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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병철(야구인)
         2006~2007년에도 팀 성적은 나빴지만 리빌딩은 충실히 진행했다. 정말로 친척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성이 같아서 농담삼아 [[강병철의 양아들]]이 아니라 친아들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강민호]]는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로 등극했고 김주찬은 수비와 작전수행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긴 했지만 정말 죽도록 욕을 먹어가면서도 끝까지 라인업에서 빼지않고 밀어준 결과 결국 호타준족의 외야수로 성장해 공격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인구(야구선수)|이인구]]는 [[2008년]] 후반기 [[정수근]]의 파행으로 위기에 빠진 롯데 외야진에 구원투수 역할을 했고 꾸준히 투구폼을 고정시키고 꾸준히 선발 수업을 시킨 [[장원준]][* [[양상문]] 시절에는 특별한 혹사없이 선발수업을 받긴 했는데 투구폼을 못 잡아줘서 여러번 바뀌었다.]과 [[신명철]]을 내주며 콕집어 트레이드해온 [[강영식]]은 각각 선발과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자리잡았다. 무명이었던 [[정보명]]을 발굴해 레귤러로 키워내었고 [[이우민]]의 경우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3할타율을 강병철 감독 재임기간에 달성하기도 했다.
  • 김시진(야구감독)
         투수 운용에서는 '''불펜혹사의 역대급 감독이다.''' 과거 [[이보근]], [[조용훈]], [[위재영]], [[신철인]], [[조용준]], [[황두성]], [[송신영]], [[오주원|오재영]], [[박승민|박준수]], [[노환수]], [[이상열(야구)|이상열]], [[권준헌]], [[마일영]], 이현승, [[박장희]] 등 수많은 선수들이 희생당했으며 [[이보근]]은 3년 연속 8~90이닝을 소화하며 어깨부상에 시달려야했고 150이 넘던 직구가 이젠 140도 겨우 나오는 등 구속 저하와 구위 저하가 동시에 일어났다.[* 18시즌 기준 140 후반 직구도 간간히 던진다.] 그나마 [[송신영]]은 고무팔인 덕택에 오래 살아남았지만 [[조용준]], [[신철인]], [[박승민|박준수]], [[노환수]], [[황두성]], [[조용훈]] 등은 재기도 못하고 결국 망가져버렸고[* 노환수와 조용훈은 여전히 임탈로 묶여서 재활 중이였다가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관리만 잘받았으면 나름 제 몫을 해줄 투수들이 그렇게 사라졌고, 현재 넥센의 불펜이 참담한 원인중 하나인셈.] 쓸쓸하게 은퇴하거나 방출되었다. 롯데로 이적한 후에는 [[이명우]], [[강영식]], [[김성배]], [[정대현(1978)|정대현]]의 노예질이 돋보이고 있다.
  • 대구광역시/인물
         * [[강영식]] - 북구(대구)
  • 박종윤
         7월 24일, [[김시진]] 감독은 타격 부진을 이유로 [[정태승]]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였다. 2명을 대신해 ~~강억삼~~ [[강영식]]과 ~~까나리~~ [[김수완]]을 1군으로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67794|등록시켰다.]]
         6월에 접어든 현재도 꾸준히 타격감을 유지하는 중...인 줄 알았는데 조금씩 타율이 떨어지면서 이제 0.315까지 내려왔다. 아마도 좌익수 수비 연습을 병행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6월 11일 경기에서 '''좌익수 선발출장'''을 했다(!!!). 역시 펜스플레이나 어깨(...)면에서는 약점을 보였지만, 좌익수 출장한 경기에서는 2008시즌 김주찬 보는 느낌으로(...) 보면 될 듯. 그리고 최준석이 임종혁으로 교체된 이후 1루 자리로 돌아가 8회, 강영식을 구하는 엄청난 수비를 선보였다!~~그냥 최준석을 2군 보내란 말이야~~ ~~그런데 고향 찾아온 금돼지가 부활했다~~
         결국 2017년 11월 25일 강영식, 이재곤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30대 중후반에 접어드는 나이인지라 영입할 구단이 있을리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선수 생활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
  • 신동주(야구)
         ||<:> 최문호(1993) || → ||<:> '''신동주(1994~2000)''' || → ||<:> [[강영식]](2001) ||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9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롯데와의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으나 팀은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그가 강영식과 트레이드되어 KIA에 있었을 때인 2002년에는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린 해였다. 이후 2004년 다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도 밟아봤으나 팀은 9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2005년 초 다시 KIA로 트레이드된 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우승하는 등 여러모로 현역 시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 신명철(야구선수)
         || [[이동욱(야구)|이동욱]](2002~2003) || → || '''신명철(2005~2017)''' || → || [[강영식]](2007~2017) ||
         더 이상 성장을 바랄 수 없다고 판단한 롯데 코치진에 의해 [[2006년]] 11월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 [[강영식]]을 상대로 서로 잉여 자원끼리 맞[[트레이드]]되었다.[* 당시 롯데 시절의 활약(?)으로 쌓은 명성(?)과 [[트레이드]] 맞상대인 '불영식'(당시에 [[강영식]]이 그렇게 까임)의 임팩트로 인해 야구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시전한 [[트레이드]]였다. 이 날 신명철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 당시 [[강영식]]은 '''[[권혁]]'''에게 밀려 잉여가 된 데다가 삼성의 내야에는 2루수 [[박종호]]의 부상, [[박석민]][* 많은 야구팬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신인시절의 [[박석민]]은 수비에 능한 날렵한 내야수였으며, 유격수 대수비로 출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상무를 거치며...]의 상무 입대에 의해 거의 무주공산이었던 터라 무혈입성했지만... 역시나 명철신은 명철신,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언제나 해오던 만큼'만' 활약했다.
         그러나 팀을 잘 만난 덕에 최초로 100안타도 쳐 보고, 가을야구도 해 보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2001년 이후 롯데 선수들은 해 보지 못한 포스트 시즌 안타, 출루, 득점, 홈런 등을 모조리 해 보는 등 [[롯데 자이언츠|롯데]][[탈쥐효과|를 나가 출세했다]]는 평을 들었다.~~탈데효과~~ [[강영식]]도 2008 시즌 불영식에서 롯데 필승조로 거듭났으니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보기 드문 윈-윈 트레이드가 된 셈. 거기에 아마 시절의 라이벌격 선수였던 [[박한이]]의 부진에 의해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기도 했으니 프로에 와서 간만에 행복한 시즌을 보내지 않았을까. [[트레이드]]되고 조금 더 지난 후의 일이지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 보기도 하고, 20-20도 찍어 보았고, 팀의 우승도 2번 맛보았으니.
  • 황정립
         [[2012년]] [[KIA 타이거즈]]의 8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확대 엔트리 시행 후 1군에 올라왔고, 2012년 9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 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8:7로 뒤지고 있던 연장 12회말 2아웃 데뷔 첫 타석에서 [[투수]] [[강영식]]을 상대로 3구를 받아 쳐 동점 홈런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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