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③

로크네스 0 2,964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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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 따르면 비토는 적어도 며칠 동안이나 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미지의 살인마가 남긴 표식을 조사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조사 결과 숲의 나무 여기저기에, 그것도 주로 호숫가의 나무에 대단히 수상쩍은 표식이 있는 건 확실하고. 잔뜩 칼자국이 난 스마일하고 그 아래의 작고 단순한, 곡선 두 개로 이루어진 물고기 표시. 물고기는 어떤 나무에는 하나, 어떤 나무에는 넷, 어떤 나무에는 여섯.
물고기 표시 자체는 굉장히 익숙해.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비교종교학 강의에 나온 적이 있거든. 초기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비밀스럽게 사용했던 ‘익투스’ 문양이야. 그 의미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상징 중 하나지. 이 표식을 남긴 게 숨어 다니는 사이코 광신도라고 생각하면 대충 들어맞긴 하네. 마침 내가 아는 사이코 광신도가 하나 있기도 하고. 스스로는 범인을 죽이러 왔다고 자칭하지만 과연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나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현장을 확인하고 싶은데, 이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표식이 어디지?”
“흐응ㅡ”
문제의 사이코 광신도는 뜬금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뭐야, 설마 의심하는 걸 읽혔나. 하지만 표정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열의가 있어 보이네.”
뭐? 내가? 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여기 온 이유조차 모른다고?
“여기에 온 이유? 그거야 간단한 거잖아!”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 네 대답이나 들어보자. 다른 방향으로 미친 사람이라면 아마 다른 방향으로 미친 대답을 내놓겠지만.
“네가 여기에 와서 지금 나랑 같이 학살자를 쫓고 있는 이유는, 네 마음속에 선한 뜻이 있기 때문이야. 선한 뜻을 가진 사람은 비록 본인은 알지 못할지라도 자연스럽게 선한 일을 향하게 되거든! 너, 나쁜 놈들을 잡으러 다닌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난 알 수 있어. 네 눈에는 선한 빛이 어두운 밤 등불처럼 비치고 있으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친 년. 내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고? 그것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범죄자를 추적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야. 난 벌써 지옥에 떨어질 만한 짓을 했다고. 그것도 여러 번. 이런 헛소리는 정말 처음 들어본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게 뭐냐면, 이걸 논리적으로 반박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거야. 내 무의식 속에 선한 의지가 있다는데 그걸 어떻게 의식적으로 반박하겠어. 그래, 정말 지루하리만치 끔찍한 건 저 헛소리가 사실이 아니라고 내가 단언할 수 없다는 거야. 내가 여기에 있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이상은. 그때까진 내 손에 쥐어진 이 칼이 성 율리아노 자선가인지 누구인지의 칼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어.
“도착했어!”
호숫가의 나무에 새겨진 저 뒤틀리고 칼자국이 난 미소. 눈은 가로로 찢어지고 입꼬리가 눈 위까지 올라와서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기분 나쁜 모습이야. 이봐, 비웃지 말라고. 내가 정말로 선한 의지에 이끌려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그걸 제일 비웃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니까. 그 아래에는 물고기 표식이 두 개 있는데,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예수가 오천 명을 먹인 기적. 정말로 기독교 상징인가. 그렇다면,
“저건 뭘까.”
하루살이가 들끓는 호숫가에 누워 있는 두 사람. 중년 여성과 금발 꼬마아이. 팔은 가슴에 포갠 채 딱딱하게 굳어서 달을 쳐다보고 있어. 편안히 자는 것처럼. 비토는 그걸 보더니 깜짝 놀라서 순식간에 달려가, 맥을 짚어보고 인공호흡을 하고 하려다가 딱 멈춰버렸어.
“관자놀이에 총상이 있어.”
나도 가까이 다가갔고, 그때서야 이 사람들이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어. 아까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프랑스 꼬맹이랑, 바비큐 파티 때 과일이랑 술을 나눠줬던 그 어머니야. 저런, 물고기 괴롭히는 거 보니까 나름대로 소질이 있을 수도 있는 애였는데. 불쌍하게도 이해받기도 전에 죽었구나. 한편 본 적도 없는 사람 둘이 죽었는데 비토는 자기 엄마랑 여동생이 죽은 것처럼 난리를 치고 있네.
“호숫가에서 총에 맞았어. 학살자 자식이야.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성 비토께서 내게 자비 베푸사 주님이 나를 용서하기시를!”
“학살자가 아니야.”
그랬더니 아주 매섭게 날 쳐다보고. 와아, 무서워라. 광신도 무서워. 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순교자만큼이나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어.
“생각해 봐. 학살자가 죽인 사람은 어떻게 발견됐지?”
“총에 맞아서!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잖아! 게다가 물고기 두 마리에 사람이 둘, 딱 맞아 떨어진다고! 행복하고 신성한 죽음의 수호성인이신 성 요셉이시여, 이 불쌍한 어린 양들을 축복하시되 범인에게는 자비를 보이지 마옵소서!”
그래, 물고기랑 사람 수가 맞는 건 맞는데 그건 그냥 우연일 수도 있잖아. 애초에 물고기는 여기 예전부터 있던 표시잖아? 그것보다 학살자가 죽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시체의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지. 검시 결과도 돌아다니고. 밀렵꾼이었던 문제의 희생자는 호수를 헤엄치다가 뒤에서 총에 맞았어. 그렇다면 범인은 호숫가에서 호수 한복판의 희생자를 향해 총을 쏜 거야. 물을 건너는 사냥감을 잡으려는 사냥꾼처럼. 하지만 저 두 사람은 관자놀이에 정확히 총을 맞았고, 그건 범인과 희생자들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 걸 의미해. 그런데 묶여있던 흔적이 없고, 무엇보다 흐트러지지 않은 옷차림과 가슴께에 포개진 팔. 이건 사냥이 아니야. 범인은 희생자들과 가까운 사이였고, 범행을 후회하고 있어. 그럴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까 바비큐 파티 도중에 얼핏 들었는데, 이 집안 바깥사람이 경제위기로 실직해서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지?
“거기까지 해!”
프랑스어로 들려오는 절박한, 울먹이는 고함 소리. 그리고 뒤통수에 와 닿는 차가운 권총의 감촉. 이런, 근처에 숨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왜 아무도 날 내버려두지 않는데! 끝까지, 나라고 좋아서 이런 줄 알아!”
물론 좋아서 한 건 아니겠지. 가장의 의무를 질 수 없다는 절망 때문에 가족들을 전부 죽이려고까지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만큼은 아내와 아이를 즐겁게 해 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래서 캠프에 데려온 거야. 하지만 가족을 죽이고 자기가 잡히는 건 아까워서, 일부러 아르덴 숲의 호숫가에 시신을 유기해 학살자의 짓으로 돌리려고 한 거지, 남자는 눈물을 펑펑 흘려대면서 이제는 알아듣기도 힘든 프랑스어로 소리를 질러댔고, 그리고 나는, 손에 칼이 들려 있는데 아직 피가 흐르고 있거든. 이거 정당방위지? 나의 사랑스러운 프로마쿠스 예소니쿠스, 이건 괜찮지? 아아, 장갑이 손을 감싸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계속 꿈틀, 꿈틀 하고, 이 사람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뭔가 할 수 없을까, 그런데 비토는,
“폭풍우와 배우와 개와 간질 발작의 수호성인이신 성 비토시여, 당신의 손이 항상 나와 함께하니 내가 두려울 것이 없나이다, 끓는 솥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으셨듯이 총구 앞에서도 나의 발을 빛의 길로 인도하사 오직 의를 향하게 하소서. 원수의 손길을 나를 위협할 때 나를 수호하소서. 하지만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나를 이끄소서. 나는 성 비토의 어릿광대이니 오직 당신의 대본대로 춤추나이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맛이 갔고, 그렇게 생각하려는 찰나에 로브 안에서 뭔가 꺼내나 싶더니 몸을 이쪽으로 날려서,
“나는 선한 뜻을 행하는 광대이니 원하건대 나를 지키소서!”
나는 덕분에 흙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뭐야, 저건? 망치야?
“나는 악인을 척결하는 망치이니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영광 주소서!”
와아, 이 광경은 굉장한데. 잠깐 맛이 가려던 게 원래대로 돌아올 정도로 굉장해. 미친 것처럼 싸우는 주제에 먼저 총을 뺏고 팔다리를 부수고. 체격이 자기보다 훨씬 큰 남자랑 싸우는데도 살의는 비토가 훨씬 강해. 그러면서도 급소 먼저 때리는 게 아니라 살려두고 고통을 주려고 하고 있지. 기독교의 성인들이 순교하면서 당한 온갖 스펙터클한 고문처럼. 이건 확실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네. 한편 나는 정신이 잠깐 돌아온 덕에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았어. 관자놀이에 총이 겨눠진 상태에서 무슨 무모한 짓을 하려고 했담. 그것보다 지금은, 좋은 생각이 났으니까 먼저 쟤를 멈추는 게 좋겠어.
“그만 해, 비토.”
“선한 뜻이 내게 있사오니 오직 의로 말미암아 나는 싸우나이다!”
“그만 하라니까. 너 눈이 맛이 갔다. 무슨 이단 심문관이냐.”
도저히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간신히 일어나서 팔을 붙잡고 나서야 겨우 비토를 진정시킬 수 있었어.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지만, 이해 안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하냐.
“죽이지는 마.”
“구제할 길 죄인한테는 자비를 베푸는 게 죄야! 불과 역경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는 사냥꾼과 고문 희생자의 수호성인이시자 가정불화의 구난성인 성 에우스따치오께서 말씀하시니 악인을 척결하는 망치는 멈추지 않나이다!”
“누가 자비를 보이랬어. 그냥 좀 멈춰 봐. 생각이 있어.”
네가 아까 한 말을 듣고 뭔가 생각난 게 있다고. 그래, 이제야 말을 듣네.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선한 뜻이라면.” 하면서 망치를 내리지. 선한 뜻이라는 말만 들으면 이제 가슴이 쿡쿡 쑤시는 지경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할 일을 하겠어. 어이, 아저씨. 망치로 심하게 얻어맞은 건 아는데 아직 정신은 있죠? 휴대전화 좀 내놔 봐요.
“휴대전화는 왜?”
“가만있어, 비토. 탐정의 수호성인한테 기도나 해 줘.”
“성 미카엘께서 경찰의 수호성인이시긴 해.”
그건 불길하기만 하고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귀찮게 하는 것보단 옆에서 방언으로 조잘거리는 게 차라리 낫지. 여기 인터넷은……, 오! 의외로 잘 터지네. 과학기술 만세야. 이걸로 좀 찾아볼 수 있겠어.
“뭘 찾아볼 건데?”
“아까 네가 얘기했잖아. 물고기 수랑 사람 수가 똑같다고.”
“우연이라면서.”
우연이긴 우연이지만 적어도 추리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영감을 줄 정도는 되잖아. 정말로 이 자리에서 사람이 두 명 죽었다면? 이 넓은 숲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고 들키지 않게 버릴 완벽한 장소도 알고 있어서 두 명이나 죽인 다음에 버렸다면? 그리고 자기가 낚시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수를 물고기 모양으로 기록해 뒀다면? 아니, 낚시꾼이 아니지, 그것보단,
“킬 마크가 아닐까.”
“킬 마크? 전쟁 영화에 나오는 거?”
“그래, 전쟁. 아르덴 숲은 2차 대전 격전지였잖아. 어디 보자, 아르덴 대공세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어쩌면 저 스마일 마크는,”
“참전했던 부대의 마크일 수도 있겠다!”
스마일 마크를 쓴 부대는 없었겠지만, 애초에 저렇게 눈도 찢어지고 입도 커다란 걸 스마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일 수도 있지. 이를테면 이건 어떨까? 아르덴 대공세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국의 106 보병사단 마크. 동그라미 안에 사자 얼굴.
“이거 비슷하지 않아?”
사자를 섬세하게 새기지 못하고 대충 형태만 그렸다고 보면, 문제의 마크는 칼자국이 여기저기 난 스마일이 아니라 갈기가 돋친 수사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의견을 말했더니 비토가 성 미카엘한테 막 기도를 하면서 폴짝폴짝 뛰었어.
“그렇구나! 범인은 2차 대전 참전자일까?”
“그렇다고 하면 나이가 너무 들었지. 아마 참전자인 아버지라든가 그런 사람한테서 들은 얘기가 일종의 정신이상 때문에 망상으로 발전했을 거야. 대공세 때 106 보병사단은 독일군한테 패배해서 항복하고 포로가 됐거든.”
“그럼 이 사람은 죽여도 돼?”
왜 갑자기 그 쪽으로 가냐. 애초에 죽이지 말라고 한 이유는 따로 있단 말이야. 지금부터 이 사람을 미끼로 써서 진짜 범인을 잡을 거야. 그래, 이게 선한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어. 선한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
 
선한 의지가 하시는 일이란 이런 거야. 불쌍하게 얻어터진 우리의 죄 지은 아버지를 묶어서 호숫가에 앉혀 놓고, 나랑 비토는 멀리 숨어서 총으로 위협하는 거야. 계속 소리를 지르도록. 그것도 이런 식으로.
“포로가 탈출했다! 포로가 탈출했다!”
덧붙이자면 전부 독일어로 말하게 했어. 처음엔 독일어를 모르는 것 같았지만 권총은 때로는 최고의 학습도구지. 만일 범인이 추리대로 전쟁의 망령에 사로잡힌 작자라면, 그것도 자신을 궤멸한 부대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찾아올 거야. 그리고 호수를 건너 도망치는 적을 끝까지 쏘아 죽이는 저격수처럼, 망상 속 자신의 부대를 궤멸시킨 독일군을 반드시 죽이려고 할 거야.
“운이 좋을 때 얘기지만.”
적어도 비토는 내 추리에 만족하는 것 같더라. 사이코한테 반감을 사고 싶지는 않으니까 잘 된 일이지. 그렇게 풀숲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비토가 갑자기 얼굴을 이쪽으로 내밀면서 말을 걸었어.
“있잖아, 아까 눈을 봤어.”
“그런 것도 보고 있었냐. 눈에 뵈는 거 없이 때리던데.”
“그 사람 말고 네 눈 말이야. 아까 붙잡혀있을 때 봤어.”
이런, 내가 맛이 갔을 때 얘기네. 별로 듣고 싶지 않아. 특히나 이렇게 자신만의 괴상한 도덕 철학으로 무장한 사람한테는 말이지.
“ㅡ네 잘못이 아니야.”
뭐가?
“눈을 보면 알아. 악마 같은 눈. 너도 죄를 지었구나?”
잠깐, 잠깐. 그래서 뭘 어쩌려고? 내 눈에 일렁이는 광기를 봤으니까 이제 나도 망치로 때려죽이려고?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죽지는 않을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하지만 각오를 굳혔을 때 나온 말은 내 생각보다 훨씬 터무니없었어.
“어쩜 이렇게 성 율리아노 자선가랑 똑같을까…….”
뭐라는 거야, 도대체.
“너도 마찬가지야. 악마의 눈이지만 선한 뜻이 분명히 있잖니. 성 율리아노 자선가께서는 저주에 걸려서 자기 부모를 살해하셨지만, 그 후 회개와 선행을 통해 용서를 받으셨지. 선한 뜻을 가진 사람은 전부 그래. 아무리 과거에 죄를 지었더라도 언젠가는 빛의 길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선한 뜻 같은 소리 작작 해라.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너, 나랑 같이 일하지 않을래?”
아니, 그런 소리였으면 안 해도 됐는데. 비토는 이제 내 손을 꼭 붙잡고 눈을 반짝이면서 정말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어.
“내가 도와줄게. 네 마음속의 악을 정의로운 곳에 쓰도록. 나랑 같이 이 세상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가자. 악인을 척결하는 망치가 되자. 분명 굉장히 은혜로울 거야!”
그러니까 그런 헛소리는……, 아까는 내가 선한 뜻에 이끌려서 여기에 왔다더니, 이젠 같이 나쁜 놈들 때려잡자고? 내 마음 속에 선한 뜻이 있으니까? 아직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어차피 난 답을 모르잖아? 확실히 이 녀석 말대로라면 앞으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죽여도 되긴 하겠지. 그건 정당방위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애도 이해는 해줄 거야. 그래, 분명히 나쁜 방법은 아니야. 틀렸다고 증명할 수도 없어.
“아, 왔다!”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왼쪽으로 몇 십 미터 떨어진 호숫가에서 기어 나오는, 온 몸에 나뭇가지를 꽂은 괴물과도 같은 누군가. 손에 든 건 라이플인가.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우리의 미끼는 계속 독일어를 외치다가, 또 외치다가,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풀썩 쓰러지고,
“지금이야!”
저런 총이라면 장전해서 조준하기 전에 달려드는 수밖에! 비토는 빛처럼 빠르게 날아서, 정말 놀라운 속도로 로브 안에서 망치를 꺼내들고, 성 비토 어쩌고 외치면서 문제의 범인에게 달려들었어. 총이 하늘로 날아가고 망치가 빛나고, 오, 저런. 범인도 나이프를 들고 있네. 엉망으로 자란 머리카락이랑 수염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는 분명 광인 특유의 독기가 서려 있겠지. 짐승이 싸우는 것처럼 치열한 싸움이었고 나는 그저 바라보면서,
응, 열정적이야. 인정해. 저 비토라는 사람은 분명히 진심으로 싸우고 있어. 자기가 믿는 선한 뜻에 따라서. 그렇다면 정말로 두려울 게 없겠지. 나처럼 고민할 일도 없을 거야. 선한 뜻에 따라 악인을 벌하는 삶, 그걸 인정한다면, 내가 선한 뜻에 이끌리고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확실히 편하겠지,
다만,
다만,
호숫가 덤불 사이에 가만히 앉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어. 분명히 나는 고민했지. 나아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그리고 비토의 말이 하나의 답인 것 또한 분명해. 다만, 그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닌 것 같아.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저런 눈부신 일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 덤불에서 뛰쳐나왔어. 소리를 지르면서.
총을 놓친 상태에서 한명이 더 튀어나오면 범인은 어떻게 반응할까? 내 예상대로였지. 범인은 숲속으로 도망치고 비토는 나를 홱 돌아봤어. 와아, 저 광기에 찬 눈.
“일단 쫓아가자!”
이렇게 말하면 안 들어 줄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나와 비토는 범인을 쫓아 숲 속을 달렸어. 힘들긴 하지만 전부 계획대로야. 왜냐면 나는 이 자리에서 범인을 죽이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았으니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게 있잖아. 범인의 은신처는 어디지? 왜 킬 마크가 하필이면 물고기였지? 그리고 왜 지금 도망치면서 혼잣말을 하는 것 같지? 어쩌면 범인을 따라가면 그 의문을 풀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탐정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이건 알아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도착한 곳은 깊은 숲 속의 작고 낡은 텐트. 범인은 은신처에 도착하자마자 뒤돌아서서 나이프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비토의 로브를 스쳤을 뿐이고, 망치는 제대로 내리꽂혔어. 죽었을까, 아니면 기절한 걸까. 별로 상관없게 됐네. 왜냐면 지금 안 죽었더라도 비토가 완전히 박살을 낼 테니까. 쟤는 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이 은신처를 조금 더 둘러봐야겠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텐트 옆의 커다란 나무였어. 껍질이 반쯤 벗겨져 있고 물고기 표시가 엄청나게 많았거든. 여기서 이렇게 많이 죽였다는 뜻은 아닐 거고, 아마도 지금까지 죽인 사람의 수를 따로 기록해둔 거겠지. 그런데 이 물고기들은 왜 이렇게 새겨져 있지? 쭉 늘어놓은 게 아니라 두 개, 세 개, 네 개, 여섯 개, 두 개, 세 개 하는 식으로……,
그 순간 왜 내가 휘파람을 불 생각을 했는지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아. 물고기 모양이 쭉 늘어선 게 악보처럼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물고기를 보니까 낚시터가 떠올라서 휘파람 부는 여자애가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지.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야. 이렇게 불고, 저렇게 불고, 박자를 조금씩 바꾸다가,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어. 어쩌면 방금 망치로 박살난 사람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내가 방금 범인에 대해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무슨 소리야?”
고문을 마치고 근처 나무에 기대서서 안경에 튄 피를 닦던 비토가 물었어. 와아, 저 천진난만한 얼굴 좀 봐라.
“아까부터 좀 이상해. 건강이 안 좋은 건 알겠지만, 갑자기 튀어나와서 도망가게 하고.”
이건 좀 뜨끔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얘기하지 말자.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니까. 이 물고기들을 봐. 이건,
“그래도 난 널 믿어. 뭔가 생각이 있는 거지? 선한 뜻으로 말하는 거지?”
갑자기 그렇게 눈부시게 웃지 마. 선한 뜻 같은 건 집어 치우고 물고기나 보란 말이야. 이 개수들은 단순한 킬 마크가 아니었다니까? 무슨 소리냐는 표정 지을 거면 설명이나 들으라고.
“둘 셋 넷 여섯 둘, 이건 그냥 죽인 사람의 수가 아니야. 악보라고!”
“무슨 악보?”
“물고기가 나오는 노래의 악보. 낚시꾼이 물을 흐리게 해서 송어를 잡고, 그 광경을 화자가 씁쓸하게 바라본다는 내용의 시를 가지고 슈베르트가 만든 음악의 악보. 『송어』의 악보에 나오는 마디 하나당 음표의 수였어.”
“그래서? 어차피 죽었잖아.”
“그게 아니니까 그렇지. 아까 막 혼잣말하고 있었잖아! 품 안을 뒤져 봐!”
비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박살난 남자의 품을 뒤졌는데, 젠장, 역시 예상대로였어! 반쯤 으깨진 무전기가 품에서 데구르르 굴러 떨어졌어. 그리고 텐트를 확 열어젖혀 보면 거기에는 불법 무선용 장비가 잔뜩.
“이 사람은 그냥 군인이었어. 사령부는 따로 있었던 거야.”
“무슨 사령부? 누군지 알아?”
“알 것 같아. 아까 낮에ㅡ”
 
그 순간 들려오는 소리.
 
익숙한 휘파람 소리.
둘 셋 넷 여섯 둘.
거울 같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살보다도 더 빨리 헤엄쳐 뛰노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아채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비토가 서 있는 나무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두 손. 가죽장갑을 낀 손에서는 뭔가 반짝반짝 빛나고, 홱 당겨지고, 비토의 눈이 동그랗게 됐다가 입을 벌리면서 헐떡이고, 손발을 버둥거리고, 안경이 떨어져 나무뿌리에 부딪히며 망가지고, 아하, 저건 낚싯줄이네. 낚싯줄로 목을 조르고 있어. 그렇다면 역시 내 추리가 맞았던 거네.
나무 뒤에서 슬쩍 모습을 보이는 얼굴은 역시 익숙했어. 인상적이던 동그란 안경을 안 끼고 있었지만 어깨까지 오는 풍성한 갈색 머리는 그대로 느긋하게 흔들면서, 휘파람으로는 슈베르트의 《송어》를 즐거이 불면서, 낮에 호숫가에서 낚싯줄로 생선의 목을 조르던 낚시꾼이 밤의 숲 속에서 같은 낚싯줄로 비토의 목을 조르고 있었어. 한 곡이 끝나고 팔다리가 축 늘어지고, 나무 뒤의 얼굴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어. 타오르는 광기와 선명한 놀람을 눈에 담고서.
“와아, 아까 물에 빠졌던 애잖아.”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친근한 울림을 목소리에 담고서.
“저렇게 멋진 눈을 하고 있을 줄이야.”
 
누군가는 내 눈에서 악마와 싸우는 선한 뜻을 봤지만,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것을 보더라고. 하기야 다른 걸 읽어낸 사람들도 있지. 자기 예전 아내를 본 사람도 있고,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기 영혼을 팔아먹다시피 한 사람도 있고. 그리고 지금 나무 뒤에서 실실 웃고 있는 사람이 내 눈을 통해서 본 건 아마도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광경인 것 같네.
“불타고 있잖아.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사람이 죽는데도 태연하게 불타오르고 있잖아. 멋져, 아주 멋져.”
왜 내 눈을 보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되는 걸까. 아니, 절반 정도는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들이었지만. 미친 사람을 끌어당기는 파장이라도 나오는 모양이지.
“원래는 송사리 둘 다 죽일 생각이었지만, 이건 깜짝 놀랐는데. 너 마음에 들었어. 이름이 뭐야?”
죽일 생각이었다면서 별 걸 다 물어보네. 난 적어도 내 사랑하는 플레시아 네아르티카의 부모님을 죽일 때 이름을 먼저 묻는 짓은 안 했다고. 그러면 진짜 미친 것 같잖아. 게다가 난 여기 사람들한테 이름 말하는 걸 싫어해. 엄청 웃기게 발음하거든. 내 발음을 비웃는 웃기는 별명을 쓰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라고.
“푸파.”
“이상한 이름이네.”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그냥 그렇게 불러.”
그렇게 말해도 불만족스러운 표정. 낚싯줄을 풀고, 비토의 차가워진 몸이 풀썩 쓰러지고, 이상한 여자애는 나무 뒤에서 나와서 가볍게 앞으로 걸어 나왔어. 소풍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뿐사뿐. 미소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 조금 더 가까이 와라, 조금만 더. 오늘은 헛소리 복용량을 다 채워서 더 들으면 곤란하거든, 한 발짝 더, 좋아,
“이상한 이름이란 건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이야. 지루한 말을 더 내뱉기 전에, 아직 손에 칼은 들려 있으니까ㅡ
“아, 그 전에.”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어라, 하는 사이에 칼은 허공을 갈랐어. 뭐야? 피했다고? 이걸 피했어? 라고 생각하려는 순간 손목에 감기는 차갑고 단단한 촉감. 순식간에 팔을 뒤로 돌려서 묶어버리고. 어이없을 정도로 빨리 제압당해 고꾸라진 내 앞에 녀석은 자신만만하게도 서 있어.
“혹시라도 이상한 마음 품지 마.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읽히니까.”
“광신도 다음엔 초능력자냐.”
“초능력자? 그럴 리가.”
뭐가 재미있다고 웃어. 난 지금 하나도 재미없거든. 묶여 있는 건 정말 싫어한단 말이야. 앞으로의 지루함을 보장하니까. 센서는 죽어라고 삑삑 울리는데 브레이크의 나사가 엄청나게 세게 조여져서 아예 움직이질 않는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되면, 정말, 정말로 나중에는 참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니까, 그래, 지금처럼,
“너 방금 무서운 생각 했지.”
어, 뭐야. 정말 초능력자냐.
“초능력자 아니라니까. 그저 네 마음이……, 이해가 갈 뿐인 걸.”
헛소리. 차라리 초능력자라고 해라. 도대체 누가 누굴 이해한다는 거야.
“하는 짓만 봐도 알 수 있어. 너, 사람 죽인 적 있지?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도 마. 네가 하는 거 보면 딱 나오니까. 충동을 참을 수가 없지? 방금 표정만 봐도 답이 나온다니까.”
이해는 무슨, 이해할 리가 없잖아. 엄마도 아빠도 교수도 누구도, 단 한 명 빼고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결국엔 나조차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데.
“널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었지? 그런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지? 다 알아. 왜냐면 나도 그랬거든!”
웃기고 있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하지만 녀석은 말을 멈추지 않았어. 그저 계속 말했어. 난 듣기 싫은데, 말이 되는 이야기일 리가 없는데, 그런데 단지 그 말들이, 그 헛소리들이 지나치게, 정말로 지나치게 정확할 뿐인데.
“있잖아, 푸파? 네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 그 모든 고민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태어나서 살아가는 걸까, 왜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는 걸까, 살의로 가득한 괴물인 나를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까, 그런 것들 있잖아?”
정확해. 불가능하리만치 정확해. 말도 안 돼. 설마, 그럴 리가,
“ㅡ그런 건 전부 살인마의 성장통 같은 거야. 우리 같은 살인마가 커가면서 불행하게도 한 번씩은 겪는 아픔이지. 하지만 이젠 끝났어. 걱정할 필요 없어.”
정말로 날 이해하고 있다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저렇게나 자신만만하게, 모든 걸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그 애 말고도 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건 환각인가, 아니, 이게 현실이야?
 
“오딜 그라이프라고 해. 앞으로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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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이어집니다. 길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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