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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력 . . . . 4회 일치
[[고공단보]](古公亶父)의 3남. 계력의 아들 창(昌)[* 후의 주문왕]이 태어나자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고공단보가 창이 후에 주나라를 번창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장남 태백(太伯)과 차남 중용(仲雍)은 계력에게 뒤를 잇게 하고 남쪽으로 떠나 오(吳)의 왕이 되었다. 계력은 고공단보를 이어 정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에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융족(戎族)과 7년간 싸워서 격파하고 융족의 장수들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상나라 왕 문정(文丁)[* 혹은 태정(太丁)이라고도 한다]은 주나라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시샘하여, 겉으로는 보물을 하사하고 후대하면서 새고(塞庫)로 보내서 가둬버렸다. 문정에게 유폐된 계력은 [[아사]]하고 말았다.
- 효령대군 . . . . 1회 일치
청권(淸權)이란 중국 주(周)나라 때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태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다. 훗날 공자가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본떠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라 이름 하였다.<ref name="hr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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