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길었던 3분

노숙까마귀 0 2,991
밤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적었다. 그렇다고 이 도시의 밤이 조용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밤 이 도시의 한 구석에서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쫓는 사람들은 한 무리의 성난 사내들이었다. 쫓기는 사람은 나였다.

"멈춰!"

  등 뒤에서 한 남자가 외쳤다. 허파에 남아있는 공기를 될 수 있는한 긁어 모은 목소리였다. 그는 확실히 지쳐있었다. 이는 나한테 좋은 소식이었다. 나도 확실히 지쳐있으니까.

  물론 내가 멈출리는 없었다. 사자가 얼룩말을 뒤쫓으며 아무리 으르렁거려도 얼룩말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과 같은 이치였다. 멈췄다가는 모든게 끝장날 것이다. 사자에게 붙잡힌 얼룩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신물나게 보았다. 더더욱 내가 멈출 이유는 없었다.

  순간 뒤에서 기분 나쁜 중얼거림이 들렸다. 말을 하며 달리는 것은 고생을 자초하는 일이다. 나한테는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이건 평범한 중얼거림이 아니었다. 나한테 잘 된 일도 아니었다. 난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뒤를 겨누었다. 쓰레기통 하나가 뒤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로켓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마법 영창은 이미 끝나있었다. 쓰레기통은 내 배에 그대로 꽂혔다. 난 그대로 1m 정도 거리를 날아갔다. 빌어처먹을 염동력 마법사가 끼어있었다. 내가 조금만 운이 없었다면 내장이 박살났을 것이다.

  배를 움켜쥐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들은 유유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떨어뜨린 동전을 줍기 위해 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들은 동전을 주워 실컷 두들긴뒤에 바닷속에 집어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나한테는 그럴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배의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고통을 뒤덮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난 날아가면서도 권총을 붙잡고 있었다. 권총을 놈들의 머리 위로 겨누고 방아쇠를 연거푸 당겼다.놈들이 움츠린 사이 스프링처럼 일어나 또다시 달렸다.

  뒤에서 욕짓거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이들은 이제 날 붙잡아 두들겨패고 수장시키지 않을 것이다. 붙잡힌 즉시 거열형에 처하겠지. 그 순간 뒤에서 또다시 마법 영창이 들렸다. 뱃가죽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무언가가 내가 있던 자리를 날아갔다. 염동력사가 쏘아보낸게 뭐였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면서 영창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나 격자형 계단에서 염동력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같은건 없었다. 그럴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다면 옥상에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 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난 막다른 곳에 몰리고 말았다.

  날 뒤쫓아 옥상으로 뛰어 올라온 남자 하나가 숨 넘어가는 고함쳤다. 다른 남자들도 헥헥거리는 소리밖에 내지 않았지만 그 남자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있었다. 잡힌다면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걸로는 끝나지 않겠지.

  멀리서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 권총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신고한게 틀림 없었다. 남자들이 당황한 틈을 타 건물 밑을 내려다보았다. 대형 쓰레기통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착지할 수 있는가,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는가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들에게 잡히는 것 보다는 험프티 덤프티가 되는게 낫다고 여긴 것도 있었지만, 난 생각하는 것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궁지에 몰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몇 초 동안, 난 잘못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다. 다행히도 내 몸은 쓰레기통 안으로 깔끔하게 들어갔다. 완벽한 홀인원이었지만 축하할 여유는 없었다. 놈들이 다시 내려오기 전에 몸을 숨겨야 했다. 난 쓰레기통에서 기어나왔다.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끊어진 듯이 아팠다. 쓰레기통 안에 쌓여있던 쓰레기가 너무 적었던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깔끔하게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사지 절반이 박살났다고 놈들이 봐줄리는 없었다.

  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가까운 건물 속으로 들어가 될 수 있는 한 웅크렸다.이 다리로는 멀리 도망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놈들이 날 찾기 전에 경찰이 도착하는 것 뿐이었다. 놈들이 날 찾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잡히면 거열형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놈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몸을 더더욱 움츠렸다. 숨소리 때문에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손을 들어 입을 틀어 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놈들은 욕을 내뱉으면서 흩어졌다.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와있었다. 난 입에서 손을 땠다. 몇번 심호흡을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말이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보드카를 조금 마셨다. 팔다리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마시고는 소파에 몸을 던지고 곯아 떨어졌다. 이번 일에 대한 보고서는 한숨 자고나서 쓸 생각이었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이 도시의 경찰들은 적어도 3분 내에 현장에 도착하도록 되어있었다. 그게 제대로 지켜졌다면 그날의 3분은 내 생애에서 제일 긴 3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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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의 해당 글에서 언급했던 글입니다. 다시 봐도 별로 잘 쓰지는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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