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계은숙(桂銀淑) |
출생 | 1962년 7월 28일(만 age(1962-07-28)살)br충청남도 서산시 |
본관 | 수안 계씨 |
신체 | 161cm, 45kg |
가족 | 어머니 송종열, 2녀 중 차녀 |
데뷔 | 1977년 럭키샴푸 CF모델 |
수상 | 1990년 전 일본가요제 특별상 |
목차
가족사 ¶
여타 범죄자들처럼 그녀 역시 가족사가 좋지 않은 편이다. 일단 어머니는 본부인이 아니고 첩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에 이미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속여 허위로 결혼식까지 올리며 사생아인 친언니 계미선과 계은숙을 낳았다. 한마디로 사기. 하지만 일이 터지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은숙을 임신한 상태에서 집을 나갔고, 그녀는 그동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줄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다고. 사춘기 시절 어머니와 친하신 분에게 이 사실을 듣게 되자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 어머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한참을 방황했다.
이후 은사님을 찾아가 '수안 계씨 종친회'를 알게 돼 편지를 쓰자,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을 성사시켰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어머니에게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후 어머니께서 아버지에 대해 말 못했던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6.25 전쟁때 가족을 잃고 고아로 자라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오직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6.25 피난 이후 어머니와의 결혼 전에 이미 본부인이 있었으며, 이 사실을 몰랐던 어머니는 당당하게 결혼했고 결혼 이후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서 친언니와 셋이서 같이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머물렀다고.
2014년 2월 20일, SBS 좋은아침에 어머님과 함께 출연했다. 하지만 출연 당시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고 결국 2016년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를 치룰 당시 가족들 중 남자가 단 한명도 없어 처리 할 때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한다.[1] 또 구속중인 상태에서 장례를 치뤄 시신을 인수할 돈도 없었다고 한다.
활동 ¶
한국에선 CF모델로 데뷔했다가 가수로 전향했다. 지금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 그녀는 높고 째지는 음색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를 만나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녀만의 독특한 개성을 꽃피우게 된다. 일본에서는 엔카를 주로 불렀고 많은 명곡을 남겼다. 1992년에 결혼도 하는 등 잘 나갔다.
당시 소속사에서 일본인과의 결혼을 강요해서 도피성 결혼을 했다는 말도 있다. 나중에 이혼했지만...재일교포 권희로의 실화를 영화로 한 김의 전쟁이라는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대 한류열풍이 불기 이전까지만 해도 지금도 혐한들 보면 여전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는데 그럼에도 데뷔 당시 자신의 이름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켰다.
그래도 일본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식사 자리에도 끼었다. 오부치 총리 만찬사 그리고 드라마 덕이의 주제가도 불렀다.# 심지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예전에 팬클럽 회장을 한 적도 있었다는 말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그냥 열혈팬으로 알려진 듯 하다.#
조용필보다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당시 조용필이나 다른 한국 가수들이 교포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한 반면 계은숙은 일본인들에게 엄청 인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홍백가합전에 7회나 연속 출연한 유일한 한국인이며 한국인 가수 중에서 최다 출연한 인물이기도 하다.[2]
'すずめの淚'[3]
노래할 때 일본어에 많은 된소리(ㄲ..), 거센소리(ㅋ..), 파찰음(ㅈ,ㅊ), 마찰음(ㅅ,ㅎ), 목 뒤쪽에서 나는 후음(ㅎ), 연구개음(ㄱ), 모음에서는 저설모음(아), 후설모음(우,오) 등에서 허스키함이 더 돋보인다.
귀화거부, 고난 ¶
계은숙이 일본 활동을 하면서 일본 소속사나 주변에서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수차례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면서 소속사와의 반환금 문제나 막대한 세금 추징, 근거없는 루머 등이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암튼 계은숙 본인도 교통사고 후유증과 소속사와의 반환금 소송, 막대한 세금 추징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각성제 소지 혐의로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비자연장이 거부되어 귀국하게 되었다. 계은숙은 두통 때문에 소속사로부터 두통약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각성제였다고#(...)
2014년 1월 국내 컴백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지만(...)... 그 이후 행보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기 및 마약 ¶
2014년 포르쉐 파나메라를 리스계약하고 대금을 지불하지 않아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기사 법원 심리 따르면 계씨는 지인인 A씨와 함께 2013년 4월 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포르쉐 전시장을 찾아가 파나메라 4S승용차를 리스하려 했으나 계씨 소유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다가구주택에는 근저당이 많이 설정돼 있어 리스 계약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다음 달 대치동 포르쉐 전시장을 다시 찾아가, 한 달 뒤(6월) 제주그랜드호텔에서 2억 원의 출연료를 받고 공연을 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행사출연계약서를 근거로 60개월 월 382만원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차량을 리스계약 했다. 하지만 첫 회차분조차 납부하지 않고 차를 받자마자 사채업자에게 5천만 원을 받고 차를 넘긴것. 이에 대해 계은숙 측은 "자신은 단지 리스 계약의 보증인으로서 도장을 찍었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스계약서에 계씨가 이용자 및 계약 당사자로 돼 있고, 직접 이름을 쓰고 서명했을 뿐 아니라, 차를 리스하기 전날인 5월 13일 모 금융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로 본인 확인을 거친 후 대출금액과 기간, 월 상환액, 결제일, 결제 계좌에 관한 설명을 듣고 확인까지 해 준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계은숙이 주장했던 계약당사자인 지인 A씨는 현재 구속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판사는 징역 1년 6개월에 벌금 80만원을 선고했고 계씨가 사기 범행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점"으로 보았다. 법원은 포르셰 영업사원으로부터 차를 구매하겠다고 처음 소개받은 사람이 A씨이고 그와 리스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했으며 계씨와는 통화한 일이 거의 없었다고 증언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처음 매장을 방문할 때부터 차를 출고해 인도할 때까지 두 사람이 늘 함께 매장을 방문한 사실을 더 중요시했다.
계씨는 또 허위로 작성된 행사출연계약서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주장했지만 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계씨 인감도장이었고, 이 허위 계약서를 포르셰 매장에 제출할 때도 함께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판사는 이날 심리에서 "계씨가 허위 공연계약서가 제출된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설명했다.기사
A씨는 계씨가 '소극적'으로 연루된 포르셰 리스 사기 혐의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결에 이어 서울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현재 상고한 상태이다.
2015년 6월 25일, 세 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관련기사 2015년 11월 20일 1심 재판에서 마약 복용 및 위의 포르쉐 리스 사기건 외에도 추가의 사기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2016년 8월 10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로 형이 확정되었다. 관련기사
2017년 5월 사기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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