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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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했던 날 밤이면 항상 밤하늘에 떠있는 별의 갯수가 평소보다 많아보였다. 그리고 평소에 올려다 보던 그 밤하늘보다 가까웠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몰려 날던 나방들도 집에 돌아가던 늦은 밤. 위아래로 요동치는 시야에 따라 올라오던 구역질. 가끔씩 목젖을 타고 넘어와 그 사람의 어깻죽지를 적셔도 멈추지도 묵언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내게 곧 있을 도착을 알리던 등 너머의 목소리. 한 손으로 나를 지탱해주며 힘겹게 길고도 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 문지방을 밟던 구두의 따각거리는 소리. 거의 반 송장이 된 채 과한 음주에 계속해서 헛구역을 해대는 나를 침대에 내동댕이 치도 않고 살며시 내려놓으며 그제서야 소맷자락으로 훔치는 이마의 땀방울. 숙면과 가위 그 사이를 외줄타듯 휘청이다 밤을 넘기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코 끝을 간질이던 갓 뜯은 말린 북어 냄새. 목이 주려 눈에 뵈는 것 없이 물가로 달음박질 치는 영양처럼 식탁에 앉아 북엇국 한 모금 들이키고 나면 그제서야 뒤에 널브러져 있는 그가 덮어줬던 이불.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사람이 떠난 후 다시는 술에 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맹세는 구긴 종잇장처럼 어딘가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휴지통에 정확히 스트라이크로 꽂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술에 취한 채 길거리를 휘청이며 걷고 있다. 집 주소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사람 곁에서 취했을 때 있었던 일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선명하게 쑤셔온다. 가슴에 박동이 뛸 때마다 혈관을 타고 기억이 날 선 유리 조각을 든 채 머릿 속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어 덮치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고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하늘에 박혀 있는 별들은 여느 때보다 가까웠다. 그 사람과 나의 눈높이 차이 만큼 가까워졌다. 위장이 한번 더 역동했다. 토사물이 길가 배수구를 적셨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자 묻어나온 위액의 냄새와 입 안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함께 머릿 속을 진동했다.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었다. 물 한 컵을 마시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면 모두 다 씻겨 나갈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와 동시에 집 주소가 기억이 났다. 힐을 벗어 양 손에 들고 스타킹 바람으로 걸었다. 나 자신은 모르겠지만 분명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검지 끝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실수로 누르면 다시 눌러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신경 쓰인 적이 없었다. 면접날 스타킹에 구멍이 나고 시간도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 상황과 비슷한 크기의 위기감에 신중하게 버튼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가며 간신히 문을 열었다.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듣자 마자 바로 구두를 현관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벽에 기대어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치마를 끌렀다. 블라우스 버튼을 끌러 벗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욕실 불을 키고서 블라우스가 구겨지진 않을까 뒤를 돌아보자 벗어놓은 옷들이 보였다. 널브러져 마치 변태 직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며 성충이 된 매미의 허물처럼 보였다. 내일 세탁소 쉬는 날인 것 같은데. 손톱을 기르고 있던 것도 깜빡하고 논 갈아엎듯 뒤통수를 벅벅 긁적였다. 여드름을 건드렸다. 뒤통수는 아프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브라와 팬티는 벗겨지질 않았다. 될대로 되라. 입은 채로 샤워기 물을 틀었다. 물이 아니라 얼음장으로 몸을 씻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욕조 안에 쭈구려 앉은 채 물을 맞았다. 냉장고를 열어 국거리를 찾는 소리와 벗어놓은 옷가지를 치워줄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떠나가고. 곁에.

샴푸를 했는지. 린스를 했는지. 바디워시로 몸을 닦았는지. 클렌징으로 화장을 지웠는지. 양치는 했는지. 드라이로 머리를 말렸는지. 문은 제대로 잠겼는지. 옷은 구겨지지 않게 잘 치웠는지. 씻고 몸은 말렸는지. 안 말렸다면 감기 들지 않게 베란다 문은 닫았는지. 잠에서 깸과 동시에 수많은 의문이 기다렸다는 듯 발했다. 그 의문을 다 밀어 제끼고 내 몸은 그저 눈을 감은 채 반사적으로 코를 킁킁거려 냄새를 맡았다. 북어 냄새는 나지 않았다. 가스렌지에는 엊그제 어머니가 보내주어 반 쯤 먹다 만 김치찌개가 올려져 있을 뿐이었다. 눈을 떴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 쓰고 소리 없이 울었다. 베개를 집어 던졌다. 어디에 맞았는 지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잘못했던 모든 일들과 내가 고마웠던 모든 일들이 뒤섞여 엉망진창으로 이불자락을 적실 뿐이었다.

이별, 일 주일 하고도 네 시간 삼십이 분 후의 일이었다.




20150726 0205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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