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안샤르베인 2 2,474

심문이 시작됐지만 제네시스는 적에게서 별다른 정보를 캐내지 못했다. 그저 마법으로 모습을 바꿨으리라 추측만 했을 뿐, 적의 실체가 누구인지 온전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죽인다는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제네시스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는가 고심했다. 고문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있게 해 주겠지만 그것이 유용하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보내지 않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군대가 돌아가기 전에 앞서서 사실을 알려야 했다. 누굴 보내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될까. 전서구는 이미 죽어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수도에는 적이 있었다. 호시탐탐 트집거리를 찾아서 자신을 끌어내리려 하는 적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보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제네시스의 시선이 옮겨갔다. 아이는 묵묵히 병사들을 돕고 있었다. 여전히 과묵해서 속을 알 수 없는, 그렇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움이 되었던 아이. 본인도 기억을 잃었고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강했다.

제네시스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깨에 손이 올라가자 그가 뒤돌아보았다. 그리곤 90도로 인사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군님."

"부탁할 일이 있다. 잠깐 막사로 오너라."

 

막사 안은 장군과 아이 둘만 있어서 조용했다. 제네시스는 주변을 둘러보곤 아이에게 비단 두루마리를 건넸다. 아이는 그것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게...무엇입니까?"

"서찰이다. 전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 길도 모르고..."

"지름길 지도라면 여기 있다. 꼭 이 날짜 내로 도착해야 한다."

"저, 그것만이 아니라..."

 

제네시스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할 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제네시스는 또 다른 물건을 내밀었다. 받아들고 보니 그것은 호적패였다. 그것도 아주 솜씨좋게 위조된.

 

"특수임무용이다. 진짜와도 거의 구분이 안 되지."

"...그렇군요."

 

아이는 호적패를 만져보았다. 잘 깎아낸 호적패의 표면은 우둘투둘했다. 제네시스는 잠시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대로라면 해서는 안 되는 부탁이다만...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구나."

"...알겠습니다. 누구를 찾으면 되는 겁니까?"

"엘리자드 시네스. 시네스 가를 찾아가라. 그 뒤엔 그 사람이 알아서 할 것이다."

 

장군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자신이 저 아이를 믿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단을 품 속에 조용히 넣었다. 그러고 나니 망토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가볍게 목례한 후 다시 물었다.

 

"지금 출발하면 됩니까?"

"그렇다. 식량도 챙겨가라."

 

======================

 

가는 길은 상당히 험난했다. 길의 흔적이 끊기기 일쑤였고 조금만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좁은 통로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길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어떤 존재였던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장군의 부탁이었다. 서찰을 제대로 전해줘야 했다. 다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서 마을이 나온다는 표시가 있었다. 오늘은 그곳에서 잠시 쉬면 되겠지.

장군은 비상식량 외에도 돈도 꽤 쥐여주었다. 방 하나 잡는 덴 지장없을 듯했다. 며칠간 쉬지않고 달려온 덕에 몸이 꽤 피곤했다. 오늘만큼은 푹 쉬어도 괜찮겠지. 아이는 마을로 향했다. 

Author

Lv.1 안샤르베인  3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흐린하늘
저 애가 처음에 왕자 납치한 걔인거죠?
안샤르베인
넹 그렇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3 카펠라시아 기행록 - 1 댓글2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2.01 2494
252 한방꽁트 - 25일의 은행업무 cocoboom 03.27 2494
251 디트리히 루프트헬름의 이야기 (1) 네크 02.24 2492
250 나는 너의 미래다 - 3 민간인 02.12 2492
249 훈련소에서 댓글1 폭신폭신 05.25 2492
248 VI-4. Die Spinnenblume 미식가라이츄 10.11 2492
247 작문 쇼 댓글2 민간인 08.10 2491
246 prologue VII-두 개의 무덤 작두타는라이츄 03.18 2491
245 HIGH NOON -4 잉어킹 11.21 2489
244 애드미럴 샬럿 1 폭신폭신 07.15 2489
243 [Project Union] 여명 댓글1 Badog 01.07 2488
242 [소설제 : I'm Instrument] 열시까지 BadwisheS 01.30 2487
241 마녀 이야기 2(끝) 댓글1 네크 01.17 2487
240 VII-2. 지박령이 된 가장 작두타는라이츄 03.18 2487
239 walking disaster 1.1 - 구원 댓글2 전위대 09.28 2486
238 Resolver(리졸버) - 4 댓글2 [군대간]렌코가없잖아 10.03 2485
237 VI-5. Die Lavendelblute 미식가라이츄 10.12 2485
236 로슈포르 중앙은행 - 2 - 폭신폭신 10.23 2483
235 운명론자 이야기 네크 01.25 2483
234 본격 토끼구이가 오븐에서 나오는 체험담 댓글2 베키 06.24 2483
233 아름다웠던 하늘 김고든 04.10 2482
232 언제든지 돌아와도 괜찮아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3.18 2479
231 네버랜드 - 3. 엄마? 마미 07.03 2479
230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 네크 12.20 2477
229 한방꽁트 - 풍운 마왕동! 2부 댓글2 cocoboom 04.13 2476
열람중 부탁 댓글2 안샤르베인 09.24 2475
227 VII-8. 어느 노배우의 사흘 작두타는라이츄 11.01 2474
226 Cats rhapsody - 4 민간인 11.23 2472
225 VIII-1. 빛을 보지 못한 자의 원한 작두타는라이츄 12.30 2472
224 Vergissmeinnicht 블랙홀군 02.26 2471
223 카라멜 마끼아또, 3만원 어치 민간인 06.26 2471
222 뚜렷 한흔적 댓글2 다움 05.10 2468
221 천랑성 作家兩班 01.18 2467
220 관찰 안샤르베인 09.12 2467
219 추락. 댓글1 양철나무꾼 06.14 2465
218 Resolver(리졸버) - 3 댓글2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9.28 2464
217 학교에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3 2463
216 HIGH NOON -5 잉어킹 11.21 2462
215 [백업][밝음 소설제 출품] The Lone Star NoobParadeMarch 09.27 2461
214 (본격 아스트랄 판타지)성스러운 또띠야들의 밤-1 댓글3 greenpie 10.04 2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