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 : I'm Instrument] 열시까지

BadwisheS 0 2,841

앨런 웨이크 OST - Welcome to bright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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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걸로 다 끝인가요?”

끝났다고 하면 어감이 좋지 않으니,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모두 완수했다고 하게.”

, 죄송합니다.”

어두운 회의실은 을씨년스럽게 먼지 쌓인 구닥다리 빔 프로젝터만 홀로 윙윙거리고 있었지만 누구도 불을 켜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 농담을 하더라도 충분히 을씨년스러울 상황이다. 몇 분간 정적이 흐르고, 시계는 아홉 시 사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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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개월 전 이 자리에 모인 이십여 명의 사람들은 한 통보를 받았다. 국제연합 사무총장의 직인이 찍힌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팔개월 후 오후 열 시에 모든 것이 끝난다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고 상식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문서에 첨부된 신빙성 있는 이론들의 계산 결과는 하나같이 일치하고 정확하다. 말 그대로, ‘20××130일 오후 10시 정각 이후로, 지구가 있어야 할 공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일은 사람의 시간으로는 오후 열 시에, 무슨 샐러리맨마냥 정확히 약속해놓은 듯 허겁지겁 발생해서는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이다.

통보 이후 팔개월간 그들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을 소모했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본 셈이었다. 그것을 다 하는 동안 칠개월 하고도 이십구 일 스물세 시간 삼십 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동안 계산수치 외에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학계에서는 어쩌면 그 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식의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가 처음의 계산 결과를 뒤집는 경우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학계에서 한 것이라고는, 계산 도중 미처 실수해 결과에 집어넣지 못한 확률을 구했을 뿐이다. 그 결과 그 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소수점 아래로 열자리를 내려가면 비로소 ‘1’이 하나 나온다. 마치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이 대책 위원회의 총책임자는, ‘학계에서 최대한 희망적인 계산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던지난 팔개월간, 그야말로 자신의 삶에서 어떤 필요 없는 행동도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팔개월 후의 예측된 오늘을 맞지 않기 위해 일해 왔다. 지금 지구상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뿐이었다. 특별히 머리가 좋거나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인간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했고, 따라서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팔개월 후를 위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의 노력이 반영되었음을 증명하는 계산 수치는, 오늘 하루, 그것도 지난 한 시간 동안, 소수점 아래 열 자리에서, 소수점 아래 한 자리까지 오르는 무시무시한 성과를 보였다. 어차피 지구가 증발하는 것 역시 갑자기,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퍼센트로 환산하면 오십 점 몇몇몇몇 대 사십구 점 몇몇몇몇 퍼센트다. 아직은 역시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약간 높지만, 그 사십구 퍼센트의 확률 역시 오늘 오후 열 시 정각까지 지속적으로 올라가, 정확히 확률은 오십 대 오십이 된다. 희망뿐인 발버둥을 치는 상황에서 어느덧 인간들은 도박을 시도할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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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빠져나간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이 이십 분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가용을 타고 팔개월 만에 퇴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소처럼 전화를 걸어 가족들에게 아무 의미 없는 인사말을 전할 것이다. “자기야, 하던 일은 잘 풀렸어? 팔개월간 전화도 안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 그거?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오랜만이니까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팔개월 만에 만나는데 무슨 밥이냐고? 아이고,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지금 가면 한 시간쯤 뒤에는 도착할 것 같으니까 거기서 만나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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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아홉 시 오십분의 회의실에는 이제, 총책임자와 그에게 끝이 아니다라며 면박을 들은 젊고 낙천적인 미용사만이 남았다. 그들은 십분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괄목상대할 성과를 축하하기로 했다. 원래 총책임자는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낙천적인 미용사는 유쾌하게 축하 잔치 아닌 축하 잔치를 열기로 부추긴 것이다.

그렇게 축하 잔치 겸 뒷풀이로, 총책임자는 미용사에게 팔개월 간 덥수룩하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자르도록 했다. 모든 일정이 완료된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미용사에게 있어 상관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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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자르려 온 몸에 천을 두르는데 이것이 마치 참수하는 것 같다. 참수당하기 전의 죄수가 이런 심정일지도 모른다.

손님, 머리가 많이 자라셨네요. 좀 쉬엄쉬엄 하지.”

쉬엄쉬엄 했으면 우리가 여기서 머리를 자르고 있는 일은 없었을 걸세.”

그렇게 바쁜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수십억 명 목숨이 달려있는 일을 가볍게 말하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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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는 거리낌 없이 총책임자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머리를 자르고, 총책임자는 몸에 둘러진 천 아래로 뭔가를 만지작거린다. 열 시까지는 십 초 남았다. 그것은 그의 아내와 자식들의 사진이다. 오랫동안 주머니 안에 구겨져 있어, 사실 천을 치워놓고 보면 사람 형체가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손에 잡히는 구겨진 사진의 형태만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총책임자는 아주 잠시, 잠시 침묵하고 그동안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열 시까지 몇 초나 남았을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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