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1.

언리밋 0 1,953
"그렇게까지 저항할 건가? 어차피 추적은 끊이지 않을 거고, 그들의 목표가 그녀를 죽이는 것에선 변하지 않을텐데도."

"시덥잖은 약속이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요."

"시덥잖은 이유군. 하지만 그렇게까지 그녀를 지키고 싶은건가? 뭐, 사랑에 빠진 기사같군, 그래."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게는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어차피 그들과는 상대가 되지도 못할 텐데도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건가?"

"포기하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절 가로막으실 겁니까...!"

"사람은 포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네. 지금 자네는 불가능한 소릴 하고 있고, 나는 그 무모한 행동을 막으려는 것 뿐이야!"

"그렇지만, 가겠습니다. 불가능할리가 없습니다. 적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부럽군. 젊기에 할 수 있는 소리야. 그렇지만 도시의 거의 대부분을 적으로 돌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나? 그것도 그

들이 혈안이 되서 찾는 대상을 데리고?!"

"더 이상 막으신다면, 쏘겠습나다."

"그러면 쏘게."

"..."

타앙, 하고 나직하게 총성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금속성의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어디서 나는 총성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방금 그 총성은 내 손에 들려있는 권총에서 울려퍼졌으니까.

"이거이거, 나도, 참... 바보같았군 그래... 정말, 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무감각하게,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긴다. 다시 한 번, 탄피가 땅에 떨어지면서 가볍게 탱그랑, 하는 소리를 낸다.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으니까 말이죠... 편히 쉬시길.."

가슴 중앙에 난 작은 구멍이로 피를 쏟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만족한 듯한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실감했다. 내가 방금 한 일로, 더 이상 과거의 일상으로는 어떻게 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덜덜 떨리던 손은 결국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렸다.

피를 보는 일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자기기만과 합리화의 산물일 뿐이었다. 결국 나는, 내 의지로 이미 무력화되어 저항도 하지 못하는 사람 한 명을 죽인 것이다. 정당방위라는 핑계도 대지 못하는.

심호흡을 몇 번 하자, 어느정도 떨림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품을 뒤져서 멀쩡한 탄창 몇 개와 대검 한 자루, 그리고 LED 라이트 하나를 찾아냈다. 다행히 탄창은 이 권총이 쓰는 종류였다. 그 외에는 피에 젖어버려서 더 이상 사용하기는 어려워보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와중에도 이런 걸 생각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역겨웠고, 웃겼다. 내가 죽인 사람에게서 무언가 쓸만한 걸 전부 뜯어간다니. 이래서야 강도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마 그 날, 그 녀석을 집에 들여놓은 순간부터 모든 게 꼬였다고 생각한다. TV에서나 간간히 나오던 초능력이 실존했다거나 하는 사실은 접어두더라도, 어찌되었건 모든 걸 꼬이게 만든 건 그 날이었으니까.

더 이상 이 도시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는 살아가지 못한다. 새삼스러운 사실을 되새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손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후회할 수는 없다. 내 스스로가 한 결정이었으니까.

"...저기, 괜찮아?"

긴 흑발의 소녀가 내 옆에서 조심스레 물어온다.

"아아, 괜찮아. 그러면, 이제 떠나자."

이 지긋지긋한 도시를, 이란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얼굴에 튄 피를 적당히 문질러 닦아낸 뒤, 떨어진 권총을 주워서 안전장치를 올리고 허리춤의 홀스터에 찔러넣었다. 그러고보면 이 홀스터도 이름모를 누군가의 것을 가져온 거였었지.

이젠 정말로 이 도시를 떠날 때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상념에 젖는건 이 곳에서 나간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것저것 챙긴 묵직한 배낭을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어느새 걷기 시작한 녀석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데서 미묘하게 우울해졌다.

산뜻한 스웨터에 캐주얼한 바지가 잘 어울리는 긴 흑발의 미소녀와, 그 뒤를 배낭을 메고 따르는 피로 얼룩진 위장복을 입고 권총과 소총을 든 소년이 따라가는 광경은 참으로 이상해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피식하고 웃었다.






그 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겨울에 눈오기 전이었으니 추운 건 당연했지만, 조금 정도가 심했다고나 할까. 그 날엔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적었고, 그나마도 매우 두껍게 껴입고 다녔었다.

평소처럼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에서 다음 근무자와 교대를 한 뒤 옷깃을 여미며 집으로 걸어갔다. 대로를 따라 걷다가, 낯

익은 간판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작은 빌라들이 늘어선 장소. 교통이 좋은것도 아니고 해서 상당히 싼 방들이 널린 곳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이 내가 살고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집 앞에서 한 소녀와 만났다. ...집 앞에서 쓰러져있던.처음엔 무슨 일인가 생각했지만, 눈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한 것을 깨닫고 일단 급한대로 안아 올려 방으로 들였다. 집 앞에서 동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것도 찝찝하지만, 또 뉴스에서 취재나와서 자기들 멋대로 떠드는 것도 싫은 일이다. 애초에 이런 곳에 기어들어올 사람들의 형편은 그들 또한 잘 알텐데 어째서 그렇게 떠드는진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한숨을 푹 내쉰 뒤 문을 연 뒤 소녀를 안아들어 들여놓았다.

"차갑네..."

소녀는 저체온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전기스토브를 켜고, 이불을 여러 장 덮어준 뒤에 대충 만들어둔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귀찮은 것도 있긴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남은 식재료가 죄다 조금씩 남아서 뭘 만들기도 애매했단게 컸다.어느 정도 혈색이 돌아오는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이미 차게 식은 밥을 냄비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뭉근하게 끓였다. 좀만 더 끓이면 죽처럼 될 것이다.

"예쁘네..."

조금 여유가 생겨서 소녀의 얼굴을 조용히 들여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빈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런 소녀가 왜 이런 곳에서 쓰러져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일어난 뒤에는 물어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자레인지에 데운 찬 밥 조금과 이런저런 반찬을 대충 입에 넣고, 그릇을 싱크대에 쌓아놓은 뒤 조용히 소녀를 데려다둔 방으로 돌아갔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방을 채웠다. ...그냥 자는 것일 뿐이었나. 살짝 갑갑할 정도로 덮어줬던 이불 몇 장을 걷어낸 뒤 편히 잘 수 있도록 침대 위로 옮겨주었다. 솔직히 당장이라도 묻고싶은 게 꽤나 많았지만, 일단 자는 사람을 깨우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우웅... 여긴...?"

"아... 드디어 일어났나.."

"당신은... 누구...?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난 집 앞에 쓰러져있던 소녀를 데려온 것 뿐이라고."

조금 혼란스러워하던 소녀는 내 말을 듣고 제대로 상황을 인식한 것 같다. 조용히 정좌하고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해왔

으니.

뒤늦게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에 고생을 했음을 드러내는 때탄 흰색 긴소매와 바지. 그리고 지금은 옆에 곱게 개어

둔 얊은 가운 몇 장.

"혹시, 병원이나 그런 시설에서 탈출한거야?"

"...네. 그리고 절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구요. 그러니까 숨겨주실 수 있나요?"

"...뭐?"

잠깐만. 어딘가 이야기가 비약된 느낌인데, 병원인지 시설인진 잘 모르겠지만 도망쳐 나왔다고 사람을 죽이려 든다?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환자의 치료나 삶의 질 보장이 목적인 곳에서 무슨... 네가 뭐 초능력자, 그것도 폭주 경력이 있거

나 하는, 그런게 아닌 이상 그럴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으나까 문제겠죠?"

"...? 진짜였어? 아니 뭐 내 주변이나 방송같은데도 나오긴 하지만, 기껏해야 작은 불꽃 피우기 같은게 한계인 녀석들 뿐이었는데?"

"헤에, 역시 민간인은 잘 모르는구나... 저기, 능력자들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한 몇만 명마다 한 두명꼴로 나오지 않던가? 뭐, 우리 구는 좀 몰려있기로 유명하긴 하지만서도."

"헤에... 역시 정보통제, 잘 하는구나. 정부가 하는 일이니까 그런건가."

...? 정보통제라니? 그렇다면 정부가 지금 언론에 숨기는 게 있다..? 아니, 이거야 허구한 날 숨기는 것들 투성이니까 딱히 놀랍진 않다만.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이어 나온 말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최소한 4-5천명당 하나.  그리고 그들 중 자연 발생인 케이스는... 극소수에 불과하답니다─"

"...뭐? 초능력자를 만들어낸다, 그런 소리야?"

"그런 모양이죠. 뭐, 저같은 경우는 자연발생이지만... 애매모호하달까. 확실한 건 하나에요. 대체 무슨 과정을 거치는진 몰라도, 정부, 아니면 어딘가의 조직에서 초능력자를 만들어낸다는 거."

"그래... 그렇다는건 잘 알겠는데, 그래서?"

"숨겨주세요. 저 진짜 죽을거라구요?"

'이쪽은 일상에 위협을 받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 같다만...'

...어느 날 집 앞에 쓰러져있던 사람을 집에서 잠깐 들여놓고 돌봐줬더니 알고보니 미소녀. 게다가 자기 집에 얹혀살게 해달라고 한다. 덤으로 아무리 봐도 4차원계. 적당히 맞장구쳐주기는 했지만, 이 모습을 주변인들이 본다면...

'나, 끌려가겠지. 안 끌려가도 눈빛이 많이 따가울거야...'

그렇게 고뇌하는 중에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락 안 해주실거에요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그려면, 네가 침대에서 자. 나야 거실에서 이불 깔고 자면 되니까."

"네엡─. 감사합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아, 내 이름은 유 휘설이다."

"아차, 통성명을 잊었었구나... 이 설하라고 합니다~ 뭐, 휘설 씨라고 부르면 되겠죠?"

한 쪽으로 대강 흘려들은 뒤, 주방으로 들어가 아까 끓여둔 죽을 적당히 담아 내간다. 뭐, 저 모습을 보자면 괜한 걱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따뜻한 걸 먹어두는게 좋겠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불어가며 먹는 모습이 솔직히 귀여웠다.




다음 날이 진심으로 주말인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일단 주변에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빠져나갈 구석을 파 두고, 이 설하와도 입을 맞췄다. 물론 변명상.

일단 명목상으로는 먼 친척관계였는데, 이번에 이런저런 사정때문에 이 쪽에서 묵기로 되었다. 대충  그런 정도로 둘러대두는 것으로 했다. 물론 뻥이지만, 굳이 남의 가족관계를 파고드려는 사람은 얼마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적절했었던 것 같다.

여러 문제중 당장 직면한 문제 하나는 이 설하가 입을 옷이 없었다. 그때문에 내가 입던 옷가지중 적당히 어울릴만한 걸 골라주는데 상당히 고생했었다. 덤으로 신성한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사복을 사러 다니느라 상당히 고생했다. 어째서 내게만 시선이 따가웠던 걸까. 커플도 여기저기서 보였지만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남자들은 여자들한테 옆구리를 찔리는 것이 대부분의 결말이었다고는 말 못한다.

어쨌거나 옷가게 점원들이 이것저것 옷을 갈아입혀대던 바람에 녀석은 완전히 진이 빠졌고, 따라갔던 나는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에 조용히 찌그러져야 했다. 구원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내도 어쩔수 없었다고...

그 탓에 삐져버린 녀석을 달래주는 것도 힘들었다. 참 까다로운 게 여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머리에 새겼다고나 할까.

"....아, 생활비."

그렇게 지르고 나서야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었단건 넘어가자. 그나마 아르바이트 봉급이 들어오기까지 며칠 남지 않았었기에 다행이지, 꼼짝없이 굶었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 했었다고.

어쨌거나,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주말을 보낸 뒤에 맞이하는 월요일은 조금 색달랐다. 다른 말로는 더럽게 죽도록 피곤해서 일어나기 정말로 싫었다. 대체 왜 학교를 가야 하는건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어찌되었건 억지로 몸을 이끌고 일어나서 대충 씻은 뒤, 아직도 자고 있던 그 녀석에게 마저 이볼을 덮어줬다.

"...좋은 아침."

뭐, 아직 해는 뜨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딱히 구겨진 곳 없는 교복을 차례차례 걸친 뒤에 즉석에서 대충 식빵에 잼을 발라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대충 한 번 먹을 정도의 죽이 남아있었기에 그걸 마저 끓인 뒤 랩으로 싸고, 일어나면 먹으라고 주변에 굴러다니던 메모지에 적어서 올려놓는 걸로 끝.그리고 집 안의 돌아다니며 제대로 문 잠궈뒀는지 전부 확인한 뒤에야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기분 나쁜 거라면 나 수상해요,라는 분위기를 온 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새까만 정장에 선글라스까지 낀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는 것 정도? 그거 보고 내가 지금 영화속에 있는건가 하는 착각이 들었었으니까. 애초애 일반인에게 간파당하면 안 되는거 아닌가요, 그런거.그렇지만 딱히 걱정은 되지 않는다. 창문엔 전부 커튼이 쳐저 있으니 내부는 확인할 수 없다. 내가 정확히 몇 호에 사는지도 모를 것이다. 원체 낡아서 흔하디 흔한 폐쇄회로 TV도 없는 곳이니까. 그때문에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소형 싸구려 카메라를 산 뒤 벽에 박아넣어서 방범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건 웃기 힘든 슬픈 현실이다.

여담이지만, 다들 뭔가 재주들이 다양해서 처음엔 여긴 뭔 인간도구 집합소인가 하곤 했었지. 거주자 둘이서 복도 전체 도장을 새로 하고, 어지간한 수준의 공사는 알아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어디 하수관 다발이 나갔다거나 주요 배선이 나갔다고나 하지 않는 이상 단지 내에서 수리가 전부 가능했다면 믿겠는가. 솔직히 내부 배선이 그 아저씨가 아무렇지도 않게 벽 뜯어내고 몇 번 만지작거렸더니 고쳐지는 걸 보면서 할 말을 잃었었다. 그 덕에 처음 왔을때 들었어양 할 보수비가 대폭 감소했지만. 그 아저씨는 아직도 내 윗집에 살고 있더라. 덕분에 요즘도 종종 놀러가서 배선이나 이런저런 잡지식을 배우곤 한다. 특히 납땜. 이건 꽤 유용하게 써먹고 있었다. 주로 고장나서 버려진 단파라디오를 마개조한다거나 하는 곳에다가. 참고로 그 라디오는 지금도 간간히 켜보고는 한다. 물론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개인 단파방송 듣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그런데 이거, 빼도박도 못하게 그냥 평범한 공돌이 아닌가.... 난 그냥 평범한(?) 예비 고 2일 뿐인데 말이지. 이미 집 잃고(?) 가족 잃은 여자애를 집에 받아들인 시점에서 평범하진 않으려나?... 애초에 혼자 사는 소년가장이라는 게 평범하진 

않겠구나.

한숨을 내쉬며 시간을 확인한다. 7시 30분.

"늦진 않았나... 그래도, 아슬아슬하겠는데."

조금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뒷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선다. 평소와는 약간 다른 광경이지만, 딱히 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학생들의 진이 다 빠지는 월요일이니까. 그리고, 방학이 이제 한 자릿수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흥분한 녀석들도 몇몇 보였다.

그렇지만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평소처럼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내 책상에 걸어두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에서 찌라시들을 걸러내고 제대로 된 기사를 찾다가,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휘설. 오늘 방과 후 사격장으로 4시까지 집합이다. 라고 우리 고문이 전하랬어."

"엑... 동아리 공식적으로는 지지난주에 끝나지 않았냐. 부장쯤 되면 그런 걸로 태클을 걸어 보라고."

"그럼 지금 같이 가서 항의할래? 아, 물론 바뀌는 건 없겠지만. 뭣하면 조퇴라도 해 보던가. 우리 고문 성격은 잘 알고 있을테니 딱히 추천은 하지 않는다만."

"분명 내 집까지 쫒아와서 깽판치겠지..."

우리 학교는 주변의 다른 학교에 비하면 동아리가 비교적 활성화 되어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기말고사가 끝난 뒤에는 하지 않는 부활동도 지지난주에야 끝난 것인데, 우리의 고문은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 쿨한 사람이다. 참 쿨해서 주변인에게 민폐를 많이 끼치지만.

학교 전체에서 발언력 강한 부장 뽑으라면 두 손 안에 들어갈 우리의 반장 양도 그 양반 앞에서는 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니까.

"사격 동아리라는데 혹해서 들어왔던게 내 잘못인가..."

"지금껏 잘만 해왔으면서 뭐가 문제야? 하여간, 전달은 했다? 안 오면 뭐가 기다릴지도 몰라~"

"네이네이, 알아서 가겠습니다..."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가시는 우리 부장(반장 겸직)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무슨 날벼락이야 

이게... 그래도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애초에 저렇게 가볍게 말하고 있긴 해도 답이 없는건 마찬가지고.

"...오늘은 제발 내기같은 건 걸지 않았길 빌며."

대체 왜 우리 고문은 자기가 하지도 않을 거면서 꼭 우리를 시켜서 뭔가 사소한 거라도 걸고 점수 내기를 시킨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가벼워졌다는데 위안을 삼아야하는게 더 슬프다.


지루하게 핸드폰이나 만지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차피 정규과정은 전부 끝났고, 몇몇 과목, 특히 수학은 내년에 배울 2학년 과정을 선행해 나가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딱히 통제도 하지 않은, 정확히는 포기한 듯한 모습을 선생님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나마 우리 반은 전체적으로 얌전한 편이어서 다행일까.

여담이지만 남녀공학에 합반이라고 생길 것 같죠? 안 생겨요. 명심해. 여자친구란건 환상 속의 생물이야. 환상종이라고. 중요하니까 두 번 강조했다. 어째선지 요즘 주변에서 그 환상종을 찾은 인간들을 많이 보고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고 그러는거냐. 솔로들이 보고 있습니다 염장질을 자제하여 주십시오.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다가 까칠한 상태였던 선생이 날린 분필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나서, 그것때문에 한 소리 들어야 했단건 넘어가자. 뭐, 한 몸 희생해서 반에 큰 웃음 줬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죽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평소처럼 간단하게 싸온 도시락을 꺼내 대충 입에 넣기 시작

했다.

"그나저나, 우리 학교도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응? 왜?"

"여기에서 도시락 권장하는 고등학교가 몇 곳이나 되냐? 급식업체들도 이런 곳 들어올려고 난리일텐데."

"그도 그렇네. 아니면 뭐 매점 수익이 학교에 대부분 들어간다거나?"

"그건 그냥 음모론이잖아... "

그런데 꽤 그럴싸해보인단 말이지...

"뭐, 어쨌든 그런 건 됐고. 진도는 어디까지?"

"또 그 소리냐? 나 반장이랑 아무 사이 아니라니가?"

"아, 그래서 맨날 그렇게 자연스럽게 틱틱대고 그러세요? 설득력 있는 설득을 해 봐 인마. 옆에서 보기엔 그냥 연인이야."

"아니라니까... 이보세요, 나 저 녀석한테 당하는 입장이라니까... 생일엔 선물같은 것도 없었고, 대화도 어지간하면 사무적

인 일이 전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있냐?"

"뭐. 난 내가 인식하고 있는 상황만 말한 것 뿐인데? 뭔 문제라도 있어? 정 그러면 걔한테 직접 물어봐."

"...착각의 늪은 생각보다 더 깊었구나."

망할 악우녀석이 뭐라 중얼거리긴 했는데, 못 알아듣겠다. 좀 크게 말해봐. 

"아니다... 에휴, 밥이나 마저 먹자."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입을 닫고 도시락을 까먹닌데 여념이 없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대체 뭔 오류를 범하기라도 하고 있는 건지 고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뇌리에서 떠올랐다.

뭔가 할 말이 있다면서 불러낸 일은 좀 있었지만, 대부분 동아리 관련이나 진도같은 걸 물어보는게 전부였단 말이지.

어쨌거나, 머릿속이 복잡하건 말건 시곗바늘은 열심히 달려갔고, 어느새 종례시간이 되었다.

반장, 인사. 하고 여자 목소리임은 구본할 수 있지만 비교적 낮은 우리 담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차렷, 이라는 구호에 다같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남자애들이 먼저 교실을 뛰쳐나간다. 누구누구가 청소를 튀었느니 하는 소리들이 수많은 소음 사이에서 가느다랗게 들려오기도 하지만, 나도 적당히 가방을 어깨에 맨 뒤 됫문으로 나와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어제 내렸던 눈이 아직 인도에는 수북이 쌓여있었다. 도로야 열선을 깔아놨다는 모양이고, 당장 등교할 때만 해도 바쁘게 돌아다니는 제설차량을 본때가 꽤나 많다는걸 감안하면 거의 흔적도 안 남은게 당연한 결과겠지.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요?"

의례적으로 중얼거리던 말에 대답이 돌아오자 순간 당황했지만, 어제 일단 들여둔 소녀가 아직 있단 사실을 떠올리고는 평

정을 되찾았다.

"헤에, 교복 잘 어울리네요..."

"무슨 소리야... 어쨌거나, 아침이랑 점심은 먹었지?"

"쪽지에 친절하게 적어둔 것도 못 할까봐요?"

눈에 띄는 밝은 색의 헐렁한 긴 바지와 거기에 어울리는 긴소매 블레이저, 그 위에 가볍게 걸친 크림색 가디건. 이 설하는 그렇게 차려입고 있었다.

"실내에서 그렇게 입으면 덥지 않아?"

"딱히 그렇게 덥진 않던데요? 뭐, 난방도 적절하고. 그나저나, 또 어디 나가요?"

"동아리 행사...에 강제 참가를 해야 해서. 뭐, 따라오려면 오고."

"허락하신다면야 당연히 가죠. 솔직히 혼자 있으려니까 좀 쓸쓸했다구요."

"퍽이나... 네가 말하는 그 시설도 너쯤 되면 독방에 넣을 것 같은데?"

"땡이네요. 걔들도 예산의 압박을 받고 사는 기관이라는 분류에 해당하는 슬픈 생물들이니까. 하는 일은 전혀 동정하고 싶지 

않지만요."

그 뒤로는 그저 화제를 돌리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단념했다. 딱히 더 캐물어볼만한 여유도 없었고. 지금 나가지 않으먼 늦을게 뻔할 뻔자다.

가는 길에 쓸데없이 시선이 집중(주로 내 옆에서 걷던 이 설하에게)되는 효과를 경험하는 일도 있었지만 넘어가자. 저 도둑놈이라는 느낌의 시선이 이 쪽으로 향하던 걸 생각하는 건 슬퍼지니까 그만하자. 대체 왜 나한테만 그래...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평소처럼 무심히 걸어간다. 설하는 새삼스럽게도 어딘가 산기해하는 기색을 띄면서 조용히 나를 따라서 걸어오고 있었다.

낯익은 간판과 창문 틈으로 조금 새어나오는 화약내음. 익숙한 사격장의 모습이다. 추위에 얼어붙으려 하는 손을 꼼지락대며 풀어주며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꽤 멋진 곳이네요..."

"그렇지? 오히려 소박해서 더 편안한 곳이야... 오늘같은 날은 전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러면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줘."

"...?"

어쨌든, 입 맞춰둔 대로 둘러대면 되겠지?


"늦잖냐, 욘석아."

"정시 맞춰서 왔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미리 사격할 물건 영점 맞추라느니 하는 태클은 사절합니다."

"헤에, 이 녀석 보게. 너, 많이 컸다?"

"그래서 오늘은 대체 무슨 일입니까? 또 무슨 내기라도 거셨어요?"

"..."

...확신범이다! 잠깐 눈을 돌렸어!  이 빌어먹도록 글러먹은 교사! 훌륭하다 훌륭해!

"...저기가 오늘 네 사로다. 그리고 오늘은 권총 사격은 아니다."

대체 뭐야... 그러고보니, 저 사로가 250까지 가던가? 대체 시내 사격장에서 어떻게 250m를 확보한건진 참 의문이지만, 시

외쪽이라는 거에 대충 납득했다. 땅값이 싸기라도 하겠지...

어쨌든, 선생에게 배정받은 사로로 가려는 찰나에 갑자기 질문이 들어왔다.

"아까 데리고 온 여자애는 뭐냐? 여친? 언제 사귄거야?"

"사귀는 게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진 마시죠. 어쩌다보니 먼 친척쪽에서 멋대로 맡겨와서 골치라구요."

"그런거냐... 뭐,  너도 고생이구나. 그러니까 소개라도 시켜줄 사람 없냐?"

'안 되겠어, 이 선생...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분위기랄 것도 없었지만 너무 긴장을 없애는 방향만으로 특화라니, 뭐야 그런거. 듣도보도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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