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 형제새의 일부라고 가정한 단편.

환상갱도 3 2,503
-시구리아트 유료도로를 막 지나와 한 첫 번째 야영으로, 하나같이 처음 듣는 것뿐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야기꾼병 환자 뵈킨과
기록 대행자 호니칼의 2인 일행이라는 설정입니다. 아침밥 준비하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히참마 이야기가 나오니 우리 마을서 저녁때만 되면 밥 짓는 연기와 함께 히참마 찌개가 끓는 냄새가 온 동리에 향긋하니 풍겼는데 말이오. 간만에 먹고 싶군."

히참마에 대해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하던 호니칼은 뵈킨의 입에서 튀어나온 히참마 찌개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히참마 찌개라니? 히참마로 국을 끓였다간 냄비가 남아나지 않을 텐데!"
", 그야 양철 냄비로다가 히참마를 끓여대니 냄비 바닥이 문드러져서 주저앉는 거 아뇨. 그러다가 아까운 불을 꺼뜨리는 낭패를 보는 거지.
히참마 찌개는 나무 냄비에 끓인다오."

호니칼은 무언가 더 물어보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이야기를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물꼬가 터진 마냥 처음 듣는 이상한 이야기를 쉴새없이 쏟아붓는
뵈킨의 이야기꾼병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제풀에 지체 한 숨 돌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물고기를 우린 육수에 먼저 된장을 넉넉히 풀어넣고 마늘이나 파, 소금 따위로 밑간을 해 주고 나서야 애호박과 두부 같은 고명이랑 같이
히참마를 쫑쫑쫑 썰어넣는데, 이 때 능금멸치를 우린 육수가 아니면 국에서 히참마 풋내가 풀풀 나서 먹기 곤란하지요.
그렇다고 굳이 귀한 능금멸치 육수를 히참마 찌개에다 쓸 필요도 없는 것이, 능금멸치 육수가 아닌 다른 육수에 끓여도 히참마 풋내를 잡을 방법은 있거든.
듣기야 좀 괴이쩍을지 모르겠는데, 손톱만한 너비의 얄팍한 선철조각을 하나 넣으면 그게 녹으면서 철 특유의 핏내가 국에 배기는데 그것이 히참마 풋내를 잡아주면서
히참마 향과 육수와 된장 맛이 어울리게 된다오. 그래야 제대로 된 저녁거리 히참마 찌개가 되는 거지. 풋내 안 나고 향긋한 히참마 찌개를 끓일 줄 아는 것이
내 고향의 새며느리가 기본적으로 익혀두어야 할 소양이었는데 말이오."

능금멸치는 뭐냐, 음식에 쇳조각을 집어넣는 건 어느 창사구빠진 양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냐, 히참마에 쇳조각을 넣는 국이라니
사람이 먹을 수는 있는 거냐... 떠오르는 질문은 많았지만, 호니칼은 일단 가장 첫 번째로 떠올렸었던 의문을 선택했다.

"나무 냄비라니 불에 올리면 타지 않겠나요?"
", 당신네들 나무야 퍼석퍼석하니 불에 잘 타니까 여기 나무로 냄비를 만들면 그야말로 히참마 물로 칼을 담금질하는 꼴이 되겠군. 내가 살던 동북부 설원의 나무는
목질이 굉장히 쫀쫀하고 질기고 단단해서, 불에 올려도 타지 않고 그슬리기만 하지. 그 쫀쫀한 나무 중에서도 튼튼한 안쪽 심재를 갖다가 칼로 냄비 몸에 손잡이까지
통째로 조각을 하고 뚜껑은 또 따로 깎아내지. 그걸 수지를 발라다가 그늘진 곳에 며칠 말리면 불에 올려도 타기는커녕 살짝 그슬리고 마는 훌륭한 나무냄비가 된단 말요.
처음 만들어 놨을 때야 모양새가 거기서 거기라 무엇이 좋은 냄비고 나쁜 냄비인지 모르지만, 몇 달쯤 쓰다 보면 알게 되는데 좋은 냄비는 불길에 단련되어 보기 좋게 갈색으로 물들어서
레콘들 별철 못지않게 오래오래 쓸 수 있게 되는데, 나쁜 냄비는 울룩줄룩 줄무늬가 나면서 익다가 그대로 자기 멋대로 짜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요. 나쁜 냄비를 금이 갈라질 때까지 써대다가
냄비가 터지면서 쏟아진 내용물이 불을 꺼뜨리는 꼴을 보기 싫으면, 냄비가 통째로 익지 않고 갈색 줄무늬가 생기기 시작하면 쓰길 그만둬야지."

이야기가 어째 평소 늘어놓던 것보다 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니칼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기록 대행자의 의무도 있고,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 줄무늬가 생긴 냄비는 내다버립니까?"
"고생고생해서 조각해 놓은 걸 내다버리면 아깝잖소. 아직 쪼개지지 않았으면 반찬도 담고 잡동사니도 담고 물도 담고 여기저기 재활용하지."
"조각이 힘들면 애초에 원목을 미리 구워서 줄무늬가 생긴 건 버리고 전부 익는 걸 골라서 조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까?"
"에끼, 생나무도 조각이 힘든 판에 익어버리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는데 그걸 조각하라고? 레콘이랑 철로 대화를 치루고 말지."

진저리를 치던 뵈킨이 언뜻 모닥불을 바라봤다. 불이 꺼뻑꺼뻑 죽어가자, 뵈킨의 갈퀴같은 손이 순식간에 주변의 삭정이를 긁어다가 황망히 모닥불에 집어넣었다.
호니칼이 마시던 코코아가 담긴 양철 잔을 모닥불 가에 얹어놓고 몸을 뒤틀어 뒤편에서 팔뚝만한 장작 하나를 주워다 넣었다.

"그러고 보니 영감님은 항상 그 모닥불이 꺼질 것만 같으면 기겁을 하십데다, 불이야 얼마든지 다시 피우면 되는데 굳이 불씨를 깡통에 넣어다니질 않나."
", 이거, 우리 마을 출신 사람이면 누구나 불을 피워두면 불을 모시는 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울 거요. 내가 내 사는 곳의 나무는 불에 안 탄다고 말을 했던가?
그 나무가 성질이 고약스러운 것이 이파리도 뾰주룩한데다 잘 안 타서 기껏 쌓인 눈을 헤치고 한 올 한 올 주워다가 불에 집어넣어도 타기는커녕 누렇게 익고 만다오.
그걸 또 바늘로 쓰지하여튼간에 바늘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불에 안 타는 나무를 불에 타게 하려면, 가운데의 심재를 파내고 남은 바깥쪽 나무를 갖다가
숯을 구우면 화력 좋고 오래 탄다오. 근데 웃긴 게 말이오, 숯을 굽기 위해서 숯을 태워서 불길을 일으켜야 한다는 거요!"
"... 그러니까 숯 굽는 가마에 불을 때는 데 또 숯을 쓴다고요?"
"잘 알아듣는구만."
"그러면 숯을 10개 태우면 새 숯 20개를 구울 수 있습니까?"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 10개를 태워서 10개 굽는 게 보통이지. 날과 바람이 받쳐줘야 숯 10개로 새 숯 15개쯤을 구워낼 수 있다오.
근데 이건 운이 좋은 경우고, 기껏 가마에다 원목 집어넣고 비싼 숯 때웠더니 숯이 다 타고 나서 가마를 열어봤는데 새하얀 재밖에 없거나
갈색으로 익다 만 나무토막만 있으면 죽고 싶어지는 거지. 오죽하면 도박을 하고 싶으면 숯을 구우라는 속담이 있겠소?"
"숯이 비싸겠습니다?"
"비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 우리 동네는 숯이 곧 돈이요. 다른 지방의 잘 타는 장작을 가져와도 돈처럼 쳐 주지.
그러니까 그야말로 몸 따뜻하자고 돈을 때우는 건데, 냄비가 터지거나 해서 불이 꺼지고 장작도 젖어서 못 쓰게 되면 그날로 경을 치는 거요, .
더군다나 우리 숯은 오래 타긴 오래 타는데 불 붙이기가 굉장히 고역이라, 우리 동네에서는 새며느리가 불 꺼뜨렸다고 집에서 쫓아내도
아무도 그걸 너무하다고 여기지 않으니 말 다 했지. 추운 극지방인데 불이 안 붙는 나무만 자라다니 기가 막히는 노릇 아니오?
하여튼간에 동북부의 우리 동네로 갈 일이 있거든 이 지방의 잘 타는 장작을 들고 가 보시오. 우리 동리 사람들이 좀 배타적이긴 한데,
장작을 선물로 조금씩 나눠주면 당신에게 간이야 쓸개야 다 빼줄 거요. 도깨비 친구를 데려가면 귀빈 대접을 해 줄걸?"

Author

Lv.1 환상갱도  2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카리스트
잘 읽었습니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믿기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이야기네요.
Loodiny
허풍선이 남작이 생각나는 이야기네요.

아, 근데 나무 냄비는 실제로 가능하다는 모양입니다. 심지어 종이 냄비도 가능하다고...
카리스트
종이 냄비요?! 충격적이네요. 종이컵과 같거나 더 두껍겠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3 색깔의 무게 (1) 글한 11.13 2366
52 Magica - 1 [팬픽] 마미 11.09 2276
51 과제로 낼 소설 - 결말 댓글2 안샤르베인 11.08 2550
50 [소설제-천야] Nighthawk's Dream 카페인성인 11.06 2425
49 악마들과의 인터뷰 댓글2 작가의집 11.04 2569
48 Tycoon City 데하카 11.02 2542
47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 - 위기, 절정(수정본) 댓글2 안샤르베인 11.01 2506
46 로슈포르 중앙은행 - 2 - 폭신폭신 10.23 2459
45 라이즈 프롬 헬 - 프롤로그. 악몽 댓글3 무지작가 10.23 2487
44 [어찌됐건 스토리와 제목 창작연습을 하기 위한 소설] 대충 창조한 세상 댓글8 BadwisheS 10.22 2533
43 피와 명예의 파스타 작가의집 10.19 2924
42 죽은자들의 밤 댓글2 작가의집 10.19 3451
41 증기의 심장 작가의집 10.19 2808
40 공분주의자 선언 작가의집 10.19 2540
39 이상한 석궁수와 모험왕 작가의집 10.19 2585
38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전개 부분 댓글4 안샤르베인 10.18 2380
37 2012년을 보내며 잉어킹 10.17 2493
36 다 좋은데 자네만 없었으면 좋겠군 (3) 댓글5 잉어킹 10.13 2833
열람중 네 마리 형제새의 일부라고 가정한 단편. 댓글3 환상갱도 10.10 2504
34 다 좋은데 자네만 없었으면 좋겠군 (2) 댓글8 잉어킹 10.09 2839
33 [Relay]Witch on Tanks -Prologue : 그는 그렇게 마녀에게 홀렸다.- 댓글1 LucifelShiningL 10.02 2718
32 다 좋은데 자네만 없었으면 좋겠군 (1) 댓글6 잉어킹 09.29 3131
31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 - 발단 부분만입니다 댓글6 안샤르베인 09.29 2419
30 [백업][리겜 소설제]The Onyx Night Sky 댓글5 Lester 09.27 2596
29 [백업][리겜 소설제]풍운! 북채선생 댓글1 Lester 09.27 2863
28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④ 로크네스 09.27 2881
27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③ 로크네스 09.27 2531
26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② 로크네스 09.27 2656
25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① 로크네스 09.27 2644
24 [백업][밝음 소설제 출품] The Lone Star NoobParadeMarch 09.27 2434
23 [백업][Cytus 소설제 출품] Area 184 NoobParadeMarch 09.27 2757
22 [백업][6X6 소설제 출품] 보드카, 보르쉬, 카츄샤 - director's cut NoobParadeMarch 09.27 2961
21 [푸파 시리즈] 안트베르펜의 연인 ② 댓글2 로크네스 09.26 2630
20 [푸파 시리즈] 안트베르펜의 연인 ① 로크네스 09.26 2950
19 그만 살아주소서 (1) 글한 09.25 2204
18 하바네로 잉어킹 09.25 2396
17 여행자들을 위한 신비롭고 놀라운 이스티야의 안내서 - 요정과 마녀 (백업 자료) 댓글1 Badog 09.23 2529
16 [푸파 시리즈] 상태 개조 ② 로크네스 09.23 2931
15 [푸파 시리즈] 상태 개조 ① 댓글2 로크네스 09.23 3738
14 [푸파 시리즈] 더러운 손 ② 댓글4 로크네스 09.21 2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