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6. 기묘한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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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기묘한 PC

 

구독자 'mars0513'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스테리어스의 괴담집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새로 올라온 이야기를 보다가, 문득 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라 이렇게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입니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는 전 직장인 T 바이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 직장은 소위 말하는 블랙기업이었습니다. 왜 그런 회사들 있잖아요, 공고만 봤을때는 번듯한 직장같아보였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아닌 곳. 전 직장도 딱 그런 곳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월급은 안 주면서 사람들은 있는대로 쥐어짜는...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항상 지쳐 있었죠. 책상에는 에너지 음료 캔이 한가득이었고, 간식도 금방 없어지곤 했습니다. 저만 빼고요. 하지만 제가 워커홀릭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선배 얘기로는, 제 자리에 있는 컴퓨터는 8시 50분이 되면 저절로 켜지고, 저녁 6시가 되면 신기하게도 모든 작업들을 저장하고 저절로 꺼진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잔업이 남아서 키려고 해도 켜지질 않고, 불길하다며 컴퓨터를 창고에 넣었다가 사장님이나 부장님, 차장님들이 괜히 사고를 입는 통에 창고에 넣어두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원은 야근을 할래도 할 수 없으니 제 떄 퇴근했다고 합니다. 물론,그걸 빌미로 어떻게든 덜 주려 들고 힐난하는 회사때문에 질려서 대부분 이직하곤 했죠. 저도 그 중 하나고요.

 

선배에게서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때만 해도 설마 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컴퓨터가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문제의 컴퓨터가 제 자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내심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지 않았던 저는 그저 그런 컴퓨터가 있다고? 라고 생각할 뿐이었죠.

 

다음날, 저는 조금 일찍 출근해서 8시 40분에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키려고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컴퓨터는 켜지지 않았습니다. 분명 파워 서플라이에 선도 꽂혀있었고, 전원도 제대로 꽂혀있는데 말입니다. 어쩔 줄 몰라하던 저는 마침 출근한 다른 선배에게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다고 했고, 그 선배는 8시 50분이 되면 알아서 켜질테니 잠깐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선배 말대로, 컴퓨터는 8시 50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듯 켜졌습니다.

 

정신없이 교육을 듣고 일을 하다가 갑자기 컴퓨터의 전원이 나가서 시계를 보니, 6시였습니다. 역시나 전원은 제대로 꽂혀있었고 파워 서플라이도 정상이었는데 컴퓨터는 켜지지 않았습니다. 옆 자리에 있던 팀장님께서 그 컴퓨터는 어차피 다음날 8시 50분은 돼야 켜질테니, 오늘은 이만하고 들어가라고 하셨니다. 내부 부품도 점검해보고, 청소도 해 보고, 부품 교체까지 해 봤지만 계속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면서요. 저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제 때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컴퓨터 덕이겠지요.

 

더 신기한 것은, 그 다음날 확인해보니 제가 문서 작성을 한 부분이 저장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급하게 컴퓨터가 꺼져서 임시저장된 것이 아니라, 저장 버튼을 누른것처럼요. 거기다가 월급날이 되면 컴퓨터가 켜졌을 때 월급날이라는 텍스트 파일이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컴퓨터가 저에게 회사생활을 이것저것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월급은 쥐꼬리만큼 나왔지만요. 애초에 세제혜택 명목으로 식대를 월급에서 제하고 주는데다가, 정시 퇴근임에도 일찍 간다는 이유로 월급을 더 깎았으니...

 

일때문에 상사에게 크게 혼나는 날은, 바탕화면에 토닥토닥이라는 파일이 생겨 있었습니다. 파일을 열어보면, 상사 욕과 함께 기운 내라는 말이 적혀있었고요. 마치 컴퓨터가 살아있는 채로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컴퓨터에 얽힌 사연은 다른 사람들도 모르고, 창고에 뒀을 때 옆 부서 부장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사장님 차가 갑자기 고장났다던가... 그런 사고가 났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때문에 창고에 넣어두지도 못하고 회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사용중이라고 했고요.

 

문득 궁금해진 저는, 텍스트 파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왜 6시가 되면 꺼지는것인지,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알고 있는건지 묻는 글을 적고 질문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텍스트 파일을 확인해보자, 파일명은 답변으로 변경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올린 질문 밑으로 뭔가가 적혀있었습니다.

 

텍스트 파일에는 자신은 살아있었다면 제 선배가 되었을지도 모를 사람이라면서, 자신은 과도한 업무에다가 상사의 과도한 힐난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어 자살했다고 쓰여있었습니다. 연구실 최군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있겠지만, 물어봐서 좋을 것 없다는 말과 함께요. 그리고 자신은 사후에 있었던 일들때문에 사장이 정신차리거나 크게 망하기 전까지 성불할 수 없을 정도로 원한이 깊어져서, 이렇게 자신이 쓰던 컴퓨터에 붙어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컴퓨터가 6시만 되면 꺼지는 이유가 납득이 갔습니다. 후배들이 자신처럼 야근에 절어 살지 않도록, 빨리 가라는 의미였던겁니다. 그리고 월급날을 알고 있는 것과, 상사 욕이 잔뜩 적혀있는것도요. 회사 생활을 해봤으니 월급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을거고, 상사의 좋은 면과 싫은 면을 다 겪어봤으니 알고 있는것이었습니다.

 

연구실 최군은, 텍스트 파일 마지막에 너는 나처럼 되기 전에 적당히 하다가 이직하라는 말도 덧붙여 두었습니다. 더 좋은 직장도 많고, 이렇게까지 막장인 곳은 별로 없으니 젊은 나이에 이런 곳에서 혹사당하지 말라면서요. 그리고 상사들이 하는 칭찬은 전부 더 쥐어짜기 위한 입바른 말이니까 조심하라는 당부도 해 줬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 텍스트 파일을 통해 연구실 최군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연구실 최군은 제가 실험이나 회사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기도 하고, 사장님이나 부장님이 뭔가 추가적으로 일을 시킬라치면 해야 할 일이 많은것처럼 꾸며 저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다른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꿰고 있는 듯 했습니다.

 

현재 저는 상사의 계속되는 힐난을 견디지 못 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했습니다. 제가 사표를 쓰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월급을 더 올려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저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연구실 최군이 처음 그만두겠다고 하면 연봉을 올려준다는 말로 붙잡으려고 하겠지만, 순전히 거짓말이고 거기에 속아서 남게 되면 연봉 인상이라는 건 실제로 지켜지지도 않을 뿐더러 돈떄문에 남은 놈이라고 더 힐난당한다는 걸 가르쳐줬으니까요.

 

컴퓨터를 마지막으로 쓰는 날, 연구실 최군은 그만두고 나가는 저를 축하해주었습니다. 더 좋은 직장으로 갈 수 있는데 굳이 이런 곳에 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요.

 

지금도 그 컴퓨터는 T 바이오 구석진 책상에서 신입사원을 맞이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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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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