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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병철(야구인)
         2000년대 이전까지 투수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감독은 한국에 거의 없는데다[* 유이한 예외라면 최초로 투수 분업 시스템을 정착시킨 1994년의 LG [[이광환]] 감독, 정민태와 정명원 등을 재활시킨 태평양의 [[정동진]] 감독 정도 뿐이다. --심지어 이광환도 95년 후반에 갑자기 돌아서 이상훈을 4일마다 등판시킨 전적이 있다.--][* 사람들이 곧잘 잊어먹는데 1984~1985년의 삼성도 [[김일융]] 아니면 [[김시진]]이 다 해먹었다. 물론 삼성은 김일융, 김시진 이 두명의 에이스 외에도 뒤를 받쳐줄 투수가 많아 최동원 혼자 분투하는 롯데보다 사정이 훨씬 나았다.] 최동원이 하락세를 탄건 프로와서의 혹사와 더불어 이미 아마때부터 쌓이고 쌓인 혹사의 누적[* 84년 한국시리즈 이전에도 최동원은 [[한국실업야구]] 시절 육군경리단과의 한국시리즈 6경기에 다 나오는 등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혹사를 당했었다. 물론, 이때도 팀은 롯데...단, 감독은 강병철이 아니었다.]과 더불어 선수협 관련으로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면서 한동안 운동을 쉬었던 탓이 크다.
  • 강영식
         그래서 그런지 [[선발 투수]]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을 때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탈삼진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끔씩 몰리는 공에 장타를 크게 맞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서두에 상술되어 있듯이 새가슴으로 유명한데, 이는 불펜 투수로서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비교적 제구 잘 되는 날의 비율이 높으며 구위도 언터처블한 모습을 보이지만 잔부상이 잦고 체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지 이후 귀신같이 피홈런이 증가. 설명서가 필요한 불펜 투수의 전형적인 사례. 그래서 [[양승호]] 감독 체제에서 아주 잘 써먹은 반면, [[김시진]] 체제에서는 한 달만 잘 하다가 나머지 달에는 원 포인트로 기용되어 많이 말아드셨다. [[제리 로이스터]] 前 감독 때는 2008시즌 언터처블이었으나 불펜 붕괴로 이후 시즌에는 다소 불가피하게 혹사당한 감이 있다.
         초반에는 홀드를 좀 따내는 등 망한 롯데의 불펜에서 김성배와 함께 일을 하는 몇 안되는 투수였지만, 점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정대현(1978)|정대현]], [[이명우]], [[김승회]]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필승조에서 밀려났다. [[김시진]] 감독의 [[좌우놀이]] 성향상 좌타에 등판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말아먹으며 아직도 사용법 못 익혔냐고 팬들은 감독을 깠다. 하지만 우타 상대로 나왔을 때도 크리켓을 했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투수이니만큼 어떻게든 종종 등판하지만 까였다. 위기상황에 등판하면 볼넷 내주고 그 뒤치다꺼리는 김승회가 하는 모습이 패턴으로 자리잡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이 좌우놀이 대신 1이닝제를 적용해보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롯데팬들은 1년을 날려먹고서야 강영식의 활용법을 알았냐며 또다시 감독을 까는 중(...).
  • 공필성
         [[롯데 자이언츠|롯데]] [[프런트]]가 [[정민태]]와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등 [[김시진]] 감독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코치 4명을 2군으로 내리려고 하자 [[김시진]] 감독이 반발하며 자진 사퇴하려고 했을 때, 프런트에서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가려고 했다는 기사가 떴다.[[http://sports.donga.com/3/all/20140824/65973966/3|관련기사]]
         당연히 팬들은 [[내가 고자라니|이게 무슨 소리냐]]며 어이를 상실했고, [[최하진]] 사장과 신동인 구단주 대행이 반려를 먹여 무산시켰다. --그리고 [[김성근]]이나 [[김진욱(야구)|김진욱]] 데려오자던 팬들은 뒷목을 잡았다고...--[* 다만, 이 부분은 오히려 동문인 구단주 대행 덕에 목숨을 부지한 [[김시진]]이 언플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판단은 알아서. [[김시진]]은 결국 짤리다시피하며 사임했기 때문에 이런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타팀 팬들은 신나서 '''[[감동님|공감니뮤ㅠㅠ]]'''를 외쳤다.~~
  • 김명성 (1988년)
         특히 그는 당시 대표팀 [[투수]]코치로 [[조범현]] 감독을 보좌한 [[김시진]]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김시진]] 감독은 당시 금메달이라는 대승적 목표를 위해 투수코치를 자원한 후 소속팀을 가리지 않고 태극마크를 단 투수들을 지도했다. 그도 이런 혜택을 본 선수 중 한 명이다.
  • 김상엽 (야구인)
         [[1993년]] 시즌 170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올랐으며, [[김시진]]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2번째로 기록한 탈삼진 1위였다. [[1995년]]에는 17승을 거둬 199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대적으로 투수진이 열악하였던 소속 팀 [[삼성 라이온즈]]의 특성상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무리한 투구로 혹사당했으며, 어깨 및 허리 부상으로 지속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고 [[1998년]] 이후에는 전력에서 이탈했다.
  • 김성갑(야구선수)
         2012년 9월 17일 뜬금없이 [[김시진]] 감독이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65809&m_url=%2Fcomment%2Fall.nhn%3Fgno%3Dnews382%2C0000065809|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못지 않게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어떻게든 추스리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보인다.
         다만 김성갑 본인은 '''[[유이(배우)|유이]] 아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해한다고 한다. 가장 근래의 예로 [[2012년]] [[김시진]] 감독의 해임 이후 시즌 중간에 감독대행으로 선임되었을 때, 팀이 졌을 때 감독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며, [[유이(배우)|유이]] 아빠라는 호칭보다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081085|김성갑이라는 이름의 야구인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외부에서 [[유이(배우)|유이]] 아빠로 불리면서 혹시나 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염려되는 마음에서였다고.
  • 김세현 (야구 선수)
         [[2007년]] 시즌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됐고, 선수단을 승계하여 새로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에서 혹독한 2년차를 겪으면서 [[2008년]]과 [[2009년]]에 뚜렷한 활약이 없었다. [[2009년]] 18서울에 등판해 1승 3패,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시진]]이 [[강윤구]]와 함께 선발진에 진입할 만한 선수로 꼽았고 당시 투수 코치였던 [[정민태]]도 가능성을 인정했다. 코칭 스태프들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으나, [[2010년]] [[1월 4일]]에 개인 훈련 중 무릎 십자 인대가 파열돼 [[2010년]] 시즌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재활했으며,<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3031185 왼쪽 십자 인대 파열 김영민, 올 시즌 사실상 아웃] - 뉴시스</ref> 이로 인해 병역이 면제됐다. 재활 후 [[2011년]]에 복귀해 [[2011년]] [[6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데뷔 첫 선발 승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6170002 무릎 부상 이겨낸 김영민의 값진 첫 선발승] - OSEN</ref> 그러나 무릎 부상이 재발해 8경기 출장에 그친 채 다시 엔트리에서 빠졌다.
  • 김시진(야구감독)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5> '''{{{#FFFFFF 김시진의 감독직}}}''' ||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5> '''{{{#FFFFFF 김시진의 수상 경력}}}''' ||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74CA1><bgcolor=#074CA1><:> '''{{{#FFFFFF 김시진의 역대 등번호}}}''' ||
         || [[김한근]](1982) || → || '''김시진(1983~1988)''' || → || 홍성연(1989~1990) ||
         || 오명록(1987~1988) || → || '''김시진(1989~1992)''' || → || 김종석(1993) ||
         || 결번 || → || '''김시진(1993~1995)''' || → || 팀 해체 ||
         || 팀 창단 || → || '''김시진(1998~2007)''' || → || 팀 해체 ||
         || [[윤학길]](2008) || → || '''김시진(2009~2012)''' || → || [[최만호]](2013~2015) ||
         || [[윤학길]](2011~2012) || → || '''김시진(2013~2014)''' || → || [[손상대(야구선수)|손상대]](2015~2018) ||
         ||<-2><#FFFFFF> {{{#000000 김시진(金始眞 / Si-Jin Kim)}}} ||
         넥센 팬들에게는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이상군|사람만 좋은]] [[김용수|무능력자]]''', 롯데 팬들에게는 '''[[8888577]]이후 다시 비밀번호를 만들어버린 역적''', 삼성 팬들에게는 '''승리의 마스코트'''로 기억되는 남자[* 선수시절은 에이스투수로 승리를 안겨줬고, 감독시절은 말그대로 친정팀에 승리를 조공했다.]. 전 소속 팀 넥센은 김시진을 해고한 다음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고 2014년에는 코시진출에 성공하였으나, 우승을 위해 김시진을 모셔왔다는 롯데는 부임 첫해부터 5년간 이어온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깨버렸다.
         == [[김시진/선수 경력|선수 경력]]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시진/선수 경력)]
         몸이 늦게 풀리는 기질이 있어서 등판 직후 꽤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김시진이 털린다면 1~3회 내로 집중공략당하거나 몸이 안 풀려서 자멸하는 등 빠른 시간에 털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아마 수많은 피볼넷의 몇몇은 몸이 안 풀렸을 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계투로는 적절하지 않은 스타일.[* 실제 김시진은 당대 에이스 치고는 불펜 등판 빈도가 적은 편이나, 불펜 등판 빈도가 줄어드는 건 커리어하이 바로 다음 해인 1986년 시즌부터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커리어 후반기에는 아예 현대 야구의 선발투수 수준으로 불펜 등판 빈도가 적다.]
         외적으로 삼팬들이 크보 역대 최고의 두뇌파 투수라고 찬양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최고의 두뇌파 투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사실이나 볼넷이 매우 많아서... 때문에 역대 최고의 두뇌파 투수는 김시진보다는 [[장호연]]이나 [[정삼흠]]을 꼽는 사람이 많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대구상고/삼성시절의 인연으로 [[정동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고,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코치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허나. 96년도 창단 당시 현대는 [[하기룡]] 코치가 투수코치를 맡았고 김시진은 [[실업야구]]팀인 [[현대 피닉스]]에서 코치로 하면서 실업 리그를 아예 여포로 만든 방면에 명성을 쌓고 있었다. 그러다가 97년 말에 1군으로 올라와 98년도 당시, 10승 투수를 만들기 위해 자금난으로 망해가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상대로 포수였던 '''[[박경완]]'''을 낚아채는 일가견이 있었고 [[조규제]]/[[마일영]]을 잡아오는 공로가 있었다.] 과거의 명성답게 투수 육성에 강점을 보이면서 [[현대 유니콘스]]를 투수왕국이자 강팀으로 이끄는데 일조했고, 투수 전문가로써 명성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조련을 겪은 투수들은 한동안 좋은 스탯을 보여 주다가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부진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조용준]], [[오주원|오재영]], [[신철인]], [[황두성]] 등 많은 투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했다.[* 김수경은 2007년까지 10승을 올리더니, 우리 히어로즈로 바뀌자마자 [[DTD|추락했다]]. 조용준은 2005 시즌 이후부터 기약없는 재활에 [[노답|들어갔고]], 신철인은 2006 시즌 이후로 1군에서 '''사라졌다'''가. 그리고 다시 조용준, 신철인은 2010년에 모두 [[방출]]당했다. 황두성 역시 2009 시즌 이후로 공기화됐고, 2011년에 은퇴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인 건 엄청난 연투를 시키면서도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등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투수관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연투를 시키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등 오직 감으로만 투수교체를 한다. 코치 시절부터 연투와는 상관없이 그저 지나 이기나 무조건 기용하는 선수만 기용하고 병적인 좌우놀이 성향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의 신철인의 '''6연투 기사'''는 김시진의 투수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076&aid=0001995931|6연투를 시켰다는 기사]]
         김시진 본인과 정민태 코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파 투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떠난 이후로도 히어로즈의 투수들은 상당수가 140km/h의 볼과 그것을 뒷받침 할 슬라이더와 120Km/h의 낮은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삼고 있는데 제구 불안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걸 떠날 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현재도, 2019년이 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 투수진들 보면 아직도 [[장작]] 쌓고 불놀이 하는 투수들이 많다. 그렇다고 김시진 경질 이 후 변한건 [[그런 거 없다.|없었다]].
         그리고 경질 이 후 2013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해서 투수를 키워내기는 커녕 있는 투수마저 다 '''[[족까고마|망가뜨리는]]''' 모습에 역시나 투수 조련가는 거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도 나오던 평이었는데 당시 현대는 아마 시절부터 최고로 꼽혔던 선수들을 비싼 계약금을 주고 싹쓸이했었다. 즉, 야구는 기본적인 자질이 굉장히 중요하기 마련이므로 김시진이 투수들을 다 키웠다는건 어불성설이다.[* 허나, 현대 유니콘스 시절 투수 코치 부임 때는 여론 때문인지 몰라도 타 팀 프런트들 마저 부러움을 받았었다.]
  • 김육
         [[김집]], [[송시열]], [[김상헌]], [[송준길]], [[김경여]](金慶餘) 등 대동법 반대파들의 공격이 얼마나 심했으면 지평 [[김시진]](金始進)이 경연 자리에서 효종에게 이를 지적했다.
  • 김재박
          * 2014년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자 [[박정태]]와 함께 롯데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현대와 LG 시절부터 '초기 투자'를 많이 요구하던 김재박의 스타일을 들어 박정태 단독후보로 내세우면 욕먹을까봐 낸 구색맞추기 용 후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단은 [[이종운]]이 감독으로 선임되어 1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래도 [[양상문]] 역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를 이끌었고, 김재박이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프런트가 시의 적절한 지원을 하는 구단의 감독이 될 경우 호성적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 김진욱(스포츠해설가)
         또 아래 항목에는 관리야구 관리야구 하지만 그가 재건한 투수진이 바로 다음 해에 선발부터 불펜까지 한번에 아작이 났다는 점에서 이런 옹호에 대한 재반론 또한 존재한다. 계산기라는 비아냥을 받은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외인용병과 불펜 승리조를 극한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끔찍한 대패조(...)를 힘들게 써먹고 진짜로 헬스 트레이너를 존중하여[*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닝 파트를 총괄하는 [[이지풍]] 코치의 경우 [[염경엽|염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간단하게 뭘 하고 싶어도 이지풍이 NO하면 [[염경엽|염 감독]]은 두말 않고 바로 포기한다. 다만, 전에는 마치 염 감독이 들어와서 이지풍을 코치로 올린 것처럼 서술되어 있었는데, 사실 이지풍이 코치로 승격된 것은 김시진 감독 시절인 2010년이었다. 전신 유니콘스 시절까지 따지면 [[김용일]](현 LG 코치)이 첫 번째 트레이닝 코치였다.] 야수진의 체력을 안배해 가며 관리야구를 구현, 정규시즌에 그 삼성을 위협했다. 또 쪽동님을 제외한 다른 [[감동님]]들은 오히려 주로 부임 초기 전임자 덕을 보고 나중에 진짜 밑천이 드러났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그렇다고 쪽동님이 [[감동님]]이 아니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김승회]]는 13 후반기에 급격히 페이스가 하락하면서 이게 12시즌의 그 김승회가 맞나 싶을 정도의 모습으로 13시즌을 마감하였다. 단 [[김시진]] 감독이 [[김승회]]를 전반기에 상당히 굴렸다는 걸 감안하면 후반기에 퍼진게 어찌 본다면 당연한 결과일수도 있다. 그리고 14시즌에 김승회가 마무리로 정착하면서 혹사가 줄었고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며 롯데의 뒷문을 잘 막아주고 있다. 그런데 2015 시즌에 SK로 간 이후에는 ERA 6점 정도의 불펜이 되면서 [[망했어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두산에 결코 손해될 건 없었다는 이야기.
          * 선수 시절의 전성기가 짧았기 때문인지 현역 감독 중 인지도가 가장 딸렸다.[* 2012년 기준 8개 구단 감독 중에 [[김시진]], [[류중일]], [[선동열]], [[이만수]], [[한대화]], 는 리그를 씹어먹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며 [[양승호]]만이 선수 시절보다 더 유명세를 탄 경우. 이쪽은 다름 아닌 '''양승호구'''. 2013년에는 한대화가 빠져나가고 김응용이 한화 감독으로 왔고 정작 한대화는 KIA로 김시진은 롯데로 [[염경엽]]은 넥센의 새 감독으로 임명됐다. 염경엽은 선수시절 당시 커리어와 인지도에서는 김진욱에게 밀리나 LG 코치 시절 [[프런트]]의 배후 흑막이라는 루머로 유명세를 타서(...) 인지도가 더 높다.] 실제 2012년 한국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도 김진욱 감독은 다른 감독들에 비해 주목을 확실히 덜 받았고, 말수도 적었다. ~~사실 [[링고 스타]]와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 게다가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우승감독 출신인 [[이토 쓰토무]]가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일부 팬들은 김진욱 바지감독 이토 실세 코치로 여겼다. 아래 짤은 사실이 아닌 개그다. 실제로는 이토 코치랑 의견 차이가 커서 이토는 거의 놀다가 갔다고 한다. 차라리 짤이 진짜라면 팀이 이렇게 돌아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 류명선(야구선수)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야구선수)|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태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김상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가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끝에 1991년 이후에는 위력이 크게 저하된 것을, 생각하면 내구성도 좋았던 편.
  • 박종윤
         작년 준플 3차전에서 보여준 맥아리없는 모습 때문인지 해가 바뀌어도 여론이 극히 안좋았다. 시범경기에서 주전 1루수로 낙점받았는지 많은 타석을 소화했는데 별반 나아진게 없어서 시즌 전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점점 좋아졌던 김시진 감독에 대한 여론도 덩달아 깎여내려갈 정도로 팬들에 대한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
         7월 24일, [[김시진]] 감독은 타격 부진을 이유로 [[정태승]]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였다. 2명을 대신해 ~~강억삼~~ [[강영식]]과 ~~까나리~~ [[김수완]]을 1군으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67794|등록시켰다.]]
         8월 6일, [[김시진]] 감독은 다시 박종윤을 조홍석과 함께 1군에 다시 올렸다. 김시진 감독은 잘치는 타자들을 4번에 올리면 이상하게 못한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박종윤을 4번에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90745|쓰겠다고 하였다.]]
         시범경기에서조차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며 선발 라인업에서 볼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의 부상공백~~그리고 장성우 사건~~으로 인해 3년 연속 개막전 1루수로 출장했다... ~~타고난 운빨~~ 타순도 무려 5번. 그런데 정작 본 시즌에서 ~~역시 팡야존으로 들어온 공을 쳐서~~사직구장 첫 홈런을 터뜨리고 개막 4경기 4-5-6을 찍으며 ~~아시안게임을 위해 발악중인~~황재균과 함께 공수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한 달씩 중심타자급 성적을 찍고도 시즌을 말아먹어 온 박종윤이라 팬들의 기대치는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두 돼지들의 내구력과 1루 수비력이 걱정스러운 만큼~~일단 잘 해주면 고맙다. 김시진 감독이 복귀를 준비중인 히메네스와 비교하면서 고민을 할정도. ~~믿을 수 없는 볼삼비 1:1을 유지 중이고~~ 히메네스 복귀 이후에도 [[최준석]]과 플래툰으로 출장하고 있으면서도 주전 1루수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4월 중순까지의 평가.'''
  • 박흥식(야구)
         한때는 이승엽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다소 침체기에 빠져 있었으나, 미국 연수 이후 출루와 장타를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식 공격 스타일을 공 맞추기에 급급하던 한국프로야구에 전파하며 타격코치로서의 부활에 성공하였다.~~그러나 김시진 사단에서 투코 정민태와 세트메뉴로 끌려다니며 팀 순위가 안 나오는 것이 함정이다.~~
         결국 새로 부임한 [[염경엽]] 감독이 며칠 뒤 LG 시절에 알고 지내던 [[허문회]] [[상무 피닉스 야구단]] 타격코치를 넥센 1군 타격코치로 선임했다. 갑작스레 자리가 빈 상무의 타격코치에는 당시 LG에서 방출당한 [[손인호]]가 부임했고, 반면에 박흥식에게 밀린 [[박정태]] 타격코치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임한 후[* 그런데 원래 박정태는 시즌 끝나고 자진사퇴했다. 아무래도 이 문장에서는 김시진이 자기 인맥을 데려와 박정태를 내친걸로 오해하기 쉽다.], 쓸쓸히 [[롯데 자이언츠]]를 떠났다.
         [[박정태]] 코치의 막장행각에 질린 롯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타격은 최악으로 평가받는 작년 시즌과 비교해도 더 답이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감독인 김시진을 비롯해서 [[정민태]], [[공필성]] 코치와 더불어 엄청나게 까였다. 주전 타자들의 선구안과 수 싸움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건 고사하고 스윙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도([[강민호]]·[[전준우]]가 대표적)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장거리 타자로 키워 보겠다던 [[김대우(1984)|김대우]]는 초반에 반짝하고 완전히 버로우틀 타 버렸으니.[* 다만 타격이 답이 없는 건 FA로 [[김주찬]]과 [[홍성흔]]이 이탈한 탓이 크다. 주축 타자 중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강민호]]를 제외하면 적어도 2012 시즌보다 못하는 타자는 없다. 한마디로 아무리 못해도 [[박정태]]처럼 비난받기는 이르다는 얘기다.]
         2014 시즌 팀 OPS 3위를 기록했지만 [[김시진]] 사단을 정리하려는 프런트에 의해 10월 26일 부로 [[정민태]]와 함께 해임을 통보받았다.
         무엇보다 타격 잉여삼신기로 불리던 박종윤, 문규현, 이승화 중 둘을 터뜨린 것은 기적에 가깝다. 각각 면제와 경찰청 입대로 희비가 갈리기는 했으나 밀어치는 [[박정태|전임 타코]]의 저주로 몰락했던 황재균, 전준우 또한 어느 정도 갱생시켰고 롯데 팬들이 절실하게 터지기를 바라던 정훈도 상당히 키워 놓았다. 이런 성과가 김시진 사단의 투수라인 삽질과 롯데 프런트의 막장 행태에 휘말려 다소 묻힌 감이 있다. 롯데 팬들의 공공의 적 취급받는 정민태나 당당히 [[감동님]] 대열에 합류한 김시진과 달리 재취업이 어렵지 않을듯. 그리고 이 예상대로 기아 타이거즈로 옮겼다.
  • 배영수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선동열
         * 역대통산 최소자책점 1위 (통산 220점- 비고: 역대최다승 10위내 모두 통산 600점이상 허용 (김시진제외- 547점))
         {{s-bef | before = [[김시진]]}}
         {{s-aft | after = [[김시진]]}}
         {{s-bef | before = [[김시진]]}}
  • 손승락
         9월 24일 금요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6:3으로 넥센이 앞서 있던 8회 2아웃에 등판하여 네 명의 타자를 삼진 처리하며 26세이브를 기록, 세이브왕이 되었다. [[넥센 히어로즈]] 선수로서는 최초 타이틀 홀더. 그 해 [[오승환]]은 시즌 중 또 다시 찾아온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고 이전까지 1위였던 [[이용찬]]이 불미스러운 음주운전 사건으로 시즌을 마감했기 때문에 손승락이 세이브 경쟁에서 낙승했다. 게다가 [[이용찬]]보다 [[평균자책점]]이 무려 1점이나 낮으며 블론 세이브도 2개 더 적다. 이닝 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안 게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어차피 [[경찰 야구단|경찰청]]에서 갓 제대했기 때문에 병역으로는 별 상관 없기는 했다. 대신 같은 팀 내에서는 유격수 [[강정호]]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 A팀에 발탁됐고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출된 [[김시진]] 감독과 함께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 병역을 면제하며 여러 모로 [[넥센 히어로즈]]에 경사를 안겼다.
         [[김시진]]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이정훈(투수)|이정훈]]을 마무리로 쓰고 손승락은 선발로 전환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동계 훈련에서 생각만큼 선발 전환이 쉽지 않자, 그대로 마무리로 결정되었다. 항간에는 이장석 대표의 처지를 고려해서 그냥 한 말이라는 설도 있는데....
         다만 이전 시즌들과 비교했을때 전체적으로 피안타율이 많이 높아진 것을 보아서 투구폼 변경으로 인한 구위 하락 내지는, 어느 정도 약점이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평소에는 수정한 투구폼으로 투구하지만 위기상황이 되면 다시 뛰어오르는 투구폼이 나온다.][* 정민태가 이 투구폼을 수정했다고 해서 정민태는 2012시즌 욕을 많이 먹었는데, 정작 2012시즌 손승락이 다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은 '''[[김시진]]'''감독의 해임 후였다.다시 뛰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변했다.]
          * [[박정진]]처럼 나이에 비해 상당한 [[동안]]이다. 그런데 얼굴과 다르게 목소리가 상당히 안습한 편. 잘생긴 외모와 비교되는 대구 사투리에 독특한 톤을 구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뉴비 팬들이 놀라기도 한다. 말투는 같은 대구/경북 출신인 [[김시진]] 감독과 판박이.
  • 심재학
         히어로즈에 새로 부임한 [[김시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10월 16일]]에 [[넥센 히어로즈]]의 2군 타격코치로 영입되어 [[2009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2&aid=0001995064 정민태·심재학 히어로즈 합류] - 세계일보</ref> 이후 그는 자신처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장민석]]을 톱 타자로 만들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275060 투수 장민석을 타자로 만든 심재학 코치의 조언] - 이데일리</ref>
  • 염경엽
         은퇴 후에는 바로 지도자로 활동하지 않고, 스카우트 등 구단의 프런트로 일하다가 [[2007년]] [[현대 유니콘스|현대]]의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로 들어섰다.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후 다시 프런트로 전직해 [[LG 트윈스]]의 스카우트로 옮겼고, 이후 운영 팀장으로 일했다. [[2011년]] [[12월 16일]] [[넥센 히어로즈]]에서 작전·주루코치를 맡았고, [[2012년]] 시즌 팀 도루 1위로 올려 놓은 공로로 [[김시진]]의 후임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 됐다.
  • 오재일
         [[이숭용]], [[조중근]], [[장영석]]과 번갈아 가며 1루수를 맡았다. [[목동야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칠 정도로 파워와 클러치 능력이 있었지만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지 못했고, [[2011년]] 시즌 중 [[이숭용]]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자 주전 1루수로 낙점되나 싶었으나 [[LG 트윈스]]에서 트레이드돼 입단한 [[박병호 (1986년)|박병호]]가 당시 감독이었던 [[김시진]]의 눈에 확 들어오면서 그는 지명타자로 밀렸다. [[2012년]] 개막전이었던 [[4월 7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4타수 3안타 맹타를 휘둘렀다. 타율은 2할 초반과 1할 후반을 오가면서 6월 말에 1군에서 제외됐고, 때마침 [[최준석 (야구 선수)|최준석]]의 병역 문제로 인해 당시 [[두산 베어스|두산]]의 감독이었던 [[김진욱]]의 요청으로 외야수 [[이성열 (야구 선수)|이성열]]을 상대로 트레이드됐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7091430152224 두산-넥센, 오재일-이성열 맞트레이드] - 마이데일리</ref>
  • 윤선도
         [[1649년]](효종 즉위년) [[6월]] [[조선 효종|효종]] 즉위 직후 석방, 특별 복권되어, [[조선 효종|효종]]의 부름을 받았으나 계속 사양하였다. [[1650년]] [[2월]] [[성균관]]사예(司藝)에 임명하자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조선 효종|효종]]의 거듭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취임하였다. 그해 [[3월]] 효종은 그에게 [[통정대부]] [[승정원]][[승지]](承旨)를 제수하고 이어 [[동부승지]]겸 [[경연]][[참찬관]]에 임명하여 늘 경연(經筵)에 참여하게 하였으나, [[서인]]계 경연관들이 그를 꺼리고 기피하자, [[4월]]초 여러 번 상소하여 강력히 물러날 의사를 밝히고 떠났다. [[조선 효종|효종]]이 특별히 배려하여 동부승지에 제수했지만 그가 한사코 거절하자 [[사간원]]의 언관이던 [[민정중]](閔鼎重)과 [[김시진]]이 그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 스승으로 있을 때처럼 지도해줄 것을 거듭 요청하는 [[조선 효종|효종]]의 거듭된 청을 받고 그해 여름 다시 출사하였다.
  • 이효봉(야구선수)
          * 2013년 5월 19일 중계 도중에 방송사고를 내 버렸다.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 롯데가 스코어 11:2로 크게 이기던 9회말에 [[김시진]] 감독이 '''[[마무리 투수]]''' [[김성배]]를 등판시켰다.[* 혹시 야구를 잘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마무리 투수는 보통 '세이브' 상황(통상 3점차 이내의 접전 상황)에서 등판해 게임을 말그대로 '마무리'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은 9점차라는 큰 점수차이에 마무리 투수를 등판시킨 것.] 광고 시간 도중에 그걸 본 이효봉은 '''[[김성배]]를 올리냐, 아이구…'''라는 말을 뱉었는데, 이때 딱 광고가 끝나버리면서 이 말이 그대로 전파를 타 버렸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C7424A2A8B7BA1A60131BAD88E434EA87EE2&outKey=V123a40f4b3046dcfe7ad24e10033cb9032cffa45977cbad7ac8624e10033cb9032cf&width=720&height=438|플짤]] 다행히(?) 사람들은 이효봉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김시진]] 감독의 투수 운영이 얼마나 엉망이면 이효봉마저 까냐'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방송사고는 묻혔다. 이때 [[김시진]] 감독은 이 경기에 내보내지 못하면 근 1주일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컨디션 점검차 내보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기에서 [[김성배]]가 수비 도중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는 바람에 왼쪽 허리에 담이 일어났다는 것이지만.
  • 장원삼(야구선수)
         데뷔 시절부터 언급된 상체 위주의 피칭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건 현대 시절 [[김시진]] 투수코치에게 조련받은 폼이다. 실제로 그의 투구 폼을 보면 공이 떠나는 순간 상체의 회전력으로만 공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구위에서 약점을 보인다. 제구력으로 구위를 메꾸지만 제구란 게 매번 잘될 수는 없기 때문에 안 풀리는 날에는 더럽게 안 풀린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2013년부터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구위가 2016년에는 공의 구속까지 138km로 떨어지고 제구력까지 떨어지면서 통타를 당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노쇠화가 찾아오면서 상체 위주의 피칭에 한계가 찾아온 듯 하다.
          * [[황재균]], [[이택근]] 등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히어로즈 출신들은 타 팀에 이적하더라도 친정팀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해서 그것을 넌지시 어필했다가 쌍욕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장원삼은 특이하게도 현대/히어로즈 출신인데다가 [[김시진]]에게 직접 조련까지 받았는데도 별다른 애정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삼성~~그리고 경산밥~~에 대하여 강한 애착과 충성심(...)을 보이고 있어서 넥센 팬들을 꽤 허탈하게 하였다. [[이장석]] 대표도 장원삼의 이적은 --급하게 파느라 제 값을 못 받아서-- 아쉽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2012년 골든 글러브 건과 2013년 FA로 인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오죽하면 혀팬들은 FA로 좋게 떠난 유한준, 손승락은 욕을 잘 안하지만 장원삼은 트레이드 과정에서 위에 얘기한 차비 발언 등 돈을 밝히는(...) 모습, 트레이드가 취소되자 태업이 의심되는 부진 등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인식 자체가 영 좋지 않다. 그래도 선발진이 허약했던 팀 특성 상 장원삼만 있었더라도 하는 소리가 종종 나왔지만, 장원삼이 2016년 이후 답이 없이 망가지면서 삼갤러들이 종종 넥갤에 찾아와 환불(...)을 요구하자 넥갤에서는 '''"저 분 삼성 1픽 아닌가요?"''', '''"우리 원삼이는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였는데 저 산적같은 놈이 어떻게 같은 사람이죠?"''' ~~우리 원삼이는 여름에 대구 놀러갔다가 사고나서 죽었는디~~ 등등으로 맞받아치며 관심도 주지 않는 수준이다.] 이제는 삼성에서 뛴 기간이 다른 팀에서 뛴 기간보다 거의 두 배는 더 길기 때문에 이적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될 일도 없다.
  • 전준호(1969)
         히어로즈 선수 전원[* 이택근만 불참. 당시 이택근은 LG에 ~~볼모로~~ 팔려간 상태. [[김시진]] 당시 감독도 불참했는데 본인 입장에서 창피해서였다. 김시진은 시즌 후 방출 대기령 선수에서 동명이인이던 베테랑 투수 [[투준호|전준호]], [[이상열(야구)|이상열]] 등이 대거 방출되는 것과 팀이 돈이 없어서 FA로 LG에 떠나보낸 [[정성훈]]과 간판 투수들 및 타자 주전 멤버 4명을 대거 트레이드로 보내는 등 어수선해지기 마련이었다. 김시진이 여기서 막고 싶어하였으나 방출 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등 말을 제대로 전달을 못했다고 했다.], 성구회 회원 [[양준혁]]과 [[송진우]], 권시형 선수협회 사무총장도 참가했다.
  • 정동진 (1946년)
         [[삼성 라이온즈]] 재임 시절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김시진]]을 투수코치로 영입, 투수 조련에 힘써 [[태평양 돌핀스]] 때부터 "투수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1990년대 후반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전성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 조성옥 (1961년)
         * [[김시진]]
  • 조정훈(야구선수)
         2013년 1월 2일 팬들의 오래고 오랜 기다림 끝에 2년 간의 복무를 끝마치고 드디어 소집 해제되어 롯데 에이스의 귀환을 알렸으나 오른쪽 팔꿈치와 몸 상태가 만족할 정도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시즌과 동시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빠르면 5-6월 경에나(...) 복귀한다고 한다. 1월 말이 되었는데도 아직 조정훈의 컨디션이 70%에서 더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다고 [[김시진]] 감독이 탄식. 조정훈의 복귀 시점은 7월로 늦춰 잡았다고 한다. 2월 6일 롯데 구단은 [[사이판]]에서 1차 전지훈련을 마치고 2차 캠프를 위해 [[일본]] [[가고시마]]로 이동했지만, 조정훈은 특별 관리 대상으로 사이판에 남아 2주간 더 머무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사이판의 따뜻한 날씨가 재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 2월 20일 드디어 조정훈이 가고시마 전지훈련에 합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복귀 시점은 아무리 빨라도 6~7월 이후라고 한다. 가고시마 전지훈련때 다시 팔꿈치 통증이 찾아와 결국 전반기에 1군 복귀에 실패했다. 6월이 되어도 팔꿈치 통증으로 복귀 시점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7월 롯데 구단은 조정훈의 팔꿈치 통증이 계속되어 수술 대신 9일 조브 클리닉에 가서 감바델라 박사에게 검진을 받고 재활 과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 진동한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버스 방화사건은 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 하기룡
         [[1981년]] [[12월 29일]]에 치러진 MBC 청룡의 진출 희망 선수 추첨에서 [[이길환]], [[유승안]], [[이종도]] 등과 함께 뽑혀<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123000329208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12-30&officeId=00032&pageNo=8&printNo=11156&publishType=00020 정순명·이광은 등 MBC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1년 12월 30일.</ref> [[1982년]] [[1월 26일]] 구단 창단과 함께 정식 선수가 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2600329208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26&officeId=00032&pageNo=8&printNo=11177&publishType=00020 MBC 청룡 창단식],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1월 26일.</ref> 그 후, 같은 해에 처음으로 열린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올스타전]]에서는 같은 팀의 [[유종겸]], 투수를 겸임하고 있던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김성한]] 등과 함께 서군의 첫 올스타 투수로 뽑혔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70500099212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7-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5025&publishType=00020 프로 야구 올스타전 동군, 또 서군 울려…],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7월 5일.</ref> 또한 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3연속 완봉승 기록을 세웠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907/h2009071102371091800.htm 송승준 3경기 연속 완봉승], 한국일보, 2009년 7월 11일</ref> 이 때문에 연말 연봉 조정 과정에서 같은 팀의 이종도를 비롯한 다른 네 선수들과 더불어 연봉이 2,000만원을 넘겼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1225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12-25&officeId=00032&pageNo=8&printNo=11460&publishType=00020 연봉 조정에 열병 앓는 프로 야구계…],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12월 25일.</ref> [[1983년]]에는 [[8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 때부터 [[9월 16일]] 해태의 [[김준환]]이 안타를 칠 때까지 41이닝 동안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91700329209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9-17&officeId=00032&pageNo=9&printNo=11684&publishType=00020 하기룡 무실점기록 41이닝서 깨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3년 9월 17일.</ref>, 후기 리그에서 7승 4패를 기록하며 팀을 후기 우승으로 이끌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92700209209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9-27&officeId=00020&pageNo=9&printNo=19071&publishType=00020 행운을 타고 청운 이룬 청룡…, MBC 후기 우승 확정],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3년 9월 27일.</ref> 또한 같은 해에는 30승을 거둔, [[삼미 슈퍼스타즈|삼미]]의 [[장명부]]를 제치고 평균 자책점 1위 기록을 세웠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00400209209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0-04&officeId=00020&pageNo=9&printNo=19077&publishType=00020 프로 야구 하기룡 방어율 1위],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3년 10월 4일.</ref> [[1984년]]에는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김시진]]과 경쟁하면서<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72600209209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7-26&officeId=00020&pageNo=9&printNo=19327&publishType=00020 프로야구 최동원 '다승' 대열에…, '13승' 투수 모두 3명],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4년 7월 26일.</ref> 10승을 거두며 [[오영일]]과 함께 MBC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결국 27승을 거둔 최동원에게 밀려 다승왕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821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8-21&officeId=00032&pageNo=8&printNo=11969&publishType=00020 프로야구, 예측할 수 없는 혼전],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4년 8월 21일.</ref> [[1985년]] 오영일과 함께 MBC와 재계약했으나<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11800329208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1-18&officeId=00032&pageNo=8&printNo=12095&publishType=00020 하기룡·오영일 재계약… 삼미 백인천은 사표 제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5년 1월 18일.</ref> 그 뒤로 신인왕 [[김건우 (1963년)|김건우]], [[김태원 (야구인)|김태원]], [[정삼흠]], [[김용수 (야구인)|김용수]] 등의 등장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며 입지가 줄어들다가<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1700329208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17&officeId=00032&pageNo=8&printNo=12478&publishType=00020 '3김' 태풍 몰려온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4월 17일.</ref>, [[1989년]] 트레이드 시장으로 나오고, [[1990년]]에는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되며 방출당했다가<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11300209211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11-13&officeId=00020&pageNo=11&printNo=20959&publishType=00020 청룡, 하기룡 등 6명 트레이드],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11월 13일.</ref><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060032921101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1-06&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625&publishType=00020 MBC, 하기룡 등 8명 자유계약선수 공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1월 6일.</ref>, 같은 해 2월 2일, MBC 청룡을 인수한 럭키금성의 [[LG 트윈스]]에서 투수 코치로 계약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020032921100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2-02&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647&publishType=00020 럭금도 하기룡과 계약],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2월 2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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