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coon City

데하카 0 2,562
음... 단편이라기보다는 중편이군요.
어쨌든 제 첫 작품인데... 아크 크레이들에 있던 걸 그대로 다시 올려 봅니다.
참고로 지금 쓰는 작품과 세계관이 이어지며, 지금 쓰는 작품의 22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아침. 대정 공화국의 수도 ‘강영’ 북구의 대정 경비대 ‘수도경비사령부 북부대대’. 이등경부터 상등경까지의 전 병사들은 아침 일찍 점호를 마친 후 아침밥을 먹고 일과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고, 간부들은 거의 모두 출근을 마쳤다. 저 멀리서 간부 한 명이 영문을 통해 들어온다. 영문 경비는 외부 업체가 맡고 있었다. 그들은 그 간부의 간단한 출입사항을 적고는 들여보냈다. 그는 헐레벌떡 대대장실로 뛰어 들어오며 경례를 했다. 최태우 대대장은 그 간부의 경례를 받았다.

"아, 이민우 1등위. 왔나?"

"예. 저 왔습니다."

"자네 오늘 10분이나 늦었군."

"죄송합니다. 중간에 열차가 고장 때문에 멈춰서..."

"아니, 죄송할 것까지는 없어. 자네는 언제나 작전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고, 자네의 그 모습은 자네의 직속상관인 나와 다른 모든 상관들과 자네의 부하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지. 이번만은 특별히 봐 주겠네. 내 권한으로 말이지."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이민우 1등위는 언제나처럼 자기 중대로 가서 부하들과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경례하는 이는 경험이 많은 2등사 조준호였다. 그 외 소대장들과 병사들도 그에게 경례를 했다. 왠지 그날따라 부하들의 목소리가 더욱 우렁차게 들렸다. 기분이 좋아진 이민우는 일일이 경례를 받아 주었다. 중대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행정실에 들어가니, 행정사무원들이 인사를 했다. 행정사무원들은 모두 경비대원이 아닌 외주업체 직원들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져 또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오늘은 특별히 어디 나가서 교육하는 것 없이 그냥 오전에 정신교육 같은 걸 한다고 했다.

‘참 그 때가 생생하군...’

그는 중대장실 의자에 앉아 지난 날을 회상했다. 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경비대에 입사한 지도 2년이 넘게 흘렀다. 그간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 훈련을 받은 시간이 아직도 어제 일어난 일 같이 느껴졌다. 수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2년째에 4개월 동안 받은 비밀 훈련이었다. 그것은 정말 ‘비밀’이라 할 만한 것으로, 동기들도 그가 4개월 동안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동기들에게는 파견 교육을 간다고 했다. 2년째에 여러 가지 조사를 했는데, 신체 조건, 정신 조건 등에 모두 최적 판정을 받았기에 그가 뽑혀간 것이다. 가서 한 것은 명상, 최면 같은 것이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교관은 분노의 순간을 떠올리라고 했다. 그런 것들을 가시 에너지로 극대화하여, 그 에너지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밀 훈련 때 되뇌인 문구가 아직도 떠올랐다.

‘내 마음은 내가 지배한다... 나는 나의 분노의 주인이다...’

그 때에는 그것만 반복했는데, 솔직히 혼자서 코웃음을 칠 때도 가끔 있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자고 쉬고 하는 것 말고는 내내 그것만 했다. 하루 종일을 그것만 반복한 것이다. 이렇게 지루한 것이 훈련이었단 말인가? 그만두고도 싶었지만 어디인지도 모르는지라 묵묵히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밀 훈련 중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예정된 시간이 되자, 그는 정신교육을 하러 대대 내의 강당으로 갔다. 부하들은 이미 와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졸려 보이는 병사도 있었고 각잡고 있는 병사도 있었다.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보니 대대장이나 참모들, 다른 중대장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중대장들은 모두 그의 선임들이었다. 이윽고 대대장이 들어왔고, 그는 경례를 했다. 대대장은 경례를 받아 주었다. 중대장들이 한 마디씩 했다.

“아, A중대장? 너 여자친구 사귄다며?”

“몇 달 됐다는데? 이야, 니 나이 치고는 너무 늦은 거 아냐?”

“뭐, 여자친구랑 결혼할 거면 빨리 하는 게 좋아. 본사에서 결혼 수당도 나오고 하니까, 잘 생각해 보라구.”

선임 중대장들은 모두 한 마디씩 건넸다. 사실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다. 사귄 지는 6달 정도 되었다. 사실 그는 자립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선임 중대장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립하려면 수입도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의 수입으로는 부족하다. 여자친구는 자기 말로는 무슨 일을 한다는데, 그녀가 정사원인지는 알 수 없다. 여자친구는 일단 신경 끄고, 일단 자기 자신부터 좀 살펴야 한다. 그래야지 연금 혜택도 누릴 수 있고 하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병사 한 명이 “강사님 들어오십니다.”하자, 모두들 웅성거림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40대로 보이는 강사가 들어왔다. 강사는 본사의 ‘인프라기획부’ 소속이라고 간단히 소개하고는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요즘 ‘타타리아’라는 나라는 ‘제클 버’라는 독재자가 집권하여 군비를 확장하고 공공연히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여 이웃한 나라들을 불안에 빠트리게 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실험을 자행하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세뇌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야욕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 우주에서 가장 진보되고 합리적인 체제의 나라다. 우리가 비록 인구는 적을지라도 전 우주를 위험에 빠트리려 하는 저들에 맞서 언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강사가 강연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이어졌고 강사는 그 박수소리 속에 조용히 퇴장했다. 곧이어 전 대대의 전 병력들이 질서정연하게 자기 중대로 돌아갔다. 이민우도 역시 중대장실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이제 오늘 일은 다 끝났군. 그런데 이제 뭘 하지... 전화나 해 볼까...’

바로 그 때였다. 전 중대 내에 비상음이 울렸다. 비상사태 아니면 출동을 의미한다. 바로 뒤이어 방송이 나왔다.

“출동, 출동이다. 북구청 주변에 대규모 시위 발생. A중대 전원은 시위 진압을 위해 신속히 출동하라.”

그는 뭔가 심각함을 느꼈다. 그는 즉시 중대장실에 있는 헬멧을 꺼냈다. 밖에서는 병사들의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소대장들이 중대장실로 들어왔다.

“중대장님. 이번에도 저번처럼 3방향 포위작전으로 합니까?”

“그렇다. 이번에도 저번과 똑같다. 3개 소대는 적당히 시위대를 사거리로 유인해라. 그러면 나 혼자 앞에 나서서 그들을 상대하겠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인원이 훨씬 많습니다. 중대장님 혼자서 상대하는 건 안됩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그대로 따라 봐.”

“아...알겠습니다.”

“그럼, 너희 애들 데리고 바로 연병장 앞으로 나와. 차가 이미 대기 상태일 테니.”

“예, 바로 가겠습니다.”

소대장들은 자기 소대로 가고, 그는 헬멧을 쓰고 통신병, 운전병들과 함께 먼저 나와서 기다렸다. 곧바로 소대장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는 짧게 몇 가지 지시사항을 하달하고는 곧바로 중대장 차에 올라탔다. 그는 운전병에게 물었다.

“현장에 몇 분이면 도착하나?”

“1~2분이면 갑니다.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할 겁니다.”

“흠... 자네, 나 같은 중대장 만나서 운전 많이 하니, 참 뭐라고 할 말이 없군.”

“이런 나라에서 저 같은 보직이 아직도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0년 전까지는 대정 경비대의 비효율적인 체제를 일신하고자 하여 도입된 무인운전 시스템을 군수에도 적용하였다. 하지만 그런 것은 우주 공간을 항행하는 전함이나 상선에나 적합했을 뿐, 도로를 운행하는 차량에는 아무래도 위험하고 부적절했다. 40년 전의 군수 무인운전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1년에 20번꼴로 연례행사처럼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고를 보다 못한 경비대와 본사는 20년 전 무인운전 시스템을 폐기하고 다시 운전병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단, 폐지되기 전과는 달리 양성 과정에서 숙련도를 많이 높였다. 그 결과, 사고율이 90% 감소했다. 효율을 추구하는 대정 체제에 만족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인 이민우도 여기 대해서만큼은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검증 안 된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것도 그래.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완전한 무인운전은 좀 위험하기야 하지. 검증되지 않은 건 그만큼 사고를 부르지 않나.”

“이제 도착합니다. 저기 보이는 건물 옆에 세우겠습니다.”

“그쪽은 시위대의 예상 이동 경로 중 하나다. 병력 수송 버스를 바리케이트로 하고, 그 뒤쪽에 세워라. 통신병, 각 소대 탑승 버스에 연락해라.”

이민우가 중대장으로 있는 A중대는 주로 시위가 일어났을 때 시위 진압에 투입되었다. 전 중대장들이 시위 진압 경력이 상당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도 이민우의 시위 진압에 필요한 능력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시위 진압뿐만 아니라 여러 작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 능력은 그가 다른 동기들보다 6개월이나 먼저 1등위로 진급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이윽고 모든 병력 수송 버스가 제 위치에 도착했다. 수송 버스들은 시위 진압이나 전투 시 바리케이트 기능을 상정하여, 앵커를 박아 고정하는 기능이 있다. 건물이 있는 도로에 이것을 사용하면 버스를 부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곧이어 모든 병력이 하차했다. 그는 명령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A소대, 시위대를 유인해라. B소대, 나와 함께 있어라. C소대, 만약 내가 실패했을 경우, 후방에서 제압하라.”

이윽고 ‘공룡기업, 악덕기업 GT 타도’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적은 시위대가 행진을 하여 이민우의 부대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는 이런 건 몇 번이고 겪어 봤기에 흔들림이 없었다.

“흔들리지 마. 평소처럼 하면 된다. 흐트러지지만 않으면 돼.”

그는 위치 유지를 지시하며 부하들을 독려하였다. 새로 들어온 병사들을 빼고는 모두 시위 진압에는 베테랑이라고 할만했다.

시위대가 저 쪽에서 오고 있는 걸 보고 그는 또 다시 훈련받을 적의 생각에 잠겼다. 명상 과정도 끝났고, 그는 야외의 넓게 트인 장소에 세워진 흰 벽 앞에 섰다. 명상을 할 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인간의 능력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네가 저 앞의 벽을 의지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다면 믿겠는가?”

그는 의아해했다. 머리를 갸우뚱했다.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의심하면 이룰 수 없다. 너를 믿어라. 그리고 그것을 폭발시켜라. 믿으면 가능하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는데, 시위대를 유인하고 있던 A소대장의 교신이 들려 왔다.

“큰일났습니다. 시위대 몸싸움조가 나타났습니다!”

몸싸움조란 이들 반정부 시위대에서 경비대의 진압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써서 경비대를 막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조들을 경비대에서 부르는 말이다.

“A소대장, 자세한 상황 말하라.”

“몸싸움조는 지금 각목, 쇠파이프 등을 들고 저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방패로 막고 있는데, 중대장님께서 빨리 도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조금만 버텨라. 내가 신호를 주면 옆으로 비켜라!”

어느 정도 A소대가 시간을 벌어 주는 동안 그는 다시 흰 벽 앞에 처음 섰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의심이 갔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말한 대로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그는 그 벽이 무너지는 것을 상상했으며 그 벽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벽이 자신에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신호를 내렸다. A소대가 옆으로 물러났고, 몸싸움조가 부대 앞에 선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A소대장이 말했다.

“중대장님, 위험합니다! 저들은 살상이 가능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

“A소대장! 넌 나와 함께 있을 때 뭘 본 건가!”

그는 벽이 있는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고함을 크게 한 번 질렀다. 갑자기 앞에 있던 벽이 앞으로 넘어졌다. 그는 그 이후로 그의 의지를 믿게 되었다. 그 때와 같이, 시위대들이 줄줄이 쓰러져서 시위대 진열은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것을 본 이민우가 명령했다.

“이 때다! 포위하라! 놓쳐서는 안 돼!”

시위 진압은 겨우 40분 만에 끝났다. 시위 지도부는 따로 대대 본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했고, A중대는 오늘도 그렇게 쉽게 작전을 완수했다. 대대장도 이민우를 따로 불러 그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흐뭇해진 채 중대로 돌아갔고, 부하들은 “중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일제히 말을 건넸다. 그도 부하들에게 다 너희들 덕분이라고 답했다. 어쨌든 이 날도 하루를 마치고 그는 퇴근했다.

그의 퇴근길은 지하철과 함께 시작되었다. 부대에서 2분 거리에 시가지가 있었고, 거기에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는 내려가서 개찰구를 통과하고,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바로 오는 열차를 탔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시위자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정의 기업국가화 이후, 대정의 성장은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독재자가 지배하던 시절보다 생활은 더욱더 윤택해졌고, 가난에서도 탈출했다. 모기업 GT 그룹의 연구를 통해 세크라듐 채굴의 효율성은 더욱 좋아졌고,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상황이 좋다. 그런데 왜 저 시위대들은 뭐가 그리 불만인가? 뭘 더 해야 그만둘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새 환승역인 중앙대로역에 도착했다. 그는 그쪽에서 ‘동영’ 방면의 열차를 갈아타고 약 15분 정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기대서서 뭔가를 열심히 보거나,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거나 하는 것 같았다. 지하철 안에서는 ‘GT 식품’의 광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종착역인 동영에 도착하자, 그는 내려서 역 남쪽으로 10분 정도 거리의 자신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길거리에는 주로 일찍 퇴근한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저 쪽에 보니 노점이 하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출출한 배나 채울 생각으로 군것질을 좀 하기로 했다. 더불어, 광고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라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노점에는 어묵, 떡볶이 등을 팔고 있었다. 그는 늙어 보이는 노점 주인에게 물어 보았다.

“저기, 이거 맛있습니까?”

“음, 맛있네. 맛있고말고. 내가 매일 직접 만들고 있지.”

그는 노점 주인의 말에 즐거워하며 계속 어묵을 먹었다. 노점 주인이 그에게 불쑥 물었다.

“입은 옷을 보니... 자네... 정사원이지?”

이민우는 경비대 전투복을 그대로 입은 채였다. 아니라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그는 노점상에게서 이야기나 좀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 그렇습니다만...”

“내가 정사원들을 보고 생각한 게 많지. 그런데, 생각할수록, 정사원들이 부러웠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지.”

“정사원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남편은 하청 업체 직원이었지. 지방 말단 관청의 말단 직원 말이야. 평생을 힘들게 일했는데도 하청 업체라서 연금 같은 것도 없어. 나는 한술 더 떠서, 아예 고용되지 않았지. 그래서 보험, 연금, 이런 것도 없어. 그냥 늙을 때까지 이러다 가는 거야. 에휴... 정사원이 뭔지...”

그는 아무리 들어 봐도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혔다. 들을수록 알 수 없었다.

“잘 먹고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는 그는 도망치듯이 노점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길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노점에는 사람이 두어명 정도 서 있었다. 그 노점의 위에는 광고판이 끊임없이 식당 광고를 보내고 있었다. 보나마나 그 식당은 GT 리테일 소속일 것이다. 그는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집으로 올라갔다. 집은 평소 그의 성격처럼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이번에 GT 인더스트리에서 새로 나온 가정 관리 인공지능 ‘SH-006'을 열람하여 집에 별 일이 없음을 확인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연락 기능을 잠시 차단하기로 했다. 그는 며칠 전에 산 캡슐 음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는, 방 한 켠에 꽂혀 있는 역사책을 들고 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의 뇌리에 문득 독재자 ’최준우‘가 떠올랐다.

이 ‘대정’이라는 나라는 본래 주력 34년, ‘지구’라는 인류의 모행성의의 ‘한국’계 주민 약 3만명이 이민선 모선에서 분리하여 지금의 수도 ‘강영’에 착륙하여 세운 나라이다. 인구가 적었기에 사람들은 땅에 여유를 가지고 살았고, 주로 개간을 수반한 농업을 통해 경제 활동을 영위해 나갔다. 그러던 대정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우주선 강화재로 쓰이는 광물인 ‘세크라듐’이었다. 세크라듐은 우주선의 외벽으로 쓰여, 우주 먼지나 유성 등으로부터 우주선을 충분히 지켜 주어 군용 전함에도, 상선에도, 여객선에도 폭넓게 쓰였다. 세크라듐은 대정에서 제아 총 매장량의 40%가 넘게 채굴되었다. 당연히 신주나 타타리아를 포함한 주변 국가들이 이에 눈독을 들였고, 국지전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대정의 용맹한 군대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이를 모두 지켜 내었고, 세크라듐을 토대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한때는 최강대국 신주의 소득마저 넘어섰기에 모든 대정의 국민들은 100~200년경까지의 시기를 황금기로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 시절은 모두가 동의하는 대정의 영광스러운 시대였다. 하지만, 대정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경제 사정이 불황 및 채굴량 감소 등으로 인해 휘청였다. 국민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고, 이 요구에 부응한 사람이 269년에 집권한 최준우였다. 최준우는 당선되기 이전부터 국가에 필요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함을 역설해 왔고,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경제를 일으켜 세우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를 뽑은 것은 대정 국민들의 가장 큰 실수였다. 최준우는 집권 1년 만에 자신을 종신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일족이 국가 요직을 독점했다. 최준우 일가와 그 측근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지만, 국민들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당연히 반대파는 들고 일어났고, 최준우는 그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국민 상당수가 최준우 일파가 자행한 학살과 폭정으로 인해 죽거나 다른 나라로 망명을 떠나 한때 300만에 가까웠던 인구가 40년 만에 190만까지 줄어들었다. 경제는 당연히 파탄이 났다. 그들이 처음 행성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욱 참혹한 지옥도가 펼쳐졌다. 최준우는 304년 사망했지만, 그의 아들 최명훈은 그의 아비보다 더한 자였다. 최명훈은 최준우도 하지 않던 반대파에 대한 고문을 자행하였고, 때마침 전국에는 기근까지 돌았다. 최명훈은 결국 318년 군대의 봉기와 국민들의 호응으로 인하여 권좌에서 쫓겨나 마사타 행성으로 망명했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측근들은 성난 군중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최준우 부자 집권 동안,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고, 그간 국가를 휘어잡던 최준우 부자가 없어지자 내정은 더욱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정부는 325년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정부는 제아 행성 전체에 입찰이 걸렸고, 신주의 거대 기업집단 GT 그룹이 나서서 정부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GT 그룹은 정부를 해산한 뒤, ‘대정국 신정부 주식회사’ 및 자회사들을 설립하였다. 이로써 대정은 GT 그룹 산하의 기업국가로 거듭났고, GT 그룹의 노하우를 따라간 결과 경제 또한 회복하였으며 400년 현재까지 70년간 그 체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역사를 곱씹어 본 이민우는 노점 주인을 떠올렸다. 역사 시간에 배운 하층민들이 지금까지 있다니... 그들을 보면 전에 배웠던 독재 시절과 별반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차이점이라면 지금은 독재 정치가 없어졌고 최준우의 흔적은 완전히 일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대접받고 사는가? 시장 사회에서의 평등이 우리나라의 모토 아니었던가? 도대체 최준우 이래로 진정한 자유가 있기는 한 건가?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때, SH-006이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연결하라고 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니? 어떻게 된 거지?

“민우야. 뭐해. 왜 오늘 하루 종일 연락을 안 하는 거야.”

“야, 너 어떻게 연락이 된 거냐? 참 대단하다. 내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암호도 걸어 놨는데.”

“자기 덕분에 푼 거지, 뭐.”

“조, 좋아. 그건 그렇고, 우리 이번에 휴가 가기로 했었지? 동부 지방으로.”

“그래. 너는 회사에 말하기로 한 거 잘 된 거야?”

“난 말야. 너만 잘 되면 돼.”

“알았어. 내가 내일 가서 말해 볼게.”

“그래. 자기야. 잘 자. 늘 내가 지켜보고 있는 거 잊지 마.”

여자친구의 연락은 끊어졌다. 하지만 어째 오늘은 여자친구가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휴가를 갈 생각에 즐거움으로 가득찬 나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수면보조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요즘 며칠 동안 잠만 자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계속 어딘가에 묶여 있고 연구원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일어나도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하지만 GD 제약에서 새로 개량된 수면보조제라면 복용하는 사람을 원하는 시간 동안 잠자리에 들고 개운한 아침을 맞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곧 잠에 들었다.

 

일주일 뒤. 이민우는 여자친구와 그토록 원하던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할인행사에서 산 그의 차는 마치 하늘 위에 떠서 다니는 기분이 날 정도로 승차감이 좋았다. 더욱이 여자친구와 같이 타니, 하늘을 넘어 천국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미나야, 좋지?”

“와! 바람 좋다.”

약 1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렸다. 드디어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병풍처럼 둘러진 산들은 완전히 초록색으로 우거져 있었다. 평소 여자친구가 말한 동부 지방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건널 때 밑으로 지나가는 강물의 소리는 그렇게 힘찰 수가 없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구름과 비마저도 그들을 설레게 했다. 비가 내릴 때 차창으로 튕겨져 나가는 빗물도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들이 원하던 최고의 휴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참 지나다 보니, 바위산이 보였다. 이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바위더미도 있었다.

“저거 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사람들도 모여 있고. 자기야! 자기가 좀 아는 거 아냐?”

자세히 보니 경비대 전투복을 착용한 사람 몇 명이 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모두 병사 아니면 사급 간부였다. 그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가 볼게. 여기 차에서 잠깐만 기다려.”

그는 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갔다. 전투복을 착용한 사람 몇 명 말고는 모두 민간인들로 보였다. 모두 초조한 눈빛이었다. 이민우는 사람들에게서 빨리 그가 뭔가 해 주길 바라는 눈치를 느꼈다. 앞에 지키고 서 있던 경비대원들이 그를 막아섰다. 상등경 계급장을 단 경비대원이 말했다.

“이곳은 접근 제한 구역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있는 것 안 보이는가? 허가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 당장 물러나지 않으면 즉각 조치하겠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사원증 홀로그램을 켰다.

- 이민우, 98-11064, 대정 경비대 1등위, 입사 398년 4월 -

그것을 본 경비대원들이 황급히 그에게 경례를 붙였다. 그 중 대표격인 듯한 2등사가 말했다.

“이민우 1등위님, 몰라뵈었습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아냐. 휴가 중이니 몰라볼 수도 있지.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금 누구인가?”

“이 사람들은 지금 이 근처의 세크라듐 광산에서 굴착 및 채굴을 하기 위해 징발된 사람들입니다. 저희도 지금 본사의 지시가 있어 그대로 시행하는 중입니다.”

“음, 그런가? 총본사에서 뭔가 할당량이 부족했던 건가?”

경비대원들이 말하는 본사란 경비대 사령부를 의미했다. 경비대는 독립된 법인이었으므로 모기업인 정부는 총본사라고 칭했다.

“이 사람들, 자원해서 온 건가?”

“아닙니다. 임의로 뽑아 온 겁니다.”

“그런가? 이 사람들 안 그래도 억지로 온 거잖아. 그런데 강압적으로 대해서야 되겠나? 좀 그런 건 신경써 주면 좋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휴가 나오셨다고 하셨습니까? 좋은 시간 되십시오!”

그는 차로 돌아왔다. 여자친구가 그에게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자기야, 무슨 일 있었어?”

“아냐... 아무 일도 아냐. 계속 가자.”

그는 일단 그 일을 잊고 여자친구와 즐겁게 놀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2박 3일 동안 상류 쪽에 올라가서 물놀이도 하고, 산에도 올라가며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일상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연이었다. 또한 동부 지역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라 그들은 자연을 만끽하고, 일상을 잊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이민우는 다시 그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광산 앞에 서 있던 그 사람들의 눈빛이 뇌리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원래 그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휴가를 갔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일상보다 더 큰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며칠 전에 생각해 봤던 그 역사의 현장이 되풀이되는 것을 그 날 본 것이다. 그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야, 정말 뭐 안 좋은 거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은 어둡고 그래? 속이 안 찬 거야?”

“아냐... 아무것도 아냐.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약 이틀 뒤, 그는 다시 부대로 출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부하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그도 인사를 했다. 행정사무원 중 한 명과 B소대장이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중대장님, 어제 저희가 B중대와 시위를 진압하는 와중에 시위의 총책임자를 잡아왔습니다. 지금 부대 내 유치장에 있으니, 중대장님께서 조금 있다가 직접 심문해 보라고 대대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알았어. 가 봐.”

그는 부대 내의 간이 심문실로 가 봤다. 이곳은 본격적으로 교도소 등으로 보내기 이전, 체포된 사람에 대해 간단한 심문을 하는 곳이었다. 어제 연행해 왔다는 시위 총책임자는 그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가 심문실로 들어오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3등사가 경례를 붙였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자동문 쪽을 향해 외쳤다.

“1237 오주원! 나와라!”

시위 총책임자의 이름이 오주원인 듯했다. 오주원과 이민우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이민우가 우선 입을 열었다.

“나는 시위 주동자들의 생각이 뭔지를 알고 싶었다. 그간 내가 시위를 많이 진압해 왔는데, 연행한 자들을 심문한 건 언제나 다른 중대였지. 그리고, 내 개인적인 의문점도 있었다. 오늘 당신에게서 말을 한 번 들어 보고 싶군.”

“당신이? GT 그룹의 충실한 종인 당신이 말요? 참 웃기는군.”

“나는 당신에게서 진실한 이야기를 듣고 싶단 말이오.”

“내 이름은 아까 저 3등사가 말해 주어서 알 것이오. 나는 원래 정사원이 될 예정의 촉망받는 대학생이었소. 당신과 똑같이 정부에 지지를 보냈지. 하지만, 4학년이 되던 해 기업국가의 실체를 알게 되었소. 그리고 나는 감히 국가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쫓겨났고, 비사원으로 내려앉았소.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자리에 위치하여 시위를 주도해 오게 된 거요.”

이민우는 그가 원래 엘리트였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한편으로는 더욱더 궁금해했다.

“그럼, 당신이 깨달았다는 그 실체에 대해 말해 주실까.”

“좋소, 몇 가지만 이야기해 주지. 지금 이 나라는 정사원, 비사원으로 나누어져 있소. 정사원이 되면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 반면, 비사원은 그런 건 없지. 이것은 GT 그룹이 70년 전에 우리나라 정부를 인수한 이후부터 시작된 거요. 기업의 기본적인 목적은 이윤 추구요. 이는 지구에 있던 시절부터 바뀐 게 없소. 아니, 지구에 있었던 때보다 지금 이 시간대로 넘어와 여러 행성에 나뉘어 정착한 시점에 더 치밀해졌지. 기업국가란 간단해. 국가가 국민들을 보호하는 게 아닌, 국민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생각을 하는 거지. 당신도 강영 밖을 다니다 보면 봤을 거요. 국가가 나서서 비사원들을 싼 값에 착취해서 세크라듐을 채굴하고 있소. 국가는 돈이 쌓이지. 그 밑의 정사원들도 당연히 주식이 있고 배당금을 받으니 풍족해. 하지만 전국민의 80%를 차지하는 비사원들은 지옥의 나락이지. 이건 최준우 부자 집권 때와 다를 게 없소.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건...”

오주원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민우 역시 정사원으로써 배당금을 받고 있었다. 또 그가 휴가 중에 목격한 것도 딱딱 들어맞았다. 오주원이 뭔가 더 말하려는데, 3등사가 막아섰다.

“잠깐! A중대장님! 죄송합니다! 여기서 심문을 중단하라는 대대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1237 오주원! 다시 원래 위치로 복귀한다!”

3등사는 그를 자동문 저편으로 끌고 갔다. 오주원은 이민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잊지 마시오! 당신이라면 알 수 있을 거요!”

“...!”

이민우는 중대로 복귀해서 그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순간 휴가 때 본 사람들이 다시 생각났다. 그 오주원이라는 자의 말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었다. 그는 떨쳐오는 의문감을 지울 수 없었다.

‘아냐... 거짓이다... 내가 본 건 거짓이야...’

이렇게 생각하며 잊으려 해도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은 엄연히 사실이었다. 사실을 거짓이라고 부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가 살아오면서 굳게 다져 온 생각이기도 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마침 그의 앞에 중대장 결재 서류가 쌓여 있었다. 그는 업무를 보며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왜 이렇게 서류가 많지?”

“오늘이 정기 결재일입니다. 부하들 휴가 결재와 포상, 징계, 이런 문서들입니다.”

“아, 내가 깜빡하고 있었군. 그래. 알았네.”

그는 쉬엄쉬엄 문서들을 결재하면서 아까 일을 잊어 보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생각난다. 그것은 그에게는 뭔가 지울 수 없는, 각인된 것이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떠오른다. 게다가 그 오주원이라는 사람의 얼굴마저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잊어야 하는데... 잊어야 하는데... 계속 떠오른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다. 그는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대대장이 왔다. 그는 얼른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그런데 대대장의 태도가 뭔가 변한 듯싶었다. 평소 입에 마르게 그를 칭찬하던 대대장은 오늘은 그를 만나더니 그냥 경례만 붙이고는 다른 중대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싸늘해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중대장들에게 다가가서 경례를 해도 그냥 받아 주기만 하고 저들끼리 밥을 먹었다. 대대장과 다른 중대장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조용히 식사를 계속 했다. 아까 오주원을 심문했던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그 날도 그는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기가 전과는 다르게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그 스스로에게 당당하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일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오주원이 한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SH-006을 열람해서 뭔가 일이 있나 확인했는데, 특별한 건 없었다. 단지 여자친구가 또 연락 기능 차단을 풀고 음성 메시지를 몇 개 남겨 놓은 것밖에는 없었다.

‘걔 참 대단하다. 얼마나 할 게 없었으면 수시로 이런 걸 남겨 놓을까.’

그러고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여자친구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자기야! 뭐해?”

“아유, 너 또 이거 풀었어? 그래, 심심해서 어떻게 지냈어?”

“자기 생각하면서 지냈지 뭐.”

“그래? 자기 내 목소리 들으면서 무슨 생각 안 들어?”

“음, 뭔가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요즘 내가 머리가 아프다. 넌 모르겠지?”

“뭐야, 날 그렇게 바보 취급하는 거야?”

“에휴... 하여튼, 내가 요즘 아주 상황이 안 좋아. 어쨌든, 그렇게 알고 있어 줘. 내가 언제나 자기 안 잊고 있는 거 알지?”

“음... 알았어. 그럼 이따가 또 연락한다?”

여자친구의 연락은 끊겼다. 그는 어차피 연락 기능을 차단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말을 들으면 안심이었다. 그래도 아까 일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그를 조금은 불안하게 했다. 그는 그에게 당당했다. 그가 들은 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한 건 앞으로의 일이었다. 대대장이 어떤 것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총본사의 사원 관리 체계에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든 남을 건 확실했다. 그것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뜻이다. 총본사에서 본사로, 본사에서 대대로 어떠한 조치가 내려올 것이다. 이래저래 머리가 아팠다. 그는 오늘 일찍 자기로 했다. SH-006에 자기가 잔다는 공지를 띄워 놓고, 9시간짜리 수면 보조제를 들이켰다. 곧 그는 잠자리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이렇게저렇게 3일이 흘렀다. 아침에 막 일어났는데, SH-006에 대대장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강영 북쪽 교외 오로의 경비 파견 부대 검열을 갔다 와야 한다. 오늘은 부대에 출근하는 대신 그곳에 다녀올 것. 이상.’

“뭐지? 대대장님이 내게 이런 건 잘 안 보냈는데. 뭐, 오늘은 부대에 출근 안 하고 검열을 간다니 그냥 정장으로 입고 가야겠군.”

보통 검열을 갈 때는 사원으로써 가므로 전투복이 아닌 정장을 입었다. 그는 아침을 먹고 시간이 될 때까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여자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도 있었다. 메시지를 하나하나 보니, 그녀는 그에게 변치않는 관심을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내심 흐뭇해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무슨 일이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는 오주원을 심문한 이후로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 자신이 기계로 느껴질 정도였다. 어쩌면 자기 자신은 GT 그룹이라는 커다란 기계 속에 있는, 대정이라는 작은 기계 속의, 또 그 속에 들어 있는 대정 경비대라는 더 작은 기계의 부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GT 그룹에게서 자유로워 본 적이 없었다. 생필품도 GT 그룹 산하의 회사 제품이고, 길거리에는 GT 그룹의 광고로 가득 차 있고, 학교 수업은 상품 홍보가 상당수 들어 있고, 심지어는 생필품 여기저기에 광고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는 그것이 점점 답답해졌다. 뭔가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되자 그는 정장을 차려입고, 거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가서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했다. 강영 시내가 아니면 철도 사정이 좋지 않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아침이라 도로는 다소 막혔다. 이 시간의 도로상의 차들은 거의 대부분이 정사원들의 출근 행렬이다. 정사원들의 근무지는 지방 행정 관청 아니면 대부분 강영 중심가에 있었다. 그만큼 길도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단 강영 순환 고속도로로 빠지기로 했다. 고속도로만 타면 다섯 가닥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통해 대정의 여러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그 중 북부 고속도로를 타고 10분만 가면 오로라는 소도시가 나온다. 이곳은 군사 시설 밀집 지역으로 이민우가 있는 부대는 그쪽의 탄약고 경비 파견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도 알려 주지 않고, 그냥 검열하라며 가라니 그게 말이나 될 일인가? 대대장이 이렇게 추상적인 명령을 내린 건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척 피곤하고 고달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늘 뭔가를 도맡아 해야 하고, 또 탈출구를 찾고 싶어하니 말이다. 그는 오주원의 말을 한 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오로 방면으로 빠지는 나들목이 나왔다. 나들목에서 부대까지의 거리는 5분이었다. 그런데 가다 보니까 길 앞에 검문소가 있었고 사람 몇 명이 무릎꿇려져 있었다. 검문소의 경비대원들이 그의 차를 세웠다.

“잠깐, 정지! 멈추시오! 여기는 신분이 증명되지 않은 사람은 지나갈 수 없소!”

“신분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사원증 말이오. 사원증이 없으면 통과할 수 없소.”

그는 주머니를 뒤져 봤다. 사원증이 없었다. 사원증은 전투복에 넣고 다니는데, 그 날따라 그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아, 이걸 어쩌지? 내가 오늘 깜빡하고 사원증을 집에 놓고 왔습니다.”

“그럼, 내리시오.”

“무슨 소리요? 나는 대정 경비대 1등위 이민우란 말이오!”

경비대원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 거짓말도 참 잘 하시는군. 감히 누굴 사칭하는 거요? 당신같이 사원증 없이 행세하는 비사원들을 많이 봤지. 저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쇼.”

“이봐, 나는 경비대 1등위다.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내게 이런 행위를 한 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입 닥쳐 새끼야! 빨리 안 내려!”

다른 경비대원이 운전석에서 그를 끌어내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꿇어앉혔다. 경비대원 한 명이 그의 머리에 소총을 들이밀었다. 그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 갔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검문소 쪽에서 호송차 한 대가 왔다. 경비대원들은 그들을 그곳으로 끌고 갔다. 이민우 역시 그곳에 탔다. 호송차 문이 닫혔다. 호송차 천장에서 뭔가 향긋한 냄새의 기체가 뿌려졌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금방 잠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몇 시간 동안 어디론가로 갔다.

 

여기가 어딘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뒤 호송차에서 내려서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 여기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이 작은 방 안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위에 있는 희미한 LED 조명만이 이 방을 밝혀 주고 있을 뿐이었다. 방의 냄새는 아주 쾨쾨했다. 방들은 벽을 마주보고 있었고, 벽에 붙어진 레일로는 감시카메라가 쉴새없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아침식사를 한 이후로 몇 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당연히 지치고, 배는 고팠다. 이 방 안에 먹을 게 있을 리가 없다. 방문은 환히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다고 나갈 수도 없다. 문은 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턱에 손을 괴었다. 천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59 이민우! 턱을 괴지 마! 손 떼!"

그는 다시 무릎 위에 손을 대고 앉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나저나, 이 나라가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같이 성실했던 사람이 조금 이상한 생각을 품었다고 이렇게 되다니... 오주원이 말한 게 거짓은 아니었어.’

옆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당신, 어쩌다 여기 오게 된 거요? 보아하니 체격도 좋은데, 뭘 하던 사람 같군.”

“아, 저는 원래 대정 경비대의 장교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검문소에서 사원증 제시를 요구할 때 사원증이 없었고, 저는 바로 체포되어서 여기로 오게 되었죠.”

“그런가? 안 믿기는데. 여기는 그런 것 가지고 오는 곳이 아니거든. 아주 중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오는 곳이오. 반체제 활동을 하거나 그에 동조하는 행동이나 언행을 했다던가, 강도상해나 사기죄를 저질렀던가...”

“보아하니 나이가 좀 지긋해 보이는데, 어떻게 오신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비사원이오. 하청으로만 40년을 일했지. 어느 날 배가 고파서 사원증이 없으면 출입이 금지된 사원 전용 식당에서 몰래 식사를 하고 있었소. 당연히 직원들이 와서 사원증을 요구했지. 나는 나갈 수 없다며 버텼소. 직원은 경비대를 불렀지. 직원과 몸싸움이 벌어졌고, 나는 분을 못 참아서 직원의 얼굴을 몇 차례 쳤소. 그 이후 나는 ‘감히 비사원이 사원을 폭행했다’는 이유까지 덤으로 씌워져 이곳으로 잡혀 오게 된 거요.”

“참... 억울하셨겠군요. 그런데 반체제 활동가들은 보통 한 곳에 잡아 둡니까?”

그 말을 듣고는 옆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하는군. 당신은 잘 알고 있소. 중대장으로 활동하며 시위를 진압할 적에 우리 활동가들을 많이 잡아 넣었지. 당연히 잊을 리가 없지.”

“아니, 정성훈? 당신은 그러면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단 말이오?”

“그럼, 알고말고. 반체제 활동가들은 이곳저곳에 분산수용되어 있소. 쓸데없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놈들은 그런 얄팍한 수작을 써서라도 반체제 활동가들을 분산시키려고 애쓰고 있소. 참, 그런데 당신 왜 잡혀왔는지는 저 분에게 말씀했고, 어쩌다 그리 된 거요?”

“며칠 전, 오주원이라는 반체제 운동가를 심문했소. 그 때 ‘개인적인 의문점’이라는 말을 했지. 생각해 보니 그게 이상하게 된 것 같소. 그 전에 세크라듐 광산으로 끌려가는 비사원들도 봤고. 아무튼 이 나라, 상당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소.”

“바로 보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시위 진압할 때 썼던 능력을 왜 지금은 못 쓰는 거요?”

“모르겠소... 여기 몇 시간밖에 안 있었는데도 시간 개념이 없어지고 혼란스러워지는군. 정신이 맑지 않으면 그것을 쓰지 못하는데... 이곳은 사람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락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곳이오. 여기 온 지 몇 시간밖에 안 됐지만, 나는 그렇게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때였다. 밖에서 워커 소리가 들려왔다. 벽을 울리는 그 소리는 방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공포로 이끌고 가기에 충분했다.

“젠장! 또 누구 하나를 305호 분실로 끌고 갈 모양이군. 놈들은 짧으면 하루, 길면 며칠을 가뒀다가 저렇게 하나씩 끌고 가지. 거기 가면 어떻게 될지는 몰라.”

워커 소리가 그가 있는 방 앞에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아보니 경비대 3등위 1명과 3등사 2명이 방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이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4487 정성훈! 나와라. 305호실로 간다.”

“젠장! 당신들은 다 똑같군. 당신들 중 누구 하나 나를 인간으로 대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 비사원이라고 갖은 수모를 주고, 여기 와서도 며칠씩이나 굶겼지. 이제 당신들도 그럴 테지. 어디 끌어갈 테면 끌어가 봐라.”

정성훈은 의자를 잡고 놓지 않았다. 병사 두 명이 그의 다리를 잡고 안간힘을 썼다. 3등사가 다가왔다. 순간 이민우는 3등위 오른쪽에 서 있는 3등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예전에 그의 부하로 있었던 조준호 3등사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를 몰라본다. 아니, 안다고 해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허리춤에서 진압봉을 꺼내들더니 정성훈의 손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정성훈이 비명을 지르며 잡은 손을 놓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병사들이 그의 다리를 잡아끌고 방을 나갔다. 정성훈은 그렇게 비참한 몰골로 305호실로 끌려갔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지금은 아마 그 다음 날 아침이리라. 그는 하염없이 온 몸이 가려웠다. 이곳에는 벌레도 있는 모양이었다. 정사원 때에는 방이 깔끔하게 관리가 되어서 그런 건 찾을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튼 그에게는 열심히 긁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몇 시간 동안 벽돌 수를 세 보기도 했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반드시 살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몸과 정신이 온전해야 한다. 기회를 마치 매가 먹이를 노리듯 노리지 않으면, 여기서 온전히 살아나갈 수 없다. 그 생각은 정성훈이 끌려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더욱 절실해졌다. 그는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방 동료에게 물었다.

“어르신, 여기서 혹시 탈옥한 사람은 없습니까?”

“없소... 이곳은 3중 경비가 되어 있고, 복도마다 모두 자동화 경비 시스템이 갖춰져 있소. 설사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 하더라도, 경비대원들이 쉴새없이 돌아다니지.”

옆에 있던 덩치 큰 죄수가 거들었다.

“이곳에서 빠져 나가려고 하느니, 차라리 죽는다고 생각하는 게 나을 거요. 여기서 탈옥하려는 사람은 모두 경비대원들 손에 죽었지. 그냥 초탈하슈.”

그 죄수는 벌써 체념한 분위기였다. 그 말을 듣고 이민우가 말했다.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쉽게 하는 거요. 나는 여기서 그냥 안 죽을 겁니다.”

그 죄수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

“잘 들어 보슈. 저기 또 공포의 사자가 오고 있군. 워커 소리 들리우? 또 누군가 저렇게 잡아가겠지. 305호실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는 저 정성훈이라는 자가 잘 말해 줬을 거요.”

그 워커 소리가 그 방 앞에 멈췄다. 2등위 1명과 3등사 2명이었다.

“2059 이민우, 나와라.”

“무슨...일이오?”

“305호 분실로 간다.”

같은 방의 죄수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이민우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그...렇소? 내 차례가 됐단 말이오? 뭐... 그럼 가 봐야지.”

그는 태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들 사이에 섰다. 2등위는 약간 놀랐으나 곧 말했다.

“당신 참 말을 잘 듣는군. 당신같이 우리를 잘 따르는 죄수는 처음이야. 본래 정사원이라 그런가? 다만 그 말투만 좀 공손하게 해 줬으면 좋겠군. 자, 가지.”

이민우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이민우는 어떤 방에서 한 중년 남성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중년 남성은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무로 만든 탁자를 앞에 놓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중년 남성은 방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원들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중년 남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온 이유를 알고 있나, 이민우?”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사원 등록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그런 것도 모르나. 조회하면 다 나온다네. 그건 그렇고, 자네 여기 온 이유를 알고 있나?”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해서입니까?”

그는 일단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아직은 기회가 아니었다.

“정답에 상당히 가까워. 자네는 진도가 빠르군. 내가 만나 본 자들 중에는 처음이야. 그런데 요점은 이상한 말이 아니야. 자네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구.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걸 모르나?”

“죄송합니다. 아직...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 것도 생각나지 않는 걸 무슨 엘리트라고 할 수 있겠나! 원래 이곳은 물리적 심문을 하는 곳이다. 문을 닫으면 완벽하게 밀폐되어서 누구도 알 수 없지. 뭣모르고 기어오르는 놈들은 여기서 울고불며 다 자백을 하게 돼! 나는 자네가 원래 정사원이고, 또 순응적으로 나오기에 이렇게 편의를 봐 주고 있는 건데, 자네도 그런 꼴 당하고 싶나?”

중년 남자는 격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움츠러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롭다.

“죄송합니다. 전 아직도 부족한가 봅니다.”

“흠, 그런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떠오를 거야. 나는 자네를 겁주려는 게 아니라, 다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써,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하려고 해 주는 것뿐이니까 말이야.”

중년 남자의 얼굴이 점차 풀어지고 있었다.

“아, 이제 안 것 같습니다.”

“오, 그런가? 답이 심히 기대되는군.”

“저는...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대정을 올바로 세우려는 노력에서 벗어나 쓸데없이 반체제가 주장하는 소위 자유화를 꿈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잘못한 것인데, 그것을 입 밖으로 냈으니 더더욱 잘못입니다. 지금 저는 제가 품어왔던 잘못된 생각을 모두 벗어버리고자 합니다. 저를 치료해 주십시오.”

그는 그러고서 무릎을 꿇었다. 중년 남자의 얼굴에서 완전히 경계하는 빛이 없어졌다. 중년 남자는 그의 앞으로 걸어나와서 말했다.

“좋아! 자네는 배우는 속도가 아주 좋군. 내 보고하여 좋은 대우를 받게 해 줌세.”

‘이 방은 밀폐되어 있다고 했지... 지금이 기회다...’

갑자기 이민우가 온 몸을 중년 남자 쪽으로 날리며 일갈을 질렀다. 중년 남자는 그대로 뒤로 고꾸라지며 머리를 탁자 모서리에 박고 기절했다. 이민우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문은 그대로 닫혀 있었고 어떤 움직임도 없는 것 같았다. 이민우는 남자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에 대해 두 가지를 모르는군. 이것은 사원 정보 시스템에도 없는 것이다. 하나는 나의 불굴의 의지이다. 다른 하나는 안 가르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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