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무는 악마

작가의집 4 2,629
뭐 하는 악마 시리즈


* 하드한 연출 다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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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무는 악마



"뿌뜨야- 노올-자-"


문밖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게 두드리는 노크소리까지. 게다가 노크 간격은 앙증맞게도 똑똑-또-똑똑 이었다. 눈사람을 같이 만들자느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보통내기의 사람이라면 대번에 반색하며 문밖으로 뛰어나가 같이 놀 분위기였지만, 문 안쪽에서 책상에 머리를 쳐박고 두 손으로 귀를 꽉 틀어막고 있는 '발을 무는 악마' 아시푸트 스포파페스 코키-포디 피에데발은 앉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줄 몰랐다. 그리고 다시금 들려오는 똑똑-또-똑똑 하는 노크소리.

"뿌뜨야- 우리 같이 눈사람 만들래?"

기어이 바래왔던 그 깜찍한 목소리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시푸트는 그 목소리가 귓가를 비집고 침투해오자,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왁 소리질렀다.

"나 놀 기분 아냐! 제발 혼자 좀 두라고!" 
"그치만! 난 뿌뜨가 상심할 일을 겪었다고 해서- 힘이 되주고 싶어서-! ...찾아왔다구! 뿌뜨 너무해!"

외침에 이어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아시푸트는 마음속에 이제 별로 남아있지도 않은 양심을 콱콱 찔러대는 저 무고하고 청초한 목소리에 버티기 힘든 정신상태를 바로잡으려 애쓰며 신음을 흘렸다.

"뿌뜨야! 내가 이렇게 찾아왔는데, 정말 이렇게 무시할거야아? 이러면 민지 너무너무너-어무 슬퍼!"

자가 3인칭화법조차 전혀 오글거리지 않게 들릴정도로 어울리는 정말 깜찍한 목소리였다. 아시푸트는 귓가를 아르르르 간지르는 그 목소리에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릴 뻔 했지만 책상에 머리를 세차게 도리깨질 함으로써 그런 불상사를 막는데에 성공했다.

"꺼져버려! 필요없으니까 꺼져!"

"뿌뜨야-"라며 다른 이야기를 하려던 목소리가 아시푸트의 일갈에 힉! 하는 목소리와 함께 멎어버렸다. 뒤이어 양심을 원자분해시키는 히끅히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꺼..꺼지라니... 민지 상처받았어. 씨이...! 뿌뜨 너랑은 이제 안 놀아! 끝이야! 절교야! 으아앙..!!!"

새된목소리로 소리치던 문 밖의 복소리는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멀어졌다. 그 울음소리를 직격으로 들은 아시푸트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민지야아아-"를 외치며 문밖으로 뛰쳐나갈... 뻔 했지만 어느 새 책상 서랍에서 꺼낸 실톱으로 머리위에 돋은 뿔을 스스로 거세게 톱질함으로써 그 충동을 억눌렀다.

"빌어먹을 새끼 같으니라고..."

얼마간 피를 췩췩 튀기며 톱질을 계속하던 아시푸트는 정신이 정상궤도로 돌아오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의 다 베어져버린 뿔을 다시 잘 붙여 재생하도록 두고 몸을 홱 일으켜 사무실의 방문을 째려보았다. 분명히 아까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뒤론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방문 밖에는 아무도 없다는 증거였다. 아시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조심스레 열어 고개를 쓱 내밀었다. '고개를 문 밖으로 쓱 내민다'라는 행동덕에 일전의 안경잡이 폭력녀의 동생-약지발가락이 감칠맛 나던-이 생각나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불행중 다행이게도 문 밖 복도에 민지는 없엇다. 아시푸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문을 닫고 다시 뒤돌아 책상을 향했다.

"민지 왔쩌염- 뿌우★"

재앙은 등 뒤에 있다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안했었나? 어, 어이쿠. 이게 아닌데.
그러나 재앙은 바로 뒤에 존재했다. 깜찍한 목소리에 아주 잘 어울리는 새파란 시체의 낮짝. 그리고 낮짝 이곳저곳의 썩어들어가는 구멍속을 왕복하는 엄지손가락만한 구더기들. 민지는 아시푸트가 놀라 나자빠져 문을 머리로 박살내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끔찍한 저음으로 껄껄 웃어댔다. 썩은 목덜미 틈새에서 구더기와 함께 새어나오는 바람소리가 상큼함을 한 몫 더 했다. 아시푸트는 아직도 비명을 깩깩 질러대며 복도를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옆 방에서 문을 벌컥 열고 나온 다른 악마가 내지른 "아가리 닥쳐!" 소리에 멈추고 말았다.

복도바닥을 기며 신음을 흘리는 아시푸트에게 고대 그리스시절 튜닉을 입은 좀비같은 행색의 '민지'가 턱수염을 쓸면서 다가섰다.

"읔킄킄킄... 아직 이 민지님의 서-프라이즈! 에는 적응을 못하시는구만? 역시 말단은 말단이야."
"친구놈한테 전력투구로 마력을 써대며 장난치는 네 녀석이 더 말단이지..."

민지가 내미는 반쯤 썩은 손을 잡고 일어서는 아시푸트가 푸념하자, 아시푸트의 친구 '민지' 빗쿠리 보피프스는 읔킄킄대며 웃었다. 웃을 때 마다 뚫린 목구멍에서 썩은 체액과 구더기가 튀었다. 

이 혐오스럽게 생긴 그리스인 시체에 대해 말하자면. 아이덴티티를 '깜놀'과 '혐오' 그리고 '함정'으로 잡은 악마로서, 아시푸트와 악마 신분으로 먹은 짬밥이 비슷한. 그러니까 동기급의 악마였다. 그리고 아시푸트가 퍼거토리 영혼거래소의 상담원으로 취직한 1000년 전부터 사무실 앞에 쳐들어와 앞에 하던 것과 같은 괴이쩍은 짓으로 아시푸트를 괴롭히는걸 소일거리 삼는 프리랜서...아니, 백수 악마였다.

"내 소개는 이 쯤 하죠."

어딜 끼어들어. 입 다물어.

"....."

민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구더기를 식은 땀 흘리듯 하며 다시 아시푸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한 세기에 한번 겪을까 말까 한 고난을 하루새에 겪으셨담서? 가자. 놀면서 기분 풀자고."
"아까도 말했듯이, 놀 기분이 아니-"

민지는 파르스름하게 썩은 팔을 아시푸트의 어깨에 축 두르며 억지로 복도 밖을 향했다.

"아, 아! 알았으니까 손 떼 임마. 놀러갈테니까. 근데 일단 그 패션부터 어떻게 하지? 놀기도 전에 쫒겨나겠구만."
"아아. 미안. 방금 전 고객때문에."

민지가 자기 머리를 톡톡 손가락으로 치자, 민지의 썩어문들어진 몸이 매끈한 새살로 변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민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100분토론'같은 그림에 엑스트라로 나옴직한 고대 그리스 소시민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아시푸트는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 복도 출구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게?"
"네가 좋아하는 데 아무곳이나."
"놀라가자던 놈이 갈 곳도 안 정해놓고...! 밥맛 떨어지는 놈 같으니."

복도를 걷던 민지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질문했다.

"밥맛? 내가 밥맛이면 너는 꿀맛- 이 아니라...발굽! 관리관 발굽 맛은 어땠어?"

대답대신 아시푸트의 혼이 실린 주먹이 날아가 민지의 얼굴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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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영혼의 맞다이를 주고받던 두 악마는 아까 시끄럽다며 사무실에서 나왔던 악마가 이젠 큼지막한 양날도끼를 꼬나들고 찬찬히 걸어나오는 것을 보고 부리나케 사무실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사무실 근처에 있던 바 '발푸르기스의 밤' 앞에 도달했다.

"여기가 요 주변에선 제일 괜찮아. 술 맛이 말 그대로 죽이거든."
"죽이든 살리든...'발'푸르기스의 밤? 아주 단골도 제대로 된 데의 단골이시구만?"
"그 재미없는 말 장난좀 그만 해, 임마."

바 안으로 들어가자 건배소리와 쉐이커 흔드는 소리가 들려오긴 커녕 째지는 비명소리부터 들려왔다. 입구 근처 자리에 앉은 악마 한 녀석이 피투성이가 된 웨이트리스를 식탁에 뉘여놓고 복부를 뜯어먹고 있었다. 정확히는 뱃속 위장에서 흘러나오는 포도주를. 웨이트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자유로운 팔다리를 이리저리 홱홱 휘두르면서 저항하는 듯 보였지만 악마가 단단히 붙들고 있는 몸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민지는 카운터쪽 자리로 걸어가며 그 광경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오, 여기 육신의 형벌까지 겸하는 바였냐?"
"아문." 아시푸트는 헬쭉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두 악마는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민지는 주문 하기 전 잠시 짬나는 시간을 통해 이곳에 대해 뭐라 물으려 했지만 입을 염과 동시에 얼굴에 주근깨가 박히고 불만스러운 표정이 '염세적'이라고 얼굴에 써진 것 마냥 보이는 안경 쓴 웨이트리스가 등장해 안경을 고쳐쓰며 주문을 종용했다.

"주문하시죠?"
"거 되게 빠르네. '피카붐'한 잔."

아시푸트가 주문하려고 입을 열다 말고 피카붐을 주문한 민지를 돌아봤다.

"엥? 아깐 형벌하는데라서 좋아하더니만 그냥 칵테일이냐?"
"비싸, 임마. 내가 놀러가자고 했으니 내가 내야 되는데."
"으흐. 그럼 난 사양 않고 주문해야지!"

웨이트리스는 한숨을 툭 쉬며 다시 주문을 종용했다.

"단골께선? 늘 마시던거요?"
"예엡."

'늘 마시던거' 이야기에 웨이트리스의 눈가가 왠지 밝아진 듯 했다. 웨이트리스는 계산서를 끄적거리다가 뒤쪽에 대고 소리쳤다.

"피카붐 한 잔! 바카디 한 병!"
"늘 마시던게 바카디냐? 너야말로 '사양않는다'면서 시시하게시리."
"술은 중요치 않아."
"뭐라고? 아으아아악!!"

칵테일 제조를 위해 그들 앞으로 온 바텐더가 민지의 두 눈을 힘차게 손가락으로 찔러버렸다. 그리고 눈을 꼭 감은 채 바 뒤에 진열장에서 아무 술병이나 집어들고 아무런 계량 없이 이것저것 섞은 다음 글래스에 결과물을 내어놨다.

"너야말로 이 걸레잡탕을 왜 마시는거야?"

아시푸트의 탄식 섞인 질문에 민지는 피가 줄줄 흐르는 눈을 부비적대며 낄낄댔다.

"맨날 맛이 다르거든. 유니-크 하잖아? 근데, 방금 술이 중요치 않다는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인데. 술이 중요치 않다고. 아, 저기 오네."

아까 주문을 받던 웨이트리스가 바카디병을 들고 바 바깥으로 나와 둘에게 다가서며 들릴 듯 말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표정은 아까보다 한 층 밝아져 있었다. 아시푸트는 잔뜩 기대된 표정으로 발재간까지 부려가며 웨이트리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 나왔습니다. 손님. 그런데 이번에도 제가 하나요?"
"예전에도 말했듯이, 다른 애들은 서비스정신이 너무 투철해서 너-무 친절하게 주거든."

능글거리는 말투에 민지는 눈살을 콱 찌푸렸지만 웨이트리스는 염세적인 얼굴을 한껏 펴며 웃었다.

"호호.. 그럼 사양않고...!"

그리고 웨이트리스는 카운터 자리의 아시푸트를 뻑 걷어차 떨궈버렸다. 황홀경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바닥에 드러누워버린 친구를 민지는 재밌다는 듯 내려다보며 피카붐을 홀짝댔다. 웨이트리스는 아시푸트가 앉아있던 자리에 자기가 훌쩍 올라 앉더니 신고있던 단화를 가지런히 벗어 의자옆에 놓으며 발을 드러냈다. 그리고 종아리까지 오던 프릴 달린 니삭스는 아주 천천히 밀어내듯 벗어 웨이트리스복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그 동안 아시푸트는 희번덕한 누을 발에서 떼질 않으며 뉘여진 몸을 뒤집어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아. 아. 뭔지 알겠어. 이 발변태자식. 읔킄킄!!!"

민지는 크게 한 번 웃은 뒤에 잔을 비우곤 카운터로 시선을 돌려 한 잔 더 주문했다.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더미 무미건조한 몸동작으로 재차 민지의 두 눈을 찔렀다. 민지의 비명이 울려퍼지는 동안, 웨이트리스는 술병의 뚜껑을 딴 뒤 발치 아래에서 엎드려 발정난 개 마냥 할딱대고 있는 아시푸트를 바라보며 아쉬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댔다.

"이런 모습만 아니면 딱 좋을텐데...뭐, 형벌같지 않으니 좋지 뭐."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아시푸트의 벌려진 입속에 자신의 발꿈치를 콱콱 쑤셔박기 시작했다. 입에 박힌 발 덕에 억지로 목이 뒤로 젖혀져 숨을 껄떡대는 표정은 괴로움보단 광소섞인 황홀 그 자체였다. 웨이트리스는 그 흉한 면모가 좀 거슬리는지 밝던 얼굴을 약간 찌푸리며 술을 자신의 무릎에 천천히 붓기 시작했다. 서늘한 술 줄기가 무릎과 종아리를 타고 아킬레스를 찬찬히 굴러가 아시푸트의 아랫입술에 이르렀다. 아시푸트는 발 박힌 입을 헐쩍헐쩍대며 술을 핥아댔다. 한동안 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술을 발로 받아먹던 아시푸트는 잠시 입을 발에서 떼며 길디 긴 혀로 입가 주위를 쓰윽 핥았다.

"달콤하다- 달콤해에! 역시 격하게 발꿈치부터 박고보는 애는 너 뿐이라니까. 다들 발가락부터 내미는데다, 입에 박아버리지도 않고 물기만 한참 기다리지. 그래서야 무슨 재미야? 으흐흐! 또 흘려봐!"

살짝 언짢은 표정의 웨이트리스는 다시 술을 흘려보냈다.  아시푸트는 발꿈치 주위에만 머물던 입을 이제 아킬레스와 족저근을 왕복하며 후루룩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세 번째로 눈이 찔린 민지가 킄킄 웃으며 일갈했다.

"얌마! 시끄러워. 술을 뭐 이리 부산스럽게 마신대?"

아시푸트는 탐욕스레 발을 핥는 입은 그대로 핥도록 놔두고 관자놀이 부근에 입을 하나 더 만들어 대답했다.

"너도 마셔봐. 진짜 꿀맛이라니까. 물론 술 말고."

민지는 질렸다는 듯 고갤 돌리며 네 번째로 눈을 찔렀고, 웨이트리스는 관자놀이에서 튀어나온 말에 얼굴을 확 붉히며 아시푸트의 얼굴을 남은 한 쪽 발로 짓밟았다.

"좋아! 좋아! 이 서비스정신이라곤 눈꼽만치도 보이질 않는 혐오감 표출! 다른 애들은 내가 뭔 소릴 하든 가만히 있기만 해서 뭔 마네킹 발 핥는것 같다니까. 더 차봐! 사양 말고!"

웨이트리스는 뭔가 재밌어지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밟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허벅지를 들어올렸지만 그 순간, 맞은편 테이블에서 동료 웨이트리스가 손님 악마에게 억지로 두개골이 거칠게 개봉되어 자신의 머리를 무기력하게 술잔으로 쓰이게 놔두는 광경과 술잔이 되어버린 그 동료의 공허한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안색이 다시 어두워진 웨이트리스는 이를 앙다물며 들려던 발을 재빨리 내렸다. 아시푸트는 헤헤헤 웃으며 복숭아뼈에 걸친 술방울 하나를 쓰윽 핥았다.

"다... 비우셨어요 손님."

복숭아뼈에서 취한 술을 쩝쩝거리며 음미하던 아시푸트ㅡ는 웨이트리스가 빈 병을 들고 무미건조하게 한 말에 화들짝 하며 놀랐다.

"머어어?! 안대! 제일 맛있는 네 발가락엔 아직 혀끝도 안 댔담 말야!" 벌써 술에 절었는지 혀꼬인 소릴 내는 아시푸트였다.
"더 드시고 싶으시면 더 주문하시면 되요."

아시푸트는 급 어두워진 표정으로 다시금 눈이 찔리고 있는 민지를 힐끔 보다가 의기소침해져서 대답했다.

"안...됄걸."
"그럼."

웨이트리스는 냅킨으로 발을 슥슥 닦고는 주머니에 넣어둔 스타킹을 도로 꺼내 재빠르게 신었다. 스타킹 속으로 사라지는 동글동글한 발가락들을 보며 아시푸트는 울상지었다. 웨이트리스는 순식간에 단화까지 신고 일어서서 발코를 바닥에 톡톡 두드렸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풀썩 앉는 아시푸트를 안경을 고쳐쓰며 바라보던 웨이트리스는 바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춰섰다.

"우으으... 너무 여유부렸어... 빨리 끝내고 발가락을 맛봐야 했는데..."
"다음엔 저 말고 다른 애들로 해주세요. 저만 이런 걸 할 수는..."

어느 새 아시푸트의 뒤에 선 웨이트리스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아시푸트에게 말하자 아시푸트는 움찔하더니만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헥헥, 난 네 발 아니면 맛 없어!' 하는 비굴하고 황홀경에 빠진 표정이 아닌 '씨이발, 이런 잡것을 보았나?'같은 경멸이 얼굴에 가득한 인상으로.

"뭐?"
"저...그... 저만 이런 호사...를 누릴 수는 없어서..요 그러니까..." 웨이트리스는 도리어 당황해 안절부절했다.

대답대신 경멸의 얼굴을 그대로 한 채 힐힐 웃는 아시푸트, 아시푸트는 옆에서 민지가 주문한 500cc짜리의 피카붐잔을 홱 빼앗아 괄칵괄칵 들이켰다.

"야...얌마! 내가 큰 잔으로 특별주문한건데!"

잔을 순식간에 비워버린 아시푸트는 아직 뒤에서 어물쩡 서 있는 웨이트리스에게 버럭 소리질렀다.

"이년이 어디서 건방진 소리를 늘어 놔? 호사? 아하하하!!!"

아시푸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웨이트리스의 멱살을 부여잡고 근처 테이블로 끌고갔다. 맥주 케그의 수도꼭지가 아예 입을 통해 목 속에 박혀버린 웨이트리스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손님인 악마는 그 웨이트리스의 열린 복부에서 나온 소장을 입에 물고 맥주를 빨아먹고 있었다.

"잠시 실례. 잘 봐. 이 영혼이라곤 아주 쪼가리밖에 않남은 고깃덩어리년아. 네 년이 보기엔 이 광경이 나아보이냐, 아니면 네가 방금 했던 그 빌어먹을 '호사'서비스가 나아뵈냐? 응?"

아시푸트는 웨이트리스를 바닥에 쓰러져있는 다른 웨이트리스에게 내동댕이쳤다. 덕분에 웨이트리스의 얼굴은 열려있는 복부 안으로 퍽 쳐박히고 말았다. 웨이트리스는 꺄아악 비명지르다가 버둥거리며 복부에서 얼굴을 빼버렸다. 안경과 얼굴에 살조각과 피가 칠갑이었다.

"형씨. 맥주가 안 나오니까 적당히."
"아. 죄송."

아시푸트는 피투성이가 된 웨이트리스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쪽 테이블로 끌고갔다. 다섯 명의 악마들이 화기애애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테이블엔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웨이트리스 한 명이 조각조각난 채 안주가 되어있었다. 아시푸트는 테이블 끄트머리에 흘린 안주가 된 웨이트리스의 눈알 앞에 머리채를 끌어 얼굴을 그 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응? 응? 아니면 이 광경이 나아보이냐, 아니면 네가 방금 했던 그 빌어먹을 '호사'가 나아보이냐?"

웨이트리스의 잔뜩 겁에질린 눈동자와 테이블 위의 눈알이 서로 마주봤다. 웨이트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겁에질린 신음을 들었는지 있을곳을 잃어버린 눈알의 홍채가 좁아졌다.

"제발 그만하세요! 그만요! 으으..으으... 그만...!"
"아직 상황을 이해 못 했구만?"

아시푸트는 그대로 '발푸르기스의 밤' 내의 모든 테이블을 주욱 돌며 같은 짓을 계속했다. 그 광경을 즐겁게 바라보는 악마들의 웃음소리가 웨이트리스의 비명소리와 잘 어울렸다. 아시푸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리에 다시 돌아와선 땅바닥에 웨이트리스를 내동댕이쳤다.

"여긴 연옥이야. 설마 잊고 있었나? 다 똑같아. 네가 목을 물어뜯기든 머리뚜껑이 열리든 발을 핥히던 다 똑같단 말이다. 넌 어떤 방식으로든 형벌을 받고 있어. 이 무지한 년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자면, 지금까지 수 회동안 발을 핥히는동안 네 년은 몸이 편하다고 '호사'라고 했지만 결국 네 년이 그렇게 감싸고 도는 그 '다른 애'들 에겐 그 광경자체가 복부가 찢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장면이라는거다."
"으...으윽..."
"결국 그놈의 '호사'를 너만 누리니 널 좋게 볼 이가 하나도 없겠지?"

아시푸트의 이죽대는 말투에 웨이트리스는 머리가 술잔이 되어버린 동료의 공허한 눈빛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웨이트리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었다. 표정은 평소보다 더 어두워져, 시체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아, 기분 잡쳤다. 민지야. 2차가자."
"다들 재밌어하는데 너만 기분 잡쳤대냐? 괜히 아이덴티티가 M이 아니구만. 음음. 애미없어."

아시푸트는 이 상황에서도 재미없는 드립을 쳐대는 민지의 뒷덜미를 잡고 카운터자리에서 끌고 나오려 했다. 끌려가는 상황에서 민지가 입고 있던 튜닉속에서 꺼낸 쌈지에서 드라크마 은화를 몇 닢 꺼내 계산대의 악마에게 던졌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그래, 그래, 너 돈 많다, 이 백수새끼야."

그 때 문 밖으로 나가려 하는 아시푸트의 바짓자락을 누군가 붙잡았다. 뒤돌아보니 바닥에서 덜덜 떨고 있던 웨이트리스였다. 웨이트리스는 간신히 코끝에만 결쳐져 있는 더러워진 안경을 고쳐 쓸 생각도 않고 아시푸트를 올려다보곤 더듬거리며 말했다.

"또... 들려주세요..."

곧이어 두 악마의 째지는 웃음소리가 바 안을 가득 메웠다. 그러다가 아시푸트는 '풁큺흞틆'같은 소릴 내면서 웃음을 막으려 애쓰더니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웨이트리스의 발목을 잡아 자기 입가로 끌어당겼다. 그 덕에 둘의 자세는 무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귀부인의 상처를 돌보는 신사... 꼴로 보였다.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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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이다." 민지가 로마식 욕탕에서 천천히 올라서며 매트위에 엎드려있는 아시푸트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더 왼쪽. 그래, 거기. 응. 왜?" 

아시푸트가 자기 등 위에 올라선 마사지사에게 지시하며 대답하자, 민지는 아시푸트가 엎드린 매트 옆의 돌침대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그 웨이트리스한테는 좀 심하게 굴지 않았음?"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모를 산 송장이 때밀이용 갈고리를 들고 민지의 몸에 오일을 펴바르기 시작했다.
"일부러 한거지. 너야말로 연옥에 있는 인간놈한테 연민이라니, 짬밥을 어디로 쳐먹은거야?"
"관둬, 남이사 알바냐. 파트타임이지. 그나저나 넌 M이 맞긴 하냐? 에미, 가끔보면 완전 S같더만. 아이덴티티는 장난으로 붙이는게 아냐, 임마."

되도않는 개드립을 중간중간 계속 섞으며 민지가 되물었다. 아시푸트는 "아이덴티티는 개뿔..."
이라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걘 예전에 나한테 발 핥히기 시작할 때 '도저히 역겨워서 못참겠다'며 내 얼굴을 걷어찬 순간부터 나한테 찍혔어. 난 갖고 싶은건 일단 가지고 보니까. 점장한테 말해서 나 아니면 손님도 못받게 조치해버렸지. 뭐, 그 멍청한 인간년은 사정도 모르고 나만 기다렸겠지만. -천장에 받침봉 잡지 마! 무게를 완전히 실어서 콱콱 밟으라고! 위에서 셔플이든 탭댄스든 추면서 막 밟으란 말이다!"

아시푸트는 말을 잇다말고 밟는게 시원찮은 마사지사에게 윽박질렀다. 말도 안되는 윽박을 들은 마사지사는 도리어 바짝 얼어 움직임이 더 소심해졌다. 아시푸트는 한숨을 툭 쉬었다.

"일단 그 년은 저딴 바에서 육체의 형벌을 받고 있는걸 보니 형량도 별로고, 받는 형벌도 시원찮은게 대부분이야. 좀 더 깊은 연옥에서 정신없이 형벌받다보니 다시 심판대로 올라가는 개쌍놈들 보다는 이성이 어느정도 남아있지. 그래서 더 꾀기 쉬워. 몸이 편하면 다른 생각을 하니까."

"야야. 연옥에 사는것들 치고 그런거 모르는 놈이 어디있어?" 민지는 빈정댔다.
"....."
"왜 또 벙어리가 되셨어?"
"....."
"....."
"....."
"야야. 이야기 진행이 안돼잖아. 뭐라고 말 좀 해봐."
"아시푸트는 등장인물들은 이미 다 알지만 정작 이걸 지켜 보는 사람은 모를 수 밖에 없는 설명을 주절주절 말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있지 않았-"
".....아, 알았어 젠장. 이젠 주인공 입을 아주 자기 입마냥 맘대로 놀리시는구만. 계속하세요! 계속해요! 아무런 토 안 달테니까!"

아시푸트는 초점 풀리려던 동공을 바로잡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정신을 차리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몸이 편하면 다른 생각을 하니까 자기 형량이 무한대가 아니라는걸 까먹는다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오래 연옥에 있는 줄 알아. 그 년이 딱 그 꼴이지. 몸이 박살나면서 술 대접을 안하다보니까 자기가 무슨 총애받는 줄 알고 그런 호사를 주제넘게 다른사람들과 나누려 들다가 맘처럼 안 돼고, 결국 같은 처지의 다른 녀석들에겐 왕따당하고 말어."

아시푸트는 마사지사가 내딛는 발에 맞춰 등을 일부러 들썩여 척추와 갈비뼈를 어긋나도록 밟게 만들었다. 마사지사의 당황한 목소리와 뚜둑소리들이 연이어졌다.

"아아! 흐으... 이거야. 그래. 음...뭐, 멘탈이 괜찮은 놈들은 그 상태로 연옥에서의 형기를 다 채우고 심판대로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만. 윗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그놈의 '이성'을 바득바득 가지고 있는 고런 년놈들은 뒈지고 나서 연옥에 왔는데도 마치 윗 세계마냥 따돌림당하는 그 상태를 못 견디고 결국 우리한테 영혼을 팔아버리지. 구원을 포기하고 말이야."

아시푸트의 말을 찬찬히 엿듣던 마사지사는 뭔가 작정했는지 아시푸트의 머리를 대놓고 꾹꾹 밟기 시작했고, 산 송장은 민지의 몸에서 갈고리를 떼더니 수건으로 오일을 닦기 시작했다.

"으어억, 이거, 이거, 나야 좋긴 하지만 마사지 하는 사람한테 그리 악의를 가지면 쓰나? 악마는 원래 다 나쁜놈이라고. 쨌든. 그 년은 얼마 안가서 동료들 시선을 견디지 못해서 나한테 매달리게 될거야. 그럼, 작업 끝이지. 그 년 영혼은 내 꺼야."
"그래. 느네집에 그런식으로 모은 하인이니 메이드도 거느리고 있잖아. 얼마나 되더라?"
"손에 꼽지. 아직은."

민지는 돌침대에서 일어서며 목을 이리저리 까딱댔다.

"난 일하러 가야겠다."
"어이쿠, 백수씨한테도 일이 있나?"
"프리랜서야. 이 새끼야." 민지는 읔킄킄킄대며 웃었다.

"나중에는 너희 집에서 놀자. 언젠가 한 번은 가보고 싶었는데."
"절대로 안보여줄거다."
"그럼 물어보면 되지."

아시푸트는 매트에서 갑자기 몸을 뒤집어 일부러 안면을 짓밟히며 광소했다.

"절대로 알려주지도 않아-!"

민지는 토가를 입으며 피식 웃었다.

"누가 너한테 물어본대?"
"응?"

설마 나 말하는거냐?

-----


* 설마하니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영감을 주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 이 글의 아이덴티티를 따지자면 글이 소재에게 끌려가는 본격 이상한 소설이죠. 카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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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확실히 소재가 카오스해서 끌려갈 만 하네요. 민지와쪄여 뿌우!
작가의집
소재는 그냥 발뿐예요. 발발밟라-
다른 설정은 그냥 뒷전이라 대충 만드는거죠.
앙그라마이뉴
아주 좋소!
"호호.. 그럼 사양않고...!" ~ 바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춰섰다. 까지의 묘사가 제 심금을 울립니다.
작가의집
으흫흫. 취향이죠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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