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olver(리졸버) - 4

[군대간]렌코가없잖아 2 2,475

Epc. 1022. 11. 24(Fri) 3:37 PM.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사람들 때문에 요 며칠간 파리만 날리던 식당에 두 명의 손님이 들어오자, 앞치마를 단정히 두른 가게 주인은 영업용 미소가 아닌 순도 100퍼센트의 웃음을 메이와 길버트에게 전했다. 메이는 주인 아주머니의 환대에 답한 뒤, 제일 안쪽에 있는 자리를 잡고 길버트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길버트가 다른 메뉴보다 가격에 비해 양이 많을 것 같은 고기 파이를 고르자, 메이는 곧바로 샌드위치와 고기 파이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길버트는 무서운 속도로 파이 하나를 동내 버렸다. 점심만 굶은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이 똑같이 점심을 건너뛰었지만 차분하게 샌드위치를 한 입 한 입 베어 물고 있는 메이와는 다르게 길버트는 먹는 속도며 모습까지 방금 식사를 마친 사람까지 배가 고프게 만들 정도로 진심어린 식사를 했다. 메이는 원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로 한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먹는 덴 개도 안 건드린다’ 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Epc. 1022. 11. 24(Fri) 4:15 PM.

 결국 메이는 길버트를 무사히 포식시킨 뒤 식당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길버트를 데리고 간 뒤에야 인터뷰를 끝낼 수 있었다. 길버트 입장에서 서술된 사건의 전말이나 현재의 심정 등을 수첩에 간단히 메모하고 나자, 취재에 필요한 정보는 얼추 모였지만, 길버트에게 궁금한 게 더 생겨서 메이는 자리를 뜨지 않기로 했다. 원래 예상했던 지출에 커피 값까지 더해졌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식사에 커피까지, 정말 고마워요. 메이 누나.”

“아냐. 나도 너한테 뭘 얻어내는 만큼 뭘 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잠깐 사이에 메이와 친해진 길버트는 조금 무심하게 돌아오는 메이의 대답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너를 보고 있으니까 조슈아라고 내가 아는 동생 하나가 떠오르네. 걔도 너같이 유난히 나를 따랐지. 하도 나한테 귀엽게 굴어서 조슈아가 내 친동생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냐.”

“친동생? 그럼 메이 누나는 외동이에요?”

 길버트를 보고 아는 동생을 떠올리던 메이에게 길버트가 질문하자, 메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글쎄, 난 내가 외동인지도 아닌지도 몰라. 난 고아거든. 조슈아도 고아원에서 같이 큰 얘고.”

“아... 죄, 죄송해요.”

“네가 죄송해 할 건 없어, 길버트. 어차피 내가 고아인 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인걸.”

 당황해하는 길버트를 달래는 메이는 애써 태연해 보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네가 부럽기도 해. 너에겐 나랑 다르게 널 끔찍이도 아끼는 누나가 있고, 너도 납치된 누나를 구하려 학교까지 빠져 가며 이렇게 나서고 있잖아. 난 가족도 없고, 내 생일조차도 모르는데 너에겐 내게 없는 게 있고, 그걸 잃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그래서 난 널 더 돕고 싶어져. 너를 나처럼 가족조차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진 않거든.”

 메이는 길버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랬군요... 생일조차 모른다니...”

 메이가 처한 현실을 어느 정도 안 길버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뭐, 선물이나 케이크야 다른 날에 받으면 되니까 그렇게 신경 쓸 일은 아냐. 아무튼 너네 누나 찾는 일, 최선을 다해서 도와 볼게.”

“노력은 제 몫이죠. 예전에 누나가 절 찾아 왔듯이, 이번엔 제가 누나를 찾을 거에요.”

 당당하게 말하는 길버트를 보고 메이는 궁금한 것이 생겼다. ‘예전에 누나가 절 찾아 왔듯이’ 라. 아까 인터뷰 때 부모님이 전쟁터에서 돌아가셨고, 전쟁이 끝난 이후 누나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동안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얘기까지 나올 테니 어쩌면 어려운 질문이 될 것 같지만, 왠지 이 질문을 해야지만 왜 길버트가 자기 누나를 필사적으로 찾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메이는 곧바로 질문을 시작했다.

“누나가 너를 찾아왔다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길버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입을 떼었다.

“혹시... 로사 벨리 학살 사건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메이는 ‘로사 벨리’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반사적으로 코트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수첩과 펜을 다시 꺼냈다. 단순히 폭격이나 불발탄에 부모님을 잃은 줄 알았는데, 이런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을 줄이야. ‘로사 벨리’ 라는 이름만으로 길버트가 겪었을 고통이 느껴져 메이는 오싹함에 몸을 떨었다.

“로사 벨리? 맙소사...”

“네, 전 로사 벨리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에요.”

 길버트는 동정과 경의가 섞인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메이에게 전쟁 중에 자신이 겪었던 참상을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Epc. 1017. 08. 03(Fri) ~ 08.04(Sat)

 사람들은 그들을 로머(Romer)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로머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수백 년 전 , 녹터니아 대륙의 북쪽에서부터 가축을 키우기 좋은 땅을 찾아 유랑하던 그들은 루마노프 땅에 정착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언제나 정착한 땅에 먼저 들어와 있던 자들의 텃세에 밀리거나, 힘 없는 그들의 땅을 노리는 자들 탓에 루마노프 전역을 떠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내쫓아 로머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을 로머라고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도 도망쳐야 했고, 한 군데에 뿌리박지 못하는 주제에 자기 나라에 도움되는 것도 없다며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하고 온갖 차별대우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루마노프 군부의 가혹한 대우에서도 도망쳐야만 했다. 결국 루마노프 어디에서도 자신들이 머물 곳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곧바로 크루세리아 동북쪽의 로사 벨리를 삼백 번째 정착지로 삼았다. 텃세는 크루세리아에서도 여전해서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서 사낼 수 있던 땅은 자갈 투성이의 황무지 뿐이었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떠돌며 살지 않겠다는 각오 하나로 황무지를 비옥한 농토로 만들었고, 제법 그럴싸한 마을도 건설했다. 그 덕에 미스티 아인게이츠는 그의 아버지처럼 천막 안이 아닌 통나무집에서 세상의 빛을 처음 볼 수 있었고, 삼 년 뒤에는 그 집에서 길버트가 태어났다. 숲에서 사슴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미스티와 길버트의 아버지도, 농사를 짓는 길버트의 옆집도, 마을 회관에 있는 촌장도 이제 더 이상 로머 소리를 듣지 않겠지,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크루세리아 사람들도 루마노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로머로 볼 뿐이었다. 황무지를 그들에게 넘겼던 이웃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부당한 자릿세를 요구했고, 미스티나 길버트가 이웃 마을 아이들과 친해지려 말을 걸기만 해도 아이들은 우리 마을 땅을 빼앗아 간 놈들이라며 상대조차 해 주지 않았다. 자기들이 버린 땅을 돈 주고 산 뒤 오만가지 고생을 하며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 놨더니 이제야 자기들 땅이라며 나서는 이웃 마을의 태도는 말도 안 되었지만, 관공서도, 언론도 모두 어디서 굴러들어온 지도 모를 로머의 편을 들지는 않았기에 그들은 이웃 마을의 부당한 대우를 모두 견뎌 가며 자신들의 땅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굴욕적인 정착 생활 또한 오래 가지 못했다. 루마노프가 크루세리아를 침략하기 시작한 이후, 루마노프에서 온 그들도 이제 단순한 로머에서 침략국의 끄나풀로까지 추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일궈낸 땅에 불을 지르고, 그들을 보는 족족 곤봉으로 후려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촌장은 삼백 한 번째 정착지를 찾아 떠나기로 하고, 이 사실을 온 마을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이십 년 넘게 정착한 땅에서 다시 한 번 쫒겨나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고, 대체 다음에 정착할 곳은 크루세리아의 어디일지, 아니면 바다 건너 하이난까지 가게 될지, 거기에 가도 사람들은 우리를 로머 취급하지 않을지조차 확신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조상들이 그래 온 것처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 짐마차와 튼튼한 짐말을 집집마다 갖추어 둔 그들이었기에, 온 마을이 떠날 채비를 마치는 데는 하룻 밤이면 충분했다. 길버트의 부모님 또한 미마차에 사슴 고기와 감자, 옷가지, 장작, 식기, 여행 자금이 되어 준 금괴 몇 개, 사냥용 라이플 등을 마차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고, 미스티와 길버트는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말에 부모님을 도와 열심히 짐을 실었다. 그 와중에, 길버트의 아버지는 라이플을 마차에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옆 마을이 너무 조용한데. 평소랑 다르게 우리한테 시비 하나 안 걸고 있잖아.”

“촌장님이 옆 마을에 이제 떠난다고 분명히 얘기했으니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거겠죠, 여보.”

 길버트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안심시켰지만, 그런 어머니 또한 얼굴에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 짐마차 스물다섯 대로 이루어진 피난 행렬은 선두에 있는 촌장의 마차를 따라 마을 초입에 있는 협곡으로 하나하나 들어가기 시작했다. 행렬의 중간에 위치한 길버트네 마차 안에선 길버트와 미스티가 지도를 펴고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모험을 떠날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길버트의 어머니는 그런 남매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행렬의 앞에서 펑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길버트의 아버지가 폭발음에 놀라 흥분한 말들을 진정시킨 뒤 앞을 보자, 선두에 있는 촌장의 마차는 폭발에 부서진 지 오래였다. 그 사이 곧바로 행렬의 뒤에서 폭탄이 터졌고, 행렬이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피난 행렬은 앞뒤를 가로막은 마차의 잔해에 갇혀 버렸다. 그리고,

“놈들을 가뒀다!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 나라를 침략한 루마노프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확성기를 든 이웃 마을 촌장의 목소리가 협곡에 크게 메아리침과 동시에, 협곡 위에 숨어 있던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일사분란한 동작으로 구식 소총과 기관총을 꺼내 계곡 아래에 겨누었다. 피란민들이 철컥 하는 노리쇠 소리에 굳어 버린 사이, 이웃 마을 촌장은 파충류처럼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 확성기를 옆에 선 소대장에게 건넸다. 이웃 마을 촌장의 눈에는 전쟁이 끝나면 로머 놈들이 쓸만한 땅으로 만들어 준 땅을 공짜로 차지할 수 있다는 욕망이, 소대장의 눈에는 크루세리아 땅에서 혼란을 일으킨 루마노프 끄나풀들을 자경단의 협조를 얻어 소탕한 뒤 2계급 특진을 할 수 있다는 욕망이 뚝뚝 흐르고 있어서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전 병력, 위치로!”

 소대장의 지시에 마저 숨어 있던 이십 여명의 보병들도 자동소총을 들고 나왔다. 벌써부터 아래에선 앞을 막은 마차 잔해를 넘어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본 소대장은 확성기를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사격 개시!”

 그 신호를 시작으로, 로사 벨리는 지옥이 되어 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총성에 도망치려던 사람들의 몸은 총탄에 무참히 찢겨나갔고, 협곡 아래는 총성에 울부짖다 죽어 버린 말과 사람들의 단말마로 가득 찼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머리에 큼지막한 중기관총의 탄환이 관통되는 걸 보고 길버트가 울부짖을 틈도 없이 마차는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렸고, 쓰러진 길버트를 감싸려 다가가던 어머니마저 이어지는 총성에 길버트의 눈 앞에 쓰러져 버렸다. 고통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버린 어머니의 얼굴을 본 길버트는, 누나에 대해선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부서진 마차 아래로 몸을 피했다. 총알이 귓가를 스치는 소리, 마차 위에 깔린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비릿함, 비명 소리는 점점 잦아들지만 총 성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상황, 갈버트는 그저 숨을 죽인 채 벌벌 떨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어딘가에서 기관총 소리보다 짧지만, 더 큰 총소리가 들려왔다. 타앙 하는 큰 소리에 협곡 위의 중기관총 사수고 머리에 바람구멍이 난 채 협곡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다른 사수들이 사격을 멈추고 몸을 숨기기도 전에 나머지 세 명의 사수도 모두 쓰러졌다.

“전 병력, 철수ㅎ...”

 확성기를 들고 철수 명령을 내리던 소대장 또한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고, 이미 저 멀리로 달아나고 있던 이웃 마을 촌장의 머리가 총알에 통째로 날아가자, 나머지 오합지졸들은 무기를 버려둔 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슴마다 쌍두독수리 문양을 새긴 군복을 입은 루마노프 군대가 잔해를 밟고 몰려오기 싲가햇다.

“1분대는 도망간 놈들을 추적하고, 나머지는 이 곳을 수색하라!”

 루마노프 군의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길버트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나를 찾아 보았다. 하지만 누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누나를 목 놓아 부르고 싶었지만, 잔해를 뒤지고 있는 루마노프 군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길버트는 루마노프 군대가 협곡에서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어머니의 시체 옆에 숨 죽은 듯 숨어 있었고, 해가 지기 직전에 계곡이 텅 빈 뒤에야 목 놓아 누나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pc. 1017. 08. 04(Sat) ~ 1018. 07. 09(Mon)

 그렇게 홀로 살아남게 된 길버트는 짐에 있던 금괴 하나를 챙긴 채 또 다른 피난 행렬에 흘러들어가 크루세리아의 남쪽 도시, PL까지 흘러갔다. 파죽지세로 크루세리아를 점령하는 루마노프군에 밀려 크루세리아의 유일한 도시가 되어, 금덩어리를 내밀어도 가짜라고 의심하거나 그것을 빼앗으려 길버트를 노리려는 자들로 가득한 PL에서 길버는 구걸과 군인들의 구두닦이로 연명해 왔고, 군대 막사에서 흘러들어 온 다 떨어진 모포를 옷 대신에 두르고 다니며 노숙을 해 왔다. 그럴 때마다 길버트는 누나가 죽는 건 본 적 없으니 누나도 어딘가에서 자신처럼 고생을 하고 있을 거라며, 언젠가 만날 누나 앞에서 당당한 동생이 될 거라 생각하며 버텨 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루마노프는 로사 벨리 학살 사건을 일으킨 크루세리아를 비난하는 선전 방송으로 사람들을 동요시켰고, 길버트는 라디오나 TV에서 잊을 만하면 나오는 '거짓 선동에 속지 말자‘ 는 PL 시장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PL 방어전도 한계에 다다른 사이 극적으로 참전한 하이난 군의 도움으로 크루세리아 군은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고, 루마노프가 자신들에게도 침략의 손길을 뻗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농업 국가 데마트 또한 루마노프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루마노프는 점점 궁지에 몰렸다. 마침내 크루세리아의 모든 영토를 회복시키고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정전 협약에 루마노프 군부 총사령관이 서명을 하자 거의 1년 가까이 계속되던 크루세리아 전쟁은 끝났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 날, 길버트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평소처럼 군인들의 군화를 닦아 주고 있던 길버트는 누군가가 등을 쿡 하고 찌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죽은 줄만 알았던 누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나!”

“길버트!”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기 시작했다.

 일 년 가까이 제대로 씻지도 못했던 길버트는 누나가 준 돈 덕분에 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뺀 뒤 누나가 사 온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길버트는 PL에 셋방을 잡은 누나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정말이지 꿈같은 일이었다. 처음으로 누나의 방에 들어갔던 날, 누나는 로사 벨리에서 처음 헤어진 뒤 자기가 길버트를 얼마나 그리워했고, 또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다 얘기했고, 이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길버트는 그런 누나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누나가 나를 찾아왔듯이, 만약 누나가 사라지면 내가 꼭 누나를 다시 찾아올게!”

 미스티는 그렇게 말한 길버트를 다시 한 번 꼭 안아 주었다.

Epc. 1022. 11. 24(Fri) 5:00 PM.

 길버트의 이야기는 창 밖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때가 되고 나서야 끝났다. 직업병인지 벌써 길버트의 얘기를 수첩에 보기 좋게 요약해 둔 메이는 잠깐 사이에 너무도 많은 걸 안 기분이었다.

 로사 벨리 학살 사건에 대해선 처음에 루마노프군의 거짓 선동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전쟁이 끝난 뒤 학살에 가담한 병사가 양심 고백을 하면서 실제 있었던 일로 밝혀졌고, 결국 전쟁 뒤에 로머들의 땅을 차지한 마을 사람들이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길버트의 증언을 들으니 자신이, 그리고 세상이 몰랐던 얘기를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만약 기사를 쓴다면 이것만으로 훌륭한 기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길버트에게 누나는 어떤 의미인지, 왜 길버트가 자기 누나를 필사적으로 찾는지에 대한 이유를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누나 생각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니, 나는 의지할 사람이 있긴 했어도 누군가를 기다릴 순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며 메이는 길버트를 부러워했지만, 그래도 길버트의 사정을 알고 나니 일을 떠나서도 길버트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었던 얘기 꺼내느라고 고생했어. 덕분에 너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거 같아.”

“힘들었다뇨. 다 지난 얘기인데요. 누나를 찾는 데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어요.”

 메이의 말에 길버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메이는 그렇게 담담하게 힘든 시절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길버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메이 같았으면 도저히 꺼내지도 못했을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자신보다 더 어른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뒤, 메이는 자신이 길버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떠올렸다. 방금 적어낸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로사 벨리 학살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길버트의 증언을 기사로 멋지게 포장한다면, 길버트의 사연을 안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 포트 라임 항의 빈민가에 사는 길버트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하지만 그 전에, 길버트의 누나부터 찾아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두 길버트를 위한 일이니, 메이는 이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 기사를 통해 자신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몇 크로나인지도 잽싸게 계산해 두었지만 말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것이 메이의 신조였다.


Resolver Episode 1 : 길버트 아인게이츠의 그림자

Chapter 1 : 교차하는 두 사건

To be conti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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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없입니다.

길버트의 과거사에 대해 다뤄 보았습니다. 나름대로 추리를 써 보자고 시작했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니 추리보단 인물들의 드라마에 더 큰 비중을 둔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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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흐린하늘
~~추리소설이었던건가~~

뭔가 배경이 굉장히 큰 느낌이네요.
단순히 '작중 시점 5년 전에 일어난 전쟁을 실제 역사 속 전쟁에서 끼우긴 나로썬 무리다' 라는 결론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새 규모 있는 세계관이 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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