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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우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기는 했지만, [[저니맨|이후 한 팀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다.]] 2006 시즌에는 두산에서 그럭저럭 주전 경쟁을 했지만, 2007년 [[김경문]]이 직접 키운 [[외야수]]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김현수(1988)|김현수]] 등등이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1군에서 탈락, 줄곧 2군에 머물게 된다.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다시 좌완 투수 이윤학[* 2018년부터 KIA에서 뛰는 우완투수 [[이윤학]]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좌완투수였다.]을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 강병철(야구인)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이승호(1981)|이승호]]와 [[페르난도 에르난데스]]가 유명하다. 이전까지의 상황은 '그 시절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로 어떻게 쉴드를 칠 수 있다지만, SK 시절은 '''2000년대'''이다. 이미 혹사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아진 시절이 되었는데, 꿋꿋하게 혹사를 시켰다는 것.[* 참고로 2000년대 이후 한 시즌 200이닝 투구를 시킨 감독은 강병철, [[김응용]], [[김인식]], [[이광환]], [[김성한]], [[김경문]], [[김기태(1969)|김기태]], [[이종운]]인데 하나같이 소속팀과 끝이 영 좋지 않았거나 말년 커리어가 영 좋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돌'이나 '킬' 같은 접두어 별명이 있다는 것도 공통된 특징이다.~~ ~~김기태는 특이하게 '런'이라는 접두어 별명이 있다.~~ ~~아니 그런데 KBO에서 소속팀과 끝도 좋고 말년 커리어도 좋은 감독이 얼마나 되지~~]
  • 권희동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순도 어느새 5번까지 상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영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4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 2삼진(!!) 을 기록했다 !!! 솔로홈런을 친 LG의 4번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에 반해 [[김경문]] 감독의 완벽한 선수기용 실패가 되어버릴 뻔 했지만 다행히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안타를 뽑아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10월 22일 플레이오프 2차전 7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의 성적으로 경기중 [[김준완]]과 교체됐다. 22일 기준 타율은 1할4푼3리. 타격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2경기 연속 선발 기용한 [[김경문]] 감독의 예상과 달리 최악의 부진을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당일 기아와의 경기 반짝 활약 이후로 계속 기용되어 모든 NC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근데 이건 팀 타선이 다 부진했던 상황이라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시즌 초부터 [[김경문]] 감독이 리빌딩을 공언하면서 베테랑인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를 대신하여 주전 좌익수로 나섰다. 그 결과 팀 내 야수 중 가장 많은 141경기에 나서 타출장 .286/.371/.458 135안타 19홈런 86타점 wRC+ 111.3 sWAR 2.43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 김광수 (1959년)
         [[2008년 하계 올림픽]] 코칭스텝으로 선출되어 금메달을 이끌었다. [[류중일]]처럼 데뷔 때부터 단 한 팀에서만 활동한 야구인 중 한 명이며, [[2011년]] 6월 [[김경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1군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한 후 [[김진욱]] 투수코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시즌 직후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리그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프리미어12 3루/주루코치를 맡았다. 김광수 수석코치는 지난 2012년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때부터 2015년 한화로 넘어와 지금까지 6년간 김 감독을 수석코치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전임자 = [[김경문]]
  • 김인식 (1947년)
         |후임자 = [[김경문]]
         |전임자 = [[김응용]]<br />[[김경문]]<br>[[류중일]]
  • 김재박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태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
  • 김종호 (1984년)
         제대 후 [[2010년]] [[7월 17일]]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하면서 MVP를 수상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22482 퓨처스 올스타 MVP 김종호, "간절한 바람, 언젠가 이룰 것"] - OSEN</ref> 이듬해 후반기에 들어서야 1군에 처음 올라왔다. 하지만 [[정형식]], [[배영섭]], [[박한이]] 등이 버티는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외야진에서 그는 더 이상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2012년]] [[11월 15일]] [[NC 다이노스]]의 전력 보강 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했으며, 퓨처스 리그에서 [[이종욱 (야구인)|이종욱]]처럼 발이 빠르고 근성 있는 플레이를 눈여겨 본 [[김경문]] 감독이 그를 불러들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382&aid=0000076115 김경문이 찍은 김종호는 제2의 이종욱?] - 스포츠동아</ref>
         이적 후 [[2013년]] 처음으로 풀 타임 시즌을 맞이하여 전 서울에 출장했다. 4월에는 22경기에서 73타수 17안타, 타율 0.233로 부진하였지만 5월 9경기에서 37타수 17안타, 타율이 0.459로 맹타를 휘두르면서 [[김경문]]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533717 NC 김종호, 배영섭에 가려 있는 정상급 1번 타자] - OSEN</ref> [[10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서울에서 50도루를 달성했다. 이는 [[2010년]] 이후 3년 만에 나온 50도루 기록이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310022034112226&ext=na NC 김종호, 풀타임 첫해 50도루 고지 밟았다] - 마이데일리</ref> [[2013년]]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51896 ‘인생역전’ 김종호, "30년 걸렸다" 감격] - OSEN</ref> [[2013년]] [[12월 5일]] '2013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시상식에 올해의 성취상을 수상하였다.<ref>[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396088 김종호 '내년에도 열심히 뛰겠다']{{깨진 링크|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396088 }} - 엑스포츠뉴스</ref>
  • 김진욱(스포츠해설가)
         김진욱의 괴상한 팀 운용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전임 감독인 [[김경문]]은 비록 팀을 내내 상위권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몇몇 야수들이 로또가 터지고 [[KILL 라인]]으로 대표되는 [[불펜#s-2|불펜]]을 마구 굴린 탓이 크다. 그 결과 김경문이 사임한 [[2011년]]에는 팀이 겉만 번지르르한 막장으로 치닫는 지경까지 이른다[* 당시 두산의 부진을 [[임태훈(야구선수)|임태훈]] 책임으로 돌리는 의견이 많은데, 임태훈이 아니더라도 얼마 안 있어 붕괴될 정도의 전력이었다. 불펜이든 선발이든 투수진이 폭삭 주저앉고, 야수진도 주전이 탄탄해서 그렇지 백업이 형편없었는데 뭘 기대할까? 그리고 2018년에 NC 다이노스에 이 결과를 다시 재연했다]. 그 여파로 인해, [[2013년]]에 정규시즌 팀 타율은 1위인데 팀 방어율은 7위라는 괴상한 스탯을 보여주었다. 애초에 팀이 정상이 아닌데, 정상적인 운용으로 팀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반대로 [[2012년]]에는 팀 방어율은 상위권이었지만 타율은 기아와 같이 최하위를 다투었고, 그럼에도 포스트시즌에 올라갔으며, 2013년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다만 이렇게 나타나는 전력 불균형은 단기전에선 약점 요소로 꼽히는데, 2012년 준플이 그 예.
         실제로 김진욱의 이런 전략은 주효해서, 김경문 이후 폐허에 가까웠던 팀을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려놓았다. 아니, 선발진의 안정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고 봐야 한다. [[노경은]]과 [[이용찬]], [[유희관]]이 이에 해당하는 케이스. '''특히 [[노경은]]은 김진욱이 2군 투수코치로 있었을 때 다잡지 않았다면 묻힐 뻔했다.''' 김진욱 감독과 함께 [[아버지]]처럼 따랐던 [[정명원]] 투수코치까지 떠난 후 [[노경은]]은 [[2014년]]에 '''15패'''로 최다패의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16년 팬들에게 거하게 뒤통수를 치고야 만다~~
         무엇보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김진욱이 이 전력을 가지고 두산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도 안정적으로.''' 상위권에 간 것만으로도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일진데, [[김경문]]이나 [[선동열]], [[김응용]] 같은 감독처럼 선수단을 마구 쥐어짜내 막장으로 만들지 않고 전력을 재건한 것은 두산 팬 입장에서는 기뻐해야 할 일이다. [[2011년]]의 대붕괴로 암흑기에 빠질 뻔한 [[두산 베어스]]를 다시 포스트 시즌의 단골 손님으로 만든 것은 김진욱의 관리 야구 전술이 통했기 때문이다.
         김진욱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김경문 시대에 취해 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부 팬들에 의해 과장된 경향이 있다. 윗 문단만 해도 찬찬히 따지고 보면 까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내용들도 없다고 할 순 없다. '''어쨌거나 팀을 재건해가고 있고 5년만에 두산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감독'''을 보고 '팀을 망치고 있는 무능한 감독'이라 저주를 퍼붓고 있는 모습은 도에 지나치며 이를 자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 팬들에게 코시 준우승은 누구 개 이름인가보다~~
          * 해임 이후의 상황, 재평가, 해설가로서의 호평과 인격자로서의 면모들이 맞물이면서 디시인사이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커피갑, 귀피센세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잊을만 하면 찬양을 받는다. 이건 특히 [[NC 다이노스]]의 창단 감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오랜 콩라인 시절의 원흉으로 지목받기 시작한 [[김경문]]에 대한 현재 두산 팬들의 평가와는 매우 대조적인 부분이다. 투수 혹사 문제가 심각했던 김경문 체제와는 달리 김진욱은 베어스 팬들에게 선수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베어스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김태형(1967)|김태형]] 감독 체제의 기틀을 닦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팀과 선수를 아끼는 사람으로서의 면모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시간이 갈수록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불러오자는 말은 또 나오지 않는 것이, 김태형 체제가 워낙 튼튼하다 보니... 그래도 2군 감독이나 투수코치로는 본인이 고사하겠지만 두산 팬들이 꼭 모셔오고 싶다는 의견을 심심치 않게 표한다.
  • 김태형 (1967년)
         [[서울화계초등학교|서울화계초]], [[신일중학교 (서울)|신일중]], 중퇴 후 [[단국대학교|단국대]] 체육학과 편입 이후 졸업을 거쳐 1990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1980년대를 주름잡던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포수 듀오 [[조범현]]과 [[김경문]]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형 포수 중 하나였고,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주전으로 뛰면서 상대적으로 장타력이 좋은 박현영과 출장 시간을 이상적으로 배분했으며, [[김인식 (1947년)|김인식]] 감독 취임 이후 일발 장타력을 인정받던 [[이도형 (야구인)|이도형]]까지 포수 진에 가세한 덕분에, OB의 포수 진은 현재까지도 내려오는 전통의 포수 왕국의 컬러를 확립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공격력 부분에선 백업인 박현영, [[이도형 (야구인)|이도형]]에 비해 열세인 덕분에 특출난 시즌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일등공신이었다. 이후 국가대표 출신 초대형 포수 유망주 [[최기문 (야구인)|최기문]], [[진갑용]], [[홍성흔]]이 연달아 입단하며, 그의 주전 포수 자리를 자연스럽게 세대교체하는 시도가 진행되었는데, 의외로 [[최기문 (야구인)|최기문]]을 밀어낸 [[진갑용]]이 타격, 수비 양쪽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확실한 후계자로 믿음을 주지 못했다.
         1999년부터 신인 열세로 평가받던 [[홍성흔]]이 의외로 주전 포수를 차지하면서, [[홍성흔]]의 백업과 수비 강화를 위한 역할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진행되었다. 2001년 플레잉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으며, 6서울 출장을 끝으로 그대로 은퇴했다. 선수 시절 비슷한 커리어의 수비형 포수였고, 이후 현역 감독으로 경쟁 중인 대선배 [[조범현]], [[김경문]]보다는 현역 시절 타격을 잘했다.
  • 나성범
         투수로 입단했으나,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의 권유로 [[2011년]] 가을 마무리 캠프를 통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2012년]]에는 2군 94광주에 출전해 타율 0.303, 16홈런, 67타점, 29도루, 33사구를 기록했다. 시즌 중에는 4할 타율을 기록했으나 손바닥 부상과 체력 저하로 인해 페이스가 떨어졌다. [[2012년]] 남부리그 최다 홈런, 최다 타점을 기록했고 팀 내에서 유일하게 3할 타율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533849 '잘 피하고 잘 맞아라'…나성범, 긍정적 사구 대책] - OSEN</ref> 시즌 후 [[2012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에 발탁됐으나 오른쪽 손등 부상으로 인해 [[박정준 (1984년)|박정준]]으로 교체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948706 <亞야구선수권대회> 임찬규·나성범 불참…대표팀 '비상'] - 연합뉴스</ref>
         [[두산 베어스]]와의 [[2015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를 앞두고 3번의 연습 광주에서 투수로 등판했다. 마지막 등판에서 최고 구속 147km/h를 기록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은“그의 등판은 연장 15회를 갔을 때나 대비한 것일 뿐이다. 보통 상황이라면 투수 등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양희 |제목=김경문 감독, “나성범 투수 등판? 연장 15회에 대비한 것”|url=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713184.html |뉴스=한겨레 |출판사= |위치= |날짜= 2015-10-16 |확인날짜= 2015-10-17}}</ref>
  • 노진혁
         그가 안경을 쓰게 된 이유는 [[광주동성고등학교]] 3학년 때 런다운 연습 중 눈에 공을 맞아 시력이 나빠져서이다. [[NC 다이노스]] 입단 후 첫 스프링캠프 때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의 권유로 안경을 썼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305300927323&sec_id=510101&pt=nv 유쾌한 '노검사' NC 노진혁 "성적보다 경험"] - 스포츠경향</ref> 이러한 별명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뒤, 홈 광주에서 그가 타석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방송 메시지도 응원가의 원곡 제목과 결합하여 "멋쟁이 노검사"로 방송했다.<ref>하지만 라식 수술을 해 안경을 쓴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ref>
  • 박동희(기자)
          * 2009 시즌 전 일본에 가서 각 구단의 전지훈련 캠프를 돌아다니면서 실시간으로 문자중계를 하는데 [[김성근]] 감독 편에서 많은 감동을 주었으나... [[김경문]] 감독에게 lotte-씨X 이라는 엄한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물어본 '왜 큰 경기에 약한가요?'를 당당하게 질문했다(...). 앞으로 계속 돌아다닐 예정.
  • 박상혁(야구선수)
         [[김경문]] 감독의 말에 따르면, 팀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한다.
  • 선동열
         [[2003년]] 시즌 후 [[김인식 (1947년)|김인식]]의 후임으로 [[두산 베어스]]가 그에게 감독직을 제의했으나, 조건에 이견을 보여 협상이 결렬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476668 프로야구 두산, 선동열 영입 포기] - 연합뉴스</ref> 협상이 결렬된 [[두산 베어스]]는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김경문]]을 후임 감독으로 내정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476991 두산, 김경문 신임 감독과 계약] - 연합뉴스</ref>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부름을 받아 라이벌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부임하여 본격적인 [[KBO 리그]]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478631 선동열, 삼성 투수코치 계약] - 연합뉴스</ref> [[2004년 한국시리즈]] 이후 선수단 인사에서 [[김응용]]이 구단 사장으로 보직이 바뀌자 [[11월 9일]]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부임하자마자 [[박진만]], [[심정수]]를 FA로 영입하여 호화 멤버진을 구축했으며, 이 때 [[삼성 라이온즈]]는 "레알 [[삼성 라이온즈|삼성]]"으로 불렸다. 감독으로 부임한 첫 시즌인 [[2005년]] 정규 리그 1위(74승 48패 4무)를 차지했고 정규 리그 2위 [[두산 베어스]]를 4연승으로 스윕하여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정규 리그 3위였던 [[한화 이글스]]를 4승 1무 1패로 꺾고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9년]]에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나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별다른 전술 대처없이 무기력하게 4전 전패로 스윕당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때마침 [[삼성그룹]]의 조직 개편이 겹치면서 구단 사장과 단장이 전부 바뀌자 그 해 말 당시 작전코치였던 [[류중일]]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물러나 구단의 운영 위원으로 활동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277799 '좋은 성적 내고도 경질된 프로야구 감독' 역대 베스트 5] - 스포츠조선</ref>
         {{s-aft | after = [[김경문]]}}
  • 손민한
         [[2013년]] [[6월 5일]] [[노성호]]를 대신해 4년 만에 1군 경기에 올라왔다. [[SK 와이번스]]전에서 선발 등판하여<ref>그가 1군에 올라오면서 4승으로 선발진에서 활약한 마무리로 보직을 바꿨으나, 난조를 보여 다시 선발 [[투수]]로 보직이 변경됐다.</ref> 1,378일 만에 1군 복귀전을 치뤘고, [[김광현 (야구 선수)|김광현]]을 상대로 1,407일 만에 선발 승을 거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48990 ‘살아 있네’ 손민한, 화려한 귀환 알리다] - OSEN</ref> [[2013년]] [[6월]] 한 달 동안 4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 평균자책 0.77, 8탈삼진으로 활약했으며, [[KBO 리그]] 6월 MVP에 선정됐다.<ref>[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343139 '6월 MVP' 손민한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야구할 것"] {{웨이백|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343139# |date=20131203015121 }} - 엑스포츠뉴스</ref> 하지만 그는 선발로 나설 때마다 투구 수에 대한 부담으로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에게 불펜 전환 의사를 표명했고, [[김경문]]도 이를 승인해<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46767 불펜 전환 손민한, “선발로 이기기 쉽지 않더라”] - 일간스포츠</ref> 불펜으로 전환했으며, 마무리 [[투수]]도 겸했다. [[2013년]] [[7월 24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데뷔 첫 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57821 역전패에 빛 바랜 손민한의 생애 첫 홀드] - 마이데일리</ref> [[2013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타석에 섰으나, [[김혁민]]을 상대로 삼진을 당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95915 NC 손민한, 프로 데뷔 17년 만에 첫 타석 '삼진'] - OSEN</ref>
  • 손시헌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협상이 결렬됐다. [[2013년]] [[11월 17일]] [[이종욱 (야구인)|이종욱]]과 함께 [[두산 베어스]]의 전 감독이었던 [[김경문]]이 있는 팀에 4년 총액 30억원(계약금 12억원, 연봉 4억원, 옵션 2억원)의 조건으로 이적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881815 이호준과 이종욱 손시헌이 만들 노하우 하모니는?] - 이데일리</ref> 2014년 [[4월 1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서울에서 [[크리스 옥스프링]]을 상대로 시즌 2호 홈런을 기록했다. 이 홈런은 팀 창단 100번째 홈런이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833593 ‘FA 이적 첫 홈런’ 손시헌, NC 100번째 홈런 주인공] - OSEN</ref> [[5월 29일]] [[한화 이글스]]와의 서울에서 역대 107번째 1000서울 출장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863837 손시헌, 통산 1000서울 출장 '역대 107번째'] - OSEN</ref>
  • 유영준 (1962년)
         야구부 감독을 거쳐 2011년부터 [[NC 다이노스]]의 스카우트 팀장으로 활동했고 2017년부터 [[NC 다이노스]]의 단장으로 활동했다. 2018년 6월 3일 [[김경문]]이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되자 감독 대행이 됐다.
         |전임자 = [[김경문]]
  • 윤석환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원음방송]]의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두산 베어스]]에서 그를 다시 투수코치로 기용한다. [[2004년]] [[두산 베어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꽤나 좋아졌으며, [[2005년]], [[2007년]], [[2008년]] 팀의 준우승을 이끄는 데 활약을 한다. 평소 장점을 중심으로 하는 코칭을 하고 있으며, [[김경문]] 감독과 맞게 믿음의 야구를 중점으로 두고 있다. [[다니엘 리오스]]와 [[2008년]] [[김선우 (1977년)|김선우]]가 후반기에 부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며, [[후안 세데뇨]]를 지도하기도 했다. 팀이 어수선해졌던 [[2011년]] 시즌 후 다시 팀에서 물러났다. [[2012년]]과 [[2014년]]에는 [[SBS Sports|SBS ESP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였고, [[2013년]]에는 잠시 [[일간스포츠]]로 옮겨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이강돈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라가 지역 라이벌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와 맞붙었는데, 0:4로 끌려가던 중 상대 [[선발 투수|선발]]인 [[김훈호]]의 볼질로 한점차까지 따라간 상황에서 뜬금없는 스퀴즈를 지시했다. 결과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주고는 [[김경문]]이 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던 1977년 이후 36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이 날 경기는 월요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주고 동문인 손혁, 박정배, 조동화가 와서 관전했다. 박찬호는 아예 덕아웃 옆에 있었고...]
  • 이성민 (야구선수)
         [[7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구원 등판해 1 2/3이닝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애덤 윌크|아담]]이 선발진에서 부진하고 부상과 팀 내 융화 문제까지 겹쳐 C팀 강등 후 [[트위터]]에 불만을 표시하자, [[김경문]] 감독은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해 그를 선발진에 넣었고 [[애덤 윌크|아담]]을 퇴출했다. [[2013년]] [[8월 3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0496 ‘1피안타’ NC 이성민, 선발 데뷔전에서 깜짝 승리] - 마이데일리</ref>
  • 이재학
         [[스프링캠프]] 때 [[김경문]] 감독이 눈도장을 찍어 기대되는 신인으로 주목받았지만, 경험 부족과 긴장으로 인해 제구가 흔들리며 사사구를 많이 남발했다. 그래도 2010년 6월 15일 잠실 [[LG 트윈스|LG]]전에서 4번째 투수로 나와 2⅓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데뷔전 이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 인천광역시/인물
         * [[김경문]] - 동구(인천)
  • 채상병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상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상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상 공백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상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 최재원(야구선수)
         22타수 무안타(...)라는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 계속 출전해서 [[NC 다이노스 갤러리|엔갤]]에서는 [[김경문|달]][[양아들|재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 [[별명]]은 위에 나와있는 대로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는 [[김경문|달]][[양아들|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가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에는 --감독 이름만 바꿔서-- [[류중일|살]][[양아들|재]]. --이젠 엘지로 이적했으니 [[양상문|양]][[양아들|재]]-- --[[양재역|응?]]-- --류중일이 엘지에 부임하면서 다시 살재가 됐다-- 다만 학교 다닐 때부터 실제 불렸던 별명은 자기 이름에+발이 빠르다고 '''재빠'''였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00&aid=0000000053|데뷔 직전 인터뷰]]
  • 최준석
         한편 [[NC 다이노스]]에서 은퇴한 [[이호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두산 시절 [[김경문]] 감독과의 인연도 있고 해서 영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NC 측에서 영입할 계획이 '''없다'''며 일축했다. [[모창민]]이 2017년 입단 이래 최고성적을 내며 중심타선에 안착하여 굳이 최준석을 데려올 이유가 없고, FA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공언한 터였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71207053039271|기사]] [[김태군]]의 입대로 포수 문제가 당장 시급한 상황임에도 FA [[강민호]] 영입이나 트레이드를 시도하지 않았다.
         결국 2018년 2월 11일, 이전에 했던 말을 번복하고 조건없는 사인 앤 트레이드로 NC행이 결정되었다. 연봉은 본인이 말했던 5천만에 근접한 5,500만 원.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11&aid=0000821910&redirect=false|김경문 감독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2014년 두산의 FA [[최준석|3]][[이종욱(야구선수)|인]][[손시헌|방]]이 모두 NC에서 김경문 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허나 NC 팬덤은, [[리빌딩]]을 천명하면서 이종욱, 손시헌과 저렴한 금액에 재계약하고 [[조영훈]],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를 내쳐놓고는 최준석 영입이 말이 되느냐는 반응.
  • 한기주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김경문]]으로부터 마무리 특명을 부여받은 그는 예선 풀 리그에서 중요한 광주 상대였던 미국, 일본, 대만 등 3광주에 구원 등판했지만, 2⅓이닝동안 7피안타, 6실점(5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이 무려 19.29에 이르렀다. 준결승과 결승전에서는 마운드에 오를 기회조차 없었다. 국제 대회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예비 엔트리에는 들어갔으나,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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