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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겨울의 어느 날 밤, 중부 유럽의 어떤 침엽수림 속에서 한 여인과 아이를 업은 사내가 동쪽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목덜미와 등은 우산 없이 비를 맞은 것처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자신의 체중에 아직 잘 뛰지 못하는 네 살배기 딸아이의 몸무게까지 더해진 까닭에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뛰면서 덥혀진 몸이 좀처럼 식지를 않았다. 여인은 여자의 몸으로 사내의 뜀박질을 무리하게 따라잡다 넘어지고 굴렀는지 무릎에서 피가 스며 나왔고 전신에 흙먼지나 낙엽을 붙이고 있었다.
여인이 숨을 가쁘게 헐떡거리며 간신히 쥐어짜낸 목소리로 사내에게 청했다.
사내는 자신과 여인이 지나온 길을 초조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그의 아내를 독려했다. 두 사람은 근처의 나무 그루터기나 바위에 앉아서 굳어질 대로 굳어진 다리와 쓰라린 발바닥을 추스르고, 품속에서 페트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지나온 숲 속 저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횃불 같은 대여섯개의 광원이 나타났다. 저쪽이다! 라고 외치는 소리, 창칼의 자루와 갑주의 장식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수십 명의 뜀박질 소리가 두 사람 곁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휴식을 취하던 부부는 다시 일어나 동쪽으로 달렸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빽빽이 들어차있던 나무들의 밀도가 서서히 옅어지더니 침엽수림이 끝나고 탁 트인 초원이 나왔다. 초원의 지평선에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가로등이 늘어서있었고 늘어선 가로등을 따라 철조망이 놓여있었다. 침엽수림에서 초원을 향해 뻗어있는 오솔길은 철조망에 달린 관문으로 막혀있었다. 부부는 오솔길을 따라 초원을 가로질러 철조망 지대로 향했다. 두 사람이 달려간 길가에 있던 나무로 만든 이정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독일민주공화국 국경 초소까지 앞으로 500m'
두 사람을 쫓던 무리도 숲을 빠져 나와 초원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철조망 지대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들을 쫓던 무리에서 형형색색의 빛나는 구체가 밤하늘을 가로질러와 두 사람에게 쏟아졌다. 얼핏 보기에는 아름다운 빛이었지만, 실은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는 치명적인 살인 마술의 발사체였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던 여자아이의 눈에는 그 빛이 그저 예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 빛에 닿은 아버지가 맥 없이 땅에 쓰러지기 전까지는.
여인은 쓰러진 사내에게 달려갔다. 슬프게도 남편의 숨은 이미 멎어버렸지만, 품 속에 있던 딸아이는 무사했다. 여인은 딸아이를 짓누르고 있던 남편의 주검을 밀어내고 딸아이를 등에 업고 다시 철조망을 향해 달려나갔다. 철조망 지대의 관문 뒤에 있던 콘크리트 탑의 꼭대기에 달린 서치라이트가 켜지고 커다란 빛 줄기가 여인을 비췄다. 여인은 한 손으로 딸아이를 업고 한 손을 하늘을 향해 크게 흔들며 외쳤다.
그제서야 철조망 지대를 돌아다니던 초병들이 곤경에 처한 모녀를 발견하여 관문을 열고 모녀에게 다가왔다. 초원을 가로지른 철조망 지대에 웨에에엥 하는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콘크리트 탑에 달려있던 것과 비슷한 서치라이트 수백개가 켜저 빛줄기들이 온 초원을 훑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를 살해한 무리들도 빛 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초병들은 모녀를 등지고 두 줄로 섰다. 첫 번째 줄의 병사들은 한 손에 든 폴리카보네이트 방패로 자신과 동료들과 모녀를 가리고 다른 손에 든 권총을 빼 들었다. 두 번째 줄의 병사들은 돌격소총을 장전하여 숲 너머 모녀를 쫓아오던 무리에게 겨눴다. 철조망 너머 콘크리트 탑에 있던 동료 병사들은 중기관총의 노리쇠를 당겨 숲 너머를 조준했다.
나지막한 바람소리만을 내며 날아오던 살인 섬광과는 다르게, 수백 수천의 주홍빛 선은 투카카카카카카 하는 굉음을 내며 밤하늘을 가로질러 숲 너머의 무리들에게 쏟아졌다.
먼발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모녀를 쫓던 무리들이 모두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예광탄이 그린 주홍색 선과 마술 섬광이 초원의 동서를 교차했다. 모녀를 지키던 초병들 몇몇도 쓰러졌다. 병사들은 모녀를 관문 너머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들이 관문을 지나 콘크리트 탑 옆에 있는 경비초소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푸른색으로 빛나는 섬광 하나가 그들의 발치에 내리 꽂혔다. 쾅 하는 파열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여자아이는 자신과 어머니의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총 든 아저씨들도 저 멀리 튕겨나가는 것을 보았다. 공중에 떠있던 자신과 어머니가 땅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여자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자아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귀청을 찢는 것 같은 총성도, 초원 양쪽에서 전투를 벌이던 이들의 함성도 모두 멎어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숨결도 멎어있었다.
에리카는 몹시 놀란 듯 커헉 하는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방바닥을 기어가서 방구석에 널브러져있던 책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아직 한밤중이었다. 일본인 기숙사의 기상시간은 6시. 잠을 더 청하기에도,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외국인 기숙사는 1인 1실이라 현관 폐쇄시간을 제외하면 일본인들처럼 별도의 소등/점등 시간을 정해놓는다거나 하는 생활 제한은 없다. 그러나 아침식사가 일본인들과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시간에 제공되기 때문에 이들과 비슷한 시간에 기상하는 것이 좋다. 아침식사는 어떤 메뉴가 제공될까? 에리카는 잡생각을 하며 부모님을 잃던 날의 꿈을 애써 잊으려 했다.
" 한동안 괜찮았는데... 역시 적지에 있어서 긴장해서 그런가 또 이 꿈을 꾸게 되네. "
에리카는 이 꿈이 싫었다. 행복한 기억은 절대 아니고, 떠올리고 싶은 기억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복잡하게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은 사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 비극은 그녀 혼자만 겪은 일도 아니었다. 2022년 학원도시가 일으킨 경제공황에 서방세계가 초토화되고, 그 와중에 유럽은 교회를 중심으로 중세적인 신정국가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마녀사냥이나 이단심문을 피해 유럽 밖으로 도망치다가 목숨을 잃었다. 철의 장막이라는 무시무시한 흑색선전에도 불구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국경에도 많은 난민들이 몰렸는데, 에리카의 부모님도 그런 사람들 중 일부였다. 에리카네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도 안타까운 비극이었지만, 인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다른 서유럽 난민 친구들의 사정에 비하면 자신의 처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의 직접적인 원수들은 국경 경비대원 동지들이 모조리 죽여버렸으니까.
다시 잠을 청하려던 그녀는 악몽을 꾼 이유가 적개심 말고도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 그러고보니 원래는 놈들에게 핵폭발을 안겨주고 같이 죽기로 해서 생활용품이 하나도 없었지... "
원래 그녀의 임무는 자살 공격, 자체 위력 100kt 짜리 핵탄두를 정신물리학적 수단으로 15mt 단위까지 끌어올려서 격발시키는 핵가방으로 이곳 7학구를 폭심지로 해서 학원도시 전체를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을 죽게 만든 사태의 원인제공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서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뿐. 그러나 그 임무는 어째서인지 장기간의 잡입/정찰 임무로 갑자기 변경되었고, -아마 기껏해야 레벨 1에 그치리라 라고 생각되던 그녀의 능력 커리큘럼 성취도가 제법 고수준에 이른 탓이 클 것이다- 장기간의 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그녀는 지금 심각한 생필품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의류는 오직 춘추복 교복 한 벌, 구두 한짝, 싸구려 책가방 하나. 기숙사 방 안에 있는 건 커튼 하나와 통신용 TV. 개인 소지품은 싸구려 장신구와 버스폰, 그리고 소음권총과 당원증이 들어있는 나무상자. 그것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그렇다, 그녀는 모포 한장 마저 없이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벽면에 기대서 잠을 자고 있었다. 딱히 적지에 있어서 무의식중에 적개심이 끓어오른다거나 하지 않아도 잠을 설치고 악몽을 꾸기에 딱 좋은 몹시 불편한 환경이었다. 토키와다이 외국인 기숙사는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 하에 일본인 기숙사에 제공되는 기본적인 가구류도 전혀 지원해주지 않았다. 대신 개인이 멋대로 구매할 수는 있었지만.
" 차라리 흙 바닥에 비트를 파고 자면 푹신하기라도 하지. 크으 빌어먹을... 아이고 허리야. "
내일 난수암호로 받은 새 관리자를 만나서 공작금을 수령하면 생필품부터 구비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불편하지만 애써 잠을 청하는 에리카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자본주의 국가의 시민이었고, 공산국가에서 성장해서 첩보기관에 몸담고 난 뒤 자본주의 국가의 문화에 대해 다시 교육을 받은 에리카였지만, 방금 그녀가 먹은 파르페라는 음식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메뉴였다. 적국문화 교관에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싸구려 식사를 하고 금값 같은 디저트를 먹기도 한다' 라고 진작에 배운 바는 있다. 그렇지만 그걸 단지 말로 들은것과 후식은 딱 후식 만큼의 값을 내다가 직접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를 먹고 대금을 지불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 하여튼 이 반동 놈의 부르주아지 새끼들... 무슨 놈의 군것질거리가 밥값의 세배나 되냐! '
파르페 한컵의 무시무시한 가격 때문에 관리자를 만나기로 한 곳까지 갈 때 쓰려고 했던 차비까지, 그러니까 그녀의 수중에 남아있던 공작금 전액이 날아가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도보로 이동하면서 지형 파악이나 해놓자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핏 보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친구 만나러 걸어가는 여중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상은 7학구 곳곳의 경비로봇이나 CCTV 시야각, 저지먼트와 안티스킬의 순찰 루트를 머릿속에 새겨두며 관리자와 접선하러 가는 무시무시한 슈타지 요원이었다. 걷고 또 걷던 그녀는 7학구 경계에 이르렀다. 이제부터는 지형파악이 별 의미가 없는 딱히 올 일이 없는 동네, 잡생각을 좀 해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했다.
" 아으으... 두 번은 안 먹는다 진짜. 아직도 입 안이 뻑뻑해. "
4800엔짜리 파르페는 에리카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무시무시한 달콤한 맛의 음식이었다. 생산/유통현장에 정신물리학적 수단이 도입되고 여러 가지 제도적 경제개혁을 거친 동구권은 지난 20세기에 비하면 경공업 소비재와 식료품이 제법 풍부해졌다. 그러나 원가절감을 위해 원료를 많이 아끼는 경향은 여전히 심해서 대부분의 군것질거리는 서구세계의 그것들보다 맛이 밋밋한 편이었다. 그런 것만 먹어오던 그녀에게 걸쭉한 농축 초콜릿 스프레드와 프리미엄 클래스의 딸기시럽이 잔뜩 들어간 파르페는 지나친 자극이었다. 사실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만 먹어도 온몸에 전율이 왔지만 4800엔이 아까워서라도 그녀는 마지막 한입까지 다 털어넣기로 했다.
' 그러고보니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참 기발하단 말야. 스도쿠 책하고 크로스워드 퍼즐 잡지를 난수암호표로 쓸 생각을 하다니. '
그녀는 어제 상관에게 받은 난수암호를 방과 후에 기숙사 방 안에서 혼자 풀 예정이었다. 만약 누군가 의미없는 수열을 들고 책을 뒤적거리고 있다면 딱히 지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시사채널 등지에서 잊을 만 하면 틀어주는 '간첩들의 수상한 행동 이모저모' 같은 내용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만약 능력 커리큘럼을 받아서 두뇌 연산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학원도시 학생들에게 그 장면을 잘못 보였다간 아예 현장에서 암호가 깨져서 신분이 발각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자메시지로 수열과 대조군을 받고 나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문자메시지에 적혀 있던건 편의점에서 팔고 있는 심심풀이용 스도쿠 책과 크로스워드 퍼즐 잡지. 스도쿠 책의 정답이 수열이고 같은 페이지의 크로스워드 퍼즐 배열이 문자조합이었다. 퍼즐을 즐기는 척 하면서 암호를 풀도록 한 것이다. 대놓고 친구들 앞에서 암호를 풀더라도, 심지어 막히는 부분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도 될 정도로 모양세가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지금 가고 있는 관리자와의 접선 장소 역시 방금 전 친구들과 파르페를 먹으면서 잡담을 해가며 알아낸 것이었다.
어느 새 그녀는 큰길에서 벗어나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청결의 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일본도 뒷골목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2m도 안되는 좁은 통로는 곳곳에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거나 지저분한 구정물 웅덩이가 있었다. 학생이 인구의 80%나 되는 도시 답지 않게 아무리 봐도 숙취와의 사투 끝에 토해낸 반 쯤 소화된 안주거리의 잔해도 있었다. 또 어떤 벽면에는 누렇게 늘어붙은 자국에서 지린내가 나고 있었다. 꽤 잘보이는 곳에 설치된 CCTV가 -그 밑에 상당히 사나운 글씨체로 적힌 쓰레기 무단투기 및 노상방뇨 금지는 덤 - 그곳을 찍고 있었는데 저기다 영역표시를 한 녀석은 어지간히도 급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물건에 꽤 자부심이 있는 놈이리라.
불결함의 도가니탕 속을 걷고 있던 에리카는 어느 지점부터 난데없이 삑 삑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골목길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벽면에 닿을듯 말듯 빠듯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미세한 비프음과 같은 파장의 진원지는 저 승합차인듯 했다. 학원도시 능력자의 AIM 확산역장이나 서유럽 광신도들의 마력과 다른 미세한 쿠르차토프 에너지로 구성된, 학원도시의 기계장치가 감지할 수 없는 파장. 그녀에게 '여기 같은 사회주의권 동지가 있소' 라고 알리는 신호였다.
“ 니콜라이, 안나, 미하일, 타티아나, 0375894156 – 야코프, 올가, 로만. “
승합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캐주얼한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장신의 슬라브인 두 사람이 내렸다.
" 어서오시오 메르켈 동무. "
" 반갑습니다. 카마라덴(독일어로 동지)...? " (우리말로 풀어쓰면 이름 다음에 동지 호칭이 붙지만 외국어를 그대로 말할때는 반대)
에리카는 아직 관리자의 이름을 모른다. 말꼬리를 올리는 그녀였다.
" 세르듀코프. 알렉세이 세르듀코프. 모스크바 루뱐카에서 왔소. 이쪽은 미하일 페트로프. 그냥 미하일이라고 부르시오. 이 동무는 그냥 평범한 육군 사병인데, 아 물론 투철한 사회주의 혁명정신과 소연방 제일의 기관총 실력을 자랑하지, 우리가 죽을 때가 되면 활약하게 될테지. "
" 아니... 평범한 육군 사병이 무슨 수로 적지 한복판에 침투를??? "
" 평범한 사병이라 평소에는 안가에서 한발짝도 못나가는 신세지. 이 동무는 오직 기관총 실력 하나 보고 호위병으로 붙혀둔것이오. "
길게 묻지 말라는 눈빛으로 말하는 알렉세이였다.
" 그건 그렇고... 임무가 갑작스럽게 변경되어 필요한것도 많고 공작금도 더 필요합니다. 모든 지원요청은 세르듀코프 동지께 하라고 들었습니다만? "
" 아아 그래. 내가 당장 동무에게 줄건 이것 뿐이오. "
알렉세이는 에리카에게 노란색 서류봉투 하나를 건냈다. 서류봉투를 쥘 때 바스락 하고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하니 들어있는건 별거 없는 모양이었다.
" 주요 감시대상에 대한 서류. 쿠르차토프 카드 한 묶음. 공작금... 5만 엔???!!! "
에리카는 특히 공작금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것이 참 많다는 표정으로 알렉세이를 쏘아보았다. 5만 엔이면 물가지수가 성층권에 걸려있는 제7학구 배움의 동산 안에서는 방금 그녀가 먹었던 파르페 10잔으로 끝나는 금액이다.
" 확실히 5만 엔입니까? 50만 엔 정도는 소요됩니다만 액수에 오류가 생긴건 아닌... "
애처로운 표정으로 알렉세이를 쳐다보는 에리카.
그러나 알렉세이는 에리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끊었다.
" 작전에 필요한 모든 물자는 합법 비합법 관계없이, 신분이 발각되지 않는 선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동무가 알아서 현지에서 조달하시오. 그리고 일단 주어진 쿠르차토프 카드 한장으로 동무가 지참했던 소음권총을 파기하시오. 아군 총기류를 적지에서 쓸 수는 없지 않소. "
" 다음번 접선은 3개월 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에 이루어질 것이오. 그때까지 메르켈 동무의 혁명적 분투를 기대하겠소. 그럼 이만. "
알렉세이와 미하일이 승합차에 올라탔다. 승합차의 뒷문이 탁 하고 닫히더니 그대로 시동이 걸리고 부릉 하는 경쾌한 엔진소리와 함께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버려졌다. 이건 분명히 버려진거다. 라고 에리카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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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물리학적 수단, 쿠르차토프 에너지, 전부 다 마술과 마력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얘네는 이걸 과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역시 모든 것은 경제적입니다.하하.
세계 패권을 장악하려는 학원도시 상층부의 수작질이었죠.
뭐 원작의 모습을 보면 작가가 뜬금없이 FTL을 학원도시에서 개발해냈다는 설정으로 작품을 스페이스 오페라로 바꾸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지만요. 무섭다 학원도시(...)
하지만, 학원도시 측에서 좀 삽질을 한 감이 적잖아 있는 것이, 사실 '기술' 이라는 건 판매가 되어야 이윤을 창출하는 거잖습니까. 의도야 어쨌건 자진해서 시장을 좁혀 버린 셈인데(원작에서는 '현대인에게 종교적 신념이란 건 일상 생활 속 기술의 편의를 포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고 언급하죠), 이게 과연 이득이 된 것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