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파 시리즈] 안트베르펜의 연인 ②

로크네스 2 2,654
 
1편에서 이어집니다.
 
-----
 
“먼저, 여러분이 죽여 버린 비극의 커플이 문제의 고양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유부터.”
이렇게 시작하면 되는 거겠지. 다들 집중해서 잘 들어주고 있다고.
“엉덩이를 비벼대고 시끄럽게 울고, 그 고양이는 발정기였어요. 게다가 이상한 걸 억지로 먹여져서 짜증도 난 상태. 고양이한테 다이아몬드를 삼키게 해서 빼돌린 건 좋았지만, 고양이는 주인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잖아요? 호텔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도망쳐버린 거예요. 이런 데 머물러 있다가는 여러분한테 잡힐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며칠이나 머물러 있었다는 건, 두 사람이 고양이를 마지막까지 찾지 못했다는 증거죠.”
“그럼 지금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거냐?”
“글쎄요,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억지로 삼키게 된 고양이라면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근처에도 고양이는 많으니까 짝을 찾더라도 근처에서 찾으려고 했겠죠. 쥐가 우글거리는 이 호텔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그래도 언제든지 도망칠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까 모두들 호텔의 창문을 전부 닫아주시지 않겠어요?”
정장 차림의 갱들이 일사불란하게, 고작 나 같은 꼬맹이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다가도 보스의 호통이 떨어지자마자 쥐들이 달아나는 것처럼 우르르 달려 나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어. 관광객들을 위해서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안트베르펜 시내 관광 따위보다 훨씬 낫다니까? 평생 주인을 따르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던 멍청한 파트라슈처럼 호텔 창문이나 닫으러 흩어지는 멍청한 개들. 응, 아주 보기 좋다고.
“그 동안 아저씨도 잠시 나가 계시지 않을래요?”
아니, 그렇게 수상하게 쳐다보지 말고요. 이 방에는 딱히 도망칠 구멍도 없잖아?
“가운에 땀이 차서 샤워를 좀 하고 싶을 뿐이에요. 생각도 마지막으로 정리할 겸. 제가 샤워하는 것까지 감시할 생각은 아니시죠?”
그렇게 해서 고빌라까지 방을 나갔어. 갱들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맛도 각별하지만, 갱단 보스를 움직이는 맛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내 말을 잘 듣는 거지? 흐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긴 하지만! 지금 신경 써야 되는 건 뭐냐면 말이야, 장갑에, 알코올이 좀 말랐는데, 최근에 안 사실인데 아무래도 알코올이 부족하면 ‘장갑을 끼고 있다’는 느낌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서, 그러면 자제력이 아무래도 부족해지고, 그래, 그렇더라고. 지금까지 많이 참았어. 절대적으로 지루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뭔가 상당히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 같은데 그걸 기다리기에는 지금 이 순간이 상대적으로 지루해서 그래.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래도 확실히 해두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응? 그렇지 않아? 알코올이 필요하고, 새 장갑도 필요하고, 그리고 자극이 필요해, 재밌는 일이 일어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걸 기대하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자극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가운을 한 번에 벗어던지고 속옷을 내팽개치고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이 호텔에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온수 조절이 엉망이라서 뜨거운 물을 틀면 불타는 물이 쏟아진다는 거야. 타는 물방울이 머리카락에 스며들어, 불길이 뺨을 타고, 목을 타고, 가슴을 지나 배를 불태우면서 다리를 향해, 아아, 고통스러워, 뜨거워, 아주 마음에 들어,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 같네.
 
김이 잔뜩 서린 거울을 닦아내면 샤워를 마친 꼬맹이의 모습이 보여. 악의로 가득한 눈, 그 애의 눈처럼은 결코 될 수 없는 색안경이 씌워진 커다란 눈이 거울면에서 춤을 추고 있어. 그래도 새까맣고 긴 머리카락은 물에 축축하게 젖어서, 이렇게, 이렇게 멋대로 흐트러뜨리고 나면, 그리고 눈을 좀 멍하게 뜨고 나면 내 사랑스러운 아자일 핑크 쥬빌리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전혀 아니네. 비슷하지도 않잖아. 저주의 인형이나 우물에서 기어 나온 귀신같은 모습인걸. 이런 어색한 모습은 빨리 지워버려야 한다고. 드라이기, 드라이기가 어디에 있더라? 아직 안 부숴버렸지?
머리가 길면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지루해. 그런데 왜 짧게 자르지 않느냐고? 글쎄, 이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누구한테서 들었느냐고?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나는 그 애의 흐물흐물 늘어지는 머리카락이 정말, 정말, 이 생머리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지만.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빨리 머리나 말리자고. 너무 지루해지기 전에. 드라이기는 점점 더 뜨겁게 데워져가고, 그와 비례해서 나는 점점 더 참을 수 없게 되고, 손톱을 세워서 전선 피복을 까득까득 벗겨내기 시작하고, 까득, 까드득, 머리가 어느 정도 말라갈 즈음에는 드러난 전선과 과열된 드라이기가, 스위치가 들어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그래, 불타라, 차라리 불타라. 온 사방에 알코올을 튀기면서 구석구석 닦은 손을 라텍스 장갑 안으로 밀어 넣고 나면 모든 준비는 완료. 이 절망적인 구속감, 훌륭해, 사라진 다이아몬드를 세상에 선보일 그 순간까지 어디 끈질기게 기다려 보자고.
 
샤워를 전부 마치고 방을 나섰을 때쯤, 과연 잘 훈련된 갱답게 호텔의 모든 창문은 고양이는커녕 쥐 한 마리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닫힌 채였어. 귀찮은 일을 시켰다고 아직도 짜증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야 내가 상관할 게 아니지. 왜냐면 내 뒤에는 보스가 있거든. 자기 인생을 걸고 얻어낸 다이아몬드를 찾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아저씨가 말이야.
“부하들을 시켜서 그 녀석들이 묵던 방은 물론이고 다른 방까지 다 뒤져봤지만, ‘아프리카의 연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가냐, 꼬맹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확실히 알겠어요. 고양이가 주인을 떠나서 바깥에서 길고양이들하고 뜨거운 밤을 보냈다면, 아마 지금도 길고양이들이 가장 많은 곳 근처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길고양이들이 가장 많이 있을 만한 곳이라면 당연히 음식도 많고, 음식 냄새를 맡고 온 쥐도 많은 주방이 아닐까요?”
그래, 호텔 주방. 이 따위로 쥐가 우글대는 데를 주방이라고 부르다니 정말 역겹지 않아? 베이컨 하나 더럽게 못 굽던 여기 요리사는 갱들이 들어올 때 다른 호텔 직원들하고 같이 총살당했지만 전혀, 전혀 동정심이 들지 않는다고. 자기가 구운 베이컨처럼 바싹 태워버려야 마땅해. 지저분한 주방 꼴을 보고는 권총 든 아저씨들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이제 여기서 나온 음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쓰레기를 입에 넣을 일은 다시는 없겠지. 마음 편하게 돌아다녀 보자고. 때가 잔뜩 낀 도마, 뭐가 묻은 식칼, 열어보고 싶은 생각도 안 드는 냉장고 사이를 쏘다니는 거야. 가스 밸브를 확인하는 거야-이렇게 하면 열리는 거였나? 비눗물을 발라보면, 그래, 이렇게 보글보글 올라오면 가스가 새는 거랬어. 이 싱크대는 언제 마지막으로 닦았던 걸까? 요리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미생물학 실험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머, 길고양이가 들어왔다! 야옹!
“야옹!”
거 아저씨들, 귀여운 여자애가 귀엽게 고양이 울음소리 낸다고 그렇게 쳐다보지 맙시다. 난 고양이 다루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요. 봐 봐요, 얘도 날 잘 따르지. 자기 동족의 피가 묻은 손가락 끝에 천진난만하게 뺨을 비벼대면서.
“이 애가 어디서 들어왔죠?”
“저쪽 열린 문이겠지.”
아하, 주방 뒤쪽으로 통하는 문이 있네. 나도 알고 있었어, 거짓말 아니야! 저 문을 통과하면 나오는 건 곰팡이가 핀 고기나 싹이 튼 감자 무더기. 그리고 사방에 찍힌 쥐와 고양이 발자국들. 사라진 고양이의 행방을 알고 싶거든 여기를 관찰해보는 게 좋겠지.
“어라,”
감자 포대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어. 고양이는 아니야. 고양이가 감자 포대에 들어가 있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 여기 감자 포대에 잔뜩 묻은 건 분명히,
“피다. 피가 묻어 있는데요?”
와, 다들 놀라는 거 봐! 당신들 아까 이 호텔에 잔뜩 피로 페인트칠을 해 놓고는, 이제 와서 감자 포대에 피 좀 묻었다고 놀라? 그리고 내가 보기엔 이건 사람 피도 아니야. 새하얀 고양이털이 근처에 떨어져 있거든. 호텔 사방에 튀어 있는 피랑은 다른 거야. 이건 고양이의 피야.
“아까 그 고양이가 하얀색이었죠, 분명히.”
피가 발견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핏자국을 따라가는 것! 핏자국은 감자 포대에서 이어져서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다가, 흐음, 옥외 냉동고 문 쪽에 묻어 있어. 가능하면 이 호텔에 있는 냉동고는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내가 보기엔 썩어가는 재료를 처박고 잊어버리기 위해 있는 거 같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한 번 더 열어보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자물쇠가 걸려 있지만 이런 건 문제가 아니니까 심호흡이나 하자고. 하나, 둘, 셋,
툭,
하고 발치에 떨어진 건 얼어붙은 허연 물체. 팔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은 채 눈은 둥그렇게 떠서, 배가 세로로 쭉 갈린 채로, 새하얀 털에 새빨간 피를 잔뜩 묻힌 채 꽁꽁 얼어버린 그건 분명히 영상 속 여자의 품에서 신경질을 부리던 고양이였어. 보스가 충성의 표시로 직접 하사한 고양이, 다이아몬드를 뱃속에 품은 채 여기까지 고생스러운 길을 온 고양이. 자아, 아저씨? 이게 찾으시던 고양이 맞죠?
“아프리카의 연인은 어디 있지? 다이아몬드는!”
“글쎄요, 저걸 뒤져본다고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누군가 고양이 배를 가르고 다이아몬드를 가져간 모양이에요. 저렇게 귀엽고 불쌍한 애를 저 꼴로 만들어서, 곰팡이 핀 음식밖에 없는 냉동고에 처박아둔 악마 같은 녀석은 도대체 누굴까?”
그리고 다시 흐르는 침묵. 고빌라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표정이야. 고양이 뱃속에 들어있어야 할 다이아몬드가 사라졌고,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아는 미지의 인물 A가 와서 고양이 배를 가른 다음에 물건만 챙겨서 도망쳤다는 해석도 가능한데, 벨기에 최대의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에서 도망친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부하들도 마찬가지 표정이야. 자기 인생을 도둑맞은 보스가 이제 얼마나 자기들을 쪼아댈지 생각하면 세상이 끝난 기분일 거 아냐? 하아, 이것 참. 다이아몬드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이쯤에서 “전 빠질게요!” 할 수도 없고.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어울려 줘야겠는걸.
“저기, 아저씨?”
그 해골 같은 머리 들어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요. 왜냐하면 힌트는 이미 전부 주어졌고, 불순물을 빼서 순서대로 나열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얘기는 즉,
“다이아몬드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 정말이냐?”
“호텔 밖에서, 둘이서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이해할 때가 온 거야.
 
부하들은 전부 호텔 안에서 대기. 나는 고빌라랑 단둘이 호텔 앞에 서서 해골을 올려다보고 있고. 고빌라는 한시라도 빨리 다이아몬드의 행방에 대한 내 추리를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나도 꼭 듣고 싶은 얘기가 있는걸.
“눈을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아까부터 계속 말이야. 내가 약을 먹었을 때도 쿨도어가 딱 저렇게 나를 쳐다봤다고. 게다가 지금은 약도 안 먹었는데, 아니, 호텔 조명이 영 부실해서 빛이 부족하니까 동공이 커지는 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 부담스럽단 말이야. 이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데에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닮았어.”
누구랑?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데?
“반군에……, 총을 잡기 전에, 고향에서 살 때 난 일찍 결혼을 했어. 거기선 흔한 일이었지. 작은 결혼식이었지만 술도 있고 고기도 있고, 그리고 그 애도 있었어.”
그렇게 말하는 고빌라의 눈빛은 갱단의 보스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그래, 이를테면 아까 거울을 쳐다보면서 어떻게든 내 사랑스러운 엠프레스 유제니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던, 그런 내 눈빛하고도 비슷했어. 지금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는 것만 같은.
“같은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줄곧 같이 살던 애야. 요리도 잘 하고 바느질도 잘 하고, 또 얼마나 잘 웃는지! 얼마나 큰 꿈을 꾸는지! 깨진 병유리를 다듬어서 보석처럼 만들면서 그 애가 그랬다고. 이게 진짜 다이아몬드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이런 다이아몬드 하나 가져 볼 거야. 하나만 있으면 우리 둘이랑 엄마 아빠랑 동생들이랑 전부 다 같이 커다란 집에서 매일 배불리 먹으면서 살 수 있을 거 아냐, 그래, 그렇게 말했다고. 그렇게 말할 때면 얼마나 눈이 반짝였는지. 꼬맹이 넌 모를 거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꿈을 꾸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하, 그런 얘기였구나. 내가 거울을 통해서 그 애를 보려고 한 것처럼, 이 사람은 내 눈을 통해서 옛날 아내를 보려고 했구나. 그것만이 아니겠지. ‘아프리카의 연인’을 손에 넣고, 팔지도 않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어. 자기 인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말이 맞는 거야. 이 아저씨한테 있어서 ‘아프리카의 연인’은 그냥 비싼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인생 전부, 잃어버린 고향과 잃어버린 아내와 잃어버린 미래의 커다란 집과 호화로운 식사, 그 모든 것이었을 테니까, 그것 참, 그것 참ㅡ
“지루한 얘기네요.”
장갑을 갈아 끼지 않았으면 아마 못 견뎠을 거야. 나한테서 누구의 모습을 봐? 그래서 나를 그렇게 쳐다봤던 거야? 그래서 나를 안 죽이고, 계속 내 말을 들어줬던 거야? 끔찍해라, 끔찍해라, 소년병 출신 깡패 두목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인물 파악에는 도가 텄을 사람도, 내가 그렇게나 악의를 쏟아냈는데도 그걸 눈치 채지 못하는구나. 정말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엄마도 아빠도 교수도 비엔나 봉봉도 하프도 쿨도어도 아무것도 몰라. 악의의 불꽃이 자기한테 옮겨 붙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그럼 슬슬 제 얘기를 해도 될까요? 다이아몬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과연 이 호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면 알게 될 때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주겠다고. 그러니까 불길이 신나게 타오르는 걸 그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고 있으라고. 당신이 보고 있는 사람은 결코, 결코 과거의 달콤한 연인이 아니니까.
 
“이미 아시겠지만 이 호텔에는 미지의 인물 A가 있었어요. 아저씨도 아니고, 아저씨의 다이아몬드를 훔친 커플도 아닌 다른 사람이.”
눈빛에 의혹이 깔리기 시작했어, 좋아, 언제쯤 불이 붙으려나? 타이밍을 잘 맞출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훌륭한 살인마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동물 학대와 방화를 상당히 즐기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 호텔 근처에는 고양이가 많았고 미지의 인물 A는 그 고양이들 때문에 잠을 잔뜩 설쳤어요. 그러니 어떻게 했겠어요? 고양이를 괴롭혔죠. 아무래도 이 고양이는, 관리 상태를 보아하니 길고양이가 아니라 누가 기르던 것 같은데? 객실에서 도망쳤나?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하면서.
호텔에서 묵으면서 지루함과 짜증으로 미칠 지경이었던 미지의 인물 A의 원래 계획은, 고양이 시체를 냉동고에 집어넣어서 쓰레기 같은 밥을 만드는 작자들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해 주려는 거였어요. 시시한 장난이죠. 하지만 이런 것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한테는 정말로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바다 건너편에, 고향 나라에 두고 온 그 사랑하는 사람하고 약속을 했거든요. 절대로 사람은 죽이지 않겠다고. 그래서 미지의 인물 A는 고작해야 고양이를 죽이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원래는 그럴 작정이었는데, 고양이 뱃속에서 뭔가가 발견되었죠. 미지의 인물 A의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어요. 이 지루한 여행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사건이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감은 틀리지 않았죠. 운도 좋았죠. 아니, 어쩌면 운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 사람의 눈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최근에는 여자까지 반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냥 친하게 지내는 여자였을 뿐인데 이젠 막 엉겨 붙고, 여행 가지 말고 자기랑 같이 있자고 그런다니까요? 하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호텔에 온 갱단의 보스를 만나면서 미지의 인물 A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가장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정보를 모았죠. 그리고 한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렸죠.
미지의 인물 A는 먼저 이 자리에 있으면 곤란한 여행 파트너를 호텔 밖으로 내보냈고, 그 다음엔 갱들한테 지시해 호텔 창문을 전부 닫게 했어요. 고양이가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요? 하! 말씀드렸듯이 고양이는 이미 죽어서 냉동고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 다음에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죠. 생각을 정리? 그럴 필요가 있었죠. 좀 진정할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욕실에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이 호텔은 소방 설비가 진짜 부실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이용하고 싶었던 거예요. 드라이기를 합선시키고, 가지고 있던 소독용 알코올을 사방에 뿌려서 완벽한 화재의 조건을 만들었죠. 말씀드렸듯이 미지의 인물 A는 훌륭한 살인마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미 방화 전력도 여러 번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지의 인물 A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으니까. 정당방위일 경우에는, 목숨이 위험할 경우에는 괜찮아, 하고요. 제가 다이아몬드를 찾아준다고 여러분이 절 살려둘 거란 보장이 있나요? 당신들 총 들고 있거든? 호텔 직원들 다 죽였거든? 이런 상황이라면 괜찮다고요! 오랜만에 마음껏 저지를 수 있다고요!
하지만 방화만으로는 부족해요. 불은 너무 늦게 퍼져요. 그래서 미지의 인물 A는 상황을 더 확실하게 만들 시나리오를 준비해 뒀죠. 고양이를 찾는다는 핑계로 주방으로 내려가, 조사하는 척하면서 가스 밸브에 손을 대면, 천연가스는 공기보다 가벼우니까 주방으로부터 서서히 퍼져서 불씨를 찾아 헤매고,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해 두고! 그 다음엔 일사천리죠 뭐. 자기가 가져다둔 고양이 시체를 발견하는 척하고, 답을 알려주려는 척하면서 보스와 함께 바깥으로 나와ㅡ”
 
ㅡ쾅!
 
“ㅡ나이스 타이밍. 아아, 불꽃이 치솟는 광경은 진짜 쉽게 질리지 않는다니까요.”
고빌라는 화내지 않았어. 날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정말로 머리가 해골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서 불길을 쳐다봐.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들이 내가 있던 방은 안 뒤졌구나.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항상 이렇죠. 바보 같은 실수를 하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아저씨?”
그래, 불길을 쳐다보면서 들어요.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예물로 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영원한 사랑의 상징 따위 섭씨 700도면 타 버린답니다.”
그래, 불타라, 차라리 불타라. 세상에 연인은 하나만 있으면 돼. 보스는 다시는 나한테 눈길을 돌리지 않았어. 대신에 중얼거리기 시작했어. 나는 모르는 언어였는데, 뭐라고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한테 달콤한 약속이라도 하려는 걸까? 저 다이아몬드를 가져다줄게, 그러니까 같이 살자, 부모님도 모시고 동생들도 데리고 커다란 집에서, 하고? 폭격으로 불타는 군벌의 저책에서 다시 다이아몬드를 훔쳐내는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으응, 그건 몰라도 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연인은 하나만 있으면 돼.
 
“그건 그렇고, 다이아몬드가 호텔 안에 있다고는 하나도 한 적이 없는데.”
 
주머니에서 기분 좋게 달그락대는 다이아몬드의 감촉을 손가락 끝으로 느끼면서 나는 불타는 호텔을 뒤로 했어. 저렇게나 아름답게, 수십의 생명을 집어삼키면서 타오르는 불꽃이지만 너무 오래 보면 지루해질 것 같아서 슬프니까. 지금 손에 닿는 감촉은, 무색투명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게 생긴 결정에 불과하지만, 불꽃보다도 더 지루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으니까.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일까? 언젠가 이걸 결혼 예물로 줄, 그럴 생각이라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답이 무엇이든지, 다이아몬드에는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게 분명해.
 
-----
 
다음 편이 마지막. 마지막까지 즐겨주세요.

Author

Lv.1 로크네스  3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T.pratense
캐릭터가 재밌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뒷배경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네요. 아마도 다음 화에서 해부실험 영상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나오겠군요.

늘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로크네스
푸파의 장래 사업에 관련된 얘기는 이것보다 조금 뒷얘기라서 거기까지는 나오지 않겠지만....그래도 다음 편에서 푸파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를 얻게 될 거예요. 안경미녀 라이징!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3 색깔의 무게 (1) 글한 11.13 2384
52 Magica - 1 [팬픽] 마미 11.09 2296
51 과제로 낼 소설 - 결말 댓글2 안샤르베인 11.08 2578
50 [소설제-천야] Nighthawk's Dream 카페인성인 11.06 2447
49 악마들과의 인터뷰 댓글2 작가의집 11.04 2584
48 Tycoon City 데하카 11.02 2561
47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 - 위기, 절정(수정본) 댓글2 안샤르베인 11.01 2535
46 로슈포르 중앙은행 - 2 - 폭신폭신 10.23 2476
45 라이즈 프롬 헬 - 프롤로그. 악몽 댓글3 무지작가 10.23 2509
44 [어찌됐건 스토리와 제목 창작연습을 하기 위한 소설] 대충 창조한 세상 댓글8 BadwisheS 10.22 2556
43 피와 명예의 파스타 작가의집 10.19 2947
42 죽은자들의 밤 댓글2 작가의집 10.19 3473
41 증기의 심장 작가의집 10.19 2828
40 공분주의자 선언 작가의집 10.19 2560
39 이상한 석궁수와 모험왕 작가의집 10.19 2603
38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전개 부분 댓글4 안샤르베인 10.18 2404
37 2012년을 보내며 잉어킹 10.17 2517
36 다 좋은데 자네만 없었으면 좋겠군 (3) 댓글5 잉어킹 10.13 2857
35 네 마리 형제새의 일부라고 가정한 단편. 댓글3 환상갱도 10.10 2531
34 다 좋은데 자네만 없었으면 좋겠군 (2) 댓글8 잉어킹 10.09 2866
33 [Relay]Witch on Tanks -Prologue : 그는 그렇게 마녀에게 홀렸다.- 댓글1 LucifelShiningL 10.02 2769
32 다 좋은데 자네만 없었으면 좋겠군 (1) 댓글6 잉어킹 09.29 3167
31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 - 발단 부분만입니다 댓글6 안샤르베인 09.29 2443
30 [백업][리겜 소설제]The Onyx Night Sky 댓글5 Lester 09.27 2615
29 [백업][리겜 소설제]풍운! 북채선생 댓글1 Lester 09.27 2890
28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④ 로크네스 09.27 2897
27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③ 로크네스 09.27 2551
26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② 로크네스 09.27 2713
25 [푸파 시리즈] 변신 이야기 ① 로크네스 09.27 2667
24 [백업][밝음 소설제 출품] The Lone Star NoobParadeMarch 09.27 2453
23 [백업][Cytus 소설제 출품] Area 184 NoobParadeMarch 09.27 2780
22 [백업][6X6 소설제 출품] 보드카, 보르쉬, 카츄샤 - director's cut NoobParadeMarch 09.27 2982
열람중 [푸파 시리즈] 안트베르펜의 연인 ② 댓글2 로크네스 09.26 2655
20 [푸파 시리즈] 안트베르펜의 연인 ① 로크네스 09.26 2997
19 그만 살아주소서 (1) 글한 09.25 2222
18 하바네로 잉어킹 09.25 2422
17 여행자들을 위한 신비롭고 놀라운 이스티야의 안내서 - 요정과 마녀 (백업 자료) 댓글1 Badog 09.23 2546
16 [푸파 시리즈] 상태 개조 ② 로크네스 09.23 2950
15 [푸파 시리즈] 상태 개조 ① 댓글2 로크네스 09.23 3791
14 [푸파 시리즈] 더러운 손 ② 댓글4 로크네스 09.21 2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