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이야기


태초에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땅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 높이를 알수 없는 하늘에서는 지지않는 태양이 떠있었고, 넓이를 가늠할수 없는 평원에는 수많은 거대한 바위가 몸을 뉘고 잠들어있었지. 그 시절엔 그 누구도 잠을 자지 않았게 때문에 밤은 존재하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날 처음으로 비가 내렸어. 창공을 구름이 뒤덮고 평원은 물줄기가 뒤덮었지. 그 비는 태양이 그랬듯 결코 그치지 않을것만 같아서 물줄기가 세상을 가득 채웠지만 이내 비가 그치자 그곳에는 바위의 윗부분이 겨우 떠오른 섬밖에 남지 않았지. 구름이 걷히고 물이 전부 빠지자 거대한 바위들은 지친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어.

하지만 바위들은 전까지는 한번도 움직여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금새 지치고 말았어. 결국 걷다가 걷다가 쓰러진 바위들은 잠에 빠져들었지. 하나, 둘씩, 바위가 잠들자 이윽고 밤이 찾아왔어. 세상의 첫날밤, 가장 마지막까지 잠이 들지 않던 바위는 죽고 말았어. 다른 바위들은 잠에서 깨어나 여명을 맞으며 그 바위를 바라보았지. 그런데 놀랍게도, 새벽녘의 빛을 밭은 바위의 시체에서 풀이 돋아났어. 이게 모든 풀과 나무의 처음이라고 전해져. 

바위들은 그걸 보고 놀랐지. 아! 우리의 죽은 시체에선 생명이 태어나는구나! 세상에 존재하는것은 자기 자신들 뿐이라는 사실에 지루해하던 바위들은, 풀을 보고는 즐거워했어. 한 바위는 생각했어. 우리도 죽으면 이런 풀이 몸에서 돋아나게 될까? 비슷한 생각을 하던 바위들은 다른 바위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지. 바위와 바위가 부딫이자 세상이 흔들렸지. 바위의 몸이 부서지고 무너지고 바스러지고, 하늘 중천에 높게 뜬 태양빛이 바위의 잔해를 비추자 그곳에서 풀을 먹는 동물들이 생겨났어. 하지만 그 바위를 죽였던 바위들은 생각했어. 내가 내 친구를 죽이다니! 결국 황혼이 찾아오고 두번째 밤이 찾아오기 직전에, 그 바위들은 쓰러져 죽고, 저녁노을의 태양빛이 그 바위들의 잔해를 비추자 그곳에서 고기를 먹는 동물이 태어났어.

심연이 찾아온 밤. 세상의 둘째 밤에는 달이 떴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바위들은 그 달을 보며 이미 사라져버린 다른 바위들을 생각했어. 그래서 이미 죽은 바위들의 잔해를 빚어 그들을 기리고자 했지. 그 조그만 조각들에 푸르스름한 달빛이 비춰지자 비로소 사람이 태어났어. 긍지높은 날개와 부리를 가진 이들도 있는가 하면 밤에 더 멀리보는 눈을 가진 자들도 있었고 물 속을 마음껏 헤엄치는 지느러미를 가진 자들도 있었지.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만들어도 살아남은 바위들의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지. 바로 그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남은 바위들은 땅에 떨어진 하늘의 조각을 보고 신기해하다, 그 별을 한입 베어물었지. 그 순간, 바위들은 버틸수 없는 졸음을 느꼈고 잠에 빠져 들었어.

별을 베어먹은 바위는 두번째의 밤, 잠을 자며 처음으로 꿈을 꾸었어. 그 꿈 속에서 바위들은 죽은줄로만 알았던 다른 바위를 만났지. 그 바위들은 자신들이 첫날 걸었던 여정을 기억하고 그 길에서 본 모든 것과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남아있는 바위들에게 가르쳐 주었지. 바위들은 그 속에서 말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죄와 악을 배우고 용서를 배우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법을 배우고 들판을 달리고 냄새를 맡는 법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웠어. 

셋째 날의 여명이 밝자, 바위들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꿈속에서 배운 것들은 자신이 만든 사람에게 가르쳤어. 사람은 생전 처음듣는 이야기들을 바위의 머리맡에 앉아 열심히 경청했지. 바위들의 이야기는 4일 밤낮을 꼬박 세우며 그치지 않고 계속 됬고, 마지막 이야기를 마친 바위들은 잠에 빠져들었어. 그리고 이번에는, 모두 아주 기나긴 잠에 빠져들게 되었지. 이 바위들의 잔해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지만, 그 위는 풀과 나무와 동물들이 살아 숨쉬는 터전이 되었지. 그렇게 세상에 산이 생겨났어.

산과 바위는 결코 죽지 않고 있다고 해. 그들은 지금 오랜 잠을 자고 있을 뿐이고, 꿈의 세계에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지. 혼자 남은 사람은 산이 가르쳐준 지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사람은 산이 했던 일을 따라하기 시작했지. 산이 사람을 빚은 것처럼 사람도 사람을 빚었고, 산이 사람에게 가르쳐준 것 처럼 사람도 사람을 가르쳤어. 그리고 서로 모여 거대한 바위를 기리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걷기 시작했어. 그 여행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전부 바위가 우리에게 빌려준 것임을 잘 알려주는 방법은 없으니까. 

언젠가 모든 것은 다시 바위로 되돌아갈 것이고, 꿈 속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거대한 바위가 되어 다시금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될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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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들어본 적 없어?"
난희가 울피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생각했지만, 마땅히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었다.
"아버지가 이따금 '우리는 바위의 아이란다'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은 없어. 엄마랑 오랜기간 같이 지내긴 했지만, 아마 아버지도 자세한 이야기는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귀를 쫑긋, 이라는 느낌으로 살짝 움직였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평화로운 초식동물의 귀였다.
"수많은 수인족들도 아마 같은 상황일거야. 우리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다른 종족의 이야기꾼들이 더 잘 아는 상황이니까. 내가 아는 수인족들은 죄다 다른 사람의 고용인으로 살아가는데에 바빠서, 옛 이야기를 들을 시간 따윈 없을거야. 하하. 한심해보이지 않아?"
그렇게 자조하던 울피나의 눈은, 어딘가 쓸쓸하고,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는 되돌아오지 못할 먼 곳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또 갈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잊혀져,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조차 잊어버린 것 또한 분명했다. 난희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순간, 울피나에게 말을 건 것은 다름아닌 패트리샤였다. 
"한심하지 않아. 그래도 넌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건지 알고 있잖아. 난 그렇지 않았는걸. 아버지의 이야기를 누군가 알려주려해도, 난 단지 아버지가 싫다는 이유로 귀를 막으려고 했어.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지금에서야 알았고. 옛 이야기는 분명 고리타분하고 중요하지 않을 수 도 있고, 술자리나 야영지의 시간때우기로 쓰여질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잊혀지게 내버려둬서는 안돼."
그녀답지 않은 진지한 이야기었기에, 울피나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패트리샤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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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창세신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입맛대로 어레인지해봤습니다. 수인족의 창세신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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