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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무 . . . . 7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태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이정호 (1982년) . . . . 7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0년 ~ 2011년)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이후 잠시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1년]] 말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프런트로 입사하였다. 프런트로 꾸준히 활동하던 중 [[2014년]] [[9월 11일]] 구단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KBO에 의해 구단 해체를 선언한 후, 그 날 프런트직에서 물러났다.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우리 히어로즈 선수]][[분류:히어로즈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박근혜 . . . . 6회 일치
         박근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지방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달성군수]]로 출마했던 한나라당의 이석원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지만 이석원 후보는 무소속의 김문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박근혜는 "달성군민이 판단한 것도 존중한다"고만 입장을 밝혔다.<ref>[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상처입은`선거의 여왕 박근혜, 침묵 끝 한마디] {{웨이백|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10&no=286840 |date=20100607172404 }} 매일경제 2010년 6월 3일</ref> 차기 대선 후보로써의 지지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져 25.1%를 기록하는 등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ref>(http://www.ccdailynews.com/section/?knum=152755 박근혜 지지율 2.3% 하락) 충청일보 2010년 6월 3일</ref> 박근혜는 2010년 하반기부터 차기 대선 행보에 초점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20일 열린 공청회에서 복지를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박근혜는 인사말을 통해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적 복지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맞춤식 생활 보장형 복지 국가를 제안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3860 박근혜 대권 행보 시작‥공청회 '대선출정식' 방불] mbc 2010년 12월 20일</ref> 이후 12월 27일 박근혜의 대선 구상을 내놓을 '국가미래연구원'이 출범했다. 출범식에는 대한민국 내 학자들과 [[이한구 (정치인)|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ref>[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박근혜, 빨라진 대권 행보‥'싱크탱크' 출범] {{웨이백|url=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67079_5780.html |date=20130927121326 }} mbc 2010년 12월 27일</ref> 그러나 [[심재철 (1958년)|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그 얘기는 감추고 무조건 복지만 잘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4333 한나라당 심재철 "박근혜 복지, 솔직하지 못해"] mbc 2010년 12월 25일</ref>
         2013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ref name="ReferenceB">{{웹 인용|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제목 = 北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전면전 준비' 언급|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13-03-08|확인날짜 = 2013-04-03|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311025446/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245396_5780.html#|보존날짜 = 2013-03-11|깨진링크 = 예}}</ref> 북한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절을 선언하는 등 대한민국에 대하여 공개적인 적대행위의 의사를 밝히며 위협하였다.<ref name="ReferenceB"/> 이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ReferenceB"/> 국방부 또한 북한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ref name="ReferenceB"/>
         박근혜는 2013년 4월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침략을 부인하는 등 우경화 노선을 취하려 하자, "역사 인식이 바르게 가는 것이 전제되지 않고 과거 상처가 덧나게 되면 미래지향적 관계로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ref name="news.hankooki.com">{{웹 인용|url =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304/h2013042503401121000.htm|제목 = 박근혜 대통령 "일본 바른 역사인식 없이 미래지향 관계 어렵다"|저자 = 이동훈|날짜 = 2013-04-25|확인날짜 = 2013-04-27|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425095012/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304/h2013042503401121000.htm|보존날짜 = 2013-04-25|깨진링크 = 예}}</ref> 이후 한국일보를 비롯한 중앙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일본이 우경화로 가면 동북아와 아시아 여러 국가들 간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고, 일본에도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만큼 깊이 신중하게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으며, "우리 세대의 아픔과 걸림돌이 후세에 이어지지 않도록 정리하고 끊어야 한다"며 "정부는 항상 일관되게 원칙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풀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f name="news.hankooki.com"/> 이어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기후변화와 테러방지, 원전 문제 등과 같은 비정치적 분야부터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다자간에 더 큰 신뢰를 구축하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즉 '서울 프로세스'를 내달 미국 방문 때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으며, "북한도 얼마든지 이에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하지 않더라도 신뢰 쌓기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ref name="news.hankooki.com"/>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2014년 3월 28일 독일 통일의 상징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해결, 남북한 공동 인프라 구축, 남북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북한에 제시하는 '[[드레스덴 선언]]'을 천명하였다.<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32888471 朴대통령 '드레스덴 선언'이산상봉 정례화 등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核 버리면 經協 확대]</ref> 이어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통일 준비는 시대적 소명"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하천·산림 관리 공동 협력 사업,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문화사업 준비 등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으로 옮기자는 작은 통일론을 제안하였다.<ref>[http://www.fnnews.com/news/201408151515276744 박 대통령 8.15 경축사 행간에 담긴 의미]</ref> 2015년에 들어와서는 박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광복·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언급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제목=[박근혜 대통령 신년사로 본 새해 구상] 경제회복 최우선… 남북관계 개선 통해 통일기반 구축 |확인날짜=2015-02-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214093238/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412/e2014123117402393130.htm |보존날짜=2015-02-14 |깨진링크=예 }}</ref>
         그러나 박근혜는 첫판부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북한과의 관계가 그것이었다. 북한은 첫판부터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ref name="ReferenceB"/> 북한은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절을 선언했다.<ref name="ReferenceB"/> 이에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국을 공격한다면 인류의 의지,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인류의 의지로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겁니다."라고 주장하였다.<ref name="ReferenceB"/> 국방부 또한 북한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ref name="ReferenceB"/>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은 임기 초반에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ref>'진행형' 세월호참사 속 박근혜정부 1년6개월 맞아, 연합뉴스 2014.10.19</ref> 임기 중반으로 가면서도 일본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한미일과의 군사적 동맹에서 한국이 소외된다는 비판과 함께 외교정책이 중국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ref>美·中 갈등 심화… 박근혜 정부 '3대 외교 정책(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모두 꼬일 수도, 조선일보 2013.12.02</ref><ref>박 대통령 ‘친중 반일’ 이면엔 미·중 사이 줄타기, 경향신문 2013-10-09</ref> 여기에 중국 또한 일본과의 관계회복을 도모하는 쪽으로 외교정책을 선회하여, 박근혜 정부 들어 동북아에서 한국만이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ref>[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45437 유연해지는 중국의 대일 외교, 우리는, SBS뉴스 2015.04.24]</ref><ref>[http://www.hankookilbo.com/v/374aee9c3ef94bacbe98e033f3245f76 말 한마디 못한 채… 한국 외교 속수무책, 한국일보 2015.04.27]</ref>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일본의 아베 정권과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철저한 전략적 외교로 실속을 챙기는 가운데 한국만이 외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ref>[http://news.jtbc.joins.com/html/407/NB10872407.html 고도의 외교술로 실속 챙긴 아베…한국외교는 수렁에, JTBC, 2015-04-30]</ref><ref>[http://kr.wsj.com/posts/2015/04/30/%EC%95%84%EB%B2%A0-%EC%B4%9D%EB%A6%AC%EC%9D%98-%EB%8A%A5%EC%88%98%EB%8A%A5%EB%9E%80%ED%95%9C-%EC%99%B8%EA%B5%90%EC%88%A0-%EB%B0%95%EA%B7%BC%ED%98%9C-%EB%8C%80%ED%86%B5%EB%A0%B9-%EC%95%95%EB%B0%95/ 아베 총리의 능수능란한 외교술, 박근혜 대통령 압박, 월스트리트저널, 30. April 2015]</ref><ref>[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51959901 박근혜 정부, 미-중 사이 갈팡질팡…아베의 '친미 외교'에 완패] 한국경제 2015-05-19 </ref>
  • 이강돈 . . . . 6회 일치
         || 학력 || 포항청림초 - 포항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건국대학교|건국대]] ||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시절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 킹덤/534화 . . . . 5회 일치
          * 그날밤 조군 중앙 본진에 비보가 날아든다. 진형도를 펼치고 이틀 째의 전술을 구상하던 이목은 금모가 가져온 급보를 받는다. 지금까지 구상한 이틀째의 전략을 전부 다시 짜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마광군을 하드캐리해 전선을 지켜냈다. 중앙에서 회복을 마친 마정군을 비신대를 미끼로 삼아 끌어내고 육선이 점거한 좌측을 기점으로 군을 재정비했다. 하료초는 전장 전체를 꿰뚫어 보고 이 같은 전략을 수립한 것도 대단하지만 한순간에 마광군의 지휘권을 장악한 점이야 말로 진짜 대단한 점이라고 감탄한다. 몽념도 자신의 구상을 간파한 하료초의 재능에 감탄.
          몽념 옆에 남아서 그가 마광군을 인계하고 대응책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빠른 시점에서 그의 구상을 간파해 몽념이 감탄하기도 했으나 그녀 자신은 간단히 마광군을 인수하고 이런 전략을 펼치는 그에게 경악한다. 새삼스럽게 스승 창평군이 "재능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극찬했던 일을 떠올리며 몽념을 빤히 쳐다보다 "그만 봐라"고 몽념이 한소리한다.
          중앙군에 잘 복귀한 모습으로 등장. 그러나 진군 좌익을 쓸어버린 걸 전제로 다음날 작전을 구상하다 금모의 급보로 전세가 어그러졌음을 확인한다.
  • 강영식 . . . . 4회 일치
         || '''학력''' || 칠성초-경복중-[[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성이 친정팀이다 보니까 [* 원래는 해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출신지가 대구인데다 대구상고를 졸업, 여담이지만 삼성리틀야구단 출신이다. 흠좀무] 삼성 선수들을 잘 알고 있으며 2008 준 플레이오프 시작하기 전에는 삼성이 1선발 공개를 빨리 안 하자, 휴일에 [[배영수]]의 집 에다가 전화 걸어서 미리 배영수가 1선발 이라는 걸 알아냈다. 어떻게 알았는가 하니 원래 배영수는 휴일에 집에 잘 없는데 전화를 받아서 그때 낌새를 쳤다고 한다(...).
         초반에는 홀드를 좀 따내는 등 망한 롯데의 불펜에서 김성배와 함께 일을 하는 몇 안되는 투수였지만, 점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정대현(1978)|정대현]], [[이명우]], [[김승회]]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필승조에서 밀려났다. [[김시진]] 감독의 [[좌우놀이]] 성향상 좌타에 등판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때마다 말아먹으며 아직도 사용법 못 익혔냐고 팬들은 감독을 깠다. 하지만 우타 상대로 나왔을 때도 크리켓을 했다. 그래도 경험이 많은 투수이니만큼 어떻게든 종종 등판하지만 까였다. 위기상황에 등판하면 볼넷 내주고 그 뒤치다꺼리는 김승회가 하는 모습이 패턴으로 자리잡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즌 종료 후 김시진 감독이 좌우놀이 대신 1이닝제를 적용해보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롯데팬들은 1년을 날려먹고서야 강영식의 활용법을 알았냐며 또다시 감독을 까는 중(...).
  • 김승관 . . . . 4회 일치
         || '''학력''' || 옥산초-경복중-[[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 '''지도자'''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br]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5~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 ) ||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대구상고 시절에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던 라이벌이었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이 팔꿈치 부상과 어깨 혹사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자, 그가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쳐요"라고 말을 했을 뿐인데…
  • 김재규 . . . . 4회 일치
         김재규는 [[10.26 사태]] 직후 유신의 잔재를 5개월 내로 설거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전국으로 비상계엄령확대를 구상했는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75563|출처1]], [[http://www10.breaknews.com/sub_read.html?uid=64710|출처2]] 민주공화당은 이러한 구상안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낮다. 10.26 직후 [[김종필]]이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의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되었는데, [[김종필|JP]]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절 청구동 가택수색과 협박까지 당한터라 김재규에게 호의적이기도 어려웠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100209211001&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8-01&officeId=00020&pageNo=11&printNo=21900&publishType=00020|#]] 거기다 10.26 이후 [[김종필|JP]]는 [[김영삼|YS]], [[김대중|DJ]]과 함께 개헌과 민주회복 이행에 공감하고 협조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역시도 김재규의 구상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2260032920101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2-26&officeId=00032&pageNo=1&printNo=10586&publishType=00020|#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22600099201012&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80-02-26&officeId=00009&pageNo=1&printNo=4299&publishType=00020|#2]]
         김재규는 10.26이후 전국비상계엄령 확대 조치를 취하고, 군 지휘관들을 중심으로 혁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육군참모총장이 부위원장을 맡은 뒤 유신의 잔재를 제거하겠다는 방안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http://casenote.kr/%EB%8C%80%EB%B2%95%EC%9B%90/80%EB%8F%84306|출처1]],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22800209105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2-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2384&publishType=00010|출처2]] 대법원 판결에서는 김재규가 계엄군을 장악하여 무력으로 사태를 제압하고, 입법, 사법, 행정 권력을 장악한 이후 대통령 출마까지 계획했다고 판결하였는데, 김재규 본인은 대통령 출마 의사나 사리사욕은 없다고 부인하였다.[* 김재규 본인은 소위 설거지론을 얘기하며 5개월간 유신의 잔재를 처리하려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자신이 담당하는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다만 혁명위원회를 구성해서 권력을 인수하겠다는 정도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영삼]]이나 [[김대중]] 등 야당이 과연 김재규의 계획에 동의하거나 협조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는 거의 어려웠을 것이다.
  • 오대석 . . . . 4회 일치
         || '''학력''' || 남도초 - 경구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한양대학교|한양대]]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2~1995)[br][[현대 유니콘스]] 1군 수비코치(1996)[br][[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1997~199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00~2001)[br][[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작전코치(2002)[br][[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감독 (2004~2008)[br][[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등학교]] 감독 (2011)[br][[한화 이글스]] 1군 수비·작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13)[br][[한화 이글스]] 육성군 수비코치 (2014) ||
  • 장세용 . . . . 4회 일치
         ||<bgcolor=#1870B9> '''{{{#FFFFFF 학력}}}''' ||<(> 대구상업고등학교 {{{-1 ([[졸업]])}}}[br][[영남대학교]] {{{-1 (사학 / [[학사]])}}}[br][[경북대학교]] {{{-1 (사학 / [[석사]])}}}[br][[영남대학교]] {{{-1 (사학[* 서양사 프랑스사 전공] / [[박사]])}}} ||
         1953년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인동초등학교, 인동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영남대학교]] [[사학과]]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를 졸업하였다.
         후보 출마 확정 후 구미시민들의 네트워크인 '구미텐인텐'에 출마 이유와 구상하고 있는 정책 등을 올린 바 있으며 [[http://cafe.daum.net/kumi10in10/IKJI/10328|*]] 구미시장에 당선된 직후, [[박정희]] 기념관을 비롯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 사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고는 했지만, 기념 사업 예산을 칼질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614001410|*]]
  • 전상렬 . . . . 4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 [[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천안 전씨]]
  • 최채흥 . . . . 4회 일치
         ||<:> '''학력''' || 경주 동천초 - 포항중[* 경주중에서 전학]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 - [[한양대]]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시절에는 동기에 밀려 주로 1루수로 출장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 3할 4푼 5리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http://www.hsbaseball.kr/player/daesang25]]] 그러나 1루수로는 특출난 성적을 내지 못하여 지명받지 못하고 한양대로 진학한다.[* 고교야구 팬이 아니라면 의아함을 느끼겠지만, 경기수가 적어 0.345의 타율도 높은 성적은 아니다. 그 해 [[http://www.hsbaseball.kr/record/batter_unity.htm|타율 40위이고]], 파워도 있는 편이 아니다.]
         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절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 김성민 (1994년) . . . . 3회 일치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김용국 (야구인)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김준희 (1960년)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태한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류영수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고흥 류씨]]
  • 박기혁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배재준 . . . . 3회 일치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배씨]]
  • 안지만 . . . . 3회 일치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BO 홀드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
  • 양일환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투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남원 양씨 (梁)]]
  • 우동균 . . . . 3회 일치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절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월드 인 컨플릭트/줄거리 . . . . 3회 일치
         파인밸리 전투로 큰 피해를 입은 소련군은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 직전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으로 진군하며 짧은 소강 상태는 끝나게 된다. 소련군은 캐스케이드산맥에 있는 미군 기지 포트텔러를 노리고 있었다. 포트텔러는 소련군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 일명 "스타워즈"를 지휘하는 사령부였다. 하지만 전략방위구상은 단지 허세에 불과했다. 미군은 소련군이 포트텔러를 점령해 전략방위구상의 실체를 보게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윌킨스 대대가 포트텔러에서 방어전을 준비하는 동안, 소여 대대는 소련군을 지연하는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 이영수 (야구인)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광산 이씨]]
  • 이영욱 (1980년)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이정훈 (1963년) . . . . 3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진학했다.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KBO 신인상 수상자]][[분류:KBO 타율상 수상자]][[분류:KBO 안타상 수상자]][[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
  • 정재학 (1856년) . . . . 3회 일치
         [[정재학]]은 1905년 [[군수]]자리에 오른다. 고급관료와 친분을 맺어 순흥군수에 이어 개령군수를 맡게 됐다. 전임 군수와 달리 세금도 낮춰주고 밥 굶는 이들이 없게했다. 장사꾼들에게는 밑천도 대줬다. 그는 군수 직책에 있으면서 은행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1906 년 8월 [[대구상공은행]]이 설립 될 당시 이병학, 이종면 등의 부호들과 힘을 합쳐 대주주로 등극하면서 감사역도 맡았다.<ref name="ReferenceA"/><ref>매일경제 1982년 12월 10일 7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편 -12</ref>
         1907년 일본인들이 장악한 구한말 중앙은행은 신 통화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민간은행에 제시한다. 일반서민들은 신 통화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기 때문에 파격적인 특혜를 줬다. [[대구상공은행]]에 대해 20만원(현 240억 원)을 2년 거치 무이자 무담보로 빌려주겠다고 제시했다. 2년 동안 요즘 돈 240억 원을 이자 없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오구라는 행장에 오르지 못한 반면 정재학의 손자인 [[정운용]]은 1940년 4월 27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 이사 (대표취체역) 겸 행장에 선임됐다. 이듬해인 1941년 7월 총독부는 전시금융체제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금융기관 정리통합 방침을 밝혔다. 예상과 달리 [[경상합동은행]]은 [[대구상공은행]]과의 합병대신 1941년 8월10일 서울 소재 [[한성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정운용은 한성은행 주식 1220주를 보유하면서 [[상무]] [[취체역]](상무이사)로 발탁됐다. 해방 후 한국인 최초의 은행장이 되는 계기였다. 오구라는 이에 상심한 듯 은행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본업인 전력산업에 집중한다.
  • 킹덤/512화 . . . . 3회 일치
          * 경악하는 부하들을 내버려둔 채 갑자기 조 왕도권 성의 모든 지도를 펼치더니 즉석에서 전략 구상에 들어간다.
          * 이틀 뒤 돌아온 왕전은 지휘관들 앞에서 [[창평군]]의 업 공략 구상을 폐기하고 자기 자신의 책략으로 업을 공략하겠다며 전군 진격을 명하는데.
          [[창평군]]이 구상한 "열미를 교두보로 업을 친다"는 책략은 열미성 자체의 취약점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 이 같은 사실은 [[벽(킹덤)|벽]] 등 하급 지휘관들은 금시초문이었으나 이신, [[몽념]], [[왕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다. 하기야 하급 지휘관들은 이 작전의 진짜 목표를 아직가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고 황당한 얼굴로 왕전의 교시를 듣는다.
  • 킹덤/515화 . . . . 3회 일치
          * 왕전이 어떤 구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하 장수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다. 아무도 왕전의 면전에서 그 사실을 발설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신(킹덤)|이신]]만은 달랐다. 그가 대놓고 "이딴 짓"을 할게 아니라 당장 업으로 가야 할게 아니냐고 악을 쓰자 장수들은 그의 무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수긍이 갔다. 이신의 말대로 하는게
          단편적이나마 그의 전략적 구상을 읽어낼 수 있는 설명. 특히 [[하료초]]는 그가 언급한 "동쪽"이란 단서에 주목한다.
          * 왕전이 구상한 진군로는 크게 세 개. 현재 "정성"에서 군은 세 갈래로 나눠 출발해 왕전의 본대는 적성, 평성을 함락시키며 동쪽으로 진군. 환의군은 그 아래 신성, 석성, 허성을 거쳐 역시 동쪽으로 진군. 비신대, 옥봉대, 낙화대의 연합군은 크게 몰아 최남단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동쪽으로 진군.
  • 홍승규 . . . . 3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 김민수 (1991년)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정수 (1991년)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
  • 박승욱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박재홍(1941) . . . . 2회 일치
         1941년 2월 28일 [[경상북도]] 선산군(현 [[구미시]])에서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큰형 [[박동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백수]]로 있다가 [[박태준]]의 도움으로 [[포스코|포항종합제철]]의 중간간부를 역임하다가, 동양철관(주)의 사장, 회장을 역임하였다.
  • 박화랑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배영수 . . . . 2회 일치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LG 트윈스|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1999년 11월, 팀 고졸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이었던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이 금액은 1년 후 대구상고 [[이정호]]가 삼성에 입단하며 '''5억 3000만원'''이라는 계약금에 입단하며 경신된다.]
  • 배장원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백승민 (야구선수)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백정현 . . . . 2회 일치
         ||<:> '''학력''' || 옥산초 - 대구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프로야구/2007년/신인드래프트|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 식극의 소마/193화 . . . . 2회 일치
          * 이 단순무식한 제안에 에리나는 말을 잊는다. 타도고로 메구미는 자기들이 어떻게 십걸을 쓰러뜨리냐며 우는 소릴하지만 소마는 타도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근거없는 자신감을 불언허는다. 타쿠미 알디니는 그러자면 식극을 해야 하는데 그쪽에서 안 받아주면 그만이지 않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은 소마도 "어떻게든 될 거다" 정도로 대충 구상하고 있다. 게다가 왠지 타쿠미도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 저쪽에서 안 받아줄 거다"라고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다.
          * 에리나는 애초부터 소마의 구상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디스하며 이렇게 된 이상 자존심 같은건 내려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혹시 자신이 아버지 나키리 아자미에게 애원하면 퇴학이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가려하는데 정작 어디있는지 모른다. 린도는 무슨 생각인지 사실 아자미 총수가 여기 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진급시험장을 돌면서 상황을 시찰하고 다니는데, 때마침 이 회장에 들른 상태이며 꾸물거리면 다음 장소로 갈 테니 빨리 헬기 착륙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 식극의 소마/224화 . . . . 2회 일치
          그가 항상 가지고 다녔던 거대한 칼은 참치 해체용 식칼이었다. 이제 구상을 마친 사이토가 참치에 칼을 댄다.
          미마사카의 회심의 수. 퍼펙트 트레이스 플래쉬는 카메라의 스트로보(플래쉬)가 번쩍이듯 순간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재현한다. 복사 속도와 품질은 지금 본 대로. 이스트와르는 방금 설명으로 왜 미마사카가 쿠가의 서포트에 전력했는지 깨달았다. 이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리를 구상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게 가능하다. 그건 사이토가 대신 해준 셈이니까. 그 남는 시간을 쿠가의 서포트에 전부 투자한 것이다.
  • 윤문영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이민아 (축구선수) . . . . 2회 일치
         * [[대구상인초등학교]] 졸업
         [[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동문]][[분류:영진전문대학 동문]][[분류:대구상인초등학교 동문]][[분류:상원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이상호 (1989년)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이수민(야구선수) . . . . 2회 일치
         ||<:> '''학력''' || 도산초-대서중[* 단 중학교 시절은 구미중에서 보냈으며, 상원고 진학 전 대서중으로 전학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고]-[[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 이승엽 . . . . 2회 일치
         그는 시즌 시작 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7년]] [[5월 21일]] [[송창식 (야구 선수)|송창식]]을 상대로 [[KBO 리그]] 첫 450호 홈런을 기록했고<ref>[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21&newsid=01666246615931216&DCD=A20102 '이승엽, 통산 450홈런'삼성, 661일만에 시리즈 스윕(종합)] - 이데일리</ref>, 2달 뒤인 [[7월 29일]]에는 [[김성민 (1994년)|김성민]]을 상대로 [[KBO 리그]] 최초로 4000루타를 달성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707291933932974&ext=na '라이언킹' 삼성 이승엽, KBO리그 최초 4000루타 돌파] - 마이데일리</ref> 시즌 후반기부터 소속 팀을 제외한 9개 구단에서 그를 위해 은퇴 투어를 진행했고 그 여정이 끝난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대구를 끝으로 공식 은퇴했다. 그 대구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그의 은퇴를 바라보는 이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대구 후 팀은 그에 대한 성대한 은퇴식을 열었고, 그의 등번호인 '36번'은 구단 역대 세번째로 영구 결번 처리됐다.<ref>[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612121051081031 ‘일구대상’ 이승엽 “마지막 1년, 떠날 때 후회없도록”(일구상 시상식)]</ref> 그는 은퇴 후에는 야구 관련 직종에 종사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며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3/0200000000AKR20170113128700007.HTML?input=1195m 이승엽 "은퇴 이후 일? 야구 관련 아니면 안 한다"]</ref>
         * 휘슬러코리아 일구상 일구대상 (2016년)
  • 이종희 (1942년) . . . . 2회 일치
         * [[대구상업고등학교]]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판석 . . . . 2회 일치
         1934년 [[경상북도]] [[구미시|선산군]] 장천면 석우동(現 칠곡군 가산면 석우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 대구대학교 상학과(현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 장태영(야구선수) . . . . 2회 일치
         그의 활약으로 경남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 전인범 . . . . 2회 일치
         1986년 30사단 90연대 2대대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강재구|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초급 지휘관으로 중대원들의 사격 훈련 중 소총 사격 영점을 못 잡는 병사를 데려다가 실탄을 주고 자신은 표적지 앞에 서서 사격을 하게 해 영점을 잡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ref name="c">[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42447 ‘제설작업 하고, 전역사병에게 경례’ ‘괴짜장군’의 퇴임식], 《서울신문》, 2016년 7월 29일</ref> 군사정권 시절 그가 중대장을 역임한 부대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나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는 부대였는데,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군인이 대학생을 진압하라는 명령에 많은 갈등을 했다. 그래서 원래는 데모 때 중대장이 맨 뒤에 서서 진압을 지시하게 돼 있는데 그는 맨 앞으로 나가서 돌 맞더라도 제일 먼저 맞고 죽으려고 했다고 과거를 회고하였다.<ref name="b">[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2140702 [단독] 전인범 "내 문제, 문재인에게 부담 안 돼... 아내, 구시대 법에 걸려든 것"], 《오마이뉴스》, 2017년 2월 9일</ref>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en:Robert W. RisCassi|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en:Commendation Medal#Army|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장교를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en:Meritorious Service Medal (United States)|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5·18 발언을 문제 삼은 정치권에서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까지 싸잡아 공격하며 논란이 불거지자<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3143692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징역 1년 법정구속], 《세계일보》, 2017년 2월 8일</ref>, 그는 광주 항쟁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684649 文 영입 전인범 자진사퇴 "5·18 발언 백번천번 송구… 미국 돌아가겠다"], 《중앙일보》, 2017년 2월 10일</ref> 그는 “저는 다시 미국 연수과정으로 돌아가 북핵을 바라보는 엄중함과 심각함, 오랜 동안 지속돼온 혈맹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 이를 통한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 발전이라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알리는 데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멀리서나마 문 전 대표와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누를 끼친 데 대한 글을 올리시고 미국에서도 돕겠다고 한 것은 ‘자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하며 “안보, 군사 분야에 대한 자문은 계속 하실 것”이라고 언급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7763546 文측, 전인범 미국行에 '선긋기'… "본인 판단"], 《뉴시스》, 2017년 2월 10일</ref>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틀 후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구상의 한 축이었는데 그가 중도 하차하면서 인사가 꼬였다”고 발언함으로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그를 중용할 계획이었음을 나타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3172701 한반도 상황 긴박한데… 외교안보 라인 인선은 '설왕설래'], 《세계일보》, 2017년 5월 12일</ref>
  • 조현근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
  • 차일목 . . . . 2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연안 차씨]]
  • 토리코/375화 . . . . 2회 일치
          * GOD의 세포에는 지구상 모든 "음식의 기억"이 누적된다. 결국 GOD의 조리는 그 모든 음식을 처리하는 것이 되는데, 식재의 목소리를 따라 올바른 경로를 파악해서 그 끝에서 빛나고 있는 맛을 포획하는 것이다.
          * GOD에 지구의 모든 식재의 맛이 누적되어 있는지 설명은 되지 않지만 GOD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포식->다시 동면에 들어가고 지상에 새로운 생태계가 번창->또 깨어난 GOD가 싹쓸이 하는 식으로 식재의 맛이 누적되어온 듯하다.
  • K리그 . . . . 1회 일치
         2013시즌부터 2부리그[* 이 시점에선 2부리그의 명칭이 확정되지 않았다.]를 운영할 예정이었으며, 2부리그의 팀을 장기적으로 10개팀 이상으로 운영하기 위해 K리그의 16개 팀들 중, 최소 2개팀이 강등하는 걸 구상하였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하지만 조덕제 감독이 구상한 반칙을 통한 흐름을 끊어주는 전략이 유효했고,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해 경기 종료 즈음하여 2골이 터지면서 수원의 승격이 확정된다.
  • 김성윤 (1991년) . . . . 1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 김소혜(1992) . . . . 1회 일치
          * 청소년기에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자신에게 일기형식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서 고민을 해결하였다. 어느 순간 창작을 해보고 싶어서 20~23살까지 판타지 소설을 지었는데 자신이 배우 [[지성(배우)|지성]]의 오랜 팬이다 보니 그를 모델로 삼아서 썼다고 한다. 제목은 '더 플레이스'이다. 고등학교 때 내용을 구상하고 20살 때부터 썼다고 한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008307|OSEN]]
  • 김윤환 . . . . 1회 일치
         16대 총선 낙선 후 김윤환은 민국당의 대표를 맡아 당을 추스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몸에는 2년 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회창에게 토사구팽을 당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아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쳤다. 당시 김윤환을 만났던 [[최병렬]]의 말에 따르면 함께 [[스테이크]]를 시켜놓고는 썰어놓지도 않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이회창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고 한다. 암이 자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약세와 [[자유민주연합]]의 패망으로 나름대로의 입지를 살려 3당 연합(혹은 DJP 재연합)에 낄 수 있었지만, 2001년 10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로 DJP 연합이 완전히 붕괴되자 유일한 지역구 의원 [[한승수]]도 탈당해버렸다.[* 한승수는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외교통상부 장관직을 유지하다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7월 장관을 사퇴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이회창 후보의 외교담당 특별자문이 되었다.] '''이 시기 "호남이 밀어 주는 영남 대통령론"으로 [[이회창]]을 패망시키는 정치공학적 구도를 구상했고 [[듣보잡|이 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낮아 가능성이 없다]]이라고 여겨졌던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과 김윤환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고[* YS에게 팽당한 5공, 유신 세력을 포용한 김대중과는 달리, 노무현은 3당 합당 당시부터 보여주었던 자신의 원칙대로 옛 군부 정권 시절 인사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과 뜻을 함께했던 주변 사람들을 세웠다. 5공 시절부터 킹메이커로 이름을 날린, 그것도 TK의 좌장이나 다름없던 김윤환이 노무현과 연합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던 셈.] 김윤환 본인은 대선 직후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2114|#]]
  • 김종덕 (야구선수) . . . . 1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 김지수(배우) . . . . 1회 일치
          * 2015년부터 인스타그램에 스스로 그린 그림(주로 유화)을 올리고 있다. 꽤 준수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특이하게 비구상 작품도 있다. 그 외 친구와 찍은 일상이나 여행 사진도 가끔씩 올라온다. 팔로워들의 글에도 답글이나 좋아요를 일일히 눌러주는 편.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06화 . . . . 1회 일치
          * 미도리야 일행은 공격자 그룹에 둘러 쌓였지만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구상한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1화 . . . . 1회 일치
          * 히어로 위원회는 올마이트의 대체제를 찾기 보단 그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집단 히어로 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5화 . . . . 1회 일치
          트와이스는 미친 놈들이 직접 있을 곳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상대를 발견한 그는 이제 어떻게 할지 다음 작업을 구상한다. 이미 히어로 측도 빌런 측도 곤죽처럼 변모하기 시작했다. 중요한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나, 어떻게 하고 싶나. 그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19화 . . . . 1회 일치
          * 바쿠고가 폭발력을 이용해 높이 도약한다. 미도리야가 움직임을 포착하지만 그는 공중에서 다시 폭발력을 일으켜 급강하한다. 미도리야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하지만 다시 폭발을 일으키고 그 추진력으로 속공을 퍼붓는다. 쉴 새 없는 연속공격으로 미도리야가 전술을 구상하지 못하게 할 속셈이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30화 . . . . 1회 일치
          나이트아이는 차갑게 잘라말한다. 그는 서두르면 망치고 어설프게 쫓가단 더욱 도망치게 만들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미도리야는 구하고 싶을 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다. 오버홀에 대해서는 나이트아이도 다른 사무소와 팀을 구성하기 위해 구상 중이고 상대의 의도와 정보를 분석해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148화 . . . . 1회 일치
          눈이 뒤집힌 이리나카는 지금껏 구상했던 작전이나 강화약의 효능같은건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 그가 생각하는 건 한 가지.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84화 . . . . 1회 일치
         학생들끼리 구상하는 [[바쿠고 카츠키|바쿠고]] 탈환 계획에 [[이이다 텐야]]는 적극 반대한다.
  • 니세코이/216화 . . . . 1회 일치
          * 사실 그건 번역상의 실수였는데, 처음 그림책을 구상할 때 폴란드의 "사랑의 다리"라는 연인들의 명소를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 마기/320화 . . . . 1회 일치
          * 그녀가 구상한 "열쇠"란 바로 "금속기".
  • 마기/328화 . . . . 1회 일치
         타전을 단순한 배제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가 아르바와 대화하며 "약자도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말의 의도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그가 구상하는 세계는 자기가 설정한 한도 안에서 애초에 벗어날 수 없는 조작된 세상인 것.
  • 몽키 D. 루피 . . . . 1회 일치
         앞서 말한 그 특유의 무모함 때문에 위기를 많이 겪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의외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감으로 움직이는 타입이지만, '''루피의 감은 그만큼 잘 맞는다'''. 분명히 루피가 무모해서 온갖 사선을 넘으면서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모두 살아남은 것은 루피의 감도 한 몫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패기 설정이 두드러진 때부터 어찌하다보니 우연히 연결된 떡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mr.3 전때 같은 것만 봐도 작가가 구상정도는 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독자들도 있다.]
  • 미스터 판타스틱 . . . . 1회 일치
         초능력 외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적 지능을 가진 히어로이다. 리드 리처즈는 [[마블 코믹스]]의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중 하나로서 전기,기계 및 항공우주공학,전자공학, 화학, 물리학의 모든 수준,그리고 인간과 외계 생물학에도 숙달한 천재다. [[타임머신]]이나 차원도약장치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과학자이다.
  • 박석민 . . . . 1회 일치
         2008년 시즌 초반 [[선동열]] 감독이 구상했던 [[양준혁|양]][[심정수|심]][[제이콥 크루즈|크]] 트리오가 각각 부진, 시즌 아웃, 방출로 인해 중심 타선이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그 공백을 [[최형우]], [[채태인]]과 함께 잘 메워 냄으로써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세 명 모두 신인 치고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까지 거의 김인식 감독 수준으로 유망주들을 박대했던 [[선동열]] 감독이 직접 키운건 당연히 아니었고 [[김응용]] 前 감독이 진작부터 밀어주던 양아들이었다. 박석민은 물론 [[채태인]], [[최형우]]의 기용도 감독 외에 사장과 프런트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 배경 세계 공유 . . . . 1회 일치
          영화 디스트릭트 9과 배경 세계 공유를 구상 중이라 한다.
  • 블랙 클로버/107화 . . . . 1회 일치
          그는 자기가 기획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사실 백야의 마안의 아지트를 조사하고 작전을 구상한건 마법제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부분만 홀랑 먹어치운 셈.
  • 식극의 소마/189화 . . . . 1회 일치
          * 어쨌거나 프라이드 베어를 맛본 이후 계속 벗고 있는 소우에가 소스의 비밀은 "꿀과 발사믹 식초"임을 간파한다. 소마는 옅은 단맛으로 소스에 깊이를 주고 식초의 신맛으로 맛을 꽉 묶어서 매우 정돈되면서도 깊고 진한, 동시에 산뜻한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구상은 사냥꾼 아저씨에게 "곰은 꿈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하고 있던 것. "곰의 특성을 배운다"는 발상이 빛을 발햇던 것이다.
  • 식극의 소마/194화 . . . . 1회 일치
          * [[도지마 긴]]은 타쿠미와 타도코로에게 연대식극 소식을 듣는다. 사실 도지마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애초에 센자에몬과 죠이치로가 만나도록 주선한 것도 그이며 그 둘이 아자미에게 연대식극을 제안한 것도 그의 복안이었다. 죠이치로가 나서면 아자미도 승부에 응할 거라고 본 그의 계획. 십걸의 과반을 따내서 정권을 뒤엎는 것도 그가 구상한 대로다. 사실 그들의 진급시험 자체도 계획 안에 있던 것.
  • 식극의 소마/228화 . . . . 1회 일치
          안은 [[쿠가 테루노리]]의 흑초 탕수육을 맛봤을 때만 해도 쿠가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츠카사의 퓌레를 먹은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이 요리는 쿠가의 요리를 능가하는 임팩트가 담겨 있었다. 주제가 결정되고 조리 시작까지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깊고 다층적인 맛을 구상할 수 있었을까? 안은 츠카사 쪽이 쿠가보다 녹차라는 소재를 다루는 격이 훨씬 높다고 평했다.
  • 식극의 소마/230화 . . . . 1회 일치
          모모는 주제가 결정된 순간부터 임전태세였다. 자신의 인영 "붓치"를 상대로 말을 걸며 무엇을 만들지 구상에 들어갔다.
  • 안석환 . . . . 1회 일치
         * 2003년 [[MBC]] 수목미니시리즈 《[[좋은사람]]》 ... 구상진 역
  • 영국 . . . . 1회 일치
         역사 구석구석이 혐성으로 뒤덮여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분쟁 대부분은 영국이 어떻게든 연루되어있다.
  • 완벽한 공산주의 . . . . 1회 일치
         "머릿 속에서만 구상하는 이상적인 체계"가 "망했다"고 표현되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기 어렵다. 왜냐하면 '''망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실존하는 체제'''에만 쓰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실존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도 않는 것'''은 망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 원피스/849화 . . . . 1회 일치
         내년부터 "와노쿠니편"이 시작된다. 오다는 20년 전부터 와노쿠니편을 그리고 싶어서 구상을 거듭해왔다.
  • 원피스/855화 . . . . 1회 일치
          * 일행과 재회한 브룩은 깜짝 놀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나미는 놀란건 이쪽이라며 면박을 준다. 페드로는 브룩이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애초에 그런 상황에서 무리한 작전을 구상한 자신의 탓이라며 브룩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브룩은 그건 자신들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며 당치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또 포네그리프를 빼앗으려면 어차피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기 두게골을 열어보인다. 그런 기능이 있는줄 몰랐던 징베와 캐럿은 경악.
  • 원피스/863화 . . . . 1회 일치
          * 작전 개시로부터 세 시간 반 전. 그러니까 일행이 아직 [[카포네 갱 벳지]]의 아지트에 있을 때의 일이다. [[몽키 D. 루피]] 자신이 자신하던 [[원피스/859화|재미있는 등장법]]을 벳지에게 설명한다. 그는 웨딩 케이크 안에 커다란 거울을 넣어뒀다가 거울 세계를 통해 케이크 안에서 튀어나오는 연출을 구상했던 것이다. 벳지는 당장 좋다 아니다 말은 안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지 거절하지도 않는다. 그 자리엔 [[샬롯 브륄레]]도 있었는데, 빅맘 [[샬롯 링링]]이 케이크가 박살나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에 절대해선 안 된다고 성화를 부린다. 하지만 루피는 브륄레가 하는 말 보다는 그녀의 능력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근처 숲에서 동물들을 잔뜩 잡아온 다음, 유혹의 숲에서 한 것처럼 자기 모습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한다. 브륄레는 당연히 질색하지만 결과적으론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는데.
  • 원피스/870화 . . . . 1회 일치
          감격에 겨워하는 벳지의 패밀리. 놀랍게도 벳지는 딱 한 가지 탈출루트를 구상해냈다. 사실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은 벳지의 열매 능력. 벳지가 인간으로 돌아가도 아무 영향이 없다. 그래서 벳지는 일행을 넣어둔 채로 "인간" 모드로 돌아가, 시저가 자신을 들고 하늘로 도망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럴듯하지만 시저는 "내 목숨을 희생하는게 전제지 않냐"고 반발, 자살행위라고 치를 떤다. 틀린 말 만은 아니다. 이미 샬롯가의 형제들이 진치고 있으니. 벳지가 인간체로 돌아가는 순간 벌집이 되는 미래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장색 패기 구사자도 차고 넘치니 가스화한 시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건 덤.
  • 은혼/594화 . . . . 1회 일치
          * 우츠로는 자신이 죽을 방법을 알 수 있다면 피 한 방울까지 조사해도 좋지만, 그 자신은 "나 이외의 존재를 끝장내는 방법이라면 지구상 누구보다 잘 안다"고 경고한다.
  • 은혼/613화 . . . . 1회 일치
          * 그의 발언을 듣고 하타 황태자와 그 부하들은 물론 무전으로 상황을 전해듣던 자작 제독과 사카모토 다츠마 일행까지 경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오우고쿠 행성과 지구의 동맹. 하지만 사카모토 조차 이런 상황에서 가능할리 없다고 여긴다. 그 멍청한 하타 황태자도 고작 지구인들을 위해 전우주를 상대로 싸우란 소리냐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가츠라는 단지 동맹이 되라는 거지 싸우란 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노리는건 해방군이 "설마 지구에도 동맹이 있었다니"하고 동요하는 것. 일시적으로 해방군의 이목을 끌고 나면 그대로 달아나든 말든 상관없다. 일시적으로 생긴 틈으로 해방군 본부를 단숨에 점령, 전쟁을 멈춘다는게 카츠라의 구상이다.
  • 은혼/617화 . . . . 1회 일치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면 알고 있어.
  • 은혼/646화 . . . . 1회 일치
          * 쉬운 말이라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려운 법. 다케치의 말은 구상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폭발하고 무너져 가는 해방군 모선의 잔해 속에서 생존한 병력을 모으고 다시 싸우게 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한카이도 그것을 지적했다. 병력이 얼마나 남았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싸울 기력이 있을지.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폭발에 삼켜지는 통로를 뚫고.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곧 두 갈래로 나눠 각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 이동훈 (1996년) . . . . 1회 일치
         * [[대구상원고등학교]]
  • 이문식(배우) . . . . 1회 일치
          * 두들겨 맞는 연기, 비굴한 연기로는 국내 원탑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배역을 위해 이까지 뽑을 정도이니 따귀나 주먹으로 맞는것 정도는 예사일로 여기며 감정몰입을 위하면 기꺼이 한몸 던진다. 대학시절, 극단시절에 선배들에게 엄청 맞았고, 한대라도 덜맞으려고 비굴하게 군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연기가 가능한거라고 웃으며 인터뷰 했다. 그렇다고 그런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영광의 재인]]에서는 엄청나게 포스 있는 역할로도 나온다. 특히, '''웃으면서 다음 작전을 구상하는''' 이문식의 표정은 그야말로 ㅎㄷㄷ
  • 이민우(배우) . . . . 1회 일치
         이제 갓 40대에 접어들었으니 아직 젊은 나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연기력은 본좌 그 자체로 그냥 연기를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시청자가 볼 때 이민우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배역과 혼연일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래의 배우 중에서는 연기력이 가장 최상위권에 있다. 최신작인 [[공주의 남자]]에서의 연기가 그 훌륭한 예이다. 자기관리도 굉장히 엄격하여 대본 암기와 연기 구상은 물론, 쉬는 날도 체력관리와 연기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대본 암기에는 도가 틀 정도다. 연기를 할 때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대사까지 다 외우도록 배워왔다고.
  • 이인성 (화가) . . . . 1회 일치
         [[이인성]] 화백은 향토색 짙은 풍경화로 조선의 [[고갱]]이라고도 불린다 풍경과 인물을 결합한 구상화를 최초로 그린 화가로 경주의 산곡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적토가 그대로 드러난 흙바닥, 원색적인 색채가 사용됨과 동시에 하늘의 푸른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대지의 붉은 색체는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을 준다.
  • 일곱개의 대죄/197화 . . . . 1회 일치
          * 목욕을 마친 멀린은 이 다음 수를 구상하겠다고 우선은 일곱개의 대죄가 전부 모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인지 데스피어스는 멀린과 바토라의 명의로 지하감옥에 갇혀 있던 고서를 석방한다. 그런데 고서는 상태가 다소 이상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일곱개의 대죄 색욕의 죄 고서."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데스피어스는 미심쩍어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 고서를 풀어주며 그가 십계의 일원이라는 혐의가 완전히 풀린건 아니라고 경고하는데. 그렇게 구속이 풀린 고서.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말하자 어쩐지 고서의 기색이 달라진다.
  • 전민희 . . . . 1회 일치
         드라마틱 MMORPG [[테일즈위버]] 홈페이지에 한 때 게재되었던 동영상 인터뷰에서는, “3부가 예정되어 있으며, 3부는 윈터러와 데모닉에 출연했던 인물들과 수년 뒤 겪게될 공화정과 왕정의 대립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할 것으로 구상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 절대가련 칠드런/455화 . . . . 1회 일치
          * 바벨의 신형 ECM을 이용해서 조직의 돈줄로 만들 구상이라는데 효부를 구한건 그 과정에서 어쩌다 그렇게 된 덤같은 거라고 한다.
  • 절대가련 칠드런/461화 . . . . 1회 일치
          * 미나모토는 이런 왕래가 당국에 발각되지 않을까 염려하는데 칠드런이 짜놓은 동선은 의외로 치밀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가미 아오이]]의 텔레포트지만 매번 아오이가 올 수는 없으므로 자택에서 지하의 비밀 통로 등으로 단거리 텔레포트, 이후 이 근처 지하철 역까지 이동해서 감시의 눈을 피한다. 이건 [[산노미야 시호]]가 정해준 원칙에 따라 마츠카제가 구상한 이동방법이다. 텔레포터의 부담도 줄일 수 있어서 상당히 합리적인 방법. 미나모토도 마츠카제를 칭찬한다. 카오루는 자신들도 마츠카제를 신뢰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가 미나모토가 정한 후임이기 때문이란 말은 접어둔다.
  • 절대가련 칠드런/470화 . . . . 1회 일치
          * 효부는 지금부터 작전 회의에 참가하자며 칠드런 일행을 데리고 도서실로 향한다. 그곳에선 [[쿠모이 유리]]의 정보를 기반으로 [[마츠카제 코우이치]]와 [[우츠미 세이시로]]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작전이 정해지면 곧 판도라의 젊은 에스퍼들에게도 전달될 예정이다.
  • 정운용 . . . . 1회 일치
         정운용은 1938년 24세의 나이에 경상합동은행 취체역(이사)에 선임됐다. 조부인 정재학 경상합동은행 두취(행장)이 은행경영권을 손자에게 넘겨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한 동일은행 최대주주였던 민대식 등 황실외척이었던 민씨가문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는 물론 대구상공은행을 운영하던 오구라 다케지스케 (小倉武之助)의 경영권 탈취시도와 맞서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ref name="ReferenceA">매일경제 1982년 12월 8일~19일 9면 "재계산맥 [[대구은행]] 1~19편"</ref>
  • 진격의 거인/81화 . . . . 1회 일치
         -아르민. "자신이 바다를 볼 수 없게 될" 작전을 구상하고 엘렌을 깨우면서.
  • 진격의 거인/87화 . . . . 1회 일치
          그리샤는 "엘디아인만 아니라면"이란 꼬리표에 귀를 의심한다. 글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군다. 막 거인으로 변한 죄수를 가리키며 "저게 너희의 정체"라고 말한다. 단지 "거인의 척수액"을 체내에 주입하는 것만으로 거인으로 변하는 엘디아인이 어떻게 "같은 인간"일 수 있냐는 것이다. 글로스는 지구상의 생물 중 이렇게 되는건 오직 "유미르의 자식들"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의 가죽을 썼을 뿐인" 괴물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악몽이라 말한다.
  • 진격의 거인/88화 . . . . 1회 일치
          여동생의 사인을 통보하러 간 날, 그가 그리샤를 관찰하고 내린 평가다. 크루거가 오늘에 이르는 계획을 구상한건 그때부터 일지 모른다. 크루거는 "예전의 자신"도 그랬다고 털어놓는다.
  • 창작:바벨 코스트 . . . . 1회 일치
         > * [[창작:Project NA|Project NA]]를 구상하면서 파생된 설정이지만, 분류 상으로는 이쪽이 상위입니다.
  • 창작:세대륙 이야기 . . . . 1회 일치
          *워해머 판타지-거대한 인간들의 '제국'인 아발론 제국을 구상하는데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창작:좀비탈출/4-1 . . . . 1회 일치
         유일한 문제는, 사실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당장 생각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거기가 '''음지'''라는 거다. 그건 내 연구상으로는 아주아주아주 위험한 지역이란 얘기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회 일치
         나는 비닐시트와 철사를 바로 써먹기로 했다. 불과 10분 만에 뚝딱 구상한 아이디어가 겨울 철에 비닐 하우스를 만든다는 거 보다 훨씬 유용한 아이디어라는게 입증되었다.
  • 최남선 . . . . 1회 일치
         같은 해 10월 그는 [[조선]]의 귀중한 옛 책들을 다시 간행하였으며, 민족 문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국가적인 사업을 일으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해 조선고서를 [[한글]]로 번역, 발간하였고, 20여 종의 육전소설(六錢小說)을 발간했다. 한편 그는 조선광문회를 통해 [[조선어]] 사전 편찬 계획을 세우고 구상했었다. 조선어 사전 편찬계획 세우는 그 과정에서 당시 《[[동국통감]]》, 《[[열하일기]]》 등을 비롯한 20여 종의 고전이 간행되었다.
  • 최윤동 . . . . 1회 일치
         * 대구상공주식회사 중역
  • 츠라츠라 와라지 . . . . 1회 일치
          * '토리비토' 코키치 : 오오이 강 인근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는 상인. 과거 비젠 지방에서 표구상을 했으나 7년 전에 새 모양의 글라이더를 타고 성 아래를 날아다니다 붙잡혀 추방을 당했다. 그 이후로도 글라이더를 계속 개량하며 비행 시도를 해서 '텐구'(天狗), '토리비토'(鳥人)이란 별명을 얻었다. 추방 당시 하루타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타카가 잠시 행렬을 멈추고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글라이더로 다시 날았다.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 - 우버의 개발자이며,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창업자. CNBC에서 "캘렉시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고, 미국을 떠난 캘리포니아를 '뉴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했다.--[[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셜빈 피셔버는 예스 캘리포니아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으며, 스페인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모델로 하여 2019년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국가가 된 뒤에 다시 연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 . . 1회 일치
         전통적인 중세 유럽의 제국 관념에서 '동쪽의 제국'[* 서쪽은 신성로마제국]을 차지하던 비잔티움제국은 11세기부터 이어진 튀르크의 지속적 공세앞에 아나톨리아[* 지금의 소아시아반도] 내륙을 영구상실했고, 그 이후 내륙지방을 지배해온 룸 술탄국의 멸망이후 부상한 오스만의 공세에 아나톨리아 최후의 거점인 니코메디아까지 함락당하며 아나톨리아를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중세까지 비잔티움을 지탱하던 아나톨리아의 풍부한 생산력[* 지금도 터키는 유수한 농업국이다.]과 그에 따른 인적 자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반대로 오스만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스만은 꾸준히 확장하여 트라키아와 발칸의 패권까지 장악하기에 이른다.
  • 킹덤/505화 . . . . 1회 일치
          * 양단화는 그저 "성벽을 넘어서 성문을 열고 성 안을 도륙낸다"는 정도의 단순한 정공법만 구상한다.
  • 킹덤/509화 . . . . 1회 일치
          * 열미성 공략은 단순한 공성이 아니었다. 이제 열미성은 진의 영토로서 업공략의 중요한 발판이 된다. 당연히 적들은 열미를 탈환하려고 할 텐데 제대로 수비하지 못한다면 진짜 목적인 업을 노리는건 불가능하고 연합군이 궤멸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따라서 열미성을 빠르게 파악해 "성의 습성"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료초나 왕전이 구상하는게 그것이었다.
  • 킹덤/514화 . . . . 1회 일치
          진군의 장수들은 어느 정도 왕전이 그리는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노리는 건 병량이 아니라 저 민간인들이다. 저렇게 바깥으로 내보낸 민간인들 자체가 왕전이 구상한 전략의 핵심임은 분명한데, 그게 정확히 뭘 노리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 킹덤/519화 . . . . 1회 일치
          * 왕전이 머리 속의 반상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마침내 진군 전원이 도착했다. 왕전은 곧바로 장교들을 불러 자신의 구상을 실현코자 한다.
  • 킹덤/522화 . . . . 1회 일치
          * [[기수(킹덤)|기수]]군을 위협하는 "파상공세"는 처음부터 [[왕전(킹덤)|왕전]]이 구상한 덫이었다.
  • 탈북자 망명정부 . . . . 1회 일치
         탈북자 망명정부의 구상은 탈북자들이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1990년대 부터 이미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장엽]]을 중심으로 하여 망명정부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황장엽 본인의 거부로 무산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 토리코/367화 . . . . 1회 일치
          * 죠아는 "어떤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미도라를 이길 수 있는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겠다며 칭찬한다.
  • 토리코/393화 . . . . 1회 일치
          * 그는 이치류와 플로제의 협조를 받아 장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그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 트로피코 4/건물 . . . . 1회 일치
         판잣집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주거지 중 사상 최악의 주거 환경을 자랑합니다.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시민들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주거지입니다.||
  • 페어리 테일/538화 . . . . 1회 일치
          그렇게 어느 정도 쉬고, 정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루시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전부터 아쿠에리어스의 열쇠를 되찾는 여행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레이와 해피도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데 뜬금없이 아쿠에리어스가 물고기인지 반어인인지를 놓고 논쟁으로 이어졌다. 정답은 그냥 "인어".
  • 페어리 테일/545화 . . . . 1회 일치
         대망의 완결. 작가는 차기작 구상 중이라 한다.
  • 하이큐!! . . . . 1회 일치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부활동으로 배구를 했으며, 배구 만화에 대한 구상은 이때부터 있었던 걸로 보인다. 세터가 주인공에, 천재 세터가 스파이커에게 맞춰 주는 만화를 그릴 생각이었다고.
  • 하이큐/222화 . . . . 1회 일치
          * 카게야마 토비오는 다테 공고의 블록을 뚫기 위한 전술을 구상한다.
  • 하이큐/265화 . . . . 1회 일치
          쿠로오는 야쿠가 정서란 말을 알기는 할지 궁금했다. 야쿠가 현재 최대로 신경 쓰는건 팀의 승리도 보람찬 플레이도 아니라 남은 봄고 4일차 동안 자신이 가장 튀어야 한다는 쇼맨십이었다. 여기에선 쿠로오도 지지 않았다. 자기는 벌써 여자 아나운서하고 인터뷰할 구상까지 해놨다고 대항했다. 이렇게 둘이서 투닥거리며 소란이 일었다. 아까 자판기를 선점하고 있던 타학교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렸다. 소란을 사과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사람은 카이 뿐이었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네코마의 봄고 1일차가 끝난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2008년 개봉한 히어로 영화 [[아이언맨|아이언맨1]]에서 당시 [[만다린(마블 코믹스)|만다린]] 역에 캐스팅 제의를 받고 오디션까지 봤다고 한다. 시나리오의 변경에 따라 만다린 배역은 없었던 것이 되었고, 그 만다린 역할은 다시 부활하여 [[아이언맨 3]]에서 [[벤 킹즐리]]가 맡게 되는데… --[[맥주/목록#s-2.1|우리는 지구상 최강의 맥주 먹방을 할리우드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만다린과 관련한 새로운 [[Marvel One Shot#s-2.5|떡밥]]이 나옴에 따라 어쩌면 다시 가능성이… 생기는걸까?
  • 한현준 . . . . 1회 일치
         |소속 = [[대구텍]] (사장), [[대한상공회의소|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
  • 허드슨 대학교 . . . . 1회 일치
          * 허드슨 대학 캠퍼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http://previously.tv/law-and-order-svu/the-hudson-university-campus-is-the-most-dangerous-place-on-earth/
  • 현진건 . . . . 1회 일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1등을 차지한 조선인 선수 [[손기정]](孫基禎)의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채 신문에 실은 사건으로([[일장기 말소 사건]]) 현진건은 기소되어 1년간 복역해야 했으며, 이듬해 출옥하면서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관훈동에서 서대문구 부암동 325-5번지로 이사하여<ref>당시 부암동은 서울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 현진건의 학술적 평전과 문학 연구」(도서출판 역락, 2008), p.156. 대구대학교 인문과학연구총서24.</ref> 그곳에서 땅을 빌려 양계 사업을 시작한 한편, [[1938년]] 7월 20일부터 다시 「동아일보」지면에 장편역사소설 「무영탑(無影塔)」을 연재한다.(~ 1939년 2월 7일) [[1939년]] [[7월]]에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동아일보」에 역사소설 「흑치상지(黑齒常之)」 연재를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문예지 「문장」과 가진 인터뷰에서<ref>「침묵의 거장 현진건 씨의 문학종횡담」, 『문장』 1939년 11월. p.116~120.</ref> 현진건은 당시의 소설들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 글을 쓰던 때에 비해) 문장이라든가 소설 만드는 기술은 가히 괄목할 만큼 진보.... 그러나 구상의 도약이 드뭅니다"라며 "동경(東京) 문단의 말기적인 신변잡기 같은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하고, 또한 현재가 여러 면에서 세계적인 문학의 빈곤시대가 아닌가 싶다며 "문은 실상 기(氣)이며 기가 없으면 아무리 진주같다 해도 곧 사회"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12월에는 같은 잡지에 또 한 번 「역사소설의 제(諸)문제」라는 글을 기고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 홍기(영부인) . . . . 1회 일치
         소박하고 서민적인 풍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화로 최규하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향후 영부인 활동 구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기여사가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보다 못한 청와대 관계자가 화제를 전환시켜 여사께서 청와대 김장을 직접 모두 담갔다고 소개하자, 그제서야 본인도 '김장 30포기를 직접 담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기자들도 화제를 돌려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TV나 보지요'라고 답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부인치고 너무 생각 없어 보일 수 있으나, 바로 앞 뒤 영부인이 좋든 나쁘든 워낙 말이 많았던지라, 상대적으로 (공무원 아내다운) 홍기 여사의 소박하고 다소곳하며 서민적인 분위기가 당시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 황경태 . . . . 1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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