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명예의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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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집 이고깽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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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명예의 파스타

"맘-마미아! 이런 고물 베스파 같으니!"

청년은 자신이 아까 전 만 해도 잘 타고다니던 붉은색 베스파 스쿠터를 구둣발로 꽝꽝 차댔다. 그러나 서스펜션이 아주 나가버린 스쿠터는 내려앉아서 작동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불구가 된 자신의 애마를 보며 검은 곱슬머리를 짧게 커트한 머리를 왼손으로 벅벅 긁어댔다. 볼로냐부터 로마까지 가는 길 와중에 트레일러따위가 뿜어내는 매캐한 매연연기를 맡기 싫다는 이유로 국도 옆 숲길을 택한것이 아주 큰 실책이었다. 스쿠터의 얄랑한 몸으론 험한 돌길을 얼마 버텨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청년은 들고있던 베스파의 색과 세트로 맞춘 붉은 헬멧을 신경질적으로 땅에 휙 집어던지고 어으으으- 소리를 낼락 말락 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려 애썼다. 그 딴에는 화를 참으려 애쓴것이지만 주변에서 누가 보고 있다면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에 과도한 몸동작을 하는걸 보고 이미 분통이 터진걸로 보일 법 했다. 

청년은 주변을 슥슥 둘러봤다. 완벽한 숲이었다. 아까까지는 분명 국도 옆을 따라가서 적어도 도로의 가드레일이나 지나가는 유조차 따위의 실루엣이 보였지만 여기선 아예 숲밖에 보이질 않았다. 청년은 주위 광경을 보고 더더욱 화가 치밀었다. 얼마나 생각없이 몰고 들어왔으면 한심하게숲 한복판 까지 들어왔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 이딴걸 성과라고 보여주는거냐, 주세페?

청년이 출판해 낸 요리책을 자신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지며 일갈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청년의 이름은 주세페, 잘 나가는 자동차 공장장인 아버지를 둔 요리사 지망생 청년이었다. 물론, 가능하면 자신의 사업을 아들이 잇길 바랬던 아버지는 요리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을 개소리 취급했다. 그렇기에 그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었고.  어렵게 어렵게 '신세대 주부들을 위한 주세페의 이탈리아 요리법' 이라는 지지리도 상업적인 제목을 가진 책까지 출판해냈지만 방금 회상했던 대로 아버지는 책을 집어던지며 화를 낼 뿐이었다. 주세페는 그 길로 아버지와 의절하고 볼로냐를 떠나 로마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책을 출판했던 경력이 어느정도는 먹혔던지 로마 변두리의 레스토랑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세페는 이젠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해는 저무는데 숲길 한복판에서 길도 잃고 차량도 잃은 것이었다. 울고싶은 기분이 무럭무럭 피어나왔지만 주세페는 입술을 힘껏 깨물며 참아냈다. 한심한 상황에 처한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질질짜기까지 한다면 정말 찌질이 그 자체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주세페는 격한 감정을 추스리고 베스파 좌석에 앉아서 어찌행동해야 할 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야속한 해는 잠시 고민하고 있었을뿐인 주세페를 기다려주지 않고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주세페는 일단 걷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해가 진 방향으로 난 숲길을 걸어갔다. 고물이 된 베스파는 그냥 발로 차버려 수풀속으로 넘어뜨린 후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세페는 앞에서 다가오는 미약한 불빛을 발견했다. 자동차가 오는건가 싶어 주세페는 손을 위로 휙휙 흔들며 소리쳤다.

"이봐요!? 이봐요!!! 여기 사람있어요, 좀 도와주시죠?!"

불빛은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자동차 엔진소리같은건 들리지 않고 불빛도 헤드라이트 처럼 그렇게 밝지도 않았다. 주세페는 분명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이 숲에서 벗어나기만 할 수 있다면 뭐든 어떠겠느냐는 생각으로 계속 소리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주세페 앞에 도달한 것은 말이 끄는 짐마차였다. 기름 램프를 위에 달고 있어 불빛이 보였던 것이었다. 마차를 탄 중년의 부부와 마차 아래에 선 주세페는 서로 벙 하니 쳐다봤다. 주세페는 생각했다.

'여기 근처엔 농지도 없을텐데 이사람들은 왜 마차에 짚단같은걸 바리바리 싣고 가는거지? 옷 차림은 왜이리 구식이야?'

중년 부부는 주세페를 보며 생각했다.

'이 주변엔 민가도 없는데 여기 혼자서 뭐하는거지? 차림이 이상한 청년이구만.'

서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어색한 상황을 죽도록 싫어라 하는 주세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저기 아저씨? 어디로 가시는 중이세요? 혹시 로마로 가시는 길이면 잠시 짐칸에라도 신세질 수 있을까요? 제가 로마로 가던 중인데 국도에서 잠시 벗어나는 바람에 차도 잃고 길도 잃었거든요. 일단 근처에 국도나 휴게소라던가 있으면 거기까지만이라도 태워주시면..."
".......^@$@!$^%&%*???"

자신의 말을 듣고 들어보지 못한 언어를 내뱉는 중년 남자를 보고 주세페는 '어엇 씨바, 이 사람이 무슨 소릴 하는거지.' 하고 생각했다.

"$%&@#$*....?"

남자 옆에 타고있던 아주머니도 뭐라뭐라 물어왔지만 주세페는 역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무리 지역과 지역 사이지만 이탈리아 안인데 말이 안통하다니,  주세페는 더욱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고 보자는 생각에 온갖 몸짓을 동원해 자기 상황을 설명했다. 주변을 손으로 쭈욱 훑은 다음 손과 어깨를 으쓱으쓱대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라고 써붙여놓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그들 짐마차의 뒤를 가리키며 타는 시늉을 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할래요?' 라고 써붙인 표정을 지으며 검지와 엄지로 ok사인을 만들었다. 중년 부부는 제스처 도중에 섞어 말하던 말은 무슨 의미인지 못알아들었지만 주세페의 이탈리아인 특유의 표현력이 빛을 발했는지 그가 뭘 원하는지 팔 할은 알아듣고말았다. 중년 남자는 사람좋은 인상으로 웃으며 짐칸으로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주세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짐칸에 올라탔다.

주세페가 짐칸의 짚단위에 주저앉고 중년 남자가 고삐를 탁 치자 마차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세페는 과도하게 제스쳐를 취하느라 땀범벅이 된 와인색 와이셔츠를 잡고 풀럭풀럭거리며 땀을 식혔다. 발굽 다각다각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숲길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주세페는 오늘 아버지에 대한 회상부터 고장난 베스파까지 신경 긁는 일을 많이 겪었던 터라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중년 여자는 짐칸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주세페를 보며 말했다.

"졸리면 좀 자도 돼요. 어차피 우리 여관까지 가려면 내일 해 뜰 때까지 가야 하니까요."

주세페는 역시나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짚단 위로 손짓하는 아주머니의 제스쳐와 말하는 뉘앙스로 대충 무슨의미인지 파악하곤 짚단위에 풀썩 누웠다. 훈훈한 짚단 냄새가 풍겨오자, 주세페는 그대로 잠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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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총각. 일어나봐요. 다 도착했는데."

주세페는 누군가 자신을 흔들며 깨우는 소릴 듣고 부스스 일어났다. 하품을 한차례 크게 한 뒤 곱슬머리에 끼인 지푸라기를 쓱쓱 털어낸 주세페는 기지개를 쭉 펴며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을 태워준 중년 남자가 마차에서 말을 떼어내어 마구간으로 가고 있었고, 중년 아주머니는 기지개를 펴는 자신을 보고 사람좋은 인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 뒤로 보인 풍경은-
-중세 도시였다.

어안이 벙벙할 새도 없이 아주머니는 주세페의 손을 잡고 마차가 주차된 곳 옆 건물로 이끌었다. 주세페는 멍한 상태로 그냥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중년부부는 주세페가 들어간 그 조그마한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숲길에서 건져온 말도 안통하고 행색도 낯선 사람에게 밥이라도 챙겨 먹일 생각을 할 정도로 착한 사람들이었다. 여관의 식탁에 앉혀진 주세페에게 중년 여자는 주방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무그릇에 담긴 거무죽죽한 죽 내지 수프 비슷한 음식을 가져왔다. 주세페에게 나무 숟가락까지 건넨 중년 여성은 주세페의 등을 톡톡 두들겨주며 한마디 하고선 여관내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주세페는 상황파악이 영 힘들었지만 일단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놔두고 다른 생각을 하기는 싫었기에 나무숟가락을 들고 한술 떠다가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 먹었다. 절로 탄성이 나오는 맛이었다.

"오... 미오 디오!"

맛에서 나오는 충격에 주세페는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그리고 그 죽을 몇 술 더 떠 먹었다. 호밀을 빻아다가 걸쭉하게 끓여낸 물건인 듯 싶었다. 주세페는 숟가락을 잠시 그릇안에 내려놓고 푸르스름하게 수염이 돋고있는 두갈래로 갈라진 턱에 손을 대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다시 숟가락을 들고 한 숟가락 더 죽을 퍼먹었다. 눈까지 감고 천천히 혀 전체에 죽의 맛을 각인시키며, 말 그대로 맛을 음미하면서 먹었다. 입속에 들어간 죽을 삼킨 주세페는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젠장, 이걸 한그릇 비울 바엔 절벽에 떨어져 뒈지는게 나을 정도로 맛없잖아."

주세페는 아무리 물에 호밀 간걸 넣고 끓이기만 한 물건이라지만 '음식'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모독을 돌직구로 날려대는 맛을 내는 이 죽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세페는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고, 낯선사람을 태워다가 식사아닌 식사까지 대접하는 친절한 사람에게 욕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대신 주세페는 청소중인 중년 여자 앞에 서서 다시 제스쳐를 통한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내용은 '실례지만 제가 주방에서 뭔갈 좀 만들어드려도 될까요?' 였다. 어찌어찌 그 내용을 칠할 정도 알아들은 아주머니는 흔쾌히 주방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물론 '흔쾌히'도 표정을 보며 지레짐작한것이었지만 말이었다.

주세페는 주방에 들어섰다. 가스불따윈 없었고, 시골집의 주방을 보듯 흙과 벽돌로 만든 아궁이에 오븐, 스테인리스 주방도구들이 아니라 검은 강철 식기류들이 즐비했다. 주세페는 별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훌륭한 라자냐 정식을 만들어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 친구분들을 저녁식탁에서 놀라게 했던 그였다. 시설이 어떻든 상관 안했다. 주세페는 찬장을 들춰내어 재료를 물색했다. 밀가루, 토마토, 올리브 오일 향과 맛이 나는 기름, 파슬리 향이나는 어떤 푸른 식물쪼가리, 뭉텅이로 있는 치즈까지. 모시조개가 없는게 영 아쉬웠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마침 있던 소고기 조각을 좀 쓸 생각이었다. 

주세페는 먼저 밀가루에 물을 섞어다가 반죽했다. 파스타용 면이 미리 준비되어있지 않은게 좀 불만이었지만 없다면 직접 만들면 그만이었다. 요리사가 스스로 재료를 구하고 만들어낼 줄 모른다면 그건 삼류, 아니 사류 요리사라고 항상 믿어오던 그였다. 반죽해다가 잘라낸 파스타 면발을 옆에 두고 주세페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라이터가 없었지만 여기 준비된 부싯돌과 부싯깃으로 충분히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요리사라고 자처하면서 불도 혼자 피울 줄 모르면 요리사의 수치라고 항상 믿어오던 그였다.

아궁이에 능숙하게 불을 피우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주세페의 모습을 지켜보던 중년 부부는 살짝 걱정되는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보, 저 청년이 두르고 있는 기름은 램프기름 아냐? 왜 주방에 있지? 게다가 옆에 놓은건 수세미로 쓰는 이끼잖아..."
"모르겠어요. 리마가 주방에 놔뒀나봐요. 램프기름이라고 해서 못먹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 불렀어요 엄마~?"

중년 부부의 뒤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춘기를 갓 벗어난 부부의 외동딸 리마였다. 리마는 중년부부가 보고있던 주방 안을 자신도 쏙 끼어서 보더니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 어머니에게 질문했다.

"저 오빤 누구에요?"
"으응, 어제 할란숲에서 길 잃고 헤메는걸 마차에 태워줬단다. 배고플까봐 죽을 좀 만들어다 줬는데 먹다말고 갑자기 주방을 써도 돼냐고 하더구나."

그 소릴 듣고 중년 남자가 아내에게 물어왔다.

"뭐? 저 사람 우리 말 할줄 알았어?"
"아뇨. 그런데 손짓 몸짓 보니까 무슨 말 하는지 다 알겠던데요."
"참 이상한 사람일세 그려. 어어, 저 소고기는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 남겨둔거-"

주세페가 한주먹정도 하는 소고기를 과감히 썰어다가 프라이팬에 볶기 시작하자, 중년 남자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저 주방 안에서 요리하고 있는 남자가 멀쩡한 음식을 만들어내길 바랄 뿐이었다. 주세페는 자신 뒤에서 시선을 느끼고 뒤를 슬쩍 보았다. 주방 입구에서 세 명의 사람이 빼꼼하니 머리를 내밀고 자신이 요리하는걸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봤던 부부 외에 말괄량이같은 인상의 소녀도 한명 더 끼었었다. 인원이 늘었다는걸 본 주세페는 소고기를 한 뭉텅이 더 잘랐다. 중년 남자가 어어- 하며 더욱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주세페는 신경쓰지 않고 고기와 야채, 그리고 토마토를 볶기 시작했다. 모시조개가 없으니 화이트 와인을 넣고 볶을 필요는 없었지만 애초에 화이트 와인같은건 여기서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저 정석대로 봉골레 파스타를 기반으로 한 기초적인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었다.

주세페가 프라이팬을 몇번 휙휙 흔들며 재료들을 볶자, 프라이팬 위에 불이 훅 붙었다가 꺼졌다. 주세페는 올리브 오일에 불이 붙는걸 보고 으헉 하며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계속해서 요리를 했다. 지켜보던 세 사람은 램프기름에 불이 붙는게 당연하다는 듯 불안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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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의 경쾌한 손동작과 함께 여관 식탁에 식탁보가 깔리고 파스타 네 접시가 세팅되어 올려졌다. 주세페와 여관집의 세사람은 식탁에 앉았다. 볶은 토마토와 올리브 기름 향이 나는 맛있는 냄새가 여관 안에 진동했다. 주세페는 자신있게 미소지으며 포크를 들고 세사람에게 파스타를 권했다. 부부 두 사람은 일단 맛있는 냄새가 나기에 포크를 들긴 했지만 선뜻 이 정체모를 음식을 집어먹으려 하진 않았다. 파스타에 가장 먼저 포크를 들이민 사람은 여관집 딸 리마였다. 리마는 소고기와 면발을 같이 찍어말아다가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씹었다. 리마의 음식을 먹던 입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리마의 눈이 점점 커졌다.

"우와, 엄마."
"왜그러니?"
"아뇨, 아뇨, 너무 맛있어서 무의식적으로..."

딸의 반응을 본 부부 두 사람도 떨떠름하게나마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반응은 그들의 딸과 다를게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중년 남자는 맛있던 나머지 코가 시큰거려 눈물이 나오려는걸 틀어막으려 애썼고, 그의 아내는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든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파스타를 먹었다. 주세페는 맛의 충격에 빠진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미소지으며 자신이 만든 파스타를 먹었다. 물론 파슬리 아닌 수상쩍은 식물을 쓰고, 정확히는 올리브 오일이 아닌 기름을 썼지만 평소 그의 실력보다 더 잘 나온것 같은 맛이 느껴져 그 스스로도 만족했다. 네 명이 파스타로만 만든 조촐한 식사를 마무리짓자, 여관 주인 부부가 주세페의 손을 부여잡으며 뭐라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이보게 총각, 여기서 일하게. 방도 주고, 봉급은 서운하지 않게 줄테니까. 응?응?"
"하마터면 저녁에 아까운 고기를 버릴 뻔했어, 자네가 이런 음식으로 만들어줘서 정말 영광이네."

주세페는 이 사람들이 갑자기 득달같이 다가와서는 영문도 알지 못할 말로 이러는 이유를 몰랐지만 일단 헤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여관집 딸 리마는 식탁에 앉아서 급작스러운 자신의 부모의 행동에 곤란해하는 주세페를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페는 저 소녀가 왜 입술에 혀를 할짝대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지도 궁금했지만 일단 더 중요한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대체 여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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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서남쪽에 위치한 따뜻한 바다 근처에 있는 도시인 실리아에 갑자기 번창하기 시작하는 여관이 하나 있었다. 주인이 자신의 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리마 여관' 이라는 여관이었다. 외국인 요리사 한명을 받아들이고 나서 갑작스럽게 번창하기 시작한 이 여관은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맛을 내는 '파스타'라는 요리 하나로 손님들을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몰고 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손님이 원하기만 하면 어떤 재료로든 파스타를 만들어내는 요리사 덕에 단골 손님은 물론 새로 유입되는 손님도 넘쳐나게 되어 여관건물을 점점 늘이기도 했다.

물론 그 여관의 음식을 좀 먹어보고는 그걸 흉내낸 아류작들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실리아에 속출했다. 그러나 리마 여관의 요리사가 만들지 않는 이상 같은 맛을 낼 수는 없었고, 그저 리마 여관에 발을 들이지 못한 사람들이나 찾는 그저 그런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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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가 맞나?"
"네, 파스타가 맞습니다. 보스."

검은 로브를 입은 성인 두명이 실리아 거리에 서서 리마 여관을 앞에 둔 채 대화하고 있었다. 리마 여관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사람으로 붐볐고, 입구엔 긴 줄이 거리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보스라고 불린 사내가 검은 로브의 후드를 뒤로 젖혀 벗자 노인의 얼굴과 커트해서 기른 수염이 멋스럽게 드러났다. 그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여관 입구로 발걸음을 향하며 말했다.

"들어가보지."
"예, 보스. 마리아, 너도 따라와라."

두 사람 뒤로 검은 로브를 입고 사각형의 납작한 가방을 옆으로 맨 꼬마가 한 명 더 있었다. 마리아라고 불린 꼬마는 그들 뒤를 따라서 여관 입구를 향했다. 세 사람이 모두 여관 입구에 들어서려는 찰나, 대여섯명의 꾀죄죄한 행색의 소년 소녀들이 그들 앞으로 우루루 몰려와 그들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한푼만요. 제 동생이 굶고있어요."
"아저씨! 기다리시라니까요."
"동전 몇개만 주시면 그냥 갈게요!"
"저리 꺼져라 이놈들아! 더 이상 가까이 온다면 경비병을 불러다가 두들겨 패줄테니까!"

검은 로브의 사내가 노인과 꼬마 앞에 서며 거지 아이들에게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눈살을 조금 찌푸리더니 사내가 정말 경비병을 부를 것 처럼 행색을 하자,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각자 흩어져갔다. 노인이 중얼거렸다.

"들어왔을 때 부터 느낀거지만 여긴 고아들이 많은 것 같군."
"예, 실리아야 원체 고아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따뜻하고 바다도 가까이 있지만 소매치기나 좀도둑 사건이 워낙 많이 발생해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았죠. 이 여관이 들어서기 전까진- 마리아, 그 쪽 보지 말고 잘 따라와."

꼬마는 거지들이 몰려올 때 자신이 들고있던 가방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그래도 못내 신경이쓰였는지 거지들이 사라진 골목길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줄을 잇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입구에 들어섰다. 문 앞에서 줄을 서던 사람들이 뭐라 항의하려 했지만 그들의 검은로브 행색을 보고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저 차림은 '수호자들'임이 분명했기에 연관되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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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모두 '봉골레 파스타'라는 메뉴명을 가진 파스타를 주문했고, 식사를 모두 마쳤다. 꼬마는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었지만 노인과 인솔자 사내는 표정에서 음식에 대해 매우 감탄한듯한 모습이 우러나왔다. 그러나 사내는 이내 그 표정을 지우고 심각한 얼굴로 노인을 보고 말했다.

"파스타는 확실히 맛있습니다만... 메뉴판과 맛을 통해서 저 요리사 놈이 이계인이라는게 더욱 자명해졌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역시 이전처럼 처분하는것이-"
"그냥 둬."
"예?"

노인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보게. 자네가 월 스트리트에 살 적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던 음식보다 훨씬 낫지 않나?"
"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보스.."

사내는 노인 입밖으로 나온 소리에 잠시 당황했다.

"파스타에 화이트 와인까지. 정말이지 이 빌어먹을 세계에 와서 수십년간 먹은건 맛대가리 없는 빵조각이나 구정물같은 포도주밖에 없었어. 내가 이렇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본건 40년만에 처음이라는거네. 적어도 자넨 10년내지 12년만에 먹어보는 것이겠지."
"....."
"그냥 살려두자고. 우리도 먹고살자고 이 짓 하는거 아니겠나? 요리사 따위가 이 세계에 무슨 변동을 일으키겠어. 변동을 일으켜봤자 후진양성으로 이 세계의 음식맛을 좀 더 향상시키겠지. 그럼 우리에게도 좋은게 아니겠나."

노인은 와인잔에 담긴 화이트와인을 비웠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음식값을 받으러 오는 여관 여급에게 금화 몇 닢을 건네곤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 놈은 위험하지 않네. 돌아가지."

꼬마와 사내는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이곤 후드를 다시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후드 일행이 입구를 나가자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두 사람이 입을 열었다.

"여보, 저 사람들 수호자들이었죠?"
"응. 저 사람들이 대체 왜 여기에 들른거지... 재수없게시리."

여관 주인 부부는 방금 나간 검은 후드 일행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들 뒤로 잠시 일하는걸 멈추고 쉬고 있던 주세페가 

다가와 물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입구쪽만 보고계세요?"
"아, 주세페.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재수없는 손님이 들렀다 가서 그래. 자넨 알것 없어."

주세페는 원래 말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게다가 그의 옆에 여관집 딸 리마가 항상 붙어다니는 덕에 그가 이곳에 온 지 3년도 되지 않아 글은 아직 쓸 줄 몰라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말을 배웠다. 주세페가 여관에 스카웃 된 날 밤 하늘을 보고 말 그대로 '형형색색'의 별들이 잔뜩 떠있는 걸 본 후 그제야 자신이 지구에 있는게 아니라는걸 재빨리 깨닫고 말을 배우는데 열성적으로 임한 것도 한 몫 했었다.

"주세페! 얼른 와, 점심시간 끝났으니까 저녁준비 해야지!"
"아..알았어 리마. 좀만 있다가..."
"맘-마미아! 지금 바로 준비해야 한다니까!"

리마는 주세페가 자주 입에 담던 감탄사를 따라하며 그의 팔을 잡아 이끌고 주방으로 다시 끌고갔다. 주세페의 질린듯한 신음소리가 입에서 으어어어어어 배어나왔다. 주인 부부는 그 둘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두 부부 모두 그 둘이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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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영업이 끝나고 여관의 식당엔 술을 마시는 선원들과 불가에서 불을 쬐는 사람들밖에 남지 않았다. 주세페는 종업원 여급에게 그들의 시중을 맡기고 주방으로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오는 큰 냄비와 접시 여러개를 챙겨다가 여관 뒷문으로 나왔다. 주세페는 낑낑거리며 들고온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국자를 들어 냄비를 퉁퉁 쳤다. 그러자 골목골목에서 아이들이 우루루 달려나와 주세페가 내려놓은 냄비쪽으로 쇄도했다. 그 모습을 본 주세페는 제법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줄 안서면 밥 없다."

말 끝나기 무섭게 꾀죄죄한 몰골의 소년소녀들은 달려오던 순서대로 냄비앞에 일렬 종대로 착착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아기자기한 모습에 주세페는 웃음이 배어나왔다. 그 줄의 제일 앞은 이들 고아들의 골목대장격인 라피테라는 체격이 있는 소년이었다. 주세페는 접시에다가 냄비에 담은것을 가득 퍼담아 소년에게 건네며 말했다.

"라피테, 동생은 좀 어떠니?"
"아저씨가 매일 밤 이렇게 먹을것을 주셔서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기침도 이제 자주 안하고."
"잘됐다. 여기, 좀 더 받아다가 동생하고 같이 먹어라."
"감사합니다."

주세페는 줄지어 선 고아들에게 모두 말 한마디씩, 안부 한마디씩을 하며 음식을 나눠줬다. 비록 여관에서 파스타를 만들다가 남은 자투리 면과 남은 야채로 만든 소스들이었지만 고아들에겐 감지덕지였다. 수십의 고아들이 음식을 받아 여기저기서 먹고 있을 때, 주세페의 뒤에 누군가 나타나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팔짱을 끼어왔다. 리마였다. 리마는 잠시 주세페의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조용히 물어왔다.

"주세페, 날마다 오는 아이들이 많아지는건 알고 있어?"

주세페는 침묵했다. 그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이렇게 하다간 끝이 없잖아. 애들이 더 불어나면 남는 음식으론 감당 못해."

주세페는 옹기종기 음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쭉 훑어본 후 말했다.

"대부와 대모라는 풍습...이랄까 의식같은게 내 고향에는 있었어."
"대부? 대모? 그게 뭔데?"
"음... 자기 몫을 해나가기 시작할 시기의 소년 소녀들에게 정신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주는거야."

주세페는 자신의 팔에 기대고 있는 리마의 다른 쪽 어깨를 잡고 리마를 자신과 정면으로보게 했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주세페의 시선에 리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세페는 리마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난 이녀석들의 대부가 되어주고 싶어."
"....."

주세페는 잠시 뜸들이다가 말했다.

"리마. 이 녀석들의 대모가 되어줄래?"

리마의 얼굴이 붉다못해 귀까지 빨개졌다. 리마도 주세페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기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리마는 손바닥으로 주세페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리는 주세페에게서 몇발자국 떨어져서는 소리쳤다.

"고...고백하는게 뭐 이런식이야? 네가 좋기야 하지만 나..나나..난 아직 결혼같은건 생각해본적이..."

리마의 눈동자가 핑글핑글 돌았다. 그러자 주세페가 아픈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일어나면서 말했다.

"고백? 무슨... 아야야야... 대모가 되는건 딱히 그 둘이 결혼관계가 아니더라도..."
".....!"

리마의 당황으로 붉어진 얼굴이 분노로 더욱 붉어졌다. 곧이어 리마는 주세페에게 달려들어 신명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 바보! 바보! 멍청아! 얼간이 외국인! 등신아!!"
"악! 아악! 어윽! 끄어어억!"

주세페는 무슨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쳐맞기만 하고있었다. 그 광경을 밥 먹다 말고 지켜보던 고아들은 둘이 사랑싸움 한다면서 깔깔깔 웃어댔다. 주세페의 비명소리와 리마의 욕설, 고아들의 웃음소리가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

주세페는 리마에게 한바탕 얻어맞은 날 이후 실리아의 고아들을 모두 모아 그들의 대부가 되어주겠다고 공표했다. 리마는 그와 함께 고아들의 대모가 되어주겠다고 같이 공표했다. 그들은 여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고아들을 부양하겠으며, 학교에도 보내기로 결정했다. 고아들은 주세페와 리마가 그들의 대부와 대모가 되었다는 말만을 듣고도 감격해 대다수가 눈물을 짜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잠자리와 학교까지 보장한다는 말을 듣자, 그저 그들의 구원자인 두 사람에게 평생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만이 고아들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여관은 더 이상 번창하지는 못했다. 들어오는 수입이 거의 다 수많은 고아들의 부양비로 돌아갔기에 여관의 일은 더 힘들어졌고, 그저 현상유지에 급급한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힘든 와중에 주세페와 리마는 결혼했다. 여관 사정을 어렵게 만든 주세페임에도 리마의 부모가 적극적으로 밀어준 덕에 그들은 축복속에 결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할 때 그들의 자녀는 아들 122명, 딸 87명으로 총 209명이었다. 고아들 중 사춘기를 갓 벗어나기 시작한 몇몇은 그들 스스로 그룹을 형성해 뭉치고 있었다. 그들의 그룹 이름은 주세페의 성에서 따온 명칭인 '콜리오네 가문' 이었다. 고아들은 점점 성장했고, 나이가 찬 고아는 자동적으로 '콜리오네 가문'에 가입되었다. 그 고아들의 아버지는 주세페였고, 어머니는 리마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도시 실리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고아 문제는 콜리오네 가문이 생기고 난 후에도 계속 되었기에 그들의 수는 점점 불어났다. 또, 주세페에게 요리를 배운 몇몇의 고아들이 주변 도시에 파스타 요리점을 열면서 콜리오네 가문 일원들은 주변 도시로 유입되어갔고 그들은 주세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지 않았기에 그들 내키는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콜리오네 가문이 점차 조직 폭력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조직 폭력배라고 해서 그들이 무식한것은 아니었다. 주세페의 보살핌 아래 모두가 학교를 다녔던 고아들은 음식점에서 그치지 않고 도시의 각계각층과 심지어 고위 지배층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주세페가 60세에 이르렀을 때, 실리아 주변은 '소(小) 이탈리아' 화 되어가고 있었다. 토마토와 오렌지, 포도 등 계단식으로 만든 과수원들이 즐비해졌고, 코르크 비슷한 나무로 지붕을 얹은 집들이 농촌에 다닥다닥 세워졌다.

'수호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것은 공분주의자 토벌이 막 끝난 그 때 쯤이었다.

-----

올해 63세를 맞는 주세페 콜리오네는 안락의자에 앉아 천천히 레드 와인을 홀짝였다. 그의 뒤엔 덩치가 심하게 큰 사내가 열중 쉬어 자세로 그를 호위하듯 서있었으며, 안락의자 앞에 있는 탁자 반대편에선 검은 로브를 입고 긴 붉은 곱슬머리를 후드 바깥으로 빼고 있는 여성이 앉아있었다. 여성은 어깨에 사각형의 납작한 가방을 메고 있었다. 여성이 말을 꺼냈다.

"그래서 우리 수호자들은 주세페 콜리오네, 당신을 수호자들의 멤버로써 영입하려고 합니다."

주세페는 주름진 눈가를 탁자 건너편의 여성을 향하며 천천히 말했다.

"거절하지."
"왜죠?"
"이 세계에 온 후 이때에 이르기까지 당신들이 한 악행들은 풍문으로 들었든 직접 본적이든, 잘 알고 있어."

여자는 짐짓 화나는 표정으로 그 말에 대꾸했다.

"악행? 수호자들이 하는 일에는 응당한 이유가 항상 있습니다. 모든게 이곳을 위한 일이죠. 악행으로 몰아가시면 곤란합니다."

주세페는 클클클 웃었다. 여자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를 밝히기까지 하며 제안했는데, 그걸 거절하신다면 당신의 안위가 위험하실겁니다."
"안위? 내 목숨?"

주세페는 다시 크게 웃었다. 그러나 곧 그는 웃는 얼굴을 거두며 정색했다.

"내가 대신 자네에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지."
"이쪽에서 협상중인데 또 제안을 하시다뇨? 이건-"
"당장 여기서 떠나. 아니면 당장 여기서 죽어. 양자택일이야. -라피테!"

주세페 뒤에 서있던 거구의 남자가 허리춤에 찬 칼을 빼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짧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주세페 콜리오네. 그러는 당신도 성인군자는 아니야. 당신이 거둬들인 고아들이 주변 도시에서 폭력배짓을 하고 있다는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이탈리아 요리점 활성화를 위해서 주변 농지들을 자본력으로 억지로 이탈리아 농업 방식으로 바꿔버렸어. 그 때문에 직업이 하루아침에 없어진 농민들이 많아졌고, 자식들을 실리아에 버리고 타향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지. 고아들이야. 당신 밑으로 들어올 그 고아들이 더 늘어난 셈이겠지. 의도한 사항 아니었어?"

주세페는 와인을 마시다 말고 탁자위에 놓인 나무상자를 열어 시가를 하나 꺼내 입으로 주둥이를 뜯고 옆의 라피테가 미리 준비해둔 숯불로 불을 붙여 피웠다. 매캐한 연기가 방을 메우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또 말했다.

"시가... 그런 형태의 담배는 여기에 없을텐데. 어디서 얻은거지?"

주세페는 그제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피와 명예... 콜리오네 가문의 신조지. 피와 명예만 있다면 못 얻을것이 없을테니까..."

그리고 시가를 한모금 더 피운 주세페는 일갈하듯 말했다.

"마지막 기회네. 이곳에서 나가던가, 아니면 여기서 죽게."
"....."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여자는 콜리오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신세대 주부들을 위한 주세페의 이탈리아 요리법'..... 이런걸 지은 사람이 마피아 대부가 되실줄 누가 알았겠어. 아버지가 아주 기뻐하시겠는데? 결국 잘나가게 됬잖아."

그리고 여자는 문을 열고 나갔다. 주세페는 시가연기를 후욱 뿜어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피테. 대부가 명령하겠다. 이제부터 모든 콜리오네 가문 일원들은 수호자들의 무리를 만날 시 절대 가만두지 않도록 한다. 모두 죽여라. 실리아 근처에 얼씬거리는 그들의 무리들이 있다면 가차없이 없에버려라."
"예, 아버지."

주세페는 명령을 마치고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걸 제공해주는 그 친구는 멀쩡할지 모르겠군그래."


--- ---


으하하하하핳 드디어 백업 완료! 이젠 새 글이나 써야겠네요.

Motivated by - 마스터 키튼 : 에피소드 '피와 명예'편, Godfather

* 위 글은 이상한 석궁수와 모험왕공분주의자 선언죽은자들의 밤과 같은 세계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행해서 저 작품들을 보시면 맥락 없는 이 글의 이해가 그나마 잘 갈 수 있습니다.
* 피드백과 질문, 짜잘한 사소한 질문 모두 환영합니다. 이게 다 힘이 되거든요.
* 휴가 마치기 전의 마지막 글이 될지 아니될지... 암튼 피드백 많이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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