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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수(MC) . . . . 5회 일치
2010년 9월 경 '[[거성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으며 후배 개그맨 [[김경진(코미디언)|김경진]], 유상엽, 권영기[* 이 쪽은 가수로 키울려는 목적으로도 영입했다.], 가수 김단아를 영입을 했다. 특히 아끼는 후배 김경진을 위해서 차도 고급차로 바꿔주고출연료도 4배나 올려주게 만들어 격한 후배사랑을 보여주었다. 오오 박거성.
다만, 소속 개그맨들 말로는 남들이 다 지원하는 차나 코디등은 지원 안해준다. 또한 위 김경진의 차량도 알고 봤더니 고급차로 바꿀 수 있게 소개만 해주었단다. 할부는 김경진이 직접 내고 있다.
- 표창원 . . . . 3회 일치
2016년 12월 27에 검/경 수사권과 관련해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발의 내용을 보면 '''검찰의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경찰비리를 제외한 직접수사권을 박탈하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만은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아직 발의 단계이고 거쳐야 할 절차가 많으며 해당 법안은 '''누가 봐도 경찰에게만 매우 유리한 법안 내용'''이기 때문에 법안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해당 법안의 통과는 본 회의는 커녕 법사위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고 표창원 의원이 SNS에 글을 게시했을 때 일선 경찰들과 지지자들은 옹호하는 댓글을 남겼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댓글을 남긴 시민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개혁을 주제로 하여 김경진 의원과 같이 썰전에 출연했을 때 표창원의원이 말하길 "많은 일반 시민들이 저에게 '경찰에 수사권을 줘선 안된다'라며 '경찰개혁부터 하고난 뒤에 수사권 조정이 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라고 말했다.] [[외부자들]]에 목소리 출연을 했을 때 패널이 표 의원에게 해당 법안 통과 가능성에 물어봤을 때 표 의원은 통과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했다. 설령 통과하지 못 하더라도 "자신의 법안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라고도 말했다. 2017년 9월 현재 해당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다.
* [[썰전]] 143화, 197화[* '''[[장제원]]'''과 같이 출연했다.], 224화[* [[김경진(정치인)|김경진]]과 출연하여 검경개혁을 주제로 토론을 펼쳤는데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영장청구권을 주제로 논의했다.], 227화 ([[JTBC]])
- 영천시 . . . . 2회 일치
이런 일이 있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밀리터리 소설가--를 가장한 국군 찬양 [[국뽕]] [[양판소]]-- 소설가인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처녀작 [[데프콘(소설)]] 한미 전쟁편에서는 '''대구로 가는 길목이라는 이유'''로 진짜 '''개박살이라는 말도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박살난다.'''--여기 주민들 지못미....-- 심지어 여기를 지키던 인민군 6군단 때문에 미군이 '''[[기화폭탄]]마저 쓴다(!!!).'''[* 당연히 국군도 여기 전역('전투지역'의 줄임말.)에 보복으로 기화탄을 포격으로 날려 버렸다. 보고에 의하면 ''''보복 기화탄 공격'''으로 생긴 '''화상 환자들 때문'''에 '''미군 병원선이 미어터질 지경' '''이라나 뭐라나... 근데 여기서 오류가 하나 있는데, '''기화탄을 무슨 소형 핵 취급한다(실제로도 '[[기화폭탄]]은 소형 핵폭탄이나 다름없다.'라고대놓고 표현할 지경이니...).''' '''기화폭탄 따위는 핵에 비교하면 폭발 규모나 후유증에서 비교가 안될정도로 넘사벽이다!!''' 다만 '''인류가 만든 화약무기 중'''에서 '''그나마 핵에 제일 근접'''해서 그렇지...] 물론 ''''경상북도의 중심지' '''이자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을 제외한)첫 번째 대도시'라는 이유'''로 '''통일한국군과 미군 쌍방이 정말 박 터지게 싸운 [[대구광역시]]'''가 입은 피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물론 여기에는 ''''대구 비행장의 존재감'도 컸다.''' 아무래도 '''(경상남북도를 다 합쳤을 때) 제 1의 비행장'''이니...(''''대한민국에서의 제1 비행장'이라고 하면...''' 뭐 다 '''[[인천국제공항|알지]]?''')]
- 오정태 (희극배우) . . . . 2회 일치
* 오정태의 캐롤 - 울면 안 돼 (with [[김경진 (희극인)|김경진]]) (feat. 권성은, Beyond Black) (2016년)
- 한호문 . . . . 2회 일치
이후 좌우포장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637년]](인조 15) 정축 정시무과(丁丑庭試武科)의 시험관을 맡아보았고<ref>정축정시문무과방목 (丁丑庭試文武科榜目, 1637)</ref>, [[1638년]] [[12월 17일]] 장령 안시현(安時賢), 이여익(李汝翊), 지평 박수문(朴守文) 등이 훈련 도정은 무관의 극선(極選)인데 도정 한호문은 평소 이렇다 할 명성도 없고 나이도 늙어 기력이 쇠한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지 이미 오래이므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손가락질 받는 것과, 일을 처리할 때 거칠고 비루한 행동을 많이하여 위인이 용렬하다며, [[훈련원]]의 장(長) 자리를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가 거부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7일(을사)자 7번째기사, "훈련 도정 한호문을 파직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2월 19일]] 장령 안시현(安時賢)ㆍ이여익(李汝翊), 지평 이운재(李雲栽) 등이 다시 그의 파직을 청하였으나 인조는 유시를 내렸다며 돌려보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6년 무인(1638) 12월 19일(정미)자 14번째기사, "예장하라는 명을 속히 정지할 것 등을 청하는 장령 안시현 등의 계</ref> [[1644년]] 무렵 자헌대부(資憲大夫) 서원군(西原君)이 되고, [[1645년]] 포도대장이 되었다. [[1645년]] [[12월 25일]] [[사간원]]이 그의 추고를 청하여 논계받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3년 을유(1645) 12월 25일(계묘)자 3번째기사, "사간원이 포도대장 한호문의 일을 청하였다"</ref> 추고를 청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다. [[1646년]] [[1월]] [[소현세자]]빈 [[강빈]]이 인조 등을 저주했다는 [[강빈 옥사]]가 발생, 좌포장으로 궐내에 대기하였다. [[1월 5일]] 인조는 좌우포장 한호문(韓好問)ㆍ신경진(申景珍)을 명하여 불러서 전교하기를“지금은 기밀(機密)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야금(夜禁)을 십분 더욱 엄하게 단속하고, 경도 또한 옛 전례에 따라 친히 순찰하여 흉한 무리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왕래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ref>연려실기술 제27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강빈(姜嬪)의 옥사"</ref> [[1646년]] [[2월 5일]] 좌변포도대장으로 패초를 받았으나, 도착이 늦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때 출발하였다는 승지 여이재의 보고로 그는 문제되지 않았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2월 5일(임오)자 7번째기사, "우변포도대장 신경진은 집이 멀어 조금 늦는 것이라는 여이재의 계"</ref> [[1648년]](인조 26년) [[10월]] 무과(武科)의 일소(一所)의 시관(試官)이었으나 병을 이유로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가 그해 [[10월 14일]] [[승정원]]의 탄핵을 받고 추고되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4일(을사)자 13번째기사, "무과 일소 시관인 서원군 한호문이 칭병하며 패초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추고할 것을 청하는 본원의 계"</ref> 최종 관직은 정헌(正憲)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에 이르렀다.
- 강동우 . . . . 1회 일치
|| [[박경진]](2007) || → || '''강동우(2008)''' || → || [[신종길]](2009 ~ 현재) ||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1회 일치
||<:> [[강주현]], [[김성령]], [[김정애]], [[김혜리(배우)|김혜리]], [[박수현]], [[양현정]] ||<:> '''[[고현정]], [[남궁옥]], [[박은경]], [[오현경(여배우)|오현경]], [[이재경]], [[장경숙]], [[채경진]]''' ||<:> [[김태화]], [[김현숙]], [[서정민]], [[양정아]], [[윤제선]], [[이승은]], [[이종희]] ||
- 김부식 . . . . 1회 일치
* [[경진]]
- 김성겸(탤런트) . . . . 1회 일치
* [[무인시대]] - 경진
- 김재규 . . . . 1회 일치
또한 당시 [[한국]]과 [[미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박정희]]가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경진압을 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37787|서울에도 계엄을 내리고 군을 투입할 계획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유혈사태로 번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김재규 역시 박정희 사망 이후 비상계엄령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5개월 한정이라는 전재를 달았으며 부마민주항쟁 때도 유혈 진압을 비판했던 입장이기 때문에 강경한 방식으로 막가파 운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군부의 시각을 돌리기 위해 그럴싸한 핑계를 대려고 했다가 뽀록이 났다는 견해다.
- 김진(배우) . . . . 1회 일치
1973년 8월 23일 [[경기도]] [[안산시|단원구]] 출생의 탤런트이다. 본명은 [[김경진]]. 90년대 중반 [[좌회전]]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으나 뜨지 못하고[* 그래도 [[가요톱10]]에서는 10위권 안에 들었다. 대표적인 타이틀 곡은 '예행연습' [[김홍순]]과 [[이승철]]이 작사 작곡했다.] 이후 방위 복무[* 1994년 12월 26일에 입대한 '마지막 방위' 세대로 같은 날 [[유재석]]과 [[이정재]]가 입대했다.]를 마친 뒤 연기자로 ~~좌회전~~전향. 좌회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동안은 놀림거리 비슷하게 됐다.
- 박근혜 . . . . 1회 일치
[[2007년]] 대선 이전에 있었던 경선에서 박근혜는 이명박과 경쟁하며 갈등을 겪어왔다. 경선 당시 박근혜 진영은 이명박이 전과 14범이라는 주장을 하거나,<ref>{{뉴스 인용|제목 = 朴캠프 "이명박 후보는 전과 14범" 주장 논란|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0231787|출판사 = 경향신문|저자 = 손봉석 기자|쪽 = |날짜 = 2007-02-28|확인날짜 = 2010-02-11}}</ref> 위장전입 문제도 파헤쳐<ref>{{뉴스 인용|제목 = 박근혜+범여권,이명박 위장전입에 파상공세|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3&aid=0000064154|출판사 = 쿠키뉴스|저자 = 김도훈 기자|쪽 = |날짜 = 2007-06-17|확인날짜 = 2010-02-11}}</ref> 이명박은 이 때문에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ref>{{뉴스 인용|제목 = "자녀교육 때문에 위장전입" … 사과|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970807|출판사 = 한국경제|저자 = 김인식 기자|쪽 = |날짜 = 2007-06-17|확인날짜 = 2010-02-11}}</ref> 이러한 갈등은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다. 친박계 의원들의 한나라당 공천 탈락에 대하여 박근혜는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라는 말을 하여 파장을 일으켰으며,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과 관련한 촛불파동때는 재협상을 요구했고, [[2009년]] [[용산 참사]] 때는 경찰의 강경진압을 비판하였으며,<ref>{{뉴스 인용|제목 = MB-박근혜, 누적된 '불신과 앙금'…화해 될까?|url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709623|출판사 = SBS|저자 = 김윤수 기자|쪽 = |날짜 = 2010-02-11|확인날짜 = 2010-02-11}}</ref> 한나라당에 의해 [[대한민국 미디어 관련법 개정 논란|미디어법]] 개정 추진 당시에도 박근혜가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말을 던지는 등<ref>{{뉴스 인용|제목 = 박근혜, 미디어법 '반대 투표' 발언|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11835|출판사 = MBC|저자 = 황외진|쪽 = |날짜 = 2009-07-20|확인날짜 = 2010-02-11}}</ref> 정책 문제에 대한 시각차이와 개인적인 갈등들이 복합적으로 남아있었다.
- 오영실 . . . . 1회 일치
* [[호구의 사랑]] - 목경진 역
- 윤흔 . . . . 1회 일치
* [[신경진의 옥사]]
- 이철희(1964) . . . . 1회 일치
하지만 본인이 속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청산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크게 경시한 것이기에 이후 자신이 지지하던 안희정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물론 이철희 본인이 이기는 곳에 가는 것에 연연했다기 보다 본인에게 맞는 쪽으로 간 것이기에 이철희 본인도 이후 경선결과에 토를 달지 않고 승복, 이후 문재인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적 표현에서 대통령다운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국민의당의 김경진 의원과 설전을 벌인 것이 대표 사례.
- 전인범 . . . . 1회 일치
** 여동생 : 전경진 (全京珍, 1959년 ~ )
- 정혜선(배우) . . . . 1회 일치
|| [[이경진]][br](1983) || → ||<#FFFFA1> '''정혜선[br](1984)''' || → || [[정애리]][br](1985) ||
- 조안(배우) . . . . 1회 일치
||<#996699> {{{#ffffff '''본명'''}}} ||<(> 조경진(趙炅珍) ||
- 최광식 . . . . 1회 일치
[[허원제]] 한나라당 의원은 “교수에서 장관 내정까지 걸린 시간은 3년 반에 불과하다”며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이라 발탁됐다는 말도 있다”고 지적했다.<ref>[http://www.ajnews.co.kr/view_v2.jsp?newsId=20110915000197 최광식 '초고속 승진', 임채민 '전문성 결여' 도마위]《아주경제》2011년 9월 15일 정경진 기자</ref>
- 최정호 (성우) . . . . 1회 일치
* 2002.09.01 허경진 <허균 평전>
- 추자현 . . . . 1회 일치
* [[2000년]]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전설]]》 ... 최경진 역
- 태종무열왕 . . . . 1회 일치
태종 무열왕에 대한 당대 신라인들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 이는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라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ref group="주">그러나 고구려의 [[태조왕]]의 경우에는 묘호로 봐야 되는가, 시호로 봐야 되는가에 대한 이견이 있다. 그 밖에 태조의 묘호를 받은 [[태조 성한왕]]이나, 국조의 묘호를 받은 [[박혁거세]]도 존재한다.</ref> 이에 대해 [[당 고종]]<ref group="주">《삼국사기》에는 [[당 중종]]이라 표기됨</ref>이 “당 태종이 위징(魏徵)·이순풍(李淳風) 등을 얻어 천하를 평정하는 대업을 이루었기에 태종이라 하였지만, 너희 신라는 바다 밖에 있는 조그만 나라임에도 태종의 호를 사용하여 천자의 칭호를 참칭하니 그 뜻이 불충하므로” 이를 고칠 것을 요구하자, 신라의 [[신문왕]](神文王)은 “(당 태종처럼) 무열왕도 김유신이라는 성신(聖臣)을 얻어서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는 답서를 보냈다. 이 답서를 받은 고종은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이르기를 “33천(天)의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가 유신이 되었다.”고 한 일이 있어서 이를 기록한 바가 있는데, 이 기록을 찾아 확인해보고서는 놀랍고 두려워서, 태종의 묘호를 허락했다고 한다.<ref name="유사-기이1"/> 훗날 [[조선]](朝鮮)의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고려]](高麗)의 [[왕건|태조]](太祖) 이래 역대 군주들의 묘호를 시호로 대체하고자 하는 [[조선 성종|성종]](成宗)에게 태종 무열왕의 선례를 들며 굳이 기록된 묘호를 뺄 필요는 없음을 주장하였다.<ref>《성종실록》 성종 18년 정미(1487년) 2월 경진(10일)조</ref>
- 하현정 . . . . 1회 일치
| 다음명 = 이정화, 문경진, 엄일경
- 한혜숙(배우) . . . . 1회 일치
[[김영애]], [[김자옥]] 등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비교해 영화 출연이 드문 것은 물론 흥행작이 없는 것도 아쉽다. 물론 한혜숙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영화]]가 사양길에 들고 '호스티스 영화'들이 생기면서 '벗기기 경쟁'이 과열했을 때이니 직선적이고 도도한 성격인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 실제로 호스티스 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 한혜숙도 영화에 출연했는데 호스티스물은 단 1편도 없었고, '[[족보(영화)|족보]]', '[[최후의 증인]]'과 같은 작품성이 진한 작품들에 출연했었다. ~~물론 흥행은...~~ 이후 1987년, 곽지균 감독의 '두 여자의 집'에 출연했을 때 [[19금]]이긴 했지만, 노출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2세대 트로이카나 김자옥, [[김영란(배우)|김영란]] 등 당대 톱탤런트들도 호스티스 영화와 같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했지만, 한혜숙과 같이 '벗기기'에 거부감이 들어 전성기 시절 전혀 영화출연을 하지 않은 스타가 있었는데, [[이경진]]이다. 이쪽은 벗기기 영화에 출연은 물론 아예 영화 자체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김자옥]]의 경우에는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2세대 트로이카]]와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흥행작을 내었고, [[김영애]]는 김자옥만큼은 아니더라도 늦게나마 '[[빙점 81]]' 등의 흥행작을 냈지만 한혜숙은 그렇지가 않다.
- 희빈 장씨 . . . . 1회 일치
[[조선 숙종|숙종]]의 복위 명령에 병조판서 [[서문중]]은 이조참판 [[박태상]] 등과 함께 사람을 모아 ‘9년·6년과, 아들이 있고 아들이 없는 것은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인현왕후]]가 비록 희빈 장씨보다 더 오래 왕비로 있었으나 왕세자의 생모인 희빈 장씨가 더 귀하다는 뜻이다. 정원(政院)은 조정백관과 신중히 공론을 한 후에 결정지어질 때까지 명을 받들 수 없다는 거부의사를 표명했다.<ref>《조선왕조실록》숙종 26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4월 13일(경진) 2번째기사</ref> [[인현왕후]]의 복위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노론]]과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소론]]의 격렬한 언쟁이 오가던 가운데<ref>《숙종실록》에는 누락된 내용으로 《승정원일기》 4월 12일 ~ 4월 16일까지의 기사에 수록되어 있다.</ref> 4월 16일에 이르러 우의정 [[윤지완]], 공조판서 [[신익상]], 한성부우윤 [[임상원]], 병조참의 [[이유]] 등의 [[소론]]의 대표 인물들이 단체로 사직상소를 올리기에 이르렀는데<ref>《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16일 (계미) 원본356책/탈초본18책</ref> [[조선 숙종|숙종]]이 갑술환국을 일으키며 중앙을 [[소론]] 중심으로 채웠던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이 사건은 엿새 후인 4월 17일, 영의정이자 소론 영수였던 [[남구만]]이 '이미 복위하라는 왕명은 내려졌고, 자식이 어미(國母: [[인현왕후]])의 죄를 논하며 도로 쫓아내라 마라 의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소론]]을 중재하여 결국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ref>『숙종 20년 4월 17일 1번째 기사』</ref> 이 사건을 계기로 [[소론]]은 희빈 장씨를, [[노론]]은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는데 [[소론]] 영수인 [[남구만]]은 중립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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