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7. 등가교환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 105

"실례합니다. "

 

진중하면서도 맑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무실로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한 눈에 보기에도 키가 꽤 커보이는, 진회색 니트를 입은 남자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문간에 내려놓고 미기야의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

"의뢰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그러시군요... 잠시 저 쪽 테이블에 앉아 계세요. "

 

서류 더미를 내려놓은 미기야는 물 두 잔을 들고 남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물잔을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의뢰는 어떤 내용이신가요? "

"회사에, 악령이 있습니다. "

"회사에요...? "

"네. "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H시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 말고도, 함께 일하는 동료는 어림잡아 3~40명정도 되는 꽤 큰 규모의 회사였다. 함께 어울려서 점심을 먹거나 얘기를 나누는 몇몇 그룹이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트러블 없이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야근이 많은 편도 아닌데다가 일도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할만해서 사람들도 무난하게 다니고 있었고, 회사도 사세 확장때문에 직원들을 계속해서 충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옆자리에 계시던 분이 사고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

"죽었다고요...? "

"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회사 사람들이요? "

 

한 사람이 죽었을때는 어쩌다 사고를 당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고사로 죽는 인원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새로 인원을 충원하는 만큼, 이전에 일하던 사람들이 사고로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사람을 채우나 마나 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이대로 두게 되면 야근이 늘어나 기존 인원들도 나갈 판국이라 어쩔 수 없이 사람은 계속해서 충원해야 했다.

 

"이번달에만 장례식장을 10번 넘게 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기에 들렀다가 장례식장으로 가야 해요. "

 

다른 부서는 잘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그가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만 사고사가 잦았다. 아직까지 그는 무사했지만, 그 역시 어떻게 될 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 말고도 아직까지 무사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지만, 그 역시 어떻게 될 지 몰라 불안해한다고 했다.

 

"뭔가 집히는 건 없으신가요? "

"그러고보니,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고 당일에 까만 머리에 빨간 눈을 한 여자를 봤다고...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온통 피투성이였다고 합니다. "

"그 여자가 별다른 무언가를 했다거나, 그런 건 모르시나요? "

"저도 직접 본 건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 만난 건 장례식장이라서 더 물어볼수도 없었고요. "

 

이야기를 마친 그는 문간에 내려놓았던 짐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사무실을 다시 찾아왔다. 이전에는 슬림하면서도 제법 건장해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를 맞은 것은 미기야가 아니라 점심을 먹던 파이로였다.

 

"저, 며칠 전에 찾아왔었던... 기억하십니까? "

"얘기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 회사에서 사람이 엄청 죽어나간다지? ...너, 장례식장 갔다 와서 옷은 빨았냐? 빨기 힘든 옷이라면 적어도 밤새 화장실에는 걸어놔야할거다. "

 

유심히 그럴 쳐다보던 파이로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까만 머리에 딸기같은 눈을 한, 하얀 옷을 입은 여자였다.

 

"여자친구면 이렇게 수척해졌을 리가 없고... 얘때문에 왔냐? "

"......! "

"너, 회사가 H시라고 했지? 그 근처에 폐건물 하나 있지 않아? 들어가면 죽는다는 건물. "

"회사 근처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일때문에 바빠서 간 적은 없었습니다. "

"근데 왜 거기 산다는 놈이 너한테 붙어있냐? "

"예? "

 

그는 폐건물에 사는 유령이 붙어있다는 얘기를 듣고, 흠칫 놀랐다.

 

"아직까지 무사한 걸 보면 뭔가 있는 모양인데... 그것까진 모르겠고. 넌 지금 살아있는 그 자체로 기적이다. "

"떼어낼 수는 없습니까...? "

"원한만 없다 뿐이지 강한 녀석이라, 떼어내기는 힘들어. "

 

파이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그릇을 담가놓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 도착한 미기야와 함께 H시의 건물로 갔다.

 

"일단 들어가.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나오면 안된다. "

"예? 이 건물로 들어가라고요? "

"응. "

"들어가면 죽을 지도 모르는데요...? "

"안 죽으니까 들어가. 안그러면 저 여자 못 떼낸다. "

 

남자를 들여보낸 파이로는 미기야와 함께 건물에 금줄을 역방향으로 둘렀다. 그리고 금줄을 다 두른 파이로는 남자를 나오게 했다. 남자가 밖으로 나가자 따라나서려던 여자는, 금줄에 막혀 나갈 수 없었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파이로는 남자가 나오자마자 건물 입구에 소금을 뿌렸다.

 

"이건...? "

"금줄이야. 너도 들어본 적 있지? 아기를 낳은 집 대문에는 3주동안 이걸 걸어서 부정한 것이 들어오지 못 하게 하지. 이걸 거꾸로 두르면, 오히려 부정한 것은 나갈 수 없어. 그러니까 너는 나올 수 있지만 그 여자는 나올 수 없지. "

"이제 그 여자가 괴롭히는 일은 없을겁니다. "

"혹시 모르니 소금 뿌리자. "

 

파이로는 남자의 몸에 굵은 소금을 뿌렸다.

 

"얼추 해결은 된 것 같네.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게 막아봤자 들어갈 놈은 들어가서, 피 볼 일이 끝나진 않겠지만 적어도 밖으로 나와서까지 사람을 죽이진 않을거다. 그리고, 네 회사 식구들도 더 이상 죽진 않겠지. "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죽지 않는다고요? "

"지금까지 동료분들이 사망하셨던 것도 전부 저기 있는 악령의 짓이었습니다. 전에 사무실에 찾아온 뒤로 조사를 했는데... 같이 일하시던 분 중에 자살하신 분이 계셨을겁니다. "

"맞아요... 한 분 계시다고 들었어요. "

 

처음 들어왔을 때 이것저것 가르쳐 준 후로는 신경쓰고 있지 않았지만, 가끔 힘들어보이면 도와주기도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신경쓰고 있지는 않았다. 특별히 모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해질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랬던 그녀가 그만둔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도 그는 찾아가지 않았다.

 

"처음 사망자가 나온 시점이, 그 분이 생을 마감하신 다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 바로 이 건물... 정확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건물에 있는 악령에게 '회사 사람들을 두 명 빼고 다 죽여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

"......! "

 

어째서 그런 말을 남기고 죽은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함께 일할때는 오히려 사소한 것도 미안해하던 사람이었는데, 어째서 그런 말을 남기고 죽은걸까? 아니, 애초에 그 사람은 왜 죽음을 택한걸까?

 

"세상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어. 네가 보지 못 한 회사의 이면이,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거야. "

"이면이요? "

"똑같이 월급을 받는데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랑 계속 지내면서 외톨이로 있어야 해. 기댈 곳도 없고 외로움을 토로할 곳도 없는 지옥같은 삶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 ...넌 거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

"...... "

"보통 직원들이 이러면 상급자가 말려야 정상 아냐? 근데 니네 회사는 묵인했다며? "

"당신이 지금까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던 건, 아마 당신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죠. 그 분이 당신과 다른 분을 제외한 건, 그나마 당신을 포함한 두 분이 많이 챙겨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

 

며칠 후, 그는 연차를 내고 납골당으로 찾아갔다. 자살한 전 동료의 유골이 있는 곳으로 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로움을 혼자 감당하면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다가, 결국에는 전부 죽여달라는 전언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유골 단지가 되어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적어도 거기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는 가져온 간식을 그녀의 유골이 있는 곳에 내려놓고, 묵념했다.

 

잘 지내겠거니 하고 일임한 결과가, 몰살일거라고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원망할 사람은 이미 죽어서 없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원망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원망할 사람도, 원망받을 사람도 전부 죽어버려 그의 주변에 남은 것은 똑같이 살아남은 한 사람뿐이었다.

 

"엄청난 현장에서 살아남았네, 너. "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중학생 정도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돼지 그림이 있는 스웨터를 입은 남자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기지개를 한번 켰다.

 

"너를 해하거나 할 생각은 없어. 무고한 인간은 해치지 못 하게 금제가 걸려있기도 하고 말이지... 애초에 너는 선인쪽이잖아? "

"......네? "

"갑자기 사망자가 많이 나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역시 인간들은 재밌단말이지. 다른 사람이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거의 따돌리는거나 마찬가지로 고립시켜버렸으니. 그 결과로 고립된 인간은 죽었고, 고립시켜버린 인간 역시 죽음을 선사받았지. 똑같은 죽음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으니 똑같은 죽음이라고 봐도 되겠지? "

"...... "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이미 끝난 일이니까... 억지로 잊어버리라고는 안 해, 그런 건 억지로 잊어버리려다 보면 계속 떠오르는 법이니까. 이직 준비중이지? "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

"그런 상황을 목도하고도, 계속 거기에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

"...... "

"아,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그 폐건물에는 더 이상 가지 않는 편이 좋을거야. 금줄을 거꾸로 둘러놔서 그 녀석이 나가지는 못하겠지만... 그 여자,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라 아마 네가 그 건물에 다시 가면 분명 부를거다. 그 때는 어느 누구도 널 구해줄 수 없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감금될지도 모르니까. "

 

수수께끼의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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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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