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나비의 마녀

블랙홀군 1 2,460
-안녕, 아저씨. 

이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말이었다. 
내가 갈 때에도 서럽게 울고 있던 그녀는, 그 후로 며칠쨰 보이지 않게 됐다. 
부끄러워서 나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그런 그녀가 그 날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가끔 들려오던 그녀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그녀가 쓰던 물건들만 남은 채였다. 
하루정도야 안 나올 수도 있는거지, 라고 했지만 며칠정도 이 상태가 지속이 돼자 그녀가 걱정돼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그렇게 약한 녀석인데 설마 안 좋은 선택을 해버린 건 아니겠지. 걱정도 됐지만 곧 나오겠거니 싶었다. 아니면 혹시, 친구를 통해 소식이라도 들려주겠거니 했다. 

-아저씨. 

'응? '

며칠동안 잠잠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에 없었다. 
환청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이쪽이야. 

'뭐야, 대체 어디서... '
"저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
"아아, 아냐, 아무것도... 나 잠깐만 볼일 좀 보고 들어갈게. "

-아저씨, 여기야, 여기. 

순간 눈앞에 까만 나비 한 마리가 보였다. 
따라오라는 듯, 나비는 내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앞서가면서도 잠깐 서서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나비를 따라 가니, 눈앞에서 까만 나비뗴가 모여들고 그녀가 나타났다. 

조용히 눈을 뜬 그녀는, 고개를 들어 에메랄드빛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서 종전처럼 장난기나 웃음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까만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와 줘서 고마워, 아저씨. "
"너, 너는... 베아트리체? "
"...... 응. 나야. "
"어떻게 된 거야, 이게...? "
"아저씨가 정말 와 줄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아저씨는, 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같은 건 안 쓰고 있었으니까. "
"...... "
"나, 이제는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거든. ...내 삶의 이유였던 아저씨가 그걸 포기하라고 했으니까, 난 이제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거야. 그래서... 아저씨를 며칠동안은 볼 수 없었어. 아저씨, 보고싶었어. "

도대체 왜 호칭이 아저씨로 굳은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도, 뭘 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사실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마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표본같은 건 잘 못 만드는데, 어떻게 할까... "
"너답지 않게 왜 그런 얘기를... "
"...... 아저씨가 생각하는 나다운 건 뭔데...? "
"...... "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 나는 더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거야... 아저씨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아저씨는, 이 나비들이 뭘 의미한다고 생각해? "

여전히 나비들은 그녀의 주변을 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나비들은 이 세계의 나비들이 아닌 것 같았다. 온통 까만 색인 나비의 주변에, 안개같은 것이 피어있었다. 
그러면서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너, 설마... "
"응. 난 이제 마녀가 된 거야... 아저씨, 아저씨는 몰랐겠지만 내가 아저씨를 좋아하고 있었던 건 진심이었어. "
"...... "
"나, 가볼게. 아저씨는 바쁜 사람이니까 오래 붙잡아두는 거 싫어하잖아? "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나비 떼로 변해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딘가 슬퍼보이는 두 눈, 그녀의 영상이 머릿속에 한동안 남아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영상이 오랫동안 남아, 그 날은 일찍 집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 

막 자려고 누웠던 찰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자? 

"아니. ...너, 여기 있는거야? "

-아니. 그냥 불러본 것 뿐이야. 

더 할 얘기가 있는 듯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자려고 눈을 감을때마다 그녀의 영상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신경쓰였다. 
그럼 보이지 않았던 몇일동안 그녀는 어디에 있었던걸까. 마녀가 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음날, 나는 그녀를 불러보기로 했다. 

"베아트리체. "

-응? 날 부른거야? 

"들려? "

-응, 선명하게 들려. 무슨 일이야, 아저씨가 날 부르고...? 

"지금 어디에 있어? "

-지금? 집에 있어. 

"집...? 결계...를 말하는거야? "

-응. 마녀에게 집이란, 결계니까. 그건 왜 물어보는건데? 

"만나서 얘기좀 할 수 있을까 해서. "

-나랑? 

"응. "

-좋아. 전에 만났던 곳으로 갈게. 

"나도 그 쪽으로 나갈게.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 그녀와 만났던 잔디밭에 막 도착했을 때, 또 다시 나비떼가 모여들고 있었다. 
곧이어 나온 그녀는 또 다시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표정이 전혀 없는 얼굴로. 

"무슨 일이야, 아저씨가 날 먼저 다 부르고...? "
"너, 어제 나한테 할 얘기 있었지? "
"응?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 "
"어제, 너... 나 불렀을 때 말이야. 자냐고 물어봤을 때. "
"아... 응. "
"무슨 말이 하고싶었던거야? "
"...... "

그녀는 대답 대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바람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그걸 묻는거야? "
"그야...... 신경쓰이니까... "
"아저씨는 다른, 신경써야 할 사람이 있잖아. 난 안중에도 둬본 적 없으면서 이제와서 왜 그 말이 신경쓰이는데? "
"...... "
"아저씨. 인간이 마녀가 된다는 건 비가역적인거야. 아저씨가 이제와서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다시 인간이 될 수는 없어. 인간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라는 건, 이미 인간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흘리는 눈물이니까... "
"베아트리체. "
"...... "
"미안해. 이제와서 사과하기엔 좀 늦었지만... "
"...... 그렇게 평생 자책해줘, 내가 아저씨를 좋아했던 만큼... "

차갑게 쏘아붙이고 돌아가려던 그녀를 간신히 붙잡았다. 
여전히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직 어린 탓인걸까. 

"아직도 할 얘기가 있어? "
"베아트리체. "
"왜? "
"마녀가 인간이 되는 건 비가역적인 거라고 했지...? "
"응. "
"그럼, 지금 이대로라도 좋으니까...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
"아저씨... 곁에 있어달라고? 하지만 아저씨가 옆에 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아? "
"...... 그런 의미가 아냐. 난... 널 다시 만났을 때 묻고 싶었던 게 많았어.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며칠동안 네가 안 보여서 걱정했었어. 정말로... "
"아저씨가... 날? "
"응. 넌 몰랐겠지만, 쭉 걱정하고 있었어. "

그녀는 의외라는 듯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혀 몰랐다는 듯, 돌아가려던 발길을 돌려세운 그녀는 다시 내 쪽을 향했다. 

"몰랐어. 아저씨가 날 걱정했을 줄은... "
"날 그렇게 불러줘서, 그리고 와 줘서 고마워. 넌... "
"...... 아저씨. "
"...응? "
"...... 나, 아저씨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어. 아저씨는 날 그렇게 아프게 했고,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도 난 아저씨를 여전히 좋아해. 나도 이런 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인간이었을때도, 정신을 차려보면 난 어느새 아저씨가 좋아져 있었고, 그래서 걱정하고, 화내고, 질투했던거였어.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어. ...지금은 인간이 아니지만, 나... 계속 아저씨 곁에 있고 싶어. "
"베아트리체... "
"미안해, 아저씨. 나, 아직 아저씨 많이 좋아해... 갈게. "

나는 막 돌아가려던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마치 인형이 휘청거리며 쓰러지듯, 그녀는 내 품에 폭, 안겼다. 

"가지 마... 베아트리체. 그러니까 네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거야. "
"정말, 내가 아저씨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
"응. 네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해. "
"고마워, 아저씨. "

그녀는 내 볼에 그녀의 볼을 부볐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부드러움이었다. 
오랫동안 잠을 못 잔 탓인지 면도를 못해서일까, 그녀의 하얀 볼에 살짝 긁힌 자국이 났다. 

"아저씨, 면도 안 했어...? "
"아, 미안. 요즘 잠을 못 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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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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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하늘
~~포켓몬 팬픽을 기대했는데~~

롤리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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