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전개 부분

안샤르베인 4 2,410
사각 사각, 글 쓰는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방 자체는 꽤 넓었지만 서류가 그득그득 들어차 있어 겨우 사람이 지나갈 수만 있는 길만 뚫려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사람이 앉아서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는 중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앙다문 입술만 아니었더라면 웬 꼬마가 놀러와 장난을 치는 것인가,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앉아 있는 소년은 앳되었다. 빗질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산발한 머리카락은 눈까지 가렸고, 춥지 않은 날씨에도 이것저것 껴입은 옷의 소매 사이엔 이상할 정도로 가는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소년은 한숨을 쉬고 읽은 서류에 서명했다. 벌써 몇 시간째 반복적인 일만 하자니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밀린 서류를 두고 나가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일만 벌이는 무능한 부하들을 두고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소년은 입술을 짓씹으며 다음 서류를 집었다.
“그나저나 결재 끝낸 건 왜 안 가지고 가는 거야…….”
입구에다 쌓아둔 종이 탑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니 답답해지기만 해서 소년은 펜대를 잡았다. 탑에다 한눈 팔 시간 같은 건 없으니까.
일에 집중하다보니 소년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소년 주변에서 생긴 균열이 그를 뒤덮는가 싶더니 종이더미가 균형을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에 소년의 모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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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이때쯤이면 아가씨가 도착할 것을 예상하고 엔시드가 먼저 숯불에 양고기를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고기가 타지 말라고 물을 조금씩 뿌리면서 구웠는데 연기가 엄청나게 났다. 상의를 벗고 구워야 옷이 엉망이 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잔은 언제 익나 구경만 할 뿐 도와주진 않았다. 자연히 고생은 엔시드의 몫이었다. 엔시드가 툴툴거렸다.
“좀 도와주라. 나 혼자 일하고 있잖냐.”
“더 할게 있나?”
“아이스크림도 내와야 한다고.”
“…….”
귀찮다는 표정으로 잔이 일어섰다. 좀 전에 씻기도 했겠다, 편하게 앉아서 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상의를 벗어버리고 고기를 구우려고 했지만, 자신 쪽으로 향해오는 연기 때문에 잔은 콜록거렸다. 바깥 생활을 오래 했지만 요리엔 별 관심이 없었던 잔으로선 이것도 힘든 일이었다.
잠깐 혼자 놔둔 사이 양고기와 씨름중인 잔을 보고 엔시드는 큭큭 웃으며 가지고 온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를 내려놓았다.
“미안 내가 잘못했다. 넌 이거나 저어.”
“이래저래 귀찮게 만드는군.”
투덜거리면서도 잔은 돈두르마를 건네받았다. 얼음으로 잘 보관된 돈두르마는 끈적거렸다. 잔이 철봉으로 돈두르마를 휘휘 젓는 동안 엔시드는 고기가 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아가씨에게 다 탄 양고기 꼬치를 줄 순 없으니까.
멀리서 다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엔시드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가씨!”
상의를 벗고 있다는 것도 깜빡하고 달려 나오는 엔시드를 본 아스티라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엔시드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그제야 상황파악을 하곤 멈춰 섰다. 엔시드의 몸은 오랜 기간 농사와 양치기 일로 단련돼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돌아오는 엔시드를 보곤 아스티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었지만 언제나 처음 맞이할 때는 예의를 갖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엔시드의 지론이었다.
엔시드가 위로 손을 뻗자 아스티라는 마주 잡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혼자서도 내려올 수 있었지만 애인의 친절이 싫지 않았기에 그에 맞춰주었다. 말고삐를 잡고 집까지 오자, 밖에서 여전히 돈두르마를 젓고 있는 잔이 보였다.
“야야, 그만 멈춰도 된다니까 왜 아직도 젓고 있어?”
“언제 말했는데?”
귀찮은 표정으로 잔이 멈췄다. 아스티라는 잘 구워진 양꼬치를 보고 눈을 빛냈다.
“어머나, 벌써 이렇게 맛있는 걸 다 준비하시고.”
“지금쯤이면 오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후훗. 생일 선물이군요.”
성주 가족의 생일은 단순히 귀족들이 와서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평민들의 축제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엔시드의 신분이 신분인지라 정작 아스티라의 생일에는 서로 아는 척도 못 할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아는 척을 했다간 의심 받을 테니 이렇게 미리 준비했으리라. 아스티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엔시드 씨.”
“아하핫.”
아스티라의 입맞춤을 받고 엔시드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잔은 눈꼴시다는 듯 한번 흘겨보고는 양꼬치 하나를 집었다.
“어엇, 아가씨부터 먼저 드셔야 된다고.”
“저 여자만 입인가?”
아스티라에겐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엔시드랑 사귀면서 잔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게 된 그녀였기에 씩 웃기만 했다. 또한 잔이 말은 그렇게 할지라도 자신보다 먼저 먹지 않으리라는 것도 아스티라는 알았다.
“그럼 드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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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 먹었다.”
양꼬치를 먹고 돈두르마로 입가심을 하니 배가 불러왔다. 아스티라는 밖으로 꺼내온 의자에 편하게 걸터앉았다. 꼬치는 아직 몇 개 더 남았지만 아무도 먹지 않을 터였다. 엔시드가 아까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적게 만드는 건데.”
“얼려서 보관하면 되잖아.”
“그럼 맛이 없어지니까 그렇지.”
엔시드가 핀잔을 주었다. 일반 사람들은 고기를 보관하기가 힘들어서 육포나 햄으로 말려 먹었다. 그러나 마법을 책으로나마 조금 배운 엔시드는 남는 음식을 자주 얼려놓곤 했다. 그러다보니 음식을 얼리면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진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음식을 얼려서 보관하진 않았다. 잔이라면 이런 데 신경을 안 쓰겠지만.
“돌아갈 때가 됐네요. 아쉬워라…….”
하늘에 노을이 번져가는 걸 보고 아스티라가 정말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엔시드도 마찬가지였다. 잠깐만이라도 볼 수 있다는 건 좋지만 헤어질 땐 언제나 여운이 남는 법이다. 잔은 눈꼴시단 표정을 짓고선 두 연인이 서로를 껴안자 고개를 돌렸다.
그때 무언가가 웅웅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검이었다. 자신과 대화를 원하는 신호였다. 잔이 칼자루를 잡았다.
「주변 기류가 이상하다.」
“뭐가 말이지?”
「뭔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조심해라. 아주 강대한 마력을 품고 있다.」
경고의 메시지가 머릿속으로 직접 흘러들어왔다. 잔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만약 적이라면, 그것도 자신이 끌어들인 거라면…….
그때, 우리 방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아스티라를 껴안고 있던 엔시드도 자연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우리의 천장이 부서지고, 양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부산히 움직였던 것이다. 갑자기 천장이 부서지다니? 돌풍이 인 것도 아닌데? 아스티라를 안던 팔을 놓고 엔시드는 황급히 우리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이 동그래졌다.
“뭐……뭐지?”
짚과 건초 더미는 충격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딱 맞게 쌓아놨던 더미들은 무너지고, 천장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난장판의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었다.
빛바랜 백금발 머리가 짚과 건초가 뒤엉켜 엉망이 되어 파묻혀 있었다.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 듯한 사람은 아무리 봐도 열두 살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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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카리스트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옷을 이것저것 껴입었다면, '그러나 옷 사이로 보이는 손목은 몸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가늘었다.'는 묘사는 빼도 되지 않을까요?
안샤르베인
음... 껴입은 거에 비해 말랐다는걸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표현하면 좀더 부드러울것 같나요?
카리스트
옷을 껴입었다는 부분에서 마른 걸 강조하기에 어렵지 않을까요... 손목을 표현하기보다는 볼살이나, 손 자체를 표현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손이 이쑤시개 같다던가, 이런거요.
또는 옷을 껴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옷 하나 입은 것처럼 보인다든가는 어때요?
안샤르베인
흠... 일단은 이렇게 내버려서말이죠. 다음번에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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