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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일(농구선수)
         || '''프로입단''' || 1998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1998-99 시즌에 데뷔한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드래프트 직후 상무에 입대하였다. [[김병철]], [[전희철]] 등 주축멤버를 모두 입대시킨 뒤 이들이 제대하는 2000-01 시즌 대권을 노리는 것이 당시 박광호 감독의 계획이었는데, 덕분에 대구 동양은 1998-99 시즌 '''32연패'''라는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고 만다.] ||
         대학 최고의 [[스몰 포워드]]를 뽑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박광호 감독은 박재일을 기존의 [[전희철]]-[[김병철]]과 함께 팀의 코어라 판단하고, 1998-99시즌을 앞두고 이들을 모두 군입대 시키는[* [[김병철]], 박재일, 김광운은 상무 입대, [[전희철]]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했다.] 모험을 둔다. 그 바람에 박재일의 KBL 데뷔는 2년후로 미뤄지게 되고, 팀의 주축을 전부 군대에 보낸 대구 동양은 모두가 기억하는 1998-99 시즌 '''32연패'''를 포함한 '''3승 42패'''라는 처참하기 이를데가 없는 프로스포츠 사상 최악의 성적을 달성하게 된다.
          * 가드: [[김병철]](185cm, 대구 동양), [[김희선(농구)|김희선]](187cm, 수원 삼성), 김태진(174cm, 창원 LG), 박성배(180cm, 수원 삼성), 김광운(181cm, 대구 동양)
         보다시피 1998년도 상무에는 센터가 없었다. 국가대표 센터 [[전희철]](198cm)과 포워드 [[우지원]](192cm)은 공익근무를 택했고 다른 센터자원들도 이런저런 사유로 군면제를 받으면서, 당시 [[추일승]] 감독이 이끌던 상무는 191cm의 지형근이 최장신일 정도였다. 이에 [[추일승]] 감독은 팀에서 가장 탄력이 좋은 박재일을 센터로 기용하며 [[김병철]], [[김태진(농구)|김태진]], [[김희선(농구)|김희선]] 등 가드자원들을 총 동원하는 달리는 농구를 시전하였다. 신장은 작았지만 기본 기량이 원체 뛰어났던 상무의 꼬꼬마 선수들은 [[1998 농구대잔치]]에서 장신선수들이 즐비한 대학팀들을 연파하며 조별예선 전승을 거두지만, 준결승전에서 김종학(197cm)-[[김태완(농구)|김태완]](202cm)의 트윈타워가 버틴 한양대에 골밑을 털리며 101:100 한점차로 석패, 최종 순위 3위에 머물고 만다. 이후 센터 박재일을 필두로 한 상무의 꼬꼬마 군단은 1999년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다시금 돌풍을 일으키며 사상 최고 성적인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상무 제대 후 [[김병철]], 김광운과 함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로 복귀한 박재일은 [[전희철]]의 존재로 인해 드디어 자기 신장에 맞는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서 뛸수 있었고, KBL 중고신인[* 데뷔 시즌때 나이가 25세였다. 군필자;;]으로서 팀의 로테이션 멤버 중 가장 많은 시간인 경기당 20분 남짓을 뛰며 8.9득점-2.9리바를 기록, 나름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박재일의 데뷔시즌인 00-01 시즌 오리온스는 고질적인 [[포인트 가드]] 부재 문제[* 갓 제대한 김광운, 기존의 식스맨 이인규(187cm)-김상우(182cm), 신인 드랲 4순위 출신 이흥배(180cm)까지 써봤으나 실패, [[김병철]]이 1번을 보는 상황까지 갔고 결과는 '''폭망'''이었다.]와 [[김병철]]-[[전희철]]의 주도권 다툼 등으로 팀 자체가 난파, 화려한 멤버를 가지고도 시즌 꼴찌(9승 36패)라는 결과를 받게 되고 그 결과 최명룡 감독이 시즌 중도에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고 [[김진(농구인)|김진]] 감독대행이 부임하는 결과를 낳는다. 덕분에 박재일의 활약은 "꼴찌팀에서 맹활약하는 루키" 정도로 평가절하되었다.[* 개막 11연패를 달리던 대구 동양이 홈에서 [[이상민(농구)|이상민]]-[[조니 맥도웰]] 콤비의 [[전주 KCC 이지스|대전 현대 걸리버스]]를 꺾으며 연패를 탈출하던 경기에서, 박재일은 경기 막판 맥도웰 위로 그림같은 드라이브인 덩크를 꽂아넣었다. 그리곤 착지하다 부상;;;;]
         01-02 시즌 슈퍼루키 [[김승현(농구)|김승현]]이 입단하면서 오리온스는 '''전 시즌 꼴찌팀이 다음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극적 반전을 이루게 되지만, 감독이 주전 뺑뺑이로 유명한 [[김진(농구인)|김진]]이었던 탓에[* [[김승현(농구)|김승현]]-[[김병철]]-[[전희철]]-[[마르커스 힉스|힉스]]-[[라이언 페리맨|페리맨]]의 베스트 5가 너무 탄탄해서, 한 명만 비어도 구멍이 컸다. 이 중 [[김승현(농구)|김승현]], [[마르커스 힉스|힉스]], [[라이언 페리맨|페리맨]]의 경기당 출전시간은 각각 '''38분, 37분, 38분'''이었다.(NBA가 아니다!!!)] 박재일의 출장시간은 경기당 11분정도로 확 줄어들고 만다.
         03-04 시즌 [[박훈근]]이 FA로 떠나면서 마침내 주전이 된 박재일은 정규리그 53경기에 출전하며 9.2득점 3.6리바 1.1어시 1.1스틸이라는 좋은 기록을 남기고, 특히 시즌 3점 성공률 50.0%(경기당 1.8개 메이드)로 이부문 1위에 오른다. 03-04 시즌은 [[김승현(농구선수)|김승현]]의 기량이 절정에 오른 시절이라 김승현의 패스를 축으로 [[김병철]]-박재일-[[아티머스 맥클래리]]-바비 레이저는 그저 달리고 쏘면 되는 속공농구의 정점이었고, 골밑의 상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3위의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 [[창원 LG 세이커스]]전에서 바비 레이저의 팁인슛이 실린더룰 위반 판정을 받는 등 또한번 오심의 희생양이 되면서 1승 2패로 어이없이 탈락하고 만다.] 탄력과 스피드, 정교한 외곽슛에 팀에서 가장 좋은 수비력까지 가진 박재일은 해당 시즌 오리온스에서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맹활약을 바탕으로, 03-04 시즌 종료후 FA 자격을 얻은 박재일은 1억 5천만원에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와 4년 재계약을 맺는다.
         재계약 후 첫시즌은 04-05 시즌에도 박재일은 김승현-김병철과 함께 3각편대를 이루며 팀의 주전으로 맹활약하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 탓에 팀은 리그 6위에 그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단테 존스]] 열풍의 희생양이 되며 6강에서 힘없이 탈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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