다.<ref name="kim100">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0페이지</ref> 조 의원은 이어 경찰이 정 여인 주변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경찰은 오빠 정씨가 정 여인 재산을 노리고 열등감에서 살해했다고 하지만 재산 자체가 정 여인 명의로 돼 있어 상속할 수<ref name="kim100"/> 도 없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조윤형 의원은 또 이 사건에 청부살인의 혐의가 없는가, 검찰이 [[3월 22일]] 밤까지 철야 신문하면서 복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변호사]]를 접근조차 못하게 해서 정씨를 범인으로 자백케 한 것은 아닌가, 정종욱이 병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 없고 모 인사를 불러달라고 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ref name="kim101">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1페이지</ref><ref>여영무, <추척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동아일보사, 1983) 171</ref> [[조윤형]] 의원에 이어 [[신민당]]의 [[김상현]]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인숙이 관계했을지도 모른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ref name="kim101"/>
         [[1989년]] 가석방된 [[정종욱]]은 정성일이 정일권의 아들이 틀림없다고 말한다.<ref name="kum10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9페이지</ref> 그에 의하면 '정일권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교동 집으로 찾아왔지요. 그리고 동생이 '그이가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한다'며 상의를 해 처음엔 가족들이 극구 반대를 했지요. 출산 후에는 일 주일에 한번 꼴로 찾아와 성일이를 안고 즐거워했으며,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소원을 이뤘다는 뜻에서 성일이란 이름까지 직접 지어왔어요. 성일이도 자기 아빠가 TV에 비치면 '아빠'라고 소리치며 좋아했지요.<ref>임은순, <오빠 정종욱 씨가 밝힌 '정인숙 사건'의 진상>, 경향신문 1991년 01월 16일, 14면</ref>'라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선우련]]도 정성일이 정일권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일권씨가 [[1971년]] 봄, 형님인 [[선우휘]] 씨를 찾아와 '이동원 외무장관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정 여인을 알게 되었으며, 내 아들을 낳았으나 공개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ref name="sung71">"정성일이는 내 아들, 정일권씨 71년 고백", 경향신문 1993년 2월 20일자, 23면</ref>"고 말했다.<ref name="kum109"/> 그러나 [[선우휘]]가 정일권을 만난 [[1971년]]과 같은 해에 정일권을 만난 재미언론인 문명자는 정일권에게 "문 기자, 나는 정인숙과 딱 한번 같이 잤는데, 그 아이가 내 아들일 니가 없소. 나는 이미 불임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ref name="kum110">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10페이지</ref>
         정성일은 '저는 당신의 아들이었습니다'라는 책에서 [[1991년]] [[11월]] [[미국]]에서 [[정일권]]과 대화를 나눈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한 대화에서 정일권은 정성일에게 "아가야, 나는..... 나는 지금 가슴이 떨려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구나. 내일 아침에 전화를 하고 다시 와주련?"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ref name="kum108">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8페이지</ref> 그러나 [[1993년]]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한 정성일은 "최근 정씨(정일권)가 나와의 직접 통화에서 '당신은 나의 아들이 아니며 내가 모시던 분의 아들'이라고 밝혔다."고 말해 자신이 [[박정희]]의 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ref name="kum108"/>
         {{인용문|그렇다면 초점은 그 아이가 정일권의 아들 정성일이냐, 아니면 박정희의 아들 박성일이냐로 좁아진다. ...(이하 중략)... 자, 문제의 아이 성일군이 정일권의 아들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아이의 정체를 알 수도 있었을 [[최대현]], [[노진환]], [[문학림]]이 정일권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박정희가 상당한 의혹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침묵을 지켰을 것인가? 당시 정일권은 과연 그만한 일을 강행할 만큼의 국정에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가? 그 후 정일권은 국회의원 자격도 없는 노진환을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밀어<ref name="kum108"/> 넣고 일등 공신 최대현을 청와대 사정 보좌관실에서 박정희의 비서로 일하게 할 만큼 정치적으로 강력했던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ref name="kum109">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9페이지</ref> 따라서 이 의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였다. 이렇게 보자면 성일군의 아버지는 누구였는지가 스스로 명백해진다. 또 하나 명백한 것은 성일군의 아버지가 성일군의 어머니인 정인숙 여인을 살해한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이걸 성일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골육상쟁극이었다.<ref name="kum109"/>}}
         * 정길화·김환균 외, 《우리들의 현대침묵사-한국현대사 미스터리 추적》(도서출판 해냄, 2006)
         * 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 오시만 . . . . 4회 일치
         그의 집안은 당색으로는 [[남인]]의 당원이었으나, 그의 부인은 [[서인]] [[한준겸]]의 4대손이었고, 그의 숙부이자 양아버지인 [[오정위]]는 자신의 서녀를 [[서인]] 당원인 [[김환]]의 첩으로 출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경신환국]] 이후 [[허새의 옥사]]로 [[서인]]과는 원수가 된다.
         이때 [[서인]]에서 그의 양아버지이자 삼촌인 [[오정위]]의 서녀를 첩으로 둔 [[서인]]당원 [[김환]]을 사주하여 오정위 등이 역모를 꾸민다고 무고, [[김석주]], [[김익훈]] 등이 날조한 [[허영의 옥사]]에 연루되어 [[서인]]의 공격을 당했으나 [[조선 숙종|숙종]]이 듣지 않아 사형은 모면하였다.
         ** 이복 서매부 : 김환
         * [[김환]]
  • 김영철(배우) . . . . 3회 일치
         [[1973년]] 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언론통폐합]] 이후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80년대 TV 문학관에서 거의 주인공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선우휘]] 원작의 단독 강화에서는 대사 없는 시체로 나온 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이병주 원작의 변명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프랑스]] 지식인[* 원작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던 블로크 교수의 총살 에피소드이다. 김영철은 여기서 1인 2역으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탁인수와 프랑스 교수 블로크를 모두 맡았다], [[심훈]] 원작의 [[상록수(소설)|상록수]] 주인공,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공 등이다. 체육인 출신이었던 덕에 젊은 시절에는 몸도 좋았던지라 KBS 특집극에서 [[손기정]]을 맡은 적도 있다.[* KBS 1TV에서 82년 1월에 5부작으로 방영했던 '맨발의 영광'이란 미니시리즈이다. 2013년에 작고한 [[강태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 손기정의 빛에 가려진 또 한 명의 [[마라톤]] 영웅인 남승룡 선수 역을 했다.] 대하드라마 [[토지(소설)|토지]]에서 김환 역을 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장편 사극 출연 경력은 1991년 KBS에서 방송한 '왕도'의 [[홍국영]] 역과 드라마 '토지'에서 김환 역으로 출연한 것과 외에 KBS 특별극 땅울림에서 고산자 [[김정호]] 역을 맡은 정도에 불과했으나, 이 역할을 맡은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출연하는 배우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는 [[최수종]]과 꽤나 비슷하다.
         || 1987년 || [[토지(소설)|토지]] || KBS1 || 김환 역 ||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김준영은 데뷔 직후 온게임넷의 2004년 1차 챌린지 리그를 통해 최초로 개인리그에 등장했고, [[김환중]](당시 [[G.O 팀|G.O]], 은퇴)에게 2:0으로 패배하였다. 세 차례의 챌린지 리그 도전 끝에 2005년 CYON [[듀얼토너먼트]]에 진출했고, 2승을 거두면서 [[EVER 스타리그 2005]]에 진출하며 최초로 메이저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 부산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환진]] - 동구(부산)
  • 서울특별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환희]] - 노원구
  • 정기성 . . . . 1회 일치
         * 《[[동이 (드라마)|동이]]》 (2011년, MBC) - 김환제자 역
  • 황은진 . . . . 1회 일치
         * [[1993년]] 《[[김환기]]와 [[구본웅]]의 기묘한 친척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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