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6X6 소설제 출품] 보드카, 보르쉬, 카츄샤 - director's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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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 보르쉬, 카츄샤.

  코르순-체르하시 포켓, 우크라이나. 1944년 1월.
  보드카. 보르쉬. 카츄샤.
  주어진 이 세가지 키워드 중에서, 우리는 최대한 빨리 하나의 가짜를 판별해 내야 했다.



  끈질긴 소련 놈들은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모든 남자를 최전선으로 보내고, 공장을 시베리아로 보내고, 남자들 대신에 아낙들을 그 공장에 근무시키면서까지 버텨내더니 결국 스탈린그라드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이후 놈들은 기세를 타고 전선을 밀어붙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드니에프르 강을 건너있었다. 건너 있었을 뿐이랴, 북쪽의 우군 전선은 한참을 더 밀려났기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코르순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양 쪽에서 적을 마주하는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코르순-체르하시 포켓이라고 불렀다 - 마치 주머니에 들어와 있는 모양으로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사령부가 철수 명령을 내려 우리가 이 궁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허락해주기만을 기다리며, 한편으로는 적이 우리의 머리에 개머리판을 내려치기위해 진격을 시작할 그 시점을 파악하려 애를 썼다. 그 와중에, 적의 암호를 감청하기위한 세가지 키워드를 알아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키워드 그 자체가 통째로 굴러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지나가던 소련의 연락병을 한 놈 잡았는데, 이 녀석이 용케도 키워드를 지시하는 것이 틀림없는 쪽지를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에 감사하며 그 쪽지에 드러난 수수께끼같은 문장들을 통해서 키워드를 유추해 보기 시작했다.

  첫번째 메모는 이것이었다.
  '러시아의 모두가 언제나 너무나 원하는 것.'
  더 생각할 것도 없다. 그 술고래들이 원하는 거라고는 술밖에 더있냐고.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그 술 말이야. 첫번째 키워드는 틀림없이 보드카다.
  두번째 메모는 이것이었다.
  '러시아의 모두가 언제나 맛있게 먹는 야채 스프.'
  바이에른 출신의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우리 중에는 바르샤바에 한참 머물었던 녀석이 있었고, 그 녀석은 해답이 보르쉬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러시아의 사람들이 즐겨먹는 붉은 야채스프라면 그것 밖에 없다고.
  세번째 메모는 뒷장에 씌어있었는데, 이것이었다.
  '전장으로 남편을 보낸 아내도 매일 밤 그리워하네.'
  소련 놈들은 분명 우리가 자기들 세상은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우리도 소련에 첩보선이 있고, 이 시기 가장 유행하는 노래 정도는 알고 있다. 전장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노래라면, 그것이다. 카츄샤다!

  그렇게 우리 정보반은 세가지 키워드 보드카, 보르쉬, 카츄샤를 추리해서 감청반으로 가지고 갔는데, 그 곳에서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잘못안 거 아니야? 키워드는 두개야. 아무리 보아도 두개 밖에 안들어간다구."
  우리 정보반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교활한 놈들 같으니. 분명 키워드 중에 가짜를 끼워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그래서 요 며칠 밤을 새어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는 오직 좋지않은 결과를 부를 뿐이었다. 우리가 답을 고민하는 사이에 적은 척척 공격 준비를 진행했고, 결국 우리는 이것저것 시험해 볼 시간마저도 빼앗기고 말았다. 적은 당장 내일이라도 쏟아져 들어올 기세라는 것이 척후로부터의 보고였고, 우리의 사령관은 오늘 중으로 정확하게 답을 맞춰내지 않으면 정보반 전원을 참호 일선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일이 이쯤 되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미개한 슬라브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잡아왔던 소련 연락병 녀석을 다시 끌고 왔다. 한참을 어르고, 협박해서 이 자가 헛소리를 할 수 없게 한 이후에, 세 키워드들을 보여주고 소련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한가지를 말하게 했다.
  "보르쉬."
  그는 즉시 대답했다.
  "보르쉬는 우크라이나가 원조잖아, 이 바보들아."
  그리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 소련 포로는 의자에 묶인 채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누가 바보라는 거야. 우리가 소련을 모를 지는 몰라도 지금 자신의 처지와 당장 닥쳐올 주먹까지 모르는 자네에게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구.

  23일 해질녁.
  정보반은 자신만만하게 감청반에 보드카, 카츄샤, 두가지 키워드를 전달했다. 그 날 자정, 감청반은 그 두가지 키워드를 이용해 적의 공격 계획일은 1월 29일이라고 보고했다. 이 정보는 감청반에서 곧바로 각 부대로 하달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해도 뜨기 전에,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안심하고 모두가 잠들어있던 바로 그 순간에, 굉음과 함께 감청반 막사를 붉은 별을 단 전차가 밟고 지나갔고, 정보반 전 인원은 잠이 덜 깬 부스스한 모습 그대로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적의 정보장교는 우리들이 어디까지 자신들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인지를 알기위해 우리들을 시베리아로 보내기 전에 꽁꽁 묶어 테이블에 앉혀놓고 심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야기해주시오. 우리가 어디에서 틀린 거지?"
  나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듣고, 소련군의 장교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느리게 흘러나오는 그의 말을, 통역이 하나하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옮겨갔다.
  "우크라이나 - 키에프는 모든 러시아인의 마음의 고향이야. 타지가 아니라네."
  "그렇다면 가짜는?"
  "가짜는 섞여있지 않았어. 뒷면의 세번째 메모는 그저 추가로 붙는 설명이었던 거야 - 첫번째 힌트에말이지."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소련의 여자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거든. 새벽부터 눈 덮인 공장에서 맨손으로 소총을 조립하던 아내들이 백만리 떨어진 곳의 술주정뱅이를 그리워할 틈이 있겠나? 자정이 넘어서 집에 돌아온 그들이 원하는 건 피로와 추위를 일거에 물리칠 한 잔의 보드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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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님이 개최하셨던 6X6 소설제에 출품했던 졸고을 최종적으로 손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퀄리티로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6X6 소설제 출품작이 전부 날아가게 생겼기에(...) 백업을 핑계삼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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