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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름 . . . . 62회 일치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한 김보름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31/2017013190223.html|제목=[테마 인터뷰] '노란 머리' 김보름 "머리 색 같은 메달 따고 싶어요"|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가 활약했던 게 영향이 가장 컸죠. 하지만 2010년도 전부터 스피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ref name=":8" /> "스피드 스케이팅의 혼자만의 싸움이 매력적이라 전향 결심했습니다."<ref name=":25">{{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6106689|제목='얼짱 스피드 스케이터' 김보름의 꿈|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딱히 계기라고 할 건 없고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한번 해보고 그만두자'해서 전향을 했는데 지금 여기까지 온 거죠. 쇼트트랙 할 때 그렇게 잘 탔던 선수도 아니었고 성적도 계속 안나왔고 대학에 가서 진로 결정을 확실히 해야 하던 시기여서 전향을 하게 됐어요.<ref>{{웹 인용|url=http://atmz.co.kr/?p=4474|제목=The Women Athlete {{!}} 김보름, 거침없이 멈춤없이 {{!}} athlete|성=athlete|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아무래도 시작이 늦다 보니 의욕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를 줄이기가 벅차더라고요. 결국엔 쇼트트랙에 흥미를 잃었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운동을 그만 두게 됏죠. 다시 쇼트트랙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2009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15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그렇게 큰 선수는 아니었죠. 쇼트트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ref>{{뉴스 인용|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64&aid=0000005293|제목=[매거진S] 김보름, 주저앉는 것이 꼭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언어=ko|확인날짜=2017-04-18}}</ref> "전향에 대해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열 명이면 열 명 다 좋지 않게 보시더라고요. 누군가 '그냥 쇼트트랙 타'라고 말했다면 오히려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다들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하시더라고요.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그저그런 선수로 남으면 저를 비난했던 사람들의 생각처럼 되는 거잖아요. 뭔가 오기, 목표가 생겼어요."<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0349.html|제목=[스피드 인터뷰]금빛 질주 꿈꾸는 여제, 김보름의 반전 드라마|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쇼트트랙에 늦게 입문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엄청나게 늦게 시작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궁지에 몰린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3/0200000000AKR20170103089600007.HTML|제목=<평창유망주> ④ 쇼트트랙 꼴찌소녀 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노린다|성=김경윤|날짜=2017-01-04|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도 국가대표를 지냈지만 김보름은 다르다. 김보름은 쇼트트랙에서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종목을 전환해 성공했다. 더 많은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1.kr/articles/?2887690|제목=[빙속] 이승훈-김보름이 가져온 매스스타트 붐 업…"긍정적 효과"|날짜=2017-01-17|뉴스=뉴스1|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실패했던 기간으로 보였던 쇼트트랙 경험이 훗날 주종목이 된 매스스타트를 위한 김보름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쇼트트랙 경험이 매스스타트에 많은 도움을 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1/0200000000AKR20161121135300007.HTML|제목=이승훈·김보름 이구동성 "쇼트트랙이 매스스타트 선전 비결"|성=이영호|날짜=2016-11-21|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0년 12월 20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남녀 종합빙상선수권대회 3000m에서 박도영(17-덕정고)이 4분21초18의 기록으로 1위에 올랐고 김보름(17)이 4분22초30을 기록 뒤를 이어 상위 2명에게 주어지는 201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tnsport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제목=[빙상] 이승훈, 빙상선수권대회 5000m 우승...아시안게임 출전권 획득 - STN|언어=ko|확인날짜=2017-03-05}}</ref>
2011년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고등부 3000m에서 1위는 대회신기록인 4분17초42의 박도영(덕정고)이 차지했고 2위는 대회신기록인 4분22초21의 김보름이 차지했고 3위는 4분24초04의 임정수(청학고)가 차지했다. 1500m에서는 1위는 대회신기록인 2분4초37의 박도영이 차지했고 2위는 2분5초49의 김보름이 차지했고 3위는 2분7초16의 임정수가 차지했다.<ref name=":4">{{저널 인용|제목=제92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 스케이팅|url=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A0%9C92%ED%9A%8C_%EC%A0%84%EA%B5%AD%EB%8F%99%EA%B3%84%EC%B2%B4%EC%9C%A1%EB%8C%80%ED%9A%8C_%EC%8A%A4%ED%94%BC%EB%93%9C_%EC%8A%A4%EC%BC%80%EC%9D%B4%ED%8C%85&oldid=8386539|날짜=2012-03-11|언어=ko}}</ref>
2011년 11월 18일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2011-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2초38로 2위를 차지했다. 19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4위를 차지했다. 2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이 3분05초79로 4위를 차지했다. 2011년 11월 25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13초61로 20위를 차지했다. 26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58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7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한국체대)이 7분26초85의 기록으로 첫 동메달을 따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033550|제목=이승훈, 매스스타트 금메달|날짜=2011-11-28|뉴스=SBS NEWS|언어=ko|확인날짜=2017-03-06}}</ref> 2011년 12월 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26초10으로 12위를 차지했다. 3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39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노선영(한국체대)-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18의 기록으로 캐나다(3분00초01)와 러시아(3분02초38)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월드컵 시리즈 팀 추월에서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f name=":17">{{웹 인용|url=http://m.yeongnam.com/jsp/view.jsp?depth1=3&depth2=4&nkey=20111206.010260719320001|제목=한국 빙속 팀추월 사상 첫 메달|성=영남일보|확인날짜=2017-03-06}}</ref> 2012년 2월 12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끝난 월드컵 5차 대회 팀추월 경기에서 이주연(25)과 노선영(23), 김보름(18)이 출전하여 3분05초65의 기록으로 폴란드(3분05초57)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3000m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5초66의 기록으로 16위에 머물렀다.<ref name=":2">{{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EC%B0%A8%EB%8C%80%ED%9A%8C-%ED%8C%80-%EC%B6%94%EC%9B%94-%EB%82%A8%EB%85%80-%E9%8A%80-%E9%8A%85|제목=빙속 월드컵 5차대회, 팀 추월 남녀 銀, 銅|날짜=2012-02-1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06}}</ref>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24로 10위를 기록했다. 디비전B에서는 이주연(동두천시청)과 노선영(한체대)이 각각 1위(2분01초53)와 3위(2분01초82)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B%B9%99%EC%86%8D%EC%9B%94%EB%93%9C%EC%BB%B5-5000m-13%EC%9C%84-%EA%B9%80%EB%B3%B4%EB%A6%84-%EC%97%AC%EC%9E%90%EB%B6%80-1500m-10%EC%9C%84|제목=이승훈 '빙속월드컵' 5000m 13위... 김보름 여자부 1500m 10위|날짜=2012-02-12|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1}}</ref> 2012년 3월 1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1500m에서 김보름은 1분59초52로 12위를 차지하며 73점 22위로 시즌을 마쳤다. 11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53초69로 7위를 차지하며 110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이주연, 노선영이 3분03초29로 은메달을 차지하며 320점 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2012년 2월 16일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대학부 3000m 결승에서 김보름(19)은 4분18초11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17일 열린 1500m에서도 2분05초로 우승한 김보름은 대구-경북 동계체전 선수 중 유일한 2관왕 타이틀을 획득했다.<ref name=":5">{{웹 인용|url=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218.010200737070001|제목=대구경북 유일한 2관왕 ‘빙속 스타’ 김보름 “소치올림픽 금메달도 꿈만은 아닐 것”|성=영남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08}}</ref>
2012년 3월 22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1초09로 11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이주연, 노선영, 김보름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3초86으로 6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4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8초60으로 박도영(4분21초18-한국체대)과 임정수(4분25초23-한국체대)를 여유있게 제치고 대회신기록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6일 열린 1500m 경기에서도 김보름이 2분02초98로 역시 한체대 출신인 노선영(2분05초00-용인시청)과 박도영(2분05초71)을 꺽고 대회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6">{{웹 인용|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799136|제목='빙속 질주' 스피드스케이팅 시즌 시작됐다|날짜=2012-11-07|확인날짜=2017-03-10}}</ref>
2012년 11월 16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4분10초81로 1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41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 부문에서는 김보름이 4위를 차지했다.<ref name=":8" /> 18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3분03초13으로 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2년 11월 24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에 출전한 김보름은 8분40초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박도영(20-한국체대)은 8분41초26으로 5위, 노선영은 8분41초82로 10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05로 전체 선수 20명 중 5위를 기록하며 한국 여자 장거리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0초74로 5위, 박도영이 2분02초34로 15위를 차지했다. 25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도 김보름은 4분06초13의 기록으로 7위에 오르는 등 장거리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박도영은 4분12초3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30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4분13초51로 16위를 차지했다.<ref name=":9">{{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A%B9%80%EB%B3%B4%EB%A6%84-%EC%8A%A4%ED%94%BC%EB%93%9C%EC%8A%A4%EC%BC%80%EC%9D%B4%ED%8C%85%EC%9B%94%EB%93%9C%EC%BB%B5-%EB%A7%A4%EC%8A%A4%EC%8A%A4%ED%83%80%ED%8A%B8-1%EC%9C%84|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매스스타트 1위|날짜=2012-11-26|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2}}</ref> 2012년 12월 1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11초19의 기록으로 전체 12명의 선수 중 5위를 기록,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5000m 디비전B에서는 박도영이 7분30초18로 16위, 노선영(23, 한국체대)이 7분35초47로 19위, 임정수가 7분39초23으로 2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38의 기록으로 17위를 차지했다. 1500m 디비전B에서는 노선영이 2분02초47로 9위, 박도영이 2분03초10으로 11위를 차지했다.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은 3분00초5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ref name=":14">{{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C%9D%B4%EC%8A%B9%ED%9B%88-%EC%9B%94%EB%93%9C%EC%BB%B5-10000m%EC%84%9C-%E9%8A%85|제목=이승훈, 월드컵 10,000m서 銅|날짜=2012-12-03|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2월 9일 독일 인첼에서 열린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김보름은 8분13초80만에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대회에서 김보름은 월드컵 포인트 100점을 추가, 총점 260점으로 네덜란드의 마리스카 휘스먼(240점)을 제치고 여자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로 올라섰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박도영(8분16초82)과 노선영(8분17초64)은 각각 10위, 15위에 그쳤다. 1500m 디비전A에도 김보름은 출전했으나 1분58초43의 기록으로 10위에 머물렀다.<ref name=":10">{{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2306875|제목=김보름, 빙속월드컵 매스스타트서 두 번째 金... 이승훈 부진|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3초04로 13위에 머물렀다. 2013년 3월 1일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 5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7분41초22로 11위를 차지했다. 2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80으로 18위를 차지했다. 2013년 3월 9일 네덜란드 히렌빈에서 열린 월드컵 파이널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51로 8위를 차지하며 185점 10위로 시즌을 마쳤다. 10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0초58로 16위를 차지하며 133점 13위로 시즌을 마쳤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3위로 골인했지만 앞서 치른 2차와 7차 월드컵에서 1위를 한 바 있어 총점 365점으로, 330점에 그친 마리스카 후이스만(네덜란드)을 제치고 종합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ref name=":12">{{뉴스 인용|url=http://m.blog.naver.com/woorikangsan/20201685972|제목=한국 빙상 유망주 - 김보름 선수,한국, 토렌티노 동계 U대회 종합 3위…빙속 김보름 최다 메달 획득,|뉴스=네이버 블로그 {{!}} 사진과 여행하기|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2년 12월 22, 23일 이틀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보름과 박도영이 각각 170.241점과 174.147점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3000m 경기에서 김보름은 4분16초19의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 중간합계 선두에 올랐다. 23일 1500m와 5000m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2일 열린 500m에서 남지은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 1위에 오르며 대회신기록으로 우승을 확정지어서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중국 창춘에서 펼쳐지는 2013 세계올라운드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예선의 출전자격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icenews.co.kr/entry/%EB%8B%A4%EC%8B%9C-%EB%B3%B4%EB%8A%94-%EB%B0%B4%EC%BF%A0%EB%B2%84%EC%8A%A4%ED%83%80-vs-%EB%AF%B8%EB%A6%AC-%EB%B3%B4%EB%8A%94-%EC%86%8C%EC%B9%98%EC%8A%A4%ED%83%80|제목=다시 보는 밴쿠버스타 vs 미리 보는 소치스타!|날짜=2012-12-24|뉴스=아이스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월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3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2초3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20초37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팀추월에서는 박도영, 김보름, 임정수로 구성된 한국체육대학교팀이 3분11초86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6&detailClassCd=08&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김보름은 2013년 1월 21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3 전국남녀 종별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33으로 3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1&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2일 열린 1000m에서 1분20초38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2&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1500m에서 2분00초9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3&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3일 열린 3000m에서 4분18초04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217&detailClassCd=04&rhCd=19&page=14&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3년 3월 21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종목별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12초69로 9위를 차지했다. 22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59초15로 1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노선영(용인시청)-박도영(한국체대)로 구성된 팀추월 대표팀이 3분05초32의 기록으로 네덜란드(3분00초02), 폴란드(3분04초91)에 이어 3위에 올라 사상첫 팀추월 메달을 획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sworld.tistory.com/513|제목=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이상화,모태범 2연패 달성|날짜=2013-03-25|뉴스=스포츠 월드|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0월 2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20)은 4분18초89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박도영(20-한국체대)이 4분21초30으로 2위에, 노선영(24-강원도청)이 4분21초37로 3위에 등극했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23_0012457099&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5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44의 대회신기록으로 노선영(강원도청-2분02초77)을 제치고 우승했다. 5000m에서도 김보름은 이주연이 2008년 남긴 기존 대회기록(7분46초20)에 7초가량 앞선 7분39초14로 우승, 3광왕의 영예를 안았다. 여자 1500m 및 3000m에서는 팀추월 우선선발 대상자인 김보름과 노선영, 박도영(한국체대) 외에 양신영(전북도청), 전예진(한국체대)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0/25/20131025004859.html|제목=[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성=세계일보|날짜=2013-10-25|뉴스=[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1월 8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7초93의 기록으로 12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3090996|제목=‘빙속 여제’ 이상화, 캘거리 월드컵 500m 금메달|날짜=2013-11-09|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9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94 만에 결승선을 통과, 20명의 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ref>{{웹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0/1007000000AKR20131110013951007.HTML|제목=-빙속월드컵- '여제' 이상화 500m 세계신기록(종합) {{!}} 연합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양신영이 3분00초32로 5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15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4초62로 15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12로 개인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8초32로 7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29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09초99로 6위를 차지했다. 30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12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3년 12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 김보름은 노선영(24-강원도청), 양신영(23-전라북도청)과 함께 출전해 3분02초04의 기록으로 네덜란드(2분58초19), 폴란드(3분1초18)에 이어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493417|제목=전북도청 양신영 국제빙상 월드컵 동메달 - 전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김보름은 2013년 12월 23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68회 전국남녀 종합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m에서 41초77로 2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1&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5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3000m에서 4분18초76으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4&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4일 열린 1500m에서 2분03초54로 1위,<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3&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5000m에서 7분26초06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5&detailClassCd=05&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5000M&rhName=%EC%A2%85%ED%95%A9&kindCd=22&kindNm=%EC%97%AC%EC%9E%90%EB%B6%80&pcntGbn=I&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1월 7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4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1초01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6&detailClassCd=03&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8일 열린 10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19초94로 2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16&detailClassCd=02&rhCd=19&page=11&gameDate=&baseClassName=1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4}}</ref>
2014년 2월 28일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전에서 김보름은 3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3연속 2관왕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ref name=":15" />
2014년 3월 8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고빙상인추모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1500m에서 김보름은 2분03초05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02&detailClassCd=03&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9일 열린 3000m에서는 김보름이 4분21초75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02&detailClassCd=04&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2014년 3월 13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전국남녀 대학대항스피드스케이팅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24초88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26&detailClassCd=04&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30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14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49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326&detailClassCd=03&rhCd=19&page=10&gameDate=&baseClassName=1500M&rhName=%EC%A2%85%ED%95%A9&kindCd=09&kindNm=%EC%97%AC%EC%9E%90%EB%8C%80%ED%95%99%EB%B6%80&pcntGbn=I&useGbn=Q|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5}}</ref>
2014년 10월 29일 부터 31일 까지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24초06으로 1위에 올랐고, 전예진(한국체대-4분24초29)이 뒤를 이어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413|제목=빙속여제 이상화 적수가 없다|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1500m에서는 노선영(강원도청)이 2분05초00으로 1위, 김보름이 2분06초75로 2위, 박초원(노원고등학교)이 2분06초99로 3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giantorenge.tistory.com/269|제목=2014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날짜=2014-11-01|뉴스=OOOOOOOOrenge|확인날짜=2017-03-14}}</ref>
- 박근혜 . . . . 60회 일치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ccourt.go.kr/cckhome/kor/event/adjuList.do|제목=선고목록 및 결정문 - 헌법재판소|확인날짜=2018-12-1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6&aid=0010429073|제목=[영상]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언어=한국어|확인날짜=2017-03-10}}</ref> 탄핵 후에는 곧바로 3월 21일 검찰에 소환되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에 이어 네 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ref>{{뉴스 인용 |title=[박근혜 검찰 출석] 최순실 ‘곰탕’·이재용 ‘자장면’…박근혜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 |url=http://news.donga.com/3/all/20170321/83428508/2 |work=동아일보 |date=2017-03-21 |accessdate=2017-05-18}}</ref> 3월 31일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세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 |title='최순실 국정농단 공범' 박근혜 구속…"혐의소명·증거인멸"(종합)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30/0200000000AKR20170330171251004.HTML |work=연합뉴스 |date=2017-03-31}}</ref>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하던 중에 2017년 10월 16일 6개월인 1심 구속기간이 만료되었으나 검사가 앞선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뇌물 공소사실에 대하여 다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기간이 최대 6개월 연장되었다. 이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 측은 반발하였고 모든 변호인단이 사임하였다.<ref>[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710171022138598395_1
재판 보이콧’ 박근혜 “나라 바로 세우는 게 중요” 판흔들기?]</ref> 한편 2017년 11월 3일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명했으며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강제출당된 대통령이 되었다.<ref>{{뉴스 인용|저자1=안정원|제목=한국당, '1호 당원' 박근혜 출당조치…'20년 관계' 청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9&oid=001&aid=0009659037|날짜=2017-11-03|확인날짜=2017-11-03|뉴스=[[연합뉴스]]}}</ref>
박근혜는 대기업 관련 범죄·[[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혐의 18개 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국정원]] 특활비 · 공천개입 등 혐의 3개에 대해 각각 재판을 받고 있다. 전자는 2심, 후자는 1심 판결이 나온 상태이다. 2018년 4월 6일 18개 혐의에 대한 1심에서는 혐의 16개에서 일부유죄 및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으며,<ref name=":0" /> 2018년 8월 24일 2심에서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 원으로 형량이 늘어났다.<ref name=":2" /> 2018년 7월 20일 혐의 3개에 대한 1심에서는 2개가 인정되어 징역 8년 및 추징금 33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이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20/0200000000AKR20180720096900004.HTML|제목=박근혜 '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1심 징역 8년…33억 추징(2보)|성=송진원|이름=|날짜=2018-07-20|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2개 재판을 합치면 혐의가 총 21개, 형벌은 총 33년형과 벌금 200억 원과 추징금 33억 원이다.
이후 [[2000년]] 한나라당의 부총재로 선출되었지만 [[2002년]] 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을 비판하며 한나라당에서 탈당하였다. 이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58351&ctg=10 한국미래연합 창당…대표 박근혜의원 - 2002-05-17 중앙일보]</ref> 하였으나 대선 전에 복귀하였다. [[2002년]] [[5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 [[5월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회담을 하고<ref name="visit_NK">{{웹 인용 |url=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2-05/a-2002-05-14-12-1.cfm |제목=박근혜 의원, 북한방문 마치고 서울로 귀환 - 2002-05-14<!-- 봇이 붙인 제목 --> |확인날짜=2009-02-10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60722010557/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2-05/a-2002-05-14-12-1.cfm |보존날짜=2006-07-22 |깨진링크=예 }}</ref> [[5월 14일]] 서울특별시로 돌아왔다.<ref name="visit_NK"/>
[[6월 13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학술 회의에 다녀오기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대표와 악수 |url =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백승렬 |쪽 = |날짜 = 2005-06-13 |확인날짜 = 2009-07-10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1002105546/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ArticlePhoto/YIBW_showArticlePhotoPopup.aspx?contents_id=PYH20050613020400999 |보존날짜 = 2013-10-02 |깨진링크 = 예 }}</ref>
2010년 7월 10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2012년 7월 5일 [[이상일]] 캠프 대변인은 오전 10시에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로 정하였다고 브리핑을 통하여 밝혔다. 이 대변인은 "각계각층 국민들이 다니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캠프명은 '국민행복캠프'로 정하였다고 이 대변인은 덧붙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7/05/0200000000AKR20120705160300001.HTML?sns 박근혜 10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서 대선출마 선언] 연합뉴스 2012년 7월 5일</ref>
당시 정몽준과 이재오가 당내 경선에 불만을 품으며 경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박근혜는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 대회에서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전체 유효투표의 83.97%인 8만 6천 589표로 지난 2002년 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얻은 68%인 기존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경선 투표율이 41%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유력 정당의 첫 여성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의 자녀가 대선 후보가 되는 첫 사례이기도 했다.<ref>[http://media.daum.net/society/nation/seoul/view.html?cateid=100004&newsid=20120820162306691&p=yonhap] 심인성 기자, 박근혜, 84% 최고득표율로 與대선후보 확정(종합), 연합뉴스, 2012.8.20.</ref> 한편 박근혜는 2002년 한나라당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 10년 후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데 성공하였다. 박근혜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모토로 내걸었다.
한편 경선 8일 뒤인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반대로 무산되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구 [[민주통합당]]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회의원]]인 [[전순옥]]은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ref name="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28/0200000000AKR20120828048951001.HTML?did=1179m 전순옥 "朴 고통당하는 사람 먼저 찾아야"(종합)] 연합뉴스, 2012년 8월 28일</ref> 그러나 [[이상일]] 대변인은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12월 13일]], 해당 요원은 경찰청에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제출하였지만<ref>노현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0092711 '비방 댓글' 의혹 국정원 여직원, 경찰에 자료 임의제출], 뉴스원, 2012년 12월 13일</ref>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의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 제출요청은 거부하였다.<ref>김동현, [http://www.yonhapnews.co.kr/vote2012/2012/12/13/2901010000AKR20121213161051004.HTML '국정원 女직원, 컴퓨터 등 증거자료 경찰에 제출(종합)], 연합뉴스 2012년 12월 13일</ref> 한편 민주통합당은 해당 조직의 실체와 업무 내용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ref>정찬,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4054 민주 "국정원 심리정보국 70여명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폴리뉴스, 2012년 12월 12일</ref>
2015년이 되자 김정은은 탈상 3년을 계기로 고위급 접촉 재개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신년사를 밝힌 데 이어<ref>[http://imnews.imbc.com/replay/2015/nwtoday/article/3591606_14782.html 김정은, 남북 정상회담 언급…南 "진전된 자세" 화답]</ref> 1.20 북한 정부·정당·단체 연합회의에서 채택한 남북 대화 촉구 호소문을 청와대, 대한적십자사 등에 보내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전단 살포 중단 및 한미훈련 중단 등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ref>[http://news1.kr/articles/?2057625 北 남북대화 촉구 호소문 청와대 등에 전달]</ref>
2013년 5월 7일 밤(미국 기준시) 홍보수석비서관실의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미국 방문 중 술을 마시고, 주 미국 한국대사관에서 지원한 인턴 여성의 둔부 근처에 손을 댄 행동과 다음 날 새벽 호텔에서 과도하게 노출된 상태로 해당 여성을 마주했다는 의혹이 발생, [[윤창중]]은 바로 성추행으로 미국 경찰에 신고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이 윗선에 보고되어 경질되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유포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5/12/0501000000AKR20130512057900001.HTML "윤창중, 靑진술서 '엉덩이 터치·본인 노팬티' 시인"]《연합뉴스》2013년 5월 12일 신지홍 기자</ref><ref>[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33 윤창중의 출국 누가 도와줬나?]《시사인》2013년 5월 11일 김영미 국제문제전문 편집위원</ref> 이 사건으로 직속 상급자인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차관급)이 사과발표를 하였으며, 사의를 표명하였다. [[이남기]]의 사직서는 5월 중순 수리되었다.<ref>[http://news1.kr/articles/1129691 靑 "윤창중 사건, 美측에 조속한 수사 진행 요청"]《뉴스1》2013년 5월 12일 장용석 기자</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586998.html 이남기 홍보수석 사의…허태열 "책임 피하지 않을 것"]《한겨레》2013년 5월 12일</ref> 또한,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과 윤창중 전 수석대변인 간의 진술 차이, 대통령에 대한 사과 표현 등이 문제시되어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장관급)이 공식사과를 발표하였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ewsflash/3281506_7612.html 靑 허태열 공식 사과…이남기 홍보수석 사의]《MBC》2013년 5월 12일</ref>
박근혜 캠프가 경찰의 허위 수사 발표를 미리 알고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당시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은 [[김무성]]은 마지막 TV토론 당일인 [[2012년]] [[12월 16일]] 정오 당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국정원 여직원 1차 컴퓨터 조사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하였다.<ref>김대근, [http://www.ytn.co.kr/_ln/0101_201212161604317096 새누리, "경찰, 오늘 중 조사 결과 발표해야"], 연합뉴스, 2012년 12월 16일</ref><ref>유수환, [http://www.cbci.co.kr/sub_read.html?uid=201401 진선미, 국정원 대선개입 경찰수사 새누리당에 실시간 유출 의혹 제기], CBC뉴스, 2013년 4월 25일</ref> 한편 박근혜는 그날 저녁 열린 TV토론에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언하였다. 토론회는 오후 10시에 끝났다. [[새누리당]] [[박선규]] 대변인은 9시 40분부터 TV토론을 평가하는 생방송 스튜디오에 들어가 있었고 TV토론이 끝난 이후인 10시 40분,<ref>박대로,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0425_0012034063&cID=10301&pID=10300 진선미 "국정원 대선개입 경찰수사, 與에 실시간 유출의혹"], 뉴시스, 2013년 4월 25일</ref> 80분뒤면 내일이 되는 상황에서 '아마 제 생각에는 국가적인 국민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조사결과가 오늘 나올 겁니다'라고 발언하였기 때문이다. 박선규의 발언대로 오후 11시에 서울지방경찰청이 증거가 발표되지 않았다고 허위발표하였다.
[[2013년]] [[10월 14일]], 국정감사 중 [[김광진 (1981년)|김광진]] 의원의 질의를 통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18대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ref>오종택,[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431505 김광진 의원 "사이버사령부도 댓글 작업했다…대선개입 정황"],뉴시스,2013년 10월 14일</ref> 직후 사이버사령부 소속 군무원들이 사용했던 아이디가 공개되었고,<ref>하어영·최현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05849 군 사이버사령부도 대선 ‘댓글 공작’ 의혹],한겨레 1면,2013년 10월 15일</ref> [[10월 15일]]에는 국방부가 자체 수사에 착수했다.<ref>오종택,[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434421 국방부, 軍사이버사령부 대선기간 '댓글 작업' 의혹 조사 착수],뉴시스,2013년 10월 15일</ref> 이후 실제로 댓글 작업이 있었으며 심지어 평일 업무시간대에도 작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ref>김회경·변태섭,[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428583 사이버사령부 요원들, 국정원 트윗 재전송],한국일보 1면,2013년 10월 16일</ref> 최초 국방부는 4명의 소수 인원이 벌인 개인적 일탈이라고 해명했으나 당해 해명이 거짓 논란에 휩싸였으며,<ref>권경성,[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430607 국방부 거짓 해명 논란],한국일보 3면3단,2013년 10월 23일</ref> 뒤이어 추가 용의자들이 공개되는 등 논란은 확대되었다.<ref>임형섭,[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6552868 "사이버司 '정치글 요원' 더 있다…확인된 요원 15명" ],연합뉴스, 2013년 10월 23일</ref>
여야는 6월 세월호 사고 관련 국정조사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6월 말 실시하기 시작한 국정조사는 고성과 막말 속에 흐지부지 종료되었으며, 7월 중순부터는 세월호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야당측과 세월호 사고 유가족의 국회 내 농성, 거리 행진, 데모 등이 벌어졌다. 이러한 도중에 실시된 7월 30일 재보궐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승리하였고, 8월 초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담은 소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하여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야당 내부의 반발이 벌어지면서 여야간의 합의는 파기되었다.
====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 ====
2014년 10월 말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은 2015년 12월 한미연합사령관에서 한국 합참의장으로 전환되도록 되어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을 3대 전환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연기하고, 주한미군을 한강 이북에 계속 주둔하게 하며, 용산 미군기지에 한미연합사를 계속 두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의 해체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였다. 또한, 양국 국방장관은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더욱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전작권 전환의 무기 연기로 인하여 한미동맹, 한미 연합 방위 체계가 보다 굳건해지고, 북한의 위협에 대하여 지휘권의 단일화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한국을 방위할 수 있게 되었고,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더욱 확실하게 보장되었다. 또한 주한미군의 한강 이북 주둔에 대하여 합의함에 따라서 인계철선도 유지되게 되었다.
[[2015년]] [[5월 20일]] 이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 급속히 확산되자 정부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ref>{{뉴스 인용|저자=고성호·배혜림·이재명 기자 |제목=“메르스 컨트롤타워 있나” 여야, 정부 대응혼선 질타 |url=http://news.donga.com/3/all/20150610/71737244/1 |뉴스=동아일보 |날짜=2015-06-10 |확인날짜=2016-10-25}}</ref> 박근혜 대통령은 방미 일정을 연기하며 메르스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ref>{{뉴스 인용 |제목=박근혜 대통령 방미 연기, 메르스 총력 대응 나선다 |url=http://dkbnews.donga.com/3/all/20150610/71751926/3? |뉴스=도깨비뉴스 |날짜=2015-06-10 |확인날짜=2016-10-25}}</ref>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5년 6월 3주 기준(95% 신뢰수준, ±3.5%) 긍정평가 29%, 부정평가 61%로 나타났다.<ref>{{뉴스 인용|저자=장예진 기자 |제목=<그래픽>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추이 |url=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1000000.html?cid=GYH20150619001000044 |뉴스=연합뉴스 |날짜=2015-06-19 |확인날짜=2016-10-25}}</ref>
2016년 12월 3일 오전 4시10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무소속 의원등 171명이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인하여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발의했다.<ref name="impeachment">{{뉴스 인용|저자=송수경·서혜림|제목='야3당+무소속' 의원 171명, 朴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2/03/0200000000AKR20161203006600001.HTML|뉴스=[[연합뉴스]]|날짜=2016/12/03 04:10}}</ref> 그리고 12월 9일 가결됨에 따라 권한이 정지되었으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하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신당 창당
- 전인범 . . . . 44회 일치
'''전인범'''(全仁釩, [[1958년]] [[9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1981년 4월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임관하여 30사단 90연대 15중대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이래 9사단 29연대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 27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특수전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2016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인범은 [[1958년]] [[9월 6일]]에 [[서울특별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ref name="a">이혜민. 20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9617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新東亞』 통권 684호, 154-163.</ref>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 살았으며, 1965년 부모의 이혼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833122 [오래전 ‘이날’] 11월 20일 양파가 눈물 흘린 98 수능], 《경향신문》, 2017년 11월 20일</ref> 1969년 귀국한 뒤에도 그의 모친은 그가 영어를 잊지 않도록 [[AFN Korea|AFKN]]을 주로 시청하게 했으며 저녁식사 때만큼은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그 또한 『[[:en:Reader's Digest|리더스 다이제스트]]』, 『[[:en:Newsweek|뉴스위크]]』, 『[[:en:Time (magazine)|타임]]』과 같은 시사 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어릴 때부터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미국 TV 프로그램 《[[:en:Combat!|Combat!]]》에 나오는 군인 샌더스 중사를 동경하던 그는 12살 때 외삼촌에게 “군인이 되려면 육군사관학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육사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 뒤 [[리라초등학교|리라국민학교]]와 [[대경중학교 (서울)|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81357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ref> 육사 동기생 중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으나 영어 시험은 만점을 받았던 그는 1981년 4월 3일 육군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4년 12월에는 [[:en:Multi-National Force – Iraq|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영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이 [[이라크 전쟁|이라크전]] 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냈는데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국군이 그 외에는 없어 처음에는 직속 부하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낀 그였다. 그래서 바쁘다는 외국군 장군들 대신 브리핑을 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자 노력해 점차 조직을 장악하였다고 밝혔다.<ref name="a"/> 그는 [[:en:United States Armed Forces|미군]]과 [[:en:British Armed Forces|영국군]], [[:en:Australian Defence Force|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030323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ref>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대한민국 국군|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en:Bronze Star Medal|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046950 노 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ref><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50706&parent_no=7&bbs_id=BBSMSTR_000000000004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 대령 美 동성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ref>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임무는 군사협조단 단장으로서 [[:en: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국제안보지원군사령부]]에 파견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외국군을 설득할 논리가 부족하니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하였다. 우선 [[:en:Swedish Armed Forces|스웨덴군]] 소장에게 ‘사람들 살려야 한다’, ‘사무실이 필요하다’, ‘상황실 출입을 허가해달라’, ‘인터넷, 유선전화, 휴대전화 쓰게 해달라’, ‘숙식 제공해달라’ 등을 부탁했다. 상황실에서는 유학시절에 알고 지낸 [[:en:Bundeswehr|독일군]], 미군을 만나 사람들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ref name="a"/> 이렇게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43352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ref>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080303&parent_no=8&bbs_id=BBSMSTR_00000000013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ref>
2009년 11월 [[2성 장군|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다. 재임하면서 그는 전역하는 병사들을 위해 전역식을 열어주고 직접 참석해 “군 생활 하느라 고생했는데 내가 줄 건 육군 소장의 경례밖에 없다”며 전역병들에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해주었고,<ref>[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08 [김준범 ‘오늘과 내일’] 박찬주 대장 사태로 돌아본 ‘병사들을 사랑한 장군들’], 《시사위크》, 2017년 8월 14일</ref> 부대를 방문한 군수사령관 앞에서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슬리퍼의 열악함을 토로하며 보급에 대한 확답을 받을 때까지 사령관 앞에서 슬리퍼를 물고 있기도 하는 등 장병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9641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끝없는 미담 “능력과 인품 두루 갖춘 진짜 장군”], 《서울신문》, 2017년 2월 7일</ref>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태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en:Legion of Merit|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72160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상],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ref>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영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2011년 11월 18일 [[:en: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en:Spider-Man in film|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en:Spider-Man (2002 film)|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en:Uncle_Ben#.22With_great_power_comes_great_responsibility.22|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en:Spider-Man 2|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VrILCHQl1M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ref>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2013년 10월 [[3성 장군|중장]] 진급과 함께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동년 11월에는 한미연합방위체계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상호 유대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다시 한 번 수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05771 전인범 특전사령관, 美 최고 공로훈장 받아], 《연합뉴스》, 2013년 11월 19일</ref> 2013년 현재 그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총 8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현역 장성 중 최다 훈장 수상자로 알려져 있다.<ref>[http://www.gunsa.kr/bbs/board.php?bo_table=B01&wr_id=151 대한민국 특전사 사령관 전인범], 《군사저널》, 2013년 12월 31일</ref>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476150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ref> [[:en:Picatinny rail|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3&aid=0000028778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ref> 우선 일반 병사보다 3배 정도 총을 더 쏘는 특전사 요원의 사격량을 5배로 늘렸고 전진하면서 사격할 때 탄피받이를 못 쓰게 하였다. 탄피 하나 없어지면 전 부대원이 나서서 찾아야 하는 것이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신 탄피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전진 사격 훈련시 1명이 뒤따라가게 하여 실제 몇 발을 쏘는지 세게 하였다. 또한 사령관 취임 당시 특전사에 체계적인 체력 증진 프로그램이 없어 특전사에서 35년간 복무했고 체력 단련과 관련해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원사에게 12개 코스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특전사 요원의 허벅지가 평균 1cm 커졌고 체력 프로그램 시행 후 6개월 뒤 미군 특전사 요원들과 경기를 해 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을 한국 특전사 요원들이 다 이기게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10074 [Why] "특전사 허벅지 1cm 굵어졌다, 그게 내 자랑"], 《조선일보》, 2016년 9월 10일</ref> 이와 같은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108010004329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ref><ref>[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344947§ion=sc2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ref> 그리고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500588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ref> 전 사령관은 이러한 자신의 개혁적인 행보에 관해 “모든 3성 장군은 4성 장군이 되고 싶어하고 4성 장군이 되는 게 군인으로서 더 없는 영광이라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부대 훈련을 실전적으로 바꾸고 개혁을 하면서 무리수를 두어 4성 장군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특수전사령관이고 내 임무는 4성 장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백전백승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특수전 부대를 만드는 게 나의 사명이다”라고 밝혔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790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영원한 특전맨이자 진정한 군인의 퇴임], 《뉴데일리》, 2016년 7월 28일</ref>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286112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ref> 뉴데일리 군사전문기자 태상호는 “전인범 前 특수전사령관 같은 깨어 있는 특수전 지휘관들이 (특수부대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특수작전에 대한 군내외부의 중요성 인식 부족과 비대칭 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큰 군(Big Army)만 중요시 하는 풍토로 인해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라고 현 한국군에 대해 비판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01915 [컬럼] 프로 대접을 못 받는 한국의 특수부대], 《뉴데일리》, 2016년 2월 22일</ref>
2014년 12월에는 공무 출장 중 터키군 총사령부 재활병원을 방문, [[한국 전쟁|6·25 전쟁]] 참전용사인 알리 젱기스 투르크오울루를 위문하였다. 그는 6·25 전쟁 기간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평안북도 군우리 전투에서 터키군 1여단 소속 소대를 이끌었고, 보육원도 운영하며 많은 전쟁고아를 보살폈다. 전인범 중장은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7309432 특전사령관, 터키 방문 참전용사 위문], 《연합뉴스》, 2014년 12월 18일</ref>
2015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와 [[:en:United States Army Special Operations Command|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 미 통합특전사령관 [[:en:Joseph Votel|조셉 보텔]] [[:en:General (United States)|대장]]과 미 육군 특전사령관 찰스 클리브렌드 [[:en:Lieutenant general (United States)|중장]]을 만나 한·미 연합 특수작전에 대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저격용 소총과 미군 주력 소총인 [[:en:M4 carbine|M4]], 권총, 산탄총, 박격포, 방탄복 등을 점검하고 체험하는 등 미군 특전사의 장비와 무기를 현장 견학하고 실제 사격도 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13010008491 미군 주력 소총 M4 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3일</ref> 이와 함께 방미 기간 동안 [[시애틀]]에 있는 6·25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ZIB7y0ZvFJs 한미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시애틀 방문 6·25 참전용사비 헌화식], 《KOAM-TV》, 2015년 4월 10일</ref>
2015년 6월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New Westminster College)의 특별연구원(Distinguished Fellow)으로 선정되었다.<ref>[http://newwestminstercollege.ca/lieutenant-general-in-bum-chun-phd-distinguished-fellow-of-new-westminster-college Lieutenant General In-Bum Chun, BA, MS, MA, PhD, MSM, BSM, LM, NSM], 《New Westminster College》, 2015년 6월 16일</ref>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 총장 로버트 굿윈 3세는 “그는 윤리적 리더십에서 괄목한 성과를 내었고 교육훈련에 평생 동안 헌신해왔다”며 “현 세계의 국가적 안보 위협에 대한 이해는 그가 정부의 국제적, 국가적, 지역 단위 이해관계자들의 민군 상호운용성과 방위협약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리더십, 외교와 사이버 보안에 관한 연구의 설계와 전달에 있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위원회와 나는 그가 우리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새로운 특별연구원이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인범 중장은 특별연구원으로서 학문적 수월성의 최고위 기준에 대한 지원에 공헌해왔고,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과 연구원들의 세계적인 조직망 발전에 헌신해왔다고 알려졌다. 이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는 필리핀 대통령 [[피델 라모스]],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 캐나다 국방참모총장 대장 [[:en:Ray Henault|레이 헤노]] 등이 있으며, 특별연구원으로 선정된 인물 125명 가운데 한국인은 그가 최초이다.
2016년 5월 [[:en: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USSOCOM medal|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 훈장]](USSOCOM Medal)을 받았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4&bbs_id=BBSMSTR_000000000004&ntt_writ_date=20160615 “전인범 장군, 미 특수전 발전에 혁혁한 공로”], 《국방일보》, 2016년 6월 15일</ref> 미 특수전 발전에 공로가 있는 개인에게 수여되는 이 훈장은 1994년 제정된 이후 한국군이 받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미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의 특수전사령부를 지휘하는 3군 통합사령부로, 전 중장은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한국 특전사령관 겸 연합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연합작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미 통합특수전사령부는 훈장 수여 증서를 통해 “연합특전사령관으로서 미 최정예 특수부대와 [[:en:United States Navy SEALs|네이비 실]](SEAL), 특수전 항공자산 등 1000여 명 이상의 미군을 훌륭하게 지휘했으며, 뛰어난 전문지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으로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615010007077 [단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국군 최초 미군 통합특전사 훈장], 《아시아투데이》, 2016년 6월 15일</ref> 더불어 전 장군의 추진력과 창의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와 함께 장기 비전이 대한민국 방어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 장군의 남다른 노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개인의 추진력은 대한민국과 한미연합사에 큰 기여가 됐다고 전했다.
2016년 7월 28일 특수전사령부 연병장에서 35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졌고 같은 달 31일 전역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72276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 이천 특전사서 전역], 《연합뉴스》, 2016년 7월 2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199207 [카드뉴스] "국회의원이 오든지 말든지, 병사들 고생시키지 말라"], 《조선일보》, 2016년 8월 5일</ref> 이날 전역식에는 한미연합사령관 [[:en:Vincent K. Brooks|빈센트 브룩스]] 대장, 미 8군사령관 토마스 밴달 중장, 미 2사단장 테드 마틴 소장 등 [[주한미군]] 수뇌부와 이기백, [[정호용]], [[김동진 (1938년)|김동진]], [[김태영 (1949년)|김태영]] 전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국방부 장관]]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해 전 중장의 전역을 축하했다.<ref>[http://www.huffingtonpost.kr/heebum-hong/story_b_11295018.html 어느 ‘특별한 별’ 이야기 │ 전인범 중장 전역식], 《허핑턴포스트》, 2016년 8월 2일</ref><ref name="c"/>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의 [[대한민국의_훈장#보국훈장|보국훈장 국선장]]과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정부의 공로훈장을 각각 받았으며, 특히 보국훈장 국선장은 그가 중위 시절 합참의장으로 모셨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이 걸어주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5&aid=0000435078 33년 전 목숨 건 구출… 다시 만난 장군과 중위], 《SBS》, 2016년 7월 28일</ref> 전 중장은 전역사에서 선배 장군들과 미군 장성들, 동기, 후배들을 거론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던 자신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보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60728010013908 전인범 중장 전역식 "부하 잘 보살피면 부하들이 알아서 윗사람 보살핀다"],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28일</ref> 그는 “군인들이 진급할 때마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약속을 지켰다.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검은 베레 영원하라”는 특전 정신을 외치며 전역사를 마쳤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po9JyXV5Hyo 전인범 장군 전역사 영상(discharge speech of LTG. INBUM CHUN)], 《YouTube》, 2016년 7월 28일</ref>
2016년 10월부터 [[:en:Brookings Institution|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방문연구원, [[:en: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했다. 미국 연구기관의 연수는 연수자가 주제를 선정해 그 분야를 연구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하는데,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한국의 핵무장, 한미 군사동맹 강화 방안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111010007259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미국, 북핵 심각하게 평가... 미 공격 초래 상황 가고 있어”],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12일</ref> 연수 3개월 동안 프린스턴 대학교 등 학교에서 특강,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미나 참여, 워싱턴 내의 많은 연구소와 기관 발표, 세미나, 회의에 참석해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고 한국의 입장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적극 설명하였다고 말했다.<ref>[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parent_no=59&bbs_id=BBSMSTR_000000000138&ntt_writ_date=20170117 ‘한국 안정·동북아 평화=美 국익’ 각인시켜야], 《국방일보》, 2017년 1월 16일</ref> 2017년 1월에는 특전사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2만 6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 봉사단체인 특전동지회의 제2대 총재로 취임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33180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제2대 특전동지회 총재 취임], 《뉴데일리》, 2017년 1월 16일</ref> 전 총재는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대한민국 친목단체의 새로운 章을 열겠다”고 다짐하며, “현역 후배들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회원을 편애하지 않는 모두의 특전동지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역설했다. 같은 달 [[북한]]의 [[김정은]] [[조선로동당|노동당]] 위원장에게 [[대륙간탄도유도탄|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등의 재고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영문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ref>[https://www.nknews.org/2017/01/dear-kim-jong-un-an-open-letter-from-a-former-s-korean-lieutenant-general Dear Kim Jong Un: An open letter from a former S. Korean lieutenant general], 《NK NEWS》, 2017년 1월 23일</ref>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그는 “평화를 추구할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라면서 “가장 필수적인 첫 단계는 공공연한 위협의 회피, 핵과 미사일 실험의 중단, 핵무기 개발부터 인권에 이르기까지 신뢰를 증진시킬 협상에 참여하는 것 등을 포함합니다”라고 평화 프로세스를 제안했다.<ref>[https://kr.nknews.org/%EA%B9%80%EC%A0%95%EC%9D%80-%EC%9C%84%EC%9B%90%EC%9E%A5%EB%8B%98%EA%BB%98-%EC%A0%84-%EB%8C%80%ED%95%9C%EB%AF%BC%EA%B5%AD-%EC%9C%A1%EA%B5%B0-%EC%A4%91%EC%9E%A5%EC%9D%98-%EA%B3%B5%EA%B0%9C-%ED%8E%B8/ 김정은 위원장님께: 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의 공개 편지], 《NK NEWS》, 2017년 1월 25일</ref>
이에 앞서 그는 2월 4일 문재인 후보가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자신의 저서인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주제로 연 북 콘서트에 국방·안보분야 패널로 참석<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06981 문재인, 경희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 북 콘서트], 《연합뉴스》, 2017년 2월 4일</ref>, 문 후보를 가리키며 “이분하고 함께하면 우리나라 안보를 든든히 하고 한미 관계를 튼튼히 해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걱정없이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빨갱이가 아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문재인 캠프 합류 선언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52238 특전사령관 출신 전인범도… 문재인 캠프 ‘전방위 수혈’], 《한겨레》, 2017년 2월 5일</ref> 3성 장군 출신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전례 없는 여론의 각광을 받자 조선일보는 “[[송영무]], [[박종헌]] 등 참모총장 출신 4성 장군 두 명을 포함, 장성 10명이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을 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만큼 ‘의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252738 [만물상] 야당으로 간 특전사령관], 《조선일보》, 2017년 2월 7일</ref> 후일 전인범 영입을 기획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후보의 작품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ref>박성현. 2017.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7089 “[집중분석] 파격인사! 문재인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 『월간중앙』 201707호, 20-25.</ref> 당시 그를 영입하고자 다가온 많은 정치계 인사들에게 그는 군 개혁에 대하여 강하게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없었고, 그중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이 문재인 후보였기에 안보자문 합류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에서 호감형은 아니었다는 그는 문재인 캠프 내의 안보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 복무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무슨 안보자문이냐”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있다.<ref>[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8/02/02/2018020200018.html [컬럼] 특전사 다목적대검 사태를 바라보며... #2], 《뉴데일리》, 2018년 2월 13일</ref> 자문위원 직은 맡았으나 [[더불어민주당]]에는 입당하지 않음을 강조한 그는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와 차이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2546436 '文측' 전인범 "사드, 中 경제 압력 굴복 않아야"(종합)], 《뉴스1》, 2017년 2월 6일</ref> 이와 관련해 [[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기존 한미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동안 한중관계를 고려해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해온 야권과는 결이 다른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4&aid=0000474843 문재인 캠프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드 해법’ 제시], 《스포츠경향》, 2017년 2월 7일</ref> 이에 문재인 전 대표도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로 넘겨 국회 비준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도 “한미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라 쉽게 취소하기 어렵다”며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69&aid=0000186840 “中 경제적 압력 굴복 말고, 美와 사드 합의 존중해야”], 《한국일보》, 2017년 2월 6일</ref> 그의 문재인 캠프 합류에 실망한 일부 보수세력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충분히 분노하시는 마음을 이해합니다”라며 “제가 이번 결심의 결정적 이유는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en:Survival knife|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문재인 지지 선언의 이유를 설명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252237 文 캠프 합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페친 5000명 중 28명 이탈했다"], 《조선일보》, 2017년 2월 5일</ref> 친정인 군을 향한 비판에 육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 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2022년까지 모두 18억500만원을 예산에 편성했다”고 해명했으나, 2017년 예산에는 특수작전 칼 예산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3233 전인범과 육군의 ‘칼 싸움’], 《중앙일보》, 2017년 2월 7일</ref> 육군 관계자는 시범사업으로 구입했다가 나중에 평가에서 합격해야 향후 5년간 18억원으로 칼을 구입하게 된다는 뜻에서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소량만 구입할 예정이며 예산은 5000만원”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2017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전인범 중장은 이례적으로 [[예비역]] 한국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각 국의 현직 육군 최고 수뇌부가 참석하는 이 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예비역으로는 유일하게 발표했는데, 현직 미군 주요 지휘관들은 물론 전직 미군 수뇌부들로부터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 연합전력 극대화 해법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출신으로 평가받고 있어 이 심포지엄에도 초청되었다.<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0528010015215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한·미 군사 혈맹, 한국군 주도적 역할 중요”], 《아시아투데이》, 2017년 5월 28일</ref> 그는 발표문에서 “한미간 긴밀한 연합작전과 지휘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⁴I)가 기반되어야 하며 양국간 언어장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우리나라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46579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美 'LANAPC'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발전 방안 발표], 《뉴데일리》, 2017년 5월 26일</ref> 또한 심포지엄이 끝나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군 발표자들 대부분은 기조연설과 발표문에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rising adversary)’으로 지칭했다”면서 “미국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질주하는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전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292284 "美, 아태 지상군회의서 북한을 '부상하는 적' 지칭"], 《연합뉴스》, 2017년 5월 25일</ref>
* 1988.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우발계획장교
* 1990. 특전사 연합작전장교
* 1999. 한미연합사 을지포커스렌즈(UFL) 연습장교
- 동군연합 . . . . 38회 일치
유럽 지역에서 동군연합 같은 형식이 나타나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 동군연합 : '군주 한 명'이 '다수의 국가에 대해서 통치권'를 가지는 경우이다.
* 부부동군연합 : 각자 통치권을 가진 남군주와 여군주가 혼인함으로서, 부부가 동군연합을 이루는 경우이다.
* 모자동군연합 : 어머니와 아들이 통치권을 나눠 가지는 동군연합이다.
'''가장 유명한 경우'''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이 아라곤의 왕과 결혼하면서 생긴 연합. 이로서 '스페인 왕국'이 형성되게 된다. 다만, '부르봉 왕조' 집권 이전 합스부르크 왕조 스페인은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포르투갈]](!) 등의 왕국 연합체나 다름없어서(…) 통합은 완전하지 않았다. 부르봉 왕조 이후는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으로 지방세력이 갈갈히 찢기고 초토화 되면서 이웃 강국 [[프랑스]]를 등에 업은 마드리드 중앙정부의 권위가 강화된 것(…).
부르고뉴의 '용담공'샤를이 로레인 원정을 떠났다가 스위스-로레인 연합에게 낭시전투에서 개박살나면서 죽어버리고 그의 외동딸인 '부귀공'마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자 막시밀리안과 결혼하면서 결성된 연합. 이로 인해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최종적으로 당시 부르고뉴 공국이 점유하고 있던 땅 중 왈로니아 지방 일부와 부르고뉴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저지대와 룩셈부르크 공국지방이 합스부르크에 넘어가면서 분쟁이 끝이 난다.
''' 근세 유럽국가들의 동군연합중 최강의 동군연합 '''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였던 카를로스1세가 오스트리아 대공에 오르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당시 스페인은 신대륙의 금광+저지대의 미친 생산력에서 나오는 자금과 스페인+보헤미아+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나오던 국력을 통해 당시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는 통치면적으로 보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전성기였다. 다만, 당시 스페인의 왕이던 카를로스가 독일 쪽에 영 관심이 없어서(...) 연합은 1대만에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뉘어진다.[* 다만, 플랑드르 지방은 스페인에게 갔다.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로 독립하게 된다.]
맨앞에게 너무 유명해서 그렇지. 이 경우도 상당히 유명하다. 당시 헝가리왕이 아들없이 오스만제국한테 죽으면서 생겨난 동군연합. [* 다만, 2차 빈포위때 뽕을 뽑기 전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공세덕에 슬로바키아 지방만 겨우 지키고 있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발전한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전하면서 해체.
당시 보헤미아지방을 차지하던 룩셈부르크가가 단절되면서 생긴 연합. 다만, 보헤미아는 선거왕정이었기에 중간중간 오스트리아가 왕위를 놓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생기면서 합병되었으며,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이 패배하면서 상실된다.
당시 폴란드의 왕가였던 앙쥬왕가가 남계가 단절되면서 당시 폴란드 왕의 딸이 리투아니아의 대공에게 시집가면서 생긴 연합. 쭉유지되다가 이후 폴란드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게 삼분할되면서 '''멸망'''~~딴애들은 전부 해체나 상실인데 얘만 멸망이다. 안습~~
본래 튜튼기사단이란 신정국가가 지배하던 프로이센 지방은 [* 정확히는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교도때문에 통치를 못할 수준이 되자 튜튼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이후 튜튼기사단의 단장 알브레이트가 프로이센 공국을 선언하고 세속화되어 호엔촐레른 왕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계가 단절되자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였던 브란덴부르크와 동군연합이 된 것이다. 이게 왜 추가될 사례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텐데, 쉽게 말해 '''독일제국의 전신이다.''' 이로써 단순 발트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 지방을 삼키며 본격적으로 열강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칼미르 연합) ===
당시 덴마크의 여왕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자리에 오르면서 생긴 동군연합. 이후 스웨덴 독립전쟁에서 덴마크-노르웨이가 패배하면서 해체. [* 다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은 그이후에도 상당기간 유지됬다.]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가 단절되면서, 당시 하노버 선제후였던 게오르그가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하면서 생겨난 연합. [[네덜란드]]-[[영국]] 연합이 단절되고 대신 하노버-영국 연합이 생겨났다. 하노버 선제후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일시 멸망했으나, 하노버의 신하들과 군인들은 영국으로 --됭케르그 후퇴-- 피신하여 '독일인 군단'을 결성하여 나폴레옹 전쟁에서 활약했고,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회의]]에서 하노버 왕국으로 복귀한다.
영국에 빅토리아 1세가 즉위. 여왕을 인정하는 영국과는 달리 [[살리카법]]을 따르는 하노버왕국은 여성 군주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대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가 즉위하면서 연합은 해체된다. ~~그리고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한테 멸망당한게 함정.~~
당시 바이에른 선제후국을 지배하고 있던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가가 단절되면서 팔츠계 비텔스바흐가가 계승되면서 나타난 동군연합. 이후 남독일을 장악하려고 오스트리아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바이에른 계승전쟁이 대번 터졌다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오스트리아군이 박살나면서(...) 이 지방은 비텔스바흐가가 장악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바이에른 왕국으로 통합된다.
== 부부동군연합 ==
부부가 각자의 계승권에 따라서 군주로서 즉위하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혼인함으로서 '동군연합'이 형성된다. 이 경우 왕은 X국의 왕, 그 아내는 Y국의 여왕이므로, X국과 Y국이 부부 아래 동군연합이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동군연합'과는 약간 다르지만, 대개 부부 한 쪽이 주도권을 잡고 움직이기 때문에 동군연합과 거의 다를바 없는 상태가 된다.(내실을 보면 약간 복잡해진다.)
이 경우 한 명의 후계자에게 물려줌으로서 완전한 동군연합이 되는 경우도 있고, 사정이 안되서 흩어지면서 부부동군연합이 해체되는 경우가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왕국은 엄밀하게 말하면,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부동군연합이 된다. 물론 실제로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실상 전부다 해먹고 여제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 프란츠 1세의 제위는 요제프 1세에게 넘어가면서, 모자동군연합이 된다.
- 현이와 덕이 . . . . 27회 일치
(장덕은 1977년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을 직접 [[작사]], [[작곡]] 하여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작곡가로 입상하였다. 이후 3년 연속 이 대회에 입상하게 된다.)
이후 1980년 장덕은 [[안양예고]] 졸업 후 [[미국]] [[테네시 주립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였다. 1983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장덕은 솔로앨범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장현 또한 《현이와 거룩한 성》으로 음악활동 계속 하고 있었다. 그렇다가 [[1985년]] 현이와 덕이가 재결합하여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이젠 안녕, 《뒤늦은 후회》등이 수록된 정규2집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앨범이 크게 [[히트]]하였음에도<ref>{{뉴스 인용 |제목 = 남매듀엣 <현이와 덕이> 7년만에 재결합|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9050009921201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5-09-05&officeId=00009&pageNo=12&printNo=6003&publishType=00020|출판사 = 매일경제|날짜 = 1985년 9월 5일}}</ref> 얼마 뒤 다시 해체하였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1986년 장덕은 자신이 작곡하고 가수 [[이은하]]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크게 히트가 되었고, 연이어 장덕 솔로 정규4집이 빅히트 되어 그 해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합류하게 된다(님떠난 후- 골든컵 수상,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 빅히트 등). 1987년 [[장덕]]은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ABU]]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나가게 되는 등 한국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오빠 [[장현]] 또한 코아기획을 설립하여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로 일하게 된다.
'''장덕'''(張德, Chang Deok, [[1961년]] [[4월 21일]] ~ [[1990년]] [[2월 4일]])은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녀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미령]] · [[이은하]] · 양하영 · [[임병수]] · [[김범룡]] · 국보자매 등 많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하며 [[작사가]] ·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친오빠 [[장현]]과 함께 현이와 덕이를 결성, 만 14세의 최연소 [[싱어송라이터]]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만 15세([[고등학교]] 1학년) 때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연소 [[작사]] · [[작곡가]]로 출전하여 입상하는 등 [[천재]]소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또한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배우]]로도 활동, 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도 거듭났다. 그리고 솔로로 독립해 성인이 된 후에도 더욱 많은 연예활동을 하여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 [[작사]] · [[작곡]]의 [[작품]] 개수는 총 129개(2015년 6월 기준: 신탁자코드 W0138300)이며, 생전 남긴 창작작품은 [[록]] · [[포크]] · [[리듬 앤 블루스]](R&B) · [[컨트리]] · [[댄스]] · [[펑키]] · [[트로트]] · [[발라드]] · [[융합]](복합) 등 다양한 [[장르]]의 300여개 정도이다.<ref>이은정.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623003 요절가수 장덕·장현 남매 25주기…음원 등으로 재조명]. 연합뉴스. 2015년 5월 28일.</ref>
1977년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임원식 [[감독]]의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한다. 장덕은 몇몇 영화에서 단역을 맡아 본 적은 있었지만 주연으로 출연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한달 뒤(5월) 장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로 인해 집들이에 참석한 가수 [[송창식 (가수)|송창식]]은 장덕이 중학교 2학년(만 14세) 때 작사 ·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 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한다. 결국 [[송창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장덕은 <[[소녀와 가로등]]>을 곧 데뷔하게 되는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 [[작곡가]]로서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제 2회 대회부터는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가요제]]에서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로 이름이 바뀐다.)에 출전한다. 당시 가요제 규정상 작곡가도 가수가 함께 무대를 꾸며야 했기 때문에 장덕은 빵모자를 눌러 쓴 깜찍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입상). 같은 해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박태원 [[감독]]의 [[영화]] <[[선생님 안녕]]>에서 [[장현]]은 [[임예진]]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삼각관계가 얽힌 영화로 비록 단역이지만 장덕 또한 [[장현]]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다. 현이와 덕이는 이 영화에서 [[사운드트랙]] <정말>도 싣게 된다.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명[[감독]] [[김응천]] · [[석래명]] ·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 음악을 전공하는 청순한 여고생 역을 맡아 열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팬들에게 다섯 번씩이나 납치를 당했을 정도로 대단한 큰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밀려든 팬들의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10여 편의 [[영화]]에 [[주연]] 또는 [[조연]]으로 출연). 그 해 7월 장덕은 제1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된다. 이 시기 오빠 장현은 오라오라에 출연했을 때 부터 알게 된 부산연예협회지부장이자 왕년의 작사가였던 천봉의 딸 천인실과 극도로 가까워지면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장덕은 결혼한 오빠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1978년 [[현이와덕이]] 정규1집 <[[순진한 아이]]>가 발표 되었다. <[[순진한 아이]]>, <꼬마인형>, <일기장>, <[[소녀와 가로등]]>, <정말>, <작은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11곡+경음악1곡 수록, 같은 해 <크리스마스 캐롤집> 발표)
1979년 1월 그녀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 · 장덕을 불러 유학을 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면서 어머니는 덕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덕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장현은 이미 천인실과 결혼을 하였고 임신 6개월이 지나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실토한다. 어머니는 장현과 천인실의 관계를 예전부터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결혼한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어머니는 장현이 가수로서 성공하고 부양능력이 생겼을 때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고 수차 그것을 장현에게 말해 왔었기 때문이다. 6월 제2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3년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 같은 달 장덕은 지구레코드와 계약하며 솔로 데뷔음반 《첫사랑》을 발표한다. 이 음반은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 <나도 그래>, <웃어봐요> 등 신곡 4곡과 현이와 덕이의 1집 수록곡들을 다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그 해 10월 장덕은 오빠 [[장현]]의 집에서 나와 월세방을 구해 혼자 살게 되는데, 이 때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동맥을 끊고 또다시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 이후 장덕은 오빠 ·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해 초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이 시기 장덕의 자살 소동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 5월 제3회 [[MBC]] [[MBC 서울국제가요제|서울국제가요제]]에서 [[최병걸 (가수)|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 (노래)|사랑은 떠나도]]>가 입상하며 장덕은 작사/작곡가로서 4년 연속 입상하는 기록을 세운다(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1977년 · 1978년 · 1979년 3년 연속 입상한 사실은 맞지만 서울국제가요제 관련 정보를 찾아봐도 1980년 입상한 기록은 없다.). 6월 그녀는 타이틀곡 <순정>을 비롯 <진실한 사랑이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 등 신곡 5곡과 현이와 덕이 정규 1집, 그리고 그녀의 첫 컴필레이션 음반 《[[첫사랑 (장덕의 음반)|첫사랑]]》의 수록곡들 중 몇 곡을 골라 그대로 수록한 컴필레이션 음반 《순정》을 발표한다. 10월 미군과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송 기사를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장덕을 간곡히 불렀고 장덕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결국 어머니가 결혼해 살고 있는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들어가게 된다. [[내쉬빌]]은 컨트리 뮤직의 메카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장덕은 이 곳에서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 입학,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어머니는 오빠 장현 또한 불러서 대학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설득시키지 못했다.). 12월 내쉬빌 한인회가 주최하는 송년파티가 있었다. 장덕과 어머니도 참석했는데, 한인회 회장이 찾아와 장덕에게 밴드를 도와 달라고 한다. 한인사회에는 밴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형제들이 조직하여 만든 가족밴드 리 패밀리였다. 실력들이 부족했기에 장덕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장덕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머니가 금년만 해 보라고 해서 결국은 승낙을 한다. 이후 장덕은 형제들 중 한명인 이승언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 지게 된다.
1986년 5월 장덕은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또 그녀가 작곡한 가장 훌륭한 곡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모습처럼>을 작곡, 동료가수인 [[이은하]]에게 주어 빅히트를 안겨준다. 그리고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 장덕은 솔로로서의 욕심으로 인해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타이틀곡 <님 떠난 후>를 비롯 <어른이 된 후에 사랑은 너무 어려워>, <사랑해줘요>, <소외> 등이 수록된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가 [[KBS]] [[가요톱10]]에서 5주(1987년 2월 18일 ~ 1987년 3월 18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PCI(인기가요순위 조사연구소), 뮤직박스(도서출판),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된다. 1986~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냈으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다.
1987년 7월 장덕은 타이틀곡 <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비롯 <이별인줄 알았어요>, <이 노래를 들을때면>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4집《[[이런게 아니었는데]]》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두봉엔터프라이즈를 통해 발매되었으며 재킷에 <골든앨범1집>이란 타이틀이 표기되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이별인줄 알았어요>가 가요톱10 등 가요 순위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시기 장덕의 오빠 장현도 타이틀곡 <마지막 진실>을 비롯 <연민>, <어느날>, <만날 수 없는 사랑> 등의 곡들이 수록된 솔로 데뷔 음반 《마지막 진실》을 발표하게 된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장덕 작사/작곡의 곡들로 채워져 있어 장덕이 오빠 장현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도 여겨진다.) 9월 장덕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 3회 [[ABU]](아시아 태평양 방송연합) 가요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데, 당시 불렀던 노래 <너를 기다릴거야>는 1989년 발매된 장덕의 정규 6집 《[[예정된 시간을 위해]]》에 재편곡되어 수록되게 된다.
* [['78 MBC 서울국제가요제|'78 서울국제가요제]] (1978)
* [['79 MBC 서울국제가요제|'79 서울국제가요제]] (1979)
- Europa Universalis 4/공략/유럽 . . . . 20회 일치
본격 자기가 안싸우고 자기 동맹이랑 자기가 동군연합한 국가들만 싸우는 국가. 헝가리랑 보헤미아를 동군연합하는 미션이 있으며, 이둘은 굳이 퍼유미션을 안받아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1500년이전에 둘다 퍼유해버릴수 있다. 이후에 부르고뉴 분할 상속 이벤트등으로 세를 불릴 수도 있다. [* 단, 최신버전부터는 부르고뉴 상속방식이 결혼국 70퍼, 카스티야 20퍼, 황제국 10퍼형식으로 바뀌었다. 부르고뉴가 오스트리아를 자주 라이벌지정하지 않게 바뀐지는 한참됬으니 왠만해선 결혼은 해두자. 취향에 따라선 초반에 부르고뉴랑 동맹해 프랑스를 견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최신버전에선 카스티야랑 사이가 좋으면 '''아예 카스티야에 합스부르크가 들어서는 이벤트도 생겼으니!''' 잘알아두도록 하자. 신대륙확장은 어차피 그럴 시간도 없고 하기도 어려우니, 프랑스나 오스만등과 치고 받고 해서 구대륙쪽으로 확장하는걸 주력으로 삼자.
시작지점에서 폴란드와 역사적 라이벌이고, 리보니아 기사단과 역사적 친구관계이다. 이에 따라 폴란드는 거의 무조건 라이벌을 띄우고, 리보니아 기사단은 무조건 동맹을 해온다. 그런데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할경우에 튜튼이랑 리보니아 연합군이 뭔짓을 하든 이것들의 물량을 따라올 수가 없다(...)~~고증 제대로네~~ 그러므로 폴-리투연합을 견제해줄 국가가 필요한데, 추천되는 국가는 헝가리,보헤미아,모스크바,오스트리아정도이다. 그리고 중요한건, 신롬 가입을 위해 오스트리아랑은 무조건 친해져서 신롬가입을 하자. 안그러면 북독일지방 확장이 봉인된다(....)
폴란드-튜튼 전쟁에 참여할때 주의해야 할 점은 땅 점령을 폴란드가 아닌 브란덴부르크가 하는 방향으로 가야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하면 폴란드가 프로이센 지방을 전부 먹어버려서 오히려 프로이센 성립도 못하고 프로이센지방을 다먹어버린 폴란드가 러시아와 보헤미아를 패면서 우주승천해버릴 수 있기 때문(...)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와 동맹해서 황제국의 땅내놔 시전을 봉인시킨뒤에, 포메른(포메라니아)를 쳐서 힌터포메른 일대를 빼앗은 뒤 메클렌부르크를 먹고 뤄벡에 공세를 취하자. '마레 노스트럼'DLC이후로 뤄벡이 근처 자유도시와 OPM[* one province major, 프로빈스 하나짜리 국가]국가들과 방어연합을 취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격을 나가기전에 폴란드가 참전하는지는 꼭 확인하도록 하고, 싸우도록 하자. 1대1로는 어지간해선 못이기니(...)
우선은 그러므로 오스만과 오스트리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동맹부터 구해두는게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와 폴란드, 아라곤등이 여기에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 [* 다만 최신패치부터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생겼는데, 이럴경우 헝가리마냥 초반에 사기장수가 없는 폴란드는 박살날 가능성이 높다. 혹시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재시작하자(...)] 구호기사단에 걸어둔 독립보장은 괜히 오스만과의 1대1맞다이를 강요하게 하니 관두면서 본토와 달마티아 지방을 육로로 연결하는데 주력하자. 아, 그리고 상인공화정은 영토가 20개이상이 되면 부패도 (corruptions)가 오르기에 그거 줄인다고 수입이 줄어든다. 1.16이후로 외교력 100을 소모해서 상인공화정도 정부체제를 바꿀 수 있으니, 적당히 확장해뒀다 싶으면 바꿔두자.[* 부패도 감소비용을 없앨수도 있으나, 테크비용이 늘어나기에 최종적으로 국력이 약해진다.]
시작지점에서 아라곤에게 동군연합을 주도당하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다행히 독립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카스티야와 프랑스,또는 오스트리아에게 독립지원을 요청하자. 전투는 카스티야나 프랑스군에게 맡겨두고 우선은 점령점수만 쌓아둬도 충분히 이길수 있을것이다. 독립 전쟁이 끝나면 몰타와 메시나를 먹고[* 시칠리아섬에 나폴리의 코어가 있기에 중요하다.] 샤르데냐를 부활시키자. 한편으론 제노바가 좋다고 샤르데냐를 먹을지도 모르기에 제노바에 경고를 걸거나 샤르데냐에 독립보장을 걸자.[* 아라곤과의 휴전기간이 샤르데나에 합산되어 나오기에 샤르데냐를 치려면 적어도 10년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다만, 독립보장을 풀면 5년의 휴전기간이 나오는건 알아두자.] 그이후엔 아라곤과의 휴전이 끝나면 아라곤에 공세를 가해서 시칠리아섬 전체를 먹어두자.[* 카스티야를 땅을 준다는 보장으로 끌어들여도 좋다.] 이후 샤르데냐를 정복한뒤에 이탈리아 소국들을 정리해두면서 개신교 개종을 해두도록 하자. 가톨릭을 유지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럴경우 확장하면 할수록 교황령이 파문을 날려대면서 방해할 가능성이 매매우 크다.
초반에 저지대 국가 셋(플랜더스, 홀란드, 브라번트)을 동군연합휘하에 두고 있다. 그리고 느베르를 속국으로 가지고 있으며, 브로타뉴랑 동맹이다. 이것때문에 전통에 외교관계+1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나마 시작지점 군주인 선량공 필리프의 능력치가 555로 [* 이게임에서 군주의 최대 능력치는 666이다. 일단 여기에 시작지점에서 가장 근접한 군주는 [[세종]]과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 정도.] 좋다만 그다음 후계자인 샤를의 능력치가 204(...) 이것때문에 외교테크 올리기 꽤나 힘들다. 다만 그렇다고 못올리는 수준은 아니니 외교관계수에 주의하면서 적절한 동맹을 구하자. 일단 시작지점에서 좋은 동맹으로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역사적 라이벌이기에 가끔 시작지점에서 라이벌로 찍지 않는 이상은 동맹하기 어렵지 않다.], 카스티야, 아라곤등이 있다. 그뒤 교황령이 제발 빨리 프로방스에 파문에 걸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자. 아비뇽때문에 백프로 이둘은 사이가 좋지 않을것이고, 교황령은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것이다. [* 파문이 걸린 국가의 땅을 먹으면 AE가 50퍼센트 더 적게 늘어난다.] 교황령이 프로방스에 파문을 걸면 바로 프로방스에 그걸 명분으로 공세를 취해서 로레인에 속하는 지방[* 메프, 로트링겐, 바]를 모두 먹어두자.[* 시작지점에서 프로방스와 프랑스가 동맹상태일텐데, 어차피 프랑스 시작부터 프로방스에 왕위주장을 걸기때문에 동맹은 풀린다. 동맹 푼 틈타서 먹으면 됀다.]
그 다음 공세는 잉글랜드령 프랑스로 정해두자. 메인 할양 이벤트로 프랑스와 싸우게 되든, 그 할양 이벤트에서 잉글랜드가 메인을 넘기든, 잉글랜드는 결국 프랑스와 싸우게 되어있는데, 그틈에 잉글랜드를 쳐서 칼레와 노르망디일대를 먹어두자.(AE가 남으면 알렝송까지 먹어도 상관없다.) 이후 확장방향은 취향따라 다른데, 브르타뉴를 먹고 북프랑스쪽으로 확장하든, 북프랑스를 장악한뒤 신롬쪽 영역을 먹든, 신롬 영역을 치든, 그건 취향차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다만 위치상 어디로 확장하든 신롬 소국들이 빼액대면서 반국가연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는것에 주의하도록 하자.
통칭 역설국. 제작사가 스웨덴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하다. 국가 이념도 전투쪽에 몰려있어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뜷고 러시아화가 되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는편. 초반에 덴마크한테 동군연합되버린 상태로 시작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독립하는게 가장 중요한데, 스웨덴이 아무리 북유럽 삼국중 가장 강력해도 덴마크+노르웨이를 1대1로 이기기 힘들다는게 문제다(...) 그러므로 덴마크가 라이벌로 지정한 국가에게 독립지원을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추천조합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혹은 잉글랜드+모스크바등. 폴란드의 지원을 받는것도 좋지만 마레 노스트럼(1.16)패치이후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가 상당히 뼈아파서 그냥 폴란드가 들고 있는 프로이센지방을 뺏어서 발틱노드나 장악하는게 더낫다.
이게임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 플레이어가 오스만이 아닐경우] '''중간보스''' 시작시부터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게임 최고의 꿀땅인 콘스탄티노플을 먹을 수 있어서 상당히 강력하다. 또다른 특이점으론 콘스탄티노플노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서 사실상 자금력에서도 최강급. 거기다가 콘스탄티노플이 자동적으로 터키 문화권+ 수니파로 개종하는 이벤트, 예니체리 이벤트 [* 타락 이벤트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고증에 충실.~~]등 자기만의 이벤트나 전용 미션도 더럽게 많이 들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좋다고 초반부터 헝가리같은 동유럽쪽으로 확장하려들다간 반국가연합걸려서 망할 수 있으니(...) 우선은 유럽쪽은 발칸반도정도만 먹어두고 맘루크와 카라 코윤루를 패면서 서아시아+ 이집트지방부터 먹는걸 추천. 아니면 정교회로 개종하는 방법도 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먹어두면 발칸지방은 콘스탄티노플빼면 전부 정교회이므로 개종이야 어려운 편은 아니다. 이경우엔 동군연합을 노릴 수 있으며 결혼이 되어서 외교가 훨씬 편하단게 장점. 몇몇사람들은 라구사까지 먹어둬서 가톨릭 개종후 신롬황제를 노리기도 한다. ~~진정한 카이세리 룸!~~
확장방향은 우선은 노보고로드 정복미션을 얻어내서 노보고로드를 치고, 그 이후에 폴-리투 동군연합이 뜨면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후에 폴란드랑 사이가 안좋은 국가랑 동맹을 해둔뒤 폴란드를 치는것. [* 폴란드가 동군연합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경우엔 리투아니아를 패면 된다.] [* 다만 중간중간 틈틈히 골든 호드(킵차크 칸국)과 카잔등을 패면서 남진역시 해두어야 한다.] 이 경우엔 오스트리아랑 헝가리, 오스만정도가 물망에 오른다. 그이후 확장방향으론 스웨덴을 쳐서 북유럽쪽으로 확장하거나, 폴란드에게서 단치히등 프로이센지방을 뜯어내 발트해노드를 장악하는 방향, 그리고 오스만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뺏어 진짜 [[제3의 로마]]가 되는 방향(...)등이 있다.
본격 동유럽 깡패국가. 시기상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랑 동군연합 맺고 신나게 깡패질 할때라 매우 강력하다. 거기다가 국가이념중에 기병전투력 33퍼센트 추가가 달려있어서 [* 그다음으로 강력한 헝가리기병 전투력증가가 20퍼다...다만 이쪽은 국가전통이라 처음부터 달려있다는게 차이점.] 올기병 플레이[* 보병은 버리고(사람에 따라선 포병까지) 기병만으로 플레이하는것]에 가장 추천되는 국가기도 하다. 선거군주정 특징을 잘이용해 오스트리아를 뛰어넘는 동군연합의 제왕이 될수도 있고, 이후에 대홍수이벤트까지 끝내면 다른 나라보다 몇 십년 빨리[* 다만 프랑스보단 느리다. ~~주인공 보정~~] 절대군주정이 될수 있다.
폴란드의 문제점은 외교다. 북쪽의 튜튼 기사단은 역사적 라이벌 보정이 있고 남쪽의 오스만도 자주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하며 헝가리 역시 폴란드를 싫어하는 경우가 잦다. 동쪽의 모스크바 역시 폴란드의 숙명의 라이벌. 그러므로 확장방향을 잘잡아야 되는데, 우선은 보헤미아와 헝가리중 폴란드를 라이벌 지정하지 않은 국가들중 하나와 동맹하고 빠른 속도로 리투아니아와의 동군연합 이벤트를 띄운뒤 튜튼 기사단을 공격하자. 꾸물대다 튜튼 기사단이 보헤미아와 헝가리중 하나랑 만이라도 동맹하면 이기기 힘들다.[* 전에는 튜튼 기사단이 보헤미아와 헝가리 둘다 동맹해두지 않는 이상은 폴-리투 성립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었지만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부턴 그게 매우 힘들다.] 그 이후론 최대한 빠르게 모스크바를 패가며 동진하자. 조금이라도 꾸물대다간 국가이념으로 물량+50퍼로 미친듯한 물량을 보여주는 모스크바를 보게 될것이다(...) 모스크바를 패가며 루스문화권지방을 평정했으면 유럽에서 적수는 없을것이다. 폴란드도 우주에 갈 수 있다는걸 보여주자.
리투아니아와 동군연합상태이고 행정레벨 10이상이면 연방왕국(커먼웰스)를 성립할 수 있다.
우선 시작지점에서 공위상태인데, 헝가리의 왕이 오스만과의 바르나전투에서 패배해서 그렇다.[* 같은 이유로 폴란드와 보헤미아도 공위상태다.] 오스트리아와 시작하자마자 동맹을 해두고 약간만 기다리면[* 앞에 오스트리아와 동맹해두고를 적었지만 꼭 오스트리아와 동맹안해둬도 일어난다. 어차피 역사적 친구보정덕에 냅둬도 동맹을 걸고] 000섭정의회로 갈지, 야노슈 후냐디를 섭정으로 세우는지[* 능력치 455]가 갈릴텐데 능력치도 후자가 더좋고 역사적이기까지 하므로 얌전히 야노슈를 섭정으로 올리자.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도가 깎이겠지만 역사적친구보너스 덕에 이거 가지고 동맹이 풀리거나 동맹을 못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 보헤미아와 튜튼기사단중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지않은 국가와 동맹하고 폴란드가 튜튼기사단을 치길 기대하자. 리투아니아 개발도 너프전엔 폴란드가 거의 프랑스급으로 쎘지만 너프이후론 야노슈가 이끄는 헝가리군정도에 기사단 둘정도면 해볼만해질정도다.[* 다만 한타한번 밀리면 끝장이긴하다(...)] [* 만약 튜튼이 헝가리를 라이벌로 삼았다면, 독립보장을 걸어두자. 방어전 한정으로 따라서 싸울수 있다.] 그리고 이걸 하기전에 가장 중요한건 일단 미리 외교탭으로 가서 폴란드가 들고 있는 지방중 일부를 관심지역으로 지정해두는것. 전쟁기여도가 높으면 관심지역중 일부를 주는(아니면 전부!) 경우가 있으므로 굉장히 유용하다. 이상태로 10년이 지나고 헝가리왕의 후계자가 없으면 [* 만약에 생겨버렸으면 1470년까지 어떻게든 후계자를 없애야 한다. 후계자가 좋을경우엔 그대로 합스부르크가로 유지하면 되지만.] 두가지 선택지가 생기는데, 첫번째는 야노슈의 아들인 마챠시 1세를 왕으로 세우는것이고, 두번째는 랜덤한 합스부르크국가에게 동군연합되는것이다.
- 김연경(배구선수) . . . . 18회 일치
하지만 에이전트를 둘러싼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의 마찰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2012-13 시즌을 앞두고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에 난항을 겪었다. 이후 흥국생명과 김연경 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대한배구협회]]에서는 선수와 구단, 리그 어느 한쪽의 의견을 편향되게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제배구연맹(FIVB)의 유권해석으로 넘기게 됐는데 FIVB에서는 당사자인 김연경과 흥국생명과의 재협상을 명령했다. 이는 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된 선수도 소속팀이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단년계약으로 갱신하려는 행태와 함께 FA 신청 연한이 지났음에도 임대라는 이름으로 선수등록 권리를 가지려 하는 한국 배구계의 선수계약 방식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염두해둔 FIVB의 의중이었다. 다만 FIVB에서는 로컬 룰 존중이 우선이고 당사자 간의 숙고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우선적으로 제시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FIVB가 흥국생명의 편을 들어주고 말았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김연경 간의 합의서를 뒤늦게 알고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의 손을 들어줬다는데 문제는 그 합의서는 FIVB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유출하지 않기로 했던 문서이다.[* 합의서 내용은 김연경에게 불리한 조항 투성이. 단, 마지막에 양 측은 FIVB의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었다. 김연경측은 그걸 노린 듯.] 이를 안 김연경 측은 선수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68707|#]] ~~농담이 아니라 제대로 선수 생활하려면 이젠 해외로 귀화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소속 팀의 문제라 귀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재 네티즌 여론도 귀화를 바랐다. 그러나 김연경 자신은 귀화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이렇게 되자 김연경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가운데 2012년 [[국정감사]] 때 '김연경 사태' 가 이슈로 떠오르며[* 국정감사가 있기 전부터 김연경의 팬들이 중심이 되어 SNS를 통해 정치권에 구명 활동을 벌여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화답을 하면서 불씨를 지폈다.] 정치권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2년 10월 19일 김연경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해줄 것을 호소했으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8&aid=0002931824|기사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271983|기사 2]]) 이 날 국회 문방위원회가 주재한 국정감사 정책질의에서 민주당 최재천 의원 등이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에게[* 이 날 감사는 대한체육회를 포함한 5개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대통령 하고 싶다고 나대신~~ 대한배구협회장 임태희는 출석하지 않았다.] 국제이적동의서 발급 및 FA 규정 개정을 촉구하였다.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89937|#]] 사태가 커지자 결국 2012년 10월 22일 [[대한배구협회]]는 김연경에게 1년 기한의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할 것을 결정했다.
이번 최종 결정은 터키 구단인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가 끝날 것 같지 않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단을 꾸린 것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스포츠 국제룰을 근거로 들면서 FIVB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과 김연경 간의 계약서가 없음을 어필했고 보통 판결을 뒤집지 않는 선례에도 불구하고 FIVB는 판결을 바꾸었다. 하지만 김연경의 소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싶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FIVB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재심을 요청했고 [[페네르바체 여자 배구|페네르바체]] 역시 김연경의 계약을 정당하게 인정하고 싶어 재심을 받아들였다.
2014년 2월 7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83344|국제배구연맹(FIVB)이 김연경이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추가적으로 김연경 이적 파동과 직접 당사자였던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구단, [[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연맹]]의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얽히고설켜 삽질을 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박상설 KOVO 前 사무총장이 기금전용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었고, 대한배구협회 임태희 회장은 김연경 이적 파동이 생기려고 하던 시점에 공석이었던 KOVO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물밑 작업을 시도했었다. 여기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이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주최인 [[대한배구협회]]에 떡밥을 던졌고,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권광영 단장은 당시 KOVO 총재 추대위원회에 속해있어 KOVO 총재에 눈독을 들이던 임태희 회장의 [[대한배구협회]]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또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은 온갖 비리혐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박상설 총장에게도 추파를 던져 박 총장에 대한 연임 지지를 약속하며 김연경의 해외진출건을 KOVO 이사회 차원에서 막아달라는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에 임태희 회장이 새누리당 18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하고,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의 ITC 발급 불가에 대해 SNS 구명활동에 응하는 엉뚱한 짓으로 우왕좌왕하며 망신을 자초했다. [[http://m.mk.co.kr/entertain/home/2014/213724|해당기사]]
결론은 기업과 협회가 선수개인을 자기들 맘대로 해서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다가 우리나라를 국제적으로 개망신 시킨 사건이라고 볼수있다.
현재 사실상 여자배구 국가대표 경기는 김연경 혼자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국제전을 보면 한 경기에 평균 20~30점을 책임지고 늘 공격부문 Top 5에 오른다. 물론 [[한송이(배구)|한송이]], [[황연주]], [[양효진]],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등 여자대표팀 주 공격원이 평균 10점 이상이며 크레이지 모드 때 10점대 후반 가까이 찍어주기는 하나 '''김연경은 팀 득점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 김연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리베로]]보다 잘하는 서브리시브'''이기도 해서 김연경이 잠깐이라도 쉬러 벤치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눈 앞에 펼쳐질 수도 있는 [[헬게이트]]를 걱정해야 한다.
특별히 부상이 없는 한 향후 10년은 여자배구계를 이끌 대형 선수이나 프로 입문 이후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래도 [[황현주(배구)|황현주]] 감독이 막 굴려먹은 게 문제인 듯~~ 고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나 정규시즌 전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 김연경의 컨디션이 어떠냐에 따라 국제전의 성패가 달려있기도 하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김연경 개인으로서는 '''국제배구연맹에서 선정한 런던 올림픽 MVP로 뽑히는 영광을 받았다'''. [[http://www.fivb.org/en/olympics/london2012/viewPressRelease.asp?No=36501&Language=en|#]] 우승은 커녕 메달 획득도 실패한 국가에서 대회 MVP로 선정되는 것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사상 두 번째라고 한다. 또한 대회 총 득점 207점으로 종전 올림픽 기록이었던 예카테리나 가모바의 204점을 능가했으며 당연히 득점왕에 선정되었다. ~~이젠 배구게의 [[펠레]] 소리가 나올 판~~
그러나 제아무리 강철 체력에 승부욕 강하고 멘탈 강한 김연경이라 할지라도 2012~13년 두 해에 걸친 이적 사태와 국가대표팀에서의 혹사가 겹쳐 앞서 농담처럼 얘기한 '''그 헬게이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2013년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 3~4위 한중전에서 오른쪽 어깨 탈골 부상을 입은 채로 끝까지 경기를 뛰어 대표팀을 3위에 올려놓고 FIVB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벌어진 2014 세계선수권대회 대륙별 예선 초반 김연경의 결장과 대표팀의 [[카자흐스탄]]전 패배로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2014년 배구 국제대회 일정 중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일정이 겹쳤다.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놓치고 매년 여름에 열리는 월드그랑프리 출전권은 확보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대한배구협회]]가 2014년 일정에 맞춰 여자대표팀을 A·B팀으로 나누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며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의 금메달에 집중하겠다는 뉘앙스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진출권을 놓고 일본에서 펼쳐진 세계 최종예선에서 첫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패했으나, 네덜란드-일본-카자흐스탄-페루를 연파하며 대한민국은 6경기인 태국전 2세트에서 무난하게 올림픽 진출권 획득. 당연하게도(?) 김연경은 맹활약. 다만 국내용 공격으로 여겨지던 개인 시간차가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시작한 [[양효진]], 서브 맹폭 일본 킬러 [[김희진(배구선수)|김희진]], 반전의 리시브 실력을 보여준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 등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현상.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대표적인 것이 박수 세리머니... 이 대회부터 김연경의 주도로 승리 후 3-3-7 박수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데 보면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 ~~응?~~]로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는 걸 보면 주장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부록에 적힌 대로 도쿄 올림픽이 열릴 때의 김연경의 나이는 32세인데, 이 정도 나이이면 슬슬 선수 생활의 황혼기이자 은퇴를 준비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다. 물론 자기관리에 철저한 [[호날두]]나 [[이동국]]이나 불혹의 나이에도 국가대표 주전세터를 하는 [[이효희]]의 경우도 있지만, 김연경 본인의 실력도 나이의 노쇠화로 인해 조금씩 쇠퇴해 갈 무렵인데,[* 최근 열린 VNL 한일전에서 이 문제가 터졌다. 한국은 김연경이 나오고도 일본에게 시종일관 제압당하며 [[삼연벙|0대3으로 완패했다. 이후 김연경은 다시는 한일전에서 지지 않겠다며 굳은 결심을 밝혔다.]]] 올림픽은 그렇다 쳐도 김연경이 은퇴한 이후의 여자배구가 어떻게 될거냐는 우려도 충분히 나온다. 농담이 아니고 지금 현재에도 김연경이 잠시 쉬었다 들어가면 그 사이에 우리나라 경기가 헬게이트가 열리는데, 김연경 의존도가 너무 큰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도 먹혀들지는 의문이고[* '''배구도 엄연한 팀플레이 게임이다.''' 한명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그만큼 상대팀에게 철저하게 파악되어서 나중에는 부담감 때문에 그 한명도 부진하거나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엄청'''~~ 커진다. 당장 출전인원이 좀 더 많은 축구의 경우에도 한 명의 슈퍼스타로 모든 것을 풀어갈 수 없는 법인데 배구라고 예외는 없다.] 은퇴한 이후에 조직력 다지기며 대체자를 누구로 뽑느냐 등등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다. 냉정히 말해서 김연경 없는 한국 대표팀은 독일[* 김연경이 나오고도 VNL 대회 이전 맞대결에서는 독일에게 2세트까지 내주며 끌려가다가 3세트에서 내리 연속으로 역전승했고, VNL에서는 1세트를 내줬지만 2세트에서 내리 이겨서 3대1로 승리했다.]과 태국[* 2018 아시안게임에선 김연경 있을때도 이겼다. 사실상 아시아 내에서 중국 다음의 강호로 떠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 이하의 수준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16회 일치
* [[시가라키 토무라]]가 시에핫사이카이와 협력을 결정했을 때, 이들을 비롯해 [[빌런 연합]] 멤버들의 반발이 거셌다.
* 그의 진심을 이해한 토가와 트와이스트는 순순히 시에핫사키아에 협조하는 듯 보이나 진심은 여전히 빌런연합만을 위해, 자신들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 이리나카의 책략으로 분단된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뜻하지 않았던 [[빌런 연합]]의 개입. [[토가 히미코]]의 습격으로 이미 희생자가 나왔다. 자물쇠 히어로 [[록록]]이 당했다. [[미도리야 이즈쿠]]도 그럴 뻔 했지만 [[아이자와 쇼타]]가 눈치 챈 덕에 제지했다. 대신 그가 부상을 입고 피를 빼앗기는 사태가 생겼지만.
미도리야의 머리 속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토가가 사라진, 지금은 굳게 닫힌 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몸놀림과 개성은 낯이 익었다. 밀랍처럼 녹아내리던 모습. 임시면허 시험 때 본 적이 있다. 사걸고교의 여학생 "캐미". 어떻게 된 건진 모르지만,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단 한 가지 의미였다. 그녀가 빌런 연합이라는 것. 그도 아이자와 만큼이나 빌런연합이 왜 이런데서 나타났는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이냐 빌런 연합!
>천하의 빌런 연합이 일개 야쿠자의 편을 들다니.
* 이리나카를 규탄하기는 토가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자신도 이리나카 덕에 무사히 빠져나와 놓고는 말이다. 그녀는 모처럼 협력해주고 있는데 야쿠자 측이 너무 불성실하다고 투덜거렸다. 트와이스는 토가를 구원의 여신처럼 바라보며 칭송하고 사귀자고 치근덕거렸다. 토가가 그를 강아지처럼 쓰다듬으며 슬픈 심정을 헤아려주었다. 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빌런 연합에 소개한 탓에 [[마그네]]를 죽게 했다고 누구보다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핫사이카이에 협조해주고 있는데, 정작 협조대상은 그걸 전혀 몰라주고 있지 않은가?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시가라키가 오버홀과 접촉한 직후. 시라가키가 어떤 뉴스를 가져오자 빌런 연합의 멤버들은 크게 반발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토가는 춤 추듯 빙글빙글 돌며 자신은 연합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작은 [[스테인(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스테인]]이었다. "스테 님"을 영접한 걸 계기로 그녀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기 편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연합에 들어왔고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합에서 하는 일이 그 목적에 부합하자면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시가라키는 맨 얼굴인 채로 아까 하려던 설명을 이어갔다. 시에핫사이카이, 오버홀은 빌런 연합의 기동력을 깎으면서 연합의 유용한 인재들을 회유하려는 속셈이다. 바깥으로 끌어내 구슬려서 정식으로 시에핫사이카이의 장기말로 만들려는 수작. 저쪽은 처음부터 이쪽과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사실 시가라키도 마찬가지였다. 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그 부분이라면 시가라키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 토가와 트와이스가 연 야쿠자 규탄대회는 수위를 높여갔다. 트와이스가 이 모양이니 야쿠자가 전멸 직전인 거라고 까대자 토가가 "잠들어 있다는 두목도 별거 없는 사람일게 뻔하다"고 덧붙였다. 거기까지였다. 넓디 넓은 이리나카의 이해심도 거기서 바닥이 났다. 비명같은 외마디 절규와 함께 사방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지금 이리나카의 정신처럼. 히어로 연합군을 분단시켰던 이리나카의 벽이 무너지고 형태를 잃었다. 일행은 위아래도 없고 좌우도 없는 파도 휩쓸린 것 같았다. 토가와 트와이스가 바란대로였다. 트와이스는 그 와중에도 입을 쉬지 않고 "역시 이리나카 형님은 쉽게 열받는 성격이었다"며 신경을 긁어댔다. 그리고 토가는, 요동치는 배경 속에서 다시 미도리야와 눈이 마주쳐서 웃었다.
- 로힝야 . . . . 16회 일치
> 지구촌에서 가장 박해를 받고 있는 소수민족 - 국제연합
미얀마에서는 '벵갈리'라고 부르며 방글라데시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를 꺼려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유엔난민기구가 인정하는 로힝야 난민이 3만명 가량 있으며, 유엔 난민촌 주위에는 미등록 난민 20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2012년 방글라데시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국제 구호단체의 활동이 난민 유입을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사업 중단을 요구했으며, 국경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보도되어 타이 정부는 로힝야 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등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신매매와 이들을 이용한 불법조업 어선의 강제노동 문제로, 국제적 압력을 받게 되었다. 미국은 타이에 인신매매 최하등급을 적용하고, 유럽연합은 불법 조업이 6개월 안에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2012년에는 라카인주에서 불교도 라카인족과 로힝야족이 충돌하는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로힝야 남성이 라카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 탓에 촉발되어 2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희생자는 대부분 로힝야였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보고서를 출판하여 이 사건을 비판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와 군부, 불교 승려들이 라카인족이 로힝야를 살해하도록 선동하고 방조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마웅토 등의 국경 검문소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를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반격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100여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성폭행]] 사건과, 다수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위성사진을 분석하여 진압과정에서 1,200채의 민가가 불에 탄 것으로 분석하였고, 유엔은 난민의 수가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미얀마 정부는 민간인 학살과 인종청소를 부인하였으며, 저 타이 미얀마 대통령실 대변인은 유엔의 주장을 부정하고, 확실한 증거에 기반하여 발언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얀마 군부와 정부는 민가 방화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는 로힝야 무장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은, 2016년 학살을 촉발한 무장괴한의 경찰 초소 습격 사건의 배후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로힝야 족의 지휘로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초소 습격 사건의 배후로 분석된 '하라카 알-야킨'(Harakah al-Yaqin, 믿음의 운동)을 조사하여 미얀마 내외에서 활동하는 단체 회원 6명과 인터뷰하여,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로힝야 망명 위원회가 이 단체를 감독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국제위기그룹의 보고서는 로힝야 무장단체가 국제무장세력과 연관이 있으나, 미얀마 내 불교도를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보다는 차별을 끝내고 시민권을 확보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종교적 주장을 펼치는 단체이고 국제 지하드 조직과 연결이 있어 언제나 목표가 바뀔 수 있으며, 미얀마 정부가 군사작전에만 치중하지 말고 로힝야의 고통을 외면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사실상 미얀마의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 겸 외교장관에 대해서 비판이 쏟아졌다. 2016년 무장공격과 이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보복에 대해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던 그녀가 군사작전이 시작되고 6주가 지나도록 언론을 피하고 "법치에 근거하여 군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원론적인 해명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에서 아웅산 수치는 집중 포화를 맞게 되었다. 수치는 로힝야를 '벵갈리'라고 부르며 이방인 취급을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불교 승려들로 이루어진 '마 바 타'(Ma Ba Tha, 민족종교 보호를 위한 애국연합)라는 단체가 로힝야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 보트피플이 사망한 사고에 대해서 미국 대사관이 논평을 내며 '로힝야'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로힝야 같은 종족은 없고 그런 말을 할거면 이들을 다 데려가라고 주장했다.
해외 불교계는 물론 이러한 미얀마 불교의 움직임에 비판적이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2015년 5월 28일 호주언론 '더 오스트레일리안'과 인터뷰에서 로힝야 족의 현황에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하고, 아웅산 수치 여사가 로힝야 족을 돕기를 희망하며, 국제사회가 로힝야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 최공웅 . . . . 15회 일치
1966년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어 1969년 까지 재직하다가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 전보되어 1971년 까지 재직하였다. 1971년에 다시 서울민사지방법원으로 돌아와서 1975년 까지 근무하다가 1975년과 1976년에 [[춘천지방법원]]에서 합의부 재판장을 하였다. 1977년부터 1980년 까지 [[서울고등법원]]에서 판사를 하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치는 동안 1974년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비교법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78년에 Hague Academy of International Law에서 국제국제사법 과정을 연수했다. 특히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에서 국제사법 연수를 받고 저서 <국제 소송>은 국제사법 분야에서 바이블로 통한다.<ref>동아일보 1995년 11월 21일자</ref>
* 1977년 ~ 1999년: [[사법연수원]], 서울대학교법학연구소 사법발전과정, 연세대학교법무대학원, 경희대학교국제대학원 강사 (국제사법, 국제소송, 특허소송)
* 1994년 ~ 1999년: 한국국제거래법학회 회장
* 2000년 ~ 2003년: [[경찰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한국일보 총선보도자문위원회 위원장, 법무부 섭외사법개정 분과의원, 이화여대 겸임교수 (지적재산권,국제사법 담당), 일본 오사카대학 비상근강사 (아시아법 담당)
* 2000년 ~ 2007년: 한국국제사법학회 회장, [[대한상사중재원]] 이사·중재인, [[엠네스티]] 법률가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가족보건복지협회 이사, 무역중재인포럼 대표, 아시아변리사회(APPA) 한국협회 고문, 대한변리사회 회장단 자문위원, 인터넷주소 분쟁위원회 고문
* 2007년 ~ 현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 CEO아카데미 원장,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초빙교수 (국제사법,지적재산권), 한국중재학회 고문,한국국제사법학회 명예회장, 국산업재산권법학회 명예회장, 대한중재인협회 고문
* 2011년 ~ 현재: 국제중재위원회 위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7화 . . . . 13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 본부장 [[이리나카]]는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동화된 벽 자체를 수축시킨다.
* 이리나카는 [[빌런 연합]]의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개입을 감지하고 압박을 풀었던 것.
* [[오버홀]]은 계획의 전모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시라가키 토무라]]에게 빌런 연합의 병력을 일부 빌려쓴 것이었다.
*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철포옥 핫사이슈 랏파, 텐가이와 힘겨운 격전을 마무리했을 무렵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 연합군 본대는 살아있는 복도에 갇혀 압살 당할 위기에 처했다. 시에핫사이카이의 본부장 [[이리나카]]는 지금까지는 길을 막거나 일행을 분단시키는 전법으로 진로를 방해했으나 갑자기 노선을 변경, 동화된 벽을 수축시켜서 일행 전체를 한꺼번에 분쇄하려고 들었다.
히어로 연합군은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록록의 개성으로 압벽을 한 쪽으로만 몰고 다가오는 벽을 미도리야 등이 파괴하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형사는 "우둔한 두더쥐"같은 전술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체력의 소모는 엄청나고 진행 속도는 느렸다. 록록은 패트껌 일행이 있었다면 좀 더 효율이 있었을 거라고 불평하지만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아이자와 쇼타]]를 닥달한다. 빨리 무효화를 시켜 보라는 거지만, 아이자와도 놀고 있는게 아니다. 록록의 불평은 더 심해져만 간다.
* 아이러니하지만 록록의 불평은 이리나카의 입장에도 적용됐다. 그도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었다. 진작부터 압살 작전을 쓰지 않은건 그만큼 방대한 체력을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숙련된 히어로 집단. 만일 압박한 보람도 없이, 일행이 더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길을 양보해준 거나 다름없다. 본래 이리나카는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본부장의 지위를 얻은 것도 그 성격 덕이다. 그런 그가 압살작전처럼 불확실한 패를 사용하는 건 상당히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가 복용하는 "강화약"의 약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다 히어로 연합군은 지연은 될 지언정 착실하게 진격하고 있다. 더이상 보내서는 안 된다, 실패할 수는 없다는 초조함이 그를 무모하게 만들었다.
* 록록은 오른팔을 들어 방어했다. 칼날이 손에 박혔다. 그 순간 "잠금". 이제 나이프는 쓸 수 없다. 나이프에 매달린 토가도 멈칫. 록록이 왼쪽 손으로 주먹을 날린다. [[빌런 연합]]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스트레이트가 토가를 맞췄다고 생각한 순간, 그건 단순한 반죽 덩어리일 뿐이다. 진짜는 이미 배후에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연합하고는 양호한 관계가 아닌 걸로 보인다.
미도리야가 아이자와를 보호하려고 다가왔으나 아이자와는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토가가 구석으로 물러나자 이리나카의 벽이 미도리야 일행과 토가 사이를 가로막는다. 협력체제. 압박을 풀었던건 이것 때문이었다. 연합을 끌어들여 일행을 처리하게 하기 위해서. 벽 뒤에서 안전하게 장비를 회수한 토가는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아이자와가 휘두른 칼날이 왼쪽 눈밑을 스쳤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런 자잘한 상처, 고통보다는 미도리야와 재회한게 중요했다. 그녀는 이쪽에 합류해서 잘했다고 만족하고 있었다.
* 수시간 전. 빌런 연합의 수장 [[시라가키 토무라]]는 오버홀의 접견실을 방문했다. 위태로운 협상 끝에 성립된 동맹. 여전히 딱딱하고 날선 분위기 속에서 오버홀, 치사키는 뜬금없이 장기판을 펼쳤다. 장기를 둬본 적이 있냐고 묻는 치사키. 시라가키는 그런건 두지도 않고 룰도 모른다고 치우라고 말했다. 치사키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즐겨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국면을 내다볼 수 있게"된다면서. 그러자 시라가키도 조금은 흥미를 보였다.
오버홀이 말하는 장기의 재미있는 점. 상대편 말을 빼앗아 쓸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상대편 말을 빼냈다. 빌런 연합의 토가, [[쿠로기리]], 부바이가와라. 그들 중 몇몇을 쓰겠다고 통보한다. 그들이 멋대로 움직이면 자신들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시라가키는 난색을 표했다. 거명된 인물들은 연합에서도 핵심적인 전력. 전부는 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오버홀은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응수한다. 아직까지 서로 원한이 있다. 이쪽은 계획의 전모를 알려줬으니, 연합 쪽에서도 뭔가 내놔야 한다.
- 홍상수 . . . . 13회 일치
* 2009년 - 《[[첩첩산중]]》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 2009년 제62회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 1996년 제1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6년 제27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최우수 작품상《[[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강원도의 힘]]》
* 2000년 제13회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오!수정]]》
* 2003년 제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 거장감독쇼케이스상
* 2011년 제40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리턴 오브 타이거상
* 2013년 제66회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우리 선희]]》
* 2015년 제68회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황금표범상《[[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2015년 제53회 히혼국제영화제 장편부문 최우수작품상《[[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2016년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은조개상《[[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5화 . . . . 12회 일치
* 원래 이들은 [[빌런 연합]] 보다도 오래된 조직들이지만 [[올 포 원]]이 뒷세계를 장악한 이래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었다.
* [[시가라키 토무라]]는 당연히 자신이 올 포 원의 후계를 이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오버홀은 빌런연합은 그럴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오버홀이 여기에 온건 빌런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빌런연합의 네임벨류를 흡수, 자기 조직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오버홀]]을 모처의 폐공장으로 안내한다. 이곳은 [[빌런연합]]의 거점 중 하나로 동료가 될만한 인물을 픽업해 "면접"을 보는 일종의 면접장소다. 오버홀은 답지 않게 "불결한 장소"라며 건강에 나빠보인다고 투덜댄다. 트와이스가 오버홀과 함께 나타나자 빌런연합과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버홀은 아주 현실적인 지적을 늘어놓는다. 세력을 늘린다면 다음은? "어떤 조직"을 만들 건지 비전은 있는 것인가? 일찍히 빌런연합은 히어로 살해자 [[스테인]], 쾌락살인 [[머스큘러]], 탈옥사형수 [[문 피시]], 이렇게 쟁쟁한 인물들을 섭외했다가 간단하게 잃었다. 그런 마당에 정신병자들을 늘리는 걸로 세력확대를 논한다는건 언어도단. "컨트롤 할 수 없는 힘을 늘려서 어쩌자는 거냐"라고 할 수 있다.
* 오버홀이 빌런연합에 접근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 지금의 야쿠자들은 큰 자금을 끌어모을 여력이 없다. 그러나 한껏 악명을 떨친 빌런연합을 수중에 넣고 그들을 내세운다면? 오버홀은 자신이 그들의 힘을 백분 활용해줄 테니 자기 산하로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다음 시대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그네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오버홀을 공격한다. 그는 자신들은 누구 밑에 들어가려고 모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빌런연합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자신의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그 또한 마그네와 마찬가지로 오카마였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그네와 달리, 그녀는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상식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녀는 마그네는 거기서 뛰쳐나갈 용기가 있엇지만 자신에겐 없었다고 부러워한다.
* 그런데 그 순간, 오버홀은 마그네의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다. 마그네도 그걸 느끼는데 어떻게 된다고 자각하기도 전에, 마그네의 상반신이 거품처럼 터져버린다. 경악하는 빌런연합. 오버홀은 "너희가 먼저 손을 댔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오버홀은 이렇게 된 이상 냉정한 대화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마침 각 진영에서 시체가 한 구씩 나왔으니 그걸로 퉁치면 어떻겠냐며 물러갈 채비를 한다. 빌런연합 측에선 당연히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고 특히 트와이스는 자신이 데려온 인물 때문에 이런 참사가 생겼으므로 "책임을 지게 해달라"며 교전을 강력하게 원하지만 시가라키가 허락하지 않는다.
- 봉준호 . . . . 12회 일치
| {{small|*}} 《인플루엔자》||[[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rowspan="2" | 2004년
* [[2017년]]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한국본부상
* [[2010년]] 제6회 두바이국제영화제 아시아-아프리카 장편극 영화부분 각본상
* [[2010년]] 제28회 뮌헨 국제영화제 Arri-Zeiss 상
* [[2010년]] 제25회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이스트 미츠 웨스트 시네마 상
* [[2007년]] 제27회 오포르토 국제 영화제 감독상
* [[2006년]] 제39회 [[시체스 국제 영화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상
* [[2003년]] 제16회 [[도쿄 국제 영화제]] 아시아영화상
* [[2003년]]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은조개 상, 신인 감독상
* [[2001년]] 홍콩영화제 국제비평가상
* [[2001년]] 제25회 홍콩 국제 영화제 국제 영화 비평가 상
- 오준 . . . . 12회 일치
|학력 =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책학과 사회과학 석사
2015년 7월 한국인 최초로 [[유엔경제사회이사회|UN 경제사회이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오준 대사,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의장 선출…한국인 첫 배출 |url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22/0200000000AKR20150722170900043.HTML|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5-07-22 }}</ref>
2016년 3월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결의안이 통과된 후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개발 중단을 촉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오준 유엔 대사, 안보리에서 북한에 "이제 그만하세요" 촉구|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03/0200000000AKR20160303012300072.HTML|날짜=2016-03-03|출판사=연합뉴스}}</ref>
*[[스탠퍼드 대학교]] 국제정책학 석사
* 1995년 2월 외무부 국제연합국 국제연합정책과장
* 2001년 ~ 2003년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 국제기구 제2심의관
* 2003년 ~ 2005년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 국제기구 정책관
* 2006년 3월 국제연합군축위원회 의장
- 한비야 . . . . 12회 일치
| 학력 = [[숭의여자고등학교]]<br />[[홍익대학교]] 영문학과<br />[[유타대학교]] 대학원 국제홍보학과<br />[[터프츠대학교]] 플레처스쿨 인도적 지원학 석사
| 직업 = 작가, 국제구호활동가, 교수
'''한비야'''(韓飛野, 개명 전 이름 한인순, [[1958년]] [[6월 26일]] ~ , [[서울특별시|서울]] 출생)는 [[대한민국]]의 국제구호활동가이자 작가, 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 팀장이다.
한비야는 1986년 홍익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 주에 있는 유타대학 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구호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2008년 현직 구호활동가들을 재교육하는 IDHA 과정을 수료했고, 2010년에는 미국 터프츠대학(Tufts University) 플레처스쿨(Fletcher School)에서 인도적 지원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아아
== 국제구호활동가 ==
2001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 한국에서 9년간 일하였다. 2000년 대 초반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일하다 2012년부터는 ‘인도적 지원 전문가(Humanitarian Assistant Specialist)’로 일하게 되었다. 2011년부터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남수단,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국제구호 ===
|저자 = 연합뉴스
|저자 = 연합뉴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펴낸 후부터 대중 강연 활동을 펼쳤으며 2012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임용되었고 각종 교육 관련 단체, 기업 등에서 강연하고 있다.
* 2009년 [[캠퍼스라이프·한국대학신문]] 대학생의식조사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ref>{{웹 인용|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1449791&code=30802000|제목="대학생들 한비야ㆍ안철수ㆍ노무현 順 존경"|저자=연합뉴스|날짜=2009-10-12|출판사=국민일보|언어=ko|확인날짜=2013-09-09}}</ref><ref>{{웹 인용|url=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6967|제목="대학생, 존경하는 인물 '한비야','오바마'|저자=윤지은|날짜=2009-10-12|출판사=한국대학신문|언어=ko|확인날짜=2013-09-09}}</ref>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1회 일치
* Withdraw of League of Nation(국제연맹 탈퇴)
독일의 성장을 방해하는 나약한 국제연맹에서 탈퇴한다. 자금 100을 소모해 불만도를 2% 감소시킨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영국, 폴란드, 덴마크,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의 관계도가 50 감소한다.
* 발동 조건: "국제연맹 탈퇴" 디시전 발동, 국가원수가 아돌프 히틀러, 평화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에 군부대를 주둔시킨다. 불만도가 2% 감소하며 자금이 500 증가한다. 동시에 외교 슬라이더도 강경파로 1 이동한다. 호전도가 10 오르며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와의 관계도가 5-15 하락한다. 평화시 공업력이 10% 증가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역시 "전쟁 준비" 이벤트로 평화시 공업력 패널티가 10% 감소한다. 이벤트로 벨기에가 연합국에서 탈퇴한다.
* 타브리즈를 페르시아가 지배하며, 페르시아가 연합국에 소속되어 있음
* 케르만샤를 페르시아가 지배하며, 페르시아가 연합국에 소속되어 있음
* 하마단을 페르시아가 지배하며, 페르시아가 연합국에 소속되어 있음
자금 1,500를 소모해 지금까지의 고립주의를 버리고 연합국에 붙자는 연설을 한다. 이후 랜덤으로 결과가 나오는데, 실패할경우 불만도 4%가 추가된다.
* Side with the Entente(연합국에 편에 선다)
나치 독일이 사라지고 괴뢰국인 소련군 점령지역을 만들어야 나오는 디시전. 그냥 독립시키는 연합국용 오스트리아 독립과는 달리 친소 괴뢰국인 오스트리아 인민공화국을 선택할 수 있다.
* The Allies are about to lose the war!(연합군이 전쟁에서 지려한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연합 가입 . . . . 11회 일치
1971년에 있었던 사건.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연합]]에 가입한 사건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에 따라서 가입하게 되었다.
엄밀하게 해석하자면, [[국제연합]]의 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중화민국]]'의 지위를 [[중화민국|장개석 정권]]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국가승계]]를 시킨다는 결의였다. 이에 따라 중화민국은 한큐에 가입국 지위까지 잃어버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반대로 가입은 물론이고 중국의 외교적 정통성, [[상임이사국]]까지 한꺼번에 따먹었다.
이로서 [[대만]]의 [[중화민국]]은 국제적 지위가 붕 떠버리게 된다. 정식 국가가 아니라 일개 '정권'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 이에 반발하여 하다못해 '쫓겨나는 굴욕'만은 모면하려고 중화민국은 국제연합에서 스스로 탈퇴하게 된다.
- 창작:IDF . . . . 11회 일치
한자어 번역은 "국제방위대". 냉전시기, 자유진영 국가들의 군사협력 공동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로서 탄생하였다.
IDF는 언제나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가만을 회원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이사국의 승인에 따라서 임시 정부나 잠정 정부, 특정 정치 집단 대해서도 회원국 자격이나 총회이 발언권은 있으나 표결권은 없는 옵저버 자격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파견 주둔지에서 민사작전을 담당한다. 공병대와 의무대로 구성되며, 피해 복구와 재건 작업, 민간인 구호 등을 진행한다. 배급소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민간인들에 대한 식량, 의료 서비스 공급 등의 업무를 한다. 파견 지역의 치안 확보와 재건에 기여하고 반군의 성장을 막는다. 각종 국제 구호 조직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재해지에 나타나는 볼란티어(자원봉사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는다.
>상기 사항은 입수된 대외비 등급의 자료에서 확보한 것 입니다. 이 단체가 국제기구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내역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모르겠군요.
IDF는 원칙적으로 가맹국 간의 합의로 활동하는 국제기구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IDF의 이사국으로 활동하는 주요 강대국의 입김에 따라서 움직이는 군대로 여겨진다.
파병을 결의하는 이사국 측에서는 IDF는 파병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권이 짊어지게 될 정치적 부담과 책임을 일종의 공동분담과 국제기구라는 틀을 사용함으로서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성이 있는 조직이다. 특히, 자국군=자국 국민의 사망으로 인한 부담이 비교적 덜하다는 점에서 강대국들은 IDF를 타국의 군사개입을 쉽게 할 수 있고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유효하게 활용하고 있다.
파병을 요청하는 국가 측에서는, 비록 IDF 역시 강대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친다고는 하나 국제기구라는 틀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접적으로 외국 정부와 외국 군대의 개입을 직접 요청하는 것보다 해당국 정부에서 정치적 부담을 적게 느끼게 된다. 강대국처럼 점령을 바탕으로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IDF는 국제기구라는 특성상, 자국 군대와는 달리 쿠데타를 벌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어 신뢰받는 전력으로 여겨진다. '국제기구'라는 특성상 IDF가 특정 국가를 점령하고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평화-반전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에서는 국제기구의 탈을 쓴 현대판 용병, 사실상 [[PMC]]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IDF는 전쟁에 투입되는 자국민의 '희생'을 제3세계에 전가함으로서, 선진국의 분쟁 개입 빈도를 늘리고 이에 따라 세계의 전쟁을 오히려 더욱 가속화 한다는 것이다.
- 이주호 (1961년) . . . . 10회 일치
|학력 =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경제학 학사<br/>[[코넬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소속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이주호'''(李周浩, [[1961년]] [[2월 17일]] ~ )는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 1979년 ~ 1983년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경제학 학사
* 1983년 ~ 1985년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대학원 경제학 석사
* 1998년 1월 ~ 2003년 6월 [[KDI]] 국제정책대학원 부교수
* 2001년 7월 ~ 2002년 8월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학처장
* 2003년 6월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2003년 7월 ~ 2004년 5월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육개혁연구소 소장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위원장
- 이창동 . . . . 10회 일치
| 수상 =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감독상(2002년)<br />[[칸국제영화제]] 각본상(2010년) 등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제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2007년]])
*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회 위원([[2007년]])
* 1997년 제16회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 2000년 제35회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 2011년 제25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금시선상
* 2011년 제25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비평가상
* 2018년 제71회 [[칸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 임수정(탤런트) . . . . 10회 일치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비(연예인)|정지훈]]과 함께 출연하며 비록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중들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 활약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아시아 영화제 레드카펫도 밟았다.
2008년에는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공식행사, CF촬영, 그리고 2009년 개봉예정인 영화 《[[전우치(영화)|전우치]]》 촬영에 매진했다. 전우치 촬영은 2009년 상반기에서야 끝났다. 그 해 12월 개봉하는 《전우치》 의 개봉 전에 태국 푸껫에서 단편영화 《푸껫》을 촬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발표했다. 그녀의 [[영어]] 대사를 볼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산국제영화제와 푸껫행 비행기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전우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남자배우들과 비교해서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연기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사실 비중이 크지 않은 반면에 캐릭터는 여러가지였다. 오히려 [[최동훈]] 감독이 그녀에게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도. 그럼에도 불만 없이 와이어 액션까지 소화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캐스팅 된 작품에서 자신의 비중이 줄어들자 출연을 취소한 배우들이 종종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대조적인 태도다.] 12월 《전우치》 일정 도중 과로로 남은 무대인사를 불참했다.
2010년 9월에는 [[현빈]]과 함께 [[저예산 영화]]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출연하게 되었고 2011년 2월 24일 개봉. 두 배우 모두 무보수로 나온다고. 거기에 함께 스태프의 회식과 간식 비용까지 책임졌다고 한다. 오오 [[대인배]]. 영화로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전도연]] 이후 2회 이상 3대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2번째 한국 여배우가 되었다.
2011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공식 기자회견과 포토콜 때 참석한 그녀를 촬영한 사진이 베스트포토에 선정되었다. [[http://news.nate.com/view/20110220n02385?mid=e0102|#]]
[[캐리비안의 해적]] 삼부작으로 유명한 고어 버빈스키가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녀에 대해 지금까지 본 동양여배우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다.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1100&g_serial=287622|#]]
2007년 야심만만에서 [[슈퍼주니어]]의 멤버 [[기범]]이 두 차례 언급하였다. 7월 17일 방송분에서 언급한 내용은 꿈에서 3일 연속으로 미녀와 데이트를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고 꿈에서 깨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임수정이었다는 내용. 11월 26일 두번째 언급에는 그 발언 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봤는데 앞에서 말한 내용 때문에 부끄러워서 마주칠수가 없었다는 내용. [[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707170004|#]] [[http://www.tvreport.co.kr/ArticleShellView.asp?art_id=200711270004|#]]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따라서 한류스타로 보기는 어렵다. 역시나 드라마 출연이 많지 않은것이 원인인듯. 하지만 [[중국인]]들이 비교적 좋아하는듯 하다.[[http://spn.edaily.co.kr/news/newspath.asp?newsid=01302166589594128|#]] [* 또한 개소문 사이트에 똑같은 드레스를 입은 중화권 연예인과의 비교기사에 올라온 중국 누리꾼들의 댓글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알려지면서 중동권과 [[터키]], 남미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다. [[일본]]에도 [[블로그]]를 운영하는 열성팬이 있었는데 2007년 그녀의 생일 이후로는 활동을 안하고 있다.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한 [[덴마크]] 기자가 그녀의 출연작을 전부 봤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기자의 복장이었는데 [[욱일기]]가 그려져 있었다.(...) [[흠좀무]].
|| 2007년 ||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 || 커튼 콜 배우 기념패 || ||
- 자본통제 . . . . 10회 일치
한 국가가 국제자본 흐름을 통제하는 행위.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자본과, 국외로 유출되는 국내자본의 이동을 통제한다. 세금, 한도 설정, 허가제 등의 정책이 있다.
* 선진국의 금리 인상, 국제금융시장의 격변으로 단기자금이 사라지면, 자산버블이 붕괴되어 통화위기, 경제위기를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능력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통제는 실패하면 자본시장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금-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던 브레턴우즈체제(1944~1971년)에서 단기자금의 국가간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고정환율제도]] 때문에 단기자금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익을 얻기 힘들었고, 자본통제는 각국의 금융을 안정시켜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었다.
미국이 자본통제를 강화하자, 미국게 다국적기업들은 수출 대금으로 얻은 달러를 미국으로 가져가지 않고, 런던의 은행에 예금하여 마음대로 자금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로달러'이다. 유로달러가 크게 증대하고 이를 다루는 은행들은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국제금융업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하여,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자본통제를 철폐하기 시작한다.
1974년, 미국은 자본자유화가 국제무역을 증가시킨다는 견해로 자본통제 정책을 폐지했다. 선진국들은 자본자유화 정책을 대세로 삼았으며, 우리나라는 1995년 OECD 가입을 계기로 하여 자본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1997~1998년에 IMF 사태를 겪으면서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채권, 금리, 외환, 주식 등의 금융자산을 기초로 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를 노리는 [[헤지펀드]]가 크게 성장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 국제적 자본통제 방안 ===
* "글로벌 자금 흐름의 단기적인 속성과 내재한 변동성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신흥 시장과 미국 등 국제 자본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국가들은 새로운 규칙과 과세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창작:티겔 왕국 . . . . 10회 일치
동부대룩의 중남부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 호랑이족 맹수인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남쪽엔 황소족 거수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그외에 무릉과 인접한 곳엔 맹호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일부지만 라이거일족들도 살고있다. 북쪽으론 메말사막을 기점으로 서쪽부터 해서 라이겐프름 공국, 상인연합, 츄프 왕국과 접하며, [* 다만 앞에 두국가들은 일단은 티겔의 봉신이다. 사실상 독자적인 외교권과 주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국 취급이지만.] 동쪽으론 아래드 산맥을 기점으로 무릉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낭마 연합과 접하고 있다. 제국을 칭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유일황제' 샤를 7세가 이끄는 레이먼 제국군한테 박살나고 잠깐 레이먼 제국의 봉신이 되었을때 왕국으로 격하되었다. 그뒤로는 레이먼 제국한테 괜히 트집잡히기 싫어서 일부러 왕국으로 유지중.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달제가 원하진 않았겠지만)상티겔 왕국 멸망이후 하티겔 왕국의 형성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후 하티겔의 형성이후까지 이뤄지는 사냥꾼과 티겔 왕국의 협력에 기반을 닦아두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후 남쪽에 탐험가를 보내어 동부 대륙 남쪽에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티겔 평원] 그곳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다만, 거리가 거리다보니 대부분 일부만 겨우 도착했다.] 한편으론 동북쪽의 강자들인 하이엔 왕국과 츄프 왕국과 연합해 남진을 시도하는 레잉 왕국의 침략을 여러번 막아내면서 [* 특히, 북티겔 언덕에서 벌어진 회전에선 레잉의 왕과 태자까지 사살할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국경선에 요새를 쌓고 방어를 준비하는데 힘썼다.
달제의 사망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그의 차남 달휴가 즉위했다.[* 달제의 즉위시기는 조금 불분명하다. 확실한건 적어도 남부쪽에 개척사업을 시작할때까진 섭정을 맡고 있었단것과 북티겔회전에선 이미 즉위한 상태였단것 정도.] 달휴시기때 상티겔왕국은 최전성기를 맞는데, 레잉 왕국에 연속으로 어린 왕이 즉위하고, 대귀족 몇명이 그 사이 영지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 상태가 메롱할때였던게 매우 컸다. 그틈을 타 3차에 걸쳐 침공을 벌였고, 결국 3번째공격에서 수도 레잉을 함락시키고 레잉을 멸망시키는데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남쪽의 개척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고, 그에 따라 남쪽의 영토와 본토를 연결하는 교통도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달휴는 넓은 영토를 연결하는 사업에 주력했으며, 그에 따라 전 국토를 있는 교통로인 '휴의 길'을 만들었다. 한편으론 메말사막근처에서 무역을 하는 상인들 일부가 몇몇 오아시스를 중점으로 정착해 마을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들또한 이때 복속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중 가장 커진 도시인 타이그만을 중점으로 마을들이 뭉친게 현재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이다.]
처음에 이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북부파의 세는 미약했으며 왕국의 섭정이던 계형이 '사람을 협박하고 회유하는데 아주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문제는 다른데서 터지는데, 계형의 주도로 열린 레이먼제국과의 전쟁에서 상인연합과 츄프왕국, 사냥꾼들과 연합해 구 상티겔의 영역을 상당수 회복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곳을 탈환지라 부른다.] 이과정에서 북부파가 가지고 있었던 영지들 대부분이 전부 남부파로 간것이다. 거기다가 계형은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인물이라서, 영지를 되돌려받고 싶으면 이름을 옛방식으로 바꾸고 레잉의 풍습을 완전히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는게 문제였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계형이 죽고 실권을 잡은 계로는 레이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5000명의 친위대들인 '흑군'[* 모두 검은 망토를 차서 이렇게 부른다.]을 창설했으며, 이들을 이끌고 레이먼 제국과 태겡대공국의 침입을 수차례 격퇴했다. 한편으로 계로는 흑군의 숫자를 점차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이것때문에 늘어난 지출을 줄이기위해 귀족들과 지방관들의 세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진 큰 불만이 없었으나, 센티겔을 더이상 임시수도가 아닌 수도로 지정하고, 이름을 티겔로 바꾼다는 조치가 문제였다. 이는 고토의 탈환보단 남부쪽 개척에 집중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고, 결국 북부파와 남부파까지 망라한 귀족들의 연합이 태겡 대공 루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반란을 일으키며, 태겡이 이를 명분삼아 침공을 해오기까지 한다. 탈환지의 귀족중 80%가 이 반란에 따랐으며, 태겡과 귀족 연합의 병력은 3만에 이르렀다.
신유를 지휘관으로 한 사냥꾼 연합군은 처음에 게릴라 작전으로 꽤나 쏠쏠한 이득을 봤으나, 이러한 게릴라 작전에 몇몇 사냥꾼 씨족들이 불만을 가졌고, 이러한 여론이 점점거세져, 신유는 어쩔 수 없이 '곰의 뒷발뼈'산맥 북부에서 회전을 벌일 수 밖에 없었고, 참패를 당하고 만다. 결국 사냥꾼들은 티겔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 황정민(남자배우) . . . . 10회 일치
||<:> [[최민식]][br]([[명량]]) ||<:> {{{+1 → }}} ||<:> '''황정민[br]([[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 {{{+1 → }}} ||<:> [[이병헌]][br]([[내부자들(영화)|내부자들]]) ||
영화 배우로서는 주로 《너는 내 운명》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순박한 청년 역을 맡아 왔으나 [[김지운]]의 《[[달콤한 인생(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잔인하고 비열한 조폭 두목, 《[[사생결단#s-3|사생결단]]》에서 건들거리는 형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사생결단》 이후부턴 몇몇 영화에서 흥행 부진을 맛보았으나 《[[부당거래]]》, 《[[댄싱퀸(영화)|댄싱퀸]]》, 《[[신세계(영화)|신세계]]》 등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키워가더니,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베테랑(영화)|베테랑]]》 두 편 모두 천만 명 돌파라는 연타석 홈런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충무로 에이스로 탈바꿈하였다. 게다가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에서 750만 명 정도를 추가로 끌어모아 2015년 한해만 해도 3천만 관객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천만배우라고 말할 때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고 말한다. 천만이라는 숫자가 자기에게는 의미없고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평소에 심각하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씨네21 인터뷰- ] 연타석 홈런을 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고보는 황정민'''이라는 뜻으로 '''믿보황'''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 《[[히말라야(영화)|히말라야]]》 촬영 당시에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이 천만을 넘겨서 축하파티로 《히말라야》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회식을 쐈다고 한다.[* 현장토크쇼 TAXI 인터뷰와 해피투게더에서 언급이 되었다.] 영월에 있는 제일 비싼 고기집에서 파티를 했다는데 무려 1200만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고 한다.[* 여담으로, 회식 초대할 때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믿은-- [[김원해]] 는 가족들 모두 데리고 참석했지만 정작 가족들까지 참석한 건 자기뿐이었다고...]
||<:>2014||<:>[[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윤덕수||주연||1,426만명||성공[* 필모그래피상 첫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되는 영광을 가져다 준 작품]||
||<|5> 2015년 || 제15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 '''올해의 남자연기자상''' ||<|5>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
- 마기/327화 . . . . 9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는 모르지아나가 신드바드를 두둔하며 황제국의 국제동맹 탈퇴를 비판하자 말다툼을 벌이고 멋대로 차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황제국이 국제동맹에 복귀하자 귀왜국도 복귀하고 뢰엠 조차도 국제동맹에 가입한다. 이들도 똑같이 신드바드에 찬동하며 찬양하는데.
* 사건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어떤 "말다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알리바바가 연홍옥이 국제동맹을 탈퇴하는걸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그 일로 연일 회의 중인데 알리바바는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평한다. 그런데 거기서 모르지아나가 반대한다. 모르지아나는 황제국의 이탈이 국제동맹의 붕괴를 초례할 것이며 결국 힘이 분산돼 전쟁을 일삼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홍옥은 자국의 내전까지 겪었으면서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냐고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한다. 알리바바는 당황하며 홍옥도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옹호하는데 그러자 버럭 소리를 지른다.
|| 우리들 황제국은 국제동맹 이탈을 중지할 거야. ||
*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했던 홍옥이 불현듯 번복을 결정한다. 이야기를 들은 알라딘과 알라비바는 한참이나 이해를 못하다가 귀를 의심하게 된다. 알라딘은 그렇게 숙고해서 결정했던걸 뒤집어도 되겠냐고 묻는데 홍옥은 모두가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번엔 연홍명이 나서서 말하는데 동맹을 탈퇴하면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 백 년 천 년 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기들 사후의 먼 미래,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까지 지키기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홍명. 홍옥도 거기에 동의하며 황의 내전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한 명"이 힘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알리바바는 그게 신드바드냐고 반문한다.
너무 일변한 태도 때문에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어리둥절하다. 홍옥도 너무 입장이 바뀌어서 이상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원래 황제국은 "하나의 세계"를 표방하던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다고 수긍하려 한다. 알라딘도 적당히 동의하고 어차피 나라의 일은 자기들이 관여할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문득 알라딘이 같이 국제동맹을 등진 뢰엠과 귀왜국의 상황을 궁금해한다. 사실 이들 나라의 지도자 무 알렉키우스나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신드바드를 매우 경계하는 인물들.
* 그 뒤로 3일이 지났다. 그런데 충격적인 뉴스가 알리바바와 알라딘을 놀라게 한다. 갑작스럽게 뢰엠이 국제동맹에 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의 동맹 복귀가 공식화된 것이다. 그토록 신드바드를 꺼림직해하던 두 지도자들이 신드바드와 손을 맞잡는다. 심지어 무는 "일국의 독자성 같은건 작은 일"이라며 지금까지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무와 타케루, 홍옥도 "백 년 뒤, 천 년 뒤의 평화"라고 입을 맞춘 듯이 되풀이한다.
- 추미애 . . . . 9회 일치
*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여당]] 대표[*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가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s-1|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으나, 말 그대로 '비상대책위원장'이었을 뿐 당 대표는 아니었다. 박근혜가 [[참여정부]] 시절 당 대표였던 때도 있었으나, 그땐 '[[여당]]' 대표가 아니라 '[[야당]]' 대표였다. (2002년 한국미래연합 대표, 2004년~2006년 한나라당 대표)]
* [[2006년]] ~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 교수
* [[2015년]] ~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
* [[2015년]] ~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 [[1997년]] ‘여성권익디딤돌'수상 <한국여성단체연합> (남녀평등실현과 여성권익 향상에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 [[1999년]] 국회의정활동 행정자치위원회 최우수상 <한국유권자운동연합>
* [[2000년]] ‘국민화합상'수상 <국민화합운동연합>
* [[2000년]] 새천년 밝은정치인상 <바른사회 밝은정치 시민연합>
* [[2014년]] 국정감사 과학기술 최우수 의정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한규복 (1881년) . . . . 9회 일치
[[1926년]] [[8월]]에 다시 도지사로 승진, [[8월 14일]] [[충청북도]]도지사가 되고 [[1929년]] [[4월]] [[고등관]]1등(高等官1等)으로 승급되었다. [[1929년]] [[11월 28일]] [[황해도]][[도지사]]로 부임하였다. [[1930년]] [[1월 24일]] [[황해도농민회]] 회장에 임명되었다.<ref>조선총독부 관보 1930년 01월 24일자</ref> [[1930년]] [[2월]] [[황해도]] 도지사에 재임명된 뒤 [[1933년]] [[4월 7일]]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했으나 그해 [[6월 4일]]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칙임관]]대우 [[참의]](中樞院勅任官待遇參議)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참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수당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4년]] 중추원 참의에 재선되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 기간 중 [[흥아보국단]],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여러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1926년]]부터 [[1930년]]의 선전(鮮展)에서 4회 걸쳐 수상하였다.
[[1933년]] [[7월 21일]]에는 중추원 시정조사위원회 학예부장이 되었다. [[10월 21일]]에는 소작농심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34년]] 경성부 교화단체연합회 서부교화지구위원장(京城府敎化團體聯合會 西部敎化地區委員長)이 되었다. [[1934년]] [[7월 14일]] [[금융]]단체의 연합회인 [[금융조합연합회]] 창립에 참여, 자문상담역<ref>"금조연합회, 자문기관 설치", 조선중앙일보 1934년 07월 22일자 4면</ref>에 위촉되었다. [[7월 21일]] [[금융조합연합회]] [[경기도]]지역 참여에 임명되었다. [[1934년]] 여름 홍수로 [[조선]] 삼남 지방에 수해가 심해지자, 그해 [[8월 30일]] [[조선총독부]]에서 [[치소조사위원회]]를 설치할 때 그는 민간측 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1935년]] [[6월]] [[경성양조주식회사]] 취체역 회장(京城釀造株式會社取締役會長)이 되고, [[중앙주조조합연합회]] 회장(中鮮酒造組合聯合會會長)에도 피선되었다.
[[1939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참여에 선임되었다. [[1940년]] [[5월 30일]]에는 [[동아일보]]에 "저축과 국민생활"이라는 주제의 칼럼을 발표하였다.<ref>"貯蓄과 國民生活", 동아일보 1940년 05월 30일자 5면, 생활/문화면</ref> [[5월 30일]]과 [[5월 31일]], [[6월 1일]]에는 경성중앙방송국에 출연하여 저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5월 31일]] 오후 7시 30분에는 경성제2방송국에 출연하여 저축의 필요성에 대하여 강연하였다.
[[1941년]] [[12월]] [[중선주조조합연합회]] 회장에서 해임되었다. [[1942년]] [[4월]] [[조선맥자주식회사]](朝鮮麯子株式會社) 취체역 회장에 선임되었다. 그해 [[5월]]에는 [[재무간담회]] 회장직을 사퇴했다.
- 현소환 . . . . 9회 일치
'''현소환'''(玄昭煥, [[1937년]] [[8월 1일]] ~ [[2018년]] [[7월 28일]])은 [[연합뉴스|연합통신]] 사장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현재는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이다. 본관은 [[연주 현씨|연주]]이며,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이다.
[[1995년 6월]]에서 같은 해 [[1995년 12월]]까지 [[자유민주연합]] 특임촉탁위원 직위를 지낸 그는 [[199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종신회원이 됐고, [[2005년 5월]]에는 본부이사가 됐다.
[[연합통신]] 사장 재직 당시 [[YTN]] 설립에 관여했지만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1959년)|김현철]]씨가 YTN 초대 사장에 [[김우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을 앉히기 위해 현소환 당시 연합통신 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1년]] 현재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뉴라이트 계열의 뉴스앤뉴스 대표이사, [[국제언론인협회]](IPI) 종신위원<ref>[http://www.freemedia.at/about-us/ipi-executive-board/ 각주 자료 리스트]</ref> 이다.
* [http://www.freemedia.at/about-us/ipi-executive-board/ 국제언론인협회]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장관 . . . . 8회 일치
>고집 센 고립주의자는 자신의 국가를 전쟁과 국제정치의 난장판으로부터 지키려고 한다. 이 인물이 외국과의 협조를 어떻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조국의 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부정적인 효과: 공업력 -15%, 자원 생산량 -10%, 공장 생산 가격 +10%, 국제적 여론조작 당할 확률 +10%, 연구 시간 +5%, 지휘관 능력치 효율 -5%
>미소짓는 석유기업가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전에는 대형 석유 회사의 CEO를 했었다. 그의 경험(그리고 몇몇이 말하기를 그의 돈)이 그를 집무실에 앉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기술이 부족하며, 국제 무대에서는 아직 햇병아리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그는 쉽게 동요하지 않으며, 빨리 배우고 유능한 인물이다.
* Father of 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아버지) - 미국의 코델 헐
* 긍정적인 효과: 민주 국가 상대로 영향력 행사 성공률 +15%, 독재 국가 상대로 영향력 행사 성공률 +5%, 동맹 초대 비용 -50, 동맹 참가 비용 -15, 동맹 제안 비용 -50, 독립 보장 비용 -15, 국제 여론조작 당할 확률 -1%
* 긍정적인 효과: 영향력 행사 성공률 +20%, 쿠데타 성공률 +2%, 장관 암살 성공률 +2%, 비방 정책 성공률 +2%, 반군 지원 성공률 +2%, 국제적 여론 조작 성공률 +2%
* 긍정적인 효과: 첩보 +1%, 헌병 여단 조직력 +30%, 헌병 여단 조직력 회복률 +5%, 국제 여론조작 성공률 +1%
- 김기창 (법학자) . . . . 8회 일치
* 영국의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 개관, 한국법학교육과 법조실무의 국제경쟁력: 도전과 대응, 한국법학교수회, 2004.12
* "법률교육"의 국제경쟁력 확보, 서울대학교 법학 제47권 제4호,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7.02
* 법률교육과 법률가 충원 제도의 글로벌 스탠더드 -법조인의 전문화 및 국제경쟁력 강화의 전제조건으로서-, 저스티스 106號, 韓國法學院, 2008.09
* Long Seisin and Novel Disseisin: Acquisitive Prescription in Medieval Common Law? (장기점유와 부동산신침탈(新侵奪): 중세 컴먼로상의 취득시효?), 고대로마와 중세의 법과 평화,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 2005.10.07
* ''Legal education and legal profession changes and challenges'' (법학교육과 법률가 : 변화와 도전), 세계화 시대의 법과 한국법의 발전, 고려대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05.11.19
* ''Les diff?rents techniques de l'?laboration de la loi: le code et les "cases"'' (법적담론 전개 양식의 차이: 성문법 국가와 판례법 국가의 비교), 세계화지향의 사법: 그 배경과 한국과 프랑스의 적응,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프랑스민법전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2005.12.03
* 법학교육의 국제경쟁력 확보, 21세기 법학교육의 방향모색,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회의,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2006.10.20
* 법조인의 전문화 및 국제경쟁력 강화, 건국 60주년 기념 한국법률가대회: 선진국 조건으로서 법치주의, 한국법학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2008.8.26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8회 일치
* 빌런연합의 멤버들은 경찰과 히어로의 눈을 속이고 각자 조직원을 스카웃하기 위해 흩어져 생활하고 있다.
개성을 악용하는 빌런은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빌런들은 조직화되어 있다. 소수의 히어로가 어설프게 저지를 시도해도 역으로 당한다. 무리를 짓게 된 빌런들은 대담해지고 과시적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물론 빌런연합의 것이다.
기란은 잘지내고 있는데 위험한 계통의 사업가로 보인다. 그는 최근 1, 2주 동안 슈트 아이템의 암시장이 활성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빌런연합이 "바보들의 카리스마"로 떠올랐다고 쾌재를 부른다
* 아무래도 아저씨는 빌런연합의 일원 같다. 현재 빌런연합은 추적자들의 눈을 속이고 조직원을 늘리기 위해 분산돼서 활동하고 있다. 각지에서 평범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빌런연합의 멤버들. 새로운 동료를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접촉하고 있다.
* 아저씨는 이제 몸도 가누지 못하게 된다. "감싸야 된다. 분열된다."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그는 서둘러 마스크를 쓰는데 그 모습은 빌런연합의 트와이스다. "감싸면 하나야", 마스크를 쓴 트와이스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 미쳐버린 인간에게 있을 곳은 없다, 그는 그렇게 여긴다. 히어로는 선량한 인간만 구한다. 그는 자신을 받아준 빌런연합에 도움이 됨으로써 "나는 나여도 괜찮다"는 자기승인을 얻고자 한다. 그런 그가 찾고 있는 인물은 자기처럼 미친 인간. 새로운 현장을 방문한 그에게 그런 유형의 인물이 나타난다.
- 마기/318화 . . . . 8회 일치
* 국제동맹의 정례이사회. 연홍옥이 참석한다.
* 이번 정례이사회에선 뢰엠 제국이 국제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채 무역하는 문제를 성토하고 있다.
* 연홍옥은 황제국의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한다.
* 국제동맹 본부는 천산산맥 정상에 세워져 있으며 금속기의 보관과 각국 요인들 간의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 의장인 신드바드는 뢰엠 제국의 국제동맹 가입 여부를 의제로 상정한다.
*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듯 뢰뎀은 국제동맹 가입을 거부한다.
* 그러자 연홍옥이 끼어들어서 "백룡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며 뢰엠과 마찬가지로 국제동맹의 규정 밖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황제국은 국제동맹을 탈퇴합니다"
- 이정무 . . . . 8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B5B40><#1B5B40><-5><:> [[자유민주연합|[[파일:jaminmini.png|width=60]]]] [[자유민주연합|{{{#FFFFFF '''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 ''' }}}]]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구광역시]] [[남구(대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민주연합 원내총무에 임명되었다. [[DJP연합]]에 따른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 [[연정|공동정부]]의 몫으로 1998년 3월부터 1999년 5월까지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현승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 정명훈 (지휘자) . . . . 8회 일치
[[서울]]<ref>{{뉴스 인용|제목 = 운명처럼 다가왔던 베토벤 '운명' 들고 태어난 부산방문 설레|url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30509.22023204805 |출판사 = 국제신문 |날짜 = 2013-05-08 |확인날짜 = 2013-05-09}}</ref>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으며, [[서울덕수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일찍부터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보여 [[피아노]]를 배운 지 3년만인 일곱 살 때인 [[1960년]] [[서울 시립 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해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피플Q 정명훈의삶&음악] 정명훈은 누구?|url=http://news.donga.com/3//20100120/25520037/1|출판사=동아일보|날짜=2010-01-20}}</ref> [[1961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킹 군 (워싱턴주)|킹 군]] [[시애틀]]로 이주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명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부모]]는 [[미국]] 워싱턴 대학가에서도 한식당을 경영했다.<ref>{{뉴스 인용|제목=마에스트로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663110|출판사=mk뉴스|날짜=2009-12-25}}</ref> 정명훈은 이 시절을 회상하며 "부모님의 식당에서 부엌 일을 도왔고 새벽 신문 배달과 잔디 깎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신문을 돌리고서 나중에 구독료를 받으러 다니는 '수금'이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北 악단장도 스트라디바리우스(바이올린 최고 명기) 쓴대요"|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3/2012041300179.html|출판사=조선일보|날짜=2012-04-13}}</ref> 14세에 첫 개인 리사이틀을 가진 정명훈은 연주 도중 곡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반복해서 연주한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ref>유동철, 《아들아 너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라》, 북로그컴퍼니, 2009, p.94, {{ISBN|978-89-962617-3-5}}</ref> 그의 선생이었던 제이콥슨은 정명훈에게 "네가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보다 실수를 하더라도 감동적인 연주를 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ref>
[[1968년]]에 [[미국]] [[뉴욕]]의 [[메네스 음악원]]에 [[입학]]해 나디아 라이젠버그와 칼 밤베르거에게 각각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다.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피아니스트]]로 참가해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되었고, [[미국]] 시민권자임에도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에도 초대되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제목=김문관의 클래식 산책 스승의 노래|url=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639830|출판사=아시아투데이|날짜=2012-05-14}}</ref> 이 만찬에서 정명훈은 콩쿨 상금으로 [[러시아]]에서 산 [[캐비어]] 5 kg 중 일부를 [[선물 (물건)|선물]]로 들고 갔다. 당시 소련 정부는 국부 유출을 금지해서 받은 상금을 [[모스크바]]에서 모두 써야 했다.</ref> 이듬해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추가로 [[공부]]한 후 [[1978년]]에 [[졸업]]했다.
줄리어드 재학 중이던 [[1976년]]에 뉴욕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고,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부지휘자로 프로 관현악단 지휘의 [[경험]]을 쌓았다. [[1980년]]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부지휘자가 되어 상임 지휘자인 줄리니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고, [[1983년]]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거처를 옮겼다. [[1984년]]에는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고, 재임 기간 동안 [[윤이상]]의 교향곡 제3번 세계 초연과 음반 녹음 등의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6년]]에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를 [[지휘]]했고, 같은 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를 [[지휘]]해 오페라 지휘자로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피렌체]]에서 [[무소륵스키]]와 [[베르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지휘]]해 절찬을 받았고, [[198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을 [[상 (표창)|수상]]했다. [[1989년]]에는 [[프랑스]] [[파리 (프랑스)|파리]]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새로 건립한 [[오페라극장]]의 전속 오페라단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현.[[파리 국립 오페라]])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신축된 [[오페라극장]]의 개관 공연에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인' 을 상연해 호평을 받았다. [[1990년 10월]]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 제작도 시작했으며, [[조르주 비제|비제]]의 관현악 작품들을 시작으로 [[생상]], [[메시앙]], [[베를리오즈]], [[앙리 뒤티외|뒤티외]] 등의 작품들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EMI)', 베르디의 '오텔로' 등 오페라 전곡을 [[녹음]]했다. 특히 [[메시앙]]과는 생전에 각별한 친교를 맺고 있었고, 녹음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94년]]에 새로 부임한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음악 감독직에서 해임되었고, 이는 [[프랑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5년]] 유네스코 서울 협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대한민국의 훈장|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97년]]에는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부임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의 전속 계약을 유지하면서 녹음 활동도 병행했다. [[1998년]]에는 [[한국]]에서 첫 직책으로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기도 했지만, 악단원들과 [[갈등]]을 빚어 불과 수 개월 후 사임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신성 일본 교향악단을 흡수해 재구성된 [[일본]]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특별 예술 고문으로 초청되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2012년]]부터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의 역사상 첫 번째 수석 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나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국]]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세계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들을 객원 [[지휘]]하고 있으며, 다수의 영상물과 음반들을 남기고 있다. [[아시아인]] 혹은 아시아계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비상설 관현악단인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인천]]과 [[서울]]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공연하고 있다.
정명훈은 19세 때부터 누나 [[정명화]]의 시누이로 다섯 살 연상의 구순열을 짝사랑했고, [[가족]]에게 숨긴 채 교제를 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 3000루블로 비행기 티켓을 사서 [[카리브 해]]로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79년]]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식에는 어머니 이원숙 여사만이 참석했으나 나중에는 [[부모]]에게도 인정받았다.<ref>황호택, 《신동아》 [[2004년 2월]]호</ref>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 정진, 정선, 정민을 두고 있다.
3. 정명화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1944.03.19. 서울특별시 출생(첼로)
4. [[정경화]] (대관령 국제 음악제 예술감독,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 교수) 1948.03.26. 서울특별시 출생 (바이올린)
*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2위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하동 정씨]][[분류:대한민국의 지휘자]][[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산타 체칠리아 음악원]][[분류:줄리아드 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분류: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수훈자]]
- 채이식 . . . . 8회 일치
|경력 =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br> [[국제해사기구]] 법률위원회 의장
'''채이식'''(蔡利植, [[1949년]] ~ )은 대한민국의 법학자, 대학 교수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이며,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채이식 교수, IMO 법률위 의장 5선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10/09/0200000000AKR20091009091200043.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날짜 = 2009-10-09}}</ref>
고려대학교와 런던대학교 정경학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으며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의 한국수석대표 및 집행위 의장, [[국제해사기구]](IMO) 법률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해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 IMO법률위원회 의장에 채이식 교수 선출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989153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날짜 = 2005-04-28}}</ref>
*1995년 ~ 1998년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대표
*2005년 [[국제해사기구]] 법률위원회 의장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 . . . . 7회 일치
* Allies(연합국)
실제 역사를 따라가려고 할 경우 일본의 "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 디시전 발동→"난징 대학살", "파나이 사건" 이벤트→미국의 "대일본 최후통첩" 디시전 발동→일본의 "진주만 공습" 디시전 발동과 같은 절차를 걸쳐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보통 이렇게 되면 똑같이 일본에게 선전포고 당한 연합군 세력이 동맹에 초대한다.
연합국의 우두머리. 섬나라라는 특성상 본토에 병력을 배치한 후 배에 태워 대륙으로 수송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같은 섬나라인 일본은 세력권이 동아시아로 한정되어 있지만 영국은 사실상 세계 전역에 깃발을 꽂고 있어서 더더욱 골치아프다.
연합군에게 항복하는 조건과 중국군에게 항복하는 조건이 다르다. 연합군에게 항복하는 조건은 본토에 핵공격을 두번 이상 당하거나 본토에 연합군이 상륙했을 경우.
1936년 기준으로 시작하면 불만도가 10%인데, 게임 시작하자마자 "난징십년" 이벤트로 불만도가 20% 증가해 30%가 된다. 야 신난다. 1933년 시나리오에서는 시작부터 불만도 50%을 찍는다. 거기다가 당시 중화민국이 국민당과 군벌들의 연합체에 가까웠던 것을 반영해 대다수의 사단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있다.
- 라이징 스톰 . . . . 7회 일치
연합국. [[미군]]으로 상징은 초록색 바탕에 그려진 흰색 별. 특수 병과로 Automatic Rifleman과 Flamethrower가 있다. 화염방사기 개OP.
연합군 전용.
연합군 전용.
Frontline Soldier 등급을 넘은 일부 연합군 병과들이 권총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보조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개머리판 탄약 파우치가 해금된다. 그로 인해 얻는 이점이 뭔지는 해금한 사람이 추가 바람.
톰슨 M1928A1. 연합군 Squad Leader와 Commander의 기본 주무기. 무기 레벨이 25까지 올라가면 30발들이 탄창과 커트 컴펜세이터가 해금된다.
연합군 병사들의 보조무기.
M2-2 화염방사기. 연합군 Flamethrower의 주무기로 시뻘건 불길을 쏟아내 적들을 태워 죽인다.
- 유지태 . . . . 7회 일치
2003년 [[단편 영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영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영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영화제와 제8회 제주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태, 네 번째 작품 제주영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태, 인디판다 국제단편영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 [[2011년]] 4월 제 3회 국제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부집행위원장
* [[2009년]] 9월 제22회 도쿄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
* [[2009년]] 8월 제14회 부산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 [[2007년]] 6월 쇼트쇼츠 국제 단편 영화제 심사위원
| 제10회 쇼트 쇼츠 국제단편영화제
- 이소선 . . . . 7회 일치
아들 전태일의 죽음 후 이소선은 아들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였다. 11월 18일 장례를 치르고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였다. 청계피복노조는 1998년 [[서울의류노동조합]]과 합쳐져 해산할 때까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ref name="민족문화대백과">[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8924 청계피복노조], 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이소선은 80세의 고령에도 계속하여 부르는 곳이면 마다 않고 참석하였다. 그러나 부른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을 하지는 않았다. 2006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태일노동상의 시상을 마치고 내려가다 다시 마이크를 붙잡고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 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 손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될 것"이라고 소리쳤고<ref>[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5965.html 노동자 어머니 이소선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할것 같냐”], 한겨레, 2008년 12월 5일</ref> 늘 노동자의 하나된 단결을 강조했다. 2009년 전태일 39주기 추모식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 플래카드에 이름을 올리자 이제 되었다며 무척 기뻐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http://klsi.org/content/%EC%9D%B4%EC%86%8C%EC%84%A0-%EC%96%B4%EB%A8%B8%EB%8B%88%EC%99%80-%EB%85%B8%EB%8F%99%EC%9A%B4%EB%8F%99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운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ref>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소선은 늘 일자리 나누기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위기를 고용문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03/0200000000AKR20110903057900004.HTML "이소선 여사는 따뜻한 마음의 노동운동가"], 연합뉴스, 2011년 9월 3일</ref>
국회의원이 된 딸 [[전순옥]]은 어머니를 10대에서 70대까지 누가 찾아와도 반갑게 맞이하던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스스로도 민주화 운동 시절 경찰서에서 취조 받으며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늘 어머니라고 대답했다고 회고하였다.<ref name="연합_전순옥" /> 《가톨릭 신문》은 이소선의 삶을 아들 예수를 잃은 성모 마리아의 삶에 비견하였으며<ref>[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년
* 1988년 6월 26일 선한마리아연합장로교회 창립 14주년을 맞아 선한마리아인상 수상함.
* 1989년 1월 20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발족. 고문에 추대됨.
* 1991년 12월 1일 전국연합 고문 추대됨.
- 이승엽 . . . . 7회 일치
‘국민타자’,‘라이언 킹’ 등으로 불린다. 일본 진출 이후에 붙여진 애칭은 ‘승짱’({{llang|ja|スンちゃん}}, 한자 및 [[일본어]] 동시 표기: {{lang|ja|スン様}})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때 [[일본]]의 스포츠 신문인 《스포츠 호치》의 [[2008년]] [[8월 22일]]자 보도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와 같은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많은 병역 미필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합법적인 병역 면제 브로커”라는 별명이 추가됐다.<ref>{{뉴스 인용|제목=승엽은 병역 브로커|url=http://www.donga.com/fbin/moeum?n=sports$e_701&a=v&l=0&id=200808270265|출판사=동아일보|저자=김도헌|날짜=2008-08-27}}</ref> 또한, 국제 대회나 중요한 대구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특히 8회에 결정적 역할을 해 '8회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제 2구장인 [[포항야구장]]의 성적도 뛰어나 '포항의 사나이'라고도 불린다.
* : [[김미자]] (1949~2007.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471912 <프로야구> 승엽을 만든 숨은 주역], 연합뉴스, 2003년 10월 2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0280455 승엽 모친 ] - 뉴시스</ref>)
=== 국제 대회 ===
*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최다 홈런상, 최다 타점상 (1994년)<ref>{{뉴스 인용|제목=300홈런 주인공 이승엽은 누구인가?|url=http://www.hani.co.kr/section-006001000/2003/06/006001000200306222243547.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3-06-22}}</ref>
* 한국언론인연합회 선정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2003년)
* 2009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명예홍보대사
- 장대환 . . . . 7회 일치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1973년 정치학으로 학사를 받았으며 1987년 [[뉴욕 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대위이다.
* 1976년 2월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미국) 국제정치학 석사
* 1985년 2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석사
* 1987년 6월 : 뉴욕대학교 대학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박사
* 1977년 9월 :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미국) 국제경영학 연구조교
* 1988년 6월 : 한국신문협회 이사,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감사, 아시아신문재단(PFA) 감사
* 1988년 3월 ~ 97년 3월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강사(국제경영학)
- 진격의 거인/92화 . . . . 7회 일치
* 라이너는 게라이드의 원호를 받으며 스라바 요새 초토화에 성공, 지크는 해상의 연합함대를 향해 투석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 중동연합의 저항도 거세다. 다가오는 마레의 병사들은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쓰러진다. 사격에 몰두하던 적 병사들은 곧 그들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기관총 포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차력의 거인"이다. 매우 특이한 거인으로 엎드려 걸어다니며 등에는 한 쌍의 기관총 포탑이 올라가 있다. 얼굴은 말이나 개처럼 길쭉한데 묘한 형태의 철가면을 썼다. 각 포탑에는 병사가 타서 기관총을 난사한다. 적의 기관총 진지 코 앞까지 돌진한 차력의 거인. 포탑의 기관총이 진지 앞의 병력을 섬멸한다. 차력의 거인은 길쭉한 얼굴을 진지로 들이밀어서 지붕을 들어내 버린다. 그 사이 보병들이 진격, 적의 최종 방어선은 이렇게 무력화된다.
파르코는 동료 우도에게 포로의 지혈을 부탁한다. 가비는 그런 모습을 보며 빈정거린다. 국제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어필한다고 자신에게 돌아올 갑옷 거인의 후계자 자리를 뺏을 수는 없다면서. 파르코는 알 바 아니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가비에겐 그런 태도도 이상해 보인다.
마침내 허공의 엘디아인 낙하산 부대는 같은 수의 지성없는 거인들로 영영 바뀐다. 그저 식욕 뿐인 괴물들이 중력에 따라 요새 위로 쏟아진다. 아래에서 보면 거인이 비처럼 내리는 것 같다. 이들의 육중한 신체는 그 자체로 요새에 폭격을 가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거인들이 쏟아지는 곳 마다 벽이고 건물이고 상관없이 무너져 내린다. 중동연합의 병사들은 허겁지겁 피하지만 그래봐야 의미가 있을까?
* 지크는 마지막 쐐기를 박는 역이다. 요새 뒤의 항구. 거기에 정박한 연합함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크는 부서진 창고 밑의 포탄 무더기를 움켜쥔다. 그리고 항구의 함대를 향해 힘차게 투척한다. 산탄처럼 날아가는 포탄들. 참호의 후보생들은 이걸로 전쟁이 끝났다고 안도한다. 가비는 마치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은다.
* 지크를 향해 집중된 포격을 라이너가 대신 맞는 동안, 연합함대가 괴멸한다. 함대의 괴멸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갑옷 거인의 반신이 날아가는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마레의 병사들은 작전의 성공도 전쟁도 끝도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은 패배를 당한 것처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갑옷 거인이 쓰러지는 걸 바라본다. 가비는 망연자실하게 "이럴 수가"라고 중얼거린다.
* 전쟁은 끝났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중동연합은 마레측과 강화협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레에겐 상처 뿐인 승리였다. 이제 거인의 힘이 기계화된 병기를 능가할 수가 없다. 마레는 전력 보강을 위해 한 시라도 빨리 시조의 거인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 . . . . 7회 일치
Command & Conquer: Red Alert 2. 2000년 출시된 RTS 게임.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의 후속작으로 연합군과 소련군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 연합군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페이지 참조.
194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타임머신을 만들어 [[아돌프 히틀러|히틀러]]가 정권을 잡기전에 제거한다. 그러자 [[제2차 세계대전]]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이 유럽을 침공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영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소련군을 물리치고 스탈린을 제거한 후, 러시아 왕족이었던 알렉산더 로마노프를 소련의 서기장으로 세웠다. 로마노프는 공산당원이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처럼 보였고, 연합군에게 협조적인 인물로 보였다.
=== 연합군 ===
소련군 장군. 연합군 캠페인에서는 강력한 상대로 묘사되지만 소련군 캠페인에서는 무능한 새끼.
- USS 피닉스 (CL-46) . . . . 6회 일치
이렇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피닉스는 미국 본토와 하와이 간의 수송 함대를 호위하는 임무나 호주 해역을 항해하는 병력수송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2년 2월에는 당시 네덜란드 영토였던 [[자바]] 섬에 항공기를 수송하는 선박들[* USS 랭글리(USS Langley)와 MS 씨위치(MS Seawitch).]을 호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도양 초계, [[봄베이]]로 가는 수송선단 호위, 자바 섬에서 패배한 연합군 병력 구조 등의 임무에 참가하였다.
1943년 7월,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을 [[카사블랑카]]까지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한 피닉스는 다시 태평양 전역으로 돌아온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스터 곶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으며, 1944년 1월에는 [[뉴기니]] 섬의 해안시설을 포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2월에는 [[로스니그로스]] 섬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3월에는 다른 연합군 순양함과 함께 일본군의 해안 포대를 깨부쉈다. 4월 22일에는 홀란디아[* 現 [[자야푸라]].]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지원하였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는 근처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을 포격, 연합군을 위협할 수 없게 하였다. 5월에는 또다른 상륙작전들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초소를 초토화시켰다. 6월에는 해당 지역에 증원군을 수송하던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 쫓아내었다. 7월에는 Numfoor[* Neumfoor라고 읽기도 하는 듯. 갓-구글님께서 한국어 표기를 말씀하시지 않으신다.]의 해안을 포격했다. 9월에는 말루쿠 제도의 [[모로타이]] 섬 상륙작전을 지원하였다.
- 김운용 . . . . 6회 일치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연세대학교 의료원|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f name="yonhapnews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배진남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204/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03/0200000000AKR20171003024154007.HTML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news1_2017-10-03_death">{{뉴스 인용 | 저자=정명의 | 위치=서울 | 뉴스=뉴스1 | 제목=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 url=http://news1.kr/articles/?3116999 | 날짜=2017-10-03 | 확인날짜=2017-10-03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03133158/http://news1.kr/articles/?3116999 | 보존날짜=2017-10-03 | 깨진링크=아니오 }}</ref>
* 1986년 ~ 2005년 :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을 역임함.
* 1986년 ~ 2004년 : 국제 경기 연맹 총연합회(GAISF, 현재의 [[스포츠어코드]]) 회장을 역임함.
* 1992년 7월 :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부위원장으로 선출됨.
- 김윤환 . . . . 6회 일치
[[전두환]] 정권 후반기인 1985년 2월 [[노신영]] 국무총리 내각이 출범할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입각하였다. 문화공보부 차관으로 있던 1986년 여름, [[미국]]에서 열린 국제 공보관 회의에 참석하려 갔다가 외신 기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유력하냐"라는 말에 사견임을 전제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유력하다"는 발언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귀국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말 그대로 조사만 받았다. 고문을 했다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질문했다고. 김윤환 본인은 기자들이 하도 귀찮게 물어서 그냥 대충 둘러댄 거라는 식의 답을 했고 당시 특별히 수상한 뒷일 같은 것도 없었던지라 금방 풀려났다.] 1년 뒤의 일을 예언한 셈이니 훗날 붙게 될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진짜인 셈.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영남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상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절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절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 김종호(1935) . . . . 6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B5B40><height=50><#1B5B40><-5><:> [[자유민주연합|[[파일:jaminmini.png|width=60]]]] [[자유민주연합|{{{#FFFFFF ''' 자유민주연합 총재 ''' }}}]] ||
1998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2000년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에 반대하였고[* [[이낙연]]과 함께 탄핵안에 반대한 2명 중 1명이다. 이낙연은 노무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 당연히 탄핵에 반대할만했지만 김종호는 매우 의외인데 이는 단순히 자민련 의원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출신 자체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민정당 계열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하면 했지 도저히 반대할만한 성향이 아니었기 때문.] 같은 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 [[자유민주연합]] || '''1,859,331표(9.8%)''' || '''당선''' || [* 전국구 3번] ||
- 레드 오케스트라 2: 스탈린그라드의 영웅들 . . . . 6회 일치
Frontline Solder 등급으로 올라간 연합군 병과에게 지급되는 보조무장.
연합군이 사용하는 계란형 수류탄.
연합군이 공격, 주축군이 방어인 맵. 평야에서 시작해 시가지로 들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축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초반 평야 지대와 마지막 포인트 바로 앞의 강. 연합군에게 지형적으로 불리한 위치인지라 소련 측은 T-34를 사용할 수 있다.
주축군이 공격, 연합군이 방어인 맵. 시가지다. 최초의 두 포인트는 시가지가 아니지만 광속으로 돌파되니 사실상 시가지. 연합군의 방어가 거센 곳은 중간의 강과 마지막 포인트인 레닌 광장. 주축군 측은 4호 전차를 사용할 수 있다.
- 마기/325화 . . . . 6회 일치
* 알라딘은 유난과 함께 국제연합이 있는 천산산맥 상공에서 심상치 않게 변한 세계를 걱정하고 있는데.
* 쥬다르가 그토록 찾는 알라딘은 천산산맥 상공, 국제연합 건물이 보이는 위치에 있다. 옆에는 유난도 동행 중. 두 사람은 국제 연합 위에 열린 성궁으로 가는 문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알라딘은 일이 커졌다고 말하는데 유난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는다. 알라딘은 그건 모르겠지만 이미 느껴지고 있다고 한다.
- 예천군 . . . . 6회 일치
[[예천공항]]이 있었지만 이용객 급감으로 2004년에 폐쇄된 후 군용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이용불가하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김포국제공항]] - 예천 항공편이 수요가 꽤 있었으나(안동/예천/문경에서 서울까지 자가용 5시간, 기차 4시간 30분, 여객기 1시간)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이용객 급감으로 폐쇄되었다. 현재 예천 비행장에는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이 주둔.
예천은 [[활]]의 고장으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예천군의 [[양궁]]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링크를 참조. [[http://www.ycinews.co.kr/ArticleView.asp?intNum=47617&ASection=001002|링크]]. 예천 출신의 양궁 국가대표 [[김진호(양궁)|김진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 대회에서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1983년 남·여 2개의 양궁팀을 창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1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예천양궁선수단을 거쳤고, [[황숙주]], [[김수녕]], [[장용호]], [[양승현]], [[김성남]], [[한희정]] 등 10여명의 [[국가대표]]를 배출, 각종 국제 및 국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300여회의 입상과 각종 훈·포장을 수상했다고 한다. [[http://ycg.kr/open.content/ko/organization/archery/stadium/|출처]].
김진호 선수를 기리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도 있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양궁전용경기장으로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양궁경기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곳으로 전지훈련을 오기도 한다. 이곳에서 국내, 국제 경기가 열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양궁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한다. 2015년 예천은 대통령기 전국 남녀 양궁대회를 비롯해 14개 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 [[김진호(양궁)|김진호]] : 전 [[양궁]]선수. 대한민국이 낳은 신궁, 예천에 김진호를 기리는 진호국제양궁장이 있다.
- 우찬양 . . . . 6회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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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민제 . . . . 6회 일치
* 러시아 국제과학예술아카데미 시베리아무기화학연구소 명예 이학박사
* 1979년 대한과학단체총연합회 부회장(1984년 퇴임)
* 1983년 동남아태평양지역공학단체연합(FEISEAP) 부총재(1985년 퇴임)
* 1984년 대한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고문(1992년 퇴임)
* 1996년 [[자유민주연합]] 고문(1996년 3월 ~ 1996년 12월)
[[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정재안 . . . . 6회 일치
|정당 = [[새정치민주연합]]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전공을 하였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직능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또한 한국재활용산업 발전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전국고물상연합회 정책위원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올바른 재활용정책 방향에 대해 경향신문에 폐기물 운반차량 규제 강화 ‘탁상행정’
*2014.04 ~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상설위원회 직능위원회 부위원장
*2014.03 ~ 전국고물상연합회 중앙회 정책위원장
*2014.03 ~ 전국고물상연합회 중앙회 기획총괄본부장
- 정칠성 . . . . 6회 일치
이후 [[일본]]에 건너가 체류 중, [[1925년]] [[3월]] [[도쿄]]에서 무산계급 및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이현경]], [[황신덕]] 등의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의 조선여성단체인 [[삼월회]](三月會)를 조직, 삼월회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3월 8일]] [[대구]]부내 노동공제회에서 [[대구여자청년회]] 주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인데이]] 기념행사에 연사로 초빙되어 '국제부인운동의 의의'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3월 22일]]에는 [[대구청년회관]]에서 경북지역 인사들이 모인 사회주의 연구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에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3월 31일]] 다시 유학차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여자기예학교]]에 복학하였다.
[[1927년]] [[4월 26일]]에 [[경성]] 중앙유치원에서 좌우합작의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창설될 때 [[유각경]], [[황신덕]], [[김선]], [[허정숙]] 등과 함께 [[근우회]]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운동의 연합체인 신간회의 자매단체로의 결연을 주선하였다. [[4월 28일]] [[근우회]]를 발족되자 [[근우회]] 회원모집부 부원이 되어 [[대구]]로 내려가 홍보, 회원을 모집하고 근우회 경상북도지회 조직을 주관하였다. 정칠성은 근우회가 전국에 지회를 결성할 때 대구지회 결성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집행위원(당시 21명)을 구성하는 데까지 활약하였다.<ref name="dispose"/>
[[1946년]] [[2월]]에는 범좌파 연합 단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이 조직되자, 그 간부가 되었다. 그해 [[2월 14일]]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중앙상임위원 겸 조직부 차장에 피선되었다. 이후 미군정의 좌익 탄압으로 은신처를 마련하여 전국 각지로 피신생활을 하였다.
테러와 탄압을 피해 피신생활 중에도 그는 [[1946년]] [[3월]] [[허정숙]]과 함께 [[서울]]에서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녀절]] 행사를 조직하였다. 그해 [[5월]] [[허정숙]]이 월북한 뒤에도 [[1948년]]까지 매년 [[3월 8일]] [[서울]]에서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국제부녀절]] 행사를 개최했다.
- 정형돈 . . . . 6회 일치
정형돈은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고 한때 [[경상북도]] [[김천시|김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하기 이전에 [[경상북도]] [[김천시]]으로 옮겨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다.<ref>{{뉴스 인용|제목='불안장애' 정형돈은 누구? '웃기지 않은 개그맨'에서 '예능계 4대천왕' 섭렵|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2&aid=0000550194|출판사=부산일보|저자=김상혁 기자|날짜=2015-11-12}}</ref> 고교 시절 '금강 소리 하나'라는 교내 연극부에서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4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산하 6개 지부가 주관한 제8회 '부산 청소년 예술제'에 참가하여 '청소년 연극축전' 부문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부산시 고등학교 대표로 서울에서 개최된 '동랑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 통신 / 국제전화
| 칸리조트<ref>{{뉴스 인용|제목='칸 리조트'에서 즐기는 고품격 바캉스|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098&aid=0002214820|출판사=연합뉴스 보도자료|저자=연합뉴스|날짜=2011-07-01}}</ref>
| 통신 / 국제전화
| 통신 / 국제전화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6회 일치
[[창작:상인연합|상인연합]]
[[창작:낭마 연합|낭마 연합]]
[[창작:금모래 연합|금모래 연합]]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 . . . 6회 일치
게임의 구도는 연합군 VS 주축군이다. 연합군과 주축군이 같은 팀에 있는 게임이나, 연합군 VS 연합군 게임이나 주축군 VS 주축군 게임은 불가능하다.
=== 연합군 ===
테일즈 오브 발러에서 지원되는 캠페인. 연합군의 대규모 포위망에서 아군을 탈출시키기 위해 트런을 지키는 독일군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 테란 . . . . 6회 일치
인류 컨셉 종족. 과거 [[지구]]에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퇴출된 자들이 지구에서 떨어진 행성계 [[코프룰루 구역]]에 정착하게 된 것이 시초다. 이들은 [[테란 연합]], [[켈 모리안 연합]], [[우모잔 보호령]] 등 여러가지 거대 세력을 만들었지만 스토리 상 비중은 테란 연합과 그 후예(?)들에게 몰려있다.
부패한 독재 국가인 [[테란 연합]]이 등장. [[저그]]와 [[프로토스]]를 비롯한 [[외계인]]들의 습격을 받는다. 이 틈을 타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이끄는 혁명 조직 [[코랄의 아들들]]이 세를 불리고, 마침내 테란 연합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코랄의 아들들의 일원이었던 [[짐 레이너]]를 포함한 일부는 멩스크가 보였던 끔찍하고 비열한 행위[* 테란 연합의 수도성인 타르소니스로 저그 떼거리를 유인했다. 자신을 따라왔던 [[사라 케리건]]을 저그 떼 사이에 내다버린건 덤.]에 반감을 느껴 코랄의 아들들을 떠난다. 하지만 멩스크는 [[테란 자치령]]을 세우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는다.
- 한성우 . . . . 6회 일치
|출판사=연합뉴스
* 2011년 제39회 스위스 로잔국제발레콩쿠르 준우승 Beau-Rivage Palace상
* 2010년 제9회 로마국제무용콩쿠르 주니어부문 공동금상
* 2010년 바르나국제발레콩쿠르 주니어부문 준우승
* 2008년 베이징국제발레콩쿠르 주니어부문 우승
* 200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제 발레콩쿠르 주니어부문 우승
- 허근욱 . . . . 6회 일치
사회단체 활동으로는 한국부인회 중앙위원, 3.1여성동지회 중앙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 및 편집위원,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독립운동가 겸 변호사, 정치인인 [[허헌]]의 딸이며 독립운동가 겸 여성 해방 운동가, 자유주의 운동가인 [[허정숙]]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1965년 한국부인회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고, 1967년 [[황애덕]] 등 [[3.1 만세 운동]] 관련자 및 투옥,수감된 독립운동가 및 그 유가족들이 중심으로 조직된 3.1여성동지회 중앙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되었다. 1968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이사, 1969년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198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중앙위원회 위원 겸 편집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1984년]] KBS 방송국 집필담당 전문위원이 되었으며, 그밖에도 한국소설가 협회 회원, 국제 펜클럽 협회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89년]] KBS 방송국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1992년]] [[4월]] [[남북문학교류위원회]] 위원<ref name="nambb">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자 13면, 생활문화면</ref>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동창문인회 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서정범]] 등과 함께 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1969년]] 국제직업여성연맹 한국측 이사
* [[국제 펜클럽 협회]] 한국본부 회원
* [[국제 펜클럽]]
- 2016 K리그 다득점 우선적용 논란 . . . . 5회 일치
K리그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두환 시절의 3S정책과 맞닿아 있던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으나, 박정희 시절부터 내려온 스포츠 지원정책의 기치는 '''"(저 북괴놈들에게 절대 꿇리지 않는) 국제적인 스포츠 업적을 거두어 세계만방에 걸친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국제 스포츠계에서 업적을 쌓는다는 명분이 대한축구협회 시절에 세운 기치이며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설립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한국프로축구협회 정관: 제1조 목적, 이 법인은 한국프로축구의 수준향상과 저변확대는 물론 국제교류 등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 전한 여가 선용을 도모하고, 스포츠 활성화와 지역사회를 비롯한 '''국가 발전 및 국제친선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국제축구의 흐름과는 명백히 다른 형태로 운영하는 부분에서 이 사항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승자승 원칙]]을 우선 적용한다면 AFC 아시안 컵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히 그 명분을 가져올 수도 있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사례처럼 "양학을 막고 라이벌전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흥행목표를 가져오면 그나마 할 말이라도 있겠지만... 상기 공격축구 만능론에 대한 비판처럼 오히려 K리그는 골 수와 관중의 증가추이가 역방향 관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선 연맹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김민희(1982) . . . . 5회 일치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C0000><#0C0000><-5><:> {{{#E5D85C ''' 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E5D85C 베를린 국제 영화제}}}]]''' }}} ||
그리고, 2017년 2월 18일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서 한국인 배우 최초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이 덕분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3개 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국가가 되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는 [[강수연]]이, [[칸 영화제]]에서는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16년]] [[7월 17일]], 6월에 출국한 지 약 1개월 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시아나 항공기로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고, 마중 나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함께 공항을 떠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 보도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 불확실하다.
- 김종훈 (1952년) . . . . 5회 일치
* 1997년 : 외무부 국제경제국 심의관
* 2014년 8월 : 새누리당 국제위원회 위원장
* 2012년 6월 ~ 2013년 5월 : 새누리당 국제위원장
새누리당은 28일 논평을 통해 "4.11 총선거를 앞두고 홍사덕, 김종훈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들의 트위터 계정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며 트위터 계정폭파를 신종 사이버 공격으로 규정하고, "검찰은 트위터 계정폭파 범죄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서 선거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배후를 밝혀내라"고 촉구했다.<ref>[http://news1.kr/articles/608133 새누리 "김종훈 트위터 폭파는 조직적 테러"] 《뉴스1》 2012년 3월 28일 차윤주 기자</ref> 그러나 "트위터 계정폭파란 존재하지 않으며,<ref>[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745518&ctg=1200 트위터 본사 "계정폭파?...이용규정 위반으로 정지는 된다"] 《중앙일보》 2012년 3월 30일</ref> 오히려 사용자가 반복된 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등 이용규정 위반할 경우 정지된다"는 트위터 본사 측 반박<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30800080 트위터 측 “새누리당, 반복 글 보내 정지된 것” 반박] 《서울신문》 2012년 3월 30일</ref> 으로 새누리당 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329031607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새누리당, 새 됐네"] 《프레시안》 2012년 3월 29일 이명선 기자</ref><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4981 보수지 신봉하던 새누리, '국제적 대망신' 자초] 《뷰스앤뉴스》 2012년 3월 29일</ref><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5874.html 김종훈 트위터 계정폭파 당했다더니…“국제적 망신살”] 《한겨레》 2012년 3월 29일</ref>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2화 . . . . 5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를 찾아온 빌런연합의 [[시가라키 토무라]]. 그는 서로 대등한 "제휴"를 주장한다.
* 시에핫사이카이 본거지에 들어온 빌런연합의 [[시라가키 토무라]]. 그는 살풍경한 장면이라며 첫인상을 밝힌다. 인테리어는 철저하게 [[오버홀]] 치사키의 취향. 사실 시라가키가 불만인 점은 인테리어 보다도 "안내"였다. 그는 이 지하 응접실까지 오기 위해 30분이나 지하를 빙글빙글 돌았다. 개미가 된 기분이라며 야쿠자의 집은 어떻게 돼먹은 거냐고 불평을 쏟아낸다.
시라가키는 자리에 앉으면서 테이블에 발을 올려놓는다. 시라가키는 그건 오버홀 측이 멋대로 해석한 거라고 부정한다. 빌런연합은 세력확장, 시에핫사이카이는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로 니즈가 맞는다고 말한다.
시라가키가 제안하는 조건은 두 가지. 우선 그들은 산하로 들어가는게 아니다. 빌런연합은 여전히 그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다. 단지 오버홀측과는 "제휴"라는 형태로 협력하는 걸로 해두겠다는 것이다. 오버홀이 조건은 그것 뿐이냐고 묻자 당연히 하나를 더 제시한다.
* 시라가키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 여기있는 놈들은 죄다 쓰레기 야쿠자에 일회용 고기방패다. 이런 족속들은 빌런연합의 여장남자, [[마그네]]와 목숨의 가치가 같을리가 없다. 게다가 이쪽은 팔도 한 짝 빚지고 있다. [[Mr. 컴프레스]]의 팔 말이다.
- 대구광역시 . . . . 5회 일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대구국제공항
2017년 대구국제미래자동차엑스포
대구 2017 국제그린에너지엑스포
- 마기/328화 . . . . 5회 일치
* 알라딘과 알리바바는 뢰엠 왕국을 방문해 국제동맹에 가입한 배경을 묻는다.
* 뢰엠 제국이 국제동맹에 정식가입하고 귀왜국과 황제국이 복귀했다. 화상으로 소식을 접한 알라딘과 알리바바 사르쟈.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뢰엠 제국을 방문한다.
티토스 알렉키우스를 비롯한 뢰엠 제국의 지도자들은 본래 국제동맹에 들어가지 않는 길을 택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 티토스는 그 결정은 뢰엠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정말로 뢰엠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봤다고 말한다. 이미 신드바드와 국제동맹으로 세상은 하나가 되려 하는데 뢰엠만 역행하는 것은 무의미한 불씨가 되는게 아닌가? 그렇게 고민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국제동맹 가입. 티토스는 셰헤라자드의 유언인 "일국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를 언급하며 그녀의 유지를 잇는 길이라고 말한다.
- 박옥수 . . . . 5회 일치
[[대한민국]]의 [[종교인]]. [[개신교]] 계통 [[신흥종교]]인 [[기쁜소식선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하 단체로 국제청소년연합(IYF)을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음력]] [[1944년]] [[6월 2일]] 출생이며, 출생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여담으로 기쁜소식선교회 산하 집단인 국제청소년연합의 약자와 마크가 [[IYF]]인데 Y자 모양이 유명 선교단체인 [[IVF]]와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있다.
예수교장로회연합회라는 단체에서 발표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에서는 이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만든 사람이 친이단인사로 유명한 사람이고, 주류 개신교단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비평으로 볼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8592|참조]].] 결국 교단 측에서 이단 옹호책자로 완전히 털리고 책 자체가 완전 폐기되었고 예장연 측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공식 부정하고 있다.
- 박준규(1925) . . . . 5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대구)|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일민주당]] [[목요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89년 1월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재임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13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4대 국회가 개원하자 13대 후반기에 이어 다시 [[국회의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여 공직자 재산 공개를 할 때 재산이 문제가 되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이후 1995년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그와 손을 잡고 자민련에 합류하여 당 최고고문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박철언]]과 함께 자민련 내 대구경북세력을 대표했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DJP 연합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섰는데, 이는 박준규가 1공화국과 2공화국 시절 [[김대중]]과 함께 [[민주당(1955년)|민주당]]에 몸을 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 기인한다.~~하지만 김대중은 신파, 박준규는 구파~~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박준규는 여당으로, 김대중은 야당으로 진로를 달리 했지만 인간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박준규의 활약은 대구경북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이 상승하는 데(8.7%에서 13.1%로 상승)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에다 김대중과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국회의장 단일후보로 지명되었고, [[경선]]에서 무려 3차 투표까지 간끝에 당시 [[한나라당]]의 반란표가 쏟아져 나오며 국회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박준규는 이로써 의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 3선의 고지에 올랐다. 반면 [[한나라당]]은 [[오세응]]이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패배하고 [[조순(1928)|조순]] 총재 이하 지도부 전원이 국회의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 || '''[[자유민주연합]]''' || '''17,631 (33.26%)''' || '''당선 (1위)''' || '''9선''' 하반기 국회의장, [[김영삼]], [[김종필]]과 더불어 국회의원 '''최다선 기록 달성''' ||
- 서신애 . . . . 5회 일치
|| [[2016년]] [[9월]] || [[안양시]] || 제1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홍보대사 ||
* [[Apink|에이핑크]]와 인연이 있다. [[박초롱]]의 경우 2013년쯤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봉사를 같이 다녀왔고, [[김남주(Apink)|김남주]][* 첨언하자면 [[김남주(Apink)|김남주]] 역시 아역배우 출신이다. 연예계에 있어서도 서신애의 3년 선배며, 2001년 [[LG전자]] CF로 데뷔했다.]의 경우는 [[성균관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재미있는 게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상대 역할로 나왔던 [[진지희]]는 [[걸스데이]]와 인연이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드림티가 탈예당했지만) 한때 같은 웰메이드예당 소속이었고, [[혜리]]의 경우 [[진지희]]와 함께 선암여고 탐정단에 출연했다.]
*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파격적인 노출 드레스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되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636390|관련 기사]]^^
||<-2><:><#E2A6B4> {{{#ffffff '''▲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포토존 中'''}}} ||
|| [[2014년]] || 제19회 국제 청소년 차(茶) 문화대전 || 고등부 대통령상 || ||
- 손예진 . . . . 5회 일치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손예진은 2006년 노자와 히사시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수영강사 유은호 역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대본 보고 이런 게 사랑이라 생각했죠"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240659|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백나리 |날짜 = 2006-03-09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드라마는 ‘이혼후 다시 시작하는 연애’라는 참신한 소재로 호평을 받았으며, 20대 여배우가 선뜻 마음먹기 힘든 이혼녀를 연기, 더 이상 예쁜 얼굴만 무기가 되는 여배우가 아님을 인정 받았고, 이혼 했지만 묘하게 남아있는 미련, 헤어진 뒤 비로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고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4241121121116|제목=손예진, "'연애시대'통해 현실적사랑 생각하게됐다" |출판사=마이데일리|날짜=2007-04-24|확인날짜 =2017-09-09}}</ref> [[SBS 연기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7042514301218841&type=1&outlink=1|제목='연애시대' 손예진, 백상 TV부문 최우수여자연기상 |출판사=스타뉴스|날짜=2007-04-25|확인날짜 =2017-09-09}}</ref> 2007년 손예진은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주인공 여우비의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성인 목소리 나올까봐 걱정했죠"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1910455|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홍성록|날짜 = 2006-12-22|확인날짜 =2017-09-09}}</ref>
2008년, 손예진은 TV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드라마)|스포트라이트]]》로 2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8/05/201_24097.html "Spotlight Shows Lives of Reporters"]. ''The Korea Times''. 13 May 2008.</ref><ref>{{웹 인용|title=SON Ye-jin as a Criminal Kingpin|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741|work=Korean Film Council|date=26 July 2007}}</ref> 같은 해 영화 《[[무방비도시 (2008년 영화)|무방비도시]]》에서 소매치기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리더 백장미 역을 연기했으며,<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섹시함 유지, 가장 힘들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0088606|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김경민 |날짜 = 2008-01-04 |확인날짜 =2017-09-16 }}</ref><ref>{{웹 인용|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02223903/http://twitchfilm.com/2006/09/alone-in-love-review.html|title=Alone in Love Review|성=|이름=|date=1 September 2006|work=Twitch Film|출판사=|확인날짜=2018-04-12}}</ref><ref>{{웹 인용|title=Actress Son Ye-jin's Movie Picks|url=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122317340286147|work=10Asia|date=23 December 2011}}</ref> 박현욱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자유로운 연애를 조건으로 달고 결혼한 후에도 다른 남자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주인아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SON Ye-jin puts a new spin on marriage|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914|work=Korean Film Council|date=11 February 2008}}</ref> 그녀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제2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0811210837541003|제목=눈물의 손예진 유일무이 3관왕 석권 기염, 청룡 여우주연상-인기스타상-베스트커플상 |출판사=뉴스엔|날짜=2008-11-21}}</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제목=손예진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여우주연상|출판사=한국일보|날짜=2008-12-11|확인날짜=2014-02-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24030924/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12/h2008121108013691980.htm#|보존날짜=2008-12-24|깨진링크=예}}</ref><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411169|제목=김윤석.손예진, 영화학도가 뽑은 최고 배우|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8-12-15}}</ref><ref>{{뉴스 인용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22720042800689&type=1&outlink=1|제목=손예진, '아내가 결혼했다'로 여우주연상 3연패 |출판사=머니투데이|날짜=2009-02-27}}</ref> 2009년,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백야행 (영화)|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에서 욕망으로 가득찬 치명적인 매력의 여자 유미호 역을 연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손예진, 차기작 ‘백야행’서 고수와 멜로호흡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1996689|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남안우 |날짜 = 2008-12-15 |확인날짜 =2017-09-16 }}</ref><ref>[http://www.koreatimes.co.kr/www/news/art/2009/11/141_53971.html "Son Ye-jin, Ko Soo to Bring Mystery Romance"]. ''The Korea Times''. 21 October 21 2009.</ref>
2013년, 손예진은 5월부터 7월까지 방영한 TV 드라마 《[[상어 (드라마)|상어]]》로 3년여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였다. 또한 10월 개봉한 스릴러 영화 《[[공범 (영화)|공범]]》에서 정다은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유괴살인사건 공소시효 15일 전,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아빠를 떠올리게 되면서 잔인한 의심을 갖게 되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본 영화에서 공동 주연을 맡게 된 [[김갑수 (배우)|김갑수]]와는 ‘연애시대’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며, 김갑수의 부녀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스투매거진] 공범, 손예진 당신을 스릴러의 여왕으로 임명합니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77&aid=0003140577|출판사 =아시아경제 |저자 =장영준 |날짜 = 2013-11-28 |확인날짜 =2017-09-16 }}</ref> 이 작품으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20088|제목=손예진, '해적'·'공범' 2관왕 후보가 의미하는 것|출판사=OSEN|날짜=2014-11-29}}</ref> 그리고 손예진은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해적단 대단주 여월 억을 연기했다. 영화는 조선의 옥새를 삼켜버린 귀신 고래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산적 장사정이 여자 해적 여월과 함께 바다를 누비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女해적 여월, '으리으리'한 캐릭터"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84846|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4-07-02 |확인날짜 =2017-09-16 }}</ref> 866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으며, 역대 출연작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을 기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해적' 손예진, 알고보면 변신의 여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42336|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보란 |날짜 = 2014-08-25 |확인날짜 =2017-09-16 }}</ref> 작품의 성공으로 3000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3000만 배우' 손예진이 충무로서 갖는 의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532716|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수정 |날짜 = 2014-08-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이 작품으로 제51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014441|제목='대종상' 손예진, 연기·흥행 갖춘 유일무이 女우 탄생|출판사=OSEN|날짜=2014-11-22}}</ref> 2015년에는 한중합작 코미디 액션 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나쁜 놈은 죽는다' 손예진, 카리스마+살벌한 분위기 풍기는 액션배우로 변신 |url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70216.99002115403|출판사 =국제신문 |저자 =디지털뉴스부 |날짜 = 2017-02-16 |확인날짜 =2017-09-16 }}</ref>
- 오세정 (교수) . . . . 5회 일치
| 경력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원장<br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기반분과 위원<br />[[한국연구재단]] 이사장<br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br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과 교수<br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1984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되었다. 이후 국제이론물리학센터 연구원과 미국 미시간대 객원 연구원, 일본 도쿄대 초빙교수 등을 두루 역임하며, 1995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기획연구실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로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이사,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f>{{뉴스 인용|제목=국민의당 비례대표 2번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url=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날짜=2016-03-23|뉴스=포커스뉴스|확인날짜=2016-03-2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712184756/http://www.focus.kr/view.php?key=2016032300144739514|보존날짜=2016-07-12|깨진링크=예}}</ref>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 2008.09 ~ 2010.05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전문위원회 위원장
* 2011.11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 원피스/868화 . . . . 5회 일치
* 설상가상 [[샬롯 카타쿠리]]가 자신의 떡으로 임시 귀마개를 만들어서 형제들에게 나눠줘 빅맘의 괴성을 극복, 연합군은 순식간에 포위된다.
* 벳지는 궁지에 몰리자 자신의 몸을 거대한 성 "빅 파더"로 바꿔 연합군 전원을 피신시킨다.
상황이 바뀌었다. 빅맘의 무방비, 절규가 한계를 넘었지만 전화위복. 삼장성 [[샬롯 카타쿠리]]가 이 교착 상태를 끝내고자 수를 쓴다. 그는 자신의 모치모치 능력을 이용해서 떡으로 만든 임시 귀마개를 만든다. 이걸 형제들 쪽으로 굴려보낸다. 벳지와 밀집모자 일당이 경악 속에서 굳어버린 동안 형제들 전원이 떡 귀마개를 나눠가진다. 연합군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벳지. 그는 작전 실패를 선언하고 바로 내뺀다.
* 회장 안을 들여다 보고 음흉하게 웃던 [[시저 크라운]]. 그러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작전이 어찌됐건 자신의 차례는 변하지 않는다. 일행을 탈출시켜야 한다. 설마 탄두를 파괴할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리며 탈출용 대형 거울을 챙겨서 날아오른다. 그가 날아오자 회장에 흩어져 있던 연합군이 재빠르게 집합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탄두를 파괴할 정도로 무식한 압력이 그대로 몰아쳐서 거울까지 깨뜨렸다.
* 궁지에 몰린 연합군. 벳지는 소용없을지 모르는 마지막 수를 사용했다.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5회 일치
스토리는 4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역 후 통나무집에서 살고 있던 소여 대령에게 전화가 날아온다. 그에게 전화를 건 국방부 공무원은 소여가 다시 현역으로 전환되어서 유럽 전선에 보내질 것이라고 말한다. 소련군이 지중해에 있던 미해군 제6함대를 전멸시키고 독일에서 승승장구 하는 등 생각보다 선전하자 소여를 유럽으로 보내 NATO군과 연합 작전을 벌이게 하려던 것. 이 말을 들은 소여는 공무원에게 자신이 전역당한 이유를 알고 있냐고 물어본다. 공무원이 그 일은 면제되었다고 대답하자 소여는 면제를 바란게 아니라며 국방부와 관료들을 신나게 까고는 유럽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1989년 4월, 소련은 협상이 진행되던 도중 서독을 침공해 제3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소련군은 지중해와 대서양 동쪽을 관할하던 미해군 제6함대를 전멸시킨 다음 마르세이유 인근에 상륙했다. 소여가 이끄는 미군들은 그 해 늦가을 유럽에 도착했다. 이들의 임무는 NATO군과 연합해 해당 지역의 소련군을 다시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배넌 대위는 미군-NATO 연합 대대 간부들이 작전 계획을 짜는 현장에 나타난다. 배넌의 자기소개를 들은 소여는 배넌이 한시간이나 늦었다고 질책한 다음 파커 소위와 프랑스군 연락장교 장 사바티에 소령을 소개한다. 사바티에는 자신의 부하들을 만나러 자리를 뜨는 배넌을 보면서 저렇게 열렬한 것을 보니 오늘 내로 죽을 것이라고 평한다. 소여는 지휘관이 전사한 NATO 부대의 지휘를 파커에게 맡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바티에는 "미국놈들은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려한다"고 프랑스어로 불평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똑같이 프랑스어로 받아치는 소여를 보고 말문이 막힌다.
몇번의 전투 후에 연합군은 남프랑스 소련군 사령부의 위치를 알아냈다. 소여 대위는 소련군 사령부를 괴멸시키기 위해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진격해 들어갔다. 성공한다면 남프랑스 소련군을 와해시킬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그대로 포위당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대대원들은 끊임없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배넌 대위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시작되기 전 브리핑 시간. 소여는 소련군 사령부가 있는 강 너머에 몇차례 포격을 가한 후, 전위대를 투입할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 사바티에는 한시라도 빨리 소련군을 자국 국토에서 몰아내고 싶다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소여는 오늘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소여는 파커 소위의 중대에게 전위대를 맡기고, 배넌 대위의 전차 중대는 만일을 위해 남겨둔다. 이 말을 들은 배넌은 자신의 중대가 선봉이 되어야 하면서 불만을 표한다. "우리 중대가 전투를 놓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라는 배넌의 말을 들은 소여는 이곳에서 영광과 명예같은 것을 찾고있냐며 배넌을 윽박지른 후 그의 중대로 보내버린다. 얼마 되지 않아 강 건너에 연합군의 포격이 가해지기 시작하고, 소여는 나머지 지휘관들도 각자의 부대로 보내 전투를 준비하게 한다.
- 윤덕주 (농구인) . . . . 5회 일치
[[2005년]] 5월 부천에서 열린 2005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리그의 개회선언을 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했고 7일에도 지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7081754171&code=100402 <nowiki>[</nowiki>부고<nowiki>]</nowiki> ‘여자농구의 대모’ 윤덕주씨 별세] 경향신문 2005.07.08</ref>
[[2007년]] [[3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국제농구연맹(FIB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헌액되었다.<ref name="gibisos">[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65&article_id=0000010191 故 윤덕주 씨, 'FIBA 명예의 전당' 헌액]</ref> FIBA 농구 명예의 전당-공로자 부문에는 윤덕주 씨를 포함해 총 24명이 이름을 올렸고, 윤덕주 씨는 공로자 부문의 유일한 여성이다.<ref name="gibisos"/>
* [[1986년]] 국제농구연맹 및 아시아농구연맹 중앙집행위원
* [[2007년]] [[3월 8일]] 국제농구연맹(FIBA) 명예의 전당 헌정<ref name="gibisos"/>
*** 외당숙 :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 이상백 (1904년) . . . . 5회 일치
| 소속 = 前 [[국제 올림픽 위원회|국제올림픽위원회]] 종신위원 <br/> 前 [[대한민국 문교부]] 편수관 <br/> 前 [[서울대학교]] 교수 <br/> 前 [[고려대학교]] 교수 <br/> 前 [[한국독립당]] 체육행정특보위원
[[1946년]]에는 조선체육회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1948년]] [[10월]] 잡지 학풍(學風)이 창간되자 필진으로 참여하였다.<ref>정진숙, 《출판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2007) 180페이지</ref> [[1948년]] 단독 정부 수립론과 남북협상론이 대두되었을 때 그는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하였다. 대한체육회 설립 이후 [[1951년]]에는 [[대한체육회]] 부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아시아경기연맹 집행위원을 거쳐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64년]]에 [[대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과 [[국제 올림픽 위원회]] 종신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63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문화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대회 선수단장으로 파견되었다.
장례식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한국사회학회, 진단학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관한 연합장으로 주관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현 [[대구광역시]] 남구 화원동)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사후 1년 뒤인 [[1967년]] 그의 1주기에 세워졌는데, 묘비문은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글씨는 이기우(李基雨)가 썼다.
- 이희근 (1929년) . . . . 5회 일치
| 기타 이력 = [[대한민국 국방부]] 촉탁위원 <br/> 한국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 <br/> [[신민주공화당]]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보위원 <br/>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 1995년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 1996년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직위 퇴임.
* [http://www.doopedia.co.kr/ Daum 조인스 데이터 사전 -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대장 이희근 前 자유민주연합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전숙희 . . . . 5회 일치
1983-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지낸 고인은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고자 노력해왔으며, 1988년에는 동서 진영의 작가들을 초청해 서울에서 국제펜대회를 개최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펜중앙위원회에서 국제 종신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며, 대한민국 예술원상, 독일 괴테문화훈장, 러시아 푸슈킨 문화훈장 등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훈장|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후 동생인 고(故)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함께 1993년 [[계원예술고등학교]],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등 계원학원을 설립했다. 1997년에는 한국 문학 유산의 보존을 목적으로 한국 최초의 현대문학 자료관인 동서문학관(현 한국현대문학관)을 개관했다. 2010년 8월 1일 오전 8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585279 원로 수필가 전숙희씨 별세 (연합뉴스 2010년8월1일자)]</ref>
- 진창현(음악인) . . . . 5회 일치
1976년 12월에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The Violin Society of America) 주최의 제2회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 참가해 여섯 개 부문 중 바이올린 세공 부문, 비올라 세공/음향 부문, 첼로 세공/음향 부문에서 [[http://www.vsaweb.org/Previous-Conventions|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세계구급 제작자로 명성을 확고하게 만들었고,[* Chang Heyern Jin이라고 표기된 수상자가 바로 진창현이다.] 1984년에는 미국 현악기 제작자 협회에서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Hors Concours)[* 다른 악기 제작자나 감정가의 감사 없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악기를 제작/판매할 수 있는 장인이라는 뜻.] 자격과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 칭호를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 초후의 센가와 공방에서 현악기 제작을 계속 했고, 2000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에서 열린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무감사 현악기 제작자의 제작 참고 악기로 선정되어 전시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에 바이올린 '광주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바이올린 '대구호', 비올라 '한라호', 첼로 '백두호'까지 네 점의 악기를 무상 기증하면서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 제2회 국제 현악기 제작자 경연대회 다섯 개 부문 금메달 (1976)
* 일본 문화진흥회 국제예술문화상 (1998)
*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계속 눌러 살면서 [[조선적]]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방문했을 때도 생각치 못한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한국 국적으로든 일본 국적으로든 전환하지 않고 계속 무국적이나 다름없는 조선적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때 [[종북주의자]] 수준으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조선적 소지자이면서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북한계 단체와는 접점이 없이 악기 제작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 문제로 말썽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조센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여느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현악기 장인이었음에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상훈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연합군 . . . . 5회 일치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의 연합군 [[건물]]과 [[유닛]]을 소개하는 페이지.
연합군 MCV를 배치해 제작하는 건설소. 주변 지역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연합군의 기본 보병 유닛. 배치시키면 모래주머니를 쌓고 기관총을 거치한다. 이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전투력이 향상된다.
연합군이 사용하는 자원 채취 유닛. 자원을 채취해 광물정제소에 밀어넣는다. 광물정제소로 돌아올 때는 순간이동으로 돌아온다. 광물정제소를 건설할 때 하나 주지만 필요하면 군수공장에서 더 생산할 수 있다.
연합군의 기본 전차. 그럭저럭.
- 킹덤/504화 . . . . 5회 일치
* 매정하단 말도 나오지만 [[하료초]]는 이렇게 역할분담이 되는 것이 연합군의 장점이며 지금은 빨리 진군하는데 저들을 돕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 하료초는 이것이야 말로 연합군이 가지는 강점이며 정석적인 운용법이라고 거듭 설명한다. 연합종군에 속한 세 군단은 각기 흑양전 같은 대규모 전투에서 능히 승리할 법한 군단들이다. 그런 세 개의 군단이 같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작전 중에 생기는 동시다발적인 상황에도 각기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연합군에 바란 강점이 발휘되겠지. 반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길리 없어.
* 다음날, 금안에서 진로를 바꾼지 10일 만에 연합군은 열미에 도달한다. 척후의 보고에 따르면 열미에서 대규모 군단이 움직이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은 왕진군이 조의 왕도군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말이다. 왕전의 부하 악광, 마광은 왕전에게 슬슬 군단을 전개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한다. 이제부터 열미를 공략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일이었다.
- 한송이 (레이싱모델) . . . . 5회 일치
* [[2013년]] - 서울국제모터쇼 포르쉐 모델
* [[2012년]] - 부산국제모터쇼 포드 모델
* [[2012년]] -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 소니 모델
* [[2011년]] - 서울국제모터쇼 도요타 모델
* [[2010년]] - 부산국제모터쇼 슈퍼카튜닝카 모델
- 한창희(전공기업인) . . . . 5회 일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이원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이시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시종의 충주시장직 사임으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같은 해 9월 충주시장직을 상실하였다. [* 한나라에서 [[영구제명]]되어 아직까지도 복당이 안된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현:[[더민주]])으로 소속을 바꿨다고 한다.출처:[[http://blog.naver.com/choongjuhan/90195670102]] ]2011년 4월 [[한국농어촌공사]] [[감사]]로 임명되었다.
[[우건도]]의 충주시장직 상실로 치러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현 한국당)[[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현 한국당) [[조길형(1962)|조길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윤진식의 국회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이종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 충주시장) || [[새정치민주연합]] || 41,230 (43.02%) || 낙선 (2위) || ||
|| 2014 ||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충북 충주)[* 전임자 [[윤진식]] 충청북도지사 선거 출마로 사직] || [[새정치민주연합]] || 16,4920 (29.60%) || 낙선 (2위) || ||
- 한채이 . . . . 5회 일치
* [[2017년]] - 서울 국제모터쇼 만트럭버스 포즈모델
* [[2016년]] - 부산 국제모터쇼 만트럭버스 포즈모델
* [[2015년]] - 서울 국제모터쇼 스파르타부스 포즈모델
* [[2012년]] - 부산 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부스 포즈모델
* [[2011년]] - 서울 국제모터쇼 기아관 모델
- 홍준표 (마술사) . . . . 5회 일치
* 2005년 월드스타매직쇼 국제마술대회 1위
* 2006년 대만 TMA국제마술대회 대상
* 2006년 미국마술협회 국제마술대회 Mystic Crag Award for Professional Promise
* 2006년 미국마술협회 국제마술대회 피플초이스
* 2006년 미국마술협회 국제마술대회 3위
- 황준국 . . . . 5회 일치
'''황준국'''(黃浚局), [[1960년]] [[12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8220815 |제목=<프로필> 황준국 주영국 대사|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6년 2월 29일}}</ref>
* 고입 연합고사 전국 수석
* 외교통상부 국제연합과 과장
* 외교통상부 국제기구협력관
- 고아성 . . . . 4회 일치
고아성은 6살 때인 1997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외환카드 광고 아역 모델로 연예계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자체발광' 고아성 "은호원으로 희로애락 다 펼쳐…시즌2 희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26821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정현|날짜 = 2017-05-16|확인날짜 =2017-09-07}}</ref> 이후 그는 2004년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의 타이틀롤을 맡아 배우로서 정식 데뷔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에서 박강두([[송강호]])의 딸 역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대한민국영화연기대상 영스타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하였다.
| 제5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
| 한국-프랑스 합작 영화<br />제62회 [[칸국제영화제]] 특별상영 초청작
|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심야상영 초청작
- 김재규 . . . . 4회 일치
해방 후 김천중학교[* 現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1946년 12월 졸업하였는데, 졸업당시성적은 196명 중 14등으로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중대장 대리로 복무 중에 군경체육대회 때 [[미 육군]]과 충돌을 일으킨 죄로 면관당한 후 잠시 낙향하여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 現 [[대륜중학교]]&[[대륜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복직되어 22연대 정보주임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의 공을 인정받아 3사단 22 연대 제 2 대대장으로 부임하는데, 공교롭게도 부임일에 6.25 사변이 발발한다. 김재규는 2대대를 지휘하며 의정부·대구·영덕 지구의 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 혈전을 벌였고, 6.25의 전투 중 치열하기로 손꼽혔던 황간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국군과 연합군의 북진에 선봉에 서서 함경남도의 땅까지 밟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악화되어 남으로 후퇴하게 되고 이후 여수 제 2 보충연대장으로 부임한다.[* 참고로 박정희는 6.25때 후방에서 보급병과 장교로 근무하느라 전공은 커녕 북한군과 마주친 적조차 없다.] 1970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57년에 [[육군대학]] 부총장을 지낸 후 방첩부대장, 육군보안사령관, [[제3군단]]장을 역임한 후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5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5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https://youtu.be/BSqOsrVdY3Y?t=12m31s|당시 실제 육성]]
가정이긴 하지만, 박정희가 살아있었다면 3저 호황을 통한 경제발전, [[핵무기]] 개발 등을 통해 [[리콴유]] 처럼 박씨 일가의 세습독재 체제를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다. 육사를 나와 장교가 된 박지만은 군부를 장악하여 [[리셴룽]]처럼 젊은 나이에 장성을 지내고 나서 정계로 들어와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고 박근혜는 최씨 일가의 도움으로 문화, 여성, 종교계를 장악했을 것이다. 반면, 박정희의 무리한 국가주도식 경제정책과 국민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 오랜 독재정치로 인한 선진국들과의 외교갈등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보면 과연 박정희가 80년대의 격변기를 유연히 대처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당시 한국은 이스라엘처럼 미국정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도 아니었으며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도 아니었기에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하였다고 하여 미국 등의 강대국들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박정희의 오랜 독재체제를 못마땅해하던 카터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봤을때 무리하게 핵무기를 개발했을 경우 국제적인 경제제재가 가해져 외교뿐만아니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6화 . . . . 4회 일치
* 시에핫사이카이의 현관에서 철포옥 핫사이키 "카츠카메 리키야"를 저지하던 드래곤 히어로 [[류큐]]와 웅영고 인턴들은 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한다. 리키야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은 접촉한 상대에게 "활력"을 흡수해 거대화하는 능력. 그를 제압한 류큐팀은 서둘러 선행한 히어로 연합군을 따라가기 위해 저택으로 돌입하려 했다.
* 목적지에 도달한 츠유와 우라라카는 오버홀과 싸우던 미도리야를 보고 방금 전엔 가짜 미도리아였다는걸 눈치챈다. 그 정체는 미도리야의 피로 변신한 [[토가 히미코]].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탈출 목적으로 [[Mr.컴프레스]]의 카피를 생성했다. 컴프레스의 능력으로 굴을 파서 지상으로 나가려 한 것.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고, 당초엔 핫사이카이 조직의 "핵"인 "에리"와 접촉하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내내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오버홀과 히어로들이 교전 중인 지금 접촉을 노리는 것이었다. 트와이스는 본체인 자신들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으니 카피인 컴프레스더러 임무를 수행하러 오라고 떠민다. 컴프레스는 투덜대면서도 지시에 따라 하강. 류큐팀은 컴프레스를 보고 [[빌런연합]]이 현장에 나타난 걸 알아차리나 복잡한 상황 때문에 뭐가 뭔지 파악이 늦다.
현관에서 덮쳤던 카츠카메 리키야를 제압하지만 잠시 방심했다가 크게 통수를 맞았다. 리키야는 원래 "닿은 대상"의 활력을 빼앗는 개성인데 개성 부스트 약물의 힘으로 직접 닿지 않아도 공기를 빨아들여서 활력을 흡수하는게 가능한 상태였다. 하도 네지레는 처음으로 정확한 개성이 공개. 자신의 활력을 충격파로 쏘아내는 능력. 왠지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서 속도는 느리다. 활력을 흡수하는 리키야와는 상성이 나쁜 모양이다. 그 때문에 아무리 공격해도 통하지 않고 리키야에게 성희롱 당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전원이 활력을 빨려서 지지부진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토가 히미코가 미도리야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힌트를 준 덕분에 역전할 수 있었다. 다들 힘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지만 능력을 종합해 리키야를 지면으로 떨어뜨리고 아예 지반을 붕괴시켜 역전과 미도리야 일행과 합류를 한 큐에 성공. 이후에 빌런연합의 개입을 눈치채지만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 빌런연합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9화 . . . . 4회 일치
프로 히어로들이 포박한 [[빌런 연합]]을 한 순간에 빼앗긴다.
* 빌런 연합은 검은 액체에 휩싸여 어디론가 전송된다.
* 간신히 일어난 베스트 지니스트는 사전에 예상했던 "빌런 연합의 브레인"이 이 자일 거라고 직감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상정 이상의 괴물이다.
* 다른 빌런연합 인원도 속속 이쪽에서 나타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1화 . . . . 4회 일치
* [[빌런 연합]]은 [[마그네]]의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 "자력"을 발동, 자기를 기준으로 일정 범위 안의 남성에겐 S극을, 여자에겐 N극을 부여해 자석처럼 붙이거나 반발시키는 개성이다.
* 자력의 반발력으로 미도리야 일행을 추적하려 하나 그때까지 쓰러져 있던 마운틴 레이디가 기상, 빌런연합을 몸으로 막는다.
* 빌런 연합도 몇 명 남지 않았고 바쿠고를 빼앗겨서 상황은 단숨에 역전, 올 포 원은 "당했다"고 인정한다.
* 그때까지 떠나지 않고 싸우려던 [[시가라키 토무라]], 기절해있던 빌런연합 전원이 워프존 근처에 있던 [[토가 히미코]]에게 이끌려 워프존에 빨려들어간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5화 . . . . 4회 일치
* 도망친 빌런연합의 개인정보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 때문에 원흉인 올 포 원을 잡았다 한들 실행범을 전부 놓쳐서 잘쳐줘 봐야 무승부인거 같다고 얘기한다.
* 빌런연합을 통해 "바보라도 모인다면" 이런 결과로 이어진다는걸 깨닫고 간부들은 두려워한다.
* 간부는 연합은 실패할 때마다 세력을 늘리고 있다며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게 세력 확대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지 의문시한다.
* 다른 간부는 결과론일 뿐이라며 과대평가라고 하는데 어쨋든 빌런연합을 잡아야 하는건 바뀌지 않는다.
- 마기/320화 . . . . 4회 일치
* 밤 중에 황제국의 국제동맹 이탈을 저지하라고 진언하러 온 쟈파를 신드바드의 변화를 눈치챈다.
* 그러나 한다면 지금 밖에 없으며 국제동맹이 와해되어 가면 모아놓은 금속기 조차도 줄어들 것이므로 확률은 더 내려가게 된다.
* 그는 황제국의 국제동맹 이탈을 저지해야 한다고 진언하러 왔다.
* 설사 백 년 후에 국제동맹이 사라지고 전쟁이 일어나도 그건 "우리가 알바가 아니다"
- 박신혜 . . . . 4회 일치
박신혜는 이후 단막극 《[[드라마시티]] - 첫차를 기다리며》(2004), 《[[MBC 베스트극장|베스트극장]] -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2004), 《새 아빠는 스물 아홉》(2005)와 《한뼘 드라마》(2004), 《베스트극장 - 어느 멋진 날》(2005), 《드라마시티 - 키다리 아저씨》(2005)와 시트콤 《[[혼자가 아니야]]》(2004-05),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연기력을 다져나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박신혜는 사전 제작 된 퓨전 사극 드라마 《[[비천무]]》에 캐스팅 되어 중국 로케 촬영하였다. 그리고 2006년 2월, 첫 방영한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서 여주인공 하나 역에 캐스팅 되었고, ‘천국의 계단’에서 그녀를 발탁했던 이장수 감독은 여주인공으로 고등학생이었던 박신혜를 또다시 발탁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인터뷰> 드라마 '천국의 나무' 여주인공 박신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119715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정열 |날짜 = 2006-01-16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4월, 영화 《[[도마뱀 (영화)|도마뱀]]》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하였다. 이듬해, 2007년 황인뢰 감독은 드라마 《[[비천무]]》의 제작 현장에서 눈여겨본 박신혜에게 드라마 《[[궁S]]》의 귀족 소녀 신세령 역으로 캐스팅했으나 이 드라마는 전작과 달리 진부한 내용과 설정으로 흥행에는 크게 실패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잘 자라줘서 고마워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2&aid=0000002569|출판사 =텐아시아 |저자 =최지은 |날짜 = 2009-10-28 |확인날짜 =2015-04-18 }}</ref> 같은 해 5월 개봉 된 호러 영화 《[[전설의 고향 (2007년 영화)|전설의 고향]]》과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에 출연했다. 7월부터 방영 된 드라마 《[[깍두기 (MBC)|깍두기]]》에서는 절에서 자란 여주인공 장사야 역을 맡아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등 파격 변신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문희' 후속 드라마 '깍두기' 주인공 확정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81490|출판사 =OSEN |저자 =김지연 |날짜 = 2007-07-19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의 진행을 맡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1년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상큼한 여대생 이규원 역을 연기해, [[정용화]]와 다시 공연했다. 예술대학을 배경으로 풋풋한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내겠다는 취지로 시작 됐지만 연이은 시청률 부진으로 15회로 조기 종영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시청률 부진 속 <넌 내게 반했어>, 15회로 종영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47&aid=000198457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미나 |날짜 = 201-08-09 |확인날짜 =2013-09-01 }}</ref><ref>https://www.soompi.com/2010/09/01/george-hu-is-park-shin-hyes-combat-butler/</ref> 이듬 해, 2012년에는 단막극 《[[KBS 드라마 스페셜]] - 걱정마세요 귀신입니다》에서 본인이 귀신이란 걸 자주 망각하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생기 넘치는 귀신 연화 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아 [[KBS 연기대상]] 단막극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박신혜는 2013년 초 개봉 되어 역대 여덟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에 성인 예승 역을 연기했다.<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english.yonhapnews.co.kr/culturesports/2013/03/15/27/0701000000AEN20130315007900315F.HTML|work=[[연합뉴스]]|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title='Miracle in Cell No. 7' third most-viewed Korean film|url=http://nwww.koreaherald.com/view.php?ud=20130315000902|work=The Korea Herald|accessdate=2013-03-20|date=15 March 2013}}</ref><ref>{{웹 인용|last=Ji|first=Yong-jin|title=MIRACLE IN CELL NO. 7 Passes MASQUERADE to Become 3rd Most Successful Korean Film|url=http://www.koreanfilm.or.kr/jsp/news/news.jsp?mode=VIEW&seq=2324|work=Korean Film Council|accessdate=2013-03-20|date=19 March 2013}}</ref> 같은 해 1월 첫방영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에서 사람 만나길 두려워 하는 히키코모리 고독미 역을 연기했고, 제 나이와 성격에 어울리는 밝고 씩씩한 여대생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f name="mbn" /><ref>{{웹 인용|url=http://www.soompi.com/2012/10/31/park-shin-hye-and-yoon-shi-yoon-to-star-in-new-drama-flower-boy-next-door/|title=Park Shin Hye and Yoon Shi Yoon to Star in New Drama "Flower Boy Next Door"|date=June 26, 2012|accessdate=February 7, 2012|publisher=soompi}}</ref> 박신혜는 코오롱스포츠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 된 '웨이 투 네이처 필름 프로젝트 단편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에 출연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가위바위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023569|출판사 =오마이뉴스 |저자 =이선필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박신혜는 매년 팬미팅 수익금을 현지 NGO나 사회단체에 기부해오고 있다. 2007년, 박신혜는 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의 순수제작비를 제외한 작가, 연출자, 연기자들의 원고료와 연출료 및 출연료 전액 등의 수익금을 NGO 단체를 기부하는 것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원고료-출연료 기부...첫 도네이션 극 방영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006327|출판사 =TV리포트 |저자 =김진도 |날짜 = 2007-05-14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2년에는 한국 공식팬클럽 ‘별빛천사’와 함께 한 한국 팬미팅 티켓 판매금 전액을 팬들과 대표적인 [[NGO]] 단체 ‘기아대책’에 기부하며, 박신혜가 봉사를 다녀온 아프리카 가나의 별빛 천사 마을을 위해 후원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노래선물, ‘팬 위한 노래’ 직접 작사한 곡 ‘최초 공개’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2231659|출판사 =리뷰스타 |저자 =김숙희 |날짜 = 2012-02-20 |확인날짜 =2013-09-01 }}</ref> 같은 해 7월,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후지TV 방송을 기념해 [[정용화]]와 함께 7월 15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팬미팅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고, 팬미팅 수익의 일부를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동일본대지진의 지원금으로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정용화, '넌 내게 반했어' 日 팬미팅 수익금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236717|출판사 =스포츠조선|저자 =김표향 |날짜 = 2012-07-17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3년 일본 팬미팅 후에는 기아대책 일본지부에, 필리핀 팬미팅의 수익금도 현지에 되돌려 한류의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오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中 반려동물 성금 기부… 경시풍조에 경종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69&aid=0000056438|출판사 =한국일보 |저자 =이현아 |날짜 = 2015-04-05 |확인날짜 =2015-04-07 }}</ref> 같은 해 1월,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제작발표회에서 팬들에게 받은 쌀 화환을 나눔의 집에 기부했고, 같은 해 2월, 한국 팬미팅 수익 전액과 일본 팬미팅 수익 일부를 기아 대책에 기부했다. 4월에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스타리움에서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한 박신혜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 팬클럽과 공식 팬클럽 회원들은 쌀 화환 520kg과 공식 팬클럽은 '별빛천사는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적은 쌀 화환을 보내고, 이날 받은 쌀 화환 520kg은 박신혜가 지정하는 기부처로 전달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 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쌀 화환 520kg 어려운 이웃에 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1&aid=0000330294|출판사 =조이뉴스24 |저자 =권혜림 |날짜 = 2013-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6월 24일,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대사와 해설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시·청각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제작한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고, 박신혜는 영화의 앞부분에 내레이터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김지운 감독·박신혜, 시청각 장애인 위해 재능기부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48112|출판사 =마이데일리 |저자 =김미리 |날짜 = 2013-06-24 |확인날짜 =2013-09-01}}</ref>
박신혜는 또한 2011년부터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결연아동 아반네를 결연후원 해오고 있으며 팬들과 해외 빈곤국에 센터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팬과 함께 봉사활동 나선 별들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196660|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 =김원겸 |날짜 = 2014-04-08 |확인날짜 =2014-04-09}}</ref> 국내외 팬들과 전 세계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호 센터로 서부 아프리카 가나 ‘신혜센터(Shin Hye Center)’가 2013년 11월 완공되어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 =기아대책 홍보대사 박신혜, ‘러브백’ 특별행사 참여 |ur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05291628173210|출판사 =뉴스엔 |저자 =김찬미 |날짜 = 2014-05-29 |확인날짜 =2014-05-30}}</ref> 2014년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5,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9&aid=0003189349|출판사 =매일경제 |저자 =이슈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ref><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이어 소속사도 1000만원 기부 "작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url =http://stoo.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42515493577725|출판사 =스포츠투데이 |저자 =김은애 |날짜 = 2014-04-25 |확인날짜 =2014-04-26 }}</ref> 또한 자신의 SNS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변경, 노란리본 캠페인에도 동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기부 이어 노란리본 캠페인 동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242446|출판사 =스포츠경향 |저자 =온라인뉴스팀 |날짜 = 2014-04-23 |확인날짜 =2014-04-24 }}</ref> 2015년, 박신혜는 ‘2015 Dream of Angel’ 타이틀로 아시아투어에 나섰고, 상해 팬미팅 수익을 [[NGO]] 단체 ’기아대책’의 별빛천사마을 만들기와 중국의 유기동물 보호단체 ‘타소원’에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박신혜, 상해 팬미팅 수익금 전액 기부.."한류스타 이례적 행보"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217288|출판사 =이데일리 |저자 =강민정 |날짜 = 2015-03-30 |확인날짜 =2013-09-01 }}</ref> 4월, 박신혜는 큰 피해를 입은 [[네팔]] 국민들을 위해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를 통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네팔 지진 희생자 위해 3천만원 후원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54697|출판사 =OSEN |저자 =정유진 |날짜 = 2015-04-30 |확인날짜 =2013-09-01 }}</ref> 2016년 7월, 박신혜는 아프리카 가나의 신혜센터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의 건립을 진행했다. 이에 박신혜와 소속사 솔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센터건립에 앞서 필리핀 쌈빨록 지역의 아이들과 1:1 결연을 맺었고, 지난 3월 박신혜는 필리핀의 결연아동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아동결연센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센터 건립에 앞서 건축기념식을 가졌다.<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382&aid=0000489585|제목=박신혜가 또… 필리핀에 아동복지시설 ‘신혜센터’ 건립|출판사 =스포츠동아 |저자=홍세영|날짜 = 2016-07-22|확인날짜=2016-12-09}}</ref>
- 배소연 . . . . 4회 일치
* [[2010년]] 제32회 세계한민족평화통일단체총연합 사회봉사상 수상
* [[2012년]]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연예예술발전부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상 수상
* [[2013년]] 사단법인 한국가수연합회 10대 가수상 수상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4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가방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영국]], [[미국]]과의 동맹 체결, [[국제연합]]을 창설한 샌프란스시코 회의(1945), [[테헤란 회담]](1943), [[얄타 회담]](1945), [[포츠담 회담]](1945) 등 연합국의 각종 굵직한 회담에 모두 이름을 내밀었다.
이후 몽골대사(1957∼1960년), [[국제원자력기구]] 상임대표(1960∼1961년)을 역임, 1962년 은퇴했다. 1964년 6월에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반당 행위를 비판받아 모든 당적을 박탈당했다고 발표되었다. 이후 조용히 살다가 1984년 명예회복, 복권되었다.
- 솔비 . . . . 4회 일치
2010년 치유 목적으로 시작한 미술에 흠뻑 빠지며 화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2015년 'Trace'의 '공상'을 시작으로 셀프 콜라보레이션(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인 권지안과 솔비가 협업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선보였다. 셀프 콜라보레이션은 2016년 '블랙스완',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 초청작가, 2017년 '하이퍼리즘-레드',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까지 총 다섯 작품이다. 특히 솔비는 '하이퍼리즘'(정보와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높아진 기대치들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반대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상실감 등의 부작용이라는 시대적 현상을 솔비가 정의한 용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현대인의 우울과 상처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이퍼리즘-레드'<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069|제목='다양성 가요계' 솔비가 쏘아 올린 작은 공|성=정진영 기자|이름=|날짜=2017년 6월 1일|뉴스=|출판사=한국스포츠경제|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는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KBS 2TV '뮤직뱅크'에서 파격적인 [https://tv.naver.com/v/1717804 '레드' 퍼포먼스]를 펼치며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2018년 3월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 음원을 본인 유튜브채널에만 공개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 공헌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 경기도 한 보육원에 재능기부와 선행 등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16년엔 '파인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음원 'Find'를 발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펼쳤다. 같은 해 12월엔 '손모아 장갑'을 발표하며 청각·언어 장애인들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상처와 동정의 시선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다. 2017년엔 '다문화 아동 돕기 후원의 밤'에 참석해 특별 공연과 함께 5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사회적인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솔비는 2014년부터 꾸준히 세월호 추모 그림을 그리며 남다른 애도를 표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 1월 EBS '신년특집 미래강연 Q-호모커뮤니쿠스, 빅 픽처를 그리다'에 강연자로 출연해 "스토킹 처벌은 벌금 10만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솔비가 제안한 해당 법안은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 점검회의에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으로 확정, '스토킹 처벌법'(가칭)이 제정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076873|제목=스토킹 뿌리뽑는다…벌금 10만원→최장 징역 5년 추진|성=김계연 기자|이름=|날짜=2018년 5월 10일|뉴스=|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ref>{{뉴스 인용|url=http://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530678|제목=강연자로 나선 솔비 “스토킹 벌금 불과 10만원” 지적…피해자 입장 법안 제정 당부|성=이유진 기자|이름=|날짜=2018년 1월 1일|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6월 28일}}</ref>또한 솔비는 2018년 '하이퍼리즘-블루'의 '클라스'를 발표하며 통해 계급사회를 비판기도 했다. 2018년 6월엔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5859&cid=40942&categoryId=32774 뮤코다당증] 난치병 환우회에도 참석, 가족들에게 응원을 복돋아주기도 했다.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 'SNS월드' 청주예술의 전당, 청주
'하이퍼리즘: 레드' 전시, 명동국제아트페스티벌, 명동 L7 호텔
- 신영식(만화가) . . . . 4회 일치
이후로 주로 월간 [[보물섬]]에 스피드 킹이라든지 극화체 모험물이나 격투기물도 그리다가 1988년에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에 가입하여 환경운동에 열성적으로 나서며 1990년에 만화잡지 <[[보물섬]]>에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를 연재한 걸 비롯해 <하나뿐인 지구>, <초록이네>, <깡통박사 찌노> 등의 환경만화를 내며 환경파괴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1999년에는 아내 오진희와 함께 [[녹색연합]]에서 펴낸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짱뚱이의 나의 살던 고향은>을 시작으로 '짱뚱이 시리즈'로 전 6권이 100만부 가까이 팔리며 또다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02년에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제에도 참가한 바 있다.
- 안숙선 . . . . 4회 일치
특히 [[1998년]]에 '천상의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프랑스 [[:en:Ordre des Arts et des Lettres|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으며, 다음해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훈장|옥관문화훈장]]과 '올해의 국제적인 음악인상'{{출처|날짜=2015-08-13}}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 [[1994년]] [[국제문화친선협회]] 선정 '올해의 국제문화인상' 수상
* [[1999년]] 올해의 국제적인 음악인상{{출처|날짜=2015-08-13}} 수상
- 영국 . . . . 4회 일치
서유럽에 위치한 섬나라.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수도는 [[런던]].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네 국가가 연합한 연합 국가이다. 실질적으로는 잉글랜드가 다 해먹는 것 같지만.
20세기 초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방 달라고 빼액거리자 줬다. 우리 시대의 평화 ^^.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을 믿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얼마 못가고 독일에게 완전히 잡아먹혔다.
- 울릉군 . . . . 4회 일치
포항시-영일군 통합 전에는 영일군과 같은 선거구에 소속하였다. 꽤 오랫동안 이상득 의원이 의원직을 6번이나 했다가 불출마했는데, 후임 김형태 의원은 성추행 논란을 일으키며 그 당에서 쫓겨나더니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물론 재선 결과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이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박명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후보[* 당시 [[민중연합당]] 후보가 출마했다.]와 무소속 후보는 '''울릉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새누리당 텃밭이라 하지만 다른 후보들의 무관심으로 박명재[* 행정고시를 합격한 관료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기에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다가 2013년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출마하였다.] 의원이 여유있게 몰표를 가져갔다.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가고자 한다면 대부분 [[포항시]]로 향하는 여객선을 이용, 포항에서 대구, 부산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전세버스 등을 대절하여 대구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중국]], [[몽골]], [[동남아시아]], 극동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 등지로 향하게 된다. [[미국]]이나 [[중동]], [[유럽]], [[호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공화국|인도]], [[카자흐스탄]], [[아프리카]] 등지로 나갈 경우 [[포항공항]]에서 [[김포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또는 [[에어포항]]의 국내선을 이용, 김포공항까지 내려온 다음 다시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버스,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바로 인천공항에 닿는다.
- 유승민(정치인) . . . . 4회 일치
>— 19대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 육군 대장출신의 대표적인 민주당계 군사전문가이다]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칠곡군]]에 배치하면 수도권 방어가 어렵다"고 주장하며 사드 2~3포대 추가배치를 주장하였고, 후에 [[성주군]] 배치로 결정된 7월 12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536495|유승민 "사드, TK에 배치돼도 감당해야"(연합뉴스)]] 또한 사드 문제로 인해 방중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매우 부적절한 처사이며 굴욕외교를 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반면 [[대한민국 공군|공군]]력 건설, 특히 [[KFX]]나 [[L-SAM]]을 비롯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미국]]의 KFX 관련 주요 기술의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체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방사청과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며 여권 소속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대안으로 KFX F-35 도입으로 전환, THAAD, [[미국]] 주도 MD 참여 등에 호의적인 견해도 나타냈다. 때문에 국산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력 강화를 선호하는 이상주의적 [[밀덕]] 사이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국산 무기의 여러 결함 때문에 검증된 미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현실주의적 [[밀덕]]들에게는 오히려 호평을 받고 있다.[* KFX의 경우, 실패하면 그대로 [[대한민국 공군]] 미래전력을 다 말아먹는 결과가 된다. 때문에 차라리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접고 검증된 미국제 전투기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이 [[밀덕]]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많다.]
* 201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우수의원
- 유열 (가수) . . . . 4회 일치
[[신애라]] 등 [[연예인]]들이 읽어주는 [[오디오 북]]을 만드는 사업도 진행했었다.<ref name=autogenerated2 /> [[2007년]]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의 제1대 홍보대사가 되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0490 가수 유열, 여성장애인 다리가 되어 - 오마이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직접 제작한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는 현재까지 70만명 관객돌파 흥행뮤지컬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2009년에는 [[독일]] [[브레멘]]주정부 초청공연,2011년 8월[[중국 상해]]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 여성장애인연합 홍보대사 /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이사
- 윤덕홍 . . . . 4회 일치
윤덕홍은 2013년 4월 3일자 민주당 대구시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였다고 하였고, 2013년 4월 당시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이었던 이승천은 "2013년 4월 3일 윤덕홍이 직접 탈당계를 제출했다는 보고를 받고, 당의 원로이므로 함부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업무가 폭주하던 상황이어서 탈당처리를 잊어버리고 못했었고, 후에 위원장에서 물러나면서 명확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새정치연합(구 민주당) 대구시당은 "윤덕홍의 당적과 관련해서 더 이상 대구시당에서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당으로 문의하라"고 답변을 회피했고, 새정치연합(구 민주당) 중앙당은 "당적과 관련되어서는 본인이 아니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등 새정치연합 중앙당과 대구시당이 윤덕홍의 탈당시점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며 의혹이 증폭되었다.
또한 윤덕홍은 2014년 4월 말까지도 새정치민주연합 경북도당 공천관리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예비후보 등록 시점까지 실질적으로는 당원으로서 활동하였으며, 국회 교육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교육감 선거 후보 조건으로 당적 1년 미보유 조항을 없애 달라", "최근 당적을 지난해 4월로 소급해 말소해 달라"고 요청하였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02838 윤덕홍은 시한폭탄] 뉴데일리 2014년 5월 13일</ref>
- 은혼/637화 . . . . 4회 일치
* 가부키쵸 연합군이 각지에서 기어나온 해방군 잔당과 싸우고 있었으나 아르티나의 폭주에 휘말려 생사불명이 된다.
* 히노카쿠츠치의 존재가 촉발한 해방군 지상부대의 발악은 에도 전지역으로 확산됐다. 승전의 기쁨이 하루도 채가기 전에 가부키쵸 연합군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곤도 이사오]]가 이들을 통솔하고 있다. 우츠로는 이렇게 폭주하는 지상군은 그저 오합지졸의 세때일 뿐이라고 평한다. 그 말대로 가부키쵸 연합군은 낮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대선전, 지상군을 압도한다. 그저 두려워서 날뛰는 자들이 적을 끝장낼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노린 바였다고 우츠로가 말한다.
같은 시각. 지상군을 분쇄하던 가부키쵸 연합군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해방군과 다른 어떤 위험을 직감한다. 그 불길함 움직임이 곤도의 발 밑에서부터 폭발한다.
- 은혼/638화 . . . . 4회 일치
* [[곤도 이사오]]는 지면에서 일어난 대폭발에 휩쓸려 생사불명. 나머지 가부키쵸 연합군도 두서없이 퇴각한다.
*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발은 에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던 가부키쵸 연합군이 퇴각한다. [[츠쿠요]], [[사루토비 아야메]]가 백화와 오니와반슈를 수습하고 [[도로미즈 지로쵸]], [[도로미즈 피라코]] 부녀와 [[사이고 다카모리]]도 병력과 함께 퇴각하나 어디로 가야할까? 폭발은 빠른 속도로 뒤따라온다. 가부키쵸의 고지대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오토세]] 여사. 그녀와 함께 전황을 지켜보던 가부키쵸 주민들 사이에서 [[시무라 타에]]가 조심스럽게 걸어나온다. 그녀의 눈은 믿기지 않는 광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엔죠의 추론대로 "누군가"는 지구 위에 있었다. [[우츠로(은혼)|우츠로]]는 이 전쟁의 클라이막스에 텐쇼인 나락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카타 긴토키]], [[가구라]], [[시무라 신파치]]의 해결사 일행과 [[히지카타 토시로]], [[오키타 소고]]의 진선조 부대, [[카무이(은혼)|카무이]]의 하루사메 7사단까지 연합한 병력을 완벽한 타이밍에 포위하고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파국을 즐기며 일행에게 말했다.
* 긴토키는 발 밑을 울리는 심상치 않은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우츠로에게 외친다. 우츠로는 다소 친절할 정도로 자세하게 대답했다. 우선 다행한 점은 [[히라가 겐가이]]의 나노머신이 터미널 지하 깊숙한 곳까진 미처 닿지 않았다는 것. 거기서 우츠로가 계획한 최후의 계획이 무사히 시작했다. 그는 손에 넣은 "열쇠"를 이용해 터미널 지하의 "문"을 열엇다. 문이란 "용혈"을 봉하고 있는 터미널의 중추 장치다. 아르타나의 흐름이 "용맥"이며 그 원천이 "용혈". 그걸 제어하기 위해 설치된 "문"을 잘만 다룬다면 단숨해 폭주시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만한 대폭발을 일으킬 수도, 지금처럼 혈관 각지를 부수어 폭주를 확산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우츠로는 가부키쵸 연합군 따윈 언제든 처리할 수 있었다. 긴토키와 그들은 단지 우츠로의 손 위에서 춤을 췄을 뿐이다.
- 이선희 . . . . 4회 일치
2018년 4월 1일 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무대에 올랐다. 부른곡은<J에게,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를 선보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조용필·이선희 등 4월 평양 공연 |url=http://www.yonhapmidas.com/article/180403173727_417430 |날짜=2018-04-03 |확인날짜=2018-08-10 |뉴스=연합마이더스}}</ref>
* [[3월]] ~ [[7월]] '알고 싶어요' TV가이드 뮤직박스, DJ연합회 등 상반기 최고 인기가요 선정, MBC RADIO 총 15주 1위
* [[4월]] ~ [[6월]] '나 항상 그대를' TV가이드, 뮤직박스, DJ연합회 등 각종 차트 1위
* [[5월]] ~ [[9월]] '나의 거리' TV가이드, 뮤직박스, DJ연합회 등 각종 차트 1위
- 이인영(정치인) . . . . 4회 일치
전대협 의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친 후, 전대협동우회 회장을 맡는 등 전대협 출신 가운데 맏형 노릇을 줄곧 해왔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전민련 전국연합 등에서 9년 동안 재야활동을 했다.
2004년 제17대([[서울특별시]] [[구로구]] 갑.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2008년)|민주당]]), 2012년 제19대(서울특별시 구로구 갑.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학생 운동권의 리더 격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여러 논쟁에서 본의든 아니든 휘말린 적이 많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경제정의 노동민주화 특별위원회 간사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구로구갑/새정치민주연합)
- 이종희 (1942년) . . . . 4회 일치
| 경력 = 前 [[대한항공]] 총괄담당 대표이사 사장 <br /> 前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 사장 <br /> 前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br /> 前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br /> 금탑산업훈장, 프랑스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자랑스런 단국인상 등을 수상
* [[2006년]] 1월 ~ 2006년 2월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 [[1989년]] 대한항공 영업본부 여객담당 겸 국제여객마케팅담당 이사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장기오 (공무원) . . . . 4회 일치
| 기타 이력 =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차관]] <br/> [[대한민국 총무처|총무처 장관]] <br/> [[한국근로복지공단]] [[이사 (법인)|이사장]] <br/> 민주자유당 특임위원 <br/> 자유민주연합 특임위원
* [[1999년]] [[자유민주연합]] 특임촉탁위원(1999년 3월)
* [[1999년]] [[자유민주연합]] 특임촉탁위원 직위 퇴임(1999년 6월)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육군 중장]][[분류:인동 장씨]][[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하나회]][[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서울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
- 전순옥 . . . . 4회 일치
* 2014.02 ~ 2015.12 :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 소상공인정책연구소 소장
* 2014.03 ~ 2015.12 : 제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새정치민주연합)
* 2014.06 ~ 2014.08 : 새정치민주연합 수석사무부총장
* 2015.03 ~ 2015.12 : 새정치민주연합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 전예용 . . . . 4회 일치
|출판사=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 1961년 : [[국제라이온스클럽]] 한국지구 총재
* 1968년 : [[국제법학회]] 회장
* 1971년 : 국제법학회 명예회장
- 전희숙 . . . . 4회 일치
[[2009년]] FIE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 여자 플뢰레 개인 부문에서 결승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러시아]]의 [[아이다 샤나예바]]에게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하였다.<ref name="코리아타임즈2009" />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여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남현희]]를 이긴 뒤 결승에서 중국의 리후이린마저 15-6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ref name="한겨레2014" /><ref name="연합뉴스2014" />
<ref name="연합뉴스2014">{{웹 인용 | url=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7141644 | 제목=-아시안게임-<펜싱> 단체전 여자 플뢰레·남자 사브르 '금'(종합) | 저자=김지헌 | 위치=고양 | 뉴스=연합뉴스 | 날짜=2014-09-24 | 확인날짜=2016-11-08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61108141040/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7141644 | 보존날짜=2016-11-08 | 깨진링크=아니오 }}</ref>
* {{언어링크|en}} [http://fie.org/fencers/Hee_Sook-JEON-13459 전희숙] - [[국제 펜싱 연맹]]
- 정몽규 . . . . 4회 일치
'''정몽규'''(鄭夢奎, [[1962년]] [[1월 14일]] ~ )는 [[현대산업개발|HDC]]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17년 [[국제축구연맹]] 평의회 위원에 당선됐다.
* 2017.05 ~ 현재 : [[국제축구연맹]] 평의회 위원
* 2013.08 ~ 2016.12 :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
* 1998.07 : 전국경제인연합회, 한∙영 경제협회 회장
- 진격의 거인/91화 . . . . 4회 일치
* 파르코의 친구들은 응급조치를 취하며 지금 상황을 천천히 설명한다. 그들은 벌써 4년이나 전쟁을 했고 겨우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 공격하고 있는 "스라바 요새"만 공략한다면, 아니 그 요새 뒤에 있는 중동연합함대가 정박한 항구를 점령, 함대를 격멸한다면 전쟁이 끝날 것이다. "가비"라는 이름의 단발머리 소녀가 "그렇게 되면 마레의 승리"라며 설명해준다. 문제는 그 항구를 노리려면 철통같은 이 스라바 요새를 꼭 공략해야 한다는 거지만. 그런 설명들을 들으면서 파르코는 천천히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 그때 관측병이 "놈"이 나타났다고 알린다. 그것은 "장갑열차"다. 거기에 달려있는 열차포는 "대거인포"라 불리는 연합의 신병기다. 장갑열차에 총 4문이 장착돼있다. 100mm짜리 철갑포로 보통 거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거인"이라 해도 한 방이면 처리할 수 있는 괴물. 마가트가 우려한 것이 저것이었다. 콜트는 턱과 차력은 재빠른 거인이므로 목덜미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마가트는 도박의 여지를 두고 싶지 않다. 만약 당하면 어쩔거냐는 반문에, 콜트는 거인의 힘과 전사를 잃고 거인의 힘을 되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가트 대장은 거기에 9년 전 있었던 "시조탈환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덧붙인다. "여성형 거인" [[애니 레온하트]]와 "초대형 거인" [[베르톨트 후버]]를 잃은 실패 말이다. 이 전력의 상실이 지금의 전쟁을 일으킨 방아쇠가 되었다. 마레의 군사력이 저하됐다고 본 주변국들과 분쟁으로 전쟁이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팔라디섬 공략은 한없이 뒤로 밀렸다.
이렇게 민간인이나 투항자로 위장한 "편의병" 운용은 국제법 위반이지만, 마가트는 그것도 적이 살아있을 때 얘기라며 나름대로 도박을 건다. 파르코는 대체 가비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소위 '편의병'은 현실의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것이지만,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 난징 학살 등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변명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군은 '편의병 사냥'을 명목으로 도주한 중국군/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현재 일본 우익들은 "편의병은 죽여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군은 단순히 군복을 벗고 도주했을 뿐. 조직적으로 군복을 벗고 위장 공격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애초에 이러한 '특수작전'을 실행하려면 상당한 사전 준비와 그에 걸맞게 훈련된 특수부대가 필요하다. 군복을 벗어 군사 지휘체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하면서 동시에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의병 사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군복을 벗고 도주한 병사를 색출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제네바 전투 조약상 이러한 행위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즉결처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이다. 또한 이때 쓰인 색출기준이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자세가 좋은 사람, 구두를 신어 발목이 까진 사람 등으로 자의적이고 조잡해서 청년, 장년을 무차별로 죽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차영철 . . . . 4회 일치
| 기타 이력 = 국가대표 국제식 사격 선수
{{메달 스포츠|남자 [[국제식 사격|사격]]}}
'''차영철'''(車榮澈, [[1959년]] [[7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하계 올림픽|올림픽]] [[국제식 사격|사격]] 은메달리스트이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 사령부|육군 특전사령부]]에서 중사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국제식 사격 국가대표 출전한 전력이 있고 이후 [[국군체육부대]]에서 준위 계급 복무 당시였던 1988년, [[1988년 하계 올림픽|서울 올림픽]] 남자 소구경 복사(현재는 남자 50 미터 복사) 종목에서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이래 처음으로 사격부문의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 최성국 (축구선수) . . . . 4회 일치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계약금 3억원에 울산 입단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32639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3-2-2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5년]]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가시와로 5개월간 임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922660&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5-2-24}} }}</ref> 만족스러운 활약을 하지 못한 채 5개월 뒤 [[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으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 K리그로 복귀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786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5-6-25}} }}</ref> [[울산 현대 호랑이]]로 복귀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고, [[2006년]] [[K리그 컵 2006|K-리그 컵]] 득점왕에 올랐다.<ref>{{뉴스 인용 |제목=성남 '컵대회 준우승', 최성국 '득점왕 우뚝'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16823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6-7-29}} }}</ref> [[2007년]] [[1월 17일]]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여,<ref>{{뉴스 인용 |제목='리틀 마라도나' 최성국, 성남에 현금 트레이드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1171527142230 |출판사=마이데일리 |date={{날짜한글화|2007-1-17}} }}</ref> 그 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2008년]] [[8월 2일]]에는 [[대한민국]]과 [[일본]] 프로 축구 사상 첫 올스타 맞대결인 'JOMO CUP 2008'의 MVP를 차치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K리그 올스타, J리그 올스타에 3-1 대승...최성국 MVP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347254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08-8-2}} }}</ref>
[[2011년 5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후 최성국은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K리그]] 전 구단 전 선수가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 솔직히 웃어 넘길 수 있었으나 계속 들으니 지치기도 했다"라며 또 "모르는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부끄러움 없이 정직하게 살았다"라고 하면서 승부 조작을 극구 부인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최성국∙유병수, “통장, 통화 내역 공개할 수 있다”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gisa_uniq=20110531171825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5월 31일 }}</ref> 그러나 [[2011년]] [[6월 28일]] [[상주 상무 피닉스|광주 상무]] 소속 시절 승부조작에 참여했다고 자진 신고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결백 주장하던 최성국, 승부조작 자진신고 |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62910214013§ion_code=10&key=&field=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저자=김성진 |날짜=2011년 6월 29일 }}</ref> 게다가 브로커 역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ref>{{뉴스 인용 |제목='혐의 없다던' 최성국, 400만원 수수에 선수 섭외까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228785 |출판사=OSEN |저자=허종호 |날짜=2011년 7월 7일 }}</ref> 더 이상 축구계에 발을 딛을 수 없게 영구 제명되었으나,<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41&aid=0002054535 승부조작 가담 선수 모두 “선수자격 영구박탈”] 일간 스포츠 김민규 기자 2011-08-25</ref> [[마케도니아]]의 [[FK 라보트니치키]]에 입단하여 축구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2012년]] [[3월 16일]](한국시간), [[국제 축구 연맹|FIFA]]가 최성국의 모든 선수 활동을 세계적으로 정지시키는 영구제명을 결정함으로써<ref>{{뉴스 인용 |제목=FIFA, 최성국에 '선수 활동 정지' 징계 |출판사=OSEN |날짜=2012년 3월 16일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a_match/breaking/view.html?cateid=1172&newsid=20120316073304526&p=poctan }}</ref>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끝나게 된다.
2013년 12월 27일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다. 이 때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0.086%로 나타났다.<ref>{{뉴스 인용 |제목='前 축구 국가대표 최성국 음주운전 적발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682346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14-01-04}} }}</ref>
- 최유정 (레이싱모델) . . . . 4회 일치
* [[2012년]] - 서울국제사진영상기기전 탐론 모델
* [[2011년]] - 서울국제모터쇼 GM 대우 모델
* [[2010년]] - 부산국제모터쇼 쌍용 모델
* [[2006년]] - 부산국제모터쇼 벤츠 모델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4회 일치
오스만에 대한 반격도 한편으론 시행되었는데, [[헝가리]] 위주로 시행된 세번의 [[십자군]]이 그것이다. 특히 1444년에 마지막 십자군에서 십자군은 카라만의 족장인 이브라힘 베이가 반란을 일으킨 틈을 타, [[모레아 전제국]][* 현재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친왕 콘스탄티노스[* 후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연합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체사리니 추기경의 무리한 휴전협정 파기덕에 멋대로 나아갔던 헝가리-폴란드 연합군[* 당시 헝가리와 폴란드는 [[동군연합]]이었다.]은 패배. 왕이었던 울라슬로도 전사하면서 참혹하게 끝난다. 홀로남은 콘스탄티노스는 외로이 튀르크의 공세를 [[헥사밀리온]] 장벽에서 막았으나 결국 헥사밀리온은 무너지고, 친왕은 겨우 목숨을 건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한편, 메흐메트가 그를 유럽의 기독교 군주들처럼 애송이로 생각한 카라만의 이브라힘 베이가 게르미얀,아이딘,멘테세의 지도자들과 연합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한 뒤, 그는 예니체리의 봉급 인상문제로 한차례 곤경을 겪는다. 이문제는 봉급을 인상시키는대신 지휘관을 강등하는것으로 끝이 났으나... 이걸로 술탄의 지배력이 어느정도 약화된다. 이틈을 노렸던건지,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메흐메트에게 사절을 보내 이때 콘스탄티노플에서 머물고 있던 오르한의 생활비를 더욱 지급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추종자를 다시 풀어놓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기 이른다.
- 킹덤/512화 . . . . 4회 일치
* 진군이 열미성을 함락시키고 이틀. 곧 [[왕전(킹덤)|왕전]]이 모습을 감춘 지도 이틀이 되던 날. 왕전은 위험을 무릎쓰고 달려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업. 이번 연합군의 진짜 목적이자 조나라의 제 2의 도시. 왕전은 성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는 듯 샅샅히 살핀다.
>이 연합군은 내 책략으로 열미를 넘는다.
이신, [[하료초]], 왕전, 몽념은 자신들의 예측을 뛰넘는 결정이 나오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리고 이 연합군이 꾸려진 이래 최초로 모든 장교, 모든 병사에게 진정한 목표 "업 공략"이 명시되는 순간이다. 열미에 주둔하던 진군은 전병력이 열미를 지나 조의 왕도권으로, 업으로 진격한다.
* 이목은 방금 전의 첩보가 진짜라면 조와 진, 양국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시작된 거라고 말한다. 이미 확인했듯 진의 목표는 업이다. 여기에 떨어진다면 왕도 한단의 목전까지 진의 칼날이 들어온다. 조나라는 진에 의해 분단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반대로 진 연합군이 실패한다면. 업을 함락하지 못하고 궤멸한다면 진은 20만 병력과 대장군 왕전, 환의, 양단화에 유능한 장군과 참모들을 일거에 잃는다.
- 페어리 테일/485화 . . . . 4회 일치
* 피오레 북방 영봉 조니아에서는 가질 일행과 해방된 연합군이 합세해서 싸우고 있다.
* 아이린과 두 심복은 연합군의 기세가 살아난걸 보고 있는데, 아이린은 블러드맨과 라케이드가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 그때 연합군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공격이 덮친다.
* 연합군은 "또 사신이 나타났다" "책형에 당할 거다"라며 혼란이 인다.
- 편의치적 . . . . 4회 일치
편의치적선의 실질 소유국에서는 세수 감소, 선원 고용 축소, 노동조건 압박 등이 일어나며, 국제적으로는 해난, 해양 오염 확대, 선원 고용의 불안정화 등의 문제가 있다. 개발 도상국은 해운에서 압박을 받게 된다. 국제노동기구나 국제해사기구 등에서는 국제적인 규제를 발표하고 협약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에서는 편의치적국 근절을 위한 토의를 하였으나 폐기는 좌초되었다.
- 함준호 (교수) . . . . 4회 일치
'''함준호'''(咸駿浩, 1964년 2월 11일 ~ )은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은 떠나는 함준호 금통위원 "더 편하게 시장과 소통할 것" |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3936133 |날짜=2018-05-09 |뉴스=한국경제}}</ref> 본관은 [[양근 함씨|양근]]이다.<ref>{{웹 인용 |제목=함준호 인물정보 |url=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01.jsp?id=54450 |웹사이트=조선일보}}</ref>
*2007 ~ 2009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부원장
*2009 ~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2009 ~ 2012 연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소장
- 황연대 . . . . 4회 일치
'''황연대'''(黃年代, [[1938년]] [[12월 12일]] [[서울특별시]] ~ )는 [[대한민국]]의 의사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출신 의사이기도 하다.<ref>{{서적 인용|url=https://books.google.com.ua/books?id=UjQEAAAAMBAJ&pg|제목="RX: determination" - The Rotarian, Vol. 139, No. 5|성=Byong Ho|이름=Lee|날짜=1981년 11월|출판사=[[국제 로터리]] (Rotary International)|쪽=42-43|언어=en|isbn=}}</ref><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53&aid=0000029783|제목=패럴림픽 MVP 엔 순금 75g ‘황연대 성취상’ 드립니다|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2550152|제목=[초대석]장애인올림픽 ‘황연대 성취상’을 만든 황연대 씨|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1988년 하계 패럴림픽|1988년 서울 하계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1988년]]에는 월간 《주부생활》과 일요신문사가 공동 주관한 오늘의 여성상 시상식에서 받은 상금 200만원을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에 기부했다. 이 상금은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가 [[황연대 성취상]](옛 이름 황연대 극복상)을 시상하는 계기가 된다.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대통령 직속 한국장애인복지대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 2005년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 유공훈장(IPC Order) 수여<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151297|제목=황연대씨 IPC유공훈장 받아|언어=ko|확인날짜=2018-06-08}}</ref>
- 황용식 . . . . 4회 일치
'''황용식'''(黃龍植, [[1944년]] [[5월 28일]] ~ )<ref name="사전">{{서적 인용|title=한국인명사전 (연합연감 1999년판 별책) |publisher=[[연합뉴스]] |page=840 |date=1999-04-30}}</ref>은 [[대한민국]]의 외무공무원이다.
* 1993 : 외무부 국제기구국 심의관<ref name="사전"/>
* 1997 : 대구시 국제관계 자문대사<ref name="사전"/>
- Project:Union . . . . 3회 일치
이러한 불운한 사고에도 인류는 살아기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레시마스에서의 새정착 생활을 시작햇다.허나 인류는 다시 [[전이 현상]]이라는 새로운 시련을 맞이햇고 차원 넘어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인류를 위협햇다. 이에 [[행성 연합]]은 전이현상에 대항하기위해 전우주의 뛰어난 영웅으로 이뤄진 대전이현상 특수작전팀 [[오퍼레이션 발할라]]를 창설하게 된다.
[[행성 연합]]
[[행성연합의 7대 전설]]
- Victoria II . . . . 3회 일치
1861년 7월 1일부터 시작하는 캠페인. 이탈리아는 통일을 완수하여 열강의 자리에 올라갔으며, 한때 열강이었던 스페인은 이탈리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탈락해버렸다.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강탈당한 중화제국은 천왕이 이끄는 태평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게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강탈하고 현재의 국경선을 거의 완성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아메리카 연합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튀니스와 트리폴리를 자국 영토로 합병하고 이집트에게서 중동 지방을 빼앗았다. 프랑스 역시 알제리를 완전히 먹어치웠고. 한편 일본은 미국의 영향권 내에서 근대화를 끝마쳐가는 중이다. 중앙아메리카 합중국은 분열되어 여러개의 나라가 되었으며, 페루는 에콰도르가 지배하고 있는 파스타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악명(Infamy)는 해당 국가에 대한 국제적 시선이 얼마나 나쁜가를 의미한다. 전쟁 명분을 주작하다가 들키면 쌓인다. 악명이 높을면 높을수록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악당으로 인식되어 적대적인 국가가 증가한다.
* American Civil War Spritepack : "남북전쟁 시기" 미합중국과 아메리카 연합국의 보병, 특수병, 기병, 포병, 공병, 근위대의 스프라이트를 고증에 따른 군복으로 바꿔주는 DLC. A House Divided DLC를 추가로 요구한다.
- 경제제재 . . . . 3회 일치
[[국제연맹]], [[국제연합]]에서는 침략 행위 등을 벌인 문제 국가에 대해서 사용한다.
- 권영준 (1952년) . . . . 3회 일치
'''권영준'''([[1952년]] [[5월 15일]]~ , [[대구광역시]])은 [[대한민국]]의 경영학자인 대학교수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과 한국재무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 [[경희대학교]] 국제경영학부 교수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 김선영(1976) . . . . 3회 일치
*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2014)[* 영화 [[국제시장]]에서 오영자 역의 [[김윤진]]과 시장에서 싸우는 아줌마로 나오기도 했다.]
- 김성민 (1994년) . . . . 3회 일치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29&aid=0000001214 <nowiki>[팩트체크]</nowiki> '국제미아' 김성민, 프로지명 가능할까?] - 엠스플뉴스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3회 일치
이후,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여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153531 쇼트트랙 김소희 은퇴] - 연합뉴스</ref>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West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스포츠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201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소 주임 연구원 및 [[대한체육회]] 국제위원회 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현장 실사에도 나섰다.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 김진선(군인) . . . . 3회 일치
1998년 당시 공동여당이던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다.이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고향이 포함된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지만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던 자유민주연합 [[정우택]] 후보에 밀려 낙선. 낙선 이후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4화 . . . . 3회 일치
* 케미인줄 알았던 학생의 정체는 빌런연합의 토가 히미코. 자신의 변신개성을 이용해 미도리야의 혈액을 훔치는데 성공했다.
* 그녀는 사걸고교의 케미가 아니라 빌런연합의 멤버 토가 히미코였다. 토가는 멋진 놀이를 하고 있었다도 답하는데 그 놀음에 정기연락까지 빼먹고 있었던 것이다. 연락하는 상대는 Mr.컴프레스. 그녀의 단독행동을 우려하지만 토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킨 적이 없는데다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었다고 자랑한다.
사걸고교 케미의 정체는 토가 히미코. 진짜 케미의 행방은 미지수다. 하지만 토가의 성미로 봤을 땐 성하게 있지는 못할 것으로 추정. 일단 토가의 행동은 단독행동으로 빌런연합의 계획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개성이 변신이고 단지 피를 얻으면 변신할 수 있다는 패널티가 매우 적은 능력. 처음엔 스테인을 추종하는 태도나 우라라카, 아스이 츠유와 교전했을 때의 정황 때문에 스테인과 비슷한 계통이 아닌가 추정되었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4화 . . . . 3회 일치
* 오버홀은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의 소개로 빌런연합의 [[시가라키 토무라]]와 접촉하고 있는데.
* 밀리오가 "서"라고 불렀던 인물은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인물이 "용의자"의 정보를 물어온다. 그 용의자란 신흥 빌런 조직의 두목 [[오버홀]]. 그가 [[빌런 연합]]과 접촉한다는 정보다.
* 그 정보대로 오버홀은 빌런연합의 리더 [[시가라키 토무라]]와 대면하고 있다. 그를 소개한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는 "얘기해 보니 의외로 좋은 녀석"이라며 오버홀을 추천한다. 사실 시라가키를 만나게 해달라고 자청했다고 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9화 . . . . 3회 일치
* 에리를 되찾은 오버홀은 직후 [[빌런연합]]의 [[시가라키 토마루]]에게 "지난 번 제안의 대답"을 들려주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 [[토오가타 밀리오]]는 패트롤에 들어가기 앞서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원래 패트롤은 직장체험에서도 실습하는데 미도리야는 [[빌런연합]]의 개입으로 그럴 기회가 없었다. 밀리오는 [[서 나이트아이]]가 오버홀에 대해서 경고하긴 했지만 실제 용의자를 추적하는건 나이트아이의 몫이고 그들은 통상 패트롤 활동만 하는 거라며 긴장을 풀어준다.
그때 작은 부하가 전화가 왔다고 알린다. [[빌런연합]]의 [[시가라키 토무라]]. "저번의 대답"을 들려준다는 용건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8화 . . . . 3회 일치
*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아카데이마)|그랜토리노]]는 [[츠카우치 나오마사]]의 첩보로 [[빌런 연합]] 측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이탈
오전 8시 담당 경찰서 앞. 지휘를 맡은 담당 형사가 경찰과 히어로의 연합군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이 브리핑했다. 지리적인 문제는 해결이 됐지만 상대측이 개성으로 저지하려 들 경우를 감안해서 현재 확보된 시에핫사이카이 인원들의 개성에 대한 정보도 제공되었다. 작전 목표는 시에핫사이카이의 전 구성원의 확인과 체포. 가능한 신속해야 한다.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랜토리노(나의 히어로아카데이마)|그랜토리노]]가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 담당 형사와 함께 있던 나이트아이는 그가 못 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경찰의 말로는 [[츠카우치 나오마사]]가 가져온 정보 쪽으로 움직인 모양이다. [[빌런 연합]]에 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데. 그랜토리노는 이 작전에 참여하지 못해 분해한 듯 하지만 형사는 어쨋든 작전에 지장은 없다고 여길 뿐이다. 이때 [[아이자와 쇼타]]는 오늘은 미도리야를 찾아와 자신도 나이트아이 사무소와 동행한다며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확인한다. 물론 미도리야는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7화 . . . . 3회 일치
[[미도리야 이즈쿠|미도리야]] 일행이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 작전을 시작한 가운데 프로 히어로들도 [[빌런 연합]]을 대대적으로 공격한다.
* 한편 빌런연합의 아지트에서는 여전히 바쿠고와 대치하고 있다. 어떻게든 큰걸 한 방 터뜨리고 도망치려고 하지만 [[쿠로기리]]의 [[워프]] 능력이 거슬려서 실행을 못하고 있다.
* [[올마이트]]가 벽을 뚫으며 뛰어들고 거기서 [[신린 카무이]]가 나무의 개성으로 빌런연합 일당을 일제히 포박해 버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8화 . . . . 3회 일치
[[빌런 연합]]의 일망타진을 앞둔 프로 히어로들.
* [[올마이트]]는 빌런연합을 완전히 궁지에 몰아넣고 끝이라고 선언한다.
* 빌런연합의 구성원은 그 신원 또한 경찰에 의해 밝혀진 상태.
- 노영하 . . . . 3회 일치
* [[2014년]] 2014 시니어 왕위전 조훈현 九단 제압<ref>[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4/09/25/1006000000AKR20140925174300007.HTML 바둑 노영하, 39년 8개월 만에 조훈현에 설욕(연합뉴스)] 연합뉴스 바둑</ref>
*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동양증권배]], [[삼성화재배]]의 국제기전 해설자로 활약했다.
- 대한민국 FA컵/2016시즌 . . . . 3회 일치
* 국민생활체육협회 추천 연합회팀: 10개팀
* 연합회팀: 한국후지제록스, SMC엔지니어링
연합회팀은 이 단계에서 모두 탈락하게 되었다.
- 라미란 . . . . 3회 일치
||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 덕수 고모 || 14,261,427 ||
|| [[2010년]] ||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부문 여자연기상 || ||
- 마기/299화 . . . . 3회 일치
* 뢰엠은 국제연합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는 뢰엠 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 그 우두머리는 "네르바 율리우스 칼루데아스". 전 황제의 아들로 자신을 황태자라 내세우며 국제연맹을 타도하고 왕정을 복고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 마기/319화 . . . . 3회 일치
* 뢰엠, 귀왜국도 흐름을 타고 국제동맹 탈퇴를 선언한다.
* 반발하는 참석자들이 나오자 무우는 "현 국제동맹의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대안적 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펼친다.
* 황제국, 뢰엠이 퇴장하자 야마토 타케루히코는 귀왜국도 국제동맹에서 탈퇴할 것이며 2년 전의 금속기 사용은 정당방위였다고 발언하고 퇴장한다.
- 마기/333화 . . . . 3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 일행은 국제동맹 본부에 잠입해 금속기를 탈취한다.
* [[알라딘(마기)|알라딘]]은 "보르그 알사무"를 사용해 국제동맹 본부를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요새로 만든다.
* [[알리바바 사르쟈]] 일행은 천관산맥의 국제동맹 본부에 잠입한다. 전송마법진으로 간단하게 잠입에 성공, 금속기를 탈취하는데까지 성공한다. 알리바바는 암흑대륙에서도 [[쥬다르]]가 이걸 써줬으면 좋았다고 투덜대는데 쥬다르는 "닥쳐 찰흑인형"이라고 폭언한다.
- 문근영 . . . . 3회 일치
2012년 들어서는 광동제약 '''[[비타500]]'''광고, 부산국제영화제, 예능 [[런닝맨]] 등에서 심하게 후덕해진 모습을 보여줘 팬들의 마음에 [[충공깽]]을 안겨주고 있다.
[[2006년]] [[성균관대학교]] 인문학부에 특별전형 지원으로 합격했다. 입학 전 [[수능]] 성적으로 [[대학]]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고 수능 당일날 교실 하나를 혼자 쓰면서 요란하게 수능까지 봤다. 그런데 막상 원서 쓸 때가 되니까 특별전형, 그것도 연예인들이 으레 가는 '''[[연극영화과]]가 아닌 [[국어국문학과]]에 응시했고''' 간단히(?) 합격해 버려서 당시 [[고3]]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버렸다. 아무래도 본인 수능성적이 예상 이하였던 모양이다.[* 문근영이 고3이던 당시, 모교인 [[국제고등학교(광주)|국제고등학교]](일반계 고등학교)를 방문한 졸업생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하다. 영화 [[댄서의 순정]] 이후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언플이 있었으나, 영화 개봉과 무대인사가 모두 끝난 5월 말까지도 등교가 아닌 외부활동(교사의 말에 따르면 [[칸 영화제]]를 '구경'갔다고 한다.)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미 특별전형을 고려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문무왕 . . . . 3회 일치
[[진덕여왕]] 4년([[650년]])<ref group="주">[[진덕여왕]] 4년부터 [[신라]]의 독자 연호가 아닌 [[당나라|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ref>에 [[당나라|당]]에 사신으로 파견돼 [[당 고종|고종]]에게 〈[[한국의 삼국시대 시가#치당태평송|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바쳤다. 고종은 이를 가상히 여겨 법민에게 태부경(太府卿)이라는 벼슬을 내렸다.<ref name="삼국사기-65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진덕왕 4년(650)</ref> [[654년]] 아버지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뒤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직에 임명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1">《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1년(661)</ref> [[655년]] 태자로 봉해졌다.<ref name="삼국사기-655>《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2년(655)</ref> [[태종무열왕]] 7년([[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김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멸망시켰다.<ref name="삼국사기-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이어 [[태종무열왕]] 8년([[661년]]) 부왕이 승하하자 곧 즉위하였다.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12년([[672년]]) 당나라는 대군을 동원해 신라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 신라는 봄 정월에 백제 고성성(古省城)을 쳐서 이기고, 2월에는 다시 백제의 가림성 공격을 시도했다.<ref name="삼국사기-672">《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2년(672)</ref> 7월, 당나라 장수 고간(高侃)의 한병(漢兵) 1만, 말갈족 출신의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 3만이 함께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머물렀다.<ref name="삼국사기-672"/> 이들은 8월부터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馬邑城)을 쳐서 이기고 백수성(白水城) 5백 보 거리까지 전진해 주둔하는 등 신라 땅을 침식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72"/>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연합해 이들을 쳐서 이기고, 추격하는 당병을 석문(石門) 벌판까지 뒤쫓아가 싸웠지만, 군 내부에서의 논공행상 및 전략에 대한 견해차로 분열된 사이에<ref name="김원술">《삼국사기》 권제43 열전 제3 김유신전 부록 원술(元述)</ref> 당병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대아찬 효천(曉川), 사찬 의문(義文)·산세(山世), 아찬 능신(能申)·두선(豆善), 일길찬 안나함(安那含)·양신(良臣) 등이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72"/> 태대각간 김유신의 아들인 [[김원술|원술]]도 여기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아버지 유신은 자신의 아들을 군법으로 처형해야 한다며 왕에게 아뢰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ref name="김원술"/> 한편 각자 맡은 곳을 지키며 방어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자는 유신의 진언에 따라, 한산주에 둘레 4,360보 되는 주장성(晝長城)을 쌓는 등 방어진지를 구축했다.<ref name="삼국사기-672"/> 9월에는 앞서 신라 땅에 억류하고 있던 웅진도독부 소속의 백제인 관원들과 앞서의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당으로 돌려보내면서 왕이 직접 표문과 많은 물품을 바치는 등 당에 대해 유화책을 폈다.<ref name="삼국사기-672"/>
- 박세직 . . . . 3회 일치
[[육군사관학교]] 제12기 출신이다. [[박희도]][*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여단장이었으며, 1985년 12월부터 1988년 6월까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박준병]][*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 당시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이었으며, 이후 국군보안사령관과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소속)을 지냈다.]과 함께 [[하나회]] 회원이었다. 그리고 박희도, 박준병, 박세직 등을 가리켜 '''쓰리 박'''이라고 하였다.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전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신한국당]] 공천후보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재홍(1941)|박재홍]]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1998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부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 박소연 (배우) . . . . 3회 일치
* 제9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여우주연상 (2015년) <ref>[http://www.xportsnews.com/jenter/?ac=article_view&entry_id=609742 대국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여우주연상 수상 관련기사] </ref>
| 뮤지컬 || 투란도트<ref>[http://www.playdb.co.kr/playdb/PlaydbDetail.asp?sReqPlayNo=78264 대국국제뮤지컬 페스티벌 - 투란도트 설명 링크]</ref> || 2015년
- 박주영 . . . . 3회 일치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 2005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 2005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MVP : 2005
- 박홍 (신부) . . . . 3회 일치
|매체 = 연합뉴스
|매체 = 연합뉴스
박홍 총장의 '주사파 발언' 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운동권 인사들은 박홍 총장에게 근거를 대라며 추궁했다. 이에 대해 박홍 총장은 "주사파 관련 내용을 고해성사 때 들은 내용"이라고 답했다. 이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김동주 공동의장 등 신도 6명이 박홍 신부를 '고해성사 비밀 누설 혐의'로 서울대교구에 고발했다. 당시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이었던 염수정 추기경은 사건 조사를 담당했고 박홍 총장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83100289119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8-31&officeId=00028&pageNo=19&printNo=1997&publishType=00010|<한겨레신문>1994년 8월31일자 19면]</ref>
- 백남순 (1929년) . . . . 3회 일치
[[조선로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후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으로서 북측 자문위원으로 처음 남한을 방문하였고, 이후 [[남북회담]]에서 수차 모습을 나타내는 등 대남협상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지냈다.<ref name="autogenerated1">[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103MW200805158998 백남순 북한 외무상 사망 - munhwa.com<!-- 봇이 따온 제목 -->]</ref> [[폴란드]]주재 대사를 역임하고, [[1989년]]에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과 [[1991년]]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부의장을, [[1992년]]에 [[남북회담|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으며, [[199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무부|외무상]]으로 취임했다.<ref name="autogenerated1" />
[[2006년]]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지역포럼에서도 회의에 출석하면서 사적으로는 요양을 계속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3일]]에 사망하였으며, 사인은 만성 신부전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상으로 재임하던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상사에 해당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헌화를 받았다. 사망 당시 실질적인 외교 책임자는 [[강석주]] 제1 외무차관이었으므로, 사망 후의 외교 정책에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보통국가 . . . . 3회 일치
우익들이 말하는 '보통국가'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준이다. 현재 [[국제연합]] 체계의 '보통국가'는 일본의 평화헌법과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만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평화헌법이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방어전쟁 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실 내용상으로는 별 차이 없다. 따라서 현재 체계에서 딱히 일본이 다른 나라들보다 국제적 권리에 있어서 더 강한 제약을 받는 것은 '''전혀 없다.'''
- 빅터 차 . . . . 3회 일치
조지 부시 행정부 시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또한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in Washington, DC) 한국 석좌로 있다.
아버지 차문영은 한국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뉴욕에서 도자기, 자개, 병풍 등을 판매하는 기프트 가게를 열었으며, 동양 화병에 미국제 갓을 얹고 중국제 나무로 받침대를 한 --기괴한-- 동양램프라는 상품을 백화점에 납품하여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차문영은 2001년까지 40년간 아시아하우스를 운영하고, 2005년 타계했다.
- 송창현 . . . . 3회 일치
||<:> '''학력 ''' || 포항대해초 - 매송중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 - [[제주국제대학교|제주국제대]]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를 거쳐 제주국제대로 진학한다.
- 송호창 (1967년) . . . . 3회 일치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후보 캠프에 합류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10/09/0502000000AKR20121009183100001.HTML?template=2087 송호창 安캠프행..안철수발 '빅뱅' 시작되나] 연합뉴스 2012-10-09</ref> 2015년 12월 13일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였지만 자신은 탈당하지 않겠다고 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15/0200000000AKR20151215192800001.HTML?input=1195m</ref>
|소속정당 = [[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민주통합당]] → [[무소속]]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정부 . . . . 3회 일치
1945년, 유럽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의 길을 걸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을 보게 되자 공화파 망명자들은 굉장히 기뻐하였는데, 연합국의 승리에 따라서 프랑코 정부가 무너지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시즘 세력에 점령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해방되었고, 나치 독일과 동맹하던 파시즘 정권은 패망하는 나치 독일과 함께 붕괴하였다. 스페인과 같은 처지가 되었던 망명정부들도 대부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다만 동유럽 지역은 소련에 점령되었기 때문에 공산화 된 폴란드는 망명정부를 지속했고, 유고슬라비아는 티토의 게릴라가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귀환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페인 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 정권은 전쟁 중에 독일에 의용군을 보내는 등 상당히 친나치 성향을 보이고 있었으나, 명목상은 [[중립국]]이었고 전쟁 말미에는 의용군을 귀국조치 시키며 망해가는 히틀러와 거리를 두었고 연합국과는 협상을 벌였다. 결국 연합국은 스페인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은 전후에도 계속 파시즘 체계를 유지될 수 있었다. 희망이 좌절되자 공화파 망명자와 망명정부는 매우 낙담하였다.
- 양시영 (1944년) . . . . 3회 일치
* 제30대 달성군수(1995년 7월 ~ 1998년 6월,[[무소속]] → [[자유민주연합]]
|[[대한민국 제2회 지방 선거|제2회 지방 선거]]||[[달성군|대구광역시 달성군수]]||31대 (민선 2기)||[[자유민주연합]]||{{막대|자민|4|3|5}} 43.5%||21,371표||2위||낙선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오영식 (1967년) . . . . 3회 일치
* [[2013년 2월]] ~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소속정당 = [[민주통합당]] → [[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민주당]]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 오지철 . . . . 3회 일치
* 1977.06 ~ 1982.03 : 대한체육회 국제과 과장
* 1982 : 체육청소년부 국제체육국장
* 1995.01 ~ 1996.12 : 문화체육부 국제체육국 국장
- 울펜슈타인 : 뉴오더 . . . . 3회 일치
1946년, 나치 독일은 우월한 과학 기술로 연합군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이는 나치 독일의 과학자이자 장군인 빌헬름 슈트라세, 일명 데스헤드의 업적이었다. 이에 연합군은 데스헤드를 제거하기 위한 특공대를 조직해 데스헤드의 본거지를 습격하지만 실패한다. 특공대원이었던 B. J. 블라즈코윅즈는 두명의 동료를 데리고 데스헤드의 본거지에 탈출하지만, 탈출 중 머리에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는다.
=== 연합군 ===
- 유로달러 . . . . 3회 일치
1986년, [[영국]]은 금융빅뱅(Big Bang)이라 불리는 대규모 금융개방정책을 실시했으며 달러 시장의 중심지가 된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자산동결을 우려하여 서유럽에 달러 자산을 보관하였다. 이를 '유로뱅크'라고 한다. 이렇게 유로달러의 기세가 강해지자 미국은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찾기 위하여 뉴욕의 국제금융시장을 강화하였다.
이렇게 유럽시장에서 거래되는 해외화폐를 유로컬런시(Euro Currency)라고 한다. 달러 이외에는 유로엔(EuroYen) 등이 있다. 유로유로(EuroEuro)는 유럽연합 이외의 국가에서 거래되는 유로화이다.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는 아시아 달러라고 한다.
[[분류:국제금융]]
- 은혼/598화 . . . . 3회 일치
* 한편 우주에서는 연합군의 지휘관들과 담판짓기 위해 가츠라, 다츠마가 노부노부를 대표자로 내세워 접촉하는데.
* 저항자들의 분위기는 좋아지지만 객관적으로 우주에서 모여든 연합군을 상대로 전지구가 힘을 합친들 충분치 않은게 사실.
* 지구에서 떨어진 우주공간. 연합군의 수뇌는 우주요세에서 전황을 살피고 있다.
- 이광수(배우) . . . . 3회 일치
|| 2015년 || [[돌연변이(영화)|돌연변이]] || 주연 || 박구[* 무려 토론토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연속으로 초청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국내 상영 시기를 잘못 잡은 탓인지...국내에서는 참패.] ||
* 부산국제콘텐츠마켓홍보대사
- 이중환(법조인) . . . . 3회 일치
||<-6> [[박근혜정부]] · [[새누리당]] · [[친박]] · [[미르재단]] · [[K스포츠재단]] · [[더블루K]] · [[비덱]] ·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 [[팔선녀(단체)|팔선녀]]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 [[삼성그룹/비판 및 문제점#s-10|삼성그룹]]([[삼성전자 승마단]]) · [[국민연금공단]] · [[이화여자대학교/사건사고|이화여자대학교]] · [[영세교]] · [[알자회]] · [[고령향우회]] · [[통일교]] · [[일베저장소]]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 · [[대한민국 엄마 부대|엄마부대]] · [[박사모]] · [[아프리카TV/사건사고#s-1.10|아프리카 TV]] · [[주식갤러리#s-2.5|주식갤러리]] · [[JTBC]] · [[회오리축구단]] · [[워마드]] ||
- 인천광역시 . . . . 3회 일치
청라국제도시
송도국제도시, 경제자유구역
인천국제공항
- 전광우 . . . . 3회 일치
미국 [[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수,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 [[국제금융센터 (대한민국)|국제금융센터]] 원장,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 대한민국 국제금융대사 등을 거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초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2009년부터 2013년 4월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2013년 5월 이후 현재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 정소담 . . . . 3회 일치
*제25회 전국경제인연합 시장경제대상 진행
*탈북자영어교육 국제NGO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 Academic Adviser
#[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59471&C_CC=BB <리뷰> 영화 <국제시장> '이 시대 모든 금순이를 위하여]
- 정승화(육군) . . . . 3회 일치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후 기소되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반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으며, 그간 받은 장교 급여분도 이병으로 동일 기간을 복무할 시 받을 [[화폐|돈]]을 제외하고 전부 몰수당하고 군인[[연금]] 수혜 권리도 박탈되어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수감기간 중 [[한미연합사|한미연합]][[사령관]] [[존 위컴]] [[장군]]이 [[생일]][[케이크]]와 축하카드를 보내 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공식선거운동 시작 직후 김영삼이 정승화를 통일민주당 부총재로 영입하자 김영삼의 지지율이 1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고 선거 바로 전날 [[김현희(1961)|김현희]]가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엄청난 북풍이 불었고, 3김이 서로 먼저 대통령 해보겠다고 동시출마하는 병크까지 터뜨려, 결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36%, 김영삼-27%, 김대중-26%, 김종필-7%[* 보면 알 수 있듯, 3김이 단일화만 했어도 노태우는 절대 당선될 수 없었다.], 즉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 진격의 거인/93화 . . . . 3회 일치
* 4년을 허비한 전쟁은 끝났지만 승전국 마레의 사정은 좋지 않다. [[지크 예거]]가 적의 마지막 함대를 섬멸한 건 좋았으나 그 대가로 갑옷 거인 [[라이너 브라운]]을 희생시켰다. 비록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지만 "마레의 갑옷"이라 일커러지는 그가 빈사에 처했다는 사실,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어찌보면 마레의 승리가 초라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승리"를 대서특필, 소식을 접한 나라들은 패전국인 중동연합을 칭송하는 기현상이 일고 있다.
중동연합과의 전쟁은 해상전이었다. 대부분의 중요한 전투는 거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해상전. 연합 측은 최신전함을 보유했지만 마레는 수만 많은 구식함을 구색만 맞춰둔 오합지졸. 다른 참모가 "우리 함대가 오합지졸이라 졌다는 거냐"고 따지자 마가트는 그게 본질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 창작:왕국 . . . . 3회 일치
전체적인 외교관계는 왕따. 한때 플라흐란트 왕국과 리자 연방이라는 동맹국이 있었지만 플라흐란트 왕국은 연합에게 합병당했고, 리자 연방과는 점점 서먹서먹해지는 중.
북쪽으로 바다 건너 있는 연합과 관계가 최악이다. 원래부터 자기들보다 못살고 낙후된 국가라고 깔보고 있었는데 연합이 왕국과 친하던 플라흐란트 왕국을 덥썩 집어먹어버렸다.
- 천보영 . . . . 3회 일치
* [[2012년]] - 부산국제모터쇼 르노삼성 모델
* [[2013년]] - 서울국제모터쇼 도요타 모델
* [[2014년]] - 부산국제모터쇼 기아자동차 웨어러블K 시연 및 소개 모델
- 최만린 . . . . 3회 일치
* [[2005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2005년 12월).
* [[2006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 직위 퇴임(2006년 1월).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조각가]][[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수원 최씨]][[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유교 이탈자]][[분류:불교 이탈자]][[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영삼]][[분류:이회창]][[분류:김종필]][[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문]][[분류:프랫 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
- 최병일 . . . . 3회 일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통상협력연구소 소장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 크림 전쟁 . . . . 3회 일치
1853년부터 1856년 까지 벌어졌던 [[전쟁]].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 [[샤르데냐]] 연합과 [[러시아 제국]]이 벌인 전쟁이다.
1854년 3월, 러시아의 확장 정책에 불만을 느끼던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편으로 참전했다. 연합군의 군대는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해군기지를 공격해 [[세바스토폴 공방전]]을 벌였다.
1855년이 되자 [[사르데냐 왕국]]이 연합군의 편으로 참전하였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는 행동이었다.
- 킹덤/515화 . . . . 3회 일치
창평군은 사전에 언질하길, 만약 수뇌부가 사전에 세운 계획이 어그러진다면 왕전 개인의 독단으로 움직여도 좋다고 허가했다. 즉 왕전이 이렇게 나온다는건 본래 계획을 버리고 왕전 개인의 판단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얘기가 된다. 분명 그들에게 열미를 방어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왜 왕도권으로 진입했을까? 창문군은 그 점을 납득하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게 됐으면 당장 군을 물려서 돌아와야 할 일이다. 연합군의 병량이 떨어질게 불보듯 뻔하니까. 창문군은 어전에도 탁자를 내려칠 정도로 분개해하는데 누구 하나 말리지도 해석을 내놓지도 못한다.
* 지금껏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지시만 내렸던 왕전이지만, 이번엔 그가 그리는 전략을 편린이나마 보여준다. 여전히 어떤 목적 때문에 소도시들을 공략하는지 밝히진 않았으나 [[이목(킹덤)|이목]]의 움직임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 그가 왕도권으로 돌아와 통제력을 갖추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왕전이 보기에 이목이 함단까지 돌아오는데 하루, 그가 왕도권 군단의 통제권을 인수하는데 하루, 최종적으로 준비를 마치고 업에 도착하기까지를 하루로 잡아서 총 3일의 시간이 있는 걸로 계산했다. 왕전은 이제부터 군을 셋으로 나누기로 한다. 왕전 자신의 본대와 [[환의(킹덤)|환의]]군, [[비신대]]와 [[낙화대]], [[옥봉대]]를 합친 연합군의 세 갈래로 나눠 업 주위에 남은 일곱 성을 한 꺼번에 공략한다는 것이다. 작전 내용은 같다. 점령지의 식량을 빼앗고 백성들을 바깥으로 내몬다. 그들이 갈 곳은 "동쪽"이다.
* 왕전이 구상한 진군로는 크게 세 개. 현재 "정성"에서 군은 세 갈래로 나눠 출발해 왕전의 본대는 적성, 평성을 함락시키며 동쪽으로 진군. 환의군은 그 아래 신성, 석성, 허성을 거쳐 역시 동쪽으로 진군. 비신대, 옥봉대, 낙화대의 연합군은 크게 몰아 최남단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동쪽으로 진군.
- 태영호 . . . . 3회 일치
빨치산 가문에서 태어난 태영호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진우]](1995년 2월 사망) 전인민무력부장 등 빨치산 1세대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태영호는 평양 국제관계대학(5년제)를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되었다.
태영호의 탈북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김정은 체제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북한의 상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인물의 탈북 이후로 김정은이 고사총(보통 12.7mm나 20mm 기관총을 2연장 ~ 4연장으로 엮어 쓰는 [[대공포]])으로 관련자 및 책임자들을 처형했다는 소문(확인 불가)과 함께 탈북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북한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8/18/0200000000AKR20160818103151014.HTML?input=1195m|연합뉴스 단독 기사]]
- 페어리 테일/542화 . . . . 3회 일치
* [[미네르바 올랜드]]를 비롯한 마도사 길드 연합군은 [[아크놀로기아]]가 "본능"적으로 "마도사가 모이는 곳"을 찾는 걸 간파하고 유도하기 시작한다.
* 매그놀리아를 침공한 마룡 [[아크놀로기아]]의 육신. 그것을 막기 위해 페어리 테일을 비롯한 마도사 길드 연합군이 작전을 수립한다. [[미네르바 올랜드]]가 이끄는 연합군이 아크놀로기아를 작전지역인 하르지온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받았지만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없다. 마룡은 자아를 잃고 무차별 공격을 해대는데 이쪽의 반격은 마법이든 물리적 공격이든 무효. 그렇다고 마룡을 유도할 방법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3회 일치
||<|2> 2015 || 제35회 하와이국제영화제 || 르네상스상 || ||
||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프로듀서스 초이스상 || ||
|| 2007 || 제27회 오포르토 국제영화제 || '''남우주연상''' || 시간 ||
- 한용덕 . . . . 3회 일치
[[2004년]] [[10월 12일]] [[한화 이글스]] 구단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리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787885& 한화 한용덕, 마운드 떠난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12일 작성</ref>
[[2005년]] [[4월 5일]] 개막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거행했으며 이후 [[한화 이글스]]의 스카우트로 활동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26426 “훌륭한 지도자로 돌아올 것”]《대전일보》, 2005년 4월 5일 작성</ref> [[2005년]] 시즌 종료 후 단행된 [[한화 이글스]] 코칭 스태프 정비에서 2군 [[투수]] 코치로 임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131374& 한화, 1군 투수코치 최동원 임명] 《연합뉴스》, 2005년 10월 25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중반 당시 플레잉 코치였던 [[지연규]]의 1군 합류와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41623& 한화, 우완 조성민 1군 올리고 최동원 코치 2군행] 《Osen》, 2006년 7월 24일 작성</ref> [[2006년]] 시즌 종료 후 열린 전지 훈련에서 [[류현진]]에게 [[슬라이더]] 투구법을 전수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249270 신인 삼총사, '신무기 장착으로 2년차 징크스 넘는다'] 《조이뉴스》, 2007년 2월 21일 작성</ref> [[2007년]] 시즌 중반 [[이상군]]이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됨에 따라 재활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733318& 한화, 1군 투수코치에 이상군]《연합뉴스》, 2007년 8월 22일 작성</ref>
- 허안나 . . . . 3회 일치
* 2013 제 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버티고공연)
* 2014 제 2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레드카펫)
* 2017 제 5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그미쓰코리아공연)
- 현정건 . . . . 3회 일치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高宗)]] 24년([[1887년]])에 [[대구광역시|대구(大邱)]]에서 현경운(玄炅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0년]]에 중국으로 유학, [[상하이 시|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임시의정원|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이규홍(李奎洪) 등과 함께 1919년 9월 17일 경상도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20년]]에 상하이 주재 [[고려공산당|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입당하였고 [[1922년]] 10월 20일에 열린 베르프네우딘스크(Verkhneudinsk) 회의<ref group="설명">이동휘의 상하이 고려공산당과 김철훈ㆍ안병찬의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경쟁을 완화하고 두 세력을 합치기 위해 코민테른에서 그들에게 베르프네우딘스크에서 연합대회를 갖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한인 공산주의 운동 계열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정재달, [[조봉암]] 등도 여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대회는 대표의 자격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탄나고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철수, 코민테른 당국이 각파 지도자를 모스크바로 불러 조정하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코민테른은 양파 모두 해산하고 단일당을 조선 안에 세울 것을 지시함으로써 상하이파도 이르쿠츠크파도 없어지게 된다. 김학준 저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2005, 민음사.</ref>에 윤자영(尹滋英)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23년]] 1월에 상하이에서 소집된 [[국민대표회의|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서는 윤해(尹海)ㆍ신숙(申肅) 등과 더불어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왕삼덕(王三德) 등과 참여하였고 2월 5일에 [[여운형|여운형(呂運亨)]]과 더불어 외교분과위원으로 지명되었으나, 창조파가 임시정부를 부정하며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과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결정인데 출석원(員)의 2/3나 되는 개조안을 무시하고 사신 5인이 퇴석 통고를 하고 불착한 대로 국호를 조선공화국로 정하여 새 국가를 만든 것을 성토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ref>「創造派의 회의 종료」 『동아일보(東亞日報)』 1923년 6월 25일자.</ref> 7월에는 여운형이 조직한 한국독립촉진회에도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 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 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였다. 8월에 조선의 관서([[평안도]]) 지방에서 일어난 대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는 상하이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의 상하이교민단(上海僑民團)이 내지동포수재구제회(內地同胞水災求濟會)를 조직해 9월 26일에 수재의연금 110원을 동아일보사에 전달하기도 했는데 <ref>「同胞의 ㅁ愛! 해외각디동포의열렬한동정 가련한수재당한형뎨들에게」 『동아일보』1923년 10월 4일자 기사.</ref> 여기에 현정건의 이름이 실려 있다.
[[1926년]] 10월 10일에 중국사정연구회(中國事情硏究會)를 조직하여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1월에 상하이에서 의열단 창립 9주년을 맞아 재중 조선인들에게 격문을 발표하며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1927년]] 4월 10일 홍진(洪鎭)ㆍ홍남규(洪南杓) 두 사람의 명의로 발표된 전민족적독립당결성선언문(全民族的獨立黨結成宣言文)에 따라 11일에 삼일당에서 약 40명이 모여 한국독립당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 창립총회를 열고,
등의 강령 및 명칭, 위원 기타를 결정하고 조직을 끝냈는데 이때의 집행위원으로 [[이동녕]]ㆍ조소앙 등과 함께 현정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11월에 다시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ref>대한민국 국회도서관 편찬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 1976년, 618~621쪽 및 일본 외무성경찰사(外務省警察史) 지나지부(支那之部) 『조선민족운동사(朝鮮民族運動史)』≪미정고(未定稿)≫ 4, 고려서림(高麗書林), 1989, 11~22쪽.</ref>
- 흥친왕 . . . . 3회 일치
[[2007년]] [[1월 18일]] 이재면의 증손 이모씨가 자신의 증ㆍ조부의 행위를 친일행위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ref name="연합뉴스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23704</ref>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구한말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의 행적을 친일행위로 규정해 발표하자, 2006년 11월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ref name="dd1"/><ref name="파이1">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1782211&cDateYear=2009&cDateMonth=10&cDateDay=05</ref><ref name="mk1">http://news.mk.co.kr/v3/view.php?year=2009&no=517181</ref>
1월 1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소장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증조부와 조부의 행위를 일제 강점기하에서의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한 근거법률인 반민족특별법이 위헌이기 때문에 이 결정은 효력이 없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f name="연합뉴스1"/>
이씨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결정이 위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추후 제출할 위헌심판제청신청서에서 자세하게 밝히겠다고 덧붙였다.<ref name="연합뉴스1"/> 그러나 [[2009년]] [[10월 5일]] 그의 증손이 낸 소송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었다.<ref name="nata1"/>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연구진 . . . . 2회 일치
*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국제사무기기)
* Cantieri Navali Riuniti(연합조선소)
- Europa Universalis 4/서구권 . . . . 2회 일치
Western. 가장 빠른 속도로 테크를 올릴 수 있으며, ~~망할~~ 신롬덕분에 소국들이 굉장히 많다. 그것때문에 확장하기 힘들다(...).~~뭐만 하면 반국가연합이 걸리는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소국들이 굉장히 많다. '''아주 많이''' 이것덕분에 생각없이 확장하다가는 소국들이 반국가 연합을 형성해 처벌전쟁을 일으켜 쫄딱 망할 수 있다. [* 게임 시스템상 땅 하나짜리 소국 10개가 땅10개먹고 있는 국가보다 훨씬 쎄다. 강한 국가를 동맹으로 들고 있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된다.]
- GHQ . . . . 2회 일치
연합국최고사령관총사령부(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
GHQ는 General Headquarters의 약자로서, '총사령부'라는 뜻인데 [[일본]]에서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군]]--[[연합군]][* 소수의 영연방군이 참가하였으나, 대부분은 미군이었으므로 사실상 미군.]이 [[일본]]에 --[[막부]]--[[군정]]을 펼치기 위하여 설치한 사령부를 뜻한다. [[맥아더]]를사령관으로 하였으며, GHQ에서 지시하는 점령정책이 일본 정부에 의하여 시행되었다. 1945년에 설치되어, 1952년에 강화조약이 맺어지면서 폐지되었다.
- 강재형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 [[2007년]] 2월 ~ [[2009년]] 2월 :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회장
* [[2013년]] 12월 아나운서연합회 아나운서대상시상식 대상
- 구자욱 . . . . 2회 일치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3할대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상무 야구단|상무]]-[[경찰 야구단|경찰]]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 김광석 . . . . 2회 일치
[[서울특별시|서울]]에서 태어나 [[부산광역시|부산]]로 상경하여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가요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 (1951년)|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 (밴드)|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96년 1월 6일 사망하였으나 사인 관련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 (밴드)|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밴드)|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 김대휘 . . . . 2회 일치
2008년 2월에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 법관에서 퇴직하여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하면서 동국제강 사외이사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였다. 2014년에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위원회 전문가위원에 지명되었으며 2014년부터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를 하였다.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2월 11일에는 민혁당을 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된 하피고인에 대해 국보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죄 등을 유죄로 인정,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26118]</ref> 6월 15일에 1994년말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추종하는 국제사회주자들이라는 조직에 가입한 뒤 이 조직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노동자연대 등을 소지한 혐의 등으로 4월달에 구속되어 징역 3년이구형된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의 이적단체 가입혐의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것으로 보여 보석을 허가한다"고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244671]</ref>
- 김동한 (1919년) . . . . 2회 일치
| 기타 이력 = 1940년 [[대구가톨릭대학교|경상북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전문학사 출신 <br /> 1956년 [[국방대학교|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출신 <br/> [[성직자]], [[천주교]] [[사제]], [[수필|수필가]], [[군인]] <br/> [[신민당 (1967년)|신민당]] 국가보건행정특보위원(1975년) <br /> [[한국가톨릭결핵시설연합회]] 회장
[[1978년]] ‘한국 가톨릭 결핵 시설 연합회’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되어 결핵환자 요양원을 맡았다.<ref name="가톨1"/><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7738&yy=2009 영남권 대표 인터넷 신문 "매일신문"<!-- 봇이 붙인 제목 -->]</ref> [[1983년]] [[9월 28일]] 선종하였다.
- 김만수(정치인) . . . . 2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역시 경기도 부천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부천 토박이 출신인 전 경기도의원 [[새누리당]]의 이재진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부천시장) || [[새정치민주연합]] || '''192,038 (54.68%)''' || '''당선 (1위)''' || ||
- 김범룡 . . . . 2회 일치
| 출판사 = 연합뉴스
| 저자 = 연합
- 김상희 (가수) . . . . 2회 일치
'''김상희'''(金相姬, 본명 : 최순강(崔順江), [[1943년]] [[3월 29일]] ~)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ref>김상희는 예명이고, 본명은 최순강이다.</ref>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고려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1년]] 가수로 데뷔, [[1965년]]부터 활동하였다.<ref>처음 리사이틀 갖는 金相姬, 《경향신문》, 1970.1.17.</ref> [[1971년]] [[동양방송|TBC]] 가요대상, 1973년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부문, [[1977년]]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즐거운 아리랑"을 부르며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의 학장 및 [[한국교통방송]]의 DJ로 활동 중이다.
1999년에는 아들의 병역비리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42800209123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9-04-28&officeId=00020&pageNo=23&printNo=24181&publishType=00010 돈으로 때운 국방의무] "1999년 4월 28일 동아일보 참조"</ref> <ref>[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90427023100525 <초점> `有錢免除' 병역면제 비리 실태] "1999년 4월 27일 연합뉴스 참조"</ref>
- 김석원 (금융인) . . . . 2회 일치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 이재국•국제금융국에서 근무하였고, 재정경제부 중소금융과장, 금융•부동산실명단 총괄반장, 보험제도과장 등을 거쳐, 일본 대장성에 파견 연구관으로 재직하였다. 이후 [[재정경제부]] 본부국장, 한국국제조세교육센터 소장, 미국 미시간대(금융연구센터)의 Visiting Scholar로서 활동하였으며,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금융감독위 및 [[금융감독원]] 합동대변인,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김선길(국회의원) . . . . 2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99년 [[한일어업협정]]이 문제가 되어 경질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이원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김성곤 . . . . 2회 일치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 지금의 [[고려대학교]]의 전신. 김성곤은 나중에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을 맡기도 했다.]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엔 [[유도(스포츠)|유도]] 선수로 활동했고 정계에 있을 때 대한유도회 회장을 역임한 체육인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성곡컵 국제유도대회'가 있다.
1940년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1948년에는 고려화재해상보험과 자본금 1억 원의 금성방직을 설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이 불탄 뒤, 1952년 동양통신을 창간하고 1953년 연합신문을 인수하였다. 1956년 태평방직과 아주방직을 인수하였다. 1959년 [[국민대학교|국민대학]]을 인수[* 보성전문학교 상과 시절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 교정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교정에서 풀을 뽑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이때부터 육영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국민대에서는 김성곤을 학교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와 함께 양대 건학 공로자로 기념, 추모하고 있다.]하고, 1962년 [[쌍용양회]]를 설립하였다.
- 김성주 (기업인) . . . . 2회 일치
2009. 11 브뤼셀유럽연합의회에서 국제휴먼밸류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Human Values)의
- 김수자 . . . . 2회 일치
'''김수자''' ([[1957년]] ~ )는 [[뉴욕]], [[파리]],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개념 미술|개념 미술가]]이다. 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품하였다.<ref name="biography">Kimsooja Biography: http://www.kimsooja.com/biography.html</ref>그의 작업은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가장 첨예한 회화적 질문으로부터 예술과 삶의 조건들을 연계하여 다루어 왔고 이 시대를 치열하게 직면해 왔다. 구겐하임 빌바오(201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 밴쿠버 아트 갤러리(2013), 국제 갤러리(2012), 뉴욕PS1/현대미술관(2001)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30여 회의 주요 국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다.<ref>{{웹 인용|url=http://www.vmspace.com/2008_re/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artndesign&idx=11956&pageNum=3|제목=SPACE Magazine|웹사이트=www.vmspace.com|확인날짜=2016-11-18}}</ref>
- 김숭실 . . . . 2회 일치
== 국제 전적 ==
* [http://www.ittf.com/ittf_stats/All_events3.asp?ID=3625 국제 탁구 연맹 기록]
- 김양 (1953년) . . . . 2회 일치
* [[1982년]] :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국제 관계|국제관계학]] 전공)
- 김창규 (작가) . . . . 2회 일치
'''김창규'''([[1954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목회자]]이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창립에 기여했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전국연합회(기청) 수석부회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그밖에 문화운동연합 사무국장을 지냈고 민족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NCC총무를 지냈고 인권위원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김태희 . . . . 2회 일치
2004년 김태희는 헤럴드경제 기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6&aid=0000148878 'I Love Companies'`기업사랑 캠페인` 본궤도 올랐다] ''헤럴드경제'' 입력일자 2004-09-21</ref> 2005년에는 남편 [[이완 (1984년)|이완]]과 함께 수호천사로 위촉돼 [[독도]] 사랑 캠페인을 벌였고, 같은 해 5월 [[스위스]]에서 친선문화대사로 선정 돼 "독도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와 리메이크 앨범 등을 나눠주는 활동을 했다.<ref name="광주일보"/><ref>[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SWISS FRIENDS 2005] {{웨이백|url=http://www.myswitzerland.co.kr/etc/entertainer/friends/main.html |date=20110813103724 }} 스위스관광청 홈페이지</ref><ref>[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0217085145988&p=yonhap 김태희, 스위스친선문화대사 선정] 연합뉴스 입력일자 2005.02.17</ref> 이후 2007년 유방암의 위험성을 알리는 핑크리본 홍보대사로 활동을 했고, 7월 22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ref>[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0419123412761&p=SpoChosun 김태희, 유방암 조심하세요 핑크리본 홍보대사] 스포츠조선 입력일자 2007.04.19</ref> 또한 12월에는 [[BC카드]]의 후원을 받아 서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밥차 배식 봉사활동을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밥차 배식 봉사활동 펼쳐|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3&aid=0000027316|저자=탁진현|출판사=[[네이버]]|날짜=2007-12-05|확인날짜=2011-09-15}}</ref> 김태희는 2005년부터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도 난치병 어린이들과 함께 자선 활동을 계속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김태희, 난치병 어린이들과 따뜻한 만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846672|저자=김가희|출판사=[[네이버]]|날짜=2006-05-16|확인날짜=2011-09-15}}</ref>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난치병 아동들로 이루어진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앨범에 참여했는데, "Make-A-Wish"를 녹음했다.<ref>조성훈 [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배우 김태희, ‘메이크어위시 합창단’ 음원 참여] {{웨이백|url=http://www.gaonchart.co.kr/main/section/hotnews/kpop/view.gaon?idx=527 |date=20120316165433 }}, 《[[가온 차트]]》, 2011-09-15 작성. 2011-09-15 확인.</ref>
|url=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92306|출판사= enews24|저자=전수미|날짜=2013-01-01|확인날짜=2013-09-12}}</ref> 2017년 1월 17일, 이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올려 "이제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훌륭한 [[남편]]이자 [[남자]]가 되려 한다. 그녀는 제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나 변치 않고 늘 제 곁을 지켜주며 언제나 많은 것들로 감동을 주었다"에 이어 "이제 신뢰가 쌓이고 사랑이 커져 결실을 맺게 됐다"며 "결혼식과 시간은 현재 시국이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여서 최대한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결혼 소식을 알렸다. 두 사람은 2011년 한 소셜커머스 광고에 함께 출연하며 친분을 쌓았고, 2012년 가을부터 교제를 시작했고 2013년 1월 1일 열애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둘은 결별설 한번 없이 [[잉꼬]] 커플로 주목 받아왔다.<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김태희, 교제 5년만에 결혼…빅스타 부부 탄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8965318|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은정|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ref>{{뉴스 인용 |제목 =이완, 손편지로 직접 결혼 발표 "김태희, 최고의 선물"[공식입장 전문]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3039239|출판사 =스포츠조선 |저자 =이유나|날짜 = 2017-01-17|확인날짜 =2017-09-09}}</ref>
- 김현정 (1979년) . . . . 2회 일치
2009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나비'를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활동을 마치고 '가톨릭상담봉사자과정'에서 1년 넘게 심리상담 교육을 받은 후 화가가 되었다. 이를 통해 2014년 6월에는 첫 개인전인 <묘사와 연기>가 열렸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965311 화폭으로 옮긴 심리 치유…배우겸 화가 김현정 개인전],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작성.</ref>, 2014년 11월 9일 부터 11월 19일까지 [[백남준]], [[이왈종]]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하나에서 셋으로:한국 예술가 3인전>에 작품전을 열었다.<ref>[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18578 ‘동양화로 그린 장서희는?’ 화가 김현정, 中진르미술관 초청], 뉴데일리, 2014년 10월 7일 작성.</ref>
* "선물"<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1/0200000000AKR20160921175700005.HTML '배우 화가' 김현정 "내 그림이 누군가에게 선물이었으면"], 연합뉴스, 2016년 9월 22일 작성.</ref>
- 김희정 (펜싱선수) . . . . 2회 일치
'''김희정'''(金熙正<ref>{{뉴스 인용 | 제목=<프로필> 펜싱 에폐 금메달 金熙正 | 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013398 | 출판사=연합뉴스 | 저자= | 쪽= | 날짜=1995-04-15 | 확인날짜=2018-09-14}}</ref>, [[1975년]] [[1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펜싱]] 선수로 주 종목은 [[에페]]이다.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과 [[2004년 하계 올림픽]]의 출전 경험이 있다.<ref name="sports-reference">{{웹 인용|url=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ki/kim-hui-jeong-1.html |제목=Kim Hui-Jeong Olympic Results |확인날짜=2012년 2월 19일 |웹사이트=sports-reference.com}}</ref> 그녀는 [[2002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하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154716 펜싱 이승원-김희정 2관왕 찔렀다]</ref>
* {{언어링크|en}} [http://fie.org/fencers/HEE_JEONG-KIM-4974/ 김희정] - [[국제 펜싱 연맹]]
- 김희철(1983) . . . . 2회 일치
2011년 6월 11일 'SMTOWN LIVE WORLD TOUR in PARIS' 공연에서 레이디희희로 또 한 번 분장했다. 여장남자 기믹을 국제적으로도 밀 생각? 이제는 본인도 적당히 즐기는 듯하다.
* 세계 어느 곳을 가도 [[E.L.F.]]들은 희철에게 '사랑해요 김희철 우유빛깔 김희철' 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언어와 국가의 장벽따윈 무시하고 한국어로 외쳐주는 것이 포인트다.(...) [[https://youtu.be/--LOYqBe8XU|타이완의 타오이완 국제공항 입국영상(음량 주의)]], [[https://youtu.be/NvKiQKg8CgE|본인이 리드할 때]], [[https://youtu.be/yaTWwUpJOHs|다른 슈퍼주니어 멤버가 리드할 때]]
- 깨끗한 독일국방군 신화 . . . . 2회 일치
사민당이 주도한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는 군부의 지지를 크게 받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군주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던 독일군은 새롭게 들어선 공화국 정부에 제대로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주요 장성들은 빌헬름 2세의 퇴위와 군주제 폐지를 일시적, 잠정적인 상황으로 여겼으며, 장기적으로는 군주제의 복귀를 바라고 있었다. 독일 장교단은 기본적으로 군국주의를 추종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제 정치를 멸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결국 공화정 내에서 연합국 측의 압력으로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자 이를 굴욕으로 받아들이고, 조약의 군비제한을 벗어나 과거의 독일제국군이 복귀되기를 바랬다.
연합군의 허가와 지원을 얻을 수 있게 된 전직 국방군 장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사를 자신들의 시점에서 저술할 수 있게 되었다. 1946년 6월에, 프리츠 할더 육군 참모장이 책임자가 되어 328명의 독일 장교들이 제2차 대전 시기의 군사 서술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저술하였으며, [[독소전쟁]]에 대한 주요 자료 제공을 독점할 수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1화 . . . . 2회 일치
* 류큐는 두 사람이 추가돼 전력도 보강됐으니 나이트아이가 요청한 "그 안건"에 응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 나이트아이는 시에핫사이카이와 오버홀에 대한 수사에 다른 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그 중에는 현재 [[키리시마 에지로]]가 인턴 활동을 시작한 사무소도 있다. 나이트아이는 여러 사무소의 인원을 팀업해 오버홀 일당을 일거에 처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수사는 [[빌런연합]]과 연결될지도 몰라 더욱 중요한 일이라 하는데.
* 그 상대는 바로 빌런연합의 [[시라가키 토무라]]. 과연 그가 가져온 "답변"은 어떤 것일까?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5화 . . . . 2회 일치
그는 스크린을 띄워 설명을 계속한다. 스크린에는 [[빌런 연합]]의 일원인 [[트와이스(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트와이스]], 본명 "부바이가 와라진"의 모습이 나타난다. 스크린 속의 그는 [[오버홀]]과 접촉하고 있다. 이들의 접촉 장면을 센티피더가 목격했으며 경계가 심해 추가적인 미행은 불가능했지만 이후 경찰의 협조로 두 조직 간의 다툼이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그랜토리노에게 연락이 간 것도 빌런 연합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츠카우치 나오마사]]에게도 연락이 갔다. 원래는 그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또다른 목격 정보를 입수해 그쪽으로 갔다. 그랜토리노는 자신이 나이트아이 사무소를 소개해준 덕에 미도리야가 엮이게 됐다고 여겨서 그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미도리야는 그렇지 않다고 사양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9화 . . . . 2회 일치
* [[서 나이트아이]]가 이끄는 히어로&경찰 연합군은 신속하게 시에핫사이카이의 아지트를 급습했으나 [[오버홀]] 치사키는 부하들을 장기말 삼아 도주한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음모에 이용되는 소녀 "에리쨩"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경찰 연합군. 조직원들이 몰려나와 방해하지만 현지 히어로들의 적극적인 마크로 어떻게든 건물 내부까지 진입한다. 조직원 전체가 나서서 시간 끌기를 하는 이러한 행태가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든다. [[패트껌]]은 "수상한 정도가 아니다"고 날을 세운다. 레게풍 히어로 [[록록]]은 진행되는 상황이 영 불안하다며 투덜거린다. [[아마지키 타마키]]는 정보가 샜음을 짐작하고 적들이 한덩이가 된 것처럼 군다고 소감을 밝힌다. [[아이자와 쇼타]]는 이들이 떳떳하지 못한 만큼 결속을 중요시하는 거라고 혹평하고 간부나 [[오버홀]] 치사키가 보이지 않는 걸 들어 수뇌부는 이미 지하에서 은폐 중이거나 도주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직함 심성의 [[키리시마 에지로]]는 "그딴건 충의도 뭣도 아니다"고 버럭하며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건 사나이답지 않다고 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2화 . . . . 2회 일치
* [[아마지키 타마키]]를 뒤로 하고 [[오버홀]]을 추적하던 히어로 연합군은 뜻하지 않은 함정에 빠진다.
* [[서 나이트아이]], [[패트껌]]을 필두로 히어로와 경찰 연합군은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고 있다. 추격대에 있는 [[키리시마 에지로]]는 학교 선배이자 사무소 선배이기도 한 타마키의 안전을 걱정하고 [[미도리야 이즈쿠]]도 동감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6화 . . . . 2회 일치
* 그런 오버홀의 뒤를 [[빌런 연합]]의 [[트와이스]]와 [[토가 히미코]]가 뒤따르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빌런 연합]]. [[토가 히미코]]와 [[트와이스]]. 그들이 오버홀을 뒤따르고 있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9화 . . . . 2회 일치
이젠 적도 아군도 없다. [[히어로(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히어로]]든 [[빌런 연합]]이든 야쿠자를 얕보는 녀석들을 갈아버릴 뿐. 그의 벽이 분쇄기처럼 휘감긴다.
나이트아이는 상황을 종합해보곤 빌런 연합에게 이용 당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로인해 성가신 미궁도 끝났다. 일장일단. 이제 그들을 막을 장애물은 얼마 없다. 미도리야는 자연 에리쨩과, 그들을 앞서간 선배 [[토오가타 밀리오]]를 떠올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3화 . . . . 2회 일치
* 이리나카를 제압한 히어로 연합군은 미궁을 수복하고 적의 정보를 얻으려 하나 개성 부스트 약물의 부작용으로 그럴 만한 상태가 아니다.
* [[서 나이트아이]]는 [[빌런 연합]]의 개입은 그 둘만이라고 상정하고 자물회 히어로 "록록"은 모진 말투로 일행을 질타해 추격을 속행시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59화 . . . . 2회 일치
* 오버홀은 의식이 거의 날아간 상태에서도 조직의 부흥과 위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야쿠자가, 두목이 바보나 빌런취급 당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 상황을 끊고 싶다는 일념이 평생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도 그의 팔은 미도리야에게, 에리에게 뻗쳤다. 그러나 에리의 능력은 한도를 넘어서 폭주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닿은 것만으로 오버홀의 융합이 "되돌려"져서 무방비하게 내쳐진다. 그때 류큐 등과 함께 히어로 연합군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우라라카 오챠코]]가 재빠르게 오버홀을 제압. 하지만 에리의 폭주와 거기에 휘말린 미도리야에겐 손을 쓸 수 없었다. 이대로는 미도리야가 되감겨 사라질지도 모른다.
* 시에핫사이카이의 조직원 11명은 구속, 전원 중상이라 타코다나의 빌런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호송 차량은 이들과 이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 문제의 탄환들과 아직 보고에 없는 캡슐을 전부 싣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렇게 작전은 끝나는 듯 했지만, 한 가지 사건이 남아있었다. [[빌런 연합]]과 [[시가라키 토무라]]. 그가 호송차량을 급습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8화 . . . . 2회 일치
교전 허가를 받은 학생들은 [[빌런 연합]]에 반격하기 시작한다.
* 빌런연합의 [[마그네]]는 미도리야가 [[머스큘러]]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판단해내고는 죽이려 들지만 그 중 "[[스피너]]"라는 [[도마뱀]] 같은 빌런은 "[[스테인]]이 인정한 자"라며 진정한 히어로이므로 처리하지 않겠다고 나온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9화 . . . . 2회 일치
[[빌런 연합]]이 습격한 가운데 [[토코야미 후미카게|토코야미]]가 폭주하고 만다.
* [[쇼지 메조]]는 빌런연합과 교전 중 토코야미를 숨겨서 도주하나 하필이면 토코야미가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개성]]이 폭주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5화 . . . . 2회 일치
attachment:빌런연합.png
* 한편 이 생방송을 보고 있던 [[빌런 연합]]의 [[시가라키 토무라]]는 "왜 히어로가 질책 당하는 분위기냐"며 빈정거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6화 . . . . 2회 일치
* [[빌런 연합]]의 아지트에 있는 바쿠고는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이녀석들(빌런연합)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중요인물. 이녀석들 방침이 바뀌기 전에 두세 명 때려 죽이고 탈출하자."라고 결심한다.
- 노재헌 . . . . 2회 일치
*1991년-1993년 국회의장실 국제담당비서관
*1993년-1994년 일본 도쿄대 국제관계론 객원연구원
- 로버트 켈리 . . . . 2회 일치
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영국 BBC, 중국 CCTV, 알자지라 등 세계 주요 언론에 출연하거나 글을 기고하고 잇다
2015년에 “박근혜의 대통령직은 표류하고 있다(Park Geun-Hye's presidency is adrift)”는 논평을 호주의 로위국제정책연구소가 발행하는 인터프리터 지에 기고했다.[[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26 (참조)]]
- 마기/326화 . . . . 2회 일치
* 듣고 있던 쥬다르는 자기는 그런 위화감 못 느꼈다고 빈정거리다 연백룡에게 "넌 마법사가 맞긴 하냐"고 디스 당한다. 알리바바는 매그노슈타르 때 같은 이변은 없다는걸 재확인하고 일단 안심한다. 그런데 연홍옥이 기운이 없는 것 같은데. 알리바바가 말을 걸자 홍옥은 국제동맹을 이탈한 문제로 아직도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파장이 예상한 것 이상이라서 과연 잘한 짓인지, 앞으로 어찌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여러 사람과 토론해서 결정한 일이고 뢰엠과 귀왜국도 동조해준 걸 들어서 자신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쥬다르는 그런 홍옥이 칠칠맞지 못하다며 역시 황제는 백룡이 돼야했다고 투덜거리다 나가버린다.
* 아무튼 세계의 구멍에 대해선 아직도 의심을 지울 수 없는데, 알리바바가 근처에 국제동맹의 본부가 있으니 신드바드에게 연락해보자고 한다. 그런데 신드바드가 정말로 연락을 받는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처럼 상회에서 눈코 뜰 새없이 일하는 중. 알리바바가 낙뢰에 대해서 보고받은게 없냐고 묻자 그런건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리바바와 모르지아나의 결혼 건을 언급하며 "아무리 바빠도 거기엔 꼭 참석할 거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가 청한 적도 없는데 보호자로서 스피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일전에 알리바바가 "난 신드바드씨의 아들 격"이라고 말했던걸 되갚아준 것이다. 알리바바는 바르카크에게 변명하게 생겼다고 웃으면서 넘긴다.
- 마기/342화 . . . . 2회 일치
[[쟈파르]]는 국제동맹과 칠해연합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다른 것을 보지 않았다. [[샤를르칸]]이나 다른 팔인장들은 과거의 신드리아 왕국을 그리워하며 한탄만 했다. 무리도 아니다. 그 섬에서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드는게 그들의 최종목표였기 때문이다.
- 마기/350화 . . . . 2회 일치
* 그런데 아이디어를 낸 신드바드는 암담한 기분이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고도 크게 낙담하는데, 지금껏 자신이 진행하던 작업은 그토록 증오했던 "군국주의적 방법론"이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운명을 쥐고 있는 존재들은 적이고 타도해야 한다. 그는 세상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게 싫어서 칠해연합을 만들었고 국제동맹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작 지금에 와서는 어떤가? 입으로는 혁신가를 자처해왔지만 결국 그도 알마트란 때부터 이어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서 벗어난 것은 타인의 의지, 알리바바 덕분이다. 그는 지금껏 운명을 꿰뚫어보고 만인을 이끄는게 "특이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사고가 타의에 의해 변했다면?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끌려가는게 당연해지는게 아닐까?
- 박명수(MC) . . . . 2회 일치
* 2006.03 ~ - 사무용소프트웨어 연합(BSA) 한국 홍보대사 2008년
'범국민 지식재산권 연합' 출범식
- 박재홍(1941) . . . . 2회 일치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미시 지역구 공천이 [[박세직]]에게 밀려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교통위원장을,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초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준홍 대신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 구미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박세직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 박준홍 . . . . 2회 일치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에서 정치인 생활을 했지만 선거에서는 계속 낙선했다. 특히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선거구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거구에서 사촌 형인 [[박재홍(1941)|박재홍]] [[민주정의당]] 후보와 대결하여 낙선하였다.
그는 이후 [[국가재건친박연합]]의 대표가 되었는데 공천 헌금을 받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86590]] 그리고 2011년 5월 13일 상고 기각 ( 2011도2844 )
- 박홍우 . . . . 2회 일치
* 민사소송법 제426조 제3항의 위헌여부에 관한 고찰, 세계헌법연구 제1호,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 (1994)
* 핀란드의 사법제도, 세계헌법연구 제8집, 국제헌법학회 한국학회 (2003)
- 박희부 . . . . 2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김고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한보그룹 비리로 구속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정치인)|정진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후보 [[경선]]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 백일섭 . . . . 2회 일치
*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2001년 1월 ~ 2001년 2월)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창극 배우]][[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부산광역시 . . . . 2회 일치
김해국제공항에 있는 에어부산 여객기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 서정돈 . . . . 2회 일치
* 2009년 ~ 2014년 : 국제유학연합회 이사장(제4대)
- 서정환 . . . . 2회 일치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 소벌도리 . . . . 2회 일치
[[일연]]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소벌도리는 하늘에서 형산으로 내려와 돌산고허촌의 촌장이 되었다고 한다.<ref name="연합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47848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 네이버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기원전 69년]]에 6부의 촌장들이 모여 덕(德)이 있는 자를 찾아 왕으로 삼고 수도를 정해 나라를 열 것을 결의하였는데 나정(蘿井)에서 이상한 기운이 비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서 붉은 알을 얻었다고 한다. 그 알에서 나온 아이가 [[박혁거세]]이며,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사로국]]을 건국하였다. 《[[삼국사기]]》는 나정에서 알과 혁거세를 처음 발견하여 양육한 것이 소벌공이라 기록하고 있다. 고허촌은 [[신라 유리왕|유리왕]] 때 사량부(沙梁部)로 개칭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반면 《[[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의 조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진주 소씨 족보의 기록에 따르면 25세손 [[최치원]]은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고<ref name="연합1" /><ref name="syge1">[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71228001731&subctg1=&subctg2= [대한민국통맥풍수] <57·끝>경주 최부잣집과 자기 풍수 - 세계를 밝히는 신문 - 세계일보<!-- 봇이 붙인 제목 -->]</ref>, 24대손 [[소경 (사람)|소경]]은 진주 소씨의 선조가 되었다.<ref name="hom1">[http://www.hometer.com/search/personalcontent.asp?m_bon=%B5%BF%C1%D6%28%F5%CB%29&m_sung=%C3%D6%28%F5%CB%29 족보나라 - 대한민국 대표 족보 사이트 종친회<!-- 봇이 붙인 제목 -->]</ref> 그 외에 신라 말, 고려시대 초에 살았던 [[최준옹]](崔俊邕) 도 소벌도리의 25세손이다.<ref name="hom1"/>
- 소지섭 . . . . 2회 일치
|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 국제부문상
- 송병구 . . . . 2회 일치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월드 사이버 게임즈|WCG 2007]] 그랜드 파이널 8강에선 진영수를 꺾고 결승에선 마재윤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던 중국의 [[샤쥔춘]]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으며, WCG 2008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2회 연속 결승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도 건재를 알리며 삼성전자 칸의 2연속 광안리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WCG 2009에서는 스타크래프트 부분 WCG를 최초로 3회연속 진출에 성공한 후 이제동과의 결승에서 안타깝게 패배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IEF2008에서 결승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준우승을 기록하였으며 IEF2009에서는 결승에 올라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대회에서 '송순신'등으로 불리며 대활약을 벌였다.
*송순신: WCG를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여 지어진 별명이다. 2007 wcg에서 마재윤을 탈락시킨 샤쥔춘을 이기고 우승을 하고,IEF 2009에서 한국 선수들이 대거 탈락한 가운데(김택용,임요환,김정우) 우승하며 더욱 굳어진 별명이 됐다.
- 송종익 . . . . 2회 일치
[[1936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하와이 주|하와이]]에서 열린 해외한족대회 때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하여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설립했고 집행부 위원 겸 재무를 맡았다. 1941년 12월에 열린 대한인국민회 총회에서 [[로스앤젤레스]] 대표로 참가하여 대한인국민회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44년]]에는 주미외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다. [[1945년]] 11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귀국했지만 몇 달 뒤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다. [[1956년]] [[1월 7일]] 사망했으며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스틸오션/일본 . . . . 2회 일치
>후부키급 구축함은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해군이 건조한 구축함급이다. "특형 구축함"으로 설계된 만큼 전에 만들어진 어떤 구축함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초도함인 후부키는 엔다우 전투에서 연합군 구축함 한척을 격침시켰으며, 순다해협 전투에서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후부키는 에스페란스 곶에서 격침되기 전까지 과달카날에서의 몇몇 전투에 참전했다.
>순수히 일본제국해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함급이다. 그 당시 제일 큰 구경이었던 410mm 주포를 장비한 나가토급 두척은 미국의 콜로라도급 세척, 영국의 넬슨급 두척과 함께 "빅 7"이라고 불렸다. 1930년대 전면적인 현대화 개수를 거쳤다. 야마토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나가토급은 연합함대 기함을 맡았다. 나가토급 두 척은 미드웨이 해전에도 참가했다. 1943년 6월, 하시라지마에 정박해있던 무츠가 후방 탄약고 폭발로 침몰했다. 나가토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미육군에게 나포되어 교차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의 표적함으로 함생을 마쳤다.
- 승리(빅뱅) . . . . 2회 일치
||<#fde100> '''학력''' ||<(> 국제사이버대학교 방송연예학과 ||
|| '''9월 5일''' ||<|2> 후쿠오카 ||<|6> 일본 ||<|2> 후쿠오카 국제센터 || ||
- 신동미 . . . . 2회 일치
주연작 영화 《'로맨스 조'》 《'꿈보다 해몽'》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전주 국제'''영화제''' 한국 단편영화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 안병용(기초단체장) . . . . 2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의정부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번에는 김문원 전 시장의 지지 선언을 받았다.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의정부시장) || '''[[새정치민주연합]]''' || '''87,959 (51.82%)''' || '''당선 (1위)''' || ||
- 안재욱(배우,가수) . . . . 2회 일치
* 2004년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 시상식 최우수남자연기상 《오필승 봉순영》
* 2010년 제4회 대구 국제 뮤지컬 (DIMF) 올해 뮤지컬 인기스타상
- 앙주 제국 . . . . 2회 일치
앙주 제국은 잉글랜드 왕령과 프랑스 내의 여러 공작령, 백작령이 상속과 혼인을 통하여 [[동군연합]]을 이룬 것으로서, 각 지역의 통치체계는 상당히 달랐고 한 명의 군주 아래 동군연합일 뿐, 실제로 하나의 '제국'이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고 '제국'이기는 커녕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 양윤재 . . . . 2회 일치
* 1996 ~ 1999: 서울대학교 국제교류센터 소장
* 2003.08 ~ 2006.08: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집행위원(임기 3년)
- 오경태 . . . . 2회 일치
* [[농림수산부]] 국제협력국 국제협력과장
- 오병희 . . . . 2회 일치
오병희는 심장질환과 고혈압 분야의 권위자다. 심부전·고혈압의 다양한 국제 임상시험 연구에 국가대표 연구자로 참여했다. 특히 2005년 국내 연구진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혈압 신약 다국가 3상 임상시험 총괄연구책임자로 선임됐다. 새로운 고혈압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받을 수 있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국내 임상시험 수준의 국제 신뢰도를 높였다.
- 오중기 . . . . 2회 일치
*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무위원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지사) || [[새정치민주연합]] || 189,603 (14.93%) || 낙선 (2위) ||
- 울진군 . . . . 2회 일치
그러나 울진은 항공교통의 요충지 중 하나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및 [[유럽]]/[[중국]]에서 우리나라 영공을 관통하여 [[일본]]으로 가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은 울진 상공을 거쳐서 대한민국을 떠난다. 일부 예외가 있는데 이 경우는 강릉 상공을 통해 대한민국을 떠난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진은 경상북도와는 조금 다른 성향을 보였는데, 지역적 성향 탓도 있지만 [[김중권]]이라는 지역 유명 정치인 때문이다. 1981년부터 3선을 달리고 이후 20년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6번이나 연이어 낙선했으나 매우 높은 득표를 보였다.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공천탈락 - "무당파국민연합" - [[김대중]]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 [[새천년민주당]] 대표 - 무소속의 길을 밟았으며,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먼저 "영남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 위의공 . . . . 2회 일치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회맹-제후연합군을 구성하여 이민족과 대항하는 집단안보체계는, 과거 [[주나라]]가 주도하였으나 춘추시대가 개막하고 주나라의 권위가 상실하면서 붕괴하였다. 따라서 새로운 권위로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만들어서 질서를 바로 잡을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국강병 정책을 펼치던 제나라의 [[제환공]]이 주도하여 위나라를 재건해줌으로서, 주 천자의 권위를 대신하여 이러한 집단안보체계를 주도하는 '패자'의 시대가 나타나는 배경이 되었다.--결국 제환공의 패업의 발판일 뿐이라는 뜻인데 장대하게 썼다.--
- 윌밍턴 . . . . 2회 일치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항구였다. 이 도시가 함락되며 아메리카 연합국은 외부와 단절되게 된다.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2회 일치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남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상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유지인(1956) . . . . 2회 일치
[[1980년]]에 제작된 이두용 감독의<피막>으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3대 국제 영화제 중 베니스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며 한국영화 세계화의 초석이 된다.
- 윤석용 . . . . 2회 일치
[[2012년]] [[2월 14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후원받은 8275만원 상당의 옥매트 250개를 횡령해 지역 복지단체와 동료의원 사무실 등에 임의로 전달한 혐의,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동을) 선거구민과 연관된 단체에 축구공 100개와 30여만원 상당의 김ㆍ빵을 기부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장애인체육회 직원 20여명을 동원해 단계적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내용의 투표 운동을 시켜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횡령혐의는 무죄,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었다.<ref>{{웹 인용|제목=옥매트 횡령 윤석용 의원 불구속 기소(종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2434.html|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2-02-14}}</ref>
2010년 5월 장애인체육회 회장실에서 간부들이 보는 앞에서 직원을 지팡이로 때린 공소사실에 대해 1심 유죄가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아 문체부로부터 2013년 1월 22일 대한장애인체육회장직을 직무정지당했으나, 법원 가처분 판결을 통해 복직되었다.<ref>{{웹 인용|제목='직원 폭행'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 직무정지(종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1/22/0200000000AKR20130122199251007.HTML?did=1179m|저자=[[연합뉴스]]|확인날짜=2013-01-22}}</ref>
- 윤주상 . . . . 2회 일치
* [[연합뉴스TV]] 《[[명장의 조건]]》 (2015년) 내레이션
* [[1998년]] 서울국제연극제 남우주연상
- 이갑성 . . . . 2회 일치
[[1910년]]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진학, 약학을 전공했다. [[1913년]] 세브란스의전 약학과를 마치고 다시 배우다가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을 졸업하였다.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였다.
|출판사=연합뉴스
- 이기택 . . . . 2회 일치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될 당시 김영삼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면서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결국 [[노무현]], [[김상현(1935)|김상현]]과 함께 잔류하여 [[민주당(1990년)|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당시 잔류파들중에 지명도나 정치경력 등 모든 면에서 넘버원이었다.] 이후 1991년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1991년)|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당시 정가에서는 "이기택이 김대중에게 시집 갔다"고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상 이때의 결단으로 이기택은 김대중에 이어 야권 제2인자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박재동]] 화백은 '한겨레그림판'에서 '로보트 야권V'라는 제목 하에 김대중과 이기택을 각각 로보트 태권V로 형상화하여 손을 잡은 모습을 그리고, 이에 놀란 김영삼을 괴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김대중과 이기택의 연합은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준 소식이었기 때문에, '로보트 야권V'라는 만평은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10년 전에 이미 신민당 부총재였던 사람이다.
- 이만섭 . . . . 2회 일치
그 해 11월에는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6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고,<ref name="경향_6311">共和黨,過半數線넘어, 《경향신문》, 1963.11.27</ref> 그 후 제7·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ref name="동아_67">當選確定者, 《동아일보》, 1967.6.9</ref><ref name="경향_78">10代總選당선154人의얼굴들, 《경향신문》, 1978.12.13</ref> [[1968년]]에 개최된 국제의원연맹 제5차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회에 사사건건 간섭하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갈등을 겪었고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후반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중앙정보부]]장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후락]]과 [[김형욱]]을 연이어 탄핵하였고 [[박정희]]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들을 낙마시키기도 했다. [[1979년]] 제10대 총선에서 [[대구 중구의 국회의원|대구시 중구]]·[[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서구]]·[[대구 북구의 국회의원|북구]]에서 당선되었고 그해 [[민주공화당 (대한민국)|민주공화당]]의 당무위원이 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최규하 정부]][[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분류:김영삼 정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대중 정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한국국민당 (1981년) 당원]][[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국민신당]][[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윤치영]][[분류:김종필]][[분류:동아일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합천 이씨]]
- 이수진(치어리더) . . . . 2회 일치
2014년 1월 31일에 [[SBS]] 설특집 프로그램, '스타VS국민도전자, 페이스오프'에 치어리더 연합팀[* [[삼성 라이온즈]]의 이수진,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SK 와이번스]]의 오지연, [[LG 트윈스]]의 [[강윤이]].]으로 출연하여 걸그룹 [[걸스데이]]와 댄스 대결을 펼쳤다. [[걸스데이]]는 '[[엄정화]]의 초대', 치어리더 연합팀은 상대편 '[[걸스데이]]의 기대해'와 '[[미쓰에이]]의 허쉬(HUSH)' 춤을 췄다.
- 이시종 . . . . 2회 일치
* 한국무술총연합회 회장
{{선거기록/KR/개인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 | 34대 | [[지방 관청|지사]] |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 새정치민주연합 | 361,115 표 | 49.75 | 1위 | 당선_충북 |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충청북도#광역자치단체장|재선]], 민선 6기 }}
- 이연희(배우) . . . . 2회 일치
* 2008년 제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보대사
* 2007년 제1회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 홍보대사
- 이열희 (1924년) . . . . 2회 일치
*** 5촌 당숙: [[이상백 (사학자)|이상백]](李相佰, [[1904년]] [[8월 6일]] ~ [[1966년]] [[4월 14일]], 사학자 겸 체육행정가. 前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아호(雅號)는 상백(想白), 백무일재(百無一齋).)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 <!--[[구강 성형외과]] 의사-->[[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영훈 (경제학자) . . . . 2회 일치
한신대학교 등에 강사로 출강했었고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및 다산학술문화재단 이사, 경제사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후 2017년 2월 28일 정년 퇴임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28/0200000000AKR20170228081000004.HTML?input=1195m|제목=서울대 교수정년식…'식민지근대화론' 이영훈 등 28명 퇴임|성=이재영|날짜=2017-02-28|뉴스=연합뉴스|언어=ko-KR|확인날짜=2017-03-26}}</ref>.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ref>{{웹 인용|url=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2&nNewsNumb=20170324115&nidx=24116|제목=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이어지는 주장”|언어=ko|확인날짜=2017-04-13}}</ref>
2013년 그가 저술한 《대한민국 역사》(도서출판 기파랑)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하는 시장경제대상 저술부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 이장영 . . . . 2회 일치
* 한국금융연구원 국제금융팀 연구위원
* 국제통화기금 통화환율정책국 스태프 이코노미스트
- 이종배(국회의원) . . . . 2회 일치
당시 한나라당이 충주에서 낼 수 있는 강력한 카드인 [[윤진식]]은 [[2010년 재보궐선거#s-2|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상태였고, 김호복은 2010년 선거의 패배로 경쟁력이 의심되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충주 출신 고위관료 테크를 탄 이종배를 적극적으로 영입한 것. 이후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민주당(2008년)|민주당]] [[박상규(정치인)|박상규]] 후보, 그리고 이종배 영입에 반발하여 미래연합 후보로 출마한 김호복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당선, 민선 5기 충주시장이 되었다.
임기가 다 끝나가던 2014년 3월 31일, 시장직을 사퇴한다.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 윤진식이 충북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그 자리를 대신하여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주시 [[선거구]]에 출마, 옛 한나라당 출신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한창희 후보에게 승리하고 당선되었다. 정작 이종배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준 윤진식은 도지사 선거에서 석패했다.[* 전국에서 제일 박빙이어서. 다음날 새벽4시까지 개표가 진행됐다.].(...) 이후 [[친박]]계에 속하였다. [[정우택]]의 최측근이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 이종원 (1953년) . . . . 2회 일치
[[서울대학교]] 공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복역. 중퇴후 [[1982년]] 도일했다.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졸업. [[도쿄대학교]] 법학정치학연구과 정치학 전공 석사 과정 수료. 법학 박사 학위 취득. 도쿄대 법학부 조교, [[도호쿠 대학]] 법학부 조교수, [[릿쿄대학교]] 법학부 교수, 2012년 4월부터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교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객원연구원. [[아사히신문]] 아시아네트워크 객원연구원.
[[분류:일본의 정치학자]][[분류:일본의 역사가]][[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일본의 대학 교수]][[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국제 기독교 대학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교수]][[분류:도호쿠 대학 교수]][[분류:릿쿄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판석 . . . . 2회 일치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이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경상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한나라당]] 이의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이현우 (가수) . . . . 2회 일치
*[[동국제약]] 인사돌플러스 ([[2018년]]) (fest.[[홍은희]])
2007년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는데 당시 이현우가 가지고 있던 국제 면허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상태였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0.114%의 만취상태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76&aid=0000053562 이현우, 무면허 음주 운전 적발]</ref> 그 뒤 자숙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자동차 광고 출연, [[대부업]] 광고 출연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 이현우(배우) . . . . 2회 일치
2013년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후지이 미나]]와 함께 PiFan 가이/레이디(홍보대사)로 선정되었다.
* 2013년 :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피판(PiFan)
- 이현욱(배우) . . . . 2회 일치
* [[2013년]] : 제11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경쟁부문 특별심사위원
* [[2012년]]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단편의 얼굴상
- 일곱개의 대죄/202화 . . . . 2회 일치
* [[멜리오다스]]를 비롯한 일행은 세간에서 "스티그마"(빛의 성흔)의 일원. 마신족에 대항하는 여신족, 거인족, 요정족의 연합군이다.
스티그마는 여신족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군이다. 여신족, 요정족, 거인족이 주축이다. 둘은 몰랐지만 일행은 스티그마 소속이었다. 멜리오다스가 마신족이 침략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다며 로우와 인사를 나눈다. 로우는 생존한 인간 전사들을 이끌고 자신들도 합류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멜리오다스는 기꺼이 승락한다.
- 임대윤 . . . . 2회 일치
* 1984 ~ 1987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졸업, 외교학석사 (학위논문명 - 국제정치의 개입주의에 관한 일연구 :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정책을 중심으로)
* 1993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 임효준 . . . . 2회 일치
[[2018년]] [[2월 10일]]에 열린 [[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쇼트트랙 남자 1500m]] 예선과 준결승에서 무난히 통과했고, 결승에서는 2분 10초 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2018년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기도 했다.<ref>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1734.html#csidxc20cd80bba1b97989951bed5ea919c0</ref> 또한 이번 기록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세웠던 2:10.949의 기록도 경신하게 되었다.<ref name="2018olympics-final">{{웹 인용|title=Short Track Speed Skating Results - Men's 1,500m Final A|url=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website=[[2018년 동계 올림픽|2018평창올림픽 공식사이트]]|publisher=[[국제올림픽위원회]]|accessdate=10 February 2018|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80210130015/https://www.pyeongchang2018.com/en/game-time/results/OWG2018/en/short-track-speed-skating/results-men-s-1500m-fnl-a00100-.htm|archivedate=10 February 2018|language=en|date=10 February 2018}}</ref>
* {{언어링크|en}} [http://www.isu.html.infostradasports.com/cache/TheASP.asp@PageID%3D302037&SportID%3D302&Personid%3D1023295&TaalCode%3D2&StyleID%3D0&Cache%3D2.html?387081 임효준] - [[국제 빙상 연맹]]
- 장가용 . . . . 2회 일치
| 기타 이력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출신 <br/> [[외과]] [[의사]], [[의학자]], [[교수|대학 교수]] <br/> [[종교|종교인]], 인도주의자, [[수필|수필가]] <br/>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br/>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보건행정교육특임위원(2002년)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안동 장씨]][[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인도주의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제주대학교 교수]][[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장소팔 . . . . 2회 일치
[[경성부]]에서 출생한 그는 [[1942년]]에 연극배우 첫 데뷔로 연예계에 입문했다.<ref>연합뉴스, 2002년 4월23일, 만담가 장소팔씨 별세,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158511]</ref> [[1944년]] [[박춘재]]의 문하에서 '재담 수업'을 쌓은 뒤 [[한국 전쟁]] 이후 '한양합주단', '조선창극단'을 통해 만담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ref>동아일보, 2002년 4월23일, [명복을 빕니다]'만담의 帝王' 장소팔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25613]</ref> 이후 고춘자와 함께 전국 명승 고적을 두루 돌아다니며 만담으로 묘사, 당시 TV가 없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민요만담이 인기를 끌었다. [[1996년]] 만담보존회를 만들어 [[2001년]] 7월까지 회장을 지냈다.
* 서울 중구 흥인동 성동공고 옆 장소팔의 집터에는 화강암 위에 걸터앉아 오른팔을 들고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모습의 동상(좌상)이 있다. 2009년 12월에 세워졌다. 장소팔은 1925년부터 1972년까지 중구 황학동과 신당동 일대에 거주했다.<ref>연합뉴스, 2009년 12월 24일, '국민만담가' 장소팔 선생 동상 세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040787]</ref>
- 장윤성 . . . . 2회 일치
러시아 유학 중이던 1993년에 프로코피에프 국제 지휘자 콩쿨에 2위로 입상했고, 입상 특전으로 1년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에프]]에게 배우기도 했다. 1995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제 5번 '한국' 을 유럽 초연하기도 했고, 1997년에는 도쿄 국제 지휘 콩쿨에 참가해 1위 없는 2위에 입상했다.
- 전관 . . . . 2회 일치
|기타 이력 = [[새시대참사람연합]] 총재 <br /> [[중앙대학교]] 초빙교수 <br />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2007년 대선 출마 당시 [[새시대참사람연합]]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시 대선 포스터는 '''지키자, 대한민국!'''이라는 로고를 새겨넣고 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보병 제9사단장 및 [[학생중앙군사학교]]장을 지낸뒤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 정근모 . . . . 2회 일치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참주인연합]]([[미래희망연대]]의 전신) 소속 대선후보로 출마했다.
* [[미국]] [[미국 국무부|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 정영기(배우) . . . . 2회 일치
* 2014년 《[[국제시장(영화)|국제시장]]》 ...한국인 광부2 역
- 정웅인 . . . . 2회 일치
|제목= 배우 정웅인, 띠동갑 연하 신부 맞아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1316507 |출판사=연합뉴스|날짜= 2006-06-03 }}</ref> 두 사람에게는 현재 장녀 정세윤([[1999년]] 출생),<ref>{{뉴스 인용 |제목= 유웅인, 3kg 첫 딸 얻고 싱글벙글 |url=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5220842000009 |출판사= 세계일보 |날짜= 2007-05-21 |확인날짜= 2014-08-24 |보존url= https://web.archive.org/web/20070520221239/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 |보존날짜= 2007-05-20 |깨진링크= 예 }}</ref> 차녀 정소윤([[1998년]] 출생),<ref>{{뉴스 인용
| [[1999년]] || || 《신용협동조합연합회》 || 금융 이미지 광고 || 드라마 《은실이》 출연진
- 정재호 (1964년) . . . . 2회 일치
* 2015.09 ~ 2015.12 새정치민주연합 노동위원회 대변인
* [http://nice929ho.kr/221079715869 초정상], 2017년 (소상공인연합회)
- 조원진 . . . . 2회 일치
2017년 4월 24일 열린 [[19대 대선]] 비초청 후보 토론회에서는 [[김선동(1967)|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에게 [[종북몰이]]와 [[색깔론]]을 들이대다가 '철 지난 메뚜기'란 조롱을 들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70423&ref=A|기사 1]] [[http://v.media.daum.net/v/20170425013917707|기사 2]] 오해를 막기 위해 기술하자면, 김선동 후보도 [[최루탄|잘한]] [[코스트코|건 없다.]][* 애당초 김선동은 [[서갑원]], [[이정현(정치인)|이정현]]과 함께 '''[[순천시]] 국회의원의 수치 3총사'''에 나란히 꼽히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민중당 자체도 舊 통합진보당 NL계가 뿌리인지라 종북몰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여서(...).] 나머지 후보들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이 비초청후보 토론의 최대 승자는 '''[[이재오]] 후보'''라는 게 중론.
새누리당 시절 [[강기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http://www.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86359|광주 망월동 묘지에 들러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는 사실이 [[https://youtu.be/uE7vfDI2jLU|있다.]] 다른 친박들은 잘 따라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재 모습을 보면 참 웃긴 부분이다.
- 진선유 . . . . 2회 일치
|출판사 = 연합뉴스
이로 인해 [[2011년]] 2월에 참가한 동계체전이 현역 마지막 대회가 됐다. [[단국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 [[4월 1일]] [[단국대학교]] [[쇼트트랙]] 코치로 발령받아 활동 중이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009306 쇼트트랙 진선유, 모교 단국대 코치로 새 출발] - 연합뉴스</ref>
- 창작:6피트 계획 . . . . 2회 일치
* 연합
* 연합
- 최계훈 . . . . 2회 일치
[[2005년]] [[10월 11일]]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영입됐다.<ref>{{뉴스 인용 |저자=|제목=LG, 최계훈 코치 영입|url=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01&aid=0001120091 |뉴스=연합뉴스|출판사= |위치= |날짜= 2005-10-11 |확인날짜= 2016-06-12}}</ref>
2016 시즌 후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8869874 한화, 2군 감독에 최계훈 전 NC 코치] - 연합뉴스</ref>
- 최광수 (공무원) . . . . 2회 일치
| 경력 = 국방부 차관 <br/> 대통령 비서실 실장 <br/> 체신부 장관 <br/>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 <br/> 외무부 장관 <br/>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무임소장관]][[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장]][[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서울창신초등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전주 최씨]]
- 최광식 . . . . 2회 일치
2011년 9월 20일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1/09/20/0200000000AKR20110920113800005.HTML 최광식 "전통문화의 현대화·세계화에 역점"]《연합뉴스》2011년 9월 20일 정천기 기자</ref>
한편, 2011년 9월 5일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이 5ㆍ18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전달식에서 "최광식 문화재청장이 등재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김진표 (정치인)|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최 내정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무조건 통과되도록 해달라고 건의했다"고 밝혔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90506438&menu=0&sid=0001&nid=900&type=1 강운태 "최광식 내정자 청문회 통과시켜야"]《연합뉴스》2011년 9월 5일 전승현 기자</ref>
- 최민호(유도선수) . . . . 2회 일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아테네와 달리 체중 조절에 성공하며 쾌조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올림픽에서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 냈다. 2008년 이후 진짜로 체급을 -66kg으로 올렸지만, 여기서는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락은 있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조준호(유도)|조준호]]를 누르고 우승에 성공했지만, 워낙 국제대회에서 영 좋지 않았던 탓에 세계랭킹 순위에 앞선 조준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이 밀리며 런던행에 실패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대한유도회의 병크라고 까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국제연맹에서 랭킹 위주의 올림픽 출전권 부여를 천명했고, 랭킹에 미달한 선수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랭킹이 20위권이었던 최민호는 출전권을 얻어도 시드에서 현저히 밀릴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경쟁자인 조준호는 당시 랭킹 9위였다. 실제로 2008년에 치열했던 유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표적인 사례가 -73kg의 이원희 vs 왕기춘, -81kg의 김재범 vs 송대남]은 랭킹 우선주의가 선언되면서 2012년에는 -90kg를 제외하고는 그냥 요식행위가 되었다.[* -90kg만 비슷한 랭킹권의 선수가 2명이 있어서 선발전이 열렸고, 나머지 종목은 랭킹 차이가 심하게 나면서 하나마나한 선발전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90kg의 선발전의 승자가 바로 2012년 동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송대남]]이다.]
- 최수범 . . . . 2회 일치
* [[2000년]] 한솔M.com배 제1회 국제게임랭킹전 팀플 우승
* [[2002년]] KTF 국제게임 챔피온쉽 3위
- 최진순 . . . . 2회 일치
대학 출강 외에도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등 정부부처는 물론 국내 대다수 언론사에서 특강과 자문을 맡고 있다. 또 [[MBC]] TV속의TV, 다큐멘터리 [[KBS]] 미디어인사이드 등에 출연하였다. 2013년 [[연합뉴스]]는 뉴미디어를 이끄는 사람들 연재물에서 최진순을 소개했다.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medialabs/special/interview/interview_choi.html
- 최희암 . . . . 2회 일치
| 학력 = [[아메리칸 대학교|미국 아메리칸 대학교 연합체육대학원]] [[체육|체육학]] [[박사]]
* [[아메리칸 대학교|미국 아메리칸 대학교 연합체육대학원]] 체육학 박사
- 추경호 . . . . 2회 일치
* “높은 기술력과 뛰어난 아이디어로 무장한 중견기업은 우리 경제의 든든한 허리이자 희망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견기업의 성장이 필수적인 만큼 정부에서도 중견기업의 성장 걸림돌을 제거하고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커 나갈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 (2015/04/20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규제개혁간담회를 열고)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절 국제경제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코만단테 카펠리니 . . . . 2회 일치
1943년 5월 11일 [[보르도]], 아퀼라 III는 일본에 보급할 물자를 싣고 [[싱가포르]]로 출항한다. 7월 13일, 두달간의 항해 끝에 아퀼라는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상황이었다. 결국 9월 8일,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항복했다. 그때도 아퀼라 III는 싱가포르에 정박해 있었다.
- 킹덤/498화 . . . . 2회 일치
* 총 3군이 나서는 연합군전 개막.
* 이제 상황 파악이 된 병사들은 이번 전투의 규모와 가혹함을 가늠하며 긴장한다. 신은 이번 조 공략전은 왕전, 환의, 양단화 군이 총집결한 "연합군전"임을 밝힌다.
- 킹덤/499화 . . . . 2회 일치
* 조 서부 공략군으로 지칭된, 실제론 "업 공략"을 위한 연합군이 출병한다. 수도의 병사들은 함양이 떠나갈 듯이 성원을 보낸다. 꺼림직하게 여겨지던 산민족이나 환의군 조차 엄청나게 응원을 받는다. 비신대의 활형제를 비롯한 신병들은 긴장으로 위축. 반대로 연을 비롯한 고참들은 자기들이 출세하긴 한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떤다.
* [[하료초]]는 남쪽에서 징집된 [[벽(킹덤)|벽]]과 재회한다. 간만에 인사를 나눈 둘은 이번 작전에 투입된 "연합군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료초는 그 규모가 20만에 이르며 근 10년 동안 합종군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라고 말한다. 그런데 벽은 그것 보다 이질적인 세 군단이 혼성된 점에 대해 더 놀라워한다. 하료초는 육장 시대에 가끔 있었다고 얘기할 뿐 특별한 감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수뇌부와 가까운 벽은 좀 더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본영 상층부의 긴장된 분위기를 언급하며 "이 조 서부공략전은 훨씬 큰 전투가 된다"고 추측한다.
- 킹덤/509화 . . . . 2회 일치
* 이렇게 해서 조의 관문이자 업공략의 초석인 열미성이 함락. 진 연합군은 성으로 입성한다. [[몽념(킹덤)|몽념]]은 한 것도 없이 입성해서 뭔가 미안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환의는 벌써 주민들이 다 도망쳐서 약탈할게 아무 것도 없다는 보고를 받으며 입맛을 다신다.
* 열미성 공략은 단순한 공성이 아니었다. 이제 열미성은 진의 영토로서 업공략의 중요한 발판이 된다. 당연히 적들은 열미를 탈환하려고 할 텐데 제대로 수비하지 못한다면 진짜 목적인 업을 노리는건 불가능하고 연합군이 궤멸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따라서 열미성을 빠르게 파악해 "성의 습성"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료초나 왕전이 구상하는게 그것이었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2회 일치
=== 국제법 ===
* 북한은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어, 망명정부는 이해와 동정은 구할 수 있어도 정통성과 정당성을 인정받거나 실질적인 외교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 태종무열왕 . . . . 2회 일치
당에도 즉위를 알리는 사신을 파견하여, 무열왕 즉위년에 [[당 고종|고종]](高宗)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 신라왕의 책봉을 받았으며,<ref name="신라-654"/> 무열왕 2년(655년)에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과 더불어 군사를 연합하여 신라의 북쪽 변경의 33개 성을 탈취하였음을 전하면서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은 3월, 영주도독(營州都督) [[정명진]](程名振)과 좌우위중랑장(左右衛中郞將)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ref name="신라-655"/> 또한 무열왕 3년([[656년]])에는 {{출처|날짜=2018-06-30|1=신라의 개국 공신인 사로 6촌장을 왕으로 추존하였고,}} 당에서 귀국한 김인문을 [[군주]](軍主)로 삼았으며, 가을 7월에는 김문왕을 다시 당에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ref name="신라-656">《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3년(656)</ref> 귀국한 뒤 문왕은 무열왕 5년([[658년]]) 정월에 부왕으로부터 집사부의 [[중시]](中侍)로 임명되고,<ref name="신라-658">《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5년(658)</ref> 김인문도 무열왕 6년([[659년]]) 여름 4월에 백제를 치기 위한 원병 파병을 요청하는 사신으로서 당에 파견되는 등,<ref name="신라-659">《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6년(659)</ref> 친족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 즉위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김유신에 대해서는 무열왕 7년([[660년]]) 정월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해<ref name="신라-660">《삼국사기》 권제5 신라본기 제5 태종 무열왕 7년(660)</ref> 왕권을 보다 전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남]]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남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남)|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식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트로피코 4/칙령 . . . . 2회 일치
국제 구호 단체를 받아들인다. 구호 단체는 원조 캠프를 치고 5년간 무상 의료와 무상 식량을 나누어준다. 외국인 따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므로 국수주의자의 존경심이 하락한다.
발표할 경우 국수주의자들이 "국제 구호 단체 직원들 때리기"라는 스포츠를 만들어 낸다. 관심 있는 사람은 엘 디아볼로에게 연락할 것.
- 페어리 테일/480화 . . . . 2회 일치
* 세이버투스와 페가수스 연합군은 이미 전멸해서 포로로 잡혀 있는 상태.
* 세이버투스와 페가수스 연합군이 전멸했는데 제국군은 별다른 소모가 없어 보인다. 또 밸런스붕괴 논란이 일고 있다.
- 하리수 . . . . 2회 일치
한편 2004년에 제작한 그의 영화 도색은 2013년 9월에 [[대한민국]]에서 상영되었다. 영화 이듬해인 2005년 제 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작품이다. 무려 9년만에 대한민국 내 극장 개봉 기회를 얻은 것이다.<ref>[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267160&cloc= 하리수 출연작 ‘도색’, 9년 만에 국내 개봉 확정] 일간스포츠 2013.08.06</ref>
[[2011년]] [[4월]] 《파주 Fantastic Show》<ref name="fanfan1">[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4011540171001 최한빛 ‘이것이 슈퍼모델 각선미’(하리수 판타스틱쇼)] 뉴스엔 2011.04.01</ref> 를 기획하였다. 판타스틱쇼(Fantastic Show)는 하리수와 [[2009년]] 슈퍼모델출신의 [[최한빛]] 그리고 전국에서 끼와 재능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최고의 트렌스젠더들이 모여 다년간 하루 10시간의 트레이닝을 통해 만들어낸 공연이었다.<ref name="fanfan1"/> 당시 하리수는 “태국의 대표적인 알카자쇼와 같은 공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지원 속에 문화 관광 상품을 넘어서 세계적인 쇼로 자리잡았다. 트렌스젠더들이 꿈의 무대를 이루어낸 것처럼 한국의 후배 동료들에게도 공연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ref name="fanfan1"/> [[2012년]] [[12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열린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VIP데이 포토타임 행사에 참여했다.<ref>[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하리수 달라진 얼굴…또 성형 의혹?] {{웨이백|url=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21212000972# |date=20160305005647 }} 뉴스핌 2012.12.12</ref> [[2013년]] [[10월]]에는 제8회 [[서울국제문화축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하시영 . . . . 2회 일치
* [[2016년]] - 부산국제모터쇼 르노삼성 포즈모델
* [[2014년]] - 부산국제모터쇼 렉서스부스 포즈모델
- 하현정 . . . . 2회 일치
'''하현정'''(河賢貞, [[1987년]] [[6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2010년 미스코리아]] 미(美)이다. [[2010년]] [[9월 25일]] 미스코리아 미 자격으로 출전한 제18회 2010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널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 미인대회 1위를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9/h2010092601182621950.htm|제목=하현정 한국인 최초 국제미인대회 1위|저자=채석원|출판사=한국일보|날짜=2010-09-26}}</ref>
- 한가인 . . . . 2회 일치
|<ref>{{뉴스 인용 |제목 =한가인, MBC '휴먼다큐 사랑' 내레이션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058336|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연정 |날짜 = 2011-05-12 |확인날짜 =2018-04-17 }}</ref>
|<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0812789|제목=`올드보이' 대한민국영화대상 11개 부문 후보 올라|출판사=연합뉴스|저자=김병규|날짜=2004-11-06|확인날짜=2014-02-24}}</ref>
- 한수진 (1969년) . . . . 2회 일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에 앵커전문요원 공채로 [[SBS]]에 입사하였다. 이후 [[1994년]] [[4월]]부터 [[2002년]] [[4월]]까지 8년간 [[SBS 8 뉴스]]를 진행하였는데, 이 진행 기간은 [[SBS]] 개국 이래 여성 앵커의 최장 진행 기록이기도 하였다. [[2005년]] [[3월 6일]]부터 [[2007년]] [[4월 22일]]까지 [[SBS TV]]의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을 진행하였다. [[2009년]] [[3월 7일]]부터 2009년 [[10월 25일]]까지는 주말 [[SBS 전망대]]를 [[2009년]] [[10월 26일]]부터 [[2011년]] [[4월 1일]]까지 [[한수진의 오늘]]을 진행했고 [[2010년]] [[11월 3일]]부터 [[2011년]] [[3월 9일]]까지 [[SBS 뉴스추적]]을 진행했고 [[2011년]] [[3월 22일]]부터 [[2013년]] [[2월 19일]]까지는 [[SBS 뉴스추적]]의 후작인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을 진행했고 [[2012년]] [[12월 17일]]부터 [[2016년]] [[8월 20일]]까지는 [[한수진의 시사 전망대]]를 진행하다가 국제부장으로 발령나서 중간하차 하였다.
2016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국제부장을 맡았다. 현재는 선임기자로써 평일 오후 5시에 [[SBS 오 뉴스]]를 진행하고 일요일 오전 11시에 라디오 [[만난사람|한수진이 만난사람]] 진행하고 있다.
- 함신익 . . . . 2회 일치
'''함신익'''(咸信益, [[1957년]] - )은 [[대한민국]]의 지휘자이다.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경신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미국]]으로 유학해 [[라이스 대학교]] 석사 와 [[로체스터 대학교]] 이스트만 음대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1991년 [[폴란드]]의 피텔베르크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밀브룩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와 퍼시픽 대학교 지휘 교수로 부임했다.199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학과 교수가 되었다.
1995년 해외 음악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2003년에는 자서전 '다락방의 베토벤 을 출간하기도 했다. 예일 대학교 음악대학 지휘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지휘자들을 배출해냈으며, 그 중 싱가폴 출신의 Darrell Ang은 2007년도 브장송 국제지휘콩쿨에서 우승하였다.
- 홍서범 . . . . 2회 일치
* [[LG유플러스]] 국제전화 002 ([[전원주]]와 함께 출연)
* 국제약품 고프레
- 홍성유 . . . . 2회 일치
이후 《[[신사조]]》 주간, 《[[신사조]]》 집필위원 겸 편찬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저작권협회]] 부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위원 등을 지냈다.
- 홍연아 . . . . 2회 일치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20대 총선]]||[[안산시 상록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경기 안산시 상록구 갑)]]||20대||[[민중연합당]]||{{막대|민노|0|2|0|1}} 2.01%||1,846표||5위||낙선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통합진보당 당원]][[분류:민중연합당]][[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홍정욱 . . . . 2회 일치
2008년 4월 9일 노원구 병 선거구의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시 [[진보신당 (대한민국)|진보신당]]의 후보였던 [[노회찬]]을 누르고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이며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정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9년 9월 24일 [[한나라당]] 국제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2010년 8월 17일에 [[한나라당]] 2030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외에 [[한나라당]]에서 천안함대책위 위원, 북핵도발대책특위 위원, 서울시당공천심사위 위원, 지방선거기획위 위원, 2010 지방선거 중앙선대위 스마트유세지원부단장, 2010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선대위 O2유세지원단장,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 前 [[한국신문협회]] 이사,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 이사, 한국신문윤리위원회 감사, 글로리아오페라단 이사
- 홍진기 . . . . 2회 일치
해방 이후 홍진기는 미국과 일본의 주도로 진행되던 대일강화조약에서 조약이 한국에 불리하다고 파악하여 정부를 설득 '대일강화회의 준비위원회'가 구성되도록 하였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일회담-제1차 회담을 회고하면서|성=유진오|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는 일본의 부당한 외교적 침탈을 저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구보타 망언 사건에서도 한국 측 대표로 일본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여 미일조약에 한국 내에 있는 귀속재산의 처리와 일본에 있는 한국 국민에 대한 인권 등에 대해 명시될 수 있도록 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독도에 대한 소유권이 미일간 협약에서 일본측으로 귀속되는 상황이 오자 이에 대한 국제법 논리로 대처하였으며 이후 독도에 접안시설과 태극기 계양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법무부 차관이던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한민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2/12/200802120500004/200802120500004_1.html | 제목=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저자=최운상 | 뉴스=신동아 | 출판사=동아일보 | 날짜=2008-02-01 | 보존url=http://archive.is/DTdrZ | 보존날짜=2016-08-18 }}</ref>
- 홍헌표 . . . . 2회 일치
* 조선금융조합연합회 함북지부 감리관
|출판사=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 화염병 . . . . 2회 일치
2015년 12월 4일, 이집트에서 나이트클럽 입장을 제지당하자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도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06/0200000000AKR20151206054100079.HTML|연합뉴스 링크]].
2016년 1월 8일, 위안부 합의에 불만을 품은 승려가 외교부에 화염병을 던지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08/0200000000AKR20160108105951004.HTML|연합뉴스 링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10/0200000000AKR20160310133000004.HTML|이후 집행유예를 받았다.]]
- COCOM . . . . 1회 일치
[[분류:국제기구]]
- Europa Universalis 4/동구권 . . . . 1회 일치
소국들이 적다. 그래서 적당히 확장해둬도 반국가연합으로 고통받기는 어렵다.
- K리그 클래식 . . . . 1회 일치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의 평가에서 K리그는 세계적으로 30위 내에는 꾸준히 들어가는 리그다. [[http://iffhs.de/the-strongest-league-in-the-world-2015/|2015년 발표만 봐도]] [[그리스]], [[네덜란드]]와 비슷한 점수를 받는 상황. 그리고 [[스코틀랜드]]보다 순위가 더 높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봐도 결코 무시할 리그는 아니다.
- V-22 오스프리 . . . . 1회 일치
게임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에서 연합군 구축함에 탑재되어 대잠용으로 사용된다.
- Victoria II/개혁 . . . . 1회 일치
* 국제적 부채: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된다.
- Victoria II/기술 및 발명 목록/상업 . . . . 1회 일치
* International Monetary Exchange Rates(국제 통화 환율)
- 강기웅 . . . . 1회 일치
2루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2루수)|골든 글러브]]를 세 차례(1989, 1990, 1993) 차지했다. [[유격수]] [[류중일]] - 2루수 강기웅의 키스톤 콤비는 [[KBO 리그]] 역사상 가장 좋았던 콤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거꾸로 쳐도 3할이라는 천재적 타격을 자랑했으나, 약한 체력이 단점이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6872 5연타석 홈런의 천재 2루수 강기웅] - 오마이뉴스</ref> 통산 타율 0.292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다.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1988년]] [[10월 25일]]에 [[우리은행|상업은행]]과의 경기에서 세계 최초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1995년]] [[5월 13일]]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대구에서 1루수 [[이승엽]]과 충돌하여 입은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부상 등의 이유로 [[백인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켜 [[백인천]] 감독이 그를 [[1996년]] 시즌 후 외야수 이희성, 투수 최광훈을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했으나, 그는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는 뛸 이유가 없다고 의사를 밝혀 트레이드를 전격 거부하고 [[1997년]] 2월에 현역에서 물러났다.<ref>[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SH.php?url=baseball/201102/sp2011020917031657360.htm&cd=2101&ver=v002 명품 2루수 강기웅] - 한국일보</ref> 은퇴 후 유통업에 종사했다. 은퇴 때 그는 “심장에 푸른 피가 도는데 어떻게 유니콘스 옷을 입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95&aid=0000000356 천재 강기웅의 인생 유전] - 박동희 칼럼</ref> [[2011년]] [[8월 10일]]에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친정 팀에 돌아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5206016 삼성, 2군 타격코치로 강기웅 씨 영입] - 연합뉴스</ref>
- 강연재 . . . . 1회 일치
* 새정치민주연합
- 강영식 . . . . 1회 일치
삼성 소속이던 2005년 제1회 코나미컵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를 상대로 구원등판 3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아 "국제용 투수 강영식" 이라는 칭호를 들은바 있다. 하지만 2006년 제2회 대회에서는 좋지 못했다.
- 강타 . . . . 1회 일치
* 2005년 제1회 국제 전시광고 예술 금야자상 TV광고계 최고 가치 있는 연예인상
- 개성(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 개성의 영향 탓인지 보편적인 인간과 다른 이형적인 외모를 볼 수 있는데 조금 특이한 외모인가 하면 아예 이종족으로 보일 정도로 동떨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개성이 일반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별일 아닌 듯하나 이형계를 혐오하는 세력도 나오고,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런 연합의 스피너가 이런 경우.]
- 검은 조직 . . . . 1회 일치
국제적인 범죄단체로서, [[에도가와 코난|코난]]이 어려지게 만든 원흉이다.
- 고성국 . . . . 1회 일치
* [[2012년]] ~ [[2013년]] , [[2015년]] ~ [[2016년]] : 연합뉴스 TV 담담타타 진행
- 곽성문 . . . . 1회 일치
* MBC 보도국 TV편집2부 차장, 라디오뉴스부 부장, TV편집2부 부장직대, 사회2부 부장직대, 국제팀 팀장, 편집팀 팀장, 해설위원실 해설위원, 뉴스데스크편집부 부장, 보도국 부국장, 스포츠국 국장
- 구승빈 . . . . 1회 일치
* 2018년에는 반드시 국제대회에 가겠다고 닉네임을 '''imp8'''로 바꾼다고 한다. ~~물론 [[LGD Gaming|팀이 팀인지라]] 갈 지는...~~
- 구자춘 . . . . 1회 일치
1995년 [[민주자유당]] 김종필 대표가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이에 따라갔다.
- 국가원수 . . . . 1회 일치
한 [[국가]]의 대표자. [[국제법]] 상에서 해당 국가의 대외적인 대표권을 가진 인물 혹은 직위. 각국의 [[헌법]]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관습법]]으로 국가원수의 지위를 맡는 경우도 있다.
- 권은희 (1959년) . . . . 1회 일치
* 2012년: 소상공인연합초정상
- 권재진 . . . . 1회 일치
2011년 8월 8일 오전 청문회에서 큰아들이 경기도 포천의 국제나이론이라는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지난 2003년 8월 12일부터 2004년 12월 29일까지 포천 농협에서 이뤄진 38번의 입출금 내역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들의 산업기능요원 근무 시기가 2002년 9월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좌 내역은 2003년 8월부터 제출한 것을 두고도 의혹이 증폭됐다.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지역 . . . . 1회 일치
=== 로스 산토스 국제공항(Los Santos International) ===
- 김경식 (1960년) . . . . 1회 일치
* ~ 2000.03 : 건설교통부 국제항공과 과장
- 김경식 (희극인) . . . . 1회 일치
| 출판사 = 국제신문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2007년]] 2007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스타크래프트 256강전 32강
- 김기섭 (1939년) . . . . 1회 일치
*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 김기수(코미디언) . . . . 1회 일치
>김기수는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요즘 저를 남자냐, 여자냐로 규정짓는 분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며 "2000년대에 '유니섹스'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냐"고 말했다.
- 김남조 . . . . 1회 일치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숙》, 《잔상》으로 등단하였고, [[1953년]] 첫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초기에는 인간성과 생명력을 표현하는 시풍을, 이후에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표현하였다.
- 김덕현 (변호사) . . . . 1회 일치
김덕현은 판사 출신으로 [[1986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여성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여성문제연구실무위원장,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다.<ref>김효섭.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11071 전원위원회 구성 어떻게]. 서울신문. 2004년 8월 25일.</ref> <ref>강충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0033227 (‘로스쿨’로 뛰는 대학들) (1)한양대]. 서울신문. 2005년 2월 28일.</ref> <ref>심규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323957 <헌법재판관 5인 교체 앞두고 하마평 무성>(종합)]. 연합뉴스. 2006년 6월 11일.</ref> <ref>이하나. [http://www.womennews.co.kr/news/54417 네 번째 여성 대법관 탄생하나]. 여성신문. 2012년 8월 17일.</ref>
- 김도균 . . . . 1회 일치
특이하게도 국제 연애 경력이 꽤 많다고 한다.
- 김만제 . . . . 1회 일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철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 김민수 (1983년) . . . . 1회 일치
* 국제약품 - 라포티셀
- 김상조 . . . . 1회 일치
국제노동기구에서 근무하는 이상헌 박사가 이와 관련해 용어상의 혼선이라는 글을 남겼다 [[https://www.facebook.com/sangheon.lee.549/posts/1697202560293089?pnref=story|링크]]
- 김성곤 (1913년) . . . . 1회 일치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태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 김우중 . . . . 1회 일치
|직책 =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 김재박 . . . . 1회 일치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인 말대로 검증된 선수들을 뽑아 치른 아시안게임은 대만전 뿐 아니라 아마추어로 구성된 일본전까지 패배를 당하며 [[도하 참사]]를 야기했다.~~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2007년]]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스타크래프트 256강전 16강
- 김지수(배우) . . . . 1회 일치
|| 싱가포르국제영화제 || '''여우주연상''' ||
- 김지훈 (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2004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상
- 김진우(WINNER) . . . . 1회 일치
||<:> '''{{{#!html<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color:#d0d0d0"> 학력}}}''' ||<(> 목포공업고등학교 (졸업)[br][[http://www.gjcu.ac.kr|국제사이버대학교]] 엔터테인먼트학과 (재학) ||
- 김현철(교수) . . . . 1회 일치
|| '''약력''' ||<(> 쓰쿠바 대학 부교수[br]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위원[br]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br]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br]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br]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 ||
- 김형준(배우,가수) . . . . 1회 일치
* 2012년 10월 4일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 김효진 (배우) . . . . 1회 일치
</ref> 2003년 개봉 된 사극 영화 《[[천년호]]》에서 '자운비' 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김효진은 이지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2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주체적인 여성 윤나미 역을 통해 재조명받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칸레드카펫을 밟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0화 . . . . 1회 일치
* 갱 오르카는 카미노구 빌런 연합 토벌에도 참가했던 강자.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6화 . . . . 1회 일치
* 한편 사무실에서는 나이트아이가 사이드킥 [[버블걸]]에게 사건을 보고받고 있다. 그 보고는 [[빌런연합]]과 [[오버홀]]의 접촉에 대한 것. 버블걸은 전모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교섭의 결렬과 유혈사태 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나이트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고 있었지만, 문득 이런 말을 꺼낸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28화 . . . . 1회 일치
미도리야도 지정 빌런 단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대개는 얌전한 사람들이다. 과거 대대적인 해체로 힘이 약해졌기 때문. 그런데 이 치사키만은 힘을 끌어모으며 최근엔 [[빌런 연합]]과도 접촉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범죄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증거없이 구속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나이트아이 사무소가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6화 . . . . 1회 일치
키리시마가 이제와서 그러기냐고 따진다. [[빌런 연합]]이 개입해 있다면 그래야 마땅하다. 이레이저 헤드가 그 점을 지적한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레이저 헤드는 미도리야를 걸고 넘어진다. 그가 아직 자신의 신뢰를 되찾지 못했다면서. 미도리야는 그가 [[바쿠고 카즈키]] 탈환전 직후 "정규 수순을 밟아 정규 활약으로 신뢰를 회복해 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반명 아이자와는 방금 전 회의에서, 밀리오와 함께 "반드시 에리쨩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던 미도리야를 떠올린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7화 . . . . 1회 일치
작전은 어디까지나 "에리쨩"이란 소녀의 발견과 보호가 목적. 그 이상 파고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일 걱정해야 할 건 [[빌런 연합]]의 그림자다. 경찰이나 나이트아이의 견해 상으론 딱히 양호한 관계는 아니라 하니 이번 가택 조사에서 같은 장소에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1학년의 참가는 거기서 끝이다. 이 점은 학생들도 납득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0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이 감금한 "에리쨩"을 구출하고 시에핫사이카이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아지트를 급습한 히어로&경찰 연합. 그러나 프로 히어로로 구성된 선두 그룹이 [[이리나카]]의 함정에 빠지며 후위와 분단된다. 이리나카는 우선 경찰 위주로 구성된 후위를 먼저 처리하려고 생각하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3화 . . . . 1회 일치
* [[오버홀]] 치사키를 추적하는 [[서 나이트아이]]와 히어로 연합군. 그러나 [[이리나카]]가 판 함정에 빠져 [[아이자와 쇼타]]가 고립될 뻔한 걸 [[패트껌]]과 [[키리시마 에지로]]가 지키고 대신 희생한다. 함정에 빠진 이들 앞에 나타난 철포옥 핫사이슈는 "랏파"와 "텐가이". 랏파는 저돌적인 격투가로 개성의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큰 덩치와 파워, 강력한 펀치연타가 특기다. 텐가이는 차분해 보이는 남자인데 굉장한 강력한 배리어를 치는 개성.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77화 . . . . 1회 일치
* [[빌런 연합]]의 목표는 바쿠고 납치.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0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 이즈쿠에게 [[빌런 연합]]의 목적을 전해들은 일행은 바쿠고를 중앙에 놓고 호위하며 다닌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1화 . . . . 1회 일치
* [[빌런 연합]]은 의외로 유쾌하게 논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1회 일치
* [[빌런 연합]]의 아지트에서는 [[시가라키 토무라]]가 바쿠고에게 "우리편이 돼라"고 회유하고 있는데...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90화 . . . . 1회 일치
* 토무라는 차마 그러지 못하는데, [[빌런 연합]]이 그를 추스리고 바쿠고를 확보하려고 한다.
- 남명렬 . . . . 1회 일치
* 대관령 국제음악제-Eh, Joe (2008년)
- 남유진 . . . . 1회 일치
한 지자체장에 3선을 초과하여 도전할 수 없다는 우리나라 법에 따라 구미시장 4선 도전은 할 수 없기에 2018년 1월 25일에 [[경상북도지사|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자진 퇴임을 하였다. 곧바로 박정희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경북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석 이력을 강조하며 공약으로 포항 영일대에 박정희 동상을 설치하겠다고 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26/0200000000AKR20171226141300053.HTML|연합뉴스]] 하지만 자유한국당 경상북도지사 경선에서 11.0%를 득표함으로써 경선을 꼴찌로 마감했다. 이후 경선에서 선출된 [[이철우(1955)|이철우]] 경상북도지사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 노예 . . . . 1회 일치
현재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라서 노예는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사실상 노예 상태에 있거나, 관습적으로 여겨지는 노예는 세계 어딘가 존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암암리에 [[섬노예]]라는게 있다.
- 다키스트 아워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6주만에 GG치고 연합국 뛰쳐나간 막장 시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민주주의]]의 유일한 보루가 되어버린 [[영국]]은 소련과 미국이 전쟁에 뛰어들 때까지 존버를 시전해 [[나치 독일]]의 몰락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를 자신들의 유구한 혐성질 역사 위에 덧칠...읍읍.
- 대한민국 FA컵 . . . . 1회 일치
AFC 챔피언스 리그에 올라가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제 무대에서 팀의 이름을 알려서 팀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별히 보상을 줄 수 없었던 리그컵 대회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다가 폐지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FA컵과 명암이 교차하였다.
- 도균 . . . . 1회 일치
* 2010년 창원국제공연예술축제 연기대상
- 떨어진 용왕과 멸망해가는 마녀의 나라 . . . . 1회 일치
* 비타 솔샤르 슬레이마야 : 해리건의 영역과 인접한 슬레이마야 일족의 지도자. 로리한 외모와는 달리 나이는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게'를 조종하는 마법을 구사하며, 마녀들에게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나가에게 흥미를 느끼고 해리건 일족과 연합한다. 본인도 나이를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나가가 맘에 들어서인지 나가가 그녀를 보고 귀엽다느니, 나이가 많은 게 믿겨지지 않는다느니 하니까 기분좋은 반응을 보여준다.
- 로베르 기스카르 . . . . 1회 일치
이후 기욤이 죽고 그의 바로 아래 동생인 드로고가 형의 영지를 상속받을때, 기스카르는 아무 영지도 받지 못했고, 이를 그의 바로 위의 형인 옹프루이가 딱하게 여겼는지 그에게 라벨로 성을 준다. 이후 그는 카푸아 공작 판돌포 4세와 연합해 살레르노 공국을 치려하지만, 공작이 약속했던 공작의 딸과의 혼인과 영지 할양을 거부하자 그와의 협조를 거부하고 돌아가버린다. 이후 칼리브리아로 간 기스카르는 거기서 칼리브리아를 정복을 진행중이던 드로고에게 자기몫의 영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드로고는 최근에 쌓은 성채인 스크리블라성[* 현재의 스페차노 알바네세]을 그에게 준다.
- 리그컵(K리그) . . . . 1회 일치
게다가 첫 아디다스컵 이후에도 흥행이라는 이름 하나로 대회 운영방식을 바꾸는데, 하나같이 팀이나 팬이나 지치게 만드는 요인밖에 안 되어 결국은 흥행은 흥행대로 날려 종국에는 "리그컵은 종이컵"이라는 조롱을 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고 무승부시에 승부차기를 한다거나 서든데스제도를 도입하는 등, 골 수를 늘려보겠다고 별별 짓거리를 다 했지만, 1회차 대회부터 수비축구를 한 일화가 우승을 함으로써 지나친 실험정신은 변화를 꾀하지 않으니만 못하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말았다.[* 첫 대회때 우승한 일화는 3승 4무 2패에 골득11 골실10로 공격축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오히려 일화보다 더욱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LG가 4승 1무 3패 골득15, 골실11로 2위가 되는 웃긴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촌극 끝에 결국에는 승점체계가 국제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승3무1 방식으로 감으로써 당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흥행이라는 미명하에 한 행동이 모두가 뻘짓이 된 것.
- 마기/294화 . . . . 1회 일치
* 지금 알리바바가 하려는건 국제 조례 위반이라며 단호히 제지하는데.
- 마기/300화 . . . . 1회 일치
* 알리바바 사르쟈의 협력 요청은 수용한다. 뢰엠은 국제연맹 비가맹국이라 교역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 거래를 환영한다
- 마기/302화 . . . . 1회 일치
* 자신은 국제동맹의 이사로서 황제국의 국가적 위기는 도울 수 있지만, 황제국 상회의 일을 도울 수는 없다며 공사를 구분한다.
- 마기/303화 . . . . 1회 일치
* 신드바드는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칠해연합 결성에서부터 각국의 왕들을 팔인장으로 두었던 이력, 황제국의 내란 해결, 최초의 던전 공략 등등. 모든 것이 오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다.
- 마기/321화 . . . . 1회 일치
* 국제동맹 본부의 금속기 보관고
- 문맹 . . . . 1회 일치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단순히 읽고 쓰는 게 아닌 어떠한 문장 내용을 읽고 뜻을 파악하는 '실질문맹률'이 OECD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OECD와 캐나다 통계청에서 만든 IALS(국제성인문해능력조사)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번역하여 2001년에 조사한 결과. (다른 OECD 국가는 1994년 ~ 1998년 사이에 조사.)]
- 문옥주 . . . . 1회 일치
192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936년 16살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가 만주와 동남아시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하였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저축한 돈의 반환을 요구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위안부 피해자 故문옥주 증언, 기록 일치"|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091600073.HTML|출판사=연합뉴스|날짜=|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1996년 10월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日軍위안부 문옥주할머니 숨져|url=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184&yy=1996|출판사=매일신문|날짜=1996년 10월 26일|확인날짜 =2018년 1월 8일}}</ref>
- 문호근 . . . . 1회 일치
[[1967년]]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 첫 데뷔를 한 그는 이후 피아니스트 활동을 접고 1970년대 이래 각종 오페라를 연출하였으며, 진보적인 예술인단체인 민예총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관으로 재직하던 중, [[2001년]] [[5월 17일]]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성1=연합뉴스 |제목=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씨 타계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1/05/009000000200105171428773.html |날짜=2001-05-17 |확인날짜=2018-09-05 |뉴스=한겨레신문}}</ref>
- 민효린 . . . . 1회 일치
|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박경림(MC) . . . . 1회 일치
|| '''학력''' ||<(> 순창농협하나로마트 적성점[br][[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 (학사)[br][[http://gsic.ssu.ac.kr|숭실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프라이빗뱅킹(PB)학과 (석사) ||
- 박기환(정치인) . . . . 1회 일치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장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포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장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박보생 . . . . 1회 일치
||<bgcolor=#808080> '''{{{#FFFFFF 경력}}}''' ||<(> 김천시청 기획실장[br]김천시청 행정지원국장[br]김천시청 사회사업국장[br]김천과학대학 책임연구위원[br]국제배드민턴연맹 한국대표단장[br]김천시체육회 회장[br]제18~20대 경상북도 김천시장[br]전국혁신도시지구 협의회 회장 ||
- 박상원(배우) . . . . 1회 일치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맡았던 검사 역할은 현재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검사 시절에서 모티프를 따와 만든 배역이라고 알려졌다. 당시 드라마 작가였던 송지나가 2017년 대선 당시 아니라고 주장했었으나 하는데 사실 맞다고 보는게 옳다.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 5번목차 참고. 홍준표는 이후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를 통해서 형성된 그의 대중적 인기에 주목한 신한국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서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강직한 이미지와 달리 선거비용 사용 내역을 조작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이후 2001년 동대문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사실 홍준표는 슬롯머신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이건개]] 검사장을 구속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왕따당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자기한테 같이 밥 먹자는 동료 검사 한명이 없었다고. 정작 홍준표가 구속한 이건개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996년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 전국구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박상원 본인도 늘 정계진출 떡밥이 있는 배우. 일단 본인은 정계 입문은 생각에 없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1인 시위 등을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보수 성향으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과도 친분이 있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때 광화문 이순신 동상앞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을 드러내곤 해서 이 떡밥은 여전히 쉬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 박소희 (만화가) . . . . 1회 일치
* [[2007년]] 일본 국제만화상 장려상
- 박정민(배우) . . . . 1회 일치
|| 2011년 || || 제5회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 홍보대사 ||
- 박정수(정치인) . . . . 1회 일치
국제의원연맹 집행위원에 임명된 이듬해인 1996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직을 요구했다가 신한국당 수뇌부에 의해 거절당하였다. 이 상황에서 외교전문가 영입에 몰두하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전국구 의원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당해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이 되고 부총재를 역임한다.[* 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박정수를 포함한 보수적 인사들을 영입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 [[오유방]], 정희경 등 민주정의당 출신 인사들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 배상면 . . . . 1회 일치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 졸업하고 1952년부터 대구에서 기린 주조장을 경영하며 1960년 기린 소주를 개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03181 연합뉴스, 국순당 창업자 배상면씨 별세]</ref> 1983년 [[국순당]]의 전신이 된 배한산업을 설립하고, 1991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배상면 주류연구소 설립했다.
- 배성룡 . . . . 1회 일치
1945년 9월 이극로가 주도하는 전국정치운동자후원회에 가입해 교섭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권오익(權五翼) 등과 각당통일기성회(各黨統一期成會)를 조직해 좌우익 정당통합에 주력했다. 1946년 1월 이극로·권오익 등과 함께 통일정권촉성회를 결성해 우익의 비상국민회의와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을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7월 도진호(都鎭浩)와 함께 좌우합작촉진회를 결성했다. 1947년 2월 〈세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극로·조봉암·백남규(白南奎) 등과 함께 민족주의독립전선을 결성하고 상임위원 및 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0월에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결성되자 권태석(權泰錫) 등과 함께 5인 정강·정책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 문화인 108인 성명'에 서명하고, 권태석과 함께 김규식의 제2차 특사로 평양에 가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7월 김규식과 김구가 연합한 통일독립촉진회에 참여했다. 1950년 이후 〈동아일보〉와 〈사상계〉 등에 경제평론을 발표하여, 대외의존체제의 극복과 내포적(內包的) 공업화를 통한 경제자립을 주장했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동양경제를 강의하기도 했다.
- 배지환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8년 3월 10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하였다.<ref>[http://hei.hankyung.com/hub01/201803103243I 배지환, 국제미아 위기에서 ML피츠버그와 계약] - 한국경제</ref>
- 배천석 . . . . 1회 일치
2011년 7월, 숭실대를 중퇴하고 일본 [[J리그]] [[비셀 고베]]에 입단하였으나, 리그 3경기, 컵대회 1경기 출장에 그친 뒤, 양 정강이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고 9개월간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일본에서 시련, 강한 정신력 가져”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413&article_id=0000002805|출판사=인터풋볼 |date={{날짜한글화|2013-04-02}} }}</ref><ref>{{뉴스 인용 |제목=포항 배천석 "대학 후배 앞에서 체면 차렸죠"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251282|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13-05-09}} }}</ref>
- 백남억 . . . . 1회 일치
1960년대까지는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바른말 잘하는’ 소신파로 불리었다. 그러나 결국 [[김성곤]], [[김진만(정치인)|김진만]], [[길재호]] 등과 반 김종필 4인 체제를 형성하였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연합하여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하였다. 1971년에는 민주공화당 의장을 지냈다.
- 백성현 . . . . 1회 일치
* [[2008년]] 국제 청소년영화제 홍보대사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사실 무난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2위 후보자였던 남수정 후보가[* 그것도 옛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창당한 원외 진보정당인 [[민중연합당]]의 후보였다.] 38.1%를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미시에서도 친박이라는 브랜드가 그리 잘 먹히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장세용|이변이 일어났다]].
- 백진희 . . . . 1회 일치
* 2014년 제16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홍보대사
- 백춘희 . . . . 1회 일치
* [[2014년]] 6·4 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후보자 캠프에서 여성총괄본부장
- 봉화군 . . . . 1회 일치
* [[김재창]] - 제10대 연합사부사령관
- 부시왜커 . . . . 1회 일치
한때 성직자를 꿈꿨던 전직 CIA 요원.[* 이때 팔이 총으로 개조되었다.] 현재는 뮤턴트 사냥꾼인데 그에게 희생된 뮤턴트들은 초인적 힘의 소유자들이 아니라 예술 관련으로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뮤턴트들이며 큰 돈을 받고 활동하는 것은 맞으나 누구에게 고용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그의 행동을 멈추기 위해 [[울버린]]이 추격에 나섰으며 그의 아내에게 부탁받은 맷 머독도 움직였다. 처음엔 부시왜커를 죽이려는 울버린을 맷 머독이 데어데블로서 막았으나 탈출한 부시왜커의 손에 뮤턴트 발레리나가 죽으면서 둘이 연합하게 되었다. 결국은 패배했으며 이때 울버린에게 다시 죽을뻔했으나 데어데블이 또 살려줬다. 이후 데어데블의 손에 의해 뉴욕 경찰서에 넘겨졌다.
- 불쑥 표주박 섬 . . . . 1회 일치
[[NHK]]의 [[인형극]] 프로그램.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등대가 있는 작은 섬이었던 표주박 섬(ひょうたん島)이, 어느날 화산 폭발로 바다를 정처없이 방황하는 처지가 되어, 선데이 선생님과 그 제자들, 국제경찰이 비행기로 호송중이던 암살자 댄디, 뗏목으로 표류해온 해적 토라히게, 자칭 표주박 섬의 대통령 돈 가바쵸 등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 빈병 . . . . 1회 일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30/0200000000AKR20160630016900004.HTML|연합뉴스 - "빈병 보증금 쉽게 받는다"…7월부터 빈병 재사용 표시제 도입]]
- 빌런(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 . . . 1회 일치
묘사를 보면 올마이트의 등장 이전에는 사회 각지에서 난동을 부려온 듯 하며 올마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꺽인 상태다. 물론 이런 시점에서도 빌런들은 계속 남아있으나 이전과 달리 그냥 양아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는 [[빌런 연합]]이라는 세력이 [[유우에이 고등학교]]를 습격한 시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스테인]]이라는 악명 높은 빌런이 체포된 것이 계기가 되어 흩어져있던 네임드, 혹은 이에 준하는 실력자들이 자극받고, 이어서 올마이트의 은퇴와 어둠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올 포 원]]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상디 . . . . 1회 일치
* 그로키 몬스터즈 (햄버그 & 피클스 & 빅빵) - 폭시의 부하들이다. 그로키 링에서 맞붙어서 본인이 볼 보이를 맡는다.[* 물론 조로가 시켰고 처음에는 반발하다 나미가 어울린다고 하니까 바로 수긍.] 그로키 몬스터즈의 '무기 사용 금지' 규칙 위반 작렬에 그로기 상태에 몰리다 조로와 10초(...)간 연합해서 먼저 햄버그를 삼등급 불고기 & 야채모듬 슈트로 날려서 빅빵의 무기에 정면으로 깔리게 하고 이어서 조로를 방해하는 피클스를 심판과 함께 날려버린다.[* 이유는 심판의 편파 판정 때문에 상디가 심판을 패고 옐로 카드를 받았기 때문.] 마지막으로 빅빵만 남자 조로와 함께 공군 파워 슈트를 사용, 마무리를 조로에게 맡겼다.
- 서강준 . . . . 1회 일치
*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패션코드 2015 F/W' 홍보대사 (with [[소녀시대 태티서]])
- 서상기 (1946년) . . . . 1회 일치
* [[국제가치평가사]]([[CVA]])
- 서상일 . . . . 1회 일치
56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제일야당 민주당과 진보당은 후보단일화협상을 갖게 되었는데 협상장에서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은 민주당 [[대통령]] [[신익희]]에게 양보의사를 밝히는대신 [[부통령]] 후보는 중요하지 않으니 민주당측이 양보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ref name="서158">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역사비평사, 2007) 158 페이지</ref> 일단 [[신익희]]는 이 제의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민주당 (1955년)|민주당]] 으로서는 이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당시 신구파연합체였던 민주당은 당내경선에서 구파의 영수 신익희와 신파의 영수 장면을 나란히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던 것인데 신익희가 신파를 설득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익희ᆞ조봉암 회동이 이루어진지 6일만에 호남유세에 나섰던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안에서 뇌출혈로 급사함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는 엉뚱하게 조봉암으로 되어버렸지만 민주당은 당차원에서 조봉암을 밀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민주당 최고위원 김준연은 조봉암의 사상적 문제점을 들어 이승만 지지를 공개선언하기까지 했다.
- 서정윤 . . . . 1회 일치
[[대구]]에서 출생하였고,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 등과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2012년, 대구[[영신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활동 중이었으나, [[2013년]] [[11월 12일]], 제자를 성추행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ref>{{뉴스 인용| 제목 = 50대 유명시인 겸 교사, 학교서 여제자 성추행 '충격'(종합)| url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31112192806356| 출판사 = 연합뉴스| 날짜 = [[2013년]] [[11월 12일]]}}</ref>
- 서현진 (방송인) . . . . 1회 일치
* [[2008년]] [[1월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도로에서 고교 동창생의 차량에 탑승했다가 다른 차량과 부딪혀 차량이 완파되는 사고를 당했으나 큰 외상은 입지 않았으며, 교통사고 직후 병원 치료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894890§ion_id=106&menu_id=106 서현진 교통사고] 《연합뉴스》</ref>
- 서호진 . . . . 1회 일치
[[2011년]] [[4월 16일]] 쇼트트랙 선수에서 은퇴했다.<ref name=et /> 현재는 동아종합인쇄사의 부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부터 가업을 잇기위한 경영수업을 듣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수]] 선수 폭행 논란 및 금메달 양보 의혹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줄 알고 침묵했다" 라며 부인했고, 관련 루머를 퍼뜨린 유포자에 대해서 경찰 수사의뢰하겠다며 강력한 조치 의사를 밝혔지만, 소식이 없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hi2014&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6761293 서호진씨 "안현수 선수 구타한 적 없다…억울하다"], 연합뉴스, 2014년 2월 18일 작성.</ref>
- 서효림 . . . . 1회 일치
* 2008년 제10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홍보대사
- 서훈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영남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성현아 . . . . 1회 일치
* [[2007년]] 제10회 말라가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
- 손담비 . . . . 1회 일치
한편, 손담비가 무대에서 특유의 표정을 지어 '업신담비'로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손담비 업신 표정 화제 "니가?" … 본인도 쿨하게 인증|url=http://www.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57743|출판사=이슈프리즘 깜뉴스|저자=인터넷뉴스팀|날짜=2010-10-16|확인날짜=2010-12-22}}</ref> 2010년 10월부터는 MBC의 새 예능 프로그램 《여우의 집사》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방영된지 2개월만에 폐지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 = 여우의 집사 폐지…불과 2개월만, 잘나가던 뉴스후 폐지하더니|url =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출판사 = 프라임 경제|날짜 = 2010-12-17|확인날짜 = 2010-12-29|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40729055321/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604#|보존날짜 = 2014-07-29|깨진링크 = 예}}</ref> 한편 손담비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미쳤어〉와 《드림》의 인기로 '2010 [V] CHINESE TOP 연도 시상식 콘서트'에서 아시아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ref name="대만">{{뉴스 인용|제목=‘섹시 퀸’ 손담비, 대만진출 나선다|url=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출판사=donga.com|저자=김원겸 기자|날짜=2011-01-17|확인날짜=2011-01-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728204248/http://news.donga.com/3//20110117/33997010/1|보존날짜=2014-07-28|깨진링크=예}}</ref> EP 음반 ''The Queen''역시 대만에서 음반 차트 등 각종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ref name="대만"/> 한편, 2011년 1월에 제20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3년연속 본상을 수상받았다.<ref name="20회 서가대">{{뉴스 인용|제목=손담비, '서울가요대상' 3년 연속 본상 수상|url=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101847|출판사=뉴스웨이|저자=최가람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1}}</ref> 이어 아시아모델시상식에서도 BBF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ref name="BBF">{{뉴스 인용|제목=권상우ㆍ소녀시대ㆍ옌청쉬, '아시아 스타상'|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4878908|출판사=네이버뉴스|저자=연합뉴스 임은진 기자|날짜=2011-01-21|확인날짜=2011-01-22}}</ref> 2011년 5월부터는 피겨스케이팅 예능 프로그램 《[[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 출연했고, TOP4에 진출했다.<ref>[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l_freetype.jsp?vVodId=V0000349432&vProgId=1000708&vMenuId=1014807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출연진 및 MC 소개] 《[[SBS]]》. 2011-05-21 확인.</ref> 2011년 11월부터는 MBC의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가수 유채영 역으로 출연했고, 미디엄 템포 장르의 드라마 OST "Everything"을 불렀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빛과 그림자’ OST 참여 ‘호소력 짙은 목소리 뽐내’|url=http://artsnews.mk.co.kr/news/188777|출판사=아츠뉴스|저자=김세영|날짜=2012-01-04|확인날짜=2012-01-05}}</ref> 《빛과 그림자》는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유지했고, 손담비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ref>{{뉴스 인용|제목='발연기'한다던 손담비, 어느덧 '배우'가 됐다|url=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오영경|날짜=2012-06-12|확인날짜=2012-06-1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616025258/http://news.sportsseoul.com/read/entertain/1047784.htm#|보존날짜=2012-06-16|깨진링크=예}}</ref> 2011년 12월 1일에는 [[애프터스쿨]]과 함께 해피 플레디스 2012 시리즈인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를 발매했고, 수익금 일부를 [[유니세프]]의 "아우인형" 프로젝트에 기부했다.<ref>[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04689 네이버 뮤직 - Happy Pledis 2012 `Love Letter`] 《네이버》. 2012-01-05 확인.</ref> 2012년 8월, 《빛과 그림자》가 종영되었고, 손담비는 가수로서 컴백을 준비했다.<ref>{{뉴스 인용|제목=손담비, 런던올림픽과 한판|url=http://sports.donga.com/3/all/20120612/46956635/3|출판사=[[스포츠동아]]|저자=김원겸|날짜=2012-06-13|확인날짜=2012-06-18}}</ref>
- 송재호(배우) . . . . 1회 일치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이 있으며 서울 올림픽 때 클레이 부문 심판으로 참가했다. 대한사격연맹 이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개신교]] [[장로회]] 신자이며 장로의 직책을 맡고 있다.[* 오륜동에 있는 오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 김은호 목사)의 장로이다.]
- 송지효 . . . . 1회 일치
* 2013년 서울 국제 청소년 영화제 홍보대사
- 수애 . . . . 1회 일치
| 제1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스카이 김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남. 2004년까지 대구중구청 양궁팀에서 활약. 2년여에 걸친 호주양궁협회의 설득 끝에 2005년 1월 호주로 건너갔고, 2006년 6월 호주 국적을 취득함. 그는 국적을 바꾼 이유에 대해 "올림픽 출전이 소원이지만 국내에선 전망이 없었다"고 설명함.<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2220964 연합뉴스, <올림픽> 호주양궁 김하늘, "2012년엔 내가 금메달"]</ref> 2007년 8월 프레올림픽에서 양궁 개인전 금메달.
- 스틸오션/독일 . . . . 1회 일치
>엠덴은 바이마르 시기 건조된 첫 경순양함이다. 전체적으로는 쾰른(Köln)급과 닮았지만, 배수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제거했다. 계획되었던 어뢰발사관 네문은 연합국의 반대에 부딫혔다. 엠덴만이 건조가 완료된 엠덴급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훈련함으로 개장되어 사용되었다. 1940년 4월의 노르웨이 침공에 동원되었으며 그후 어느 전투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독일이 항복한지 2틀 후에 킬에서 자침되었다.
- 시가라키 토무라 . . . . 1회 일치
[[빌런 연합]]의 수장인 젊은 빌런. 얼굴을 포함해 팔 곳곳에 '손'을 붙인 모습이다. [[미도리야 이즈쿠]]를 비롯한 [[유우에이 고등학교]] 학생들이 USJ에서 훈련을 하려고 하던 때에 [[쿠로기리]], [[뇌무]]를 위시한 다수의 부하들을 이끌고 등장했다. [[올마이트]]에게 큰 악감정을 품고 있다.
- 시장경제지위 . . . . 1회 일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였다. 이 때 가입 조건을 놓고 회원국들과 협상을 거쳤는데, 시장경제지위 부여는 WTO 가입 15년 뒤로 연기되었다. 이후 2016년 까지 한국, 러시아, 브라질, 뉴질랜드, 스위스, 호주 등이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였으나, 유럽연합, 미국, 일본, 캐나다는 인정하지 않게 된다.
- 아스팔트 우파 . . . . 1회 일치
*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이 있다.
- 아웃워드 작전 . . . . 1회 일치
아웃워드 작전은 1944년에 종료된다. 독일을 폭격하던 연합군 폭격기들이 풍선에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 아이린(레드벨벳) . . . . 1회 일치
* [[http://www.yonhapnews.co.kr/digital/2018/03/26/4904000000AKR20180326018200797.HTML|연합뉴스]]에서는 이상적이라 여기는 상냥하고 순종적인 여성과 자신을 위협하는 도전적인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여성관이 원인이며,[* [[https://www.fmkorea.com/986132907|"너랑 결혼까지 생각한 나를 후회한다"]]와 같은 반응은 이러한 이분법적 여성관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며,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익명성을 통해 분노와 혐오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한국여성정책연구소 안상수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장의 견해를 인용했다.
- 아토믹 스컬 . . . . 1회 일치
애니메이션 [[저스티스 리그 언리미티드]]에도 등장. 지하격투장에서 등장했는데 [[와일드캣]]과 싸웠다가 패했다. 이후 [[고릴라 그로드]]의 대규모 빌런 집단에도 합류해 재등장. 후반부에 [[다크사이드]]의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자 히어로와 빌런들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아포콜립스의 전력에 대항했다.
- 안동준 . . . . 1회 일치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1년 국제관광공사 [[총재]]에 임명되었다.
- 안영준 . . . . 1회 일치
||<:><#0A6EFF> {{{#ffffff '''국제대회 경력''' }}} ||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8)[* 3X3 농구] [br] 2019 농구 월드컵 중국 아시아 예선 2라운드 1윈도우 (2018) ||
- 안종범 . . . . 1회 일치
* 2000 . 12 ~ 2002 . 02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정세제위원회 위원장
- 안지만 . . . . 1회 일치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 양시칠리아 왕국 . . . . 1회 일치
어떻게 보면 천명 밖에 안 되는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 부대에 불꽃같이 맹렬하게 개털리고 망한 나라(…)가 되겠다. 물론 민족주의의 부흥과 낙후된 양시칠리아 왕국의 현실, 그리고 국제정세면에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개입 없이는 최종적 승리는 어려웠다고 봐야 하겠으나 그래도 워낙 화려하게 털려서….
- 양예나 . . . . 1회 일치
* 2015년 12월 20일 MBN <전국제패>에 진솔과 함께 출연했다.
- 어쌔신 크리드 III/아이템/대번포트 농지 . . . . 1회 일치
* 영국제 플린트락 권총(English Flintlock Pistol)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회 일치
1778년, 코너는 아킬레스에게 돌아와 언쟁을 벌인 일을 사과하고, 아킬레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아킬레스는 이제 템플기사단의 세가 약해졌으니 평화를 이룰 수 있다며,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이 연합했을 때 뭘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코너를 보고는 그가 아버지와 만났다는걸 알아낸다. 아킬레스는 헤이덤이 코너를 이해하거나 동의할 것 같냐는 반응을 보이지만 코너는 헤이덤을 만나러 뉴욕으로 떠난다.
- 에이스 컴뱃 제로 : 더 벨칸 워 . . . . 1회 일치
벨카의 도시. 연합군의 초토화 작전과 벨카군의 [[청야전술]]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 연광철 . . . . 1회 일치
[[불가리아]]의 소피아 음대를 거쳐 [[독일]] 베를린음대를 졸업했다. 이후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 우승함으로 국제무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 영양군 . . . . 1회 일치
* 영양군의 5면 중 하나인 수비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밤하늘이 어두워서 [[별자리]]를 관측하기 좋은 곳이다. 덕분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20년 전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감천유원지[* 말이 유원지지 그냥 개울가 있고 돌 있고 소나무 있는 곳이다.]에서 '''육안으로 [[은하수]] 관측이 가능'''한(...) 굉장한 곳이었다. 아직도, 여름철에 수비면에서 빛이 없는 마을 입구, 다리 위, 밭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 은하수가 잘 보인다.
- 영천시 . . . . 1회 일치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남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오세창 . . . . 1회 일치
임정 환국 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ref>
- 오퍼레이션 발할라 . . . . 1회 일치
오퍼레이션 발할라(Operation Valhalla)는 [[행성 연합]]에서 [[이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 조직이다.
- 온주완 . . . . 1회 일치
|| 2006년 || 제27회 더반국제영화제 || '''남우주연상''' ||
- 원피스/823화 . . . . 1회 일치
국제적인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세계회의"가 소집된다.
- 원피스/858화 . . . . 1회 일치
루피, 벳지, 시저가 "싫네요!"라고 입을 모은다. 징베는 그런걸 "연합군"이라 부른다며 치고받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지금 손을 잡는데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설득한다. 이걸로 분위기가 정돈된다. 셋은 여전히 으르렁 대지만 어쨌든 빅맘 타도를 목표로 "회의"는 진행된다.
- 원피스/864화 . . . . 1회 일치
* 벳지는 징베와 페드로에게 전력으로 루피를 원호할 것, 그리고 루피는 다시 한 번 빅맘에게 깨진 사진을 보여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큰 소리도 회장에 있는 모든 "연합군"에게 귀마개 "인지지블 심포니아"를 장비하라고 소리친다. 이 행동으로 빅맘 해적단의 이목이 그에게 쏠린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동안 루피는 사진을 챙겨서 빅맘에게 향하고 케이스 속의 나미 일행은 귀마개를 낀다.
- 원피스/865화 . . . . 1회 일치
* [[나미(원피스)|나미]] 일행의 뒷처릴 마친 [[시저 크라운]]은 [[샬롯 브륄레]]를 데리고 거울 밖, 다과회장 정문 앞으로 나온다. 이제 작전이 성공하면 탈출용 거울로 일행을 탈출시키는 것만 남았다. 시저는 심장을 되찾고 "연합군"에 복수할 꿈에 부풀어 반드시 이 임무를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원피스/869화 . . . . 1회 일치
* 카타쿠리가 어느틈에 떡으로 대포를 전부 막아버려 공격 수단이 사라지고 페로스페로가 사탕으로 발을 묶어서 연합군은 오도가도 못한 채 포위된다.
- 위키 작성 참고 자료 . . . . 1회 일치
*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
- 유다인 . . . . 1회 일치
|| [[2010년]] || [[계룡시]] || 계룡 국제밀리터리영화제 홍보대사 || ||
- 유한식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새정치민주연합]] [[이춘희]]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 윤다훈 . . . . 1회 일치
* 2003년 동국제약 [[인사돌]]
- 윤식 . . . . 1회 일치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 윤진식(국회의원) . . . . 1회 일치
그러나 결과는 친구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시종 후보에 밀려 또 낙선하였다.~~친구하고 선거에 붙으면 운이 없다~~ 충주권 맞불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충주에서 오히려 4,473표차로 앞섰으나[* 충주는 원래 매우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다. 이시종 지사의 개인기로 민주당이 가져왔던 것일 뿐인데, 윤진식 후보도 같은 충주 출신이라 이번에는 새누리당 이긴 것. 참고로 윤진식 후보가 충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벌어진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의 [[이종배]] 후보가 당선되었다.] 충북 최대 인구밀집지인 청주권에서 17,262표차로 패했다. 참고로 양 후보간 표 차이는 14,963표.~~충북지사 선거는 원래 청주만 이기면 90%는 먹고 들어간다~~
- 윤채경(가수) . . . . 1회 일치
2017년 8월 3일 [[켄타(JBJ)|타카다 켄타]]와 함께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 홍보대사인 '무비아띠'에 위촉됐다.
- 은지원 . . . . 1회 일치
정확하게 말하자면 5화까지는 연예인연합의 일원으로서 약간 욕을 먹긴 했어도 꽤 좋은 게임 센스와 매너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은 편이었다. 그러나 6화에서 거하게 삽질한 이후부터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이전까지는 호불호가 없는 호감연예인으로도 유명했으나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에서 사고친 후에는 지금은 호불호가 좀 갈리는 연예인이 되었다. 본인도 더 지니어스 출연이 워낙 트라우마가 컸던지 1박 2일의 정신적 후속작인 [[신서유기]]에서 '''본인의 악플을 다 지우는게 소원'''이라 밝힐 정도였다.~~[[이수근]]은 구글 본사가 움직여도 못지운다~~
- 은혼/578화 . . . . 1회 일치
* 황안은 과거 대전쟁에서 행성연합의 집중공격을 당해 [[용맥]](아르타나)이 폭주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야토는 모성을 버려야했고, 용맥의 영향으로 황안은 돌연변이 생물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
- 은혼/599화 . . . . 1회 일치
* 그 결과 도쿠가와 노부노부는 자신을 쇼군으로, 양이지사를 가신으로 내세워 연합군과 교섭하는 방안을 제출한다.
- 은혼/608화 . . . . 1회 일치
* 준비가 완료된 가부키쵸 주민 연합.
- 은혼/634화 . . . . 1회 일치
* 지구로 불시착한 하루사메의 배에서 나온 것은 [[카무이(은혼)|카무이]]. 7사단을 이끌고 가부키쵸 연합군에 참가한다.
- 은혼/639화 . . . . 1회 일치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플하고도 거대한 음모. 모든 걸 파멸시키려는 [[우츠로(은혼)|우츠로]]의 계획은 우주에서 싸우는 [[귀병대]]에도 전달된다. [[다케치 헨페이타]]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자 [[키지마 마타코]]가 귀를 의심한다. 그녀는 병력을 이끌고 히노카구츠치를 저지하기 위해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해진 아르타나의 폭주. 마타코는 에도의 가부키쵸 연합군이 어떻게 됐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거기까지는 헨페이타도 알 수 없는 일. 그저 많은 별들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사태가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배후가 우츠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카와카미 반사이]]가 우츠로의 진짜 목적은 뭐냐고 물었다. 헨페이타가 알아낸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지상의 해방군 잔당을 일소하고 본대가 히노카구츠치로 보복하는 걸 유도하는 것. 거기에 지구의 전 아르타나를 모은 아르타나 캐논을 작렬, 막대한 힘을 충돌시켜 지구를 부수고 전우주에서 모인 해방군과, 잘하면 이 은하까지 부수는 걸 노리고 있다.
- 은혼/654화 . . . . 1회 일치
* 노부메의 짐작대로였다. 우츠로의 지시로 터미널을 폭주상태로 몰고간 시생인들이 보고를 올렸다. 이미 터미널을 한계. "문"은 더이상 부하를 견딜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우츠로는 그 보고가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부하들도, 아네모네 자매와 이누카미들도 모두 훌륭하게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 자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칭찬할만하다고 우츠로가 말했다. 그러니 그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우츠로는 진선조를 앞세운 카부키쵸 연합군이 터미널로 진격할 것도 알고 있었다.
- 의성군 . . . . 1회 일치
||<|2> [[정창화(정치인)|정창화]]/3선[br][[민주정의당]] ||<|2> 김동권/초선[br][[민주자유당]] || --[[김화남]]/초선--[* 97.12.26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br] --자유민주연합-- ||<|2> 정창화/5선 [br] 한나라당 ||<|2> [[김재원(정치인)|김재원]]/초선 [br] 한나라당 ||<|2> [[정해걸]]/초선 [br] 무소속 ||<|2> 김재원/재선 [br] 새누리당 || --[[김종태(1949)|김종태]]/재선--[* 17.2.9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br]--새누리당-- ||
- 이강철 (1947년) . . . . 1회 일치
*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중앙위원
- 이국철 . . . . 1회 일치
2012년 5월 23일, 징역 8년이 구형됐다. 2012년 6월 4일엔 전 차관 [[신재민]]과 징역 3년 6월이 확정되었으나 2012년 11월 30일,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됐으나<ref>《노컷뉴스》(2012.12.03)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333935 이국철 보석으로 석방, 신재민도 풀려날 가능성 커신재민 항소심 재판 연기되면서 이국철 구속만기 중 선고 불가능]</ref> 재수감됐고 2013년 1월 31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고서<ref>《아시아투데이》(2013.01.31)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761723 이국철 SLS그룹 회장, 항소심서 징역 2년6월로 감형]</ref> 2013년 6월 13일,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ref>《연합뉴스》(2013.06.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6313553 대법, 이국철 SLS 회장 징역 2년6월 확정(종합)]</ref>
- 이덕건 . . . . 1회 일치
*결국 1997년 7월 12일부터 10월 5일까지 9시에 방영된 KBS 2TV [[전설의 고향]] 16화 '걸귀'(8월 31일)와 26화 '초야'(10월 5일, 마지막회)로 복귀하였는데 SBS <[[이웃집 여자]]><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01&aid=0004242490|제목=SBS 주말극 야외 오픈세트 공개|저자=서한기|날짜=1997-06-17|출판사=연합뉴스|쪽=|확인날짜=2016-02-03}}</ref>와 경쟁한 바 있다.
- 이동춘 . . . . 1회 일치
통산 전적은 57전 45승(26KO) 2무 10패이며, [[1995년]] [[9월 5일]] [[도쿄도]] [[고라쿠엔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가와 세쓰오]]와의 경기에서 판정패한 뒤 급성 [[경막하혈종]]으로 쓰러져 4일 후인 [[9월 9일]] 사망했다.<ref>{{뉴스 인용|제목=韓國프로복싱선수,日링서 쓰러져 사망서|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925974|출판사=연합뉴스|저자=|날짜=1995-09-10}}</ref>
- 이동흡 . . . . 1회 일치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할 때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이라고 했다.<ref>백나리, 차대운,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8473.html 헌재,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 [[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 |제목 = 盧 지명한 2인 등 위헌, 검찰출신·한나라 지명자 합헌 |url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41805005&code=940301 |출판사 = 경향신문 |저자 = 조헌철 기자 |쪽 = |날짜 = 2009-09-24 |확인날짜 = }}</ref>
- 이명주 (축구선수) . . . . 1회 일치
2014년 12월 22일 발표된 [[2015년 AFC 아시안컵|2015 AFC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정협 깜짝 발탁…슈틸리케호 아시안컵 명단 확정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2/0200000000AKR20141222048300007.HTML?input=1195m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동찬, 장재은 |날짜 = 2014-12-22 }}</ref>이후 인연이 없다가 2017년 5월 22일 재승선 되었다
- 이미연 (배우) . . . . 1회 일치
* 제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2007)
- 이민호(1987) . . . . 1회 일치
||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프로듀서 초이스상 || ||
- 이보림 . . . . 1회 일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5~6회|6회]] 참가자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대부분 현역 아이돌들인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배우/[[모델]] 출신인지라 아는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잠깐 사이에 [[의진(소나무)|의진]]과 친해졌는지 의진이 [[멜로디데이]]와 [[DIA(아이돌)|다이아]] 연합에 들어갈 때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빨강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 이상호 (1989년) . . . . 1회 일치
[[12월 22일]] [[상무 야구단]]에 [[김희원 (야구 선수)|김희원]], [[권희동]]과 함께 2015년에 입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257485 상무 야구단, 이용찬 등 17명 합격자 발표 ] - 연합뉴스</ref>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1회 일치
1990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주로 중간 계투로 뛰었다.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포수 [[진갑용]]을 상대로 현금 4억원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408061|제목=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날짜=1999-07-31|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에 70경기 동안 133.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0패 2세이브 6홀드와 93탈삼진 평균자책점 3.91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지만 2003년 기량 하락으로 방출되었다. 이후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만 단 2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 이상휘 . . . . 1회 일치
최근에는 [[연합뉴스TV]]에 간간히 나온다.
- 이성민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2015년]] [[5월 2일]]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5:4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569615 롯데-KT, 5대 4 대형 트레이드 단행] - 연합뉴스</ref> 이적하자마자 9경기 연속 평균자책점 0.00대 행진을 하며 [[롯데 시네마]]라는 조롱성 별명을 얻은 [[롯데 자이언츠]] 불펜진에 큰 힘이 되었다. 5월 한달간 14경기에서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1.80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6월에도 역시 7경기에서 1승 1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8의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불안한 불펜진의 핵심 투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7월과 8월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15경기에서 2승 3패, 1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9.45를 기록하며 부진에 늪에 빠졌다. 하지만 9월에 다시 컨디션을 되찾으며 12경기에서 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2015 시즌 61경기에 나서 5승 7패, 7홀드, 4세이브,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 이승현(농구선수) . . . . 1회 일치
'''국내무대에서 자신이 소속했던 모든 팀을 우승시켰다. 그것도 주역으로'''[* 다만 국대에선 우승경력이 없다. 최근 한국농구의 유일한 국제대회 우승인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으며, 15년 가을에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에선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우승시키진 못했다.]
- 이시형 (1934년) . . . . 1회 일치
*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 고문
- 이신학 . . . . 1회 일치
* 남구자율방범연합회 회장
- 이영세 (1947년) . . . . 1회 일치
* 1981.08~1982.01 국제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 이영희 (1936년)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출생한 그녀는 [[199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ref>[http://news.joins.com/article/18725617 반평생 바친 한복, 한류 명품으로 키울 자신 있어요] 《중앙일보》 2015-09-23</ref> [[2001년]] [[6월 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직할시|평양]]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7108528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인생 이야기] 《연합뉴스》 2014-09-06</ref> 또 2005년 APEC 정상회의 때는 APEC 정상회의의 이벤트였던 전통의상 부문에서 참가국 정상들의 두루마기를 제작한 바 있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12674691 APEC 정상들의 두루마기 패션쇼] 《한국경제》 2016-01-26</ref>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이다.<ref>[http://news.ichannela.com/enter/3/06/20151004/73990365/1 ‘전지현 시할머니’ 이영희, 누구 한복 만들었나] 《채널A》 2015-10-04</ref>
- 이원형(1951) . . . . 1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창화(정치인)|정창화]]와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박철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중앙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 이인 . . . . 1회 일치
*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봉영식에 참석하였다. 서울그라운드에서 윤보선의 사회로 임시정부 봉영식이 시작되었다. 이어 [[오세창]]의 개회사, 이인의 봉영문 낭독, [[권동진]]의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봉영문은 [[권동진]], [[김성수 (1891년)|김성수]], 이인을 통해 [[김구]]에게 전달되었다.<ref>아 비운의 역사현장 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1993), 145페이지</ref>
- 이장섭 . . . . 1회 일치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7/0200000000AKR20171027143100064.HTML 이장섭 신임 정무부지사 발탁…이시종 3선 도전 '포석'] 연합뉴스 2017/10/27
- 이장훈(배우) . . . . 1회 일치
※2011 부산국제 영화제 초청작, 시민평론가상(레드파인들리)수상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 2003년 || 우리들의 전쟁[* 첫 영화이자 유일한 영화 작품] || 독립운동가 || 국방홍보원 장병 양성 영화/국제군사영화제 우수상 수상작품 ||
- 이정재(영화배우) . . . . 1회 일치
||2011||제31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하녀||
- 이정훈 (1963년) . . . . 1회 일치
[[2009년]] 제 6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2009년]] 제39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587634 <고교야구> 이정훈 북일고 감독 "이제 시작이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2일 작성</ref>
- 이종근(1923) . . . . 1회 일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신민주공화당 부총재, 대한민국 국회 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장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이준승 . . . . 1회 일치
대검찰청 공판부장, 1980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장과 1981년 법무부 법무실장을 거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1982년 대전지검, 1983년 마산지검에서 검사장을 지내고 광주지검 검사장 재직 중인 1986년 4월에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1986년 4월 17일에 2년 임기의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고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취임이후 대법관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하여 대법원 판사 퇴임이후에 변호사 활동을 하였다. 1991년에 국회 추천 몫으로 여당인 [[민자당]]이 추천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에 추천되어 1997년까지 임기를 마쳤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7027020]</ref>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시절에는 [[동백림 사건]]을 맡아 처리했으며 <국제분쟁에 있어서의 국가배상 문제> 등의 저서가 있고 테니스와 등산을 즐겼다.<ref>경향신문 1986년 4월 3일자</ref> 대구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80년 7월 3일 소속 검사와 직원들에게 "공사간 언행을 조심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 피의자들에게 이해와 설득으로 승복하여 신뢰받는 검찰상을 구현해달라"고 하면서 "공보관은 엄연히 검사장이므로 검사나 일반직원들이 함부로 수사기밀을 누설하지 말고 검찰청 출입자의 신분을 가릴 것 없이 수위실에서 출입증을 받아 패용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고<ref>경향신문
- 이진만 (1675년) . . . . 1회 일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440827 도난문화재 박물관 전시 적발] 연합뉴스
- 이철우(1955) . . . . 1회 일치
[[2017년]] [[6월 20일]] 제주도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타운홀미팅에서 문재인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얼마 못 갈 것"이라는 발언[*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위해 지지층 결집용으로 격한 말을 던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으로 파문이 일었다. 내년 지선과 총선에서 당이 승리를 결의한 것과 달리, 문재인의 현재 하는 행동이 박근혜처럼 탄핵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면서 비난을 한 것.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야당의 막말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며 정부 흔들기를 그만하라고 비판했다. [[http://m.news.naver.com/rankingRead.nhn?oid=001&aid=0009348444&sid1=100&date=20170620&ntype=RANKING|연합뉴스]] 본인은 이 사태를 단순히 문재인이 경각심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해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830754|한국당 이철우 '문 대통령 탄핵 암시 발언' 논란에 "경각심 차원의 말"]]
- 이철희(1964) . . . . 1회 일치
12월 24일 [[새정치민주연합]]이 이 소장을 내년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할 총선기획단장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다른 기사에선 성사 직전까지 왔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57&aid=0000865862|#]]
- 이카르부스 . . . . 1회 일치
[[제2차 세계대전]] 도중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며 공장이 독일의 손에 넘어간다. 이 때문에 1944년 4월 벌어진 연합군의 폭격 작전으로 공장이 파괴된다.
-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 . . . . 1회 일치
2003년 12월에 타쿠마는 와카야마 출신의 여성과 5번째 결혼을 했다. 여성은 사형 폐지를 호소하는 국제사면위원회 활동에 참가하고 있었다. 지원자 가운데 1명으로 변호사를 통하여 타쿠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결혼은 타쿠마에게 접견, 서신 권리를 얻으며, 타쿠마에게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은 가족에게 맹렬한 반대를 받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성을 바꾸고 타쿠마도 이 성을 쓰게 되었다.
- 장성환 . . . . 1회 일치
[[분류:1920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태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대한민국의 교통부 장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조선경비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기후 대학 동문]][[분류:도야마 대학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국방연구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 공군 중장]][[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공군무관]]
- 장세용 . . . . 1회 일치
하지만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하였기 때문이고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부패 스캔들 사태]]와 마약, 사기 등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들이 박정희 사망 이후에 저질러온 악행으로 인해 그 신화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파멸해버린 상황에서 박정희를 추종하는 친박 등 한국내 보수 우익 세력들이 박근혜의 친동생들이자 나머지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의 자녀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을 새로운 친박 세력의 지도자로 정계로 영입하거나 세우지 못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박근령과 박지만 모두 사기, 마약 등 범죄 전과를 가진 전과자의 신분에다 과거에 행실이나 성품 등 여러 부분에서 정치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들로 박근혜가 몰락하기 이전부터 드러났기 때문에 친박계로서도 이들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렇다고 나머지 박정희-육영수 일가의 다른 일가족이나 친척들은 언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거나 인지도가 워낙 낮아서 박근령이나 박지만보다 내세우기 더 힘든 실정이다. 현재 대한애국당이나 신 새누리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등 주류 친박 단체들과 친박 성향의 극우 원외 정당들이 박지만과 박근령을 기피, 거부하며 박근혜의 석방과 사면을 요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버린 박근혜와 70년대 총탄에 암살당한 그들의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 부부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이 6선이나 한 지역이었지만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며 그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후술되어 있지만 선거 구조가 민주당계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당계의 시의원이 전원 당선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실적으로 1000억 넘게 들어가는 박정희 예산은 구미시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미시의 18년 기준 1년 예산은 1조다. 비록 1000억이 1년만에 집행된건 아니지만 적어도 1년에 수백억씩 사용되기는 했고 실제 구미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 장유환 . . . . 1회 일치
*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학사
- 장윤희 (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 경력: [[2006년]] 연세대학교 학생홍보대사 I.N.延, [[2009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홍보대사, [[2010년]] 대백제전 홍보대사
- 장의수 . . . . 1회 일치
| 학력 = 국제대학교 모델연기학과
- 장진수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 한솔 국제 게임랭킹 팀플 3:3 준우승
- 장태영(야구선수) . . . . 1회 일치
경남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 장호 (1920년) . . . . 1회 일치
|출판사=통일뉴스 (연합뉴스 인용)
- 전상우 (1953년) . . . . 1회 일치
* 2001.04 ~ 2002.01 : 특허청 국제특허연수부장
- 전수지 . . . . 1회 일치
* [[2006년]]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경쟁부문 단편의얼굴상
- 전인환 . . . . 1회 일치
[[2010년]]에 입단하였다. [[2018년]] [[10월 25일]]에 방출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10/25/0200000000AKR20181025060000007.HTML?input=1195m 프로야구 LG, 좌완 불펜 윤지웅 등 12명 방출] - 연합뉴스</ref>
- 전일본공수 . . . . 1회 일치
일본의 민간 항공 기업. 1952년 설립. 국내선, 국제선을 운용하고 있다.
- 전지수 . . . . 1회 일치
[[국제대회]]
- 전태일 . . . . 1회 일치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 중에도 고등학교 복학을 꿈꿨고, [[1967년]] [[2월 20일]] 자신의 바지와 하숙방에 있던 곤로를 팔아 연합중고등 통신강의록 <중학 1>권을 1백50원에 산다. 수중에 남은 15원으로 10원짜리 노트를 산 뒤 전화비 5원을 주머니에 남겨두고 3일간 금식하였다. 당시 한 쪽지에 그는 "내일부터 23일까지 금식이다. 설마 3일 금식에야 죽지 않겠지. 정신수양의 금식이야.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콧잔등이 시큰해오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년 3월에는 꼭 대학입시를 보자. 앞으로 3백76일 남았구나. 하루에 2시간씩 공부하면 내년에는 대학입시를 볼 수 있겠지."라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40화 . . . . 1회 일치
* 극비기관인 것은 냉전시대의 영향인데 이 관측소의 관측기가 성능이 너무 좋다 보니 국경 너머 타국의 에스퍼까지 감지해서 국제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
- 절대가련 칠드런/463화 . . . . 1회 일치
* 혈청을 확보한 더 칠드런과 판도라 연합은 [[쿠모이 유리]]와 [[효부 쿄스케]]의 위장최면을 앞세워 바벨 본청 입성을 노린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회 일치
* 작전 실패 후 퀸 오브 카타스트로피 호에서 은둔하고 있는 칠드런 일행. Tv에선 에스터 규제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일본도 국제적인 반 에스퍼 흐름을 이어받아 에스퍼에 대한 관리 및 규제 강화 법안이 통과됐다. 바벨의 [[키리츠보 타이조]] 국장과 [[카시와기 오보로]] 대위는 다시 세뇌됐는지 넉살 좋으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정겨운 . . . . 1회 일치
* [[2011년]] 제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보대사
- 정동기 . . . . 1회 일치
* 1995년 ~ 1996년 7월 :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
- 정승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단국대학교|단국대]] 시절 강타자로 활약하며 에이스 [[오승환]](삼성)과 함께 수차례 전국 대회 우승을 이끈 주인공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te.com/view/20070501n02649|제목=젊은 독수리들, 언제 날까|이름=노재현 기자|날짜=2007-05-01|출판사=연합뉴스|확인날짜=2010-05-19}}</ref>
- 정용화 . . . . 1회 일치
=== 2012-2014: 국제적 활동과 연기 활동 ===
- 정의동 . . . . 1회 일치
*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 정인선(탤런트) . . . . 1회 일치
* [[백종원의 골목식당]] 인천 신포국제시장 청년몰 에피소드에서 [[김민교]]와 연예인 식당 지원군으로 나왔다. 요리 자체는 맛있지만 상업성과 회전률, 김치 국물이 줄줄 흐르는 단점 때문에 김민교가 선보인 '팟 파카오 무 쌉'[* 정확히는 '팟 파카오 무 쌉 __랏 카우__'로, 다진 돼지고기와 [[바질]]을 주재료로 하는 태국식 [[제육덮밥]].]에 밀려 접대와 보조를 맡았으나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김민교와 좋은 호흡을 맞춰 호평을 받았다. [[백종원]]이 찾아와 김민교와 태국 요리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를 나누자 살짝 굳어지면서 경탄하는 귀여운 모습도 보인다.
- 정재학 (1856년) . . . . 1회 일치
임 대기자는 [[대구은행]]의 설립을 주도했던 [[정재학]] 외에도 [[이일우]]란 대구 지주 부호 역시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는 등 민족 의식 고취에 앞장섰다고 강조했다. 이일우 가문은 체육계원로로 IOC (국제올림픽 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이상백]], 독립군을 이끈 [[이상정]] 장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경향파애국시인 [[이상화]] 등을 배출하는 등 대구지역에서 명문가이자 [[민족자본세력]]의 한 축을 이뤘다 . 또한 대구은행에 참여한 [[서상돈]] 역시 대구지역 민족경제인들의 결사체인 [[대구시의소]]를 이끈 [[대구]]의 명망가였다.<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0편</ref>
- 정종원 . . . . 1회 일치
막내 정운익은 하와이 오하나 퍼시픽 은행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처음으로 직접 구성했다. 그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집행위원을 겸직했다.<ref>경향신문, 1998년 2월 25일 26면</ref> 정종원 행장 내외가 생전에 장충동 본가에서 키우며 마지막으로 안아 본 손녀가 정운익의 3녀인 뉴욕퀸이다.
- 정진(1941) . . . . 1회 일치
| 본명 = 정수황 <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8447402 '한명회' 배우 정진 별세…향년 75세]2016. 6.2 작성 연합뉴스</ref>
- 정치공학 . . . . 1회 일치
* [[DJP 연합]]
- 제주시 . . . . 1회 일치
제주국제공항
- 제주특별자치도 . . . . 1회 일치
제주국제공항
- 조길형(1962) . . . . 1회 일치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청장 당선자가 [[동명이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조길형(1957)|조길형]] 후보. 한자도 항렬도 같다.]이라서 화제가 되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접전 끝에 당선된다.
- 조소혜 . . . . 1회 일치
[[2006년]] [[5월 24일]] 지병인 [[간암]]으로 향년 51세로 별세하였다. 집필중이던 《[[맨발의 청춘 (2005년 드라마)|맨발의 청춘]]》의 시청률 부진에 대해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306430 드라마 작가 조소혜 씨 갑작스레 타계] 《연합뉴스》김가희, 2006년 5월 25일 작성, 2010년 5월 19일 읽음.</ref>
- 조응천 . . . . 1회 일치
이후 [[이동형]]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 [[최재성(정치인)|최재성]] 전 [[새정치민주연합]] 총무본부장과 함께 출연해서 2탄(?)도 공개했는데 한 술 더 떠 [[http://www.podbbang.com/ch/4362|'''십상스시''' 라고 지으려고도 했다]]고 한다. 이 이름은 [[십상시|십상]][[스시]]라고 하면 해물 음식점인데 [[초밥]]으로 메뉴가 한정될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이것도 주위에서 뜯어말린 거 같은데...-- 본인이 [[청와대]]에서 당한 것이 하도 억울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 조진호 (축구인) . . . . 1회 일치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 진격의 거인/95화 . . . . 1회 일치
* 답이 없는 얘기가 아닐까? 피크가 그 점을 지적한다. 이미 국제적 여론이 이렇게까지 악화됐다면 설사 팔라디섬을 제압해도 그 증오를 청산할 수는 없다. 지크도 그 점을 인정했다.
- 진구 . . . . 1회 일치
* 2009년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보대사
- 집단등하교 . . . . 1회 일치
등교 행렬을 괴한이 습격했는데 등하교 도우미를 하던 노인이 막아서 괴한을 물리친 사건이 있다.[[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3/06/29/0703000000AKR20130629045900073.HTML (연합뉴스)]]
- 차선화 . . . . 1회 일치
* [[2012년]] - 부산국제모터쇼 쌍용자동차 레이싱모델
- 차수연 . . . . 1회 일치
||<|3> 2008년 || 아름답다 || 은영 || [* 제58회 [[베를린 영화제|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이 영화가 선정되어 영화제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렸다.] ||
- 창작:바벨 코스트 . . . . 1회 일치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바벨 코스트로 유입되며 성장세가 커졌다. 개중에는 아메리카 연합국 지역에 살던 일부 백인들이 신분을 속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 이로 인한 분쟁이나 갈등은 원한 관계로 인한 것 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Babel이라는 이름을 Barbell로 바꾸게 되었다.
- 채동욱 . . . . 1회 일치
* 2003년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제2부 부장검사 (2003년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을 수사해 당시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구속. 2004년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의 체육기금 등 공금횡령 사건을 수사.)
- 천해성 . . . . 1회 일치
2017년 6월 제24대 [[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통일부 차관]]에 임명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차관으로 복귀한 통일부 대표 정책통 천해성|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31/0200000000AKR20170531136600014.HTML|날짜=2017-05-31|뉴스=연합뉴스}}</ref>
- 청도군 . . . . 1회 일치
|| 이재연/초선[br][[신민주공화당]] || [[이영창]]/초선[br][[민주자유당]] || [[김종학(정치인)|김종학]]/초선 [br] 자유민주연합 || [[박재욱(정치인)|박재욱]]/재선 [br] 한나라당 || [[최경환(1955)|최경환]]/초선 [br] 한나라당 || 최경환/재선 [br] 한나라당 || 최경환/3선 [br] 새누리당 || [[이만희(정치인)|이만희]]/초선 [br] 새누리당 ||
- 청송군 . . . . 1회 일치
산지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MTB]]나 산악 모터사이클 경기도 열린다. 청송 국제모터사이클 챔피언십은 개최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홍보탓인지 아는사람이 많이 없다. 온로드 대회가 아닌 오프로드 대회로, 청송사과공원 야영장 옆 공터에 트랙을 만들어 대회를 진행한다. 매년 10~11월중 하루 일정으로 진행된다. [[http://hyosang.kr/518|2015년도 대회 사진]]모터사이클은 2015년대회이후 시행돼지않고 있다
- 첼렌느 베르체코프 . . . . 1회 일치
첼렌느 베르체코프는 [[오퍼레이션 발할라]] 소속 요원이다. 본래 소속은 그루베니아 알페니아 행성의 아이스레인저 38 연대에서 하. 그후 [[행성연합]]의 스카웃되어 오퍼레이션 발할라로 욺기게된다.
- 최다빈 . . . . 1회 일치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국제스포츠학부 (18학번)
- 최동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38년]]에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을 지냈고 [[1941년]]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을 맡았다. 1941년에 [[동양지광]]이 주최한 '[[미영타도좌담회]]'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자격으로 참석해 [[황인종]]의 시각에서 [[미국]]과 [[영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일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제4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1947년 12월 4일 Severance 의과대학으로 승격시켜 6년제를 만들었고, [[1955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 최병철 . . . . 1회 일치
* {{언어링크|en}} [http://fie.org/fencers/Byungchul-CHOI-4921 최병철] - [[국제 펜싱 연맹]]
- 최석기 . . . . 1회 일치
최석기는 [[대전중앙중학교]] 3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선수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키가 크고 블로킹 타이밍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였다. 대전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박준범]], [[진상헌]]과 함께 장신벽을 구축하며 철벽 블로킹을 과시하기도 했다.<ref>[http://sports.media.daum.net/nms/basket_volleyball/news/vb/view.do?cate=23794&newsid=209416 -대학배구 최강전- 한양대, 인하대와 결승 대결] 《연합뉴스》 2007년 11월 7일 16:18, 2009년 3월 19일 《미디어다음》에서 확인</ref>
- 최선 (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서경대학교 동문]][[분류:민주노동당 (대한민국) 당원]][[분류:진보신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박근혜]][[분류:이명박]][[분류:문재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인]][[분류:노회찬]][[분류:심상정]][[분류:김규항]][[분류:진중권]][[분류:통합민주당 (2016년)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2008년 10월 17일에 혜진·예슬양과 정모 여인을 살해한 미성년자 약취·유인 및 살인 등으로 기소된 정모(39)씨에게 "극악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라고 하면서 사형을 선고하고<ref>[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43118&kind=AA03]</ref> 12월 19일에는 한총련 의장을 북한에 보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 윤기진씨(33)에게
- 최세창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최수진 (무용가) . . . . 1회 일치
[[2007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컨템포러리무용 시니어 여자부문 1위 <br />
- 최영철 (기자) . . . . 1회 일치
| - ||KBS 보도본부 보도국 국제부 기자
- 최원태 . . . . 1회 일치
[[2016년]] [[5월 27일]] 선발 투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이 다실점을 한 뒤 두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3.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6년]] [[6월 14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양훈 (야구 선수)|양훈]]의 공백을 메꾸는데 [[금민철]]이 실패하여 빈 자리를 메꿀 두 번째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분수|4|2|3}}이닝 동안 5실점을 기록하였다. [[2016년]] [[7월 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타선의 지원에 힙입어 {{분수|5|2|3}}이닝 2실점으로 데뷔 이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khan.co.kr/sports/sk_index.html?cat=view&art_id=201607012208003&sec_id=510201&pt=nv ‘첫승’ 넥센 최원태 “초심 잃지 않겠다] - 스포츠경향 </ref> 2017 시즌부터는 선발진에 합류하였는데, 지난 시즌에 비해 등판하는 경기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불펜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2017년]] [[4월 9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1군 경기 첫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09/0200000000AKR20170409045000007.HTML?input=1195m '7이닝 2실점' 넥센 최원태 "데뷔 후 가장 만족한 투구"] -연합뉴스</ref> [[2017년]] [[4월 27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개인 최다 이닝인 8이닝을 소화하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ref>[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7&no=287720 ‘시즌 3승’ 최원태, 값졌던 최다 이닝-투구수 경신] -MK스포츠</ref> [[2017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09388 ‘7이닝 1실점’ 최원태, 생애 첫 10승 요건] -OSEN</ref>
- 최은희 . . . . 1회 일치
1965년에는 [[대한민국]]의 3번째 여성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총 3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 때에 연출한 영화가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민며느리> 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페미니즘 어젠다와 텍스트를 보여준 시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민며느리>는 제20회 국제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그 이후 신상옥 감독이 중간에 배우 [[오수미]][* 본명은 윤영희로 [[윤영실 실종 사건|나중에 실종되는]] 윤영실의 언니다. 오수미 본인도 19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와 사귀게 되면서 [[이혼]]하였다. 1967년부터는 신상옥이 이사장으로 있던 학교였던 [[안양예술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일하며 후진양성에 주력했지만 1978년 1월 14일에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납북되었으며 동년 7월 19일에 신상옥 감독 역시 홍콩에서 납북되었다]].
- 최재우 . . . . 1회 일치
* {{언어링크|en}} [https://data.fis-ski.com/dynamic/athlete-biography.html?sector=FS&competitorid=151835 최재우] - [[국제 스키 연맹]]
- 최재웅 (배우) . . . . 1회 일치
|rowspan="2"|[[쓰릴미]]<ref>[http://kr.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yunhap&prgid=4228455&categid=1608216&page=4572&ref=ch&lot=cthum2_1_2 연합뉴스 TV 살인사건 다룬 2인 뮤지컬 '쓰릴미' 시사회]</ref><ref>[http://weekly.hankooki.com/lpage/culture/200706/wk2007060514090137140.htm 정영주의 공연리뷰 뮤지컬 '쓰릴 미(Thrill Me)']</ref>
- 최종원(국회의원) . . . . 1회 일치
||<#878787> '''{{{#EEE156 경력}}}''' ||<(> 2012. 07. 제24회 거창국제연극제 홍보대사 ||
- 최지우(영화배우) . . . . 1회 일치
||<|3> 2009년 || 한국연예제작자협회 || 국제문화 산업교류 재단상 || ||
- 최태영 . . . . 1회 일치
'''최태영'''(崔泰永, [[1900년]] [[3월 28일]] ~ [[200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이다. 한국인 최초로 [[1925년]]에 법학 정교수가 되어 한국 근대 법학의 초기에 [[보성전문학교]]와 [[서울대학교]] 등 많은 대학에서 상법·민법·헌법·국제법·행정법·법제사·법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며 법학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다.
- 최태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은퇴 후 [[SK 와이번스]] 주루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고 팀의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후 [[조범현]]이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새로 선임되자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1804658& KIA, 최태원·장재중 코치 영입] - 연합뉴스</ref>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후 [[2009년]]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 최호중 . . . . 1회 일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한 뒤 [[1956년]] 외무부에 들어갔다. 국제경제국장, 통상국장, 주유엔 유럽사무소 및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제네바대표부]] 공사, 말레이시아·[[주 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벨기에 대사]]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상공부 차관을 지낸 뒤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사우디아라비아 대사]] 등을 거쳐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1989년]] 2월 [[헝가리]]와의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 북방외교의 첫 성과를 대외에 알렸다. [[1990년]] 9월 30일 유엔에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부 장관과 '한·소 수교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재임 중 동구권 국가를 비롯해 18개국과 수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469&aid=0000048101], [[한국일보]] 2015년 2월 20일, [부고]‘북방 장관’ 최호중 전 부총리 별세</ref> 1990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당시 남북은 1991년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잇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이후 통일원 통일고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한국외교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 최훈재 . . . . 1회 일치
|끝내기 만루홈런 ||1993.7.22 ||[[LG 트윈스|LG]] ||[[삼성 라이온즈|삼성]]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 9회말 1사 만루 3-3 ||[[김상엽 (야구인)|김상엽]] || [[김영직]] ||역대 5번째 기록 ||<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3671447 LG,최훈재 끝내기만루홈런] - 연합뉴스</ref>
- 최휘영 . . . . 1회 일치
*[[1991년]] [[연합뉴스]] 기자
- 최흥철 . . . . 1회 일치
1996년에 대한민국 스키 점프 국가대표가 되어 FIS 컵과 콘티넨털컵 등의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이듬 해인 1997년 12월 20일에 스위스 엥겔베르크에서 열린 FIS 월드컵에 참가하여 월드컵 데뷔를 했으며 라지힐 개인전 경기에서 25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노멀힐 개인전에서 46위, 라지힐 개인전에서 40위를 기록했다. 그 후 당시 코치였던 최돈국 코치가 물러나면서 팀이 공황에 빠지었지만[* 이 때문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였다.],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계속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 최희서 . . . . 1회 일치
|<ref name="yonhapnews_2017-10-25_54th_grand-bell-awards">{{뉴스 인용 | 저자= 김희선 | 위치= 서울 | 뉴스= 연합뉴스 | 제목=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에 '택시운전사'…'박열' 5관왕 | url=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5/0200000000AKR20171025185700005.HTML | 날짜= 2017-10-25 | 확인날짜= 2017-10-25 | 보존url= http://archive.is/Bv9w9 | 보존날짜= 2017-10-25 | 깨진링크= }}</ref>
- 추봉 (배우) . . . . 1회 일치
* 1967년 《연합전선》
- 추자현 . . . . 1회 일치
* [[2012년]] CCTV 중국드라마 연도 스타성전 국제합작상
- 취활 . . . . 1회 일치
민간 기업에서 타사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고 취업 활동을 조기화하는 경향이 강하여 취업 활동 기간이 장기화하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에서는 1997년에 윤리헌장을 제정, 2013년에 채용전형지침을 제정하여, 취업 활동 기간에 제한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졸업 전년도 3월 부터 학생 대상 설명회가 해금되고, 이때부터 취업 사이트에 등록할 수 있다. 면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졸업 학년도 8월 1일 부터이다. 그리고 내정은 졸업 학년 10월 1일 이후로 되어 있다. 이 규정은 신사협정으로 벌칙 규정은 없다.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과거 [[남북전쟁]]에서 미국은 무력으로 연방을 탈퇴하려는 남부 주들의 연합을 저자한 바 있다.
-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스포일러 . . . . 1회 일치
* 비록 캡틴팀이 최종승자가 되긴 했으나 국제적인 도주자 신세가 되었으니 좋을 건 없다.
- 커맨드 앤 컨커 : 레드 얼럿 2/소련군 . . . . 1회 일치
대공포를 장비한 고속정. 상대가 연합군일 경우 해상방공망 구축에 필수적이다.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 . . . . 1회 일치
외계에서 날아온 자원인 타이베리움을 두고 GDI와 Nod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타이베리움 , 타임머신으로 인해 연합군과 소련군의 전쟁을 벌이는 레드얼럿 사가, 세계적인 테러조직 [[GLA]]에 맞선 미국과 중국의 전쟁을 다룬 제너럴로 분류된다.
- 킹덤/501화 . . . . 1회 일치
* "동쪽의 그 남자", 연나라의 [[오르도]]가 돌아왔다. 연합종군 이후 한직으로 밀려난 줄 알았던 그가 진-조의 대립국면에서 어부지리를 노리며 대군을 몰고 온 것이다. 물론 조나라가 진군에 대비해 서쪽에 병력을 집중하면 자연 동쪽은 허술해질 거란 계산도 깔려 있었다.
- 킹덤/502화 . . . . 1회 일치
드디어 연합종군의 진짜 목적이 하달된다. 지휘관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인다. 하지만 [[몽념]]과 [[왕분]]은 이미 아는 사실이니 동요하지 않는다. 신은 이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드디어 왔다"고 웃는다.
- 킹덤/513화 . . . . 1회 일치
* 위의 봉명은 진이 실패할 것으로 내다보고 연합군이 소멸하길 기다려 진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 킹덤/527화 . . . . 1회 일치
* 주해평원에서 [[이목(킹덤)|이목]]와 [[왕전(킹덤)|왕전]]이 총력전을 펼쳐지는 동안 [[양단화]]군은 [[공손룡]]군이 이끄는 요양군을 상대로 연합군의 명운을 가를 싸움을 시작했다. 본래 양단화군의 임무는 본대가 업성 공략에 나서는 동안 공손룡군의 발을 묶는 것. 그러나 전장의 판도가 뒤바뀌면서 양단화군 의 승패가 곧 전쟁의 승패가 될 수도 있었다. 주해평원으로부터 남서쪽. 약 300리 거리의 싸움이었다.
- 탁민제 . . . . 1회 일치
* 국제전기전자기술자학회 항공우주전자시스템 학술지 유도제어분야 편집위원장
- 탁석산 . . . . 1회 일치
현대 한국 사회, 글쓰기, 직업 등을 주제로 소위 "생활철학"을 다룬 책을 쓰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의 철학은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앞의 세가지를 아우르는 방법론이자, 나중에는 그 세 가지를 지배하게 된 '실용주의'다.<ref>{{뉴스 인용|제목=<사람들> 생활철학서 낸 철학자 탁석산씨|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359884|날짜=2008-11-11|뉴스=연합뉴스}}</ref>
- 태미 . . . . 1회 일치
| 사진설명 =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당시의 태미(2015년)
- 토츠카 요트 스쿨 . . . . 1회 일치
국제 레이스 우승 경험이 있는 요트 선수 토츠카 히로시(戸塚宏)가 1976년 아이치현에 세운 요트 학원. [[스파르타 교육]]을 내세우며 [[부등교]], [[히키코모리]] 등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강력한 교육으로 '갱생'을 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입소자를 받았다. 그리고 [[체벌]]을 명목으로 한 폭행 사건으로 여러 학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를 일으켰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유닛 . . . . 1회 일치
말로 운반하는 영국제 대포 4문과 운용병 30명. 폭발탄을 직사로 발사한다. 패럿포에 비해 재장전 기술이 매우 높다.
- 토탈워: 쇼군 2/가문 . . . . 1회 일치
실제 역사에서는 오다-도쿠가와 연합에 의해 멸망당한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1회 일치
||트로피코 섬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국제지원단체가 시민들에게 음식과 의료서비스를 지원합니다. 언제든지 해산 가능합니다.||
- 트로피코 4/외교 . . . . 1회 일치
가끔씩 국제 문제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잘 생각하고 고르자.
- 특별고등경찰 . . . . 1회 일치
* 1945년 10월 4일, 연합국최고사령부(GHQ)의 지령으로 해체.
- 페어리 테일/484화 . . . . 1회 일치
* 인근의 가질 일행은 연합군을 포로로 잡은 제국군과 교전에 들어간다.
- 페어리 테일/486화 . . . . 1회 일치
* 첫 번째 손님은 천마와 호랑이(블루 페가수스와 세이버투스 연합군), 두 번째 손님은 요정(페어리 테일), 세 번째는 "성가신 손님"이라고 칭하는데.
- 페어리 테일/487화 . . . . 1회 일치
* 피오레에서는 페어리 테일과 연합군의 항전이 한창이다.
- 페어리 테일/489화 . . . . 1회 일치
* 제국군과 싸우고 있는 연합군은 물론 항구를 탈환한 엘자, 그레이에게도 보인다.
- 페어리 테일/490화 . . . . 1회 일치
* 뿐만 아니라 연합군과 싸우고 있던 미라젠, 리사나도 이 해안으로 옮겨졌다.
- 페어리 테일/497화 . . . . 1회 일치
* 이외에도 전장 각지에서 스프리건12 대 연합군의 교전은 계속된다.
- 표창원 . . . . 1회 일치
원래 자신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수 차례 밝혔다. 2015년 10월 26일에 [[트위터]]를 통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7&aid=0000867351|'정치 안 합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개월 뒤인 2015년 12월 27일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다.[[https://www.facebook.com/cwpyo/posts/1133948603312544|본인 입당 sns 인사글]]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그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던 예전의 입장을 거두어들인 것에 대해 사과의 표시를 했다.
- 프레퍼 . . . . 1회 일치
2012년 [[미국]]에 가장 많이 존재하며, 300~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나 [[매스미디어]]를 믿지 않고, 국제 자본가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매스미디어보다는 지역 커뮤니티나 라디오, 인터넷 등의 커뮤니티를 선호한다. 극단적인 경우는 이웃도 적으로 간주하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
- 피수영 . . . . 1회 일치
2008년 10월 24일 대한민국 신생아학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서울아산병원 피수영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서울아산병원 대강당에서 열렸다.<ref>[http://www.whosaeng.com/sub_read.html?uid=23675 서울아산병원, 피수영 교수 정년 기념 심포지엄], 《후생일보》, 2008년 10월 24일</ref>
- 하이큐!! . . . . 1회 일치
작중 배경은 작가의 전작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처럼 [[미야기]]현이다. 미야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도 되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카라스노 고교]]가 있는 곳은 시골이다. ~~괜히 얘네들이 패스트푸드점 대신 [[만두]]를 사먹으러 가는 게 아니다~~ 카라스노 학생들이 촌사람이라는 걸 반영한 연출인지, 도쿄에 간 [[카라스노 고교]] 부원들이 눈에 보이는 철탑 마다 [[도쿄 타워]]냐고 묻거나, [[타나카 류노스케]]는 [[관동]]의 학교들을 가리켜 '시티보이 연합'(...)이라 부르거나 한다.
- 하이큐/244화 . . . . 1회 일치
센터 코트란 준결승 이상부터 특설 코트. 메인 아레나의 가운데 한 면만 설치되는 코트다. 국제시합 등이 이 규격에서 시행된다. 아카아시는 메인 아레나가 더 크고 사람도 많지만 그래봐야 그 중에서 보쿠토를 봐줄 사람은 4분의 1이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곳 서브 아레나는 후쿠로다니가 독점하고 있으니 모든 관객이 보쿠토를 주목하고 있다. 즉, 실질 봐주는 관객이 더 많다는 얘기.
- 하쿠다 켄 . . . . 1회 일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248457 기자수첩 : 편히 눈감기 어려운 백남준], 《[[연합뉴스]]》 2006년 3월 19일자
- 한국영 . . . . 1회 일치
2014년 12월 22일 발표된 [[2015년 AFC 아시안컵|2015 AFC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 = 이정협 깜짝 발탁…슈틸리케호 아시안컵 명단 확정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2/0200000000AKR20141222048300007.HTML?input=1195m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김동찬, 장재은 |날짜 = 2014-12-22 }}</ref>
- 한무숙 . . . . 1회 일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과 [[한국여류문학인회]] 중앙위원 등을 맡았다. [[1958년]]에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자유문학상]]을 수상했고, 신사임당상(1973)과 [[3·1문화상]](1989) , 예술원상(1991) 등을 차례로 수상했다.
- 한복 (1914년) . . . . 1회 일치
광복 이후인 [[1946년]] [[서울특별시]]에서 변호사를 개업했으며 [[1962년]] [[증권거래소]] 자문위원, [[1964년]] [[대한법률구조공단]] 단장, [[1966년]] 대한엽도협회 회장, [[1973년]]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지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한상대 (검사) . . . . 1회 일치
* 법무부 국제법무과장
- 한소정(1984) . . . . 1회 일치
* [[2006년]] 서울 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 [[니콘]] 부스 포즈모델
- 한수연(배우) . . . . 1회 일치
88만 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너와 나의 21세기'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데뷔작 후보에 올랐었다.
- 한승주 (공무원) . . . . 1회 일치
|장르 = 국제정치외교행정교육학 저술
- 한승혁 (1993년) . . . . 1회 일치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608409 한승혁, 미국 진출 대신 KIA에 둥지] - 연합뉴스</ref>
- 한인수(탤런트) . . . . 1회 일치
[[1991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시흥시]]장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현직 시장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윤식(1966)|김윤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 한창수 . . . . 1회 일치
|출판사=연합뉴스
- 함두영 . . . . 1회 일치
* 마포동회연합회 회장
- 함인섭 . . . . 1회 일치
*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0/06/11/0703000000AKR20100611107500062.HTML 강원대, 초대학장 故 함인섭 박사 동상 제막] 연합뉴스 2010/06/11
- 함중아 . . . . 1회 일치
*1981년 12월 함중아와 양키스 《국제선 대합실 / 콧날이 찡긋》
- 허윤희 (방송인) . . . . 1회 일치
* [[경희대학교]] 국제관계학 학사
- 허준영 . . . . 1회 일치
* 2009.5 ~ 2011.12 : [[국제철도연맹]] 아시아지역 의장
- 현재현 . . . . 1회 일치
*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현주엽 . . . . 1회 일치
현주엽은 상무 복무중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극적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ref>연합뉴스 2002년 10월14일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55351 “아시안게임-<농구> 한국, 20년만의 금메달(종합)”]</ref> 당시 중국은 NBA 지명 1순위에 빛나는 야오밍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해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84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후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슛과 골밑돌파, 그리고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무더기 득점을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대담한 골밑돌파로 레이업슛을 성공, 동점을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서도 김승현과 현주엽의 활약은 이어졌고 102-100로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20년만에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 혜은이 . . . . 1회 일치
[[1977년]] [[일본]] '야마하가요제'에 출전한 그녀는 일본 빅터 레코드사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당신만을 사랑해'를 일본어로 내고 [[조용필]]에 앞서 일본 활동도 짧게 했다. 당시 일본에선 '강코쿠(한국) 아이돌'로 소개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6/18/0200000000AKR20150618054000005.HTML 40주년 혜은이 "가수인생 골든타임 놓쳐 아쉬움 투성이죠"] 연합뉴스. 2015년 06월 18일</ref>
- 혼활 . . . . 1회 일치
(2) 중매 : 주로 성혼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성혼시에 성과 보수로 성혼료를 수령받는다. 일본 중매 협회와 전국 중매 연합회가 유명하다.
- 홍명희 . . . . 1회 일치
'''[[김정일]]이 직찍[* [[김정일]]은 [[사진]]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관련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한''' [[김일성]]과 홍명희. 1958년 국제노동자절 행사가 끝난 후 함께 뱃놀이를 하다가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북한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홍명희 선생과 민족의 화해와 대단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 동지'라고 하는데 56년 [[8월 종파사건]] 직후 이기에 벽초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 나 떨고 있니? ~~ 그런데 홍기문이 김덕홍에게[* 북한의 군 출신 정치가로 [[황장엽]]과 같이 망명한 탈북인사.]귀띔한 바로는 꽤 추악한 이면이 있다 한다. 1956년 김성애의 비서로 일하던 홍명희의 딸인 홍귀원이 김일성과 간통을 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를 볼 낯이 없다고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으며 아버지를 끝내 찾아보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홍명희가 딸을 잃은 충격으로 맛이 가자 김일성이 홍명희를 위로해주겠다고 석암호수[* [[평안남도]] [[평원군]]에 있는 저수지, 지금은 견룡저수지라고 불린다고 한다.]로 데리고 나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죽은 김일성이나 홍명희에게 물을 수도 없고 진실은 홍기문에게 전해들었다는 김덕홍이 알고 있다.
- 홍병선 . . . . 1회 일치
[[1920년]]부터는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 소년부 간사를 맡아 이후 여생을 YMCA 운동과 함께 보냈다. 특히 [[1925년]] 농촌부 간사가 되면서 농촌 운동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YMCA의 농촌운동은 당시 YMCA 총무이던 [[신흥우]]의 지원을 받았으며, 개량적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
- 홍세화 . . . . 1회 일치
* [[2002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민주시민언론상
- 홍은희(배우) . . . . 1회 일치
* 동국제약 [[인사돌]] 플러스
- 홍준표 (1949년) . . . . 1회 일치
* 1995년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논문상
- 홍학표(배우) . . . . 1회 일치
> 경력 2011 경기국제항공전 홍보대사
- 황교충 . . . . 1회 일치
황교충은 2006년 [[한양대학교]]에 다닐 당시 춘계대학연맹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우수 골키퍼 상을 받았다.<ref>{{뉴스 인용 |제목=한양대, 숭실대 꺾고 2006 춘계연맹전 정상 등극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39&aid=0000003295 |출판사=스포탈코리아 |date={{날짜한글화|2006-4-17}} }}</ref> 이러한 활약으로 2007년에는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정기전에 뛸 대표 골키퍼로 뽑혔다.<ref>{{뉴스 인용 |제목=제4회 덴소컵 한일 대학축구, 25일 안양 개최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578214 |출판사=연합뉴스 |date={{날짜한글화|2007-3-19}} }}</ref>
- 황덕균 . . . . 1회 일치
그리고 등록된 당일 경기였던 [[KIA 타이거즈|KIA]]전에 구원 등판했고,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볼넷을 단 한 개만 내주면서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2016년 9월 15일, [[kt 위즈]]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박주현 (야구 선수)|박주현]]이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강판되자 2번째 투수로 올라와 5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대역전승에 기여하였다. 2016년 9월 1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선발 투수였던 [[김정인]]이 조기 강판당하자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승리를 달성하였다.<ref>[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160920.99002161812 '7전 8기' 넥센 황덕균, 15년 만에 거둔 첫승…4이닝 무실점 '역전'의 호투] -국제신문 </ref>
- 황리아 . . . . 1회 일치
* [[2012년]] - 부산국제모터쇼 닛산 레이싱모델
- 황상경 . . . . 1회 일치
* [[2016년]] 《[[오빠생각 (영화)|오빠생각]]》 - 영춘호 역 <ref>{{뉴스 인용|제목= '오빠생각' 욕과 주먹을 부르는 배우 황상경|url=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2240 |출판사=국제뉴스 |날짜=2016-01-20}}</ref>
- 황선필(1939년) . . . . 1회 일치
* [[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합]] 이사<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110500329202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11-05&officeId=00032&pageNo=2&printNo=12650&publishType=00020 黃善必 문화방송사장 亞太放送聯이사에 再選] - 경향신문, 1986년 11월 5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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