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2.

언리밋 0 2,503
잠뇌리를 채우던 시시한 잡생각을 떨쳐낸 뒤, 평소처럼 사로에 들어선다.

"권총 사격이 아니라기에 뭔가 했더니, 소총이냐..."

아니 뭐, 소총이라고 해도 돌격소총은 아니고 평범한 민수용 카빈이긴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으려나.

일반적인 정비같은 건 사격장에서 해두니 별 상관 없지만, 영점은 안 잡혀있다는 걸 까먹으면 곤란해진다. 기껏 가늠쇠 가늠좌 심호흡해가며 맞춰서 쏘니까 이상한 데 박히는 슬픔을 느끼긴 개뿔, 내기에서 진다고 뭐라뭐라거리는 고문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참고로 최장기록은 1시간 52분 04초. 묘하게 정확한 것 같지만 신경쓰면 지는거다.

헤드폰을 쓴 뒤에, 앞에 놓여있는 사이가 카빈을 양손으로 들어올린다.확실히 권총보다는 훨씬 묵직하단 걸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일단 3발이 든 탄창을 꽂아 넣고, 노리쇠를 밀어 삽탄. 사격에 그렇게 방해되진 않지만, 자살을 기도하는 걸 막기 위해 멜빵고리에 걸린 쇠사슬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단단히 밀착시키고, 왼눈을 가볍게 감고서 오른눈과 가늠자, 가늠쇠를 일직선상에 놓는다.

거리는 150m. 가볍게 숨을 들이쉰 뒤 순간적으로 멈추고, 가늠자와 가늠쇠가 과녁 중앙을 가리키는 순간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하고 헤드폰 너머로도 상당히 크게 울리는 총성을 들림과 동시에 오른어깨에 전해오는 강한 반동을 흘려보내고, 다시 조준선을 정렬한 뒤 연이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영점사격이 끝남과 동시에 표적지가 이쪽을 향해 움직였다.

"...에에, 좌하로 치우쳤네..."

영점이 어긋나있는데도 전부 명중, 그리고 달랑 3발 뿐이지만 일단은 탄착군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고 살짝 가늠쇠와 가늠좌를 만져서 마저 영점을 보정한다.

튀어나간 탄피 셋을 전부 주워 수거함에 넣고, 3발이 들어있던 .308 탄창을 분리한 뒤 5발짜리를 삽입구에 맞춰 가볍게 밀어 넣은 뒤,
확실하게 한 번 쳐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후퇴해있던 노리쇠를 전진시킨다.

심호흡을 한 뒤, 차근차근 과녁에 한 발씩 꽂아넣는다. 한 탄창을 다 쐈을 뿐이지만 어깨가 아픈 건 아픈거다. 한 탄창이 더 남아있지만, 보나마나 내기라면서 점수과녁에 대고 쏠 때 쓰라는 용도일 게 뻔하다. 안 그러면 굳이 매치그레이드만 넣어둘 필요가 없잖아.


다시 한 번 표적지가 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평소답지 않게 왜 이러냐? 몸이 안 좋기라도 해?"

"애초에 50미터 권총사격이나 하던 사람에게 뜬금없이 308 쥐어주고 150 사격 시키신 분이 누군데요? 안 그래도 반동 더럽게 세더만요."

"까라면 까는거야 인마. 탄착 좀 흩어졌어도 다 7점 안쪽으로 꽂은 놈이 할 말도 아닌 것 같다만."

"이렇게 만든 사람이 그런 거 지적할 처지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딱히. 뭐 어때? 어차피 동아리 활동의 일환이었잖아?"

"요즘 동아리는 고문 교사가 멋대로 건 내기에 휘말려다니는군요. 그런거군요."

"원래 세상이 그런거야~"

'비꼬는 건 좀 알아 채주시죠!'

...아, 진정하자. 빌어먹을 마이페이스 선생같으니라고.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 있자니 재미있다는 듯 나를 계속 보고 있던 고문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데려온 애는 너랑 무슨 관계냐?"

"먼 친척의 동생입니다만? 뭐, 촌수 따지면 거의 남남이겠지만."

"헤에, 그러냐... 아, 이번엔 45점만 넘겨봐."

고문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글맞게 미소짓더니 다른 사로쪽으로 걸어갔다. 언제나처럼 사람 속 긁어놓는데는 제일이라니까, 저 사람. 5발 죄다 9점 안쪽으로 박는게 뉘집 개 이름인지 아는 마이페이스도 여전하다. 까라면 까라가 모토이시니 다른 답이 없으니까 안구에 습기가 찰 뿐.

뭐, 설하에 관해서야 어차피 그렇게 둘러대기로 양쪽이 입을 맞춘 상황이니 쉽게 걸리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약간 통증이 오는 어깨를 살살 문질러준다. 역시 .308 이거 반동이 너무 세다고. 차라리 .45 ACP를 줘...  9미리라면 더 좋지만. 맞추기도 쏘기도 편하다고!


이런 생각이나 하는 시점에서 평범한 고교생의 생활과는 약간 멀어진 것 같지만 이미 그런건 포기한지 오래라고 애써 자위하며 다시 소총을 들어올린다.

가늠쇠와 가늠좌를 목표에 일치시키고,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게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기는 일련의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깨에 전해져오는 반동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게 우울하지만.

언젠가 옆 사로에 있던 분이 많아봐야 고등학생인데 너무 잘 맞춘다고, 사격 선수라도 될 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내 답변에 입을 다무셨지만.

"까라는 대로 못 까면 갈궈대는데 어쩌실거에요?"

대충 저런 뉘앙스로 조용히 말해드리자 그저  시선을 돌리시더라. 너무 동정어린 시선이어서 상처받았었다. 그렇게까지 딱한 시선으로 봐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덤으로 최소한 두세 탄창은 비우는 걸 강제당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여담이지만 사격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문이 대준다. 사장이랑 친해서 싸게 해준다나 뭐라나. 어디서 탄을 싸게 떼오기라도 하나보다... 언제 고문 책상에서 예산 관련 서류를 봤던 것 같은데, 그건 뭐였을까.

-짜악!

"으갸갹! 누구!..."

"짜식, 우는 소리나 하고 앉아있긴. 하면 되잖아, 하면? 그나저나, 선생님한테 말투가 그게 뭐냐?"

등 따가워어어어어! 아니, 제발 말로 하라고 이 망할 선생! 이러니까 결혼 못하는 거잖아! 폭력 선생따위 누가 데려가겠어!

"일단 말로 하시라구요! 아니면 좀 평화적인 방법은 없습니까!"

"그런 거 없다. 이런 것도 슬슬 익숙해지면 편할텐데 말이지♪"

"전 이상성벽자같은거 되기 싫지 말입니다? 아으... 따거... 그래서 이번엔 대체 뭘 걸었던 겁니까? "

"술내기지 뭐. 그나저나 이젠 내기 걸린거엔 뭐 신경 안 쓰냐?"

"아무리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히면 말 할 맛이 안 나는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솔직히 철의 장막에 대고 말하는 기분인데요."

"심하네... 나같은 가녀린 여선생한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딜 봐서 가녀리단 겁니까. 애들 휘어잡고 다니는 철의 마녀씨... 에휴, 말을 맙시다."

"사이에 흐린 말이 신경쓰이지만 넘어가고, 뭐... 옛다. 20발 추가란다."

"엑... 그냥 권총 쏘면 안 된답니까..."

"사장은 내가 아니라는 것만 명심해주면 해♪ 그나저나 우리 부장 양은 9mm 4탄창이었던가... 그럼 이만~"

젠장, 부럽다.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뭐, 탄환 값만 치면 내가 더 비싸겠지만, 어깨가 아프다고...

"...아, 어쨌든 탄만 다 쓰면 되겠지."

사격자가 누구든 신경 안 쓸거야. 아마. 그런데 대신 해줄만한 사람도...

"..."

...아, 있었구나. 이 설하. 대체 언제 내 뒤로 다가와 머리를 내밀고 있던 건지 궁금하다. 이건 내가 둔한 거라고 해야 하는 걸까. 

사격 해봐도 되냐는 무언의 질문이 담긴 시선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개머리판 어깨에 제대로, 이렇게 대고... 시선이랑 가늠좌, 가늠쇠 일치시키고."

"네에, 네에... 역시 조금 불편한데..."

"어깨가 나가는 것보단 나을 거 아냐?"

헤드셋 형태의 귀마개를 씌워주고 나니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긴 했지만, 역시 어딘가 어색하긴 해서 그 부분만 약간 교정해주고는 나머지는 설하에게 맡겼다.

조용히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에서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기분나쁠 정도의 자연스러움만이 있었을 뿐. 예전에 사격을 해 본 경험이 있겠지, 그 정도로 넘겼지만 어딘가 찜찜한 건 가시지 않았다.

초능력자란 거, 분명 어릴 때 봣던 것 같단 말이지. 뭐, 그 다음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게 환상 파괴자라거나, 모 초능력자 사냥꾼의 사기꾼 잡아내기같은 프로그램들이었기에 그런진 몰라도 어느 순간부턴 그저 정교한 속임수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만났던 자칭 초능력자들은 다 그런 케이스들이었다. 애들 앞에서 까발리니까 내가 역으로 따돌림당한 일 이후로는 그저 한심하긴...정도의 생각으로 넘어갔지만, 그걸로 코묻은 돈을 뜯어내는 멍청이들은 익명으로 교사들한테 찔러주곤 했다. 뭐, 불려갔다와서는 발광하는 것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긴 했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다른 반의 일이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조금 신기했었지만.

"저기, 나머지도 다 쏴도 되나요?"

"알아서 해. ...잘 쏘네."

"헤헷."

표적지 정 중앙은 아니지만, 손가락 마디 한두 개 정도로 탄착이 집중되어있었다. 대충... 정 중앙에서 조금 하탄. 그 점에 대해서만 약간 말해주고 고문에게 전부 사격했다고 간략하게 전한 뒤, 살짝 문을 열고 나섰다. 떠넘기기의 귀재인 선배라는 작자들은 먼저 나간 것 같았다.

애초에 존재감이 없으니 더 빠져나가기 쉬운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라기 보다, 대체 선배란 작자들이 무언가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달까. 하는 게 없어서 존재감이 더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약간 뒤에서 이 설하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따라온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지만, 기분이 좋은 모양이니 그걸로 괜찮으리라.

문득 이 설하가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오늘 저녁은 뭐에요?"

"별 거 없어. 있는걸로 대충 해먹는게 다지, 뭐. 곧 알바 월급일이니 좀 사정은 나아지겠지만... 그런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싱글벙글이야?"

"응? 왜 그러시는지?"

"아니, 그냥 기분 좋아보여서 물은 것 뿐이다만..."

"글쎄~? 역시 평화로워서이려나요?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고. 이것저것 읽을 책도 많고 하니까요."

"시설 밥은 해당 안하는 거냐?"

"맛 없으니까... 애초에 미원 덩어리인 국에, 싸구려 재료로 대충 만든 반찬에, 각기병 권장하는 싸구려 쌀밥이 중심이었는데... 뭐래더라, 그냥 종합영양제로 때우는게 더 싸게 먹힐 수준이라고 했던가..."

"어디야. 경찰에 좀 찔러보자. 요즘 세상에 그딴 데가 아직도 남아 있어?"

"뭐... 글쎄? 그래봐도 바뀌지 않는 건 안 바뀌니까요. 특히 착 달라붙은 것들은. 제가 그런 걸 안 했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어느새 콧노래가 끊겨서 설하를 돌아보자 그녀는 체념한 듯 해서 더욱 슬퍼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표정은 어느새 평소처럼 돌아왔다.

"뭐, 그래도 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됐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싫진 않아요. 오히려 경험하기 힘든 경험이랄까나..."

"그런 건 경험 안하는 게 더 좋아보이지만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음... 어느 상황에서도 어지간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니 말이에요."

"과연이라고 하고 싶긴 한데, 그냥 득보다 실이 많은 거 아니야? 애초에 그런 걸 겪는 것 자체가 악몽일 것 같은데."

"사소한 건 넘어가요~ 뭐, 그 시설 이미 공중분해된 모양이기도 하니까요."

"분해될 만 한 곳이었으니 딱히 별 생각은 안 드네. 어쨌든... 어서 집에나 가자. 춥다."

"네엡~"


그렇게 붙어오며 팔에 엉겨붙는 의도는 뭐였을까. 그냥 추워서일 뿐이겠지만, 사춘기의 남자... 아, 사춘기는 이미 지났지. 어쨌든 남자한텐 좀 자극적일 행동이라고.

뭐, 누군가에게서 애정을 받지도 못하고 자라와서 그 반동으로 사람에게 달라붙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보통은 그 반대가 많던데 말이다. 그런 데 알 게 뭐야... 아, 알긴 해야겠구나. 내가 대상자니까.

어쩐지 우울해졌다. 내가 바퀴벌레 한 쌍이 되었다고 착각받을 날이 올 줄이야.



평소처럼 계단...이라고 불러야 할 철골과 철판 조립물을 딛고 올라간다. 원래부터 엘리베이터같은 놈은 없었고, 당장 층 구분부터 약간 애매하게 설계되기도 한 곳이어서 이곳저곳 보수해야 할 게 꽤 되는 곳이었지만, 대체 어디서 구르다 모인건진 모를 사람들이 셀프로 어지간한 걸 다 끝냈다는 일화가 있었다나 뭐라나. 내가 들어오기 전 일이긴 하다.

대략 2층쯤 될 높이까지 올라간 뒤, 잠금쇠로 내 방을 찾아간다. 호수 표식이나 그런 거 없다. 그러면 택배나 배달은 어떻게 하냐고 묻느냐면, 애초에 그런 거 시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광랜이 들어와있긴 해도, 인터넷으로 주문시킬 시간에 재래시장에서 아주머니들과 흥정배틀을 벌여서 사오는게 더 싸게 먹힌다는 심플한 이유때문에. 택배야 요즘 좋은 거 있지 않은가. 편의점 택배라고...

그리고 아담하긴 해도 사는데는 별 지장없는 구석이다. 솔직히 한 명에겐 좀 넓은 곳이고. 그래서 벽 한쪽 구석에 책장들이 늘어서있고, 온갖 종류의 책들이 책장을 빼곡이 메꾸고 있긴 해도 마루는 상당히 여유가 넘친다. 돈 없는 놈이 책은 어디서 샀냐고 묻느냐면, 헌책방 망할 때 주인분이랑 친해서인진 몰라도 떨이로 업어왔던게 대부분이다. 상태들도 대부분 양호하니 딱히 문제도 없었고.

안방은 1인용 침대 하나 넣고 옷장 두개정도 들어서니 꽉 찼지만. 공간 참 배분 이상하게 해놨다. 그래서 더 안 팔린건지도 모르겠지만, 뭐 자는데 불편함은 없으니 됐지, 뭐.


"흐에에... 피곤해..."

"그러면 안방에서 자던가 해. 아까는 배고프다더니, 뭐 안 먹을거야?"

"...먹긴 해야겠지만... 우우, 졸려..."

"엉겨붙지 마라... 에휴, 일단 앉아서 기다리기나 해. 있다가 알바도 나가야하니까, 문단속 잘 해주고."

"으응..."

그러면서 이 설하는 식탁의 역할을 가장 많이 하고있는 책상 위에 푹 엎어졌다. 하긴... 피로가 완전히 안 풀렸다면 저런만 하다고 스스로 납득시킨뒤 대충 있던 재료를 뒤진다. 오늘 저녁은 유통기한 갓 지난 삼각김밥이나 맛없는 싸구려 도시락이 되겠군. 남아있다는 가정 하에.

대충 아직 멀쩡한 후라이펜에 반절가량 남은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마지막 달걀 두 개중 하나를 깨서 계란후라이를 한다. 가급적이면 보기 좋은 서니 사이드 업으로. 어쨌든 반숙으로 익힌다.

그 와중에 들어오자마자 눌러둔 밥솥이 재가열이 끝났음을 알려오고, 대충 후라이가 익은 걸 확인한 뒤 막 재가열되어 따끈한 밥에 후라이를 올리고, 양조간장 한 숟갈을 적당히 뿌린다.

"...에에, 너무 단촐한 거 아냐?"

"뭐, 수육 냉장고에 처박아둔 거라도 전자레인지로 데워줘?"

...염치가 있으면 거절이라도 할 것이지. 무언으로 그저 경쾌하게 끄덕이는 걸 보면 답이 안 나온다. 어차피 두세 쪼가리에 불과한 양이지만, 고기라는 걸로 위안은 얻을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나 이런 빈곤한 곳에서 잘도 열심히 체력을 유지해왔구나... 라기 보다는 그냥 유지 못 하면 오래전에 죽었을지도. 어딘가에서 굶어서라거나 아느바이트중 사고라거나 하는 걸로. 원인은 체력 부실로 인한 혼절이라거나. 질 나쁘네. 공복에 의한 혼란 상태이상이라도 되는 겁니까. 근데 실제로 가능할 것 같은데 이건.

애초에 체력 유지란게 별거 없고 돈이 없으니까 대중교통 이용도 최소화하고 걸어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길러진 거지만. 그리고 열량 소모도 감당하려고 많이 먹는 편이고. 누가 넌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 왜 살이 안 찌냐, 부럽다, 그런 소리를 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 많이 안 먹어두면 몸이 못 버티는건데... 애초에 많이 먹는다고 해봐야 2-3번정도 더 받는게 전부지만 말이다.


대충 알바 나갈 시간이 됬음을 낡아빠진 시계가 알려주기 있었기에 대충 코트를 걸치고 방문을 열고 나다.

"알바 갔다온다."

"네, 네~ 길 조심하세요~"

"말이라도 고맙네."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기에 웃으면서 답해줬다.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들어본지도 벌써 한참 되긴 했지만. 대부분은 어디까지나 겉치레로, 무감정하게 하지만 방금은 어쩐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진심이 담긴, 그런 말이라고.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거다. 이런 건 왜 안 변하는거야. 자연스럽게 옷깃을 부여잡고 몸을 더 움츠렸다. 눈 온 뒤라고 너무 심한거 아냐?


평소처럼 내 전 시프트의 알바와 교대를 하고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18시부터 22시. 일반적으로 가련한 학생들이 학원에 고통받으러 가는 길에 들러 싸구려 가공식품으로 허기를 때우기도 하고, 아니면 회식의 공포에 떨면서 미리 숙취해소제를 사가는 신입으로 보이는 회사원도 들렀다 가기도 한다. 다양한 인간군상이지만 일단 진상만 없으면 되는 거다.

가끔 겁없는 날라리들이 담배를 산답시고 오면 살포시 낚시를 걸어서 돌려보내고, 협박하는 멍청이들은 민중의 지팡이 분들에게 인계, 이거 이거 이거라면서 담배 이름을 말 안하는 손님덕에 스트레스가 폭풍같이 쌓이기도 하지만, 유통기한 막 지난 삼각김밥과 음료수를 폐기처분하고 몰래 까먹는 게 편의점 알바의 묘미이기도 하다. 단, 폐기처분은 확실히 내릴것. 안 내렸다가는 결손이니까 아주 주옥같은 상황을 맞아야 한다.


"어서오세요~"

"오, 별 일 없는 모양이네."

"엥? 그러고보니 형 왜 안 오나 했는데, 또 야근이에요?"

"오냐. 계급이 하나 올라도 변하는게 없어. 망할... 장기지원한 내가 또라이지. 평소처럼 캔커피 사오란다. 커피믹스 쌓아놓도 안 처먹는건 대체 뭔지..."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뱉는 이 사람은 이 정현. 약간 앳된 얼굴이지만 저래도 20대 중반이다. 체격도 건장한데, 무슨 기동타격대 소속이긴 한데... 뭘 하는 진 모르겠는 곳이다.

알게 된 계기는 별거 없고, 여름방학때 고문한테 반 강제로 끌려간 서바이벌 게임에서 만나서 저 사람 혼자 학살을 펼쳤다. 난 한 게 없었지만. 아니 커버만 대충 봐주는데 혼자서 무쌍을 찍고 있어...

"네, 네... 그나저나 최근에 또 뭔 일 터진 모양이네요, 그러면."

"그래... 이번엔 원인불명의 폭발 사고. 근데 웃긴건 거기에 서리가 껴 있었어."

"...엥? 그게 뭐에요. 폭발한 뒤에 한참 있다가 낀 거 아니에요?"

"그러면 참 쉽겠지. 근데 문제는 인화성 물질 제로. 폭발물 반응 제로. 이러니까 우리만 죽어나지. 일단 사고인지 테러인지도 모르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조만간 때려치고 만다 진짜..."

"...애도를. 근데 때려치지도 못하지 않아요?"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하기엔 희망도 없구나. 그럼 이만 가본다. 아 빌어먹을, 또 대기 떨어졌네... 망할 상사놈들!"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쏜살같이 왔던 곳으로 날아가는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고생하는 건 변함없는 사람이다. 아까 한 말을 들어보면 명색이 중사일텐데.

그러고보니 왜 군대 계급을 사용하지...? 기동타격대는 보통 경찰 산하 아니었나?  자세한 건 알 도리가 없지만, 에이 뭐, 알 게 뭐야.


그 뒤에는 딱히 별다른 특이한 손님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웬 개념상실한 고삐리(...나도 고 1 말이라는 건 넘어가자.) 하나가 자꾸 담배 내놓으라며 개기길래 살포시 경찰 불러다가 현행범으로 잡아넣었다. 끌고가던 경관분 말로는 꽤 상습범이라고  한 것 같지만, 뭐... 별로 신경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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