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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우(영화배우) . . . . 13회 일치
그리고 최지우는 2002년 '''<[[겨울 연가]]>'''에 출연하였고 배용준과 함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당시 겨울연가의 당시 시청률은 20프로 초중반으로 2002년 기준으론 그냥저냥한 중박쯤의 작품이었다. SBS의 [[여인천하]]가 워낙 대세였고 MBC의 [[상도]]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겨울연가의 감독인 윤석호 또한 20~30대 여성들을 공략하는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지우의 숏커트 머리는 하나의 유행이 될 정도로 <겨울연가>는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었는데... 이 <겨울연가>는 일본에 수출되며 최지우는 그 유명한 '''욘사마'''와 더불어 '지우히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인기 몰이를 하였다.[* [[이나가키 고로]]가 [[혼코와 클럽]] 진행 당시 최지우를 처음 실물로 본 경험을 얘기하며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도. 서브남주인 박용하의 인기 또한 폭발적이었으니 말다했다]
최근의 두 드라마(에어시티, 스타의 연인)은 망하였지만, 그 전의 커리어를 보면 '''드라마의 여왕''', '''멜로의 여왕''', '''드라마의 흥행수표'''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첫사랑>은 그녀가 조연이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진실>, <아름다운 날들>,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 흥행작에 줄줄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대한민국 여배우 중 저렇게 많은 흥행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커리어면으로만 보면 [[김희선]]과 대적할 거의 유일한 여배우이기도 하다.
<겨울연가>의 대박으로 멜로 여주인공 이미지로 먹고 살 수 있었던 드라마판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영화판에서조차 연약하고 약간은 엉뚱한 이미지를 고수하여 연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본인이 영화판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이미지 변신이 시급한 문제일 듯하다.
일단 최지우 하면 '[[배용준]]'이 떠오르는데, 이는 <[[겨울 연가]]>의 임팩트가 워낙에 컸기 때문. 위의 사진은 겨울연가에서의 최지우와 배용준의 모습이다. 또한 최지우와 배용준은 1997년 드라마 <[[첫사랑(KBS)|첫사랑]]>에도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 2002년 [[KBS 2TV]] 《[[겨울 연가]]》 - 정유진 역
* 처음부터 지금까지 (드라마 '[[겨울 연가]]') - Ryu
||<|3> 2002년 ||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겨울연가]] ||
|| KBS 연기대상 || 인기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 겨울연가 ||
- 유지인(1956) . . . . 7회 일치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정윤희가 [[나는 77번 아가씨]]로 대표되는 [[백치미]]를 보여주고 장미희가 [[겨울여자]]로 대표되는 청순미를 보여 줬다면 유지인은 당시 대학 재학생이라는 신분에서 풍겨나오는 도시적신 이미지의 세련미를 보여줬다.
* [[1978년]] [[TBC]] 금요드라마 《[[겨울새]]》
* [[1979년]] [[TBC]] 주말연속극 《[[잃어버린 겨울]]》
* [[1978년]] 《[[마지막 겨울]]》
* [[1984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영화)|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수지 역
- 윤상현(배우) . . . . 6회 일치
한국나이로 33살 무렵인 2005년 TV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PD 역으로 처음부터 주연으로 데뷔했다. 연기에 연자도 몰랐던 윤상현의 눈빛이 마음에 든 강신효 감독은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 캐스팅 후 강신효 감독에게 3개월간 연기지도를 받았으나 연기가 심각하게 늘지 않았고, 최후의 조치로 [[박근형]]에게 연기수업을 보냈는데 너는 드라마 하지 말라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자신도 연기자에 대한 꿈이 없었고, 본인의 실력을 잘알기에 강신효 감독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며 못하겠다고 했으나 감독님의 만류로 결국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기초짜인 윤상현의 --[[발연기]]--때문에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분이 방영을 못할 정도로 너무 심각해서 재촬영을 위해 국내에 프랑스를 재현하기 위한 성(城)세트를 짓느라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었다고 한다.]이후 불꽃놀이, 독신천하에서 고만고만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2007년 [[문화방송|MBC]] 드라마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에서 주경우 역을 맡아 주목받게 되었다. 원래 이 드라마는 [[이태곤]], [[박선영(1976)|박선영]]이 주연이었으며 윤상현은 오히려 주연들보다 더 돋보이는 싸이코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찌질이 연기를 선보인 끝에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제목을 쪼다새, 찌질새 등으로 바꿔 부르게 할 정도였다.[* 원래 이 역할은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윤상현이 감독과의 회의 끝에 어수룩한 마마보이 역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또 그전까지 가수와 자영업을 꿈꾸며 연기에 별로 관심없이 연기하던 그에게 진심으로 연기에 빠져들게 만든 작품이였다고 한다. 결국 이때의 호연으로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수목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에서 중요한 역을 맡게 되었다.
* 처음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겨울새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중견배우 [[박원숙]]을 연기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다.[* 참고로 [[백년의 유산]]에서 극중 박원숙의 아들로 비슷한 --찌질한 마마보이-- 배역을 맡았던 배우 [[최원영]]도 윤상현과 비슷한 이유로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서 박원숙을 기억에 남는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 2007~2008년 || MBC ||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 || 주경우 || ||
|| 김승우의 승승장구 || 게스트[* 《겨울새》에 함께 출연했던 [[장신영]]이 몰래온 손님으로 등장하였다.] ||
- 한행 . . . . 6회 일치
* 칸고리(寒垢離/かんごり) : 겨울에 차가운 물로 몸을 씻으며 신불(神佛)에게 기원을 바치는 수행을 뜻한다. 코리(垢離)는 냉수를 써서 [[목욕재개]]를 하는 것이며, 평소에 하는 것은 미즈고리(水垢離), 수행(水行)이라고 한다. 칸고리는 이를 한겨울에 하는 것이다.
* 칸게이고(寒稽古) : 무도에서 겨울에 수행을 하는 것. 유도나 검도 등의 일본 무도에서 관습적으로 행한다. 기술 향상 보다는 정신력 단련에 중점을 둔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운동생리학적으로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 칸자라이(寒復習) : 조루리, 샤미센 등 예능계에서 겨울에 수행을 하던 것. 스승의 집에 모여서 수행을 했다.
* 칸마이리(寒参り) : 사찰, 신사 등에 참배하는 것. 겨울 기간 동안 30여일간 매일 참배하여 수행한다. 하얀 머리띠를 하고 방울을 메거나, 소복을 입거나, 맨발로 참배한다. 혹은 알몸으로 참배하는 경우도 있다.
* 한염불(寒念仏) : 겨울에 민가를 방문하여 [[염불]]을 하는 것.
- 도영(1996) . . . . 5회 일치
* 루키즈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봄[* 봄과 민들레를 좋아한다고.]이라고 했었는데 2018년 기준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로 바뀌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가을하면 단풍이 떠오른다고 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길을 따라 가로수들이 서 있고 그 아래가 주황빛으로 물든 풍경. 여름과 겨울 중에는 겨울이 좋다고 한 것을 보아 선호 계절 순위는 가을>봄>겨울>여름인듯 하다.
* 겨울 되면 생각나는 음식은 굴짬뽕이라고. 굴짬뽕이 나오기 한두달 전부터 전화해서 찾았었는데 아직 안나왔다고 해서 못 먹다가 드디어 먹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고.
* 떡볶이 코트도 좋아해서 연습생 시절에도 많이 입고 다녔고 매년 하나씩 꼭 산다고. 가지고 있던 옷들이 다 작아져서 이번 겨울에도 하나 살 생각이 있다고 한다.
- 문무왕 . . . . 5회 일치
3년([[663년]]) 봄 정월에는 [[서라벌]] 근교의 [[경주 남산신성|남산신성]](南山新城)에 장창(長倉)을 지었다. 또한 [[경주 부산성|부산성]](富山城)을 쌓았다.<ref name="삼국사기-663"/> 이보다 앞서 [[백제]] 부흥군은 662년 12월에 험준한 주류성(周留城)에서 주변에 평야와 강이 많은 피성(避城)으로 수도를 옮겼는데,<ref name="일본서기-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663년 2월에 [[김흠순|흠순]]과 [[김천존|천존]]은 백제 [[거열성]]을 쳐서 빼앗고 거물성과 사평성을 공격하여 항복시켰으며, 덕안성을 쳐서 1,070명을 목베는 등 [[백제]] 부흥군을 더욱 압박해왔다.<ref name="삼국사기-663"/> 결국 부흥군은 피성을 떠나 주류성으로 돌아갔고,<ref name="일본서기-663">《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2년(663)</ref> 왕은 이미 [[백제]]를 평정하였다며 유사에 명해 큰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을 내려 주게 한다.{{출처|날짜=2018-06-27}} 한편 여름 4월, 당은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雞林大都督府)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雞林州大都督)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63">《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3년(663)</ref> 6월, [[백제]] 부흥군 내의 내분으로 [[복신]]이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신라]]는 곧장 [[백제]] 부흥군을 쳐서 진압하려 했고,<ref name="일본서기-663"/> 당에서도 [[웅진도독부]]의 장군 유인궤(劉仁軌)의 요청에 따라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가 40만 군사를 보냈고, 유인궤와 별장(別將) 두상(杜爽), 새로 [[백제]]왕으로 임명된 [[부여융]] 등의 수군은 덕물도(德物島)를 경유해 수로로 곧장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갔다.<ref name="삼국사기-663"/><ref name="의자왕-662">《삼국사기》 권제28 백제본기 제6 唐 高宗 龍朔二年(662)</ref> 문무왕 역시 [[김유신]]과 [[김인문]]·[[김천존]], [[화랑]] [[죽지랑]]을 위시한 28명(또는 30명)의 장군을 데리고 당의 손인사·유인원과 군사를 합쳐 [[8월 13일]]에 두솔성(豆率城)<ref group="주">문헌에 따라 두량이성(豆良伊城)·두릉윤성(豆陵尹城)·두곶성(豆串城)·윤성(尹城)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ref>을 함락했다. 문무왕은 [[왜인]]들에게 훈계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ref name="김유신-중">《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2 김유신 중</ref> 28일에는 백강 어귀에서 당의 수군과 [[백제]]·[[왜]]의 선단이 충돌한 네 번의 싸움 모두 [[백제]]·[[왜]] 선단의 궤멸로 끝났고, [[백제]]의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 한 척에 의지해서 [[고구려]]로 망명해 버렸다([[백강구 전투]]). 요충지인 가림성을 제치고 먼저 주류성을 치기로 결정한 나·당 연합군 지휘부는 9월 7일<ref group="주">《[[자치통감]]》에는 8일로 표기됨</ref>에 마침내 주류성을 함락시켰다.<ref name="일본서기-663"/><ref name="자치통감-663">《자치통감》 권201 唐紀十七高宗天皇大聖大弘孝皇帝 龍朔 3년(663)</ref> [[웅진도독부]]의 당군에게 의복을 공급해주고 겨울 11월 20일에 [[서라벌]]로 돌아와, 문무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논공행상을 행했다. 앞서 당은 [[신라]]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도독에 임명한 뒤, 임존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오려는 문무왕을 향해 "평정을 마친 뒤 함께 모여 맹약을 맺으라"던 고종의 칙령을 들며 두 나라 사이의 맹약을 제의했다. [[신라]]는 임존성이 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출처|날짜=2018-06-27}} 결국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신라 관직)|이찬]] [[천존]](天存)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 (당나라)|유인원]](劉仁願)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ref name="삼국사기-664">《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4년(664)</ref> [[백제]] 부흥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泗沘山城)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ref name="삼국사기-664"/> [[백제 부흥운동|백제 부흥]]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5년([[665년]]) 가을 8월에 왕은 당의 칙사 유인원,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ref group="주">지금의 충남 공주시 연미산(鷰尾山)</ref>에서 모여 다시 맹약을 맺었다.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마시고 “서로의 경계를 넘어 침범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맹약의 글은 유인궤가 지은 것으로 제물들은 취리산 제단의 북쪽에 묻고, 맹약문은 신라의 종묘에 보관되었다.<ref name="삼국사기-665">《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5년(665)</ref> 또한 그 회맹한 지점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삼고 푯말을 세워 백제와 신라 양국의 국경으로 삼았다.<ref name="삼국사기-671"/> 이는 전쟁이 끝난 뒤 평양 이남의 땅은 신라에 귀속된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긴 당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처사였다. 같은 달, 왕자 정명(훗날의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5"/> 겨울에는 일선·[[거열주|거열]] 두 주의 백성들을 시켜 군수물자를 [[명주 (9주)|하서주]]로 운반하게 하면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ref name="삼국사기-665"/>
7년([[667년]]) 7월에 3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고, 당에서는 신라의 장군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장군으로 발탁하고 대아찬 일원(日原)은 당의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는데, 문무왕은 지경과 개원에게 각각 파진찬과 [[대아찬]]의 관등을 주고, 일원을 운휘장군으로 명한다는 고종의 칙명은 왕궁 뜰에서 받도록 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7년(667)</ref> 또한, 같은 달 고종은 유인원과 신라의 [[태종무열왕#가계|김인태]](金仁泰)에게 명하여 비열성(卑列城)<ref group="주">지금의 [[강원도]] [[안변군]]</ref>의 길을 따라, 신라 병사를 징발해 다곡(多谷)·해곡(海谷) 두 길을 따라 평양으로 모이도록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 가을 8월에 문무왕은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 9월에는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해 이적(李勣)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렸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신라군은 당군을 배제한 단독 작전수행 대신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배를 계속 띄워 당군의 동정을 살폈고, 당군이 아직 평양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고 먼저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먼저 고구려로 갈 길을 뚫기로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하지만 칠중성을 치기 전, 겨울 10월 2일에 평양성 북쪽 2백리 지점에 도착한 이적은 신라측 이동혜(尒同兮) 촌주(村主) 대나마 강심(江深)에게 부쳐,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칠중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곧바로 평양으로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신라군은 칠중성 공격을 포기하고 수곡성(水谷城)으로 향했지만,<ref name="삼국사기-671"/>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을 때 이적은 어느새 돌아가버렸고, 신라군도 그냥 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7"/> 12월에 당은 다시 웅진도독부의 유진장군(留鎭將軍) 유인원을 보내어 고구려 정벌을 돕게 하면서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정절(旌節)을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7"/>
9년([[669년]]) 5월 천정군(泉井郡)·비열홀군(比列忽郡)·각련군(各連郡) 세 군의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9">《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9년(669)</ref>{{refn|group=주|이 기록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비열성(비열홀)은 다른 두 성과 함께 신라 조정의 군이 설치되어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는 전략요충지인 비열홀을 [[안동도호부]]에 귀속시키고자 하였다.<ref name="이상훈">이호영·이상훈,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98%EB%8B%B9%EC%A0%84%EC%9F%81&ridx=0&tot=614 나당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또한, 당은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백제 땅을 점거하고, 신라의 백성들을 웅진도독부 안으로 편입시키기도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1"/> 신라 내부에선 “당은 [[왜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군함을 수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같은 달, 급찬 기진산(祇珍山) 등을 당에 보내어 자석(紫石) 두 상자를 바쳤다. 또한 각간 김흠순과 파진찬 김양도(金良圖)를 당에 보내 사죄하게 하였다.{{refn|group=주|신라가 백제의 토지와 유민(遺民)을 취(取)한 것에 대해 당의 질책이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고자 하여 이들을 보낸 것이다. 흠순은 다음해 귀국하였으나 양도는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f name="삼국사기-669"/>}} 겨울에는 당의 사신이 도착하여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사찬 구진천(仇珍川)을 당에 데려갔다.<ref name="삼국사기-669"/> 이는 당시 ‘천보노(千歩弩)’라고까지 불리며 쏘면 1천 보를 나간다는 소문이 퍼져 있던 신라의 쇠뇌 제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3년([[673년]]) 2월부터 9월까지, 문무왕은 당의 침략에 대한 대응으로 서형산성(西兄山城)과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비롯해, 국원성(國原城)<ref group="주">옛 완장성(薍長城)</ref>, 북형산성(北兄山城), 소문성(召文城), 이산성(耳山城), 수약주(首若州)의 주양성(走壤城)<ref group="주">질암성(迭巖城)이라고도 한다.</ref>, 달함군의 주잠성(主岑城), 거열주(居烈州)의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 등 여러 성을 쌓게 하고, 대아찬(大阿飡) 철천(徹川) 등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73">《삼국사기》 권제7 신라본기 제7 문무왕 13년(673)</ref> 한편 이 사이에 국가의 원로이자 재상이었던 태대각간 김유신이 죽고, 아찬 대토(大吐)가 모반하여 당에 붙으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ref name="삼국사기-673"/> 거듭되는 전쟁에서 신라는 말갈·거란의 병사까지 끌어들인 당군과 맞서 아홉 번의 전투를 통해 2천 명을 죽이고, [[임진강|호로하]](瓠瀘河)와 왕봉하(王逢河)에서도 당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ref name="삼국사기-673"/> 겨울에 당병은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을 쳐서 함락시키고, 거란·말갈의 병사들은 대양성(大楊城)과 동자성(童子城)을 쳐서 멸했다.<ref name="삼국사기-673"/> 한편 신라는 주(州)와 군(郡)에 처음으로 외사정(外司正)을 두고, 백제 멸망 뒤 [[무열왕]]에 의해 폐지되었던 수병제(戍兵制)를 부활시키는 등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갔다.<ref name="삼국사기-673"/>
- 김희철(1983) . . . . 4회 일치
[[데프콘(가수)|데프콘]], [[심형탁]], [[정준영]]과 함께 대한민국 연예인들중 자타공인 오덕으로 유명하며, 이중에서도 수장이라 할만큼 유명하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으며, [[데프콘(가수)|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가수가 또 있다. 재미있게도 둘다 [[주간아이돌]] MC 출신이다.]][* 실제로 김희철 &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아스카]]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면 댓글에는 반드시 [[데프콘]]이 언급이 된다.] 소집 해제 후 아예 인증을 했다. [[겨울왕국]] 공개 이후 불러도 대답 없는 아스카를 버리고 [[안나(겨울왕국)|안나]]로 갈아타겠다고 선언(...). 차가운 엘사보다 안나가 좋다고 한걸 보니 취향이 확실한 듯하다.[* 본인이 선이 뚜렷하고 쌍커풀이 진해서 여성분은 쌍커풀 없고 화장이 연한 게 좋다고...~~애니캐를 현실 여자처럼...~~] [[http://i.imgur.com/vjMPTi8.jpg|코스프레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까 [[https://twitter.com/HeeZZinPang/status/519142782602989570|다시 아스카로 갈아탔다.]] 2018년 1월 18일 친분이 있는 트위치 스트리머 케인의 방송에 게스트로 나왔을때 드러난바에 따르면 휴대폰 벨소리가 무려 [[잔혹한 천사의 테제]]. [[https://clips.twitch.tv/WittyWanderingPlumageSquadGoals|해당 클립]] 오래 전부터 그 벨소리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2014년 추석에 방영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소원을 말해요'에서 이벤트로 [[겨울왕국]]의 [[안나(겨울왕국)|안나]] 코스프레를 하였다. [[엘사]] 역을 맡은 [[김재경]]과 비교해도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82808140336766&type=1&outlink=1|딱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 이후엔 아예 엘사 분장을 하고 [[http://osen.mt.co.kr/article/G1109995790|나오기도 했다.]] [* [[SUPER SHOW 6]]에서 엘사 콘테스트를 열었는데 자신은 안나를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엘사를 했다고 한다. 총 3회의 콘서트 중 마지막 콘서트에서 희철이 올라와야 하는 타이밍에 엘사 드레스와 가발만 올라왔다. 모두가 어리둥절하고있는 사이 기어이 안나로 분장한 희철이 나타났다.]
- 울릉군 . . . . 4회 일치
* [[성인봉]]-울릉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 해발 984m에 달한다. 울릉읍, 북면, 서면에 걸쳐 있으며, 여러 등산로가 있지만 아무래도 제일 유명한 길은 도동에서 올라가는 루트와 반대쪽에서 나리분지를 통해 올라가는 루트로 나뉜다. 도동 쪽은 3시간이면 주파하고 흙산이라서 올라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나리분지쪽은 나무계단이라서 생각보다 어렵고 6시간 가까이 걸린다고도 한다. 올라가는 길에 아름다운 원시림이 있다. 특히 구름이 껴있으면 원시림과 고사리들이 펼치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장관. 허나, 정상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상에서는 바다와 울릉도 전체가 스펙터클하게 보인다고 한다. 매우 날씨 좋은 날이면 독도도 보인다고. 허나, [[매의 눈]] 같은 시력과 운이 따라야 한다. 보통 일년에 50일 정도 독도를 볼수 있는 날씨가 된다고 한다. 정상이 맑은 날을 노리려면 겨울이 좋다고. 하지만 겨울엔 눈이 퍼부어대는 울릉도 특성 상 쉽지 않을 것이다.
* 연평균 1,236mm에 달하는 울릉도의 강수량은 보다시피 [[봄]] 15%, [[여름]] 25%, [[가을]] 30%, [[겨울]] 30%라는 매우 독특한 그래프를 그리며 [[강원도]]를 능가하는 전국 최다설지다. 최심적설기록이 무려 '''3m'''.
* [[우데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울릉도에서만 보이는 가옥 형태로, 마치 유목민의 천막집처럼 가옥 사방에 짚을 엮은 거적으로 된 벽을 둘러친다. [[바다]] 한복판에 있어 [[겨울]]에 [[눈(날씨)|눈]]이 엄청나게 내리는(강수량의 2/5가 눈이다!) 울릉도 환경에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울릉도에서도 과거의 유산이 되어 이 형태가 딱 2채만 문화재로 남아있다.
- 최성관 (1925년) . . . . 4회 일치
* 마지막 겨울 (1978년)
* 겨울로 가는 마차 (1981년)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4년)
* 겨울 나그네 (1986년)
- 허근욱 . . . . 4회 일치
'''허근욱'''(許槿旭, [[1930년]] [[3월 28일]] ~ [[2017년]] [[3월 25일]])은 [[대한민국]]의 작가, 소설가, 문인, 방송인이다. 1959년 KBS 방송국 작가실 집필이 되고, [[1960년]] 문단에 등단하였다. [[1984년]] KBS 방송국 전문위원이 되었다가 1989년 말에 정년퇴임하였다. 대표작은 내가 설 땅은 어디냐(1961), 흰 벽 검은 벽(1963), 멩가나무 열재 이야기(1976), 끝나지 않는 겨울(1982) 등이 있다.
자전적 소설 《내가 설 땅은 어디냐》(1961)를 비롯하여 《흰 벽 검은 벽》(1963), 《맹가나무 열재 이야기》(1976), 《끝나지 않는 겨울》(1982) 등이 있다.
* 《끝나지 않은 겨울》 (남영, 1982)
* 허근욱, 《끝나지 않은 겨울》 (남영, 1982)
- 로베르 기스카르 . . . . 3회 일치
한편, 멜피 공의회 이후 기스카르의 기세는 더더욱 치고 올라, 그해 겨울이 끝나기전 레조를 제외한 칼리브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타란토와 브란덴시에 있던 비잔티움 요새들도 모두 박살냈다. 이후 동생인 로제르와 함께 레조까지 힘락한 기스카르는 콘스탄티노스 10세가 남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보낸 군대까지 격파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우세를 확실히 한다. 이후 그는 1061년에 로제르와 함께 메시나를 정복하면서 시칠리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1071년에는 바리를 함락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듬해 초에는 팔레르모를 함락하면서 시칠리아섬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1075년에 살레르노 공국을 정복하면서 남이탈리아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스카르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그의 야심은 남이탈리아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원한건 동방제국의 제위를 차지 하는것이었다.
그렇게 그해 가을과 겨울동안 여름때 모집한 신병들을 훈련시키는데 매진한 기스카르는 칼리브리아나 아풀리아 일대의 그리스인들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이 미카일 7세라고 주장하던 사이비 수도사까지 끌어들였다. 그의 말을 믿는 이들은 그리 없었지만, 로베르는 좋은 이용수단이던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줬다.
1084년 가을에 그는 보에몽과 로제르 보르사, 기, 이렇게 삼형제가 이끄는 병력들과 함께 150척의 새함대를 꾸리고 비잔티움을 다시 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스카르는 불운을 겪는다. 부르린토에서는 날씨때문에 두 달이나 함대의 발이 묶였고, 가까스로 코르푸 해협을 건너고 난뒤에는 함대가 베네치아 해군의 습격을 받아 두번이나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그상황에서도 기스카르는 베네치아 해군이 연락선을 그들의 본거지인 베네치아 섬에 보내자마자 남은 함대로 기습을 가해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겨울에 그들은 그 어떤 적보다 가장 무서운 적들을 만나야 했다. 바로 역병이었다.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이병에 의해 노르만군들 상당수가 쓰러지고 만것이다. 그의 장남인 보에몽도 병에 걸려 바리로 이송되었을 정도였다.
- 암살교실/번외편 1화 . . . . 3회 일치
지난 겨울 방학 중의 에피소드. 실패했던 프로 암살자들이 살생님의 거처를 찾아나선다.
* 겨울 방학 때의 이야기.
* 그래도 자신의 아지트를 찾은건 학생들도 하지 못한 일이라며 시카를 칭찬하는데, 시카는 "정작 너희 학생들은 암살도 안 하고 뭐하고 있냐"고 쏘아붙인다. 살생님은 "그들은 겨울방학 숙제 중"이라며 그것만은 자신이 도울 수 없고 스스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 원빈(배우) . . . . 3회 일치
그러나 원빈이 근무한 지역은 '''[[http://cfile236.uf.daum.net/image/17748E384D86B9ED29A392|이따위로 생겨먹은 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http://cfile222.uf.daum.net/image/1879FA384D86B9EC1A407C|오르고 내리기를 몇 달 동안 매일 반복해야 되는 곳이다]]'''.[* 저긴 한두 번만 왔다갔다 해도 사고가 나기 쉬운데 그 이유는 겨울철에 빙판길이나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고 좁은 지역에 총은 긴데 기둥들이 많아서 기동이 힘들다. 특히 겨울철 밤에 몸이 얼어있는 경우에 시야가 차단되어 갑자기 움직일 때 조그만한 사고라도 큰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원빈이 근무하던 곳은 속칭 '네발 계단', 처음엔 두 발로 걷다가 나중엔 네 발로 걷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무시무시한 곳이었으며 현재는 그 험준함 때문에 해당 구역이 폐쇄되고 길을 새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그나마 나은 길로 변경되었음에도 무릎 혹은 허리에 이상이 생겨 후송되거나 진료를 받은 사람이 많다. 게다가 무릎 십자인대는 파열시 완치가 되지 않는 부위로 '''평생 통증과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된다.'''. 쉽게 설명하면 대한민국 가장 험준한 지역중 하나인 7사단 GOP에서 가장 힘든 8연대구역으로 발령받고 거기서도 워스트로 드는 최악의 곳에 발령 받은셈이다. 일반인도 장기간 복무하면 쉽게 다치는 곳에 환자가 직접 찾아갔으니...
* [[아저씨(영화)|아저씨]]의 대성공 이후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역할이 원래에는 원빈을 염두에 둔 역할이었다고 한다.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2년에는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가 맡았던 역할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하였고[* 다만 이 경우에는 원빈이 이재규 PD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약속이 깨지고 언론에 원빈의 [[더킹 투하츠]] 출연설이 나돌면서 하차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거부하면서 차기작 선정은 2018년까지 미정이다.
- 윤흔 . . . . 3회 일치
이후 [[서인]]의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605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 [[여주목|여주]][[목사]](驪州牧使)로 부임하였고, [[여주]][[목사]]로 재직 중 [[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를 썼다. [[1608년]](선조 41년) 겨울 [[명나라]]에 [[동지사]]가 파견될 때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귀국 직후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임명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년) 행[[장례원]] [[판결사]](行掌隷院判決事)로 전임되었다가 다시 [[승정원]][[우부승지]]와 [[좌부승지]]를 역임한 뒤, [[승정원]][[우승지]]가 되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되었다.
저서로는 《계음만필 溪陰漫筆》, 《도재수필》, 《도재집》, 편저서에 《십묘한람도동편(十畝閒覽道東編)》 등이 있으며, [[여주시|여주]]의 향토지인 《황려지 (黃驪志)》를 편찬하였다. 그밖에 [[창랑정]](滄浪亭) 등 약간의 [[시조]] 몇 수가 전한다. [[1638년]](인조 16년) 초겨울에 가벼운 병을 앓다가 [[감기]]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겨울 [[12월 17일]] [[감기]]와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죽자 [[조선 인조|인조]]는 애도를 표하여 정사를 파하고 바로 좌의정에 증직하였다.
- 정승환(가수) . . . . 3회 일치
|| '''04''' || '''그 겨울''' ||
* '이 바보야'의 경우 무려 8시간을 녹음했다. 작곡가의 바람대로 슬픔이 폭발하는 느낌을 보여주는 멋진 클라이막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본인이 너무 높다는 걱정을 했다. [* 참고로 '이 바보야'와 함께 더블 타이틀곡인 '그 겨울'은 더 높다.][* 첨언하면, 이 바보야의 최고음은 A4#(2옥타브 라#)이며, 그 겨울의 경우는 B4(2옥타브 시)이다.] 안테나 엔젤스가 모두 그렇듯 AR을 전혀 배제하고 라이브를 소화하고 있다. [* 결국 20161206 더쇼 방송분부터 클라이막스 도입부에 한정하여 급조한 AR을 깔아주긴 한다.] -- 유희열 밑에선 고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조소혜 . . . . 3회 일치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드라마)|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988년, KBS2)
* 《[[가을꽃 겨울나무]]》(1991년, KBS2)
- 창원시 . . . . 3회 일치
우선 여름엔 무진장 덥다. 한반도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이 관측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겨울엔 타 지역에 비해 별로 춥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눈도 거의 안 온다. 물론 추위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겨울되면 춥긴 추워서 시민들도 타이즈+티셔츠+스웨터+패딩 입고 다닌다. 다만 눈은 진짜 구경하기 힘든데 일년에 눈이 1번도 안 오는 해도 많을 정도. ~~단지 물이 얼음이 될 뿐~~ 와봤자 쌓이지 않을 정도로만 잠시 내리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1월 현재, 2015년 2월에 눈이 몇cm 쌓여 꽤나 오래 눈이 남아있던 이후로는 눈이 쌓이지 않았거나 쌓이고 얼마 안 있어 다 녹아버렸다. 그래서 이 곳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빙판이 뭔지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타 지역처럼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두껍게 어는 빙판이 아니라, 응달에 고여 있던 물웅덩이가 살짝 언 정도의 매끈한 빙판 정도만 경험한다. 물론 육군 예비역들은 거의 다 전방을 다녀오기 때문에 눈 하면 이를 가는 건 타지 사람들과 마찬가지긴 한데 지역 특성상 해군, 해경에 지원하는 비율도 타지역보다 높은 편이라 눈이 익숙하지 않은 비율이 더 올라간다.] 이처럼 시민들이 눈에 대한 대비가 거의 안 되다보니, 정말 십몇 년에 한번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서울에선 이정도 눈쯤 하며 씽씽 달리는 차들이, 창원에선 15~30km 거북이 운행을 하며 골목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난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마산합포구 권역은 정말 헬게이트가 벌어진다. 실제로 눈이 쌓였던 날 평소 30분 정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도권에선 진눈깨비엔 불과한 눈이 내렸을 뿐인데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그날 따라 택시요금이 2배나 나왔다 카더라.~~ 1997년 약 10cm 정도의 적설량을 보였을 때에는 단 1개 노선[* 주간선 역할을 하던 구 21번 버스, 현재의 [[창원 버스 103|103번]]과 비슷한 노선이다.]만 제외하고 대중교통이건 승용차건 화물차건 모두 운행을 중단했던 적도 있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강수량은 연도마다 들쭉날쭉하다'''.[* 이는 연강수량 대부분을 장마와 태풍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기후 특성 때문이다. 유달리 장마가 길고 태풍도 여러개씩 통과하는 해는 연 강수량이 2000mm 가까이 내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장마가 짧게 끝나고 태풍이 통과하지 않는 해는 1000mm도 채 안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2016년만 하더라도 서울의 누적 강수량은 776mm(9월 20일 기준)로 평년의 66% 수주밖에 되지 않는다.] 1987년에는 최악의 겨울가뭄으로 저수지가 다 말라붙었고, 1999년에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거의 100일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8월에는 제대로 된 비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땡볕이 쏟아졌다. 일기예보에서 전국(남부지방 포함) 비 예보를 할 때조차 땡볕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일기예보에서만 윗 지방의 홍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사람도 많다고. 경남 지역 뉴스의 일기예보조차 맞지 않아 각 개인이 날씨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단, 더위 관련은 예보를 뛰어넘는 찜통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2016년 전국 최고기온을 달성한 적도 있으며, 대개 숫자상 최고기온은 내륙의 대구, 경산, 밀양이 갖고가지만 창원도 정말 만만찮게 덥다. 게다가 창원기상대는 마산합포구 해안가의 옛 마산측후소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구 창원 권역은 분지 지형이라 열섬현상에 분지 특성까지 얹어서 더 덥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3회 일치
다시 내가 찾아낸 물건 얘기로 돌아가자. 우리 집에는 생각보다 정원 용품이 많다. 날이 좀 나갔지만 전지가위도 하나 찾았고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는 목공장갑도 몇 벌 찾았다. 그리고 두툼하고 투명한 비닐 시트도 발견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겨울에 방한 목적으로 창문에 치던게 기억이 났다. 이게 또 요긴할 것이다. 같이 쓸 수 있는 굵은 철사도 있다. 녹 하나 나지 않은 새것이다. 나는 백지를 받아든 어린애처럼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분명 재료가 부족할게 뻔하지만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서 겨울에 대비하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은 부족하지만 나에게 제일 풍족한건 시간이 아닌가? 시간이 많다는 것,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 근거도 없이 낙관적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생존이란 거겠지.
나는 비닐시트와 철사를 바로 써먹기로 했다. 불과 10분 만에 뚝딱 구상한 아이디어가 겨울 철에 비닐 하우스를 만든다는 거 보다 훨씬 유용한 아이디어라는게 입증되었다.
- 페어리 테일/497화 . . . . 3회 일치
[[페어리 테일]] 제 497화. '''겨울의 마도사'''
* 잉벨은 스스로를 "모든 것을 겨울로 바꾸는 자"라 칭하며 그레이 따위의 냉기는 자신의 겨울을 배겨낼 수 없다고 말한다.
- 고현정(미스코리아) . . . . 2회 일치
||<|3> 1992 ||<|2> [[SBS]] || 겨울 무지개 || 미애 ||
|| 2018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 주연 || 유정 ||
- 김국진(MC) . . . . 2회 일치
심지어 평소에 옷을 사는데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하루는 겨울에 김수용과 만나서 얘기하다가 "아, 추워. 야 옷 사러가자."라고 하더니 겨울옷을 파는 가게에 가서 옷을 전혀 입어보지도 않고 태연하게 특정 옷을 가리키더니 "저거 미디움 사이즈로 주세요."하더니 그냥 받아서 입고 계산해버렸다고 한다. 또 그 자리에서 옆에 있던 김수용에게도 "야, 너도 하나 입을래?"라고 하면서 또 아무렇지 않게 옷을 사줬다고 한다.
- 김규철(배우) . . . . 2회 일치
* [[2013년]] SBS 미니시리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장성(그 겨울, 바람이 분다)|장성]]
- 김도연(배우) . . . . 2회 일치
* 1988년 [[KBS 2TV]]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1992년 [[SBS]] [[겨울새]]
- 김영철(배우) . . . . 2회 일치
|| 1988년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KBS2 || 일환 역 ||
|| 1998년 || 겨울 지나고 봄 || SBS || 이동진 역 ||
- 노경주 . . . . 2회 일치
* [[겨울이야기]] 혜경 역 (1991년, [[문화방송|MBC]])
* 겨울새 (1992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 몽키 D. 루피 . . . . 2회 일치
||<:>좋아하는 계절||<:>여름도 좋고 눈 오는 겨울도 좋다.||
* [[각성한 동물계 능력자|미노타우로스]] - 버기, Mr.3, Mr.2 봉쿠레와 함께 상대했으며 버기가 먼저 특제 마기탄, 봉쿠레가 이어서 그 겨울날의 추억을 퍼붓고 Mr.3의 양초를 팔에 장착해 고무고무 망치창으로 기절시켰다.
- 소냐(가수) . . . . 2회 일치
1라운드 듀엣곡 대결에서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복면가왕)|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Mr.2의 '하얀 겨울'로 승리해 2라운드에 진출했다.
|| '''12-1''' || 2015년 9월 6일 || 하얀 겨울 || Mr.2 || [[서두원]] || '''{{{#orange 63}}}''' ||
- 손전 . . . . 2회 일치
* 《[[겨울 부인]]》
* 《[[뜨겁고 깊은겨울]]》
- 송금식 . . . . 2회 일치
* 1992년 《[[겨울 만가]]》
* 1991년 《[[겨울애마 봄]]》
- 식극의 소마/173화 . . . . 2회 일치
* 쿠로키바도 겨울철엔 연어의 질이 떨어지는 시기인데 굳이 과제로 삼은 점은 이상하다고 의심한다.
* 때마침 재료로 쓸 연어가 도착하는데 하나같이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끝내주는 상등품.
- 영양군 . . . . 2회 일치
해발 고도가 대부분 200m 이상이고 북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제대로 된 평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고봉은 일월산(日月山, 해발 1219m)이다. 여름은 한여름에도 해가 떨어지면 쌀쌀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편이다. 이로 인해 영양고추의 맛이 좋다고... 겨울은 [[봉화군|윗동네]]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 곳도 여타 남부지방에 비해 매우 추워 겨울 기온이 -10°C 이하로 심심치 않게 떨어진다. 많이 추울 때는 영하 25도 안팎까지도 떨어진다. 또한 눈도 제법 많이 내리는 편이며 지형적인 영향으로 수비면 동부 일대에는 상당히 많은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
- 영주시 . . . . 2회 일치
기후는 분지가 다 그렇듯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강수량을 보인다. 또 내륙 지역이니만큼 일교차와 연교차가 굉장히 크고, 겨울 기온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필적한다.
* 택지 쪽이 좀 더 바람도 세고 춥다. 아마 산을 깎아 만들어서 해발고도가 더 높기 때문인 듯. 아직 건물이 많이 없어 탁 트여있는데, 덕분에 겨울에 가보면 바람이 좀 많이 강력하다고 한다.
- 유열 (가수) . . . . 2회 일치
* 7집 - [[1998년]] - 〈겨울 채비〉
* 〈[[겨울연가]]〉
- 윤보라 . . . . 2회 일치
|| 아이올리 || 플라스틱 아일랜드 || 여성복 || With 효린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11316238924474&id=706594692729962&__tn__=%2As|2014 Summer]] [[http://m.blog.naver.com/plasti_plaby/220153281927#|SISTAR WITH FRIENDS 캠페인]] [[http://m.blog.naver.com/plasti_plaby/220153284347|2014 F/W 촬영]] [[http://m.blog.naver.com/plasti_plaby/220163997994|겨울 상품 화보]] [[http://m.blog.naver.com/plasti_plaby/220163992468|겨울 상품 화보]] ||
- 윤주상 . . . . 2회 일치
* [[KBS1]] 《[[다큐공감]] 181회 : 육지 속 섬, 파로호의 겨울》 (2017년) 내레이션
* [[KBS1]] 《[[다큐공감]] 284회 : 삼달리에 겨울이 오면》 (2019년) 내레이션
- 이선희 . . . . 2회 일치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는 <나의 거리>가 KBS 가요 톱텐 5주 연속 1위로 4번째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한바탕 웃음으로>는 1990년에 3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 <겨울애상>,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 1988년 《[[겨울날의 이야기]]》
- 이수민(야구선수) . . . . 2회 일치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아시아 윈터리그에서 간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겨울이다 보니 150km/h까지 찍던 투수들도 140 초중반에서 맴돌았다지만 이수민은 120 중후반대에 130을 간신히 찍을 정도로 구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성적은 8경기(1선발) 15.2이닝 1패 방어율 8.62.
- 장재인 . . . . 2회 일치
== 겨울밤 (Single) (2011.12.8) ==
겨울의 감성이 잘 드러나면서 장재인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곡.
- 전태일 . . . . 2회 일치
[[1963년]] [[3월]] 대구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지만<ref>1971년 문교부 시책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분리되기 전까지 한국의 학교들은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영되었다.</ref>, 가정 사정으로 1학년 재학 중 그해 [[12월]] 자퇴하였다. 1963년 겨울 그의 아버지 전상수는 아들에게 자퇴를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고 강요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에 좌절하여 한때 가출, 집을 뛰쳐나갔다가 3일만에 귀가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 공부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를 발길질로 차고 구타하여 강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태일에 대해''': "태일이는 사람을 참 좋아했어. 같은 노동자를 너무도 사랑했다고. 그러니 열사나 투사보다 그냥 '''동지'''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 태일이는 지금도 노동자와 함께하는 동지라고, 제발 그렇게 불러달라고 전해줘. 태일이는 날 참 좋아했어. 아직도 이 옷을 못 버리고 겨울이 오면 꼭 챙겨입는데, 태일이가 공장에서 남은 천으로 엄마 준다고 손수 만들어 준 내의야. 누가 새옷 입으라고 사줘도 안입고 난 이것만 입어…그런 태일이 아니냐"
- 조동혁(배우) . . . . 2회 일치
* [[겨울새(2007년 드라마)|겨울새]](2007, MBC) - 지홍
- 창작:좀비탈출/4-1 . . . . 2회 일치
내가 이렇게 결심할 수 있는 것은 작년 겨울에 뒷마당에 '''그걸''' 묻었기 때문이다. 항아리 말이다. 그렇다. 우리 집은 아직도 된장이니 고추장이니 김치 같은 것을 담가먹는 구식 집안이다. 서울에도 이런 집이 남아있다는게 놀랍지 않은가? 그걸 묻겠다고 콘크리트 바닥을 깨부술 땐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미친 짓이 날 살릴지도 모른다. 하! 하! 감사합니다 아버지.
준비는 끝났다. 준비래봐야 두꺼운 겨울 옷을 꺼내서 걸치고 바지는 세 개를 겹쳐 입는 정도의 가벼운 것이다. 누구라도 좀비떼 사이로 들어가라면 최소 이 정도는 갖춰 입겠지. 절대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야. 이 정도 갑옷(?)이면 어지간히 제대로 단단히 깨물리지 않는 이상은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청송군 . . . . 2회 일치
전 지역이 [[산(지형)|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자연환경이 수려하다는 장점도 가지고있다. [[봉화군]]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에 꽤 추운 동네이다. [[분지]] 지형이기때문에 [[기온 역전 현상]] 등을 감안하면 겨울철에 사람이 느끼는 추위는 [[서울특별시]]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 최승자 . . . . 2회 일치
그해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우리의 노쇠한 혈관을 타고 그리움의 피는 흘렀다. 그리움의 어머니는 마른 강줄기, 술과 불이 우리를 불렀다. 향유 고래 울음 소리 같은 밤 기적이 울려 퍼지고 개처럼 우리는 제기동 빈 거리를 헤맸다. 눈알을 한없이 굴리면서 꿈속에서도 행진해 나갔다. 때로 골목마다에서 진짜 개들이 기총소사하듯 짖어대곤 했다. [...]
몇 세기 전의 겨울을.
- 한명회 . . . . 2회 일치
[[1456년]] 초부터 그는 [[정창손]]에게 사위를 설득하게 했는데, 그해 [[6월 2일]], [[사육신]]과 함께 [[조선 세조|세조]] 3부자 척살에 가담하기로 한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의 설득으로 거사의 가담자들을 폭로함으로써 [[성삼문]], [[하위지]], [[유응부]] 등을 체포하였다. 바로 이들을 국문한 후 처형하고, 800여 명의 관련자들을 처형했으며, 수천 명을 유배시켰다. [[성삼문]] 등 사육신이 사형된 후 [[사육신의 의거]]를 진압한 공로로 [[승정원]][[좌승지]]를 거쳐 그해 겨울 [[도승지]]로 발탁되었다가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는 세조 집권 초반부터 변방의 성곽 수축과 병력 양성을 건의하고, 해안가에도 성곽을 쌓고 병력을 보내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하며 미구에 있을 왜구와 [[여진족]]의 침략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456년]]부터 [[조선 단종|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처형시킬 것을 주장하였으나 [[조선 세조|세조]]가 듣지 않았다. [[1457년]](세조 2년) 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하고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한 뒤,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었다. 그해 [[금성대군]]과 [[순흥부|순흥]][[부사]] [[이보흠]]의 모의를 적발하여 처형시켰다. 그해 겨울 [[조선 예종|해양대군]]의 [[왕세자]] 책봉을 주청(奏請)을 위한 [[세자]][[책봉]] [[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의 [[연경]](燕京)에 들어갔다.
- 한승원 (만화가) . . . . 2회 일치
| 《우정이상 사랑이하》 || || 1998년 대원 단권 || 단편집, 수록작품: 〈학교가 보이는 풍경〉, 〈이런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우정이상 사랑이하〉, 〈사랑해요〉, 〈느낌이 겨울인 그대〉, 〈사월의 카네이션〉
| 《우정이상 사랑이하》 || || 1998년 대원 단권 || 단편집, 수록작품: 〈학교가 보이는 풍경〉, 〈이런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우정이상 사랑이하〉, 〈사랑해요〉, 〈느낌이 겨울인 그대〉, 〈사월의 카네이션〉
- 3월의 라이온/124화 . . . . 1회 일치
* 아카리는 겨울에는 10장에 100엔씩하는 차조기가 여름에는 무한정 나온다며 기뻐한다.
- Darkest Hour: A Hearts of Iron Game/디시전 . . . . 1회 일치
* The Finnish Winter War(겨울전쟁)
- 거미(가수) . . . . 1회 일치
* 눈꽃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OST
- 고경표(배우) . . . . 1회 일치
본인도 올라프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찍은 사진을 올렸을 정도로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사람 캐릭터 [[올라프(디즈니 캐릭터)|올라프]]와도 닮았다. 연예인으로 비교하자면 약간 [[송창의]], [[최시원]], [[박해일]]을 좀 닮은 정도?
- 고인범 . . . . 1회 일치
* 2013년 SBS 드라마 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박진성 아버지
- 권해효 . . . . 1회 일치
* 2002 [[겨울연가]]
- 그루베니아 . . . . 1회 일치
그루베니아의 요리는 대부분 육류을 사용한 요리가 많지만, 콩과 쌀 등 곡식류도 자주 먹는다. 또한 그루베니아의 조주(造酒) 기술또한 유명하여 고품질의 맥주, 브렌디, 포도주, 보드카 등이 우주 각 은하계로 수출되고있다. 유트뵐리스에서는 긴 겨울을 버티기위해 고열량의 음식이 많으며,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보드카 등의 도수가 높은 술도 많이 즐긴다. 그루베니아에는 예로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이의 생일에 따른 탄생석으로 만든 악세사리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 김광석 . . . . 1회 일치
# 겨울새/안치환
- 김미숙(1959) . . . . 1회 일치
* KBS 라디오 겨울나그네
- 김수용(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복면가왕]] 88차 경연[* [[내 노래는 플러스 알파 알파카]]로 나와 [[곰살 맞은 북극곰]]과 같이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불렀으며 정체를 밝힐 때 부른 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 이의 꿈'이었다. 참고로 삼파전을 제외하면 역대 세번째 최다 표 차이다.(92:7)]
- 김원주(가수) . . . . 1회 일치
* 겨울연가 [* 멤버중 첫번째로 OST가 아닌 자신의 음반을 냈다.]
- 김준희 (1960년) . . . . 1회 일치
'''김준희'''(金濬禧<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150032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1-15&officeId=00032&pageNo=8&printNo=11733&publishType=00020 "겨울放學 프로野球 場外훈련"] 경향신문. 1983년 11월 15일.</ref>, [[1960년]] [[5월 16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이다.
- 김형인(코미디언) . . . . 1회 일치
* [[코미디빅리그/2012 겨울시즌]] - YT 패밀리{with 윤택, [[강준]](현 강완서), [[최성민]]} - 공동 11위,승점 0점
- 김희애 . . . . 1회 일치
* [[겨울나그네]](1990, KBS)/다혜
- 류현경 . . . . 1회 일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2018) - 현지 역
- 마재윤 . . . . 1회 일치
[[송병구]]와의 첫만남은 비공식전인 [[CYON MSL 2005]] 3차 챌린지 예선 D조 결승으로 이때 1:2로 패배, [[WCG 2005]] 1차예선 9조 4강에서도 0:2 셧아웃, 이어 공식전에서의 첫만남은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준플레이오프 삼성전자전 7세트였는데 여기선 송병구에게 패했다. 하지만,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삼성전자전 5세트에선 승리했다. 이어 이듬해 [[곰TV MSL 시즌2]] 16강 D조 경기에서 다시 만났는데, 마재윤이 2:0으로 승리하고 8강에 진출했다. 이어 비공식전인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올스타전 열정팀전 7세트에서 다시 마재윤 승리, [[곰TV MSL 시즌3]] 16강 D조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때는 두 번째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끝내 마재윤이 2:1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듬해 여름 비공식전인 2008 [[블리즈컨]]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승자조 결승에서는 1:2 패배, 그해 겨울 역시 비공식전인 [[IEF 2008]] 8강 A조에서는 0:3 셧아웃 패배, 역시 비공식전인 올스타 종족 최강전 프로토스전 6세트에서는 마재윤이 승리했다. 상대전적 공식전만으로는 5:2로 우세,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12:8로 더 강세.
- 맥스 페인/줄거리 . . . . 1회 일치
정문이 잠겨 있었기에 맥스는 매표소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살인과 폭풍의 세대"라는 책이 놓여져 있었다. 바이킹 세계의 종말과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인 끔찍한 겨울, 비도적적인 범죄가 만연하며 모든 인간성이 사라진 순간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맥스는 책 표지의 설명을 보고나서 라그나록이 어떤 곳이며, 그 소유자들이 어떤 작자들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 문근영 . . . . 1회 일치
[[2006년]]도만 해도 평범한 티셔츠에 월남치마 차림으로~~[[일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터라 자주 볼 수 있었다.[* 2012년 즈음에는 한겨울 학교에 야상+츄리닝 차림으로 도서관에 출몰해 고학번 ~~[[복학생]]~~ 포스를 풍겼다. 애석하게도 사진은 나돌지 않는다.] 학교에서 사인은 해주지 않았지만(같은 학생이니까) 성균관대 근처 식당엔 문근영의 사인이 많이 있다. 한때 [[미스터피자]] 광고를 했던지라, 그녀가 그룹 스터디 등을 할 때면 성대 근처 [[미스터 피자]]에서 항상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음식값은 공짜였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바람.[* 사실 '그 피자집 제가 가도 돈 다 내고 할인도 없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참 그 광고가 나가던 시절은 모르겠지만.]
- 미즈우치 타카시 살인사건 . . . . 1회 일치
그리고 오전 10시 55분, 독신자 아파트의 작은 욕조에 엎드린 채로 떠있는 시라타 히카루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겨울 코트에 바지차림으로, 양말도 신고 있어 밖에 나가려는 복장이었다. 시신의 목에 졸린 흔적이 남아 있어 사인이 대략 판명되었다.
- 박상면(배우) . . . . 1회 일치
* [[이루]] - 겨울나기
- 박영진(코미디언) . . . . 1회 일치
2010년 한때 봉숭아 학당에서 엑스파일 요원이라는 캐릭터로 활동했는데 그 '엉뚱한 내용 트집 잡는' 기믹은 여전했다. 할 말 다 하고 "정말(정마알) 미스테리합니다" 를 말하는 게 포인트. 겨울에 들어서는 졸업생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왔다. "후배들아, ~같은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못 ~한다! 나는 ~해서 ~했다(어이없는 예시, 태클 걸리면) 이렇게 세상을 모른다!" 라는 레파토리.
- 백운산 물고기 . . . . 1회 일치
본래는 열대어지만, 관상어로 유통되는 종은 오래 전에 채집되어 양식된 종으로서, 수온 변화나 오염에 강한 변이를 거쳤기 때문에 [[겨울]]에도 기온 10도 정도 온도의 실내라면 버틸 수 있어 사육이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베트남에서 채집된 종류는 변이가 없는 열대어라서 쉽게 얼어죽는다.
- 뱌체슬라브 몰로토프 . . . . 1회 일치
[[화염병]]을 뜻하는 은어 [[몰로토프 칵테일]]은,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서 벌어진 [[겨울전쟁]]에서 몰로토프가 소련군이 [[폭격]]을 퍼붓고 있음에도, "우리 군은 핀란드 인민에게 빵을 공수하고 있다."는 [[망언]]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발언에 빡친 핀란드 측에서 "빵을 받았으니 칵테일로 돌려주마!"라면서 화염병에 이름을 붙인 것이 어원이라고 한다.[http://chemistry.about.com/od/firecombustionchemistry/a/molotovcocktail.htm 참조출처]
- 베이식 (가수) . . . . 1회 일치
*2007년 겨울. Jiggy Fellaz 크루 가입
- 서강준 . . . . 1회 일치
| 리복 클래식 '운동화로 겨울나는법'
- 서효림 . . . . 1회 일치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 성시경 . . . . 1회 일치
|<겨울 고백>
- 손예진 . . . . 1회 일치
손예진은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영화 《[[비밀 (2000년 영화)|비밀]]》에서 홍미조 역을 맡아 출연(목소리 출연)한 후, 오디션을 통해 이듬 해 2001년에 방영 된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여주인공 장희애 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ref>{{웹 인용|url=http://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aid=1885703|title=Young, Charming and Innocent ? What More Could You Want?|date=12 March 2001|work=Korea JoongAng Daily}}</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38&aid=0000100807 '방송'손예진 MBC 최고 루키 선정], 《한국일보》. 2001년 9월 25일 작성.</ref> 첫 드라마 작품부터 주연으로 시작한 손예진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특유의 청순한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이어 《[[선희 진희]]》에 출연하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손예진은 픽션사극 드라마 《[[대망 (2002년 드라마)|대망]]》과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제55회 [[칸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 되었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연애소설]]》(2002)는 233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클래식 (영화)|클래식]]》(2003)은 154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그녀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점차 주목 받기 시작했다. 《클래식》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회자되며, 손예진의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단숨에 청순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f>{{웹 인용|url=http://kpopherald.koreaherald.com/view.php?ud=201606101410484008937_2|title=Korean stars dubbed ‘Nation’s first love’|website=The Korea Herald|date=10 June 2016}}</ref> 이 작품들을 통해 2002년 제2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과,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제4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0396132|출판사 ='살인의 추억' 대종상 4개부문 석권(종합) |저자 =김병규 |날짜 = 2003-06-20 |확인날짜 =2017-09-16 }}</ref> 손예진은 2003년 TV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여주인공 심혜원 역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한류 (문화)|한류 문화]]의 주역인 [[윤석호 (연출가)|윤석호]] PD의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잇는 계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 식극의 소마/174화 . . . . 1회 일치
* 그러나 지금은 겨울. 시험관은 어째서 여름 연어를 구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식극의 소마/183화 . . . . 1회 일치
* 곰고기는 특히 요즘이맛 있는 시기. 겨울잠을 대비해 한참 몸집을 불려 기름이 오르는 시기다.
- 식극의 소마/214화 . . . . 1회 일치
유독 대회장 안이 춥다는 이야기는 [[식극의 소마/213화|지난 번]]에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인데다 홋카이도. 당연한 추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승부의 열쇠였다니? 아리스는 소바의 향기의 "정체"부터 시작한다. 소바향은 "휘발성 알데히드"인 "노나날 데카날"같은 성분에서 기원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휘발량이 줄고, 따라서 소바가루 자체가 향을 덜 내게 되는 것이다.
- 식극의 소마/229화 . . . . 1회 일치
* 소마는 언제나 그렇듯 붙임성을 발휘했다. 적이면서도 선뜻 모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두 명의 십걸은 어디에 있냐는 것. 모모의 말로는 그 둘은 전의가 너무 충만해서 못 기다린다면서 벌써 대회장에 가있다고 한다. [[츠카사 에이시]]와 [[코바야시 린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아 방에서 쉬는 상태라 한다. 어제의 격전은 정말로 상상 이상의 소모를 안겼다. 특히 린도는 왠지 불쌍하게 침대 옆 구석에 처박혀서 이불을 틀어말고 있다. 소마는 여기서 [[사이토 소메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오늘도 싸워야 했다. 힘들겠냐고 말을 건네가 의외로 모모는 "소먕"은 괜찮다고 말했다. 어제 오늘 냉수마찰로 목욕재계를 했더니 아주 거뜬해졌다고 한다. 한겨울의 홋카이도에서. 요시노와 사카키가 기겁했다.
- 신경림(대학교수) . . . . 1회 일치
데뷔한 이래로 10여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으나, 1965년 겨울에 동료 시인이자 절친이었던 [[김관식]]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생활 형편이 어려워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야 할 지경이었다고도 한다.
- 신은정 . . . . 1회 일치
* [[1998년]] [[SBS]] 아침드라마 《[[겨울 지나고 봄]]》 ... 정수진 역
- 신혜성 . . . . 1회 일치
01. 겨울<br />
- 안기효 . . . . 1회 일치
'''내~품~에~안~기~효~'''. [* 봄여름가을겨울의 '내 품에 안기어'.]
- 암살교실/번외편 4화 . . . . 1회 일치
* 살생님은 이제 겨울 방학이 끝나면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그 교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어떤 졸업을 맞이해도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회 일치
겨울이 찾아온 1777년, 코너는 워싱턴에게 템플기사단에 대해 알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이에 반대하는 아킬레스와 언쟁을 벌인 후, 말을 타고 워싱턴에게 향한다.
- 연광철 . . . . 1회 일치
가곡의 해석에도 일가견이 있어 정명훈의 반주로 <겨울여행(Winterreise)>를 소니 레이블로 출반하기도 했다. 그의 독일어에 대한 해석은 시대와 지방에 따른 뉘앙스와 억양의 차이까지도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분석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JCC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성악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 연하장 . . . . 1회 일치
일제 강점기 이후로 고향에서 떨어져 새해에 일일이 찾아갈 수 없게 되자, 연하장이 유행하게 되었다. 장수나 복을 상징하는 해, 학, 소나무, 십이지, 겨울 풍경 등의 그림을 그린 연하장이 유행했다.
- 영덕군 . . . . 1회 일치
영덕[[대게]]가 가장 유명하다. 주로 영덕군 앞바다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게껍질이 얇고 게살이 많은 것이 특징이어서 지역주민을 비롯해 외지에서도 영덕대게를 먹으러 원정방문을 하기도 한다. 철은 11월~5월 사이이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맛있다. 이 시기를 맞춰 3월 초에 영덕에서는 대게축제를 개최한다.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한 강구항이 가장 유명하고, 대게축제도 이곳을 중심으로 개최한다. 대게집도 이쪽에 가장 많이 몰려있다. 강구항을 시작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보이는 작은 포구에도 대게집이 종종 있는 편이고, 북쪽의 축산항도 작지만 유명한 편. 1998년부터 현재까지 영덕군청 주최로 영덕대게축제가 열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게축제시기에는 강구항쪽 교통에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실제 한번 밀리기시작하면 걸어가야할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해진다]--
- 영천시 . . . . 1회 일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분지에 위치하여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심한편이며, 연평균 기온은 12.5℃, 최저기온은 영하 18℃이다. 연중 강수량 평균은 1,052.7㎜로 다른 지역보다 적게 내리는 편이며, 6,7,8월에 1년 강수량의 반 이상 내린다. 최고기온은 2004년 37.2℃, 2005년 37℃, 2006년 37.2℃ 2007년 36.5℃이며 최저기온은 2004년 -13.6℃ 2005년 -14.5℃ 2006년 -13.3℃ 2007년 -10.8℃ 이다. 평균 해면기압 1,016.7hPa, 이슬점 온도 6.7℃ 일조 시간 2,168.4h, 평균 풍속 1.6m/s 최대풍속 10.6m/s, 최대순간풍속 20.7m/s 상대습도는 평균 69.1, 최소 10.0이다.
- 오유나 . . . . 1회 일치
* [[1998년]] [[SBS]] 아침드라마 《[[겨울 지나고 봄]]》
- 오창경 . . . . 1회 일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2018년) - 집주인 / 택시기사 역
- 우현(배우) . . . . 1회 일치
90년대 신촌에서 '지리산'이라는 주점을 운영하였다. 앞서 언급된 [[타임지]]의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던 술집. 당시 병맥주 전국 최저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저렴한 술값의 주점이라 학생들, 특히 동문인 [[연세대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던 술집이었고, 사장인 우현을 비롯해 절친인 [[안내상]]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운동가요만 틀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하자고 전략을 바꾸었고, 안주값을 천 원씩 받고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였다. 한 번은 겨울에 1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손님들과 같이 놀면서, 큰 점퍼에 받은 술값들을 쑤셔넣으며, 문닫을 때가 되면 그냥 술집에서 바로 자고 일어나 다시 장사하고 하면서 생활을 해봤다. 1주일 뒤에 주머니나 바지속(?) 등 곳곳을 뒤져서 돈을 꺼내자, 500만 원이 넘게 돈이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배우 안내상도 자극을 받아 주점을 운영했다. 2003년까지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 원피스/850화 . . . . 1회 일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푸딩의 돌변. 상디가 엿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푸딩은 자신이 빅맘의 "금지옥엽"이며 특히 "연기력"을 아껴준다고 떠들어댄다. 빅맘은 지겨울 정도로 그녀를 돌봐주고 있고 그녀의 부탁으로 남자를 속이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밀집모자 일행도 속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본성은 "가족들" 밖에 모른다고 하는데, 아마 간부들 중에서도 그녀의 본성을 아는건 일부인 듯하다.
- 유미(가수) . . . . 1회 일치
2002년 정식 데뷔 이전 '겨울이야기', '가라' 앨범을 냈었다.
- 유승민(정치인) . . . . 1회 일치
>'''희망은 한여름날 쏟아지는 태양이 아니라, 시린 겨울에 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햇살처럼, 그렇게 희망은 옵니다.'''
- 유해진(배우) . . . . 1회 일치
겨울이라는 이름의 [[웰시 코기]]를 키우고 있다. 가끔씩 TV에서 모습을 보이다가, [[삼시세끼/고창편|삼시세끼 고창편]]에서 깨알같은 귀여움을 선보였다.
- 윤종신 . . . . 1회 일치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늦봄까지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일밤)|은위]]에도 출연 중이었다.
- 윤철종 . . . . 1회 일치
그런데 정작 와보니 연습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홍대거리]] 길바닥에 주저앉아 연습을 하니 사람도 몰리고 돈도 벌어 '어? 이거 괜찮은데?' 싶어 알바도 다 끊고 --[[버스킹]]-- 길거리 연습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권정열의 성량이 웬만한 앰프를 쓴거보다 커서, 멀리서도 들리는 목소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6개월'''을 길거리에서 보내다 보니 겨울이 됐는데, 추운 날씨를 피해 그들이 눈길을 돌린 곳은 [[홍대거리/공연장|라이브 클럽]]이었다. 연주를 하려면 팀 이름이 필요하다길래 대강 '''10cm'''[* 두 사람의 키 차이에서 따 왔다.]로 짓고 활동을 했다. 근데 그 이름으로 유명해지다 보니 바꿀 수도 없고 여차저차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 윤철형 . . . . 1회 일치
* 1992년 : 겨울 미리내
- 윤태진(아나운서) . . . . 1회 일치
입사 초기에 [[농구]]와 [[배구]] 현장 쪽에서 인터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야구 시즌이 아닌 겨울에 주로 하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와 배구 등에서 현장 인터뷰를 자주 했다. 축구팬들은 야구로 '외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싶었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워낙 야구의 비중이 높은 채널이기도 하다. [[축구]] 쪽에서는 [[유로 2012]]에서 [[정인영(방송인)|정인영]]과 함께 유로 여신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본인은 그저 '''유로 여자'''이고, 유로 폐인이라고(...). 서로 공부하고 같이 시험까지 보면서 열의를 불태웠다.
- 윤휘 . . . . 1회 일치
[[1609년]](광해군 1년) [[좌승지]]가 되고,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1610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그해 호패(號牌) 사용으로 민심이 혼란함을 들어 호패제에 대한 무마책과 대책을 건의하였다. 그해 겨울 병을 이유로 여러번 사직상소를 올려 체직되었다. [[12월]] 행 부호군(行副護軍)을 거쳐 [[1611년]] [[호조]][[참의]]가 되었다. [[1611년]] 다시 [[전라도]][[관찰사]]로 나갔고, 영녕전 이안청 영건청(永寧殿移安廳營建廳) 건립에 참여한 공로로 아마 1필을 하사받았다. [[1612년]] [[경상도]][[관찰사]]로 재직 중 [[가선대부]]로 승진하였다.
- 은지원 . . . . 1회 일치
다만 이러한 뛰어난 미션 수행 능력과는 반대 급부로 복불복 운은 정말 지지리도 없는 편. 대표적으로 전남 벌교 편에서 5000원쓰고도 20만원을 쓴 이수근의 꼬막 2000개를 같이 캤던 것에서부터 비롯된 일명 '꼬막의 저주'라 불리우는 08년도~09년도의 겨울 내내 야외취침과, [[1박 2일/낙오일람|낙오된 횟수]]도 4회로 가장 많은 편.[* 2번째로 많았던 경우는 [[이승기]]의 3회인데 전북 장수편에서는 이수근과 함께 낙오했으며, 녹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짰기 때문에 복불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면에 은지원은 3회는 복불복으로, 1회는 날씨운 때문에 낙오한 것이며, 4회의 낙오를 모두 '''혼자서 겪어야 했다'''.] 낙오된 것도 굵직 굵직한 것들만 걸렸는데 첫번째 낙오는 '''무인도인''' 사승봉도, 국토대장정 특집에서 대중교통 이용해서 혼자 베이스캠프까지 찾아오기, 복불복 특집에서는 악천후에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복불복에서 단순히 '서해 어촌마을' 정도만 정해졌고 정확한 위치는 가면서 정한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차림을(바보 분장에 등에는 [[지게]]를 멨다.) 하고 혼자 찾아오기, 5대섬 특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호도에 걸려서 운이 좋은 듯 싶었으나 '''풍랑주의보로 인한 결항'''으로 혼자서 다큐 3일을 찍기도 하였다.
- 의성군 . . . . 1회 일치
~~여름에는 최고기온으로, 겨울에는 최저기온으로 일기예보에 자주 나오는 지역이다.~~
- 이미라 . . . . 1회 일치
* [[그 해 겨울 바다행 기차는...]] (1993년)
- 이장훈(배우) . . . . 1회 일치
* 뮤지컬 《겨울나그네》OST
- 이장희 (시인) . . . . 1회 일치
시인 생존시에 이루어진 평으로는 [[박종화]]와 [[이상화 (시인)|이상화]]의 것이 있다. 박종화는 《조선문단》 1925년 10월호 〈9월의 시단〉에서 《여명》에 실린 이장희의 시〈청천의 유방〉과 〈비오는 날〉을 평가하면서 〈청천의 유방〉은 "기괴를 쓰랴는 마음, 상징을 위한 상징시라는 것을 나는 말할 뿐이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하고 말했으며, 〈비오는 날〉은 "작자에 착각적 정서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다만 한 때에 마취된 감흥의 씌운 붓장난이라 할 것이다."하고 혹평했다.<ref>이기철, 〈이장희 연구(1)〉, 《인문연구》6권,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4, 179쪽</ref> 반면, 이장희와 동향 친구였던 이상화는 같은 해, 《개벽》 6월호에서 이장희의 시 〈고양의의 꿈〉과 〈겨울밤〉을 이채 있는 시라고 하면서, 이상화를 정관(靜觀)시인이라고 고평하였다. 다만 생명에서 발현된 열광이 없음을 덧붙였다.<ref>{{서적 인용
- 이재황(배우) . . . . 1회 일치
|| 2009년 09월 30일 || 고베콜렉션 패션쇼 || 2009 가을/겨울 || 일본 ||
- 임수정(탤런트) . . . . 1회 일치
역시 오디션을 통해서[* 이 [[영화]]의 감독이 [[DVD]]에서 당시 오디션이 경쟁이 치열했고 로비까지 있었지만 공정하게 심사를 했다고 말한다.] [[2002년]] 《피아노 치는 대통령》 으로 영화에 대통령([[안성기]] 분)의 딸 역으로 첫 데뷔를 하였으나 영화 자체가 평가가 안좋았다. 대통령으로 나온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겨울연가]]》로 당시 잘 나가던 [[최지우]]의 연기 문제와 비현실적인 내용이 문제였다. 임수정의 역할은 반항아인데, 얼굴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얼굴과 코디가 《학교4》의 범생역할 그대로...] 연기력도 부족해서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지우]]의 연기가 워낙 가관이라 연기 못 한다는 말은 안 들었다는 건 자랑~~ 여담으로 여기서 첫 흡연 장면이 나온다.[* 임수정은 작품의 대부분에서 흡연을 하고, 본인이 죽거나 상대배우가 죽는다. 이건 동물도 예외없다.;;]
- 전소민(배우) . . . . 1회 일치
데뷔 약 10년만에 임성한 극본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드라마)|오로라 공주]]의 (오디션을 통해) 여주로 캐스팅되었다. 이 때까지 원 없이 연기해 보고 싶은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소원대로 일일드라마의 비중 높은 여주 역을 맡아 고난의 행군과 같은 촬영 분량과 기간을 감내해야 했다. 깡마른 체격임에도 툭하면 날밤을 꼬박새우는 등 한여름 무더위와 살을 에는 추운 겨울까지 밤잠없는 촬영 강행군, 이로 인한 불규칙한 수면시간, 종종 끼니마저 컵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좋은 연기를 해내었다. 이 드라마 초반의 풋풋한 모습이 드라마 종반으로 갈수록 제법 성숙한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전효성 . . . . 1회 일치
2015년 3월 27일 KBS W의 <뷰티바이블 2015>에 [[제국의아이들]]의 [[황광희]]와 [[모델]] [[강승현(모델)|강승현]]과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0200&g_serial=889987&rrf=nv|공동 MC로 낙점되었다.]] 뷰티바이블 MC 발탁 후 시크릿 멤버들이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29583547890170019|개천에서 용났다고(...) 축하해줬다고 한다.]] 뷰티바이블 2015가 S/S 시즌(봄/여름)과 F/W 시즌(가을/겨울)으로 나누어지는데 F/W 시즌에 진행자가 변동되지 않음에 따라 [[http://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147452| F/W 시즌에도 MC로 출연하게 되었다.]]
- 정링컨 . . . . 1회 일치
* 팬콧(pancoat) 지면광고 (2011 겨울 & 2012 S/S F/W & 2013 S/S)
- 정서임 . . . . 1회 일치
* 1988년 KBS2 미니시리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춘자 역. 그외 전설의 고향 주연 다수 출연
- 정승우 (1973년) . . . . 1회 일치
* 《[[겨울연가]]》 (KBS2, 2002년) - 비서 역
- 정용화 . . . . 1회 일치
* [[2011년]] [[12월 4일]]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겨울투어를 실시하여, [[12월 4일]] 센다이, [[12월 6일]] 나고야, [[12월 14일]] 오사카, 그리고 [[12월 16일]] 도쿄에서 일본 전국 투어를 실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 씨엔블루, 日 전국투어 마지막 공연 13000명 동원 ‘1분 만에 티켓 매진'|url=http://wstar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01&c2=01&c3=00&nkey=201112191637321&mode=sub_view|출판사 = 한국경제연예|날짜 = [[2011년]] [[12월 19일]]}}</ref>
- 정재용(1973) . . . . 1회 일치
그가 합류하자마자 [[1995년]] [[여름]]에 정규 2집을 발매했으며, 타이틀 곡인 '[[머피의 법칙]]'으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후 [[1996년]] 3집 및 스페셜 앨범 들을 통해 '[[겨울]] 이야기', '[[미녀와 야수]]', '[[여름]] 이야기' 등의 히트곡들을 배출해내며 인기가도를 달렸다.
- 주장환 . . . . 1회 일치
소설 '사바카' '그 바닷가 헛간은 따스했다' '겨울새 물살털기' '퇴계 이황' 등이 있으며 시집 '내마음 속에 사랑의 집 한 채' 교양서 '논어와의 대화' '참사랑의 길' '레오나르도다빈치와 함께 하는 논술,NIE' '로즈여사에게 배우는 특별한 자녀양육법 26' '노벨문학상 소프트' 등과 '배짱으로 살아라' '사랑을 주는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 지수원 . . . . 1회 일치
* 1995년 피아노가 있는 겨울 ... 지애 역
- 지증왕 . . . . 1회 일치
[[502년]] [[순장]]을 금하고, 신궁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 음력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3년(502) 봄 2월에 영(令)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 이르러 금한 것이다. 왕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지냈다. 3월에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ref> [[503년]]에 국호를 신로(新盧)·사라(斯羅)·서나(徐那)·서야(徐耶)·서라(徐羅)·서벌(徐伐) 등에서 “신라”(新羅)로 통일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四年 冬十月 羣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나(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또 살펴 보건대 예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만을 칭하고 높이는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뭇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이에 따랐다. )}}</ref>
- 진격의 거인/90화 . . . . 1회 일치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동안 월 마리아 내의 거인은 모두 소탕되었다. 곧 복구공사가 시작되었고 시간시나구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입주가 재개되었을 때는 트로스트구의 습격으로부터 1년이 지나있었다. 그날 조사병단은 6년 만에 월 마리아 밖의 벽외조사를 개시했다. 한지는 그동안의 전쟁으로 섬 안의 거인 대부분이 사멸했을 것으로 추측했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조사병단은 매우 평화로운 상태로 벽 바깥을 달려나갔다.
- 진선유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난 진선유는 경북사대 부속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에 빠졌다. 주니어 대회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선수였지만, [[2004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광문고등학교 (서울)|광문고등학교]]에 전학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13일]] 2005-06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이탈리아]] [[보르미오]])에서 1:30.037로 들어오며 한 달 전 중국의 [[왕멍 (쇼트트랙 선수)|왕멍]]이 세운 기록을 0.134초 앞당기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었다. 2006년 겨울, [[2006년 동계 올림픽|토리노 동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다.(1500m,1000m,3000m 계주)<ref>{{뉴스 인용
- 천호진 . . . . 1회 일치
| [[가을꽃 겨울나무]]
- 최다빈 . . . . 1회 일치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Invierno Porteno) <br>{{small| by [[아스토르 피아졸라]] }}
- 최영미 (시인) . . . . 1회 일치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투명한 언어,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정확한 비유, 대담한 발상과 세련된 유머,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1994년]] 5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이 있다.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2005년)를 출간했고, 1988년 이후 26년 간 틈틈이 써온 원고를 다듬고 보완하여 1980년대 청춘의 방황과 좌절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 《청동정원》(2014년)을 펴냈다.
- 최태원 (야구인) . . . . 1회 일치
하지만 [[1997년]] 겨울부터 그는 시련을 맞이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이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IMF]]의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재정난을 겪게 되었고, 모기업 [[쌍방울 (기업)|쌍방울]]이 법정 관리를 신청하면서 [[김현욱 (야구인)|김현욱]], [[조규제]], [[박경완]], [[박성기]], [[김실]] 등의 동료들이 현금 트레이드되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팀의 4번 타자였던 [[외야수]] [[심성보]]는 [[당뇨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장타력을 상실하면서 그는 타선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타 구단 투수들은 그를 타깃으로 두고 [[빈볼]], [[고의 사구]] 작전을 펼쳤고 그는 힘겹게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갔다. [[김원형]], [[오상민]], [[장재중]] 등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의 끝까지 함께하였다.
- 최희준 (가수) . . . . 1회 일치
1974년 앨범 《길》을 발표한 뒤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1982년 영화 《겨울여자 2부》의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 추봉 (배우) . . . . 1회 일치
* 1969년 《겨울부인》
- 토니 고 . . . . 1회 일치
닉스를 매각하며 은퇴 후 바닷가에서 편하게 여생을 보낼 생각도 했으나, 이후 매우 지겨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016년 봄, 토니는 "퍼버스"(Perverse)라는 선글라스 브랜드를 설립했다.
- 토탈워: 쇼군 2 . . . . 1회 일치
겨울에 적 영토에서 턴을 끝내면 병사들 중 소수가 얼어죽는다. 주의하자. 물론 그정도 피해를 버틸 수 있다면 그냥 씹어도 된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 . . . . 1회 일치
* 본편에서는 한 계절이 한 턴이었지만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는 한 개월이 한 턴이다. 적 성을 포위하다가 겨울이 오면 3턴 연속으로 병력 소모를 겪어야 한다. 이외에 각 계절마다 이벤트와 효과가 추가되었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1회 일치
* 임기응변: 군대가 적 영토에서 재보충 가능, 단 겨울 땐 제외
- 하수빈 . . . . 1회 일치
영혼마저 깨끗한 차가울 만큼 맑고 투명한 마치 하얀 눈꽃이 필 것 같은 눈 덮인 겨울 호수... 비오는 파리의 세느 강변을 거닐 듯 아련한 애수를... 그런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표현해 가는 감성을 엿볼 수 있다.
- 하이큐/208화 . . . . 1회 일치
* 바쁜 나날이 지나가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의 어느날 히나타는 한 밤 중에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 하이큐/233화 . . . . 1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전일본 유스 합숙이 시작되던 겨울 무렵부터 봄고 대비 훈련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야마가타의 니시키야마 고교는 감독이 대학 선배라는 인연 덕에 성립. 니시고가 봄고에 갔을 때도 어떤 느낌이었는지 확인해봤다. 그 결과 우카이 코치가 걱정하는 의외의 난관은 "천장"과 "바닥". [[타케다 잇테츠]] 고문과 우카이 코치는 막판까지도 너무 높아진 천장, 감촉이 다른 코트 때문에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 하정우(영화감독) . . . . 1회 일치
* 황해를 촬영하면서 [[피부]]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피부가 좋지 않은 하정우는 인기를 얻으면서부터 피부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추격자 촬영 당시에 [[김윤석]]과의 싸움신을 촬영하면서 피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로 며칠을 보냈고 그 결과 색소가 피부에 침착되었다. 안그래도 좋지 않던 피부가 더 안 좋아진 것! 하지만 섹션 TV와의 인터뷰에서 마음에 맞는 [[피부과]] 의사선생님을 만났다며 몇 달 뒤에 피부가 완성된다고 즐거워 하였지만 황해를 촬영하면서 리얼리티를 엄청 중요시하는 나홍진 감독의 요구에 따라 로션 하나 바르지 않고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긴 시간 동안 촬영에 임했다. 그 결과 하정우의 [[피부]]는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버렸고 팬들은 고화질 화면에 나오는 하정우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세륜 나홍진"를 외친다. 이후에 어떻게든 복구하고 있는 듯.
- 한호문 . . . . 1회 일치
[[1633년]] [[9월]]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서원군(西原君)으로 호송관(護送官)에 임명되어 사신을 접대하였다. [[10월 4일]] [[명나라]] 사신을 [[모화관]]에서 접대한 것을 보고하였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1년 계유(1633) 10월 4일(계해)자 12번째기사, "모화관에서 금차에게 연향을 베푼 결과를 보고하는 호송관인 서원군 한호문 등의 계"</ref>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당시 훈련원 도정(訓鍊院都正)으로 인조 등을 수행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1637년]] [[1월]] [[인조]]의 [[정축하성]] 직후 작성된 호종록에 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ref>승정원일기 인조 15년 정축(1637) 2월, "일기청 관원"</ref>
- 허준호(배우) . . . . 1회 일치
* 1988년 KBS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인제 역
- 황정민(남자배우) . . . . 1회 일치
현재 부인과 함께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2012년에는 뮤지컬 어쌔신을 직접 연출하며 연출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2015년 겨울에는 뮤지컬 《오케피》의 주연인 지휘자역 뿐만 아니라 연출까지 맡았다.
- 희빈 장씨 . . . . 1회 일치
1680년 겨울, 장씨가 출궁되자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숭선군저에 친필서찰을 넣어 [[장렬왕후|자의대비]]의 친정 질녀이자 숭선군의 부인인 신씨의 보호를 받도록 하였다. 출궁된 장씨는 가장이 된 오라비 [[장희재 (조선)|장희재]] 부부의 집에서 어머니 윤씨와 함께 지냈다. 1701년 공초 당시 [[장희재 (조선)|장희재]]의 처 작은아기는 출궁된 당시에도 장씨가 무속에 기대었다는 사실을 발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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