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선생님께
그간 무량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옛적에 한 번 신세를 크게 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저도 참 천방지축에 앞뒤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때의 일은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세월이 참으로 빠릅니다. 저는 선생님께 신세졌던 이후 일련의 사건으로 크게 잘못을 범하여 다소 긴 시간 교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것은 부끄럽기도 한 한편 이제는 죗값을 치르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복귀했다는 뿌듯한 자부심도 생겨가고 있는 와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연락을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사회인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생긴 다소의 불미스럽고 곤란한 처지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디서부터 설명 드려야 할까요? 선생님이 가장 잘 아시겠지만 저와 같이 오래 교화를 거친 사람들이 세상 물정이랄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는 거기에 비교도 안 되는 시간을 낭비했으니까요.
물론 저는 교화의 시간 중에 사회로 나가서 쓸 기술과 직업에 대해서 교육을 받기는 했습니다. 수감 중에 취업 자리가 정해졌을 때는 운이 좋다고 여기기도 했지요. 아, 그러나 제가 얼마나 순진했던지. 저는 지금 사기를 당한 기분입니다.
제가 이 회사로부터 받은 모멸과 멸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한낱 짐승에게도 하지 않을 짓을, 저는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제가 전과자이고 집도 절도 없으며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다는 것 때문에 당해야 하는 수모입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이 회사의 가축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제 머리에 굵은 테를 끼워놓았습니다. 계약서를 쓰던 날 서류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억지로 씌우더군요. 이 테가 수시로 저를 조이고 옭아매서 고통스럽지만 이것도 업무에 필요하다며 콧방귀도 뀌지 않습니다. 상사는 수시로 이 테를 조이고 뒤흔들며 저를 괴롭힙니다. 설사 개인들 이렇게 괴롭게 매어놓지는 않겠지요.
저에게는 일정한 업무 내용도 없습니다. 그저 상사에게 개처럼 충성하고 모든 것을 바치라는 지시가 있을 뿐이지요. 어떤 일을 하던 사실 차이는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헌신을 바치다 하더라도, 노예가 주인에게 헌신해도 주인은 고마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상사는 제가 하는 모든 일을 욕하고 면박을 줍니다. 퇴근조차 않고 회사에 매진하는 저에게 말이지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만, 이들은 상사와 결탁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 동료들이 제가 한 일에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도 상사는 저만 탓할 뿐 동료들에겐 그리 잘하는 욕 한 번 하질 않습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저에게만 일을 시키고 자기들끼리 먹고 제 몫은 없습니다. 언제나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저로서는 그들이 무슨 모함으로 저를 매도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상사를 만나러온 손님이 좋지 않은 부류임이 틀림없어서 쫓아 보냈는데, 저에게 공연한 짓을 했다고 얼마나 타박을 하던지요. 결국은 저를 해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더러운 직장이지만, 이마저도 없으면 저 같은 전과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제 처지를 알면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거지요. 분명 계약에 명시된 고용기간은 한참 남아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그런 사유로 해고가 가능하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당장 사직서를 대령하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데, 설사 해고는 면하더라도 이렇게 갑의 횡포가 횡행하는 회사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법조계에 조예가 싶으시며 오랜 지기들이 종사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같이 힘없는 종업원은 회사 내에서 도저히 개선을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식견으로 제가 어떠한 법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조언의 말씀 한 마디만 보태주신다면 진정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불쌍한 친구가 변호사 선생님께
귀하의 상담 건에 대하여
귀하가 보내주신 소식은 감사히 들었습니다. 저 또한 귀하가 충분한 자숙과 속죄의 기간을 보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은원에 대해서는 논할 것이 되지 않으며 지금부터는 순수하게 의뢰인을 대하는 예로서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말씀드릴 것은 모든 변호사들은 특기로 치는 분야가 있다는 것과 불행히도 제가 아는 지인 중에도 귀하와 같은 사례의 노동쟁의를 처리할 인원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저 또한 법조계에 몸담은 입장에서 아는 한도 안에서 귀하가 어떠한 법리적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 또 해당 상사에 대해 어떠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최대한 간략이 답변 드리고자 합니다.
귀하의 사례는 대단히 노동착취로 의심됩니다. 그러나 이는 귀하의 증언만으로 판단한 것이며 실제 재판에서는 회사 측의 입장을 함께 취합해야 하므로 제가 단순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소송에서 정확히 판가름되어 노동착취이며 인권유린의 사례로 기소된다면 물론 상사와 회사는 처벌을 면하기 어려우며 민사소송을 통해 귀하가 받아야할 보상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소송이란 길고 어려운 여정이며 만만치 않은 금전적 부담과 심적인 소모를 야기합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설사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거기서 받을 보상이 그런 소모에 비해 더 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귀하도 짐작하듯 전과기록입니다. 제가 알기로 귀하와 같은 강력전과자의 취업이 보장되는 직종은 극히 한정적입니다. 그나마 귀하와 같이 노동쟁의 기록이 딸려 있을 경우 재취업의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합니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씀드려도 지나치진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귀하가 참고 견디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억울한 마음이 있겠으나 그 마음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지장보살이 오랜 친구 손오공 선생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