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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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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 . . . 14회 일치
         과거로는 도저히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친구 [[권람]]으로 하여금 [[수양대군]]을 찾아가 거사를 논의케 했고, 다시 [[권람]]에 의해 천거되어 [[수양대군]]의 책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8) 115페이지</ref>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여 [[김종서]](金宗瑞), [[황보 인]] 등 대신이 집권하자, 친구인 교리(校理) [[권람]](權擥)의 주선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자주 만나며 집권 계획을 역설, 무사 [[홍달손]](洪達孫) 등 추천하여 그의 심복을 삼게 하였다.
         [[1453년]](단종 1년) [[군기감]]녹사(軍器監錄事)가 되고, [[1453년]]초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심복 참모로서 비밀리에 사람과 재물을 동원, [[계유정난]]을 일으켜 [[한성부]]를 점령한다. 이어 [[김종서 (1383년)|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의 집권에 큰 공을 세웠다.
         그해 [[10월]]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의병(義兵)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김종서]]와 [[황보 인]]을 제거한다고 하자 실패를 걱정하고 군사들은 우왕좌왕하였다. 그러자 그는 칼을 빼어 들고 큰 소리로 말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한명회의 독려에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날 사병들을 동원하여 비밀리에 매복시키고, 그날 저녁 [[한성부]]를 점령하였다. [[홍윤성]]과 [[홍달손]]이 이끌고 온 군사들과 합류, [[김종서]]와 [[황보 인]]의 집을 습격하여 이들 일파를 제거하였다. 당시 [[집현전]] 학사들 중에는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막강한 권력에 반발하는 뜻에서 한명회를 지지하는 여론도 조성되었다.
         이어 한명회는 모사가들을 시켜 잔존 세력을 숙청한 후, 직접 [[김종서 (1383년)|김종서]]와 [[황보인]]의 집에 찾아가 [[김종서 (1383년)|김종서]] 등과 [[황보인]] 일족을 참살케 한 후 군기녹사(軍器錄事)·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 1등관이 되었다.
         [[1453년]] [[계유정난]] 때 자신이 끌어들인 [[홍달손]] 등의 무사로 하여금 [[김종서 (1383년)|김종서]]를 살해하게 했고,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해 조정 대신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기도 했다.<ref name="park115"/> 정난 성공 후 그는 1등 공신에 올랐다. [[계유정난]]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하들의 성향과 능력,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지지, 설득의 가능성 여부 등을 파악하여 [[살생부]]를 작성했다. 이후 [[살생부]]는 숙청과 제거, 인사의 대명사로 널리 통용되었다.
         * 이덕일,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옥당, 2010)
  • 김태우(god) . . . . 8회 일치
         그중 하나가 14년 9월 [[매직아이]]에서 '[[김종서(가수)|김종서]]한테 인사를 드렸는데 후배 [[아이돌]]이 인사를 아무도 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부 복도로 집합해서 김종서에게 인사 시킨 사건'[[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5755416|#]]으로 인해 김태우가 잘 한 일인가? 아닌가?에 대한 설전이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김종서의 기분은 어땠을까?'라는 점이다. 김종서가 했던 이야기는 ''''너밖에 인사를 안 했어''''인데, 그 말의 뜻은 '인사를 와 줘서 반갑다'이지 '후배들이 인사 안 했으니 혼내줘'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태우는 김종서의 입장을 고려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과잉충성|선배를 위한답시고 후배들을 집합시켜 군기를 잡고 반강제로 인사시켰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인게, 자칫하면 결과적으로 김종서를 엿먹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2018년 1월 해피투게더3에 나와 이 사건을 다시 언급했으며 이때는 자신이 후배에게 한일이 과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했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6&no=4092847|#]] 알고보니 김종서 뿐만 아니라 옆에서 김태원도 자고 있었는데, 둘다 왜 이러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 이순재(1935년 10월) . . . . 6회 일치
         [[전라북도]] [[전주시]][* 그 유명한 [[김종서]]의 [[6진 개척]]에 나오는 6곳 중 하나.] 출생,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출생지는 전주이지만, 4살 때([[1938년]])에 조부모님이 계신([[전라북도|전북]])로 왔고, 해방 후 부모님도 전북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등록금]]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전주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0년]], [[6.25 전쟁|6월 25일]] 동생[* 이명재(1994년 사망). 남동생의 아내 이름은 중견 탤런트 [[정혜선(배우)|정혜선]]과 동명이인이다.] [[수영복]]을 사러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673|#]]
          * 파천무(1990, KBS)/김종서
          * [[공주의 남자]](2011, KBS)/김종서[* 파천무 이후 21년만에 다시 맡은 김종서 역할. 본인도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최근 2012년 공주의 남자 일본진출에 따른 현지 매거진에 의하면 김종서에 대해 많은 자료를 접하고 연구하여 연기에 임했다 한다. 김종서는 공교롭게도 이순재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 거미(가수) . . . . 2회 일치
         2014년 2월 7일에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주현미]]편에 출연하여 다섯번째 순서로 나와서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열창하여 우승을 거머쥐었다. 점수는 무려 '''445점'''으로 바로 앞 순서로 나온 [[김종서(가수)|김종서]]가 '''442점'''으로 종전 [[정동하]]가 세웠던 최고기록 439점을 깨자마자 다시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 단종 . . . . 2회 일치
         문종의 적장자로, 조선 왕조 최초로 원손-세손-세자-왕이 된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타고난 왕'''이다. 그러나 문종이 너무 일찍 서거한데다 문종이 일찌기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수렴청정과 같은 왕권 수호책을 펼치기 힘든 등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을 위시한 장성한 숙부들의 정치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종도 일찌기 이러한 우려를 하고는 있었으나, 형제들과 다투며 보위에 오른 태종과 자신의 선례를 의식했는지 과감하게 이들의 힘을 거세하지 못하고 다만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원로 대신들에게 단종을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즉위한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실권을 잡으면서 사실상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고, 그 후 금성대군과 손잡고 수양대군을 견제하려다 실패하고 나머지 친위세력이 모조리 거세된 뒤 이 일을 빌미삼은 수양대군 일파의 압력에 밀려 결국 즉위 3년만에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밀려난다.
  • 울진군 . . . . 2회 일치
          * [[김종서(가수)|김종서]] : 가수
  • 이선희 . . . . 2회 일치
         2000년 5월 31일에서 2000년 10월 31일까지 [[새천년민주당]]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잠시 지낸 그녀는 [[새천년민주당]] 탈당을 한 이듬해 2001년 3월, [[유영석]], [[박진영]], [[김종서 (1965년)|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도운 12집 《[[My Life + Best]]》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MBC 10대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이별소곡>은 조용한 느낌을, <이 노래를 빌려서>는 슬픈 감정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격려와 희망을 주며 인기를 끌었다. 2002년에는 [[영화]] 《[[가문의 영광 (영화)|가문의 영광]]》에 1988년에 발매했었던 <나항상 그대를>이 삽입되어 후세대 사람들에게도 각인되었다.
  • 하현우 . . . . 2회 일치
          * 보컬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하드웨어'''. 동년배의 보컬리스트 중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다.[* 록 보컬리스트들 중에서도 이만한 폭발력과 하드웨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인물들은 외인부대와 아시아나 보컬 당시의 [[임재범]], [[김경호]], [[김종서(가수)|김종서]], [[윤도현]], [[김바다]], [[부활(밴드)|부활]] 보컬 당시의 [[박완규]] 정도로 손꼽힌다.][* 현재로써는 동년배 보컬 중 [[이수(가수)|이수]]나 [[김범수]] 정도. 다만 이수는 주 장르가 팝 발라드인 이상 3옥타브 후반대의 초고음보다는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의 중고음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범수의 경우 아직까지 보여준 음역대가 하현우보다 낮다. 즉, 현재 최고의 하드웨어는 하현우가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김범수는 락 가수가 아닌데다, 가창의 정석과 같은 가수라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다.] 타고난 성량을 바탕으로 [[흉성(발성)|흉성]], [[두성]], [[샤우팅]]을 이용해 [[파사지오]]를 넘나드는 광활한 음역대가 가장 큰 강점이자 특징이다. 현 대한민국 가요계의 보컬들 가운데 최정상급의 발성을 사용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라이브에서 무대를 온통 휘젓고 뛰어다니고 거기에 격한 기타 연주까지 하면서도 노래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하현우의 발성이 아주 탄탄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김영철(배우) . . . . 1회 일치
         대왕세종이 기존의 대하사극의 느낌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가면서 호불호가 명확한 작품이 되버렸고 시청률도 부진해서 덩달아 태종 이방원역까지 아쉽게 묻힌데 비해 공주의 남자는 달랐다. 기대치 않았던 젊은 주연배우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에서 기생 '정향' 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이긴 했으나 주연은 아니었으며 애초에 분량이 적고 조용한 캐릭터였다. 당시 공주의 남자 메인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더군다나 [[아가씨를 부탁해(드라마)|아가씨를 부탁해]] 이후 소속사 계약만료로 약 2년간 공백기가 있었다가 [[괜찮아, 아빠딸]]로 복귀한 후였다. [[박시후]]도 사극 출연은 2008년 [[일지매(2008년 드라마)|일지매]]가 전부이며 사극의 메인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일지매에서의 연기는 그야말로 발연기여서, 공주의 남자 방영전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 게다가 [[송종호]]는 아예 사극 첫 출연이라 당시 극 초반에 발성이 무척 어색했다. 결국 촬영 중에 이순재로부터 사극 발성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너무 불안한 캐스팅이라 느꼈는지, 서브조연 커플인 경혜공주와 정종 역은 [[왕의 여자]], [[대조영(드라마)|대조영]] 등에 출연해 나이에 비해 사극 경험이 풍부했던 [[홍수현]]과 동 나이대 사극본좌 [[이민우]]가 캐스팅되었다.] 속에서 이순재와 함께 극의 중심을 잡아주며 예상치 못한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얻게한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김종서]] 역을 맡은 [[이순재]] 옹과의 연기 대결은 이 드라마 초반부의 백미. [[박시후|드라마 두]] [[문채원|주인공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 훌륭하다고도 볼 수는 없었는데[* 실제로 연기대상에서 두 주인공이 남녀 최우수상을 싹쓸이하자 드라마 인기빨로 수상했다는 말이 조금 있었다.] 베테랑 김영철이 중간에서 미칠듯한 연기를 뽐내는 바람에 더 그래보였다(…). 이순재가 극의 1/3 지점에서 퇴장한 이후에도 홀로 미친존재감을 선보이며 끝까지 열연했다. 이 작품은 최고시청률 25%까지 기록했는데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수양대군 캐릭터는[* 궁예나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포지션이다. 그냥 '''악역 그자체'''. 아마 김영철이 연기한 배역중 최악이자 최고의 악역이 아닐런지.] 욕을 한사발 얻어먹으며 '''[[천하의 개쌍놈]]'''이라 씹혔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 화에서 나름 반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져 시청자들의 평가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mNFY4R3IA5A|마지막회영상(스포주의)]] 한 네티즌의 말에 따르면 김영철의 열연 덕에 24화동안 쌓아온 욕들 어디로 가고 수양대군을 안쓰러이 여긴다는 반응이 대다수라 황당했다고.(...)[* 사전제작이었던 초반에 비해 중반 이후 퀄리티가 떨어졌으나 순전히 김영철만의 광기어린 열연으로 극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물론 박시후와 문채원도 제 몫을 다해줬다.] 종영 직후 나온 기사에도 수양대군의 마지막 모습을 연기한 김영철에 감탄하는 댓글이 많았다.[[http://news.nate.com/view/20111006n35385?mid=n1008|당시기사]]
  • 세조 . . . . 1회 일치
         단종이 즉위한 뒤에는 [[한명회]] 등을 비롯한 모사나 왈패들을 모으며 정국 불안을 주시하다 동생 [[안평대군]] 일파가 정변을 꾀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수를 쳐 황보인과 김종서 등을 참살하고 궁을 장악하여 실권을 잡는다(계유정난). 그 후 반 수양대군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단종을 협박하여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 세종 . . . . 1회 일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한 왕이기도 하며,북방의 여진족을 경계해 이징옥과 김종서를 보내 정벌하기도 했다. 음악(예악), 과학 기술 분야에도 힘을 쏟은 등 다방면에 걸쳐 주요 업적을 주도하여 조선 왕조를 기반에 올려놓았다. 본인도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신하들도 그 학문적 깊이에 밀려 쩔쩔맬 때가 많았다.
  • 한인수(탤런트) . . . . 1회 일치
          * [[인수대비(드라마)]] -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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