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정보
| 이름 = 김순악
| 원어이름 =
| 본명 =
| 별칭 =
| 출생일 = 1928년 6월 경상북도 경산시
| 사망일 = 2010년 1월 경상북도 경산시
| 거주지 =
| 국적 =
| 민족 =
| 학력 =
| 경력 = 위안부역사관 희움 건립
| 직업 = 인권운동가
| 활동기간 =
| 소속 =
| 현직 =
| 전직 =
| 봉급 =
| 순자산 =
| 작위 =
| 전임자 =
| 후임자 =
| 정당 =
| 적수 =
| 위원 =
| 종교 =
| 배우자 =
| 동거인 =
| 자녀 =
| 부모 =
| 친척 =
| 등단 =
| 상훈 =
| 서명 =
| 웹사이트 =
| 각주 =
| 기타 =
}}
| 이름 = 김순악
| 원어이름 =
| 본명 =
| 별칭 =
| 출생일 = 1928년 6월 경상북도 경산시
| 사망일 = 2010년 1월 경상북도 경산시
| 거주지 =
| 국적 =
| 민족 =
| 학력 =
| 경력 = 위안부역사관 희움 건립
| 직업 = 인권운동가
| 활동기간 =
| 소속 =
| 현직 =
| 전직 =
| 봉급 =
| 순자산 =
| 작위 =
| 전임자 =
| 후임자 =
| 정당 =
| 적수 =
| 위원 =
| 종교 =
| 배우자 =
| 동거인 =
| 자녀 =
| 부모 =
| 친척 =
| 등단 =
| 상훈 =
| 서명 =
| 웹사이트 =
| 각주 =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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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1928년 경북 경산에서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출생하였다. 삼남매의 첫째로 외딸이었다. 실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 지자루(치치하루)에 위치한 위안소에서 하루에 많게는 30~40명의 일본 군인과 성관계를 해야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일본 패망 후 열여덟의 나이로 고향에 돌아와 술장사, 밥장사, 식모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000년 1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지정되었으며 이 때부터 이용수 등과 수요집회에 참여하며 일본 정부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 2010년 1월 "내가 죽어도 내게 일어났던 일은 잊지 말아 달라"고 유언하며 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위해 5천400여만원을 남겼다.<ref>{{뉴스 인용|제목=안이정선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 겸 위안부역사관 ‘희움’ 관장|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1225.010370825050001|출판사=|날짜=|확인날짜 =2016년 1월 7일}}</ref><ref>{{뉴스 인용|제목=능멸|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6&aid=0000035669|출판사=한겨례21|날짜=|확인날짜 =2016년 1월 7일}}</ref><ref>{{뉴스 인용|제목="아픈 역사 잊지말자" 故김순악 할머니 뜻 따라…|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421457|출판사=|날짜=|확인날짜 =2016년 1월 7일}}</ref>
각주 ¶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