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야생의주지스 0 2,532
 초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남자가 있었다. 도심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 널찍이 마주보고 자리잡은 두 채의 150층 빌딩이 바로 남자가 외줄타기를 하는 곳이었다. 그는 그 빌딩의 옥상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처음에는 빌딩 경비원에게 들켜 쫓겨나는 일이 자주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몇 년간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도 빌딩 옥상이 그의 집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 역시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도록 30층이나 50층에서 외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남자가 어떻게 두 건물을 밧줄로 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 밧줄이 별로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도 누군가 그에게 밧줄의 위험성을 묻자, 그는 외줄타기를 하던 도중 줄이 끊어져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던 사건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더 튼튼한 밧줄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그는 유명해졌다. 빌딩의 옥상에 자리잡은지 6년이 되는 해에, 그는 이례적으로 50층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기자들은 우선 그에게 외줄타기를 하게 된 계기와, 그가 굳이 옥상에서 노숙해야만 했던 이유를 물었다. 그 질문들에 대해 그는 모두 대답을 거부했다.

 또 그는 이런 질문도 받았다.

 "옥상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는데,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세요?"

 그러자 그는 한참동안이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창 밖에 미리 묶어두었던 밧줄 위로 걸어나가며 답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잘 보세요."

 그는 손잡이가 매우 긴 잠자리채를 들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서 욕지거리를 하며 아슬아슬하게 춤을 추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경탄과 함께 수많은 지폐가 나풀나풀 내려왔다. 그는 가져온 잠자리채로 그것을 능숙하게 낚았다. 50층 창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자들 역시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는 그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옥상으로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줄을 타고 옥상 건너편으로 건너간 남자는 침낭을 뒤집어쓴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여긴 왜 왔어."

 "신문에서 봤어요. 자살하기 전에 아저씨와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면 내가 이야기에 응해주지 않으면 너는 죽지 않는건가?"

 "아마도요?"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아주 가끔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는 자살하지 않았다. 대신 괴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아침이면 두 사람분의 먹거리를 들고 줄을 타고 건너갔다. 아이는 말없이 음식을 먹다 가끔 남자에게 질문했다.

 "아저씨는 왜 줄을 타요?"

 남자가 답했다.

 "모르겠어."

 "대답하기 싫은 거에요?"

 "아니, 진짜 모르겠어. 처자식이 화재로 죽었다던가, 큰 빚을 지고 도망쳤다던가, 위험천만한 도전을 하는 삶을 동경했다던가, 그런 이유가 나에게도 있었던 것만 같아. 그런데 지금은 그게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내가 왜 이 옥상에 올라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잠자리채로 돈을 채는게 즐거워."

 아이는 침묵했다. 이야기는 대개 이렇게 남자가 대답하면 아이가 침묵하다 끝났다. 물론 가끔은 남자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옥상에서 만난지 2개월이 되가던 날 아침이었다.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니?"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요. 오늘 날짜로 할게요. 오늘이 며칠이죠?"

 "나도 몰라."

 "그럼 내 이름은 '오늘'로 할게요. 아저씨 이름은요?"

 "기억이 안 나."

 그녀는 그 날부터 오늘이 되었다. 남자는 굳이 그 이름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렸기 때문에 부를 이름이 생긴 것에 내심 즐거워했다. 대화는 적었지만 그들은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오늘이 무서웠다. 누군가를 사람으로서 마주하는 것은 옥상에서 몇 년을 보낸 그에게 두려운 일이었다.



 오늘이 온지 몇 개월이 더 흐르고 하늘에서 막 눈이 내릴 때쯤이었다. 남자가 모아둔 돈이 다 떨어졌다. 눈을 맞으며 아침식사를 하던 도중 남자는, 오늘은 30층으로 곡예를 하러 가야겠다며 잠자리채를 손봤다. 아래로 내려간 그의 시선이 문득, 오늘의 배가 불룩해졌다는 걸 눈치챘다. 오늘도 그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말했다.

 "나 말이에요, 뱃속에 아이가 있어요. 누구 아이인지는 몰라요. 어쩌면 아저씨 아이일지도."

 그가 손질을 멈췄다. 아마 그녀가 옥상으로 올라온 이유는 뱃속의 아이와 관련있을 것이다.

 "아니. 내 아이일 리가 없어."

 "가끔 이 아이가 아저씨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요."

 "하지 마라."

 "빌딩 옥상에서 사는 게 지겹지 않아요?"

 "줄에 올라가서 욕을 지껄이면 사람들이 돈을 던져. 새롭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아."

 "도대체 왜 돈을 벌기 위해 쓸데없이 위험한 도전을 하는거죠?"

 "이 일은 전혀 위험하지 않아."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건너편으로 가는 줄에 올랐다.

 그는 30층에서 눈을 맞으며 곡예를 했다. 근 몇개월간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여느때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돈이 줄었다. 줄 위에서 오늘을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옥상에 어둠이 깔렸다. 남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건너편 난간에 오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소리쳤다.

 "아저씨, 나 할 말이 있어요."

 그도 소리쳤다.

 "뭔데."


 "우리 같이 내려가요."

 "싫어."

 "많이 고민했지만 내 답은 이거였어요. 같이 내려가줘요. 나는 아저씨의 이해할 수 없는 모험정신을 배우려고 노력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아저씨는 너무 나약해요."

 "그런 걸 네 멋대로 결정하지 마."

 "지금 내가 그 쪽으로 갈게요. 같이 얘기해봐요. 기다려요. 곧 갈게요. 떨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모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말을 마치자마자 오늘은 왼발을 팽팽한 줄 위에 올려놓았다.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아냐, 그건 미친 짓이야. 당장 내려와!"

 "기다려요. 지금 갈게요."

 오늘은 말을 마치자마자 두 발을 모두 줄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발을 올려놓기 무섭게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오늘의 배가 부른 이유가 상상임신임을 알게 된 건 그녀의 부검이 끝난 후였다.

 남자는 옥상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남자는 그 후로도 옥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옥상을 빌려주었다. 남자는 그들을 모두 오늘이라 불렀다. 그들은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옥상에 머물러 있었지만, 대개 내려갈 때는 같은 방법으로 내려갔다. 물론 남자는 그 오늘들이 어떻게 이 건물을 내려가든 처음만큼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남자가 곡예를 하는 날은 계속되었다. 그는 오늘도 곡예를 하며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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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쓰고 나보니 뭔 말인지 모를 글이 탄생했습니다.
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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