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 - 위기, 절정(수정본)

안샤르베인 2 2,059

 도우미가 밥을 먹다 말고 컹컹 짖더니 우왕좌왕하는 양들을 진정시켰다. 녀석이 밥을 먹던 자리에는 엔시드가 던져준 고기와 뼈의 잔해가 가득했다. 양들이 조용해지자 도우미가 곧장 주인에게 오더니 칭찬해달라며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엔시드는 그럴 수 없었다.
 죽었을까, 살았을까?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외상은 없어 보였지만 뇌진탕일수도 있었다. 양 우리의 천장이 부서질 정도였으니까. 보통의 인간이라면 살아남았더라도 무사할 리 없었다. 그럼 네가 죽였냐는 오해를 살지도 모르지. 지금까지의 삶은 무너져버릴지도 몰라…….
 엔시드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잡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아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너저분한 짚 무더기를 헤치고 아이를 안아 올렸다. 마치 인형을 안아드는 것처럼 가벼웠다. 바닥에 내려놓고 살폈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고 머리엔 혹도 없었다. 그 충격을 받고서도 멀쩡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성에 불려가서 범인으로 의심받을 거리가 사라진 셈이었다. 아예 번개 때문에 우리가 부서졌다고 신고하면 약간의 보상금도 탈 수 있을 것이다. 그 돈으로 지붕도 말끔하게 고칠 수 있겠지……. 이런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가 무사한 걸 확인하자 안심이 되었다. 그는 자의든 타의든 주변 사람이 다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엔시드와 달리 잔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음울해 보이는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마치 적을 보는 시선이었다.
 “으음…….”
 정신이 든 모양인지 아이가 몸을 뒤척였다. 눈을 뜬 아이에게 엔시드가 반갑게 말을 건네려 하자 그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연신 좌우를 둘러보는 모습이 어미 잃은 강아지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엔시드는 저도 모르게 웃음 지을 뻔했다. 잔이 칼만 겨누지 않았다면.
 놀란 건 엔시드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에 들어온 것을 보고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지 앞머리가 들썩거렸다. 당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잔! 무슨 짓이야!”
 엔시드가 소리쳤다.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잔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듯 행동했다. 검의 날은 마력이 응집되어 빛났다. 빛이 목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자 아이의 여린 목에서 피가 흘렀다.
 뒤늦게 들어온 아스티라가 놀라 입을 막았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어린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검을 겨눌 수가 있단 말인가.
 “잔 씨!”
 “잔!”
 “시끄러워!”
 날선 외침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단 태도였다. 이럴 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법이다.

 소년은 입이 벌어진 채로 자신의 목을 노리는 사내와 그 뒤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분명 서류 작성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그것만이 현재 파악한 전부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당해줄 수는 없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어떤 방법을 쓰는 게 최선일까? 이 남자는 자신을 호락호락하게 보내 주진 않을 것이다. 뒤에 선 사람들은 그나마 호의적으로 보였지만 이들도 언제 돌변할지 몰랐다. 하지만 싸우고 싶진 않았다. 충돌 없이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셋을 재우는 것이다. 판단을 끝낸 소년은 마법을 썼다. 아니, 쓰려고 했다.
 “말해라. 넌 누구냐.”
 소년은 당황했다. 앞의 사내가 한 말에 놀란 게 아니었다. 마법이 발동되지 않았다. 마법에 전혀 실패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재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마법이었는데, 그 마법이 방해받았다. 어째서? 주변에 마법을 방해할 요인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데?
 생각을 더 전개할 새도 없이 검이 더 가까이 접근했다. 소년은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저…… 전. 크, 크리사오르…… 라고 하는데요.”
 “그것 말고 네 정체!”
 “히익.”
 공포를 느끼고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입이 바싹 타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상 도망갈 길이라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섣불리 달아나려다간 어깨 위가 다듬어질 것이다. 섬뜩한 기운에 소년은 부르르 떨었다. 목숨이 위협받는 일은 예전에도 자주 있었지만 지금처럼 무력함을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살짝 드러난 녹색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사시나무 떨 듯 떠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나 잔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라. 넌 정체가 뭐고 여기 왜 왔지?”
 “그…… 그건…….”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이러고 있지도 않을 거다. 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상대를 자극할지도 모르는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일을 대답하라니. 기가 막혔다.
 “잔! 그만해. 어린애잖아.”
 “그래요, 어린아이잖아요.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뭐에요?”
 다시 둘이 편을 들어주자 잔이 고개를 돌렸다. 살의를 품은 눈이 보이자 아스티라가 움찔했다.
 “엔시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네가 책임질 건가? 아무것도 모르면 나서지 마.”
 “그게 무슨…….”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에 아스티라는 할 말을 잃었다. 항상 무심해 보이기만 하던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하다니. 대체 무엇 때문에?
 우웅. 검이 울렸다.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알겠군. 저자는 드래곤이야.」
 그 목소리는 잔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들렸다. 다들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드래곤이란 환상의 생물에 불과했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보기 힘든 생물. 그러나 드래곤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드래곤은 포악한 마수로 소문나 있었으니까. 불을 뿜어서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보물을 뺏어가고, 사람을 납치한다고 알려져 있는 괴물이었으니까. 말조차 통하지 않으며, 죽여야만 후환이 두렵지 않다고 알려진 생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어떻게 사람의 모습으로, 그것도 이 자리에 나타날 수가 있지? 그들은 귀를 의심했다. 자신들 앞에 놓인 아이는 아무리 봐도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소년이 다급히 소리쳤다.
 “아 아니에요! 드래곤이라니, 말도 안 되는…….”
 크리사오르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부정했다. 하지만 자기변호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잔이 소년의 얼굴을 발로 밀어 넘어뜨리고 짓밟았다. 아스티라의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잔은 소년의 목을 노렸다. 칼날이 목 바로 위에서 멈췄다.
 “닥쳐! 이 간교한 자식. 엔시드를 노리나본데, 어림도 없지. 내 목이 달아나기 전까진 절대 안 되지.”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다시 항변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잔의 발에 힘만 더 들어갈 뿐이었다. 얼굴이 짓눌리자 고통스러웠지만 비명은 잘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고 울먹이기만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이 냉혈한에겐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것 같았다.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상황 판단이 더 중요했다. 소년은 이 사내가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해 보았다. 엔시드라는 이름은 남자의 것이었고, 노린다고 했으니 예전에 생명의 위협을 겪었을 것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사내는 저 청년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까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거뿐이었다. 빠져 나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고 말 텐데도. 드래곤은 목이 잘린다고 금방 죽진 않지만, 오래도록 붙여놓지 못한다면 드래곤이라고 해도 무사할 수 없다. 더군다나, 마법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장소에서 목이 제대로 붙기나 할까?
 죽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는. 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
 그 때 뭔가 후려치는 소리가 들리자 소년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스티라의 ‘아!’ 하는 탄식에 소년이 살짝 눈을 떴다. 뒤통수를 얻어맞았는지 잔이 비틀거리더니 그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날에 깃들었던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소년이 잠시 얼굴에 실린 무게에 표정을 찡그렸다가, 눈을 약간 굴려 둘을 보았다.
 엔시드는 화난 표정이었다.
 “아니래잖아!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드래곤은 마수일 뿐이야. 지금 처리해야 후환이 없단 말이다.”
 “마수고 나발이고 어린애잖아!”
 크리사오르는 다시금 멍해졌다. 보통의 사람들은 낯선 자를 경계했다. 어린애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게 현명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뭔가 달랐다. 크리사오르는 이들이 자신을 마수로 칭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드래곤을 마수라고 칭하는 종족은 단 하나뿐이다. 신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인간. 타 종족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축복받은 세계를 선물 받은 인간.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특히나 경계심이 많은 종족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서 있는 저 인간은 지금 자신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정체도 모르는 사람을. 단지 아이라는 이유로.
 엔시드는 잔의 발아래서 소년을 꺼내주었다. 흙먼지를 탈탈 털고 뺨을 쓸어주었다.
 “어휴. 얘 얼굴 좀 봐. 퉁퉁 부었네.”
 잔을 흘겨보고선 청년은 소년의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켰다. 손이 따뜻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크리사오르에게 있어 오해는 익숙한 일이었다. 누명조차도. 그는 드래곤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였었다. 바득바득 기어올라 와 높은 자리를 얻었지만 지금도 그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저 그의 힘과 권위에 잠시 복종하는 것일 뿐. 그마저도 사라진다면 자신을 물고 뜯을 상대는 진저리 날 정도로 많았다. 약한 모습은 사치였다.
 하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본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얼마 만이었더라. 자신을 그저 ‘아이’로 봐주는 상대를 만난 건. 편견 없이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을 만난 건.
 울먹거리는 아이를 품에 꼭 안는 엔시드를 보곤 잔은 미간을 잔뜩 좁힌 채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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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ester
1. 후반부는 문장이 적당히 길어지면서 한눈에 보기 쉬운데, 전반부는 문장이 너무 뚝뚝 끊어지다 보니까 앞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인상도 주는군요.
2. "히익."을 비롯해서 크리사오르의 대사가 상황에 비해 크게 놀란 것 같은 느낌이 없군요.
3. '엔시드라고 했으니 여자보다는 남자 쪽의 이름일 것이고,' 글쎄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 남자가 자신을 짓밟는 사람을 말리려는 걸로 봐선 그 사람이 엔시드인 걸로 보였다."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그래야 소년 입장에선 '소년=엔시드를 죽이려는 사람이란 공식을 부정한 사람이 엔시드'란 걸 알 수 있으니까요.
4. 잔이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점, 나중에 들어온 여자가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한다는 점에 대해 추가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2번과 4번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안샤르베인
음 그렇군요. 뭐 아직 미완성글이니 더 보충해야겠습니다. 비평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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