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의 무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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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색깔의 무게

글한

   홍콩 H대 인근 상가에는 낡은 거리들이 많았는데, 보통은 거기까지 들어갈 일이 없다. 가려면 번화가 뒤편에서 일부러 골목 사이로 빠져나가 주택가를 가로질러야 한다. 가봤자 별 볼일도 없는 곳이다. 90년대의 스크린에서 나는 낡은 향수를 즐기려면 홍콩 섬에 일부러 방치한 듯한 상가골목을 2층 버스로 누벼야 하는 것이지, 이 낡은 거리는 그냥 낡음이다. 향수고 뭐고 없는 흔히 볼 수 있는 홍콩의 구식 아파트가 집적된 유산. 유산이라기 보단 골동품. 골동품보단 찌꺼기.

  애초에 그런 곳이라 좋은 소문이 도는 곳일 리가 없다. 온갖 소문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거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학교에서 직선상으로도 꽤 떨어진 곳에 집창촌이 음지에서 영업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자기를 멍졔(夢姐)라고 불러달라는 여자도 살았다.

   멍졔는 이름처럼 꿈을 파는 사람이었다. 꿈 해몽을 겸하는 점쟁이나 사주쟁이들은 홍콩 거리에 널리고 널렸기에 업종을 바꾼 것 같은 여자였다. 그리고 그 참신함이 나름 사람들에게 어필이라도 한 모양인지 이 거리를 걸어봤다는 사람은 반이면 멍졔의 가게, 를 빙자한 노점을 찾으러 온 게 뻔했다.

   꿈을 판다는 사람이라 그런지 본업은 역시 잠자는 시간인 듯하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은 여자였다. 장사라는 게 아침에만 꿈을 파는 것이 전부였다. 가게 운영 시간은 무조건 7시부터 10시까지였다. 아침.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그 뒤엔 노점이 없다.

   도대체 그렇게 살면 밥은 어떻게 먹어요? 그녀는 한참 눈살을 찌푸리며 내 얼굴을 훑는다. 저 밥 잘 먹고 사는데요. 그 소리가 아니라…….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뭐라고 되물어야 할지 생각할 때, 이렇게 대꾸해온다. 왜요, 꿈 사시게요? 오늘 치는 다 팔아서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꿈이나 파는 여자가 배가 부른 모양이다. 그렇게 장사해서 돈은 어떻게 벌고 살아요? 여자가 입을 비죽 내민다. 나도 돈 벌고 싶죠. 그런데 어떡해요, 오늘 치 꿈이 그것밖에 없는데. 헛웃음이 나온다. 아니, 이 사람아, 그렇게 되면 지어내서라도 팔아야 하는 거 아냐? 여자는 김빠지는 듯한 코웃음 소리를 낸다. 꿈을 어떻게 지어내요? 이것도 신용으로 먹고 사는 건데. 세상에, 꿈 파는 사기꾼이 상도덕을 다 논하고 있다.

   그러면 왜 손님이 많이 없는 날에 꾼 꿈은 안 파는 겁니까? 예전에 꾼 꿈은 그냥 날려버리는 거잖아요.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바보 같은 미소로 입을 연다. 아침 먹어야 해요. 아침 먹은 뒤에는 꿈 못 팔구요. 아니, ? 아침을 먹으면 꿈이 현실에 물들거든요.

   어이가 없어서 계속 헛웃음만 나온다. 여자는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졸기 시작한다. 기면증이라도 앓고 있는지 항상 정신을 차리면 졸고 있는 게 일상이라는 여자.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 내가 어쩌다 이 여자와 엮이게 되었는지 되짚어보았다. 그것은 우연이라기 보단 실수에 가까웠고, 내 의지보단 리우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때 갓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들이었고, 모든 것이 마냥 재밌을 때였다. 리우와는 고등학교부터 알던 사이였다. 우리는 홍콩과 땅으로 이어진 가장 가까운 중국 땅, 선전(심천, 深圳)의 국제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 같은 학과로 입학했다. 익숙한 사이였기에 같이 다니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고백은 내가 먼저 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입학 초의 들뜬 분위기에 취했던 모양인지, 익숙하다는 감각을 호감으로 착각했던 것인지,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갓 구워 나온 밀빵처럼 쉽게 찢어질 것 같은 사이를 굳히기 위한 일종의 계약의식 같은 걸 찾아다녔다. 우리에겐 그게 내가 우연히 흘려들은 소문, 멍졔였다. 나는 꿈을 판다는 것이 그냥 웃겼고, 바보 같았기에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리우에게 전해주었다. 리우는 그게 마냥 신기했던지 찾아가보자고 졸라댔다. 나는 뒤늦게야 후회했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 거리까지 기어들어갈 구석이 전혀 없을 터였다. 전혀 없다. 애초에 우리 과 학생들이 자주 찾는 상가는 그 블록에서 정반대편에 있는 곳이었고, 각잡고 논다는 무리에 껴서 놀러간다고 해도 뭉콕으로 나가 소위 화끈한 홍콩의 밤을 보내지 낡아빠진 학교 상가에서 모일 리가 없다. 거나하게 술잔 좀 기울인 뒤라도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보고 난 뒤엔 발걸음을 돌릴 게 뻔했다.

   나는 끌려가듯 리우와 함께 그 거리를 찾아갔다. 물어물어 찾아간 멍졔의 노점은, 찾아간 시간이 점심을 먹고 난 뒤였으니 이미 없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찾아갔다. 계속 가게가 없으면 포기하기도 하련만 리우는 그 소문 어디에 그리 꽂힌 것인지 집착하듯 찾아갔다. 그렇게 몇 번을 찾은 뒤에야 이른 아침에 장사를 하고 있는 멍졔를 만났다.

   그녀는 동양인이라는 걸 빼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애매한 여자였다. 중국 사람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 동남아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림이라도 그리는지 진한 페인트 냄새가 났다. 노점에 앉아서 슬쩍 졸고 있는 게 마치 나사를 풀어놓은 것 같은 인상이었다. 노점 좌판을 두어 번 치자 눈을 스르륵 떴다. 한참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던 멍졔가 물었다. 손님이시네. 꿈 사실래요?

   리우는 멍졔에게 우리 둘 사이가 앞으로 어떨 것 같느냐는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멍졔는 꿈을 파는 여자였지, 사주를 하는 점쟁이는 아니었다. 생각이 있는 장사꾼이었으면 그냥 꿈을 강매하고 적당히 덕담을 늘어놓았을 테지만, 그녀는 그냥 단순했다. 난 꿈을 대신 꿔주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은 꿈을 사가고, 거기에 만족감을 얻어요.

   리우가 산 꿈은 귓속말로 전해줬기에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다. 리우는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리우는 내게도 꿈을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멍졔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 꿈은 당신 것 같아요. 노골적인 상술처럼 느껴져서 꺼려졌으나,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말에 나는 들어봐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내 귀에 속삭였다.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데 누군가가 마시던 커피를 쏟았어요. 욕조물은 커피로 바뀌었죠. 커피는 미지근했고 씁쓸했는데, 한 모금 마시고 너무 써서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어요. 그러더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드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게 꿈의 내용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내용이 아직도 기억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도 잘 몰랐다.

   여자는 종이쪼가리에 펜으로 휘갈기듯 써놓고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꿈 값으로 30 홍콩달러를 요구했다. 나는 지갑을 꺼내 돈을 건네주었다. 50 홍콩달러짜리였다. 그녀는 20 달러를 거슬러주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내게 20달러를 쥐어주고는 검은 비닐봉지에 종이쪼가리를 담았다. 비단주머니까진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꿈을 담는 그릇으로 비닐봉지는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비닐봉지를 건네준 뒤 여자가 당부하듯 말했다. 항상 가지고 다니세요. 지금부터 그 꿈은 손님들 거니까요. 잊어버린 꿈은 꾸지 않은 꿈하고 다를 게 없답니다.

   리우는 처음엔 살짝 꿍한 듯했다가, 그래도 첫 기념식이라고 한동안 그걸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방에 넣어두고 다녔다. 그리고 내게도 항상 가지고 다니라고 당부했다. 나는 며칠 동안만 가지고 다니다가, 그냥 책상 서랍에 처박아 두었다. 리우는 조금 더 가지고 다녔는데, 한 달 정도 지나자 비닐봉지가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니 잃어버렸다고 했다. 검은 비닐봉지는 가방에 넣어두고 다닐만한 예쁜 액세서리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리우와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멍졔 외에도 찾아다녔던 의식들은 모두 엉터리였거나 사이비였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한 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헤어졌다. 리우는 내가 항상 도망치려고만 한다고 화를 냈다. 내가 텅 비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나도 모르게 그 말에 수긍해버렸다. 맞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심함이 모든 일의 원인이었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대학에 온 뒤로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헤어지자는 리우의 말에도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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