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봄의 이야기

언리밋 0 1,920
"많이 따뜻해진 것 같지만, 아직 쌀쌀하네," 

이맘 때, 여기서 너는 그렇게 중얼거렸었지.

.
.
.

지금, 너는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 걸까.


벚꽃이 만개한 언덕 아래에서 너와 잡담을 했던 날들. 뭐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친구 이상으로 좁혀지지 않았던 거리감. 그런 미묘한 관계에서, 그 관계를 좋아했었지, 너는.

어디까지나 친한 친구로서─ 성별만 다른 친구로서, 그런 관계를 좋아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실은 외톨이었어. 한 줌도 안 되는, 그저 가식으로 가득 찬 '친구'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이뤄진 관계. 그런 가식의 한 가운데에서 때로는 혼자 울었던 적도 있었지만... 글쎄, 너를 만나고서는, 약간 변했지.

비관적으로만 보이던 세상에서 한 줌의 희망을 찾은 느낌이었어. 네가 편했어. 처음으로, 먼저 손을 내뻗어서 닿았던 인연이라는 것이 더욱 기뻤어. 그저 너와 같이 걷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그랬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일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어.


그러다가 자각했어.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걸.'

그렇지만,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했었던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을 무시한 게 되어버렸으니까. 어디까지나 친한 친구, 그 곳에서 머무는 관계를 바랐던 너와 나, 그리고 변해버린 나─


평범하게, 한 마디.

그리고 너는 대답했지. "...미안," 그 한 마디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고, 너에게 감사했어. 적어도, 내 감정을 이해해줬으니까.



졸업을 하고 나서, 내가 등을 돌리지 않고, 내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갈 수 있게 해 줬으니까.

그렇지만 잊는 건 괴로운 일이야. 응, 그래... 지금처럼, 그 날, 너무나 시시하게 내뱉었던, 너를 좋아해라는 말을 내뱉었던 벚꽃이 만개한 그 언덕에서 너를 잊지 못한 채, 이렇게───



쭉,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

바람이 분다.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오며,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를 흔든다.


수없이 떨어지는 벚잎의 비 아래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볼을 타고 흐르는 듯 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미안해.

너라면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거야.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정말, 정말 미안해..."

.
.

그럴 필요 없는데, 너무나도 상냥한 그 모습이 기억의 한 편에서─

희미해져갔다.


잊기, 싫어. 그렇지만, 이젠 미련을 버릴 때니까.


그러니까, 한 발짝 더 내딛는다. 과거에서 허우적대지 않는다. 추억은 추억으로서 남겨둔다.

그녀와 다시 만난다는, 그런 소설같은 일은───


없을테니까.




=================================================

-ㅅ-...

Author

Lv.1 언리밋  3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7 애드미럴 샬럿 2 폭신폭신 07.30 2007
166 검은 나비의 마녀 댓글1 블랙홀군 07.17 2098
165 애드미럴 샬럿 1 폭신폭신 07.15 2158
164 섬 저택의 살인 9 댓글2 폭신폭신 07.06 2070
163 섬 저택의 살인 8 폭신폭신 07.04 2143
162 네버랜드 - 3. 엄마? 마미 07.03 2100
161 섬 저택의 살인 7 폭신폭신 07.03 2063
160 네버랜드 - 2. 알브헤임 마미 07.02 1989
159 섬 저택의 살인 6 폭신폭신 07.02 2084
158 섬 저택의 살인 5 폭신폭신 07.01 1997
157 도타 2 - 밤의 추적자 팬픽 Novelistar 06.30 2040
156 섬 저택의 살인 4 폭신폭신 06.29 1938
155 네버랜드 1. 웬디 그리고 피터팬 마미 06.28 1903
154 라노벨 부작용 다움 06.27 2069
153 파리가 사람 무는거 본적 있어? 댓글2 다움 06.27 2383
152 카라멜 마끼아또, 3만원 어치 민간인 06.26 2139
151 섬 저택의 살인 3 폭신폭신 06.26 1960
150 섬 저택의 살인 2 폭신폭신 06.24 1897
149 섬 저택의 살인 1 폭신폭신 06.23 1901
148 무제 민간인 06.22 2103
147 발을 무는 악마 댓글6 작가의집 06.19 2226
146 [본격 휴가 나온 군인이 쓰는 불쌍한 SF 소설] 나방 (#001 - 강산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 레이의이웃 06.11 2111
145 인문혁명 댓글2 Tongireth 06.11 2321
144 손님을 맞는 이야기. 폭신폭신 06.05 2050
143 훈련소에서 댓글1 폭신폭신 05.25 2136
142 [공모전에 낼 소설 초안] 꿈, 혁명, 그리고 조미료와 아스피린 (1) 댓글1 BadwisheS 05.19 2228
141 학교에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3 2076
140 세달만에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2 1898
139 뚜렷 한흔적 댓글2 다움 05.10 2152
138 Spinel on the air(스피넬 온 디 에어) - 프롤로그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4.26 1968
137 마지막 약속 댓글3 안샤르베인 04.18 2095
136 빛이 지는 어둠 속 작가의집 04.14 2254
135 아름다웠던 하늘 김고든 04.10 2190
134 이별의 아침 아이언랜턴 04.09 1938
133 따뜻함을 사고 싶어요 다움 04.09 2094
132 Evangelion Another Universe 『始』- Prologue 벨페고리아 04.08 1889
131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2 RILAHSF 04.04 2076
열람중 어느 늦은 봄의 이야기 언리밋 04.03 1921
129 The sore feet song 블랙홀군 04.02 1976
128 짧은 글 댓글2 다움 03.27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