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력(金武力)
2. 생애 ¶
금관가야 구형왕은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하였다. 이 떄 구형왕의 세 아들은 첫째가 노종(奴宗), 둘째가 무덕(武德), 그리고 막내가 무력(武力)이다. 법흥왕은 이들에게 가야 땅을 식읍으로 주고 벼슬을 내렸다.
<단양신라적성비>에서 '무력지 아간지(武力智阿干支)'라는 기록이 나타나며, 이는 김무력이 신라의 아찬 지위에 오른 것으로 해석된다. 아찬으로 등장한다.
553년(진흥왕 14년), 진흥왕은 7월 백제의 동북 변경을 빼앗고 지금의 한강 유역에 신주를 설치하였다. 김무력은 신주(新州)의 군주로 임명되었다.
554년에 있었던 관산성 전투에서 원군을 이끌고 백제군을 급습하여, 백제의 군주 성왕을 붙잡아 죽이는 공적을 세워, 백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556년에 세워진 <창녕진흥왕척경비>,<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에서 '무력지 잡간(武力智迊干)'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잡간은 신라 관등 3위에 해당하는 지위로서, 백제 성왕을 죽인 공적으로 크게 승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양신라적성비>에서 '무력지 아간지(武力智阿干支)'라는 기록이 나타나며, 이는 김무력이 신라의 아찬 지위에 오른 것으로 해석된다. 아찬으로 등장한다.
553년(진흥왕 14년), 진흥왕은 7월 백제의 동북 변경을 빼앗고 지금의 한강 유역에 신주를 설치하였다. 김무력은 신주(新州)의 군주로 임명되었다.
554년에 있었던 관산성 전투에서 원군을 이끌고 백제군을 급습하여, 백제의 군주 성왕을 붙잡아 죽이는 공적을 세워, 백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556년에 세워진 <창녕진흥왕척경비>,<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에서 '무력지 잡간(武力智迊干)'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잡간은 신라 관등 3위에 해당하는 지위로서, 백제 성왕을 죽인 공적으로 크게 승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