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리겜 소설제]The Onyx Night Sky

Lester 5 2,947
이름 : The Onyx Night Sky
게임 : EZ2DJ
곡 : 링크 / BGA 없음

오후 6시. 해가 저물어서 지평선 부근에 내려와 있었다. 하늘은 주황색과 빨간색. 흔히 말하는 노을이다. 자기들의 일터에 나와서 부지런히 일을 하던 새들이 날아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덕분에 도로는 어지간히 잔뜩 밀려있고 거리에도 사람이 붐빈다. 지금 나선다면 보는 사람들이 무척 많겠지. 하지만 '불청객'들도 따라붙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

오후 7시. 해가 완전히 저물다시피 해서 푸른 하늘이다. 새들의 대부분은 거의 집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아직도 도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그들 때문인지 도로는 아직도 붐비는 상황이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니 하늘을 본다. 파랗다.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서 그런지 파랗다. 그러고 보니 새벽도 이것과 비슷한 색깔이었지. 이 색깔이 좋다.
파란색. 아름다운 색깔임에도 슬픈 의미가 많다. 우울함, 두려움, 차가움.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이 좋은 의미도 있다. 맑음, 고요함, 청결함, 희망, 동경. 단순히 살 때부터 파란색이었지만 내 차가 파란색인 걸 보니 역시 색깔을 안 바꾸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점점 파란색에서 시커먼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후 8시 반. 해는 이미 지구 반대편을 비추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차들이 조금씩 줄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번화가에는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 머물러 있다. 다행스럽게도 차들은 택시를 비롯한 대중교통을 제외하면 거의 다 집으로 돌아간 상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서두를 것 없다. 나의 시간은 언젠가 오니까.

오후 10시. 마지막 버스도 끊겼다. 이제서야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후다닥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저 쪽 횡단보도의 남자는 짐꾼마냥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있다가 한 여자가 택시를 잡아주고 나서야 뒤늦게 올라탄다. 무겁고 다른 사람들 보기 부끄러울 테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다. 남들이 본다고 해서 어떠냐,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지. 차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택시 몇 대가 주변을 돌고 있었다. 그리고 먹잇감을 잡자마자 잽싸게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나는 이제서야 차에 시동을 건다. 내 차? 정확한 건 모르겠다. 일단 투스카니인데,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 얼마나 잘 나가는 지는 모르겠다. 뭐 상관없다. 일단 파란색이고, 아직 쌩쌩하다. 결정적으로 지붕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 비 올 때도 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때는 아웃런의 커플처럼 컨버터블(지붕을 접을 수 있는 2인승 스포츠카)을 타고 해변가를 달리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가 없으니까.

오후 12시. 도시를 조용하게 돌아본다. 심야에 다니는 택시 몇 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배달하는 임무를 수행중인 택배기사, 이따금 나타나서 날 계속 바라보고 사라지는 경찰차 몇 대가 전부다. 아직도 이른 걸까. 잠깐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봤다. 며칠 전부터 계속 맑았던 덕분에 시커멓고도 약간 푸르다. 다행이다. 내 파란 자동차도 그 하늘의 색과 불 꺼진 건물들, 노른자 없는 달걀마냥 새하얀 가로등 속에 녹아든다. 이제 다들 물러갔을 테니 다시 달려봐야겠다.

새벽 1시.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대로에는 아무도 없다. 경찰차도 오늘은 너무 피곤한 모양인지 보이지 않는다. 길가에 사람도 없다. 나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엄청난 굉음이 차에서 퍼져나와 건물 사이를 휘감고 돌다 하늘로 날아간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푸른색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대로 시커매진 하늘을 보니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안개를 뿌리는 소독차처럼 계속 달렸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뿌린 푸른 안개가 도시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새벽 2시. 자정을 넘겨서 그런지 제대로 시커멓다. 건물의 불도 무언가에 열심인 사람들을 빼고 거의 다 꺼져 있다. 내 파란색 자동차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안개도 검은 밤에 먹혀버렸다. 가로등이 없는 곳에서는 그림자의 일부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살아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또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분명히 살아서 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색다른 것을 거부한다. 남들과 똑같은 이름표, 행동, 삶.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한다. 분명 외국에서는 인정받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틀린 것이 되었다. 왜? 간단하다.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으므로. 물론 이런 논리로 지금 내가 달리는 걸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소음공해, 길거리 경주, 과속...계산은 구류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어쨌든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낮 동안에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네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잠을 잔다. 부모님도 자고, 학생들 갈구던 수학선생도 자고, 직장상사도 자고, 경찰서장은 물론 대통령 각하도 잔다. 정확히는 '주무신다'. 하지만 난 그 시간에 일어나서 활동한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짓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 중에도 무언가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자동차, 아니면 자기가 자신있는 물건을 들고 활동할 것이다. '밤'이란 그런 시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햇빛에 드러나서 마치 발가벗겨진 채로 남들 앞에 서게 되지만,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에는 그런 거 없다. 나는 물론이고 모두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남이 누구인지 파악할 시간도 생각도 없다. 그 시간을 즐겨야 하므로.

나는 계속 달렸다. 큰 맘 먹고 드리프트도 해봤다. 되는 듯 싶다가 결국 스핀을 해버렸고, 재빨리 차를 몰고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다행스럽게도 그걸 본 사람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불 켜져 있는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동네 반대편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처럼 신나게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도 자신들의 취미를 즐기고 있음을. 비록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남들의 잠을 설치긴 했지만,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신나게 달리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4시가 되었다. 슬슬 해도 밝아져 올 것이고 부지런한 참새들도 일어날 시간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 앞을 지나가는 큰 대로의 끝에서 다른 끝으로 달려 보기로 결심했다. 이제껏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거니와,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한 쪽 끝에 서서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뒤 달렸다. 달리면서 정말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사람이든 차든 튀어나와서 사고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아니, 사고보다 제발 날 방해하지 말라고. 내가, 이 사회에서 잉여인간 취급받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으니 이번만큼은 닥치고 가만 있어달라고.

기역자 형태로 도로 위를 굽어보고 있는 표지판을 지나쳤다. 마침내 대로의 다른 끝에 도착했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건지, 누군가 보지는 않았을지, 앞으로도 이런 짓을 또 할 수 있을지 몰라서 온 몸이 떨렸다. 한창 달리던 중이라 뜨거운 본네트 위에 누웠다. 정말 맑은 하늘 속에서 달과 별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개폼 잡는다, 전래동화냐 하고 비웃을 테지. 하지만 난 정말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 부르는 나의 '반항'을 빠짐없이 지켜봤고 증인이 되어 주었다. 나는 프로 레이서들이 1등을 했을 때 하는 퍼포먼스처럼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해 뻗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약한 펀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먹은 푸르고 어두운 하늘 속에서 자랑스럽게 굳건히 서서 보름달의 빛을 완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되자 나는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미묘하게 푸른색을 띠면서 밝아지고 있었다. 바쁜 사람들은 벌써 차를 몰고 나올지도 모른다. 자유시간을 충분히 즐겼으니 이번엔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껏 쌩쌩 달리다가 갑자기 느릿느릿 움직이니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차를 주차하고 실컷 잔 뒤에 낮 동안 일을 하면 더욱 느릴 테지. 출근길, 점심시간, 내가 해야 되는 일의 처리, 내 인생 목표의 진도. 뭐 하나 빠른 게 없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태우고 짜증을 부려도 시간은 알아서 간다. 그 말은 곧 밤이 돌아온다는 얘기다. 그 시간만큼은 다시 자유롭게 날뛸 수 있다. 물론 오늘처럼 신나게 놀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다. 항상 좋은 일만 벌어질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단 하나, 제대로 즐길 수 있느냐이다. 나는 그러기를 바라면서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잠그고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내 몸에는 아직 차를 몰고 달릴 때의 그 '쓰'릴이 남아 있었다. 몇 시간 후면 그것도 안개가 되어서 날아가고 다시 지지부진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밤은 돌아온다. 나같이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낙인 찍힌 사람들에게도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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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Lester  3
578 (57.8%)

Leaving this world is not as scary as it sounds.

Comments

NoobParadeMarch
1. 의외성이 부족합니다. 지금의 이 글로서는 달리고 끝일 뿐인 이야기입니다. 뭔가 좀 더 특별한, 그래서 구태여 소설로 남기지 않으면 안될 이야기가 더 있...어야만 소설인 건 아닙니다만, 뭔가 특별한 의미, 혹은 이벤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 기승전결이 희미합니다. 전체적으로 "사건"이라 부를만한 내용이 없는 것이 원인인 것 같은데, 굳이 지금의 내용에서 꼽자면 대로의 끝에서 끝을 달리는 부분이 절정으로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 경우에도 조금 더 그 행동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낮에는 어떤어떤 일이 있었다든지, 도로가 급히 꺾여 있는 부분이 있어 정말로 앞을 예상할 수 없다든지 말이죠.
3. 개인적으로 음악의 1:12초 부분, 동영상의 1:26초 부분이 딱 새벽 한시에 걸려서 대단히 감정 이입이 되었었습니다. 만약 Lester님이 독자의 읽는 속도까지 고려해서 문단을 배치했던 거라면 그야말로 정성이 묻어나오는 글이겠군요. 저도 Cytus 소설제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음악과 글의 조화에 계속 신경쓰게 됩니다마는, 딱히 음악과 글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왜 굳이 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제에 참여하는가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4. 시간이 차례차례 넘어가는 구성은 신선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자기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잘 표현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럴 경우에 필요없는 묘사는 필요없는 묘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주인공의 심리를 대신하는 요소일 수도 있으니까요.
5. 초반의 "정체를 밝히기 않은 화자"는 독자의 눈을 옭아매기에 매우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생각보다 변변치 않은 인물이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죠. 이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좀 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만한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6. 직업이 멀쩡히 있는 놈이 뭐가 잉여인간이야...아니, 개인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7.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낮의 직업과, 그의 대로를 달리는 행동과, 그리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부분이 조화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기억자로 꺾인 대로를 시속 100km로 주파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알고보니 교통경찰이었다든가. 매우 직설적이고 표면적인 반전일 뿐이겠습니다마는. 아니면 그렇게 돌아간 그의 마누라가 교통경찰이라든가. 뭐 하여튼, 그렇게 말이죠.
Lester
1. 의외성(반전)이 있어야만 소설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기승전결에 대해서는 약간 공감하는 면이 있습니다. 사실 약간 음악 들으면서 자아도취하며 쓴 글이라 임팩트가 없는 게 사실이긴 하죠.
5. 6. 7. 중반부부터 다시 한 번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셨다면,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NoobParadeMarch
Re.3: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서 의도 파악하고 주제 파악하고 그런 걸 워낙 잘 못합니다. ~~그래서 그 딴 거 없는 글이 목표인 거에요~~ Lester님의 댓글에서 미루어보건데, 아마도 의도적으로 "다소 독특한 취미를 가졌을 뿐인 지극히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보통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최고의 순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걸까요.
죄송합니다만, 이런 부분은 정말 약합니다. 설명해주세요.
三相交流
야간의 스트리트 레이서의 이야기인가요? 뭐랄까,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만든 르포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서술은 내면심리묘사...이 점은 독특해요.
사회상에 대한 설명 등이 굳이 길어야 할 필요는 없을 건데요. 그게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나는 것 같고, 스트리트 레이서가 달리면서 자유를 느끼는 부분의 핵심인 주행에 대해서는 좀 더 보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듬게임 관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서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는 자신이 없지만, 일단 글 자체만으로 볼 땐 그래요.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이신 작품에 제 감평이 많이 부족할 것 같아요.
Lester
역시 스트리트 레이싱이 주제이니만큼 그 부분은 강조가 필요했네요. 사실 시간에 쫓긴 것도 있고 스트리트 레이싱을 주제로 다른 무언가를 설명하려다 보니 막상 레이싱 관련 묘사가 줄어들었네요. 감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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