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낼 소설 초안] 꿈, 혁명, 그리고 조미료와 아스피린 (1)

BadwisheS 1 2,579
 혁명에 미친 한 남자가 있었다. 어떻게든 혁명을 한 번 일으켜 보고 싶어했던 그는 그냥저냥 알고 지내던 순진한 아가씨의 자궁에 혁명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10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되었다. 단언컨대 그것은 혁명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했던 혁명은 이런 혁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그는 순진한 아가씨와 갓 태어난 아들을 내버려 두고 혁명가 대신 쓰레기가 되기를 선택했고, 솔직히 굳이 그것을 선택하기 이전에도 그가 쓰레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건 쓰레기인 그가 어느 길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는지 지금 아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보니 어제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던 일이 떠오른다. 매년 그렇듯 순진한 어머니는 올해도 연말이면 벼룩시장에서 '관상 보는 법' 따위의 책들을 헐값에 사오셨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라면을 끓이면 그 책들은 곧잘 좋은 냄비받침이 되었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성년이 된 나는 자취를 시작했고, 어머니의 가계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안 그래도 외풍이 드는 어머니의 단칸방은 가스 공급조차 끊겼다. 이제 어머니에게 그것들은 냄비받침으로도 쓸 수 없는 한낱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아궁이도 없는 어머니의 단칸방에서 그것들은 불쏘시개가 아니라 '잉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 잉여들을 챙겨보시고는 어머니께서는 연말이면 해년마다, 그리고 어제도 내게 전화를 걸어,

 “아들, 내가 관상을 봤는데, 올해까지 내 얼굴에 낀 액운이 끝나고, 내년부터는 운이 술술 잘 풀릴 거래.”

 이렇게 말하시는 것이다. 어머니가 사 오신 낡은 관상서적에는,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내년부터 일이 술술 풀린다고 적혀있는 것인지 모른다. 웃긴 일이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일이 잘 풀린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가스뿐만 아니라 전기까지 끊긴 어두컴컴한 단칸방에서, 어머니는 화장실의 물때 가득 낀 어두운 거울을 마주 보며 혼자 관상을 보셨다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가 타고난 팔자를 대략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년부터는 운이 잘 풀릴’ 팔자다.

 그렇다. 백 보 양보해서, 올해까지 액운이 끼었던 어머니의 운은 내년부터 잘 풀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년'이 가까이 다가오는, 어머니께서 스스로 관상을 보시는 연말이 지나면 언제나 내년은 '올해'로 바뀌어버린다. 어머니는 언제나 올해만을 산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는 언제나 '올해에는' 운이 잘 풀리지 않고, '내년부터' 운이 잘 풀릴 팔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계속)

이제까지 지적받은 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솔직하게 써보려고요.

좋은 글이 나올지는 뭐, 모르는 일이죠.

Author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레이의이웃
도입부가 괜찮네요 특히 첫 문단이 읽고싶다라고 느끼게 만들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93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1 RILAHSF 03.07 2500
292 애드미럴 샬럿 폭신폭신 03.15 2522
291 현자 더듬이 03.16 2299
290 죽음의 죽음 댓글3 더듬이 03.16 2552
289 언제든지 돌아와도 괜찮아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3.18 2479
288 더러운 이야기 댓글2 기억의꽃 03.23 2454
287 [자연스러운 문장 연습] 귀머거리 BadwisheS 03.26 2427
286 짧은 글 댓글2 다움 03.27 2391
285 The sore feet song 블랙홀군 04.02 2349
284 어느 늦은 봄의 이야기 언리밋 04.03 2271
283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2 RILAHSF 04.04 2401
282 Evangelion Another Universe 『始』- Prologue 벨페고리아 04.08 2275
281 따뜻함을 사고 싶어요 다움 04.09 2424
280 이별의 아침 아이언랜턴 04.09 2289
279 아름다웠던 하늘 김고든 04.10 2484
278 빛이 지는 어둠 속 작가의집 04.14 2590
277 마지막 약속 댓글3 안샤르베인 04.18 2399
276 Spinel on the air(스피넬 온 디 에어) - 프롤로그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4.26 2268
275 뚜렷 한흔적 댓글2 다움 05.10 2468
274 세달만에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2 2225
273 학교에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3 2465
열람중 [공모전에 낼 소설 초안] 꿈, 혁명, 그리고 조미료와 아스피린 (1) 댓글1 BadwisheS 05.19 2580
271 훈련소에서 댓글1 폭신폭신 05.25 2493
270 손님을 맞는 이야기. 폭신폭신 06.05 2429
269 인문혁명 댓글2 Tongireth 06.11 2790
268 [본격 휴가 나온 군인이 쓰는 불쌍한 SF 소설] 나방 (#001 - 강산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 레이의이웃 06.11 2445
267 발을 무는 악마 댓글6 작가의집 06.19 2544
266 무제 민간인 06.22 2438
265 섬 저택의 살인 1 폭신폭신 06.23 2292
264 섬 저택의 살인 2 폭신폭신 06.24 2255
263 섬 저택의 살인 3 폭신폭신 06.26 2267
262 카라멜 마끼아또, 3만원 어치 민간인 06.26 2473
261 파리가 사람 무는거 본적 있어? 댓글2 다움 06.27 2726
260 라노벨 부작용 다움 06.27 2400
259 네버랜드 1. 웬디 그리고 피터팬 마미 06.28 2298
258 섬 저택의 살인 4 폭신폭신 06.29 2294
257 도타 2 - 밤의 추적자 팬픽 Novelistar 06.30 2367
256 섬 저택의 살인 5 폭신폭신 07.01 2319
255 섬 저택의 살인 6 폭신폭신 07.02 2419
254 네버랜드 - 2. 알브헤임 마미 07.02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