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침공이라고 하면 고전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스꽝스럽게 큰 머리에 살인 광선총을 가지고 다니는 외계인들. UFO를 타고 다니는 작은 회색 인간들. 심해에서, 외우주에 도사리는 위대한 옛 지배자들. 그 날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이미지만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인류가 외계인에 의해 멸망하는 것보다 우발적 핵전쟁으로 먼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더욱 끔찍한 것이었다. 내가 놈들을 처음 마주친 것은 양치질을 하면서였다. 얼굴에 잔뜩 퍼 바른 폼클렌저를 헹궈내고 나자 거울에 못 보던 형체가 비쳤다.
“당신네 문명의 궤도권 데브리 오염은 기준치를 훨씬 초과했습니다. 그린 갤럭시는 당신네 문명의 이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말했다. 마침 잔뜩 젖어 있던 바닥 덕분에 거의 이승을 하직할 뻔하며, 나는 그것을 쳐다봤다. 겉에서 수많은 촉수가 돋아나온 결정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외견이었다. 미약한 빛을 내며 주기적으로 표면에 노이즈가 달리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하는 장난이라면 아주 공들인 것임이 분명했다. 현용 기술은 한참 초월한 프로젝터를 통해 쓸 만한 스크린이라고는 가득 찬 증기밖에 없는데다가 상을 띄울 수 있는 누군가의 장난. 물기 탓인지 엉덩이가 축축이 젖어왔다.
“나보고 말해봐야 소용없어! 그보다 이건 무슨......”
“귀 문명의 데브리 량은 이 항성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입니다. 이 홀로그램은 녹화된 메시지이며, 당신네 문명 구성원 모두에게 전송되고 있습니다. 당신네 행성이 한번 공전할 때까지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몹시 딱딱한 목소리였다. 거기다 억양도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미치광이가 치는 피아노랑 비슷한 수준으로 높낮이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것은 말을 계속 이었다.
“1년 내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저희가 강제 집행에 나설 것입니다. 이상 은하 환경 보호 단체, 그린 갤럭시에서 보내드렸습니다.”
그것은 사라졌다. 나는 일어나서 들러붙은 바지를 엉덩이에서 떼어냈다.
형상이 나타난 당일, 뉴스에서는 이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보도하기 바빴다. 각종 사건사고들. 은행 강도가 갑자기 나타난 형상에 놀라 허둥대는 틈에 시민에게 제압당한 미담부터 비행기의 이착륙 실패 같은 대형사고까지. 이것이 어느 국가의 소행인지에 대한 토론. 외계인은 진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토론. 진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외계인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 데브리를 청소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쓸데없이 진지하고도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들. 하지만 반년이 지나자 모든 것은 잊혀졌다. 사건이 일어난 지 딱 1년에서 하루 모자란 날이 되기 전까지는.
“귀 문명은 1년의 유예기간을 드렸는데도 전혀 개선된 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데브리를 치울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형상이 말했다.
“뭐? 하루 일찍 왔잖아! 그리고......”
“항의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미리 말씀 드리건데, 이것은 녹화된 메시지입니다. 하루 먼저 찾아온 건 올해가 당신네 역법으로 윤년이기 때문입니다.”
“또 녹화메시지냐!”
“그리고 당신네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문명에서 데브리 치우는 것이 어렵다고 항의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해야 할 일만을 할 뿐입니다.”
형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골치아픈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데브리뿐만 아니라 다른 환경오염 현상에도 나타나 간섭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떠들어댔다. ‘당신네들은 기준치를 초과한 ......당신네 기준으로 말하면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오염 덩어리들이군요.’ ‘이렇게 말해도 듣지 않으면 저희에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모두 노이로제에 걸렸다. 귀에 못이 앉은 결과, 모두 자연스럽게 태업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멈췄다. 여기저기서 폭동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몹시나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인류 문명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단 한 그루의 나무도 희생시키지 않고.
바야흐로 인류는 범우주적 잔소리꾼들에게 굴복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