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8. 어느 노배우의 사흘

작두타는라이츄 0 194

여느 때처럼 일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웃고, 울며, 움직이고, 살아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을 깨뜨리는 소식이 찾아오게 된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40년의 연기 인생을 살아오신 배우 김재호씨가 오늘 오후 4시 30분쯤 I시 A 맨션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김재호씨는 사고 현장에서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 이렇게 또 명을 달리하는 인간이 있군. "

"하늘도 무심하시네요... 저 분, 정말 연기 잘 하는 배우였는데... 저 그래서 저 분 팬 사인회 하면 한번 가 보고 싶었거든요. "

"나도 그래... 이렇게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었어.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서 악역 연기가 그렇게 일품이었다고 화제였다며? "

"정말요? "

"응. "

 

두 사람이 뉴스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I시의 사고 현장에는 초로의 남자가 서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보였지만 포마드를 발라 가르마를 그대로 탄, 어딘지 모르게 품격이 있어 보이는 남자. 그는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뉴스에 났던 대로 사망했으니까.

 

"여기는... 어디디지? "

"음... 오늘 죽었다는 인간이 바로 당신이었군. "

 

그의 눈앞에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에, 석류석보다도 붉은 눈을 가진 여자는 두 눈에 까만 장미가 박혀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한 송이 까만, 장미가 피어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이내 말을 걸었다.

 

"당신이 김재호라는 인간인가? "

"그렇습니다. "

"음... 그렇군... 그래. 나는 로제트라고 해, 당신을 명계에 데려가려고 왔어. "

"...명계라니? "

"아마 지금쯤, 다들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겠지... 아니, 그러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지...... 믿기지 않겠지만... 그러니까, 당신은 아까 이 곳에서 사고로 죽었어. "

"...... 그렇군... "

 

그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그런 그를 그녀는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흠, 그나저나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당신 같은 사람이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죽다니 말이야...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는 바로 명계에 가는 게 아니야. 당신이 명계에 가는 건, 지금으로부터 딱 사흘 후야. 그러니까 그 동안 이승에 미련 갖지 않도록, 인사도 좀 하고 하고 싶은 것도 실컷 하면서 지내. 그럼, 난 사흘 후에 당신을 다시 데리러 올게. "

 

그녀는, 그가 죽었다는 말과 함께 사흘의 말미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이 죽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실체가 없는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이미 죽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어요. 뭔가를 하려고 해도 불가능해. "

"아니, 당신은 이제 사흘 동안 죽었지만 실체가 있는 상태가 되는 거야. ...하지만 당신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야. 당신은 이미 죽은 상태이니까... 그저, 이승에 간섭하지 않는 형태로 남아만 있는 것 뿐... 그럼, 사흘 후에 다시 보자. "

 

그녀가 가버린 후,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흘, 사흘이라. 이승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하려면 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뭘 해도 이승에 미련이 남아서 쉽사리 발길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있으라는 인사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뭘 해야 그래도 최대한 미련이 안 남게 할 수 있을까... '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만약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그리고 천천히 적어둘까 생각했던 유서를 적어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갈 줄 모르고 80세쯤 되었을 때 적으려고 했던, 그 유서를 말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전할 작별 인사까지.

 

집으로 돌아간 그는 책장을 뒤적거렸다. 꽤 오래 전에 받았던 팬들의 선물이 담긴 박스에는, 빈 편지지가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팬에게 답장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사 두었던 편지지들 중 하나 였다. 다른 편지에는 답장을 보냈지만, 남은 편지지의 주인은 꽤 오래 전에 병으로 별세해서 편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명계로 가면 그 오래된 팬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빈 종이와 편지지를 꺼낸 다음 펜을 들어 먼저 종이에 유언장을 작성했다. 아마, 살아있었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고민했겠지만 이미 죽은 몸이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하고 싶은 인사를 전부 적어 내려간다. 그렇게 막힘없이 적어 내려간 후, 그는 유언이 적힌 종이를 책상에 올려 두고 편지지를 꺼내 편지를 적었다. 오래 전 그에게 작은 선물을 보냈던, 그리고 그 후 별세한, 그리고 이제 곧 만날 팬에게.

 

"참 안타까웠지... 스케줄이 겹쳐서 만나지도 못 하고, 결국 그렇게 가 버렸으니... "

 

오래 전 전해 받은 선물은 작은 오르골이었다. 투병 중에도 직접 만들었다던, 캐논 변주곡이 흘러나오는 보물 상자 모양의 오르골. 오랜만에, 그 오르골을 열어본다. 오르골은 여전히 태엽을 감으면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를 내게 준 사람과 너를 받은 사람은 이제 없지만, 너는 변함 없구나. "

 

그는 오르골과 편지지를 외투 주머니에 넣은 다음, 유언을 적은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집을 나섰다. 아마, 자신을 보지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빈소에 와 준... 아마 제일 먼저 와 줬을, 자신의 친우를 만나러 갔다. 아마 지금쯤 많이 슬퍼하겠군.

 

그가 병원에 도착해 장례식장을 찾아갔을 때, 그의 친우는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영정 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친구가. 오래 전, 자신이 무명 배우일 때 부터 함께 해 왔던, 고락을 함꼐 했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두고 내가 먼저 가다니, 그는 씁쓸했다.

 

오랫동안, 장례식장 앞에 쓸쓸히 서 있던 그는 친하게 지냈던 후배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처음으로 방송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도, 그리고 오랫동안 알던 지인들도 왔다. 그리고 그가 막 돌아서려덩 찰나...

 

"안 돼...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

 

멈칫, 뒤를 돌아 보았을 때는 지방으로 촬영을 갔다던 자신의 부인이 와 있었다. 엊저녁에 지방으로 촬영을 간다고 해서 아침을 꽤 성대대하게 준비해 주었었다. 그녀는 그가 만든 찜닭을 좋아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입맛을 정확히 꿰고 있었던 그는 그녀가 멀리 촬영을 가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찜닭을 해 주곤 했다. 지금 가장 상심한 것은 그녀이겠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찜닭을 해 줄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 하던 그는, 외투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고 집 근처 마트에 가서 찜닭 재료를 샀다. 꽤 여러 번 해 주었지만, 이게 정말로 마지막 찜닭이겠구나. 그래도,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집에 도착한 그는 찜닭을 완성했다. 지금 그녀는 상심한 상태이니까, 살짝 더 달게 해 주자. 그러면 그녀도 금방 일어설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 그를 잃은 슬픔에 젖어있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승에서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준비했다. 어쩌면, 작별 인사 없이 가는 것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찜닭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그는 불을 줄여 국물을 살짝 졸였다. 국물을 살짝 떠 먹어 보니, 꽤 괜찮게 되었다. 그는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 찜닭이 든 냄비가 식을 동안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부엌 한켠의 포스트 잇을 꺼내 무언가를 적은 후 찜닭이 든 냄비를 냉장고에 넣었다.

 

이로서 그가 이승에 머무를 수 있는 사흘 중 하루가 흘렀다.

 

다음날, 날이 밝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을 정리하고, 어지러운 서재를 정리한다. 책상 한편에는 지금까지 촬영했던 드라마의 대본들이 있었다. 아마, 이것도 내가 죽고 나면 자식들이 버리겠지. 두 아들이 있지만, 둘 다 연기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으니. 그는 노끈을 가져다가 대본들을 버리기 좋게끔 몇 묶음으로 나눠서 묶었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 온 길 만큼이나, 대본의 양이 상당했다.

 

오전 내내 대본을 정리한 그는 집을 나섰다. 이제 여기도 내일이면 작별이겠군, 그는 쓸쓸히 길을 걸었다. 한참 길을 걷던 그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붉은 눈의 여자와 마주쳤다.

 

"어라, 당신은...? 이틀 전에 뉴스에서...? "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죽었죠... "

"......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마, 당신은 그 동안 착하게 살아 와서 사흘의 말미가 주어진 모양이군. 그래, 작별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어? "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미련이 사라지질 않고 있어요. "

"그렇겠지...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아마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거고... 그렇지? 사고를 당한 것도, 어딘가에 가다가 그렇게 된 거였잖아. 갑작스럽게... 죽음이란 놈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

 

그녀는 뜻 모를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슬퍼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 지금 당신의 죽음 때문에 사람들이 전부 충격에 휩싸였어. 개중에는 우는 사람도 있었지... 나 역시 충격 받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으니까... "

"그렇습니까... 저는 인터넷은 잘 안 해서 모르겠네요. "

"음... 어찌됐건, 당신은 그래도 나쁜 인생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부재를 슬퍼하고 있잖아. 그럼, 마무리 잘 하고 내려가도록 해. "

 

그녀가 가 버렸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구냐. 그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평소에 인터넷을 잘 안 하다 보니 아들이나 아내가 없으면 컴퓨터조차 만질 수 없었던 지라, 그는 세상 일에는 의외로 어두운 편이었다.

 

"지금 컴퓨터라는 걸 배우기엔 늦은 것 같군... 한참 늦었지. "

 

거리는 이제 겨울이 찾아오려는지, 바람이 쌀쌀했다. 문득 그는 두 아들들이 생각났다. 이 녀석들, 나를 닮아서 추위도 잘 타는데 어떻게 겨울을 나려나. 적어도 따뜻한 장갑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보일러는 잘 나오겠지. 며느리들이 어련히 잘 챙기겠지. 평소에는 스케줄이다 뭐다 해서 잘 놀아주지 못 했지만, 그는 촬영을 하면서도 틈틈이 아들들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곤 했다. 그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들이니까.

 

그는 마지막으로, 두 아들들을 보러 갔다. 어느새 장성해서 결혼한 큰 녀석과, 아직 결혼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앞가림을 하는 작은 아들. 큰 아들의 집에 찾아갔을 때, 집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거실에 놓인 탁상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쳐 져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는, 자신의 생일이 적혀 있었다. 생일이 음력이라 매년 다른 날짜에 챙겨야 했는데, 그게 불편하다고 툴툴거리면서도 항상 적어 두는 모양이었다.

 

"녀석... "

 

집 안은 어질러져 있었다. 아마, 퇴근하자마자 부고를 듣고 부랴부랴 갔을 테니 정리 할 틈도 없었겠지. 그는 어수선한 집을 대충 정리하고, 둘째 아들에게 갔다. 둘째 아들의 집도 텅 비어 있었다. 결혼해서 그나마 아내가 챙겨주기라도 하는 큰아들과 달리, 둘째 아들은 집이 훨씬 어수선했다. 그는 둘째 아들의 집을 정리해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속한 사흘 째, 허얀 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데리러 왔어.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미련 없이 정리는 다 했어? "

"미련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남아 있는 주변 사람에게만큼은... 아마 없겠지요. 다들 많이 그립겠지만... "

"어차피 나중에, 다시 만날 거야. ...그 편지는 뭐야? 명계에 이승의 물건을 반입하는 건 금지인데. "

 

그녀는 그의 외투 주머니에서 삐져 나온 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편지와 함께 있는 오르골도 같이.

 

"이건 예전에, 제 오랜 팬이 편지와 함께 선물헤 준 오르골입니다. 그 팬은 암 말기였음에도 틈틈이 이 오르골을 만들어서 편지와 함께 보내 줬었죠... 한 번 만나러 가고 싶었으나 스케줄이 비지 않아서 만날 수 없었고, 결국 제가 여유가 생겼을 때 그 팬은 이미 세상을 떴습니다. 이건, 오래 전에 저에게 오르골을 선물해 준 그 팬에게 늦게 나마 보내는 답장입니다. "

"그 녀석도 명계에 메일 계정이 있을 텐데, 손편지를 보내는 이유가 뭐야? "

"제가 컴퓨터를 못 합니다. 지금에 와서 배우기엔 이미 늦었죠... "

"음...... 좋아, 그건 내가 특별히 반입 허가 해 줄게. 원래 원칙 상 금지이지만, 넌 꼭 이걸 전해주고 싶은 거잖아? 그리고, 명계라고 해서 그렇게 빡빡하기만 한 데는 아냐. 대신, 가서도 이 편지를 가져온 이유는 설명을 꼭 해 줘야 해. "

"감사합니다. "

"그럼 가자. "

 

아마,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승에 있을 수 없는 뭄이니 미련 없이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사랑하는 아내도, 두 아이도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 테니까.

 

그리고 그는 그녀를 따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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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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