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꿈

Literaly 0 89

 눈앞에 잘 차려진 식탁이 있다.

 또 그 꿈이다.

 이제 이 꿈은 너무 자주 꾸어서 이게 꿈이라는걸 바로 알아차릴 지경이다.

 아버지는 기분 좋은듯이 뭔가를 말씀하시고 계시고, 어머니는 누나에게 뭔가를 떠먹여주고 계신다. 나는 스프를 조금씩 떠 먹기 시작했다. 세번째 숟가락을 드는순간 떨어뜨리고 만다. 그리고... 고통이 온다.

 누가 꿈에선 아프지 않다고 했던가? 고통에 눈도 뜰수 없이 아프다. 숨을 쉴수가 없어 비명조차 지를수가 없다. 아버지의 외침이 약간 들리는듯 하고는 내 몸이 붕 뜨는것이 느껴진다. 꽈악 하고 날 쥐어짜내어 뱃속의 것들을 게워낸다. 손가락이 목구멍까지 들어와 거칠게 토사물을 긁어내어간다. 평소라면 바로 구역질을 했겠지만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속에선 오히려 부드러운 손길로 느껴질 지경이다.

 다시 숨을 쉴수 있게되었지만 의식은 몽롱하다. 하지만 그 덕에 고통도 좀 가신다. 다시 아버지의 노호성이 들리는것 같다. 의자에 앉혀진 나는 눈을 떠보려 노력하지만 실눈도 뜰수가 없다. 어떤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얼굴에 뭔가 튀었다. 잠깐 눈을 뜨자 바닥에 어머니와 누나가 나란히 누워있다. 금방 힘이 다해 옆으로 뉘여지는걸 누군가 받쳐주는게 느껴진다. 여자의 비명은 단속적으로 들리다가 이젠 작은 동물의 낑낑거리는 소리같이 변해간다. 의식의 끈이 풀리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편안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목구멍은 불타는듯하고 배가 욱신거린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어머니와 누나가 누워있고, 그 옆에 시녀 한명이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있었다. 얼굴은 검붉게보이고, 치마도 피에 물들어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어쩐지 쓰러진 시녀의 초첨없는 눈에 눈길이 간다. 살짝 입이 움직이는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녀의 피투성이 얼굴이 거대하게 보인다. 눈을 감아도 그 얼굴, 그 눈이 보인다. 비명을 지르자 아버지와 다른사람들이 일제히 날 돌아보는데, 그 얼굴이 흡사 악마들로 보여 숨이 멎는다. 다가오는 그들이 너무 두려워 다시 힘껏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이쯤에서...

 잠이 깬다.

 '이 꿈은 언제나 끔찍하군.'

 살짝 중얼거리며 얼굴에 흥건한 땀을 손으로 훑었다. 이 꿈을 꾸고나면 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 오늘은 어제 데려온 여자가 한명 있다는게 기억난다. 옆방으로 가 불을 켠다.

 "...어제 저녁으론 부족하셨나요? 공작님."

 여자가 깨어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반긴다. 내가 말없이 다가가자 여자의 눈에 조금씩 공포가 물든다.

 '아직 그 눈과 다르군.'

 그 여자가 뭔가를 외치는것 같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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