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쫄딱 젖었다가 목욕을 즐기게 된 불청객은 마음을 한껏 풀고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끝부분을 풀어낸 머리카락은 안그래도 큰 키에도 불구하고 키보다 길게 늘어져 넓은 욕탕에 수면을 따라 가지런히 떠있었고 입욕제까지 풀어놓은 목욕물은 향긋한 냄새를 내는 거품으로 티없이 뽀얀 피부를 감쌌다.
그렇게 목욕을 즐기던 불청객은 커다란 창 너머에 눈길을 주었다. 창 너머는 여전히 검은 하늘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고 때문엔 창문 밖에는 엄청난 빗줄기가 때려붓고 있었지만 반대로 창 내부에는 따듯한 목욕물과 공기 덕택에 새하얀 김이 가득 붙어있었다. 온도차가 이렇게 까지 나면 김이 안끼는게 이상한 일이겠지만.
때문에 손님은 밖에서 목욕탕 안을 훔쳐보려는 두명을 진작에 눈치 챘었지만 볼수 있다면 보라는듯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거센 폭풍우 속에서 근성으로 버티며 훔쳐보려는 두 남자에게는 안타깝게도 실제로도 목욕탕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빗줄기와 뿌연 유리창, 그리고 수증기로 가득찬 목욕탕의 공기라는 다중 방어망을 뚫고 볼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비너스의 나신이 저곳에 있는데..!"
"하느님, 다음부턴 성금 많이 낼테니까 좀 도와주세요!"
두사람의 간절한 바램에도. 시야가 걷히는 일은 없었다.
"목욕에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아, 네 덕분에."
목욕을 마친 손님을 반겨준것은 사사하라 부인이 아닌 젊은 하녀였다.
많이 쳐줘야 20대 초반일까. 검은 머리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얼굴 윤곽이라던가를 봤을땐 일본인보다는 서양쪽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목 아래에 달린 두개의 거대..까진 아니더라도 볼륨있는 두개의 젖무덤은 에이프런 원피스 밑에 가려져있어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습니다 손님. 입는걸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만 그러실 필요까진... 아."
하지만 주어진 옷은 아무리봐도 현대의 옷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차라리 잘 보존된 박물관의 전시품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적게 쳐줘도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을듯한 프랑스식 로브와 그 부수기재들.
혼자서는 못입는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손님께 맞으실만한 옷은 이것 뿐이기에..."
"아뇨 아뇨 죄송할것까지야. 그럼 부디 도와주세요."
사요는 방으로 돌아온 물에 빠진 생쥐 두마리..가 아니라 친척 형제 둘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불만과 억울함에 가득한 그 둘의 표정을 봤을때 결과는 말할것도 없어보였다
"그래, 전장에서 생환하신 두분께서는 천국을 엿보셨나?"
"다음엔..다음엔 꼭 보고 만다!"
"에라이 이녀석아."
"악!"
사요가 소마를 쥐어박았다.
"오빠도 이런 장난에 놀아주지 말라니까."
"하하하 사요. 어차피 태풍이 지나가기 전까진 아무도 이 섬을 나갈수 없단다."
카오루는 마치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손동작을 하며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아직 며칠이나 남아있다. 꼭 따고 말거야. 금단의 과실을...!"
"하아..그러세요?"
"형, 분명 핑크색이겠지?! 갈색이 아니겠지?!"
"그렇겠지,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거다!"
"과연 카오루 형이야!"
이 집안의 남자들에겐 무언가 유전적 결함이 있는게 분명하다고 중얼거리며 사요는 TV를 켰다.
"이쪽이 손님께서 쓰실 방입니다. 저쪽 문이 화장실입니다. 마음대로 쓰셔도 좋습니다만 열두시 이후에는 복도의 불을 소등하니 열두시 히우에는 가급적 방 안에 계시는게 좋으실겁니다.. 어차피 그 이후론 바쁘실테지만.. 잠옷은 여기 있습니다. 다만 열한시까지는 하인이 들르거나 할수 있으니까 옷이 불편하시더라도 그때까지는 갈아입지 않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손님은 방을 둘러보고 있었을때. 하인이 다시 말을 걸었다.
"손님, 몇가지 여쭤볼것이 있습니다만."
"네?"
하인은 메모지와 펜을 들고는 입을 다시 열었다.
"종교적 이유나 알레르기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드실수 없는 식재가 있으신가요."
"아뇨.. 야채를 별로 안좋아하는거 말고는 없어요."
"음료쪽은 못 마시는게 없으십니까? 알코올이라던가 유제품같은것 말씀입니다."
"아뇨. 가리는건 딱히 없어요."
"그러시면 특정 약물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키신적은?"
"아뇨 없습니다..만 그건 어째서.."
"그럼 마지막으로. 성벽은 어찌 되십니까. 미소년 취향이라던지 아니면 중년 취향이시라던지.. 특이한 취향이셔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네?"
"예정되지 않은 손님분에게는 항상 드리는 질문입니다."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런 섬에 사는 괴짜의 취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손님은 대답해주었다.
"남자는 싫어요. 여자쪽, 가능하면 남자의 손을 타지 않은 귀엽고 풋풋한 숫처녀쪽이 좋습니다. 몸매가 좋다면 더 좋겠지만."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저녁 식사를 보내드리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듯 하니 텔리비전이라도 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이상한 질문을 던진 하인은 당연한 답변을 들었다는듯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차라리 그쪽은 유산을 한푼도 받지 않는게 나을텐데요? 작은오빠가 유산을 받으면 당신같은 계집을 당장 갈아 치울테니 말이죠."
"시누이 말 다했어?!"
"아뇨 아직 덜했네요. 아직 아이도 없죠 두분?"
"아이가 없는게 저희뿐인가요?! 서방님은 결혼도 안하셨고.."
가족회의라는 이름의 유산싸움은 여전히 진척도 없이 말싸움으로 번져갔다.
그러던 도중 집사가 아무도 없는 방인듯 들어와서는 아무도 없다는듯 싸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당주의 개인실의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기분나쁜 남자야. 이 저택을 물려받으면 잘라버려야지."
"그럼 안되지 츠키코, 쿠로사와씨는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 저택에서 일하셨던 분이다. 네가 태어났을때 의사를 부르러 간 사람이 누구였다고 생각하는거냐."
"그건 그렇지만.."
"저분은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하는것 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당주가 될 사람에게도 충성을 다하시겠지."
"오빠한테 말야?"
"모든건 아버지의 의견에 달린거다. 우리가 왈가왈부해봐야 바뀌는건 없어."
"하지만 형, 아버지께선 얼마 남지도 않으신 분이라고."
"당장 돌아가실것도 아니잖아. 아버지께서도 생각이 있으실거다."
"쳇..."
"오늘은 이만 하고 다들 들어가 쉬도록 하자."
다들 마뜩찮은 얼굴이였지만 어차피 이대로 말싸움만 해봐야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해결은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기에 투덜거리며 각자의 방으로 떠났다
이틈에 취재라도 좀 해둘까? 아이노미야 히카리는 자리를 떴다.
"그럼 이때까지 받은 봉급도 하나도 쓰고 있지 않은거야?"
"네, 이 섬을 나갈일도 없으니까요."
"그런가..."
히카리는 공책에 대화를 계속 적어놓었다. 그리고 질문하려고 생각해 놨던것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남에게 비밀로 할테니까 꼭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네? 어떤 질문이신가요?"
"리에, 연애 해본적 있어?"
"...그런건 없습니다."
뭐든지 대답해줄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리에는 순식간에 잘라 대답했다.
"어째서. 타치바나 군같은 비슷한 나이 또래도 있고.."
"전 저택의 사용인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한창떄의 여자애잖니, 내가 너만할떄는 고백도 받고 데이트도 다니고 키스도 하고... 섹스도 했는걸? 아, 이거 우리아버지 모르니까 비밀이다?"
"섹스..말입니까.."
"응, 처음엔 엄청 아팠지만.."
"섹스를 하는게 사랑이라면, 전 오늘 밤에 첫사랑을 하게 되겠네요."
"어...?"
"주인님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이건 부디 비밀로 해주세요. 그럼 이제 준비해야 하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리에는 깊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어?"
무심코 리에를 따라 나섰지만 히카리의 눈에는 리에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멀리 가버린 모양이였다. 그 대신 타치바나 나츠미가 아이노미야 겐에게 붙잡혀있었다.
"안됩니다 도련님. 아직 해야 할 일이.."
"괜찮다고 해도 그러네, 한두번도 아니고."
역겹다. 겐이 나츠미를 붙잡고 끌고가다시피 데려가는걸 보며 히카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츠미는 성에서 보듯 남매 둘이서 같이 이곳에 들어와서 고용인으로 일하고 있다. 스물 일곱살의 나이에 한창 여성의 매력이 넘치는 하녀를 그 호색한으로 유명한 겐이 내버려 둘수리가 없었다. 결국 언젠가부터 겐이 이 저택에 들릴때마다 현지처 노릇을 하고 있는꼴이 되었다.
하녀입장에서 저항할수 없다는건 알고 있다, 히카리 자신이 저상황이였어도 저항할수 없었겠지.
그렇다면 리에도 나츠미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걸까. 잔혹한 일이다.
상대가 겐 정도라면 히카리 자신이 좀 무리를 한다면 지킬수 있겠지만 리에는 틀림없이 주인님, 다시말해 아버지가 내린 명령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저항하는건 불가능하다.
역겨운 기분을 느끼며 히카리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즐거운식사 되셨습니까?"
"네, 덕분에."
안그래도 비바람에 시달려 체력을 빼았겼던 손님은 맛있는 요리가 나오자 잔뜩 먹어치웠다. 아직도 테이블에 놓여진 치즈와 디저트를 즐길만큼의 배가 남아 있는 모양이였다. 하지만 그 몸에 깃든 기품이 시키는듯 우아한 식사였으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흐트러뜨리는 일이 전혀 없었다.
"식후주 한잔 하십시오."
"고마워요."
리에가 따라주는 브랜디를 잔에 받은 손님은 조금씩 잔을 들이켰다. 잔을 비운 손님은 고개를 살짝 돌려 시계를 보았다. 11시 32분.
하녀가 식기를 가지고 나가면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으려는 생각을 하는듯 했다. 그녀가 예상했던대로 리에는 식기를 카트에 담았고 문밖으로 밀었다. 하지만 카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타치바나가 인수하여 밀어갔고 리에는 방 안에 남아 문을 닫았다.
"에식사 끝났는데 볼일이 더 남으셨나요?"
"네, 주인님께서 저한테 손님의 밤시중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에?"
손님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족한 몸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손님께서 원하시는 처녀가 이 저택엔 이제 저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누가 불청객에게 그렇게 까지 하냐는.."
"주인님의 명령입니다."
"난 만난적도 없는 주인님때문에 이름도 모르는 불청객에게..."
손님은 말을 도중에 끊었다. 아무래도 이 저택의 사용인 특유의 진지한 눈빛에 할말을 잃은걸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자기한테도 나쁜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분위기라도 좀 잡고 시작할까요? 처음인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게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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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가..쉬어버렸어..
아..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