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꽁트 - 부주의의 발견

cocoboom 3 2,663

엘리사양은 용사양성코스의 우수한 재원이었지만 부주의한 면을 고치진 못했습니다. 행군 훈련 중의 작은 방심이 대열에서 낙오하는 결과로 이어졌죠. 사방이 컴컴하고 은산한 습기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기화기초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갑옷도 쪼아먹을 기세로 날벌레들이 주둥이를 들이밀었죠. 절대 그녀는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아 차렸죠. 동료들은 남서쪽으로 이동 중일 것이며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따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나아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우수하지만 부주의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미궁의 숲을 혼자 헤매지 말라는 교관의 당부를 잊은 겁니다.

 

그녀가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엉성했던 거목의 행렬이 촘촘히 좁혀오고 듬성하게 보이던 웅덩이들은 곧 발 한 치 옮길 곳도 없는 늪으로 변했습니다. 숲은 그녀를 더 깊게 더 멀리 보내려는 듯 보였고 그녀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무감각해졌습니다.

 

그것들은 그때 나타났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따라왔는지도 모르죠. 그녀가 지치고 무기력해지길 기다렸던 겁니다. 이 부정형의 푸른 점액덩어리들이 지능이 있는지는 오랜 논란거리였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렇다고 확신했습니다. 시작은 오른쪽이었습니다. 강아지만한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나타나자 재빨리 파이어볼을 영창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부주의했습니다. 슬라임을 상대할 때는 마법을 흩뿌려야지 지점으로 집중시키면 안 됐죠.

 

강아지 크기가 증발하는 사이 등 뒤가 텅 비었고 말만한 점액질이 푸른 폭포 쏟아지듯 그녀를 덮쳤습니다. 실수를 깨달았을 땐 비명도 지를 수 없는 때였죠. 시야는 퍼렇게 물들고 끈적한 액체가 호흡기로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고 머지않아 길 위에서 익사할 판이었습니다. 이윽고 소리 없는 단말마가 터져 나왔습니다. 공포에 질린 표정과 물방울의 단말마. 그마저 서서히 잦아들고…….

 

흐리멍텅해진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그것은…….

 

“네 매끈탱글해진 피부입니다!”

 

쇼호스트 라일라양입니다. 슬라이밍 신제품 그레코로만 데이셔스 스페셜 모이스쳐 패버다잉 모이스쳐 엣지 크림을 들고 나왔군요.

 

“젊은 여성은 더 젊고 촉촉하게! 원숙한 여성은 더 부드럽고 윤기있게 가꿔주는 신비의 화장품 슬라이밍 시리즈 신제품입니다! 이번 제품은 창사 20주년 기념상품으로 엘리사 사장님이 직접 검수한 최신작이죠! 오늘은 사장님께서 직접 이 자리에 나와 주셨습니다.”

 

업계의 카리스마 엘리사여사를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슬라이밍 창립 20주년을 맞이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저는 구출되면 꼭 이 발견을 연구해서 피부 관리의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의 연구는 결실을 맺었고, 용사지망생이었던 제가 이렇게 화장품 업계의 선두주자로 발돋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품은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슬라임 점액의 끈적하고 윤기 있는 발림성을 최대한 재현한 신제품입니다. 어떤 건조한 피부도 아기피부처럼 촉촉하게 되돌려줄 기적의 아이템이죠.”

 

평범한 용사지망생이 발견한 평범하지 않은 피부관리 비법. 업계 1위에 빛나는 슬라이밍 레코로만 데이셔스 스페셜 모이스쳐 패버다잉 모이스쳐 엣지 크림.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Author

Lv.24 cocoboom  10
50,732 (73.7%)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양양
과거 메가쑈킹의 어떤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내용이군요.
cocoboom
헉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표절해 버렸네요
양양
피부트러블이 너무 진한 여성이 우주여행중에 겪은 에피소드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73 고래 댓글6 레이의이웃 08.31 2339
172 切段 댓글4 Novelistar 08.27 2440
171 납치 안샤르베인 08.26 2276
170 마주침 댓글4 안샤르베인 08.18 2341
169 뒤를 무는 악마 댓글2 작가의집 08.10 3040
168 작문 쇼 댓글2 민간인 08.10 2488
167 애드미럴 샬럿 2 폭신폭신 07.30 2371
166 검은 나비의 마녀 댓글1 블랙홀군 07.17 2447
165 애드미럴 샬럿 1 폭신폭신 07.15 2487
164 섬 저택의 살인 9 댓글2 폭신폭신 07.06 2412
163 섬 저택의 살인 8 폭신폭신 07.04 2495
162 네버랜드 - 3. 엄마? 마미 07.03 2478
161 섬 저택의 살인 7 폭신폭신 07.03 2386
160 네버랜드 - 2. 알브헤임 마미 07.02 2299
159 섬 저택의 살인 6 폭신폭신 07.02 2416
158 섬 저택의 살인 5 폭신폭신 07.01 2317
157 도타 2 - 밤의 추적자 팬픽 Novelistar 06.30 2366
156 섬 저택의 살인 4 폭신폭신 06.29 2294
155 네버랜드 1. 웬디 그리고 피터팬 마미 06.28 2294
154 라노벨 부작용 다움 06.27 2398
153 파리가 사람 무는거 본적 있어? 댓글2 다움 06.27 2720
152 카라멜 마끼아또, 3만원 어치 민간인 06.26 2468
151 섬 저택의 살인 3 폭신폭신 06.26 2263
150 섬 저택의 살인 2 폭신폭신 06.24 2251
149 섬 저택의 살인 1 폭신폭신 06.23 2290
148 무제 민간인 06.22 2432
147 발을 무는 악마 댓글6 작가의집 06.19 2542
146 [본격 휴가 나온 군인이 쓰는 불쌍한 SF 소설] 나방 (#001 - 강산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 레이의이웃 06.11 2442
145 인문혁명 댓글2 Tongireth 06.11 2783
144 손님을 맞는 이야기. 폭신폭신 06.05 2423
143 훈련소에서 댓글1 폭신폭신 05.25 2489
142 [공모전에 낼 소설 초안] 꿈, 혁명, 그리고 조미료와 아스피린 (1) 댓글1 BadwisheS 05.19 2574
141 학교에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3 2461
140 세달만에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2 2224
139 뚜렷 한흔적 댓글2 다움 05.10 2466
138 Spinel on the air(스피넬 온 디 에어) - 프롤로그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4.26 2264
137 마지막 약속 댓글3 안샤르베인 04.18 2393
136 빛이 지는 어둠 속 작가의집 04.14 2585
135 아름다웠던 하늘 김고든 04.10 2479
134 이별의 아침 아이언랜턴 04.09 2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