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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철(1983) . . . . 70회 일치
4season이라는 그룹으로 [[유노윤호]], [[김재중]], [[강인]]과 함께 데뷔하려다가 기획이 취소되고 이후 [[슈퍼주니어]]로 데뷔. [[이특(슈퍼주니어)|이특]]과 함께 [[슈퍼주니어]] 내 최고령. 하지만 희철 쪽이 실질적 팀 내 [[실세]] 이미지가 강하다. 슈퍼주니어 데뷔 당시 [[강인]]과 함께 팀의 인지도 상승에 많은 공헌을 한 멤버이기도 하다. 팀에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성격 때문에 멤버들 내에서도 '''무서운 형''' 이미지로 통하는 듯하다. 워낙 솔직하고 거칠 것이 없어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좋아해 '희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명 예의바른 4가지라 [[카더라]].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안그래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룹이고 그중에서도 유독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 쉬워보이는 성격과 캐릭터덕에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의외로 희철은 사생활 관리도 매우 철저하고 '''사건 사고가 전무하다.''' 음주운전이라던가 팬들을 속상하게 할만한 열애설이 거의 없었단 게 그 증거. 최근 [[강인]], [[성민]] 등의 멤버들이 잇따라 보이콧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지만 희철은 슈주 멤버들 중에선 의외로 모범적인 태도를 가진 멤버 축에 속한다. 그외에, 팬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멤버들을 상당히 잘 챙겨주고, 멤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많이 올려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탈퇴한 중국 멤버 한경과 친하게 지내서 미니홈피에도 글을 자주 올리곤 했는데 한경이 탈퇴하자 충격에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최근 한경이 매니저없이 한국 여행을 와서 희철과 찍었단 사진을 게재하는 걸 보면 여전히 교류는 이어가고 있는 듯.] 또한 스스로 '''꽃은 꽃잎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팬들을 자신의 꽃잎이라고 부르는등 자기 사람, 자기 팬은 확실히 챙기고 아이돌로서의 태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교통사고로 부상 당했을 당시 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자기 빼고 활동하라며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최근에도 다리 부상때문에 팀에 차질을 주고 짐이되는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만 알면 된다는 생각에 방송에서 이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않았던 일화도 있다. 자신은 다리가 아파 활동을 덜 하는 만큼 예능에서 슈퍼주니어를 더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중성 있는 꽃미남 비주얼에, 호불호가 갈리는 마니아적인 캐릭터라는 특이한 조합 외에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태도와 팬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기에 인기를 끄는 것. 슈퍼주니어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세계 단위 개인 팬덤[* '꽃잎'이라고 한다. 영어권 팬덤은 'Petal', 중화권 팬덤은 '花瓣', 일본 팬덤은 '花びら'라고 한다. 모두 꽃잎이라는 뜻이다.]을 거느리는 이유가 있다. 팬들을 내새끼들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기도. 활동도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많아서 사실상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한 슈퍼주니어를 알리며 잊히지 않게 하는 멤버.
2011년 9월 1일 입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 동안 복무하고 2013년 8월 30일에 [[소집해제]]되었다. 공익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입소 당시 좀 난리였는데 2006년도에 같은 멤버인 [[동해(슈퍼주니어)|동해]]의 부친상에 조문하고서 상경하다 차가 중앙분리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큰 수술을 요하는 중상을 입어[* 대퇴부와 발목 부분 골절상으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고 뼈에 철심 7개를 박는 대수술이었다.]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 [[아이돌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든 인터뷰든 저보다 아픈 분도 훨씬 더 많을텐데 제가 방송에서 아프다는 얘기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핑계 대기 싫었거든요." 실제로 [[아는 형님]]에서 [[이승기]]의 훈련병 당시 중대장이자 희철의 중대장이었던 분의 제보에 따르면 희철이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은 군대에서 태만하다는 이미지를 떨치고 싶어서 다리가 죽을 듯이 아파도 훈련에 다 참여했다고 한다.] 다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고. 실제로도 활동을 하면서 과격한 동작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음악방송을 예로 들면 제대 후인 2014~15년에는 약하게라도 무대를 전부 소화할 수 있었으나,([[https://youtu.be/4y1yRNJ9iuk|#]]) 2017년 [[Black Suit]]에서는 후반부에만 등장했고,([[https://youtu.be/_PMkWwo6xaw|##]]) 반년 뒤 나온 리패키지 [[Lo Siento]]의 무대에는 아예 참여하지 못했다.[* 철심제거 수술을 [[2008년]]에 했는데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왼다리로 넘어졌다가 웃고 넘어갔지만 굉장히 아파했고, 아는 형님에서도 닭싸움이나 다리를 심하게 쓰는 코너에서는 제외된다.] 콘서트 무대는 아직까진 잘 소화하는 중이지만, 과격한 안무나 무대 퍼포먼스 후에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공익 활동 당시엔 트위터도 없애고 팬들에게 절대 찾아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고, 성실히 복무했다.[* 성실히 복무를 한 공로로 상장도 받았다. [[파일:external/contents.dt.co.kr/2013083002019919794015.jpg]]]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8819&imp=whot|관련기사]] 단, 공익근무시간에 LOL을 한 전적이 있었으며(당시 닉네임: 김기복), 이에 대해 해명하길 친구가 했다고~~대ㄹ..~~ 했다. 아무튼 군 문제에 관해서 대중들의 여론은 대체로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이민호(1987)|이민호]]와 같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던 명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모범적으로 사회복무를 마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주는 편.
* ETN "강인하고 희철하게"[* 뮤지컬 연습하는 과정을 찍은 프로그램이었으나, 문제는 이 뮤지컬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뮤지컬이었으며 당시 희철은 교통사고후 철심 제거수술을 받은지 얼마 안되어 목발을 짚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인지도가 높다는 죄로 뮤지컬에 투입된 희철은 연습과정에서 넘어지고 많이 아파했으며 컨디션이 무너져 감기를 달고 살기도. 팬들 사이에서는 애증의 예능 1위로 꼽힌다.~~그냥 증..이다~~ ~~본인도 인생술집에서 ‘아..그때 너무 슬펐어’라고 언급할 정도. 소속사인 SM이 희철의 팬들에게 비난 받는 많은 이유 중 하나다~~] (2008)
기본적으로 의리 있는 성격이라 친해지면 오래 간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방송, 드라마, 라디오등에 출연하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분을 쌓아 나갔고 본인의 의리 있는 성격이 겹쳐져 2018년 현재 어마무지한 인맥 라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실상 웬만한 메이저 아이돌들은 김희철과 친분이 있으며, 예능에 자주 출연하다보니 예능 MC들과, 데뷔 초 시트콤 출연 경력 등으로 배우들과도 친분이 있는 등, 연예계 다방면으로 인맥을 자랑한다. 가장 자주 만난다는 인맥그룹은 AB형 혈액형을 가진 남자연예인들의 모임인 쪼코볼[* '''쪼'''금 싸이'''코''' 같지만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들.]로 [[장근석]], [[이홍기(가수)|이홍기]], [[조성모]], [[미쓰라 진]], 낯선, [[쌈디]], 김정모 등이 멤버이다.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BoA]]와도 친분이 두텁다. 게임 전문 아프리카 BJ나 소속사 대표들도 알 정도로 연예계나 비연예계 전방으로 엄청난 친목을 자랑한다. 근데 오히려 슈주 멤버들과 덜 친하다고 절친 노트에 나오기도 했다(...) 슈주에선 [[최시원]]과 [[동해]]와 가장 친하다. [[이특]]과는 성격이 정반대라 자주 싸우기도 하는데, 본인은 이 관계를 '''친하지 않은데 안 친하지도 않은 사이(....)''' 라고 표현하기도. [[한경]] 과도 절친한 사이여서 한경이 탈퇴한 이후 우울증에 걸려 탈퇴를 고민하기도 했고 미니홈피에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탈퇴 이후에도 만남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방신기]]에서는 [[유노윤호]]와 친분이 있으며, [[동방신기]]를 탈퇴하고 [[JYJ]]로 활동하는 멤버 [[김재중]]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구라]]의 [[흑역사]]였던 인터넷방송 시절 김구라의 열성팬으로 팬 정모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얼굴을 합성해 놓은 팬픽이 있지만 시각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찾아볼 사람만 찾아보자.(...) 때문에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와 스캔들(...)이 날 정도의 친근함을 과시했으며 희구라 커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비슷한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박명수]]도 추종하는 듯, [[무한도전]] 뒤끝공제 특집에 출연해 그 면모를 확실히 드러냈다.
데뷔 초에는 시트콤이나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배우들과도 인맥을 쌓았는데 대표적으로 [[김명민]]과 [[여운계]]. 특히 여운계가 별세했을 때 김희철이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또한 예능 멤버인 만큼 [[신동엽]], [[유재석]], [[정선희]] 등과도 친분이 있어서 [[정선희]]의 남편 [[안재환]]이 사망했을 때 2번씩 조문을 온 적도 있다. [[신정환]]과도 친하다. 신정환과 첫 방송을 같이 한 인연 때문에 친분을 유지했고 2018년 신정환이 복귀 방송으로 [[아는 형님]]에 출연하자 필리핀 뎅귀 드립으로 철저히 농락했다(...)
[[김장훈]]과도 친하다. 데뷔 초부터 김희철이 김장훈 모창을 주로 밀었고 이로 인해 가까워졌다고. 입대하기 전 <이별 참 나답다> 라는 싱글을 낸 적도 있다. 음악방송에서는 [[예성]]이 김희철을 대신해 불렀다. 김장훈이 공황장애로 입원했을 때 문병안을 오기도 했다. 그때 김장훈은 미니홈피로 싸이와 돈가스 먹은 기사를 봤다며 자기도 돈가스 시켜달라고 했다면서 돈가스 먹으러 온 놈이라고 디스했다(....)
상당한 게임광이라 휴일엔 집에 틀어박혀 게임밖에 안 하고 온라인게임도 그럭저럭 손을 대는 중이라고 한다. [[와우]] 모 서버의 [[호드]](블러드엘프)였다가 [[얼음왕관 성채]]가 나왔을 때 즈음 [[얼라이언스]]로 전향했다. 소집해제 후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고 있는지, 2013년 11월 27일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나는 캐리다]]에 출연했다. '김희철 동호회'라 하여 [[강민]], [[박정석]],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 오기종과 함께 나왔는데 결국 [[김캐리]]급 멘탈 인증(...) 그리고 방송 후 [[롤갤]]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받게 된다(...) 이때 공개된 김희철의 티어는 플5. 이즈리얼, 베인, 케이틀린이 모스트인 원딜러인 듯. 아프리카TV BJ들과 게임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해킹당한 이후 게임을 접겠다고 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물론 게임은 계속한다. 최애캐는 리신. 참고로 같은 팀 멤버인 규현도 상당히 겜덕이다.
2014년 초부터는 [[홍진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홍진호의 라디오 출연 중 전화를 걸어서 반말을 까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물론 방송용으로 만들어낸 친분이 아니라 이전부터 같이 밥도 먹고 하던 사이였던 듯. 사실 홍진호와 김희철이 같은 동네의 주민이라는 것이 [[나 혼자 산다]]에서 홍진호가 게스트로 출연한 화에서 밝혀졌다. 또한 [[이두희]]와도 친분이 있는 듯. 인스타그램에는 홍진호 이두희와 찍은 사진과 함께 '여자한테 인기 없는 게임만 하는 오타쿠 셋이 모여'라는 멘트를 남기기도. 근데, 홍진호는 라디오에서 [[태연]]을 소개 받기 위해서 김희철을 더 만난다고 폭로했다.[* 물론 진심은 아닌 것이, 김희철은 과거 서로의 만남 주선을 해달라는 사람과의 인연은 바로 끊는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래서 [[박초아]]의 열애설 당시, 열애설 상대를 희철이 중개해줬다는 추측성 기사 내용에 심히 불쾌해했다고 한다. 이 시기,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의 재혼 드립이 언급 됐을 때, "그럼 그 소개는 내가 해주는 거네? 이런 젠장~"이라고 한다. 물론, 그 기사 때문에 분노한 거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타 연예 기획사 수뇌부들과도 친분이 많은데 주간아이돌 크리스마스 특집 때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게스트로 출연한 [[걸스데이]], [[TWICE]],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러블리즈]]의 기획사 임원들과 깊은 친분이 있음을 인증했다. [[울림 엔터테인먼트]] 실장, [[JYP 엔터테인먼트]] 정욱 사장,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와 절친이라고 한다.[* 소성진 대표의 경우는 SM에서 매니저 생활을 했었는데 이때 친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김희철&김정모]]가 출연한 슈키라에서 박진영, [[MBK 엔터테인먼트]] 김광수 대표,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김시대 대표 등 유력 굴지의 기획사 대표들과 형동생으로 지낸다고 언급했다. 예전에 [[플레디스]] 한성수 대표와도 친하다고 했었다. 그 친분 덕에 [[오렌지캬라멜]]의 샹하이 로맨스 작사를 '''우주대스타'''라는 필명으로 맡기도 했다.
심지어, [[아는 형님]]에서는 [[걸스데이]] 편의 소진의 별명인 '''이모''' --이 것도 모자라 슈주랑 평균나이대가 비슷하다고 팩트를 날려버렸다--[* 사실 이모라는 별명이 그래서 온 것도 있다(...)], [[TWICE]] 편에서 사나 별명인 '''사또떨('사'나가 '또' '떨'어트렸다)'''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자, 소진의 "맞아..." 하는 장면과, 나연의 "와... 대박이다!!!" 하는 장면은 포인트. 게다가, 걸스데이 소진의 나맞혀 정답 중 하나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걸스데이가 출연하며 했던 소개 멘트인 "아가아가 아가공주 소진"이였는데, 출처를 정확히 기억해내기도 했다. 민아의 머리가 노란색이였던 것까지 기억한 건 덤. --그 땐 완전 데뷔 초창기였을텐데???--
또 2017년 인생술집에서 MC를 맡으면서 [[남궁민]]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우주대스타의 인맥이 추가되었다고 기사에 뜨기도 했다.
인맥이 많아서 약간 신뢰 없는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김희철은 인맥 관리에도 매우 철저하고 자신이 친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챙기고 잘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평가가 높다.[* [[강은비]]가 한창 100만 안티에 시달리던 시절인 2006년, 레인보우 로망스 시사회에서 동방신기와 김현중의 팬들의 협박 때문에 강은비가 실신하자 강은비의 안부를 직접 챙기고 촬영장에서 무개념 팬들의 접근을 막는 등 강은비를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강은비는 지금도 김희철에게 고마워한다고.] 특히 여사친이 상당히 많기도 한데, 김희철은 일단 본인이 여자와 친구가 된 이상 그 여자를 절대로 이성으로 보지 않으며 본인이 이성으로 느껴지거나, 상대방이 자신에게 감정을 가지고 다가올 경우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캔들 한 번 없는 것도 철저한 인맥관리 때문일지도. 또한 주위 인물이 여자 연예인을 소개 시켜달라고 하면 바로 차단을 시켜버리는 등,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초아 열애설 때 중개를 자신이 시켜줬다는 추측성 기사 때문에 엄청 불쾌했다고.
애니메이션의 장르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이것저것 챙겨보는 듯 하다. 클템의 아프리카 방송에서 "[[사무라이 참프루]] 졸라 재밌던데 봤어?"라고 하거나 게임중에 [[쥐라기 월드컵]]의 여는 노래를 부르면서 같이 게임하는 팀원들의 어그로를 끌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레전드 방송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게임도 즐긴다. [[리그 오브 레전드]] 랭크 게임에서 다이아 티어에 서식하고 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 [[이현우(게임 해설가)|이현우]]와 친해서 방송에 시시때때로 출연하는 것은 물론 [[박정석]]과는 서로 욕설(...)까지 주고받는 동갑내기 친구 관계다. 2016년 롤드컵 당시에는 게임방송국 [[OGN]]에서 객원해설로도 출연하며 적당히 게임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OGN 측이 나름 챙겨준다고 출연료를 챙겨줬지만 원래 희철의 몸값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나가겠다고''' 적극 주장해 출연했으며, 원만한 진행 능력&게임 지식을 발휘해 일반적인 객원 해설보다 훨씬 더 퀄리티 높은 해설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dwEu2bY5KI|해설영상]]. 이 해설을 기반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견해도 알 수 있다([[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65285&iskin=esports|인터뷰]]). 그 밖에 트위터에 이특과 [[킹 오브 파이터즈]]를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것을 보면 롤 이외의 게임도 즐기는 모양. 이특이 [[야가미 이오리|이오리]] 안 시켜주고 시원이 닮은 [[로버트 가르시아]]로 얍삽이만 쓴다고 폭로했다. 또한 2017년 2월에 있었던 SBS [[게임쇼 유희낙락]] 녹화중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스트리머)|케인]]의 킹오브 방송을 굉장히 재밌게 보고 있다고 언급하였고, 실제로 케인을 해당 방송에 섭외해서 녹화도 했다.[* 이때 섭외 과정에서 5개월 구독을 끊었다가 희철을 사칭으로 오해한 케인에게 생방으로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었는데, 이를 계기로 케인과 친구를 먹고 이후로는 케인의 방송에서 시청자들과 채팅도 종종 주고받고 있다.]2018년 1월18일 케인의 방송에 출현했다[* 출연 계기는 다른 연예인들과 술마시던 중에 갑자기 케인이 보고싶어서 전화했더니 왔다고 한다. 그에 고마움을 느껴 합방제의를 했고, 뒤늦게 정신차렸지만 이미 뱉은 거 책임진다는 마인드로 합방을 하게 됐다고]~~케조씨도 희님덕분에 만명찍었다 그와중에 만명이면 적게보네라고한 희님 흠좀무 인스타라이브만 3~4만명보는데~~ 이 방송에서 단 1초도 오디오가 비지 않게 게임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줘..." "야 누가 00게임 얘기 꺼냈냐" "뇌 용량이 얼마인거냐" "박찬호를 능가하는 투머치토커다" "귀에서 피 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단하기도 대단한 것이 게임 캐릭터의 인상착의, 배경음악, 스킬, 줄거리와 엔딩, 감상평까지 자세히 말을 하여 정작 방송의 주인인 케인은 아주 가끔 한 마디씩 끼워넣는 것 말고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음성 도네로 에미넴 비트를 깔며 랩 드립을 쳤다.
미소년 이미지의 대표 주자답게 [[여장]]이 잘 어울린다. [[2009년]] [[11월]]부터 [[12월]]까지 열린 슈퍼주니어의 두번째 투어 [[SUPER SHOW 2]]에서는 아예 여장을 하고 나온 부분도 있어, 뭇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010년 연예가 중계 '[[김생민]]의 베스트' 에서 여자보다 예쁜 남자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 8월에는 [[레이디가가]]를 패러디한 '''레이디희희'''를 선보이기도 했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52394|#]] [[http://www.youtube.com/watch?v=hdzaMPI2qj8|팬들의 함성을 들어 보시라.]] 이외에도 희탱구, 희시카, 설희, 희이비 그리고 아이오아이 제 12의 멤버 등등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찾아볼 수 있으며 레이디희희로 여장 종결자에 등극했다.
2014년 추석에 방영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소원을 말해요'에서 이벤트로 [[겨울왕국]]의 [[안나(겨울왕국)|안나]] 코스프레를 하였다. [[엘사]] 역을 맡은 [[김재경]]과 비교해도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82808140336766&type=1&outlink=1|딱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 이후엔 아예 엘사 분장을 하고 [[http://osen.mt.co.kr/article/G1109995790|나오기도 했다.]] [* [[SUPER SHOW 6]]에서 엘사 콘테스트를 열었는데 자신은 안나를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엘사를 했다고 한다. 총 3회의 콘서트 중 마지막 콘서트에서 희철이 올라와야 하는 타이밍에 엘사 드레스와 가발만 올라왔다. 모두가 어리둥절하고있는 사이 기어이 안나로 분장한 희철이 나타났다.]
2006년 8월, 같은 그룹의 멤버 [[동해(슈퍼주니어)|동해]] 아버지의 빈소를 다녀오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한쪽 다리에 7~8개의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으며 혀가 찢어지기도 했다.
- 도영(1996) . . . . 69회 일치
||<#FF0133><:>'''{{{#white 출생}}}'''||<(> [[1996년]] [[2월 1일]](만 [age(1996-02-01)]세)[br][[경기도]] [[구리시]][* 소속사 선배가수 [[EXO]]의 [[시우민]]과 같은 구리 출신이다.] ||
루키즈쇼에서 태용과 부른 미공개 곡이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곡이 [[https://www.youtube.com/watch?v=5SIOGkxd_B0|Piece of mind]]. 제목이 밝혀지기 전에는 가사에 나오는 단어인 '귓속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은 J.cole의 sideline story의 트랙을 빌려와 그 위에 멜로디와 랩을 붙인 곡으로 태용이 연습생 시절 힘들고 지칠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노래였다고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Piece of mind 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루키즈 쇼에서 두 사람이 부른 또다른 곡인 [[https://www.youtube.com/watch?v=HjMaLw-57qw|Switch off(가제:백열등)]] 또한 정식 발매되기를 원하는 팬들이 종종 있다.
노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해 그의 무대를 보면, 자신의 파트가 아님에도 가사를 곱씹는 장면이 종종 포착된다. 특히 [[위닷츄|WITHOUT YOU]] 무대를 보면 흥에 넘쳐하는 그의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https://youtu.be/L53QGmAUjsM|160606 엠카운트다운 스페셜 NCT U - WITHOUT YOU + 일곱 번째 감각 by플로라]] 발매된지 약 2년이 지난 2018년 5월 팬파티에서 또 이 노래를 불렀는데 언제나처럼 너무나 행복하게 부르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후에 라디오에서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웠고 2018년 들어 최고로 흥이 올랐던 순간이라고 밝히기도.
본인의 목소리와 노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인터뷰가 꽤 많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한소절만 들어도 누군지 알아챌 수 있는 보컬이 되고 싶다'고 말한적도 있다.
2017년 2월 5일부터 [[SBS 인기가요]] MC를 맡아 약 1년 간 매주 일요일 생방송을 진행했다. 공동 엠씨는 갓세븐 [[진영(GOT7)|진영]], 블랙핑크 [[지수(블랙핑크)|지수]]로 셋의 이름 첫 글자를 따 진지도라고 불렸다.[* 출생년도는 진영 94 지수 95 도영 96으로 셋 중 막내 포지션.] 엔딩 멘트는 '''우리랑 함께 가요~'''[* 손목이나 모자, 선글라스, 마이크 등에 '인기가요'라는 글자를 붙이고 숨겨줬다 보여준 후 '인기가요~ 우리랑 함께 가요~'를 외치는 방식.] 진영의 증언에 따르면 3MC 중 제일 대본을 틀리지 않는 멤버라고 한다.[* 딱 한 번 틀린적이 있는데 928회에서 엔딩 멘트인 '우리랑 함께가요~' 타이밍을 놓친 것. 실수를 눈치채고는 그 회차 1위였던 선미의 '가시나'를 패러디해 '인기가요 함께 가시나~' 로 마무리했다. 앵콜 무대에서 웃으며 팔을 툭 치는 진영과 아쉬워하는 도영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은 덤.] 2018년 2월 [[마크(NCT)|마크]]가 [[쇼! 음악중심]]의 새 MC가 되자 마크에게 음악프로 진행을 알려주는 V live를 기획하려고도 했다는데 그즈음 갑자기 인기가요 MC를 그만두게 되며 무산. 마지막 방송에서 인사를 하며 눈물이 살짝 맺히기도 했는데 방송 후 열린 막방 기념 V live에서는 울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47M3qOhp8|또잉가요 모음1]] [[https://www.youtube.com/watch?v=PZi7_MLGYn8|또잉가요 모음2]]
* 시력이 좋지 않아서 방송을 할 때는 렌즈를 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이 쉽게 충혈되는 편인지 활동이 많은 시기에는 눈이 빨개진 채 찍은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보라가 아닌 라디오 녹음 방송에서는 종종 렌즈 대신 안경을 끼기도 한다. 그런데 2018년 여름 쟈니와 함께 라식을 했다. 현재 시력은 1.2. 라식을 하니 다른 세상을 보며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도영: 더 좋은 눈으로 여러분을 이제 보겠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운동을 전혀 안 배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린 시절 육상부에서 높이뛰기를 했고 [* 물론 그다지 잘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검도도 잠깐 배웠다고 한다. 운동 하나 해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형과 같은 태권도는 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게 검도. 대련보다는 검법 형 수련을 중시하는 해동검도를 배웠는데 안무 외우는 속도가 멤버들 중에서도 빠른 편인 게 이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DJ--멤버--들의 추측이 있기도 했다.[* 본인은 안무를 빨리 외우는 비결에 대해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안무를 빨리 외운다'라고 대답했다.] 다만 커가면서 점점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진 듯하다. 지금은 스스로 운동이랑은 잘 안 맞는 거 같다고 얘기하는 편.[* 엔시티 안무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땡볕에서 땀 흘리는 걸 싫어하고 춤추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 도영의 형은 남성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인 [[공명(배우)|공명]]이다. 형인 공명과는 사이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어릴 적 서로 싸운 일도 별로 없고 부모님이 모두 집안에서 막내였던터라 막내인 도영에 대한 배려가 많은 분위기여서 형도 도영을 많이 챙겨주었다고.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차가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다리를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지켰다-- 차에 치이자마자 바로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3달 넘게 휠체어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형이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고 이야기했다. 형이 다정하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앨범이 나오거나 도영이 방송에 나오면 종종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레귤러 활동 당시 첫방 날에 공명이 직접 찾아와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하였다.
* 유치원 5살 때 다니던 반의 이름은 분홍반이며, 5살은 도영이 엄마에게 처음 혼났던 나이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반장이 된 나이, 처음으로 단어시험 100점 맞은 나이는 9살.[* 이때 단어시험 100점 맞은 상으로 아빠가 닌텐도를 사주셨다고.] 처음 짝사랑을 해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 고2 때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내 토론대회에서 결선까지 올라가기도 하였다. 당시 주제는 'SNS의 확산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가'.
* '동영'이라는 이름이 너무 동글동글해서 어릴 때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영'과 '도영' 중 뭐가 더 좋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이름과 관련해서 어릴 적 별명은 똥파리, 동대문 등이었다고 한다. '동'이 돌림자여서 명절에 사촌들끼리 모여서 별명 얘기를 하면 모두가 같은 별명이었다고. 또 [[정동영|모 정치인]]과 동명이인이라 한때 대통령 선거 나가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쟈니:제 친구도 [[세훈|오세훈]]이 있거든요-- 외국인 멤버들은 도영의 예명이 생기기 전부터 '동영'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도영'이라고 많이 불렀다고 한다.
* 좋아하는 음식은 [[https://www.youtube.com/watch?v=phLpN6Or48c|치즈가 들어간 음식]][* 치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빵집에 가도 치즈가 들어간 빵을 주로 먹고 좋아하는 케이크도 치즈 케익.]과 팝콘, 화이트 초코, 팥빙수 등 단 음식, 수박과 복숭아, 마라탕, 훠궈 등이며 카라멜 커피를 즐겨마신다고 밝혔다. 또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 제주도 스타벅스 한정메뉴], 명란 바게트[* 스케줄 차 일본에 갔을 때 먹어보고 반한 것 같다.]를 추천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음식은 오이. --재현:오이!!! 도영:나 오이 너무 좋아해-- 사실 오이가 싫은게 아니라 오이 냄새를 싫어하는 것. 피클은 잘 먹는다고 한다. --별명이 토끼임이 무색하게--당근도 싫어하는데 당근 케이크는 또 괜찮다고 한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잘 못 먹는 것은 [[https://www.youtube.com/watch?v=Dlf2rUo22gM|커피]].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서 카페에 갈 때도 가능하다면 디카페인 주문을 하는 편이라고 한다. 새벽에 잠을 깨려고 억지로 커피를 많이 먹은 날이면 자기 전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못 잘 정도.
* 의외로 초콜릿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디스패치에서 공개된 할로윈 간식 언박싱 영상에서 멤버들이 호박맛 킷캣을 추천하자 "난 초콜릿(절레절레)" 하면서 사양하였다. 멤버들이 계속 맛있다고 하자 한 입 맛보았지만 더 준다는 재현의 제안은 사양하였다. 그런데 초콜릿 드링크나 초코맛 아이스크림은 좋아한다고 여러번 언급했으며 루키즈 백문백답에서도 화이트초코를 좋아한다고 해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미스테리인 상태. 후에 팬싸인회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단 건 좋아하지만 초콜릿은 입에 끈적하게 남는 이물감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 쟈니, 재현과 함께 대식가인 멤버 중 한 명이다. 쟈니의 표현으로는 We eat a lot 클럽. 단체 식사에서 많이 먹는 테이블의 고정 멤버가 이 셋이고 여기에 가끔 해찬이가 끼기도 한다고.[* 최근에는 [[루카스(NCT)|루카스]]가 대식가 1위로 올라선 것 같다.] 음식 종류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음식이든 그냥 많이 먹는 타입이라고 한다.[* 다음 날 땀 흘릴 일이 많다 싶으면 그 전날 엄청 많이 먹어둔다고.] 많이 먹고 운동도 안 좋아하고 취미는 침대에 누워있기인데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미스테리. 그런데 사실 모태 마름이 아니라 SM에 입사하고 나서 견과류만 먹으며 독하게 살을 뺀 것이라고 한다. 재현은 이를 보고 목표한 것은 반드시 이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태용이 본 도영의 첫인상:땅콩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우도 땅콩크림 프라푸치노를 추천하거나 월남쌈에는 땅콩소스지라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실제로 땅콩을 좋아하는 것도 맞는 듯하다.]
* 먹는 그 순간보다 먹을 걸 생각하는 순간이 더 좋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뭘 먹을지 미리 생각해놓는 타입이라고. 본인이 뭘 먹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점을 멤버들이 신기해하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1주일 안에 꼭 먹어야 하는 타입이라고.[* 라디오 생방 중에 마라탕이 먹고 싶어져서 중간 광고 타임에 '마라탕 먹을 사람?'이라며 마라탕 팟을 구한 적도 있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있었던 팬싸인회에서 마라탕 먹었냐는 질문을 20번 넘게 들었다고.] 하고 싶은 취미 활동으로 맛집 투어를 여러번 이야기하기도 했다. 맛집 블로그도 해보고 싶다고. 다만 도영의 음식 취향이 좀 독특해서 멤버들은 늘 안 맞는다고 하는 것 같다. 쟈니는 도영의 맛집 블로그가 신뢰감은 별로 없을 거 같다고.
* 먹성이 좋은 만큼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가장 즐겨먹는 멤버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비행기를 타면 꼭 그 나라의 비행기에서는 어떤 음식이 나올까 먹어봐야 한다는 주의.
* 목이 안 좋을 때 관리하는 방법은 말을 안 하는 것과 젖은 수건을 걸어 놓는 것. 그리고 가끔씩 일부러 마스크를 끼고 연습을 해서 입과 목 쪽에 습기가 차도록 하기도 한다고.
* [[향초]]는 좋아하는 반면 향수는 즐겨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유는 좋아하는 향이 딱히 없어서라고. 그런데 빨래 냄새는 좋아한다고 한다. 다만 2018년에는 일본에서 사쿠라향 향수를 샀--는데 금방 잃어버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루키즈 시절 백분백답에 따르면 좋아하는 날씨는 가랑비 내리는 날. 데뷔 후 비오는 날은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누워있기 좋다(...)고 대답했다. 원래도 나가는 걸 싫어하는데 비오는 날은 더 나가기가 싫다고. --물론 맑은 날에도 보통은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오는 날 나가는 것을 싫어할 뿐 비오는 날 자체는 좋아하는 것 같다. 건조한 것보다 습한 것을 더 좋아하고[* 비슷한 이유로 [[태국]]에 가면 따뜻하고 습해서 피부가 촉촉하고 목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좋았다고.] 비가 오는 날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놓으면 좀더 좁은 공간에서 노래를 듣는 느낌이라 더 좋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먹고 싶은 음식은 해물파전. 실제로 잘 만들기도 한다고. 팬보드에서 제일 좋아하는 수록곡 질문을 받았을 때 Sun&Moon을 고르면서 그 이유로 비오는 날 듣고 싶은 '나른의 끝' 같은 노래여서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NCT]]에서 높은 곳을 담당하는 멤버이기도 하다. 각종 뮤직비디오나 영상들에서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 이 때문에 멤버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는 편이다. 가장 무서움을 많이 타는 멤버를 묻는 질문에서 태용, 재현에게 지목당하기도 하였다.
- 세정(구구단) . . . . 59회 일치
||<#66AADD> '''{{{#white 이름}}}''' ||<#ffffff><(> 김세정(金世正)/Kim Sejeong[* '깨끗이 씻어내다'라는 뜻의 세정과 구분하기 위해, 또는 프로듀스 101의 영향으로 아직까지도 본명이 널리 쓰이기도 한다.][* [[https://www.facebook.com/ioi.official.page/posts/219026278471378|영문 이름 출처]]] ||
||<#66AADD> '''{{{#white 출생}}}''' ||<#ffffff><(> [[1996년]] [[8월 28일]] ([age(1996-08-28)]세), [[경기도]] [[안양시]] [* 아는 형님 페이스북 라이브 인터뷰에서 태어난 곳이 김제라고 밝혔다. 초3 때에는 안양으로 이사를 갔다.][* [[http://www.gj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972|출생지 출처]]] ||
||<#66AADD> '''{{{#white 학력}}}''' ||<#ffffff><(> 안양부흥초등학교 (졸업)[br]호계중학교 (졸업)[br][[인덕원고등학교]][* 인덕원고 재학 시절에 연극부 활동을 했다. 제22회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에 '브리튼을 구출하라'란 작품으로 출전해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던 적이 있으며 2013년에 청소년 뮤지컬단 오디션에 합격한 경력 등이 있다. 연기학원은 이앤티트레이닝센터를 다녔다.] (졸업)[br][[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재학)[* [[I.O.I]] 앨범 자필 프로필에 따르면 장학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서옵SHOW]] 11회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연예계 활동 때문에 학교를 계속 다닐지 자퇴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입시를 볼까 말까 고민하던 때, 당시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연습생]] [[나영(구구단)|김나영]]이 세정을 상대로 대학 입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학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 끝에 입시를 준비해서 합격했다고 구구단 눕방 중에 밝히기도 했다. [[민서]]와 동기다.] ||
||<#66AADD> '''{{{#white 특기}}}''' ||<#ffffff><(> 팔씨름, 허벅지 씨름[* 무려 [[씨스타]]를 팔씨름, 허벅지 씨름으로 전부 승리했다. 심지어 씨스타 멤버들이 원하는대로 오른손 왼손 바꿔가며 보라(우), 다솜(좌), 효린(우), 소유(우)을 상대해서 연승을 거뒀으며 이후 해피투게더3에 출연해서 걸스데이 유라, 혜리, EXID 하니를 상대로 연승을 거뒀다. [[나영(구구단)|나영]]은 한 손가락으로도 (!) 이긴다. 주먹쥐고 뱃고동에선 고정 출연자였던 배우 [[경수진]]을 상대로 팔씨름 및 허벅지 씨름을 해서 가뿐히 승리를 거뒀다. [[주먹쥐고 뱃고동]] 촬영 당시 회사에서 팔 근육 그만 키우라고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sHnSayAxQ|영상]]], 요리[* [[주간 아이돌]] 365회 본인이 작성한 프로필 특기란], 그림그리기 ||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소속 8인조 걸그룹 [[구구단(아이돌)|구구단]]의 멤버이다. [[2016년]] [[프로듀스 101]]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최종 순위 2위를 기록한 출전자로, 남녀노소 다양한 팬층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I.O.I]]로 정식 데뷔하기도 전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출연자 중 상위권에 속하는 비주얼에 [[아이돌]] 가수로서의 춤과 노래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또 털털하고 밝은 성격에 강한 멘탈과 무대 장악력까지 갖추어 [[프로듀스 101]] 방송 초반부터 국민 프로듀서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SK텔레콤의 CF 연결의 힘 캠페인 [토닥토닥 라이브 X I.O.I] 네이버TV [[https://tv.naver.com/v/851393|영상]]에서 (16/05/29기준)조회수 200만을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imsejeong&no=232460&page=1&search_pos=-235517&s_type=search_all&s_keyword=200%EB%A7%8C|돌파]]했으며 2016년 4월 27일에 올라온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7월 11일에 다시 100위권 안쪽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팬들은 토닥 좀비라고-- 이 영상이 업로드 됐을 당시 부끄러워하며 커튼 뒤로 숨는 장면은 뭇 남성 팬들의 심장을 움켜쥐게하며 늦잠을 절대 못 자게 했다고 --[[카더라]]--. 팬들이 뽑은 영상 중 손가락 안에 꼽는다. 또 생일을 맞이하여 팬들의 총공세로 [* 무한 [[스트리밍|스밍]]] 8월 27일 무한도전을 꺾고 TOP2까지 치고 올라왔고 8월 28일 생일 당일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1위를 했다.
I.O.I의 예능 치트키. 고정 프로인 어서옵쇼에서 아재들을 들었다 놨다 하거나, 예능에서 I.O.I를 홍보하거나 직접 자기가 고정인 프로에 예능에 잘 나오지 않는 멤버를 직접 데리고 나온다. 김청하, 김소혜 등을 데리고 나온 뒤 본인이 팍팍 밀어준다. 실제로 김소혜는 어서옵쇼 출연이 첫 예능이다. 주로 미는 소재는 괴력소녀와 노래방 성우 목소리. ~~그리고 임나영에게 받은 병든 닭~~ 팔씨름과 허벅지 씨름에서 씨스타를 관광태우거나 다른 예능에서 멤버들과 게임을 하면 멤버들을 관광태우기도 한다. 최유정은 배게 싸움에서 김세정에게 카운터를 맞고 다운됐고, 김청하는 언니이지만 어서옵쇼에서 굴욕적으로 세정에게 끌려다녔으며 방송인 홍석천, 박지윤 등도 김세정에게 관광당했다. 멤버들도 평소에는 김세정을 놀리지만 힘쓰는 게임을 들어가면 긴장한다. 하지만 전소미와의 베개 싸움에서는 도발당하고 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뿐만 아니라 FPS 게임 대결에서 전소미와 대결했으나 전소미에게 진 적도 있다.
이렇듯 개인 활약상도 많지만 무언가를 주도해서 멤버들을 놀래키거나 계획하는 등의 활약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자면, 5년 뒤 재결성과 임나영 몰카 등이 전부 김세정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몰이 대상이 되어 자주 몰이당하기도 하는데, 하도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과 지나치게 아재스러운(?) 리액션이 주 놀림대상. 여기에 전소미와 김도연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도 잘 안하는 양갈래를 자주 하면서 어린 척 귀여운 척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 자기도 소녀스럽고 어려 보이고 싶은데 너희가 너무 잘 어울려서 버겁다고 자폭 여기에 덤으로 마지막 완전체에서 맡은 파트에서 지나친(?) 호흡 실종 현상으로 거의 숨소리마냥 야하게 들리는 탓에 야세('''야'''한'''세'''정)라는 별명까지 추가되었다. 본인은 절대 야한 성격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춤추거나 할 때 뒤에서 뚫어져라 몸매 감상을 하거나, 나쁜 손을 시전(!)하는 등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넘치는지라... 여하튼 이런 식으로 멤버들에게 몰이를 많이 당하는 편이다.[* 특히 세정이 뷰티 프로그램 MC가 되자 동생들은 기념으로 그날 최고의 극딜과 디스를 선보였다. 소미는 잘할 수 있을지를 세정이 묻자 고민도 없이 아니요 라고 답하고, 소혜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에 언니에게 부족한 건 조신함이라는 팩폭을 날려준 도연과 뷰티 프로 MC를 맡았다고 하니 대놓고 놀라며 "뷰티요?" 라고 되묻는 채연까지...]
[[타임슬립 - I.O.I|마지막 콘서트]] 날, "이제 내일이면 I.O.I가 없어요." 라고 하면서 오열했고 멤버와 팬, 부모님께 감사의 소감을 전하며 말을 마무리했고, 콘서트가 끝난 뒤에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1월 23일 그녀가 사랑하던 I.O.I 활동이 마무리됐다. 이 때 그녀는 "I.O.I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I.O.I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질문을 받았을 당시 끝이 정해진 그룹이라 적당한 선의 애정만 주었다고 하지만 내면을 보고 자신이 멤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고 해체에 대한 아쉬움과 더 애정을 쏟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연습실에서 혼자 운 적도 있다고.[* 실제로 노래를 부르던 중 멤버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울거나 우린 좀 더 남았다고 떼를 쓰는 등, 초창기 때보다 멤버들에게 무한애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인다.][* 참고로 김세정은 돌아갈 그룹이 있었다. 그런데도 5년 뒤 재결성 무대 및 재결성에 대한 의지가 엄청나다.] 이는 한창 I.O.I로 활동할 시간에 소속사 때문에 구구단 활동을 병행해야 했기에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악플도 많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결론적으로, 김세정은 개별 활동의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이게 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젤리피쉬]] 때문이다'''--. --'''뻘짓'''이 '''[[김광수(음반기획자)|광수]]급'''--
그리고 2번째 생방 분량인 본방 3회차부터 본 방송 내에서의 분량도 매우 늘어났다. [[이서진]]이 적극적으로 세정을 챙겨주는 부분이나 퀴즈 등의 진행과 같이 제작진도 적극적으로 세정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이 날 각 호스트별 방송 중에 참여했다가 시간 종료를 매우 적절하게 활용하여 웃음을 주는 등 활약이 많아졌다. 특히 이 날은 같은 [[I.O.I|아이오아이]] 멤버인 [[소미|전소미]]의 출연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하여서 1~2화 대비 더욱 방송에 활력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박수홍]]과 함께한 웨딩편에서는 [[어서옵SHOW]]에서 레전드로 남은 '''등근육'''을 보였다. 11회부터는 방송 초반부터 3MC와 같이 진행하고 [[김준현]]과의 먹방 검증에서도 먹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히는 등 [[어서옵SHOW]]에서 아예 MC로서의 지분을 톡톡히 했다. [[어서옵SHOW]] 출연진들 중 가장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이후 [[어서옵SHOW]]가 종영된 후에도 타 예능 출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2016년 12월 11일 기사를 통해 [[JTBC]] [[한끼줍쇼]]에 출연을 밝혔으며, 12월 21일 방송되었다. 시청률은 3.518%가 나왔다.[* 전 주에 비해 1프로 상승했으며, 심지어 [[아는 형님]] [[I.O.I|아이오아이]] 2번째 출연 시청률인 3.453%보다 높다.][* 한끼줍쇼 최초의 게스트이자 단독 게스트로 출연했으며 세정이 실수로 숟가락을 길바닥에 떨어뜨린 것을 보고 '밥숟갈을 놓으면 어떡해!'라고 이경규가 지적하며 불길한 징조로 몰아가려는 이경규와 강호동의 공세에 '숟가락을 놓는다는 것이 배부르게 먹었다는 의미잖아요. 저희도 그렇게 된다는 뜻이죠.'라고 답하는 재치를 보여줬다. 강호동이 이경규에게 세정은 유재석 라인이라며 소개하자 라인은 서른살 즈음 정하는 것이라고 즉석에서 답하며 이경규를 감탄시켰으며 외국인이 사는 집을 맞이해서 망설이지 않고 용기있게 영어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까지 보여 급기야 '세정아 너 고정하자!'는 표현까지 이경규가 하게 되었다. 강호동 역시 세정의 센스와 담력에 감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으며 해당 프로그램의 방현영 PD는 방송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끼줍쇼의 은인, 복덩이라고 세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 1월 3일 [[1대100]] 466회 방송분에서 1인으로 참여해 초등학교 때 [[방송부]] [[아나운서]]였고 [[성우]]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MC 조충현 아나운서와의 팔씨름에서 '''핸디캡 없이''' 완승을 거둔 뒤 애교와 성우 개인기도 보여줬다.[[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1069492|#]] --[[SBS|S도장]], [[한국방송공사|K도장]]을 접수했으니 이제 [[문화방송|M도장]]만 깨면 된다.[[한국방송공사|K도장]]의 [[송해]]도 할 수 있나-- 그녀는 5, 6단계에서 찬스를 적절히 사용했으며 7단계부터는 이전 방송 모니터링한 결과 본인이 생각한 답이 틀린 경우가 많아 반대로 고르는 전략으로 '''849만원을 받는 우승자가 결정된 9단계에서 5명과 접전을 벌였다.'''
* 처음 목표는 3단계 통과였다고 하며, 상금을 받으면 어디에 쓰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구구단 정산과 집 구입에 보태겠다고 답했다. 오디션을 준비하던 시간을 설명하며 한 장르당 30곡씩 준비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꽃길을 부르다가 장윤정의 짠짜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기교를 선보였으며 본격적으로 노래를 준비한 뒤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러가던 중 장소를 착각해서 젤리피쉬 오디션을 봤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더 큰 회사의 오디션을 보러갈 생각도 한때 했었으나 좋은 선배가수들이 있다는 점과 '용의 꼬리가 될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의 얘기에 영향을 받아 현재 기획사에 남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 구성진 웨이브가 가미된 춤에 이어, 치즈버거 애교를 응용한 '세동이~ 열명만 더 떨어뜨리면 안돼용~' 애교를 선보였으며 이어홀, 이어윈드, 이어웜 중 하나를 맞추는 문제에서 '100인의 답' 찬스를 사용하여 생존자 56명 중 가장 많이 고른 23명이 선택한 답을 골라 통과했다. 이후 '6번 넘어가는 쯤부터는 자신이 답이라고 생각한 것이 정답이 아니다'라고 자신이 파악한 1대100 찍기 요령을 설명했다. 7단계 제비추리, 안창살, 채끝살 문제가 나왔을 때 자신이 말한 요령으로 통과했다. 정답을 확인한 뒤 정답인 안창살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붙여보기도 했다. 이 문제에서 23명 중 12명 생존. 8단계 동의보감, 난중일기, 승정원일기 셋 중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으로 가장 나중에 지정된 것을 고르는 문제에선 '나중이니까 난중일기!'라고 외치며 난중일기를 선택해 통과했다. 이렇게 해서 9단계 1:5 상황까지 간 뒤 여우, 개, 뱀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에서 우승한 100인은 그녀의 방법을 사용해서 정답을 맞혔다고 설명했다.
* 2017년 1월 20일 자 [[http://www.sedaily.com/NewsView/1OAW3RCG0X/|보도자료를 통해]] [[온스타일]]의 [[Get it beauty|겟 잇 뷰티]] 2017을 통해 케이블 뷰티쇼 고정 진행자로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첫 방송은 2월 19일 예정이며, 해당 시즌 MC진([[이하늬]], [[이세영(배우)|이세영]], [[박산다라]]와 공동 진행)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된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3회부터 출연하게 되었으며 학교 2017 드라마 촬영 등의 일정이 겹쳐지며 먼저 하차하게 되었다. 세정이 [[겟 잇 뷰티]]에서 빠진 뒤 [[박나래]]가 투입되었다. 2017년 4월에는 TVING live 겟잇뷰티 치킨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 2017년 1월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수마트라 섬|수마트라]]편에 출연하는 것으로 확정됐으며,[[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464699|##]] 2017년 3월 17일 부터 4월 21일까지 방영된 [[SBS]] 예능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수마트라 섬]]편에 출연했다.[* 3월 10일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뉴스 특보 관계로 결방되어 한 주 밀린 3월 17일에 방영.] '재난의 땅에서 생존하라'는 주제로 생존을 시작했다. 방송 시작부터 뛰어난 체력과 적극성을 보이며 생존에 임했다. 생존 중에도 [[구구단(아이돌)|구구단]] [[Act.2 Narcissus|미니 2집]] 컴백 활동에 대비해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게 연습을 해야 한다'며 꾸준히 안무 연습을 해 책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다 사냥을 위해 근거리의 섬으로 헤엄쳐 이동, 수중 사냥 등의 뛰어난 수영 실력 --[[타임슬립 - I.O.I|I.O.I콘서트]] 준비 기간 동안 배웠다고 하기 놀라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또 첫 낚시에서 연이어 물고기를 낚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 자신의 민낯에 막장이라는 자평을 하기도 하며, 자몽 cf를 아재 버전으로 해달라는 요청에 특유의 아재 매력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생존 마지막 날 동료들의 캐리커처를 선물했으며, 정글 생존 기간 동안 느꼈던 점에 대한 자작 시를 읊어 훈훈함을 자아내며 생존을 마무리했다. 후에 '좋은 가족이 생긴 것 같아 정말 든든했다'라며 '선배님, 작가님, 피디님 모두 잘 챙겨주셨다.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정글에 갈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방송을 지켜보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 2017년 4월 16일/23일 [[문화방송|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연예인 판정단으로 출연했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마틸다]] 와 [[날쌘돌이 생쥐 제리]]의 정체를 맞히기도 했다.
* 6월 24일부터 7월 8일까지 3주간 방영된 임자도편은 자급자족을 통해 젓갈을 만드는 미션으로 진행됐다. 합류 전부터 촬영에 대한 기대를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각종 물품--상추, 쌈장, 마이크 등--을 꼼꼼히 챙겨 멤버들에게 살림꾼이라며 인정받기도 했다. [[경수진]]에게 [[PICK ME]]를 전수했으며 멤버 선정을 위해 진행된 팔씨름과 허벅지 씨름에서 가뿐히 승리했다. 밴댕이 잡기 대결에 진 세정 팀은 젓새우와 황강달이 잡이에 나서 6시간 동안 강행된 조업에 어민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했고, 처음 먹어본 밴댕이 젓갈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선착순으로 진행된 병어잡이 배 동상어몽퀴즈에 실패해 병어잡이 조업에 나가게 되었다. 새벽 4시부터 진행된 쉴 틈 없는 조업에도 지친 기색 없이 [[김종민]]과 서로 장난을 치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업을 마치고 병어회를 먹을 때에 같이 고생한 선장에게 제일 먼저 권유한다던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김병만]]에게 음식을 챙겨주는 등 특유의 배려심이 돋보였다. 대파 모종 심기 작업을 걸고 대결을 펼쳤다. 갯벌 카약 대결과 갯벌 썰매 대결에서 연이어 세정 팀의 승리. 이후 이들이 구해온 대파와 병어를 이용한 요리에 극찬을 표했다. 이후 돌아온 숙소에서 그동안 쌓인 피로에 지친 모습이 보였다. '오길 잘했고, 먹길 잘했고, 일하길 잘했다. 한번 더 오고 싶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그 소감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7월 8일부터 방영된 '여수'편에 재방문했다.] 높은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 일정에도 방송 내내 지친 기색 없이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성실히 조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원더세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박명수(MC) . . . . 55회 일치
국내에서 가장 [[별명]] 많은 [[연예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칭 쩜오 연예인'''. [[애초에]] 그 쩜오라는 말을 쓴 것도 방송에서 [[본인]]이 애드립으로 썼던 것이다. [[무한도전]] 죄와 길 특집에서 유재석 심문을 하다가 박명수가 유재석의 1인자 위치를 얘기하다가 자기 자리로 들어가는데 [[유재석]]이 즉석에서 "박명수씨 정말 본인이 2인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들어가던 박명수가 순간 "쩜오" 라고 대답했고, 그게 방송에 나가고 시청자들에게 웃겼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사실 쩜오라고 불리는 것은 예능계에서 메인MC가 아닌 서포터이자 2인자 포지션인 본인을 재밌게 하기위한 말일 뿐이고 박명수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장수하고 있는 베테랑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는 능력있는 연예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개그맨의 꿈을 품고 방송가에 데뷔하고 싶어했지만, 정작 그 방법을 몰라 한 동안 3사 방송사를 떠돌면서 무작정 부딪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방송공사|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 방청객으로 참가했는데 소개를 받아 KBS FD로 일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때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mc [[손범수]]가 웃기고 재능있다며(...) 방송 데뷔를 권유했고''' 이후 [[MBC]] 4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박명수는 데뷔하자 마자 이름을 알리고 무명시절이 거의없던 개그맨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오늘은 좋은 날>, <인생 극장> 개성적인 연기와 개그를 펼쳐보여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다.
개그맨이면서도 가수, 작곡가 활동을 겸임하였는데, 이전까지는 본인은 "상업적으로 실패하는 것도 개그 레퍼토리로 삼기 위해서다"라고 주장했지만 <바다의 왕자>라는 히트 곡을 내놓기도 하고 이후 진지하게 뮤지션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의 꿈이기도 했던 듯. 최근에는 [[유재환]]의 곡을 작곡해준다. 데뷔 곡인 '커피', 최근에 나온 싱글 '꽃같아'가 박명수의 작품.
90년대 중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MBC]] 방송국 수위 아저씨 역할로 나와서 독특한 표정으로 "우쒸~"와 "국민 여러분, 제발 ***하지 마세요~"라는 시리즈 유행어로 신인시절 인기몰이를 하였고 그 유행어 덕분에 CF도 촬영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CF에서 개그맨이 원톱으로 출연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아직 신인티도 완전히 벗지 못한 개그맨은 더더욱. 대중적으로도 당시 박명수는 상당히 유명했는데 일례로 1990년대 중반 한창 인기몰이를 했던 아이큐 점프의 연재만화 [[달숙이]]에서도 박명수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패러디 병맛만화 정도로 볼 수 있는 달숙이에서 언급된 것들은 전부 당대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것[* KOF의 캐릭터라거나 터미네이터 등.]들이었는데 그 중에 박명수가 있었다는 점은 당시 이미 인지도가 상당하다 못해 높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연예인이라든가 대중문화는 달숙이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외의 광고에서도 활동했었는데 특히 계속 복장을 바꿔가며 연기했던 아이스크림 광고가 유명하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 덕에 소화제 까스명수의 전속모델로 [[김구]] 선생 전문배우 [[이영후]]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하여튼 조연으로서의 입지는 확실히 다져놓아 당시 가장 잘 나가던 꽁트 코미디 프로였던 <오늘은 좋은 날>의 '풍운의 별' 코너에도 등장하였다. '''프로메토 칸투라스 히드라 리바이탄 블리자드 자스카리투스 해저드 디아블로 레피쿠리우스 마젠드 하인리히 4세'''라는 이름의 악마 기믹 역할[* 여담으로, 이 악마 기믹이 [[성검전설 3]]에 등장하는 호크아이의 숙적 사안의 백작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성검전설 3을 하는 사람들은 사안의 백작을 그냥 박명수라고 부르기도 했다.]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소환자인 이경실이 그의 이름을 쉽게 외우는 것과 달리 정작 본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해 갈굼 당하는 역할이었다.
이를 역이용해 박명수가 드디어 이름을 다 외웠지만 이름이 '프로메토 칸두라스 히드라 리바이탄 블리자드 자스카리투스 해저드 디아블로 레피쿠리우스 네메시스'처럼 더 긴 것으로 바뀌어 버려 다시 당하는 패턴도 있었다. <풍운의 별>에서 박명수의 역할은 선배 개그맨들이 짜놓은 틀에 맞춰서 개그를 적극적으로 살리는 역할로 이는 온전히 박명수의 캐릭터와 역량에 기대는 것이었다. 물론, 풍운의 별에 등장하는 홍기훈과 김효진, 이경실이 진 주인공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박명수의 존재감은 매우 컸다. 그래서, 당시 신문에서 '앞으로 코미디계를 이끌 유망주' 비슷한 제목으로 박명수의 인터뷰가 크게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박명수는 데뷔 초기 유재석 보다 인지도가 높았다. 무리한 도전 암산왕과의 대결(05.12.10)중 유재석이 데뷔 선배[* 의외로 많은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유재석은 1991년 KBS 공채 7기로 데뷔한 엄청난 짬밥의 쇼유자다. 당연히 1993년 데뷔한 박명수보다 개그맨 짬밥상 2년 선배. 다만, 젊은나이에 일찍 데뷔한터라 동갑 혹은 나이가 많은 방송인들중에 그보다 후배들이 많아 서로간의 호칭문제가 꼬여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냥 나이상으로 앞서는 이들에겐 존대하고 있으며, 동갑내기 후배들하곤 사적으로 말을 놓는다고 한다. 박명수를 형님으로 모시는것도 이때문. 참고로 유재석이 가끔씩 농담식으로 박명수 앞에서 개그맨 선배 드립을 치기도 한다.]였지만 워낙 인기가 없어서 '''박명수 닮았다''' 혹은 '''박명수 [[짝퉁]]''' 취급을 당해서 연예인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다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07.01.06)에서 출연자들의 신인시절을 보여주는 코너에서 유재석도 "저(유재석 본인)보다 훨씬 인기가 좋으셨죠?"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 90년대에의 콩트 프로그램에서는 현재의 버라이어티 예능쇼처럼 무작정 한 장면이나 단락적으로 웃기고 그걸 유재석과 같은 중재자가 받아서 잘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정한 스토리의 틀이나 흐름 속에서 희노애락 등을 나름대로 표현해 가면서 김국진이나 홍기훈, 김진수처럼 기본적인 연기력+반전으로 웃기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대본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박명수는 자연스레 그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순발력이 중요해진 이후 시점의 코미디 하우스 등에서의 무대에서조차 '약방에 감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상 박명수는 콩트에서는 특이한 얼굴이나 말투를 바탕으로 극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었다. 종종 회자되는 박명수의 대표코너격인 [[코미디 하우스]]의 3자 토론이 대표적인데, 이회창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기에서조차 박명수는 약방의 감초 역할에 불과했다. 코미디 하우스의 대표코너는 [[정준하]]의 출세작 노브레인 서바이버, 조혜련의 골룸 개그, 김현철의 1분 논평 등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 박명수의 위상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3자토론은 코미디 하우스 내에서 반응이 그렇게까지 좋진 못했던 코너여서 자주 편집되기까지 했으니...
이렇게 무한도전 대박까지 캐릭터에 큰 변경이 없는 박명수의 흥망성쇠는 2000년대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 트렌드의 변화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본인에게 한계가 있는 콩트라는 장르는 명백히 몰락하고 있었고,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지만 방송사를 대표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개그맨들은 소속 방송사라는 둥지를 떠나 활동하기 시작한다. 박명수 역시 그러한 개그맨의 하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만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던 박명수는 무한도전과 X맨에서 출연과 하차, 재투입을 거듭하여 리얼버라이어티에 적응해냈고 이윽고 대표 예능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선봉장에 위치한 것이 무한도전인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 날 박명수를 논함에 있어 무한도전 전후는 커다란 기점임에는 분명하다. ~~하하 曰 : 형수님이 무한도전 보고 결혼한 건데 하차한다고 하니까 난리가 난 거야~~
[[유재석]] 외에는 몇 줄 안되는 것을 봐도 알겠지만, 유재석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의 tv에서 나오는 인간적인 모습은 모두 유재석과 같이 있을때, 편안해할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한도전 대기실 몰래 카메라나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유재석에겐 맛있는 음식 등을 챙겨주면서 본인들은 거들떠도 안봐 왜 재석만 챙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고 한다.[* 해당 방송분은 2009년 김연아 특집때다. 물론 박명수는 "얘가 살아야 우리가 다 살아!!"라며 쿨하게 무시해주신다.] 그리고 대략 2012년 장기 파업간에 [[노홍철]]과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을 보다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박명수는 항상 밥을 혼자 먹는다고 한다. 천하의 유재석에게도 밥먹자고 한 적이 없는데 그 파업기간동안 노홍철에게 같이 짬뽕 먹자는 전화를 해서 굉장히 놀라웠다고 한다. 또 노홍철 역시도 2009년 의좋은 형제들이나 2011년 짝 특집까지만 해도 유재석에게 쌀을 갖다주며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제일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후, 2014년 도둑들 특집때는 유재석을 튀통수치고 박명수와 짝을 맺음으로써 이들의 관계가 많이 발전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사실 방송분을 이미 2007년 부터 박명수가 노홍철만큼은 인정하고 이뻐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미존개오로 뜬 정형돈은 인정안해도 노홍철에게는 '너(노홍철)는 인정해'. and '길바닥출신이긴 해도 잘해'라며 박명수식 애정표현인 셈(...)] 또 프로그램 상에서는 티격태격하지만 정준하와도 잘 지내는 듯.[* 2011년 짝 특집때 서로 애정을 표하며 짝이 되기도 했고, 2014년 비긴어게인 특집때도 친구케미를 보여주고 2016년에 서로 국물을 떠다주는 sns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티격태격 하는건 방송컨셉이라는 건 이미 2013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때 밝혀졌다. 싸움거는 박명수에게 뻘쭘해진 정준하가 왜 방송만 들어가면 그러냐고 묻자, 할게 없어서 라고 대단한 것이 좋은 예.] 또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시절에는 정형돈과도 많이 엮였고,[* 설문조사에서 정형돈이 5위, 박명수가 6위를 도맡아 해서... 다만 박명수와 정형돈은 성격상 서로 잘 맞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직설적이고 마음에 없는 좋은 소리를 못하는 쿨남 박명수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정형돈은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그게 방송에서 많이 나타나기도 했고.] 하하와는 소속사가 같아서 하하를 많이 도와줬다. 당시 하하는 웃음담당이라 하하가 별로 웃기지 않아도 크게 웃어줬다고 한다.
방송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 친한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챙기는 면모도 있다. 박명수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경호 전무도 <4가지쇼>에서 방송의 모습과는 달리 친절한 사람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사실 방송의 모습과 일상생활이 똑같았다면 매니저가 상당히 자주 바뀌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한 걸 생각하면 분명 사실인 듯. 코디나 매니저와 같은 주변인에게 생일 선물로 고가의 [[맥북 에어]] 등을 사주기도 하며, 자신과 오랫동안 일한 한경호 전무에게는 고깃집을 차려주기도 했다.[* 뮤지컬 [[무한상사]]에서 정준하 과장이 퇴직하고 차린 고깃집 -> 연탄불 후라이집이 바로 한경호 전무의 가게이다.] 그래서 한경호 씨는 자신은 박명수가 아니면 매니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유재환]]에게도 무한도전 방송에 출연할 때에나 SNS에 사진을 올릴 때에는 호통을 치거나, '인기 많은 재환이 나가라' '뭐가 귀엽다는 거지 어이없어' 등의 말을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는 반면에 실제로는 너무나 잘 대해 줄 때가 많다고 한다. --츤츤 데레데레--
[[이경규]]하고도 선후배 사이로 잘 지내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이유]]하고는 거의 G-PARK 식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양쪽으로 서로 사이좋게 많이 도와준다.[* 아이유와는 이상하게 접점이 많은 인물이다. 아이유가 뜨기 전 2010년에 게릴라 콘서트 할때 바쁜 제시카를 대신해 냉면 대타로 왔었고 2013년엔 런닝맨에 게스트로 둘이 동시에 출연하고 2015년 가요제에선 둘이 같은 팀이 되었다. 의도된 만남도 아니고 서로 접점이 그닥 없는데도 여러번 엮었던 신기한 운명(?)] [[무한도전]]에서 보면 집안팀이 조세호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때 아이유를 부르려 했던것도 보면 사이가 좋은듯 하다. 그리고 [[탁재훈]]과도 꽤 사이가 돈독하다.[* 사실 최근에야 어떤지 알수가 없지만 2010년 뜨거운 형제들을 할때 보면, 박명수는 무한도전에서도 웃을때 주변 눈치를 보거나 누군가를 쳐다보며 웃는 리액션을 하곤 하는데, 뜨거운 형제들에서 웃을때면 항상 탁재훈을 마주보며 웃는 편이고 부를때는 탁형 or 재훈이형 이라며 살갑게 부르는 몇 안되는 형들 중 한명이다. 밑에 서술되어 있기도 하지만 박명수는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기가 쎈거나 디스하는 사람과는 궁합이 상당히 좋지 않은데 탁재훈은 박명수에게 상당히 편한 형이다. 이를테면 런닝맨에서 지석진과 유재석 정도의 관계. 서로 성향과 웃음코드가 비슷하다 보니 잘 맞는 듯.] [[김구라]]와는 친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방송을 통해 말을 빌리자면 '서로 리스펙하는 사이'다.[* 참고로 이 말을 먼저 꺼낸 건 항상 박명수를 디스하는 김구라 본인이다. 겉으로는 무식하고 교양없다고 욕하는 김구라지만 내심 속으로는 인정한다는 소리. 둘이 동갑내기이기도 하고 미운정 고운정 정도 있는 듯] 후배이자 동갑내기인 [[김현철(코미디언)|김현철]]을 자주 챙기는 모습도 있다.[* 2008년에 땜빵이 부족하자 박명수는 친구 김현철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이전에 막말 전과가 때문에 꺼림칙 했던 PD가 가장 나중에 섭외하자며 만류했다. 그리고 머쓱해진 박명수는 "개 오지 말라고 그래' 라며 애써 쓴웃음을 짓기도..]
그리고 가끔가다 '''무한도전 스태프들이 어떤 주제로 멤버들을 평가할 때 보면 의외로 좋은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 1위다.'''[* 누가봐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은 유재석은 친해서 장난으로 약올리려고 투표를 했을진 몰라도 워낙 FM적인 인생을 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는 증언은 종종 있다.] 2009년 세계여행 특집에선 <같이 여행가고 싶은 멤버>투표는 2위[* 총 67명 중 17표, 이유 "방송 이미지와 다르게 의외로 자상하다, 개인활동을 좋아해서 나한테 신경안 쓸거 같다."] /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잘생긴 멤버>투표는 하하와 함께 공동 1위(!)[* 투표를 누가 하든, 이런 외모 투표는 거의 대부분 인기투표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누가봐도 잘생겼다고 보기 힘든 박명수가 스태프가 뽑은 외모 순위에서 1위를 했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평소에 스태프들 사이에 박명수 이미지가 나빴다면 절때 불가능 했을 거란 소리.] 2012년 300회 특집에서 <멤버 전원 싱글이라면 사귀거나 소개시켜주고 싶은 멤버>투표는 3위[* 젊은 박명수라면 가능... 절때 바람 못 필거 같아서. 참고로 이때 정준하와 길은 0표였다.~~안습~~] 2015년 425화 오프닝에선 <오디오 끄고 싶은 멤버>는 5위[* 이때는 멤버가 5명이었다. 이유는 말을 별로 안해서] <사진 찍고 싶은 멤버>는 2위[* 박명수가 찍지 말라고 해서 거의 못 찍어서 그래서 더 찍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총각이면 이상형 순위>는 1위[* 한 명의 여자작가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이유는 질리지 않을 거 같아서] 2017년 히든카드 특집에선 '스태프들이 돈을 얼마나 빌려 줄지' 배포를 적었는데 박명수 매니저가 5,000만원을 적음으로써 1위 및 배포킹으로 뽑혔다. 사실 이 스태프 투표가 의외로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은 멤버들의 사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반해 스태프들은 사적인 모습도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는 안티의 대부분이 방송 때문에 생긴 것인데[* 보통 욕먹는 타 연예인들과는 다르게 사생활은 매우 깔끔한 사람인데 오직 방송 모습때문에 안티가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 만약 방송 외적으로도 그랬다면 스태프들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렸을리 없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대체로 밥값을 잘 쏘는 멤버로 보인다. 멤버들끼리 떠들때도 큰 거는 재석이형과 명수형이 산다고 증언하기도 했고]
평소에 대인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닌 박명수에게도 의외로 여자들에게는 꽤나 친절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아내를 끔직히 생각하는 나름 공처가 이기도 하고, 2009년 품절남 특집에서 여자작가 몰카를 했을때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여자작가를 끌어내서 츤데레의 정석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2011년 미남이시네요 특집 오프닝에선 빵을 한가득 사와 여자작가들에게 먹으라고 나눠주는 모습도 포착되고 같은 해 사생결단 특집에서 정형돈이 자기 코디에게 박명수와 정준하 중 누구를 구하겠냐고 묻자, 미선 코디는 고민도 없이 바로 명수오빠라고 대답했다.[* 의외로 속정,잔정이 많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10년에 있었던 '뜨거운 형제들' 에서도 막장 상황극을 통해 진단한 전문가가 의외로 가정적이고 자상한 면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 또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 여심 어워드때에는 여성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언제는 방송에서 "유재석, 민서엄마, 박명수네 아버지까지 네 명이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거냐?"라는 질문에 "저도 같이 죽을래요. 재석이 죽고, 민서엄마 죽고, 아버지 죽으면 혼자 살아서 뭐합니까?"라는 답을 하기도 했다.(물론 그게 유머이지만)
이후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실제로 형제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등 정말로 특별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듯 하다. 그래서인지 프로그램 내에서도 다른 멤버들이 그럴 때는 별 반응이 없다가도 유재석이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면 진심으로 섭섭해하거나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도 있다. 한가위 특집을 할 때 유재석이 박명수네 집 앞에 영수증을 두고 왔다는 것을 알자 "어떻게 재석이가 나한테..."라면서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보면 진짜 가깝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특집에서도 미리 탈락된 멤버를 데려와야 통과할 수 있는 미션에서도 시종일관 유재석만 따라다니다 나중에 유재석이 정준하와 동행하게 되자 진심으로 서운해하여 나머지 둘이 당황하기도 했다. 자유로 가요제때도 유재석이 거머리 팀을 이길 수 있다에 투표하자 "너는 가요제 때 죽여버릴거야! 니네 둘(유재석과 유희열)은 내가 죽여버릴거야!"라며 격하게 반응한다. ~~덤으로 낀 유희열 지못미~~ 세븐티 핑거스가 눌러도 별 반응없다가 유재석이 눌렀다는게 나오자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그 시기 이승철은 대마초 사건으로 1996년까지 지상파 출연 정지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방송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이승철은 주로 콘서트 무대에서 활동했는데 그가 '라이브의 황제' 라는 별명을 갖게 만드는 일조하기도 했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잊혀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박명수가 이승철 모창을 개인기로 밀고 다니면서 대중들이 이승철을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고, 그 후 이승철이 출연금지가 풀리고 방송에 복귀해서도 예전과 같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게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승철은 박명수에게 꽤나 고마워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그 인연으로 지금도 친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99년 발매된 박명수의 1집에서 박명수가 이승철의 대표곡 중 하나인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를 듀엣곡으로 부르자는 제안에 이승철이 흔쾌히 승락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동명이인]]인 전 [[프로게이머]] --[[박명수(1987)|박명수]]--와 직접 만난 적이 있다. 스카이라이프에서 런칭하고 있던 채널 '게임 tv'에서 이벤트전 형식으로 '스타 vs 스타'라는 이름의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연예인 박명수가 '연예인 게이머단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게이머 --박명수--와 경기를 했다. 경기 결과는 다들 예상하는 대로 발렸다. '''깔끔하게 발렸다.''' --당연하지. 프로게이머랑 일반인이 붙는데...-- [[디시인사이드]]에 박명수 갤러리가 생겼을 때 [[스갤]]러들에 의해 2~3일간 신명나게 털린 적이 있다. 첫 날은 심지어 '''프로게이머 --박명수-- 프로필이 공지로 올라가기도 했다.''' [[흠좀무]].
참고로 강호동, 박명수는 1990년대 초에 MBC [[오늘은 좋은 날]]이라는 코미디 프로에서 姜朴관념이라는 꽁트에서 콤비로 출연한적이 있다. 이후 [[SBS]] [[일요일이 좋다]]에서 X맨을 같이 하기도 했다만, 그 이후로 두 사람이 같이 한 고정 프로그램은 없다.
- 박근혜 . . . . 49회 일치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자택)</br>[[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수감지)
|수감처 =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수감지)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 사건|저격으로 살해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다. 육영수 사후 아버지 박정희는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대행하여야 하였다. [[1975년]]부터 박정희가 추진한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최태민]]이 그의 새마을 사업에 참여한 것이 후일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서울특별시]]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박정희]] 피격 당시 슬퍼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때 [[전두환]]에게서 아버지 박정희가 남긴 통치 자금 6억 원을 수령하였는데 이 사실은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980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6월 13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학술 회의에 다녀오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대표와 악수 |url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백승렬 |쪽 = |날짜 = 2005-06-13 |확인날짜 = 2009-07-10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2105546/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보존날짜 = 2013-10-02 |깨진링크 = 예 }}</ref>
[[2006년]] 5월 20일 지방 선거 유세 중 [[지충호]]가 휘두른 문구용 칼에 피습당하여 안면에 깊은 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당원들에게 선거 판세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당 안팎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지충호]]는 이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2006년]] [[5월 20일]] 박근혜가 [[경기도]] [[군포]]와 [[인천]] 지원 유세를 마치고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에 참가하던 중 19시 20분쯤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벌이다 지충호에게 피습당해 얼굴을 크게 다친 사건이다. 지충호가 휘두른 흉기는 10 cm 가량의 커터칼이다. 당시 지충호는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까지 온 뒤 범행을 위해 4시간을 기다린 후 오세훈 서울시장 지원연설을 위해 단상에 박근혜가 오르는 찰나 지충호는 자신이 가진 커터칼로 11센티미터의 길이에 걸쳐 박근혜의 턱을 그었다.<ref>이상윤, 《안철수 등의 한판승부 - 박근혜 벗기기》, 높은새, 2011, p.19-24</ref> 당시 [[대전광역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박성효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염홍철 후보에게 지지도에서 뒤지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 박근혜가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어본 것이 알려지면서 판세가 역전되었고 이후 지방 선거에서 박성효 후보는 염홍철 후보에게 근소하게 승리하였다.
2004년부터 한나라당의 위기와 재도약을 이끈 박근혜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예비후보 중 하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당권과 대권의 분리 방침에 따라 2007년 대선을 1년 남긴 [[2006년]] [[6월 16일]]에 대표직을 사퇴하고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였다. 박근혜의 가장 큰 상대는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으며, 그 과정에서 [[청계천]] 복원, 버스 노선 개편 등으로 인기를 끈 [[이명박]]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부패 비리 의혹을 집중 제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 등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폭로전은 경선 때부터 시작되었다. 전당 대회를 3일 앞둔 2007년 8월 17일, 박근혜 경선후보는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습니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056525|제목 = 되돌아 본 대선|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12-20|확인날짜 = 2013-03-23}}</ref> 이명박 후보측은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 발표가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체 조사와 각 언론사 조사를 종합할 때 10% 이상 차이로 낙승할 거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제목 = |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08-17|확인날짜 = 2013-03-2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927121334/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보존날짜 = 2013-09-27|깨진링크 = 예}}</ref> 이와 관련해 진수희 대변인은 "1위 후보가 압승을 해야 경선 후유증이 최소화 된다라는 생각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15% 격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그러나 박근혜 후보측은 자체 전수 조사 결과 근소하게나마 앞서기 시작했다면서 각종 의혹으로 이 후보에 불안감을 느낀 당심이 옮겨온다고 주장했다.<ref name="imnews.imbc.com"/> 당시 세대별 지지율을 보자면, 이명박 후보는 3,40대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은 반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ref name="imnews.imbc.com"/>
박근혜는 이에 대하여 "한나라당 공천이 잘못돼 가고 있고, 기준도 없는데다 엉망"이라고 비판하였다. 또 "오로지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공정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BBK]] 이야기를 한 사람은 공천에 안 된다는 둥 살생부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아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어 "지난 번에 경선에서 정치 발전을 위해 깨끗하게 승복했고, 한나라당에서 처음 제대로 경선을 한 것이 아니냐"며 "그로 인해 정치가 크게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잘못된 공천으로 그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런 공천을 가지고는 앞으로 선거가 끝나도 한나라당이 화합하기도 힘들고, 힘든 상황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정치 발전도 앞으로 기대할 필요가 없고, 한나라당의 발전도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경고했다.
[[2008년]] [[3월 12일]]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역 의원 50% 물갈이에 합의했다는 설에 대하여 "어마어마한 음모"라며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박근혜는 "오늘 아침 기사를 보고 기가 막히기도 하면서 하다하다 이런 술수까지 난무하는구나라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며 "이 쪽(친박계)에 다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라고 흥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이 우리 핵심 누구와 이야기를 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끝까지 밝혀 내겠다"며 "이방호 사무총장이 친박계 핵심 인사가 누군지 못밝힌다면 영남권 물갈이를 50% 한다고 해 놓고 우리한테 다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1999130& 박근혜 "이방호 50% 물갈이 합의설 밝혀야"]</ref>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 6월 박근혜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 차례 한 뒤 줄곧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본격적인 거리 투쟁으로 비화된 5월에도 그는 당을 떠난 친박 측근들의 복당 문제 얘기를 주로 했다. 이후 계속되는 복당 요구에 네티즌들의 의해 '복당녀'라는 별명이 생기며 비판받기도 하였다.
또한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 특사로 임명되어 계파갈등이 해빙될 조짐이 보이기도 하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410278_2687.html{{깨진 링크|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410278_2687.html }} 박근혜 前대표 유럽 특사‥계파 갈등 해빙?)</ref>
불안한 당내외 상황에도 불구하고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을 획득하여 과반 1당을 유지하였으며 그 후 공식적인 당 지도부가 출범하였지만 당내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 문제로 [[김문수 (1951년)|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과 대립하였고, 결국 [[정몽준]] 대표, 이재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 속에 경선을 치렀다. 8월 중순 치뤄진 경선에서 박근혜는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였다.
당시 정몽준과 이재오가 당내 경선에 불만을 품으며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박근혜는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 대회에서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전체 유효투표의 83.97%인 8만 6천 589표로 지난 2002년 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얻은 68%인 기존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경선 투표율이 41%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유력 정당의 첫 여성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의 자녀가 대선 후보가 되는 첫 사례이기도 했다.<ref>[http://media.daum.net/society/nation/seoul/view.html?cateid=100004&newsid=20120820162306691&p=yonhap] 심인성 기자, 박근혜, 84% 최고득표율로 與대선후보 확정(종합), 연합뉴스, 2012.8.20.</ref> 한편 박근혜는 2002년 한나라당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 10년 후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데 성공하였다. 박근혜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모토로 내걸었다.
한편 이른바 '국정원 직원 사건'에 대하여 새누리당 측은 반발하였고, [[윤정훈]] 목사가 운영하였다고 하는 새누리당측의 SNS 여론 조작 그룹인 [[십알단]] 연루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2월 13일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새누리당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PC여러대로 작업하는 장면이 선관위에 의해 포착했다. 이곳에서는 박근혜 명의의 임명장과 새누리당 SNS 미디어본부장 명함이 발견됐다.<ref>이혜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2373449 朴 여론조작 불법사무소 '덜미', 현장 보니…], 헤럴드경제, 2012년 12월 13일</ref>
박근혜 후보는 중앙선관위 주최의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회에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1969년)|이정희]] 후보와 함께 참석하였다. 당시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 등의 발언을 하는 등, 박근혜 후보에 대하여 노골적인 공격을 하였고, 시청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대선 후보 토론회에 지지율 1% 후보(이정희)가 참여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1차, 2차 TV 토론회에는 박근혜·문재인·이정희 후보가 참여해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선거 막판인 12월 16일 [[이정희 (1969년)|이정희]]가 후보 사퇴함에 따라 같은 날 오후 시행된 토론회에는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참석하였고, 양자토론을 가졌다. 이후 박근혜는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1577만 3128표를 득표하여 문재인을 누르고 당선되었다.<ref>[http://news.chosun.com/choice1219/choice1219_now.html 제18대 대통령 선거]</ref> 박근혜의 임기는 원래 [[2013년]] [[2월 25일]]부터 [[2018년]] [[2월 24일]]까지였으나,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게 되었다.
취임 후 박근혜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한편 보스턴 마라톤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직원들을 동원해 [[문재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쓰는 등 박근혜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국가정보원]] 사건'이 불거져 수사를 진행 중이던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토론 중 당해 사건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이었음에도, 해당 사건의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발언하였다. 토론회 직후 대선 3일 전인 [[12월 16일]] 일요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사전 발표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인 2013년 6월, 검찰은 경찰의 발표와 달리 국정원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댓글을 단 사실이 있다고 상반된 발표를 했다.<ref>성혜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013643 원세훈 '선거법' 적용키로...영장은?],뉴스와이,2013년 6월 7일</ref> 더구나 서울지방경찰청이 거짓 발표를 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댓글을 단 사실이 있는 것을 이미 확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ref>이윤상,[http://news1.kr/articles/1175796 김용판, 100여페이지 분석자료 폐기…수사방해 분석결과 나오기도 전 보도자료 작성],뉴스1, 2013년 6월 14일</ref>
박근혜는 사고 발생 3일 후인 4월 19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체육관을 방문하여서 구조 계획 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박근혜에 대하여 고성과 욕설을 하였고 긴장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 슈가(방탄소년단) . . . . 39회 일치
예명은 Sugar(설탕)가 아니라 '''SUGA'''가 맞다. 이 예명을 가지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피부가 무척 하얀 데다 웃을 때[* 웃을 때 본인 특유의 입동굴을 보인다. 이 입동굴 때문에 팬들이 팬사인회에서 아랫니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예쁘고 달콤해서 슈가라는 예명을 지었다는 것. 하지만 힙합이 너무 달콤하면 안 된다는 소리에, 'SUGAR'에서 R이 없는 그냥 'SUGA'를 선택했다 한다. 힙합 용어에서 '슈가'는 '중독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학창 시절에 농구부에서 [[슈팅 가드]]를 맡았던 것에서 모티브를 따 줄임말인 '''슈가'''를 선택했다는 것. 모 인터뷰에서는 복싱이 터프하지만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 'sweet science'로 불리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스윗해 보이지만 음악적으로 시니컬한 면이 있어 이런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슈가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믹스테이프인 'Agust D' 뮤직비디오를 볼 때,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려 준 영어 자막을 틀고 보면 '성공'을 'sugar'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성공'''과 거리가 먼 형들 사이 눈엣가시네 -> I'm a pain in yo' ass too far from the '''sugar'''. 성공을 통해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예명의 본래 뜻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반해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매번 예명의 뜻을 설명할 때마다 이유가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에는 뭐 이젠 그런 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요... 하고 답하기도 하였다.
믹스테이프의 경우 사용되는 어휘가 대체로 수위가 높은 편. 정규곡에선 자유롭지 못한 약간의 욕설, 비속어나 은어 등의 사용이 많은 편이며 일부 팬들은 이를 조각 모음하여 영상으로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적절한 타이밍에서의 비속어의 사용으로 가사 전달이 훨씬 솔직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치아교정]] 중임에도 불구[* 교정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설측교정]]이기 때문. 간혹 직찍에서 아랫니 안쪽에 자리한 교정기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방탄소년단]] 콘텐츠 중 하나인 본보야지에서 같은 멤버인 [[뷔]]가 자일리톨을 권하자 교정 중이라 안 먹는다고 거절하기도 하였다.][* 교정은 피 땀 눈물 활동 당시 끝났다고 한다.]하고 '''상당히 딕션이 좋다'''. 특히나 [[설측교정]]의 경우 이물감 때문에 발음을 할 때 거슬리며, 쉽게 발음이 새어나가 딕션이 뭉개질 수 있음에도 꽤나 정확한 딕션을 구사해낸다. 현재로썬 교정이 끝난 상태. [[http://m.photoviewer.naver.com/blog?listUrl=https%3A%2F%2Fm.blog.naver.com%2FPostView.nhn%3FblogId%3Dkiss006969%26logNo%3D220888204195&imgId=1&host=https%3A%2F%2Fm.blog.naver.com%2Fphotoviewer&historyBack=true&blogId=kiss006969&logNo=220888204195#main/1|2016년 10월]] 게다가 성량도 큰 편인지라 라이브 중 음향이 좋지 않다 싶으면 더욱 소리내어 랩으로 음향을 다 씹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AIffCdGkGsk&feature=youtu.be|전설의 서가대 쩔어]]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39&v=UUZSgv0sqC4|171101 불타오르네]] 음향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인 [[SBS 가요대전]]에서 [[https://twitter.com/nojam__nolife__/status/945253643166433282?ref_src=twcamp%5Ecopy%7Ctwsrc%5Eandroid%7Ctwgr%5Ecopy%7Ctwcon%5E7090%7Ctwterm%5E3|씩~ 웃고, 한마디 쉬고, 라이브 인증.]]
참고로 모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https://youtu.be/p7w6bveDQik?t=4m7s|#]], 슈가는 처음엔 멤버 전원의 솔로곡을 정규 2집에 올리는 것을 '아직 이르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정규 2집 "[[WINGS]]"는 슈가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의 솔로곡이 수록된 앨범이다. [[WINGS]] 항목 참고.] 그러다 믹스테이프 작업 때문에 한동안 정규 2집 작업 체크를 못했는데, 이후 느즈막히 각 멤버들의 솔로곡을 확인하곤 매우 놀랐다고. "이른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며 멤버들의 성장을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직설적인 랩 가사와 강렬한 랩 스타일과는 상반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의 미남이다. 그렇기에 얼굴만 보고 '얘는 당연히 보컬이겠지' 했다가 후에 래퍼임을 알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피부가 하얀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한국인 평균 피부색과 비교해 봤을 때도 매우 하얗다. 슈가의 실물을 접한 사람들 말로는 '너무 하얘서 혼자서 조명을 3개는 더 켜 놓은 것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얀 피부 덕에 화려한 색상의 헤어가 잘 어울린다. 때문에 그룹 안에서 머리색이 가장 자주 바뀌는 멤버이다. --여담으로 너무 염색해서 탈모 오면 빅히트에 청구할 거라고...--[* 워낙 피부가 하얗고 깨끗한 탓에 어떤 색의 헤어든 다 소화해내서 팬들 사이에선 퍼스널 컬러 파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슈가의 퍼스널 컬러를 따지자면 데뷔 초의 주황,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보다는 톤 다운된 자몽, 애쉬, 노란끼 섞인 민트, 자연 흑발 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볼 때 가을 뮤트(소프트 or 라이트 그레이시)로 추정된다. 팬들 사이에서도 최애 머리를 고르라 하면 의견이 갈린다.]
아기어피치뿐만이 아니라 찹쌀떡스러운 얼굴에 점처럼 박힌 눈, 웃을 때 커다란 입인 캐릭터와 대체적으로 닮았다. 예를 들자면 [[지방이]], [[포켓몬스터]]의 [[우파]], [[누오]], [[메타몽]]. 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피셜로 증명된 것인데 2017년 슈가의 생일에 올라온 사진에 있는 멤버들이 그린 [[https://imgur.com/sMAY6qG|그림]]을 보면 지방이와 우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한참 한국에 [[포켓몬 GO]]가 유행했을 때 같은 멤버인 [[RM]]이 누오에게 온순한 슈가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https://twitter.com/BTS_twt/status/836489701561356288|#]] 또한 한때 팬들 사이에선 메타몽짤과 함께 야 호바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슈가와 싱크로율 100%인 메타몽과 말투가 잇 포인트다. [[https://twitter.com/JIMINLOVE1o13/status/905450603551137792|야]] [[https://twitter.com/URBlossomStar/status/901760359660265473|호바]]
본인도 이들을 닮은 것을 아는지 자화상으로 [[메타몽]]을 똑닮게 그리기도 했다. [[https://cdn.namuwikiusercontent.com/storage/09d0a41a7b844bb53e9ff5c73c1ea010d50bd0094511ac7d18b8a40849ad60090dad9969cf5ca85a6c0c40ec488c24de0fd64e88d25a377ffb22eda2ae516d19f4a1d6f4ff529c64baed8e882690d6c5?e=1514521060&k=Y1bdvZjOPqzI9c4s0dWotw|#]] [[라인]]과 콜라보한 캐릭터인 [[BT21]][*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하였다. 각자 본인들의 모습을 반영해 만든 듯하다.]의 [[https://twitter.com/BT21_/status/912503937017589760|슈키]][* 슈가를 반영한 캐릭터로 영어로는 SHOOKY라 표기한다. 슈키는 조그만한 쿠키 캐릭터인데, 슈키의 이름은 아마도 슈가쿠키의 줄임말일 것이라고 팬들은 추측 중.] 또한 입동굴과 그로 인해 보이는 아기 같은 이빨이 강조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는 다리 탓에 슈가의 체격 또한 왜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탄소년단]] 안에서 가장 마른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어깨는 꽤나 다부진 편.[* 방탄소년단에서 어깨가 넓은 멤버 하면 [[진(방탄소년단)|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 진이 너무나도 넓은 탓에 가려져서 그렇지 슈가도 꽤나 넓은 편이다.] 덕분에 마른 하체임에도 넓은 어깨로 인해 그닥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 [* 허나, 실물을 본 팬에 따르면 너무 말라서 걱정된다고 하기도 한다.] 사실 슈가는 연습생 시절 멤버 피셜로 가장 덩치가 있는 멤버였다. 때문에 슈가는 자신의 키가 180까지 클 줄 알았다고. 허나 데뷔 전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어깨를 다치면서 운동을 하지 못해 근육이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 등치가 어디 가지는 않는다고 현재 어깨는 물론이며 흉통도 꽤 도톰한 편. 또한 승모근도 거의 없어 시원시원하게 떡 벌어지는 직각 어깨이기에 옷핏도 좋다.
과거 데뷔 전, 초 트위터에서도 꽤나 애교스러운 말투를 보였었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여 슈간데여, 슈가 부끄럽슙 응캬캬:) 등... 이러한 애교 넘치는 말투는 연차가 쌓이며 자연스럽게 사라져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으나 최근 들어 다시 "방울토마토를 씻자 챱챱챱" --폭풍 귀싸대기 챱챱챱-- 등 조금씩 예전처럼 애교 있는 트윗을 하기도 한다. [[https://twitter.com/BTS_twt/status/934744803660636163|2017년 11월 26일 '날이 많이 춥다능' 이라는 글과 셀카]]
그리고 멤버들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RM|]]을 '''준이'''라는 [[https://youtu.be/6CHNUAO0eZQ|애칭으로]] [[https://youtu.be/kuxNKfi8_P8|부르거나]], [[정국(방탄소년단)|밥 안 먹는 멤버]]한테 [[https://youtu.be/5M9ruwJIaXs|왜 안 먹냐고 챙겨준다거나(1분 55초부터)]] 등등... 휴대폰에 멤버들을 저장해 놓은 이름도 --예상 외로-- 귀엽다. [[RM|랩몬킴이야]], [[제이홉|호옵]], [[진(방탄소년단)|찐형]] 식이다. 말 그대로 [[갭 모에]]. 툴툴거리면서도 멤버가 해 달라는 걸 다 해주는 모습도 보여준다. [[http://www.vlive.tv/video/5999?channelCode=FE619|14분 16초부터]] --[[츤데레]]--[* 충수염에 걸렸을 때 혼자 병실에서 [[SBS 가요대전]]을 보다가 [[지민(방탄소년단)|지민]]이 넘어진 것을 보고 TV 채널을 바로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고... --흥! 널 딱히 좋아하는거 아냐!-- --츤츤-- '못 보겠더라고' 라고 말했다. 어투를 보면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츤데레]]보단 [[다루데레]]에 가깝다--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단연 [[제이홉]]에게 치킨을 사다준 사연.[* 제이홉 [[제이홉#s-2|트리비아]] 항목 참고.] 달려라 방탄 ep.9에서 번지점프를 뛰는 [[지민(방탄소년단)|지민]][* 지민은 [[방탄소년단]]에서 겁이 두 번째로 많은 멤버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제이홉.]을 보고 "뛰었어? 뛰었네. 아이고" 라고 말하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면모가 많다. 때문에 슈가를 두고 '''무관심 속 유관심'''이라 일컫기도 한다. 제이홉 왈 그룹에서 슈가만큼 멤버들을 신경쓰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한다.
무뚝뚝하고 남에게 관심 없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뒤에서 챙겨주는 다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다 자신의 하수로 부릴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의외로 집안 막내다운 귀여운 모습을 보인다던가, 무기력하고 세상만사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멤버들끼리의 자체 콘텐츠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예능에서 짓궂은 말이 나오면 능글맞게 상황을 피해가는 등, 오디오 지분률이 가장 높은 멤버이기도 하다. --멤버 피셜 말 많은 할배-- 때문에 팬들에게 슈가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 --굳이 정의하자면 예민하고 나른하며 만사 귀찮아하지만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고양이 정도--
나아가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한 시점부터 기어다닌다고 한다. 스케줄이 없는 날은 아예 침대 위의 산송장. 본인은 '오래 많이 자는 게 아니라 새벽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짧게 많이 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멤버들은 슈가가 워커홀릭인 건 다 컨셉이라고 디스 하기도 한다. 애초에 외출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작업실, 숙소, 방송국 빼고는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소한 게으르진 않으며, 최선을 다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DVD에서 본인피셜 하루에 한 곡씩은 쓰고 있다고. 물론 쉬는 날도 종종 있다고 한다.] 실제 BTS COMBACK SHOW에서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슈가의 모습이 공개되었으며, 작업실 내부에 샴푸를 비롯한 생필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정말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슙기력한 면모와는 달리 의외로 외향적인 모습도 보이는데, 멤버들 중 절대적 친화력을 자랑하는 [[뷔|김스치면인연]] 다음으로 연예인 친분이 많은 축에 속한다. [[슈퍼주니어]]의 [[희철]][[https://www.youtube.com/watch?v=VDLOJUoZuHQ|#]], [[슈퍼주니어 M]]의 [[조미(슈퍼주니어-M)|조미]][[https://www.youtube.com/watch?v=9pp52q-TSAQ|#]], [[GOT7]]의 [[JB]][[http://www.vlive.tv/video/38334?channelCode=ECDF|27분]], [[SURAN|수란]][[https://www.youtube.com/watch?v=4kXopVVKo1A|#]], 같은 [[대구광역시]] 출신 [[김신영]][[https://youtu.be/jr43w98yPOE|#]] [[에픽하이]]의 [[타블로]] [[https://www.youtube.com/watch?v=fLjsOTe8Y6E|#]], [[워너원]]의 [[강다니엘]][[https://youtu.be/K0piUcRvIq8|#]], 등.
유튜브 채널을 잘 보다 보면 슈가의 똘끼가 눈에 띈다. 주로 옛날 영상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대표적인 링크는 [[https://youtu.be/OpKUc8IeUrc|아미들의 성지 방탄밤에서의 슈가의 똘끼]], 좀 더 차분한 반응이 필요하다면 [[https://youtu.be/pYd3rqxPG6k|앞으로 못 나가 매우 서러운 슈가형]]을 참고. [[WINGS|정규 2집]] 활동 때는 [[https://youtu.be/aniSCuwXJ7s|제이홉을 향한 샤우팅]]을 비롯해 무대, 방송 등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했다. 이럴 때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흥슈가'. [[https://youtu.be/M3xMTYfVo2E|흥 타신 슈가씨]]
[[방탄소년단]] 꿀FM[* 방탄소년단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실제 라디오 방송은 아니며 데뷔 n주년, 크리스마스 등 불규칙한 시기에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업로드된다. 여담으로 6.13mhz라고 한다.]에서 '슙디(슈가+DJ)'로 DJ를 맡기도 했다. 라디오식 방송의 특성상 차분한 저음과 능숙한 진행 능력 때문에 지목된 듯. 신인왕 때도 MC다래[* 당시 다래끼가 나 있었다.]로 발탁돼 매끄러운 진행을 보여준 바 있다.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총 두 편이며, 10번 트랙 "so far away" 뮤직비디오도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이는 [[http://blogfiles6.naver.net/20160816_85/dbsrldudwo_14713584110624YQm2_PNG/2016-8-16_23%3B39%3B36.PNG|오보]]에 의한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자가 Agust D 뮤직비디오 설명란에 쓰여진 글 "Agust D’s ‘Agust D’, the first mixtape album, featuring ‘Agust D’, ‘give it to me’ and ‘so far away' is out now."를 뮤직비디오를 공개한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so far away" 뮤직비디오에 관한 긴 기다림과 궁금증은 [[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61017_276/yang020215_1476716271498ISk0H_JPEG/Screenshot_2016-10-17-23-47-53.jpg?type=w2|이 사진]]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 믹스테이프에서는 예명으로 SUGA가 아닌 위의 '''Agust D'''를 사용한다.[* Cyper pt.3 Killer에서 슈가 본인이 발음한 것에 기준하여 '어거스트 디' 라고 발음된다. 그러나 사실 영미권에서 이렇게 발음하려면 첫 글자 A 다음에 H를 넣어 묵음 처리를 하거나, 아니면 U를 넣어 (영어로 8월을 뜻하는) 'August' 라고 써야 하기 때문에 믹스테이프 공개 후 해외 유튜버들이 줄줄이 멘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슈가의 발음대로 어거스트 디로 통일되는 듯. 하지만 일부 영미권 팬들은 여전히 '에이-거스트 디' 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역겨움'을 뜻하는 'Disgust(디스-거스트)'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믹스테이프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타이틀도 동명의 Agust D이며 트랙은 총 10곡. 아이돌인 래퍼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며, 데뷔 이전부터 음악을 시작했던 13살 이후의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비롯하여[* 특히 7번 트랙 <마지막>]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선 가사가 와닿는다는 반응이, 해외 팬들 사이에선 랩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현실의 괴리감, 이상과의 갈등이란 아이돌과 래퍼 사이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언급한 대목이다. 이에 대한 고민은 슈가뿐만이 아닌 타 아이돌 래퍼들 또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이자 문제이다. 특히 슈가와 같은 언더에서 활동하다가 아이돌로 데뷔한 래퍼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한데 아이돌이라 하면 일단 무시하고 보는 세간의 편견은 물론이며, 언더에서는 돈이 안 되니까 고작 돈 때문에 자존심 버린 놈이라는 비난까지 받게 된다. 이는 과거 [[방탄소년단]]을 향한 [[비프리]]라는 래퍼의 비난으로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비프리에 대해 Cyper pt.2에서 니나 가라 하와이라며 저격하기도 하였다. 하와이는 비프리의 고향.]
발매 후 같은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이 자극받는다며 믹스테이프 중 좋아하는 곡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4주년 페스타에서 [[진(방탄소년단)|진]]과 [[정국(방탄소년단)|정국]]의 피처링 버전이 공개되었다.[[https://soundcloud.com/bangtan/sofarawayfesta|#]] 피처링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약간 달라졌다. 슈가는 오히려 이 버전의 분위기가 원래 의도했던 곡 스타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밝혔다. [[http://btsblog.ibighit.com/m/365|슈가가 직접 남긴 코멘트]]
* 은연중에 [[동남 방언|경상도 사투리]]를 쓰기도 하는데, 데뷔 초에 비해 갈수록 [[사투리]]가 줄어들고 있다. 본인은 이제 사투리가 어색하다고 자주 언급. 연습생 시절에는 표준어를 익히기 위해 뉴스 대본을 따라 읽었다고 한다. 요즘도 멤버들과 대화할 때 흥분하면 사투리가 조금씩 나오긴 한다.
* 본인이 [[https://twitter.com/BTS_twt/status/570170302157582337|매우 아끼고]] [[https://twitter.com/BTS_twt/status/570484839423418368|좋아하는]] [[https://twitter.com/BTS_twt/status/570493154148757504|가죽 자켓]]이 있다. 굉장히 자주 입는 편, 멤버들은 그만 좀 입으라고 갈구기도 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잠옷이라 입고 잔다고 한다. 심지어 예능에도 입고 나왔다.
- 은지원 . . . . 35회 일치
대표적인 장기 현역 남자 아이돌[* 최연장자는 [[god]]의 [[박준형(god)|박준형]]이고, 여자 아이돌 최고참은 [[S.E.S.]]의 [[바다(가수)|바다]]이다.][* 활동 기간보다 해체 이후 재결합 이전까지의 공백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던 젝스키스를 장수 그룹이라 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은지원 개인의 개별 연예 활동 기간을 고려하면 이 수식어가 붙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이자 1세대 보이그룹 출신들 가운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국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인물. 1997년 초에 데뷔했던 전설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로, 맏형이자 리더를 맡고 있으며 그룹 내에서도 영향력과 비중이 높아 팀의 중심적인 멤버이다. 포지션은 [[Rap|랩]](메인래퍼)과 서브보컬을 맡고 있으며 노래/춤[* 고난이도 안무를 보여주진 않지만 춤선이 상당히 이쁘며 스타일리쉬한 춤실력을 갖고 있다.]/랩 삼박자가 평균 이상으로 밸런스가 좋고, 멤버들중 가장 먼저 자작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대에선 후렴구나 킬링파트 독창을 잘 소화하기에 젝스키스의 남성적인 이미지 구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세대 그룹 멤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로 팀 내 인기 역시 수위를 다투었다.[* 팬들 사이에서 은지원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말로는 '''까리함'''과 '''양아미(양아치+美)'''가 있다.] 리더 포지션 & 높은 인지도 & 걸출한 실력 그 이상으로 [[강성훈]]과 더불어 젝스키스의 핵심과도 같은 멤버. 해체 후에도 꾸준한 방송과 음반 활동으로 젝스키스를 회자시키며, 세월이 지나 재결합 후의 활동에도 멤버들과 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멤버이다. 그리고 젝스키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덕분에 1세대 아이돌 내에서도 '''정상급의 대중성과 인지도의 소유자'''로 현재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젝스키스 전성기 시절에도 은초딩의 모습은 있었지만, 신비주의 때문에 말도 제대로 안 시키니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해체 후 1박 2일 등의 예능을 통해 은초딩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젝키 해체 후에는 은각하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지만 젝키 재결합 후 예능에서 은초딩보다 진중한 모습을 보이며 여전한 은각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어디 안 가는지(...) 조금만 방심해도 섭섭한 바보 어벤저스로 전락하곤 한다.]
지금이야 예능에서의 모습으로 초딩 소리를 듣지만 젝키 시절에는 과묵한 이미지와 까리한(...) 외모로 '''은각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H.O.T.]]의 리더 [[문희준]]이나, [[신화(아이돌)|신화]]의 리더 [[에릭(신화)|에릭]]과는 달리 그룹에 동갑이 없었다. (이들보다 1살 위인 [[NRG(아이돌)|NRG]]의 리더 [[이성진(NRG)|이성진]]도 같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이 --연습할 때 한정으로--다들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이 까다로웠다고 언급했다. --김재덕에 의하면, 은지원이 너무 독재자여서 이재진이 반항한 거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게 받은 대접이 대접이라 그런지 "은지원이 아니었다면 3년도 가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독재자 발언은 예능에서 장난스레 발언한 것이다-- 은각하 자체가 데뷔 당시 멤버들을 갈구던 상황에서 놀리듯이 붙은 별명이다. 당장 [[토토가2 - 젝스키스]] 편이나 예전 예능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은지원은 동생들에게 갈굼당하기 일쑤다. --마이웨이 까칠이 이재진과 은지원 전용 어그로 고지용, 프로일침러 장수원, 방관하는 강성훈과 김재덕.-- --(극한직업 젝키 리더)-- --젝키 내에서는 은지원이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본인 말로는 자신은 카리스마 있었던 적은 없었고, 말이 없었던 이유는 MC들이 질문한 내용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고...
실제로 보면 무표정한 얼굴에 눈매가 정말 매섭고 ~~다크서클도 진해서~~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다. --죽여달라거나 덮쳐보자는 식의--센 문구 투성이였던 당시 팬들의 응원 현수막에는 정말 이례적으로 매우 공손하게 '은지원! 쳐다봐도 되나요?'라는 문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젝키 멤버들이 밴에서 내릴 때 은지원만은 팬들이 알아서 길을 터줄(...) 정도로 포스 있었다. 현장을 따라다니던 팬들이 은지원의 말은 알아서 꼬박꼬박 잘 들을 정도였다. --날이 어두워지니 집에 가라고 하면 순순히 갔다고 한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서 팬들에게 자기를 무서워하지 말라는 장난 섞인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고민이었는지, 자신이 재밌는 사람이 아니지만 웃음을 주어 친근해지고 싶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필 같은 것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예능에서 은초딩이 되었다--
젝스키스가 해체한 뒤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예능은 [[전파견문록]]과 [[강호동의 천생연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젝스키스의 카리스마 리더 이미지가 강했으나 그 이후 수년간 예능에 자주 출연하면서 지금의 은초딩과 비슷한 4차원+철없는 이미지를 얻었다.~~ 젝스키스를 모르는 요즘얘들은 은지원이 아이돌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한다. 오죽하면 [[작렬! 정신통일]] 프로그램을 진행했을때 신정환이 '요즘 초등학생들은 개그맨인줄 알아'라고 말했을정도다.~~심지어 당시 강호동이 [[신정환]]과 [[윤정수]]보다 은지원이 더 무섭다고 밝혔을 정도.
어째서인지 "나의 은지원 오빠(형)는 이렇지 않아!"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없다. 초딩모드가 연기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이런 말 했다가는 욕먹을 테니... 그것도 그거지만 팬들의 연령도 꽤 지긋해서 그냥 허허 웃고 말기도. 몇몇 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은초딩 캐릭터는 젝키 시절부터 존재했었으며 팬들 사이에서만 아는 사실이었는데 전국민적으로 퍼진 것일 뿐'''이라 한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 이미 이재진이 폭로한 바가 있다. 홍진경이 진행했던 퍼니퍼니쇼에 출연했을 때 멤버들이 서로 불만사항을 털어놓는 코너가 있었는 데,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은 은지원에 대한 불만사항으로 "형은 우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으면서 투정도 많고 장난도 제일 많이 치고 어리광도 심하다. 어린애 같다."라고 털어놓았었다.
미션의 맹점을 정확히 파악해 [[https://youtu.be/6YqNUlMP_1M|게임의 결과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적도 있었고]][* 소원권 레이스에서 동맹 이승기를 우승 시킨 다음 자신이 소원권을 쟁취하기도 했다.], 각종 꼼수로 미션에서 낙승을 거둔 적도 있으며[* 아침 기상미션에서 상대팀 핸드폰 알람을 모두 조작한 뒤 낙승을 거뒀다. 알람이 오전 6시인데 오후로 바꾼다던지.] [[https://youtu.be/bsD1X-OP5bQ|완벽한 심리전으로 상대팀 전원을 혼란에 빠트린 적도 있었다.]][* 무섭당 vs 바보당 레이스에서 이수근에게 거짓전화를 걸어 강호동이 이수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속였다. 때문에 30분 넘게 [[이수근]]이 강호동을 의심하며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예능계에서 두뇌 플레이만으로 미션의 판세를 뒤흔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캐릭터.[* 이에 견줄만한 인물로는 추격전만 하면 빛을 발하는 [[무한도전]]의 [[노홍철/무한도전|노갈량]] 정도. 그리고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 천재 해커라 불리는 이두희가 "노홍철은 말이 많지만 게임을 잘할지 모르겠고, 은지원은 방송에서 포장된줄 알았는데 진짜 천재인거 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준영|얘]]는?~~[*스포일러? 정준영은 머리보단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반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남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순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또한, 제작진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공포증이나, 심리적 큰 부담이 있는 요구가 아닌 이상 프로그램에 맞춰 묵묵히 그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은 예능PD들이 자주 은지원을 섭외하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싫은 건 하기 싫어하는 초딩같은 모습을 겉으로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식적이지 않은 날것의 것'을 요구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잘 먹히기도 하며,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는 긴 시간의 촬영과 어려운 미션을 요구하더라도 황당해하며 묵묵하고 성실하게 따르면서도 센스있게 상황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이 예능인으로서 은지원의 강점이다.
2014년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가 론칭되자 레이드 컨텐츠등을 열심히 즐겼으며, 플레이중인 캐릭터는 줄진 서버 호드진영의 '''진품'''이라는 이름의 [[오크]] [[주술사]]. 정기 주술사와 고양이었다. 상당한 속도로 만렙을 달성한 후, 오픈 직후 아쉬란 정점 버그가 있을 당시 하루종일 전쟁의 창에서 PVP를 즐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높은 망치 레이드까지 길드원들과 함께 한듯. '검은 도적단'이란 길드에 속해 있으며, 이 길드에 다수의 연예인 동료들이 속해 있다고 한다. 다만 6월 이후 접속이 없고, 새로 시작한 [[신서유기]]에서 와우를 접었다고 말했다. 레벨 100을 달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가끔씩 접속해서 업적질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도 접속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와우는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인다.
[[능력자들]]에서도 어릴때부터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겨했고, 고전 게임 능력자가 출연한 편에서는 8비트, 16비트 게임기 및 고전 게임화면을 보고 어느정도 알아보기도 하였다. ~~슈퍼패미컴 팩을 구입 혹은 바꾸려고 용산에 자주 갔었다는 이야기도..~~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진외당고모[* 陳外堂姑母, 아버지의 외사촌 누나 또는 여동생. 자신과는 5촌.]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2011년 박근혜의 트위터에 "조카 지원이와 함께..." 라고 올라온 사진이다. 쉽게 말하면 은지원은 [[박정희]]의 누나의 손자이다. 박정희의 큰누나인 박귀희는 박정희가 태어났을 당시 은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장남을 임신한 상태였고 은지원의 아버지 은희만은 박귀희의 둘째 아들이다.[* 다른 기사에는 장남으로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기사에는 셋째 아들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즉, 은지원 아버지의 외삼촌이 바로 박정희. 이 때문에 '''연예계를 대표하는 금수저'''로 항상 언급된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결국 [[박근혜|고모]]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탄핵 인용]]'''이 되면서 '''흑역사 중의 흑역사'''가 됐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위해 선거 활동에 유세 도우미로 참가했다. "친척 하는 일 거드는 것인데 뭐 어때?"라는 반응도 있지만, 과거 선거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참고로 2012년 초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박근혜|고모]]가 원하신다면 당연히 도와드릴 생각'''이지만, 내가 [[초딩]] 이미지라(...) 굳이 도와달라고 안 하시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본인의 --딱히 있을 것 같지않은--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친척이라 도와드린 것이라 밝힌 적 있다.
결국,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태어나서 두번째[* [[10.26 사건|10.26]]이 [[1979년]], 은지원이 [[1978년]]생이므로 1년 동안 대통령의 친인척이였다.]로 대통령 친인척에 포함되었다. 이런 집안 환경 탓인지 철없이 보일지 몰라도 평소의 행실은 꽤 좋다고 한다. [[1박 2일]] 멤버들 중 유일하게 [[한복]]을 제대로 입은 멤버이기도.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다시 대통령 친인척에서 지정해제되었다. 고모가 '''박근혜'''라서 그런지 최근에도 안티가 다시 많아졌다. 비록 자주 만나지 않았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출연료가 어느 정도 올랐다고 은지원이 직접 말했다. 같이 사진을 찍은 것도 있으며 특혜는 안 받았어도 가족이었던 만큼 특히 이것은 평생 지고갈 짐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97년 은지원이 데뷔한 이후 1년뒤에 [[박근혜]]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을 했었다.
그러나 2년 뒤 성격 차이로 [[이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이동국]]과는 남남이 되었다.[* 은지원은 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동안 [[카더라]]로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2016년 [[신서유기|신서유기 2]]에서 본인 입으로 '''"저는... 게임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었습니다. 근데 아직도! 게임을 처자빠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삭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악행을 고백해야 정답을 맞힐 기회를 주었다. 즉, 오답을 내려 하더라도 자신의 악행은 고백해야 한다는 것. 이에 [[나영석|나PD]]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멤버들은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포복절도했고, [[이수근]]은 '''"그냥 사오정을 하든 손오공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며 병뚜껑을 집어던졌다.]라고 발언했으나, 장소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한 말이다. 게다가 은지원의 전부인이 뉴스킨 이라는 [[다단계]]에 빠져 재산을 많이 탕진하는 이중고도 겪게 된다. 결국 은지원 본인은 가정에 소홀했고 부인 역시 다단계로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는 점을 보면[* 물론 좋은 뜻으로 은지원에게 잘해줄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다단계]]의 구조를 보면 서로가 망하게 하는 지름길 이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부부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지원 본인은 부인의 행적보다도 자신이 가정에 소홀했다는 점에 대해서 자책감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 [[츤데레]]다. 문제는 팬들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엄청난 츤데레라는 점(...).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425001447491|젝키 시절 사생팬들에게 쓴 손편지]] 멤버들 중 유독 [[이재진(젝스키스)|이재진]]과 티격태격대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도시락 때문에 싸웠다거나 이재진이 반항을 많이 했다는 언급도 몇번 해서 사이가 나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친하다. 애초에 이재진이 코가 크다는 이유로(...) 젝키 멤버가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막 합류한 김재덕이 이재진을 두둔했는데[* 이재진과 김재덕은 부산에서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재덕에게 처음으로 춤을 가르쳐준 사람이 이재진이고 같은 댄스팀에서 활동했으며 함께 상경해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다.], 이 때 은지원이 춤도 잘 추지만 생각이 깊은 아이라면서 회사를 설득하여 무사히 젝키 멤버가 되었다. 해체 후 각자 솔로활동을 하던 시절에 이재진이 라디오 출연했을 때 [[https://youtu.be/BZ2QCgkw_pg|은지원이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고, 이재진이 군대 전역 후 인터뷰에서 '입대 전까지 지원이 형, [[강성훈|성훈이]]랑 연락했다. 이제 나왔으니 또 연락할거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 둘이 같은 예능에 출연하면(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서로를 까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죽이 맞거나, 남들이 까면 은근히 편을 들어주거나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잡지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은지원을 꼽기도 했다. 젝스키스 무대나 예능에서도 은지원이 동생들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냥 프로 츤데레일 뿐-- 해체 직후에 총알받이가 되어가며 황급히 솔로로 나온 것 자체가 동생들이 최대한 편히 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누가 먼저 나오든 엄청난 욕을 먹을 것이라 나서서 총대를 맨 것. 재결합 전까지 젝스키스 언급을 자제하거나 상징색을 노랑이 아닌 은색을 써서 팬들에게 젝스키스를 부끄러워한다,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한창 오해받을 당시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젝스키스가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하지 못한 것에 가깝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발언해 어린 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등 돌린 부분도 크다.-- 젝키가 다시 뭉쳤을 때 일개 추억팔이가 되어 과거의 추억까지 격하당할 것을 염려한 흔적이 많다. 게다가 그동안 리더로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재결합 후 반응이 좋자 마치 용서받은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노란색 관련해서는 예능에서 남들이 다 싫다는 샛노란 체육복을 젝키는 노랑이라며 좋아하거나, 우비를 노란 우비 위주로 입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희준이 방송에서 은지원은 오해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문제는 오해받더라도 해명하지 않는다는 것.
* 다른 멤버들의 말에 의하면 연락을 잘 안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젝스키스 재결합 이전 은희상담소에 출연했던 김재덕은 '은지원에게서 카톡이 오길래 확인해봤더니 게임 초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은지원은 "사랑(하트)을 보내줬잖아. 형의 깊은 뜻을 모르겠니?"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은지원은 '진정한 친구는 게임 초대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강해보이는 외양과 달리 수줍음이 많다. 본인 칭찬에 인색한 것을 넘어 후려치기까지 심하게 한다. 팬들의 칭찬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못들은 체하거나 심한 동공지진이 오기도 한다. 해체 전에도 팬들 앞에서 쑥스러워 땅만 보고 걷다가 겨우 고맙다고 말을 하는데, 이것이 자신의 진심이라고 했다. [* 이 때문에 은먹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팬]], [[아기]], [[동물]], [[이재진(젝스키스)|젝]][[김재덕|키]] [[강성훈|멤]][[고지용|버]][[장수원|들]] 한정으로 약하다. 실제로 팬들을 굉장히 많이 챙긴다. 아기랑 동물만 보면 혀가 짧아지기까지 한다. 다만 [[20세기 미소년]]에서 아기보기 에피소드가 등장했을 때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는데, 자신은 아기랑 싸울 것 같아서 어렵다고. 전형적인 '''자기도 애같아서''' 잘 놀아주는 타입.
* 팬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데, 역조공을 하기도 한다. 역조공 물품 중 [[원피스(만화)|원피스]] [[피규어]]도 있었다.
* '''같은 1978년생인 [[최현우(마술사)|최현우]], [[나얼]]과 같이 사기급으로 [[동안]]이다.''' --사실 젝키 멤버들 전체가 동안이다.-- 실제로 은지원은 연예계에서도 알아봐주는 동안연예인이면서 하는 짓도 초딩같고 그렇지만 벌써 '''마흔'''이다. 다만 얼굴이 너무 동안인데다 은초딩의 싱크로율이 너무 적합해서 그다지 부각되지도 않고(...) 지금 얼굴과 젝키활동 시절의 모습을 비교하면 얼굴선이나 눈매가 다소 부드러워진 것만 빼면 거의 차이가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치열 교정을 하라고 했음에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는 일화나[* 실제로 풀샷이 잡힐 때나 입을 벌리고 있을 때(뭔가에 집중하거나 오디오 겹침 때문에 멘트 대기중일 때 자주 그런다) 보면 위쪽 치열이 상당히 앞으로 나온 편이다. 그래서 일부 캡쳐에서는 앞니가 튀어나와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연예인임에도 피부 관리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의외로 외모를 꾸미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2016년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생전 처음으로 피부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은지원 본인의 말로는 젝스키스 해체 이후 솔로 가수로서 출연한 모든 방송에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고...] 젝스키스 재결합 이후 은지원의 관리 받은 사진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흠많무. 현역 10, 20대 아이돌을 압살하는 포스를 보여준다. 흡연이라는 동안 유지에 치명적인 디메리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재는 팬들을 위해 금연하는 중이다.] 최근 동안 얼굴이 큰화제가 되어 뜻밖의 월드투어(기사로)를 하는중이다.
- 몽키 D. 루피 . . . . 34회 일치
작중 최고 개념인이지만 평상시에 했던 기행들 때문에 이런 점이 많이 묻히기도 하는 약간 안습한 인물이기도 하다. 불의를 보면, 묵인하지 않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행동에 나서는데, 작가는 이를 보고 현실 속 가상 국적을 '''[[브라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무식하고 생각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행동에 의미가 있을 때가 많고, 사건의 핵심을 찌르기도 한다. 미사여구 같은건 쓸 줄 모르지만, 그만큼 단순하고 진심이 담긴 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다.
때때로 굉장히 무모하게 보일 때가 많고, 동료들의 조언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키자루]]는 "무모함밖에 없는 쓰레기"라고 매도하기도 했고, [[주인공 보정]]이 없었으면 해적단 전원이 저세상으로 갔을 일도 수두룩하다.
모험과 스릴을 즐기는 취향이 원인 중 하나. "목숨보다 모험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섬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기록지침을 보자마자 '''가장 위험한 섬'''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 탓에 나미와 우솝은 이런 기능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원피스의 테마를 드러내기엔 가장 적절한 선택이지만, 한 집단 리더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아무래도 신세계를 [[에버랜드|에X랜드]]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모양--
동료나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무모함의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정부(원피스)|도저히]] [[임펠 다운|승산이]] [[정상결전|없는 상황]]이라도 동료가 위험하면 싸움을 건다. 어느 때나 동료의 강함을 믿는 것은 루피가 가진 리더십의 원천이지만, 오히려 일당 전체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샤본디 제도에서 천룡인만 때리지 않았어도 밀짚모자 일행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밀짚모자 해적단 선원 대부분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해적단이었으면, 처음부터 입단할 일이 없었다. 실제로 정작 당사자인 선원들은 하찌가 총에 맞아서 천룡인을 때린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조로는 천룡인을 베려고 검을 뽑았다가 루피가 선수를 치자 검을 다시 집어넣기도 [* 선장의 행동이라고 무조건 허용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무모하게 행동할 때는 선원들도 저지한다.][* 즉 루피가 무모하고 정신나간 성격인 것은 맞지만 어차피 여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죄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나미, 조로, 상디, 우솝 등은 자신들이 루피보다 상식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실제로도 루피보다'''는''' 상식적인 인간이지만 주변 평가는 '''다 똑같은 미친 것들'''(…)]
신나게 즐기며 노래하고, 동료를 아끼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해적이라 생각한다. 제일 처음 본 해적이 [[빨간 머리 해적단]]이었기 때문인 듯. 영웅이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해적은 고기를 가지고 잔치를 벌이지만, 영웅은 고기를 나눠줘야 하니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징베: 네가 먹을 고기는 내가 줄테니 일단 말을 들어!-- 이런 면모 탓에 해적기만 내리고 다녀도 인생이 편해지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세계관 상 [[위대한 항로]]의 끝까지 가보려는 것 자체가 중죄다. 더군더러 해적기를 내리든 말든 몇몇 행동은 알아서 했을테니[* 특히 로빈을 구출하기 위해 에니에스 로비를 박살낸거나 천룡인을 패 버린것.] 별 상관은 없을듯.~~지금까지 해먹은 게 몇 년인데~~
앞서 말한 그 특유의 무모함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루피의 감은 그만큼 잘 맞는다'''. 분명히 루피가 무모해서 온갖 사선을 넘으면서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모두 살아남은 것은 루피의 감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패기 설정이 두드러진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연결된 떡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mr.3 전때 같은 것만 봐도 작가가 구상정도는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독자들도 있다.]
초반에는 생각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알라비스타나 [[위대한 항로]] 사건을 겪고, 다소 성장한 듯. 상황을 내던지는 듯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감으로 판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주저없이 그만둔다. 정상결전 당시 위급한 상황에서도 미호크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샤본디 제도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전원에게 도망치라 명령했다. 굉장히 무모했던 [[골 D. 로저]]나 [[포트거스 D. 에이스|로저의 아들]]('''스포일러''')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별명 '밀짚모자 루피'는 항상 밀짚모자를 쓰고 다녀서 붙었다. 샹크스가 선물한 이 밀짚모자는 루피의 보물 1호. [[버기(원피스)|버기]]가 모자를 망가뜨렸을 때 크게 분노했으며, 전투 후 의식을 잃었다 깨어날 때마다 모자부터 찾는다. 또한 에이스에게서 받은 비블 카드를 밀짚모자에 붙이면서, '여기라면 안심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로 왈, '''"큰일났다! 저녀석은 [[바보]]라서 최면이 보통 사람보다 강하게 걸려!"''' 이 모양이라서 정신계 공격인 캡틴 [[크로]]전에서 [[쟝고(원피스)|쟝고]]의 세뇌부터 시작해서, [[바로크 워크스]]전에서는 [[미스 골든 위크]]의 색깔 조종, 그리고 [[스릴러 바크]]전에서는 [[페로나]]의 [[홀로홀로 열매]], [[브룩(원피스)|브룩]]의 노래 공격 등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극장판중 하나에서는 짐승들을 자극하는 음악소리에 자신이 반응하고 으르렁 대기도 했다.다만, 생각이 하나로 좁혀질 때는 통하지 않는 모양. 원래 브록의 노래 소리만 들어도 영향을 받는데 스트롱 월드에서는 시키를 쓰러뜨린다는 일념으로 좁혀진 루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보아 행콕]]의 정신계 공격에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여성들도 예외없이 걸리는 능력인데다 전보벌레는 물론이고 무생물(벽)도 돌로 만드는 능력이다. 단지 [[동자공]] 혹은 [[고자]]라서 무사할 수 있었다는 변명만으로는 모자랄 듯. 게다가 보아 행콕의 알몸을 보고도 전혀 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는 [[나미(원피스)|나미]]의 알몸을 보고 두 번이나 코피 흘리기도 했던 걸 보면[* 한번은 [[Mr.2 봉쿠레]]가 나미 모습으로 변신한 뒤 '''이렇게도''' 변신할 수 있다며 나미의 알몸까지 재현해 보여줄 때(...)와 싸움이 끝나고, 여탕 엿보다가 나미가 보여줬을 때. 그러나 나미가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는듯한 표정으로 보고있는 듯했다. --고자는 고자일 뿐--]...그러나 루피가 이런 성적인 묘사에 흥분하는 건 옆에 우솝이 있을 때 (분위기를 타고)한정이라는 설정이 단행본의 SBS코너에서 나왔다.
[[드래곤볼]]의 [[손오공(드래곤볼)|손오공]][* 사실상 거진 오마쥬 캐릭터 같은 느낌에 가깝다. 먹보에 감으로 행동하고 동료를 중요시하며 자유로운 성격에 강한 적과 싸우고 싶어 하는 호승심, 적을 잘 죽이지 않는다는 점까지. 그리고 반죽었다가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스러운 면까지] 으로 대표되는 먹보 캐릭터로 식사를 하루 다섯 끼로 계산하고[* 알라바스타 왕국편에서 [[크로커다일]]과의 전투 후 의식을 잃고 자신이 3일만에 깨어났다는걸 알자마자 한다는 말이 '15끼를 건너뛰어 버렸어!!(...)'. 하루에 '''5끼'''씩 3일로 계산하면 15끼가 된다. 그런데 원래 뱃사람들은 환경 적응과 육체 활동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서, 보통 식사를 다섯 끼 정도로 계산하여 섭취한다. 그렇지만 원피스의 세계에서는 뱃사람들도 세 끼를 먹고, 다섯 끼를 '유독 많이 먹는' 편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한 끼에 먹는 양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아서 뱃사람도 세 끼만 먹는 걸지도. 작중 식사 씬을 보면 연회가 아니라도 확실히 양이 많다.] 특히 고기라면 환장을 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게 고기일 뿐이지 다른 음식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고, 더불어 고기가 많다고 고기를 우선적으로 먹거나 하지도 않고 있는 대로 다 집어먹기 때문에 사실 영양이 치우쳐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무엇보다 상디가 영양 밸런스도 신경쓰지 않을만큼 어수룩한 요리사도 아니다. SBS에서 독자가 "루피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요?" 라고 작가에게 물어봤는데 작가 왈 '''"저렇게 날뛰고도 살이 안 빠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요?"'''] 하루 이상 깨어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고기라는 발언에 반응해 깨어나기도 했다. 다쳐서 의식 없이 드러누워 있으면 굶어야 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 후반 들면 자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등 좀 이상한 데로 발전하기도 했다.[* [[CP9]]의 [[로브 루치]]와 싸우고 이틀간 자면서 먹는 스킬을 썼다. [[몽키 D. 가프]]가 사랑을 실은 주먹으로 때려서, 강제로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일어나면 밥 먹은 기억 없다고 또 처먹겠지~~ ~~대표적인 먹보 캐릭터인 손오공도 차라리 잠을 푸욱 자면 잤지, 자면서까지 저리 먹어대지는 않는다.(...)~~ 비명이 나올정도로 맛이 없다는 악마의 열매를 와작와작 잘 씹어 먹은걸 보면 맛치일지도 모른다. 사실 싫어하는 음식은 하나뿐이고 그 하나도 맛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니코 로빈]]을 구하느라 [[에니에스 로비]]를 박살내고, 포트거스 D. 에이스를 찾아 [[임펠 다운]]을 작살냈다. 뒤이어 [[해군본부(원피스)|해군본부]]를 뒤엎는 데도 한 몫 했다. 즉 루키 주제에, 그것도 최하위급 악마의 열매 능력자가 열기도 힘든 정의의 문을 넘고 넘어서 세계 정부의 중요기관 3개를 골고루 털었다.
본인 무력부터가 루피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는 거물들을, 루피 쪽에서 도와줄 때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겪으면서 루피라는 인물 자체에게 반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징베, 이반코브, '''행콕'''등이 그러한 케이스로[* 행콕의 경우는 함깨 활동한 기간이 짧았지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샤본디 제도에서의 행적 자체가 행콕이 본인 트라우마를 정면에서 깨부수는 영웅담으로 들릴 만한 행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필연적이었다. ~~이후는 전부 콩깍지지만~~], 세 명 모두 2년 전 시점에서 명백하게 루피를 뛰어넘는 강자들이었으며[* 이 부분은 루피가 이미 칠무해를 둘셋 꺾은 적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렸다고 동급의 강함이라 볼 수는 없다. 이반코브가 Mr.3의 보조 없이 마젤란과 정면에서 한참을 대치 후 살아돌아왔다는 점이나, 행콕이 파시피스타를 대략학살했다는 점(다만 이때 파시피스타는 행콕을 아군으로 인식하고 공격 자체를 안했다. 로봇이니 행콕이 공격을 받으면서도 반격했을리가 없고), 징베의 수중 전투력 등에서 가늠하자면 강함 자체만 두고 볼 때 당시 루피보다 명백히 우위에 있다. 아니, 징베의 육상전투력만 봐고 루피보다 우위이다. 징베는 육상에서 에이스와 싸워 무승부를 이뤘으며, 이때 루피는 에이스보다 약했다. ] 루피가 그들의 은인이라 잘라 말하기도 힘들지만, 결국 전원이 반쯤 목숨을 내놓고 루피를 위해 싸운다.
이것은 딱히 도플라밍고처럼 해적이 일개 국가를 소유한다거나 산하에 두는 것은 아니기에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무력을 행사하여 적개심을 사지 않아도 루피 본인 의향만으로 여러 국가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으로, 국가마다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터세븐 시장이 손수 해적선을 조선해준 일이 있고[* 얘가 해적왕이 되기라도 하는 '''순간 불법행위로써 인정'''된다. 그렇게 되기 전이라 해도 루피가 에니에스 로비를 개작살내고 온 직후이니 세계정부에게는 미움받고도 남을 일이다. [[톰(원피스)|톰]]역시도 그저 해적왕의 '''배를 건조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상황을 보면 아이스버그도 스승과 똑같이 끝장날 수 있다. 다만 나서서 도와줄 이가 없었던 톰과는 달리 아이스버그는 그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있다. 물론 밀짚모자 일행들도 아이스 버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이들이 아이스버그의 사형을 순순히 묵인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톰의 경우에는 스팬담의 온갖 방해공작이 있었다. 더군다나 워터세븐 마무리에서 아이스버그가 설계하고 있던 '워터세븐 전체를 바다에 띄우는 일'이 성공한다면 그의 위상이 과거의 톰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밀짚모자 일당의 새 해적선 [[사우전드 써니 호]]에 대한 건조는 밀짚모자 일당과 소수의 관계자만이 아는 일인 만큼 죄를 묻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톰의 경우, 본디 조선공은 해군이건 해적이건 일반인이건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한 배를 건조하는 행위 자체는 죄를 묻지 않으나 톰의 경우는 그가 건조한 배가 다름아닌 '''해적왕 골 D. 로저의 기함, 오로 잭슨 호''' 였던만큼, 해적왕과 관계된 이들을 전부 숙청하려는 해군 본부의 표적이 된 것이다. 또한 스팬담의 음모로 [프랑키|커티 프람]이 만들었던 전투함들이 사법선을 습격했을 당시, 오로 잭슨 호의 건조 건은 바다열차 퍼핑톰의 제작으로 사면받는다 쳐도 사법선 습격 건이 그대로 죄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다열차 건으로 사면받고 [아이스버그|자신의] [프랑키|제자]들을 위해 오로 잭슨 호 건조에 대한 죄를 받아들여 처형된 것이었다.][* 다만 문맥상 중요한 것은 일개 도시의 시장, 세계관 상으로는 국왕하고도 맞먹을 정도의 권력자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르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해 주었을 정도로 밀짚모자 일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 받는다 안 받는다 여부가 중요한 점은 아닌 것(…)~~병림픽~~]어인섬의 경우는 언젠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국왕이 못을 박아두는 장면이 나왔고[* 밀짚모자 일당에게 감사인사란 감사인사는 죄다 퍼부은 뒤였기 때문에 단순히 엄청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출은 아니다. 어인섬에는 루피에게 붕괴당한다는 플래그도 서 있기 때문에 차후 재등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알라바스타 왕녀는 비공식적이나마 밀짚모자 일당에 소속되어 있는 등 그 정도가 '''여차하면 특정 세력에게 적대 성향을 가지게 할 여지도 충분히 있기에''' 이미 심상치 않다고 말할 수준을 몇 단계 뛰어넘었다.
일단 기본적인 상식에 대해 모르는 것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혁명군과 [[몽키 D. 드래곤|그 리더]]가 누군지 모른다거나[* 다른 사람들은 듣자마자 놀랐고, 나미는 너희 아버지가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라며 루피에게 말했다.] 그 외에도 해적왕을 노린다는 녀석이 사황과 칠무해도 몰랐다.[* 사황은 몰라도 칠무해는 이스트 블루의 요삭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크로커다일|칠무해]]앞에서 '''"그럼 난 팔무해다!(...)"'''드립을 친다거나... '''상대하는 적의 명성을 전혀 모른다.'''라고 봐도 좋다. 다만 이 점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크로커다일|칠무해]]와 [[아오키지|해군 대장]]을 상대로 '''진심으로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덤빌 수 있었기 때문. 이 덕에 다른 일행들은 두 번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루피는 10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산적들과 함께 산속에서 살다가 최근이 되어서야 속세로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은둔자처럼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정상결전 종전 이후 루피의 과거회상이 좀 더 디테일하게 나오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루피가 '마을에서 자란 아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샹크스에게 모자를 받았을 때의 회상에서는 후샤마을 모습만 비췄고, 옷도 말쑥하게 입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실상은 숲속에서 수렵을 해서 먹고 사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데다가 키우는게 산적들이다보니 엉덩이 붙이고 교육을 받았던 적은 없을게 뻔하다.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아버지가 드래곤이다보니 거프라고 해도 애를 쉽사리 밖에 내놓고 길렀을 터가 없고, 심지어 마을을 나오고 나서는 이렇다 할만한 공백기간도 없이 첫 항해에서 그대로 1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태어난 이래 문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고 봐도 좋다. 오히려 자라온 환경을 생각해보면 '''글을 읽을 줄 안다는게 기적이다.'''(…)
* [[모디(원피스)|모디]] - 리치를 고무고무 망치로 끝내놓고 잡아다가 일격에 쓰러뜨렸다. ~~솔직히 이 놈은 실력자라 말하기도 뭐하다~~
* [[보아 썬더소니아]] & [[보아 마리골드]] - 기어 2를 걸고 두 고르곤 자매가 견문색으로 눈치채기도 전에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 추가로 썬더소니아의 등(천룡인 노예 표식이 있다)을 가려 행콕의 마음을 열기도 했다.
* '''[[제트(원피스)|제트]]''' - 극장판 12기 한정.[* 극장판 11기에는 실력자가 없었다.] 제트와의 3 번째 대결에서 끝내 이겼다. 하지만 3 번째 대결때는 기어를 이용해서 싸워 왔으나 막판에는 단순히 무장색 강화만 써서 서로 주먹 교환에 집중했다. 이 때 제트가 신념에 신념으로 답해준다면서 핸디캡으로 오직 팔에다가만 무장색 패기를 두르고 공격을 맞아주었기에 건강과 나이 때문에 한계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던 것.[* 실제로 루피의 무장색 패기를 담은 주먹은 제트의 부하인 슈조의 무장색 패기 + 철괴에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하거나 패기를 담은 주먹에 막히기도 했다. 30년이 넘게 무장색 패기 마스터로 이름을 날렸던 제파의 패기의 힘을 생각하면 제파가 전신에 무장색 패기로 무장을 했다면 루피는 데미지를 줄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싸움마저도 루피의 모든 기술을 쏟아부으면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엘리펀트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점도 있고 레드 호크(불주먹)같은 기술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있다. 사실 이런 기술은 2년 후에 루피가 등장하면서 쓴 지 얼마 안 되었던 기술이고 게다가 현재 시점으로 아직 2년 동안 수련된 상태의 루피의 기술이 아직 다 나오지 않았다.]
- 전효성 . . . . 34회 일치
어린 시절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재능도 있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고 중학교 때 댄스 동아리 리더를 맡아 축제 때마다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11년 SBS 토크쇼 [[강심장]]에 출연하여 이때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이 시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효성의 부친은 딸의 꿈을 위해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계속 숨겨왔었고,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효성은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의 효성은 데뷔가 무산되고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는 등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효성이 시크릿으로 데뷔 후 <샤이보이>로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했을 때 통곡을 해서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였다고 한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온게임넷]]의 아이템 드림[* [[던전앤파이터]]의 아이템들을 소개하고 이벤트를 통해 나누어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에 MC로 발탁되면서 첫 단독 진행 기회를 부여받기도 했다.
이후 곰티비의 곰뮤직차트쇼라는 인터넷 방송에 [[아이유]]의 후임으로 발탁되어 두번째 단독 MC 프로그램을 맞게 되었지만 5주만에 하차했다(...). 이유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7&aid=0000327156|이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http://www.gomtv.com/414050|그 당시 방송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PnGo1ahHvg|GMC 막방 당시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Magic>으로 본격적으로 뜨고 난 후 MBC Every1의 파일럿 프로그램 <스타 심부름 하라하라>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박경림]]이 DJ로 있던 시기에 [[별이 빛나는 밤에]]의 코너인 심야별카페에 페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박경림이 휴가로 약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박경림의 추천으로 일주일간 임시 별밤지기로 활동하며 별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2014년 2월 1일에 방영한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고난이도의 스턴트 치어리딩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사람을 공중으로 던지는 바스켓이라는 동작은 6개월 이상 하지 않으면 던져주지 않는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들 방과후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안전장치와 남녀 비율이 적합할 경우 바스켓은 시작한지 2, 3주만 되어도 할 수 있다. 물론 정석대로 안전하고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아니다.][[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2130936551910|기사]]
5월 15일 뮤직뱅크에서 [[지누션]]의 <한번 더 말해줘> 무대의 피쳐링 가수로 참여하였다. 무대 막바지에 지누션과 함께 자신의 솔로곡 <반해>의 하이라이트 안무 두가지를 선보이며 깨알같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5년 6월 6일 [[SNL 코리아]]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94678|단독 호스트로 출연하였다.]][* 같은 소속사인 ~~힙합좀비~~언터처블의 슬리피가 특별출연 하기도 하였다.] 콩트에 초점을 맞춰서 작년 만큼의 활약상(...)은 아니었던듯...
2015년 6월 16일 <[[정글의 법칙]] - 히든킹덤편>에 출연이 확정되었다.[[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729197|기사]] 일본 스케쥴을 모두 마치고 19일에 [[브루나이]]로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목격담에 의하면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ecret&no=566355&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ED%95%9C%EA%B5%AD|19일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20일에 브루나이로 출국했다고 한다.]]] 솔로활동 - 일본활동 이후 바로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일정이라 팬들은 걱정하는 눈치. 히든킹덤편 첫화에는 일본 활동으로 인하여 오프닝에만 살짝 출연했고 2화에도 꼴랑 3분가량(...) 나왔다. 2회에서 몰카를 준비했지만 바로 뽀록나고 말았고 그나마 [[정준하]]의 배려로 번외로 한번 더 시도하여 놀라주는 척 하는 장면이 같이 나갔다. 3회,4회에서는 카사바와 바나나 먹방과 도마뱀을 거침없이 손질하는 모습으로 나름대로 활약.[* 같이 출연한 [[정진운]]과 함께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758965|정글의 법칙 OST에 참여했으며]] 방송 중간중간에 삽입곡으로 깔리기도 했다.]
2018년 10월 29일 토미상회 엔터테인먼트와 새로 계약했음을 알렸으나, [[TS엔터테인먼트]]가 전속계약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이후 11월 14일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TS와의 관계를 일단락했다. 승소로 TS 측에서 전효성에게 1억 3000여만원과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경축 탈 TS!!-- 소송이 끝난 뒤 자신의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후련한 마음을 표출하기도...[[https://www.instagram.com/p/BqJLhWKgkdx/?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0ae4h7tbvsnj|#]][[https://www.instagram.com/p/BqJ-IUlAaVT/?utm_source=ig_share_sheet&igshid=1my9qr2d0tmde|#]]
첫 솔로 활동 성적은 공중파 음방 성적이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각종 음원차트에서 좋은 순위를 유지하였고 앨범도 만장 이상 판매하면서 첫 솔로 활동 치고는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듯 하다. 이번 솔로 앨범으로 행사 등에도 많이 초청되었는데, 여솔로 혼자서 행사를 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이번 솔로 앨범은 큰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11월 19일 초청된 <상명대 지하방송제>에서는 팬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인해 앵콜 무대를 하기도 했다. "원래 저 이러면 혼나는데..."라고 하면서도 앵콜 무대를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워서 팬들은 이 무대가 가장 신났다는 평을 할 정도.]
거기다 타이틀곡 <반해>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효민]]의 <Nice Body>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2013년 8월 7일 언론을 통해 [[OCN]] 사전 제작 [[드라마]]인 [[처용]]에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684703&year=2013|여고생 귀신 한나영 역으로 캐스팅 되어]] 본격적으로 첫 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2014년 2월 9일에 첫 방송 예정이라고 하며 캐스팅 되자마자 [[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40204222522947&ts=180211|제작진에게 본인의 캐릭터를 분석한 편지를 보내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시사회에서 극 후반부에 [[http://www.youtube.com/watch?v=3-R4yPUdgvY|고통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본인의 연기가 마음에 안들자 감독이 직접 목을 졸라줬다고 한다.]]ㅎㄷㄷ 첫방 이후 대다수 대중들의 평은 꽤 좋은 편.[* 이번에 맡은 한나영이라는 배역의 캐릭터가 귀신이지만 밝고 명랑한 캐릭터인데 그것이 전효성 특유의 발랄한 매력과 잘 어울리는듯 하다.] 드라마도 첫방 이후로도[* 첫방은 역대 OCN 오리지널 드라마 중 첫 방송으로는 최고 시청률이라고 한다 오오!!!][[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402/h20140210114728133440.htm|기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계속 사수하면서 좋은 반응을 이어갔으며 [[http://blog.naver.com/ocnblog/120210963668|결국 최종회 까지 단 한번도 동시간대 1위를 놓치지 않고 종영하였다.
8월 5일에 약 15분 가량 시범방송을 선보이기도 했다.[[http://www.vlive.tv/video/1138/JUN-HYO-SEONGs-Trailer|#]] [[http://www.vlive.tv/video/1322/JunHyoSeong-TopSecret|8월 17일]]과 [[http://www.vlive.tv/video/1756/JunHyoSeong-TopSecret|9월 8일]]~~텀이...~~에 다시 한번 시범방송을 하였다. 9월 11일에 [[http://www.vlive.tv/video/1843/전효성의-불금|시범방송]]을 한 차례 더 하고는 3시간 뒤 드디어 [[http://www.vlive.tv/video/1827/JunHyoSeongs--TGIF1화장대공개|첫방송]]을 시작했다. 첫방송 주제는 본인의 방과 화장대를 공개하여 자신만의 화장법 등을 알려주는 내용.~~그런데 이런건 뷰바에서도 해도 되는데...~~
10월 9일에는 한글날 특집으로 진행. 햇갈릴 수 있는 어법들로 퀴즈를 하더니 갑자기 난데없이 서예를 하기도 했다.[[http://www.vlive.tv/video/2306/JunHyoSeongs-TGIF5한글날특집|#]]~~서예에 심취한 나머지 채팅창이랑 소통은 거의 못했다는게 함정...~~
10월 23일에는 가을을 맞아 팬카페에서 팬들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였고 시를 쓴 팬들을 추첨하여 전화연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막판에 정하나가 목소리로 특별출연 하였다.[[http://www.vlive.tv/video/2649/JunHyoSeongs-TGIF7시창작대회|#]] [* 전효성의 V 앱 방송을 보다가 재미로 채팅창에 댓글을 남긴것을 전효성이 보고 정하나와 전화연결을 하여 전효성으로 삼행시를 지었으며 다음주에 자신의 애완견인 "아요"와 "뽀요"를 대리고 같이 출연하는게 얼떨결에(...) 확정.]
여자 [[아이돌]]에겐 보기 드문 '''선홍빛 [[잇몸]]'''을 선보이는데다 각종 방송 활동에서 ~~하라는 예능은 안하고~~내숭 없이 잘 웃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현재까지 남성팬들이 꽤 많다. 그래서 [[박명수]], [[신봉선]]과 함께 [[http://www.artsnews.co.kr/news/105890|연예계 3대 잇몸으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한국방송공사|KBS]] [[백점만점(예능)|백점만점]]에서 본인이 매력 포인트라며 어필한 그 잇몸 때문에 CF 감독한테 까였고(...) 결국에는 꼴등으로 뽑히고 말았다. [[안습]]. 근데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고정멤버가 된 듯하다. 이제까지 팀내에서 예능을 담당한 선화 빼고는 시크릿 멤버 중 처음으로 예능프로 고정을 획득한 것이다. 오오.~~다만 예능감은 미달수준~~ ~~그래서 별명이 다큐효성(...)~~] 사실 이 잇몸으로 주목받는 것이 유명해지고 나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어릴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인지가 많이 되어 있었던 특징이었는데, 이미 [[오소녀]] 시절에도 팀 내에서 별명이 '잇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2013년 MBC 파일럿 프로그램 화수분에서 [[원더걸스]] [[유빈]]을 대신해서 출연한 [[김신영]]이 전효성에게 잇몸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여담으로 [[http://www.tagstory.com/video/100646262|무대 직전에 확인하는 부위가 잇몸(...)이라고 한다.]][* 여가수들이 웃을때 립스틱이 앞니에 묻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은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2014년 자신의 생일인 10월 13일에 작년부터 자신의 개인 팬카페에서 진행해온 선행 프로젝트인 만원의 기적[* 팬카페 회원들이 만원씩 모아서 365만원을 기부하는 프로젝트. 회원들이 총 모은 금액은 366만원]으로 모인 금액을 푸르메 재단에 기부하였다. [[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20/2014102001020.html?utm_source=twitterfeed&utm_medium=twitter|기사]] 전효성 본인도 팬카페 회원들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365만원을 추가로 기부하여 총 731만원을 기부하게 되었다. 오오 대인배!!!'''[* 참고로 자신의 팬들에게 매우 잘해주며 팬들을 아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3년 아육대 녹화에서는 팬들이 자신을 보려고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자 울상지으며 팬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위에 나오는 20주년 엠카 사전녹화 때에는 추운 날씨에 자신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사비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직접 사다주기도 하였다. <반해> 활동기간에는 쇼케이스 참여한 팬들에게 바람막이와~~5월달에 받았으니까 입으려면 앞으로 6개월(...)~~ 선글라스를 선물했으며 컴백 첫주 공방 참여한 팬들에게는 바나나 우유~~반해유~~와 요구르트~~반해요~~를, 또 5월 14일 로즈데이에 공방 참여한 팬들에게는 직접 장미꽃과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역서포트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2015년 자신의 개인 팬카페 "슈퍼스타"가 10주년을 맞이했다. 10주년 기념으로 7월 11일 [[다음 tv팟]]에서 팬들과 생방으로 개인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으로 인하여 7월 9일이 아닌 11일에 진행하였다.] 다만 개인방송이 처음이라 준비 미숙으로 초반 10분을 날려먹은 점과[* 마이크를 준비를 안하여(...) 중간에 가져오느라 시간을 좀 날렸다.~~개인방송에 마이크를 준비를 안하다니...~~ 물론 까먹은 시간만큼 추가로 진행하였다.] 바로 스케쥴이 있어서 한시간 밖에 방송을 하지 못한 점, 비번을 걸어놓지 않아 중간에 분탕치는 악플러들로 인해 채팅창이 깔끔하지 못했던 점들은 옥의 티로 남을듯...[* 역시 처음이라 비밀번호를 간과하고 그냥 지나친듯. 물론 본인은 오랜 연예계 생활로 인해 제법 멘탈이 강해져서 그런지~~팟수들도 많이 찾아와서 악플들도 제법 물흐르듯 넘어가기도 했고~~ 쿨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팬들 멘탈은 [[안드로메다]]로...~~] '''물론 이런 행위는 정말 남부끄러운 짓이니 남의 잔치에 까지 가서 난리 피우지는 말자...'''
- 하현우 . . . . 32회 일치
||<:><bgcolor=#353535>'''{{{#white 별명}}}'''||<(>'''개구리'''[* 약간 돌출되어보이는 큰 눈이 개구리를 닮아 생긴 별명.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이라 [[http://cafe.daum.net/ok1221/9Zdf/338477?q=%C7%CF%C7%F6%BF%EC&re=1|갑상선 질환자]]가 아니냐는 오해도 종종 받는 듯. 거주지인 [[안산시|안산]]을 붙여 '안산개구리'라 부르는 팬들도 있다.], 그리부이[* 팬클럽(국카스텐은 팬클럽을 '공식'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공식' 팬클럽은 만들 예정이 없다고 매니저가 트위터에서 밝힘)에서 쓰는 별명으로 어원은 불어인 그리부이(Gribouille). 뜻은 원래 휘갈겨 쓴 글씨, 서투른 그림 솜씨 등을 뜻하는 단어지만 뉘앙스나 방식에 따라서 바보 내지는 멍청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팬덤 쪽에서는 주로 그리부이 선생, 줄여서 그쌤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외 팬들이 많이 집결한 국카스텐 갤러리 같은 곳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별칭이다.], '''음악대장'''[*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출연 이후 붙은 별명. 바리에이션으로 음역대장, 음색대장, 약어인 음대, [[야민정음|머튽]] 등이 있다.], 하도사[*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3]]에 출연해서 손금을 봐주면서 생겼다.] ||
[[1981년]] [[11월 25일]], [[전라북도]] [[장수군]] 태생. 현재는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다. 록 밴드 [[국카스텐]]의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특유의 카랑카랑한 보컬과 엄청난 [[발성]], 폭 넓은 음역대로 유명하다. 본인의 음역대가 '''3옥타브 시(B5)'''까지 올라간다고 인터뷰에서 밝혔고,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과거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2016년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매일 매일 기다려]]'의 최고음은 '''3옥타브 라(A5)'''였고, 예전에는 '''4옥타브 도(C6)'''까지도 부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힘들다고. 콘서트에서 부른 꼬리는 진성으로 '''3옥타브 라♯(A♯5)'''까지 올라갔고 2012년도에 부른 푸에고가 가성으로 '''4옥타브 라(A6)'''까지 올라갔다.[* 물론 깨지는 소리라 실가창에선 써먹을수 없다. 라이브에서 운용 가능한 그의 최고음은 3옥타브 시인걸로 추정된다.] 이렇듯 고음으로 유명한 보컬이지만, 정작 본인은 '얼마만큼 높이 올라가는지의 문제는 내게 중요하지 않고, 의미 또한 없다' 라는 입장.[* 고음으로 강한 보컬들은 대부분 최고로 올라가는 음보단 기승전결이나 무대에 더 신경쓴다. 그 [[박완규]]조차도 [[임재범]]의 파워에 반해 창법과 목을 뒤틀어가며 바꾸기도 했었고.]
국카스텐 라이브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하현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노래 뿐만 아니라 모션도 열정적이어서[* 하현우가 정신 놓고 기타 치는 모션을 팬들은 '기타지랄'이라 부른다.], 관객들 혼을 빼는 데 도가 텄다. 자기 말로는 [[담배]]를 피울 뿐[* 구정모 매니저에 의하면 간헐적으로 금연과 흡연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19일 HELLO 콘서트 기준으로 금연 2주차라고 밝혔으며, 계속 금연 중이라고. 그래서 작업 도중 담배를 피우는 대신 초콜릿과 스카치 캔디를 먹는다고 한다.] 등산이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도 잘 챙겨 먹는다고 하지만, 인터뷰에서 반쯤 농담 섞인 얘기로 '인이어 때문에 공연할 때마다 몸이 망가지는 느낌'이라는 말을 한 이후로 많은 이들의 걱정이 커졌다.[* 다만, 이는 모든 가수들의 피할 수 없는 직업병이기도 하다. 한쪽 귀만 인이어를 삽입해서 노래를 불어야 하는 보컬의 특성상, 고막에 문제가 생기는 느낌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1981년 11월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7살쯤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를 와서 안산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한편 하현우는 만화 그리기도 좋아했는데, 화가가 꿈이셨던 어머니가 미술 학원을 보내주신 덕에 고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보통의 미대 지망생이나 미술가 지망생들에 비해선 꽤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셈. 아버지는 음악 뿐 아니라 미술도 반대하셨지만, 하현우는 결국 미대로 진학하였다. 미대 생활은 짧았지만 미술이나 미학에 대한 그의 관심 역시 훗날 국카스텐의 음악에서 큰 축을 형성하여 이미지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동력이 된다. 어쨌든 미대 진학 이후 한동안은 노래를 접고 살아가고 있었다.
밴드 보컬이 된 대학 1학년 시절엔 공연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의 경직된 선후배 관계와 술 문화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또 정말 제대로 된 음악을 하며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걷기 위해 드러머였던 이정길과 의논 후 함께 자퇴서를 내고 곧장 서울로 올라와 홍대의 인디씬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휴학을 했어도 됐지만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자퇴를 했다고 한다.[* 후에 [[수상한 가수]]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여지 없이 잘라낸 거라고 밝혔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하였고, 음악 활동 외에도 생계 및 음악 활동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다고 한다. 건설 현장에서의 일도 하였는데, 하현우는 우스갯소리로 "안산 YMCA 건물은 제가 지은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건설 현장에서 작업 도중에 감전 사고로 기절한 일화는 당시 서울 생활이 상당히 처참했다는 걸 알려준다. 결국 그는 음악을 접고 미술 공부 경험을 살려 의상 관련 일로 진로를 바꾼다.
* 같이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했던 가수이자 실용음악 분야에서 본좌로 손꼽히는 보컬인 [[김연우(가수)|김연우]]는 [[두시탈출 컬투쇼]] 2014년 6월 5일자 방송에서 '우리나라 남자 가수 중에 고음을 가장 잘 부르는 가수'로 망설임 없이 하현우를 꼽기도 했으며[* 2014년 6월 5일자분 39분 15초 쯤에 [[정찬우]]가 [[김연우(가수)|김연우]]에게 "[[김연우(가수)|김연우]]씨도 옥타브 상당히 높잖아요. 우리나라 남자 가수 중에 최고 아니세요?"라고 묻자, "아니에요. 국카스텐 하현우씨가... '''그 분은 이상한 성대를 갖고 계시더라구요.''' [[She's Gone(스틸하트)|She's Gone]]을 그냥 편하게 불러요. 'Lady~' 거기가 G거든요? 한 (3옥타브) 솔 정도는 너무 편하게 부르세요"라고 대답했다.], [[박명수의 라디오쇼]] 2016년 8월 7일 방송에서는 음역대로서는 국내 가수 중 최고이고 진성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인 [[가온다|하이 C]]까지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 맑고 깨끗한 미성[* 나가수에서 선보인 'The Saddest Thing'이나 2집 수록곡 '변신', 'Frame' 등의 노래에서 들어볼 수 있고 복면가왕에서 부른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정점을 찍는다.]과 거칠고 둔탁한 탁성[* [[나는 가수다 2]]에서 선보인 '[[넋두리(노래)|넋두리]]'와 [[복면가왕]]에서 선보인 '[[Lazenca, Save Us]]'.]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며, 곡의 분위기에 따라 소름 끼치게, 몽환적이게, 애절하게 등등 다양한 느낌의 소리를 매끄럽게 뽑아내기도 한다. 콘셉트를 끌고 가거나 곡 해석하는 실력도 매우 뛰어나다. 덕분에 온갖 장르의 노래들을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소화해낼 수 있다. 그래서 복면가왕에서 얻은 별명이 '''장르 파괴자.''' 보편적인 감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한국 대중들은 발라드와 댄스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보니 록이 사양길을 걷는 장르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곡은 나가수 전까지는 많지 않은 편. 음폭이 깡패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곡에서 넓은 음역을 뽐내기보다 분위기에 맞게 적절히 절제해 사용하는 것도 특징이자 장점.
* 다른 록 보컬리스트들에 비해서 가성 활용도가 높다. 성대가 많이 벌어진 부드러운 가성도 종종 사용하지만 그것보다는 성대가 많이 근접해 있는 날카로운 가성을 주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성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강렬하고 흐느끼는 듯한 느낌을 많이 준다. 이 가성은 국카스텐 본연의 곡들 대부분과 일부 커버곡 등 폭 넓게 사용된다. 록 보컬리스트들 대다수가 스크래치를 쓰는 것 처럼 하현우도 스크래치를 사용하는데 스크래치를 사용하는 빈도는 해를 지날수록 점점 줄고 있다. 아마추어때를 포함해 2012년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스크래치를 자주 사용하였으나, 나가수 출연을 기점으로 점차 노래를 깔끔하게 부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이 점은 하현우 본인도 콘서트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스크래치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발성 문단에 작성되어있듯이 그로 인해 스크래치의 질감도 다른 락커들과는 약간 다르다. 성대를 살짝 벌리고 호흡을 사용해 스크래치를 내는 경우는 좀 더 찌르는 듯한 소리이고 그 소리가 불규칙적이나, 하현우는 비교적 둔탁하고 바퀴가 구르는 소리 같은 느낌이 든다. 스크래치의 소리도 비교적 규칙적이다. 이 외에도 창법적인 특징은 발음 하나 하나에 힘을 실어 부르는 특징이 있는데, 이 덕에 발음이 상당히 정확하게 들린다. 이 것의 연장선적인 버릇이 있다면, 라이브 할 때 발음 끝 부분에 '으' 소리가 자주 붙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새로움을 잃어버렸죠'를 하현우는 '새로움을 잃어버렸죠으' 이런 식으로 발음 하는 것이 많다.
*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창법이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석적인 창법만의 장점도 존재한다. 우선 한 우물만 파듯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 한 가수들에 비해서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 할 수 있다. 이 점은 하현우와 비슷한 발성적 특성을 가진 가수들(ex:김범수, 김연우, 윤도현, 최근의 박효신 등)도 공통적으로 가지는 장점이다. 거기에 더해 성악처럼 개성이 극히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차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차이을 주면서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 가창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여러 전문가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인정받고 있는데, [[Mnet]]에서 선정한 레전드 100인의 아티스트 앙케이트에 [[나얼]], [[박효신]]과 함께 등재된 당시 기준으로 33세 이하의 젊은 보컬리스트였기도 하다.
무슨 소리인지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국카스텐의 음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편이다. 하현우 본인이 이래저래 노래에 대해서 큰 틀에서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 사람들의 평은 '''그래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것.''' 멤버들도 가사의 의미를 잘 모른다고 한다.[* 이정길이 평하기를, "외국인이 말하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욕인 건 알잖아요. 그런 거예요."] 한편, 2014년 12월 12일에 방송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출연한 자리에서 하현우는 노래에 대해 어김 없이 설명을 했는데, DJ 배철수가 뭔 말인지 잘 못 알아듣겠다고 하자 하현우는 그나마 이러한 설명이 자신의 생각을 대중들에게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정제된 설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작정 약 빤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운 것이, 표현의 문학성이 상당한 데다가 팬들 사이에서 가사 해석의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그렇게 나온 다면적인 해석들이 또 설득력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 국카스텐의 모든 곡, 특히 2집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에 대한 하현우의 설명(해석이 아님)을 보고 나면 소재를 따온 방식, 담고 있는 의미, 뛰어난 비유에 감탄하게 된다. 주로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사물의 이미지나 신체 기관에 자아를 투영하거나(1집), 자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상황을 성찰하는 것(2집)이 큰 테마를 이루는데, 어휘 선택과 연출에서 한때 시인을 꿈꿨던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 실제로 여러 장에 걸쳐서 메모한 노트를 줄이고 줄인 결과가 한 곡의 가사라고 하니까, 무의미한 단어의 연결이 아니라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이 의미의 모호함이 팬들 사이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캘리그라피, 일러스트, 문학 등)을 양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2집부터는 가사 난이도가 하향 조정되고 전체적인 색깔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평도 있다.
작곡가이기도 하다. 국카스텐 곡의 작곡은 보통 하현우가 멜로디 라인을 스케치해두면[* 악보와 친하지 않아서 입으로 흥얼거리는 멜로디를 녹음기로 녹음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다. 1집 작업 기준.]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멤버들이 각자 파트분을 작곡해서 덧붙이며 완성해간다고 한다. 2집의 경우는 곡의 일관성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악기 파트도 하현우가 맡았다. 본인이 상상하는 사운드를 밴드의 악기와 이펙터로 정확히 구현해내길 원하는데, 그 상상이 평범한 게 아니어서 특히 사운드의 중심 축을 이루는 기타를 맡고 있는 데다가 이펙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규호가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전규호(공대 출신)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이런 요구들에 성질을 내면서도 결국은 어떻게든 다 해낸다고(?).
파괴적인 에너지, 낯설다가 익숙하다가 다시 방향을 트는 변칙적인 멜로디, 독특한 기타 리프, 풍부한 이펙터 활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국카스텐의 음악은 공식적으로는 사이키델릭 락을 표방한다. 그러나 사실 장르를 규정한다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국카스텐의 음악은 독특하고 혼종적이다.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메탈, 트로트[* 1집의 '거울'은 [[일본]] 엔카의 멜로디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었다.], 국악[* '라플레시아'의 굿거리 장단, '매니큐어'의 꽹과리 간주, '작은 인질'의 장구 장단.] 등이 자유자재로 활용되며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모든 곡을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그 자체가 장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밴드 음악, 혹은 '정말 한국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굉장히 한국적인' 락. 이는 하현우가 성장 과정에서 접한 다양한 음악의[* 특히 [[신중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국카스텐이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를 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정서와 리듬이 창작 활동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현우는 공연시 기타를 직접 연주한다. 어떤 때는 기타를 연주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도 한다. 한편 어느 영상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위 영상 참조). 또 국카스텐 팬미팅에서 [[https://youtu.be/zrhz6d2vGZI|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본인이 직접 음악학원에서 레슨생으로 배우기도 하고(여담으로 이때 고등학생 김기범을 처음 봤다고 한다) 전규호에게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uWuOcpy2M2g|고등학생 때 이미 고음의 끝판왕을 완곡했다.]] 노래방에서 녹음한 것이다. 옆방 사람이 놀라서 녹음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무근, 본인이 녹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부른 [[스틸하트]]의 "[[She's Gone]]"은 노래방이라는 안습한 녹음 상황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폭발력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포스를 뿜어, 당시 락 마니아들의 커뮤니티였던 락타운21이라는 사이트에서 유명했을 정도.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재능으로 이미 20살 때 높고 깨끗하고 청량한 고음을 구사했다고 한다.
* 소신 있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가창력이 딸리는 아이돌들을 디스하는데 [[http://cfile23.uf.tistory.com/original/233DE14156AE7262074BBB|이 짤방이]] 쓰인다. 바로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라는 것. 다만,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 등의 프로에서 특출난 실력을 뽐내는 아이돌들이 등장하면서 재발굴되어 까임거리도 되었다가 찬양도 되었다가를 반복하는 중이다. 일단 저 발언 자체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들이 공장에서 물건이 찍혀나오듯 밀려나오며 아이돌에 대한 여론이 최악이었던 시기에 한 발언이고, 해당 인터뷰를 요청했던 프로그램 자체가 기획사에서 양산되는 아이돌들을 비판하는 취지였다.[* 실제로 이 발언이있고 얼마안되서 김기범과 함께 라디오에 출연해 좋아하는 아이돌로 미쓰에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미쓰에이는 멤버전원이 메인보컬급 이었음을 생각하면 하현우가 왜 그런 인터뷰를 했는지 알수 있다.] 게다가 해당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국카스텐은 엠카운트다운에서 [[카라(아이돌)|모 아이돌]]과 협연 명목 하에 사실상 백밴드 노릇을 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해당 그룹이 노래를 너무나 엉망으로 했고, 이후 인터넷에서도 이 그룹들은 비판을 받았다. 짤방은 바로 그 일을 겪은 직후의 시기에 한 발언이었다. f(x)와의 합동무대에선 노래를 잘한다고 호평했다[[http://dc.news-ade.com/?c=news&m=newsview&idx=3623]]
- 원우(가수) . . . . 30회 일치
||<#f5f5f5> '''출생''' ||[[1996년]] [[7월 17일]] ([age(1996-07-17)]세) [[경기도]] [[창원시]] ||
팀 이름도 17에 생일도 17일이라 데뷔 초 "태생부터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라며 자기소개를 하기도 했다.
{{{#aaa {{{-3 힙합팀 눕방 중}}}}}}}}}속 쌍꺼풀의 가로로 긴 눈과 날렵한 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멤버. 첫 대면에선 차갑고 무심한 인상을 받기 쉬운 편이다. 담백하고 큰 이목구비가 여백 없이 꽉 들어차 있는 비교적 성숙한 외모로 정적이고 담담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모난 데 없는 얼굴형이지만 그에 비해 유약한 느낌이 아닌 이유는 턱이 상당히 강하고 다부지기 때문으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턱과 선이 선명한 콧대가 합쳐져 사뭇 날 것의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182cm라는 장신에 팔, 다리가 상당히 길고 일자 쇄골이 도드라진 어깨가 넓은 체형이다. 원체 입이 짧은 탓에 극도로 마른 몸매까지 타고났는데, ~~[[도겸(세븐틴)|도겸]] : 앙상하다 앙상해...!~~ 본인이 직접 말하길 가족들이 모두 키가 크기 때문에 자신도 잠을 잘 잤으면 키가 더 컸을 것이라며, 지하 연습실~~메로나 감옥~~에서 오랜 기간 밤새 연습하느라 키가 여기서 멈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남동생은 모델 지망생이다.] [[세븐틴(아이돌)|세븐틴]] 내에서 가장 장신인 멤버는 아니지만 이 체형 때문에 팬들에게 모델적인 비주얼로 주목받고 있던 멤버 중 한 명이었는데, 그러던 [[2016년]] [[2월 6일]] 남성 매거진 <[[GQ]] KOREA>와 단독 화보를 성사하며 이 피지컬이 빛을 발하게 된다.
실존 인물 중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주지훈]], [[이준기]], [[송재림]], [[진이한]] 등은 대부분 [[모델]] 출신 혹은 경험이 있는 [[남배우]]들인데,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우]] 역시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소속사]]의 지원으로 데뷔 전부터 연기 수업을 받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유의미한 부분이다. [[2016년]] <스타쇼360>에선 시민들을 상대로 여러 설문 조사했는데, 그중 "연기돌로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라는 주제에 [[원우]]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팬들에게 [[여우]] 상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데 멤버로, 이는 멤버들도 예전부터 입을 모아 자주 말해왔던 것이다. 데뷔 전 [[세븐틴TV]] 시절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팬들이 그려준 캐릭터 그림을 보고 누군지 알아맞혀 보는 코너에서 [[https://youtu.be/OyDNQZnumos?t=54s|여우꼬리를 단 캐릭터]]가 나오자마자 [[원우]]임을 눈치챈 멤버들이 모두 알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우지(세븐틴)|???]] : 이~런 여우 같은 놈!-- 무표정일 때도 물론이지만 웃을 때 눈이 가늘게 접히고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그의 여우적인 생김새가 상당히 도드라지는 편이며, 이때 코를 찡긋 거리는 모습이 아기 사자를 닮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헤어 컬러나 스타일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편은 아닌지라 세 번째 미니 앨범 <[[Going Seventeen]]>의 [[타이틀 곡]] '붐붐'에서 갑작스레 형광 민트색의 [[투블럭]] 스타일로 등장한 [[원우]]를 보고 팬들이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그전까진 쭉 어두운 머리색을 유지하고 있었던 [[원우]]로선 대단히 과감한 시도를 한 것인데, 본인도 그 당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적응이 안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어두운 머리색을 유지하다가 두 번째 정규 앨범 <[[TEEN, AGE]]>에서 밝은 애쉬 컬러의 금발을 시도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연습생 시절엔 [[원우]]가 회사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스탭의 일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여러 생각이나 고민을 혼자 가지고 있는 편이 많았고 표출하는 방법도 잘 몰라서 혼자 끙끙 앓았다고.
그러나 멤버들과 지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어 예전과 비교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래퍼로서 가사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음악으로 묵은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며, 데뷔 초 <내 친구의 고향은 어디인가> 제주도 편에서는 멤버들과 속마음 토크를 진행하며 "[[세븐틴(아이돌)|세븐틴]] 안 했으면 참 재미없게 살았을 거 같아."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일동 : 맞아!! / [[호시(세븐틴)|호시]] : 아냐, 넌 충분히 웃겨!~~ 다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은 여전해 친분이 있는 연예인은 회사 식구 및 멤버들 뿐이다.
때문에 방송에서 주로 비쳐지는 차분한 모습에 비해 실제로 멤버들과 있을 때에는 장난도 많고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멤버이다. 일례로 [[2017년]] 2월에 개최된 첫번째 팬미팅에서 [[원우]]의 롤링페이퍼에 익명의 멤버가 "야, 장난 좀 그만 쳐! 맨날 간지럼 태우고 죽겠어!"라고 적었으며, 또 다른 익명의 멤버는 [[2016년]]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동안 휴식에 들어갔던 [[원우]]에게 아프지 말라는 감동적인 당부로 메시지를 시작했다가 [[https://youtu.be/hSl4uYzLYUg?t=1m24s|"옆구리 그만 찔러라 진짜."]]라는 경고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승관]]이 "이 형만큼 애교 없는 사람 없어요."라고 평할 만큼 애교를 부리는 것에 어색해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데뷔 후 열심히 연습했는지 [[2015년]] [[11월 8일]]에 열린 미니 팬미팅에서 [[https://youtu.be/wLJTh9HwbVM?t=46s|티아라의 뽀삐뽀삐]]를 추며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정한]]은 [[2018년]] 한 방송에서 [[원우]]를 두고 은근히 애교가 있는 성격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민규]]가 의아해 하자 "아냐, 있어. 형들한텐 있어."라며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민규]] : 엉?? 헣.. 궁금하다ㅎ..~~ 동갑인 [[준(세븐틴)|준]]도 [[원우]]가 상대방의 눈치를 볼 땐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문자로 돌려 물어본다는 일화가 밝히며 은근히 귀여운 행동을 많이 한다고 말해 동생들에겐 멋있~~는 척을 하~~고 동갑과 형들에겐 귀여운 그의 갭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자신감과 자기애가 대단히 높은 타입이기도 하다. 아이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 가짐으로 자기애를 꼽으며 연습생 시절 하루 종일 거울을 보며 연습해 자기애를 키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팬사인회에서 당시 [[원우]]의 옆에 앉아있던 [[민규]]가 팬으로부터 "옆자리 멤버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을 받자 "자신감"이라고 적어낸 일화도 있다.
{{{#aaa {{{-3 콘서트 스튜디오 리허설 중}}}}}}}}}입이 워낙 짧고 극도로 마른 체질로 체력이 다소 좋지 않은 편인데, 때문에 무기력한 모습도 많이 보여 [[아육대]]에서 무기력 아이돌로 꼽히는 일도 있었다. 팬들에게는 평소 느릿하고 여유로운 행동거지가 나무늘보와 비슷하다 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N-NaPdmiVJg|"전늘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본인도 이를 알고 있어 "[[세븐틴(아이돌)|세븐틴]]에서 느림의 미학을 맡고 있습니다."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눕정한"으로 유명한 [[정한]] 만큼 [[https://youtu.be/34q-b5njQgw|누워있거나]] 어디 기대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중. 이 체질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 잔병치레가 잦은 탓에 살을 찌우기 위해 억지로 밥을 4~5 공기 먹었던 적도 있었다. 회사 스탭들과 멤버들 사이에선 [[원우]]가 지쳐있을 때 특유의 섹시미가 부각된다며 "컨디션 난조일 때 나오는 섹시미"를 매력 포인트로 밀고 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상술한 이유로 그는 활동적인 운동보단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다. <세븐틴 프로젝트>에서 멤버들끼리 피 터지게 농구를 하고 있을 때엔 뒤에서 혼자 느릿하게 코트를 서성거렸고, [[2018년]] 아미고 TV에서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이 팀을 나눠 족구 대결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자진해서 코치진으로 가버렸다. 2018년 가을, [[원우]]는 멤버들과 함께 엠티를 떠난 곳에서 족구를 하게 되었는데 드물게도 몸을 움직이며 즐거워 하는 그의 모습에 멤버들이 모두 [[https://youtu.be/_7fR4fXp_dM?t=1833|"원우 웃어요???"]]라며 무척 신기해하기도 했다.
책은 스릴러나 추리 소설 같은 장르 소설 좋아하는 편으로, 읽고 있는 책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셜록 홈즈]] 시리즈 [[바스커빌 가의 개]]를 언급한 적 있다. 가끔 팬 사인회 등지에서 팬들이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망설일 때가 있는데, 이는 친구 어머니로부터 "책에는 사상이나 가치관이 담겨있기 때문에 책을 함부로 선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임 또한 모바일 게임과 PC 게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좋아하며 [[2015년]] MPD가 공개한 홍콩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 비하인드 영상에서 [[https://youtu.be/hPRTta7BDwg?t=1m33s|스타크래프트 방송을 보고 있는 원우]]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데뷔 전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데뷔 후엔 [[오버워치]]를 한다는 멤버들의 증언이 있었고 최근엔 [[배틀 그라운드]]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게임을 옮겨 다니는 듯하다.
말장난하는 것을 좋아해 데뷔 전부터 현재까지 각종 N행시와 [[언어유희]] 개그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멤버. 특히 동갑내기 [[호시(세븐틴)|호시]]와는 서로의 개그에 관대한 사이라 곧잘 웃음을 기부해주며 빵빵 터지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데뷔 초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공식 홈페이지 [[원우]]의 프로필엔 "주의사항: [[호시(세븐틴)|호시]]만 좋아하는 개그를 함"이라고 적혀 있었을 정도이다. 하도 시도 때도 없이 말장난을 많이 하는 터라 [[원우]]가 방송 활동을 잠시 쉬었을 [[2016년]] 5월 당시, [[에스쿱스]]와 [[우지(세븐틴)|우지]]가 [[원우]]의 개그가 그립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원우]]의 말장난 중 팬들에게 대표작 취급을 받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히 언급되는 것이 있는데, 때는 [[2016년]] 초 어느 날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 : 13소년 표류기]] 방송 중에 일어났다. [[에스쿱스]]가 "전복"으로 2행시를 시도하며 "전"에 전원우!를 외치자 뒤에 있던 [[원우]]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와 [[https://youtu.be/cMUVRqNqYQ0|"복덩어리이이잌!!!!!!!"]]를 외치며 2행시를 가로 채 "'''전'''원우 '''복'''덩어리"로 완성한 것. 이 2행시는 섬 생활을 모두 끝내고 난 후 인터뷰에서 [[호시(세븐틴)|호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으며, ~~[[승관]] : 저는 솔직히 별로.. / [[호시(세븐틴)|호시]] : 야 완전 핵이었어 그거..~~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겨 곧바로 [[원우]]의 별명이 되었다. 이외에도 같은 방송 내용 중 여서도에서 첫날밤을 지낸 뒤 [[에스쿱스]]가 "[[세븐틴(아이돌)|세븐틴]] 기상!!"을 외치며 멤버들을 깨우자 [[https://youtu.be/GWN7r-1tKv4|"우리 지금 기상이야? 기상청 들어가 봐. 기상 예보를 보면서 기상청에서 기상하게"]]라고 중얼거린 장면도 유명하다.
* 어렸을 때 [[합기도]]와 [[육상]]을 했다. 연습생 시절 체력 훈련할 때도 항상 1등을 가져가는 [[우지(세븐틴)|우지]] 다음으로 제일 오래 버티는 편이었다고.
* 데뷔 전부터 멤버들을 깨무는 버릇이 종종 목격되었다. [[에스쿱스]]와 함께 하트를 만들다가 그의 손을 깨물거나, [[조슈아(세븐틴)|조슈아]]의 귀를 깨물기도 했으며,(진짜로 깨물진 않았다.) [[호시(세븐틴)|호시]]나 [[민규]]의 어깨, 손 등을 깨물기도 했는데 이게 무의식 중에 나오는 행동인지 어느 팬사인회에서 이와 관련해 질문을 받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본인은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듯. 현재는 이 습관이 많이 줄어들어 찾아보기 힘들다.
* 해산물을 못 먹는다. --[[호시(세븐틴)|호시]]: 걔는 해물을 못 먹어요. 그래서 새우깡도 안 먹는 애예요.-- 알레르기는 아닌데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가 심하게 느껴져 꺼려하는듯. [[세븐틴TV]]에서 이와 관련해 [[호시(세븐틴)|호시]]가 에피소드를 밝힌 적 있는데, 함께 식사를 하려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숯불구이집을 보고 "[[원우]]야, 저기 숯불구이집 있다."라고 제안했더니 [[원우]]가 [[https://youtu.be/oKyl9VbIPYY?t=7m32s|"저기 앞에 글씨 안 보이냐? 생태 동태 숯불구이 집이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생선초밥을 먹어야 하는 게임에서는 [[에스쿱스]]가 대신 [[원우]] 몫까지 먹어주기도 했으며 [[2016년]] [[12월 29일]] [[양남자쇼]]에선 연어회를 먹어야 했을 때는 연어를 빼고 밥만 먹기도 했다.멤버들과 타꼬야끼를 먹었을때도 문어를 빼고 먹었다고한다.
- 김재규 . . . . 28회 일치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영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남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남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과는 악연이 좀 있었다. 윤필용이 [[1.21사태]] 때 [[김신조]]의 모가지 발언을 여과없이 보내는 바람에 윤필용이 방첩부대(현 [[국군기무사령부]])장에서 경질되고 김재규가 후임 방첩부대장이 되었다. 이후 김재규는 방첩부대를 육군보안사령부로 개편하고 자신은 육군보안사령관이 되었다.[* 이 시절 [[재일교포]] 서승 형제 간첩단 사건에 관여한 흑역사가 있다. 이 형제는 방한 전 [[재일교포]] 신분으로 [[북한]]에 방문하고 선물까지 받아온 전력이 문제가 되어 보안사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고문을 동반한 고강도의 조사를 받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간첩 혐의를 인정하게 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는 훗날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재규를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889025|기사]] ] 육군보안사령관이던 1971년 8월 수도경비사령관이던 윤필용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발각되어 [[제3군단]]장으로 전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적인 이유이고 박정희에게 3선까지만 하라는 직언을 해서 좌천됬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군 내부에서 도청하는것이 당시 보안사령부의 일이었다.]
1977년 박정희에게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했다. 이때 김재규는 “긴급조치 9호는 효력을 다했으니 더 강력한 긴급조치 10호가 필요합니다.” 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3&aid=0000007473&viewType=pc|긴급조치 10호를 건의했다가 반려당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에는 노동및 종교의 추가탄압이 들어가있어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현재까지도 그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다만 김재규는 훗날 법정에서 그 건에 대해 말하길 박정희의 눈을 속이고 긴급조치 9호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고 해명했다.[* [[파일:walderppk-20161228-150640-001.jpg|width=60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800209105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27&publishType=00010|출처]] ] 김재규는 또한 당시 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서 [[김대중]]이 김영삼측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서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책임을 진다는 구실로 중정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고 사의를 표했으나 거절당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2017191&viewType=pc|출처]] 이는 그가 권력욕에 취해 [[10.26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로 쓰인다.] 당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던 정국을 순리대로 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 것. (물론 결과적으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박정희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갈등 이전에도 유신의 방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자주 내비쳤고, [[장준하]] 등의 민주화 운동 인물들을 비밀리에 도우면서 관련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으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에게 박정희를 '환자'로 비유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법정에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보이며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자세를 보았을 때 단순히 차지철과의 갈등으로 인한 우발적인 권력 싸움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결정적으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결단했던 건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책 방향이었는데, 박정희와 차지철은 강압적인 진압을 요구했으나 김재규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이것이 10.26이라는 도화선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최상천]] 전 교수는 각종 문헌과 증언들을 근거로 김재규의 10.26을 재평가해야한다는 강의를 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FTp2kXTWVc|강의 1]] [[https://www.youtube.com/watch?v=HgdWxKTAKJk|강의 2]]
[[김수환]] [[추기경]]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것을 "더 큰 희생을 막은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10.26 재판 때 인권변호사들에게 김재규의 변론을 부탁하기도 하였고, 훗날 김재규와 그 부하의 가족들이 구명탄원을 위해 김 추기경을 찾아갔을 때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http://v.media.daum.net/v/20161125101156286|#]]
김재규가 10.26을 일으킨 것은 결국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권력투쟁' 속에서 벌인것 이라는 해석이 있다. 2004년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김재규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0092551|출처]] 김재규는 자기보다 새파랗게 젊고 군대 계급도 낮은 차지철에게 면박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수모를 당했고 이에 대해서 격분했다는 증언이 주변 인물들로부터 흘러나온 바 있다.[* 대표적으로 김재규는 그가 교사 시절 제자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가까웠는데, 10.26이 터지기 전 [[이만섭]]과의 식사 자리에서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차지철]]이 때문에 골치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031802395|출처1]] ] [[http://news.donga.com/3/all/20130813/56988552/1|출처]] 이런 점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김재규가 민주화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건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그가 차지철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비해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온건성향으로 비쳐질 따름일뿐, 그 역시도 '''결국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28100§ion=sectio|출처]]
김재규는 [[10.26 사태]] 직후 유신의 잔재를 5개월 내로 설거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전국으로 비상계엄령확대를 구상했는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75563|출처1]], [[http://www10.breaknews.com/sub_read.html?uid=64710|출처2]] 민주공화당은 이러한 구상안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낮다. 10.26 직후 [[김종필]]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되었는데, [[김종필|JP]]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절 청구동 가택수색과 협박까지 당한터라 김재규에게 호의적이기도 어려웠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100209211001&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8-01&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900&publishType=00020|#]] 거기다 10.26 이후 [[김종필|JP]]는 [[김영삼|YS]], [[김대중|DJ]]과 함께 개헌과 민주회복 이행에 공감하고 협조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역시도 김재규의 구상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2260032920101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2-26&officeId=00032&pageNo=1&printNo=10586&publishType=00020|#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22600099201012&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80-02-26&officeId=00009&pageNo=1&printNo=4299&publishType=00020|#2]]
그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의 삼성공원묘지에 있다. 묘비에는 '의사 김재규 장군 추모비(義士 金載圭 將軍 追慕碑)'라고 적혀 있었다. 당초 그는 유언으로 묘비에 '의사 김재규 장군 묘'를 쓰라고 했지만 신군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89년에 1월에야 광주/전남 송죽회가 세웠다. 그러나 수십년 전에 박정희 지지자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의사' 와 '장군' 이라는 글씨를 훼손시켰고, 추모비를 굴러 떨어뜨려 금이 가게 만들었다.
그를 [[안중근]]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세세한 걸 따지기 이전에 정말 공교롭게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과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날이 [[10월 26일]]로 동일하고 그 간극이 정확하게 70년'''이라는 점 때문에 상당한 이야깃거리가 되기는 한다. --니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사는 줄 알아?! 김재규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인터넷 상에선 김재규 의사라고 불리기도 하며 그에 대한 드립과 진지한 논쟁이 지속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는 '10·26 의거 명예회복 추진위’라는 조직까지 꾸리고 재평가에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일찍이 2013년 김재규와 10.26 사건에 대한 재평가가 담긴 평전인 문영심 작가[* [[SBS]] 환경 다큐멘터리 '물은 생명이다' 의 원고 집필로 유명, 이외에 2016년에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에 대한 재고찰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이카로스의 감옥>>을 집필하기도 했다.]의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부상한 대중의 김재규 재평가 여론과 맞물려 빛을 발하며 배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시|광주시]] 오포면 삼성공원 묘지에 위치한 김재규의 묘소[* [[http://www.ddanzi.com/index.php?mid=free&bm=hot&document_srl=170935390|묘소 위치를 자세히 설명한 글 링크]]]는 [[10.26 사건]]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변호인단이나[* 당시 변호인단들은 김재규의 인품에 반해 37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김재규를 장군이라 칭하며 추모하고 있다.] 몇몇 민주화 운동가들, 그의 생전 부하들만 찾는 쓸쓸한 묘소였다. 박정희 신드롬이 한창이였을땐 박정희의 추종자들이 찾아와 김재규의 묘비나 제단의 글자를 훼손하거나 심지어 추모비를 산 밑으로 굴려 떨어뜨리기까지 하였다.[* 추모비 하단에 금이 가있는 것은 이 때의 흔적이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5531|#]]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높아진 이후 그를 추모하는 젊은이들이 묘소에 김재규의 영정을 갖다놓거나 주변을 꽃다발이나 헌정시 등으로 장식하여 현재는 제법 묘소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평가 받은 것과는 별개로 유족들이 왜 훼손된 상태로 묘비를 놔뒀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2013년 당시 김재규 유족과의 인터뷰에서 '훼손된 것도 역사의 일부'라는 취지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60|#]] 그리고 덧붙인 "훗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라는 부분에서 무언가 의미심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일요신문 1996년 1월 21일자 2~3면 기사에서 윤보선 측근인 이한두의 증언에 의하면, 김재규가 거사 21일 전에 이 사실을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 알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의 전화를 받을 때 일어서서 차렷자세로 받았고, 다른 사람한테 박정희를 지칭할 때는 항상 존칭을 썼다고 한다.[* 심지어 [[10.26 사건]]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항상 "대통령 각하"라고 존칭을 쓰면서 말한다. 또 궁정동에 대한 이야기는 심지어 재판정에서 박선호의 증언을 제지하면서까지 막았다. 당시 [[박정희]]조차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생아 문제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음에도 "남자의 허리 아래는 거론하지 말라"[* 이는 [[이토 히로부미]]도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이토는 생전에 매우 문란한 인물이었다.]고 일축할 정도로 당시 시대에 남자의 성생활 문제를 언급하는게 금기시되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남은 여생을 박정희 무덤에 묘막을 짓고 시묘하며 보내겠다고 말하기도 하였으며,[* 또 다른 증언으론 박정희를 죽이고 자신도 박정희 무덤에 가서 자살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이 말을 했던 시점은 10.26이 벌어지기 전이기에, 최종적으론 시묘살이를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최후진술에서 박정희와는 친형제간도 그럴수 없을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15997&viewType=pc|#]] 실제로 김수환 추기경 역시 김재규가 자신의 입으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고 회고했다.[[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190618&path=200404|#]] 그러나 김재규는 10.26 이전에 수차례나 박정희의 암살을 시도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바 있고, 김재규의 수사를 총 지휘한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도 회고록에서 김재규의 언동에서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이나 충성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10.26 직후 김재규를 목격한 국무위원들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고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는 증언 등 위의 언급을 반박할 행적들이 많이 존재한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70404.99002001133|#]]
김재규는 [[대한민국 국군]]에서 최초로 명예면관[* 예편과 비슷]을 당한 장교이기도 하다. [[광복]]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7년 6월, 군경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자기 부하를 강제로 연행하려는 [[미 육군]] 장교와 대립각을 세우며 칼로 위협하다 면관을 당한 적이 있다. 이후 고향인 경북 선산으로 내려와 [[대륜중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쳤는데 이 때의 제자 중 유명한 사람들이 꽤 있다. 위에서 말한 박선호와 전 국회의장 [[이만섭]]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면관 1년 4개월만에 군에 복귀하였다. 정부수립 초기 군과 경찰은 서로 총질까지 하는 등,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전부 좋지 않은건 아니고 광복군출신과 일제 순사출신과의 사이]
김재규의 주치의의 증언에 의하면 김재규는 유신독재 시절 "데모하는 학생들을 처벌하지 말라"는 지시를 대학총장들에게 내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어떤 대학총장에게는 "학생을 잡아가라고 하는 사람이 스승이냐"라면서 꾸짖기도 하였다.
1978년 말 유신독재에 대한 학생들의 시위가 극심해지던 시절, 김진우 전 판사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면담하며 "데모한다고 중정에서 막 잡아넣으면 안된다. 학생들을 석방하고 학교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요청한다. 그러자 김재규는 맞장구를 치며 "어쩌면 내 생각과 그리 같느냐? 나라를 걱정해서 데모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국가가 위급하면 나라를 지키느냐?"고 말하면서 그런 자신의 뜻과 다르게 장관들이 말을 안듣는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김진우 전 판사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지방법원장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김재규는 부산에서 기관장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군인들이 절대로 국민들에게 총을 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도 군인들에게 잘 협조하도록 당부하여 무고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힘쓰기도 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 김재규는 "이런 상황에서는 '[[10.26 사건|제3의 길]]'밖에는 없다"는 말을 남긴다. 부산지방법원장은 김재규가 말하는 제3의 길이 무엇인가 의아해 했지만 [[10.26 사건]]이 터진 뒤에야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되었다고 한다.
사형 직전까지 쓴 옥중 수양록을 보면, 본인은 사형을 피할 수 없더라도 동조한 부하들을 어떻게든 살리고자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변호를 맡은 안동일 변호사와의 접견에서 자기보다는 부하들을 위해 변호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법정에서도 본인은 죽더라도 부하들은 선처해달라며 재판관들에게 호소하기도 하였다. 또한 부하 가족들의 생계를 염려하여 자신의 남은 재산으로 이들을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김재규의 부인인 김영희씨가 김재규의 유언에 따라 부하 가족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덕분에 김재규의 부하 자녀들은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7347|#]]
이 사람이 세운 학교도 있다. 지금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중경고등학교]]가 그 학교로, 원래는 서빙고동 지금의 [[한강중학교]] 위치가 학교 위치였다. 중경고등학교는 설립 당시에는 군 간부 자녀 전용학교였던 걸로 유명했는데, 최초의 [[특수목적고등학교]]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100100209204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10-01&officeId=00020&pageNo=4&printNo=16000&publishType=00020|#]] 덕분에 [[박정희]] 정권 당시 후덜덜한 빽을 지닌 자녀들의 총집합소(?) 비슷한 곳이 되었던 과거가 있다.
- 최홍만 . . . . 28회 일치
전성기의 크로캅, 효도르, 세미슐츠, 바다하리 같은 세계적인 파이터들과 겨뤄 본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씨름 선수였을 때도 최상위권의 강자로 [[천하장사]] 1회, 백두장사 3회를 기록하는 등 우승경력이 좀 되는 프로씨름의 [[레전드]] 중 한 선수였다. 하지만 [[강호동]] 이후부터 시작된 기술을 배제한 '''힘씨름'''빨이라고 까이기도 한다. 굉장히 루즈한 진행으로 특히 같은 [[거인]]인 [[선배]] [[김영현]]하고 붙으면 경기 시간이 씨름인지 [[축구]]인지 구별이 안 갔을 정도.
하여간 씨름판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듯 했으나... 차츰 씨름판이 [[막장]]이 되자[* 최홍만의 K-1 진출, 씨름팀들의 잇단 해체 등으로 씨름판 자체가 존속 자체에 대해 위기가 팽배했고, 그 과정에서 씨름협회 내부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며 극한 막장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혁신세력이었던 [[이만기]]가 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하기도 할 정도로 씨름판은 막장 그 자체였다.] 다른 업계로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때마침 [[K-1]]도 한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고민않고 K-1으로 전향.
당시 최홍만과 LG의 팀 메이트들은 프로씨름의 사장화를 크게 우려하면서 길거리로 나가 씨름 팀 해체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씨름선수이면서도 [[단식투쟁]]을 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든 씨름판을 살리지는 못했다. 운동을 더 하고 싶은데도 하기 힘든 상황에 닥쳐 어쩔 수 없이 다른 환경으로 전향했다는 점에서는 [[빅토르 안]]의 사정과 유사하다.
같은 해 6월 히로시마에서 프로레슬러 '그린베레' 톰 하워드를 1라운드만에 [[KO]]시키면서 '살인 니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최홍만의 니킥을 맞은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또한 7월 하와이 대회에서 아케보노와 2차전을 가져 1라운드에 다운만 2번 뺏어내며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 후 관중석에 앉아있던 [[마이크 타이슨]]을 도발을 한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타이슨:내가 15년만 젊었어도...-- ~~사실 붙었어도 타이슨이 이겼을거다~~
결국 최홍만은 이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어 한동안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최홍만 항목에서는 '''로우킥 부상 부위에 세균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는 반달이 있기도 했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완벽히 말렸지만 피지컬 자체는 본야스키를 훨씬 능가하는 괴물이었기에 시합 도중에 본야스키의 로우킥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께를 들썩이기도 하고, 경기가 끝난 뒤 "본야스키의 로우킥에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인터뷰 이후 다리를 절뚝이며 퇴장해서 허세라는 지적도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악수 거부 논란에 대해 최홍만은 "너무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로우킥 관련해선 경기를 치를 당시 이미 왼쪽 허벅지가 부상당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38&aid=0000307310|#]] 사실 이때 최홍만이 판정에 불만을 표한 것도 좀 에러였던 게, 워낙 상대 선수보다 훨씬 크고 강하니 버텨낸 거지 유효타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허용한 반면 본야스키는 최홍만의 타격을 대부분 막아냈다.(물론 워낙 타격이 세서 막아도 대미지가 들어갔지만) 애초에 이건 그냥 싸움이 아니라 (KO가 안 나온다면) 기술적으로 점수를 따내서 비교하는 격투기이기 때문에 확실한 본야스키의 승리가 맞다.
이 때 한국 킥복싱 최강자 [[유양래]]가 [[최홍만]]에게 선배대접 받을 생각도 말라며 쳐부숴버리겠다고 디스하며 K-1에 진출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권아솔|뭔가 익숙한 장면이다?]]--
이러한 여론은 2007년 12월 8일 월드 그랑프리에서 벤너에게 또 다시 패하면서 가속화된다. 그 와중에 연예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까이기도 했다. 12월 30일 야렌노카에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보여준 선전[* 전직 씨름선수답게 표도르를 테이크다운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후 파운딩을 엄청나게 날렸다. 정타는 없었지만. 파운딩을 열심히 날리다가 암바로 패.]으로 잠시 가라앉았으나 2008년 9월 바다 하리전과 2008년 12월 레이 세포전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특히 2008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락세가 뚜렷한 세포를 상대로 졸전을 벌인 끝에 스피드에서 농락당하며 세포의 [[굴욕기]]인 노가드[* 세포가 한창 전성기였을 무렵 사용하던 전술로, 당시에는 기량의 하락으로 거의 봉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홍만에게 다시 썼다'''.]에 관광당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냈다.
최홍만의 MMA 데뷔는 2006년 12월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입식 뿐 아니라 MMA로의 진출도 시도하고 있던 K-1의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 매치에 얼굴마담으로 출전한 것이다. 상대는 [[나이지리아]]의 개그맨 겸 무술가인 바비 올로건이었다.[* 일본에선 꽤 유명한 방송인으로 [[시릴 아비디]]에게 이기기도 했다. 유명세 덕에 비디오게임 호혈사에서 캐릭터로 등장했으며, 일본인들에게 일반인 중 최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결과는 11초 초살 KO승으로 데이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입식에서도 잘나가고 있던 때였고 전직 씨름선수로서 차라리 MMA에서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겹쳐 "최홍만은 MMA로 진출하면 최강자가 될 것이다"라는 떡밥이 한국의 전 격투 커뮤니티를 달구기도 했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는 '[[마지막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효도르의 스피드에 밀리면서도 클린치 싸움에서 2번이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상위에서 파운딩을 날리는 등 선전했으나 결국 리버스 암바에 걸려 서브미션으로 패하고 말았다. 패배하긴 했으나 확실히 레슬링에 있어서 강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이티 모전 패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이 경기는 K-1의 농간으로 인해 경기 5일 전에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가 결국 3일 전에 오퍼를 수락하고 이틀 훈련해서 경기에 출전하게게 되었다고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 본인은 주장했지만 대회 18일 전인 2007년 12월 13일에 대전 확정 기사가 뜬 걸로 봐서 별로 신빙성은 없다.[[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0085857|#]]]
결과는 1라운드 1분 36초만에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1604/sp20160416221832136560.htm|TKO로 최홍만이 승리.]] 예상대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아오르꺼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밀려다니다가 결국 케이지를 등진 상태에서 펀치 러시를 이리저리 막아내는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뻗은 레프트 스트레이트가 아오르꺼러의 턱에 카운터로 들어갔고, 아오르꺼러가 그대로 실신하며 최홍만에게 안기듯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파운딩--이라 쓰고 젖치기라 부른다--로 마무리.[[https://m.youtube.com/watch?v=aA08N65pMks|영상]].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고 카메라도 아오르꺼러의 뒤통수쪽만 찍고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아오르꺼러가 열심히 밀어붙이다 제풀에 지쳐서 쓰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당시 캐스터와 해설도 무엇 때문에 아오르꺼러가 쓰러졌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각종 격투 커뮤니티에서도 왜 쓰러졌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였다. 리플레이를 보고서야 다들 레프트가 맞았다는걸 알아차렸을 정도.][* 당시 나오던 드립들이 아주 가관이다. 돌연사(...), 밖에서 누가 사냥총으로 저격했다(...), 고혈압이 왔다(...), 아니다 당뇨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느린 화면을 자세히 보면 아오르꺼러의 턱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확실히 보인다. 경기 내내 밀리다 펀치 한 방에 끝낸 셈이므로 중계진은 연신 최홍만의 펀치력이 살아났다고 칭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저 역대급 운이었거나 아오르꺼러의 맷집이 상상 이상으로 약한 게 아니냐는 쪽이 많았다. 운이 좋았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였지만 종양 수술 이후 근육이 빠져 멀대같은 허수아비 취급당하던 최홍만이라도 그 크기에서 나오는 한방 펀치만큼은 살아있었던 셈. 물론 레프트가 터지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이나 복싱 스킬이 부족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어쨌거나 버릇은 고쳐줬다.~~
이후, 자신을 이긴 저우진펑을 위대하다 찬양했다. [[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6&no=776273|관련기사]] 실제로 기네스북에 등록될 기록이니, 진짜 실력으로 이긴 것이라면 위대한 것이 맞다. 농담이 아니라 이제 까놓고 최홍만이 격투가로서 제대로 된 복귀할 생각이 있다면 저우진펑이 킥복싱 계의 매니 파퀴아오같은 인물이 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쿤룬 파이트에선 네임드 선수니 가능성 있다 기도해라 홍만아.--
하지만 스탭이 느리고 무엇보다 '''핸드 스피드가 너무 느려서''' 톱 클래스 선수들의 디펜스에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팔이 느린 대신 다리라도 빠르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쉽게도 다리마저 느리다.[* 종양 제거 수술 이전에는 근육이 꽤 붙어있었던 터라 지금보다는 나았지만, 종양 제거 수술 이후 근육이 크게 줄어들면서 속도가 매우 안습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거대한 몸이 그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이 된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운동은 그 운동에 적당한 최적의 체격이 있다. 너무 작으면 파워면에서 한계가 있고 너무 커지면 움직임이 굼뜨게 되기 때문. 최홍만 정도의 키로 정점급을 찍을 수 있는 스포츠는 NBA 정도 말고는 떠올리기 힘들다.][* [[세미 슐트]]의 경우는 논외. 최홍만과 비교하기엔 커리어, 재능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게다가 공격이 너무 정직해서(...) 기술이 너무 쉽게 [[파해]]된다. 대표적으로 레미 본야스키와의 경기에서는 제대로 된 정타를 한번도 먹이지 못하고 3라운드 내내 레그 킥만 당하다가 끝나버리기도 했다.
격투기 선수로서는 엄청난 무기라고 볼 수 있는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긴 리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리치를 거의 이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위에 서술된 스피드의 문제도 있지만 최홍만 본인의 격투 스타일이 그다지 리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도 있다. 격투기 데뷔 시절부터 최홍만은 [[아웃복서|거리를 유지하며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스타일]]보다는 [[인파이터|적극적으로 들어가서 큰 스윙을 날리는 스타일]]을 썼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본인의 리치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물론 격투기 선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격투 스타일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리치가 상대보다 길면 인파이팅보다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상대는 때릴 수 없는데 자신만 때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격투기 선수로선 매우 큰 무기나 다름없다.] 전성기 시절에는 맷집이라도 강해서 얼굴 몇 대 맞아도 그냥 씹고 달려드는 게 가능했지만, 안면 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관중 및 시청자들이 볼 때 최홍만의 문제는 안면 타격을 받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저돌적인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반격을 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있는,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엔젤스파이팅에서 적극적으로 펀치를 뻗으며 러쉬를 하든 등 전성기시절의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줬다.]
데뷔 초부터 최홍만은 예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서 방송 출연이 잦은 것이 격투기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한때는 음반까지 낸다고 해서 가수라고 까이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격투 갤러리]]에선 그를 凶物([[흉물]])이라고 부른다(…)~~그 동네는 원래 그렇다~~
여담이지만 노래도 불렀다. 2006년 강수희와 듀엣으로 한 '''미녀와 야수'''(…)를 K-1 다이너마이트 2006에서 틀고 입장했다. 의외로 2008년 정식 가요무대에서 공공연하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연예 활동은 중지했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더욱 활발한 연예 활동을 이어갔다.
2010년 3월 즈음 일본의 괴물군이라는 드라마의 프랑켄 역으로 출연이 결정되었다. 분장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여기 저기서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냐는 악플이 달렸고 촬영을 위해 아예 일본에서 거주하다가 까이기도 했다.[* 출신이 어떻든 일단 연예인으로 나선 만큼, 기괴한 분장을 마다하지 않고 연기하고 활동을 위해 해외에서 거주하는 것이 칭찬을 할 수는 있어도 잘못된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메이저 리그 활동 야구 선수나 LPGA 활동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 있는 선수들도 다 까야 한다.] 하지만 원작자는 더 없이 완벽한 싱크로라고 극찬했다.
예능에서 밝힌 바로는 전 여친이 식당에서 밥먹다가 최홍만이 우는 소릴하자[* 그는 "항상 옆을 지켜주고 운동하는데 힘을 주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나에게 끝까지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제일 고마웠던 것이 내가 눈에 띄는 유명인이라 항상 그 친구가 앞서서 막아주고 쓴소리 해 줬던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최홍만은 또 "내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해 거리에서 아기자기한 옷이 보이면 사서 입혀주며 대리만족을 했고 내가 또 십자수를 좋아해 선물하기도 했다"며 "내가 슬럼프에 빠져 운동을 잘 안 할 때 그 친구가 갑자기 밥을 함께 먹다가 밥상을 그냥 엎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얌전했던 친구가 그러니 너무 놀랐다. 그리곤 그 친구가 '운동 안하고 처져 있으면 다시는 안 본다'고 말하고 떠났다"며 "온 몸에 김칫국물과 양념게장이 범벅이 됐고 상처를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밥상 뒤집기|밥상을 엎어버렸다고 한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100600165195011|#]]
사실 체육인의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계기의 모호성과 본인이 거두는 수확도 불분명했기에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동아대 선배인 [[문대성]]처럼 정치인의 길을 걸어갈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듯. --그런데 현재로써는(...).--
일부에서는 [[거인증]]이 맞다면 지금까지의 최홍만은 '성장 호르몬 과잉분비'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도핑]]'''을 하고 있었던 것과 다름 없으며,[* 실제로 성장 호르몬은 운동선수들이 도핑을 위해 사용하는 호르몬이다.] 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괴력을 잃게 되었고 이후의 부진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술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 변화인지는 의사의 진단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수술을 전후하여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가 보일 정도로 근육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뇌수술과 같은 큰 수술을 받았다면 굳이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부담이 많이 걸릴 것이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26회 일치
불 같은 성격[* 의사와 상관없이 곧바로 화를 표출하는 불같은 성격은 신경계 연결 시스템이 유전된 것인데, 이것도 자식에게 유전된다고 한다.]과 승부욕이 있으며, 욕을 잘하는 편이고, 솔직한 걸 넘어서 직설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 배구선수 한유미와 밥 먹는 자리에서 한유미에게 "언니는 성격이 드세고,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기 때문에 결혼하긴 힘들꺼다." 라고 해서 [[한유미]], [[양효진]]을 당황시켰다. 물론 한유미와 매우 친밀한 사이라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이렇듯 내면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는 편.]
또한 특유의 밝고 긍정적이며 승부욕 넘치는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 여전하다고.[* 특히 김연경의 개그본능은 배구팬들 사이에서 데뷔 초부터 유명했다. 그 덕에 각종 예능에 출연해 놀라운 예능감을 뽐내며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V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 스페셜v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MC를 자처하기도 했다. 덕분에 [[https://m.youtube.com/watch?v=pw-uQS7Ew7s|전]]보다 mc보는 실력이 [[https://m.youtube.com/watch?v=GjDlhxjaYJQ| 늘었다]]. ~~배구선수인데 왜?~~] ~~그 승부욕 때문에 피자 6조각 겹쳐 먹었다가 병원 실려간 건 안 비밀..~~ 더 궁금하다면 [[https://news.joins.com/article/3982719 |링크]]를 참고하자.
2005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이전 시즌 최하위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다. 이미 김연경은 프로 입문 전부터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교 무대를 평정해 ''''여자 [[김세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엄청난 기대주였다. 위로 1년 선배인 [[황연주]][* 다만 [[황연주]]는 부상으로 고교 시절 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동기 [[김수지]]([[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아래로 2년 후배인 [[배유나]]([[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와 함께 고교 여자배구에서 한일전산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에 발탁 [* 이때 출전한 대회가 2005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대회인데, 이 대회에서 득점 3위를 기록했다.]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사정을 접어두고라도, 김연경은 일본 프리미어리그에서까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으니 일본 리그의 감독들까지 '''일본에서조차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일본 여자배구에는 오야마 카나(大山加奈), 구리하라 메구미(栗原惠), 기무라 사오리(木村沙織) 등 대형 거포들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야마는 전성기가 너무 짧았고, 구리하라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이후에 폼이 급격히 무너졌으며, 기무라는 이 둘보다는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기는 했지만, 2010년대 초반 들어서는 예전만도 못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여자 배구에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좋은 케이스. 2009-10 시즌 초에 신종 독감으로 고생하더니 2010-11 시즌 초에 역시 독감으로 몇 경기 결장한 바 있다. 그래서 팬들의 가슴을 졸이기도. 하지만 결국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JT 마블러스의 시즌 우승을 또 한 번 이끌어 냈다.[* 2011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 V리그는 잔여경기에 상관없이 시즌을 강제 종료했다. 이로인해 정규 리그 최종 성적이 시즌 통합 성적으로 인정되어 정규 시즌 1위였던 JT 마블러스와 사카이 블레이저스가 2010-11 시즌 우승팀이 됐다.]
임대 이적이라는 신분 때문에 2009-10시즌 종료 후 비시즌인 9월 KOVO컵 때 흥국생명 소속으로 뛰기도 했고 2010-11 일본 V리그 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 시즌이 조기 종료되어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다. 마침 그 시기가 국내 V-리그 포스트시즌과 맞물리는 바람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으로서는 ''''김연경 룰''''[* 김연경이 JT 마블러스로 (임대)이적할 때 생긴 규정. 시즌 전(全) 경기의 25%를 뛰면 한 시즌 뛴 것으로 간주.]을 적용해 김연경을 포스트 시즌에 반짝 출장시키고 싶었으나 여론의 뭇매로 김연경은 한 달여 간의 휴식을 취하고 컵대회인 흑취기에 참가하기 위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여담으로, 팬들이 김연경이 뛰었던 팀중 선호도가 꽤나 높은 팀이기도 하다. 다케시타 요시에라는 일본의 명세터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고, 김연경 본인또한 JT 마블러스에서 뛰며 배구 외적으로 문화, 음식, 예절 등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언급했기 때문. 팬들 입장에서는 초록색, 흰색의 유니폼과 아주 잘 어울려 좋아하기도 했다. 2년간 JT 소속으로 뛰어서 그런지 전세계적으로 배구 팬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은 김연경이지만 유독 일본에 열렬한 팬들이 정말 많다.
2012-13 시즌에는 김연경 본인이 이적 파동 때문에 힘든 시즌을 보내기도 했고, 소속팀 페네르바흐체 역시 주전 세터였던 나즈 아이데미르가 페네르바흐체의 라이벌 팀인 바키프방크로 이적하면서 팀은 2011-12 시즌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쉽게도 페네르바흐체는 시즌 3위에 CEV 컵[* 유럽 배구판 UEFA 유로파 리그 급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사기캐 팀이 이 정도 성적을 거둔거라면(...)~~
이후 긴급 기자회견이 기자회견이 아닌 김연경 측의 일방적인 발표였고 에이전트가 기자들의 질문을 전면 차단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연경은 7월 24일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http://www.youtube.com/watch?v=6rryyZA0-GI|자세히 밝혔다.]] 한편, 협회와의 대화를 하러 변호사와 에이전트와 대동했으나, 협회에서는 이 조력자 둘을 빼고 김연경과 직접 대화를 했으며, 협회 관계자가 김연경에게 폭언을 했다는 후문을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남기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김연경의 발언이 무조건 맞다고 하기에는 다소 그렇지만, 배구협회의 행위야말로 변명의 여지 없이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애초부터, 김연경이 왜 한국 무대에서 계속 뛰지 않고 외국으로 나가게 된 계기도 전부 다 배구협회 때문이다.'''
현재 사실상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김연경 혼자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국제전을 보면 한 경기에 평균 20~30점을 책임지고 늘 공격부문 Top 5에 오른다. 물론 [[한송이(배구)|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등 여자대표팀 주 공격원이 평균 10점 이상이며 크레이지 모드 때 10점대 후반 가까이 찍어주기는 하나 '''김연경은 팀 득점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베로]]보다 잘하는 서브리시브'''이기도 해서 김연경이 잠깐이라도 쉬러 벤치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헬게이트]]를 걱정해야 한다.
특별히 부상이 없는 한 향후 10년은 여자배구계를 이끌 대형 선수이나 프로 입문 이후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황현주(배구)|황현주]] 감독이 막 굴려먹은 게 문제인 듯~~ 고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나 정규시즌 전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김연경의 컨디션이 어떠냐에 따라 국제전의 성패가 달려있기도 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수상, 선수 생활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다. 5세트에서 1점차로 금메달을 놓치며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https://youtu.be/WQjG9yh0oAE|#]][* 9:04 은메달 확정후 무릎을 끓는 모습이 보인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뛴 선수'''이기도 하다. [[양효진]]이나 [[이숙자]], [[김사니]], [[한송이(배구)|한송이]], [[한유미]] 등도 간간히 교체되고 [[황연주]]는 김희진의 원포인트 서버로 전락했으며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은 당시 신인이었던지라 [[황연주]]와 번갈아 투입되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철 체력에 승부욕 강하고 멘탈 강한 김연경이라 할지라도 2012~13년 두 해에 걸친 이적 사태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가 겹쳐 앞서 농담처럼 얘기한 '''그 헬게이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3년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 3~4위 한중전에서 오른쪽 어깨 탈골 부상을 입은 채로 끝까지 경기를 뛰어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고 FIVB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벌어진 2014 세계선수권대회 대륙별 예선 초반 김연경의 결장과 대표팀의 [[카자흐스탄]]전 패배로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2014년 배구 국제대회 일정 중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일정이 겹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놓치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가 2014년 일정에 맞춰 여자대표팀을 A·B팀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에 집중하겠다는 뉘앙스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고교 입학 시절엔 키가 작아서~~라고 해도 고 1때 170cm였다. 위너~~ 리베로와 세터를 맡기도 하였으나 키가 급격히 컸음에도 월등한 운동 능력과 리시브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사기캐릭터]]로 진화했다. 고득점을 올리는 주포임에도 불구하고 리시브 능력 또한 출중한 그야말로 '''완전체'''이다.
수비 면에서도 최고의 선수. 앞서 언급했듯, 한일전산 신입 시절에 리베로를 본 적이 있어 상대 서브 캐치를 잘 해낸다. 김연경이 '''만능플레이어'''인 이유. 그런데 이런 능력 때문에 김연경의 대각에 서는 윙리시버들은 종종 김연경과 비교를 많이 당한다. ~~이를테면 [[한송이(배구)|한송이]]라든가...~~ 그리고 전위에 있을 때 [[양효진]]과 함께 같이 투 블럭을 이뤄 '통곡의 벽'을 만들기도 한다.[* 김희진은 키가 185cm라 블로킹은 다소 약한 편] 다만, 김연경이 날개공격수를 전담해서이기도 하고, 흥국생명에서 뛰던 시절보다 수직점프 부분은 살짝 낮아졌기 때문에 블로킹을 전담하는 센터에 비해서는 블로킹 부분이 조금 약해지긴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신장이 비슷하거나 작은 나라를 상대로 해서는 김연경 자체의 키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
* 2008년 시즌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에는 김연경을 비롯하여 [[황연주]], [[주예나]] 등 굉장한 미모를 가진 선수들이 많아 이 팀이 세간에는 '''미녀 군단''' 으로 통했다.[* 배구가 프로화되면서 구단에서 민 기믹이었다. 프로화 초창기의 주전인 구기란, 진혜지, [[이영주(배구)|이영주]], 윤수현, ~~[[전민정]]~~, [[황연주]], 김연경 이렇게 모아 '7공주' 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에 FA로 풀린 [[황연주]]가 현대건설로 이적하고 말았으니... ~~글구 요새는 미녀군단보다는 막장구단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녀군단의 명성은 성적은 시궁창인데 얼짱이 많은 [[경북 김천 하이패스|도공]]으로 옮겨 갔다.~~
* 2015년 7월 26일 [[런닝맨]] [[런닝맨 최강자전#s-5|영웅전]]에 출연했다. 특수스킬로 이름복제를 [[조훈현]]에게 받아[* 바둑알 공기 5점잡기로 이겼다. ~~뭥미?~~] 하하와 이광수의 등을 쳐서 이름표를 복제해 아웃시키면서 우승. 그리고 관련기사는 모조리 [[콩드립]]... 워낙에 키가 크다보니 나이가 6살이나 많은 [[홍진호]]에게 '누나'라고 불리기도 했다.
* [[터키어]]를 할 줄 안다. [[터키]]에 들어갈 때부터 터키어를 배웠고 지금은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이나 심판한테 항의를 터키어로 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같은 팀 동료들한테 터키어 욕을 배워서 요새는 리그경기든 국대경기든 터키어로 욕을 한단다(....) ~~마찬가지로 자기도 동료선수들한테 한국어 욕을 알려줬다. 또한 국대 동료들에게도 터키어 욕을 전파한다 카더라~~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리우 올림픽]] [[네덜란드]]전에서 패하고 8강에서 떨어졌을 때 선수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뉴스에서 나와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누구보다 메달을 갈망했을 텐데, 무작정 비난하는 악플러들과 다르게 열심히 해 준 선수들을 위로하는 모습에 왜 그녀가 최고인지 보여 주는 대목.[[http://m.rio2016.sbs.co.kr/news/N1003737124/%22%EA%B2%BD%EA%B8%B0-%EB%AA%BB-%ED%96%88%EB%8B%A4%22-SNS%EC%97%90-%EC%9A%95%EC%84%A4%E2%80%A6%EA%B2%A9%EB%A0%A4-%ED%95%84%EC%9A%94%ED%95%9C-%EC%84%A0%EC%88%98%EB%93%A4|울지마]] [[http://sports.news.naver.com/volleyball/news/read.nhn?oid=215&aid=0000488697|먼저 귀국한 김수지와 이재영의 말에 따르면, 국가대표팀이 인력 부족을 겪어 김연경이 통역까지 했다고.......]] 한 번은 언론 컨퍼런스에 구경하러 온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통역을 해 준 일도 있다 카더라... ~~배협은 [[답이 없다]]~~
- 정인숙 (1945년) . . . . 25회 일치
모델,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고급 요정의 종업원이 되어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당시의 정계 거물들을 상대했던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 [[정일권]]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이것이 불문에 붙여졌다. 이는 당시 유행가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을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으로 개조되어 확산되었다.<ref>사랑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ref> 아들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느니, 정 전 총리라느니,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라느니 하는 소문들도 무성<ref name="ilyo01">[http://www.ilyo.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889 <nowiki>[</nowiki>미스터리 추적<nowiki>]</nowiki> 정인숙과 그아들, 진실은 이것] 일요신문 2007년 04월 08일자</ref> 하기도 했다.
정인숙은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출처|날짜=2014-3-2|자존심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에게는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 하나를 따로 두기도 했다. 한편 아버지 정도환은 본래 자식 교육에 엄격하였는데, 정인숙의 오빠들 중에는 자신들에게는 차비도 짜게 줄 만큼 인색하면서 딸 하나 둔 것을 버릇없이 길렀다며 불평불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터울 차이가 났던 두 오빠는 일찍 결혼하여 분가하였으나, 정인숙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던 그는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했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전전하였다. 또한 문학공부를 하고자 했던 정인숙은 자신에게 문학을 가르쳐줄 마땅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1963년]] 정인숙은 시나리오 작가인 장사공을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ref name="hp103"/> 이 때 정인숙과 장사공은 동거를 했다는 의혹<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8쪽</ref> 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장사공은 [[KBS]] 방송국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고, 정인숙은 곧잘 친구들에게“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라며 자랑했다. 또한 “장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인숙은 장사공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 name="ilsa01">[http://www.ilyosisa.co.kr/bbs/zboard.php?id=society&page=3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38 <nowiki>[</nowiki>제584호<nowiki>]</nowiki> 다시 떠오른 ‘정인숙의 추억’의문의 피살 미스터리 전모] 일요시사 2007년 03월 20일자</ref> 그러나 신촌과 수유리 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정인숙과 장사공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장사공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장사공은 정인숙을 구타했고, 정인숙은 [[대구]]의 집으로 도망오기도 했다. 장사공을 사위로 여기던 정도환 내외와 두 오빠는 그때마다 아이가 철이 없으니 인내하고 데리고 살라고 거듭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했던 장사공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1년 만에 파탄으로 끝났다.
이때 임신 수 개월이었던 그녀는 [[서울특별시]] 내의 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낙태하였다. 학창시절 이후 사귀던 남자들 중 정인숙은 작가 장사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는데, 실제로 장사공을 향한 정인숙의 마음은 상당히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사공은 후일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잘못이 전혀 없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했다. [[1970년]] 초 피살되기 한 달 전 그녀는 자신의 한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사공이 제일 잊혀 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인숙은 장사공과의 동거 중 관계가 악화되면서 비밀요정을 경영하던 마담 김씨를 만난다. 그리고 김마담의 소개로 패션모델로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인숙은 김마담이 경영하는 서울 한남동 고급 요정에 접대부로 나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접대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유명한 요정 선운각으로 옮겼다. 타고난 미모와 영어실력으로 얼마 뒤 선운각의 인기 있는 1급 접대부가 되었다.
그 뒤 그는 다른 요정에도 출입하는 등 여러 요정에 출입하였다. 그러나 주 무대는 처음 들어갔던 곳이고, 마담 김씨가 경영해 오던 한남동의 고급 요정이다. 정인숙은 2류급 여배우와 가수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마담 집 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접대부로 나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콧대가 높았다. 인기를 끌면서 그는 반드시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기도 했다. 한 회고에 의하면 당시 불려가는 여배우와 가수를 포함한 접대부 중 그의 미모가 1위였다 한다.
미스 코리아나 영화배우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요정에서 그녀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선운각, 옥류장 등 서울의 일류 요정들은 정인숙을 데려가기 위해 앞을 다투었다고 한다.<ref name="han01"/> [[선운각]] 등 최고급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이때부터 정인숙은 저명인사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인숙은 비밀요정을 주 무대로 정부의 A급 고관대작들만 상대했다고 한다. 평소 그는 주위에 “내 말 한마디면 안 되는 일 없다”며 자신이 정치권 고위인사와 ‘깊은 관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ref name="ilsa01"/> 이같은 그의 명성 때문에 ‘정인숙 피살 사건’은 제3공화국 최대 ‘섹스 스캔들’로 비화됐다.<ref name="ilsa01"/>
[[1980년]]대에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인사는 "정인숙을 편력한 이들은 박정희, [[박종규]], [[정일권]] 씨 등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191</ref> 그 밖에 [[이후락]] 등과도 관계를 갖기도 했다.
{{인용문|정인숙이 아이를 낳은 뒤 자꾸만 고위층(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정 여인은 어쩌면 박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청와대를 귀찮게 하자 경호실장 [[박종규]]가 골치가 아파졌다. 여권을 만들어 미국으로 내보냈으나 자꾸만 귀국하겠다고 해서 일본에도 머물게 했다. 그때 [[일본]]에서 박종규 실장과 가장 친한 사람이 정건영 씨였다. 마치이로 통하는 이 교포 사업가는 도쿄에서 손꼽히는 '암흑가의 신사'이기도 했다. 바로 이 정건영 씨에게 정인숙 모자를 돌보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건영은 그 대가로 거액의 사업자금을 [[도쿄]]의 [[외환은행]]에서 빌려 쓸 수 있도록 실력자인 박종규 실장에게 부탁했다.<ref name="hp104"/><ref>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1 (동아일보사, 1992) 216쪽</ref>}}
출국을 한 정인숙은 무료한 이국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갑갑해 한다.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던 정인숙은 정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한다. 국내로 들어온 정인숙은 홀로 호텔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로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잠자리도 같이 하는 등 난잡한 생활을 한다. 이 때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상대했고, 재일교포와 사업가 등 유력 인사들이 그녀를 거쳐 갔다. [[1969년]] [[10월 10일]] [[국무총리]] [[정일권]]의 주선으로 그녀는 아기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되돌아 왔다. 다시 돌아온 그녀는 주변에게“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말했다. 한때는“이젠 미국 안 갈래”라고 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3월 17일]] 낮, 자동차 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 6기통짜리를 흥정을 했다.
시신은 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진 뒤 공개 부검하였다. 부검 과정에서 낙태 경험이 몇번 있었던 것이 알려졌고 기타 사항은 불문에 붙여졌다. 그의 오빠 정종욱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퇴원과 동시에 구속되었다. 정인숙은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후일 그의 부모 역시 그의 묘소 근처에 안장되었다.
정종욱은 사건 직후 "당시 셋째, 넷째 가라면 분해할 정도의 권력을 휘둘렀던 P씨"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ref>여영무, <추적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 (동아일보사, 1983) 164페이지</ref> 그러나 그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수감과 출소 이후에도 정종욱은 억울함을 하소연하였고, 정일권과 여러 번 만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정종욱에 대해선 '권세가들에게 희생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설이 떠돌았다.<ref>윤재걸, 《청와대 밀명: 윤재걸 르포집》(한겨레, 1987년) 14쪽.</ref> 한편 정계의 유력자가 은폐하려 했다는 설과 정적관계에 있던 자의 소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2010년]] [[3월 20일]]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는 20일 오후 11시10분 '나는 여동생을 쏘지 않았다 - 정인숙 피살 사건 미스터리'라는 주제로 오래전 정인숙 사건의 실체를 다시 추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http://sstv.tvreport.co.kr/index.html?page=news/flypage&cid=15&nid=78947 정인숙·정일권 누구?…40년 전 미궁의 살인사건, 경과부터 의혹까지] SSTV 2010-03-21</ref>
사건 직후에는 [[나훈아]]의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노래가 확산되기도 했다.
당시 한 청와대 인사는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어디서인지 변조된 가사 전문을 입수, 박 전 대통령에게 따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은 “내 아내한테까지 오해를 받고 재떨이까지 날아왔지만 참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는 ‘피살된 정인숙이 박 전 대통령의 여자였다’는 시중의 소문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다고 한다.<ref name="ilsa01"/> 이 때문에 [[나훈아]]의 노래 [[눈물의 씨앗]]은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윤형 의원은 또 이 사건에 청부살인의 혐의가 없는가, 검찰이 [[3월 22일]] 밤까지 철야 신문하면서 복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변호사]]를 접근조차 못하게 해서 정씨를 범인으로 자백케 한 것은 아닌가, 정종욱이 병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 없고 모 인사를 불러달라고 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물었다.<ref name="kim101">김환표 외, 《스캔들에 갇힌 영혼들:시사인물사전 16》 (인물과사상사, 2002) 101페이지</ref><ref>여영무, <추척 정인숙 미스터리>, 신동아 1983년 9월호(동아일보사, 1983) 171</ref> [[조윤형]] 의원에 이어 [[신민당]]의 [[김상현]]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인숙이 관계했을지도 모른다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ref name="kim101"/>
한편 정성일은 [[2005년]] 귀국하기 전까지 15년 이상 [[미국]] LA에 머물렀는데 당시 한인사회에서는 비교적 정 씨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교포사회의 한 관계자는 “이곳 현지 명문대 출신으로 화술이 좋고 생김새가 번듯했던 정 씨는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하는 일에 비해서 씀씀이도 컸고, 스캔들도 제법 많았다. 자신을 ‘정 전 총리의 아들’이라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항간에는 정 전 총리로부터 많은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전했다.<ref name="ilyo01"/>
사건 이후 "강변 3로, 오빠 조심, 명함 조심<ref name="ReferenceA"/>"이란 유행어가 돌기도 했다.
- 김영환(1955) . . . . 24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 [[대한민국 국회|[[파일:국회상징.png|width=30px]]]] {{{#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기도|{{{#70000B 경기}}}]] [[안산시 갑|{{{#70000B 안산시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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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총 2번의 제적을 당하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등으로 복역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사이에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기기술자로 일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는데 발간한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198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치과의사]]로 개업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새정치국민회의 정세분석실장에 임명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장경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에는 [[민주당(2005년)|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였으나, [[박주선]] 의원이 전략공천되면서 경선을 요구하며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7년에는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의 충청선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1월 [[민주당(2005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화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열린우리당 계열과의 반목이 심했던 터라, 합당에 반발하여, 한나라당 입당도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한다.] 이후 [[민주당(2008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에 재산신고를 -8.2억으로 해서 보유재산 국회 최하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부채액이 많아서 -8.2억인 것이고, 이후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해서 1억원 정도로 신고했다.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를 거하게 망해서 수십억대의 부채가 추가~~][* 2008년 기준으로 최하위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 대선자금을 선관위에서 환급받기 이전이어서 -120억원을 신고했다. 이후 선거비용을 환급받으면서 30억대로 재산이 다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가 1억 438만원, 2010년에 김영환 의원이 -8억원, 2011년에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 1억 500만원을 기록하여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6년 1월 8일 탈당하고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했다. 2016년 초 국민의당 인재영입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총선 전 국민의당 지지율이 마구 떨어지면서 도로 민주당으로 합류하자는 의견이 거셀 때 국회의원 중 거의 홀로 국민의당을 지키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선거 이전에는 [[새누리당]] 후보인 [[홍장표(정치인)|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패배할거라는 여론조사와, 김철민 후보와 홍장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김철민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3당구도로 가면 홍장표 의원이 오차범위의 한참 밖에서 안전한 당선이 가능하다는 결과치가 나왔기 때문에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3파전이 되었다.
치과의사로 복귀하면서 정계를 떠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추대되었다. 당 내부에서 삼고초려에 가깝게 설득을 했다고 한다.
[[2018년]] [[5월 29일]] [[KBS]]에서 진행된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 출연한 이후 화제가 되었다.
[[이재명(196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재명(1964)/논란 및 사건사고|각종 의혹들]]로 공격할 때, [[이정희|작정하고 나왔는지]] 정책 홍보와 검증보다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온갖 의혹들을 들고나와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데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자가 없는 자유토론 방식이라 중재자가 없는 점도 한 몫 했다.] 성남 FC 후원금 관련 의혹, 시민 상대 고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조폭 연루설, 일베 가입 논란, 혜경궁 김씨,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 [[주진우]] 기자가 김부선에게 메일을 보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는데, 토론회 후 때마침 주진우로 추정되는 남성과 김부선의 대화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다.] 등을 주제로 네거티브를 걸었고, 이재명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해도 거짓말로 단정짓고 자신의 주장만 강하게 몰아붙이며 토론회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갔다. 흡사 경찰이나 검찰이 취조하듯 몰아붙였는데, 이재명은 처음엔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나 계속되는 공세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기도 했고, 여기 청문회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영환은 진실공방이 아니라 '검증'이라고 주장했다. 후반부엔 20년 국회의원 경력 동안 이재명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이자리에 있는것이 부끄럽다며, 왜 이런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며 반듯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을 했다. 또한 자신은 전과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어서 한 말이 "투옥되고 노동자 생활하고.."라고 삐끗하자 이재명이 투옥이 전과아니냐고 물으니 긴급조치 운운하며 [[정신승리|전과지만 전과가 아니라며 반박했고]] [[유체이탈|이재명이 그런 전과는 자신도 있다고 반론하자 교도소의 도둑놈들도 다 이유가 있다며,]] [[내로남불|이재명이 반성을 안한다며 되려 비난했다.]] 마지막으론 이재명이 박근혜를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하며 발언시간을 마무리했다. 모두까기로 컨셉을 잡은건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격을 하고 김영환이 혜경궁 김씨를 언급할 때 같이 거들어 준 [[남경필]]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점을 들어 비난했고, 이런 토론 태도를 보다못한 [[정의당]] [[이홍우(1959)|이홍우]] 후보가 인신공격과 진흙탕 논쟁은 도민들이 불편해하니 자제하고 경기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토론을 할 것을 촉구하자 자기 얘기만 하라는 호통으로 막아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3d1pNRO-1Io|김영환 후보의 토론회 주요 장면 모음]][*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경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는데 ~~본인은 후보가 아니라는 듯~~너나 잘하세요라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참으로 막장스럽다(...).]
이를 통해 존재감이 전혀 없었는데 토론회 한 번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특히 이재명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집중적으로 퍼부은 덕분에 이재명에게 큰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에게 인상을 남기며 인지도를 올렸다.[* 물론 정계에서 떠나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잘 안 알려졌을 뿐이지, 노무현 탄핵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인 중 하나였으며, 새민련 당시 문재인에 대한 비판을 해온 반문파로서 국민의당 탈당파의 한 축이라는 점, 탄핵정국 당시 국민의당의 촛불집회 참가에 반대한 점 등 친문 입장에서 좋게만 볼 수 없는 변수가 많아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재명을 향한 네거티브엔 동조할 지언정 실제 지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미비하다.] 물론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으로 얼룩진 토론을 한 만큼 좋은 평가만 받은건 아니다. 정책은 없고 그저 사생활에 대한 네거티브만 있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이번 토론회가 ‘이재명 청문회’로 변질되는것을 주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때문에 인지도 상승말곤 딱히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의 득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이미 경기도지사 선거판은 과반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명]] 독주 체제에 그나마 15~20% 정도의 콘크리트 보수층은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진보, 중도, 보수 어느 계층도 흡수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소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한자릿수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재명의 과반이 넘는 지지율과 [[https://www.google.co.kr/amp/www.topstarnews.net/news/ampArticleView.html%3fidxno=423401|남경필의 20% 콘크리트]] [[http://v.media.daum.net/v/20180607005012720?f=m|지지층은 건재하다.]] 비전과 정책없이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에만 집중한 전략이 인지도 상승과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지지층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유효했을지언정 경기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2018년]] [[6월 5일]]에 진행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2차 토론회([[KBS]], [[MBC]], [[SBS]] 공동주최)에 참석하였다. 기조연설에선 지난 토론회에서의 네거티브를 사과하면서도, 여전히 [[이재명(1964)|이재명]]의 해명을 거짓말로 규정했고, 이재명과 본인 중 한명만이 진실이라며 끝장승부를 예고했다. 1대1 정책토론에선 다른 후보들과 정책검증을 이어갔으나, 주도권 토론에선 자신의 차례가 오자 이재명에게 김부선과 스캔들 의혹에 대한 네거티브를 걸었고 시간이 없다며 해명을 무시하고 예/아니오로만 대답할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가 사회자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재명도 이것을 문재인에게 했다가 크게 비판받은 적이 있다. 토론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이다.]
현재 이것이 네거티브 선거전이냐 사회고발이냐에 대해 아직까지 판단이 보류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증거 제시도 없이 흐지부지 되면 빼도박도 못하는 네거티브 선거이지만 확실한 증거들이 공개되고 당사자들의 증언이 사실로 판명날 경우 논란이 많다 하더라도 이것이 사회 고발이 될 수 있기 때문. 김영환 본인도 주진우, 김어준, 정봉주가 증언하면 된다고 하며 관련자들의 진술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정작 의혹을 제기한 김영환 본인에게는 원래부터 관련 증거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사진을 제시하긴 했는데 이 사진은 증거로 볼 수도 없는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8161|사진]]이였기 때문에 사진을 거론하며 이재명을 비난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보통 정치인들은 상대 후보에 대해 후폭풍이 엄청난 스캔들을 무기로 선거에서 공세를 할 때 당연히 관련 증거들과 당사자의 증언을 미리 확보하고 이것이 확실한지 확인을 하고 나서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고 독특한 케이스이다.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 [[바른미래당]] || 287,504 (4.81%) || 낙선 (3위) || ||
2008년 1월 민주당 탈당 당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217696|한나라당 입당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입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2009년 민주당으로 복당한다.[*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당시 "정당투표는 [[한나라당]]에 해달라"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3919|발언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진지하게 한나라당행을 고려한듯 하다.]
- 승리(빅뱅) . . . . 23회 일치
제일 어려서 그런지 매사에 의욕적으로, 자기가 한 건 터트리려 드는 방송 욕심이 강해 보인다. 가끔 빵빵 터지는 것도 있지만 아쉬운 개그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진행 실력도 괜찮은 수준이다. 일본의 여러 프로그램의 메인 MC[* VI. from BIGBANG, 남자의 요리, 사키가케 등]를 맡기도 했다. 시크하고 카리스마 있어보이지만 브레이크가 풀리면 '''아무말 대잔치'''를 펼치는 빅뱅 형들을 특유의 진행 실력으로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더걸스]]의 [[유빈]],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같은 광주 출신이라 종종 묶이곤 하는데 특히 유노윤호과는 공통점이 크다. 아직까지도 광주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댄서팀 '일화' 에서 활동했던 것. 데뷔 전 아무래도 노래보다 춤을 곧잘 해내곤 했던지라 YG ent에서는 우린 가수를 뽑는 것이지 댄서를 뽑는 게 아니라며 탈락의 위기를 맞기도 하나, 재도전의 자리에서 [[양현석]] 사장으로부터 노래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빅뱅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는 데 성공한다.
기본기는 물론 가창력도 제대로 갖춘 편으로 본인의 솔로곡 중 '다음날'과 'Outro(In My World)'를 들어보면 나름의 곡 소화력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cMBZM31u5Y&list=PLSp0Xfof8XoHr4YYzit_s1VBO0N-YasCm&index=3|In My World 라이브]] [[https://www.youtube.com/watch?v=0DFzCaVDIc0|원래노래]] 본인도 음악적인 면의 성취는 어느정도 한계를 인지한 모양. 안타깝지만 예술 쪽의 재능은 노력이 아니라 재능이 더 중요한 것이고 승리도 이 점을 깨달은 것을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사실 겸손한거다--
그러나 다른 형들에 묻혀서 그렇지 승리의 보컬도 꽤 뛰어나다.--두각을 보이는 노래의 스타일 자체가 형들과 많이 다르다-- '눈물뿐인 바보' 에서 고음도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rvTqUF3Hco0|영상]] [[태양(빅뱅)|태양]]과 [[대성(빅뱅)|대성]]의 진하고 바디감 있는 보이스가 노래의 중심을 잡아주고 킬링파트를 담당한다면 승리는 주로 화음이나 백코러스[* [[https://www.youtube.com/watch?v=uFtM4m_D_bY|영상]]]를 담당해 노래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변성기 전이나 후 둘 다 타고난 [[미성]]으로 팝발라드가 어울리는 편이다. 태양은 R&B / Soul, 대성은 Pop / Rock이 잘 맞는다면 승리는 어쿠스틱한 부드러운 장르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미성이므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강렬한-- 빅뱅 곡들에서는 승리가 주로 브릿지 부분을 부르면서 승리 특유의 맑으면서도 섹시한 음색을 세련되게 살린다.--그래서 파트가...--
예능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잘하는 편이나, 가끔 의욕이 너무 넘쳐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근래에는 연차가 되면서 --나이가 들면서-- 치고 빠지는 것에 능숙해졌으므로 원만한 진행을 한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잘한다. 특히 일본어는 간사이벤(오사카 사투리)까지 구사할 정도로 유창한 실력이다. 이는 멤버 형들의 특색이 너무나 뛰어나서 본인만의 특기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이라 한다.
MADE 투어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이제 승리가 놀림받고 있어도 다른 멤버들은 신경도 안쓴다. 아니면 멤버들끼리 서로 합심해서 몰이를 한다. 너무하기도 하다.
노래를 시켜놓고 막상 노래를 부르면 이런 노래 아니라며 디스를 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노래를 시키기도 한다. [* [[https://youtu.be/CM0EFb8Bmpw|영상]] [[https://youtu.be/-puPrW0xOSo|영상]] ]
승리팬들은 승리몰이를 불편해하지만 다른 멤버들 팬들은 대부분 귀엽게 보고 넘어가는 편이다. 애초에 승리 얘기를 안하면 예능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물론 "형들에게 사랑받는 각 그룹 최고의 막내돌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할 정도로 멤버들은 승리를 예뻐한다. 하지만 예뻐한다는 말로 조금은 심한 몰이를 한것은 팬들에게 불편해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태양은 듀엣을 한다면 승리와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외 멤버들도 승리를 꼭 필요한 멤버라고 얘기한다. 지드래곤은 승리가 무한도전에서 자신이 없어도 빅뱅은 빅뱅이라는 말을 하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 중 제일 큰 규모의 사업은 '''아오리의 행방불명(아오리 라멘)''' 사업이다. 사람들에게는 승리 라멘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6년 12월 16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승승장구하며 국내 체인점도 많이 늘어났으며 일본, 한국, 중국, 동남아까지 사업 규모를 넓혀가서 1년만에 30호점을 달성했다. 다만 기본 1만원 이상의 가격이 타 국내 라멘집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비싸다는 평. 또한, DJ 레이블 '''Natural high records의 사장'''으로, 현재 레이블을 [[양현석]]이 인수를 하면서 현재 YG엔터테인먼트 레이블 사장직이기도 하다.
2015년 6월 [[https://www.instagram.com/p/3f4PCzNgKa/|지드래곤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일명 '에브리띵' 영상을 시작으로 각종 시상식 등에서 '''여러분은 나의 에브리띵'''을 외친다. 본인은 당당한데 옆에 형들이 더 부끄러워 하는게 포인트. ~~수치플잼.~~ 서울가요대상에서 iKON이 대리수상 할 때도 Everything을 외치기도 했다.
2016년 1월 28일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은 [[https://twitter.com/IBGDRGN/status/692636122548056064|트위터]]에 '''승리 주제곡'''이라며 그룹 [[검정치마]]의 신곡 Everything 유튜브 영상을 링크하기도 했다.
2009년 초에 활동했던 승리 솔로곡. 지드래곤이 피쳐링했다. 이효리가 직접 양현석에게 승리의 솔로 활동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저 앨범 수록곡[* 빅뱅 두번째 정규 앨범 Remember]에 불과한 솔로곡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함으로써 팬들의 프라이드를 높여주기도 했다. 참고로 이후에 정식으로 발매한 앨범들보다 훨씬 성적이 좋다...
1번 트랙 'Let's Talk About Love (Feat. G-DRAGON & 태양 from BIGBANG)'에는 [[BIGBANG|동일 그룹]]의 [[지드래곤]]과 [[태양(빅뱅)|태양]]의 피처링이 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이지만 이 평가에는 지드래곤과 태양 피쳐링의 비중이 크다. 2번 트랙 '할 말 있어요'는 극적인 훅(hook)의 비트의 변화와 Hustlin' 이라는 반복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Hustlin'은 별 의미는 없고 발음이 좋아서 선택한 단어라고. 각각 3번과 4번, 6번 트랙의 'GG BE'와 '그 딴 거 없어', 'LOVE BOX'는 2013년 승리가 진행했던 스타캐스트 속 팬들의 선택에서 승리 솔로곡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곡이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G_ZnI50c7U|꼭 이어폰으로 들어야 함]] --귀가 녹을뻔해써요-- 7번 트랙 '할 말 있어요 (Hard Remix ver.)'는 보너스 트랙으로, CD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 양현석 성대모사를 매우 잘한다. YG 아티스트들은 전부 양현석 성대모사를 조금씩은 하지만, 그 중 승리가 가장 최고봉이라고. 어느 예능을 나와도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승리의 양현석 성대모사다. 2016년 2월 가온 시상식에서는 프로듀서 상을 수상한 양현석 대신 성대모사를 하며 대리 수상을 하기도 했다. [[https://youtu.be/15MoFYOluW0|영상]] 2분 40초 부터. 마지막의 '''지용아 한마디 해라''' 가 압권.
* 심지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차피 잘못할 거라며 아무 이유없이 혼내기도 한다고 한다.
콘서트장에서 팬들이 양현석 언급에 야유를 하자 승리가 양현석 옹호 발언을 하였다. 다만 이 때 팬들이 야유를 한 것은 승리 뿐 아니라 다른 빅뱅 멤버, 빅뱅 자체에 대한 양현석의 취급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한 것이므로 위의 주장에 대한 밑밤침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대다수의 팬들이 양현석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승리 때문만이 아니다. 애초에 승리 정리글이 나타나기 전부터 양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예전에 팬들이 YG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12년동안 생일축하 한번 안해주다 한 번 해줬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_FlqDGPD4do|영상]] 재수없다, 이미지 메이킹이다, 승리 너무 불쌍하다 등의 댓글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 승리 인터뷰 中: 전 사실 지금껏 활동하면서 혼자서 울고 그런 적 많았어요. 방송에 데이고 다치고. 대중들은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방송에서 비춰진 모습이 우울하고 그러면 '쟤 왜 저래, 왜 이렇게 거만해' 그러잖아요. 아무리 어떤 일이 있어도 밝게 웃고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제가 어린 나이에 그런 걸 하는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얘기할까요. 좀 쉬고 싶었어요. 근데 비즈니스라는 게 꼭 그렇게 가는 게 아닌거고. 저희가 생각하는 건 한틈도 대중이 저희로부터 시선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중은 빨리 질려요. 핸드폰도 빨리 바꾸고, 빅뱅이 쉬고 있을 때 다른 가수들이 너무 치고 올라오면 우리도 사라질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서 빅뱅은 쉬지만 그때도 두 멤버(대성, 승리)는 뮤지컬도 하고, 엠씨도 보고 다방면에서 활동해야죠. 관객들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요. 옆에 있는데 저도 벅찬 거에요. 한곳에 집중해 있고, 시선이 마주치고. 저도 무대에 섰을 때 그런 게 희열이 느껴져요.
* 대성: 7장인가, 거기에 저하고 승리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옥상에 올라가선 진지하게 우리를 돌아보며 화이팅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사실 제 경험과 무관하진 않죠. 저도 비주얼이 안된다, 실력이 모자란다 이런 얘기 많이 들으면서도 힘들게 연습하고 남몰래 아픔 같은 걸 겪기도 했거든요.
* 일본어 실력이 상당하다. 개요에 서술되어 있듯 사키가케, 남자의 요리 등의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기도 했으며(AKB48 멤버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외국인이 보면 일본인으로 착각할 수준. 한 재일 교포에 따르면 승리는 일본 표준어 뿐만 아니라 사투리[* 일본의 간사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칸사이벤]])다.]도 어색함 없이 잘 해, 정말 원어민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오버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해서 듣기 민망하다는 반응도 있다. 승리의 일본 방송을 끝까지 볼 수 있는 팬은 없다 카더라.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는지 15년 MAMA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총 4개국어로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 4개국어 수상 소감은 16년 [[골든디스크 시상식|골든디스크]] 등 각종 시상식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 골든디스크 시상식의 경우 분명 한국에서 상을 받으면서도 '''한국에 계신 [[VIP(빅뱅)|VIP]] 여러분''' 이라고 --해 팬들을 [[안습]]하게-- 했다. --얼마나 한국에 안 왔으면-- --한국에 계신 VIP가 습관이 되었을까-- 그리고 데뷔 10주년 '''국내''' 콘서트에서는 가득 찬 팬들을 향해 VIP '''재팬''' 이라고 말했다. 팬들이 '아아~ 승리야~' 라는 식으로 야유하자, ' '''VIP 제 팬''' 이라고요!' 라고 이야기 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속이 상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와중에 환호하며 소리지른 섬녀...~~ 그러나 빅뱅 내에서 승리가 가장 팬 서비스가 좋고 한국 팬을 가장 아끼기에 최근 일본 스케쥴을 많이 돌며 습관처럼 입에 붙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다. 유행어와 신조어에 민감한 승리가 오죽 해외 스케쥴을 많이 뛰었으면 '히트다 히트'를 모를까...
- 윤채경(가수) . . . . 22회 일치
||<bgcolor=#FF69B4><:>'''{{{#ffffff 출생}}}''' ||<(> [[1996년]] [[7월 7일]] ([age(1996-07-07)]세), [[경기도]] [[성남시]][* 일단은 출생지가 서울특별시 출생이다. 그 이후에 [[경기도]] [[성남시]]로 이사를 가서 성장하였다. 본인 또한 인천보단 성남을 출신지로 생각하고 있다.] ||
||<bgcolor=#FF69B4><:>'''{{{#white 별명}}}''' ||<(> '''빛채경'''[* 프로듀스 101 5화 몰래카메라 선공개 영상 중 자신이 이미 빚더미에 앉아 있다고 언급하여 '빚채경'이라 불린 적이 있다. 이후 팬들은 앞으로 빛나는 채경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빚->빛으로 바꾸어 '빛채경'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프로듀스 101이 끝나고 윤채경은 빛채경이란 별명을 지어준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하며 빛채경이라는 이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왕언니''', 인성갑, 공주(공듀), 울면서 달리는 소녀, [[개복치|채복치]][*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ibi&no=1895&page=1|#]] 생긴것도 그렇지만 개복치가 알 3억개 낳아서 많이 죽고 단 2마리 정도만 어른이 되는 것마저 윤채경의 일생을 닮았다.], 앨리슈[* 이해인과 이수현의 V앱에서 윤채경 본인이 저닉으로 채팅을 하며 --어그로--이목을 끈덕에.. [[http://m.dcinside.com/view.php?id=chaekyoung&no=134480|마지막에서 두번째 사진을 잘보자]]. 참고로 에이프릴 공식 카페 채팅방에서 본인이 앨리슈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프로데뷔러[* APRIL 컴백 직후 이 문장은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인증했다.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5076663&keyword=%C3%A4%B0%E6|##]]], 프로빈말러[*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출연 당시 [[김소희(1995)|빈말을 주옥같이 쏟아내며]] 붙은 별명이다.], 빨래돌[* [[SBS]] [[정글의 법칙]] 출연 당시 병만족의 옷을 걷어 방망이로 야무지게 손빨래 하는 모습이 마치 옛날 동네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를 연상시키며 '빨래돌(빨래하는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망국의공주 ||
탁재훈이 가게를 오픈하자 C.I.V.A는 데뷔를 앞둔 상황에서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 앞에서 춤을 추게 된다. 그리고 음반 녹음 함께 그동안의 출연진이 총출동한 C.I.V.A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다. 그리고 윤채경의 생일이기도 한 7월 7일 디바의 노래 '왜 불러'를 리메이크한 음원이 발표되었다. [[C.I.V.A]] 문서 참고.
[[APRIL]]에 채경이 충원된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이제는 윤채경 본인에게도 안정적인 걸그룹 활동을 하게 해 줄 필요성이 있고 [[APRIL]]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윤채경이 [[프로듀스 101]], [[C.I.V.A]], [[I.B.I]]에서 얻은 인지도를 [[APRIL]]에 접목시켜 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는 의견이 있다.
[[APRIL]]에는 빨리 녹아든 듯하다. 티저 공개 이후 공개된 영상에서 [[APRIL]]의 멤버들이 인사를 하는데 [[http://m.dcinside.com/view.php?id=produce101&no=2865205|하트를 굉장히 완벽한 모양으로 짓는다]]. 나이 때문에 그룹 색깔과 어울릴지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합류 후 매 앨범 컨셉을 그룹에 잘 묻어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나은]]과 함께 보컬라인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포지션에 있고, 경력 덕에 댄스실력도 준수한 편이라 실력 면에서 밸런스가 잘 잡혀있는 멤버라고 볼 수 있다. 비주얼에 있어서는 짙은 쌍꺼풀, 평소에는 오목조목해보이지만 미소가 환하게 드러나는 입술과 고운 옆태 등등 러블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맏언니지만 동생들한테 당해주기도 하고 같이 망가지기도 하고 전혀 꿀리지 않는 비글미를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지내는 타입이다. 물론 회사에 들어온지 가장 오래된 멤버이자 연장자로 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팀을 앞에서 잘 이끌어주는 맏언니로서 리더쉽 있는 모습도 있으며 소속사와 그룹 구성원 간의 창구 노릇을 하는 사실상 리더 역할도 하고 있다.
2017년 12월 9일 에이프릴 일본 두번째 콘서트(「DREAM LAND」) 를 가졌는데 채경은 채원과 함께 '큐티하니'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다.
* 작고 가녀린 체구와 다르게 반전으로 --상당히-- [[글래머|훌륭한 몸매]]의 소유자다. 멤버들이 꼽은 에이프릴에서 가장 몸매가 예쁜 멤버이기도 하다.
* 프로듀스 101을 하면서 가장 고마웠던 멤버로 이수현을 뽑았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적응을 못할 당시에 처음 만난 친구였다고. 마음이 잘 맞고 이야기도 잘 통했다고. (160420 온스타일 기부티크 E05)
* 출생지는 [[인천광역시]]이나 [[경기도]] [[시흥시|시흥]]에서 꽤 오래 살았다고 한다.
* 프로듀스 101 참가 당시 빚더미였다고 한 원인이 [[퓨리티]]다. 퓨리티에서 활동하는 동안 발생한 정산에 실패해서 생긴 빚이다. 퓨리티가 지나치게 빨리 해체했기 때문이다.[* 연습생 시절 빚은 대부분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예로 MBK 출신으로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정채연]], [[기희현]]이 프듀 및 이후 CF로 6,000만원의 정산금을 받아 기부했다는 [[http://mnews.joins.com/article/20225628#home|언론기사]]가 있었는데, 1인당 3,000만원 정도의 정산금이라면 실제 회사의 수익금은 더 많을것이다. 그 둘의 경연곡보다 훨씬 더 많은 매출(2016년도 걸그룹 음원매출 14위)을 안겨준 [[같은 곳에서]]의 일원에 C.I.V.A때 찍은 CF도 꽤 되는 윤채경의 2016년 수익은 저 기사가 나올 당시의 기희현보다 비슷하거나 많지 절대 적을 리 없다. 그러나 채경의 경우 연습생 시절의 빚이 아니라 해외에서 2장의 앨범을 내며 정식 활동하면서 생긴 빚이라 사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예전만큼 빚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 쌩얼도 아주 예쁘다. 본인도 이걸 알고 있으며 인정받는지 [[I.B.I]] [[헬로 아이비아이|리얼리티]]에선 아예 쌩얼 상태로 수십분 방송에 나오기도.
* 무에타이를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주짓수를 배우고싶다고 하기도.
* [[인형뽑기]]를 무척 좋아한다. 틈틈이 시간날때마다 인형뽑기를 하고, 심지어 스케줄 중간에도 빠져나와서 인형뽑기를 하고 들어간다고. 등에 '에이프릴 채경'이라는 이름이 박힌 롱패딩을 입고 인형뽑기를 하는 의문의 인물을 찍은 영상들이 넷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http://www.dispatch.co.kr/686523|기사까지 났다]]
* APRIL 멤버들의 말에 의하면, 산전수전 겪은 맏언니답게 리더십이 강하고 동생들을 잘 이끈다고 한다. 멤버들이 꼽은 힘들 때 가장 의지가 되는 멤버이기도 하다. 평소 가장 일찍 일어나고 정리정돈을 잘 하고 요리 잘 하는 전형적인 맏언니의 모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허당]]이고 비글미넘치는 모습도 있으며 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 팀에서 맏언니라는 포지션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서의 대처 등을 떠맡기도 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n47dE21Eru0|특유의 노련미로 깔끔하게]] [[http://tv.naver.com/v/2150444|마무리짓는 편이다.]]
* 2017년 10월 셀럽TV에 출연하여 처음 합류 당시 기존 멤버들이 텃세를 부렸다고 폭탄발언(?)을 하였다. 아무래도 기존 멤버가 네 명이고 자기가 새 멤버다 보니까 텃세가 있긴 있었다고... 자기도 회사 경력이 더 많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응하고, 대화를 하면서 금방 없어졌다고 한다.
* 2017년 12월 24일 에이프릴 뮤직토크쇼를 통해 팬들 앞에서 한해를 마무리하며 소감을 말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이어진 브이앱에서 원래 눈물샘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 맏언니로 '멤버 사랑 마스터' 임을 입증하기 위해 'The Q' 에 출연하여 눈을 가리고 촉감과 후각만으로 멤버들이 누구인지를 맞추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희빈 장씨 . . . . 22회 일치
희빈 장씨는 [[사역원]] 봉사(종8품)를 지냈던 [[장형 (조선)|장형]](張烱)<ref group="주">장형(張烱)의 형(烱)은 경으로도 읽을 수 있다.</ref>(1623~1669)과 그의 후처인 [[파평 윤씨]](1626~1698)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동기로는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전처였던 [[제주 고씨]](?~1645)의 소생인 이복 오빠 장희식(1640~?)과 윤씨 소생의 동복 언니<ref group="주">[[장희재 (조선)|장희재]]의 누나이다. 따라서 1650년 이전 생임을 알 수 있다.</ref> 한 명, 동복 오빠인 [[장희재 (조선)|장희재]](1651<ref group="주">《승정원일기》 숙종 27년(1701년) 11월 2일 기록에 장희재의 나이가 당 51세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1651년 생임을 알 수 있다.</ref>~1701)가 있다. 최근까지 그녀의 생년에 대해 흔히 미상이거나 [[조선 숙종|숙종]]의 2세 연하, 혹은 5살 연상 등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숙종실록》에 수록된 국청죄인 자근례의 공초 내용 중에 희빈 장씨가 기해생(1659년 생)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언니는 관상감 관원인 김지중에게 출가하여 1691년 당시 관직이 종7품 직장이었다. 오빠 장희재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희빈 장씨가 [[조선 숙종|숙종]]의 후궁이 되기 7년 전인 경신년(1680년)에 키가 크고 외모와 무술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제만으로 구성된 [[내금위]]에 재직<ref>《조선왕조실록》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ref> 하였으며 1683년에는 좌포청 부장으로 있었다.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의 사촌형인 [[장현 (조선)|장현]]은 [[조선 효종|효종]] 8년에 이미 정2품 자헌대부를 제수받고 숙종 1년에는 이미 종1품 숭록대부에 올라 공을 세워도 더이상 품계가 올라갈 수 없어<ref group="주">생전에 정1품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건 [[문관]]에게 한정된다. 《동의보감》의 저자이기도 한 명의관 [[허준]]은 [[광해군]]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제수받았다가 문관의 반발에 의해 취소되었고, 사후에야 비로소 추증됐다.</ref> 자식과 조카가 대신 승봉되어야 했던 거물 역관으로 재산은 국중거부의 명성을 얻을 정도였으며, [[장현 (조선)|장현]] 형제의 자식들은 무관 및 역관, 혹은 의관으로 고위직에 있었다. 그녀의 일족이 비록 문신 사대부 가문은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손 꼽히는 대부호였으며 사회적 위치 또한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희빈 장씨가 아비의 사후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당백부 [[장현 (조선)|장현]]이 [[경신환국]]에 휘말린 후 가세가 기울자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였다고 주장하여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졌지만, [[경신환국]] 당시 그의 나이가 이미 22세였기에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ref group="주"> 궁녀의 통상 입궁 연령은 4세부터 16세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법적 혼인 연령은 14세~20세이다. 부모가 50세를 넘긴 경우엔 관아의 특별 허가를 받고 12세 이상의 자녀를 혼인시킬 수 있는데 16세기 이후엔 수 차례에 거듭된 외란으로 남성의 숫자가 급감하였고 처녀를 차출하여 청으로 진상하거나 궁녀로 뽑는 분위기로 인해 법금을 어기고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ref> 이러한 주장의 근원은 희빈 장씨가 [[경신환국]] 당시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궐하였다는 [[인현왕후]]의 주장으로 불거진 것인데, [[경신환국]]과 같은 해 말에 장씨가 강제 출궁이 되었다가 7년 후인 [[1686년]]에 다시 입궁했던 만큼 이미 궁녀인 신분으로 출궁을 당한 후에 [[남인]]과 연계하여 돌아왔다는 것이 오역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조선 효종|효종]] 때 이미 막대한 부를 쌓은 [[장현 (조선)|장현]]도 딸을 궁녀로 입궁시켰으며, [[조선 현종|현종]] 5년에 대왕대비전의 궁녀로 뽑혔다가 이미 사주가 오간 상대가 있으니 정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출궁된 역관 최우의 딸의 전례<ref>현종실록 5년(1664 갑진 / 청 강희(康熙) 3년) 12월 30일(정해) 2번째기사</ref> 도 있는 만큼 희빈 장씨의 가세가 빈궁하여 궁녀가 되었다는 가설은 억측에 불과하다.
라는 [[사간원]] 헌납 [[윤빈]]의 비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683년에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직위가 포도부장이었던 기록이 존재하며<ref>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장씨의 동복 언니는 [[관상감]] 직장이었던 김지중에게 출가한 상태였는데 1701년 [[김지중]]의 증언으로 미루어 김지중이 처가에 왕래하며 장희재와 밀접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는 만큼 생계가 어렵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장씨의 외삼촌 윤정석은 면포를 팔던 시전상인이었는데, 면포(무명)가 국법 상 [[육의전]]만이 매매가 가능한 독점 상품이었던만큼 윤정석이 일개 장삿꾼이 아닌 [[육의전]] 상인이었음을 뜻하며 이는 윤정석이 상당한 재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윤정석은 장희재의 집과 담을 하나 두고 살았을 만큼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1685년]] 대비 김씨의 3년상이 마쳐지자 [[자의대비|대왕대비]] 조씨는 [[조선 숙종|숙종]] 부부에게 과거 대비 김씨가 출궁시켰던 그녀의 궁녀 장씨를 재입궐시킬 것을 권고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조선 숙종|숙종]]을 안타깝게 여긴 [[인현왕후]]가 숙종에게 간해 그녀의 재입궁을 주선했다고도 한다. 어쨌던 대비 김씨의 3년상이 [[1685년]] 12월 5일에 마쳐졌고, [[1686년]] 2월 27일에 후궁 간택령이 있었던만큼 장씨의 재입궁이 이 기간 사이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측실이지만 이미 출가를 한 지 4년이나 지난 그녀가 정명공주의 잔치에 노래를 부른 것은 그녀의 명성이나 주인이었던 [[숭선군]]의 주선 때문이었을 것이다.</ref> 을 취객의 희롱에서 도망치게 하였다고 호된 매질을 가한 바 있는데, 좌의정이 포도부장에게 직접 벌을 내린 것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엄연한 무관의 아내를 희롱한 취객에게 죄를 묻지 않고 그녀를 도망치게 한 남편에게 벌을 내린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정이야 어찌됐던 [[민정중]]이 [[장희재 (조선)|장희재]]에게 매질을 한 것은 사실이니 [[인현왕후]]로선 장씨의 입궁이 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는 궁녀 장씨의 교만함을 훈계하겠다며 아랫사람에게 장씨를 매질토록 시키기도 하였다.<ref group="주">인현왕후전에는 [[인현왕후]]가 장씨를 교화하기 위해 직접 회초리질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ref>
[[인현왕후]]는 직접적으로 숙종에게 숙원 장씨를 쫓아낼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숙종에게 [[명성왕후]] 김씨가 꿈에서 계시를 내리길 장씨가 원한을 품고 환생한 짐승의 화신이며 불순한 무리(남인)의 사주를 받고 입궁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던 기록이 숙종실록에 실려 있다.<ref>숙종실록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5월 2일(정유) 2번째기사</ref> 또한, '장씨 팔자에 본디 아들이 없으니 노고하셔도 공이 없을 것이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모두 훗날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되어 폐출되는 이유가 된다. [[조선 숙종|숙종]]은 원자([[조선 경종|경종]])가 탄생하자 [[인현왕후]]가 매우 노여워했으며, 급작스레 주가(主家: 공주의 처소. [[홍치상]]의 어미 [[숙안공주]] 혹은 [[명안공주]] 등을 의미한다)와 더욱 친밀해지고 [[1688년]] 2월, '[[조사석]]이 장씨 친정의 청촉으로 상신에 제배되었다'는 소문을 유포했던 것이 발각되어 유적에서 삭제되고 위리안치된 [[홍치상]]의 방면을 종용했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ref group="주">[[1688년]] 4월에 발발한 [[기사환국]]의 여파로 [[노론]] 과격파였던 [[김만중]]이 다시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문되었는데 소문의 근원지가 [[조선 숙종|숙종]]의 고모인 [[숙안공주]] 들에게서라는 자복이 있자 [[홍치상]]에게 교형이 내려졌다. [[갑술환국]]으로 [[홍치상]]은 다시 복관되었지만 [[조선 숙종|숙종]]은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높은 연세인 공주가 집에 있으니, 내가 차라리 떳떳하지 않은 데에 빠지겠다. 특별히 복관(復官)하라'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으며, 1702년 [[홍치상]]의 아들이 [[홍치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하자 '[[홍치상]]의 지은 죄는 만번 통분할 일인데 아들이 감히 격고하였다'며 분노를 터트렸고 곧 '지은 죄가 낭자한데도 관작이 그대로인 탓이다'하여 복관한 관작을 다시 거두었다.</ref>
[[1688년]] 소의(昭儀 ; 내명부 정2품)로 승격한 장씨는<ref group="주">승정원일기 기록상 1688년 3월까지 장씨의 품작은 숙원이었다. 시기 상 숙원 장씨가 소의로 진봉된 것은 회임을 한 이유임을 알 수 있다.</ref> 같은 해 10월 28일, 드디어 왕실이 그토록 고대하던 [[조선 숙종|숙종]]의 장남‘균’(昀)<ref group="주">실록에선 윤으로 읽기도 하고, 균으로 읽기도 한다. 균이라 번역된 기록에도 한자는 윤(昀)으로 쓰여있다. 숙종의 세 아들(昀, 昑, 昍)은 모두 '日'자를 부수로 썼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왕들의 이름은 현재의 독음과 다르게 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고종 대에 편찬된 《열성어휘(列聖御諱)》에 경종의 휘는 "균'으로 읽는다[音勻]"고 명시되어 있다.</ref> 을 낳았고 이 왕자가 후에 조선 왕조 제20대 왕 [[조선 경종|경종]](景宗)에 오르게 된다.
덮개가 달린 가마인 옥교를 탈 수 있는 부녀자는 3품 이상인 동반(문관) 당상관의 어미와 처, 딸과 며느리로 국법이 정해져있는데 당하관에 불과한 천한 역관<ref group="주">문관은 역관을 천인으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수치스럽다하여 청국행(淸國行)을 기피한 문관을 대행(代行)해온 역관들의 직위와 부귀가 종내에는 문관을 넘어서기에 이르자 역관을 양민으로 분류되는 사노공상 중 최하층인 상인으로 분류하여 역상(譯商)으로 하칭하기도 하였다.</ref> 의 아내인 윤씨가 옥교를 탄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는 이유때문이었다.
옥교 사건은 그때까지 장씨에 대한 [[서인]]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조선 숙종|숙종]]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조선 숙종|숙종]]은 같은 당하관의 아내인 귀인 김씨의 어미도 옥교를 타고 수시로 궁에 드나들지만 문제 삼아진 적이 없으며, 장씨의 생모는 후궁이 해산할 때 교자를 타고 입궁할 수 있다는 왕실 규례에 따라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받고 입궁한 것이며, 어명을 상징하는 선소동패(宣召銅牌)를 보였음에도 입궁치 못하고 내쫓긴 것은 왕을 능멸하는 행위임을 선포하며 [[이익수]] 및 사헌부 관원을 체포하여 엄형을 내리고 사형할 것을 명하였고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을 선포했다. 하지만 [[조선 숙종|숙종]]의 척신이자 최측근이기도 했던 우의정 [[조사석]]마저 윤씨가 탄 가마가 8인교<ref group="주">옥교에는 2인교, 4인교, 6인교, 8인교 등이 있는데 이후 사치풍조가 만연해져서 12인교도 생겨났다. 임금과 왕후가 타는 가마는 연으로 20명이 들었고, 세자의 연은 16명으로 규정되어 있다. 공주와 옹주가 타는 덩은 8명이 든다. [[조사석]]은 윤씨가 공주와 옹주의 덩보다는 못하지만 8명이 드는 8인교를 탄 것은 부당하다고 고발한 것이다.</ref><ref>《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정연식 저</ref><ref group="주">사람이 드는 가마의 상급은 말이 끄는 가마인데 쌍교와 독교로 나뉜다. 말 두 마리가 앞뒤로 가마를 끄는 쌍교가 상급으로 2품 이상과 승지만이 탈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영조시대엔 이미 예사로와진 일이 되어 여인들도 쌍교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는 숙종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생왕자의 외조모이자 왕명을 받고 입궐하던 윤씨가 8인교를 탄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행위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윤씨가 옥교를 탄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ref> 였음을 강조하며 [[영빈 김씨|귀인 김씨]]의 어미는 비교 대상이 아님<ref group="주">귀인 김씨의 어미는 당상관의 아내는 아니지만 판서였던 [[이정영]]의 딸이다. 또한 귀인 김씨의 종조부인 [[김수항]], [[김수흥]]이 정승이었기에 [[조사석]]은 귀인 김씨의 어미는 역관 가문 출신인 윤씨에 비해 옥교를 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ref> 을 주장함으로써 숙종은 서인 대신은 물론 윤씨를 모욕한 하리에게 내린 벌조차도 취소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임해군]]의 동복 동생인 [[광해군]]은 큰 아들이 아니기에 당연히 원자가 아닌 신분으로 세자가 되었다. 후궁 소생이 원자가 될 자격이 없지는 않지만 서른이 되지 않은 [[조선 숙종|숙종]]이 후궁 소생을 원자로 정한 것은 비정상적으로 급한 결정이었다.그러나, 부왕인 [[조선 현종|현종]]이 34세에 죽었고, 왕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대였던 만큼, 30세가 다 되어가도록 후사가 없는 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반론이 있기도 하다.</ref> 하고 있던 서인은 숙종의 선언에 당황했지만 제대로 반대를 하거나 저지를 할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 속에 [[조선 숙종|숙종]]은 불과 닷새 후인 1월 15일에 왕자 윤에게 원자 명호를 내려 종묘 사직에 고했다. 또한, 숙종은 원자 윤의 생모 소의 장씨를 정1품 빈(嬪)으로 책봉하여 귀인 김씨를 제치고 후궁 1위로 만들었다.<ref group="주">숙종실록에는 15일에 빈으로 책봉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승정원일기에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ref>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원자 정호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관직을 내놓고 떠나라는 선언이 있었으며, 이미 종묘 사직에 고한 일을 무르라는 것은 선대 왕들을 한꺼번에 능멸하는 행위이자 신권이 왕권의 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행위나 다름없기에 [[서인]]은 소극적인 반박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었고, 숙종은 이 또한 용서하지 않아 그들을 파직하였다.
숙종 15년(1689) 2월 1일에 [[인현왕후]]의 외가 친척이기도 한 [[송시열]]이 이미 종묘에 고한 원자 정호를 철회하라는 비판상소를 올리자 [[조선 숙종|숙종]]은 진노하여 [[송시열]]을 치죄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서인]]으로 이루어진 [[승정원]]에서 명을 받들지 않았다. 앞서 [[조선 숙종|숙종]]이 [[김만중]]의 치죄를 명할 당시와 흡사한 배경<ref group="주">[[김만중]]을 추포하여 문초하라는 명을 내렸지만 승정원에서 항명하여 전지를 봉입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 숙종|숙종]]은 입직한 승지에게 전지를 쓰라고 명하였지만 붓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되었으며 사관 [[송상기]]는 붓을 빌려주라는 [[조선 숙종|숙종]]의 어명을 거부했다.</ref><ref>숙종실록 13년(1687 정묘 / 청 강희(康熙) 26년) 9월 11일(병술) 3번째기사</ref> 이었기에 [[조선 숙종|숙종]]은 분개하여 삼사와 [[승정원]], [[사간원]] 등 왕의 최측근 요직에 있던 서인을 파직하고 경신환국 때 실권하여 은신 중이었던 [[남인]]을 조정으로 불러 교체해버린다. 동시에 [[조선 숙종|숙종]]은 2월 2일 장씨의 선조 3대를 정승으로 추증(追贈)했다.<ref group="주">추증은 위로 올라갈수록 한 등급씩 감하는 것이 관례여서 장씨의 아버지 [[장형 (조선)|장형]](張炯)에게 영의정을 증직하면, 조부에게는 종1품 찬성(贊成)을 증직해야 했다. 숙종은 “사체(事體)가 다름이 있으니, 모두 의정(議政)을 증직하라”고 명해 [[장형 (조선)|장형]]은 영의정, 장수(張壽)는 좌의정, 장응인(張應仁)은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3대가 모두 정승에 증직된 드문 경우였다.</ref> 다음 달 3월엔 그녀의 외조부인 일본어 역관 윤성립을 2품 정경으로 추증하고, 외삼촌인 윤정석에게 사포별제<ref group="주">품계로는 6품에 이르나 녹봉이 없는 무록관이다.</ref> 직을 내려 장씨가 더이상 비천한 역관에 불가한 가문 출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장씨의 상례부터 장례까지의 모든 절차는 궁에서 주관하고 치루어졌으며 종친부 1품의 예로 받들어졌다.<ref group="주">숙종의 다른 후궁인 명빈 박씨와 숙빈 최씨의 상장례는 법도대로 궁 밖 사가에서 이루어졌다.</ref> 그녀의 무덤 역시 여느 후궁들<ref group="주">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무덤은 아들인 연잉군과 환관 장세상, 풍수에 밝은 노비 목호룡이 구하였다.</ref> 과는 달리 친정 식구나 궁속 환관이 구한 것이 아니라 왕실 종친인 금천군 이지와 예조참판 이돈이 지관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니며 구하였다. 경기도 양주 인장리로 결정된 장씨의 묘는 숙종의 명으로 종친부 1품의 예<ref group="주">사방 100보의 규모로 경내에 농사와 목축을 금한다. 품계가 한 등씩 내려갈 수록 10보씩 감소된다. 문무관은 종친부와 비교해 10품씩 감하여 정1품은 90보, 6품은 40보로 한정되었으며 7품 이하는 6품과 같다. 왕실의 여인을 제외한 외명부 여성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ref> 로 단장되었다. 장씨의 장례 역시 여느 후궁의 장례처럼 3월장<ref group="주">세상을 떠날 달을 포함한 세 번째 달에 길일을 택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 짧게는 30일, 길게는 80여일이 장례기간이 되는데 숫자가 클 수록 상급이다. 4품 이상의 품계를 가진 이들의 장례이며 후궁, 왕자녀는 물론 왕세자 부부의 장례 또한 3월장으로 치루어진다. 1718년 3월 9일에 사망한 숙빈 최씨는 5월 12일에 장사됨으로써 정상적인 후궁의 장례인 3월장을 치렀다.</ref> 으로 치루어지지 않고 4월장으로 치루어졌는데, 왕과 왕후의 장례인 5월장보다 단지 하루가 부족한 1702년 1월 30일에 치루어졌다.<ref group="주">이 또한 후궁의 위, 왕후의 아래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왕세자의 생모인 탓에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와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도 3월장을 치렀던 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ref> 장례식 전날에 세자가 친림하였고, 수일 전부터 입관 당일까지 궁에서 식을 거행하였다.
1717년 12월, 장씨의 묘가 용맥(龍脈)은 있으나 혈(穴)이 없고 수법(水法)도 합당하지 못하여 완전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함일해의 상소가 올라왔다. 1718년, 숙종은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장리 묘의 천장(=이장)을 명하였다. 예조참의가 지사로 이름난 자 10여 명을 대동하여 1년 간 기내(畿內) 길지(吉地)를 간심한 끝에 가장 평가가 우수한 광주 진해촌으로 와병 중인 숙종이 직접 택점하였다. 1719년에 치루어진 천장식 역시 궁에서 주관하였으며 숙종이 왕세자 부부에게 망곡례를 명함으로써 노론의 극렬한 반발이 있었다.<ref group="주">인장리(仁章里)에서 영구(靈柩)가 발인(發靷)하여 진해촌(眞海村) 신산(新山)으로 향하였는데, 세자가 경현당(景賢堂)에서 망곡(望哭)하고, 세자빈(世子嬪)도 궐내(厥內)에서 망곡례(望哭禮)를 거행하였다.『조선왕조실록 숙종 45년 4월 5일 기사』당시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세자(경종)가 정사를 보던 경현당에서 망곡례를 하는 것을 맹비난하던 노론은 경현당은 대리청정 업무를 보는 곳으로 곧 법전(法殿)과 차이가 없는데 세자의 사친(희빈)을 위한 예절이 지나치다고 비판</ref> <ref group="주">이러한 숙종의 처사는 숙종의 사후에도 논란이 되어 영조시대에도 경종이 숙종의 적자이며 희빈 장씨가 숙종의 제2계비로 기록한 서적이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경종이 즉위한 후 유학 조중우는 숙종의 처사가 아들인 경종이 희빈 장씨를 추존하라는 은밀한 뜻이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왕조실록 경종즉위년 7월 21일 기사』 이에 반해 영조가 즉위한 후 노론은 숙종의 처사를 다시 거론하며 맹렬히 비난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영조1년 3월 25일 기사』</ref> 천장지 또한 초상 때와 마찬가지로 종친부 1품의 예장으로 단장되었으며 청룡(靑龍: 주산(主山)의 좌향(坐向)에서 본 좌측의 산맥)에 앞서 자리하고 있던 종친의 묘와 많은 민전도 모두 값을 치루어 옮기도록 하였다.
[[1701년]] 이후 [[노론]]에 의해 질투의 화신, 투기의 화신 또는 악의 화신으로 평가되어 왔으나, [[1910년]](융희 3년) [[대한제국]] 멸망 이후 [[인현왕후]]와의 애증관계의 희생양으로 현대에 와서는 사료의 다양성과 새로운 시각의 해석으로 [[남인]]과 [[서인]]의 권력다툼의 희생양 또는 [[남인]]이 미는 비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숙종실록 숙종13년 6월 16일 3번째 기사에 "당초에 후궁(後宮) 장씨(張氏)의 어미는 곧 조사석(趙師錫)의 처갓집 종이었는데 조사석이 젊었을 때에 사사로이 통했었고, 장가(張家)의 아내가 된 뒤에도 오히려 때때로 조사석의 집에 오갔었다."는 문장으로 인해 현대에는 장씨가 얼녀로 해석되기에 이르렀지만 이 기사의 내용은 숙종실록의 개정보수판인 숙종실록보궐정오 같은 날 기사에 "장(張: 희빈 장씨) 의 어미가 조사석의 처갓집 종이란 것은 전연 허황한 말이고, 사통(私通)했다는 말은 더욱 무리(無理)한 말이다."로 명확히 정정되어 있는 만큼 진실로 신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숙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당시에 실제로 공론된 내용이 아니라 [[조선 숙종|숙종]]이 사망한 후에 숙종실록이 편찬되면서 더해진 것으로, [[조선 숙종|숙종]]실록을 완성한 [[조선 영조|영조]] 때의 실록청 총재관이 [[민진원]]이었다는 사실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ref group="주">[[민진원]]은 [[인현왕후]]의 둘째 오빠로 희빈 장씨와 [[조선 경종|경종]]에 대한 원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과격한 발언 및 과장과 거짓말도 서슴치 않아 [[조선 영조|영조]] 초기에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숙종실록보궐정오는 [[민진원]]이 완성한 숙종실록의 내용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전면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개정판이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의 감시를 받으며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된 만큼 분량과 내용이 미진한게 한계이다.</ref> 승정원일기에도 장씨의 어미와 조사석의 통간 사이를 언급하거나 상징하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의 진실성은 차치하더라도 조선 시대의 신분법 상 희빈 장씨를 얼녀 출신 천민으로 계산하기에는 오차가 있다. 희빈 장씨의 생모인 윤씨는 첩이 아닌 엄연한 정실 부인인 계실이었으며, 남의 집 여종을 첩도 아닌 정처로 삼기엔 [[장형 (조선)|장형]]의 사회적 위치 및 조건이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ref group="주">남의 집 여종을 아내로 삼은 자를 비부(婢夫)라 하는데, 비부는 아내의 주인 집에 종속되어 그 집안의 대소사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식은 탄생한 즉시 주인집의 사유재산이 된다. 이러한 한계때문에 자신의 남종이 남의 집 여종과 혼인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여 노인이 되도록 혼인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며, 지극히 가난하여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양인 남성이 생계를 유지하고 대를 이을 목적으로 비부를 자청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실록 등에 기록된 강력 범죄 사건에 비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비부가 법적으로는 그 가문의 종이 아니기에 사례를 조건으로 주인의 범죄를 대리시켰거나 덮어씌운 결과인데 이는 비부의 사회적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f> 첩을 처로 만들 수 없는 조선의 국법<ref group="주">[[윤원형]]이 첩 [[정난정]]을 처로 만든 전례가 있어 첩을 처로 만드는 것이 흔한 일인 양 오해되고 있지만 [[윤원형]]이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사후에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던 공식적인 이유는 국법을 어기고 첩을 처로 만들었다는 죄목때문이었다. 조선 사회에서 첩실을 정실로 격상할 수 있는건 왕과 왕세자 뿐으로, 이 또한 1701년 이후로 금지되었다.</ref> 과 윤씨 소생 아들인 [[장희재 (조선)|장희재]]가 무과(武科)로 등용<ref>옥산부원군신도비 기록</ref> 되어 [[1680년]]에 내금위에 재직<ref>숙종실록 27년(1701 신사 / 청 강희(康熙) 40년) 10월 22일(을해) 3번째기사 中 동평군 이항의 공초내용</ref> 하였고 [[1683년]]에 좌포도청 부장에 재직<ref>숙종실록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12월 10일(경신) 4번째기사</ref> 하였던 점<ref group="주">선조16년 병조판서였던 [[이율곡|이이]]의 주청으로 납속을 낸 서얼을 허통하여 무과에 입시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숙종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청요직은 허락되지 않았으며 무과에 합격한 서얼은 관직은 받지 못한채 무기 발령대기 상태로 남거나 지방 군졸로 발령, 혹은 외적의 침입이 잦은 국경으로 발령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중인 역관의 얼자가 [[내금위]]에 재직하고 경내 좌포도청에 부장으로 재직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의 후궁이 된 건 1686년 12월이니 누이의 후광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ref>, [[1689년]] 11월 13일 윤씨를 당하관인 역관의 처로 언급한 윤덕준(尹德駿)의 상소내용<ref group="주">조선시대에는 처와 첩, 적서의 구분을 명확히 구분하여 언급하거나 기록하였다.</ref>, [[1698년]]에 사망한 윤씨가 남편 [[장형 (조선)|장형]]과 전처 제주 고씨의 옆에 나란히 매장된 것<ref group="주">첩은 가문의 묘산에 매장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특별히 매장되더라도 남편 부부의 무덤에서 떨어진 음지나 발치 아래에 묻어 정처와 확고한 차별을 두었다. 희빈 장씨는 1694년에 강봉되었으며 오빠 장희재가 [[노론]]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웠던데다가 왕세자인 아들 [[조선 경종|경종]]은 [[인현왕후]]에게 입적되어 [[노론]]이 이미 모자의 연이 끊겼다고 주장했던 만큼 만약 윤씨가 첩으로서 처와 동등하게 매장되었다면 당시 탄핵이 되지 않았을 리 없으며 희빈 장씨의 사후나 경종의 사후에도 반드시 탄핵이 있었어야 정상이다.</ref> 은 희빈 장씨가 낳은 아들이 원자가 되어서나 그녀가 왕비가 되어 [[조선 숙종|숙종]]이 특별히 장씨의 생모를 첩에서 처로 승격해주었을 가능성조차 극히 희박함을 증명한다. 이는 윤씨가 설사 여종 출신이었더라도 이미 면천한 후에 [[장형 (조선)|장형]]의 계실이 되어 장씨 남매를 낳았음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장씨 남매에게는 노비 종모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들의 신분은 아비를 따라 중인이 된다. 물론 윤씨가 애초에 종 출신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f group="주">종(奴婢)의 정의에는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조사석의 처인 권씨는 권문세가의 딸이고 윤씨는 역관의 딸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교류하였던 것을 신분의 위계 상 윤씨를 종으로 비유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식의 말장난은 [[민진원]]의 특기이기도 했다는 점이 유의사항이다.</ref>
- 배영수 . . . . 21회 일치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삼성 시절의 {{{#blue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사족으로 본인의 의사보다는 고참이였던 구대성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6/2010042601473.html|입김]]이 있었다고 한다.] 또 한때는 "'''초'''절정'''미'''소년'''배'''영수"에서 따온 '''CMB'''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半)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 왠지 모르게 순박해 보이는 외모에 초년생때는 영구와 비슷한 까까머리를 하고 다닌 데다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 말 그대로 '''敗'''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선동열|이 사람]] 때문이라는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그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깃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 보니 삼성 팬들에게는 이래 저래 아픈 손가락이라 부진한 성적에 비해 옹호를 매우 많이 받았'''었'''다.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참교육|영쑤]]'''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했던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기도 했다. 2006년 시즌엔 8승 9패로 비록 10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팔꿈치 부상을 가진 상태로 평균자책점 2.92(...).[* 2007년 [[윤석민(투수)|윤석민]], 2008~2009년 [[봉중근]], 2012년 [[류현진]], 2015~2016년 [[메릴 켈리]]의 [[윤석민상|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06년 득점지원율 0.97) 무려 1점도 되지 않는다!][* 뻥뻥 터지던 삼성의 타선은 이상하게도 배영수가 등판하던 날엔 버로우탔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그런다는 거. 그러나 2013년 드디어 타선지원을 받게 되는데 이번에는 평균자책점이...] 심지어 후술한 것 처럼 2006년에는 정규시즌 내내 팔꿈치 통증을 달고 뛴 선수의 기록이 저 정도라니... 아니, 이게 사람인가?
2005년에는 정규시즌 동안 11승을 올리면서 147개의 탈삼진으로 탈삼진왕에 오른적이 있다. 이 활약으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제1회 WBC]]의 국가대표 A팀에 승선하여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며, 특히 1라운드 A조 3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6회말 1사 후 봉중근을 구원하여 올라와 ⅔이닝을 잘 소화한 다음 7회말 일본의 공격 때 선두타자였던 [[스즈키 이치로|이치로]]를 초구부터 141km/h짜리 속구를 엉덩이 쪽으로 던져 맞춘 것이 유명해져 [[https://youtu.be/Gw8MEjLD3iM|배열사]]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선발진 복귀 이 후 4선발 정도의 역할로써 다소 퐁당퐁당하는 피칭을 보여주다가, 7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타자)|김상수]]가 5회에만 악송구와 쉬운 땅볼타구를 잡지 못하는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yujwfjfTcX4|'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 날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3실점(1자책)의 투구를 보이며 시즌 5승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전의 두산전 투구보다 훨씬 양호한 내용을 보여주었기에 남은 시즌의 등판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후 5경기의 선발 등판에서 1번의 ND와 4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는데, 8월 11일 사직 롯데전의 3이닝 7실점을 제외하면 선발로써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지만, 유난히 배영수의 선발 등판 때 상대팀 역시 에이스를 출격시키면서 타선의 지원을 --여름삼성 치고는--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 패를 쌓게 된 부분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이후 배영수를 다시 계투로써 활용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고, 8월 22일 무등에서 열린 기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차우찬이 3⅓이닝 만에 6사사구를 남발하며 투구수가 폭발하자 다음 투수로 구원등판해 2⅔이닝 동안 4탈삼진 무실점 투구를 하며 시즌 6승을 챙겼다. 특히 전광판에 시속 146km까지 찍히기도 했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2010 시즌을 끝으로 [[FA 제도|FA]]가 되는데, [[한신 타이거즈]]에서 배영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으나, 한창 좋았던 시절의 배영수만 알고 있는 한신 스카우트 말이나 당시 배영수의 상태를 보면 그저 찌라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99%. 그리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터가 배영수의 피칭을 보기도 했다. 과거 배영수의 가능성을 보고 이런 관심을 보이는 듯.
마침내 결정된 곳은 야쿠르트로, 등번호까지 결정되었을 정도로 계약이 거의 다 되었는데 메디컬 테스트 결과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계약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원래 배영수는 선천적인 이유로 간 수치가 높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2006년 시즌끝나고 수술을 미룬것.] 이걸 계기로 배영수는 'B형수', 'B영수'란 별명을 얻었다. 안티들은 배영수가 대구출신이고 간염 보균자다 보니 상어를 염장하여 구운 경북 대구 음식인 돔배기에 빗대 '돔배영수'(...)로 부르기도 한다.[* 기존 위키는 돔배기가 상어를 삭힌 경상도 음식이라 하였으나 주로 경북 대구 지역서 염장한 상어고기를 구워 주로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다. 돔배기는 경북 영천이 유명하다.]
준수한 5선발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 [[FA 제도|FA]] 협상장에서 삼성으로부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40018|최초 2년, 최종 2+2년을 제시받고 우선협상이 결렬됐다.]] 무옵션에 바로 가치를 보장받은 동갑 윤성환이나 백업인 '''[[조동찬]]보다도 못한''' 대우에 실망하고 "기회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FA시장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던 팬들은 지역 신문에 배영수를 위한 광고를 걸기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295773&date=20141204&page=1|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9&article_id=0002661070|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760892|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철우 기자를 통해 "30경기"도 못나왔으니 홀대받았다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삼성 프론트의 삽질여부와 별개로 11년, 13년, 14년 4점대 평자를 찍었는데도 묵묵히 기다려 준 코칭스태프와 팬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렸고 사이영수상까지 만들었던 삼갤은 배영수의 이름이 언급되면 반드시 30경기 이야기를 추가로 붙히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이 후 정철우는 본인이 경솔한 기사를 썼던 것을 사과한다며 애플 베이스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네이버에 연재하기도 했는데 이 애플이 아무리 봐도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그 [[애플(기업)|애플]]을 떠올리게 해서 사과는 커녕 의도적으로 비꼬는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16시즌을 통째로 날린 탓에 FA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5천만원 깎인 연 5억에 새로 계약을 체결했다. 본인은 더 많은 금액 삭감을 예상해 오히려 감사하단 발언을 하기도 했다.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14년초를 기준으로 7회 우승 중 6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 위에 기술된 부상과 재활 과정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걸었던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경필]]이 배영수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까방권]]을 부여해 주었으며, 이 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으며 갈수록 배영수를 금지어 취급 하는 경우가 많은 편. 커뮤니티별로 살펴보면 [[삼갤]]에서는 그 존재 자체로 금지어 혹은 조롱거리 취급을 당하며 사자후는 04년 한국시리즈를 지켜본 일부 팬들이 배영수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경북고 진골이 삼성을 배신하고 갔다는 점 때문에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호적인 곳은 [[사사방]]과 [[엠팍]]. 사사방은 기본적으로 선수보다는 구단 프론트(+[[류중일]])와 [[김성근]]을 더 싫어 하기 때문에 배영수보다는 삼성 프론트(+류중일)이나 김성근을 조롱하는 용도로 배영수를 언급하면 몰라도 배영수 자체를 욕하는 경우는 그 휴지통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편. 엠팍은 쓸데없는 키배거리를 만들기 싫어서인지 일부 삼성팬이나 한화팬이 삼성시절 배영수를 언급하거나 혹은 삼성팬이 한화로 간 이 후의 배영수를 조롱하는 글을 남겨도 서로 그러려니 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배영수가 이적 후 대구야구장에 처음으로 왔을 땐 그래도 삼성팬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남기기도 했으며, [[라팍]]에서 열렸던 2017년 올스타전 때에는 3루쪽을 향해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고 이승엽한테 2루타를 맞아주었~~다. 또한 2017년 이승엽의 은퇴 투어 때는 이승엽/다른 삼성 출신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와 삼갤에서도 동정여론이 생겼다. 오히려 올스타전 때에는 팬들이 [[최형우|누구]]와는 다르게 성대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금지어 자리도 '''[[최형우|지역차별 운운하며 팬들을 엿먹이고 떠난 후 입은 입대로 털면서 사진찍을 때 코빼기도 안 비치셨던 모 선수]]'''에게 옮겨간 상태.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빠른 1975년생), [[박명환]](1977년생)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태(1982)|김성태]]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이젠 데뷔 18년차, 나이도 36세라 노장 맞다. 자신의 전성기가 지난 201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이한 [[윤성환]]과 동갑이다. 데뷔는 고졸인 배영수가 대졸인 윤성환보다 4년 빠르지만.
* 배영수 아줌마,[*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 원래는 [[김실]]의 팬이어서 실이아줌마라고도 불렸었다.] ~~직관팬들은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예전에는 [[김실]]을 응원하셨으며, 이 후에는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했다고 한다. 삼성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388502|#]]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이 [[차르봄바|핵폭발]] 하면서 패배... 이 분은 배영수 이적 후 [[김상수(타자)|김상수]]로 갈아타셨다고 한다. ~~이젠 상수아지매~~
- 윤종신 . . . . 21회 일치
||<bgcolor=#201e1f> {{{#FFFFFF '''배우자'''}}} ||<(> [* 2015년 현재는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여군 특집에 출연해서 좀 유명해졌지만, 예전에 [[윔블던]] 주니어 부분 결승에 진출한 적이 있었던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테니스 선수였다.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결승전 상대 선수는 여자 테니스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였던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2005년에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결혼했다. 2015년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종신보다 키가 크다.] ||
연세대 원주캠퍼스 가요제에서 금상으로 입상한 이후, 과 동기로부터 [[정석원(음악인)|정석원]]을 소개받았다. 정석원은 친구의 아파트에서 윤종신의 노래를 듣고 [[015B]]의 객원보컬로 픽업했다. 이 때 [[장호일]]이 반대했다고 한다. 이유는 비주얼. 그래도 보컬이 밴드의 얼굴인데... 가창력만으로 승부한 데뷔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1990년]] [[7월 15일]]''', [[015B]]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면서 그도 데뷔하게 된다.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신승훈]](11월 1일), [[윤상(가수)|윤상]](11월 30일)보다도 데뷔 날짜가 빨랐다. 종종 "나 [[노태우]] 대통령 때 데뷔했어! 심지어 [[걸프전]]보다도 전이야!"라고 하기도 했다.[* 종전에도 윤종신이 윤상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드립을 쳤을 정도로 미는 개그 중 하나였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은 1988년 2월 25일, 윤종신 데뷔는 1990년 7월 15일, 걸프전 발발 1990년 8월 2일이다.]
윤종신은 015B 시절 정석원을 만나면서 작사 작곡에 눈이 떴다고 술회했다. 화성학을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최초로 스스로 작사/작곡/프로듀싱한 4집 타이틀곡 '부디'를 처음 들은 정원영 밴드의 정원영이 "윤종신 이 자식 뭐하는 놈이지..."라고 농담으로 디스하기도 했다고...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hamonde&logNo=140120884879&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출처]]
2009년 [[무한도전]]의 '강변대로 듀엣 가요제'에 '영계백숙'을 작사/작곡하기 했다. 그 기세로 또 하나의 푸드송 "막걸리나"를 내놓았다(국순당이 부탁해서 만든 막걸리 로고송) 2013년에는 망고 쉐이크라는 노래도 냈다. [* 다만 팥빙수와는 다르게 영계백숙이나 막걸리나, 망고 쉐이크는 레시피를 다루진 않았다.] 2014년에는 '눈송이 빙수', 2015년에는 '쿠바 샌드위치'로 영계백숙에 이은 두번째 핫 푸드 송도 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을 못하지만, [[박경림]]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던 곡 '착각의 늪'이 수록된 앨범 '박고테 프로젝트'에 '안녕 핫바'라는 푸드송을 수록하기도 했다. 당시엔 본격적인 예능인이 되기 전 시절이라 방송에서도 진지하게 작사작곡을 하는 모습만 비춰졌다.
국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발음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편으로, 한국어에 서툴렀던 [[박정현]]이 첫 노래 작업을 윤종신과 함께했고 하도 교정받아서 그 때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지금도 감사하다고 한다. [[박진영]]은 발음을 또박또박 하는 것보다 흘리는 걸 좋아하는데, 이걸 가지고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출연진과 나머지 MC들이 윤종신을 디스하기도 했다. 이 발음에 대해서는 [[2014년]] [[4월 9일]]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정준일]]이 말한 [[http://www.youtube.com/watch?v=ge2SVvEJHxU|"종신이형 창법은 중국 노래 같다."]]라는 내용을 보면 된다. '''머'''나~ '''머'''언~ '''길'''을~ '''떠'''나는~
2013 월간 윤종신 Repair 프로젝트 9월호에서 부른 '''굿바이'''[* 원래는 윤종신 4집 공존 테이프 B면의 첫 곡-음반 상으로 카운트하면 6번 트랙이다.-으로, 장혜진과 듀엣했으며 가요계 숨은 듀엣 명곡으로 꼽힌다. 박주연과 정석원, 그야말로 윤종신의 사람들-각자 오래전 그날의 작사가와 윤종신이 가수로 데뷔하는데 도움을 준 작곡가.-이 모여서 명곡을 만들어 낸 셈이다.]에서 부드러운 창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군 복무 중 [[하림(가수)|하림]]이라는 인물을 찾아 내기도 했으나, 정작 [[전역]]한 후에는 음악 시장이 완전히 재편되어 있었다. 1999년 1월 17일에 발표한 복귀 앨범인 7집 '[[後半|후반]]'(TITLE : [[배웅(윤종신)|배웅]])은 평가가 괜찮았으나 이전에 거두었던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만만해하며 거액을 투자하여 만들었는데, 흥행에 실패했다. 베스트앨범 격인 6집이 29만 장 팔렸는데 7집이 12만 장 팔렸으니 판매량이 거의 '''3분의 1'''로 준 것.
후반부 곡들중 타이틀곡인 '[[Annie]]'의 주인공이 [[이영애]]가 아니냐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당시 둘은 SBS '아주 특별한 만남' 공동MC였다. 2008년 명랑히어로에서 장항준 감독이 애니가 '눈이 크고 얌전하고 우아한 한류스타'라며 이영애와의 열애설을 폭로. 당시 윤종신은 애니는 가상인물이라고 해명했다.] 둘 다 결혼함으로 인해 진실은 영원히 미궁 속으로...
2012년 10월에 발매된 [[손가인]]의 솔로 미니 앨범 2집 '[[손가인#s-4.2|Talk About S.]]'에 '시선'이란 곡으로 참여했다. 작사/작곡은 윤종신 본인이 하고 편곡만 POSTINO가 담당했다. 무려 가인과의 '''듀엣곡'''으로 가사가 비범하다. 사실 이 앨범 전체가 [[검열삭제|그런 컨셉]]이긴 하지만 사실 윤종신이 쓴 곡들치고 이런 느낌의 곡을 찾긴 힘든 편이다. [[손가인]]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히기로 윤종신 선배님에게 곡을 받는다고 했을 때 발라드를 기대하고 갔는데 점점 부르다보니 가사가 이상했다고 한다. 결국 듀엣곡이 음흉해졌다고 녹음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015B 멤버들의 어머니가 [[2013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2014년에 만들었던 곡인데 발표를 하고 있지 않다가, 2017년에 새롭게 작업을 한 곡이다. 곡이 곡인지라 심금을 울리는 노래 내용과 가사가 일품이다. 실제로 10월 27일, 015B 'Homecoming'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참가한 윤종신이 이 노래를 부르다가 울기도 했다. 윤종신의 요청으로 앵콜에서 다시 불렀으나.... 또 울었다. 멤버들의 어머니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이기도 하고 본인의 어머니도 요양원에 계시는만큼 감정이입이 된듯하다. 유투브에 직캠영상이 떠있으니 관심있는 위키러들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실제로 김구라도 괴리감이나 이미지에 대해서 언급할때 옆에서 "굳이 말하는 재능도 있는데 그걸 감춰야하나??"라고 묻기도했고, 박완규가 라디오스타에 나왔을때도 본인은 예능이 좋아서 하는거라고 얘기했다.
패밀리가 떴다 시즌 1이 마감하면서 같이 하차. PD와 접촉하여 시즌 2를 노렸으나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려던 방침에 맞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애는 늘었는데 프로그램은 줄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예능선수촌의 경우 초기에는 최양락의 레전드급 토크로 흥하였으나 결국 놀러와를 이기지 못하고 그 해 가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 뒤 SBS는 월요예능을 화요일로 옮겨 [[강심장]]으로 재기한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는 [[종편]]인 [[JTBC]]의 [[속사정쌀롱]]의 진행도 맡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종편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호평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의 [[사망]] 여파로 프로그램은 [[조기종영]] 크리...
[[슈퍼스타K]] 1, 2, 3기에 걸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가끔 개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설득력 있는 평을 내린데다가 도전자들을 챙겨주고 가수로서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준 덕분에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 중 비교적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슈퍼스타K5]]로 복귀했다.그리고 하차 건으로 [[김구라]]에게 슈파스타K의 [[장성택]]이라며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
*윤종신을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은 주로 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인 줄 알지만 데뷔했을 때나 지금이나 본업은 가수. 사실 예전에는 거의 가수 활동만 했지만, '''군대에 갔다 온 후'''에 예능이나 시트콤 등에도 출연하고, 영화음악도 꽤 하게 되면서[* 그리고 자기가 영화음악을 만든 그 영화에 출연을 하기도 한다.] 개인앨범 발매 주기가 상당히 늦어져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듯하다. 그래서 두 자리수 앨범을 낸 가수임에도 '''개그맨이 장난으로 앨범을 내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는 인간들이 있다.[* 실제로 나이가 어려서 윤종신을 TV로만 접한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아직도 윤종신의 본업이 개그맨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슈퍼스타K나 월간 윤종신같이 음악적 활동으로도 대중적인 어필을 한 후엔 많이 줄었들긴 했다.][* [[https://mobile.twitter.com/MelodyMonthly/status/911445799606697985?p=v|윤종신의 반응]] ]
*정치성향은 중도 혹은 진보에 가까운 듯하다. 2008년 명랑 히어로 출연 당시에는 [[이경규]]와 함께 광우병 촛불시위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김구라가 이를 물고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2016년 박-최 국정농단 사태 때 '용기를 내어' 가족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이때의 감상을 바탕으로 2016년 12월 월간 윤종신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작사 작곡했다. 마침 그 곡의 가사가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 소개되고, 이 인연으로 뉴스룸에 인터뷰로 출연하기도 했다.
*[[온누리교회]]에 다니는 듯. 그런데 2017년 월정사에서 공연도 했고, 이에 대해서 좋은 평을 남기기도 해서, 배타적인 신앙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 한 때 [[포유류]]만이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을 믿고 있었던 듯 하다. 이를 [[강호동]]에게 전파했고 1박 2일에서 이 떡밥으로 논쟁이 벌어진 끝에 강호동이 짜장면을 못 먹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강호동은 본래 윤종신이 엄청나게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방송에서 어려운 문제에서 윤종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 임수정(탤런트) . . . . 21회 일치
그러다가 2000년 1월 '[[좋은 친구들]]'의 '흑과 백' 코너에 첫 공중파 TV 출연을 하게 된다.[* 참고로 이게 그녀의 유일하게 나온 TV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건 당시 유행하던 [[테마 게임]]류의 미니 드라마라서 예능이라하기엔 미묘하다.] 한 드라마에 캐스팅이 유력했다가(기사로까지 나왔었다.) 출연이 불발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장화, 홍련]]》 에 캐스팅이 된 것은 그녀의 연기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가 된 일이었다.(사실상 마지막 오디션이기도 했다.) 여동생 역으로 나온 [[문근영]]과 자매연기를 한 그녀는, 여동생에 대한 집착으로 정신적으로 혼란한 언니의 연기를 보여 주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여름에 개봉되어 국내 공포영화 중 최다관객 기록.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03년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선 심사위원 만장일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간 콩라인에 떠돌다가 청룡영화상에서 결국 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드라마는 '미사폐인'을 만들 정도로 전국구 인기였고 [[소지섭]]과의 애절한 커플 연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다만 [[동안]] 탓인지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던 탓이었는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처음 본 어르신들은 그녀를 보고 '''"[[중학생]]이 연기 참 잘하네."'''라고 하기도하고 드라마에 '''술 먹는 장면'''이 나오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연기대상 땐 '''"왜 아역상 후보에 없냐"'''고 놀리기도.(...) 착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동안인 것도 동안이지만 극중에서 [[소지섭]]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고 목소리도 영락없는 어린애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목소리는 실제 임수정 [[목소리]]와 전혀 다르다.) 그 때문인지 중국과 태국 더빙판의 경우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어린이]] 캐릭터 스타일의 목소리로 더빙되었다.(...) 참고로 이 작품이 임수정 '''최초의 성인 역.'''(...)
드라마 종영 후 [[안양시]]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는데 전국각지에서 온 팬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결국에는 안전 문제로 취소되기도 했다. 무튼 2004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네티즌상, 인기상,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며 2004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장화, 홍련》이 연기자 임수정을 만들었다면,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대중적 스타인 임수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반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태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남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태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남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예능은 아니지만 2010년 12월 [[라디오]] 방송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좋아 라디오 고정 출연하는게 어떻냐고 했을 정도. ~~이왕에 고정출연 좀 따내지.~~ 그리고 2012년 10월, MBC 라디오 '성시경의 음악도시' 에 일주일간 임시 DJ를 맡기도 했다. 평은 좋은 편이어서 다음 개편 때 프로그램 하나 맡아 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화도 오갔다. [* 아쉽게도 내 아내의 모든것의 연정인처럼 통통튀는 목소리나 투덜이가 아닌, 평소의 진중하고 진한 목소리로 1주일간 놀다가 갔다. ;; 초반에 신청곡 바이브의 노래를 언급하다가 5번정도 말이 꼬여서 잔실수를 했고, 임수정 갤러리에서는 바이브CD조공으로 화답했다.] 1주일간의 임시 DJ 활동 중 마지막 곡은 본인이 부른 제비꽃 이었고, DJ맛에 푹 빠졌는지 2013년 개인 팬미팅에서도 DJ식으로 본인이 진행하며 라디오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예능보다는 라디오 고정출연이 차라리 빠를 듯.
사실 위에 있는 인연들 대부분은 과거 신인 시절 소속사 선후배 동료 관계였고, 본인도 어느 정도 선배의 위치에 있고 소속사 이전 후에는 그 전과 달리 이들과 활발한 교류는 없는 듯. 오히려 의외로 [[구혜선]][* 위에도 언급된 애용처럼 영화 감독을 하고 싶다는 인터뷰에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로 임수정을 꼽았고 임수정 본인도 인터뷰에서 구혜선과 알고 지낸다고 말했다.]과 [[산다라박]][* 김종욱 찾기 VIP 시사회 때 왔고 팬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가 산다라박이 [[아이스버킷 챌린지]] 때 다음 지목 대상으로 임수정을 호명했고 임수정은 그걸 그대로 이행했다.], [[서현(소녀시대)|서현]][* 시간이탈자 VIP 시사회 때 임수정의 초대로 왔다고 말했다. 그 뒤 서현의 뮤지컬에 임수정이 관람을 오면서 서로의 인스타그램에서 대기실 셀카 사진을 올리며 친분을 다시 드러내기도.] 등 배우가 아닌 아이돌 기획사 소속 연예인과의 친분이 더 드러나고 있다.
* 학력위조? : 처음에 그녀는 수원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인터넷에 알려졌으나, 이는 학교4에 나온 다른 출연진의 프로필이 섞여생긴 해프닝이다. 2007년 학력위조 파문으로 연예인들의 학력위조 사례도 알려졌는데 한 언론매체는 그녀가 호서전문대를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프로필상 고졸로 한것은 학력위조라고 주장했다. 종종 그녀가 호서전문대에 다녔다는 주장이 나오긴 했었다. 2000년 기사엔 호서[[전산원]](당시 이름) 1학년 휴학 중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직업전문학교는 교육기관일뿐 대학교와 달리 취급한다.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는 1998년 학점은행제 시범운영 기관지정이 되었다. 현재는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할때 80학점 이상 이수하면 전문학사 학위가 주어져서 전문대 졸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만 졸업했을때의 경우다. 재학 중에는 어떤 학력도 인정이 되자 않는다. 또한 졸업을 한게 아니기 때문에 학력에 기재할 필요가 없었고, 직업전문학교는 '중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치원이 아닌 미술학원을 다녀도 유치원을 다닌것과 같이 취급 받았다. 유치원과 같은 교육 어쩌면 미술에 대해선 더 자세히 교육을 받았다. 또한 똑같이 졸업식도 하고 유치원과 다를바 없다. 하지만 유치원은 졸업이라고 말하고 기재할수 있지만 미술학원 졸업이라고 쓰지 않는, 그와 다를바 없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학교는 대학이 아닌 교육기관이고 만약 그녀가 전문대 중퇴라고 했으면 그것이야말로 학력위조다.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는 2년제 전문대학 과정을 중심으로 4년제 학사과정까지 개설했으며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하면 학위를 인정해준다. 호서전산원에 대한 언급이 처음부터 속이고 없었던 것도 아니며 처음엔 호서전산원 1학년 휴학 중이라고 밝혔으나 학력에 표기하기엔 당시 위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고졸로 표기된게 아닌가 싶다. 물론 현재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는 졸업했을시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사 학위가 주어져서 전문대 졸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결국 학력위조인지 아닌지는 판단에 맡긴다.
>오디션을 좋아한다.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오디션우먼이라는 별명에 대해 묻자)
>성인이 된 직후 기억이 있지만 내 경험이나 느낌은 달콤하지 않았다. 행복했지만 아파하기도 했고 결국엔 슬픈 기억이 됐다. 임수정의 경험엔 슬픈 느낌이 그대로지만 민아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했다. ([[첫사랑]]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나는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에요. 그 안에는 이기적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겠죠. 팬들을 위해 나를 어디까지 보여주는 것이 적정선일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물론 배우는 연기로 말해야죠.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것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인 것 같아요. 팬들이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밖에서 나를 보고싶어하는 마음, 그건 '우리가 널 사랑해주는데 이정도도 못해줘?' 라는 식의 요구가 아니거든요. 좋아하니까 가까이서 바라보고 싶고, 알고 싶은거죠. 그 마음을 아니까 다른 사람들이 쇼프로그램에도 나가고 팬미팅도 하는 걸 거에요. 그런데 역시나 이런 면에서도 내가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다 이해하면서도 '그런것까지 보여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게 연기 외에 다른 모습들을 보여줄 능력이 있다면 아마 나도 남들처럼 할 거에요. 팬미팅도 하고 셀프 카메라도 찍고... 근데 내 능력이 그게 안 돼요. 재밌는 얘기도 못하고, 쇼프로그램 분위기도 잘 맞추지 못하고. 그러니까 그나마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연기로 그들에게 보답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게 나를 합리화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 '장화 홍련' 오디션을 볼 때 ‘살면서 적개심과 죄의식을 느껴본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우물쭈물하지 않고 명확하고도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들려준 사람은 임수정 하나였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좋았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자기 세계가 명확해 보였다는 뜻이다. 연기도 잘하고 있다. 연출이 안따라준다고 생각될 만큼….
> 임수정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처음 만나봤을 때는 굉장히 맑고 투명하고 순수하고 그러실 줄만 알았는데 다섯마디(?) 대사를 더 해보니깐 정말로, 굉장히 여성스러우시구요. 그리고 연기도 잘하시고.. 임수정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제가 많이 괴롭혔어요. 많이 물어보고... 그럴 때마다 친누나처럼 잘해주세요.
[[디시인사이드]]의 [[임수정 갤러리]] 등지에서는 말끝을 "~정"으로 끝내는 "임수정체"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임수정 갤러리에선 [[수정]] 버튼이 '''임수정 '''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임수정 갤러리는 '''디씨내 몇 안되는 청정구역''' 중 하나. 여기서는 임수정을 '임배우','[[크리스탈]]','클스탈','클쓰'로 지칭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서 위에서 말한 동명이인의 태권도 선수 임수정이 금메달을 따자 임수정 갤러리가 털렸는데 정작 별 반응도 안하고 고정닉 한 사람이 '''"오셨어요? 갤러리 글 없는데 글 많이 쓰세요"''' 이런 반응을 보이자 털리기는 그쳐버렸다.(...)
장화 홍련 촬영 때 촬영장을 찾아온 이현승 감독이 반말을 하자 서늘한 표정으로 쳐다봤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이현승 감독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화보에 참여한걸 봐선 딱히 잘못 보이거나 하지 않는듯. 마찬가지로 장화 홍련 촬영 때 연기가 잘 안되자 속상하며 밤마다 방에서 혼자 울었는데 여자 스탭들이 그걸 모르고 귀신소리라고 오인하여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대학 진학은 하지 않았지만 싸이더스에 소속되었을 당시 [[영어]]를 종종 공부해서 행사장에서 [[나카타 히데토시]]를 비롯한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미안하다 사랑한다 1화를 보면 영어 배운 지 얼마 안 된 어린이가 하는 수준으로 영어를 말한다.(...) 태국 단편 영화에선 그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영어를 길게 말하긴 하고 은밀한 유혹에선 영어 대사도 길게 하고 [[광동어]] 대사도 하는데 흥행작이 아니라서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흥행작인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말하는 일본어 대사도 어색하긴 하다.~~
새미 살라망카라는 콜롬비아 출신의 팬이 그녀를 기리는 [[시(문학)|시]]를 짓기도 했다.
- 유승민(정치인) . . . . 18회 일치
[[박근혜]]와는 2005년 1월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으며, 같은 해 10월까지 10개월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에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원조 [[친박]]으로 불리기도 했다.
심지어 이로 인해 MBC에 미운털이 박혀, 그를 향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62|노조파업 지지했던 유승민에 대한 MBC의 꼼꼼한 뒤끝과 복수]]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영상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유승민은 [[경제학]] 박사 출신의 경제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고, 특히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으로도 재직했다. 당시 경선 상대였던 황진하 의원(육군 중장출신)과 맞붙을 당시 '''"병장이 장군을 이겼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국방위원회]]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위원회 같지만, 19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 활동을 했던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첫 번째로 지역구 예산을 챙겨주기 어려우며, 두 번째로 완전하지 못한 민군통제원칙에 인한 제약, 마지막으로 피감기관이 적고 언론 노출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비인기 위원회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후반기에는 국회 정보위원도 겸임하였고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2013년에는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위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전 세계에서 빌딩을 위해 활주로를 조정한 사례가 있나? 라는 질문에 이계훈 총장이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자 유승민 의원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공군에서 대만의 101빌딩과 송산공항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활주로를 튼 게 아니고 항로 변경을 한 것이다. 그 항로 밑에 육군 부대가 있었는데 보안문제 때문에 군부대를 이전했다''' 라고 팩트폭격을 시전하여 총장을 데꿀멍 시키기도.
경제, 국방, 외교통상의 삼박자를 고루 거친 탓에 각 분야에서 웬만한 전문가급 식견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그 때문인지 국방정책 관련으로도 주목할 만한 주장을 간간이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모 신문사에서 매년 평가하는 '국감 스코어보드'에서 유승민 의원은 항상 최상위권에 등재되어 유승민 의원의 국방관련 식견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국방위원장을 지낸 후 국회 운영위원장으로 옮기기 전 잠시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청와대 얼라들' 발언으로 외교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질타하였다. 또한 "'왜 사드를 배치하는데 [[중국]]이 난리냐"'며 사드의 국내도입에대해 강경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한미 전작권 재협상을 대선공약 파기라고 인정하며 "박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으로 [[친박]] 세력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약 9개월 남짓한 외교통일위원회 활동이였지만 유승민 의원은 NGO 국감모니터단 선정 우수국감의원, 그리고 경실련에서 선정한 외통위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해군|해군]]력 강화에 대체로 호의적이며, 2012년 예산안에 해군력 강화를 위한 방사청 연구 용역 발주를 주도했다.[* 이 연구에서 3개 기동전단 체제의 기동함대 건설안이 제시되었다.] 해군의 KDX-3[[이지스함]] 3척 추가 건조가 결정되기도 전에, 국방위 재량으로 관련사업 연구를 위한 착수금 명목의 예산을 배정한 적도 있었을 정도. 또한 그 이후에도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에게도 꾸준히 이지스함 조기전력화 관련 소요를 제기하였다. [[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5070116257628062|방사청, 이지스함 의지 없나? - 유승민 의원]]
이러한 국방과 안보관련 행적 이외에도 군 의문사 미제사건 해결과 군 전사자 유족 위로 등 내적인 분야로도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추진했다. 국방위 간사시절 군 의문사특위 활동을 연장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위원장시절 군 의문사 유족 간담회, 관련 법안 제출을 여,야당 가리지 않고 함께 실시했다. 또한 12.12반란 사태 당시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의 명예회복도 추진했는데, 17대와 18대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명예회복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보국훈장 추서와 동상 건립이 이루어졌다. 훗날 대선에 나가면서 '''아예 대선공약으로 군 의문사문제 해결을 내걸기도 했다.'''
사실 그의 신념인 [[공화주의]] 자체가, [[사민주의]]와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인 사상이다. 보수성향 의원 중에서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왼쪽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색깔 때문에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진정한 보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은 긍정적으로 평했고, 보수 논객인 [[전원책]]은 유승민은 좌파라고 하기도 했다. 2017년 2월 2일 썰전 방영본에 의하면, jtbc 신년 토론 이후에 [[심상정]]으로 부터 "[[정의당]]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와도 자리없다]]"는 농담 문자를 유승민이 받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나라당]] 시절 소장파 정치인들의 리더 역할을 했던 [[권영진(정치인)|권영진]], [[남경필]], [[원희룡]] 등이 각각 대구시장, 경기도지사, 제주도지사로 가게 되면서 중앙정치로 멀어짐과 때를 같이하여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상징성 있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좌우 둘 중 양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김부겸]], [[박지원(1942)|박지원]], [[노회찬]] 등 [[진보]]성향인 [[정치인]]도 높게 평가할정도. 다만 기존의 보수에 대해 '낡고 부패했으며 기득권 편만 들어서 미래가 없다'고 비판하는 한편 진보에 대해서는 '나라의 곳간이 무한한 것처럼 말하고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비판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두 진영 모두에게 비판받기도 한다.
>저는 이 연설을 쓰면서,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 공약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저희 새누리당의 공약이었습니다. 문제는 134조 5,000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반성합니다. (중략)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 2,000억 원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은 국민 앞에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세금과 복지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국민과 함께 우리 모두가 미래의 선택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15년 2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후, 2개월 만의 15년 4월 첫 원내대표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한 이력이 있고, 동시에 양극화 문제 해결, 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해 중부담-중복지 체제를 확립해야 하며, 그를 위해 보편적인 조세 형평성 3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 그리고 소득과 자산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보편적인 원칙까지 같이 고려하면서 세금에 대한 합의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자와 대기업은 그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세금을 떳떳하게 더 내고 더 존경받는 선진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세 형평성이 확보되어야만 중산층에 대한 증세도 논의가 가능해질 것입니다."(해당 연설 내용 中)]
이 원내대표 연설문은 당시 여의도에서 '다시보기'열풍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파격적이였고, 당시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2016년 국회의원 출마선언을 했던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이 연설문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언론인 출신인데 제정신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다.
* 자신을 [[유시민|유''''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삼국지)|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음에서도 차이가 있다. ~~성향도 [[친노]]와 [[비박#s-4]], 진보와 보수로 극명하게 다르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승민은 [[빠른생일|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 유시민이 JTBC 신년토론에서 말하면서 실제로는 깔 거 다 깠다~~[*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식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시민의 정치적 대부인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였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
- 김윤아(1974) . . . . 17회 일치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록밴드]] '''[[자우림]]'''의 [[보컬리스트]].[* 공연이나 앨범에서 키보드와 기타를 맡는 경우도 있다.] 솔로 [[여자 가수]]. 별명 중 하나로 '우림 언니'가 있다. [[자우림]]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이름이 '자우림'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다. [[SNL 코리아]] 시즌4 32회 자우림 편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ETtn2ZgUV58&feature=youtu.be&t=2m27s|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두성]]에 [[비음]]을 약간 섞어 사용한다. [[중성]]에서 [[가성]]으로 넘어가는 소위 '꺾기' 창법 역시 자주 사용한다.[* 어렸을 때 [[요들송]]을 배웠던 적이 있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 꺾기를 매우 쉽게 사용한다고 한다.] 벨칸토 식 성악창법과 락 창법도 사용한다. [[비성]] 창법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지만 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진성으로 부르는 곡도 많다. '''곡마다, 아니 곡 안에서도 창법을 계속 바꿀 수 있는[* 곡 중간에 창법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 프로급 보컬들은 최소한 성대접촉은 조절해 창법을 바꿔가며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해야 노래의 강약조절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들은 김윤아와 달리 일반인들이 직감적으로 느낄 정도로 크게 변화시키지를 않는다. 창법변화를 크게주다가 잘못하면 창법을 변화하는 중간중간에 이질감때문에 곡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때문. 이렇기때문에 김윤아는 서로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창법을 조화시키며 노래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한다고 인정 받는다. 또한 김윤아는 그 창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색깔을 드러내는, 즉 온전한 자기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창법변화를 주는 것은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라서 호불호가 있고, 그러다보니 표현이 작위적이라고 말하거나 자의식과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쨋건 저런 김윤아식 보컬스타일은 유니크하며 인정받을만 한 것임이 틀림없다.] 드문 보컬리스트.''' 기본적으로는 락 보컬리스트이지만 리듬감을 강조하는 R&B나 [[블루스]] 기반의 노래도 꽤 많다. 예컨대 '나비' 같은 곡들.
앞에서 언급한 엄한 가정교육 때문인지 어린시절에 대해 그닥 좋은 기억은 없는 듯 하다. 스스로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항상 집안에 죽음이있었기 때문에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원래는 아동 심리 치료사가 되고 싶었으며 그 때문에 [[심리학과]]에 진학했다고.
2006년 6월 13일 2세 아래의 [[치과의사]] 겸 VJ 김형규와 결혼했다. 2007년 10월 21일 아들 김민재[* 애칭은 프린스 MJ. 김윤아 솔로 3집의 '에뜨왈르'가 바로 아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출산]]하였다. 이 때문에 항간에서 말하길 팬들을 모조리 우울증에 던져놓고 혼자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고... 김형규가 당시 수염을 기르기도 했기에 "털규가 여신을 가로챘다" 고 한탄하기도 했다.
2009년에도 방송에서 '하하하쏭'으로 [[아이돌]]을 모아놓고 보컬 강습(?)을 한 경력이 있다. [[http://youtu.be/2r55SFgzjNI|링크]] 참고로, 이 영상의 제목은 '''자우림 레전설 (부제: 김윤아의 아이돌 학살사건)'''(...)이다. 남자들이야 키가 안 맞아서 그렇다고 실드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안습]]은 빅뱅의 승리~~ 여자 가수들은 [[지못미]].[* 사실, 자우림의 노래는 원래 다른 가수들이 커버하기가 힘든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윤아가 강습하는 와중에 혼자 살아남은 [[케이윌]]과 김경록...--
2011년에는 비슷한 (약 10년의 세대차이는 있지만) '홍대 마녀'라는 별명을 가진 [[오지은(가수)|오지은]]과 한 음악프로그램에서 듀엣곡을 부른 적이 있다. 김윤아의 'Tango Of 2'[[http://www.youtube.com/watch?v=GRLEsw3amJI|링크]][* 김윤아 1집 수록. 본래는 [[유앤미블루]]의 방준석과의 듀엣곡이다. 1절은 [[한국어]], 2절은 [[스페인어]]로 된 곡인데, 오지은의 전공을 살려 고른 노래인 듯.][* 노래를 부르고 김윤아가 "역시 전공자는 뭐가 다르군요"라는 멘트를 치자 오지은이 "전국에 계실 진짜 전공자 분들께 미안하다"라고 하기도.]와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 따로따로 진행된 김윤아와 오지은의 무대는 각각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무대였다. 오지은은 아주 좋아하는 무대라며 트위터에 올렸을 정도. [[https://twitter.com/heaventomorrow/status/756530445878038528|링크]]
남동생 김윤일도 잠시 가수 활동을 했었다. 1998년 O.N.SCHOOL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빅뱅'이라는 노래가 그런대로 알려졌을 뿐 더 이상의 활동은 이어가지 못했지만 2001년 김윤아 1집 수록곡 'Blue Christmas (Korean version)'에서 김윤아와 듀엣을 하기도 하였고 2011년 자우림이 나는 가수다에서 경연을 할 때 '재즈 카페'나 '아브라카다브라'등의 무대에서 피처링을 하였다. 지금도 여러 자우림 무대에서 코러스와 기타를 맡아 도와주고 있는 중. --남동생도 잘생겼다--
김윤아는 [[만화잡지]] [[르네상스]]-댕기 세대이자 [[PC통신]] 초기 세대로 덕력에 있어서 선배뻘이 된다. '자우림으로 데뷔하면서 포기해야 했던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만화' 라는 발언도 한 적이 있다. 2011년에 있었던 자우림 비밀결사모임[* 8집 팬 이벤트로, 발매 당시 정식 CD앨범의 가사집에 있는 힌트를 가지고 공식홈에 접속하면 고난이도의 퀴즈가 나왔다. 앨범 가사집을 이용하여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으며 기간 내 다섯 관문의 퀴즈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비밀결사단 가면파티의 초대권과 함께 비밀결사단 인증서 및 특별제작된 굿즈로 붉은 수건(일반 제작 굿즈는 검은 수건)이 지급되었다.]에서는 메이드 복장을 입고 나타나 [[모리 카오루]]의 [[엠마]]를 언급하며 메이드 덕후 인증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오덕들에 대한 김윤아의 충고는 '결혼하면 오덕질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미리 하세요'(...)[* 하지만 본인은 바로 밑에 서술되어있듯 덕후 남편이랑 여전히 덕질중이다(…). 17년초 냉부 출연시 집안 가득 쌓인 만화책장을 공개.]
만화를 [[오마주]]한 경우도 많은데 자우림 1집의 앨범명인 퍼플하트는 그 당시 매니아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며 연재되던 [[강경옥(만화가)|강경옥]]의 만화와 제목이 똑같다.[* 덧붙여 김윤아와 강경옥은 사적으로 아는 사이이다. 지금은 사라진 강경옥의 홈페이지에 같이 식사했다는 글도 올라왔고, '설희' 1권에서 설희가 자우림의 '일탈'을 부르는데 이를 작가 본인이 언급한 적도 있다.[[http://blog.naver.com/kko314/10088861281?viewType=pc|#]]] 솔로앨범 2집의 제목 '[[유리가면]]'은 만화를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일본만화와 제목이 똑같다. [[엠넷]]에서 진행했던 '마담B의 살롱'은 [[권교정]]의 '마담 베리의 살롱'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2011년 MBC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가수 [[이하늘]]은 김윤아에게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 아닌가요?" 라고 대놓고 [[디스]]를 걸기도 했다. 실제로 김윤아는 한국식 [[힙스터]]같이 적절히 쿨하며 주류를 쫓지 않는 독특한 자기 세계관과 문화취향을 갖으려는 삶의 스타일의 이미지로 본인을 설정하고 싶어하는 메인스트림의 모습을 보여왔기에, 본인만의 야인성(?)을 갖고 살아온 이하늘에게는 고깝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방송인 [[김나영]]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김윤아가 한 "저도 비주류고, 제 남편도 비주류다." 라는 말에 대해 "남편 잘 만나셨잖아요. 남편은 [[치과의사]]인데 주류 아닌가요?" 라고 2번씩이나 소리를 지르며 억지를 부렸고 김윤아는 굉장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취향 얘기였는데 김나영과 이하늘이 열폭~~
자우림이 데뷔하던 9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화장법은 소위 '마녀 화장'으로, 전체적으로 얼굴에 입체감 없이 창백하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둥글고 짙게 그린 뒤 색조있는 셰이딩을 넣고, 갈색이나 보라색 계열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었다. (때로는 입술선을 그리기도 한다) 2집 '미안해 널 미워해'의 뮤직비디오에 이 '마녀 화장'을 제대로 한 김윤아가 보인다. 알 수 있겠지만 2010년대 유행하는 것처럼 화장을 안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피부, 부드러운 일자눈썹, 핑크색 립스틱은 [[가을동화]](2000년)의 [[송혜교]] 이후에야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담으로, '마담B의 살롱'은 [[권교정]]의 '마담 베리의 살롱'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은 마담 B는 아명이 김비였던 MC 김윤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Beyond the music' 'Behind the show' 'B-side music' 등 음악 외에도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김윤아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1988670|관련 기사]]
[[나는 가수다]]의 경연에서의 생각 이상으로 많았던 음이탈 때문에 음이탈에 반감을 가진 네티즌들이 김윤아의 음악성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고 지금까지도 김윤아를 깔 때 꼭 등장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삑사리일 정도로 김윤아 안티들이 김윤아를 깔 때 쓰는 가장 좋은 떡밥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가시나무'와 '1994년 어느 늦은 밤' 후반부의 애드리브에서의 고음이 삑사리냐 아니냐로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다. 원체 김윤아 본인의 음색이 일정 음 이상의 고음역에서 뒤집어지는 음색이라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보다시피 몸소 출연하기도 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테마게임/김국진|항목]] 19번 참고]
- 김영철(배우) . . . . 16회 일치
|| '''출생''' ||<(> [[1953년]] [[2월 25일]]([age(1953-02-25)]세)[br][[경기도]] [[고양시|덕양구]] 주교동 (고양대로) [* 그의 부모님은 이북출신이었으나, [[6.25 전쟁]] 때 경기로 피난하여 그를 낳았다고 한다.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 밝힌 내용.] ||
[[대한민국]]의 배우. 얼굴, 목소리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거기서도 '''광기 넘치는 악역 보스, 리더'''[*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서울 1945]]의 문정관, [[대왕 세종과 장영실]]의 [[태종(조선)|이방원]], [[공주의 남자]]의 [[세조(조선)|수양대군]] 등.] 연기는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비슷한 연배이면서 보스나 리더 역할을 주로 맡는 배우는 [[서인석]], [[이덕화]], [[유동근]] 등이 있는데, 서인석은 노태우 역할 등 겉으로 무른 역할을 맡기도 한 적도 있었으나 서인석과도 포지션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덕화는 용모의 특성상 대부분 배역이 악역 보스이거나 안티 히어로이며, 서인석이 2000년대 들어 원톱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유동근과 포지션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유동근이 드라마나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적이고 강건한 보스 역할에서는 김영철이 단연 최고다.] 주로 맡는 캐릭터들도 남성미가 돋보인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태조 왕건)|궁예]] 역할을 맡아 타이틀롤인 [[왕건]]을 제치고 광기와 카리스마의 완벽한 조합이 이루어진 연기로 극을 압도적으로 이끌며, 주인공이 아닌 역할로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상 수상자가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당시 관례에서 보면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으나 드라마 스토리상 실제 드라마를 보면 [[궁예]]가 주인공급이었다. 당시 김영철의 궁예 연기가 2000년 한 해 내내 전국민의 이슈였을 정도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예상외로 비난이나 논란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실 2000년도 연기대상은 사람들 대부분 KBS는 김영철, MBC는 [[전광렬]]이 탈거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대상 줄 거야! 안 줄거야!--]당연히 젊었을때는 나이 때문에 이런 캐릭터를 할수는 없었고 그 외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해왔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카리스마 보스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역을 연기하기도 한다. ~~남자 시리즈 전문 배우~~[* [[위기의 남자]], [[공주의 남자]],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출연. 그 중 [[위기의 남자]]를 제외한 3편은 각각 2011년 하반기, 2012년 상반기, 2012년 하반기에 KBS에서 방송되었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해 연극배우 생활을 하던 중, [[1977년]] [[동양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여 조연으로 주요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언론통폐합]] 이후 KBS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80년대 TV 문학관에서 거의 주인공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선우휘]] 원작의 단독 강화에서는 대사 없는 시체로 나온 적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이병주 원작의 변명에서 독립운동가의 역할과 [[프랑스]] 지식인[* 원작에서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이 프랑스 레지스탕스였던 블로크 교수의 총살 에피소드이다. 김영철은 여기서 1인 2역으로 한국인 독립운동가 탁인수와 프랑스 교수 블로크를 모두 맡았다], [[심훈]] 원작의 [[상록수(소설)|상록수]] 주인공, [[벙어리 삼룡이]]의 주인공 등이다. 체육인 출신이었던 덕에 젊은 시절에는 몸도 좋았던지라 KBS 특집극에서 [[손기정]]을 맡은 적도 있다.[* KBS 1TV에서 82년 1월에 5부작으로 방영했던 '맨발의 영광'이란 미니시리즈이다. 2013년에 작고한 [[강태기]] 씨가 이 드라마에서 손기정의 빛에 가려진 또 한 명의 [[마라톤]] 영웅인 남승룡 선수 역을 했다.] 대하드라마 [[토지(소설)|토지]]에서 김환 역을 하기도 했다.
[[1993년]]에 히트한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남편 "강세풍"역할을 맡아 부인 역할을 한 [[이미숙]]과 사실적인 코믹함을 바탕으로 한 부부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 이 드라마는 여러 다른 스타일의 부부들이 주인공으로 [[길용우]]-[[양미경]], [[유동근]]-[[이미영]], 김영철-이미숙이 각각 다른 3가지 부부생활을 보여줬다. 당시 김영철은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려 하지만 기가 센 부인에게 그게 잘 먹히지 않아 부인과 매일 부딪히는 남편 '강세풍'연기를 통해 코믹한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당시 [[이영애]]가 조연(길용우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이영애의 첫 TV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하다.] 극 중 김영철과 이미숙이 싸우는 장면이 백미로 꼽히는데, 김영철이 늦게 들어와서 이미숙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뭐해! 밥차려 와!"라고 소리치면 이미숙이 노려보며 "어휴 저놈의 밥통대왕!"이라고 맞받아치며 화를 내는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으로, 당시 한국의 부부관계 문제를 공감하도록 하면서 코믹함도 동시에 잘 보여준 부부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해 SBS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기대상 시상식을 시작했고 1회 대상을 이 드라마의 [[이미숙]]이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밥통대왕"이라는 대사가 한때 시청자들(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일으키며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엄청났던 부부드라마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출연한 드라마 [[바람의 아들]]에서는 극 중 [[신현준(배우)|신현준]]과 [[이병헌]]의 친형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집안에 입양된 신현준이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하차한다. 이듬해 방영한 '머나먼 나라'에서는 [[김민종]]의 아버지이자 세탁소를 운영하는 절름발이로 등장하는데 방영한지 20년이 다된 지금도 이 드라마의 팬이라면 가장 먼저 회자되는 연기일만큼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1990년대는 개인사업 등의 사정으로 활동이 약간 줄어들어 TV에서는 [[아침 드라마]] 전문 불륜 배우[* 이 기믹으로 MBC의 2002년작 [[월화 드라마]] [[위기의 남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도로 소비된 시절이다. KBS 일일드라마 히트작인 [[정 때문에]]의 남기남 역이 대표적인 이 시절 김영철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 역도 중간에 하차하는 역이라 큰 인상은 주지못했다.
'[[옴 마니 반메 홈]]', '짐은 미륵이니라' 등 김영철 특유의 몸동작과 말투로 표현된 궁예의 대사들은 수많은 대유행어를 탄생시켰고, 전국민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궁예가 자주 썼던 '[[관심법]]'이란 대사는 너무 크게 유행하는 바람에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대방의 뜻을 아는척하며 넘겨짚는 행위'라는 뜻의 [[신조어]][* 물론 역사기록에 실제로 궁예가 썼던 걸로 기록된 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신조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드라마 이전에 역사연구하던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이 그 단어를 알거나 쓰는 경우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수준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태조 왕건이 방영되던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말 못하는 아기였던 학생들도 쓸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뜻으로 쓰지는 않고, 주로 상대의 태도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인다. 아예 관심법 대신 '궁예질'이라는 단어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어찌보면 궁예질이 진정한 신조어라 볼 수 있다,] '태조 왕건' 방영이 끝나고도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예인들이 궁예의 유행어를 따라하고 궁예 패러디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심지어 10년이 지난 뒤에도 예능에서 궁예 성대모사(?)[* 아는형님에서 김희철이 하는데 비슷하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깊게 남는 대히트를 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또 나이 지긋한 분들은 김영철을 볼때면 안대 안하고 왔냐고 물을정도. 2017년 현재도 포털에 궁예를 검색하면 김영철이 여전히 함께 뜬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유행어의 원조이기도 하다. 이 유행어에 관한 소문이 있는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플짤들을 보고 재밌어한 김영철의 아들이 이를 직접 본인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볼 때는 별말 않던 김영철이 감상을 끝내고 아들의 방문을 나가면서 뒤돌아보며 나지막히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하고 나갔다고….
2005년 MBC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 [[전두환]] 혹은 [[노태우]] 역할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전두환 역의 캐스팅은 아마도 태조 왕건 때 삭발 연기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지만[* 그런데 김영철 특성상 전두환보다는 노태우가 더 잘 어울린다. 김영철과 서인석이 포지션도 은근히 비슷해서... 여담으로 우연이지만 김영철과 노태우는 같은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같은 시기에 영화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을 촬영할 때라서 무산되었다. 그 대신 --진 [[대머리]]-- [[이덕화]]가 전두환 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실 제5 공화국에 출연한 몇몇 등장배우를 보면, 태조왕건에 나왔던 배우들이다. 견훤역의 서인석이 노태우 배역으로 출연하고, 아자개역의 [[김성겸]]은 [[최규하]] 배역으로 나온다. 또한 석총역의 [[신충식]]은 신현확 역으로 나온다.][* 여담이지만, 전두환 역할은 특성상 김영철보다는 이덕화가 훨씬 잘 어울리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인다. 거기다가 이덕화는 대머리인지라 전두환 역할에 잘 어울린다.] 태조왕건 제작진이 김영철 캐스팅 전에 궁예 역으로 이덕화를 고려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흥미롭다.
2012년 [[KBS 2TV]]의 [[수목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대기업 사장 서정규 역으로 25살 차이나는 여성([[박시연]])과 결혼하려고 하며 [[공주의 남자|전생에도]] [[문채원|딸이었던 딸]]과 대립한다. --그런데 그 [[김서라|딸의 친엄마]]도 [[공주의 남자|전생에]] 아내.--[* 극 중 김서라가 맡은 엄마 역할은 3회에서 회상 장면으로 잠깐 나온 것이다. 원래 나오는 역할이 아닌데 이경희 작가가 대본을 쓰다보니 어머니 역할이 한 컷 나오게 되었고 전작의 재미도 살릴겸 카메오 격으로 김서라를 출연시킨 것이다. 공주의 남자와 착한 남자 모두 KBS 수목드라마이기도 했기에...] 다만 이 작품에서는 서정규 역할이 조기퇴장하면서 큰 활약은 없었다.
앞서 서술한 배역들과는 다르게 몇 몇 작품에서는 약간 모자란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조민수와 호흡을 맞춘 MBC 특집극 [[미끼와 고삐]][* 조선작의 원작이지만 윤미라가 나온 TV 문학관판과 다르게 완전히 코믹 시트콤화 되었다. 장모님을 조민수인줄 알고 '''까꿍'''하는 장면은 2011년이라면 플짤로 돌만한 개그.]도 그렇고 심지어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는 어리숙한 서민적인 형사로 등장해 '''나체'''를 선보였다.
영화에도 간혹 출연하지만 자주 출연하지는 않았다. 기술자들 시사회에서 '본인 연기를 봤는데 출연자중 가장 못한 것 같다. 본인은 영화에서의 연기가 어렵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또 쑥스러움을 잘 타서, 아버지가 이상해를 찍을 당시 기사에서 대상후보로 언급되자 쑥스럽다고 밝혔고 연말에 대상을 수상했을때도 쑥스럽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선거 CF에 출연했으며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분당구]] 을 지역구에 출마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주호영]] 후보(공천탈락 후 무소속)와 새누리당 [[이상일(정치인)|이상일]] 후보(비례대표였으나 지역구 출마)의 지원유세도 했다. 이렇듯 주로 이회창, 정몽준, 주호영, 이상일처럼 중도 성향에 걸쳐지거나 그런 평가를 받았던 이들을 지지한 걸로 보아 성향은 중도우파로 보인다. 실제로 전두환, 박근혜 등에 비판적인 것을 보면 권위주의 우파보단 자유주의 우파 성향인듯.
- 송병구 . . . . 16회 일치
송병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었다. 첫 시즌부터 양대리그 4강에 동시에 올라 [[스타리그#2007 다음 스타리그|Daum 스타리그]] 3위, [[MBC게임 스타리그#곰TV MSL 시즌2|곰TV MSL 시즌2]] 준우승이란 호성적을 냈으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에서도 높은 승률로 삼성전자 칸의 광안리 우승을 이끌었다. 송병구는 2007년에 올해의 프로토스상에 최다승상까지 받으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007년 당시 송병구는 대테란전 승률 70%에 달할 정도였으며 Daum 스타리그 2007 3,4위전에서 이영호를 3:0으로 셧아웃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리그 2연속 준우승이라는 흔치 않은 기록과 MSL에서도 1회 준우승을 기록하여 콩라인에 소속되었다. 2007년 10월엔 [[김택용]](당시 [[MBC게임 히어로]], 은퇴)을 제치고 [[KeSPA]] 랭킹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온게임넷의 엄재경 해설위원과 김태형 해설위원은, 스타 뒷담화 방송에서 과거 [[박정석]]과 [[강민 (프로게이머)|강민]]의 라이벌 관계와 비교하여 [[박정석]]-송병구의 정파 [[프로토스]],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김택용]]의 사파 [[프로토스]]라는 프로토스 계보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후 프로리그 1라운드 포스트시즌에서는 [[원이삭]]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으며 2라운드에서 김준호와 이영호를 꺾는 등 2014년 2월 프로리그 3연승을 기록,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2014년 첫 GSL 예선전도 통과하며, 송병구의 2014년은 난관없이 잘 풀려가고 있다. 특히 5월에 들어 ESTV CUP 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프로리그 3라운드 SK텔레콤과의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3라운드 SK텔레콤의 전승을 막았다.
함께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이성은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프로리그에서는 한차례만 만났고, 나머지 8번은 개인리그와 비공식전의 전적인데,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 6:2, 비공식전까지 합쳐서 7:5로 앞서 있다. 여담으로 비공식전에서 맞붙었을 때 경기는 올스타전이었는데, 이성은은 저그로 맞붙었었고, 송병구는 주종인 토스였다. 그 후 스타리그 2012 시즌2 예선 4강에서는 이성은에 1:2로 패했다. 참고로 스타1에서 테란이 주종인 이성은은 스타2에서는 프로토스다. 이성은이 은퇴해서 이 전적은 그대로 이어진다.
송병구가 ‘대형신인’으로 주목받던 시절 유독 홍진호에게는 약한 모습이었다. 데뷔 당시 송병구는 CYON 챌린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차기 스타리그에 4번 시드로 직행하게 되었는데,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우승자 출신 선수를 지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EVER 2005 스타리그에서 준우승 이력만 가진 홍진호를 지명했다. 이후 펼쳐진 16강에서는 송병구는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되며, 16강 재경기에서도 홍진호에게 패배를 당하게 된다. 또, 홍진호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 24강에서 송병구를 제압하고, 이 대회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송병구는 직후 진행된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F조 패자전에서 홍진호를 제압하면서, 이 패배로 홍진호는 예선으로 추락했고 지금까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접전 끝에 승리하기도 했다. 그 후 1승을 더 하기도 했다. 상대전적은 그래도 2:5로다가 열세. 김준영이 은퇴해서 이제 둘은 더이상 만날 기회가 없다.
2010년까진 프로리그에서 김명운전 2승을 하기도 하는 등 상대전적에서 4:1로 앞서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1년 이후부터는 김명운에 도리어 연패를 하며 상대전적이 다시 밀리며 김명운전 5연패를 하기도 했고, 다시 송병구가 김명운전 2연승을 했다가 김명운에 또 3연패 중이다. 상대전적은 6:9로 열세이다.
송병구에게 강한 프로토스는 [[박세정]] 외에 진영화도 대표적이다. 진영화에게 상대전적에서 2:4로 밀려 있는데, 한때는 전패를 기록하다가 내리 2연승을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또 다시 프로리그에서 패하였다. 진영화가 사실상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 전적은 변함없게 되었다.
프로토스전 승률이 높고 자주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경민에게 송병구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7번째 대결에서는 이경민이 송병구의 스타리그 100승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상대전적은 3:5로 밀린다. 이경민이 은퇴하면서 이 전적은 그대로 간다.
*공룡토스 : e스포츠 주간 잡지인 esFORCE에 실린 공룡 분장에서 유래되었으며, 규모가 큰 송병구의 경기 스타일과도 조화를 이룬다. 공변뱅(공룡으로 변신한 뱅구)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해변김(해설로 변신한 [[김정민 (프로게이머)|김정민]]), 코변김(코치로 변신한 [[김현진]]) 등의 축약형 별명과 유사하다. 2008 시즌 중반부터 프로토스의 ‘육룡’이라는 표현이 유행하면서 더욱 굳어진 별명
*송와우: 송병구 선수는 한 때 온라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약칭:WOW)에 빠져서 성적 부진을 겪었었다. 그는 그 이후 인터뷰에서 와우를 그만뒀음을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지만 송병구 선수가 부진할 때마다 와우를 다시 시작한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돈다.
*송핑계: 곰TV MSL 시즌2 에서 vs[[김택용]] 과의 결승전 경기에서 2:3으로 패해 준우승에 그친 이후 "사정거리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 패배했다."라는 핑계를 댄 것에서 시작된 별명. 이후에도 조지명식 때 '약한 척'하는 특유의 발언들로 별명의 입지를 강화시켜줬다. 물론, 이후 EVER 스타리그 2007 4강에서 김택용을 3:0으로 꺾고, 조지명식 이후로 만들어진 조도 거의 무난히 통과하는 등 '핑계'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 조성모(가수) . . . . 16회 일치
전성기 당시에는 '''아름다운 미성'''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그 목소리에 맞는 애절한(또는 처절하기까지 한) 발라드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처절한 곡의 대표격으로 2집 화살기도를 들어보시라.] 대표 발라드 곡들로는 1집의 To Heaven, 불멸의 사랑, 2집의 For your soul(슬픈 영혼식), 2.5집 가시나무, 3집의 아시나요, 다음 사람에게는, 4집의 잘가요 내사랑 등이 있다.
전성기로 평가되는 전반기에 구사된 그의 창법은 미성이 특성이었고 그것을 선호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으나, 전성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소속사의 무리한 스케줄과 자신 스스로 창법을 바꾸고 싶단 생각으로 5집 때부터 '''창법이 바뀌게 된다.''' 후반기의 무대 영상이나 음원을 찾아 창법을 비교해 보면 전반기 시절에 보여주었던 1집의 '불멸의 사랑'이나 3집의 '아시나요'와 같은 폭발적인 미성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노래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히든 싱어]]에서도 원조 가수 최초로 2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으며 [[무한도전]]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서도 출연 자격을 얻게 되는 노래방 기기 95점을 넘기기 위해 몇 차례나 재도전한 끝에 겨우 출연을 확정짓기도 했다. 윤종신과 더불어 예전 목소리가 그리운 가수. 아마도 창법이 변화된 후부터 팬의 이탈이 많았던 듯 싶다. 남아있는 팬 중에도 과거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병역을 마치고서 컴백한 후에 여태까지 발표해오던 슬픈 발라드 곡 대신 갑자기 <바람필래>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 조성모는 예전부터 타이틀곡으로는 선정하지 않긴 했어도 댄스곡을 정규앨범에 한 두곡 씩 넣곤 했었다. 반응은 발라드보다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는 To Heaven도 댄스 버전이 있다. 이건 그냥 리믹스 버전 정도로 조성모의 변신이라고 하기는 좀 무리였고, 1집 수록곡인 '후회'가 댄스 비트를 가진 첫 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며, 2집 '상처'는 후회를 잇는 댄스곡으로 이 또한 인기를 끌었으며, 인기 절정이었던 3집 당시 후속곡으로 활동했던 '다짐'[* 원래는 비비 1집에 '최후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노래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매우 드물기에 이 사실이 한참 지나서야 알려지기도 했다.]이 수록곡 차원이 아닌 3집의 후속곡으로 선정되며 인기를 얻었던 바이다.[* 사실 '다짐'으로 활동했을 때에 조성모가 댄스곡을 잘 소화했기 보다는 당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었기에 그에 따른 후광효과가 컸다고 봐야 하며, 실제 댄스를 소화하는 조성모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사실 이때마저도 일부 팬들로부터 어그로를 끌기도 했었다.]
'''[[X맨을 찾아라]]에서 [[김종국]]이 최대 수혜자였다면, [[출발 드림팀]]에서는 조성모가 최대 수혜자였다.''' 조성모는 출발 드림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도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뜀틀청년이라는 이명이 생길정도로 [[뜀틀]] 분야에서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맹활약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건강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였으나, 정작 병역의무를 공익으로 이행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유는 선천성 어깨탈골. [* [[김종국]]과 같은 날에 훈련소에 입소를 했는데, 김종국이 별다른 행사없이 바로 입소한데 비해, 훈련소 입구 앞에서 팬클럽과 함께 환송회를 열었으며, 특히 공익으로 군 복무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군생활에 공백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 하는 등 지나친 반응을 보인 탓에 비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가수라는 이유로 논산훈련소 천주교 성가대에서 성가복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걸 목격당하기도 했다. 출발 드림팀은 프로그램 출연자 대부분이 공익으로 빠진 것을 빗대어 '출발 공익팀'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하였다. 참고로 소집해제때 비니를 쓰고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공익으로 복무한 연예인들은 거의 전부가 소집해제 기자회견시 비니를 착용한다. 현역복무자의 짧은 머리와 비교되어 비난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 [[http://youtu.be/C9CMZ35vTYs|아시나요 (3집)]][* 영화 '플래툰'의 촬영지인 [[필리핀]] [[마닐라]] 올로케로 촬영되었으며 2000년 당시 총 제작비로 15억원이 들어간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사상 전무후무한 대작 스케일을 내뿜는다. 스토리 내용은 주인공 조성모가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베트남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함께 죽는 슬픈 결말로 구성된다. 극중 파병 부대로 마크까지 등장하는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베트콩에게 전멸당하는 전투장면 및 얼차려 등의 병영생활 등이 나오는 장면들과 관련하여 거센 항의를 받고 법정공방까지 가기도 했다. 한편 [[천국의 눈물|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http://www.youtube.com/watch?v=oB4oCDXFXhE|수정판]][* [[제9보병사단]]으로부터 항의로 인해 부대마크를 모자이크 처리 및 전반부 국군이 베트콩에 전멸하는 전투장면을 삭제하고 후반부 전투에서도 주인공 조성모가 베트콩 수장을 죽이는 장면을 추가 삽입하는 등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 [[신민아]][* 1999년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로 데뷔하였고, '아시나요'는 그녀가 출연한 두 번째 뮤직비디오 작품이자 실질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조성모의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인 베트남 소녀 역할을 맡았으며, 전투를 떠나는 부대원의 지리정보를 주기위해 겁도 없이 총도 안가지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결국 베트공의 총에 맞아 죽는다.], [[허준호]][* 주인공 조성모가 소속된 월남파병 부대의 [[말년병장]] 쯤으로 추정된다. 방탄모도 안쓰고 지멋대로 두건을 하고 다니는 등 군기가 제대로 빠져있는데, 중간에 민간인 구출 작전 과정에서 베트공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되고, 베트공 대장의 살해 협박에 아군의 부대 위치를 알려주는 병크를 저지르고 결국 살해 당한다.], [[정준호]][* 조성모가 있는 파병부대의 소대장으로 계급은 중위.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구해낸 현지 월남 주민인 신민아가 현지 지리에 밝은 것을 활용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 부분 전투에서 숲속에 [[네이팜탄]]을 뿌리며 불을 지르다가 베트공의 습격에 폭사당한다.], [[신지수]][* 극중에서 신민아의 여동생으로 연기한다.], ~~[[오상훈]]~~[* To Heaven에 출연했던 악역 전문 배우와 동일 인물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국군과 대치하는 베트콩의 대머리 수장 역할로 거의 주연급 악역으로 출연한다.], ~~[[김대진]]~~[* '여름아 부탁해'를 부른 그룹 인디고의 멤버 맞다. 그 이전에는 지오에서 활동했다. 조연급 배우로 활동중이며,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동료 병사로 출연하는데, 극중에서 전투중에 아역배우였던 신지수를 비롯한 월남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다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한나나]]~~[*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약혼자로 나왔던 그 배우 맞다. 뮤직비디오에서 간호장교로 간간히 등장한다.]
- [[http://www.youtube.com/watch?v=pNy6pS4uaCI|피아노 (5집)]][* 핑클의 Now, 당신은 모르실거야 뮤직비디오 등을 기획하고, CF 필름 특유의 색감과 화려한 촬영기법으로 유명한 이상용 감독이 기획했다. 뮤직비디오에서 클라이막스는 조성모가 연인인 한지민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피아노 제작공장으로 숨어 들어가 시가 2억원을 호가하는 크리스털 피아노로 연주하며 라이브로 노래의 고음 파트를 부르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피아노'라는 노래 제목답게 경기도 부평 삼익악기 공장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공장에 피아노를 수십대 깔아 놓고, 특별히 삼익악기로부터 2억원을 호가하는 크리스탈 피아노를 협찬받기도 했다.] - [[한지민]][* 뮤직비디오에서 조성모의 히로인으로 등장하는 한지민은 2003년 당시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열연해 얼굴을 알렸고, 각종 CF 및 신승훈의 뮤직비디오 '이별 그 후' 등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데, 조성모와는 99년 '에퓨 화장품' CF에 같이 출연했던 것이 인연이 돼 이번에 뮤직비디오에서 함께 연기하게 됐다.]
- [[http://www.youtube.com/watch?NR=1&v=vChVqrG9xnw|눈물이 나요 & Mr. Flower (6집)]][* 2000년대 들어서 뮤직비디오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장재혁 감독의 작품으로 '아시나요' 이후 별다른 임팩트를 발휘하지 못했던 조성모표 뮤직비디오가 다시금 고개를 들게 한 작품이다. 2005년 2월에 앨범과 함께 발표한 뮤직비디오로서, 2004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최고의 주가를 올린 배우 김정은과 소지섭을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큰 화제인데다, 뮤직비디오 스토리 전개상 거친 장면이 많은데다 일본 현지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많아 7억원의 꽤 많은 제작비보다도, 총 112억원의 두 배우에 대한 보험금이 실질적으로 더 화제이기도 했다. 일본배우 오사와 다카오도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 [[소지섭]], [[김정은(배우)|김정은]], [[오사와 다카오]]
3집 타이틀곡인 아시나요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가 파월 상이용사 출신들과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백마부대) 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조성모의 부대가 9사단의 부대표지(부대마크)을 단 장면이 그대로 노출 된 것이었는데, 하필 이 부대가 [[베트콩]]에게 전멸된다는 내용이었기에 백마부대와 해당 부대 출신 참전용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항의의 주요 원인이었다.[* 부수적으로 극중 허준호가 방탄모를 안쓰고 두건 착용을 하거나, 파병된 신병들을 길들이기 형식으로 얼차려 주는 모습 등에 대해서도 사실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했었다. 심지어 백마부대 측에서 GM기획 측으로 공문까지도 보냈다고 한다. 이 부분을 공식 항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송기]]를 타고 파병되는 장면 역시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당시 국군 파월 병력은 [[대한민국 해군]] [[LST]]나 임차한 민간 수송선 등 해상운송수단으로 파병되었지 수송기를 타고 오지 않았다.]
조성모가 탈락하자 MC인 전현무부터 시작해 연예인 패널들, 관중석, 그리고 조성모 본인도 큰 충격에 휩싸였는지 잠시 스튜디오에 적막이 흘렀으며, 이후 전현무와 연예인 패널들이 각종 분석을 하면서 그를 위로하느라 정말 애썼다. 허나 원래 히든 싱어의 슬로건이 '숨은 가수 찾기'이기 때문에 이후 라운드에서 조성모에게 가는 표는 무효 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1등을 하였다. 비록 조기 탈락이라는 커다란 업적(?)을 세우긴 하였지만, 덕분에 조성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다시 집중되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중왕전 및 TOP3 생방송에 걸쳐 임 군의 조성모 모창이 너무 뛰어났기에 이목이 집중되기도 하는 등 히든 싱어 출연의 결과가 마냥 안습이라고는 볼 수 없을 듯. 그리고 시즌 3종료후의 왕중왕중왕전(시즌1~3 통합전)에는 콘서트 종료 직후 달려와 약간의 농담을 던지며 호탕한 웃음을 보이는 등 아무렇지 않게 참석했기에 쎄한 느낌을 말끔히 지웠다.
이 흑역사는 결국 2014년 [[SNL 코리아]]의 조성모 편에서 다시 등장했다. 광고에서 조성모가 했던 멘트들이 다시 재현될 때 이 대사를 듣고 '''사람들이 [[손발이 오그라든다|너무 오그라든]] 나머지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건 드라마로 재현. 이 날 마지막 순서로 유희열과 토크쇼에서 그문제의 초록매실 광고주 [[웅진그룹|웅진식품]]에서 보낸 화환이 공개됐는데, 그 화환에 적힌 문구는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21&aid=0000838804|우리도 이럴줄 몰랐어요...ㅠㅠ]]'''[* 이 날 웅진식품에서 초록매실의 PPL을 하기도 했으며, 관객들에게도 초록매실이 1병씩 증정되었다.]
리메이크 앨범인 2.5집의 타이틀곡 '가시나무'는 빅 히트를 했지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42&aid=0000003256|뮤직비디오에서 문학적이며 종교적인 원곡을 단순한 사랑노래로 해석하면서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원작자인 하덕규도 석연찮은 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창시절 [[이상은(가수)|이상은]]의 열혈팬이었다고 한다. 2017년 6월 자신의 라디오 프로에 이상은을 초대해서 어릴적 팬질하던 얘기를 하며 적극적으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https://www.instagram.com/p/BV2KQxbAV5n/?taken-by=jo_sungmo|인스타 인증샷]]
- 한명회 . . . . 16회 일치
|사망지= [[조선]] [[경기도]] [[광주목]] 언주면 압구정리
'''한명회'''(韓明澮, [[1415년]] [[11월 26일]] ([[음력 10월 25일]]) ~ [[1487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4일]]))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1475년에서 1476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의 본관은 [[청주 한씨|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ref>7개월만에 출생하여 생애 초기에 칠삭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ref>,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일찍이 [[조선 태조]]때 학사로 [[명나라]]에서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개국공신]] [[한상질]](韓尙質)의 손자이자 [[증직|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한기]](韓起)의 아들이고, 이조참판과 직제학을 지낸 [[여주 이씨]] [[이척]]의 외손자이자 [[대제학]] 이행의 증외손이다. [[조선 예종|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조선 성종|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한성부]] 출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경덕궁]]직이 되었다.<ref name="park115">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15페이지</ref> [[1456년]] [[사육신]]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적발하여 좌절시키고, 사육신과 관련자들의 처벌에 가담하였다. [[조선 세조|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세조로부터 나의 [[장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이 되고, [[조선 세조|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기여하여 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토벌과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1466년]]~[[1467년]], [[1469년]] 두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후일 [[종묘]] 세조실에 배향됨으로써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떨어지자 주변에서는 그를 위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궁달(窮達)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사군자(士君子)가 되어서 어찌 부유(腐儒), 속사(俗士)들의 말 한마디에 실망하고 비통하기를 즐겨 하겠는가?'라며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같이 불우한 처지였던 [[권람]](權擥)과 친하게 지냈는데, 둘이 함께 오랫동안 마차에 책과 술을 싣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유람을 다녀오기도 했다. 관례를 치룬 뒤에도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권람]]과 더불어 전국을 떠돌며 산천을 주유했다.
그는 거사의 준비에 앞서, 사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역할 분담을 할 인재들을 사전에 포섭해둘 것을 건의하였다. 또한 각종 병장기와 함께 십만냥의 현금을 조달, 모집해 두었다. [[집현전]] 학사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지지를 구하기도 했다.
[[1453년]] [[계유정난]] 때 자신이 끌어들인 [[홍달손]] 등의 무사로 하여금 [[김종서 (1383년)|김종서]]를 살해하게 했고,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해 조정 대신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기도 했다.<ref name="park115"/> 정난 성공 후 그는 1등 공신에 올랐다. [[계유정난]]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하들의 성향과 능력, [[조선 세조|세조]]에 대한 지지, 설득의 가능성 여부 등을 파악하여 [[살생부]]를 작성했다. 이후 [[살생부]]는 숙청과 제거, 인사의 대명사로 널리 통용되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정난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음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져나갔다.<ref name="park115"/> 그는 우선 세조와 사돈을 맺어 딸을 [[장순왕후|예종비]]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다른 딸을 [[공예왕후|성종비]]로 만들어 딸들을 2대에 걸쳐<ref name="park116"/> 왕후로 삼게 했다. 또한 [[권람]]은 일찍 요절한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했다. 한편 자신의 손자 [[한경침]]을 다시 사위이기도 한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 소생 서녀 [[공신옹주]]와 혼인시켜 3대에 걸쳐 왕실과 겹사돈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권람<ref>권람은 그의 동생 [[한명진]]의 처남이기도 하다.</ref>, 신숙주(申叔舟) 등과 인척관계를 맺고 세조 치정의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인척 관계에 의한 요직 장악이라는 크나큰 인사 폐단을 낳아 조선왕조의 기강을 흐트러놓는 원인이 되었다.
조정의 문사들이 앞다투어 그의 [[압구정]]에 찾아와서 압구정을 예찬한 시가 수백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이를 비웃었다.<ref name="deok252"/> 포의 이윤종(李尹宗)은 이를 비웃는 시를 짓기도 했다.
묘비문은 동문이자 오랜 친구이기도 한 [[서거정]]이 찬하였다. 생전에는 활달하고 호쾌하며 솔직한 성격으로 인정되었으나 [[조선 세조|세조]] 말기부터 공신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등용한 [[김종직]]과 그의 제자인 [[사림파]]들이 [[조선 세조|세조]] 이후 정치계에 본격 진출하면서 그는 '간신'으로 격하되었으며, 그는 가장 '위대했던 간신'으로 평가되었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오래도록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 그에 대한 전기와 전설, 작품 등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 뒤 [[1990년]]대에 와서 재평가, 재조명 여론이 나타나게 되었다.
세조는 나의 장량이라고 할 정도로 그를 총애했으며,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하기도 했다.<ref name="park116"/> 서울의 압구정동은 그가 만년에 여생을 보낼 목적으로 세운 정자이자 그의 아호인 압구정에서 유래한 지명(地名) 이름이다.
한명회는 노년에 권좌에서 물러나 송나라 정승 한충헌의 정자를 흉내내기 위해 명나라 한림원시강 예겸에게 정자 작명을 청하면서 한가로이 갈매기와 벗하며 지내고 싶다하는 정자를 짓고 여기에 자신의 호를 붙여 '압구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노년에도 부원군의 자격으로 여전히 정사에 참여하여 권좌를 지킨 인물이었다. 그 때문에 당시 백성들에게 압구정은 자연과 벗하는 곳이 아닌 권력<ref name="park116"/>과 벗하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 김갑수(배우) . . . . 15회 일치
대한민국의 중견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선보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보잘것없고 찌질한 가장부터 근엄한 높으신 분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넓으며 어떤 역할에도 깊이가 있다. 카리스마를 감춰야 할때는 쭉 감추다가 감정선이 커질 때 그 카리스마를 사정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배역 내내 카리스마를 유지할때도 있는 등, 현역 배우 중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거의 최정상급에 위치한 배우이다.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은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안성기]], [[김명곤]]을 포함하여 [[신현준(배우)|신현준]], [[오정해]] 등등의 젊은 배우들이 기대 이하의 연기를 선보이며, 우익단체의 상영반대에 협박을 당하였다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에서 유일한 연기로 압도하고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 개봉일에 관객들이 사인받으려고 저 네명의 배우에게 많이 몰렸는데, 겨우 1회 상영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김갑수에게 관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금홍아의 금홍아나 TV 소설 등에서 난장질 치는 아저씨 연기는 일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소령을 연기한 데미안 루이스와 너무 닮아서 윈갑스 소령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대학로 등지에서 꾸준히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로 맥도날드에 가끔 나타나서 일행들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역]]과 [[악역]][* 악역을 예로 들자면 드라마 '타짜'의 아귀, '연개소문'의 수양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국정원 국장 역을 꼽을 수 있다.]을 둘 다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비슷한 타입으로 김상중은 연극에서는 경박한 연기도 했지만 TV에서는 그런게 없다!]
TV 최초 출연작은 유인촌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장미희 TV 복귀작으로 유명한 "역사는 흐른다"였다. 장미희를 사모하고 나중에는 독립투사로 변하는 천민 석하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남겼고 이후에도 특집극 찬란한 여명에서 개화승 이동인 연기,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시인 [[이상(작가)|이상]] 연기등으로 인상을 준 후 대표적인 출세작으로 2001년 방영한 [[태조 왕건]]. [[궁예]]의 냉정한 책사 [[종간]]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이후의 연기도 훌륭하나, 종간 역만큼은 김갑수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그 이전에도 연극계에서 유명세를 떨쳤으나[* '님의 침묵'이라는 연극에서 한용운 선생역을 연기함으로서, 그쪽에선 이미 유명인사였다 한다. 관객동원수는 자그마치 약 3만명. 그는 이 작품으로 백상 예술대상을 비롯 총 5개의 상을 받았다. 그는 이 수상을 계기로 영화 '태백산맥'에 케스팅 되기도 했다.] 이 단 한 편의 드라마로 톱 중년 연기자로 단숨에 발돋움한 그는 그 이후로도 주로 현대극도 꽤 했지만 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게 된다.
의외로 2004년에 [[영웅시대]]라는 드라마에서 고 정몽헌 회장으로도 분하여 투신자살하기까지의 고뇌와 아버지 [[정주영]] 회장([[최불암]] 분)이 내린 대북방사업을 완수시키기 위해 분투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직후 정몽헌 회장 1주기 추모식이었는데 현대그룹은 정몽헌 회장을 간지나게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참석해줄 것을 청하기도 해서 실제로 추모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1999년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당시로선 파격적인 KBS 드라마 '슬픈 유혹'에서 주진모와 연인 사이로 나오기도 했다.[* 키스신도 있었다!] 극중 자고있는 주진모의 등(그것도 헐벗은 상황)을 보고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다 한다.~~[[감비노]]도 궁금해 하더라고 [[등짝을 보자]]~~ 무릎팍 도사와의 대화중, '쌍화점에서 주진모와 조인성이 동성간의 사랑을 연기했는데 봤느냐?'라는 질문에 '''[[오유가또|진모가 또]]?'''라는 발언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 2011년 4월 12일 방영된 [[김승우의 승승장구]]를 끝으로 [[예능]] [[은퇴]] 선언을 했다...~~그러면 [[시트콤]]부터 접어야겠지?~~ 그런데 [[XTM]]에서 2011년 하반기부터 방송하는 [[탑기어 코리아]]의 멤버 중 1인으로 발탁되었다. ~~뭐??? 예능 은퇴한 거 아니었어??~~ 탑기코 시즌1에선 큰 형님 포지션 겸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활약. 그럭저럭 무난한 진행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동차에 관한 식견이 수준급이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폭스바겐 골프]]를 엔진종류 별로 딱1번만 주행해보고 정확하게 차종을 구분하는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1의 백미로 꼽히는 슈퍼 카 택시 에피소드에서 [[험비]]의 민수형인 허머(Hummer) 택시를 담당하여 주목 받기도. 그러나 개인사정 상 시즌1에서만 나오곤 하차했다. 그러나 후임들이 워낙 평이 안좋은 지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으로 보인다.
* [[아이패드 에어]] 한국어 광고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 [[바이크]] 매니아라고 한다. 바이크를 타면서 찍은 사진 밑에 '라이딩 중 애마와 잠깐 한컷 ㅎㅎㅎㅎ'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사실 소문난 바이크 매니아이다.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10411000163|이 기사]]를봐도 알겠지만 직접 중고 바이크 거래에 나설 정도이며 바이크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은 듯하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0245|힛갤 간 구매자의 글]]]
* [[군기반장]]이기도 한데, 어느 정도냐면 김갑수처럼 군기반장인데 그 악명이 자자한 [[이경실]]([[이경규]]와 [[홍기훈]]조차도 꼼짝 못한다.)이 알아서 눈치를 볼 정도다.
- 김국진(MC) . . . . 15회 일치
심지어 '''국찌니빵'''이라는 본인의 이름과 본인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넣은 빵이 대 히트를 기록해서 도산위기였던 기업을 살려내기도 했다. 당시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 성적인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자면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허니버터칩]]도 3개월만에야 매출 50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초대박이 났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건 상품이 최초로 나온 사례이자 스타 마케팅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사례로 마케팅 전공수업시간에도 언급될 정도.[* 물론 이전에 [[배삼룡]]의 '삼룡사와'도 있긴 한데, 삼룡사와는 배삼룡 소유의 음료회사에서 출시한 제품이다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 게다가 삼룡사와는 '파는 곳이 없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본인 회사가 아니었으면 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증이 될 듯.] 사측에서 IMF 당시의 기업 형편이 어려워 많이는 못 드린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김국진이 개런티 없이 캐릭터 사용을 허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품은 대박났지만 그가 받은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의 [[대인배]] 인증은 여기서부터-- 당시 국찐이 빵을 먹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스티커는 국찐이의 세계여행 등 몇가지 테마를 가지고 만들어졌고 빵 종류는 여러가지였는데 가격은 500원으로 동일했고 은근히 양도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창렬]]의 반대사례~~ 핑클빵도 국찌니빵 같은 히트사례가 없었다면 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최전성기이던 [[1999년]] 갑자기 방송을 그만두고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 휴식기를 가지기 직전, [[에디 머피]] 주연의 영화 [[닥터 두리틀]]에서 에디 머피를 연기하며 성우로도 활약을 잠깐 했는데 평은 극악이었다. 결국 나중에 MBC에서 더빙 방영할때 에디 머피 전문 성우인 [[이인성(성우)|이인성]]이 재더빙을 맡았다.] 이후 김국진은 휴식 기간 중 접한 [[골프]]에 빠져서 [[프로]]골퍼에 도전했지만[* 1990년대에도 골프를 취미로 했었다는 말을 [[박수홍]]이 라스에서 언급하긴 했었다.] 프로 등단 시험마다 탈락하면서 막대한 돈을 잃었다.[* 그나마 골퍼로서 입지가 안정된 후에는 [[http://youtu.be/e2CLgocjSco|집중력 향상 드링크제 광고]]를 찍기는 했다.] 사실 턱걸이로 계속 프로 골퍼 시험에 떨어졌다고 한다. 작년이었으면 될 성적인데 올해는 합격이 어려운 성적이었다던지... 이후 [[2000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 출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윤성(배우)|이윤성]]과 2002년 10월 17일 결혼했다.[* 여담으로 이 시트콤에 [[이선균]]이 이윤성의 동생으로 분했다.] . 이윤성과 김국진은 [[2003년]] [[7월]]부터 돌연 별거를 시작하다가, [[2004년]] [[3월 15일]]에 이혼했고 이윤성 측에 막대한 위자료까지 지불하게 된다.[* 이윤성의 외도설이 있지만, 사실이라면 과연 김국진이 위자료를 지불했을까? 아마 결혼 후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는 등의 사연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으나, 이혼 후 김국진은 가급적 그 당시 일을 언급하기 꺼리고 조용히 혼자 외롭게 산다는 이미지면(물론 가끔씩 개그소재로 쓰긴 한다), 이윤성은 기다렸다는듯이 재혼한데다가(더구나 남편 홍모 의사 또한 이혼 경력이 있는 돌싱이었다) 방송에서 잊을만하면 김국진과 결혼 생활고,이혼 경력을 끄집어낸 것을 보면 여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이 때 시도한 골프의류 사업과 주식투자 모두 망했다. 또한 후배든 친구든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돈을 내줘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게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 돈을 제대로 갚은 사람은 몇 없다고 한다. 거기다 절친했던 인물에게 사기도 당했다고...
인생 망가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김국진의 전성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체 뭘 하면 그 위치에서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가에 경악하게 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방송 복귀 초기의 모습인데,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도, 어느정도 안정된 현재에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이 기간중에 [[범죄]]를 저질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어, 재기의 기회까지 박탈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2013년 연예인 불법도박 사건|도박질하는 유명 연예인보다]] [[자본주의의 돼지|굶주린 무명 연예인이 낫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김국진이 재기 직전 김국진의 지인들이 혼자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를 위해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국진과 생면부지였던 배우 박정수와 가수 [[은지원]]이 찾아가 셋이 서로 친해지는 내용이였다. 당시 김국진은 전보다 더 수척해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면 주로 뭐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소파 구석에 들어가 쭈그려 앉아있는다' 고 안습한 대답을 했다.] 게다가 김국진은 전술했듯 워낙 사람이 좋고 주변인들에게 친절했기 때문에 연예계 동료나 그당시 무명이었던 희극인이나 예능인들을 많이 도와줬고, 그렇게 쌓인 인복이 후일 복귀할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무릎팍 도사]] 출연을 시작으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를 맡게 되는데, 처음에는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 시기에도 매우 센 방송이었기에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질 못하면서 오는 무리수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구라의 멱살을 잡거나 대본을 집어던지거나 했던 것도 이 시기 쯤.
이렇듯 어려움도 많았지만 회가 갈수록 조금씩 캐릭터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레전드 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자신감을 얻어 라디오 스타 MC로써 확실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김구라가 없던 비상(?)체제에서는 조용조용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게스트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가 되었고, 라디오 스타가 특정 매니아 층 형성에 성공하면서 소위 [[알까기]] 프로그램인 명랑히어로, [[음악여행 라라라]], [[위기탈출 넘버원]][* 2010년 5월 10일부터 2012년 9월 3일까지 고정 MC로 출연.] 등에도 출연했다. 이와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유일하게 견제하는 역할로 나름의 영역을 보여주며 활약을 선보였고, 공중파 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MC를 하는 등 단순한 재기를 넘어서 제 8의 전성기가 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활에 성공했다.
[[2008년]] 중반기에는 라스에서 나이를 잊은 골반춤(일명 '예~' 춤)에 큰 스퍼트를 받았으며, 모두들 그를 보면서 귀엽다는 평가를 했다. 이후에도 가끔씩 선보이면 좋은 반응을 얻는다. 특히 다른 쪽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카라(아이돌)|카라]]의 2집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Pretty Girl]]의 안무를 보면 예~ 춤을 응용한 비슷한 동작이 있는데, 카라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김국진 선배님의 춤을 응용한 거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추신수편과 이대호편에서는 스윙으로 촛불끄기에 도전했다가 초를 날려버리는 레전드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http://naver.me/56oLMTEJ|#]] 이후 [[불타는 청춘]]에서 다시 한번 도전했는데 여기서는 시원하게 성공했다.[[http://naver.me/xYianF1W|#]]~~다만 여기서는 [[구본승]]이 라스의 아성을 재현한다~~
'''결국 2016년 8월 3일 [[http://m.news.nate.com/view/20160804n07681?list=edit&cate=ent|강수지와의 연애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정정보도에 의하면 결혼은 아직이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연애''' 중이라고 한다. 김국진의 인생사를 아는 사람들과 그동안 라스에서 반품남 기믹으로 본인도 은근히 씁쓸해하는 모습에 마음 아파했던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중이며 두 사람의 행복을 응원하는 중. 이후 라스에서 연애 발표까지 했다. 이후에도 대놓고 닭살 커플 티를 내고 있는데 자기들이 더 난리치며 좋아라 하는 [[조규현]], [[윤종신]]과 달리 김국진이 이런 행동을 할때마다 못마땅해하는 [[김구라]]가 포인트. 이후 강수지와 함께 라스 출연하기도 했는데 주변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강수지와 연애를 시작한후 평소엔 과묵하던 김국진이 말도 많아지고 연애 조언도 척척 할 정도로 밝아졌다고 한다.
과거 [[구준엽]]과 철봉 매달리기 대결에서는 구준엽은 얼굴이 시뻘개져 떨어지고 난 후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철봉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축구]]도 굉장히 잘 한다고 한다. 학창시절 선출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구선수]]들과 친분이 깊은 [[이유]]. [[홍기훈]]의 증언으로는 30대 시절 연예인 축구 동호인끼리의 축구 경기에서 김국진 혼자 5점을 득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김국진이 강냉이 [[드립]][* 김국진이 방송에서 10년 넘게 자주 하는 [[애드리브]]로 본인이 젊을 때 [[권투]]를 배워서 자신한테 덤비는 사람은 주먹을 툭툭 쳐서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고 하는 말장난 개그.]처럼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많지만, 연예계의 파이터들 중에 하나인 [[홍기훈]]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표영호]], [[지석진]], 김용만 등에게도 데뷔 초에 [[형]]이라고 못 불러주겠다고 선언하여 [[반말]]을 사용하는 데에 반해 김국진에게만은 매우 깍듯하게 모시는 선배 형님이라고 하니 김국진이 의외로 어느 정도의 깡과 운동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싸움]]으로 홍기훈을 이길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예선 전에서 맹활약한 "독수리" [[최용수]]와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공차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핫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김국진이 공을 몰고 나오며 큰소리로 "최용수 나와!" 라고 외치기도 했다. 당연히 얼마 못 가 최용수에게 공을 빼앗긴다.
라디오스타 '[[라디오 스타(황금어장)/2013년 상반기|괜히 바꿨어 특집]]'에 출연한 [[나나(애프터 스쿨)|나나]]가 [[봉춤]]을 선보이자 '''직접''' 해 보기도 했다. 다리 힘만 가지고 봉에 매달리기를 시전할 정도. --[[살아있네]]!-- 이후 2016년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김동현(종합격투기)|김동현]]에게 기습을 해서 김동현의 항복을 받아낸다.
- 문근영 . . . . 15회 일치
[[리즈 시절]]에는 외모가 '''[[동안]]'''의 표준에 가까웠기에 아역 연기자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특히 [[송충이 눈썹]]의 임팩트가 강하다. 왠지 모를 중성적인 느낌도 강렬해서 다른 연기자인 [[정태우]]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또한 다른 의견으로는 [[고현정]]의 어릴 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8년]]에 복귀해 방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여자]] 기믹의 신윤복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검증받았다. 다만 얼굴을 [[남자]]에 대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에 쇼크를 먹은 팬들이 있으며[*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김규리(1979년 10월)|김규리]](개명전:김민선)도 [[남장]]을 했다지만 본판은 여자라는 티가 났다.], [[박신양]]의 강렬한 엘보우에 가격당해 코뼈가 나가기도 했다(…). 현재는 완치되었다. 덕분에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19371|21세기를 이끌 미래인재]]에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 참고로 같이 선정된 사람 중 한 명이 동향인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KIA 타이거즈]] 투수 [[한기주]]였다.(...)
[[SBS 연기대상]]에서 [[신윤복]] 역으로 정향 역을 맡았던 [[문채원]]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했다. 통상 연기대상은 관례상 시청률이 높은 자사 드라마의 주연 내지는 자사 드라마에 출연해 주길 바라는 거물급 배우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수상이었다. [[박신양]]의 [[김홍도]]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드라마를 혼자 이끈 문근영의 공을 감안해도 10%대의 드라마 주연에게 연기 대상을 수여하는 일은 파격적이었다. 이로써 문근영은 만 21세에 연기대상을 수상, 방송 3사 통틀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연기대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는 1998년 [[미스터Q(드라마)|미스터Q]]의 [[김희선]](당시 만 21세). SBS 연기대상은 그 해 12월 31일에 진행되고, 생일이 12월과 가까울수록 어린 나이가 되므로, 만 21세 때 대상을 수상한 두 사람 중 생일이 6월인 김희선이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문근영은 수상소감 내내 몸을 바들바들 떨정도로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며 대상 수상을 버거워하기도 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부문 여자 최우수상(방송)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엠파스]]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바니걸]] 컨셉을 잡은 것이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문근영 자신은 그전부터 아역 이미지를 벗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런 컨셉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문근영 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문근영을 여전히 아역 이미지로 기억하던 상황인지라, 대부분 문근영과 [[싱크로]]가 너무 맞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2010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로 악역인 듯 악역 아닌 악역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여 이미지 체인지.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신데렐라의 언니의 시각에서 보는 색다른 시도의 드라마이다. 송은조를 연기했다. ~~나중에 구은조로 개명한다~~ 제대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은조가 엄마를 따라 대성도가로 이사하면서, 새 아버지와 새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대성도가 알바생 기훈([[천정명]])과 그리는 로맨스가 팽팽하고 애절하다. 명대사 또는 명장면으로 기훈의 '은조야!' 은조의 '은조야ㅠ은조야ㅠ'오열씬, 은조의 '아..아버..아..아빠.. 아빠ㅜ 아빠ㅠㅠㅠㅠ'오열씬 등이 있다. 어째 같은 아역 출신 연기자인 [[강혜정]]과는 대조적으로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같은 해 연극 클로저에서도 위험한 분위기의 [[팜므파탈]]로 등장했는데, 여기서 '''[[담배]]피우는 연기 모습이 엄청나게 익숙해보여''' 문근영이 진짜 흡연 이력이 있느냐를 놓고 격론을 낳기도 했다. 다만 흡연 여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적은 없다. 설령 사실이라 한들 성인의 흡연이 뭐가 문제랴마는...[* 사실 여배우들의 흡연은 꽤 많은 편이다. 故 [[최진실]]도 소문으로 흡연자라는 설이 꽤 돌았는데 결국 [[조성민]]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임신]] 중 흡연이 확인되어 진실로 밝혀졌다(…).]. 게다가 사실 이미 [[2008년]]에도 담배를 피우는 컨셉 화보를 찍어 의혹이 커졌었는데, 비흡연자 중에서도 흡연 묘사 자체를 모방효과로 인해 달갑잖게 취급하는 혐연자들이 있는 것과 대조되는 것을 보면, 문근영이 비록 흡연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흡연행위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반감을 갖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물론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아직 가시지 않은 팬들 입장에서는 흡연 연출 자체만으로도 [[충공깽]].
[[바람의 화원]]을 시작할 때 즈음 갑자기 심하게 야윈 모습을 보여서 [[거식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이 때 그녀의 모습을 보면 [[에반게리온]] 수준으로 말라서 뼈만 보이는 등, 대충 보기에도 심각한 저체중이라는 것이 보일 정도. 게다가 아랫턱 침샘부위가 유독 심하게 부은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거식증]] 환자들이 폭식한 다음에 손가락을 입에 넣어 죄다 토해내는 행위를 하다보면 침샘이 심하게 부어서 이중턱이 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심하게 후덕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이 논란은 일단 가라앉았다.
얼굴이 아주 붓는 것으로 봐서는 거식증이라기 보다는 내분비쪽에 약간 문제가 있는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호르몬은 조금만 과하거나 적어도 외모를 확 바꾼다는 점에서 그렇다.
참고로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개봉 와중에 특례입학하는 바람에 '''수능 따윈 필요없어'''라는 비아냥조의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이 특례입학 과정에서 수능으로 당당히 입학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한 것에 대해 호감 이미지가 상당량 깎인 듯.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연예활동 수입으로 재테크 못잖게 기부활동을 많이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8년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익명으로 6년간 총 8억 5천만원을 기부했음이 후에 밝혀지기도 했다(물론 기명기부도 적지 않다). 이것도 처음에 익명만 알려졌는데, 그 기부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이 기부자가 2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를 밝히기 위해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했고, 결국 기부자의 신원이 문근영으로 좁혀지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소속사에 밝혀도 되는지 물어보고 소속사가 발표를 허락하자 이를 확인해주었다.
당시 특종보도로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어졌는데,가장 유명한 기부활동으로는 [[2006년]]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목사 부부에 의해 운영되다 재정악화를 맞은 공부방을 인수해 [[2009년]] [[개신교]] 계열 [[NGO]] '굿피플'에 기증한 것. 원래 익명으로 하려 했으나, 후에 기증하러 온 여인이 문근영의 어머니임이 밝혀져서 기증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 외에 [[2005년]]부터 [[순천시]]의 도서관에 2,500만원을 기부한 것과, [[2002년]]부터 다년간 고향 [[광주광역시]] 빛고을장학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09년 여동생이 유학 중이고 친척의 연고지이기도 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한글도서관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인터넷 [[문체]]의 하나인 근영체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2> [[2000년]] || [[정일영]] || 기도 ||
- 울릉군 . . . . 15회 일치
2016년, 국내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인구 네자리로 떨어지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7/2010090701865.html?rsMobile=false|2005년엔 9,538명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1만 명 넘어섰다고 마냥 좋아하기도 그런 게 지역주민들에게 배값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걸 노리고, 유령주민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을 옮겨놓으면 10분의 1가격에 배를 타니 꽤나 혹하는 듯 하다.] 그러나 2017년 7월 기준으로 다시 1만 명을 넘어갔다...는 2017년 11월 기준 9,996명으로 떨어지며 네 자릿수가 되었다..가 2018년 6월 기준 10,010으로 다시 1만 명 선을 회복했다.~~다이나믹 인구~~
[[조선]] 시대 때 [[왜구]]가 많이 습격하자 조정에선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공도(空島)정책을 쓴다.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을 하기도 했지만 [[안용복]]의 활약으로 1696년에 [[도쿠가와 막부]]에서 울릉도를 조선의 땅으로 인정하고 막부는 일본인들의 출입을 금했다([[http://anyongbok.kr/ahn/ahn_01.php|안용복 재단]] 참조). 그 후 19세기 고종 시절에 울릉도를 개척하는 정책이 시행되어 전남, 경남 지역 도서민을 이주시켜 다시 유인도가 되었다.
[[러일전쟁]] 때는 울릉도 역사 상 드물게 주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함대는 울릉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여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물론 대한제국 정부의 승인 따윈 없고, 일본이 자의적으로 울릉도를 사용했다. 그리고 근해에 침몰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방호순양함]]인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은 군자금으로 실린 막대한 금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765525|관련기사]]
해방 이후 많은 사람들이 어업(특히 [[오징어]])에 종사하러 울릉도로 이주했고, 한때 인구 3만 명을 넘기도 했으나 도로 인구가 줄어들어 지금은 약 1만 명 가량이다.
역사적으로 줄곧 그래왔듯이 한국 본토에서 어떤 급변상황이 터지더라도 일단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다만 러시아나 일본과 시비가 붙는다면 가장 위험해지는 위치이다. 실제로 과거 일본이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도 자국땅으로 삼으려 하기도 했고...자세한 것은 [[울릉군/역사]]를 참조.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약한 제주도 같은 사례를 제외하면 해안, 섬 지역은 선교사의 포교가 용이한 관계로 기독교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 곳 역시 [[불교]]가 초강세인 영남권에 있음에도 유일하게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곳이기도 하다. [[포항시|포항]]이나 [[거제시|거제]] 역시 영남권에서는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편이지만, 울릉군의 개신교 강세를 따라잡을 수준이 안된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주민의 47%가 [[개신교]] 신자로, 33%인 [[불교]] 신자 비율을 상회한다. 물론 영남도 대도시는 [[천주교]] 및 [[개신교]] 교세가 꽤 큰 편이라 이상할 건 없다. 당장 [[부산광역시]]에는 초대형 교회도 여럿 있고 [[대구광역시]]를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는 무려 대교구([[천주교 대구대교구]])이며 [[부산]]에서 WCC총회도 열린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 울릉도는 [[화산]]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그 안에는 화구가 함몰된 나리 분지(위의 사진)와 알봉 분지라는 2개의 거대 칼데라 분지가 있다(맨 위 지도에서 안쪽에 허옇게 보이는 두 분지다). 알봉은 칼데라 이후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용암돔이다. 지도에서 나리 분지나 알봉이라는 지명이 보이면 일단 울릉도부터 떠올릴 것(그런데 알봉이라는 지명이 다른 지역에도 있어서 가끔 낚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출신 인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면 지역신문은 물론이고 중앙일간지에서도 실어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CE부문 [[대표이사]])[* 원래는 고2때까지 울릉수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더 큰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대구에 있는 [[대륜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해 총 5년이나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남한권 [[예비역]] [[준장]]([[대한민국 육군]] 인사행정처장),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천주교]]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장 겸 [[덕원자치수도원]]장 서리) 등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마찬가지로 내륙지방과 고립되어 있는 탓에 특산식물이 많이 분포한다. 우리나라만의 특산식물이 328종 정도 인데, 울릉도에만 존재하는 특산식물이 36종으로 전체 특산식물 종의 1/10 이상인 셈. 넓이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편으로 제주도는 2배 정도인 75종이다. 대표적으로는 섬잣나무와 고추냉이, 명이나물 등. 식용은 아니지만 피부미용에 이용하거나 말려서 차로 끓여먹기도 하는 어성초도 있다. 명이나물은 요즘 뭍에서도 유명해지고 있다. 참고로 명이나물은 깊고 기묘한 맛으로 유명한데, 수가 적어져서 현재 울릉도산은 반출이 금지되어있다.
- 박주영 . . . . 14회 일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카디프 대첩|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주영/국가대표 경력#s-3.2|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6년에는 33경기 10골로 부진했으나 2007년에는 잦은 부상으로 출장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15경기 5골의 성적을 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모나코FC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1득점과 1어시스트를 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핵심선수로 부각되어 이적한 바로 다음 달인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09시즌 35경기 출장 5골, 2009-10시즌 22경기 9골 등의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2010-11 시즌은 강등권 팀에서 12골을 넣으며 공격 전체적인 면에서 팀을 이끌었으나, 모나코는 강등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문 팀들과 이적설이 돌았으나, 결국 아스날을 선택했다.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사실 부끄럽지만은 않은 선수였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 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었'''다.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는 대한민국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자랑했다. 뛰어난 키핑력에 국대에서 차두리에 이은 2위에 랭크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점프력면에서도 뛰어나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마이클 조던 강백호와 동급이다~~) 180초반대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떨구기도 수준급이었다. 이 당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따봉[[벌레|충]](-蟲)[* 이 말은 [[페이스북]] 유저 비하 표현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추천 버튼인 '좋아요'(영어로는 'Like') 버튼에 그려진 아이콘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따봉]])이기 때문.]
* 밥줘,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것이다.]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그냥 쓰는 팬도 많으며 사실상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로 정착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절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 주님요 : (기도 세리머니→)주님 + 브라질 축구스타 [[주니뉴|주닝요]] 패러디. 당연히 이 별명은 비꼬는 맥락에서나 쓰이며, 주님영보다 귀염성이 덜하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가끔은 가끔인데 가끔이 너무 가끔이야. 그리고 사실 한일전 그것도 청대에서 한골 넣었다고 갓주영이면 역대 한일전 최다득점자인 [[최정민(축구)|최정민]]은 [[옥황상제]]인가?~~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됄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http://shootkim.khan.kr/493|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837061|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2012년 즈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까들의 활동이 부쩍 늘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다음]] 해축게에서 공개적으로 타 사이트 [[공대]]를 모집하고 있을 정도.[[http://bbs.sports.media.daum.net/gaia/do/sports/read?articleId=329103&&bbsId=F004&searchKey=subjectNcontent&sortKey=depth&searchValue=%EA%B0%9C%EC%86%8C%EB%AC%B8%EB%8B%B7%EC%BB%B4&pageIndex=1|참고]]. 이런 무개념 박까들의 난입으로 [[개소문닷컴]]의 청정지대(?)[* 사실 여기도 파고들어 보면 문제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로간에 심한 욕은 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청정지대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소문닷컴에는 이것도 안 되는 지대가 많다] 중 한 곳이었던 축구 게시판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 성훈(배우) . . . . 14회 일치
|| '''출생''' || [[1983년]] [[2월 14일]],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 ||
* [[가족의 탄생(드라마)|가족의 탄생]] : [[한지훈(가족의 탄생)|한지훈]] 역. 작품에서 남주가 뒤바뀐 보기 드문 사례이자, 《[[신들의 만찬]]》 시즌 2(…)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네티즌 반응은 원래 남주인 [[이규한]]보단 캐릭터에 있어서나 배우에 있어서나 서브남주인 한지훈 역을 맡은 성훈 쪽이 압승이었다는 평. 연기력이야 남주인 이규한이 훨씬 호평을 받았지만 비쥬얼이나 옷걸이나 외적인 조건에 있어선 성훈이 더 대중의 반응이 좋았다.~~결국 연기력보단 얼굴이란 얘기~~ 성훈이 수영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입고 나오는 의상마다 웬만한 모델급으로 소화해 성훈이 극 중 입은 수트들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가가 성훈의 팬이었는지~~ 캐릭터로 봐도 강윤재보단 한지훈 쪽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많았다. 결국 한지훈이 히로인과 연결되며 《가족의 탄생》 최대 수혜자 겸 진 주인공은 성훈이 되었다(...)
* 고결한 그대 : 이강훈 역. [[네이버 웹소설]]의 인기작들 중 하나인 《고결한 그대》가 원작이다. 일명 패왕색기 이강훈 역할과 무시무시한 싱크로를 보였는데, 정말 이강훈이 웹소설 밖으로 걸어 나온 수준(…) [[http://m.blog.naver.com/godinmedia/220391621546|직접 보자]] 어지간해서 좋은 소리 못 듣는 만화&소설 원작 드라마 캐스팅 평에서 성훈의 캐스팅은 호불호가 나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이강훈 실사판을 보는 것 같다고. 덕분에 '''웹찢남'''('''웹'''소설 '''찢'''고 나온 '''남'''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인터뷰에서 원작 팬들께 죄송하다고 하는데... ~~너무 겸손한 듯. 외모는 싱크로 100%이지만, 본인의 성격은 이강훈과 괴리가~~
* [[오 마이 비너스]] : 장준성 역. 극 중 [[UFC]] 챔피언이자 [[소지섭]]의 의형제 역할로 출연. 공교롭게도 소지섭도 수영선수 출신이다(...) 예체능의 영향이 컸는지 수영 챔피언으로 나오는 게 더 낫겠다는 네티즌의 말이 많다. 드라마 주제가 헬스라서 그런지 ~~리얼리티를 살리는 차원에서~~ 실제 운동선수 출신들을 데려다 썼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참고로 성훈의 첫 KBS 드라마 출연작이자 처음으로 SBS가 아닌 타 방송사 출연작이다.
* [[애타는 로맨스]] : 차진욱 역. 전작인 [[아이가 다섯]]에서 로코에 갈증을 느껴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계기로 로코킹, 키스 장인등의 별명을 얻었으며 내면 연기도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 2015 || 《[[우리동네 예체능]]》 || 수영편 고정[* 2015년 하반기에 오디션을 거쳐 우리동네 예체능의 수영반의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전직 수영선수의 위엄이 어디 안 갔는지, 나머지 오디션 참가자 9명을 말 그야말로 양민학살(...) 시키며 우승. ~~참가자 9명에겐 그저 묵념. 조기 축구회 입단테스트에 [[메시]]가 온 격. ~~참고로, 나머지 참가자들의 실력도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수영강국인 [[샘 해밍턴|호주에서 온 물개]]에다, 해병대 군 복무를 한 배우 [[최필립]]에다, 프랑스 지역대회를 휩쓴 [[로빈 데이아나|로빈]] 등등 경력들이 화려했지만, 14년 경력의 수영선수 앞에선... ~~신 앞에 선 인간들~~ 정식 멤버로 합류하고 난 후 실시한 잠수 훈련을 보면, 거의 사람인지 돌고래인지 헷갈릴 정도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막은 바닥청소를 하는 것 같다고. 강호동은 가오리에 비유했다~~ 공식 경기 단체시합 때마다 같은 아군 멤버들은 전부 상대팀에게 전멸하고 성훈 혼자만 이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어, 이젠 성훈이 시합에서 이겨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다(...) 거기다 항상 마지막으로 출동해 팀을 위기에서 건져서, 회를 거듭할수록 최종보스가 되었다. ~~소년가장, 우리동네를 부탁해, 수영셔틀, 위기탈출 성훈 등등으로 불린다~~ 자막으로도 '''역대 최강의 에이스''', '''갓성훈''', '''접영미 전도사''' 등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으로 선수 시절 성훈의 주종목이 [[접영]]이었다고 한다. 예체능에서도 접영 종목에서 출전 중. 자막대로 시청자 의견 중에는 수영이 이렇게 멋있는 종목인지 몰랐다는 소감들이 매우 많다. 심지어 예술의 경지(...)로까지 보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술 수영~~ 중계진도 중계 도중 감탄과 찬사를 날리는 등 제대로 시사실 예체능 초반부 단체전은 성훈 아니었으면 출전도 못했다. [[최윤희#s-2|최윤희]] 코치조차 성훈 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하기도. ~~사실 수영이라는 종목이 단기간에 실력이 늘기에는 힘든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예체능 선수진을 좀 더 탄탄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예체능 팀과 상대팀들의 공식시합을 보면, 그리스VS트로이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성훈은 헥토르인가~~ 그래서인지 8월 4일 방송에서 강호동이 상대팀 멤버를 이겼을 때, 격하게 기뻐했다. 하지만 본인은 같은 날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사실 운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다 된 점이나 나이로 볼 때, 상대적으로 어린 경쟁자와 거의 비슷한 성적을 낸 것은 매우 대단한 일. 하지만 본인은 매우 아쉬웠는지, 녹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중계진의 말로는 마음고생으로 잠도 못 잤다고~~ 8월 11일 방송분에서 멤버들과 탈의실에 앉아 있다가, 게스트인 [[은지원]]이 사물함 속에 숨어있다 튀어나오자 기절할 듯이 놀라거나, 경기하는 다른 멤버를 위해 입으로 열심히 휘슬을 불다 숨이 차 주저앉는 등 여러모로 허당 인증을 했다. 참고로 예체능 막내 PD를 상대로 병아리반 멤버들이 전부 패하자, 제정신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트로이 군을 보는 헥토르의 기분이 이랬을까~~ 거기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만 혼자서 2명이나 무찌르기도 했고 [[유리(소녀시대)|유리]]의 요가교실에서도 발군의 유연성을 발휘해 요가 에이스로도 등극했다. ~~물에서 아예 날아다니는데, 요가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수영반 마지막편인 수영 대축제에선, 핀수영 '''선수 출신'''이었던 정성윤을 포함한 라이벌들을 핀수영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바르고 1위를 차지.~~ 50m 20초46(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한 상태, 자유형 50m면 세계신기록에 가까운 기록) 정성윤은 24초21~~캐스터와 해설위원은 성훈의 경기 내내 감탄하느라 바빴다. 카메라조차 거의 성훈만 비출 정도였으니(...) 심지어 출연한 다른 팀들의 사람들은 ~~하라는 응원은 안 하고~~ 넋을 놓기까지(...) ~~캐스터는 엉덩이가 섹시하다고~~ 전체적인 평으로는 남자의 수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든가, 경기를 보고 감동했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남자 인어''' 마지막 개인전에선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터치 미스로 실격하고 말았다. 본인도 마지막이어서 더더욱 아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자세히 보면 허리통증으로 테이핑을 하고 있다. 통증투혼 이었던것.~~ 성훈의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멤버들과 심지어 코치진도 눈물바다. 여담이지만 유난히 혼자 빵 터지거나(...) 멤버들의 출전 전이나 경기 중일 때 무척 열심히 응원하는 등 리액션이 큰 편이다. 초등학생들과의 공식시합에서는 유망주마저 홀리는 등(...) 본인과 정말 딱 맞는 예능에 출연한 듯. 실제로 예체능을 통해 성훈의 팬이 된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사실상 예체능 수영 편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성훈 한 명을 위주로 해서 굴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다른 종목 편에서 해당 종목의 원탑 멤버가 나오면 기사에서 제 2의 성훈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
||<|6> 2016 ||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 455회 2016년 06월 30일 방송 우리 무슨 사이예요? 편. 주말드라마 [[아이가 다섯]]이 종영되기전 신혜선과 같이 출연 했는데 극 중 너무 몰입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극 중 몰입을 위해 촬영 초반에는 태민(극 중 동생, 안우연)과는 친하게, 연태(신혜선)와는 쌩(?)했다고 한다~~. [[검사외전]]속 [[강동원]]과 [[아이가 다섯]]속 성훈중 누가 더 키스를 잘하냐고 신혜선에게 물었는데 성훈이라고 답했다.] ||<|5> 게스트 ||
|| [[JTBC]] || 《[[아는 형님]]》[* 39회 2016년 08월 27일 방송. 성훈이 과거 수영선수였음을 밝히자 멤버들은 '수영하는 좀비' 연기를 부탁했고 성훈은 접영 포즈로 좀비 흉내를 냈지만, 곧 부끄러워하며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또 성훈의 상대역을 맡은 김진경은 "성훈 씨 주사 맞으셔야해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바지 내려주세요"라고 19금 애드리브를 하자 당황한 성훈은 "스무살인데 왜이래"라고 말했고, [[민경훈]]은 "바지 내리고 주사맞는 역 대역 되나요?"라고 말했다. 성훈은 바닥에서 수영하기 게임을 제안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실격패 했다.~~좀비연기도 게임도 디제잉도 노래도 몸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짱👍~~] ||
|| [[tvN]] || 《[[내 귀에 캔디]]》[* 시즌 1. 9회 10회. 2016년 10월 20일, 27일 방송. 태평양급 어깨를 자랑하며 수영을 하는 남성미를 한껏 뽐내다가도 캔디와의 통화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 같은 모습들은 성훈의 재발견이었다는 반응. 특히 그는 캔디 ‘분홍’을 위해 연을 날려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세심한 사랑꾼의 면모도 보였다. 캔디 '분홍'([[허영지]])이 과거 일반인 첫사랑이 '분홍'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고 하자 성훈은 바로 분노하기도 했다(...) ~~역쉬 사랑꾼, 금사빠(헉)~~] ||
* 소개글에도 있지만, 신체스펙이 매우 우월한 편이다. 운동복이든 평상복이든 수트든 작품에서 입고 나오는 옷마다 완벽하게 소화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심현섭(코미디언) . . . . 14회 일치
* 상위 문서: [[코미디언/목록]], [[경기도/인물]]
|| '''출생''' ||<(> [[1970년]] [[5월 6일]] ([age(1970-05-06)]세), [[경기도]] [[성남시|수정구]] ||
2003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에서 계속 나왔지만 그의 코미디는 재미없다는 평이 대세였고 인기도 떨어졌다.
정권이 바뀌고 오랜만에 복귀한 [[2009년]]에 [[개그야]]에서 가슴팍도사라는 [[무릎팍도사]] 패러디 코미디를 선보였지만, 역시 평도 안 좋았고 인기도 없어서 다시 잘렸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종편]]행을 선택, [[채널A]]의 [[개그시대]]에 출연했으며 해당 프로의 다른 OB 3인방인 [[최양락]]이나 [[남희석]]에 비해 비중이 매우 적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외에 채널A의 뉴스 및 시사프로그램에 수차례 패널로 출연하며 주요 [[정치인]]의 성대모사를 선보이기도 했다.
브라운관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지만 몇 년째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념하며 활동 자체는 계속하고 있다. 2010년 [[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과 함께 KBS 라디오에서 '신나는 오후4시'를 진행하였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EBS라디오에서 '대한민국 성공시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4월부턴 TBN한국교통방송에서 평일 오후 2시에 [[아나운서]] 선우경과 함께 '심현섭 선우경의 신나는 운전석'을 진행하고 있다.
연예인 야구동호회 조마조마 야구단의 감독이기도 하며 연예뉴스에서 이와 관련된 소식으로 그의 얼굴을 종종 접할 수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종영하기 전 [[김구라]] 채널에 패널로 등장. 자신의 개인기들을 선보이며 [[팟수]]들을 웃기려고 시도했으나... 결과는 지못미. 자세한 사항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 참조. 이 날 [[김수용(코미디언)|김수용]], [[김경민(개그맨)|김경민]]과 함께 김구라 방 '비운의 천재 특집' 편에 출연했다. 사실 개그 커리어만 봐도 셋 중에서 '비운'과 '천재'라는 단어에 모두 가까웠던 사람은 20세기말 한국 개그의 레전드 심현섭 뿐이다. 단, 그날은 심현섭이 준비한 개그들도 기본적으로 타율 2할 미만이었던데다가,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김경민의 알수없는 [[드립]]에 전체 방송 분위기가 다 말려버리면서, [[김구라]]의 진행도 종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되었고 김경민과 김수용 모두 심현섭보다 [[선배]]이다 보니(심지어 김경민은 [[군대]]도 선배다) 그가 컨트롤도 할 수 없게 되어, 원래 항상 틀을 점잖게 잡고 시작하는 스타일의 정석 개인기형 개그인 심현섭의 희극 연기도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광주 [[여행]]하다 보면, "원래 저 땅은 심상우 의원 땅이었는데…." 하는 말을 의외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심 씨의 가세가 한 때 얼마나 흥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공무원 = 도둑놈" 하는 등식을 지역 사회의 어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례이기도 하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호텔로 [[개명]]한 모 호텔 및 근처 아파트 단지 부지도 원래는 심상우 의원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을 심 의원 사후에 공무원들이 가로챈 것. 허나 현재 호텔은 온데간데 없고, [[교회]]가 들어서 있다.] 예를 들어 박치기왕 [[김일(프로레슬러)|김일]]을 실제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테러 소식을 들었던 심현섭 본인은 1분이 1년 같았다며 회고했다고 한다.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s-1|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까지도 보수파 계열에서 정치적 지지 의사를 꾸준히 표명했는데, 이러한 행보는 사실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나 출세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심현섭 본인의) [[아버지]]가 [[북한]]이 벌인 [[테러]]로 순직하게 된 특수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탄압 주장도 사실 그의 정치적 지지 행보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공작원이 2008년 [[미얀마]]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 공작원도 아버지와 함께 남북 분단 시대의 희생자"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아버지의 사망 이후 가세가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고 후에 정치적 논란도 겪게 되는 심현섭 본인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개콘을 떠날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절더러 '오만하다', '인기 얻었다고 떠나냐?'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지금 상태라면 '개콘'에 남아있는 게 결례다. 삐걱삐걱 소리내면서 가느니 쉬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섭섭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개콘' 생기고 나서 처음 주는 코미디대상인데…. (상을 받지 못해)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섭섭함이 맞아 떨어진 거라고 봐 달라."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후에 밝혔지만 이에는 사실 심현섭 개인의 분노보다 소속사의 결정이 더 컸다고 한다. 1주일 만에 웃찾사로 옮긴 것은 그런 [[이유]]라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815|#]]
여하간 이러한 이유 탓에 정치 쪽 구설수로 많이 엮인 개그맨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인은 정치가 목표였다면 선거에 출마를 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은 코미디언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도 거침이 없고 한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잘 나갔던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 가지 사실로는 [[후배]]들의 [[군기]]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과도 친한 개그맨들 중에 1명이었다고... 슬럼프 시절에는 [[김진철(코미디언)|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때는 대놓고 국민들에게 웃음을 줘야할 개그맨들이 웃지 못할 모습을 보여줬다며 씁쓸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김진철의 후배 얼차려, 폭행 사건이 여자 후배들에게까지 범행을 저지르게 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 정찬성 . . . . 14회 일치
2007년 6월 SSF로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 2007년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와 2008년 5월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전적을 쌓아갔다.[* 다만 현 시점에 와서 SSF에 대한 기록은 어딜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Q채널에서 방영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 라는 격투기 토너먼트 프로그램에 2007년 6월경 출연한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SSF는 그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 당시 토너먼트 규칙은 3인 1팀으로 팀전이었는데, 정찬성 선수는 계속 이기며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서 합기도 선수에게 판정패당한다.][* 참고로 정찬성 선수는 해당 토너먼트에 킥복서 베이스를 가지고 참가했는데, 대회 룰 자체가 연속니킥 금지에 링도 없어서 펀치 러쉬가 이어지질 못하는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괴랄한 대회였다.]
2010년 2월에는 It's Showtime에 출전하여 [[태국]]의 룸피니 챔피언인 패종슥 룩프라밧과 입식 경기를 갖게 되었다. 패종슥의 킥에 고전하는 양상을 살짝 보였으나 2분 경 킥 페이크 이후 백스핀 블로로 패종슥을 실신시키며 대 이변...을 일으키는 줄 알았으나 '''백 스핀 블로가 반칙으로 인정되면서''' 반칙패를 당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백 스핀 공격을 반칙 공격으로 하는 것으로 룰이 개정되었었는데 룰 미팅 당시 통역도 없었고 분위기도 어수선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 문제가 심각한 게 정찬성은 물론 상대 선수인 패종슥도 백스핀 블로우가 반칙인 줄 몰랐다고 한다. 경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패종슥도 자신이 패배한 줄 알고 있다가 경기 결과를 듣고는 어리둥절해한다. 쇼타임의 선수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비록 패배를 하긴 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매니아들 사이에서 정찬성의 네임벨류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ZUFFA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2010년 4월에는 WEC 48에서 '배드 보이'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15분간의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1라운드부터 거친 타격전이 벌어졌고 3분 30초 경과 무렵 정찬성의 레프트가 가르시아의 턱에 명중하며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암바를 시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난다. 2라운드에서는 초반 가르시아의 펀치가 크게 적중했으나 중반 정찬성이 백마운트에서 초크를 시도했고 후반에는 펀치러쉬로 가르시아의 마우스피스를 날려버렸다. 가르시아는 그 상황에서도 '''노가드 상태로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이어진 3라운드에서 가르시아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으나 정찬성의 러쉬에 밀려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맷집이 좋아 체력이 떨어져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버텨 어느 한 쪽도 쓰러지지 않은 채 승부는 판정으로 갔고 가르시아의 스플릿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판정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 경기 이후로도 가르시아는 남 판과의 경기에서도 논란의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는데 이 경기에서는 정찬성 vs 가르시아 1차전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이 앞선 상태에서 정찬성 vs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가르시아의 2:1(Split)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당연히 남 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데이나 화이트]]도 어이 없는 판정이었다며, 경기 후 승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 머니를 남 판에게 줬다고 한다. 이 쯤 되자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있기도 했다.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의식했는지 가드를 꽤 아래로 내리는 스타일로 경기를 시작했고 초반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경기를 괜찮게 풀어갔다. 하지만 펀치가 대부분 빗나가면서 확실히 경기감각을 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버뮤데즈의 큰 라이트 펀치를 맞으면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뮤데즈의 왼손 셋업을 피하고 날린 어퍼가 그대로 턱에 꽂히면서 1R 2분 30초 만에 경기를 끝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말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상태에서 안말릴 경우 맞던 사람은 후유장애를 가질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찬성을 언더독으로 평가했지만 코리안 좀비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을 말하면서 연습했던 대로 잘 안됐다고 밝히거나 질문 내용을 못알아들으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울먹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걱정하는 발언을 남기면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vod/index.nhn?category=fight&listType=total&date=&gameId=&teamCode=&playerId=&keyword=&id=272392&page=1|영상링크]]
2017년 5월 13일, 정찬성이 SNS에 본인과 [[최두호]]가 2017년 7월 29일(한국 기준 30일)에 열리는 UFC 214에 출전한다고 밝혔다! 최두호의 상대는 15위 바로 아래 수준의 안드레 필리. 그리고, 정찬성의 상대는 '''페더급 랭킹 3위의 [[리카르도 라마스]]'''이다. 정찬성과 라마스의 경기는 4월부터 각종 해외 종합 격투기 소식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 어느정도 예상되었었다. [[UFC]]에서 공식으로 정찬성의 상대가 라마스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각종 해외 격투기 소식에서 정찬성 vs 라마스가 성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정찬성 본인도 라마스와 잘 싸우고 오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둘의 경기도 확정인 듯 하다. 드디어 5월 말, UFC에서 공식적으로 '''정찬성과 라마스의 경기'''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정찬성이 이번 경기에서 이길 경우 한 경기를 더 치루고 다시 다시 타이들전에 도전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현대 MMA 에서 가장 비슷한 존재를 꼽아보라면 그나마 [[토니 퍼거슨]] 정도. 둘 다 좋은 신체조건임에도 인파이팅을 즐기고, 뛰어난 맷집을 가지고 있으며 서브미션 승이 더 많으며 주짓수가 돋보인다. 물론 토니 퍼거슨이 성적이나 완성도나 더 뛰어나다. 정찬성이 3년의 공백을 가지는 동안 퍼거슨이 쉼없이 실전을 겪으며 훨씬 발전한 것도 있고, 퍼거슨은 명확한 레슬링 백본이 있다는 점도 있고, 타격 기본기도 더 뛰어나다는 점도 있고.
한국과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한국의 [[반달레이 실바]]라고 불릴 정도로 화끈한 난타전을 벌였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합기도]]를 배웠고 18세에 [[킥복싱]]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만큼, 타격으로 격투기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좀비 스타일'은 불과 다음 경기 루프전의 뼈아픈 KO패로 그 한계를 확실히 드러냈다. 이 때 얻은 교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찬성의 회고가 '나는 싸움을 하러 들어갔는데 루프는 스포츠를 하려고 나와 있더라' 라는 말이 있다. 한때는 정말로 낙담해서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지만, 다시 심기일전하여 '좀비 스타일을 버리겠다'며 새로운 각오를 보였다. 유라이아 페이버의 알파 메일로 캠프를 옮겨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것이 가르시아 2차전에서 결실을 거두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UFC 첫승을 거두게 된 것. 가르시아와의 경기 이후 호미닉 전은 6초만에끝나서 뭐 달리 보여줄 것도 없었지만 포이리에와의 경기에서는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어 계속해서 성장중인 파이터라는 것을 어필했다.
이런 인기가 반영되어 UFC의 CEO [[데이나 화이트]]가 Korean Zombie의 티셔츠를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나기도 했고 UFC 114에서는 게스트로 무대를 찾은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상당한 유명인이 아니면 올 수 없다. UFC 114의 또 다른 게스트들로는 UFC 3대, 5대 웰터급 챔피언 [[맷 휴즈]], [[NBA]]의 슈퍼스타 팀 던컨 등이 있었다.
UFN 24 이후 해설자인 [[조 로건]]이 이 서브미션을 보고 트위스터로 유명한 주짓떼로 '에디 브라보'가 기뻐할 거라 이야기 했는데, 정말로 기뻐해 주셨다. 친히 '코리안 좀비' 티셔츠를 입고 유튜브에 10 여분 가까이 되는 트위스터에 대한 교육용 비디오를 올렸다. MMA형 트위스터, 레슬링형, 주짓수 공방용, 스웨덴 스타일 등 온갖 화려한 트위스터를 다 올려 놨다. 정찬성 보라고 올린 것은 아니지만 에디 브라보가 내놓은 컴비네이션들을 보면 트위스터가 백을 잡은 상황에서 MMA의 새로운 공격 방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충격적인 기술이었으나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 트위스터를 잡으려면 하프로 내려와야 하는데 기껏 백을 잡아놓고 하프를 타는건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다. 00년대 이후로는 점점 섭밋보다도 파운딩이 대세이기도 하고. 에디 브라보의 동영상 역시 MMA 형 트위스터의 경우 트위스터로 기술을 완성시키기 보다 트위스터를 밟아가는 와중 늑골 파운딩이나 안면 파운딩으로 이어지는 컴비네이션을 설명해 준다. 정찬성의 경우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는 백을 잡은 상황에서 RNC와의 한방 이지선다를 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브라보는 트위스터 동영상 말미에 정찬성 보고 '친구들 데리고 술이나 한잔 하자' 라고 발언했다.
- 진창현(음악인) . . . . 14회 일치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깎아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등 손재주를 발휘했고, 이후 고향에서 약장수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현악기의 매력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소학교]] 4학년 때 [[중일전쟁]]의 징병을 피하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와 교사로 부임한 아이카와 키쿠에(相川喜久衛)가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기초적인 바이올린 연주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1961년 가을에는 학원과 비교적 가까운 도쿄의 마치다 시로 이사했고, 약 1년 뒤 초후 시의 센가와로 다시 이사해 바이올린 공방을 만들어 악기 제작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후 교육용에서 성인용으로 악기 제작 영역을 넓혔고, 바이올린 외에 [[비올라]]와 [[첼로]]의 제작도 시작했다. 악기 제작으로 어느 정도 생계 유지가 가능해지자 1970년에는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동생의 명성을 시샘했는지 이복형이 [[북한]]의 [[공작원]]이라고 허위 신고를 하면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고문(범죄)|고문]]을 받다가 [[일본 경찰]]의 신원 보증이 있은 다음에야 풀려나 도망치듯 일본으로 돌아오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자작 현악기들로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악기상들의 관심을 모았고, 1974년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진창현: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백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상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후지 테레비]]에서 구술 회고록을 바탕으로 각색한 [[드라마]]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海峡を渡るバイオリン)'이 방영되었고, 여기서 진창현 역을 [[쿠사나기 츠요시]]가 맡아 화제가 되었다.[* 나머지 배역들의 캐스팅도 꽤 주목할 만한데, 진창현의 아내인 나미코 역을 [[칸노 미호]]가, 진창현의 어릴 적 [[멘토]]였던 아이카와 선생 역을 [[오다기리 죠]]가 맡았다.그리고 아버지는 [[정동환]]이 맡았다.] 이외에도 2003~06년에는 야마모토 오사무가 일대기를 '천상의 현(天上の弦)'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만들어 [[쇼가쿠칸]]에서 연재하기도 했다.
* [[스트라디바리우스]]와 [[아마티]], [[과르네리]] 등 전설의 명기가 가진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이 악기들을 소유한 수많은 명연주가들이 내일 공연을 했을 때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악기의 본을 뜨거나 직접 켜보거나 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훗날 일본 언론에 연재되었고, 한국에 출간된 구술 자서전 후반에도 나온다.
* 혼자서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막노동과 바이올린 제작으로 소일하다가 [[1961년]]에 일본인 여성 나미코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장남 진창호와 차남 진창룡은 각각 현악기 제작자와 현악기용 현 제작자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자서전에 의하면 바이올린 제작을 위한 연장들을 찾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게를 보고 있던 나미코를 처음 만났다고 하며,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처음에는 결혼 승낙을 받기 어려웠지만 예전에 근무했던 건설 회사 사장이 장인에게 사위의 인품을 칭찬해 주면서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나미코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 식으로 이남이(李南伊)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 일본인임에도 조선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아이카와는 교편을 잡으면서 병역을 피할 수 있었지만, 불과 2년 뒤 현역병으로 소집되어 [[중일전쟁]]에 참전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창현은 이후 일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성공한 뒤 아이카와의 친족들을 수소문해 만나기도 했고, 죽기 직전까지 [[사이타마]]의 혼조 시에 있는 아이카와의 묘지를 정기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후지테레비의 드라마에서도 꽤 비중있는 인물로 나온다.
* 바이올린 도색에 필요한 염료를 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오징어]] 먹물이나 [[지렁이]]까지 쓰는 등 온갖 실험을 했다. 심지어 집에서 [[알코올]]로 염료를 추출하고 [[니스]]에 혼합하는 작업을 하다가 니스가 폭발하면서 [[화상(질병)|화상]]을 입기도 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와 [[적군파]]를 비롯한 극좌 세력의 무장 투쟁이 강성하던 시기여서 [[의사]]가 그 쪽 사람이 사제 폭발물을 제조하다가 사고를 친 것으로 여기고는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1970년]]의 한국 방문에서 당한 일이 워낙 충격적이었는지, 자서전에도 그 경위를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가난했던 삶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충 조사를 마무리지은 뒤 회식비를 자신에게 모두 떠넘겼다거나 1976년에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다시 귀국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악기가 위조품으로 간주되어 반입 불가를 당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어서 당시 한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민주화]]되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이념적 재단 같은 편파적인 잣대가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 국민훈장을 수상하면서 공식적으로도 명예회복을 이루었다. 말년에는 한국 언론들과 자주 인터뷰나 대담 등을 가지기도 했고, 생전에 마지막으로 언론과 접촉한 것도 타계 열흘 전인 5월 3일에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 병상을 찾았을 때였다.
- 홍연아 . . . . 14회 일치
'''홍연아'''(洪姸娥, [[1972년]] [[7월 5일]] ~ ,[[서울특별시]])은 [[대한민국]]의 전직 경기도의원, 전직 경기도 안산시의원이다.
*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 예산자문위원회 위원
* 통합진보당 중앙위원, 경기도당 여성위원장
* 2006.07 ~ 2010.06 제5대 경기도 안산시의회 의원
* 2012.04 ~ 2014.06 제8대 경기도의회 의원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제4회 지방 선거]]||경기도 안산시의원(안산시 나선거구)||5대 (민선 4기)||[[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막대|민노|1|2|8|2}} 12.82%||3,087표||3위||[[파일:지방의원당선.png|25px|경기도 안산시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제5회 지방 선거]]||경기도 안산시의원(안산시 나선거구)||6대 (민선 5기)||[[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막대|민노|1|6|6|5}} 16.65%||5,202표||4위||낙선
|[[2012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4·11 재보궐선거]]||[[경기도의회|경기도의원(안산시 제2선거구)]]||8대 (민선 5기)||[[통합진보당]]||{{막대|통진|5|4|6|6}} 54.66%||18,248표||1위||[[파일:지방의원당선.png|25px|경기도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제6회 지방 선거]]||[[경기도의회|경기도의원(안산시 제2선거구)]]||9대 (민선 6기)||[[통합진보당]]||{{막대|통진|1|3|3|2}} 13.32%||4,628표||3위||낙선
- 권혁 . . . . 13회 일치
2008년까지 보통 삼성의 승리의 공식은, 어떻게든 선발 투수로 5회까지 리드를 잡는다 -> 권혁 1이닝 -> [[정현욱]] 2이닝 -> [[오승환]] 세이브,[* 상황에 따라 [[정현욱]]과 권혁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JKO펀치라 부르기도.]
5월 1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2사 주자 2루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강민호]]에게 쐐기 투런포를 맞으며 멸망했다.[* 당연히 [[김성근]]이 팔꿈치 피수술자를 억지로 떙겨써서 발생한 참사라는게 중론.] 결국 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을 기록했으며 시즌 ERA는 7.36을 마크했다. 김재영이 원 포인트로 쓰기 위해 기용된 투수라지만, 공도 4개밖에 던지지 않은채 2아웃을 잘 잡았던 상태라 감독이 너무 이르게 교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5월 초 시점에서 강민호는 잠수함을 상대로 극강이었고, 애초에 김재영은 최준석, 이대호 저격용으로 끌고 온 것이기 때문에 나름 납득이 가기도...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인해 재활군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2군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을 하기도 했으니 아쉽게 되었다. 6월 후반까지 재활에만 4주가 걸리니 전반기 복귀는 힘들어 보인다. 한화 불펜이 방어율 1점대인 장민재, 박상원을 추격조로 쓰고 있을 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으니 권혁을 무리하게 복귀시키기보다 회복에 전념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셋업 상황이라고 볼 수 없는 5점 차 이상의 경기에서 2년간 17경기 22이닝 355구를 던졌는데, 이 중에서 10점 차 이상 경기도 2경기가 있었다. 큰 점수 차에서 권혁의 경기감각을 조율하기 위해 등판한 경기도 있었지만 김성근 감독의 조바심으로 인해 등판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타고투저 시대라서 5점 차 리드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최근 2년간 5점 차 리드가 뒤집힌 것은 1,282경기 중 30경기로 2.3%에 불과했다(2016년 8월 26일 기준).[[http://www.msn.com/ko-kr/news/sports/%EA%B8%B0%EB%A1%9D%EC%9C%BC%EB%A1%9C-%EB%B3%B4%EB%8A%94-%EA%B6%8C%ED%98%81-%EB%B6%80%EC%83%81%EC%9D%80-%EC%98%88%EA%B2%AC%EB%90%9C-%EC%9E%AC%EC%95%99/ar-BBw1kEy|#]]
가공할 만한 공 회전력, 평균 구속 150 km/h를 웃도는 공을 가진 좌완에선 보기 힘든 파이어볼러'''였다'''.[* 사실 지금도 140 중후반대의 속구를 던진다. 좌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빠른편.] [[서승화]]와 함께 한국프로야구 좌완 공인 최고 구속('''156km/h''') 기록의 보유자.[* 2004년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경기에서 기록. 2004년 포스트 시즌에서는 157 km/h를 찍기도 했으나 페넌트레이스 중이 아니라서 시즌 정식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상체 중심의 피칭을 하고, 제구는 상당히 불안한 편. 던지는 구종도 직구-슬라이더로 단조롭다.--구위가 떨어지면 KIA팬한테 욕을 디비 쳐먹는 [[심동섭|바로 그 선수]]하고 다를 게 없다--
기본적으로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지만 빠른 구속과 묵직한 구위로 찍어눌러도 타자들이 맥을 못 췄기에 초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사실 뛰어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성적을 냈다. 허나 2010년 이후부터는[*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2010년 플레이오프의 보크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혹사 누적으로 이전보다 팔스윙이 느려지고 그로 인해 공의 무브먼트나 구위도 저하되며 삼성 철벽 불펜진의 일원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였다. 그나마 삼성 불펜진이 굳이 권혁이 빠지더라도 워낙 막강이라 그냥 묻어가는 모양새였다.[* 특히 2011년에 그런 모습이 확연하였다. 겉보기 성적과 실제 투구내용과의 상당한 갭이 있다.] 그리고 2013년, 불펜진에 균열이 생기면서 본격 까임의 대상으로 등극. 하지만 권혁 이외에는 쓸만한 삼성 왼손 불펜이 1, 2군 통틀어 전무한지라 삼성 불펜진의 아픈 손가락이자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차우찬]]은 원 포인트로 쓰기엔 너무 아깝고, [[백정현]], [[조현근]]은 1군으로 올리기도 영 애매하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삼성 시절 권혁은 몸이 늦게 풀리는 편이라 마운드위에서 타자를 상대로 던지면서 감을 잡는 스타일이였다. [[선동렬]] 아래에선 구위가 엄청날때는 감을 잡는 동안 구위로 버텼지만, 혹사와 보크 사건 이후인 [[류중일]] 아래에선 구위가 떨어지며 감을 잡는 동안 팩질을 하거나 두들겨 맞았다.][* 물론 몸이 완전히 풀리면 위력적이지만 그때까지 장작을 쌓을 확률이 꽤 높아서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셋업에는 [[안지만]]이 있는지라 삼성벤치에서는 굳이 권혁을 올리는 위험한 길을 걸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안지만도 불안하면 8회 2사에 [[오승환]]을 올리는 치트키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과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선동열|삼성의 본래 팀 컬러와 영 맞지 않았던 모 감독]]의 재임기와 사퇴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 팬덤에서는 [[배영수]], [[권오준]] 등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후반 삼성 투수진 혹사의 피해자 중 한 명으로 보기도 하고 있다.
* 상당히 신실한 [[불교]]신자로 추정된다. 모자, 글러브에 불교를 상징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고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선수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라고 굉장히 심오하게 대답하는 등... 나름 열성신자인듯. 어떤 인터뷰에서는 부인이 올림픽 때 지리산 절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올린 그 마음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하기도 했다.
* 2015년 저축의 날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였다. 삼성의 도박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서 권혁도 썰이 풀리기도 했는데, 국무총리 상으로 그러한 썰을 완전히 씻어버렸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3188345| 한화 권혁, 멍든 야구계 빛낸 '국무총리 표창']].
* 2015 시즌 종료 후 마무리 훈련을 떠나지 않고 대전에 남아서 재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전의 영웅"이 등장하였다며 깜짝 스타가 되기도 하였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3193473|"대전의 영웅" 권혁, 예비군 훈련장 스타 된 사연]]. 그런데 한화로 이적하기 전에는 그동안 해외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있었기에 그동안 밀린 예비군 훈련을 몇 년치를 몰아서 하다보니 거의 2주 가까이 훈련장에 모습을 나타내서 나중엔 다들 군대에서 사는줄 알았다고.
- 김민기(가수) . . . . 13회 일치
이미 중학교 시절에 미술에 뜻을 두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보다 일찍 [[서울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던 셋째 누나의 영향을 받아 [[우쿨렐레]]나 [[기타]] 등을 독학으로 익히면서 음악에서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과 음악 모두 포기하기 싫었는지, 대학에 입학한 뒤 고교/대학 동창인 [[김영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로 현 이노디자인 대표. 무한도전 디자이너 특집에도 나왔던 그분 맞다. [[MYK]]의 부친이기도 하다.]와 [[도깨비]] 두 마리의 약자인 '도비두'라는 포크 밴드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초기 시절부터 음악 활동은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1972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신입생 환영회 때 자작곡을 포함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가르쳤던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음반 활동에도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보안대 조사가 끝난 뒤에는 [[영창]] 살이를 한 뒤 최전방 부대로 재배치되었는데, 경기고등학교 선배였던 소속 [[연대(군대)|연대]] 수색중대장의 부탁을 받고 중대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1977년 5월에 [[전역]]한 뒤에도 공연이나 음반 발매 등 공적인 활동에 제재를 받게 되자 당시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이었던 조각가 김세중의 도움으로 학사 학위와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의 불빛'을 만든 뒤에는 비공식 활동마저 힘들게 되었고, 결국 음악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뒤 [[익산시|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민기를 받아준 농가에서 정기적으로 김민기의 행적을 경찰서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게 되었고, 멀지 않은 [[김제시|김제]]로 옮겨가 계속 농사를 지었다.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암살된 뒤인 1979년 12월에는 문화체육관에서 열린 유아원 기금 마련 자선 콘서트를 익명으로 기획하고 직접 출연도 하면서 일시적으로 음악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세력들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게 되자 다시 농사를 지으며 대외 활동을 삼갔는데, 1981년 5월에는 [[국풍81]] 개최를 앞두고 정부에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하자 농사일이 바쁘다면서 끝까지 참가를 거절했다.[* 이때 [[허문도]]가 김민기를 회유하기 위해 [[백지수표|흰 종이를 한 장 내밀며, "원하는 액수를 쓰라" 라고 하기도 했다.]] 물론 김민기는 거절.] 대신 틈틈이 찾아와 농사를 도와주던 [[전라북도]] 각지의 연극패와 노래패들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마당극 '1876년에서 189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시|전주]]에서 근대사 세미나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는 [[김제시|김제]]에서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으로 옮겨가 참깨 농사를 시작했는데, 이 때 [[비료]] 회사에서 사익을 챙기기 위해 규정량보다 많은 양의 비료를 권장량으로 속여 판 것을 알고는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배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민통선]] 이북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청년회를 조직해 농산물 직거래에 나서기도 하는 등, 구체적인 사회 운동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2018년]] [[9월]]부터 [[지하철 1호선]]의 재공연을 시작한다고 한다.''' 워낙에 인기가 많던 뮤지컬이다보니 재공연 결정이 뜨자마자 관련 기사가 올라오는가하면, 배우의 면접을 위해 서류 심사를 시작한지 2주만에 10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지원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정은 [[지하철 1호선]] 문서의 재공연 문단을 참조하자.
2016년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잠시 언론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같이 언급된 것은 일본의 [[하루키]] 작가이며, 어떤 기사는 한국의 밥 딜런으로 [[한대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http://kns.tv/news/articleView.html?idxno=251534&daum_check=|관련 기사]]
김민기와는 절친한 관계. 한대수와 김민기 모두 대한민국 포크 음악을 발전시키는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음악이 계몽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로 1971년 김민기의 앨범에 한대수의 음악 '바람과 나' 가 실리기도 했고, 한대수도 2013년에 부른 '행복의 나라' 에서 '이제 나이 들어서 (음반을) 녹음할 수 없는 사람들' 로 김민기와 [[전인권]]을 뽑았다. 이를 보면 전인권과의 커넥션도 있었을지도?
- 이정재(영화배우) . . . . 13회 일치
1999년 제1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1999년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2006년 제29회 황금촬영상 연기대상, 2013년 제34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2014년 제5회 올해의 영화상 남우조연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으며,[* 자세한 것은 수상 경력 항목 참고.] 2007년 3월 [[국가정보원]] 명예요원,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장동건]]과 더불어 유이하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배우이기도 하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후1994년 12월 23일에 [[입대]]하여 52사단에서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96년 6월에 제대했으며, 개그맨 [[유재석]]과 군대 동기다. 유재석이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으며 힐링캠프에서 본인이 직접 인증했다.[[https://youtu.be/W31NK0EW17s|#]] 입대 이후에는 군대에서도 여러 국방홍보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이외에도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거의 [[대한민국]] 최초로 남자의 '[[몸짱]]'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상반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난 영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게 젊은 여성 팬들에 의해 감상/보관용으로 뜯겨나가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녀]]》에서도 재현되는 그 근육.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soso--
그런데, 데뷔 초에는 하용수의 친척으로 알려져 [[금수저]] 논란이 있었다. 디자이너 출신인 하용수는 톱 모델을 거느린 모델 기획사를 운영해 연예계 마당발로 통했는데, 이정재도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9611/leejung.htm|그가 발굴한 스타]]이다. 이 기사에선 친척뻘이라 했지만 당시 청소년들은 하용수의 조카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정재가 방위 판정을 받았을 때 [[평발]]이란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촌 빽을 썼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선 이정재의 어려운 가정사가 전혀 나오지 않았기에 빚어진 오해인 듯.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절친 [[정우성]]과 연예계 입문 테크가 같다.] 그리고 그 후 93년에 출연한 롯데 [[크런키]] 초콜릿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4MKFjzJ2Q|나만의음악]]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릿 광고 덕분이라고. 사실 같은 해에 롯데 초콜릿 다른 제품인 [[가나초콜릿]] 광고도 찍었지만 크런키 쪽이 더 인상에 강하게 남은편. [[https://www.youtube.com/watch?v=trE8bqdhYfA|가나 초콜릿 광고]]
영화 [[하녀]]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도둑들]]에선 비열한 뽀빠이 역을 맡아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필모를 가지게 되었으며 2013년 [[신세계(영화)|신세계]]를 통해 다시한번 배우 이정재를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경찰과 조직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언더커버 이자성 역을 맡아 특유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캐릭터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다.[* 겉으로 막 내뿜고 딱 봐도 --비주얼부터--강한 캐릭터인 정청에 비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이자성이 밋밋할 수도 있으나 내면 연기가 원래 더 어려운 법이다.] 같이 출연한 최민식이 이자성 역할에 [[정우성]]과 이정재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자성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위태로운 분위기가 이정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결국 이정재가 이자성을 연기하게 되었다. 19세 관람 불가인 조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이자성 때문에 지나간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이정재가 다시 젊은 세대들의 오빠로 컴백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사회장 런웨이씬과 반달처럼 휘는 이정재의 눈웃음이 백미.[* [[파일:2wr59IK.gif|width=70%]]] 실제로 저 마지막 눈웃음 때문에 신세계를 중복 관람한 여성팬들이 많았다.
2009년에 퇴물 취급을 받으며 하는 작품마다 안된다는 평가를 받던 이정재는 영화계에서 나름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임상수]]감독과 손을 잡으며 연기변신을 꾀한다. [[전도연]], [[윤여정]]같은 연기도사들과 함께한 [[하녀]]는 이정재에게 부활의 신호탄을 올려준다.
* [[태양은 없다]]에서 만난 [[정우성]]과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절친이며, 같이 패션사업도하고 CF에도 출연하고 술도 마시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사이. 일명 청담동 부부로 불린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만나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 그야말로 절친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이지아 사건으로 위로도 할겸 만났던 자리에서 술먹고 떡이된 정우성을 업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밌는건 둘은 그렇게 친한데도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우성은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삼성동에 건축되는 18세대 고급빌라 라테라스 같은 층에 함께 입주했다. (물론 세대는 다르다... ~~이젠 집 밖으로 안나오고 빌라 안에서 놀려고~~)
* 2013년 영화 관상의 900만 돌파 행사 당시 한 여성 팬의 '''"잘생김"'''드립이 엄청난 반응을 몰고 왔다. 이후 연예프로나 기사에 이정재가 나오면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잘생김이 묻은 배우"이며, 이 수식어는 2015년 8월 2일자 섹션 연예tv에 이정재가 나왔는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역대급 드립을 해준 팬을 위해 실제로 이정재가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 배우 생활이 길고 역대급 인기를 얻어 본 만큼 안찍어 본 CF가 없을 정도로 다수의 CF를 찍었다. 특히 2013년 관상 이후 수많은 CF를 촬영하여 제2의 전성기가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해진 것은 아무래도 [[버거킹]] 15 CF 먹방인데, 표정과 음미하는 모습이 마치 [[고독한 미식가]]를 떠오르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MDZGIuKG-A|광고 영상]] 관상과 엮여 "내가 왕이 될 상인가?" / "버거킹이 되실 상입니다" 같은 드립이 나돌기도 했다.
* 40대의 나이지만 웃을 때 소년 같은 느낌을 준다. 대표적으로 영화 신세계에서의 마지막 웃음이나 평상시 찍히는 웃음 사진을 보면 여전히 해맑은 청년의 느낌이 물씬 난다. 이 점은 힐링캠프 출현 당시 [[이경규]]가 언급하기도 했는데 당시 이경규는 "웃을 때 참 해맑다"고 이야기 했다. 참고로 영화 [[암살(2015)|암살]]에선 20대의 청년으로 잠깐 나오는데 아무 cg작업도 없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5&aid=0003406913|정말 20대로 보여]] 많은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촬영 당시 이정재의 모습이 너무 어려보여서 어떻게 된 거냐고 도리어 물어봤다고 한다. [[http://v.entertain.media.daum.net/v/20150820092206173?f=m|최동훈 감독 인터뷰]]
2번 적발됐다. 첫 번째 음주운전은 1999년 9월 13일, 자신의 [[자동차]]인 [[BMW]]를 혈중 알코올 농도 0.222%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당시 23살 여성(회사원) 송모씨가 타고 있는 [[마티즈]] 옆 부분을 들이 박은 것이다. 당시 동료배우 정모씨와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었고, 이씨는 사고 직후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운전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출동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정재는 경찰에서 "내가 운전하지 않고 매니저가 대신했다"라고 혐의 사실을 부인을 했었다. ~~[[강정호|17년 뒤 똑같은 수법을 쓴 메이저리거가 등장하는데...]]~~ 경찰서에서는 시인하였다고 한다. 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불구속 입건 및 면허 취소가 되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400209122009&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9-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4301&publishType=00010#|기사]] 그리고 첫 번째 음주 운전 사고가 난 3년 뒤 또 한 번 2002년 7월 22일 [[강남구]] 청담동 청담초등학교앞에서 음주단속 중인 경찰에게 적발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47301|기사]]
- 이철희(1964) . . . . 13회 일치
한창 [[썰전]]의 패널로 잘 나가다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의 손을 잡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입당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비례대표]] 8번 후보로 출마해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김종인]] 비대위 시절에는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64년, 포항에서 3남 2녀 중 [[3남|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산광역시]] [[동래구]]로 이주하여 부산 [[동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라 그런지 [[석사]] 논문 제목이 '민중통일론에 관한 일 연구 : 통일과 변혁이행의 상관성을 중심으로'인데, 별다른 건 아니고, 당대 운동권의 두 축이었던 [[NLPDR|NL]]과 [[민중민주주의|PD]]의 [[통일]]론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석사 논문 주제도 그런 영향일 것이고, 군 [[입대]] 전후로도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는 면했다고 한다. 잡힌 후 감옥에 갇히는 쪽과 안 가는 쪽이 있었는데 안 가는 쪽에 포함되었다고. 그리고 감옥에 갇힌 쪽의 학생들은 모두 국회에 한 번씩은 발을 담갔다고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감옥에 갈걸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계파 문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한길 의원 보좌관 출신에, 위 기사에서는 손학규 전 의원 계파로 분류했는데, 두 인사는 공통적으로 당시 공천을 주도한 친노계와 앙숙이었기 때문.]
진보 성향의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이 운영하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진행했다. 그리고 종편인 [[채널A]]의 '아침 신문쇼 돌직구'에도 고정 출연 했었다. 2013년 10월부터 평일 오후 6시 16분부터[* 앞의 15분 동안은 6시 뉴스를 진행한다. 7시에도 뉴스가 진행되어 7시 6분에 시작한다.] 오후 8시까지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4년 2월 "뭐라도 합시다"와 "누가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윤여준, 이상돈 공저)라는 서적도 냈다. 2015년에는 "이철희의 정치썰전: 보수와 진보를 향한 촌철살인 돌직구"와 "7인의 충고 : 이철희가 따져 본 진보 집권 전략"을 출간. 이 가운데 7인의 충고는 [[Daum]]과 [[미디어오늘]]에서 기획하여 이철희가 '논과 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것들을 모아 낸 것인데, 정작 미디어오늘에서는 중간에 수록을 하다 말았고, 인터뷰 전문은 책이나 [[http://7author.tistory.com/m/post?categoryId=847004|여기에서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온건 합리적인 리버럴 스탠스를 가진 것과는 달리 사관엔 [[이덕일]]류 노론사관을 맹신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저서 <뭐라도 합시다>와 썰전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노론으로, 이는 [[친일]] 단정 [[박정희|군사]] [[전두환|독재]] 세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예고한 대로 2016년 1월 20일 [[권미혁]] 대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는 입당 인사에서 그동안 방송 덕분에 얻은 유명세를 내려놓는다는 게 솔직히 아깝긴 하지만 여한 없이 싸워봐야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 정계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와이프마저도 평소 '''당신이 한 말[* 썰전 등의 방송에서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지지해줬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흑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며 '''핫하게 싸워보고 지더라도 쿨하게 떠나겠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나가던 시민이 잘 한다며 커피 한 잔 사주며 더 잘 하라고 격려하고 싶은, 그런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썰전 출연 당시 그는 끝까지 썰전에 남을 것이며, 국회의원 출마는 안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강용석이 몇차례에 걸쳐 "총선쯤 되면 우리 둘다 여기 없을 수도 있는데~"라는 드립을 날렸지만 그때마다 부정했기 때문. 결국 둘다 나가게 되기는 했다.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또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무를 맡게 된 이후의 공천 잡음과 관련되어 있지 않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입당 직후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28501|문재인 의원의 부산 공천]]을 주장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고[* 대권주자 또는 당의 핵심인원으로 전국에서 선거지원 활동을 나서야 하는 인물들을 지역구 선거에 투입할 경우 지역구 선거유세에 발이 묶이기 때문에 전국지원유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 볼 수 있다.], 2월 초에는 '[[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0205100351001&mobile|막말, 운동권 공천 배제]]'를 주장하였는데 [[정청래]] 의원의 공천 배제의 가장 큰 근거가 된 게 '막말'이었으며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대거 공천 배제당하다보니 이철희 전 소장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이다.
이러한 비호감에 쐐기를 꽂아버리는 발언이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http://gosunggo.com/693|박영선 의원과의 녹취록 논란]]이고, 두 번째는 [[유시민]] 씨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밝힌 [[http://m.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5001.html|'특정 지인을 지역구에 꽂아주기 위해 인원을 컷오프했다. 그 배경에 박영선, 이철희가 있다']] 라는 내용.[* 유시민 작가는 불만이 있으면 자신에게 소송을 걸라며 당당하게 주장을 하긴 하였으나 민주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인지라 더민주 내부 상황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의문스럽고 또 정황 증거만 제시할 뿐 확실한 상황 증거는 내놓은 게 없다. 게다가 공개적인 토론 장소에서도 '새누리당 다음으로 싫어하는 정당이 더민주'라고 할 정도인 데다, 그때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당 대 당 야권 연대 방침을 철회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지역구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인 판단으로 보긴 어렵다는 뜻이다.][* 해당 발언의 사실성을 떠나서 민주당을 떠난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친분이 있는 인사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소위 친노 인사들과는 당연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민주당 내 주류가 친노라는 점에서 유시민 씨가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대한 논란 거리를 만들어내다보니 [[박영선]], [[이종걸]] 의원과 함께 당내의 어그로 지분을 확보했다.
3월 15일, 이러한 루머들에 대해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90562&CMPT_CD=Mnew#cb|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신은 공천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박영선]] 문서에 적혀 있기도 한 녹취록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며 그 당시 이야기한 내용은 외부 상황의 심각함과 기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고. 후에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다.
이후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MB 정부 시절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문건을 결제한 사실을 공개하는 등 여당의 공격수로 군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해 치며 정력적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KEPD 350]] 도입이나 [[중고 치누크 도입 논란]]을 지적했는데 잘못 짚으면서 이미지를 좀 까먹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같은 당 출신인 [[김광진(정치인)|김광진]] 전 의원이 반박하기도 했다.
* 썰전에 출연할 당시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말을 잘 했으나, 경제적인 의제와 관련해서는 식견 부족으로 그저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낸 강용석과 복지를 주장한 이철희의 성향차이라고 보면 된다. 썰전에서 차라리 정치적 부분은 양자가 타협을 하기도 하고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문제를 보는 인식 차이는 완벽한 평행선이었다. 썰전에서 즐겨 인용한 말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의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였으니.
* 프리즘 폭로 사건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스노든]]과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 전태일 . . . . 13회 일치
그는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아 암기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불이익에 저항하였다. 그는 [[동대문구청]]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 대해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상의 감독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갔지만, 근로감독관은 평화 시장의 참혹한 얘기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f name="chungg">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2권》 (녹두, 1993) 265페이지</ref> 가뜩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전태일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노동이나 근로 기준법조차 사업주들의 편이라는 현실은 그를 한동안 허탈 상태로 몰아 넣었다.<ref name="chungg"/> 그는 청계천 일대의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 설문하여 이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멸과 비웃음 뿐이었다. 처음에 약간 말투가 어눌했던 그는 부랑자로 몰리거나, [[노동청]] 공무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동자 권리 청원은 언론들도 외면했고, [[경향신문]] 등에만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그는 매일 일기를 썼다. 한 일기에서 그는 [[북한]]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전쟁]]은 [[북한]]이 먼저 도발해서 일으킨 전쟁이라고 기록해 두기도 했다.
[[1970년]] [[10월 8일]] 그는 [[삼동회]] 대표들을 이끌고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노동자 [[숙소]] 다락방 철폐, 정식 기숙사 설치, [[노동조합|노조]] 결성 지원, 위생 환경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 8개 항의 요구를 제출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도 탄원서를 보냈지만 [[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간에 소거되었다. [[10월 24일]] 그는 [[서울]] 도심에서 근로 조건 개선 거리시위를 기도했으나, 오후 1시 사전에 경비원의 신고로 정보를 입수하여 출동한 [[대한민국의 경찰|경찰]]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어머니 이소선이 다시 의사에게로 가서 매달리자 의사는 고개를 흔들며, "그 약이 지금 여기에는 없으니 성모병원으로 옮기도록 하라"고 했다. 이때까지 전태일은 간단한 응급치료 외엔 서너 시간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ref name="chock289"/> 명동 성모병원으로 전태일을 옮기는 앰블런스가 오자, 이때 근로감독관이 다시 나타나 전태일 등과 함께 타고 병원을 떠났다. 차 안에서 전태일은 근로감독관이 어머니와 하는 소릴 듣고 나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감사가 끝났다고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소? 내가 죽어서라도 기준법이 준수되나 안되나 지켜볼 것이오" 라고 마음 속으로 분개하였다.<ref name="chock289"/>
오후 4시경 그는 그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다시 후송되었지만, [[11월 13일]] 오후 10시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성모병원에서는 전태일을 응급실에 얼마간 두었다가 입원실로 옮겼는데, 이미 회생할 가망이 없다고 의사는 진단했다.<ref name="chock289"/> 그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그날 저녁 눈을 떠서 힘없는 목소리로 "배고프다……" 라고 하였다.<ref name="chock289"/> [[11월 13일]] 혼수상태에 있었던 그는 그날 오후 10시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하였다. 시신은 마석 [[모란공원]]([[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606-1 산)에 안장되었다.
회사의 [[착취]]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단결하여 투쟁할 생각을 못하던 [[노동자]]들이 [[죽음]]으로써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전태일 열사를 보면서 각성한 것이다. [[1970년]] [[11월 25일]] [[조선호텔]] 노동자 이상찬의 분신 기도, [[1971년]] 9월 한국회관(음식점) 노동자 김차호의 분신 기도, 8월 [[신진자동차]] 노조 조합원과 가족 1900여명의 [[파업]]투쟁, [[한진상사]] 파월 노동자 400여명의 [[대한항공]] 빌딩 옥상 방화 농성 등이 주요한 사건들이었다. [[1971년]]의 노동자의 단결투쟁은 1600여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전년도 165건에 비해 10배가 넘는 규모였다.<ref>지명관, 《한국을 움직인 현대사 61장면》 98~ 101쪽, 다섯수레, 1996년;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정치사》 352~ 353쪽, 백산서당, 1990년; 역사학연구소, 《강좌 한국근현대사》 347쪽, 풀빛, 1995년</ref>
일부 미싱사 등은 냉소적으로 반응하였다. 일부 노동자와 미싱사들 중에는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ref name="ganaess"/> 당시 초등학교만 나와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일부 노동자들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이야기를 그저 귓등으로 흘렸다.<ref name="ganaess"/>
[[11월 22일|22일]] [[새문안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대학생부 신도 40여명은 전태일의 죽음에 사회가 책임이 있고 자신들도 공모자라며 속죄를 위한 금식 기도회를 열었다. [[11월 23일|23일]]에는 [[기독교]]계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집전으로 추모 [[예배]]를 거행하였는데, 고(故) 장공 [[김재준]] [[목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위해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한국 기독교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라고 하였다.<ref>《[[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은 돌배게에서 출판되었으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개정하여 다시 출판하였다.)</ref>
당시 [[신민당 (1967년)|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은 [[1971년]] [[1월 23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전태일 정신의 구현'을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ref>조영래, 《전태일 평전》 (돌베개, 1998) 27쪽</ref> 이후 [[신민당 (1967년)|신민당]]은 노동 운동에 호의적인 정책을 펼쳤고, 노동자 시위는 경찰과 정부의 탄압을 피해 [[신민당 (1967년)|신민당]]의 당사로 피신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1972년]] 기독청년 전태일 1주기 추도식으로 시작된 이래 1980년대에 와서 노동운동가 전태일 추도식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에 따라 사망직전까지 청계천 노조 지원과 노동 운동 지원에 헌신하여 노동자들의 어머니 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4년]] [[서울]]에서 노동운동가들 중심으로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고, [[1985년]] 전태일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이후 전태일재단이 조직되어 '전태일문학상'과 '전태일노동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노동단체들이 모여 그해 [[7월]]부터 [[8월]]까지 노동자 대회를 열었으며 7월 15일에는 그의 어록, 초안 등을 참고하여 '87 노동자계급 해방선언'이 개최되었다. [[1988년]] [[11월]] 전태일의 분신 자살을 기념하기 위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어 매년 [[11월]] 전국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2002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전태일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승인하였다. [[1996년]] 9월 19일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서 '전태일 거리'를 선포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민예총 회원들이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고 있는 모습을담은 걸개그림 앞에서 추모공연을 하였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92000289120003&edtNo=6&printCount=1&publishDate=1996-09-20&officeId=00028&pageNo=20&printNo=2680&publishType=00010 한겨레 1996,09.20]</ref> 이 '전태일 거리'에서는 전태일을 추모하기 위한 '전태일 거리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1999년부터는 민주열사를 비롯해 의롭게 숨진 시민의 기념표석을 세우는 서울시'유적지 사업'에 포함되어 평화시장 분신장소에 기념표석이 세워졌다. 하지만 2003년 청계천 복원공사로 철거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43117 전태일 동판 철거 ‘물의’ 경향신문, 2003.12.01]</ref>
- 정칠성 . . . . 13회 일치
19세 때에는 말 타고 나라를 구하는 외국여걸들의 전기를 읽고 자신도 그와같은 유명한 여장부가 되려고 승마를 배우기까지 하였다.<ref name="dispose">[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19971223.00000014.000010&newsType=old < 대구.경북 근.현대인물사 . 38 > 정칠성]</ref> 여자가 집 밖으로 다니는 것을 꺼려하고, 말을 탄다는 것은 금기시되기조차한 사회에서 그녀의 행동은 도발적인 것이었다. 정칠성은 이때의 경험을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유쾌했던 일로 회고하는 글을 잡지 '별건곤(別乾坤)' 에 싣기도 하였다.<ref name="dispose"/>
}}</ref> [[민족 대표 33인]]은 요리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였고 일부 기생들도 동참했다. 한편 이씨 성을 가진 남성과의 사이에서 일찍이 아들 이동수(李東樹)를 낳았지만 결별하고, [[고려공청회]] 책임비서인 [[신철]](辛鐵)과도 동거하기도 했다.
그는 작문에도 능하여 글과 논설을 지어 발표하였는데, 여성의 계몽, 교육의 장려, 사회 부조리의 개선, 위생 청결론 등을 주장하여 이른바 '사상 기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태화관을 출입하던 소설가 장혁주는 그의 존재를 인상깊게 기억했다가 회상하기도 했다. [[1920년]]에는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 (1896년)|김명순]] 등과 함께 잡지 [[신여자]]지의 필진으로 참여하였으나 [[신여자]]지는 재정난으로 곧 폐간되었다. 이후 그는 [[조선]]의 역사 관련 서적, [[사회주의]] 사상과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을 구해서 독서하였다.
[[1927년]] [[11월]] 서대문정 [[조선여자기예원]](女子技藝院) 교수로 초빙되었다. 여자기예원 교수로 있으면서 부녀자들에게 수자수, 편물, 공예 등을 가르쳤고 일과시간 이후에도 자신의 사택을 찾아온 부녀자들에게 개인지도를 하기도 했다. [[12월 2일]] 마포청년회 강당에서 열린 [[신간회]] 경성지회 강연에 [[이관용]](李灌鎔), 이관구 등과 함께 연사로 참여, '신간회와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30년 [[1월]] [[경성]]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인 제2차 경성학생시위사건(일명 근우회사건) 주도 혐의를 받고 [[1월 18일]] [[경기도]][[경찰부]] 고등계에 체포, 다시 투옥당하기도 했다. 이후 [[경기도]][[경찰부]] 감옥에서 취조받다가 [[2월 25일]] [[종로경찰서]]로 이감되어 취조를 받았으나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930년]] [[3월 15일]] [[근우회]] 경성지회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1931년]] 경성, 평양, 대전, 전주, 대구, 통영의 공회당에 초빙되어 편물과 수자수 강습으로 받는 강사료로 생계를 유지했다. 잠시 광산업 사무원이 되었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1931년]] [[신간회]]가 유야무야되자 신간회 해소론에 반대하였으나 묵살당했다.
1931년 5월 신간회 전체대회에서 신간회 해산이 결의되자, 그후 2년동안 사회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서울 낙원동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하였다. 또한 [[기방]]이 쇠퇴해감에 따라 기녀 출신 인사들의 영화 캐스팅, 연극 캐스팅 등에도 노력하였다. 그는 기생들의 판소리와 대본 암기 능력이 다른 여배우들보다 부족하지 않음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이후 조선인 기녀들 중에는 [[영화 배우]]나 [[희극 배우]], [[연극 배우]]로 캐스팅되거나 전직하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편물학당을 개설하여 뜨개질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창씨 개명]]을 거절하고 상점 운영에 종사하는 한편, 1931년부터 나가던 경성, 평양 등의 공회당 수자수, 편물 강사일을 계속하였다. 또한 틈틈이 조선지광, 삼천리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고료를 받기도 했다. [[1938년]] [[일본]]에 유학중인 아들 이동수의 학비 조달이 곤란하자 다시 기생이 되려 하였으나, 대동광업회사에서 아들 이동수의 학비를 지원하였다.
기녀였던 그는 논개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을 뿐 아니라 요릿집 손님들에게 독립사상을 설파하는 몇 안되는 사상기생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와 동명이인으로 [[칠곡군|칠곡]] 출신의 남자 독립운동가 [[정칠성 (1908년)|정칠성]](鄭七星)도 있다.
- 창원시 . . . . 13회 일치
[[경상남도]] 중동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2017년 기준 인구는 약 106만명. 공업을 기반으로 한 '''계획도시이자 명실상부한 경남의 중심지'''로 [[경상남도청]] 소재지다. 과거 [[부산광역시|부산]]에 있던 경상남도청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되었다.[* 여담으로 도청 이전 당시 진주와 옛 마산이 유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진주는 부산으로 이전하기 이전에 원래 경상남도청이 있었던 곳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마산은 당시 경남에서 가장 큰 도시이고 전국적으로도 대도시 축에 ~~잠깐~~ 들었다는 점에서 도청 소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81년 도청이전지가 현재의 장소로 확정되었는데, 옛 창원시 권역은 마산시 창원출장소가 1980년 시로 승격된 같은 생활권인지라 사실상 마산으로 이전한 것에 가깝긴 했다. 비슷한 예론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라남도청이 사실상 [[목포시]] 생활권인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가장 많은 5개의 [[일반구]]가 설치되어 있고, [[수원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의원 선거구도 18개로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시의원 선거구는 '가'~'하' 순서로 선거구 기호를 매기는데, 통합되면서 '하'선거구까지 다 채우고도 모자라 '거'에서 '러'까지 매겼다. 참고로 거~러 선거구는 모두 진해구에 있다.] 전반적인 인구는 2010년대 들어 완만한 증가세를 보여 110만을 돌파했지만,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인구 감소가 꽤나 심각하게 진행 중에 있다.[* 우선 조선과 기계, 자동차 등의 창원시 경제를 지탱하는 중후장대 산업 성장세가 규모 면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외곽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집값이 비싼 창원을 떠나 시계 밖의 장유, 진영 등의 신도시로의 접근성이 향상되어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한 마산합포구 지역은 면지구뿐만 아니라 옛 시가지의 노후화 때문에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며, 그나마 월영마을에 형성된 학군이나 현동지구 등의 신규 아파트 택지공급이 감소세를 덜어주는 정도다.]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된 상태.[[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47176&ctg=1213|#]]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바다에 바로 접해있는 옛 마산 지역이나 진해구 쪽은 여름~가을에 걸쳐 태풍 및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와 강풍피해를 종종 입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내습한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이 때는 만조와 강풍으로 인한 5미터 높이의 해일까지 덮쳐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덕분에 2003년 이후 해안가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터돋움식으로 지어서 '''아파트 1층이 다른 건물 2~3층 높이로 올려 지어지는''' 진풍경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교적 내륙인 양덕동에도 2000년 초반에 완공한 한일4차부터 2015년 후반에 지어진 [[창원 메트로시티]] 2차까지 모두 터돋움식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 [[몽고간장]] : 일제시대 몽고정 옆에 있던 간장 양조장. 현재도 몽고식품 본사가 이 자리에 있고, 경남지역 간장 시장점유율 부동의 No.1이다. 수도권에서는 기성업체에 밀려 보기 힘들지만 가성비가 괜찮기 때문에 가끔 수도권의 오래된 식당들이 플라스틱 벌크통째로 사다가 쓰는 게 관측되기도 한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상업지구는 [[더 시티7]]이다. 2008년 문을 연 이 거대한 복합상업건물은 창원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산지역과도 멀지 않아 마산과 창원 두 지역 모두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평이 있다. 이 곳에 위치한 오피스텔은 창원시는 물론이고 경남 전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가 현재는 [[창원 메트로시티 2차]]가 추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티7을 창원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라고 하기도 한다. 바로 옆에 통로로 연결된 [[창원컨벤션센터]]와 풀만호텔이 위치한다.
창원기계공업단지에는 [[장갑차]] 등 무기를 직접 생산하는 [[현대로템]]을 필두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방산업체들이 몰려있어 전시에는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 생산기지가 되는 도시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시 서울 다음 폭격 지역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전쟁나면 일단 창원을 뜨라고들 말한다~~ 만약 전시에 이곳이 단기간에 박살나게 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본진 군수공장이나 관문을 장악당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현실에서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한국은 땅이 좁은 까닭에, 2차 대전 때 [[소련]]이 [[독일]]한테 진창 두들겨 맞아 막장이 된 상황에서도 생산 시설을 저 머나먼 [[우랄 산맥]]으로 옮겨, [[독일]]군이 진군해 오는 동안 그 새로 만든 생산 시설에서 화기를 뽑아서 막아내는 그런 무리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그 방어가 상당히 중요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이다.
[[창원대로]]가 10km 넘는 길이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것도 비상시 수도 역할을 하기 위한 활주로 대용이다. 지금은 중앙분리대와 지하차도로 인해 활주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으나 본 목적이 전시상황에서 비상활주로 역할이니만큼 창원은 [[계룡시]] 못지 않은 비상용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 표창원 . . . . 13회 일치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70000B><-5><bgcolor=#FFFFFF><:>{{{#70000B '''[[대한민국|{{{#70000B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회의원|{{{#70000B 국회의원}}}]] ([[경기도|{{{#70000B 경기}}}]] [[용인시 정|{{{#70000B 용인시 정}}}]])'''}}}||
||<:>'''가족'''||<(>2남 중 [[차남]][* 그의 친형은 표창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표창원이 그의 부인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계기도 친형과 관계가 있는데, 형수가 자신의 지인이었던 현재의 부인을 소개해 줘서 연애를 하여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
|| '''지역구''' ||<(> [[경기도|경기]] [[용인시 정]] ||
정계입문 이전에 국내에서 가장 지명도 있는 프로파일러, 범죄학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오랫동안 [[경찰대학]] 교수로서 교편을 잡았다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후 그 동안 갈고 닦은 지명도로 [[20대 총선]]에서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51.6%의 비교적 높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절망해 학창시절 툭하면 주먹 싸움을 벌이고 패싸움에 휘말려 양호실에 실려가고 형이랑 싸우다가 칼을 휘두르는 등 모범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응?~~중학생때 전국일제고사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생때는 암기식 교육이 싫어서 상습적으로 야자에서 도망갔지만 성적을 늘 상위권이었다.
박사학위청구논문의[* 'The police and crimewatch UK : a study of the police use of crime reconstruction and witness appeal programmes in Britain'] 주제만 놓고 보면 봤을 때, 표창원의 원래 전공분야는 미디어 매체[* [[http://www.bbc.co.uk/programmes/b006ppmq|Crimewatch UK]]는 우리나라의 [[경찰청 사람들]], [[공개수배 사건25시]]와 비슷한 TV 프로그램이다.]와 경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학위청구논문 이후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 전공분야가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표창원 박사의 경우 형사사법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찰에서는 [[경찰대학]] 졸업생 중 유학한 경찰들을 통해서 내부역량을 높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학을 갔다온 경찰대 졸업생들의 논문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대개 집회시위법, 행정법, 형사절차 or 형사법에 관한 논문이 많다. 물론 표창원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세간에는 범죄심리학(criminal psychology)이나 프로파일링(Profiling)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이 분야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증거는 없고 이에 관한 전문적 연구 또한 미미하다.[* 여담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죄심리학(Forensic psychology) 박사학위자는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에 재직중인 [[박지선(교수)|박지선]] 교수가 있다.]
이 당시 나온 대중성 있는 저서로는 [[http://www.yes24.com/24/Goods/1506195?Acode=101|한국의 연쇄살인(2005年)]]이 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무척 흥미진진하다. 초심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독성 좋고 간결하면서 유려한 문체[* 이는 글 쓰기, 잘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 현장 용어나 한자말을 피하고 중학생 정도 학력이면 이해할수 있을만큼 정말 쉼게 썼다.] 로 한국 근 현대사에서 유명한 여러 연쇄살인 사례들을 다루었다. 단 유혈이 낭자한 당시 현장 사진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고 (다행히 컬러 사진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되어 있어 19세 미만 구입 불가 딱지를 붙여놓은 곳이 많다. 경찰 출신이다 보니 비슷하게 여러 사건 사례를 자세히 다루는 법의학 책과는 다른 시각으로 글을 써서, 보기에도 신선한 것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유제설 교수와 공저한 [[http://www.yes24.com/24/goods/6103472?scode=032&OzSrank=1|한국의 CSI(2011年)]] 또한 과학 수사에 대한 교양 서적으로 읽기 매우 좋은 책이다. 그의 책은 어디까지나 교양 서적이다 전문 서적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를 추구한 책은 아니다. 내용이 실제 살인 사례이다 보니...
원래 자신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수 차례 밝혔다. 2015년 10월 26일에 [[트위터]]를 통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0867351|'정치 안 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인 2015년 12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다.[[https://www.facebook.com/cwpyo/posts/1133948603312544|본인 입당 sns 인사글]]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예전의 입장을 거두어들인 것에 대해 사과의 표시를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중적인 범죄학자 표창원을 1호 인재로 영입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영입 초반에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오세훈 전 시장'''과 대결시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 본인은 이에 대해 '''"[[오세훈]] 전 시장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붙으라고 해도 하겠다"'''며 당락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으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1807908|#]] [[국민의당|안철수 신당]]과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 [[종로구]]로, 표 교수는 밑에 서술되어 있듯 경기도 [[용인시 정]] 선거구에 출마하게 되면서 둘의 대결은 없던 일이 됐다.
* 야당 측 정치인 중에서 특이하게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22197|#]][[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0104502&viewType=pc|#]][[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6566.html|#]] 정치인이 아니던 시절에 중립적인 스탠스를 보이려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정희가 다 잘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은 경제성장이며 독재하고 인권을 탄압한 것은 죄라며 선을 그었다. 굳이 말하자면 공과를 모두 인정하며, 그 중에서 공이 더 크다고 보는 정도일 듯.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경기도)]
- 현진건 . . . . 13회 일치
현진건은 [[광무 (연호)|광무]](光武) 4년([[1900년]]) 8월 9일(양력 [[9월 2일]]) [[대구광역시|대구부]](大邱府)에서 현경운과 어머니 완산 이씨(完山 李氏) 정효(貞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당시 대구군 2정목(町目),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광역시)|중구]] 속칭 '뽕나무골'이라 불리던 마을이었다. 어머니는 [[융희]](隆熙) 4년([[1910년]]) 6월 13일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위로는 홍건(鴻健), 석건(奭健), [[현정건|정건]](鼎健)의 세 형이 있었는데, 맏형 홍건은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과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을 지냈고 칭경시예식사무위원(稱慶時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 석건은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정건은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처음 「희생화」를 발표하던 때부터 현진건은 이미 '빙허'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쓰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가 혼인을 올리던 1915년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1916년 사이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다소 허무주의적 표현이 없지 않지만 '허공(虛空)에 의지한다'는 이 말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었고, 고대 중국 [[북송|송]](宋)의 문인 [[소식 (북송)|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의 구절 가운데 "넓기도 하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서(浩浩乎! 憑虛御風而)..."란 구절에서 느낀 바가 있어 그대로 '빙허'를 자신의 아호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ref>「雅號의 由來(2)」 1930년 5월 1일자 『삼천리』제6호.</ref> [[1920년]] 11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1월, 현진건은 『개벽』에 단편 「불」을 발표하였다. 이때 그는 「시대일보」의 사회부장이 되었으나 「시대일보」가 폐간되면서 동아일보사로 전직하여야 했다. 3월 1일자 『개벽』 제57호에는 이때의 현진건의 근황에 대해 "근래에 빙허(憑虛) 군은 신문사 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더 많은 독서와 연구에 노력하겠다 한다. 늘 군은 조선의 평론계가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을 매우 분개해서 앞으로는 논문도 쓰실 작정이라고. 고마운 일이며 즐거운 일이며 마음히 든든해지는 일이다."라고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ref>「文壇雜談」 1925년 3월 1일자 『개벽』제57호.</ref> 그리고 박문서관에서 그의 중편 「지새는 안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2월에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를 『조선문단』에 발표하고<ref>현진건이 『조선문단』에 작품을 싣기 시작한 것은 『개벽』이 점점 '계급주의 문학'을 외치는 [[카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부터였다는 지적이 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4월과 5월에는 수필 「목도리의 복면」과 「설 때의 유쾌와 낳을 때의 고통」을 각각 기고하였다. 7월에는 「조선문단과 나」라는 기고에서 작가는 삼삼오오 짝을 짓고 당을 나누어 서로 갈라서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작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일인일당(一人一黨)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계급주의 문학을 옹호하는 카프의 주장에 맞서 내용적 가치와 계급적 가치란 별개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문단』에서 만든 조선문단합평회의 정기회원으로서, 10월에는 『조선문단』 신추문예(新秋文藝)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처음으로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26년]] 1월에 현진건은 『개벽』에 평론 「조선혼(朝鮮魂)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기고하였다. 이 평론은 오늘날 현진건이 가진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는다.<ref>현진건이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을 실을 무렵에 기자로서 재직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현진건이 「시대일보」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최남선이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있었던 점을 지적하고, 최남선이 당시 주창한 '조선주의'가 현진건의 '조선혼' 주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91.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총서24.</ref> 2월에는 『조선문단』에 수필 「무명 영웅」을 기고하고, 11월에는 『개벽』에 단편 「사립정신병원장」을 기고하였다. 또한 이 해 3월에 단편집 『조선의 얼골』이 출판사 글벗집에서 간행되었다.
{{인용문|나는 역사소설이 작품으로 나타나기까지 작자의 태도를 대별하여 두 가지 경로를 밟는다고 생각합니다.<br />그 하나는 작자가 허심탄회로 역사를 탐독완미하다가 우연히 심금을 울리는 사실을 발견하고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자체가 주제를 제공하고 작자의 감회를 자아내는 것이니 순수한 역사소설이 대개는 이 경로를 밟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예하면 스코트의 제(諸) 작품 아나톨 프랑스의 「신들은 주린다」라든가 우리 문단에도 춘원의 「단종애사」, 상허의 「황진이」 같은 작품이 그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br />또 하나는 작자가 주제는 벌써 작정이 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도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 주제에 적당한 사실을 찾아 대어 얽어놓은 경우입니다. 쉔키비치의 「쿠오 바디스」,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춘원의 「이차돈의 사(死)」 같은 작품은 다 이런 경로를 밟은 작품이라고 봅니다.<br /> 제1의 경우라고 해서 대작(大作) 신품(神品)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제2의 경우에야말로 웅편(雄編) 걸저(傑著)가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가 작품마다 그 구별이 뚜렷한 것이니 아니오 서로 혼합되고 착종하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요.}}
숙부 '''[[현영운|영운]](映運)'''은 아내 [[배정자|분남]](粉男)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된 것을 계기로 크게 출세하여, 장관급인 대한 제국 군령부 참장, 주일특명전권공사, 원수부 검사총장, 참모부 제1국장, 농상공부 협판 등의 고위직을 거친 구한말의 전형적인 친일관료였다. 이러한 그의 벼락출세가 영운의 형제들의 관직 진출에 음으로 양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부친 '''경운'''은 지위가 정3품 통정대부까지 올랐고 의정부 외부의 통신원 국장과 전보사장을 거쳐 [[1895년]] 대구부 전보사의 주사로 취임하기도 했다.<ref>당시 전보사는 농상공부대신의 관리를 받으며 전보에 관한 사무를 수행하였으며, 1등사와 2등사로 구분되었다. 한성(서울)과 인천, 원산, 부산, 의주, 경성, 함흥, 회령이 1등사에 속했고 대구는 2등사였다. 통신원 국장이란 직책은 수준은 미비할 망정 국가의 전신, 전화, 전기는 물론 우편과 운송 분야와 관련한 시설과 제도를 관리하는 자리였기에 아무나 역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3~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숙부 '''철운'''은 안동관찰부 주사 겸 용궁군수를 지냈다. 숙부 '''양운'''은 관립영어학교 출신으로 궁내부 예식원주사에 태복시 기사 등을 지내고 [[원산]]과 [[동래]]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으며 [[대한체육회]] 창설 멤버로 알려져 있다. 숙부 '''붕운'''은 태복시 주사를 지냈다.
부친 경운의 첫 부인이자 현진건의 친어머니인 완산 이씨 정효(貞孝)는 진건을 비롯한 네 명의 아들을 낳은 뒤 막내 진건의 나이 열 살 때인 [[1910년]] 6월 13일에 죽고, 경운은 정선(旌善) 전씨를 후처로 맞아들여 또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진건의 큰형 '''홍건(鴻健)'''은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으로 대한 제국의 육군 참령을 지냈다. 한때 러시아 대사관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으며, 《각사등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문헌에 따르면 광무 6년([[1902년]])에 외국어학교(外國語學校) 부교관(副敎官)과<ref>《각사등록》 광무 6년(1902년) 7월 28일조. 이듬해인 광무 7년(1903년) 4월 23일(양력 5월 19일)에 면관되었음이 《승정원일기》에 수록되어 있다.</ref> 칭경시(稱慶寺)의 예식사무위원(禮式事務委員)을 잠시 맡기도 했다<ref>《승정원일기》 광무 6년([[1902년]]) 6월 24일조. 그러나 광무 7년(1903년) 2월 28일(양력 3월 26일)에 해임되었다(《승정원일기》 같은 날 기록).</ref> 말년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미소공동위원회|미(美)·소(蘇) 공동위원회]] 시절에 납북되었다는 설도 있다.<ref>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34,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둘째 형 '''석건(奭健)'''은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아우 정건이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변호를 맡기도 했다. 셋째 형 '''[[현정건|정건]](鼎健)'''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하다.
이들 형제는 현진건이 5촌 당숙 '''현보운'''([[1875년]]~[[1919년]])의 양자로 [[입양]]되어 들어간 뒤 법적으로는 친형제에서 6촌 형제로 바뀌었다. 관립 일어학교 출신의 보운은 고종 33년인 [[건양]](建陽) 원년([[1896년]]) 8월 3일에 외국어학교의 교관(敎官)이 되었고, 광무 3년([[1899년]])에는 궁내부 번역관, 광무 4년([[1900년]]) 12월 24일에는 예식원 참리관으로 임명되어 봉직하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난 광무 7년(1903년) 11월 11일에 주일공사관 이등참서관이 되었고, 광무 8년(1904년) 일본 보병대 수원(隨員)으로 일본으로부터 즈이호오 4등 훈장을 받기도 했다. 광무 9년(1905년)에는 [[병조|군부]] 군무국 포병과로 옮겨 정위가 되었다.
* [[1932년]] 7월 1일자 『삼천리』기사에서, '만일 금주법이 실시된다면'이라는 질문에 현진건은 "돈이 없어서 못 먹으니 차라리 끊어 버리는 것도 나을 듯 싶어서 벌써부터 끊으려고 하는데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날 보고 애주가로 인증하니 참 딱한 일입니다. 우선 귀사에서도 많은 인사를 제쳐 놓고 나에게 물어 보시는 것은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구태여 물어보시는 줄 암니다. 혹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배운 재주라 그렇케 쉽게 버릴까 하는 것도 의문은 됩니다. 정, 먹고 싶으면 [[카포네]] 노릇이나 해야 먹게 될 줄 압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처가가 경주에서 알아주는 부호였지만 정작 본인은 집이 가난했기에 처가에서 보내주는 것으로 생계를 잇곤 했으며, 처갓집에 간 아내가 구박을 받고 처남댁이 부자 행세를 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주인공이 분노한다는 「빈처」는 바로 그의 아내를 모티브로 쓴 것이라고 한다. 이후로도 글을 쓰는 중간중간에 멈추고 아내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ref name="cho"/>
생가는 주소만 남아있을 뿐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가 살았던 [[인왕산]] 밑의 부암동 자택은 종로구에서 공용주차장을 짓기 위해 2003년에 헐어버려서 지금은 터와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이 남아 있다. 당시 그 생가의 철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행정당국은 '민간인 소유자와 부지 매입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ref>[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11/h2007110618342324420.htm#none 편집국에서-사라지는 문학의 고향, 한국일보 2007년 11월 6일자 기사]</ref> 2012년 10월 4일에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유언에 따라<ref name="cho"/> 화장되고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장리에 매장됐었으나 그 후 남서울 개발관계로 묘소가 사라져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12회 일치
[[겁]]이 많은 편이다. 예리가 레드벨벳에 합류하기 전에 혼자 방을 쓸 때 불을 켜놓고 잤을 정도.[* 그러다 방을 바꿔서 조이와 예리가 한 방을, 언니 셋이 한 방을 쓰기도 한다. 레드벨벳은 활동 시기마다 일부러 방을 새로 배정한다고 한다. 7월 7일 활동 시기에는 웬디, 예리와 함께 썼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놀라는 모습이 포착된다. 또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계단 같은 걸 내려갈 때 멤버들이 손을 잡아주며--이게 약간..?--[* 최근 리얼리티에서는 손잡이를 잡으면서 혼자 내려오긴 했다.] SM 유리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도 밑을 내려다보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롤러코스터]]는 잘 탄다는 것. 순간 무서운 것만 넘기면 스릴을 느껴서 좋다고 한다.
다른 닮은꼴로는 가수 [[투야]]의 [[김지혜#s-3]], 배우 [[서지혜(배우)|서지혜]][* 라디오 스타에서 만남이 성사 되었다!], [[이선빈]]과 가수 겸 배우 [[이정현(멀티 엔터테이너)|이정현]], [[박한별]]을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레드벨벳을 본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아이린과 슬기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사실 파고들어보면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별로 없다.]--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은 곱게 나이 들면 [[노현정]], [[이휘향]]과 닮았다고 한다.--
[[가사노동|집안일]]을 좋아하고 능력이 특출해 런드리데이의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취미는 '''다리미질과 빨래, 찍고 싶은 광고는 [[섬유유연제]] 광고다.'''[* 채널소시 [[태연]] 편에서도 해당 내용을 밝혔다. 두 사람 다 집순이답게 섬유 유연제 뭐가 좋은지 한참을 이야기했다고...]
* [[SM엔터테인먼트|같은 소속사]] 선배인 [[소녀시대]]의 [[서현(소녀시대)|서현]]과 성을 제외한 본명도 같고 나이도 같다. 서현이 아이린보다 7년차 선배여서 소녀시대 팔방미인 4화에서 태연의 주도 하에 서로 "야"라고 부르기로 해 서현은 "야"라고 불렀으나, 아이린은 침묵했다. --서현 : 네. 저 나빠요.-- 그래도 "친구야"라고 부르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다시 어색해졌다.-- [[http://www.vlive.tv/video/1406|#]][* 8분쯤부터 보면 됨] 2015년 [[MBC 가요대제전]]에서 서현과 악수하고 끝나고 나서 함께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소속사의 남자 선배인 [[샤이니]]의 [[민호]], [[Key(샤이니)|Key]]와도 1991년생 동갑이다. 특히 Key와는 [[대구광역시|동향]]이다. Key는 [[수성구]] 출신이고[* 다만, Key는 출신 학교를 보면 알겠지만 [[동구(대구)|동구]]에서 자랐다.(초등학교가 [[APRIL]] [[예나(APRIL)|예나]]와 같은 곳이다)] 아이린은 [[북구(대구)|북구]]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백종원의 3대 천왕]] '대구 맛골목 5'편(2017년 2월 11일 방송)에 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공통점은 둘 다 1학군[* 중구, 북구, 동구, 수성구, 달성군 가창면]이라는 것--
* 치킨을 못 먹는데도 또래오래 CF를 찍거나 --광고에서는 치킨 냄새만 맡긴 했지만--, 커피를 못 마시는데 캔커피 광고에 출연해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보여 주었다. --자본주현--[* 이 때 일부 안티들은 치킨을 못 먹는데 왜 치킨 광고를 찍냐고 신나게 욕하기도...]
* 2015년 5월 1일부터 배우 [[박보검]]과 [[뮤직뱅크]]의 MC를 맡게 되었다. [[레드벨벳]]에서 첫 고정 스케줄을 갖게 된 멤버이기도 하다. 신고식으로 [[투투(가수)|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을 불렀다. [[https://youtu.be/v3rY6QWl_uc|신고식]] 사적인 대화는 물론 휴대전화 번호도 교환 안 했다는 후문.
* 동명의 [[패션 모델]]인 아이린 때문에 가끔 사람들이 모델 아이린이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것을 보고 혼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명의 '''가수'''도 있어서 음원 사이트에서 '''아이린'''을 검색하다 혼동하기도 한다.[* 해당 가수가 부른 대표적인 노래로는 [[디셈버]], [[제이세라]], 윤미와 함께 부른 '가슴으로 운다' 가 있다.] 비슷한 경우로, [[Cosmic Fantastic Lovesong|이 아이린]]과 [[아이린(아르피엘)|이 아이린]]이 있다.--[[아이린 애들러]]는?--
* 2016년 4월 1일. [[만우절]] 장난으로 [[뮤직뱅크]]를 진행하다 실신하는 연기를 해 시청자들을 다른 의미로 심멎시켰다(...). 이 영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15만개 이상 받았을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wyv6cWkkc|#]]
* 2017년 10월 14일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한국 베트남 수교 25주년 기념 우정슈퍼쇼'에 MC로 참석한 자리에서 산이가 아이린 어깨에 팔을 올리고 팬들에게 메롱하는 포즈를 취해 산이에게 포화가 쏟아졌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아이린은 같은 레드벨벳 멤버들과 함께 출연하지 않는 방송(즉, 단독 게스트)로서의 활약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린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많이 가리게 되면서 친해지게 되면 말이 많아지는 성격상 친한 멤버들과 함께 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에 단독으로 출연하게 되면 아이린에게서 빵빵 터지는 분량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레드벨벳 멤버들과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선 오히려 아이린의 매력이 보여지게 되면서 빵빵 터지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주간 아이돌]], [[양남자쇼]], [[공조7]], [[아는 형님]], [[오빠생각(예능)|오빠생각]]을 보게 되면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의 논란은 기억되지 않을 만큼 캐릭터가 확보되면서 매력이 잘 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린이 다른 레드벨벳 멤버들 없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활약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뮤직뱅크]]에서 박보검과 커플 케미를 선보이며 역대 뮤직뱅크 MC 라인 중 가장 최고의 조합이었다고 평을 받을 정도면, 적어도 MC 역할을 하는 것에서 만큼은 확실한 화제성과 캐릭터를 보장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런드리 데이]]에서도 처음엔 낯을 가리고 쑥쓰러워 했지만, MC로서의 역량은 부족하지 않았고 자신의 밥값을 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이 세탁 토크쇼라는 다소 색다른 포맷임에도 자신이 취미삼아 하는 빨래 및 다림질로 인하여 나름 확실한 정보로 인하여 분량도 제대로 나오기도 하였다.
- 유민상(개그맨) . . . . 12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동두천시]][* 당시 양주군 동두천읍] ||
아직 120kg이 안 되던 시절 개그맨 신인들의 등용문이었던 [[폭소클럽]]에서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이라는 코너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개그콘서트]]로 넘어온 후 <솔로브레이크>라는 코너에서 석호필을 패러디한 '석호피그'로 '''영리한 돼지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1대 100]]에서 우승하면서 캐릭터만이 아님을 보여줬다. <아빠와 아들>, <안생겨요>, <큰 세계> 등의 코너도 히트시키는 등 몇 안 되는 개콘 장수 개그맨으로서 그 능력을 입증했다. 다만, [[비호감]]이라는 약점이 살짝 있었는데, [[맛있는 녀석들]]이 대히트하면서 그것조차도 다 날려버렸다.
[[개그 콘서트]]에서는 최초에는 비중이 별로 없었다가 [[뮤지컬(개그 콘서트)|뮤지컬]] 코너에 출연을 해서 좋은 반응을 보였고,[* 팀 - 사랑합니다 편을 보면 쓸쓸한 노년의 아버지 역을 맡아 관객을 울린 적이 있었다. 정극 연기도 꽤 잘하는 편이라 류담처럼 개탤맨 기질이 보였다.] 한 때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황현희]]한테 당하는 업자로 나왔고 [[초고속 카메라]]에서 열연했다가, [[파라킹 홈쇼핑]]에 출연했다.
평상시에 후배들에게 잘 해주는 선배로 알려져 있으며 위에 언급한 피자 집합건이 유민상이 난생 처음 건 집합이었다고 한다. 유민상도 나중에 '처음에는 화가 났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걸로 집합을 걸면 얼마나 웃길까?' 라는 생각으로 집합을 걸었다고... 이 집합에 대한 실상이 [[맛있는 녀석들]] 8시 내고향 특집 때 [[https://www.youtube.com/watch?v=Gw4j44LyPEo|후배들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똥군기 자체가 예나 지금이나 어떤 조직의 치부이기도 하고, 평소에 똥군기를 자행하는 선배였다면 이런식으로 에피소드로 나올 일도 없었으리라...
[[2017년]] 들어서 [[트위치]]에서 방송을 하며, 방송국 주소는 [[https://www.twitch.tv/boowoonim|여기]]다. 주로 [[배틀그라운드]]를 하며, [[6월 6일]] [[현충일]]에는 [[풍월량]]과 배그 듀오를 뛰면서 팔로워가 확 늘었다. 또한 다른 스트리머들과 스쿼드나 듀오도 하기도 한다. 6월 10일에 여성 스트리머 3명과 스쿼드를 진행하여 시청자들로부터 의자왕 메타냐는 놀림을 받았다. [[Kar98k|Kar98]] 매니아다.
게임 진행 도중 어그로성 채팅을 치는 한 시청자의 팔로우 목록을 공개하던 중 팔로우 목록에 있던 [[후즈]]의 채널을 보더니 "으이구 넌 이러고 있으면서"라는 말을 하기도하였다 [[https://clips.twitch.tv/GlamorousSleepyReubenKappaWealth|클립]]. 그리고 이후 후즈가 속한 [[피버]] 멤버들을 초청해 게임요정 민상씨를 진행하였다. 일부 피버 팬들은 이에 불쾌해 하기도 했다.
* 그리고 주변 개그맨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본좌|'''유본좌''']] 급이라고. 2012.07.31 방영한 안아줘(KBS joy) [[http://blog.naver.com/edubox123?Redirect=Log&logNo=120166861651|오덕페이트 체험 편]]에서 [[다키마쿠라]]에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캐릭터([[유이(Angel Beats!)|엔젤비트 유이]])를 알아 보는 것으로 보아서는 [[오덕후|'''덕이 있는 자''']]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을 때에는 냉장고에 가슴 모양 푸딩이 들어있는 게 방송으로 나가기도 했다. 일본어를 대학 때 전공하다보니 일본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일본어도 꽤 하는듯.
* 98년 대학 신입생 시절 [[드림캐스트]]를 구입한 것을 당당하게 여자친구에게 밝혔다가 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소싯적부터 게임을 한 덕인지 게임 센스는 나이에 비해 매우 뛰어난 편. [[배틀그라운드]] 개그맨 대회 때도 항상 상위권에 들며 발군의 스나 실력을 보여주는 편.
*굉장한 게임 마니아로 PC와 콘솔을 가리지 않고 플레이 한다. 특히 콘솔로 나온 대부분의 유명 신작 게임은 일단 플레이 하며 대부분 엔딩까지 본다. 다만 턴제 RPG는 예외로 과거에는 재미있게 플레이 했으나 현재는 액션성이 없으면 재미를 못느끼는 듯. 레드 데드 리뎀션 2 게임방송에서 한 발언에 의하면 개그맨이 되기 전에는 의정부에 위치한 게임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으며, 게임잡지 기자를 지망했을 만큼 게임을 사랑한다.
* 2014 경기도 동두천경찰서 4대 사회악 근절 및 세이프 가디언 홍보대사
* 2010 경기도 동두천시 홍보대사
- 이순재(1935년 10월) . . . . 12회 일치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 이 시절의 철학계는 [[독일]]이 그야말로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독일어가 필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마누엘 칸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등의 전공책들을 '''[[독일어]] 원서'''로 읽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독일어]] 실력이 동년배에 비해 썩 나은 편임을 [[꽃보다 할배]] 스위스편에서 독일어로 쓴 지명을 부드럽게 읽음으로써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 팬들과 일본어로 문제 없이 소통 가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전 명문대 출신들은 비록 회화는 어렵더라도 왠만한 일본어 원서는 그냥 읽을만큼 일본어가 능통하다. 애당초 대학교 교재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거나 국내에서 쓸만한 교재들이 쓰이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도 [[박정희]] 군부독재시절이라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구하지 못해,자본론을 일본어로 읽었다.]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당시 연극부 부원 중에는 --요즘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채현국 이사장을 건너 [[고건]] 전 국무총리와도 아는 사이. 사실 고건 전 총리의 아버지 [[고형곤]] 박사가 이순재를 가르쳤던 주임교수였다. 한 번은 4학년 때 연극 합숙 연습 때문에 수업을 두 차례 빠져야 해서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 라며 흔쾌히 봐주었다고.]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상회 때문에 보람상조에서 나온 멘트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라이나생명]] 광고 멘트이다. 이 멘트가 이순재를 대표하는 멘트가 되어서인지, [[광동제약]]의 헛개나무 숙취해소 음료 광고에서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보험처럼 마시자'''라는 어레인지된 멘트를 쓰기도 했다. ]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 이 조치 때문에 보험 광고를 촬영하는 연예인인 [[손범수]], [[문천식]], [[정은아]], [[김상중]] 등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애니메이션)|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칼 프레드릭슨)'''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반적인 [[비성우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애니메이션 [[비성우 더빙]] 사상 최고의 목소리 연기', '원작 초월' 소리를 들을 정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성우가 맥심 인터뷰에서 '대가는 어디를 가나 통하더라'며 칭찬을 했다.[[http://news.maxmovie.com/74030|#]]] --이것이 바로 이순재의 업(業, Karma, 카르마, 운명)이니라.--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이순재는 옛날의 후시녹음 체제 때부터 활동해온 배우라 발음과 발성이 좋은 편이고, 한국 드라마가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었던 옛날 젊은 시절에는 성우로 일하면서 더빙을 해서 얻는 수입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환경이 개선되면서 오래도록 목소리 연기를 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그냥 이순재의 자기 관리와 연기력이 뛰어난 거다. 본인은 카메라 연기와는 방식이 달라서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http://extmovie.maxmovie.com/xe/index.php?comment_srl=2358142&listStyle=gallery&mid=movietalk&page=997&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document_srl=764826|#인터뷰]] 적당히 유명세 마케팅으로 투입된 배우, 아이돌, 개그맨들과는 내공이 다르다. 애초에 가벼운 마인드로 연기하시는 사람이 아니다.]이순재가 맡은 배역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에드워드 애스너.]도 연극활동은 1940년대[* 대학생이던 [[1947년]]도부터 활동했다.], 영화산업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베테랑 명배우다.
자신의 긴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으로 [[1982년]] KBS[[사극]] <풍운>에서 맡았던 [[흥선 대원군]]역을 꼽았다. 또한 다시 한번 더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윤보선]] 대통령 역을 자주 맡았다.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 4번.
그리고 [[대한민국]] 괴수물 <[[용가리#s-1|대괴수 용가리]]>([[심형래]] 괴작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솟아난 원조)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여러 나라에 각 나라의 더빙판이 수출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한것은 [[대한민국]]에는 손상된 판본뿐이고, 오히려 [[미국]] 더빙판이 더 온전하다는 것. 2013년 7월 21일 EBS에서 HD 리마스터링된 [[미국]] 더빙판을 방영했다.]
활동 초기에는 텔레비전 외에 [[연극]] 무대에서 열연하기도 했는데, 2010년 12월 10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되었던 [[돈키호테]]에서 오랜만에 연극 배우로 출연했다. 기존에 많이 상연되던 [[뮤지컬]] 버전인 [[맨 오브 라만차]]의 각색이 아닌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중후한 희곡 버전을 택했고, 여기에 일부 한국식 풍자 요소를 더해 연출했다고 한다. 이순재의 배역은 타이틀 롤인 돈키호테. 다만 단독 캐스팅은 아니고, 후배인 한명구가 번갈아가며 출연했다. 종연 후에도 꽤 인기가 있었는지, 2012년 초순에 같은 극장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다.
2013년 [[꽃보다 할배]]에 [[신구(배우)|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H4로 출연 꽃할배 열풍을 일으켰다. 출연진중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며, 빠른 걸음과 멈추지 않는 직진본능으로 '직진순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촬영 내내 엄청난 학구열과 열정을 보여줬고 여행지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동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물사랑의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자막으로 뜨는 별명은 '숲속의 친구'.
최근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http://mnews.joins.com/article/22423348#home|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반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반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 그래도 본인 역시 구시대를 살아와서 나이가 있다보니 걱정되었는지 한 방송에서 하이킥에 같이 출연한 후배 배우 [[박해미]]와 같이 식사하면서 하이킥 찍을 때 자신도 그런 적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참고로 박해미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인 적이 있다.) 근데 오히려 박해미는 "당시 별명이 '''야동 순재'''였음에도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대한민국]]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8년]]의 [[13대 총선]]에도 [[민주정의당]]으로 나왔지만, [[평화민주당]]의 이상수에게 근소한 차이(32.3% 대 31.4%, 759표 차이)로 패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따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1991년)|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제치고 [[서울]] [[중랑구]] 갑에서 당선되었다(48.7% 득표, 46,297). 이후 [[1993년]] 잠시 민자당 부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비록 선거에서 경쟁 후보로 만났지만 이때 만난 이상수 전 의원과 친해져서 이후 총선에서 이상수 전 의원이 [[2006년 재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했을때 선거운동(정확히는 선거후원회장)도 해줬다고 한다. [[http://www.bucheo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844|#]]
* [[공주의 남자]](2011, KBS)/김종서[* 파천무 이후 21년만에 다시 맡은 김종서 역할. 본인도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최근 2012년 공주의 남자 일본진출에 따른 현지 매거진에 의하면 김종서에 대해 많은 자료를 접하고 연구하여 연기에 임했다 한다. 김종서는 공교롭게도 이순재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12회 일치
한편 이승현이 프로에 와서는 대학시절의 파괴력 넘치던 인사이드 플레이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시 슈터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승현은 현재 오리온스에서 공격시 외곽과 인사이드의 조합을 1:1정도로 가져가며 [[파워 포워드|4번]]보다는 3.5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이 기대했던 파괴력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팀에서 궂은일을 하고 외곽에서 필요할때 3점슛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변명으로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 외에는 포지션의 엄격한 구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추일승]] 감독에 의해 그렇게 플레이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장점 중 타고난 체력이 꼽히기도 하는데, 대학리그를 마치고 휴식기 없이 바로 프로 데뷔 시즌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팀내 평균출장시간 1위(2014-15 시즌) 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시에 대학 말년에 장착한 3점슛이 일취월장하여 허일영(50%)에 이은 시즌 3점슛 성공률 2위(42.9%)를 기록하였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상대 빅맨들이 이전까지 붙었던 빅맨들의 상위호환이어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더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매치업 상대가 하승진인 것을 이용하여 3점을 던지고 있고, 붙으면 돌파까지도 하는 동시에 수비에서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대인 방어와 박스아웃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 덕분에 정규시즌에선 잘 나오지 않았던 파울트러블을 많이 기록하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9점 5리바운드에 그쳤지만 하승진을 9점(필드골 3/9) 9리바운드로 막았고, 5차전에서는 오리온이 패하긴 했지만,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23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필드골 7/10, 3점슛 5/8)을 기록하면서 하승진(8점 7리바운드 필드골 4/6)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정한 졌잘싸~~ 6차전에서는 4쿼터 막판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리는 연속 5득점 포함 14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 결과 그 동안의 개고생[* 4쿼터 중반 허일영의 3점 세레머니 때 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보답으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였다!!''' 평균 기록은 [[조 잭슨(농구선수)|조 잭슨]]이, 임팩트 면에서는 [[김동욱(농구선수)|김동욱]]이 좀 더 앞서는 느낌이 있어 수상에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도 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최고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하승진을 잠궈버린 수비공헌도와 기록,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수상에 부족함은 없다.
헌데 오세근이 11-12시즌에 가장 근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15-16시즌부터 시작된 기자들의 과도한 언플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안티팬들이 대거 양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암투병 소식을 접한 이후 오리온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매번 아버지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에 팬들의 시각도 영 좋지는 못하다. 이런 와중에 동료 포워드들의 활약으로 이승현이 없이도 승수를 착실하게 쌓는 장면이 연출되자 안티팬들은 '''스탯도 오세근보다 낮으면서 고평가를 하는데 [[종범(인터넷 속어)|이승현한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도 있냐?]]''' 라면서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2월 초 부상에서 복귀하였는데, 수비는 여전하지만 공격에서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 팬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2월 15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개인통산 한 경기 최다 득점인 33점을 쓸어담는 활약을 선보여 자신이 왜 KBL의 두목인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이 경기를 승리함으로써 선두권과의 격차를 한 경기로 좁혔다.
세 번째 장점은 발전속도이다. 14년 아겜 국대에서 낙마하게 된 원인이 신체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공격툴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외곽슛을 연마하기 시작해 신인 시즌에 3점 성공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현재 시점인 2017년말에는 동포지션 대비 상급의 슛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슛 뿐만 아니라 포스트업 기술이나 대인수비나 박스아웃 등 공수 전반적으로 꾸준하게 발전을 보이고 있어 [[전준범]]과 함께 국대에서도 핵심 멤버로 등극하게 되었다. 상무 복무자의 경우 훈련하는 공인구가 달라 국대 경기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시즌때보다 정교한 필드골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는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슈팅 모션이 느리기 때문에 오픈찬스가 아니면 득점하기 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체력 저하가 시작되는 3쿼터 막판부터 야투 성공률이 급감한다는 단점이 있다.[* 70점 이하의 득점으로 패배하는 경기를 보면 이 단점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지샷도 놓치는 모습이 4라운드 이후 점차 늘어나는 추세.] 문제는 1대1 능력이 부족하다는점. 본인이 공을 잡고 득점하는 기술이 거의 없으며, 라이벌이자 동기인 김준일에 비해 밀린다고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KBL이 용병이 에이스롤을 맡아 국내선수는 롤플레이어 역할로 그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대학때 모습에 비하면 아쉽다. 물론 워낙 BQ가 좋고 볼 없는 움직임도 좋은 선수라 매경기 10점 정도는 가능하다. 그 외에는 속공 가담 후 받아 먹기나, 포스트업 이후 페이드 어웨이 점퍼. 조 잭슨이 살아나면서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이승현도 덩달아 득점력이 상승하기도 했다. 16-17시즌 이후에는 포지션의 구분없이 피지컬에서 미스매치가 나면 곧장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이에따라 포스트업이나 훅슛 등 공격스킬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여 페인트존 공격기술이 없다는 비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또한 버티는 힘은 좋으나, 스피드가 느리고 점프력이 부족해 세로 수비에 약하고 [[찰스 로드]] 같은 운동능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와 김종규 같은 스피드 있는 인사이더를 막는데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 디시 [[농구 갤러리]] 한정 '이용수'라고 불린다. 바로 '''용'''병 '''수'''비를 줄인 말인데, 이승현의 용병 수비에 대한 몇몇 팬들의 과도한 쉴드로 생겨난 별명이다.[* 다만 페인트 존에서 웨이트 싸움으로 용병 수비가 어느정도 가능한 국내 빅맨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015-16 시즌 6강 플레이오프 동부와의 경기에서는 '''수'''비의 '''왕'''이라는 기사[[http://sports.news.naver.com/kbl/news/read.nhn?oid=064&aid=0000004705|#]]가 나오면서 '이수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2017 아시아컵 이란전에서도 하다디를 틀어막으며 고군분투하자 '''외'''인'''수'''비 전담이라 해서 '''이외수(...)'''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 KBL에서는 덩크를 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 [[함지훈]]처럼 덩크를 못 한다는 소리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등학교 시절에 연습 영상을 보면 덩크는 할 수 있는 듯하다. 2015 플레이오프에서 파울콜 상황에서 파워풀한 원핸드 슬램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기전 몸풀기때 이따금씩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것만 봐도.. 만약 경기 중에 혹시라도 덩크했을 때 실패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팀을 우선시하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이상 덩크를 경기 중에 하지는 않을 듯하다. 본인 말로는 덩크를 할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했다.
* 유도선수 경력도 있고 힘세기로는 정평이 나있지만 그것에 비해선 온화한 성격.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천기범]]이 대학농구시절 이승현에게만 3년 내내 집중적으로 거친 플레이를 하고 대놓고 시비를 트기도 했다. 천기범은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한성깔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 이유리(배우) . . . . 12회 일치
이 후 KBS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 왔다. 사실 《학교 4》 출연 배우들은 KBS와 2년 전속계약을 맺어 이유리는 이후로도 계속 출연했는데 그것이 거의 공무원 수준이었다. 또 이 시점에는 《학교 4》 출신이었던 [[공유(배우)|공유]], [[임수정]] 등이 굵직한 성공작들을 만들어 내며 주연으로 발돋움한 것에 비해 자신은 조연에 머무르는 처지라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중간에 사라지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아줌마1, 학생1, 학생2가 아닌 내 역할의 이름이 있다는 것, 단역 연기자들에겐 그 마저도 꿈이다. 내게 주어진 것만을 더 항상 감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매 순간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 후 2004년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KBS 드라마 《부모님전상서》에서 '안성미'역으로 분한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복하고 바람잘날 없는 대가족의 막내딸로 현실의 문제를 대변하는 젊은이로 나왔다. 이때부터 소위 '김수현 사단'이라 불리며 김수현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다.이 후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한층 성숙한 이미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폭을 넓히기도 했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유리는 이에 대해 후일 "《부모님전상서》 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기자 분들이 김수현 사단이라고 저를 부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제게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고 연기를 통해 배워갈 수 있게끔 해 준 연기사관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연기자가 한 작가로 인해 이렇게 많은 기회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게 행운아 같다."며 생각을 밝혔다.
같은 해 MBC 일일드라마 《사랑해, 울지마》 에서 [[이정진]]과 함께 데뷔 후 처음으로 대가족의 막내딸 혹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에서 탈피해 주연으로 작품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극 중 출생의 비밀의 밝혀지기도 하고 결혼 과정에서 파혼을 겪으며 다사다난한 일을 겪는 '조미수'역을 맡았다. 여담으로 이 드라마의 작가 박정란 작가에게 김수현 작가가 적극적으로 이유리를 추천해 출연이 성사 됐다고 한다.
그리고 2014년 이유리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 의 '[[연민정]]'을 통해 악녀의 절정을 보여주며 매우 호평을 받았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순옥]]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악에 받쳐 패륜을 일삼는 끝판왕 악녀 연민정의 삶을 워낙 뛰어난 연기를 그려내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한 시청자가 촬영 중에 난입해 욕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자칫 평면적일수 있는 악녀 캐릭터에 본인만의 색깔을 덧입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역할도 아닌, 주말극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돋는 연기로 극 후반부에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했으며 연말에 올해를 빛낸 탤런트 2위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MBC는 연민정의 인기를 실감했는지 아시안게임 예고방송과 파라과이와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예고편에 연민정을 투입시켰으며, 이유리는 연민정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모바일게임 CF를 찍기도 했다. 연민정을 의식한 여러 아류 악녀캐릭터도 드라마에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3년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악녀 '양달희([[다솜]])'와 접촉사고 이후 "나 연민정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깜짝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영 후 3년이 지난 뒤에도 드라마에 까메오로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킬만큼 연민정이 대히트한 캐릭터라는 방증이다.
2016년 KBS 드라마《[[천상의 약속]]》에서 다시 쎈 여자 이미지로 컴백하여, 대를 이어 악행을 당해 이를 앙갚음하려는 [[복수귀]] '이나연'과 '백도희'로 1인2역을 맡아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일일극임에도 불구하고 그해 KBS 연기대상 대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일일극 부문 우수상에 그쳤다.
|| 미상 || FAST || || 독립영화[* 이유리는 모 인터뷰를 통해 출연비를 떼인 일화를 밝히기도 했는데 아마도 'FAST'란 작품을 말하는듯 하다. 배우 [[정우]]와 함께 출연한 영화는 당시 이유리의 앳된 모습과 동시에 담배피는 불량스런 모습을 볼수 있다.] ||
* 이유리의 형제관계는 4남매 중 막내로 큰 언니, 오빠, 작은 언니 그리고 이유리가 셋째 딸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은 [[이효리]]가 대표적[* 공교롭게도 이효리의 둘째언니 이름은 이유리 본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었다]. 가족의 막내딸이라 곱게만 자랐을 것만 같지만 이유리는 어릴 때부터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랬다며 지나가듯 푸념하면서 식구가 많아 어릴 때 [[짜장면]] 같은 걸 시키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식탐이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상해]]에도 이러한 형제관계였다. 허나 실제로 이유리는 1남 3녀 중 막내이고, 극중 변혜영은 1남 3녀 중 장녀이며, 둘째이다. 이유리 실제 형제의 맏이는 여자고, 극중 맏이는 남자라는 것이 차이점.] 10년 전 방송 '좋은 아침'을 통해 작은 언니의 얼굴이 잠시 비춰졌는데 막내 못지않은 미모의 소유자이다. 당시 언니는 성경책을 보고있는 동생 이유리에게 "지금 니가 대본을 봐도 모자랄 판에 성경책을 보냐"며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이유리가 '만원의 행복'에 출연당시 부모님이 등장했는데 부모님과는 반반씩 얼굴이 닮은 듯하다. 이때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 말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 데뷔 후 개신교에 귀의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인터넷에서 간증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9월 6일]] [[띠동갑]] [[연상]]의 당시 [[전도사]]였던 조계현씨와 결혼했다.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군소 교단 소속 [[목사]]이다. 남편이 없었다면 연예계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바쁜 촬영 스케줄에도 아침마다 남편에게 꼬박꼬박 아침을 차려주기도 한다고. 목회자의 사모는 삶의 운신에 제약이 많이 생기는 편인데, 남편이 연예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고 한다.
- 장서희(1972) . . . . 12회 일치
아역 배우 출신으로, 1981년에 주최된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 참가하여 진으로 뽑혔다. 이후 모델과 연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상용]]과 '모이자 노래하자'를 진행했고, 과자 광고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이 때는 사실상 모델 활동에 주력하던 시기로, 청소년 시기까지 주로 [[빙그레]] 제품의 전속 모델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9년, [[문화방송|MBC]] 19기 공채 탤런트로 뽑히면서 성인 연기자로 데뷔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데뷔 직후에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뽀뽀뽀]]'의 뽀미언니(7대)를 맡는 등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 인기를 얻지 못해 조연이나 단역 생활에 머물러야 했다. 《[[허준(드라마)|허준]]》이나 《[[태조 왕건]]》, 《[[그 여자네 집(드라마)|그 여자네 집]]》등의 인기 드라마에 조연으로 자주 출연했고, 특히 《[[한명회(드라마)|한명회]]》에서는 '''[[폐비 윤씨]]'''역을 맡으며 열연을 펼쳤으나, 이후 작품 출연에 영향을 주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지금이야 조연 배우도 연기를 잘하면 ‘명품 조연’, ‘신 스틸러’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 통보 없이 배역에서 잘리거나 감독에게 화풀이를 당하는 등 무명 배우의 설움도 끊임없이 겪어야 했다. 그래서 [[문화방송|MBC]] 지하에 화장실 하나를 정해두고 서러울 때마다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
2014년 6월 3일, [[KBS2]] 일일 드라마 《[[뻐꾸기 둥지]]》로 4년 만에 컴백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6&sid2=224&oid=079&aid=0002584796|#]]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친오빠를 죽음으로 몬 여자의 대리모가 되어 애를 낳아줬다가 다시 빼앗아온다는 내용(...). 다만 여기서 맡은 역할은 복수와는 거리가 멀고 [[혈연 때문에 개고생]]하는 쪽에 가깝다. ~~이걸로 대상 타면 막드 지상파 3사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다~~ ~~[[막장 드라마]]의 여신~~ 그러나 [[유동근|경쟁]][[조재현|자들]]이 워낙 강력한데다가, 작품 자체도 그닥이었던 탓에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시청률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후반에 동시간대 1위, 시청률 자체도 20%를 넘기며 호조를 보이긴 했지만, 드라마가 초반에 워낙 질질 끄는 전개를 보여줬는지라(...) 시청률이 14%까지 떨어지며 다소 위태스로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20%까지 올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장서희의 덕이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니... --혼자 멱살 끌고 캐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 경력이 길기도 하거니와, 오랜 무명기간 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스페트럼을 넓혀왔기에 연기력이 굉장히 출중하다. '''다양한 표정 변화와 강렬한 분노 연기'''가 최고 강점. 체구가 작지만[* 프로필상 키보다는 조금 작은 160~161cm로 보이는데, 그 나이에 평균이 160cm정도니 그 키가 작은 것은 아니다. 워낙 말라서 더 작아 보이는 것.] 분노할 때 나타나는 크고 부리부리한 눈매가 집요하고 독해보이는 느낌을 자아내는지라, 《[[인어 아가씨]]》 출연 이전에도 주로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훼방을 놓는 등 악역 조연을 연기했다.[* 실제로도 분노하는 연기를 보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연기한다(...).] 아역 시절부터도 눈에 확 뜨일 만큼 예쁜 얼굴이었고, 지금 봐도 악역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선이 고운 얼굴이라 분노 연기할 때의 모습에 캡이 커서 더 크게 다가온다.
다만, 이 연기력이 주로 [[막장 드라마]]같은 자극적인 연출 내에서 빛을 제대로 발하는지라 약점 아닌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누구든 장서희를 떠올리면 복수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니...[* 복수극이 아닌데도, 장서희만 나오면 어르신들이 '''“그래서 쟤는 언제 복수한대니?”'''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젊은층도 그렇다~~] 그래서 복수극을 촬영한 다음에는 색다른 작품에 출연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으나, 이상하게도 비(非)복수극들은 작가의 삽질이나 안습한 대진운 등이 겹쳐서 인기를 끄는 데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장서희의 연기력이 좋긴 하지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은 연기력에 비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같은 작품을 보다보면 안목이 부족해도 연기력이 저 정도면 무슨 문제랴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개연성이 부족한데 신애리를 용서하고 다시 애정어린 관계로 돌아간다. 일일드라마라 티가 덜 났나 하는데 2018년에 하루에 4편씩해주는걸 보다보면 정말이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치얼쓰하고 작가의 막장력에 기브업하게된다.
* 왼쪽부터 [[이채영]], 장서희, 김순옥 작가, [[우희진]]이다. [[우희진]]과는 같은 [[문화방송|MBC]] 아역배우 출신이다.[* 장서희는 89년에 [[문화방송|MBC]] 공채로, 우희진은 87년에 MBC 특채로 데뷔했다.] 《인어 아가씨》에서도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사석에서도 꽤나 친한 사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서는 위 사진을 보며 ‘막장계 정모’(...)라고 평가했다.
* 나이에 비해 [[동안]]이기도 하다. 데뷔할 때나 지금이나 본판이 크게 안 바뀌었다.[* 물론 당연히 관리를 받기도 하는데, '[[한밤의 TV연예]]'에서 엄청 부은 얼굴로 나와서 “피오나 공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톡스]]를 맞고 나서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데다가 감기까지 겹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기아체험 특집방송에 출연하여 '''“몸무게가 50kg씩이나 나간적이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해 방청객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들었다. 장서희는 자기 키에 50kg 넘으면 엄청난 거라고 변호했지만 야유는 더 거세질 뿐(…). 그러나 《[[인어 아가씨]]》 방영 당시에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장서희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지금이야 장서희만큼 마른 여배우들이 많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 시대처럼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풍조가 덜한 편이었다.] '거식증 걸린 것 같은 연예인'에 자기 이름이 포함된 기사가 나와 콤플렉스가 생긴 적이 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 [[이영애]]와 친분이 있는 듯하다.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 스스럼 없이 전화를 걸기도 했고, 덕분에 이영애가 목소리나마 출연이 되었다. 이에 “진짜 이영애 맞냐”고 수도 없이 되묻는 형님들의 모습이 압권이다. ~~사극 여신과 막장 여신의 친목이라 카더라(...)~~
《인어 아가씨》, 《아내의 유혹》, 《언니는 살아있다!》를 통틀어 ‘장서희 [[박찬욱|복수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뻐꾸기 둥지》가 3부작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복수와는 거리가 먼 배역인 데다 재미나 파급력이 비참할 정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3부작으로 엮기는 다소 민망한 위치에 있었다. 나중에 장서희가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와 다시 호흡을 맞춘 《언니는 살아있다!》가 복수극으로 상당한 히트를 치면서, 《뻐꾸기 둥지》는 3부작 자리에서 바로 밀려나 《언니는 살아있다!》가 복수 3부작 자리를 꿰찼다.
- 홍경인 . . . . 12회 일치
특히 [[박광수(영화 감독)|박광수]] 감독과 함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 해 [[씨네21]]에서 설문조사한 '최고의 남자배우'부분에 [[안성기]]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당시 [[충무로(은어)|충무로]] 톱스타였던 [[안성기]]는 다작 출연으로 인기가 내려가기도 했으나, 그래도 부동의 원탑이었던 시기였다. 이 외에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로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노동문제등에 관심이 크던 시기인지라 당시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컸다고 한다.] 분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이것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배우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었는데 당시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여건상 호주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섭외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최초로 사용했던 기법이 할리우드에서나 쓰던 '워터젤'을 몸에 바르고 불을 붙이는 기법.[* 훗날 이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화재 재난 영화에서 쓰이게 된다. 영화 전태일의 성공 덕분이었다. --근데 어설프게 써서 조금 다친 배우들도 있었다고..--] 그 전문가 曰 "우리 나라에서도 주연 배우가 몸에 이 정도 양의 불을 붙인 적은 없었다." 라고 호평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태일' 이후의 그의 행보는 썩 좋지 못했다. 케이블 및 공중파 오락프로그램에 여기저기 출연하고 진행하는 등의 그의 행보로 인하여 특히 영화계에서는 '''도대체 누가 배우 관리를 저렇게 하는거냐? 저런 배우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방송 여기저기 나오게 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개그맨들과 꽁트를 찍기도 했었고 드라마타이즈 코미디에도 참여했을 정도다. 그것도 개그를 받쳐주는 정상인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본인이 바보스럽게 코믹한 쪽으로... 무려 90년대 최고 개그우먼 중 하나인 [[이영자]]와도 꽁트를 했을 정도. --이영자한테 홍진경이 77년생이고 자기가 76년생이라 홍진경이 누나라는 드립을 치기도...--] 그럴수 밖에 없었던게 이 당시 젊은 배우들은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능프로에 자주 출연하여 인지도나 친밀감을 쌓는게 당연시였던 시절이었고, 당시 [[배용준]]이 소속되어있던 소속사로 이적하다보니 여기저기 나오는게 당연시 되었던 것.[* 역시 배우에게는 예능이 毒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경인과 [[배용준]]을 관리하던 사람은 바로 훗날 [[전지현]]을 대 스타로 만든 사이더스HQ의 '정훈탁' 되시겠다. 당시 정훈탁은 EBM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차렸는데, 소속 연예인은 바로 배용준, 한재석, 정찬, 차태현, 홍경인...] 더불어 영화 전태일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선택했던 '피아노맨', '채널 식스나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연기력면에서는 호연을 보여줬으나 영화 자체의 운이 없었거나 연기력이나 화제성에서 다른 배우들에게 밀리기도 했다.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찾지 못하고 공백기를 가지던 중,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2007년 뮤지컬 배우로 컴백했다. 2008년에는 [[불한당]]에서 주인공 [[장혁]]의 친구이자 장혁을 남몰래 사랑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2009년 [[선덕여왕(드라마)|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악역인 석품랑의 배역을 열연하였다. KBS드라마 [[전우]]에도 출연했다. 2011년엔 [[광개토태왕(드라마)|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조연인 연살타로 출연.
동갑으로 이름이 참 비슷한 [[홍경민]]과 절친이라서, 6살 연상(CF 모델이기도 하다)의 미인 아내와 결혼할 때 [[홍경민]]이 축가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EXNxbdkG2E|#]]
이미지와는 별개로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입담도 좋은 편이다.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아역 특집에 나와서 [[이민우(배우)|이민우]]와 [[김정현(1976)|김정현]]을 압도하는 말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역 시절 에피소드를 들려주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토크가 특징. 1976년생 용띠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뱀발로 [[문희준]]이 군대 시절에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 선임이 홍경인이었다고 하며 그의 갈굼에 복수하기 위해서 [[문희준]]은 그의 양말에 불개미를 넣었다고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후 연예병사들의 친목질로 각종 병크가 드러났던 걸 보면 그나마 연예인 친목질로 개판5분전이던 곳에서 나름 규율시켜서 재평가~~ ~~[[엄석대|그들]][[전사의 후예|은 날 짓밟았어 하나남은 꿈도 빼앗아 갔어]]~~[* 참 아이러니한 것이, 문희준이 속한 [[H.O.T.]]의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의 가사에서 저격하는 대상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엄석대]]를 연기한 인물을 군대에서 만났으니...]
2013년 11월 중반부터 12월 중반까지 EBS 라디오연재소설에서 최민석 원작의 '풍의역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다양한 인물을 --심지어 열여섯 소녀까지-- 미친연기력으로 소화했는데, 특히 '오중사'가 압권. 라디오 연재소설의 공개방송인 낭독의 힘에서 현장낭독을 할 때는 원작자인 최민석 작가가 경인씨의 신들린 연기에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며 제책이 이렇게 재밌었나 싶었다고 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역할이 뭐냐는 질문에 '앞잡이'--고자 두목--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공개방송에서 어느 낭독 전날 술을 마셨다고 밝히며 자긴 목소리가 잠겨서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날 제작진은 목소리가 더 듣기 좋아졌다며 좋아했다고. --술의 파워--
- 홍학표(배우) . . . . 12회 일치
> 출생 [[1961년]] [[2월 9일]] ([age(1961-02-09)]세) ([[경기도]] [[연천군]])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연극]]이라는걸 구경하고 내리 두번을 연속적으로 본뒤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결정한다. 의대 지망생이었던 그의 돌발적인 궤도수정을 사춘기의 방황쯤으로 돌리기엔 너무 심각했다. 그는 교과서 대신 연극대본을 밤새워 읽으며 연극에 푹 빠져버린 그는 여드레간의 가출끝에 부모의 허락을 받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 81학번으로 입학한 홍학표는 연기라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내달리기 시작한다. 때론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고, [[제1보병사단]] 문선대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에는 '''전진 부대가 낳은 미남 사회자 홍학표'''로 군부대를 누비기도 했다. 소형영화에 심취해 연출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홍학표는 제대하고 취업이 막막해지면서 KBS 코미디 프로그램 대본도 써보기도 했고 아는 선배의 주선으로 대학교 3학년 때인 1987년 MBC TV '베스트셀러 극장' FD로 일하기도 했는데, 이 때 PD의 눈에 띄어 '''MBC 특채 탤런트가 되는 행운'''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연기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심지어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던 2005년 8월 골프를 치러 갔다가 골프장에서 홍학표가 앞 팀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전두환이 비서를 통해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다. 전두환은 홍학표에게 “(5공 인사들이) 욕을 좀 덜 먹게 연기해달라”고 특별주문을 했다고 한다.~~그건 작가 마음이지 배우가 뭔 힘이 있나...~~ 그리고 드라마 잘 보고 있다며, 극중에서처럼 실제 [[장세동]]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른 적은 한번도 없다는 세세한 지적까지 했다고 한다. 이순자도 자신이 드라마에서 장영자와 잘 아는 사이처럼 나오는데 실제로 본인은 장영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5년 만인 2010년에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 출연하기도 했다. 홍학표는 이 드라마에서 재경([[오영실]] 분)의 남편인 공병구 역을 맡았다. 장인의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공병구는 순하고 착해서 재경에게 꽉 잡혀 사는 그야말로 [[공처가]] 남편이다.
한 연예계 선배의 감성어린 호소에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압구정동에 있던 집을 날리고 2년간 미국에서 원단장사를 했다고 한다. 2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수지가 맞았고 환율이 폭등했을 때라서[* 이 당시 1달러당 '''2천원대'''까지도 찍었고 점차 안정되면서 1천원대 중반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교적 빠르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선배와 연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한다며, 이자는 안받을테니 원금이라도 받고싶다고...[[지못미]]
홍학표의 친구 중에 미술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그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홍익대 미대 1학년인 '''9살 연하의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홍학표는 아내의 모습에 첫 눈에 반했으나 당시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내 때문에 8개월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마음에 안들었던 장인, 장모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너무 나이차가 많다 보니 심지어는 장모가 "애 데리고 그러지마"라는 충고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중간에 헤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중간에 홍학표의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졌고 아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결국 대학 1학년때 처음 만나 졸업하고나서까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한 믿음과 성실한 모습을 통해 결국 장인, 장모로부터 결혼승낙을 받아내고, 1994년 아내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고 한다.
전성기에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가족을 잃은듯한 슬픔을 느꼈고, 5일동안 아무일도 못할 정도로 충격에 빠질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한 여성잡지의 인터뷰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http://www.mlounge.co.kr/woman/starstory_read.html?seq=3926&article_type=N&pub=&svc=3|인터뷰 기사 링크]]
- 흥친왕 . . . . 12회 일치
|매장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1863년]] 음서로 사용이 되었으며 이듬해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집권기간 중 도승지, 참의, 직제학 등을 지내고, [[1874년]] [[11월]] [[흥선대원군]]이 퇴출당하고 고종의 친정 이후에도 이조와 형조,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한때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동생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대안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관직은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 궁내부 대신, 육군 부장에 이르렀다.
[[1874년]] [[11월]] 이후 [[흥선대원군]]은 그의 아들 [[이준용 (1870년)|이준용]]을 [[조선 고종|고종]]과 [[민비]]를 몰아내고 추대하려 했고, 4회의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그는 고종의 냉대를 받았고 [[1899년]](광무 2) [[조선 장조|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된 뒤에도, 당시 황제의 친형이었음에도 4대 승습에 따른 작위를 받지 못했다. [[1907년]](융희 1) 완흥군에 책봉되었고, [[1910년]](융희 4) [[8월]] 흥친왕으로 진봉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공작]]으로 강등되어 이희 공이 되었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고, 처음 이름은 재록(載錄), 자는 무경(武卿), 호는 우석(又石)이고 나중에 개명하여 이희(李熹)로도 알려져 있다. 첫 작위가 완흥군이었으므로 '''완흥군 이재면'''으로도 부른다.
이는 [[조선 철종|철종]] 사망 당시 12세의 미성년자였던 [[대한제국 고종|이명복]]([[흥선대원군]]의 차남)이 성인인 흥친왕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이라는 [[흥선대원군]]의 계략과 [[신정왕후 조씨|조대비]]의 묵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일부를 포섭할 때, [[김병학]](金炳鶴)의 딸, 혹은 [[김병문 (조선후기)|김병문]]의 딸 중에서 둘째 아들인 [[대한제국 고종|명복]]의 배필로 맞이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것 역시 재면 보다는 명복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한때 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큰아버지 [[흥완군]] 이정응의 양자로 보내지는 것이 고려되기도 했다. 그의 흥완군 양자 지정 논란은 [[1864년]] 고종에 의해 취소되어 최종 종결되었다.
철종 치세기간 중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아들 이재면의 관직을 청탁하기도 했다. [[윤효정]]은 [[흥선군]]이 [[김병기 (1818년)|김병기]]에게 그의 과거 합격 청탁을 했다 한다. [[흥선군]]은 일부러 김병기를 찾아가 아들 [[이재면]]의 [[문과]] 합격을 청탁했는데, [[김병기 (1818년)|김병기]]는 마음 속으로는 몰지각함과 비열함을 비웃으며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다.<ref name="riss167">윤효정,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 있는 망국사》 (다산초당, 2010) 167페이지</ref> 흥선군은 똑같이 김병기의 외조카 남병철에게도 똑같이 아들의 등과 합격을 청탁하니, 남병철은 몹시 분개했다. 왕실의 금지옥엽인데, 이렇게 초라해진 형편으로 아들의 등과를 청탁하니 이렇게 어리석을 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었다.<ref name="riss167"/> 그런데 [[박제형]]의 [[근세조선정감]]에는 흥선군을 대놓고 멸시하던 인물의 한 사람으로 남병철을 지목했다.
1866년 도승지, [[1867년]]에는 직제학이 됐다가 그해 3월 가선대부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로 승진하였고, 바로 [[이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동지경연사, 종정경에 제수되었고, 의정부 당상을 역임하였다. 그 뒤 [[병조]][[판서]], 금위대장,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1873년]] 종정경(宗正卿)이 되었으나 [[1874년]] [[11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에 의해 섭정직에서 강제 축출당한 뒤에도 그는 유유하고 고분고분한 성격 덕에 계속 관직에 남아 있을수 있었다. 동생이 국왕이었고 아버지는 섭정인데도 자신에게는 낮은 직위가 부여되었던 것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이때문에 그는 한때 [[명성황후]] 측에 가담하기도 했다. 외가인 민씨 척족에게 아부한 것 역시 관직을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청나라]] 군인과 문인들의 굴욕과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그는 비밀리에 국내에 편지 서신을 보내 자신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이는 [[1973년]] [[10월 4일]] [[대한민국]] 월간 문학사상 자료 조사연구실에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ref name="문사1">경향신문 1973년 10월 4일자 기사 7면</ref>
[[이재선]]과 이재면을 옹립하려던 추대기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흥선대원군]]은 장손인 [[이준용]]을 추대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준용]] 추대 시도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이러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진 이후 흥친왕과 고종간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처음 그의 시신은 [[경기도]] [[김포군]] [[고란대면]](古蘭臺面) 풍곡리 야산 좌곤(坐坤)에 안장되었다가, [[1921년]] [[9월 1일]] [[양주군]] [[화도면]] 창현리(후일의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로 이장되었다. 이때 처음 [[광주군]] [[세촌면]] 수곡리 계좌에 안장되었다가 다시 [[양주군]] [[회암면]] [[회암리]](후일의 회천읍 회암리)에 안장되었던 부인 풍산홍씨 역시 이장되어 합장되었다. 그의 묘소 북서편, [[이우 (1912년)|이우]]의 묘소 우측 언덕에 후일 [[흥선대원군]] 내외의 묘소가 이장, 조성되었다.
한편 그의 아들 [[이준용 (1870년)|영선군 이준용]]은 아버지 흥친왕 이재면이 사망한 뒤에도 그는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아저씨뻘 되는 [[이재완]] 등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이는 [[국왕]]의 친형인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신원을 요청하지 못하고 자객들의 [[일본]]행도 막지 못한 점, [[일본]] 망명 중에 아버지이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못했고 집안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ref name="p342">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42쪽.</ref>
- 김만수(정치인) . . . . 11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81A1><#0081A1><-5><:> [[부천시|[[파일:external/www.bcits.go.kr/header_logo1.png|width=60]]]] [[대한민국|{{{#FFFFFF ''' 대한민국 '''}}}]] [[경기도|{{{#FFFFFF ''' 경기도 '''}}}]] [[부천시|{{{#FFFFFF ''' 부천시장 ''' }}}]] ||
1992년 [[민주당(1991년)|민주당]] [[원혜영]]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부천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춘추관장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문수 대 만수'''라는 드립을 쳤다.(...) 원래 시의원일 때도 지역구가 오정구에 속한 원종2동이었지만, 오정구는 자신이 모신 [[원혜영]]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어서 결국 김문수가 지키고 있는 소사 지역구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는 김문수가 아직 개념잡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성실히 하고 지역구 관리 아주 제대로 하던 때였으니 탄핵풍을 등에 업었음에도 도저히 상대가 안되었다.
2005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김문수가 ~~[[도지삽니다]]~~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생긴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집권여당의 인기가 최악이어서 낙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은 뉴타운 광풍으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한 선거여서 김만수 역시도 그 광풍을 빗겨가지 못했다. 2006년과 2008년 모두 김문수의 보좌관 출신으로써 지역구를 물려받은 한나라당 [[차명진(정치인)|차명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차명진 전 국회의원과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2010년에 부천시장으로 당선되었을때 당이 다름에도 차명진 당시 의원이 축하 연설을 해 주기도 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시장으로 방향을 바꿔,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장(공무원)|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인 한나라당 [[홍건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본래는 3차례 연속 낙선을 하고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닌 것으로 추정하고 정계 은퇴까지 고려했으나,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일어섰다고 당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여론의 반전과, 현직 시장이었던 홍건표의 연이은 실정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인해 22%, 7만표 차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당선되었고, 드디어 선거 첫 승리를 맛봤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역시 경기도 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부천 토박이 출신인 전 경기도의원 [[새누리당]]의 이재진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도지사 출마 혹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부천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다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면 3월까지 시장직을 사퇴하여야 하는데, 본인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중도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러 번 공헌했고, 실제로 공직자 사퇴시한까지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 출마 쪽으로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였던 소사구의 현직 국회의원인 김상희나, 자신의 선임이었던 오정구 국회의원 원혜영, 서울에서 부천 원미구 을로 옮겨온 동교동계 중진 설훈 의원 모두 고령이라 다음 총선 공천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일찌감치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네 번째 국회의원 도전을 준비하는 것. 아마도 본래 지역구가 소사구였던 지라 차명진 전 의원과의 3번째 대결이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인이 시장직을 재임하면서 2016년 일반구를 폐지했기 때문에 갑을병정식으로 선거구 명칭 변경은 물론 선거구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 2006 || [[2006년 재보궐선거|상반기 재보궐선거]] (경기 부천 소사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 11,712 (30.32%) || 낙선 (2위) || [* 전임자 김문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로 사퇴] ||
- 김상중(배우) . . . . 11회 일치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배우로 악역을 맡았을 경우 특유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으로 잘 나타나 추적자에서 손현주와 대립하는 강동윤 역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 잘 소화해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찌질하고''' 코믹한 연기도 잘 소화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투사부일체]]에서 오상중역으로 대표적인 찌질+코믹연기를 보여줬고[* 지금도 인터넷에 하하와 호흡했던 연기장면이 잘 알려졌는데 정말 찌질하게(...) 나온다.[[티비플|--미안해요 보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에서의 홍준표 역으로, 두 여자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찌질한 모습을 보여 많은 욕을 먹었다. 김희애와 동급에서 연기하는 본인의 커리어 정점을 장식한 작품인데, 여기서 희대의 표정연기는 유명한 대사인 "감자 좀 쪄줄래?"와 함께 짤방으로 만들어져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인 [[엄마가 뿔났다]] 에서도 짧은 특별출연에 불과했으나 홍준표를 생각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 아줌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은 김수현 작가의 후속작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에서는 능력있는 차도남이지만 가족에게는 다정한 삼촌역을 맡아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잘 안어울릴것 같지만 의외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홍상수의 작업방식이나 영화 등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깔 겸 캐스팅에 응했다고한다. 하지만 함께해보니 배우들이 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의외로 잘 어울렸다.'''[* 사실 이런 반응은 홍상수 영화 캐스팅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고현정이라든지 김승우 이기우 등등 의외로 좀 있다. 이중 고현정과 이기우는 몇 편을 더 주조연으로 홍상수와 작품을 함께했다.] 아무래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다져진 배우의 힘일 듯. 보통 나오는 기존의 남자상에 비해 좀 더 점잖고 젠틀하게 나왔긴 했는데 홍상수 영화 분위기 상... 영화 북촌방향 후반부 리얼했던 취한 연기[* 참고로 이런 장면을 찍을 때 홍상수는 배우들에게 진짜 술을 먹인다. 술에만 한정이 아니라 자다깬 장면이있을 시 진짜로 배우들을 좀 재우기도 하고 심지어 배우가 몸이 좀 안좋다 하자 한의원 신을 넣어 치료와 촬영을 동시에 하는 감독(...)]나 우리선희에서 제자와 만나는 교수의 모습은 브라운관에서만 김상중을 봐온 일부 팬들에게 신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김상중의 팬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테지만 그는 [[정신지체]] 연기도 잘 어울리기도 했다. 1997년 [[신현준(배우)|신현준]], [[심혜진]]과 출연한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서 여인숙을 소유한 정신지체 형 '기태'역할을 소화하여 그 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아쉽게도 [[넘버 3]]에 출연한 [[송강호]]가 수상하긴 했지만 만약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수상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 [[취미]]는 온로드 바이크 운전인데,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바이크 마니아로 통한다. 젊은 시절엔 레플리카 바이크를 다수 [[소유]]했을 만큼 푹 빠졌고, [[현재]]는 방송 활동 등의 이유 덕에 자주 타지는 못하지만 꽤나 즐긴다고 한다. 실제로도 [[영화]] [[투사부일체]]에서도 [[스턴트맨]]도 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바이크]]를 몰며 촬영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2014년 중순부터 [[XTM]]에서 론칭한 바이크 관련 프로그램인 [[슈퍼바이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어쩌다 어른]]에서 밝힌 일화로, 바이크를 타던 도중 불량 고교생으로 보이는 무리를 만나서 헬멧도 안쓰고 위험하다며 훈계했는데, 하필 그 때 조작 실수로 바이크의 시동을 꺼트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 [[최민수]]가 인정한 착한 남자. [[무릎팍도사]]에 김상중의 [[친구]]이기도 한 [[조재현]]이 출연했을 때 [[최민수]]와 만났던 이야기를 했는데 김상중이 착하다는 언급이 나왔다(?). 최민수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최민수가 "재현아, 상중이 아냐? 저번에 상중이 만났는데 상중이가 착하더라"라고 해서 조재현이 "네 형, 상중이 착해요."라고 했는데 최민수가 계속 '상중이 착해'라는 언급을 반복해서 짜증났다고 한다. '이 형 왜 자꾸 내앞에서 상중이 얘기만 하시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SNL 코리아]]에 추석특집의 호스트로 출연했다. 바로 위에 기재된 힐링캠프에서도 여태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줬고 이번에도 그 모습은 건재했다. 오프닝에서 등장할 때 노래를 부르고 더 소름끼치는 노래를 준비했다는 말에 유세윤이 오구탁으로 등장해서 흉내를 냈지만 김상중에게 리얼 오구탁 연기를 듣고 긴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쁜 녀석들에서는 신동엽과 동성연기를 했으며, 디지털 쇼트 '시간암살자'에서는 미래에서 온 김상중([[정성호]])때문에 [[SK-ll|S'''J'''-ll]] CF에서는 "놓치지 않을거에요"가 아닌 "놓치지 않을겁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을거라 생각했겠지만 정성호가 CF에서 쓸데없이 무게를 잡아서 하던 CF도 다 끊겨서 굶어죽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도전한 [[주간 아이돌|월간 아이돌]]에서는 [[세븐틴(아이돌)|세븐틴]]의 막내인 상'''쭝'''으로 나와선 아이돌 분장까지 하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망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글로벌 위캔드에서는 심층취재의 특파원으로 출연해서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등 다국어를 보이는 등 여러 장면을 연출했다.
* 홍아모개 역을 맡았던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OST를 불렀다. 제목은 익화리의 봄. 작곡은 본 드라마의 대다수 곡의 작곡을 맡았던 안예은이 했다. 중후한 목소리에 큰 기교없이 담백하게 부르는데 노래실력이 상당하다. 향주목에서 왕의 군사들과 대치했을 때 백성들이 떼창한 곡이기도 하다.
- 박석민 . . . . 11회 일치
프로 첫 홈런은 2004년 5월 20일 대 KIA전에서 [[고우석]]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간간히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뜬금타를 터트리면서 타격 면에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덕분에 [[200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기도 했다. 2005년 4월 29일에는 1군에 복귀하자마자 선발 출장하여 당시 기아의 마무리였던 [[신용운]]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 참고로 신용운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30일에도 심정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음으로써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자세한 사항은 [[신용운]] 항목 참조.]
잔부상으로 시즌 초반 2군에 갔다 오기도 하였지만, 그리도 2008년 이후 다시 규정타석에 들어서면서 데뷔 이후 첫번째로 타율 3할(0.305) 및, '''출루율 0.440'''(2위)을 기록하였다. 한때 출루율 부문 1위를 호시탐탐 노리며 [[이대호]]의 7관왕을 위협하기도. 다만 손가락 부상 때문에 작년에 비해 15개로 줄어든 홈런이 약간 아쉬운 편이지만 그래도 3번과 5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 주었다.
2010년 8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 2사 상황에서 [[강봉규]]가 안타를 기록할 때 2루 주자로 나가 있었는데,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려오면서 막판에 [[포수]] [[신경현]]의 태그를 피하다가 신경현과 홈 대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심판은 결국 박석민을 바로 아웃시켜 버린다.(...)[[http://yoonseokmin.tistory.com/650|관련 포스트]]
6월 22일 자신의 생일에 '''5타수 5안타 6타점 4득점 2홈런(투런 쓰리런)'''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거두며 팀의 5:19 승리를 견인했다. ~~혼자 다해먹는 브콜돼~~ 두 홈런이 1, 2회에 터트려 승기를 확 기울여놓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석민의 역할이 매우 컸고 덕분에 경기 MVP에 선정되었다. 인터뷰에서 비가 와서 우천중단이 됐을 때는~~박첨지~~ 긴장했다고 말하기도. [* 이날 타 구장 경기는 '''모두 취소'''되고 대구에서도 두 번 중단되었다.]
2011 시즌 후 왼쪽 중지 두번째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더라도 상태가 호전될지 미지수였으나 상당히 호전되었다. 본인 말로는 '''이제 중지손가락을 구부릴 수 있을 정도'''[* 수술 전에는 중지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질 못했다. 평소에도 손가락에 붓기가 있는데, 경기 후에 붓기가 심해져 중지 두번째 마디가 보통 때의 두 배까지 붓기도 했다.]라고 한다. 손가락이 나으며 타격감도 상당히 좋아졌다.
[[최형우]]가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4월 한달동안 0.344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을 날리며 [[이승엽]]과 함께 삼성의 중심타선을 지탱했다. 1번 [[배영섭]]과 4번 [[최형우]]가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류중일]] 감독은 9번 김상수를 1번으로, 5번에서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던 박석민을 2번으로 전진배치한다. 박석민은 2번 타순에서도 맹타를 휘둘렀지만 박한이가 부상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직이라고 한다. 박석민 본인도 5번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최형우의 슬럼프가 길어지자 최형우가 5번으로 내려가고 박석민이 4번을 치게 되었다. 결국 최형우가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는 이승엽이 4번으로 가고 박석민은 3번을 치게 되었다. 최형우가 1군으로 복귀한 이후는 최형우를 이승엽 뒤에 세우지 않겠다는 류중일 감독의 뜻에 따라 박석민 - 이승엽 - [[강봉규]] - 최형우 또는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의 타순을 따라 3번 또는 5번 타자로 나서다가... 최종적으로는 4번으로 고정되면서 삼성의 중심 타선은 '''3번 이승엽 - 4번 박석민 - 5번 최형우'''가 되었다.
자칭 야구[[천재]]. 6살 때부터 동네 야구부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으며 자신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야구를 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준혁]]''' 앞에서 하고 있으니 역시 허콜돼. 하지만 천재인 것은 사실인 듯. [[이범호]]와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인데 대구고 감독이 이범호가 노력형이라면 박석민은 천재형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4년 선후배라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없다.] 2009년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송된 45년간 야구를 본 할아버지에게 PD가 2회 WBC 때 맹활약하던 이범호 고교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 이범호도 잘 했지만 질문과 상관없는 박석민은 진짜 천재라고 수 차례 말했을 정도. 덕분에 허세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은데 고졸 신인이던 2004년에 1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김응용]] 감독에게 코치도 거치지 않고 [[오주원|오재영]]에게 강하다면서 내보내달라고 졸라서 펜스 직격 2루타(!)를 꽂은 적이 있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잠실구장을 욕하면서 넘어갔어야 선발고정이라면서 김응용 감독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697613&cpage=1&mbsW=&select=&opt=&keyword |#]]~~쳤으니 망정이지 못 쳤으면 원산폭격행~~
>그는 [[몸에 맞는 볼]]과 관련한 해프닝 직후 [[홈런]]을 친 일이 두 번이나 있다. [[2009년]] [[6월 2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한화 이글스|한화]]전 8회말 공격 때 한화 브래드 토머스가 던진 볼이 박석민의 오른쪽 발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그 순간 볼이 자신의 발등에 맞았다면서 1루에 출루했다. 그러나 실제 볼은 박석민에게 맞지 않았다. 실제 볼은 포수 옆 그라운드를 맞고 [[한화 이글스]] [[포수]] [[신경현]]의 목 부분으로 튀었다. 이에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였고 결국 볼 카운트에 볼 하나가 늘어난 것으로 정정했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토머스의 볼을 타격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2번째 일화는 [[2009년]] [[8월 1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KIA 타이거즈|KIA]]전 8회말 공격 때의 일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 [[곽정철]]이 박석민의 몸 쪽으로 볼을 던졌는데, 이 볼이 박석민의 팔꿈치 쪽으로 날아왔다. 박석민은 역시 볼이 자신의 팔꿈치 보호대 부분에 맞았다고 심판에게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 볼은 팔꿈치에 맞지 않고 포수 뒤로 빠져 나갔다.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석민은 곽정철의 볼을 통타,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점 홈런을 기록했다. 이 일화는 [[2009년]] [[12월 25일]] [[MBC 스포츠플러스]]가 방송한 《프로 야구 결산 특집 - 야구는 야구다》의 코미디 에피소드 부분에서 〈소탐대득 - 작은 것(몸에 맞는 볼)을 탐하다가 큰 것(홈런)을 얻게 됨〉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2017년 7월에는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살인 사건|밧줄 추락사]]'로 40대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1억원을 기부했다. 그외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야구 후배들을 위해 2억여원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18&aid=0003881512|기부하기도 했다.]]
- 박화요비 . . . . 11회 일치
화요비의 음악적인 강점을 고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음도 고음이지만 화요비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창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이제껏 내왔던 정규 앨범은 물론 미니 앨범까지 각 앨범마다 전부 창법과 음색이 다를 정도로 10년이 넘는 가수 생활에서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음악적 지향에 맞추어서, 앨범 컨셉에 맞추어서 팔색조 같은 목소리의 매력을 자랑하는 그녀. 화요비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올드 팬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이게 몇 년도에 불렀던 노래인지를(!) 짐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EP 앨범 '반쪽'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똑같이 부르면 곡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멀티 보이스 컬러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고, 5집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에 대해서 자신의 꿈은 '멀티 보이스 컬러'라고 밝힌 바 있다.
타 가수의 노래를 작사하기도 한다. 대표곡은 [[윤하]]의 '오늘 헤어졌어요' .
특별히 논란이라고 부풀려 말할 만큼 논란은 아니었지만, '디바 이미지'가 흔들릴 만큼의 행보는 '스타 화보'에서 다시 드러났다. 두 차례에 걸쳐 '스타 화보'를 찍어 디지털 판매를 한 이력이 있었는데, 노출도가 '스타 화보다워서'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전의 그녀는 라이브 무대든 어디서든 신체적인 노출이 거의 없었고,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화보 자체도 팬이든 아니든 본 사람은 입을 벌리게 될 만한 수위였기도 했고.
초기 창법은 머라이어 캐리와 매우 흡사했는데, 그녀의 데뷔 앨범인 1집 앨범 제목도 머라이어 캐리 5집 후속곡 제목인 <My All>을 그대로 가져왔다. 머라이어 캐리와 창법이 비슷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만큼 파워풀한 실력파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타이틀곡 Lie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이정봉]] 원곡의 <어떤가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한 3집 <Because I Love You> 활동은 '가창력 좋은 가수, 박화요비'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고 판매량 자체도 좋았다. 후속곡인 <끝이 보일 때쯤> 뿐만 아니라 수록곡 <사랑은>도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지는 등 다른 수록곡의 인기도 좋았다.
이후로는 4집 <Soul saver>의 타이틀곡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 이하 당키세 활동을 기점으로, 아래 항목에서 후술할 예능 활동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키세는 화요비의 앨범 타이틀곡 중에서도 1집의 <그런 일은>과 더불어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역시 지명도가 높다. 원곡은 일본 가수 코야나기 유키의 것인데, 원곡의 락 요소를 발라드적 요소로 편곡하고 가사도 일부 바꾼 리메이크곡. 이후 SBS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서 두 가수가 한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주로 음악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하였다. 공중파, 케이블, 지역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출연하였다. 당시에는 활동 시기에 긴 공백기가 거의 없어서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는 많이 출연한 가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4집 활동 도중, 추후 화요비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난 예능 프로그램은 [[KBS 2TV]]의 [[상상플러스]]로, 그 전에는 음악 방송에만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발언과 화제성의 파급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휘재를 비롯한 출연진들을 빵 터지게 한 '케이블 TV는 한 것을 자꾸 틀어준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비슷한 기믹을 이어 '비디오' 관련 소재를 SBS [[X맨을 찾아라]]에서 사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기믹의 유느님과의 콤비네이션이 유려하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팝을 잘 소화하는 가수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영어 발음도 수준급이고 팝 표현력과 완창 능력이 출중해 가끔은 본인 노래 라이브보다 팝을 더 잘 소화하기도. 어느 팝을 불러도 기본 중박은 한다.
- 상디 . . . . 11회 일치
요리사답게 [[밀짚모자 일당|밀짚모자 해적단]]의 식량 관리도 더불어 하고 있는데 [[고잉 메리호]] 시절에는 늘 [[몽키 D. 루피|어떤 바보 식충이]] 때문에 식량이 없어져서 종종 나미에게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사자고 조르기도 했으나 [[사우전드 써니 호]]로 바뀐 이후에는 [[프랑키]]가 직접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만들어 준 덕분에 식량 도난 문제는 없어졌다. ~~그리고 2년뒤, 루피는 패기를 배워왔다.~~
늘 검은 수트를 입고 있고 전투에서는 오로지 다리를 이용한 공격을 한다. 이는 전투에서 요리사의 도구인 손이나 식칼을 쓰지 않으려는 신념의 발로로, 은인이자 스승인 붉은 발 [[wiki:"제프(원피스)" 제프]]에게 배운 것이다. 다만 '[[매드매드 완제|라면 면발을 갑옷으로 입은 상대]]'처럼 상대방이 식재료로 간주되는 경우라면 드물게 식칼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완제가 입었던 라면 면발 갑옷 한정으로, 갑옷을 해체한 뒤에는 식칼을 집어넣고 완제 본인은 원래대로 발차기만으로 상대했다.
다만 이 때문에 '''적이라도 여자라면 절대 손을 못댄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치지 않고 제압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예쁘든 추하든 일단 여자라면 절대 발로 차지 못하고, 하다 못해 죽도록 공격당하면서도 반격을 못 한다. 여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디의 원칙인데, 이 원칙은 상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트리려 해도 절대 깨질 수가 없다.[* 이런 상디지만 [네펠타리 비비]의 적이었던 미스 올 선데이(니코 로빈)이 처음 등장하자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다!'''(13권 114화) 그 이후에 로빈 능력으로 갑판에 쓰러진 다음 "자세히 보니 예쁜 누님이잖아!"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비비가 당황해하고 있으니 앞뒤 안 재고 들이댄 것 같다. 애초에 상디는 위스키 피크 편 내내 자느라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총을 쏜건 아니니 설정파괴는 아니다. Cp9 칼리파에게도 위협정도는 했었다.] 거의 로봇의 기본 3원칙 수준으로 각인되어버린 수준. 이 때문에 나미로 분장한 [[봉쿠레]]와의 결투와 [[CP9]]의 여성 멤버인 [wiki:"칼리파(원피스)" 칼리파]와의 결투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칼리파의 경우는 신체능력만으로는 상디가 훨씬 위라서 거꾸로 제압당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상디가 제압만 했지 마무리는 안 했기 때문에 상디가 당한 것이다.[* 만약 상디가 칼리파를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1분도 안되서 '''"이겼다! 열쇠 확보 끝!"'''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빙판에서는 구슬의 시련 담당인 사토리를 여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여자를 패버리는 상디가 나와버렸다(...)] 이런 점을 반영했는지 GBA로 나온 원피스 일곱섬의 대보물이라는 게임에서는 상디가 여성형 적한테 접근하면 '''공격을 못하는 상태이상'''에 걸린다.[* 게임에 의외로 여성형 적이 많은 편이고, 애로사항이 피는 시점은 일행하고 따로 나눠져서 [[알비다]]를 상대해야하는데 같이오는 동료가 [[우솝]], [[wiki:"나미(원피스)" 나미]]라서 실질적으로 상디가 딜러로서 봉인된다.] 또 [[원피스 해적무쌍 시리즈]]에서는 여성 적을 때릴 수는 있는데 가하는 데미지가 1로 고정된다!(...) 키즈나 어택으로는 데미지가 들어가지만 정말 못할 짓인게 사실인 만큼, 상디를 골라서 여성 적이 나오는 스테이지를 하려고 하면 '''경고 메세지가 출력된다.'''
[[롤로노아 조로]]와는 상극인 성격이라서 둘이 놔두면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하는 게 다반사.[* 게다가 이 두 사람, 스릴러 바크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혼 레벨에서부터 궁합이 안 맞는다.''' 스릴러 바크에서 모리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빼앗겨 그 그림자를 영혼으로 삼은 좀비가 각각 만들어졌는데, 좀비에게 원래 그림자 주인의 기억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 조로 좀비와 상디 좀비는 협동이고 자시고 서로를 박살내려 들었다.] 조로에게 [[마리모]]라는 엄청나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사해줬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선인장]] 머리, 또는 [[잔디]] 머리라고 부른다. 가끔 [[미역]] 머리라고 부를때도 있다.(...)] 다만 조로는 상디에게 [[다트]]판 눈썹이라고…. 여하튼 서로 치고 박고 하는 콤비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마음이 맞는 멋진 콤비이기도 하다.[* 데비 백 파이트전에서도 그렇고, 에니에스 로비편 이후 배 문제로 루피와 갈등을 일으키고 이탈한 우솝을 확실한 사죄를 듣고 다시 동료로 맞아들여아 한다고 조로의 어필에 유일하게 동조한 것도 상디였다. 그리고 스릴러 바크편에서 루피를 없애려던 [[바솔로뮤 쿠마]] 앞에서 '''둘 모두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려고 했다!''']
[[나미(원피스)|나미]]나 [[니코 로빈]]과는 다르게 지식량이나 정보 수집 능력 면에선 떨어지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를 바꿔 버리는 전략안'''이 특출해 해적단 내에서 비공식적인 참모 역을 맡고 있다.[http://blog.naver.com/zt777/20175605172 일단 밀짚모자 멤버 중 조커 겸 히든카드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러나 해당 링크의 인터뷰 내용은 루머일 가능성이 있다. 상디가 조커 포지션인건 사실이지만 결말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활약이 있을거라고 보장할수는 없다는 것.] 루피와 조로와 함께 해적단의 주 전투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면서도 완력에 의존하는 [몽키 D 루피|이] [롤로노아 조로|둘]과는 달리[* 그런데 조로는 무조건 완력에 의존하는게 아니고 적어도 전투에 관한한 머리만큼은 밀짚모자 일당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더구나 루피 부재시 자신이 선장 루피를 대신하여 전략이나 작전을 지시하는 등 상디와는 다른 방향의 두뇌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루피야말로 순수하게 완력과 본능에 의존하는 스타일에 더 가깝다.] 일행의 식단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전황 자체를 유리하게 바꿔버리는 능력을 보여주는 등, 밀짚모자 해적단에서는 전술전략 양쪽을 모두 갖춘 유일한 멤버이다. 쉽게 말하자면 루피와 조로가 [[람보]]같은 케릭터라면 상디는 [[007]] 같은 스파이 스타일. 예를 들면 [[바로크 워크스]]의 꼬리를 잡거나, [[갓 에넬]]의 비행선을 망가뜨리거나, 정의의 문을 닫아 해류를 만들어 탈출을 쉽게 만들어 낸 장면들은 그의 임기응변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한 최고의 두뇌플레이. 말하자면 지략과 완력을 모두 겸비한 밀짚모자 해적단의 '''조커'''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우연의 일치로 '''[듀발|그 추상화 몽타주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엄하게 상디로 몰려서 해군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상디에게 원한을 갖고 가면을 쓰고 다니다가 결국 [[샤본디 제도]] 근처에서 마주치는 골 때리는 전개가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그는 분노한 상디의 안면성형킥을 맞고 핸섬해졌다.
* [[wiki:"카리브(원피스)" 카리브]] - 보물을 얻기 위해 조로, 루피와 함께 발라버린다.[* 그 이전에 카리브가 상디를 두려워 하는 것을 보면 굳이 단체로 싸우지 않아도 상디>카리브일 가능성이 높다.패기도 확실히 사용하는만큼]
* 애니판이 KBS에서 방영되었을 때에는 아이들 정서상 부적절하다는 태클 때문에 '''담배가 츄파츕스로 바뀌는 굴욕'''을 겪었다. 근데 케이블 심의가 강화되어서 극장판을 제외한 TVA판 한정으로 [[투니버스]]에서도 츄파츕스로 바뀌었다.[* 항상 오렌지맛 사탕인 듯? 1기 오프닝과 초반부의 장면에서는 딸기맛 사탕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사탕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계속 오렌지맛 사탕으로 고정. 그런데 의외로 사탕이 오리지널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 많은 듯하다. 원작을 보고서야 담배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상디가 무인도 표류 이후 항상 먹을 걸 가지고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탕을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도 있다(...)] KBS판에서는 주석에서도 달려있듯이 라이터에 지지는 장면 등에서 부싯돌 튕기는 소리가 그대로 나온 반면에 이후에 방영된 투니버스판에서는 음향쪽도 완벽히 수정하여 완벽하게 사탕으로 만들었다. 북미판의 경우 [4kids] 더빙판에서는 무자비한 편집으로 악명높은 4kids답게 KBS판과 같은 츄파츕스로 만들어버렸다. 다행이게도 이후에 [퍼니메이션]에서 재발매한 DVD판의 경우 무삭제로 나왔다. 대원판은 영상 수정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냥 모자이크 처리로 때운다. 때문에 상디의 입이나 손은 항상 모자이크로 나온다. 음향쪽에서는 라이터 소리가 나는등 옥의 티가 있었지만 최소한 사탕으로 수정을 하려고 했던 KBS만큼의 성의도 보여주지 않는 대원판 원피스의 무성의함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동강동강 열매]도 변역기돌려서 뿔뿔이 열매로 만든 놈들이니까~~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토리코와의 콜라보편에서는 화면을 수정하여 '''아예 삭제됐다.''' 덕분에 손가락 모양은 담배를 쥐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지만 정작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끼워져있지 않다.
* 공식 가족 포지션은 차남이지만 하는 행동이 '''엄마같다'''는 평이 많다. 일단 동료들의 모든 식사를 책임져주고 있으며 평소에는 [[츳코미]]를 걸거나 잔소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만 상냥하게 챙겨주는 면도 있기 때문. 팬들에게는 가끔 お母サンジ[* 어머니라는 뜻의 お母さん과 상디의 이름인 サンジ를 합친 말장난]라고 불리기도 한다.
* 신세계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아직 제대로 된 대결 플래그가 서지 않았다.[* 이는 나미와 쵸파도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대결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처를 입는 등 스토리가 활약하기 어렵게 흘러간다.
- 신민아 . . . . 11회 일치
본명은 양민아. 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10월 패션잡지[* 9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각종 패션잡지가 창간되고 '패션잡지 전성시대'였고, 10대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달별로 패션잡지를 사서 학교에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배두나]], [[김민희]], [[김효진]] 등 잡지 모델들의 인기도 상당했으며, cf모델등을 거쳐 연예계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잡지 부록 경쟁도 한창 치열하여 다이어리, 화장품, 가방등 다양한 부록이 선보였다.] '키키'(현재는 폐간)의 전속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의례 들어가기 마련인, '친구'가 '장난삼아' 써준 응모원서를 냈고, 대회에서 춤도 추고 표정연기도 하는 끼많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숫기없이 꾸벅 이름만 간신히 말하고 들어갔는데도(심사위원들이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건지) 대상으로 뽑혔다. 워낙 나이가 어려(당시 15세) 대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포트 리플레이를 시작으로 예스비, dop, tea, 017등 각종 화보와 지면광고를 찍는 등, 김효진, 김민희와 더불어 대표적인 틴에이져 잡지모델로 활발히 활동했다. 키키 전속이 끝난 뒤에는 당시 유행했던 거의 모든 잡지(쎄씨, 신디더퍼키, 유행통신, 피가로 등)에 인기있는 모델로 얼굴을 도배했고, 촉촉한 초코칩, 네스카페, 코오롱 샴푸, 위스퍼, 매직 스테이션 등 tv광고도 수없이 많이 찍을 정도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대중에게는 [[이승환]]의 '당부' 뮤직비디오.[* 이 '당부' 뮤직비디오는 1999년에는 [[엠넷]]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영상음악대상]]에서 당시의 대세였던 [[아이돌]]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쳐버리고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다.] 로 "저 처자는 누구냐"는 반응을 끌어내며 얼굴을 널리 알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순위를 알려주는 VJ로 출연하는 등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하게 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19/story_n_8328676.html|출처]] 약 7년간 10억원 가량의 기부를 해왔고 그 기부 소식이 기사를 타자마자 부산 지역의 미혼모들을 위해 기부한 사실 또한 단체의 대표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이 아닌 부산지역에 기부를 한 이유는 부산 지역이 다소 소외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페북에 올린 한 번의 절박한 글에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신민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대표 또한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고 밝혔다.
* 2009년, 지금은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유명해진 [[제이미 도넌]]과 함께 [[캘빈 클라인]]화보를 찍은 적 있다. [[http://205.oeker.net/bbs/board.php?bo_table=Hollywood&wr_id=4550826&sca=%EC%82%AC%EC%A7%84&sfl=wr_3&stx=&sop=and&page=3|#]] 촬영 당시, 사고로 조명이 넘어져서 신민아의 머리와 어깨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지만, 툴툴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며 주위를 배려하는 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https://youtu.be/1uapjf3vvOA?t=18m21s|#]]
* 2015년 10월 15일 약 7년째 꾸준히 기부를 해온 사실이 기사로 나왔다. 새터민들을 돕는 단체 및 사랑의 열매를 통한 매달 200만원, 연말에는 5천만원에서 1억정도의 액수를 기부해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싱글맘들을 위해 분유를 기부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기도 하는 등 그동안 기부한 액수가 약 10억 원 정도라고 한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78574|관련 기사]] 특히 새터민들을 돕는 행사는 몇 년전 공개 행사를 할때 참석하였는데 드라마 작가인 노희경씨와 함께 하기도 하였다. 불교 단체를 통해 기부한 적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신민아는 개신교 신자. 이따금 절에서 목격담이 있기도 하고,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가 봉은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타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 --드라마 고사장에서 절을 하지는 않는 정도--
* 신민아의 연관 검색어 중 가장 꾸준한 것은 네일과 피어싱. 손톱 관리를 상당히 깔끔하게 잘하는 편으로 별다른 장식이나 패턴 같은 것 없이 단색으로 깔끔하게 바르는 편인데, 그날 입은 옷과 컬러를 잘 맞추는 편이라 인기가 꽤 높다. 피어싱도 다른 여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처럼 신민아존이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안 아플까--
*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인터뷰에 최근 읽은 책이나 재미있게 본 책들을 말하기도 한다. 팬들 중 관심이 생긴다면 인터뷰를 잘 찾아볼 것. 음악도 상당히 좋아해서 수집량도 꽤 된다고. 제 3세계로 분류되는 음악이나 샹송을 좋아해서 해외로 나갈때마다 사서 모으는 편이고 같은 앨범을 여러번 산 경험도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도 있다.
때려를 제외한 이후의 두 개의 드라마가 기대치에 비해 신민아를 제외한 작품 내적인 결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방송사 및 언론의 푸쉬를 제대로 받았고 아주 망작들은 아니었기에 어찌보면 둘 중 하나는 뜰 법도 한데 망했다. 강한 푸쉬를 받은 두 작품을 둘다 말아먹기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임에 신민아가 아주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 조응천 . . . . 11회 일치
|| '''지역구''' ||<(> [[경기도|경기]] [[남양주시 갑]]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며 전직 자영업자. 그리고 '''[[문재인]]의 남자 2호'''[* 남자 1호는 [[김병기(정치인)|김병기]] 의원이라고 한다. 김병기 의원의 경우 자신이 친문 인사임을 스스럼 없이 인정하고 있지만 조응천 의원은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 출연해 ~~물론 말로만~~ "나는 친문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문재인]] 대통령은 당대표 사퇴 후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병기와 조응천 두 사람을 본인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으며, [[박근혜정부]]에서 핍박 받은 두 후보를 반드시 당선시켜 달라고 직접 트위터에서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 다 지역구에서 당선되었으며, 훗날 요긴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김병기(정치인)|우병기]] [[조응천|좌응천]]~~ ~~최초의 셔터맨 출신 국회의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경기도]] [[남양주시]] 갑 지역이다.
요약하자면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실용정부|이명박 정부]], [[박근혜정부]]까지 4개의 정권에서 요직을 맡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4개의 정권은 이념과 성향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본인이 선거 홍보물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히 중용될 정도로 능력과 도덕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해임된 후, [[양복]]을 입고 근무하는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억울한 해임과 기소에 홧병이 나서 본인과 부인 모두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 가슴이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남양주시]]까지 자주 다녔다"고, 출마한 후에 고백하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가 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응천을 국기문란사범으로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종편에 의한 후속보도까지 이어졌을 땐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인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나와서는 그때 썰을 푸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xWq4Bmffjg|정청래 : 근데 본인은 지금 행복하잖아 / 조응천 : 땡큐.]]라고 큐트하게 받아쳐 주신다. ~~막 특검 왔다갔다 거리고~~ 정청래는 옆에서 "진짜 큰일 날 뻔했어~엉, 안 짤렸음 어떡할 뻔했어~엉", 김어준은 "그렇겠지, 청문회 나가서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거 하고 계셨겠죠."라면서 깐족깐족대는데...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다.] ~~[[자덕|자전거 덕후]] 입장에서는 주말 소풍 수준인데...~~ 다시는 공직이나 법조인 생활을 하기 싫은 생각에 [[마포구]]에 '''[[http://dmaps.kr/23r6b|별주부짱]]'''이라는 해물 요리 전문점을 개업하였다.
본인 말로는 식당의 매니저, 셔터맨을 도맡았다고 한다. 실제 총선 후보 시절 직업란에 '''별주부짱 매니저'''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에 [[기독교방송|CBS]] 변상욱 기자가 김용민의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http://www.podbbang.com/ch/9954?e=21859559|조응천 씨가 횟집 이름]]을 '''[[정윤회|정윤횟집]]'''으로 지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주위에서 '''"그러다 너 죽는다"'''라고 뜯어말렸다 전해진다--
이때 자리에 함께 있던 부인은, 조응천 의원이 자주 입고 다니는, 땡처리로 구입한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몇 천 원짜리 회색 후리스 스웨터를 '남편을 잘 부탁한다는 뜻의 징표'라며 [[문재인]] 대표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는 그 후리스를 자주 입고 다니며 커플룩을 인증하기도.[* 해당 후리스는 [[문재인]], 조응천 지지자들에게 있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심지어 같은 후리스를 사서 단체로 입고 별주부짱을 방문하여 인증샷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 참고로 부인은 남편이 정계 입문한다고 하자 "미친놈", "이혼하자" 등 격한 언사를 퍼부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표의 눈빛에 감전되더니, "쓸 만한 놈이니 잘 써달라"고 하면서 정계입문을 허락했다고(...)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지를 받아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상대 후보인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는 [[남양주시]]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였던 데다가 지역구 관리를 상당히 갈고닦았던 반면, 조응천 후보는 [[남양주시]]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정치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최종 개표 결과 [[새누리당]] 심장수 후보를 249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꺾고 신승했다.[* 조응천이 [[수동면]]과 [[화도읍]]에서 심장수에 밀렸지만 젊은 층 인구가 많이사는 [[호평동]]과 [[평내동]]에서 심장수를 앞섰다.] 이는 경기도 내에서는 최소표차로 당선된 것이다. 또한 정권 심판론이 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선거 결과를 뒤집은 그 투표함은 주소지는 [[남양주시]]로 되어 있지만 타지에서 생활하는 관외 유권자들의 표를 모아놓은 사전 투표함이었다고 한다. 조응천 후보가 본인이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 [[새누리당]]의 심장수 후보는 [[설레발|자기가 이긴 줄 알고 미리 당선증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고(...). ~~[[안습]]~~[* 여담으로 심장수는 8년 전인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며 출구조사에서는 앞섰지만 개표 결과 당시 현역 의원인 최재성 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더욱이 심장수는 조응천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선배이기도 했기에 더욱 패배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include(틀:제20대 국회의원/경기도)]
- 트로피코 4/건물 . . . . 11회 일치
||돼지 우리와 먼지 구덩이, 그리고 집 사이의 차이가 모호해질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그 차이는 더 좁아지기만 할 뿐이죠. 서민 아파트는 저 세 개의 생활상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보통 또 그렇기도 합니다.
||"저 구두들 좀 봐! 어머머 이쁘기도 하지! 죄송해요. 예쁜 구두들에 그만 정신이 팔려버렸네요. 어머 저 구두 반짝이는것 좀 봐! 내가 살 거야. 내가 먼저 찜 했다고, 이 뚱땡이 아줌마야!"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 관세 횡령: 이 운영 계획에서는 세관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됩니다. 화물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서류상에서도 말끔히 사라지기도 하고, 파파야가 금덩어리로 변했다가 또 금덩어리가 파파야로 변하기도 합니다. 수출품 하나당 스위스 은행 계좌에 2%가 입금됩니다. 세관원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최저 임금을 $25 이상으로 맞춰둘 필요가 있겠군요.
* 정신과 병동: 스위스 은행 계좌에 $7,500 필요. 부유층과 현대 독재자들에 대한 생각을 뿌리부터 바꿔줍니다. 모든 방문객들의 존경심이 20 상승할 것입니다. 가끔, 환자들이 각하를 사랑하게 되는 부가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미식가들은 음식이라고 하기도 힘든 수상쩍은 음식보들보단 정성스레 준비된 식사를 선호합니다. 이 레스토랑에선 그야말로 맛의 향연이 펼쳐지지요.
||이 현대적인 운동 시설이 있다면 시민들은 비참하고 힘든 일상을 견뎌낼 수 있을 겁니다. 종합 경기장은 트로피코의 전설적인 축구팀인 '츄파카브라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고급 건물과 칙령을 사용하기 위해선 특정한 부처의 장관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장관들이 멍청하고 쪼다같고 덤벙댈수록 트로피코 뉴스 투데이 라디오 방송국이 좋아라 합니다.||
신문사는 인근 시민들의 자유도를 높여줍니다. 운영 계획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진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집에 살지 못하는 트로피코인들이 자체적으로 짓는 주거건물. 보기도 흉하고 주거비도 걷을 수 없고 문제만 양산하니 밀어버리고 제대로 된 집을 지어주자.
지진해일이 몰려오고 난 후 육지 어딘가에 박히는 유조선. 미관상 보기도 안 좋으니 치워버리자.
- 영주시 . . . . 10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시내에 있는 [[영주역]]에서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한다. [[철도청]] 시절에는 전국에 5개밖에 없었던 지방철도청이 자리잡기도 했다.(2013년 현재는 코레일 경북본부) 과거 철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노후되고 도심을 이리저리 관통하며 찢어놓는 철도가 도시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여론도 높아진 상태다.
북부로 [[소백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한 침식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남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 과거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극장 2개, 소극장 4개가 있었으나 90년대 말에 소극장 3개로 줄더니, 2018년 현재는 소극장 1개 밖에 안남아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예당 시네마'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데, 상가빌딩 2층을 쓰는지라 관이 1개밖에 없고 그 크기도 작다. ~~하지만 의자는 [[CGV]]에서 뜯어온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안동으로 이동하여 [[메가박스]]나 [[CGV]]를 이용한다. ~~심지어 문경시에도 메가박스가 있는데!~~
* 사람이 줄어든 탓인지 밤에 별로 할 게 없다. 늦은 저녁이 되면 시내의 상가들은 문을 다 닫아버리기 때문. --그래도 17시만 되도 가게 닫는 호주, 뉴질랜드 같은 곳보단 그나마 양반-- 심지어 PC방마저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어 분명 금요일 밤인데도 정말 사람들이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늦은 저녁의 영주 시내는 정말 조용하다. 그래도 육거리 경북전문대 근처가 나름 대학가라고 밤에는 정말 활발해진다. 기차역에서 죽 이어지는 나름 신도시(80, 90년대 건설한 지역이다)이고, 바로 앞에 현대아파트가 있어 인구가 많은 탓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가흥동 택지 개발이 되면서 거기도 사람들이 몰리는 추세. 하지만 학생들은 육거리 위주고 여행객이나 직장인인 경우엔 택지 쪽을 더 찾는 것으로 보인다.
[[동남방언]] 중에서도 안동, 봉화,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 방언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나마 평야가 많은 안동, 예천 등과 달리 산악에 걸터앉은 지형인지라 영주-봉화 사투리는 안동과도 미묘하게 다르다. 때문에 경상북도에서도 사투리가 조금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 지역에서는 사투리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가장 먼 부산보다 그나마 수도권과 가까운 영주의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강원도 남부지방과 충청북도 동부([[제천시]], [[단양군]]) 이들 지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있기 때문. [[부산]]을 비롯한 경남 해안가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하면서 어설프다고 놀리기도 한다. 가끔 수도권 사람들이 사투리 별로 안 쓴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은 영주 사투리의 예문이다.
* 작은 지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플라모델]] 매니아가 많았다. 영주시 거주 플라모델 동호인들 자체적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잡지 [[취미가]]의 정기적인 취재가 있기도 했다. ~~한국의 [[시즈오카]]~~ 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든 지금은 [[플래툰]]을 갖다 놓는 서점도 없다.
* [[PC방]] 가격이 비싼 편이다. 대부분 1시간에 1,200원이고 5,000원에 4시간 30분, 10,000원에 9시간 30분이다. 과거 영주시에 사람이 많을 때는 PC방이 상당히 많이 있었으며 1,000원 미만의 피씨방 또한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많은 PC방이 문을 닫게 되었고, 남은 PC방들 중 일부는 24시간 운영을 위해 가격을 평균보다 비싸게 받게 된다. 일례로 꽃동산 회전교차로쪽 PC방을 가보면 가격이 저렴한 대신 새벽시간 때가 되면 문을 닫으며 1,200원 이상을 받는 곳은 24시간 영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풍기에는 더 싼 곳이 있지만 가는데 교통비가 더 든다는 게 함정~~ ~~그런데 풍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동양대, 경북항공고 주변 PC방은 회원가입해도 5천원 5시간이다~~ 여담으로 시내의 PC방 2곳은 업주가 부부라 가보면 모니터도 똑같고 의자, 탁자, 본체 등도 같다고 한다.
* [[흑역사]]로 남은 [[폐건물]]이 있는데 2008년에 부분개장한 판타시온 리조트이다. 나머지 시설을 다 건설하기도 전에 부도가 났으며, 2011년 다시 개방됐을 찰나에 얼마 못가 또 다시 문 닫히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도 방치된 상태다.
- 이연희(배우) . . . . 10회 일치
사실 여러가지 의미로 얼굴을 가장 널리 알리게 된 [[에덴의 동쪽(2008)|에덴의 동쪽]]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막장 대본이라서 연기가 어설퍼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정말 좋은 실력을 갖춘 연기자는 그러한 대본이라도 연기는 제대로 잘한다. 실제로 [[아내의 유혹]]같은 경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막장 스토리였는데도 연기자들의 혼신어린 연기로 '명품 막드'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본 때문에 연기를 못했다는 이야기는, 연기력 면에서 그 역할의 폭이 좁고 극을 이끌어나갈만한 주연급 연기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http://cfile2.uf.tistory.com/media/117BAA3E4FC09D251AD69A|전설이 된 그녀의 영어발음(플짤주의)]][[https://www.youtube.com/watch?v=ITLo7_pGcoI|#]]
게다가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평균 이상의 대본 퀄리티를 가졌다고 인정받은 드라마 [[유령(드라마)|유령]]에서 1, 2회 때는 연기가 그럭저럭 나아졌다는 평을 들었으나 그 이후에는 별로 좋지 못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좋지 않은 반응 때문에 드라마 후반부에는 애초 기획된 분량보다 비중이 현저히 줄어드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시기에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221609221110|"악플은 한귀로 듣고 흘린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많이 까였다.
물론 인신공격이나 모독성 발언들은 문제가 되고도 남겠지만, 연기력에 대해 지적(비판)하고 충고하는 글들마저 모두 악플로 치부하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는 늬앙스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해서 까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너는 내 운명(드라마)|발연기로 경쟁하던]](...) [[박재정]]이 [[https://www.google.co.kr/amp/news.kbs.co.kr/amp/view.do%3Fncd%3D2919210|"하하, 발연기라니요? 그런 말은 오히려 발한테 너무 미안하죠."]]라며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모습과 대비되며 더 까였다. 더구나 박재정은 그 당시 OCN [[신의 퀴즈]]에 출연해 해당 회차에서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해서 그와 비교해서 발전할 기미가 안 보인다고 또 까였다.
무게감이 필요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아직도 불안한 발음, 발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 에덴의 동쪽에서나 유령에서나 발성과 발음에서 전혀 나아진 게 없어서 본인도 연기 연습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언급되었던 '악플은 무시한다'는 태도가, 악플뿐 아닌 비판조차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여지가 많은데다가, 줄곧 발연기로 혹평을 듣던 다른 배우들인 [[황정음]], [[박재정]] 등이 점점 연기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심지어 노력조차 안 한다는 이미지가 박혀버리게 되었다. 아예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는데 이연희보다 어리고 연기도 더 잘하는 후배들[* 심지어 연기에 도전하는 아이돌 멤버들까지.]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김태희]]로 대표되는 '''미모만 되고 연기력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던 선배들마저도 연기력 향상에 투자하게 되면서 배우로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여담으로 이 당시에 [[구가의 서]]에서 보여준 이연희의 연기가 같은 시간대에 SBS에서 방송되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김태희보단 낫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팬들은 MBC가 자사 드라마 홍보를 위해 언플을 하는 것뿐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2017년 10월 JTBC 금토드라마 [[더 패키지]]에서 여주인공 윤소소 역으로 [[정용화]]와 짝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만난 세계(드라마)|다시 만난 세계]]보다 발전했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프랑스어 연기도 자연스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덴의 동쪽에서 이상한 영어 발음이 마치 어색한 프랑스어 같다고 욕을 먹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하자면, 정말로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윤아 급의 외모와 노래 실력을 더 갈고 닦는다면 태연 급의 능력을 갖춘 인재로 전후후무한 [[대한민국 아이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원히 남았을지도 모르고, 명반도 여러 장을 남겼을지도 모를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일각에서는 큰 키와 외모를 살려서 [[모델]]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까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앞서 서술한대로 괜찮은 노래 실력을 더 늘리고 춤을 제대로 잘 소화하도록 연습해서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로 데뷔했다면 분명히 자타가 공인하는 에이스이자 센터 자리를 맡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 키가 크고 마른 체구 때문에 [[운동치]]일 것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운동 신경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학교 동창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어지간한 남자아이들보다 [[축구]]를 잘 했다고 하며, 고1 때는 반에서 체육부장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 이지은(2000) . . . . 10회 일치
충청북도 충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수댄스 스튜디오에서 랩와 춤을 연습하며 꿈을 키워온 듯하다. 수댄스 대표의 상당한 애제자인 듯하며, 대표 인스타에는 이지은에 대한 애정어린 포스트가 상당하다. 현재 남아 있는 상당수의 자료들이 수댄스에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예지(피에스타)]]의 곡인 미친개 커버([[https://www.youtube.com/watch?v=o95OUDg2sOw|유튜브]])를 올리기도 했다.
고등래퍼 지역예선에 강동지역으로 참여하였다. 예선영상은 클립으로 선공개되기도 했다. 방송에서는 한림예고 송한희와 여성래퍼 대결구도로 연출되었고, 각자의 외모나 실력, 그리고 닮은 꼴[* 송한희는 수지 닮은꼴에 비타 500 광고도 따라했고, 이지은은 안소희 닮은 꼴로 나온다.]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송한희는 고등래퍼 티저의 참가자이자, SNS에서 이미 유명세가 있던 참가자로, 여성 최강자 기믹이 있었다. 그에 반해 이지은은 철저히 신예에 언더독 이미지로 그려져, 대부분 송한희를 띄워주기위한 연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경연에서 송한희가 아쉽게 연속된 가사 실수를 하게되고 이지은은 훌륭하게 경연무대를 펼쳐, 멘토들의 찬사를 받아 194점으로 최종 5위로 다음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서울강동에 스타성이 있는 참가자들이 유독 많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빼어난 외모덕도 있겠지만... 찰진 리액션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방재민, 박어진과 최종지역대표 선발전을 가지게 된다. 이때 조니와 함께 강동지역 최약체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경연준비부터 회의를 선도하며 빠른 진행을 추구했다...
전체순위 83위, 여자연습생 37위로 2차 순위발표에서 생존했다! 여자 연습생 중 자그마치 40위(77위 -> 37위)가 올라버리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분량도 10초 정도 나왔다. 마지막엔 시청자들에게 9ood 9irl 멤버들이 큰절을 하기도...
이후 음원미션 준비 장면에 몇 컷 잡히기도 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좋았고, 더 이상 못 본다는게 아쉽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김소희(1995)|김소희]]의 음감회에 소속사 언니 응원하러 왔다가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 전인범 . . . . 10회 일치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09년 11월 [[2성 장군|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재임하면서 그는 전역하는 병사들을 위해 전역식을 열어주고 직접 참석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밖에 없다”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해주었고,<ref>[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08 [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태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시사위크》, 2017년 8월 14일</ref>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슬리퍼의 열악함을 토로하며 보급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사령관 앞에서 슬리퍼를 물고 있기도 하는 등 장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9641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끝없는 미담 “능력과 인품 두루 갖춘 진짜 장군”], 《서울신문》, 2017년 2월 7일</ref>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태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en:Legion of Merit|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72160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상],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ref>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영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2011년 11월 18일 [[:en: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en:Spider-Man in film|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en:Spider-Man (2002 film)|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en:Uncle_Ben#.22With_great_power_comes_great_responsibility.22|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en:Spider-Man 2|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VrILCHQl1M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ref>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5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와 [[:en:United States Army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 미 통합특전사령관 [[:en:Joseph Votel|조셉 보텔]] [[:en:General (United States)|대장]]과 미 육군 특전사령관 찰스 클리브렌드 [[:en:Lieutenant general (United States)|중장]]을 만나 한·미 연합 특수작전에 대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저격용 소총과 미군 주력 소총인 [[:en:M4 carbine|M4]], 권총, 산탄총, 박격포, 방탄복 등을 점검하고 체험하는 등 미군 특전사의 장비와 무기를 현장 견학하고 실제 사격도 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3010008491 미군 주력 소총 M4 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3일</ref> 이와 함께 방미 기간 동안 [[시애틀]]에 있는 6·25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ZIB7y0ZvFJs 한미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시애틀 방문 6·25 참전용사비 헌화식], 《KOAM-TV》, 2015년 4월 10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8년 6월 예비역 신분인 그의 주도로 국회의원회관에서 특수작전 전술 및 장비 현대화를 위한 세미나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간 국가 안보전략과 국방 관련 정책 토론회는 많았으나, 일선 전투원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술 및 장비 관련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개최된 적은 없었기에 눈길을 끌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4045225 창끝 전투원들을 위한 '제1회 특수작전 세미나' 큰 호응], 《파이낸셜뉴스》, 2018년 6월 24일</ref> 세미나에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효율적인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육군의 특전사를 비롯해 수색·특공부대, 해군 및 해병대, 공군의 지상작전 부대의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해외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면서 “실전에 맞지 않는 전술 및 장비소요(구매 요청 및 구매)는 과감하게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중장은 세미나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형식과 틀을 깬 어법과 행동으로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해당 세미나는 특수·지상작전연구회, 군사전문지 플래툰 등 민간이 주도한 최초의 개방형 군사 세미나로, 세미나 준비를 해온 특수·지상작전연구회 소속 정진만 아세아항공전문학교 교수는 “당초 100명 미만의 규모로 세미나를 준비했는데 150여 명 이상이 참석했고 상당수 인원이 참석을 원했는데 장소가 비좁아서 받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같은 달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에 임명, 9월에는 그를 단장으로 하는 자유총연맹 대표단이 [[:en:West Potomac Park|웨스트 포토맥 공원]] 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들어 설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 추모벽 건립에 1만 달러를 기증했다.<ref>[http://dckoreannews.com/featured/%ED%95%9C%EA%B5%AD%EC%9E%90%EC%9C%A0%EC%B4%9D%EC%97%B0%EB%A7%B9-%EB%AF%B8%EA%B5%AD-%EC%9B%8C%EC%8B%B1%ED%84%B4%EC%97%90%EC%84%9C-%EB%8F%99%ED%8F%AC%EA%B0%84%EB%8B%B4%ED%9A%8C-%EA%B0%9C%EC%B5%9C/ [한국자유총연맹] 미국 워싱턴에서 동포간담회 개최], 《워싱턴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2일</ref><ref>[http://www.worldkorean.net/news/articleView.html?idxno=32597 한국자유총연맹,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지원금 1만 달러 기탁], 《월드코리안뉴스》, 2018년 9월 13일</ref> 그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추모의 벽이 설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차원에서 1만 달러를 즉석에서 마련, 기탁하게 됐다”면서 “한국자유총연맹은 특정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 중립을 지키면서 국가에 이익이 되고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국리민복을 기본 가치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ref>[http://www.koreatimes.com/article/1202198 한국전 참전 ‘추모의 벽 건립’ 1만달러 기증], 《미주한국일보》, 2018년 9월 11일</ref>
{{인용문|(육사 37기생인) 박지만 씨에 대해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고 했다. (중략)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하도 36기 선배들에게 들볶이다 보니 38기 후배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어 동기들 사이에선 38기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동기생 중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잔인범’ 소리를 들어 가며 후배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면 선배 노릇도 못할 뻔했다”고 했다.|오동룡. 2013. “朴志晩 同期 陸士 37期生들.” 『月刊朝鮮』 2013년 12월호, 98-115.}}
- 태종무열왕 . . . . 10회 일치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3년]]~[[661년]] [[음력 6월]])은 [[신라]](新羅)의 제29대 [[임금]](<small>재위:</small> [[654년]]~[[661년]])이다. '''무열왕'''(武烈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은 [[김 (성씨)|김]](金)이고, [[휘]]는 춘추(春秋)이다. [[진골]](眞骨) 출신으로 [[이찬 (신라 관직)|이찬]](伊飡)에 이르기도 했던 [[김용춘]](金龍春)과 진평왕의 차녀 [[천명공주]](天明公主)의 아들이다.
무열왕 7년([[660년]]) 3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인 당은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 소정방과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 등이 인솔한 수륙 13만 군사를 파병하였다. 원병을 요청하러 보낸 김인문은 소정방이 이끄는 신구도행군의 부대총관(副大摠管) 자격으로 귀국하였고, 무열왕에게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이라는 지위가 더해졌다.<ref name="신라-660"/> 무열왕은 바다를 건너온 당군을 영접하기 위해 [[5월 26일]], 대장군 [[김유신]]과 [[김진주 (신라)|김진주]](金眞珠){{.cw}}김천존(金天存) 등과 함께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하여 [[6월 18일]]에 남천정(南川停)<ref group="주">신라 10정(十停) 중 하나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에 있던 부대</ref>에 이르렀고, 21일에 태자 김법민을 보내 병선(兵船) 1백 척을 거느리고 [[덕적도|덕물도]](德物島)에서 소정방을 맞아, [[7월 10일]]에 백제의 [[사비성]](泗沘城) 앞에서 합류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당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할 5만 신라군의 지휘는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김흠춘]](金欽春) 등이 맡고, 왕은 금돌성(今突城)에서 머물렀다.<ref name="신라-660"/>
이미 의자왕이 항복한 뒤부터 백제 땅에서는 부흥군들이 일어나 신라 · 당군과 전쟁을 벌였으며, 고구려도 11월 1일에 [[칠중성]](七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을 공격해 와서 군주 필부(匹夫)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백제 부흥군에 대한 공세에 나선 무열왕은 10월 9일에 태자 법민과 함께 여러 군사들을 인솔해 이례성(尒禮城)을 쳐서 18일에 함락시키고 인접한 백제의 2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30일에는 사비성 남쪽 산마루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공격해 1,500명의 목을 베었다.<ref name="신라-660"/> 11월 5일에는 계탄(雞灘)을 건너 왕흥사잠성(王興寺岑城)을 공격해 7일에 함락시키고 7백 명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리고 22일에 서라벌로 귀환해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앞서 황산벌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좌평]](佐平) 충상(忠常) · 상영(常英)에게 [[일길찬]](一吉湌) 관등을 주어 총관(總管)직을 맡기는 등 포로로 잡거나 항복해온 백제의 관료들도 처벌하지 않고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다.<ref name="신라-660"/>
그러나 20세기 초, 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고 식민지배하에 놓이면서, 기존의 한국 역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태종 무열왕은 외세를 끌어들어 민족사적 강역을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을사늑약]]을 비판하여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기고하기도 했던 [[장지연]]은 김춘추가 당병을 이끌어 동족(백제와 고구려)을 친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 역사는 천여 년을 외국의 사상에 이끌려 다니며 자국의 위풍을 멸하고 타인의 위세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비판하였고 이것이 한국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 요인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ref>"新羅武烈王及金庾信이 能討滅麗濟고 統合邦土니 其 功烈이 可謂嵬矣나 驅唐兵而狀吾同族이 豈足謂能事哉아 因此而啓千餘年依賴外國之思想야 滅自國之威風고 增他人之勢力니 嗚乎라 此ㅣ 依賴之癮이 所以爲不能團合之第三病根也오." [[1906년]] 11월 25일자 《대한자강회월보》 제5호, 「團體然後民族可保」</ref>
[[남북국 시대]]론을 지지하였으며 《조선상고사감》을 저술하기도 했던 [[안재홍]]도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것은 [[평양]]이나 [[관북]] 일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북방 영토를 방기한 데다 당의 명령을 빌어 외세의 힘을 이용한 [[신라]]의 행동에서 후세 역사에 등장한 소위 '[[사대주의]]'의 대부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평하였다.<ref>"新羅가 唐을 聯하야 麗濟를 깨뜨리매 渤海가 北方에서 再興하야 비록 南北朝 200년의 歷史를 나타내엇스나 分裂의 形勢는 드듸어 나흘 수가 업섯고 朝鮮의 勢力은 더욱 減殺됨이 잇섯다. 金庚信이 太宗 武烈王을 도아 統三의 業을 이루엇다 하지마는 당시의 記錄은 平壤이 오히려 茂草를 悲嘆하엿고 關北의 地 太半 荒廢하엿슴을 전하엿다. 하물며 唐의 誥命을 빌고 그의 節度에 應하는 등 外力을 이용하는 後世 所謂 事大政策은 이때부터 大部이나 作俑된 觀이 만타." 1926년 7월 1일자 〈[[개벽 (잡지)|개벽]]〉 제71호 「한양조 5백년 총평(漢陽朝五百年總評)」</ref>
해방 후에도 이러한 인식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한국]] [[민속학]]의 원조이기도 한 [[손진태]]는 [[김유신]]이나 [[김춘추]]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동족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민족과 연맹하는 것은 민족적으로 최대의 죄악"이며, 신라가 당과 손잡은 것을 "귀족 국가의 비민족적 본질"이라 비난하였고,<ref>〈한국민족사개론〉, 1948년</ref>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편찬한 <한국역사>(1992)는 '통일'이라는 용어를 쓰면서도 그 통일의 '불완전함'과 '남북국 시대'라는 그 다음 시대의 성격을 강조했다.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남]]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남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남)|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식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9회 일치
각 국가의 장관진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각자 하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해당 특성은 여러가지 요소에 보너스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패널티를 주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내각진 중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을 제외한 8명을 자기 입맛대로 갈아치울 수 있지만, 민간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2%, 군사 분야 장관은 불만도가 1% 올라간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같이 역사적으로 네임밸류가 높은 장관의 경우 유니크한 특성이 달려있기도 하다. 또한 몇몇 장관의 경우에는 해당 자리의 특성이 아닌 다른 자리의 특성을 달고 나오기도 한다.
>순진한 낙천주의자는 능력있는 관리자이자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인 생각에 치우쳐 그를 노린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참모는 전직 군인으로, 참모진에서 전략을 강의하던 사람일수도 있다. 이제 그는 언제나 "취미"였던 외교 분야에 자리를 잡았다. 참모는 그의 낡은 군사적 정치 관점을 따르는, 군사력으로 이루어지는 외교에 특화된 인물이다. 그 때문에 참모는 단세포적이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지루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군사 사업가는 전직 군인으로, 대전쟁 당시 싸웠던 인물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전선의 병사들에게 총과 빵을 쥐어주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 생각은 그가 과학의 세세한 부분을 놓치기도 한다.
>자원산업 전문가는 보통 중공업 분야에서 일하던 민간인으로, 국가 산업을 관리하기 위해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있던 석탄 광산을 확장하고 성장시키던 대로 국가를 경영하려 노력한다. 그를 훌륭한 조직자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는 군수산업의 세세한 부분을 놓치기도 한다.
>산업 전문가는 적의 산업과 경제력의 원천을 연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가끔씩 적이 생산하는 물건을 분석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아내기도 한다.
- 경기도 . . . . 9회 일치
{{다른 뜻|[[경기도 (동음이의)]]}}
|이름 = 경기도
일제 강점기 경기도청
[[2017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경기도의 각 시와 인구와 면적은 다음과 같다. 인구는 12,783,741명이고 남여비율은 1.01로 전반적인 [[성비|남초]] 지역이다. 시군별로는 [[포천시]] (1.11)와 [[연천군]] (1.11)가 가장 높고, [[시흥시]] (1.10), [[화성시]] (1.07),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06), [[오산시]] (1.06), [[안산시]] (1.05), [[안성시]] (1.05), [[가평군]] (1.05), [[이천시]] (1.04), [[안성시]] (1.04), [[양주시]] (1.03), [[파주시]] (1.03), [[양평군]] (1.02), [[여주시]] (1.02), [[수원시]] (1.01), [[하남시]] (1.01), [[김포시]] (1.01), [[남양주시]] (1.00), [[부천시]] (1.00), [[의왕시]] (1.00), [[구리시]] (0.99), [[군포시]] (0.99), [[동두천시]] (0.99), [[안양시]] (0.99), [[용인시]] (0.99), [[광명시]] (0.98), [[성남시]] (0.98), [[고양시]] (0.97), [[의정부시]] (0.97), [[과천시]] (0.95) 순으로 높다.
경기도 행정구역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 廣州市 || 134,658 || 334,798 || 2.49 || 430.99
경기도 ! ! 京畿道 ! ! 5,067,741 ! ! 12,795,378 ! ! 2.52 ! ! 10,172.07
[[분류:경기도 출신|경기 출신 인물]][[분류:1896년 설치]]
- 고소영 . . . . 9회 일치
1993년 [[엄마의 바다]]에서 톡톡튀는 매력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1997년 '''영화 [[비트(한국 영화)|비트]]에서 여자주인공 '로미'역을 맡아 당대 남성들의 이상형이 되었으며''' 이 영화는 개봉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인 현재까지도 고소영의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다. 이런 과정 등을 거쳐 1990년대 최고의 여배우로 군림했으나 2000년대 들어 광고 모델로만 활약하고 그 외의 연기활동이 거의 없어 지명도가 떨어지던 중 2010년 5월 2일 [[장동건]]과 결혼,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장동건-고소영 결혼설이 뜨자 장동건은 알고 고소영은 몰랐던 장동건의 10대 팬들에게 [[듣보잡]] 취급 당하기도 했는데 이에 앞서 [[임창정]]과의 열애설이 있었으며 결국 1998년 MBC [[추억]]을 끝으로 드라마 출연이 한동안 뜸했었다.][* 오히려 중년층 이상에서 장동건에게 잘 어울리는 상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90년대에는 정말로 지금의 장동건에 전혀 꿀리지 않는, 인기의 정점에 있었기 때문. 어쩐지 결혼 후에 남편과 인기, 인지도가 역전 되어버린 [[쿠도 시즈카]]나 [[빅토리아 베컴]]이 연상되는 면도 있다.] 이 때문에 여자 [[연정훈]]이 되는가 싶었지만 고소영 역시 내로라하는 최고의 미녀스타였기 때문에 여자들의 주적 취급은 받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광고 모델이 주업인 배우'''로 손꼽힌다.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전도연이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데 반해 이쪽은 정말 발전이 없었다. 90년대 [[김희선]]처럼 연기폭이 좁은것도 아니고 그냥 연기를 못한다. [*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배우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도 두사람이 같이 거론되지만 배우로서는 엄연히 김희선이 위다. 김희선은 브라운관안에서의 존재감에 비해 연기력이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은 90년대에도 선하고 청순 발랄한 캐릭터를 맡기면 대박을 터트렸고 원톱 주연을 맡아 완판을 기록했으며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을 덜받었을 뿐 《세상 끝까지》나 《안녕 내사랑》같은 90년대 말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원숙함과 노력에 더해진 2010년대에는 진지한 역, 억척스러운 역, 우아한 역 다 해내면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연기 잘 하는 배우 반열에 올라섰다.]1990년대에는 워낙 잘나가서 그런 얘기가 드물었지만 2002년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의 흥행 참패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력 논란이 제기 됐으며, 이 논란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앞서 말한 2000년대 들어 활동이 없다시피한 것도 결국 그녀의 연기력이 문제로 작용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출연작 중 그나마 연기평이 좋았던 출연작은 [[강풀]]작가 웹툰 원작의 영화 [[아파트(영화)|아파트]] 정도.
2013년 2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KOSOYOUNG'을 런칭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신했다. 결혼 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고 디자이너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빅토리아 베컴]]을 연상케 하기도.
2017년 2월 KBS 드라마 [[완벽한 아내]]를 통해 10년만에 복귀했으며, 주인공 심재복 역을 맡았다. 첫 회 방영 후 크게 성장한 연기력으로 역대급 호평을 받는 중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 도중 점점 막장으로 치닫더니...결국 드라마는 망했어요...가 되고 말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은희 역의 [[조여정]]의 연기력이 크게 돋보이긴 했지만 고소영의 연기 역시 ~~의외로~~ 괜찮았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하여는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드라마의 인기는 저 멀리... 남편인 [[장동건]]이 간만에 복귀한 [[신사의 품격]]과는 정반대로 가버린셈. [* 신사의 품격 내에서 장동건은 연기도, 드라마 인기도 모두 잡았지만, 고소영은 완벽한 아내 내에서 연기력은 나름 인정받았을지라도 인기는 잡지 못했다.]
* 90년대 연기력이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스타로서의 쇼맨십이나 예능감 같은 기질도 그다지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요즘 같으면 방송 태도로 논란이 일었을 만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첫 드라마 데뷔작인 [[내일은 사랑]]에서도 주인공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으며 비중이 큰 주연으로 출연했었으나, 뻣뻣한 연기로 질타를 받은 것과 제작진과의 불화로 드라마팀 회식에 혼자 참석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드라마 초반에 하차하기도 했다. (이 대타로 [[박소현(배우)|박소현]]이 투입됨.) 이 때문에 고소영이 다시 KBS 드라마에 나오는 것은 5년 뒤(1998년) '맨발의 청춘'에 가서야 가능했다. 'PD들이 제일 싫어하는 배우'같은걸로 앙케이트에 뽑혀서 예능에서 본인이 그걸 해명하기도 했을 정도.
* SBS 아나운서 [[배성재]]의 형이기도 한 배우 [[배성우]]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반 짝꿍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9회 일치
[[미스코리아]] 출신인 만큼 출중한 미모에 연기력도 좋고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성공해서 배우로서는 손색이 없다[* 미스코리아 입상 후 연예계로 진출한 인물들은 많다. 그러나 연기자로 입문해서 연기력 하나로 대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드물었다는 점을 보면 고현정의 케이스는 그야말로 눈여겨 볼만하다.]. 탑여배우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예능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느님'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혹평을 받기도한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 사생활이나 성격, 인성 뭐로 까이든 간에 작품에서 연기로는 까는 사람이 없는 배우[* 과거 잡지에서 한 인터뷰만 보더라도 연예인이라면 거기에 맞는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연기 경력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 모두 통틀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배우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연기라는 자신의 최고의 재능으로 정상으로 향하던 와중에 재벌 2세와의 혼인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연기자로 복귀해 재기에 성공, 성공의 환희와 어둠을 다 겪은 인물의 표본이다.]
그러나 모래시계의 종영과 동시에 [[신세계그룹]] 부회장인 [[정용진]]과 결혼함과 동시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여 마지막으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1995년의 연예계 뉴스의 시작과 끝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고현정의 인기는 진짜 어마어마했다. 더구나 장안의 최고 화제작 [[모래시계]]를 통해 연기력까지 검증받은 상황이라 [[충무로(은어)|충무로]]의 러브콜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지고 있던 차에( 당시 영화계는 여배우 기근이 심각했던 상황이어서 고현정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중에 만난 단비격이었다) 느닷없는 결혼발표가 나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이 나오는 형편이었다. 일부에서는 [[그레이스 켈리]]와 비교하기도 하는 등 엄청난 파장이 일었었다.]
은퇴한 지 딱 10년 후, 일드 '별의 금화'를 리메이크한 [[SBS]] 드라마 "봄날"을 통해 실어증에 걸린 인물의 역할을 소화해내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조인성]]과 호연하여, 원래 [[지진희]]와 이어져야 했는데 시청자 반응으로 [[NTR]] 발생. 공교롭게도 모래시계를 찍고 떠난 [[SBS]] 드라마를 통해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충격의 후속작 "여우야 뭐하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쓴 김도우 작가의 후속작으로, 여주인공 고병희는 3류 에로잡지 기자 겸 편집부 겸 영업부 겸... 이 드라마에서 고현정의 동생으로 출연한 김은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본뜬 [[고준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현재도 둘은 친하다고.~~립서비스 같지만 넘어가자~~], [[홍상수]] 감독 최초의 15금 영화(...나머지는 물론 19금) "해변의 여인",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 콤비의 [[히트(2007)|히트]]를 찍으면서 두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봄날" 빼고는 다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 고현정의 시대는 갔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 단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을 캐스팅한 것이 예산의 대부분일 정도로 저예산일뿐 아니라 원래 대충 찍어도 졸라 좋은데 대중성은 엿바꿔 먹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하면 제외해도 좋다.] 히트로 인연을 맺었던 [[김영현]], [[박상연(각본가)|박상연]]의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아 카리스마로 신드롬을 터뜨리며 [* 삼성경제연구소 올해의 10대 히트상품에 [[소녀시대]]와 같이 실려버림.~~본진을 털었다!~~] "역시 고현정이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덕여왕(드라마)|선덕여왕]] 제작진 전원에게 천만원 상당의 [[닌텐도 DS]][* 고현정은 [[닌텐도 DS]]의 리듬게임 타이틀 '리듬세상'([[리듬천국골드]]의 한국어판)의 광고에 출연하였다.]를 쏘거나,[* 사실 연예인이 스탭들에게 자기가 모델인 제품을 쏘는 것은 기사화로 인한 일종의 광고 효과를 노리고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것이라서 본인 부담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 악조건하에서도 8회 분량(출연료 총 2억 상당)에 대해 개런티 없는 연장에 동의하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야외촬영으로 극도로 열악했던 선덕여왕 배우 스태프의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등, [[대인배]]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의 비효율적 촬영시스템은 유명해서, 박홍균 감독은 28회 일식신 촬영 중 비담 역을 맡은 [[김남길]]이 탈진할 정도로 다시 찍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무술신도 예외는 아니어서 촬영 중 무술감독 중 한명이 [[보조출연자]]들을 마구 굴려대자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쉬지 않고 촬영을 감행) 이걸 목격한 고현정이 조목조목 따졌다고. 이 무술감독은 공동연출 김근홍 감독으로부터도 '''"무술감독님, 필름을 낭비하지 마세요. 이거 영화 촬영용 필름이라서 한장 한장이 비싼 겁니다."'''라고 디스를 당했다.] 50회의 마지막 촬영장면에서는 스태프 전원이 ~~어째 어감은 묘하다만~~ '고미실 사망 축하연'을 벌여 주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9&aid=0002106889|#]]
* 소위 '고현정의 남자' 버프 [* 고현정은 드라마 이름을 얻지만(드라마 종영 후 '고현정의 ㅇㅇ'로 기억됨) 드라마의 남주는 인기를 얻어가기 때문에 서로 윈윈한다는 의미. [[히트(2007)|히트]] 이후 인지도를 크게 높인 하정우가 대표적.]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 바, 이 버프가 걸린 [[권상우|누군가]]가 대물을 본 엠드갤의 가련한 드덕들을 시험에 빠뜨리고 있다. [* 사실, 이 경우는 비호감 배우가 호감 캐릭터를 잘 연기해낼 때의 드덕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 2014년 3월 모교인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겸임교수로 임용되어 '매체연기' 과목을 가르친다. 3,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창 너머로 그의 수업을 구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과목수업을 들은 학생의 소감에 의하면 유머러스하고, 수업도 정말 재미있게 진행하였다고 한다.[[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6786762|#]]
- 금조(나인뮤지스) . . . . 9회 일치
그동안 [[나인뮤지스]]의 막내를 담당했던 [[혜미]]와 [[박민하(1991)|민하]] 대신에 새롭게 막내를 맡게 된 멤버이다. 같은 날 새 멤버로 들어온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는 각자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소금' 라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특기는 노래이고, 프로모션 비디오에서 직접 노래[* 똑같은 시기에 합류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은 비욘세 eco의 춤을 커버 했다.]를 하기도 했다.
2013년 뮤지컬 'Summer Snow'를 공연하기도 하였다.
4인조 완전체 활동 '기억해'에서 하이라이트 최고음을 순조롭게 소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닛 활동에 이어서 가장 많은 파트를 배분 받기도 했다.
주로 [[e.one]]이 작곡한 여자아이돌의 곡에 참여하는데 [[스타제국]] 때의 인연이 이어진듯 하다. [[e.one]]의 [[http://www.news-ade.com/?c=news&m=newsview&idx=1000011557|인터뷰]]에 따르면 코러스 작업 외에도 걸그룹곡의 가이드 작업 역시 금조에게 맡긴다고 한다. [[e.one]]이 곡을 많이 주는 [[여자친구(아이돌)|여자친구]], [[APRIL]], [[우주소녀]] 같은 걸그룹의 경우엔 --잦은 용돈벌이 활동 덕분에-- 신곡이 나오면 그 그룹 팬들이 알아서 제보를 해주기도 한다.
*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함께 영입되며 2013년 [[Wild|WILD]] 당시만 해도 개성이 강하던 [[나인뮤지스]]가 주류 [[걸그룹]]과 컨셉이 같아져서 아쉽다는 평이 있다.--영원히 고통받는 소금라인-- 그러나, 이 둘의 영입 후 친근함과는 벽이 있었던 모델돌[* 너무 키가 커서 기가 쌔보인다거나, 섹시하기만 한 아이돌 등.]이라는 이미지에 환기를 준 건 사실이다. 일반적인 걸그룹 색을 더하여 [[나인뮤지스]]의 [[마인(나인뮤지스)|팬덤]]이 상승세를 겪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실제로 LOST의 초동 판매량이 [[나인뮤지스]] 커리어 상 최대치를 찍기도 하였다. 또한 이 둘이 리얼리티에서 보여주는--공룡 로봇과 능청 변태 막내-- 등의 모습이 팬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소진(나인뮤지스)|소진]]과 금조의 영입 후 곡과 컨셉 스타일도 변화했다. 둘의 영입 전에는 [[PRIMA DONNA|GUN]]과 [[Wild|WILD]] 등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돌의 곡들을 들고 나왔으나 새 멤버 영입 후에 발표한 [[DRAMA]]나 잠은 안오고 배는 고프고는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 자신이 먼저 이별은 선언했지만 후회하는 여성의 모습 등 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곡은 아니다.
* 영입 전에 탈퇴한 전 멤버 [[류세라|세라]](위 사진의 좌측)와 외모가 비슷해 팬들의 혼동을 빚기도 했다. 심지어 음색이 상당히 특이한 편임에도 독특한 음색 마저 [[류세라|세라]]와 비슷해 드라마 이전 곡을 부를 때에 가끔 [[류세라|세라]]의 파트를 커버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PRIMA DONNA|GUN]]에서는 세라의 강림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 덕분에 지금도 [[류세라|세라]]의 탈퇴를 아쉬워하는 [[마인(나인뮤지스)|마인]]들은 금조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
- 김형준(배우,가수) . . . . 9회 일치
* 여담으로 'Never again' 활동 때 몸무게가 58kg 이었다고 한다. 181에 58kg... 도 아니었다. '''54 ~ 56kg'''이었다고 본인이 직접 김천경찰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밝혔다. 이 시절엔 '뼈였다'고 표현하기도. 지금(2018년 하반기)은 72kg이라고 한다. [[https://youtu.be/wcUIufXF_5c|2018년 7월 20일 방송. 1:33:18부터.]]
* 군 입대 후 진행하게 된 김천경찰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리즈시절을 묻는 질문에 데뷔 초 'Snow Prince' 활동을 할 때를 꼽았다. '저렇게 생긴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 들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과거 리즈시절 모습을 보고 지금의 자신을 보면 놀란다고 한다. 너무 [[격변]]한 것 같다고… ~~옛날이여…~~ [[https://youtu.be/GDtvDYrJJJ0|2018년 8월 30일 방송. 1:18:34부터.]]
* 매사에 밝고 천진난만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잘 친하게 지내며 SS501 멤버들과도 같이 손잡고 화장실가고 --뽀뽀하고-- 할 정도로 친하다. 특히 박정민이랑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둘이 있으면 늘 티격태격격 하는 사이지만 한편으로 서로 챙겨주기도 해서 절친이다.
* 3월 22일 SS501 전원과 함께 화려한 외출에 출연했는데 야동(...)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횡성수설하며 당혹함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막내 이제 성인이예요--
* 1월 27일 게임 전문 공중파 방송인 [[MBC GAME]]에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라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 됐다. 제목이 곧내용으로서 김형준이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때 김형준이 들어가는 팀은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MBC GAME HERO]]. 처음에는 다소 무개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갤러]]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식없는 모습이 어필 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고 결국 3월 4일에 감독 추천으로 공인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 뮤탈 짤짤이의 창시자인 [[서경종]]과 매우 친해졌고 서경종은 이를 계기로 해설자로 성공적인 전향을 하게 되었다.[* 훗날 서경종은 트윗 인터뷰[[http://esports.dailygame.co.kr/news/read.php?id=57529|#]]에서 김형준과의 친분은 100% 설정이었으며 실제로는 전혀 친하지 않았고 방송 이후엔 연락도 안 했다고 밝혔다.][* 서경종의 트윗문답때문에 김형준의 빠순이들은 서경종한테 악플을 날리고 [[스갤러]]들은 [[빠가 까를 만든다]]면서 [[병림픽]]을 했다. ~~트리플S도 [[카시오페아(동방신기)|카시오페아]]나 [[엘프]]와 [[드림콘서트 침묵 사건|함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라..~~] 그리고 유독 [[러커]]에 집착하는 모습이 보인다. 게임할때 말버릇이 암요 까시까시맨~이라든지 자기를 가시저그라고 불러달라는 모습도 나왔다. 스갤에서는 주로 까시맨이라고 불린다. 결국 3월 31일을 마지막 방송으로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스타 팬들에게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기억에 남았다.
* 12월 12일 더블에스301 멤버들과 함께 해요TV K-COOK STAR에 출연했다. 삼행시도 짓고 철가방속에 있는 글씨를 맞춰야 요리을 먹을수 있는데 철가방을 순식간에 열고 닫아서 맞추기도 어러웠는데 찜닭 이라고 외쳐 정답을 맞춰서 맛있는 찜닭을 먹었다. 닭 CF도 찍고 김규종이랑 막춤까지 추며 요리 대회에서 [[모일봉]]이랑 닭갈비랑 치즈 과일꼬치 요리를 했는데 팬들은 김형준의 [[요리치|요리실력]]을 잘 알기 때문에 당연하듯 허영생, 김규종 팀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주었고 김형준은 요리 대회에서 져서 벌을 받았는데 허영생이 싸이팬으로 김형준 얼굴에 그림(...)을 그렸고 김형준은 해요TV 시청자 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 2011년에는 'oH! aH!'라는 곡으로, 2012년에는 'Sorry I'm Sorry'라는 곡으로 솔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형준의 뮤직하이에서는 2012년 7월 9일~15일의 모든 첫 곡이 그의 타이틀 곡인 sorry I'm sorry..~~ 이후 [[써니힐]]의 [[코타]]와 '우리둘이' 라는 곡으로 듀엣을 하기도 하고, 2015년 디지털 싱글 'Cross the line'을 발매하는 등 꾸준히 솔로로 활동했다.
* 한국가수 최초로 [[볼리비아]]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는데 2014년 처음으로 볼리비아에 갔을 때 공항에서 위협을 느낄 정도로 팬들에게 둘러싸여 못 나갈 정도 였다고... 그리고 콘서트 수익금으로 직접 고아원에 찾아가기도 했다.
- 모레아 전제국 . . . . 9회 일치
14세기 이후에 비잔티움 제국은 각지의 봉신국에 황제의 동생이나 아들 같은 가까운 황족을 봉하여 행정, 군사, 사법 전권을 행사하며 통치하도록 했다. 전제공의 작위는 종신 보유가 되며, 행정관 임기도 기본적으로 종신이었으나, 전제공의 직위는 세습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을 전후한 시기를 살펴보면, 모레아의 역사는 제국의 마지막 저력과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레아 전제국은 '팔레올로고스 르네상스'를 이룩하여 제국 최후의 영광을 빛냈으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에도 정치적, 종교적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다민족화된 비잔티움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그리스 인]]의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잔티움 멸망 이후 그리스 독립 전쟁의 시작도 이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모레아는 제국의 다른 지역처럼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거나 전염병의 유행으로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코린토스 지협으로만 본토에 연결되고 이 지역에 건설한 [[헥사밀리온]] 성벽 덕분에 방어가 쉬워 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었다. 모레아는 아카이아 공국 세력을 몰아내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모레아의 전제공들은 코린토스 지협에 건설되었던 [[헥사밀리온]]을 수복하고, 내정을 보살폈으며 [[알바니아]] 인을 이 지역에 이주시키기도 했다. 모레아 지역은 인구가 늘어나 요새였던 미스토라스는 도시화 되었고,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룩했다. 1428년 취임한 전제공 콘스탄티누스(후의 [[콘스탄티누스 11세]])는 파트라를 점령하고 아카이아 공국을 완전히 축출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모레아는 '팔레올로고스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문화적, 경제적 부흥이 일어났다.
비잔티움 제국의 학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위협을 받고, 종교 세력이 강한 폐쇄적인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모레아로 이주하기도 했는데,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Georgios Gemistos Plethon)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여 플라톤 철학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재생과 제국의 복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한 저작을 발표하고 국정 개혁을 주장하였으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국정에 채택되지는 않았고, 너무 급진적이고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는 그의 저작물을 [[분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이 활동할 정도로 제국에서 모레아는 자유로운 기풍을 가진 지역이었다.
모레아는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떠나고, 후임으로 동생 드미트리오스와 토마스, 두 명의 전제공의 공동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 두 명은 개인적으로 사이가 나빴고, 정치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친 오스만, 토마스는 친 라틴, 종교적으로 드미트리오스는 동서교회합동반대, 토마스는 합동찬성파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대립하였다. 일단 오스만의 위협에 대항하여 1453년 메흐메트 2세의 공격을 공동 작전으로 격퇴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메흐메트 2세는 모레아에 친정하여, 1460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7년 만에 수도 미스토라스가 점령되고, 그 해 여름까지 반도의 거의 전역이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어 모레아 전제군주국은 멸망한다. 드미트리는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고, 토마스는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 모레아의 그리스인은 산악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서 저항하거나, 이 당시 모레아 각지에 거점을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투항하였고 베네치아 공화국은 그리스 인 군단을 편성하여 오스만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거점들 마저도 오스만-베네치아 전쟁에서 궤멸하면서 그리스는 베네치아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코르푸를 제외한 모든 지방이 오스만의 지배하에 들어서게 됀다.
- 안기효 . . . . 9회 일치
또한 조지명식에서의 입담이 매우 좋은 선수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조지명식에서 항상 기대되는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2016년 10월 철구와의 스폰빵에서 보여준 승리 세리머니는[* 그 유명한 학사경고 영상이다. 자세한 사항은 유튜브의 "철구 학사경고" 참조] 안기효 방송의 애청자이던 트위치 스트리머 [[스틸로]]의 영향으로 옆 동네 트위치에서 대유행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원조를 따라잡지는 못했단 평을 받았다.--그 와중에 [[김도|한 명]]은 채신기술로 쓴다-- 배경음악은 [[Silver Scrapes]]다.
또한 '''개명 전 이름 자체로도 별명'''인 선수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사용되던 별명을 [[온게임넷]]에서 바로 써먹어버린 전적이 있다.
또한 [[이영호]]를 이기고 올라간 스타챌린지 1위 결정전에서는 [[이제동]] 마저 이기고 [[스타리그]] 본선 4번 시드를 쟁취했다.[* 시드를 따낸 후 안기효는 목 긋기 세레모니를 시전한다.] 안기효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끝날때까지, '''[[스타크래프트]] 공식전에서 [[이제동]]을 다전제(5판 3선승제)에서 이긴 유일무이한 [[프로토스]]로 남았다.'''[* 당시 [[이제동]]은 [[역대 스타리그 일람#s-23|해당 스타리그]]에서 [[로얄로더]]를 달성했던 시절이였다. [[토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촉망받던 신예란 점을 생각해보면 안기효의 당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첫 우승이 [[EVER 스타리그 2007|토스 잡고 한 우승]]이긴 했지만 사실 이때는 이제동이 잘했다기 보단 송병구가 [[옛날토스|너무 못했다]](...) 토스전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밀고가다 지는 경우가 많았고 송병구와의 결승전에서도 송병구가 우승할 것이란 예상이 훨씬 많았는데, 이걸 이제동이 우승하면서 토스전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스타리그]]에서는 3패로 [[광탈]]하는 아쉬운 모습을 선사한다.
재미있는 기록으로 방송경기 데뷔무대였던 챌린지리그 vs [[서지훈]]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었다. 이는 [[온게임넷]]의 [[스타리그]](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포함.) 역사상 최초의 무승부이기도 하다. 또 마린에게 캐리어가 잡히는 경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 VS [[변길섭]](맵 [[개척시대(스타크래프트)|개척시대]]), 상황은 안기효가 3캐리어+적절한 양의 지상병력 VS 변길섭이 골리앗 없는 메카닉에 소수 마린+SCV인 상황, 러시 거리가 매우 가깝고 변길섭이 선공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병력 구성으로 보면 안기효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방심했는지 캐리어 컨트롤을 하나도 안하다가 마린의 피니시를 맞고 격추당한다.(그 전에 터렛에게 많이 맞았다.) '''더불어 그 경기 졌다.''']
개인리그에서는 16강 ~ 8강을 왔다갔다했지만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 팬택 EX 팀에서는 [[심소명]]과 더불어 [[이윤열]] 다음가는 2, 3번째 카드로 손꼽혔다. [[심소명]]과 팀플을 하면 '안심'조합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한때 양대 PC방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EVER 스타리그 2007에서는 챌린지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며 4번시드를 확보했다. 하지만 [[위메이드 폭스]]로 재창단된 후엔 새로운 신인들이 자리를 차지해 점점 팀 내에서의 비중이 떨어졌다.[* 2007년 후기리그까지 잘 해주다가 2008시즌부터 [[박세정]]이 세로운 프로토스 에이스로 등극하게 된다.]
2014년 10월에는 아프리카 스타판에 불을 지폈다. [[박지호]]와의 스폰 매치중 박지호의 방플을 의심하며 그를 세차게 디스했다. ~~현재는 화해~~ 그런 어그로로 시청자를 끌어모은 뒤 주로 WWE 레슬러를 흉내내는 리액션과 심심하면 블랙리스트를 거는 컨텐츠로 별풍을 팔고있다. 방송중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는데 꽤 잘하는 편이다. 임창정스러운 감성에 연규성과 비슷한 창법, 목소리를 구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SbUITb5-M|슬픈 혼잣말]] [[https://www.youtube.com/watch?v=o049dPIyACM|또 다시 사랑]] 등등 임창정의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RzK0KUku0|내가 저지른 사랑]]. 노래를 부를 땐 방금 실연을 당한듯한 리얼한 표정을 보여주며 임창정 특유의 창법을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한다. 철구같은 억지 뇌성이 아니라[* 말이 좋아 뇌성이지 완전 목을 긁어내는 발성이라 성대가 남아나질 않는다. 철구는 성대 수술을 받기도 했는데 뇌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프로 가수들도 샤우팅을 자제하는 이유가 구사하기도 어렵지만 목을 긁어내지 않으면서 발성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고음과 정확한 샤우팅을 구사했다. 다만 콧소리가 상당히 들어간걸로 보아 발성을 따로 배우진 않은듯 하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면성이라는 새로운 창법을 창조해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 원빈(배우) . . . . 9회 일치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지 가출을 하다가 걸려 집으로 끌려가기도 했는데 원빈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는 부모가 말하길 '''"연예인 되기가 쉬운 줄 아냐? [[강릉시]]내만 나가도 너보다 잘생긴 사람 널렸다.''' '''연예인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니 얼굴에 연예인은 무슨... 헛된 꿈 꾸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혀."'''라고 했다 카더라.[* 인터뷰에서는 지금도 원빈의 부모님은 여전히 산골에서 생활하며 아직도 원빈을 철부지 막내아들로 생각할 뿐, 유명한 인기 스타라는 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미남... 아니 CG의 도시 갓릉--
데뷔 초기 당시 [[기무라 타쿠야]]를 닮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아마 소속사의 의도적인 마케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기무라 타쿠야가 했던 패션, 헤어스타일이 비슷한 사진이 많다. 이에 대해서는, 원빈이 직접 벤치마킹을 한 게 맞다고 훗날 밝혔었다.
[[1997년]]의 [[KBS]]의 TV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비중 있는 조연[* 자주 개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여주인공 [[김희선]]의 이웃에 살면서 그녀를 짝사랑하며, 몽상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약간 4차원스러운 청년역할이었다. 그래서 스토커라는 단어도 안 쓰이던 시절인데도 자기 주위를 자주 맴도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던 여주인공이 가족과 지인에게 상담도 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중에는 여주인공 쪽에서 먼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짝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몽상적인 대답만 한다. 직업도 대략 시인 비스무레한 사람인 듯이 말하는데 드라마 내용 자체에 자세한 부분이 나오지 않아 그냥 시를 좋아하는 청년인지 진짜 시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여주인공은 그가 폭력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좋아하는 남자(주인공)가 있다고 설득한 뒤 안심하며 좋게 마무리된다. 사실상 나쁘게 보면 스토커 같은 역할이라 원빈의 외모나 현재 이미지와 그렇게 많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워낙 심하게 잘생긴 외모라 역할 자체의 부정적 측면이 안 보일만큼 미화되어 보이기도 했고 아직도 그가 프로포즈에서 멋진 역할로 나왔다고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 당시 남자주인공이자 김희선의 상대역이었던 배우는 [[류시원]].]으로 출연하여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에도 '레디, 고!'라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1999년]] [[광끼]], [[2000년]] [[꼭지]], 단막극 '그가 간이역에 내렸다'를 찍은 뒤 드디어 [[가을동화]]를 통해 슈퍼스타가 된다. 2002년에는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등에 출연했다. 프렌즈에는 [[일본]] 여배우 [[후카다 쿄코]]가 여주인공 역을 맡았다. 이후 드라마 대신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으며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품 횟수는 적으나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아저씨(영화)|아저씨]] 출연 당시에 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었다는 평이 많았다. [[다크 나이트(영화)|다크 나이트]]에서의 배트맨의 목소리랑 비슷하다는 것이 중평. 이는 원빈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실제로 원빈이 출연한 작품 중에서 원빈의 대사가 많았던 작품은 별로 없다. 확실히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원빈이 고쳐나가야 하는 과제이다.
2010년 [[아저씨(영화)|아저씨]] 이후로 작품 활동 없이 계속 CF만 찍고 있어서 지나치게 [[신비주의]]를 고수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소속사에서는 원빈이 작품을 고를 때 신중하게 골라서 차기작이 늦는다고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2013년 7월에 나온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은 [[경기도]]의 소도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며 [[연쇄살인자]]와 [[연쇄살인자]]를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창녀|몸을 파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형식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하며 [[연쇄살인자]] 역할에 원빈을, [[형사]] 역할에 [[설경구]]를, [[창녀]] 역할에는 [[장쯔이]]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은 전반적으로 [[구원]]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 본인이 이 프로젝트를 엎었다고 한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3337|이창동이 배우들에게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인 [[http://m.media.daum.net/m/entertain/newsview/20131022092808979|파인하우스 필름의 관계자가 뉴스엔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제작 무산이라고 볼 수 없으며 제작이 열려 있는 작품' 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니까 좀 기다려봐야 할 듯. 2014년 1월 말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탈고된다는 루머가 여러 웹사이트에 떠돌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없다. 2014년 5월에 원빈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12249|당장은 아니지만 차기작은 분명히 있다]]라고 밝혔다. 그 차기작이라는 것이 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하는 영화인지는 불확실.
2005년 11월 29일 [[입대]]한 후 강원도 최전방에 있는 [[제7보병사단]]의 8연대 산하 GOP 부대에서 근무하며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강원도의 전방사단 보병대대는 GOP 일대 감시라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받아 육체적으로도 고되고 힘든 편에 속하기에 군대를 안 가려는 다른 연예인들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왼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6개월 만에 [[의병 제대]]했다. 원빈 측에선 '원래 통증이 있었고 산악지대에서 [[행군]]을 하다보니 무리가 갔다' 라고 주장했다.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의성군 . . . . 9회 일치
2016년 ‘중앙 이코노미스트’가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과 국내 252개 기초단체의 인구 현황(2015년)을 분석한 결과 노인 인구 100명 당 20~30대 여성 인구 17명으로 30년 뒤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19968138|# 젊은 여성 없는 의성·고흥·군위…30년 뒤 내 고향 사라진다]]. 참고로 [[고흥군]], [[군위군]]이 뒤를 이었다. 또한 2015년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기초자치단체이기도 하다. 평균연령 55.3세, 중위연령 59.2세.
그리고 1995년 단 6명의 인원으로 전국대회 준우승을 일궈낸 의성여자고등학교 농구부도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영미]], [[김선영(컬링)|김선영]],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 이광수(배우) . . . . 9회 일치
||<#ACF3FF> '''{{{#000000 출생}}}''' ||<#ffffff><(> [[1985년]] [[7월 14일]] ([age(1985-07-14)]세), [[경기도]] [[남양주시]] ||
초창기 때는 해괴한 바가지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이였다. 지붕 뚫고 하이킥 시절과 런닝맨 초창기에는 외모가 눈에 띄지도 않고 런닝맨 멤버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름 잘생긴 편이라서, 20대 초반 화보가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런닝맨 중반부 이후로는 수염도 밀고 머리도 다듬다 보니 꽤 훈남화됐다. 다만 망가지기도 많이 망가질 뿐더러, 멤버들이 친구 송중기와 자꾸 비교하다보니 못난이 캐릭터가 지속되는 현상이 나온다. [[2007년]]에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KT의 'SHOW' CF(공대 아름이 편)였고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다. 모기춤도 이때 생겼다. 당시 수염 때문인지 [[노안]]으로 보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 살 많은 [[누나]]인 [[유인나]]보다 '''[[오빠]]'''로 나온다.] 하지만 [[수염]]을 제거했고 수염이 없는 현재는 [[동안]]까진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젊어 보인다. 허나 여전히 노안 캐릭터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룡]]이나 [[에브라]], [[김상중]] 등 런닝맨에 출연할 당시 40대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염을 밀 때였다.]
들어서는 개그맨보다도 웃긴 배우로 통하고 있다. 2016년에는 한국대중문화예술상에서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그리고 예능을 런닝맨 하나만 함에도 불구하고 예능인 브랜드 10위권안에 든 적이 여러번 있었다.2018년 9월에는 예능인 브랜드평판 4위에 들었다.런닝맨이 화제성이 좋은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거기서 이광수의 존재감이 엄청나서 그런 것 같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쪽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 홍콩에서도 인기가 있는데, [[네슬레]] 홍콩의 인기 상품인 렁떵리[* [[광동어]] 한자로는 '능득리'라고 쓴다.][[프루팁스]] 신년 광고에도 나오기도 했다. 자국 연예인만 광고에 출연 하던 브랜드에 첫 해외 연예인 모델로 발탁. [[https://www.youtube.com/watch?v=lT7iHP9Imvw|2015년 버전]] [[https://youtu.be/2IJN2ECrLCk|2016년 버전]]
의외로 [[무한도전]] 멤버들하고도 친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한도전 멤버는 전현직 멤버 모두를 의미한다.] 비록 무한도전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단, 바보전쟁 특집에서는 본인 명의로 보낸 화환이 있었다.] 런닝맨에 출연하는 [[하하(가수)|하하]]와 [[유재석]]이 무한도전 출연진이다 보니 종종 같이 술자리를 한다. 또한 [[노홍철]] 생일에 축하 메세지를 보내거나 [[정준하]]와 만나서 바보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 런닝맨에서 [[길(리쌍)|길]]하고 차 타고 같이 간 적도 있었는데 동작대교에서 버렸다고 폭로했다.
[[황광희|광희]]는 친밀한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한도전 들어가기 전부터 [[런닝맨]]에 몇 번 출연했고 인기가요에서 MC로서 진행을 맞춘 적이 있다. 또한 양세형은 동생인 양세찬이 런닝맨에 합류하고 난 뒤에 양세형과 인스타그램이 팔로잉되어 있다. 둘다 동갑이기도 하고.. 물론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https://youtu.be/zSErcEAvu8E|춘]] 춤으로 당시에는 화제성이 전혀 없었는데 워낙 시간이 짧기도 하고 임팩트도 없어서 당시에는 아무도 몰라봤다. 거기다가 [[놀러와]]에서 [[줄리엔 강]]과 같이 모기춤을 추었으나 MC인 [[유재석]]도 이 춤이 뭔지 잘 모른 눈치였고 반응도 엄청 썰렁했었다.
이에 패러디가 등장하였다. 엑소의 [[디오(EXO)|디오]]도 콘서트에서 모기춤을 췄었고 [[조인성]]도 괜사 종영 때 이광수 가면을 쓰고 춤췄다. 또한 [[MINX]]의 [[유현]]이 아이돌 스쿨에서 모기춤을 추기도 했다.
- 전소민(배우) . . . . 9회 일치
||<#FFB1BC> '''{{{#white 출생}}}''' ||<#ffffff><(> [[1986년]] [[4월 7일]] ([age(1986-04-07)]세),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 (퇴계원로) ||
주로 막장요소가 많은 일일드라마와 아침드라마에 출연을 많이하여 --막장전문여배우--[* 대표작인 오로라공주와 내일은 승리가 있다.]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배우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일드 여신(일일극 전문배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58348|출처]]] 특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출연한 막장드라마를 패러디하여 막장여신, 막장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337070|출처]]]
* 간혹 [[정소민]]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오로라 공주 초기에는 이름이 [[전노민]]으로 오타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듀스 101]]이 방송된 후 [[소미|전소미]]와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기자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 동명이인으로 혼성그룹 [[KARD]]멤버 [[전소민(KARD)|전소민]]도 있다.
* 독특한 습관으로 면을 먹을 때 아무리 길어도 좀체 안 끊고 입 안으로 흡입해서 먹는다. 제주도 고기국수를 먹을 때는 무려 7번이나 [[면치기]](?)을 하기도. 숨도 안 쉬고 흡입하는듯한 모습이 독특해서인지 [[런닝맨]]에서 면요리를 먹을 때마다 클로즈업을 받고 있다.
*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살다가 [[런닝맨]] 출연 후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광고를 많이 찍게되었고, 덕분에 원룸이긴 하지만 줄곧 꿈꾸던 독립을 이루었다고 하며[* 집들이 때 런닝맨 멤버들과 스탭들이 참여한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원룸 계약이 끝나는 2019년엔 투룸으로 이사갈 예정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명랑소녀 성공기]]. 이사갈 때 [[유재석]]이 벽걸이 TV를 선물해줬다는 듯 한데 방에 비해 사이즈가 너무 커서(...) 외려 보기 힘들었을텐데 다행이란 말이 나오기도[* 이 말을 꺼낸 유재석은 그냥 선물받은 TV라고만 했는데 자막에선 유재석이 선물했다고 나온다].
* 2015년 초 [[윤현민]]과 공개연애를 하다 2016년에 헤어졌는데, 이 때의 경험때문인지 [[https://mnews.joins.com/article/22469099|공개연애는 하지 않을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덤으로 진지하게 연애를 한 경험은 세번이라고 한다. 2017년에 런닝맨 고정으로 첫 합류한 방송에서 직접 밝힌 적 있으며, 2018년 위험한 파트너 특집 때도 “20대 때 세명이랑 결혼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중 두명은 눈물의 커피숍 휴지인 J와 윤현민인가....~~그리고 세번 다 차였다고 한다. 그 중 한번은 상대가 바람피는 걸 눈치채고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라며 차인건 두번이라고 주장했는데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글쎄...]][* 우습게도 바로 직전에 거의 동일한 경험담을 털어놓은 광수에게 그건 차인거라며 돌직구를 날려놓고 자긴 다르다고 주장하다 뜬금없이 그 전남친에게 “너, 나한테 연락하지마!”라며 영상편지를 시전하기도]
- 최남선 . . . . 9회 일치
육당 최남선은 [[관상감]] 기사로 근무하면서 [[한약방]]을 경영했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 강씨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대로 명문이었고 아버지 최헌규는 하급 관리였으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1년 3살 연상의 부인 연주 현씨(玄氏)와 결혼했다. 스스로 독학으로 한글을 깨쳐 1901년(광무 5)부터 《황성신문》에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1902년 경성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904년 10월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국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갈 때 국비 유학생 중 중학생반의 소년반장(少年班長)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 해 11월 [[도쿄]] 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못가 12월에 중퇴하고 배편으로 귀국했다.
1907년 5월, 귀국한 뒤 한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7년 11월 [[이광수]] 등과 함께 잡지 [[소년]]지를 창간한다. 소년지에서 그는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고, 이광수는 계몽적인 소설을 실어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발행한 잡지 《소년》지는 근대적 종합잡지의 대표적인 잡지이며 어린이, 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중 초기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후일 그가 소년 잡지를 창간한 11월 1일이 잡지의 날로 정해지기도 했다.
1914년 몇몇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다시 종합 계몽 잡지 《[[청춘 (잡지)|청춘]] (靑春)》을 발간하여 새로운 지식의 보급과 민중 계몽을 위해 공헌했으나 이 역시 총독부에의해 [[1918년]] 강제폐간되었다. 1918년 《[[청춘 (잡지)|청춘]]》에 역사 연구 논문인 《계고차존》(稽古箚存)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신문관에서 많은 책과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한민족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조선광문회]]’를 1910년 설립하였다.
최남선은 그는 평생 고전 정리와 주석에 관계된 것 등 다방면에 걸쳐서 국사와 고전 서적의 간행, 복원, 한글 번역 작업을 하였다.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창작하는 등 개화기 신문화 운동의 선구자였다. 시조 부흥 운동을 지도하여 최초의 시조 시화집 《백팔번뇌》를 출판하기도 하는 등 신문화와 전통 문화의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로서 한국의 신문화 운동에 남긴 업적은 매우 크게 평가되고 있다.
또한 최남선의 [[단군론]]은 1926년 3월 3일부터 1926년 7월 25일까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인데 특유의 논법에 의거 ‘[[단군론]]’을 내세워 일본인 중심의 [[식민사관]]에 맞서기도 하였다.<ref>「씨성으로 본 한일민족의 기원」, 단군론의 문헌검색, 김성호 저, 푸른숲(2000년, 43~51p)</ref>
[[장준하]]는 '그를 경애하는 스승이며 민족 사상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였다.<ref name="changs"/> 장준하는 '선생은 약관 18세에 이미 궤란을 기도에서 구하려는 큰 뜻을 품고 우선 민족의 명영을 영원히 부지하려는 원대한 의도 밑에 문화의 황무지를 개척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이래 종시일관하여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민족의 재흥을 위하여 발분망식하였다. 선생이 우리 역사학에 전심하여 마침내 사학의 태두로 일세의 숭앙을 받기까지에 이른 근본 연유도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f name="changs"/>'라며 그가 한국 역사학 연구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1944년 1월의 조선화보에서 육당의 계몽가요 ‘경부철도가’(1908)가 일어로 번역된 영국 시인 바이런의 ‘해적’을 일본의 신체시 형식으로 모방했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ref name="daedams"/>
- 표양문 . . . . 9회 일치
* 경기도 인천시 시장
* 신문기자자격 경기도 심사위원장
* [[자유당 (대한민국)|자유당]] 경기도 인천지구당 위원장
{{선거기록/KR/개인|[[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총선]]|3대|국회의원|[[인천시의 국회의원|경기 인천시 병]]| 자유당 | 17,331표| 53.47 |1위|당선|[[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제3선거구|초선]]}}
|후임자 = 표양문<br/>(경기도 인천시장)
|직책 = [[인천광역시장|미군정 경기도 인천부윤]]
|전임자 = 표양문<br/>(미군정 경기도 인천부윤)
|직책 = 초대 [[인천광역시장|경기도 인천시장]]
|직책 = [[인천광역시장|경기도 인천시장]]
- 하리수 . . . . 9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첫 데뷔 앨범은 [[2001년]] 《Temptation》이며, 같은 해에 영화 《[[노랑머리 2]]》에 주인공인 J 역을 맡기도 했다. [[2002년]]과 [[2004년]] 각각 2집과 3집 앨범인 《Liar》와 《Foxy Lady》를 발표했으며, [[2006년]] 4집 《Harisu》를 내놓았다. 하리수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에서 성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법원]]에서 [[성별 정정]] 요구가 받아들여진 [[성전환자]]이다.
한 때 ‘하리수’란 예명을 놓고 전 소속사인 TTM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TTM 측은 두 번째 하리수로 [[제니퍼 영 위스너]]를 내세우기도 했지만, 합의를 통해 하리수란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본명은 이경엽(李慶曄)이었다가, 성전환 후 [[2002년 12월]] 이경은(李慶恩)으로 개명하였다.<ref>[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84346 하리수 性 · 이름 女子로 호적 변경 허가] 중앙일보 2002.12.13</ref>
하리수는 [[1975년]] [[2월 17일]]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남매들 가운데 한 명이다.<ref name="Eve from Adam">Li Ee Kee, "Eve from Adam", ''The Star Online'', September 19, 2005. A copy of this article can be read at [http://groups.yahoo.com/group/TNUKdigest/message/17335 TNUKdigest]. Retrieved on April 27, 2007.</ref> 본명은 이경엽으로 후에 [[2002년]] [[12월]] [[성별정정]] 후에 경은으로 개명하였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ref>[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832 하리수 첫사랑 고백 자살시도에 성전환 수술 결심은 고 2때… '기구한 인생'] 경인일보 2012.05.15</ref> 그는 "첫사랑 상대는 탤런트 [[이창훈 (배우)|이창훈]]을 닮은 외모로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남학생이었다"며 "첫사랑 이후 [[우울증]]이 있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하리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교제했던 남자친구로 인해 [[성전환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였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205151446181110 하리수 "중학교 시절, 첫사랑때문에 자살시도"] 마이데일리 2012.05.15</ref> 이후 남자로 살아보기 위해 평소 그녀를 동경하던 부근 학교 여학생을 사귀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53478 하리수, “남자로 살기위해 여학생과 사귄적 있다”] 마이데일리 2006.07.11</ref> 하리수는 또 “두번째 사랑을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미스젠더링|넌 어차피 남자잖아]]"라며 결별을 통보받고 성전환수술을 결심하게 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8&aid=0000059418 하리수, 성전환에서 결혼까지] 스타뉴스 2007년 02월 21일자</ref>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전환 수술을 결심했다 한다.<ref name="heimagge"/>
[[2007년]] [[2월 28일]] 오전 9시 30분부터 MBC TV를 통해 방송된 ‘이재용, 임예진의 기분좋은 날’에 출연해 “사람들이 둘이 만나는 것을 몰랐을때 미키정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더니 사람들이 ‘리수형이네’, ‘이 사람하고 놀지마’ 같은 댓글을 남겨 가슴이 아팠다”며 네티즌들의 악플로 인해 겪었던 마음 고생을 방송에 털어놓기도 했다.<ref name="akples">[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80557 하리수, "'리수형, '아저씨' 악플에 전화해 항의"] 마이데일리 2007.02.28</ref> 그러나 악플에 대해 그는 당사자에게 직접 항의하는 등 의연하게 대처하였다.
- 현이와 덕이 . . . . 9회 일치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1972년 장덕은 오빠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북한산]] 기슭의 작은 집으로 이사 나오게 된다. 하지만 오빠는 남의 집 가정교사로 일하러 나가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어디론가 나가 늦은 밤 술을 마시고 돌아와 장덕은 빈 집에서 홀로 남겨진 고독과 싸우며 외롭게 생활했다. 그리고 새 엄마가 들어오자 남다르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장덕은 음독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1974년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한 장덕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수 없는가?'라는 생각에 우울해 하다가 그 해 가을 메모도 남기지 않고 무작정 친구집인 대구로 내려가 10일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장덕은 이내 수면제 10알을 먹고 음독 자살을 기도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장덕의 어머니는 장덕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시 인기를 끌던 미국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맏이 장현과 함께 남매 듀엣을 결성시켜 준다.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미국에 머물던 이 시기 장덕은 [[미국]] [[가수]]에게 <[[여인이여 안녕 (노래)|여인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주어서 취입 시키기도 하였는데, 당시 장덕의 [[미국]] 내 창작활동은 [[미국]] 일간지 및 [테네시언]지에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된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해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한다. <ref>[http://www.mbn.co.kr/pages/vod/programContents.php?progCode=613&menuCode=3439 아궁이 65회 - 파란만장 가족사] "MBN 2014년 7월 11일 방송 참조"</ref> 그리고 한달 뒤(11월)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3년간 1000만원이라는 금액에 전속계약을 맺고(그녀는 오랫동안 공백을 가진 스타였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는 계약이 쉽지 않았다.) 타이틀곡 <날 찾지 말아요>를 비롯 <안녕히 계세요>, <가을에 만난 소녀>, <철없는 안녕>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날 찾지 말아요>가 발표한 지 6달 만에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집계 한 달(1984년 5월) 동안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부문 3까지 오른다. 많은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장덕으로서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 본인이 당시 방송을 꺼려한 탓인 지는 몰라도 방송을 가장 많이 탄 가수 부문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사이(1984년 2월) 장덕은 새 음반을 내는 자매듀엣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를 작사/작곡하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보자매는 현이와 덕이, 그리고 장덕에 의해 각각 발표된 바 있는 <끝없는 마음이야>, <첫사랑>까지도 리메이크 하여 자신들의 새 음반에 수록한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 1월 21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1990년 2월 4일 오전 3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2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다량의 수면제와 기관지 확장제 등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 이상증세를 보이며 신음 중이었는데, 이것을 본 의상 담당 문인옥씨가 발견하고 장덕의 아버지에게 연락, 서대문 고려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승작용에 의한 쇼크로 장덕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향년 28세였다. 문인옥씨에 따르면 장덕은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장덕이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오빠 장현의 병간호를 오래 해왔으며 최근 이은하 · 조영남 · 최진희 · 변진섭 · 김승진 · 하춘화 등 동료 가수들에게 곡 의뢰를 받고 신곡 작업까지 하는 등 빽빽한 일정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과로와 감기증세 때문에 과다복용한 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숨진 것으로 판명했다.<ref>이상열 앵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0767_13421.html 가수 장덕,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 《[[MBC 뉴스데스크]]》, 1990년 2월 4일 작성, 1990년 2월 4일 확인.</ref> 하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알려진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충격과 더불어 자살설까지 나돌며 세간의 관심이 불거졌다. 이후 그녀의 유작 앨범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동생 장덕이 세상을 떠나자 장현은 인터뷰에서 "동생의 죽음이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앞선다"고 고백했다. 봉천동 자택에서 거행된 영결식은 가수 이태원의 사회로 남궁옥분 등 50여명의 동료 가수들의 오열 속에 진행되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 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1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된다. 이 음반은 장덕이 생전 발표한 기존 곡들을 리메이크 하고 있는 형태이지만 <일어나> 등 악보로만 남아있던 미발표곡들도 수록되어 있으며 동명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는 1990년 한해 총결산 가요순위 톱10 안에 들게 된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성남시 성남병원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혼수상태에서 인공호흡으로 연명했지만 8월 16일 오후 4시 20분경 11살난 아들 원이를 남겨둔 채 어머니가 지켜 보는 앞에서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말았다.<ref>{{웹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704533|제목 = ‘불후의 명곡’ 고 장덕 추모 특집…요절한 가수 장덕은 누구?|저자 = 이투데이|날짜 = 2013년 3월 16일|확인날짜 = 2013년 4월 14일}}</ref>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을 접한 대중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 효령대군 . . . . 9회 일치
|별칭 = 자는 선숙(善叔) <br/> 호는 연강(蓮江)<ref>불교 법명이기도 하다.</ref> <br /> 시호는 정효(靖孝)
[[조선 세종|세종대왕]]의 형이자 [[조선 세조|세조]]의 백부로 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조선 문종|문종]], [[조선 단종|단종]], [[조선 세조|세조]], [[조선 예종|예종]], [[조선 성종|성종]] 등 6대에 걸쳐서 장수를 누렸다. [[임사홍]]은 그의 손녀 사위였고, [[이량 (조선)|이량]]은 그의 5대손이며, [[조선 명종|명종]]<ref>그의 종6대손이기도 하다. 세종-세조-예종-성종-중종-명종</ref> 의 부인인 [[인순왕후]]와 [[심의겸]], [[심충겸]]은 그의 외6대손이다.
그는 10세 시절이던 [[1405년]] '''효령군'''에 책봉되었으며 12세 시절이던 [[1407년]]에 해주 정씨 부인(정역의 딸)과를 가례를 치렀고 17세 시절이던 [[1412년]]에 '''효령대군'''에 진책되었다. [[1417년]] 자신의 [[호 (이름)|아호(雅號)]]이기도 한 '''연강'''(蓮江)이라는 [[법명|법명(法名)]]으로 수계를 받았다. 그는 어릴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붓글씨에도 능해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활쏘기에 능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관악산]] 연주봉 남쪽 기슭에는 연주암(戀主庵)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 절벽 위에 [[연주대]](戀主帶:경기도 기념물 제20호)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남쪽 과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연주암이 있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m<sup>2</sup> 정도의 대를 구축하여 그 위에다 암자를 지은 것이라 한다. 이곳에 특이하게도 효령각을 만들어서 효령대군의 영정([[경기도]] [[문화재]] 제81호)을 봉안하고 있다. 찾는 등산객의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url=http://er.asiae.co.kr/erview.htm?idxno=2009042321152119354|제목=연주암 점심공양 300그릇에서500그릇으로 늘어나,관악산 체감경기|성명=이형구 기자|날짜=2009-04-28|출판사=이코노믹리뷰|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550624|제목=이웃과 함께하는 열린 종단 일궈낼 것|성명=문일호 기자|날짜=2009-10-23|출판사=매일경제|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0-05-15}}</ref>
* [[효령대군영정]]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1호, 가로70cm X 세로90cm, 경기도 과천시 연주암 봉안
- 휴먼 토치 . . . . 9회 일치
능력은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어서 온도를 거의 초신성([[슈퍼노바]])수준까지 올릴 수 있고, 자신은 화염에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다. 불타는 인간 형태로 변하여 비행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한 화염인간을 조종할수도 있어서 매애애애애우 초창기에 정체 숨기고 다닐 적엔 불을 조작해서 연기 피운뒤 휴먼토치로 변해서 나간다거나 연기속으로 돌아와 화염 인간을 보내놓고 내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물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약하기도...(...) 실제로 한창 날뛰다가 물 한번 맞고 뻗기도 했다.
[[스파이더맨]]과는 초창기부터 티격태격하며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스파이더맨 그만둘까 고민하던 피터가 쟈니 스톰의 영웅에 대한 연설을 듣고 다시 기운 차려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자니 스톰도 스파이더맨하곤 스스로가 "친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말하기도... 그래도 가끔씩이 둘이 싸우면 아주 난장판으로 싸우기도 했다. 쟈니가 파티장에서 여자들에게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질투한 스파이더맨이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둘이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둘이 협력해서 샌드맨과 싸우기도 하는 등 티격태격하는 라이벌 관계라고 보면 된다. 한번은 쟈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여친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 아닌 평상시의 모습)에게 관심이 있자 질투심에 피터를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도 샌드맨등의 적을 힘을 합쳐 쓰러뜨렸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친구가 되고 나중에 쟈니가 자신이 죽을 경우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의 관계가 된다.
[[댄 슬롯]]이 스토리를 담당한 "스파이더맨 - 휴먼 토치" 미니 시리즈에선 10대 시절부터 피터가 학교 선생이 되고 불가피하게 휴먼 토치에게 정체를 드러낼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있는데 서로 심술부리며 싸우면서도 도와주고[* 일례로 닥터 둠이 휴먼 토치를 얼음속에 가둬두고 없애버리려 하자 스파이더맨은 닥터둠에게 굽실거리며 자신의 숙적인 휴먼 토치를 없애게 해달라고 조아린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닥터 둠은 스파이더맨에게 휴먼 토치를 끝내라고 얼음 전체를 주지만 스파이더맨은 휴먼 토치를 들고 도망간다(...)] 마지막에 피터가 다니는 학교에서 휴먼 토치와 스파이더맨이 악당들을 물리친뒤에 가면을 벗고 대면하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을 얘기한다[* 피터는 쟈니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판타스틱 포와 온갖 모험을 하고 언론의 음해를 당하지 않는 유명인의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했고, 쟈니는 피터에게 자상한 숙모가 있고(쟈니는 고아로 자랐기에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친한 미인 여자친구들이 많으며 미스터 판타스틱 못지 않게 머리도 좋고 사진도 잘 찍는 것을 부러워했다. 이러면서 피터처럼 운이 좋은 걸 파커 럭이라고 불렀다는데, 원래 파커 럭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피터의 삶을 얘기하는 단어이다(...)]. 슈피리어 이후 피터가 돌아온 것을 안 쟈니는 옥토퍼스가 몸을 차지한 기간동안 피터가 놓친 영화, 드라마, 음악등을 USB에 담아주기도 하며 자기가 죽었다 돌아온 시절을 얘기하며 괜찮아 질 것이라고 격려한다.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이나 울버린등이 어디까지나 가까운 "동료"라면 휴먼 토치는 몇 안되는 '''친구'''이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8회 일치
유닛과 기술 등이 대규모로 수정되었다. 이 때문에 대전차포나 로켓포, 자주로켓포 같은 유닛은 사라졌지만, 중포와 같은 새로운 유닛이 생겨나기도 했다. 기술의 경우에는 테크트리의 연도가 19세기 말~1960년대까지 확장되었다.
국가의 혼란도. 장관을 갈아치우던가, 소비재에 필요한 공업력을 할당하지 못했다던가, 핵을 맞았다던가, 병신같은 이벤트가 떴다던가 하면 생긴다. 높으면 군대의 전투 능력, 공업력 효율 등을 다 깎아먹는다. 일정 수준 이상 불만도가 생기면 자국 영토에서 반란군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전략폭격이나 병참타격, 시설 타격, 지상유닛의 전투 등으로 손상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된다. 하지만 핵 맞아서 박살나는건 완전히 박살난거라 다시 지어줘야한다.
해당 지역 유닛의 이동 속도, 보급 효율, 증원 효율 등을 보정해주는 건물. 한번 건설할 때 마다 10%씩 오른다. 운송력(TC)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로켓 관련 연구 속도를 가속시켜주는 건물. 비행 폭탄, 전략 로켓의 생산 속도를 가속시키기도 한다. 미리 생산하고 원하는 프로빈스에 배치할 수 있지만, 한 프로빈스 밖에 지을 수 없다.
이중 맨 위의 두 슬라이더는 정치 체제를 결정한다. 정치 체제가 비슷한 국가들끼리는 친해지기 쉬우며, 정치 체제는 사용 가능한 장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해당 국가가 연구한 기술 중 플레이어가 연구하지 않은 기술의 청사진을 훔쳐온다. 플레이어가 채택하지 않은 군사 교리나 아직 연구할 수 없는 기술의 청사진을 훔쳐오기도 한다.
가끔씩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 디시전을 발동하기도 전에 독일 뒷통수를 까는 경우가 목격된다.
- 김민희(1982) . . . . 8회 일치
이런 영향으로 온갖 욕을 다 먹는 연예인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김민희는 한국 연예계의 역사에서 몇 가지 이정표가 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여러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진행되던 과도기였다. 시기([[세기말]]), 세대([[N세대]]), 문화 형태([[아이돌]], [[인터넷]]의 등장) 등이 교체되어 가던 시기에 70년대생들이 주로 활약하던 [[90년대]] 문화가 지나가고 현재와 같은 아이돌 생산/소비 시스템 하에서 등장한 거의 최초의 아이돌 스타라는 점이 그것이다.[* 위에 언급된 많은 모델 및 배우들도 크게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세기말과 [[N세대]](1980년대생)를 상징하는 인물[* 또 다른 한명을 더 뽑자면, 그 유명한 TTL 소녀 [[임은경]]이 있다.]이자 현재 개념의 아이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매우 안습한 연기력으로 신나게 욕을 먹고, 2년 정도 활동을 중단했다가 [[2004년]]에 《형수님은 열아홉》으로 컴백하여 악역으로 나왔으나, 이마저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또 2년을 쉬었다. 본인도 훗날 인터뷰에서 이 당시 부족한 연기력에 대해 인정하기도 했다. 방송 활동을 쉬면서 계속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듯.
* 연예계 대표적인 패셔니스타다. 큰 키와 마른 몸매의 대명사 격으로, 어떤 스타일과 메이크업도 소화하는 편이라 여성들의 패션 롤모델로 자주 거론된다.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결혼식 참석 당시 입었던 패션이 여성스러우면서도 재치를 잃지 않는 센스로 당시 하객패션 가운데 가장 큰 화제가 되었는데, 후에 당시 착용한 [[블라우스]]가 명품이 아니라 2만원대 보세 제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시 옷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입느냐가 문제다.-- 또 다른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윤여정]]도 김민희에게 "이전에 입었던 옷이 뭐냐? 나도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 김민희는 한 인터뷰에서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6&aid=0001072347|'''“자기들이 부자와 결혼하면 사랑해서 한 거고, 연예인이 그러면 이상한 관계로 말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 평민들도 그런 것처럼, 통장에 든 적금보다 지갑 속의 돈이 더 좋다.”''']]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질문자가 “‘평민’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봉건 사회가 아닌데.”라며 제지하자, 김민희는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고,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김민희는 한동안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았으며, 이를 비꼬아서 ‘'''평민'''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홍상수]]와 함께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같이 있어?~~ 두 사람이 [[중혼]]이 합법인 [[유타 주]]에서 비밀 결혼을 올릴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으나 이것은 오보로, 당연히 [[미국]] 내 50개주 모두 중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거]]라면 모를까 결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후술하겠지만, [[미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Sister Wives>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 [[몰몬교]] 일가의 [[일부다처제]] 허용 신청에 대해, 판사가 "법을 위반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사실상 중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애초에 이 판결은 이후 뒤집혔다. 어차피 재판 자체가 기각되었어야 할 사안이었고, 해당 사건 담당판사 역시 논란이 많은 인물인지라, 판사는 거의 전방위로 비판을 받았다. [[여담]]으로 [[유타 주]] 내의 중혼 금지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라 한다. 애초에 2013년 [[유타 주]] 연방지법의 [[중혼]]관련 판결은 중혼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그간 [[유타 주]]에서 금지되어 있던 부부+[[사실혼]] 관계 여성의 동거를 금지한 유타주 법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홍상수]]와 김민희가 유타 주에 간들 결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애초에 그들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또한 이 판결이 2016년 항소법원에서 무효판결이 나온 것의 근거는 유타주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동거집단이 범죄행위와 연류되지 않을 경우 기소를 하지 않는다는 유타주 검찰청의 정책으로 인해서 사실상 원고들이 피해를 볼 일이 없다는 근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유타의 중혼관련 법이 강해지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이런 법 자체가 [[몰몬교]]에 시달려온 유타주의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고.]
이런 두 사람의 태도 때문에 '''현재 상황은 누가 보아도 정말 간통설이 사실로 보일 수밖에 없게 되어가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혼]] 사유가 김민희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홍상수]]의 부인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홍상수 본인이 부인은 물론 대중에게도 불륜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여론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고수하기에 간통 의심을 받고 있는 유책 배우자가 소송을 걸어봐야 받아주지도 않는다.[* 최근 파탄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건 한쪽 배우자가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이혼을 안 받아주거나 관계 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정도로 자녀나 가정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졌을 때나 인정한다. 현재 홍상수 감독은 몇 년째 집을 떠나 있어 가정을 착실하게 보살피고 있다고 보기는 힘드므로 성립하기도 어렵다.]
2017년 2월 17일,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에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홍상수와 김민희의 이야기를 베이스로 만든 영화인 것과는 관계 없이, 요즘 작품의 퀄리티가 물이 오른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고, 결국 김민희가 해당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세계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연기 경력으로만 본다면 강수연, 전도연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에 관련하여 [[탈덕|마음이 떠난 팬들은 다 떠나고]] 남은 팬들은 초연한 자세로 받아들이면서 홍상수 감독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팬으로써 남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지지인지는 둘째로 치고 [[베를린 영화제]]가 둘의 도덕성을 별개로 예술성만 평가한 것처럼[* 서양 특히나 유럽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적인 행보는 둘째로 치고 김민희라는 영화배우에 대한 팬심을 유지하기로 한 듯 보인다. 그래서 그 규모는 많이 줄었으나 남아있는 인원끼리 리뷰북을 제작하는 등 조공을 바친 모습을 보였다.
- 김수용(코미디언) . . . . 8회 일치
제1회 [[한국방송공사|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7기 취급.[* 감자골 이적 사태로 공식적인 기수명단에서 제외된 상태지만 선배들의 [[괘씸죄]] 때문이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이라 최근엔 사실상 그런 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같은 방송사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도 잘 받고 있고...][* 김수용은 감자골 사태가 일단락되고 난 후 1994년부터 각종 [[한국방송공사|KBS]] 코미디프로에서 활동했으므로 사실 기수명단에서 제외랄 것도 없다. 1996년 코미디 일번지에서 신세대 동작그만이라는 코너에 주연급으로 나오기도 했고, 특히 1998년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유재석과 함께 귀농일기라는 코너에 공연하기도 했다. 게다가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11기로 들어온 [[김숙]]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방송공사|KBS]]에 복귀한 이후로는 코미디언실에서 엄연히 선배로 대접 받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개그계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등과 비슷한 세대의 [[개그맨]]이며 갈갈이 패밀리([[박준형(코미디언)|박준형]], [[정종철|옥동자]], [[김시덕]])나 옹달샘([[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처럼 김수용을 포함한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까지 넷이서 "감자골"[* 팀명은 4명 다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감자에서 따왔다고...그러나 2008년 12월 20일 방송 된 명랑히어로에서 김국진을 제외한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은 강원도와 상관 없는 강원태생이라고 말했다. ]이라는 팀으로 활동했었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비교적 콩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흔히 소재는 좋은데 잘 살리지 못하는 류) [*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비중이 거의 없다든지 단역으로만 나오던 급은 아니었다. 1996년 토요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마법의 디스켓이라는 코너에 단독으로 주연을 맡을 정도로 나름 비중이 있었다. 확인큐 베일을 벗겨라나, 비디오 챔피언 같은 예능 프로그랭의 서브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만 동시기 신동엽, 김용만은 진행, 박수홍이나 김국진은 예능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며, MBC와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에 묻혔을 뿐이다. 1995-1997년 사이 SBS에서는 코미디 전망대와 웃으며 삽시다, MBC에서는 오늘은 좋은 날과 테마게임이 있었지만 [[한국방송공사|KBS]]는 한바탕 웃음으로 폐지 후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없이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중에 MBC로 이적하면서 예능 MC로 갈아타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각종 예능에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세대의 예능 MC들이 으레 그렇듯 배려형 MC 스타일이였다. 특유의 진한 [[다크서클]]도 트레이드 마크. 그래서 별명이 팬더다.
주변 연예인들에 의하면 사석에서 이만큼 웃긴 개그맨이 없었다고, 그리고 꽤나 범상치 않은 독특한 마인드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똥군기]] 항목에도 언급되어 있는 사항이지만 그 살벌했던 코미디언 세계에서 선배가 내리갈굼하는데도 하는 척만하다가 얻어터졌으면 터졌지 후배에게 똥군기를 부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숙]] 등의 후배들과도 절친했다고 한다. 김수용의 토크 레파토리를 보면 동기들과 놀러다닌 것과 후배들과 놀러다닌 에피소드가 꽤 많다. 하술할 슬픈 사기도 인성이 너무 좋아서 당한것이나 그래도 동기나 후배를 잘 챙겨준 덕에 2010년도 부터 방송에 재기했을때 자리잡고 있던 후배들이 여러 곳에서 불러 주었고 성공적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주식에도 손을 댔었는데, 주식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초반에 뭣 모를 때만 손해를 좀 봤고 나중에는 어느 정도 수익을 얻었다는 듯. [[SBS CNBC]]에서 아나운서로 여러 주식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나중에 [[매직아이]]에서 출연해서 주식으로 1억 벌려면 2억을 투자하라면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정보'의 위험성과 주식방송에 출연하는 주식 전문가를 예를 들면서 주식의 허상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55316|#]] 참고로 2012년에 주식방송에서 짤렸을 때 김수용의 다크서클을 보고 윗분들이 보기에 하한가 느낌 같아서 짤렸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2016년에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출연했는데, 과거 [[미남]] [[개그맨]]으로까지 불렸었는데[* [[파일:감자골_리즈시절.png]][br]미남으로 유명하던 시기의 외모는 지금으로서는 연상도 되지 않는 수준.] 근 몇 년새 살이 부쩍 불어서 [[유재석]]에게 자기관리 부족이라고 [[디스]]당하기도 했다. 실제 위에 프로필 사진으로 쓰인 2012년 라디오 스타 출연 당시와 비교해서도 현재는 꽤나 살이 찐 상태. 몸무게가 세 자리 가까이 육박한다고.
- 김준현(코미디언) . . . . 8회 일치
|| '''출생''' ||<(> [[1980년]] [[11월 16일]] ([age(1980-11-16)]세)[br][[대한민국]] [[강원도]] [[춘천시]][* [[한끼줍쇼]] 83회 춘천편에서 전화연결을 통해 춘천에서 태어나 세살 때까지 살다가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
유난히 땀이 많은 편이어서, 코너가 끝날 때쯤이면 땀으로 세수를 한 듯한 모습이 되는 것이 특징. 심지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땀을 흘린다'''[* 인간의 조건 1화 참고.]! 함께 코너를 하던 [[허경환]]은 이 형도 코너 준비 그렇게 열심히 안 하는데 땀 때문에 작가들에게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받는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 본래 [[1박 2일]] 시즌 3의 새 멤버로 합류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스케줄을 조정하지 못해 땜빵(...)으로 소속사 사장이기도 한 [[김준호(개그맨)|김준호]]가 대신 들어가게 되었고, 오히려 큰 팀 케미를 불러 일으키며 고정이 되었다. 당시 라이징 스타이기도 했지만 버라이어티 예능에서는 사실상 초보라고 할 수 있는 김준현이 들어갔었다면 어찌 되었을 지 모르지만, 김준호 합류 이후의 1박 2일을 보면 오히려 김준호가 대신 들어간 것이 다행.[* 김준호가 없었다면 프로그램 전체의 수위가 조절되지 않거나 예능적 재미가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런닝맨|옆 동네]]에서 시전했다 욕을 바가지로 먹은 옷 벗기기도 김준호가 개콘에서의 경험을 살려 적절한 리액션으로 콩트로 받아주기에 1박 2일에선 적절한 웃음요소로 쓰일 수 있었다. 또한 [[캐릭터]]가 겹치는 [[데프콘(가수)|데프콘]]은 다년간의 예능 출연 경험을 살려 분위기가 과하면 끊거나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데, 당시 기준으로 예능 초보였던 김준현이 이같은 역할을 잘 해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예능 경력이 쌓은 지금이야 잘 하겠지만...]
* 2015년 먹방, 쿡방이 대세가 되며 프로 먹방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정 방송인 [[백종원의 3대 천왕]]과 [[맛있는 녀석들]] 2개 외에도 각종 쿡방, 먹방 프로그램 게스트 섭외 1순위이며 식품 관련 CF도 꾸준히 들어온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고수(채소)|고수]], 삭힌 [[홍어]] 등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도 다 잘 먹는 편이다.] 많이 먹기도 하지만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을지,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지에 대해 연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남다르기 때문.[* 실제로 [[중학교]] 시절부터 집에 오면 [[라면]]을 끓이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시도해보는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다만 라면 끓이는 정도를 제외하면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게시판을 보면 방송을 보고 다이어트를 포기했다던지, 장 수술후 입맛이 없어서 고생이었는데 방송을 보다가 침이 나와서 깨끗이 나았다던지 하는 반응이 많은데 그걸 보면 그렇게 뿌듯하다고 한다.
* 하지만 이 검사에서 근육량이 높다고 나오기도 했지만 혈액검사 상에서는 확연한 당뇨[* 당화혈색소 8.2로 나왔는데 6.5이상이면 의학적으로 당뇨이고 7이상이면 어느정도 증상도 있는 당뇨이고 8이면 약을 먹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나 김준현이 1980년생임을 생각해본다면 꽤나 관리가 필요하다.]로 나왔다. 방송이라 그런지 의사가 관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만 했지만 사실 김준현의 상태는 약을 먹지 않으면 안되는 수준이었다. 방송에서 오히려 의사가 적나라하게 진단하기 그래서 그런지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고 저정도는 정상이구나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 다만 근육량에 있어서 이전에도 뒷태가 유민상 등 다른 비만 개그맨들과는 달리 역삼각형 체형에 승모근 등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고 복부보다 가슴쪽이 더 튀어나온듯한 모습들이 인간의 조건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의 상의 탈의에서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이러한 체형은 백두급 씨름선수, [[스트롱맨]] 등에서 흔히 볼수 있으며, 실제로 김준현의 경우 [[강호동]] 등과 더불어 연예계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으니 관리를 잘한다면 괜찮아 질수 있다.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확실하며, [[보디빌딩]]식의 트레이닝보다는 [[파워 리프팅]]식의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의 자격]] 철인 3종 특집에서 [[송일국]]과의 무릎씨름 대결에서 평소 연예계에서 스포츠 매니아로 유명한 [[송일국]]을 가볍게 발라버리기도 했다. 애초에 엘리트 체육인 출신인 사람과 스포츠 애호가인 일반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지만. --체급이 다르잖아 체급이..----물론 김두한하고 싸우면 승부는 알 수 없다...--
- 몽키 D. 루피/작중행적 . . . . 8회 일치
이런 무모함이 흰 수염의 마음에는 제법 들었고 또한 에이스를 구출하려는 공동의 목적이 있기에 에이스 처형을 앞당기려는 해군의 계획을 흰 수염에게 말해주기도 한다. 어쨌든 흰 수염 해적단의 엄호와 함께 적진으로 돌진해 나간다. 루피가 전장에 나서자 [[센고쿠(원피스)|센고쿠]]는 루피가 혁명가 드래곤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그도 위험 인물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이어서 전세계에 생중계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거대한 전쟁 속에 단지 위대한 항로의 반을 돈 해적들 중 [[루키]] 취급을 받는 정도에 불과한 루피가, (원군은 있었지만) 동료는 아무도 없이[* 사실 루피가 동료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런 경우는 동료들과 일정 거리 내에서 흩어져서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동료들과 어떠한 협력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홀몸으로 싸운 것은 정상결전이 처음이었다.] 단신으로 뛰어 든 그야말로 태풍 속에 개미 한 마리와도 같은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남자인 흰 수염과 그의 해적단 2번 대대장인 [[포트거스 D. 에이스]]가 죽은 이 전투에서, 그것도 해군 3대장과 한 번씩은 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고 살아남았으니, 루피의 천운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참전 당시부터 루피는 임펠 다운의 연이은 싸움에 의한 데미지와 피로, 결정적으로 마젤란의 독에 죽다 살아나 며칠간의 회복기가 필요한 것을 이반코프의 텐션 호르몬으로 간신히 버티는. 즉 쓰러져야 정상인 몸을 반 근성으로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봉에 서서 대장들과 겨루고 에이스 구출까지 하는 활약을 했으니 사실 '개미'로 치부될 전력은 아니었다. 또한, 스모커와 같은 자연계 능력자가 아닌 한, 루피가 그렇게 적에게 밀린 적은 없고 네임드가 나서지 않는 한 꽤 날뛴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어도 거의 쓰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의 루피는 거인족 중장인 호리모 중장을 기어3로 한방에 쓰러뜨렸기에 패기는 못썼지만 적어도 거인족 중장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거인족 중장들 치고 좋은 꼴 본 놈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에 이 전투가 전세계에 생중계되고, 비밀로 해야 했던 루피의 혈통까지 알려졌기에 차후 루피의 행보는 이전과는 다르게 될 것이다.
이후 동료를 찾으려 섬을 떠날 때, [[실버즈 레일리]]를 만난다. 레일리는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변한다고 충고하고, 루피에게 무슨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마린 포드'를 '또 다시' 습격하는 것으로 해군과 초신성은 이를 마린 포드에 있는 '옥스벨'[* 이 종은 옛날에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이며 그 시대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이라는 종으로 '신시대의 16타종'[* 해군 관습으로 옛날 이름을 날렸던 군함 옥스로이드 호에 달려있던 신성한 종인 옥스벨로 한 해의 끝과 시작에 한 해의 감사에 종을 8번을 울리고, 새로운 해를 맞아 종을 8번을 울린다. 합쳐서 16번을 울리는 관습으로 시대의 끝과 시작의 선언을 알리는 선언식이다.]을 행해 울렸다는 것과 꽃다발을 던지며 묵도를 한 행동으로 미루어 이번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의형제인 에이스를 개인적으로 애도했다. 그리고 흰 수염이 죽어서 구시대는 끝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의지 표시인 것으로 추측한다.[* 물론 [[해적왕]]이 목표라서 본래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루피답지 않은 사건을 일으켜 위화감을 느낀 동료들에게 뭔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묵도하는 루피의 오른쪽 팔에 3D2Y 문신(혹은 그림)이 있는데 3D에 X자가 그려져 있다. 사실 그 내용은 3 Day(X) 2 Year로 샤본디 제도에서 배의 코팅을 맡기고 3일 뒤에 만나자고 한 것을, 2년 뒤에 만나자고 정정하는 것으로 신문을 본 동료들이 루피가 보낸 메시지를 알아채는 모습이 나온다. 여담으로 S에 X자를 치고 AS(X)CE라고 적혀있는 에이스 문신과 위치가 같고 모양새가 흡사하다. 덕분에 에이스를 애도하는 장식처럼 보인다. 3D2Y라는 단어를 괜히 감추려는 레일리의 지혜로 보인다. 그 후 행보는 2년 간 각자 수련한다고 추측된다(현 전개로는 신세계는 완전한 지옥으로 나오며, 또한 지금 동료들은 각자 누구나 한명씩은 스승, 혹은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므로 가능성이 꽤 높다.).
601화에서 정체가 드러나면서 [[파시피스타]]와 [[센토마루]]와 전투에 들어갔는데 파시피스타의 레이저 빔을 가볍게 피하며 몸에 부담이 가는 부작용을 최소화 혹은 없앤 부분 기어 2(세컨드)를 사용한다. 이때 예전처럼 다리를 펌프질하는 게 아닌 한 팔만 기어를 발동했다. 그리고 고무고무 JET 총(피스톨)을 사용해 파시피스타의 머리를 땅에 박아놓으면서 단 한 방에 파괴해 버리는 등 미칠 듯한 [[간지폭풍]]을 보여준다. 이때 센토마루는 루피가 무장색 패기로 팔을 강화시킨 것을 알아차렸다.--역시 2년동안 수련해서 강해졋다고 해도 패기도 없이 팔 하나로 파시피스타를 파괴하는건 무리인가보다(...)--
그리고 상황을 디테일하게 보면 비눗방울이 있어서 전투가 가능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전투가 '가능했다' 뿐이지 지상과 같은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었던 상황은 절대로 아니다. 작중 묘사를 보면 비눗방울 속에서 짱박혀있으면 몰라도 밖으로 팔을 빼서 공격할 때마다 물에 빠졌을때와 같이 힘이 빠져나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호디가 비눗방울 속으로 얌전히 머리를 넣어주지 않는 한 루피는 공격할 때마다 지속적인 체력감소를 감당해야 한다. 더불어 수중이기 때문에 당연히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체는 물론이고 제대로 공격을 회피하는 동작마저 취하기 어려운데 상디같은 경우 블루 워크[* 물속에서 사용하는 월보]를 사용하기 위해 비눗방울 속에서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렇다. 어찌어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너무 빨리 움직이면 비눗방울이 제대로 못 따라온다.(…) 게다가 큰 공격을 할 때마다 비눗방울 내부의 공기도 감소하고, 루피 피통이 아무리 커도 비눗방울이 터지면 게임 끝이라는 간접적인 패널티까지 있어 심리적 압박도 상당하다.
696화에서는 로의 회상에서 자신이 사황을 모두 무찌르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것 때문인지 로는 누가 이용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또한 로가 카이도를 먼저 무너뜨리자라는 말에 샹크스도 쓰러뜨리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패륜]]이니 뭐니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그러나 루피는 해적왕이 되는 것이 목적이며, 그를 위해서는 사황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니 당연한 선택이다.[* 루피는 이미 알라바스타 시점에서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는 에이스와도 싸우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샹크스를 쓰러뜨린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샹크스를 이김으로서 그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함일 뿐이고, 사황인 빅맘, 카이도, 검은수염은 루피가 쓰러뜨려야 할 이유가 있는 상대다. 빅맘은 어인섬 문제, 카이도는 로와의 동맹 때문에, 그리고 검은 수염은 말할 필요도 없는 악연의 적.[* 이게 아니라 해도 해적왕이 목표인 루피이고, 이들이 조용히 루피가 해적왕이 되도록 보고 있을 인물들도 아니니 어떤 형태로든 결국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 샹크스는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정신적인 스승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니 만큼 루피가 넘어야 할 진정한 산이라고 할 수 있다.
770화에서는 '''베라미의 무장색 경화 공격을 피하지 못해서''' 복부를 무장색경화 시켜서 막았음에도 '''피를 토한다.''' 일부러 맞아준 것인지 피하지 못한 것인지는 다음 장면이 나와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방어를 했는데도 충격을 받는 모습은 루피의 실력을 평가절하할 장면이다.[* 단 루피의 경우 무장색이 특기인 조로나 견문색이 특기인 상디와는 달리 패왕색이 특기라고 한다. 패왕색의 패기는 다른 패기들과는 달리 단련이 불가능하고 현재의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최대 위력이 정해지는만큼 패왕색의 패기가 특기라는 것은 루피의 무장색은 현재 루피의 실력에 비해서 성취가 낮은 편에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어인섬 때도 무장색 패기가 약해서 "아직 내 패기로는 이 정도 공격을 막을 수 없어."이라는 대사를 하기도 했다.]
784화에서 드디어 기어4가 등장. 명칭은 '''기어4 바운스 맨'''. 무장색 패기를 이용해서 탄력을 극한으로 강화한 모습이다. 고스트 루피를 연상시킬 정도로 몸집이 커지며 무장색으로 강화된 부분이 문신처럼 보인다. 이 상태에서는 신체를 몇 단으로 압축, 발사하는 것으로 강력한 파워와 놀라운 스피드를 겸비할 수 있으며 육식의 월보처럼 허공을 차며 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무고무 총에 추적기능이 추가되어 도플라밍고의 움직임을 쫓아가 명중시키기도 한다.~~올레인지 공격?~~
- 손담비 . . . . 8회 일치
소속사에 들어가서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의 시트콤 《[[논스톱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준표도 담비도 출발은 단역 아이돌 스타 무명 시절 살펴보니 |url = 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출판사 = 스포츠서울 |저자 = 나지연 |날짜 = 2009-05-03 |확인날짜 = 2009-09-02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91011100530/http://www.sportsseoul.com/news2/entertain/hotentertain/2009/0503/20090503101040100000000_6928737571.html# |보존날짜 = 2009-10-11 |깨진링크 = 예 }}</ref> 이처럼 원래 손담비는 가수보다 배우가 꿈이었으며 기획사에 들어간 계기도 사실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ref name="news">{{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원래 배우가 꿈, 연기 욕심 많다”(인터뷰③)|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4161748501002|출판사=뉴스엔|저자=유현진, 정유진|날짜=2009-04-17}}</ref> 2004년부터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크럼핑을 배웠다.<ref>{{뉴스 인용 |제목 ="내 이름은 손담비, '몸치'였던 나의 이야기 들어볼래?"|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DCD=A606&newsid=02086086583165328&OutLnkChk=Yl |출판사 =이데일리|저자 =박미애|날짜 = 2007-06-25|확인날짜 = 2009-09-02}}</ref> 크럼핑을 배울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국의 안무가 브라이언 프리드먼과 크럼핑 댄스의 창시자 릴C 등 유명인사들에게 배웠다.<ref>{{뉴스 인용|제목=미쓰에이 연습생 시절 보다 더 파워풀한 '손담비 연습생 시절' 영상|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출판사=ENS|저자=뉴스팀|날짜=2010-12-31|확인날짜=2010-12-31}}{{깨진 링크|url=http://ens.vop.co.kr/A00000350063.html }}</ref> 당시 릴C는 손담비에게 "너는 예쁘니까 그냥 연기나 해라"라고 할만큼 재능이 부족했지만, 오랜 연습끝에 춤을 잘 출 수 있게 되었다.<ref name="10아시아"/> 같은 해 2005년에는 CJ 뮤직이 글로벌 프로젝트로 에스블러쉬라는 그룹을 결성해 초창기 멤버로 발탁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 |제목 =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 |url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 =머니투데이|저자 =김원겸|날짜 = 2007-05-06 |확인날짜 = 2014-05-15}}</ref> 2007년 5월에는 [[가희]]와 함께 에스블러쉬 멤버로서 〈It's My Life〉를 발매했고, 미국 [[빌보드]] 핫 댄스 클럽 플레이 차트 2위까지 진입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빌보드 톱 랭크 에스-블러시 멤버였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70506184904367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7-05-06|확인날짜=}}</ref> 하지만 팀 내부 사정으로 솔로로 전향하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
5달 후인 2008년 9월 17일 두 번째 미니 앨범 ''[[Mini Album Vol.2]]''의 타이틀곡 〈미쳤어〉의 티저 영상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티저 영상은 공개후 각종 동영상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관심을 받으며 컴백을 알렸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미쳤어' 티저 영상에 팬들의 반응 뜨겁네~ |url=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111539|출판사=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연예|저자=스포츠연예팀|날짜=2008-09-19|확인날짜=}}</ref> 이어 18일에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타이틀곡인 〈미쳤어〉 열풍이 한국에 불었는데, 특히 처음 후렴구부분의 의자춤이 인기를 끌었다. 각종 연예인들은 의자춤 패러디를 했는데, 재일 먼저 배우 [[허이재]]가 패러디를 했고,<ref>{{뉴스 인용|제목= 허이재, 손담비 ‘미쳤어’ 의자춤 깜짝공개 눈길 확~|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0191843251001 |출판사= 뉴스엔 연예|저자=이현우|날짜=2008-10-20|확인날짜=}}</ref> 계속해서 김효진, 신봉선, 양정아, 현영, 노홍철 등이 예능에서 따라했으며, 《[[내 사랑 금지옥엽]]》의 유인영, 《[[수상한 삼형제]]》의 오지은 등 드라마에서도 패러디를 했다. 또한 일반인들도 UCC를 통해 많은 패러디 동영상을 올렸다. 너도나도 다 따라한탓에 급기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쳤어〉 금지령까지 내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 방송가, 손담비 '미쳤어' 이제 그만! |url=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380986|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박재덕 기자|날짜=2008년 12월 22일}}</ref> 2008년 11월 17일에는 [[마이티 마우스 (음악 그룹)|마이티 마우스]]의 싱글 〈[[Family (Special Edition)|패밀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이티마우스, 이번에는 손담비‥'패밀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372273|출판사=네이버|저자=유상우|날짜=2008-11-11|확인날짜=2012-05-20}}</ref> 가수 활동 이외에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우리결혼했어요]]》에 [[마르코 (배우)|마르코]]와 함께 가상 부부로 나와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베스트커플상 수상했다.<ref name="2008MBC"/> 또한 각종 CF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는데, 1년만에 몸값이 3배가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몸값, 1년만에 3배 이상 높아져 '미쳤어' |url= 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0966034|출판사= 조이뉴스24 연예|저자=|날짜=2008-11-12|확인날짜=}}</ref>
EP 활동의 끝난 뒤인 2009년, 첫 정규 음반 ''[[Type-B]]''의 발매로 컴백을 준비했다. 음반 발매와 음원 공개에 앞서 총 3차에 걸친 티저를 선공개하였는데, 2009년 3월 19일 타이틀곡인 〈토요일밤에〉 1차 티저를 공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티저영상, 팬들 반응 뜨거워|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62026|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19 |확인날짜=2010-12-29}}</ref> 이어 20일에는 롤러스케이트 장으로 꾸며진 곳에서 1980년대 디스코풍의 2차 티저를 공개하였는데, 마지막에 '토요일 밤에'라는 문구가 등장에 더욱 궁굼증을 자아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토요일밤에' 2차 티저 공개 이번엔 '롤러걸'|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2844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0 |확인날짜=2010-12-29}}</ref> 23일에는 백발의 손담비가 등장, 마지막 3차 티저를 공개하여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백발' 손담비, '토요일 밤에' 3차 티저 영상 공개 |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340682|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3 |확인날짜=2010-12-29}}</ref> 다음날인 24일 타이틀곡 〈토요일밤에〉 음원이 공개된 후, 폭발적인 상승세로 바로 음원사이트 10위 권에 진입하며 또 다른 손담비 열풍을 예고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토요일밤에' 컴백, 그녀의 '인기몰이' 이미 예견된 수순|url=http://www.maxmovie.com/movie_info/ent_news_view.asp?mi_id=MI0083410074|출판사=맥스뉴스|날짜=2009-03-26|확인날짜=2010-12-29}}</ref> 〈토요일밤에〉는 80년대 디스코 복고풍으로 후렴구부분의 '하늘 찌르기춤'으로 인기를 얻었다.<ref name="하늘찌르기춤">{{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의자춤 이어 하늘찌르기춤 신드롬 일으킨다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503220831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 기자|날짜=2009-05-04}}</ref> 26일에는 첫 정규 음반 ''[[Type-B]]''가 발매되었다. 한편, 〈토요일 밤에〉가 발표된 뒤,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있던 손담비는 2009년 4월 10일, [[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하였고 《[[엠 카운트다운]]》,《[[인기가요]]》 등에서도 1위를 해 그 인기를 실감케하였다. 또한 CF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하여 광고 섭외순위가 0순위라는 말까지 떠돌았고,<ref>{{뉴스 인용|제목=이승기, 손담비…광고모델 섭외 0순위 드러내|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출판사=OBS 연예뉴스|저자=김광선 에디터|날짜=2009-10-23|확인날짜=}}{{깨진 링크|url=http://www.obsnews.co.kr/EnterNews/316308 }}</ref> 연말에는 MTN 2009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여자 CF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토요일밤에〉로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에서 수상을 하였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자 손담비는 [[2009년]] 7월부터 방영된 SBS 월화 드라마 《[[드림 (드라마)|드림]]》에서 박소연이라는 여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거두었고, 연기력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드림' 시청률 울상 손담비, 뉴스타상에 웃었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001011306221001|출판사=뉴스엔|저자=김소희 기자|날짜=2010-01-21 |확인날짜=}}</ref>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손담비는 싱글 "[[Cry Eye]]"로 데뷔했을 당시 안무중 [[크럼핑]]이라는 고난도 댄스를 이용해 아시아의 몇 안되는 춤꾼으로 인정 받았고, 이때문에 "여자 비"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seg1"/> 마돈나의 안무를 담당했던 미스 프리시는 손담비의 춤을 보고 "흑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느낌과 동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도 손색없는 실력이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돈나 안무가 손담비 춤 '극찬'|url=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810204|출판사=노컷뉴스|저자=이지현|날짜=2008-04-24|확인날짜=2012-05-12}}</ref> 그러나, 손담비는 데뷔 때부터 가창력에 대한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특히 2010년 "queen"의 MR 제거 영상으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ref name="아츠"/> 《[[티브이데일리]]》의 유진모는 "손담비의 가창력은 형편 없다. 온통 이펙터로 치장한 보컬은 도대체 사람이 부르는지 기계로 만든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토요일밤에〉에는 가창력 때문에 키를 내려 노래의 맛이 더 떨어졌다. 아이비의 폭발력마저도 없다"고 말했고, 이어 "아이비와 손담비의 음악성을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라고 평가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손담비 아이비 서인영 '섹시 여가수' 성적표|url=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유진모|날짜=2010-06-28|확인날짜=2012-05-12|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7152125/http://tvdaily.mk.co.kr/read.php3?aid=127770505069189002#|보존날짜=2014-05-17|깨진링크=예}}</ref>
또한 데뷔 초부터 [[문지은]], [[선하]], 제이제이와 함께 "포스트 이효리"라는 호칭을 얻으며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선하·제이제이..'제2의 효리' 경쟁 뜨겁다|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801290905146529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08-01-29|확인날짜=2010-11-05}}</ref> 하지만 2008년 말 〈미쳤어〉로 히트를 치며 앞에 세 여가수중 유일하게 인기를 얻은 가수가 되었다. 특히 〈미쳤어〉의 안무인 의자 춤은 손담비를 스타로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탄생' 손담비의 전략은 바로 이것!|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10523482489834&nvr=y|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환횽희 연애패트롤|날짜=2009-01-21|확인날짜=2010-11-05}}</ref> 연이어 2008년 정규 1집 타이틀곡 〈토요일 밤에〉 역시 크게 히트하며 국내 최고의 여자 가수로 자리매김했다.<ref name="Mini 2"/> 이때부터 본격적인 포스트 이효리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효리]] 역시 "손담비, 서인영, 아이비 까지는 기사에서 자신과 붙여 놔도 괜찮다"며 인터뷰중 손담비의 존재감을 인정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효리 대항마` 손담비-서인영은 언제컴백?|url=http://star.mk.co.kr/new/view.php?mc=ST&year=2010&no=190546|출판사=스타투데이|저자=이현우 기자|날짜=2010-04-14|확인날짜=2010-11-07}}</ref> 하지만 손담비는 이효리와 라이벌 구도에 대해 "라이벌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이효리의 내공을 따라갈 수 없다"라며 말하기도 했다.<ref name=Bi2>{{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이효리와 라이벌? 내공 따라갈 수 없어”|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출판사=리뷰스타|저자=홍샘 기자|날짜=2010-09-05|확인날짜=2010-10-12}}{{깨진 링크|url=http://www.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240362 }}</ref>
2009년 데뷔한 [[NS윤지]]는 비슷한 장르와 외모때문에 제2의 손담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NS윤지는 직접 "더 많이 노력해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나 연기력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ref>{{뉴스 인용|제목=NS윤지 "제2의 손담비?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게요"(인터뷰)|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95794|출판사=조이뉴스24|저자=박재덕|날짜=2010-06-02|확인날짜=2011-08-13}}</ref> 프로듀싱을 맡은 [[용감한 형제]]는 "프로듀서로서 제2의 손담비, 차세대 섹시디바로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가수이다"라고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용감한형제, ‘제2의 손담비’로 NS윤지 찜!|url=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출판사=경제투데이|저자=심재걸|날짜=2010-10-20|확인날짜=2011-08-1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08194946/http://www.eto.co.kr/news/outview.asp?Code=20101020181020513&ts=163735#|보존날짜=2014-08-08|깨진링크=예}}</ref> 같은 플레디스 소속이었던 [[헬로비너스]]는 "저희 롤 모델은 손담비 선배님이에요. 일본 등 해외 활동도 하고 계시고,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와 퍼포먼스가 정말 멋지세요. 선배님들의 장점만을 모아 저희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롤모델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헬로비너스 “머리가 불에 타도 족발이 먼저!”…신개념 ‘털털 아이돌’ 등장|url=http://news.donga.com/3/all/20120615/47030992/2|출판사=[[동아닷컴]]|저자=박영욱, 오세훈|날짜=2012-06-15|확인날짜=2012-06-15}}</ref>
- 솔비 . . . . 8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시]] 부곡동 (군포시) (번영로)
[[2006년]] 한국의 대표적인 K-pop 혼성 그룹 [[타이푼 (음악 그룹)|타이푼]]의 메인 보컬리스트로 데뷔하였으며, [[2007년|2008년]] 솔로 음반 'Do it' 을 발매 후 홀로서기에 나섰다. 같은 해 연기도 병행하며 연극과 뮤지컬 등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1년마다 음반 및 음원을 발매하며 꾸준하게 음악을 해왔다.
2010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에 흠뻑 빠지며 화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Trace'의 '공상'을 시작으로 셀프 콜라보레이션(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인 권지안과 솔비가 협업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선보였다. 셀프 콜라보레이션은 2016년 '블랙스완',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초청작가,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까지 총 다섯 작품이다. 특히 솔비는 '하이퍼리즘'(정보와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높아진 기대치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반대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의 부작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솔비가 정의한 용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현대인의 우울과 상처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이퍼리즘-레드'<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9|제목='다양성 가요계' 솔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성=정진영 기자|이름=|날짜=2017년 6월 1일|뉴스=|출판사=한국스포츠경제|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는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https://tv.naver.com/v/1717804 '레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년 3월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 음원을 본인 유튜브채널에만 공개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공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 경기도 한 보육원에 재능기부와 선행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16년엔 '파인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음원 'Find'를 발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펼쳤다. 같은 해 12월엔 '손모아 장갑'을 발표하며 청각·언어 장애인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상처와 동정의 시선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17년엔 '다문화 아동 돕기 후원의 밤'에 참석해 특별 공연과 함께 5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사회적인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솔비는 2014년부터 꾸준히 세월호 추모 그림을 그리며 남다른 애도를 표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 1월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호모커뮤니쿠스, 빅 픽처를 그리다'에 강연자로 출연해 "스토킹 처벌은 벌금 10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솔비가 제안한 해당 법안은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에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으로 확정, '스토킹 처벌법'(가칭)이 제정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076873|제목=스토킹 뿌리뽑는다…벌금 10만원→최장 징역 5년 추진|성=김계연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10일|뉴스=|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530678|제목=강연자로 나선 솔비 “스토킹 벌금 불과 10만원” 지적…피해자 입장 법안 제정 당부|성=이유진 기자|이름=|날짜=2018년 1월 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또한 솔비는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를 발표하며 통해 계급사회를 비판기도 했다. 2018년 6월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859&cid=40942&categoryId=32774 뮤코다당증] 난치병 환우회에도 참석, 가족들에게 응원을 복돋아주기도 했다.
*2018년 '하이퍼리즘' '블루' 경기도 장흥 빌라빌라콜라에서 국내 최초 아트 하우스 콘서트 개최.<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241&aid=0002789255|제목=솔비, 퍼포먼스 페인팅→경매→슈트 제작까지…기획력 빛났다|성=이미현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21일|뉴스=|출판사=일간스포츠|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
- 연정(우주소녀) . . . . 8회 일치
인터넷상에서의 별명은 닮은꼴로 자주 언급되는 연기자 라미란. 부모님도 라미란을 닮은 걸 인정했고, 이젠 이름만 들어도 몸이 반응한다고 한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produce101&no=194322&page=1230&exception_mode=recommend|어린 시절 사진]]. 그래서 모녀관계 의혹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TV에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 본인도 이 별명에 대해 안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장의 야민정음을 합친 '라머장', '머장님'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배성재의 텐에서 이 별명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쪽은 야민정음인지라 방송에서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제작진이 이를 사용해 버렸다.[* [[http://oi63.tinypic.com/mljq83.jpg|#]]] 그러나, '''다이어트를 한 후에는 라미란과 닮지 않았다'''(???) 다이어트 성공후 새로운 리즈를 갱신했다. 라미란 외에는 같은 팀 멤버인 수빈과도 닮았는데, 수빈이 <비밀이야> 활동부터 스타일을 단발로 바꾼 게 둘의 캐릭터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다.
5월 11일 박지윤의 가요광장에 출연해서 씨스타의 <I Swear>를 혼자서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u8lfv4W3Ng4&feature=youtu.be|#]] 같은 날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에서는 정채연의 별명이 왜 댕채냐는 질문에 '''멍청해서'''라고 돌직구를 날리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 김소혜의 볼을 모아 붕어를 만드는가 하면[* 링크의 중간에 소혜의 볼을 잡은 손이 유연정의 손이다][[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kimsohye&no=169117&page=1&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EA%BF%88%EA%BE%B8%EB%9D%BC|#]] 김청하의 앞머리를 매만져주며 멤버들과 활발하게 꽁냥거렸다. 또한 발라드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김도연과 함께 오마이걸의 '한 발짝 두 발짝'의 후렴구를 부르며 청아한 화음을 들려주었다.
우주소녀는 비교적 최근에 데뷔한 데다 중국과의 합작 걸그룹으로 스타쉽만이 아닌 중국 투자자 측에서도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솔로 데뷔를 하지 않는 이상 연정은 데뷔를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연정을 스타쉽이 놓아줄 리 만무하기에, 현실적으로 연정이 걸그룹으로서 데뷔를 하려면 우주소녀에 합류하는게 적당한 방법이긴 하다. 비록 연정의 인기에 빨대를 꽂아 우주소녀를 띄워보려는 스타쉽의 의도가 뻔히 보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중합작인 그룹 특성상 중국 투자자측이 입김을 작용했을 거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주소녀 본체의 인지도나 인기가 연정 개인에게 못 미치는 상황이기에''' 연정 투입으로 우주소녀는 화제성을, 연정은 빠른 데뷔를 할 수 있어 서로 윈윈'''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CLC, DIA, 구구단의 전철을 밟아 우주소녀와 연정 양쪽에게 해가 될 것이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어느쪽이건 컨셉 개편을 어이없어하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2016년 7월 28일 우주 LIKE 소녀을 통해 우주소녀로서 공식적으로 방송에 출연했다. 다만 최종회다보니 방송상의 비중은 없다시피했다. 또한 I.O.I 멤버들과 활동할 때보다 몸을 사리고 있어 우주소녀에 무사히 녹아들어갈지 우려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2016년 8월 10일 방영된 걸스피릿 4회에 다원을 지원사격하러 출연, 마마무의 <넌 is 뭔들>을 소화했다. 방송에 나오기도 전에 걸스피릿 연관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http://dcimg1.dcinside.com/viewimage.php?id=2ab4c22af6c22aaf7aef85e746&no=29bcc427b38b77a16fb3dab004c86b6f113d37b1bcb96f74596c07c47348a17c44487b07c9662c1671ff75596f818e9797dea0e370aa9c87aaddc7bab3971b7329923d|#]] 그러긴 하나 연정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오히려 다원이 묻혔다는 비판이 있다.
2016년 9월 23일 배성재의 텐에 리더 엑시와 함께 출연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jsVX0YY8bm8|풀버전]] 배성재와 눈싸움으로 붙어 80초 가량 눈을 떠서 승리했고, 연관검색어 토크에서는 '라미란', '고민 상담' 등에 대해 얘기했으며, 사이다 보컬이라는 별명에 맞게 사이다 광고 컨셉의 연기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eye돌', '[[장성군|장성]] 독사이다', '제갈광명' 등의 별명을 얻었다. 중간에 스타쉽 오디션에서 불렀다는 이선희의 <인연>을 무반주로 짧고 굵게 불렀다.[[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8965744&rtes=y&startDuration=26.57|#]] 잊을 때만 되면 배텐에 김소혜나 프로듀스 1077 게스트에 의해 언급되어, 채팅창이 광명독사로 도배되고는 한다. 연정이 출연료 주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
* 비글미가 넘치는 I.O.I 내에서도 최고의 비글이라는 멤버들의 증언이 있다. 약간 조증이 있어 차분할 때와 신날 때의 갭이 큰 편인데, 체력적으로는 최유정, 소미에 밀릴지는 몰라도 한번 신나고 흥이 넘치는 순간부터 아무도 말릴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 활발한 소미조차 업된 유연정이 옆에 앉자 '벌써 기를 다 빨린 느낌이다' 고 할 정도니(...)[* 160518자 뮤비뱅크 스타더스 참고] 그래도 그런 유연정의 에너지에 멤버들이 기운을 얻기도 한다고.
- 육성재 . . . . 8회 일치
||<#42B4E6> '''출생''' ||<(> [[1995년]] [[5월 2일]][* 선배가수 [[박상민]], [[정진운]]과 생일이 같다. 선배가수도 [[복면가왕]]에 참여했다.] ([age(1995-05-02)]세), [[경기도]] [[구리시]][* [[http://m.ize.co.kr/view.html?no=2013100623107265729|기사]]를 보면 구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언급했으며, 구리시에서 태어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수정바람. 최근 집사부일체에서 [[구리시]] 에서 성장했다고 언급했다.] ||
아이돌계의 사기캐 중 하나. 잘생기고, 노래도 굉장히 잘하며 연기도 잘한다. 키도 179cm로 큰 편이고 키 외에 전체적인 피지컬도 좋다. 춤도 꽤 잘 추는 편. 예능감도 넘친다.
자기애가 강하다고 스스로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상형이 자신을 닮은 사람--과연 있을까--이기도 하고[* 자기와 닮은 아이를 낳고 싶기 때문이라고.] 자존감이 높아보인다.
각종 똘끼 넘치는 행동과 형들을 스스럼없이 ~~막~~ 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팀 밖으로 나가면 진지할 때 진지한 성격이다. 복면가왕 출연 이후 서서브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에 대해 "서서브라는 말이 정말 좋은 것 같다. 서브로도, 메인으로도 올라갈 수 있지 않나"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 [[BTOB]]는 원래 아이돌이 아니라 5인조 밴드 그룹으로 데뷔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연습생 때 리더를 몰랐다고 라디오에서 밝히기도 했다.
* 낚시를 좋아한다고 꾸준히 언급했다. 아버지께 배웠다고. 지금도 시간이 나면 ~~전동 킥보드를 타고~~ 한강에 가서 낚시를 한다고 한다. 여유로울 땐 아예 낚시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낚시인이어야 알법한 용어들을 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낚시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하고 낚시tv에 출연하는 게 목표다. 이후 낚시tv 스포츠피싱 디코드의 일일 리포터가 되었다.~~소원성취~~ 낚시를 하면 여러가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한다.
집에서도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히트제조기에서 빅병의 리더를 뽑는 자리에서 토끼의 눈 붙이기 시합(...)이 있었는데 제일 꼼꼼하게 꿰매서 칭찬을 받자 뿌듯하게 '저희 엄마가 퀼트하시거든요'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팬이 준 잠옷 모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가자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서 직접 귀를 꿰매다가 매듭 짓기에 실패하자 "엄마 나 까먹었어 ㅠㅠ!!" 하는 모습을 보면 사춘기 시절에도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듯. ~~바느질도 배우고~~ [[https://youtu.be/jvTZOTeemZg|#]]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먹는 것이 꿀리면 인생이 꿀린다', '일순간의 창피함이 영원한 이득이다', '너보다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설령 니가 바보 같이 보일지라도', '오늘 니가 흘린 땀은 먼훗날의 눈물이 나온거다' 등.
- 이지아(배우) . . . . 8회 일치
|| '''본명''' ||<(> 김지아,[* 여러 번의 개명을 거친 이름이라고 한다.] 개명 전 이름 김상은[* 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순흥이다.][* 미국에서 Shea Lee(시아 리, 셰이 리,[* 외래어 발음규칙에 따른 정확한 발음] 세아 리)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
이지아의 사촌동생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냥 세금 좀 많이 내면 친일이란 거냐고 주장하며 자신의 할아버지는 나쁜 친일파가 아니었고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또 한 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금 많이 내면 친일파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따지면 당시 재력가는 모두 일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일 것이다.~~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만~~ 김순흥의 경우는 자발적인 기부금이었다는 것에서 친일색을 띠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더해서 반일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자금도 지원했으며, 강제 징병이 실시된 이후로는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명을 내놓고, 일본 패망 직후에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석해 친미 성향, 혹은 친일에 대한 세탁 등을 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서 친일파가 아니라면, 참 서글픈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샤를 드 골]]과 프랑스의 처우와 비교되는 모습이다.] 팬들 중 몰상식한 일부 사람들도 이런 논리를 주장하거나 이후에 육영사업에 기여했으니 죗값을 씻은 거~~100억 원 꿀꺽하고 1억 원 기부하면 깨끗한 거냐~~라는 둥 지나친 두둔을 하여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 '정리된 것'을 클릭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순흥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대형 카페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되기도 했고, 블로그에 올라온 글도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당해 게시 중단된 사실이 있다. [[http://nila.tistory.com/133|*]]
소송건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가 의아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55억이나 청구한다고 해서 '''전액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고''',[* 모 재벌의 황혼이혼사건에서는 1000억 청구해서 50억, 즉 5% 받았다.] 설령 다 받아낼수 있다 쳐도 이미 여배우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그녀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할까라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것. 게다가 철저하게 자신의 신상을 숨겨온 그녀가 이런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신상이 전혀 안 드러날 거라고 믿을 수가 있나'''라는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거액의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자연히 신상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광고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아의 해명글에서 위자료 소송이 돈 때문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태지가 빠른 속도로 재혼을 하면서 서태지가 재혼을 위해 먼저 이지아에게 정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설이 신빙성있게 돌고있는 상태. 이지아에게도 한국에서의 연기생활을 이어가려면 어떻게든 털어내야할 문제이기도 했고...
[[디아블로 3]] 공식 홈페이지에 [[리쌍]], 작곡가 [[윤일상]]과 함께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http://kr.battle.net/d3/ko/blog/1468860/회상_디아블로를_추억하며-2012_05_03#blog/|"회상: 디아블로를 추억하며..."]]. 실제로 [[왕십리역]]에서 발매기념 사인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근데 서태지의 자동차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디아블로]]였다--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 산하의 최고급 스포츠 승용차 브랜드인 '''[[마세라티]]'''가 이지아 때문에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지아는 [[마세라티]]의 플래그쉽 [[FR(자동차)|후륜구동]] 대형 세단인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5세대의 오너(사실은 리스차량)인데, [[2013년]] 4월의 어느 날에 음주한 후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이동하다가 논현동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현대 쏘나타|쏘나타]] [[경찰차]]와 접촉 사고를 내는 바람에 [[마세라티]]가 더 알려졌다.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지라, 실제로 [[마세라티]]/[[페라리]] 수입사인 FMK 측에서는 이지아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 접촉사고 때문에 [[마세라티]]의 인지도 상승에 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본의아닌 노이즈가 있고 난 후 출시되었던 [[마세라티 기블리|기블리]], 6세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콰트로포르테]]의 판매량이 늘어 [[마세라티]]의 국내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고마워요 이지아~~
2016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유창한 영어실력를 발휘하기도 했다.
- 최재연 . . . . 8회 일치
'''최재연'''(崔在延, [[1974년]] [[7월 29일]] ~ ,[[서울특별시]])은 [[대한민국]]의 전직 경기도의원이다.
* 2010.07 ~ 2014.06 제8대 경기도의회 의원
* 제8대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위원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제5회 지방 선거]]||[[경기도의회|경기도의원(고양시 제1선거구)]]||8대 (민선 5기)||[[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막대|진보|5|3|7|2}} 53.72%||21,133표||1위||[[파일:지방의원당선.png|25px|경기도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제6회 지방 선거]]||[[경기도의회|경기도의원(고양시 제1선거구)]]||9대 (민선 6기)||[[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막대|적|1|2|5|7}} 12.57%||6,607표||4위||낙선
- 하정우(영화감독) . . . . 8회 일치
과거가 암울한 인물이기도 하다. 20살에서 21살로 넘어가던 시점에 부모님이 이혼했는데, 어릴 적 부터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가 홀로 기르다시피 했고, 결국 어머니가 젓갈사업이 망한 것을 계기로 아예 이혼을 해버리게 된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 부도가 났고 전 재산을 압류당한 후,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차 1대를 가지고 '''7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일만 해서 빚을 갚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추후 연기 과외를 상당히 많이 해서 입시연기과외 세계에서 유명인사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기초군사훈련이 끝나고, 연극 전공자여서 그랬는지 국군 홍보 관리소에 [[자대배치]]를 받게 되는데 군대 동기가 개그맨 [[강성범]]이고, 군대 선임이 [[무한도전]]에도 종종 출연했던 [[최대웅]] 방송작가였다. 복무가 1년 정도 지나 상병이 된 2000년 초에 호주에서 하는 국군공연으로 파병가자고 속인 강성범 때문에[* 원래는 육각수 멤버 [[조성환]]이 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안 가게 되어 아무것도 몰랐던 하정우가 가게 된 거라고..--안습--] 내전 중인 [[동티모르]] 원주민 위문 국군공연단으로 배를 타고 해군들과 함께 3개월 간 파병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가는 데만 17일이 걸렸고 멀미 때문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대신 원래 긍정적인 성격 탓인지 본인 말로는 가서 [[바나나]]도 많이 먹고, 강성범과 만담 공연도 하면서 평소에 강성범의 [[수다맨]][* 당시 강성범은 제대 후 개그콘서트에서 이 수다맨 코너 + 봉숭아 학당 코너의 연변총각 개그로 개그계 스타로 떠올랐다.] 연습을 돕기도 하는 등 나름 재미있게 적응했다고 한다.
[[2006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김기덕 스타일이 대중에게는 크게 먹히는 스타일이 아니라 호연을 보여 줬다는 본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김기덕과는 《[[숨]]》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같은 해의 영화 《구미호 가족》에서는 구미호 4가족의 똘끼 넘치는 장남으로 출연했지만 나머지 셋보다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2007년]]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Never Forever)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영화의 작품성과 하정우의 내면 연기로 주목받았다.
[[2011년]] 연말,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2011년]] [[5월]]에 열린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작년도 수상자로서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와서 2년 연속으로 수상하게 되면 국토대장정을 떠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황해(영화)|황해]]> 하정우.'''' 라고 발표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진짜로 갔다.'''[* 이 당시 그와 함께 시상자로 참가했던 [[하지원]]은 그 이후로 공약에 대해서 묻지 않는단다. ~~하정우처럼 했다 또 그러면?? 그 땐 하지원도 가야지.~~]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국토대장정 하는 소재로 --반쯤 다큐인 영화-- '577 프로젝트'가 [[2012년]] [[8월 30일]]에 개봉했다. 제목이 지어진 배경은 이 프로젝트를 --작당-- 계획한 장소가 압구정의 '577술집'[* [[영화]]에서도 회의 장소로 나온다. 하정우의 단골집이기도 하다.]이기 때문.--577km 아니었어?--
하정우 라이트 팬이 신분을 속이고 친구 대신 다녀온 캠프 인증글이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에 올라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각종 사이트로 배달되며 화제가 된 사건.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군도 촬영 전 팬미팅 성격의 캠프를 주최하였다. 하정우와 정경호를 비롯한 후배들 대거 참여(전날 롤러코스터 크랭크업을 했다고) 피의 선착순 댓글을 뚫고 캠프에 당첨된 하정우 팬 80명은 경기도 모처 살얼음이 낀 논두렁 위에서 팀을 나누어 단체 티셔츠를 입은 후 각종 게임을 하였다. 퀴즈 1등 상품은 하정우 그림액자(하정우가 직접 시상). 참가 후기에 따르면 하정우는 동네 형과 싱크로율이 100%라는 이야기가.. 본인이 질식할 만큼 말보로 화이트를 석션했다카더라.. 80명의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털털하게 소맥을 마는데 이 때 머리 크기가 배우치고가 아니라 일반인 치고도 크고 아름다운 사이즈라 카더라. 마지막날 1대1 딥포옹 셀카 촬영 등 지옥의 팬서비스. (하정우에겐 호된 경험이었는지.. 그후 2차 캠프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이후 하정우 캠프에 대타로 참가한 글쓴이는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마다, 하정우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정우 앞에서 단체 줄넘기 하던 자신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캠프 이후 하정우가 나오는 영화를 잃었다는 안타까운 썰이 있다.
* 자신의 연기 경력을 늘리려는(?) 시도를 가끔 한다. 데뷔를 대학 때 출연한 연극이나 [[아르바이트]]로 출연한 CF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정식 데뷔라 볼 수 없다. 실제 프로 배우의 길로 가지 않는 사람들도, 대학시절 연극전공으로 연극을 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CF출연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연극판에서 오래 있었던 것 같은 인터뷰를 하는데 하정우는 극단 소속 출신이 아니라 20살 때부터 이미 소속사[* 하정우의 어머니가 고3 시절쯤에 연예기획사에 소개해줬다고 한다.]가 있었고, 연극생활 기간 또한 대학 재학 시절, 군복무 시간과 영화 데뷔 시기를 맞춰보면 가당치 않다. 제대 후에 소속사 중개를 거쳐 작은 연극공연 한두 작품을 했을 수는 있겠으나, 이미 제대 후 영화, 드라마 오디션을 많이 보고 단역으로도 종종 출연[* 물론 100번 넘게 봤다고 하니 그에 비해 캐스팅된 횟수가 적은 건 사실이다.]하던 그가 연극계에 오래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 힐링캠프에서는 세 살 때부터 연기에 관심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그냥 어린 아이가 우는 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걸 연기로 연결짓는 건 귀여운 자기허세 쯤으로 봐두자.
대표적인 대두 배우로도 유명하다.[* 머리 크기가 작은 연예계에 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는 반론도 있으나, 실제로 본 사람들에 의하면 일반인들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큰 편이라고 한다.] 덕분에 키가 184cm가 넘는 큰 키인데도 그렇게 안 보인다. [[지못미]]. [[선글라스]]도 하정우가 끼면 그냥 '눈알 가리개'로 변신할 정도다. 하지만 팬들은 "좋은 건 크게 봐야 돼" 라며 하정우의 큰 머리를 좋아하는 분위기이다. 디씨의 하정우갤에서는 특별히 하정우의 얼굴 크기에 어울리는 큰 선글라스를 따로 주문제작해서 선물하기도 했다.
- 한병주 . . . . 8회 일치
| 사망지 = {{KOR}} [[경기도]] [[수원시|수원]]
| 거주지 = 조선 [[충청북도|충청도]] [[청원군|청원]] <br/> 조선 [[청주시|충청도 청주]] <br/> [[대한제국]] [[한성부]] <br/> 대한제국 [[시흥시|경기도 시흥]] <br/> [[일제 강점기]] [[경성부]] <br/>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 [[신의주시|신의주]] <br/>[[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 시|상하이]] <br/>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br/>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시흥]] <br/>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수원]]
[[한성부]] 출생이며 1884년에서 1886년까지 [[충청도]] [[청원군|청원]]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1886년에서 1892년까지 [[청주시|충청도 청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1892년 [[한성부]]로 귀향하였고 줄곧 [[한성부]]에서 성장한 한병주는 1898년에서 1911년까지 경기도 시흥 양천향교에서 유교 성리학 훈도를 지냈으며 1919년 [[경성부]]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하였고 1920년 2월 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성지부 교통국 국장 대리(大韓民國 臨時政府 京城支部 交通局 局長 代理)으로 활동하였다. 이어 같은 해 1920년 2월 25일 자택에서 김태규(金泰奎)로부터 김창의(金昌義)가 보내온 인쇄물 100여 장을 받았다. 김창의는 당시 임시정부 산하 평북 독판부(督辦府)의 내무참사(內務參事)로 국내 [[연통제]] 조직 예하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쇄물은 군무부 포고 제1호라는 제목 아래에 '서로 함께 분기하여 일본 제국의 기반을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한병주는 이것을 받고서 1920년 2월 29일, 김순원(金純元), 오정주(吳政柱) 등에게 각 5매씩을 교부하고, 독립 시위 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로 인하여 체포된 한병주는 1920년 4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1년 만기출감하였다. 이후 1922년 3월, 한국독립당 입당하여 이후 조선 광복(1945년)이 지난지가 3년 후인 1948년 3월까지 한국독립당에 당원 직위하였고 1948년 3월, 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낙향을 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심각한 긴장감이 도사리던 [[시흥시|경기도 시흥]]을 떠나 피난하면서 [[수원시|경기도 수원]]에 간이 거주하던 중 끝내 경기도 수원에서 부인(夫人)과 장남(長男) 내외 일가, 차남(次男) 내외 일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72세로 병사하였다.
- 한선교 . . . . 8회 일치
| 거주지 =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1984년부터 [[문화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가 1995년부터 프리랜서가 되었다. 2004년 [[한나라당]] 대변인이 되었고,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국회의원|용인시 병]]에 출마하여 제[[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17]]·[[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18]]·[[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1년 제7대 [[한국농구연맹]] 총재에 선출되었다.<ref>박세운.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9&aid=0002256700 KBL 신임 총재에 한선교 "스킨십 소통으로 프로농구 살리겠다"]{{깨진 링크|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9&aid=0002256700 }}. 노컷뉴스. 2011년 6월 3일.</ref>
* [[자유한국당]]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2018년 12월 ~ :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용인(병) 당협위원장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 17대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용인시의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을]] | 한나라당 | 78,484 표 | 56.11 | 1위 | 당선 |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용인시 을|초선]]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 18대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용인시 수지구의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수지구]] | 무소속 | 44,785 표 | 43.01 | 1위 | 당선 |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용인시 수지구|재선]]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 19대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용인시 수지구의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 새누리당 | 66,996 표 | 52.07 | 1위 | 당선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용인시 병|3선]] }}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 20대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용인시 수지구의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 새누리당 | 54,836 표 | 42.21 | 1위 | 당선 |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용인시 병|4선]] }}
- 한호문 . . . . 8회 일치
할아버지는 [[배천군|배천]][[군수]](白川郡守)를 지냈고 [[증직|증]] 가선대부 [[병조]][[참판]](嘉善大夫 兵曹參判)과 서림군(西林君)에 증직된 한창서(韓昌緖)이고, 아버지는 어모장군 [[충의위]](禦侮將軍 忠義衛)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형판(刑判)을 지내고 사후 [[증직|증]] 정헌대부 [[의정부]][[좌참찬]](贈正憲大夫 議政府左參贊)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과 서원군(西原君)에 추증된 한강(韓綱)이고, 어머니는 우계이씨(羽溪李氏)로 지중추부사 이전(李晉+戈)의 딸이다. 형제로는 한선문, 한의문, 한사문 등과 칠계군 헌민공 [[윤탁연]]의 아들 윤길원에게 출가한 누이가 1명 있다. 그의 형제들은 그의 아버지 한강보다 앞서 사망하였다.<ref>경기도, 《경기금석대관 2》, (경기도 편역, 1987) 한양위 묘갈편</ref>
[[음서 제도|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1598년]](선조 31년) 선전관(宣傳官)<ref>황여일 (黃汝一), 《해월집 권9》, 사신일기, 1598년 무술 11월 13일 갑오(甲午) </ref>, [[1599년]](선조 32년) 하양 현감(河陽縣監)으로 부임하였다.<ref>선조실록 113권, 1599년(선조 32년, 명 만력 27년) 5월 3일 경술 6번째기사, "조정·조희보·변이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f> [[1602년]] [[9월 14일]] 군기판관(軍器判官)을 거쳐<ref>竹溪日記卷之六, 九月初十日戊辰</ref>, [[12월 16일]] 영흥판관으로 나갔다.<ref>竹溪日記卷之六, 十二月十六日</ref> [[1603년]](선조 36년) [[11월 29일]] 서산(瑞山)으로 부임하였고<ref>조익(趙翊), 《가휴선생문집권 10》, 공산일기(公山日記), 계묘 1603년 11월 29일자</ref>, 그가 서산군수로 부임한 내용은 서산군읍지(충청남도)(瑞山郡邑誌(忠淸南道))의 선생안에도 수록되었다. [[1607년]] [[9월 4일]] 도총경력에 임명되었다.<ref>竹溪日記卷之十, 九月初四日</ref> [[1615년]](광해군 7년) [[화기도감]]에 낭청으로 참여한 공로로, 그해 [[12월 29일]] 화기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을 시상할 때 승급되었다.<ref> 광해군일기 98권, 1615년(광해군 7년, 명 만력 43년) 12월 29일 신미 3번째기사 1615년 명 만력(萬曆) 43년 화기 도감 도제조·제조 유근 등에게 포상하다</ref>
이후 좌우포장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637년]](인조 15) 정축 정시무과(丁丑庭試武科)의 시험관을 맡아보았고<ref>정축정시문무과방목 (丁丑庭試文武科榜目, 1637)</ref>, [[1638년]] [[12월 17일]] 장령 안시현(安時賢), 이여익(李汝翊), 지평 박수문(朴守文) 등이 훈련 도정은 무관의 극선(極選)인데 도정 한호문은 평소 이렇다 할 명성도 없고 나이도 늙어 기력이 쇠한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과, 일을 처리할 때 거칠고 비루한 행동을 많이하여 위인이 용렬하다며, [[훈련원]]의 장(長) 자리를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가 거부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7일(을사)자 7번째기사, "훈련 도정 한호문을 파직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2월 19일]] 장령 안시현(安時賢)ㆍ이여익(李汝翊), 지평 이운재(李雲栽) 등이 다시 그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는 유시를 내렸다며 돌려보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9일(정미)자 14번째기사, "예장하라는 명을 속히 정지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644년]] 무렵 자헌대부(資憲大夫) 서원군(西原君)이 되고, [[1645년]] 포도대장이 되었다. [[1645년]] [[12월 25일]] [[사간원]]이 그의 추고를 청하여 논계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3년 을유(1645) 12월 25일(계묘)자 3번째기사, "사간원이 포도대장 한호문의 일을 청하였다"</ref> 추고를 청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1646년]] [[1월]] [[소현세자]]빈 [[강빈]]이 인조 등을 저주했다는 [[강빈 옥사]]가 발생, 좌포장으로 궐내에 대기하였다. [[1월 5일]] 인조는 좌우포장 한호문(韓好問)ㆍ신경진(申景珍)을 명하여 불러서 전교하기를“지금은 기밀(機密)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야금(夜禁)을 십분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경도 또한 옛 전례에 따라 친히 순찰하여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왕래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ref>연려실기술 제27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빈(姜嬪)의 옥사"</ref> [[1646년]] [[2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패초를 받았으나, 도착이 늦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때 출발하였다는 승지 여이재의 보고로 그는 문제되지 않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2월 5일(임오)자 7번째기사, "우변포도대장 신경진은 집이 멀어 조금 늦는 것이라는 여이재의 계"</ref> [[1648년]](인조 26년) [[10월]] 무과(武科)의 일소(一所)의 시관(試官)이었으나 병을 이유로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가 그해 [[10월 14일]] [[승정원]]의 탄핵을 받고 추고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4일(을사)자 13번째기사, "무과 일소 시관인 서원군 한호문이 칭병하며 패초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추고할 것을 청하는 본원의 계"</ref> 최종 관직은 정헌(正憲)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에 이르렀다.
* 아버지 : 한강(韓綱, [[1535년]] ~ [[1629년]] [[4월 26일]]<ref>경기도, 《경기금석대관 2》, (경기도 편역, 1987) 한양위 묘갈편</ref>)
아버지 한강 내외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북면(北面) 진답리(陳沓里) 술좌진향(戌座辰向)에 있었는데, 뒤에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로 옮겼다.
- 황효진(기업인) . . . . 8회 일치
[[아프리카TV]]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방송했던 게임 BJ이며 [[BJ]] 소닉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설립한 신발 브랜드 [[스베누]]의 대표이기도 했다. 1988년 5월 31일생이며, 강원도 [[삼척시]] 출신이다. 아이디는 sonic_be. 현재는 glow`hyojin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소닉이란 닉네임의 유래는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소닉 더 헤지혹]].[* 본인의 언급에 의하면 어릴 때 [[메가드라이브|슈퍼겜보이]]로 [[소닉 더 헤지혹 3|소닉 3]][[소닉 & 너클즈| & 너클즈]]를 플레이한 것이 추억에 남아 닉네임을 소닉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닉 스타리그]]의 로고와 본인의 오너캐에도 소닉이 자주 출연한다.]
웨스트 서버 fOu 클랜에서 Sonic[fOu]로 활동하기도 했다. 군 입대 후로 활동이 줄기도 했고, 본인도, fOu 클랜 측에서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주로 기발한 엽기 전략을 자주 사용하며 아프리카에서 [[스타크래프트]] 강좌를 해왔다. 가스저그, 소풍저그 등이 대표적이다.[* [[3드론]]은 소닉이 최초로 사용하지 않았다.]
후에는 [[온게임넷]]에서 MC는 괴로워란 프로그램에서 MC를 보기도 했고 라이브 배틀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플레이플 리그에서 해설도 했다. [[아프리카TV]]에서 가장 최초로 베스트 BJ에 선정된 BJ 중 한 명이다.
반응은 좋은 편. 스꼴들의 호응도도 높고, 더구나 '''참여 선수들의 이름값이 장난 아니다.''' 거기에 경기의 흥행도에 따라 경기를 하던 전 프로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몽군, 전태규, 박세정 등이 랭크되어 본 적이 있다. 특히 몽군의 그 경기는...] 단, '''과거 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
쇼핑몰 신발팜은 2014년에 스베누로 이름을 바꾸고 사업을 크게 확장하였고[* 이때 순이익으로만 10억정도 벌었으나 무리한 사업으로 그대로 날려 먹었다고... 그리고 인터넷 방송으로 사업 투자금을 모았다고 한다.], 이를 발판으로 소닉 리그도 계속 개최하고 있다. 좀 많이 별로인 인성이나 더더욱 별로인 제품은 둘째치더라도 20대 때 자신의 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수완과 동시에 자신의 꿈이자 자신의 시작이었던 스타판을 공식리그가 종료된 후에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e스포츠가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타 1을 넘어 스타 2,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를 후원하고, 여러 게임과 콜라보 이벤트를 여는 등 게임/e스포츠에 애착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애증의 존재이기도 했다.
[[2017년]]에 일어난 스베누 사건은 유명해서 작년에는 한때 인터넷에서 [[태조왕건]]의 [[궁예]]가 추궁하는 패러디 영상이 돌기도 했다. 확실한건 그에게는 정말로 궁예의 법봉이 필요하다는것이다.
- 구승빈 . . . . 7회 일치
시즌 3 롤드컵 이후로 다데와 댄디가 예전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롤챔스 윈터 2013-2014에서는 각성한 마타와 함께 다시 팀의 확실한 구심점으로 주목받았다. SKT T1 K를 상대하게 된 결승전을 앞두고 거의 모든 이가 "모든 면에서 SKT T1 K가 우세하나, 바텀이 유일한 변수"라고 평가할 정도. 임프 본인도 경기 전 피글렛과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며 보는 이들의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는 임프가 1인분을 간신히 해낼 동안 다른 팀원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한타에서도 말려 팀의 3대0 압도적 패배. 사실 임프도 '그나마' 잘했을 뿐, 라인스왑이 걸린 상황에서 마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상대 라이너를 압박하려다 크게 손해를 보는 플레이를 두 번이나 보여주었다(1세트에서 임팩트에게 솔킬을 따일 뻔했으며, 3세트에서는 페이커에게 역관광당해 플래시를 낭비했다). 각 세트 중반에는 본인이 밀리는 상황을 ~~청년가장으로서~~ 타개해야한다 생각했는지 무리한 포지셔닝,킬욕심을 내다가 먼저 끊기거나 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세체원에 가깝다고 평가하지만 해외에서는 생각보다 평가가 낮은 편인데, 화이트에서 승기를 잡았을 경우 공격적으로 나가다가 죽는 장면이 여러번 잡혀서 잘 던진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로얄 클럽의 우지와 같은 과라는 평가를 갖고 있는데, 우지의 경우 잘 던지기는 하지만 자신이 캐리를 해서 이긴다는 이미지라면, 임프의 경우 화이트의 다른 멤버들이 다 잘하고 있을때 갑자기 트리스타나 앞 점프나 포지셔닝 문제로 죽는다는 이미지로 해외에서는 임프의 결점이 더 눈에 띈다고 말하고 있다. 우지에 비해서 덜 던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화이트의 경우 흔히 말하는 탈수기 운영으로 애초에 임프가 몇 번 포지셔닝 문제로 죽어도 우세한 상황인 경우가 많아서 단순하게 우지와 임프를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말이 많은 편. 사실 애초에 불리한 상황엔 마타가 목줄을 꽉 잡아당겨서 불리할 때 던지지는 않는다.~~???:뒤진다~~ ~~임뿌우:네~~
* [[트래쉬 토크]]도 잘하기 때문에 안티도 상당히 많다. 실력은 좋지만 멘탈이 워낙 글러먹었다고. 핫식스 롤챔스 4강 VS SKT T1전에선 티원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을 쓱 지나가면서 '''3 대 0'''!이라고 소리지르고 갔다고 한다. ~~[[HOT6 Champions Summer 2013/4강|그리고 빡친 티원선수들은 임프의 멘탈에 집단린치를 가했다]]~~ 그러나 경기는 오히려 티원이 압도적인 실력차로 찍어눌러버렸고, 임프는 경기 도중 멘탈이 나간 표정이 잡히는가 하면 우물에서 체력을 채우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 후 승자 인터뷰에서 피글렛에게 '''"저희가 이겼는데 어떡하죠?"'''라는 말로 조롱당했다.
* 2013~2014 판도라 tv 롤챔스 윈터 16강 팀다크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MVP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인섹 사건에 버금가는 엄청난 방송사고였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1275300.htm|관련기사]] 원딜이 cs 38개 먹고 MVP를 받은 상황.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로 팀 다크가 맹비난을 받는 동안, MVP 인터뷰에서 임프는 어떻게 이 경기에 임했냐는 조은나래의 질문에 "프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로 임프가 철 좀 들었다, 얌전해졌다 라는 반응이 꽤 나왔다.[* 롤드컵 이후로 뭔가 깨달은게 있긴 한 듯. 임프 한명 뿐만 아니라 팀 전체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 실제로 롤드컵 가서 푸짐하게 똥싸고 오셨던 마타와 다데가 부활했으며 성적도 좋게 나왔다. 그리고 팀 다크와의 2경기에서 같이 던지는게 아니라 일말의 자비도 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끝냈다. 어쨌거나 정신적으로 성장한 면은 분명히 있는 듯.]
* [[이병권|카카오]]와 많이 친한 듯 보인다. 페이스북을 조금만 뒤져봐도 둘이 친한 것을 어느정도 알 수 있고, 급기야는 카카오가 인터뷰에서 사랑한다고까지(...) 했다.~~예쁜 사랑 하세요~~ 결국 SKK와의 8강전 후 승리 인터뷰에서 병권아 사랑해!를 외쳤다. ~~[[다들 그렇게 게이가 되는 거야|다들 그렇게..]]~~ ~~둘이 닮기도 닮았고~~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롤갤러이다. 롤챔스 스프링 2013 4강 승자 인터뷰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갤러리|롤갤]]을 언급하며 환상의 동물 드립을 쳤고 롤갤에서 고정닉으로 활동을 했었다. ~~하도 갤질을 한 모양인지 교장선생님이 롤갤을 막았다며 불평했다~~ SKT LTE LOL 마스터즈 2014 결승전 [[http://youtu.be/84BctoXktQY|캐치마인드 영상]]에선 상어드립을 치기도.. ~~야! 캐치마인드에는 이런 코미디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삼성과의 계약이 끝난 11월 1일 새벽 [[http://gall.dcinside.com/list.php?id=leagueoflegends1&no=7280594|롤갤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삼성으로 롤갤문학을 써달라고 했다~~ 롤갤에 대한 애정이 있는듯 만약 2015 롤드컵에서 잘 됐으면 롤갤 얘기를 했을거라고 이야기했다.
* 만년다이아에서 SKT와 KOO의 선전을 예언하며 [[오라클|오라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본인의 미래는 예언하지 못했다~~ [* 사실 본인 팀의 평가가 너무 후하다며 4강까지만 가도 기적이라고 sns에 올리기도했고 skt와 경기하면 어떻게될것같냐는 조은정과의 인터뷰에서도 3:0으로 질것같다고 이야기했다]
- 김다솜(배우) . . . . 7회 일치
무대에서 손을 쫙 펴는 안무 도중에 마이크를 쥔 손을 펴서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멤버보다 안무를 자주 틀린다. 그래서 안티들에게 노래도 잘 못하고 춤도 잘 못 추고 도대체 잘하는 게 뭐냐라며 [[비난]]받기도 했다. 하지만 외모는 [[유밴드]]에서 으뜸. ~~외모를 얻고 나머지 모두가 너프된 느낌.~~
연예활동 이외에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를 잘 쓴다고 칭찬했다거나 30살 전에 수필을 직접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는 등. 또한 일기도 자주 쓰는 것 같다. ~~언니들이 애써 외면해서 그렇지.~~ 일기장에는 인종차별 문제를 우유에 빗대어 썼던 것으로 보아 의외로 생각이 깊은 것 같다. 멤버들 말로는 문자도 평소 길고 장황하게 쓰는 타입이라고...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수 십통씩 전화를 계속 할 정도로 집착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를 만나는 분은 정말 피곤할 것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본인도 또한 자기에게 집착해 주는 이성에게 호감이 간다고 한다.
[[엉덩이]] 맞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응??~~ 언제 [[효린]]이 다솜이 예쁘다고 엉덩이를 두 번 토닥여 주고, [[소유(가수)|소유]]의 엉덩이도 토닥여 줬는데 다솜이 왜 나는 2번만 토닥여 주고, [[소유(가수)|소유]] 언니만 5번 토닥여 주냐며 자기도 더 3번 더 토닥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당황했을 [[효린]]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2011년 8월 정규 1집 활동부터 단발머리로 헤어 스타일을 바꾸었다. 긴 머리보다 잘 어울린다는 게 중론. 피부가 멤버 중에서 제일 하얀데, 일명 형광등 피부. [[본인]]도 피부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팀 내에서 피부가 제일 어두운 [[효정]]을 하얗게 보정하다가 다솜이 안 보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2013년 다른 멤버들과 같이 우유 광고를 찍었는데 노래와 안무가 포함된 이 광고에는 "우유 마시면 뽀얗게 돼요"라는 가사가 있다. 다솜이 없었다면 광고 모델로 선정되지 않았을 듯.
데뷔 후 몇 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다고 방송 중에 울먹인 적이 있다. 언니들은 연습기간이 서너 해인데 본인은 반 년이었다고...[* 이 때 자신의 약한 피부가 콤플렉스라고 하기도 했다.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라서.] <나 혼자>로 활동할 때 자신의 파트가 하나뿐이라서 마음고생이 심한 듯하다. 하지만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으며, [[유밴드|소속사]]에서도 푸시가 늘어나서 예능이나 연기활동에도 시동을 걸었다.
2014년에 창천동 4층 건물을 14억에 매입했다. 2016년에 창천동 건물을 18억에 팔고 잠실동 5층건물을 31억에 매입했다. 참고로 다솜의 어머니는 공인중개사다. 2018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여 [[주식]]투자를 공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김상조 . . . . 7회 일치
오랫동안 [[삼성그룹]]의 [[순환출자]]식 지배 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문제제기를 해왔던 사람이다. 이에 대한 저서도 여러 편 출간했다. 또 [[권영길]] 후보의 '[[국민승리21]] 정책자문단'의 총무국장으로 있던 적이 있고, 2004년 2월에는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지원으로 인해 시끄러웠던 삼성의 주주총회에 참여연대 소속으로 소액주주로 참석했는데 삼성 경호원들에게 멱살을 잡혀 퇴장당하던 영상이 발굴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VH4_myrbBXg|#]]
훗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박영수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에는 특검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는 조언을 하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과정 등에 대해 특검에 '''족집게 강의'''를 함으로써, 제2차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7/2017051702090.html|#]] 2016년 12월에 열린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http://v.media.daum.net/v/20170315111345502|#]]
2010년 한국경제에 영향력을 끼친 인물 3위에 꼽히기도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했다]].[* 1등은 당연히 [[이건희]]였다. 2위는 당시 기재부장관 윤중현. '없다'를 포함시키면 4위이다.]
언론에서 흔히 이력이나 일부 발언들을 인용하여 '재벌 저격수' 등의 별명을 붙여 강경한 반(反)재벌주의자 내지는 좌파(?)로 여기기도 하는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김 교수의 학문적 베이스부터가 주류경제학이고 그가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운동을 하며 내놓은 주장이나 연구자료를 봐도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도입을 주장하는 정책도 해외 [[선진국]]의 선례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은 편.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스탠스의 경제학자인 것은 맞으나 그 바탕이 주류경제학이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 내지는 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벌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이란 위치, 그리고 이름 때문에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humor&wr_id=170807|'재벌상조']]라는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 김진우(WINNER) . . . . 7회 일치
* 맘이 여린 탓에 맏형답지 않게 눈물을 자주 흘리는 가녀린 성격.[* 눈물은 잘 흘리지만 의외로 강단 있는 성격이다. 2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연습생을 시작한 것과 가끔 보이는 마이페이스 적인 모습들로 보아 외유내강형인듯.] [[JYP]] 연습생[* 당시 데뷔를 앞둔 [[GOT7]]의 멤버 몇 명과 [[DAY6]] 멤버들]과의 대결 때 가사 실수를 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상당히 노력파이기도 한데, 위너 티비에서 [[강승윤]]은 김진우에 대해 "잠이 없는 노력의 천재"라고 평했다. 남들 잘 시간에 연습을 한다는 의도. 많이 자면 4시간이라고. 연습생 기간에는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밥 대신 커피를 텀블러에 들고 다니며 마셨다 여담이지만 [[iKON|형제그룹]]의 [[김진환(iKON)|맏형]]도 눈물이 많다 그나마 TV방송에선 이런 모습은 적은편이다.
* 목소리는 처음 들으면 조금 특이한 음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리고 조용해보이는 성격과 달리 의외로 목소리 볼륨이 커서 라이브가 안정적이다. "소년의 목소리 같다"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 멤버들 공인 심각한 길치--였--다. 호텔 로비에서 출구를 찾느라 30분을 헤메다가 --결국 스태프에게 물어봤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걸리는 가게에 1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10분 거리인 도쿄타워를 3시간 넘게 헤메고 도착했다. 심각한 길치인 듯.[* 시즌그리팅 디비디에서 본인은 길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번 외운 길은 잊어먹지 않는다고. (그러나 멤버들 반응은 흠)] 위너 티비 상속자들 패러디에서도 길치 속성이 그대로 김라헬 캐릭터에 반영되어 "여기 출구가 어딨어!"라는 대사를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꽃보다 청춘 위너편에서는 조금 만회한듯하다. 지도를 보며 멤버들을 길안내 하기도 했다. 실제로 강승윤이 진우형 이제 길치 아니다!!라고 인스타(?)에서 말하기도 했다.
* 소문난 집돌이이며 성격상 밖에 나돌아다니지 않아서 아이돌하기에 최적화된 성격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 모의고사를 망쳐서 카페에서 울고 있는 고3 수험생을 응원해줬다는 훈훈한 이야기도있다.
- 김진환(iKON) . . . . 7회 일치
WIN의 배틀에서 춤의 전설 이현도에게 극찬을 받았다. '춤선이 가장 곱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고 스스로도 춤에 자신이 있어보인다. 작고 날렵하여 위험한 아크로바틱을 많이 담당한다.
iKON의 '''맏형'''으로 연습생과 데뷔 초 때 멤버들에게 보컬과 춤을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생활면에서 멤버들을 모으는 엄마 역할을 한다고 데뷔 초 때 멤버들이 자주 언급했다. 특히 [[BOBBY]]는 진환을 정신적 지주라 칭하며 진환이 자신이 한국에 남게 된 이유라고 자주 언급했다.[* 이는 최근 Star Road에서도 언급했다.] WIN에서 [[송윤형]]네 고기집에 갔을 때 윤형이 진환에게 쓰는 편지를 읽다가 울기도 하고. 마지막에 합류한 정찬우 역시 힘든 일이 있으면 진환에게 상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는 멤버들이 모두 성장해서 더 이상 팀에 엄마 역할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본인이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멤버들이 믿고 따르며 팀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멤버들의 정신적 지주인 것은 확실하다. 방송 후에 이런 말은 하지 말라는 식으로 멤버들에게 조언도 많이 하는 듯 하다. 무대도 어떤 식으로 하라고 디렉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 '온 세상을 거인국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돌'로 모 커뮤니티에 올라갈 정도로 앙증맞은 사이즈를 자랑하지만 오피셜 프로필이 없는 상황. 팬들은 김진환 13cm 설을 밀고 있으며, 일본 팬미팅에서 진환을 그린 바비와 찬우 등이 13cm, 요정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유래는 한 팬이 김진환의 키가 궁금해서 모니터에 나타난 키를 재본 결과 정확히 13cm가 나와서..~~무려 13cm에 육박, 요정치곤 큰 편~~최근 발매된 펩시의 보틀에 프린트된 김진환의 전신이 변함없는 13cm로 측정되기도.
* 아이콘 내 가장 친한 멤버는 바비인 것을 밝힌 적 있다. 그러나 연습생 시절 가장 싸움이 잦았던 멤버이기도 하며 실제로 둘은 애증의 관계라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 비아이, 바비와 함께 출연한 LG 스타일러스 광고에서는 실연에 가슴 아파하는 ~~능숙한 연기~~를 보여주어 팬들에게 흐뭇함을 안기기도.
* 장남지난, 차남지난이라는 말장난(발음이 동음)과 '곤니치와와'라는 인사에 빠져 있다. 일본어로 지난(ジナン)의 뜻이 차남(次男)이나 정작 본인은 팀의 맏형이라는 점이 재미있는 포인트다. 일본 팬들은 진환을 표기할 때 次男이라고 쓰기도.
- 박경림(MC) . . . . 7회 일치
* 전성기에 엄청나게 많은 광고에 나왔었는데, '잇츠'라는 크래커 광고에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대사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 변비약 광고에서는 "나 천사 맞잖아 아유 이씨"라며 천사[* 변비 때문에 몸이 무거워, 하늘을 날지 못하다가 변비 해결 후 날았다는 설정.]연기도 했었다.
* 특유의 입담과 좋은 성격을 어필하여 인기가 좋았다. 특징은 그 성대결절틱한 갈라지는 목소리(...)[* 쇳소리에 가까운 허스키함으로 인해 종종 박경림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박경림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안 듣는 사람들도 좀 있다 카더라...안습(...)] . 개그맨 [[박수홍]]과 콤비를 이루어 라디오 프로그램인 '박수홍-박경림의 FM 인기가요'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 논스톱에서 조인성과 러브라인을 타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정상의 위치에서 갑자기 유학을 선택,[* 이 때 뉴욕에서 [[임심여]]를 만나 같이 지냈다고 한다. 임심여도 그 때 뉴욕으로 연기를 위해 유학을 갔었다. 임심여가 유학 이후 슈퍼스타가 된 반면 본인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 팬들을 당황케 만들더니 귀국할때는 백인 남자친구와 동행해 세간에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애인 말고 걍 친구사이라고~~ 귀국 후 시트콤에 야심차게 복귀했지만 결론은 캐망[* [[LA 아리랑]],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등을 연출하여 한국형 가족 시트콤의 1인자로 자리 잡은 [[김병욱]] PD가 연출한 [[귀엽거나 미치거나]][* 박경림이 신인이던 시절, 순풍 산부인과에 특별출연한 적이 있다.].그러나 작품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한 탓에 조기종영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그동안 시트콤의 강자로 자리 잡았던 [[서울방송|SBS]]가 더 이상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게되는 계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일 이후, 김병욱은 SBS에서 [[문화방송|MBC]]로 옮겨 시트콤을 제작하게 되었고, [[거침없이 하이킥|또 하나의 레전드 시트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로 점점 하향세를 그리게 되었다. 박경림 본인은 예능보다 정극연기를 본업으로 삼아 가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 2002년에는 앨범을 내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다만 진지하게 한다기보단 예능 프로그램에서 프로젝트성으로 '''"박남매(박경림, [[박수홍]])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박고테'''로 앨범 발매. 요즘 [[무한도전]]에서 하는 각종 앨범 제작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기예능에서 노래와 앨범 만드는 전과정을 노출시켜줬기 때문에, 꽤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음악캠프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주병 컨셉으로 해서 만들어진 "착각의 늪"이라는 곡이 타이틀곡으로 특유의 안무와 박수홍의 손발이 오그라지는 랩(...)이 특히 유명했다. 당시에는 싱글의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에 11곡으로 풀앨범을 제작했다. 당시 박경림의 장점인 인맥이 도움이 되어 타이틀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주영훈]]이 만들었고 [[김장훈]], [[윤종신]], [[이수영(가수)|이수영]], [[이기찬]], [[유리상자]], [[유희열]], [[김동규#s-1]] 등이 참여했다. ~~라인업 ㅎㄷㄷ~~ 박남매의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지만 인기가 생각보다 많아 CD로도 발매되었다.[* 앨범은 20만장 가까이 팔렸다.] 나중에 유학 이후 국내 복귀 다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망했다'는 식으로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목표 판매량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백만장이었으니까...] 당시 대단한 인기로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 안티들은 그녀가 '툭하면 인맥드립'이고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질질 짠다며 욕을 퍼붓기도 했는데 2009년 가수 [[아이비(가수)|아이비]]가 복귀할 때 [[엠넷]]에서 방송한 Ivy Back이라는 아이비 런칭 프로그램에서 박경림의 고전적 인맥후리기 기법을 볼 수 있었다. '''지나간 일 들추어 감정적으로 후비기 → 사회적 시선으로 이런저런 평가 쥴쥴쥴 → "사실 나도 그래" 같이 울기 → 어?!''' [[기타 프로그램 갤러리|기프갤]]에서도 개드립[* 마니아들의 수요는 있는 편] 과 목소리 덕택에 MC로써의 평가는 낮은 상태.
* 사각진 얼굴로 예쁘다고 하긴 힘든 얼굴인데[* 그래도 데뷔초와 비교해보면 많이 예뻐지긴 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 점을 직접 언급했으나 MC들의 반응은 별로(...).] 의외로 [[패리스 힐튼]]을 디스할 때 서양 박경림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의외로 곰곰히 따져보면 닮았다. 단 실제 얼굴은 정말 사각졌다. 사진빨이나 카메라빨을 못 받는다고.
* 잉스 화장품이라는 화장품 회사 광고 모델로 나온 적이 있다. 못생겨도 화장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시초가 된 케이스. 예능에서도 이걸로 꽤 우려먹었는데 김희선이 출연한 토크쇼에서 "나도 화장품 모델 했는데, 언니는 잘 됐지만 내가 한 회사는 망했잖아."라고 자기비하 개그를 쳤다가, 바로 그 다음날부터 잉스 화장품회사에 정말 망했냐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뒤따르고 대리점에서는 "회사가 위기라던데 정말이냐"면서 계약해지를 요구당하는 사태가..덕분에 해당 회사로부터 30억 소송이 걸리네마네 한 적이 있다. 회사 가서 싹싹 빌고 사과의 뜻을 여러 번 전했고 후에 보은의 의미로 노개런티로 그 회사의 모델을 다시 하기도 하면서 잘 넘어갔지만... 입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건.
- 박진성(시인) . . . . 7회 일치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http://www.gqkorea.co.kr/2017/09/29/%EC%A0%95%EC%A0%95%ED%95%A9%EB%8B%88%EB%8B%A4/?_C_=18|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 라던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59082|해당 기사 출처]][*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2018년 3월 21일에 [[https://blog.naver.com/poetone/221233628914|문제의 출판사와는 결국 계약을 해지]]했으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7월에 박 시인이 밝히기를,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상태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밝힐 때 박 시인이 여러 시집의 계약을 이행하라는 언급도 한 것과 2016년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산문집의 글은 2018년 3월 계약해지를 알린 후에 산문집 '이후의 삶'에 포함되어 출간된 걸 보면, 기존의 시집과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시집과 관련된 계약을 해지하는데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1115546|#]]
이에 대해 2017년 11월 25일에 [[이외수]] 작가가 박진성 작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20650|#]]
자신을 다룬 기사를 쓴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가 [[사진작가]] [[ROTTA]]의 성추행 의혹 등 미투 운동을 다루는 [[http://naver.me/GNjRWJvu|기사]]를 쓰자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미투 운동을 기사로 다루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일침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281588&viewType=pc&m_view=1&m_url=%2Fcomment%2Fall.nhn%3Fgno%3Dnews469%2C0000281588|#]]
- 배슬기(배우) . . . . 7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86년]] [[9월 27일]] ([age(1986-09-27)]세), [[경기도]] [[가평군]][* [[부산광역시]]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스타골든벨]]에서 박지윤과 [[끝말잇기]]류 게임을 하는데 "[[부검]]", "[[변사]]", "[[사경]]" 등의 단어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짱돌]]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MC진은 배슬기의 이미지를 고려해 거기서 게임을 중지했다(...)
해체 이후 솔로 활동에 들어간다. '말괄량이' 등의 곡이 그나마 유명하지만, 대부분 곡과 컨셉이 신통치않아[* 배슬기의 목소리는 여자 가수치고 굉장히 허스키하고 낮은 편이라 발랄하고 귀여운 컨셉의 곡과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노래 실력이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발라드곡을 부르기도 애매했다.] 순위 프로 등에서는 중하위를 맴돌다 사라진다. 꾸준히 앨범을 내놓긴 했지만 방송 출연보다는 행사를 더 많이 돌았다. 가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긴 했지만 원래 토크보단 복고댄스로 뜬 것이다보니 예능감의 한계로 결국 이마저도 잘 안 나오게 된다. 이외에 여러 가수들의 [[피처링]]을 도맡았는데, 피처링 해준 노래 중에서도 크게 뜬 노래는 없다.
2007년 [[프링글스]] [[MSL]] 시즌 2 --[[마재윤]]-- vs [[심소명]]의 결승전에서 초대 가수로 공연을 했는데, TV 생방송 공연 도중 잠시 [[판치라]]가 일어났기 때문에, [[스갤]]에서는 배슬기를 위해 '''[[사이언스 베슬|사이언스배슬]]기'''라는 별명으로 한동안 찬양(?)해주기도 하였다.
투니버스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따끈따끈 베이커리]]의 두 번째 오프닝을 부르기도 했다. 그럭저럭 평은 좋은 편.
사실 작은 사과 덕에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으나, 2007년부터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는 등 중국 활동을 이미 오래 한 상태라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로 중국어 실력도 좋다고 한다. 작은 사과 히트 이후 다시 중국에 진출해서 신곡 발표로 차트 7위에 올랐다고 하며, 각종 예능이나 라디오 등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런닝맨]]의 히트 이후 [[X맨을 찾아라]], 연애편지 등 배슬기가 과거 출연했던 예능들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고 한다. tvN '명단공개2016'에서 공개한 신 한류스타에서 [[김수현(배우)|김수현]], [[조세호]], [[이준기]] 등과 함께 꼽히기도 했다.
2017년 5월 30일 엑소(EXO) 콘서트에서 [[채연]]을 포함한 볼링 팀과 함께 관람했다. 이 가운데 현장에 있던 팬들은 일행들이 공연 중 음식물을 먹거나[* 그 중에는 공연장에서는 반입이 안 되는 맥주도 마셨다.], 공연 도중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고, 공연이 끝나기 전 단체로 자리를 뜨는 등 매너 없는 관람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해 도마에 올랐다. [* 게다가 채연과 배슬기도 가수인데도 후배 가수의 공연에서 비도덕적 행동을 한 것이다. 같은 가수로써 공연 비매너가 얼마나 불쾌하는지 그 누구보다 아실 분들이 비매너를 저질렸다.] 그 사건 이후 [[채연]]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607|해당기사]]
- 서영춘(코미디언) . . . . 7회 일치
서영춘은 특히 무대 위 애드립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희극인이었다. 변화무쌍한 얼굴 표정과 판타스틱한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TV가 대중화되면서 실질적으로 1세대가 된 당시 악극단 출신 코미디언들 대부분이 그랬듯, 연기 패턴은 왜정 시대부터 내려온 악극, [[만담]]에서 출발한 것이 많고 내용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번안한 것이 꽤 있었다. 예를 들어, 서영춘이 공중파에서 선보였던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어쩌고 하는 긴 이름 가진 아이 이야기도 일본 설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서영춘은 바보 연기에 특화된 [[배삼룡]], 노래와 신체 조건을 이용한 개그가 장기였던 [[이기동(코미디언)|이기동]], 미남 역을 자주 담당했고 선역과 정극 연기도 능했던 [[구봉서]]와 달리 강한 개성으로 어필하였다. 특히 얼굴 표정 연기에 능하였고 연기도 두루 잘 하는 편이었으며 영화에서도 활약했다. 예외로 미국 물(미군 8군 무대)을 먹은 [[곽규석]]이 미국식 스탠딩 개그와 성대모사, [[남보원]] [[백남봉]]은 성대모사를 장기로 한 쪽이다.
60년대 극장쇼 무대에서 콤비로 활약했던 [[백금녀]][* 악극단 출신의 코미디언. 드센 뚱녀 컨셉으로 1960-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고, 음반도 취입했다. [[이국주]]와 흡사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노래도 매우 잘 해 지금의 이국주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다. 1995년 작고.]와 함께 한 음반. 이런 음반엔 주로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가 들어갔는데, 노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꽁트, 개그가 들어가 있기도 했다. 서영춘의 대표작 "시골영감 서울 가는 기차..."노래가 이런 판에 들어간 종류.
그러나 사적으로 [[주당|음주를 자주 하는]] 영향으로 [[간]](肝) 건강이 나빠져 [[간암]] 발병으로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심형래]][* 그런데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최병서]]가 되기도 하고...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형래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 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심형래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라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게다가 서영춘이 세상을 떠난 후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역시 뼈그맨~~
가족으로는 [[딸]] [[서현선]]과 [[아들]] [[서동균]]이 있고 둘 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코미디언]], [[배우|연극배우]]의 길을 밟았다. 서현선은 1990년대 초반 [[KBS]]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레귤러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봉숭아 학당]]'에서 [[오서방]]([[오재미]])과 합을 맞추는 미녀 [[코미디언]]이 바로 그녀이다. 동료들이 서영춘의 성대모사를 시전하자 발끈하는 모습을 (물론 개그로) 보여주기도 했다. 서동균은 [[개그콘서트]] 초중반기 멤버로 참가하며 로보캅 연기로 인지도를 쌓았으나 이후 [[이정수(1979)|이정수]]처럼 연극 및 뮤지컬 배우로 전업하였다.
- 슈퍼히어로 . . . . 7회 일치
슈퍼히어로 장르가 다른 액션물, 배틀물과 차별화 되는 점은 슈퍼히어로인 주인공은 사회(사회는 도시, 세계, 때로는 우주가 되기도 한다.)를 악으로부터 수호하는 '[[영웅]]'이라는 점이다. 즉, 슈퍼히어로 장르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건 사회의 영웅으로서 활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특성상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사회는 일반적인 경찰이나 군인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치광이 과학자가 거대한 로봇을 만들어 도시를 공격한다던가, 사악한 목적을 가진 비밀결사가 암약한다던가, 파괴적인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던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슈퍼 빌런이 날뛴다던가. 그러다보니 경찰이나 군대조차 버거워지고, 그러기에 슈퍼히어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부패해서 빌런은 물론 경찰, 군대와 싸우게 되기도 하며 이럴 경우 슈퍼히어로는 부패한 권력에 맞서서 무고한 약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혁명가이자 자유의 투사에 가까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단순한 이야기가 많아서 관점에 따라선 유치하고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슈퍼히어로 물은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는데, 갈수록 단순한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아니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이야기들을 내놓았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슈퍼히어로의 존재의의, 슈퍼히어로의 갱니적인 내면 갈등 등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리하여 역으로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할 점을 던지는 깊이있는 작품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권선징악을 주소재로 잡고 진행되는 단순한 스토리의 작품도 있지만 이것 역시 나름대로의 개성이나 재미를 표출하기도 한다.
슈퍼히어로는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데 주로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한 보복 우려나 일상생활의 보장 등의 이유가 있다. 만약 이 정체가 들통나면 무슨 사단이 벌어지는지는 불행 히어로의 대명사 [[스파이더맨]]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따라서는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영웅을 믿을 수 없다는 묘사가 나오거나 아예 정부에서 얼굴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 신혜진 . . . . 7회 일치
그 [[사진]]들을 한장한장 넘겨보면서 때론 흐뭇하고 때론 또한번 [[감동]]받고 [[마음]]한켠이 간질간질하기도해요
위의 [[편지]] 이후로는 전혀 소식이 없어 우려가 커지던 와중, 결국 [[2017년]] [[10월 30일]] 결국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와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팀 활동에서 빠지게 되었다. 8명이 다 같이 컴백하길 [[기도]]해오던 찰나에 들려온 소식이라 여러모로 많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더구나 진이는 전 [[APRIL]] 멤버인 [[전소민(KARD)|전소민]], [[이현주(배우)|이현주]]처럼 그룹 활동만 관두고 계속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WM엔터테인먼트|소속사]]를 나왔다.][* 공교롭게도 진이의 [[탈퇴]] 이후 [[오마이걸]]이 낸 첫 [[앨범]]인 [[비밀정원]]에서 [[오마이걸]]이 [[데뷔]] 후 첫 [[음악 방송]] [[1위]]를 달성하자, 많은 [[미라클|팬들]]은 '진이도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은진|이와 같은]] [[DIA|일이]] 7개월 뒤에 [[Summer Ade|일어났다]].]
우리 [[오마이걸]]! [[효정|효정이]], [[미미(오마이걸)|미현이]], [[유아(오마이걸)|시아]], [[승희(오마이걸)|승희]], [[지호]], [[비니(오마이걸)|유빈이]], [[아린(오마이걸)|예원이]]… [[오마이걸]]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서 각자 자기만의 [[색깔]]로 [[오마이걸]]을 지키는 모습이 너무나 빛나고 또, 그런 [[오마이걸]]을 [[사랑]]으로 지켜주는 [[미라클]]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져! [[무대]] 위에서 [[오마이걸]]의 [[노래]] 한 소절, 한 소절과 [[미라클]]의 [[응원]] [[소리]]가 [[화음]]을 이룰 때 가끔은 [[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할 만큼 [[감동]]이었어… 앞으로도 가끔 [[추억]]의 그리움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 속엔 그 누구보다 최고인 [[오마이걸]] 항상 [[마음]] 깊이 [[응원]]할게!
* <[[OH MY GIRL#s-2.2|CUPID]]> 활동을 [[시작]]하면서 [[앞머리]][* 사실은 헤어커프, 즉 [[가발]]이다.]를 내렸는데 이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대개 [[앞머리]]가 답답해 보여 [[눈썹]] 내놓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앞머리]]를 내려서 더 예뻐졌다는 [[사람]]들, 즉 깐진파와 덮진파로 나뉜다. 가끔 묶진파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덕후]] [[눈]]에는 뭔들~~ 모 [[팬]]이 [[팬사인회]]에서 진이에게 직접 [[앞머리]] 다시 없앨 [[생각]] 없냐니까 아직은 없다고 한다.
* [[고기]] 광빠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고기]]라고 [[http://me2.do/FTjWTSZd|밝혔으며]], 뮤비뱅크에서 선보인 [[애교]] 멘트가 [[http://me2.do/F2GCHcOm|꼬기사주세요 `ㅁ`]]이기도. ~~귀엽다~~
* 태어나서 한 번도 [[마라톤]]을 해본 적이 없어서, 기회가 된다면 [[미라클|팬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서로를 [[응원]]할 수 있고, 그렇게 [[마라톤]]을 완주하게 되면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될 것 같다고. 또 [[마라톤]]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건강]]해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기승전 [[다이어트]]~~
- 신화용 . . . . 7회 일치
K리그 베스트 일레븐 GK에 선정된 2009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K리그 최고의 골리 중 한 명이었으나 여러 가지 불운으로 인해 시상식과 국가대표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골키퍼이기도 하다.[* 2015년에 '''특별상'''을 받기는 했지만 공로상에 가까운 여론 무마용 상이다.]
그리고 이어진 활약상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상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상[*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상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남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영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상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영진들 보고 있나?~~ ~~경영정상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남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김승대]]가 [[연변 FC]]로 20억에 팔리면서''' 여기서 생긴 돈으로 결국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 핵심 3인방은 다시 잡는데 성공했다. 매시즌 1~2월까지 거취문제로 포항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에 비하면 12월 중순이 지나가기도 전에 재계약 기사가 떴고, 덤으로 배슬기, 김원일, 김광석 센터백 3인방도 그대로 포항에 남으면서 적어도 16시즌 수비만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2년 계약이라 최소 2017년까지 포항에 잔류하게 되었다. 신화용 본인말로는 비싼 연봉을 부른 팀이 있었지만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51224152139569|###]] ~~포항밖에 모르는 바보~~[* 다만 포항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15시즌이 끝나고 공개된 연봉공개에서 신화용은 국내선수 중 4위. 6억 3천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퍼 포지션에서 신화용보다 연봉이 높은 선수는 수원에서 7억 넘게 받은 정성룡 뿐이며 선수단 연봉 총액이 70억 내외인 포항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포항 프런트도 긴축재정으로 구단 예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신화용 만큼은 반드시 잡고 간다는 반증인셈.][* 다만, 기본급은 정성룡보다 한참 낮은것이 맞다. 연맹에서 발표하는 연봉공개 내역은 기타 수당을 다 합친 금액을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15시즌 전경기 출장+17경기 클린시트 보너스를 합친 신화용의 연봉은 이러저러해서 시즌을 절반가량 날려먹은 정성룡과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이후에도 허둥지둥대며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유명한 축구 팟캐스트 [[히든풋볼]] 멤버이자 [[이스타TV]] 멤버인 해설위원 [[이주헌]]씨와 캐스터 [[박종윤]]씨는 전 토트넘 골키퍼 고메즈가 고메디언이라 불린거 처럼 신화용을 신메디언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국 2017 시즌까지 경쟁상대로 보기도 힘들었던 노동건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으며 '''단신이라는 단점에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순발력과 판단력이 나이를 먹으며 결국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즌을 마칠 경우 수원과의 재계약 마저 불투명한 상황.
* 하지만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단신[* 2015년까지 K리그 최단신 골키퍼였으며 2016년 제주의 박하람이 1cm차이(신화용-183cm/박하람-182cm)로 최단신 골키퍼 타이틀을 가져갔다.]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아직까지 국가대표로 뛰어본 적이 없는 불행한 선수이기도 하다.
* 이름을 부를시 발음이 비슷해서 일부 축구 팬들에게는 [[신아영]]으로 불리기도 한다.
- 영천시 . . . . 7회 일치
영화관은 바로 옆동네 [[경산시]]의 읍단위인 [[하양읍]]에도 있는데[* 물론 하양읍은 대학교가 밀집해있어 학생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고 인구 2만 8천명의 대형읍인데다 진량읍과 함께 시내와는 거리가 재법 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영천'''시'''인데도 '''하나도 없다'''. 물론 1960~70년대에 아카데미극장 과 영천호돌이극장 2곳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90년대 경영난으로 폐업하게되었다.(...) 그러나 2017년 영천공설시장에 영화관이 생겼다. 그래서 영천시민들은 주로 영천의 몇안되는--유일한-- 문화시설중 하나인 영천시민회관에서 상영해주는 철지난 영화를 보거나 극장이 있는 근처 [[대구광역시]]나 [[경산시]]에 있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이런 상황이 꽤나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 창신 : 망정동에 창신아파트를 기점으로 주위에 청솔아파트, 아이존빌스타, [[코아루]] 이 네 아파트들을 묶어서 이르는 말로 망정 하면 주로 망정주공아파트와 우방아파트(주소상으로 야사동이지만 망정주공 바로옆이므로)를 떠올리고 창신하면 위에서 말한 아파트들이있는 일대로 생각한다 이 네아파트중 창신아파트가 가장 오래되기도 하고 아이존빌스타 와 [[코아루]]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 일대에서 가장 큰 대단지 아파트였기 때문에 창신으로 불리고 있다.
시장통에 있는 말죽거리터에는 육군 공병대와 함께 [[6.25 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미 25사단 산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기도 했었다. 이곳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수용했었지만 전쟁 중후반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대립이 절정에 달하자 문제를 인식한 미군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분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로 반공포로와 민간인 포로를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시찰차 방문한 적이 있었고 훗날 반공포로 환영식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었을 만큼 규모가 큰 수용소였는데 규모가 있는 수용소였던 만큼 탈도 많았는지 1952년 5월 29일에는 포로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고 그 후에도 포로들의 시위가 간간히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군들이 공산당의 사주를 받아 폭동을 모의했다며 경북도의원을 무단 체포, 납치하는 사건도 발생해 지역민들의 빈축을 샀었다고. 그 외에도 격전지였던 영천전투에서 발생한 인민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서 현재의 영남대학교 영천병원 부지 근처에 임시수용소를 설치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김문수]] : 제15~17대 국회의원(경기 부천시 소사구), 민선 4~5기 경기도지사.
* [[정몽주]][*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은 영천이라는 설과 포항이라는 설 2가지가 있다. 그런데 영천시는 [[포항시]]와 서로 우리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이라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3&aid=0000056808|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포항에는 정몽주 선생의 호를 딴 '''포은'''중앙도서관과 '''포은'''중학교, 정몽주로가 있다. 이에 질세라 영천시에는 '''포은'''초등학교와 '''포은'''고등학교(원래 금호여고였으나 2014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영천이라는 쪽이 좀 더 우세한 편으로, 영천에는 임고서원과 가설 선죽교, 새로 복원한 포은 선생의 생가가 있다.]
- 예천군 . . . . 7회 일치
[[남아선호사상]]이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80년 이래 전국에서 남아 출생성비로 1위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고(...).
예천은 [[활]]의 고장으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예천군의 [[양궁]]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참조. [[http://www.ycinews.co.kr/ArticleView.asp?intNum=47617&ASection=001002|링크]]. 예천 출신의 양궁 국가대표 [[김진호(양궁)|김진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 대회에서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1983년 남·여 2개의 양궁팀을 창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1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예천양궁선수단을 거쳤고, [[황숙주]], [[김수녕]], [[장용호]], [[양승현]], [[김성남]], [[한희정]] 등 1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 각종 국제 및 국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300여회의 입상과 각종 훈·포장을 수상했다고 한다. [[http://ycg.kr/open.content/ko/organization/archery/stadium/|출처]].
김진호 선수를 기리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도 있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전용경기장으로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양궁경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곳으로 전지훈련을 오기도 한다. 이곳에서 국내, 국제 경기가 열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양궁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한다. 2015년 예천은 대통령기 전국 남녀 양궁대회를 비롯해 14개 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예천초등학교[* 2016년에는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59665|기사]].], 예천동부초등학교, 예천여자중학교 양궁부에서 선수들을 양성하고 있다. 예천군청 양궁 실업팀도 있다.
* [[유학성]] : 전 군인(예비역 육군 대장), 전 공무원(중앙정보부장, 안전기획부장), 전 국회의원. 신군부 출신으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있던 [[하나회]]를 후원, [[12.12 사태]]에 가담하기도 했다.
- 유지인(1956) . . . . 7회 일치
||<:> [[고은아(1946)|고은아]][br](과부) ||<:> {{{+1 → }}} ||<:> '''유지인[br](심봤다)''' ||<:> {{{+1 → }}} ||<:> [[정윤희]][br](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 '''출생''' ||[[1956년]] [[1월 27일]] ([age(1956-01-27)]세), [[경기도]] [[가평군]]||
|| [[원미경]] || [[이미숙]] || [[정애리(배우)|정애리]][*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배우)|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배우)|이보희]]를 참고바람.] ||
[[1956년]]생.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절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나 [[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이경실 . . . . 7회 일치
||<#595959><:> {{{#FFFFFF ''' 가족 ''' }}} ||<(> 남편 최명호, 언니 이경옥 1962년생. 강남구의회 기초의원으로 2012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의회 부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딸 손수아[* 2016 슈퍼모델 선발대회 본선에 진출하였다.], 아들 손보승[* [[MBC]] 주말 드라마였던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에 출연함 ] ||
과거 MBC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도루묵 여사' 코너로 대인기를 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면서 '''1994 MBC 방송대상 코미디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코미디계에서 일컫기를 '''여성의 몸으로 정상을 차지해본 3명'''중 하나. 1대가 [[김미화]], 2대가 이경실, 3대가 [[이영자]]다. 이 시기의 영광 덕에 [[응답하라 1994]]에 성동일의 첫사랑이자 당대 최고의 톱스타로 특별출연을 하기도 한다.
개그우먼이지만 연기 활동도 간간히 하고 있다. 출연한 드라마도 꾀 되는편. 몇몇 작품에서는 웬만한 전문 배우보다 연기를 잘한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http://star.mt.co.kr/stview.php?no=2010042709434933856&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대표적으로 [[살맛납니다]], [[로맨스 타운]]이 있다. 공통점으로 오열 연기라는 것. 2012년에는 [[각시탈(드라마)|각시탈]]의 [[오동년]]으로 출연했다. 감초 역할로 호평. 그러나 [[기무라 슌지|미래의 사위!?]]에게 총살당하고 만다. 지못미... 2018년 파도야 파도야로 연예계에 복귀할 예정이다.
참고로, [[신인]] 시절 [[홍기훈]]이 꽤나 유명한 [[터프가이#s-1|터프가이]]로 [[대전광역시|대전]]에서 알아주는 [[주먹]]에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아현|전 여친]]도 팼나?-- 게다가 [[나이]]도 많고 성깔도 더러워서 웬만한 선배들조차도 쉽게 터치를 못 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그런 홍기훈조차도 한방에 [[군기]]를 잡아버린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경실이다. 또 하나는 군기반장은 아니지만 [[이재포]]. 이재포도 [[유도(스포츠)|유도]] 전공자답게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경실 역시 개그계에서는 알아주는 군기반장이다. 방송에서 김구라의 [[턱]]을 최초로 잡은 [[연예인]]이기도 하니...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의 말을 끊고 진행을 몰아붙이는 김구라가 짜증이 났던지 가까이 와보라고 한 다음 턱을 잡고 흔들었다. 이후부터 김구라를 능욕할 때 김구라의 턱을 잡고 흔들거나 소원을 비는 김구라의 턱하르방 컨셉이 여기서 생겨났다.
전 남편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전 남편 손모씨에게 [[2003년]]도에 야구 방망이로 복부를 마구 난타당해 이경실은 입원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 때 [[결혼]]을 앞두고 있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이 병문안을 갔는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웃으며 "너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니?"라고 했다. 다행히 김지선은 --애를 쑴풍쑴풍 낳으며-- 잘 살고 있지만... 前 남편과 함께 방송과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잉꼬부부로 알려지기도 했었던 터라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이경실을 브라운관에서 못 본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모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경실에게 의사를 사칭한 다음 몰래 접근하여 인터뷰를 시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취재윤리를 무시한 행동에 문제의 신문사의 주주였던 모 조간신문에서 이를 비판하는 만평을 보냈을정도. 다만,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고, 사업가--단란주점 사장--인 최모씨와 재혼하여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으나... 후술할 내용 중 [[JTBC]] '[[유자식 상팔자]]' 등에 자녀들과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남편이 주말마다 점심을 해준다는 등(!) 과거의 시끄러운 사건과는 별개로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듯 했었다...
- 이상백 (1904년) . . . . 7회 일치
[[1924년]] 일본의 [[일본 대학농구연맹]]을 결성하고 [[와세다 대학]] 농구팀 대표로 [[일본 대학농구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대학농구연맹 농구부 주장으로 [[미국]]에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 축구, 야구에도 주전 선수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7년]]에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 동양사상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을 비롯,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의 대표로 참석한 경력이 인정되어, [[1948년]] 런던올림픽,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파견되었으며, 그후 매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측 대표선수단 총감독, 단장, 아시아 경기 대회 대표 선수단 단장 등으로서 여러 번 선수단을 이끌고 해외에 원정하기도 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등의 선수단장으로 파견되었다.
'삼봉인물고(三峰人物考)'를 발표한 이래 그는 [[정도전]]이 역적으로 몰린 것은 [[정도전]]의 잘못도 있지만 [[정도전]]의 정적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비난, 부정적인 시각만 강조되어 왔음을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로 고대사와 중세사, 상고사를 연구하는 타 학자들과 달리 그는 주로 조선 왕조사의 연구에 집중하여 힘썼으며 [[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 분야의 연구에 업적을 이룩하여 [[1963년]] [[건국훈장]]과 [[문화훈장 대통령장]](大統領章)을 수여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국사, 근세사 외에도 사회학사, 한국사회론 등을 강의하였으며, 《질서와 진보》, 《중간계급의 성격》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회학과의 개설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래 국내 최초로 사회학과를 설립하고, 대학 강의와 교양지 및 학술지를 통해 사회학을 보급하였다. 또한 사회학을 연구하는데 기초자료로서 통계조사와 설문을 채택, 통계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어 사회학의 연구와 보급을 위해 외국 사회학을 소개하는 데도 힘써, 미헬스(Michels,R.)의 《정치 사회학》, 루세그 와런의 《사회학개론》 등의 책을 [[한글]]로 손수 번역, 이들 서적의 [[번역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회학은 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고전 사회학 이론을 국내에 도입하되 고전 사회학 이론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통계학을 연구하면서 사회 조사에도 관심을 기울여 농촌, 도시, 사회 계층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조사 연구와 설문 등을 하였다. [[황해]]안의 여러 섬들에 관한 조사보고서인 《서해도서 (西海島嶼)》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문교부]] 대학교수자격 심사위원회 위원이 되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3·1 문화상]] 심의위원 회 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어 활동하였다. 여행을 좋아하여 일찍부터 그는 국내 명승고적지와 세계 5대양 6대주를 수없이 돌아다닌 여행가였으며, 기행문 등을 남기기도 했다.
만년에는 그는 국학, 동양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서울대학교]]에 동아문화연구소를 설립, 초대 소장으로 재직하며 연구 계획을 수립하고 학술 세미나 개최를 기획, 준비하였다. 그는 장서가로, 젊은 시절부터 헌책방과 각종 서점을 돌며 평소 희귀한 한중고활자본을 비롯한 진귀한 많은 서적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만년에 자신이 수집한 책들 모두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상백문고(想白文庫)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 이선희 . . . . 7회 일치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의 곡도 히트하여 KBS 가요 톱텐에 자신의 노래 7곡을 진입시키는 등 큰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로 1985년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하였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자리|사랑이 지는 이 자리]]》에서 <나 항상 그대를>로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를 해 3번째 골든컵을 수상했다. 또한 70년대 신중현과 뮤직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해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길을 떠나자> 등도 히트하였다.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부르기도 하였다.
1998년 11집 《Dream Of Ruby》(대표곡 <낯선 바닷가에서>) [[뮤직 비디오]] 촬영 중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으로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후 앨범 활동은 4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승기]]라는 가수를 발굴해냈다. 직접 가수 제의를 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가수로 데뷔시키고 행사를 같이 다니고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가수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도 《[[1박 2일]]》, 《[[강심장]]》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배우로서 《[[소문난 칠공주]]》, 《[[찬란한 유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에 출연하였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 (드라마)|대물]]》의 OST <떠나지마>를 부르기도 하였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인해 '작은 거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 이열희 (1924년) . . . . 7회 일치
| 사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이열희'''(李烈熙, [[1924년]] [[12월 18일]] - [[2012년]] [[8월 9일]])는 [[대한민국]]의 의학 교육자, [[치과]] 의사, [[구강 성형외과]] 의사, 대학 교수 및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위]]이자 [[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며, 치과, 악안면외과(악안면성형외과) 전문의였다.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의 치의학과 과장이자, 경북대학교 치의과대학 초대 학장이었다. [[1962년]] [[11월]]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大韓顎顔面成形再建外科學會)의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에는 군의관으로 참전했고, [[1950년]]대부터 [[치과]]대학 부설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1979년]] [[경북대학교]]에 치의과대학을 별도로 설치하고, 이후 치과대학이 의과대학에서 분리, 단설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국]] 제25육군병원에서 [[하버드 대학]] 출신인 [[치과]]전문의 [[마틴 D. 해치]](Martin D. Hatch) 박사의 지도 하에 악안면 [[성형외과]]를 수학하였다. 이후 그는 육군 제1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제1병원 재직 중 악안면성형 및 구강외과를 창설했다. 당시엔 전쟁 당시 발생한 부상이나 상처 등으로 턱, 안면 등에 변형이 생긴 환자들이 있었다. 그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마틴 D. 해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그에게 수술할 때 사용했던 소수술기구와 성형외과학서적 5권을 그에게 특별히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는 [[1953년]] [[경북대학교]] 의과 대학 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부터 4년간 [[대한구강안면성형외과학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1974년]] [[3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치의학부 교수가 되고 이후 대구시 치과의사회 회원이기도 했다. [[1974년]] [[3월]] 경북대 의대 치의학과장이 되었다. 1977년 5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 명예회장에 추대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대한치과의학회]] 경상북도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9년]] [[3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치과가 단과 대학으로 승격, 치의과대학이 의과대학에서 분리 신설되자, 그는 경북대 치의과대학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1981년]] [[3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제2대 학장이 되었으나 그 해 9월을 기하여 물러났다. 이후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과 평교수로 재직하며 경북치과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개인의로 개업하여 이열희 의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0년]] [[9월]] [[대한군진의학협회]] 명예회원에 위촉되고, [[1981년]] 정년 퇴임과 동시에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에 선임되었다. 1983년 3월 FICO학위를 취득하였다.
만년에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에 살다가 [[2012년]] [[8월 9일]] 새벽 4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의 장성 건영아파트 304동 304호 자택에서 사망했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5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지난 11일 진행됐다. 장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산9번지에 안장되었다.<ref name="pisots">[http://www.kda.or.kr/kda/modules/kdaNews/news/NewsView2.aspx?NewsID=75541 이열희 경북치대 명예교수 별세] 치의신보 제2058호(2012년 08월호)</ref>
- 이준(배우) . . . . 7회 일치
배우가 되기위해 오디션을 계속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 [[우린 안될꺼야 아마|난 아마 안될거야]] 상태로 제이튠에 오디션을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고 한다.[* 정식 데뷔는 2008년에 방송된 MBC시트콤 [[그 분이 오신다]]를 통해 단역으로 데뷔하였다.]2009년 [[닌자 어쌔신]]에서 비의 아역으로 출연하였고 최연소 헐리우드 진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극 중 대사인 "You shouldn't do that." 을 예능에서 종종 써먹기도 한다. 닌자어쌔씬을 계기로 비와 친해져 방송에서 비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는 비의 이런 저런 모습을 알게 될 수 있어서 시청자들도 호감적인 반응이었지만 방송 분량이 잘리겠다 싶을 때 비의 이야기를 절묘히 꺼낸 것 같다는 이유로 몇몇 시청자들의 비난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2012년 2월 22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회심의 토크를 쏟아낸 이후 차세대 예능돌로 급푸시를 받는 중이다. [[무한도전]] [[김태호(PD)|김태호]] [[PD(방송)|PD]]가 트위터에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라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우결·세바퀴등을 연출한 마건영 PD 역시 트위터로 같이 프로 하나 하고싶다고 인증. [[하하(가수)|하하]]가 "이준쇼였다" 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라디오스타 이후로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때 같이 나온 게스트들이 [[제국의아이들|임시완]]·[[트랙스|제이]]·[[유이(배우)|유이]]라서, 상대적으로 예능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준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비중도 가장 컸다는 점도 있지만, 슈퍼주니어를 대표로 하는 예능감 좋은 아이돌의 중요요소인 '자학개그'와 '허당', '자부심' 코드를 적절히 사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PD들은 차세대 MC유망주로 보고 있는 듯. '훌륭한 비주얼이지만 사실은 허당이다!' 라는 [[이승기]] 비슷한 기믹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김구라를 비롯한 라스 MC들 曰, '''비주얼 되는 [[김종민]]'''. ~~1박2일 시즌2에 김종민 빼고 얘를 쓰지 그랬어.~~ 루머로 2월 22일 라디오스타 방영분 출연당시에 MC들이 언급했던 '''백지돌'''특집이 실제로 녹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2012년 상반기엔 MBC가 장기 파업중인 상태였기에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몰랐고 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런닝맨 연출진들의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해 7월 22일자 [[런닝맨]]에서는 그룹 멤버들을 빼고 단독 출연했다! 여기서도 이동 중에 혹시 스파이가 아니냐는 아이돌팀 멤버들의 의심에 '''"내가 그럴 급이 아냐!"'''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어머니 나이를 왜 공개하냐는 정용화의 핀잔에 '''"우리엄마 나이 내가 공개하는데 왜?"'''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다. 중간 미션인 뜀틀 배구대에서는 쓸데없이 높게 뛰는 퍼포먼스를 남발하다가 자신에게 날아온 배구공을 제대로 토스하지 못해 팀을 패배하게 만들었다(마침 그게 런닝맨팀의 매치포인트 경기였다). 최후의 추격전에서는 [[개리(리쌍)/런닝맨|개리]]를 피해 달아나다 [[김종국/런닝맨|호랑이]]를 맞닥뜨려서 또 다시 '''"오와아아아아악!"'''이라는 비명을 남기고 횡사.[* 뒤에서 추격해오던 하하까지 기겁했다.] [[단말마]]가 무엇인지 시범을 보이면서 본의 아니게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돈을 많이 벌면 기부하고 싶다고 했던 말을 실천하듯, 아이돌계 최강 짠돌이라고 알려진 이준이 아이돌 중 최초로 세월호 기부를 해 많은 칭찬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382&aid=0000203857|기부 기사에 댓글이 만 개 가까이 달리기도 했다. 놀랍게도 거의 다 선플.]] 그것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고 혼자 본명으로 몰래 했다가 기부처 측 확인 절차 중에 알려진 거라고.. ~~왠지 기부도 이준답게 한다~~
[[디스패치]]가 [[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eball_new1&no=3540943|털지 못한 연예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따라다녔지만 라디오스타에서 밝힌대로 정말 김밥천국에서 김치볶음밥만 먹고 나오는 것만 포착했다고. ~~돈 안쓴다더니 사실이었구나?~~ 후에 한 번 더 따라 붙었지만 새우 튀김을 먹고 길거리에서 턴하는 모습만 찍혀 끝판왕 다운 면모를 보였다. [[디스패치]]에서 열애설 특종이 나올 때 마다 그의 김치볶음밥 썰은 전설처럼 다시금 언급된다. 그만큼 화제의 인물로 올랐으나 2018년 1월 1일 새해 첫 날, 해당지에서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정소민]]과 열애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http://www.dispatch.co.kr/1057864|관련 기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소속사에서 열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과거 아이돌들의 스캔들을 보고 '''연예계는 동물의 왕국'''이란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 차명진 . . . . 7회 일치
* [[2003년]] ~ [[2005년]] : 손학규 경기도지사 공보관, 특별보좌관
* [[2006년]] : 김문수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 [[2006년]] : 김문수 한나라당 경기도지사후보 선대위원실 총괄실장
* ~ [[2017년 2월]] : 새누리당 경기도당 부천소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 [[2017년 2월]] ~ [[2018년 9월]] :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부천소사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 김문수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로 보궐선거에서 당선
* 한나라당 경기도당 조직위원장
- 혜은이 . . . . 7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1956년]] [[9월 23일]] ([[음력 8월 19일]])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에서 《낙랑쇼》의 단장이자 유명 변사였던 김성택의 딸로 태어나 7살 때(1962년) [[부산광역시]]으로 이주하여 자랐다.
[[1977년]] [[일본]] '야마하가요제'에 출전한 그녀는 일본 빅터 레코드사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당신만을 사랑해'를 일본어로 내고 [[조용필]]에 앞서 일본 활동도 짧게 했다. 당시 일본에선 '강코쿠(한국) 아이돌'로 소개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6/18/0200000000AKR20150618054000005.HTML 40주년 혜은이 "가수인생 골든타임 놓쳐 아쉬움 투성이죠"] 연합뉴스. 2015년 06월 18일</ref>
2015년 2월 23일 [[TV 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혜은이는 남편 [[김동현 (1950년)|김동현]]의 빚보증과 사업 실패로 재산을 탕진하여 200억이 넘었던 빚을 독한 마음으로 10년 동안 빚을 갚았고, 전 남편 사이의 딸을 데려올 수 없었다고 밝혔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3045117 혜은이 “남편 김동현 빚 200억, 죽으려고 도망가기도”] 동아일보. 2017년 02월 24일</ref>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MC메타 . . . . 6회 일치
'''한국 힙합계의 대부이자 선봉장''' [* 혹은 가리온 1집의 '가리온'이라는 곡에서 썼던 가사처럼 '한국 힙합의 마지노선이자 최전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자센터에서 힙합방이란 힙합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제자들의 일부가 후에 [[소울컴퍼니]]를 설립한다.[* 바로 [[키비]]이다. 참고로 메타도 키비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실력은 공식 데뷔로는 14년차 블렉스시절까지 합하면 거의 20년 동안 랩을 하고 있지만,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수준급 스토리텔링과 시적인 가사, 특유의 한국어 라임 구성, [[붐뱁]] 비트, 재지(Jazzy)한 비트, [[트랩]] 비트 등에서도 랩을 할 수 있는 넓은 비트 스펙트럼. 플로우는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고, 엇박을 잘 타는 것도 아니지만 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포스가 그 모든 걸 덮는다. 2018년 현재 48세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이다. 가리온 2집의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에서 아직 본인의 랩 실력이 꺾이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의 1세대 래퍼들이 현재 랩을 안 하거나 퇴물 취급 받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실제 마스터플랜 멤버 중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랩 작업물을 내는 건 메타와 나찰 정도 밖에 없다.--더럽게 안내지만--]
그리고 굉장히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무까끼하이[* 대구 사투리, 대구 토박이들도 잘 모르는 희귀한 사투리라 한다. 뜻은 뭔가 고지식하고 뭔가 무식해 보이는 어떤 사람 혹은 상황이라 한다.]처럼 [[경상도 사투리]]로 랩을 한다든지 심지어는 다큐멘터리 <사투리의 눈물>에서는 21분간 랩으로 사투리 나레이션을 시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재즈와 힙합을 합친 개념인 재즈합이라는 프로젝트 밴드 활동도 하고, 프로듀서 [[돕플라밍고]]의 'Hellevator'에서도 새 스타일을 시도 하였고, 2016년 최근에 발표된 Heritage 싱글에서는 끝말잇기 랩을 시도하기도 했다.
프리스타일에서도 일가견이 있다. [[허클베리피]]가 티비에서 MC 메타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래퍼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도 한다. [* 여담으로 [[마이크 스웨거]]에서 한 헉피의 프리스타일을 보고 [[올티]]가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 마스터플랜 클럽 시절 당시, 예정공연이 전부 끝나고 MC 메타의 프리스타일 타임이 관객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2014년 총 세 편의 [[싸이퍼]]를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하였다.--[[치타]] 학살-- 그리고 프리스타일을 할 때마다 '연결고리'를 많이 외치기로 유명하다. [[https://youtu.be/r4h1cHTOCJI|증거자료]] 일리네어레코즈에서 본인이 피쳐링한 '연결고리'라는 곡의 유래도 엄밀히 따지면 저 멘트이다.
- That 70's show . . . . 6회 일치
키티, 레드, 에릭, 로리의 집. 왠지 에릭의 친구들은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 거린다. 하이드가 지하실에 세들어 살거나 재키나 페즈가 몰래 살기도 했다.--공유지의 비극--
아버지는 잘나가는 변호사였지만,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잡혀가고 어머니[* 나중에 게스트 등장하는데 배우가 '브룩 쉴즈'다.]는 멕시코로 도주(…)하여, 에릭네 지하실에서 하이드와 같이 얹혀 살거나 도나네 집에서 얹혀살게 되는 고난을 겪기도 한다.
에릭의 베프. 반항하에 시니컬한 성격으로서 아프로와 선글래스가 특징. --왠지 [[도우너]]가 연상된다.-- 가정사가 매우 복잡한데, 어머니만 있는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다가 그나마 어머니도 도망가서 에릭네 집 지하실에서 집세를 지불하며 얹혀 살게 된다. 실종됐던 아버지 버드가 돌아오면서 잠시 아버지네 집에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또 실종되면서 다시 지하실에 돌아온다. 6시즌에서 버드는 생부가 아니었고 윌리엄 바넷이란 사람이 생부였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흑인]]으로 레코드 체인점을 소유한 [[부자]]였다. 흑백혼혈이었던 것, 하이드 본인은 자신의 반항적인 혈통의 기원을 찾았다며 아주 기뻐한다. 또 배다른 여동생 엔지 바넷이 생기게 된다.
에릭의 [[누나]]. 섹시하지만 사생활이 매우 문란한 [[빗치]](…). 에릭과는 반대로 키티와는 사이가 나쁘고, 레드에게는 귀여움 받는 딸이다. 에릭과는 견원지간으로 사이가 나쁘다. 시즌 초반에는 대학생이었지만 중간에 뭔가 문제로(…) 대학에서 짤리게 된다. 재키와 사귀던 켈소를 유혹하여 켈소와 관계를 맺고 삼각관계가 됐다가, 재키와 켈소 사이를 파탄내기도 했다. 5시즌에서는 페즈와 캠핑장에서 관계를 했다가 강제출국 위기에 놓인 페즈를 구해주려고 결혼을 해버렸는데 이 때문에 레드는 심장마비 발작을 일으켰다.
에릭과 서로 과거 폭로전을 벌이다가, 사실 태어났을 때는 [[꼬리]]가 있었다(…)는 비밀이 밝혀지기도 했다. 카드놀이를 하다가 666을 연속으로 뽑는 등 악마(…) 기믹이 들어가기도.
- 강영식 . . . . 6회 일치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영식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태(야구)|박경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극혐에 가까운 볼넷질에 [[샤다라빠]]가 [[꼴데툰]]에서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giants_new1&no=1802849&page=1&exception_mode=recommend|대차게 까버리기도 했다]].~~그리고 이때쯤부터 랜디영식모드 돌입~~
롯데에서 방출된 뒤 선수 생활 연장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으나, 결국 현역 은퇴를 결정하였다. [[유승안]] 감독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아 2018년부터 [[경찰 야구단|경찰청]]의 투수코치로 활동하며 [[http://naver.me/xSr07Bd3|지도자 생활을 시작한다고 한다.]]
뱀발로 롯갤에서는 강영식이 부산저축은행에 연봉을 저축했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다면 [[예금자 보호|연봉 3억이 아닌 연봉 5천만 원을 받고 뛴 것이 된다.]] 물론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 경순왕 . . . . 6회 일치
|매장지 =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현 연천군 장남면)
그의 능은 [[신라]] 왕릉 중에 유일하게 경주가 아닌 [[경기도]]에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4186 DMZ의 봄을 보러 가다 (2) - 오마이뉴스]</ref>
[[931년]] 고려 [[고려 태조|왕건]]의 알현이 있었는데, 수십일을 머물면서 왕건은 부하 군병들에게 정숙하여 조금도 범법하지 못하게 하니, 왕경의 사녀(士女)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승냥이와 이리를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고려 태조|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ref name="nate01"/> [[고려 태조|왕건]] 일행이 [[경주]]를 방문한 어느 날에는 그는 [[고려 태조|왕건]]의 손을 붙잡고 [[견훤]] 때문에 살 수가 없음을 하소연하며 통곡하기도 했다.
[[978년]](고려 경종 3) 경순(敬順)이라 시호를 올리고, 왕으로 예우하여 능을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현 연천군 장남면) 남쪽 고랑포 8리 계좌 언덕에 장사 지냈다.<ref name="dk01"/>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746년]](영조 22) 10월 14일 [[경기도]](京畿道) 장단(長湍. 현 연천군 장남면)에서 경순왕의 지석(誌石) 및 신도비(神道碑)가 나왔음을 아뢰는 동지(同知) 김응호(金應豪)의 상소가 있고, 그 후속 조치로 [[1747년]] 4월 20일 경순왕의 묘를 수치(修治)하고 묘비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1748년]](영조 24) 1월 29일에 고려 왕릉의 예에 준하여 경순왕릉에도 수총군(守塚軍) 5명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현재의 경순왕릉 모습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ref name="dk01"/>
경순왕릉비는 [[1748년]](영조 24) [[연천 경순왕릉|경순왕릉]] 있근 경기도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 마을 민가에서 후손 [[경주 김씨]] 김빈(金礗)과 김굉(金硡) 등이 발견한 것으로, 비문 내용은 10여자 정도 남아 있는데 자연풍화 등으로 많이 훼손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다.<ref name="dk01"/> 이후 한국전쟁 당시 경순왕릉에서 300m 떨어진 고랑포리 시가 지역에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73년]] 고랑포 초등학교로 이전되었다가, [[1987년]] 경순왕릉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크기는 높이 132cm, 너비 65cm, 두께 16cm 이며, 상태는 1면만 겨우 남아 10여개의 문자만 판독되고, 내용은 거의 알 수 없다.<ref name="dk01"/>
- 광해군 . . . . 6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리 순탄치는 못했는데[* 정확히는 임란 이전에도 그리 순탄한 입지는 아니었다. 선조는 임란 이전에는 다른 후궁 소생인 신성군 등을 총애했다.], 우선 명은 시시각각 광해군에 세자 책봉에 딴죽을 걸었으며[* 당시 명은 황제와 관료가 후계 문제로 한참 입씨름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만력제도 선조와 비슷하게 나이 어린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려 하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었는데, 만약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허용할 경우 만력제가 이걸 빌미로 이용할 수 있어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 또한 형인 임해군이 아직 건재했기 때문.)], 선조는 이 틈을 노려 광해군보다 거의 10살 연하인(...) 인목왕후를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새어머니가 아들보다 10살 어리다는 거다. (선조 상도둑놈 인증...)~~ 거기다가 [[김희정 (1992년)|인목왕후]]왕후가 아들인 [[영창대군]]까지 낳자, 광해군의 입지는 더더욱 줄어들기까지 했으며, [[유영경]]등의 소북들(후대에 탁소북)은 대놓고 영창대군 편을 들기도... 그래도 ~~노년에 무리한~~ 선조가 영창대군이 3살일 때 죽어 결국 왕이 되는데 성공했으며 유영경과 그의 무리들은 사사된다.
왕이 된 이후에는 이이첨과 정인홍 등의 [[대북]]을 중용했으며[* 다만 유희분과 박승종 등의 [[소북]]도 이 시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또한 반대로 정치적인 중용과는 별개로 이이첨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강성해가는 후금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던 강홍립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동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다만 광해군 본인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대동법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다만 세자 시절에 겪었던 전쟁 때문에 PTSD가 걸렸는지 지나치게 많은 궁궐과 성을 쌓아 국고를 탕진시키기도 했으며, 이는 민생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고 현대 연구자들 역시 비판하는 요소이다. 왕권을 강화하는 방도로 한번 반역음모가 생기면 관계자들을 지나치게 국문하기도 했다.
- 김도균 . . . . 6회 일치
기타 실력을 기르기 위해 지리산 위에 올라가서 피크 박스 한 통(!)을 다 비울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는 전설 혹은 허풍(?)으로 유명하다. 이 전설에 옵션으로 붙는 얘기론 피크가 피킹 한번에 갈려나갈 정도로 내구성이 꽝이라서 생각보다 금방 하산했다는 얘기도 있다.
[[잉베이 말름스틴]]을 특히 좋아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속주를 연습하게 되었다고 하며, 바로크 클래식음악과 메탈을 융합한 [[네오 클래시컬 메탈]]처럼 국악과 메탈을 결합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실제로 산조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국악 곡을 일렉기타로 커버하기도 했다. 국악과 메탈의 융합은 김도균뿐만 아니라 한국 락 뮤지션들 사이에서 자주 시도했던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결과물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Oathean]]이라는 최악의 결과물이 나온 이상 더 이상은 무리--
보기와는 달리 독실한 [[개신교]]([[장로회]]) 신자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산돌선교교회 집사로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고, 자신의 앨범에 다수의 성가곡을 작곡하여 수록했으며, [[https://www.youtube.com/watch?v=e7EQAJUZ3aU|인터넷 기독교 TV방송인 RUTC TV의 '예능']]을 비롯한 다수의 기독교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약간(?) 4차원적인 면이 있고 거기에 키도 큰데다가(183) 장발에 파마까지 하고 조용한 성격이다보니 언뜻 보면 기인같기도 하다. --기인같은 게 아니라 기인 맞다.--
식사는 방송이 없는 날 아침에만 외식을 하고 그 외에는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편의점 애용을 뛰어넘어 '''편의점이 김도균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편의점을 자주 간다. 가까이에 마트가 없어서 멀리 가지 않고 집 앞 [[GS25]]에서 모든 생활용품을 구입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GS25의 CF를 찍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7RdGFK3YRU|#]]
의외로 보컬 실력도 출중하다. 간혹 소규모 개인 공연을 열어 노래를 하기도 하는데,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이 애창곡. 1994년 [[https://www.youtube.com/watch?v=3RCTN_TKV2Q&start_radio=1&list=RD3RCTN_TKV2Q|"천사가 된 너에게"]]라는 곡으로도 활동했으나 인기를 얻진 못 했다.
- 김태우(god) . . . . 6회 일치
처음에는 '인기가수 [[박진영]]'이 심심풀이로 만든 그룹인 줄 알았던 god가[* 사실 그룹 멤버 자체를 구성한 건 싸이더스였고 박진영은 여기에 김태우를 추가하고 프로듀싱을 맡았던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프로듀싱의 비중이 상당했던 지라...]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신화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면서, 메인보컬 김태우 역시 큰 인기를 얻게 되며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샀다. 물론 여성팬들의 인기는 [[손호영]], [[윤계상]], [[데니 안]]이 차지.그러나 god가 신인가수시절에는 박준형과 함께 인지도는 높은편이었다. 손호영 윤계상 데니안은 비슷비슷한 비주얼에 랩만하였지만 누가봐도 아재얼굴인 박준형과 덩치크고 뚱한 체형에 안경까지 쓴 튀는 비주얼로 인해 god내에서는 이 2명이 인지도가 높았다. god 내에서 호불호가 갈린 멤버. 외모도 별로인 데다 오버하는 성격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인기 지분과는 다르게 김태우가 압도적으로 보컬을 책임졌기 때문에 사실상 중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핑클]]의 [[옥주현]]을 떠올리면 될 듯.
2004년 윤계상이 연기자로 전업(정확히는 그만두려 했다)해서 탈퇴하고 6집, 7집을 4인 구도로 활동하다가 2005년을 마지막으로 god가 활동을 중단하면서 솔로로 나섰다. 베이스가 탄탄하다보니 솔로 활동도 잘 했고, 여러 가수의 피처링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피처링해준 곡이 본인 곡보다 잘 나간 느낌이 좀 있다. 심지어 [[MC몽]]의 'I love U, Oh Thank U' 같은 곡은 많은 사람이 김태우의 노래로 알고 있다.[* 다만, MC몽보다 수록이 늦긴 해도 김태우의 개인 앨범 1집 '하고 싶은 말'에도 이 곡이 실려 있으니...]
2011년 3월 29일 정규 2집 앨범 'T-School'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메아리'.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2009년에 발매했던 '사랑비'보다는 뭔가 아쉽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비'의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기대치가 높았던 데다 이 시기 [[8eight|이현]], [[휘성]], [[케이윌]] 등의 남자 솔로 가수들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탓에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저 세 가수의 경우는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이들과 비교할 때 부족해 보일 뿐, 타이틀곡 자체는 음원 사이트에서 [[씨엔블루]]나 [[걸스데이]], [[포미닛]] 등 아이돌들 사이에서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하는 등 꽤나 선전했다. 또 앨범의 수록곡 'Brothers&me'는 [[박진영]]과 [[비(연예인)|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타이틀곡 '메아리'의 뮤직비디오에서 김태우의 1인 2역 연기를 볼 수 있다... ~~곰 두 마리가 한 집에 있어!~~
프로그램 중에서 [[소녀시대]]의 [[유리(소녀시대)|유리]], [[한선화]]와 러브라인을 만들고, 아이돌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예를 들어 1:7 씨름을 했다) 전국 수 많은 아이돌 팬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대놓고 사심 방송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청춘불패 시즌1]]에서 [[구하라]]가 다리찢기를 하고 있는데 "넌 어려서 골반이 안 벌이지네"라고 말한 게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신영]]이 잠깐 발끈하기도 했고... 이걸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안 벌어진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으로 해석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었으나 크게 불거지는 일 없이 금새 묻혔다. 이것을 두고 성실한 군복무로 인한 실드가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여성]]은 2차 성징이 끝나면 추가적으로 골반이 성장하지 않으며 골반이 벌어지는 문제와 성경험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의 직설 화법은 여러 모로 [[호불호]]가 갈린다. 평소 화통하고 유머러스해서 좋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디스하면서 웃음을 유도하는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해피투게더에 나와서 [[H.O.T.]] 시절의 [[문희준]]이 하도 인사를 안 받아줘서 내기까지 했다는 말을 질질 끌어서 좌중을 싸하게 만들었다. 워낙 친한 형이라서 그럴 수 있다 치지만 한 번 웃고 끝내면 될 것을 너무 길게 끄는 바람에 무안해져버린 문희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게 방송을 탔다. 더군다나 이미 그 일 때문에 문희준이 연예사병이던 시절 선임왕고였던 윤계상이 하루 종일 경례만 시켰던 일화도 있었기 때문에...게다가 이때 처음한 이야기도 아니고 김구라와 문희준이 진행하던 [[SBS]]의 [[절친노트]]에 출연했을때 이미 했던 이야기였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6회 일치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받지 않는다의 행동을 보였지만 미도리야, 밀리오, 나이트아이가 죽어도 에리를 구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보이면서 의식이 바뀐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죽고 다치기를 원치 않는데서 나아가 자신이 남을 돕고자 생각을 바꾼 것. 본래 개성은 대상을 "되감는 능력"으로 오버홀의 수복 능력의 상위호환이다. 어린 탓에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스스로 의지로 쓰지도 못하고 불현듯 발동해 아버지를 태어나기 전 상태로 "되감아"버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모친인 두목의 딸에게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버림 받았지만 두목에게 거둬졌다. 두목은 오른팔격인 오버홀에게 보호와 개성 규명을 맡겼는데 오버홀이 조직을 장악하고 연구를 악용해 지금에 이른 것. 한 번은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떨어지는 루밀리온의 망토를 보고 도우려는 마음을 각성, 그와 함께 뿔에서 능력이 발현해 네모토 신과 융합한 오버홀의 상태를 이전으로 돌린다. 그리고 망토를 뻗어서 미도리야가 붙잡고 올라오도록 돕는다.
원래 두목에게서 에리의 보호와 개성규명을 부탁 받았는데 배신하고 그 능력을 악용해 지금의 사업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무자비한 학대와 인권유린은 덤. 자신을 믿고 에리를 부탁한 두목을 배신하기도 했다. 조직을 두목의 뜻과 다르게 이끌기도 했으니 두 번 통수를 친 셈. 미도리야에게서 선수쳐서 에리를 다시 빼앗지만 에리가 루밀리온의 망토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눈뜨면서 개성이 발동, 네모토 신을 흡수했던 상태를 되감아 다시 분리시켜 버린다.
트와이스가 탈출용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만들어놨었다. 아마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소형화시켜서 가지고 다녔던 듯. 원래 목적은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 것. 아마 에리의 카피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을 걸로 보인다. 탈출 이후에는 토가가 획득한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류큐팀을 유인, 역전하게 돕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다시 에리와 접촉할 기회를 만든다. 트와이스는 이때 자신들로는 오버홀이나 히어로들과 정면승부를 못하니 카피인 컴프레스를 앞세워서 목적을 달성하라고 종용한다.
- 마니교 . . . . 6회 일치
마니는 사푸르 1세로부터 제국 내에서 포교 허가를 얻게 된다. 마니교 문헌에서는 사푸르 1세로부터 3번에 걸친 초빙을 받고, 황제는 마니의 [[후광]]에 압도되어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병든 딸이 있고 마니가 의술로 완쾌시켰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다만 시대배경으로 보면 사푸르 1세는 이 무렵 여러 종교가 번창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종교 관용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보이며, 니시비스의 유대교 공동체의 지도자 사무엘을 불러들여 알현을 허락했다는 일화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마니는 단순히 포교 허가를 얻었을 뿐. 특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사푸르 1세는 조로아스터 교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고.
마니는 옥중에서도 포교를 멈추지 않았는데, 중앙아시아에서 찾아온 제자 마르 앙모에게 봉서를 맡기고 떠나도록 했다. 그리고 감금된 지 26일째의 277년 2월, 사망하게 된다. 옥중에서 사망했다고도 하고, 처형당했다고도 한다. 사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참수되어 성문에 노출되었다거나, 야수에게 먹이로 줬다거나, 두동강이로 잘려서 두 개의 문에 못박혔다거나 --고어-- 가죽을 벗겨서 지을 채운 뒤 책형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웃즈라는 제자가 남긴 중세 페르시아어 단편 자료에서는, 주 마니는 육체라는 옷을 벗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다고 한다.
또한 마니는 사산 왕조의 이전 왕조인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의 왕족 출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이 종교를 퍼트려 방대한 조직을 만들고, 각지의 유력자를 포교하여 끌어들이는 한편, 잔존해있는 파르티아계 귀족이나 중앙아시아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을 소지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4세기 마드리드 서부의 아비라 프리시리안이 시작한 프리시리안 주의는 마니교의 마지막 불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금욕주의와 이원론을 내세우던 프리시리안은 마니교와 그노시즘에 오염된 이단으로 여겨져 386년 처형되고, 프리시리안 주의는 6세기까지 근절된다. 이단자가 된 프리시리안의 저작이 보존되지 않은 탓에 가르침은 확실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1886년 바이에른 왕국의 부르트부르크 대학 서고에서 우연히 프리시리안과 제자들의 논고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마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며 우연히 독자적으로 금욕과 이원론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권력 측에 선 신관단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제국에서 마니교는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게 된다. 마니교는 경전을 확립하고 있었으며, 질서정련한 교리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도나 배화의례, 구전전승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페르시아의 민족종교로서의 경향이 강한 탓에, 마니교처럼 복잡한 교리와 신화에서 지적인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고 제국의 여러 속민들에게 어필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1351년, 원나라에 대항하는 [[백련교]]의 반란이 일어난다. 백련교의 지도자 한산동(韓山童)은 자신을 「명왕(明王)」으로 칭하고, 아들 한림아(韓林兒)는「소명왕(小明王)」을 칭했다. 이들이 [[홍건적]]을 일으키고, 홍건적 출신의 [[주원장]]은 나라를 세워 국호를 명(明)으로 하였다. 과거에는 이것이 명교의 영향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백련교와 명교 사이에 교리상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아, 명(明)이라는 글자를 내세운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단지 명칭상으로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 마재윤 . . . . 6회 일치
마재윤은 집행유예 기간이던 2011년 6월부터 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모습을 방송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게임단에서는 즉각 방송을 중지하라 했지만, 마재윤은 이에 신경쓰지않고 계속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승부조작으로 인해 영구제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방송을 진행하여, 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팬들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2012년 3월에는 시간당 돈을 받고 스타크래프트를 강의하겠다는 게시물을 작성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사용자는 강제로 방송국에서 퇴출시키며, 금칙어까지 만들어 아예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2013년 2월 자신을 비방한 네티즌들을 다수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범죄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시청자 수의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로 모든 금칙어와 제한을 해제하고 스스로 조작을 컨셉으로 한 방송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에서 만나 마재윤이 3:1로 이기고 본좌에 등극하게 되는, 본좌 검증의 마지막 상대였다. MBC Movies 팀리그 결승전에서 한번 패하였으나 그 후 2007년 2월까지 거의 마재윤이 전승하며 상대전적이 한때 비공식전을 포함해 11:3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12월1일 펼쳐진 3회 슈퍼파이트에서 마재윤이 [[이윤열]]을 3대1로 잡아내며 한 발 먼저 앞서간 바 있고, 다음해 2월 24일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결승전에서도 마재윤이 이윤열을 3대1로 잡아냈다. 그러나 이후 신한은행 마스터즈 결승전에서 역으로 이윤열이 3:1로 이긴데다가 마재윤이 슬럼프의 늪에 빠지면서 상대전적의 폭도 대단히 좁아지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마재윤은 [[에버 스타리그 2008]] 1차 본선에서 2연패로 탈락하면서 오프라인 예선으로 가게 되었다. 다시 2009년 헤리티지 리그에서 풀리그때 1번 이기고 결승에서 2:1로 우승하면서 두 선수간의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5:5이나, 비공식전을 포함하면 20:11로 마재윤이 우세하다.
[[이제동]]과의 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3:3 무승부, 비공식전까지 따지면 4:5 약간 열세. 첫만남은 비공식전이었던 스타리그 24강 진출전 예선 M조 결승으로 이제동이 2:1 승리, 공식전에서의 첫 만남은 2006 3차 듀얼토너먼트 C조 승자전으로 이때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16강 패자전 1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1라운드 르까프전 2세트에서 패하면서 2전전승이 끊겼다. 이어 [[박카스 스타리그 2008]] 16강 A조 1경기에서도 패했으며,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3라운드 위너스리그 결승전 화승전 3세트까지 패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1라운드 화승전 2세트에서 승리하면서 이제동전 3연패를 끊었다.
[[박정석 (프로게이머)|박정석]]과는 [[우주 MSL 2005]] 승자조 4강 2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으며, 결승전에서도 마재윤이 3:1로 승리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WEF 2005]] 4강에서 2:0 승리,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1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으며, 2라운드 KTF전 1세트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다시 비공식전인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부산투어 2경기도 마재윤이 승리,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1]] 16강 승자전 2경기에서도 마재윤이 승리, 그러나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KTF전 1세트에서는 패했다. 그러나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KTF전 4세트에도 패했다. 이어 다시 비공식전인 제4회 슈퍼바이트 e스포츠 8강 A조에서 마재윤 승리, 다시 비공식전인 2007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4강에서도 2:0으로 승리하면서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8:3,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4:3으로 마재윤이 초강세.
[[강민 (프로게이머)|강민]]과의 첫만남인 MBC Movies배 팀리그 KTF전 3경기에서는 강민이 승리, 구룡쟁배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 F조 4경기에서도 강민이 승리했다. 그러나 [[CYON MSL 2005]] 16강 1경기에서는 마재윤이 승리, 비공식전인 [[엘리트 학생복 MSL 올스타리그]] 대구투어 결승에서는 1:2 패배 준우승,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1]]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우승했다. 그해 8월 [[WEF 2006]] 4강에서 마재윤이 2:0 승리, 다시 공식전인 [[프링글스 MSL 시즌2]] 4강 B조 경기에서 다시 만나 또 마재윤이 3:1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어 [[곰TV MSL 시즌1]] 8강 B조 2경기에서도 마재윤이 승리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1라운드 KTF전 2세트에서는 강민에 패했다. 비공식전인 2007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4강 8강에서 2:1 승리, 다음날 최종 결승전에서 2:0 승리, 2년 뒤 7월, [[헤리티지]] 10강 B조 5경기도 마재윤이 승리하였다. 상대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8:5, 비공식전까지 포함하여 18:8로 마재윤이 강세.
2010년 4월 몇몇 팬들로부터 [[2010년 스타크래프트 불법 베팅과 승부 조작 사건|승부 조작]]에 마재윤이 가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면서 '마재윤 vs 이신형'전의 배팅 사건 등등이 제기되었지만, e스포츠 팬들의 반응은 마재윤이 맞다고 주장하는 쪽과 확실하진 않으니 검찰 조사를 기다리자는 쪽으로 나뉘면서 서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검찰은 마 모 프로게이머가 연루되었다고 발표하였는데, 실제 케스파에 등록된 마 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는 마재윤이 유일한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마재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음이 밝혀졌다. CJ 엔투스는 검찰 수사 공식 확인 하루 전 마재윤을 팀 선수 명단에서 제명하였고, 한국 e스포츠 협회는 그를 다른 승부조작을 꾸민 [[진영수]], [[원종서]], [[최가람]], [[김창희 (프로게이머)|김창희]], [[신희승]], [[김성기 (프로게이머)|김성기]], [[문성진]], [[박찬수]], [[박명수 (프로게이머)|박명수]], [[정진현]]을 모두 영구제명 조치하였다. 검찰 수사 발표 이후 MBC게임 해설진은 경기 중계 도중 과거 경기를 언급하며 마재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마재윤은 승부 조작 혐의로 인하여 벌어진 재판 당시 재판장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마재윤은 프로게이머라고 답하여 무직이라고 대답했던 [[원종서]]와 대조를 보였다. 마재윤은 e스포츠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하여 고의적으로 경기를 패배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무라하치부 . . . . 6회 일치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와카슈(若衆)라고 불렸으며, 이들은 젊은이들만이 모인 숙소에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마을 내에서 자경, 방위, 소방, 농지 경작 등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대의 학교이자 청년단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아니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므로 서로 간의 친목에 필요한 음주, 흡연을 가르치기도 하고 요바이(夜這い) 등을 통하여 연애, 결혼 상대를 찾기도 했다.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총촌에서는 회합으로 소우오테키(惣掟) 등의 독자적인 자치 규약을 만들고, 이 규약은 지배 영주와 무라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맺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자치 규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무라에서 자체적으로 추방, 재산몰수, 신체형(태형), 심지어 사형 등과 같은 엄격한 형사 처벌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자검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농촌에서 보유하고 있던 대량의 무기이다. 에도 시대에는 신분지배의 상징적인 관점에서 무기를 몰수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거의 명분상의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무라에서 칼, 창, 총, 활 같은 무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불에게 헌납한다는 목적, 혹은 맹수 피해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상당한 양의 무기가 농촌에 보유되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GHQ에 위한 무장 해제 정책, 극좌, 극우 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경찰의 강력한 무장 해제 조치를 통하여 사라지게 된다.
가해자인 남성은 본래 이 지역 출신으로 농림업을 하던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상경하여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살고 있었다. 1994년 귀향하고 부모님을 개호하였으나, 가나가와 현에서는 미장이로 일하면서 귀향한 뒤에도 기술을 살려 집을 건축하고 현지 TV쇼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별한 뒤에 지역 주민들과 문제가 잇따르게 되었다.
* 신동진 한국 아나운서 협회장이 [[팔푼이]]라는 말이 무라하치부가 어원이 된게 아닌가 추측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http://www.announcer.or.kr/?p=8870&ckattempt=1 (참조)]]
- 미래소년 코난/설정 . . . . 6회 일치
주로 플라스틱 수집 및 다른 곳과의 교역용으로 사용되었으나, 다이스 선장 측이 인더스트리아와 결별한 후에는 침몰당하기도 하는 등의 고난을 겪는다. 최종적으로는 코난 일행이 홀로 남은 섬으로 이주할 때 이민선으로 사용된다.
허접한 모양과는 달리 작업용으로도, 전투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양팔의 매니펼레이터(manipulator)는 매우 정밀한 편이라, 삽질은 물론이거니와 기관총 등을 직접 들고 사격이 가능할 지경이다. 그래서 각종 작업장 및 바라쿠다 호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코믹하게 묘사될 때는 로보노이드의 매니펼레이터로 (탑승자의) 머리를 긁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남겨진 섬 (残され島[* のこされ島라는 표기도 있다.])[* 더빙판에서는 '홀로 남은 섬'으로 의역되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등장하는 국가로 공업시설이 대부분이고 작 중에서 유일하게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적에 따라 1등시민, 2등시민, 3등시민으로 나뉘어 지는 데 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프카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레프카에 의해 정치범[* 작 중에서 레프카 본인은 지하거주민들을 반역자, 쓰레기라고 부른다.]으로 규정되어 있다.[* 지하거주민들의 이마에 정치범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사각별 형태의 낙인이 찍혀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대참사 이전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각변동으로 가라 앉게 될 징조가 보이면서[* 때문에 지하도시의 정치범들이 불안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레프카는 답없는 행보를 바꾸지 않는다.] 25화에서 침몰하게 된다. 작 중에서 인더스트리아는 옛 시대의 마지막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고 인더스트리아의 침몰은 옛 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자세한 내용은 [[삼각탑]] 문서 참조. 여담으로 시민과 정치범 간의 괴리감은 심한데 시민은 정치범을 마구잡이로 대해 함부로 총질하기도 한다. 결국 나중에 레프카가 쫓겨날때 같이 쫓겨난다.
라나의 고향으로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전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참사 이전에는 주민들이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대참사 이후에는 생존을 위해 농업, 어업, 목축, 수공업등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다만 국가의 형태를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오로와 같이 전원생활에 대해 불만이 있는 반항적인 청년들이 독자적으로 무리를 이룬 경우도 있다. 17화에서 하이하버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라나를 잡아가려는 데 혈안이 된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20화에서는 점령군으로 왔었던 인더스트리아 군인들이 하이하버의 주민이 되어 일을 하며 정착한다. 라오박사의 반중력 비행정이 하이하버에 있었는 데 인더스트리아에서 파르코 비행정에 의해 격추된다.
- 박철우(배구) . . . . 6회 일치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부천 KEB하나은행|신세계 쿨캣]]의 [[농구]] 선수 [[신혜인]][*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2008-2009 시즌에 기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폼을 잠시 잃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소속 팀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로서는 박철우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맡겨서 현대캐피탈을 '철우캐피탈'로 불리기도 했었다. 이 시즌 정규리그에서 역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인 55.32%를 기록하며 공격상과 함께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2010 시즌 중이었던 2010년 1월 30일에 LIG와의 천안 홈 경기에서 무려 '''50득점'''을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는 2014년 현재도 국내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이 날 경기가 5세트 도중 방송이 끝났다는 안습함이 ㅠㅠ--
게다가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오'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 공격 점유율을 많이 내준 탓인지 공격감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정규시즌에도 박철우의 비중은 적어졌고, 설령 공격을 해도 벽치기가 잦아서 '''벽철우'''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2013 KOVO컵에서도 그 현상은 여전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팀 공헌도가 박철우보다 객관적으로 높은 [[여오현]]보다 많은 돈으로 FA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무려 '''3억 3,000만 원'''이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FA가 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부터 2억 6천만원을 연봉으로 제시받았는데, [[여오현]]은 이를 거부하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연봉 2억 9천만 원에 3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여오현]]은 KOVO컵에서 여실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현대캐피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지만, 준결승 [[일본]]전에서 패해 '''결국 군대 확정....''' 2014년 10월 23일로 입소일이 찍힌 입대 영장이 아시안 게임 이후 통지됐다고 한다. 삼성화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행정절차 때문에 입소일이 [[2014년]] [[11월 27일]]로 연기된 상태. 이유인즉슨 박철우가 오프 시즌 동안 주소지를 팀 숙소와 전용 체육관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 근처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소지 변경 때문에 관할 병무청이 변경되어 박철우의 입소 날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으며, 일과를 마치고 팀 훈련장에서 훈련하기 위한 취지로 추측된다. 2014년 11월 20일 대전 홈 경기를 끝으로 입대했다. 이후 기초 훈련을 마치고 [[수원시|수원]] [[권선구|권선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 실업팀 . . . . 6회 일치
[[스포츠]] 팀의 구성 구조. 영어로는 Works team 혹은 factory team이라 불리는 형태. 일본어로는 실업단(実業団)이라고 부른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한 형태[* 대한민국의 경우, [[세미프로]]까지는 아마추어의 성격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아마추어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종목을 불문하고 각 지역을 대표하여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실업팀의 운영 실태는 모 회사나 운영단체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일반 종업원과 똑같이 업무를 하고, 잔업 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만 연습과 시합을 하며 어디까지나 부가 활동으로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상 실업팀 활동이 주가 되며 활동이 거의 프로 스포츠 [[클럽팀]]과 같은 수준으로, 형식만 실업팀일 뿐이지 종업원으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스포츠 활동에만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의 기준에 따라 준프로 내지는 세미프로로 규정되기도 하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다.[* 축구의 경우, KFA에서는 세미프로로 규정된 실업팀들은 대학팀 같은 완전한 아마추어 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FA컵]]에서 1라운드 예선을 면제받고 2라운드부터 참가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을 받는다.]
종업원에게 오락과 여가활동을 제공하여 회사의 복리후생을 향상시킨다. 나라에 따라서는 이러한 기업 내 스포츠 활동을 노동자 복지활동으로 보고 [[법인세]]를 감면해주기도 한다.
실업대회 출전과 실업팀의 성과는 조직을 홍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지역 공헌 차원에서 실업팀이 운용되기도 하는데, 주민에게 스포츠 시설을 개방, 대회를 개최하여 지역에 공헌하는 것이다.
그냥 경영진이 해당 스포츠를 좋아해서 실업팀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농담인 것 같지만 진짜다. 삼성그룹의 회장인 이건희의 경우 원래 럭비를 좋아해서 럭비 실업팀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축구팀 성남은 아예 일화가 운영하던 시절, 일화가 창단한 이유중 하나가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취미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기도 한다. 프로팀도 취미로 운영할 수 있는데 실업팀 쯤이야(...)]
프로 스포츠가 없는 곳에서는 지자체가 실업팀을 운영하여 경기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여가활동을 제공하거나, 지자체의 명예와 시민의 고양을 위해 전국체전에서의 활약을 노리고 실업팀을 운영하거나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국체전의 활약은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 애로우 . . . . 6회 일치
[[애로우버스]]의 첫번째 드라마이기도 하다.
캐릭터성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코믹스의 그린 애로우보다는 배트맨과 비슷한 느낌. 배트맨의 적수인 라스 알 굴과 충돌하기도 했다.
퀸 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미인 여성으로 유능한 천재 해커. 올리버를 도와주다가 점차 애로우 팀에 끼어들게 된다. 올리버와 연애 전선을 쌓아가다가, 3시즌에서 연인이 된다. 팀에서는 주로 정보 탐색과 통신지휘 역할을 맡으며 가끔 현장에 뛰어들기도 한다.
랜스 형사의 딸. 올리버의 여자친구. …인데 올리버가 여동생 사라와 바람피우고 또 물에 빠져 실종당하는 파란만장한 과거를 겪었다. 본래 올리버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올리버의 배신과 사라의 죽음 때문에 올리버에 대한 감정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 로스쿨을 나오고 [[검사]]로서 활동하지만, 심각한 스트레스로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등 문제를 겪기도 한다.
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팔머 테크의 사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천재 미남 사업가. 가볍고 밝으며 허당스러운 성격이다. 3시즌에서 팰리시티를 사이에 두고 올리버와 삼각관계를 연출하지만, 이미 올리버는 팰리시티에게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지 못한다. 라스 알 굴의 음모 때문에 애로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여 적대시 하며, 자신이 개발한 아톰 아머를 입고 애로우와 대결하지만 팰리시티의 설득으로 올리버가 누명을 썻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팀 애로우에 합류하여 아톰으로서 올리버를 돕게 된다. 팰리시티와 잠시 연인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팰리시티는 올리버와 맺어지게 되면서 차인다.
배경 세계를 공유하는 드라마 플래시는 애로우의 스핀오프이기도 하다.
- 양예나 . . . . 6회 일치
개인 소개를 할 때 자신을 [[APRIL]]의 다람쥐라 소개하며 양볼에 주먹을 갖다대는 제스쳐를 곁들인다.[* 유일하게 외형적인 면을 소개 멘트로 쓰는 멤버이며, 말 그대로 다람쥐를 닮아서 이기 때문이며 상황에 맞게 바꿔 부르기도 하다. ex)예람쥐, 날다람쥐]
무표정일 때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를 살려 '봄의 나라 이야기' 활동 당시 아예 센터 포지션을 맡기도 했다.
[[레이첼(APRIL)|레이첼]]이 발레를 전공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춤선을 가진 반면, 예나는 박자감이 두드러지는 칼박스타일로 춤을 추며 주특기가 남자&여자아이돌 [[댄스 커버]]이다. 또 에이프릴 안무담당이기도 하다.
* 온에어프릴에서 [[이나은]]과 함께 이모님 말투를 흉내내며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나은이 노잼 드립을 칠 때, ~~딸기잼! 누텔라잼!!~~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 쇼 챔피언 백스테이지에서는 건방진 기자가 되어 채원 옆에서 깐죽거리기도 했다.
* 한 살 아래 동생인 멤버 [[이진솔]]과 친한 듯하다. 실제로 유튜브에 들어가면 이진솔을 챙겨주거나 진솔과 투닥거리는 영상들이 있다. ~~같이 헬륨 가스를 마시기도 한다~~ 또한 APRIL 멤버 중 가장 친동생 삼고 싶은 멤버로 이진솔을 꼽았다. 스킨십하는게 좋다며. --[[이진솔]]이가 완강하게 거부(?)한건 덤--
- 영덕군 . . . . 6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동, rd1=영덕동)]
1989년, [[울릉군]]과 영덕 삼사해상공원을 오가는 헬기 노선이 개통되기도 했으나 개통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울릉도 관광 헬기 추락 참사|헬기 추락 사고]]로 사라졌다.
영덕[[대게]]가 가장 유명하다. 주로 영덕군 앞바다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게껍질이 얇고 게살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지역주민을 비롯해 외지에서도 영덕대게를 먹으러 원정방문을 하기도 한다. 철은 11월~5월 사이이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맛있다. 이 시기를 맞춰 3월 초에 영덕에서는 대게축제를 개최한다.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한 강구항이 가장 유명하고, 대게축제도 이곳을 중심으로 개최한다. 대게집도 이쪽에 가장 많이 몰려있다. 강구항을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작은 포구에도 대게집이 종종 있는 편이고, 북쪽의 축산항도 작지만 유명한 편. 1998년부터 현재까지 영덕군청 주최로 영덕대게축제가 열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게축제시기에는 강구항쪽 교통에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실제 한번 밀리기시작하면 걸어가야할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해진다]--
그런데 대게 생산지로 알려진 주변지역인 [[울진군]]과는 대게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산 대게의 원조가 영덕이냐, 울진이냐를 놓고 두 지역간의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였으며 지금도 두 지역 사이에서는 대게를 놓고 한 판 경쟁을 벌이는 수준. 정치적으로도 소지역주의로 약간 갈등 소지가 있으니 [[울진군]] 항목 참조.
다만 7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영덕군수 후보가 41%를 받으며 선전하기도 했다.
- 우현(배우) . . . . 6회 일치
김천감로화오일뱅크주유소 를 졸업했다. 이로 인하여 2016년 우현이 1:100에 출연할 때 100인 중에 김천대화오일뱅크주유소 학생들이 초청되었고, 그 중 한 학생은 우승까지 했다! 재학 중 학생운동을, 그것도 운동 최전선에서 움직이던 간부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행했다. 그래서 옥살이만 2번을 해서 소집제외되어 군[[면제]].[[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community/2078/read?articleId=20656465&nil_id=14&objCate1=497&bbsId=G005&t__nil_ruliweb=best&itemId=143&t__nil_ruliweb=best&nil_id=14|#]] 학번상 [[6월 항쟁]]의 선봉에 섰는데,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된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망사건 항의 집회에서 최선봉에 섰기 때문에 [[타임지|미국 시사잡지]]의 1면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회장이 이미 그전에 잡혀간 뒤라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여, 다른 간부였던 우현이 선두에서 지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1987년]] [[6월 항쟁]]에 최선봉에 섰던 우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영화 [[1987(영화)|1987]]에서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 역할로 등장했다.
물론 논란이 될 사항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도 [[1987(영화)|1987]]에서 [[전두환]]의 심복이자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장세동]] 역으로 출연했는데(...) 정작 문성근 씨는 진보 성향인데다 과거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시민단체|시민운동단체]]를 조직하는데 앞장서서 진보시민운동을 주도하기도 했고, 현재도 [[진보]] 진영에서 여러 활동을 하지만 영화, 드라마 등 작품에서는 반대 성향의 역할을 맡아왔다([[군부]] 정권 시절의 친 정부 성향 경찰 간부나 [[정보기관]] 수장, 부패한 정치인, 언론인 등등). 본인 스스로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에서 “그 영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라고 밝혔다.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드라마에도 데뷔하였으며, 그 뒤로 감초 역할로 활약했다. 특유의 [[노안]]과 작은 키 덕에 전형적인 동네 촌놈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최근에는 연기변신을 시도하면서 악역으로도 연기폭을 넓혔다. 특히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 [[이방지(뿌리깊은 나무)|이방지]] 역을 맡아 강채윤의 스승이자 노회한 무공의 고수 역할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 젊은 [[이방지(육룡이 나르샤)|이방지]] 역을 맡은 [[변요한]]과 비교하면 외모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난다.
시트콤을 하면 노총각 역을 맡는다. 거기다가 특유의 노안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10살 넘는 역할을 맡는다. 40대 시절에도 60살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시트콩 로얄빌라]]에 콩트를 펼치기도 하였고, 아내 조련과 함께 <내 나이가 어때서> 후속 코너인 <리그 오브 차일드>에서 동반출연한다.
* 또한 현재 사는 아파트 말고도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에서도 주택이 있으며, 실제로 가족들과 3여 년간 살았었다. <유자식 상팔자>에서 김천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밝혀졌는데, 주유소들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해서 장모님의 추천으로 아들의 정신 건강을 치료할 겸 진도에 내려와 집을 지었다고. 가족들은 김천에서 지냈고, 본인은 일 때문에 [[대구]]과 진도를 오가면서 살았었다.[* 때문에 몇 년간 주말부부로 지내야만 했고, 주변에서는 "이혼한 거 아니냐"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그 진도 집은 [[동물농장]] 견스테이와 유자식 상팔자 특집 코너[* 대표적으로 아빠, 삼시세끼를 부탁해! 코너. [[홍서범]] 과 함께 코너를 진행했다]를 진행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 유인촌 . . . . 6회 일치
덤으로 이미지가 영 나빠진 것도 정치에 입문한 후. 보수라서가 아니라 후술할 '찍지마' 사건 등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진 대부분 국민에게 지적이고 예의바른 이미지가 매우 컸는데, 저 사건 이후로 산산조각나 버렸다. 오히려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대비되어서 더 안좋아진 것 같기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뮤지컬]]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했다.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빌라도]]역은 1980년 초연 이래 무려 십수년간 계속 맡아 오기도. 그 외에도 한강은 흐른다나 지하철 연가 등 창작 뮤지컬의 주연도 자주 맡았다.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이 연기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아주 잘 나온다. 유인촌의 연기변신을 보려면 필히 봐야 할 작품. 이 연산군 배역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다.]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백년]]>[* 사실 조선왕조 5백년에서는 배우들을 계속 돌려막기를 했다. [[최수종]]만 해도 철종과 사도세자를 했고 故김무생의 경우 이성계와 이순신을 했으며 신충식이 담당한 사람만 원균과 미우라 고로등을 포함해 총 6명이다.]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남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2014년 초, 홀스또메르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으며 변함없는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특히 201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메인 무대에 복귀했는데, 이때 아들인 연극배우 남윤호[* 이름은 당연히 [[예명]]이고, [[본명]]은 유대식이다. 유인촌의 아들이란 [[금수저]] 대우 받고 싶지 않다고 [[유학]]갔다 들어오면서 아예 성까지 바꾼 후 데뷔해서 수년째 극단 여행자 소속으로 활동중인 연극배우인데, 워낙 숨기다 보니 남윤호가 유인촌 아들인 걸 연극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연출자가 남윤호를 한참 설득하고 나서야 이 연극에 부자가 같이 출연하게 되었고 그 결과 부자관계가 연극계에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극단에서도 대부분이 그때 다들 처음 알았다고 한다.]와 페리클래스 역을 나눠 출연하여[* 아들은 젊은 페리클레스, 아버지는 해설자+나이든 후의 페리클레스.]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남동생은 [[성직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다. 2013년부터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근거리에 모시는 요직인 보좌주교를 담당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막 신부가 됐을 적에, 배우 유인촌의 동생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m.pbc.co.kr/paper/view.php?cid=490221&path=201312|기사]]. 형제의 정치적 성향은 다른데, 유인촌이 보수정권 하에서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보수성향이고, 동생 유경촌 주교는 카톨릭 내에서 진보적인 인사로 사회교리를 전공하였고, [[신부(종교)|신부]] 시절에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 전공 교수를 역임했다. 유인촌 본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개신교]]([[장로회]])를 잠시 믿었다가 이후에 다시 천주교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 후인 2015년 11월 22일에 논현2동 [[성당]]에서 동생인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로부터 [[견진성사|견진]]을 받았다. [[http://rose6217.blog.me/220557780401|같이 견진 받은 사람의 대모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면 [[박인환]]과 [[이형석]]과 더불어서 견진을 받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완전한 [[개종]]보다는 개신교 신자인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잠시 붙어다니다가,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 [[본인]]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거나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유인촌이 불법을 저지른것도 아니고 30만원에 내부 회로도 제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 그 자체를 큰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국민들은 비용과 절차 문제로 못쓰는걸 정치인인 장관은 태연히 방송에 나와 쓰는 모습 자체가 박탈감을 불러와 국민여론이 굉장히 안좋게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점|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 유키히라 소마 . . . . 6회 일치
주인공답게 천재적인 요리 솜씨의 소유자로 그 실력은 토오츠키 십걸조차 경계할 수준. 그만큼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 때 단상 위에서 말할 때도 "손님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바보들에게 질 생각은 없습니다" 라며 어그로를 광역으로 끌기도 했고, 학원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이기길 바라면서 식극을 걸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아버지의 식당인 '유키히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매우 깊어서 땅을 팔라는 부동산 투기꾼의 제안이나 고급 식당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십걸 제9석 에이잔 에츠야의 스카웃 제의를 콧방귀도 뀌지 않고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이때다 싶을때는 과감하게 질러주기도 하는 점,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결하면서 강인해진 멘탈 덕분에 요즘 소년만화 주인공답지 않게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남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다른 만화 주인공들이 속터지는 행보 때문에 암유발 주인공이라 불린다면 유키히라 소마는 항암제 주인공이라 불릴 정도.
그 후, 숙박연수를 가게된다. 알디니 타쿠미와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세키모리 히토시는 도지마에게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하였냐고 묻고 도지마는 메구미가 부적합한 요리를 내놓았다면 학교에서 내쫓을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도지마는 시노미야가 오너 셰프로서의 그릇이 성숙해지기도 전에 정상에 도달해 정체된 것이라며 오늘 밤 시노미야는 요리사로서 필요한 탐욕을 되찾았을 거라 말한다.
> "샬리아핀 스테이크에 필수인 양파를 조리해 특제 양념을 완성한 거야! 심지어 고기도, 양념도 맛이 탄탄한데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더 고픈 것 같은, 마치 무한대로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드는건 왜지?! 아직도 비밀이 숨어있나?!
- 윤보라 . . . . 6회 일치
||<#B26724> {{{#ffffff '''출생'''}}} ||<(> [[1989년]] [[12월 30일]][* 2017년 후크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이후 변경되었다. [[씨스타]] 활동 당시에는 공식 프로필 생년월일이 [[1990년]] 1월 30일이었기에 변경됐을 당시 팬들에게 혼란을 주었지만, 소속사 측에서는 주민등록상 생일하고 실제 생일이 달라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age(1989-12-30)]세), [[경기도]] [[성남시]][* 한때 전남 진도로 알려졌으나 정확히는 엄마의 고향이다.] ||
2015년 10월 12일, 19일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다. 첫회부터 시청한 팬이라고 하였고, 실제로 [[정형돈]]의 진행 패턴인 어떻습니까아~ 등을 꿰고 있었고, 셰프들의 칼질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됨에 감탄하는 등의 모습으로 애청자임을 인증. [[이현이]]에 못지 않은 [[http://tvcast.naver.com/v/564263/list/51807|야한 탄성의 리액션]]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보라가 맛있게 시식을 할 때 [[하니(EXID)|하니]]는 너무도 먹고싶은 마음에 [[유체이탈]](...).~~
춤은 상당히 수준급 실력을 가지고 있어 팀 내에 메인댄서이기도 한다. 그 춤 실력 덕에 [[힛 더 스테이지]]에 출연하였다. 힛더스테이지에서 마린룩 컨셉으로 화려한 탭댄스를 선보였다. 선공개 영상에서는 허접해 보인다며 악플들이 많았지만 방송을 타고 났더니 악플러들이 싹 사라지고 머쓱하게 할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 삼성-두산의 경기에서 시구를 한 보라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운동신경을 보면 저 허벅지는 역시 장식이 아니다. 여담으로 보라는 [[삼성 라이온즈|삼성]] 팬이라고 한다.
||<|2> [[2012년]] || 경기도그린캠퍼스협의회 || 경기도 그린캠퍼스 홍보대사 ||
- 이경영(1960) . . . . 6회 일치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박중훈]], [[안성기]], [[최민수]]와 함께 [[충무로(은어)|충무로]] 4대 배우라 불리며 잘 나가던 배우였다. 특유의 '[[젠틀맨]] 이미지' 를 통해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멋진 남자[* 물론 살짝 악역 느낌이 나거나 남녀 주인공 사이를 갈라놓는 삼각관계 축 역할도 했었지만, 주로 젠틀한 이미지가 강했다.] 역할을 많이 맡아서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스타로 남성미가 강한 최민수와는 라이벌 관계였다. 네 배우들 중에서 코믹은 박중훈, 터프는 최민수가 맡고 있었고, 친숙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쪽 이미지는 안성기였다. 이경영은 멜로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다양한 성격을 모두 구별하며 미세한 감정선을 강조하는 연기쪽에 특화되어 있었다. 사실상 점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30대 애정 드라마 전문 주인공 느낌. (2018년 현재와 비교하자면 [[류진(배우)|류진]]이나 [[주상욱]]정도의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천하의 이경영이 나중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 조, 단역으로 간다 해도, 지금처럼 악역, 그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는 악독한 역할 전문 배우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지나친 [[다작]]으로 가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이 배우 저 배우 돌려쓰기 현상이 심하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충무로 배우 연령폭이 얇았다. 이경영 본인도 "그나마 [[안성기]]나 [[박중훈]]은 충무로나 언론에서 보호해주는 패턴이 강했다면 나는 그저 잡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며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부분이지만, 안성기나 박중훈이 어느 정도 자기 이미지와 고유의 연기색을 바탕으로 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코믹연기나 진지한 연기를 구축했다면, 이경영은 (최소한 영화작품 기준으로는) 자기만의 연기톤을 고집하려 들지 않고 당시 기준에서 극도로 19금적인 코믹연기도 하고 완벽하게 정석적으로 진지한 연기도 소화하는 등 팔색조처럼 넓은 연기폭을 시도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사례가 많아서 흥행은 거의 망하곤 했다 [[안습]]-- 1994년에 [[문성근]]과 같이 출연했던 '세상 밖으로'라는 영화는 주인공들이 탈옥수라는 설정답게 쌍욕이 들어간 대사가 영화 내내 나오는 파격적인 시도를 한 영화였다. (그전까지는 불량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라 할 지라도 욕설의 정도가 심한 대사들이 주연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부 중요한 폭력적인 장면 한둘에서 나오는 정도) 그런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연기변신에 대해 그렇게 힘든 요구를 항상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 부분에서 점수를 깎이지 않고 합격점을 항상 받아왔다는 데서 이경영의 그 뛰어난 연기력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게다가 10월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드라마)|미생]]》에도 출연했다!~~[[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뭐야 이 아저씨 무서워]]~~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농담조로 한국영화에는 '[[스크린 쿼터제|이경영 쿼터제]]'가 있다고 하기도...--또 경영--
이렇게 다작을 하게 된 원인은 물론 자숙기간 활동을 못한 본인의 활동 욕구에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는 출연금지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케이블 빼면 영화밖에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송영창]]이 있다. 다만 이분은 영화 대신 주로 연극과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거의 충무로 이경영급으로 다작 중이다. 이유도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쪽에선 어느 정도 입체감이 있는 중년 역할을 맡을 배우가 그리 많지 않고, 진중한 역부터 코믹 역까지 폭이 넓기 때문.], 현재 영화판에서 이경영 정도의 나잇대에 어느 정도 연기가 되면서 조연을 맡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도 있다.
- 이민우(배우) . . . . 6회 일치
||<#878787> '''{{{#EEE156 출생}}}''' ||<(> [[1976년]] [[3월 15일]]([age(1976-03-15)]세), [[경기도]] [[군포시]] ||
[[김희선]]과 함께 한 KBS 드라마 [[춘향전]]에서는 이몽룡 역할을 맡기도 했다. 농담으로 이 때 이민우가 맡았던 [[암행어사]] 역할이 이민우의 사극 배역 중 가장 신분이 낮은 역할이었다고들 한다(…). 그 다음으로 신분이 낮은 역할은 [[무인시대]]의 [[정균]], 즉 [[정중부]]의 아들로, 모략을 꾸미는데 능한 전형적인 기분 나쁜 악역을 보여줬다. 사실상 정중부 정권의 양대산맥.
사극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이민우이지만 현대극에서의 연기도 매우 뛰어나다.
드라마 [[카이스트(드라마)|카이스트]]([[1999년]])에서 공대생 이민재 역은 그야말로 '''공대생 1'''이라고 할 정도의 포스를 보여 주었다. 소심한 듯 꼼꼼하고 수더분한 인상에 "저는 성실합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연기 하며... 한 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공대생 그 자체. --근데 이때 이미 연기경력이 20년-- 평생지기라고 할 만한 동료 배우 [[김정현(1976)|김정현]]과의 인연도 여기에서 쌓게 된다.[* 2009년 둘이 함께 《절친노트》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3년]] 라디오스타에도 함께 출연했다.]
대신 아쉬운 대로 [[메리대구 공방전]], [[열아홉 순정]], [[살맛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드라마)|인생은 아름다워]] 등에서 30대 초반 직장인 역할, 다소 찌질하고 철없는 남편 역할, 강력반에서 형사들을 괴롭히는 지독한 범죄자 악역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조용히 연기 커리어를 쌓았다. 이런 연기도 잘 소화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연기에서는 도가 텄다고 할 지경.[* 특히나 [[살맛납니다]]에서의 그 찌질하면서 사악한 김기욱 역은 장인식(임채무 분)과 더불어 극을 지탱하는 2대 악역으로 꼽혔을 정도..]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이라[* 한때 대한검도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여 키에 비해[* 실제 키도 175이상은 된다고 한다.] 체격은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두|머리가 그보다 더 크다고..]] 잘 나가던 20대 시절에 정장 의류브랜드 광고모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진 촬영 전에 이민우 측에서 105사이즈를 요구하여 브랜드 측에서 105사이즈 옷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날 그 의류회사 간부 겸 디자이너가 촬영전에 스튜디오로 이민우를 직접 찾아와서 모델을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역시 디자이너답게 약간 여성스러운 말투로 한 인사였으나 이민우는 아버지뻘 되는 어른의 예의있는 태도에 감격을 받아 잘 촬영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인사한 뒤에 갑자기 이민우와 준비된 옷을 번갈아 보더니 "어? 근데 민우씨 옷이 왜 105사이즈로 돼 있어요?"라고 했고 이민우가 "저는 원래 양복 105사이즈를 입습니다."라고 하자 "에이~ 아니죠. 이거 안 맞아요. 저희 회사 옷 작지 않아요. 모양이 안 나와요. 이렇게 찍으면 안 돼요." 라고 우기더니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어떻게 사이즈도 미리 제대로 안 맞췄냐고 크게 화를 내며 당장 95사이즈를 가져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간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당황한 이민우는 어벙벙한 상태로 95사이즈 양복을 입었고 너무 작아서 단추도 제대로 안 잠겨 옷이 상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흐엌-- 그제서야 이상하다고 느끼다가 뭔가 깨달은 간부는 "어~ 정말 미안해요. 민우씨. 근데 머리가 왜 이렇게 커?"라고 하며 원래대로 105사이즈를 입혔다고 한다. 그의 머리가 커서 어깨가 좁아보여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95사이즈로 오해했던 것.
- 이소선 . . . . 6회 일치
이소선은 또한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고 관련자들을 서둘러 사형시킨 뒤 화장시키려 하자 그 앞을 막아선 사람도 이소선이었다. 이소선은 헌옷을 팔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노동운동가나 민주화 운동가가 수배를 당하면 그를 숨겨주고 먹이고 재웠다. 수 많은 민주화 운동 활동가들이 이소선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로인해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에서 부터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까지 이소선을 어머니라 불렀다.<ref>[http://www.redian.org/archive/40703 이소선 기억하기‘어머니’의 길이 일군 여성의 역사], 레디앙, 2012년 9월 4일</ref> 전태일의 장례를 도왔던 [[장기표]]가 수배 받아 장독대에 숨겼고 [[조영래]]를 숨겨줄 때에는 주변으로부터 다 늙어 서방질을 한다는 오해까지 받았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5932 수배범 장기표 구해낸 이소선의 임기응변],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54), 2014년 11월 4일</ref> 이소선의 판잣집을 거쳐간 사람들은 훗날 대통령이며 장관이 되기도 했지만 이소선은 늘 현재의 노동자 편에 서고자 했다.<ref name="경향46" /> 또한 1986년에는 민주화유가족협의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ref name="연표" />
이소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수 많은 사람들의 장례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가 분신 사망하였을 때에도 장례위원을 지냈고<ref>[http://news.hankyung.com/article/2003031462508 분신 고 배달호씨 전국노동자葬 거행], 한국경제, 2003년 3월 13일</ref>,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에도 장례위원을 지냈다. 이소선은 [[원진레이온]] 사태 때부터 노무현과 인연을 맺었고, [[이석규 장례투쟁]]에서는 함께 장례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71756105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61) - “살지, 살아서 싸우지 왜 죽어”], 경향신문, 2009년 5월 27일 </ref>
이소선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스스로도 체포 구금 실형 등을 받으며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함께 활동한 아들 전태삼과 이소선이 모두 감옥에 들어가면 며느리 윤매실이 가족을 돌봐야 하였다. 이소선은 자신 보다 아들의 형이 더 크게 나오면 상심하기도 하였지만 기독교에 대한 신앙은 그를 붙잡아 두는 힘이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3671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아들 전태삼과 함께 구속], 오마이뉴스 연재 - 이소선 평전 <어머니의 길> (88), 2015년 3월 6일</ref>
이소선은 2011년 7월 18일 심장마비로 입원하였다. 바로 그 때까지도 이소선은 [[김진숙]]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기 위한 [[희망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해 1월에는 김진숙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를 통해 살아서 싸워야지 죽으면 안된다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2011년 9월 3일 이소선은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별세하였다.<ref>[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0677 이소선 어머니 3일 오전 한일병원서 별세], 노동과 세계, 2011년 9월 3일</ref> 장례는 9월 7일 유가족과 노동계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함께 하는 가운데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ref>[http://nodong.org/statement/642547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민주노총, 2011년 9월 4일</ref>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묘소의 뒷편에 묻혔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23409 이소선, 41년 만에 아들 전태일과 함께 잠들다], 오마이뉴스, 2011년 9월 7일</ref> 이소선의 민주사회장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가 장례위원으로 참여하였다.<ref>[http://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263 양대 노총 “어머니 마지막 길, 노동자들이 함께”], 매일노동뉴스, 2011년 9월 6일</ref>
* 1970년 12월 21일 청계피복노조에 대한 당국의 탄압에 항의. 집단자살을 기도. 경찰에 연행됨.
- 장세용 . . . . 6회 일치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사회운동가, 정치인. [[경상북도]] [[구미시]]의 21대 시장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인문한국 교수)를 지냈으며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대구경북]]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경상북도]]에서도 가장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손꼽히던 [[구미시]]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쾌거를 이뤄낸 인물이기도 하다.
상술하였듯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서, '[[개]]가 보수 정당 후보로 나온다고 해도 당선될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고 실제로 [[김관용]], 전임 시장이었던 [[남유진]]이 모두 내리 3선을 지내기도 했다.
후보 출마 확정 후 구미시민들의 네트워크인 '구미텐인텐'에 출마 이유와 구상하고 있는 정책 등을 올린 바 있으며 [[http://cafe.daum.net/kumi10in10/IKJI/10328|*]] 구미시장에 당선된 직후, [[박정희]] 기념관을 비롯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는 했지만, 기념 사업 예산을 칼질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614001410|*]]
* TK에서, 그것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비록 기초자치단체장이라고 해도 '''민주당 당적으로 한 번만에 당선된 기적을 일으켰다.''' TK 지역 타파의 아이콘인 [[김부겸]] 장관도 두 번의 낙선 이후 세 번째 도전만에 대구에 민주당 당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놀랄 만할 일이다.[* 물론 상대가 경기도지사에서 도지삽니다 발언을 쏟아낸 김문수였고, 당시 새누리당이 대구를 자기들의 표밭이라고 대충신경쓴 덕분이기도 하지만.] 물론 자유한국당의 공천에 반발해서 무소속으로 뛰쳐나온 보수 성향 김봉재 후보가 9.5% 정도, 범야권인 [[바른미래당]] 유능종 후보가 또다시 7.5%를 들고 나르면서 (비록 TK긴 해도) 1여3야라는 역대급 꿀조건이 형성되었다는 것도 고려하긴 해야 한다. 참고로 '''[[김해영|본인도 당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 장재인 . . . . 6회 일치
별명은 신데렐라(혹은 장데렐라), 초식공룡, 귀인, 지리산 거북이, 장띠방. 탑4중에서는 제일 늦게 갤러리가 생성되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jji|#]]최근에는 갤러리에 인증글을 쓰기도 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jji&no=62047&page=1&bbs=|#]]
2010년 11월 28일 [[MAMA]] 무대에서 우승자 특전 무대를 갖는 [[허각]]을 응원하기 위해 [[존박]], [[강승윤]] [* [[위너(아이돌)|위너]]의 멤버인 그 강승윤이 맞다. 이때는 위너결성전 슈스케2에서 이름을 알린 시절이다.]과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여기서 허각, 강승윤과 함께(당시 존박은 MC 진행 중이었음) 레드카펫에 서기도 했다. 뒤이어 수상 후보곡을 직접 소개하면서 존박, 강승윤과 작은 무대를 갖기도 했다.
* '''여름밤''' : 여름밤만의 느낌을 생각하면서 만든 자작곡. 지은 시기도 여름이라고.. 여태 공개된 자작곡 중 분위기가 제일 밝고 신나는 노래.[[http://www.youtube.com/watch?v=O9ZZpzXWCHU|#]]
* 2010년 12월 13일 슈퍼스타K2 부산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갤러리표 조공이 오기도 했다. 조공방식은 쌀화환(화환+쌀은 기부하는 형식).
* [[KBS]]에서 방영한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밴드]] 시즌1 우승밴드인 [[톡식]]과는 지인이자 음악적 동료인 관계라고 한다. 16강전때는 톡식을 응원하러 슬로건을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6회 일치
처음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고 그의 첫 고교무대 데뷔전이었던 1946년 제1회 [[청룡기|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왼손잡이 유격수로 출전해 허종만, 정상교, 조성일, 박정표, 송주창등과 함께 팀의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7년, 故 고광적 당시 경남중 감독은 당시 선발이었던 장갑영 대신 그를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경남중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팀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어이없는 실책들로 결국 장태영이 이끄는 경남고는 통한의 패배를 안게 된다. 이후 장태영은 1974년에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력이 우세하다는 결정적인 사실, 그 누구도 경남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평범한 에러로 우리는 3연패를 저지당하고 통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라며 회상하기도 했다.
경남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1960년 소령으로 예편해 군복을 벗은 그는 [[김성근]]과 함께 교통부 창단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1964년 상업은행 야구단이 창단되자 초대 감독으로 부임 했고 이후 [[대한야구협회]] 이사직을 맡는등 야구계에 몸을 담다가 1998년 자서전을 퍼낸후 이듬해인 1999년 8월, 파란만장한 인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 일본 야구서적인 "스포츠맨의 몸 관리", "일본 스포츠맨 의학"등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이 친필 원고지는 그가 사망한 이후 [[KBO]]에 기증되었다.[[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79|출처]]
- 전예용 . . . . 6회 일치
}}</ref>)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관료이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총독부 사회과장, 황해도청 산업부 농업과장, 경성세무서 서무과속, 개성세무서속 등을 거쳐 경기도 광주군수를 지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학무국장 보좌관으로 근무했으며 고려대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었다가 [[서울특별시 부시장]]이었고 [[6.25 전쟁]] 중 [[서울특별시장]] 직무대리를 역임했다.
}}</ref> [[1934년]] [[조선총독부]] 세무부 경성세무감독국 서무과속, [[1936년]] [[경기도]][[개성세무서]]속을 거쳐 [[1937년]] [[경기도]][[광주군|광주]][[군수]]로 부임하여 1939년까지 재직하였다.
* 1937년 :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군]] 군수
- 정명훈 (지휘자) . . . . 6회 일치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누나([[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고,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유명 성악가들의 리사이틀이나 독창곡 녹음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들들인 정선과 정민도 각각 재즈 기타리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 홀로 [[북한]]으로 건너가서, 북한 국립 교향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지휘]]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정명훈, 평양에서 북한 교향악단 지휘|url = http://www.ytn.co.kr/_ln/0101_201109141856110294|출판사 = YTN |날짜 = 2011-09-04 |확인날짜 = 2013-05-10}}</ref>, [[북한]]의 음악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합동 관현악단의 연주회 개최를 제안 하는 등, 음악면에서 남북 융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에는 [[라디오 프랑스]]의 초청으로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이끌고 자신이 [[음악 감독]]을 맡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주회를 실현하였다.
정명훈은 19세 때부터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로 다섯 살 연상의 구순열을 짝사랑했고, [[가족]]에게 숨긴 채 교제를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 3000루블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카리브 해]]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9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에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만이 참석했으나 나중에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ref>황호택, 《신동아》 [[2004년 2월]]호</ref>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 정진, 정선, 정민을 두고 있다.
- 정재학 (1856년) . . . . 6회 일치
[[정재학]]은 1858년 경북 경제권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연일(영일) 정씨 정석은과 손남산 사이의 1남 3녀 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외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소년 시절에는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으나 20세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인생을 일구겠노라 굳게 다짐한다. 그는 금전 대부업자였던 부자 밑에 들어간 뒤 어렵게 번 품삯을 한 푼 두 푼 모아갔다.
{{출처|날짜=2015-1-12|1883년 이남숙(1864년생)과 결혼 한 뒤 1885년 장남 정응원이 태어나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됐다.}} 아내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근검절약 해오면서 부인에게 옷 한 벌도 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낡아 찢어진 아내의 속옷을 발견하곤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10</ref>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정재학]]은 [[조선총독부]]와 타협하기도 했지만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섰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은행]]이 [[경남은행]]과 통합하라고 강요했을 때 그는 전심전력을 다해 저항했다.<ref>고승제, <<끝없는 도전 세기의 기업-기업가 이야기>> (한국경제신문, 1991), 제7편 2. 정재학/은행업의 개척자 p.371~372</ref>
임 대기자는 [[정재학]]에 대해 " 거리의 일개 건달에서 수만금의 재산가가 되고 군수라는 관직에 오르기도 했고 풍운아인데 [[대구은행]] 설립을 통해 일제의 대항 세력이 되어 지체를 높인 특이한 존재 "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의 대구은행 설립은 대구를 [[봉건시대]]에서 [[자본주의]]경제로의 이행으로 이끄는 혁명이자 국권회복을 위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재학]]이 설립했던 [[대구은행]]은 일제에 대한 커다란 저항세력으로 한국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길러주는데 큰 몫을 했다"고 강조했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1897년]] [[탁지부]] 참서관을 지내고 [[1905년]]과 [[1908년]]에는 경북 [[순흥군]]과 [[개령군]] 군수에 임명되는 등 [[대한제국]]에서 관리를 맡기도 했으나, 이후 [[대구광역시|대구]]와 [[경상북도]]를 대표하는 대자본가로서의 활동이 더욱 두드러진다.
- 차선우 . . . . 6회 일치
||<:> '''출생''' ||<(> [[1992년]] [[9월 5일]] ([age(1992-09-05)]세), [[경기도]] [[시흥시]] ||
또한 찍어내기식의 랩메이킹이 아니라, 곡 하나 하나의 분위기를 파악한 독창적이지만 어색하지 않은 라임, 리듬을 사용하는 데에 능숙하여 아이돌 래퍼로서 그의 랩메이킹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솔로곡 '둘만 있으면'은 래핑이 대놓고 기발한지라 [[MBC]]에서는 방송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정글의 법칙]] with 프렌즈 특집에 고정 출연해 [[팔라우]]로 떠났다. 주제가 친구와 함께 떠나는 [[야! 신난다~|신나는]] 정글 탐험이기에 [[손호준]]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때때로 안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촬영 내내 끈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기도. ~~[[BL|여자들의 반응]]에 [[게이|남자들은 기겁]]을 했다~~
||<:> 드라마 ||<:> [[tvN]] ||<:> [[응답하라 1994]] ||<:> 빙그레 (김동준) 역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뜰 연예인은 뜬다]]''' [* '빙그레' 역할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연기도전치고는 나쁘지 않은 평이였고, 다만 극중 충청도 사투리는 어색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아무리 봐도 호평을 주긴 힘들었고 여러 명장면일 수 있던 장면들이 있었으나 잘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 또한 강하다. ~~그래서인지 극중 후반부로 갈수록 사투리 없이 표준어를 쓰며 연기를 하였다.~~ 바로의 말로 중반부터는 빙그레의 고향인 충북 괴산면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연기를 했다고 한다. 드라마도 상당한 수작이였으니 귀중한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다. 자세한 것은 [[응답하라 1994]] 항목 참조.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B1A4의 대중성을 높였다. 하지만 광고는 못찍었다. 대신 응사 덕을 톡톡히 봐서 정규 2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담이지만 B1A4 멤버들이 자신의 연기를 신경 써주기보다는 남편 찾기에 혈안이 되있어서 씁쓸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
이후 예능이나 팬미팅 등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고는 했다. ~~팬들에게 '여러분 저 노래 나름 하지 않아요?'라고 물어보기도(...)~~ ~~그래도 많이 늘었다~~
- 최문식 . . . . 6회 일치
최문식은 K리그 클래식 잔류라는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축구철학을 토대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 전술을 구사함으서 팀컬러를 맞추고 선수 개개인의 기술력을 끓어올리는 등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는 축구를 펼치겠다고 밝혔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11&aid=0000476883/최문식, 대전 9대 감독 취임 "대전의 색 만든다"] </ref> [[6월 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서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치루었으나 1:2로 패했다. [[8월 15일]] [[성남 FC]]전 패배로 대전은 14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고, [[8월 19일]] [[광주 FC]]와의 26라운드 원정 경기서 2:1 승리를 거두며, 겨우 최문식의 데뷔 이후 첫 승과 시즌 2승을 거두었다. [[10월 4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K리그에 스플릿 라운드 제도 도입 이후 최초 스플릿 라운드 이전 홈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월 18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서 1:0 승을 거두며 리그 개막 7개월만에 홈 첫승을 거두었으며, 이후 [[부산 아이파크]]와의 홈 경기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거두었지만 [[울산 현대]]와의 원정 경기서 패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과의 홈 폐막전서 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에 분노한 대전팬들이 경기 종료 후 선수단 버스 앞에서 최문식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이후 [[김병수 (축구인)|김병수]], [[윤정환]], [[고종수]]와 같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술력 있는 축구에 능하다는 의미의 '''테크니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으며, 포항팬들 사이에서는 골결정력이 정확하는 의미로 '''믿을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최문식은 선수들, 팬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했다. 2016시즌 중반에는 [[서동현 (축구 선수)|서동현]]이 최문식과의 불화로 반년만에 팀을 떠나기도 하였었고, 선수들은 최문식의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 2016시즌 중반 이후 간담회에서의 팬의 요구에 따라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경기 종료 후 서포터즈석을 앞을 찾아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팬들과의 퍼포먼스에 같이 참여하는 등 팬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였다.
- 최준석 . . . . 6회 일치
|| '''응원가''' || '''두산 베어스 시절''' [br] 정광태 - 힘내라 힘[* 날려라 준! 날려라 석! 날려라 최준석~ 홈런! ×4][* 여담으로 이 응원가는 [[이승엽]]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응원가기도 했고, [[중신 브라더스]]의 팀 응원가로도 쓰인다.] [br] '''롯데 자이언츠 시절'''[br]콜럼버스 1492 OST - Conquest of Paradise[* 스포츠 CF에 나오던 그 [[마성의 BGM#s-9|웅장한 마성의 BGM]] 맞다. 응원 가사는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롯데~의 최 준석 화이팅 오오오오오오오] [br] 자우림 - 하하하송[* (빰빰빰빰빠밤빰) 홈! 런! 최준석! (빠빠빠빠빠빠빠빠빠밤빰) 홈! 런! 최준석!. 2015년 7월 2일 사직SK전에서 쓰이는게 확인되었다. 원래 홈런타자 돌림빵 응원가였다가 [[이대호|친구]] 응원가로 굳어졌던 노래다.][* [[한화 이글스]]의 [[하주석]]도 같은 멜로디의 응원가를 쓰고 있다. ] [br] Pitbull - Celebrate[* 자~이언츠 최준석~ 자~이언츠 최준석~ 빰빠바바바빰빰 *2][* 이 응원곡의 응원동작에는 최준석의 홈런 세레머니 동작이 들어간다.] [br]'''NC 다이노스 시절''' [br]구단 자체제작[* 오~ NC의 최준석 NC의 최준석 다이노스(최준석!)(x3)][* 시즌 전에 공개한 응원가는 [[장성호]]와 [[Johnny, I hardly knew ya|원곡도 같고]] 가사마저 [[표절|복붙 수준으로 같았으나]] 이에 대해서 항의가 들어갔는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https://youtu.be/1ouaZDexyA8|비공개 처리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급하게 만든 응원가가 더 호평을 받고 있다(...).] ||
타격에서의 단점은 바깥쪽 변화구에 취약하다는 것. 실제로 타석에서 가장 멀리 서서 타격을 하는 타자 중 한명이기도 하고, 지금은 꽤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바깥쪽 [[슬라이더]]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상당히 좁게 가져가는 타격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술했듯이 볼넷을 많이 얻어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멀뚱하니 서서 삼진을 당하는 모습도 적잖이 나와 중심타자다운 적극적인 타격을 못한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 정도야 [[이병규|초구부터]] [[송광민|냅다]] [[김주찬|배트를]] [[이지영(야구선수)|내미는]] 대신 [[이병규(1983)|신중하게 볼을 골라내며]] [[김태균|타격을 하는]] 유형의 타자인만큼 감수할 수 있는 장점이겠으나...
원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두산 베어스 이적 후 [[1루수]]나 [[지명타자]]로만 출전하고 있다. 그래도 타격 스킬에 기대를 걸었던 롯데에서는 외야수 수비 연습까지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수비 능력은 뛰어난 편이 아니며 군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던 무릎 부상 탓에 1루 수비 범위도 대단히 좁다. 이 때문에 타격 생산력에 비해 WAR이 높은 타자는 아니다. 특히 수비기여도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스탯티즈]] WAR이 처참하다. 선수 본인이야 지금도 포수로 뛸 수 있다고 하지만 안되도 된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인만큼 진지하게 믿어선 곤란하다. 과체중으로 인한 무릎 문제로 9회말 대수비로 출장하는 것조차 힘들다. 1년에 한두번, 포수가 없는 비상사태 때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정도는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1루 수비도 9회 대수비 정도 아니면 1주일에 두어번 정도만 가능하고, 사실상 풀 타임 지명타자이다.
* 별명은 '''돼준석'''.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아예 돼지로 묘사된다. 두산 시절 잘 나갈 때는 '''광돈신'''이란 별명도 있었다. 여기에 2014년 포수 마스크를 쓰고 [[김주찬]]의 도루를 저지하며 [[버스터 포지|버스터 돼지]]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여기에 [[야구친구]]는 한술 더 떠서 '''돼루저지'''를 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경기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석고돼죄'''하라는 글도 종종 올라온다. 그 외에 '블링돼'라는 별명도 있다.
* [[강민호]]와 포철공고 선후배 사이인데[* 3년 차이라서 같이 뛴 적은 없었지만.], [[강민호]]는 고등학교 시절 최준석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100m를 11초에 끊는 호타준족의 [[포수]]였었으니깐.[* 덤으로 이 시절에는 굉장한 훈남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은 '''[[http://cfile225.uf.daum.net/image/121511404DB12A142256FF|장돈건]]''']
- 최지우(영화배우) . . . . 6회 일치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으로, 한창 인기 있던 드라마 <[[첫사랑(KBS)|첫사랑]]>과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 출연하게 된다. 그 외에도 CF와 뮤직비디오 등으로 점차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국어책을 읽는 듯한 [[발연기]] 때문에, 데뷔작인 [[박봉곤 가출사건]](1996년)에 출연했을 때에는 아예 '벙어리 정육점 여주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반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남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2003년 출연한 <[[천국의 계단(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도 여주인공 한정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때부터 혀 짧은 발음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계모와 의붓 여동생[* 이 역을 바로 [[김태희]]가 맡았다. 김태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남자 주인공들([[권상우]], [[신현준(배우)|신현준]] 役)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불치병]]으로 죽게 된다. 참고로 상대역인 권상우도 [[혀]]짧은 발음이 문제였는지라, '''권땅우&퇴디우'''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의 두 드라마(에어시티, 스타의 연인)은 망하였지만, 그 전의 커리어를 보면 '''드라마의 여왕''', '''멜로의 여왕''', '''드라마의 흥행수표'''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첫사랑>은 그녀가 조연이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진실>, <아름다운 날들>,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 흥행작에 줄줄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대한민국 여배우 중 저렇게 많은 흥행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커리어면으로만 보면 [[김희선]]과 대적할 거의 유일한 여배우이기도 하다.
과거 공포체험방송인 <돌아보지 마>라는 프로[* 서세원이 MC를 맡았던 인기 프로그램. 지금 예능과 비교해보면, 대놓고 짜고 하는 티가 많이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예능이다.]가 방영되던 시절, 관련 예능에 한두 번씩 출연하곤 했는데, 출연할 때마다 ~~영혼을 담은~~ 리액션을 선보였다. 최지우가 톱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고 공포체험도 식상해져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으나, 토크쇼 [[힐링캠프(SBS)|힐링캠프]]에 출연하였을 당시 최지우를 위해(?) 공포특집을 기획하여 그 리액션을 재연하기도 하였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6회 일치
오스만에 대한 반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남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거기다가 제위과정도 순탄치 않아서, 제위를 노리고 동생 데미트리오스가 반통합파의 지지를 얻고[* 정작 그는 피렌체 공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위를 차지하려하기도 했다. 그에겐 다행히도 이 문제는 태황태후인 엘레나 드라가시가 직접 콘스탄티노스를 황제로 지명해서 끝이 났다.
오히려 국가적인 지원보단 개인적인 지원이 더 줄을 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스티야의 귀족인 톨레도의 돈 프란시스코[* 자신을 콤네소스 황가의 자손이라 칭하며 황제를 사촌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실 이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콤네노스가 아닌 팔레올로고스 왕조였고, 오히려 [[트레비존드 제국]]이 콤네노스 왕조의 후손이다. 팔레올로고스 왕조도 콤네노스 왕조와 인척관계이긴 하지만.]와 제노바의 군인 주스티니아니 롱고였는데, 특히 주스티니아니는 공성전전문가로 상당히 이름난 군인이었기에 황제가 직접 방어를 성공해낸다면 림노스 섬의 통치권을 나눠준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외벽과 내벽중 어느쪽에 방어를 집중할것이냐를 놓고 논쟁이 펼쳐졌는데, 황제와 주스티니아니 모두 1422년에 무라트 2세가 도시를 공격했을때 외벽방어에 집중해 막아낸것처럼 이번에도 외벽에 방어하기로 결정하려 했으나, [* 내벽에도 병력을 배치하는게 좋긴 하겠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를 '전략가'라 자칭했던 교황청의 사절 레오나르도 대주교가 내벽을 방어하라고 우겨 잠깐동안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는 1422년 무라트 2세의 공격으로 인해 수리된 외벽이 제대로 수리되지 않았다면서, 이게 모두 수리비를 두명의 그리스인인 자가루스와 수도사 네이피토스가 횡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부당한 주장으로, 자가루스는 마누엘 팔레올로고스가 본명인 황제의 친족으로, 수리된 성벽에 이름까지 적힌, 당시에 굉장히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또다른 횡령범으로 지목된 네오피토스는 통합반대파였다만, 황제와 친한 수도사중 한명으로 공적인 일에 일체관여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던 중이었다. 레오나르도 대주교의 주장은 가톨릭교도들의 전형적인 반통합파와 그리스인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 태영호 . . . . 6회 일치
2015년에는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시중-- 동행하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외교관으로서 태영호는 런던의 극좌단체 행사에 참가하여 북한을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언론이 북한에 대하여 자극적인 보도만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영호는 영국 내의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가디언 지 보도에 따르면 태영호는 공식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했으나, 사석에서는 빈궁한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의 친지들은 런던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풀장]]과 [[사우나]]가 딸린 궁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방 2개, 좁은 부엌이 딸린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봉급 한달 1200파운드(약 174만원) 정도로 물가가 비싼 런던이라 생활고를 겪었으며, 태영호는 "대사관에서 차를 몰고 나올 때 혼잡통행료 걱정을 하기도 한다."고 발언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북한-중국 경계에서 영업하는 북한쪽 식당의 경우 한국인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에는 중·고교 수학여행시 종종 여행경로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그리고 국정원에서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고 그러지만~~ 북한이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어 아예 수학여행도 취소될 가능성이 생겼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1&aid=0008631654&date=20160821&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0|네이버 뉴스]]
- 하이큐!! . . . . 6회 일치
2013년 골든 위크에 신쥬쿠 역사에 대형 브로마이드 전시를 하기도 했으며, 2013년 [[7월 22일]], 7권 발매 및 누계 250만부 판매 기념으로 슈에이샤 본사 1층 전시회실에서 하이큐!! 전을 개최, 예상 외의 호평에 9월 20일까지 연장되기도 했으며 2013년 10월에는 하이큐!! 점프샵 페어가 열렸다.
* 작가인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후루다테 작가가 졸업한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졸업 후 찾아왔었다는 포스팅이 어떤 블로그에 올라왔는데, 댓글에서 어떤 팬이 후루다테 하루이치의 성별을 묻자 '작가님이 직접 공개하지 않으신 사생활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라고 철통방어(...)를 하기도 했다. 종합 10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책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으로도, 온라인으로도, 심지어는 인터뷰조차도 그의 활동은 적어 필명이 본명인지, 나이가 얼마인지, 성별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품들이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을 작중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 본인도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으므로 출신지가 그 쪽인 것은 분명하다. 작가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팀메이트 간의 감정 묘사, 이름 및 생일의 의미와 관련성까지도 계산한 ~~설정덕후의~~ 섬세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체를 근거로 내세워 여자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반면 작가가 남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wiki:"니시노야 유" 니시노야]와 [wiki:"타나카 류노스케" 타나카]의 [wiki:"시미즈 키요코" 시미즈] 빠질을 저렇게 완벽하게(...)그려내는 것은 남자밖에 하지 못한다.', '[쿠로코의 농구]도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등을 근거로 남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점치고 있다.
* 종종 점프계열 행사가 열릴 때 공식 트위터로 하이큐 부스에서 키요코 코스프레를 한 남성이 찍혀있는데, 하이큐 편집 담당자 혼다[* 本田佑行. 2010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은혼 담당을 했었다. 은혼 애니화 재기로 4기 1화 방영 이후 하이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비화를 밝히기도.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85738044281491456 이런 심한 얘기를 점프에 올린 사람이 누구?! 나인가?!]]다. [https://twitter.com/haikyu_com/status/546458211255992320 점프페스타 2015]
2015년 2월 기준 13권까지 강동욱의 번역에 의해 정발되었는데, 그 사이에서 원어판과 비교해 오역이 많이 드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일어가 가능하다면 원서를 사서 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1권 신젠 고교에서의 합숙 줄거리 중 보쿠토와 쿠로오보다 한 살 어린 아카아시가 뜬금없이 반말을 하거나, 오이카와의 그 유명한 '이와짱은 우리 엄마에요?'[* 원어로는 「岩ちゃんは俺のお母ちゃんですか?」.] 대사는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라는 대사로 바뀌어 오이카와에게 일진카와(...)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대화에서 자주 쓰여진다고 보기 어려운 '~예요' 체가 남발되는 경향이 있고, 당당하고 맹한 느낌을 주는 '[~슴다체]'가 번역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일단 번역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너무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큰 문제. ('''츠키시마: 짜식 멋있는데.''') 당장 몇 년만 지나도 어색할 유행어 집어넣는것은 덤. (시합중의 멘탈은 '''갑 오브 갑'''이지만.) 번역가가 글자를 못 읽는 경우도. ('''네코마 농구부''' ~~쿠로오의 농구?~~ '''호쿠토. 아카아시 케이시''') 더 많은 오역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람].
- 한규복 (1881년) . . . . 6회 일치
[[1902년]]에는 [[와세다 대학]]에 다니면서 [[일본]]의 [[유도]]도장인 [[강도관]](講道館)에 다녔다. 공승화전개(일본 工勝花雷介)의 《비록일본유도(秘錄日本柔道)》의 기사와 일본강도관에 조회한 바에 의하면 [[1902년]] 한규복 등이 [[강도관]]에 입문하여 [[유도]]를 배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f>김정행, 《무도론》 (대한미디어, 1997) 129페이지</ref> 그는 [[1902년]] [[8월]]부터 [[유도]]를 배웠다고 한다.<ref>이학래, 《한국유도발달사》 (보경문화사, 1989) 37페이지</ref> 일본의 유도 전승에 자극받은 그는 귀국 후 [[조선]]의 [[유도]] 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상소를 올려 [[택견]] 관련 인물과 유파를 찾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상주하기도 했다.
[[1926년]] [[8월]]에 다시 도지사로 승진, [[8월 14일]] [[충청북도]]도지사가 되고 [[1929년]] [[4월]] [[고등관]]1등(高等官1等)으로 승급되었다. [[1929년]] [[11월 28일]] [[황해도]][[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30년]] [[1월 24일]] [[황해도농민회]] 회장에 임명되었다.<ref>조선총독부 관보 1930년 01월 24일자</ref> [[1930년]] [[2월]] [[황해도]] 도지사에 재임명된 뒤 [[1933년]] [[4월 7일]]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했으나 그해 [[6월 4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칙임관]]대우 [[참의]](中樞院勅任官待遇參議)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수당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4년]]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 기간 중 [[흥아보국단]],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여러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 걸쳐 수상하였다.
[[1933년]] [[7월 21일]]에는 중추원 시정조사위원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0월 21일]]에는 소작농심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4년]]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지구위원장(京城府敎化團體聯合會 西部敎化地區委員長)이 되었다. [[1934년]] [[7월 14일]] [[금융]]단체의 연합회인 [[금융조합연합회]] 창립에 참여, 자문상담역<ref>"금조연합회, 자문기관 설치", 조선중앙일보 1934년 07월 22일자 4면</ref>에 위촉되었다. [[7월 21일]] [[금융조합연합회]] [[경기도]]지역 참여에 임명되었다. [[1934년]] 여름 홍수로 [[조선]] 삼남 지방에 수해가 심해지자, 그해 [[8월 30일]] [[조선총독부]]에서 [[치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때 그는 민간측 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일본 정부는 한규복에게 여러차례 훈장을 수여해 공적을 인정했다. [[1929년]] 훈3등 서보장을 받는 등 퇴관할 때에는 정4위 훈3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수록된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
[[1938년]] [[8월]] 설치된 총독부내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 97명 가운데 한규복은 [[김연수 (1896년)|김연수]](金秊洙), 박영철(朴榮喆), [[박중양]], [[박흥식 (1903년)|박흥식]], [[윤덕영]], 이기린(李基燐), [[이승우]](李升雨), [[최린]](崔麟), [[한상룡]](韓相龍), [[현준호]](玄俊鎬) 등과 함께 조선인 위원 11명 가운데 1명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해 [[육군특별지원병령]]이 공포, 시행되자 한규복은 윤치호, 이승우, 조병상, 조성근 등과 함께 지원병제 축하회 구성을 위한 타협발기인회를 열고 실행위원진을 구성하였다. [[7월 8일]]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경성지회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0월 7일]]에는 [[중일전쟁]] 등 부상병을 위문하기 위해 [[용산육군병원]]을 방문하고 [[금일봉]]을 지급하였다.<ref>"中樞院參議 傷病兵慰問", 동아일보 1938년 10월 07일자 2면, 사회면</ref>
[[1942년]]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고 [[조선인]] [[참정권]] 허용 문제가 [[일본]] 의회 [[중의원]]과 [[귀족원]]에 상정되자, 그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부단장 자격으로 일본 수상과 참모총장에게 감사 전보문을 타전하고, 그해 [[5월 15일]] [[경성부|경성]] YMCA에서 [[이광수]](李光洙) 등 명사들을 초청해 연설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42년]] [[9월]]에는 [[조선국자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으나 [[1943년]] [[6월]] 사퇴하였다. [[1943년]] [[국민총력연맹]] 징병기념사업실행위원회 위원의 한 사람에 피선되었다.
- 한진희(1949) . . . . 6회 일치
[[동양방송|TBC]] 연기대상을 1975년, 1976년 2회 연속 수상한 1970년대 [[동양방송|TBC]]의 간판 배우이고 [[주말 드라마]] [[애정의 조건]]으로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남자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미지나 무거운 톤의 목소리 덕에 [[높으신 분들]](회장이나 사장)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엔 잘생긴 얼굴과 큰 키 덕에 [[노주현]]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불리며 드라마 남자 주인공역을 독차지했었다.[* 노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한진희씨, 임채무씨가 나오기 전까지 (미남 남자 주인공 역할은) 나뿐이었다. 내가 군대갔다오니까 한진희 나오고 조금 있다가 임채무 나오더라"하며 직접 한진희를 언급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노주현이 두 사람보다 형이고 선배이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둘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임채무]]도 70년대 후반부터 합류해서 이 두 사람의 영역을 나름 가져갔다. 정 말하자면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 3대 트로이카 정도 된다.][* 1990년대부턴 [[개그 캐릭터]]를 자주 맡았다.] 노주현과 한진희가 함께 1980년대 초에 양복 모델을 한 적도 있다. <안녕 자두야> 대한전선 사건편에서 컬러 티비로 티비를 보면 티비가 더 재밌지 않겠냐는 자두의 질문에 자두 엄마 이난향이 "그래~저번에 혜리네 집에 가서 <결혼 행진곡>을 봤는데, 한진희가 더 잘생겨보이더라ㅋ"라고 답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http://bbs1.telzone.daum.net/gaia/do/board/photo/read?articleId=573735&bbsId=A000010|#]]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청춘의 덫]]이, 70년대 후반의 보수적인 국민정서로 인해 미완성인 상태로 종영되자 직후 만들어진 극장판 청춘의 덫(1979년)에서 출세를 위해 연인 윤희(유지인)를 배신하는 동우 역할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90년대 리메이크된 TV판에서 [[이종원]]이 맡았던 바로 그 캐릭터. 참고로 여주인공 윤희 캐릭터를 연기한 여배우는 [[이효춘]](TV판), [[유지인]](극장판), [[심은하]](TV 리메이크판)로 이어진다.
[[여명의 눈동자]]의 원작자로 알려진 소설가 김성종의 [[제5열]]을 MBC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었을 때 킬러 역을 맡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는 이영하. 이때만해도 [[이영하]], 한진희, 노주현 같은 배우들이 드라마 속에서 멋진 주인공 역을 맡을 때였다. 이후 [[박상원]], [[최재성(배우)|최재성]], [[최민수]], [[손지창]], [[이병헌]], [[배용준]], [[안재욱]] 등이 안방극장의 남자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된다.
[[장용]]과는 [[동양방송|TBC]] 선후배 관계기도 하고, 시간 차이는 많이 나지만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 모델로 같이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때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한진희가 한 대사.
[[임성한]] 작가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왕꽃 선녀님]], [[보석비빔밥]], [[압구정 백야]] [[김순옥]]작가의 [[왔다! 장보리]], [[그래도 좋아]] [[문영남]]작가의 [[조강지처 클럽]] 이것으로 [[막장 드라마]]계의 [[임성한|빅]][[김순옥|3]][[문영남|에]] 작품에 모두 출연하기도 하였다. [[임성한]] 작가의 [[막장 드라마]] 중 [[왕꽃 선녀님]], [[신기생뎐(드라마)|신기생뎐]] 두 개의 작품에서 모두 여주인공의 친부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드라마들에서 여주인공의 친모는 모두 [[김혜선(배우)|김혜선]]이 연기하였다.
- 한확 . . . . 6회 일치
[[1438년]](세종 21년) 중추원사가 되었다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겼는데 [[수문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탄핵을 받고 파면당했다.<ref>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0월 19일(경오) 1번째기사 "성문 출입에 문제가 있던 한확·연경·이연기·남계영을 벌주다"</ref> 그해 복직하여 정헌대부 중추원사를 거쳐, 1439년 판한성부사, 경기도관찰사, 판병조사,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경기도감사로 나갔다가 복귀, 1440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병조 판서, 판병조사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로 나갔다. 이때 그는 관직을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함길도]]로 부임해갔다. [[1442년]](세종 25년) 동지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사후 시신은 국내로 운구되어 [[경기도]] [[광주군 (경기도)|광주군]] [[초부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69-5) 동두미진 상조곡산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소가 [[왕릉]]과 비슷한 크기라 하여 후일 능내, 능내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묘비명은 사가 서거정이 묘지명을 지었다. 한편 그의 부인의 묘소는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에 소재해 있다.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가 아버지의 묘에 비가 없음을 슬퍼하자 성종은 특명을 내려 [[1494년]](성종 25년) [[4월]] 우참찬 어세겸(漁世謙)에게 한확의 신도비문을 짓게하고 한확의 셋째아들 한치례(韓致禮)에게 비의 건립을 감독하게 하여 [[1495년]] 세웠다고 한다. 신도비문의글씨는 성종의 사돈 임사홍(任士洪)이 썼다. 한확의 신도비는 후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 허근욱 . . . . 6회 일치
어머니 유덕희는 [[신천군]] 월정리의 개화인사 유태정(柳泰正)의 딸이었다. 유태정은 지주가문 출신으로, 대지주인 유동승(柳束昇)의 아들이었으며 한성에 유학하여 동양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개화사상을 가진 부모의 후원으로 [[한성부]]로 상경하여 신문물을 배웠으며, [[이화학당]] 재학 중에는 이화학당의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생활을 숨막혀했던 그는 [[1950년]] 남편 박노문 등과 함께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과 자유를 찾아 다시 월남한다. 그 해 [[6월]] [[한국 전쟁]] 중에 이복 언니 [[허정숙]] 등을 만났지만 이내 그는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갔다. 이후 호적 없이 가명으로 살기도 했다.<ref>한겨레신문 1991년 6월 27일자 10면, 생활문화면</ref> 한때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기간중 남편 박노문 등과 함께 북한의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 수감되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 [[허헌]]과 이복 언니 [[허정숙]]이 북한의 고위층이라는 이유로 혐의가 없었는데도 여러 번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명시적이지 않지만 때때로 가족과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과 때로는 분노가 표출되기도 한다. 허근욱의 초기작품의 하나이자 대표작인 자전적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 등에서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수난을 겪어야 했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세상에 대한 분노, [[6.25 전쟁]]이 막 끝난 직후 다시는 보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이념, 이데올로기를 빌미로 한 폭력성에 대한 거부감 등이 담겨 있어 이 작가의 작품 경향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평도 있다.
초기 작품 [[내가 설 땅은 어디냐]]는 [[1964년]] 영화감독 [[편거영]] 등에 의해 영화화되어 그 해 [[4월 8일]] [[서울]]에서 개봉되었다. [[1987년]] [[11월]]에는 그의 작품 멩가나무 열매가 각본으로 꾸며져 [[무용]]으로 선보여지기도 했다.<ref>동아일보 1987년 11월 18일자 6면, 생활문화면</ref>
- 현아 . . . . 6회 일치
탈퇴한 후 2008년 5월 [[현아]]는 비보이 페스티벌인 싸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8 광고 홍보 모델로 등장해 컴백설이 떠돌기도 했지만, [[JYP]] 측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JYP, 김[[현아]] [[원더걸스]] 복귀와 타이틀곡 '봉봉' 사실무근|url=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9378|출판사=씨앤비뉴스|저자=김성호 기자|날짜=2008-05-21|확인날짜=2010-11-25}}</ref> 2008년 3월, 현아는 [[한국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 12월 [[큐브 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겨 컴백 준비와 함께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김현아솔로데뷔, "병원치료하며 컴백위해 맹연습중" |url=http://www.artsnews.co.kr/news/9632|출판사=아츠뉴스|날짜=2008-12-02|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2월에는 의류브랜드 [[TBJ]] 화보를 통해 원더걸스 활동 이후 처음으로 연예계에 모습을 드러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멤버 김현아, 화보 통해 '깜짝 컴백'|url=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2452|출판사=오토 타임즈|저자=연예취재팀|날짜=2009-02-13|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3월 30일에는 [[이기광|AJ]]의 데뷔 앨범 《[[FIRST EPISODE A NEW HERO]]》의 선공개곡 〈2009〉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타이틀곡 〈댄싱슈즈〉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걸 前 멤버 현아, AJ 신곡에서 ‘원더걸스’ 외친 이유 뭘까?|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3310906191002|출판사=뉴스엔|저자=김형우|날짜=2009-03-31|확인날짜=2014-06-29}}</ref><ref>{{뉴스 인용|저자=이수인 기자|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김현아', AJ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활동재개|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문화저널21|날짜=2009-03-25|확인날짜=2010-11-25}}</ref> 한편, 2008년 12월부터 걸 그룹으로 컴백한다고 밝혔으나, 멤버 수와 그룹명 등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전 멤버 현아 화려한 컴백 … 2009년 새롭게 변신|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121867597|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8-12-19|확인날짜=2014-06-29}}</ref> 나중에 정확한 정보가 알려질때까지 현아 그룹이라고 불렸다.<ref>{{뉴스 인용|제목=퍼신인 여자 빅뱅-현아 그룹 맞대결 기대만발|url=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09032518550855843|출판사=뉴스 한국|날짜=2009-03-25|확인날짜=2014-06-29}}</ref> 이후 2009년 5월 14일 5인조 걸 그룹 [[포미닛]]으로 컴백한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원더걸스’ 前 멤버 김현아, ‘포미닛’으로 컴백 초읽기|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0921288145&cp=nv|출판사=쿠키뉴스|날짜=2009-05-14|확인날짜=2010-11-25}}</ref> 2009년 6월 15일 포미닛의 데뷔 싱글 〈[[Hot Issue]]〉가 발매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그룹 ‘포미닛’, 15일 데뷔곡 ‘핫이슈’ 선공개|저자=온라인 뉴스팀|url=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103665§ion=sc4|출판사=브레이크 뉴스|날짜=2009-06-09|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2009년 6월 《[[엠 카운트다운]]》을 통해 데뷔 무대를 치뤄 큰 호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18일 성공적 데뷔 무대...김현아 공연 후 눈물|저자=박미애 기자|url=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24&newsid=01508806589723032&DirCode=0010204|출판사=이데일리 SPN|날짜=2009-06-18|확인날짜=2010-11-25}}</ref> 포미닛은 날마다 말그대로 핫이슈였는데, 〈Hot Issue〉는 공개당일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핫이슈’ 데뷔 당일 음원차트 1위 기염 ‘핫이슈됐다'|저자=김형우 기자|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6160952181002|출판사=뉴스엔|날짜=2009-06-16|확인날짜=2010-11-25}}</ref> 데뷔 일주일만에 광고 2건을 체결하는 파워를 보였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데뷔 1주 만에 의류-통신 광고모델|저자=박재덕 기자|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100&g_serial=424598|출판사=조이뉴스24|날짜=2009-06-25|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현아의 무대 의상이였던 일명 '구멍난 스타킹'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고, 방송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를 재연해 주목을 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지금은 레깅스 전성시대"…타이즈가 창조한 섹시열풍|저자=송은주 기자|url=http://www.sportsseoul.com/news2/life/style/2009/0624/20090624101051100000000_7135486611.html|출판사=스포츠서울닷컴|날짜=2009-06-24|확인날짜=2010-11-25}}</ref><ref>{{뉴스 인용|제목=김현아, 2년만에 '텔미' 완벽 재연 '팬들 열광' |저자=박정민 기자|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od=1&cid=1&nid=55619|출판사=SSTV|날짜=2009-07-03|확인날짜=2010-11-26}}</ref> 이후 포미닛의 첫 EP 앨범 《[[For Muzik]]》을 발매해 타이틀 곡 〈[[Muzik]]〉은 공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뮤직뱅크' 시작으로 'Muzik' 활동 본격 시동 |저자=박미라 기자|url=http://web.reviewstar.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89|출판사=리뷰스타|날짜=2009-09-04|확인날짜=2010-11-26}}</ref> 그리고 곧 인기에 힘입어 여러 쟁쟁한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지상파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인기가요' 첫 뮤티즌 송 수상…끝내 눈물 |저자=박건욱 기자|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09092716115557586|출판사=아시아경제|날짜=2009-09-27|확인날짜=2010-11-26}}</ref>
〈Muzik〉 활동이 끝나자 현아의 솔로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2009년 10월부터 2010년 6월까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청춘불패]]》 1기 멤버로 활동 했으며,<ref>{{뉴스 인용|저자=김형우 기자|제목=‘청춘불패’ 걸그룹 “새로운 모습 보여주겠다|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1009004439&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날짜=2009-10-10}}</ref> 청춘불패 출연으로 징징현아, 막내 PD 등 별명을 얻으며 한층 인기가 높아졌다. 청춘불패 외에도 많은 예능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현아는 삼성의 프로젝트 그룹 [[4Tomorrow]]의 한 맴버로 참여해 디지털 싱글 〈두근두근 Tomorrow〉를 발표하기도 했었다.<ref>{{뉴스 인용|저자=박정환 기자|제목=가인-유이-김현아-한승연, ‘4Tomorrow’ 결성-싱글 발표|url= 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9274|출판사=굿데이스포츠|날짜=2009-10-11|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피처링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나비 (1986년)|나비]]의 디지털 싱글 〈눈물도 아까워〉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뉴스 인용|출판사=세계일보|저자=추영준 기자|제목=나비의 '눈물도 아까워'에 포미닛 김현아가 피처링|url=http://www.segye.com/Articles/SPN/ENTERTAINMENTS/Article.asp?aid=20090813002102&subctg1=&subctg2|날짜=2009-08-13|확인날짜=2010-11-26}}</ref> 비슷한 시기, [[용감한 형제]]의 첫 정규 앨범 《[[The Classic]]》의 수록곡인 〈Bittersweet〉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뉴스엔|저자= 박준형 기자|제목=손담비-김현아, 용감한형제 가수데뷔 돕는다|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908041104501001 |날짜=2009-08-0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는 2010년 1월 디지털 싱글 형식의 첫 솔로 앨범 〈[[Change (현아의 노래)|Change]]〉를 발매했다.<ref name="cha">{{뉴스 인용|출판사=굿데이스포츠 연예|저자= 디지털뉴스팀 박정환 기자|제목=포미닛 ‘김현아’ 솔로 앨범 ‘CHANGE’ 음원 및 티저 공개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12375|날짜=2010-01-04|확인날짜=2010-11-26}}</ref> 〈Change〉에는 [[비스트 (음악 그룹)|비스트]]의 [[용준형]]이 피처링으로 참여했고,<ref name="cha"/> 무대에서 주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펼쳐 나이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뽐냈다.<ref name="cha"/> 또한 노래의 안무 중 일명 '골반춤'은 유행을 시켜 많은 UCC 동영상들이 올라왔고, 연예인들이 따라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출판사=메디컬투데이|저자= 남연희|제목=김현아 '골반춤' 올해 첫 유행춤 등극! "한번 따라해볼까?"|url=http://www.mdtoday.co.kr/mdtoday/index.html?no=113319|날짜=2010-01-14|확인날짜=2010-11-26}}</ref> 현아의 솔로 활동이 끝나자 포미닛은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대만에서 발매한 앨범 《4Minute for Muzik》은 골드 인증을 받았다.<ref name="4mir">{{뉴스 인용|출판사=서울경제|저자= 이민지 인턴 기자|제목=비스트-포미닛 '인기 돌풍' 아시아 휩쓴다|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005/e2010052411061594220.htm|날짜=2010-05-24|확인날짜=2010-11-26}}</ref> 이 외에 홍콩,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는다.<ref name="4mir"/> 2010년 5월 19일 포미닛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EP 앨범 《[[Hit Your Heart]]》를 발매하고 컴백했고, 타이틀곡 〈HUH〉로 [[엠 카운트다운]] 차트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저자=길혜성 기자|제목=포미닛, 신곡 'HUH'로 가요프로 첫 1위|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0061723015739806&type=1&outlink=1|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10-06-17}}</ref> 이후 포미닛은 2010년 12월 15일 일본에서 첫 정규 앨범 ''[[DIAMOND]]''를 발매했고, 같은 해 11월, 2011학년도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수시모집에 연예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서우, 건대 예술학부 합격! 선배는 샤이니 민호-유아인|url=http://thestar.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3/2010110300885.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0-11-03}}</ref>
[[현아]]의 댄스 실력은 이미 [[원더걸스]] 시절부터 인정받았는데, 비걸 출신 여가수 [[김소리]]는 "[[김현아]]는 어린데도 느낌 있게 춤을 춰요. 나이가 많은 사람도 내기 힘든 섹시한 느낌이 잘 살죠"라며 춤을 잘추는 아이돌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김소리 “포미닛 김현아-2NE1 공민지 춤실력 인정”(인터뷰)|url=http://mhj21.com/sub_read.html?uid=11141§ion=section3|출판사=뉴스엔|저자=이언혁 기자|날짜=2010-09-16|확인날짜=2010-11-25}}</ref> 또한 [[이준 (배우)|이준]]역시 현아를 걸 그룹 중 최고의 춤실력이라고 극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엠블랙 이준 “김현아, 걸그룹 최고 춤실력…섹시하고 뇌쇄적”|url=http://sstv.freechal.com/index.html?page=news/flypage&nid=88656&cid=24|출판사=SSTV|저자=황예린|날짜=2010-07-23|확인날짜=2010-11-25}}</ref> 가수 [[이주노]]도 “솔로곡 "Change"에서 춤추는 모습을 봤는데 춤이 아무 맛깔스럽게 추더라”며 “그 노래에서 그 표정, 동작, 노래가 나오는 것은 아주 연습을 많이 했거나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 것이다”라고 [[현아]]를 최고의 춤꾼으로 꼽았다.<ref>{{뉴스 인용|제목=‘선견지명’ 이주노 “현재 최고의 춤꾼은 포미닛 김현아” 극찬|url=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101201801313&mode=sub_view|출판사=한경닷컴but뉴스|저자=이정현 기자|날짜=2011-01-20|확인날짜=2011-01-22}}</ref> 하지만, 주로 섹시하고 파워풀한 춤을 추는 [[현아]]는 어린 나이에 너무 선정적인 춤을 춘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되는 등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 name="아시아경제">{{뉴스 인용|제목=포미닛 "연습생의 마음으로 준비한 첫 정규, 설레고 신기해"(인터뷰)|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41309374724881|출판사=아시아경제|저자=강경록|날짜=2011-04-15|확인날짜=2011-04-15}}</ref>
또한 [[현아]]는 주로 다리 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핫팬츠와 미니 스커트, 그리고 스타킹을 자주 입는데, 의상이 선정적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포미닛' 김현아, 속바지 다 보이는 미니스커트 '논란'에 "더욱 노력하겠다" |url=http://www.gooddaysports.co.kr/news/?cset=star&bset=view&tot_code=47&code=8937|출판사=굿데이스포츠|저자=신섬미|날짜=2009-09-27|확인날짜=2011-04-15}}</ref>
- 홍명희 . . . . 6회 일치
[[한국]]의 [[소설가]],독립운동가, 민족운동가, 월북 [[북한]] 정치인. 호는 벽초(碧初)[* 뜻은 "[[에스페란토|푸른빛(碧)의 말]]을 처음으로(初) 배운 [[한국인]]". 에스페란토을 상징하는 색이 초록색이라 그렇다.]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로 알려진[* 참고로 말하는데, 이 3대 천재라는 것은 대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홍명회, 이광수, 최남선은 같은 시기에 동경유학을 하였고, 양건식과 신형철들이 이들을 동경삼재라고 불렀다.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중에서 유능한 인재들이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들이 귀국하면서, 잡지 소년에 함께 글을 기고하면서 동경삼재라는 이름은 (일제시대하) 조선삼재로 변했다. 이들은 모두 문인으로, 문학계에서 칭찬 삼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 같다. 다만 명칭이 이런 식이라서 그럼 왜 세종대왕이나 정약용 대신에 이런 인물들이 있느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담]]으로 이 3대천재 드립은 전부 다 홍명희 관련으로 나왔다. 현대에 이 언급을 한 것도 홍명희 평전이었고, 조선삼재 이야기도 홍명희와 [[현상윤]]이 나눈 1940년대 인터뷰에서 나왔다.] 인물로 실제로 이 셋은 죽마고우였으나 앞의 둘은 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데 비해서 홍명희는 변절하지 않지만 월북하여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이광수의 친일 행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친교를 유지했고, 훗날 [[한국전쟁]] 당시 춘원이 납북되자 그의 신변을 보호했으며 그가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자 병원으로 이송까지 할 정도로 막역했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친한 만큼 매섭게 이광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이광수가 친일파로 변절하자 홍명희는 이광수의 집 대문 앞에 음식상을 차리곤 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이광수가 나와서 연유를 묻자 홍명희는 "내 친구 춘원(이광수의 호)이 그만 죽고 말아서 이렇게 곡을 하며 슬퍼하고 있소."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비슷한 이야기가 꽤 많다. [[최남선]]과 [[정인보]], 최남선과 정인보의 스승인 승려 석전 박한영 간에도 있다. 최남선이 변절한 뒤 정인보(또는 스승 박한영)를 만나자 "나에게 최남선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오."하고 헤어졌다는 야사.]
[[1928년]] [[11월 21일]] 연재되기 시작된 <[[임꺽정]]>은 홍명희의 투옥과 개인 사정 등으로 연재가 4차례 중단됐으며,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된 뒤에는 ‘[[조광]]’에 발표됐다. 이 소설은 토속어 구사가 뛰어나서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사전’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소설에 대해 만해 [[한용운]]은 “연재기간의 연장으로는 세계적으로 최고 기록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훗날 손자 홍석중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으므로 대를 이어서 창작한 셈이다. 홍석중 씨가 완결을 발표하기 전에는 미완성 작품이라서, 홍명희가 북한에서 소설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있었는데, 홍석중의 발언에 따르면 홍명희는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의 생각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임꺽정을 완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했고 여운형 암살 후 지도자가 되기도 했으나 환경과 리더십의 부족으로 실패했다. 결국 이후 월북했다. 월북 계기는 1948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한 제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에 [[김구]]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북한에 남았다. 그의 월북 동기에는 '친일파들과 결탁하여 단독정부 수립운동을 강행추진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견해가 있다. ~~근데 [[김일성]] 정권도 핵심 실무인력에서는 친일 청산 안했잖아?~~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괴산군]]에서 그의 생가와 업적을 조명하려 하자 주민들이 월북한 '빨갱이'가 뭐가 위인이냐고 격렬히 반발하기도 했다.
- 홍순언 (1530년) . . . . 6회 일치
그의 일화는 [[정재숭]]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지다가 [[1928년]] [[정인보]]가 그의 행적을 기술한 당릉군유사징을 편찬하여 널리 알려졌다. 초명은 덕룡(德龍), 자(字)는 사준(士俊)·순언(純彦)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홍겸]]의 서자이다. [[한성부]] 또는 [[경기도]] [[광주군]] 출신.
그의 가계는 남양 홍씨 첨사(詹事) 홍호(洪灝)의 동생인 예사 홍복(洪澓, 일명 홍복(洪復))의 12대손이다. [[가선대부]]에 추증된 [[홍겸]](洪謙)의 서자였다. 출신지는 한성부라는 설과 [[경기도]] [[광주군]]이라는 설이 있다. 1899년에 편찬된 [[경기도]] [[광주군]]의 향토지인 광주군지 인물편에 그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 실려 있다. 할아버지 홍경창(洪慶昌)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안동부사(安東府使)등을 역임했고, 큰아버지 홍신(洪愼)은 [[평양부]]서윤(平壤府庶尹), 양주목사(楊州牧使), 형조참의(刑曹參議), 공조참의(工曹參議) 등을 역임하고 [[1539년]](중종 34년)에는 [[명나라]]에 진하사(進賀使)로 다녀오기도 했다. 아버지 홍겸은 [[1531년]] 역과에 급제하여 [[명나라]]에 두 번 역관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홍순언의 일화는 [[조선]] 후기의 소설 《[[이장백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의 행적은 [[정재숭]]과 [[박지원]], [[이익]]의 저서를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일화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20년]]대였다.
- 황병기 . . . . 6회 일치
1985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객원교수로 지냈다. 1986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기도 했다.
1964년 국립국악원 최초의 해외공연이었던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 초청 일본 순회공연에 가야금 독주자로 참가하고 공연 후 NHK에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1965년 4월 22일-5월 2일에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금세기 음악 예술제(Festival of Music and Art of This Century)에 초청되어 작곡 발표 및 가야금 연주를 했다. 최초의 독집 음반(LP) Music From Korea: The Kayagum』(East-West Center Press) 취입하기도 했으며, 6월-8월 [[워싱턴 대학교]]에서 하계 학기 강사로 한국음악을 강의했다. 샌프랜시스코, 로스앤젤리스, 시애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었고, 샌프랜시스코 하계음악제에서 Lou Harrison 작곡의 「Pacific Rondo」를 연주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야금곡 〈[[미궁]]〉(1975)은 그의 대표작으로, 현대 음악 기법으로 작곡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와 함께 퍼져서 ‘무서운 곡’으로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으며,<ref>{{뉴스 인용|url=http://mn.kbs.co.kr/news/view.do?ncd=310472|제목=가야금곡 미궁의 뜬소문 확산|뉴스=[[KBS]]|저자=나신하|날짜=2002-04-12|확인날짜=2008-04-07}}</ref> 게임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화이트데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5회 일치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상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상속방식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식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반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위치가 위치인지라 상당히 힘들다. 오스트리아는 아우구스부르크나 잘츠부르크같은 남독일지방 소국들 문제로 분쟁을 겪을 일이 많으며, 신롬내 2위국이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보헤미아는 바이에른을 라이벌로 지정하는 경우가 잦다. 팔츠같은 좀 만만한 국가를 패려고 들어도, 옆에 붙어있는 국가들이 거의다 신롬내 자유도시들이며, [* 자유도시 국가는 기본적으로 황제국이 보호를 해주며 방어전때 앵간하면 거의 무조건 딸려온다.] 잘츠부르크랑 아우구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진출 방향과 겹쳐서 무조건 얼마안되 싸운다고 봐도 무방하며(...) 팔츠는 오스트리아나 보헤미아와 동맹하는 경우가 잦다(...) 다행히 주변국들중 안스바흐가 그나마 만만하고 관련 미션도 있으므로, 공격해 자신의 속국(vassal)로 삼는게 좋다. 일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신롬내 강국들에게 다굴맞아 쪼그라들기 쉬우므로, 동맹하기 적당한 강국부터 찾아야 된다. 가장 좋은 동맹은 헝가리, 최근 리투아니아의 개발도가 너프되 폴란드의 힘이 상당히 빠져 동유럽의 강자로 떠올랐으므로 가장 좋은 동맹이다. 폴란드도 괜찮긴 한데, 이 녀석이 뭔 생각인지 브란덴부르크나 실레시아등 자기랑 맞닿아 있는 신롬국가들을 공격해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잦으므로(...)그냥 하지 말자. 어차피 이젠 헝가리나 모스크바한테 털리는 호구다. 그외에 부르고뉴는 분할 상속이벤트로 저지대를 통채로 주기도 하니, 결혼정도는 해주는걸 추천한다.
시작지점에서 네덜란드를 형성하기 가장쉬운 국가기도 하다. 헬러랑 위트레흐트, 프리슬란드지방만 먹으면 된다.~~셋다 신롬 땅이라서 황제국이 오는건 넘어가자~~ 다만 이경우엔 프랑스에 속한 지방은 싹다 프랑스한테 넘어간다. 주의.
이게임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 플레이어가 오스만이 아닐경우] '''중간보스''' 시작시부터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게임 최고의 꿀땅인 콘스탄티노플을 먹을 수 있어서 상당히 강력하다. 또다른 특이점으론 콘스탄티노플노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서 사실상 자금력에서도 최강급. 거기다가 콘스탄티노플이 자동적으로 터키 문화권+ 수니파로 개종하는 이벤트, 예니체리 이벤트 [* 타락 이벤트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고증에 충실.~~]등 자기만의 이벤트나 전용 미션도 더럽게 많이 들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좋다고 초반부터 헝가리같은 동유럽쪽으로 확장하려들다간 반국가연합걸려서 망할 수 있으니(...) 우선은 유럽쪽은 발칸반도정도만 먹어두고 맘루크와 카라 코윤루를 패면서 서아시아+ 이집트지방부터 먹는걸 추천. 아니면 정교회로 개종하는 방법도 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먹어두면 발칸지방은 콘스탄티노플빼면 전부 정교회이므로 개종이야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경우엔 동군연합을 노릴 수 있으며 결혼이 되어서 외교가 훨씬 편하단게 장점. 몇몇사람들은 라구사까지 먹어둬서 가톨릭 개종후 신롬황제를 노리기도 한다. ~~진정한 카이세리 룸!~~
본격 동유럽 깡패국가. 시기상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랑 동군연합 맺고 신나게 깡패질 할때라 매우 강력하다. 거기다가 국가이념중에 기병전투력 33퍼센트 추가가 달려있어서 [* 그다음으로 강력한 헝가리기병 전투력증가가 20퍼다...다만 이쪽은 국가전통이라 처음부터 달려있다는게 차이점.] 올기병 플레이[* 보병은 버리고(사람에 따라선 포병까지) 기병만으로 플레이하는것]에 가장 추천되는 국가기도 하다. 선거군주정 특징을 잘이용해 오스트리아를 뛰어넘는 동군연합의 제왕이 될수도 있고, 이후에 대홍수이벤트까지 끝내면 다른 나라보다 몇 십년 빨리[* 다만 프랑스보단 느리다. ~~주인공 보정~~] 절대군주정이 될수 있다.
- T.O. 모로우 . . . . 5회 일치
[[천재]] [[과학자]]. 본명은 Tomek Ovadya Morah. [[메탈멘]]을 만든 윌 매그너스의 멘토이기도 했으나 자기 재능을 악용한 악당 과학자이기도 해서 [[슈퍼히어로]]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프로페서 아이보]]와 함께 안드로이드인 [[투모로우 우먼]]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 투모로우 우먼을 이용해 [[저스티스 리그]]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52 이벤트에서는 [[사이언스 스쿼드]](Science Squad)에 합류하기도 했다.
New 52에서는 [[스타 연구소]] 소속이며 [[사이보그]]의 아버지인 스톤 박사의 동료이기도 하다. 뉴52 저스티스 리그의 초반을 다룬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워에서도 등장.
-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 . . . 5회 일치
경찰은 우선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의 전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묻지마 범죄는 그 어감 탓에 무차별 살인과 동의어로 통용되기도 하나 실제로는 다르다. 정신이상자가 비정상적인 동기에서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정상인일지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묻지마 범죄로 부른다.
이들은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이전부터 사건을 여험범죄로 규정하고 있었으며 강남역 포스트잇 추모를 기획하고 각종 추모 행사 및 여성혐오 중단 촉구를 위한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정도를 지켜야할 언론에서는 사건을 원색적이고 편파적으로 다루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특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에서는 워마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 극도의 페미나치스러운 기사를 쏟아내어 진보 진영 안에서도 성토를 당했다. 일부 유명인들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워마드에 편승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특히 진보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은 한국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하면서 "x잡고 반성이나 해라"는 폭언을 늘어놓고 욕을 먹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와 유가족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특히 피해자의 오빠는 여혐논란에 대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피해자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사이트에서는 이러한 유가족의 목소리 조차 "한국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비하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발언과 미러링이라는 핑계 조차 내다 던진 노골적인 남성혐오 때문에 "남성을 강간하자"라는 일베스러운 논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기사화되기도 하는 등, 여초사이트의 명암을 극명히 드러내게 되었다.
- 권해효 . . . . 5회 일치
한양대 선배이자 동료 배우인 [[박광정]]과는 막역한 사이로, 서로 첫 대면한 자리에서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속으로 ''''이야 이거 만만치 않은데?''''(권해효), ''''저쪽도 한 코 하는데?''''(박광정)하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한 쪽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서로 첫인상이나 생각까지 비슷했던 걸 보니 역시 우린 잘 맞는다." 며 웃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깨알같은 콤비로 활약하며 함께 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후 [[박광정]]이 폐암으로 별세하자 가족과 같은 수준으로 빈소를 지키며 장례를 마무리하는 의리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중파 신인 시절인 1994년에 촬영한 [[오뚜기]] [[스낵면]] CF의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입에 착착 감기는 애드립성 멘트 덕분에 광고 대상인 스낵면이 아닌 본인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기도 했다(...)
*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농성 지원, 위안부 일인 시위, 안티 조선 운동 등 여러 방면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2015년 12월 28일의 위안부 협상 국면에서는 아베에게 경고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기도. 또한 [[이승만]]의 어두운 일면을 남김없이 들춘 '''백년전쟁 - 두 얼굴의 이승만'''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션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 김미숙(1959) . . . . 5회 일치
|| '''신체''' ||<(> 165cm[* 지금도 20대 여자 평균이 160-161이니 165가 큰 편이지만 당시에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으로 중학교 시절 배구 선수를 하기도 했다. 요즘 세대의 장신 여배우들과 한 화면에 잡혀도 비슷하거나 클 때도 많다. 물론 그 당시 상황에서는 상당히 큰 키에 속했다.], [[B형]] ||
그리고 2009년 연기 인생 처음의 악역이라 일컫는 <[[찬란한 유산]]>으로 드라마에서의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족애와 성장드라마를 짬뽕한 이 드라마는 시청률 40%를 넘기며 큰 히트를 기록한다. 여기서 김미숙은 '''"정말 악역을 안 할 것 같은 배우"'''의 얼굴로, 징그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백성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 해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언제나 선하고 호감가는 역할만 하던 김미숙에게는 처음으로 욕을 먹는 경험(?)을 하게 한 작품이라고.[* 신선한 악역 연기에 찬사를 보내자 김미숙은 인터뷰에서 "다들 내가 이런 역할 못할 줄 알았나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 [[목소리]]가 '''정말''' 좋다! 그로 인해 일찍이 DJ로 활약했다. 라디오 진행 경력만 20년이 넘는다. 대본을 직접 쓰기도 하고, 방송할 때는 DJ 인기 투표 순위에도 항상 순위권. 우아한 목소리와 뛰어난 딕션, 그리고 자연스러운 진행이 포인트. 연극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 연륜으로 인해 더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목소리는 정말 타고난 듯. 떡잎부터 달랐던 건지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본인도 놀랐다는 썰. ~~자랑인데 반박할 수가 없다...~~ 시 낭송 앨범을 여러 번 내기도 했다. [[감성애니 하루]] 내레이션.
* [[1981년]] [[KBS 2TV]] 《[[우리에게 축복의 기도를]]》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5회 일치
그러나 2006년 9월 15일 변형태와 알카노이드에서 치른 일전은 많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온갖 화제를 낳았다. 이 경기에서 김준영은 테란으로 트리플 커맨드를 확보한 변형태를 상대로 전 맵에 걸쳐 멀티를 가져가면서 막대한 자원 수급량을 확보했고(총 8개의 멀티 보유), 처음 택한 공격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저글링 드랍이었을 정도로 엄청난 배포를 보였다. 이후 공중유닛에 매우 강한 발키리, 골리앗 조합으로 진군하는 테란 병력을 소위 새떼라 불리는 뮤탈리스크 대부대로 무난히 격파하고, 전맵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트라리스크로 상대의 본진을 싹쓸이하면서 최고의 관광 경기를 연출했다. 이 경기가 펼쳐진 16분 동안 김준영은 40000이 넘는 미네랄을 채취했을 정도로 엄청난 물량을 뽐내며 당시 최고조에 다다랐던 테란전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도 대인배스러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기였다. 또한 훗날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의 호적수, 이후에는 팀동료로 계속 이어진 변형태와의 인연이 시작된 경기이기도 했다.
진영수와 이영호와 펼쳤던 경기들도 한 세트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명승부였지만, 결승전에선 2:0으로 밀리고 있다가 3, 4, 5경기를 연이어 승리하면서 전용준 캐스터의 표현대로 "천재도 못하고, 본좌도 못하고, 누구도 못하고, 황제도 못했던" 리버스 스윕을 역상성 종족으로 달성하며 최고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특히 파이썬에서 펼쳐진 5경기는 종료 직전까지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던 명경기로, 김준영은 변형태의 바이오닉 병력에 중원을 빼앗기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연이은 멀티 견제를 극적으로 막아내며 신들린 스콜지의 활용으로 사이언스 베슬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며 항전했고, 종국에는 가까스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해 내는 데에 성공하며 생애 최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경기 종료 후 김준영은 "2: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려 승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변형태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승자와 패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스타리그의 10년 역사 속에서도 김준영과 변형태의 다음 스타리그 결승전은 그 스코어로나 경기 내용으로나 그 안에 얽힌 드라마로나 역대 최고의 스타리그 결승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 김준영의 별명 '대인배'는 2005년 11월 12일 김준영이 구룡쟁패 듀얼토너먼트 2라운드 승자전 대 [[김근백]](당시 [[삼성전자 칸]], 은퇴) 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 해처리 버그(해처리로 변태하다가 취소한 상태의 저그 드론이 소실될 경우 게임 자체가 멈춰 버리는 현상)가 발생하자 재경기가 가능한 상황에서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 준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인배(大人輩)'라는 용어는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되었던 [[김성모]]의 만화 중 등장한 '소인배'와 반대의 의미를 가진 어휘로, 본래 표준어가 아니며 '輩'라는 어미가 '소인배', '무뢰배', '폭력배' 등의 단어에서 보이듯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김준영을 '대인'이라고만 칭하기도 했다.
온게임넷 대회인 스타리그에서는 10회나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고 우승도 한 번 기록하기도 한 김준영이었지만 유독 MBC게임의 MSL에서는 인연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순수 스타리그 우승자 선수들 중에서는 [[한동욱]]과 함께 MSL 진출 기록이 전무하다. (서바이버 리그 및 서바이버 토너먼트 진출 기록이 최고 기록)
- 니엘(가수) . . . . 5회 일치
||<#ad84db> {{{#white '''출생'''}}} ||[[1994년]] [[8월 16일]] ([age(1994-08-16)]세), [[경기도]] [[안양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불후의 명곡]]이나 [[백인백곡 - 끝까지 간다|끝까지 간다]] 등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13년 [[MBC 가요대제전]]에서는 [[저스틴 비버]]의 'Baby'라는 곡으로 솔로무대도 꾸몄다.
데뷔 초 노래들인 박수나 Supa luv에서 보여줬듯이, 굳이 오토튠을 쓰지 않더라도 사이버틱한 연출이 가능한 특이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또 파워풀한 발성으로 인해 무대에서 폭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때문에 팬들은 간혹 파워보이스(천지)와 감성보컬(니엘)이 바뀐 것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이하고 통통 튀는 음색과 다소 부정확하고 어눌한 발음이 잔잔하게 불러야 하는 발라드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블랙아이드필승과 작업하면서부터 점점 발라드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곡에 녹아들고 있다.
N모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연관검색어로 '''틴탑 입술 두꺼운 애'''가 나올 정도로 두껍다. 그 덕분에 틴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멤버이기도 하다.
심지어 [[http://stoo.asiae.co.kr/news/stview.htm?idxno=2012062811204393949|먹고 자면 입술이 붓는다고 한다]]. 2014년 SBS 정글의 법칙에 출연해 내추럴한 모습을 선보여 '못생겼다'는 악플 집중 포화를 받기도 했다.[* 니엘이 출연한 뒤 몇 달 후 [[2AM]]의 [[이창민]]이 출연해 '니엘아, 여기 오니까 못생겨질 수 밖에 없구나. 니 마음을 알겠다'라고 언급하는 바람에, 다음 날 창민과 니엘의 사진이 나란히 기사에 나와 또 한 번 악플 집중 포화를 받았다.] 세바퀴에서 [[T-800]] [[http://tvcast.naver.com/v/581148/|엔도스켈레톤 얼굴모사를 개인기로 선보였다.]]
- 디도(성우) . . . . 5회 일치
다만 턱시도 가면은 본인이 노력해서 매 시리즈마다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현재는 어느 정도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 톤이 내향적인 캐릭터마냥 다소 힘이 빠지고 여려지는 문제점은 끝까지 개선되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이지현(성우)|이지현]]의 완전히 안정된 [[츠키노 우사기|세일러문]] 연기에 비하면 호평이 덜하다. 이지현의 경우 밝은 소녀 캐릭터에 특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완전히 안정된 세일러문 연기는 [[최덕희|추억 보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혼연일체 수준이었다.]과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트 캐치 프리큐어!]]의 [[묘도인 사츠키]][* 이 쪽은 병약 속성이라서 여린 톤의 목소리가 어울린다.]는 무난하게 소화한 걸 보면 차분한 캐릭터 중에서도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캐릭터보다는 여리고 내향적인 캐릭터를 더 잘 소화하는 것 같다.[* 사실 이는 디도 본인이 진지한 캐릭터에 완전히 적합한 성우가 되었다기보다 비록 디도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레온(턱시도 가면)의 캐릭터성이 상대적으로 디도가 맡기에 적합하게 바뀌어간 게 크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1기|1기]]의 레온은 쿨시크한 성격과 장난기가 공존하는 캐릭터였는데 디도는 비슷한 시기에 맡은 듄 또한 혹평을 들은 것처럼 쿨시크한 캐릭터에서 좋은 평을 들은 적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1기에서 디도의 레온 연기는 장난기만 살아있고 쿨시크함과는 거리가 먼 가벼운 느낌이라서 대차게 까였다. 그러다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2기]]를 기점으로 점차 레온의 성격이 부드럽게 바뀌어가고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3기]] 이후로는 개그로 망가지는 일도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디도가 소화하기에 편한 캐릭터성이 되었던 것. 부드럽고 온화하거나 소심한 캐릭터 내지는 밝고 활발한 개그캐릭터에 특화된 디도의 입장에선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한 캐릭터성도 어디까지나 1기 때에 비해 그럴 뿐이지 기본적으로 레온은 시종일관 온화한 캐릭터도, 시종일관 코믹스러운 캐릭터도 아니고 1기 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지라 온화하게 말하는 장면에서의 연기가 KBS판 성우인 [[김일(성우)|김일]]처럼 어느 정도 힘이 들어간 톤이 되어야 하는데 다소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된 건 아쉬운 부분. 김일이 1기에서의 쿨시크한 레온과 2, 3기 이후로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개그로 망가지기도 하는 레온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준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더해진다.] 그 이후로 비슷한 캐릭터는 [[키즈 CSI 과학수사대]]의 [[키즈 CSI 과학수사대/등장인물#s-3.1|고진]]을 한번 더 맡았는데 1기 때의 레온 연기에 비하면 평가는 나았지만[* 하지만 디도가 진지한 배역을 맡을 때마다 나오는 여리고 힘빠지는 느낌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그렇게까지 큰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레온과 고진 이후로는 진지한 배역에 많이 캐스팅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후에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맡은 [[이고르(가면라이더 고스트)|이고르]]의 경우 처음에는 나름 진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28화를 기점으로 점차 개그형 악역으로 변해갔으니[* 애초에 이고르를 연기한 배우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도 중후한 카리스마 악역보다는 가볍고 얍삽한 3류 악역에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특촬물을 포함한 외화 더빙의 특성상 담당 배우의 외모까지 고려한 캐스팅을 해야 했으니 가벼운 인상인 야마모토 히로시의 외모에 맞춰 가벼운 배역에 특화된 디도가 캐스팅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까지도 더빙 업계에서는 그를 진지한 배역에 그다지 적합한 성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원판 세일러문이 종영된 후에는 더 이상 애니메이션에서 새롭게 주연을 맡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이 대원방송에서 더빙되었다면 턱시도 가면 역할로 계속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투니버스에서 자막으로 방영하는 바람에 그나마 맡고 있던 주연 캐릭터에서도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다. 물론 게임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의 주인공 송진우를 맡게 된 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원판 세일러문에서 주연급 캐릭터를 맡은 다른 성우들([[치비우사|꼬마 세라]] 역의 [[이유리(성우)|이유리]] 제외) 및 [[김일(성우)|김일]]의 또다른 대표배역인 [[원피스(만화)/애니메이션|원피스]]의 [[상디]] 역할을 이어받은 [[박성태(성우)|박성태]]와 비교하면 인기가 떨어지고 커리어도 초라하다 보니 디도의 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통 특정 배역을 맡았을 때 처음에 심하게 혹평을 듣더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많이 나아지면 해당 성우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며 경우에 따라 [[이용신]]의 [[코야마 미츠키|루나]]나 [[서유리]]의 [[엔비(강철의 연금술사)|엔비]]처럼 해당 성우를 대표하는 배역으로 자리잡아 그 성우가 스타 성우로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디도는 세일러 문 시리즈에서의 레온 연기가 후반에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성우와 같은 인기는 얻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세일러 문은 디도의 출세작이 되지 못했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아진 레온 연기조차 KBS판의 김일과 같은 큰 호평은 끝내 못 받았던 점이 한 몫한 셈. 결국 하트 캐치 프리큐어와 대원판 세일러문이 크게 작용 한 듯하다.
한국식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지 않는 첫번째 성우이기도 하다.[* 원래는 유일했으나 kbs [[오보미(성우)]] 성우가 "리우" 라는 예명을 사용하게되어 유일하지 않게 되었다.]
- 미스터 마인드 . . . . 5회 일치
겉모습은 그냥 벌레. 문자 그대로 보통 애벌레 크기다. 그런 이유로 [[블랙 아담]]이나 [[아이박]]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나 [[닥터 시바나]]처럼 지능형 빌런인데다 정신계 능력을 써서 만만치않은 적이다.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Monster Society of Evil)의 일원이기도 하다.
지능형이란 점에서 시바나와 동맹이 되어 일을 꾸미기도 했다.
[[미스터 아톰]]을 부하로 쓰기도 했으며 사지 스틸을 조종해 백악관을 차지하려고도 했다.
[[부스터 골드]]하고도 대립하게 되는데 이때는 머리 잘 굴리는 애벌레 정도가 아니라 [[멀티버스]]를 위협하는 거대한 곤충 [[괴수]]가 되었다. 이때 스키츠를 고치처럼 쓰기도 했다. 부스터 골드의 아버지를 이용해 골드의 혈통만 사용할수 있게 만들어진 특수 슈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 박상원(배우)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배우로 MBC 공채 18기 출신이다. 대표작으로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등이 있다. ~~명작만 찍었다~~ 선역전문배우. 같은 선역전문배우인 [[김동현(1950)|김동현]]이 험악한 인상으로도 선역만 담당하는 반면 박상원은 인상이 선해서 선역전문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단 [[드림(드라마)|드림]]에서 악역인 강경탁의 역할을 맡았을 때, 선해 보이는 인상을 역으로 이용한 위선자의 역할을 너무도 훌륭히 보여주기도 했다.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첫사랑(KBS)|첫사랑]] 등 굵직한 작품을 맡으면서 특유의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를 내세워 성공 가도를 달렸으며 당시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나이에 비해 꽤 젊은 이미지를 오래 가지고 간 배우이다. 첫사랑에서 대학생-대학원생 역을 맡을 당시 30대 후반이었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주어진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 캐릭터가 꽤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스키 실력이 수준급이며 스키 패트롤 자격을 가지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행사에 모습을 보이기도.
1990년대 전반에 [[에이스침대]] [[광고]]에 출연해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라는 유행어를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침대는 가구가 맞다. 그러나 이 멘트 때문에 한 초등학교의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으로 문제가 나왔는데 모두 "[[침대]]"라고 썼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1990년대 어린이들은 침대는 사이언스로 알고있다.~~
- 박홍 (신부) . . . . 5회 일치
'''박홍'''(朴弘, [[1941년]] [[2월 27일]],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며 [[천주교]] [[예수회]] 소속 성직자이다. [[천주교]] 신부로서 정치 관여 발언을 많이 했고, 서강대 총장을 지냈으며 [[극우 반공주의|반공주의]], [[보수주의]] 성향의 언론인이기도 했다. [[1994년]] [[주사파]]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
칼럼니스트로 간혹 언론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운동권 학생들과 논쟁을 하였다.
[[1994년]]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 주사파 관련 발언으로 화제가 되었다.<ref>[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767077 1등신문 대전일보 59년 정통언론<!-- 봇이 붙인 제목 -->]</ref>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종교분과위원장을 지냈으며, '주사파'발언 이후 경찰관 2명이 그를 밀착하며 신변을 보호하기도 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hani.co.kr/h21/data/L000626/1pau6q2f.html 한겨레 21<!-- 봇이 붙인 제목 -->]</ref> [[1997년]] 총장직에서 퇴임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0004186&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1991년]] [[예수회]] 박홍 신부(당시 서강대 총장)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ref name=gg/><ref>{{웹 인용|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6968.html|제목=영안실서 김귀정 주검 지키며 경찰 침탈 맞서 / 박정기|출판사=한겨레|저자=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구술작가 송기역|날짜=2012-04-05|확인날짜=2012-04-29}}</ref> 박홍 신부의 기자회견 이후 부터 김기설 학생의 분신 자살에 배후가 있다는 보도가 언론에 도배질을 하기 시작했고,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검찰과 경찰은 합동으로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공안몰이 수사를 벌여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며 강 씨를 구속기소했다.
간혹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 송원근(배우) . . . . 5회 일치
그러다 2009년 2월 26일 느닷없이 '사고치고 싶어'라는 댄스곡으로 컴백했다. 곡 자체가 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직설적인 가사'''와 독특한 안무--이리 휙, 저리휙, 굽신굽신--, 예명 때문에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이불신'''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참고로 뮤직비디오에는 [[애프터스쿨]]의 [[가희(가수)|가희]]와 [[이주연|주연]]이 출연했다.
이후 소속사를 제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로엔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면서 '런'이라는 예명으로 개명하고 2009년 10월 16일 '강력한 그녀'라는 곡으로 컴백했다. ~~이름 바꾸면 모를줄 알았지?~~ 이 시기에 당시 무명이던 '''[[아이유]]'''(!)가 피처링한 곡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반응은 역시나 시원치 않았다는 듯. 배우 [[강소라]]와 [[멜론]] CF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2년에는 아이유의 노래 '좋은 날'의 일본어 버전인 'Good Day'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오로라 공주의 인기 덕에 빛을 보게 된 후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도 출연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임성한 작가의 후속작 [[압구정 백야]]에도 [[장무엄]]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타샤와 노다지의 재회--
- 스트라테고스 . . . . 5회 일치
[[콘스탄티누스 1세]] 시기에 마기스테르 밀리툼(Magister militum)이라는 직위가 창설되었는데, 그리스어로 이 지위는 흔히 스트라테고스로 번역되었다. 후기 로마 제국에서 이 지위는 비잔티움의 '로마 황제'와, '서로마 황제' 다음가는 고위 장군직이었다. 마기스테르 밀리툼은 갈리아,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오리엔트, 일리리아 등 넓은 범위의 속주 지역에 임명되었다. 이들은 광범위한 지역을 담당하면서 해당 지역의 야전군을 총지휘하고, 외적의 공격을 요격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이 지위는 중앙에서 임명되기도 했는데, 동로마 제국은 magister militum praesentalis이라 하여 2명이 임명되었고, [[서로마 제국]]에서도 임명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스트라테고스는 마기스테라 우트리우스 밀리타리에(magister utriusquae militiae)로 불렸으며, 이들은 서로마 제국의 군권을 거의 완전히 통솔하는 직위였으므로 때문에, 황제의 후견인이면서 때때로 사실상 황제를 능가하는 실세 권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스틸리코]],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같은 사례가 그러하다. 이들은 서로마 제국 후기의 국방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으나, 너무 큰 지위였기 때문에 서로마의 '스트라테고스'는 황제와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스틸리코는 모함을 당해 처형되었고, 아에티우스는 암살당했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지방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는 지방 방위에 필수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황제의 권위에 가장 큰 위협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야심만만했던 스트라테고스들이 황위찬탈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킨적이 잦았다.
- 스틸오션/일본 . . . . 5회 일치
>순잠3형(巡潛三形, Junsen III)을 기반으로 여덟척의 병형(丙形, Type-C)이 건조되었다. 어뢰 발사관과 어뢰 탑재량은 증가했지만 일본 잠수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수상정찰기가 제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갑표적(甲標的, Ko-hyoteki) 모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일본제국해군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 대형 구축함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의 8-4 함대 계획과 8-6 함대 계획에 의해 건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낮은 내구력으로 인해 호위함이나 구조임무만을 수행했다. 몇몇 미네카제급 구축함은 가이텐 모함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영국 순양함의 영향을 받은 쿠마급 순양함은 일본제국해군이 처음으로 운용한 5,500톤급 경순양함이었다. 텐류급에 기반하여 무장과 속도를 향상시켰으며 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태평양전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했으며, 키타카미와 오오이는 추가적인 어뢰발사관을 장비하고 고속 수송선으로 개장되기도 했다.
정찰기 뿐만 아니라 전투기와 뇌격기도 장비 가능하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5회 일치
이후에는 '원격지', '산읍기행', '시제', '농무' 등의 시를 발표하였으며 시학(詩學) 해설서인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를 출간하며 이미 작고한 국내 시인들과 생존해 있는 시인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지라 과거 한국 문단에서 활동했던 여러 유명한 시인과 작가들과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그 중에서는 [[천상병]]이나 [[김관식]], [[조태일]], [[민병산]], [[황석영]] 등이 있다. 특히 천상병이나 김관식 등은 서로 ~~육두문자~~구수한 말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으며 세 사람이 하나같이 알아주는 주당들이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전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일화나 문단에서 사귀었던 여러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오늘날의 시점으로 봐도 심히 기이한 각종 [[기행]](...) 등을 재미난 입담으로 다룬 수필집을 내어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수필집과 회고록을 종합하여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자신의 시 중 하나인 <파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하였는데 신경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기행에 있어서는 당대 문단의 1,2위를 다투던 천상병이나 김관식의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할정도로 웃기고도 기이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학창시절을 다룬 파트에서는 당시의 어수선한 사회상은 물론이고, 자신이 저질렀던 비행이나 창피스러운 일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 역시 재미있다. 중학생때는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시인 [[고은]]과 절친한 사이다. 고은이 만든 진보 문학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고은을 보좌하며 행동대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고은과 함께 방북을 추진하여 판문점으로 가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하여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또 '고은 문학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고은의 업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빼도박도 못 하는 신경림의 흑역사.
- 오세창 . . . . 5회 일치
'''오세창'''(吳世昌, [[1864년]] [[8월 6일]] ~ [[1953년]] [[4월 16일]])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문신, 정치인이자 계몽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의 언론인, 독립운동가, 서화가, [[대한민국]]의 정치인, 서화가이다. [[조선]] 말기에는 개화파 정치인이었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서화와 고미술품 감정 등의 활동도 하였다. [[한국]]의 역대 왕조의 서화가 인명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1928년)의 저자이다. [[1918년]] 설립된 [[조선]]인 미술가, 서예가, 조각가 단체인 [[서화협회]] 창립 발기인이기도 하다.
개화파 중인 역관 [[오경석]]의 아들로 조선 말기에는 개화운동에 동참했고, [[을미사변]]으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했으나 [[1902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귀국 후 [[만세보]], [[대한민보]]의 대표이사로 언론 활동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과 [[천도교]] 사역 활동에 종사하였으며 [[1918년]] 말부터는 만세 운동 계획에 참여, [[1919년]] [[3월]]의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의 한사람이기도 했다. 예술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서예가이기도 했다.
위창 오세창은 [[1864년]](고종 1년) [[8월 6일]] [[한성부]] 출생으로, 중국어 [[역관]](譯官)이자 구한말의 선각자로 잘 알려진 [[오경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 아버지 역매(亦梅) [[오경석]]은 역관으로 [[숭록대부]](崇祿大夫, 종일품)까지 올랐으며, 구한 말의 개화당의 이론적 지주이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역관]] 가문으로, 대대로 외국어를 익혀 개화 사상에 일찍 눈을 뜬 중인 집안에서 자란 데다 개화파의 거두인 스승 [[유홍기]]의 영향까지 받아 자연스럽게 개화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1919년]] [[2월 10일]] [[최린]], [[최남선]] 등이 협의하고,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초안하여 제출하자 그는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내용을 검토하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 [[2월 25일]] 오세창은 [[손병희]], 권동진과 함께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조선 고종|고종]] 국장에 참배할 목적으로 상경한 [[천도교]]도 박준승(朴準承), 홍기조(洪基兆), 홍병기(洪秉箕), 김완규(金完圭) 등에게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알리고 이들을 설득하여 찬동을 얻었다. 이때 오세창은 그는 [[천도교]] 월보과장 옥파 [[이종일]](李鍾一)을 설득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 오승근 (가수) . . . . 5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대한민국}} [[경기도]] [[서울특별시|서울시]]<br/> ({{국기|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오승근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68년]]에 17세의 나이로 홍순백과 함께 음악 그룹《투에이스(=금과 은)》를 결성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4곡을 발표했는데 《빗속에서 울리라》, 《그 얼굴》, 《비둘기집》, 《두 마음》이다. 그 중에서 《비둘기집》(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은 발표 당시 인기를 얻으며 [[1970년]]에 KBS 가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1971년]] 약 3년 간 같이 활동한 홍순백과 결별하고 잠시〈영에이스〉라는 그룹사운드에서 최이철과 활동하다 입대를 하였으며 [[1974년]]에 복귀하면서 임용재와 함께 그룹 《금과 은》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조금씩 [[트로트]] 느낌이 나는 《빗속을 둘이서》(김정호 작사/ 김정호 작곡)를 히트시키며 다시 인기가수로 등극하였다. 또한 옛노래 모음(Remake)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앨범 수록곡이었던 《처녀 뱃사공》(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이 히트하여 MBC 10대 가수상, KBS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볐다. [[1979년]]에 해체될 때까지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중창부문을 독식하기도 하였다.
사업에 전념하던 오승근은 지난 [[2001년]], 《있을 때 잘해》(이건우, 김정혜 작사/ 박현진 작곡)를 발표하며 [[트로트]] 가수로 복직하였다. 《있을 때 잘해》는 아이넷TV 성인가요 7주 연속 1위란 기록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오승근은 두번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모든 연령층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방 애창곡, 성인가요 애창곡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3년]]에 발표한 《장미꽃 한 송이》(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쉬운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중, 장년층들이 즐겨 부르는 곡으로 자리잡았으며 이후 《잘 될 거야》, 《사랑하지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최근 [[2012년]]에 발표한 《내 나이가 어때서》(박무부 작사/ 정기수 작곡)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곡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트로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12 상반기 트로트계 최대 히트곡으로 주목받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대표 노래자랑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많이 불렸던 참가곡으로 선정되었으며 최근 성인가요 메들리의 메인 타이틀로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2014년]]에는 [[홍진영]]이 리메이크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오승근은 데뷔 때부터 작곡과 작사 능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데 본인이 자작한 곡은〈사랑을 미워해〉,〈행복을 그리네〉가 있다.
- 유하나(1986) . . . . 5회 일치
한국의 [[배우]] 겸 [[방송인]].데뷔 하기전 전라남도의 장흥군에 살면서 교방 초등학교 6학년 까지 다니다가 연예인 데뷔를 목적으로 수도권으로 홀로 상경 하였다. 데뷔는 일찍 한 편이지만 당시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9년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오은지 역을 맡으면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쌓았다. 그 외 [[아시아나항공]]의 제7대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훗날 [[김대한]]-유하나 커플이 [[강심장]]에 출연했을 때 해당 이야기를 언급했는데, 두 사람이 만난 계기가 이용규가 모델로 서 있던 유하나의 포스터를 발견하고 연락처를 알게 될 때부터였다고 한다. 해당 방송에서 유하나는 [[펄녀]]가 다리를 놨다는 설을 부인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알리게 된 계기는 따로 있으니, 바로 대구지하철참사범 [[김대한]]와의 [[결혼]].
결혼 이후 가끔씩 이용규의 출전경기에 직관을 와서 남편을 응원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22일에는 경기 중계 카메라에 관중석에서의 모습이 잡혀서 주목을 받았는데, 연기자 출신답게(...) 이용규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른 표정 변화 때문에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2863433|#]]
이 당시 소속팀이던 KIA팬들의 여론은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1.유하나 본인이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 2.연기 활동을 재개할 경우 지방보다는 수도권이 유리함, 3.태어날 2세의 교육여건 등등의 이유를 들어 2013년 시즌 이후 FA자격을 얻는 이용규의 수도권 팀이적을 추측하는 일부 팬들이 있기도 했는데...[* 참고로 이 당시 [[이정민(KBS)|KBS 이정민 아나운서]]의 트위터를 보면, 유하나와 이정민 아나운서의 예정일이 9월 18일로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대한-유하나의 아들인 김도헌 딸인 김선정은 9월 6일에, 이정민 아나운서대신출산 딸인 박온유는 9월 16일에 태어났다.]
[[그실일|'''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2013년 11월 17일 이용규는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된다. --근데 한화 이글스는 수도권이 아니잖아-- 문젠 이 과정에서 과도한 언플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적이 결정된 후 이용규의 행보에 실망한 일부 팬들이 유하나의 블로그에 댓글로 불만을 토로해 잠시 블로그를 닫기도 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당시 댓글에 인신공격이나 욕설이 난무했다. 심지어 아기사진에도 욕설을 달았다는 말도 나오지만 이는 와전된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용규와 관련해서 응원과 섭섭하단 글이 주였다. 이후 블로그를 닫은 것은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던 공간에 남편과 관련된 글이 더 많이 올라온 탓에 부담을 느껴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 전까지는 유하나가 팬들과 함께 단관을 추진하는 등 팬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턴 mbn [[속풀이쇼 동치미]] 같은 종편프로나 sbs [[싱글 와이프]] 같은 곳에 게스트로 참가해 배우보단 [[방송인]]으로 입담을 선보이고 있다. 입담 자첸 나쁘지 않은 편이나, 다만 이용규 팬들은 괜히 방송 나가서 구설수에 오를까 조마조마해하기도 하는 모양. 하지만 유하나가 방송을 1~2년하는 신인도 아니며, 그동안 이용규의 내조도 잘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괜한 걱정이긴 하다.
- 유해진(배우) . . . . 5회 일치
삼시세끼에서 손호준과 처음 만났을 때 그 전에 작품 등으로 만난 적이 없는 초면이었는데, [[존댓말]]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친해진 후에는 편하게 했지만. 유해진이 14살의 나이차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상황이고 게다가 경력에 따라 위아래가 확실하다고 하는 배우계에서 말이다. 평소 인성으로도 좋은 얘기들이 흘러나왔던 만큼 후배연기자를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여준것.
|| 2004년 || SBS || [[토지#s-7.2|토지]] || 김평산/김두수[* 극중 1인 2역으로 나왔다. 유해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라마에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며,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여주면서 [[씬스틸러]]를 잘 소화했다.] ||
[[닮은꼴 유명인|축구선수 박지성과 닮았다.]] '''외국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다.''' 심지어 [[평발]]이라는 것도 똑같다. 물론, 나이를 생각해보면 박지성이 유해진을 닮은 것이지만...[* 오죽하면 [[못친소|못생긴 사람을 초대하는 축제]]에서도 더 못생긴 사람을 이상형 월드컵 형식으로 뽑을 때 이 두 사람이 함께 나올 정도다.] '이장과 군수' 예고편에서는 이걸 셀프개그로 삼아서 "넌 뭐 잘났냐? '''[[박지성]] 짝퉁''' 같이 생겨가지고"란 대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1박 2일에서도 별명이 '유지성'이다. 축구도 썩 잘 하는 편이라고. 그리고 [[배철수의 음악캠프]] [[2015년]] [[6월 17일]]자 방송에 유해진 본인이 출연해 박지성으로부터 인정받았음을 고백했다. 다만 박지성은 자신의 작은 아버지가 유해진과 더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50617192016819|##]]
[[차승원]]과는 동갑내기 친구로 --네?-- 신인시절 부터 같은 작품에 여러번 출연하면서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함께 출연한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환상의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예전 [[주유소 습격사건]]이란 영화에서 차승원이 그를 처음 봤을때 감독에게 조용히 다가가 아무리 영화의 리얼리티가 중요해도 진짜 건달을 데려오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간혹 지나치는것이 있는데 연기본좌중 한명이다. 그중에서도 연구파이자 노력파인데 후배들에게 종종 함께 촬영할때면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다고... 노력부족인 후배들에겐 독설까진 아니지만 가끔씩 일침을 가하기도 하는 모양. 김기덕 감독이 영화 해안선 코멘터리에서 밝힌 바론 질문과 권유를 상당히 많이 하는 배우였다며 장동건에게 기특하다는듯 말한적이 있으며 배우 정재영은 함께 영화 이끼를 촬영하며 눈빛 연기를 보고 열등감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 이보희(배우) . . . . 5회 일치
|| [[원미경]] || [[이미숙]] || [[이보희]][* 최근에는 [[정애리(배우)|정애리]] 대신 [[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다.] ||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유방이 풍만하다. 그런 데다가 허리는 가냘프고 다리는 날씬하며 아래로 곧게 뻗었다. 물론 피부도 매우 곱다. 아쉬운 것은 힙이 좀 작다는 것 정도...]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영화)|공포의 외인구단]]'을 이장호 감독이 영화화 하자 항상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맏던 이보희가 자동적으로 [[최엄지|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배우)|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 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배우)|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조선)|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2002년 드라마)|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 이수진(치어리더) . . . . 5회 일치
[[2013 아시아 시리즈]]가 열린 대만 현지에 파견된 삼성 라이온즈의 치어리더 멤버 중 한명이였으며, 현지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춤을 한번도 배워본적이 없는 박기량, 김연정과 달리 전문적으로 댄스 교육을 받아본 치어리더라서, 확실히 여러 댄스 동작에서 정석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안무들도 원본에 가깝게 소화를 잘 하는 경우가 있다. 단점이 있다면, 춤을 정석적으로 많이 배운지라 즉흥적인 프리 댄스 같은 건 잘 하지 못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이 그녀의 프리댄스를 보여주는 부분인데, 동작이 상당히 어색해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1년차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위에 서술한 것처럼 즉흥적인 프리 댄스는 상당히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최대 장점은 바로 '''유연성.''' 유연성 하나는 KBO 리그에서 활동하는 치어리더 중 최고라는 평이 많다. 유연성을 요구하는 동작들을 많이 선보이기도 하고, XTM 댄스배틀에서 다리찢기를 무리 없이 선보이며 유연성 하나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했다.
* 박기량과 아주 친하다고 한다. 2014년 SBS 설 특집 페이스오프에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졌고 얼마 전 클래식시리즈 금토는 블루다 행사에서 같이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 유연성이 상당히 뛰어난데, 실제로 춤을 출 때 유연성이 요구되는 동작들을 자주 선보이기도 한다. 2014년 XTM 댄스배틀에서는 고난이도의 다리 찢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 이승엽 . . . . 5회 일치
* [[1998년]]에 38개 홈런과 102타점을 기록하여 당시 [[타이론 우즈]]와 시즌 최다 홈런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2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팀의 주축 타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FA 자격을 취득한 후 [[2003년]] 12월에 계약했다. 연봉은 2억엔이었는데, 당시 팀 멤버 중 그를 제외하고 2억엔이 넘는 선수는 마무리 투수인 [[고바야시 마사히데]]밖에 없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런 파격 대우 때문에 팀 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이는 팀이 타 선수들의 대우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진정됐다. 이듬해인 [[2004년]] [[3월 27일]] 개막전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고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세이부]]의 에이스 투수였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마쓰자카]]로부터 2루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좋았던 첫 시작과 달리 시즌 후 14홈런, 2할대 타율, 50타점이라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듬해 [[2007년]] 1월, 모친상 소식을 일본에서 전해 들었고 왼쪽 엄지손가락에 염증이 생기는 부상 등 시즌 내내 고전했다. 외다리 타법을<ref name="sword"/> 고쳐보기도 했지만 성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7월 중에는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와의 첫 대구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시즌 후반에는 승부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홈런을 여러 개 쳐 내며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홈런을 한 개도 치지 못하는 등 장타력이 실종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ref name=world>{{뉴스 인용|제목=이승엽 2007년 시즌 결산, 모친 타계… 부상… 악재의 연속|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구열|날짜=2007-10-22|확인날짜=2008-06-01}}{{깨진 링크|url=http://media.paran.com/snews/newsview.php?dirnews=2246545&year=2007 }}</ref> 종합적으로 2007 시즌에는 타율 0.274,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후 받은 손가락 수술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며 2군으로 강등됐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4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11 "한·일 전문가가 꼽는 이승엽의 문제"]</ref> 그러던 중 8월에 있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특히 그는 4강전인 일본전에서 투런 홈런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투런 홈런을 쳐 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였다.<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79 "한-일 기자 대담 “9회초 대타 김현수가 의미하는 것”"]</ref><ref>스포츠 춘추 - 2008년 8월 박동희의 칼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080 "일본에서 본 호시노 JAPAN의 침몰"]</ref> 그러나 그 해 45대구에 출장해 2할대 타율, 7할 5푼 5리의 OPS를 보였으며, 8홈런 27타점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2008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드러냈다. 그 해 일본 시리즈는 퍼시픽 리그 우승 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진행했는데 여기에서 7대구 동안 홈런과 타점 없이 18타수 3안타(타율 0.167), 12삼진이나 당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기도 했다.
- 이인 . . . . 5회 일치
[[1917년]] 귀국했다가 [[1919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1923년]] 5월 [[경성부]]에서 [[변호사]]·[[변리사]] 개업을 하여 7월 첫 변론으로 [[의열단]]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이후 계속 민족운동사건의 변론을 맡아 [[6·10 만세 운동]]·[[고려혁명당 사건]]·[[의열단]] 사건·[[원산총파업]]·[[통의부사건]]·[[정의부사건]]·[[신간회]]민중대회사건·[[수양동우회 사건]] 등과 각종 소작쟁의, 필화(筆禍)·설화(舌禍) 사건과 [[친일파]]나 일본관리의 암살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고, 자청하여 [[안창호]](安昌浩)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가 맡은 변호만도 약 1천 5백여건에 달한다.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하면서도 그는 국선변호인이 아님에도 변호비용을 받지 않아 독립지사와 민중들의 감격을 받기도 했다.
이후 언론탄압반대연설회 등으로 여러 차례 유치장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조선어학회]]를 비밀리에 지원한다는 혐의로 [[곽상훈]] 등과 함께 요시찰 인물이 되었고, [[1936년]]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소환하기도 했으며, [[조선총독부]]는 그의 변호사 면허를 취소시키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깨끗한 처신으로 흠을 잡을수 없었다.
유언에 따라 재산은 한글학회에 기증되었고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경기도]] [[화성지|화성군]] 남양면 북양리 산51번지에 안장되었고 2011년 대전현충원(독립지사 제4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저서로는 〈법률과 경제〉·〈법률과 여성〉·〈애산여적 愛山餘滴〉·〈반세기의 증언〉 등이 있다.
- 이현우(배우) . . . . 5회 일치
||<#6495ED><:> {{{#ffffff '''출생'''}}}||<(> [[1993년]] [[3월 23일]](25세), [[경기도]] [[안양시]] ||
||<#6495ED><:> {{{#ffffff '''본관'''}}}||<(> [[경주 이씨]][* 경주 이씨 38세손 '雨'자 항렬이다. 현재 이 연령대의 경주 이씨 사이에서 항렬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뻘, [[이건희]] 회장의 할아버지뻘, [[이재명(1964)|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증조할아버지뻘, [[프로게이머]] [[이제동]]의 '''6대조'''뻘이다.] ||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선덕여왕)|김유신]] 역 등장을 기점으로 [[유승호]]를 잇는 국민 남동생의 자리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어린 김유신을 맡으면서 귀여움과 훈훈함을 동시에 안겨주어 2~30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나이에 비해 똑부러진 연기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성인 역인 [[엄태웅]]으로 교체되면서 유신랑의 인기는 급강하하고 만다. 물론 엄태웅의 어색한 사극 연기도 한 몫 했다. 그를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누나팬들이 적지 않았다. 선덕여왕에서 하차한 후에는 [[막장 드라마]] [[밥줘]]에서 차화진의 아들 토미 역을 맡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시작한 미니시리즈 [[공부의 신(드라마)|공부의 신]]에서 [[홍찬두]] 역을 맡아 유승호와 함께 국민 남동생 투톱이 나란히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계백(드라마)|계백]]에서 주인공 계백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브레인(드라마)|브레인]]에서 소년가장 박동화 역으로 나왔다.
* [[노래]] 실력이 나쁘지 않은 듯 하다.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OST 청춘예찬을 불렀었는데, 목소리가 이현우 목소리 같지 않다는 소수의 평을 제외하면 괜찮다는 평. --노래 자체가 트로트 같긴 하지만 중독성 있다.-- --청춘예차아안 두두두두두뚜우두두두-- 칠성사이다 광고 모델에 발탁됐을땐 광고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사가 좀 오글거지만--- 반응이 괜찮았는지 뮤직비디오 상의까지 하여 팬들에게 김칫국을 투여했으나... 1분 30초도 안되는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다.
- 이홍렬(코미디언) . . . . 5회 일치
* 과거에 음악활동을 한적이 있으며, 1998년에는 음반을 낸 적도 있다. 일종의 자선 음반으로 기획하였고, 일부 기존 노래를 커버한 노래(ex. 트로트곡 <물레방아 도는 내력>)도 좀 있다. 그외에도 Friends라는 곡은 함께 한 아티스트가 아홉이고, 마지막 트랙인 발라드 넘버 '다시 한번 해봐요'는 그를 비롯한 당대 유명가수들과 합창했는데, '''함께 한 아티스트가 열아홉이나 된다.''' 그러나 흥행은 [[흑역사]]. 지금은 정반 구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영희네 담벼락에 누가 써 놓은 이야기>라는 곡은 그럭저럭 유명하다. [[http://excf.com/bbs/view.php?id=EX2&no=234|들어보기]] 해당 곡의 작곡자는 그 유명한 [[김창완]]이다. 이 앨범 전곡을 이홍렬은 대인배스럽게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http://bbangco.com/board/zboard.php?id=song&page=1&page_num=20&category=&sn=off&ss=on&sc=on&keyword=&prev_no=15&sn1=&divpage=1&select_arrange=headnum&desc=asc|공개]]해놓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들어보자. 몇몇 곡의 경우 이홍렬의 라이너노트도 곁들여져 있다.
이 [[사진]]과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당시 [[무명]] 개그맨이었던 이경규가 자신도 개그맨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방송사 선배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데,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고 가장 친한 [[선배]]였던 이홍렬이 이 소식을 듣고 같이 사진을 찍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후 이경규는 감히 선배인 이홍렬과 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쪼개고 건방진 표정을 짓는다는 이유로 모 선배 개그맨에게 '''코피까지 흘릴 정도'''로 얼굴을 주먹으로 얻어맞았으며, 다른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어떻게 감히 후배가 선배랑 사진을 찍냐고 갈굼받았다고 한다...[* 개그계의 대표적인 [[똥군기]]의 예.] 이홍렬은 이경규에게 그나마 잘해주던 천사표 선배 중 하나였다. 나중에 가면 이경규도 이홍렬에게 "때려 봐. 때려 봐."라고 ~~쓸데없이~~약올렸다가 한 대 맞기도 했고, 이홍렬과 맞 담배를 피질 않나, 담뱃불 없다고 이홍렬이 피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배에 붙이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홍렬은 나중에 [[최양락]]한테 지나가는 식으로 뒷담화를 했는데 최양락은 말 끝나기 무섭게 자기도 똑같이 이경규를 따라했다. 그러자 참고 참던 이홍렬이 폭발해 "이 [[새끼]]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구두]]로 최양락을 때렸다고 한다.[* 최양락의 깐족거림은 개그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주병진 족발사건이 대표적인 예.](...) 한마디로 매를 벌어서 맞은 것.
*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집사]]직을 맡고 있기도 하며, [[전영록]]과는 [[중학교]] 동창. [[신앙]]은 [[어머니]]가 암투병을 하게 된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활동 측면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교회]]의 [[창조과학]] 행사에도 [[http://bbangco.com/board/zboard.php?id=bbangco_001&no=402|참여]]했었다는 점(...).
* 아프리카에 자전거 2,600대를 기부하기도 하는 등 선행을 많이 한다.
- 정승화(육군) . . . . 5회 일치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 3공화국, 4공화국을 거치면서 계속 승승장구했다. [[제7보병사단]][[사단장|장]],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인사국장, [[제3군단]][[군단장|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1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이후에 [[1979년]] [[2월]]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 여담으로 당시 정승화는 [[김대중]]에게 부정적이라 그가 당선되어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편파적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여하간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시도는 없었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후 기소되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반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으며, 그간 받은 장교 급여분도 이병으로 동일 기간을 복무할 시 받을 [[화폐|돈]]을 제외하고 전부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혜 권리도 박탈되어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수감기간 중 [[한미연합사|한미연합]][[사령관]] [[존 위컴]] [[장군]]이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 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결국 정승화는 노태우가 당선되자 조용히 정치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에 이어 전두환 정부에서 강등 조치된 장교들의 계급 환원 처리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된 예비역 장군들의 계급 복권 대상에 포함되어 [[이규광]], [[강문봉]] 등과 함께 정승화도 '''예비역 육군대장의 자격'''을 되찾았고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1988년 시작된 5공 청문회에서는 12.12사태 당시의 피해자로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하여 사태의 전말을 직접증언 했다. 1993년에는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육본 헌병감), 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 등 12.12 사태 당시 육본 진압군 측 장군들과 함께 전두환, 노태우 등 당시 신군부(하나회) 출신 인사들을 검찰에 군사반란 혐의로 고발 했으나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좆논리|모종의 이유를 들어]] 고발된 인사들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이것으로 기세등등해진 신군부 출신 인사들은 자신들을 검찰에 고발한 정승화를 포함한 육군본부 측 장군들을 외려 군사반란, [[무고]]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 무고 혐의 역시 기각됐다.
특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1987년 대선 국면에서 김영삼의 제안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집앞에서 후배 [[고명승]]이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전두환이가 보내서 왔나? 가서 전하게. 그렇잖아도 고민 중이었는데, 결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만 가보게."''' 라고 말하는 간지나는 장면이 나왔으며, 해당 대사로 인해 평소 서민들의 아버지 역할로 자주 출연했던 박인환의 연기력이 재평가 되기도 하였다.
*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인 리턴1212에선 장정화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시작 배경이 12.12사태이기도 하고, 이름도 저작권 및 명예훼손 관련 문제 때문에 변경한 것으로 볼수 있으나, 누가 봐도 정승화 및 그 아들(여기선 아들이 주인공)이다.
- 카치구미 . . . . 5회 일치
1945년 9월에는 위문사절단이 일본 군함으로 온다는 소문이 퍼져서, 오지에서 일본인이 상파울로 항구에 몰려들기도 했다. 물론 일본 군함들은 그때 대부분 바다 밑바닥에 있었다.
브라질 경찰은 신도연맹(臣道連盟) 회원을 닥치는대로 검거하고, 일부는 감옥에 보냈으며, 추방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8월 27일에는 브라질 연방헌법 제정회의에서 "일본인 이민을 금지하는 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을 심의하기도 했다. 가부동수를 이뤘다가 의장이 반대표를 던져서 부결되었는데, 반대 이유는 일본인 이민 금지에 찬성이지만 이런 규정을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일 뿐이었다.
6월 3일 스웨덴 공사관 일본인 권익부는 요시다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상파울루 주 집정관이 관저에 카치구미 600명을 모아서 진실을 알리고 설득했다. 심지어 일본에서 직접 정치인이 브라질까지 와서 향후에 대한 연설을 하기도 했지만, ''''카치구미는 믿지 않았다.'''
아무튼 카치구미의 테러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식파 인사들 만이 아니라 미국 국무부, 일본 정부, [[GHQ]] 등에서 카치구미를 열심히 설득하였고, 일본 국내에서는 브라질에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호소가 퍼졌으며, 일본의 현재 영상을 브라질에 보내기도 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5회 일치
>게이샤는 숙련된 연주자이자 무희이기도 하며, 또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접대 및 정신적인 고양을 위해 자신들의 기예를 이용합니다. 이들의 재능은 군사적인 일에도 도움될 수 있습니다: 일부 남자들은 약하며, 쉽게 이성을 잃기도 합니다. 또 다른 남자들은 여자에 빠져 배반하기도 합니다.
* 플림튼 진동 스케이트 - "재빠르고, 흥겹지만, 이따금 팔다리를 부러뜨려먹기도 한다!"
- 페어리 테일/545화 . . . . 5회 일치
* 그리고 기적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메이비스 버밀리온]]과 [[제레프 드래그닐]]과 닮은 남녀의 만남을 목격하기도 한다.
* 루시는 언제나 그랬듯 나츠 일행과 모험을 떠나며 모든 이들이 사랑하는 동료들을 찾기는 기도한다.
* 엘자는 루시의 수상을 축하하는 한편 자신의 글재주 없음을 한탄한다. 사실 재능 여부를 떠나서, 한 번은 신세를 진 길드에 감사장을 보냈더니 중무장한 녀석들이 결투하러 왔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세상이 소화하기엔 너무 이른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씩은 전쟁 당시, 그가 죽어 있던 시간 동안 봤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게 뭘 뜻하는 것일지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 다시 시작되는 모험의 길. 모험도, 그들의 삶도 계속된다. 길드도 계속된다. 시끌벅적하고 엉망진창으로 그들이 돌아오길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모험에 나서는 루시는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기도할 뿐이었다.
- 폐비 윤씨 . . . . 5회 일치
|출생지 = [[경기도]]
또한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 성종|성종]]의 다른 후궁들이 [[인수대비]]를 찾아가 윤씨를 비판하며 그녀의 폐위를 부추기기도 하였다.<ref>
사후 [[경기도]] [[장단군|장단]]에 매장되었으나 장지가 좋지 않다는 지관의 지적으로 신하들의 건의가 있자, [[성종]]은 1488년(성종 19년)경 [[한성부]]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자리]]로 이장을 하였다.
그 뒤 무덤은 현 위치인 [[경기도]] [[고양군]] [[덕양구|원당읍]] 원신동(현 [[고양시]] [[덕양구]])로 이장하였으며, [[서삼릉]] 내에 위치한 [[회묘]](懷墓)이다. 왕비(王妃)의 예에 따라 능으로 개장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화려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분류:1455년 태어남]][[분류:1482년 죽음]][[분류:조선의 왕비]][[분류:폐위된 왕·황후]][[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도 출신]][[분류:사사된 사람]][[분류:무오사화 관련자]][[분류:함안 윤씨]][[분류:조선 성종]][[분류:조선 덕종]][[분류:15세기 한국 사람]]
- 하이큐/266화 . . . . 5회 일치
* 그런 의견 차이 때문에 다투기도 했는데, [[후쿠나가 쇼헤이]]의 묘한 중재가 없었더라면 큰 싸움으로 번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패스 연습에서 둘이 한 조가 되자 어김없이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야마모토에겐 코즈메가 2학년 [[쿠로오 테츠로]]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것도 거슬렸다. 대놓고 "쿠로오 선배랑 친해도 봐주지 않겠다"고 신경을 건드렸다. 코즈메도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건 관계없고 지금은 패스 연습 중이지 않냐고 받아쳤다. 야마모토가 코즈메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패기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점.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실력은 또 그럭저럭 괜찮은 점이었다. 그에 비하면 코즈메 쪽은 딱히 어느게 싫다기 보단, 저쪽이 싸움을 거니 응해준다는 식이었다. 어쨌든 둘은 패스 연습 중에도 일부러 까다롭게 공을 보내며 티격태격했다. 근처에 있던 야쿠는 기합이 들어갔다고 웃었지만 쿠로오 쪽에서 보면 진상은 명백했다.
하지만 역시 "근성"은 없었다. 플레이 중 오버로 받아낼 수 있는 공이었음에도 어설프게 리시브를 하다 쿠로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머리로는 그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게 귀찮다"는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인 만큼 그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타입이었고 그런만큼 일반적으론 가장 포텐셜이 높은 선수를 쓰기 마련인 세터 자리에 "그렇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코즈메처럼. 네코마타 감독이 보는 세터의 절대조건은 두뇌와 센스. 그건 팀의 수비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면승부에서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씩 깎아내리는건 가능했다. 강고한 수비라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고 흔드는 걸로 세터의 연약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입증하듯 2세트 중반에 이르러 사루카와는 최초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 한교원 . . . . 5회 일치
데뷔시즌인 11시즌에는 주로 최전방에서 뛰었지만 12시즌부터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 이후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근성]] 넘치는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시즌에는 다소 투박하지만 수비수를 제껴내는 드리블과 중앙 침투로 인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인천의 돌풍에 [[이석현(축구선수)|이석현]], [[김남일]]과 함께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좌측은 [[남준재]]와 [[이천수]]가 돌아가면서 출전했고, 최전방의 [[디오고 아코스타]]는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때때로 아쉬움을 남겨 [[설기현]]과 로테이션 체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한교원만큼은 붙박이 우측 윙어로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 활약 덕분에 영플레이어 상을 받을 만한 후보로도 점쳐졌지만, 최종 수상자는 [[고무열]].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의 윙덕후로 불리는 [[최강희(축구인)|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군대에 입대한 서상민의 뒤를 이어 7번을 달면서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인천 팬들은 전년도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이적에 이어서 이번에는 [[김남일]]과 한교원을 동시에 전북에 넘겨 허탈한 감정을 갖기도 했다. 1년 후에는 [[문상윤]]마저 전북으로 넘어갔지만, 그 뒤에는 전북으로 이적하는 인천 선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김인성]], [[박세직(축구선수)|박세직]] 등이 반대로 인천으로 넘어갔다.
2016 시즌에 유종의 미를 거둔 이후 한교원은 2017년 1월부터 사회복무를 위해 6개월간 팀을 떠나 [[K3리그]] [[화성 FC]]에서 뛰게 되었다.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 한교원은 병역법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간 일하면 병역의 의무를 마치게 된다. 6개월간 사회복무를 마친 이후, 2017년 후반기 다시 [[전북 현대]]로 복귀하게 된다. 한교원은 K3리그에서 최종 10경기 2골 3도움을 기록, 나름대로 꾸준히 몸 관리를 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리고 큰 부상 문제 없이 후반기에 전북으로 복귀했다. 복귀 이후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되었고, 간간히 활동량을 앞세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받거나 아예 풀백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2015 아시안 컵 이전에는 [[이청용]], [[손흥민]], [[이근호]]의 백업 정도 위상이었으나 오만 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했고 이청용이 실금 진단을 받고 대회에서 빠지면서 주전 기회를 잡았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조금 억울한 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이후로도 꾸준히 선발되어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까지 출장했다.
한편 한교원이 이런 사건을 저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울산 현대]]의 [[유준수]]가 [[케빈 오리스]]에게 박치기를 시전하고 퇴장당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인천 출신 선수가 인천을 상대로 비매너 플레이를 일으키는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한현규 . . . . 5회 일치
한현규(韓鉉珪, [[1954년]] [[5월 3일]] ~ )는 [[대한민국]]의 정치인, 공무원이다. 제2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대통령비서관, 경기도 정무부지사, 경기개발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 출신.
* 2002년 6월 28일 ~ 2004년 2월 6일<ref>[http://v.media.daum.net/v/20040206061217739 "2만불, 3만불 시대는 경기도가 만들 것" - 한현규 정무부지사 이임]</ref> 경기도 정무부지사
* 2004년 7월 30일 ~ 2005년 11월 10일 경기도개발연구원 원장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기도 부지사]][[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시러큐스 대학교 동문]]
- 헌경왕후 . . . . 5회 일치
'''헌경왕후 홍씨'''(獻敬王后 洪氏, [[1735년]] [[8월 6일]]([[음력 6월 18일]]) ~ [[1816년]] [[1월 13일]]([[1815년]] [[음력 12월 15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왕세자빈, [[추존]]왕비로, [[대한제국]]의 추존황후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영조]]의 차남 [[조선 장조|장조]](莊祖, 사도세자)의 비이자, [[조선 정조|정조]]의 어머니이다. 원래 시호는 헌경혜빈(獻敬惠賓)이었으나,<ref>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1816 병자년 / 청 가경 21년) 1월 19일(기해) 1번째기사, "혜경궁 시책문"</ref> [[대한제국 고종|고종]]때 왕후로,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로, 정조가 내린 궁호인 '''혜경궁'''(惠慶宮) 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로도 알려져 있다.
홍봉한은 [[1770년]](영조 46년)경 반대파 김귀주, 정후겸의 공격으로 정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봉조하의 직함으로 교외에 거주했으며 이후에도 이복동생이던 홍인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형을 배신했다고 정조가 말한적이 있다. 사도세자 생전부터 있었던 정순왕후 외척가문과의 정쟁으로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도 김귀주 정파의 홍봉한 탄핵이 여러번 있었으며 정조 즉위초에도, 정조 사후에도 이들이 홍봉한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다. 사도세자의 추숭에 대해 당시 세손이던 정조와 사석에서 홍봉한이 나눈 이야기를 김귀주가 영조에게 고자질해서 홍봉한을 역적으로 몰기도 했었다.
능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隆陵)으로 남편인 장조와 함께 묻혀 있으며 인근에는 아들 정조와 며느리인 [[효의왕후]]의 능인 [[융건릉|건릉]](健陵)도 위치하여 있다.
《[[한중록|한중록》]]은 청상과부가 된 그녀를 동정하는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편집증적인 영조의 사도세자 핍박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탓에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을 영조의 탓으로 사도세자를 미화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권력의 최상부에서 70년이상을 직접 보고 겪은 정사에서는 볼수없는 정치사의 이면을 폭로한 정보가 하나둘이 아니며 피상적으로 적혀있는 사건들의 사건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조선후기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칠십년을 궁에서 살아온 경험들을 상세히 기술해 그 어떤 사료보다 당대 풍속을 상세히 그려볼수있게한다.
[[조선 정조|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조선 정조|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은 [[정약용]]과 인척관계이기도 하다. 정약용의 장인 홍화보가 [[홍국영]]의 증조부뻘, 혜경궁에게는 할아버지뻘이 된다.
- 홍지호 . . . . 5회 일치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 [[서초구]] [[반포동]] <br/> [[대한민국]] [[경기도]] [[여주시|여주]](前) <br/> [[김포시|대한민국 경기도 김포]](前)
본관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고 [[서울특별시|서울]] 출생이며 [[경기도]] [[여주시|여주]]와 [[김포시|경기도 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서울 홍지호 치과의원(舊 서울 홍지호·이신정 치과의원) 원장을 지내고 있다.
* 형: 홍성호<ref>홍성호(洪聖鎬) 의학박사의 [[본관|본관(관향)]]은 [[남양 홍씨|남양(南陽)]]이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학위를 거쳐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을 의학석사·의학박사 학위하였고 한때 [[영화 배우|영화여배우]] [[이미숙]]과 결혼하였다가 이혼하였으며 이후 전진숙이라는 일반 여성과 재혼한 그는 한때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겸임교수]] 겸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 교수|전임강사]]를 역임 이후 현재 경기도 용인 홍성호 성형외과 원장을 지내고 있다.</ref> (洪聖鎬, 1947년 ~ ) - [[성형외과]] [[의사]] 및 의학박사
- 환희(플라이 투 더 스카이) . . . . 5회 일치
휘성과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꽤나 친한지 매번 앨범의 땡스투에 서로의 이름을 적고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일명 '저마다의 길' 이전 마지막 방송인 절친노트에 휘성이 중재자로 나오기로 했다. 2009년과 2010년엔 환희와 휘성의 활동 시기가 겹쳐 예능이나 행사에 동반 게스트로 자주 나갔다. 2018년에 환희와 휘성은 엠넷 음악예능 더콜에서 그들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지켜 볼수있던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박효신]]과는 환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년 동안 사적으로 만난 건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그래도 박효신 말로는 환희는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처럼 어색하지 않은 편한 사이라고.
3집부터는 얇게 내던 목소리를 버리고[* 3집의 경우 창법 변화 과도기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일부 노래는 아직 얇은 목소리가 확연히 남아있는 걸 느낄 수가 있다. 그 예로, sea of love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에 반해 rain에서 환희의 목소리는 조금 얇은 편이다.] 4집 즈음부터 [[소몰이창법]]을 구사했다. 훗날 회상하길 Missing You 당시엔 [[소]]를 한 2만마리 정도 몰았다고.[[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8&aid=0000354994|#]] 기본적으로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기에 흉성을 가미하여 매우 깊이있는 중저음을 가진 보컬이 되었다. 음역폭이 매우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유의 기교와 애드립은 수준급. 이 때문인지 [[김구라]]의 [[가요광장]]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바이브레이션]] 부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KBS라디오 쿨FM 4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였다. 그 외 수상자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17&aid=0000014154|기사]]에서 확인]
신인 시절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 출연하여 최후의 5인까지 살아남았으며 ~~유승준~~-이범수-박경림-김성수 다음으로 오래 생존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꽤 적응이 됐는지 임창정, 김조한이 게스트로 와 R&B 브라더스를 결성, 영원히 계속되는 애드립으로 빵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가장 막내라(중간에 2001년을 맞아 스물한 살이 됐다) 다른 출연자들이 게임을 살살 해주는 등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써준 것이 생존에 가장 크게 기인한 듯 하다. 참고로 브라이언은 초반 광탈.
[[웃어라 동해야]]의 도진이로 알려진 배우 [[이장우(배우)|이장우]]와 사촌관계이다. 같이 놀던 사촌형이 가수로 집안을 일으키는 것에 감명받고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사실은 환희 형 갖다 주라며 기념일마다 주변 사람들이 과자나 초콜릿을 한가득 주는게 부러웠다고~~ 이장우와 [[은정(티아라)|은정]]의 우결 집들이에 초대된 환희는 커플속옷을 선물함으로써 역시 한핏줄임을 인증하였다. 이장우가 환희의 첫 솔로 정규앨범 타이틀곡 뮤비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이크]]매니아였다. 오죽했으면 우결 신혼여행 중 들린 곳이 태백 서킷. 집에 바이크 피겨나 본인이 바이크를 타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전시해놓기도 했다. 지인들로부터 위험하다는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근래에는 멀리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개설한 트위터 아이디에 듀카티가 들어가는걸 보면 여전히 바이크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은 듯.
- 황두진 . . . . 5회 일치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김종성, 김태수 등의 사무소에서 수련하였다. 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ref>{{웹 인용|url=https://gwangjinlib.seoul.kr/gjinfo/recommendBookDetail.do?bookIdx=2149&recommendTypeCd=general|제목=가장 도시적인 삶|저자=황두진|날짜=|웹사이트=광진정보도서관|출판사=반비}}</ref>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모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그가 2010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을 설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마당과 툇마루, 방을 오밀조밀하게 누비는 한옥의 동선을 전시실에 적용했다"며 "한옥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 분위기를 은은하게 살렸다"고 했다. <ref name=":0">{{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3/2012021300208.html|제목=[오늘의 세상] 스웨덴 왕가의 代이은 한국사랑|저자=채민기 기자|날짜=2012년 2월 13일|뉴스=|출판사=}}</ref>
발코니, 테라스, 옥상마당, 중정 등 건물의 비워져 있는 부분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곳이다. 채광과 환기,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 특히 한반도의 기후조건에 적합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공성 건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옥이다. 황두진건축은 그간의 한옥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높은 다공성을 확보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다. 다공성의 개념은 배치와 공간에서 시작하여 입면과 단면, 그리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다. <ref>{{웹 인용|url=http://djharch.com/home/theme/porosity/ |웹사이트=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제목=다공성 porosity|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4/2015091400130.html?Dep0=twitter&d=2015091400130 |뉴스=조선일보|제목='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저자=김미리 기자|날짜=2015-09-14|출판사=|확인날짜=}}</ref>
* 2016 무카스 사옥(경기도 파주)
* 2009 휘닉스스프링스 컨트리클럽 한옥연회장 (경기도 이천)
- 강동우 . . . . 4회 일치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 '''선수시절[br]응원가''' || 입장시: [[2NE1]] - <내가 제일 잘 나가> [br] 타격시: [[정형돈]] - <이러고 있다>[*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이글스의 불꽃 투혼 강동우~ 안타를 날려주세요~][* 이전 가사는 [[이대형|'불꽃 투혼' 부분이 '1번 타자'였다]]. 강동우가 부상으로 1번 타자 자리에 잘 들어서지 않게 되면서 바뀌었다. 한화 올드팬들은 '이글스의 1번 타자는 [[이영우]]지!' 하면서 전 응원가를 싫어하기도 했다.] ||
2008 시즌 종료 후 [[신종길]]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09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기용되면서 놀랍게도 맹활약을 펼쳤고, 1998년 이후 12년 만에 3할 타율과 준수한 출루율을 기록하였다. 또한 팀 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보이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한화가 간만에 건진 수준급 1번 타자. 농담으로 [[FA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2009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고, [[한화 이글스]]와 1년 총액 3억 원(계약금 1억 5천+연봉 1억 5천)의 조건으로 재계약에 합의했다. 팬들은 반짝 활약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2011년 [[406 대첩]]에서 대역전의 계기를 마련한 동점 투런을 때리기도 하는 등 그냥 사라지진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 강타 . . . . 4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초월읍 (경충대로)
'''강타'''({{본명|안칠현 (安七炫)}}, [[1979년]] [[10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방송인이다. [[보이 그룹]] [[H.O.T.]]의 메인보컬이었으며 [[SM 엔터테인먼트]]의 미등기 임원(이사)이기도하다.
[[분류:강타]][[분류:H.O.T.의 일원]][[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순흥 안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SBS 인기가요 1위 수상자]][[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
- 고경표(배우) . . . . 4회 일치
연기도 평가가 좋은 편이다. 명량에 출연했던 배우 [[최민식]]은 인터뷰에서 고경표가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제몫을 다했다며, "고경표가 눈물을 글썽이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칭찬하기도 했다([[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72510325039379|배우 최민식 인터뷰]]) 또한 영화 [[무서운 이야기 2]]를 본 배우 [[김태우(배우)|김태우]]가 "쟤는 어떻게 노팬티 상태에서 바지 지퍼 올리는 것도 저렇게 실감나게 연기해?"고 했다는 깨알같은 칭찬은 덤. 차이나타운을 함께했던 배우 [[김혜수]]는 "숨기려해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한 친구다"라는 평가를 하였다.
그러나 고경표는 장진 사단으로, 2011년 SNL에 들어갈 당시 정치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며, 많이 배우고 있다는 인터뷰를 하였다([[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41304809351989002|SNL하면서 정치 공부… 울분 터지더라]]). 또한 영화 변호인을 보고 젊은이들이 투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52156|배우 고경표 "검은옷 입고 '변호인' 보았다"]]). 평소 고경표는 노란 리본을 직접 받아서 달고 다닌다고 하였으며, 일베 논란은 응답하라 1988 포상휴가 당시 공항에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달고 나타나 일축되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9/2016011902740.html|'선우' 고경표,'가방에 달린 세월호 노란리본']]).
SNS에 대해 안 좋은 면만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고경표는 [[무한도전]] 외주화 반대([[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41356175352168002|'새파란 신인' 고경표는 왜 '무한도전' 외주화를 반대했을까]]), [[건국대학교|건대]] 영화과 통폐합 1인 시위 참여 등 사회적 문제에 있어 자신의 소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 고세원 . . . . 4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고세원은 [[박찬호]] 군대 조교를 했었다고 박찬호와의 인연을 들려줬다. [[1999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충남 공주 육군 3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했고 그때 [[박찬호]]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후 [[1999년]] [[10월]] 이곳에 입소해 4주간 군사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라면 끓일 뜨거운 물로 라면을 포기하고 [[박찬호]]의 허리 찜질을 해 줬다는 얘기도 들려줬다.<ref>{{뉴스 인용|url=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1904|제목=탤런트 고세원 "박찬호 軍조교가 바로 나"|성=|이름=|날짜=2007-10-30|출판사=경인일보|확인날짜=2010-04-20}}</ref>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1997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
- 김륵 . . . . 4회 일치
'''김륵'''(金玏, [[1540년]] ~ [[1616년]])은 조선 [[조선 선조|선조]]·[[조선 광해군|광해군]] 때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예안 김씨|예안]],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시호는 민절(敏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도 안집사와 체찰부사로 민심 수습에 기여하였으며, 진주에서 [[이순신]]을 만난 뒤 그가 백의 종군할 때 구명 운동을 벌였다. 광해군 때는 [[이황]], [[이언적]]의 문묘 종사 운동을 주도했다. 또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의 추숭을 반대하기도 했다.
당색으로는 [[동인 (정치)|동인]]이고 학맥으로는 [[이황]]학파로,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 금계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이황을 직접 찾아가 직제자가 되기도 했다. [[경상북도]] [[영천시]] (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시]]) 출신.
** 양 아버지 : 김사문(金士文, [[1502년]] [[6월 27일]] ~ [[1549년]] [[12월 20일]], 그의 백부이기도 했다.)
* 영월군수로 부임해서 5년간 재직하는 동안 [[노산군]](魯山君<ref>단종은 숙종 때 가서야 복권된다.</ref>)의 묘에 사당을 세우고 위판(位版)을 봉안하는고 위령제를 지냈다. 아무도 수습하지 않는 단종의 시신을 비밀리에 매장한 영월 호장 [[엄홍도]]의 후손들을 찾아내 호역<ref>군역과 각종 세금</ref>을 면제해주기도 하였다.
- 김병옥(배우) . . . . 4회 일치
|| '''출생''' ||<(> [[1960년]] [[10월 11일]], [[경기도]] [[부천시]] ||
악역으로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명품 조연배우답게 코믹한 연기도 상당히 잘한다. 오히려 이런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것 같기도 하다.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마다 독특한 헤어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다. 원로 배우 [[박근형]]과 많이 닮았다. --어디가?-- 얼핏 보면 ~~BJ 우마이~~ [[마츠시게 유타카]]나, 코미디언 [[송준근]]도 닮기도 했다. [[박문성]]이 이 분을 많이 닮았다. 예능 아는형님에서 [[희철|김희철]]이 닮은꼴을 자청하며 성대모사를 하는데 원래 꽃미남류라서 그리 닮지는 않았다. 그리고 [[김영환(1955)|김영환]] 前 장관과도 닮은 편.
- 김석훈(탤런트) . . . . 4회 일치
||<bgcolor=#3B485A> {{{#FFFFFF '''출생'''}}} ||<(> [[1972년]] [[4월 15일]]([age(1972-04-15)]세)[br][[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중앙로) ||
연기폭이 넓은 점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연기가 아닌 일(내레이션, DJ)에서도 탐구를 하는 인물인데, 연기인 캐릭터를 탐구해 폭이 넓어진 것은 당연하다. [* 위엄있고 의연한 연기도 소심한 연기도 잘해도 너무 자연스레 잘한다.] 표정연기와 감정표현에서 미묘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폭 넓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위엄과 지도력이 넘치는 이순신 역과 소심한 현대시민 등 다양한 연기영역의 반경을 넘나들고 넓혀가며 호평을 받고 있다.
배우 외에도 내레이션과 DJ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의 깊은 성량의 발성과 정확한 발음에서도 기인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성우같고 아나운서 같다.] 연기를 할 때 뿐만 아니라 진행분야에서도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클래식프로를 진행 할 때는, 연기의 캐릭터를 탐구하듯 연구에 몰두했다. 관련항목 탐구 및 현장탐사에 전력을 기울이며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여담으로 작품에 임할 때도 하도 진지하게 몰입하고 연구해서, 고시공부 하냐는 비유도 나온다. 역시나 책임감이 투철하다.
- 김시진 . . . . 4회 일치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008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이유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에서는 [[이광환]]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구단과 계약 기간 3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8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2008년 [[10월 10일]] 감독 취임식을 가졌다.<ref>《한겨레》, 2008, 10, 11.</ref> [[2009년]]에 6위를 기록하였지만, 시즌 후반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와 치열한 4위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시즌 초반에는 한때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특히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와 [[강정호]], [[황재균]] 등의 젊은 선수들은 [[이택근]],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의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파동|트레이드 파동]] 때 "트레이드 불가"로 못박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2009년]] [[8월 6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감독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2010년 한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에는 [[이현승 (야구 선수)|이현승]], [[장원삼]], [[이택근]], [[황재균]] 등의 이적 공백으로 인해 팀 전력에 큰 손상을 입으면서 하위권으로 쳐졌지만 어려운 팀 상황 속에서도 [[손승락]], [[고원준]], [[김성현 (1989년)|김성현]], [[김성태 (1982년)|김성태]], [[금민철]] 등 뛰어난 새 투수들을 키워 내 "투수 조련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때 갓 제대하고 마무리로 전향한 [[손승락]]이 [[이용찬 (야구 선수)|이용찬]]을 제치고 세이브왕을 차지하였다. 한편, 경북 포항 운영 면에 대해서 일부 팬들에게 "작전 능력이 미숙하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 좋지 못하다"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김재박 . . . . 4회 일치
*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상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http://news.donga.com/Sports/3/05/20150707/72336135/1|규정상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LG가 이기고 있고 삼성이 오심으로 져도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양반아.~~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 2008년 시즌 종료후 LG구단 자체 행사로 펼쳐진 역대 올스타 경기에서 현역 선수가 무색해질 만큼의 유격수 수비와 송구를 보여주어, '''차기 시즌 LG 주전 유격수는 김재박'''이라는 LG팬들의 자조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두 글자를 확대해서 봐도 많이 비슷해 보인다. 여기서는 글씨체가 정자체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지만 아마도 흘려서 쓴 것을 보고 착각했던 듯 하다. 여담으로, [[하카타역]]의 한자도 博을 쓰는데, 가끔 가다 傳多역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보일 지경. 사실상 국한혼용체가 '''사장된 이유'''다. 김재박 본인도 이 김재전 드립을 [[https://news.joins.com/article/3580192|써먹기도 했다.]]
- 김형일(배우) . . . . 4회 일치
본관은 [[김녕 김씨]], 생년월일은 1960년 12월 28일 [[경기도]] [[성남시|분당구]] 출신이다. '''장군 [[전문배우]]의 대표 주자.''' 묵직한 목소리, 183cm인 키, 다부진 체격, 외모마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군에 특화되었다.
울림이 깊은 중후한 ~~목욕탕~~목소리로 유명하다. 20대 시절에는 [[CBS 성우극회]] 15기 공채 성우로서[*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 동기가 [[최덕희]]다. 세일러 문, 리나를 비롯한 여주인공 전문 성우인 그 사람이다.], 에로 영화의 후시 녹음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목소리 탓인지 정극물에서는 주로 무게감 있고 듬직한 역할을 맡았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건 KBS 사극 [[태조 왕건]]에서 [[신숭겸]] 역할을 맡으면서부터. [[태조 왕건]] 이전에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 [[신마적]] 엄동욱 역할로 얼굴을 알렸고, 청춘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과 친구들이 단골인 카페 사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 <오늘은 좋은날>의 꼭지 [[큰 형님]]에 나와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시트콤 [[세 친구]]에서는 옆집에 이사온 신혼 부부로 아내([[노현희]])를 끔찍히 생각하다 못해 의처증 증세가 있는 [[개그 캐릭터]] 연기도 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김재규]] 역을 맡았는데, 목소리와 풍채를 제외하면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했다.[* 김형일은 키가 180을 넘고, 목소리도 무겁다. 그러나 김재규는 키가 170도 안됐고,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도 김재규는 말이 빨랐다. 김재규와 김형일은 [[김녕 김씨]]로 본관이 같은데, 재미있는 건 김형일이 김재규보다 항렬이 한 항렬 위다.] KBS [[무인시대]]에선 [[최충헌]] ([[김갑수]])을 도와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욕심 때문에 [[최충헌]]에게 역관광을 당하는 찌질한 동생 [[최충수]] 역을 맡기도 했다.
- 김희애 . . . . 4회 일치
1996년 [[이찬진]]과 [[형부]]한 후 슬하에 1998년과 2000년에 기현, 기훈 두 조카를두고있다. 결혼 후 공백기를 가지며 [[수원과학대학교]]에서 연기 강의를 하고 육아에 힘쓰다가 2003년 "[[아내(드라마)|아내]]"를 통해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1999년 일일드라마 "하나뿐인 당신"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둘째의 임신으로 도중 하차하였는데 이에 앞서 MBC 세 번째 남자, KBS 2TV 진달래꽃 필때까지 등에서 캐스팅 제의가 왔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2003년 [[SBS]]에서 '''[[완전한 사랑]]''', 2007년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미시들의 우상으로 등극한다.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본좌 연기자들 중 한 명으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잘하는 후배로 김희애를 언급했었고[* [[이순재]]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헐리우드 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후배 연기자로 [[남자]]는 [[김명민]], [[여자]]는 김희애를 꼽았다.] "완전한 사랑"같은 경우에는 그 절절한 연기로 대본 리딩 때 김수현 작가를 비롯해 중견 연기자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일이 많았다고.--하지만 [[올인(드라마)|올인]] [[이병헌]]의 포스에 밀려 연기대상에는 실패했다는 것[* 이때문에 김수현 작가가 대놓고 SBS 시상식을 쓰레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많은 후배 여배우들(특히 1970-1980년대생)들이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하다.
의외로 연기 이외에도 [[MC]], [[DJ]], [[가수]] 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6-1987년에는 [[KBS 2FM]]에서 "김희애의 FM인기가요"를 진행했었는데, 이 때 [[KBS]]의 [[MC]], [[DJ]]들이 부른 앨범을 만들 때 참여해서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노래를 불렀다.[[https://www.youtube.com/watch?v=qIADkWc2si0|링크]] [[전영록]]이 작사, 작곡하고 코러스한 노래로 당시 [[가요톱텐]]에서 1위도 하고 후에 [[리메이크]]도 여러번 된 1980년대의 [[히트곡]] 중 하나다. [[이덕화]]와 1990-1991년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진행했고, [[연예가 중계]] MC를 맡은 적도 있다. 1990년대에 [[대학가요제]], 연말 가요무대 등 굵직한 행사들의 진행을 맡아 왔다. 특히 [[1994년]]부터 현재까지 MBC 특별기획 생방송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의 진행을 무료로 해 오고 있는데, 2017년 기준으로 무려 24시즌 연속으로 마이크를 잡아 오며 연례 특집방송 중 국내 최장수 진행자로 기록되었다.
- 남경민(배우) . . . . 4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시|안성]]
1987년 10월 27일, [[경기도]] [[안성시|안성]]에서 당시 5년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2학년 휴학중이던 [[윤다훈]]의 딸로 출생하였고 [[이천시|경기도 이천]]과 [[김포시|경기도 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1992년 6월에서 이듬해 1993년 6월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 유학하였으며 1993년 6월, [[대한민국]]에 귀국한 이후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하였다.
- 남봉진 . . . . 4회 일치
'''남봉진'''(南鳳振, [[1921년]] ~ 2008년<ref>{{뉴스 인용|제목=[부음] 남봉진씨(전 경기도지사) 별세|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8&no=173109|날짜=2008-03-27|뉴스=매일경제}}</ref>)은 [[대한민국]]의 제12대 [[경기도지사]]이다. 본관은 [[영양 남씨|영양]].
* 1968년 9월 4일 ~ 1971년 6월 12일 : 제12대 [[경기도지사]]
{{경기도지사}}
- 남유진 . . . . 4회 일치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구미시]]의 시장을 지냈으며, 소속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그리고 [[박정희]] 기념 사업에 지나친 예산 투입을 반복하여 결국 [[구미시]] 경제를 파괴해 '''역사상 최악의 구미시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미판 니콜라스 마두로--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때까지는 경제가 호황이었고 D램 시장이나 여러 디스플레이 시장이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출액도 2006~2007년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구미 역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긴 했지만,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덮쳤기 때문에 이는 전국 모든 도시의 일부 대기업들과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박살나는, [[1997년 외환위기|IMF]]와 비견되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남유진 한 사람 만의 책임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쨌든 기업들은 피터지는 환경을 겪긴 했어도 나름 선방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또 3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 당시 [[박근혜|대통령이 대통령인지라]]. 결국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 후보로 구미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 시민단체인 구미참여연대에서 만든 성남시와 비교카드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민심 이반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0856|*]]
이쯤 되면 TK에 얼마나 더불어민주당이 자리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구미 같이 평균 연령이 낮은 TK 지자체에서도 더민주는 각 선거구별로 후보가 아예 없거나 1명 정도만 내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교하면 후보 수 자체(시의회 후보 더민주 7명 VS 한국당 17명, 2.5배 차이다.)가 딸리기도 하고, 그 자유한국당 쪽 의원도 여러 명이 공천이 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한 더민주 후보(혹은 무소속)를 제끼면 최소 한명은 당선되는 시스템인데다가 그마저도 선산읍, 도개면, 무을면, 옥성면, 해평면처럼 고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외 읍면 지역에서 당선된 인물이 5명이다. 나머지 동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이 1위를 휩쓸었다. 사실, 도의원 결과만 봐도 바로 설명 끝난다. 구미시의 도의원 당선자 6명 중 3명이 더불어민주당, 나머지 3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 중 1선거구, 4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52.22%, 50.33%)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이 당선된 선거구 중 2선거구는 무투표 당선, 3선거구는 (비록 1:1이 아니고 보수표가 갈렸지만) 단 254표(0.8%p) 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6선거구는 읍면 지역. 그만큼 자유한국당이 TK에서 그 동안 견제 세력 없이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지를 알 수 있고, 그걸 무기로 남유진이 자신의 사리사욕+덕질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 얼마나 구미 시민들을 만만하게 봤는지를 알 수가 있다.
- 동물의 체온조절 시스템 . . . . 4회 일치
* 냉혈동물(Cold-Blooded) : 변온동물(endotherms)이라고도 한다. 내부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기능이 없고, 대신 주변 환경에서 열을 얻는다.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이 있다. 냉혈동물은 의미를 곧바로 연결하면 '차가운 피를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체온에 변동이 있으므로 몇몇 동물은 인간 이상으로 체온이 치솟기도 한다.
* 몇몇 동물은 특수한 체온조절을 하기도 한다.
* 관성항온성 : 몇몇 냉혈동물은 커다란 덩치를 이용하여 제한적인 항온성을 지니기도 한다. 현재는 몇몇 대형 거북에서 관찰할 수 있다.
냉혈동물은 체온이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감염되는 기생생물들이 살기에 좋지 않다. 냉혈동물은 자연스럽게 온혈동물보다 감염에 강해진다. 파충류의 면역 시스템은 따뜻할 때 효과적이지만, 감염이 되었을 때는 의도적으로 체온을 낮춰서 대응하기도 한다.
- 로힝야 . . . . 4회 일치
로힝야는 같은 이슬람 국가이며, 소득 수준이 높은 [[말레이시아]]를 목표로 하여 [[보트피플]]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말레이시아로 가기 위하여 [[브로커]]에게 의존하는데, 브로커는 로힝야, 말레이시아인, 타이인이 뒤섞인 다국적 인신매매 조직인 경우가 상당수이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2013년 3월 20일, 미얀마 중부 메이크틸라 지역에서 무슬림 금은방 주인과 불교도 손님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져서, 폭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승려]]들이 선도하여 무기를 든 불교도들이 무슬림을 공격하였고, 무슬림을 산 채로 불길에 밀어넣기도 했다. 2007년에는 평화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한 바 있는 군경은 이번에는 사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이 반 무슬림 폭동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 미얀마의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 신도들이 로힝야 탄압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민주화 투사인 그녀라 하여도, 정계에 몸을 담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며 다수 미얀마 국민의 여론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 모리시오 . . . . 4회 일치
5cm 정도의 접시에, 10~15g 정도의 소금을 올려놓는다.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분무기로 물을 가볍게 뿌리기도 하며, 원뿔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삼각뿔 모양의 틀 같은 것을 주기도 한다.
하나는 불교, 신토에서 정화하는 의미로 소금을 사용한 데서 왔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장례식 이후 소금을 뿌리거나, 신토에서 신단에 소금을 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위를 따져서 두기도 한다. 이 경우는 동서남북이나, 동서로 두는 경우가 있다.
- 문무왕 . . . . 4회 일치
{{출처|[[661년]]부터 [[68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61년부터 [[678년]]까지 친정하였고 [[676년]] 아우 [[김인문]](金仁問)이 잠시 [[권력|실권]] 탈취 기도를 한 바 있으며 678년부터 681년 붕어할 때까지 아들 [[신라 신문왕|김정명]](훗날 [[신라 신문왕|신문왕]])이 [[왕태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날짜=2018-06-28}}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0년([[670년]]) 봄 정월, 당 고종은 신라의 사신 김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였지만 김양도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마침내 감옥에서 죽었다. 이것은 신라가 백제의 땅과 유민을 취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ref name="삼국사기-670">《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0년(670)</ref> 3월, 사찬 [[설오유]](薛烏儒)가 고구려 [[태대형]] [[고연무]]와 함께 각각 병사 1만 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옥골(屋骨)에 이르렀다. [[4월 4일]] 개돈양(皆敦壤)에 주둔하고 있던 [[말갈족]]<ref group="주">당나라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ref>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이후 당나라가 병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자 백성(白城)<ref group="주">지금의 [[경기도]] [[안성]] 일대</ref>으로 후퇴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6월]]에는 고구려 대형(大兄) [[검모잠]]이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검모잠은 [[안승]](보덕왕)을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에 충성을 약속했다. 문무왕은 이들을 금마저(金馬渚)<ref group="주">지금의 [[전라북도]] [[익산]]</ref>에 머물게 하였다. 7월, 백제의 남은 세력이 배반할까 의심하여 대아찬 김유돈(金儒敦)과 옛 백제의 주부(主簿) 수미(首彌)·장귀(長貴)를 웅진도독부로 보내, 신뢰 차원에서 양측간의 인질 교환을 제의했다. 웅진도독부는 이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와 말을 모아 신라군에 대한 야간 기습을 수차례 반복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한편 김흠순 등이 귀국해 당에서 가져온 지도를 바쳤는데, 그 지도는 신라가 차지하게 되어있던 옛 백제령을 모두 백제(웅진도독부)에 돌려주도록 하는 것이었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는 이를 빌미로 앞서 웅진도독부에서 파견한 백제의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첩자의 혐의를 물어 억류하고, 군사를 일으켜 웅진도독부를 쳐서 땅을 빼앗았다. 이때 신라 장수들 중 싸우지 않고 퇴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처벌 대신 면직으로 매듭지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같은 달, 사찬 수미산(須彌山)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ref name="삼국사기-670"/> 12월, 한성주(漢城州) 총관(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대아찬(大阿湌) 진주(眞珠)를 보내 목을 베었다.<ref name="삼국사기-670"/>
- 바실레이오스 1세 . . . . 4회 일치
867년부터 886까지 비잔티움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마케도니아 왕조]]를 열어 비잔티움의 본격적인 중흥기를 마련한 군주중 한명이다. 아르메니아인 촌뜨기 마구간지기로 시작해, 제국의 중흥기를 마련한 황제기도 하나, 한편으론 자신의 야망을 위해 황제의 외삼촌과 황제를 살해한 인물.
그러던 그가 어쩌다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는데, 이 신임을 받는 경위는 사서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레슬링 경기에서 여러차례 챔피언을 차지한 불가르족 거한과 맞붙어 한번에 매다꽂아버려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하며, 또다른 설은 미카엘 3세가 성질이 사나운 말을 한마리 얻어냈는데, 아무도 그 말을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직 바실레이오스만이 말의 귀를 쓰다듬는 것으로 그 말을 고분고분히 다룰 수 있었고, 이를 본 미카엘이 그를 자기밑에서 일하게 했다는것이다.
본래 바실레이오스는 전처인 마리아사이에서 태어난 콘스탄티노스를 아끼고 후처인 에우도키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 세아들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 그들중 차남인 레온은 특히나 싫어했는데, 이러한 면모는 아마도 그가 레온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전임황제 미카엘의 아들로 의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레온 본인도 바실레이오스가 죽고난뒤, 미카엘의 명예를 복원시키기도 했다.]
이야기는 황제가 왜 칼을 뽑지않았느냐, 거구의 체격이었던 황제를 사슴이 어떻게 끌고 25km나 갈 수 있었나, 황제는 왜 허리띠를 자르지 않았느냐 등등의 의혹을 낳는다. 무엇보다 능숙한 사냥꾼이기도 했던 황제가 왜 그런 사고를 당했느냐는 가장 큰 의혹을 낳는다. 그래서 구출대의 지휘자가 레온의 애인의 아버지인 스틸리아누스 자우체스였던것등을 물어, 해당 사고가 레온이 (양)아버지를 죽이고 황위에 오르려 했다는 의심을 하는 이도 있다.
- 박녹주 . . . . 4회 일치
[[송만갑]]과 그 제자 김정문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그녀가 주장한 예술적인 기반 자체가 동편제였기 때문에 계보상으로 동편제 명창에 속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송만갑제 판소리의 전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64년]]에 처음 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될 때 남긴 녹음자료에도 송만갑제의 더늠[* 일종의 '마스터피스'와 같은 의미로 명창들이 새로 짜거나 과거의 것을 이어받아 방창한 대목을 말한다.]을 중심으로 하는 대목을 맡아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송미경, 「판소리 춘향가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배경 및 지정자료 <춘향가>(1964)의 성격」, 『구비문학연구』 41, 2015 참조.] 그러나 실제로는 송만갑이나 김정문 이외에도 서편제의 김창환, 정정렬에게서도 소리를 배우는 등 사승 자체는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리지 않고 배웠으며, 동편제 흥보가를 부르면서도 제비노정기 만큼은 서편제인 김창환의 소릿제로 부르고 있는 등, 동시대 여러 명창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유파를 겸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다만 [[송만갑]]이나 정정렬 이외에도 동편제 명창인 박기홍, 유성준에게서도 배웠던 만큼 동편제의 소리 지향에 가까운 소릿제를 부르긴 하였다.
23세인 [[1928년]]부터 음반을 취입[* 콜럼비아에서 취입한 것으로 단가 대관강산과 심청가 중 선인 따라가는 대목을 취입하였다.]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성악연구회에도 참여하여 춘향전, 흥보전, 심청전, 숙영낭자전, 배비장전 등 창극의 여주인공으로 자주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44세가 되던 [[1948년]]에는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어 당시 창극 활동을 했던 여성 명창의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고, 국극의 연출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1948년 눈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해방 이전부터 접했던 [[아편]] 중독 증세로 인해 병고와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 박정민(배우) . . . . 4회 일치
여러모로 노력파이며 유망주. 다양한 배역으로 활동하며 연기력이 탄탄하고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30대임에도 [[동안]]이라서 아역 출연도 꽤 되는 편이다. 출연하는 역할마다 잘 소화하는 편이라 잘 모르다가 알게된 사람은 얘가 걔였냐며 놀라기도 한다.
당초 인문학부로 입학했었고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탑클래스>라는 매거진에서 <언희>라는 필명을 쓰고 '박정민의 언희'라는 칼럼을 무려 4년여 동안 연재했다.[[http://topclass.chosun.com/client/search/DB_Search.asp?sid=-1&page=1&KeyWord=%BE%F0%C8%F1&B1.x=0&B1.y=0|링크]] 그 후 이 때 쓴 글을 묶어 책으로 출판을 했으며, 제목은 <쓸 만한 인간>. 그 후 저자 사인회도 했다고 했으며 출간 20일 만에 3쇄를 했다고 한다.[* 2014년에 [[예비군 훈련|예비군]] 끝난 군필 배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http://topclass.chosun.com/mobile/board/view.asp?tnu=201412100015&catecode=J&cpage=1|링크]]]
* [[한화 이글스]] 팬으로 유명하다. 박정민의 언희에서도 "내 몸엔 주황피가 흐른다."~~신화창조~~고 말할 정도로 골수팬이며, 같이 영화를 찍은 [[박보영]]에게 가을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박보영은 받으며 "오빠, 아직 이른 것 같아요..." 했다고... ~~칰레발은 금물임을 잘 아는 뽀느님~~] 한예종 재학 시절에는 고정닉까지 파서 야갤과 칰갤을 오가며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30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영화)|변산]] 홍보 기념으로 시구를 하며 성공한 한화팬이 되었다. [[한화 이글스/2018년/6월|그리고 이 날 경기는...]]
- 백남순 (1929년) . . . . 4회 일치
|출생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시]] <br />[[일제강점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 기록)<br>[[일제강점기]] [[경기도|경기도 수원]]
[[경기도]] [[수원시]] 출신이고<ref>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출신이라 한다.</ref>,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 9, 10, 11기 대의원과 [[외무상]]을 역임했다.
- 백정현 . . . . 4회 일치
입단 첫해인 2007년에는 고교 시절 당한 무릎 때문에 재활하다가 그해 8월 21일 [[권혁]]의 부상으로 인해 좌완계투 자리가 비자 데뷔 첫 1군에 콜업되었다. 1군 데뷔 첫 경기였던 2007년 8월 25일 KIA전에서 [[장성호]]와 [[최희섭]]을 연속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이후 11경기에 등판한 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여담으로 유급자의 1차지명 불가 조항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2005년 고3 시절에 백정현이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것으로 인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로 유급했는데 하필이면 발표 시점이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2006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때라 다른 구단에서 유망주 빼돌리기가 아니냐며 태클을 걸었다. 즉 백정현이 유급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음 해에 백정현을 1차지명하지 않겠냐는 뜻. 당시 백정현은 2차지명 1라운드 상위 지명이 충분히 가능한 선수였다.
인스타를 하고 있는데 여행가며 찍은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는 듯. [[https://www.instagram.com/baek_junghyun/|보러가기]] 그 사진이 굉장히 높은 퀄리티라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선 야구 선수가 안 됐으면 사진작가가 됐을 거란 얘기가 종종 나올 정도. 아예 '백작가'라고 부르며, 그가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이 종종 개념글로 올라온다. 일부는 반농담으로 [[라팍]]에서 백정현이 찍은 사진을 넣은 달력이나 엽서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팬 서비스도 좋은 편으로, 인스타그램에 남긴 팬의 질문에 [[http://m.dcinside.com/view.php?id=samsunglions_new&no=187308&page=1&serVal=%EC%9D%B8%EC%8A%A4%ED%83%80&s_type=all&ser_pos=-191803|DM으로 답변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http://m.dcinside.com/view.php?id=samsunglions_new&no=211018&page=1&serVal=%EB%B0%B1%EC%9E%91%EA%B0%80&s_type=all&ser_pos=-211792|셀카]]는 잘 못 찍으시는 것 같다(...) --풍경만 취급--
- 블랙 클로버/107화 . . . . 4회 일치
*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애매한데 안달복달해도 국민들 대부분은 "마법제가 언젠가 국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광장에 있는 사람 중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다. 하나같이 마법제가 국왕이 되어주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충 시간만 때운다. 호응이 없으니 열폭도 한계가 있다. 국왕이 제풀에 지치자 마법제가 진정하라고 중제하는데 그럴 수록 율리우스에 대한 열등감은 커져만 간다. 국왕은 율리우스의 인기도 그렇고 금색의 여명이 또 공적 1위를 달성한 것도 마땅치 않다. 금색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왕족이 단장인 기사단을 재치고 1등을 하는게 아니꼽다. 심지어 [[윌리엄 벤전스]]의 가면도 싫어한다. 아무튼 이 자리는 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천지.
그대로 나란히 돌아가던 두 사람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성을 듣고 발길을 멈춘다. 어떤 여자가 "레오!"라는 이름을 험악하게 불러대고 있다. 그러고 보니 홍련의 사자단 소속이고 일전에 함께 싸운 적이 있던 [[레오폴트 버밀리온]]의 모습이 보인다. 전 단장 [[푸에고리온 버밀리온]]의 아우이기도 하다. 이름이 불린 그는 매우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대답하는데 그 얼굴에 다짜고짜 주먹이 박힌다. 이어서 매우 원색적인 욕설이 쏟아지는데, 상대는 홍련의 사자단의 새로운 단장이었다.
- 손예진 . . . . 4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김포시|김포군]] 풍무동 (풍무로) (現:[[경기도]] [[김포시]])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풍무로) 출생으로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모두 경기 김포에서 보내고 영화배우가 될 것을 결심한 뒤 [[2001년]]에 태평양주유소에 진학했으나 조금 더 일찍 영화계에 본격 데뷔를 하기 위해서 얼마 안 지나 중퇴하였다.
이 시기 손예진은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 만큼 동시에 끊이지 않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제목=무릎팍도사` 출연한 손예진 "루머, 모두 오해에요|출판사=매일 경제|날짜=2008-05-15|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news.mk.co.kr/news_forward.php?no=313364&year=2008 }}</ref><ref>{{뉴스 인용|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제목=무릎팍도사’ 손예진, ‘루머해명, 대학시절 계획표 공개’|출판사=아이비 타임즈|날짜=2008-05-15}}{{깨진 링크|url=http://kr.ibtimes.com/article/news/20080515/5493692.htm }}</ref> 하지만 손예진은 루머에 적극적인 대응 없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성실함과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안정적인 관객동원력을 증명한 손예진은 20대 중반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제목=손예진이 '충무로 최고 흥행퀸'인 이유?|출판사=아시아 경제|날짜=2008-11-03|확인날짜=2017-09-09}}{{깨진 링크|url=http://www.newsva.co.kr/uhtml/read.jsp?idxno=431533§ion=S1N99§ion2=S2N602 }}</ref>
- 송금식 . . . . 4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시흥군]] <br/>(현 대한민국 [[경기도]] [[안산시]])
[[1982년]] [[경기도|경기도 시흥군]]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첫 입문하였고 [[1984년]] 영화 《피리 부는 열한 사나이》의 조연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으며 이후 영화 작품들에서는 주로 단역 출연을 하다가 [[1991년]] 영화 《[[검은 휘파람]]》을 통하여 첫 영화 주연을 하였다.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4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237BBD><#FFFFFF><-5><:> {{{#1FADA6 경기도}}} {{{#1FADA6 의정부시장'''}}}||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정치인]]이다. 현직 경기도 [[의정부시]]장으로 당적은 [[더불어민주당]]이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8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현직 시장인 [[김문원]] 시장이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함으로써 보수 표가 분산되어서 당선될 수 있었으며, [[한나라당]] 김남성 후보가 [[경민대학교]] 교수여서 경민학원의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신흥학원의 [[강성종]] 간 대리전이라는 분석이 있다.
[include(틀:경기도의 기초자치단체장)]
- 안재욱(배우,가수) . . . . 4회 일치
|| '''출생''' ||<(> [[1971년]] [[10월 30일]][* 9월생은 음력 생일이다.]([age(1971-10-30)]세), [[경기도]] [[안성시]] ||
이후 MBC에서 [[짝]], 전쟁과 사랑, 자반고등어 등의 드라마를 찍으며 천천히 커리어를 쌓아나가다,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서 그의 [[포텐]]을 터뜨리며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이 드라마에서 안재욱은 당대의 최고배우 중 한 명인 '''故''' [[최진실]]과 호흡을 맞추며 가수 강민 역할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 역할 덕분에 실제 가수로 데뷔까지 하게 된다. 더불어 맥가이버 머리까지 하면서, 젊은 남성들한테는 뒷머리 기르기가 유행이기도 했다. --실사판 [[야가미 이오리]]--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6년 [[KBS 연기대상]]에서 [[아이가 다섯]]으로 우수상 수상 소감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예전에 한번은 끝까지 기다렸다 그냥 간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상을 받았네요'라며 이 사건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하지만 라디오스타에서 엠뷔시는 상도 안줘놓고 케비에스에서 우수상밖에 못받았다고 오히려 케비에스를 까는데 ㅋㅋ 똥묻은개가 겨묻은개를 ㅋㅋ
|| 찜 || 준혁/윤채영 || [* 1인 2역. 한국 영화에서 정말로 드문...여장남자물 영화다! 안재욱이 여장을 해서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정말 예쁘게 나왔다!][* 이 영화로 안재욱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4회 일치
항해 33일 째 날. 의문의 선박이 프로비던스를 쫓아온다. 프로비던스가 맞서 싸우는 동안, 프로비던스의 선장은 헤이덤이 아무 도움도 못될 것이라 판단해 헤이덤을 선실 밑으로 내려보낸다. 선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건 루이스 밀즈. 밀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항복을 제안한다. 헤이덤은 명예는 지켜주겠다는 밀즈의 말에 차라리 검을 달라고 대꾸, 밀즈에게서 검을 넘겨받고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이후 헤이덤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와 의문의 선박이 노리는건 자신임을 밝힌 후, 선장을 암살검으로 협박해 폭풍 속으로 프로비던스를 몰게 한다. 폭풍 속에서 헤이덤은 돛를 고정시키고, 돛을 펴는 일을 돕는다. 그러던 중 제임스가 돛대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를 돕기도 한다. 제임스를 돕고 난 후, 헤이덤은 쫓아오던 선박의 돛대가 폭풍에 부러져 더이상 쫓아오지 못하는걸 확인한다.
인쇄소로 나오고 나서 애덤스는 지금까지 알려준걸 정리해준다. 이에 코너는 그냥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는걸 밝히면 되는거 아니냐고 묻지만 애덤스는 자기도 네 나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다간 죽는다고 한다.
>히키: 날 그렇게 보지 마. 너하고 난 달라! 넌 나비를 쫓는 바보밖에 안 돼. 나 같은 사람은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른 손으로 젖통을 끼면 되는 부류라고. 그러니까, 꼬맹아, 난 원하는걸 가질 수 있어. 가지기도 했지. 너는? 네 손은 평생 비어있을거야.
>헤이덤: 뺨을 어루만져주며 내가 틀렸다고 말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거라. 울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었는가 궁금해하지도 않을거다. 넌 이해할 수 있을거다. 그런데도, 난 네가 어느 정도는 자랑스럽구나. 넌 엄청난 신념을 보여줬어. 힘도. 용기도. 모두 숭고한 수준이었지. 오래 전에 널 죽였어야 했어.
- 울진군 . . . . 4회 일치
[[관동팔경]] 중 제 1경. 가장 남쪽에 있다. 동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산 위의 정자로, 주변에 소나무가 많다. 풍경 이외에는 볼 거리가 없지만 울진읍에 가까워 접근하기도 쉽고 각 관광지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다 잠시 들르기 좋은 곳이다. 정자 자체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헐어버린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60년대에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지은 것을 다시 철거, 1980년에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이 곳 역시 관동팔경 중에 하나이다. 참고로 이 곳은 정철의 [[관동별곡]]의 종지부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울진군은 [[진천군]], [[영동군]], [[홍성군]], [[무안군]], [[울주군]]과 함께 군인데도 불구하고 [[TOEIC]] 시험장이 있는 동네 여섯 곳 중 하나이다. 그래서 [[영양군]], [[영덕군]], [[봉화군]] 등 인근 군에 사는 토익 응시생들이 시험을 보러 원정을 오는 동네이기도 하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진은 경상북도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 지역적 성향 탓도 있지만 [[김중권]]이라는 지역 유명 정치인 때문이다. 1981년부터 3선을 달리고 이후 20년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6번이나 연이어 낙선했으나 매우 높은 득표를 보였다.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공천탈락 - "무당파국민연합" - [[김대중]]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 [[새천년민주당]] 대표 - 무소속의 길을 밟았으며,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먼저 "영남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 윤주희(배우) . . . . 4회 일치
당시에 최고의 배우들이 머물던 [[싸이더스HQ]]에 소속되어 배우 연습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채널V, M-net등에서 방송활동을 하며 착실히 연기수업을 하던중[* 배우 연습생 윤주희 씨에 관한 취재를 했던 [[씨네21]]의 당시기사.[[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37186|기사]]], [[싸이더스HQ]]의 간판 [[김선아]]가 영화 [[목요일의 아이]]에 캐스팅되었고 같은 소속사 배우로서 함께 촬영에 참여했으나, 영화촬영이 중반에 엎어지는 바람에 모든 촬영분을 들어내야 하기도 했다.
또한, [[목요일의 아이]]가 엎어지고 난 뒤 공식데뷔 이전까지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들 중에 발견된 작품이 두 작품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수현(작가)|김수현]]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7화에서 [[이훈]]의 상대역으로 약10초간 등장. 또다른 하나는 드라마 [[히트(2007)|히트]]에서 극 후반부에 간호사 역할로 등장했다 납치되어 살해당하는데 당시에 얼짱 간호사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탄탄한 연기력과 좋은 비주얼을 가지고 있지만 어째 잘 뜨지를 못한다. (...) 다만 최근에는 많이 인지도가 올라 [[사생결단 로맨스]]에서 처음으로 공중파 미니시리즈에서 주조연급 배역을 받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기만성형.
|| [[MBC]] || [[사생결단 로맨스]] || 주세라[* 서브주연급으로 또 한 명의 로맨스 호르몬 소생러. 극중 욕망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 아나운서 지망생 ‘주세라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의 주연인 '주인아 역'의 이시영의 하나뿐인 동생이기도 하다.] || ||
- 은혼/639화 . . . . 4회 일치
* 통신을 통해 들은 헨페이타도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들은 지상에 전해줄 무기도 격려도 없지만 한 가지는 전할 수 있었다.
다시금 시작된 귀병대의 진격. 신스케가 선두로 나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을 끝없이 베어넘기는, 문자 그대로 지옥. 하지만 신스케는 지옥이야 말로 귀병대에게 어울리는 무대라고 단언한다. 반사이는 참모인 헨페이타가 "희망"이란 불확실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고 빈정댄다. 하지만 마타코는 맨날 로리만 입에 달고 사는 변태 보단 방금 전 그게 훨씬 정상이라고 대꾸한다. "평소답지 않다". 그런 거라면 헨페이타가 문제가 아니다. 헨페이타는 사실 자기도 그들과 함께 진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답지 않은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가 미처 상황을 보기도 전에 끝났다. 부하들을 지워버린 빛이 그의 사지를 찢고 흩어버린다. 그리고 지워진다. 뒤늦게 떠진 세 번째 눈.
헨페이타의 다급한 퇴각 선언도 시간에 맞출 순 없었다. 귀병대가 상황이 급변을 인지하기도 전에 세 번재 폭발음이 모선을 뒤흔든다.
- 이기택 . . . . 4회 일치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민주당 대표가 된 후 [[국가보안법]] 폐지, 6공 비리 청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 등을 주장하며, 9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력의 부족으로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만 보였으며, 당내에서는 [[권노갑]] 등 [[동교동계]]와 대립을 거듭하는 등 정국을 전혀 주도하지 못했다. 특히 19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몰아닥치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한민국-미국-북한의 3자 회담을 주장했으나 북한 쪽에서 무시하면서, 체면만 구기고 말았다.[* 이때 김대중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을 주장했는데, 이게 실제로 성사되면서 주가를 높혔다.] 그 후 1995년 6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민자당 [[이인제]]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당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동교동계는-- 사실상 김대중 --이종찬 전 의원을 주장했고, 이 공천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이기택 양자간에 감정적인 골이 생겼다. 게다가 김대중이 전격적으로 지원유세에 나서자, 모든 언론과 유권자들은 김대중만 주시했고 이기택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거기에 김대중은 다른 후보는 전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도 장경우 후보 유세장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그러나 다시 노무현과 거리를 두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고려대]] 상대 후배이고, 고향(포항) 후배이기도 하다]를 지지하였다. 이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기택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16237|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폐지론자]]였다는 점에서 이 행적은 비판받았다.
- 이만섭 . . . . 4회 일치
그 해 11월에는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고,<ref name="경향_6311">共和黨,過半數線넘어, 《경향신문》, 1963.11.27</ref> 그 후 제7·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ref name="동아_67">當選確定者, 《동아일보》, 1967.6.9</ref><ref name="경향_78">10代總選당선154人의얼굴들, 《경향신문》, 1978.12.13</ref> [[1968년]]에 개최된 국제의원연맹 제5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회에 사사건건 간섭하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갈등을 겪었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후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과 [[김형욱]]을 연이어 탄핵하였고 [[박정희]]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1979년]] 제10대 총선에서 [[대구 중구의 국회의원|대구시 중구]]·[[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서구]]·[[대구 북구의 국회의원|북구]]에서 당선되었고 그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의 당무위원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국민당 (1981년)|한국국민당]]은 [[1987년]] [[10월]]부터 소속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며 점차 와해되기 시작했고 다음 해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제13대 총선]]에서 본인을 비롯하여 모두 낙마하였다. 이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그 후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상임고문을 거쳐 [[신한국당]]의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신한국당]]의 총재서리로 임명되었고, [[1997년]]에 [[이인제]]를 지지하면서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 (대한민국)|국민신당]]의 총재가 되었으며,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합당을 추진하고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지내기도 했다.
8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이 중 4번은 [[비례대표제|전국구]]로 당선되었고, 3번은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 제도로 당선되었으며, 3번의 중대선거구 당선 중 2번은 2위로 당선되었다. 즉 8번의 국회의원 당선 중 대부분은 유권자의 직접적인 정치적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로, 전국구 및 중대선거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만섭의 사례가 인용되기도 하였다.<ref name="신동아_01_9">[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109/politic04.html 비사·全國區 39년], 《신동아》, 2001.9.</ref>
- 이민호(1987) . . . . 4회 일치
반짝스타가 아니고 아역부터 올라온 연기자다. [[박보영]]과 함께한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 [[문채원]]과 호흡한 SBS '달려라 고등어',[* 여담이지만, [[박보영]], [[문채원]]과는 여러 편 같이 한 바 있다. 박보영과는 '비밀의 교정',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학교 이티'에서 같이 나왔으며, 문채원은 여기서 '비밀의 교정'을 뺀 나머지 두 작품에 같이 나왔다.] [[박민영]]과 함께하는 [[아이 엠 샘(드라마)]] 등등으로 드라마 주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사랑찬가]]'나 '[[논스톱]]', '[[반올림(드라마)|반올림]]' 같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단막극 '나도 잘 모르지만'에서 주연을 맡거나 영화는 '울학교 이티'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도 출연했다.[* 중견기업으로 위장한 조폭 두목인 [[정재영]]이 키우던 건달 ~~유스~~ 유망주 중 하나였는데 건달짓에 회의를 느낀 이민호를 오른팔 [[김남길]]을 시켜 살해하고 거기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담으로 꽃보다남자 에서 이민호가 캐스팅 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김현중(SS501)|김현중]]은 이민호를 '''아 그 영화에서 나오자마자 칼맞고 죽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던 중 KBS의 [[꽃보다 남자(KBS)|꽃보다 남자의 한국판]]에서 주인공 구준표역할에 발탁. 특유의 소라빵 머리와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시청률 대박을 치게되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약 떠오르는 청춘스타 대열에 합류한다. 이때의 인기는 상당해서 대부분의 예능, 코미디 프로에서 특유의 소라빵머리를 하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한명씩은 꼭 있었다. 아시아 3국의 꽃보다남자 캐스팅중에서 일본인들이 꼽은 원작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드라마로 이민호는 5년간의 무명 세월을 마감하고 톱스타가 된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선택한 작품은 [[SBS]]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 이민호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는 처음부터 원작과 다르게 기획되었고 프리퀄을 표방하여 제작되었으며, 원작자가 주인공으로 이민호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싸인까지 보내 제작발표회에 공개하기도 했다. 오히려 원작과 차별화된 시나리오로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되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민호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매력이 돋보였고 특히 눈빛, 액션 연기는 굉장히 호평을 받아 "이민호의, 이민호에 의한, 이민호를 위한 드라마"라는 평가들이 나왔다. [[시티헌터(드라마)|시티헌터]]로 이민호는 [[중국]]에서 거의 신드롬급으로 인기를 끌었다. 거기다 해외 팬덤이 강력해서 드라마 수출 계약도 호조를 보이는 엄청난 한류 배우.
그 후 [[송지나]] 작가의 [[신의(드라마)|신의]]에 출연하여 깊은 눈빛과 절도 있는 액션 연기로 신의있는 젊은 [[최영]]의 모습을 표현해 2012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10대 스타상 등을 수상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만 남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점점 캐릭터와 밀착되는 모습을 보였고 [[송지나]] 작가도 이민호는 [[최영]] 그 자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http://view.heraldcorp.com/view.php?ud=20121021000320|기사]].]
- 이성희(배구감독) . . . . 4회 일치
고려증권의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느 명선수 출신 감독들이 다 그랬듯이-- 감독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평가를 남겼다. 그래도 GS칼텍스 시절에는 2007-08 시즌에 [[우승]]도 하는 등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기도 했었지만, 인삼공사에서는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할]]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인삼공사의 고질병인 [[몰빵배구]]와 얇은 국내 선수층을 개선시키지 못하면서 부임한 시즌 대대로 최하위만 밥먹듯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4년 동안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아 '''철밥통''', '''[[돌아이|돌성희]]''' 등의 온갖 모욕적인 [[별명]]들로 인삼공사 팬들에게 상당히 까이고 있다.
그의 [[노답]] 행각은 12월 16일 화성 원정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헤일리에게 몰빵지시도 모자라 작전 타임때 수비는 안할거냐는 둥 안 그래도 '''공격 점유율도 높은 선수에게 수비까지 전담'''하게 하는 정신병자급 작전을 선보여 인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대관절 이 인간에게 뇌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 '''안 그래도 국내 선수층이 얇은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헤일리가 [[야반도주]]라도 한다면 대체 이 팀에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이같은 막장스런 행각 때문에 심지어 2012 - 13 시즌 부상을 핑계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배째다 퇴출된 드라간 마린코비치가 재조명받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팬들이 헤일리에게 야반도주해도 되니까 하루 빨리 팀에서 도망치라고 얘기하고 있을까? '''그것도 타 팀 팬들이 아닌 인삼 팬들이!!!''' 이 사실들만 봐도 돌성희가 얼마나 [[쓰레기]]같은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리고 12월 29일 [[수원 현대건설]]과의 홈 경기에서는 아예 3세트 때 헤일리를 빼 버리기도 했다. 이날도 당연한 소리같지만 '''패했다'''. 사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헤일리를 위해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려는 의미에서 뺐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감독부터가 아예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헤일리가 빠진 3세트는 그야말로 경기력이 처참한 수준. 이것만 봐도 감독이란 인간이 3년동안 부임 이래로 국내 선수들을 전혀 키우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냥 이렇게 지면 지워버리기라도 하면 되지만 2세트나 15점 이하의 득점도 모자라 현대건설의 16경기 연속 기록까지 갈아 치워주는 굴욕까지 당하며 1229 대첩을 발발하게 한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이성희가 그만큼 국내 선수들을 보는 안목이 전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volleyball&no=1478772&page=1&exception_mode=recommend|예전 용병 조이스를 깠던 적이 있는 인터뷰까지 발굴되면서]] 가뜩이나 안 좋은 이런 상황은 더욱 이성희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중. --그래도 안 짤렸던 것이 [[함정]].--
2018년 4월, [[전라북도]] [[고창군]]의 흥덕초등학교 배구부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유소년 배구가 활성화돼야 대한민국 배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평소의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017732|#]] 참고로, 해당 학교는 전교생이라고는 고작 72명에 불과한 완벽한 [[분교장|농촌학교]]며, [[송희채]]의 모교이기도 하다.
- 이시영(배우) . . . . 4회 일치
극중 상당한 [[건덕후]]로 나오며 기르는 강아지에게 [[라라아 슨]]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결혼예물도 SD건담 G제네레이션 No.58 NT타입 모빌아머 '[[엘메스]]', SD건담 BB전사-200 RX-78-2 '[[건담]]' SD건담 BB전사-231 '[[자쿠]]II S형'을 받았다.... 이쯤되면 이게 설정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특히 [[혹성로보 단가드A]]의 대형 소프비피겨[* 우리 결혼했어요 방송에서 나온 바로는 제일 아끼는 제품이라고 한다.]를 소장하고 있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커졌다. 만약 이게 모두 컨셉이라면 외려 우리 결혼했어요 제작진 측에 상당한 수준의 [[건덕후]]가 존재하는 듯.[*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307121209063&mode=sub_view|인터뷰에선 감독도 자기도 프라모델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것도 우주세기 초기 지향적 근본주의 건덕후~~
우결로 유명해진 이후로는 다음 팬카페에서 [[프라모델]] 팬 뿐만 아니라 [[리버풀]]의 팬이라는 인증글도 올렸다. 기회가 되면 강아지 라라를 데리고 경기를 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2013년 7월 중순경에는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이시영편에 출연해 여러 토크를 풀어놓았다. 그중 우결 촬영당시 프라모델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데 전부 본인 소장품에 본인 집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라고. 프라모델을 다른 집으로 옮겨 촬영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자기네 집에서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덕분에 출연료 외에 장소사용료도 쏠쏠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때 성형과 복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주변에서는 성형한 얼굴인데 복싱을 해도 괜찮냐고 많이 물어보지만 정작 본인은 성형한 얼굴로 10년을 살아서 자기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도 까먹고 살고 있었단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딸이라서인지 복싱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패배했을 때 '이제는 그만 두겠지'하는 마음에 부모님이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2010년도 복싱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에 캐스팅되면서 처음으로 복싱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비록 드라마 제작이 무산되었긴 했지만 '뜨거운 형제들'에선 [[권투]]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때를 계기로 해서 좀더 적극적으로 복싱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소속사에서는 이시영이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드라마가 엎어졌다는 얘기를 못 꺼냈을 정도라고. 많은 사람이 취미인 줄로만 알았으나(...)
- 이지현(1983) . . . . 4회 일치
|| '''출생''' ||<(> [[1983년]] [[10월 12일]], [age(1983-10-12)]세 [[경기도]] [[안양시|만안구]] 석수2동 ||
[[쥬얼리]]의 원년 멤버며 현재는 배우로 활동한다. [[1983년]] [[10월 12일]] [[경기도]] [[안양시|만안구]] 석수2동 출생이다.
그렇게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던 당시 MBC [[만원의 행복]]에 출연해 김밥을 마는 장면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5년 들어 택시, 안녕하세요, 1대100(1인), SNL 코리아(특별출연), 런닝맨, 동상이몽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예능 활동도 다시 활발해졌다. 또한 캐릭터가 '''남편 때문에 속 썩는 아줌마'''(...)로 등장한 적도 있는데 이게 빈말이 아니었다. 사업가인 남편이 하도 술을 좋아해서 매일 늦게 들어온다고... 런닝맨 X맨 특집에서는 [[당연하지]] 게임에서 [[김종국]]이 안부삼아 던진 '너 결혼했더라?' 한 마디에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 장윤성 . . . . 4회 일치
'''장윤성'''(張允聖, [[1963년]] [[12월 9일]] ~ , [[서울특별시]] 출생)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창악회와 동아콩쿨, 중앙콩쿨 작곡 부문에서 입상하기도 했고, 아르스 실내 관현악단 연주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이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로 유학해 빈 국립 음악원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다.
러시아 유학 중이던 1993년에 프로코피에프 국제 지휘자 콩쿨에 2위로 입상했고, 입상 특전으로 1년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에프]]에게 배우기도 했다. 1995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제 5번 '한국' 을 유럽 초연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도쿄 국제 지휘 콩쿨에 참가해 1위 없는 2위에 입상했다.
- 장헌식 . . . . 4회 일치
'''장헌식'''(張憲植, [[1869년]] [[음력 9월 21일]] ~ [[1950년]] 양력 [[8월 20일]])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관료를 지냈다. [[경기도]] [[용인시|용인]] 출신.<ref name="실록친일파">{{서적 인용
장헌식은 관직에서 퇴임한 뒤로도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37년에는 각지에 시국강연을 다녔다. [[만주 사변]] 이후 일본군을 후원한 활동을 인정받아 [[1937년]] 일본 육군대신 명의의 표창을 받은 바 있고,<ref name="실록친일파" /> 37년 8월 21일에는 애국금차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로는 시국강연반에 가담하여 전쟁 지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38년]]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뒤 [[1941년]] [[국민총력 조선연맹]]과 [[조선 임전 보국단]]에도 가담했다. 이때는 이미 70대의 노구였으나, 학병 지원을 독려한다며 전국에서 강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38년 8월 16일 조선총독부 칙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관직에서 물러나 [[경기도]] [[용인]]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 전혜빈 . . . . 4회 일치
안타깝게도 그룹 LUV 자체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체했고, 이후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혜빈만 솔로 앨범을 내게 되었다. 왕성한 예능 활동을 하며 다이어트 운동 비디오 출시 및 프리 싱글곡 'Love Somebody'를 동시 발표하는 등 쉴틈없이 달려오다 2005년, 섹시하고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중무장했던 정규 1집 타이틀곡 '2AM'을 선보이며 호평[* 물론 안티도 있었던 반면, 당시 솔로 여가수 중 단연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특히 춤선이 예쁘다는 반응으로 뜨거웠다. 아직까지 이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은 전혜빈의 끼와 퍼포먼스를 그리워하기도.]에 가까운 중박 정도를 거뒀다. 사실 본인도 밝혔듯이 연기자가 되고 싶어서 가수로 데뷔한 케이스이니, 딱히 가창력이나 음악성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전형적인 '예능형 댄스 여가수' 정도로 소비되었다.
이 일로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그나마 좀 모아뒀던 통장 잔고도 바닥나고, 심각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자살 기도까지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울증도 이겨내고 다시 새 출발을 할 힘을 얻었다고. 후에 정글의 법칙에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은 이 때의 경험으로 인해 얻게 된 듯 하다.
정글의 법칙 이후 또 다른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심장이 뛴다]]에 홍일점으로 출연했다. 방화복을 현직 [[소방공무원]]보다도 빨리 착용하는가 하면--[[트란잠]]-- [[말벌]]집을 제거하는 훈련도 가뿐하게 해냈을 뿐더러 실제로 말벌집을 제거하러 출동했을 때도 처음치고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전사 캐릭터가 어디 가진 않는 모양이다. --말벌 종류를 잘못 외우긴 했지만-- 전혜빈의 정신력에는 함께 출연한 [[박기웅]]도 감탄했다. "방화복을 입고 공기통을 메면 15~20㎏이 된다. 착용순서대로 빠르고 정확하게 입어야 한다. 틀릴 때마다 멘토에게 얼차려를 받는다. 혜빈 누나는 여자니 무릎을 꿇고 하라고 했는데 끝까지 똑같이 벌을 받더라. 남자도 힘든 건데 정말 대단하다"라는 [[박기웅]]의 증언처럼 전 훈련과정을 소화해 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던 것이 육체적인 한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일사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 겨드랑이 노출 사진[* 의상 자체가 소매가 없는 옷이라 팔을 들면 자연히 겨드랑이가 보일 수 밖에 없는 옷이었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6361|바로 이것]]]에 이어 절묘한 표정으로 순간캡쳐된 짤방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겨드랑이에 놀란 전혜빈 등의 제목으로 널리 퍼졌었으나, 천생연분 출연 및 솔로활동으로 인지도는 있으나 별다른 인기는 없었을 때 크게 유행했고 연기자로서 생명력을 갖게된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든 짤. 다만 지금도 일부 기레기들이 이 사진을 가지고 전혜빈의 충격 과거, 암내 운운하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 정난정 . . . . 4회 일치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1553년]](명종 8) 직첩(職帖)을 받아 마침내 외명부 종1품 정경부인이 되었다. 또한 [[윤원형]]이 상소하여 적자와 서자의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자도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로서는 신분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으며 신분제도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승려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선·교(禪敎) 양종이 부활되고 도첩제도(度牒制度)가 다시 실시되는 등 한때나마 [[불교]]가 융성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보우 (조선)|보우]]를 [[문정왕후 (조선)|문정왕후]]에게 적극 추천하여 그를 총애받게 한다. 정난정은 봉은사의 승려 보우를 문정왕후에게 소개시켜 병조판서직에 오르게 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융성하기도 했다.<ref name="park207">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207페이지</ref>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당하리 산 4-20번지(현 [[경기도]] [[파주시]] 당하동 산4-20번지) 선산 근처에 안장되었다.<ref>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61103140413945&p=segye</ref> [[윤원형]]과 본부인 연안 김씨가 매장된 묘소 뒤쪽에 매장되었으며 비석은 없이 전하다가 [[조선]]이 멸망한 뒤에 세워졌다.
- 정승환(가수) . . . . 4회 일치
다만 때로는 흉성에 기반을 둔 파워에만 의존해 무리하게 고음을 올리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이건 [[박진영]]이 지적한 부분. 중간평가 도중에는 목에 힘을 주고 고음을 올리는 습관에 안 좋은 컨디션이 겹쳐져 음이탈과 음정 불안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는 어느 정도 고쳐진 상태. 고등학생 재학중 부른 '말리꽃'을 보면 '''2옥타브 라♯(A♯4)'''[* 키를 하나 내렸기 때문에 라♯이 맞다.]까지 음이 올라간다.
[[유희열]]이 언급했듯 표정연기도 수준급이다. 발라드에서는 감정이 전부라 할 만큼 노랫말의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노랫말과 항상 일치하는 표정과 특히 담담한 도입부에서의 표정과 절정에서의 표정은 그의 감정선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눈사람은 [[아이유]]가 작사하고 아이유의 [[밤편지]]를 작곡한 김제휘 작곡가가 작곡한 곡이다. 그래서 곡 발매 당시 아이유가 첫 시즌에 출연한 인연으로 [[효리네 민박]]에 삽입되어 음원 흥행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또한 아이유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당 곡을 커버하는 영상을 올려 정승환의 음원 선전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 조원진 . . . . 4회 일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폭로한 9명의 [[친박]]의원 모임의 일원이다. 이른바 '''친박 9인회'''. 최씨 일가와 [[문고리 3인방]] 등이 사라져 생긴 박근혜정부의 권력 공백을 2016년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날부터 이들이 메우고 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최경환(1955)|최경환]], [[윤상현(정치인)|윤상현]]을 축으로 [[정갑윤]],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정치인)|홍문종]], [[유기준(1959)|유기준]], 조원진이 포진하고 있다. 매일 작전회의를 하여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http://h21.hani.co.kr/arti/politics/42751.html|전해준다고 하였다.]] 정황상 탄핵 정국에 혼란을 야기하였던 제3차 대국민 담화도 이들의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만 34세에 [[대우자동차]]를 거쳐 [[포스코대우|대우]] 중국기획조사부 부장까지 했었다. 그 후 [[황병태]]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16대 총선 선거공보물에는 명동판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한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인 2001년엔 중국에서 무역 컨설팅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때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의 베이징 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는 등, 사업 수완은 있는 인물로 사료된다.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이 있다. ~~그냥 사업이나 하지 왜 정치를 했을까~~
- 주현미 . . . . 4회 일치
남편은 한국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 1987년 '잃어버린 추억'으로 알려져 있다.]. 40일간 미주 공연으로 알게된 두 사람은 주현미가 28살일 때 결혼했다. 당시 주현미는 가수 일이나 인기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남편을 사랑했다고 한다. 임동신은 결혼 후 자기 일은 거의 포기하고 아내의 매니지먼트와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다. 그래서 주현미가 가요대상을 수상했을때 '여보'라고 울먹이며 남편을 부르기도 했다. 주현미의 아들은 현재 버클리 음대 재학 중.
연예인 중에서는 나름 엘리트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중앙대학교]] [[약대]]를 졸업해서 [[약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딸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한 어머니의 바람이 컸다고 한다.] 이후 약국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수줍음 타는 성격이라 사업수완이 없었던데다 원칙을 고수하는 탓에 손님이 없어 일찍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당시 [[의약분업]]이 이뤄지기 전이었는데, 증상과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영양제나 항생제 등을 달라는 손님들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거절하다보니 별난 약사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https://youtu.be/lw2MKM2wwZE|약국이 망해서 가수한 주현미]]
솔로 데뷔 전인 [[1984년]] 무렵에 김준규랑 같이 부른 메들리 앨범 '쌍쌍파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같이 듀엣으로 녹음한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녹음한 걸 편집에서 합친 앨범이지만 편집한 둘의 호흡이 워낙에 대단했기에 80년대 중반 돌풍을 일으켰고, 이때의 흥행을 발판으로 솔로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 기세를 타 [[1985년]] 1집 앨범 ≪비내리는 [[영동대교|영동교]]≫로 데뷔하여 단번에 트로트 탑 그룹에 올랐으며, 그 후에도 연이은 성공으로 히트곡이 상당히 많다. [[1988년]]에는 '신사동 그 사람'의 대 히트에 힘입어 MBC, KBS 연말 가요대상을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1989년]]에도 '짝사랑'으로 MBC 연말 가요 대상을 2년 연속 제패하기도 했다.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에이즈]] 루머였다. 에이즈는 지금도 치료가 무지하게 어려운 질병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병 걸리면 무조건 사망하는 악질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던 시절이라 이 때문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안티가 생겨나기도 했다.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걸렸다는 허위사실인 데다가 그 병이 역대 최악의 전염병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정말 엄청났다고 한다.
- 지석진 . . . . 4회 일치
이 사건 이후 지석진은 1994년 SBS '''[[MC]]'''공채 시험을 봐서 1기로 합격했으나[* SBS의 전문 MC 공채는 MBC의 시스템을 본따서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을 전담하는 인재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였다. 지석진과 공채 동기로는 리포터 [[조영구]], 2001년 최음제 사건으로 활동을 접은 배우 [[황수정]] 등이 있다.] 예능에는 기존 방송사에서 이적해 온 베테랑 코메디언들이 중용되었고 교양은 [[아나운서]]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마땅한 활동영역이 존재하지 않자 결국 다시 개그맨으로 복귀했다. 다만 심형래 사건 당시 충격이 컸는지 꽁트 코메디 프로그램 출연은 거의 없고[* 지석진 본인도 가끔 예능에서 꽁트같은 걸 할 때 영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 왈 "나 꽁트 많이 안해봤어..."] 주로 예능 프로그램 리포터나 라디오 쪽에서 활동했다. 이 때문인지 MC란 이미지가 강하고 개그맨이란 이미지가 상당히 적다. 런닝맨에 출연하게 된 [[전소민]]은 "석진 오빠 개그맨이셨어요?"라며 화들짝 놀라기도 했을 정도.
2000년에 스타일리스트 출신 류수정씨와 결혼하였다. 원래 [[정선희]]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빠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유재석이 소개해줬다고 한다. 첫만남 당시 소개팅을 주선한 유재석이 집에 데려다 주는 순간까지 동석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지석진을 첫만남에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한 류수정씨가 유재석에게 계속 있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석진 역시 류수정씨가 자신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유재석에게 중개를 부탁한 끝에 연애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모양. 결혼식 사회까지 유재석이 봤으니 결혼의 시작과 끝을 유재석이 다 챙겨준 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때문인지 유재석은 지석진이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류수정씨 개인과도 꽤 친한 모양. 방송에서 지석진과 대화 중에 "형수 저번에~" "형수 요새~"하는 식의 말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지석진은 후에 "그 때 왜 그랬냐"는 식으로 유재석을 맹폭하는 컨셉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에도 예능에서 가끔씩 결혼생활을 소재로 써먹곤 했는데, 런닝맨에서 본의 아니게 결혼생활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는[* 런닝맨 멤버스 위크 송지효편 [[거짓말 탐지기]]미션에서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답에 진실 판정이 떴다. 이후 멤버스 위크 왕코편에서는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날짜가 줄줄이 나오고, 아예 본인의 특집때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며 제작진에게 요청하기도.] '사실은 사랑꾼' 기믹도 쓰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주변에 대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식의 드립을 자주 치는 모양인지, 멤버스 위크 이후에 합류한 전소민도 증거자료까지 있다면서 사랑꾼 기믹을 위협했다. 한번은 '''녹화 쉬는 시간'''에 '''싱글 중년'''들이 출연하는 [[불타는 청춘]]에 나가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스타일리스트까지 충격을 받았다고(...)[* 어쩔 수 없이 해당 비밀을 자기 입으로 밝힐 처지에 처했을 때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간신히 입을 떼는 모습이 압권이다.].
공백기를 잠시 겪고 컴백하는 과정에서 피디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한동안 일기도 했다.
- 진격의 거인/94화 . . . . 4회 일치
소음 공해에 가까운 가비의 귀환인사가 역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리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콜트 그라이스]]의 머리도 울린다. 잘 마시기도 못하는 주제에 분위기를 너무 타버린 탓이다. [[포르코 갤리어드]]가 그 점을 지적했다. 어제 그 현장에 있었던 [[파르코 그라이스]]도 누가 시작한 거냐고 투덜거린다. 범인은 피크. "마시고 싶은 얼굴이라 줬다"고 책임회피한다. [[지크 예거]]는 어쨌든 콜트 쪽 문제로 간주해서 "피크의 배려를 차량 곳곳에 토해냈다"는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마가트 대장도 그 개판을 보고 어제 말리지 않은걸 후회했다.
파르코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형의 한심한 숙취도 둘째 문제였다. 그는 어젯단 라이너에게 [[진격의 거인/93화|"가비를 구해라"]]고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새삼 라이너의 이력을 돌아봤다. 4년 전 팔라디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모든 책임은 라이너에게 돌아갔다. 까딱하면 "임기"를 채우기 전에 갑옷을 박탈 당한 뻔했으나 라이너는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위험한 전장을 누구보다 앞장 섰으며 목숨을 걸고 여러 전과를 올려 마레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고 자신의 임기도 지켰다. "다른 어떤 전사보다도 높은 충성심". 그거야 말로 라이너가 높이 평가받는 배경이었다.
그건 민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카리나는 여느 가정의 어머니들이 그렇듯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역사를 들려주었다. 거인이라는 괴물과 그걸 이용한 악행, 그걸 자행한 자들의 피가 자신들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엘디아인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가 되니까.
- 창작:좀비탈출/5-1-1-1 . . . . 4회 일치
"난 지쳤다고. 굶은 데다가 생각지도 못한 액션 스턴트를 했고 장의사 노릇까지 했어. 저기로 넘어갔다간 돌아올 힘도 안 남을 걸? 그리고 이젠 빌어먹을 무기도 없다고."
토트넘의 머리는 조금 앞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둥글둥글한게 골프채 끝에 달려있는 모양이 배드민턴채가 떠오르게 했다. 처음 뽑아야 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거리낌이 들기도 했는데, 한참 자르고 쑤시면서 뒹굴고 나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단지 손으로 만지고 싶지는 않아서 한 발로 밟은 채로 골프채 손잡이를 쭉 당겼다. 약간 찐득한 느낌과 함께 뽑혀져 나왔는데 꼭 떡꼬치에서 떡을 빼내는 느낌이었다.
주인의 애정이 가호가 된 것일까? 다이너스티의 외견은 깨끗했다. 어쩌면 토트넘이 죽어서도 이 근처를 배회하던 것은 이 차를 떠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가까이 가서 보니 그저 깨끗한게 아니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였다. 혹시 탈출을 준비하다가 녀석들에게 당해버린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토트넘의 행운의 아이템은 소용이 없었던 셈이겠지.
웃기는 얘기다. 그때 생각해도 곧 헛소리로 치부해버릴 정도로 헛점이 많은 얘기였다. 나는 토트넘에게 습격 당했다. 바로 정오에! 그때 이미 정오가 안전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에 그걸 목숨 걸고 확인했으니까 재고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골목을 아무 일도 없이 빠져나가고 큰길에 이르러서도 아무 문제 없이 녀석들의 접근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는건 확인해볼 필요도 없는 오류다.나에겐 무기도 없다. 믿었던 골프채는 지금 행운의 골프채가 돼버렸잖아? 좀 더 오래 "그냥 골프채" 노릇을 해줄 물건을 찾을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녀석들이 사방에서 애워싸면 내 능력으로 어찌해볼 도리는 없을 것이다. 햇볕은 따갑고 숨을 것도 없는 큰 길에서 녀석들은 신선한 레어 스테이크를 제공 받게 되겠지.
- 청송군 . . . . 4회 일치
[[경상북도]] 중동부에 있는 군. 인구는 약 2만 6천여명이다. [[아오안|전국적으로 매우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이웃한 [[봉화군]], [[영양군]]과 함께 [[BYC#s-2|BY'''{{{#red C}}}''']](...)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전국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낮은 동네이기도 하다. 청송 출신 [[연예인]]인 [[심진화]]가 농반진반 국내 3대 [[오지(지리)|오지]] 중 하나라고 칭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청송 [[사과]]가 등록되어 있는데 [[경상북도]]에서 사과 생산량 2위를 기록한다. 청송하면 '''사과'''가 유명하다고 인식 될만큼 사과가 유명하다. 버스 정류장 등의 시설물도 사과를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졌을 정도.[* [[청도군]]에서는 감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지어지기도 했었다.] 수확철에 이 지역을 방문하면 상인들이 도롯가나 주왕산 국립공원 등 노상에 자리를 펴서 사과를 잔뜩 쌓아놓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산지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MTB]]나 산악 모터사이클 경기도 열린다. 청송 국제모터사이클 챔피언십은 개최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홍보탓인지 아는사람이 많이 없다. 온로드 대회가 아닌 오프로드 대회로, 청송사과공원 야영장 옆 공터에 트랙을 만들어 대회를 진행한다. 매년 10~11월중 하루 일정으로 진행된다. [[http://hyosang.kr/518|2015년도 대회 사진]]모터사이클은 2015년대회이후 시행돼지않고 있다
- 최동수 (야구인) . . . . 4회 일치
[[1994년]] 2차 4순위 지명을 받아 [[포수]]로 입단했으나, 이후 [[내야수]]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잡지 못했고, 데뷔 첫 해에는 1군에서 1경기에 그쳤다. 방위 복무를 마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서용빈]], [[유지현 (야구인)|유지현]] 등의 걸출한 [[내야수]]들에 밀려서 주목받지 못하였다. [[2001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한 이후 그는 뒤늦게 중용되기 시작하였고, 2군에서 훈련하였을 때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트레이드 마크인 지옥 훈련을 많이 소화한 결과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2549603 야구, 야구,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바보'… "동네 게임도 작전 짤 사람"] - 조선일보</ref> 당시 그가 훈련이 끝나고 손이 펴지지 않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그의 손을 펴 주었다고 할 정도였고,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훈련을 멈추도록 했던 유일한 선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855814 12년 전, 잊혀질 뻔했던 한 선수의 은퇴식] - 이데일리</ref> [[2002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한 [[서용빈]]의 자리를 이어받아 주전 [[1루수]]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준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최초로 풀 타임 출장에 3할대 타율을 기록하여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그리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29경기에 출전해 1할대 타율에 그쳤다.
[[2010년]] 시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그는 그 해 [[7월 28일]] 4:3 대형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 주전 [[내야수]] [[박정권]], [[나주환]]이 부상으로 이탈하여 [[내야수]]가 필요하였던 [[SK 와이번스]]와 [[투수]]가 필요하였던 [[LG 트윈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그는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 (야구 선수)|이재영]]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고, [[LG 트윈스]]는 [[SK 와이번스]]로부터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 [[김선규 (야구 선수)|김선규]], [[포수]] [[윤요섭]]을 받았다. 그 때 [[SK 와이번스|SK]]와 [[LG 트윈스|LG]]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3연전 중이어서, 트레이드 된 선수들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트레이드가 성사된 [[7월 28일]] 당일, 트레이드 당사자인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가 맞대결하게 되었는데 그는 같이 이적한 [[안치용]]과 함께 선발 출장하였고 [[권용관]]은 도중에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적한 선수 중 [[윤요섭]]이 대타로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경기에서 그는 3점 홈런을 쳐 내는 등 4타점을 쓸어담아 맹활약하였다. 그 날 [[SK 와이번스]]는 연장전에서 [[권용관]]이 [[정성훈 (1980년)|정성훈]]의 타구를 놓치는 실책을 범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여 패했다. 특히 그에겐 프로에서 눈을 뜨게 해 준 [[김성근 (야구인)|김성근]]과의 재회여서 더 의미가 컸으며, 2차 드래프트가 있기 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이 감독직에서 경질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해 시즌 후 32번을 쓰고 있었던 [[외야수]] [[박윤]]이 보류 선수에서 빠져 [[신고선수]]로 전환되자, 자신의 번호였던 '32'번을 되찾았다. [[2011년]]에는 [[박경완]]의 재활이 장기화되어서 10년 만에 그의 본업인 [[포수]]로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 이후 9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복귀하여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도 출전했다.
[[2009년]] [[5월 12일]] [[SK 와이번스|SK]]전에서 그는 프로 데뷔 15년 만에 [[투수]]로 첫 등판하였다. 이와 더불어 팀 동료이자 [[포수]]인 [[김정민 (1970년)|김정민]]은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역할 분담이 철저하고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KBO 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는 데뷔한 후 [[포수]]에서 [[내야수]]로 전향했고, 이 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연장 12회 초에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대량 실점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창민]]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몸에 맞는 볼|빈볼]]성 투구를 던지고 퇴장당했다. 남아 있는 [[투수]]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심수창]] 외에는 없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은 궁여지책으로 [[지명타자]]로 나선 그를 [[투수]]로 내보냈다.<ref>[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news&mode=view&no=60005 무박 2일 잠실 혈투 진기록 양산] 《시민일보》 2009년 5월 15일 9:25, 2009년 5월 16일 23:55 확인</ref><br>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 [[박경완]]을 공 2개(1구 128 km, 2구 131km로 스피드 건에 찍힘)로 플라이 아웃 처리했는데, 당시 [[박경완]]은 경기 후 "차마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대충 휘둘러서 아웃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와중에 외야에서 그의 등판을 지켜본 [[이진영]]은 "본래는 내가 등판하려 했다. 내가 아무래도 동수 형보다는 구속이 빠르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1992073 (어젯밤 이야기) 박경완 "'투수 최동수' 공 솔직히 칠 수 없더라"] 《스포츠조선》 2009년 5월 14일 10:18,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그의 공에 대해 "[[오승환]]인 줄 알았다. 돌직구를 던지더라" 라며 감탄하기도 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140203 (베이스볼 브레이크) SK-LG 대혈투…'무박 2일' 뒷담화] 《동아일보》2009년 5월 14일 8:01, 2009년 5월 17일 0:18 확인</ref>
- 최성원(가수) . . . . 4회 일치
|| '''출생''' || [[1954년]] [[2월 9일]] [[경기도]] [[부천시]] ||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73학번으로 입학했을 때부터 이상훈, 이승희, [[김현식]][* 최성원보다 나이가 네살 정도 어렸지만 일찍부터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정광태]] 등과 몰려다니며 음주가무를 즐기고 날라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주로 다닌 곳은 명동의 르 시랑스, 내시빌, 오비스 캐빈이었다. 대학교 1학년때 양병집의 음반작업에 통기타 반주로 참여했고 이때부터 프로 세션맨으로 활약했다. 뚝섬스튜디오에서 [[조동진]]의 후임으로 월급 세션맨을 했고, [[이장희(가수)|이장희]]가 DJ를 맡고 있던 '0시의 다이얼'에 반년 정도 고정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 이덕진의 '내가 아는 한가지'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 2000년도 초반에는 충북 청주에 있는 주성대학의 실용음악과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 최은희 . . . . 4회 일치
|| '''출생''' ||[[1926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시]]||
[[한국]]의 [[배우]] 이자 [[영화감독]]. [[1926년]] [[11월 20일]], [[경기도]] [[광주시]] 출생.
그 후 5, 60년대 영화계를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나눌 정도로 스타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후배 [[김지미]]와 경쟁했는데, 흥미롭게도 '춘향전'을 비슷한 시기에 김지미(홍성기 감독)와 최은희(신상옥 감독)가 각자 버전으로 찍고 동시 개봉하면서 라이벌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는 신상옥 최은희 페어의 승리로 끝났다.) 이 시절 그녀는 정말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전통적 여인상에서 <지옥화>처럼 서구적인 글래머상까지 소화하면서 그녀는 초창기 한국영화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그 후 북한에서도 영화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1985년에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1986년 3월 13일, [[신상옥]]과 함께 [[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빈]]에 있던 도중,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극적으로 탈북에 성공해 10년 넘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9년에 영구 귀국했다.
- 콩고(소설) . . . . 4회 일치
정글에 투입시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시작으로 식인종의 식인 행위를 목격하고[* 창칼로 무장한 원시인 수준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이라 닳고닳은 용병인 먼로도 경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정부군이 멀쩡한 건 아니라 수틀리면 간빼먹는 건 일도 아니게 생각할 병사들이 그득하다고.] 하마의 공격에 혼쭐나기도 하고 피그미족에게 구출된 1차 탐사대원도 만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마디도 못하는 폐인이 된 상태였지만 에이미의 냄새를 맡자 극도로 흥분한다. 이들이 당했던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 일본, 독일, 네덜란드의 합작 기업을 추격하지만 결국 그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연구소의 소식에 좌절하고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며 털레털레 가지만 정작 추락한 합작 기업의 수송기에 실린 물자는 그대로고 곧이어 찾은 합작 기업의 탐사대 캠프 역시 전멸당한 상태였다.
영장류 연구가. 동물학자. 에이미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에이미가 그린 꿈 속의 도시와, 아랍인들의 그림으로 그려진 진즈가 기묘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에이미를 고향에 데려가보는 것을 목적으로 탐험에 나서게 된다. 진즈에서 회색 고릴라들과 만나게 되자 본래 목적을 잃고 회색 고릴라를 고릴라 엘리어트네스라고 이름 붙이고 신종임을 입증하는데 열중하기도 한다.
암컷 [[고릴라]]. [[수화]]를 사용할 줄 아는 고릴라로서 지능이 높으며, 성격은 대체로 상냥하고 온순하지만 가끔 토라져서 화내기도 하는 [[츤데레]]. 인간으로 치면 사춘기 정도이다. 과거에 진즈 주변에서 살았으며, 진즈에 접근했다가 회색 고릴라에게 모친이 살해당하고 고아가 되었다가 잡혀서 팔려가게 되었다. 피터가 회색 고릴라 무리 앞에 떨어졌을 때 직접 나서서 우호적인 행동을 보여서 피터를 구해내고, 회색 고릴라들이 쓰는 언어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주는 등 탐험대의 캐리어로 대활약한다. 피터와 먼로 쌍방에서 관심을 받는 이 소설의 메인 히로인(!) 격인 고릴라, 모험이 끝난 뒤에는 야생 고릴라 무리들 사이에 들어가서 아이도 낳고 살게 된다.
정글에 묻혀 있는 고대도시 진즈의 잔해에 거주하는 회색 [[고릴라]]. 평범한 고릴라가 아닌 신종으로서, 현재는 사라진 진즈의 주민들에게 경비병으로 훈련되어 있다. 언듯 보기에는 평범한 고릴라지만, 털 색이 회색이며 평범한 고릴라와는 해부학적 특징이 다르고,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지적인 생물이다. 다만 얌전한 초식동물인 고릴라와는 달리 흉폭성도 높아서 위험한 생물이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4회 일치
자신들이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이들로, 실제 역사에서는 시코쿠 전체로 세력권을 넓혔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굴복해야 했다. 이후 [[큐슈]]와 [[조선]]에 원정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세력 다툼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지지했다가 도쿠가와가 승리하며 모든 권력을 잃게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큐슈]]까지 뻗어나갔으나 오다 가문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오다 가문의 다이묘이던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에게 통수맞고 죽어버리는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동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기도 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간의 분쟁에서는 도요토미 가문 지지 세력인 서군을 이끌었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가문 상대로 빠르게 딜을 하고 빠져나갔다. 그 결과 모리 가문은 초소카베 가문처럼 망하지 않고 영지 대다수를 몰수당하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모리 가문은 자신들이 도쿠가와 가문을 도왔음에도 영지를 몰수당했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 원한은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200여년 뒤에 폭발하게 된다.]]
* 기도의 달인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가문. 가문을 선택하면 나오는 영상도 서양인과의 접촉과 그로인한 철포, 기독교의 전파를 다루고 있다. 다들 신토-불교를 믿는데 혼자 기독교를 믿기 때문에 외교에 패널티가 심하다.
- 판타스틱 포 . . . . 4회 일치
그 전에도 [[네이머]]나 [[캡틴 아메리카]] 등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마블 코믹스에 있었지만, 《판타스틱 포》는 마블 코믹스의 고유의 특징을 처음으로 보인 작품이었다. 바로 '''완벽하지 않은 영웅들'''이라는 요소였다. 늘상 서로 다투기도 하고 협력도 잘 안되지만 결국 서로를 [[가족]]처럼 사랑한다는 구성은 그 당시 혁명적인 요소였다. 판타스틱 포의 구성원들은 별거 아닌 이유로 싸우고 원한을 품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결국 화해하는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다.
판타스틱 포는 마블 최초의 히어로 팀이기도 했으며 스탠 리와 작화 담당의 공동협력 방식이 사용된 최초의 시리즈였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를 조그마한 만화 출판사에서 메이저로 올린 장본인이다. 한마디로 '''판타스틱 포 없이는 오늘날의 마블 코믹스도 없다.'''
이외에 마블 코믹스 애니메이션에 게스트 출연하기도 했다. 예시가 국내에서도 방영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 하춘화 . . . . 4회 일치
[[1989년]]에는 '날 버린 남자'[* 개그맨 [[김영철(개그맨)|김영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모창하던 그 노래이다.]가 국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다시 각광받기 시작하고 [[1991년]]에 총공연 횟수 8,000회를 기록하였고 최다 개인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되었다. 이후 하춘화는 [[2002년]]에 댄스 리듬의 트로트'연하의 남자'를 부르면서 자신만의 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로서 하춘화는 춤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증명했다. 학업을 위해 잠시 은퇴하기도 했으나 [[2007년]]에 다시 복귀하여 현재는 '나이야 가라'라는 노래로 왕성하게 활동 중.
* 하춘화는 [[2011년]]에는 '''57살의 나이로 데뷔 50주년'''을 맞아 '하춘화와 함께하는 콘서트'를 개최하였으며 이 콘서트에서 벌여 들인 200억 원을 불우 이웃 돕기에 기부하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 나이가 든 동시대 연예인들과 달리 젊은 층들의 음악도 듣고 춤도 추는 듯 하다. 한때 예능에서 소녀시대의 춤을 추기도 했다.
- 한인수(탤런트) . . . . 4회 일치
|| '''출생''' ||[[1947년]] [[7월 30일]], [[경기도]] [[시흥시]][* 출생지는 황해도, 성장지는 시흥시라는 설도 있다.]||
[[1991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시흥시]]장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현직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윤식(1966)|김윤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정하연 사단이기도 하다.
- 함인섭 . . . . 4회 일치
[[일제 강점기]] 후반 [[황해도]] [[황주군]] [[춘광원예학교]](黃州春光園藝學校, 6년제, 소학교 과정) 교사와 [[경기도]] [[자동농업학교]](自東農業學校) 교사로 교단에 섰다.
[[1948년]] [[8월]]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설립,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학장서리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는 [[문교부]] 국가고등고시 전형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8월 30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건국 이후 그의 할아버지 [[함태영]]이 조선 말 [[독립협회]]사건과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수감된 [[이승만]]에게 관대한 한결을 내려 그 인연으로, 내각 법무장관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성사되지 않고 할아버지 [[함태영]]은 [[심계원]]장과 제3대 [[부통령]]을 지냈다. 전쟁이 발생하자 그의 동생 함의섭이 일가족을 이끌고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신하였다.
* [[경기도]] [[자동농업학교]] 교사
본처 유순희의 묘는 [[경기도]] [[의정부시]] 자일동 선영 내에 있다. 할아버지 [[함태영]]의 묘소는 후일 동작동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 현정건 . . . . 4회 일치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高宗)]] 24년([[1887년]])에 [[대구광역시|대구(大邱)]]에서 현경운(玄炅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0년]]에 중국으로 유학, [[상하이 시|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임시의정원|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이규홍(李奎洪) 등과 함께 1919년 9월 17일 경상도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20년]]에 상하이 주재 [[고려공산당|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입당하였고 [[1922년]] 10월 20일에 열린 베르프네우딘스크(Verkhneudinsk) 회의<ref group="설명">이동휘의 상하이 고려공산당과 김철훈ㆍ안병찬의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경쟁을 완화하고 두 세력을 합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그들에게 베르프네우딘스크에서 연합대회를 갖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한인 공산주의 운동 계열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정재달, [[조봉암]] 등도 여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대표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탄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철수, 코민테른 당국이 각파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조정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코민테른은 양파 모두 해산하고 단일당을 조선 안에 세울 것을 지시함으로써 상하이파도 이르쿠츠크파도 없어지게 된다. 김학준 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2005, 민음사.</ref>에 윤자영(尹滋英)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에 상하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는 윤해(尹海)ㆍ신숙(申肅) 등과 더불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왕삼덕(王三德) 등과 참여하였고 2월 5일에 [[여운형|여운형(呂運亨)]]과 더불어 외교분과위원으로 지명되었으나, 창조파가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과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결정인데 출석원(員)의 2/3나 되는 개조안을 무시하고 사신 5인이 퇴석 통고를 하고 불착한 대로 국호를 조선공화국로 정하여 새 국가를 만든 것을 성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ref>「創造派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東亞日報)』 1923년 6월 25일자.</ref> 7월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한국독립촉진회에도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 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 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였다. 8월에 조선의 관서([[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상하이교민단(上海僑民團)이 내지동포수재구제회(內地同胞水災求濟會)를 조직해 9월 26일에 수재의연금 110원을 동아일보사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ref>「同胞의 ㅁ愛! 해외각디동포의열렬한동정 가련한수재당한형뎨들에게」 『동아일보』1923년 10월 4일자 기사.</ref> 여기에 현정건의 이름이 실려 있다.
[[1924년]] 6월, 현정건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해 오는 조선인 학생들의 중국 사회 적응과 그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한 [[김규식|김규식(金奎植)]]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하이에서 [[1917년]] 여운형이 세웠던 인성학교(仁成學校) 내에 개설된 조선인 학생을 위한 예비교(豫備校, 예비강습소)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영어 과목을 맡아 가르쳤고<ref>이는 국내에도 알려져 신문에 「上海에 豫備講習」(『동아일보』 1924년 6월 6일자), 「豫備校 設立」(『시대일보』 1924년 6월 9일자) 등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ref>, 그 뒤 상하이 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된 뒤에도 여운형, 김종상(金鍾商) 등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9월에는 상하이교민단에서는 실시한 의사원(議事員) 총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ref> 재상해일본영사관경찰부(在上海日本領事館警察部) 『조선민족운동연감(朝鮮民族運動年鑑)』 1946년, 동문사서점(東文社書店)</ref> 11월에는 상하이에서 윤자영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 상하이한인청년동맹)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고 『횃불』, 『새길』 등의 잡지를 발간하였다.
이때 청년동맹회의 선언 문제로 [[의열단|의열단(義烈團)]]에서 시비를 걸어와 의열단측에서 윤자영을 구타하는 등 청년동맹회와 의열단과의 마찰이 있었는데, 의열단에서 먼저 자신들의 출판물 가운데 청년동맹회를 공격하는 글을 취소하고 청년동맹회에서도 성명서를 수정 발표하였고, 이때 청년동맹회 위원이던 윤자영ㆍ현정건 두 사람도 청년동맹회를 핑계로 일본공산당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사사로이 쓴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일시직권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되면서 이틀만에 복권되고 두 단체간의 시비도 일단락되었다고 한다.<ref>「上海淸年同盟 宣言問題 解決」, 『동아일보』1925년 1월 9일자.</ref>
- 현주엽 . . . . 4회 일치
트레이드 소식을 최인선 감독이 아닌 신문기자에게서 처음 듣게 된 현주엽은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를 통해 최인선 감독에게 대한 인간적인 실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현주엽의 트레이드는 현주엽과 최인선의 불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 매체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ref>스포츠투데이 1999년 12월 27일 [http://blog.naver.com/einer6623/50015480828 “현주엽 트레이드 진짜 이유 .. 현주엽 항명과 최감독의 단죄”]</ref> 이에 따르면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 당하고 난후 최인선은 패배의 책임이 현주엽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부상을 핑계로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보이콧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경기인 19일 신세기전에서 다시 현주엽은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였으나 이번엔 최인선의 보복이 이어졌다. 현주엽을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였던 23일 동양전은 현주엽에게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다.
현주엽은 화려하였던 개인성적에 비하여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0년대 그와 함께 대학농구 전성기를 보냈던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프로에 와서 대부분 한번 이상의 우승을 경험해 본 것에 비해 현주엽은 9년의 프로생활 동안 단 한번도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보지 못하였다. 99-00시즌 SK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팀을 우승시키는가 했지만 시즌 도중 트레이드되며 SK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고, 그 이후로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은 06-07시즌 LG에서 활약하고 있을때로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우승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의 심판 폭행사건이 얽히면서 KTF에게 패하고 만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경력이다.
* 발은 느리지만 70cm에 달하는 서전트점프 능력으로 골밑을 장악하고, 센터출신치고는 보기 드물게 드리블 능력과 아웃렛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고교 시절부터 한 경기 평균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시절부터 종종 멋진 덩크슛을 성공시켜 팬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다.
* 은퇴 후 사업을 하였지만, 17억원을 지인에게 사기당하기도 했다.
- 홍인한 . . . . 4회 일치
'''홍인한'''(洪麟漢, [[1722년]] ~ [[1776년]] [[7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다. 자는 정여(定汝), 본관은 풍산(豊山). [[예조]][[판서]] [[홍현보]]의 아들이고 [[영의정]] [[홍봉한]]의 이복동생이다. 혜경궁 홍씨의 이복 삼촌이 된다. [[홍국영]]의 일족이기도 하다. 당색으로는 [[노론]]이며 노론내 외척당의 지도자였다.
과거 급제 후 청요직을 거쳐 1757년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했으며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기생]]들의 춤과 노래실력을 트집잡아 [[곤장]]을 남발하고 즐겼다고 한다. 이는 중앙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성대중]]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승지, 사간, 대사헌, 호조와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후 이조, 병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두루 거쳐 1774년 의정부우의정, 1775년 의정부좌의정이 되었다.
그 후 승지, 한성부우윤, 대사헌 등을 지내고, 1762년 호남안집사(湖南安集使)로 순무하고 돌아왔다. 호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자헌대부로 승진,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6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1774년]] [[의정부]][[우의정]]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74년]] [[우의정]]에, [[1775년]]에 [[좌의정]]에 각각 임명되었으며, 1775년 세손(훗날의 정조)이 대리청정을 맡게 되자 이를 반대해 [[영조]]가 세손의 대리청정을 명할 때 세손은 세가지를 알 필요가 없다 강변하며, 승지와 사관의 대필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대리청정 뜻이 확고해지자 [[혜경궁 홍씨]]는 사전에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세손의 대리청정을 막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한중록]]에 의하면 대조의 뜻이 그러함을 편지로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인한은 벽파의 당론에 따라 벽파, 외척당, [[정후겸]] 등과 함께 세손을 반대하였고, 홍인한은 영조의 면전에서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다. 이후 [[정후겸]], [[심상운]] 등과 함께 [[홍국영]] 등을 모해하는 상소를 올렸다. 또한 부사직 심상운을 시켜 세손의 대리청정 반대 여론을 조장했지만, [[홍국영]]의 부탁을 받은 부사직 서명선이 역탄핵상소를 올려 논박했고 오히려 심상운은 유배되었다.
- 화완옹주 . . . . 4회 일치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년]] [[3월 9일]] ([[음력 1월 19일]]) ~ [[1808년]] [[5월]])는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와 [[영빈 이씨]]의 딸이다. 이름은 용완(蓉婉) [[조선 장조|사도세자]]의 친동생이자 조선의 제 22대 왕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후겸]]은 그녀의 양자이다.
처음에는 강화도 교동, 나중에는 육지인 경기도 파주로 유배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대신들의 처벌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를 듣지 않다가 [[1799년]](정조 23) 화완옹주의 죄를 없애고 용서하라는 하교를 내렸다.
순조실록에는 1808년 5월 17일 삼사에서 올린 글에서 정치달의 처가 죽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옹주의 사망일은 그 이전으로 사료되나 정확한 몰일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왕가의 전통상 졸기가 없고 무덤이 경기도 파주 유배지 인근이었던 것으로 보아 죽을 당시 죄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완옹주 및 정치달 묘]]》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있다. 2001년 12월 21일 파주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히나타 쇼요 . . . . 4회 일치
초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으로 본 카라스노 고교의 에이스 '작은 거인'을 동경해서 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유키가오카 중학교에 입학한 후 들어간 배구부에 부원은 자신 혼자였다.[* 실제로도 인원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부'가 아니라 동호회였다. 배구부가 된 것은 차후 1학년들이 입학한 다음 일.] 친구들에게는 여자 배구부라고/예쁜 여자 선배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원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근성으로 홀로 연습하기를 3년.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신입생이 세 명 들어와, 친구 2명[* 세키무카이 코우지(원래 축구부), 이즈미 유키타카(원래 농구부).히나타의 끈질긴 설득으로 대회에 참여.]을 포함해 경기를 할 수 있는 최소 인원수가 갖춰졌다. 그리하여 나간 생애 첫 공식전 1회전 시합 상대가 대회 우승 후보였던 키타가와 제1중학교였다. [[지못미]]. 시합 전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인 [[카게야마 토비오]]를 만나지만 ~~징크스의 시작~~ 그는 '배구에서 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히나타를 도발한다. 히나타는 '나는 작지만 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선배들 앞에서 카라스노의 에이스가 되겠다며 목표를 밝혔으나, 그 말을 전면 부정하던 카게야마와 티격태격하다가 나란히 배구부 입부를 거절당했다. 그 후, 3대 3 경기를 통해 카게야마와의 협력을 보여주고 배구부에 입부한다. 히나타는 실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배구에 관한 기술은 초보티를 간신히 벗은 정도. 서브나 리시브도 제대로 못하고, 자그마한 키와 몸집 등 불리한 면이 많지만, 경이적인 반사 신경과 순발력을 갖고 카게야마를 비롯한 동료들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를 하지 못하는 점이 카게야마가 세터로서 본래의 능력을 개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카게야마와는 호흡을 맞춰 '괴짜속공' 이라는 이상한 속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괴짜속공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히나타를 경계 시키게 만듦으로서 다른 선수가 득점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그래서 현재 경기 중 히나타의 임무는 '최강의 미끼'가 되었다. '미끼'라는 자신의 포지션이 '에이스'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껴 기죽기도 하지만 이를 꿰뚫어본 카게야마에게 한소리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게 된다.
[[네코마 고교]]와의 연습 시합에서 [[코즈메 켄마]]의 예측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네코마 고교에서 가장 민첩한 [[이누오카 소우]]에 의해 [[wiki:"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와의 속공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된 것. 그러나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믿고 계속 공을 올려 보내주나, 히나타가 평소와 달리 토스를 보고 스윙함으로써 공격은 실패한다. 그러나 카게야마가 다이렉트 딜리버리로 올려 주었던 공을 인 다이렉트 딜리버리[* 원래 카게야마는 히나타의 손바닥 핀 포인트에 맞춰서 바로 토스를 보내줬다. 왜냐하면 히나타가 제대로 스파이크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 이걸 약간이나마 시간차가 생기도록 토스해서 히나타가 스스로 판단해서 스파이크 할 수 있도록 한 것. 이걸 계기로 히나타는 보통의 속공과 괴짜속공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로 주어 다른 공격 방법을 찾아내었다.
- USS 피닉스 (CL-46) . . . . 3회 일치
이렇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영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1943년 7월,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을 [[카사블랑카]]까지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피닉스는 다시 태평양 전역으로 돌아온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스터 곶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으며, 1944년 1월에는 [[뉴기니]] 섬의 해안시설을 포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에는 [[로스니그로스]] 섬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3월에는 다른 연합군 순양함과 함께 일본군의 해안 포대를 깨부쉈다. 4월 22일에는 홀란디아[* 現 [[자야푸라]].]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는 근처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을 포격, 연합군을 위협할 수 없게 하였다. 5월에는 또다른 상륙작전들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초소를 초토화시켰다. 6월에는 해당 지역에 증원군을 수송하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 쫓아내었다. 7월에는 Numfoor[* Neumfoor라고 읽기도 하는 듯. 갓-구글님께서 한국어 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신다.]의 해안을 포격했다. 9월에는 말루쿠 제도의 [[모로타이]] 섬 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영국의 ~~찌라시~~황색 언론 [[더 선]]은 헤네랄 벨그라노의 피격 사실을 전할때 1면 헤드라인에 "'''잡았다!''': 우리 친구들이 포함을 격침시키고 순양함을 구멍냄"[* GOTCHA!: Our lads sink gunboat and hole cruiser]라고 쓰는 패기를 보였다. 이외에도 더 선은 포클랜드 전쟁 동안 "'''뒈져라 군사정부놈들'''"[* STICK IT UP YOUR JUNTA] 등의 부적절한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 강원 FC . . . . 3회 일치
초기 선수단 구성에 이을용, 정경호가 포함되어 상당한 이슈를 끌기도 했다. 이 둘은 강릉상고[* 現 강릉제일고] 출신으로 널리 퍼진 명성뿐만 아니라 농상전으로 강원도민에게 친숙한 선수들이었기에 초반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강원의 초기 돌풍을 일으켰던 공격수 [[김영후]]는 [[MBC]]에서 방영했던 [[맨땅에 헤딩]]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내셔널 리그의 공격수에서 K리그의 득점왕 후보에 이르기까지 그 활약이 상당히 인상깊었기에 그 이야기가 모티브를 제공했던 건 유명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드라마의 흥행은 망했다고 전해진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4화 . . . . 3회 일치
* 어린시절 기억과 현재의 신사를 비교해보며 감회에 잠기는 타이헤이. 우마루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 그러다 우마루는 자기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 돌아가는 길. 우마루는 자기도 나중에 가면 포켓햄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될까 생각한다.
- 고독의 요새 . . . . 3회 일치
여기에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무한 지구 위기 이벤트에서 미치광이 컴퓨터가 지구를 제 2의 [[크립톤]]으로 만들기 위해 전초기지로 만든 것이 고독의 요새이고 슈퍼맨이 [[크립톤]]의 과학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관리한다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요새는 슈퍼맨의 아버지 조 엘이 아들을 걱정해서 백업으로 준비해 놓아다는 설정으로 보인다. 슈퍼맨 영화 시리즈도 이렇게 설정을 잡아놓았고 조 엘의 정신을 본딴 AI가 존재해 슈퍼맨에게 조언과 힘을 준다. 또 그 안에 외계무기나 맹수들을 보관하는 케이지도 존재한다. 물론 긴 세월 동안 이런저런 고독의 요새 뒷배경이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에피소드마다 고독의 요새 위치가 시시때때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북극에 위치해 있다.
이런 SF틱한 설정과는 반대로 보안은 굉장히 심플한데 그냥 열쇠구멍에 열쇠 넣고 돌리면 들어갈 수 있다. 열쇠도 그냥 문 근처에 존재해서 구하기도 쉽다. 문제는 이 열쇠가 '''슈퍼맨을 제외한 존재는 도저히 들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사이즈도 더럽게 커서 구멍에 넣기도 힘들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단순한 열쇠 사이즈가 되었지만 무게가 몇 조(!) 톤이나 되어서 문앞 매트 밑에 넣어놨다.[* 보통 가정집 열쇠 보관하는 그 방식으로.] 슈퍼맨의 인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장치의 일종이었는데 아무래도 고독의 요새라는 간지나는 네이밍과는 안 어울려선지 지금은 완전 SF틱한 분위기가 되어 열쇠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NEW 52 이후 부터는 슈퍼맨의 목소리와 DNA 검사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고성국 . . . . 3회 일치
[[프레시안]]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홍성여]]의 둘째 사위이기도 하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8/005000000200408081534361.html</ref>
이후에는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4년]]에는 서울경찰청의 민간인 사찰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1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4-10-11&officeId=00028&pageNo=1&printNo=2034&publishType=00010</ref> 같은 해 5월에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던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 길》에서 《[[월간조선]]》과 논쟁하기도 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5260028911401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5-26&officeId=00028&pageNo=14&printNo=1907&publishType=00010</ref> 1995년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일간지의 '이승만 재평가'에 대해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21800289101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2-18&officeId=00028&pageNo=1&printNo=2153&publishType=00010</ref>
- 공명(배우) . . . . 3회 일치
||<#f9ffff> {{{#6482b9 '''출생'''}}} ||<(> [[1994년]] [[5월 26일]], [age(1994-05-26)]세 [[경기도]] [[구리시]] ||
[[대한민국]]의 [[배우]]. 5인조 남배우 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로, 아이돌 그룹 [[NCT]]([[NCT U]]·[[NCT 127]]) 소속 [[도영]]의 형이기도 하다.
2016년 tvN 월화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서브 남주]] 진공명 역을 맡아 직진연하남[* 직진연하남 수식어는 [[혼술남녀]] 이후 출연 한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도 이어진다.], 멍뭉남[[http://www.visualdive.com/2016/10/%eb%b0%95%eb%b3%b4%ea%b2%80-%ea%b3%b5%eb%aa%85-%ec%84%9c%ec%9d%b8%ea%b5%ad%ea%b9%8c%ec%a7%80-%ec%93%b0%eb%8b%a4%eb%93%ac%ec%96%b4%ec%a3%bc%ea%b3%a0-%ec%8b%b6%ec%9d%80-%eb%a9%8d%eb%ad%89%eb%af%b8/|#]] ~~공명뭉이, 공뭉이라고도 불린다~~ 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 규동 . . . . 3회 일치
메이지 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당시는 규메시(牛めし)라고 불렸다. ‘규동’이라는 명칭은 [[요시노야]](吉野家)가 1899년 창업되면서 붙여졌다. 다른 가게에서는 규메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기와 양파 이외에 두부, 파 등을 넣기도 하며, 생강 절임, 날달걀 등을 취향에 따라 곁들이기도 한다. 대개 생강 절임이나 소스는 무료, 하지만 다른 토핑은 돈을 받는다.
- 그린 애로우 . . . . 3회 일치
[[활]]과 [[화살]]을 써서 싸우는 궁수 히어로. 화살은 보통 화살만이 아니라 특수 장비이기도 한 트릭 화살이기도 하다. 화살에 따라 폭탄이 있거나, 글러브가 있다던가 하는 식. 이러한 화살을 써서 다양한 전투에 대응한다.
코스튬 컬러링은 이름에 어울리게 녹색이 주력. 무기인 활과 화살도 녹색이다. 이러한 녹색 이미지에서 유명한 궁수인 로빗 훗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과거 버전 중에는 로빗 훗과 많이 비슷하다.
- 기동전사 건담 . . . . 3회 일치
당시 만연했던 '로봇 프로레슬링'[* 매 화마다 특정 메카와 1대 1, 혹은 1대 다수로 일회성 대결을 펼치는 방식. '마징가 Z' 등을 떠올려보면 쉽다.] 플룻에서 벗어나 전쟁 서사적인 면을 다룬 스토리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마니아 층에게 어필하여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인기를 끌어모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로봇물에서 이른바 '슈퍼로봇'과 '리얼로봇'이라는 구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 21세기 시각에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옛날 로봇애니의 요소들도 많이 담고 있기도 한 '과도기적 작품'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21세기 작품들이 '옛날 로봇애니 요소'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유행은 돌고 돈다)~~]
* 1년 전쟁 : 우주세기 0079년에서 0080년 사이에 벌어진 지구연방과 지온 공국의 전쟁. 해당 작품의 배경으로, 초반에 지온 공국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지구권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기도 했으나 지구연방의 반격과 공국의 내분으로 인해 결국 지구연방이 전세를 역전시켜 최종 방어선인 아바오 아 쿠 요새 함락 후 종전 협정을 체결해 끝난다.
- 김경준(축구선수) . . . . 3회 일치
반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신갈고 수아레즈라고 불릴만큼 골 결정력이 우수하다. 개인기도 좋은 편으로 대학 시절에 상대 수비수를 개인기로 따돌리고 골을 기록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득점에 있어서도 꾸준함을 과시한다. 신갈고 9경기 연속골 기록이 이를 증명하며, 영남대에선 U리그 권역 득점왕, 추계대학연맹전 득점왕을 기록했었다.
롤모델이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이다. 인터뷰에서 자주 수아레즈를 닮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도 별명이 신갈고 수아레즈였다.
- 김광석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서울특별시|서울시]] 남창동 (서울) (남대문시장4길) <br/>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남창동 (서울) (남대문시장4길))
1964년 1월 22일, [[서울특별시|경기도 서울시]] 남창동 (서울) (남대문시장4길) 서울남대문시장 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현재는 [[연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 매 죽은 채 발견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가수金光石 숨져|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0700209130006&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07&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07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쪽=30|날짜=1996-01-07|확인날짜=2013-08-20}}</ref> 향년 31세. 자살로 알려졌다.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사리 나온 가수 김광석 불교신행 화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11400209122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6-01-14&officeId=00020&pageNo=22&printNo=2308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허엽 기자|쪽=22|날짜=1996-01-14|확인날짜=2011-02-13}}(PC 버전)</ref> 유족으로는 부인(4년 연하녀 서해순, 1990년 결혼)과 딸(김서연), 어머니(이달지), 큰누나(김광나), 둘째형(김광복), 작은누나(김광득)이 있는데 큰형(김광동)은 김광석이 군 입대 도중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김수영)는 2004년 별세했다. 딸 김서연은 1991년에 태어났고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2007년 사망한 사실이 2017년 9월 뒤늦게 밝혀졌다.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의 2016년 1월 23일, 1월 30일 방송분에서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다시 김광석 편을 하였다.
- 김규철(배우) . . . . 3회 일치
데뷔 초에는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가 인기를 끌면서 순한 인상의 소시민 이미지였다. 그런데 의외로 이 시기에 왕 역할도 많이 맡았다. 그러다가 서궁에서 [[광해군]] 역[* 그 [[이영애]]가 그를 모시는 상궁 [[김개시]] 역이었다.]을 맡으면서 [[악역]] 연기를 개척하여[[http://blutom.tistory.com/536|#]] 선악을 오가는 수많은 배역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서궁은 영 망했다-- [[드라마]] [[소설 목민심서(드라마)|소설 목민심서]]의 고뇌하는 지식인이자 외곬수 개혁가인 [[정약전]] 역을 맡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역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악역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때문에 사양하고 이순신의 친구인 [[임천수]][* 참고로 단역이지만 임천수의 아버지 역할은 배우 [[정진]]이 맡았고, 이 분은 [[조선왕조 500년]]에서 히데요시를 맡기도 했다.] 역을 맡았으나... 임천수가 [[흑화|악역으로 훌륭히 각성하여]] 돈이라면 매국도 서슴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속았다!-- 그 후에도 [[바람의 나라(드라마)|바람의 나라]], [[프레지던트(드라마)|프레지던트]] 등에서 지략이 뛰어난 악역을 연기하여 호평받았다. [[자이언트(드라마)|자이언트]]의 [[노갑수]] 역시 전형적인 털리는 악역(...) --체념하고 악역에 투신,-- 마침내 2015년에는 징비록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으로 캐스팅 확정! ~~악역을 넘어서 원숭이까지...~~
* 2009년 KBS 연기대상 특집 문학관 남자 단막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김동욱(배우) . . . . 3회 일치
||<bgcolor=#6482b9> '''{{{#white 출생}}}''' ||<(> [[1983년]] [[7월 29일]]([age(1983-07-29)]세)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안성대로) ||
이어 시트콤 못말리는 결혼과 영화 [[국가대표]]에 출연했고, 민들레 가족, 로맨틱 헤븐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형제가 돌아왔다 등의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 운동을 좋아한다. 취미는 스킨스쿠버. 인스트럭터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주로 [[알렉스(클래지콰이)]], [[신하균]]과 같이 한다 밝혔다. 같은 동호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인듯. 여기에는 [[김고은]]도 속해 있어서 열애설이 터지기도 했다. 정작 김고은은 [[신하균|다른 회원]]과 사귀었다(...) 또한 몸짱이지만 어째 출연하는 영화마다 근육이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근육을 빼라고 지시를 받았다.
- 김소혜(1992) . . . . 3회 일치
* 상위 문서 : [[배우/한국]], [[경기도/인물]]
|| '''출생''' || [[1992년]] [[3월 1일]], [[경기도]] [[김포시]] ||
촬영 후 김소혜는 소감을 밝혔는데 자신의 연기가 성소수자에게 행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고 말하였다. 수연의 감정이 애절하게 다가왔다고 평하였다. 수연의 사생활의 누군가에 의해 짓밟히고, 은빈에게 매달리고 울기도 했지만, 은빈을 위해 쓸쓸히 퇴장하는 장면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수연은 은빈을 정말 사랑해서 떠났지만, 김소혜 자신이 수연이라면 사랑하는데 떠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신은 딸기우유를 급우에게 맞은 장면이라고 한다. 날씨도 추웠고 그 장면을 반복 촬영하느라 몸살이 왔다고 하였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43970|TV리포트]]
- 김승관 . . . . 3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본즈|2군 홈런왕]]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해 온 팀이자 고향 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2004년 7월 12일 투수 [[노장진]]과 함께 외야수 [[김대익]], 투수 [[박석진]]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16일에는 친정 팀 삼성을 상대로 [[투수]] [[임동규(야구)|임동규]]에게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롯데의 스코어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은퇴 후 [[박영진(야구)|박영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모교인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잠시 투수코치를 겸하기도 했다.
이후 롯데에서 이런저런 보직을 맡다가, 2017년 시즌 초 타격 부진으로 인해 [[훌리오 프랑코]] 타격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올라왔다. 시즌 후반기에 메인 타격코치였던 [[김대익]]이 외야수비코치로 보직이 바뀌자, 1군 메인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됐다. 시즌 막판에는 [[이승엽]]의 사직구장 은퇴 투어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 김연수(작가) . . . . 3회 일치
초기 작품에서는 젊은 날의 상실감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혹은 <꾿빠이, 이상>,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밤은 노래한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첨가하기도 한다. 굉장히 유려한 문장이 특징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렵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반대로 독자들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역할로도 작용한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고드는 문장을 구사하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어로 번역하기 편한 글을 구사한다고 하며, 동시에 번역투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사실 내용도 소설을 가볍게 읽는 사람들이 읽기엔 지나치게 현학적인 데가 있다. 김연수는 문학적 허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작가가 오히려 풍부한 독서를 바탕으로 문학 측면에서 어렵게 씀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 [[달리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여러 인터뷰에서 달리기 예찬론을 펼친 바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 김정태(영화배우) . . . . 3회 일치
||<#66CDAA> '''{{{#ffffff 출생}}}''' ||<(> [[1973년]] [[1월 17일]][* [[음력]] [[1972년]] [[12월 13일]].] ([age(1973-01-17)]세), [[경기도]] [[연천군]] ||
허리 디스크로 부르는 추간판탈출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며 박수건달 촬영이 끝난 뒤에 요통 때문에 주변 배우들에게 짜증을 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7번방의 선물 당시에는 허리 보호대를 두르고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 김혜선(배우) . . . . 3회 일치
요즘은 억센 아줌마 캐릭터로 알려진 [[배우]]지만,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푸른 교실>과 [[조선왕조오백년]]-한중록,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김혜수, 하희라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기세를 이어 1993년 [[걸어서 하늘까지]]의 [[히로인]]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93년의 대히트 드라마였고 그녀의 연인 역할로 나왔던 주인공이 그 유명한 터프가이 [[최민수]]였다.[* 최민수와는 앞서 1991년 [[무동이네 집]]에서 커플로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왔었다. [[무동이네 집]]에서의 최민수가 이후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을 연상케 하는 허당 이미지였다면 [[걸어서 하늘까지]]의 배역은 전형적인 터프가이 반항아였던 것에 비해, 김혜선은 두 작품 모두 청순가련 형 여주인공이었다.] 더불어 김혜선의 인기도 매우 높아졌었다. '김혜선 과거 사진'으로 검색해 보면 그 시절 사진을 찾아 볼 수 있다.
~~의외로 [[발연기]]가 심한 편이며, 특히 [[악역]]을 맡았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청담동 스캔들]]의 강복희 역할을 맡았을 때는 특유의 어색한 분노 연기와 머리 스타일(...) 때문에 '''[[앵그리버드 시리즈|앵그리혜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김홍미 . . . . 3회 일치
역사와 제자백가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경연에서 반드시 옛 사례를 인용하여 당시의 일을 정정함으로써 왕의 찬탄을 받았다. 선박 제조 기술이 있어서 [[조선 선조|선조]]는 그에게 [[판옥선]] 설계 제조와 [[거북선]] 설계 제조 업무를 맡기기도 했다.
[[1589년]]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누군가 그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지목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파면되었다. 이후 [[상주]]에 내려가 몇년 간 집에서 칩거하였다. 그 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뉠 때에는 그는 [[남인]](南人)이 되었다. [[1589년]] 그에 대한 복권 여론이 나타나자 [[사헌부]]가 이를 지적하며 그가 이진길(李震吉)의 집에서 유숙한 일을 들었고,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뒤 복관되어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그해 [[7월]] [[경상좌도]][[도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어머니 창녕조씨의 상을 당해 사직하였다. 그러나 상중으로 내려간 뒤에도 선조는 [[정경세]]를 시켜 그와 그의 형의 안부를 묻고, 그의 학식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도 했다.
[[1597년]](선조 30년)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승진하였다. [[1597년]] [[승정원]][[동부승지]]로 있을 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을 탄핵하는데 참여하여 [[이순신]]을 파면하게 하고, [[원균]](元均)을 통제사로 삼게 하는 데 가담하였다. 한편 선조는 그에게 명을 내려 [[이순신]]을 잡아오도록 지시했다. 이때 [[이순신]]이 [[원균]]의 성인인 아들을 어린아들인데 없는 공을 만들었다는 거짓 장계를 내린 것을 선조가 그에게 지적하기도 했다.
- 김효원 . . . . 3회 일치
[[이황|퇴계 이황]]과 [[조식 (1501년)|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훈구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소장파 관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심의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다음해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천거되자 외척임을 들어 적극 반대하여 사림을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갈라지게 하였다. 노수신과 이이의 조정책으로 외직으로 전출된 후 10년 간 한직(閒職)을 전전했다.
생원시를 거쳐 [[1565년]] 알성 [[과거 제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wa-bu.net/bbs/zboard.php?id=news&page=11&sn1=&divpage=1&category=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145 윤종일교수의 남양주역사기행(26)- 동인(東人) 김효원(金孝元)(남양주타임즈, 2007.01.26자] </ref> 그는 퇴계 [[이황]]의 문하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황]]의 제자들 중의 한사람이며 [[김종직]]의 학통으로, 남명 [[조식]]의 문하에도 찾아가서 배웠다. 스승 중 한사람인 조식이 죽었을 때는 "방향 모르는 날 가르쳐주셨고(誘掖回迷走)/ 날 채워서 옳은 사람 되게 했다네(充盈見實歸)/ 인문이 이제는 끝나고 말았구나(人文今已矣)/ 이제 우리 도를 누구에게 의지할꼬(五道竟何依)?"라는 만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학문상으로는 [[김종직]]-[[이황]]의 학맥과 [[조식]]의 학맥을 두루 계승하였다.
그는 문을 닫고 봄에 직접 꼬은 신발 한 켤레로 십여 년 이상 신었다 한다.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윤원형]]의 사위 [[이조민]]의 친구인 탓에 한때 [[윤원형]]가의 식객으로 있기도 했다. 그 뒤 [[조선 명종|명종]]말엽 [[윤원형]](훈구파)일파가 몰락하고 사림파가 크게 진출할 때 [[이황]]과 [[조식]]의 문인인 덕에 신진사류의 한사람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1564년(명종 19)의 진사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바로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으로 수학하였다. [[1565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3회 일치
냉전이 종식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던 1986~1987년에 걸쳐서 사학계에서는 나치 독일의 전쟁 범죄에서 국방군의 역할을 추궁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 열린 '함부르크사회조사연구소'에서 주최한 "인종 말살 전쟁. 1941~1945년 독일군 범죄 전시회"가 열리면서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대중에 밝혀졌다. 전시회는 1999년에 일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1999년 까지 90개 가량의 도시에서 열리면서 독일 사회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1996~1997년에는 전시회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기독교민주당]], [[기독교사회당]], [[민족민주당]](NPD), 그리고 퇴역군인 단체가 나섯다. 하지만 결국 국방군 전쟁범죄는 공식적으로 추궁받게 되었고, 마침내 독일 국방부가 국방군의 전쟁범죄 참여를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전쟁범죄는 숨기는 반면, 소련군의 전쟁범죄는 철저하게 기록하고 묘사하여 소련군을 전쟁범죄 천국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 남보라(배우) . . . . 3회 일치
2006년 [[KBS 2TV]]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하였지만 극 중에서 비중이 작은 역할이었고 시트콤 자체가 큰 재미가 없어서 [[망했어요]]..... ~~그리고 이 때는 [[발연기|연기도 더럽게 못 했다]]. 차라리 시트콤이 망한 게 본인의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될 정도로..~~
[[2008년]] [[인간극장]]에서도 12남매의 장녀로 출연한 바 있다. [5부작 - 열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 이후 남자애 1명이 더 태어났다. (남보라는 종종 우리집 13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매주 새벽 기도를 드릴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그리고 개신교 관련 악세사리를 항시 차고 다닌다고 한다.
- 닥터 시바나 . . . . 3회 일치
[[아이박]] 등 샤잠의 다른 빌런들과 동맹을 맺기도 했으며, 이중에는 [[블랙 아담]]과 [[미스터 마인드]]도 있다.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에 가입하기도 했다.
설정에 따라서는 재벌 설정도 붙었으며 이 시기에는 [[렉스 루터]]에게 주식 사기를 치기도 했다. 가족들도 있다.
- 둠 패트롤 . . . . 3회 일치
본명 리타 파(Rita Farr).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할리우드]] 여배우로서 활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영화 촬영하다가 이상한 화산 가스에 노출되었고, 그 영향으로 자신의 몸 크기를 100피트까지 늘리거나 몇 인치까지 줄일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나중에 능력이 발전하여 신체 일부분의 크기만을 조절하기도 한다. 신체를 [[거대화]]화는 이미지도 있다.
본명 래리 트레이너(Larry Trainor). 비행기 테스트를 하다가 대기중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초능력을 얻었다. 자신의 몸에서 음전하로 충전된 빛에 둘러쌓인 그림자 같은 [[분신]]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는데, 분신을 분리한 상태에서는 매우 약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분신을 꺼내는 것은 60초 동안만 가능하다. 또한 사고의 영향으로 [[투명인간]]이 되버려서 평소에는 붕대를 감고 있다. 능력 때문에 이런 이름인 것 같지만 사실 이름 그대로 네거티브한 성격이기도 하다.
자신은 저스티스 리그와 달리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메타휴먼을 위한다고 루터에게 강변한다. 다른 멤버들은 치프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일부러 다른 멤버들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른 멤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존재라고 반복해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위협하기도 하는 등 정말일지는 의문스럽게 하는 인물. 일단 치프에 대한 묘사는 치프 스스로의 말과 루터의 말이 엇갈리고, 리붓 이후의 치프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스티스 리그와 대면한 에피소드에서 보인 행동이나 내뱉는 말들을 보면 최소한 지금의 그는 확실히 영 아닌 인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둠 패트롤 멤버 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혹은 진짜 괴물인 인간.
- 레킹 크루 . . . . 3회 일치
후드에게 고용되기도 했다.
주무기는 마법의 쇠 지렛대. 그냥 휘두르기도 하지만 특수한 힘이 있어서 [[방어막]] 생성, [[텔레포트]], 환영 생성, 에너지 블라스트 발사, 작은 지진 생성, 소유하려는 사람의 정신을 조종 등 강력한 무기다.[* 근데 마블에서는 이런거 꽤나 흔히 있지 않나...?]
레커처럼 자신만의 무기로 건물해체용 [[철구]]로 무장하고 있다. 철구는 에너지 블라스트를 발사한다. 한 때는 특수한 갑옷을 착용하기도 했다.
- 로라 로라 . . . . 3회 일치
로라는 에이스 파일럿으로써의 자신과 조신한 자신을 구분짓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에이스로써의 로라는 보쿠를 사용하는 보쿠캐릭터이기도 하다.
역대 건담 히로인들은 세이라를 시작으로 미친듯이 까이는 것이 대부분임을 생각해 봤을 때, 로라에 대한 안티팬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건덕들에게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건담의 히로인들은 까야 제맛~~
구엔의 정략적 선택은 효과가 발군이라서 지구와 문레이스 일부를 제외하고 일반 병사들에게 수염([화이트돌])의 파일럿 = 로라라는 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 구엔의 사심도 들어가 있는 것이 구엔은 로랑을 로라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길 바랬던 것이 투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의 존재로 구엔은 빼도박도 못하는 ~~[[로리콘]]~~[[쇼타콘]]으로 확실시되었다. ~~잠깐. 첫 만남때가 로라가 15살때잖아?~~
- 로버트 켈리 . . . . 3회 일치
* 수업 종강 이후에 종종 학생들이 교수의 집에 찾아가서 영화를 보고, 피자를 먹으며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무비 나이트'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 가정적인 성격으로서, 사적인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으나, 부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고 하며,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시사영어연구회 동아리의 스피치 콘테스트 심사의원을 거절하기도 했다.
- 롬니아 제국 흥망기 . . . . 3회 일치
* 소피 : 사이파카르의 시녀. 유사시에 전쟁터에서도 수발을 들 경우에 대비해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 기술도 연마했다.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의외로 가차없는 성격이기도 있다.
* 제피 : 소피의 동생으로 여장남자. 그 존재 때문에 사이파카르는 실은 남색 취향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귀여워서 다른 여자들에게 성희롱당하기도 했다. ~~외모와 달리,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지녔다.~~ 누나를 매우 잘 따르는 시스콘.
- 마기/349화 . . . . 3회 일치
신드바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 이들이 내놓은 의견은 저마자 근거도 있고 어느 정도 타당했지만 분명히 어느 의견이 옳다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알라딘은 벽을 부순다면 대체 어디까지 부술 것인지를 지적했다. 아르바는 일 일라 같은 존재들을 단순한 에너지체로 취급한 알라딘이나 우고 등을 "거만하다"고 까며 그분에겐 의지가 있고 자신에겐 그게 들린다고 주장했다. 우고는 "같은 인격체"일 뿐이라는 아르바의 주장에 반박해 "상위의 존재들은 하위 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못박고 신드바드의 말대로 세로의 벽을 부숴 그들을 타도해야 한다 주장한다. 아르바는 여기에 반박, 계속 솔로몬이 한 것처럼 상위의 신을 쓰러뜨리고 그 힘으로 새 세상을 만든자면 자기도 세상을 계속해서 멸망시킨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함께하면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다던 알리바바. 그리고 자신이 신드바드에 비해 개인적인 역량은 떨어짐을 인정하기도 했던 알리바바. 그는 또 이런 말도 했었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 . . 3회 일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프랜차이즈.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영화만이 아니라 영화 기반 [[만화]], [[드라마]]를 포함하는 배경 세계 공유 프랜차이즈다. 케빈 파이기가 총지휘를 맡고 있다. 줄여서 MCU라 부르기도 한다.
큰 인기를 얻고있다보니 영화의 요소가 코믹스에 반영되기도 한다.
*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이기에 마블의 캐릭터와 세력, 설정이 등장하며, 내용 중에는 코믹스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으나 그렇다 해서 코믹스를 100% 반영하지는 않고, 그렇기에 호불호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코믹스에서 아이디어를 얻기에 전혀 상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코믹스에 나온 것을 기본 소재로 두면서 MCU에서 독자적인 전개를 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 맥스 페인/줄거리 . . . . 3회 일치
트리오와 그 부하들도, M79 유탄발사기도 맥스를 막을 수 없었다. 맥스는 펀치넬로 저택을 지키는 마피아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모나 색스-리사 펀치넬로 쌍둥이 자매 중 한명이 엉망이 된 채로 침대 위에 죽어있는 광경도 목격한다.
맥스에게 발키리를 주입한 여자는 부하들을 데리고 "콜드 스틸"이란 곳으로 가려고 했다. 맥스는 그 일당이 자리를 뜨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다.
맥스는 미셸은 포옹한다. 미셸은 사무실에서 바이킹에 관한 이상한 메모를 봤다고 말한다. 맥스는 미셸에게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으니 저녁에 얘기하자고 말한다. 포옹을 나누는 둘 뒤에서 또다른 맥스가 나타나 "타락천사의 살"[* The flesh of fallen angel. 작중 극중국인 주소불명(Address Unknown)에서 등장하는 분홍색 플라밍고의 대사. 잭 루피노를 비롯한 발키리 중독자들이 읊조리는 소리이기도 하다.]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 문희(배우) . . . . 3회 일치
|| 출생 ||<(> [[1947년]] [[7월 16일]] ([age(1947-07-16)]세), [[경기도]] [[안산시|상록구]] ||
|| [[원미경]] || [[이미숙]] || [[정애리(배우)|정애리]][*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를 참고바람.] ||
나이드신 분들에겐 귀티나는 외모의 대표로 선호받는다. 최근 노년에 여성지 화보로 모습을 비추기도 했는데, 우아하게 나이든 모습을 자랑한다.
- 미스터 아톰 . . . . 3회 일치
외형은 대체로 머리 부분이 뾰족한 모습이며 등장 작품에 따라선 보다 기계적인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머리 부분만 레이싱카에 붙여서 등장하기도 했다.
[[미스터 마인드]]의 부하이며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의 멤버이기도 했다.
- 박경석(1933) . . . . 3회 일치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후반부터 위관, 영관급 등 연간 100명의 장교들이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에 군사학 유학을 떠나는데, 여기서 배운 자유진영의 선진 군사학은 귀국 후, 전술 교관으로서 후배 장교들의 군사 지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한국군의 현대화에 있어 양적 팽창에 이어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후에 월남전에 대대장으로 참전하면서 전승 행진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군 위관, 영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은 한국군의 현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전쟁 전후, 전쟁으로 인한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군은 1950년대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으로, 질적 성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선진 교육문화를 배워 온 일부 장교들의 엘리트심 발동으로 5.16이라는 쿠데타를 잉태하기도 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와 [[박정인]] 장군의 회고록 풍운의 별에서도 1950년대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군사 유학 도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1972년 10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대령과장으로 있던 박경석 대령에게 당시 실세 중에 실세 육군 수경사령관 [[윤필용]] 사령관의 참모장 [[손영길]] 대령이 찾아왔다. 육사 12, 13기 출신의 신참 대령들의 연대장 가용 청탁 쪽지였는데, 박경석 대령은 이 쪽지의 명단의 인물들을 대차게 거절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참혹했다. 한달 뒤, 박경석 대령은 거의 확실시 되던 준장 진급에서, 진급에 한참 밀리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인 김성배 대령 준장 진급자 명단이 바뀌었다. 그후 2번이나 연거푸 준장 진급 누락끝에 진급이 된 박경석 준장의 첫 보직은 [[6사단]] [[부사단장]] 겸 [[DMZ]] 내에서 발견된 땅꿀 특수개척팀장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92300209105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3-09-23&officeId=00020&pageNo=5&printNo=22296&publishType=00010|박경석 장군의 준장 진급 비화]][* 여기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창군 및 초창기 한국군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던 진급문제에 관해서다. 물론 후자에 기술하겠지만, 이 고질적인 진급문제가 [[5.16]]과 [[12.12]] 일어났던 원인이기도 했다. 창군과 한국전쟁으로 군은 양적 성장에 힘입어 장교들의 진급이 빠른편이었다. 소위 달고 몇개월 후에 대위, 소령 더구나 전쟁으로 인해 단숨에 영관급에서 장성으로 진급하는 일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이러한 초고속 진급은 멈춰졌으며, 특히나 [[군사영어학교]] 출신 70여명 대부분이 장성으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자리를 계속하여 번갈아 앉는 사태가 생겼다.--대표적인 인간들이 [[정일권]]과 [[백선엽]]이다. 이들은 대장 진급 후에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자리를 번갈아 2번씩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아래 후배 장교들의 불만과 원성이 쌓여갔으며, 특히나, [[육사 5기]]의 대령급과 [[육사 8기]]의 중령급에서 그 불만이 많았다.--특히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이후 정규 육사 출신들과 단기 육사 및 비육사 출신간의 진급문제가 두드러졌다. 박경석 장군 같은 경우에도 1950넌에 소위 임관후 전쟁이 끝나자 대위로 있었는데. 1955년 갓 소위 임관한 정규 육사 11기생들이 1970년 후반 영관급 대 장성급으로 진급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지낸 [[최갑석]] 장군의 증언과 그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 변현제 . . . . 3회 일치
2010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STX SouL]]의 4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2012년 4월 Tving 스타리그 8강 진출로 2012년 6월 Kespa 랭킹이 대폭 상승하였다. 그러나 스타2에서 부족한 실력과 약점을 많이 보여 한때 KeSPA랭킹이 가장 높았을 때에 비해 10계단 정도 낮았다. 변현제는 패배만 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때문에 '패배왕 변현제'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브루드 워]]에서는 저그전에 강한 프로토스중 한명으로, 2012 스타리그 듀얼토너먼트에서는 자신보다 랭크가 높던 [[박재혁 (프로게이머)|박재혁]]과 [[김성대 (프로게이머)|김성대]]를 꺾고 16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포스트 김택용'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종목이 스타2로 완전 전환되며 유명무실한 별명이 되고 말았다.
- 붐(연예인) . . . . 3회 일치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일본인]] 패널 준코와 사귄 적이 있다는 고백을 했다가 당사자인 준코가 미니홈피에 "당신이랑 사귄 적이 없는데요..." 라고 딱 잘라 말해서 완전 새가 되기도 했다.[* 일부에선 준코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단 둘이서 어디 놀러가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붐은 그 정도면 사귄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있다.] 덕분에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선 연신 '준코! 준코!' 를 외치며 놀려대는 [[김구라]]와 [[신정환]]에게 [[관광]]타고 착잡한 표정으로 ''''제가 경솔했습니다'''' 라는 말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준코 사건은 이때 개그 소재로 쓰이며 오히려 이미지 세탁에 도움을 준 편.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었던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줄여서 스친소)' 에서 [[이윤열]]을 험하게 다룬 것으로 다시금 화를 자초했다. [[이혁재]]의 친구로 나온 이윤열에게 ''''16강에서 탈락한다''''는 [[농담]]을 던진 것. 이혁재가 이윤열이 16만 명 넘는 팬클럽도 지닐 정도라고 하자 바로 '8강 진출 축하드린다' 고 즉시 말을 바꾸었다. 어느 쪽이건 개그성 발언이었으나 다음주 벌어진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전 이윤열은 [[허영무]]에게 접전 끝에 석패했다. 이 외에도 "연봉이 4억인데 [[PC방]]비만 3억", "30년 전에 유행하던 춤을 추고 있어요!" [* 이 말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윤열이 민망해 하고 분위기도 흐려질까봐 던진 멘트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같은 [[막말]]까지 했다.
참고로, 자기가 직접 이야기 하기전에 한 연예계 관련 기자가 냄새를 맡고 취재를 시작했으나 ''' 전진이 "다 지난 일이고 좋은 동생이니까 그냥 덮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기자 [[본인]]도 당사자가 저러니 취재할 수가 없었다고...[* 다만, 정황상 전진이 진짜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이후 논란이 일어나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저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일로 [[문희준]] 뺨칠 정도로 붐의 안티가 대거 생성되었다.[* 근데 문희준과는 본질이 틀린 것이, [[본인]]의 경솔한 행동도 있지만 당시 "남들이 까니까 나도 깐다"는 식으로 이유없이 까이기도 했다. 또한 문희준은 붐처럼 명백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적도 없다. 게다가 문희준은 무엇보다도 [[군대]]에 갔다 온 이후로는 호감남이 되었다. --근데 문희준도 [[결혼]] 과정에서 까발려진 일부 것들 때문에 또다시 엄청난 [[안티]]가...--] 신화창조들 중에서도 [[코스프레]]하는 붐을 본 사람이 있던 것이다. 물론 전진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문제 자체야 없었지만, 정작 모르는 사람들은...
- 블랙 클로버/111화 . . . . 3회 일치
* 노엘은 워낙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은 탓에 별다른 기억이 없었다. 주위에서도 그녀에게 어머니에 대한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메레오레오나는 생각 끝에 조금 이야기를 해주는데, 뜻밖에도 대단히 강한 여전사였다 한다. 메레오레오나와 자주 대련하기도 했는데 전장에선 무패를 자랑했던 그녀가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시에 실버]]. 강철의 전희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 남탕 쪽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레오폴트 버밀리온]]이 [[유노(블랙 클로버)|유노]]를 상대로 시시한 경쟁심을 발동했다. 그의 쿨한 태도를 무너뜨려 주겠다고 물온도를 올려대기 시작한 것. 레오폴트가 나름대로 용을 쓰는데 유노는 빰을 뻘뻘 흘리면서도 "완전 괜찮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때 [[아스타(블랙 클로버)|아스타]]가 끼어들어서 그 허세를 폭로한다. 쿨한게 아니라 단순히 지는게 싫은 성격. 그렇게 까발린 주제에 자기도 지고 싶지 않다며 참기 대결에 끼어든다. 정작 유노는 바람 마법으로 물을 식히다가 적발, 자기도 마법의 힘을 쓰는 건데 뭐가 잘못됐냐고 뻔뻔하게 나온다.
- 생령 . . . . 3회 일치
죽은 사람의 영혼을 사령이라고 하는 반면, 살아있는 사람이 육체를 떠나서 날아다니는 것을 생령이라고 한다. 생령은 사령과 마찬가지로 어떤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현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생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한 감정에 따라서 날아가기도 하며, 이런 경우 [[도플갱어]]처럼 본래 본인이 있던 곳과 전혀 다른 장소에서 본인이 목격되기도 한다. 증오나 질투 같은 강한 감정을 품고 생령을 날리면, 그 대상이 되는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 서강준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 <ref name="tvreport">{{뉴스 인용|제목=[입덕안내서] 서강준, 늦기 전에 ‘갈키색’ 눈동자에 빠져라|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831085|출판사=TV리포트|저자=양지원|날짜=2016-01-21|확인날짜 =2017-09-07}}</ref>
서강준(본명 이승환)은 1993년 10월 12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고산로724번길)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누나와는 연년생이다.<ref name="tvreport" /> 그는 학창시절까지 계속 에서 성장하였고, 2학년 때 [[말레이시아]]에서 1년 7개월 동안 유학하다가 1학년때 귀국했다.<ref name="10아시아"/> 이후 재학 시절에 “뭐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쇼에 서보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에 고등학교 3학년 때 2011 F/W 서울 패션 위크에서 런웨이를 끝으로 2~3년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ref name="머니투데이">{{뉴스 인용|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0308310735776&type=1&outlink=1|제목='발견!' 서강준, 국민 연하남의 가능성(인터뷰)|저자=김현록|날짜=2014-05-05|출판사=머니투데이|확인날짜=2014-05-17}}</ref><ref name="네이버">{{뉴스 인용|제목 ='보그'가 선정한 2014년의 프레시맨-2 - INTERVIEW|url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098&contents_id=51180|출판사=[[네이버]] 매거진캐스트|저자=[[보그]]|날짜 = 2014-03-01|확인날짜=2014-05-17}}</ref> 서강준은 또한 그 당시에 바빠도 밤마다 영화는 한 두 편은 꼭 챙겨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겨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ref name="머니투데이"/> 당시에는 처음 접하는 연기가 어려웠지만 새로 접하는 연기의 매커니즘이 신기했고,<ref name="네이버"/> 무엇보다 새로 창조해나간다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고 한다.<ref name="10아시아"/>
2015년 서강준은 [[MBC]] 대하 드라마 《[[화정 (드라마)|화정]]》에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어 소신과 명석함을 지닌 꽃도령 홍주원 역을 맡아 6개월여동안 최종회까지 대장정을 소화해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2016년에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드라마)|치즈 인 더 트랩]]》에서 ‘츤데레’ 매력남 백인호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노 천재로 까칠한 겉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백인호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ref>{{뉴스 인용|제목=서강준, 물오른 4년차 '치인트'로 폭발|url=http://m.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123528|출판사=한국일보|저자=황지영|날짜=2016-01-20|확인날짜 =2017-09-07}}</ref> 그는 실제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예능, 해외 팬미팅 등에서도 간간히 연주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치인트’ 서강준, 여심저격 피아노 신 진실 밝혀…“그 정도 실력 안돼”|url=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E2MDEyODEwMzQyMzEzNjY3MC5odG0=&ref=m.search.naver.com|출판사=스포츠한국|저자=김수민|날짜=2016-01-28|확인날짜 =2017-09-07}}</ref> 2016년 11월, 서강준은 대한민국 차세대 스타와 그를 둘러싼 연예계 일상을 그린 100% 사전제작으로 제작 된 [[tvN]] 드라마 《[[안투라지 (2016년 드라마)|안투라지]]》에서 연예인들의 연예인, 가장 핫한 배우 차영빈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개연성 부족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협화음으로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미드 리메이크' <안투라지>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36516|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윤현|날짜 = 2016-12-26|확인날짜 =2017-09-07}}</ref>
- 세종 . . . . 3회 일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한 왕이기도 하며,북방의 여진족을 경계해 이징옥과 김종서를 보내 정벌하기도 했다. 음악(예악), 과학 기술 분야에도 힘을 쏟은 등 다방면에 걸쳐 주요 업적을 주도하여 조선 왕조를 기반에 올려놓았다. 본인도 독서와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신하들도 그 학문적 깊이에 밀려 쩔쩔맬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정력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직접 일을 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섭식 문제(육식을 너무 좋아했다)와 겹쳐 각종 성인병에 시달려 고생하였다. 이 때문에 만년에는 세자(후의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기도 하였다.
- 손지창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분류:손지창]][[분류:1970년 태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분류:광주시 (경기도)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손지현(배우) . . . . 3회 일치
||<#7C43B1><:>{{{#FFFFFF '''출생'''}}}||[[1990년]] [[1월 9일]], [[경기도]] [[성남시]]||
* 포미닛의 트래블 메이커에서 씨스타 멤버들과 포미닛 멤버들이 합세해 지현을 화나게 해보자는 몰래카메라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대응이 너무 착했다. 다솜과 소유가 지현이 만든 피자밥이 맛이 없다고 태클을 걸자 "아무래도 다시 만들어야 될 것 같다." 라면서 다시 만들러 갔다(...). 이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멤버들이 몰래카메라를 그만두기도 했을 정도. 다만 이 에피소드에서 [[현아(가수)|실세]]는 출연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 포미닛이 해체할 때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ate의 가사의 일부를 올린 사진이 있었는데, 이때 솔로 활동으로 홀로 [[큐브엔터테인먼트|큐브]]와 재계약한 [[현아(가수)|현아]]와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이때 지현 이외에 나머지 3명도 전부 [[현아(가수)|현아]]를 언팔하였다. 그 덕분에 재계약 건으로 사이가 나빠진 게 사실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된 바는 아니다.]
- 송창현 . . . . 3회 일치
=== 데뷔 시즌 시작하기도 전에 트레이드 ===
* 한화의 경기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경기를 보러 오기도 하는데, 경기 상황이 영 좋지 않게 돌아가면 안절부절못하시는 게 심히 안습하시다(...). [[부모]]의 마음은 모두 다 저렇다는 걸 보여주시는 것 같기도.
- 송호창 (1967년) . . . . 3회 일치
* [[2012년 5월]] ~ [[2016년 5월]] [[대한민국 제19대 국회|19대 국회의원]](경기도 의왕시·과천시)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 19대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경기도|경기]] [[의왕시의 국회의원|의왕시]]·[[과천시의 국회의원|과천시]] | 민주통합당 | 57,120 표 | 55.09 | 1위 | 당선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의왕시·과천시|초선]] }}
- 슈퍼맨 . . . . 3회 일치
총알 따위는 튕겨내는 묘사를 위해 쓰일 뿐이며 외계인의 무기도 그다지 쓸모가 없을 때가 있다.
시력, 청력을 포함해 모두 뛰어나다. 청력의 경우 지미 올슨이 쓰는 시계와 관련한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데다 슈퍼히어로의 대명사격인 슈퍼맨이다보니 모티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보면 슈퍼맨 닮았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캐릭터도 상당히 많다.
- 슈퍼맨 리벤지 스쿼드 . . . . 3회 일치
환상을 다루며 비행능력 등도 있다. 프로젝트 캐드머스 관련 캐릭터이기도 하다.
[[렉스 루터]] 만큼은 아니지만 70년대에 등장한 꽤 오래된 캐릭터로 슈퍼프랜즈, [[로이스 앤 클락]], [[스몰빌]]에도 등장. [[저스티스 리그]] 애니메이션에서도 잠깐 등장했는데 그가 확보해둔 [[클레이페이스]]를 끌어들이려는 [[고릴라 그로드]]의 빌런 팀에게 습격받기도 했다.
사이보그 여성. 메인프레임(Mainframe)의 멤버이기도 하다.
- 신동미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주연작 영화 《'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전주 국제'''영화제''' 한국 단편영화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 신성우(가수) . . . . 3회 일치
미소년 → 미남 → 미중년 테그의 올바른 예시이다. 조각같은 외모, 키,기럭지, 허스키한 목소리[* 신성우 본인 말에 의하면, 원래는 미성의 고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나 로커의 보이스를 만들기 위해 [[담배]]를 많이 피워 [[골초]]가 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면서 만든 목소리라고 한다.], 초콜릿 복근의 탄탄한 몸매.[* 라커 활동시엔 그런 몸매는 아니었고, 나중에 단련한 것이다.] 실로 곱게 늙는다는 말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중년|꽃중년]].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다만 하나 부족한 게 하나 있다면 유명세. 요즘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는 '[[크크섬의 비밀]]'에서 나온 신과장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상 [[진 주인공]]인데다가 연기도 괜찮았고 김선경과 로맨스 호흡도 상당히 잘 맞았다. [[김광규(배우)|김광규]]와 함께 최고의 인기 캐릭터.]
신성우 3집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발표 시기가 거의 같았는데, --같은 3집이라서 그런지-- 서태지와 비슷하게 얼터너티브 록으로 발매되었다. 실제로 몇몇 방송에서 서로를 '같은 실험적인 장르로 돌아온 동반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터너티브 록에 맞추어 춤을 춘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달리, 신성우는 제대로 록밴드의 형태를 갖추고 방송과 무대를 누빈다.
비록 반키를 낮춰 부르긴 했었지만, 예전 초창기 2집시절 노을에 기댄이유의 라이브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굵직하고 어두운 톤에 무겁고 탁한 목소리를 가진 그가 3옥타브를 거뜬히 넘겨서 실제로 불러보면 굉장히 어려운 그 노래를 소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절륜하다. 서시 라이브에서 삑사리가 난 이유는 아마도 신해철처럼 엄청나게 성대를 혹사시키며 락 스타일의 고음을 질러대다보니 성대가 무리하게 되어 목소리가 저음에 가까운 쪽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 가수의 노래들을 잘 살펴보면 음역대가 매우 비슷하다.[* 가요대전에서 신해철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라는 곡을 아주 깔끔하게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실제로 신성우의 앨범 초창기부터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음역대를 잘 듣고 살펴보면 가면 갈 수록 음역대가 낮아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신지애 . . . . 3회 일치
KLPGA 2006년 시즌 때 평균 69.72타를 기록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투어 2위 기록이다.[* 2016년 박성현이 시즌 평균 69.64타로 기록을 경신했다. 참고로 2014년 1위 [[김효주]]가 70.26. 2015년 11월 현재 1위인 [[전인지]]가 70.48이다. 그리고 당시 2위였던 최나연이 70.68이었으니 엄청나게 압도적인 기록이었던 셈.] 거기에 2009년엔 세계 4대 투어인 LPGA, JLPGA, KLPGA, LET의 대회를 한 해에 모두 우승한 최초의 골퍼이기도 하다.--그 때는 혹사인 줄 몰랐지...--
2016년 5월에는 JLPGA 호켄노 마도구치[* 우리말로 '보험의 창구'라는 뜻으로, 보험중개 회사이다.] 레이디스에서 우승하면서 故 [[구옥희]] 프로가 기록한 [[대한민국]] 여자 프로골프 선수 최다 승수인 44승과 타이를 이뤘다. 이 대회에서 [[김하늘(골프선수)|김하늘]]이 2위, [[이보미]]가 3위를 하면서 1,2,3위를 모두 한국인이 하는 재미있는 기록이 연출되기도.
* 예능에도 몇 번 출연했으며 <무릎팍 도사>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진솔하게 털어놓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오늘을 즐겨라>에도 출연하여 [[정준호]], [[신현준(배우)|신현준]], [[정형돈]] 등과 같이 골프를 치기도. 또한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에서도 출연했다. [[1대 100]] 229회 후반전 방송에서는 1인으로 나와 8단계에서 최후의 3인과 대결을 펼쳤으며 여기서 5000만원과 적립금 835만원 모두 안드로메다로......[* 만약 우승했다면 역대 최연소 1인 우승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당시 25세, 최연소 기록은 28세)]
- 아이박 . . . . 3회 일치
마찬가지로 샤잠의 빌런인 [[닥터 시바나]]와 협력하기도 했으며 샤잠의 적들이 모인 몬스터 소사이어티 오브 이블에 합류하기도 했다. DC 코믹스 악당들의 대규모 집단인 시크릿 소사이어티 오브 슈퍼 빌런즈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 안숙선 . . . . 3회 일치
현재까지 안숙선의 주요 공연 이력은 판소리에 더 가깝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 이후 음악적 능력은 물론,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작품에 주역으로 섰으며, 특히 춘향역은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영원한 춘향'이라는 수식어를 받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창극 수궁가에서의 토끼 역 또한 작은 체구를 십분 활용한 익살스러운 연기로 인해 큰 인기를 끌었다. 또 86년, 적벽가 완창으로 다섯 바탕 소리를 완창함으로써 전통 판소리의 연창과 전승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타 장르의 협업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재즈 뮤지션들과 자주 협연을 펼쳤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사물놀이 창시자 [[김덕수]]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 선]](Red Sun)과 함께해 [[1995년]] 발표한 〈토끼 이야기〉는 한국 퓨전음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국악전문지《소리마당》창간기념 조사 '국악계의 영향력있는 인물' 1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아시아경제신문> 창간 21주년 기념 '한국을 움직이는 파워여성 리더 21인"에 선정 되었다.
- 에스컬레이터 식 학교 . . . . 3회 일치
대체로 그리 많은 비율은 아니지만,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품행에 문제가 있으면 퇴학되거나 추천이 삭제 되기도 하고, 가정 사정이 어려워진 경우에는 비싼 학비 때문에 학교에 다니가 어렵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더 높은 수준의 학교에 합격하여 내부 과정에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수업진도 진행이 비교적 빠르다. 특히 중고일관교의 장점은, 6년 간의 수업 일정을 모두 한 학교에서 진행한다는 것이 꼽힌다. 예를 들어서, 고3 동안 1년 전체를 대학 입시를 위한 수업에 임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거 아니라도 하는데
- 역적 . . . . 3회 일치
전근대 시절에 내란이나 외환 등의 수단으로 국가나 왕실을 전복시킬 것을 기도하는 이를 칭하던 명칭. 또는 한 지역이 통일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을 때에 자신의 정통성이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역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파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역적으로 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이러한 역적들에 대한 대우는 특히나 가혹했다. 역적으로 지목되는 것 자체만으로 해당 인물과 일족은 혹독한 고문이나 인간 이하의 차별 대우를 받았고, 확정될 경우에는 해당되는 이의 혈통을 끊어버리는 건 기본이고 심할 경우 그 지인이나 살던 지역의 주민들까지 모조리 씨를 말리기도 했다.
- 영양군 . . . . 3회 일치
해발 고도가 대부분 200m 이상이고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제대로 된 평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고봉은 일월산(日月山, 해발 1219m)이다. 여름은 한여름에도 해가 떨어지면 쌀쌀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편이다. 이로 인해 영양고추의 맛이 좋다고... 겨울은 [[봉화군|윗동네]]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 곳도 여타 남부지방에 비해 매우 추워 겨울 기온이 -10°C 이하로 심심치 않게 떨어진다. 많이 추울 때는 영하 25도 안팎까지도 떨어진다. 또한 눈도 제법 많이 내리는 편이며 지형적인 영향으로 수비면 동부 일대에는 상당히 많은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농어촌버스]]는 [[영양여객]]에서 운행하며, [[영덕버스|영덕군 농어촌버스]]가 들어오기도 한다. 농어촌버스를 이용하여 진보나 영해로 나갈 수 있다.
*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적은 인구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의 근무가 굉장히 편한 곳이며 일하기 쉽게 되어 있다. [[울릉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생활이 불편하다 보니 영양군이 유리한 편. 1년에 2명만 모집하는데 일단 훈련만 받은 이후에는 영양군으로 거주지 이전시 100% 이곳으로 받아야만 되서 3명 이상만 되면 그 이후부터 어거지로 받아야 되는 특성을 이용하여 근무가 힘든 사람에게 대안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그 밖에도 복무기관 자리가 5년이 지나도록 공석이 나지 않아 자동으로 [[제2국민역]]으로 편입되었다는 얘기도 종종 들려온다.]
- 오타쿠 혐오 . . . . 3회 일치
오타쿠 혐오 계층에서는 오타쿠는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오타쿠들의 상징인 특정한 취미 탐닉, 컬렉션 성향은 곧 사회성 부족의 징후로 여겨진다. 종족 이들의 컬렉션 자체가 반사회적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총기]]와 같은 군장류([[밀덕]]), [[로리콘]]이나 [[도촬]] 등의 성적인 물건이 그러하다.
오타쿠들의 취미우선주의는 때때로 자신의 '취미'를 [[인권]]이나 사회적 합의 같은 '보편적 가치'보다 높이 놓기도 하며, 이러한 성향은 매우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된다.
예비 범죄자라는 관점에서 오타쿠를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위의 사회성 부족(=반사회적 성격)과 혐오적 외모에서 일반인들의 경계를 받기 때문이다. 또한 [[미야자키 츠토무]] 등 몇몇 오타쿠가 저지른 범죄가 오타쿠를 범죄자 예비군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 워저드 . . . . 3회 일치
포켓 파이터에서는 타바사가 상대의 공격을 방어시 일정확률로 타오를 꺼내서 인간 방패로 써먹는 안습한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처럼 생긴 [[드래곤]]. 불을 뿜는 것이 주공격. [[포켓 파이터]]에서는 류가 엔딩에서 대결하게 된다. 결국 류는 하우저에게 개발린다. [[타츠노코 VS 캡콤]]에서는 카라스의 엔딩에 나오지만 류와는 반대로 카라스에게 죽는다.(…) 캡콤 파이팅 잼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로 나오기도 했다. 보스를 상정하고 만든 캐릭터를 별다른 수정 없이 넣은 탓에 덩치가 타 캐릭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탓에 피격 판정도 거대해서 보통은 약캐릭터 취급이다.
오징어 모습을 한 요괴. 성우는 호소이 오사무. 회오리를 날리거나, 자신의 자식을 생산하여 상대에게 날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뜻밖에도 캡콤 파이팅 잼에선 타오와 타바사를 제치고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했다. 하우저와는 달리 제법 할만한 편.
- 원피스/861화 . . . . 3회 일치
* 비트는 게스트들도 그렇지만 빅맘의 부하들도 만만치 않은 거물이라 놀란다. 우측 상단은 장남 "캔디 대신" [[샬롯 페로스페로]], 좌측 상단은 장녀 "후르츠 대신" [[샬롯 콩포트]], 우측 하단은 차남 "장성" [[샬롯 카타쿠리]], 하단 가운데 14녀 "장성" [[샬롯 스무디]], 좌측 하단 3남 [[샬롯 다이후쿠]]와 4남 [[샬롯 오븐]]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결집했다. 비트는 자기도 모르게 "동료일 때는 든든했지만 적이라고 생각하니 오싹하다"고 말하는데, 그 "적"이란 표현을 대문이 놓치지 않고 듣는다.
밖으로 나온 벳지는 투덜거리면서 시저에게도 자기 몸으로 들어와 있으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루피 일행이 못미더워서 그런지 자기도 직접 회장 안으로 돌입하겠다고 하는데.
* 현재까지 많은 비극이 나왔음에도 그 당사자인 상디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 원피스/862화 . . . . 3회 일치
* 빈스모크 일가는 샬롯가의 강자들 한가운데 배석. 눈치챈 건 [[빈스모크 레이쥬]] 뿐이나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며 [[상디]]만은 살아나가길 기도한다.
* 푸딩의 성격이 비틀린건 빅맘 [[샬롯 링링]] 조차 기분나빠하는 3의 눈 때문이었는데, 그걸 칭찬받자 자기도 모르게 오열해 버리고 만다.
레이쥬는 자신들의 테이블 근처를 샬롯 가문의 형제들이 둘러싸고 있는 걸 보고 이미 포위당한 걸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녀는 제르마라는 가문과 함께 죽기를 각오한 몸.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지만 상디 만큼은 살아나가기를 바라며 루피에게 비책이 있기를 기도한다.
- 원피스/866화 . . . . 3회 일치
여기서도 링링의 괴력은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카르멜은 링링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길렀다. 링링은 항상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경솔함과 괴력 때문에 사고를 일으켰다. 거인족 아이 에일리에게 모기가 붙어서 잡아주려가 골절을 시키기도 했고, 수장족 아이는 관절이 너무 많아 보인다며 뽑아주려 들거나, 어인족 아이인걸 모르고 지느러미가 붙은걸 제거해주려고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카르멜은 꾸짖고 타일러 가르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는 링링이 나쁜 뜻이 없고 남을 배려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 설득했다.
이제 링링은 양의 집 아이로 녹아들어 있었고 거인족 소녀 게르즈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링링에게 거인족 아저씨가 "너네 준비는 잘 돼가냐"고 묻는데, 거인족 마을에서 지내는 "동지제"라는 축제 얘기였다. 아이들의 태어남과 성장을 태양에 감사하는 축제인데 축제 당일까지 12일 간 금식을 하는게 특징이었다. 그 해에는 거인족의 왕자 "로키"가 태어났고, 마을에서도 로드와 골드버그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동지제는 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한 셈.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누구보다 식탐이 강한 링링이 질색을 하지만 게르즈는 "끝나면 즐거운 축제"라며 달랜다.
- 원피스/868화 . . . . 3회 일치
* 마침내 KX런처의 탄두가 빅맘에게 발사되나 빅맘의 분노가 내뿜는 패기와 풍압이 너무 강해 탄두가 도달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폭발해 버린다.
* 명실상부한 사황 세력의 개국공신인 슈트로이젠. 이제 나이를 먹고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요리장으로서 빅맘 곁에 있었다. 웨딩케이크가 망가졌을 땐 빅맘이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지만, 그의 충성심에는 영향이 없었다. 빅맘의 괴성으로 꼼짝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카포네 갱 벳지]]가 부하들과 함께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걸 놓치지 않고 빅맘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빅맘은 63년 전 세상으로 돌아가서 주위를 볼 정신이 아니었다. 경계심도 없고 더이상 무적도 아닌 약 5초간의 간격. 벳지는 그 간격을 놓치지 않고 비장의 무기 KX런처를 조준한다. 모든게 그의 계획대로다. 마침내 발사되는 맹독의 탄두.
날카로운 바늘이 번뜩이는 탄두가 그녀에게 향할 때, 빅맘의 울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녀가 뿜어내던 패기와 풍압도 최고조에 달했다. 그 어마어마한 압력이 탄두가 미처 목표에 명중하기도 전에 폭발시켜 버렸다. 아연실색하는 벳지와 부하들.
- 유승옥 . . . . 3회 일치
2015년에 SBS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하고, 게임 [[철권 7]] 런칭쇼에서는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신 캐릭터 [[카타리나 아우베스]]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와 유명해졌다. --하지만 신캐 반응이 썰렁해서 묻혔다.[* 실제로 그녀의 소속사 사이트를 가보면 다른건 다 기록되있어도 철권 런칭에대한건 나와있지 않았다(....)].-- 롯데월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철권 7 이벤트 매치를 벌이기도 했다. 플레이 당시 유승옥이 선택한 캐릭터는 홍보할 때 코스프레했던 캐릭터인 카타리나였고, 대전 상대는 한국의 여성 철권 고수로 유명한 카니스 (본명 양이섭)의 [[스티브 폭스]].
2015년 1월경 [[정아름]]이 유승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비판을 올렸던 일이 조명된 바 있다.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195170|링크]] 정아름은 뒤늦게 논란이 되자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12&news_seq_no=2318991|이는 디스나 폄하가 아니며]] 유승옥에 대해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기 비판에 인용하게 되었을 뿐이란 입장을 [[http://news.tf.co.kr/read/entertain/1577514.htm|밝혔으나,]]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과 연관되게 되자 다시금 안 좋은 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태도를 비판하는 입장에선 유승옥 디스 건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부터도 정아름이 골프 선수 시절 '''누드 화보를 찍었던 당사자가 남 말하듯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정아름]] 본인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찍었더고는 하지만[[http://news.topstarnews.net/detail.php?number=119901]] 그 사진들이 모바일 서비스로 유통된 것이라(...) 논란이 좀 있다[[http://www.koreatimes.com/article/199436.]] ]
2월경 소속사 고소 문제로 인기가 땅에 떨어진 이전의 섹시 심볼이었던 배우 ]의 뒤를 이어 2015년 초에 인터넷상에서 차세대 섹시 심볼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얼굴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딸의 유명세가 단지 몸매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지는 상황 때문에, 유승옥의 아버지는 심적으로 괴롭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 윤균상(1987) . . . . 3회 일치
남다른 동물 사랑을 보이기도 하는데 쿵이, 몽이, 또미(고양이) 라는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과거 양이라는 강아지도 키웠으나 현재는 친가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이 키우는 중이다.[* 쿵이와 몽이는 삼시세끼 어촌편3에 출연하여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너구리처럼 굵고 복슬복슬한 꼬리가 특징. 어촌편 촬영 당시 쿵이는 꼬리에 자꾸 변이 묻어서(...) 끝부분을 제외하곤 꼬리의 털을 전부 밀어 버렸다고 한다. 이후 둘은 삼시세끼 바다목장 편의 마스코트로 한번 더 출연하게 되는데 그사이 쿵이는 꼬리털이 풍성해진 대신 장모종이라 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의 털을 밀어 왔다. 헌데 촬영 중 더운 날씨 때문인지 몽이가 개구호흡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고, 이로 인해 몇몇 네티즌들 사이에서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균상이 인스타그램으로 확고한 입장표명을 하면서 사그라 들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3를 정주행 했으면 알겠지만, 균상이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고, 감독판에서 공개된 윤균상의 집만 봐도 쿵이와 몽이, 또미는 말그대로 호의호식(...)을 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전자동 고양이 화장실도 '''두 대나''' 구비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신경을 쓰는 윤균상에게 몽이의 일은 오히려 실례가 되는 비난이었다.] ~~[[똠양꿍]]~~ 최근 솜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분양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닥터스 종료 후, [[삼시세끼]] 어촌편에 [[이서진]], [[문정혁]]과 함께 고정멤버로 확정되었다. --멤버들 중 가장 고생길을 걸을 것 같다. 전무후무한 자발적 노예캐릭터 개척중이다-- ~~[[이종석(배우)|이종석]]에 따르면 이름이 융귱상이 된다. [[삼시세끼/바다목장편|바다목장편]]에서는 많이 발전된 모습에 노예 해방된 것 같기도? 여전히 요리실력은 꽝.~~ 하지만 잇츠온이라는 한국야쿠르트가 선보인 가정간편식 브랜드에 모델로 발탁되었다.
- 은혼/602화 . . . . 3회 일치
* 자작은 그렇게까지 말한건 아니라며 황자인 주제에 겉보기도 말도 꾸밀 줄을 모른다고 디스한다.
* 자작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원상은 원래 화제로 돌아간다.
* 원상은 놀랍게도 이들은 살아있다고 말한다. "죽지 못했다"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데. 배에서는 이들의 살아있는 살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 이갑성 . . . . 3회 일치
}}</ref> 이갑성은 민족대표 33인 중 [[최린]], [[정춘수]]와 함께 [[창씨개명]]을 한 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2년]] [[10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으로부터 전시내각(戰時內閣)의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國務總理)에 임명되기도 했다.<ref>[https://search.i815.or.kr/Indeman/Indeman.jsp?tid=ma&c1=%ED%9B%88%EA%B2%A9 ::: 독립기념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봇이 따온 제목 -->]</ref> [[11월]]에는 정식 [[국무총리]]로 국회에 인준하였으나 부결되었다.<ref>대통령비서실,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역사비평사, 2008) 74페이지</ref>
[[3·1 운동]]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해달라는 [[석호필]](스코필드)의 부탁을 받고 [[경성부|경성]] 시내에서 학생들의 만세 장면을 카메라 사진으로 여러장 촬영해서 주기도 했다. 학생들의 만세 장면과 [[조선총독부]] 헌병들의 사격장면 등을 담은 이 사진들은 [[스코필드]]와 [[조선총독부]] 치하 [[조선]]에 와 있던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서방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 이금서 . . . . 3회 일치
일설에는 아버지로 알려진 이금현과 형제 관계라고 전한다. 이금현(李金現), 이금서(李金書) 부자의 이름상의 '금(金)'자가 같이 쓰인 점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 그러나, 신라와 고려의 옛 풍습에 아들의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권행(權幸, 안동권씨 시조)의 아들 인행(仁幸), 공직(龔直, ?~939, 연산공씨 시조)의 아들 직달(直達)이 그 예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명(墓誌銘)에 의하면 "신라왕 김부(金溥 : 敬順王)가 국토를 바치고 고려 조정에 들어와 태조(太祖)의 딸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樂浪公主)에게 장가들어 딸<ref>신란궁부인 김씨이다.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왕씨]]는 출가 후 신란궁부인으로 불렸는데, 그 딸인 김씨가 다시 신란궁부인에 봉작되었다.</ref>을 낳았으니 금서의 아내가 되어 윤홍을 낳았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또 이윤홍이 '신라말' 병정(兵正)을 했다는 기록을 들어 연대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ref>이에 대해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에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할 때 병정(兵正)을 두었고 품계는 재상(宰相)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ref> 그러나 이금서가 중원태수(中原太守) 호부랑중(戶部郞中)으로 고려에서 처음 벼슬을 시작했고, 그 아들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과 관련하여 고려 초 관제에 병부령(兵部令)을 설치하면서 병정(兵正)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윤홍의 병정(兵正) 벼슬은 고려 초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3남 : 이윤장(李潤張)<ref>[[평창 이씨]] 족보에 따르면 이금현의 아들은 2명으로 이윤장은 그 중 2남으로서 시조 [[이광]]의 7대조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이 있는 [[조선 숙종|숙종]] 대의 족보를 근거로 그 시조를 이윤장으로 하는 족보가 간행되기도 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조선 숙종|숙종]]대의 족보가 위작으로 밝혀져, [[평창 이씨]] 측에서는 그 시조를 [[이광]]으로 확정하였고, 이윤장과의 관련성에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평창 이씨]]는 [[경주 이씨]]의 분적종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윤장을 [[평창 이씨]]의 시조로 주장하는 견해도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ref>
- 이석훈 . . . . 3회 일치
SG워너비 5집 《My Friend》부터 합류 했으며, 전 멤버 [[채동하]]가 가창력도 뛰어나고 이뤄놓은 것이 많았기에 합류 초반 안티들의 공격을 무지하게 받았다.(...) 'MC몽의 동고동락'이라는 라디오에 출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연승 기록이 1승이 전부이니(...) 애초에 SG워너비 3명 모두 경연에 어울리는 가수가 아니기도 하고.
~~긴 공백기도 신기하지만 장수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신기하다~~
- 이승현 (1985년 7월)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청구고등학교]],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스피드 레이서'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슷한 외모 때문에 '[[보거스는 내 친구]]'의 캐릭터인 '보거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데뷔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07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한 후 슬럼프를 겪기도 하였지만,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하였다. [[2007년]] [[터키 수페르리그]]의 [[베식타시 JK]]로부터 이적설이 떠돌기도 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41406 박병규-조용형-이승현, 터키 무대서 '러브콜' ]</ref>
- 이영아(배우) . . . . 3회 일치
또한 베트남이라는 연관 검색어도 뜨는 것이 특이하다. 2007년 [[SBS]] 주말드라마 [[황금신부]]에서 [[베트남]] 신부 역으로 주연을 맡아 유명해지면서 생긴 일. 베트남 신부 역을 실감나게 해서 당시 실제 베트남 사람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도 이영아를 치면 자동적으로 베트남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예전에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등장했을때 성대결로 [[신정환]]과 맞붙기도해서 큰웃음을 주기도 했다. ~~신정환이 일부러 진 거 같지가 않다.~~
- 이인영(정치인) . . . . 3회 일치
1987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통령선거 직선제 쟁취를 위한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 후 [[노태우]]의 항복선언을 받아내자,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 중심으로 [[전대협]]을 결성하여, 1987년 7월 대전 충남대에서 출범식을 거행하였다.
2015년 2월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다. 결과는 3위로 낙선.
참고로 이때 20대 총선에서 이인영이 고향인 충북 충주로 사실상 '''하방'''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2016년 당시 충북 충주는 민주당에게 사지(死地)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이시종]]이 충북지사로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을 사퇴한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64% 이상의 득표를 했던 것. [* 다만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34.4% vs [[홍준표]] 30.4%로 문재인이 약 4%차로 승리했다.] 이인영이 아무리 야당 당대표 경선까지 출마한 나름 거물일지라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 이재용(배우) . . . . 3회 일치
실제로 대머리기 때문에 주로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한다. 하지만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는 가발 없이 내추럴한 모습(...)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드라마상 사법고시를 보다가 미역국을 연거푸 먹어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구마적 이원종 식당에 주방장으로 일하는 설정. 탈모를 이용한 웃긴 에피소드도 한 토막 있다. 극중에서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손님이 불평하자 이원종이 침착하게 주방에 있는 이재용을 불러 모자를 벗으라고 한다. 그러자 훵하니 벗겨진 이재용의 머리를 보고 손님의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이재용은 이재용대로 자기 콤플렉스를 대놓고 끄집어낸 이원종에게 앙심을 품는다.]
날카로운 용모 때문에 주로 [[악역]]을 맡으며, 영화 [[친구(영화)|친구]]에서 장동건을 스카웃한 조직 보스 차상곤 역할로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가끔은 가뭄에 콩 나듯(...) [[선역|좋은 역할]]을 하기도 하며, 주인공과 대립하지만 악역은 아닌 배역도 많은 편인데, 이런 배역을 맡을 땐 보통 완고한 원칙주의자나 보수파라 원칙을 벗어난 주인공이 못마땅하거나 오해가 있어 대립했으나, 후반엔 조력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개그 캐릭터]]에도 일가견이 있어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이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샘 오취리]]의 양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 이재학 . . . . 3회 일치
2012년 퓨처스리그 4월 경기에 3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 선배이기도 한 [[김상엽]] 투수코치에게[[http://osen.mt.co.kr/article/G1109390480|커터를 전수받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12년 2군에서 15승 2패로 남부리그 다승왕을 수상했고, 방어율 1.55, 탈삼진 100개로 남북부 통틀어서 퓨처스 리그를 씹어먹었다. 팀이 막 창단한 시기라서 투수 뎁스가 얇고 보직이 확실하지 않던 상황이기에 1군에서도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선발진에 충분히 들어갈 거라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2018 시즌에는 확실한 투구폼 교정에 이어, 드디어 보여주기 식에 그쳤던 슬라이더를 서드 피치로써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폼의 안정화로 인해 BB/9가 예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만큼 제구가 안정되기도 했고, 슬라이더의 구사율도 10% 가까이 끌어올렸다. 우타자 상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게 되면서 우타자 상대 약점을 극복한 모습.
* 팀 동료이기도 했었던 같은 사이드암, 신인왕 출신, 투피치 선발 투수라는 공통점이 있는 [[넥센 히어로즈]]의 [[신재영]]과 친하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에 사이좋게 같이 망한 전적이 있다.~~ 서로 구종 습득, 변화구 각도 조정 등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눈다고 한다.
- 이창동 . . . . 3회 일치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3회 일치
수많은 문제 사건을 일으키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타쿠마는 분풀이로 [[대량살인]]을 기도하게 된다. 당초에는 "[[일요일]]에 오사카 시내의 번화가를 덤프 트럭으로 돌진"하려고 생각했으나, 이후에 발걸음이 느린 어린이를 노리면 다수를 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초등학교를 노리게 된 것이다.
9월 14일에 살인죄, 살인미수죄 등으로 오사카 지방 법원에 기소되었으며, 12월 27일에는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타쿠마는 재판에서도 기행을 반복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읽어주고 시작했을 때 "여어, 앉으면 안됩니까"라고 말하여 재판관은 엄격하게 서서 들으라고 말하면, 노려보기도 했다. 첫 공판에서 혐의사실을 인정하고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으나, 나중에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추궁당하자 "신문기사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라서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케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내에 수상한 사람이 침입하여 난동을 벌이는 것을 가장한 훈련을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이케다 초등학교에서는 추모비가 세워지고 「기도와 맹세의 모임(祈りと誓いの集い)」이 발족하여, 매년 6월 8일 유족을 중심으로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정부는 학교의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총 4억엔을 배상했다.
- 이홍우(1959) . . . . 3회 일치
|| '''경력''' ||[[민주노총]] 사무총장[br][[진보정의당]] 최고위원[br][[정의당]] 노동위원장[br][[현대자동차]]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br][[심상정]] 대통령후보 노동선대본부장[br][[정의당]] 경기도지사 후보 ||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지만 4위로 낙선했다.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경기도지사) || [[정의당]] || 151,871(2.5%) || 낙선(4위) || ||
- 인비저블 우먼 . . . . 3회 일치
능력은 [[포스 필드]]와 투명화이다. 포스 필드는 방어력이 매우 높은 역장이며, 공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물건을 드는 등의 용도로 쓰기도 한다. 매체에 따라서는 날붙이처럼 쓰기도 한다. 셀레스티얼의 갑옷을 파괴할 수도 있는 등 그 힘은 판타스틱 포 최강이다.
[[미스터 판타스틱]]과 연인 → 부부 관계이다.[* 참고로 나이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거의 키잡에 가깝다.(…)] 판타스틱 포의 [[홍일점]]이며, 두 아이에다 항상 티격태격하는 벤과 동생 조니, 워커홀릭 남편인 미스터 판타스틱이 그렇게 사고치고 속을 썩이는데도 용케도 끝까지 같이 사는 걸 보면 '''[[성녀]]''' 수준.(…) 게다가 퓨처 파운데이션 이후 집에 식구가 더 늘어났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은 것이, [[닥터 둠]], [[네이머]]와 서로 끌리는 관계에 있음을 그린 에피소드들이 많다. 수잔 스톰 자체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급의 미모를 자랑해서 그렇기도 하고.
- 인왕 . . . . 3회 일치
[[금강역사]]의 별칭. [[절]]로 들어가는 문의 좌우에 서있다. 그림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서 세운다. 일본어로는 '니오우'라고 부르는데, 한자를 인왕이 아니라 이왕(二王)으로 쓰기도 한다. 절의 수호신격 같은 위치에 있다.
본래 단지 부속적인 수호신이므로 금강역사 자체가 숭배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본에서는 건강한 모습 때문에 건강을 수호하는 신, 다리가 튼튼해보이므로 '건각의 신'으로서 숭배되기도 한다. 짚신을 공양하여 건강해지거나 다리가 튼튼해지길 기원하거나, 커다란 짚신을 걸어놓고 만지면 다리가 튼튼해진다고 신앙하기도 한다.
- 일곱개의 대죄/217화 . . . . 3회 일치
* 할 수 없이 전 단원이 고서를 찾아 나서는데, 고서는 변장을 하며 피해다니다 자기도 모르게 [[나자 리오네스]]와 생활했던 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디안느는 무사한 동료들을 보고 기뻐하나 "[[멜리오다스]]가 살아있었더라면..."이라 눈물을 훔친다. 할리퀸이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 위로하느데 디안느의 밑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을 알고 있는 반은 "참혹한 얘기"라며 씁쓸하게 중얼거리고 멜리오다스 또한 동감한다. 어쨌든 그들의 수색은 계속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지금의 고서는 인형이라서 기척으로 찾기도 어렵고 부르고 다닌다고 대답할 리도 없었다.
- 일곱개의 대죄/219화 . . . . 3회 일치
* 한편 리오네스 왕국 한 구석의 어느 가정집. 외견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거처였다. 두 여성이 이 집을 향해 기척을 죽이며 다가온다. 하지만 집 안에 있는 여성은 그녀들이 집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눈치채고 있었고 문밖의 그녀들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환영한다.
이렇게 해서 술집의 평화는 상처를 남긴 채 돌아왔다. 사실 옆 테이블에서 [[그리아몰]]과 [[하우저(일곱 개의 대죄)|하우저]]가 마시던 중이었는데 무섭기도 하고 "시끄러운 손님들"취급을 받는 그들이 창피하기도 해서 모른척해버렸다.
- 임채무 . . . . 3회 일치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에 (손불중앙길)는 손불중앙교회를 운영 중이나 빚이 수백억 원이다.~~[[채무|이름]]이 씨가 되다~~ 두리랜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대인배]].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고 하는데 수년간 계속 적자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으며, 연기 스케줄이 없을때면 항상 두리랜드에서 놀이기구 방송을 하거나,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는 일을 지속한다고 한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374&aid=0000092844|관련기사]] ] 놀이기구 임대업자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1심은 원고패소, 2심은 원고의 항소 기각으로 끝났다고 한다.[* [[https://news.v.daum.net/v/20180824090104518|관련기사]]]
젊은 세대에게 알려진 대표작(?)은 2006년 초 [[돼지바]] 광고. 싱크로 높은 [[비론 모레노|모레노 심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탈리아전의 그 심판 맞다] 코스프레로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그해 중순부터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원년 멤버로 출연하며 예능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 사실 그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보다 이전인 90년대에도 종종 심야 예능[* 물론 그때는 예능이라고 안 부르고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불렀지만..] 프로그램에 나와서 꽁트연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 KBS 꽁트에서 카바레 사장님 역할로 나와, 당시 쓰던 닉네임 '채무림'[* 임채무를 미국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임을 림이라고 한 것]으로 불리며 개그우먼 [[김지선(개그우먼)|김지선]] 같은 코미디언들과 함께 연기했던 것.
- 임현식(배우) . . . . 3회 일치
현재는 적극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시골]]에서 [[농장]]을 가꾸는데 주력하고 있다.[* 토크쇼 프로그램에 그 농장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탤런트로 뽑힌 후에도 5년 동안 부르지 않아 [[양주시]] 장흥면에 농사를 시작한게 최초. 때문에 [[양주시]]의 홍보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애드립을 하게 된건 이보다 2년 뒤인 일일연속극 '당신'의 [[김수미]]의 상대역이었다고 한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푸근한 인상의 외모와는 다르게 의외로 양갓집의 [[음대]]지망생인 [[엄친아]] 출신이었다고 한다.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는데 이게 거리의 악사 연기에서 빛을 발했다고. <한 지붕 세 가족>에서도 연주를 보인 바 있다. 뭐든 잘 하지 못 한다고 슬퍼하는 아들 순돌이를 위해 “아빠도 처음에는 잘 못 했지만 연습을 하다보니 이렇게 연주를 잘 할 수 있잖니?”하며 바이올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마무리 짓는 장면이 일품.
- 장은숙 (가수) . . . . 3회 일치
어릴 때 국악을 배웠으며, 득음을 위해 절에 들어가서 2년간 목소리 훈련을 하기도 했다. 데뷔 후 스타킹모델을 했었고,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공동주연으로 《[[리빠똥사장]]》 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활동 후 1995년 일본 [[토라스레코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로 일본 무대로 진출하였고, 그 후부터 '장수(チャン・スー)'라는 예명을 사용하였다.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첫해 일본 유선 방송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 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지금까지 20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5년 5월에 발표한 "눈물의 공항 대합실"을 포함해 총 14곡이 유선방송 1위에 랭크되었다.
현재 일본 [[테이치쿠 레코드]]에 소속되어 있으며, 2009년부터는 일본에서의 활동명을 본명인 장은숙(チャン・ウンスク)으로 바꿨다. 2003년에는 연예 기획사인 "오피스 장수"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점차 한국에서의 활동 비중도 늘리고 있다.
- 장익 (1933년) . . . . 3회 일치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
* [[1983년]] [[9월]] [[김동한 (1919년)|김동한]] 신부가 선종하자 [[로마]] [[바티칸]]에 체류중인 김수환 추기경을 직접 찾아가 형님 신부의 임종을 전하기도 했다.<ref name="회화1"/>
* [[김수환]] 추기경은 2004년 출간된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평화신문 刊)'에서 그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고 격찬하기도 하였다.<ref name="회화1"/>
- 전경협 . . . . 3회 일치
|기도 =
전경협은 [[한양]]의 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래로, 그녀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안형광]]이라는 이름의 [[궁녀]]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몇 해가 지나서 전경협의 친오빠가 그녀를 결혼시키려 했지만, 궁녀 안형광은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그녀도 이미 궁녀 명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박희순 루치아]]를 비롯한 [[천주교]]인 궁녀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인이 되었다. 박희순이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출궁한 후에, 전경협도 꽤병을 부려 궁궐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궁궐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전경협은 박희순과 함께 살며 [[기도]]와 종교서적의 독서 그리고 선행에 전념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복했고, 그녀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극도의 가난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번 없었다. 그녀는 그저 [[체포]]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경협의 친오빠는 이교도였으며, [[조정 (정치)|조정]]의 고위 관리였다. 그는 [[왕|임금]]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그녀를 배교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의 간청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는 독이 든 계란 과자를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던 것이다. 수상스럽게 생각한 전경협은 과자를 비녀로 찔러 보았는데, 그 비녀의 색쌀이 금새 변했으므로 그 과자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오빠는 형리장을 매수하여 그녀를 몽둥이로 때려 죽이도록 시켰다. 하지만 형리장은 여러 차례 그녀를 때리되 죽이지는 않았다. 전경협의 조카 즉 오빠의 딸이 그녀의 상처가 하루만에 다 낫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경협은 그녀의 오빠가 그녀가 감옥에 영원히 갖혀 있도록 요청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앙을 위하여 [[참수]]되기를 [[기도]]했고, 마침내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 전성군 (1488년) . . . . 3회 일치
[[1527년]](중종 22) [[7월]] [[함열읍|함열]][[현감]](咸悅縣監)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뒤 면직되었다. 이후 좌익찬(左翊贊), [[사복시]]주부, 겸[[한성부]][[참군]](兼漢城府參軍), [[장예원|장예]][[사평]](掌隷司評), [[종부시]]주부를 거쳐 다시 사헌부감찰이 되었다가 용강 [[현령]](龍岡縣令), [[평양]][[진관]] 병마첨절제 도위,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부정(副正) 이공장(李公檣)의 천거를 받았다가 [[사헌부]]로부터 성품이 본래 침착하지 못하고 소행도 탐욕스럽고 간특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f>중종실록 94권, 1541년(중종 36년, 명 가정 20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헌부가 천거하는 자들이 사적으로 천거를 함으로 폐단이 심하다고 아뢰다"</ref>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정종보(鄭宗輔)의 딸 동래정씨와의 사이에서 8남 1녀를 두었는데, 일곱째 아들이 권신 [[이량 (조선)|이량]]이고, 고명딸은 [[청송 심씨]] [[의정부]][[영의정]][[심연원]]의 아들이자 [[좌의정]] [[심통원]]의 조카 [[심강]]에게 출가했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왕릉골(현,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왕릉골 부락) 좌산 경좌에 부인 동래정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아버지 여양군, 조부 율원군의 묘소 아래에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7화 . . . . 3회 일치
* 효부는 긴 옛이야기를 끝내며 조직의 2인자 "마기"로 있어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시로"로 돌아오라며 마기의 인격이 돌아오길 기도한다.
* 그러나 블랙팬텀은 치밀한 함정을 설치해 판도라를 노리고 마기도 블랙팬텀에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
* 효부는 카오루가 태어난 병원까지 돌아가는데 성공했지만 몸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소년이 그에게 친절을 배푸는데, 소년시절의 사카키 슈지였다. 사카키는 효부에게 마실 물을 주고 쉬어갈 장소를 마련해주는데 이때 이미 힙노에 각성한 상태라 효부의 정체와 상황을 간파한다. 사카키는 자기도 나중에 당신 조직에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못 본척 해주겠다고 말한 뒤 사라진다. 효부는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 사카키를 마기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안심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7화 . . . . 3회 일치
* 듣고 있던 요우는 이제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능력을 발동한다. 요우는 자신의 진동제어를 이용하면 레어메탈과 탄소섬유를 한 순간에 일소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렇지만 그건 마기도 알고 있었다. 요우에게 대처하기 위해 탄소섬유를 다중구조로 만들어서 주파수를 찾기 어렵게 만드러놓았다. 요우의 능력은 통하지 않고 오히려 당하게 생겼다. 마기는 능력의 발동 트리거인 목을 부수면 능력을 잃게 될 거라며 정말로 요우를 처리하려 한다.
* 효부와 카오루가 막아보려 하지만 그들이 염동력을 발동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것이다. 미나모토는 차라리 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효부나 카오루가 일제히 덮치는건 마기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고 상황은 난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 중 누군가는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사카키 슈지]]가 있다지만 츠보미 후지코를 조치하고 있는 중이라 그 이상을 대처할 수는 없다. [[마츠카제 코우이치]]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칠드런이 다치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이 상황은 아무리 계산해도 처음부터 길리엄이 짠 함정이 너무나 철저하게 걸려든 것이다.
- 정은표 . . . . 3회 일치
뒤이어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아들이 출연하여 아들도 함께 유명해졌다. 그리고 [[우리동네 예체능]]에 출연하여 엄청난 탁구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그리고 테니스 편에도 경기도 대표로 나와서 재출연! ~~"호동 씨는 탁구칠 때는 같은 편이라서 안 그랬는데 오늘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본인 조는 에이스 조인 강호동, 신현준 조를 이겼으나 경기도 팀이 예체능 팀에게 졌다.
- 조진호 (축구인) . . . . 3회 일치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조진호는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게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무릎을 꿇고 두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등의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격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시절에는 친정팀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팀이 골을 성공시키면 평소와는 다르게 세레머니나 퍼포먼스를 자제하면서 친정팀인 대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도 하였다.
- 조커 . . . . 3회 일치
플라잉 카드의 패이며 숫자가 있는 다른 카드와 달리 광대가 그려져 있다. 게임의 종류에따라 그 사용법이 달라져서 와일드 카드가 되기도 하고, 안쓰이기도 한다.
캐릭터의 이름에 쓰이기도 한다. 캐릭터 성격은 일단 똑똑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느낌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악당이라면 이는 DC의 조커의 영향력이 짙다.
- 진격의 거인/91화 . . . . 3회 일치
* 하지만 가비가 미처 도망치기도 전에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하고 파르코가 달려가 보지만 한 발 늦는다.
그때 소년의 "형"이 나타난다. 소년은 형은 알아보지만 그가 왜 군복을 입고 있는지 몰라한다. 포격의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것 같다. 형이라 불린 청년은 소년에게 철모를 씌워서 급히 이탈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피하기도 전에 적 진지에서 기관총세례가 쏟아진다.
잔인한 이야기였지만 지휘관으로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콜트는 미련이 남는다. 마가트는 그런 콜트에게 '''[[지크 예거|짐승 거인]]을 이어받는 자'''라면, 위에 서는 자로서 각오를 다지라고 핀잔을 준다. 콜트는 이 작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상황은 고스란히 전사후보생들에게도 보여진다.
- 차민수 . . . . 3회 일치
'''차민수'''(車敏洙, Jimmy Cha, [[1951년]] [[1월 15일]] - )는 [[대한민국]] [[한국기원]] 소속 프로 [[바둑 기사]](2014년 현재 5단)이다. 프로 [[도박사]]이기도 하며 종교는 [[불교]]이다.
차민수는 1989년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세계바둑계에서는 미국 이민 이후 프로기사로서 별다른 대회 참가가 없었던 차민수가 일본 프로바둑에서 활동하던 미국 기사 [[마이클 레드먼드]]를 꺾고 미국의 대표로 선발된 것 자체를 이변으로 여겼다. 하지만 차민수는 대회가 열리자 일본의 두 기사를 연파하고 8강에 오르더니, 8강전에서는 친구이기도 한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 일보 직전까지 가며 바둑계를 경악하게 했다. 비록 대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세계 바둑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하여 당시 검토실에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은 "종반 30수 이상 실수를 거듭한 것은 일부러 져 준 것이라고 밖에 볼 수없다."라며 격노하였다고 한다.<ref>{{서적 인용|제목=19*19 인생퍼즐|저자=이홍렬|출판사=명상|연도=2002|isbn=9788972323914}}</ref>
* 차민수는 [[쿵푸]] 공인 7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2004년에 회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올인' 실제주인공 차민수씨 미술전|저자=이홍렬 기자|출판사=조선일보|날짜=2004-07-30}}</ref>
- 창작:왕국 . . . . 3회 일치
남부에서는 가끔씩 모래폭풍이 불어 재산 및 인명 피해를 입히기도한다. 이를 예측하기 위해 "폭풍 감시원"이라는 직업이 있는데 모래폭풍을 관측해 방향, 규모, 속도 등등을 무전으로 보고하는 직업이다. 정부는 이들을 영웅으로 선전하지만, 실제 대우는 좋지 못한 편이다.
헌법에서는 왕국을 입헌군주국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국왕에게 군대 지휘권, 총리 임명권, 국회 해산권 등이 부여되어 있는 등 완벽한 입헌군주국은 아니다. 해외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나 국내의 왕실에 대한 지지율은 상당히 높으므로 별 상관은 없다.
심각한 인구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을 어떻게든 수입해오려고 하는 편. 이 때문에 다민족 국가의 면모를 보인다. 이에 반대하는 왕국인들도 존재하며, 과격파의 경우에는 총기를 들고 이민족을 사냥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방첩기관과 경찰, 국가헌병대에 의해 제재된다.
- 창작:티겔 왕국 . . . . 3회 일치
동부대룩의 중남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상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상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달유의 급사이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달윤은 아직 어려 섭정자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 [* 평범한 경우라면 그의 어머니가 섭정직을 맞는게 정상이었으나, 남편이 죽기전에 먼저 병사 했다.] 우선 그의 새어머니였던 '에른 베트'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파'[* 레잉을 중심으로 모인 파벌로, 사자족이 많이 모여있는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서 상당수가 이미 사자족의 문화를 받아들인 상황이었다. 사자족들과의 혼혈(후대의 라이거 일족)도 상당수 있음.]와 달제의 증손자이자 등퍼산맥 서쪽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으며 달유의 정변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여쿨 공작 '달규'를 중심으로 한 '동부파'[* 단, 중심이 동부쪽 귀족들이란거지, 꼭 동부만 있던건 아니다. 실제로 라이엘기스와의 접경지대에 있었던 상당수의 귀족들은 라이엘기스를 싫어하는 만큼 사자족 역시 싫어했고, 그에따라 사자족을 학살하면서 거기에 호랑이족을 이주시키는짓도 서슴치 않은경우가 많다. 이러한 귀족들은 전부 동부파에 가담했다.]로 나뉘어 상당히 피튀기는 궁중 암투를 벌였다.[* 단적으로, 에른을 노린 암살사주만 해도 10여회정도 있었으며, 동부파쪽은 여쿨의 달규가 중간에 (아마도 에른이 사주한)암살자에게 암살당해 그의 아들이 우두머리를 맡기도 했다.] 이러한 궁중암투는 최종적으로 티겔의 사학자들이 '대내전'이라 부르는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여기서 최종적으로 에른의 남동생 '용담공' 에른 보우드가 동부파의 본거지였던 여쿨을 함락시키면서 끝난다. 이 내전은 지금까지의 티겔에서 벌어진 내전중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며, 왕국의 인구중 절반이 이때 희생되었다. 이때 라이엘기스 대공국이 동부파에 가담했던 북부의 호랑이족 귀족들을 다수 굴복시키면서 다시한번 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내전의 의의가 있다면 북서부파가 권력을 잡으면서 티겔에도 레잉의 문화가 퍼졌다는것 정도? 이후 상티겔 왕국은 예전에 위세를 잃어버렸고, 하이엔 왕국과[* 그전까지 동맹관계였다만, '야심왕' 헤인켈이 동맹을 깨고 공격해 북동부쪽 땅을 상당수 빼앗아간 이후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라이엘기스 대공국사이에 끼여 수많은 땅을 빼앗기는(...) 동네북이 되었다.
이에 계로는 태겡이 티겔을 정복하면 단순히 숲을 개간해 정착지를 늘리는 수준이 아닌, 숲을 통채로 태워 농경지로 개간할것이라고 사냥꾼들에게 겁을 주어 끌어들였고, 결국 흑군과 사냥꾼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해 태겡군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계로는 레이먼제국과 태겡에 대항하기 위해 긴 장벽을 세우는데, 이를 '계 장벽'이라 한다. 계 장벽을 세워둔뒤, 계로는 적극적인 확장에 나서는데, 탈환지 북부에 대한 공세로 계형시기에 탈환했다가 빼앗긴 땅을 전부 되찾았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북부 원정을 감행해 한때는 태겡을 멸망직전에 몰아넣기도 했다. 라이엘기스대공이 직접 군대를 몰고 회전에서 그를 패배시키면서 그것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 창작:헤이즈 . . . . 3회 일치
그러나 구NTX 시절에 연재되었던 "담력시험"을 계속하지 않고 '''리부트'''되었다. 먼저 "담력시험"이라는 제목으로 계속할 경우 초점이 어디까지나 '학생, 담력시험, 청소년물' 등으로 소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 대략적인 세계관 설정이 없이 무작정 연재되었기 때문에, 선택지마다 내용이 상충되거나 진행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담력시험"의 경우 주인공급 캐릭터만 5명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하나하나 행동과 대사를 부여하고 주인공들간의 대화를 마련해야 했다. 차라리 아래에서 언급한 "언틸 던"처럼 2명씩 다니는 걸로 설정해 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뚜렷한 핵심 없이 선택지가 양산되기도 했다. 결국 수습이 되지 못한 채 말이 방치지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후 현 사이트로 옮겨 "헤이즈(Haze)"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Haze는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무동군의 마스코트이자 미스테리의 상징이기도 한 안개를 뜻한다. 동시에 동사로 쓸 경우 '''신고식을 시키다'''라는 뜻인데, 주어와 목적어가 각각 누구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또한 '''미로(Maze)'''와도 철자가 비슷하다.[* 사실 제목의 후보군에 올라 있었고 많이 고민했지만 분위기가 안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락했다.]
- 청도군 . . . . 3회 일치
[[청도버스]]에서 운영 중인 농어촌버스인 [[청도 버스 0|0번]]이 풍각정류장에서 [[대구광역시]] [[동구(대구)|동구]] 신천4동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동대구터미널]]까지 1일 12회 운행하지만, 실제로는 시외버스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청도에서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서울,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동대구터미널|대구]], 경산, 밀양, 울산, 경주, 포항 등 7개 도시밖에 없다. [[경상남도]] [[창녕군]]과도 인접해 있지만,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창녕군]] 방면 시외버스가 없어 풍각에서 환승해야 한다. 7개 도시를 가는 것도 경주 경유 포항행과 울산행은 1일 3회 운행이다. 앞서 나와 있듯이 애초 산동 쪽으로 도로 연결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넘어가 봤자 경주 시내까진 한참 걸리기도 하고... 청도군, 특히 청도읍과 산서 지역은 행정구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교통, 물류, 관광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윗동네 대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눈물난다.
2009년에는 화양읍 삼신리에 [[청도 소싸움 경기장]](그것도 돔형!)을 지어놓고 거기서 경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싸움]] 특유의 전통적인 풍취가 사라져서 까는 사람도 있지만 길(25번 국도) 건너가 용암온천이니.(...) --같이 즐기라고 대놓고 밀어줬다-- 한국우사회와 청도지역공사간 마찰로 휴무를 하기도 했으나 2014년 12월에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3602&yy=2014#axzz3Lwc9vpcz|다시 개장하였다]].
특산물인 감으로 와인을 만드는 청도 와인터널도 가볼만하다. [[http://www.gamwine.com/company/main.php|홈피]]. 경부선 철도로 쓰던 터널을 개조한 와인 터널로 안에는 감 와인이 숙성되어 가고 있는데, 판매도 하고 시음도 가능하다. 이 감와인은 덜익은 쓴 감을 사용해 주조한 것으로, 특유의 독특한 풍미로 유명하다. 첫맛은 쓴데 입에 조금만 머금고 있으면 단맛이 돈다. 이곳에서 감으로 만든 와인과 초콜릿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살 수도 있다. 과거 SBS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청도 소싸움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와인터널과 용암온천, 프로방스, 소싸움을 한꺼번에 즐기러 오는 경우도 많다. --이거 노리고 소싸움 경기장까지 옮긴걸테지만--
- 최민호(유도선수) . . . . 3회 일치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상대인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의 고간을 잡아 들어 업어 메치는 명장면[* 속된 말로 '''그냥 잡아 뽑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딱지치기라고도 했다.][* 다만 현재 룰에서 이는 반칙이다. 띠 아래쪽을 잡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파이셔 선수는 패배 후 최민호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을 때 가 일으켜 안아주고 마지막엔 최민호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축하해주는 매너에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으로 금메달을 땄고, 국내 60kg급에선 2003년서부터 쭉 본좌 자리를 유지하고, 오로지 유도만 바라보며 사는 자타공인 유도 바보.
2003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일약 동 체급 최고의 선수로 부상했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체중 감량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지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다시 말하지만 '''컨디션 난조'''로 올림픽 동메달이다-- 사실 대회 개막 직전 일주일 동안 -7kg을 뺀 것을 감안하면 동메달이라도 딴 것이 기적일 정도다.[* 일반인이 이런 페이스로 다이어트를 하면 급격한 에너지 부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평생 한 번 나가보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앞두고 운동선수로서 막바지 훈련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어마어마한 정도의 체력 손실을 감내한 것이다.] 그 뒤로 한 때 66kg급으로 증량을 검토하다가 결국 60kg에 남았지만 2003년 무렵처럼 세계 강호가 아니라 3위권 선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동메달만 따서 지겹다고 할 정도였다.
- 최석기 . . . . 3회 일치
최석기는 [[대전중앙중학교]] 3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선수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키가 크고 블로킹 타이밍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였다. 대전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박준범]], [[진상헌]]과 함께 장신벽을 구축하며 철벽 블로킹을 과시하기도 했다.<ref>[http://sports.media.daum.net/nms/basket_volleyball/news/vb/view.do?cate=23794&newsid=209416 -대학배구 최강전- 한양대, 인하대와 결승 대결] 《연합뉴스》 2007년 11월 7일 16:18, 2009년 3월 19일 《미디어다음》에서 확인</ref>
그는 [[NH농협 2008~2009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수원 KEPCO 45]]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하였다. 그러나 팀은 단 한 번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었고, 이는 [[공정배]] 감독(현재[[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단장) 이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이 상무를 이기고 기나긴 25연패를 끊으며 첫 승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2009년]] [[3월 5일]]에 열린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의 경기에서 12득점, 5블로킹을 올리는 활약으로 이변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ref>[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908 〈프로배구〉KEPCO 45, 현대캐피탈 제압 '대이변'] 《제주투데이》 2009년 3월 5일 23:54, 2009년 3월 19일 1:37 확인</ref>
최석기는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처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날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와 [[수원]] 홈경기에서 최석기가 [[로베르틀란디 시몬]] 한테 블로킹을 무려 8개나 잡아내며 시몬 킬러로 등극했다. 득점을 올릴 때마다 자진방아타령이 울려퍼진다. 여기다 그가 세레모니하는 장면은 [[KBS N sports]]의 배구 프로그램 [[스페셜 V]]에서 선정한 주간 베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에 공격 성공후 자신이 개발한 세레모니를 펼치면서 팬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 최진희(가수) . . . . 3회 일치
[[북한]]에서도 인기가 높은 가수인데, [[김정일]]이 최진희의 팬이었고 사랑의 미로, 뒤늦은 후회 등은 북한에서도 애창곡으로 손꼽힌다. 그래서 [[북한]]에서 여러 번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고. 2018년 4월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평양 공연]]에도 갔다.
경기도 의왕 백운호수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며 식당 이름은 그녀의 히트곡 제목에서 따 온 '사랑의 미로'.
이 곡은 1980년대 대남방송용으로 북한이 개사해서 틀던 곡이 대중들에게 퍼지기 시작했고, 원본이 중국을 통해 들어오면서 지금은 북한의 남녀노소가 부르는 곡이 되었다. [[김정일]]이 즐겨 부르던 곡이기도 했다고.
- 추미애 . . . . 3회 일치
1985년,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던[[http://news.tf.co.kr/read/ptoday/1418527.htm|#]] 서성환 변호사[* 서성환은 추미애보다 3살 많지만, 대학을 늦게 입학한 까닭에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였다. 두 사람은 연애를 하며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한다.]와 7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457396|#]]
*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시사항이 적힌 삼성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추미애 의원을 가리켜 '돈 안 받는 정치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미애는 본의 아니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돈 안 받는 정치인' 인증(?)을 받았고, 이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추미애 의문의 1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http://mlbpark.donga.com/mp/b.php?id=201707200006465394|#]]
* [[잔 다르크|추다르크]], 탄핵녀[[http://m.nocutnews.co.kr/news/871295|#]][*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한 이유로 트위터에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본인이 직접 언급], 추장군, 오야붕[* 정작 이 별명은 [[문희상|이분]]한테 밀려 잘 안 불린다(...).], 느와르메이커, 추임스 미애보이[* [[제임스 매커보이]] 닮은꼴], 돼지엄마, 추애미, 애미추, [[제이미 라니스터|킹슬레이어]], 추날두[* 추미애라는 글자를 키보드 영자로 치면 'cnaldo', 즉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약자처럼 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호날두가 현역이던 시절, 어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등에 C.Ronaldo 를 쓰기도 하였었는데, 이때 사람들이 씨날두, 크날두로 부르곤 했었다. 나중에는 등에 Ronaldo 만 표기한다.], 프로탄핵러, 선거의 여왕[* 그녀가 당대표로 재임한 기간중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등의 별명이 있다.
- 칼렉시트 . . . . 3회 일치
캘리포니아는 전통적으로 [[리버럴]] 가치를 추종하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IT 산업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 산업이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대표할만한 지적, 경제적, 문화적 성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민자가 많고 인종적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반 트럼프 시위와 동시에 칼렉시트를 내건 시위가 벌어지고, 실제로 연방 탈퇴 선언을 노리는 'Yes California'라는 웹사이트가 나타나기도 했다.
- 캐딜락&디노사우르스 . . . . 3회 일치
본디 원작은 마크 슐츠[* [[피너츠]]의 작가와 성씨가 같지만 혈연관계는 아니다. 나중에는 슈퍼맨&배트맨 vs 에일리언&프레데터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다.]의 제노조익 테일즈(Xenozoic Tales). [[만화]]가 히트한 후 당시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자인 미국의 10대 소년, 소녀들에게 맞게 원작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을 삭제하면서 내용을 변형시키고[* 그러한 부분들을 삭제하니 내용 자체가 안 이어져서 그냥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을 바꿔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바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이후 애니메이션을 베이스로 [[마블 코믹스]]에서 이걸 다시 만화화했으며, 또 이 만화를 [[캡콤]]이 [[벨트스크롤 액션게임]]화한 것 또한 캐딜락&디노사우르스이다. 본 항목에서는 게임 위주로 서술한다.
[[와리가리]]는 힘들지만 [[무기]]를 이용한 다양한 플레이는 [[파이널 파이트]]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총기]] 위주인데다 다 쓴 총기도 적에게 던지거나 둔기로 쓸 수 있다.(...)
참고로 [[투니버스]] 개국 초기에 '캐딜락을 탄 전사'라는 작명으로 애니판을 방영해주기도 했다.여주인공 한나역의 [[서혜정]]씨 목소리를 기억할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주인공 잭 역에 [[최원형]],잭,한나와 대립하는 공룡 밀렵꾼 우두머리 역에 [[장광]]이 맡는 등 나름 초호화 성우진이었다.]
- 킹덤/527화 . . . . 3회 일치
* 순수수는 산민족 1진이 미처 혼란을 감지하기도 전에 돌파를 감행했다. 그는 맨 선두에 서서 적진을 무인지경처럼 빠르게 돌파했다. 양단화의 맞은 편, 공손룡군 본진에서도 적진을 가로지르는 순수수를 볼 수 있었다. 공손룡은 그가 전장에 나타난 이후의 행동을 빠짐없이 목격했다. 새로운 지휘관은 여러모로 자기 상상을 뛰어넘은 인물이었다.
* 조군의 수뇌부 또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새로운 총대장의 지시가 당혹스러웠다. 순수수는 지휘권을 넘겨 받고 제일 처음 전군 후퇴를 명했다. 부하장교들은 난처해하며 혹시 현재 전황이 정체된 탓인지 물었다. 이 전황은 순수수의 도착을 기다리느라 그런 거라며 변명을 하기도 했다. 순수수가 부하들의 채근에 입을 열었다. 그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후퇴를 결정한 건 그게 필승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진군을 보다 깊은 곳까지 끌어들여 단 한 놈의 생존자도 없이 몰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수는 요양에서 그저 이기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진군이 여기서 패한다면 그 병력은 필시 주해평원으로 향할 것이다. 요양에서의 패잔병이 주해평원에선 이목의 부담을 가중시킬 증원군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왕도권 수호를 위한 전략이었다.
* 진군을 요양성으로 끌어들인다, 공손룡은 후퇴 자체보다도 그 같은 결정을 더 마음에 걸려했다. 그는 행군 중에도 순수수에게 진심으로 그런 작전을 감행할 거냐고 물었다. 순수수는 말없이 행군을 속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부하 장수들은 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순수수가 암시한 작전의 전모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명이 그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요양의 엄니"란게 대체 무엇이냐고. 그의미를 아는 것은 순수수 자신과 공손룡 뿐이었고 둘 중 누구도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쪽은 순수수였다. 요양성이 목전에 있는 위치에서였다. 우선 설명에 앞서 "요양군"의 병력 구성을 짚고 넘어갔다. 이들은 요양 일대에서 모집된 병력이긴 하나 요양성에서 데려온 병력은 아니다. 그걸 지적한 것은 앞으로 맞이한 전장은 진군에게만큼이나, 조군에게도 당황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3회 일치
>석조에 표현된 극에 다다른 숙달은 그 자체가 교훈이기도 하다.
>바다는 어부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그것을 낚아채 가기도 한다.
>학식은 지혜를 날카롭게 하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 퍼니셔 . . . . 3회 일치
본명 프랭크 캐슬. 원래 [[군인]]이었던 캐슬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갔다가 갱단에 의해 가족들을 잃었고, 이후 퍼니셔가 되어 세상의 악인들과 싸우게 되었다. 그 방식은 살인. 통상 히어로가 악당과 싸우도 제압하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라면 퍼니셔는 그런 일 없이 아예 끝장을 낸다. 그러다보니 [[캡틴 아메리카]] 등 보편적인 히어로들과는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왓치맨]]의 [[로어셰크]]처럼 악을 없에기 위해 괴물이 된 캐릭터. 그러다보니 슈퍼 히어로 카테고리에 분류해야 할지 난감해지기도 한다. 비슷한 캐릭터로 로어셰크 외에도 [[DC 코믹스]]의 [[와일드 독]]이 있다.
캐릭터가 캐릭터다보니 빌런 등 악인들은 법보다 퍼니셔를 두려워하는 등 악명을 쌓았으나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이라 초능력자에게는 밀리기도 한다.
- 페어리 테일/515화 . . . . 3회 일치
* [[아이린 베르세리온]]의 남편이자 [[엘자 스칼렛]]의 아버지는 옆나라의 장군이었다. 아직 용왕제가 시작되기도 전, 인간끼리 전쟁하던 시절에 한 정략결혼이었다. 용왕제 시절에는 함께 전장에 서기도 하고 함께 현룡 베르세리온의 최후를 지켜보기도 했던 사람이다.
- 포켓몬 . . . . 3회 일치
포켓몬들은 트레이너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는 트레이너의 말을 무시하기도 한다. 포켓몬스터 금이나 포켓몬스터 은을 해본 사람이라면 덜덜이라는 롱스톤을 기억할거다.
일부 지역에서는 포켓몬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모습과 습성 등 여러가지를 바꾸기도 한다. 이를 "리전 폼"이라고 부른다.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설정이 제대로 짜여지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코끼리 같은 현실의 동물이 도감에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애니메이션판도 마찬가지라서 수족관에 포켓몬이 아닌 현실의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 풍운 . . . . 3회 일치
독고일방의 형. 독고일방은 검성의 둘째동생으로 언급된다. 오랫동안 은거하고 있었으나, 독고일방이 천하회에 살해당했고, 조카 독고명이 도움을 달라고 해서 무림에 나서게 되었다. 냉정하게 보이지만 나름대로 조카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독고명에게 항룡신퇴를 전수해준다.
'''항룡신퇴''' : 무쌍성의 소군주 독고명이 사용하는 무공. [[사조영웅전]]의 [[항룡십팔장]]의 퇴법 버전 같으며, 상당수의 초식명이 겹친다. 이래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마영성이 김용 만화를 그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문제는 없는듯. 여래신장처럼 독고명의 사망과 함께 작중에서 사라진다.
'''성심결''' : 제석천이 만든 무공. 익히면 장수하게 되며,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제석천은 성심결의 힘으로 수백년 동안 살았지만, 육체가 서서히 노화되어 자신의 육체를 얼음 속에 가둬야 했다…고 설명 되는데 제석천의 정체를 알고보면 제석천 자체가 사기로 무림인들 골탕먹이고 서로 싸우게 하면서 즐기던 악질 개새끼인데가, 자기 이외의 놈이 용정 먹고 불로불사하면 안된다고 용정을 혼자서 강탈하려는걸 보면 아무래도 초반부에 나온 성심결 설명도 '''사기'''에 가까울 듯 하다. 물론 무이나 제석천의 제자 빙황 등 성심결의 효과를 본 놈이 나오기는 하고, 제석천이 수명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므로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수백년씩 사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 프로 스포츠 . . . . 3회 일치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이런 공산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한국축구사에 전설을 남긴 [[양지 축구단]]은 박정희와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푸쉬를 받아 등장한 케이스였고, 이는 북한의 1966년 월드컵 8강진출에 자극받아 탄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국가의 개입에 따른 아마추어리즘이 훼손된 사례는 확실한 트렌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모습은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산물임이 확실하다.
프로 종목은 흥행 때문에 규칙을 변경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경기의 아마 종목과 차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로 복싱과 아마 복싱은 프로 단체와 아마 단체에서 스포츠의 '규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으나 동시에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기가 되어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구로 헤드기어를 장착하는 아마 복싱은 프로복싱처럼 흥행에 도움을 주는 '화끈한 [[KO]]'를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 때문에 포인트와 기술 위주의 운영을 강요받게 된다. [[농구]]의 경우 [[NBA]]는 [[쿼터제]]나 [[덩크슛]] 같은 흥행 요소를 도입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 핑커톤 . . . . 3회 일치
1861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개척시대]]에는 [[제시 영거 갱]]이나 [[와일드 번치]]같은 갱단을 추적하거나 열차강도를 잡는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위해 [[신문]] 기사를 오려내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의 시초가 되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대화재]] 직후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고용되기도 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탐정인 케이트 와르네(Kate Warne)가 고용된 탐정 회사이기도 하다. 1856년 고용되었다고.
- 하이큐/265화 . . . . 3회 일치
*야쿠는 그 말을 곱씹어 봤다. 돌이켜 보니 코즈메는 확실히 체력은 없지만 실제 연습에선 어지간하면 다 따라왔다. 가끔 땡땡이를 치는 정도로. 마침 쿠로오가 전에 했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빨리 일어나기 사건. 코즈메는 게임 때문에 맨날 늦게 잤는데, 쿠로오가 런닝하려고 일찍 일어나 보면 그때도 코즈메 방에 불이 들어와 있는 일이 많았다. 그때가 대략 오전 5시 경. 처음엔 철야로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철야가 아니라 "일찍 일어난" 거였다. 무려 오전 2시 기상. 철야를 하면 부모님이 게임을 죄다 버려버리니까, 반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서 게임하는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애마모토 타케토라]]와 야쿠의 중간. 둘이 동시에 리시브를 뻗는다. 받은 건 야쿠 쪽. 떠오른 공을 코즈메에게, 코즈메가 쿠로오에게 연결해 스파이크. 그러나 사루카와 9번이 리시브한다. 다시 사루카와의 공격. 이번에도 그쪽 4번이다. 또 스파이크로 나올까? 아니었다. 코즈메와 쿠로오의 블록을 살짝 넘기도록 밀어넣는 페이크. 그 바로 뒤에 있던 카이가 재빨리 눈치채서 커버한다. 탄탄한 수비. 중계진이 "수비의 네코마"를 연호하며 칭찬했다. 카이가 살린 공을 받으려고 코즈메가 다시 후방으로 향한다. 코즈메가 왕복하는 패턴이 계속된다. 이번엔 후쿠나가 쇼헤이에게 보내서 좌측을 공략해 보는데. 하지만 실패. 사루카와도 네코마 못지 않게 끈질긴 수비를 펼친다.
* 다이쇼가 정확한 통찰을 내렸다. 네코마는 2점 리드를 지키며 22 대 20점. 1세트 후반까지 몰고왔다. 겉보기에는 네코마가 안정적으로 기세를 올려가는 걸로 보였지만 시시오 감독의 복심에 따르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은 희생에 불과했다. 설사 그때문에 1세트를 내주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작전 목적은 적 세터에게 부하를 거는 것. 그가 본 코즈메는 멘탈이 무너지진 않더라도 피지컬 쪽은 무너지는 쪽이었다. 지치면 표가 나는 타입. 경기가 풀세트로 가게 되더라도 좋았다. 오히려 그 쪽이 유리하기도 하다.
- 한승주 (공무원) . . . . 3회 일치
|출생지= {{국기나라|일제 강점기}} [[경기도|경기]] [[경성부|경성]]
'''한승주'''(韓昇洲, [[1940년]] [[9월 13일]] [[경기도|경기]] [[경성부|경성]] - )는 대한민국의 교육인, 외교학자, 외교관,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외무부]] 장관, 주미 대사를 지낸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1978년]]부터 교수로 재직한 외교학자이다.
한때 [[고려대학교]] 교수 [[한승조]]의 발언 파문의 유탄에 맞기도 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1083 <nowiki>[</nowiki>해프닝<nowiki>]</nowiki> '한승조 교수 파문'에 유탄 맞은 한승주 교수 - 오마이뉴스] 05년 3월 6일</ref> 같은 [[고려대학교]]에다 이름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 홍세화 . . . . 3회 일치
'''홍세화'''(洪世和, [[1947년]] [[12월 10일]] ~ )는 대한민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에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2011년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 ([[노동당 (대한민국)|노동당]]의 전신) 당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0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이 되었고, 2010년 민주노총과 한신대학교에서 기획한 노동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11월엔 <[[진보신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2013년 계간지 <[[말과활]]>을 창간했다. 이후 2015년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일명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했다.
- 홍진경 . . . . 3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경기도]] [[남양주시]] 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난 홍진경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3년 제2회 [[서울방송|SBS]] 슈퍼 모델 선발 대회에서 《베스트 포즈상》을 받고 연예계에 데뷔하였다.<ref>최지윤.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692771&year=2011 이소라·홍진경·송선미…잘 나가는 슈퍼모델 출신 ★들]. 매일경제. 2011년 10월 26일.</ref>
홍진경은 2005년부터 [[여명학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아동 보육 교육 시설, 청소년 공부방과 쉼터,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총 12개 단체에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했다. 특히 대한민국 내 보육원 아이들의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위한 후원과 아시아 지역 30명의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이 사는 지역을 살리기 위하여 매달 기부활동을 했다. 2012년 초에는 [[아프리카]] 차드 도바 지역에 자신의 딸 김라엘의 이름을 딴 '라엘탁아소'를 세우는 등 대한민국 외의 어려운 아이들에게까지 후원을 하기도 하였다.<ref name="이지">이지현. [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271303 홍진경 7년째 선행, 국내외 기부+후원 아끼지 않아 '훈훈']. TV리포트. 2012년 10월 15일.</ref> 또한 《[[별에서 온 그대]]》에 천송이([[전지현]] 분)와 친한 만화방 사장님이자 동창생으로 등장하여 간간이 쇼스타퍼 역할, 약방의 감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3회 일치
[[송강호]]에 앞서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성기노출을 감행한 [[용자]]이며, [[아수라(영화)|아수라]]에서도 노출을 감행하면서 연기를 위해서 어떠한 장면이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들을 낳으면서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절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평소 아들 바보와 애처가로 유명하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후에 영화 시나리오에 아동 학대나, 베드신 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거절한다고 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아내 [[문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장동건]], [[정우성]] 등이 속한 [[연예인 야구단]] 플레이보이즈 소속이기도 하다.
- ATM . . . . 2회 일치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은행 측에선 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기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기이다. 이렇게 대중에 노출이 많기 때문에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도때도없이 카드복제기나 도촬카메라 같은걸 설치한다. 조금이나마 힘 쓸 생각이 있는 놈들은 이걸 뜯어서 가져간다고한다. 이런 이유로 ATM도 보안에 대한 이슈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보안 업데이트를 꾸준히 실행한다. 자동화기기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위해선 어쨌거나 현금이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물 등지에서는 좀 최신식 [[금고]]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억지로 뜯으면 잉크가 뿌려지거나 해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이 된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여담으로 인터넷에서는 고소당하기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칭호이기도하다.
- Crusader Kings 2/특성 . . . . 2회 일치
막 태어난 갓난아기 외의 모든 캐릭터들은 특성을 가지고있다. 이 특성들은 능력치 경감과 같은 효과를 준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벤트에 따라 새로운 특성이 생기기도, 원래 있던 특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 DC's Legends of Tomorrow . . . . 2회 일치
타임 마스터 [[립 헌터]]가 [[반달 새비지]]를 저지하기 위해 과거로 와서 히어로들을 모아 대항한다는 내용. 그러다보니 현 시대의 히어로들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기도 하기에 시간여행물이기도 하다.
- Q.E.D. 증명종료 . . . . 2회 일치
인물설정 때문인지 오일러의 공식이라든지 초끈이론이라든지 일반인으로서는 머리아픈 수학, 과학적 이론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는 건축과 출신으로 과학은 취미로서 좋아한다고 한다.[* 현학적이라 장점이자 단점. 팬들은 좋아하지만 골치아프다고 포기하는 독자도 많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화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타 추리물처럼 오류가 있다. 이를테면 4권에서 클란이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공격한다는 장면에서 '''MIT'''출신자인 토마와 로키가 원자력 발전소, 미사일 사일로 등을 걱정하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내용. 기술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어지간한 중요 시설은 '''물리적'''으로 일반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다.[* 즉 아예 물리적인 서버 자체가 따로 구축되어 있다. 은행권의 경우 인터넷 뱅킹 등으로 외부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고 그 틈을 노릴 수 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개 전산망에 이어지는 회선 자체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폐쇄 네트워크를 공격하기 위한 [[스턱스넷]]과 같은 공격기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약정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뿐으로 외부에서 원격 조종하는 개념은 아니다.] 즉 직접 가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일개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반인의 통념이라면 모르겠는데 '''MIT''' 현역이 저런 소리를 하니..
* 작품 자체의 소재가 일반인들은 접해보지 않은 개념들이 많아. 상당히 상식적인 면에서 읽어볼만하나 원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많기도 하고, 일본어 특유의 외국어 표기법(ex, 마구도나루도)으로 번역자가 그대로 해석해서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연속체 가설에서 만화책에서는 '아레후'라고 나오지만 제대로 된 명칭은 [[알레프]].
- The Men Who Built America . . . . 2회 일치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OBS가 '''부(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틀어주는 중.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총 4화짜리 물건의 분량을 8화 쯤 되게 뻥튀기 해놨다. 한 화를 여러 화로 쪼개놓은 듯. [[방송대학 TV]]에서는 '''거상(巨商)'''이라는 이름으로 방영 중. 2013년 경에는 [[TV조선]]에서 '''미국을 일으킨 거인들'''이라는 이름으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9/2013112903497.html|한 것 같기도 하다.]]
효율 향상을 위해 카네기가 영입한 인물. 효율적이지만 냉혹한 정책을 벌인다. 그 결과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할 뻔 하기도.
- Victoria II . . . . 2회 일치
빅토리아 시리즈의 시스템. 다른 패러독스 게임과 달리 빅토리아 시리즈는 생산이 매우 세분화되어있다. 좋게 말해서 세세한거지 많은 사람들이 이 복잡한 시스템에 씨발거리며 게임을 접는다. 이 때문에 다른 패러독스 게임 개발진이 빅토리아 시리즈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경제 시뮬레이터"라며 돌려까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리즈 만의 특별한 요소기는 한데...동시에 게임을 좆같이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기도 하다.
- head to head . . . . 2회 일치
일반적인 의미로는 맞대면, 스포츠용어로는 "직접 경쟁"을 의미한다. 축구에 한정하면 "승자승 원칙"이라는 용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대부분은 상대전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승자승이라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니다. 단순히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까지도 고려해 평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난감한 경우이기도 하다. 상대전적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번역하기 까다로우므로 오히려 마케팅이나 라디오처럼 발음 그대로 쓰는 편이 나은 용어로 보인다. 상대전적을 가리키는 헤드 투 헤드일 때는 "상대전적"으로 번역하고,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한 우위비교일 때는 헤드 투 헤드로 부르는 게 낫다는 이야기.
- 가족같은 . . . . 2회 일치
광고 문구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가 흔히 있다보니, 오히려 '가족같은 분위기입니다.', '가족같은 회사입니다.'라는 소개에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 강구열 . . . . 2회 일치
정작 이슈를 불러일으킨 이후엔 1년 가까이 부진한 모습으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최근 [[BATOO 스타리그 08-09]] 오프라인 예선에서 [[변형태]](CJ 엔투스)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36강 본선에 진출했으나 조기탈락했다. 여담으로, 그무렵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을 벼르고 있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나, 정작 그렇게는 못 됐다. 그 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크게 내지 못한 채로 [[2009년]] [[9월 10일]] 소위 '날일' 에 날카롭게 은퇴를 선언했다.
이같은 설전의 영향으로 두 선수의 맞대결엔 뜨거운 관심이 모아졌고, 경기는 강구열의 완승으로 끝났다. C조 2경기에서 강구열이 승리한 이후, 최종진출전에서도 강구열이 김창희를 꺾으며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김창희는 진영수와의 대결은 고사하고 탈락의 쓴맛만 봤고, 그의 안티팬들은 강구열에게 '세스코 테란(벌레를 박멸했다는 뜻)'이란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4살 전후까지 발현되며 확인은 새끼 발가락 관절 개수 같은 신체적 특징을 통해 개성의 유무를 알 수 있다는데,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새끼 발가락 관절이 없다고 한다. 쓸모 없는 기관이 없이 태어난 사람이기에 개성같은 부분이 진화되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그리고 4살 전후라는 점에서 어려서부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부모의 유전이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개성혼이란 문제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 다만 미도리야는 부모 양쪽 다 개성이 있음에도[* 어머니는 염동력으로 추정되는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는 아직 등장이 없으나 불을 뿜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무개성인 것을 보면 유전 법칙이 절대적이지는 않은 듯 하다.
* 기본적으로 한명에 한능력같지만 타고난 개성에 따라 만능적인 특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스이 츠유]]의 <개구리>가 좋은 예시. 토도로키 쇼토의 경우 아예 상반되는 힘을 타고 났다. 그래도 아스이의 개성은 결국 다방면에서 활약이 가능할 뿐이지 하나의 개성이며 토도로키도 부모의 유전으로 두가지 특성을 가진 하나의 개성을 타고난 것이다. 이와 구별되는 복수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없는 듯 하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0화 . . . . 2회 일치
* 봄바는 자기도 밤샘한 적이 있다며 심야 라디오를 듣던 시절 이야기를 한다.
* 카나우는 자기도 모르게 여동생 히카리의 야행성 습성도 털어놓으며 푸념을 하게 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1화 . . . . 2회 일치
* 알렉스는 그때부터 다양한 오덕 용품을 모았는지 포켓 스테이션 같은 마이너한 주변기기도 나오고 각종 미니게임기도 발견된다.
- 계림 . . . . 2회 일치
계림은 또 [[신라]]의 별명이기도 하다.
[[쉔무]] 2의 제6장의 부제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본래 계림에 갈 때까지 다양한 [[떡밥]]이 뿌려졌으나 도착하자마자 게임이 끝나버렸고 이후 쉔무 후속작은 나오지 않는다.(…) --뭐 계림 관광 잘 하면 되겠지--
- 고대 그리스 . . . . 2회 일치
폴리스들의 자치는 사라졌지만, '그리스 문명'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인이 가장 널리 지배권을 펼쳤던 시기이다. 마케도니아에 정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마케도니아도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그리스 인이나 다름없었던 시기이기도 하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으로는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인도까지 그리스 계 폴리스와 왕국이 나타난다.
중앙아시아 동방의 그리스인들은 [[불교]]로 개종하기도 했으며, [[간다라 미술]]같은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받은 불교 예술이 나타나 이후 동양 불교 예술의 근간이 되었다.
- 고무장갑 . . . . 2회 일치
어느쪽의 고무장갑이건 착용할 때, 벗을 때에 착용자를 힘겹게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빨강 고무장갑을 구입할 때에 딱 맞춰서 사지 않고 일부러 조금 큰 사이즈를 사기도 한다.
[[예능]] 분야에서는 고무장갑을 [[풍선]]처럼 불어서 터뜨리는 [[묘기]]가 나오기도 한다.
- 고유민 . . . . 2회 일치
준결승전 흥국생명 전에도 선발 출장했다. 1,2세트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했는데 --초반엔 잘 보이지 않다가 1세트 중반 부터-- 공격성공률 60%에 이르는 활약을 하면서 끈질기게 추격하는 흥국생명의 기를 꺾는 역할을 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때 차분히 공격을 성공시키면서 공격의 발판을 만들어 놓고 황연주와 양효진이 역전의 순간 킬러본능을 발휘하며 매조지하는 패턴이 나온 경기였다. --사실 1,2세트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면 3세트는 팀컬러인 자멸 4세트는 센터로 뚜껑따는 패턴의 경기였다.-- 당연히 예선전 분석을 했을 흥국생명은 이전 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게 블로킹 포지션을 잡으며 꾸준하게 2인 블로킹을 시도하였으나 그것을 '''힘으로''' 뚫어내는 놀라운 펀치력을 보이면서 컵대회 블루칩의 역할을 했다. --공격 성공률은 악몽의 3세트에서 다까먹긴 했다.-- --4세트 21-22 접전 상황에서 블로킹 터치아웃 오심을 이끌어내며 뻔뻔하게 뒤돌아 서는 모습이 백미. 역시 [[양효진|올림픽 월드클래스 사기꾼]], [[염혜선|별명이 그냥 사기꾼인 선수]], [[김주하|셀카를 사기로 찍는 선수]]의 팀 답게 새로운 신예 사기꾼의 등장을 알리기도 했다.-- 공격점유율 18.24% (팀내 3위), 성공률 37.93%(팀내 2위), 14득점(팀내 3위)[* 개인 한경기 최다득점], 공격득점 11점, 서브 에이스 2개, 디그 14개, 리시브성공률 20%--오늘은 5등이네--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배구팬들은 "쟤 어디있다가 지금 나타난거냐?"고 의아해 할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 구성윤 . . . . 2회 일치
2013년 성인 팀으로 승격하였으나,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 입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하면서 전반기를 날렸고, 여름에 재활을 마친 후 다시 엔트리에 복귀했으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당일에 또 부상을 당하며 다시 [[벤치워머]]가 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부터 꾸준히 [[세레소 오사카]]의 골대를 지키고 있던 선배 [[김진현(축구선수)|김진현]]에게 밀리면서 2014년까지 단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이후 삿포로로 이적한 장면을 보고, 세레소팬들은 구단한테 [[김진현]]선수의 후임이라고 했으면서 육성을 실패한다는게 말이되냐면서 비난이 이어졌다. 물론 그 비난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클럽의 활약을 통해 2015년 3월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였다. 2016년에는 [[김동준(축구선수)|김동준]]과 함께 [[리우 올림픽]] 최종 명단에 발탁되기도 했다.
- 권민경 . . . . 2회 일치
그에 아울러 그녀는 프리 랜서 아나운서 출신 수필가 겸 연기자 [[김경화]]와 영화배우 겸 연기자 [[손예진]]의 [[정화여자고등학교|정화여고]] 선배이기도 하고 그녀의 막내아들 조상우 君은 가수 [[송유빈]] 君, 가수 [[태하 (1998년)|김태하]] 羊, 연기자 [[신동우 (배우)|신동우]] 君, 연기자 [[박종혁]] 君 등과 한림예고 동기이기도 하다.
- 권희동 . . . . 2회 일치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순도 어느새 5번까지 상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영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허리 부상의 여파로 인해 시즌 중반까지 최악의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부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후반기부터는 펄펄 날기 시작했고, 9월부터는 4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김성욱]]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생긴 중견수 공백까지 준수하게 메워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43타수 97안타 8홈런 57타점 타출장 .283/.352/.414.
- 긴나라 . . . . 2회 일치
긴나라는 기원이 불확실하다. 산스크리트어 킴나라 자체도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뜻하는 말로서, 이들의 불확실한 정체를 가리키는 의문사가 곧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불교경전이 써질 당시에 이미 긴나라의 정체는 불확실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일설로는, 옛날 인도의 히마찰 프라데시의 킨나우르(Kinnaur) 지역에 살았던 고대의 인도-티베트 종족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이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며 대승불교에 경도되면서 불교 경전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칠레가 아니었다니 실망이야...--
고대 베다 문헌, [[마하바라타]],[[라마야나]] 등에는 킴푸루사(Kiṃpuruṣa)라는 유사성이 많은 존재와 등장하는데, 긴나라와 킴푸루사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킴푸루사 역시 ‘(어떤) 사람인가’라는 뜻으로서, [[자타카]]에서 운문 자타카가 산문 자타카로 옮겨지면서 킴푸루사가 긴나라로 바뀌는 경우가 있어 후대에 혼동이 일어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길용우 . . . . 2회 일치
||종교||<(> [[가톨릭]]교([[세례명]] : [[토마스]])[* 천주교 케이블 채널인 PBC 평화방송이 제작한 김수환 추기경 추모 다큐드라마에서 김 추기경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
태민영과 많이 닮았다. 태민영은 유작이 된 [[태조 왕건]]에서는 초반에 신강 역으로 나왔다.[* 오래 갈 만한 캐릭터였는데,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는지라...][* 또한 용의 눈물에서는 정종 이방과를 연기하기도 했다.] 길용우는 [[복지겸]]으로 나왔다. 15회에는 둘이 같이 출연한다.
- 김대륙 . . . . 2회 일치
7월 14일 청주구장에서 있었던 한화와의 경기에서 1아웃에서 나온 [[짐 아두치]]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에 2아웃처럼 전력 질주하는 예술적인 뇌주루를 보여주면서 한화의 역전승에 큰 도움이 되었다.~~ 대륙의 기상. 대륙횡단.~~ 후에 집중해야 한다고 허구연이 한소리 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수비하다가 이용규를 내야안타로 내보냈고 이게 결국은 끝내기가 되었다. 한화의 끝내기 승리가 결정된 이후 카메라가 김대륙을 클로즈업 했을 정도. 한마디로 나쁜 의미로 경기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 [[야민정음]]이 적용되어 벌써부터 '''김머륙'''으로 불리기도 한다.
- 김대호(축구선수) . . . . 2회 일치
이 해 리그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인 그는 다음 시즌, 2012년 4월 3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2012 ACL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6월 17일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10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실제로 2012시즌 김대호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등 강팀만을 상대로 5골을 기록하며 강팀 킬러로서 주목을 받았다. 시즌 기록은 23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제외]. 2013시즌에는 28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풀백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고 골은 없으나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아디]]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등 개인적으로도 뜻깊은 시즌이었다.
이후 경찰에서는 7경기 1도움을 기록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의병 제대]] 판정을 받으면서 예정보다 빨리 포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naver.me/G4Ab803O|#]] 다만 제대 사유가 사유이다보니, 전역 후인 17시즌은 1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 김민희(1972) . . . . 2회 일치
이 인기를 모아서 [[캐럴]] 송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응답하라 1988/삽입곡|크리스마스 폴카]]가 BGM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게 되어서 그랬는지 성인 연기자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간간이 [[드라마]]에 [[조연]]으로나 출연하는 편이며, [[살림 9단의 만물상]] 같은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푼수 스타일의 [[아줌마]]로도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2003년~2004년 MBC 사극 [[대장금]]에 내의녀 비선역으로 출연하였다. 장금이 의녀로 입궁했을때 내의녀로 들어왔지만, 8년후에 어의녀로 승진하였다.
가장 최근 드라마 출연은 2011년 [[KBS 1TV]] 일일연속극 [[당신뿐이야]]다. 2013년 ~ 2014년 [[왕가네 식구들]]에 특별출연으로 잠시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의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는 조연급 배우일 뿐이지만, 50대 이상 어르신들의 중에는 [[1982년|82년]] 생 [[김민희(1982)|김민희]]는 모르면서도[* [[김민희(1982)|김민희]]는 중년층 이상을 겨냥한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출연한 경력이 거의 없다. --하지만 [[홍상수|거하게]] [[불륜|일을 저질러서]]...--] 이 김민희는 [[1980년대]] 초반의 똑순이 하면 아 하면서 기억하시는 분도 꽤 된다. ~~다만 예명 김민희보다는 똑순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하실 뿐이란 게 또 문제지만(...)...~~
- 김범룡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과천시|과천]]
}}</ref> 되기도 했으며 [[1999년]] [[3월 12일]] 방영된 MBC <가요콘서트>에 출연하여<ref>{{뉴스 인용
- 김병기(배우) . . . . 2회 일치
||출생||<(> [[1948년]] [[11월 2일]] [[경기도]] [[양주시]] ||
이후 현대극에서는 주로 [[재벌]] [[회장]], 중앙정보부장[* 하필 동명이인인 정치인 김병기도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안기부-국정원 출신이다.], 국회의원, 국무총리, 장관 등 [[높으신 분들]]을 연기하는 편이다.
- 김성곤 . . . . 2회 일치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전신. 김성곤은 나중에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엔 [[유도(스포츠)|유도]] 선수로 활동했고 정계에 있을 때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체육인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성곡컵 국제유도대회'가 있다.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2회 일치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년 동계 올림픽|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문화방송|MBC]]의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전격 발탁되었는데, 예전의 구타 사건이 다시 조명되면서 크게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 제목 = 김소희 구타 논란… 네티즌, MBC에 뿔났다 "기가 막혀 못 보겠다" | url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869879 | 출판사 = 이투데이 | 저자 = 유혜은 | 쪽 = | 날짜 = 2014-02-16 | 확인날짜 = 2014-02-16 }}</ref>
- 김숙자 (1389년) . . . . 2회 일치
그는 관료생활 외에도 [[소학]]부터 경학 등 학문을 가르쳤고, 아들 [[김종직]] 외에도 탁중(卓中), [[이재인 (조선)|이재인]], 손조서(孫肇瑞) 등의 문인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김숙자의 문인 중에서 우수한 제자 9명은 세칭 아홉 현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1646년]](인조 24) 선산의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되었고, [[1786년]](정조 10) 김광형(金光泂)을 소두로 하는 [[경상]], [[충청]], 원춘(原春), [[경기도]] 등 4도 유생의 사액 하사 건의로 이듬해 사액이 내려졌다. [[1905년]](광무 8) 설립된 거창 남상의 일원정 (一源亭)에는 아들 [[김종직]] 및 스승 [[길재]], [[정몽주]], 기타 [[김굉필]], [[정여창]] 등과 같이 배향되었다.
- 김승대 . . . . 2회 일치
초기에는 슈팅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골은 많지만 거의 모든 골이 가볍게 밀어넣은 골이고 강력한 슈팅으로 넣은 골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데뷔 시즌 한정으로, 그 이후 시즌에는 슈팅 성공률 66.6%를 전반기 넘어서까지 유지했을 정도로 일취월장해서 [[감아차기]], 툭 밀어넣기 등 다양한 슛을 구사했다. 그리고 위의 부정적인 평가는 좀 억울할 법 하기도 한 것이, 플레이 스타일 상 골키퍼와의 1대1 경합이 주로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손흥민|손세이셔널]]같은 강슛보다 정확하게 차 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즉, 옳은 평가가 아니라는 것. -- [[풋볼매니저|선호 플레이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침투' , '패스하듯 정확한 슛팅을 구사'가 달려있다 하더라]]--
2014년 전반기 리그에서 이명주와 함께 발군의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일각에서 월드컵 엔트리 승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으나 결국 탈락했다.
- 김옥이 . . . . 2회 일치
| 기타 이력 = 숙명여자대학교 초빙교수 <br/> 한나라당 특임위원 <br/> 한나라당 행정위원 <br/> 한나라당 경기도 의회 의원 <br/> 한나라당 상임위원 <br /> 한나라당 국회의원 <br /> 새누리당 국회의원 <br/> 새누리당 전임위원 <br/>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br/> [[자유한국당]] 보훈행정위원
육군 대령 예편 이후 [[새누리당|한나라당]] 소속의 제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냈고, 18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출마하기 전에는 경기도 의회 비례의원이었다.<ref>[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34888]</ref>
- 김용국 (야구인) . . . . 2회 일치
[[1997년]] 그는 무보수 방문 코치로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루키 리그 야구단 [[헬레나 브루어스]] ([[:en:Helena Brewers|Helena Brewers]])에서 코치로 있다가 그해 9월 마이너 리그 내의 교육 리그, [[애리조나 폴 리그]] ([[:en:Arizona Fall League|Arizona Fall League]])에 속해 있던 야구단 [[메사 솔라 삭스|선 시티즈 솔라 삭스]] (Sun Cities Solar Sox; 現 메사 솔라 삭스 [[:en:Mesa Solar Sox|Mesa Solar Sox]])에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55979 <프로야구>김용국, 애리조나 폴리그 코치 영광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한 달간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싱글A 야구단 [[스탁턴 포츠]] ([[:en:Stockton Ports|Stockton Ports]])에서 수비 및 주로 코치로 일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94321 <프로야구> 김용국, 미국 프로야구 지도자로 데뷔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1998년 말, 1년간 그를 지켜본 [[스탁턴 포츠]]는 그에게 연봉 3만 달러를 제안함과 동시에 1999 시즌부터 정규 시즌 코치로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1999 시즌이 끝난 뒤엔 연봉이 3만 5천 달러로 오르면서 트리플A 야구단 [[인디애나 인디언스]] ([[:en:Indianapolis Indians|Indianapolis Indians]])의 코치로 승격되었다. 2000 시즌 도중에는 [[스카우트]] 자격으로 한국에 2주 동안 출장을 오기도 했는데, 그때 한국의 4개 프로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코치에 도전해 볼 생각도 있었으나 [[LG 트윈스]]의 강력한 러브콜로 인해 국내 복귀를 택했다.<ref name="imaeil"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그가 레전드 [[3루수]]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옛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
- 김인철 . . . . 2회 일치
2005 시즌은 대타요원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는데 1호포를 대타홈런으로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월 한달동안 6홈런을 때리며 잠깐 홈런 1위를 한 적도 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톱타자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는데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서 두 자리수 홈런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땐 철밥통 소리 들을 정도로 썼던 것도 아니고 대타요원으로 시작했다가 자기가 잘해서 주전을 꿰찼던 거라 그리 욕 먹지도 않았는데 이 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하여 2006년~2007년에는 신인 외야수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로 인식되어 이도형 등과 함께 한화팬들에게 김인식의 양아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다. 그 와중에 문학서 끝내기패의 원흉이 되기도 했는데 연장전에 들어가고 SK의 공격때 주자 1루에서 히트앤드런이 걸렸고 1사 1,3루의 위기가 될 상황이었는데 좌익수이던 김인철이 포구후 바로 송구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던 틈을 타 3루주자인 정근우가 홈을 파고 어이없게 끝내기 패배(즉 1사 1루에서 힛앤런이 걸렸는데 단타로 1루주자가 홈까지 접전상황도 만들지 않고 홈으로 들어와 경기가 끝나버린 상황이다)를 당해버렸었다. 그거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국 2007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었다.
- 김정재 . . . . 2회 일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전직 포항시장 출신인 친여 [[무소속]] [[박승호(정치인)|박승호]]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경북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심지어 20대 총선 기준 영남권의 유일한 여성 국회의원이다.] 같은 해 5월 8일 [[김명연]]([[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갑)과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에 임명되었다.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 하에서도 유임되었다.
계파로는 범 [[친박]]계로 분류된다. 실제로 탄핵 표결에서 [[전희경]]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 김종호(1933) . . . . 2회 일치
1952년에 [[해군사관학교]] 10기로 입학해 1956년 임관했다. 목성함장과 부산함장을 지냈고 1984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함대사령관을 지냈다. 해당 한국함대는 뒤에 명칭이 바뀌어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었다.[* 해작사의 영어 표기도 Naval Operation Command가 아닌 Korea Fleet Command이다. 일본의 경우 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함대가 [[자위함대]]로 [[함대]]급 부대인 [[잠수함대]], [[호위함대]], [[항공집단]]의 상위기관이다.] 1986년 2월 1일에 한국함대가 해군작전사령부가 되자 초대 작전사령관을 지냈다.
퇴임 후에는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제11대 [[성우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진(배우) . . . . 2회 일치
1973년 8월 23일 [[경기도]] [[안산시|단원구]] 출생의 탤런트이다. 본명은 [[김경진]]. 90년대 중반 [[좌회전]]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으나 뜨지 못하고[* 그래도 [[가요톱10]]에서는 10위권 안에 들었다. 대표적인 타이틀 곡은 '예행연습' [[김홍순]]과 [[이승철]]이 작사 작곡했다.] 이후 방위 복무[*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마지막 방위' 세대로 같은 날 [[유재석]]과 [[이정재]]가 입대했다.]를 마친 뒤 연기자로 ~~좌회전~~전향. 좌회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동안은 놀림거리 비슷하게 됐다.
태양신이태양신이부른다~ 라는 CM송이 인상적인, 오리온 썬헌터 CF를 찍은 적이 있는데 ~~[[무언극]]인지 아닌지 모를~~ 기묘한 춤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포카칩]] 광고에서 불량감자의 안티테제로 나오기도.
- 김창규 (작가) . . . . 2회 일치
{{출처|날짜=2012-04-03|[[1975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해 구금, 구속, 연행 등의 고난을 겪었는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때 입은 부상으로 한쪽 청각을 상실하고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출처|날짜=2012-04-03|1981년에는 납치되어 대전 안기부, 경찰서 보안대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1987년 [[6월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구속당하기도 했다.}} {{출처|날짜=2012-04-03|[[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감시대상 1호임을 알게 되었다.}} 2008년에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ref>{{뉴스 인용
그밖에 문화운동연합 사무국장을 지냈고 민족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NCC총무를 지냈고 인권위원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김현정 (1979년) . . . . 2회 일치
:대표작 : 《기도》, 《St. [https://ko.wikipedia.org/wiki/%ED%85%8C%EB%A0%88%EC%82%AC_%EC%88%98%EB%85%80 마더 데레사]》, 《무지개 랄라》, 《무지개 여행》
대표 저서로는 《랄라의 외출》이 있으며, 이 서적은 2014년에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26781 배우 화가 김현정 ‘랄라의외출’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뉴데일리, 2014년 12월 9일 작성.</ref>
- 김효기 . . . . 2회 일치
귀국하고나서 또래보다 1년 늦게 충주상고로 진학한 김효기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약체로 평가받던 [[충주상업고등학교|충주상고]]의 미드필더로 나서 강호 [[문일고등학교]]를 격파하는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7년, 전국 1, 2학년대학축구대회에서 도움상을 수상했고, 2008년부터는 대학 선발로 발탁되어 덴소컵 등에 참가하였다.
2013년부터는 군문제를 위해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하면서 [[화성 FC]]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당시 화성의 [[김종부]] 감독은 김효기에게 주장을 맡기며 신임했고, 김효기도 공익근무 생활에 적응하면서 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 나고야 대학 여학생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모리 토모코를 살해한 뒤, 1월에는 귀성 중에 부모님 집 근처에서 "소사체를 보고 싶다."는 동기로 [[방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리 토모코는 [[기독교]] 계열 종교의 신자로서, 종교 권유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본래 모리 토모코와 오오우치 마리아가 만나게 된 계기는 모리 토모코가 종교 권유를 위하여 오오우치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오오우치 마리아는 문을 열어줬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들어주고, 살해되기 얼마 전에는 휴대폰 번호도 가르쳐줄 만큼 가까이 끌어들였다고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8화 . . . . 2회 일치
* 아오야마는 이제 살아남기도 힘겹다고 말하는데 이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버리지 않는다.
* 그는 반장으로서 시간과 다리가 허락되는 한 반에 공헌하고 싶다며 자신의 형도 그랬을 거라 말한다. 그의 행위는 바로 그 꿈의 형태이기도 한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9화 . . . . 2회 일치
* 드디어 시작되는 2회전. 그런데 현장에 있는 "프로 요구조자"들은 구조대상이자 시험관이기도 했다.
* HUC는 체점을 맡고 있는 시험관이기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7화 . . . . 2회 일치
올마이트가 가정방문했을 때 간접적으로 묻기도 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미도리야에게 묻는 것이다. 미도리야도 대답하지 못하자 자신의 추리가 맞았음을 확신하고 욕지거리를 뱉는다. 미도리야는 엉겁결이지만 원 포 올의 비밀을 누설했던 것을 후회한다.
* 바쿠고는 미도리야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달려든다. 진심이란걸 안 미도리야가 공격에 대처하려고 하는데 그가 오른손으로 공격하려는 걸 보고 진짜인지 페이크인지 망설이다가 제대로 피하지 못한다. 정답은 그냥 오른손 스트레이트. 바쿠고는 "넌 너무 깊게 생각한다"고 비웃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3화 . . . . 2회 일치
터무니 없는 네거티브한 말언을 쏟아놓더니 벽에 머리를 처박으며 "집에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경악스럽기도 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앞줄에 앉은 [[오지로 마시라오]]가 "웅영의 톱 맞죠?"라고 의심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2회 일치
*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 사실을 예측하고 카운터를 노린다. 밀리오는 미도리야가 기척을 감지하기도 전에 반격을 준비하는 걸 보고 감이 좋은게 아니라 철저하게 "예측"한 결과임을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정도로 밀리오에게 카운터를 먹일 수는 없었다. 밀리오는 그대로 미도리야의 몸을 통과하더니 핀 포인트로 미도리야의 눈을 찌른다. 미도리야가 자세를 무너뜨리자 그는 명치를 쳐서 제압, 사실 대부분 카운터를 노리는 적들은 그런 방식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카운터에 대응한 역 카운터.
밀리오의 개성은 사실 엄청난 패널티가 있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개성을 발동하는 중에는 모든 감각이 차단된다. 우선 공기도 그의 몸을 그저 통과하므로 "호흡이 불가능"하다는 엄청난 패널티가 생기고, 빛이 망막을 그냥 통과해서 시야도 차단된다. 물론 소리나 냄새도 마찬가지.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로 허공을 허우적대며, 그저 "추락"할 뿐인 감각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3화 . . . . 2회 일치
* 빌런은 번화가를 피해 주점골목을 도주경로로 결정했지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거기도 유동인구는 여전히 있어서 목격자는 늘어만 난다. 그렇다고 키리시마를 떼어낼 정도로 발이 빠르지도 않았다. 곧 근소한 차이로 따라잡힌다. 키리시마는 "도망치지 말고 동료를 구하려고 해봐야 할거 아니냐"고 일갈하며 쫓아간다.
꽤나 한심한 꼴이지만 키리시마는 나름대로 동정하는 듯 하다. 말로는 "그렇게 무섭다고 울 정도면 빌런짓을 하지 마라"고 질타하지만 빌런을 부축해서 일으켜주기도 한다. 빌런은 부축을 받아 일어나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넋두리 같은 고백이 계속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2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의 소개로 패트껌의 사무소를 찾아온 키리시마. 그는 타마키가 사람을 소개하는 것에도 놀랐고 그게 웅영제 때 활약했던 소년인 것에도 놀랐다. 그리고 타마키는 긴장하는 버릇 때문에 매년 꼴찌를 했던 아픈 상처를 후비기도 했다.
키리시마는 직장 체험 때 인연을 맺은 "포스 카인드"에게 인턴 권유를 받기도 했다. "위세 좋은 녀석이 있으면 사무소의 사기가 올라간다", 그런 제의였다. 키리시마로서는 나쁠 거 없는 얘기였다.
- 나이츠 오브 더 라운드 . . . . 2회 일치
아이템 중에서 커다란 아이템은 공격하면 쪼개진다. 이럴 경우 그냥 하나 습득하는 것보다 쪼개서 습득하는 것이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이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금화상자는 3개이거나 확률에 따라 4개에서 6개까지 쪼개지기도 하고, 큰 과일 바구니는 과일 하나만 남기도 한다.]
- 날조트랩 -NTR- . . . . 2회 일치
오카자키 유마의 남자친구. 유마와 사귀면서 진도를 나가려고 하지만, 호타루와 유마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잘 풀리지 않는다. 1학년 때는 호타루와 같은 반이었다.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호타루를 걱정하기도 한다.
미즈시나 호타루의 남자친구. 얼굴도 미남, 머리도 좋다. 타케다와는 사이가 좋다. 유마에 대한 호타루의 감정을 눈치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마가 호타루와 이상한 짓을 하게 되면서 타케다를 은근히 배신하게 되자 유마에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남기애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기도하는 남자》
- 남명렬 . . . . 2회 일치
| 출생지 = {{KOR}} [[경기도]] [[양평군|양평]] <br/> (現 {{KOR}} [[경기도]] [[양평군]])
- 네드 켈리 . . . . 2회 일치
1878년 4월, 피츠패트릭 순경(Constable Fitzpatrick)이라는 [[경찰]]이 켈리 가족에게 찾아온다. 피츠패트릭은 네드의 동생인 댄 켈리(Dan Kelly)를 말도둑 혐의로 체포하려고 했다. 피츠패트릭은 총에 맞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후 피츠패트릭의 주장이 있는걸로 보아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켈리 가족의 어머니인 엘렌 켈리(Ellen Kelly)는 이 일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네드와 댄은 도주했다. 훗날 네드의 친구인 조 번(Joe Byrne)과 댄의 친구인 스티브 하트(Steve Hart)가 합류, 켈리 갱(Kelly Gang)이라고 불리는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
호주의 화가 시드니 놀란(Sidney Nolan)은 네드 켈리를 소재로 한 그림을 여러장 그리기도 했다.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 . . . 2회 일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다는 일본에서 흔히 쓰이는 관용구로서, 어떤 계기로 [[각성]]을 얻는 것을 뜻한다. 유래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이다. 단순히 줄여서 "눈에서 비늘"(目からウロコ,目から鱗,메카라우로코)라고 쓰기도 한다.
이 관용구는 [[신약성서]] 『[[사도행전]]』 제9장에서 유래하였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도 바울|사울]]이 어느날 예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사도]] [[아나니야]]가 예수의 지시를 받아 사울을 도우러 찾아간다. 아나니야는 사울을 위해서 기도를 올렸는데, 그러자 사울의 눈이 보이게 되었다. 기적을 겪은 사울은 박해에 앞장섯던 것을 회개하고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가 되어 [[사도 바울]]이 된다.
- 대라신선 . . . . 2회 일치
대라신선은 보통 의술과 관련하여 언급된다. 그가 언급되는 장면에서는 보통 중병, 중상을 입었을 때 언급된다. 누군가가 중상을 입거나 중독되었을 때, 등장인물의 대사나 전지적 지문으로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되는 것이다. 물론 초월적인 의술을 지닌 몇몇 작중 인물들은 이런 언급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살려내서 대라신선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함과 관련되어 언급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악당이 무공이나 함정을 쓰면서, 대사 혹은 전지적 지문으로 대라신선이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언급을 하고, 주인공은 그 무공이나 함정을 파해하여 경악을 일으키는 것이다. 역시 대라신선은 무색해진다.
- 대한민국 FA컵 . . . . 2회 일치
대한민국 FA컵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컵 대회]]이다. 프로, 아마추어 구분없이 KFA에 등록되어 있고 규정을 충족한 모든 팀이 겨루는 대회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경기는 단판승부가 원칙이나 흥행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대회진행방식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어 NTX위키에 일일이 적기가 어려울 정도.
물론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는 프로팀도 참가가 가능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의미의 FA컵으로 규정할 수도 있으나 실제 운영에서 프로팀이 별로 신경도 안 쓸 뿐더러 구단의 역사에 특별히 기록하지도 않을 정도로 권위가 없는 대회이기도 했다. 또한 FA컵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별도로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었다는 점은 사실 전신이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한 부분이 있다.
- 데모데모닷데 . . . . 2회 일치
2채널에서는 주로 가정, 육아 판에서 사용한다. 현실에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짜증난다고 하거나, 스레드에 상담을 하러 온 사람이 이런 발언을 반복하여 뭐하러 상담하러 왔냐고 욕을 먹기도 한다.
비슷한 것으로 「하지만(でも,데모)」「그래도(だって,닷테)」「어차피(どうせ,도우세)」이 3가지를 묶어서 3D라고 칭하며,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의 말버릇으로 잡기도 한다.
- 독친 . . . . 2회 일치
아이가 여럿 있을 경우, 마음에 드는 아이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나눠서 차별하기도 한다.
아이를 착위용과 애완용으로 나눠서 기르기도 한다.
- 돗자리 . . . . 2회 일치
용도는 상술한 대로 맨땅바닥에 까는 것. 맨땅에 그냥 앉으면 흙이나 먼지 등이 옷에 묻기에 이러한 것을 막으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쓰는게 아니라 고추 등을 배치해서 말리는데 쓰기도 한다.
[[소풍]] 등 야유회의 필수 아이템이나 그냥 골판지 상자나 신문지를 적당히 깔아서 쓰기도 하며 이제는 접을 수 있는 바닥깔개도 나왔다. 그래도 큼지막한 돗자리는 여전히 유용하다.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2회 일치
* 유우키 유우미 하인드라 : 하인드라 일족의 일원으로, 주변 사람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안 좋은 과거 때문에 인간(특히 남성)을 혐오한다. 주인공에게도 처음엔 죽이겠다고 날뛰다가 해리건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츤데레]] 포지션이 되어가고 있다(...). 바람을 이용한 마법이 특기로, 널빤지를 이용해 날아오르거나 또는 바람칼날로 공격하는 등의 기술을 구사한다.
* 교회 : 유일신을 섬기고 있는 세력으로, 그들의 신앙과 배치되고 이능력을 지닌 마녀들을 배척하고 말살하려 하고 있다. 자기네들끼리도 구교회와 신교회로 갈라져 싸우기도 하는, 지극히 광신적이고 정치적인 종교조직.
- 라미란 . . . . 2회 일치
* 개념있는 언행을 보여 좋은 이미지의 연예인이기도 한데, 진짜사나이에 나와선 남녀를 포함한 역대급 엘리트의 모습[* 농담이 아닌 진심으로 입대를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다(...) ~~물론 나이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당시 교육을 맡은 교관은 훈련을 마친 라미란이 다른 교육생들은 해냈다는 것이 그저 감동적이었다 말할 때 '''전시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지체해선 안 되겠다'''란 소감을 말해 벌써 군인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칭찬하기도... ~~체력 제외~~ 사격을 포함한 모든 훈련부터 군 생활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을 보여 찬사를 받았고 본인의 남편이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뛴다 해서 전혀 창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해 신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롬팩 . . . . 2회 일치
* ROM을 쓰기 때문에 로딩 시간이 빠르다. 다만, [[압축]]된 데이터를 넣는 경우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내부에 게임 데이터 세이브를 위한 메모리를 탑재하기도 한다. 주로 긴 시간 플레이를 하는 RPG 게임이 대부분이다. [[건전지]]와 RAM의 조합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RAM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건전지로 전력을 계속 흘려넣어서 보존하는 방식이다.
- 류현경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시]]
* 《[[기도하는 남자]]》(2018)
- 리그컵(K리그) . . . . 2회 일치
K리그외에도 별도로 운영되는 대회가 태어났기 때문에 팀에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스쿼드를 꾸릴 필요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는 각 구단들이 선수층을 보다 두껍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협회 입장에선 FA컵을 대체하는 대회로 여길 수 있었으며, 좋게 표현하면 구단들은 프로무대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신인들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AFC 챔피언스 리그]]의 개편과 함께 FA컵의 위상이 리그컵을 명백히 넘어서게 됨은 물론이고, 이 두 대회의 흥행과 함께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리그컵을 구태여 운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최초에 리그컵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한국프로축구의 발족과 함께 늘 대두되었던 부족한 경기수를 채우고 흥행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리그컵이 탄생하고 10여년이 지나니 팀 수가 3배가량 늘어나 경기 수가 부족하지도 않고, 상금은 그다지 오르지도 않아 팀이 리그컵에 참가할 때마다 주전선수를 대폭 기용하지도 않아 흥행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오히려 비주전 선수들은 R리그에서 뛰면 되기 때문에 리그컵이 초창기에 갖고 있던 이점들을 하나 둘씩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리그컵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외면받고 있었던 것도 사라지게 된 이유가 되었다.
- 리스트 컷 . . . . 2회 일치
리스트 컷은 주로 사춘기에서 20대 젊은이, 그 중에서도 미혼 여성에게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손목에 2,3회 상처를 입히는 것이며, 손목 이외에 팔다리, 얼굴, 복부 등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리스트 컷은 반복되거나, 습관화 하는 일이 많지만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참조링크(일본어)
영어에서는 wrist slash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리스트 컷을 생략하여 리스카(リスカ)라고 부르기도 한다.
- 마~앙 . . . . 2회 일치
본래 「치-잉(ちーん)」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방울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로서, 전자렌지 등이 조리가 종료될 때 울리는 소리이기도 하므로 종료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 치~잉은 남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기/346화 . . . . 2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자신이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마친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일 일라에 대한 이야기도 잊고 "다윗의 확신은 반드시 실현된다"는 부분에 관심을 가진다. 알리바바의 말대로 다윗은 자신이 [[신드바드(마기)|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고 성궁의 주인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알리바바는 그걸 막기 위해 되살아난 건데, 정작 그 두 가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르바는 그 점을 지적하며 다윗이 신드바드의 몸을 빼앗긴 커녕 회유당해 하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는 김에 [[우고(마기)|우고]]와 일곱 진들 조차도 그의 편이 되어버린 것도 다시금 강조한다. 신드바드는 새삼 그동안 성궁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 아르바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어디선가 북소리가 끼어든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신드바드가 거느린 커다란 행렬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그는 제 4던전 후르후르를 공략할 무렵의 신드바드, 그리고 제 2의 신드리아 왕국을 재건국한 시기의 신드바드다. 아르바는 대답하려던 것도 잊고 "이 뻔한 이벤트도 질린다"고 투덜거린다. 알리바바는 그래도 중요한 얘길할 테니 조용히 하라고 핀잔한다.
- 마기/350화 . . . . 2회 일치
* 알라딘은 들뜬 목소리로 알리바바에게 어서 "차원을 연결하는 대마법"을 사용해 보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멋쩍은 태도로 사실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털어놓는다. 우선 그는 마법사가 아니고, 그 대마법은 살아있는 몸으로 쓸만한게 아니라고 [[셋타]]가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우고는 "그럼 글렀잖아!"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이렇게 해서 논쟁은 종료됐다. [[아르바(마기)|아르바]]는 "얼빠지게 수습"됐다면서도 어쨌든 "그 분"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테니 계획에 협조하기로 한다. 알라딘도 기꺼이 동참하면서 우고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알라딘이 하니까 자기도 하겠다는 투로 대답한다. 하지만 알라딘이 그래선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자기나 솔로몬왕에게 부탁받아서가 아닌, 우고 자신의 의견을 내줬으면 해서였다.
- 마블 퍼즐퀘스트 . . . . 2회 일치
스타팅 1성 캐릭을 받아 팀을 편성 -> 초보자도 환영하는 길드(얼라이언스)에 가입 -> PvE시나리오 진행 -> 시나리오 보상으로 주는 2성캐릭을 수집하여 2성캐릭으로 서서히 팀 교체. 이 과정에서 얻는 히어로 포인트는 모두 창고를 키우는데 사용한다. -> 적당히 2성캐릭 만렙(94렙)을 한두개 만들었으면 슬슬 PvP나 이벤트를 참여한다. 2성캐릭은 꽤 안정적으로 얻을수 있으며 3성캐릭도 간간이 얻을수 있다. -> 인벤이 모자라면 사용하지 않는 1/2성 캐릭은 정리하나, 데드풀 일퀘를 위해 2성 1팀, 1성 1캐릭은 남기도록 하자. 소과금을 한다면 이 시기에 창고를 팍 늘려놓으면 좋다. ->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3성/4성 캐릭을 모은다.
일정 이상 3성/4성 캐릭을 보유하게 되면 의외로 이들을 추가로 얻는것 자체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특히 데드풀 일퀘로 확정적으로 특정 3성 카드를 얻을수 있게되었기도 하고.. 그러나 스킬레벨을 올리고 레벨 상한선을 올려도 실제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ISO라는 게임내 화폐가 필요한데, 3성 히어로를 만렙까지 올리는데에 히어로 한명당 대략 10만 가까운 ISO가 필요하다. 각종 일퀘나 이벤트를 수행하면 하루에 3천정도는 얻을수 있으나, 이러한 획득속도보다 보유 히어로의 ISO요구치가 더 빠르게 올라간다.. 따라서 ISO를 생기는대로 투입하기 보다는 어느정도 모아두고 있다가 이벤트시 버프를 받는 캐릭위주로 레벨을 올려주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소비이다.
- 마철준 . . . . 2회 일치
발 기술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사이드 풀백으로 불렸다. 군더더기 없는 크로스 능력과 간결한 드리블로 SK 유나이티드 시절 전성기를 보내왔으며, 팀의 준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수비력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수비를 잘 보여주며 평균 이상은 해준다는 평. 그러나 점차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체력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수비력이 떨어지고 공격 가담 상황에서도 크게 힘을 못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맥스 페인 . . . . 2회 일치
Angelo Punchnello. 펀치넬로 패밀리의 수장. 경찰은 그가 발키리와 관련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맥스는 그 증거를 찾아냈다. 하지만 그때 맥스는 도망자가 되어버린지 오래. 모나 색스의 말에 따르면 아내인 리사를 가학적으로 폭행한다고 한다. 모나에게서 그가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정보를 얻은 맥스의 표적이 된다. 맥스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국 자택에 쳐들어온 맥스에게 붙잡힌다. 맥스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니콜 혼의 존재를 말하려 하지만 난입한 니콜 혼의 부하들에게 죽는다.
미 육군이 연구한 "발할라 계획"의 산물로, 1991년 처음 만들어졌다. 제작 목적은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불만족스러운 성과를 내 1995년에 발할라 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니콜 혼을 비롯한 몇몇은 허가 없이 실험을 계속했으며, 정량의 두배를 투여한 실험체들을 도시에 풀어 맥스의 가족들을 죽이기도 했다.
- 머신맨 . . . . 2회 일치
마찬가지로 로봇 히어로인 조캐스타(Jocasta)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나 조캐스타가 [[울트론]]의 손에 파괴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 모리오리 족 . . . . 2회 일치
>그곳은 물고기와 조개가 풍부하고, 호수에는 뱀장어가 가득하고, 땅에는 카라카 열매가 많이 난다. (...) 사람은 매우 많지만 '''싸울 줄도 모르고 무기도 없다.'''
모리오리 족은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전통대로, 모리오리 족은 대표자 회의를 열어서 마오리 족 침략자에게 싸우는 대신 평화와 우정을 제안하고 물자를 나눠주고자 제안하려 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미처 전달하기도 전에 마오리 족이 공격해왔다.
- 몬스터 페어런트 . . . . 2회 일치
몬스터(괴물)과 부모(페어런트)의 합성어. 학교에 자기중심적이고, 비상식적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교사에게 직접 클레임을 하지만, 교장, 교육청, 지자체 등 권한이 강한 부서에 클레임을 하여, 간접적으로 교사와 학교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대책으로는 기업에서 쓰이던 클레임 대책 방법을 활용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으며, 교육자들이 대응 방법을 조언하거나, 매뉴얼을 작성하기도 했다.
- 몰맨 . . . . 2회 일치
Subterranea라는 공통점이 있는 [[아웃캐스츠]](Outcasts)에 합류하기도 했으며 [[레드 고스트]](Red Ghost)와 파트너가 되기도 했으나 관뒀다.
- 무신 . . . . 2회 일치
본래 고대 중국에서는 문신과 무신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때 그때 맡고 있는 관직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에 불과하였다. 물론 개인적인 적성은 있으니까 문신 성향과 무신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구분이 없다고 봐도 좋다. 장군이나 도독 같은 무관직을 맡다가 문관직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문관직을 맡다가 무관직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양자를 겸직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 무협/용어 . . . . 2회 일치
* [[중국어]]의 영향 : 무협 장르에서 쓰이는 용어들은 때때로 중국어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불필요한 중국어 남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초창기 무협 번역에서는 '장풍'을 '손바람'으로 번역하는 등, 고유어 번역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는 '정협지'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고유어 번역은 오히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무협 번역에서 전문적인 작가의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줄 아는 [[화교]] 등 아마추어의 개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 출판사가 영세화 되면서 번역의 품질이 나빠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어의 영향이 과도하게 들어간 일종의 '중국어 번역체'가 남발되게 되었고, 이를 무협 장르의 독자나 후발 작가들이 학습하면서 중국어 번역체의 영향을 받은 장르 고유의 문체가 형성되었다.
- 문문 . . . . 2회 일치
비행운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이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의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부분과 비슷하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었다. 제목도 똑같은 데다, 노래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반박의 여지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가사 전체나 노래 자체가 표절된 것은 아니고 한 소절을 변형한지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오마주]]나 [[패러디]]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소설이나 인문학계에서는 존경하는 이의 글에서 이름을 따온 뒤 구절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단어 위치를 재배열하거나 변경함으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문장 구성은 같지만 주로 [[주어]]를 바꾼다. 하지만 존경의 의미로 인용했다면 허락을 구하는 건 당연한 자세다. 진정으로 존경해서 인용한 건지 의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774327|인터뷰]]에서 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음원 발매 사전에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이였고 문제가 된 후 김애란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답했다. 논란이 터지기 전엔 인스타로 악플러의 덧글을 캡쳐해서 저격했다가 논란이 되고나서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 . . 2회 일치
장르는 서바이벌 호러. 좀비들의 습격이 주된 요소이며 이러한 좀비 서바이벌 게임에서 특히 큰 인지도를 지닌 게임 시리즈이며 캡콤이 보유한 유명 게임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 전세계 시리즈 누계 6,200만장이 팔렸다.
* 영화화도 되었다. 제목은 레지던트 이블. 게임의 해외판 이름이기도 하다.
- 바키도/127화 . . . . 2회 일치
* 한마 바키는 가이아와 비슷하게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하는데, 폭약이든 독이든 어떤 수를 쓰든 모토베 이조가 살아있기를 기도한다.
* 그런데 모토베는 칼만 돌려주고 칼집이 남았다며 이런건 무기도 안 된다며 역시 무사시에게 던진다.
- 바키도/138화 . . . . 2회 일치
>숨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하지.
- 박경석 (1960년) . . . . 2회 일치
[[2001년]] [[1월 21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여 이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가 사망 및 중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는 5개 관련 단체들과 공동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 해 4월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2007년]]말, 정립회관 측의 요구로 노들장애인야학은 그곳에서 퇴거당하여 [[이화동|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수업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08/01/02/20080102001716.html 터전 빼앗긴 ‘노들 장애인 야학’ 천막 개학식], 《[[세계일보]]》, 2008년 1월 3일</ref> 시민들의 모금과 [[서울특별시]]의 예산 지원으로 [[2008년]] 3월 마로니에 공원 인근의 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 박상면(배우) . . . . 2회 일치
1993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한 그는, 1997년 영화 [[넘버 3]]에서 [[재떨이]] 역을 맡으며 충무로계에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9년 MBC 드라마 [[왕초]]에서 하마 역을 맡으며 드라마 쪽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00년에는 [[드라마]] 나쁜 친구들을 비롯해 ~~[[미생(선덕여왕)|미생]]~~[[정웅인]], [[윤다훈]] 등과 같이 MBC 시트콤 [[세 친구]]에서 공동 주연까지 따냈고, 2001년에는 영화 [[조폭 마누라]]에서 주인공 [[신은경(배우)|신은경]]의 남편 역으로 주연급 배역을 맡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각종 [[드라마]] 및 [[영화]]에서 조연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주유소 습격사건|주유소 습격사건 2]]에서 집단탈옥하는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나온 적이 있으며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주인공 김탁구를 여러모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초반, 오랜 무명 생활끝에 본인의 첫 집을 마포구의 57평 아파트로 마련하기도 했다.[[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gNoh&fldid=Dnnh&datanum=153|#]]
- 박승임 . . . . 2회 일치
이황의 제자가 된 박승임은 특히 주역(周易)과 예기(禮記), 그리고 주자서(朱子書) 등 경전의 학습과 이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난 뒤에도 의심 가는 곳이 있으면 빠짐없이 기록하여 퇴계를 찾아가 해석,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을 숙성시켰다. 또한 스승 이황 외에도 [[이현보|농암 이현보]]와 [[이언적|회재 이언적]], [[권벌|충재 권벌]] 등 인근의 이름난 [[성리학]] 학자들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시세(時勢)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였다.
퇴계의 제자였던 그는 임흘(任屹), 권문해(權文海), [[김개국]], [[김륵]], [[이여빈]], 오운(吳澐)·배응경(裵應褧)·김중청(金中淸) 등의 제자를 배출하여 이황학파의 학맥을 이어갔으며, 일부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동인-남인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하기도 했다.<ref>그의 문하생들은 대부분 북인 이이첨, 정인홍의 인목대비 폐모론, 영창대군 사사론에 반발하여 남인으로 들어갔다.</ref>
- 박승호 (야구인) . . . . 2회 일치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한국 프로 야구 2010 시즌 7월, 올스타전]]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에서 치뤄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박승호가 레전드 [[지명타자]]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고전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ref>엑스포츠 뉴스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489 "이만수, 김성래… 삼성 레전드 등장에 대구 야구 팬 열광"]</ref>
- 박신혜 . . . . 2회 일치
박신혜는 2001년, [[이승환]]의 7집 앨범 타이틀곡 〈사랑하나요〉 뮤직 비디오로 출연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2003년에도 이승환의 〈꽃〉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박신혜는 당초 배우지망생이 아닌 가수를 꿈꾸는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을 본 2003년 12월 첫 방영 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인 한정서 역을 맡아 브라운관에 데뷔하였다.<ref>{{웹 인용|url=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title=Tree of Heaven Korean Drama|publisher=GlobalRove|accessdate=2014-09-0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908015531/http://globerove.com/south-korea/tree-of-heaven-korean-drama/3740|보존날짜=2014-09-08|깨진링크=예}}</ref><ref name="hancinema1">{{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tree-of-heaven--a-new-tryout-for-a-resurgence-of-korean-wave-5387.html|title='Tree of Heaven': a new tryout for a resurgence of Korean Wave|publisher=The Korea Herald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ref name="hancinema2">{{웹 인용|url=http://www.hancinema.net/park-sin-hye-invited-to-photo-exhibition-for-korean-top-stars-6302.html|title=Park Shin-hye Invited to Photo Exhibition for Korean Top Stars|publisher=KBS Global via Hancinema|accessdate=2013-10-08}}</ref> 이 작품에서 그녀는 14살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어린 소녀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싱그럽고 풋풋한 첫사랑 감정을 첫 연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출중한 연기를 선보이며, 안방극장의 뜨거운 사랑과 지지를 받았고 그 당시 이례적으로 아역들의 분량이 1회 늘어나기도 했다. [[SBS 연기대상]] 아역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연출을 맡은 이장수 감독은 박신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인용문2|“(박신혜씨 연기를) 정말 잘해요. 연기한 걸 직접 한 번 봐야하는데…우리나라 배우들이 자질이 정말 뛰어나다는 걸 신혜를 보면 느낄 수 있어요. 비록 신인이지만 잘 할 것으로 봐요”|MBN스타 2016년 7월 8일자 기사<ref name="mbn">{{뉴스 인용 |제목 =[M+TV피플] 박신혜, 꾸미지 않아 더 아름다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989093|출판사 =MBN스타 |저자 =금빛나 |날짜 = 2016-07-08 |확인날짜 =2016-07-10 }}</ref> 중}}
2016년 6월, 첫 방영 된 메디컬 드라마 《[[닥터스 (드라마)|닥터스]]》에 캐스팅 된 박신혜는 학창시절 무기력한 반항아에서 사랑이 충만한 국일병원 신경외과 펠로우 의사로 성장하는 유혜정 역을 맡아<ref>{{뉴스 인용|제목=박신혜·김래원, '닥터스' 본방사수 독려 "오늘 첫방 아시죠?"|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06210100156110010947&servicedate=20160620|출판사=스포츠조선|저자=정유나|날짜=2016-06-20|확인날짜=2016-06-20}}</ref> 한층 더 발전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따뜻한 감성 드라마로 호평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박신혜, 이게 바로 인간 승리…'공부의 신' 됐다 (종합)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2374|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김수현 |날짜 = 2016-06-21 |확인날짜 =2016-06-21 }}</ref> 연출을 맡은 오충환 감독은 제작발표회 당시 박신혜에 대해 “촬영장 공식 명칭이 ‘우리 신혜’다. 오전, 오후로 미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배우를 잘 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도 좋고 인성도 좋다”고 말했다.<ref name="mbn" /> 박신혜는 연말 [[SBS 연기대상]] 장르&판타지드라마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 3관왕을 수상했우며,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는 20대 여배우 중 가장 주목 받는 한류 스타이자 대표하는 ‘흥행배우’로 성장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닥터스' 종영기획②] '3연속 흥행퀸' 박신혜, 믿고 보는 20대 女배우 우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807409|출판사 = 마이데일리|저자 =최지예 |날짜 = 2016-08-24 |확인날짜 =2016-09-01 }}</ref><ref>{{뉴스 인용 |제목 =[SS이슈]'닥터스' 박신혜,안방 흥행여왕+20대 CF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8&aid=0000169345|출판사 =스포츠서울 |저자 =조현정 |날짜 = 2016-07-12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11월 개봉 된 코미디 영화 《[[형 (2016년 영화)|형]]》에서 국가대표급 오지랖 유도코치 이수현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만났다하면 케미퀸…이번엔 조정석x도경수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923745|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6-11-08 |확인날짜 =2016-11-10 }}</ref>
- 박영진(코미디언) . . . . 2회 일치
급기야 2013년 6월 2일 [[개그 콘서트]]의 [[현대레알사전]]에서 외화 더빙에 대해 풍자개그를 했다가 성우계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자사 성우인 [[구자형]]은 외화를 더빙할 때 말하는 대사의 길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기본인데 이걸 지키지 않는 것처럼 묘사를 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 문제는 삽시간에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현대레알사전]] 문서 참조.
참고로 자신이 짠 아이디어는 굉장히 잘 살리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가장 못 살리는 개그맨 1위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코너를 만들었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주목을 못 받고 연기를 한 사람만 주목 받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미안해하기 때문이라고... 반면 아이디어는 안 내고 다른 사람들의 개그를 주워먹는 개그맨 1위로는 [[박성호(1973)|박성호]]가 뽑혔다[* [[다중이]] 역시 본래는 [[김준호(개그맨)|김준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 박용우(배우) . . . . 2회 일치
[[중앙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1994년]] [[문화방송|MBC]] 공채 탤런트 24기로 데뷔했다. 1995년 MBC 인기 드라마 [[아파트]]에서 [[최진실]]을 쫓아다니던 호민 역, 영화 [[올가미(영화)|올가미]]에서 고부갈등에 끼인 남편 역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핸섬한 외모로 데뷔 당시 포스트 [[차인표]]로 주목받고 영화 쉬리의 [[낙하산]] 역으로 출연해[* 이때 이 배역으로 박용우와 캐스팅경쟁을 벌이던 배우는 [[이범수]], [[강성진]], [[공형진]]이었고, 최종적으로 [[공형진]]과 경합 끝에 이 배역을 따냈다고 한다.(공교롭게도 모두 [[중앙대학교|중앙대]] 선후배 사이였다.)] 관심을 모으기도 했으나, 이후 [[조재현]], [[김명민]] 등과 함께 작업했던 영화 [[스턴트맨]]이 제작 중단되는 등 잠시 힘든 시기를 거쳤다.
나이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교제설이 드문 배우이기도 하며, [[2008년]] 말 [[조안]]과 커플 관계로 확인됐지만 [[2010년]]에 들어서면서 헤어졌다고 한다. 과거 인터뷰를 보면 본인은 딱히 이성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은 없는 듯.
- 박지일(배우)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경기도]] [[양평군|양평]]에서 태어났으며, [[동아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였다.
- 박휘순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 [[수원시|수원]] [[영통구|영통]] 에서 태어나 [[동남보건대학]] 컴퓨터응용학과 전문학사 졸업 이후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편입학하여 학사 졸업하였고 [[2001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2002년]] [[뮤지컬 배우]] 데뷔하였고 이어 같은 해 [[2002년]] [[코미디TV]]에서 방송된 [[김용만 (1967년)|김용만]]이 진행한 '공포의 타이틀 매치'라는 프로그램에 질러맨으로 방송에 데뷔 이후, [[2005년]] [[KBS]] 20기 공채 [[개그맨]]이 되었다.
- 박희부 . . . . 2회 일치
1938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서 태어났다. [[천안중학교]], [[경기공업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재학 중 [[4.19 혁명]], [[6.3 항쟁]]에 참여하며 구속되기도 하였다.
동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신민당(1967년)|신민당]] 사무국 직원으로 근무하며 조직부국장 등을 지냈다.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거나 수감되기도 하였다.
- 배경 세계 공유 . . . . 2회 일치
장난감 회사인 하스브로와 관련이 있으며 준비 단계라 한다. <지 아이 조(G.I. Joe) 시리즈> 외에도 <M.A.S.K.>, <Micronauts>, <Rom>, <Visionaries: Knights of the Magical Light>가 등장한다는 정보가 있다. 또한 <트랜스포머(Transformers) 시리즈>가 리붓트되면서 이 프랜차이즈에 소속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러한 것이 확정이라는 보장은 없다.
'산드로비치 야마코'(サンドロビッチ ヤバ子)의 만화들인 <구도의 권(求道の拳)>, '다로메온'(だろめおん) 작화인 <켄간 아슈라(ケンガンアシュラ)>와 속편인 <켄간 오메가(ケンガンオメガ)>, 'MAAM' 작화인 <덤벨 몇 킬로까지 들 수 있어?(ダンベル何キロ持てる?)>는 배경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 타이틀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다른 타이틀에 등장하기도 한다.
- 배천석 . . . . 2회 일치
[[K리그 클래식 2013|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하여 3월 2일 [[FC 서울]]과의 시즌 첫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었으며, 3월 30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는 첫 도움을 기록하였다. 4월 13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뒤 6분 만에 리그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AFC 챔피언스리그 2013]]에서는 조별리그 2차전 [[FC 부뇨드코르]]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데에 이어 3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뒤 결승골을 넣으며 주목받기도 했다.
포철공고 재학 시절 U-17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였으며, 2011년 6월에는 U-22 대표팀에 선발되어 오만과의 평가전에서 2골을 넣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올림픽 평가전)'배천석 2골' 한국, 오만에 3-1 역전승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003&article_id=0003888050 |출판사=뉴시스 |date={{날짜한글화|2011-06-01}} }}</ref>
- 백일섭 . . . . 2회 일치
[[1969년]] [[신상옥]] 연출의 영화 《사녀》를 시작으로 [[영화배우]]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텔레비전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 주력하고 있는데 [[1980년대]] 말부터 영화제작에 뜻을 두기 위해<ref>{{뉴스 인용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청와대로 초청받은 연예인 1호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백일섭이 극 중에서 취중에 독특하게 부르는 옛 노래〈홍도야 우지마라〉가 다시 인기를 끈 일이 유명하다.<ref>[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11010100691636&type=1 박원숙 정혜선 백일섭, 맛깔스런 연기에 "역시!"]《머니투데이 스타》</ref> 가수 [[조영남]]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벚꽃놀이 . . . . 2회 일치
현대의 벚꽃놀이는 벚꽃이 핀 공원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과 음식을 마시면서 노는 것이다. 휴대용 [[가라오케]] 기기를 쓰기도 한다. 벚꽃놀이로 유명한 장소에서는 벚꽃놀이를 할 자리를 잡기 위해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 변요한 . . . . 2회 일치
* 2015년 2월,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매달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단편 상상극장으로 '변요한展'이 개최됐다. 상영 날짜는 2월 매주 화요일로 3일, 10일, 17일, 24일. 상영 목록은 《[[토요근무]]》, 《재난영화》, 《목격자의 밤》, 《매직 아워》이상 네 편의 단편영화. 10일에는 영화가 다 끝난 뒤 변요한이 깜짝 등장해서 팬미팅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 넷상에서는 일명 '변요한 패밀리'~~[[AKB48|BYH48]]~~로 불리는 연예계 친목 모임이 핫하다. 주로 독립영화나 대학 동기 등의 인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같이 노래방에 가거나 생일파티를 하는 등 ~~아주 건전하게~~ 친분있는 인사끼리 어울리는 듯하다. 이 무리들이 변요한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남친짤들과~~ [[류준열]]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확 뜨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류준열]], [[지수(배우)|지수]], [[이동휘(배우)|이동휘]], [[김희찬(배우)|김희찬]], [[수호(EXO)|수호]], 이현욱, 권시현, 이기혁, 차영남, 김동환 ~~일명 연예계의 어벤져스~~ 등 연극, 단편영화, 독립영화에서 보이는 다수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변요한 패밀리'라고 부르는 것은 변요한이 가장 먼저 떠서이기도 하고 사진 등이 가장 많이 올라오기 때문인 듯 하다. 영화 '글로리데이'와 관련한 연예가중계 인터뷰에서 류준열은 BYH48로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변요한의 집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답변을 했다.[* 사실 이 별명은 자신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장난스럽게 부른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름의 기원(...)은 앞서 서술한 이유가 더 신빙성 있다. 물론 여러모로 변요한의 인맥과 관련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류준열이 언급한 이유도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변요한 패밀리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한 명씩 뜨고 있어 다음 차례는 누구일지 네티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있다~~
- 변정수(배우) . . . . 2회 일치
|| '''출생''' ||<(> [[1974년]] [[4월 15일]] ([age(1974-04-15)]세),[[경기도]] [[광명시]] ||
같은 대학의 복학생이었던 현재의 남편과 연애결혼했으며, 꽤 일찍 결혼한 편이다.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결혼 후 결혼 사실을 업계에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촬영날에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을 스태프에게 들켜서 결혼 사실을 그냥 공개해 버렸다. 결혼 후에는 [[경기도]] [[광명시]] 오포읍 신현리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보에몽 1세 . . . . 2회 일치
물론 그가 아버지가 못다한걸 이루겠다는 야심을 버린것으로 보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행동은 원정을 요청했던 알렉시오스에게 인정을 받아 십자군의 '종교적' 지도자였던 아데마르 주교와 배치되는 '세속적' 지도자가 되려는 생각에서 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시오스에게 제국의 아나톨리아군 총사령관직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티오크 공작으로서 보에몽은 명목상 비잔티움 제국의 봉신이 되었으나, 실제로는 독자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대립 관계였다. 주변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여 영토를 늘려나갔는데, 이렇게 이슬람 세력과 대립하다가 결국 이슬람 셀주크계 다니슈메드 왕조(Dânişmendliler)에 포로로 잡히고, 당시 그와 대립하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이송될뻔했기도 했으나, 군사적 협약을 미끼로 풀려나 다시 공작위를 되찾는다.
- 부모교실 . . . . 2회 일치
아버지 학교나 어머니 학교, 혹은 [[일본]]에서는 양친학급(両親学級), 모친학급(母親学級), 부친학급(父親学級)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곧 부모가 될 사람에게 부모로서 자각을 심어주고, 출산, 육아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교실이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주최된다.
교육으로는 출산의 순서, 임신 체조나 호흡법을 실기 교육, 영양이나 신생아를 목욕시키는 법에 대한 지도 등이 있다. 아버지의 경우, [[임산부]]의 배와 같은 무게의 덩어리를 배에 매달고 활동하여 임산부의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교육 등이 실시되기도 한다.
- 북유럽 신화 . . . . 2회 일치
일반적으로는 가장 체계적으로 남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의 [[에다]], [[사가]] 등의 문헌을 바탕으로 신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로마 시대에 게르만 민족에 대한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와 함께 언급이 등장하며, 단편적인 기록이나 유럽의 민속에서 신화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 [[토르]] : 가장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주인공]]. 영웅적인 업적을 가장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
- 브로포스/브로 . . . . 2회 일치
발매 초기에는 단발 소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캐릭터였고, 해금 시기도 브로인블랙 다음이었다. 하지만 캐릭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 스팀 트레이딩 카드의 설명에 따르면]로 수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 해금 시기도 브로티 해리에게 물려주고 한-참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수정 이전 스네이크 브로스킨을 해금했던 플레이어들은 브로티 해리와 스네이크 브로스킨 둘 다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블랙 클로버/109화 . . . . 2회 일치
* 유르팀 화산은 강렬한 열기와 유황가스로 그저 서있기도 어려운 지역이나 단장인 [[야미 스케히로]]와 [[샬롯 로즈레이]]는 단장답게 수월하게 돌파한다.
* [[레오폴트 버밀리온]]은 특유의 포지티브한 마인드 덕에 금방 마음을 다잡고 아스타에게 "정상까지 누가 먼저 가나 승부"라고 선언한다. 아스타도 일단은 의욕을 내본다. 레오폴트는 아스타와 함께 유노에게도 선전포고를 하는데 아스타에게 "나의 라이벌"이란 소개를 받고 "그렇다면 나의 라이벌이기도 하다!"는 이상한 비약으로 전개, 유노한테도 정상까지 승부하자고 제안하지만 "멋대로 하라"는 매우 심심한 반응이 돌아오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 블랙 클로버/116화 . . . . 2회 일치
* 1회전을 치르기도 전부터 팀은 붕괴 상태. 그 원흉은 전혀 자각이 없을 뿐더러 상황에 박차를 가한다. 자기들도 만만찮은 막장 팀이건만, 아스타는 이 팀이 정말 괜찮은 건지 진심으로 우려했다. 그러는 동안 키르슈는 여동생에게 아는 채 한다. 그는 여동생이 자기 아름다움을 보러 왔고 그 아름다움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여동생 건강까지 챙겨준다. 미모사가 화답한다.
오물 취급 당한다. 키르슈는 아스타가 분위기도 거동도 존재 자체도 아름답지 않다고 신랄하게 평한다. 그리고 패션 센스는 물론 근육을 키운 것마저 추악하다고 말하는데, 그의 미학상 몸이란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둬야하는데, 아스타처럼 단련하는 것을 "약한 자들의 행위"라며 경멸한다.
- 블랙 클로버/129화 . . . . 2회 일치
랜길스를 상대로 마법진을 펼치나 랜길스는 간단하게 우회, 잭스에게 공격을 명중시키나 그것 자체가 페이크. 진짜 함정마법진은 자기 몸에 설치해놨다. 마르크스는 그런 짓을 하는건 자신을 공격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경악해 하는데 이런 독한 짓을 하는건 그 말고는 없었는지 보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악한다. 함정마법은 반사 마법이었고 랜길스의 공간마법들이 몇 배로 커져서 반사된다. 랜길스의 공간마법에 맞았을 땐 "오늘 처음 나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며 축하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확실히 2회전에서 구덩이 파느라 개고생하긴 했지만 공격에 맞은건 처음.
역대 가장 쓰레기같은 마법기사단 인증. 이전에도 단장이 비리를 저지르다 마법제 차원에서 조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부단장인 잭스 류그너가 인덕으로 유명하다는 둥의 얘기가 나와서 이미지 쇄신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에피에서 하층민이 동료가 됐다는 것만으로 팀킬을 자행하질 않나 그 성자라던 잭스는 인간말종이질 않나 최악의 기사단으로 전락했다. 사실 하층민 동료를 차별하는 묘사는 마법기사들 전반에 흔했지만 대놓고 팀킬을 해버리는 예는 이번이 처음. 금색의 여명이나 은익의 참수리 조차 선민의식은 쩔어도 아스타 등이 대활약하자 생각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쪽은 만회의 여지가 없다.
- 블랙 클로버/93화 . . . . 2회 일치
* 마르스는 아스타를 보며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던전에서 아스타와 싸우기 전후로 많은 강자들을 상대했지만 이토록 포기를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또한 신기한 인물이기도 한데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상대 조차 설득하고 도우려 하는 인물은 클로버 왕국에서도 아스타 정도였다. 끝없는 이타심을 가지고 그걸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아스타야 말로 "진정한 기사"에 걸맞는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아직도 끝난게 아니다. 파나의 끝모를 적의처럼 불꽃이 다시 타오른다. 아스타와 마르스를 덮치는 열기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다시 자폭마법이 작동할 조짐을 보인다. 그때, 이번엔 마르스가 달려나간다.
- 블루 마블 . . . . 2회 일치
강력한 능력을 지녔으나 60년대쯤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에게 불려나가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기를 종용 당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후 잠정적으로 히어로 활동을 중단하다 [[피어 잇셀프]]에서 잠시 등장. '[[인피니티(마블 코믹스)|인피니티]]'에서는 뉴욕 한복판에 소환된 [[슈마고라스]]의 일부를 무찌르는데 일조했으며 [[루크 케이지]]의 마이티 [[어벤저스]]에 합류한다고 한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반물질을 조작해 체내의 양성자가 반양성자로 인해서 분해되는 상태의 [[스펙트럼(마블 코믹스)|스펙트럼]]이라는 여성 히어로를 구하기도 했다.
블루 마블이란 이름은 아틀라스 코믹스[* [[마블 코믹스]]의 전신 중 하나.]의 골든 에이지 히어로인 마블 보이가 사용한 이름이기도 하다.
- 사쿠라 . . . . 2회 일치
[[벚꽃]]이라는 뜻. 인명으로 쓰이기도 한다.
본래 노점상의 은어였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 일반 사회에 퍼졌다. 한자로는 위객(偽客)이라고 쓰기도 했다.
- 서명선 . . . . 2회 일치
[[서명응]](徐命膺)의 아우이기도 한 그는 [[경상도]] [[달성군]]에서 출생하였고 [[한성부]]에서 성장하였으며 [[조선 영조|영조]] 때인 [[1753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63년]] 증광문과에 을과 급제하였다. 이후 겸사서, 부교리, 교리, 지평, 수찬, 헌납 등을 거쳐 부교리, 사간, 응교 등을 지냈다.
정조 때 호위대장을 하기도 했으며 당시 [[우의정]]으로 정조를 보호했다.
- 서태화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경기]] [[김포시|김포군]]
[[경기도|경기]]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김포시|김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88년 [[뮤지컬 배우]]로 첫 데뷔를 하였고 이듬해 1989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였으며 1997년 [[대한민국 영화|영화]] 《[[억수탕]]》의 조연을 통하여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 선원 . . . . 2회 일치
과거 영국은 군함의 선원을 강제 징집해서 충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극초반에는 미국 선박을 습격, 선원들을 끌고가 자국 군함에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 선조 . . . . 2회 일치
그러나 임진왜란 때 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천도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 한 몸 살겠다고 요동 너머로 도망치려 들고[* 결국 명나라가 우회적으로 거절하여 무산됐지만... ~~스탈린도 그런 짓은 안 했다!~~], 조정으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분조를 이끌면서 왕조의 권위를 어떻게든 살리려한 세자에게 격려를 못할 망정 양위소동을 일으키지 않나[* 다만 이건 당시 선조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왕권이 최약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순신을 견제하기 위해 원균을 밀어주지 않나(...)...
왜란 이후에도 그의 삽질은 계속되어, 당시 세자인 '''광해군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인목왕후를 들이지 않나[* 사실 이는 현대 관점에서 보면 충공깽이지만, 관례적으로 중전의 지위를 공석으로 놔둘 수 없었던 조선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중전은 궁녀들의 모임인 내명부를 통솔하는 안주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은 단순히 사적인 '왕의 배우자'가 아니라, 업무를 통솔하는 직책이기도 하므로 중전이 부재하면 궁궐의 기능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중전은 정치적으로 왕권과 후계의 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문종 때 새 중전을 들이지 않았던 탓에 단종이 '수렴청정'을 통한 왕권 수호를 받지 못한 것이 세조의 쿠데타를 쉽게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인목왕후는 오히려 불안정만 불러왔지만--],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영경]]등과 영합해 나중에 영창대군이 좀더 장성할 때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했다! 그것때문에 광해군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왕위에 집착하게 되고, 영창대군의 최후와 [[인조반정]]의 원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성재(가수) . . . . 2회 일치
|출생지 = [[경기도]] [[구리시]]
'''성재'''([[1980년]] [[1월 30일]] ~ )는 [[대한민국]]의 하드코어 밴드 [[비셔스글레어|비셔스글레어(Vicious Glare)]]와 언리시드앵거의 가수, 기타리스트이다. 본명은 '''박해진'''이며,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출신이다. 2008년 부터 ankind-Design'이라는 자신의 개인 디자인 브랜드를 운영, 음악 레코딩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하드코어 메탈 전문 레이블 [[GMC 레코드]]의 [[웹마스터]] /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다가 2014년 중순부터 레이블을 인수 받아서 CEO가 되어 운영중이다.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https://en.wikipedia.org/wiki/Straight_edge Straight Edge]라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 송주훈 . . . . 2회 일치
미토 홀리호크로 임대된 송주훈은 재활을 거쳐 2016년부터 주전 센터백으로 뛰게 되었으며, 시즌이 개막한 후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경기 (19경기) 풀 타임을 소화하며 1골을 넣는 등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고, 2016년 [[J2리그]] 선수들 중 공중볼 점유율 1위 선수로 뽑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출국을 앞두고 FC 기후와 가졌던 7월 16일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의 경합 도중 새끼발가락 골절상[* 발가락이 완전히 부러져서 수술이 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송주훈 본인도 올림픽 직전에 당한 부상이라 충격이 상당했다고.]을 입어 다시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중국 슈퍼 리그]] 소속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에서 유럽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권]]의 대체 선수로 송주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이적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8&aid=0002571906|#]] 광저우에서 [[김형일(축구)|김형일]]을 대신 영입함에 따라 광저우 이적은 무산되었고, 결국 2017년 임대가 만료되어 본래 팀인 니가타로 복귀하게 되었다. [[https://twitter.com/Jleague_Bot/status/819043605956304899|#]][* 그러나 2017년 슈퍼 리그의 외국인 쿼터가 5명 보유 3명 출전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각 구단들은 더욱 고연봉인 유럽이나 남미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김기희]], [[장현수]] 등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이 [[벤치워머]]로 전락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중국 이적이 무산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 실제로 송주훈 대신 이적한 김형일 역시 1경기도 뛰지 못하다가 방출되었고, 반대로 송주훈은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잘 뛰고 있으니 정말로 일본에 남은 것이 이득이 된 셈이다.]
- 슈퍼머슬봄버 . . . . 2회 일치
다만 밸런스는 좀...게임 컨셉이 일단은 레슬링이기 때문에 판정이 좀 느리고 믿을만한 대공기도 없고 대쉬 공격이 너무나도 토나오게 강력하다보니 위 동영상에 등장하는 아스트로가 지나치게 강했다.
게임자체는 망하기는 했지만, 세계관은 그대로 남아있어서 [[파이널 파이트]]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연결되기도 한다.(대표적인 예가 [[해거]]와 [[버디]], [[휴고]])
- 슈퍼히어로 팀 . . . . 2회 일치
팀이기에 [[빌런]]측도 슈퍼빌런 팀 또는 더 큰 규모의 조직, 집단으로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하나이거나 그와 다를바없는 소수의 초강력 빌런에게 대항하기 위해 팀이 성립되는 묘사도 있다.
[[슈퍼전대 시리즈]]의 [[전대]]도 슈퍼히어로 팀에 해당된다.[* 다만 스타일에 따라서는 팀보다 더 큰 기관 등이 되기도 한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 . . 2회 일치
코믹스화 되었으며 서양권에서도 코믹스가 출시되기도 했다.
캡콤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많은 프랜차이즈가 뭐한 판에서 유지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 스틸오션/미국 . . . . 2회 일치
>"평갑판" 구축함이라고도 알려진 칼드웰급 구축함은 1917년 취역하였다. 대서양, 주로 동해안에서 수송함대 호위를 맡았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칼드웰급 구축함 한척이 윌슨 대통령 호위를 맡기도 했다.
>독일 U보트로부터 항로를 지키기 위해 많은 C3형 화물선 선체가 호위항모로 만들어졌다. 그중 몇몇은 왕립 해군에게 공여되었다. 보그급 호위항모 중에는 두척의 잠수함(1943년에 U-220, 1944년에 U-1059)을 격침시킨 블록 아일랜드(Block Island)도 있었다. 이 함선은 네척의 유보트를 구축함과 함께 격침시키기도 했다. 블록 아일랜드는 1944년 5월 29일, U-549의 뇌격으로 격침된다.
- 스틸오션/영국 . . . . 2회 일치
>왕립해군은 1916년 부터 1917년 까지 55척의 R-클래스 구축함을 건조했다. 이 숫자에는 이중 굴뚝을 장비한 개량형도 포함되어있었다. R-클래스 구축함은 초기 M-클래스 구축함의 개량형이었다. 두척을 제외한 대다수의 R-클래스 구축함이 1930년대 퇴역하였다. 레이디언트(Radiant)는 왕립태국해군에 넘겨져 1957년까지 현역이었으며, 스케이트(Skate)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기뢰부설함으로 개장되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살아남았다. 스케이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호위선단에 참가하기도 했다.
>HMS 유니콘은 정비실이 설치된 항공기 수리함 겸 경항공모함이었다. 1943년 3월에 건조된 후, 대잠임무와 훈련임무에 주력해왔다. 1943년 12월, HMS 유니콘과 다른 호위항모 4척으로 구성된 V기동함대는 아발란체 작전(Operation Avalanche)에 투입되었다. 1944년, 태평양으로 보내져 MONAB(Mobile Naval Air Bases)의 창설을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잠시 예비역으로 있다 싱가포르에 배치되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항공기 수송과 영연방 항모 보급 임무를 맡았다. 1953년에는 북한 해안에서 포격 당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퇴역하여 해체되었다.
- 식객 . . . . 2회 일치
춘추전국시대에는 식객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사람을 주인이 보호해주고 대접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식객은 여러 나라의 귀족 계급의 분쟁에서 주요한 전력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뛰어난 실력을 살려서 일종의 [[사병]](私兵)이 되거나 주인의 참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주인이 살해되면 식객이 [[복수]]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맹상군, 신릉군 같은 전국사군자는 수백명의 식객을 육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식객들은 이 귀족들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점차 정부에서는 식객들을 위험시 하여 왕족이나 귀족이 식객을 두는 것을 정책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 식극의 소마/196화 . . . . 2회 일치
THE BLUE는 전세계의 젊은 요리인을 모으는 콩쿠르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는 발판이다. 도지마는 역시 죠이치로라며 자랑스러워하고 아자미는 자기도 언젠간 나갈 거라며 은근히 분해한다. 그때 마침 죠이치로가 귀가한다.
* 죠이치로는 또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했는데 별거 아닌 일처럼 심드렁하게 말한다. 그러더니 들어오자마자 도지마와 아자미에게 요리승부를 하지 않겠냐고 권한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텐션도 낮아 보여서 도지마와 아자미는 혹시 슬럼프가 온거 아닌가 우려하기도 한다.
- 식극의 소마/209화 . . . . 2회 일치
* [[카와시마 우라라]]는 쥬리오가 이탈리아 요리의 달인이라고 소개한다. 쥬리오는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조리에 들어간다. 큼직하게 자른 장어에 소금을 쳐서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양파와 마늘,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볶는다. 이때 와인을 뱅뱅 돌리면서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넣는게 포인트. 꼴은 우스꽝스럽지만 실력은 대단하다. [[나카리 에리나]]도 그의 내력과 실력에 대해선 자세히 안다. 에리나는 시라츠 일가는 대대로 이탈리아 영사관의 전속 요리사를 했던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실력은 일본과 이탈리아 양국에서 소문이 자자하고 특히 선대는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 한편 잇시키는 드디어 주재료인 장어에 손을 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장어를 고르기도 전에 삼천포로 빠진다.
- 신고은(가수) . . . . 2회 일치
[[1986년]] [[4월 7일]]에 태어나 [[2011년]]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가수. 소속사는 인사이드 엔터테인먼트, [[경기도]] 출신. [[http://instagram.com/shinggoni|인스타그램]]
[[분류:한국 가수]][[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1986년 출생]][[분류:2011년 데뷔]][[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신성왕후 . . . . 2회 일치
'''신성왕태후 김씨'''(神成王太后 金氏) 또는 '''신성왕후'''(神成王后)는 [[신라]]의 왕족 출신 [[고려]]의 왕후로 [[고려 태조]] 왕건의 제5왕후이다. [[신라]] [[신라 문성왕|문성왕]]의 후손으로 [[신라 경순왕]]은 그의 사촌 오라비였다. 그녀는 [[고려 안종|안종 왕욱]]의 생모이기도 하다. 본래는 왕후가 아니었으나, [[1010년]] [[고려 현종|현종]]에 의해 왕후로 추존되었다. 성은 김씨, 본관은 [[경주 김씨|경주]](慶州)이다.
신성왕태후 김씨의 소생으로는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고려 안종|왕욱]](王郁)이 있는데, 그는 제5대 국왕 [[고려 경종|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 황보씨와 정을 통해 제8대 국왕 [[고려 현종|현종]]을 낳았다.<ref>《고려사절요》</ref> [[1008년]] 현종(顯宗)이 즉위하고 [[1010년]] 왕후로 추존하여 시호를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라 하고 능호는 정릉(貞陵)이라고 하였다. 원당은 [[경기도]] [[장풍군]]에 있는 현화사이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1400&content_id=rp070314000001&print=Y 문화콘텐츠닷컴 〈현화사〉]</ref>.
- 아타리야 . . . . 2회 일치
* 당첨이란 말에서 성공이라는 의미가 나와서, 재수좋게 뭔가 운이 좋아서 인기를 얻은 가게나 상인, 예능인을 뜻하기도 한다.
* 아타리에는 부딪친다는 뜻으로 맞는다는 의미도 있어, [[교통사고]]를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자해공갈]]을 뜻하기도 한다.
- 안드로메다 스토리즈 . . . . 2회 일치
지무사의 쌍둥이 여동생. 녹색 머리. 지무사와 마찬가지로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쌍둥이는 불길하게 여겨져서 버려지고, 창녀 코리노(コリノ)가 데려다가 기르게 된다. 남자로서 길러졌으며 도중까지는 도적으로서 지무사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지무사와의 혈연과 사랑을 깨닫게 되고….
* '행복'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문명이 폭주하여 침략자로 돌변하는 것은 [[용자왕 가오가이가]]가 연상되기도.
- 안전벨트 . . . . 2회 일치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착용자를 졸라 죽이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안전벨트가 그려진 티셔츠로 단속을 약간이나마 피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탈리아]]에서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다(...). 거기도 난폭운전으로 유명한 동네라서 그런지...] 그냥 안전벨트 하고 다녀라.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 . 2회 일치
[[배트맨]] 시리즈의 캐릭터. 배트맨의 정체인 [[브루스 웨인]]의 [[집사]]이며 어려서부터 부모 대신 그를 돌봐온 사실상의 양부이기도 하다. 본인도 브루스를 아들처럼 아낀다.
집사의 전형적인 인물. 말이 집사이지 일반적인 집사의 업무에 브루스의 배트맨 활동도 보좌하고, 뒤치닥거리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말솜씨도 뛰어나서 배트맨도 이길 수 있으며 독설적 농담을 쓴다. 딱히 싸움을 잘할 듯한 인상은 아니나 박쥐 동굴에 침입자가 발생하면 샷건을 쏘기도 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 . . . . 2회 일치
검과 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 가끔씩 말 탄채로 나타나기도 한다. 평타를 막는다. 그렇다고 카운터를 시도하면 아마추어라면서 죽빵을 먹인다. 방어파쇄 저항이 없다. 가끔씩 짚단을 칼로 찌르며 다닌다.
검과 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 수배레벨이 3이 되면 코너를 찾아 다닌다. 말 탄채로 나타나기도 한다. 평타를 막으며 카운터도 막는다. 방어파쇄도 막는다. 요새의 지휘관은 모두 얘네들이다.
- 여자력 . . . . 2회 일치
일반적으로 메이크업이나 패션 감각 등을 뜻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배려를 하거나, 인품이 좋은 면을 나타낸다. 요리를 잘 하면 여자력이 높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며, 아무튼 매력이 있다면 여자력이 높다고 보기도 하고 등등. 모호한 면이 많은 단어이다.
- 연광철 . . . . 2회 일치
가곡의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명훈의 반주로 <겨울여행(Winterreise)>를 소니 레이블로 출반하기도 했다. 그의 독일어에 대한 해석은 시대와 지방에 따른 뉘앙스와 억양의 차이까지도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분석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JCC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 연하장 . . . . 2회 일치
해방 이후에는 고위 공무원들이 일본에서 대량으로 주문한 카드로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정권 교체 시기에는 허례허식이라는 이유로 크리스마스 카드 및 연하장 교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 오다 노부나가 . . . . 2회 일치
그 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대군을 격파하고 미노 지역을 흡수한 뒤 상락을 단행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하고 일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통합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에치젠 지역을 공격하다 매제 [[아자이 나가마사]]의 모반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다이묘들이 '포위망'을 펼쳐 견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정치 및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이를 차례차례 타개해 나가 일본 제일의 실력자가 된다. 그러나 후에 서쪽의 [[모리]] 가를 공략하던 도중에 혼노지에서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에서 사망하고 만다.
당시 기준으로 여러 방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행보를 보인 인물로, 상공업 촉진을 위해 [[관문]]을 철폐하거나 종교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등 선진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군사적으로 최강은 아니었으나 이를 전략적인 밑그림을 통해 역전시켜 다른 다이묘들을 차근히 압도해 나갔다. 한편 성정이 폭급한 부분이 있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마왕]]'과 같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사적인 부분에서는 당대 기준으로 오히려 자상한 부분도 보인다.
- 외척 . . . . 2회 일치
외척 집안에서 황후를 배출하면서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서 장기적으로 외척으로서의 권세를 이어가기도 하다. 조사해보면 직접적으로 외척이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황후를 배출하는 집안은 몇몇 가문으로 한정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러한 가문이 아예 공인되어, 황족에 버금가는 '왕비족'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왕조는 외척의 권세가 강했는데, 특히 [[전한]], [[후한]] 시기는 외척의 권세가 아주 강력했던 시기이다. 황제들은 이것을 제어하려고 [[환관]]과 손을 잡고 외척을 타도하기도 했으나, 이로 인해 이번엔 환관이 반대로 지나치게 강해져서 환관 세력이 창궐하게 된다.
- 운전기사 . . . . 2회 일치
승용차 운전을 대행해주는 직업.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많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보통 [[높으신 분들]]이 고용한다. [[회사]]에서 대리 고용해주거나, 개인적으로 고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높으신 분들 역시 운전기사와의 관계를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고. 반대로 그 높으신 분의 성격이 상당히 이상하거나 안 좋으면 운전기사 역시 고달프다.
- 원 포 올 . . . . 2회 일치
올마이트가 숨기다보니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나 이와 별개로도 아직 많은 것이 드러나지 않아서 어떤 의미로는 불가사의가 맞게 되었다. 올마이트가 스승과 만나 인정받고 힘을 계승받은 과정, 미도리야가 체육제 토너먼트에서 보게된 사람들의 모습의 구체적인 의미,[* 올마이트는 자신도 예전에 봤으며 원 포 올에 대한 감이 잡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설명했으나 미도리야가 나간 뒤에 리커버리 걸이 보통 때와 다른 분위기로 올마이트에게 '너도 있었다고'라 하고 올마이트는 잘된 일이라 답하는데 이때 분위기도 뭔가 있어보인다.] 스승이나 그 이전의 계승자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원 포 올의 기원 등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초능력자가 절대 다수인 히로아카 세계인 만큼 다양한 개성이 있고, 그중에는 정말 강력한 힘도 있는데 그런 힘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기입될만한 힘이다. 미도리야의 스승이자 이전 계승자인 올마이트부터가 평화의 상징. 물론 올마이트가 힘만 가지고 최고의 히어로가 된것은 아니나 그걸 고려해도 굉장하다. 거기다 그 특성상 계승을 거칠 수록 더 강해질수 있다.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조심해야하기도 하는 것이 너무 강한 힘 탓에 미도리야는 그 힘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힘이 원인이 되어 부상을 입을 때가 자주 있다.
- 원피스/841화 . . . . 2회 일치
* 상디는 병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힘으로 어머니의 거처로 향한다. 중간에 개가 달려들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도착한다.
- 원피스/844화 . . . . 2회 일치
우솝과 결별했던 에니에스로비편하곤 전혀 다른 전개가 아니냐고 까이기도 하는데 당시엔 메리호의 처우를 놓고 루피 자신도 심란했던 시기이며 2년 후인 현재에 비해서 미숙한 시절이기도 했다. 게다가 사실 루피 본인은 당연히 우솝과 화해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부선장인 조로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던 부분도 크다.
- 원피스/855화 . . . . 2회 일치
* 상디는 [[몽키 D. 루피]]가 기다리는 장소로 향하는 중. 도중에 어렸을 때처럼 들개의 습격을 받기도 해서 당황.
세 번째는 [[페드로(원피스)|페드로]]가 도전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빅맘이 뒤척이는 것에 휩쓸려 튕겨나가고 만다. 이때 브룩이 빅맘의 품에서 떨어져 나온다.
- 원피스/859화 . . . . 2회 일치
빅맘의 다과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다과회의 주역들이 원탁에 둘러 앉을 때 빅맘의 맞은 편은 "마더 카르멜"의 사진이 놓인다. 이것은 빅맘이 가장 아끼는 보물로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다. 사진은 액자에 담겨 정중히 자리에 놓이며 사진이 놓인 자리엔 누구도 앉거나 건드려선 안 된다. "마더 카르멜"은 미지의 인물로 가족들 조차도 "빅맘의 은인"이란 것만 알 뿐,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폰은 이 인물이 실종됐다고 하는데.
* 거기서부터 시폰이 이어서 말한다. 한 번은 급사가 다과회 준비 중 실수로 사진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그때 빅맘은 평상시의 발작과도 다른, 아주 극심한 발작을 일으켰다. 얼굴이 새파래진 빅맘이 들어본 적도 없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것이다. 먹을게 없을 때 일으키는 발작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도 못하고 귀를 감싸고 있는게 고작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리기도 했다. 벳지는 괴성에 섞어 패왕색 패기를 은연 중에 방출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저 사진이 떨어진 것 뿐인데 말이다.
- 원피스/879화 . . . . 2회 일치
써니호의 키잡이로 흔들림없이 일하는 중. [[밀집모자 일당]]이 해안을 빠져나오고도 페드로의 희생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자 강하게 질타해 정신을 차리게 한다. [[브룩]]에게 가장 페드로와 친했으면서 매정하다고 항의받기도 했지만 정말로 페드로를 희생시킨게 아무렇지 않아서 그런건 아니었다. 페드로가 일행을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희생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만들어준 기회를 헛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 화에서 페드로가 자폭하면서 [[샬롯 페로스페로]]가 걸어놓았던 사탕 코팅이 벗겨진다. 좀 어리둥절한 상태였던 듯 한데, 나중에 전말을 전해듣고 오열하며 자책한다. 자기가 더 강했더라면 페드로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브룩을 따라서 [[쵸파]], [[캐럿(원피스)|캐럿]]도 통곡하면서 써니호는 탈출하던 것도 잊다시피 했는데 [[징베]]가 호통을 쳐서 작업에 복귀 시킨다. 처음에는 징베가 너무 매정하게 군다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가 페드로의 의지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줄 깨닫고 탈출작업으로 복귀한다. 쿠드 버스트로 소모된 콜라를 채우러 가는 중.
- 유기농 . . . . 2회 일치
[[화학비료]],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되는 농축산물을 뜻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기술을 유기농 농법,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된 생산물은 유기농 식품이라고 한다. 다 싸잡아서 '유기농'으로 부르기도 한다.
유기농과 함께 '친환경'이라는 말이 따라붙기도 한다. '친환경 유기농'.
- 유다인 . . . . 2회 일치
* 배우 [[유연석]]과는 인연이 많다. 영화 '혜화, 동'에서도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분하여 호평받았던 경험이 있고, '맛있는 인생'에도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에서도 친한 연예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 유미(가수) . . . . 2회 일치
2006년에는 [[김아중]], [[주진모(1974)|주진모]] 주연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주연배우 [[김아중]]의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영화에서 김아중이 직접 노래를 소화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인데 그 가창력이 웬만한 가수들 뺨칠 정도로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OST에도 참여했는데, 영화와 함께 OST도 대박을 치면서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유미가 부른 곡인 '별' 또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수로서 공백 기간 동안에는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배우 [[김아중]], SBS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에 배우 [[김정은(배우)|김정은]]의 노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특히 2세 아래의 배우 [[김아중]]과는 영화를 통한 보컬 트레이닝을 인연으로 친분이 두텁다. 불후의 명곡 첫 출연 섭외 전화를 받을 때에도 함께 있었다고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 김아중이 직접 언급하였으며, 불후의 명곡 [[김민종]]편 녹화날에는 유미의 초대에 [[김아중]]이 기꺼이 응원하러 와 주기도 하였다.
- 윤상현(배우) . . . . 2회 일치
한국의 남성 배우. 본래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으며[* 최종학력 고졸이다, 과거 허위사실 기재로 학력논란이 있었다(...)] 분식집, 옷장사 등의 다른 일을 하며[* 그 때까지만 해도 판촉활동으로 최고가 되고 싶단 바램을 피력한 바 있었다.] 살던 중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로 연예기획사에 픽업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수가 될 예정이었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으며, 실제로 4인조 남성그룹의 멤버가 되기도 했으나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드라마 작가와 감독들에게 캐스팅이 들어왔고 배우로 전향하게 되었다.
* 내조의 여왕이 잘 되어 일본에도 방영이 됐고 결국 일본에서 음반 제작을 하기도 했다. 앨범 발표 당시 많은 기자들이 모였는데 윤상현은 일본어를 하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그 탓에 옆에 통역관에게 수다 본능을 보였고 통역관은 윤상현의 말을 통역하느라 진땀을 흘렸고 일본의 기자들은 그의 말 하나하나를 기사화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일본 측에서 한류스타 최초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분 처음이라고 했으며 친절하고 재미있다라는 내용으로 우호적인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 윤용현(1969) . . . . 2회 일치
연기 외에도 2002년에 경기도 일산에서 "도끼와 뻘"이라는 조개구이 전문점을 차려서 나름 성공한 맛집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식당경영은 친형에게 맡기고 2018년부터 세종시에서 "오티움"이라는 이름의 웨딩홀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라는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순박한 시골 청년'''을 그야말로 맛깔나게 잘 표현하는 등, 다른 연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배우 본인은 "코믹한 배역이 원래 성격과 맞다. 사람을 웃기는게 좋다"라고.
- 윤정희(1944) . . . . 2회 일치
|| [[원미경]] || [[이미숙]] || [[정애리(배우)|정애리]][*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배우)|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배우)|이보희]]를 참고바람.] ||
한때 일가족이 북한으로 [[납북]]될 뻔한 큰 위기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백건우]] 항목 참고.
- 윤태진(아나운서) . . . . 2회 일치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주간 서형욱]]에 나왔을때 [[슴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야구팬들 사이에 ''''크기보다 모양''''이라는 전설의 유행어가 탄생했다.
- 윤휘 . . . . 2회 일치
[[1603년]] [[좌부승지]], [[참찬관]]을 지냈다. 한편 [[선조]]의 특명으로 돈피 사모 이엄(獤皮紗帽耳掩) 1부(部)을 하사받기도 했다. [[1604년]] [[승지]], [[호조]][[참의]]를 거쳐 [[1605년]] [[해주]][[목사]](海州牧使), 그뒤 [[전라도]] [[관찰사]]·[[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치적을 올렸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었으나 [[광해군]]의 조정에 참여하였다.
이후 [[조선]] 조정의 특명전권대사로 [[청나라]]군과 [[남한산성]]을 오가면서 화의 교섭을 노력, [[청나라]]군사들을 설득시키고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환도 후 [[도승지]]에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외교를 전담하였고, 사신으로 [[청나라]]와 [[명나라]]를 여러 번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의 [[조선]]의 정벌 여론을 무마시키기도 했다. [[1638년]]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를 거쳐 [[조선 인조|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책봉[[주청사]](奏請使)가 되어 [[청나라]]에 가서 책봉 고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귀국 도중 [[담배]](南草)를 [[가마]]속에 숨겨갖고 왔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사신직에서 파직당했다.
- 윤흔 . . . . 2회 일치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윤두수]]의 묘소 옆 자좌(子坐) 오향(午向)의 언덕에 안장되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의 호종 공로로 사후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관상감사]]에 특별히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그는 과거 시험에 급제한 뒤에도 스승인 [[성혼]]의 문하와 [[정철]]의 문하에 들며 가르침을 구하였다. 스승의 한 사람인 [[정철]]은 급제 이후에도 찾아 배움을 청하는 그에게 특별히 '윤시회흔견방'(尹時晦昕見訪, 시회(時晦) 윤흔(尹昕)이 찾아와서)이라는 시를 지어 헌정하기도 했다.
- 은혼/583화 . . . . 2회 일치
* 이번회의 제목은 "오른팔"은 우미보즈의 잘린 오른팔이기도 하지만, '''지난 주에 잘렸다가 재생한 우츠로의 오른팔이기도 하다.'''
- 은혼/593화 . . . . 2회 일치
* 우츠로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요시다 쇼요인 동시에 우츠로이기도 하며 둘 다 아니기도 하다고 말한다.
- 은혼/607화 . . . . 2회 일치
* 야마자키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나 자신을 해방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 마츠다이라는 이것을 보고 "여기는 사무라이 뿐만 아니라 너희의 나라이기도 하군"이라 중얼거리는데.
- 은혼/609화 . . . . 2회 일치
* 이것은 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병기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병기도 아니었다.
- 은혼/612화 . . . . 2회 일치
* 진선조와 오니와번슈는 지상군 저지를 기도한다. 해결사 일행은 별동대로 활동 중.
* 황태자는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상위비비"라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우리에 가보니 상위비비는 보이지 않고 똥만 보인다. 할아범은 "동물원에선 흔한 일"이라며 어느 동물원이든 가보면 똥만 있고 동물은 없더란 상황이 있다고 얼버무린다. 황태자는 그런건 됐고 상위비비는 어디있냐고 찾아 이번엔 "똥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똬리를 튼 상위비비"라는 상황이 동물원에선 흔하다고 얼버무린다. 하타 황태자도 안 속는 무성의한 개드립이다.
- 은혼/627화 . . . . 2회 일치
그때 [[사이고 토쿠모리]]가 항상 으르렁대던 가부키쵸 사천왕이 오늘 밤은 즐거워보인다며 자리에 끼어든다. 오토세는 마침 그도 부르고 싶던 참이라며 자리를 내어준다. 어차피 이들과는 지구가 멸망하지라도 않으면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이니 이런 기회도 없다면서. 그래서 오토세는 차라리 이 상황에 감사하고 있다. 이럴 때이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게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조금은 인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게도마루와 식신들은 판데모니엄으로 차린 다채로운 급식과 배식자들의 호러블한 비쥬얼로 배식을 익사이팅하게 해주며,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순찰대를 빙자해 서로 식신이 더 흉악하고 무섭다고 싸우며 소란, [[게츠노 아나운서|게츠노 크리스텔]]은 기도로 싸움하게 좋은 날씨를 만들며 싸움을 조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은혼/635화 . . . . 2회 일치
* 카무이의 말처럼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러 온 하루사메 함대. 전 삼흉성 [[바토우]]와 [[사루가쿠]]가 카무이의 동지로서 하루사메 잔당을 규합, 귀병대를 지원하러 온 것이다. 이들의 도착 소식에 [[다카스기 신스케]]는 "꽤 늦었다"며 쓴소릴 날리지만 바토우는 늦은 만큼 매꿔주겠다고 대꾸한다. 작전방침 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늦었다는데. 그들의 대장이 총대장인 주제에 곧 날아가버릴 지구로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어지간히 단세포인 사루가쿠도 두 손 들었다며 "대장이 당하기 전에 해방군을 처리한다"고 최종적으로 결정. 무엇보다 카무이는 그 지구에 해방군 전체보다 위험한 놈이 있다고 강변했다 한다. 신스케가 그 말을 듣고 "해방군은 그냥 시작에 불과하다"고 카무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사루가쿠는 자기도 내려가 볼걸 그랬다고 투덜거린다.
바토우는 어쨌든 여기도 사지임에는 틀림없으니 만족하라고 대꾸한다. 그 말을 들은 사루가쿠가 수긍하며 "아무리 나라도 이정도 규모로 나쁜 짓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 은혼/637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플래그를 한두 군데 뿌린게 아니다 보니 이것도 경쟁률이 높다. [[진선조]]도 도착. [[오키타 소고]] 또한 플래그를 꽂았다. 자기도 한 마디 들은 기억이 있어 이것만은 긴토키에게 양보할 수 없다고 나서는데. 인기가 폭발하는 카무이. 긴토키가 플래그를 너무 뿌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며 이래서야 보스 한 명하고 해피앤드를 맞을 수 없다 디스한다. 오키타도 거들면서 "너같은 마나카 한테 어울리는건 동서남북 히로인들한테 꼬치가 되는 아수라장 앤딩 뿐"이라며 킨타마100% 드립을 친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설마 지 목소리도 마나카인 주제에 마나카 꼬치 드립을 칠 줄은 몰랐다고 코멘트.[* 오키타와 딸기100%의 주인공 마나타는 모두 성우가 스즈무라 켄이치]
지구는 자기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 어디가서 기도나 올리고 있으라 권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기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옮으면 귀찮으니까. 저 대장처럼.
- 은혼/643화 . . . . 2회 일치
* 제어 시스템을 호위하던 병력들은 난데없는 폭발이 일어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제 3게이트였다. 방금 전 단 한 명의 적을 막으려고 부대 하나가 간 방향이다. 거기서 일어난 폭발로 부대는 전멸, 게이트마저 파괴됐다. 남은 부대들은 신속하게 화제를 진압하고 방어를 강화했다. 동시에 제어 시스템에 방어인력을 충원했다. 총알 하나라도 잘못 맞았다간 이 배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증원병력이 막 도착했을 때였다. 신스케와 마타코가 제 3 게이트와 제어 시스템으로 양단된 병력 위로 뛰어내렸다.
* [[사카모토 다츠마]]. 이 남자가 돌아왔다. 이번엔 실없는 농담도 웃음기도 없다. 그가 이번에 엔죠 황자에게 가져온 것은 뜨거운 탄환이었다.
- 은혼/644화 . . . . 2회 일치
* 보고는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카모토 다츠마]]와 [[가츠라 고타로]]의 귀에도 들렸다. 신스케의 성공을 뜻하는 낭보. 그러나 동시에 비보이기도 했다. 다츠마는 아무리 악운이 강한 그들이라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하진 못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런 각오가 없인 베지 못할 상대였기에, 신스케는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이라면 여기도 타고 있다.
- 의상 (신라) . . . . 2회 일치
'''의상'''(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승려|고승]]이다.<ref name="글로벌-의상">[[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대사회의 발전/통일신라와 발해/고대문화의 융성#의상|한국사 > 고대사회의 발전 > 통일신라와 발해 > 고대문화의 융성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br/>[[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중세사회의 발전/귀족사회와 무인정권/귀족문화#의상|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의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의상은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관음굴]](觀音窟: [[낙산사]])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교학]]을 강술하여 [[화엄종]]([[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의상"/>
- 이노센트 투어 . . . . 2회 일치
한때 [[무인도 이야기]]로 유명세를 떨쳤던 [[KSS]]에서 제작한 [[보드 게임]]이다.[* T-RPG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다이스 때문에 운이라는 특성이 반 이상 작용하는 걸 고려하면 순수한 전략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1996년]]작.
가끔이긴 하지만 조커가 나오기도 하는데, 조커는 문자 그대로 꽝이다. 얘는 정령이 아니라 악마이기 때문에 누적시킬 수 있는 속성도 없고 속성이 없으니 숫자도 없다.
- 이상무(만화가) . . . . 2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 이수민(야구선수) . . . . 2회 일치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 이요원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이요원은 [[1980년]] [[4월 9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고교 방송반으로 활동중 별 기대없이 출전한 연예인 캐스팅 컨벤션의 모델캐스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월간 잡지 '피가로' 11월호의 모델로 데뷔했다. [[1998년]] 당시 [[명세빈]]의 아역을 찾던 [[장현수 (영화 감독)|장현수]] 감독이 이요원의 잡지화보를 보고 바로 캐스팅했으며 이어 영화 《[[남자의 향기 (영화)|남자의 향기]]》를 통해 연기자로 정식데뷔한다. [[1999년]]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2 (드라마)|학교 2]]》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아르바이트 주유원으로 출연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1년]] [[청룡영화제]] 여우신인상을 안겨준 《[[고양이를 부탁해]]》와 [[KBS]] 드라마 《[[푸른 안개]]》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차세대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KBS 드라마 《[[순정 (드라마)|순정]]》과 영화 《[[서프라이즈 (영화)|서프라이즈]]》에서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드라마)|모래시계]]》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2002년]] [[SBS]]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에서 여주인공 윤여진 역을 맡은 후 잠시 연기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2년간의 공백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패션70s]]》로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2007년]]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 최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4관왕을 안겨준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와 730만 관객동원 영화 《[[화려한 휴가]]》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고,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쳐 [[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SBS]]로 돌아와 드라마 《[[49일]]》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후 드라마 《[[마의 (드라마)|마의]]》에서 주인공인 강지녕 역을 맡아 조승우와 호흡을 맞추었다. [[2013년]]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선 차갑고 냉철한 재벌가 상속녀를 맡아 호소력 있는 감정연기로 최서윤 역을 완벽 구현하며 열연을 펼쳐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 10대스타상을 수상하며 많은 호평을 받았다.
- 이정훈(배우)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김포시|김포]]
호(號)는 표산(杓山), 산남(山南)이며 신장은 183cm이고 체중은 73kg이며 [[경기도]] [[김포시|김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1981년]]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 드라마|드라마]]에서 특채 [[배우|연기자]] 첫 [[데뷔]]하였고 이듬해 [[1982년]] [[연극배우]] 데뷔하였으며 1년 후 [[1983년]]에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17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다.
- 이카르부스 . . . . 2회 일치
이후 유고슬라비아 공군에 의해 군용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제문]]에 군용기 공장을 세우고 본사도 거기로 옮긴다던가, 군대와의 계약으로 항공기 엔진을 세운다던가 하며 성장한다. 이 와중에 스포츠 협회를 만들고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보트 제조 회사도 되어보기도 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되며 정부에 의해 가압류 당한다. 이와 함께 코노비치 형제를 비롯한 경영진도 "나치 독일에 대한 경제적 협조" 혐의로 몰수형을 받게된다. 이 와중에도 이카루스는 [[이카루스 아에로 2B]]의 설계를 끝내지만 결국 국가에 의해 완전히 몰수, 1948년 공기업이 된다. 공기업이 된 이카루스는 폭격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214|이카루스 214]]나 단발전투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S-49|이카루스 S-49]], 유고슬라비아 최초의 제트기인 [[https://en.wikipedia.org/wiki/Ikarus_451|이카루스 451M]] 등을 설계한다. 이카루스 451의 개량형인 이카루스 W-451MM은 1957년 세계 최고 속도를 달성하기도 했다.
- 이하영(강사) . . . . 2회 일치
가끔 강의 이벤트나 수강생 정모[* 2013년 1월에 했던 ebsi 탐방 정모 이후에는 개인사정으로 하지 않는다.] 상품으로 스마일[* 스무살 마음껏 날아오르기 위해 1년만 꾹 참자의 약자]마크와 본인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달력, 파일 등을 주기도 한다.
수강생 정모의 경우 2013년 [[수능 끝난 고3]] 대상으로 한번 한 적이 있다. 이 정모 참가자 중 몇몇 학생들의 인터뷰를 찍어 2014 수능특강에 영상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출산+육아 등 개인적 문제로 하시지 않는 듯.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2회 일치
* 리오네스 왕국의 민가. 아버지가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고 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법한 아침풍경. 부지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겨우 아침잠을 쫓으며 세수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칠칠맞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다고 디스하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 아들은 바로 성기사 하우저. 평민출신 답게 서민적인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우저는 출근하기 전에 앞으로 수도 복구 때문에 늦게 올 거라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런거보다 왕궁에서 사자가 와서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고 전한 일을 말한다. 하우저는 "마신족 놈들 때문에 나라가 반붕괴했는데 그런거라니"하고 반발하는데 아버지는 하우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출근이나 하라고 내보낸다.
* 반은 멜리오다스가 풀어지는 듯싶자 "그렇지. 단장은 언제나 그 멍청한 얼굴인데 괜히 걱정했다"고 드립을 치다 얻어맞고 벽에 처박힌다. 반이 피떡이 되자 에스카노르는 갑자기 자작시를 읊기 시작한다. 멜리오다스를 "긍지 높은 분노"라 칭하는 그 시는 어떤 저주가 걸리더라도 각자의 마음을 침범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에스카노르는 주제넘게 단장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건 아니라면서도 같이 저주에 걸린 입장에서 그 괴로움만은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 그런데 멜리오다스는 그 시에 "8점"을 붙이는데 몇 번 만점인지는 언급을 피한다. 게다가 시를 읊고 나서 주절주절 설명을 하고 있다고 까기도 하는데, 에스카노르는 "아름다운 장미란 나에겐 멀린씨고 단장에겐 엘리자베스"라고 쓸데없는 설명을 더 덧붙인다.
- 일곱개의 대죄/210화 . . . . 2회 일치
* 스티그마의 병력은 방금 전까지 흘러넘치던 분노의 마력이 사라진 것을 감지한다. 막연히 사대천사나 요정왕, 혹은 거인왕이 십계를 쓰러뜨렸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특별히 경계태세를 취하지 않는다. 이걸로 한 발 더 성전의 승리에 가까워졌으며 수많은 마신이 죽었을 거라는데 기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상을 아는 [[게라이드]]는 어두은 얼굴이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불편한 얼굴로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로키시니아]], 그 몸을 가진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에게 경호를 부탁받았던 [[로우(일곱 개의 대죄|로우]]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혹시 인간인 자신이 호위라 불안한 거냐고 묻는다. 게라이드는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며 당치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우는 그녀의 오빠가 요정왕 그로키시니아지 않느냐며 자신을 의식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빠로서 그로키시니아는 어떤 인물이냐고 묻기도 한다. 게라이드가 다정하고 자기가 곤란해하면 언제든 달려와준다고 말하자 로우는 아주 흐뭇하게 웃는다. 그런데 게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점을 느끼는데.
- 일곱개의 대죄/229화 . . . . 2회 일치
* 대신 엘레인은 엘리자베스에게 화제를 돌렸다. 깨어난 여신족의 강대한 마력. 엘레인은 그 힘에 놀라며 엘리자베스가 진짜 여신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엘리자베스는 과연 "어느 엘리자베스"인 거냐고 묻는다. 무수한 윤회, 수 없이 많았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이라고 대답한다. 즉 자신은 여신족의 엘리자베스이며 리오네스 왕가의 공주 엘리자베스 리오네스이기도 한 것이라 말한다. 치료를 마친 그녀는 지금 멜리오다스는 어디에 있냐고 그의 행방을 묻는다.
메라스큐라는 그 다음으로 십계에 대항하는 "건방진" 존재인 일곱 개의 대죄 일행, 그리고 자신이 임시적인 생명을 부여한 엘레인까지 일일히 거명했다. [[호크(일곱 개의 대죄)|호크]]는 은근히 자기도 불러주길 기대했지만 안중에 있지도 않았다.
- 임은정(법조인) . . . . 2회 일치
2016년 6월 27일에는 최근 자살한 후배 검사가 "부장검사 폭언에 힘들어했다"고 밝힌 검사 부친의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이 당한 폭언 사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검사와 스폰서, 그런 식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간부를 만나고는 성매매 피의자로 보여 결재를 못받겠으니 부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스폰서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저를 '부장에게 꼬리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하고 다녀 제가 10여년 전에 맘고생을 많이 했다"고. 그러면서 검사적격기간을 단축하는 검찰청법개정안에 대해 인사부터 좀 제대로 하고 적격심사를 강화하는게 순서일 거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 장발 (화가) . . . . 2회 일치
'''장발'''(張勃, Thomas Chang, [[1901년]] [[4월 3일]] ~ [[2001년]] [[4월 8일]])은 [[대한민국]]의 [[미술가]]이며 [[서양화|서양화가]] 겸 [[외교관]]이다. 본관은 [[인동 장씨|인동]]이며, 초명(初名)은 '''장지완'''(張志完), [[호 (이름)|호]](號)는 우석(雨石), 우당(宇堂), 누수(樓樹)이다. 정치가 [[장면]]의 친동생이며, 대학 교수 [[장진 (1927년)|장진]], 가톨릭 주교 [[장익 (1933년)|장익]]의 숙부이다. [[한성부]] 출생이며 [[인천광역시|경기도 인천]]에서 성장하였다.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 (1961년)|김민수]]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ref>{{뉴스 인용|출판사=오마이뉴스|날짜=2005-04-07|확인날짜=2008-03-05|제목=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저자=조호진|url=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7516}}</ref>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ref>{{뉴스 인용| url =| 제목 =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저자 =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날짜 = 2001년 3월 3일| 출판사 = 오마이뉴스}}</ref>
- 장성집 . . . . 2회 일치
|기도 =
그는 30세에 [[천주교]]의 [[교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성육신]]과 [[동정 (성 문화)|동정]] [[탄생]]의 교리를 믿지 못하였다. 그는 [[하느님]]이 스스로 겸손하게 [[인간]] [[사랑]]을 위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의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그는 천주교의 교리 공부를 단념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에게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설득하였다. 장성집은 과거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기도]]와 [[묵상]] 그리고 [[성경]] 읽기에 빠져 살았다.
- 장수영 (방송인) . . . . 2회 일치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br/>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1994년]] [[문화방송|MBC 문화방송]] 공채 [[기상 캐스터|기상캐스터]] 입사하였고 [[1996년]] 음악평론가 겸 영화평론가 [[이무영 (영화 감독)|이무영]](훗날에는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로 더 큰 활약)과 결혼하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으며 이후 [[1998년]]에 MBC 문화방송 기상 캐스터 직위를 퇴사하였고 이듬해 [[1999년]] [[수필|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 장수원 . . . . 2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
[[장수원]]은 [[경기도|경기]] [[부천시|부천]]에서 출생하였으며를 진학하였으나 연예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자퇴, 검정고시를 치뤘다. 이후 [[경희대학교]]에 진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연예인이 꿈이었던 [[장수원]]은 우연히 [[젝스키스]]의 멤버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오디션을 보러왔다가, 소속사 사장과 멤버 모집 당시 멤버를 같이 고르던 [[강성훈]]에게 특별히 할 줄 아는것이 없다는 솔직한 대답과 깔끔한 외모가 소속사와 멤버 [[강성훈]]의 마음에 들어 혼자 발탁되었다고 한다.
- 장진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장진'''(張鎭, [[1971년]] [[2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 제작자이다. 영화배우 [[정재영]]과 절친한 사이이며, 정재영이 죽으면 자기도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남다른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 장호 (1920년) . . . . 2회 일치
출감한 뒤 [[경기도]] [[과천시]]에서 [[안영기 (1929년)|안영기]]를 위시한 다른 장기수들과 헌책방을 함께 운영하면서 생활하였다.<ref>{{저널 인용
}}</ref> 사진작가 [[신동필]]이 송환 직전 비전향 장기수들의 모습을 작품화하였을 때 모델이 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 저변교 . . . . 2회 일치
주로 고등학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가 있기 때문에 그 특성상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정한 수의 입시 낙오자가 나타나게 된다. 때때로 재수를 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를 재수하기에는 주변과의 연령차상 다소 곤란하기도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저변교를 가는 경우도 있다.
- 전쟁 . . . . 2회 일치
[[싸움]]과 기본적인 개념은 같으나, 대개 그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의 다수 대 다수로 붙을 경우에 쓰이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을 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일어난 일들이기도 하다.
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지금도 위기 상황이나 가급적이면 벌어져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 전형필 . . . . 2회 일치
[[1934년]]에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매입하여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했으며,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웠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하였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인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당시 천원이면 좋은 기와집 한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학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었던 [[한글 창제]] 원리가 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의해 밝혀졌다. 후에 이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1997년]] 10월에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기도 하였다. 거간 노릇은 한 김태준과 이용준은 사회주의자로, 판매한 돈을 사회주의 운동에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광복 후 김태준은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이용준은 월북하였다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71화 . . . . 2회 일치
* 일행은 뒤늦게 형무소 내에 ECM이 작동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등 수상한 점을 눈치채나 탈출하기도 전에 정신오염된 [[우메가에 나오미 ]]가 습격한다.
미오는 그럼 어떻게 하냐고 버럭하는데, 카즈라가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하는 거다"라고 맞버럭질을 지르자 겨우 상황을 이해한다. 하지만 카즈라 일행이 그저 미오를 말리려고 온 것만은 아니었다. 카즈라 일행은 판도라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탈옥 장비를 몰래 빼돌려서 가져왔다. 판도라는 일단 범죄조직이니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도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뻔히 함정일게 분명해서 장비를 과신하기도 힘들다. 이번은 여왕 [[아카시 카오루]]를 위해 정찰만 하기로 하고 그것도 낌새가 나쁘면 바로 철수하기로 하고 형무소 진입을 시도한다.
- 정광용 . . . . 2회 일치
상사맨과 CF 감독으로 일했고, 한때 키스콤이라는 광고제작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30일부터 정치인 [[박근혜]]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박사모]]를 개설해 운영해왔다.
2017년 4월 10일 정광용은 40억원대 기부금법 위반 및 사기‧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후 친박 단체간 내홍은 더욱 격화되어 5월 13일 대선이 끝난 직후 벌어진 첫 주말집회에선 정광용 찬성파vs반대파 인원들간에 험한 욕설과 몸싸움이 빚어지는 꼴사나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991276|#]]
- 정광조 (1883년) . . . . 2회 일치
천도교 신파가 대세론이라는 타협적인 노선을 내세워 설립한 [[시중회]]에 가입하면서 [[태평양 전쟁]] 시기까지 일제에 적극 협조한 행적이 있다. [[1939년]]에는 [[이용구]]의 장남 [[이석규]]가 '일한합병 공로자 감사 위령제'라는 행사를 열었을 때 참석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
정광조는 [[1942년]]에 천도교 교령으로 뽑히는 등 교단 원로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시체제 하에서 천도교를 대표해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했다. [[1941년]] 발족한 [[조선임전보국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 국민총력천도교연맹 등 어용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태평양 전쟁 전몰 장병을 위한 위령제를 개최하기도 했고, [[1943년]]에는 [[이종린 (1883년)|이종린]]과 함께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에 천도교 대표로 참가해 학병제를 선전하는 강연회를 열었다.
- 정몽원 . . . . 2회 일치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했던 조선사업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그룹 회장 취임 1년 만에 '그룹 해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계열사인 한라건설 회장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만도를 매각한 뒤 8년 만에 되찾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주식배당을 두고 정몽국 전 한라건설 부회장과 법정다툼을 벌인 바 있으며, 한라중공업 불법지원과 관련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 정욱(1973) . . . . 2회 일치
|| '''출생''' ||[[1973년]] [[8월 7일]] [[경기도]] [[가평군]]||
동명의 [[정욱(1938)|범죄자]]와 혼동되는걸 피하기 위해 한 때 정의창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 정운용 . . . . 2회 일치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상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영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식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상공은행을 운영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50653</ref><ref>놀라운 사실은 [[정재학]] [[대구은행]]장이 자신을 협박대상으로 꼽았던 친척 [[정운일]]에 대해 각별히 배려해줬다는 점이다. 정재학 행장은 정운일의 아들인 [[정인택]]( 1911~ 1973 )이 감옥에 있는 부친 때문에 상급학교진학이 어려웠던 사정을 알고 보증인 역할을 해줬다. 정인택은 정 행장의 보증 덕에 대구고보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정인택 역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도 잡고 부산소년원장을 지냈다. 소년원장을 그만둔 뒤 가난한 이웃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맡으면서 유아에서 노인까지 갈 곳 없는 이들을 보살폈다. 원장 관사마저 병실로 개조한 뒤 원내 마당에 조그만 흙벽돌집을 세워 거처로 삼았다.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는 [[1966년]] 경향신문이 제정한 제1회 '국민의 주는 희망의 상' 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내무부장관 국회사무총장 등 각계에서 격려 축전을 보냈다. 정인택은 경향신문에 연재한 당선소감에 자신이 정재학의 증손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정재학이 1858년 출생인 점에 비춰볼 때 1911년생인 정인택이 증손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정재학의 맏손자인 정운용 1대 조흥은행장이 태어난 해가 1904년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렬 등에 비춰볼 때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먼 친척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인택의 부친인 독립투사인 [[정운일]] (1884~1956)은 [[정재학]] [[대구은행]]장(1856~1940) 의 손자인 정운용 제2대 조흥은행장 (1904~ 1963 )과 같은 항렬이다.</ref>
- 정재호 (1964년) . . . . 2회 일치
|거주지 =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 20대 |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 | [[고양시 덕양구의 국회의원|경기 고양시 을]] | 더불어민주당 | 40,393 표 | 42.25 | 1위 | 당선 |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고양시 을|초선]] }}
- 정종원 . . . . 2회 일치
정종원은 잠시 부친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관직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1922년부터 1941년까지 19년간 경상도 일대와 평안남도에서 경찰 요직을 거쳤다. 이어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평안남도에서 성천군수, 순천군수를 역임하고 해방을 맞이했다.
이병철은 정재학의 3남이자 조흥은행장인 정종원과 다각도로 교류하고 있었고 언론을 통해 정씨 가문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ref>동아일보 1957년 6월20일 1면 이병철씨 조은주 양도 거부</ref><ref>동아일보 1957년 7월21일 3면 은행주 불하 경위와 금후 문제점</ref> 이병철은 1956~1957년 진행된 은행 [[귀속주]] 불하과정에서 민 씨가문과 정씨가문 간 지분경쟁에서 정씨측에 힘을 실어줬다.
- 정주관백 . . . . 2회 일치
관백(간파쿠)은 일본 헤이안 시대에서 부터 덴노를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한 지위이다. [[후지와라 섭관가]]에서 대대로 이어받았으며 덴노가 어릴 때는 섭정(摂政)이 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관백(関白)이 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이를 섭관정치(摂関政治)라 부른다. 헤이안 시대 이후로 권력이 쇠퇴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오툐미 가문이 일시적으로 관백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에도 시대의 섭관 가문은 쇼군이 된 도쿠가와 가문의 후원으로 상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 혼인을 맺기도 했다.
- 주먹 . . . . 2회 일치
주먹을 쥘 때는 주로 뭔가를 때릴 때이다. 그래서 주먹이라는 말은 [[폭력]]을 비유하기도 하며, '주먹'이란 말은 [[폭력배]]를 뜻하기도 한다. '주먹은 법보다 가깝다'는 말처럼 [[법]]보다 가까운 존재(…).
- 지박령 . . . . 2회 일치
* 갑작스럽게 죽어버려서, 자신이 죽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장소에 묶여버린 영혼. 괴담에서는 자신이 죽을 때의 상황을 반복하기도 한다. 자박령(自縛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지증왕 . . . . 2회 일치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던 [[순장]] 풍습을 최초로 폐지한 군주이기도 하다. 시호는 지증인데, 신라 최초의 [[시호]]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智度路)이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智證麻立干立 姓金氏 諱智大路 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ref> 그는 6촌 형제간인 [[소지 마립간]]과 사돈이었고 즉위 전 [[갈문왕]]에 봉해진 것이 [[영일냉수리신라비]]를 통해 확인되었다.
- 진격의 거인/92화 . . . . 2회 일치
* 갑옷의 거인이 낙하. 가비는 그것을 보고 "라이너, 조심해"라고 작게 속삭인다. 옆에 있던 파르코가 그걸 의식한다. 거기까지 들리진 않았겠지만 라이너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다. 그는 낙하와 동시에 요새 벽 위의 야전포를 차례 차례 쓸어버린다. 문자 그대로 벽 위의 먼지를 쓸어내는 것처럼. 적들은 대거인전용 철갑탄으로 응수한다. 이 철갑탄은 라이너의 갑옷을 꿇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라이너는 첫 응사를 막아내지만 오래 노출돼봐야 좋을게 없다. 다음 탄을 장전하는 사이 라이너가 철갑탄을 쏜 쪽으로 우선 달려든다. 하지만 충분히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사격 준비가 끝난다.
* 지크는 마지막 쐐기를 박는 역이다. 요새 뒤의 항구. 거기에 정박한 연합함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크는 부서진 창고 밑의 포탄 무더기를 움켜쥔다. 그리고 항구의 함대를 향해 힘차게 투척한다. 산탄처럼 날아가는 포탄들. 참호의 후보생들은 이걸로 전쟁이 끝났다고 안도한다. 가비는 마치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은다.
- 진도희(1971) . . . . 2회 일치
* 1989년 엄마의 기도 나의 기도
- 진학교 . . . . 2회 일치
진학교(進学校,しんがっこう)란, 대학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많고, 학교 측에서는 그에 대한 준비가 갖추어진 학교, 대학입시 분야에서 실적이 좋은 학교(명문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는 것)를 뜻한다. 고등학교 입시가 있으므로 중학교에 대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속어이므로 정의가 엄격한 말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는 실적을 근거로 만든 랭킹 사이트 같은 것이 운영되기도 했다.
- 차희식 . . . . 2회 일치
|사망지 =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석포리
차희식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에서 성장하였다. [[장안면 (화성시)|장안면]]은 동리마다 서당이 있어 책 읽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교육과 문화의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또한 일찍이 [[동학]]과 [[기독교]]가 전파되어 민족독립의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을 함양하며 성장한 선생은 어릴 적부터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술이 좋고 힘이 장사여서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자질이 뛰어났고, 3·1운동 당시에는 장년층으로서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통솔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 착각남 . . . . 2회 일치
‘착각’을 뜻하는 칸치가이(勘違い)와 과거에 남성명으로 자주 쓰던 ~스케(助)를 합쳐서 ‘착각하는 남자’라는 뜻을 나타낸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1501년-1561년) 등 실제로 과거에 쓰이던 인명이기도 하다.
평범한 경우라면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고 깨닫게 되면 행동을 멈추지만, 지적을 받아도 망상을 멈추지 않게 되는 사례도 존재하며 이미 정신병 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토커로 악화되기도 한다.
- 착취용 애완용 아이 . . . . 2회 일치
기본적으로는 자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예라고 생각하며, 대우는 극히 나빠서 매도, 방치, 학대 등을 당하게 된다. '용도'에 어긋나거나 단순히 돈이 아깝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개 부모가 교유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한 탓으로 친구 한 명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 버릇과 부모의 과도한 컨트롤의 영향 , 타인을 얕잡아 보고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가지게 된 탓에 사회에 부적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니트가 되기도 하며, 최악의 경우 히키코모리.
- 창작:Project NA . . . . 2회 일치
> * Project NA는 가칭으로 NTX Antique의 약자이기도 하지만 N/A를 의도한 중의적 표현입니다.
일명 '함장'이라고 불린다. 혹자는 수많은 해전을 거쳐온 영웅이자 수많은 탐험가들을 지원한 '바다의 전설' 따위로 부르기도 하지만, 매번 이런 영혼없는 찬양을 듣는 것이 지겨운 것인지 다 옛 일이라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를 보인다.
- 창작:좀비도시 . . . . 2회 일치
* 생존자 보호를 위한 인간방패 운동 본부 : 폭격 계획이 준비되었을 때, 생존자들을 위한 인간방패를 자청하며 방벽 안으로 들어가서 인간띠를 만드는걸 시도했으며 이를 인터넷으로 중계하였다. 몇몇이 좀비에게 습격당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폭격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시위를 벌이며 폭격 저지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 [[연쇄살인|연쇄살인범]] : 이들은 살인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몇몇은 좀비를 대상으로 풀어내며, 생존자를 목표로 노리기도 한다. 이 도시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목표물을 찾기에 적절한 곳이다.
- 창작:좀비탈출/5-1-1-1-1 . . . . 2회 일치
현관문 틈으로 발등을 밀어넣으면서 수만 번도 넘게 최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가 구체적인 영상이 되기도 전에 사라진다. 그만큼 너무나 유혹적인 이름이다.
그리고 토트넘이, 그때는 아직 쌩쌩한 옆집 아저씨인 그가 열심히 약국을 드나들면서 '''약을 지어다 먹인다'''는 얘기도 함께였다.
- 창작:좀비탈출/5-1-2 . . . . 2회 일치
날이 저물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담장 너머로 녀석들이 돌아다니는 기척이 들려온다. 나는 커튼을 젖히고 쇼파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녀석들이 그르렁거리는 소리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소리가 담장 안에서 들리는 경우는 없었다. 이윽고 본래 우리집 마당을 이용하던 손님들이 하나둘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담장을 넘거나 대문을 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들은 대문 근처를 배회하거나 잠깐 동안 문을 두드리다 말았다.
좋아,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시간은 썩어나게 많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잡지를 치웠다. 이 잡지는 안방에서 찾았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말을 말자. 인터넷도 전기도 끊긴 지금은 이게 유일한 반찬거리다.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적어도 정신적 위안은 찾을 수 있다. 구식이라 고맙습니다 아버지.
- 창작:좀비탈출/요새편 . . . . 2회 일치
'''마션'''에서 와트니는 화성에 감자밭을 만들었다. 그가 특히 감자를 사랑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밖에도 그는 화성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베이스 캠프를 개조하기도 하면서 지냈는데 그 또한 그가 조경이나 쉐어하우스에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화성을 탈출하기 위해 화성의 거주지를 손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2-1 . . . . 2회 일치
녀석이 깨어났다. 처음 보는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부 잘하게 생긴 안경잽이였다. 정오의 햇볕을 너무 믿은 게 잘못이었다. 아마 정오의 녀석들은 마비된다기 보다는 잠에 빠진 상태에 가까울 것이다. 꿀맛같은 시에스타겠군! 당연히 이정도 거리에서 시끄럽게 굴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햇볕이 싫기도 하겠지만 눈 앞의 먹이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던 거야.
나는 비명을 지를 기회도 없었다. 이 허접해 보이는 녀석이 무는 힘 만큼은 확실했다. 기도가 뻥 뚫리면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의식이…… 멀어진다…….
- 채상병 . . . . 2회 일치
[[199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인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한화에서는 [[심광호]] 등의 경쟁에서 밀려 몇 경기만 출전했다. 입단 후 1년 뒤인 [[2003년]]에 투수 [[문동환 (야구인)|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였다. 이때 [[문동환 (야구인)|문동환]]은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는데,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왔다가, 불과 3시간 후에 채상병과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되었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4734&cp=nv 채상병, 두산 40승 숨은 주역… 주전 홍성흔 부상 공백 완벽히 메꿔] - 쿠키뉴스</ref> 그러나 [[두산 베어스]]에서 채 자리잡기도 전에 [[2004년]]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5714 난처한 채상병, 그러나 놓칠 수 없는 기회] - 데일리안</ref> [[2007년]] 주전 포수였던 [[홍성흔]]이 허벅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홍성흔]]이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등 잡음<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271719545&code=980101 두산 홍성흔“작년 부진 잊지 말고 나만의 스윙을 하자”] - 경향신문</ref> 이 일자, [[홍성흔]]을 밀어내고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하였다.
국군의 계급이 상병이 있는데 그것을 본떠 삼성 선수단들은 채상병을 상병님이라고 부른다. 또한 삼성 팬들의 경우 중의적 표현으로 상병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는 잘할때는 神의 의미로, 못할때는 욕설로 쓰이기도 한다. 또 그의 응원가는 '멋있는 사나이'라는 음원으로 '멋있는 채상병'라는 응원가를 보유했었다.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2회 일치
그 능력외에도 어떤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하며 누구와도 모나지 않게 친하게 지내는 것을 선보이기도 한다. 주 포지션은 저격수이지만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붙임성으로 잡입 임무에 투입되기도한다. 이 특유의 붙임성이 아이스 레인저 특유의 '같은 부대원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사상과 시너지를 일으켜 발할라 내의 모든 인물을 친구 혹은 잠정적인 친구로 여기는듯하지만 몇몇 인물들은 역시 껄끄러운듯 하다.
- 최고은 (영화감독) . . . . 2회 일치
| 사망지 = [[경기도]] [[안양시]]
| 거주지 = 경기도 안양시
- 최동 . . . . 2회 일치
귀국 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21년]]에 졸업했다. 모교의 [[해부학]]교실 조교로 일하다가 [[중국]] [[북경협화의과 대학]]과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1929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931년]]부터 3년 동안은 학교 재단이사를 겸직하기도 했다. 강의 과목은 [[기생충학]]과 [[병리학]]이었으며, 다시 일본 [[도호쿠 제국대학]] [[법의학]]교실에서 [[1936년]]에 [[법의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황인종]]의 우수성을 논하고 [[한민족]]의 시원을 먼 곳에서 찾는 최동의 논리는 《[[조선]]문제를 통하여 본 만몽(滿蒙) 문제》(1932)에서와 같이 일제의 [[만주]] 침략이나 [[대동아공영권]]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오랜 집필 작업 끝에 은퇴 후인 [[1966년]]에 《[[조선상고민족사]]》를 탈고했고, 이 업적으로 [[1968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 최석민 . . . . 2회 일치
[[1906년]] 내부협판(內部協辦) 및 지방세조사위원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왕가의 국유 재산을 조사하는 일을 맡았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포상금 형식의 [[은사공채]](恩賜公債) 2만 5천원을 받았다. 조선귀족 중 남작 작위는 본래 전직 관료에게 주어졌으나, 그는 칙임관 1등 이상의 현직에 재직 중인 것을 기준으로 이 작위를 수작했다. 최석민의 작위는 양자 [[최정원 (조선귀족)|최정원]]이 습작했다. [[1911년]] [[8월 29일]]에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매일신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 최승자 . . . . 2회 일치
가족이 없었고, 서울의 세 평짜리 고시원에서,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 직전의 단계까지 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 다시 시를 발표했다.
날아가는 새들의 폐벽에 가득 찬 공기도 보였어
- 최재성(배우) . . . . 2회 일치
흔히 [[최민수]]가 터프가이 컨셉 [[허세]]라고 욕먹지만, 당시에 허세가 아닌 진짜 독보적인 연예계 터프가이는 최재성이었다. 실제 연기자로서의 경력 이외에도 어릴때부터 [[복싱]]을 했고 아마추어 복싱 선수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 [[연예인]]들의 무술실력 관련글들에 항상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행이나 폭력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생활]]은 깔끔한 편.
참고로 연예계에서 몇 안되는 전주고등학교 출신 인물이다. 다녔던 강남사회복지대(현 [[강남대학교]])는 전혀 이름이 없다가 최재성 덕에 유명해져서, 교정에 최재성 동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거 없다]].
- 최재웅 (배우) . . . . 2회 일치
|경기도문화의 전당 대극장, 수원
|경기도문화의 전당 대극장, 수원
- 최정원(남자배우) . . . . 2회 일치
|| '''종교''' ||[[개신교]][*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8회에서 [[김정훈(UN)|김정훈]]이 [[UN(가수)|UN]] 활동당시 자신은 노는 걸 좋아했는데 정원이는 기독교 신자라 매일 기도하고 교회에 가곤 했다고 밝혔다.] ||
2003년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통해 '진지청년', '진지교수' 등이라는 [[별명]]들을 얻으며 [[인기]]를 많이 얻기 시작한다. [[MBC 라디오]] "최정원의 감성시대"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
- 최태영 . . . . 2회 일치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메이지 대학교|메이지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법학부에서 수학하여 법철학 및 상법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수 및 강사로 일하면서 경신학교의 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학술활동에도 열의를 보여 [[1954년]]부터는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57년]]부터 [[1972년]]까지는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술로 국내 최초로 상법과 관련된 《현행 어음·수표법》을 집필하였고,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1977년]]에 출간한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은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츠츠모타세 . . . . 2회 일치
데이트 사이트와 츠츠모타세가 결합하기도 하는데, 데이트 사이트에서 젊은 여성이 제안을 해오고 그걸 받아들이면, 웹사이트 운영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전화를 하여 그 사람은 18세 미만이었다고 연락하고, 경찰서에서 [[IP]]와 로그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당신이 체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협박을 가한다. 그리고 비용을 부담해주면 IP와 로그를 [[위조]]해서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하여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피임]]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지고, [[임신]]이나 [[낙태]]를 명분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 카네다 쇼타로 . . . . 2회 일치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재세편]]에 등장해선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쇼타콘의 어원답게 연상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애쉬포드 학원 이벤트에서 여고생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악 거린다던가(...).] 나이 대가 비슷한 [[무적로보 트라이더 G7]]의 [[타케오 왓타]]와 [[무적초인 점보트3]]의 [[진 캇페이]]와 친구. 갓마즈의 [[묘진 타케루]]하고도 서로 믿고 지내는 형동생 사이로 나온다. 참고로 왓타 또한 쇼타로처럼 원작에서 악당을 자비심 없이 끔살시켰던 초딩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리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솔레스탈 빙]]이나 [[흑의 기사단]] 같은 전직 테러리스트와 동료로서 같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나중엔 그냥 받아들이지만.
쇼타콘이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 카라스노 고교 . . . . 2회 일치
烏野 高校 ~~토리노 고교~~[* 카라스(烏)를 토리(鳥)로 헷갈리는 경우도 있어 타교생들은 '토리노 고교'라고 잘못 읽기도 한다]
[[미야기]] 현에 있는 현립 고교이다. 작중 시점에서 4년 전, 봄대회에서 미야기현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장했다. 전국에 나가서도 3회전까지 올라갔으니 선전한 셈. 이 때가 카라스노 고교의 [[리즈시절]]로, '작은 거인'이 활동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다. 카라스노 고교가 가장 강했던 시절이며, 그야말로 미야기 현내 최고 강호교'''였'''다.
- 카라아게 . . . . 2회 일치
[[일본]]의 [[튀김]]요리. 일본에서는 여러 음식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편의점]]에서 팔기도 한다.
닭고기가 가장 흔하며, 보통 카라아게라고 하면 닭고기 카라아게(とりの唐揚からあげ)다. 닭고기 이 외에도 채소, 해산물(물고기, 새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취향에 따라 레몬즙을 뿌려먹기도 한다.
- 캡틴 아메리카 . . . . 2회 일치
어벤저스의 리더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이기도 하며 영화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도 주요 캐릭터가 되었다.
캡틴 아메리카의 주요 요소. 그의 주무기이며 단순히 [[방패]]만이 아니라 [[부메랑]]처럼 던지는 투척 무기이기도 하다. 이는 게임에서도 구현되었다.
- 캡틴 아톰 . . . . 2회 일치
참고로 열기나 냉기를 느끼지 못하고 먹거나 잠을 안 잔다고 한다. 확실한 지 확인되지 않았고 비관적인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죽지도 않을 것 같다고 본인이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파워걸]]과의 전투에서 [[부스터 골드]]의 말에 의하면 그가 높은 수준의 힘을 쓰면 [[방사능]]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대접은 이렇지만 [[wiki:"먼치킨(양판소)" 먼치킨]] 반열에 들어간다.
[[저스티스 리그]]에 가입한 초반부에 임무 때문에 블루 비틀 II에게 초대 블루 비틀과 친했다고 했다가 거짓말인 것이 들통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보면 거짓말이 아닌 것이 사교관계가 어쨌든 두 캐릭터는 찰턴 코믹스에 있다가 DC 코믹스에 흡수되었다.
- 케모 . . . . 2회 일치
소아이어티에 소속되어 있으나 이전에는 [[렉스 루터]]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소속되기도 했다. 이때 [[둠스데이(DC 코믹스)|둠스데이]]를 탈출시키는 임무를 위해 슈퍼맨과 싸우기도 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 . . . . 2회 일치
실존 인물. 제임스 형제와 함께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도 여왕"이라고 불렸던 벨 스타의 첫 남편이기도 했다.
다루기 쉽고 숨기기도 쉽도록 총열을 자른 소총. 이 때문에 사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졌다. 버려버려.
- 콩조림 . . . . 2회 일치
주로 영국식 요리, 특히 영국식 아침 식사(Full English breakfast)에 많이 곁들여지는 것으로 알려진 붉은색 소스에 졸여진 콩조림이 바로 베이크드 빈즈다. 설탕이나 시럽이 첨가된 토마토 소스에 콩을 넣고 졸이면 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준비하는데 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탓에 주로 통조림에 든 베이크드 빈즈를 사용하기도 한다.
모든 요리가 그렇지만, 베이크드 빈즈 같은 소박한 요리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고급스럽게 바뀌기도 한다.
- 키드르 . . . . 2회 일치
현대의 가설로는 [[우가라트 신화]]의 신 Kothar-WA-Khasis에 기원을 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혹은 길가메시 신화의 우트나피티쉼(Utnapishtim)에 기원을 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슬람 신화에서는 이스칸다르(알렉산더 대왕)과 연관지어지기도 한다. 키드르는 이스칸다르와 함께 어둠의 땅으로 생명의 물을 찾는 모험을 떠나며, 이 이야기에서 이스칸다르는 찾지 못하고 실패하지만 키드르는 생명의 물을 얻어 불로불사를 얻게 된다.
- 킹덤/522화 . . . . 2회 일치
* 마광은 본래 몽념을 가문의 위광을 빌린 애송이로 여겼으나, 몽념은 왕전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파악하고 있었다.
* 조군의 우익을 맡고 있는 기수군. 치고 빠지길 반복하며 외곽을 괴롭히던 [[몽념(킹덤)|몽념]]에 정신이 팔린 사이 마광의 5천 병력이 좌측을 깊게 찔렀다. 그 공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그 뒤에 다시 5천 병력. 적은 1군을 굳이 두 부대로 나누어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고 있다. 파상공세. 마치 적이 끝없이 몰려오는 듯하다.
- 킹덤/525화 . . . . 2회 일치
후위에 있는 병사들은 마남자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왕분이 펼치는 창술 앞에 부질없이 목숨을 잃었다. 옥봉대의 공격이 쐐기처럼 박히고 상황이 난전으로 전환됐다. 왕분은 현장을 [[관상]]에게 맡겼다. 이대로 적의 후위가 올라오는걸 막고 적장의 고립 상태를 유지한다. 그동안 자신은 직접 적장의 목을 취할 것이다. 관상은 이 같은 지시에 별 반대 없이 무운을 빌었다. 그리고 [[영강]]에게 부탁에 왕분의 호위를 맡겼다. 늘 한 마디씩 토를 달던 관상이었다. 아무 반대도 없어 미심쩍기도 했으나 왕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 [[반양]]과 함께 출발했다.
주나라의 천하가 펼쳐진지 500여 년. 한때 백에 이르렀던 나라들이 도태와 규합을 거듭해 지금은 고작 일곱이 남았다. "일대국". 분명 대륙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왕이 품은 꿈은 곧 역사가 바라는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조군이 반발했다. 왕분도 그들의 입장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곳은 전장. 그런 말뿐인 대립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타히 . . . . 2회 일치
* 죽는다는 의미가 있다. 죽을 사(死)가 [[단어 필터링]] 되는 환경에서 우회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 죽는다보다 약간 가볍게 위험하다. 죽도록 지쳤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 퇴계 이황 . . . . 2회 일치
40세 이후로는 어렵게 부탁해야 겨우 벼슬에 나가고, 벼슬에 물러나는 것을 자주 하여, 명종실록(13년 8월 5일 년 기사)에 따르면 [[명종]]이 요청이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이황과 사림을 후원하던 고관 이준경 역시 이황이 산금야수(山禽野獸)처럼 툭 치면 고향으로 물러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이황은 재력가이기도 했는데 말년에 360명의 노비, 3000두락이 넘는 방대한 전답(田畓)을 보유했다. 이황의 후손들이 작성한 분재기(分財記)를 통하여 퇴계의 자산 규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 특촬물 . . . . 2회 일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로는 '''특수촬영물'''(特殊撮影物)의 약자. 넓은 의미로는 특수촬영기법이 사용된 모든 영상물을 말하지만,[* 오죽하면 [[닥터후]]나 [[히어로즈]]와 같이 특수효과로 점철된 [[드라마]]들도 특촬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크게 보자면 틀린말도 아니긴 하다)--한 술 더 떠서 [[텔레토비]]도...--][* 대표적으로 몇 년 전 [[루리웹]]의 애니 게시판에서(여기선 특촬물 관련 글도 같이 취급한다) 일부 회원들이 저 두 작품을 두고 '이것도 특촬이다'라며 도배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다가 잠시 동안 특촬 관련 게시글이 금지가 됐었다.] 일반적으로 '특촬물'이라고 하면 전대물, [[괴수]]영화 같은 일부 장르의 영상물에 한정된다. 특수효과를 뜻하는 약어인 SFX(Special Effect)가 영상물 전반의 이름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SF]]와 헷갈리지 말자! [[디워]]의 경우가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여러가지로 까이지만-- SF와 SFX를 구별 못한 대표적 사례로, SF영화라고 홍보했다가 엄청난 빈축을 사기도 했다.
- 티타노 . . . . 2회 일치
모티브는 어떻게 봐도 [[킹콩]]. 그래서 [[데일리 플래닛]] 건물에 올라가기도 한다.
원숭이이지만 [[고릴라]]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 판타스틱 포(1994년 실사영화) . . . . 2회 일치
당시 웬만한 드라마 1회 제작비보다도 적은 예산인 100만 달러에 3주 촬영이란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존의 1분 길이의 짧은 견본이 아닌 장편 영화로 완성시켜냈다. 초저예산 영화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지만 저예산 영화 제작 경험이 풍부한 코먼 사단답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져 오히려 다른 초대예산을 들인 영화들 이상의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극장 개봉은 못했다. 이후 콘스탄틴 필름은 2000년대 실사영화 2편의 제작에 관여하고 독일 내 배급권도 쥐고 있었는데, 2015년 리부트 제작사 명단에서 빠진 걸 보면... 그래도 2015년판의 독일 배급도 콘스탄틴에서 맡았다.
2015년에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가 나오고, 영화 평에 종종 언급되었다. 이러면서 90년대판에 대한 평가가 어긋나기도 하나 어찌되었건 결론은 2015년판은 구리다는 것이다.(...) 확실히 평이 어떻건 판타스틱 포를 원작에 가깝게 그려낸 점은 90년대판이 압도적이라 봐도 좋다.
- 페어리 테일/521화 . . . . 2회 일치
아질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테니 손주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리사나는 자기도 오빠도 상대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거절한다. 아질은 새삼스럽게 둘이 가족이었냐고 놀라며 "전혀 안 닮았다"고 디스한다.
* 한편 제레프는 여전히 페어리 테일 길드에 있다. 주점 의자에 앉아 있던 그는 누군가의 방문을 받고 있는데. 그는 [[제라르 페르난데스]]나 렉서스가 가장 먼저 올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그의 등장을 의외로 여긴다. 그리고 또 "유감"이기도 하다는데.
- 페어리 테일/529화 . . . . 2회 일치
안나는 웬디를 안은 채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리고 아크놀로기아를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 입을 연다. 그녀는 400년 전의 멸룡마도사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다. 나츠, [[가질 레드폭스]], [[스팅 유클리프]], [[로그 체니]] 그리고 웬디가 그녀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으며 [[제레프 드래그닐]]이 알려준 대로 나츠의 머플러를 떠주기도 했다.
안나는 멸룡마도사들을 찾아내는 동안 새로운 성과도 얻었다. 엄청난 발견이었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계획을 일거에 뒤집을 수도 있었다. 안나가 지금까지 표면에 나서지 않은 건 "그것"의 연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떠면 그것은 문의 사고를 유발한 요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게 매우 위험하고 강대한 힘이며, 사실 힘보다는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 페어리 테일/533화 . . . . 2회 일치
* 한 자리에 모인 길드원들은 각기 정보를 공유한다. [[아크놀로기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누군가 블루 페가수스의 크리스티나 호를 쫓아가는 걸 봤다고 말한다. [[에버그린(페어리 테일)|에버그린]]은 그들이 미끼가 되어 준거라 생각한다. [[엘프런 스트라우스]]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길다트는 여기에도 없는 인원에 대해 묻는다. [[나츠 드래그닐]], [[루시 하트필리아]], [[그레이 록버스터]], [[엘자 스칼렛]], [[웬디 마벨]], [[해피(페어리 테일)|해피]]까지 총 6명. 이들의 행방은 찾고 있지만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남은 인원들은 저 여섯 명이 무사히 있기를 기도한다.
- 페이데이 2 . . . . 2회 일치
2013년 발매된 FPS 게임.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의 후속작으로, 강도단 [[페이데이 갱]]의 범죄 행각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스케일이 좀 커져서 범죄 수준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 스팀을 통해 하고있다면 스팀의 페이데이 2 커뮤니티 구독은 꼭 하자. 여러가지 무기도 쓸 수 있게 해준다.
- 페이데이: 더 하이스트/하이스트 . . . . 2회 일치
C4가 폭발해 벽에 구멍을 내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이 카운트다운 내에 탈출 구역까지 가야한다. 구멍으로 들어가 화장실, 사무실을 거쳐 계단으로 내려가자. 노말 난이도부터 사무실에 특수 경찰이 있으니 조심하자. 이후 지하실 통로를 통해 주차장까지 가는데 테이저나 불도저가 양 옆에 있는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후 주차장에 온 쓰레기차에 올라타면 하이스트 성공.
톱이 패닉룸을 떼어낼 때 까지 버틴다. 가끔씩 톱이 걸리기도 하니 2층과 3층을 오가며 걸린 톱을 재배치해야한다.
- 프라이머리 (음악가) . . . . 2회 일치
'''프라이머리'''(Primary, {{본명|최동훈}}, 1983년 1월 31일 ~ )는 [[대한민국]]의 DJ 겸 음악 프로듀서이다. 과거 [[다 크루|Da Crew]]의 레이블 [[가라사대]] 소속이었으며, 이후 [[빅딜 레코드]], 타일뮤직을 거쳐 현재는 [[아메바컬쳐]]의 전속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프라이머리 & 마일드 비츠 (Primary & Mild Beats), [[프라이머리 스쿨]] (Primary Skool), 프라이머리 스코어 (Primary Score) 등 여러 프로젝트 그룹으로도 활동하며 밴드 음악을 베이스로 한 힙합 장르를 기본으로 재즈, R&B 등을 섞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빅딜 레코드]]를 동료 뮤지션들과 설립해 [[데드피]]의 《[[Undisputed LP]]》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힙합씬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을 수상한 [[가리온]]의 《[[무투 (음반)|무투]]》, [[다이나믹 듀오]]의 《[[Band of Dynamic Brothers|죽일 놈]]》, [[슈프림팀]]의 1집 《[[Supremier]]》 등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아메바 컬쳐 소속으로서 《[[Primary And The Messengers LP]]》를 발매해 방송에도 꾸준히 나섰다. 엠블랙 지오와 "I'm Back" 곡작업을 같이 한 것을 인연으로 엠블랙 "Sexy Beat"의 타이틀곡 "Smoky Girl"을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본인에 의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한 곡들 중 가장 녹음횟수가 많았다고 할 만큼 작은 추임새 하나까지도 심혈을 기울인 곡이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30621000878 "천둥 염색 이유…"팬들과 3년 전 약속 지켰다"", 뉴스핌, 2013-6-24]</ref>
- 프릭쇼 . . . . 2회 일치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시장에서 "거인 선수", "뚱보 선수", "난쟁이 선수"처럼 특이한 특성을 갖춘 선수 등이 나오는 흥미 위주의 매치를 프릭쇼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성행했다. 주로 카니발(순회 서커스) 등에서 흥행이 이루어졌다. 프릭쇼에서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장애인들을 있을 수 없는 '괴물'을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이들이 쇼를 하는 것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폭행]], [[학대]] 등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프릭쇼에 출연해서 많은 명성과 돈을 얻은 장애인도 있다.
- 플래시(DC 코믹스) . . . . 2회 일치
스피드를 활용해 물건을 빠르게 투척하거나, 몸을 초진동시켜 공격하기도 한다. 혹은 팔을 고속 회전시켜 회오리 바람을 만들기도 한다.
- 피서영 . . . . 2회 일치
남편인 로먼 재키브(Roman Jackiw)는 또한 매우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다. 양자장론에서 고전적인 대칭성이 양자효과에 의해서 깨진다는 소위 Adler-Bell-Jackiw anomaly를 최초로 발견한 학자이며, 고온에서 대칭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결과를 최초로 계산해 낸 학자이기도 하다.(finite temperature field theory)
피서영은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에서 자주 언급되는 막내 딸로 수필 '서영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수필 '서영이'에는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 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이와 난영이' 등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딸에 관한 글을 남겼다.
- 피수영 . . . . 2회 일치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1년간 [[군의관]]으로 참전하기도 한 피수영은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대한민국의 신생아 치료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수영은 1995년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면서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다고 한다. 피수영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071222083196938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머니투데이》, 2008년 7월 25일</ref>
- 하동부대부인 . . . . 2회 일치
하동부부인이 하동부대부인으로 오인된 것은 [[조선 영조|영조]] 즉위년에 [[조선 영조|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추보를 논의할 때 예조판서 [[이진검]]이 "선조(宣祖) 때에 덕흥군(德興君)을 높여서 ‘대원군(大院君)’이라고 하였고, 군부인(群夫人)을 ‘부대부인(府大夫人)’이라고 하였다."고 잘못 진달하였기 때문인데<ref>《조선왕조실록》영조 1권, 즉위년(1724 갑진 / 청 옹정(雍正) 2년) 9월 21일(신유) 2번째기사</ref>, 사실 이는 [[이진검]]의 잘못이라기보다 [[조선 경종|경종]]2년에 부제학 이명헌이 [[조선 경종|경종]]의 사친인 [[희빈 장씨]]를 추보할 것을 상소하며 "선조조(宣祖朝)에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을 추숭(追崇)하였을 때에 선정신(先正臣) 이황(李滉)의 의논을 인용하여, 빈(嬪)자 위에 특별히 하나의 대(大)자를 더하고, 이어서 본관(本貫)을 취하여 모부대빈(某府大嬪)으로 삼을 것"을 시초로 한다.<ref>《조선왕조실록》경종 9권, 2년(1722 임인 / 청 강희(康熙) 61년) 7월 17일(경자) 1번째기사</ref> 당시 동석했던 [[이진검]]이 이명헌의 말을 잘못 기억하여 영조 즉위년에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예조판서인 [[이진검]]이 사실을 전혀 확인하지 않고 진달하였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조선 경종|경종]]의 각별한 충신이었던 [[이진검]]이 부대빈(府大嬪) 작호의 유지를 위해 고의적으로 잘못 진달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로 인해 이후 정씨의 작위는 다시 본래의 작호인 하동부부인으로 정정되어 불리기도 하다가 하동부대부인·하동부인·대원군부인으로 섞여서 일컬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아들의 지위에 따라 어머니의 작호에 대(大)를 더할 수 있다는 세종14년 때의 법령과 이미 부대부인의 작호를 쓴 여성이 있었던 전례에 의거해 마땅히 부대부인으로 삼았어야 할 정씨를 부부인으로 삼은 것은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탓으로 짐작된다.<ref>《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B%E4%BA%BA&set_id=-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search_result_list.jsp?oflag=0&M=0&query=%E6%B2%B3%E6%9D%B1%E5%BA%9C%E5%A4%A7%E5%A4%AB%E4%BA%BA&set_id=596421&selK=1&selT=1&query_im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B2%B3%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6%9D%B1%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BA%9C%E5%A4%A7%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5%A4%AB%3C%2Fspan%3E%3Cspan+class%3D%22newbatang%22%3E%E4%BA%BA%3C%2Fspan%3E 하동부대부인], [http://sjw.history.go.kr/inspection/insp_result_s.jsp?M=0&oflag=0&set_id=596427&selK=1&selT=1&query=%E5%A4%A7%E9%99%A2%E5%90%9B%E5%A4%AB%E4%BA%BA&query_Result=&sinfo=&list_per_page=10&chkID=0&opAll=0&opP=0&opA=0&opB=0&opR=0&opT=0&opG=0&opW=0&qAll=&qP=&qA=&qB=&qR=&qT=&qG=&qW=&idS=&idE=&tc=2&pc=2&cp=1&startpos=0&pos=0 대원군부인]</ref><ref>《조선왕조실록》영조 117권, 47년(1771 신묘 / 청 건륭(乾隆) 36년) 8월 9일(정축) 1번째기사 中 "그 사체에 있어서 창빈(昌嬪)·대원군(大院君)·하동 부인(河東夫人)을 대진한 후에 어떻게 합제(合祭)할 수 있겠는가?"</ref>
- 하이큐!!/등장인물 . . . . 2회 일치
카라스노 동네 사람들로 구성된 팀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아저씨들만 잔뜩 있을 것 같지만 젊은 사람도 꽤 있다. 대부분이 [[카라스노 고교]]의 졸업생. [wkik:"우카이 케이신" 우카이]가 만든 팀이기도 하다. 동네 팀 치고는 실력이 좋다.
본명은 우카이 잇케(烏養 一繋)[* 참고로 우카이(烏養)라는 성은 '까마귀를 기르다' 라는 뜻이다.]. 우카이 케이신의 할아버지이다. 카라스노 배구부의 전설적인 명장이다. 은퇴 했으나 최근에 복귀. 그러나 나이가 있는지라 무리하다 쓰러져 현재는 복귀 계획이 없다. 2,3학년들은 그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엄청난 스파르타 식 훈련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엔노시타 치카라]] 등 2학년은 도망가기도 했다.
- 하이큐/212화 . . . . 2회 일치
* 우카이는 이 점에 대해서 신경쓰고 있었던 것. 하지만 타케다는 "그렇게 해서 더욱 갈고 닦을 무기도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 제목의 시점은 히나타가 플레이를 보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초반부에 나온 우카이 코치와 타케다 고문의 "교육자로서의 관점"이란 의미도 있다.
- 하이큐/255화 . . . . 2회 일치
* 그리고 이번 경기는 전일본 남자 대표팀의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도 관람 중이다. [[하이큐/210화|카게야마의 전일본 유스 합숙]]에서도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동행한 코치가 카라스노의 10번, 히나타를 거명하며 "키는 작지만 득점율이 높다."고 평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필살기가 카피 당해서 풀이 죽은거 같다고 말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는 별다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카게야마하고만 선수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괴짜 속공을 아츠무도 올릴 수 있다는게 증명됨으로써, 반대로 말하면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도 그 속공이 가능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 하이큐/259화 . . . . 2회 일치
* 예상을 뛰어넘은 카라스노의 선전.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싸움의 구도를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새내기"라고 표현했다. 하긴 강호 이나리자키도 어디까지나 도전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카라스노 라는도전자를 맞아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카라스노에 대해선 정보량이 적긴 하지만 계속 새로운걸 시도한다는 걸 알겠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우카이 케이신]]코치가 의도이기도 했다. 그런 시도들을 계속 던지는 것으로 경기의 균형을 잡고 있으며, 멈추게 되면 판도가 단숨에 기울 거라는 걸 안다.
* 경기는 시소게임을 되풀이하며 22 대 21까지 왔다. 이나리자키가 한 점 차 리드를 지키는 가운데 마지로의 서브. 그는 독특한 동작으로 공을 튕기며 정신을 집중한다. 마지로의 파워풀한 서브는 카라스노에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걱정을 입증하듯 무겁고 강렬한 서브가 날아온다. 위치는 정확히 타나카. 하지만 리시브하기도 버겁다. 공이 불안하게 흔들리며 높이 뜬다. 이것을 히나타가 처리한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의외로 깔끔하게 아즈마네에게 향하는 공. 자기 나름은 괜찮은 리시브였다고 들뜨지만 옆에서 본 카게야마는 뽀록이라 일축한다.
- 하이큐/262화 . . . . 2회 일치
*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타나카의 의지는, 빡빡머리는 변함이 없다. [[이나리자키 고교]]를 맞이한 봄고 대회 2회전. 스코어는 25 대 24. 카라스노가 1세트를 가져갈 찬스. 아즈마네의 서브. [[야치 히토카]]는 숫제 스코어 보드 옆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1점만 더. 사실 지금 카라스노 선수라면 누구나 이렇게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관중들도 우승후보를 여기까지 밀어붙인 카라스노의 저력에 감탄한다. 과연 시라토리자와 학워을 쓰러뜨릴 만하다, 잘하면 1세트를 가져가겠다... 하지만 "이렇게 우세할 때 못 가져 가면 다음은 힘들다"는 현실을 퍼붓는 말도 있다. 히토카에게 뻔히 들릴 정도. 히토카가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속으로 외쳐본다.
- 하이큐/264화 . . . . 2회 일치
처음 배구를 권한 그날 부터 타나카는 쭉 그런 사람이었다. 되건 안 되건. 배구 자체도 그랬지만 한참 전부터, 봄고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줄창 실패해온 플레이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계속 했다. 그리고 오늘도 했다.
* 벤치로 돌아가던 중, 타나카가 츠키시마를 불러세웠다. 한껏 기세가 올라서 "난 천재가 아니냐"고 하던 참이었다. 타나카는 아까 츠키시마가 자기 대신 [[아즈마네 아사히]]에게 공을 올린 걸 두고 "내가 불렀는데 무시했겠다"고 장난조로 갈궜다. 물론 츠키시마는 전혀 지지 않고 "당연히 아즈마네 선배가 넣을 것 같아 그랬다"고 받아친다. 츠키시마는 어떻게 그렇게 멘탈이 강할 수 있냐고 물었다. 풀 죽는 일도 없겠다고 하자 타나카가 펄쩍 뛰며 "나도 풀이 죽는다"고 대답했다. 약 몇 초 정도. 할 말이 없어진 츠키시마에게, 풀 죽은 자신과 밀어붙이는 자신 중 어느 쪽이 멋지겠냐고 묻기도 했다. 츠키시마는 "어느 쪽도 별로"라고 냉정한 대답을 하려 했지만 타나카는 "밀어붙이는 나"라고 자문자답한다. 츠키시마가 싫어하는 답정너짓이었다. 그래도 타나카는 참 밝았다.
- 하일권 . . . . 2회 일치
19금 만화책인 ‘코끼리 애교’ 출판에 참여하였다. 또한 ‘히어로 주식회사’, ‘육식공주 예그리나’와 같은 도서의 스토리를 맡기도 했다. 블로그에서 ‘박사박사와 발명의성’과 ‘0.1g’이란 만화를 잠깐 올리기도 하였다. '도밍고씨의 흥하는 흥신소'라는 by series브랜드 웹툰도 연재했었다.
- 한동욱 . . . . 2회 일치
한동욱은 2005년 11월16일 스카이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에서 KTF 강민을 만나 패한 이후 프로토스전 부진이 시작됐다. 한동욱의 프로리그 프로토스전 17연패는 통산 단일 종족 최다 연패 기록이기도 하다.
온게임넷 대회인 스타리그에서는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고 4강에도 두 번이나 올라간 한동욱이었지만 유독 MBC게임의 MSL에서는 인연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 한창수 . . . . 2회 일치
[[1888년]] [[조선의 과거 제도|과거]]에 급제하여 [[승정원]]에서 주로 벼슬을 하였으며, [[1895년]]에는 [[한성재판소]]의 판사를 맡기도 했다. 외국어에 능통하여 [[관립한성외국어학교]], [[한성사범학교]]의 교장직과 함께 [[유럽]] 지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바도 있었다.
한창수는 거침 없이 친일적 언행에 더하여, 이왕직 장관을 지내면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를 어린 나이에 일본에 유학 보내고 일본인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여 결국 정신병을 앓게 한 일로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한창수가 이왕직 장시국장 재직 중 고종이 사망했는데, [[고종 독살설]]에 [[이완용]], [[이기용]], [[윤덕영]], [[한상학]], 그리고 어의 [[안상호]] 등과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 한현민(코미디언) . . . . 2회 일치
대학생 때부터 동기들과 개그팀 '''신나'''[* 같이 활동하던 동기로는 [[박규희(코미디언)|박규희]]가 있었다.]로 활동하다가 [[전유성]] 극단에 입단 후 2003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데뷔한다. [[조영빈]], [[이재형(코미디언)|이재형]]과 함께 기글스를 결성해서 삑삑클럽, 희한하네, 황당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진행하며 이름을 알렸다. 희한하네 시절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흉내를 자주 하곤 했는데, 일본 방송에 출연해서 고이즈미를 따라하는 비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기글스가 사실상 해체[* 조영빈이 MBC 개그야로 이적했다.]한 이후에는 [[강성범]]을 쫓아다니는 형사 역할로 등장해서 '''"장남 아니고 막낼세"'''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상황인즉 강성범이 한현민에게 장난치냐고 묻자 내뱉은 말. 해당 코너에서 한현민은 말을 엉뚱하게 듣고는 언어유희하면서 화를 내는 캐릭터였다. 예로 들면 강성범이 '''"뭔 소릴 하고 자빠졌어?"'''라고 묻자 한현민이 '''"문소리가 집뜰이를 해?"'''라고 응답.]
- 핫라인 마이애미 . . . . 2회 일치
적을 한번에 죽이는 무기. 둔기의 경우 즉사하지 않고 피투성이로 기어다니다 죽는 놈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놈들은 처형시키거나 가만히 냅두면 죽는다. 뚱보한테는 먹히지 않으니 총을 찾자. 모든 근접무기는 처형에 사용할 수 있다.
프렐류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 해당 챕터에서 확보해야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적을 기절시킬 뿐이라서 처형을 꼭 해야한다. 처형에 사용할 수 있다.
- 허준호(배우) . . . . 2회 일치
||<bgcolor=#113759> {{{#white '''가족'''}}} ||[[아버지]] [[허장강]], 이복 형 허기호, 딸 허정인[* 전처 배우 이하얀 사이의 딸. [[유자식 상팔자]]에서 어머니 이하얀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최근 영화 출연보다는 뮤지컬 출연이 더 잦다. 원래 갬블러 자체가 일본에 건너간 거의 최초의 뮤지컬 수출작이기도 하다. 허준호는 갬블러에 거의 10년째 출연했고 [[시카고(뮤지컬)]]나 [[바람의 나라]]에도 출연했다.
- 허화평 . . . . 2회 일치
대통령비서실 비서실보좌관실은 구 [[청와대]] 본관에 속해 있어서 전두환 대통령과의 관계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방증하였다. 그러나 허화평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에 1981년 12월 대통령비서실 산하 정무제1[[수석비서관]]으로 좌천되었다.[* 이후로 청와대 비서실장은 1982년 1월부터 [[이범석(1925)|이범석]]이 새로 도맡기도 하였다.]
작중에서 허화평이 [[금융실명제]]에 반대하자, [[이학봉]]이 [[김재익]]에게 "우습네요. 그렇게 개혁 개혁 노래 부르더니."라며 뒷담화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 헌터X헌터/369화 . . . . 2회 일치
* 5왕자 츠베파는 철저하게 실리주의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접촉시켰던 사설병 대장 "마올"을 다시 파견하고 "롱기"라는 머리가 긴 남자를 딸려보냈다. 그 역시 츠베파의 사설병. 그들의 목표는 "크라피카의 두뇌". 그를 동료로 확보하는 것이다. 와블 왕자까지 포함해도 좋으니 꼭 동료가 될 수있도록 설득하라는게 진짜 목표였다. 넨 습득은 오히려 구실. 마올은 다른 진영 경호병의 눈을 의식해 은밀하게 처리하려면 편지를 사용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롱기도 같은 생각이다. 부호를 쓰거나 동작으로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노출된 우려가 컸다.
벤자민이 보낸 "휴리코프"는 몹시 음험해 보이는 남자였다. 일단은 텐후토리처럼 정찰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진짜 "임무"는 따로 있다. 설마 와블 측에서 먼저 초대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좋은 기회다. 적의 넨능력을 파악할 수단은 많다. 외견, 수업방식, 언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계통이나 능력 자체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건 휴리코프만의 기술이었다. 넨능력이 아닌, 경험에 의한 노하우. 어찌보면 이거야 말로 그의 생명선이었으며, 그런만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장의 수였다. 가령 능력자와 비능력자는 안구의 움직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옆에서 안구를 봤을 때 그 주변의 흔들림을 보는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구분법이었다. 지금도 그는 1014호실 거실에 모인 안구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 헤이즈 (가수) . . . . 2회 일치
학과 내에서 1등을 하면 서울로의 상경을 허락 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과 수석을 하게 된 그는<ref>{{뉴스 인용|제목=‘여자 도끼’ 헤이즈, 친오빠 재조명...“세상에서 제일 친한 남자”|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3265032&page=1|날짜=2017-06-27|뉴스=MBN 뉴스}}</ref> 대구에서 상경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음원깡패★헤이즈, 하루에 알바 3건+종이가방 스타일링...털털4차원 인성甲|url=http://star.mk.co.kr/v2/view.php?sc=40900002&cm=%EC%97%B0%EC%98%88%20%EC%A2%85%ED%95%A9&year=2017&no=428641&relatedcode=|날짜=2017-06-27|뉴스=스타투데이}}</ref>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어 그는 한 번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ref>{{뉴스 인용|제목='최파타' 챈슬러X헤이즈가 밝힌 음악열정·공개연애(종합)|url=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66599|날짜=2016-11-29|뉴스=JTBC}}</ref> [[언프리티 랩스타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음악에 전념하게 되었다.<ref name="s" /> [[크루셜스타]]와 교제하기도 했으나 [[2015년]] 헤어졌다. 헤이즈는 라디오방송에서 크루셜스타를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했고 아직 잊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라디오쇼' 헤이즈 전 남친 언급, '이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91114132351596|날짜=2016-09-11|뉴스=아시아경제}}</ref> 헤이즈가 겪었던 이별의 경험은 그녀가 미니 앨범 《/// (너 먹구름 비)》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 현기증 . . . . 2회 일치
보통 [[눈]]을 감으면 괜찮아지기도 하지만 질병 등으로 인한 현기증의 경우 눈을 감아도 별 차이가 없기도 하다.
- 현덕 . . . . 2회 일치
{{다른 뜻 설명|'''현덕'''(玄德)은 [[유비]]의 [[자 (이름)|자]]이기도 하다.}}
* [[인천박문초등학교|경기도 인천 대부보통학교]] 중퇴
- 현석문 . . . . 2회 일치
|기도 =
그는 아내와 누이가 순교한 후에 《[[조선]] [[천주교]] [[순교자]] 열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기해박해]]가 끝나자, 그것의 편찬을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상하이]]까지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살아남은 [[최희원]]과 [[모방 베드로|모방]] [[사제|신부]]의 [[복사 (기독교)|복사]] [[최형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손자 [[이재의 토마스]] 등의 협조를 받아 [[순교]] 자료를 모아서 확인 및 보충 정리하여 3년 만에 단편의 《[[기해일기]]》를 완성하였고 교우들에게 배포하였다.
-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 . . . . 2회 일치
형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불평등'이며, 지배 계층의 '[[명예]]'와 '위신', 어떤 의미에서는 [[인권]]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예기가 쓰여진 [[춘추전국시대]]의 형벌은 신체 부위를 절단하거나 훼손시키는 잔인한 형벌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러한 형벌은 당연히 인간에게 커다란 치욕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하는 [[할복]] 역시 형불상대부의 원칙에 의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홍금주 . . . . 2회 일치
|기도 =
홍금주는 [[한양]] 교외의 한 이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그녀의 성격과 지력, 태도 그리고 어투에 있어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을 여의고 조모의 집에서 자랐다. 그녀는 10세 경에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15세에 한 이교도 남성과 결혼하면서 [[냉담교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시집을 떠나 [[미나리골]]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녀의 아들마저도 이내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기거하는 집의 주인 [[최 필립보]]가 그녀에게 새로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그녀는 때로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기도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자애로운 행실에 감복하였고 그녀는 마치 종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말하였다.
- 홍서범 . . . . 2회 일치
홍서범은 [[1958년]] [[12월 7일]]에 [[경상북도|경북]] [[김천시|김천]] 대광동 (김천시) (환경로) 에서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재학 중 대학 2학년때 팀 '옥슨79'를 창설하면서 멤버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대학 캠퍼스 밴드 '옥슨80'의 멤버로 같은 해 [[동양방송|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출전하여 '''불놀이야'''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옥슨80'의 멤버로 활동하다 [[1989년]] 32세에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자작 록 발라드 곡으로 솔로 가수가 되었다.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는 '''구인광고''', '''김삿갓''' 등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방송에도 출연, [[1994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 홍서범의 뮤직쇼 DJ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영화 《[[커피 카피 코피]]》의 주연(영화배우)으로 스크린에도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라디오 DJ를 복귀하면서 [[서울방송|SBS]] 라디오 프로그램 '홍방불패'의 DJ로 활동하였다.
* 홍서범 무슨일이 있나요 (무슨일이 있나요, 가난한 연인들의 기도)(1986)
- 홍성유 . . . . 2회 일치
호방하면서도 활달한 남성적 문체와 시대 의식이 짙게 묻어나는 역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도박을 좋아한 그는 [[고스톱]]의 복잡미묘한 규칙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라고 [[김종철 (시인)|김종철]] 시인은 회고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일본 학생들을 두드려 패어 감옥에 들어간 그는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인하여 그는 도박의 달인으로 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딸의 순한 눈빛 때문에 도박판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또한, [[야구]]를 좋아해 한때 서울 [[잠실구장]]에는 그의 지정석까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 황옥 (1885년) . . . . 2회 일치
1920년 경기도에서 근무하다 [[의열단]] 단원 [[김시현]]과 접선해 의열단에 가입했다.
경기도 경찰부장 [[시로가미 유키치]]는 황옥이 자신의 재가를 받은 작전에 따라 활동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원봉과 김시현은 황옥이 의열단원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상호 증언이 엇갈리고 있기에 황옥이 의열단원이었는지, 일본 경찰의 프락치였는지, 또는 양자에 모두 발을 걸친 [[이중간첩]]이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83년 [[서울대학교]] 도서관 건물에서 추락사한 민주화운동가 [[황정하]]가 황옥의 손자이다.
- 후쿠오카 예비교생 살인사건 . . . . 2회 일치
피해자 키타카와 히카루는 구마모토 현 아사쿠사 시(熊本県天草市) 출신이다. 현지에서는 수재로 평판이 좋아, [[진학교]]로 알려진 현립 구마모토 고등학교(県立熊本高)에서 공부를 했으며, 댄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도]]를 배워서 검도 2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검도부 단체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5년 봄에는 [[도쿄대학]]에 응시했으나 실패하여, 후쿠오카 시내에서 동생과 같이 살고 [[예비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범인 소년은 키타카와 히카루와는 같은 구마모토 현 출신으로 다른 학교를 나왔다. 평소 친구에게는 "키타카와 씨를 좋아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고 한다. "(키타카와 씨에게) 바보취급 당했다."고 경찰에 설명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오빠도 "교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부정하였다.
-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2회 일치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국가에서 내는 돈을 받아서 일종의 준 국가 공무원이라 활 수 있으나 흔히 말하는 부업이 가능해 연예인처럼 광고를 찍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일종의 연예인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돈과 인기를 위해 지망하는 사람도 있으며 덕분에 사회에서 히어로를 비판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단 이러한 부업에 대한 것은 공무로 정해졌을 때에는 일부에서 상당히 다퉜으나 인기와 수요에 의해 무마된 듯 하다.
- 히토데나시 . . . . 2회 일치
* [[에도 시대]]에는 천민이었던 비인(非人)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 불교에 나오는 신족, [[긴나라]](緊那羅)를 뜻하기도 한다.
- 1000가지 위기의 순간 . . . . 1회 일치
골때리는 죽음이 많다. 캠핑 중 떡치다가 혈관이 눌려 눈이 머는데, [[텐트]] 밖으로 기어나왔더니 [[곰]]이 먹을거 먹으려고 나와있었다던가……. 그 외에도 진짜 위험한 행동을 다루기도 한다.
- 3월의 라이온/123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화장실에 간다던 나메리카와는 장지문 사이로 키리야마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걸 눈치챈 키리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서 주의를 당한다.--결국 어린애네--
- Crusader Kings 2/DLC . . . . 1회 일치
궁정의사를 고용할 수 있다. 병에 걸렸을 시 궁정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성공적인 치료를 받았을 경우에는 능력치와 체력 수치에 버프를 받아 생존 확률이 증가하지만 실패했을 경우에는 역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이놈들은 "실험적인 치료"로 몸 한구석을 잘라내 '''암'''을 치료할 수도 있다. 실험적인 치료는 사실상 로또라는게 문제지만. 신비주의자 의사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거나 자신을 제물로 바쳐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또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혀주는 건물인 병원을 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역병에 죽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분을 위해 성문에 못질하고 가신들과 함께 [[히키코모리|히키짓]]하는 디시전도 생겼다.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회 일치
재상을 지목한 백작령으로 파견시켜 명분을 날조하게한다. 성공한 경우에는 군주가 해당 백작령에 대한 소유 명분이 생겨 땅을 내놓으라며 전쟁을 걸 수 있다. 해당 군주에게만 명분이 생기지 그 후계자에게는 안 생긴다는 것에 주의. 운이 나쁜 경우에는 명분을 날조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 해당 지역 영주들이 화를 내거나 암살자를 시켜 재상을 죽여버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공작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으며, 만약 군주가 해당 지역의 왕이 되는 야망을 가졌다면 왕국령 단위 날조에 성공할 수도 있다.
- Crusader Kings 2/종교 . . . . 1회 일치
게임 Crusader Kings 2의 종교를 설명하는 페이지. 중세 배경인 게임인 만큼 종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몇몇 종교의 경우에는 정부 형태를 강제하기도 하니 더더욱 중요하다.
- DC 코믹스 . . . . 1회 일치
[[마블 코믹스]]와 미국 코믹스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회사이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소속된 곳이기도 하다. [[그린 랜턴]],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도 DC의 히어로이며 이러한 영웅들의 팀인 저스티스 리그가 유명하다.
- Europa Universalis 4 . . . . 1회 일치
제작사가 와패니즈로 유명하다(...) 일본의 왠만한 다이묘들은 전부다 있으며, 몇몇 다이묘들은 서양에서 유명한 명군들보다 능력치가 높기도 하다. 거기다가 일본한테 붙어있는 사기 전통인 규율[* 쉽게 말해서 공격력+방어력. 규율이 높을수록 한번의 전투로 더 많은 상대군사를 잡을수 있고 더 늦게 패주한다.] 10%는 진짜(...)~~조선하면서 이것때문에 고통을 몇번 받은건지...~~[* 프로이센이 이념을 다열어야 규율 7.5%다. 이쪽은 개신교개종을 반드시 하게되있기에 2.5%추가되서 10%긴 하지만.]
- Europa Universalis 4/공략/아시아 . . . . 1회 일치
이게임시작지점에서 가장 많은 땅덩어리를 지니고 있으며, 가장 높은 총개발도(developement)를 지닌 국가. 상당히 많은 고유시스템을 들고있는데, 고유 팩션인 천조국 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관료, 사원, 환관이 행정, 군사, 외교를 담당하고 있으며, 각 팩션의 영향력이 가장 높을경우 그 팩션이 보너스를 주는 형식이다. 그리고 고유 정부체제인 천조국(Celestial Empire)체제를 지니고 있는데, 기술비용과 안정도 비용을 10%줄여주며, 모든 땅의 수입이 반이된다. 천명이란 시스템으로 반란도를 5줄여준다. 만약에 정통성이 70이하이거나 안정도가 음수가 될경우엔, '천명을 잃음'이 뜨면서 천명의 보너스가 사라지고 반란도가 5상승해 최종적으로 반란도 10이 늘어난다(...) 거기다가 중국계 문화권이 엄청 세분화되어 천명한번 터질경우엔 오나라, 촉나라, 연나라, 제나라등 소국들이 죄다 반란일으키고 독립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기도 한다...~~안습~~ 내적 완결성등 명한테 들어있던 수많은 디버프들이 전부 사라져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천명이란 고유시스템덕에 빵빵터지는 반군들을 맛볼 수 있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서구화를 하도록 하자
- GHQ . . . . 1회 일치
외국에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기관이지만 [[일본]]에서는 [[음모론]]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 GLA . . . . 1회 일치
몸에 폭탄을 매단 광신도들. 주변에 방치된 민간용 차량[* 비행기도 된다.]에 타 이동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 Hanging On The Old Barbed Wire . . . . 1회 일치
[[첨바왐바]]가 부르기도 했다.
- K리그 . . . . 1회 일치
역사적으로 K리그는 1983년 탄생한 [[수퍼리그]]를 전신으로 한다. 이 당시에는 아직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없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이하 KFA)의 주도로 대회가 탄생하였으며 완전한 프로리그는 아니었다. 총 5개 팀이 참가하였고, 이 중에서 완전한 프로팀은 유공(現 제주 유나이티드), 할렐루야 두 팀 뿐이었고, 나머지 세 팀은 실업팀이었던 국민은행, 포항제철(現 포항 스틸러스), 대우(現 부산 아이파크). 물론 이 세미프로팀들도 당시에는 프로전환을 고려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업팀(=세미프로)이 더 많았던 리그임은 사실이다. 또한 참가팀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승강제는 애초에 구성하기도 불가능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 . . . 1회 일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K리그의 승강제가 도입된 2013시즌부터 적용된 공식경기이며 리그 외 대회의 성격을 띈다. 챌린지 플레이오프와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나온 기록은 클래식-챌린지 어느 쪽에도 기록되지 않는 대회이기도 하다. 이 승강플레이오프의 최종승자는 차기 [[K리그 클래식]]에 등록되고, 패자는 [[K리그 챌린지]]에 등록된다.
- MoniWikiACL . . . . 1회 일치
모든 페이지에 대해서 읽기만 가능하게, ProtectedPage에 대해서는 읽기도 거부
- OK 본 . . . . 1회 일치
팀 내에선 대부분의 [[랩]] 파트를 담당하며, 라임을 중시한 그만의 랩 스타일로 취향이 크게 갈리고 있다. 앨범내에서 다소 노골적인 소재도 거침없이 다루었고, '비정규직 MC'라 자칭하기도 하였다.
- Victoria II/POP . . . . 1회 일치
자신의 돈으로 재료를 사 상품을 제조한다. 아직 공장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원자재 외 상품은 이들이 제조하게 된다. 뭘 어떻게 하는건지는 몰라도 전차와 항공기도 만들 수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 공장과 기능공들에게 밀려나 쇠락한다.
- Y2K 버그 . . . . 1회 일치
1990년대 말 예상되었던 버그. 밀레니엄 버그라고 불리기도 했다.
- mixi . . . . 1회 일치
여기도 대충 SNS에서 상상할 수 있는 사건 사고는 다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 가상 메모리 . . . . 1회 일치
윈도우즈는 어쩔 수 없이 그림판과 계산기만 메인 메모리에 올려놓고, 메모장은 가상 메모리로 내려보낸다. 얼마 있으니 계산기도 안쓰게 되서 가상 메모리로 내린다. 1시간 쯤 그림을 그리다가 다시 메모장을 켜고 그림판을 작업 표시줄에 내려놓으면 메모장이 메인 메모리에 올라오고, 그림판은 가상 메모리 영역으로 내려간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예시지만 간단하게 받아들이자.--
- 강예빈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여주시]]
- 강중인 . . . . 1회 일치
《[[삼천리 (일제 강점기의 잡지)|삼천리]]》에 〈최근의 반도의 경제사범 국민의 신경제 윤리의 파악을 위하여〉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경제사범을 "미증유의 국난"을 돌파해 "대동아를 건설하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순간에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집단으로 묘사하고, 이들은 국민의 일대수치이므로 엄벌주의로 대처할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관민이 일체가 되어 "일사보국의 성을 다함"으로써 성업을 어서 완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 강지섭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부천시) (봉오대로)
- 강진(가수) . . . . 1회 일치
참고로, 이 [[노래]]는 [[나훈아]][* 고향역의 그 나훈아 맞다.]가 작사/작곡한 노래이며, 원곡도 나훈아의 곡이다. '''이 곡은 [[2007년]] [[9월 2일]]에 [[뮤직뱅크]] 시청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 [[트로트]] 곡이 뮤직뱅크에서 1위를 수상한 곡은 강진의 [[땡벌]]이 유일하다.'''
- 강흠덕 . . . . 1회 일치
'''강흠덕'''(姜欽悳<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58년]] [[8월 15일]] ~ )은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포수]]이자, 현 [[경기도 챌린지 리그]] [[성남 블루팬더스]]의 트레니닝 코치이다.
- 개돼지 . . . . 1회 일치
인터넷에서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개론과 비슷한 느낌. 당시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나향욱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607082025001&code=|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인용,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발언을 한 것에서 유래한다.
- 개미 . . . . 1회 일치
집에 사는 개미는 엄청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거주자를 물어뜯기도 한다.
- 개인용 웹페이지 저장 서비스 . . . . 1회 일치
종종 [[단축 도메인]]과 함께 제공하기도 한다.
- 거대로봇 . . . . 1회 일치
당연한 말이나 거대로봇은 만들 수 있나, 없나를 떠나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단골요소인 거대한 인간형 2족 보행 로봇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다보니 거대로봇물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단순 취향 차이도 있으나 거대로봇물에 대한 과한 추종심이 원인이기도 하다. 물론 가상매체에서의 일인데 뭐 어떻냐는 사람들도 있고, 이러한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된 시점에서도 양질의 작품이 나오니 팬이라면 과하게 생각지 말고, 즐기길 권한다.
- 거미(가수) . . . . 1회 일치
* 그래서, 그녀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면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 일화며 [[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8014312|본인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공연에서 조차 [[https://www.youtube.com/watch?v=z9nAcUc-GxA|본인이 직접 드립을 쳤다.]] 사실, 어떻게 보면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수혜자로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실제로 거미가 신인 시절부터 이름을 알리고 점점 유명해졌던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건담 동물원 . . . . 1회 일치
게임 매너가 나빠서 이상한 동작으로 상대를 도발[* [[샤아 전용 겔구그]]로 댄스하는 샤게단(シャゲダン)이라는 것이 유명.]하거나, 불리해지면 바로 게임을 포기하거나, 게임 중에 설정할 수 있는 메시지로 폭언을 보내기도 한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 . . . 1회 일치
[[요츠바랑]]과 유사한 치유물이다. 우마루와 그 여고생 친구들이 잔뜩 나와서 [[미소녀 동물원]]의 일종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약간이나마 연애요소도 나오고 타이헤이가 제 2의 주인공 격이라서 그의 주변인물들도 중요한 위치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48화 . . . . 1회 일치
* 키리에가 주인공 캐릭터 "스승"(코마루)을 너무 좋아하는 탓에 위기도 위험도 없는 얘기만 그리기 때문이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53화 . . . . 1회 일치
* 에비나는 자기도 오빠를 잘 알지는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아이디어를 낸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3화 . . . . 1회 일치
* 우마루는 자신의 위기도 해결하면서 동생 히카리까지 챙기는 모습에 크게 감명 받는다.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66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별다른 멋내기도 없이 평소 입던 티셔츠 차림.
-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175화 . . . . 1회 일치
* 한참 게임을 하고 쉬는 우마루. 히카리는 집에 가서도 혼자 플레이해도 되겠냐고 하자 우마루가 그러라고 답한다. 자기도 짬짬이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론 식음을 미뤄놓고 게임에만 전념한다. 그저 레벨을 잔뜩 올려서 다음 번에 히카리가 왔을 때 깜짝 놀라게 만들 목적. 하지만 후반이 되자 우마루 조차 고전하는 적들이 나오는데, 그걸 깨면서 히카리를 도와주고 우쭐 댈 생각에 젖는다.
- 경대수 . . . . 1회 일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개편 과정에서 고향 괴산이 떨어져나가는 악재를 만나며 고향이 붙은 보은, 옥천, 영동, 괴산 선거구와 현재의 진천, 음성, 증평 선거구를 두고 고민하다가 현재의 선거구를 지키기로 결심하였고 재선되었다.[* 여담으로 소지역주의로 인해 진천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이기기도 하였다.]
- 고사기 . . . . 1회 일치
* 고사기의 발음은 [[일본어]]로 '코지키'라고 하는데, 이는 [[거지]]를 뜻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일본 인터넷에서는 거지를 고사기(古事記)라고 쓰기도 한다.--거지 같은 역사서--
- 고산케 . . . . 1회 일치
* 왜일까, 구글 번역기는 '[[스타팅 포켓몬]]'이라고 번역한다(…). 포켓몬의 스타팅 포켓몬을 이렇게 말하기도 하므로 포켓몬 문서에서는 틀린 번역이 아니지만.;
- 고스트 패트롤 . . . . 1회 일치
전후에는 범죄와 싸웠으며 [[섀도팩트]]에 협력하기도 했다.
- 고인범 . . . . 1회 일치
* 2013년 JTBC 월화드라마 [[네 이웃의 아내]] - 합기도 관장
- 고종(조선) . . . . 1회 일치
친정 초기에는 박규수 같은 통상개화파를 주로 중용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한편으로는, 대원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들을 중용하기도 했다.[* 흔히 중전 민씨([[명성황후]])덕에 여흥 민씨가 네임드화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원군파를 견제하기 위해 고종이 직접 중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때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고 박규수 등의 개화파를 중용해 개방을 서두른 걸 보면 기본적으로 전근대 군주로서의 능력은 있었던 듯.
- 곽월 . . . . 1회 일치
[[1574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나갔다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했다. [[1576년]] 다시 [[의주]][[목사]]로 나갔다가 그 뒤 [[호조참의]]를 거쳐 [[1578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동지사(冬至使)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동지사]]로 파견되었을 때 [[명나라]] 황제로부터 붉은 비단, 금안(金鞍), 쌍연(雙硯)벼루, 화병(畵屛), 시서(詩書) 등을 특별 선물로 받기도 했다.
- 국부펀드 . . . . 1회 일치
국가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목적의 국영 펀드. 국부펀드는 주로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가지고 운용한다. 자금투자운용은 일반적인 투자펀드와 비슷하게 [[채권]], [[주식]], 부동산 등 전통적인 분야에서 자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미국 텍사스 주, 오레곤 주의 주에서 보유한 펀드는 주정부 소유의 공유지 토지임대수익으로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 궁가 . . . . 1회 일치
궁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왕실과의 친밀도에 의하여 [[토지]]와 [[노비]] 등 상당한 재산을 하사받아 보유하였다. 또한 왕실과의 직접적인 연결 때문에 정치적, 법률적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특권계급이었다. 하지만 중앙의 정치분쟁에 휘말려서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왕실과 연결이 가까운 시기에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세대수가 지나면서 왕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점차 낙향하고 자산이 분산되면서 지방의 평범한 서민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왕실과 연결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가문은 나름대로 사소한 특전은 누릴 수 있었으나, 생활상은 서민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권은희 (1959년) . . . . 1회 일치
* 2018년 1월 ~ 2018년 6월 : 바른미래당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을 공동지역위원장
- 권재진 . . . . 1회 일치
2011년 8월 8일 오전 청문회에서 큰아들이 경기도 포천의 국제나이론이라는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지난 2003년 8월 12일부터 2004년 12월 29일까지 포천 농협에서 이뤄진 38번의 입출금 내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들의 산업기능요원 근무 시기가 2002년 9월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좌 내역은 2003년 8월부터 제출한 것을 두고도 의혹이 증폭됐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맞은 사람은 몸에 불이 붙은채로 도망치다 죽는 무기. 화염지대를 만들기도 한다.
- 김경식 (희극인)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하여 [[부산광역시|부산]]과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서울예술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 광고창작학과]]를 [[전문학사]] 졸업하였으며, [[1989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으며, [[1991년]] 뮤지컬배우 데뷔한 그는 이듬해 [[1992년 3월]] [[서울방송|SBS]]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정식 데뷔를 하였으며, [[틴틴파이브]] 멤버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가수 故 [[유채영]]과 함께 [[MBC 표준FM]] 《[[좋은 주말]]》을 진행한 적이 있으며, [[서현진 (방송인)|서현진]] 前 MBC 아나운서 와 함께 《[[생방송 원더풀 금요일]]》을 진행한 적이 있다.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2017년 10월 26일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과 형법상 모욕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앞서 지난 4월 중순 전(前) 팬클럽 회장 A씨[* 김기수를 10년째 좋아하던 사람인데 김기수가 그 팬을 [[스토커]]라 지칭하였다.]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다. SNS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중 A씨를 비방하고 그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였으나 결론은 무혐의. [[http://m.entertain.naver.com/ranking/read?oid=421&aid=0003014237&rankingType=default&rankingDate=|링크]]
- 김동한 (1919년) . . . . 1회 일치
[[1969년]]에는 군종사제회 부회장에 서임되었다. 이때 군내 가톨릭회 총무로 있던 [[신치구]]에게 동생 [[김수환]]을 소개하기도 하였다.<ref>[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18/200902180497.asp 고품격 콘텐츠페이퍼, 헤럴드경제<!-- 봇이 붙인 제목 -->]</ref> 이후 19년간의 [[대한민국 해군|해군]] [[장교|군종 사제]] [[국방의 의무|복무]]를 마치고 [[1970년]] [[3월]] [[대한민국 해군|해군]] [[중령]] 예편하였다.
- 김만제 . . . . 1회 일치
한국개발연구원장 퇴임 후 잠시 [[한미은행]]장을 지내다가,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제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하였다. 그의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은 소위 3저(低)[* 낮은 물가, 금리, 석유가격을 뜻한다.]로 대표되는 경제 호황기로 수출 증대,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국내외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었던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후임 [[노태우]] 정부의 출범 후, 이 때의 부실기업 처리 과정이 문제가 되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 김민교 (가수) . . . . 1회 일치
마지막 승부 OST는 寺田恵子 Terada Keiko (Show-Ya): Paradise Wind를 표절하여 방송 중간에 음을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김병윤 . . . . 1회 일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청학고등학교]]의 역사과목 선생님이다.
- 김보름 . . . . 1회 일치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 김봉근(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 || 1942년 11월 20일 [[경기도]] [[김포시]] ||
- 김부식 . . . . 1회 일치
김부식은 [[고려 숙종|숙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안서 대도호부(安西 大都護府) 사록(司錄)과 참군 녹사(參軍錄事)로 배치되었고, 임기가 끝난 후 직한림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좌사간, 중서사인을 역임하였다. [[1121년]]([[고려 예종|예종]] 16년)에는 임금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 김선영(1976) . . . . 1회 일치
*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2014)[* 영화 [[국제시장]]에서 오영자 역의 [[김윤진]]과 시장에서 싸우는 아줌마로 나오기도 했다.]
- 김성겸(탤런트) . . . . 1회 일치
사실은 김성겸도 [[MBC 성우극회]] 출신[* [[황일청]], [[최낙천]], [[변희봉]] 등과 같은 MBC 성우극회 2기로 데뷔. 지금은 [[배우]]로 활동이 많아져서 극회 목록에는 지워져 있다.]으로, 명예 [[성우]]이기도 하다. 성우로서는 80년대 초까지 [[존 웨인]]의 전담성우로 자주 활약했다.[* 존 웨인과도 닮았다.]
- 김승환(배우) . . . . 1회 일치
||<bgcolor=#BFFF00> '''출신지''' || [[경기도]] [[남양주시]] ||
- 김쌍수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 부회장[*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윤종용, [[이학수]]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부잘하는 [[엄친아]], [[엄친딸]]들이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로 삼는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기업 부회장 자리는 게임으로 따지면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것이다.], 前 [[한국전력공사]] 사장, 現 [[수원 KEPCO45]] 프로배구단 구단주. 졸업 고교는 [[성의고등학교]].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이다.
- 김양 (1953년)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백범 김구]]의 손자이며, [[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대한민국 건설교통부|건설교통부]] 장관·[[유신정우회]] [[국회의원]]과 [[중화민국|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대사]] 등을 지낸 [[김신 (1922년)|김신]]의 둘째 아들이고, [[김진 (1949년)|김진]]의 동생이기도 하다. 본관은 [[구 안동 김씨|안동]](安東)이다.
- 김용준 (1904년) . . . . 1회 일치
광복 후 [[서울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48년]] 그의 호를 딴 수필집인 《근원수필》을 출간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 [[조선인민군]]이 [[서울특별시|서울]]을 점령했을 때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의 임시 학장을 맡았고, 그 해 가을 후퇴하는 [[조선인민군]]을 따라 월북했다. 월북한 후에는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건축가동맹]]에 참가했으며 [[평양미술대학]]의 강좌장이 되었다.
- 김운용 . . . . 1회 일치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남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 김원주(가수) . . . . 1회 일치
하지만 본인이 밝힌 바론 고음이 약한 편이라 중저음역대인 파트를 자주 부른다. 주로 도입부 파트를 부르는 편이지만 브릿지 부분이나 훅 부분을 부르기도 한다.
- 김윤환 . . . . 1회 일치
* [[2003년]] 그가 죽자 그의 호인 허주(虛舟), 즉 빈 배처럼 갔다고 해서 권력은 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 김정혁 . . . . 1회 일치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식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감독님 한번 좀 써 봅시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남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 김종훈 (1952년) . . . . 1회 일치
또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김종훈은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서 강북 출마설에 대해 묻자 강북을 저 어디 어두컴컴한 데'라고 묘사하여 물의를 빚었고,<ref>[http://www.mt.co.kr/edition/se_vote2012/vote_view.php?no=2012032014002808265&sec=news&gb= 김종훈 '강남아니면 컴컴한 곳'? SNS'폭발'] 《머니투데이》 2012년 3월 20일</ref>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20년이 됐다”며 “이것이 한-미 에프티에이(FTA)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내 영세업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25380.html “컴컴한 데” 발언 김종훈 “구멍가게 20년전에…”] 《한겨레》 2012년 3월 26일</ref>
- 김중혁 . . . . 1회 일치
복선은 처음부터 많이 깔려 있었다. 지금은 아싸지만 학기초에는 과묵한 게 컨셉인 줄 알아 인기가 많았다는 과 여동기의 발언, 술김에 박미정 이야기를 하는 동진에게 도대체 뭘 알고 말하는 소리냐는 발언[* 그리고 또 이 말을 들은날에 평소와 다르게 술을 진탕 취할정도로 마시고 살기 힘들다고 술주정까지 한다.], 동진의 행선을 추적하면서 알아낸 법칙을 허은실에게 설명할 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발언, 박미정을 따르는 고양이가 김중혁한테도 친근감을 느끼고 몸을 비빈다든가, 박미정에게 저 또한 주위 사람이 많이 다쳤습니다 라는 식의 말이 전부 자신도 동류의 사람임을 뜻하는 말이였다.
- 김지수(배우) . . . . 1회 일치
2012년 5월 [[JTBC]] 드라마 [[러브 어게인]]에 출연했다. 근데 [[종편]] 시청률이 시청률이라... [[태양의 여자]]가 너무 쎘던 탓인지 특유의 눈물 연기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이 때 극중에서 김지수의 딸로 나온 [[김소현(1999)|김소현]]은 "지수 언니--뭐?--[* 둘의 나이 차이는 27년, 김지수가 동안이고 미혼이라 그렇지 그냥 모녀 나이 차이다. ~~김지수가 언니라 하라고 시켰나?~~] 옆에 있으면 나는 [[노안]]"이라고 [[자학]]한 적이 있었다...
- 김지혜(1980)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 김처선 . . . . 1회 일치
그래서 [[처서]] 절기도 조서라 고쳤고
- 김충공 . . . . 1회 일치
[[808년]](애장왕 9) [[당나라]]로부터 문극(門戟)을 하사받았다. 그뒤 [[각간]]을 거쳐 [[817년]](헌덕왕 9년) 이찬(伊湌)에서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다. [[822년]] 헌덕왕이 동생 수종을 세자로 임명할 땍 [[상대등]](上大等)으로서 세자를 도와 정권을 장악했고, 당시 집사시랑(執事侍郞)인 녹진(祿眞)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823년]](헌덕왕 15년) 토벌대에 참여하여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가담했다. 817년(헌덕왕 9)부터 [[821년]]까지 [[집사부]][[시중]]을 지냈다. [[822년]]부터 [[835년]]까지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 김태환(1943) . . . . 1회 일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5년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되었다. 2005년 골프장에서 시비가 붙어서 건방지다면서 골프장 경비원을 폭행했는데 비슷한 시기 맥주병 폭행을 일으킨 당시 같은 당적의 [[곽성문]]의원 등과 더불어 진보 네티즌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더 가관이었던건 이때 사용한 도구가 건어물(...)이어서 '오징어 의원'이라는 비아냥이 돌았었다.
- 김현성(가수) . . . . 1회 일치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유희열팀의 슈가맨으로 출연하였다. 슈가송은 대표곡인 'Heaven'. 여전한 [[외모]]와 [[미성]]을 뽑냈다. 초반부에는 [[30대]]가 가장 많이 알았고 후렴구가 터져나온 직후 [[20대]] 이상에게는 확실히 기억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0대 쪽에선 단 2개의 불이 들어왔다. 또, [[유희열]]의 추천으로 '소원'을 불렀으며 [[10대]] 중에는 [[엔(빅스)|엔]]을 닮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거의 삼촌뻘인데 [[엔(빅스)|엔]]이 김현성을 닮은 거겠지..~~ ~~본인도 자주 들었다고 자화자찬한건 덤~~
- 김현철(교수) . . . . 1회 일치
또 "무작정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으면서 기업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태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자멸의 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김형기 (법조인)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1월 19일에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때 선거 거부를 주장하다 기소된 전 서울대 학생 등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1월 19일자</ref> 2월 9일에 통혁당 재건과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15년 자격정지15년을 선고받은 [[지정관]]에게 징역7년 자격정지7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박현채]]와 [[양정규]]에게 각각 징역2년 자격정지2년 집행유예3년과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9일자</ref> 2월 22일에 '옛 석굴암'이라는 상호로 공예품 판매업을 하면서 문공부 장관의 허가없이 자신의 소장품인 유형문화재 청자 등 이조 자기류 10점을 점포에 진열하거나 매매 목적으로 진열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경향신문 1980년 2월 22일자</ref>
- 김형렬 (1959년) . . . . 1회 일치
'''김형렬'''(金亨烈, [[1959년]] [[6월 3일]] ~ ,[[대구광역시|대구]])은 전직 지방자치공무원이자, 현직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장 겸 한나라당 당원이기도 하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 김형종(배우) . . . . 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 김혜옥 . . . . 1회 일치
40대 어느날부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그녀는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녀도 병명을 알지 못하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한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한의원에 찾아가 자신의 병이 가슴속 응어리진 한이 쌓여 생긴 '화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기도와 명상 등을 통해 3년 만에 병을 나았다. 2004년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천방지축 철부지 할머니를 맡아 인기를 끌어 수십년 무명의 설움을 씻었다. 이후, 드라마·영화에서 명품 연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f name="월간조선"/>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 2013년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명예홍보대사
- 김희정 (펜싱선수) . . . . 1회 일치
'''김희정'''(金熙正<ref>{{뉴스 인용 | 제목=<프로필> 펜싱 에폐 금메달 金熙正 |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013398 | 출판사=연합뉴스 | 저자= | 쪽= | 날짜=1995-04-15 | 확인날짜=2018-09-14}}</ref>, [[1975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의 출전 경험이 있다.<ref name="sports-reference">{{웹 인용|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ki/kim-hui-jeong-1.html |제목=Kim Hui-Jeong Olympic Results |확인날짜=2012년 2월 19일 |웹사이트=sports-reference.com}}</ref> 그녀는 [[2002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154716 펜싱 이승원-김희정 2관왕 찔렀다]</ref>
- 나가 . . . . 1회 일치
인간형의 비늘을 가진 냉혈동물로, 네 선민종족중 하나. 네신중 '물'을 상징하는 '발자국없는 여신'이란 신을 섬기며, 말을 할 수 도 있지만, 대부분 '니름'[* 마음속으로 말하는것. 프로토스의 소통방식을 생각해보면 쉽다.]으로 서로 소통하며,[* 물론 나가가 아닌 다른 종족과는 평범하게 말로 소통한다.] 이때문에 청력이 그리 좋지는 못한 편이다.[* 이때문에 음악을 즐기지 못한다.] 특이하게도 열을 볼 수 있지만 그때문에 그림을 즐기지 못한다. 그외에 냉혈동물이라 그런지 허물을 벗기기도 하고, 일정 수준이상의 온도가 제공되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한계선'이라고 하는데, 가장 짧은 간격이 200km라는듯(...)] '소드락'이란 약물을 투여하는것으로 일정시간동안 엄청난 속력과 민첩성을 보여줄 수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1회 일치
* 요아라시는 왜 불을 쓰냐고 따지고 토도로키는 얼음은 그냥 막히니 불꽃을 쓴 거라며 자기도 요아라시 때문에 성가시다고 투덜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3화 . . . . 1회 일치
* 시험 종료 후, 갱 오르카의 부하들은 예상보다 저항이 심했던 건지 자기들이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갱 오르카에게 굽실거린다. 사실 이들은 구속용 프로턱터가 착용돼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상황. 하지만 갱 오르카는 그걸 감안해도 최후의 열풍감옥이나 거기서 이어진 미도리야의 기습은 좋은 작전이었고 만약 시험이 계속됐더라면 자기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1회 일치
* 추레해 보이는 아저씨의 독백으로 시작. 이마에 깊은 흉터가 있는 아저씨다. 그는 창가에서 아메리칸 스피릿을 피워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이것이 늘하는 일과일 뿐이라 여기는 한편 "특별한 일"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의 거주지는 카나가와현 카미노구. 그 싸움 이후 올마이트가 은퇴한지 반달이 지난 시점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는 폭발로 직접 데미지를 주는 전술을 버리고 폭발의 추진력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가속하고 급선회, 급감속을 거는 등 놀라운 응용력을 선보인다. 미도리야가 가드한 후 튕겨지는데 착지하기도 전에 급격히 거리를 좁히고 폭발을 이용해 점프 궤도를 변경, 순식간에 미도리야의 후방을 잡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1회 일치
* 그런데 그 순간, 오버홀은 마그네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마그네도 그걸 느끼는데 어떻게 된다고 자각하기도 전에, 마그네의 상반신이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경악하는 빌런연합. 오버홀은 "너희가 먼저 손을 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회 일치
* [[미네타 미노루]]는 미도리야에게 인턴활동이 어땠냐고 물으며 야한 여성 히어로는 없었냐는 흑심 가득한 질문을 던진다. [[아시도 미나]]가 은근슬쩍 끼어든다. 바쿠고는 자기가 뒤떨어진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는걸 병적으로 기피한다. 반은 언제나처럼 부산스럽지만 미도리야는 붕 뜬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수업 중에도 초조함이 더해져 집중이 되지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연발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자와 쇼타]]에게 쓴소릴 듣기도 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미도리야는 올마이트의 죽음이라는 얘기에 조급해져서 그런 이야기도 잊어버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4화 . . . . 1회 일치
키리시마는 빌런의 칼날을 씹으면서 돌진한다. 다시 겁에 질린 빌런은 칼날을 키리시마를 향해 집중시킨다. 이건 키리시마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뒤로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있다. 주점 안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칼날을 전부 자신에게 집중시킨다면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1회 일치
둘이 입을 모아 한 발언, 이것은 나이트아이 사무소의 작전 목표이기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회 일치
* 그렇게 해서 "에리쨩을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1학년들은 분발했다. 그렇지만 미도리야 만은 순수하게 그 임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나이트아이와 [[올마이트]] 간의 문제에 대해서, 나이트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도 용기도 없었다. 달리 누군가에게 상담할 수도 없었다. 작전에 함구령이 내려졌으니 올마이트와 상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문제를 키리시마나 우라라카와 공유할 수도 없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1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 [[패트껌]]을 필두로 히어로와 경찰 연합군은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고 있다. 추격대에 있는 [[키리시마 에지로]]는 학교 선배이자 사무소 선배이기도 한 타마키의 안전을 걱정하고 [[미도리야 이즈쿠]]도 동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4화 . . . . 1회 일치
친구들의 화제는 곧 진로로 돌아간다. 친구 중 하나가 미나처럼 자기도 웅영고 지망으로 해볼까 하지만, 다른 친구는 택도 없다고 여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1회 일치
트와이스가 스스로 마스크를 벗었다. 그것은 항의인 동시에 호소이기도 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2화 . . . . 1회 일치
* 총알이 날아오는 동안 많은 것이 떠올랐다. 계기는 물에 빠진 날이었다. 어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가 그를 구했다. 그렇게 해서 밀리오의 진로가 결정됐다. 히어로가 되겠다. 아버지는 자기도 같은 꿈을 꿨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밀리오의 개성은 같았고 아버지는 포기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밀리오에게 아주 어려운 길이 될 거라면서 정말로 히어로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7화 . . . . 1회 일치
오버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원 포 올 100%의 여파가 몸에 미치는 순간, 에리가 개성으로 "되돌려"준게 분명하다.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미도리야는 에리의 개성은 "매우 상냥한 개성"이라며 반대로 "돌아가는 이상의 속도로 몸이 상처입는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다. 원 포 올 풀 카울 100%. 미도리야는 힘을 개방하며 에리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8화 . . . . 1회 일치
* 사실 이 기숙사 전환은 교사는 물론 학생들 중에 배신자가 있을 것을 염려한 조치이기도 하다.
- 날갯죽지 조르기 . . . . 1회 일치
체포술의 하나이며, 상대를 체포하거나 싸움을 말리는데 사용한다. 반대로 범죄자가 피해자의 움직임을 봉쇄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 남성진 . . . . 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남윤정(탤런트) . . . . 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일산서구]]
- 낭만 주먹 . . . . 1회 일치
그런데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깡패들이 흉기를 써서 사람을 위협하거나 폭력하는 사건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또 몸을 사리게 된 성인 조폭과는 달리 새롭게 성장하는 청소년 불량배들은 이러한 불문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흉기를 휘두르면서 막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태촌, 조양은 등은 이렇게 성장한 '신세대 조폭'이었던 것이며, 소위 '낭만주먹'과 비슷한 조폭들이 몸을 사리는 시기는 고작 한 세대도 가지 못한 일시적인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넌센스 . . . . 1회 일치
흔히 파생되는 말로서, [[동음이의어]]를 이용하여, 말도 안되는 말장난들로 만들어진 문제들을 '[[넌센스 퀴즈]]'가 있다. 넌센스 퀴즈를 그냥 줄여서 넌센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건 약간 잘못된 말이다.
- 노경주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부천시]]
- 노루토끼 . . . . 1회 일치
본래 볼퍼팅어는 크립티드로, 토끼의 몸, 노루의 뿔, 날카로운 이빨에 꿩 날개를 가진 기기묘묘한 생물이라고 한다. 파필로마라는 토끼에게만 걸리는 일종의 피부병 때문에 이러한 환상종을 생각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보통 그려지는 모습은 뿔과 이빨, 날개가 분명하게 묘사되는 탓에 병이 있는 토끼와는 확연히 다른 건강한 매력이 느껴진다. 유사한 생물로 꿩 날개가 없는 [[재칼로프]]가 있다.
- 노해 . . . . 1회 일치
* [[프로레슬링]] 같은 경우는 종목 특성상 유명 선수가 오래 뛸 수 있으며, 집객능력 면에서 베테랑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몇몇 유명 선수가 '챔피언병'(…)에 걸려서 장기집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과 신인데뷔가 줄어들고 단체나 종목 전체 에서 고령화 현상이 일어나서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한다.
- 노형욱(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동안구]] 비산동 (경수대로)
- 농가 . . . . 1회 일치
농가(農家) 전체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고, 농업 종사자 이외에도, 사고・행동 양식이 그렇다면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민 전체를 싸잡아서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니나(이노센트 투어) . . . . 1회 일치
그러나 만약 적이 실수로라도 니나에게 공격을 성공하게 되는 순간 입장을 180도 바꿔서 갑자기 적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니나의 특성을 이용해서 배틀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 니세코이/229화 . . . . 1회 일치
* 유이는 유일하게 결혼을 한 걸로 보이지만 정작 남편도 나오지 않고 왠지 임신한 채로 등장. 유이팬들 중에선 충격이란 얘기도 나온다.
- 니트로글리세린 . . . . 1회 일치
처음 발명한 사람은 폭발 사고를 당했고, 산업화를 시도했던 [[알프레드 노벨]]은 이 물건 위험하다는 소리가 돌아서 어디에도 공장을 세울 수 없어서 [[배]] 위에다가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다는걸 알리려고 니트로글리세린에 뜨거운 쇠를 담그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동생이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에서 날아가는 변을 당했다(…). 결국 연구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다시 돈방석에 올랐다.
- 닌자 거북이 . . . . 1회 일치
붉은 안대를 쓰며 무기는 쌍차. 성질이 급하고, 거칠어서 레오나르도와 충돌하기도 한다.
- 닌텐도 . . . . 1회 일치
[[동양]], [[서양]] 가리지않고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콘솔 게임기, 휴대용 게임기는 물론 게임 소프트에서도 거대한 존재감을 보유한 거대 회사다. 다양한 게임기기를 만들었으며 [[패미컴]]과 [[Wii]], 휴대용 게임기인 [[닌텐도 DS]] 등 유명한 게임 기기도 닌텐도의 기기다.
- 다멘즈 . . . . 1회 일치
2000년에서 2013년 까지 연재된 『다멘즈 워커(だめんず・うぉ〜か〜)』라는 만화가 어원. 주로 몹쓸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여자들의 체험담을 소개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드라마화도 되었다. 이 만화의 제목은 카도가와 서점에서 발매하는 잡지 『Men's Walker』를 패러디 한 것이기도 하다.
- 다음 . . . . 1회 일치
'담'으로 줄여쓰기도 한다.
- 다크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 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이 세계에 소속된 영화였으나 현재는 취소되었고, 2017년에 개봉한 미이라가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영화가 되었다. 미이라 개봉 후에 공개된 예정 타이틀을 보면 드라큘라를 다크 유니버스에 등장시키려는 생각은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다크 유니버스 자체가 취소되는 일이 있기도 해서 먼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나와봐야 알게 생겼다.
- 다키스트 아워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6주만에 GG치고 연합국 뛰쳐나간 막장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가 되어버린 [[영국]]은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 때까지 존버를 시전해 [[나치 독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자신들의 유구한 혐성질 역사 위에 덧칠...읍읍.
- 단종 . . . . 1회 일치
'금지옥엽'이란 말이 어울리는 월등한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숙부에게 찬탈당하고 끝내 목숨까지 잃은 부분 때문에 민간에서는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강했다. 또한, 보위에 오른 뒤 딱히 실정을 저지른 것도 없었기에 '역사적 재평가'의 대상이 될 일이 없기도 했다.
- 대군 . . . . 1회 일치
[[역적]] 같은 죄라도 걸리지 않으면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지위이다. (물론 왕권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파리목숨같은 지위가 되기도 한다.) [[황제국]] 체계에서는 [[친왕]]에 해당한다.
- 대부(소설) . . . . 1회 일치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가 쓴 범죄 소설. 영화 [[대부 시리즈]]의 원작이기도 하다.
- 더 선 . . . . 1회 일치
3면에 여성의 [[토플리스]] 사진을 싣는 전통(?)이 있다. 성차별적,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받는데 2015년에 이 전통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4일 만에 원상복귀.
- 데미안(드라마) . . . . 1회 일치
'''악질적인 데미안 스토커'''(…)로서 데미안이 취재한 사진들을 마구 사들이고, 어린 시절에 쓰던 물건들(오멘 1의 소품)을 방 안 가득히 챙겨놓고 있으며, 데미안과 관련되면서 뭔가 느끼는 표정(…)을 짓기도 하는 등 참 못말릴 아줌마. 역시 악마숭배자 답다.
- 데부스 . . . . 1회 일치
* [[데부센]]은 좋아하기도 한다.
- 데키콘 . . . . 1회 일치
의미가 가볍고 인상이 좋지 않다고 느껴져서, 경사로운 결혼(おめでた婚), 아이를 하늘에서 내려주셨다고 하여 내려주신 결혼(授かり婚) 등의 말이 있기도 하다. 같은 뜻을 가진 다른 말로는 서두른 결혼(お急ぎ婚), 마마릿지(ママリッジ, 마마+메리지), 마터니티 웨딩(マタニティウエディング) 등이 있다.
- 도게자 . . . . 1회 일치
현대에는 일반적인 예법이 아니게 되어, 일반적인 상황에서 도게자를 할 일은 없다. 하지만 기업 측에서 대규모 사고를 일으켰을 때 등, 심각한 상황이라면 도게자를 하기도 한다.
- 도지한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 돌비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액체를 데우면 온도가 끓는 점에 도달했을 때, 거품이 나오며서 점차 부글부글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액체가 끓는 점에 도달했음에도 드물게 거품이 일지 않고 끓지 않는 과열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과열된 액체는 진동이나 이물질을 혼입하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게 된다.
- 드라콘 . . . . 1회 일치
드라콘이 법률을 제정하기 10여년 전, 기원전 632년에 킬론(Kylon) 일파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하였는데, 이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알크마이온(Alcmaeon) 가문의 사람들이 그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이 같은 사적 복수를 줄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드라콘의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여겨진다.
- 똥 . . . . 1회 일치
일종의 독소가 있다. 이를 똥독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똥독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했다.
- 라오우 . . . . 1회 일치
실제 키는 2미터 남짓인 듯 하지만 가끔 거의 4,5미터에서 10미터 이상은 되보이는 [[거인]]으로 그려지기도. 주먹 하나가 사람보다 더 크게 그려질 때도 있다.
- 랑그릿사 . . . . 1회 일치
반대로 파이어 엠블렘 역시 랑그릿사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전의 계보(1996)에서는 먼저 나온 랑그릿사 2[* 정확히는 멀티엔딩 요소와 더불어 분기에 따른 연애까지 갈라지게 만드는 [[슈퍼패미컴]] 이식작 데어 랑그릿사를 가리킨다. 메가드라이브판 랑그릿사 2는 빛의 후예 엔딩 하나만 있는 리아나 일직선이다.]를 연상케 하는 '연애 요소'를 도입한데 더해서, 단순히 엔딩에서 맺어지는 상대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서 2대에 걸치는 싸움을 묘사하는 등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 램즈혼 달팽이 . . . . 1회 일치
하지만 반대로 너무 대량으로 번식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일명 '폭풍번식'이라고 부른다. 생존능력이 강해서 쉽게 번식하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번식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는 평가.
- 런너즈 하이 . . . . 1회 일치
장시간 달리면 [[엔돌핀]]이 분비되어, 괴로움이 점차 줄어들어 느껴지지 않게 되고, 달리고 있어도 괴롭지 않게 된다. 오히려 상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1회 일치
* 레드 오케스트라는 독일군 내 친소련 공산주의 반체제조직의 명칭이기도 하다.
- 레드 토네이도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에서도 등장.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 등장했다. [[영 저스티스]]에서도 등장해 십대 영웅들과 같이 활약하기도 한다.
- 레스터 길리스 . . . . 1회 일치
7월 22일, 딜린저 갱을 이끌던 [[존 딜린저]]가 FBI에게 사살된다. 레스터 길리스와 체이스, 그리고 가석방된 헬렌 길리스는 시카고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이들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도중 속도 위반으로 체포되기도 했지만 벌금 5달러만 내고 풀려난다.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1회 일치
2013년 10월 ‘Dandy Girl’을 발표한 이후 레이디 제인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모습을 비추어왔으며, [[홍진호]]와의 열애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레이프 . . . . 1회 일치
* 서양권에서는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Rape가 아니라 Leif. 발음 상의 차이가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다.
- 렉스 더 원더독 . . . . 1회 일치
[[디텍티브 침프]]와는 친구. 나이가 들어 은퇴했을 때에 디텍티브 침프와 같이 젊음의 샘에 빠졌는데 이로서 젊음을 얻고, 미 육군 중력이 된 대니와 모험을 했다. 확대동물국(Bureau of Amplified Animals), [[플래시(DC 코믹스)|플래시]]III, 레이버스(Ravers), 워리어(Warrior) 등과도 대면하고 섀도팩트에 협력하기도 했다.
- 렉스 루터 . . . . 1회 일치
엄청난 [[부자]]이며 [[브루스 웨인]]과 더불어 DC의 자본가 캐릭터 중 한명. 여기에 뛰어난 두뇌를 지녀서 높은 지략을 구사하거나 고급 기술력을 발휘한다. 두뇌파 캐릭터이나 뒤에서 머리만 굴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 슈트를 착용해 슈퍼맨과 정면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다 무너진 고담시를 재건하고, 미국 대통령도 되본 적이 있다. 이만한 인물이다보니 빌런 세력이 만들어지면 매번 높은 자리에 있다.
- 로빈 . . . . 1회 일치
[[배트맨]]의 [[사이드킥]]. [[알프레드 페니워스]]와 함께 배트맨의 오랜 동료다. 초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이 가장 유명한 로빈이며 배트맨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 10대 히어로 팀인 [[틴 타이탄스]]에서도 주요 캐릭터다. 그러다보니 현 시점에서는 배트맨의 사이드킥만이 아닌 별도의 히어로 캐릭터이기도 하다.
- 록맨 시리즈 . . . . 1회 일치
아쉽게도 현재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래도 다른 게임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그 캐릭터 명맥은 유지하고 있는 상황.
- 류명선(야구선수) . . . . 1회 일치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 류효영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시흥시]]
- 리얼리즘 FPS . . . . 1회 일치
* 킬캠이 없다. 이때문에 복수한다고 죽었던 곳 찾아갔다가 한번 더 당하기도 한다.
- 마~앙(웃음) . . . . 1회 일치
이 치~잉은 남성기(칭코,ちんこ)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므로, 여기에서 대비하여 여성기(망코,まんこ )에서 따와서 만들어진 말이 마~앙(웃음)이 된다. 대략 2014년 쯤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기/296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는 "왕은 필요없다"고 공언해놓고도 한 편으론 "이 나라는 나의 것이고 나만이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 마기/302화 . . . . 1회 일치
* 사실 황제국의 처지는 일본의 처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매우 상식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 마기/311화 . . . . 1회 일치
* 어차피 죽이지도 못할 거 계속 누나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도 그러니 알라딘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한다.
- 마기/320화 . . . . 1회 일치
* 그것으로 그는 평화를 이뤄냈고 꿈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이기도 하다.
- 마기/329화 . . . . 1회 일치
그는 우고를 미쳤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광기에 휘말리고 있는 듯 하며 우고와 마찬가지로 그를 중심으로 사물이 일그러지는 묘사가 있다. 현실 상으로는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분명 성궁에서 루프를 다시 쓰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한 번 죽어서 루프에 환원되기도 했다. 모두 정신적 소모가 심한 작업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우고 조차 정신줄을 놓게 만든 강대한 힘이 주어졌으니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 마기/330화 . . . . 1회 일치
* 심지어 신드바드는 이 모든 상황을 전세계에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 중엔 각국의 지도자들돠 [[유난]]같은 마기도 끼어있다.
- 마기/331화 . . . . 1회 일치
* 잠시 뒤 부부는 다시 나란히 앉는다. 이번엔 알리바바도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이 만난 이후, 그녀는 강했고 또 귀엽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기쁜 표정을 보여줄 때는 알리바바도 기뻤다.
- 마기/339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그가 겪은 불행은 곧 솔로몬 왕의 부조리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솔로몬 왕은 죄없는 많은 사람들까지 불행과 고통으로 떨게 했다. 신드바드는 바로 이런 세상을 바꾸려 한다. 정의에 행복을, 악에 불행을 주는 마땅한 세계. 그런 "올바른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낟.
- 마기/340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신드바드도 할 말은 있다. 1던전에서 [[쥬다르]]가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고 한 말을 들면서 "인간은 그릇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달라 적합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 백룡이 실패한 것도 그릇과 모양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다한 거라고 말한다. 백룡은 쥬다르가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조금 놀란다. 하지만 신드바드가 지적한 사실에 대해선 수긍한다.
- 마기/341화 . . . . 1회 일치
* 혼자서 두 마장을 상대해야 하는 알라딘. 제파르는 소리마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사용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알라딘은 신드바드의 마법은 힘마법 "조르프"로 받아내지만 세렌디네 쪽에 당한다. 신드바드와 세렌디네의 마법이 공명하며 울려퍼진다.
- 마더콘 . . . . 1회 일치
일본에서는 한국 남자는 마더콘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진 모양이다.[참조]
- 마루코메 . . . . 1회 일치
일본의 미소된장 제조 회사로 슈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미소 상표명이기도 하다.
- 마리아 루이사 테레사 드 파르마 . . . . 1회 일치
1751년 12월 9일 [[파르마]]에서 출생, 1819년 1월 2일 [[로마]]에서 사망.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왕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카를로스 4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스페인의 국정을 통솔하였으나, 하급귀족 출신의 애인 [[마누엘 고도이]]를 총애하여 25살 청년 고도이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등 정치적 실책을 여러 차례 저질러, 결국 폭동이 일어나 카를로스 4세와 망명하는 신세가 됐다.
- 마이사카 코우 . . . . 1회 일치
라고 소개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손에 든 미츠세류 씨의 '황혼으로 돌아가다'를 읽고 인생이 변했다는 얘기를 하기도.
- 마치킨 . . . . 1회 일치
마치킨은 일단 사업승인허가는 받고 있으나, 이조차도 받지 않은 회사는 야미킨(闇金)이라고 불린다. 마치킨 역시 이자율이 위험하거나 위험한 업체가 섞여 있기도 하지만, 야미킨은 완전히 법의 규제를 벗어나 있어 완벽한 불법사채이다.
- 마터니티 마크 . . . . 1회 일치
의료 건강계 사이트 플라스알의 조사에 의하면, 마터니티 마크를 사용해서 좋았다는 질문에는 '예'는 43.4 %, '아니오 '는 56.6 %에 달했다. 반면에 마터니티마크를 붙여서 곤란했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는가는 '예'가 9.3 %,'아니오 '가 90.7 %로서 약 10%의 적지 않은 사용자가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대답했다.[[http://news.ameba.jp/20140331-108/ (참조)]]
- 마터니티 포토 . . . . 1회 일치
* 벨리 메이크라고 하여, 배꼽 부근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 만남계 사이트 . . . . 1회 일치
* 상대가 [[유부남]], [[유부녀]]라서 [[불륜]]의 온상이 되기도.
- 매카시즘은 이제 매카시워즘이다 . . . . 1회 일치
아이젠하워는 1955년 7월에 있었던 공화당 지도부 모임에서는 "매카시즘은 더 이상 없다."(“It’s no longer McCarthyism,”), "매카시워즘일 뿐이다."(“It’s McCarthywasm.”)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 맥닐의 법칙 . . . . 1회 일치
[[성경]]에 언급되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맥닐의 법칙을 응용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나일강 문명권에 살던 이스라엘 인들이 가나안의 초원, 사막 지대의 인간들에게 세균 폭탄을 퍼부었다는 것(…).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줄거리 . . . . 1회 일치
경찰들이 보드카에 도착해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블라드는 비니 고그니티가 주모자일거라고 추정한다. 비니가 무기 밀매 사업을 하는데 경쟁자라고 생각한 모두를 쓸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 블라드는 자신은 행동을 고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며, 보드카는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이 될 것이며 자기는 부유해지고 유명해질거라고 자신한다. 한편, 핀의 죽음에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맥스는 블라드가 왼손을 다친 것을 보고는 아까전 총격전에 다친건지 물어본다. 블라드는 어제 뜨거운 데이트가 있었다고 대답한다.
- 맨씽 . . . . 1회 일치
마블의 괴물 캐릭터로 구성된 [[리전 오브 몬스터즈]]에 소속되어있기도 하다. [[고스트 라이더]]가 리더인 첫 번째 버전은 물론 웨어울프 바이 나이트가 리더인 두번째 버전에서도 멤버. 두 번째 버전은 [[퍼니셔]]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되버린 코믹스에서도 등장하는데 이때 맨씽은 퍼니셔의 시체를 회수해갔다.
- 머가리 . . . . 1회 일치
[[머리]]+[[대가리]]를 연상하기도 쉽다.
- 멀티플맨 . . . . 1회 일치
텔레파시로 연결되었다 해도 복제의 사고력이 독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체인 매드록스와 별도의 길을 가게된 복제체도 있다. 그러다보니 복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으며 이런 때에 동일한 능력을 지닌 암살자 클레이(Clay)와 대면하기도 했다.
- 메두사 헤드 . . . . 1회 일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전 악마성에서는 매우 짜증나는 적이다. 왜냐하면 시계탑 스테이지처럼 점프를 해서 올라가야 하는 위태로운 곳에서 꼭 등장하기 때문. 메두사 헤드와 접촉하면, 재수없을 경우 그대로 뒤로 밀리면서 석화+추락사 콤보를 당할 수 있기 때문. 오묘하게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궤도 때문에 [[채찍]]으로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다수의 메두사 헤드가 출몰하는 곳에서는 신중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 메탈멘 . . . . 1회 일치
* 킹덤 컴에선 'Alloy'라는 형태가 등장했으며 이후 리붓 전의 본편에서도 이 형태가 한번 등장한 적이 있다. 이외에도 거대로봇으로 합체한 형태가 등장하기도 했다.
- 메탈슬러그 시리즈 . . . . 1회 일치
게임을 진행하던 중 "슬러그"라고 보이는 탑승물을 타게 될 때가 있다. 슬러그는 보통 별도의 무기를 사용하며,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멘헬러 . . . . 1회 일치
정신장애보다는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신조어라 용법이 다양해서 얀데레나 미치광이같은 수준을 뜻하기도 한다.
- 명예백인 . . . . 1회 일치
*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여성을 '명예남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줄여서 '[[명예]]'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 모죠 . . . . 1회 일치
또한 「상(喪)」이라는 한자에서 어두운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 몬스리 . . . . 1회 일치
한편으로는 현재의 세상에 대해 분노가 컸는지 첫등장 시기에 코난의 할아버지에게 너희 세대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분노를 토하기도 했다.
- 무법자 . . . . 1회 일치
진지하게 생각하면 악랄한 범죄자지만 훗날에는 민중영웅이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자들이라고 포장되기도 한다. 퍄.
- 무용전 . . . . 1회 일치
혹은 완력을 가지고 폭력적인 사건을 일으킨 이야기를 뜻하기도 한다.
- 무직 . . . . 1회 일치
[[파이널 판타지]]에서는 '슷핑'이라고 하며, 몇몇 온라인 게임에서는 [[평민]], [[노비스|'''노비'''스]]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 문숙(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 ||1954년 5월 19일, [[경기도]] [[양주시|양주군]]||
- 물에 흘려보내다 . . . . 1회 일치
이 같은 관념 때문에 개인 간의 시시비비나 사회적 정의보다 집단의 화합을 과도하게 중시하여, 명백한 피해자에게 "물에 흘려보내라"는 식으로 합의를 강요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비판이 있다.
- 미도리야 이즈쿠 . . . . 1회 일치
* 어려서부터 언젠가 히어로가 됐을 때를 대비해 개성 보유자들을 관찰해와서 그런지 분석 실력이 우수하다. 그러다보니 필기도 자주 한다.
- 미래소년 코난 . . . . 1회 일치
* 26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청자들 중에는 그 이상의 장편이었다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 KBS에서 몇번이나 재방송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후에 --달랑-- 26화인 것에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 미래소년 코난/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샐비지선의 노동자. 파치처럼 나이 있어보이는 할아버지다. 테리트와 달리 승급에는 무관심하나 그와 달리 품성은 정상이라서 테리트에게 한소리 하기도 하고, 코난과 라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줬다.
- 미스터 하이드 . . . . 1회 일치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데어데블]]과도 자주 싸웠으며 [[어벤저스]]의 적대 팀인 [[마스터즈 오브 이블]]에 가입하기도 했다.
- 바레브 라인 . . . . 1회 일치
* 참호에 가스 파이프를 묻어서 화염을 내뿜는 비밀병기도 만들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쓸모없다고 판단하고 사용은 중지했다. 이집트 군은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이 기구를 매립해버렸다.
- 바르나바 복음서 . . . . 1회 일치
일설에는 저자는 이슬람교도 출신으로, 스페인의 종교재판 전성기에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하게 되었던 인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바르나바 복음서는 기독교의 이슬람교 박해에서, 일종의 종교적 '저항문학'으로서 저술되었다는 것이다.
- 바캇타 . . . . 1회 일치
하긴 그러니까 2016년 트위터 주가가 바닥을 쳐댄 것 같기도 하다.
- 바키도/126화 . . . . 1회 일치
* 심지어 그 담배를 무사시에게 권하기도 한다.
- 바키도/134화 . . . . 1회 일치
* 그때 병실문이 열리며 닥터 쿠레하가 들어온다. 밖에서 듣고 있었는지 모토베가 거명한 것 중에 자기도 있어 한시름 놨다고 농담을 던진다. 그는 마침 무사시에 대해 중요한 소식을 가져왔는데, 무슨 일인지 그가 TV에 나오고 있다는데.
- 박상규(정치인) . . . . 1회 일치
1936년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충주교현초등학교,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에서 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다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다가 대한민국 육군 병으로 병역의무를 이수하였다. 동국대학교 졸업 후 공무원 전환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공무원으로서 정보 업무를 담당하였다. 1970년대부터는 한국비철금속 사장을 거쳐 한보금속공업을 경영하였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겸임하였다.
- 박성배 . . . . 1회 일치
'''박성배'''(朴成培, [[1975년]] [[11월 28일]] ~ )는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청주대성고등학교|청주상업고등학교]], [[숭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2011 AFC 아시안컵]] 당시 [[MBC]]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 박승호(정치인)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경상북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경선에서 현직 도지사인 [[김관용]]에 밀려 탈락하였다. 이때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개칭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7528.html|#]]
- 박연우 . . . . 1회 일치
*2014.5 ~ : 제6회 동시지방선거 후보등록자 (새누리당, 경기도의회 의원)
- 박정철(배우) . . . . 1회 일치
||<#58ACFA> {{{#white '''출생'''}}} ||[[1976년]] [[11월 5일]] ([age(1976-11-05)]세), [[경기도]] [[안산시]] ||
- 박준규(1925)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송산(松山)이다. 본관 [[순천 박씨|순천]]. [[백남억]]씨가 그의 자형이고 [[삼성그룹]]창업주 [[이병철]]회장의 처조카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의 직계후손이다.
- 박진수(1985) . . . . 1회 일치
출생 1985년 10월 6일 [[경기도]] [[안성시]]
- 박창달 . . . . 1회 일치
사실 박근혜 영입을 주도했다곤 하지만 정작 박근혜가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는 친박계보에 속하지 않고 친이계에 속했다. 이명박의 중학교 4년 후배기도 하고 이재오와 친밀하게 지냈다. 19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 을에 유승민이 버티고 있었기에 대신 대구 중/남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친이계라고 [[김희국]]에 밀라 탈락, 이에 반발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으나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맡게 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위(청와대, 즉 이명박 대통령)에서 자유총연맹 회장직을 제안해 어쩔 수 없었다고.''' 실제로 이념적 성향은 [[극우]]가 아니라고 한다.
- 발달장애 . . . . 1회 일치
* 전반적 발달장애 : 자폐스펙트럼장애,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등. 의사소통이나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으며, 특정한 행동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 발터 PPK . . . . 1회 일치
[[10.26 사태]] 당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사용했던 총기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인터넷에서는 드립 소재로 쓰이기도.
- 배성룡 . . . . 1회 일치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 배트맨 . . . . 1회 일치
배트맨의 주무기. 박쥐 모양 부메랑을 던진다. 표창에 가깝기도 하다.
- 백낙청 . . . . 1회 일치
1962년부터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부임하였고, 1966년부터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인을 맡아 진보적 평론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4년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으나, 1980년 복직되었고, 2003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이후에도 통일운동의 일선에서 일하며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는 범여권후보 단일화운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 백남억 . . . . 1회 일치
[[허경영]]의 저서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 백이소 . . . . 1회 일치
'''백이소'''(白以昭, [[1557년]] [[경상북도]] [[경주시]]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자는 융원(隆遠), 호는 부암(傅巖)이다. 본관은 [[청도 백씨|청도]](淸道)이나 옛 지명인 오산(鰲山)으로 쓰기도 한다.
- 백현서 . . . . 1회 일치
| 출생 = 경기도 부천시 상동 (부천시) (송내대로)
- 베스타 . . . . 1회 일치
아이밀리아처럼 정절을 잃었다고 의심을 받았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겠다고 한 다음, [[티베르 강]]까지 걸어가서 여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한 다음, [[체]]로 물을 떠서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고 여신의 옥좌까지 가지고 갔다. 혹은 로마 광장까지 가지고 갔다.
- 베이식 (가수) . . . . 1회 일치
| 거주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 벨트스크롤 게임 . . . . 1회 일치
대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크롤 되며, 스테이지를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시점을 취한다. 캐릭터는 보통 측면 모습만 나온다. 조작은 레버로 상하좌우 이동을 기본으로 하여 [[점프]]를 별도의 버튼으로 부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점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 같다고 해서 '벨트스크롤 게임'이라고 부른다. 서구권에서는 사이드 스크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보스 트롤 . . . . 1회 일치
크고 살찐 몸에 원시인 같은 가죽옷을 입고, 곤봉을 들고 있다. 두꺼운 입술과 쭉 내민 혀가 큐트 포인트(?). 보스로 등장하기도 하며, 통한의 일격과 높은 HP, 자동회복으로 무서운 면모를 보여준다. 묘하게 인기가 좋은 몬스터.
- 보쿠걸 . . . . 1회 일치
여자아이 같은 외모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 미즈키는 남자 중의 남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 보쿠걸/107화 . . . . 1회 일치
* 미즈키는 새로 생긴 여자 합기도부에서 활동 중.
- 봉준호 . . . . 1회 일치
영화 《[[마더 (2009년 영화)|마더]]》가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비평가 협회에서 받은 외국어 영화상만 무려 7개로 보스톤평론가협회, 남동부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혜자]]는 헐리우드 톱배우들을 제치고 LA 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2011년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 부녀자 . . . . 1회 일치
주로 만화 · 애니메이션 등에서 미소년끼리의 연애를 애호하는 여자를 뜻한다. 이러한 취미를 보이즈 러브 (BL), 야오이(801) 라고도 부른다. 의미가 확장되어 BL 야오이 취미만이 아니라 여성 오타쿠 전반에서 쓰이기도 한다.
- 북두삼형제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사실 원작에서는 켄시로, 토키, 라오우가 셋이서 모여서 등장하는 장면은 라오우와의 첫 대결에서 사우저 편, 토키의 최후편에 걸쳐서 비교적 길게 있고 명장면도 많지만, 쟈기는 [[아미바]] 전 이전에 나왔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원작에서 3명이 모인 적은 있어도 쟈기까지 합쳐서 4명이 모인 적은 없다. 회상씬에서도 쟈기와 켄시로, 쟈기와 토키, 라오우가 만나는 장면은 있지만 4명이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쟈기도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구TV판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회상씬, 신 극장판 애니메이션 유리아 전, 외전 코믹스인 쟈기 외전이나 류우켄 외전에 있다.
- 북한의 역사왜곡 . . . . 1회 일치
>이른바 《인천상륙작전》이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이 월미도이다. 월미도에서 우리 인민군대의 1개 해안포병중대가 단 4문의 해안포로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가지고 달려드는 맥아더 5만대군의 인천상륙기도를 3일간이나 좌절시켜 대참패를 안기고 우리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맥아더자신도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실패한 작전》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완전한 패전이였다.
- 분류:가평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고양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광명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광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구리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군포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김포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남양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동두천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부천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성남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시흥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안산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안성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안양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양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양평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연천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용인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의왕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이천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파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포천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분류:화성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경기도 출신 인물]]
- 불단 . . . . 1회 일치
네모난 직육면체 상자 같은 형태로 제작되며,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문이 달려 있다. 크기는 장롱 만한 커다란 것에서,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상자 만한 비교적 컴팩트한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주로 나무로 제작된다. 소박한 모양도 있지만, 비싼 불단은 금박으로 장식하거나 옻칠을 하기도 한다.
- 브이원 . . . . 1회 일치
1996년 뮤지컬배우 첫 데뷔한 그는 [[대구광역시|대구]] 태생으로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방송예술대학|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전문학사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학위를 거쳐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대중예술학전공으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브이원'이라는 예명으로 발라드 가수로 데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강현수는 임채홍과 함께 [[2010년]] [[3월 27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입시 전문 방송아카데미 '배우&배움'을 열기도 했다. 평소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오랜 준비 끝에 개업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거나, [[2003년]] 방영된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 복학생 역을 맡는 등 배우로서도 활동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3/h20100325062909111780.htm|제목=강현수·임채홍 방송아카데미 오픈|성=|이름=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날짜=2010-03-25|출판사=한국일보|확인날짜=2010-04-17}}</ref>
- 블라디미르 렘 . . . . 1회 일치
이후에도 안젤로 펀치넬로의 함정에서 벗어난 맥스를 펀치넬로 저택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 블랙 클로버/101화 . . . . 1회 일치
충격에 빠져있는 여왕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린다. 그때는 아직 바네사도 어린아이였고 그녀 자신도 지금처럼 맹목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바네사는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실로 만든 인형을 그녀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의 여왕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잘 만들었다"고 평범하게 칭찬해줄 수 있는 어머니였다.
- 블랙 클로버/103화 . . . . 1회 일치
* 공격에 맞고 일행과 떨어진 아스타는 어떤 미인에게 귀족이 추근거리는걸 목격하는데, 아스타가 돕기도 전에 미인이 혼자서 귀족을 제압해버린다.
- 블랙 클로버/104화 . . . . 1회 일치
이후 그 말대로 샬롯은 끊임없이 강해져서 푸른 들장미단에 들어갔을 땐 이미 명성을 얻은 상태였다. 그 강함과 미모 때문에 구혼자가 줄을 이었지만 샬롯은 자기를 이길 수도 없는 구혼자 따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자기도 이길 수 없는데 앞으로 발동할 저주를 이겨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약해 빠진 구혼자들에게 실망한 샬롯은 오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결심한다.
- 블랙 클로버/110화 . . . . 1회 일치
그런데, "기". 이것이 돌파구다. 아스타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가는 기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의 몸에는 본래 자신이 가진 기만 있는게 아니었다. 반마법의 검에서 흘러나와 조금씩 몸 안으로 들어오는 기도 있었다. 아스타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렇게 흘러오는 반마법의 검의 기를 전신으로 순환하도록 해봤다.
- 블랙 클로버/113화 . . . . 1회 일치
* 아스타는 이러다 뭘해보기도 전에 끝장나겠다며 셋이 힘을 합쳐 상황을 돌파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 세 명 중 하나인 잭스가 문제다. 아직 마법이 뭔지도 밝히지 않은 그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코를 골고 있다. 표정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지는 아스타. 좀처럼 열받는 일이 없는 미모사 조차 깊은 빡침을 느낀다.
- 블랙 클로버/114화 . . . . 1회 일치
* 어디서 어떤 공격이 오는지 파악한 이상 당하고만 있을 필요가 없었다. 날아오는게 마법인 이상 아스타가 베지 못할 리 없었다. 화살이 B팀의 크리스탈을 노리고 날아왔다. 통상은 피하기도 어려운 빠른 속도였지만 아스타가 단번에 베어버렸다. 미모사는 잭스는 그냥 빠진대로 두고 둘 만으로 역공을 취하자 제안한다. 자신이 적의 탐지와 견제, 아스타가 크리스탈을 지키며 전진해 적의 크리스탈을 직접 파괴한다. 미모사가 즉석에서 이런 전술을 고안하자 아스타는 그녀가 벌써 많은 전장을 넘어왔음을 짐작하고 감탄한다.
- 블랙 클로버/118화 . . . . 1회 일치
* X가 빛을 발하더니 가면이 부서지면서 유명인사가 등장한다. 물빛의 환록 단장 [[릴 부아모르티에]]. 회화마법을 구사한다는 역대 최연소 단장. X의 정체가 릴이라는데 놀라는 것도 잠시, 로열 나이츠 선발 시합에 단장이 직접 나왔다는데 도마에 오른다. 정말로 단장이 기사단도 팽개치고 나와도 되는 건가? 적어도 마법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명목상으론 "단장을 쓰러뜨리고 이름을 떨칠 찬스"를 준다는 거지만 실상 릴의 마법을 볼 수 있다는 덕후기질 발동이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명목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럭절거 설득된다. 하긴 굳이 그를 쓰러뜨려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해볼만한 싸움일 것 같기도 하다.
- 블랙 클로버/122화 . . . . 1회 일치
분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아스타는 자기도 "자기 방식"대로 하겠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잭스는 그의 "쬐깐하고 썩은 대가리"로 퍽이나 좋은 방도가 생각나겠다고 빈정거렸다. 미모사는 돕겠다고 "아스타씨가 작은건 신장 뿐"이라 거들었지만 안 하느니만 못했다.
- 블랙 클로버/124화 . . . . 1회 일치
그녀는 곧 아스타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그 "안경 양아치"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 블랙 클로버/58화 . . . . 1회 일치
* 카호노는 자기도 같은 15살이라며 친구가 되기로 한다.
- 블랙 클로버/67화 . . . . 1회 일치
* 모든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유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 블랙 클로버/71화 . . . . 1회 일치
* 결국 아스타의 무기를 빼앗으려다 자신의 무기도 빼앗긴 격.
- 블랙 클로버/74화 . . . . 1회 일치
* 그러자 야미는 자기도 벌써 28살이라며 창피한 소리하지 말라고 한다.--엄청난 노안--
- 블랙 클로버/79화 . . . . 1회 일치
* 게다가 그의 기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서 야미도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 블랙 클로버/82화 . . . . 1회 일치
* 도미나는 여왕은 매우 끔찍한 존재이며 마녀의 숲은 자체가 강마지대이기도 하다고 경고하며 그런데도 갈 생각이냐고 묻는다.
- 블랙 클로버/87화 . . . . 1회 일치
* 노엘은 무지막지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물마법 말고는 대처방안이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언제나 형제들의 비웃음 거리였던 과거. 그들의 비웃음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노엘의 의지가 꺾이려는 찰나, 어디선가 "그렇지 않아. 넌 강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지팡이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
- 블랙 클로버/94화 . . . . 1회 일치
그때 젤과 아스타가 동시에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젤은 급격히 증가하는 마력을, 아스타는 미심쩍은 기를 숲에서 느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하기도 전에, 숲으로부터 마법공격이 쏟아진다. 젤은 뒤늦게나마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외쳐보지만 폭격처럼 쏟아지는 마법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 블랙 클로버/95화 . . . . 1회 일치
* 결국 힘이 빠진 라드로스는 바닥을 기어다니는 신세가 된다. 기습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반마법의 검을 그런 높이까지 던지는 놈이 어딨냐고 황당해한다. 라드로스는 겁에 질린 나머지 아스타가 다가오자 비굴하게 기어다닌다.
- 블러드와인드 . . . . 1회 일치
[[저스티스 리그]] 아메리카의 일원이었으며 이후 예비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마법 관련 캐릭터인지라 마법이나 오컬트에 관한 이야기에서 등장하기도 한다.
- 블리치/681화 . . . . 1회 일치
* 폭주하는 켄파치는 제라드가 재생을 마치기도 전에 연거푸 베어버린다.
- 블리치/685화 . . . . 1회 일치
* 유하바하의 이빨털기에 싸우기도 전부터 멘탈이 흔들리는 이치고.--성장이 없냐--
- 블리치/686화 . . . . 1회 일치
* 하쉬발트는 최종흑막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했는데, 우류 상대로 중2 돋는 말이나 늘어놓는걸 보면 글른 듯.
- 블리치/693화 . . . . 1회 일치
* 우류가 떠나기 전 하쉬발트는 그를 불러서 몸에 난 상처를 자신에게 옮기도록 한다.
- 비니 고그니티 . . . . 1회 일치
작중 등장하는 만화/애니메이션인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팬이다. 그의 집 안에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굿즈가 널려있다. 이불도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이불이고, 전화 자동응답기 안내문도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 오프닝곡으로 시작한다. 굿즈를 총으로 쏘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희귀한 수집품에 뭘 하는거냐며 화를 낸다. 이것 때문에 부하들의 뒷담화 거리가 되기도 한다.
- 빗치 . . . . 1회 일치
페미니즘 문화에서는 bitch를 재정의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서는 bitch라고 불리는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적이지 않으며 그 때문에 남성에게 반발을 사지만, 그러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으로 정의한다.
- 사갈 . . . . 1회 일치
뱀(蛇,사)와 전갈(蝎,갈)을 함께 뜻하는 말. 남을 해치거나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비유해서 부르기도 한다.
- 사람을 죽여 보고 싶었다 . . . . 1회 일치
[[일본]]에서 몇몇 살인범들이 하는 발언. [[중2병]]이 심각하게 악화된 대사이기도 하다.
- 산킨고타이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육로 이동이 대부분이지만 규슈와 시코쿠 지역의 다이묘들은 배로 이동하기도 했는데, 해로의 경우 당시의 낙후된 선박 및 항해기술의 한계로 인해 육로와는 달리 일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도 장거리 항해는 꺼리고 되도록 육로 위주로 이동했다.
- 새 . . . . 1회 일치
멍청한 사람을 욕할 때 "새대가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샘 윗위키 . . . . 1회 일치
이 모든 원인은 [[할아버지]]인 아치볼드 윗위키가 북극권을 탐사하다가 메가트론과 만났기 때문. 그렇지 않았다면 [[오토봇]]과 얽히기도, [[디셉티콘]]에게 쫓기지도 않았을거다.
- 샬롯 링링 . . . . 1회 일치
아니면 위에서 서술했듯 과자 같은 물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일 수도 있다. 그럼 부하를 먹은 것이 설명이 된다. 그녀의 성격이 아무리 잔인한 편이라 해도, 부하를 아무렇지 않게 먹어버린다는 연출은 다소 과한 점이 있었기도 하고. 그녀가 '빅 맘'이라고 불리는 이유 등을 근거로 들어 그녀의 능력은 [wiki:"골드 익스피리언스" 물체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많다.
- 서도영 . . . . 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 서림 . . . . 1회 일치
* 서림산 서림장군 전설 : 충남 천안에 서림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서림장군'이라는 장군이 있었다는 곳이라 한다. 이를 서림의 이름과 연관하여 보기도 하는데, 단순히 이름의 일치에 불과한 전설이라 그리 확실한 건 아니다.[[http://www.oneclick.or.kr/bbs/boardView.do?id=81&bIdx=60757&page=1&menuId=134&bc=0 (참조)]]
- 서부개척시대 . . . . 1회 일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는 미국-멕시코 전쟁 등을 전후하여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서부로 이주하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 멕시코인 등과 충돌하며 미국의 영토로 확정해 나갔던 시기를 뜻한다.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미국인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시대지만, 원주민에게는 백인들의 대침략이 벌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 서수민 . . . . 1회 일치
하지만 [[시청률]] 추이로만 보면 서수민이 PD를 맡은 기간의 순위가 개콘의 최전성기인 2003~2004년을 제외한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실제 시청률은 조금 높아진 수준이지만 그 동안 [[지상파]] 시청률이 하락하다 보니 시청률 순위만으로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CP를 맡은 이후 [[해피 선데이]]도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명한]] PD처럼 매니악한 팬들 성향에 맞지 않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 서수민이 2012년 11월에 승진할 수 있었던 근원이 개그 콘서트 덕분이기도 했고.--그리고 말아먹은 근원까지 제공해버렸지..--
- 서영무 . . . . 1회 일치
삼성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구에 1급 차량 정비공장을 차려 운영하였다. [[1984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은 조건으로 스카웃하여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게 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는 이에 맞서 그 해 [[4월 13일]] 서영무를 자문역 역할인 관리 이사로 영입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을 맡기기도 하였다.
- 서울대공원 구미호 . . . . 1회 일치
* 구미호는 할머니로 둔갑해서 다니고 있다. 같은 시기에 '할머니 귀신' 이야기도 나돈다는 기사가 있는데, 둔갑을 한다는 이야기로 보아 할머니 귀신도 서울대공원 구미호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 서울특별시장 . . . . 1회 일치
서울은 1946년「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하여,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중앙정부 내무부 소속으로 들어갔으며, 특별시로 승격하였다. 그와 동시에 경성부윤(府尹)이 서울시장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서울특별시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서유정(배우) . . . . 1회 일치
||고향||[[경기도]] [[양평군]]||
- 서정환 . . . . 1회 일치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 서지석(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 ||<(> [[1981년]] [[9월 9일]] ([age(1981-09-09)]세), [[경기도]] [[안성시]] ||
- 선풍기 . . . . 1회 일치
날개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으면 날개가 박살나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도 한다.
- 성격 . . . . 1회 일치
창작물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현대로 올수록 사건이 자연의 변화가 아닌 인물간의 상호작용(주로 대립과 분쟁)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캐릭터가 확고할수록 줄거리를 풀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캐릭터가 부정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며, 장르에 따라 등장인물들에게 주로 권장(?)되는 성격이 달라진다.
- 성세현 . . . . 1회 일치
원래는 세컨드를 맡았지만 스킵 [[김창민]]과 서드 [[김민찬(컬링)|김민찬]]이 군복무로 팀을 이탈하면서 2시즌간 스킵을 맡기도 했다. 비록 이 동안 한국선수권에서는 우승하진 못했지만, 2015-2016 시즌에는 전국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김창민이 복귀한 후로는 서드를 맡았다.
- 세미스텔스 . . . . 1회 일치
기존의 전투기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여 세미스텔스기가 되기도 한다.
- 세조 . . . . 1회 일치
재위 기간동안 민생을 돌보는 정치를 했다며 옹호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의 치세에 일어난 각종 옥사나 반란(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은 조선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고, 또한 이러한 변란의 여파로 인해 세종 조에 개척한 북방 영토 중 일부(4군 지역)를 관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정통성이 완벽했던 조카를 상대로 찬탈했다는 사실은 정치와 관계없던 민초들에게도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여 세조와 관계된 야사나 민담은 좋은 게 없을 정도이다.
- 소지섭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인천광역시]]
- 소학 . . . . 1회 일치
소학이라고 해서 어린이 전용인 것은 아니고,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만큼 유교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라이프 스타일 지도서이다. 굉장히 꼼꼼하고 짜증날 정도로 상세하기도 하다.(…)
- 손정혜 . . . . 1회 일치
[[1982년]], [[충청북도]] [[충주시]] 출생. 30대의 젊은 여성 변호사로 현재 [[이혼]], [[가정]][[법률]]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속은 비엔아이 법률사무소.[* 임방글, 백성문 변호사도 이 소속이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해 47회 사법고시를 1차와 2차를 한꺼번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이다.(2차는 재수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 http://yurajun.tistory.com/3740 ] 근거 링크 혹은 확인 요망). 37회 사법연수원 출신이며, <청년변호사협회>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 송재호(배우) . . . . 1회 일치
* [[이중간첩(영화)|이중간첩]] - 송경만[* 실제 이름은 "기형철"이며, 남파간첩의 총책으로 나온다. [[드보크]] 정리작업을 하다 발각되어 안기부에 끌려가 취조당했고, 극중에서 이중간첩이던 한석규가 무자비하게 고문하기도 한다. 극중 결국 벽에 박힌 대못을 들이받고 혼수상태에 빠진 후, 숨을 거운다.]
- 송정현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대구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유독 [[FA컵 (대한민국)|FA컵]]에서 좋은 기량을 발휘해 'FA컵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이 '송'씨인 것에 착안하여 '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 쉬르스트레밍 . . . . 1회 일치
세계 최악의 냄새를 가진 식품으로 악명이 높다. 또 통조림이 밀폐된 상태로 발효가 되기 때문에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해서 통조림 깡통이 볼록해진 상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터지기도 쉽다.''' 냄새나는데 터지기까지 하면 정말로 최악(…).
- 쉬마그 . . . . 1회 일치
[[인터넷]] 등지에서는 [[테러리스트]]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4화 . . . . 1회 일치
알렉스와 카라는 이 사건의 수상함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카라는 카터를 방치해두고 있었다는걸 깨닫는다. 카터는 슈퍼걸을 만난 경험을 그랜트에게 열렬하게 말하는데, 그랜트는 카라가 방치했다는걸 알고 다시는 안 맡길 것이라고 단언한다.
- 슈퍼걸(드라마)/1시즌 6화 . . . . 1회 일치
루시의 아버지 레인 장군이 DEO에 찾아와서, 슈퍼걸에게 미군에서 개발한 신형 병기와 싸울 것을 요청한다. 루시는 슈퍼걸에게 강제집행서를 내밀기도 한다. 모로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로봇을 공개하는데, 그것은 레드 토네이도였다.
- 스위스 방공호 . . . . 1회 일치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이므로, 대규모 방공호에는 방사능 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시설, 취사 시설, 대기-식수 정화 장치, 숙박용 침대, 그 밖에 침대와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갖추어져 있다. 좀 특이한 시설로는 비상시에 화장실 대용으로 쓰기 위한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양동이, 그리고 전기와 석유의 공급이 끊겼을 때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전거'''까지 갖추어져 있기도 하다.[[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8/08/2007080800710.html 참조]]
- 스캘러왜그 . . . . 1회 일치
미국사에서는 [[남북전쟁]] 직후 나타난 남부 출신 [[공화당]]원을 뜻하기도 한다. 당시 [[민주당]]이 강세였던 남부에서 배신자 취급을 당했다고.
- 스타 연구소 . . . . 1회 일치
[[틴 타이탄스]]의 [[사이보그(DC 코믹스)|사이보그]] 스토리에 연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스타 연구소 직원이었고, 아들이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연구소에서 사이보그로 만든 것. 이 설정은 New 52에서도 유지되었다.
- 스틸오션 . . . . 1회 일치
로비의 전체채팅방 놈들이 영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떠든다. 가끔 싸우기도 한다.
- 스파이더맨 . . . . 1회 일치
언듯 보면 호리호리한 체격이라 그리 강할 것 같지 않지만, 초인적인 [[괴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헐크, 씽 등의 파워맨 스타일에 비하면 약간 뒤지는 걸로 나오기도 한다. 또한 스피드와 반사신경 등이 놀라운 수준이다.
- 시계 . . . . 1회 일치
[[아이작 뉴턴]]은 달걀을 삶으려다가 이걸 삶기도 했다.
- 시티락 . . . . 1회 일치
상체는 [[새]], 하체는 [[소]]를 닮은 [[괴물]]. 과거 [[새비지 랜드]](Savage Land)에서 폴 피플(Fall people)에게 숭배받기도 했다. 이후의 시기에 빙하가 녹아 깨어나고, 조사차 나타난 [[헐크]]와 대면했다.
- 식극의 소마/161화 . . . . 1회 일치
* 에이시는 엄청난 빠르기로 지시를 내리는데, 이미 시노미야의 가게에서 실전으로 훈련된 소마는 그 지시가 다 내려지기도 전에 척척 일을 해낸다
- 식극의 소마/169화 . . . . 1회 일치
* 하지만 소마는 자기도 죠이치로에게 배운 솜씨라며 유키히라가의 맛을 본다면 뭔가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설득한다.
- 식극의 소마/188화 . . . . 1회 일치
* 실라와 베르타는 먹기도 전에 향기만으로 매혹된다.
- 식극의 소마/190화 . . . . 1회 일치
*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소마의 설명. 그것은 "황벽나무 벌꿀"이다. 이름처럼 황벽나무라는 나무에서만 채취되는 벌꿀. 산뜻한 단맛과 희미한 쓴맛이 나는 것이 특징. 생육환경에 따라 채취 확률이 매우 낮아지기도 해도 자연에선 희귀한 소재이다.
- 식극의 소마/195화 . . . . 1회 일치
어쨌든 이 셋이 쿄쿠세이 기숙사의 유망주 삼인이자 여학생들의 인기도도 가장 높은 삼인조. 셋은 일과가 끝나면 따로 모여 식극을 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전반적으론 죠이치로가 언제나 우위.
- 식극의 소마/212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심사의 시작. 안이 젓가락을 들자 부하들도 따라 시식한다. 우선은 면부터. 일반적으로 9할 소바는 찰기가 부족해 퍼석거리는 식감이기도 한데 네네의 소바는 매우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사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메밀의 향. 이들이 먹는 모습에 반역자들도 침을 삼키며 저녁은 꼭 소바로 먹겠다고 다짐할 정도다.
- 식극의 소마/213화 . . . . 1회 일치
소마는 어려서부터 컵라면 종류를 좋아했다. 그 자체로 기능성을 가진데다 여러가지 맛과 소재의 바리에이션도 탁월한 요리였다. 소마는 이걸 다른 요리에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으로 기성 컵라면이나 컵 야키소바를 다양하게 어레인지하는 시도를 했었다. 기본적으로 컵 야키소바의 구성은 면, 기름, 조미료 혹은 양념이다. 소마에게 인상을 남겼던 컵 야키소바 중에는 면 자체에 소스를 가미해서 맛을 강하게 한 것도 있었고, 기름을 별첨해서 구운 풍미를 내는 종류도 있었다. 또 소마는 나름대로 조리법을 바꾼다고 컵야키소바를 진짜로 구워보기도 했는데, 이것 자체는 "그냥 야키소바"에 지나지 않았지만 좋은 참고가 됐다.
- 식극의 소마/223화 . . . . 1회 일치
박식한 [[아라토 히사코]]는 그가 쓰는 다기도 눈여겨 본다. 우선 찻주전자는 물맛을 부드럽게 하는 남부칠기. 이걸로 끓인 물을 다기에 옮겨 적절한 온도로 식히고 부드럽게 찻잎을 뜸들여 맛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낸다. 결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솜씨다.
- 식극의 소마/225화 . . . . 1회 일치
미마사카의 비꼬기를 재하더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얕잡아 보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반역자팀에선 잘난척이라고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막상 권유를 받은 미마사카는 망설이지 않고 이사나키리를 받아든다.
- 식극의 소마/226화 . . . . 1회 일치
카와시마는 이 초밥 밥이야 말로 이 절묘한 맛의 바탕이라고 지목한다. 미마사카의 초밥 간에는 식초 특유의 모난 맛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맛에 평범한 밥이 아님을 직감하는데. 미마사카는 친절하게 그 비결을 스스로 밝혔다. "붉은 식초". 일반적인 초밥용 식초는 쌀, 밀, 콩 등을 혼합 발효해 만들지만 붉은 식초는 장기 숙성한 "지개미"를 이용한다. 본래 에도 시대의 초밥에는 이 붉은 식초가 필수품이었지만, 제조에 5, 6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고급품이 된 것. 그러나 희소한 만큼 그 맛은 지금 확인한 대로다. 물론 그건 사이토의 비결이기도 했다.
- 식극의 소마/233화 . . . . 1회 일치
후지사메에서 익힌 시구레니를 들고 나왔다. 당시 타쿠미의 열정을 높이 산 주인장이 넌지시 그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장이 언급한 "바늘썰기"를 눈부신 솜씨로 시연해서 극찬을 받고 시구레니를 이용한 피자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여서 기대도를 높였다. 하지만 동생인 이사미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있는데다 에이잔이 또 음모를 꾸미는 것 같아서 전망이 어둡다.
- 식극의 소마/238화 . . . . 1회 일치
* 모모의 타르트가 압도적이지만 소마는 그녀를 상대하는 [[타도코로 메구미]]를 걱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노력한 것들, [[시노미야 코지로]]에게 배운걸 전부 쏟아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데. 메구미는 이미 그런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시노미야의 코치를 받은 그녀는 마치 투사와 같은 자세. 시노미야의 가르침을 되뇌이고 있다.
- 식극의 소마/239화 . . . . 1회 일치
* [[시노미야 코지로]]의 가르침을 되세기며 파이팅하는 [[타도코로 메구미]]. 그런데 내놓은 요리는 매우 소박한 도라야끼.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안에 백앙금과 함께 깍뚝썰기된 사과가 들어가 있다. 싱싱한 사과의 향기가 강점이지만 [[아카네가쿠보 모모]]가 선보인 타르트에 비하면 외견도 향기도 미치지 못한다. 샤름은 모모보다 명백히 밑이라고 냉정히 평하는데 이스트와르는 도라야끼라는 과자 자체를 꽤 선호하는 모양. 좋아라 맛을 보는데 생각이상으로 강렬한 리액션이 따라온다.
- 신귀식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구리시]]
- 신년선물연하장엽서 . . . . 1회 일치
1949년 교토에 거주하는 민간인 하야시 쇼지(林正治, 당시 42세)가 "연하장이 전쟁 전처럼 부활한다면 좋겠다. 상품추첨을 더하면 연하장을 활발하게 보내서 서로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좌절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연하장에 상품추첨을 더하고, 요금에는 기부금을 추가하여 사회복지에 공헌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하야시 쇼지는 스스로 견본 엽서와 선전용 포스터를 만들어서, 우정성(郵政省)에 가지고 갔으며, 우정성 내에서 회의를 거쳐 채용이 결정되었다. 우정성에서 발매한 이 연하장 엽서는 매우 크게 히트하여 수십년동안 이어지는 전통 상품이 되었다.
- 신동주(야구) . . . . 1회 일치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 신영식(만화가) . . . . 1회 일치
이후 짱뚱이 시리즈 줄거리를 쓴 아내인 오진희 작가가 글을 쓰고 장경혜 작가가 그림을 그린 짱뚱이의 사계절이라는 그림책이 2014년에 나오기도 했으나 그다지 팔리지 않아서 묻혀졌다.
- 신적강하 . . . . 1회 일치
이와는 극적으로 대조적인 사례가 [[명나라]]이다. 명나라의 경우는 황족에 대한 대우가 비교적 후하고 황족을 정리해고하는 제도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약 200여년간 황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낳는데, 이들은 모두 국가 재정으로 후한 복지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 결과 너무 많이 불어난 황족들 탓에 말기에는 재정 압박이 상당히 심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황족들은 거의 다 복지제도에만 의존하고, 반란을 명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황족의 관직 진출 등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니트족]]으로 살고 있어 사회 문제가 심각했는데 명나라는 법률적으로 이들에 대한 혜택을 줄이기도 어려웠다.
- 신쥬 . . . . 1회 일치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는 뜻으로 함께 죽는다는 것인데, 개념을 잘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대부분 불륜이라던가 근친상간, 신분차(가난한 무사와 기녀라던가...) 등으로 인한 자살이 많았고, 개중엔 짝사랑하던 상대를 죽인 다음 자기도 죽는 식의 막장스런 행패도 종종 일어났다.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해병대 창설의 계기도 신현준의 건의에서 시작됐는데, 1948년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직후 신현준은 해군본부에 "육전대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 신현준의 보고내용에 주목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해군본부가 해병대 창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 십자군 전쟁 . . . . 1회 일치
당시 비잔티움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망할 두카스 놈들때문에~~[[셀주크 술탄국]]한테 박살난 이후에 폰토스일대의 거점 일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상황에서 남이탈리아의 노르만 정복자 [[로베르 기스카르]]가 아들인 [[보에몽]]을 데리고 비잔티움을 두번이나 침략하기도 했다. 당시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1세]]가 아풀리아지방에 지방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해 기스카르의 병력을 둘로 나뉜뒤 둘로 나뉜 병력중 비잔티움 원정군을 지휘하던 보에몽의 군대를 라리사에서 격파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기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다시한번 보에몽을 데리고 원정을 나서게 된다. 알렉시오스에게는 다행히도, 악천후를 뜷고 그리스에 도달한 기스카르는 역병으로 인해서 케팔로니아 섬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이자 그리스일대 기스카르의 정복지를 상속받은 보에몽도 역병으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어렵지않게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 쌍둥이 . . . . 1회 일치
지역마다 쌍둥이에 대한 취급은 조금씩 달랐는데, 대체로 농경사회에서는 사람 머릿수가 곧 노동력이었기에 쌍둥이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나쁘지 않았으나, 예외로 일본의 경우에는 쌍둥이를 '짐승이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것과 같다'고 하여 터부시하기도 했다.
- 씽(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 [[헐크]]와는 [[라이벌]] 기믹인지 여러 차례 대결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도 헐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재현된다. 다만 대체로 헐크가 더 [[강캐]]라서 결국 발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의 묘사를 보면, 헐크는 괴물 취급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는다. 2006년에 나온 애니판에선 똑같은 괴물이니 잘 지내보자는 싱의 말에, 배너 박사가 "당신은 영웅이지만 [[헐크]]는 괴물일 뿐이오."라고 답했다.] 헐크 말고도 다른 괴력 캐릭터에 비하면 힘에 있어서는 뒤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만나면 시험 삼아 처발리고 보는 신세가...(…)
- 아라포 . . . . 1회 일치
2007년 무렵 이 세대의 특징으로서 남녀고용균등법 하에서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을 수 있어, 커리어 우먼이나 여성 벤처 기업을 경영하기도 하고, 결혼과 직업 선택이 이전보다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여성이 많다고 여겨진다.
- 아멜리아 윌 테슬라 세일룬 . . . . 1회 일치
원작 소설에서는 비교적 출연이 적은데, 1부의 중반에서 후반 정도 까지 [[제르가디스]]와 함께 리나, 가우리와 행동을 함께 했다. 회복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바스퍼링크, [[라틸트]] 같은 정령 마법에도 능숙하여 뛰어난 대마족 전투원으로서 활약. 피브리조의 음모가 구체화된 시점에서는 리나와 헤어져서 제르가디스와 독자적으로 [[사일라그]]를 탐색하기도 한다.
- 아웃워드 작전 . . . . 1회 일치
당시 영국은 독일의 폭격을 방해하기 위해 [[방공기구]]를 띄우고 있었다. 가끔씩 방공기구를 매단 케이블이 끊기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 방공기구가 자기 멋대로 날아다니다가 전선과 같은 시설물에 걸려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 아워맨 . . . . 1회 일치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멤버이기도 했으며 2대 아워맨의 아버지.
- 악당 . . . . 1회 일치
무능력 자체가 해악이 되는 유형. 무능한 짓을 계속할 경우 아랫사람들의 고생이 계속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능해서든 게을러서든 아무것도 안 할 경우 그것 자체가 무능이 되므로 오도가도 못한다. 나중에 가면 본인의 잘못을 깨닫거나, 혹은 그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자폭하기도 한다. 가급적 자폭 엔딩은 완벽'했던' 최종보스에게 권장된다.
- 안드로니코스 1세 . . . . 1회 일치
그는 마누엘 1세와 사촌의 관계로, 그의 아버지는 [[알렉시오스 1세]]의 아들인 이사키오스이다. 그는 젊은 시절 풍운아로 유명했는데, 대표적으로 그는 마누엘의 조카딸인 유도키아 콤네나를 건드렸고, 마누엘의 명령으로 킬리키아를 압박할때 예루살렘 왕 보두앵 3세의 동생이자 마누엘 황제의 처제인 필리파와 또 스캔들을 내 마누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마누엘이 그를 소환하려하자, 그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왕인 아모리에게 의탁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사고를 치는데, 보두앵 3세의 미망인이자 그의 친척인 테오도르 콤네나와 또다시 스캔들을 터뜨린것이다. 이렇게 되자 안드로니코스는 마누엘의 분노를 피해 룸 술탄국으로 도망치는데, 거기서 그는 아나톨리아일대에 영지를 하사받고, 인근에 그리스인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짓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총대주교로부터 파문까지 받게 되어버린다.
- 암 . . . . 1회 일치
* 오목한 것을 뜻하기도 한다.(암나사)
- 암살교실/번외편 3화 . . . . 1회 일치
* 호타루는 자기도 엄마를 구하러 가겠다며 식칼을 꺼내든다.
- 애니 일본어 . . . . 1회 일치
* 배틀물 남캐의 경우, 역시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거친 말투를 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배틀물에서 대화 상대방은 대개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이거나, 배틀물 남캐 자신이 폭력에 가까운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을 강조하므로 이러한 말투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말투를 함부로 사용하면 매우 무례하게 보인다. 고 [[은혼]]의 작가 소라치 선생이 단행본에 쓰기도 했다.
- 야규 쥬베에 미츠요시 . . . . 1회 일치
야규 쥬베에는 과거부터 다양한 강담, 군담에서 [[검호]]로서 활약하며, 각종 전기소설 작가에게 사랑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탓에 별별 소설에서 별별 이상한 일도 많이 당하지만(…).
- 야마우바 . . . . 1회 일치
노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흔히 키가 크고, 피부는 투명한 백색이며 눈빛이 날카롭고 귀까지 찟어진 입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잡아 먹거나 만난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다고 하는데, 복을 주는 온화한 산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 야마토 나데시코 . . . . 1회 일치
나데시코(撫子)는 패랭이꽃이라는 뜻으로, 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야마토 나데시코는 이 꽃의 별명이며, 고래에 일본 여성을 이 꽃에 빗대어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다.
- 야마토 운수 . . . . 1회 일치
배달원들은 [[자전거]]에 [[리어카]]를 연결해서 만든 배달용 자전거를 사용하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다.
- 야설록 . . . . 1회 일치
| 주요 작품 = 《[[불꽃처럼 나비처럼]]》<ref>소설《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영화《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원작이기도 하다.</ref><ref>{{뉴스 인용 |제목 = '소설에나 나올 법한' 명성황후의 뜨거운 사랑 「 불꽃처럼 나비처럼」1, 2 (야설록/형설라이프) |url = http://www.unionpress.co.kr/detail.php?number=40521&thread=01r04r02r02 |출판사 = 유니온프레스 |저자 = 방송연예팀 기자 |쪽 = |날짜 = 2009-09-03 |확인날짜 = 2009-09-05}}</ref>
- 양진성(배우) . . . . 1회 일치
[[2010년]] 영화 웨딩 드레스를 통해 배우 활동을 시작한 양진성은 2011년부터는 주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2014년]] [[TV조선]] [[주말 드라마]] '백년의 신부'에서 [[1인 다역|1인 2역]]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109&aid=0002721159|관련 기사]]^^
- 양키 . . . . 1회 일치
1980년대 당시의 양키 패션은 특이한 패션 센스가 유행하였다. 양키 남자는 앞머리를 크게 부풀리고 파마를 한 [[리젠트 헤어]]를 하고, 학생복을 입지만 '도캉'이나 '본탄'이라 부르는 폭이 넓게 개조한 바지를 입는다. 화려한 셔츠나 샌들을 입기도 했다. 양키 여자는 1970년대 ‘스케반’이라 불리던 시대의 연장으로서, 교복 사복을 불문하고 꽉 죄이는 롱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 어쌔신 크리드 III/등장인물 . . . . 1회 일치
영국 장교. 상인에게서 보호비를 뜯고, 도둑질도 좀 해보고, 훔친 물건도 팔아보고, 원주민을 붙잡아서 노예로 팔아치우기도 하는 양반. 개인적인 조수로 "절단마"[* 무언가를 자르기 좋아해서 붙은 별명. 주로 인간의 신체를 자르는걸 좋아했다.]를 데리고 있다. 보호비를 뜯어내기 위해 처치를 납치했다. 이후 모호크의 협조가 필요했던 헤이덤 일당에게 붙잡아 두었던 노예들을 모두 털리고 처치의 손에 죽는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 . . . . 1회 일치
>이곳이 큰 의미를 무언가가 되었다는걸 네가 알거라고 믿는다. 이 공동체는 이 국가가 되려는 곳이 어떻게 될 수 있는가의 예시가 된단다. 하지만 커지고 강해질수록, 부서지기 쉽고 지키기도 어렵게 되지. 이 어린 나라를 탄생시려키는 네 친구들이 이 진실을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너의 변함없는 고집과 정직함이 너에게 너무 큰 책임을 지게 했단다. 하지만 넌 해낼 수 있단다. 늙은이에게 모든걸 잃지 않았다는 희망을 줘서 고맙다. 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묻어줬으면 좋겠구나. 세상 다른곳 보다 그곳에 묻히고 싶어.
- 에릭 (가수) . . . . 1회 일치
에릭(Eric Moon, 문정혁)은 대구에서 1남 2녀중 막내로 1979년 2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바로 몇 개월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를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스팅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SM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다. 그는 연습생이었을 때 [[앤디 (가수)|앤디]]와 같이 [[S.E.S.]] 1집 수록곡인 'I'm your girl' 랩 피쳐링을 하였으며, [[S.E.S.]]와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하였다. 에릭은 [[1998년]]에 [[신화 (음악 그룹)|신화]]에서 영어 랩을 담당하는 이국적인 외모 이미지로 데뷔를 하였다.
- 에이스 컴뱃 5 : 언성 워 . . . . 1회 일치
유크토바니아군 정보 장교. 바틀렛의 애인이기도 하다.
- 엔포서스 . . . . 1회 일치
주로 3인조 악당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오리지널 멤버는 팬시 댄, 몬타나, 옥스. [[빅맨]]과 함께 등장했다. 이후 옥스II, 햄머 해리슨과 스테이크 마스톤이 합류하기도 했다.
- 역행 . . . . 1회 일치
대개 미래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최적의 행동을 취하게 되며, 이러한 어드벤티지로 주인공은 대활약을 하거나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하지만 역행의 결과가 언제나 순풍만범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일부 작품에서는 역행 탓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 연정훈 . . . . 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광명시]]
- 예종 . . . . 1회 일치
그의 치세에는 세조의 쿠데타에 동참해 권신이 된 구공신 세력들과,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세조가 말년에 총애한 신공신파의 대립이 첨예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젊은 나이에 크게 출세했고 혈기도 왕성했던 [[남이]]가 제일 위협적이었는데, 이에 예종은 처음엔 남이의 벼슬을 깎아 견제했고 남이가 이에 불만을 품어 구공신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정황이 포착되자 남이를 역모 혐의로 처단하고 이어서 유자광을 제외한 신공신 세력을 일소하기에 이른다.
- 오니요메 . . . . 1회 일치
* 일본 소주 브랜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 오대석 . . . . 1회 일치
1982년 삼성의 원년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도 [[김재박]] 다음 가는 유격수 2인자 [[함학수]],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 [[장태수(1957)|장태수]], 포철의 주전 유격수 [[서정환]]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며[* [[함학수]]는 타격을 살리기 위해 1루수로 기용되었고, 장태수는 빠른 발을 살려 외야수로 전향해 주전 중견수로 기용되었고, [[서정환]]은 경쟁에 밀려 백업 내야수로 출전했다. 그리고 1년 뒤 해태로 트레이드되며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史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준 국가대표 수준이던 삼성의 위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삼성의 대표 유격수로 활약했다. 1982년 6월 12일에는 구덕 삼미전에서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고, 그 해 유격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류중일]]이 입단하기 전까지 몇 년간 유격수를 거의 혼자서 도맡다시피 해서 였는지 성적에 기복이 있었다. ~~[[서정환|아무래도 괜히 보낸 거 아닌가 싶다.]]~~
- 오드아이 . . . . 1회 일치
좌우 [[눈동자]]의 색깔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금은요동'(金銀妖瞳)이라는 일본식 표현을 쓸 때도 있다. 판타지에서 간혹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으로 간혹 쓰이며, 그 특이성 때문에 ~~중2병~~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 선망하기도 한다.
- 오보카타 하루코 . . . . 1회 일치
STAP 세포의 정체는 다른 기관에서 연구하던 'ES 세포'였던 것이 드러나, 절도 등의 용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 오석락 . . . . 1회 일치
1934년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난 오석락은 [[김천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김덕주]] 전 대법원장, [[최재호 (법조인)|최재호]] 대법관, [[이재성 (법조인)|이재성]] 대법관, [[김진우 (법조인)|김진우]] 헌법재판관, [[김태경 (법조인)|김태경]] 경기도지사, 김동환 변호사 등과 함께 30명을 선발한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에 임용되었다.
- 오석산 . . . . 1회 일치
불로장수, 건강증진에 효험이 있는 약이라고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복용하면 발얼을 하여, 열을 발신시키기 위해서 돌아다니며 '행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차가운 물을 먹어서 열을 식히기도 했는데, 그래서 이를 한식산(寒食散)이라고 했다.
- 오세정 (교수) . . . . 1회 일치
1984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되었다. 이후 국제이론물리학센터 연구원과 미국 미시간대 객원 연구원, 일본 도쿄대 초빙교수 등을 두루 역임하며, 1995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기획연구실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로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이사,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민의당 비례대표 2번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날짜=2016-03-23|뉴스=포커스뉴스|확인날짜=2016-03-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712184756/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보존날짜=2016-07-12|깨진링크=예}}</ref>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 오시만 . . . . 1회 일치
그의 집안은 당색으로는 [[남인]]의 당원이었으나, 그의 부인은 [[서인]] [[한준겸]]의 4대손이었고, 그의 숙부이자 양아버지인 [[오정위]]는 자신의 서녀를 [[서인]] 당원인 [[김환]]의 첩으로 출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경신환국]] 이후 [[허새의 옥사]]로 [[서인]]과는 원수가 된다.
- 오재희 . . . . 1회 일치
1991년 2월 19일,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일 대사에 임명되었다. 오재희 대사의 기용은 그의 직업외교관 경력으로 미루어 자연스런 인사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고 [[노재봉]] 총리의 매형, [[이상옥]]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외무부 장관]]과는 대학 동기 사이라는 학연, 혈연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었다. 성격이 꼼꼼하고 일처리가 치밀하며 빈틈없어 부하 직원들로부터 오검사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첫 주일 대사이다.<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2190032920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2-19&officeId=00032&pageNo=1&printNo=13971&publishType=00020 | 제목 =大使7명 이동 | 날짜 = 1991-02-19 | 출판사 = 경향신문}}</ref>
- 오정태 (희극배우) . . . . 1회 일치
[[동신대학교|동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중퇴하였으며, 연극 《택시 택시》로 데뷔하였고 [[2006년]] [[MBC]] 15기 공채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했다.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 열성 팬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구출을 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ref>김은주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303122527&cp=nv ‘태연’ 구한 오정태, “국민 영웅이요? 진행자로서 할 일 했을 뿐”], 《쿠키뉴스》, 2011년 4월 18일 작성</ref>
- 오준영 (1955년) . . . . 1회 일치
20세 시절이던 [[1974년]]에 [[가수]]이자 [[영화 배우|영화배우]] 겸 [[사회자|방송MC]]인 [[임성훈 (방송인)|임성훈]]의 《시골길》이라는 곡을 써서 [[작사가]]와 [[작곡가]]로 데뷔하였고 [[1978년]] 《오준영 1집》을 발표하여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였으며 [[1983년]] [[영화]] 《사랑만들기》로 [[영화 음악]][[영화 감독|감독]] 데뷔했고 [[1988년]] [[김연숙]]의 《초연》([[이호섭]] 작사)을 작곡 하였고 한때는 [[템페스트 (음악 그룹)|템페스트]]의 《동그란 얼굴》, 《가을비》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 오중기 . . . . 1회 일치
2017년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구미시청을 방문해 [[박사모]]의 습격을 받을 때 이를 온몸으로 방어하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는데, 이 장면이 유튜브 생중계로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s://youtu.be/eqhKXSYot1w|영상]]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경북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 오지호(배우) . . . . 1회 일치
|| 2004년 || [[KBS 연기대상]][* 드라마에서 불렀던 [[김종국]]의 한 남자를 다시 부르는 특별무대를 가지기도 하였다.] || 남자 조연상 || [[두번째 프러포즈]] ||
- 오츠보네 . . . . 1회 일치
주로 '고참 OL'을 싸잡아서 말하는 표현이지만, 그리 좋지 못한 이미지가 깔려있기도 하다. 안 좋은 뜻으로 쓰일 때는 대략 '독신 고참 OL로서, 심술을 부리고 잔소리가 많은 노처녀'라는 이미지가 있다.
- 오프라인 . . . . 1회 일치
본래 온라인 상태가 당연한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하여, 온라인 상태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매체를 만들 때 제목에 '오프라인'이라는 말을 달기도 한다.
- 오하라이 . . . . 1회 일치
본래 신도의 의식의 하나지만, 민간에서는 나쁜 영적 존재에 홀리거나 했을 때, 영적 존재를 퇴치하고 쫓아내는 의식을 포괄하여 말하기도 한다.
- 온주완 . . . . 1회 일치
* 2017년 3월 19일 ~ 3월 26일에 방송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복면가왕]]에 [[쓴 맛을 보여주마 한약도령]]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1라운드 상대인 [[완치요정 닥터피쉬]]에게 승리했으며 2라운드 상대인 [[2017 미스코리아 진~달래]]에게 밀렸다. 연기와 노래를 같이 하면 부담이 덜 되는데 노래만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으며 원래 꿈은 무용수였으나 춤도 추고 노래도 할 수 있고 연기도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 배우로 전향했다고 밝혔다.
- 와일드캣 . . . . 1회 일치
[[권투]] 선수 출신으로 뛰어난 격투가. 특별한 [[초능력]]은 없다. 전신 검은 타이츠와 [[고양이]] 모양의 큐트한(…) 후드를 쓰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블랙 카나리]](2대)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회 일치
일부는 여기서 갑자기 [[설정놀음]]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공산주의(2)의 설정에서 '''자본주의를 거쳐서''' 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소련은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통하여 소련체계가 공산주의임을 부정하는 설정놀음을 하는 것이다.
- 왕당파 . . . . 1회 일치
[[국왕]](國王)에게 충성을 바치고, 왕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 당파. 왕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의미로서, 근왕(勤王)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왕자 . . . . 1회 일치
왕의 아들. 보통은 정실 소생이나 후궁 소생을 가리지 않고 분류하지만, 문화적으로 적서(嫡庶) 구분이 강한 경우에는 정실 소생만을 왕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 왝더독/줄거리 . . . . 1회 일치
모스는 알바니아에 위치한 [[이슬람]]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숨기고 있고, [[캐나다]] 국경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각본을 짜낸다. 그리고는 이 일을 돕기 위해 동료 예술가인 패드 킹(데니스 리어리), 조니 딘(윌리 넬슨)을 부른다.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알바니아 소녀가 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는 영상[* 소녀는 섭외한 배우. 고양이와 배경은 [[컴퓨터 그래픽|CG]].]도 찍어 뉴스에 올리고, 미국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이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생방송 뉴스를 조작해낸다. 이 와중에 전쟁이 없다는걸 눈치챈 [[CIA]]에게 잡혀가기도 하지만 브린의 현란한 말빨로 풀려난다.
- 요괴:가면라이더 . . . . 1회 일치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다양한 요술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높이 뛰어올라 하늘에서 떨어지며 날아차기를 날리는걸 봤다는 목격담이 많아, 대체로 점프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불을 내뿜거나, 전기를 내뿜는 등.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을 법한 능력 이야기도 있는 편이다.
- 요괴:닭둘기 . . . . 1회 일치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며, 주변을 지나가면 온갖 먼지를 흩뿌려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또 몸에 붙어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로 각종 질병을 퍼트리기도 하여, 요사하고 무서운 흉조(凶鳥)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요괴:조카몬 . . . . 1회 일치
*부모부르기:조카몬은 궁지에 처할때 자신의 부모를 부른다. 그리고 조카몬의 부모는 높은 확률로 피해자에게 '이거 얼마야?'나 '애들이 갖고 노는거 가지고 왜그러냐'시전한다. 가끔은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걸 왜 니가 사냐'를 시전해 피해자를 매우 빡치게 만들기도 한다.
- 요시다 세이지 . . . . 1회 일치
1992년 방한하여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사죄하기도 했다.[[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747454_19402.html (MBC뉴스)]]
- 욕창 . . . . 1회 일치
초기 단계에서는 압박을 없애면 자연 치유가 된다. 상처 부위에는 드레싱을 하며,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소독한다. 깊은 욕창은 치료가 어려워서 수술을 하기도 한다. 감염이 일어나면 [[항생제]]를 투입한다.
- 용융금속형 . . . . 1회 일치
사인은 의학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녹인 금속의 온도 때문에 부은 부위에 중화상을 입게 되고, 목구멍에 부으면 금속의 연기로 호흡기가 파괴되거나, [[금속]]이 굳어지면서 기도를 막게 되어 [[끔살]] 당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매우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 우라센케 . . . . 1회 일치
여러 다도 유파 가운데서도 명성이 높다. 특히 우라센케는 16대 센 겐지츠(千玄室)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의 차녀 마사코 내친왕(容子内親王)과 결혼하여, 황족과 인척 관계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 황족, 일본을 [[국빈]]들이 와서 다도를 배우기도 한다.
- 우찬양 . . . . 1회 일치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치른 4경기 중 아르헨티나전을 제외하고 3경기에 출전하였고 포르투갈전에서는 [[이상헌]]의 득점을 돕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팬들에게나 선수 본인에게나 만족스러울 대회는 아니었지 싶다.
- 운제부인 . . . . 1회 일치
운제부인은 [[신라]]의 2대 군주 [[남해 차차웅]]의 부인으로 아루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해왕과의 사이에서 [[유리 이사금]]과 [[아효부인]]을 낳았다. 사후에는 신격화되어 무속 신앙의 주신 중 하나가 되었다. [[운제산]] 또는 [[선도산]]에 산다 해서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로 불리며, [[고려|고려시대]] 영일현(지금의 [[포항시]])의 서쪽에 운제산성모(雲梯山聖母)가 있는데 가뭄 때에 여기에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하였다. 운제산은 현재 [[포항시]] 남구 오천읍과 대송면 사이에 있다.
- 원더우먼 . . . . 1회 일치
진실의 올가미 외에도 특징적인 장비는 손목의 팔찌. 이 팔찌를 이용해 총알을 튕겨내는 묘사가 나온다. 이외에 투명 제트기도 보유. 매체에 따라서는 검을 쓴다.
- 원피스/820화 . . . . 1회 일치
* '''둘이 타고 있던 시절엔 샹크스나 버기도 견습 선원으로 타고 있었다.'''
- 원피스/840화 . . . . 1회 일치
* 그는 해외의 무법 연구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저 유명한 Dr.베가펑크의 동료이기도 했다.
- 원피스/851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마스크 밑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주었었다. 그때 푸딩은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보기도 역겨운 얼굴"이었다며 독설을 내뱉는다. 이미 상디의 손에선 꽃다발고 도시락도 들려있지 않다. 그것들은 바닥에 떨어져 비를 맞고 있다. 상디는 담배를 문 채 라이터에 불을 당긴다. 하지만 비 때문인지 잘 붙지 않는다.
- 원피스/853화 . . . . 1회 일치
* 보물전에서는 빅맘 [[샬롯 링링]]이 너무나 간단하게 [[브룩]]을 제압하고 마치 애완동물처럼 어르고 있다. 그녀는 브룩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부비기도 하며 "정말 귀여운 생물"이라 말한다. "살아있는 해골"인 점이 그녀의 컬렉터 기질을 자극한 모양이다. 게다가 브룩은 강하기까지 하다며 분명 그의 능력은 체스병들에겐 천적같은 능력이라고 말한다.
- 원피스/854화 . . . . 1회 일치
* 상디는 자기도 모르고 보빈을 때려눕히며 "네가 먹을 음식이 아니다"고 일갈한다.
- 원피스/857화 . . . . 1회 일치
부하들은 정말로 밀집모자 측이 동맹에 응할지 반신반의하지만 벳지는 징베를 신용해서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밀집모자측과 마찬가지로 빅맘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 또다른 적을 만들기도 꺼려진다. 다만 정말로 이 동맹이 성사될지 어떨지는 지금부터 루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고, 만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없애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 원피스/858화 . . . . 1회 일치
문제는 로라의 의향. 로라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고 자유를 찾아 바다로 떠났다. 이후 로라와 똑닮은 시폰이 대신 약혼자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로라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 오히려 사이는 이전보다 악화됐다. 빅맘은 이 사건을 계기로 진짜 거인족을 가족에 넣는건 포기, 인간을 거인화시키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로라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분노가 날로 증폭, 지금 토트랜드에선 그녀가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 원피스/864화 . . . . 1회 일치
* 그땐 혼란한 다과회장을 "살려줘"란 다급한 목소리가 뒤흔든다. 루피는 그 목소리를 듣고 벳지의 "연기"를 뿌리치고 달려가려 하고 상디는 "얘기가 다르다!"고 분개한다. 어느틈에 샬롯가의 형제들이 빈스모크 일가를 둘러싸고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야 암살계획을 알아차린 [[빈스모크 저지]]가 빅맘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는 "악의 세계에도 인의는 있다"는 말을 하는데 누구하나 수긍하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 조차도. 빈스모크가의 형제들은 자기들도 머리에 총알을 박을 판인데 오히려 냉소한다. [[빈스모크 이치디]]는 아버지를 "꼴사납다"고 비웃으며 어차피 이제 살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샬롯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그들의 몸을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빈스모크 욘디]]는 무기도 레이드 슈츠도 지금은 없다고 내뱉고 [[빈스모크 니디]]는 "완전히 함정에 빠졌다 하하하"라고, 게임에 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지는 자식들의 냉담한 태도에 "제정신이긴 하냐"고 대꾸하지만 [[빈스모크 레이쥬]]는 그것도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그들을 감정없는 기계로 기른 것은 저지 자신이다. 설사 가족이나 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무감정할 수밖에 없다.
- 원피스/867화 . . . . 1회 일치
그것은 야를에게도 뜻밖의 결론이었다. 야를이 고민하는 사이, 한때 링링의 친구이기도 했던 [[하이루딘]]은 "왜 링링을 죽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친다. 그 또한 링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야를은 자비심이 생긴 건지, 카르멜을 결단을 봐서인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칼을 거둬들인다. 그리고 링링이 정신을 차리는데, 폭주했을 때의 일을 기억 못할 뿐더러 요를의 죽음을 슬퍼하는 등, 남의 일처럼 행동해서 더욱 거인족들의 분노를 산다.
- 원피스/886화 . . . . 1회 일치
* 텅 빈 바다를 가로질러 써니호도 어느새 카카오섬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작전 돌입으로 분주한데 문득 [[캐럿(원피스)|캐럿]]이 [[쵸파]]에게 뜬금없는 걸 묻는다. 오늘 밤 만월이 되지 않느냐고. 한편 빅맘 [[샬롯 링링]]에게서 도망친 [[몽키 D. 루피]]는 어느 민가에 숨어있다. 붙잡혀있는 [[샬롯 브륄레]]는 도망치고 싶으면 카카오섬으로 가면 될거 아니냐고 묻는데 루피는 다시 한 번 [[샬롯 카타쿠리]]와 승부를 낼 작정이다. 그의 견문색 패기도 패기인 이상 장기전으로 가면 소모될 거란 것. 하지만 루피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만으론 충분한 전략이 못된다. 그는 [[실버즈 레일리]]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패기는 실전의 극한 상황에서 더욱 개화하며 더 강한 적과 싸울 수록 루피도 강해질 거란 것. 루피는 자신에게도 "가까운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중얼거리는데 브륄레는 허세부리지 말라고 일침한다. 루피는 그 말을 듣고 "전력을 내는 카타쿠리에게 이기고 싶다"고 승부욕을 드러낸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1회 일치
그날 오후 1시, 민병대가 이튼빌 근교를 지나던 말라셴코의 중대를 습격해 14명의 사망자와 9명의 부상자를 낸다. 올로프스키에 이 사실을 보고하던 말라셴코는 민간인 처형을 다시 한번 제안하지만 올로프스키는 사전에 세워 둔 계획대로 민병대를 진압할 것이라면서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이에 말라셴코가 자기 부하들이 저기 널부러져있다면서 화를 내자, 올로프스키는 자기 부하들이기도 하다면서 받아치고는 말라셴코를 쫓아내버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베데예프는 말라셴코의 제안이 일리는 있지 않냐고 말하지만 올로프스키는 말라셴코는 단지 복수의 대상이 필요한 것 뿐이라면서 이를 부정한다.
- 위서 . . . . 1회 일치
* 위서(緯書) : [[한나라]] 시대 [[유교]]의 서적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한 책. 소위 말하는 [[도참]]이다. 경서(經書)에서 냩실을 뜻하는 경에 대응하여 씨실을 뜻하는 위(緯)를 붙였다. 본래 위서는 유교 경전의 주석,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한나라 시대에는 유교에 신비주의 요소가 많아지면서 유교 경전을 일종의 [[예언]]으로서 해석한 책으로 변질되었다. 전한-후한 시기에 널리 연구되었으며 [[도참]] 사상에 이용되었다. [[광무제]]는 후한의 건국 명분으로 이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폐해도 많아서, [[왕망]]이나 [[원술]] 같은 인물이 왕조를 세우는데 악용하기도 했다. [[서진]]에서는 사회 혼란을 염려하여 위서를 연구하거나 배우는 것을 금지하여 이후로 위서의 영향력은 사라졌다.
- 위의공 . . . . 1회 일치
위의공의 죽음과 위나라의 멸망은 단순히 암군 때문에 소국이 멸망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기도 한데, 위나라의 패망은 춘추시대 초기에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衛)가 후대에 약소국으로 전락[* 대부분 위의공 탓이긴 한데(…)]한 탓에 가볍게 느껴지는 점도 있다.
- 윌밍턴 . . . . 1회 일치
[[마이클 조던]]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기도 하다.
- 유동근(배우) . . . . 1회 일치
정도전에 함께 출연한 [[임호]]의 언급에 따르면, 촬영장에서 함께 출연하는 후배들에게 연기를 지도할 때 직접적으로 '이러저러하게 연기해 봐라'라는 식으로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선문답 식으로 던져주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가령 임호에게 "네가 구현하는 정몽주는 어떤 인간이니?"라고 묻기도 했고, '너무 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다양하게 해 봐'라는 식으로 조언했었다고 한다.
- 유병수 . . . . 1회 일치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홍익대학교]]로 진학했고, 홍익대학교의 전국 추계 1, 2학년 대학축구대회 우승에 기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80929174456§ion_code=10&key=%C8%AB%C0%CD%B4%EB&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홍익대, 전주대 꺾고 추계 1-2학년대회 우승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데뷔 시즌부터 득점포를 터뜨려 언론의 대단한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고, 국가대표에 승선하기도 하였다.
- 유재한 (1955년) . . . . 1회 일치
'''유재한'''(柳在韓, [[1955년]] [[3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행정공무원과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을 지내었고, [[한나라당]] [[대구광역시|대구시]] [[달서구]] 병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 육홍균 . . . . 1회 일치
1922년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비밀결사 흑우회에 가입해, 회지 흑우, 소작농의 발간을 주도하였다. 1923년에는 [[박열]], [[김중한]] 등과 함께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출옥 후인 1926년 10월 흑우회가 흑색청년연맹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할 때에도 계속 참여하였다. 1927년 고향 선산군으로 돌아와 [[협동조합]] 우리살림사를 조직하였고, 옥성농우회를 통해 지역 농민운동을 이끌었다. 1939년 4월 검거되어 투옥되었다가, 출옥 후 [[중국]]으로 떠났다.
- 윤다훈 . . . . 1회 일치
무릎팍 도사에서 본인의 전반생을 회고한 바에 따르면 배우가 너무 되고 싶어 방송국을 기웃거리다가 경비아저씨와 친해져 방송국을 자기 방처럼 들락날락거렸다거나, 엉겁결에 드라마 엑스트라로 캐스팅됐다거나, 그 드라마(반공물)에 인민군으로 폭격당하는 장면에서 각본대로 안하고 오버하다가 감독에게 따귀맞고 잘렸다거나 하는 별의별 에피소드가 많다. 또 한때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정수기 외판원으로 일했는데 본인의 연기와 전략이 잘 먹혀 꽤 수입을 벌었다고. 또한 무릎팍도사의 초기 수혜자이기도 하다. 이런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잘 풀어냈는데 당시 윤다훈이 폭행사건을 일으켜 복귀한 참에, 이미지가 엄청 회복이 된 계기가 됐다.
- 윤덕주 (농구인) . . . . 1회 일치
[[1935년]] [[숙명여고]] 시절 선수로 농구와 인연을 맺은 뒤 대한농구협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각종 체육단체에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9&aid=0000449350 윤덕주 농구협명예회장 별세] 매일경제 2005.07.08</ref> 1935년 숙명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일제강점기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으며 1940년대 초반 결혼 후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코트에서 뛴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했다.<ref name="dibigos"/>
- 윤주상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양평군]]
- 윤진영(코미디언) . . . . 1회 일치
박승대 사건 이후 예전 같은 활약은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3월 3일 입대했다.[* 같은 날, 오랜 단짝인 김필수도 입대했다. 하지만 동반 입대는 아니었다. 김필수는 강원도에, 윤진영은 경기도에 입대했기 때문.]8사단 수색 대대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야 무릎 상태가 심각해서 공익으로 복무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현역 복무를 선택했다는 게 알려진다. 연예병사로서 군 복무를 끝마쳤는데, 선임으로는 [[강타]]가 있었다고 한다. 전역하니 웃찾사가 사라져서 강제로 휴식을 취하다가 TVN [[코미디빅리그]]가 신설되자 김필수, [[조우용]], [[박충수]]와 함께 '''따지남'''으로 방송계에 복귀한다. 동기들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다가 [[환상거탑]]과 [[푸른거탑]]에 [[윤진영(푸른거탑)|고정 출연]]한 것을 계기로 현재는 배우 활동 중이다.
- 율리우스 네포스 . . . . 1회 일치
474년, 레오 1세에게 서로마 황제로 추대받았다. 레오 1세는 조카 사위인 네포스를 서로마 황제로 올려서 일족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네포스는 동로마 레오 왕조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 은행강도 . . . . 1회 일치
비슷하게 금융 관계를 취급하기도 하는 [[우체국]]이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는 무인이라 훔치기 좋아보이는(?) [[ATM]]을 노리는 경우도 많다.
- 은혼/574화 . . . . 1회 일치
"그날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만든 무수한 무덤은 선생님이나 동료들 뿐만이 아닌 우리들의 무덤이기도 했다. 요시다 쇼요와 함께 그 제자들은 죽었다. 그 길이 더이상 교차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더라도 선생님의 가르침만은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망설이며 굽어진 길을 가자고, 어떤 때는 실수로 꺾어진 길을 가자고. 각자의 무사도를 찾아 방황하고 번민하며 걷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은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의 길을 다시 한 번 이곳에 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 한 순간의 해후일지도 모른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다시 검을 맞대며 서로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겠지. 긴토키, 다카스기. 설령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다시 한 번 요시다 쇼요의 제자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친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 은혼/578화 . . . . 1회 일치
* 오로치랑 싸우게 됐을 땐 자기도 모르게 "서버렸다"
- 은혼/581화 . . . . 1회 일치
* 그럴 의도는 아니엇겟지만, 결과적으로 "너희를 낳고 기르기 위해 어머니가 죽는 거다"는 맥락의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게 "가족이야 말로 어머니를 괴롭히고 죽이고 있는 원흉"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말았다.
- 은혼/585화 . . . . 1회 일치
* 카무이가 호우센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와서 너무 밸런스 붕괴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원래 소라치는 "인물간의 강함과 우열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편.
- 은혼/587화 . . . . 1회 일치
* 어느새 그들을 앞질러서 뻔뻔할 정도로 싸워대는 카무이의 모습은 그들의 자랑이기도 했다.
- 은혼/590화 . . . . 1회 일치
* 다카스기도 쓰러져 있는데 마치 칼에 찔린거 처럼 보여서 논란 중.
- 은혼/592화 . . . . 1회 일치
* 다츠마는 "장사 얘기는 끝났으니 이쪽 얘기도 얼른 끝내자"는데, 귀병대의 다케치가 와있다.
- 은혼/604화 . . . . 1회 일치
* 그 중에는 나락의 삼익 중 하나 히츠기도 있다. 그 또한 천도중의 피로 불사신화.
- 은혼/611화 . . . . 1회 일치
* 우주의 해방군 본대는 지구측과 통신조차 두절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대기 중이선 함대까지 이상이 오고 최종적으론 더이상 병력을 충원하는건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상 황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원상에게 사카모토 다츠마는 "장군님에게 불꽃놀이를 보여줄 생각이었겠지만 습기가 차버렸군"이라고 빈정거린다. 다츠마는 서있기도 지친다며 그냥 감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원상은 돌아가려는 그들을 불러세우지만 도쿠가와 사다사다는 "보지 않아도 안다. 우리들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감옥으로 돌아간다.
- 은혼/613화 . . . . 1회 일치
네스는 이런 풍습을 무시하는 거냐고 압박하자 단은 바루카스도 "발기"하면 나름 훌륭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런 와중에도 왕은 "발기"라는 표현에만 신경스며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네스는 하타 쪽이야 말로 "봘기"하면 더욱 대단하다고 반박한다. 역시 왕은 "봘기도 안 돼"라고 제지할 뿐 다른 부분엔 개입하지 않는다.
- 은혼/615화 . . . . 1회 일치
* 이번엔 가구라가 입구를 발견했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긴토키와 신파치가 가기도 전에 해방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두 사람이 뒤따라 가봤더니 그곳엔
- 은혼/620화 . . . . 1회 일치
* 요시와라에게 전쟁의 여파는 밀어닥치고 있었다. 야왕 [[호우센]] 이래 최초로 요시와라는 천장을 닫고 전장을 피해 숨어든 피난민들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히노와]]는 여기도 언제까지 버틸지 장담하지 못한다. 츠쿠요는 천장만이 아니라 요시와라의 해(히노와)와 달(츠쿠요)가 지키고 있다며 끝까지 요시와라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보이지만 히노와는 그녀가 가부키쵸의 항전에 합류하고 싶어하는걸 눈치채고 있다.
- 은혼/623화 . . . . 1회 일치
* 지로쵸는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타츠고로를 강물에 처박는다. 지로쵸는 타츠고로에게, 이제 이 마을의 얼굴인 주제에 반한 여자를 악당에게 넘기느냐며 빈정거린다. 하지만 타츠고로는 그가 반한 여자를 위해 손을 씻을 인물이라 본다. 지로쵸는 자기는 반한 적도 없고 오토세랑은 악연일 뿐이다 말하는데 타츠고로는 그 악연도 끝까지 가면 부부라고 받아친다.
- 은혼/628화 . . . . 1회 일치
* 음양사 집단인 게츠노슈와 시리노슈는 입장이 또 다르다. [[게츠노 세이메이]]와 [[시리노 도만]]은 기회가 올 때 잡지 않으면 다음은 없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것이 마지막 "승부처"라면 놓치면 끝장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들 안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게츠노 크리스텔]]은 꼭 싸워야 한다는 말이냐며 주저하는 태도를 취한다. 세이메이는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일어난 희생이 물거품이 된다는 의미라고 첨언하지만, 결국 진지하게 공세를 취하는걸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 은혼/629화 . . . . 1회 일치
* 마츠다이라의 바람과는 달리 소요 공주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창밖으로 불꺼진 에도의 밤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 옆엔 [[이마이 노부메]]가 있다. 부상으로 전선에서 이탈했지만 공주의 경호역을 맡았다. 노부메는 창가를 서성이는 공주에게 잠이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요는 대답 대신 노부메씨도 그렇냐고 반문한다. 노부메는 부상으로 발목이나 잡는 마당에 염치없이 쉴 수 없다면서 공주를 위해서 보초를 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주가 사양하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선채로 잠들어 버려서 별 설득력이 없다.
- 은혼/630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희소식이 채 전파 되기도 전에 자작제독은 [[엔죠 황자]]가 최악의 결단을 내렸다는 비보를 전한다.
- 은혼/631화 . . . . 1회 일치
* 통신의 부활로 성사된 [[히라가 겐가이]]와 [[엔죠 황자]]의 기묘한 대담. 이들의 만남은 주선한 셈이 된 야토족 용병부대의 통솔자 "노사"란 인물은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해가 뜰 때까지 나노머신 바이러스를 처리하지 못하면 지구를 통채로 지운다. 이것은 겐가이 영감한테만이 아닌, 지상병력 전체에 대한 협박이기도 했다. 그는 곧 최대한 무전을 돌려 지상군 잔존세력에게 엔죠 황자의 의사를 전달한다.
- 은혼/638화 . . . . 1회 일치
마츠다이라는 너무 노골적으로 말한다고 씁쓸해하면서도 하늘에는 뇌신, 지상에는 용신이 도사리고 있는 마당에 숨을 곳도 없다며 노부메의 말에 동의한다. 동료들이 싸우고 있는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건 사다하루의 고민이기도 했다.
- 은혼/640화 . . . . 1회 일치
뭔가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면 예상 외의 일이 일어날리가 없지 않냐고 꼬집는다. 헨페이타가 그럼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치면 이 나라를 부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신스케의 대답은 심드렁하다.
- 은혼/641화 . . . . 1회 일치
* 기분 나쁜 총성이 울렸다. 전방을 정리하고 있던 신스케, 마타코그 후방에서 들려온 섬뜩한 소음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그들이 뒤를 확인하기도 전에 반사이의 경고가 들렸다.
- 은혼/645화 . . . . 1회 일치
>불꽃은 여기도 타고 있다고.
- 은혼/654화 . . . . 1회 일치
우츠로가 양이 사천왕도 방치하고 있는 마당에 친히 처치하러 나와서 주역급 주목도를 받았다. 열심히 뛰어댕긴 덕에 에도를 날려먹을 것 같았던 용맥의 폭주는 진정. 하지만 본류에 해당하는 용혈 그 자체의 폭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아네는 한때 사다하루를 버리고 일족의 사명도 팽개쳤던 관계로 죄책감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사다하루를 반드시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사다하루와 코마코가 검력을 너무 소진해 쪼그라든걸 발견했고 덮친격으로 우츠로의 시생인 부대까지 습격하면서 치명사을 입는다. 일단 모네가 데리고 열심히 도망쳤는데, 결국 용혈은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돌입하고 앞으로 코마코와 사다하루가 계속 검력을 쓰면 아예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처한다.
- 의식 높은 계 . . . . 1회 일치
* 출처 불확실한 자기개발서에서 읽은 이야기 같은 것을 자주 이야기 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일처럼 말하기도 한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이광훈은 [[포항 스틸러스]] 산하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를 거쳤으며, 2011년 [[K리그 주니어|SBS 고교클럽 챌린지리그]]에서는 17경기 13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포철공고의 챌린지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축구 명문 포철공고 ‘고교 최강자 등극’|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314967 |출판사=세계일보 |date={{날짜한글화|2011-10-03}} }}</ref>
- 이덕건 . . . . 1회 일치
}}</ref> 그 외에 수목드라마인 <[[해신]]>, <[[장밋빛 인생 (2005년 드라마)|장밋빛 인생]]>, <[[위대한 유산 (드라마)|위대한 유산]]>, <[[투명인간 최장수]]>, <[[달자의 봄]]>, <[[마왕 (2007년 드라마)|마왕]]> 등의 책임프로듀서(CP)를 맡기도 했다.
- 이동찬(기업인) . . . . 1회 일치
스포츠에도 관심이 있었던지 1971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실업농구연맹 회장, 1980년부터 1983년까지 [[대한농구협회]] 회장, 198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이득을 준 배신자를 처단하기 . . . . 1회 일치
* B가 궁지에 몰리는 등,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C가 끼어들어 B를 살해하거나 포획한다.(여기에 '배신'이 들어가기도 한다.)
- 이문식(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남양주시]] ||
- 이미연 (배우) . . . . 1회 일치
1995년에는 배우 [[김승우]]와 결혼했지만, 2000년 5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김승우-이미연 이혼 속사정은…|url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출판사 = 한국일보|날짜 = 2007-10-11|확인날짜 = 2013-10-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501104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1115081484220.htm|보존날짜 = 2013-10-05|깨진링크 = 예}}</ref> 이미연은 19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 《[[넘버 3]]》, 《[[모텔 선인장]]》, 《[[여고괴담]]》,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영화에만 주로 출연하다 1999년 단만극 《[[TV영화 러브스토리]]》로 3년여만에 드라마에 컴백했고, 이후 2001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명성황후 (드라마)|명성황후]]》에서 젊은 명성황후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당시 소속사였던 [[김광수 (1961년)|김광수]] 대표의 프로젝트로 《이미연의 연가》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해 166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제목= PR비 파문 등 여파 가요계 ‘불황의 늪’…2002 한국 음반시장 결산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31324 |출판사= 국민일보|날짜= 2002-12-24 }}</ref>
- 이별대행업체 . . . . 1회 일치
[[이혼]]이나 [[이별]]을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공작을 꾸며서 '처리'하는 업체를 뜻한다. 주로 [[탐정]]사무소가 병행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 이별만이 아니라 재회나 복연, 만남 역시 공작을 대행하기도 한다.
- 이병석(정치인) . . . . 1회 일치
2013년 2월에는 [[국회의장]] 직무대리로 본회의를 진행하던 도중 [[동남 방언]] 특유의 발음으로 본회의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덕분에 그 동안 치열하게 치고 받던 여야가 모처럼 [[위 아 더 월드]]를 이루기도. 사실 맨 처음에 쌀 소득을 '''살 소득'''으로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병석 부의장은 [[엄근진]] 모드를 유지했지만 주변에서 웃기 시작하자 '''정작 본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심지어 소 싸움을 '''소 사움'''으로 읽고 나서 본인이 빵 터지는가 하면 아예 '''"난 죽을 때까지 그 발음을 구분할 수 없다."'''라고 [[자폭]]하는건 덤. ~~자세히 들어보면 웃음을 참느라 그런건지 발음을 '''발은'''에 가깝게 발음한다.~~
- 이보림 . . . . 1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25~26회|3차 유닛 발표식]]에서는 [[비(연예인)|비]]가 '누구보다 습득력이 대단한 노력형, 실전에 강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한 18위 후보에 올랐으며, 지난 순위 대비 6계단이나 상승해서 [[효선]]을 밀어내고 18위 막차를 타고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의 순위 발표에 놀라서 주저앉기도 했으며, '제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절실함이 유닛 메이커분들한테도 통한 거 같아서 정말 감사드리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이야기했다. 파이널 무대 준비 과정에서는 빨강팀에서 'You&I'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의진(소나무)|의진]]과 같은 팀이 되었고, 안무 연습에서도 의진의 리드로 큰 문제없이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설 특집 스페셜 방송에서 이 때 [[예빈]]이 이보림의 안무 연습을 도와주는 장면이 나왔다. '팀원들이 다 잘 해서 자신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예빈은 자신도 처음 데뷔했을 때 파트가 1줄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파트가 점점 늘어났다며 팀에서 이보림보다 다리 길고 키 큰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격려해 줬다.]
- 이상오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이며 독립운동가 [[이상정 (1897년)|이상정]](李相定), 시인 [[이상화 (시인)|이상화]](李相和), 사학자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의 아우인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을 지낸 대한민국 육군 준장 출신이자 [[자유월보사]] 사장을 지낸 [[박창암]](朴蒼巖)의 장인이기도 하다.
- 이상정 (1897년) . . . . 1회 일치
그는 [[서예]]와 [[전각]]에도 능하였고 [[1923년]]에는 [[시 (문학)|시인]]으로 문단 등단하기도 하였다.
- 이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특별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즉시 전력감 [[투수]]로 주목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하여 7회에 구원 등판하였으나 [[박종윤 (1982년)|박종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구단 첫 패전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30402/54154104/1 ‘제 9구단’ NC, 1군 데뷔전에서 롯데에 영봉패] - 스포츠동아</ref> 이후 필승계투로 활동하였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부진한 투구와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잠시 C팀(2군)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후 [[7월 14일]]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이재학 (야구 선수)|이재학]]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된다.
- 이승효(탤런트) . . . . 1회 일치
아버지 이상문은 [[TV쇼 진품명품]]의 [[도자기]] 감정위원으로 출연 중이다. 이상문은 막내아들 이승효가 자신의 일을 뒤잇기를 바랐으나 이승효가 [[배우]]를 선택하여 한 때는 실망하기도 하였다.
- 이애란(가수) . . . . 1회 일치
|| '''출생''' ||<(> [[1963년]] [[3월 25일]] [[강원도]] [[홍천군]][* 현재 거주지는 [[경기도]] [[하남시]]이다.] ||
- 이영 (1494년) . . . . 1회 일치
'''이영'''(李英, [[1494년]] ~ [[1563년]] [[2월 22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이다. 자는 현보(顯父), 호는 괘편, 본관은 영천이다. 청렴결백하였으며, 수령 재직시는 선정을 베풀었으며 무관으로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무신으로 드물게 청렴하고 근실했다는 평을 들엇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
- 이원재(축구선수) . . . . 1회 일치
포철공고 출신으로 2005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포항에서는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2008년 [[전북 현대]]로 이적하였다. 전북에서도 4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9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였다. 2009년 울산에서 17경기에 출장하며 주전 자리를 획득하는 듯 했으나 2010년에 1경기도 출장못했고,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였다. 포항에서도 출장기회는 적었고, 2013년 [[경찰 축구단]]에 입대하였다. 2013년 경찰에서 28경기에 출장하였고, 2014년에는 11경기에 출장하였다. 2015년 1월 7일 [[대구 FC]]로 이적하였다. 2016년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2017년 바레인 리그 소속의 마나마 FC로 이적하였다.
- 이은수(육군) . . . . 1회 일치
2014년에 선임 장교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육군 대위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회에 불려나가기도 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80731#cb|관련기사]]
- 이인성 (화가) . . . . 1회 일치
그는 [[1929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 열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했다. [[1930년]]에는 [[일본]] 다이헤이요 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본 수채화 연맹(日本水彩畵聯盟) 회원이 되었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와 [[제국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기도 하였다.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제대 후인 2005년엔 군 제대작이자 극중 故[[정다빈(1980)|정다빈]][* 생전 정다빈님과 친했기에 2007년에 그녀가 떠난 후 엄청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일마다 그녀의 납골당을 찾았다. 기사까지 났다.] 과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태풍》, 그리고 버림받은 [[윤해영]]을 지켜주고 복수를 도와주는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뭇 여성의 마음을 흔든 《다이아몬드의 눈물》[* 이때 故 [[김성민(1973)|김성민]]과 연인을 맺게 되고 그 친분으로 <남자의 자격>에 절친으로도 출연했었다] 로 그 해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신인상이라니.--
- 이정호 (1982년) . . . . 1회 일치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영]]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반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상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상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상태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 이종훈(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출생''' ||[[1982년]] [[9월 2일]] [[경기도]] [[김포시]] ||
- 이중환(법조인) . . . . 1회 일치
광주지검 부장검사 시절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의 대규모 부정행위를 수사하기도 했다.
- 이채영(fromis_9) . . . . 1회 일치
전문 래퍼가 없는 팀의 특성상 fromis_9의 리드래퍼를 맡고 있기도 하다.[* 아이돌학교 데뷔멤버 선발전 <피노키오>에서 래퍼를 했기에 랩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이철우(1955) . . . . 1회 일치
[[2018년]] [[6월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b3617afe4b08c3a8f6976f8|"‘결혼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갖게 하자"]]라는 범국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네티즌의 반응은 "어쩌라고?","(미혼인)내가 죄인이야?"+"부모나 영감들에게 작은 죄는 지어도, 아이들에게 가난의 되물림이라는 더 큰 죄는 짓지는 않겠다"라는 반응. 추가로 [[장세용]] [[구미시]] 시장 당선인이 선언한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 재조정 검토를 도지사로써 막겠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넌씨눈]] 정치인~~
- 이태현(씨름) . . . . 1회 일치
2011년 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모교인 [[용인대학교]] 격기학과의 씨름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된 후 씨름 팀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이와 함께 [[2014년]] 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씨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도 출연해 여자 씨름 해설을 했으며, 출전자들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 이평 (1572년) . . . . 1회 일치
이후 [[이항복]] 등이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그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1일 갑자 4번째기사, 우의정 이항복이 백관을 거느리고 존호를 올릴 것을 재차 청하다</ref>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영경의 추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ref>광해군일기 54권, 1612년(광해군 4년, 명 만력 40년) 6월 4일 정묘 5번째기사, 양사에서 시관으로서 시험 출제를 잘못한 김시언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ref>
- 이하윤(배우) . . . . 1회 일치
출생 1991년 4월 24일 [[경기도]] [[가평군]]
- 이헌일 . . . . 1회 일치
| 사망지 = {{KOR}} [[경기도]] [[용인시|용인]]
- 이효상 . . . . 1회 일치
그가 [[박정희]]의 대통령 선거 때 "이 고장은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이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 박 후보는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다.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 년만의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로 보기도 한다.<ref name="김충식">[[김충식 (1954년)|김충식]],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1 (1992, 동아일보사)</ref>{{Rp|305}}<ref name="이상우">[[이상우]], 박 정권 18년: 그 권력의 내막 (1986, 동아일보사)</ref>{{Rp|343}}<ref>{{웹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제목=[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확인날짜=2010년 1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824010951/http://www.sportsseoul.com/news2/ptoday/people/2009/0819/20090819101140200000000_7342608763.html |보존날짜=2009년 8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 이효정(남배우) . . . . 1회 일치
아들은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하기도 한 배우 [[이유진(1992)|이유진]]이다.
- 이훈(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 ||<(> 1973년 5월 6일 [[경기도]] [[광주시]] ||
- 이희승(1913) . . . . 1회 일치
[[8.15 광복]] 후 충북자동차주식회사 취체역, 주한미군 제7사단통역관, 경기도청 및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통역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UNKRA 및 KCAC 정치고문,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기술교육원부원장서리, [[미군]] 작전과 포로심사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인 김기철에 밀려 탈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무소속 [[정상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인순이 . . . . 1회 일치
출생 경기도 연천군
- 일곱개의 대죄/179화 . . . . 1회 일치
* 장화신은 고양이는 주인을 위해 마신(오우거)을 때려잡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장화신은 고양이 자체는 영국의 동화는 아니지만, 모티브는 영국의 고양이 요정 "캐트시"로 추정된다. 고로 아서와 엮여서 나와도 크게 어색할건 없는 셈.
- 일곱개의 대죄/195화 . . . . 1회 일치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본래는 메릴오다스를 존경하던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족과 전쟁 중에 그가 배신하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복수귀가 되었다. 드래퓌스와 오래 동화해서 그런지 그에게 나름 애착을 가진 거 같고 특히 아들인 그리아몰은 정말로 부성애를 느끼고 있던 걸로 보인다. 프라우드린이 말했던 "달콤한 꿈"이란 애정, 사랑을 뜻하는데 "달콤한 꿈에 빠진건 나였나 보다"고 하는걸 보면 뒤늦게 자각한 것 같다.
- 일곱개의 대죄/198화 . . . . 1회 일치
* 그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게라이드는 목소리를 곱씹으며 자기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분명 익숙한 목소리인 것 같은데...
- 일곱개의 대죄/206화 . . . . 1회 일치
* 그때 갈란의 몸을 빛줄기가 관통한다. 갈란이 저항하기도 전에 빛줄기는 두 번 세 번 공격을 거듭해 갈란을 쓰러뜨린다. 마침내 사대천사 최강자 뤼드셀이 전장에 도착. 어느새 [[프라우드린]]을 쓰러뜨린 상태다. 그는 갈란을 비웃듯 만남 인사와 작별인사를 동시에 한다.
- 일곱개의 대죄/207화 . . . . 1회 일치
본래 마계에서만 존재하며 마신들조차도 두려워하는 전설 상의 존재다. 그 실체는 일곱 개 이상의 심장을 가진 마신이 자신의 여섯 심장을 바치고 계약을 맺어 본성을 드러낸 형태다. 전투력이 최소 5만이 되지 않으면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자폭과도 같은 기술이다. 갈란은 십계 두 명이 인듀라화를 결심하게 만들 만큼 뤼드셀이 강한 거라며 감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젠 "끝"이라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2화 . . . . 1회 일치
* 할리퀸이 디안느에게 서둘러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디안느는 거절하며 할리퀸에게 먼저 가라고 한다. 자신은 고서와 좀 더 대화해 봐야겠다면서. 그녀가 보기에 고서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고서, 인형 쪽도 포함해서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기도 하다. 디안느가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자 할리퀸도 더는 권하지 않는다. 그는 디안느에게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은총의 빛으로 향한다.
- 일곱개의 대죄/213화 . . . . 1회 일치
* 로우는 울다가 눈물 조차 나오지 않게 될 무렵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피와 살이 뿌려진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엄청난 수의 시체가 되어 널려있고, 그 사이엔 그의 친구 셋의 모습도 보인다. 하나같이 시체가 돼서 누가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로우는 결국 복수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 일곱개의 대죄/214화 . . . . 1회 일치
할리퀸은 자기도 모르게 "그로키시니아님"이라 부르고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방금 자신이 본 장면에 대해 묻는데 그로키시니아가 말하길 "본 그대로 자신은 로우를 죽였다"고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로키시니아는 감당할 수 없는 증오와 분노에 휩쓸린다. 로우를 죽이고도 성에 차지 않아 모든 인간과 게라이드를 지키지 못한 "스티그마" 전체로 분노의 화살을 놀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땐 십계의 일원으로 싸우고 있었다.
- 일곱개의 대죄/215화 . . . . 1회 일치
* 젤드리스는 봉한 마력은 곧 돌려주겠다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 "젤드리스"를 밝히고 또 자신이 "마신왕의 마력을 빌려서 행사하는 자", 즉 "마신왕의 대리"라고 말한다. 마신왕의 마력, 그 대행자, 모두 디안느에겐 생소한 소리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기도 전에, 젤드리스는 무서운 제안을 던진다.
- 일곱개의 대죄/216화 . . . . 1회 일치
* 그러보니 그로키시니아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요정왕의 숲인 건 분명한데. 할리퀸이 그의 행방을 묻자 디안느가 직접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할리퀸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 짓는다. 자신 이상으로 오랫동안 어긋난 인연으로 괴로워했던 초대 요정왕. 그도 그 인연을, 여동생 [[게라이드]]를 되찾는 중이었다.
- 일곱개의 대죄/218화 . . . . 1회 일치
* 디안느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기억을 지우려고 안달이냐고 묻는다. 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답한다.
- 일곱개의 대죄/220화 . . . . 1회 일치
* 다시 술잔이 한 바퀴 돈다. 디안느는 문득 성전시대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을 고서에게 물었다. 대체 진짜 고서는 어떻게 성전을 종결지었냐는 것. 할리퀸도 자기도 궁금했다고 말을 보탠다. 하지만 고서는 난처한 기색이다. 그리고 성전시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인워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어지간히 지식이 있는 멀린이나 당시 참전했던 멜리오다스 조차 고서가 직접 성전을 끝냈다는 말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일단 에스카노르가 "여신족이 자신들의 몸을 희생해 마신족을 봉인해서 끝났다"는 전승을 읊는다. 멜리오다스는 "어둠의 관"을 혹시 고서가 만든게 아닌가 추측해 보지만 멀린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건 거인 명공 "다프즈"란 인물이 만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일곱개의 대죄/221화 . . . . 1회 일치
멜리오다스가 산 아래 펼쳐진 리오네스 성을 바라보며 여기서 보면 리오네스 성도 전망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곳은 엘리자베스가 어릴 적부터 자주 놀러오던 곳이기도 했다. 멜리오다스가 그걸 기억하냐고 묻자 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린 자신은 참 기뻐했을 거라고 대답하는데.
- 일곱개의 대죄/223화 . . . . 1회 일치
* 돼지의 모자정은 순조롭게 목적지로 향한다. 가끔 마신족이 접근하기도 했지만 강해진 호크 엄마가 콧방귀만으로 날려버린다.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은 저주가 나은 이후론 식당 구역에서 시간을 보냈다. [[에스카노르]]가 바를 지키고 있다. 멀린의 정신은 온통 [[아서 팬드래곤(일곱 개의 대죄)|아서]]의 안녕에 쏠려있다. 그는 음료를 마시면서도 아서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한다. 자연 울쩍한 모습인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에스카노르]]의 마음도 무겁다.
- 일곱개의 대죄/225화 . . . . 1회 일치
마을 사람들은 광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저들이 자기들을 구한게 맞는 건지, 상황이 어떻게 변해가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마신족은 하나도 남김 없이 일곱 개의 대죄가 처리했지만, 그들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을 언덕 위에서 굽어 보며 [[멀린(일곱 개의 대죄)|멀린]]이 [[멜리오다스]]에게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원래 그들은 성채도시 코란도로 가야했다. 멜리오다스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고서가 강력하게 희망하기도 했지만, 마신족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하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되돌리는 것도 성기사가 해야 할 일이다.
- 일곱개의 대죄/226화 . . . . 1회 일치
* 멜리오다스는 마신족의 힘을 끌어냈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고 분노가 담긴 공격은 코란도의 입구 부근의 지형이 바뀔 만한 위력이었다. 어마어마한 파편이 발생해 사방으로 떨어지는데, 일부는 유성처럼 카멜롯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이 서둘러 처리해야겠다고 하지만 멀린은 문제 없다고 한다. 파편은 일정한 지점에서 사라져 버린다. 수면에 떨어진 돌이 파문을 남긴 것처럼, 허공에 크고 작은 원이 생겨난다. 이것이 차원의 뒤틀림이다. 멀린은 이것이 카멜롯에 접근하는 모든 것을 막는 성가신 "벽"이라 말한다. 그리고 멜리오다스의 돌발행동이 결과적으론 차원의 뒤틀림의 위치와 강도를 확인한 셈이 됐다고 덧붙인다.
- 일곱개의 대죄/230화 . . . . 1회 일치
* 놀랄 일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이번엔 [[킹(일곱 개의 대죄)|할리퀸]]의 분풀이 차례였다. 그 몸이 바닥에 채닿기도 전에 무수하게 분열된 영창이 벌떼처럼 덮쳤다. "버블비". [[그로키시니아]]에 필적하는 신수의 힘이었다. 긴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더로 잘게 저며진 메라스큐라는 맥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 일곱개의 대죄/고서 외편 . . . . 1회 일치
* 그로부터 얼마 뒤. 고서는 나자의 메이드로 정착했다. 나자와 고서는 함께 지하 공동에서 탐험하기도 하고, 함께 책도 읽고, 춤과 놀이를 즐기며 함께 보냈다. 바트라가 새로온 시녀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성 안 사람들은 새로온 공주의 메이드라고만 생각했다. 막내인 [[던젤 리오네스]]도 그랬다. 그는 새로운 메이드가 온 뒤로 누나가 밝아진 것 같다고 형에게 말한다.
- 일본의 대학서열용어 . . . . 1회 일치
한자의 첫 글자를 따서 명청입법중(明青立法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 임백천 . . . . 1회 일치
이게 인연이 되었는지 1993년도 [[문화방송|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특종 TV 연예]]에서의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쇼 코너를 보내주었고, MBC의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 무대에서도 멘트를 맡았고, 몇몇 서태지 관련 이벤트 등에서 나와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특집 방송이나 공연의 MC를 맡기도 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들도 임백천에 대해 각별히 생각한다고 한다. 서태지의 40대 이후의 외모가 놀랍게도 임백천과 매우 비슷하다는 평가가 많다.
- 임효성 . . . . 1회 일치
상무에서 활동하던 2008년, 지인의 소개로 유진를 만나게 된 후 가을부터 관계가 급격히 진전되었다고 하며, 실제로 임효성은 [[S.E.S]]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러니 관계가 안 좋을래야 안 좋아질 수가 없지....~~ 실제로 슈가 상무 경기가 있을 때 [[슈|유수영]]과 함께 임효성을 응원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 임효준 . . . . 1회 일치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 자본통제 . . . . 1회 일치
2010년대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중국 등의 신흥국이 자본통제를 시도하기도 했다.[[http://www.gokorea.kr/news/articleView.html?idxno=2496 (참조)]]
- 자코 . . . . 1회 일치
[[낚시]]에서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를 뜻하던 말, [[게임]] 같은 곳에서 조무래기 격으로 나오는 적을 뜻하기도 한다.+
- 자타라 . . . . 1회 일치
마법 계열 캐릭터인지라 [[팬텀 스트레인저]]와 대면하기도 했다.
- 잠버릇 . . . . 1회 일치
* 침흘리기 : 인후나 식도의 기능 장애로 일어나기도 한다.
- 장갑차 . . . . 1회 일치
아래 있는 분류 외에도 여러 분류가 있다. 밑에 써지지 않은 용도들도 많으며, 바퀴를 달았나 궤도를 달았나로 구분하기도 하기 때문.
- 장기범(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 ||[[1990년]] [[5월 22일]] [[경기도]] [[부천시]]||
- 장남석 . . . . 1회 일치
[[2008년]], [[이근호 (1985년)|이근호]], [[에니우 올리베이라 주니오르|에닝요]]와 함께 대구의 공격 축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4월 6일]] [[울산 현대 축구단|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에선 40초만에 골을 넣어 2008 시즌 최단시간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대구FC 장남석 '40초 번개골' 올시즌 최단시간 골|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4061658272233|출판사=마이데일리|저자=윤신욱|날짜=2008-04-06}}</ref>
- 장도 (1876년) . . . . 1회 일치
|페이지=223-224쪽}} </ref>, [[경기도]] 도평의회 의원을 거쳐<ref> {{서적 인용
- 장순왕후 . . . . 1회 일치
능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파주삼릉]] 내에 위치한 [[공릉 (장순왕후)|공릉]](恭陵)이다. 장순왕후로 추숭되면서 왕후의 예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애초에 세자빈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에 다른 왕후들의 묘소보다 초라한 행색을 갖추었다.
- 장신애 (연극배우) . . . . 1회 일치
[[1984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태어나 [[1998년]] 아역으로 데뷔를 하였고 주로 연극이나 뮤지컬 쪽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각종 재연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한다.
- 장우석 . . . . 1회 일치
'''장우석'''(張祐碩, [[1977년]] [[1월 9일]] ~ )<ref>[http://gs343.blog.me/106555039 "차별 · 편견 없는 세상 35mm 앵글에 담아요"], 《대구신문》스크랩 내용, 2008.9.9.</ref>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미디어공작소°노림(www.facebook.com/norim)에서 공작원(film maker)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 문을 연, 대구 최초의 '복합문화공간 헌책방' 물레책방(www.mulae.net)<ref>[http://www.atjob.co.kr/servlet/bbs.CBbsSe?hid_seq=3481&template=t_bbs_atjob_09 "헌책방, 돌고 도는 사람 세상"], 《앳잡》, 2014.4.21.</ref>의 대표이기도 하다.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1994년 은행원과 [[결혼]]했지만 3년만에 [[이혼]]하였고, 그 후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15살 연상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상훈과 [[재혼]]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2976972 미스코리아 장윤정 15년만 영화 '트릭' 으로복귀] 세계일보. 2015년 12월 17일</ref> 장윤정은 2016년 9월 27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업으로 미국을 자주 왕래하는 남편이 미국에 가자고하여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살다보니까 10년 정도 거주를 하게 됐다"고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언제까지 나한테 못되게 구나 두고보자라는 생각으로 오기로 결혼을 했다”라며 무뚝뚝한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1&aid=0002891291 미스코리아 장윤정 “15살 연상 남편 김상훈, 나한테 무심해 매력 느꼈다”] 서울경제. 2016년 09월 28일</ref>
- 장평도정 . . . . 1회 일치
사후 [[경기도]] [[양주군]] [[송산면]] 추동(후일 [[의정부시]] [[신곡2동]] 추동부락)에 안장되었다. 현재 묘소는 [[신곡2동]] 추동부락 [[추동공원]] 내에 있다.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무의공 이순신]]은 그의 5대손 완원군(完原君) 이진(李眞)의 다섯째 아들이다.
- 장혁주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26년]]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아나키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9년]] 이후부터 대구 희도(喜道)소학교 훈도로 근무했고 [[1932년]] 소설 〈아귀도(餓鬼道)〉를 발표하여 [[일본]]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식민지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계급문학에서 유행하던 농민소설에 못지않은 현실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장후영 . . . . 1회 일치
이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냈고, 고등고시 법전편찬위원, 군법무관전형시험위원, 군법제편찬위원회 고문 등도 지냈다. 출판사인 법정사 사장을 맡아 월간 법률연구지인 《[[법정 (잡지)|법정]]》을 발행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 전민희 . . . . 1회 일치
휘경여고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ref>{{웹 인용|웹사이트=http://fairytale.pe.kr/profile/profile.html}}</ref> 특유의 미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세월의 돌]] 후속작인 [[태양의 탑]]을 연재하던 중, 표지를 만든 일러스터가 표절했음이 밝혀져 그 때문에 계약이 파기되어 한동안 [[태양의 탑]]은 집필을 중단하게 된다. 그 후 제우미디어 출판사와 계약한 후 소프트맥스와 함께 기획한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새로이 집필했고, 2015년 현재 1부 윈터러와 2부 데모닉까지 완간된 상태. 데모닉 집필 중간인 2004년부터 첫 작품 [[세월의 돌]]을 개정해서 출간하기도 했다.
- 전성인 . . . . 1회 일치
2012년 [[안철수]]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하여 안후보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 장하성·전성인·이봉의 3인방 앞세워 安, 재벌개혁 선명성 놓고 文과 신경전 |url=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015031206108&type=&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2-10-15 |확인날짜=2013-02-10}} </ref> 향후 진로에 관한 이견 차이로 그만두었다.<ref>{{뉴스 인용 |제목=전성인 교수도 "안철수 정책 자문 그만하겠다" |ur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3112103960&d=2013112103960 |출판사=조선일보 |날짜= 2013-11-21 |확인날짜=2018-01-17}} </ref>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인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장 청문회 과정에서 김상조를 “우리보다도 더 깨끗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상조의 도덕적이고 청렴한 삶을 증언합니다” |url=http://m.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7666.html?_fr=gg |출판사=한겨레 |날짜= 2017-06-06 |확인날짜=2018-01-17}} </ref>
- 전숙희 . . . . 1회 일치
이후 동생인 고(故)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함께 1993년 [[계원예술고등학교]],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등 계원학원을 설립했다. 1997년에는 한국 문학 유산의 보존을 목적으로 한국 최초의 현대문학 자료관인 동서문학관(현 한국현대문학관)을 개관했다. 2010년 8월 1일 오전 8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585279 원로 수필가 전숙희씨 별세 (연합뉴스 2010년8월1일자)]</ref>
- 전장운 . . . . 1회 일치
|기도 =
- 절대가련 칠드런 . . . . 1회 일치
일본의 [[만화]]. 작가는 [[고스트 스위퍼]] 등의 [[시이나 타카시]]. 21세기에는 보기 드문 정통파 [[초능력]]물. 참고로 그다지 가련하지 않고 이미 칠드런이라고 하기도 미묘해졌다. 만화에서 이렇게 인정사정 없이 성장하는 것도 드문데.
- 절대가련 칠드런/439화 . . . . 1회 일치
* 마기도 이미 세뇌 당해서 판도라 내부까지 마수가 뻗힐 수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6화 . . . . 1회 일치
* 모미지는 왠 일로 잡일을 하려고 하냐고 묻는데 효부는 자기도 가끔은 일을 한다며 "오랜 만에 마기와 둘만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1화 . . . . 1회 일치
* 그는 자신의 시간은 반세기도 전에 멈췄고 여기 있는건 "나를 죽인 자들에 대한 증오와 여왕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59화 . . . . 1회 일치
미나모토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 중에 가장 분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맨손으로 물건을 부수기도 하는걸 보면 상당히 과격한데, 이게 블랙 팬텀의 세뇌 영향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1회 일치
* 자기도 모르게 "너희가 컸다는건 알지만..."이라고 답하는 미나모토. 묘하게 사실감 있는 회상이라고 생각했더니 카오루 본인이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었다.
- 절연금 . . . . 1회 일치
일반적으로 테기레킨은 ‘위자료(慰謝料)’로 번역된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자료라고 번역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테기레를 ‘절연’으로 번역하면서 ‘절연금(絶緣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접대 . . . . 1회 일치
[[요정]], [[룸싸롱]], [[골프장]] 등이 접대 장소의 대명사이다. 때때로 고위 공직자들의 호화로운 접대나 접대의 내용 등이 사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향응 제공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뇌물]]이 오가기도 한다.
- 정도복 (고려) . . . . 1회 일치
'''정도복'''(鄭道復)은 [[고려]]시대 말기,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고려]] 말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선, 상시 등을 지내고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으며 밀직제학, 한성부우윤,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으며 형 [[정도전]]이 암살되자 관직을 사퇴하고 성주 유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인녕부사윤에 이르렀다. 본관은 [[봉화 정씨|봉화]](奉化)이고 자(字)는 내지(來之)이고 호(號)는 일봉(逸峯)이다. 형부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며, [[정도전]](鄭道傳)의 친 아우이다.
- 정몽근 . . . . 1회 일치
|출생지 = {{국기|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 정성왕후 . . . . 1회 일치
[[1757년]] 창덕궁(昌德宮)의 대조전'''(大造殿)'''에서 66세로 시어머니인 [[인원왕후]] 보다 먼저 세상에 떠났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의 [[서오릉]] 내에 위치한 '''[[홍릉 (정성왕후)|홍릉]]'''이다.
- 정소희(1969)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시]] <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C%A0%95%EC%86%8C%ED%9D%AC&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318193 정소희-네이버인물정보]</ref>
- 정재안 . . . . 1회 일치
*2012.11 ~ 2014.06 자원재활용연대 경기도지부 남양주시지회 사무장
- 정재용(1973) . . . . 1회 일치
다만, 조용하던 편인 그도 한번 폭력사건에 휘말렸는데, [[2010년]] [[1월 27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이혁재]]의 폭행사건의 여파가 아직 가시기도 전에 그가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피소를 당한 것. 이에 대해 정재용 [[본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종업원 간의 다툼을 말리는 과정에서 오해를 받은 것이라 해명'''을 했으며, 부다 레코드 측에서도 대표가 직접 나서서 공식사과를 했다. 이미 DJ DOC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던 상황이고 수습이 빠른 편이라 이 때 사고를 친 걸 모르는 사람도 있다. ~~다행인가?~~
- 정종 . . . . 1회 일치
후궁 소생이라고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 후궁 제도는 혈통 단절을 막는 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저 왕의 성욕 처리에만 동원되는 제도로 전락한다. 정종이 자기 자식에게 계승을 못한 것은 워낙 세력이 밀렸기 때문이지 서자만 있어서 계승을 못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만큼 태종의 세력 기반이 탄탄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 정진(1941)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국기|만주국}} [[경기도]] [[안성시]]
- 정진(1976) . . . . 1회 일치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시]]
- 정채진 . . . . 1회 일치
최초의 고졸 검정고시 출신 장관, 도지사이기도 하다.
- 정치공학 . . . . 1회 일치
정치공학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여, 공학전공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2859601 (참조,이상천 영남대학교 총장)]][[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32114015&code=990304&med_id=khan&rccode=lvRc (홍영진 동명대 교수·전기공학과)]]
- 정형돈 . . . . 1회 일치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상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절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 제너럴 우 . . . . 1회 일치
[[캡틴 아메리카]]와 싸운 빌런. 바트록의 협력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AIM과 관련이 있다.
- 조동혁(배우) . . . . 1회 일치
||<#20B2AA> '''{{{#ffffff 출생}}}''' ||<(> [[1978년]] [[경기도]] [[광명시]] ||
- 조재윤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군포시]]
- 존 딜린저 . . . . 1회 일치
대공황 시기 활동했던 [[미국]]의 범죄자. 딜린저 갱이라는 이름의 범죄 조직을 이끌면서 미국 중서부에서 [[은행강도]]를 벌였다. FBI에게 "공공의 적"으로 선포된 인물이기도 하다.
- 존 웨스트 . . . . 1회 일치
홈페이지에서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하니 참고해보자. 한국인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 주나라 . . . . 1회 일치
호경에 도읍하던 시기를 서주라고 한다. 호경은 현재의 시안(西安) 지역으로, 진나라 때는 함양, 당나라 때는 장안이 건설된 지역이다. 왕국 건설 당초 [[삼감의 난]]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하였으나, 서주는 봉건제도를 이용하여 중원 각지의 지배권을 확보한다.
- 주상욱 . . . . 1회 일치
주상욱은 1남 2녀중 둘째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서 주상욱이 7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님이 공직 생활을 하시며 삼남매를 키우셨다. 친구의 모델활동 현장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에이전트로 부터 부탁을 받았던 주상욱<ref>[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힐링캠프' 주상욱, "배우 데뷔? 모델 여자친구가…"]{{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ntv/201310/h20131015100416133420.htm }}</ref> 은 1999년 [[KBS]] 청소년 드라마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대 중반까지 아역으로 활동했다. 제대 후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해 '실장님 전문 배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실장님서 반장님… 다음은 허당 공무원이죠"|url=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저자=신정엽|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2-01-16|확인날짜=2013-05-1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100423073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1/h20120116210008111780.htm|보존날짜=2013-10-04|깨진링크=예}}</ref> [[2012년 7월]] [[김준호 (희극인)|김준호]]와 함께 《[[남자의 자격]]》에 합류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고정 멤버로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으로 2012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 주윤발 . . . . 1회 일치
'''주윤발'''({{zh|order=t|t=周潤發|s=周润发|p=Zhōu Rùnfā|h=저우룬파}}, Cantonese Yale: Jàu Yeuhn Faat, '''Chow Yun-Fat''', '''Donald Chow''', '''Aman Chow''', [[1955년]] [[5월 18일]] ~ )은 [[홍콩]]의 [[영화 배우|영화배우]], [[영화]] 각색가, [[음반]]을 발표하기도 한 [[가수]]이다.
- 죽으면 부처님 . . . . 1회 일치
이는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서 "일본에서는 죽으면 부처님. 그러니까 A급 전범 합사도 용인된다."는 식으로, 외국의 비판을 '문화적 차이'라고 실드치고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우익 논객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은 죽은 사람을 언제까지나 비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문화차별적 주장도 곁들여진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1회 일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지위가 완전히 역전된 중대한 사건이다. 또한 공산권의 약진과 [[제3세계]]의 영향력 강화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1회 일치
바로 옆 책상에서는 같은 마레의 전사 동료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뭔가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턱의 거인, 스라가 요새에선 한 번 라이너를 구하기도 했던 갤리어드였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1회 일치
>분명 아빠도 네가 성공하길 기도하고 계실테니까.
- 진격의 거인/96화 . . . . 1회 일치
라이너가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베르톨트도 결심을 끝냈다. 초대형 거인의 등장이다.
- 진구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 진시몬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가수]]. [[1989년]] [[문화방송|MBC]] [[강변가요제]]에서 참가한 이후 가요계에 데뷔를 했다. 초창기에는 [[발라드]] 가수였으나,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트로트]] 가수로 장르를 바꿨으며, 1996년에는 [[KBS 2TV]] [[일일 드라마]] <며느리 삼국지>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 짐 브라부라 . . . . 1회 일치
윈터슨을 쏴죽인 맥스가 병원에서 깨어난걸 보자마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며 따지려 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병원을 습격한 스쿼키 청소회사의 총격에 쓰러진다. 맥스는 꿈속에서 그가 죽는 장면을 보았지만 다행히 현실의 브라부라는 수술을 받아 살아났다.
- 차영철 . . . . 1회 일치
그 뒤 [[한국통신]] 사격 선수단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2007년 현재는 은퇴하여 코치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국가대표 사격팀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 창작:IDF . . . . 1회 일치
IDF의 이러한 "불평등"은 외부에서 종종 지적되고 있으며, IDF가 결국 선진 강국의 "용병"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창작:맹수인 . . . . 1회 일치
호랑이족은 사자족, 곰족과 함께 동부대륙의 패권을 양분하는 종족이다. 본래 동부대륙 중남부의 거대한 삼림지대에서 틀어박혀 역사의 일면으로 잘 나오질 않던 종족이었으나, '피의 왕'달수시기 일부가 중북부로 올라온뒤, '무적여왕'달순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종족이 된다. 한때 레잉을 정복하고 동부대륙 패권을 쥐기도 했으나, 현재는 사자족들에게 내준 상태. 현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줄무늬가 나있다. 주로 서식하는 지역은 동부대륙 중남부와, 중북부 일부, 그리고 무릉 반도.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1회 일치
살고있는 종족들마저 '''마계'''라 표현할정도로 생태계가 그리 좋지는 못한곳. 그나마 농사짓기좋은곳이 남부에 몰려있긴 한데, 여기도 내륙쪽은 '판'이라 불리는 유목민족들이 여행자들을 약탈하러 돌아다니는 곳이라 여러모로 흉흉하다. 농사지으면 작물에선 왠지 모르지만 매운맛이 미친듯이 나며, 길가다가 목이 말라 근처 오아시스에 물을 마셨더만 송곳니가 자라나고 흉포해지는(...) 요상한 대륙이다. 그것때문인지 이곳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거의다 전투민족or매드 사이언티스트(...)
- 창작:좀비탈출/0-1 . . . . 1회 일치
물 없이 한 달을 버틴 사람 얘기도.
- 창작:좀비탈출/0-1-2 . . . . 1회 일치
우리집 담벼락은 다름 집보다는 한 뼘 이상이 더 높고 그 위엔 뾰족하게 휘어진 창살도 박아놨다. 이 녀석은 실제로 한 번 도둑을 막기도 했는데, 그 무모한 양반은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했는지 뛰어넘지 못하고 영 좋지 않은 곳이 걸려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뭐, 감옥에 가는건 차라리 별 일이 아니었겠지.
- 창작:좀비탈출/3 . . . . 1회 일치
자전거가 무사할지 걱정했지만 바퀴는 부드럽게 움직인다. 잠깐 방치되어 있었지만 아직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에 공기도 아직 충분히 들어있다. 혹시 이걸 사용하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창작:좀비탈출/4-1-2-1 . . . . 1회 일치
방향은 세 발쯤 앞. 담벼락 바로 아래였다. 그건 옆집하고 붙어 있는 담벼락이었다. 아버지가 방범 대책을 할 때 유일하게 손대지 못한 곳. 옆집하고 같이 쓰는 담이었기 때문에 그쪽에서 오케이 해주지 않으면 손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선 흔한 일이다. 저기 집주인이 누구였더라? 조기축구 다니는 아저씨였는데. 나이에 비하면 제법 호리호리하고 날쌔기도 했던…….
- 창작:좀비탈출/5-1-1-1-1-1 . . . . 1회 일치
아줌마가 '''튀어 나왔다.''' 팔 밖에 없는 주제에! 내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누런 이빨이 '''목젖을 물어 뜯었다.''' 나는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마치 아줌마와 얼싸안은 것처럼 돼버렸다. 씨발! 무슨 감격적인 이웃상봉인가!
- 창작:좀비탈출/5-1-1-1-1-2 . . . . 1회 일치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 진실과 마주하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들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좀비가 득실거리는 서울시 한 복판에 남겨진 생존자다. 이 이상…… 우울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 채동욱 . . . . 1회 일치
[[2013년 4월]]부터 [[2013년 9월|9월]] 초 39대 검찰총장 재임기간 중 제13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 [[노태우]]의 미납추징금을 완납받고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는 완납 계획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2013년]] [[9월 6일]]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조선일보]]가 제기하자 법무부 장관 [[황교안]]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9월 30일]]에 사표를 수리하였다.
- 채수빈 . . . . 1회 일치
| 출생지 = [[대한민국]] [[경기도]] [[안양시]]
- 챌린저스 오브 더 언노운 . . . . 1회 일치
[[둠 패트롤]](Doom Patrol), [[데드맨]](Deadman), [[스웜프 씽]](Swamp Thing), [[조니 더블]](Jonny Double), [[시 데블스]](Sea Devils)와 대면하기도 했다.
- 천상천하유아독존 . . . . 1회 일치
본래 여기서 '아(我)'는 '우리'라는 뜻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뜻하는 말이다. '아'를 '나'로 오해하여 자기 자신만 잘 난 척 한다는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 철인 28호(로봇) . . . . 1회 일치
철인의 힘을 노리고 조종기를 노린 경우도 있다. 철인은 자율사고회로가 있으나 애니메이션 오프닝 가사에서도 언급되듯이 조종기에 의해 조종되고, 조종기는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종기 관리에도 주의가 따른다. 게다가 탑승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원격조종이기에 철인이 아무리 파괴되어도 조종사는 무사하지만 반대로 조종사만 해결하면 철인도 무력화된다는 약점이 있다. 이외에도 전파방해 등의 이유에 의해 조종사가 무사해도 철인을 조종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 초한전쟁 . . . . 1회 일치
대중문화에서 초한전쟁은 진시황 말기에서 시작하여, 진승 오광의 난을 프룰로그로 묘사하고, 항우의 죽음으로 일단 마무리 된다. 일단 초한전쟁 자체는 여기서 끝나지만 여기서 끝내는건 조금 짧은 느낌이이 있어, 좀 더 가기도 하는데 유방의 [[토사구팽]]을 묘사하여 공신들의 최후를 그리거나, 좀 더 나가면 [[백등산 전투]]와 흉노 정벌 좌절과 유방의 죽음으로 마무리 한다. 유방 사후 여후까지 묘사하면 [[여씨의 난]]까지 가서 마무리 되며, 좀 더 길게 끌면 초한전쟁 시대의 자식 세대들까지 마지막 활약을 하는 [[오초칠국의 난]]까지 간다.
- 최공웅 . . . . 1회 일치
*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2월 5일에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유세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기도하고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1971년 7월 26일에 기소된 사건에 대해 "재판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ref>동아일보 1988년 2월 5일자</ref> 3월 4일에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법정모욕 등으로 1,2심 군법회의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이 선고됐다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미 폐지된 [[긴급조치]] 면소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파기환송된 [[강신옥]]에게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형사 피고인에 대한 자유로운 방어권 행사없이 형식적인 변론만 인정한다면 사법권읜 근본적으로 파괴되고 말 것"이며 "공개재판에서 변론은 재판 방해를 하려는 폭력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040032921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3-04&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05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3월 4일자]</ref> 5월 27일에 내란 예비죄 피고인인 [[박형규]] 목사에게 "10여명의 선동만으로 국가 전복을 우려한다는 것은 전혀 합리성이 없다"며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2700329211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5-27&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126&publishType=00020 경향신문 1988년 5월 27일자]</ref> 5월 31일에 1974년 세검정 동굴에서 북한방송을 듣고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에 대해 "똑똑한 학생이 왜 나쁜 짓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10년 자격정지10년을 선고받은 박규신 피고인에게 대법원에서 파기된지 13년만에 반공법위반 무죄, 긴급조치 위반은 면소 판결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3100289107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31&officeId=00028&pageNo=7&printNo=14&publishType=00010 한겨레 1988년 5월 31일자]</ref>
- 최다빈 . . . . 1회 일치
최다빈은 [[4대륙 선수권]]을 앞두고 쇼트프로그램 음악 변경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는데, 기존의 음악 '맘보'를 스티븐 유니버스 ost 'It's over, isn't it?'과 '라라랜드 ost 中 Someone in the crowd'로 바꾸고 경기에 출전했다. 그 결과 4대륙 쇼트에서 자신의 개인 최고점을 경신(61.62)하는 성과를 보였고, '닥터 지바고'에 맞춰 선보인 프리 경기에서도 약간의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개인 최고점(120.79)을 내며 종합 점수 기록도 갈아치웠다. (182.41) 특히나 이때 프리스케이팅의 기록은 [[김연아]] 선수 이후 대한민국 피겨 선수 프리스케이팅 최고점이기도 했다.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현재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출구조사의 10%의 차를 뚫고 한 때 앞서나가기도 했으나 아깝게 간발의 차로 낙선하였다. 감천면과 본인의 고향인 조마면, 혁신도시권역인 율곡동과 농소면을 제외한 모든 읍면동에서 패배했는데, 율곡동에서의 몰표로 표차를 500표차 이내로까지 좁힌 것.
- 최두선 . . . . 1회 일치
[[1955년]] [[김성수 (1891년)|김성수]]가 사망하자 [[신익희]], [[함태영]] 등과 함께 그의 국민장 장의위원으로 활동했다. 김성수의 사망 직후 [[인촌 김성수 기념사업회]]의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60년]] [[김포공항|인천비행장]]으로 환국하는 [[조병옥]]의 시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 최란(배우) . . . . 1회 일치
[[김가연]]과 더불어 연예계 고소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의 아내이기도 하기에 이충희에 대한 악플이 달리는걸 늘 모니터링 한다고 하고 변호사 자문도 구한다고 한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는 이 명성이 워낙 높아 최란이라면 벌벌 떨 정도다. 더불어 경중 안따지고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 최병철 . . . . 1회 일치
'''최병철'''(崔炳哲, [[1981년]] [[10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이다. [[2012년 하계 올림픽]] 남자 [[플뢰레]] 종목으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펜싱선수로는 [[2000년 하계 올림픽|2000년 시드니올림픽]]의 [[김영호 (펜싱 선수)|김영호]]에 이어 12년만에 메달을 건 선수가 되었다. 재치있는 입담과 특이한 경기운영방식으로 인하여 '''괴짜검객'''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f>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4108&idxno=616081 기상천외한 공격펜싱 '최병철', 괴짜검객 등극] 《이투데이》, 2012년 8월 2일</ref>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방송공사|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게 된다. [[2016년]] [[8월 10일]]에 있었던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박상영]]이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획득하자,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라는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 최성국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백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상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영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영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영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 최성민(1995) . . . . 1회 일치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으나 바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특별시]] [[강동구]] [[길동]]에서 쭉 자랐다. 그 후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가 2년 정도 살던 와중에 서울에 있는 연예기획사 오디션에 합격을 하면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다시 이사를 하였다. 당시 합격한 회사는 현재의 [[MBK엔터테인먼트]]이다.
- 최성재(배우) . . . . 1회 일치
|| '''출생''' || [[1984년]] [[7월 18일]] [[경기도]] [[안성시]] ||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최성준은 1957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86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된 이후 1989년 3월 서울형사지방법원 1990년 9월 제주지방법원 1992년 8월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거쳐 1994년 법원행정처 송무국 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가 1995년 3월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1998년에 특허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2000년 2월 수원지방법원, 200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계속하였으며 2005년 2월 특허법원 고등부장판사, 2006년 8월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2007년 2월 서울고등법원 고등부장판사, 2010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수석부 부장판사를 하였으며 2009년 3월에는 2년 임기의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최수범 . . . . 1회 일치
유달리 데뷔때부터 '''3'''과 관련이 많았던 그는 '''삼체'''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삼수범'''으로 불린다.
- 최영이 (종교인) . . . . 1회 일치
|기도 =
- 최우석 (화가) . . . . 1회 일치
1954년 6월 7일부터 6월 17일(당초 6월 1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6월 17일로 연기됨<ref>{{뉴스 인용 | 제목=「鼎齋(정재)」 畵展(화전) 延期(연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150032920202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15&officeId=00032&pageNo=2&printNo=2548&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2 | 날짜=1954-06-15 | 확인날짜=2011-08-14}}</ref>)까지 개인전을 열었으며<ref>{{뉴스 인용 | 제목=崔禹錫 畵伯 個人展(최우석 화백 개인전)|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0600329203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06&officeId=00032&pageNo=3&printNo=2539&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4-06-06 | 확인날짜=2011-08-14}}</ref><ref>{{뉴스 인용 | 제목=崔禹錫 個人展 盛況(최우석 개인전 성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06130032920301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06-13&officeId=00032&pageNo=3&printNo=2546&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4-06-13 | 확인날짜=2011-08-14}}</ref> 1956년<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11月(월) 10日(일) 開催(개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102600329203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26&officeId=00032&pageNo=3&printNo=3410&publishType=0002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3 | 날짜=1956-10-26 | 확인날짜=2011-08-14}}</ref><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來(래) 10日(일) 開幕(개막) 紛糾 解決(분규 해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10260020920301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10-26&officeId=00020&pageNo=3&printNo=10433&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 저자= | 쪽=5 | 날짜=1956-10-26 | 확인날짜=2011-08-14}}</ref> 과 1958년<ref>{{뉴스 인용 | 제목=國展(국전) 審査委員(심사위원) 26名(명) 藝術院 臨時總會(예술원 임시총회)서 決定(결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091000329102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8-09-10&officeId=00032&pageNo=2&printNo=4092&publishType=00010 | 출판사=경향신문 | 저자= | 쪽=2 | 날짜=1958-09-10 | 확인날짜=2011-08-14}}</ref>, 1959년<ref>{{뉴스 인용 | 제목=藝術院 臨時總會(예술원 임시총회) 하루 앞서 任命(임명)|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9091600209203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09-16&officeId=00020&pageNo=3&printNo=11485&publishType=00020 | 출판사=동아일보 | 저자= | 쪽=3 | 날짜=1959-09-16 | 확인날짜=2011-08-14}}</ref>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동양화부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전가풍미(田家風味, 1959년 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있다.
- 최원권 . . . . 1회 일치
[[2000년]] [[FC 서울|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아디다스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는데 그쳤고, [[2001년]]에서야 리그에서 14경기를 뛰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주로 [[미드필더|윙어]]로 활약하였으나 [[수비수|풀백]]으로 주 포지션을 변경하여, [[K리그 2001|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AFC 챔피언스리그|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4년]]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를 이전하고 구단 명칭을 변경한 [[FC 서울]]에서 계속 활약하였다. [[2006년]]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자신의 프로 통산 첫 [[어시스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고,<ref>[http://new.kleaguei.com/news/kleague/view.aspx?u=7598 FC 서울 최원권 도움 헤트트릭 기록 ]</ref> [[2008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 최윤 (소설가) . . . . 1회 일치
1984년부터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현대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출간하기도 하였다.<ref>{{웹 인용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 前 [[KBS]] [[아나운서]] [[황수경(방송인)|황수경]]의 [[남편]]으로 더 유명하다. 2013년, 이들 부부의 ‘파경설’이 악성루머로 떠돌자 최 전 차장 부부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한 종합일간지 기자가 루머 유포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http://koridol.tistory.com/6471|#]]
- 최재원(배우) . . . . 1회 일치
[[1990년]] [[광고]] [[모델]]로 출발해, [[TV]], [[연극]], [[영화]] 등에 얼굴을 비추다 [[1995년]] [[한국방송공사|KBS]]의 슈퍼탤런트 1기[* 당시 수상자는 대상 [[박상아]], 금상은 [[송윤아]]/임세미/김광필, 은상은 [[차태현]]/정혜정, 동상은 [[이형철]]/이효진이었다.]로 선발되었다. [[SBS]]의 국민 [[시트콤]] [[LA 아리랑]]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 꾸준히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의 '양심추적'이란 코너 진행자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최재원이라는 이름보다 양심맨이라는 별명을 더 잘 떠올릴 것이다.
- 최재호 (희극인) . . . . 1회 일치
| 거주지 = [[경기도]] [[고양시]]
- 최정원(1981년 4월) . . . . 1회 일치
|| '''출생''' ||<(> [[1981년]] [[4월 24일]] ([age(1981-04-24)]세), [[경기도]] [[가평군]] ||
- 최종원(국회의원) . . . . 1회 일치
사실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는데 원래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주변에서 '''다친다'''고 말렸으며 본인도 발을 빼려 했지만 이미 다 알려졌던지라 '''이민 갈 각오를 하고''' 김대중 캠프에 합류했는데 실제로 연예계 섭외가 싹 다 끊겼다고. (...) 하지만 김대중이 극적으로 당선된 다음날부터 섭외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당대 최고의 [[시트콤]]이었던 [[MBC]] [[남자셋 여자셋]]에 까메오로 출연한게 바로 이 무렵.
- 최창홍 . . . . 1회 일치
[[1925년]] 4월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했으며 [[1930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33년]] 11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1934년]] 10월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고 [[1936년]] [[5월 21일]] [[경기도]] [[장단군|장단]][[군수]]로 임명되었다.
- 최창흡 . . . . 1회 일치
|기도 =
- 최태수(가수)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광명시]]
- 최호중 . . . . 1회 일치
*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북방(北方) 장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 최효진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여, [[K리그 2007|2007 K리그]] 우승과 [[FA컵 2007|2007 FA컵]] 준우승, [[FA컵 2008|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받았고,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 2008년, 2009년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 2009|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전 경기 출장하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특히 16강전 [[뉴캐슬 유나이티드 제츠 FC|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139&aid=0001950957 |제목=(ACL 리뷰) '최효진 해트트릭' 포항, 뉴캐슬 6-0대파하고 8강행 |날짜=2009-06-24 |출판사=스포탈코리아 }}</ref>
- 최희준 (가수) . . . . 1회 일치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의 신당 [[새정치국민회의]]의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듬해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1996년 총선]]에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갑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 추경호 . . . . 1회 일치
2005년 은행제도과장으로 재직할 때 재정부 직원들이 뽑은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 선정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Who Is ?]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실물경제와 금융 모두 정통한 경제관료|url=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37|날짜=2015-04-07|뉴스=비즈니스포스트}}</ref>
- 추성건 . . . . 1회 일치
}}</ref> 같은 시기 롯데-현대에서 각각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손동일]] [[손차훈]], [[1998년]] 시즌 후 한화에서 방출된 뒤 한때 야구를 포기하기도 했던 [[길배진]]과 함께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그 주축 선수들을 필두로 창단된 신생 SK로 이적하여 [[2001년]]까지 재적했다.
- 추일승 . . . . 1회 일치
'''추일승'''([[1963년]] [[1월 3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현재 [[한국프로농구|KBL]]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감독이다.현 [[한국프로농구|KBL]] 10개 구단가운데 최고령감독이기도 하다.
- 춘추 . . . . 1회 일치
춘추는 역사서이며, 당시 학문을 익히던 사람들의 교과서이기도 했다. 『국어(國語)』에는 초어상 진어칠(楚語上 晉語七) 편에서 춘추를 배우고 익혔다는 언급이 있어, 춘추시대에 이미 춘추가 교과서로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춘추는 단지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소박한 용도로만 쓰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공자]]와 연관되면서 복잡한 '춘추학'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 츠라츠라 와라지 . . . . 1회 일치
* 히키 모토하치로 : 제4가로. 나이는 14세로 가로 중 가장 어리지만 가로 경력은 2년이나 되어 이즈미보다 경험이 많다. 하루타카가 원래는 그를 수행 가로로 삼으려 했다가 약속을 깨자 내심 이즈미에게 샘을 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하루타카를 진심으로 경애하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은 인물.
- 카맛테쨩 . . . . 1회 일치
부정적인 감정이나 힘든 감정을 적극적으로 발신한다. "이젠 싫다.","죽고 싶다."라면서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 말을 쓰며, "무슨 일이야?", "큰일이네"라고 말해주는 것을 기대한다. 주위에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게 할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 [[리스트 컷]] 등의 상처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 카이고로시 . . . . 1회 일치
본래 쓸모가 없어진 가축을 죽을 때까지 기른다는 의미였다. 현대에는 사람에 대해서 쓰기도 한다.
- 카쿄인 노리아키 . . . . 1회 일치
* 작중 카쿄인이 부모님께 이집트로 갔다고 말했다는 언급은 없기에, 카쿄인의 부모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아들이 모흡혈귀에게 끔살당해버린 꼴이 되버렸다. 어찌보면 불효자라 할 수 있을지도...
- 카타와 . . . . 1회 일치
육체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의미 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불완전하거나, 과거에는 전쟁에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 카타테 . . . . 1회 일치
본래 한 손을 듯하는 말이다. 한쪽 상대나, 여가나 짬, 혹은 '다섯'이 붙는 숫자의 돈에 대한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 칼리파 하프타르 . . . . 1회 일치
포로 신세가 된 하프타르에게 접근한 것은 당시 카다피와 적대하던 [[미국]]이었다. 1990년 [[미국]]의 [[CIA]]는 난민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단에서 하프타르와 300명의 포로 병사들을 미국으로 입국시켰다. 하프타르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20년 동안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미국 정보부의 협력하여 카다피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 캐리 피셔 . . . . 1회 일치
* [[조울증]] 등으로 고통받기도 했다.
- 캡콤 . . . . 1회 일치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활용해 게임을 만들었으며 이후 마블 vs 캡콤 등의 게임을 내놓기도 했다.
- 캡틴 울트라 . . . . 1회 일치
잠시 [[디펜더스]]에 합류했었으며 [[이니셔티브]]에선 네브라스카 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원더맨]]의 리벤저스의 일원이기도 했다.
- 캡틴 코만도 . . . . 1회 일치
어디까지나 설정 상의 이야기이나 파이널 파이트에서 등장한 가이의 후손. 즉, 무신류 닌자다. 그래서인지 남코 크로스 캡콤에서 가이과 팀을 이루기도 한다.
- 캥거루 . . . . 1회 일치
호주(Australia)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스트리아]](Austria)에 캥거루가 산다는게 드립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씩 오스트리아 동물원에서 캥거루가 탈출한다.
- 캬바쿠라 . . . . 1회 일치
캬바쿠라에서는 법률적으로 가개 내에서 손님과 아가씨의 접촉은 금지되며 원칙적으로 접촉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반(同伴)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점외 데이트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한다.
- 켄카양성패 . . . . 1회 일치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 '집단의 화합'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는 관습이기도 하다.
- 콩고릴라 . . . . 1회 일치
과거 [[포가튼 히어로즈]](Forgotten Heroes)에 가입했으며 [[뉴52]] 이전에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에 가입하기도 했다.
- 키라키라 네임 . . . . 1회 일치
이러한 이름을 붙인 아이에 대한 [[집단괴롭힘]]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만 이름이 특이하다고 하여 집단괴롭힘을 벌이는 것은 나쁜 짓이며, 오히려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과도하게 문제시 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의 동조 압력이 지나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 키모이 . . . . 1회 일치
* 마찬가지로 강조하는 뜻으로 『초키모이(超きもい)』라고 하기도 한다.
- 키이치 보우겐 . . . . 1회 일치
키이치 보우겐의 이야기는 조루리, 가부키 등으로도 만들어진다. 가공인물이지만 요시츠네가 유명하다보니, 그와 얽힌 키이치 보우겐도 음양사로 이름이 높아져서 각종 음양도 관련 문헌에 가공의 저자로서 언급되기도 한다.
- 킹덤/499화 . . . . 1회 일치
* 과거 육대장군의 일각이자 군사로서 "지력 하나만으로 육장에 올랐다"고 평해지던 호양. 다른 육장들이 무용을 자랑할 때 그는 오로지 군략만으로 싸웠고 전쟁의 자유를 받가 각개전투했다는 인상이 강한 육장들이 실제론 그가 그려놓은 큰 그림 하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 본래 산민족은 분열되어 서로 싸우기도 했으나 지금은 양단화가 사왕(死王)이란 이름으로 절대적인 신뢰 속에 통솔하고 있다.
- 킹덤/506화 . . . . 1회 일치
* 열미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산민족과 내리찍으려는 열미군이 뒤엉켜 아비규환. 사다리 밑으로 쌓이는 시체를 보며 비신대의 신참들이 몸을 떤다. 이제 문이 열리면 돌입할 테니 그들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투 미경험자인 탓에 어떤 자들은 부담감을 못 이기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그때 [[강외]]가 이들을 진정시키며 긴장을 풀라 한다. 어차피 한동안 성벽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면서.
- 킹덤/508화 . . . . 1회 일치
* 지휘부의 감탄이야 어쨌든 전장에서는 치열한 난전으로 전개된다. 열미군은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여차하는 순간 역전 당할지도 모를 정도로 기세가 강했다. 비신대의 신병들은 지나친 긴장과 첫전투의 흥분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간두]]는 노평 등과 함께 황오장 밑에 있었다. 다들 숨쉬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첫 전투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간두는 그들 중에선 오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며 훈련받은 대로 하자고 부대원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러나 유난히 흥분한 노평이 실수를 저지른다.
- 킹덤/510화 . . . . 1회 일치
* 술이 돌면서 딱딱했던 분위기도 풀린다. 간두는 숭원에게 낮에 신세진 일이 감사했다고 말한다. 숭원은 고마우면 강해지라며 "입만 산 간두"라는 별명을 부르며 쏘아붙인다. 그러자 송좌가 신병들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며 그의 과거사를 운운한다. 사실 검의 달인인 숭원도 첫 출진때는 쫄아서 오줌을 지린데다 누구 하나 베지 못했던 것이다. 신병들은 물론 미평 같은 고참들도 몰랐던 일이라 왁자지껄하게 놀림거리가 된다. 송좌도 그때 옆 부대에 있다가 우연히 들은 일이었다. 숭원은 다소 민망해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숭원이 17살이었고 오줌을 참고 있다가 적에게 기습을 당했었다. 그 뒤 한 동안 "오줌싸개 숭원"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미평은 드디어 숭원의 약점을 잡았다며 좋아라한다. 심지어 자기 첫 출진 때보다 심하다고 마구 놀려대는데 숭원이 살짝 열받아서 "놀린 놈은 죄다 반쯤 죽여놨다"고 날을 새우자 조용히 찌그러진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 [[환의(킹덤)|환의]]군은 장교들의 의견이 갈린다. 이 작전으로 진군이 전멸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흑앵은 환의의 의견을 묻는데 그는 단지 "지면 전멸"이라고 질문을 회피한다. 뇌토는 반대로 이기면 그만이란 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길지는 환의도 모른다. 마론은 그걸 꼬투리 잡아 "두목도 이기는 법을 모른다면 결국?"이라고 전멸이 확정된 것처럼 구는데, 뇌토가 반발해서 신경전을 벌인다.
- 킹덤/514화 . . . . 1회 일치
* 왕전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다. 놓아준 백성들이야 대체로 왕전을 칭송한다. 심지어 그는 무장해제시킨 조나라 병사들까지 피난 행렬에 넣어주었다. 물론 일부는 전사자 가족도 끼어 있으니 왕전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일단 자기들을 죽이지 않은 걸로 충분히 감사하는 모습들이다.
- 킹덤/515화 . . . . 1회 일치
* 공손룡군을 막으러 간 양단화군은 마평평야에서 그들과 맞선다. 그러나 진을 펼친 채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공손룡군이 꾀어낼 요량으로 자극해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격렬하게 반응하긴 했으나 전면적인 접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지 공손룡군의 발을 묶겠다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상황은 반대다. 오히려 공손룡이 그들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열미를 막은 시점에서 진군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뭘할 생각이든, 지금부터는 한 시 한 시가 목을 죄어온다. 공손룡은 이런 사실을 들어 곧 생각없이 왕도권에 들어온 걸 뼈져리게 후회하게 될 거라 장담한다. 그때 부하가 새로운 보고를 가져온다. 적들이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인가? 공손룡은 잠시 헤아려 봤으나 곧 "상황은 변한게 없다"는 답을 내고 그쪽이 조금씩 움직이면 이쪽도 조금씩 따라가면 그뿐이라 여긴다.
- 킹덤/520화 . . . . 1회 일치
* 기수가 이끄는 조군 우익은 진격이 딸라서 어느덧 예정의 절반 이상을 왔다. 그런데 진군은 초기 배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고 보고된다. 장교들 사이에선 왕전이 멍청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기세라면 좌익은 고사하고 본진까지 순식간에 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수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우선은 현재 위치에서 군을 멈추고 한동안 상태를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주]]의 기마대 1천을 내보내 정찰을 맡긴다.
- 킹덤/526화 . . . . 1회 일치
* 설마했던 마남자의 고전. 그의 부하들이 호들갑스럽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남자는 곧 자세를 고쳐잡으며 부하들의 수선을 물리쳤다. 여전한 자신이 엿보였다. 아직 자신은 한 방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로써도 한 가지는 인정했다. 이 창잡이, 왕분 같은 자는 처음이다. 보고로 들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 무예는 더욱 놀랄만했다. 마남자가 그저 창을 들어오기만 해도 눈으로 따라잡기도 힘든 속사가 날아들었다. 왕분은 마남자가 간격을 잡지 못하게 철통같이 견제하고 있었다. 이것도 조금 더 겨루다 보면 눈에 익을 것이고, 그럼 어떻게든 해볼 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시간. 부하가 시간이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있는 곳은 적진 한 복판. 오래 시간을 끌 수록 불리해지는게 당연하다. 부하들이 잇따라 철수를 진언했다. 그렇다면 마남자가 여기서 승부를 접고 돌아갈 것인가?
- 킹덤/528화 . . . . 1회 일치
* 격돌. 그러나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슌멘이 적의 선두를 베었지만 뒤따르던 부하들은 죄다 목이 달아났다. 벽이 그 모습에 경악했다. 언제나 귀신같은 돌파력을 자랑하던 산민족이, 철저학 봉쇄되고 있었다. 슌멘이 낭패한 듯 혀를 차며 주위를 애워싼 적들에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늦었다. 슌멘이 적의 기마병을 베려 하자 그 적이 말과 함께 뛰어올라 슌멘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 신기를 펼쳤다. 진군의 장수들은 보고도 그 광경을 믿지 못했고 양단화 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적은 허공에서 슌멘의 텅 빈 어깨를 베며 땅에 내려섰다.
- 킹덤/530화 . . . . 1회 일치
새로 나타난 적의 정체는 비신대. 그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전령이 도착했다. 비신대의 1진 돌파. 기수와 그 부관들은 모두 흑양에서 비신대의 위력을 실감했고 그래서 신의 조치는 큰 효과를 봤다. 부관들은 하나같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술렁거렸지만 누구하나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채 기수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기수도 기수대로 고민에 빠졌다. 흑양의 악연이 필살의 기동대가 되어 자기 목을 치러 오고 있다. 모두 [[왕전(킹덤)|왕전]]의 포석이다. 그러나 이 치가 떨리는 함정 속에서도 이점은 있었다. 적어도 적의 힘을 오판할 여지는 없다는 것.
- 킹덤/531화 . . . . 1회 일치
* 기수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작전을 통보받았다. 조군 총대장이 별동대를 직전 운용하겠다고 했을 땐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그 자리에 있던 기수나 [[마정]]은 물론 이목의 측근 [[금모]]까지. 카이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직한 마정도 "총대장이 갑자기 본진에서 없어지는건 좀 그렇다"며 난색을 표했다. 금모가 맞장구치며 개전 첫날엔 이목이 반드시 본진을 지켜야하고, 하물며 그 왕전이 상대인 이상 더욱 그렇다 강변했다. 그러면서 굳이 별동대를 쓴다면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누가봐도 이치에 맞는 반론이었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이었다.
- 킹덤/534화 . . . . 1회 일치
몽념 옆에 남아서 그가 마광군을 인계하고 대응책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빠른 시점에서 그의 구상을 간파해 몽념이 감탄하기도 했으나 그녀 자신은 간단히 마광군을 인수하고 이런 전략을 펼치는 그에게 경악한다. 새삼스럽게 스승 창평군이 "재능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극찬했던 일을 떠올리며 몽념을 빤히 쳐다보다 "그만 봐라"고 몽념이 한소리한다.
- 타루 . . . . 1회 일치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음악 그룹]] [[더 멜로디]]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더 멜로디]]의 멤버 [[고운 (가수)|고운]]의 군입대 후 더 멜로디가 해체되면서 [[2008년]]부터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이다. 타루(墮淚)라는 예명은 ‘눈물을 흘리다’라는 의미의 한자어이며, 현재 소속사는 올드 레코드이다. [[SBS TV|SBS]] [[드라마]]《[[시크릿 가든 (드라마)|시크릿 가든]]》의 이색 문자음 "문자 왔숑"의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타오파이파이 . . . . 1회 일치
평소에는 맨손으로 싸우지만,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하면 [[칼]]이나 [[폭탄]] 같은 무기도 서슴치 않고 꺼낸다.
- 태미 . . . . 1회 일치
| 출생지 ={{KOR}} [[경기도]] [[남양주시]]
- 태학 . . . . 1회 일치
태학은 수도에 설치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전한에서는 장안(현재의 시안)에, 후안에서는 낙양(뤄양)에 설치되었다. 여담으로 [[광무제]] 유수는 젊은 시절 태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수업료를 내려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아르바이트--
- 템포라 . . . . 1회 일치
[[광케이블]]을 해킹해 전화 통화, 인터넷 접속 내역, 이메일 등을 수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빼낸 정보는 30일 이상을 저장된 상태로 분류되고 분석되었으며, 미국 정보기관인 [[NSA]]에 공유되기도 했다.
- 토리코/369화 . . . . 1회 일치
* 지지의 설명으로는 과거에 등장했던 GOD는 거대한 올챙이 모습이며, 크기도 지금보다는 작았다고.
- 토리코/374화 . . . . 1회 일치
* 페어는 어차피 말이 안 된다고 죽여버리라고 하는데, 토리코는 덤비라면서 자기도 "맨몸"은 아니라고 한다.
- 토리코/383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자신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그저 지구가 무사하길 기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 토리코/395화 . . . . 1회 일치
* 토라코와 코마츠는 미도라의 묘를 정한다. 작고 이름도 없는 비석 앞에 토리코가 가져온 식재가 놓여있다. 원래는 이치류와 지로가 묻힌 식몰의 곶으로 정했지만 미도라의 식혼의 의향에 따라 삼형제가 수행하던 땅에 묻힌다.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지만 "형제가 같이 묻혀봐야 저세상에서 싸우기 밖에 더 하냐"는 말을 했다. 미도라는 아예 무덤도 필요없다고 했지만 토리코가 매주 풀코스를 가져다 주겠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이곳을 지명한 것이다. 항상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 토리코/396화 . . . . 1회 일치
코마츠는 또 풀코스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PANGEA"(판게아)란 단어는 그 "가장 끝의 땅"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토리코는 식운의 정체는 미식의 신 일족의 거대한 에너지가 세포화한 것이었다며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을 가장 끝의 땅으로 이끄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풀코스 아톰을 먹은 토리코는 눈이 밝아져서 구루메 매터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토리코에겐 우주는 곧 미식의 낙원이나 다름없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회 일치
소총을 든 경보병 90명. 사정거리가 길고 숲 속에 숨어서 총을 쏴도 기도비닉이 풀리지 않는다.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1회 일치
서양에서 수입한 화승총으로 무장한 아시가루. 철포 아시가루보다 약간 규모가 작다. 자체 생산이 아니라 수입해서 들려주는거라 가격도 비싸고 모집에 4턴이나 걸린다. 조총을 1년 동안 찔끔찔끔 수입하는거냐. 기독교로 개종하면 2턴만에 모집할 수 있으며, 일본제 철포 아시가루에 비해 능력치가 병아리 눈물 만큼 높다. 서양인과 접촉하는 이벤트에서 교역해주면 한 부대 던져주기도 한다.
- 트위스티 퍼즐 . . . . 1회 일치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난이도가 높은 퍼즐. 그러다보니 가상매체에서는 캐릭터의 두뇌의 우수성을 묘사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다만, [[팽킹 라이킹]]에서 루빅스 큐브 모양의 '''우주선'''이 등장했다.
- 티나 (1980년) . . . . 1회 일치
* 2015년 기도 Prayer (CCM)
- 파워스톤 . . . . 1회 일치
파워스톤을 판매하는 측에서는 파워스톤 각각에 특정한 측면(재복, 건강, 연애성취 등)에서 효과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파워스톤을 놓는 방위, 파워스톤을 깨끗한 물에 씻어서 파워를 부여하는 법 등을 안내하기도 한다.
- 파이널 파이트 시리즈 . . . . 1회 일치
파이널 파이트 정식 속편들은 [[슈퍼패미컴]]으로 2탄과 3탄이 나왔다. 다들 1편만도 못한 함량미달로 묻혔으나 [[슈퍼패미컴]]용 2탄의 여성 캐릭터 '[[겐류사이 마키]]'가 [[CVS2]]에 등장하면서 잠시 재조명될 뻔 하기도 했다. 마키는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더블 어퍼 등의 이식작에서도 등장하는데, 이식작들 반응이 좋지 않아서 역시 그냥 묻혔다.(...)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마블의 유명인사인 판타스틱 포의 리부트 영화이기에 기대를 모으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우려가 많았다.
- 퍼키 팻의 전성시대 . . . . 1회 일치
작중에 등장하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퍼키 팻 이외에도 다른 지역의 생존자들은 다른 이름으로 이러한 인형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때때로 서로 인형을 가져가서 롤플레잉 게임으로 교류전을 가지기도 하며, 이러한 대결에서는 규칙 논쟁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 페어리 테일/490화 . . . . 1회 일치
* 카나는 메이비스의 행방을 찾지만 아는 사람은 없고 자세히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제국군이 인근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투준비에 들어간다.
- 페어리 테일/517화 . . . . 1회 일치
아이린이 평생 걸쳐 인챈트 마법을 연구한 결과가 전 인격 인챈트인데, 웬디는 아이린이 하는걸 보고 바로 따라해 버렸으니 경악할 만도 하다. 그러고 보면 [[제레프 드래그닐]]도 그녀가 연구한 마법을 한순간에 이해해서 육체를 인간으로 돌리는데 성공하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안습한 부분.
- 페어리 테일/525화 . . . . 1회 일치
* 길다트가 위기에 처하자 카나가 가세하러 오는데 길다트는 딸을 걱정해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카나는 자기도 한 사람 몫을 하게 됐다며 마력이 담긴 카드로 오거스트를 견제해 물러나게 한다.
- 페어리 테일/526화 . . . . 1회 일치
항상 이름으로 부르던 카나가 자기도 모르고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길다트는 멈추지 않는다. 오거스트가 제정신이냐고 묻자 그게 부모라고 대꾸한다.
- 페어리 테일/530화 . . . . 1회 일치
* [[이치야 반다레이 코토부키]]가 다시 복도로 나와서 일행에게 작전개요를 전달한다. 크리스티나호는 시간의 틈새를 우회한 뒤 그 앞에서 아크놀로기아를 기다린다. 아크놀로기아는 시간의 틈새가 있는 줄 모르므로 그대로 직진, 자기도 모르개 틈새에 접촉한다. 그러면 소멸. 바보같이 간단한 작전이다. 엘자는 정말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웬디와 제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안나는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 페어리 테일/537화 . . . . 1회 일치
그는 메이비스의 손을 붙잡고 그녀와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나츠와도 화해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메이비스가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말하자 그는 정색하며 그녀는 살아야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이기 때문에 메이비스는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조용히 눈물 흘리는 두 사람.
- 페어리 테일/542화 . . . . 1회 일치
*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한 것인가? 망연자실해진 마도사들. 시간의 틈새에 있는 정신체가 그랬듯, 마룡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린다. 이 또한 마룡의 본능. 미네르바는 마룡이 자신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인식해서 먼저 파괴해 버렸음을 깨닫는다.
- 페어리 테일/544화 . . . . 1회 일치
>하지만 그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다.
- 페이데이 2/하이스트 . . . . 1회 일치
에셋의 경우, 돈만 내면 구매 가능하며 정해진 자리에 배치된다. 괜찮은 곳에 배치되기도 하지만 X도 도움 안되는 자리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 보일링 포인트. X발.
- 페이데이 2/하이스트/클래식 . . . . 1회 일치
암호를 입력하면 베인이 해킹을 시작한다. 이때 경찰들이 방 안으로 쳐들어와서 해킹을 중단시키고 건물 어딘가에 있는 배전반을 내려버리는 방식으로 해킹을 방해한다. 방의 벽을 C4로 터뜨려서 길을 만들기도 하니 주의. 이들을 적당히 막아내며 해킹이 계속되도록 하면 된다. 암호를 알아야 하는 경우가 두번 더 있는데 세무서 직원에게-패지 말고-계속해서 물어보면 대답한다.
- 폴리스 . . . . 1회 일치
폴리스의 특징은 시민 계급이다. 폴리스에서 [[시민]]은 곧 [[전사]]이며, 이들은 [[호플리테스]]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식 중장보병의 구성원으로서, 폴리스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중장보병이 되기 위하여 무장을 갖출 경제력을 보유한 토지 보유자([[지주]])이기도 했다. 이러한 구조는 중세 유럽의 도시 시민들이 [[상인]]이나 [[수공업자]] 계층이었던 것과는 대비를 이루는 점이다.
- 프랑켄슈타인(마블 코믹스) . . . . 1회 일치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 그러니까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크리처(프랑켄슈타인)|크리처]]의 마블 버전이다. 원전의 크리처처럼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대한 감정이 안좋다. 엑스멘과 충돌하기도 했다.
- 프로라 . . . . 1회 일치
또한 이런 휴향시설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생각보다 국민 동원력은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들이 전보다 더 놀고먹지 않는다면 지지율이 아주 노골적으로 떨어지고, 전보다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민주 국가보다 강한 반발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국민의 행복과 복지는 어지간한 국가보다 더 신경써야 했으므로 결국 이런 건물이 만들어지려던 것.
- 프로페서 아이보 . . . . 1회 일치
비슷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T.O. 모로우]]와는 친구. 다투기도 하나 이런 판임에도 일종의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 피우진 . . . . 1회 일치
2006년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수술로 인한 유방 절제를 이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전역 조치되자,[* 참고로 유방절제로는 장애인복지법 기준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피우진 중령이 받은 장애 판정은 군 내부 규정에 따른 것.] 복직 소송을 진행하여 승소 후 2008년 5월에 복직하였다. 암 수술을 받았다지만 군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강한 군인을 강제로 장애 판정을 받게 하고 전역시킨 군 내부의 문제가 이때 알려진다. 강제 전역당했던 기간인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승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었다. 어쨌건 강제로 민간인이 된 상태라서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이 2.9%에 머물러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 피 보훈처장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려면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약 5.56%를 넘었어야 하는데, 그건 둘째치고 애초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조건인 정당득표율 3%에 0.1% 차이로 아깝게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명도 나오지 못 한 것.
- 핀 팡 품 . . . . 1회 일치
고르길라(Gorgilla), 일렉트로(Elektro)[* [[스파이더맨]] 계열인 [[일렉트로]]와는 동명이인이다.], 구감(Googam)과 같이 '핀 팡 포'(Fin Fang Four)라는 팀[* [[판타스틱 포]] 패러디로 보인다. 그리고 표지 중 하나는 [[어벤저스]] 코믹스 표지 패러디.]을 만들기도 했다.
- 하리테 . . . . 1회 일치
언듯 보면 웃기게 보이기도 하지만, 스모 선수의 체중이 실려 있어 위력은 매우 강하다고 한다.
- 하이브리스토필리아 . . . . 1회 일치
* 근대적인 연쇄살인범에 적용된 예로는 테드 번디가 있다. 테드 번디는 멀끔하게 생긴 외모, 괜찮은 스펙, 뛰어난 언변에다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점까지 더해져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법정에서 자신의 그루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쇼를 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결혼을 하였다.
- 하이큐/223화 . . . . 1회 일치
* 초반엔 사이드에서 올리는 공격 때문에 분산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익숙해지면서 다테의 블록은 더욱 견고해졌다.
- 하이큐/224화 . . . . 1회 일치
* 임금님은 보통 "멋있는 거"라면서 타월을 왕관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 하이큐/232화 . . . . 1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우선 선수들을 데리고 코트로 내려간다. 이제 문제는 가방 쪽. 키요코가 직접 다녀오겠다고 나선다. [[야치 히토카]]가 그런 일이라면 자신이 하겟다고 하지만 키요코가 "달리기도 체력도 자신있다"고 하며 납득시킨다.[* [[하이큐/231화|전 회]]에서 히토카는 키요코가 육상부 출신이란걸 알았다.] 키요코는 자신은 금방 돌아오겠지만 혼자 있는 동안 불안할 거라며 히토카의 마음을 읽는다.
- 하이큐/244화 . . . . 1회 일치
* [[히나타 쇼요]]와 [[야마구치 타다시]]는 막간을 이용해 굿즈를 사러 나왔다가 [[후쿠로다니 학원]]의 경기도 보러 온다.
- 하이큐/247화 . . . . 1회 일치
우카이 코치는 쓰레기장 결전을 바라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선수들이라고 말한다. 하기야 네코마 고교에게 엄청 지기도 했으니까.
- 하이큐/252화 . . . . 1회 일치
* 카라스노의 TO가 끝나고 오지로의 두 번째 서브로 재개. 서브는 타나카에게 향한다. 타나카가 조금 위태롭게 리시브한 공을 [[카게야마 토비오]]가 논스톱으로 세트업, 히나타의 속공으로 잇는다. 히나타는 미처 블록이 따라오기도 전에 스파이크를 꽂아넣으며 스코어는 7 대 5. 카라스노가 따라붙는다.
- 하이큐/257화 . . . . 1회 일치
키노시타가 왜 구태여 풀네임에 나이까지 들먹인 건지 의문스러워하기도 전에 코치의 발언이 이어진다.
- 하이큐/261화 . . . . 1회 일치
다시 1점 남았다. 히토카는 그저 그 1점이 떨어지길 기도하다시피 바란다.
- 하이큐/263화 . . . . 1회 일치
* 그런 쓰라림을 아는건 역시 선수들. 아까까지 타나카의 플레이를 비웃던 선수들이 누구보다 절박하게 그를 응원했다. 물론 개인적로서도, 선수로서도 응원하는 카노카의 절심함에 비할 수는 없었다. 카노카의 동료는 방금 전 플레이가 "류 쨩"에겐 아쉽지만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타나카는 계속 블록에 잡히기도 했고 잔실수도 있었다. 나쁜 흐름을 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안경"의 판단은 잘못된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류 쨩"에게 괴로운 것이다.
- 하이큐/268화 . . . . 1회 일치
집중력이 떨어진 코즈메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었다. 벼라별 생각이 다들었다. 예전에 들었던 어떤 이야기도 생각났다.
- 하이큐/272화 . . . . 1회 일치
* [[사나타 사에코]]는 응원도 멈추고 [[이나리자키 고교]]의 4번, 오지로를 "시라토리자와 고교"의 "우시카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 말을 들은 [[시마다 마코토]]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답했다. 비슷하긴 해도 우시와카랑 다르게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서브로 공략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오지로를 상대로 제법 서브 에이스를 따기도 했다. 이는 오지로로서도 꽤 스트레스였을 테고, 저렇게 훨훨 나는 것 같아도 계속 어려운 공이 올라온 데다 블로킹도 성가시게 따라붙으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으리라 추측한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 하쿠다 켄 . . . . 1회 일치
[[2006년]] [[백남준]]의 사후 추모행사 및 [[백남준아트센터]] 건립 문제와 관련하여 하쿠다는 [[경기문화재단]] 및 [[대한민국]] 미술계 인사들과 큰 갈등을 겪은 바 있다. [[2008년]] 경기문화재단과 하쿠다의 합의가 극적으로 이루어져 동년 [[4월 30일]] 백남준아트센터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하였다.
- 한동근 . . . . 1회 일치
[[1993년]] [[5월 9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데뷔하기 전까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4년 동안 공부했다.<ref>{{뉴스 인용 |저자=손수영 |제목=한동근, 데뷔 전 무슨 일 했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url=http://news.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609092113433115096_1 |뉴스=헤럴드경제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9 |확인날짜= }}</ref> 한동근은 미국 유학 도중 성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합창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고 피아노로 노래를 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 |저자=김민서 |제목=‘가요광장’ 한동근 “美 유학 중 성가대 활동, 가수 된 계기” |url=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545114&cloc=rss%7Cisplus%7Centertainment |뉴스=일간스포츠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3 |확인날짜= }}</ref> [[2014년]] [[8월]] 데뷔 앨범을 준비하며 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를 부르게 되었다. 데뷔 곡을 정하기 위해서 시험 삼아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던 만큼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를 "자연스럽다"며 마음에 들어한 소속사 사장의 권유에 《이 소설의 끝을 써보려 해》는 그 다음 달 발표되었다.<ref>{{뉴스 인용 |저자=양승준 |제목=카메라 없어도 노래 자처…열정이 만든 ‘역주행 신화’ |url=http://www.hankookilbo.com/v/31eb3a7aa65e4987a1b22f33592d79a6 |뉴스=한국일보 |출판사= |위치= |날짜=2016-09-01 |확인날짜= }}</ref>
- 한비야 . . . . 1회 일치
2005년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이후 증가한 월드비전의 해외 후원을 바탕으로 구호팀원을 배출하고, WFP(세계식량계획)와 협력을 하기도 하였다.
- 한상훈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99학번)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하였다. 민첩한 풋워크와 손놀림, 타구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은 때론 메이저 리그급 [[2루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f>《스포츠 2.0》 2007년 프로야구 Complete Guide</ref> 뛰어난 수비 실력을 보여 주지만, 타격이 약한 편이다. [[2004년 한국 프로 야구 병역 비리 사건|2004년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8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101 '한상훈 입대' 한화, '2루수 고민' 해소할까] 《Osen》, 2008년 12월 7일</ref>
- 한수연(배우) . . . . 1회 일치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드라마)|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야망에 가득찬 악역 중전 김씨를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6년 11월 3일자 KBS [[해피투게더(KBS 2TV)|해피투게더]]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 한수진 (1969년) . . . . 1회 일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앵커전문요원 공채로 [[SBS]]에 입사하였다. 이후 [[1994년]] [[4월]]부터 [[2002년]] [[4월]]까지 8년간 [[SBS 8 뉴스]]를 진행하였는데, 이 진행 기간은 [[SBS]] 개국 이래 여성 앵커의 최장 진행 기록이기도 하였다. [[2005년]] [[3월 6일]]부터 [[2007년]] [[4월 22일]]까지 [[SBS TV]]의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을 진행하였다. [[2009년]] [[3월 7일]]부터 2009년 [[10월 25일]]까지는 주말 [[SBS 전망대]]를 [[2009년]] [[10월 26일]]부터 [[2011년]] [[4월 1일]]까지 [[한수진의 오늘]]을 진행했고 [[2010년]] [[11월 3일]]부터 [[2011년]] [[3월 9일]]까지 [[SBS 뉴스추적]]을 진행했고 [[2011년]] [[3월 22일]]부터 [[2013년]] [[2월 19일]]까지는 [[SBS 뉴스추적]]의 후작인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을 진행했고 [[2012년]] [[12월 17일]]부터 [[2016년]] [[8월 20일]]까지는 [[한수진의 시사 전망대]]를 진행하다가 국제부장으로 발령나서 중간하차 하였다.
- 한승조 . . . . 1회 일치
일본 보수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 조약|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근대화론|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ref>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503/h2005030411490221950.htm 한국일보 - 한승조 "일본 식민지 지배는 축복"]</ref>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친일파|신친일파]]<ref>[http://www.hani.co.kr/section-007100002/2005/03/007100002200503132126035.html 한겨레신문 - 한-일 우익 ‘역사왜곡’ 연대조짐] :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반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반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 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f>라고 부르기도 한다.
- 한영이 . . . . 1회 일치
|기도 =
- 한운사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작가]].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본명]]은 한간남이다. [[종교]]는 [[불교]]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니만큼 징집 당해 [[학도병]]이 되었다. [[운전병]]을 거쳤으며 해방될때까지 계속 운전병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아로운 3부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대학을 다니던 때에 방송 극작가가 되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아로운 3부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승자와 패자' 등을 썼으며 이 중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1919)|김기영]] 감독이 영화로 연출하기도 했고 후에 TV [[드라마]]로도 나왔다. [[빨간 마후라]]의 시나리오도 한운사가 썼다. 후엔 자전적 에세이 '구름의 역사''를 썼다.
- 한윤성 . . . . 1회 일치
| 출생지 = [[경기도]] [[연천군]]
- 한준희 . . . . 1회 일치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준희는 7살이던 [[1976년]] [[차범근]]이 출전한 대통령컵 말레이시아전을 본 것을 계기로 축구광이 되었다. 학창시절 [[할렐루야 축구단]]과 [[대우 로얄스]]의 팬으로서 대한민국 축구를 챙겨보았고, TV에서 가끔 방송해주었던 [[분데스리가]]와 [[인터콘티넨털컵 (축구)|인터콘티넨탈컵]]을 빠짐없이 시청하며 해외축구를 섭렵했다. [[1990년]] [[서울대학교]] 해양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교 3학년때 과학철학에 심취한 그는 철학 교수를 꿈꾸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중에도 틈틈이 [[폭스 방송]]을 통해 해외 축구를 즐겨보던 그는 취미로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인 [[사커라인]]에 칼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2002년]] 귀국 후 [[MBC 스포츠+|MBC ESPN]]의 축구해설가로 입문하게 된다. [[MBC 스포츠+|MBC ESPN]]에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 해설을 맡으며 화면에 비친 사람 대부분의 신상정보를 읊는 신통한 정보력과 전문적인 전술 해설, 거기에 감초같은 샤우팅 중계가 더해져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각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충원하였는데,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외 축구를 중계하던 3인방 중 한준희는 [[KBS]]로, [[서형욱]]은 [[MBC|MBC 지상파]]로, [[박문성]]은 [[SBS]]로 각각 스카웃되었다. [[2005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 몸담은 한준희는 [[월드컵]],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K리그]]부터 유소년 축구, 대학 축구, 실업 축구, 여자 축구 등 다양한 축구경기를 중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어렸을적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었다. 당시 롯데가 실업야구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K리그]] 의 [[전북 현대 모터스]]의 팬이기도 하다.
- 한지우(배우) . . . . 1회 일치
정글피쉬 2를 촬영하면서 교복을 입은 장면의 사진이 공개되면서[[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2110168|#]] 소위 말하는 [[베이글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1회 일치
이시종을 시작으로 맹정섭까지 이어지는 충주시 보수정당 인사의 민주당계 전향자 라인이다.[* 웃긴건, 이시종, 한창희, 맹정섭 3인은 17대 총선에서 각각 다른 소속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넘어온 이시종이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한창희가 한나라당 후보로, 맹정섭은 무소속 후보로.] [* 아울러 한창희나 맹정섭이나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어지간히 섭섭했던 모양인지 그쪽 정당에서 있었던 일 자체를 거의 흑역사 취급하고 있다.]한창희 본인만 해도 열린우리당으로 갈아탄 이시종에게 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조차 민주당으로 넘어와서 선거를 치뤘다. 그만큼 민주당계 정당이 충주에서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반증일지도. 현재도 차기 총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군이다.
- 한현준 . . . . 1회 일치
'''한현준'''(韓顯濬, [[1960년]] [[4월 15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대구텍]]의 대표이사 사장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최고위직인 사장에 오른 바 있으며, 동시에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사 유일의 한국인 [[CEO]]이기도 하다.<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406/e2014061218432593820.htm 대학생을 위한 CEO 특강 - 한현준 대구텍 사장] 《서울경제》 2014.06.12</ref>
- 함대 컬렉션 . . . . 1회 일치
칸코레를 빠는 사람을 부르는 멸칭으로 '배박이'가 있다. 그런데 배박이들끼리도 배박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 함신익 . . . . 1회 일치
1995년 해외 음악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2003년에는 자서전 '다락방의 베토벤 을 출간하기도 했다.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지휘자들을 배출해냈으며, 그 중 싱가폴 출신의 Darrell Ang은 2007년도 브장송 국제지휘콩쿨에서 우승하였다.
- 함중아 . . . . 1회 일치
기업가를 겸직하기도 한 그는 2002년 해외산 양주 판매 관리법 위반 혐의로 적발된 바 있다.
- 함화진 . . . . 1회 일치
한편 [[1912년]]부터 조선정악전습소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했고, [[193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 실기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고 [[처용무]]를 재현하는 등 국악 전통의 복구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 해외결혼식 . . . . 1회 일치
결혼식 풍속의 하나. 해외의 관광지에서 올리는 결혼식을 뜻한다. 호화, 사치스러운 결혼식으로서 행해지기도 하지만, 관광지 이벤트로서 비교적 간소하게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 해원군 . . . . 1회 일치
| 매장지 = {{KOR}} [[경기도]] [[의정부시|의정부]]
- 허건엽 . . . . 1회 일치
11월 20일 [[질롱 코리아]]에 [[우동균]], [[최준석]]과 같이 추가 멤버로 합류했다. 현재 질롱 선발진 중 [[김진우(1983)|김진우]]는 컨디션 폭망, [[이재곤]]은 답이 없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고 그나마 [[장진용]]과 선발겸업인 [[길나온]]만 나름 선방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포수 중에는 같은 [[SK 와이번스|SK]] 소속이었던 [[임태준]]이 있기에 아마 선발로 기용될 듯.
- 허위 . . . . 1회 일치
여담으로 그의 증조카가 [[일제강점기]] 시기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 무장 투쟁 활동을 했던 [[허형식]]이다.[[http://gumi.grandculture.net/Contents?local=gumi&dataType=01&contents_id=GC01201509|#]] 또한 당조카인 허길의 아들이 바로 시인 [[이육사]]이다. 직계 제자로는 대한 광복회 총사령인 [[박상진]]이 있다. 박상진은 허위가 순국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루기도 했다.
- 허협 . . . . 1회 일치
|기도 =
- 헐크 . . . . 1회 일치
외소한 체격을 지닌 브루스 배너가 분노 등에 의해 거대한 녹색 괴물 헐크가 된다. 헐크의 괴력은 강력한 파워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힘. 그렇기에 적과의 싸움에서는 든든한 아군이나 헐크가 폭주할 위험성이 있다보니 상황에 따라서는 싸워야 하는 상대가 되기도 한다.
- 현경련 . . . . 1회 일치
|기도 =
- 현소환 . . . . 1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출신인 그는 [[대한민국 해병대]] 간부후보 30기 출신이기도 하며 예비역 대한민국 해병 중위이다.
- 현재덕 . . . . 1회 일치
* [[인천박문초등학교|경기도 인천 대부보통학교]] 졸업
- 호환성 . . . . 1회 일치
호환성은 생산성 때문에 여러모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자주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일단 아키텍쳐가 바뀌면 모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동작을 보장하는 [[삽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한 아키텍쳐이라면 큰 문제 없지만 마이너한 아키텍쳐는…. 그래서 [[자바]] 같은 [[가상 머신]]으로 호환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 혼모노 . . . . 1회 일치
* 인터넷 은어에서 '진짜 [[오타쿠]]'라는 의미. 주로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오타쿠라는 것을 강렬한 표현력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뜻한다. 『진짜』라고 강조해서 쓰기도 한다.
- 홍병주 . . . . 1회 일치
|기도 =
- 홍소희 . . . . 1회 일치
|출생지 = [[경기도]] [[안성시]]
- 홍승목 . . . . 1회 일치
'''홍승목'''(洪承穆, [[1847년]] [[음력 10월 11일]] ~ [[1925년]] 양력 [[2월 15일]])은 [[조선]] 말기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를 지냈다. 자는 경희(敬熙), 호는 연운(硯耘),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 본적은 [[경기도]] [[경성부]] 계동이다.
- 홍정욱 . . . . 1회 일치
'''홍정욱'''(洪政旭, [[1970년]] [[3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언론인]]이다. 현재 [[헤럴드 (기업)|헤럴드]] 및 [[올가니카]]의 회장이며, 사단법인 올재의 이사장이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 로스쿨 졸업 후 미국에서 투자금융가로 일했고 [[2001년]] 귀국 후 헤럴드를 인수해 기업가로 활동했다.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총선]]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 홍진기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던 경력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ref>{{뉴스 인용 |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1973438 | 제목=“독립투쟁이 전설로 묻혀서 되겠나, 그래서 나섰다” | 저자=유인경 | 뉴스=경향신문 | 날짜=2008-08-28 | 확인날짜= | 보존url=http://archive.is/WyYhK | 보존날짜=2014-04-30 }}</ref>에 등재되기도 했다.
- 홍혜경 . . . . 1회 일치
* [[2006년]]《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 화장실의 하나코 씨 . . . . 1회 일치
* 『학교의 무서운 이야기 하나코 씨가 왔다』는 단편 연작 애니메이션이 있다. 하나코 씨가 괴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이야기지만, 사실 도와주지 않기도 한다.--일해라--
- 확신범 . . . . 1회 일치
가끔 오해받고 잘못 쓰이기도 하지만, "확실한 범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 황동주(배우) . . . . 1회 일치
[[1974년]][* [[1976년]] 출생으로 알려졌으나 [[2016년]] [[12월 14일]],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1974년]] 생이라고 언급했다.] [[4월 15일]] [[경기도]] [[가평군]] 출생으로, [[2001년]], 어린이 드라마 [[요정 컴미]]를 통해 데뷔했다. [[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 황병일(1960) . . . . 1회 일치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야구)|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 황부인전 . . . . 1회 일치
그리하여 제갈량과 황부인은 부부의 연을 맺는데, 황부인은 신술을 부려 조조의 모친 생일잔치에 쓰는 음식을 날라 제갈량의 친우들을 대접하고, 신술을 부려 군무지사를 베풀기도 한다.
- 황석두 . . . . 1회 일치
|기도 =
- 황연대 . . . . 1회 일치
'''황연대'''(黃年代, [[1938년]] [[12월 12일]] [[서울특별시]]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출신 의사이기도 하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ua/books?id=UjQEAAAAMBAJ&pg|제목="RX: determination" - The Rotarian, Vol. 139, No. 5|성=Byong Ho|이름=Lee|날짜=1981년 11월|출판사=[[국제 로터리]] (Rotary International)|쪽=42-43|언어=en|isbn=}}</ref><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53&aid=0000029783|제목=패럴림픽 MVP 엔 순금 75g ‘황연대 성취상’ 드립니다|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2550152|제목=[초대석]장애인올림픽 ‘황연대 성취상’을 만든 황연대 씨|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 황치열 . . . . 1회 일치
* 2010년 남성 듀오 가수 '한국'과 함께 《[http://www.melon.com/artist/song.htm?artistId=471643 웬즈데이(Wednesday]》라는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여 잠시 활동하였고, [[박경림]]의 라디오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에 수요일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함.
- 회고록 . . . . 1회 일치
정치,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이 말년에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물들의 회고록은 사료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회고록에도 개인의 주관이 반영되어 있어서 [[자서전]]만큼이나 회고록의 기록은 검토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 후예 . . . . 1회 일치
* 창작물에서는 등장인물을 특정 역사상 인물의 후손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 휴전 . . . . 1회 일치
국가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부상자 구출 등의 사유로 임시적, 일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 히치하이킹 . . . . 1회 일치
왠지 아름다운 여성이 유혹적인 포즈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장면이 [[광고]] 등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치안이 불안하거나 인심이 야박한 곳에서는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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